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십지경』
K1388
T0287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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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십지경』 ♣1388-003♧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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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說十地經卷第三
K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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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십지경 제3권
대당국 승 법계가 중인도로부터 이 범본을 들여와 우전삼장 사문 시라달마를 청하여 북정 용흥사에서 한역
3. 보살발광지(菩薩發光地)
불자들은 이 제2지의 행을 다 들으매
보살의 경계가 불가사의(不可思議)하여라.
모두 다 공경하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공중에서 꽃을 흩어 그를 위해 공양했다.
찬탄해 말하기를,
장하여라.
대선주(大仙主)여,
인자한 마음으로 모든 유정을 가엾이 여겨
지혜로운 사람의 율의법(律儀法)인
제2지의 행상(行相)을 잘 설명하였다.
이 모든 보살의 미묘한 행은
진실하여 변함이 없고 차별 없는데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그와 같은 가장 청정함을 설명하였네.
일체의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공양하는 이여
부디 제3지를 연설하시라.
법과 상응하는 모든 지혜의 업을
그 경계 그대로 갖추어 자세히 밝히시라.
대선(大仙)의 모든 보시와 깨끗한 계율과
안인(安忍)과 정진과 정려(靜慮)와 지혜와
그리고 방편과 자비의 도 등
부처님의 청정한 도를 다 설명하기 원하네라고 하였다.
그때 해탈월보살이 다시 청해 말하기를
두려움이 없는 큰 스승이신 금강장이시여
부디 제3지로 향해 들어가는
유화한 마음을 가진 이의 공덕을 설명하시라고 하였다.
그때 금강장보살은 여러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만일 보살 제2지에서 증상된 의요(意樂)가 청정해져서 보살 제3지로 들어가려 한다면
마땅히 열 가지 마음의 의요(意樂)로 생각을 내어 들어가야 합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청정한 마음의 의요로 생각을 내고,
안주하는 마음의 의요로 생각을 내고,
혐오하여 떠나는 마음의 의요로 생각을 내고,
욕심이 떠난 마음의 의요로 생각을 내고,
견고한 마음의 의요로 생각을 내고,
불꽃 같은 마음의 의요로 생각을 내고,
용감한 마음의 의요로 생각을 내고,
가장 오묘한 마음의 의요로 생각을 내고,
광대한 마음의 의요로 생각을 내는 것이니,
보살은 이 열 가지 마음의 의요로 제3지에 깨달아 들어갑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 제3지에 머무를 때는
모든 유위(有爲)의 행(行)이 다 무상하고 괴로우며 부정하고 믿고 의지할 수 없어서
마침내는 모두 파괴되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찰나찰나로 생멸하여
미래는 오지 않고
과거는 가지 않으며
현재는 머무르지 않는다고
봅니다.
보살이 이렇게 전도됨 없이 일체의 행을 관찰할 때는
또 다시 몸을 구해 줄 자가 없고
의지할 데가 없으며
근심과 탄식과 고뇌와 상응하고
애증(愛憎)에 얽매여 고통이 많고
멈춤이 없으며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사나운 불꽃이 누적되어 활활 타올라서 뭇 병과 함께 자라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보고는 일체의 행에서
마음으로 하여금 여래의 지인(智印)에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 보살은 여래의 지혜는 생각할 수도 없고 짝도 없고 한량이 없으며 얻기 어렵고 잡스럽지 않으며 재앙이 없고 고뇌가 없어서 두려움이 없는 성에 이르러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괴로워하는 무량한 유정들을 잘 구제할 수 있음을 봅니다.
보살은 이렇게 여래 지혜의 무량한 이익을 보고
일체 행의 무량한 재난을 보고는,
곧 유정들에게로 돌려 바꾸어서 열 가지 마음의 의요(意樂)를 냅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이른바 고독하여 의탁할 데가 없다는 마음의 의요,
항상 빈궁하다는 마음의 의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사나운 불길에 탄다는 마음의 의요,
감옥에 갇혀 있다는 마음의 의요,
항상 끊임없이 모든 번뇌의 빽빽한 숲에 덮여 있다는 마음의 의요,
관찰할 수 없다는 마음의 의요,
선법이 없는 욕심이라는 마음의 의요,
미혹해서 불법을 잃는다는 마음의 의요,
생사의 흐름을 따른다는 마음의 의요,
해탈의 길을 잃었다는 마음의 의요 등이니,
이런 열 가지 마음의 의요를 일으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유정계의 뭇 재환(災患)을 보고는 큰 정진을 내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유정들을 내가 구제하리라,
해탈케 하리라,
청정케 하리라,
뽑아 내리라,
달려 들어가게 하리라,
편히 머무르게 하리라,
기뻐하게 하리라,
즐거워하게 하리라,
조복시키리라,
적멸케 하리라.’
보살은 이와 같이 저 모든 행에 대해 깊은 마음으로 싫어하고 저 유정들에 대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고 부처님의 묘한 지혜로 훌륭한 이익을 봅니다.
그리고 여래의 지혜를 의지로 삼아 유정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가행(加行)을 부지런히 닦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모든 유정들이 뭇 고통의 번뇌에 물듦 가운데 빠져 있다.
어떠한 도(道)여야 그들을 구제하여 구경상락열반(究竟常樂涅槃)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보살은 다시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 장애없는 지혜의 해탈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장애 없는 지혜의 해탈은 일체 법의 여실한 깨달음을 여의지 않고 이 일체 법의 여실한 깨달음은 행이 없고 생이 없는 행의 지혜를 여의지 않으며 이 지혜의 광명은 선정과 훌륭한 결택(決擇)과 묘한 지혜의 관찰을 떠나지 않고 또 이 선정과 좋은 결택과 묘한 지혜의 관찰은 다 다문(多聞)과 방편을 떠나지 않는다.’
