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심밀경』
K0154
T0676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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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심밀경』 ♣0154-001♧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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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解深密經卷第一
K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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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심밀경(解深蜜經) 제1권
대당(大唐) 현장(玄奘) 한역
김달진 번역
1. 서품(序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박가범(薄伽梵)께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칠보장엄에 머물며 큰 광명을 놓아 일체 끝없는 세계의 한량없는 방소(方所)를 널리 비추니,
묘한 장엄이 사이사이에 펼쳐지고 보편하고 원만함이 끝이 없었다.
그 한량은 헤아리기 어려워 삼계(三界)를 뛰어넘었으며,
행하는 곳마다 세간을 수승하게 벗어났으니,
선근(善根)에서 일어난 것으로서 최고로 자재(自在)하였다.
맑은 식(識)으로 모습을 삼은 여래의 도읍이었으며,
모든 보살이 구름같이 모이는 곳이고,
한량없는 천(天)ㆍ용(龍)ㆍ약차(藥叉:
야차)ㆍ건달바(健達婆)ㆍ아소락(阿素洛:
아수라)ㆍ게로다(揭路茶:
가루라)ㆍ긴나락(緊那洛:
긴나라)ㆍ모호락가(牟呼洛伽:
마후라가)ㆍ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이[人非人] 무리가 항상 따르고 모시는 곳이었다.
광대한 법미(法味)의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있어 모든 중생에게 일체 의리(義利)가 되고 모든 번뇌ㆍ재앙ㆍ횡액ㆍ얽매임ㆍ때[垢]를 없앴으며,
뭇 마군을 멀리 벗어나고 모든 장엄을 뛰어넘는 여래의 장엄이 의지하는 곳이었다.
큰 생각[念]과 지혜[慧]와 수행[行]으로 노니는 길을 삼았으며,
큰 지(止)와 묘한 관(觀)으로 수레[乘]를 삼았으며,
큰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해탈로 들어가는 문을 삼았으며,
온갖 무량 공덕으로 장엄하고 온갖 크고 보배로운 꽃으로 세워진 큰 궁전에 머무셨다.
이는 박가범의 가장 청정한 깨달음이었다.
둘 없음이 현행(現行)하여 무상법(無相法)에 나아갔으며,
불주(佛住)에 머물러 일체 부처님의 평등한 성품을 얻고 장애가 없는 곳에 이르렀다.
누구도 굴릴 수 없는 법은 가는 곳마다 장애가 없고,
그것이 세워 놓은 것은 불가사의했으며,
3세(世)의 평등한 법성에 노닐었다.
그 몸은 일체 세계에 널리 퍼졌으며,
일체 법에 대해 그 지혜는 막힘이 없었다.
일체 행에 대해 대각(大覺)을 성취하고,
모든 법지(法智)에 대해 의혹이 없으며,
나타난 그 몸은 분별할 수가 없었다.
일체 보살이 구하는 바로 그 지혜로 부처님의 둘 없음[無二]을 얻어 훌륭한 ‘저 언덕’에 머물며 서로 섞이지 않았으며,
여래의 해탈과 묘한 지혜를 끝까지 하여 중간도 가도 없는 불지(佛地)의 평등함을 증득하였으며,
법계를 다하였고 허공의 성품을 다하고 미래의 세상을 다하였다.
한량없는 큰 성문과 함께 하시니,
모든 것을 조복 받고 수순한 그들은 모두 불자(佛子)였다.
그들은 마음이 잘 해탈하였으며,
지혜가 잘 해탈하였으며,
계행이 매우 청정하였으며,
법의 즐거움을 나아가 구하였으며,
많이 듣고 들은 것을 기억해 그 들은 것이 쌓이고 모였으며,
생각해야 할 것을 잘 생각하고 말해야 할 것을 잘 말하고 지어야 할 것을 잘 짓는 자들이었다.
민첩한 지혜[捷慧]ㆍ재빠른 지혜[速慧]ㆍ날카로운 지혜[利慧]ㆍ벗어나는 지혜[出慧]ㆍ수승하게 결택하는 지혜[勝決擇慧]ㆍ큰 지혜[大慧]ㆍ넓은 지혜[廣慧]ㆍ같은 것 없는 지혜[無等慧] 등 지혜의 보배를 성취하였으며,
3명(明)을 구족하였으며,
제일의 현법락주(現法樂住)를 얻었으며,
크고 청정한 복밭[福田]이었다.
위의(威儀)와 고요함이 모두 원만하였으며,
큰 인욕과 부드러운 화목을 성취하여 손상함이 없었으며,
이미 여래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잘 받들어 행하는 자들이었다.
또 한량없는 보살마하살이 갖가지 불국토에서 찾아와 모였다.
그들은 모두 대승에 머물러 대승법에 노닐고 모든 중생에게 그 마음이 평등하였으며,
모든 분별과 분별 않음과 갖가지 분별을 여의었으며,
일체 마군과 원수를 무찌르고 항복 받았으며,
일체 성문과 독각(獨覺)이 가진 작의(作意)를 멀리 벗어난 자들이었다.
