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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5일 금요일

문수사리문경_k0412-t0468-001


『문수사리문경』
K0412
T0468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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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있는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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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문수사리문경』 ♣0412-001♧





상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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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2-001♧
『문수사리문경』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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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문경



해제보기
 
문수사리문경(文殊師利問經) 상권
 
양(梁) 부남국(扶南國) 승가바라(僧伽婆羅) 한역
김달진 번역
 


▸ 1. 서품(序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1,350인과 함께 계셨다. 
 

그들은 다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모든 누(漏)가 다 되어서 다시는 번뇌가 없었고,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 마음을 잘 해탈하고 지혜를 잘 해탈하였으며, 
모든 감관을 조복(調伏)하여 훌륭한 이들[摩訶那伽]이 할 일을 이미 끝내고 해야 할 일도 이미 끝내었으며, 
무거운 짐을 버리고서 이미 자기의 이익된 일에 이르렀으며, 
번뇌가 이미 다하여 바른 지혜로써 잘 해탈하여 
일체 마음의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장로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이곳 말로는 이지(已知)이고, 진여(陳如)는 성(姓)이다]ㆍ
사리불(舍利弗)ㆍ
대목건련(大目犍連)[이곳 말로 나복근(羅茯根)이니, 그의 아버지가 이것을 씹는 것을 좋아하여 그로 인해 이름을 삼았다.]ㆍ
마하 가섭(迦葉)ㆍ
이바다(離婆多)[이곳 말로는 상작성(常作聲)이다.]ㆍ
수바후(須婆吼)[이곳 말로는 선비(善脾)이다.ㆍ아난타(阿難陀)이곳 말로는 대환희(大歡喜)이다.]로서 
이러한 1,350명의 아라한들이 있었으며,
 
다시 1천3백에 달하는 범부와 비구 대중이 있었고, 
다시 금강(金剛)보살ㆍ대세지(大勢至)보살ㆍ관세음(觀世音)보살ㆍ대덕용맹(大德勇猛)보살ㆍ무진의(無盡意)보살ㆍ대의(大意)보살ㆍ
문수사리동자(文殊師利童子)보살 등 이러한 수없는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들이 있었다.
 


▸ 2. 보살계품(菩薩戒品) ◂
 

 

문수사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묻고자 합니다. 

▸ 세존의 뛰어난 말씀인 세간의 보살계(菩薩戒)를 원하건대 저를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자세히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내가 이제 설하겠으니 그대는 자세히 잘 들어라. 
중생을 살해하지 않고 
남의 재물을 훔치지 않고 
범행(梵行) 아닌 것을 행하지 않고 
허망한 말을 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니, 
이러한 것을 기억해야 하며, 

노래하거나 춤을 추는 창기(倡伎) 노릇을 하지 않고, 
꽃향[花香]을 가지거나 
하늘 갓[天冠] 등을 갖지 않고 
높거나 넓고 큰 평상에 눕지 않고 
한낮을 지나서는 먹지 않아야 하니, 
만약 이러한 일을 행한다면 3승(乘)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리털의 길이가 두 손가락을 포갠 정도라면 깎아야 마땅한데, 
혹시 두 달 만에 만약 짧다고 하면서 깎는다면 이는 배운 것 없는 보살이고, 
만약에 두 손가락의 정도를 넘는다면 이 역시 배운 것 없는 보살이며, 
손톱을 길러서는 안 되는데, 
쌀보리 한낱 만큼의 길이는 그럴 수 있다 하여, 
‘왜냐하면 가려운 데를 긁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면 
이렇게 한 자는 분별 보살이다.
 


▸ 불(佛)ㆍ법(法)ㆍ승(僧)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과 
부모 형제를 공양하기 위해서는 재물을 저축할 수 있고, 
절을 짓기 위해서나 또는 불상을 만들기 위해서나 
보시하기 위한, 그러한 인연이 있다면 
금은과 재물을 받아도 허물이 없다고 하거나, 
만약에 밥을 뭉쳐 먹을 경우 달걀 정도의 크기만 하게 해야 하고, 
먹을 때에는 일이 없으면 다른 데를 보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이는 역시 분별 보살이다.
 
또 물건을 매매할 수 없고, 
남에게 보시 받은 물건을 팔아서 돈으로 바꿀 수 없으며, 
만약에 보시한 것이 억만에 이른다 해도 마땅히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 악업을 짓지 말고, 
또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악업을 짓게 하지도 말고,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찬탄하지도 말아야 한다. 

▸ 자기 때문에 살생된 것이라면 그 고기를 먹을 수 없지만  
약에 고기가 재목(材木)처럼 이미 저절로 썩고 허물어졌을 경우엔 먹고 싶으면 먹을 수도 있다.
문수사리여, 
만약 고기를 먹으려는 자는 마땅히 다음의 주문을 외워야 한다.
 
다냐타 아나마 아나마 아시바다 아시바다 
多姪咃 此言如是
阿捺摩阿捺摩 此言無我無我
阿視婆多 阿視婆多 此言無壽命無壽命

나사나사 타아타아 바불바불 싱가율다미 사바하
那舍那舍 此言失失 
陀呵陀呵 此言燒燒
婆弗婆弗 此言破破 
僧柯慄多弭 此言 有爲 
莎 呵 此言 除殺去
 
이 주문을 세 번 외우고서야 고기와 밥을 먹을 수 있으니, 
그렇지 않다면 먹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밥도 생각하지 않고 먹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고기를 먹는 데 있어서랴.”◂
 
 


▸ 그때 문수사리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상구경(象龜經)』이나 『대운경(大雲經)』이나 『지만경(指鬘經)』이나 『능가경(楞伽經)』 등 여러 경전에서는 
어째서 다 끊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깊고도 넓어서 저 언덕을 볼 수 없는 그러한 강물을 
어떤 인연이 없이는 건너갈 수 없겠지만, 
만약에 인연이 있다면 그대는 건너겠는가, 못 건너겠는가?”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땅히 건너겠습니다. 
저는 마땅히 건너겠습니다. 
혹은 배로써, 
혹은 뗏목[筏]으로써, 
혹은 그 밖의 다른 물건으로써 말입니다.”
 
▸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자비의 힘이 없어서 살해할 뜻을 품고 있음으로 해서 
이 인연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어떤 중생이 더러운 누더기 옷[糞掃衣]을 좋아한다면 나는 말하겠다.
‘더러운 누더기 옷을 입고 이같이 걸식하며 나무 밑에 앉거나 맨땅에 앉거나 
아란야(阿蘭若)와 무덤 사이에 앉아서 한 번만 먹고 때가 지나면 먹지 않으며, 
머무르게 되는 곳에서 3의(衣) 등으로 그들을 교화하면 
나는 두타(頭陀)를 설해 주겠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만약 중생으로서 살해할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 때문에 무수한 죄과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내가 고기를 못 먹게 하는 것이니, 
만약 살해할 마음을 품지 않고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라면 
그 때문에 죄과가 있을 수 없다.
 
또 마늘을 먹어서는 안 되지만 만약 인연이 있으면 먹을 수 있으며, 
만약 약에 섞어 병을 치료할 경우라면 먹을 수 있다.
 
술을 마셔서도 안 되지만 
만약 약에 섞되 의사의 말에 따라 
많은 약과 한데 섞어서 술은 적고 약이 많다면 마실 수 있다.
 
기름을 먹거나 몸에 바르는 것도 안 되지만
만약 인연이 있으면 사용할 수 있고, 

우유와 낙(酪)과 생소(生酥)ㆍ숙소(熟酥)ㆍ제호(醍醐) 등을 사용할 수도 있다. 
내가 과거에 우유죽을 먹은 것도 풍(風)과 담(痰)과 냉증 때문이었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 만약 몸을 단속하면 이는 선한 것이며
마음과 입을 단속함도 그러하니
일체의 처소를 단속함이
바로 보살이 행할 바이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서른다섯 가지 큰 공양이 있으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것을 알아야 한다. 
 

등불을 켜고 
향을 사르고 몸에 바르고 땅에 바르고 
향과 가루 향과 
가사(袈裟)와 일산[繖]과 용자(龍子) 번기[龍子幡]와 그 밖의 다른 번기와 
소라[螺]와 북과 큰 북[大鼓]과 방울[鈴]과 소반[盤]과 
춤을 추는 것과 노래하는 것과 
또는 와구(臥具)이며, 
혹은 삼절고(三節鼓)ㆍ요고(腰鼓)ㆍ절고(節鼓) 및 절고(截鼓)와 
만다라꽃[曼陀羅花]이며, 
땅을 쓸고 땅에 물 뿌리고 꽃을 꿰고 비단을 다는 것이며, 
밥과 물과 간장과 또는 그 밖의 맛난 음식이며, 
향을 섞은 빈랑(檳榔)과 양지(楊枝)와 목욕 향수와 비누이니, 
이것이 이른바 큰 공양이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스물여섯 가지 삿된 소견이 있으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것을 여의어야 한다. 

말을 살해하여 불에 제사 지내기도 하며 사람을 살해하여 불에 제사 지내기도 하며 
한꺼번에 활을 사방에 쏘아 말 4천 마리를 죽여서 오장(五藏)을 제거하고 
7보(寶)를 넣어서 바라문(婆羅門)들에게 보시하며, 
사람을 죽여서 보배 넣기를 역시 그렇게 하며, 
활을 사방에 쏘아 화살 가는 곳까지의 그 사이에 7보를 가득 펴서 그것을 바라문들에게 보시하며, 
말을 사방에 달리게 하여 그 말이 가는 곳까지의 사이에 7보를 가득 펴서 바라문들에게 보시하며, 
이 화살과 말이 끝까지 가는 곳 사이에 있는 중생들을 다 살해하고, 
쌓아둔 온갖 물자도 일체 다 태워버리며, 
일체 천신을 다 예배하며, 
일체 나무숲들에 다 예배하며, 
일체 산신들에게 다 예배하며, 
옛날에 살던처소에 다 예배하며, 
모든 큰 나무들에게도 다 예배하며, 
모든 잡귀신들의 형상까지에도 다 예배해야 하니라.
 마혜수라(摩醯首羅)ㆍ비뉴(毘紐)ㆍ구마륵(拘摩勒)ㆍ범천왕(梵天王)ㆍ염라왕(閻羅王)ㆍ용ㆍ비사문(毘沙門)ㆍ인다라(因陀羅)ㆍ주천녀(酒天女)ㆍ할다야니(割多耶尼)ㆍ독가설타차(獨伽舌陀遮)ㆍ문지우마라(文持優摩羅) 등이 
모두 삿된 소견과 비슷하다. 
이 무리들은 버리고 예배해서는 안 되기에 문수사리여, 
나는 이러한 것을 공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위와 같은 스물여섯 가지는
모두 삿됨에 귀의한 것이라
뛰어남도 아니고 안온함도 아니므로
뭇 고통을 벗어날 수 없느니라.
 
만약 불ㆍ법ㆍ승에 귀의하거나
또는 4성제(聖諦)에 귀의한다면
이 귀의야말로 뛰어나고 안온하여
일체의 고통을 다 벗어날 것이네.
 