보살의 이 선관찰지(善觀察智)는 오로지 정법을 구하기 위해 행(行)하고 밤낮으로 법을 사모하고 법을 듣기를 싫증 내지 않으며 법을 사랑하고 법을 즐기며 법을 의지하고 법을 따르며 법에 머무르고 법을 필요로 하며 법을 믿고 법에 귀의하여 법이 법에 따라 행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정행을 닦을 때에는 작은 물건이거나 생활 도구거나 혹은 재물ㆍ곡식ㆍ창고 등 버리지 못할 것이 없어서 이런 것은 행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없고 오직 설법에 있어서 보특가라를 만나기 어렵다고만 생각합니다.
불법을 위하기 때문에 조금의 외물(外物)도 지니는 것이 없어서 버리지 못할 것이 없으며 작은 내물(內物)도 없어서 버리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받들어 섬기지 않는 스승[師長]이 없으며 지나치게 교만하는 마음과 지나치게 폄하하는 마음으로 느끼고 행하는 것을 없애고 육신에 고통이 있다 해서 받들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만일 불법의 한 4구게(句偈)만 들어도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보물더미를 얻은 것보다 더 기뻐 날뛰며,
만일 한 게송이나 정법의 연설만 들어도 전륜성왕의 자리를 얻은 것보다 더 기뻐하며,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이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라 정등각을 능히 이룰 수 있고,
보살행을 능히 청정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제석천왕이나 범천왕 등이 되어 백천겁 동안 존귀한 자리에 있게 되는 것보다 더 기뻐하며,
혹 누가 말하기를 ‘나에게 부처님이 설하신 한 구절의 법이 있는데 그것은 능히 정등각을 이루고 보살행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네가 만일 지금 불꽃이 이글거리는 불구덩이에 떨어져 지독한 고통을 받는다면 내 너에게 그것을 말해 주리라’ 한다면
보살은 이 말을 듣고 생각합니다.
‘내가 부처님이 설하신 한 글귀의 법으로 정각을 이루고 보살행을 깨끗이 할 수 있다면 설사 그 불구덩이가 삼천대천세계와 같은 양이고 그 안에 불꽃이 활활 타더라도 내 범천에서조차 몸을 던질 수 있거늘 하물며 조그만 불구덩이겠는가.
또 우리는 불법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큰 지옥의 모든 험악한 곳에서라도 오래 머물러 큰 고통을 받을 수 있거늘 하물며 인간의 소소한 고통을 받지 못하겠는가.’ 보살은 이러한 정진을 일으켜 정법을 구하고는,
그가 들은 그대로 이치답게 안을 살펴 자세히 관찰합니다.
그리하여 정법을 다 들은 뒤에는 고요한 곳에 혼자 거처하면서 마음을 스스로 해결해 버리고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바른 수행법으로 법을 따라 행해야 비로소 불법을 수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단순히 어업(語業)으로 연설하는 것만으로 청정을 얻는 것이 아니다.’
보살이 이 발광지(發光地)에 머무를 때에는 수행법이 법에 맞게 행하고자 하여 욕심도 버리고 심(尋)과 사(伺)가 있는 모든 악법을 떠나고 남[生]도 떠나서 즐거이 초선(初禪)에 들어가 심사(尋伺)가 적정해 안주(安住)함을 구족합니다.
또 마음이 평등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일심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심(尋)도 없고 사(伺)도 없어서 선정에 희락(喜樂)이 생겨 제2선에 들어가 기쁨에 안주함을 구족합니다.
또 욕심을 떠나고 사(捨)에 안주하여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알며 몸이 받는 즐거움이 있나니,
이 곳은 모든 성인이 말씀하신 것으로서 사(捨)와 염(念)과 바른 앎을 구족하여 몸이 받는 즐거움에 머물러 제3선에 들어가 안주를 구족합니다.
즐거움도 끊어지고 괴로움도 끊어지며 기쁨과 근심이 사라져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고 사념(捨念)이 청정하여 제4선에 들어가 안주를 구족합니다.
또 이 보살은 일체의 색이라는 생각을 초월했기 때문에,
일체 상대가 있다는 생각이 멸했기 때문에,
갖가지 생각을 짓지 않기 때문에 끝이 없는 허공을 알고서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들어가 안주를 구족하고 일체 종의 공무변처를 초월하여 무변식(無變識)을 알아서 식무변처에 들어가 안주를 구족하며 일체 종의 식무변처(識無變處)를 초월하여 무소유를 알아서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 안주를 구족한다.
또 일체 종의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초월하여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을 알아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들어가 안주를 구족한다.
그러나 오직 이 법을 수순하고 법을 따라 행할 뿐으로서 안족처(安足處)에 즐거이 머무르기 위함이 아닙니다.
또 보살은 자비와 함께하는 마음을 닦아 광대하고 둘이 없으며 한량이 없고 한(恨)이 없으며 원망이 없고 막힘이 없으며 괴롭히고 해치는 바가 없어서 일체의 법계가 다하고 허공의 성품이 다하는 모든 세계를 두루하면서 자비로써 일체 세간을 두루 덮어 안주를 구족합니다.
슬픔과 함께하는 마음을 닦고 기쁨과 함께하는 마음을 닦는 것 또한 이와 같으며,
보시와 함께하는 마음을 닦아 광대하고 둘이 없으며 한량이 없고 한이 없으며 원망이 없고 막힘이 없으며 해침이 없어서 일체의 법계가 다하고 허공의 성품이 다하는 모든 세계에 두루하면서 보시로써 일체 세간을 두루 덮어 안주를 구족합니다.
또 보살은 무량한 모든 신통 변화를 수용하여 대지를 진동시키고 한 몸을 많은 몸으로,
많은 몸을 한 몸으로 하여,
드러나든 숨든 빠르고 걸림이 없어 장벽과 산을 다 뚫고 지날 수 있고 저 하늘 위를 다닐 때는 허공 중에서 가부(跏趺)하고 나는 것이 마치 나는 새와 같고,
땅에 출몰하는 것은 마치 물 속에서와 물을 밟는 것이 땅에서와 같습니다.
