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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8일 금요일

불기2562-02-14_설무구칭경-k0121-001

『설무구칭경』

K0121
T0476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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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설무구칭경』 ♣0121-001♧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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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개별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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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개별논의]


♣0121-001♧“중생들의 국토가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다. 

♧설무구칭경 제1권



ᖰ “중생들의 국토가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다. 

왜냐하면 

선남자들아, 

모든 보살은 중생들의 발전[증장增長]과 이익에 따라, 

그만큼의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섭수攝受]하기 때문이다. 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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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무구칭경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제1권

대당(大唐) 현장(玄奘) 한역

장순용 번역

 

1.서품(序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박가범(薄伽梵)1)께서 광엄성(廣嚴城:

바이샬리성) 안의 암라위(菴羅衛:

암라팔리) 숲에서 대비구[大苾芻]들 8천 명과 함께 머물고 계셨다.

 

또 한편 보살마하살은 3만 2천 명으로, 

일체 대중이 알아주는 존재였으며 대신통의 업을 이미 이루었고, 

모든 부처님의 위덕이 늘 그들을 가지(加持)하고 있었다. 

그들은 법의 성(城)을 잘 수호해 정법을 섭수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내는 큰 사자후의 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 아름다운 소리가 멀리 시방에 두루 진동하였다. 

모든 중생이 일부러 청하진 않았지만 그들은 중생에게 좋은 벗[不請善友]이었다.

 

또 그들은 3보의 종성(種姓)을 계승해 끊이지 않도록 했으며, 

악마와 적들을 항복시키고 모든 외도(外道)2)들을 제압했다. 

그리하여 모든 장애와 번뇌[蓋纏]3)를 영원히 벗어났다.

 

그들은 정념[念]과 선정[定]과 총지(總持)4)가 원만하지 않음이 없어서 전혀 걸림이 없는 해탈지(解脫智)의 문(門)을 세웠다. 

즉 단절됨이 없이 뛰어난 일체의 염혜(念慧)ㆍ등지(等持)ㆍ다라니(陀羅尼)ㆍ변재(辯才)를 얻고, 

제일가는 보시(布施)ㆍ조복(調伏)ㆍ적정(寂靜)ㆍ시라(尸羅)5)ㆍ안인(安忍)ㆍ정근(正勤)ㆍ정려(靜慮)ㆍ반야(般若)와 방편선교(方便善巧)와 오묘한 원(願)바라밀ㆍ역(力)바라밀ㆍ지(智)바라밀을 획득해서 얻을 바 없는 불기법인(不起法忍)6)을 성취했다.

 

그들은 구르는 데 따라 결코 물러날 줄 모르는 법륜(法輪)을 능히 굴렸으며, 

모습 없는 오묘한 인[無相妙印]으로 인가를 다 받았다. 

그들은 근기가 뛰어난 중생과 그렇지 못한 중생을 잘 알았으며, 

모든 대중을 다룰 수 있는 무소외(無所畏)를 터득했다. 

그들은 이미 다함없는 복과 지혜의 자량을 쌓았다. 

상호(相好)로 꾸며진 몸은 그 색상(色像)이 비할 바 없이 빼어났지만, 

세간의 온갖 아름다운 장식은 버렸다. 

그들의 명성은 너무나 높아서 제석천(帝釋天)을 능가했으며, 

그들의 의요(意樂)가 견고한 것은 마치 금강과 같았다. 

모든 불법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어서 일체를 비추는 법보(法寶)의 광명을 유출하고 감로의 비를 내렸다.

 

그들의 말씨나 음성은 미묘하기 짝이 없었으며, 

법의 뜻[法義]과 광대한 연기(緣起)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했으며, 

상대적인 관념의 습기[二邊見習]가 상속하는 것을 이미 끊어버렸다. 

법을 펼칠 때는 어떤 두려움도 없는 것이 마치 사자후와 같았으며, 

가르침[講說]은 마치 우레처럼 진동했다. 

그들은 측량할 길 없는 존재였으며 측량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였으며 그들은 법보의 슬기를 모으는 데는 최고의 길잡이[大導師]였다.

 

그들은 정직하고 환히 알며 온화하고 은밀했으며, 

모든 법의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것에도 오묘하게 통달하고 있었으며 깊고 깊은 진실한 뜻[實義]에 깊이 통달해서 중생이 유취(有趣:

6道)의 길을 가든 가지 않든 그들 의지가 지향하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 들어간다. 

그들은 비할 바 없는 부처님의 지혜[無等等佛智]로 관정(灌頂)7)을 받아서 10력(力)ㆍ4무외(無畏)ㆍ18불공법(不共法)에 다가갔다. 

그들은 이미 악취(惡趣)의 공포를 없앴으며, 

다시 험난하고 더럽고 깊은 구덩이를 초월해 영원히 연기(緣起)를 버렸지만, 

금강도장(金剛刀仗)으로 온갖 유취(有趣)에 태어날 것을 늘 생각하였다. 

위대한 약왕(藥王)이 된 그들은 중생의 병에 대한 치료법을 잘 알아서 중생의 병에 따라 법의 약을 주어 병을 치유하고 안식을 베풀었다.

 

또한 한량없는 공덕을 남김없이 성취했으며, 

헤아릴 수 없는 불국토를 엄정(嚴淨)하게 하였다. 

그들을 보고 들은 자 중에 이익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고 그들이 하는 일은 헛된 것이 없었으니, 

설사 헤아릴 수 없는 백천 구지(俱胝) 나유타[那庾多] 겁 동안 그 공덕을 칭송하더라도 그 공덕은 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보살들의 이름은 등관(等觀)보살ㆍ부등관(不等觀)보살ㆍ등부등관(等不等觀)보살ㆍ정신변왕(定神變王)보살ㆍ법자재(法自在)보살ㆍ법당(法幢:

法相)보살ㆍ광당(光幢:

光相)보살ㆍ광엄(光嚴)보살ㆍ대엄(大嚴)보살ㆍ보봉(寶峰:

寶積)보살ㆍ변봉(辯峰:

辯積)보살ㆍ보수(寶手)보살ㆍ보인수(寶印手)보살ㆍ상거수(常擧手)보살ㆍ상하수(常下手)보살ㆍ

 

상연경(常延頸:

常慘)보살ㆍ상희근(常喜根:

喜根)보살ㆍ상희왕(常喜王:

喜王)보살ㆍ무굴변(無屈辯:

辯音)보살ㆍ허공장(虛空藏)보살ㆍ집보거(執寶炬)보살ㆍ보길상(寶吉祥:

寶勇)보살ㆍ보시(寶施:

寶見)보살ㆍ제망(帝網)보살ㆍ광망(光網:

明綱)보살ㆍ무장정려(無障靜慮:

無緣觀)보살ㆍ혜봉(慧峰:

慧積)보살ㆍ천왕(天王)보살ㆍ괴마(壞魔)보살ㆍ

 

전천(電天:

電德)보살ㆍ현신변왕(現神變王:

自在王)보살ㆍ봉상등엄(峰相等嚴:

功德相嚴)보살ㆍ사자후(獅子吼)보살ㆍ운뢰음(雲雷音:

雷音)보살ㆍ산상격왕(山相擊王:

山相擊音)보살ㆍ향상(香象)보살ㆍ대향상(大香象:

白香象)보살ㆍ상정진(常精進)보살ㆍ불사선액(不捨善軛:

不休息)보살ㆍ묘혜(妙慧)보살ㆍ묘생(妙生)보살ㆍ연화승장(蓮花勝藏)보살ㆍ삼마지왕(三摩地王)보살ㆍ

 

연화엄(蓮花嚴:

花嚴)보살ㆍ관자재(觀自在:

觀世音)보살ㆍ득대세(得大勢)보살ㆍ범망(梵網)보살ㆍ보장(寶杖)보살ㆍ무승(無勝)보살ㆍ승마(勝魔)보살ㆍ엄토(嚴土)보살ㆍ금계(金髻)보살ㆍ주계(珠髻)보살ㆍ자씨(慈氏:

彌勒)보살ㆍ묘길상(妙吉祥:

文殊師利法王子)보살ㆍ주보개(珠寶蓋)보살 등 이와 같은 3만 2천 명의 상수(上首) 보살마하살들이었다.

 

또 한편 지계범왕(持髻梵王:

螺髻梵王)을 상수로 삼은 1만의 범왕8)들이 부처님께 예를 드리고 공양한 뒤 법을 듣기 위해 다른 4대주(大洲:

4天下)가 속한 본무우(本無憂:

Aśoka)의 계(界)로부터 와서 앉았다. 

또 1만 2천의 제석천이 세존에게 예를 드리고 공양한 뒤 법을 듣기 위해 다른 4대주로부터 와서 자리에 앉았으며, 

아울러 나머지 크나큰 위력을 가진 모든 하늘들[諸天]ㆍ용신(龍神)ㆍ야차[藥叉]ㆍ건달바[健達縛]ㆍ아수라[阿素洛]ㆍ가루라[揭路茶]ㆍ긴나라[緊捺洛]ㆍ마후라가[莫呼洛伽]ㆍ석(釋)ㆍ범(梵)ㆍ호세(護世) 등이 모두 와서 앉았으며, 

비구[苾芻]ㆍ비구니[苾芻尼]ㆍ우바새[鄔波索迦]ㆍ우바이[鄔波斯迦]의 4부 대중들도 다 와서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 헤아릴 수 없는 수십만 대중들에게 경건히 둘러싸여서 법을 설하셨다. 

비유하자면 산의 왕 대보묘고산(大寶妙高山:須彌山)이 대해(大海) 위로 높이 솟아 있듯이, 

뛰어난 대사자좌(大師子座)에 앉으셔서 휘황찬란한 위광(威光)을 발하셔서 모든 대중을 뒤덮었다.

 

당시에 광엄성 안에 사는 이첨비(離呫毘:

릿차비) 종족 중에 보성(寶性:

寶積)이라는 보살이 있었다. 

그는 이첨비 동자 500명과 함께 제각기 7보(寶)로 장식된 일산[蓋]을 하나씩 들고 암라(菴羅)숲에 있는 부처님의 처소를 찾아와 저마다 일산을 세존께 바쳤다. 

일산을 바치고 나서 부처님의 두 발에 머리 숙여 절하고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돈 뒤 한쪽으로 물러가 앉았다.

 

부처님께서는 위신력(威神力)으로 이 7보 일산들을 한데 합쳐 하나의 7보 일산으로 만들었는데,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었으며 삼천대천세계의 광활한 모습이 7보 일산 속에 모두 나타났다.

 

또 이 삼천대천세계 속에 있는 대보묘고산왕ㆍ일체의 설산(雪山)ㆍ목진린타산(目眞隣陀山)ㆍ마하목진린타산(摩訶目眞隣陀山)ㆍ향산(香山)ㆍ보산(寶山)ㆍ금산(金山)ㆍ흑산(黑山)ㆍ윤위산(輪圍山:

鐵圍山)ㆍ대윤위산(大輪圍山:

大鐵圍山)ㆍ큰 바다ㆍ강ㆍ냇물ㆍ샘물ㆍ연못ㆍ백 구지(俱胝)에 달하는 4대주(大洲)ㆍ해ㆍ달ㆍ별ㆍ천궁(天宮)ㆍ용궁(龍宮)과 모든 천신들의 신궁(神宮), 

모든 나라의 성읍과 왕도와 마을들이 남김없이 7보 일산 속에 드러났다. 

또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정법을 설하시는 것이 마치 메아리처럼 들려왔는데, 

이 역시 7보 일산 속에 다 나타나고 들려왔다.

 

대중들은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보고 기뻐 뛰면서 일찍이 볼 수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며 모두들 합장하고 예배한 뒤에 세존의 존귀한 얼굴을 우러러보면서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그때 보성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들어 합장하고서 경건히 예배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을 찬탄하는 오묘한 게송[伽他]을 읊었다.

 

청정한 눈은 빛나고 묘하며 단정하게 꾸며져

마치 푸른 연꽃잎처럼 깨끗하구나.

이미 제일의(第一義)9)의 청정한 의요(意樂)를 증득했으며

뛰어난 삼매[奢摩陀]로 피안에 이르셨네.

 

가없는 청정한 업(業) 오래 쌓아서

광대하고 뛰어난 영예를 얻으셨네.

오묘한 열반의 길로 인도하시는

대사문(大沙門)께 머리 숙여 절합니다.

 

대성(大聖)께선 이미 신통변화 보이셔서

시방세계의 한량없는 국토 나타내시니

그 속에서 모든 부처님 하시는 설법

여기에서 모두 다 듣고 봅니다.

 

법왕(法王)의 법력(法力)은 무리 가운데서 뛰어나니

일체 중생에게 늘 법의 재물[法財]10)로써 베푸십니다.

온갖 법의 모습 능히 잘 분별하면서도

제일의(第一義)를 관하여 원수와 적을 꺾습니다.

 

이미 모든 법에 대해 자유자재하시니

이 때문에 법왕(法王)께 큰절합니다.


