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_1106_130134_can_exc 화순 영구산 운주사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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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106_153743_nik_exc 화순 계당산 쌍봉사
佛說佛名經卷第十一 K1404 ○ [pt op tr]
불설불명경 제11권
실역 인명 하용덕 번역
“‘나무 쾌정색불(決定色佛)ㆍ나무 방편심불(方便心佛)ㆍ나무 지미불(智味佛)ㆍ나무 공덕신불(功德信佛)ㆍ나무 난항복불(難降伏佛)ㆍ나무 선견불(善見佛)ㆍ나무 월광명불(月光明佛)ㆍ나무 월개불(月蓋佛)ㆍ나무 세교불(世橋佛)ㆍ나무 신공양불(信供養佛)ㆍ나무 낙승불(樂勝佛)ㆍ나무 선개불(善蓋佛)ㆍ나무 참괴현불(慚愧賢佛)ㆍ나무 능관불(能觀佛)ㆍ나무 무변법불(無邊法佛)ㆍ나무 사자성불(師子聲佛)ㆍ나무 대행불(大行佛)ㆍ나무 보신불(普信佛)ㆍ나무 기성불(器聲佛)ㆍ나무 승애불(勝愛佛)ㆍ 나무 보행불(普行佛)ㆍ나무 보지불(普智佛)ㆍ나무 대분신불(大奮迅佛)ㆍ나무 월당불(月幢佛)ㆍ나무 견행불(堅行佛)ㆍ나무 천공양불(天供養佛)ㆍ나무 능경포불(能驚怖佛)ㆍ나무 승칭불(勝稱佛)ㆍ나무 성취일체공덕불(成就一切功德佛)ㆍ나무 견고불(堅固佛)ㆍ나무 감로광불(甘露光佛)ㆍ나무 대성불(大聲佛)ㆍ나무 고성불(高聲佛)ㆍ나무 대력불(大力佛)ㆍ나무 대진불(大盡佛)ㆍ나무 신감로불(信甘露佛)ㆍ나무 행보리불(行菩提佛)ㆍ나무 승성사유불(勝聲思惟佛)ㆍ나무 고광불(高光佛)ㆍ나무 희승불(悕勝佛)ㆍ 나무 낙종종성불(樂種種聲佛)ㆍ나무 애의불(愛義佛)ㆍ나무 수행신불(修行信佛)ㆍ나무 이우불(離憂佛)ㆍ나무 선생불(善生佛)ㆍ나무 위덕력불(威德力佛)ㆍ나무 신공덕불(信功德佛)ㆍ나무 성칭불(聲稱佛)ㆍ나무 방광명불(放光明佛)ㆍ나무 의분신불(疑奮迅佛)ㆍ나무 승왕불(勝王佛)ㆍ나무 임화불(林華佛)ㆍ나무 공덕화불(功德華佛)ㆍ나무 사쟁불(捨諍佛)ㆍ나무 대광불(大廣佛)ㆍ나무 대칭불(大稱佛)ㆍ나무 허공애불(虛空愛佛)ㆍ나무 감로분신불(甘露奮迅佛)ㆍ나무 일취불(日聚佛)ㆍ나무 월성불(月聲佛)ㆍ 나무 천당불(天幢佛)ㆍ나무 여청정불(與淸淨佛)ㆍ나무 능일불(能日佛)ㆍ나무 쾌가견불(快可見佛)ㆍ나무 견의승성불(堅意勝聲佛)ㆍ나무 우감로불(雨甘露佛)ㆍ나무 무외성불(無畏聲佛)ㆍ나무 선근성불(善根聲佛)ㆍ나무 승성불(勝聲佛)ㆍ나무 승애불(勝愛佛)ㆍ나무 감로칭불(甘露稱佛)ㆍ나무 법화불(法華佛)ㆍ나무 대장엄불(大莊嚴佛)ㆍ나무 세간존중불(世間尊重佛)ㆍ나무 승의불(勝意佛)ㆍ나무 미류광불(彌留光佛)ㆍ나무 청정사유불(淸淨思惟佛)ㆍ나무 고광명불(高光明佛)ㆍ나무 파원불(破怨佛)ㆍ나무 감로성불(甘露城佛)ㆍ 나무 화광불(華光佛)ㆍ나무 대칭불(大稱佛)ㆍ나무 안온사불(安隱思佛)ㆍ나무 도위덕불(道威德佛)ㆍ나무 청정심불(淸淨心佛)ㆍ나무 천공양불(天供養佛)ㆍ나무 도니불(度泥佛)ㆍ나무 이유불(離有佛)ㆍ나무 법화불(法華佛)ㆍ나무 대승불(大勝佛)ㆍ나무 가락광명불(可樂光明佛)ㆍ나무 화광불(火光佛)ㆍ나무 견애불(見愛佛)ㆍ나무 광명애불(光明愛佛)ㆍ나무 희성불(喜聲佛)ㆍ나무 대시덕불(大施德佛)ㆍ나무 실보불(實步佛)ㆍ나무 무체애지불(無滯礙智佛)ㆍ나무 득위덕불(得威德佛)ㆍ나무 월장불(月藏佛)ㆍ 나무 정광명불(淨光明佛)ㆍ나무 대장엄불(大莊嚴佛)ㆍ나무 득락자재불(得樂自在佛)ㆍ나무 묘광명불(妙光明佛)ㆍ나무 적광명불(寂光明佛)ㆍ나무 이의불(離疑佛)ㆍ나무 무과지혜불(無過智慧佛)ㆍ나무 성취행불(成就行佛)ㆍ나무 청정신불(淸淨身佛)ㆍ나무 무외애불(無畏愛佛)ㆍ나무 칭후불(稱吼佛)ㆍ나무 대후불(大吼佛)ㆍ나무 선사불(善思佛)ㆍ나무 대사불(大思佛)ㆍ나무 청정심불(淸淨心佛)ㆍ나무 대분신불(大奮迅佛)ㆍ나무 낙안불(樂眼佛)ㆍ나무 명청정불(命淸淨佛)ㆍ나무 행청정불(行淸淨佛)ㆍ나무 이열지불(離熱智佛)ㆍ 나무 응교불(應橋佛)ㆍ나무 선집지불(善集智佛)ㆍ나무 보신불(普信佛)ㆍ나무 설시위덕불(設尸威德佛)ㆍ나무 불사성불(不死城佛)ㆍ나무 불호성불(不護聲佛)ㆍ나무 화일불(化日佛)ㆍ나무 선주사유불(善住思惟佛)ㆍ나무 고신불(高信佛)ㆍ나무 수마나광명불(須摩那光明佛)ㆍ나무 광명력불(光明力佛)ㆍ나무 공덕희불(功德希佛)ㆍ나무 법구소마불(法俱蘇摩佛)ㆍ나무 정위덕불(淨威德佛)ㆍ나무 정행불(淨行佛)ㆍ나무 천색심불(天色心佛)ㆍ나무 역왕불(力王佛)ㆍ나무 보관불(普觀佛)ㆍ나무 범공양불(梵供養佛)ㆍ나무 성화불(聖華佛)ㆍ 나무 허공불(虛空佛)ㆍ나무 항복울미불(降伏鬱彌佛)ㆍ나무 무비지불(無譬智佛)ㆍ나무 승복자불(勝伏刺佛)ㆍ나무 항복성불(降伏城佛)ㆍ나무 응애불(應愛佛)ㆍ나무 계공덕불(戒功德佛)ㆍ나무 평등물사불(平等勿思佛)ㆍ나무 