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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30일 목요일

불기2564-04-30_소실지갈라공양법_001

『소실지갈라공양법』
K0431
T0894

소실지갈라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소실지갈라공양법_K0431_T0894 핵심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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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4-30_소실지갈라공양법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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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1-001♧
소실지갈라_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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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M#]




『소실지갈라공양법』 ♣0431-001♧





소실지갈라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소실지갈라공양법


소실지갈라공양법(蘇悉地羯羅供養法) 상권


선무외(善無畏) 한역
박용길 번역


모든 여래부(如來部)에 속한 법보살(法菩薩)들과
연화부(蓮花部)와 금강부(金剛部)의 보살들과
아울러 모든 권속 등에게
목숨 바쳐 귀의합니다.

저는 이제 교설(敎說)하신
공양하고 지송(持誦)하는 법에 따라
3부(部)1)에 통하는 차제(次第)와 상응(相應)을
간략히 살피렵니다.

먼저 신실(神室)의 처소(處所)를 살피고
다시 그 사법(事法)을 밝히겠습니다.
진언(眞言)과 수인법(手印法)과
마주하여 받는 법과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장소에서
흙을 나누어 깨끗이 씻는 법과
신실의 처소를 물 뿌려 청소하고
시든 꽃 등을 치우는 법과

깨끗이 씻어 스스로 관정(灌頂)하고
세 번 물을 떠서 헌공(獻供)하는 법과
신실의 문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몸에 물을 뿌리는 법과

신실에 들어가 바로 예배하고
여러 공양구(供養具)를 갖추는 법과
수주(數珠)와 신선(神線)과
띠 풀을 까는 법 등과

알가수(閼伽水)를 봉헌하고
보좌(寶座)를 설치하는 법과
다시 삼마야(三麽耶)를 보이고
육신의 장애와 고난을 없애는 법과

허물을 없애고 더러움을 씻어
청정하고 빛나게 하는 법과
호신(護身) 및 결계(結界)하기를
팔방(八方)과 상하(上下)로 하는 법과

처음에 신좌(神座)를 관상하여
본존(本尊)을 관하는 법과
있는 방향과 처소를 따라
본존을 받들어 청하는 법과

그 근본 진언으로
먼저 본존께 여쭈어 청하고 나서
뒤따르는 마군(魔軍)을 바로 쫓아 없애고
자리를 받들어 앉으시도록 하는 법과

거듭 삼마야를 보이고
바로 알가수를 바쳐
본존을 씻기고 옷을 바치는 법과
다음으로 바르는 향과 꽃을 바치고

사르는 향과 음식과
연등(燃燈)을 공양하는 법과
진언과 수인(手印)과
운심(運心)으로 공양하는 법과

찬탄과 참회 등으로
호신(護身)하고 자신을 다스리며
아울러 그 처소를 보호하고
바로 대계(大界)를 결계하는 법과

금강저[嚩日羅] 및 수주(數珠) 등을
모두 갖추는 법과
진언을 충분하게 염송하고
그런 다음 앉아서 지송하는 법과

구하고 바라는 본래의 소원과
보호하여 염송하는 것을
회향하여 공덕을 베푸는 법과
광대한 발원을 일으키는 법과

다시 알가수를 바치고
향을 바르고 사르는 따위의 법과
거듭 삼마야를 보여서
호신하고 자신을 다스리며

결계한 방계(方界)를 해제한 다음
발견(發遣)하는 법과
호마(護摩)의 지분 등과
이른바 노신(爐神)과 땅과

태워 제사지내는 구체적인 법과
『방광경(方廣經)』을 읽고
나아가 탑[制底]을 조성하는 법과
다음에 자비 등의 관법을 짓고

6념(念)을 사유하는 법이니
이와 같은 차제로
저는 이제 간략하게
풀이하여 마치렵니다.



신실의 처소를 본다는 것은 만다라(曼茶羅)에 들어가서 꽃을 흩뿌려 떨어뜨리고 그 본존에 귀의하는 것을 말한다.
그 사법을 밝힌다는 것은 가장 수승한 수명관정(受明灌頂)을 받는 것이며,
아사리(阿闍梨)로 받든다는 것은 인가(印可)한 것으로 전법(傳法)의 관정(灌頂)과 나아가 다른 모든 관정을 짓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진언과 수인을 마주하여 받는다는 것은 법을 받는 사람이 깨끗이 씻어 청정히 하고 새로 말끔한 옷을 입고 나서 그 청정한 처소에서 호궤(胡跪)하고 공경하여 아사리를 마주하고 가까이에서 진언과 수인법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때 아사리가 먼저 세 번을 읊조린 다음 그들에게 준다.

그들이 받아서 이미 얻었으면 스스로 세 번을 읊조리고 마음속 깊이 환희하면서 머리 높이 올려 받들어 가진다.
이것을 마주하여 받는다고 한다.

능력에 따라 갖추고 아사리를 받들며 법을 널리 이해하고 나면
비로소 이 염송(念誦)의 차례를 지을 수 있다.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장소라는 것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더러운 곳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반드시 청정하지 않음을 분노하는 진언[不淨忿怒眞言]을 써서
호신진언(護身眞言)을 지어야 하니,
이렇게 진언을 송한다.



옴 구로 다나 훔자2)
唵 句𡀔二合拖囊上聲呼之𤙖若而也反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워서
다섯 곳을 호지(護持)해야 한다.

말하자면 정수리와 양쪽 어깨와 가슴과 목의 위쪽이다.이상은 소심인(小心印)이고 따로 대인(大印)이 있다.
다음으로 흙을 나누어서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다섯 덩이의 흙으로 아랫부분을 씻고,
세 덩이의 흙으로 소변보는 곳을 씻고,
세 덩이의 흙으로 따로 왼손을 씻고,
일곱 덩이의 흙으로 양쪽 손을 씻는 것이다.
혹시 아직 깨끗하지 않을까 염려되면 마음껏 이것을 씻어서 깨끗해질 때까지 한다.
먼저 흙덩이를 집어 올려 모두 사용하여 접촉시키되 주문(呪文)과 수인으로 인하고 일곱 번을 지송한 다음에 이것을 사용한다.
다음은 진언을 사용하여 몸을 씻되 진언으로 송한다.


옴슈로 디 사마리 디 다 라니 훔하3)
唵戍嚕二合底丁以反娑沒㗚二合底同上丁以反陀重羅尼上吽訶上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으로 다섯 손가락을 곧게 펴고 손가락 끝은 서로 벌린다.
다음에 약손가락의 가운데 마디를 구부려서 손바닥과 서로 마주대고,
엄지손가락으로 앞을 향하여 약간 받쳐 준다.
그 물을 뿌리는 법은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묵묵히 양손을 두 무릎 사이에 두고 수인을 지은 손으로 물을 집어 올리되 거품이 있어서는 안 되며,
소리 없이 이것을 머금는다.
세 차례 머금은 다음 손을 물에 적셔 두 번 입술을 닦는다.
이때 입 안의 그 치아 틈에 있는 더러운 찌꺼기에 혀를 닫게 하고,
눈물과 침과 가래침도 거듭 앞과 같이 한다.
물을 머금어 입술을 닦고 다시 이 수인과 진언을 지송하는 일로 돌아오되,
그 수인 가운데 엄지손가락과 약손가락 끝으로 두 눈을 가리키고 다음에는 입과 두 귀와 코와 두 어깨와 배꼽과 가슴과 목의 위쪽을 가리키면 바로 호신을 이루고 모든 6근이 청정해진다.
다음에 신실(神室)에 물을 뿌리고 청소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겠다.
그것은 성취 및 현상적인 차별에 따르며 그 상응(相應)함과 더불어 방향과 장소를 선택하고 아울러 뜻에 맞도록 할 수 있으며 어떤 장애와 고난도 없도록 하려는 것을 말한다.
그 땅은 부이(嚩耳)와 벌레집과 굴 구멍과 기와 부스러기와 자갈과 뼛조각과 터럭과 소금기와 잿가루 등을 제거하며 나쁜 흙은 파내 버리고 깨끗한 흙으로써 채운다.
그 위에 신실을 조성하되 빈틈없이 견고하게 에워싸서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짓는다.
문은 동쪽을 향해 내되,
혹은 북쪽이나 서쪽이나 형편에 따라서는 남쪽을 향한다.
신실을 이미 지었으면 소똥을 바르고 깨끗한 물을 뿌리며,
혹은 바르는 향을 깨끗한 물과 섞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이 명(明)을 송하는데 그 땅을 칠하여 바르면서 진언을 송한다.


나망사디 례야 니미 가 남 살 라바 다타 가다남 암 미
那莽娑底丁以反㘑也一二合儞尾二合迦引南二薩去羅嚩二合怛他去蘖哆南去三闇引四尾
라시미라시 마하 바아라 사다 사다 사 라뎨 사 라디 다라 이
羅視尾囉視五摩訶去嚩日囉二合六薩多上薩多上七娑去囉帝八娑去囉底九怛囉二合以
다라 이 미다망녜 삼 반야 녜 다 라망디 싣다
十怛羅二合以十一尾陀莽寧上十二三去伴若而也反寧上十三多上囉莽底丁以反十四悉陀引
아례 다람 사바하 4)
仡隷二合十五怛嚂二合十六莎去訶去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혹시 법칙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잘못을 일으켜 삼마야를 범하였을 때에 반드시 매일 이 명(明)을 스물한 번이나 혹은 백팔 번을 지송하면 그 허물을 제거할 수 있다.
시든 꽃을 치운다는 것은 이미 본존에 꽃을 공양하였으면 먼저 이 명을 지송하고 그 시든 꽃을 치우되 이렇게 송한다.

옴세디마하 세디카 나니 사바하5)
唵稅帝摩訶去稅帝佉去娜寧去莎去訶去

다음은 땅을 쓸어내는 진언을 송한다.

옴하라 하라 라여아라 하라나 야사바하6)
唵賀羅 賀羅 囉茹㜸囉二合賀囉那引也莎去訶去

다음은 땅을 칠하여 바르는 진언을 송한다.

옴가라 례마하 가라례사바하7)
唵羯囉二合引隷摩訶去羯羅隷莎去訶去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먼저 신실에 물을 뿌려 쓸어 내고 시든 꽃을 치우며,
모든 공양에 사용한 그릇을 깨끗이 한 다음 비로소 목욕하러 간다.
교설(敎說)은 이와 같다.
목욕하러 갈 때는 먼저 이 명과 수인으로써 모든 공양에 사용하는 도구들을 보호한 다음 가는 것이 옳다.
진언을 송한다.

옴시가리 바 아리 암8)
唵尸卻哩二合嚩無可反日哩二合闇引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과 두 손가락을 곧추 세워 서로 붙이고 먼저 삼마야를 결하는 것이다.
이른바 모든 작법(作法)은 먼저 삼마야를 결하고 그런 다음 호신(護身) 등의 일체 모든 일을 짓는다.
교설은 이와 같이 설한다.
다음에는 삼마야진언과 수인을 설하겠다.
먼저 불부(佛部)의 진언을 송한다.

옴다타 아구 나바 바 야 사바하9)
唵怛他去㜸姤一娜婆二合嚩引也二莎去訶去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불부의 삼마야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두 손의 열 손가락을 위로 한 채 앞을 향해 곧게 펴서 나란히 옆을 서로 붙이고,
검지의 위쪽 마디를 약간 구부린다.이것이 삼마야수인이다.
다음은 연화부(蓮華部)의 삼마야진언과 수인이다.
진언을 송한다.

옴바나모 나바 바야사바하10)
唵缽娜謨上二合娜婆二合嚩引也莎 訶
이것이 연화부의 삼마야진언이다.

그 사바하는 모두 거음(去音)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먼저 반드시 합장하되 양손의 중간 여섯 손가락을 밖으로 향해 펴서 벌려 서로 붙지 않도록 한다.
그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은 이전과 같이 서로 붙인다.
합친 손바닥 사이는 비어 있어서 마치 연꽃의 틈새와 같다.
중간의 여섯 손가락은 약간 구부린다.이것이 연화부의 삼마야수인이다.
다음은 금강부(金剛部)의 삼마야진언과 수인이다.
진언을 송한다.

옴바아로 나바 바 야사바하11)
唵嚩日路二合娜婆二合嚩引也莎 訶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금강부의 삼마야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과 왼손을 겹치되 두 손등이 반대방향으로 하게 해서 서로 붙인다.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은 왼손의 새끼손가락과 교차시키고,
왼손의 엄지손가락은 오른손의 새끼손가락과 교차시킨다.
양손의 중간 여섯 손가락은 삼고저(三股杵)와 같이 약간 벌어지게 한다.이것이 금강부의 삼마야수인이다.
모든 고난을 결박한다는 것은 군다리(軍茶利)의 수인과 진언으로 모든 고난을 결박하는 것을 말한다.
그 수인의 모양은 왼손을 오른손의 하박(下膊)에 두고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비껴 누른다.
중간에 펼친 세 손가락은 삼고저와 같이 한다.
다시 오른손으로 왼손의 하박에 두고 마찬가지로 엄지손가락으로써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비껴 누른다.
중간에 펼친 세 손가락은 삼고저와 같이 한다.
그리고 동쪽을 향해 서서 그 왼쪽 다리의 무릎을 구부리고 앞을 향하되,
오른쪽 다리보다 앞선다.
오른쪽 다리는 두 자[尺] 이상 벌리고 옆으로 붙여 땅바닥을 딛는다.
오른쪽 아랫입술을 깨물고 성난 눈으로 왼쪽을 보면서 자신을 묵묵히 생각하는 것이 마치 군다리와 같게 하고 그 근본진언(根本眞言)을 지송한다.

나 모 라다나 다라 야야나 마시젼나바아라 바니 예마하 약
囊上謨上囉怛囊上二合怛囉二合夜野囊上莽室戰拏嚩日囉二合簸儜上曳莽訶上藥
-사 셰나바다 예 나모바아라 구로 다야 낭 -따로 득갈 타
乞沙二合細囊鉢多上曳引囊謨嚩日囉二合句路二合駄野引能去瑟吒路二合得羯二合吒
바야패라바 야다냐타 옴암마리 다 군 나리카카카카각 혜각 혜아라
婆也珮囉嚩引野怛姪他去唵闇沒㗚二合多上軍去拏里佉佉佉佉卻引醯卻引醯㜸囉
자 미사보 타야미사보 타야살- 바미기나 미나역가캄 마하
若二合微娑鋪二合吒野微娑鋪二合吒野薩囉二合嚩尾近囊上二合微囊亦迦劍二合摩訶
언 니 바디지미다 다가라 야훔바트12)
去言上儜上鉢底餌尾旦引多迦囉引野𤙖泮吒二合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모든 고난을 결박하는 진언이다.
진언의 가장 마지막에는 만다만다(滿馱滿馱)라는 구절을 지송하고,
바로 그 양손의 세 손가락으로 문득 주먹을 쥐되 비껴 누르고 있던 새끼손가락은 이전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 모든 고난을 문득 결박시킬 수 있다.
깨끗이 씻는 법이란 먼저 진언과 수인으로써 세 덩이의 흙을 집어서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진언을 송한다.

옴녜 카나 바소 디사바하13)
唵寧上佉囊上嚩蘇上提莎 訶
이것을 다섯 번 지송한다.
이것이 흙을 깨끗이 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양손을 서로 교차시키되 손가락으로 손등을 만진다.
두 집게손가락을 쌍으로 곧게 해서 서로 붙인다.
두 엄지손가락은 나란히 곧게 하고 집게손가락의 옆에 벌려 놓는다.이 수인으로써 모아 놓은 흙에 닿도록 하고 진언을 다섯 번 지송한 다음 이것을 집는다.
장애를 없앤다는 것은 무릇 지어 놓은 일체의 일에서 반드시 먼저 장애를 제거해야 함을 말한다.
그런 다음 비로소 다른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다.
교설은 이와 같으니,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을 송한다.

나 모 바아라 야훔하나 둔나 마타 미다붕 사유차 라야훔바트14)
囊上謨上嚩日囉引二合也𤙖賀囊上鈍囊上莽他上尾跢崩二合娑瑜瑳去囉也𤙖泮吒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손바닥 안에 넣고 가운뎃손가락과 새끼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누른다.
그 검지를 구부려 가운뎃손가락의 중간 마디 옆에 붙이고,
마찬가지로 새끼손가락을 구부려 약손가락의 중간 마디 옆에 붙인다.
곧바로 힘차게 팔을 뻗어 머리 위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을 휘두르고 아울러 몸의 다섯 곳에 인(印)한다.
오른손은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누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곧추 세워서 금강저의 모양을 만들고 그 허리 옆에 교차시킨다.
서는 법은 앞과 같다.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수인이다.
또한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과 수인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진언을 송한다.