ᖰ 법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며 

모두가 인연으로 건립됐을 뿐

나[我]도 없고 짓는 자[造者]도 없고 받는 자[受者]도 없지만

선악의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네.

처음 불수(佛樹:

보리수) 아래에서 마(魔)의 세력을 꺾으셔서

감로와 열반의 뛰어남과 보리를 성취하셨네.ᖱ 

 

이 경지는 마음과 뜻으로는 지각[受]하거나 행할 수도 없는지라

모든 외도와 사도(邪道)들은 측량할 길 없습니다.

대천세계(大千世界)에 세 번 법륜(法輪)을 굴리셨는데11)

그 법륜은 적멸할 뿐만 아니라 본성도 적멸하네.

 

이 보기 드문 법의 지혜를 천신과 인간이 증득하니

그에 따라 삼보가 세상에 출현하였네.

이 묘한 법으로 제도 받은 뭇 중생들

헛된 상념과 두려움 없어져 항상 고요하고 평화롭구나.

 

생로병사의 고통을 치유한 위대한 의왕(醫王)이시니

그 가없는 공덕의 바다에 큰절합니다.

여덟 가지 법12)에 흔들리지 않음은 마치 수미산 같고

착한 자와 착하지 않은 자 누구에게나 자비와 연민 베푸시네.

 

그 마음의 작용 항상 허공처럼 평등함을 유지하니

누구인들 이 능인(能仁:

人寶)을 공경하지 않으랴.

이제 이 보잘것없는 7보 일산 세존께 바치고 나니

그 속에다 삼천대천세계 전체를 드러내시고

여러 천신과 인간, 

용신 및 궁전들도 나타내시니

그러기에 그 지견공덕신(智見功德身)께 큰절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 다 빛과 그림자 같은 것임을

10력(力)의 신통변화로써 보여 주시니

대중들은 일찍이 없던 일이라 경탄하고 보면서

그 때문에 10력대지견(力大智見)께 큰절합니다.

모인 대중들 위대한 석가모니 우러러보니

마음에 청정한 믿음 생기지 않는 자 없네.

 

저마다 세존께서 눈앞에 있음을 보니

이것이 바로 여래만이 갖고 있는 특성[不共相]이라네.

부처님께서는 한 소리[一音]로 법을 설하시지만

중생은 그 품류에 따라 제각기 이해하네.

 

그러면서도 세존께서는 말씀을 똑같이 한다고 하시니

이것이 바로 여래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네.

부처님께서는 한 소리로 법을 설하시지만

중생들은 저마다 자기 처지에 따라 이해하여

그 가르침에 따른 실천으로 널리 이로움을 얻으니

이것이 바로 여래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네.

 

부처님께서는 한 소리로 법을 설하시지만

어떤 이는 두려워하고 어떤 이는 기뻐하며

어떤 이는 싫증을 내며 어떤 이는 의심을 끊으니

이것이 바로 여래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라네.

 

십력제용맹(十力諦勇猛)께 큰절합니다.

어떤 두려움도 없는 경지[無所畏]를 터득하신 분께 큰절합니다.

결정코 불공법(不共法)에 도달하신 분께 큰절합니다.

일체를 이끄시는 스승님께 큰절합니다.

모든 결박을 끊으실 수 있는 분께 큰절합니다.

이미 피안에 도달해 확고히 머물러 계신 분께 큰절합니다.

고통 받는 중생을 널리 구원하시는 분께 큰절합니다.

 

더 이상 생사(生死)의 길에 들지 않는 분께 큰절합니다.

중생들과 6도(道)의 길 함께하지만

마음은 6도에서 훌륭히 해탈하셨네.

석가모니께서 이처럼 공(空)을 잘 닦으신 것은

마치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과 같아라.

 

일체의 모습 버려도 버린 것 없고

일체의 바람[願] 채워도 바란 것 없네.

그 대위신력,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으니

마치 허공처럼 아무 데도 머물지 않는 분께 큰절합니다.

 

이때 보성은 부처님을 찬탄하는 이 게송을 설한 뒤 다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500명의 젊은 보살들은 이미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 (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그들 모두는 내게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것에 관해 물었습니다. 

여래께서 가엾이 여겨 청정한 불국토의 모습을 설해 주시길 진정으로 원합니다. 

보살의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수행이란 어떤 것입니까?”

 

보성이 이렇게 말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성이여,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그대가 이제 보살들을 위해 여래에게 청정한 불국토의 모습에 관해 묻고, 

또 보살의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수행에 관해 묻는구나. 

내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명하겠으니, 

그대들은 잘 듣고 명심하여라.”

 

그러자 보성과 모든 보살이 답했다.

“좋습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이제 모두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ᖰ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의 국토가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다. 

왜냐하면 선남자들아, 

모든 보살은 중생들의 발전[增長]과 이익에 따라, 

그만큼의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攝受]하기 때문이다. ᖱ 


중생들이 갖가지 청정한 공덕을 일으키는 데 따라 그만큼의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이 같은 청정불국토에 들어감으로써 얼마나 조복(調伏)되는가에 따라 그만큼의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이 같은 청정불국토에 들어감으로써 부처님의 지혜를 얼마나 깨닫는가에 따라 그만큼의 불국토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이 이 같은 청정불국토에 들어감으로써 성스러운 근기의 행을 얼마나 일으키는가에 따라 그만큼의 불국토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선남자들아, 


ᖰ 보살이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하는 것은 

모두 중생의 이익과 발전을 위하고 또 갖가지 청정한 공덕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ᖱ 


선남자들아, 

예컨대 빈 땅에다 집을 지어 마음껏 걸림 없이 꾸미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땅에서는 그 일을 할 수 있겠지만 

허공에서는 끝내 불가능할 것이다. 


보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일체의 법이 허공 같음을 알지만 

오직 중생의 이익과 발전을 위하고 청정한 공덕을 낳게 하기 위해 

그만큼의 불국토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청정한 불국토를 수용하는 것은 허공에서는 불가능하다.

 

또 보성아,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ᖰ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일으키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대승에 대한 마음을 일으킨 모든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마음의 지향[意樂]을 순수하게 하는 그 터전이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ᖱ 

 

훌륭히 가행(加行)하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훌륭히 가행을 일으키고 주지(住持)하는 모든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마음을 고결하게 하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착한 법을 구족하고 성취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보시(布施)를 실천하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일체의 재법(財法)을 버릴 수 있는 모든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청정한 계율(戒律)을 닦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열 가지 선행의 길을 원만히 성취한 순수한 마음의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안인(安忍:

忍辱)을 닦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그 몸을 32가지 상으로 아름답게 장엄하고 인욕[堪忍]과 온유함과 적정(寂靜)을 닦은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정진(精進)을 닦는 그 터전이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용맹정진으로 모든 선행을 닦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정려(靜慮)를 닦는 그 터전이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정념(正念)ㆍ정지(正知)ㆍ정정(正定)을 완벽하게 성취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반야(般若)를 닦는 그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이미 정정에 들어간 일체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4무량(無量)의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늘 사랑[慈]ㆍ연민[悲]ㆍ기쁨[喜]ㆍ버림[捨]으로써 살아온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4섭사(攝事)의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모든 해탈에 의해 거둬진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교묘한 방편의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온갖 법을 능숙히 잘 관찰하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는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일체의 4념처[念住]ㆍ4정근[正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道支]에 통달하여 원만해진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회향(廻向)을 닦는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그 나라는 뭇 공덕의 장엄을 구족할 것이다.

 

8난처[無暇土]13)를 없애는 것을 잘 설하는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그 나라는 3악취(惡趣)와 8난처에서 영원히 벗어날 것이다. 

스스로 계행을 지키고 남을 비방하지 않는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얻을 때 그 나라는 범죄나 금지라는 이름조차 없을 것이다.

 

열 가지 선행의 길을 닦는 지극히 청정한 터전이 바로 보살의 청정한 불국토이니, 

보살이 대보리를 증득할 때 수명의 양이 결정되고 크게 부유하며 고결한 행동[梵行]을 하며 그 말이 진실되고 늘 부드럽게 말하며, 

권속들을 이간질하지 않고 은밀한 뜻[密意]을 잘 선양하고 모든 탐욕에서 벗어나 있고 성내는 마음이 없는 정견(正見)을 가진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날 것이다.

 

선남자들아, 

이처럼 보살이 보리심을 일으키면 그에 따라 의요(意樂)가 순수하고 청정해진다. 

의요가 순수하고 청정해지면 그에 따라 오묘하고 선한 가행(加行)이 있게 된다. 

오묘하고 선한 가행이 있으면 그에 따라 의요는 더욱 증장한다. 

의요가 더욱 증장하면 그에 따라 그치고 쉼[止息]이 있게 된다. 

그치고 쉼이 있게 되면 그에 따라 발기(發起)가 있게 된다. 

발기(發起)가 있게 되면 그에 따라 회향(迴向)이 있게 된다. 

회향이 있게 되면 그에 따라 적정(寂靜)이 있게 된다. 

적정이 있게 되면, 

그에 따라 청정한 중생이 있게 된다.

 

청정한 중생이 있게 되면 그에 따라 장엄 청정한[嚴淨] 불국토가 있게 된다. 

장엄 청정한 불국토가 있게 되면 그에 따라 청정한 법의 가르침이 있게 된다. 

청정한 법의 가르침이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오묘한 복이 있게 된다. 

청정하고 오묘한 복이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묘한 슬기[慧]가 있게 된다. 

청정하고 묘한 슬기가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묘한 지혜[智]가 있게 된다. 

청정하고 묘한 지혜가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묘한 행(行)이 있게 된다. 

청정하고 묘한 행이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한 스스로의 마음[自心]이 있게 된다. 

청정한 스스로의 마음이 있으면 그에 따라 청정하고 묘한 온갖 공덕이 있게 된다.

 

선남자들아, 

따라서 보살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수행을 부지런히 닦고자 한다면 먼저 방편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들 스스로의 마음이 청정해지는 데 따라서 불국토도 청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때 부처님의 위신력에 영향을 받은 사리불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약 보살들 마음이 청정해지기 때문에 불국토가 청정해진다면 우리 세존께서 보살 수행을 하실 때 얼마나 마음이 청정하지 못했기에 이 불국토가 이토록 더러움으로 오염됐을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의 생각을 알아차리시고 즉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간의 해와 달이 깨끗하지 않아서 장님이 보지 못하겠느냐?”

사리불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것은 장님의 잘못이지 해와 달의 허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존의 불국토가 청정하게 장엄되지 못한 것도 여래의 허물이 아니며 중생의 죄 때문이다. 

사리불아, 

내 땅은 청정하지만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 지계범왕(持髻梵王)이 사리불에게 말했다.

“세존의 불국토가 청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세존의 불국토야말로 가장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대범천왕이여, 

지금 이곳의 불국토가 청정하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지계범왕이 말했다.

“사리자여, 

비유하자면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이 한량없는 보배 공덕으로 장엄되어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세존이신 석가모니불의 땅이 청정하여 한량없는 보배 공덕으로 장엄된 것이 바로 타화자재천궁과 같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대범천왕이여, 

제가 보기에 이 땅은 높은 곳도 있고 낮은 곳도 있습니다. 

언덕과 구덩이 그리고 모래와 자갈, 

흙과 돌로 이루어진 산들은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지계범왕이 말했다.

“대존자여, 

그대의 마음에 높고 낮음이 있어 청정하지 못한 까닭에 부처님의 지혜와 의요(意樂)에도 높고 낮음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에겐 불국토가 청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만약 보살들이 중생에 대해 지니는 마음이 평등하고 공덕이 청정하다면 부처님의 지혜와 의요도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내 불국토가 지극히 청정하다는 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대중들의 마음에 망설임이 있는 걸 아시고서 발가락으로 대지를 누르셨다. 

그러자 즉시 삼천대천세계가 헤아릴 수 없는 수십만의 묘한 보배로 장엄된 세계로 변했는데, 

마치 공덕보장엄불(功德寶莊嚴佛)이 한량없는 공덕의 보배로 장엄한 것 같았다. 

모든 대중들은 경이감에 차서 찬탄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보배 연꽃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세존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온갖 공덕으로 장엄한 이 청정한 불국토를 보느냐?”

사리불이 대답했다.

“예, 

봅니다. 

세존이시여, 

결코 본 적이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청정하게 장엄된 불국토가 지금 모두 드러났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불국토는 항상 이렇게 청정하다. 

다만 여래는 열등한 중생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수많은 잘못과 더러움으로 오염된 땅을 보일 뿐이다. 

사리불아, 


비유하자면 삼십삼천의 천신들은 

모두 단일한 보배 그릇으로 음식을 먹지만 

저마다 쌓아온 업의 차이에 따라 

제각기 취하는 음식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사리불아, 

한량없는 중생이 동일한 불국토에 나지만 그들 자신의 마음이 깨끗한가, 

더러운가에 따라서 불국토를 보는 데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만약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다면 

그 즉시 이 땅이 한량없는 공덕의 묘한 보배로 장엄되어 있음을 볼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청정한 불국토를 나타내 보이실 때, 

보성이 데리고 온 500명의 청년들은 모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고, 

8만 4천의 중생들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覺心]의 마음을 일으켰다.