불겁약심불(不怯弱心佛)ㆍ나무 정진신불(精進信佛)ㆍ나무 고광명불(高光明佛)ㆍ나무 문지불(聞智佛)ㆍ나무 무애심불(無礙心佛)ㆍ나무 무외광불(無畏光佛)ㆍ나무 감로성불(甘露聲佛)ㆍ나무 종종일불(種種日佛)ㆍ나무 승힐혜불(勝黠慧佛)ㆍ나무 가수경불(可修敬佛)ㆍ나무 공덕왕불(功德王佛)ㆍ나무 호근불(護根佛)ㆍ 나무 선해탈불(禪解脫佛)ㆍ나무 대위덕불(大威德佛)ㆍ나무 전단향불(栴檀香佛)ㆍ나무 견신불(見信佛)ㆍ나무 묘교량불(妙橋梁佛)ㆍ나무 가관불(可觀佛)ㆍ나무 불가량지불(不可量智佛)ㆍ나무 천일위덕불(千日威德佛)ㆍ나무 사중담불(捨重擔佛)ㆍ나무 칭신불(稱信佛)ㆍ나무 제방문불(諸方聞佛)ㆍ나무 자재불(自在佛)ㆍ나무 무변지불(無邊智佛)ㆍ나무 무구광불(無垢光佛)ㆍ나무 감로신불(甘露信佛)ㆍ나무 묘안불(妙眼佛)ㆍ나무 해탈행불(解脫行佛)ㆍ나무 가락견불(可樂見佛)ㆍ나무 고광명불(高光明佛)ㆍ나무 대성불(大聲佛)ㆍ 나무 대위덕취불(大威德聚佛)ㆍ나무 광명당불(光明幢佛)ㆍ나무 응공양불(應供養佛)ㆍ나무 복덕위덕적불(福德威德積佛)ㆍ나무 신상불(信相佛)ㆍ나무 대염불(大炎佛)ㆍ나무 응신불(應信佛)ㆍ나무 선주사유불(善住思惟佛)ㆍ나무 수제타불(須提他佛)ㆍ나무 지작불(智作佛)ㆍ나무 보보불(普寶佛)ㆍ나무 일광불(日光佛)ㆍ나무 설제타불(說提他佛)ㆍ나무 염안불(炎眼佛)ㆍ나무 사자신불(師子身佛)ㆍ나무 칭친광불(稱親光佛)ㆍ나무 청정성불(淸淨聲佛)ㆍ나무 희락불(希樂佛)ㆍ나무 적정증상불(寂靜增上佛)ㆍ나무 보위덕불(寶威德佛)ㆍ 나무 선위덕공양불(善威德供養佛)ㆍ나무 모광불(毛光佛)ㆍ나무 세간존불(世間尊佛)ㆍ나무 선행정불(善行淨佛)ㆍ나무 선제타위덕불(善提他威德佛)ㆍ나무 응안불(應眼佛)ㆍ나무 대보불(大步佛)ㆍ나무 성의불(成義佛)ㆍ나무 안온애불(安隱愛佛)ㆍ나무 천마사다불(天摩私多佛)ㆍ나무 사만류불(捨漫流佛)ㆍ나무 사보불(捨寶佛)ㆍ나무 지만불(智滿佛)ㆍ나무 도교불(度橋佛)ㆍ나무 해탈현불(解脫賢佛)ㆍ나무 중보불(衆步佛)ㆍ나무 광명위덕불(光明威德佛)ㆍ나무 자력불(慈力佛)ㆍ나무 월승불(月勝佛)ㆍ나무 적광불(寂光佛)ㆍ 나무 애안불(愛眼佛)ㆍ나무 사시라성불(賖尸羅聲佛)ㆍ나무 불사색불(不死色佛)ㆍ나무 낙법불(樂法佛)ㆍ나무 대월불(大月佛)ㆍ나무 무장애성불(無障礙聲佛)ㆍ나무 공덕분신불(功德奮迅佛)ㆍ나무 불사화불(不死華佛)ㆍ나무 평등견불(平等見佛)ㆍ나무 대월불(大月佛)ㆍ나무 공덕미불(功德味佛)ㆍ나무 십광불(十光佛)ㆍ나무 종종광불(種種光佛)ㆍ나무 용덕불(龍德佛)ㆍ나무 운성불(雲聲佛)ㆍ나무 공덕보불(功德步佛)ㆍ나무 사공덕불(思功德佛)ㆍ나무 대성불(大聲佛)ㆍ나무 요성불(了聲佛)ㆍ나무 원리악처불(遠離惡處佛)ㆍ 나무 천화불(天華佛)ㆍ나무 쾌안볼(快眼佛)ㆍ나무 대연등불(大然燈佛)ㆍ나무 이치행불(離癡行佛)ㆍ나무 견고희불(堅固希佛)ㆍ나무 사사불(捨邪佛)ㆍ나무 상화불(相華佛)ㆍ나무 불가사의광명불(不可思議光明)ㆍ나무 보현불(普賢佛)ㆍ나무 월묘불(月妙佛)ㆍ나무 낙덕불(樂德佛)ㆍ나무 청정성불(淸淨聲佛)ㆍ나무 승혜불(勝慧佛)ㆍ나무 현광불(賢光佛)ㆍ나무 견고화불(堅固華佛)ㆍ나무 광명의불(光明意佛)ㆍ나무 복덕덕불(福德德佛)ㆍ나무 의성취불(意成就佛)ㆍ나무 낙해탈불(樂解脫佛)ㆍ나무 조원불(調怨佛)ㆍ 나무 불거사불(不去捨佛)ㆍ나무 이표하불(離㵱河佛)ㆍ나무 감로광명불(甘露光明佛)ㆍ나무 무구심불(無垢心佛)ㆍ나무 낙성불(樂聲佛)ㆍ나무 불가량안불(不可量眼佛)ㆍ나무 쾌수행불(快修行佛)ㆍ나무 묘고광불(妙高光佛)ㆍ나무 집공덕불(集功德佛)ㆍ나무 가락불(可樂佛)ㆍ나무 대심불(大心佛)ㆍ나무 천신불(天信佛)ㆍ나무 사유감로불(思惟甘露佛)ㆍ나무 힐혜불(黠慧佛)ㆍ나무 승등불(勝燈佛)ㆍ나무 견의불(堅意佛)ㆍ나무 역보불(力步佛)ㆍ나무 연화엽안불(蓮華葉眼佛)ㆍ나무 보리광명불(菩提光明佛)ㆍ나무 묘후성불(妙吼聲佛)ㆍ 나무 육통성불(六通聲佛)ㆍ나무 위덕력불(威德力佛)ㆍ나무 인칭불(人稱佛)ㆍ나무 승화집불(勝華集佛)ㆍ나무 대계불(大髻佛)ㆍ나무 불수타불(不隨他佛)ㆍ나무 무외행불(無畏行佛)ㆍ나무 불겁약불(不怯弱佛)ㆍ나무 이우암불(離憂闇佛)ㆍ나무 과조불(過潮佛)ㆍ나무 월광불(月光佛)ㆍ나무 심용맹불(心勇猛佛)ㆍ나무 해탈혜불(解脫慧佛)ㆍ나무 불취사불(不取捨佛 )ㆍ나무 담복등불(薝蔔燈佛)ㆍ나무 승화불(勝火佛)ㆍ나무 선사의불(善思意佛)ㆍ나무 승위덕색불(勝威德色佛)ㆍ나무 신세간불(信世間佛)ㆍ나무 묘혜불(妙慧佛)ㆍ 나무 선희신불(善喜信佛)ㆍ나무 화광불(華光佛)ㆍ나무 인화불(人華佛)ㆍ나무 선향불(善香佛)ㆍ나무 승공덕불(勝功德佛)ㆍ나무 종종화불(種種華佛)ㆍ나무 고승불(高勝佛)ㆍ나무 허공공덕불(虛空功德佛)ㆍ나무 천신불(天信佛)ㆍ나무 가경교불(可敬憍佛)ㆍ나무 월광불(月光佛)ㆍ나무 화취불(火聚佛)ㆍ나무 최력불(最力佛)ㆍ나무 지지불(智地佛)ㆍ나무 고의불(高意佛)ㆍ나무 산왕지불(山王智佛)ㆍ나무 쾌승불(快昇佛)ㆍ나무 묘승불(妙昇佛)ㆍ나무 승친불(勝親佛)ㆍ나무 이의불(離疑佛)ㆍ 