옴바아라 다 라 훔바트15)
唵嚩日囉二合多去囉上𤙖泮吒
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의 손가락으로 왼손의 손바닥을 친다.
이와 같이 세 번을 한다.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수인이다.
또한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과 수인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진언을 송한다.

옴기리기라 라 바노나라 훔바트16)
唵枳里枳羅去囉去嚩咾捺囉二合𤙖泮吒輕
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양손으로 각기 탄지(彈指)하는 소리를 세 번 낸다.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수인이다.
호신(護身)하는 법이란 이러한 진언과 수인으로 시방(十方)을 결계하고 아울러 이로써 호신하는 것이다.
진언은 다음과 같다.

옴샹싱 가례삼마염사바하17)
唵商僧二合迦㘑三莽焰莎 訶
이것이 호신하고 결계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의 손톱 위를 비껴 누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약간 벌려 곧추 세운다.
이것을 금강저인[嚩日囉印]이라 한다.
이로써 상하와 팔방을 결계하고 아울러 호신하는 데에 사용한다.이것이 결계와 호신 등의 수인이다.
다음은 진언과 수인으로 자신과 아울러 물과 흙과 조두(澡豆:가루비누) 등의 물건에 인(印)하면 바로 청정해지는 것과 더불어 허물을 씻어내게 된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기리바아라 훔바트18)
唵枳里嚩日囉二合𤙖泮吒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허물을 씻어내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비껴 누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약간 벌려 곧추 세워서 허리 사이에 교차시키며,
세 손가락은 앞을 향한다.
왼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수인을 결한다.
수인으로써 모든 물건에 접촉시키면,
곧 청정해질 뿐만 아니라 허물을 씻어내게 된다.이것이 허물을 씻는 수인이다.
다음은 군다리진언(軍茶利眞言) 및 수인을 사용하여 청정하게 한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 암마리 뎨훔바트19)
唵 闇沒㗚二合帝𤙖泮吒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청정의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물을 집어 올리고 일곱 번 염송한다.
이로써 모든 물건들과 손과 정수리 위에 뿌리면,
문득 청정하게 된다.
이것이 청정의 수인이다.
다음은 진언과 수인을 사용하여 윤택하게 빛나도록 한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기리기리바아라 훔바트20)
唵枳里枳里嚩日囉二合𤙖泮吒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윤택하게 빛나도록 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왼쪽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의 손톱 위를 비껴 누른다.
나머지 세 손가락은 약간 벌려 곧추 세우고 그 팔은 편다.
다시 오른쪽 손으로도 이러한 수인을 지어 왼쪽 팔꿈치 아래를 받쳐 든다.
오른쪽 손의 수인으로 모든 물건들과 아울러 자신의 몸에 접촉시키면,
곧 빛이 윤택하게 된다.이것이 빛을 윤택하게 하는 수인이다.
다음은 진언과 수인으로 그 물을 젓는 데에 사용한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훔하나 바아라 바아례 니 하21)
唵𤙖賀囊上嚩日囉二合嚩日㘑二合儜上訶
지송하는 횟수를 제한하지 않고 오로지 많이 지송한다.
이것이 물을 젓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밖을 향해 양쪽 손을 서로 교차시키고 두 엄지손가락으로 나란하고 곧게 손끝을 합친다.
두 집게손가락을 구부리되 손끝만을 약간 구부려서 손톱이 서로 닿도록 한다.이것이 물을 젓는 수인이다.
다음은 진언과 수인으로 흙을 집어 몸에 바른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보라자 바 라훔22)
唵部囉若而也反嚩二合囉𤙖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흙을 바르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흙과 물이 섞인 것을 집어 양쪽 손으로 서로 비벼서 오른쪽 손으로 두루 몸에 바른다.이것이 몸에 흙을 바르는 수인이다.
다음은 군다리진언과 수인을 사용하여 물에 지송(持誦)한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암마리 뎨훔바트23)
唵闇沒㗚二合帝𤙖泮吒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물을 지송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먼저 오른손을 평평하게 펴고 그 엄지손가락으로 그 가운뎃손가락과 약손가락의 손톱 위를 누른다.
검지와 새끼손가락은 약간 구부린다.
진언을 지송하고 이 수인으로 물을 젓고 깨끗이 씻는다.이것이 물을 지송하는 수인이다.
다음은 진언과 수인으로 몸속의 비나야가의 고난을 떨쳐 없앤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암마리 뎨하나하나 훔바트24)
唵闇沒㗚二合帝賀囊賀囊上𤙖泮吒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몸속의 비나야가를 떨쳐 없애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양쪽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손바닥 안에 구부려 넣고 주먹을 쥔다.
두 집게손가락은 펴서 왼쪽과 오른쪽을 서로 교차시켜 호구(虎口)25) 안에 넣는다.
수인으로써 정수리로부터 아래로 향하여 발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다스려 떠나보낸다.이것이 몸속의 비나야가를 떨쳐 없애는 수인이다.
다음은 곧바로 군다리진언과 수인으로 다섯 곳을 호신(護身)한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바아라 기녜 바라 이 바다 야사바하26)
唵嚩日囉二合祇寧上二合鉢囉二合儞去鉢多二合也莎 訶
이것을 다섯 번 지송한다.
이것이 호신의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두 새끼손가락으로 서로 교차시켜 손바닥 안에 넣는다.
약손가락은 쌍을 이루어 두 새끼손가락이 교차한 위쪽을 누른다.
두 가운뎃손가락은 손끝을 서로 맞댄다.
두 집게손가락은 약간 구부려서 가운뎃손가락의 위쪽 마디 옆에 두되,
보리 한 알이 들어갈 만큼 서로 벌린다.
두 엄지손가락은 곧추 세워서 가운뎃손가락 옆에 둔다.
수인을 다섯 곳에 접촉하면 곧 호신을 이룬다.이것이 호신의 수인이다.
다음은 진언과 수인으로 한 덩이 한 덩이의 흙을 지송한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도비도가 야도비바라 지바 리녜 사바하27)
唵度比度迦去也度比鉢囉二合支嚩去二合里寧上莎 訶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흙을 지송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두 손의 집게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의 손끝과 서로 닿도록 하고 두 가운뎃손가락과 두 약손가락은 구부려서 손바닥 안에 넣되,
손가락을 등지도록 하여 서로 붙인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각기 가운뎃손가락과 약손가락의 손끝을 비껴 누르고 앞에 놓여 있는 세 덩이의 흙을 집어 수인으로써 흙에 인(印)하고 세 번을 지송한다.
발에서 배꼽까지 씻고 곧 그 손을 씻되,
물을 뿌리고 깨끗이 하며 두 번째와 세 번째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씻고 아울러 물을 뿌려서 깨끗이 한다.
다시 한 무더기를 집어서 앞과 같이 지송하고 이로써 배꼽에서 목덜미까지 씻는다.
다시 한 덩이를 집어서 앞과 같이 지송하고 이로써 목으로부터 정수리까지 씻는다.
모두 마치면 다시 진언을 지송하며 뜻에 따라 물에 들어가 씻는다.
다시 이 수인을 결하고,
마찬가지로 진언을 지송하면서 온몸으로 움직여 가다가 가슴 부위에 이르러 수인을 해제한다.
이것을 갑옷을 입는 수인[被甲印]이라고 일컫는다.이것이 흙을 지송하는 수인이다.
다음은 군다리(軍茶利)근본진언을 지송하고 수인으로 물을 저으면서 뜻에 따라 물에 들어가 씻는다.
그 진언을 송한다.



나 모 라다나 다라 야야나마시젼 나바아라 바녜 예마하 약-
囊上謨上囉怛囊上二合怛囉二合夜也那莽室戰二合拏嚩日囉二合簸儜上曳摩訶去藥乞
사 셰나바다예나모바아라 구로 티야바라 야 바 리다 니
沙二合細囊鉢多曳那謨嚩日囉二合句路二合馳也鉢囉一合若而也反嚩二合里多上儞
바다 낭 -따로 득가 타바 야패라바 야아사모 살라바아라
去鉢多去二合能去瑟吒咾二合得迦二合吒婆上也珮囉嚩去也阿徙母輕呼娑囉嚩日囉二
바라슈바샤하사다 야다니야 타옴암마리 다군 나리카카카
合鉢囉輸簸捨賀娑多去二合也怛儞也二合他唵闇沒㗚二合多軍去拏里佉佉佉
카카 나카나카나카나카 나카나카나카나카혜카혜카혜카혜딛 -따딛
佉佉去囊佉囊佉囊佉囊佉去那佉那佉那佉那佉呬佉呬佉呬佉呬底丁以反瑟吒底
-따하나하나나하나하바자바자아리 한니 아리 한녜 만다만다아
瑟咤賀囊賀囊那賀那賀鉢者鉢者蘖㗚二合恨儜二合蘖㗚二合恨寧二合滿馱滿馱蘖
라야아리야다라야다라야미사보타야미사보타야바가범나 마리 다
呼咽重囉若蘖㗚若怛囉若怛囉若微娑鋪吒也微娑鋪吒也婆伽梵囊上沒㗚二合多
군 나리모 라다난 다나 야바아라 니 살-바 미기나 미나야
軍去拏里慕引輕呼囉彈難二合多拏上也嚩日囉二合儜上薩囉嚩二合尾近囊上微囊也
캄녜 바 라야마하언니 바디지미다다가라야훔바트구로 다 환나예
劍寧上嚩去羅也摩訶言儜上鉢底餌尾旦多迦囉也𤙖泮吒句路二合馱引闣囊曳上二
사바하28)
合莎 訶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물에 들어가 씻는 진언이다.

그 관정(灌頂)의 진언은 이러한 진언과 수인으로 스스로 관정한다.
진언을 송한다.
옴하학 카리리훔바트29)
唵賀臛二合佉里里𤙖泮吒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관정하는 진언이다.

수인의 모양은 두 새끼손가락을 서로 교차시켜 손바닥 안에 넣고 두 약손가락은 쌍을 이루어 두 새끼손가락이 교차한 위를 누르도록 하고 손바닥 안에 넣는다.
두 가운뎃손가락 끝은 곧추 세워서 서로 붙인다.
두 집게손가락은 두 가운뎃손가락의 위쪽 마디를 누르고 집게손가락의 중간 마디는 구부린다.
두 엄지손가락은 두 집게손가락의 옆에 거들어 붙인다.
이러한 수인으로 물을 집어서 진언을 세 번 지송하고 스스로 관정한다이것이 관정의 수인이다.
다음에 진언과 수인으로 스스로 머리카락을 묶으며 진언을 송한다.

옴소싣디 가리 사바하30)
唵蘇悉地 羯里 莎 訶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머리카락을 묶는 진언이며 3부(部)에 통용된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은 곧게 편다.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엄지손가락의 손끝 위를 누르면서 둥글게 구부리도록 한다.
두 엄지손가락은 두 집게손가락의 옆에 거들어 붙인다.
이러한 수인을 지어서 진언을 세 번 지송하고 정수리 위에 두면 곧 머리카락을 묶는 일이 이루어진다.이것이 머리카락을 묶는 수인이다.
또한 불부(佛部)의 머리카락을 묶는 진언을 송한다.

옴시기시켸사바하31)
唵尸祇尸契莎 訶去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또한 연화부의 머리카락을 묶는 진언을 송한다.

옴시켸사바하32)
唵尸契莎 訶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금강부의 머리카락을 묶는 진언을 송한다.

옴시카샤 사바하33)
唵尸佉寫 莎 訶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무릇 물에 들어가 씻을 때는 흙탕물 속이나 혹은 찌르는 것이 있는 물이나 혹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이나 혹은 좁은 도랑의 얕은 물이나 소용돌이치는 급류나 벌레가 많은 탁한 물이나 밭에 끌어대는 물 및 굴속의 물에는 절대로 나아가지 말 것이며,
이와 같은 물에는 또한 들어가 씻지도 말라.
또한 다시 그 물 속과 물가에서 대소변을 보아서는 안 되며,
물속에서 급히 뛰어 다니거나 잠겼다가 떠오르는 등의 장난을 치지 말 것이며,
물속에서 멈추어 있으면서 은밀한 곳을 보지 말 것이며,
마찬가지로 부녀자의 은밀한 곳과 허리와 유방 및 나머지 모든 부분을 생각하여 떠올리지 말라.
마땅히 적정(寂靜)하고 묵연(黙然)하게 깨끗이 씻어서 다만 더러움을 없앨 뿐,
육신을 꾸민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세 번 물을 집어서 바친다는 것은 이미 씻고 목욕을 마치고 나면 본존께서 자리하고 있는 방향을 향하여 본존을 마음속으로 관(觀)하면서 진언을 지송하고 아울러 수인을 결하되,
수인으로써 물을 세 번 집어 이것을 바치면서 본존을 씻고 알가수(閼伽水)를 바친다고 생각하라.
그러면 물속에서 세 가지의 증험(證驗)이 있을 것이다.
물이 무릎까지 찼으면 이름하여 하험(下驗)이라 하고 물이 배꼽까지 찼으면 이름하여 중험(中驗)이라 하고 물이 목덜미까지 찼으면 이름하여 상험(上驗)이라고 한다.
세 가지 물속의 증험에서 뜻에 따라 염송하고 비로소 도량으로 나아간다.
불부의 물을 바치는 진언을 송한다.

옴뎨라례비 다사바하34)
唵帝囉㘑佛哺時反陀莎 訶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불부의 물을 세 번 집어 올려 바치는 진언이다.

또한 연화부의 물을 바치는 진언을 송한다.

옴비리비리훔바트35)
唵避哩避哩𤙖泮吒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연화부의 물을 세 번 집어 올려 바치는 진언이다.

또한 금강부의 물을 바치는 진언을 송한다.

옴 미새바 바아례 사바하36)
唵 微濕嚩二合嚩日㘑二合莎 訶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금강부의 물을 세 번 집어 올려 바치는 진언이다.

3부(部)에서 수인의 모양은 통용된다.
양쪽 손을 평평히 하고 손바닥을 위로 하여 옆을 서로 붙인다.
두 집게손가락으로 두 엄지손가락을 비껴 누른다.
여섯 손가락은 약간 구부린다.
수인으로 물을 세 번 집어 진언을 세 번 지송하고 본존을 받들어 씻는다.이것이 3부에 통용되는,
세 번 물을 집어 올려 바치는 수인이다.
신실(神室)에 간다는 것은 도량을 향해 들어가는 때를 말한다.
분노를 일으키거나 탐욕과 함께 하지 말고 오로지 본존만을 생각하면서 그곳에 갈 것이며,
그 안에서는 그릇이나 도구 및 어떤 약초(藥草)도 절대로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온갖 음식 담는 그릇이나 탈것이나 요령(搖鈴)과 목탁과 아울러 모든 인구(印具)와 시든 꽃과 약품과 온갖 초목이나 어느 것이든 뛰어넘지 말 것이며,
탑신(塔身)과 존상(尊像)과 비구(比丘) 등의 그림도 한결같이 절대로 뛰어넘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코끼리ㆍ말ㆍ낙타ㆍ소ㆍ양ㆍ노새 및 일체의 탈것에 오르지 말 것이며 그림과 상(像)과 인(印) 등도 밟거나 몸과 손으로 서로 닿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이러한 일들을 범하면 삼마야를 잃는다.
마찬가지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과 거드름을 피우고 잘난 체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 것이며,
나막신을 신고 신실 안으로 갈 즈음 불탑과 부처님의 모습과 스승과 사리탑을 만나거든 반드시 나막신을 벗고 서둘러 존경을 아뢰어 전하고 비로소 도량으로 간다.
다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몸에 물을 뿌린다는 것은 도량의 문 밖에서 손과 발을 여섯 번씩 씻는 것을 말한다.
앞에서 말한 깨끗함을 보호하는 진언과 수인을 써서 물을 마시고 앞과 같이 입술을 씻으며,
다시 거듭 물을 마시고 뿌려서 이미 깨끗해졌으면 곧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3부에 통용된다.
또한 불부의 물을 마시고 뿌려서 깨끗이 하는 진언을 송한다.

옴마하 자바 라훔37)
唵摩訶去入嚩二合囉𤙖
이것이 불부의 물을 뿌려서 깨끗이 하는 진언이다.

또한 연화부의 물을 마시고 뿌려서 깨끗이 하는 진언을 송한다.

옴투 투 라구 로구로사바하38)
唵睹吒矩反睹同上羅俱上嚕俱嚕莎 訶
이것이 연화부의 물을 뿌리고 깨끗이 하는 진언이다.

또한 금강부의 물을 마시고 뿌려서 깨끗이 하는 진언을 송한다.

옴아바 리다바아리 니 훔39)
唵入嚩二合里多嚩日里二合尼上輕呼𤙖
이것이 금강부의 물을 뿌리고 깨끗이 하는 진언이다.