 

그때 부처님 세존께서 신족(神足)을 거두시자 세계는 다시 전과 같아졌다. 

그리하여 3만 2천 명의 성문승을 추구하는 자와 수많은 천신과 인간들은 

모두 유위법(有爲法)의 무상함을 알고서 

티끌의 더러움을 멀리 여의어 청정한 법안(法眼)을 얻었다. 

8천 비구들도 온갖 번뇌를 영원히 여의어서 마음을 훌륭히 해탈하였다.

 


ᖰ 2. 현부사의방편선교품(顯不思議方便善巧品)ᖱ 

 

당시 광엄성 안에 이첨비 종족의 대보살이 있었는데, 

이름을 무구칭(無垢稱:

維摩詰)이라 하였다. 

그는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하여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선근을 깊이 심었으며, 

묘한 변재를 얻었으며 무생법인을 성취했다. 

모든 총지를 체득해서 신통에 유희하였으며,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경지[無所畏]를 터득해 마군과 원수[魔怨]의 세력을 꺾었다.

 

법문(法門)에 깊이 정통하고, 

지혜의 바라밀을 성취하고, 

방편에도 통달했으며, 

크나큰 서원[大願]을 원만히 성취했다. 

그리하여 중생의 의요(意樂)와 행실도 훤히 요달했으며, 

또한 중생 근기의 뛰어남과 하열함도 잘 알았고, 

지혜바라밀을 성취하여 설법을 능숙하게 했다. 

결정코 대승 속에서 닦아 익혔으며, 

지어진 업에 대해서도 사량(思量)을 능히 잘했다. 

그는 부처님의 위의(威儀)에 머물렀으며, 

마음은 슬기의 바다[慧海]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모든 부처님께서 감탄하면서 널리 칭찬하고 말씀을 나타냈으며, 

제석천[釋]ㆍ범천[梵]ㆍ사천왕[護世]이 늘 예를 드리고 공경하였다.

 

모든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 무구칭은 훌륭한 방편으로 광엄성에서 살았다.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구제해 주기 위한 그의 재물은 결코 고갈될 줄 몰랐으며, 

금기를 범하거나 한도를 넘은 자들을 돌보기 위해 청정한 계율을 지켰으며, 

난폭하고 성내고 질투하고 악랄한 이들을 다스리기 위해 인내와 자기 통제를 잘 하였으며, 

모든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을 다스리기 위해 대정진(大精進)을 하였으며, 

일체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선정(禪定)ㆍ정념(正念)ㆍ해탈(解脫)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14)에 편안히 머물렀으며, 

모든 중생의 어지러운 마음을 바른 결택(決擇)으로써 거두었으며 일체의 잘못된 생각[妄見]과 나쁜 지혜를 거두었다.

 


비록 속인이었지만 사문의 위의와 공덕을 갖췄으며, 

비록 집에서 살았지만 삼계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아내와 자식이 있었지만 늘 청정한 행실을 닦았다. 

딸린 권속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늘 멀리 떨어져 있기를 좋아했고, 

보석으로 장식한 옷을 입었지만 늘 상호(相好)로써 그 몸을 장엄했고, 

비록 음식을 먹고 마시긴 했지만 늘 선정과 등지의 맛을 섭취했다. 

비록 바둑, 장기 같은 오락을 중생들과 함께 즐겼지만 

실제로는 늘 그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비록 일체 외도의 궤의(軌義)를 품수 받았어도 불법을 즐기는 마음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일체 세간의 모든 경서와 논(論)에 밝았어도 집안의 정원[內苑]에서는 늘 법의 즐거움을 음미하였다.

 

마을의 모든 집회에 나가서도 늘 최고의 설법자로 존경받았으며, 

존귀함과 비천함에 대한 세상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하는 일에는 늘 빈틈이 없었으며, 

세간의 재물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세속의 이익에 대해 익힌 바가 있었다.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저자와 거리에 나가 노닐었으며, 

중생을 보호하기 위해 온갖 정사(政事)를 다스렸으며, 

법을 강론하는 곳에 들어가서는 대승으로 인도했으며, 

어린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학당(學堂)에 들어갔으며, 

욕망의 지나침을 보여 주기 위해 음란한 곳에도 들어갔다. 

술을 마셔도 정념(正念)과 정지(正知)를 잃지 않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유흥가에서 노닐었다.

 

장자들 가운데 있으면 장자들의 어른이 되어서 그들에게 뛰어난 법을 설해 주었고, 

거사들 가운데 있으면 거사들의 어른이 되어서 그들의 탐욕과 집착을 끊었으며, 

찰제리(刹帝利) 가운데 있으면 찰제리의 어른이 되어서 인욕을 가르쳤고, 

바라문 가운데 있으면 바라문의 어른이 되어서 아만(我慢)을 없애 주었고, 

대신(大臣) 가운데 있으면 대신들의 어른이 되어서 정법으로 가르쳤고, 

왕자들 가운데 있으면 그들의 어른이 되어서 충효(忠孝)로써 보여 주었다.

 

내관 가운데 있으면 내관들의 어른이 되어서 궁녀들을 올바르게 교화했고, 

서민들 가운데 있으면 그들의 어른이 되어서 상사(相似)한 복덕의 뛰어난 의요(意樂)를 수행했으며, 

범천 가운데 있으면 그들의 어른이 되어서 모든 대중들에게 정려(靜慮)의 차별을 보여 주었고, 

제석천 가운데 있으면 그들의 어른이 되어서 모든 무상함을 다 자재하게 나타내 보였고, 

호세(護世) 가운데 있으면 호세의 어른이 되어서 일체의 이익과 안락을 수호했다. 

이처럼 무구칭은 불가사의하고 한량없는 능숙한 방편의 지혜문[慧門]으로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었다.

 

무구칭은 이 같은 방편으로 몸에 병을 나타내었다. 

그러자 그 병 때문에 

국왕ㆍ대신ㆍ장자ㆍ거사ㆍ바라문과 왕자들 및 나머지 관청 안의 권속들 

수천 명이 모두 와서 문병을 하였다.

 


무구칭은 그들이 도착하자 몸의 병을 이유로 널리 법을 설하였다.

“어진 이들이여, 

4대(大)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이 몸은 강하지도 굳세지도 못하고 힘도 없는 무상한 것입니다. 

너무나 빨리 썩기 때문에 믿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고통스럽고 번뇌스러운 온갖 병의 그릇으로서 허물과 근심이 많기 때문에 어차피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어진 이들이여, 

이 같은 몸은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의지할 바가 못 됩니다.

 

이 몸은 붙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거품 덩어리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포말 같은 것이며, 

이 몸은 많은 번뇌와 갈애(渴愛)로부터 생겨난 아지랑이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알맹이 없는 파초와 같은 것이며, 

이 몸은 뒤바뀜[顚倒]으로부터 생겨난 허깨비[幻] 같은 것이며, 

이 몸은 허망하게 나타난 꿈과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업의 인연[業緣]에 따라 나타나는 그림자 같습니다.

 

이 몸은 인연 따라 생기는 메아리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순식간에 변하면서 사라지는 구름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순간순간 변하여 소멸되는 번개 같은 것이며, 

이 몸은 주인이 없는 것이 마치 땅과 같으며, 

이 몸은 나[我]라는 것 없는 것이 마치 물과 같으며, 

이 몸은 정(情)이 없는 것이 마치 불과 같으며, 

이 몸은 목숨이 없는 것이 마치 바람과 같으며, 

이 몸은 보특가라(補特伽羅)15)가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이 몸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4대(大)로 집을 삼으며, 

이 몸은 텅 비어서 나[我]와 내 것[我所]을 여의었으며, 

이 몸은 지성이 없는 것이 마치 초목과 같으며, 

이 몸은 지음[作]이 없어서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 몸은 청정하지 않아서 더러움과 악으로 가득 찼으며, 

이 몸은 거짓된 것이니 비록 임시로 입고 먹고 마시면서 기르고 있긴 하지만 끝내는 부서져 사라지는 것이며, 

이 몸은 우환이 많으니 404가지의 병들이 모인 곳이며, 

이 몸은 부서지기 쉬우니 오래된 우물이 말라붙듯이 늘 노쇠함의 핍박을 받으며, 

이 몸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서 반드시 죽게 마련이며, 

이 몸은 원수의 해침과 같으니 독사가 가득 차서 두루하는 곳이며, 

이 몸은 빈 마을과 같으니 온(蘊)ㆍ처(處)ㆍ계(界)가 합성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진 이들이여, 

이러한 몸에 대해서는 마땅히 싫어하여 벗어나려고 해야 하며, 

여래의 몸에 대해서는 기뻐하는 마음을 내야 한다.

 

왜냐하면 여래의 몸은 한량없는 선법(善法)이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뛰어난 복덕과 지혜를 헤아릴 수 없이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뛰어난 계율[戒]ㆍ선정[定]ㆍ지혜[慧]ㆍ해탈(解脫)ㆍ해탈지견(解脫知見)을 

헤아릴 수 없이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보시ㆍ조복(調伏)ㆍ적정(寂靜)ㆍ계(戒)ㆍ인(忍)ㆍ정진(精進)ㆍ

정려(靜慮)ㆍ해탈ㆍ등지(等持)ㆍ등지(等至)ㆍ

반야ㆍ방편ㆍ원(願)ㆍ역(力)ㆍ지(智)를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일체의 바라밀[度彼岸]을 닦은 데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6신통[通]을 닦아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며, 

3명(明)을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지관(止觀)을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10력(力)과 4무외(無畏)를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18불공법(不共法)을 닦아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일체의 착하지 못한 법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쌓은 데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진리[諦]의 실제를 방일하지 않고 닦은 데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며, 

한량없는 청정한 업을 닦은 데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어진 이들이여, 

여래의 몸은 공덕이 이와 같은 것이니, 

그대들 모두는 반드시 마음을 일으켜서 증득을 구해야 한다. 

그대들이 이 같은 여래의 몸을 성취하여 모든 중생의 병을 없애고 싶다면, 

그대들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무구칭은 문병하러 온 자들에게 알맞은 법을 설해서 

그곳에 온 수십만 대중으로 하여금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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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hagavat의 음역. 

바가바(婆伽婆)라고도 하며 위대한 자, 

번뇌를 이긴 자라는 뜻. 

세존(世尊)이라고 한역한다.

2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외한 다른 종파의 사상을 총칭한 것이다.

3 덮개[蓋]와 얽힘[纏]은 모두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 5개와 10전이 있다.

4 선은 잘 간직해서 잃지 않고 악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간직해 잊지 않는 것이다.

5 sīla의 음역. 

6바라밀의 하나로서 계(戒)라고 한역한다.

6 일체 만법은 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不生不滅]는 사실을 깨달아서 그 경지에 안주하는 것이다.

7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보살의 정수리에 부어서 보살이 부처님 지위에 이를 것임을 증명하는 의식이다.

8 범천왕(梵天王)ㆍ범천(梵天)이라고도 한다. 

인도 전통사상에서는 우주의 창조자였으나 불교에서는 색계 초선천(初禪天)을 다스리는 자를 말한다. 

제석천과 함께 불법(佛法)을 수호한다.

9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원리.

10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속적인 재물과 대비하여 법재(法財)라고 한 것이다.

11 부처님께서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가르침을 세 가지 형식으로 가르치신 것. 

첫 번째는 고ㆍ집ㆍ멸ㆍ도를 제시한 것[示轉]이고, 

두 번째는 그 각각에 대해서 고를 알고 집을 끊고 멸을 얻고 도를 닦으라고 한 것[勸轉]이며, 

세 번째는 부처님 스스로 그것들을 얻었음을 증명한 것[證轉]이다.

12 이익과 손해, 

명예와 비방, 

비난과 칭찬, 

괴로움과 즐거움.

13 부처님을 볼 수도 없고 불법을 들을 수도 없는 여덟 가지 경계. 

지옥ㆍ아귀ㆍ축생(이상 셋은 고통이 너무 심해 불법을 듣지 못함)ㆍ장수천(長壽天:

장수를 즐기느라 구도심을 일으키지 않음)ㆍ변지(邊地:

즐거움이 너무 많아 불법을 듣지 않음)ㆍ농맹음아(聾盲瘖瘂:

감각기관이 망가져서 불법을 듣거나 보지 못함)ㆍ세지변총(世智辨聰:

세간의 지혜에 뛰어난 올바른 이법을 따르지 않음)ㆍ불전불후(佛前佛後: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때)이다.

14 samapatti의 한역. 

몸과 마음이 평화롭고 안온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15 pudgala의 음역. 