나무 응행불(應行佛)ㆍ나무 승향불(勝香佛)ㆍ나무 무쟁행불(無諍行佛)ㆍ나무 수행공덕불(修行功德佛)ㆍ나무 대정진심불(大精進心佛)ㆍ나무 연등광명불(燈光明佛)ㆍ나무 섭보불(攝步佛)ㆍ나무 수행심심불(修行深心佛)ㆍ나무 향희불(香希佛)ㆍ나무 향수불(香手佛)ㆍ나무 적정지불(寂靜智佛)ㆍ나무 묘심불(妙心佛)ㆍ나무 공덕장엄불(功德莊嚴佛)ㆍ나무 증상행불(增上行佛)ㆍ나무 지의불(智意佛)ㆍ나무 공덕산청정성불(功德山淸淨聲佛)ㆍ나무 섭집불(攝集佛)ㆍ나무 묘신불(妙信佛)ㆍ나무 일견가력불(日見可力佛)ㆍ나무 공덕왕광명불(功德王光明佛)ㆍ 나무 법불가력불(法不可力佛)ㆍ나무 이제의분신불(離諸疑奮迅佛)ㆍ나무 칭왕불(稱王佛)ㆍ나무 섭제근불(攝諸根佛)ㆍ나무 상거불(上去佛)ㆍ나무 감로광불(甘露光佛)ㆍ나무 감로심불(甘露心佛)ㆍ나무 제중상불(諸衆上佛)ㆍ나무 정계불(淨髻佛)ㆍ나무 불가항복색불(不可降伏色佛)ㆍ나무 보신불(普信佛)ㆍ나무 장엄왕불(莊嚴王佛)ㆍ나무 감로일불(甘露日佛)ㆍ나무 승등불(勝燈佛)ㆍ나무 파두상불(波頭上佛)ㆍ나무 보장불(寶藏佛)ㆍ나무 보광불(普光佛)ㆍ나무 최승왕불(最勝王佛)ㆍ나무 보광명상승적왕불(普光明上勝積王佛)ㆍ나무 보현불(普現佛)ㆍ 나무 자재전법왕불(自在轉法王佛)ㆍ나무 보현불(普賢佛)ㆍ나무 환화승불(還華勝佛)ㆍ나무 천세자재성불(千世自在聲佛)ㆍ나무 일선무구성자재왕불(一善無垢聲自在王佛)ㆍ나무 천리무외성자재왕불(千離無畏聲自在王佛)ㆍ나무 천무구위덕자재왕불(千無垢威德自在王佛)ㆍ나무 오백일성자재왕불(五百日聲自在王佛)ㆍ나무 오백낙자재성불(五百樂自在聲佛)ㆍ나무 일룡환희불(日龍歡喜佛)ㆍ나무 이외칭왕불(離畏稱王佛)ㆍ나무 묘광당불(妙光幢佛)ㆍ나무 이광성불(離光聲佛)ㆍ나무 칭자재성불(稱自在聲佛)ㆍ나무 묘법칭성불(妙法稱聲佛)ㆍ나무 승장칭왕불(勝藏稱王佛)ㆍ나무 불가사의의왕불(不可思議意王佛)ㆍ나무 보당불(寶幢佛)ㆍ나무 대자재불(大自在佛)ㆍ나무 성지자재당용맹왕불(聖智自在幢勇猛王佛)ㆍ 나무 불가사의혜불(不可思議慧佛)ㆍ나무 지장불(智藏佛)ㆍ나무 지고당불(智高幢佛)ㆍ나무 지해왕불(智海王佛)ㆍ나무 대정진성자재왕불(大精進聲自在王佛)ㆍ나무 미류승공덕불(彌留勝功德佛)ㆍ나무 지현수자재종자선무구후자재왕불(智顯修自在種子善無垢吼自在王佛)ㆍ나무 항복공덕해왕불(伏功德海王佛)ㆍ나무 지성취력왕불(智成就力王佛)ㆍ나무 승도자재왕불(勝道自在王佛)ㆍ나무 승암적자재불(勝闇積自在佛)ㆍ나무 화승적지불(華勝積智佛)ㆍ나무 금강사자불(金剛師子佛)ㆍ나무 계승불(戒勝佛)ㆍ나무 현승불(賢勝佛)ㆍ나무 무변광불(無邊光佛)ㆍ나무 사자희불(師子喜佛)ㆍ나무 무진지적불(無盡智積佛)ㆍ나무 보행불(寶行佛)ㆍ나무 지파라바불(智波羅婆佛).’ 다음으로 12부 존경대장법륜(尊經大藏法輪)에 공경히 예배하라. ‘나무 순권방편경(順權方便經)ㆍ나무 낙영락장엄방편경(樂瓔珞莊嚴方便經)ㆍ나무 대운륜청우경(大雲輪請雨經)ㆍ나무 대운청우경(大雲請雨經)ㆍ나무 대방등대운청우경(大方等大雲請雨經)ㆍ나무 여래장엄지혜광명입제불경계경(如來莊嚴智慧光明入諸佛境界經)ㆍ나무 도제불경계지엄경(度諸佛境界智嚴經)ㆍ나무 도제불경계지광엄경(度諸佛境界智光嚴經)ㆍ나무 덕호장자경(德護長者經)ㆍ나무 월광동자경(月光童子經)ㆍ나무 신일경(申日經)ㆍ나무 선사동자경(善思童子經)ㆍ나무 대방등정왕경(大方等頂王經)ㆍ나무 대승정왕경(大乘頂王經)ㆍ나무 법경경(法鏡經)ㆍ나무 욱가장자소문경(郁伽長者所問經)ㆍ나무 욱가라월문보살행경(郁伽羅越問菩薩行經)ㆍ나무 무량청정등각경(無量淸淨等覺經)ㆍ나무 아미타경(阿彌陀經).’ 이어서 시방의 모든 대보살마하살(大菩薩摩訶薩)께 공경히 예배하라. ‘나무 보정법(普正法)보살ㆍ나무 보화(普化)보살ㆍ나무 보혜(普慧)보살ㆍ나무 보안(普眼)보살ㆍ나무 보관찰(普觀察)보살ㆍ나무 보조(普照)보살ㆍ나무 보당(普幢)보살ㆍ나무 보덕지광(普德智光)보살ㆍ나무 보명사자(普明師子)보살ㆍ나무 보승보광(普勝寶光)보살ㆍ나무 보덕해당(普德海幢)보살ㆍ나무 보혜광명(普慧光明)보살ㆍ나무 보보화당(普寶華幢)보살ㆍ나무 보승유음(普勝濡音)보살ㆍ나무 보덕청염(普德淸炎)보살ㆍ나무 보상광명(普相光明)보살ㆍ나무 보각(普覺)보살ㆍ나무 각수(覺首)보살ㆍ나무 재수(財首)보살ㆍ나무 보수(寶首)보살ㆍ 나무 덕수(德首)보살ㆍ나무 목수(目首)보살ㆍ나무 진수(進首)보살ㆍ나무 법수(法首)보살ㆍ나무 지수(智首)보살ㆍ나무 현수(賢首)보살ㆍ나무 대광해월(大光海月)보살ㆍ나무 운음해장(雲音海藏)보살ㆍ나무 덕보승월(德寶勝月)보살ㆍ나무 정혜광염자재왕(淨慧光炎自在王)보살ㆍ나무 초월화광(超越華光)보살ㆍ나무 무량지운일광(無量智雲日光)보살ㆍ나무 대력정진금강(大力精進金剛)보살ㆍ나무 향염광당(香炎光幢)보살ㆍ나무 월덕묘음(月德妙音)보살ㆍ나무 광명존덕(光明尊德)보살ㆍ나무 명정장(明淨藏)보살ㆍ나무 심왕(心王)보살ㆍ나무 무애심(無礙心)보살ㆍ나무 자재세(自在勢)보살.’ 이와 같은 시방세계의 무량무변한 모든 대보살마하살께 귀명하라. 