몸에서 연기와 불꽃을 내어 큰 불덩이와 같고 몸에서 물을 쏟는 것은 마치 큰 구름과 같으며 이 해와 달에 큰 신덕(神德)이 있고 큰 위세가 있어서 그것을 손으로 만지며,
나아가 범세(梵世)처럼 자재하게 몸을 움직입니다.
그는 또 사람의 귀보다 더 청정한 하늘 귀[天耳]로 사람과 하늘의 두 가지 음성을 다 듣고 가깝든 멀든 간에 심지어 모기ㆍ등에ㆍ쇠똥구리 등 곤충의 소리조차도 다 듣습니다.
타심지(他心智)로써 다른 유정들의 마음을 여실히 아나니 이른바 탐심이 있으면 탐심이 있는 줄을 여실히 알고 탐심을 떠났으면 탐심을 떠난 줄을 여실히 알며 분노가 있거나 분노를 떠나거나 어리석음이 있거나 어리석음을 떠났거든 번뇌가 있거나 번뇌를 떠났거나 협소함과 광대함과 무량함,
그리고 모이고 흩어짐과 선정에 들었거나 선정에서 나왔거나,
이미 해탈을 얻었거나 아직 해탈을 얻지 못했거나,
허물이 있거나 허물이 없거나,
추한 마음이든 미세한 마음이든 모두 다 여실히 압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타심지(他心智)로 다른 유정과 다른 삭취취(數取趣) 마음이 생각하는 것들을 스스로 잘 압니다.
또 그는 숙주지(宿住智)로써 무량한 숙주의 일을 기억하나니,
이른바 자타(自他)의 1생,
2ㆍ3ㆍ4ㆍ5에서 10ㆍ20ㆍ30ㆍ40ㆍ50에 이르고,
나아가 백 생,
다백(多百)ㆍ다천ㆍ다백천생과 성겁(成劫)ㆍ괴겁(壞劫) 및 성괴겁을 기억하며,
내지 무량한 성괴겁(成壞劫)을 기억하고 백 겁을 기억하며,
천 겁ㆍ백천 겁ㆍ구지(俱胝) 겁(劫)ㆍ백구지 겁ㆍ천구지 겁ㆍ백천구지 겁을 기억하고,
내지 무량 백천구지 나유타 겁을 다 잘 기억합니다.
이른바 나는 전생에 어느 곳에 있었고 어떤 이름과 어떤 성(性)과 어떤 종족과 어떤 얼굴이었으며 어떤 음식을 먹고 얼마나 되는 수명과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었으며 저기서 죽어 여기서 나고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서는 어떤 얼굴을 가졌고 어떤 말을 썼던가 등,
간략하거나 자세한 숙주의 일을 다 잘 기억합니다.
그는 또 사람보다 청정한 하늘 눈[天眼]으로 유정들의 죽는 때와 나는 때,
좋은 형색과 나쁜 형색,
좋은 취(趣)와 나쁜 취(趣) 등,
하열하거나 수승하거나 그 업을 따라 행하는 모든 유정의 무리들을 다 여실히 압니다.
이른바 저 유정은 몸과 입과 뜻의 악행을 성취하여 성현을 비방하고 사견(邪見)을 구족하였으므로 그 사견의 업으로 말미암아 현재에 인연을 받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험악한 악취에 떨어져 나락가(奈洛迦)에 날 것입니다.
또 저 중생은 몸과 입과 뜻의 선행을 성취하여 성현을 찬미하고 정견(正見)을 성취하였으므로 그 정견의 업으로 말미암아 현재에 인연을 받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좋은 세계에 나서 천상의 온갖 쾌락을 누릴 것이라는 등과 같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사람보다 청정한 하늘 눈으로 같은 얼굴과 같은 말로 저 유정들의 죽을 때와 날 때,
좋은 형색과 나쁜 형색,
선취(善趣)와 악취(惡趣),
하열하거나 수승하거나 업을 따라 행하는 모든 유정의 무리들을 다 여실히 압니다.
그러면서도 이 보살은 그 선정(禪定)과 해탈(解脫)과 등지(等持) 및 모든 등지(等至)에 마음대로 출입하지마는 그 위력에 의하여 생(生)을 받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 곳을 보면 보리분(菩提分)의 법을 빨리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원력으로 거기 나는 것입니다.
보살이 이러한 발광지에 머무르고 나면 광대한 소견과 원력으로 말미암아 많은 부처ㆍ많은 백 부처ㆍ많은 천 부처ㆍ많은 백천나유타 부처와 많은 구지 부처ㆍ많은 백구지 부처ㆍ많은 천구지 부처ㆍ많은 백천구지 부처ㆍ많은 백천구지 나유타 부처님이 나타나는 것을 뵈옵니다.
보살은 이 여래ㆍ응ㆍ정 등각을 뵈옵고는 모두 광대한 증상의 의요(意樂)로 공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여 의복ㆍ음식ㆍ침구ㆍ약품 등 온갖 생활 도구를 올리고 보살의 갖가지 묘한 오락 도구를 승가 대중에게 바치므로 공경을 표하고 이 선근을 무상정등보리에 회향하며 모든 부처 여래들을 존중하여 받들어 섬기며 그 부처님께 공경하고 설법을 들으며 법을 다 듣고는 받들어 지니면서 분수를 따라 수행합니다.
또 이 보살은 일체의 법은 변함도 없고 무너져 멸함도 없고 다만 인연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관찰합니다.
그리하여 이 보살은 일체 욕심의 결박이 미약해지고 일체 색의 결박과 모든 무명의 결박도 다 약해지며 일체 견해의 결박은 이미 먼저 끊어졌습니다.