개체ㆍ개체성ㆍ개인을 말하는데,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주체, 

즉 아(我)와 같은 의미이다.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1. 서품(序品) 

2. 현부사의방편선교품(顯不思議方便善巧品) 

3. 성문품(聲聞品) 

4. 보살품(菩薩品) 

5. 문질품(問疾品) 

6. 부사의품(不思議品) 

7. 관유정품(觀有情品) 

8. 보리분품(菩提分品) 

9. 불이법문품(不二法門品) 

10. 향대불품(香臺佛品) 

11. 보살행품(菩薩行品) 

12. 관여래품(觀如來品) 

13. 법공양품(法供養品) 

14. 촉루품(囑累品) 



『설무구칭경』은 

일반적으로는 유마경으로 알려진 경전의 다른 버전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 

법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며 

모두가 인연으로 건립됐을 뿐 

나[아我]도 없고 

짓는 자[조자造者]도 없고 

받는 자[수자受者]도 없지만 

선악의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네. 

...

이런 알기 힘든 구절이 제시된다. 

일반적으로 있으면 있는 것이다. 

없는 것이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있는 것이 아니면 없는 것이다. 

없는 것이 아니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면 무슨 말인가. 

그리고 나도 없고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는데 

선악의 업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이런 식으로 의문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런 구절이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설무구칭경』 ♣0121-001♧






◎◎[개별논의] ❋본문






○ [pt op tr]  mus0fl--Diane Tell - FAIRE A NOUVEAU CONNAISSANCE.lrc 







अरपचन नचपरअ
● 현실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의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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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현실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의 의문점

- 현실 내용을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라고 할 경우의 문제점

○ 마음 내용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판단 문제 

- 1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 위치하는 부분

- 2! 등 다른 이의 마음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 

○ 감각과정의 대상의 문제 

- 감각과정의 주체와 대상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일으키는 배경 사정 

- 1! 자신이 무언가를 감각하는 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 다른 이가 감각하는 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 다른 감각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 현실 내용을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하는 문제

- 망집을 시정해야 하는 사정 

- 망집을 일으키는 배경 사정의 이해 

- 망집 상태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는 사정 

1 배경사정은 그대로 남아 있음 

2 실재의 외부대상과 주관은 직접 얻지 못함 

3 현실 내용이 실답게 여겨지는 사정 

평소 현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평소 자신이나 세상으로 여기고 대했다고 하자. 

- 잘못된 오개념의 시정 

- 실답지 않음의 이해

- 마음 내용 각 부분이 달리 갖는 특성 

- 연기관계에 바탕해 나타남 

- 다수주체가 일정시기 조건에 따라 반복해 얻어가는 관계성 

-- 추가 배경 사정의 설명 

-- 추가 배경 사정을 살펴도 잘 제거되지 않는 망집의 문제점 

- 망집을 증폭시키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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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체가 마음이라는 사정과 수행의 관계 

불교 교학에서는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관계를 살핀다. 

- 본 바탕 및 다른 영역에서는 현실 내용을 얻을 수 없는 무의 측면 

- 그러나 일정 영역에서 내용을 얻는 유의 측면 

- 생사현실 안의 생사고통의 해결 문제 

- 생사현실에서 안인수행 








앞 글에 이어 살핀다. 

앞 글에서는 현실 내용이 마음내용임을 살폈다. 

그리고 현실 내용이 마음 내용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쉬운 실험 방안들을  살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논의주제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2-02-13-k0694-001.html#001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논의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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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에 대한 일반적입장과 전도망상분별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2-02-13-k0694-001.html#002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존재에 대한 일반적입장과 전도망상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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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2-02-13-k0694-001.html#003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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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추가 문제로  

현실 내용을 마음안 내용이라고 할 경우의 문제점에 대해 살피기로 한다. 




- 추가 문제 

- 현실 내용을 마음안 내용이라고 할 경우의 문제점의 상세한 고찰,



현실에서 한 주체가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현실 내용의 정체에 대해 판단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각 입장별로 극과극으로 달리 판단한다. 


일반적으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못 여긴다. 

우선 이런 현실 내용 가운데 일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은 모두 곧 외부 세계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 나머지는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이들은 모두 정신과는 떨어져 있는 정신과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하여 세계 인류가 같이 대하고 얻는다고 잘못 여긴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망집에 바탕해 현실 내용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행하기 쉽다. 


경전에서는 다음처럼 제시한다. 

한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마음안 내용이다. 

결국 앞과 같이 이해하는 것은 거꾸로 뒤집힌 전도몽상 분별임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방안을 이미 소개하였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다시 여러 문제가 이어진다. 


우선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 마음을 과연 있다고 할 것인가가 먼저 문제된다. 

그리고 마음내용을 얻는데 반드시 마음이 필요한가가 문제된다.  

즉 마음 내용을 단순한 육체의 물질적 관계로 얻을 수 없는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또 있다면 그것이 존재하는 위치가 어디인가가 문제된다. 

이는 마음내용이 머무는 위치를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 어떤 부분을 좀 더 실다운 자신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편 일반적으로는 현실 내용의 일부분을 자신의 몸 및 감각기관으로 잘못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을 감각대상으로 잘못 보게 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렇다면, 감각과정에서는 어떤 감관이 무엇을 대상으로 해 그런 내용을 얻는가도 문제된다. 


또 사정이 이렇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에서 생활이나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함께 문제된다. 


따라서 이에 관해 기본적으로 살펴나가기로 한다. 

-( 참고로 첫번째 항목은 별도 항목으로 따로 살피기로 한다. )


○ 마음 내용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판단 문제 


이를 위해서 그림을 살펴보기로 하자.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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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이는 1 이 눈을 떴을 때 보게 되는 내용들이다. 


그 상황에서 먼저, 현실에서 자신과 비슷한 강호 2 를 자신 옆에 있게 한다. 

그리고 강호 2가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하게 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상황을 1 자신이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강호 2로부터 다음 보고를 받게 된다. 

즉 강호 2 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무엇을 보고 보지 못하게 된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1이 관찰할 때는 별 변화가 없다. 

그래서 그런 변화는 오로지 2 내부 안에서의 변화라고 보게 된다. 

그런 경우 이 상황을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즉, 이 경우 2가 눈을 뜰 때 보게 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 내용은 그림처럼, 2 의 몸 가운데 '머리 부분'에 머무른다고 엉터리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그 사정을 위 그림의 5^처럼 나타내게 된다. 

이는 2 의 마음이 존재하는 위치를 2 영역안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입장이 된다. 


한편, 2 나 1 자신이 나란히 서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2 나 1이나 상황이 마찬가지라고 보게 된다. 

따라서, 1 이 눈을 떠서 본 내용 [앞 그림 전체]도 1 자신이 스스로 보는 1의 머리 안에 그처럼 머문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우선 이런 이해는 모두 잘못된 엉터리 추리다. 

그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다음처럼 알 수 있다. 



일단 그런 내용을 그처럼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 주장이 갖는 문제를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이해가 어떤 잘못이 있는가를 오히려 알기 쉽다. 

이는 가정적 비판 방식의 하나다. 


즉 다음 방식으로 살핀다. 

우선 상대의 주장이 엉터리다. 

그러나 일단 그렇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런 가운데 그 주장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를 살핀다. 

그래서 이를 통해 처음 주장이 잘못이 있음을 살피는 방식이다. 


그래서 여기서 이를 가정적 비판방식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 1 자신의 마음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 


우선, 강호 2 가 본 내용이 강호의 머리 안에 모두 머문다고 하자. 

그래서 2 가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이 5^ 처럼 2 의 머리 안 영역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하자. 


그런데 2 나 1 자신이 나란히 서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2 나 1이나 상황이 마찬가지라고 보게 된다. 

따라서, 1 이 눈을 떠서 본 내용 [앞 그림 전체]도 1 자신이 스스로 보는 1의 머리 안에 그처럼 머문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에 1 자신이 눈을 떠서 본 내용은 위 그림 전체라고 했다. [즉 5 ] 

즉 자신이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내용은 위 그림 전체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은 서로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2의 경우에서는 그것이 2 의 영역에만 한정한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1 자신의 경우는 그것이 1 부분에 한정하지 않는다. 

1 자신의 경우는 그림 전체 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1 자신의 마음이 위치한 영역을 1 부분에 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1 자신의 마음 가운데 눈과 관련된 마음(안식)만 판단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오히려 위 그림 전체를 포함하는 전체 영역에 해당한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1 자신이 자신의 눈을 뜰 때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한 부분으로 1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처럼 얻게 된 내용 일체가 다시 그 가운데 한 부분인 1 부분에 위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눈을 떠 얻는 일체 내용은 자신의 마음이 얻는다고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오히려 마음이 얻어낸 내용 일부분에 위치한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즉 자신의 마음이 1 부분에 위치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사정을 2를 놓고 간접적으로 추리해보기로 하자. 

위 그림에서 2가 눈을 떠 보게 될 내용을 5^로 가정해 그려 놓는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2 의 마음이 어느 부분에 위치하는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이 경우 2 가 본 '내용들' 일체가 다시 그 가운데 일 부분인 2^ 안에 머문다고 이해할 수 없다. 


한편, 2 가 그런 내용을 볼 때 작용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자. 

그런 내용을 얻는 2 의 '마음'이 그가 본 내용 가운데 일 부분인 2^ 안에 머문다고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1과 2 가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1이 눈을 떠 본 1 부분에 1의 마음이 위치한다고 이해할 수 없다. 






- 2 등 다른 이의 마음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편 자신은 2 나 3 부분을 다른 사람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런 부분에 2 나 3 의 마음이 위치하고 있으리라고 잘못 여긴다. 

이것은 잘못된 이해다. 


이를 다음방식으로 검토해보자. 


먼저 앞에서 2가 눈을 떠 보는 내용은 2 영역 안에 있으리라 추정했다. 

그래서 이를 그림에서 5^ 부분으로 표시해보았다. 

일단 그런 내용을 가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 위 내용을 다시 검토해보자. 


이제 거꾸로 1이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 내용을 다른 사람 2가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2는 1^로부터 다음 보고를 받게 될 것이다. 


즉 1^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무엇을 보고 보지 못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를 2 에게 언어로 보고한다. 

그런데 2 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 

그런데 1^ 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변화를 경험한다고 보고한다. 

따라서 그런 변화는 오로지 1^ 영역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여기게 된다. 

그런 경우 2는 이를 바탕으로 다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즉, 1^가 본 내용은 '2가 본 1^부분(머리부분)'에 머문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2 의 입장에서는 그처럼 보이고 그처럼 이해되기 쉽다. 

그래서 이렇게 2 가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제 1 의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을 다시 거꾸로 검토해본다고 하자. 

그러면 1의 입장에서는 2 의 그런 이해가 잘못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상황에 강호 2 가 본 4^와 같은 꽃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4^는 2 의 마음안 내용이다. 

따라서 1 입장에서는 1 자신이 4^ 부분을 상대한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즉, 2가 본 마음안 내용[4^]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편, 1 입장에서는 강호 2 가 본 1^ 부분을  그 자신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1^ 부분이 그 상황에서 4^와 관계한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한다. 


한편, 그 상황에서 1 자신이 눈을 떠 보게 된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 내용 역시 1^ 부분에 머문다고 여기지 않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 부분은 단지 강호 2 가 본 그런 내용일 뿐이다. 

따라서 2 가 처음에 한 이해내용은 잘못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 1 이 2에 대해 판단한 내용도 앞 내용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처음 1 이 2에 대해 판단한 내용도 역시 마찬가지로 잘못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처음 1은 다음처럼 이해했다. 

즉, 2가 눈을 떠 본 내용은 자신이 본 2 의 머리안에 머문다고 여겼다. 

그런데 여기서 1이 본 2 모습은 사실은 2 가 아니다. 

- 2 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2 의 입장에서 이런 내용을 검토한다고 하자. 

그 경우 2 자신이 다른 사람 (1 자신)이 눈을 떠 본 마음내용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님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1이 강호라고 본 2 부분은 사실은 강호는 아니다. 

즉 자신의 마음 안에 다른 이 강호2 가 머물러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은 단지 1의 마음에 얻어진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일 뿐이다. 


한편 그 상황에서 다른 이 강호 2 가 눈을 떠 '얻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내용이 1 자신의 마음 어느 부분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1 자신이 눈을 떠 본 2 와 같은 부분에 머문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이 2 의 '마음' 또한 자신이 본 내용 일 부분에 위치한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 판단은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평소 1은 1 부분을 스스로 자신의 몸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2 나 3 부분은 다른 사람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바탕에서 평소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위와 같이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평소 이해가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 행하는 판단은 거꾸로 뒤집힌 전도된 망상분별임을 이해할 수 있다. 









○ 감각과정의 대상의 문제 

- 감각과정의 주체와 대상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일으키는 배경 사정 


한편, 감각을 얻는 과정에서 무엇을 대상으로 얻는가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 

이를 그림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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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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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1 이 처음 눈을 감았다가 뜨는 순간 

그 때 얻게 되는 내용을 위 그림처럼 표시하기로 하자. 

위 그림의 상황은 1 이 자신과 비슷한 다른 사람 영희나 철수 2나 3 을 위처럼 대하는 상황이다. 


현실에서 1 자신이 눈을 떠서 대하는 꽃을 자신의 손으로 만진다고 하자. 