광대한 법의 맛인 기쁨과 즐거움을 지니고 다섯 가지 두려움을 초월해 물러나지 않는 지위로 한결같이 들어갔으며,
일체 중생을 괴롭히는 일체 괴로움을 쉰 자들이었다.
그들이 나타나 앞에 있었으니,
그 이름은 해심심의밀의(解甚深義密意)보살마하살ㆍ여리청문(如理請問)보살마하살ㆍ법용(法涌)보살마하살ㆍ선청정혜(善淸淨慧)보살마하살ㆍ광혜(廣慧)보살마하살ㆍ덕본(德本)보살마하살ㆍ승의생(勝義生)보살마하살ㆍ관자재(觀自在)보살마하살ㆍ자씨(慈氏)보살마하살ㆍ만수실리(曼殊室利)보살마하살 등이 상수가 되었다.
2.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그때 여리청문(如理請問)보살마하살이 부처님 앞에서 해심심의밀의(解甚深義密意)보살에게 물었다.
“최승자(最勝子)여,
일체 법은 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체 법이 둘이 아니라 할 때,
어떤 것이 일체 법이며,
왜 둘이 없다고 합니까?”
해심심의밀의보살이 여리청문보살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일체 법에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함이 있는 유위(有爲)요,
둘째는 함이 없는 무위(無爲)입니다.
이 가운데 유위는 유위가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무위 역시 무위가 아니며 유위도 아닙니다.”
여리청문보살이 다시 해심심의밀의보살에게 물었다.
“최승자여,
왜 유위는 유위가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무위 또한 무위가 아니고 유위도 아닙니까?”
“선남자여,
유위란 곧 본사(本師)께서 거짓으로 시설(施設)하신 구절입니다.
만일 본사께서 거짓으로 시설하신 구절이라면 이는 변계소집(遍計所執)인 말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변계소집인 말로 하신 말씀이라면 이는 끝내 갖가지 변계인 말로 말씀하신 것이어서 실다움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유위가 아닙니다.
선남자여,
무위란 것 또한 ‘말’에 떨어집니다.
설사 유위와 무위를 벗어났다 해도 조금이라도 말이 있으면 그 모습 또한 그러합니다.
그렇다고 일 없이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일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모든 성자는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소견으로써 이름과 말을 떠난 까닭에 현전에 등정각(等正覺)을 이루고,
곧 이러한 말을 떠난 법성(法性)에서 남들도 현전에 정각을 이루게 하려고 거짓으로 이름과 생각을 세우고는 유위라 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무위란 것 역시 본사께서 거짓으로 시설하신 구절입니다.
만일 본사께서 거짓으로 시설하신 구절이라면 이는 변계소집인 말로써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변계소집인 말로써 말씀하신 것이라면 이는 끝내 갖가지 변계의 말로 말한 것이어서 진실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에 무위가 아닙니다.
선남자여,
유위란 것 또한 말에 떨어집니다.
설사 무위와 유위를 떠났다 해도 조금이라도 말한 것이 있으면 그 모습 또한 그러합니다.
그렇다고 일없이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일인가?
이른바 모든 성자는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소견으로써 이름과 말을 떠난 까닭에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고,
곧 이러한 말을 떠난 법성에서 남들도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게 하려고 거짓으로 이름과 생각을 세우고는 이를 무위라 한 것입니다.”
그때 여리청문보살마하살이 다시 해심심의밀의보살마하살에게 물었다.
“최승자여,
저 모든 성자가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소견으로써 이름과 말을 떠난 까닭에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고,
곧 이러한 말을 떠난 법성에서 남들도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게 하려고 거짓으로 이름과 생각을 세우고는 이를 유위라 하고 무위라 한다는 이 일은 무엇과 같습니까?”
해심심의밀의보살이 대답하였다.
“선남자여,
비유컨대 솜씨 좋은 요술쟁이[幻師]나 혹은 그의 제자가 네거리에서 기왓장이나 풀잎이나 나무 등을 쌓아 놓고 요술로 갖가지 사업(事業)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
이른바 코끼리의 몸과 말의 몸과 수레와 걷는 몸과 마니(摩尼)ㆍ진주(眞珠)ㆍ유리(琉璃)ㆍ나패(螺貝)ㆍ벽옥(碧玉)ㆍ산호(珊瑚)와 갖가지 재물과 곡식의 창고라는 몸입니다.
만일 우치(愚痴)하고 완둔(頑鈍)하고 악한 지혜를 가진 부류라서 깨우쳐 아는 바가 없는 중생이라면,
그들은 모두 기왓장ㆍ풀잎ㆍ나무 등에서 요술로 변화한 모든 일들을 보고 듣고 나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대로 진짜 코끼리 몸이 있는 것이고,
진짜 말의 몸과 수레와 걷는 몸과 마니ㆍ진주ㆍ유리ㆍ나패ㆍ백옥ㆍ산호 그리고 갖가지 재물과 곡식의 창고 등의 몸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 대로 들은 대로 굳게 집착하고는 이어서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모두 어리석고 허망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뒤에 다시 관찰해야만 합니다.