보살은 이 발광지에 머무르는 동안 무량한 겁ㆍ무량 백 겁ㆍ무량 천 겁ㆍ무량 백천 겁ㆍ무량 백천나유타 겁과 무량 구지 겁ㆍ무량 백구지 겁ㆍ무량 천구지 겁ㆍ무량 백천구지 겁ㆍ무량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에 삿된 탐욕을 쌓아 모으지 않으므로 삿된 탐욕이 끊어지고 분노를 쌓아 모으지 않으므로 분노가 끊어지며 삿된 어리석음을 쌓아 모으지 않으므로 삿된 어리석음이 끊어져 모든 선근이 더욱 깨끗하고 밝아집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진금이 훌륭한 연금사의 손에서 잘 담금질되어 온갖 더러운 것을 떨쳐 버려도 저울의 눈금은 전혀 감손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살이 이 발광지에 머무는 것도 이와 같아서,
무량 백겁 내지 무량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 삿된 탐욕을 쌓지 않고 끊어 버리고 삿된 분노를 쌓지 않고 끊어 버리고 삿된 어리석음을 쌓지 않고 끊어 버렸기 때문에 모든 선근이 더욱 밝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또 이 보살은 더욱 안인(安忍)하여 유화한 의요가 청정해집니다.
또 열미(悅美)의 의요,
성냄이 없는 의요,
동요가 없는 의요,
혼탁[濁]하지 않은 의요,
높낮음이 없는 의요,
유정의 뜻이 낮아지기를 바라지 않는 의요,
보수를 바라지 않는 의요,
간사함이 없는 의요,
빽빽하지 않은 의요 등 모두 다 청정해집니다.
그리고 이 보살은 4종의 섭사(攝事) 중에서는 이행(利行)이 특히 많고 10바라밀 중에서는 안인바라밀이 뛰어나게 되며 다른 바라밀은 다만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르나 닦아 행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불자들이여,
이는 보살의 제3 발광지를 간략히 말한 것입니다.
보살이 이 지(地)에 편안히 머물면서 생을 받게 되면 대체로 제석천왕이 되어,
자재한 힘을 가지고 유정들을 잘 교화하여 탐욕을 떠나게 하고 탐욕의 진창에 빠진 자를 훌륭히 구제합니다.
그가 지은 모든 업,
보시(布施)든 애어(愛語)든 이행(利行)이든 혹은 동사(同事)든 이런 일체는 모두 부처님 생각을 떠나지 않고 법의 생각과 승가(僧伽)의 생각과 보살의 생각과 보살행의 생각과 바라밀의 생각과 모든 지(地)의 생각과 부처님 힘의 생각과 무외(無畏)의 생각과 불공법(不共法)의 생각과 나아가 일체 행상(行相)의 뛰어난 오묘함과 상응하는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생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서원합니다.
‘나는 일체 유정들 가운데서 그 으뜸이 되고 뛰어남이 되며 수승함이 되고 묘함이 되며 미묘함이 되고 위가 되며 무상(無上)이 되고 길잡이가 되며 장군이 되고 장수가 되고,
나아가 일체지지(一切智智)가 의지하는 곳이 되리라.’
만일 이런 정진을 즐겨 일으켜 일체의 가족ㆍ권속ㆍ재물ㆍ지위를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깨끗한 믿음으로 출가하면 한 찰나 한 순간에 백천의 온갖 삼매를 증득하고 백천의 부처님을 뵈오며,
그 부처님이 가지(加持)하심을 모두 알 수 있고 백천의 세계를 진동시킬 수 있으며,
백천의 국토에 가고 백천의 세계를 비추며,
백천의 유정을 성숙시키고 백천 겁을 살며,
과거 미래 백천 겁에 들어가고 백천의 법을 바로 생각하고 판별하며 백천의 몸을 나투어 보이고 몸몸마다 백천 보살이 그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이상은 원력을 가진 보살이 그 훌륭한 원으로 말미암는 모든 유희로서 혹은 몸,
혹은 광명,
혹은 신통,
혹은 눈,
혹은 경계,
혹은 음성,
혹은 행동,
혹은 장엄,
혹은 승해(勝解),
혹은 지음 등과 같은 것은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에도 다 셀 수 없습니다.”
그때 금강장보살은 이 뜻을 거듭 펴기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맑고 깨끗함과 편히 머무름과 싫어해 여의는 마음과
욕심을 떠남과 물러남이 없음과 또 견고함과
왕성함과 용감함과 뛰어나게 오묘함과 넓음
이런 열 가지 마음으로 제3지에 들어간다.
보살은 이 제3지 가운데 머무르면서
행의 무상함과 괴로움과 부정함(不淨)
의지할 것 없음과 무너짐과 오래 머무르지 않음과
변천함과 머무름이 없음과 오고 감이 없음을 본다.
몸은 구제할 이 없고 믿어 의지할 수 없으며
근심이 있고 고뇌가 있으며 사랑과 미움이 계속하고
괴로움이 많고 멈춤이 없으며 혹은 불에 타거나
병과 함께 있으면서 끊임이 없음을 본다.
삼유(三有)를 싫어해 부처님의 지혜 구하여
그 묘한 지혜는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고
그 짝이 없고 한량이 없고 증득하기 어려우며
잡됨이 없고 재앙이 없고 고뇌 없음을 본다.
큰 적멸(寂滅)에로 돌아가 퇴전함이 없으니
괴로워하는 한량없는 유정들을 구제한다.
부처님의 지혜를 보고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나니
저들은 고독하여 의지할 데가 없고 구호할 이도 없으며
3독(毒)의 불꽃이 타올라 늘상 곤핍하여
유(有)의 감옥에 갇혀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
번뇌와 습기에 덮여 지혜의 눈이 없고
지락(志樂)이 하열하여 법보(法寶)를 잃고
나고 죽음을 수순하여 열반을 두려워하나니
나는 저들을 구제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리.