이 때 1 자신의 손으로 여기게 되는 일정 부분을 보게 된다. 

또 꽃으로 여기게 되는 4 부분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두 부분이 닿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렇게 행할 때마다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이 꽃으로 보게 되는 그 부분이 손이 대한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그런 부분과 접촉한 손 부분은 자신의 감관이 위치한 부분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2 가 꽃을 손으로 만진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모습을 눈으로 보게 된다고 하자. 

그런데 그 경우마다 2 는 매번 촉감을 반복해 얻는다고 보고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이들 내용이 마치 주관과 대상 관계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게끔 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잘못된 이해는 잘못된 자신에 대한 견해를 갖게 한다. 

또 타인에 대해 잘못 상을 취해 임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자신과 남에 대해 각기 잘못된 집착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이해가 잘못임은 그 상황에서 눈을 감으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즉 이 상황에서 자신이 눈을 감는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모습들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래도 그 상황에서 촉감은 느끼게 된다. 

또 다른 사람 2 도 역시 촉감을 여전히 느낀다고 보고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앞에서 눈으로 본 부분들은 촉감을 느낄 때 상대한 대상이나 감관은 아니다. 

즉 이들은 촉감을 얻게 한 원인요소는 아니다. 

이들은 단지 촉감을 느낄 때 시각을 통해 함께 얻게 된 내용일 뿐이다. 

결국 이들 내용은 각기 서로간에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는 내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들을 외부대상이나 감관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런 입장과 일반적 입장은 서로 극과극으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 가운데 어떤 입장이 옳은가를 다시 좀 더 살피기로 한다. 



- 1 자신이 무언가를 감각하는 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우선 1 이 1 부분에 붙은 눈이  4 와 같은 꽃에 닿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그런 사정으로 4 와 같은 부분이 눈이 상대한 대상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선 1이 대하는 4 라는 꽃 부분은 1 의 마음 밖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외부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1 이 이런 부분을 상대해 어떤 감각내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앞 내용을 다음처럼 다시 다른 사람 강호 2를 놓고 반대로 살펴보자. 

이제 2 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1이 관찰하는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 상황에서 2 가 스스로 이해하는 내용을 놓고 검토해보자. 

그러면 좀 더 이해가 조금 쉽다. 


우선 위 상태에서 2 가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2는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무언가를 보거나 보지 못한다고 보고한다. 

그 상황을 1이 옆에서 지켜본다고 하자. 

그러면 1 은 그 상황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보게 된다. 

다만 2 만 그런 변화를 보고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 변화는 오직 2 의 영역에서만 있는 변화일 뿐이라고 보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런 내용은 위 그림에서 5^ 와 같은 2 의 영역안에 있는 변화라고 보게 된다. 


우선 이런 추리는 잘못된 엉터리 추리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단  그런 추리를 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리고 그 상황에서 2 가 보았을 내용을 대강 추정해보자. 

그것은 1 자신이 그 상황에서 보는 내용과 엇비슷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한편, 그 상황에서 2가 눈을 통해 보고 얻는 것은 모두 5^ 영역에 들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2 가 그 상황에서 보았을 내용에 대해 각 부분에 대해 판단한다고 하자. 

그것은 또 평소 1 이 판단하는 내용과 유사할 것이다. 


즉, 이 상태에서 2 내부 안에서 2 가 본 꽃 모습이 있을 것이다. 

이를 4^ 로 표시하기로 하자. 

그리고 2 스스로 자신의 모습으로 본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를 2^ 로 표시하기로 하자. 


이 때 2 입장에서 자신의 감각과정을 다음처럼 이해한다고 하자. 

즉,  4^ 부분을 대상으로 2^ 부분이 관계해 감각내용을 얻게 된다고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강호 2 가 촉감을 얻는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2^ 의 손 부분이 4^와 같은 꽃에 닿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2는 매번 이런 경우 촉감을 느낀다. 

그런 사정으로 2는 4^ 와 같은 부분을 촉감을 느끼게 한 대상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이처럼 2 는 2  자신이 얻은 5^ 안의 내용안 각 부분이 서로 관계한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즉 그 안에서 외부대상과 감관을 잘못 찾기 쉽다. 


그런 2 의 판단을 다시 1의 입장에서 검토해본다고 하자. 

그러면 2 의 그런 이해는 옳지 않은 판단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강호 2 가 얻는 시각정보 내용들이 있다고 하자. 

이들은 눈을 통해 2 가 얻는 5^안의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 시각 정보내 각 부분이 서로 대상과 감관으로 관계한 것이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런 내용들이 서로 관계해 2 가 무언가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런 내용들이 서로 관계해 촉감을 느끼게 된 것도 아니다. 

1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1의 입장에서는 2가 본 내용들은 그런 감각을 얻게 하는 요소는 아님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2 가 느끼는 감각내용은 적어도 2가 눈을 떠 얻는 내용[즉, 5^] 밖의 어떤 것들이 관계해 얻는 것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처음 1의 입장에서 행한 판단도 역시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처음 1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하자. 

그것이 그림에 표시되어 있다. 

1 에게 있어서는 위 그림내 내용 전체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앞의 경우에 준해서 그 잘못을 이해해야 한다. 

처음 1 자신이 눈을 통해 얻는 일체 내용[그림전체]는 그가 마음에서 얻는 시각정보다. 

그래서 그 안의 4 부분이나 1 부분이 서로 관계해 시각정보를 얻는다고 이해하면 잘못이다. 


처음 1 입장에서는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우선 그림에서 1 부분에 달린 눈이나 손을 감관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4 부분이 그 감관이 상대하는 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이런 각 부분이 서로 관계해 자신이 일정한 감각을 얻게 된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그런 1 의 생각은 앞에서 2가  잘못 이해한 내용과 그 성격과 구조가 같다. 

즉, 처음 2가 2 자신의 감각과정에  대해 생각한 내용과 그 구조가 같다. 

그래서 1의 입장에서 행하는 1 자신의 감각과정에 대한 판단도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평소 자신이 감각기관이라고 이해한 부분은 사실은 그런 부분이 아니다. 

또 그런 감관이 상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이해한 부분도 사실 그런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감관이 위치한 자신의 몸부분이라고 이해한 부분도 사실 그런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이해를 시정해야 한다. 




- 다른 이가 감각하는 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편, 1 의 입장에서 2가 눈을 떠 보게 되는 과정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2 가 감각을 얻는 과정에 대해 다음처럼 잘못 추리하게 된다. 


우선, 그런 상황에서 2 의 내부에서 일정한 내용 5^를 얻는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1 입장에서는 2 내부의 내용 5^와는 별도로 그 밖에 위치한 4 부분과 2의 몸 부분을 보게 된다. 

그리고 2 부분에 달려 있는 손이나 눈이 보인다. 

그래서 1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곧 2 의 감관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1 입장에서는 그런 2의 부분과 4 부분이 서로 관계한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부분은 사실은 1이 감각한 내용일 뿐이다. 

즉 2 부분이나 4 부분은 모두 다 함께 1 이 감각한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판단 역시 잘못된 판단이다. 


처음 1은 다음처럼 이해했다. 

우선 처음 1이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이 있었다. 

그 안에서 일 부분에 꽃 4 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일 부분에 강호 2 가 있었다. 

그런데 강호 2  는 이런 4 부분을 대상으로 삼아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추리했다. 

그리고 강호 2 가 얻는 내용은 그림에서 5^와 같은 부분에 그렇게 있다고 잘못 추리했다. 

그래서 처음 위 그림처럼 1 이 2 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추리해 표시한 것이다. 

이런 판단은 엉터리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다음과 같이 이해해보자. 

2 가 반대로 1 자신을 옆에서 관찰하게 되는 경우를 놓고 살펴보기로 하자. 


2 가 눈을 떠서 5^ 와 같은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리고 그 상태에서 2 가 반대로 1^ 라는 사람을 관찰한다고 하자. 

이 때 1^ 라는 사람이 눈을 뜨면 무언가가 보인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또 눈을 감으면 무언가를 보지 못하게 된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그 상황을 2가 계속 지켜보니 별로 변화가 없다. 

그런데 1^ 이 그런 보고를 한다. 

그러니 1^ 이 보고하는 그런 변화란 오직 1 ^ 안에서 있는 변화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은 1 ^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 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에 대해 그가 다음처럼 이해한다고 하자. 

우선 2 입장에서 그가 꽃으로 보는 4^란 부분이 있다. 

그런데 1^는 이 4^부분을 대상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1^의 눈이 4^를 대상으로 삼아서 관계맺어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 다음 이런 관계를 통해 1^가 얻게 되는 내용은 1 ^ 부분안에 머문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1 ^ 부분 안에 표시해야 한다고 잘못 추리하게 된다. 

그래서 2 입장에서 이 상황을 이처럼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1 입장에서 이처럼 2가 이해하는 내용을 다시 검토해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 2 가 행한 해석이 잘못임을 쉽게 파악한다. 

무엇보다 우선 1 자신이 2 의 마음 안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즉, 2 가 눈으로 본 내용[ 5^]안의 1 ^ 부분으로 1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2 의 마음에 얻는 4^ 와 같은 내용을, 1 이 대상으로 상대한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1 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그런데 1 이 얻는 내용이 2 의 마음안 내용 [즉, 5^] 에 들어 있다고 하기 곤란하다. 

즉, 그 가운데 2 가 보는 1 ^ 부분에,  1 이 얻은 내용이 머물게 된다고 하기 곤란하다. 

이런 해석은 하나같이 이치에 맞지 않다 


1 은 결코 강호 2가 눈을 통해 본 마음안 내용[즉, 5^]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다. 

또 1 의 감관이 2가 눈을 통해 본 마음안 내용[즉, 5^] 안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처럼 2 가 이해한 내용은 잘못이다. 


그런데 1 과 2 의 입장은 서로 성격이 같다. 

그래서 반대로 1 이 처음 2가 눈으로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 대해 이해한 내용은 잘못이다. 



- 다른 감각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앞에서는 주로 시각 감각과정과 촉각을 놓고 살폈다. 

그러나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다. 

어떤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이 다양하다. 

이들은 모두 한 주체가 감각해 얻는 마음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각 내용간의 관계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우선, 시각 정보가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 정보를 얻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4라는 꽃 모습이 향기를 얻게 해준다고 이해할 것인가.  - 그렇지 않다. 

촉감을 얻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처음 1이 눈을 떠서 4 라는 시각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이 시각 정보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 어떤 촉감을 얻는다고 이해하면 잘못이다. 

그 4 부분은  그런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즉 이는 여러 감각과정에서 감관이 상대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런 사정은 각 감각을 얻는 과정을 놓고 다음처럼 검토해볼 수도 있다.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을 얻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눈을 감아 시각정보를 얻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은 여전히 관계없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눈으로 본 내용은 그런 감각의 대상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각기 서로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는 내용들일 뿐이다. 


또 시각정보도 반대로 마찬가지다. 

시각 정보가 청각, 후각, 미각 촉각정보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각 정보가 시각정보 자체를 대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 감각내용이 그런 감각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그런 감각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은 적어도 이런 내용 밖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각기 서로간에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는 내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일단 이 상황을 비유로 이해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 주체가 눈을 통해 얻는 시각감각 내용 (시각정보)를 얻는다. 

그런데 이 과정을 오늘날 TV의 모니터 화면과 같다고 생각해보자. 

TV 가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그림으로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 그런 그림이나 모니터화면에서 어떤 사람이 컵에 손을 대는 모습이 있다고 하자. 

즉, 그 그림안의 손 부분이 컵 모양에 닿는다. 

그런데 그 경우 그로 인해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게 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는 그 그림에 그려진 사람이 촉감을 느끼게 된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비유가 앞 상황과 성격이 같다. 

TV나 그림책을 보게 되면 그렇게 그 내용을 이해하게는 된다. 

그러나 본 사정은 그렇지는 않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자. 

앞 그림이나 화면에 어떤 이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취한다고 하자. 

그래서 공이 날라가 유리를 깨는 모습이 다음화면에 나타난다고 하자. 

그러나 앞 그림 내용이 유리를 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또 그런 화면 내용이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TV 등에서 그런 내용을 그 순간에 동시에 반복해 경험한다고 하자. 

그래서 화면을 지켜보면 마치 이들 각 부분이 그처럼 관계 맺는 것처럼 잘못 여겨지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모니터 각 화소가 그런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다. 


TV 모니터 화면상에서 어떤 이가 컵을 바닥에 던졌다. 

그렇게 컵이 깨지가 소리가 스피커에 났다. 


그런데 컵에 해당한 모니터 화소가 바닥에 해당하는 모니터 화소에 부딪힌 것이 아니다. 

또 그런 화소가 그 소리를 낸 것도 아니다. 

모니터 화소가 서로 그런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로 그런 작용이나 영향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림책에 그려진 그림 각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화면이나 그림을 대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반복해서 그런 관계를 경험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각 부분이 서로 그처럼 관계맺는 것처럼 잘못 여겨지게 된다. 