만일 어떤 중생이 우치하지 않고 둔하지 않고 지혜로운 부류라서 깨우쳐 아는 바가 있다면,
그는 기왓장ㆍ풀잎ㆍ나무 등에서 요술로 변화한 모든 일들을 보고 듣고 나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보이지만 실제 코끼리 몸은 없는 것이고,
실제 말 몸과 수레 몸과 걷는 몸과 마니ㆍ진주ㆍ유리ㆍ나패ㆍ벽옥ㆍ산호 그리고 갖가지 재물과 곡식의 창고 등의 몸은 없는 것이다.
요술로 나타낸 형상이 눈을 속여 그 가운데서 큰 코끼리의 몸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혹은 큰 코끼리 몸이 차별된다는 생각을 일으킨 것이며,
나아가 갖가지 재물과 곡식의 창고 따위의 몸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혹은 그것들이 갖가지로 차별된다는 생각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본 대로 들은 대로 굳게 집착하고는 이어서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모두 어리석고 허망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뜻을 표현하여 알리려는 까닭에 그들 역시 이 가운데서 말을 일으키기는 합니다.
그들은 뒤에 다시 관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만일 어떤 중생이 어리석은 무리 즉 이생(異生)의 무리로서 아직 모든 성인의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얻지 못하고 일체 법의 말을 떠난 법성을 밝게 알지 못한다면,
그는 일체 유위와 무위를 보고 듣고 나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얻은 대로 실제 유위와 무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본 대로 들은 대로 굳게 집착하고는 이어서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모두 어리석고 허망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뒤에 다시 관찰해야만 합니다.
만일 어떤 중생이 어리석은 무리가 아니어서 이미 성제(聖諦)를 보았고,
이미 모든 성인의 세간을 벗어난 지혜를 얻어 일체 법의 말을 떠난 법성을 여실히 안다면,
그는 일체 유위와 무위를 보고 듣고 나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얻었지만 실제 유위와 무위는 없는 게 분명하다.
분별에서 일어난 행상(行相)이 있어서 마치 요술이 깨닫는 지혜를 속이는 것처럼 그 가운데서 유위와 무위라는 생각을 일으킨 것이며,
혹은 유위와 무위가 차별된다는 생각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본 대로 들은 대로 굳게 집착하고는 이어서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모두 어리석고 허망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뜻을 표현해 알리려는 까닭에 그들 역시 이 가운데서 말을 일으키기는 합니다.
그들은 뒤에 다시 관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선남자여,
저 모든 성자는 이 일 가운데서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소견으로써 이름과 말을 여의는 까닭에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고,
곧 이러한 말을 떠난 법성에서 남들도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게 하려는 까닭에 거짓으로 이름과 생각을 세우고는 이를 유위라 하고 무위라 한 것입니다.”
그때 해심심의밀의보살이 이 뜻을 거듭 펴려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말을 벗어나 둘이 없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
깊고 또 깊어 어리석은 자 행할 것 아니건만
어리석은 범부들 어리석음에 속아
둘에 집착하기 좋아하고 말에 의지해 희론한다.
그들은 부정취(不定趣) 아니면 사정(邪定)이니
긴긴 세월 유전하며 생사의 고통 받았네.
이제 다시 이러한 바른 말씀 어기면
오는 세상에는 소나 염소 무리로 태어나리라.
그때 법용(法涌)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동쪽으로 72항하사 세계를 지나면 구대명칭(具大名稱)이란 세계가 있고,
그 세계의 여래는 광대명칭(廣大名稱)이십니다.
저는 며칠 전 그 불토(佛土)에서 떠나 여기로 왔습니다.
저는 그 불토에서 언젠가 7만 7천의 외도와 그의 스승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모든 법의 승의제(勝義諦)의 모습을 생각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의논하고 헤아리고 관찰하고 두루 추구했지만 일체 법의 승의제의 모습은 끝내 얻지 못했습니다.
갖가지 의견과 해석,
별다른 의견과 해석,
변하여 달라진 의견과 해석을 없애기만 하면 되는데,
그들은 서로를 등지고 함께 어울려 쟁론하며 입에서 창을 꺼내 서로를 때리고 찌르고 괴롭히고 파괴하고는 제각기 흩어졌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속으로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는 것은 매우 희유(希有)한 일이다.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심사(尋思)의 행을 뛰어넘은 이런 승의제의 모습 역시 통달하고 증득하고 얻으셨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다.
그때 세존께서 법용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렇다,
그렇다.
그대의 말과 같다.
나는 일체의 심사를 뛰어넘는 승의제의 모습에서 현전에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었고,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고는 남들에게 널리 말하고 밝게 나타내고 풀어 이해시키고 시설하고 비춘다.
왜냐하면 내가 말한 승의(勝義)는 모든 성자 스스로가 안으로 깨친 것이고,
심사(尋思)의 행은 이생(異生)이 이리저리 구르며 증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용이여,
이 도리에 의하여 마땅히 알라.