“저 앞서의 삿된 소견을 서로들 공덕이라고 전해 말하지만, 
말을 살해하는 공덕이나 사람을 살해하는 공덕이나 
활을 사방에 쏘는 공덕이나 말을 달리게 하는 공덕이나 
일체 중생을 죽이는 공덕은 
실상 공덕이 아니니, 
만약 한 생각이라도 자비심을 낸다면 공덕의 광대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바로 보살로서 행할 바이다.”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여래ㆍ응공ㆍ정변지(正遍知)께 
미래 모든 보살들의 여러 행에 대하여 묻고자 하니, 
여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이제 묻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묻고 싶은 대로 물어라.”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사부대중이 혹 몸이나 입에서나 나무나 돌 그 밖의 모든 소리를 어느 때에 모두 내지 않아야 합니까?”
 
▸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여섯 때[六時]만은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니, 
예불할 때와 
법을 들을 때와 
대중이 화합할 때와 
걸식할 때와 
밥 먹을 때와 
대소변을 볼 때이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 때문에 이때만은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시간은 여러 천신들이 오는 때이다. 
저 천신들은 항상 청정한 마음이고 더러움이 없는 마음이고 
공(空)한 마음이고 
바라밀(波羅蜜)에 수순하는 마음이고 
불법을 관하는 마음인만큼, 
저 소리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안정되지 않음으로 해서 모두 돌아가게 되고, 
모든 천신들이 다 돌아감으로 해서 다른 악귀들이 모여 와 요익하지 않고 
안온하지 않은 일을 일으켜 
저 사람들이 여기에서 모든 재앙과 환란을 당하며, 
인민들이 기갈에 허덕여 서로가 침범할 것이니, 
이 때문에 문수사리여, 
마땅히 부처님ㆍ응공ㆍ정변지께 고요히 예배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몸과 입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나무나 돌 그 밖의 소리도 다 내지 않고
고요히 예불하는 자에게
여래께서는 찬탄하시는 바이네.
 






▸ 3.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다시 묻겠으니, 
원하건대 부처님께서 해설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문수에게 말씀하셨다.
“묻고 싶은 대로 물어라.”
 
▸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무엇 때문에 열반(涅槃)에 드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것이 아니고 중생들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마치 유리(琉璃)구슬이 청정하여 때가 없기에 
흰 물질을 만나거나 푸르고 누렇고 붉은 물질을 만나면 
이 유리구슬은 물질의 빛깔에 따르나 
유리는 무심(無心)하여 다른 빛깔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문수사리여, 
여래도 역시 그러하니, 
혹 어떤 중생은 부처가 열반에 들어 법 바퀴 굴리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뭇 마군을 항복 시키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널리 신통을 나타내어서 대소변 보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식사하는 것을, 
혹은 잠자는 것을, 
혹은 다니는 것을, 
혹은 웃는 것을 보기도 하여 
중생들의 뜻대로 다 보니, 
여래가 바로 그러하다.
 
 

문수사리여, 
또다시 
허공이 색(色)이 없으면서 색이 그 가운데 나타나되 
허공은 잡음[取]이 없으면서 모든 색을 잡으며, 
허공은 뜻이 없으면서 생각을 내며, 
허공은 처소가 없으면서도 중생들의 처소가 되며, 
허공은 무너짐이 없으면서도 무너지는 것은 허공을 의지하니, 

▸ 여래의 법신(法身)은 바로 더러운 몸이 아니고, 
피와 살의 몸이 아니고, 
바로 금강(金剛)의 몸이며, 
부수어지지 않는 몸이고, 
부술 수 없는 몸이고, 
비유할 수 없는 몸이나 능히 일체 모든 색을 나타내니, 
지혜ㆍ금강의 몸으로써 부수어지는 몸으로 나타낸다.
 
 
문수사리여, 
만약에 부처가 열반에 들지 않는다면 
세간에선 
부처의 이 법신이 금강이 아니기에 부수어지며, 
또는 금강이기에 부수어지지 않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의 지혜 몸이 열반을 나타내 보임은 
진실한 열반이 아니고 
방편으로써 일부러 열반에 드는 것을 설하기 때문이다.
 
▸ 문수사리여, 
열반이란 뜻이 많으니, 
큰 것은 
열반이 아닌데 이름하여 열반이라 하는 것은 
의식이 없는 대승(大乘) 열반으로서 
이를 큰 반열반[大般涅槃]이라 하며, 

작은 열반[小涅槃]이란 연각(緣覺)과 성문(聲聞)의 열반과 같은 것이다.

큰 것은 열반이 아니라는 것은 열반이란 허공과 같기 때문이며, 
작은 열반이란 바로 자신의 업(業)이고 다른 사람의 업이 아니니, 
이 때문에 작은 열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열반이란 아래의 뜻이고, 
내가 말하는 죽음이란 열반을 이른다. 

여래는 죽지 않으니, 
왜냐하면 성문도 오히려 나고 늙고 죽음이 없어서 
근심하거나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데 
하물며 여래의 법신처럼 
불가사의한 몸이고 나지 않는 몸이고 없어지지 않는 몸이고 사라지지 않는 몸이겠느냐. 
 

저 오랜 수명을 지닌 천신들이 여래가 열반에 드는 것을 보고는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사모함은 
반야바라밀의 인연을 심을 만하고, 
성문과 연각과 보살의 인연을 심을 만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여래의 금강 몸이
오늘날 이미 파괴되었다 하면
이 몸도 오히려 파괴되거늘
하물며 힘 약한 자이겠느냐.
 
이것을 슬퍼하고 그리워하여
빨리 법신을 얻을지니
이 때문에 여래는
열반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노라.
 
여래의 미묘한 법신은
보거나 들을 수 있는 법이 아니고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니만큼
이 법신이야말로 부사의한 법신이네.
 
그 대중 가운데 대의(大意)라는 보살이 이 게송을 읊었다.
 
여래가 열반이 아니고
열반이 여래가 아니고
또한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아니니
있고 없는 상(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니라.
 
어떤 이가 모니(牟尼)께서
생사를 아주 여읨을 보면
집착하는 것 없음을 이루어
이것저것에 다 집착하지 않으리라.
 



▸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여래로서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다면 
어떻게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미래의 중생들이 이러한 의심을 가질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마치 허공이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역시 일체 중생들의 처소가 되고, 
4대(大)가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일체 중생들이 의지하는 것이 되고, 
해와 달이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광명이 일체 중생들을 비추고, 
수목(樹木)이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능히 중생들에게 꽃과 과일을 주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문수사리여, 
어떤 마니(馬尼) 구슬이 일체 중생들의 뜻대로 되었다. 
바다 속에서 생겨난 그 구슬을 당기[幢] 위에 안치하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에 따라 금ㆍ은ㆍ유리ㆍ진주 등 보물이 그 마니 구슬로부터 나와 
능히 그 수명을 길이 늘이되, 
마니 구슬은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중생의 뜻을 따라 줄지 않았으니, 
설사 이 세간의 모든 것이 다 소멸되어 다른 곳으로 갈지라도 
구슬이 만약 떨어지지 않는다면 큰 바다는 마르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여래도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되 
여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래는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부처는 마음도 뜻도 알음알이도 없으면서
일체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니
이같이 여래의 부사의함을
능히 믿는 자도 역시 그러하리.
 


그때 문수사리가 여래를 찬탄하여 이 게송을 읊었다.
 
조어사[調御]ㆍ무등쌍(無等雙)의
한 길 여섯 자 몸 법신인
모든 부처님께 저는 예배하고
또 불탑(佛塔)에 예배하옵니다.
 
태어난 곳과 득도(得道)한 곳과
법 바퀴 굴리는 곳과 열반한 곳과
다니고 서고 앉고 누웠던
일체 모든 곳에도 다 예배하옵니다.
 
모든 부처님 부사의하시고
묘한 법 또한 그러하며
과보를 믿는 자라면
그도 역시 부사의할 것이며
 
능히 이 게송으로써
여래를 찬탄하는 자도
천만억 겁(劫)에 걸쳐
모든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여래야말로 한량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는 곧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부처는 감자(甘蔗) 종성에 태어나
사라지고 나면 다시 태어나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건 부처에게 귀의한다면
지옥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부처는 감자 종성에 태어나
사라지고 나면 다시 태어나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건 부처에게 귀의한다면
아귀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부처는 감자 종성에 태어나
사라지고 나면 다시 태어나지 않으니
어떤 사람이건 부처에게 귀의한다면
축생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 4. 무아품(無我品) ◂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미래세 중생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我]가 있어서 일체 곳에 두루한다. 
왜냐하면 일체 행 때문이다. 
3세(世)의 고락(苦樂)과 진애(瞋愛)를 벗어났으니, 
이것이 나라는 상(相)이다.’
세존이시여, 외도들이 나를 계교하는 그 뜻도 이와 같은 것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마치 자석(磁石)이 일체 쇳가루[鐵屑]를 흡수하는 것과 같으니, 
쇳가루가 곧 나인가, 
자석이 곧 나인가. 
만약 그대가 말하기를, 
‘쇳가루가 내가 아니고 자석이 내가 아니다’라 한다면, 
이는 두루하지 않는 것이며, 
그 반면 자석과 쇳가루가 다 나라고 한다면 
어떻게 나로써 스스로 나를 흡수할 수 있으랴. 
역시 두루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스스로가 그 몸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 모든 물질은 4대(大)여서 일체가 무상(無常)한지라,  
만약 무상한 것이라면 진실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은 것이라면 진리가 아니고, 
진리가 아니라면 그럴 이치가 없으니, 
그럴 이치가 없기 때문에 나라는 것이 없다.
 
 
문수사리여, 
마치 노인이 밤중에 앉아 스스로 두 무릎을 잡고서 말하기를, 
‘어떻게 이 조그마한 두 아이가 있게 되었느냐?’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이 노인의 몸속에 나라는 것이 있었다면 
어떻게 자신의 무릎을 알지 못하고서 조그마한 아이라고 말하겠는가. 
이 일을 보더라도 실상 내가 없는 것이다.
이 삿된 소견을 지닌 사람들은 그럴 이치가 없음에도 그릇 고집하는지라. 

▸ 마치 아지랑이를 보고서 물이라는 생각을 내는 것과 같으니,  
실재로 물이 없건만, 
눈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내가 없음에도 
그릇 나라는 생각을 내는 것은 
다 어둡고 미혹되고 삿된 소견이고 바른 소견이 아니다.
 
 
만약에 내가 있어서 일체 곳에 두루한다면 
이는 다섯 갈래[五道]에 모두 두루 할 것이다. 
인도[人]와 천도[天]는 즐거운 곳이고, 
지옥ㆍ아귀ㆍ축생은 괴로운 곳인데, 

▸ 만약 내가 일체 곳에 두루한다면  
지옥의 괴로움을 받는 내가 
곧 인도ㆍ천도에서도 괴로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즐거움이란 선업(善業)으로 말미암아 얻고 
괴로움이란 악업(惡業)으로 말미암아 얻으며, 
즐거움이란 애착을 내고 괴로움이란 진심을 대며, 
혹 용맹스럽거나 건장함도 있고 혹 겁내거나 두려워함도 있을 것이니, 
이와 같이 모든 상(相)이 다르기 때문에 두루하지 않은 줄 알아라. 
나는 이것을 진실한 관찰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내가 3세를 뛰어넘었다면 
과거세는 이미 지나가 등불처럼 사라졌고, 
미래세는 아직 다가오지 않아 미래의 등불과 같고, 
현재세는 머물지 않아 마치 흐르는 물과 같으며, 
나라는 자체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어서 
어떤 시절(時節)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절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만약 시절이 없다면 수(數)가 없고 
수가 없으므로 나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阿)의 글자는 나를 여의는 음성이고, 
다(多)의 글자는 파괴하지 않는 것이고, 
마(魔)의 글자는 교만을 없애는 것이며, 

또 아(阿)의 글자는 진실하게 나를 여의는 것이니, 
진실하게 나를 여의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벗어나는 것을 아(阿)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글자로써 분별한 까닭은 반드시 내가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자석(磁石)은 쇳가루를 흡수하니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나일까.
두루하지 않고 스스로가 흡수함은
반드시 내가 없기 때문이네.
 