따라서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 현실 내용을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하는 문제


한편, 현실내용을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이렇게 잘못 여기게 되는 사정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 꽃을 옆에 있는 강호 2나 혜수 3에게 건넨다고 하자. 

그러면 그 꽃을 강호나 혜수가 받는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내용을 보고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마치 모두가 함께 대하는 객관적 실재의 내용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현실 내용을 실다운 내용이라고 집착하게끔 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은 그 주체의 마음 내용이다. 

이런 사정을 앞의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또 다음처럼 이런 판단이 잘못임을 알 수도 있다. 

박물관에서 어떤 조각상을 자신과 강호 혜수가 함께 관람한다고 하자. 

이 때 자신은 정면에서 그 조각상을 본다. 

그리고 강호는 조각상 왼편에서 이를 본다. 

그리고 혜수는 조각상 오른편에서 이를 본다. 

이런 경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자. 

그러면 서로 같은 조각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래서 마치 서로 같은 모습을 대한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 세 사람은 각 순간에 동일한 모습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한편, 한 사람이 각기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번갈아 감으면서 본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각 경우 보게 되는 모습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일정 순간에 본 모습은 모든 사람이 함께 얻는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얻는 감각내용을 모든 주체가 다 함께 대하는 객관적인 실재라고 이해하면 잘못이다. 



- 망집을 시정해야 하는 사정 


본 바탕 실상은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도 현실 생활에서는 위와 같은 관계로 각 내용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들 현실 내용은 모두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마음안 내용을 곧 외부 세상으로 잘못 여긴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눈을 뜨면 엇비슷한 내용을 얻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얻는 내용에 대해 그 성격이나 지위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이 감각한 현실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 가운데 일정 부분을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상의 내용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또 이들 나머지 부분을 각 감각기관이 상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들 부분은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별개의 것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들 부분을 그런 정신과 구별되는 별개의 물질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부분을 물질이라고 표현할 때는 그런 전제에서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질과 정신)


한편 이들 내용은 모든 이가 함께 대하는 외부에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각 주체는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외부에 그처럼 실재한다고 잘못 여긴다. 

한편 이와 상대적으로 구분되는 부분을 또 스스로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이처럼 각 부분의 정체에 대해 잘못 파악한다. 

그리고 각 부분이 갖는 의미나 성격 지위에 대해 다음처럼 잘못 판단하게 된다. 


그런 부분이 자신이다. 

또 그런 부분이 자신이 대하는 자신의 물건들이다. 

이런 식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결국 일반적 입장에서 그처럼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해를 오히려 더 적절한 판단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에 대해 잘못된 집착을 갖게끔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자꾸 업을 행하게 된다. 

그러면 욕계 내에서 그런 주체들간에서 서로 가해와 피해를 주고 받는 관계가 된다. 

그래서 업의 장애가 그런 바탕에서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생사현실에 묶여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무량겁에 걸쳐 그 상태로부터 벗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즉,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는 과정이 바로 그와 같다. 


그래서 이를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에 묶이는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되도록 원인 단계에서 미리 원인을 제거해 예방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처음 현실에서 행하게 되는 잘못된 판단과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이 잘못된 내용임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고 대하는 내용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즉 그런 내용들은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서 본래 얻을 수 없는 내용임을 이해해야 한다. [불가득 공]

또 그런 내용들에는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없음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무자성 무소유]

그래서 결국 현실 내용은 마치 꿈과 같음을 이해해야 한다. 

즉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그 성격이 같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현실 내용에 대해 갖게끔 되는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제거할 수 있다. 

또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한다. 

그래서 이미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다시 제거해내야 한다. 

또 그래야 생사고통을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전반적인 수행을 통해 그런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앞과 같은 상태로 각 내용을 반복해 얻는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처음에 일으킨 망상분별을 계속 붙들고 임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것을 계속 고집하게끔 된다. 

그래서 그런 노력이 원만하게 성취되지 못하게 된다. 

이런 현실이 문제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렇게 망상분별을 일으키게끔 되는 배경사정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 망집을 일으키는 배경 사정의 이해 


현실에서 각 내용은 자신과 외부 세상처럼 여겨지기 쉽다. 

또 자신과 외부 대상처럼 여겨지기 쉽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손이 꽃을 닿는 모습을 본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촉감을 얻는 관계를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들 각 내용이 대상과 감관이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정신과 성격이 다른 물질이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또 이들 내용은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컵을 다른 이가 들고 있는 컵과 부딪힌다고 하자. 

그 때 함께 그 소리를 듣고 촉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소리나 촉감은 자신만 얻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에 상대방도 같이 얻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얻는 내용은 모든 이가 함께 얻는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런데 이들 각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현실 내용은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 대상도 아니고 객관적 실재의 내용도 아니다. 


현실 내용들은 사실 그런 내용이 아니다. 

다만 현실 내용을 얻고 나서 각 부분의 관계를 그렇게 잘못 이해하게끔 될 뿐이다. 


이를 위해 처음에 현실 일체 내용이 마음안 내용임을 확인하는 기초적 실험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 망집 상태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는 사정 



1-- 올바로 사정을 이해해도 그렇게 잘못 여기게끔 한 배경사정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음 


예를 들어 처음 일체가 마음안 내용이라고 제시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내용을 이론상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실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없음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해를 한다고 그것만으로 곧바로 그런 배경 사정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전처럼 여전히 감각현실을 얻고 또 분별을 행하게끔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생활에 임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다시 이전에 행하던 일반적 이해 방식이 오히려 그럴 듯하다고 여기게끔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 임해 생활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예를 들어 컵을 만지면서 두드려 소리를 듣는다고 하자. 

또는 차의 향기를 맡는다고 하자. 

또는 차를 마셔서 차 맛을 느낀다고 하자. 

또 컵을 손으로 만지면서 촉감을 느낀다고 하자. 

그러면 여전히 그런 부분이 자신이 대하는 대상처럼 잘못 여겨지게끔 된다. 


또 그 컵에 차를 따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넨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대인 영희나 철수도 또 자신과 상황이 마찬가지임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대하는 내용은 객관적 실재인 것처럼 잘못 여겨지게끔 된다. 

따라서 다시 처음 입장으로 다시 물러나 되돌아가게 된다. 


본래 생사현실에서 일정한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감각현실과 분별을 행한다. 

또 그런 상태에서는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끔 된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행하는 분별이 잘못임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런 이해만으로 그 배경이 되는 정신구조와 기제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생사현실에 임하는 한 그런 상태는 계속된다. 



2 - 실재의 외부대상과 주관은 직접 얻지 못함 


현실내용의 각 부분은 올바른 외부 대상과 주관은 아니다. 

단지 그런 내용으로 잘못 이해되는 내용들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현실내용 대신 참된 외부대상과 주관을 찾아내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나 한 주체는 이들 내용은 직접 얻어내기 곤란하다. 

한 주체는 오직 마음에 들어온 내용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외부대상 자체와 주관 자체는 마음에 직접 들어오지 못한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는 단지 마음에 들어온 감각 현실 내용을 바탕으로 임하게 된다. 

즉, 이들 감각현실을 시원적인 바탕으로 놓고 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일반 생활은 이런 바탕에서 행해 나가게 된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식사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부분을 대상으로 대하여 식사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또 일상에서 거리를 걷거나 운전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정 부분을 외부 세상으로 여기고 임할 도리 밖에 없다. 

만일 현실 내용을 그런 형태로 대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생활 전반을 유지하기 힘들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망집을 벗어나기 위한 수행자체도 이런 바탕에서 행하게 된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망상분별을 일으켜 이를 고집하면서 머물게 된다. 



3 -- 현실 내용이 실답게 여겨지는 사정 


평소 현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평소 자신이나 세상으로 여기고 대했다고 하자. 


- 잘못된 오개념의 시정 

이런 경우 그런 현실 내용이 마음내용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현실내용의 정체와 성격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들 현실 내용이 그가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 아님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현실 내용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가진 오개념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기존에 잘못된 관념판단에 바탕해 가진 집착도 함께 제거할 수 있다. 


-실답지 않음의 이해

현실 내용에 대해 잘못된 오개념을 갖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이 부분은 자신의 몸이다. 저 부분은 영희다. 또는 책상이다 

이 부분은 외부 세상이다. 외부대상이다. 물질이다. 객관적인 실재다. ...

이런 식으로 각 부분에 적절하지 않은 잘못된 이해와 판단을 한다고 하자. 

그런 잘못된 분별은 오개념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에 바탕해 현실에서 상을 취하여 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각 부분에 잘못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대하게 된다. 

또 한편, 그런 내용이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여기기 쉽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참다운 진짜로서 실체를 갖는다고 여기기 쉽다. 

이처럼 그런 잘못된 판단을 바탕으로 다시 그것이 실답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바탕해 잘못된 집착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이런 부분만 떼어 놓고 보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분별 판단을 시정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이에 바탕해 잘못된 방향으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겪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원인단계가 되는 부분에서부터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낫다. 


따라서 이를 위해 먼저 

그런 현실 내용 각 부분에 대해 갖는 오개념(잘못된 분별)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또 이들 현실 내용은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실의 본 바탕은 공함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본 바탕에서는 현실 내용과 같은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참된 진짜라고 할 실체가 없음도 이해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현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현실 내용에 대해 갖던 집착도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생사고통을 발생시키는 업도 중단할 수 있다. 

그리고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수행도 원만하게 잘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야 생사고통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전체적인 입장에서, 다음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우선 현실 내용이 마음내용임을 이해하고 

기존에 각 부분에 대해 가졌던 오개념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 사정상 이를 어렵게 하는 사정들이 다음처럼 있다. 

따라서 이들 부분을 추가로 잘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 마음 내용 각 부분이 달리 갖는 특성 


감각현실이 마음내용임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다시 다음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 


이들 감각현실 내용이 다 함께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라고 하자. 

이들 감각현실은 전체가 함께 하나로 얻어진다. 

그런 경우 마음안 내용의 각 부분은 모두 마음 내용인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래서 감각현실 각 부분이 모두 다 같은 특성만 가져야 할 것처럼 여겨지기 쉽다. 

그런데 생활과정에서 이 각 부분에 각기 특성이 서로 다름을 분별하게 된다. 


먼저 감각현실 안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처음 그런 자신과 나머지 다른 부분을 크게 2 분해 대하게 된다. 

그런데 나머지 부분에서도 다시 각 부분 특성이 달리 파악된다. 

우선 자신과 비슷한 인간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들이 있다. 

또 인간과 비슷한 생명체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다시 일반 물체(무정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들 각 부분은 서로간에 각기 특성이 다름을 분별하게 된다. 

그래서 이 각 내용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마음안 내용임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 연기관계에 바탕해 나타남 


한편, 일체가 자신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 경우 다음처럼 이에 대해 오해하기 쉽다. 

먼저 사정이 그렇기에 이들 일체가 자신 마음대로 나타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이들 일체를 자신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도 쉽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이들 일체를 자신 마음대로 아무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감각현실 내용은 마음안 관념이나 꿈처럼 다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감각현실이 마음 내용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감각내용이 마음내용이기에 주체가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연기관계에 바탕해 각 요소에 의존해 마음에 나타난다. (의타기상)

한편 감각현실은 감관이 엇비슷한 다수 주체가 함께 얻게 된다. 

그런 가운데 한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고 하자. 

업을 행할 때 그 내용은 역시 감각을 통해 파악한다. 

그러나 업을 행하면 그 내용은 본 바탕과 관련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다만 그 업으로 인한 결과 내용들을 감각을 통해 파악하게 되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손을 자신이 움직여 떨어진 물건을 주으려 움직였다고 하자. 

그것이 뜻처럼 움직여져 그 물건을 잡게 되었는가 여부는 감각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결국 각 주체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마음안 내용으로서 감각현실 -> 분별(판단) -> 운동신경 -> 업 -> [....... 본 바탕 영역.....]  -> 감각과정 -> 마음안 내용으로서 감각현실 ->


그리고 이를 감관이 엇비슷한 주체들이 함께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감관이 엇비슷한 다른 주체에게도 일정한 영항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각 주체간에 가해와 피해관계를 형성하게 되기 쉽다. 

그리고 이것이 욕계에서 생사고통에 묶이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감각현실이 한 주체의 마음내용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사정으로 마음대로 업을 행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생각하면 곤란하다. 


- 다수주체가 일정시기 조건에 따라 반복해 얻어가는 관계성 


한편 감각 현실 내용은 꿈이나 마음속 관념과 함께 다 같이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감각현실은 또 꿈과는 다른 일정한 특성이 파악된다. 

즉,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와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엇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무량겁에 걸쳐 얻어나간다. 

그래서 현실 배경에 무언가 실다운 바탕이 있기에 그런 특성이 있게 된 것으로 추정하기 쉽다. 

그렇게 잘못 판단하게 되면 다시 집착을 제거하기 힘들게 된다. 


본 바탕 실재 내용은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실재가 공함은 그 내용을 얻지 못하므로 유무 분별을 떠난다. 