이어서 성문ㆍ연각과 일체의 현성(賢聖)들께 공경히 예배하라. ‘나무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ㆍ나무 마하가섭(摩訶迦葉)ㆍ나무 우루빈나가섭(優樓頻螺迦葉)ㆍ나무 가야가섭(伽耶迦葉)ㆍ나무 나제가섭(那提迦葉)ㆍ나무 사리불(舍利弗)ㆍ나무 대목건련(大目揵連)ㆍ나무 마하가전련(摩訶迦栴延)ㆍ나무 아누루타(阿㝹樓馱)ㆍ나무 마하겁빈나(摩訶劫賓那).’ 이와 같이 대중들이 아는 대아라한들께 귀명하라. 그리고 삼보(三寶)에 예를 올리고 나서 다시 참회하라. 제자들아, 이미 번뇌장(煩惱障)을 참회하였고 업장(業障)을 참회하였다. 이제 나머지 보장(報障)을 차례대로 드러내어 참회해야 할 것이다. 경에서 말하기를 ‘업보(業報)가 이르렀을 때는 공중도 안 되고 바다 속도 안 되며 산중의 바위 속도 안 되며, 다른 곳으로 벗어나서 업보를 받지 않을 곳이 없다. 오직 참회하는 힘으로만 업보를 없앨 수가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석제환인(釋提桓因)이 5쇠(衰)의 모습이 자신에게 나타나자 두려움과 간절한 마음으로 삼보께 귀의하였다. 그러자 4상(相:죽을 징조)이 즉시 없어지고 요절할 수명이 연장되었으니, 이와 같이 비슷한 일을 경에서 밝힌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참회하면 실제로 화(禍)를 없앨 수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범부들로서 좋은 벗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악에 얽매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명(大命)이 다하여 궁한 때가 되면 지옥의 나쁜 모습이 모두 그 앞에 나타나게 된다. 이런 때를 당하면 후회와 두려움이 교차하게 되는데, 이는 미리 선행을 닦지 않고 궁할 때에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뒤에 와서 후회한들 어떻게 미칠 수가 있겠는가. 앙화(殃禍)는 다른 곳에서 오래 대기하고 있다가 홀로 훌쩍 뛰어 다른 곳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전의 행실 때문에 큰 가마솥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부서지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이 된 때에는 아무리 한 번 예를 올리고 한 번 참회하고 싶어도 어찌 될 수 있겠는가. 대중들아, 자신의 젊은 나이와 재물과 세력을 믿고 게으름을 피우며 방종하게 놀지 말라. 죽음의 고통이 한번 이르게 되면 노소를 묻지 않는 것이니, 귀천ㆍ빈부의 차별이 모두 없어지며, 갑자기 이르러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대체로 수명이란 무상한 것으로 비유하면 아침 이슬과 같으니, 숨을 내쉬었으나 들이쉼을 보장하기 어렵다. 이런데도 어찌 참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5천(天)의 사자가 이미 이르고 무상의 살귀(殺鬼)가 갑자기 오면 아무리 한창 나이의 고운 얼굴이라도 이를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때가 되면 화려한 집이 인사(人事)에 무슨 관계가 되며, 좋은 수레와 큰 말이 어찌 자신을 따르겠는가. 더 이상 처자와 권속이 나의 가까운 이들이 아니며, 7진(珍)의 보물이 남의 노리개가 될 뿐이다. 이로써 말하면 세간의 과보(果報)란 모두 환화(幻化)와 같고, 천상이 아무리 즐거운 곳이나 돌아갈 길이 파괴되었고, 목숨이 다한 혼백은 지옥ㆍ아귀ㆍ축생의 3도(途)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수발타(須跋陀)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스승 울두람불(鬱頭藍弗)은 예리하고 총명하여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천상의 비비상처(非非想處)에 있어서도 수명이 다하면 다시 축생도 속의 비리(飛狸)의 몸이 되는데 하물며 그 나머지 자들이겠는가. 그러므로 성과(聖果)가 돌아왔는데도 증득하지 못하고 모두 윤회하여 온갖 악취(惡趣)를 겪는 것임을 알 것이다. 만약 조심하지 않으면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런 일을 직접 당하여 후회해도 미칠 수 없게 될 것이다. 