마치 목마른 사람이 아지랑이 보고서
물이 아님에도 물이란 생각을 내듯이
삿된 소견으로 나를 잘못 고집하는
그 일도 역시 그러하나니
아(阿)의 글자를 분별한다면
반드시 내가 없음을 알리라.
 



▸ 5. 열반품(涅槃品)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열반은 성문ㆍ연각ㆍ범부로서 분별할 수 없으니, 
여래ㆍ정변지(正遍知)께서만 설할 수 있습니다.”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열반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번뇌를 끊을 것이 없기 때문에 도달하는 곳이 없다. 
도달함이란 얻는다는 뜻이다. 
도달함이 없기 때문에 얻을 것도 없으니, 
왜냐하면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기 때문이다. 
아주 없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음도 없고, 
항상 있거나 항상 있지 않음도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 아주 없지 않으니 사라지지 않고
항상 있지 않으니 나지 않고
떨어뜨리지 않으니 떨어지지 않고
가지 않으니 머물지도 않노라.
 
“언제나 열반에 머물러 
아주 없어지지도 않고 항상 있지도 않는 상(相)이니, 
왜냐하면 생사가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나는 오히려 생사를 보지 않았는데 
하물며 생사 과환(過患)을 보았겠으며, 
문수사리여, 
나는 오히려 열반을 보지 않았는데 
하물며 열반의 공덕을 보았겠느냐?”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 만약 한 가지 법을 본다면
다른 법도 다 볼 수 있을 것이니
한 가지 법에 공하기 때문에
일체 법이 역시 공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법이 다 공한 줄을 알아야 하니,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곧 나지 않는 것이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곧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 
항상 하지 않는 것이라면 곧 나지 않는 것이며, 
번뇌를 끊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번뇌의 자리가 없기 때문에 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장애가 없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장애가 생김이 없으며, 
선(善)함도 없고 선하지 않음도 없기 때문에 장애가 없으니, 
문수사리여, 이것을 열반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사라지지 않고 나지도 않고
아주 없어지지 않고 항상 있지도 않고
막히지 않고 거리끼지도 않는
이것을 열반이라고 말하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항상 머무는 열반에 해ㆍ달ㆍ별과 땅ㆍ물ㆍ불ㆍ바람도 없고, 
낮밤과 수량도 없으며, 
색(色)도 없고 형상도 없고, 
늙음과 병듦과 죽음도 없고, 
연세(年歲)도 없고 하는 일도 없어 
항상 그대로 뭇 고업(苦業)을 여의니, 
이러한 열반은 선한 사람이 말한 바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저것에는 해ㆍ달ㆍ
별과 4대(大)가 없고
낮밤 또는 수량과
형상ㆍ색(色) 및 허공도 없고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없고
 
연세도 없고 하는 일도 없는지라
이미 생사의 근본을 끊어
항상 그 모양 그대로인
이러한 열반의 상(相)은
선한 사람이 말한 바이네.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러 외도들은 세간을 공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공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니, 
이는 외도들이 삿된 뜻으로 분별하는 것이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이 외도들의 뜻은 진실한 관찰이 아니다. 

▸ 만약 세간이 공하다면  
생사가 없을 것이니, 
왜냐하면 공하기 때문이다. 
생사가 공하면 열반도 공하고, 
열반이 없으면 신통도 없으며, 


만약 세간이 공하지 않다 하더라도 
생사가 역시 없을 것이니, 
왜냐하면 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사가 공하지 않으면 열반도 없고 
열반이 없으면 신통도 없다.
 

문수사리여, 
만약 세간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면 열반이 필요하겠는가. 
만약 생사가 없어짐이 없다면 생사라 하지 않을 것이니, 
왜냐하면 없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생사가 없어짐이 없다면 곧 생사를 열반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문수사리여, 
세간이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으며, 
세간을 끊어야 한다거나 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끊음이란 번뇌를 끊는 것이고 
끊지 않음이란 번뇌를 끊지 않는 것이지만 
번뇌와 번뇌 아닌 것도 없고 나아가 해탈도 없으니, 
만약 해탈이 없다면 열반도 없다.
 
문수사리여, 
없어짐이라는 그것마저도 없으니, 
왜냐하면 
생사는 공하면서도 공하지 않기 때문에 없어질 것이 없다. 
만약 생사가 이와 같다면 그 누가 열반하기를 좋아하랴.”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만약 세간이 공한다면
생사가 없을 것이니
생사가 없기 때문에
열반도 역시 없을 것이며
세간이 만약 공하지 않더라도
 
역시 생사가 없을 것이니
생사가 만약 없다면
열반도 역시 없을 것이라.
생사가 만약 이와 같다면
그 누가 열반하기를 좋아하랴.
 





▸ 6. 반야바라밀품(般若波羅蜜品) ◂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에 있어서 일체 성문ㆍ연각이 반야바라밀로부터 나옵니까? 
일체 부처님과 일체 법이 반야바라밀로부터 나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그렇고 그렇다. 

▸ 일체 성문ㆍ연각이나 일체 부처님과 일체 법이 반야바라밀로부터 나오니,  
보살이 만약 물질의 행[色行]에 있어서 상(相)을 행하거나, 
물질의 무너지는 행[壞行]에 있어서 상을 행하거나, 
물질의 사라지는 행[滅行]에 있어서 상을 행하거나, 
물질의 공한 행[空行]에 있어서 상을 행한다면 
이러한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방편이 없을 것이다.
문수사리여, 
반야바라밀을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로써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반야바라밀을 취할 수 없다면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이 수행은 곧 수행이 아니니,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로써 수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마음이란 모은다는 뜻이며, 
뜻이란 기억한다는 뜻이며, 
의식이란 현재에 안다는 뜻이니, 
이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로써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니, 
이것으로써 수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수행이고, 
아무런 처소 없는 것으로써 수행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수행이란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 의지하지 않고,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고 
안팎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니, 
이러한 수행이 곧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또 형상과 색(色)을 닦지 않는 그것이 반야를 수행하는 것인 만큼, 
땅도 물도 불도 바람도 아닌 이러한 수행이 반야의 수행이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성문도 연각도 아니며, 
선(善)과 선하지 않음과 무기(無記)도 아니고, 
12인연도 아니며,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남자 아님도 아니고 여자 아님도 아니며, 
범상함도 아니고 슬기로움도 아니며,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는 것도 아니며, 
헤아릴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의지할 것도 없고 명자(名字)도 없으며, 
같은 상(相)도 없고 다른 상도 없으며, 
느는 것도 없고 주는 것도 없어서 제 성품이 청정하고 진실하여 깨달을 수도 없으며, 
널리 두루 함이 허공과 같아 물질도 없고 조작도 없으며, 
3세를 벗어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며, 
나아가 해ㆍ달과 별도 없으니, 
이러한 수행이야말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진실은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반야바라밀은 진실이 아니다.

문수사리여, 
이러한 수행을 일러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이 법은 부사의한 법이어서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를 여의고
일체 언어(言語)가 끊어졌으니
이 수행이 바로 반야의 수행이네.


 
▸ 7. 유여기품(有餘氣品)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성문ㆍ연각은 번뇌를 일으킴이 있습니까? 
있다면 몇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남은 습기[餘氣]가 있기 때문에 일으킨다는 것이니, 
마치 향기(香氣)와 같다. 
 

이른바 습기에 스물네 가지가 있으니, 
업기(業氣)ㆍ견처기(見處氣)ㆍ염기(染氣)ㆍ색염기(色染氣)ㆍ유염기(有染氣)ㆍ
무명염기(無明染氣)ㆍ행기(行氣)ㆍ식처기(識處氣)ㆍ
명색기(名色氣)ㆍ육입기(六入氣)ㆍ촉기(觸氣)ㆍ수기(受氣)ㆍ애기(愛氣)ㆍ취기(取氣)ㆍ
유기(有氣)ㆍ생기(生氣)ㆍ노기(老氣)ㆍ병기(病氣)ㆍ사기(死氣)ㆍ
우기(憂氣)ㆍ비기(悲氣)ㆍ고기(苦氣)ㆍ뇌기(惱氣)ㆍ
피극기(疲極氣)ㆍ의기(依氣) 등 
이것을 스물네 가지 습기라고 한다.
 
그리고 몸ㆍ입 뜻의 남은 습기를 업기(業氣)라 하며,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견처기(見處氣)라 하며, 
옷과 발우 등에 집착하는 것을 염기(染氣)라 하며, 
열 가지 물질에 대한 의욕을 색염기(色染氣)라 하며, 
무색계(無色界)를 유염기(有染氣)라 하며, 
청정하지 못한 지혜와 장애 있는 지혜와 두루 알지 못하는 지혜를 무명기(無明氣)라 하며, 
몸과 입과 뜻으로써 갖가지 깨닫는 것을 행기(行氣)라 하며, 
일체 물질을 기억하되 괴롭고 즐거운 생각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생각을 가져 이같이 분별하는 식처기(識處氣)라 하며, 
굳고 습하고 뜨겁고 가벼운 일체의 작용이 다 있는 것을 명색기(名色氣)라 하며, 
눈에 대한 빛깔과 귀에 대한 소리와 코에 대한 냄새와 혀에 대한 맛과 몸에 대한 감촉과 뜻에 대한 법을 6입기(入氣)라 하며, 
차갑고 뜨겁고 굳고 습하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따뜻하고 미끄러운 이것을 촉기(觸氣)라 하며, 
괴롭고 즐거움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수기(受氣)라 하며, 
성명(姓名)ㆍ국토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와 고뇌ㆍ기갈 등 그 모든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을 애기(愛氣)라 하니라.
 욕심으로 잡는 것과 소견대로 잡는 것과 계율을 위해 잡는 이것을 취기(取氣)라 하며,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그 모든 존재를 유기(有氣)라 하며, 
뒷날 괴로운 처지에 반드시 태어날 것을 생기(生氣)라 하며, 
모든 감관이 쇠하고 허물어지는 이것을 노기(老氣)라 하며, 
갖가지 질병과 환란을 병기(病氣)라 하며, 
열반한다는 생각과 죽는다는 생각을사기(死氣)라 하며, 
신체가 바싹 마른 것을 우기(憂氣)라 하며, 
부르짖고 울부짖는 것을 비기(悲氣)라 하며, 
온몸에 번열(煩熱)이 나는 것을 고기(苦氣)라 하며, 
지나치게 괴로운 것을 뇌기(惱氣)라 하며, 
극도로 피곤한 것을 피극기(疲極氣)라 하며, 
공포에 떨어 귀의할 곳이 없는 이것을 의기(依氣)라 하나니, 
문수사리여, 
이것이 이른바 스물네 가지 습기이다.
 