또한 불부의 물을 마시고 뿌려서 깨끗이 하는 수인을 설한다.
오른쪽 손바닥을 위로 펴고 약손가락은 구부려서 안쪽을 향하되,
손바닥에 닿게 하지 말라.이것이 불부의 물을 뿌리고 깨끗이 하는 수인이다.
또한 연화부의 물을 마시고 뿌려서 깨끗이 하는 수인을 설한다.
오른쪽 손바닥을 위로 펴고 약손가락은 구부려서 안쪽을 향하되,
손바닥에 닿게 하지 말라.
집게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은 벌려 둔다.이것이 연화부의 물을 뿌리고 깨끗이 하는 수인이다.
다음은 진언과 수인으로 문 밖에서 갈아입을 옷에 물을 뿌려 깨끗이 한다.
진언은 다음과 같다.

옴미마라 사바하
唵微莽囉 莎 訶
이것이 물을 뿌려 깨끗이 하고 옷을 갈아입는 진언이다.40)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물을 집어 지송하고 이로써 옷에 물을 뿌려 깨끗이 한다.이것이 물을 뿌려 깨끗이 하고 옷을 갈아입는 수인이다.
다음은 진언을 지송하면서 그 옷을 입는다.
진언을 송한다.


옴바리바라 바바아리 니 훔41)
唵鉢哩嚩囉上二合跛嚩日里二合尼上𤙖
이것이 옷을 입는 진언이다.
수인은 없다.

신실에 들어가 바로 예배한다는 것은 가르쳐 설한 것과 같다.
수행자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신실에 들어가야 한다.
이미 신실에 들어갔으면 얼굴을 본존으로 향해 합장하고 몸을 굽히되,
머리가 바닥까지 닿게 하지는 않는다.
신실 안에는 반드시 먼저 본존의 모습을 담은 탱화나 탑을 모시며 혹은 단지 보좌(寶座)만을 모시기도 한다.
들어가면 곧바로 예를 올리고 이것을 공양한다.
공양구를 모두 갖춘다는 것은 바르는 향 등의 다섯 가지와 우정(牛淨)과 신선(神線)과 띠풀 고리와 자신이 앉을 자리와 아울러 알가수 그릇과 금강과 백개자(白芥子)와 허리띠와 선(線) 등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공양구[供具]라고 하며 반드시 먼저 이것을 갖추어야 한다.
신실에 들어갈 때는 진언을 입으로 지송하고 들어간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자바 리다 로자니훔바트42)
唵入嚩二合哩多二合路者泥𤙖泮吒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신실에 들어가는 진언이며 3부에 통용된다.

다음에 곧바로 삼마야의 진언과 수인을 결한다.
먼저 불부의 진언을 송한다.

옴 다타아투 나바 바야 사바하43)
唵 怛他蘖姤 那婆二合嚩也 莎 訶去
이것을 다섯 번 지송한다.
이것이 불부의 삼마야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양쪽 손바닥을 위로 하여 열 손가락을 곧게 앞을 향해 펴고 옆을 나란히 하여 서로 붙인다.
검지의 위쪽 마디는 약간 구부린다.이것이 불부의 삼마야수인이다.
다음은 연화부의 삼마야진언과 수인을 설한다.
진언을 송한다.

옴 바나모 나바 바 야사바하44)
唵 鉢那謨上那婆二合嚩引也莎 訶去
이것을 다섯 번 지송한다.
이것이 연화부의 삼마야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먼저 반드시 합장하되 양쪽의 중간 여섯 손가락은 밖을 향해 벌려서 서로 붙지 않도록 한다.
양손의 그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은 이전대로 서로 붙이되,
손바닥 안은 마치 피어난 연꽃처럼 비워 둔다.
중간의 여섯 손가락은 약간 구부린다.이것이 연화부의 삼마야수인이다.
다음은 금강부의 진언 및 수인을 설한다.
진언을 송한다.

옴 바아로 나바 바 야사바하45)
唵 嚩日𡀔二合那婆二合嚩引也莎 訶去
이것을 다섯 번 지송한다.
이것이 금강부의 삼마야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쪽으로 왼쪽을 누르면서 양쪽 손을 엇갈려 등지고 서로 붙인다.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그 왼손의 새끼손가락과 교차시키고 왼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손의 엄지손가락과 교차시킨다.
양손의 중간 여섯 손가락은 마치 삼고저(三股杵)처럼 약간 벌어지게 한다.
[이것이 금강부의 삼마야수인이다.]

이 세 가지 수인을 일컬어 대인(大印)이라고 한다.
모든 불보살님들께서도 오히려 틀림이 없거늘,
하물며 온갖 마군의 부류이겠는가.
각기 자신의 부(部)에 합당하도록 차례에 따라 쓰라.
받들어 행하는 법은 단지 가르침을 따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모든 죄를 멸하고 이로써 모든 고난을 없애며 구하는 법은 반드시 소원대로 얻는다.
다음은 진언과 수인으로 몸속에서 모든 비나야가(毗那夜迦)가 일으킨 고난을 떨쳐 없애야 한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 암마리 뎨하나 하나 훔바트46)
唵 闇沒㗚二合帝賀囊上賀囊上𤙖泮吒
이것이 몸속에 비나야가가 일으킨 고난을 떨쳐 없애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양쪽 손의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손바닥 안에 넣고 주먹을 쥔다.
두 집게손가락은 펴고 오른쪽과 왼쪽을 교차시켜 호구(虎口) 안에 넣는다.
수인으로 정수리로부터 아래로 향해 발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다스려 떠나보낸다.
[이것이 비나야가의 고난 등을 떨쳐 없애는 수인이다.]
다음은 진언과 수인으로 허물을 없애야 한다.
진언을 송한다.

나모 바아라 야훔 하나 둔나 마타 미다몽 사유차 라야훔바
囊謨上嚩日囉引二合也𤙖上賀囊上鈍囊上莽他上尾特網無奉反二合娑瑜瑳去囉也𤙖泮
트47)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구부려 손바닥 안에 넣고 가운뎃손가락과 약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누른다.
그 집게손가락은 구부려서 가운뎃손가락의 중간 마디 옆에 붙이고 마찬가지로 새끼손가락도 구부려서 약손가락의 중간 마디 옆에 붙인다.
곧 힘껏 팔을 펴서 머리 위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리고 아울러 수인을 몸의 다섯 곳에 접촉시킨다.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의 손톱을 누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곧추 세워서 금강저의 모양을 만들어 그 허리 옆에 교차시킨다.
서는 법은 앞과 같다.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수인이다.
또한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과 수인이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바아라 다 라훔바트48)
唵嚩日囉二合多去囉𤙖泮吒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으로써 왼쪽 손바닥을 치되 이와 같이 세 번을 한다.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수인이다.
또한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과 수인이다.
그 진언을 송한다.

옴 기리 기리 라바노나라 훔바트49)
唵 枳里 枳里 囉嚩咾捺囉二合𤙖泮吒
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양쪽 손으로 손가락을 세 번 튀긴다.이것이 장애를 제거하는 수인이다.
어떤 까닭으로 장애를 제거한다고 말하는가?
말하자면 신실과 꽃 등과 의상과 보좌 등의 물건에 있는 모든 고난을 내쫓아 떠나가도록 하기에,
허물을 없애고 바로 청정함을 얻는다고 말한다.
다음은 진언 및 수인을 설하여 더러움을 씻어내는 진언을 송한다.

옴 기리 기리 바아라 훔바트50)
唵 枳里 枳里 嚩日囉二合𤙖泮吒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이것이 더러움을 씻어내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의 손톱 위를 비껴 누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약간 벌려 곧추 세워서 허리 사이에 교차시킨다.
세 손가락은 앞을 향하며 왼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수인을 결한다.
수인을 써서 모든 물건이 더러움과 불길함을 여의도록 하니,
이름하여 더러움을 씻는다고 한다.이것이 기기분노사구(枳枳忿怒瀉垢)의 수인이다.
다음은 청정함을 짓는다.
불부의 심진언(心眞言)으로 주먹을 쥐고 향수(香水)를 취하여 일곱 번을 지송하고 이로써 모든 물건에 뿌리면 문득 청정함을 이룬다.
먼저 불부의 심진언을 송한다.

옴 지나 지가51)
唵 爾囊上爾迦二合
이것을 일곱 번 지송한다.

연화부의 심진언을 송한다.

옴 아 로륵가52)
唵 阿去𡀔力迦
이것이 연화부의 심진언이다.

금강부의 심진언을 송한다.

옴 바아라 다륵 가53)
唵 嚩日囉二合特嘞二合迦輕呼
이것이 금강부의 심진언이다.

다음은 윤택하게 빛나도록 하는 진언을 지송하고 수인을 결하는 것이다.
수인으로써 모든 물건에 문득 윤택하게 빛나도록 한다.
처음에 불부의 윤택하게 빛나는 진언을 송한다.
옴뎨서 뎨자 도미 녜 사디 사- 다야훔바트54)
唵帝誓而曳反帝若而也反徙尾二合寧上聲徙提去重娑去一馱也𤙖泮吒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불부의 윤택하게 빛나는 진언이다.

연화부의 윤택하게 빛나는 진언을 송한다.

옴니 뱌- 니 뱌- 니- 바야마하 시리 예사바하55)
唵儞去比也二合儞去比也二合儞去一跛也摩訶去室哩二合曳莎 訶去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연화부의 윤택하게 빛나는 진언이다.

금강부의 윤택하게 빛나는 진언을 송한다.

옴 자바 라자바 라야 만도리사바하56)
唵 入嚩二合羅入嚩引二合羅也 滿度哩莎 訶
이것을 세 번 지송한다.
이것이 금강부의 윤택하게 빛나는 진언이다.

그 수인의 모양은 왼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의 손톱 위를 비껴 누른다.
다른 세 손가락은 약간 벌려 곧추 세운다.
그 하박(下膊)은 편다.
다시 오른손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수인을 지어서 왼손의 팔꿈치 아래를 받친다.
수인으로 모든 물건에 접촉하여 인(印)을 놓으면 곧 윤택하게 빛나게 된다.
3부에 통틀어 사용한다.이것이 3부에 통용되는 윤택하게 빛나는 진언이다.






거란대장경(契丹大藏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소실지갈라경』과 이름도 이미 다르고 문장도 역시 크게 다르지만 번역한 사람은 한 사람이다.
이제 거란장경의 경을 조사해 보니,
송(宋)나라의 장경 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양법(供養法)이란 것이 없지만
거란장경에는 감함(感函)에 이것이 있다.
개원(開元)년과 정원(貞元)년에 발행된 두 서록(書錄)을 자세히 찾아보니,
선무외에게는 단지 세 가지 경(經)과 한 가지 법만이 있고 이러한 공양법은 없었다.

이제 목록에는 비록 없지만 그 문의(文義)를 알아보니
후인(後人)이 거짓으로 망령되이 편집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까닭에 거란장경에 따라 둘 다 갖추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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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00년대에 활약했던 지우(智友,
Jñānamitra)의 기록에 의하면 처음에 여래부⋅법부⋅갈마부의 3부가 금강부⋅보부⋅법부⋅갈마부의 4부로 되었으며,
다시 여래부⋅금강부⋅보부⋅법부⋅갈마부의 5부로 전개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3종의 부(部)라는 뜻.
대표적인 삼부조직(三部組織)으로 불부(佛部)⋅연화부(蓮華部)⋅금강부(金剛部)의 3부를 갖춘 대비태장생만다라를 들 수 있다.
태장만다라의 3부는 여래의 대정(大定)⋅대비(大悲)⋅대지(大智)의 3덕을 나타내는 3종의 부별(部別)을 말한다.
불부는 불의 집단,
연화부는 관세음보살의 집단,
금강부는 금강수의 집단을 의미한다.
이들 각부는 구심점이 되는 부주(部主)를 중심으로 하여 집단을 구성하고,
부주는 부족의 장이 되어 부족원을 통솔하며 각각의 서원을 취합하여 만다라 전체의 성격에 맞도록 활동한다.
예를 들면 관음의 부족들은 관세음보살이 나타내려고 하는 자비를 표상하고,
금강부는 견고하여서 번뇌를 부수는 금강과 같은 지혜의 서원을 분담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만다라 전체가 의미하는 진리의 세계를 표상화하는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2 oṃ krodhana hu hūṃ kṣu.
3 oṃ śruti smriti dharaṇi hūṃ ha.
4 namo striyadevekanaṃ sarvatathāgatanaṃ oṃ piranaṃ mahācak- rabajra sada sada sarati sarati dhara dharaye biye dhamani sambhacani dharmati siddhipriya traṃ yaṃ svāhā.
5 oṃ sudhi mahāsudhi ghanani svāhā.
6 oṃ hara hara jokra haranali svāhā.
7 oṃ karali mahākarali svāhā.
8 oṃ śikhari vajri oṃ.
9 oṃ tathāgatodbhavaye svāhā.
10 oṃ padmodbhavabaye svāhā.
11 oṃ vajrodbhavaye svāhā.
12 namo radnatrayāya namaḥ caṇḍa vajra paṇaya mahāyakṣasena- pataya namo vajra krodhaya tuṣṭotgaṭapaya bairavaya tathā- gataya oṃ amritakuṇṭali kha kha kha hi kha hi biracabis phoṭaya sarva bignāṃ binayakaṃ mahāyani patini bidatakraya hūṃ phaṭ.
13 oṃ cale cule cunde hrīḥ.
14 namo vajrāya hūṃ hana hūṃ nama thabidhvanasanāya utasaraya phaṭ.
15 oṃ vajra dhara hūṃ phaṭ.
16 oṃ kili kili raba rutra hūṃ phaṭ.
17 oṃ śaṅkari samaya svāhā.
18 oṃ kili vajra hūṃ phaṭ.
19 oṃ amrite hūṃ phaṭ.
20 oṃ kili kili vajra hūṃ phaṭ.
21 oṃ hūṃ hana vajra vajriniha.
22 oṃ prajñavajra hūṃ.
23 oṃ amrite hūṃ phaṭ.
24 oṃ amrite hana hana hūṃ phaṭ.
25 인계에서 엄지와 검지 사이.
손톱은 갑(甲),
손바닥 안은 만월(滿月)⋅호구(虎口)라 한다.
26 oṃ vajra jriṃ prañjapataya svāhā.
27 oṃ dhupe dhupe kāyadhupe prajvalanya svāhā.
28 namo ratnatrayāya namaḥ caṇṭavajra pāṇaye mahāyakṣasenāpa- taye nama vajrakrodhāya prañjavarta nipata mahādaṃṣṭotakaṭa bhairabāya aśimusaravajra paraśupaśahastaya tad yathā oṃ amṛtakuṇṭali khakha khakha khanaṃ khanaṃ khanaṃ khanaṃ khana khana khakha nana khahi khahi khahi khahi tiṣṭha tiṣṭha haha nānā naha naha paca paca grihna grihna bandha bandha garja garja darja darja bisphoṭaya bisphoṭaya bhagavan amṛta kuṇṭali murdaṃ danaya vajrani sarvabighnan binayakaṃ nivaraya mahāgaṇapati jipita antakarāya hūṃ hūṃ phaṭ krodhanaṃścaya svāhā.
29 oṃ hakariri hūṃ phaṭ.
30 oṃ susiddhi kara svāhā.
31 oṃ śikhi śikhi svāhā.
32 oṃ śikhi svāhā.
33 oṃ śikhi he svāhā.
34 oṃ tiraribudha svāhā.
35 oṃ piri piri hūṃ phaṭ.
36 oṃ biśvavajri svāhā.
37 oṃ mahājvala hūṃ.
38 oṃ tutula kuru kuru svāhā.
39 oṃ jvalita vajrani hūṃ.
40 oṃ bimula svāhā.
41 oṃ paribara bavajrani hūṃ.
42 oṃ jbala locane svāhā.
43 oṃ tathāgatodbhavaye svāhā.
44 oṃ padmodbhavabaye svāhā.
45 oṃ vajrodbhavaye svāhā.
46 oṃ amrite hana hana hūṃ phaṭ.
47 namo vajrāya hūṃ hana hūṃ nama thabidhvanasanāya utasaraya phaṭ.
48 oṃ vajra dhara hūṃ phaṭ.
49 oṃ kili kili raba rutra hūṃ phaṭ.
50 oṃ kīli kīli vajra hūṃ phaṭ.
51 oṃ jinajika.
52 oṃ arolika.
53 oṃ vajra dhrik.
54 oṃ teja teja sani siddhi sādhaya hūṃ phaṭ.
55 oṃ dīpya dīpya dīpaya abiṣa mahāśriye svāhā.
56 oṃ jvala jvalaya baṃduri svāhā.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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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M#]




◆vdtn1521
◈Lab value 불기2564/04/30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Alain Souchon - On Avance.lrc


Alain Souchon - On Avance


○ 2019_1105_173046_canon_Ar26_s12.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heophile Steinlen-l-etat-son-role-historique-par-pierre-kropotkine-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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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Theophile Steinlen
https://en.wikipedia.org/wiki/Théophile_Steinlen
Title : l-etat-son-role-historique-par-pierre-kropotkine-1906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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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M#]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otky_květů_(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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Čeština: Fotky květů
Author Dezidor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_M#]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lden_Lhamo,_Tawang_Monas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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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Palden Lhamo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_M#]


♥Solomon Islands ,Gizo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상세정보=>

♥ 잡담 ♥blogger에서 메인페이지작성하기



♥ 잡담 ♥메인 페이지 사이트의 결정

블로그 사이트가 제각각 특성이 다르다.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는 유동적이다.
마치 폼페이 화산 아래에서 과일장사하는 상황과 같다.