승의는 일체 심사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또 법용이여,
내가 말하는 승의는 무상(無相)으로 행하는 것인데 심사는 유상(有相)의 경계만 행한다.
그러므로 법용이여,
이 도리에 의하여 마땅히 알라.
승의는 일체 심사의 경계의 모습을 뛰어넘는다.
또 법용이여,
내가 말하는 승의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인데 심사는 말의 경계만 행한다.
그러므로 법용이여,
이 도리에 의하여 마땅히 알라.
승의는 일체 심사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또 법용이여,
내가 말하는 승의는 모든 표시(表示)를 끊은 것인데 심사는 표시의 경계만 행한다.
그러므로 법용이여,
이 도리에 의하여 마땅히 알라.
승의는 일체 심사의 경계의 모습을 뛰어넘는다.
또 법용이여,
내가 말하는 승의는 모든 논쟁이 끊어진 것인데 심사는 시비의 경계만 행한다.
그러므로 법용이여,
이 도리에 의하여 마땅히 알라.
승의는 일체 심사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법용이여,
마땅히 알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평생토록 맵고 쓴맛만 보았다면,
그는 꿀이나 엿의 가장 묘하고 가장 훌륭한 맛을 생각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믿고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혹 어떤 이는 긴 세월 탐욕(貪慾)의 승해로 말미암아 모든 욕심의 치성한 불길에 태워진 까닭에,
안으로 일체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의 모습을 제거한 묘원리(妙遠離)의 즐거움을 생각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믿고 이해할 수도 없다.
혹 어떤 이는 긴 세월 말의 승해로 말미암아 세간의 비단 같은 말들을 즐기고 집착한 까닭에,
안의 고요하고 잠잠한 즐거움을 생각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믿고 이해할 수도 없다.
혹은 긴 세월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표시의 승해로 말미암아 세간의 모든 표시를 즐기고 집착한 까닭에,
영원히 일체 표시를 끊어 없애고 살가야(薩迦耶)가 없어진 열반을 생각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믿고 이해할 수도 없다.
법용이여,
마땅히 알라.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긴 세월 갖가지 아소(我所)와 섭수(攝受)와 쟁론(諍論)의 승해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간의 모든 시비를 즐기고 집착한 까닭에,
아소가 없고 섭수가 없고 쟁론이 없는 북구로주(北拘盧洲)를 생각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믿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아서 법용이여,
생각으로 찾는 자는 일체 심사의 행을 초월한 승의제의 모습을 생각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믿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증(內證)과 무상(無相)이 행하는 것
말할 수 없고 표시가 끊어졌네.
모든 논쟁을 그친 승의제
일체의 심사(尋思)를 뛰어넘는다.
그때 선청정혜(善淸淨慧)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잘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승의제의 모습은 미세하고 매우 깊어서 모든 법의 같고 다른 성품과 모습을 뛰어넘어 통달하기 어렵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곳에서 승해행지(勝解行地)를 바르게 수행하는 여러 보살들이 한 곳에 모여 앉아 함께 승의제의 모습을 의논하고,
모든 행상(行相)의 같고 다른 성품과 모습에 대해 의논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모임 가운데 한 무리의 보살은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전혀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한 무리의 보살은 또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나머지 보살들은 의심하고 망설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모든 보살 가운데 누구의 말이 진실하며 누구의 말이 허망한가,
누가 이치대로 행하고 누가 이치대로 행하지 않은 것인가?’ 혹 어떤 이는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전혀 차이가 없다’고 소리 높여 말하고,
어떤 이는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다르다’고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들을 보고 속으로 ‘이 모든 선남자는 어리석고 완고하고 밝지 못하고 착하지 못하고 이치대로 행하지 못한다.
승의제는 미세하고 매우 깊어 모든 행의 같고 다른 성품과 모습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선청정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렇고 그렇다.
그대의 말과 같다.
그 모든 선남자는 어리석고 완고하고 밝지 못하고 착하지 못하고 이치대로 행하지 못한다.
승의제는 미세하고 매우 깊어 모든 행의 같고 다른 성품과 모습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선청정혜여,
모든 행에 대하여 이렇게 행하는 때를 두고 승의제의 모습을 통달하였다고 하거나 승의제에 대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인가?
선청정혜여,
만일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다면 지금 일체 이생(異生)이 모두 이미 진리를 보았어야 하며,
또 모든 이생이 모두 위없는 방편과 편안한 열반을 이미 얻었거나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미 얻었어야 한다.
만일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한결같이 다르기만 하다면 이미 진리를 본 자라 하더라도 모든 행의 모습은 제거하지 못해야 할 것이다.
만일 모든 행의 모습을 제거하지 못했다면 모습의 속박[相縛]에서 해탈을 얻지 못해야 할 것이며,
이 진리를 본 자는 모든 모습의 속박에서 해탈하지 못한 까닭에 거칠고 무거운 속박[麤重縛]에서도 해탈을 얻지 못해야 할 것이다.