문수사리여, 
모든 불세존은 의기(依氣)에 돌아감이 없기에 귀의하는 곳이니, 
왜냐하면 여래만이 중생들의 귀의하는 곳이 되고 
일체 중생은 귀의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존은 상(相)이 있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없고 쌓인 인연도 없으므로 
성문들은 법을 듣지만, 
부처님께서는 법을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르시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아라한도 습기가 있으니
그 허물과 근심이 있기 때문이라.
부처님만이 홀로 벗어나셨으므로
중생들이 귀의하는 곳이 되네.
 




▸8. 내거품(來去品) ◂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는 것이란 무슨 이치이고 
가는 것이란 무슨 이치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오는 것이란 나아간다는 이치이고 가는 것이란 저버린다는 이치이니, 
만약 나아감도 저버림도 없어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면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며, 

오는 것이란 어리석다는 이치이고 가는 것이란 어리석지 않다는 이치이니, 
어리석음도 아니고 어리석지 않음도 아닌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며, 

오는 것이란 함이 있다는 이치이고 가는 것이란 함이 없다는 이치이니, 
함이 있는 것도 없고 함이 없는 것도 없는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며, 

오는 것은 의식[識]이란 이치이고 가는 것은 의식이 아니란 이치이니, 
의식도 아니고 의식이 아님도 아닌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며, 

오는 것은 명색(名色)이란 이치이고 가는 것은 명색이 아니라는 이치이니, 
명색도 아니고 명색이 아님도 아닌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며, 

오는 것은 6입(入)이란 이치이고 가는 것은 6입이 아니라는 이치이니, 
느낌도 아니고 느낌이 아님도 아닌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니, 
나아가 근심하고 슬퍼하고 극도로 피로한 것도 그러하다.
 
문수사리여, 
오는 것은 나[我]라는 이치이고, 
가는 것은 내가 없다는 이치이니, 
나도 아니고 나 없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는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며, 

오는 것은 항상하다는 이치이고, 
가는 것은 항상함이 아니라는 이치이니, 
항상함도 아니고 항상하지 않음도 아닌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며, 
오는 것은 끊음이란 이치이고 가는 것은 끊음이 아니란 이치이니, 
끊음도 아니고 끊음이 아님도 아닌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며, 

오는 것은 있다는 이치이고, 
가는 것은 없다는 이치이니,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이것이 성인이 행하는 경지이다. 

문수사리여, 
온다는 것과 간다는 것의 이치가 이러하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 오고 가는 이치 상(相)이 없고
모든 법도 다 그러한지라,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이것을 오고 가는 이치라 하네.
 



 
▸ 9. 중도품(中道品)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두 가지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일체 성문과 연각과 보살들이 의혹이 없이 
중도(中道)를 알고, 
나아가 범부들도 신심을 낼 수 있습니다.”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명(明)과 무명(無明)이 두 가지가 없으니, 
두 가지가 없기 때문에 세 가지 없는 지혜를 이룩하니, 
문수사리여, 
이를 일러 중도를 구족하여 진실하게 모든 법을 관하는 것이라 하며, 
 

행(行)과 무행(無行)이 두 가지가 없으니, 
두 가지가 없기 때문에 세 가지 없는 지혜를 이룩하니, 
문수사리여, 
이를 일러 중도를 구족하여 진실하게 모든 법을 관하는 것이라 하며, 

의식[識]과 의식 아닌 것과 
나아가 늙고 죽음과 늙고 죽음 아닌 것의 두 가지 없음도 
역시 그러하다.
 

▸ 문수사리여,  
무명이 있다는 것도 한쪽에만 치우치고, 
무명이 없다는 것도 한쪽에만 치우침이니, 
이는 둘 다 치우친 것이라. 
그 중간에 물질이 없어 볼 수 없으며, 
처소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서로 기다리는 것도 없고 어떤 형상을 나타내는 것도 없으니, 
문수사리여, 
이것이 이른바 중도이다. 
지어감[行]과 의식[識]과 나아가 늙고 죽음이 역시 그러하다.



문수사리여, 
이 중도를 구족하여 진실하게 모든 법을 관하는 것이란 모든 법이 두 가지가 없다는 것이니, 
두 가지 없다는 것에 어떤 이치가 있는가 하면 
이른바 말타마(末陀摩)[말(末)은 ‘말라’는 뜻이고 타마(陀摩)는 ‘중도’라는 뜻이다. 
‘중도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것이 말타마이다.]이다. 
왜냐하면 항상하다는 소견[常見]과 있다는 소견[有見]을 갖지 않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말타마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모든 법이 두 가지가 없는가 하면
또 세 가지도 있지 않으니
이 중도를 구족하는 것을
진실한 도라고 이르네.
 




▸ 10. 세간계품(世間戒品) ◂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의 옷은 몇 종류의 빛깔이 있으며, 
어떻게 귀의해야 합니까? 
원하건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 모든 보살을 요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너무 붉은빛도 아니고 너무 누렇지도 않고 너무 검지도 않고 너무 희지도 않으며 
청정하고 법다운 빛깔이어야 하니, 
세 가지 법복과 그 밖의 다른 옷도 다 이러한 빛깔이어야 한다. 
스스로 염색하거나 남을 시켜 염색하여 법대로 만들어서 
수시로 세탁하되 항상 정결하게 하며, 
이와 같이 침구[寢具]도 푸르고 누런 잡색을 사용한다.
 
문수사리여, 
보살의 옷 빛깔이 이러한지라, 
보살은 속마음이 고요한 만큼 법대로 옷을 입어야 대승(大乘)과 서로 어울리며 
열반승(涅槃僧)을 입되 복사뼈[踝]로부터 두 손가락 정도의 사이를 떨어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보살이 국왕과 대신과 함께 말을 할 때에 
상대가 한 번 물으면 역시 한 번 대답하여 서로 차이(差異)가 없게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 만약 상대가 질문을 많이 하면 역시 대답도 많이 해야 하니,  ◂
 



이와 같이 다른 바라문ㆍ찰리(刹利)ㆍ비사(毘舍)ㆍ수타(首陀)ㆍ사문ㆍ사리(闍利)ㆍ화상과 
부모ㆍ처자ㆍ노복과 그 밖의 비천하고 빈궁한 걸인(乞人)에게도 그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묻는 대로 대답하며, 

혹은 하늘ㆍ용ㆍ야차(夜叉)ㆍ나찰(羅刹)ㆍ비사사(毘舍闍)와 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가라(摩睺羅伽)와 
사람과 귀신과 부처님과 연각ㆍ성문ㆍ보살ㆍ범부도 

▸ 물음에 따라 각각 법답게 대답할 뿐,  
이익을 위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하지도 않고 
삿된 생활을 위하지도 않으며, 
희롱하거나 비웃지도 않아야 한다.”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귀의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귀의하는 자는 마땅히 이렇게 말할 것이니, 
‘대덕이시여, 
저 아무개는 보리에 이르기까지 부처님께 귀의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법에 귀의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승가에 귀의하옵니다’라고 
두 번, 세 번 이와 같이 말하며, 

다시 말하기를, 
‘저 아무개는 이미 부처님께 귀의하고, 
이미 법에 귀의하고, 
이미 승가에 귀의하였습니다’라고 이와 같이 세 번 말하며, 
다음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대덕이시여, 
저는 보살의 계율을 지킴으로써, 
저 아무개는 보리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살해하지 않을 뿐더러 아예 살해할 생각을 여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남의 것을 훔치지 않을 뿐더러 아예 훔칠 생각을 여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범행(梵行)이 아닌 것을 하지 않을 뿐더러 아예 범행이 아닌 생각을 여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망령된 말을 하지 않을 뿐더러 아예 망령된 말의 생각을 여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술을 마시지 않을 뿐더러 아예 술을 마실 생각을 여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향ㆍ꽃 등을 붙이지 않을 뿐더러 아예 그러한 생각을 내지 않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노래하거나 춤추어서 즐거움을 내지 않을 뿐더러 아예 노래와 춤에 대한 생각을 여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높고 넓고 큰 평상에 앉거나 눕지 않을 뿐더러 아예 큰 평상에 대한 생각을 여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한낮이 지나면 먹지 않을 뿐더러 아예 한낮이 지나서 먹는다는 생각을 여의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금ㆍ은 등을 갖지 않을 뿐더러 아예 금ㆍ은에 대한 생각을 여의고, 
나아가 6바라밀과 대자대비를 구족하겠습니다.’”
 



▸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서원을 내어 보리에 이르기 위해
불ㆍ법ㆍ승 삼보에 귀의하고
열 가지 계율을 받아 지녀
또 보리에 이르기를 맹서하며
 
6바라밀과 4등(等)을
모두 다 원만히 갖출 것이니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대승과 걸맞을 것이네.
 
 








▸ 11. 출세간계품(出世間戒品) ◂
 

 
▸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로서 세간을 벗어나는 계율이 몇 가지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만약 마음으로써 
남자ㆍ여자와 남자가 아니라거나 여자가 아니라는 것 등을 분별한다면 
이는 보살이 바라이(波羅夷)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마음으로써 축생과 아귀의 남자ㆍ여자와 남자가 아니라거나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별하거나, 
또는 모든 천신의 남자ㆍ여자와 남자가 아니라거나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별한다면 
이는 보살이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乘)을 얻을 만하지 못하고, 
세간을 벗어난 보살의 계율을 받고서도 

▸ 자비심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이는 보살이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하고, 
만약 남의 물건의 작고 큰 것이나 길고 짧은 것이나 빛깔이 있고 형상이 있는 것이나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감추어져 있고 장소를 옮기려 하는 것이나 
봉인(封印)되어 있고 저장되어 있는 그러한 것에 

▸ 마음으로 훔칠 생각을 낸다면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며,  ◂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 망령된 말을 일으킨다면 마음으로 바라이를 범하는 것이다. ◂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나무의 잎ㆍ껍질ㆍ즙(汁) 등을 취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이는 보살이 승가바시사(僧伽婆尸沙)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노래와 춤으로 오락을 일삼거나 꽃ㆍ향ㆍ영락(瓔珞) 등의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는 보살이 승가바시사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광대한 평상에 대한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는 보살이 승가바시사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한낮이 지나서 먹는다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는 보살이 승가바시사를 범하는 것이다.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금ㆍ은 등 값진 보배를 가질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는 보살이 승가바시사를 범하는 것이다.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몸의 털을 깎거나 손톱을 깎아서 초생달[初月] 같은 모양을 내려는 그러한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는 보살이 투란차(偸蘭遮)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초목(草木)을 베거나 쪼개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투란차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남의 명예와 또는 색(色)ㆍ성(姓)ㆍ재물과 기술ㆍ거승(車乘)ㆍ신력(身力) 등을 헐뜯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는 투란차를 범하는 것이다.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불ㆍ법ㆍ승의 물건이나, 
또는 꽃ㆍ향과 바르는 향이나 의복, 값진 보물 등을 보살이 다리로 밟고 넘는다면 
바야제(波夜提)를 범하는 것이며, 

만약 불탑이나 부처님께서 다니셨던 곳이나 보리수나 법륜(法輪)을 굴리셨던 곳을 다리로 밟거나 넘는다면 
바야제를 범하는 것이다.