어느 사이트라도 갑자기 없어질 수 있다.
그래서 우선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3 곳을 선정하여
병행 페이지를 작성하고자 한다.

이 가운데 메인 페이지를 어느 곳으로 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메인페이지 사이트의 링크를 기준으로
하이퍼 링크를 작성해가게 된다.
따라서 메인 사이트의 주소는
비교적 장기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 알 수가 없다.

현재 블로그글을 올릴 3 개 사이트 가운데
어떤 사이트가 가장 수명이 길 것인가
이런 것을 미리 알 수는 없다.

우선 각 사이트가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한편,
설령 사이트가 갑자기 없어지더라도
다른 사이트 주소로 쉽게 바꿀 수 있도록
백업보관을 병행하고자 한다.

그간 10 년 이상 블로그를 사용하면서
사이트가 갑자기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는 폐이지 이전도 문제다.
그리고 사진이나 보조자료 링크도 문제다.
그런데 가장 문제는 북마크를 행하고
하이퍼링크로 연결한 경우가 문제된다.
이들 페이지 주소가 메인페이지 이전으로 모두 변경되기 때문이다.
이를 일일히 수정해주기 힘들다.
그래서 메인페이지 사이트 선정은 중요하다.
되도록 오래 유지될 사이트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미리 그것을 알 수는 없다. 


차선책으로 설령 사이트가 변경되어도
백업본에서 쉽게 편집 변경해 올릴 방안을 찾게 된다.
백업한 내용에서 링크 부분을 일괄 변경하고
다시 올리는 방안외에 현재는 별 방안이 없다.
그래서 한 번 메인페이지로 삼은 사이트가
글을 작성하는 동안 그대로 있는 것이 낫다.



♥ 잡담 ♥ 병행 사이트 편집  방안

일단 각 사이트 특성이 조금 다르다.
그러나 htm 기반이라서 아주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몇 부분이 조금 다르다.

그런데 결국 글 작성 편집은
자신의 데스크탑에서 작업해 최종본을 올리는 것이 편하다.
그런데 실시간 반영의 느낌을 갖고 글을 작성하려면
사이트에서 작업하는 것이 낫다.
이는 기분 문제다.

다만 현재 각 병행 사이트에
동시에 편집내용을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번잡하다. 

그래서 메인 사이트에서 편집 교정을 다 마친 후나
아니면 백업을 행할 시점에 행하는 것이 편할 듯하다.

한편 페이지에 펼침글 기능 이용부분이 꽤 있다.
이들은 페이지에서 주된 내용이 아니다.
단지 문서정보를 기재하거나 보
조적인 기능을 행하는 부록이다. 

일단 작업 중에는 이를 함께 올려 놓고 작업한다. 

글 적는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이 유용하다.
글 적는 가운데 음악도 듣는다.
단어 공부도 조금 한다.
과거에 보았던 게송도 조금 떠올려 본다.
이런 것이 글을 적는 가운데 갖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그런데 펼침글 부분이 사이트마다 구현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이들 내용은 최종 단계에
숨김글 편집을 각 사이트에 맞춰서 1번만 행하는 것이 편해 보인다.
매번 수정작업할 때마다 각 사이트에 맞춰 편집해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실시간 반영을 하려면 역시 번잡하다.
결국 작업을 다 마친 후 최종적으로 
1회만 실행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 잡담 ♥ 실시간 동시 반영의 어려움

한번 페이지를 작성하면
이후 오타수정이나 표현교정을 대단히 반복하게 된다.
페이지당 한 30 번 이상은 수정작업을 한다.
열람하는 이는 별로 없어도 마찬가지다.
페이지글은 글 적는 입장이 그래도 관심을 갖고 대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읽다 보면 오타부분이 눈에 띄게 된다.
그러면 그 때마다 고쳐야 한다.
표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3 개 사이트를 병행 운영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들 교정  및 업데이트반영을
실시간으로 병행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실시간 병행을 하려면 다음처럼 작업해가야 한다.

한 곳에서 1번 수정한다. -> 병행하는 다른 사이트를 방문해 수정본을 올린다.
또 어떤 곳에서 오타를 수정한다. => 또 병행하는 다른 사이트를 방문해 수정본을 올린다.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한다.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대단히 번잡하다.

그래서 되도록 편집자가 데스크탑에서
최종편집을 다 마친 후 1회 올리는 방식이 낫다.

아니면 메인 사이트에서 주된 내용을 적어 가면서
최종시점에 병행사이트에 같이 올리는 방식이 낫다.

아니면 메인 사이트만 주로 올린다.
그리고 일정 주기로 최종 백업을 할 시점에
병행사이트에 일괄적으로 올리는 방식도 낫다.
그래서 번잡함을 덜어야 한다.


♥ 잡담 ♥경전 강조부분의 표시 방안

경전을 읽다 보면
문맥에 따라 자꾸 단락을 끊어 읽게 된다.
그래야 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기 쉽다.

그런 가운데 올려진 경전부분을 읽고 나서는
다시 읽으면서 핵심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게 된다.

과거에는 이렇게 해서 핵심 부분에
■ 표시를 하고
다시 블록을 설정해서 색상을 달리 적용해보았다.
그런데 이런 강조부분이 대단히 많으면
강조의 의미가 없어진다.

한편 그 각 부분을 블록설정해
색상을 일정하게 달리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편집도 쉽지 않다.
해보려면 상당히 번잡하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k0431t0894.html#1521
sfed--소실지갈라공양법_K0431_T0894.txt ☞소실지갈라
sfd8--불교단상_2564_04.txt ☞◆vdtn1521
불기2564-04-30
θθ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K0431
 5위(位)의 하나.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고 진리를 증득하여 최종의 불과(佛果)에 도달한 지위. 청정하고 위없고 지극한 자리.

답 후보
● 구경위(究竟位)
구상문(九想門)
구생혹(俱生惑)
구역(舊譯)

구주심(九住心)
권교(權敎)
궤범사(軌範師)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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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Yannick Noah - Jam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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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Lai - Un Homme Et Une Fe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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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neille - Parce Qu`on Vient De Loin (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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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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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파자 넌센스 퀴즈


【 】 ⇄✙➠
일본어글자-발음

중국어글자-발음

■ 영어단어 넌센스퀴즈- 예문 자신상황에 맞게 바꿔 짧은글짓기



■ 번역퀴즈
번역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 Koan
[san-chn] satkāraṃ kariṣyati 方當
[san-eng] jāla $ 범어 net
[pali-chn] bahu-bīhi 有財釋
[pal-eng] ujjavanikaa $ 팔리어 f.a vessel going up-stream.
[Eng-Ch-Eng] 入胎相 One of the eight stages 八相 of S/a^kyamuni's life--his descent from Tus!ita Heaven into the womb of his mother Ma^ya. Also called 托胎.
[Muller-jpn-Eng] 知利滿臺 チリマンダイ (person) Cūḷa-panthaka
[Glossary_of_Buddhism-Eng] DANA☞
Syn: Alms; Charity.
See also: Anathapindika; Golden-Colored King; Offerings.
“[alms-giving]; hence, often used to refer to an offering, especially
of food, to a monastic community.”
...
[fra-eng] abbesse $ 불어 abbess


■ 다라니퀴즈

자비주 43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13 번째는?




43
내가 만약
널리 이 주문의 공과 힘을 찬탄하려면
한 겁을 설하여도
다하지 못하나니라.
이때 관세음보살께서
범천왕에게 말씀하시되,
"이 주문을 다섯 번 외우고
오색(五色)실을 가져와 새끼를 꼬듯 꼬고,
주문을 24 편을 외우며
24 번 매듭을 지어
목에 걸지어다.
● 사라사라 娑囉娑囉<四十三> sa ra sa r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13
바라혜다야다나
波囉呬哆野怛曩<十三二合>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121일째]
방편지혜불가설 $ 121▲不可稱不可稱為 一 ● 不可稱轉, ○□□□□,真,神,念,於

□□□□□□□, 真實智慧不可說,
神通智慧不可說, 念念示現不可說。
□□□□□□□, 진실지혜불가설,
신통지혜불가설, 념념시현불가설。

방편으로 있는 지혜 말할 수 없고
진실하게 있는 지혜 말할 수 없고
신통으로 있는 지혜 말할 수 없고
생각생각 나타냄을 말할 수 없고



법수_암기방안


● [pt op tr] fr
_M#]


2020년 4월 29일 수요일

불기2564-04-28_제법무행경_001

『제법무행경』
K0168
T0650

제법무행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제법무행경_K0168_T0650 핵심요약

[#M_▶더보기|◀접기|
불기2564-04-28_제법무행경_001
http://buddhism007.tistory.com/16981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2564-04-28001.html



♣0168-001♧
제법무행_핵심



● [pt op tr] fr sfed--제법무행경_K0168_T0650.txt ☞제법무행
_M#]




『제법무행경』 ♣0168-001♧



제법무행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제법무행경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 상권

요진(姚秦) 구마라집(鳩摩羅什) 한역
김달진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승 5백 명과 함께 계셨다.

보살은 9만 2천 명이었는데,
그 이름은 중덕장엄(衆德莊嚴)보살마하살과 사자유보(師子遊步)보살ㆍ광무장정왕(光無障淨王)보살ㆍ
고산정자재왕(高山頂自在王)보살ㆍ애희정광(愛喜淨光)보살ㆍ광폐일월(光蔽日月)보살ㆍ
묘정수(妙淨鬚)보살ㆍ신출연화광(身出蓮華光)보살ㆍ범자재왕음(梵自在王音)보살ㆍ
유희세사자왕음(遊戱世師子王音)보살ㆍ금색정광위덕(金色淨光威德)보살ㆍ유연신(柔軟身)보살ㆍ
금색상장엄신(金色相莊嚴身)보살ㆍ십광파마력(十光破魔力)보살ㆍ제근위의선적(諸根威儀善寂)보살ㆍ
덕여고산보살(德如高山菩薩)ㆍ천음성보살(天音聲菩薩)ㆍ법력자재유행(法力自在遊行)보살ㆍ
산덕정신(山德淨身)보살ㆍ묘덕(妙德)보살마하살을 비롯한 이와 같은 9만 2천의 사람들이었다.


이때 사자유보(師子遊步)보살은 이 큰 모임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세존(世尊)이시여,
대도사(大導師)시여
이름과 덕의 칭송(稱誦) 한량없는 분이시여
이제 여기에 대중들 모였으니
적멸(寂滅)의 법을 설하여 주소서.

▸ 삿된 견해와 온갖 애욕과 교만
질투와 성냄의 성품이
왜 곧 그것이 도(道)입니까.
대음(大音)의 방편으로 설해 주소서.

왜 열반의 모습이
세간의 법과 다름이 없습니까.
모든 법에 둘이 없음을
대비로 연설해 주소서.


어찌하여 모든 법의 성품
끝내 장애가 없으며
그 성품 열반과 같고
또 해탈과 같습니까.◂



묶임도 없고,
푸는 일도 없으며
또한 허공과 같다 하시니
가라빈가(迦羅頻伽)1)의 소리요
대범(大梵)의 맑고 깨끗한 음성입니다.

몸의 빛깔 하늘의 금과 같고
청정한 생활에 무량한 덕 갖추신 분이여
실상의 법을 연설하소서
끝내 묶이고 푸는 일이 없는.


▸ 왜 이 5개(蓋)가
보살과 같습니까.
왜 이 보리가
곧 모든 업(業)의 성품과 같습니까.◂


이 법(法)과 이 비법(非法)이
왜 동일한 모습[相]입니까.
이와 같은 필경의 청정함을
원하오니 연설해 주소서.◂


수(數)도 없고 비수(非數)도 없어
모든 법은 끝내 적멸하나니
일체종지(一切種智)의 모습과
그리고 보살의 도(道)에는
두 가지 법이 왜 없는지
오직 원하오니 연설해 주소서.


지음도 없고 지음이 아닌 것도 없으며
집착도 없고 집착이 아닌 것도 없으며
끝내 중생도 없어
모든 법에 걸림 없나이다.

계(戒)도 없고 인욕(忍辱)도 없고
또 계를 깨뜨림도 없으며
지(智)도 없고 혜(慧)도 없고
또 지혜(智慧)가 아닌 것도 없어

이 법은 항상 청정하나니
오직 원하오니 연설해 주소서.

왜 일체의 법이
적멸하여 허공과 같고
심(心)과 심수법(心數法:心所法)이 없고
견해와 끊음과 증득과 닦음도 없습니까.



▸ 일체 모든 중생은
모두 허공의 모습과 같고
일상(一相)의 법 또한 없으며
심행(心行) 또한 얻을 수 없나이다. ◂


모든 법 생멸이 없고
유학(有學)도 없고 나한(羅漢)도 없으며
또한 벽지불(辟支佛)도 없고
또 보살을 구하는 자도 없나이다.

머무름도 없고 쉴 자리도 없으며
오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나니
모든 법은 움직이는 모습 없어
항상 머무름이 수미산(須彌山)과 같습니다.

상(相)도 없고 색(色)도 없나니
색(色)의 성품이 곧 도(道)입니다.
색의 성품과 불도(佛道)가 하나인
이와 같은 법 연설해 주소서.

왜 불(佛)과 법(法)이 없으며
또한 중승(衆僧)도 없습니까.
이 삼보(三寶)의 일상(一相)을
오직 원하오니 연설해 주소서.

▸ 공(空)도 없고 무상(無相)도 없고
또한 무작(無作)도 없으며
합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이름과 모습의 법도 또한 없습니다.◂


모든 법은 필경 공하여
메아리에 작자(作者)가 없음과 같나니
생(生)도 없고 무생(無生)도 없으며
멸(滅)도 없고 오고 감도 없습니다.

하늘도 없고 용과 귀신도 없고
야차와 긴나라 등도 마찬가지며
사람도 없고 지옥도 없고
아귀와 축생도 없나니
중생의 5도(道)가 없다는
이와 같은 법을 연설해 주소서.

세상의 길잡이와 같은 분이시여
외도(外道)와 잘못된 견해 가진 자들
그들이 연설하는 것들이
왜 평등하여 둘이 없습니까.

▸ 여러 문자와 언어(言語)
이런 법들은 모두 일상(一相)이니
세존이시여,
큰 자비와 연민으로
원하오니 이 법문(法門) 열어주소서.◂





▸ 이때 세존께서 사자유보(師子遊步)보살마하살을 칭찬하여 말씀하셨다.◂


▸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선남자야,
너의 질문은 너무도 희유해 일체의 세간이 믿기 어려운 것이다.◂


▸ 그만두라, 그만두라.
묻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 새롭게 뜻을 일으킨 보살들은
이 공(空)의 견해와 무상(無相)의 견해와 무작(無作)의 견해와
무생(無生)의 견해와 무소유(無所有)의 견해와
모습을 취함이 없는 견해와
부처의 견해와
보리(菩提)의 견해에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 선남자야,
이와 같은 법은 새로 배우는 보살 앞에서 설해선 안 된다.◂


▸ 무슨 까닭인가?
만약 이 법을 들으면
혹 선업(善業)을 끊고
불도(佛道)에서 곧 삿된 도를 행하거나,
혹은 단멸(斷滅)에 떨어지거나,
혹은 영원하다고 헤아리는 데에 떨어져
여래가 어떤 방편으로 적절하게 설한 것인지를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 이때 사자유보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간을 가엾이 여기셔서 꼭 설해 주십시오.◂


장차 올 세상에 공의 견해와 무상의 견해와 무작의 견해와
무생의 견해와 무소유의 견해와
모습을 취함이 없는 견해와
부처님의 견해와 보리의 견해에 대해
이것은 공이고,
이것은 무상이고,
이것은 무작이라고 분별하여
항상 찬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사업(事業)을 부지런히 하며,
문자를 좋아하고 집착하며 변설(辨說)을 묘하게 하고
명예와 이익을 귀하게 여기는 보살이 있을 것입니다.