두 가지 속박에서 해탈하지 못한 까닭에 이미 진리를 본 사람이라 해도 위없는 방편과 편안한 열반을 얻지 못해야 할 것이다.
선청정혜여,
지금 모든 이생(異生)은 다 이미 진리를 본 것이 아니며,
모든 이생은 이미 위없는 방편과 편안한 열반을 얻은 것이 아니며,
또한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이 가운데서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이렇게 말한다면,
이러한 도리를 말미암아 마땅히 알라.
그런 것 일체는 이치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며,
바른 이치와 같지 않다.
선청정혜여,
지금 진리를 본 자는 모든 행의 모습을 제거해 버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제거해 버릴 수 있다.
진리를 본 자는 모습의 속박에서 해탈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해탈할 수 있다.
진리를 본 자는 거칠고 무거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해탈할 수 있다.
두 가지 장애에서 해탈할 수 있기 때문에 또한 위없는 방편과 편안한 열반을 얻을 수 있으며,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한결같이 다른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이 가운데서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한결같이 다르다’고 이렇게 말한다면,
이러한 도리를 말미암아 마땅히 알라.
그런 것 일체는 이치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며,
바른 이치와 같지 않다.
또 선청정혜여,
만일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모든 행의 모습이 잡염(雜染)의 모습에 떨어지는 것처럼 이 승의제의 모습 역시 잡염의 모습에 떨어져야 할 것이다.
선청정혜여,
만일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한결같이 다르다고 한다면,
응당 일체 행상의 공상(共相)을 승의제의 모습이라 하지 못할 것이다.
선청정혜여,
지금 승의제의 모습은 잡염의 모습에 떨어지지 않으며,
모든 행의 공상을 승의제의 모습이라 한다.
그러므로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한결같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해도 도리에 맞지 않고,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한결같이 다른 모습이라 해도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이 가운데서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이렇게 말하거나 혹은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한결같이 다르다’고 이렇게 말한다면,
이러한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라.
그런 것 일체는 이치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며,
바른 이치와 같지 않다.
또 선청정혜여,
만일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승의제의 모습은 모든 행의 모습에 있어 차별이 없는 것처럼 일체 행의 모습 또한 이와 같이 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다.
관행을 닦는 사람은 모든 행 가운데서 그가 본 바와 같이,
그가 들은 바와 같이,
그가 깨친 바와 같이,
그가 안 바와 같이 하며 뒤에 다시 수승한 뜻을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한결같이 다르다고 한다면,
모든 행의 오직 무아인 성품과 오직 자성 없는 성품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승의제의 모습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응당 동시에 다른 모습이 성립되어야 할 것이니,
이른바 잡되고 물든 모습과 청정한 모습이다.
선청정혜여,
지금 일체 행은 모두 차별이 있지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니다.
관행을 닦는 사람은 모든 행 가운데서 그가 본 바와 같이,
그가 들은 바와 같이,
그가 깨친 바와 같이,
그가 안 바와 같이 하고는 뒤에 다시 수승한 뜻을 구해야만 한다.
또 모든 행의 오직 무아인 성품과 오직 자성이 없는 성품에서 나타나는 것을 승의제의 모습이라고 한다.
또 동시에 염(染)과 정(淨) 두 가지 모습이 다른 모습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하거나 혹은 한결같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만일 이 가운데서 ‘승의제의 모습과 모든 행의 모습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이렇게 말하거나 혹은 ‘한결같이 다르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라.
그런 것 일체는 이치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며,
바른 이치와 같지 않다.
선청정혜여,
마치 소라 껍데기의 새하얀 빛깔과 그 소라 껍데기가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소라 껍데기의 새하얀 빛깔처럼 금덩이의 누런 빛깔 또한 마찬가지다.
공후(箜篌) 소리의 아름답고 묘한 곡조의 성품이 공후 소리와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으며,
흑침(黑沈)에 있는 묘한 향기의 성품이 그 흑침과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으며,
호초(胡椒)의 매콤한 성품이 그 호초와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으며,
호초의 매콤한 성품처럼 가리(訶梨)의 담담한 성품 또한 마찬가지다.
두라면(蠧羅綿)의 부드러운 성품이 두라면과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으며,
숙소(熟酥)에 든 제호(醍醐)가 그 소락과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또 일체 행의 무상한 성품과 일체 유루법의 괴로운 성품과 일체 법의 보특가라(補特伽羅) 무아(無我)의 성품이 그 행 등과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다.
또 탐욕의 고요하지 못한 모습과 잡되고 물든 모습이 저 탐욕과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으며,
탐욕에서와 같이 성냄과 어리석음에서도 그러함을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이 선청정혜여,
승의제의 모습은 모든 행의 모습과 같은 모습인가 다른 모습인가를 시설할 수 없다.