만약 믿지 않는 자가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혀를 내밀고 눈을 꿈쩍이어 
모든 위의(威儀)를 훼손하거나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면 
돌길라(突吉羅)를 범하는 것이다.
 
만약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남의 물건과 남이 좋아하는 것과 갖가지 의복ㆍ완구[翫] 등을 보고 
거짓을 나타내어 이익을 구하거나, 
남의 죄과(罪過)를 말하거나 이러한 생각을 일으켜도 
이는 바라제사(波羅提舍)를 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몸과 입의 행이 3승을 얻을 만하지 못함으로 해서 
만약 위의 모든 죄역(罪逆)을 범하기 전에 수호(守護)해서 일어나지 않게 한다면, 
이는 보살의 승염가타니(僧炎伽陀尼)
[승염(僧炎)은 수호한다는 뜻이고, 가타니(伽陀尼)는 나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이다.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을 다름이 없게 하는 이것은 
보살이 마땅히 배워야 하므로, 
이것을 일러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계율이라 한다.”
 





▸ 12. 상출세간계품(上出世間戒品) ◂
 

 
▸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일러 세간을 벗어나는 최상의 계율로서 
번뇌가 없고 불가사의하고 처소가 없고 집착함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여, 
계율이란 저 중생들에게 나[我]라는 것도 없고 나가 없다[無我]는 것도 없으며, 
일도 없고 인(因)도 없고 사람을 교화하는 것도 없으며, 
행도 없고 행 아닌 것도 없고 행하는 처소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물질도 없고 물질의 모양도 없고 물질의 모양이 없는 것도 없으며, 
고요함도 없고 고요하지 않은 것도 없으며, 
취할 것도 없고 취하지 않을 것도 없으며, 
진실함도 없고 진실하지 않음도 없으며, 
몸도 없고 말도 없고 설함도 없고 마음도 없으며, 
세간도 없고 세간 아닌 것도 없으며, 
세간의 법도 아니고 세간의 법 아닌 것도 아니며, 
스스로가 계율을 찬탄하지도 않고 남의 계율을 헐뜯지도 않으며, 
남의 허물을 찾지도 않고 자신이 계율을 지킴으로 해서 다른 사람을 깔보지도 않으며, 
계율을 깨닫지도 않고 계율을 생각하지도 않으니, 
생각할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이른바 세간을 벗어나는 최상의 성스러운 계율이니 
번뇌가 없어 나는 것도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삼계를 벗어나 일체의 의지함을 떠난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출세간의 계율을 지닌 사람은
더러움이 없고 같음이 없고
교만도 없고 의지함도 없고
무명과 얽매임도 없는지라.
 
이러한 모든 과환(過患)의
일체가 다 없으며
안의 고요함과 바깥의 고요함도 없고
안팎의 고요함도 없으며
안팎의 깨달음도 없으므로
아는 자는 해탈할 수 있네.
 
“문수사리여, 
이 계율을 지닌 사람은 
불법에 있어서 
스스로가 몸을 관하지 않고 
수명에 집착하지 않고 
일체의 생(生)에 집착하지 않아 
바른 행을 얻으니, 
이것이 곧 바르게 머무는 것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이른바 불법(佛法)에 계율을 지닌 사람은 
세간에 집착하지 않고 
세간에 의지하지 않을 뿐더러 
광명을 얻어 밝음도 없고 어두움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므로, 
자신에 대한 생각도 없고 남에 대한 생각도 없어 
일체 생각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 청정한 계율은 
이 언덕도 아니고 저 언덕도 아니고 중류(中流)도 아니어서 
집착함도 없고, 
얽매임도 없으며, 
죄과(罪過)도 없고 번뇌도 없는 것이다.
 

▸ 문수사리여,  
이 계율을 지닌 사람은 
불법이나 명색(名色)에 마음이 집착하지 않아 항상 평등하고 요익하며, 
언제나 고요한 마음이어서 나도 없고 내 것[我所]도 없으니, 
이 사람은 계율에 설한 바와 같이 
배울 것도 없고 해탈할 것도 없고 
할 일도 없음에 머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상의 도를 얻은 청정한 계의 상(相)으로서 
더 뛰어남이 없는 계율이고 
선정이 없는 계율이고 
지혜가 없는 계율이며, 
이 성인의 성품은 얻을 수 없는 것인 만큼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계율이고 
공하여 나와 같은 이가 없는 계율이고, 
안정된 성스러운 선정이니, 
만약 이 청정한 선정으로써 수행하는 슬기를 이룬다면, 
슬기로써 지혜를 얻고 
지혜로써 해탈을 얻을 것이다.”
 
 






▸13. 보살수계품(菩薩受戒品) ◂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 “세존이시여, 
만약 선남자ㆍ선여인이 보살이 받는 계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마땅히 부처님 앞에 지성으로 예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저 아무개는 원하옵니다. 


여러 부처님께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여러 불세존처럼 
부처님의 지혜가 집착이 없음을 바로 앎으로써 
제가 마땅히 보살심을 내어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해 위없는 도심(道心)을 내며,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보살들처럼 위없는 보리심을 내어 
일체 중생을 
부모ㆍ형제ㆍ자매ㆍ남녀ㆍ친우와 같이 생각하여 
그들을 해탈시켜 생사를 벗어나게 하고, 
나아가 삼보리심(三菩提心)을 내어 부지런히 정진하게 하며, 
모든 중생들이 필요로 하는 일체의 재물과 법을 시여(施與)하되 
이 재물과 법으로써 일체 중생을 거두어들여 
점점 편의에 따라 중생들을 해탈시켜 생사를 벗어나게 하고, 
나아가 위없는 보리에 편히 머물게 하기 위해 
제가 정진을 일으켜 방일하지 않겠습니다.’
이와 같이 두세 번 거듭해야 할 것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처음 보리심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 
 

문수사리여, 
이는 모든 보살이 받고 행하는 것으로서 
보살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며, 
성문ㆍ연각을 위한 것이 아니고, 
범부와 모든 선하지 않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 14. 자모품(字母品)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일체 자모(字母)가 어떤 것이기에 
일체 법이 모두 이 자모와 다라니(陀羅尼) 글자에 들어간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일체 법이 자모와 다라니 글자에 다 들어간다.
 
▸  문수사리여, 
가령 아(阿)자를 말하면 무상(無常)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장음 아(阿)자를 말하면 나[我]를 여읨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이[伊]자를 말하면 모든 감관[根]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장음 이(伊)자를 말하면 질역(疾疫)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우(憂)자를 말하면 황란(荒亂)하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장음 우(憂)자를 말하면 낮은 중생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리(釐)자를 말하면 곧고 부드러움이 서로 계속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장음 리(釐)자를 말하면 염착[染]된 유희(遊戱)를 끊음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리(梨)자를 말하면 상생(相生)하는 법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장음 리(梨)자를 말하면 삼계[三有]에 염착된 모양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견(堅)자를 말하면 과환(過患)을 일으킴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예(翳)자를 말하면 뛰어나고 바른 도[聖道]라 함을 내는 음성이다. 
 
 
오(烏)자를 말하면 집음[取]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오(燠)자를 말하면 화생(化生)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암(菴)자를 말하면 내 것이 없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아(疴)자를 말하면 아주 없어짐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가(迦)자를 말하면 업(業)의 과보를 제거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가(佉)자를 말하면 허공과 같은 일체 법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가(伽)자를 말하면 깊은 법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항(恒)자를 말하면 굳고도 무거운 무명과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제거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아(誐)자를 말하면 미리 알아서 행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차(遮)자를 말하면4성제(聖諦)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차(車)자를 말하면 탐욕에 더럽힘을 끊음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사(闍)자를 말하면 늙고 죽음을 건너간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선(禪)자를 말하면 나쁜 언어(言語)를 조복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다.
 
야(若)자를 말하면 편히 머묾을 설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다(多)자를 말하면 번뇌를 끊어 없앰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타(他)자를 말하면 대답할 것을 그만둔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타(陀)자를 말하면 악마의 적을 조복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단(檀)자를 말하면 모든 경계를 없앰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나(那)자를 말하면 모든 번뇌를 제거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가벼운 다(多)자를 말하면 다름이 없어 파괴하지 않는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가벼운 타(他)자를 말하면 용맹스럽고 힘세고 빠르고 두려움이 없음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가벼운 타(陀)자를 말하면 보시ㆍ적정(寂靜)ㆍ수호(守護)ㆍ안온(安穩)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가벼운 단(檀)자를 말하면 성스러운 일곱 가지 재물[七聖財]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가벼운 나(那)자를 말하면 이름과 물질[名色]을 분별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파(波)자를 말하면 제일의(第一義)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파(頗)자를 말하면 작증(作證)하여 과(果)를 얻는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파(婆)자를 말하면 얽매임을 해탈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범(梵)자를 말하면 삼계[三有]라 함을 내는 음성이다.
 
마(磨)자를 말하면 교만을 끊음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야(耶)자를 말하면 법과 같이 분별한다 함을 내는 음성이며, 
라(囉)자를 말하면 즐겨 하거나 즐겨 하지 않거나 제일의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라(邏)자를 말하면 애욕을 끊음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파(婆)자를 말하면 뛰어난 승(乘)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사(捨)자를 말하면 믿음과 정진과 기억함과 선정과 지혜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사(屣)자를 말하면 6입(入)을 조복하기 위해 6신통을 알지 않을 수 없음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사(娑)자를 말하면 일체 지혜를 깨달음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하(訶)자를 말하면 번뇌를 죽임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며, 
라(攞)자를 말하면 최후의 글자로서 이 모든 법을 뛰어넘음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이른바 자모의 이치이니 일체 글자가 이 가운데 들어간다.”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내가 또 여덟 글자를 설하겠으니 그 여덟 글자가 무엇이냐 하면, 
피(跛)자는 제일의인 만큼 일체 법의 나 없음이 모두 이 가운데 들어가며,
라(羅)자는 이 상호(相好)와 상호 없음이 여래의 법신(法身)에 들어가는 이치이며, 
파(婆)자는 어리석은 사람의 법이나 슬기로운 사람의 법이나 모두 법도(法度) 그대로여서 어리석음도 없고 슬기로움도 없는 이치이며, 
사(闍)자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제도하여 나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이치이며, 
가(伽)자는 업(業)의 과보를 제도하여 업의 과보가 없는 경지에 들어가게 하는 이치이며, 
타(陀)자는 모든 법과 뭇 언어(言語)가 공하고 상(相) 없고 조작 없음을 총괄하여 법계에 들어가게 하는 이치이며, 
사(捨)자는 사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로써 여실히 모든 법을 관하게 하는 이치이며, 
사(沙)자는 일체 법에 있어서 찰나찰나에 생멸하는 것과 또한 생멸하거나 생멸하지 않음이 없어 본래 고요한 그대로 일체 법이 모두 열반에 들어가는 이치이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이른바 여덟 글자이니, 
이 여덟 글자를 받아 간직해야만 
일체 법에 들어간다.”
 