▸ 이와 같은 사람이 여래께서 설하시는
필경 청정한 이 문자가 없는 법을 듣는다면
분명 이런 온갖 견해를 버릴 것입니다.◂




그런 보살들은
중생들이 믿고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따라
방편의 힘으로 법을 설하고,

비록 소욕지족(少欲知足)2)을 설하긴 하지만 그것을 으뜸으로 여기지 않으며,
비록 경(經)과 계(戒)를 설하긴 하지만 역시 그것을 으뜸으로 여기지 않으며,
비록 대중에 머무는 과오를 설하긴 하지만 역시 일체법이 멀리 벗어난 모습임을 알며,
번잡하고 시끄러운 곳에서 지내지 않고 홀로 지내는 것을 항상 칭찬하긴 하지만 그것을 으뜸으로 여기지 않으며,
비록 보리심(菩提心) 일으키는 것을 칭찬하긴 하지만 심성(心性)이 곧 보리임을 알며,
비록 대승의 경을 칭찬하긴 하지만 일체 모든 법이 다 대상(大相)임을 알며,
비록 보살의 도를 설하긴 하지만 아라한과 벽지불과 모든 부처님을 분별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보시(布施)를 칭찬하긴 하지만 보시의 평등한 모습을 통달하며,
비록 지계(持戒)를 칭찬하긴 하지만 모든 법이 다 곧 계의 성품임을 분명히 알며,
비록 인욕을 칭찬하긴 하지만 모든 법이 무생(無生)과 무멸(無滅)과 무진(無盡)의 모습임을 알며,
비록 정진을 칭찬하긴 하지만 모든 법이 일으키지 않고 행하지 않는 모습임을 알며,
비록 선정(禪定)을 갖가지로 칭찬하긴 하지만 일체법이 항상 선정의 모습임을 알며,
비록 지혜를 갖가지로 칭찬하긴 하지만 지혜의 참된 성품을 분명히 알 것입니다.

비록 탐욕의 잘못을 설하긴 하지만 법에 탐할 만한 것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비록 성냄의 잘못을 설하긴 하지만 법에 성낼 만한 것이 있음을 보지 않으며,
비록 어리석음의 잘못을 설하긴 하지만 모든 법에 어리석음이 없고 걸림이 없음을 알며,
비록 중생들에게 3악도(惡道)에 떨어지는 두려운 괴로움을 나타내 보이긴 하지만 지옥ㆍ아귀ㆍ축생의 모습을 얻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여러 보살들은 비록 중생들이 믿고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따라
방편의 힘으로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긴 하지만
스스로는 일상(一相)의 법을 믿고 이해할 것이니,
이른바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ㆍ무생(無生)ㆍ무소유(無所有)ㆍ무취상(無取相)입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오니 이 불가사의한 방편의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일체의 성문(聲聞)과 벽지불
그리고 새롭게 뜻을 일으킨 보살들은 미칠 수 없는 것이니,
오직 깊고 깊은 일상(一相)의 법을 믿고 이해하는 자를 위해서 설해 주십시오.”








▸ 이때 부처님께서 사자유보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는 지금 분명하게 듣고 이것을 잘 사념(思念)하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해 이 뜻을 해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땅히 받아들이겠습니다.”



▸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 만약 성불(成佛)하려는 사람 있다면
탐욕을 무너뜨리지 말라
모든 법이 곧 탐욕이니
이를 알면 곧 성불하리라.◂


▸ 탐욕 그리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얻을 수 있는 자 없나니
이런 법들 모두 허공과 같아
이를 알면 곧 성불하리라.◂


견해와 견해가 아닌 것 일상(一相)이요
집착과 집착하지 않음 또한 그러하며
여기엔 부처도 없고 법도 없나니
이를 아는 것을 큰 지혜라고 하네.

마치 사람이 꿈속에서
도를 얻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과 같나니
도(道)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불법의 성품 또한 그러하다네.

도량(道場)이란 얻을 것 없나니
만약 얻는다면 곧 있지 않네.
명(明)과 무명(無明)은 일상이라
이를 알면 세존이라 하네.


▸ 중생이 곧 보리(菩提)요
보리가 곧 중생이니
보리와 중생은 하나라
이를 알면 세존이라 하네.◂


마치 재주 좋은 요술쟁이가
갖가지 일을 환술(幻術)로 만들어내듯
소견(所見)에 진실은 없고
여러 가지 수의 지혜도 없다네.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허깨비와 같아
허깨비는 3독(毒)과 다르지 않거늘
범부(凡夫)들 스스로 분별하고서
나는 욕심난다,
나는 성이 난다고들 하네.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
곧 3악도(惡道)에 떨어지리니
실상에는 탐욕과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도 또한 얻을 수 없네.

허깨비와 같은 법임을 분별하고
자성과 번뇌의 열기 분별해 보면
실상에는 번뇌가 없고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네.

무생법(無生法)을 분별하고서
범부들 부처되기 바라나니
모든 부처님 법도 보지 않고
또한 중생도 보지 않는다네.

이런 법의 모습 아는 자
중생들이 존경하는 자가 빨리 되리니
만약 사람이 보리를 구하면
곧 보리는 없게 된다네.

이런 사람 보리와 멀어지나니
비유컨대 하늘과 땅이라
모든 법이 허깨비와 같음을 알면
사람 가운데 으뜸인 자 빨리 되리라.



만약 사람이 계(戒)를 분별하면
계는 곧 없게 되나니
만약 계를 보는 자 있다면
이는 곧 계를 잃는 것
계와 계가 아닌 것은 일상(一相)이라
이를 알면 도사(導師)라 하네.

마치 꿈에서 5욕(欲)을 누려
즐기면서 스스로 쾌락하는 것과 같나니
여색(女色)을 분별하고 보지만
그 가운데 실제로는 여색이 없네.

계와 계를 깨뜨리는 것 꿈과 같거늘
범부들 둘이라고 분별하나니
실은 계도 계를 깨뜨림도 없어라
이것을 알면 도사(導師)라 하네.


▸ 범부들 이름[名字]에 집착해
언어(言語)의 성품 알지 못하나니
이름과 이름 아닌 것
이를 알면 무생(無生)을 얻네.◂




스스로를 보살이라 일컬으며
독송하고 사람들에게 설하면서
자신은 행하는 바 없이
그저 종성(種性)만 믿고 의지하는구나.

그저 경이나 읽으며 도를 구하고
항상 남의 잘못을 보고
위의(威儀)와 문장과 게송에 집착하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 보며 잘난체하는구나.

종성과 문장과 게송만 믿고
법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이와 같은 사람들
끝내 부처가 되지 못하리라.

모든 법의 공(空)함을 설하면서도
나쁜 마음으로 다투기 좋아하는
이런 사람에게 불법(佛法)은 없으리라
또한 보리도 없으리라.

성냄과 인욕이 같은 모습임을 알고
이에 통달하면 끝내 성내지 않나니
중생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그러면 곧 진에(瞋恚)를 일으키리라.

스스로 보살이라고 말하는 자
또한 이와 같이 말하네.
나는 일체를 가엾이 여기고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그러나 남이 괴롭히면 화를 내고
분노를 품고서 말도 하지 않으며
항상 남의 잘못을 찾고
다투고 싸우기를 좋아하는구나.

또한 인욕을 칭찬하고
모든 법의 공함을 설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엔 교만이 넘치고
항상 남의 잘못을 살피는구나.

좋은 맛에 탐착하여
밤낮으로 5욕을 생각하면서
이런 사람 성읍(城邑)에 들어가선
사람을 제도한다고 스스로 말하네.

중생을 가엾게 생각하고
항상 풍요롭기를 바란다고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마음으론 남 괴롭히기 좋아하네.


▸ 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네
자비로우면서 괴롭히는 것을.
함께 서로 성내고 괴롭히면서
아미타불(阿彌陀佛)세계에 태어나기 원하는 걸.◂


▸ 만약 사람이 항하 모래 같은 세월에
나쁜 말을 듣고 칼과 몽둥이를 맞아도
이와 같은 것 모두 참을 수 있다면
곧 정토(淨土)에 태어나리라.◂


불국토와 불국토가 아닌 곳
허공의 모습과 같음을 알아
국토(國土)를 분별하지 말고
국토의 공덕도 분별하지 말라.
그와 같은 사람
모든 부처님나라에 태어날 수 있으리라.


스스로 말하기를,
온갖 악을 참고
보살을 부처님처럼 본다고들 하지만
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네
부처님의 모습이 성내는 자라는 걸.

제각기 남 헐뜯는 걸 자랑하고
단월(檀越)과 친구를 좋아하면서
이렇게들 말하네,
내가 교화할 자들
보호하여 법답게 하리라.
너는 내가 제도해야 할 자이니
다른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라고.

그 사람들의 행동 순수하지 않고
항상 시끄럽고 번잡한 곳에 머무나니
그런 사람은 불도(佛道)에서
부지런히 수행할 수 없네.

참으로 불도를 구하는 자라면
낮과 밤 각각의 3시(時)에
모든 보살에게 정례(頂禮)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야 하리라.


▸ 그가 행하는 도에 따라
그 잘못을 말하지 말고
5욕에 탐착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 과오를 말하지 말라.◂


마땅히 염해야 하리라,
그 사람
오랜 뒤엔 그 역시 도를 얻고
차례로 업도(業道)를 행하리라고.
단박에 성불(成佛)할 순 없느니라.

▸ 혹은 오래지 않아 발심하여
그도 이런 일을 행하리니
탐욕을 분별하지 말라
탐욕의 성품이 곧 도이니라.◂


▸ 번뇌는 과거에 스스로 없었고
미래에도 역시 없다네.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할 수 있다면
곧 무생인(無生忍)을 얻으리라.◂




좋고 나쁜 음성을 관하여
음성의 성품이 아님을 알면
분명 들어가리라,
문자가 없는
실상(實相)의 법문(法門)으로.

만약 이 법을 믿을 수 있다면
곧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고
탐욕과 어리석음을 관하면
곧 이것이 한량없는 모습이니라.

이 두 가지에 문자란 없나니
문자로써 설하기는 하지만
모든 문자가 있는 곳
이 모두에 실다움은 없다네.

일체의 모든 음성
이것은 하나의 소리의 성품이라 관하나니
부처님의 말씀과 삿된 말
이 모두에 분별이 없다네.



▸ 법을 비록 말하기는 하지만
실은 법도 없고 설함도 없나니
일상의 문에 들어갈 수 있다면
곧 무상인(無上忍)을 얻으리라.◂



▸ 이것은 인(忍)이고 이것은 인이 아니라는
그런 분별을 짓지 말라.
탐욕과 성내는 마음에서
그 가운데 이익을 헤아리지 말라.
이 두 가지가 무생(無生)임을 알면
분명 세간에서 으뜸이 되리라.◂




동쪽 서쪽 남쪽 북쪽의
항하 모래처럼 많은 국토를
모두 부수어 미세한 티끌을 만들고
한 티끌을 한 나라라고 하자.

그 세계에 가득한 온갖 진귀한 보배를
헤아릴 수 없는 오랜 겁 동안
모든 여래께 공양하여
얻는 그 공덕
만약 사람이 이 경을 들으면
그것을 능가함이 백천 배니라.

만약 출가한 사람이 있어
일심으로 불도를 구한다면
나는 그런 사람에게 부촉하리라
이 비밀스런 요법(要法)을.

만약 이 경을 독송하고
그 뜻을 이해하는 자 있다면
무량한 총지(總持)와 변재를
자연히 모두 얻게 되리라.

날카로운 근기와 다함이 없는 지혜
즐겁게 말하는 변재를
한량없는 수억의 모든 부처님께서
또한 모두 이 사람에게 주리니
모든 경의 오묘한 법보를
저절로 모두 설할 수 있으리라.







▸ 이때 사자유보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설하신 이 게송으로 몇 곳의 사람들이 스스로 이익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너는 이 대중을 보느냐?”


“그렇습니다.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이 법을 설했을 때 모임에 한량없고 무수한 중생이 함께 모였고,
하늘ㆍ용ㆍ야차ㆍ건달바ㆍ
아수라ㆍ긴나라ㆍ가루라ㆍ마후라가 등이 허공에 가득 찼으며,
설법의 밝음으로 다른 세계까지 이롭게 한 것이 많았다.



9만 2천의 야차와 귀신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얻지 못하고도 얻었다고 하던 5백의 증상만(增上慢)을 가진 비구가
이 법을 듣고는 증상만이 없어졌으며,
참된 법을 얻어 일체의 법이 모두 일상(一相)이란 것을 믿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 않은 까닭에 번뇌[漏]가 다하고 해탈을 얻었다.

이 보살의 무리 중 6만 2천 명은
모든 법의 장애 없는 모습을 믿고 이해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은 설법은 모든 설법 중에서 가장 으뜸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나도 연등불(然燈佛)의 처소에서
모든 법이 일상으로서 장애가 없음을 믿고 이해하였으며,
그런 뒤에 무생법인을 얻고 6바라밀(波羅蜜)을 구족하였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겁에 보시하고
지계하며 인욕하고 정진하며 선정을 닦고
지혜를 닦더라도 만약 이와 같은 법상(法相)을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혹 일체의 선근을 끊어 없앨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너는 큰 공덕과 선근이 있어서
32대인상(大人相)을 성취한 제바달다(提婆達多)를 보아라.
이와 같은 공덕이 있었지만 이와 같은 법상을 몰랐기 때문에
선근을 끊어 없애고 큰 지옥에 떨어졌다.
선남자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오래도록 발심(發心)하여 큰 공덕이 있다 하더라도
이 법문에 들지 않으면 모두 선근의 공덕을 끊어 없앨 수 있다.




선남자야,
저 과거 한량없고 가없는 불가사의한 아승기겁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명호는 고수미산왕(高須彌山王) 여래ㆍ응공ㆍ정변지ㆍ명행족ㆍ선서ㆍ
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ㆍ불세존이시다.

수명(壽命)은 9천9백천만억 나유타(那由他) 세(歲)였으며,
국토의 이름은 금염명(金焰明)이었다.
그 나라는 흙이 모두 황금으로 되어 있었으며,
그 설하신 법 역시 3승(乘)으로 중생들을 제도하고 해탈시켰다.

그 부처님의 첫 모임에는 80백천만억 나유타의 성문제자가 있었고,
다음 두 번째 모임에는 70백천만억 나유타의 성문제자가 있었으며,
세 번째 모임에는 60백천만억 나유타의 성문제자가 있었고,
네 번째 모임에는 50백천만 억 나유타의 성문제자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아라한을 얻고,
모든 무거운 짐을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얻었으며,
모든 존재의 결박을 없애고 바른 지혜로 해탈을 얻었다.

비구니 대중의 수는 그 배(倍)였고,
우바새 대중의 수도 또 그 배였으며,
우바이 대중의 수도 또 그 배였다.
보살 대중의 수도 또 그 배였는데,

그들은 모두 아유월치(阿惟越致)의 무생법인을 얻고,
모두 한량없고 가없는 다라니문과 삼매의 문을 얻어
물러서지 않는 법륜(法輪)을 굴릴 수 있었으니,
하물며 새롭게 보살의 뜻을 일으킨 자들이겠는가.
또한 벽지불도(辟支佛道)의 마음을 낸 자들 역시 한량없고 가없었다.

선남자야,
그때 그 부처님 모임의 제자 대중의 수는 한량없고 가없었다.
그 금염국(金焰國)에는 나무가 모두 7보로 되어 있고
그 보배 나무에서는 항상 법의 소리가 났다.

이른바 일체 모든 법의 공(空)한 소리와 무상(無相)의 소리와 무작(無作)의 소리와
무생(無生)의 소리와 무소유(無所有)의 소리와 무취상(無取相)의 소리로서
그 나라 인민들은
이 법의 소리를 듣고 자연히 모두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얻었고,
마음에 해탈(解脫)을 얻었다.

그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
법은 천 년을 머물렀고 모든 보배 나무의 소리 역시 다시는 나지 않았다.




선남자야,
그 고수미산왕불(高須彌山王佛)께서는
법을 정위의(淨威儀)보살에게 부촉하여 법을 수호하게 하셨고,
부촉하신 뒤에 곧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셨다.


그때 유위의(有威儀)라는 이름의 비구가 있었는데
지계(持戒)가 청정하지 못하였고,
4선(禪)ㆍ4무색정(無色定)과 5신통(神通)을 얻고 비니장(毘尼藏)을 잘 독송하였으나
고행을 즐기며 남의 마음을 잘 알지는 못하였다.
그 제자들 역시 모두 고행하며 두타(頭陀)의 행을 귀하게 여겼다.

이 정위의(淨威儀) 법사는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며
무소유법에서 교묘한 방편을 얻었다.

또 언제가 정위의 법사는 여러 제자들을 이끌고
유위의(有威儀) 비구가 머무는 곳으로 가서 함께 머물게 되었다.

정위의 법사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머무는 곳으로부터 항상 마을로 들어가 음식을 먹은 뒤에 돌아오곤 하였다.
그렇게 백천만의 집을 교화하여 모두 제자로 삼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제자의 무리 또한 교화를 잘하여 여러 마을로 가서 설법을 하였고,
여러 백천의 중생들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였다.