선청정혜여,
나는 이렇게 미세하고 극히 미세하며,
매우 깊고 극히 매우 깊으며,
통달하기 어렵고 극히 통달하기 어려우며,
모든 법의 같고 다른 성품과 모습을 뛰어넘은 승의제의 모습에서 현전에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었고,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고는 남들에게 널리 말하고 밝게 나타내고 풀어 이해시키고 시설하고 비춘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밝히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행(行)과 계(界)의 승의제의 모습은
같고 다른 성품과 모습 벗어났으니
만일에 같고 다름을 분별한다면
그 사람은 이치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중생들은 모습에 속박되거나
거칠고 무거움에 속박됐나니
반드시 부지런히 지관(止觀) 닦아야만
비로소 해탈을 얻게 되리라.
그때 세존께서 장로(長老) 선현(善現)에게 말씀하셨다.
“선현이여,
그대는 유정세계에서 증상만(增上慢)을 품고 증상만에 사로잡힌 까닭에 이해한 것을 기별(記別)하는 유정이 얼마나 된다고 알고 있는가?
그대는 유정세계에서 증상만을 여의고 이해한 것을 기별하는 유정이 얼마나 된다고 알고 있는가?”
그때 장로 선현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유정세계에서 증상만을 여의고 이해한 것을 기별하는 유정은 적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유정세계에서 증상만을 품고 증상만에 사로잡힌 까닭에 이해한 것을 기별하는 유정은 무량ㆍ무수ㆍ불가설(不可說)인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언제가 아련야(阿練若:
아란야) 큰 숲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때마침 많은 필추(苾芻:
비구)들이 또한 그 숲에서 지내며 저와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필추들이 날이 저물 무렵 서로서로 모여들더니 얻은 바가 있는 현관(現觀)에 의지하여 제각기 갖가지 모습의 법을 말하고 이해한 것을 기별하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무리는 온(蘊)을 얻은 까닭에,
온의 모습을 얻은 까닭에,
온의 일어남을 얻은 까닭에,
온의 다함을 얻은 까닭에,
온의 멸함을 얻은 까닭에,
온이 멸했다는 깨달음을 얻은 까닭에 이해한 것을 기별하였습니다.
어떤 무리가 온을 얻음과 같이 다시 또 어떤 무리는 처(處)를 얻은 까닭에,
다시 또 어떤 무리는 연기(緣起)를 얻은 까닭에 또한 그렇게 하였습니다.
또 어떤 무리는 식(食)을 얻은 까닭에,
식(食)의 모습을 얻은 까닭에,
식의 다함을 얻은 까닭에,
식의 멸함을 얻은 까닭에,
식이 멸했다는 깨달음을 얻은 까닭에 이해한 것을 기별하였습니다.
또 어떤 무리는 제(諦)를 얻은 까닭에,
제의 모습을 얻은 까닭에,
제의 변지(遍知)를 얻은 까닭에,
제의 영원히 끊음[永斷]을 얻은 까닭에,
제라는 깨달음을 얻은 까닭에,
제의 닦음[修習]을 얻은 까닭에 이해한 것을 기별하였습니다.
또 어떤 무리는 계(界)를 얻은 까닭에,
계의 모습을 얻은 까닭에,
계의 갖가지 성품을 얻은 까닭에,
계의 같지 않은 성품을 얻은 까닭에,
계의 멸함을 얻은 까닭에,
계가 멸했다는 깨달음을 얻은 까닭에 이해한 것을 기별하였습니다.
또 어떤 무리는 염주(念住)를 얻은 까닭에,
염주의 모습을 얻은 까닭에,
염주가 다스려야 할 것을 다스림을 얻은 까닭에,
염주의 닦음을 얻은 까닭에,
염주가 생기지 않은 것을 생기게 함을 얻은 까닭에,
염주가 생기고 나서는 견고히 머물러 잊지 않고 곱으로 닦아 더하고 넓어지는 것을 얻은 까닭에 이해한 것을 기별하였습니다.
어떤 무리가 염주(念住)를 얻은 까닭과 같이 다시 또 어떤 무리는 정단(正斷)을 얻은 까닭에,
신족(神足)을 얻은 까닭에,
모든 근(根)을 얻은 까닭에,
모든 힘[力]을 얻은 까닭에,
각지(覺支)를 얻은 까닭에,
아셔야 합니다,
또한 그렇게 하였습니다.
또 어떤 무리는 8지성도(支聖道)를 얻은 까닭에,
8지성도의 모습을 얻은 까닭에,
8지성도가 다스려야 할 것을 다스림을 얻은 까닭에,
8지성도의 닦음을 얻은 까닭에,
8지성도가 생기지 않은 것을 생기게 함을 얻은 까닭에,
8지성도가 생기고 나서는 견고히 머물러 잊지 않고 곱으로 닦아 더하고 넓어지는 것을 얻은 까닭에 이해한 것을 기별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들을 보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모든 장로들은 얻은 것이 있는 현관(現觀)에 의지해 제각기 갖가지 모습의 법을 말하며 이해한 것을 기별하는구나.