그때 문수사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무상(無常)의 음성이라고 합니까?”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여, 
무상의 음성이란 일체 유위법(有爲法)이 다 무상함이다. 
눈의 느낌이 무상한 것처럼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느낌도 무상하고, 
빛깔의 경계가 무상한 것처럼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경계도 역시 무상하고, 
눈의 경계와 빛깔의 경계와 안식(眼識)의 경계와 나아가 뜻의 경계와 법의 경계와 의식의 경계도 무상하고, 
색온[色陰]이 무상하고 나아가 의온[識陰]이 무상함도 그러하니, 
이것을 일러 무상의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무아(無我)의 음성이란 
일체 법이 다 내가 없는데, 
나라든가 남이란 것을 말함은 
조작하는 자나 조작하게 하는 자들이 혹은 단견(斷見)이고 혹은 상견(常見)이기 때문이니, 
이것이 이른바 아상(我想)과 아각(我覺)인 외도들이 말하는 것이다. 
만약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고 현재는 머물지 않는다면 
12입(入)과 18계(界)와 5온[陰]이 모두 내가 없기 마련이니, 
이것이 장음 아(阿)자의 이치라는 것이다.”
 
 


다음 모든 감관의 음성이란 큰 음성을 이름이니, 
눈의 감관을 큰 음성이라 하는 것처럼 
귀의 감관 내지 의식의 감관도 큰 음성이라. 
이것이 이(伊)자의 큰 음성이라는 것이다.
 
다음 질역(疾疫)이 많다는 음성이란 
눈이 질역이 많고 나아가 의식도 그러하니, 
중생들의 몸과 마음이 갖가지 병고(病苦)이기 때문에 이것을 일러 질역이 많은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황란(荒亂)한 음성이란 
국토가 편안하지 않아 인민들이 서로 핍박하고 도적이 사방에 일어나 흉년이 거듭함이니, 
이것을 일러 황란한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낮은 중생의 음성이란 
하열한 중생들은 빈궁과 고통에 허덕여 선근(善根)이 없기에 
저 날짐승ㆍ길짐승과 꿈틀거리는 벌레와 같음이니, 
이것을 일러 낮은 중생의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곧고 부드러움이 서로 계속되는 음성이란 
곧음은 아첨하지 않는 것이고, 
아첨하지 않음은 굽히지 않는 것이고, 
굽히지 않음은 진실한 것이고, 
진실한 것은 말대로 행하는 것이고, 
말대로 행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곧음이라고 한다. 


부드러움이란 여섯 종류가 있으니, 
눈의 부드러운 것으로부터 나아가 의식의 부드러움을 이 부드러움이라 하고, 
서로 계속됨이란 일체 선법(善法)을 떠나지 않음이라. 
이것을 일러 곧고 부드러움이 서로 계속되는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염착된 유희를 끊는 음성이란 
욕계(欲界)에 염착된 서른여섯 가지 번뇌[使]를 끊고 
네 가지 번뇌[四使] 끊을 것을 생각함이다. 

끊음이란 아주 없애 버린다는 뜻이고, 
유희란 다섯 가지 욕락의 뭇 도구가 그것이니, 
중생들이 여기에 유희하므로, 
이러한 것을 마땅히 끊어야 하는지라, 
이것을 일러 염착된 유희를 끊는 음성이라고 한다. 

찰나찰나에 생멸하는 것과 또한 생멸하거나 생멸하지 않음이 없어 
본래 고요한 그대로 
일체 법이 모두 열반에 들어가는 이치이다.
 


다음 상생(相生)하는 법이라 함을 내는 음성이란 
일체 법이 나 없음으로 상(相)을 삼는지라, 
찰나찰나에 생멸하는 고요한 상이니, 

나 없음으로 상을 삼음이란 
색온[色陰]이 무상(無常)하고 나아가 식도 그러하므로 
이것을 일러 나 없음으로 상을 삼음이라 하며, 

찰나찰나에 생멸한다는 것은 
일체 행은 찰나찰나에 나고 나면 곧 사라지니, 
이것을 일러 일체 법이 찰나찰나에 생멸하는 것이라 하며, 

고요한 상이란 
공하여 처소가 없는 것이어서 
빛깔도 없고 형체도 없음이 허공과 같은지라, 
이것을 일러 고요한 상이라고 하니, 
과거ㆍ미래ㆍ현재가 무상하므로 이것을 일러 
상생하는 법의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삼계에 염착된 상의 음성을 내는 것이란, 
이 상은 다섯 가지 욕락의 뭇 도구인 욕계의 상과 
형상에 염착된 색계의 상과 
무형에 염착된 무색계의 상이 그것이니 
이를 상이라 하며, 


삼계라 함은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가 그것이니, 
욕계가 무엇이냐 하면 지옥 내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고, 
색계가 무엇이냐 하면 범신천[梵身] 내지 색구경천(色究竟天)이고, 
무색계가 무엇이냐 하면 공처(空處) 내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이며, 

염착이란 삼계의 아흔여덟 가지 번뇌가 그것이니, 
이것을 일러 삼계에 염착된 상의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과환(過患)을 일으키는 음성이란 
세 가지를 구하는 
욕심의 구함[欲求]과 
존재의 구함[有求]과 
범행의 구함[梵行求]이 그것이다. 


욕심의 구함이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을 구하는 것이니, 

빛깔의 구함[色求]이 무엇이냐 하면, 
두 종류의 빛깔로서 
첫째가 빛깔[色]이고, 
둘째가 모양의 빛깔[形色]인데, 
빛깔이 열두 종류로서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것과, 
연기ㆍ구름ㆍ먼지ㆍ안개ㆍ광선 또는 그림자와 밝음과 어두움이 있고, 

모양의 빛깔이 여덟 종류로서 
길고 짧음과 모나고 둥긂과 높고 낮음과 판판하고 판판하지 않은 것이 있어 
이를 욕심의 빛깔[欲色]이라 한다.

욕심의 소리[欲聲]가 무엇이냐 하면 
그 소리가 일곱 종류로서 소라[螺]의 소리ㆍ북[鼓] 소리ㆍ작은북 소리ㆍ큰북 소리ㆍ노랫소리ㆍ
남자의 소리ㆍ여자의 소리가 그것인데 이를 욕심의 소리라 한다. 

욕심의 냄새[欲香]가 무엇이냐 하면 
그 냄새가 역시 일곱 종류로서 
감관[根]의 냄새ㆍ마음의 냄새ㆍ피부의 냄새ㆍ당분[糖]의 냄새ㆍ잎의 냄새ㆍ꽃의 냄새ㆍ열매의 냄새와 
혹은 남자의 냄새와 여자의 냄새가 그것인데 이를 욕심의 냄새라 한다.
 
욕심의 맛이 무엇이냐 하면 
그 맛이 역시 일곱 종류로서 
단맛ㆍ신맛ㆍ짠맛ㆍ쓴맛ㆍ떫은맛ㆍ담담한 맛과 매운맛과 혹은 남자의 맛과 여자의 맛이 그것인데 이를 욕심의 맛이라고 한다.

욕심의 감촉이 무엇이냐 하면
 그 감촉이 여덟 종류로서 
차갑고 뜨거움과 가볍고 무거움과 거칠고 미끄러움과 굶주리고 목마름과 혹은 
남자의 감촉과 여자의 감촉이 그것인데 
이를 욕심의 감촉이라 하니, 

이러한 것을 모두 욕심의 구함이라고 한다.
존재의 구함[有求]이란 무엇이냐 하면 욕계의 존재와 색계의 존재와 무색계의 존재가 그것인데 
이를 존재의 구함이라 하며, 

범행의 구함[梵行求]이란 무엇이냐 하면 
출가하여 고행을 닦되 천당(天堂)을 구하려 하거나 열반을 구하려 함이 그것인데 
이를 범행의 구함이라 하니, 

구한다는 뜻이 무엇인가? 
이른바 좋아하여 집착한다는 뜻이다.
 

어떤 것이 과환(過患)을 일으키는 음성이냐 하면 
중생들의 모든 존재를 모두 과환이라고 이르니, 
천당과 열반을 제외한 그 밖의 다른 곳을 구함은 모두 과환이 있는 것이므로, 
이를 일러 과환을 일으키는 음성(音聲)이라고 한다.
 
바른 도의 뛰어난 음성이란 
8정도(正道)의 바른 소견으로부터 나아가 바른 선정이 그것이다. 
과환이 없고 집착함이 없기 때문에 바른 도라고 하니, 
이것을 일러 바른 도의 뛰어난 음성이라고 한다.
 
잡는[取] 음성이란 모든 법을 잡아 가짐이니, 
이것을 일러 잡는 음성이라고 한다.
 
화생(化生)의 음성이란 
네 가지 쌓임[四陰]인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 
이것을 화생이라고 한다. 
다시 태생(胎生)ㆍ난생(卵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을 설하겠다. 
태생에 네 종류가 있으니, 
동불우체(東弗于逮)ㆍ남염부제(南閻浮提)ㆍ서구야니(西拘耶尼)ㆍ북울단월(北鬱單越)이 그것이고, 
난생은 일체 새[鳥] 종류이고, 
습생은 모기[蚊]ㆍ등에[虻]ㆍ이[虱] 등이고, 
화생은 모든 천인이니, 
이것을 일러 화생의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내 것이 없는 음성이란 
일체 법이 바로 내 것이 아님은 나[我]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내 것이 없음이란 내 것이라는 교만이 없다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내 것이 없는 음성이라고 한다.
 
아주 다 없어지는 음성이란 
무명이 없어지기 때문에 지어감이 없어지고, 
나아가 태어남이 없어지기 때문에 근심ㆍ슬픔ㆍ괴로움이 다 없어짐이라. 
아주 다 없어짐이란 열반의 고요한 경지여서 다시는 아무것도 나지 않음이니, 
이것을 일러 아주 다 없어지는 음성이라고 한다.
 
업(業)의 과보를 제도하는 음성에서 
업은 세 가지 업으로서 
몸에 대한 세 가지와 
입에 대한 네 가지와 
뜻에 대한 세 가지 업이 그것이고, 

과보란 세 가지 업의 청정함이니, 
이것을 일러 업의 과보를 제도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 다음 허공과 같은 모든 법의 음성이란  
모든 법이 허공과 같다는 것이다. 
허공과 같음이 무엇이냐 하면, 
일체 법은 이름이 있고 생각이 있을 뿐, 
상(相)이 없어 분별할 수 없고, 
체(體)가 없어 동요하지 않고, 
부사의하여 생멸하지 않고, 
조작함이 없음에 따라 상모(相貌)가 없고, 
형색(形色)이 없으므로 다니는 곳이 없어 허공과 같이 평등에 머물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근심ㆍ슬픔ㆍ괴로움이 없는지라, 
물질이란 허공과 같아서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그러하고 
과거는 이미 지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는 머물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허공과 같은 모든 법의 음성이라고 한다.
 
 

깊은 법의 음성이란 
무명이 지어감을 인연하고, 
나아가 태어남이 늙어 죽음과 근심함과 슬퍼함과 괴로워함을 인연하니 만큼, 
무명이 사라지면 지어감이 사라지고, 
나아가 태어남이 사라지면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함이 사라지므로 저 이치의 진실한 것을 깊음이라 이름하니, 
깊음이란 이 12인연을 일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라, 
끝이 없고 처소가 없고 시절(時節)이 없고, 
장부(丈夫)를 끊고 세간의 성품을 끊어 평등함에 들어가서 자타의 고집을 깨뜨리니, 
이것을 일러 깊은 법의 음성이라고 한다.
 