간혹 죄를 짓고 관청에 끌려가면 이것은 작은 고통이지만 정신이 황급하고 권속들이 두려워하여 온갖 수단으로 구하려고 한다.지옥의 많은 고통은 이것에 비하면 백천만 배나 되어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중들아, 서로 영겁을 지나는 동안에 지은 죄가 수미산과 같은데 어찌 이런 말을 듣고도 태연스레 겁내지 않고 놀라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가? 이 정신으로 하여금 다시 이런 고통을 겪게 할 것이니 참으로 통탄스런 일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아, 이제 한결같은 정성과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하라. ‘나무 동방 조어불(調御佛)ㆍ나무 남방 금강장불(金剛藏佛)ㆍ나무 서방 등법계불(燈法界佛)ㆍ나무 북방 변안불(邊眼佛)ㆍ나무 동남방 무우덕불(無憂德佛)ㆍ나무 서남방 괴제포외불(壞諸怖畏佛)ㆍ나무 서북방 용맹복불(勇猛伏佛)ㆍ나무 동북방 대력광명불(大力光明佛)ㆍ나무 하방 환희로불(歡喜路佛)ㆍ나무 상방 향상왕불(香上王佛).’ 이와 같은 시방의 허공계가 다하도록 모든 삼보에 귀명하라. 제자들아, 무시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은 보장(報障)이 제일 무거운 자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이 있을 뿐이다. 이제 경에서 밝힌 대로 그곳 모습을 대략 설명하겠다. 이지옥은 일곱 겹의 철성(鐵城)이 둘러싸여 있고 일곱 겹의 철망(鐵網)이 그 위를 덮고 있다. 아래로는 일곱 곁의 칼 숲[刀林]이 있고 맹렬한 화염이 한없이 일어난다. 이지옥의 세로와 너비는 8만 4천 유순(由旬)으로 죄인들이 그 속에 가득 찼으며, 죄업과 인연이 서로 방애(妨礙)되지 않았다. 또한 위쪽의 불은 아래로 내려오고 아래쪽의 불은 위쪽으로 올라가며 동서남북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이는 물고기를 삶으면 기름이 다 없어지듯 이 속의 죄인들 고통도 그와 같았다. 그곳의 사방 성문에는 구리로 된 큰 개가 있는데, 그 몸의 세로와 너비가 40유순으로 이빨과 발톱이 칼날 같고 눈빛은 번갯불과 같았다. 또 쇠 부리를 가진 많은 새들이 날개를 치며 날아와 죄인들의 살을 쪼았다. 그리고 우두(牛頭) 형상의 옥졸 모습은 나찰과 같고 아홉의 꼬리가 있는데 그 꼬리는 철차(鐵叉)와 같았다. 또 여덟 개의 머리가 있으며 머리에는 열여덟 개의 뿔이 있고 예순네 개의 눈이 있는데, 하나하나의 눈 속에서는 뜨거운 철환이 발사되어 죄인들의 살을 타게 하였다. 이때 성내고 노하며 울부짖는 소리는 벽력과 같았다. 또한 수없이 많은 스스로 불타는 칼이 공중에서 굴러 떨어져 죄인의 이마를 맞혔는데, 그 칼이 관통하여 발로 나왔다. 이에 죄인들의 고통은 골수에 사무치고 간담이 서늘하였다. 이와 같이 수없는 세월을 지나면서 모든 고뇌를 받으며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었다. 이와 같은 보장을 오늘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부끄러워하며 숨김없이 드러내어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회하라. 그 나머지의 지옥으로 도산(刀山)ㆍ검수(劍樹)지옥에서 몸과 머리가 떨어지는 죄보(罪報)를 참회하라. 확탕(鑊湯)ㆍ노탄(爐炭)지옥에서 삶아지고 태워지는 죄보를 참회하라. 철상(鐵牀)ㆍ동주(銅柱)지옥에서 불에 타는 죄보를 참회하라. 도륜(刀輪)ㆍ화거(火車)지옥에서 잘리고 깔리는 죄보를 참회하라. 발설(拔舌)ㆍ여경(犂耕)지옥에서 고초와 고통을 받는 죄보를 참회하라. 탄감철환(呑噉鐵丸)ㆍ양동관구(洋銅灌口)지옥에서 오장이 문드러지는 죄보를 참회하라. 철대(鐵碓)ㆍ철마(鐵磨)지옥에서 뼈와 살이 가루가 되는 죄보를 참회하라. 흑승(黑繩)ㆍ철망(鐵網)지옥에서 사지와 관절이 분리되는 죄보를 참회하라. 회하(灰河)ㆍ비시(沸屎)지옥에서 고민하는 죄보를 참회하라. 함수(醎水)ㆍ한빙(寒冰)지옥에서 피부가 찢어지고 얼어붙는 죄보를 참회하라. 호랑(虎狼)ㆍ응견(鷹犬)지옥에서 서로 해치는 죄보를 참회하라. 도병(刀兵)ㆍ분거(分距)지옥에서 서로 때리고 찌르는 죄보를 참회하라. 화갱(火坑)지옥에서 구워지는 죄보를 참회하라. 양석상개(兩石相磕)지옥에서 형체가 부서지는 죄보를 참회하라. 