저 장로들은 모두 다 증상만을 품고 증상만에 사로잡힌 까닭에 승의제가 일체 처소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세존은 매우 기이하시며 나아가 세존께서는 잘 말씀하신다.
세존의 말씀처럼 승의제의 모습은 미세하고 가장 미세하며,
매우 깊고 가장 깊으며,
통달하기 어렵고 가장 통달하기 어려운 일체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이구나.’
세존이시여,
이 성스러운 가르침 가운데 수행하는 필추들도 승의제의 일체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은 통달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여러 외도이겠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장로 선현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선현이여,
나는 미세하고 가장 미세하며,
매우 깊고 가장 깊으며,
통달하기 어렵고 가장 통달하기 어려운 일체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인 승의제에서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었고,
현전에 등정각을 이루고는 남들에게 널리 말하고 밝게 나타내고 풀어 이해시키고 시설하고 비춘다.
무슨 까닭인가?
선현이여,
내가 이미 일체 온(蘊) 가운데서 청정의 소연(所緣)이 바로 승의제라고 나타냈으며,
내가 이미 일체 처(處)와 연기(緣起)와 식(食)과 제(諦)와 계(界)와 염주(念住)와 정단(正斷)과 신족(神足)과 근(根)과 역(力)과 각지(覺支)와 도지(道支) 가운데서 청정의 소연이 바로 승의제라고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 청정의 소연은 일체 온 가운데 한맛인 모습으로서 다른 모습이 없다.
온 가운데서와 같이 일체 처(處) 가운데서나,
나아가 일체 도지 가운데서도 한맛의 모습으로서 다른 모습이 없다.
그러므로 선현이여,
이 도리를 말미암아 마땅히 알라.
승의제는 일체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이다.
또 선현이여,
관행을 닦는 필추는 한 온(蘊)에서 진여(眞如)ㆍ승의법(勝義法)ㆍ무아의 성품[無我性]을 통달하고 나면,
다시 각기 다른 나머지 온과 모든 처와 연기와 식과 제와 계와 염주와 정단과 신족과 근과 역과 각지와 도지의 진여ㆍ승의법ㆍ무아의 성품을 찾고 구하지 않더라도,
오직 이 진여ㆍ승의를 따라 둘이 없는 지혜를 의지한 까닭에 일체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인 승의제를 살피고 증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선현이여,
이 도리를 말미암아 마땅히 알라.
승의제는 일체에 보편한 한맛[一味]의 모습이다.
또 선현이여,
저 모든 온(蘊)이 다른 모습으로 계속 변하는 것처럼,
모든 처ㆍ연기ㆍ식ㆍ제ㆍ계ㆍ염주ㆍ정단ㆍ신족ㆍ근ㆍ역ㆍ각지ㆍ도지가 다른 모습으로 계속 변하는 것처럼,
만일 일체 법의 진여ㆍ승의법ㆍ무아의 성품 또한 모습이 달라진다면 이는 곧 진여ㆍ승의법ㆍ무아의 성품도 응당 인이 있어야 하며,
인으로부터 생겨야 할 것이다.
만일 인으로부터 생긴다면 그것은 유위여야만 하고,
만일 그것이 유위라면 승의가 아니어야 하며,
만일 승의가 아니라면 다시 다른 승의를 찾고 구해야만 할 것이다.
선현이여,
따라서 진여ㆍ승의법ㆍ무아의 성품은 인이 있다고 하지 못하며,
인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며,
또한 유위가 아니니,
이것이 승의제이다.
이 승의를 얻으면 다시 다른 승의제를 구할 필요가 없다.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건 출현하지 않건 항상 언제나 모든 법의 법성은 편안히 세워져 법계에 편안히 머문다.
그러므로 선현이여,
이 도리로 말미암아 마땅히 알라.
승의제는 일체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이다.
선현이여,
비유컨대 같지 않은 갖가지 품류와 서로 다른 색(色) 가운데서 허공은 모습이 없고,
분별이 없고,
변함이 없고,
일체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인 것과 같다.
이와 같아서 성품이 다르고 모습이 다른 일체 법 가운데서 승의제는 일체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임을 마땅히 알라,
또한 그렇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것은 일체에 보편한 한맛의 모습
승의제는 다름없다고 부처님들 말씀하시네.
만일 그 가운데 다르다고 분별한다면
그가 바로 어리석고 증상만에 의지하는 자.
3. 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
그때 광혜(廣慧)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심(心)ㆍ의(意)ㆍ식(識)의 비밀에 공교함[善巧]을 말씀하시고,
보살은 심ㆍ의ㆍ식의 비밀에 공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살을 어디에 한하여 심ㆍ의ㆍ식의 비밀에 공교한 보살이라 하며,
어디에 한하여 여래께서는 그들이 심ㆍ의ㆍ식의 비밀에 공교하다고 시설하십니까?”
보살이 이렇게 말하자,
그때 세존께서 광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광혜여,
그대가 지금 이와 같이 깊은 뜻을 묻는구나.