굳고 무거운 무명과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제거하는 음성에서, 
굳음이란 신견(身見) 등 5견(見)이고, 
무거움이란 5온[陰]이며, 
무명이란 전제(前際)와 후제와 죄 있고 없음을 알지 못하고, 
불ㆍ법ㆍ승을 알지 못하고, 
보시와계율과 하늘을 알지 못하고, 
5온ㆍ18계(界)ㆍ12입(入)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무명이라 하며, 
어리석음이란 깨달아 생각할 것을 잊어버리는 것으로서 이것을 어리석음이라 하고, 
어두움이란 모태[胎]의 고뇌와 일체 부정(不淨)한 것에 들어가면서도 즐거운 느낌을 내어 
가고 옴에 미혹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어두움이라 한다. 
3세(世)에 무지(無知)하여 방편이 없어 요달하지 못하는 것을 어두움이라 하며, 
진실하고도 자세히 광명을 열어 보며, 
스스로 과(果)를 제거하고 번뇌를 제거하고 
그 밖의 번뇌 아닌 것과 다른 번뇌를 다 제거함으로써 
주로 평등함과 부사의함에 들어가는 것을 제거하는 이치라고 하니, 
이것을 일러 굳고도 무거운 무명과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제거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미리 알아 행하는 음성이란, 
여덟 가지 미리 알아 행하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바른 소견으로부터 바른 선정까지이니, 
이것을 일러 보살이 미리 알아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5견(見)을 끊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고, 
탐욕ㆍ진심ㆍ우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바른 생각이라 하고, 
몸과 뜻의 업이 청정한 것을 바른 업이라 하고, 
입의 업이 청정한 것을 바른 말이라 하고, 
속이고 아첨하여 거짓으로 욕심 적음을 나타내어 이익으로써 이익을 구하되 다섯 가지를 판매하는 것, 
이른바 술을 팔거나 고기를 팔거나 독약을 팔거나 칼 등의 무기를 팔거나 여색을 팔거나 하는 이런 악업을 제거하는 것을 
바른 생활이라 하고, 
착한 몸의 행과 착한 뜻의 행을 바른 정진이라 하고, 
4념처(念處)를 염하는 것을 바른 염이라 하고, 
안정된 마음으로써 염착(染着)함이 없는 고요한 상(相)과 아무것도 없는 상과 공(空)한 상,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 하니, 
이것을 일러 미리 알아 행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4성제의 음성이란, 
이른바 고제(苦諦)ㆍ집제(集諦)ㆍ멸제(滅諦)ㆍ도제(道諦)이다. 
고제가 무엇이냐 하면 열 가지 번뇌를 끊는 것이며, 
집제가 무엇이냐 하면 일곱 가지 번뇌를 끊는 것이며, 
멸제가 무엇이냐 하면 역시 일곱 가지 번뇌를 끊는 것이며, 
도제가 무엇이냐 하면 여덟 가지 번뇌와 네 가지 생각을 끊고, 
나아가 형상[色]이 있거나 형상이 없는 번뇌를 끊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4성제의 음성이라고 한다.
 
욕심의 염착을 끊는 음성에서, 
욕심은 즐거움에 더럽히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니, 
장엄하려거나 집착하려거나 자태(姿態)를 내려 하거나, 
또는 생각하는 욕심과 생각하는 감촉이 서로 기다려 서로 따르는 것이다. 
염착이란 얽매이는 것이고, 
즐거움이란 저 6진(塵)을 즐기는 것이고, 
싫어하지 않음이란 전일한 마음으로 반연에 집착되어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며, 
욕심이란 기뻐하는 것이고, 
장엄이란 뜻을 더럽히는 것이고,집착이란 유희하는 것이고, 
자태란 갖가지 모양을 내는 것이고, 
생각하는 욕심이란 5욕(欲)에 집착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감촉이란 서로 친근하려는 것이고, 
기다림이란 향ㆍ꽃으로써 서로 유인하는 것이고, 
서로 따르는 것이란 욕심에 염착된 마음이 서로 따르는 것이고, 
끊음이란 앞의 불선한 법을 다 제거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욕심의 염착을 끊는 음성이라고 한다.
 
늙고 죽음을 제도하는 음성에서, 
늙음이란 온몸이 쇠하고 상하여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행보하거나 
모든 감관이 쇠모(衰耗)된 것이니 이것을 늙음이라 한다. 

죽음이란 모든 감관이 허물어진 것이니, 
왜 죽음이라 하는가 하면 다시 태어날 곳을 찾아 받기 위해 
저 행의 업이 성숙했기 때문에 이를 일러 죽음이라 한다. 

늙음과 죽음의 차별이 어떤 것이냐 하면, 
모든 감관이 성숙된 것을 늙음이라 하고, 
모든 감관이 허물어진 것을 죽음이라 하니, 

먼저 늙고 뒤에 죽는 이것을 일러 늙어 죽음이라 한다. 


▸ 이 늙고 죽음을 건너가는 것을 제도한다고 하니,  
제도란 뜻이 무엇인가 하면 건너간다는 뜻으로서 
자유로운 저 언덕[彼岸]에 이르러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일러 늙고 죽음을 제도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나쁜 언어(言語)를 조복하는 음성에서, 
조복한다는 것은 말씨를 조복하거나 몸을 조복하는 것이다. 

언어를 조복함이 어떤 것이냐 하면, 
같은 유(類)의 말로써 다른 유의 말을 깨뜨리고 다른 유의 말로써 같은 유의 말을 깨뜨리거나, 
진실한 말로써 진실하지 않은 말을 조복하고 진실하지 않은 말로써 진실한 말을 조복하거나, 
말답지 않은 말로써 말을 조복하고 말다운 말로써 말답지 않은 말을 조복하거나, 
제일의(第一義)로써 제일의 아닌 것을 조복하고 제일의 아닌 것으로써 제일의를 조복하거나, 
결정된 말로써 결정되지 않은 말을 조복하고 결정되지 않은 말로써 결정된 말을 조복하거나, 
하나로써 많은 것을 조복하고 많은 것으로써 하나를 조복하거나, 
범함이 없음으로써 범함이 있음을 조복하고 범함이 있음으로써 범함이 없음을 조복하거나, 
현증(現證)으로써 현증이 아님을 조복하고 현증이 아님으로써 현증을 조복하거나, 
과실로써 과실이 아님을 조복하고 과실이 아님으로써 과실을 조복하거나 
종류(種類)로써 종류를 조복할 수 없고 종류가 아님으로써 종류가 아님을 조복할 수 없다.

나쁨이란 언어가 실답지 않고 자세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음이며, 
조복이란 끊는다는 뜻이고 막는다는 뜻이고 가린다는 뜻이니, 
이것을 일러 나쁜 언어를 조복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편히 머묾을 설하는 음성이란 
덮거나 감추지 않는 도를 열어 보이고 분별하여 법을 따라 설함이니 
이것을 편히 머묾이라 하며, 
한곳에 머물러 있어서 열반과 출세간을 말하여 말할 바 성취하는 말이고, 
어떤 상(相)이 없는 말이고, 
모양이 없는 말이고, 
이상함이 없는 말이고, 
조작이 없는 말이고, 
깨달은 말이고, 
공한 말이고, 
고요한 말을 성취함이니, 
이것을 일러 편히 머묾을 설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번뇌 끊음을 설하는 음성이란, 
무명이 사라지고 나아가 늙고 죽음도 사라져 일체의 쌓임[陰]이 소멸함이다. 
사라짐이란 아주 없어져 절대 나는 것이 없음이니 이것을 사라짐이라 하며, 
끊음이란 일체의 번뇌를 끊되, 
번뇌의 뿌리를 끊어 남음이 없게 함이니, 
이것을 일러 번뇌를 끊는 음성이라고 한다.
 
대답을 그만두는 음성이란 
물음에 따라 대답하는 것과 분별하여 대답하는 것과 반문하여 대답하는 것과 대답을 그만두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이 물음에 따라 대답하는 것이냐 하면 묻는 그대로를 곧 대답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분별하여 대답하는 것이냐 하면 상대의 물음에 따라 자세히 분별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반문하여 대답하는 것이냐 하면 묻는 사람에게 도로 물어서 대답하게 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대답을 그만두는 것이냐 하면 단(斷)이라든가, 
상(常)이라든가 이러한 것을 물을 경우 그만두고서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분별하는 물음으로써 물을 때엔 물음에 따라 대답하고 도로 질문하는 물음으로써 물을 때엔 분별하여 대답하고, 
대답을 그만두어야 할 물음으로써 물을 때엔 도로 질문하여 대답하고, 
문답에 따른 물음으로써 물을 때엔 그만두고서 대답하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대답을 그만두는 음성이라고 한다.
 
다음 마군의 적[魔賊]을 거두어 조복하는 음성이란, 
마군의 적이 네 종류가 있으니, 
물질과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을 음마(陰魔)의 적이라 하며, 
이 세계로부터 저 세계로 건너가 모든 일이 휴식되는 것을 사마(死魔)의 적이라 하며, 
무명과 애욕과 잡음[取]을 번뇌마(煩惱魔)의 적이라 하며, 
5욕의 뭇 도구가 갖추어진 것이 천마(天魔)의 체가 되는 것을천마의 적이라 하니, 
이것을 일러 마군의 적을 거두어 조복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모든 경계를 없애는 음성이란, 
빛깔을 없애고 나아가 감촉을 없애는 것이다. 
경계란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이니, 
이것을 일러 모든 경계를 없애는 음성이라고 한다.
 
모든 번뇌를 제거하는 음성이란 
번뇌를 끊어 없애는 것이다. 
번뇌를 제거함이란 욕심에 더럽힌 큰 독(毒)에는 부정하다는 관[不淨觀]이 약이 되고, 
성내거나 미워하는 큰 독에는 자비가 약이 되고, 
무명의 큰 독에는 12인연의 관(觀)이 그 약이 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모든 번뇌를 제거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다름이 없고 파괴하지 않는 음성에서, 
다름이 없음은 곧 파괴함이 없는 것이고, 
다름이 없음은 곧 제일의의 진리이니, 
공하여 상(相)이 없고 형체가 없고 평등하여 움직이지 않고 
생각할 수 없는 이것을 다름이 없음이라 하며, 

파괴하지 않음이란 
곧 다른 형체가 없어 평등하고 상(相)이 없어 
움직이지 않고 깨어지지 않고 
끊이지 않고 순일(純一)하여 
과환(過患)이 없고 마음도 없고 앞뒤도 없음이니, 
이것을 일러 다름이 없고 파괴하지 않는 음성이라고 한다.
 

용맹스럽고 힘세고 빠르고 두려움이 없는 음성에서, 
용맹은 정진하는 것이고, 
힘은 10력(力)이고, 
빠름이란 말의 빠름과 같은 것이고, 
두려움이 없음이란 일체 곳에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음이니, 
이것을 일러 용맹스럽고 힘세고 빠르고 두려움이 없는 음성이라고 한다.
 