취합흑이(聚合黑耳)지옥에서 뼈를 도려내는 죄보를 참회하라. 암명육산(闇冥肉山)지옥에서 살을 베는 죄보를 참회하라. 거해정신(鋸解釘身)지옥에서 몸이 잘리는 죄보를 참회하라. 철봉도현(鐵捧倒懸)지옥에서 도륙당하는 죄보를 참회하라. 초열규환(燋熱叫喚)지옥에서 원망하는 죄보를 참회하라. 대소의 철위산(鐵圍山)에서 긴 밤과 같이 어두운 곳에서 해와 달과 별의 삼광(三光)을 모르는 죄보를 참회하라. 또한 아바바(阿波波)지옥ㆍ아사사(阿娑娑)지옥ㆍ아타타(阿吒吒)지옥ㆍ아라라(阿羅羅)지옥 등이 있다. 이와 같은 8한(寒)ㆍ8열(熱)의 모든 지옥에는 그 지옥마다 다시 8만 4천의 지옥이 딸려 있다. 이곳에서 자신의 권속들이 죄와 고통을 받아 삶아지고 매 맞으며 피부와 살이 벗겨지고 골수가 깎이며 창자와 폐가 꺼내지는 한없는 고통을 생각하면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오늘 부처님께 귀의하여 이곳에 있는 자들도 무시(無始)이래로부터 우리의 부모나 권속들이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도 수명이 다한 뒤에는 간혹 다시 이와 같은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마음을 씻고 지극한 정성으로 머리를 숙이고 조아려 시방의 부처님과 대지의 보살님들을 향하여 가엾게 여겨주시길 청하고 참회하라. 그리하여 이런 모든 보장(報障)이 필경에는 소멸되도록 하라. 원하건대 제자들아, 이와 같이 지옥에 떨어지는 보장을 참회하여 생긴 공덕으로 세세생생에 모든 부처님의 자비로 중생의 고통을 구원하라. 그리하여 아비지옥과 철성지옥을 파괴하여 모든 정토(淨土)에 악도(惡道)의 명칭이 없게 하라. 그 나머지의 지옥도 모든 고통을 주는 도구[苦具]가 좋은 인연[樂緣]이 되게 하고, 도산ㆍ검수지옥이 변하여 보배 평상[寶牀]이 되게 하라. 또한 확탕ㆍ노탄(鑪炭)지옥에 연꽃이 피게 하며 우두(牛頭)의 옥졸이 포악함을 버리고 모두 자비심으로 악한 생각이 없게 하라. 이에 지옥의 중생들이 고과(苦果)를 떠나 다시는 원인을 만들지 말고 안락하게 되어 제3선(第三禪)의 하늘이 되게 하라. 또한 일시에 모두 무상보리(無上菩提)의 마음을 내게 하라.”
대승연화보달문답보응사문경
보달(寶達)이 한 걸음 내딛기도 전에 음화수(飮火銖)지옥에 들어갔는데 어째서 음화수지옥이라고 하였는가? 그 지옥의 세로와 너비는 3백 유순(由旬)이고 철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연기와 불이 함께 일어났다. 그곳에는 가마솥이 있는데 그 속에는 철수(鐵銖)가 가득하여 펄펄 끓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마두(馬頭) 나찰이 손에 쇠바가지를 쥐고 끓는 철수를 퍼서 흩었다. 동문에는 8천 명의 사문들이 있어 슬프게 울부짖고 몸의 털에 불이 붙어 불과 연기가 일어났으며, 이에 죄인 비구들은 걸음마다 일어났다가 넘어졌다. 그때 마두 나찰이 손에 세 갈래 난 철차(鐵叉)를 쥐고 가슴을 향해 치면 등 뒤로 관통하였고, 그 철차 자루에는 불이 붙은 채로 좌우를 관통하였다. 또한 옥졸과 야차가 손에 쇠갈고리를 쥐고 뒤통수를 긁으면 입 속으로 나왔다. 이때 죄인의 눈과 입이 벌어지는데 옥졸이 손에 쇠바가지를 쥐고 끓는 철수(鐵水)를 떠서 죄인의 입에 부었다. 철수가 입으로 들어가면 6근(根)에서 모두 화염이 나와 연기가 자욱하였으며 몸의 털구멍마다 불이 나왔다. 이렇듯 하루 동안에 갖가지의 벌을 받아 천 번 죽고 천 번 되살아났으며 만 번 죽고 만 번 되살아났다. 만약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불구가 되어 귀머거리ㆍ맹인ㆍ벙어리가 되어 부처님의 명호를 듣지 못하며 천(千)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다 해도 볼 수 없게 된다고 하였다. 보달이 마두 나찰에게 물었다. “이들 모든 사문들은 어떤 죄를 지어 이 같은 벌을 받습니까?” 마두 나찰이 대답하였다. “이들 사문들은 부처님의 청정한 계율을 받고도 청정하게 지키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보시를 받고도 재(齋)를 올리지 않았으며, 밤에 승식(僧食)을 먹고 다시 손수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그러고도 도리어 먹을 것을 취하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이 같은 벌을 받는 것입니다.” 보달은 이 말을 듣고 슬피 울면서 떠났다.