그렇다고 본 바탕에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극단적으로 무에 치우쳐 이해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현실 내용을 오직 마음 영역만의 일로 이해할 것은 아니다. [예; 공종자 이론]

그렇지만 또 한편 현실 내용을 본 바탕 영역에서 그대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본 바탕 실재와 현실내용의 관계는 마치 꿈과 성격이 같다. 

즉, 마치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꾸는 것처럼 서로의 관계가 엉뚱함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현실 내용에 대한 집착을 잘 제거할 수 있다. 



-- 추가 배경 사정의 설명 


감각현실은 이처럼 다른 현실내용과 다른 특성을 갖는다. 

이 상태에서 그런 현실이 마음안 내용임을 반복해 제시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평소 이에 대해 갖고 있던 망집이 이것만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 각 부분이 그렇게 파악되게끔 되는 배경 사정을 추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즉, 이들이 다 함께 마음안 내용이다. 

그렇지만, 감각현실 각 부분간에 그런 차별적 특성이 나타나는 배경 사정을 살펴야 한다. 

한편, 감각현실이 마음 내용이지만, 일정한 연기관계에 의존해 나타나는 배경 사정도 설명해야 한다. 

또 이들 내용을 여러 주체가 함께 일정한 관계로 엇비슷하게 반복해 얻게 되는 사정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경우 쉽게 비유적으로 이렇게 되는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자게임이나, 영화나 만화그림 등을 생각하면 쉽다. 

전자 게임의 화면 내용을 살펴보자. 

이들 내용은 모두 모니터 화면 상에 있는 내용이다. 

또 하나같이 모니터 밖의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각 부분마다 마우스를 대면 달리 반응하는 특성을 갖는다. 

또 일정부분에 마우스를 대면 일정한 아이템이 얻어진다고 하자. 

이는 그 전자게임을 행하는 이는 모두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이 모두 다 모니터 화면안의 내용 임은 마찬가지다. 

또 현실에서 얻지 못하는 실답지 않은 내용이라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에 집착해 현실에서 문제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사정을 이해해 그런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에 묶여 지내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현실 내용도 이와 사정이 같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이해하면 쉽다. 


영화나 만화나 그림도 이와 비슷하게 이 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들은 스크린이나 무대나 종이에서 나타나는 내용이다. 

또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런 비유는 이들 배경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은 아니다. 

다만 이해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갖는 것 뿐이다. 



그래서 감각현실이 위와 같은 특성을 갖고 나타나는 배경사정을 직접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처음 각 주체가 마음을 바탕으로 현실내용을 얻게 되는 배경사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한 생명이 태어나 현실에 임하게 되는 배경 과정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한 생명의 정신 구조와 기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한 생명의 근본정신(제 8식)을 통해 이 과정을 설명한다. 

생사과정에서 각 주체의 근본정신은 먼저 제 7 말나식 등을 분화생성시킨다. 

그리고 이후 감각을 담당하는 제 1~5 식 및 분별을 담당하는 제 6 의식을 분화생성시킨다. 

그런 상태로 각 생명은 생사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의 한 단면에서 대하게 되는 내용은 이런 구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로 현실에서는 각 내용 간에 관계성을 그처럼 파악하게끔 되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정신 구조와 기제는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키게끔 하는 배경이 된다. 


그리고 그런 배경에서 일단 현실에 임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그런 바탕에서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주체는 결국 그런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망집을 일으켜 그에 바탕해 생활에 임하게 된다. 



-- 추가 배경 사정을 살펴도 잘 제거되지 않는 망집의 문제점 


만일 이런 배경사정을 살피지 않는다고 하자. 

그리고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는 이 두 주장만 계속 반복한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처음 잘못된 해석에 되돌아가 머물게 되기 쉽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현실이 마음내용임을 반복해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이에 다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들이 그처럼 잘못 이해되게끔 되는 배경 사정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런 노력을 통해 그 배경사정을 이론상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이해를 통해 잘못된 망집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지만 그런 배경사정의 이해가 그 배경사정 자체를 제거하는 힘을 갖지는 못한다. 

다만 이렇게 올바로 이해하여 망집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망집에 바탕한 업을 중단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추가로 발생시킬 생사고통의 문제를 예방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이해만으로 곧바로 그런 정신구조와 기제가 모두 제거되고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이해만으로 생사의 묶임에서 곧바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생사과정에서 형성된 그런 정신구조와 기제는 한 생을 통해 계속 유지되게 된다. 


그래서 그가 그런 상태에서 다시 현실에 들어가 생활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와 같은 바탕에서 다시 생활할 도리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이전과 같은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고 이에 다시 붙잡히게 되기 쉽다. 


이는 눈병이 걸린 경우와 사정이 비슷하다. 

처음 눈병에 걸려 허공에 없는 꽃 모습 등이 잘못 보이게 된다고 하자. 

그런데 일정한 계기로 자신이 눈병이 걸린 사정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게 사정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만으로 곧바로 눈병이 치료되어 눈병 증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눈병 자체가 치료되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상태로 그런 모습을 계속해 보게끔 된다. 

그래서 여전히 이전처럼 잘못된 판단을 행하기 쉽다. 


다만 이런 상태에서 자신이 눈병에 걸린 상태를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모습이 보여도 이 정체에 대해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후에는 그에 대해 갖던 잘못된 자세를 수정해 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 갖던 망집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한 업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수행방향으로 자세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으로 망집이 이후 일으키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노력을 통해 그 근본 배경이 되는 원인까지도 제거해 나갈 수 있다. 


한편, 수행자가 이런 망집을 근본적으로 잘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지만, 수행자가 다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서원을 갖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수행자는 다시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런 경우 수행자 역시 다시 생사현실의 상황에 중생과 같은 상태로 임하게끔 된다. 

그래서 역시 중생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위 문제는 이런 각 경우마다 잘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된다. 




- 망집을 증폭시키는 입장


한편 여러 사정으로 망집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이에 바탕해 다시 또 다른 망상분별을 증폭시켜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다시 또 다른 망상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문제점을 조화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어떤 해석방안들이 있는가를 그 상태에서 검토해 나가야 한다. 


예들들어 처음 자신이 눈을 떠 얻는 현실내용이 마음내용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현실에서 여전히 자신이 컵이라고 보는 부분이 있다. 

한편, 자신의 손이라고 보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 두 부분을 서로 갖다 댄다고 하자. 

그러면 그 순간 반복해서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들이 마음내용임에도 이런 관계성을 갖는 사정을 살피게 된다. 

그런 경우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들을 다음처럼 살필 수 있다. 

우선 처음에 다음처럼 설명하기 쉽다. 


자신이 현실에서 눈을 떠 얻는 내용은 자신의 마음 안 내용이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그런 내용을 마음에서 얻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마음 밖에 그와 같은 내용이 그대로 똑같이 있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런 내용을 시각으로 보게 되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그 경우 그처럼 시각으로 본 내용이 그 마음 밖에 그대로 실재한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실재가 있기에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이는 마음에서 얻는 그 내용을 마음 밖의 영역에 그대로 밀어 넣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고 여기기 쉽다. 


즉 자신이 눈을 떠서 꽃의 모습을 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마음 밖에도 그런 내용이 그대로 똑같이 있다. 

때문에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본다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한편, 촉감을 얻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꽃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 

또 손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 

이 두 부분을 서로 갖다 댄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의 마음 밖에서도 그와 똑같은 내용이 그렇게 서로 닿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 순간에 촉감을 얻는다. 

이렇게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런가가 문제다. 


경전에서는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한다. 


어떤 주체가 그런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되면 원래 망상분별과 생사현실 문제가 더 악화된다. 

즉, 처음에 일으킨 망상분별보다 그 증상이 오히려 더 심화된 상태다.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실답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수행의 방안으로 전환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와야 한다. 


그런데 앞과 같은 입장은 그렇게 되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 내용이 실재에서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보다 훨씬 더 심화된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된 상태가 된다. 


그런 가운데 이 두 입장을 그렇게 오락가락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은 수행대로 원만히 성취하지 못한다. 

끝내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완전한 상태로 남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만 반복해 제시한다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기는 부족하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수행의 방향으로 전환해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해탈문에 들어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에 머물지 못하게 된다. 


일체가 마음내용이라고 한다고 하자. 

사정이 그런데도  현실에서 각 주체가 앞과 같은 경험을 반복하게 되는 사정까지 잘 살펴야 한다. 

또 일반적으로 전도망상분별을 자꾸 일으키게 되는 배경 사정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마음에 관한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헤아려 봐야 한다. 




>>>




불교 교학에서는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관계를 살핀다. 


-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무의 측면 


이 경우 실상은 차별없이 공하다고 제시한다. 

실재는 그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이는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화합해 얻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은 꿈이나 환영처럼 실답지 않다. 

즉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꾼 것과 사정이 같다. 


또 그를 바탕으로 행하는 관념분별 내용도 실답지 않은 내용이다. 

즉,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런 조건에서 얻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임시적이고 실답지 않기에 '가'라고 보통 표현한다. 



- 그러나 일정 영역에서 내용을 얻는 유의 측면 


생사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고 환과 같다. 

그러나 정작 생사현실은 꿈이 아니다. 

그것은 꿈과 다르다. 

그래서 다수 주체가 일정한 공간과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 그것을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극심한 생사고통을 그 안에서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생생하게 겪어 나간다. 

그래서 이를 실답지 않다고 방치할 수 없다. 


- 생사현실 안의 생사고통의 해결 문제 


매 순간 현실에서 생생하게 얻게 된다. 

그런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이런 생사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모든 논의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수행 역시 생사현실 안에서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고 환과 같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 그렇게 수행을 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반복하는 그 하나하나는 그 성격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런데 다수 주체가 일정한 상황에서 반복 경험한다. 

그리고 아무리 실답지 않다고 해도 이런 내용을 현실에서 얻는다. 

그리고 이 생사현실에서 겪는 고통이 문제된다. 

그래서 이를 완전히 없는 것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결국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이 문제되기에 그 상태에서 수행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행자도 그런 생사현실 안에서 수행을 행해 나가게 된다. 


실재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이나 그런 문제를 본래 얻을 수 없다. 

실재영역에서는 생사문제를 본래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수행은 실재 영역에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아니다. 

또 수행은 그런 실재 때문에 행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두 측면을 각 측면마다 잘 취해 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3 해탈문의 내용과 관련이 된다. 

이들은 현실 한 단면에서 함께 붙어 있다. 

즉,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3 해탈문이 현실 단면에 있다. 

한편, 반대로 생사 생멸문도 바로 이 현실 단면에 그렇게 함께 있다.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인 상태다. 

즉 본래 생사고통이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아나가는 생사현실이 전개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업을 행해 그런 3 악도로 진입해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이 양 측면을 다 잘 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공한 실상의 측면과 현실의 측면을 다 잘 헤아려서 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도 실상관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것을 합쳐 공가중...이렇게도 표현한다. 


그리고 공한 실상에서 하필 이런 이상한 현실을 대하고 임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 일체가 마음이라는 사정과 수행의 관계



생사현실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잘 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이런 생사고통을 잘 극복해야 한다. 

한편, 수행 가운데 특히 안인 수행은 수행자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려면 현실에서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러려면 평소 현실에서 이해하는 내용이 잘못임도 잘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 입장과 경전 입장이 서로 극과 극으로 다르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해결하고자 수행한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억울하고 불쾌하고 고통스럽다고 느낄 상황이 있다. 

그런데 수행자도 생사현실에서 억울한 고통을 대단히 많이 겪게 된다. 


그런데 수행자는 일반의 경우처럼 전도망상분별을 일으켜 이를 대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억울해하면 수행자 자격이 없게 된다.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자신이나 자신의 신체, 생명 목숨, 등등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런 상을 전혀 일으켜 갖지 않아야 한다. 

『금강경』에서는 수행자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면 

수행자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


그래서 전혀 분노나 원망의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그대로 평안히 그것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안인을 성취하게 된다. 


『금강경』에 다음 사례가 나온다. 

별 이유도 없이 갑자기 가리왕에게 체포된다. 

그리고 사지를 절단당하는 형을 당한다. 

경전에서는 그 상황에 그런 억울함이나 그런 고통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것이 있다고 여기고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수행자로서는 수행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대단히 억울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다.  

현실에서 수행자가 이유없이 억울하게 매를 맞고 고문을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알고보면 모든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문제를 대한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런 내용은 거기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런 내용은 실답지않고 환과 같다. 

억울한 상황 -> 억울함을 느껴야 할 그런 내용이 거기에 없다. 

고통이나 억울함을 느낄 내용이 본래 얻을 수 없다. 

=> 그래서 억울해 할 이유가 없다. 

=> 그래서 또 그에 대해 일반적으로 행하게 되기 마련인 그런 반응을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수행자는 억울하다고 느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 일체를 평안하게 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안인 수행을 원만하게 잘 성취하게 된다. 


그런 것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어이없이 고통을 당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이 그렇게 손해를 최소한으로 막은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라도 시감상을 하며 잘 대처해야 한다. 