지혜를 구하여 유정들을 이롭게 하려 할 때
어떤 방편으로 저들을 시킬까를 생각한다.
부처님의 걸림이 없는 지혜를 떠나지 않고 머무르니
이것은 법의 여실한 이치를 깨달음이고
깨달음은 행이 없고 남[生]이 없는 지혜로 비롯하며
그 지혜는 선정에서 생기고 선정은 들음[聞]에 있다.
이와 같이 생각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밤낮으로 듣고 익히어 법을 존중한다.
바른 법을 듣기 위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국성(國城)과 생활 도구와 갖가지의 보배와
처자 권속들과 또 왕위 등
이와 같은 일체를 모두 버릴 수 있네.
머리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또 이빨과
손과 발과 뼈와 골수와 염통과 피와 살
이런 것을 버리기엔 어려울 것이 없고
다만 법의 스승을 만나기만 어렵다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있어 보살에게 말하기를
누구든 감히 큰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 수 있다면
내 그대에게 불법의 보배를 주리라 하면
보살은 이 말 듣고 몸을 던지매 겁내지 않는다.
설사 삼천대천세계에 불이 가득 찼다 하여도
저 범천 세계에서도 몸을 던져 들어가니
법을 구하기 때문이라면 어렵다 하지 않거늘
하물며 인간 세계의 조그만 고통이겠는가.
초발의(初發意)부터 보리에 이르기까지
설사 그 간에 무간지옥의 고통이 있다 하여도
법을 듣기 위해서라면 다 받을 수 있거늘
하물며 이 인간 세상의 모든 괴로운 일이겠는가.
법을 듣고는 이치 그대로 바르게 사유하여
네 가지 선정과 네 가지 등지(等至)
네 가지 무량심(無量心)과 다섯 가지 신통 얻지만
그러나 그 세력을 따라 생을 받지 않는다.
보살은 이 지에 머무르면서 많은 부처님 뵙고는
공양하고 법을 듣고 마음으로 결정하여
온갖 삿된 의혹을 끊어 깨끗하고 밝아지나니
마치 진금(眞金)을 담금질하나 본체는 줄어듬이 없는 것과 같다.
이 지에 머무르면 대개는 제석천왕이 되어
한량이 없는 모든 유정을 교화하여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선도(善道)에 머무르게 하며
모두 오로지 부처님의 공덕을 구하게 한다.
여기 머무르면서 정진하면 한 찰나 사이에
백천의 삼마지를 증득할 수 있고
백천 부처님의 상호로 장엄한 몸을 뵈오며
만일 서원의 힘을 갖추면 이보다 더하리.
일체의 유정들을 두루 이롭고 즐겁게 하려는
저 모든 보살의 최상의 행으로
이와 같이 제3지를 가지니
나는 그 뜻에 의해 다 해석하였다.
4. 보살염혜지(菩薩焰慧地)
불자들은 이 넓고 큰 행과
즐거워할 만한 깊고 묘한 뛰어난 법을 듣고
그 마음이 모두 큰 기쁨에 과감히 크게 좋아하여
온갖 꽃을 널리 흩어 부처님께 공양하였네.
이와 같은 묘한 법을 연설할 때에
대지와 바닷물이 다 진동하고
일체의 천녀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모두 묘한 소리를 내어 함께 찬탄하였다.
자재천왕도 크게 기뻐하여
마니보배 비를 내려 부처님께 공양하고
찬탄하기를 “부처님은 우리를 위해 나오셔서
제일의 공덕행을 연설하신다.
이와 같은 지혜로운 이들의 모든 지(地)의 뜻
백천 겁에도 실로 듣기 어려운데
우리는 지금 갑자기 얻어 들었네,
보살의 훌륭한 행과 묘한 법의 음성을.
원컨대 지혜로운 사람이여,
한 번 더 설명해 주오.
뒤의 결정된 지(地)의 남김이 없는 도는
일체의 모든 대중을 이익하게 하리니,
이 모든 불자들은 다 즐겨 들으리라.”
큰 용맹심(勇猛心)의 해탈월보살은
금강장보살에게 말하기를,
“불자여,
지금부터 제4지로 전전해 들어가리니
갖가지의 행상을 설명해 주오.”
그때 금강장보살은 보살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만일 이 보살의 제3지를 밝히어 청정케 하여서 보살의 제 4지지(智地)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10가지 법을 밝혀야 들어갈 수 있나니 무엇을 10가지 법이라 하는가?
이른바 유정계(有情界)를 깊이 관찰해 밝히므로 들어가고,
모든 법계를 깊이 관찰해 밝혀야 들어가며,
진법계(眞法界)를 깊이 관찰해 밝혀야 들어가며,
허공계를 깊이 관찰해 밝혀야 들어가고,
식계(識界)를 깊이 관찰해 밝혀야 들어가며,
욕계를 깊이 관찰해 밝혀야 들어가고,
세계를 깊이 관찰해 밝혀야 들어가며,
무색계를 깊이 관찰해 밝혀야 들어가고,
묘의요승해계(妙意樂勝解界)를 깊이 관찰해 밝혀야 들어가며,
광대의요승해계(廣大意樂勝解界)를 깊이 관찰해 밝혀야 들어가나니,
보살은 이 10가지 법을 밝혀서 제4지에 들어갑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이 제4지인 염혜지를 얻자마자 곧 10가지의 지혜로 법을 성숙시켜 여래의 가문에서 자라 그 체법(體法)을 얻습니다.
무엇을 10가지라 하는가?
이른바 의요가 퇴전(退轉)되지 않기 때문이요,
3보(寶)에 대해 깨끗한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고 구경에 이르기 때문이며,
모든 행의 생멸하는 성품을 관찰하기 때문이요,
모든 법성이 일어나지 않음을 판별하기 때문이며,
세간이 생성되고 무너지고 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요,
업에 생사가 있음을 보기 때문이요,
생사와 열반을 보기 때문이며,
유정들의 국토 업(業)을 보기 때문이요,
과거와 미래를 보기 때문이며,
성품이 없고 다함도 없음을 보기 때문이니,
불자들이여,
보살은 이와 같은 10가지 지혜를 성취하여 법을 성숙시켜 여래 집에서 자라 그 체법을 얻습니다.