암산을 해보면 다라니와 삼매가 생사현실에 필요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암산을 하면, 처음 문제를 어떻하던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처음 계산을 행한다. 그 다음 그 계산값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계산을 한다. 그리고 처음 계산값과 그 계산값을 다시 합쳐 더하는 계산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계산값을 기억해야 한다. ... 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간단한 계산문제 하나가 이와 같다.
물론 산수문제를 하나 해결한다고 그 계산값을 사용할 일은 없다. 그러나 이런 암산 문제를 통해 기억과 계산 능력을 훈련시킬 수 있다.
생사현실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도 사정이 비슷하다. 한편으로는 기존 지식을 암기해야 한다. 또 새로운 문제상황에서는 삼매를 통해 현실의 정체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현실 산수 계산시에는 주산알을 통해 계산하는 방식이 효과가 좋다. 보수 계산방식을 통해 쉽게 계산한다. 그리고 주산알 위치를 통해 수자를 오래 기억하게 한다. 암산을 할 때도 이 방식이 준용된다.
그러나 수행에서는 오로지 숫자만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생사현실에서는 수행시는 자신이나 자신이 상대하는 다른 이들이 중요하다. 따라서 자신이나 상대의 몸을 통해 다라니와 삼매훈련을 하는 방식이 낫다.
이제 계산문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글을 적는 짧은 동안 문제를 잊어버렸다.
이 문제를 평생 기억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문제를 암산으로 풀 동안만은 기억해야 한다.
처음 숫자를 기억하는 것부터가 문제된다. 계산시에는 중간계산값이 위치하는 자리수부터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오늘 대하는 『불설불명경』에는 부처님 명호가 수없이 나열된다. 경전을 대할 때 부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은 명호뿐이다. 명호외에 또 다른 어떤 내용을 알 수 있는가. 부처님의 본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 것이 수행자의 관심사항이 될 수 있다.
789* 582 를 암산하려 한다고 하자. 물론 계산기를 사용하는 이는 곧바로 답을 적어낼 수 있다. 459198 이다.
그런데 이를 종이에 적어 계산한다고 하자. 그러면 초등학교를 졸업한 경우 대부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계산이 완료될 때까지는 정확한 계산값을 모른다고 하자. 이 경우 생활암산은 중간 계산값이 근사값에 훨씬 가깝다. 처음 350000 이 계산될 때부터 이 계산값의 대강값을 추정할 수 있다.
앞 계산식은 계산이 종료될 때까지 추정하기 힘들다.
한편 암산계산시에는 한 단계마다 계산값을 더해 계속 덧붙여가게 된다.
그러나 종이에 적을 때는 위처럼 벌려 놓고 나중에 덧셈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암산시에는 위 형태로 중간 계산값을 모두 기억하기 힘들다. 이 경우는 문제, 중간계산값, 그 자리 위치를 모두 기억해야 한다. 해보면 쉽지 않다.
그래서 우선 먼저 어떤 방식으로 위 계산을 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불설불명경』에는 부처님 명호를 대하는 가운데에서도 이 사정이 비슷하다.
○ 해마제거형 생활과 점진겁 보관형 생활
사고로 뇌 안의 해마를 제거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이후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를 만날 때마다 매번 의사의 이름을 반복해 물었다고 한다. 그는 의사를 대할 때마다 새로 대하는 의사로 여기게 된다.
이 문제는 시간에 대한 주관적 관념과도 관련된다. 해마를 제거한 이에게는 매 순간이 새로운 내용이다. 하나의 일을 수없이 같은 형태로 반복해도 새로운 내용이다. 그래서 과거의 일은 그에게는 매순간 떠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일을 매번 새로운 일로 여기면서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에 반해 과거 내용이 기억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경전에는 그런 극단적인 사례로 점진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겁이란 시간 단위 하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그 겁을 세는 수의 단위로 '점진' 이란 단위가 사용된다.
이는 우주를 티끌로 나누어 세는 수를 먼저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수를 다시 그 수로 제곱한 수를 뜻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500 점진겁 전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는 수행과 관련하면, 수없이 같은 일을 반복해가는 치매형 삶과 그렇지 않은 경우의 문제가 된다. 즉 분단생사와 변역생사의 문제가 된다.
분단생사는 현실에서 치매가 걸린 상태나, 해마가 제거된 형태와 유사하다. 이렇게 되는 데는 업의 장애가 작용한다. 보리심을 갖추지 않은 가운데 망집에 바탕해 소원을 일으킨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러면 가해 피해 관계가 자연스럽게 중첩된다. 그러면 업의 장애를 쌓이게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과정에서 포맷처리 당한다. 그러면 결국 치매 걸린 상태나 해마가 제거된 형태로 새로 삶에 임하게 된다.
당연히 생사고통을 반복해 겪어 나가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런 현상을 발생시키는 업의 장애를 제거하고 피해야 한다.
단순한 암산 문제만 해도 이 사정을 쉽게 볼 수 있다. 문제나 중간에 계산한 값을 계산도중 잊어버린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같은 계산을 수없이 되풀이해야 한다. 그래도 끝내 그 값을 얻어내기 힘들다.
○ 근사값 계산과 가치 회계
다시 계산문제를 보자. 각 자리수에 9를 적은 것은 의미가 있다. 아무리 각 자리수에 가장 큰 수를 적어도 이 범위 안의 수가 된다.
여기서 앞자리부터 계산한다고 하자. 물론 정확한 계산값은 9 9 8 0 0 1 이다. 그런데 위 계산식을 통해 계산한다고하 자.
처음 계산값은 81 0000 이다. 두번째 계산시는 89 0000 이다.
세번째 계산시는 89 91 00 이다. 네번째 계산시는 98 01 00 이다.
결국 값의 첫자리는 네번째 계산시에는 확정된다. 계산값의 두번째 자리는 이 네번째 계산시 값이거나 +1 이다.
만일 1 자리부터 계산한다고 하자. 그 경우는 반대로 그 이하부분부터 확정된다.
문제는 현실에서 과연 1 자리가 중요한가. 첫째 자리가 중요한가이다.