수행자는 이런 부분에서 잘 임해야 한다. 

그래야 안인 수행을 원만히 성취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행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임한다고 하자. 

먼저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집착을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런 상태에서 억울함과 고통을 심하게 겪게 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위하고 반응한다고 하자. 


그러면 사태가 더 나빠지게 된다. 

이런 경우 넓고 길고 깊은 광장심 관찰을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로 인해 생사고통이 증폭됨을 관찰하게 된다. 

즉 그로 인해 상태가 더 악화된다. 


a 라는 고통을 안인 수행으로 잘 극복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다음에는 a 보다 더 심한 b 로 옮겨가게끔 된다. 

b 에서 또 잘 극복하지 못하면 b 보다 더 심한 c 로 옮겨가게 된다. 

이런 상태로 무량하게 나아가게 된다. 


a 라는 고통을 잘 견디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사정이 그렇기에 그 이후 a 보다는 조금 낫고 편한 상태로 수행자를 옮겨가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한편 그 반대는 그 반대가 된다. 

처음 a 를 억울하게 여기는 입장은 이후 더 억울하다고 여기게끔 되는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만일 처음 그 a 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그 반대가 된다. 


그렇게 되는 사정은 현실에서 다 함께 전도망상분별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과 같이 a -> b -> c 이렇게 한없이 나아간다고 하자. 

그런 입장에서는 나중에는 너무 억울하다고 여기게 된다. 

처음 이유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 부터가 억울하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나중에는 거꾸로 매달려 있게 되었다. 

그래서 더 억울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계속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중지한다고 하자. 

그리고 반대방향으로 수행의 방안을 통해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중생제도 측면에서도 자신이나 상대나 더 좋아진다. 



그런데 이런 수행이 말처럼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바세계에서 안인 수행 테스트에서 낙방하기 쉽다. 


그리고 마음의 현상에 대한 연구가 이 측면에서 중요하다. 

마음에 대한 논의는 이런 문제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사정이 본래 그렇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을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즉, 현실을 그처럼 이해하기 쉽다. 

그런 가운데 억울하고 고통과 불쾌를 받는 상태에 처한다. 


따라서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은 본래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일체가 마음내용이다. 

그런 가운데 3 능변을 통해 자신이 현재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와야 한다. 

그래서 이를 살피는 것이다. 















★1★





◆vbcb4389

◈Lab value 불기256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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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enoir head-of-a-young-woman-red-hat-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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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ierre-Auguste Ren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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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head-of-a-young-woman-red-hat-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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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nath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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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Sheller - A Franchement Parler


♥단상♥


☎잡담☎

♥ 잡담 ♥북마크 하이퍼링크 작업



조각글마다 조금씩 내용을 적어 주먹구구 연구를 진행한다. 

그리고 이를 종합척 체계적 정리해나기로 했다. 

우선 각 조각글에 링크를 걸 책갈피 부분을 표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너무 거슬르지 않도록 한다. 


링크가 조각글의 성격과 특성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종합적 체계적 정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stealth 기능을 도입하여 해결하기로 했다. 

기존에 사용한 링크 방식과 별 차이는 없다. 


각 부분 시작 부분을 링크처리 한다. 

그리고 그 각 부분의 끝 부분은 일단 >>> 이런 기호로 표시하기로 한다. 

이전 보다 조금 더 복잡해진 듯 하다. 


그러나 매번 과거 조각글 내용을 반복하는 것보다 조금 편해졌다. 

일단 링크가 잘 작동되는가를 실험하면서 조금 쉬기로 한다. 




현재 연구원들이 촬영된 사진들이 있다. 

이를 1 차 처리했다. 


여기에서도 정리가 필요하다. 

a 연구원이 촬영된 사진을 처리했다. 

그런데 b 연구원이 촬영된 사진을 처리할 때는 또 어떻하는가. 

이 경우 수학에서 다루는 순열 조합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a 연구원이 촬영된 사진에는 a 연구원만 촬영된 사진도 있다. 

b ,c 도 함께 촬영된 사진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개별적으로 뽑아 처리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사진은 매번 중복처리된다. 

그런 중복을 피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조금 더 분류를 하고 다시 정리해야 한다. 

이런 여러 문제를 잘 정리해야 한다. 


그러면 연구 업무가 잘 진행될 수 있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2/01/2562-02-14-k0121-001.html#4389
sfed--설무구칭경_K0121_T0476.txt ☞제1권
sfd8--불교단상_2562_02.txt ☞◆vbcb4389
불기2562-02-14
θθ



-- 아래에 조각글 작성시 휴식시점에 붙인 노래가사,사진,풍광,예술작품 자료를 편집상 옮겨 붙입니다.--


>>>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lbrecht_Dürer_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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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_1012_074514_nikon.jp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lbrecht_Dürer_057.jpg
Albrecht Dürer (1471–1528)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 [pt op tr] fr
_M#]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Hybrid_Tea_-_Medallion_2_(c)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olimi_Leonardo_campus_main_building



♥Asia United Theological University – Seoul and Yangpyeong County
[장소정보2]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 [pt op tr]ivan-aivazovsky-wedding-in-ukraine-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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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ivan-aivazovsky
https://en.wikipedia.org/wiki/Ivan_Aivazovsky
Title : wedding-in-ukraine-1892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_M#]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설일체유부 또는 구사종에서 우주 만유의 실체를 75가지의 요소로 분류한 것. 

(1) 색법(色法). 5근(根)ㆍ5경(境)ㆍ무표색(無表色). (2) 심법(心法). (3) 심소유법(心所有法). 

① 대지법(大地法). 수(受)ㆍ상(想)ㆍ사(思)ㆍ촉(觸)ㆍ욕(欲)ㆍ혜(慧)ㆍ염(念)ㆍ작의(作意)ㆍ승해(勝解)ㆍ삼마디(三摩地). 

② 대선지법(大善地法). 신(信)ㆍ불방일(不放逸)ㆍ경안(輕安)ㆍ사(捨)ㆍ참(慚)ㆍ괴(愧)ㆍ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불해(不害)ㆍ근(勤). 

③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치(癡)ㆍ방일(放逸)ㆍ해태(懈怠)ㆍ불신(不信)ㆍ혼침(惛沈)ㆍ도거(掉擧). 

④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무참(無慚)ㆍ무괴(無愧). 

⑤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분(忿)ㆍ부(覆)ㆍ간(慳)ㆍ질(嫉)ㆍ뇌(惱)ㆍ해(害)ㆍ한(恨)ㆍ첨(諂)ㆍ광(誑)ㆍ교(憍). 

⑥ 부정지법(不定地法). 악작(惡作)ㆍ수면(睡眠)ㆍ심(尋)ㆍ사(伺)ㆍ탐(貪)ㆍ진(瞋)ㆍ만(慢)ㆍ의(疑). 

(4) 심불상응법(心不相應法). 득(得)ㆍ비득(非得)ㆍ중동분(衆同分)ㆍ무상과(無想果)ㆍ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ㆍ명근(命根)ㆍ생(生)ㆍ주(住)ㆍ이(異)ㆍ멸(滅)ㆍ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 

(5) 무위법(無爲法). 허공무위(虛空無爲)ㆍ택멸무위(擇滅無爲)ㆍ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유사어>변대지법<참조어>변대지법(遍大地法)

답 후보
● 칠십오법(七十五法)

타생(他生)
타심통(他心通)
탁악세(濁惡世)
탐욕개(貪欲蓋)
태생(胎生)
택멸무위(擇滅無爲)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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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Serge Reggiani - Il Faut Vivre
Frank Michael (Collector Edition) - Celle Que J'aime
M - Mama Sam (Live 2005)
Alain Souchon - L'amour A La Machine
Debout Sur Le Zinc - En Attendant Le Pire
Balavoine - Les Oiseaux (28me Partie)
Aldebert - Les Questions
Jane Birkin - Norma Jean Baker





○ [pt op tr]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Les Chats Sauvages - Venez Les Filles.lrc 


■ 시사, 퀴즈,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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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 한자 파자 넌센스 퀴즈


【 】 ⇄✙➠
일본어글자-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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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단어 넌센스퀴즈- 예문 자신상황에 맞게 바꿔 짧은글짓기



■ 번역퀴즈
번역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 Angya
[san-chn] daśa-vihāra 十住
[san-eng] mānasaśāstra $ 범어 psycology
[pali-chn] dvattiṃsa mahā-purisa-lakkhaṇāni 三十二大丈夫相, 三十二大人相
[pal-eng] sabbatra $ 팔리어 adv.everywhere.
[Eng-Ch-Eng] craving 貪,貪愛
[Muller-jpn-Eng] 悅叉 エツシャ (foreign) A transliteration of the Sanskrit term yakṣa 夜叉
[Glossary_of_Buddhism-Eng] DEATH☞
See also: Death and Burial; Honen; Rebirth in the Pure Land; Right
Thoughts; Supportive Recitation; Three Doubts and Four Narrow
Passes.
“The passage into the next life at the moment of death is a nearly
impenetrable mystery for us who have not yet experienced it. There are
published accounts of near-death experiences by people who have been
resuscitated from clinical death … the religions of the world are nearly
unanimous in describing [an uncomfortable event]: The individual
undergoes a judgment where he must review his life with unsparing
honesty. 
[fra-eng] humain $ 불어 humane


■ 암산퀴즈


959* 938
287202 / 453


■ 다라니퀴즈

자비주 45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45 번째는?




45
또 삼천대천 세계에
암흑처의 삼악도 중생이
나의 이 주문을 들으면
다 괴로움을 여의게 되고,
모든 보살 가운데 초지에
오르지 못한 자는
속히 오르게 되고
내지 십주지(十住地)도 이르게 되고,
또 불지(佛地)에도 이르러
자연히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八十)가지 좋은 형상을 성취하게 되며,
● 소로소로 蘇嚧蘇嚧<四十五> su ru su ru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45
아체엄라 시라
阿砌掩囉<二合>尸羅<四十五>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45일째]
어중시겁불가설 $ 045▲訶理婆訶理婆為 一 ● 一動, ○□□□□,於,菩,諸,一

□□□□□□□, 於中差別不可說,
菩薩悉能分別說, 諸明算者莫能辨。
□□□□□□□, 어중차별불가설,
보살실능분별설, 제명산자막능변。

그 가운데 겁과 시간 말할 수 없고
그 가운데 차별도 말 못할 것을
보살이 분별하여 다 말하지만
산수에 능한 이도 분별 못하네.



[28째]
중찰위진진유상 $ 028▲毘盛伽毘盛伽為 一 ● 毘素陀, ○□□□□,不,如,皆,光

□□□□□□□, 不可言說不可說,
如是種種諸塵相, 皆出光明不可說。
□□□□□□□,  불가언설불가설,
여시종종제진상, 개출광명불가설。

여러 세계 부순 티끌 그 많은 모양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고
이러한 가지가지 모든 티끌이
제각기 내는 광명 말할 수 없어





●K0257_T0841.txt★ ∴≪A설묘법결정업장경≫_≪K0257≫_≪T0841≫
●K0121_T0476.txt★ ∴≪A설무구칭경≫_≪K0121≫_≪T0476≫
●K1084_T1903.txt★ ∴≪A설죄요행법≫_≪K1084≫_≪T1903≫

법수_암기방안


45 발등 instep / top (side) of the foot
28 새끼 ( LITTELE finger)
45 발등 instep / top (side) of the foot
45 발등 instep / top (side) of the foot

899542
634

○ 2019_1104_175107_nik_ct5


○ 2020_1114_135320_nik_ct8_s12


○ 2018_1023_122758_can_CT33_s12


○ 2020_1017_152050_can_BW21_s12


○ 2020_1002_124335_can_Ar25_s12


○ 2020_0930_145744_can_AB17


○ 2020_0930_134642_nik_AR12


○ 2020_0910_114838_nik_BW28


○ 2020_0909_155333_can_bw5


○ 2020_0907_134410_can_ar47


○ 2020_0906_130020_can_BW27


○ 2020_0905_103655_can_BW25


○ 2020_0904_133726_can_CT27


○ 2019_1201_162818_nik_ab41_s12


○ 2019_1106_165144_can_ct37


○ 2019_1106_155747_can_ar38


○ 2019_1106_154410_can_ar10


○ 2019_1106_111933_can_Ar28


○ 2019_1106_112020_nik_Ab27


○ 2019_1106_102843_nik_ar47

● [pt op tr] fr
_M#]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keyword.html

○ [pt op tr]
● 설무구칭경_K0121_T0476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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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무구칭경』 ♣0121-001♧
[관련키워드]
제1권

■ 본 페이지 ID 정보
불기2562-02-14_설무구칭경-K0121-001
https://blog.daum.net/thebest007/946
sfed--설무구칭경_K0121_T0476.txt ☞제1권
sfd8--불교단상_2562_02.txt ☞◆vbcb4389
불기2562-02-14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2/01/2562-02-14-k0121-001.html
htmback--불기2562-02-14_설무구칭경_K0121_T0476-tis.htm
● [pt op tr] fr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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