또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 염혜지에 머무를 때엔 내신(內身)을 따라 순신관(循身觀)에 머무르면서 정열적으로 정진하여 앎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갖추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며,
외신(外身)을 따라 순신관에 머무르면서 정열적으로 정진하여 앎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갖추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고 내외신을 따라 순신관에 머무르면서 정열적으로 정진하여 앎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갖추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앱니다.
내수(內受)와 외수(外受)와 내외수에 있어서도 그와 같으며,
내심(內心)과 외심(外心)과 내외심에 있어서도 그와 같습니다.
그리고 내법(內法)을 따라 순법관(循法觀)에 머무르면서 정열적으로 정진하여 앎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갖추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애고,
외법(外法)을 따라 순법관에 머무르면서 정열적으로 정진하여 앎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갖추어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없앱니다.
또 보살은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불선(不善)한 법을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욕책려(欲策勵)를 내고 정근을 일으켜 마음을 다스리고 간수합니다.
이미 생긴 악하고 불선(不善)한 법을 영원히 단절시키기 위하여 욕책려(欲策勵)를 내고 정근을 일으켜 마음을 다스리고 간수합니다.
또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善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욕책려를 내고 정근을 일으켜 마음을 다스리고 간수합니다.
이미 생긴 선법을 안주해 잊지 않고 배(倍)로 늘리어 닦아 원만히 하기 위하여 욕책려를 내고 정근을 일으켜 마음을 다스리고 간수합니다.
또 보살은 욕등지(欲等至)의 단행(斷行)을 닦아 신족(神足)을 성취하며,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또 근등지(勤等持)의 단행을 닦아 신족을 성취하며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또 심등지(心等持)의 단행을 닦아 신족을 성취하며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관등지(觀等持)의 단행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또 보살은 신근(信根)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정진근(精進根)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염근(念根)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정근(定根)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혜근(慧根)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또 보살은 신력(信力)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정진력(精進力)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염력(念力)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정력(定力)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혜력(慧力)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또 보살은 염등각지(念等覺支)를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택법(擇法)등각지를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희(喜)등각지를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경안(輕安)등각지를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정(定)등각지를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사(捨)등각지를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또 보살은 바른 견해를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바른 생각[念]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바른 생각[思]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바른 말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바른 업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바른 명(命)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바른 정진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바른 정(定)을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바른 지혜를 닦아 여읨에 의지하고 번뇌 없음에 의지하고 소멸함에 의지하여 보시에 회향합니다.
보살이 이러한 보리분(菩提分)의 법을 닦는 것은 다만 유정 세계를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요,
일으킨 본원(本願)의 도움을 받기 때문이며,
대비(大悲)를 길잡이로 삼기 때문이요,
대자(大慈)를 성취했기 때문이며,
일체지자(一切智者)의 지혜를 반연하여 생각하기 때문이요,
불찰의 모든 장엄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며,
여래의 힘과 무외(無畏)와 불공법(不共法)과 상호와 말소리를 끌어내기 위해서요,
후후(後後)의 수승한 법을 희구하기 때문이며,
깊고 깊은 해탈과 들은 대로 행함에 수순하기 때문이요,
광대하고 훌륭한 방편을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 염혜지(燄慧地)에 머무를 때는 모든 미세한 신견(身見) 등과 같은 미혹,
이른바 아(我)ㆍ유정ㆍ수명ㆍ양육ㆍ사부(士夫)ㆍ삭취취(數取趣)ㆍ온(蘊)ㆍ계(界)ㆍ처(處)의 집착이 일으킨 어지러운 사유(思惟)ㆍ사찰(伺察)ㆍ호지(護持)ㆍ섭수(攝受)ㆍ축적(畜積)ㆍ착처(著處) 등 이러한 모든 것을 다 멀리 여읩니다.
일체 짓지 않아야 할 업과 모든 부처님이 꾸짖은 것과 잡염(雜染)이 일으킨 것 등 이런 것들을 모두 멀리 여읩니다.
모든 지어야 할 것과 보살의 바른 행을 따르는 자량(資糧)과 모든 여래께서 찬탄하신 업을 모두 받아 행합니다.
또 더 나아가 보살도를 원만히 얻기 위하여 여여(如如)한 방편의 지혜가 끌어낸 모든 도지(道支)를 이러이러하게 닦아,
윤택한 마음과 유화한 인욕,
감능(堪能)이 있는 마음과 이익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마음,
잡염(雜染)이 없는 마음과 후후(後後)의 수승한 법을 구하는 마음,
훌륭한 지혜를 바라는 마음과 일체 세간을 능히 구제하는 마음,
모든 스승[師長]을 존중하고 수순하는 마음과 들은 법 그대로 수행하는 마음을 얻습니다.
또 은혜를 잘 알고 은혜 갚을 줄을 잘 알며 그 마음이 조화(調和)로워 함께 살기 안락하며 순직하고 유화하여 숲과 같이 촘촘한 그런 행이 없으며 거짓도 없고 교만도 없으며 착하고 유순한 말을 하는 사람은 가까이서 그 가르침을 받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안인(安忍)을 성취하고 조복(調伏)을 성취하고 적멸을 성취합니다.
이와 같이 안인과 조복과 적멸을 성취하고는 사유하고 실행하여 앞의 보살지의 모든 업을 깨끗이할 때에 큰 정진을 얻어 끊임이 없나니,
즉 무잡염(無雜染)한 정진,
불퇴전(不退轉)한 정진,
광대한 정진,
부변한 정진,
치열한 정진,
무등(無等)한 정진,
가릴 수 없는[無映奪] 정진,
일체 유정을 성숙시키는 정진,
그리고 도(道)와 도 아님[非道]을 잘 분별하는 정진 등입니다.