그대는 지금 무량한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안락하게 하려고,
세간과 모든 하늘ㆍ사람ㆍ아소락들을 불쌍히 여겨 의리(義利)와 안락을 얻게 하려고 이렇게 질문하는구나.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심ㆍ의ㆍ식의 비밀한 뜻을 말하리라.
광혜여,
마땅히 알라.
여섯 세계[六趣]의 나고 죽음에서 이런 저런 유정은 이런 저런 유정의 무리에 떨어지니,
난생(卵生)이나 태생(胎生)이나 습생(濕生)이나 화생(化生)으로 태어나 신분(身分)이 생긴다.
그 가운데서 최초의 일체 종자인 심식(心識)이 성숙하고,
차례로 화합해 자라고 넓어져서는 두 가지 집수(執受)에 의지한다.
첫째는 유색(有色)의 모든 근(根)과 그것들이 의지하는 집수요,
둘째는 모습[相]ㆍ이름[名]ㆍ분별(分別)의 말과 희론인 습기(習氣)의 집수이다.
유색계(有色界)에는 두 가지 집수가 구족하지만 무색계(無色界)에는 두 가지 집수가 구족하지 않는다.
▸ 광혜여,
이 식을 또한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고 부르니,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몸을 따르고 집착하여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부르니,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몸을 받아들이고 갈무리하며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함께한다는 뜻 때문이다.
또한 심(心)이라 부르니,
무슨 까닭인가?
이 식이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 등을 쌓아 모으고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광혜여,
아타나식을 의지하고 건립하는 까닭에 여섯 가지 식신(識身)이 구르니,
이른바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이다.
이 가운데 식이 있어 눈과 빛깔을 반연해 안식이 생기고,
안식과 함께 따라 행하며 동시에 같은 경계에 분별의식(分別意識)이 구르게 된다.
식이 있어 귀ㆍ코ㆍ혀ㆍ몸과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을 반연해 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이 생기고,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과 함께 따라 행하며 동시에 같은 경계에 분별의식이 구르게 된다.
광혜여,
만일 그때 안식 하나만 구르면 곧 이때는 오직 하나의 분별의식만 있어서 안식이 행하는 것과 함께 구른다.
만일 그때 둘ㆍ셋ㆍ넷ㆍ다섯의 모든 식신이 구르면 곧 이때도 오직 하나의 분별의식이 있어서 다섯 식신이 행하는 것과 함께 구른다.
광혜여,
비유컨대 큰 폭포수의 흐름과 같다.
만일 한 물결이 생길 인연이 나타나면 오직 한 물결만 구르고,
둘이나 많은 물결이 생길 인연이 나타나면 많은 물결이 구른다.
그러나 이 폭포수 자체는 항상 흘러 끊임없고 다함이 없다.
또 매우 맑은 거울의 표면과 같다.
만일 하나의 그림자가 생길 인연이 나타나면 오직 하나의 그림자만 일어나고,
둘이나 많은 그림자가 생길 인연이 나타나면 많은 그림자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 거울의 표면이 변해 그림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수용하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
광혜여,
폭포의 물과 같은 아타나식을 의지하고 건립한 까닭에,
만일 그때 하나의 안식이 생길 인연이 나타나면 곧 그때 하나의 안식이 구르고,
만일 그때 나아가 다섯 식신이 생길 인연이 나타나면 곧 그때 다섯 식신이 구르는 것이다.
광혜여,
이와 같아서 보살이 비록 법주지(法主智)를 의지하고 건립한 까닭에 심ㆍ의ㆍ식의 비밀에 공교하다 해도,
그러나 모든 여래는 이에 한하여 그를 일체 심ㆍ의ㆍ식의 비밀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하지 않는다.
광혜여,
만일 모든 보살이 안으로 각각 다른 것들에 있어서 여실하게 아타나를 보지 않고,
아타나식을 보지 않고,
아뢰야를 보지 않고,
아뢰야식을 보지 않고,
쌓이고 모임을 보지 않고,
심(心)을 보지 않고,
눈과 빛깔과 안식을 보지 않고,
귀와 소리와 이식을 보지 않고,
코와 냄새와 비식을 보지 않고,
혀와 맛과 설식을 보지 않고,
몸과 감촉과 신식을 보지 않고,
의(意)와 법(法)과 의식(意識)을 보지 않으면 이를 승의에 공교한 보살이라 부르며,
여래는 그를 승의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한다.
광혜여,
이에 한하여 심ㆍ의ㆍ식 일체의 비밀에 공교한 보살이라 하고,
여래가 이에 한하여 그를 심ㆍ의ㆍ식 일체 비밀에 공교한 보살이라고 시설한다.”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아타나식(阿陀那識) 매우 깊고 미세해
일체 종자 폭포의 흐름 같도다.
내가 어리석은 이들에겐 말하지 않나니
그들이 분별하여 아(我)라 할까 두렵구나.◂
● [pt op tr] fr
『해심밀경』 ♣0154-001♧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Pauline Paris - Un Pour Deux.lrc
Pauline Paris - Un Pour Deux
◎◎[개별논의]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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