유위의 비구는 항상 탑사에 머물기를 좋아하였고,
그 제자의 무리들도 청정한 계(戒)를 지니지 않고서
두타(頭陀) 행하기를 좋아하였다.

유위의 비구는 부지런히 정진하고 그 마음이 확고하며,
자신이 행한 것으로 모든 제자들을 교화했지만
선법(善法)에 탐착하여 소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바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가 무상하고,
모두가 괴로우며,
일체의 법은 무아라고 설하며 여러 선정의 법을 잘 행할 수 없었고,
또 보살이 행하는 도에 능숙하질 못했으니,
본심(本心)이 순수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정위의 법사는 날카롭고 우둔한 중생들의 여러 근기를 잘 알았고,

유위의 비구의 마음을 아는 까닭에 다시는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여러 제자들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유위의 비구는 정위의 법사의 여러 제자들이
항상 마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청정하지 못한 마음을 일으켰고,
곧 건추(犍椎)를 울려 대중을 모으고 규율을 세웠다.

‘너희들은 지금부터는 마땅히 마을에 들어가선 안 된다.
일심(一心)으로 고요히 정묵(靜黙)을 행하지 못하면서
자주 마을에 들어가 무슨 이익을 얻겠느냐.
부처님께서 칭찬하신 곳은 아련야주처(阿練若住處)이다.
너희들은 선의 즐거움을 행해야지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

정위의 법사의 여러 제자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마을로 들어갔다.

그 후 언젠가 유위의 비구가 그 제자들이 마을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는
다시 건추를 울려 대중을 모으고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다시 마을에 들어가는 자는 다시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

이때 정위의 법사가 유위의 비구를 보호하려고 여러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
그러자 곧 스승의 가르침대로 마을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때 여러 인민들은 그 스승과 여러 제자들이 보이지 않자
모두들 근심과 고뇌를 품었으며 선근(善根)을 잃어버렸다.

정위의 법사는 석 달을 보내고 자자(自恣)3)을 마친 뒤에
그곳을 떠나 다른 승방(僧坊)에 이르렀고,
그곳에 머무르며 스승과 제자들은 다시 성읍(城邑)의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였다.

나중에 유위의 비구는 정위의 법사가 다시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이 일상의 위의를 훼손하고 잃은 것을 보고는
다시 청정하지 못한 나쁜 마음이 생겨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비구는 계를 깨뜨리고,
계를 훼손하였다.
어찌 보리가 있겠는가.’

곧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 비구는 잡스럽게 행동하니 불도(佛道)와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

▸ 유위의 비구는 이런 업(業)을 일으키고 나서
나중에 목숨이 다하였는데,
그 업의 과보로 아비(阿鼻:無間)의 큰 지옥에 떨어졌고,
9백천억 겁 동안 온갖 고뇌를 받았다.◂


지옥을 나와서는 63만 년 동안 항상 비방(誹謗)을 받고서야
그 죄가 점차 엷어졌으며,
그 후 32만 년 동안 비구가 되었으나
출가한 뒤에는 이 업(業)의 인연 때문에 도를 거스르고 환속하곤 하였다.

또 다른 죄업의 인연 때문에 정명불(淨明佛)의 처소에서 출가하고
도에 들어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은근히 정진하였지만
천만억 년 동안에도 유순법인(柔順法忍)을 얻지 못하였고,
한량없는 천만 년 동안 모든 근기가 어둡고 둔하였다.

사자유보야,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 그때 유위의 비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렇게 보지는 말라.
곧 나 자신이 그였다.
나는 그때 그런 미세한 부정한 마음을 일으켜
그 죄업을 받고 지옥에 떨어졌었다.◂


사자유보야,
만약 이런 미세한 죄업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 자라면
저 보살에게 나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보살이 행하는 도를 모두 믿고 이해해야 하며,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되며,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 ‘나는 남의 마음을 잘 알 수 없다.
중생이 행하는 것,
그것 역시 알기 어렵다.’◂


선남자야,
여래는 이런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항상 이 법을 설한다.


▸ 그러므로 수행자는 사람을 저울질해서는 안 된다.
오직 여래나 여래와 비슷한 자만이 그것을 알 수 있다.◂


▸ 그러므로 수행자가 만약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사람을 저울질해 서로 거슬리는 짓을 절대 삼가야 한다.◂

▸ 보살이 만약 불법(佛法)을 닦고 모으고자 한다면
항상 밤낮으로 부지런한 마음으로 전념해야만 한다.◂


▸ 보살의 마음을 깊이 일으킨 자라면
사람의 장단점 찾는 걸 좋아해서는 안 된다.◂


▸ 보살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중생을 가르쳐
10선을 행하게 한다고 해도
보살이 한 식경(食頃)동안 일심으로 조용한 곳에서
일상(一相)의 법문을 염하는 것만 못하다.◂


나아가 듣고 받아들여 독송하고 해설한다면
그 사람의 복덕은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 무슨 까닭인가?
모든 보살은 이 법문을 사용하여 모든 업장의 죄를 없앨 수 있고,
또한 일체 중생 속에서 미움과 사랑의 마음을 떠나
곧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빨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때 문수사리(文殊師利) 법왕자(法王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업장의 죄를 없앤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업장의 죄를 없앱니까?”◂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모든 법의 성품에 업이 없고 과보가 없음을 본다면
곧 업장의 죄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
또 문수사리야,
만약 보살이 탐욕의 경계가 곧 진실의 경계임을 보고,
성냄의 경계가 곧 진실의 경계임을 보고,
어리석음의 경계가 곧 진실의 경계임을 본다면
곧 업장의 죄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


▸ 또 문수사리야,
만약 보살이 모든 중생의 성품이 곧 열반의 성품임을 본다면
곧 업장의 죄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



▸ 왜냐하면 만약 사람이 스스로 소견을 가지면 곧 업을 일으킬 수 있고,
아는 것이 없고 들은 것이 없는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법이 완전히 없어진 모습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을 보고 또 남을 보며,
이런 견해 때문에 곧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일으킨다.◂




이런 사람은 망령된 견해로 생각하고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탐욕스럽고 성내며 어리석은 자이다.’

이와 같이 분별하는 까닭에 불법에 출가하여 도를 배운다.


또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계를 지니며 범행(梵行)을 닦는 사람이다.
나는 생사를 초월하고 열반을 얻어 모든 고뇌를 벗어나리라.’

이런 사람은 모든 법을 분별하고서
이것은 선(善)이고,
이것은 선이 아니며,
이것은 알아야 하고,
이것은 끊어야 하며,
이것은 밝혀야 하고,
이것은 닦아야 한다고 한다.
이른바 괴로움[苦]을 보아야 하고,
괴로움의 모임[集]을 끊어야 하며,
괴로움의 소멸[滅]을 증득해야 하고,
괴로움을 멸하는 도(道)를 닦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이렇게 분별한다.
‘일체의 모든 행(行)은 모두 다 무상하고,
일체의 모든 행은 모두 다 괴로움이며,
일체의 모든 행은 모두 다 3독(毒)이 치성하니,
나는 이 유위법(有爲法)을 빨리 버리리라.’
항상 이렇게 사유하며 모든 행에서 갖가지로 모습을 취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

이때 곧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행을 이와 같이 보는 것,
이것을 괴로움을 보는 것이라 한다.
모든 행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이것을 괴로움의 모임을 끊는 것이라 한다.’

모든 행을 분별하고 멸제(滅諦)를 보고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제 괴로움의 소멸을 보았으니,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는 것이라 한다.
나는 도를 닦으며 곧 고요한 곳으로 가 이와 같은 법을 생각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마음을 거두어 잡고 선정에 머문다.

이 사람은 앞서 싫어하는 마음을 얻고,
지금은 선정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모든 행에서 마음을 곧 버리고 떠났으며,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고 싫어하여 기뻐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또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일체의 법에서 이미 해탈을 얻었으며
다시는 짓는 것이 없다.
나의 몸은 이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 이 사람은 목숨이 다한 뒤에 태어나는 곳을 받는 것을 보고는
곧 보리에서 마음에 의혹과 뉘우침을 일으킨다.
이런 의혹 때문에 목숨이 다한 뒤에는 큰 지옥에 떨어진다.◂


▸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서 분별했기 때문이다.”◂




▸ 이때 문수사리법왕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어떻게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관해야 합니까?”◂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행자가 일체의 법이 곧 무생(無生)의 성품임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을 괴로움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의 법이 모이지 않고 일어나지 않음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을 괴로움의 모임을 끊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의 법이 필경 적멸한 모습임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을 소멸의 증득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의 법이 존재가 없는 성품임을 볼 수 있다면 이것을 도를 닦는 것이라 한다.



문수사리야,
만약 행자가 이와 같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 법은 선하다.
이 법은 선하지 않다.
이 법은 보아야만 한다.
이 법은 끊어야만 한다.
이 법은 증득해야만 한다.
이 법은 닦아야만 한다’는 그와 같은 분별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괴로움은 보아야 하고,
괴로움의 모임은 끊어야 하며,
괴로움의 소멸은 증득해야 하고,
괴로움을 없애는 도는 닦아야 한다고.

무엇 때문인가?
범부의 소행(所行)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행자는 이런 법이 모두 공하고,
무생이며,
무소유이고,
분별할 수 없는 것으로서 그저 허망이 쌓이고 모인 것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때 법에서 취하는 것이 없고 버리는 것도 없고
삼계(三界)에서 마음이 걸리는 것도 없다.


일체의 삼계는 필경 나지 않는다[不生]고 보며,
모든 선법(善法)과 불선법(不善法)은 허망하고 거짓되며 실답지 않아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고 그림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불꽃과 같다고 본다.

행자는 탐욕의 성품이 곧 열반의 성품이며,
진에의 성품이 곧 열반의 성품이며,
어리석음의 성품이 곧 열반의 성품이라고 본다.
만약 일체법의 성품이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으면
곧 일체 중생 가운데서 미움과 사랑을 일으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행자는 이런 법을 얻지 않기 때문에
혹 사랑의 세계[處]에 태어나건 혹은 미움의 세계에 태어나건
허공과 같은 마음에 안주(安住)하며,
내지 부처를 보지 않고 법을 보지 않고 승가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일체의 법을 보지 않는 것이다.


▸ 만약 일체의 법을 보지 않으면 모든 법에서 의혹을 일으키지 않는다.
의혹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곧 일체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체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곧 스스로 적멸하다.◂




▸ 문수사리야,
장로(長老) 수보리(須菩提)는 이와 같은 법을 아는 까닭에 찾아와
부처의 발에 예배하지 않는 것이다.
수보리는 자신의 몸도 얻지 않는데 하물며 여래의 몸을 얻겠느냐?
자신의 몸을 얻지 않으면서 여래의 몸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행자는 어떻게 4념처(念處)를 관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장차 올 세상에 이렇게 말하는 비구가 있을 것이다.
‘안으로 신처(身處)를 관하기를 만약 부정하다고 관하면 이것이 신념처(身念處)이다.
즐거움은 모두 공한 것이라고 관하면 이것이 수념처(受念處)이다.
마음이 나고 멸하는 성품을 관하면 이것이 심념처(心念處)이다.
화합상(和合相)을 파괴하는 것을 관하여 법상(法相)만을 얻으면 이것이 법념처(法念處)이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참으로 4념처를 관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문수사리야,
물을 필요 없다.
여래의 적절한 설법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수사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을 가엷게 여겨 꼭 설해 주십시오.”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행자가 몸을 허공처럼 본다면 이것을 신념처라고 한다.
만약 행자가 느낌을 안에서도 밖에서도 그 중간에서도 얻을 수 없다고 본다면 이것을 수념처(受念處)라고 한다.
만약 행자가 마음이란 오직 이름[名字]만 있을 뿐이라고 안다면 이것을 심념처(心念處)라고 한다.
만약 행자가 선법도 얻지 않고 불선법도 얻지 않는다면 이것을 법념처(法念處)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마땅히 이와 같이 4념처(念處)를 관해야 한다.”◂





▸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행자는 어떻게 8성도분(聖道分)을 관해야 합니까?”◂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행자가 일체의 법은 평등하여 둘이 없음을 보고 분별함이 없다면 이것을 정견(正見)이라고 한다.
일체의 법을 보고 사유함이 없고 분별함이 없다면 이렇게 보는 까닭에 이것을 정사유(正思惟)라고 한다.
일체법에 언설(言說)의 모습이 없음을 보고 언어의 평등한 모습을 잘 닦는 까닭에 이것을 정어(正語)라고 한다.
일체법의 짓지 않는 모습을 보면 짓는 자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정업(正業)이라고 한다.◂



정명(正命)과 사명(邪命)을 분별하지 않고 평등한 명(命)을 잘 닦고 익히는 까닭에 이것을 정명이라고 한다.
일체의 법을 내지 않고 일으키지 않아 행하는 바가 없는 까닭에 이것을 정정진(正精進)이라 한다.
일체의 법에 대해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 없어 모든 기억과 생각의 성품을 떠나는 까닭에 이것을 정념(正念)이라 한다.
일체법의 성품이 항상 적정함을 보아 산만하지도 않고 반연하지도 않고 얻을 수도 없는 까닭에 이것을 정정(正定)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행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8성도분을 관해야 한다.”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행자는 어떻게 5근(根)을 관해야 합니까?”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행자가 일체법이 필경 나지 않고
본래부터 지금까지 항상 스스로 그러함을 믿는다면 이것을 신근(信根)이라 한다.◂


일체법에서 마음이 머무는 곳이 없어 멀고 가까운 모습에서 벗어나는 까닭에
이것을 정진근(精進根)이라고 한다.

일체의 법에 대해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 없으며,
인연의 성품에서 벗어난 까닭에 인연에 생각이 묶이지 않으면
이것을 염근(念根)이라고 한다.

일체의 법에서 사유(思惟)하는 것이 없어 두 가지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정근(定根)이라고 한다.

일체법은 항상 공하여 생상(生相)을 벗어난 것임을 보면
이것을 혜근(慧根)이라고 하다.
문수사리야,
행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5근을 관해야 한다.”




문수사리가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행자는 어떻게 7보리분(菩提分)을 관해야 합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행자가 일체법을 볼 수 있어 기억과 생각이 없다면 이것을 염보리분(念菩提分)이라고 한다.◂


일체의 법은 선(善)이건 불선(不善)이건 혹은 무기(無記)이건
선택할 수 없고 얻을 수도 없으니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택보리분(擇菩提分)이라고 한다.

만약 모든 삼계의 모습을 취하지 않으면 삼계를 잘 무너뜨리는 까닭에
이것을 정진보리분(精進菩提分)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에서 기쁨의 모습을 일으키지 않고,
기쁨의 모습을 잘 무너뜨리는 까닭에 이것을 희보리분(喜菩提分)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의 법에서 그 마음을 없애면 인연의 모습을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이것을 제보리분(除菩提分)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의 법이 얻을 수 없으면 무너뜨리는 모습을 잘 닦는 까닭에
이것을 정보리분(定菩提分)이라고 한다.

만약 일체법에 의지하는 것이 없어서 탐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일체의 법을 보지 않는 까닭에 사심(捨心)을 얻으니,
이것을 사보리분(捨菩提分)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행자는 마땅히 이와 같이 7보리분을 관해야 한다.


만약 행자가 이와 같이
4성제(聖諦)와 4념처(念處)와 8성도분(聖道分)과 5근(根)과 7보리분(菩提分)을 본다면
나는 이런 사람을 이미 건넌 자,
피안에 도달한 자,
두려움이 없는 곳인 육지로 올라온 자,
이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온갖 티끌과 때를 없앤 자라고 한다.

이런 사람을 소유함이 없는 자,
걱정이 없는 자,
받아들이는 것이 없는 자라고 한다.

이를 아라한이라 하고,
이를 사문이라 하며,
이를 바라문이라 하고,
이를 비구라 하며,
이를 정결하게 목욕한 자라고 하고,
이를 지혜로운 자라고 하며,
이를 벗어난 자라고 하고,
이를 들은 자라고 하며,
이를 부처의 아들이라고 하고,
이를 석가모니의 아들이라고 하며,
이를 가시나무를 벤 자라고 하고,
이를 관문의 열쇠를 부순 자라고 하며,
이를 이미 참호[塹]를 건넌 자라고 하고,
이를 출가하기를 바라고 구하는 자라고 하며,
이를 문을 연 자라고 하고,
이를 현성의 뛰어난 모습을 가진 자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만약 이와 같은 법을 성취하는 비구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과 세간에서 복 밭이라고 불리며 공양을 받을 것이다.