또 이 보살은 선한 마음의 세계가 점점 청정해지고 뛰어난 마음의 세계를 잃지 않으며 승해(勝解)의 마음이 밝고 예리하고 선근이 청정하여서 세상의 혼탁함을 떠납니다.
모든 의혹을 끊어서 의혹 없는 성품이 앞에 드러나면 희(喜)와 경안(輕安)을 구족하여 증득케 되고,
여래의 가지(加持)가 앞에 나타나게 되면 무량한 마음의 의요(意樂)를 모두 성취하게 됩니다.
보살이 이 염혜지에 머무르면서 광대한 견(見)과 또 원(願)의 힘으로 많은 부처ㆍ많은 백 부처ㆍ많은 천 부처ㆍ많은 백천 부처ㆍ많은 백천나유타(那庾多) 부처ㆍ많은 구지(俱胝)부처ㆍ많은 백구지 부처ㆍ많은 천구지 부처ㆍ많은 백천구지 부처ㆍ많은 백천구지 나유타 부처님이 드러나서 봅니다.
보살은 이와 같은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을 뵈옵고는 모두 광대하고 뛰어난 의요로 공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되,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올리고 보살의 온갖 오락거리를 승가(僧伽) 대중들에 바치어 공경을 표합니다.
이러한 선근으로 무상정등보리께 회향하여 모든 부처님을 정성껏 받들어 섬기면서 그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서 공손히 설법을 들고 법을 다 듣고는 수지(受持)하여 분수에 따라 수행하여 대부분 그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깨끗한 믿음으로 출가합니다.
그리하여 이 보살의 모든 의요와 증상된 의요,
그리고 승해(勝解)와 평등한 성품이 점점 더 청정해집니다.
보살은 이 염혜지에 머무르고는 다시 또 무량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 이 의요와 승해와 평등이 청정해져서 그리고 모든 선근이 더욱 치열하고 더욱 청정해짐에 안주합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훌륭한 연금술사가 담금질한 금으로 만든 장엄 도구는 장엄구로 만들어지지 못한 나머지 금으론 그 빛을 가리지 못하는 것처럼,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 염혜지(燄慧地)에 안주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그의 모든 선근은 하지(下地)에 안주하는 모든 다른 보살의 선근으로는 그 빛을 가리지 못합니다.
또 불자들이여,
마니보배의 청정한 광륜(光輪)이 발하는 광명은 다른 보주(寶珠)로는 그 빛을 가릴 수 없고 또 그 광명은 일체 세간의 비바람 등이 끊어 없애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이 염혜지에 머무르는 때도 그와 같아서 하지(下地)에 머무르는 다른 보살로는 그 빛을 가릴 수 없고,
그 모든 지혜 광명은 일체의 악마와 번뇌의 현행(現行)으로는 가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보살은 4섭법 가운데서 동사(同事)가 유난히 많으며,
10바라밀 중에서는 정진바라밀이 가장 뛰어납니다.
다른 바라밀은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르지마는 닦지 않은 것을 아닙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은 보살의 제4지인 염혜지를 대강 설명한 것입니다.
보살이 이 제4지에 머무르다가 생을 받으면 대체로 소야마천왕이 되어 자재한 힘으로 유정들을 잘 교화시켜 살가(薩迦)의 삿된 견해를 없애고 유정들로 하여금 바른 견해에 안주하게 하며,
그가 짓는 모든 업,
보시(布施)거나 애어(愛語)거나 이행(利行)이거나 동사(同事)거나 이것들은 다 부처님의 생각과 법의 생각,
승가의 생각,
보살의 생각,
보살행의 생각과 바라밀의 생각,
모든 지(地)의 생각과 부처님의 힘ㆍ무외(無畏)ㆍ불공법(不共法)의 생각을 떠나지 않고,
나아가 일체의 행상(行相)과 승묘(勝妙)와 상응하는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생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발원합니다.
‘나는 일체 유정 중에서 그 으뜸이 되고 훌륭함이 되고 수승함이 되며 묘함이 되고 미묘함이 되며 위가 되고 위없음이 되며 길잡이가 되고 장군이 되고 장수가 되며 나아가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의지처가 되리라.’
만일 즐거이 이런 정진을 일으키면,
정진으로 말미암아 한 찰나 한 순식(瞬息) 사이에 구지(俱胝)의 모든 삼마지(三摩地)를 증득하고 구지의 부처님을 뵈오며 그 부처님의 가지(加持)를 잘 이해하고 구지의 세계를 진동시키며 구지의 불찰에 가고 구지의 세계를 비추며 구지의 유정을 성숙시키고 구지의 겁 동안 살며 과거와 미래의 구지 겁에 들어가고 구지의 법문을 바르게 생각해 가리며,
구지의 몸을 나투며 몸몸마다 구지의 보살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모든 보살 가운데 원력이 있는 보살은 그 훌륭한 원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유희,
혹은 몸,
혹은 광명,
혹은 신통과,
혹은 눈,
혹은 경계,
혹은 음성,
혹은 행,
혹은 장엄,
혹은 승해,
혹은 짓는 것 등은 심지어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에도 다 세어도 셀 수가 없습니다.”
그때 금강장보살은 이 뜻을 거듭 펴기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살은 제3지를 깨끗이 한 뒤
다음에는 유정계(有情界)와 법계(法界)
허공계ㆍ식계(識界)ㆍ욕계ㆍ색계ㆍ무색계를 관찰하고
훌륭하고 큰 의요로 달려 들어간다.
보살은 염혜지에 오르자마자
여래의 집에서 자라 영원히 물러나지 않고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대해 믿음이 무너지지 않으며
법이 나고 멸하나 나고 멸함이 없음을 관찰한다.