보시ㆍ적정(寂靜)ㆍ수호(守護)ㆍ안온(安穩)의 음성에서, 
보시가 두 종류로서 안의 보시와 바깥의 보시가 있으니, 
안의 보시가 무엇이냐 하면 4제(諦)를 설하는 것이고, 
바깥의 보시가 무엇이냐 하면, 
뼈ㆍ살ㆍ껍질ㆍ피와 국성(國城)ㆍ처자ㆍ남녀ㆍ재물ㆍ미곡 등을 보시하는 것이며, 
적정은 세 종류로서 몸ㆍ입ㆍ뜻의 적정이 있으니, 
몸의 적정이 무엇이냐 하면 세 가지 허물을 짓지 않는 것이고, 
입의 적정이 무엇이냐 하면 입의 네 가지 허물이 없는 것이고, 
뜻의 적정이 무엇이냐 하면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은 것이며, 
수호라 함은 6근(根)을 수호하는 것이며, 
안온이라 함은 같이 화합하여 상대의 허물을 찾지 않고 만족할 줄 알아 욕심을 적게 하고 
남의 장점과 단점을 논란하지 않고 
남의 허물을 들춰내지 않고 
서로가 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것으로써 저것을 말하지 않음이니, 
이것을 일러 보시ㆍ적정ㆍ수호ㆍ안온의 음성이라고 한다.
 


일곱 가지 성스러운 재물[七聖財]의 음성이란, 
첫째는 믿음[信]이며, 
둘째는 스스로 부끄러움이며, 
셋째는 남에게 부끄러움이며, 
넷째는 보시이며, 
다섯째는 계율이며, 
여섯째는 많이 들음이며, 
일곱째는 지혜이니, 
이것을 일러 일곱 가지 성스러운 재물의 음성이라고 한다.
 

이름과 물질[名色]을 분별하는 음성이란, 
이름은 4온[陰]이 그것이고, 
물질은 4대(大)가 그것이며, 
분별이란 이름과 물질을 분별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이름과 물질을 분별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제일의의 음성이란, 
5온[陰]을 분별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제일의의 음성이라고 한다.
 
작증(作證)하여 과위[果]를 얻는 음성에서, 
과위는 4과(果)로서 수다원(須陀洹)으로부터 아라한까지와 연각의 과가 그것이며, 
얻음이란 들어간다는 뜻이고, 
증(證)이란 현재 증득하는 것이고, 
작(作)이란 조작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작증하여 과위를 얻는 음성이라고 한다.
 
얽매임을 해탈하는 음성에서, 
얽매임은 세 가지 얽매임으로서 탐욕과 진심과 우치의 얽매임이며, 
해탈이란 이 세 가지 얽매임을 여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얽매임을 해탈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삼계[三有]를 내는 음성이란 이른바 생유(生有)ㆍ현유(現有)ㆍ후유(後有)가 그것이니, 
이것을 일러 삼계를 내는 음성이라고 한다.
 
교만(憍慢)을 끊는 음성에서, 
교(憍)는 얼굴이 잘났다는 교[色憍]ㆍ
한창이라는 교[盛壯憍]ㆍ
돈이 많다는 교[富憍]ㆍ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교[自在憍]ㆍ
귀족이라는 교[姓憍]ㆍ
선한 일을 행한다는 교[行善憍]ㆍ
나이가 많다는 교[壽命憍]ㆍ
총명하다는 교[聰明憍]가 그것이니 
이를 여덟 가지 교라 한다. 

만(慢)은 
난 체하는 만[慢慢]ㆍ더 잘난 체하는 만[大慢]ㆍ뛰어난 체하는 만[增上慢]ㆍ나라는 만[我慢]ㆍ
같을 이가 없다는 만[不如慢]ㆍ뛰어나다는 만[勝慢]ㆍ삿된 생각을 내는 만[邪慢]이니, 
이를 일곱 가지 만이라 하며, 
끊음이란 교만을 끊음이니, 
이것을 일러 교만을 끊는 음성이라고 한다.
 


모든 법을 통달하는 음성에서, 
통달은 경계 그대로를 아는 것이며, 
모든 법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이니 
5욕을 많이 갖춤을 불선한 법이라 하고 
5욕을 제거하여 끊는 것을 선한 법이라 하니, 
이것을 일러 모든 법을 통달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법과 같이 분별하는 음성에서, 
‘같이’란 평등하다는 뜻이고, 
법은 선한 법과불선한 법이며, 
불선한 법이란 5욕을 많이 갖춘 것을 끊지 않는 것이고, 
선한 법이란 5욕을 많이 갖춘 것을 끊는 것이고, 
끊는다는 것은 파멸(破滅)한다는 뜻이니, 
이것을 일러 법과 같이 분별하는 음성이라고 한다.
 
즐겨 하거나 즐겨 하지 않거나 제일의(第一義)의 음성에서, 
즐겨 함은 5욕의 경계이고, 
즐겨 하지 않음은 5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며, 
제일의란 공하고 상(相)이 없는 이치이니, 
이것을 일러 즐겨 하거나 즐겨 하지 않거나 제일의의 음성이라고 한다.
 
애욕을 끊는 음성에서, 
애욕은 색(色)에 대한 애욕과 나아가 감촉에 대한 애욕이며, 
끊음이란 소멸하고 제거하는 것이니, 
이것을 애욕을 끊는 음성이라고 한다.
 
뛰어난 승(乘)의 음성이란, 
이른바 3승으로서 불승(佛乘)과 연각승(緣覺乘)과 성문승(聲聞乘)이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과 10지(地)를 불승이라 하며, 
자신을 조복하고 자신을 고요히 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열반에 들어가게 하는 이것을 연각승이라 하며, 
부드러운 근기의 중생과 겁내는 근기의 중생들이 생사를 벗어나려는 것을 성문승이라 하니, 
이것을 일러 뛰어난 승의 음성이라고 한다.
 
믿음과 정진과 기억함과 선정과 지혜의 음성에서, 
한 군데에만 쏠려 생각의 관찰을 달리하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 하며, 
용맹과 근면으로 일을 행하거나 일을 간직하는 이것을 정진이라 하며, 
오로지 한마음을 거두어 생각하는 것을 기억이라 하며, 
모든 일에 흔들리지 않는 이것을 선정이라 하며, 
반야가 순일(純一)하고도 평등한 것을 지혜라고 하니, 
이것을 일러 믿음과 정진과 기억함과 선정과 지혜의 음성이라고 한다.
 
6입(入)을 조복하여 6통(通)을 알지 않을 수 없는 음성에서, 
이른바 6입은 눈의 느낌[眼入]으로부터 의식의 느낌[意入]까지이며, 
거두어 조복함이란 색(色)을 거두어 조복함으로부터 법을 거두어 조복함까지이며, 
6통이란 천안통(天眼通)과 천이통(天耳通)과 타심통[他心智]과 숙명통[宿命智]과 신통(身通)과 누진통(漏盡通)이며, 
알지 못함이란 무명(無明)이며, 
알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저 무명을 제거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6입을 조복하여 6통을 알지 않을 수 없는 음성이라고 한다.
 
일체지(一切智)를 깨닫는 음성에서, 
일체지는 일체 세간을 모두 아는 것이다. 
세간이란 찰나찰나에 생멸하는 것이고, 
또 세간이란 모든 5온ㆍ18계ㆍ12입이고, 
또 세간이란 두 종류로서 첫째는 중생 세간이며, 
둘째는 지어 가는 세간[行世]이다. 
중생 세간은 일체 중생이고, 
지어가는 세간은 중생들이 머무는 처소다. 
이러한 일체 세간을 알 수 있고 알아야 한다. 
지혜도 역시 두 종류로서 성문의 지혜와 일체지이니, 
이것을 지각(智覺)한 자가 자신을 깨달아서 타신(他身)까지를 깨달은 것이라 하니, 
이것을 일러 일체지를 깨닫는 음성이라고 한다.
 
번뇌를 바로 죽이는 음성에서, 
죽임이란 제거하여 끊어 버린다는 뜻이며, 
번뇌라 함은 아흔여덟 가지 번뇌 가운데 
욕계의 고제에서 끊어야 할 열 가지 번뇌와 
집제와 멸제에서 끊어야 할 일곱 가지 번뇌와 
도제에서 끊어야 할 여덟 가지 번뇌와 
사유(思維)의 진리에서 끊어야 할 네 가지 번뇌이며, 

색계의 고제에서 끊어야 할 아홉 가지 번뇌와 
집제와 멸제에서 끊어야 할 여섯 가지 번뇌와 
도제에서 끊어야 할 일곱 가지 번뇌와 
사유에서 끊어야 할 세 가지 번뇌이며, 
무색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바로[正]란 
분명히 제거하여 
남은 더러움이 없게끔 끊어 버림이니, 
이것을 일러 번뇌를 바로 죽이는 음성이라 고 한다.
 




▸ 최후의 글자로서 이 법을 초월해서는 말할 수 없는 음성이란,  
만약 글자마저 없는 것이라면 이는 이른바 열반이고, 
글자가 있는 것이라면 이는 생사이며, 
최후라 함은 라(羅)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글자가 없는 것이며, 
말할 수 없음이라 함은 얻을 수 없고 분별할 수 없음이니, 
물질이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이며, 
모든 법이라 함은 5온ㆍ18계ㆍ12입과 37품(品)이니, 
이것을 일러 최후의 글자로서 이것을 초월해서는 말할 수 없는 음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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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이 없는 변재(辯才)를 내는 지혜. 
무애지(無礙智)ㆍ무착지(無著智)ㆍ무단지(無斷智)ㆍ무치지(無癡智)ㆍ무외지(無畏智)ㆍ
무실지(無失智)ㆍ무량지(無量智)ㆍ무승지(無勝智)ㆍ무해지(無懈智)ㆍ무탈지(無奪智). 
신역 『화엄경(華嚴經)』 제16권에 있음.

답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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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餓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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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달- 보바내가만 타바
怛哩<二合>部嚩乃迦滿<引>馱嚩<二十>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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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게송
[236일째]
차불가설중일설 $ 107▲鉢頭摩鉢頭摩為 一 ● 僧祇, ○□□□□,示,此,經,如

□□□□□□□, 示現於聲不可說;
此不可說中一聲, 經於劫住不可說。
□□□□□□□, 시현어성불가설;
차불가설중일성, 경어겁주불가설。

말할 수 없는 혀의 이 한 혀에서
나타내는 음성을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음성 한 음성으로
몇 겁을 지내는지 말할 수 없어



[269째]
어일미세모단처 $ 011▲頻婆羅頻婆羅為 一 ● 矜羯羅, ○□□□□,有,一,如,一

□□□□□□□, 有不可說諸普賢,
一切毛端悉亦爾, 如是乃至遍法界。
□□□□□□□, 유불가설제보현,
일체모단실역이, 여시내지편법계。

가장 작은 한 털 끝이 있을 자리에
말로 못할 보현보살 있는 것같이
온갖 터럭 끝마다 모두 그러해
이와 같이 법계에 가득하니라.





●K1309_T0469.txt★ ∴≪A문수문경자모품제십사≫_≪K1309≫_≪T0469≫
●K0412_T0468.txt★ ∴≪A문수사리문경≫_≪K0412≫_≪T0468≫
●K0222_T0464.txt★ ∴≪A문수사리문보리경≫_≪K0222≫_≪T0464≫

법수_암기방안


107 립스 ribs 䝱 갈비 【협】
11 위팔 upper arm
2 염통 【심장】
20 가운데(손가락) (MIDDLE)
● [pt op tr] fr
_M#]




Lab value 2564/02/20/목/19:39
[오래된조각글재정리]
☎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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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사리문경_K0412_T0468 [문서정보]- 경전논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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