문수사리야,
이 비구가 만약 나라의 보시를 헛되게 먹지 않기를 바라는 자이고,
마왕의 그물을 파괴하는 자이고,
생사의 바다를 건너려는 자이고,
열반을 얻으려는 자이고,
일체의 고뇌를 벗어나려는 자이고,
일체 하늘과 사람의 세간을 위해 복 밭이 되려는 자라면
부지런히 이와 같은 법을 닦고 익혀야 한다.”



이 법을 설하셨을 때,
3만 2천의 모든 하늘이 모든 법의 실상을 얻고는
제각기 하늘의 만다라 꽃을 부처님 위에 뿌리며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사람이 이와 같은 법을 듣게 된다면 그 사람을 훌륭한 출가자라 할 것입니다.
하물며 믿고 받아들여 독송하며 말씀처럼 행하는 자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약 잠깐이라도 이 법을 듣는 자가 있다면
그를 곧 증상만(增上慢)이 없는 자라 할 것입니다.”





이때 문수사리법왕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오직 원하오니,
세존이시여,
다라니(陀羅尼)를 설해 주십시오.

그 다라니가 있으면 모든 보살이 걸림없는 변재를 얻어
모든 음성에 두려움이 없게 할 것이며,
모든 법을 다 불법으로 만들고
또 모든 법이 곧 일상(一相)임을 믿고 이해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분명하게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 종성[不動種性]의 법문을 설하리라.
이 법문에 들어가는 모든 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일체의 법을 비추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빨리 얻을 수 있다.”◂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움직이지 않는 종성의 법문이라고 합니까?”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중생은 그 마음이 모두 하나이다.
이것을 종자의 성품[種性]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중생은 모두 마음이 없으니,
인연의 성품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일체의 중생은 모두 동일한 양(量)이니,
이것을 종자(種子)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체 중생은 모두 허공의 양과 같아
결국 장애가 없음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종자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일체 중생은 모두 곧 하나의 중생이니,
이것을 종자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 “문수사리야,
일체 중생은 모두 일상(一相)으로서
끝내 나지 않고 모든 이름을 벗어났으니,
같고 다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탐욕이 바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不動相]이라고 합니까?”

▸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탐욕이 바로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법의 성품에 안주하지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며,
이 탐욕은 성품을 얻을 수 없고 항상 벗어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진에(瞋恚)가 곧 금강(金剛)이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금강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성냄은 끊을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또한 금강을 끊을 수가 없고 무너뜨릴 수 없는 것과 같다.

▸ 일체법도 또한 이와 같아 끊을 수 없고 무너뜨릴 수 없으니,
모든 법은 본래 확고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금강과 같다고 한다.
문수사리야,
어리석음이 곧 지혜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지혜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일체의 법은 지혜를 벗어나고 또 어리석음을 벗어난 것이니,
비유컨대 허공과 같아서 지혜도 없고 또 어리석음도 없다.
일체의 법도 이와 같아 지혜도 없고 또 어리석음도 없다.
지혜와 어리석음,
지혜와 알 수 있는 법은

▸ 본래부터 지금까지 모두 적멸(寂滅)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리석음과 지혜의 처소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색음(色陰)이 곧 움직이지 않는 곳이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움직이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천제(天帝)의 당간은 뿌리가 깊고 단단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 일체의 법 또한 그와 같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법의 성품에 안주하여
이 법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고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니,
머무름 없는 곳에 안주하는 까닭이다.
이런 까닭에 색(色)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수음(受陰)이 곧 적멸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적멸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일체의 모든 느낌의 모습과 성품이 항상 적멸하기 때문이다.
모든 느낌은 안도 바깥도 아니며,
동쪽이 아니고 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귀퉁이와 위와 아래에서 온 것도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만약 즐거운 느낌이 안에 있다면 일체 중생은 항상 즐거움을 느껴야만 한다.
만약 괴로운 느낌이 안에 있다면 일체 중생은 항상 괴로움을 느껴야만 한다.
만약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안에 있다면
일체 중생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껴야만 한다.

문수사리야,
지금 일체의 모든 느낌은 실로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지 않고,
둘의 중간에 있지 않고,
동쪽ㆍ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귀퉁이와 위와 아래에도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일체의 모든 느낌은 풀이나 나무,
기왓장이나 돌처럼 끝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모습이 없다.
이런 까닭에 느낌을 적멸의 모습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상음(想陰)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이 생각의 모든 기억과 분별은 허망한 것에서 생기니

▸ 빈주먹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아 본성이 스스로 벗어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상음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행음(行陰)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일체의 모든 행(行)은 수(數)와 무수(無數)를 벗어나 평등한 수에 들어간다.
비유컨대 파초(芭蕉)는 끝내 알맹이가 없고 본성이 스스로 그러한 것과 같다.
일체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
이름이 없고 성품이 없는 까닭이다.
이런 까닭에 행음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식음(識陰)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이 알음알이는

▸ 허깨비와 같아서 알맹이가 없고 일어남이 없고 남이 없어
공이고 모습이 없고 성품이 없으니
다섯 손가락으로 허공을 칠하여도
허공에는 나타나는 모습이 없음과 같다.
이런 까닭에 식음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빛깔[色]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빛깔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비유컨대 거울 속 모습은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실체가 없는 것과 같다.
일체의 빛깔 또한 그와 같아 볼 수 있지만 실체가 없고,
그저 눈을 속이고 마음을 속이며 허망하고 실답지 않을 뿐이다.
이런 까닭에 빛깔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소리[聲]가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소리를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 “문수사리야,
일체의 법에 다른 모습은 없으니,
필경 공하여 산 속의 메아리와 같다.
이런 까닭에 소리를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냄새[香]가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냄새가 종자의 성품입니까?”
“문수사리야,
일체의 법에 냄새의
모습과 성품이 없고 앎도 없다.

따라서 공(空)함이 허공과 같아 코도 냄새도
▸ 그에 대한 알음알이도 얻을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냄새를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맛[味]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맛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맛의 성품이

▸ 곧 불가사의한 성품이어서
알 수가 없고 앎을 벗어났기 때문이며,
자성이 항상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맛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촉감[觸]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촉감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촉감은 허공처럼

▸ 그 성품이 스스로 벗어나 있어 닿음도 없고 합함도 업다.
일체의 법 또한 이와 같으니 몸을 잘 무너뜨리기 때문이며,
촉감의 모습을 벗어나서는 촉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촉감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문수사리야,
법(法)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법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일체의 법은

▸ 모습이 없고 마음도 없으며,
마음의 성품을 떠나고 이름을 떠나서는 확고하게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런 법의 성품과 모습이니,
이런 까닭에 법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문수사리야,
흙[地]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흙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일체의 법에는 견고한 모습이 없고 부드러운 모습도 없다.
허망하게 화합한 것을 사람들이 견고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흙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물[水]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물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일체의 법에는 축축함이 없고 합함도 없으니,
아지랑이에 물이 없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물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불[火]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불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여,

▸ 일체의 법에는 열(熱)이 없다.
허망한 열의 모습을 벗어나면 본성은 적멸하니,
전도를 벗어낫기 때이다.
그 실재를 분별해 보면 결정된 것도 없고 생(生)도 없다.
이런 까닭에 불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바람[風]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바람[風]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일체의 법은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고 모습이 없고 성품이 없으니,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바람의 모습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바람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부처가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부처를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일체의 법은 깨달음[覺]이 없고 앎[知]도 없으니,
앎의 모습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를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법이 곧 종자의 성품이다.”◂


“세존이시여,
왜 법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모든 법은 무너뜨릴 수 없고 끊을 수도 없다.
무너뜨림과 끊음을 벗어났기 때문에
모습이 없고 이름이 없고 성품이 없으며
언어(言語)의 길을 벗어났다.
이런 까닭에 법을 종자의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승가[僧]가 곧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세존이시여,
왜 승가를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성스러운 대중은

▸ 법다운 성품의 실제와 안정됨과 어지러움이 평등한 가운데 안주한다.
지혜와 어리석음과 해탈과 번뇌가 평등한 일체의 법 가운데 안주하며
마음이 머무는 곳이 없으니,
머묾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승가를 움직이지 않는 성품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일체의 법이 행하는 곳을 움직이지 않음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모든 허공이 행하는 곳은 불가사의하게 행하는 곳이며,
행을 끊은 곳이며,
근본이 없고 다름이 없으며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일체법이 행하는 곳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일체 법의 인연 없음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일체의 법은 의지함이 없고,
머무는 곳이 없고,
인연이 없고,
순응함도 없으니 모든 인연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일체법의 인연 없음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일체법의 취하지 않고 버리지 않는 모습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일체의 법은 모두 여여(如如)로 돌아가고
법의 성품에 있어서 한가지이다.
이 법은 취할 수 없고 버릴 수 없으며,
구함도 없고 원함도 없다.
모든 원이 끊어진 까닭에
본래부터 지금까지 항상 적멸한 모습으로서 허공과 같다.
이런 까닭에 취하지 않고 버리지 않는 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일체법의 때[垢] 없음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일체법은 때가 없고 소유함이 없어
청정하고 밝고 밝아 가림이 없는 허공과 같으니,
모든 죄의 공한 모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일체법의 때 없음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일체법의 돌아갈 곳 없음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일체의 법은 공하고 근본이 없는 까닭에 돌아갈 곳이 없다.
이런 까닭에 돌아갈 곳 없음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야,
일체법의 배움 없음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왜 그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야,

▸ 일체법의 성품은
배움이 없는 것으로서
배워서는 안 되고,
닦아선 안 되고,
사유해선 안 되고,
기억해선 안 되고,
머물러선 안 되고,
일으켜선 안 되고,
행해선 안 되고,
끊어선 안 되고,
증득해선 안 되고,
말해선 안 되고,
이야기해선 안 되고,
구해선 안 되고,
설해선 안 되고,
취해선 안 되고,
버려선 안 되고,
벗어나선 안 되고,
없애선 안 된다.◂


무슨 까닭인가?
문수사리야,

▸ 일체 모든 모습을 필경 벗어났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지금까지 취할 것이 없고 항상 버리는 모습이며,
모든 법은 지혜가 미치는 곳이 아니고 어리석음이 미치는 곳도 아니다.
이런 까닭에 배움이 없는 것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
1 새의 이름이다.
이 새의 소리는 너무도 아름답고 부드러워 싫어하는 자가 없다.
부처님의 음성을 비유하는 말이다.
2 많이 구하지 않는 것을 소욕,
적다고 괴로워하지 않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지족이라 한다.
3 하안거 마지막 날 대중이 함께 모여 보고,
듣고,
의심한 죄과를 서로 지적하고 참회하는 의식이다.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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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불기2564/04/29/수/00:22

● 제법무행과 제행무상의 관계

기본적으로 제행무상이 제시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제법무행이 제시된다.
제법에 행이 없다면, 제행무상도 제시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내용이 모두 부처님에 의해 제시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 분별하지 말라고 분별하는 경전의 가르침의 문제

▸ 그가 행하는 도에 따라
그 잘못을 말하지 말고
5욕에 탐착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 과오를 말하지 말라.◂
...








◆vyvz1351
◈Lab value 불기2564/04/28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Antoine Henaut - Je Compte.lrc


Antoine Henaut - Je Compte


○ 2019_1004_134040_canon_ct19.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Utagawa-Kuniyoshi-the-young-benkei-holding-a-pole.jpg!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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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agawa Kuniyo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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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the-young-benkei-holding-a-pole.jpg!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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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mazing_f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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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Flowers
Author Bhyr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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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lau_Capitol_Complex,_Olbiil_Era_Kelulau_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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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as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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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 Suwan Khuha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상세정보=>




♥ 잡담 ♥택배 받아보기 힘든 아파트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코로나 바이러스사태가 진정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언제쯤 진정될 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글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요즘
글 작성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대략 기존에 각 사이트에 올려 놓은 페이지 수만 해도
대략 17000 장 정도가 된다.

지금은 불교 경전을 공부하는 중이다.
그래서 필요한 불교 용어 풀이를 위해서
풀이가 필요한 불교 용어단어를 가나다순으로 올리는 중이다.

그런데 어떤 사이트는 하루에 올리는 페이지 수도 50 개 제한이 있다.
그리고 페이지 한번 올릴 때마다 9 개 그림조각이 떠서
일일히 인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상당히 번잡할 뿐 아니라 불쾌하기도 하다.

물론 경우에 따라 사용자 신분인증을 위해 한번 정도 인증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이트는 글을 올리고 수정 한번 할 때마다
매번 인증해달라고 팝업창이 뜬다.
이런 경우는 거의 편집 업무방해 수준이다.
그래서 결국 그런 방해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런데 기존에 사이트에 올려 놓은 페이지가 문제다.
이들 페이지를 병행 사이트에 옮겨 놓기 위해
편집작업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인증창이 떠 번잡하게 만든다.


물론 사용자가 올린 글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단 1 페이지라고 해도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글이 올려진  상태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사후에 시정을 관리자가 개별적으로 요구해도 충분하다.

또 그런 경우라면 사용자가 글 내용을 검토할 기회를 주어
문제 되는 부분을 제거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단지 글 올리는 과정에서
사용자를 붙들고 빈번하게 그림 맞추기로 인증 요구를 행하는 사이트가 있다.


그림 맟추는 인증방식은
어떻게 보면 프로그램을 통해서
기계적으로 페이지를 만들어 올리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사람이 어떤 작업을 한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글 내용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다.
또 글 올리는 이의 신원을 확인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오늘날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하는 것이 일반이다.
컴퓨터로 작업하는 것은 컴퓨터가 사용자에게 편의를 주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부분을 복사해 붙일 때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로 작업하면 간단히 블록설정해 한번 복사해 붙이면 된다.
그리고 반복하는 작업을 생략하고 줄일 수도 있다.
또 일정부분 외국어 번역이 필요하면 이것도 오늘날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쉽게 행한다.
그리고 음성 출력도 해준다.
맞춤법 검사도 해준다.
기타 멀티 자료도 링크를 찾아 복사해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들 기능이 컴퓨터가 본래 갖는 편리함이고 기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컴퓨터의 본래 기능을 사용자가 사용한다고 해서
원칙적으로 그것을 문제삼을 이유는 별로 없다.


어떤 한 사이트가 장애가 있다고 하자.
그래서 예를 들어 그 사이트에 올려 놓은 17000 페이지 분량 정도의
페이지를 다른 사이트로 옮겨 놓으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에도 모니터를 보면서
연필로 하나하나 적고 타이핑해서 옮길 도리는 없다.
결국 마찬가지 문제다.

이 때 각 페이지에 페이지 관리를 위해 페이지 주소가 기재된 경우가 있다.
그리고 페이지 안에 다른 페이지주소와 링크처리가 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처럼 사이트를 옮기려면 이들 내용을 복사한 다음
이들 부분을 다 편집해서 다시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런 작업전에 사이트에서 단순히 글을 새로 작성하고 수정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과정에서도 사이트 관리는 사용자에게 편의를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글 작성자의 수고를 덜고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 관리 목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이트에서 하루에 50 회만 올려야 한다고 제한을 둔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업무자체가 당연히 곤란해진다.
그러면 그 기간만큼 공연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어떤 사이트에서 하루에 올리는 페이지 제한을 두는 것은 그런 제한과 성격이 같다.

그런데 각 개별 사용자마다 글 작성 취지와 사정이 다 다르다.
사용자에 따라서는 한달 되어도 한 페이지조차 올리지 않는 경우도 현실에는 대단히 많다.
그런데 그것도 다 사정따라 다르다.

최근에 기계적으로 글을 작성해 올리는 일이 사건이 된 적이 있다.
요즘은 뉴스 기사도 AI 로봇이 작성해 올린다는 식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해도 그것은 글 내용과 관련해서 문제가 된다.
사정이 그렇지도 않다면 굳이 문제삼을 필요는 그다지 없다.

사용자가 편하면 그런 도움을 오히려 주어야 한다.
맞춤법도 자동 검사해주고, 필요하면 번역도 도와주고,
페이지 환경을 꾸미는 과정 및
글 작성에 편의를 받는 것이 더 낫다.

마치 자동차와 사정이 같다.
불편함을 주는 자동차보다는
그냥 올라타면 목적지에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자동차가 나은 것과 사정이 같다.
공연히 사용자에게 장애와 불편을 주기 위해서 관리자가 활동하면 곤란하다.

물론 올려지는 글 내용이 문제가 되면
사후적으로 시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글을 올릴 때마다
그림 맞추기 인증을 요구하는 등의 방식은 관리 방법으로 좋지 않다.

글 내용이 다른 이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문제가 된다.
그런데 글 내용이 문제가 없는 데도
글 작성해 올리는 과정을 방해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문제가 된다.
이는 일종의 사전 심사와 실질이 같다.

그런데 사용자로서는 별 방안이 없다.
다른 사용자도 같은 상태인지 아니면
본인만 특정해서 괴롭히는지 파악하기도 곤란하다.