세상이 만들어짐과 무너짐 그리고 업이 생겨 있음과
생사 열반과 국토 등의 업을 관찰하고
과거와 미래의 성품이 다함 없음을 관찰하나니
이와 같은 행을 닦으며 여래의 집에서 자란다.
이런 법을 다 얻어서 자비를 늘리고
다시 또 4염주(念住)를 부지런히 닦아
몸과 감수와 마음과 법의 안팍을 관찰하여
세간의 탐심과 애욕을 모두 떨쳐 버린다.
보살은 네 가지 바른 끊임[正斷]을 다스려
악법(惡法)은 없애고 선법(善法)은 늘리어서
신족(神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등각지(等覺支)와 8성도(聖道)를 훌륭히 닦는다.
유정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각분(覺分)을 닦고
본원(本願)의 도움을 받으며 자비를 으뜸으로 하여
일체의 지혜를 구하고 불토를 장엄하니
이 역시 부처님의 열 가지 힘에 연하노라.
네 가지 무소외(無所畏)와 불공법(不共法)
특별히 수승한 상호와 매우 아름다운 음성을 반연하고
또한 묘한 도와 해탈의 길을 구하기 위해
큰 방편을 찾아 각분(覺分)을 닦는다.
신견(身見)을 시작으로 하는 62가지 견해와
아(我)와 아소(我所) 등 한량이 없는 종류
5온(蘊)과 12계(界)와 18처(處) 등의 모든 취착(取着)을
이 제4지에서는 모두 멀리 여읜다.
여래께서 꾸짖는 모든 잡된 번뇌와
아무 의미도 없는 온갖 업은 모두 버리고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시는 청정한 업은
유정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짓지 않는 것 없네.
보살이 부지런히 수행하되 태만함이 없다면
곧 열 가지 마음을 얻어 원만히 갖추고
오로지 부처님의 도를 구하여 싫증 내는 법이 없다면
관정(灌頂)을 받아 유정을 제도하기 바라네.
존덕(尊德)을 공경하고 법행(法行)을 닦으며
은혜를 알고 쉽게 뉘우치고 사나움이 없으며
교만을 버리고 아첨을 떠나며 마음이 고르고 부드러우며
다시 또 정근하여 퇴전함이 없다면
그 마음의 경계는 맑고 깨끗해져
뛰어난 마음을 길이 잃지 않는다네.
승해(勝解)로 결정하며 선근을 늘리고
의심 그물[疑網]과 더러움[汚]과 흐림[濁]을 모두 영원히 여의며
앞에 나타난 것에 대한 의심이 없어서 기쁨과 편안함을 얻고
부처님의 가지(加持)를 입어 그 뜻이 무량하네.
보살은 이 염혜지에 머무르면서
한량이 없는 나유타 부처님께 공양하고
바른 법을 듣고는 집을 떠나나니
그의 빛을 가릴 수 없음이 금 장식과 같구나.
보살은 여기 머무르면서 온갖 공덕을 갖추고
지혜와 방편으로 도를 닦아 행할 때
뭇 번뇌에 의해 마음이 물러나지 않나니
마치 묘한 보배를 깨뜨릴 수 없음과 같네.
대체로 야마천의 왕이 되어
법에 자재하여 뭇 사람의 존경을 받고
중생을 두루 교화시키고 나쁜 소견 없애고
오로지 부처님의 지혜를 구해 선업을 닦네.
등지(等持) 등 구지(俱胝)의 수를 얻노라.
만일 서원과 지혜의 힘으로 하는 바라면
보살은 정진의 힘을 부지런히 더하여
이런 수보다 더 많아 셀 수가 없네.
이와 같은 보살의 제4지는
정진과 미묘한 도를 행하나니
공덕의 이치와 지혜가 함께 상응하네
▸ 나는 불자들을 위하여 이제 다 설명하였네. ◂
● [pt op tr] fr
_M#]
★%★
●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표현들로 된 경전들
경전을 대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경전 내용을 반복해 읽어 보아도 무슨 의미인지를 알기 힘들다.
그런 경전이 많다.
한없이 길게 문장이 이어진다.
때로는 문장 자체가 무엇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가까운 다른 이에게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하기도 힘들다.
나 자신부터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내용이 왜 좋은 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이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할 수 있는가.
오늘 살피는 경전도 사정이 비슷하다.
끝 문장을 보니 다음처럼 되어 있다.
▸ 나는 불자들을 위하여 이제 다 설명하였네. ◂
무언가 설명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이 바로 앞 문장 하나를 놓고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렇게 되어 있다.
...
▸ 등지(等持) 등 구지(俱胝)의 수를 얻노라.
만일 서원과 지혜의 힘으로 하는 바라면
보살은 정진의 힘을 부지런히 더하여
이런 수보다 더 많아 셀 수가 없네. ◂
만일 서원과 지혜의 힘으로 하는 바라면
보살은 정진의 힘을 부지런히 더하여
이런 수보다 더 많아 셀 수가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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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되어 있다.
몇몇 표현은 일반인에게는 낯선 표현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전을 찾아보면 알 수는 있따.
불교를 오래 공부하면 많이 대하는 표현들이다.
문제는 이런 단어의 의미를 알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아무리 문장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첫 문장을 보자.
등지(等持) 등 구지(俱胝)의 수를 얻노라.
이것이 무슨 표현인가.
등지(等持)는 삼매를 뜻한다.
마음을 하나에 집중하여 사유하는 것을 나타낸다.
구지는 10 의 7 승 즉 천만을 나타낸다.
그런데 등지 등 구지의 수를 얻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등지라는 수행덕목과 그 수는 무슨 관계인가.
그리고 무슨 사정으로 누가 그것을 얻는가.
그 다음 문장도 마찬가지다.
만일 서원과 지혜의 힘으로 하는 바라면
보살은 정진의 힘을 부지런히 더하여
이런 수보다 더 많아 셀 수가 없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