아파트 관리인이 아파트에 살아가는 입주민이라고 가정해보자.
자신이 주거지로 들어갈 때 상자를 한개를 들고 운반하던 두개를 들고 운반하던
공동으로 살아가는 입주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안전에 큰 위험이 없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는한 관리자가 입주자의 활동을 방해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어떤 아파트 관리자가
계단을 오르내려 만날 때마다
신분증을 번번히 반복해 확인 요구를 한다고 하자.
그리고 들고 있는 상자는 상자대로 뒤져 본다고 하자.
그리고 일정시간내에 많이 들락날락하지 못하도록 횟수를 제한한다고 하자.
이것은 지나친 일이다.
이해가 안 된다.
이런 관리를 하는 곳에서는 거주자체가 불편하고 불쾌해진다.

마찬가지로 이런 환경에서
블로글 작업하게 되면 대단히 불편하고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가 관에서 나와 옆에서 활동하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그런 사이트를 주된 메인 페이지로 삼아 활동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이런 사이트에 올려진 페이지를 결국 옮겨야 하다.

그러나 올려 놓은 페이지가 많아서 한번에 옮기기도 힘들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기 전에는
하루에 경전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경전에 나오는 어려운 용어풀이를 병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미리 어려운 불교 용어 단어를 가나다 순으로 등록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살펴서 올리고자 했다.

그런데 최근에 페이지를 미리 등록하는 과정에서
한 사이트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림퀴즈를 팝업창에 띄어 맞출 것을 요구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페이지에 글을 작성하다가
단순히 중간작업분 보관을 위해 중간에 임시 저장하는 과정에서도 튀어 나온다.
지금 글과 같은 페이지도 사정이 같다.

중간에 글을 적다가 작업한 분량의 중간 보관을 위해
임시로 저장하려고 해도 위 같은 문제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그림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성가시다.
그리고 무슨 사정인지도 모른다.
글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전 안내 통고도 없다.
그런 상태에서 임의로 이런 인증 팝업창이 수시로 튀어 나온다.
그처럼 글 작성 과정에서 자꾸 인증을 반복 요구하여서
글 작성자 인격을 불신하고 인격을 모욕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그런 인증절차를 반복해 하다보면 성가실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단히 불쾌해진다.

사이트 관리자 측에서 글 내용에 문제가 있고 없고를 떠나
일방적으로 회수제한을 걸어 놓고 그런 방식으로 요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용자가 그만 알아서 사이트 사용을 중지하거나,
설령 사용하더라도 페이지를 가능한 적게 만들라는 요구로 해석된다.
그런데 정작 글 내용이 어떤 사정으로 문제가 되므로 곤란하다는 식으로
안내를 하지는 않는다.

단지 페이지만 적게 만들면 문제가 예방된다는 생각인 듯하다.
그래도 참고 일단 글을 작성해보려고 하게 된다.

그러면 나중에는 퀴즈 하나를 맞추어도
또 이어서 바로 다른 퀴즈문제가 이어 나온다 .
그리고 또 나온다.

한번 페이지를 올리려면 이런 퀴즈를
연속해서 3 번 풀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는 한마디로 관리자의 횡포면서 연구 업무방해다.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듯 하지만,
그러나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관리자가 임의로 사용자를 특정해
사전 검열을 이런 방식으로 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구체적 사유도 파악하기 힘들다.
글 내용을 놓고 검토해보아도 별 문제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별 방안이 없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사이트를 옮겨야 된다.
사이트를 옮기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글 작성 과정 단계마다 이런 형태로 방해를 하니 결국 옮길 도리 밖에는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아파트에서 별 문제없이 살아왔다고 하자.
그런데 어느날 부터 관리인이 시도 때도 없이 전기차단기를 내린다.
그리고 수도물도 잠갔다 열었다한다.
그리고 가스공급도 열었다 잠겄다 한다고 하자.
그런데 정작 그렇게 하는 이유나 사정이 명확하지가 않다.
이런 상태와 비슷하다.
견딜 재주가 없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Thomas Fersen - La Barbe Bleue.lrc


누구나 알다시피 블로그 서비스는
사이트 입장에서는 별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서비스 차원이다.

그런데 그런 공짜 서비스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게 된다.

공짜서비스로
정이 생길 수도 있고
정이 나갈 수도 있다.

병원을 예를 들면 환자가 의료진에게 불친절이나 모욕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그 환자는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그 병원을 못가게 막는
광고활동을 알아서 행하게 된다.

또 그 반대는 또 그 반대가 된다.
어떤 병원은 한번 진료를 받으려면 한참 기다려서 간신히 진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진료가 좋고 과정이 친절하면 앞과는 반대형태로 임하게 된다.
비슷한 환자를 만나면 자신이 오히려 추천을 하면서 환자를 끌고 가게도 된다.

세상에 병원이나 상가나 주택이 많다.
그런데 돌아다니다보면 건물 전체가 텅 비어 있는 건물도 많이 만난다.
어떤 경우는 건물이 신축되어도 몇년 동안 입주인이 거의 없는 경우도 본다.
또 어떤 경우는 처음에는 건물에 가득 입주되었다가
어느 시점 이후 하나둘씩 건물이 비어지면서 유령처럼 남아 있는 경우도 보게 된다.
그런데 각 건물이 각기 그렇게 되게 되기까지 아무 사정이 전혀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알고보면 이런 무료서비스는 포털 사용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이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는
검색창에서 검색되는 단어 한 줄당 막대한 수익을 거두는 것이 현실이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사정이 그렇다.
단어 하나에 검색되는 줄 하나마다 일반 상점 임대료를 넘는 수익을 거둔다.
그것이 오늘날 인터넷 시장에서 단어가 갖는 힘이다.

그런데 불교 경전을 볼 때도 이런 단어가 힘이 된다.
단어가 갖는 의미를 이해해야 경전 내용도 잘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사정이 같다.

이번에 응신 법신 화신 이런 단어 풀이를 한번 올리고 공부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사이트 관리때문에 중간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하루 몇백억원을 초과하는 생명 신체 감가상각비가 누구나 공평하게 없어져 간다.
그런데 그림 맟주는 일로 성가시게 해서 공연히 연구 업무를 방해한다.
이로 인해 사이트 측에서 어떤 대단한 효용을 얻는지 도무지 궁금하다.
사용자가 사이트에 페이지를 하나 올리려면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한다.
그렇게 사용자가 글을 올리는데 사이트 관리자가 이를 방해한다.
그러면 사이트에 올리는 페이지 수가 적어지게된다.
그러나 사이트내 페이지 수 자체가 적어지면
정작 그 사이트에 도움이 되는 것은 또 아니다.
그런데 이런 발상을 하는 자체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관리자 입장에서는 이로 인해 어떤 관리상 편의나
효용을 얻을 지 모른다.
페이지 수가 적어지면 사이트 관리자가 직접 내용을 살펴 관리할 페이지 수가 적어지게 된다.
그러면 관리자에게는 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글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상태에 갑자기 봉착하면
마음이 불쾌해진다.
그리고 공연히 행하는 번잡한 작업으로 몸에서 자연스럽게 열이 난다.
사회에서 바이러스나 세균을 만나는 경우와 증상이 같다.

그래서 조만간 이런 형태로 관리하는 사이트는
이런 증상이 개선되고 시급하게 시정이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코로나 사태와 마찬가지로빨리 정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뜻과 같이 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경우 이런 환경에서 연구하는 일은 일단 중지하고 포기하게 된다.
그런 경우 페이지를 안정적인 환경으로 옮기는 작업만 당분간 몇달간 전념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그냥 사이트를 닫고 쉬어야 한다.


기억해보면 그 사이트에서는
수개월전에도 한번 이런 식으로 관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본인만 그런 불편을 겪었던 것이 아니다.
대다수 사용자가 불편을 겪었다.

그리고 다수 사용자가 이 문제에 대해 시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곳에서는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왔다.
다만 버튼을 두 번 연속 누르는 방식으로 변경한 가운데 잔존시켜 놓았다.
그래서 그 동안 그 사이트에서도 그런 현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최근 또 다시 그 현상이 시작되었다.

사용자가 글 작성하고
여러번 버튼을 누르고 또 눌러야 글 하나가 겨우 저장이 된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기술이다.
그런데 그 기술로 관리자가 거두고자 하는 목표가 엉뚱해 보인다.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그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이 프로그램은 정작
그 사이트에서 자체개발한 것도 아니다.
다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트로이 목마형 관리자가 다른 사이트에 오히려 유리한 일을 맡아서 하는 형국이다.

이 사이트 관리자는 그런 형태로
자신 사이트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서비스에 열성이다.
그런데 정작 사용자 글 작성에 도움줄만한 서비스 개선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관리형태가 어이가 없고 아이러니함까지 느낀다.

축구경기로 비유하면
어떤 팀 골문의 키퍼자리에 상대팀 공격수가 들어와서  활동하는 형국이다.

물론 이들 서비스 자체는 무료다.
그런데 아무리 무료라고 해도 이렇게 서비스하려면
그 서비스 취지와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가 의문이 된다.







글 작성편집과정은 본래 막노동 성격을 갖는다.
전문 출판인이 아니라고 해도 사정이 같다.
어쩌다 글 한번 작성해보는 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부분이다.

한번 글 작성을 마친 다음 다시 읽어보면 곳곳에 오타가 발견된다.
표현도 수정할 부분이 보인다.
그런데 조금만 그런 부분을  수정하거나
내용을 추가하고 저장하려면 어느때 갑자기 위와 같은 팝업창이 튀어 나온다.


이는 사이트와 사이트 관리자가 스스로 자해 자폭 행위를 하는 것과 실질이 같다.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얻는 사이트 측에서 얻는 수익이 별로 없다.
그리고 공연히 관리만 힘들다면 그냥 사이트를 문 닫는 것이 낫다.
그리고 올려 놓은 페이지나 사용자가 백업받을 수 있게 해주면 된다.
또 다른 사이트로 이전해주는 절차를 도와주는 것이 낫다.

그렇지 않고 별 구체적 이유도 없이 사용자 편집과정에 장애를 설치하면 곤란하다.
그것은 사용자가 이미 올려 놓은 페이지를 인질로 삼아 붙들고
사용자를 괴롭히는 행위일 뿐이다.
사이트 측에서 그렇게 할 이유자체가 별로 없다.
그런데 그렇게 행한다.
그러면 참 답답한 일이다.





-------------
해당사이트에서 조금 더 적고 최종 저장하려는 데
이런 화면이 다시 또 튀어 나온다.
글 하나 작성하는데 이런 그림 맞추기를 수회를 반복 해야 한다.

문제 난이도도 쉽지 않다.
이 문제만 해도 마우스로 8,9 곳 이상을 클릭해야 한다.

그리고 클릭을 마치면 다시 또 다른 그림이 나타나기도 한다.
글 작성자가 어느 정도 참을 성이 있는가를 심리 테스트 하는 듯 하다.
아니면 수행자에게 인내 안인을 훈련시키는 취지인지도 모른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사용자는 다음처럼 편하게 생각할 지 모른다.
사용자들은 어차피 공짜사용자들이다.
따라서 불편하면 그냥 사용을 중지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르다

그런데 사용자는 글 하나에 하루 또는 몇년의 노력을 해 간신히 올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방해하면 쓸모없는 작업을 하는데 시간이 다 없어진다.

관리자가 컴퓨터 전문기술자인 이상
사용자가 편하게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용자를 공연히 불편하게 하는 노력을 굳이 찾아 하는 이유를 알기 힘들다.

이런 경우 그림을 맞춘다고 해도 글 내용이 문제가 없음을 보증하는 것도 아니다.
또 그림을 맞춘다고 해도 그것으로 글 작성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인증이 필요해도 처음 로그인할 때 한번 정도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확인 인증을 수정하거나 중간 저장할 때마다 빈번히 요구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글 내용이 문제라면 단 한 장을 올리더라도 그 내용을 놓고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그런 사정이 아니라면 하루에 만장을 올린다 하더라도 문제될 수 없다.
그것이 사이트나 이용자에게 편하면 편했지 무슨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을 공연히 비방하고 괴롭히는 내용의 글이라면
한 페이지만 올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면
사용자가 글 페이지 올리는 회수에 제한을 걸 필요가 무엇인가.
그리고 페이지 올릴 때마다 그림 맞추기 인증을 요구할 필요가 무엇인가.
이것은 관리자가 관리를 핑계삼아 행하는 횡포일 뿐이다 .

견디다 못해 올린 글을 다른 사이트로 옮기려하게 된다.
그래서 일단 페이지를 비공개글로 돌리고 링크 수정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전을 위해서 행하는 그런 수정 작업과정까지 방해한다.
그러면 정말 난감해진다.

도무지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렇게 행하는 취지나 목적도 알 수 없다.
관리자가 스스로에게 손해가 되는 이런 자해형 관리방식을 택해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관리자는 사용자가 사이트 이용에 편의와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런데 관리자가 사용자를 공연히 괴롭히는 형태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2564-04-28001.html#1351
sfed--제법무행경_K0168_T0650.txt ☞제법무행
sfd8--불교단상_2564_04.txt ☞◆vyvz1351
불기2564-04-28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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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그렇다는 뜻. 다른 이의 이해를 긍정할 때 씀.

답 후보
여시(如是)
여의통(如意通)
연(緣)
연기(緣起)

연생(緣生)
연화부(連華部)
열반대(涅槃臺)


 부처님만이 가진 10력(力)의 하나. 중생들의 나고 죽을 때와, 아울러 지난 세상의 일을 아는 지혜 힘.

답 후보
● 숙주생사지력(宿住生死智力)
습기(習氣)
승가람(僧伽藍)

승론파(勝論派)
승해작의(勝解作意)
시무외(施無畏)
시방찰(十方刹)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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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 Taixu
[san-chn] bhraṣṭa mukta 散
[san-eng] jyotī $ 범어 inner light
[pali-chn] paccuppannâddhā 現在世
[pal-eng] yojanika $ 팔리어 adj.having a yojana in extent.
[Eng-Ch-Eng] 佛性論 The Foxing lun, Buddha-nature Treatise, written in four fascicles. T 1610.31.787a-813a. Attributed to Vasubandhu 世親, translated by Parama^rtha 真諦.
[Muller-jpn-Eng] 可易 カイ alterable; changeable
[Glossary_of_Buddhism-Eng] DHARMA SEALS☞
Syn: Three Dharma Seals; Three Marks of Existence.
See also: Birth and Death; Impermanence; Suffering.
[fra-eng] ballast $ 불어 ballast


■ 다라니퀴즈

자비주 31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19 번째는?




31
길을 잃었을 때에
이 주문을 외우는 연고로
착한 신과 용왕이
사람으로 변화하여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며
● 지리니 地唎尼<三十一> dhi ri ṇi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19
소아다 아감 마
蘇誐哆<引>惹敢<二合>摩<十九>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343일째]
변화자재불가설 $ 085▲摩伽婆摩伽婆為 一 ● 阿怛羅, ○□□□□,現,修,度,示

□□□□□□□, 現種種身不可說,
修行精進不可說, 度脫眾生不可說,
□□□□□□□, 현종종신불가설,
수행정진불가설, 도탈중생불가설,

변화가 자재함을 말할 수 없고
온갖 몸 나타냄도 말할 수 없고
수행하고 정진함도 말할 수 없고
중생을 제도함도 말할 수 없고



[123째]
모단불찰불가설 $ 123▲不可思不可思為 一 ● 不可思轉, ○□□□□,塵,如,見,通

□□□□□□□, 塵中佛剎不可說,
如是佛剎皆往詣, 見諸如來不可說。
□□□□□□□, 진중불찰불가설,
여시불찰개왕예, 견제여래불가설。

털 끝에 부처 세계 말할 수 없고
티끌 속의 세계도 말할 수 없어
이러한 부처 세계 모두 나아가
여러 여래 뵈옵는 일 말할 수 없고




●K0645_T1639.txt★ ∴≪A제바보살파능가경중외도소승사종론≫_≪K0645≫_≪T1639≫
●K0168_T0650.txt★ ∴≪A제법무행경≫_≪K0168≫_≪T0650≫
●K1494_T0728.txt★ ∴≪A제법집요경≫_≪K1494≫_≪T0728≫



법수_암기방안


■ 용어퀴즈 다음 설명에 맞는 답을 찾으시오.

■ 용어 퀴즈
 18공의 하나. (1) 만법이 소멸하여 사라진 그 멸(滅)까지도 공무(空無)한 것. (2) 현재법을 유법(有法)이라는데 대해서 과거ㆍ미래의 법을 무법이라 한다. 과거나 미래에 있는 법은 공하여 없다는 것.

답 후보
● 무법공(無法空)
무상도심(無上道心)
무상정각(無上正覺)

무색계(無色界)
무생법인(無生法忍)
무아(無我)
무열천(無熱天)

● [pt op tr] fr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