만일 이것이 지불해야 할 현금이라면 아무리 1 자리 10 자리를 확정해도 별 의미가 없다. 1원짜리 10 원짜리 동전 자체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어느 원시 부족에서는 수의 관념이 하나, 둘, 많다 아주 많다. 이 정도로만 생활한다고 한다. 많다. 아주 많다의 차이가 그 정도 의미 차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을 말한다.
하나와 아주 많다는 그 정도 의미 차이 밖에 주지 못한다.
밥이 한 그릇 있는 것이나, 수억 그릇이 있는 것이나, 내게는 별 차이가 없다. 어차피 한 그릇 밖에는 필요없다. 그렇다면 그런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근사값 계산이 의외로 중요하다. 별 의미없는 부분에서 일일히 구체적인 수를 확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자신에게 의미없는 부분을 일일히 따지는 것은 어리석다.
다만 어떤 부분이 의미있는가는 개별적으로 다르다.
하루에 자신이 식사할 양이라면, 의미있는 숫자가 한정된다. 그런데 또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의미있는 부분을 먼저 잘 구분할 필요가 있따. 의미없는 부분을 놓고 일일히 따지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다.
파이를 놓고 3 인이 나누어 먹는다고 하자. 이 때 1/3 계산식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을 정확하게 파이면적을 계산하려고 ㅠ 값을 소숫점 만자리까지 계산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별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가치 회계에서는 가치 단위 1 이하의 소숫점은 일일히 계산할 필요가 없다.
가치를 측정하는 천칭저울이 있다.
저울 한쪽에 생명과 신체의 가치 기준추를 놓는다. 즉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놓는다. 예를 들어 생명과 신체를 대표할 심장이나 두 눈을 올려 놓는다.
그리고 다른 쪽 접시에 문제되는 내용을 놓는다. 이 때 저울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자. 생명과 신체를 가치 기준 1 단위로 평가하면 다른 쪽 내용은 모두 소숫점 이하 가치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화폐액을 무한대로 천칭저울 한쪽에 올려 놓는다고 하자. 그리고 양쪽 접시 가운데 딱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하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은 얻지 못한다. 이런 경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래서 한쪽에 아무리 어떤 내용을 올리고 또 올려 계산해도 끝내 1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를 아무리 얻고 그 가치를 계산해보려고 해도 시간 낭비다. 가치 회계 측면에서는 1 단위 가치 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피면 아무리 쌓고 쌓아도 생명과 신체 가치 저울에서 1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런 내용을 붙잡고 삶에 임하면 당연히 낙타나 곰, 벌과 같은 상태로 떨어진다.
이것이 현실 상황이다.
따라서 수행에서 근사값 계산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수행에서는 가치 저울에서 최소 생명과 신체 가치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 분야가 무량하다.
간단히 보면 한 생명과 신체의 가치가 1 이라고 하자. 그런데 당연히 한 주체의 생명과 신체보다는 두 사람, 세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가치가 더 크다.
그런 가운데 무량한 생명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은 얼마의 가치를 갖는 것인가.
그래서 의외로 수행에서는 산수와 계산식이 중요하다.
『금강경』을 비롯한 각 경전에서도 각 수행이 갖는 가치를 서로 비교하는 내용이 제시된다.
암산 문제를 대할 때 이 암산 문제를 평생 기억해도 별 쓸모가 없다. 다시 그런 계산식을 만날 일도 없다.
투자종목의 시세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무한값을 가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떤 내용은 그와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내용부터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설불명경』을 읽는다고 하자. 그런데 경전을 덮자 아무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해마가 제거된 환자의 상태와 비슷하다. 오늘 의사의 이름을 열심히 물어도 다음 날조차도 효용이 없다.
정말 자신이 치매 환자의 상태라면 또 문제가 다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래서 이를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 케플러의 제 1 법칙과 불설불명경의 관계
사바세계의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그런데 사바세계에서 수행하는 불제자가 왜 다른 세계의 수많은 부처님의 명호를 념할 필요가 있는가.
어떤 효용이 있기에 수많은 부처님 명호를 념하는가.
아무 효용이 없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물론, 부처님의 명호를 외워서 얻는 효용은 첫 부분에 제시되어 있다.
현재 11 권을 살필 때는 사실은 이 내용이 전제가 되어 있다. 그러나 여하튼 이 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념하고 외울 필요가 없다고 하자. 그런데도 외운다면 그야 말로 어이 없는 일이 된다. 그래서 최소한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수행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케플러의 제 1 법칙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과학 법칙에는 그 한쪽에 관찰자가 들어 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과학자들은 늘 이 부분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자신이 관찰하거나 보고하는 내용이 마치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여긴다. 또 그리고 그런 내용을 그런 형태로 보고한다. 그러면 이를 대하는 이도 또 그 상태와 이와 같다.
그래서 처음 관찰자나 보고자가 위치한 부분에 자신이 들어가 이 내용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또 앞과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
우선 케플러는 무언가를 태양과 행성이라고 여긴다. 우선, 케플러는 행성이 태양을 주변을 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도는데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어떤 관찰이나 보고러 법칙을 기술 보고했다.
부처님은 첫 부분의 오류를 먼저 지적한다. 당신이 별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은 별이 아니다. 이런 내용이다.
그리고 무엇이 무엇때문에 도는가라는 질문이 승가에 남겨진다. 이것이 승가난제다. 결국 승가난제라는 분이 이에 대해 답을 한다.
이 상황에서 도는 것은 네 마음뿐이다. 그런데 그것도 단지 이해를 위해서 하는 표현일 뿐이다. 본래 마음도 도는 것은 아니다.
그 사정은 첫 부분에 제시되어 있다.
어떤 과학자의 보고과정에도 한쪽 구석에서 그 내용을 관찰하는 이가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 부분을 빠뜨린다.
마치 어떤 우화 내용과 같다. 돼지가 소풍을 간다. 갈 때는 버스 운전사가 인원을 정확히 세어 알려준다. 그런데 돌아올 때 돼지 한 마리가 빠져 있다. 그래서 출발을 못한다. 그래서 또 세고 또 센다. 그런데 매번 셀 때마다 빠진다. 알고보면 돼지들이 모두 수를 셀 때 자신을 빠뜨리고 세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 과학자의 보고 상황이 모두 이와 같다.
그래서 이 현상이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처음 관찰한 이의 자리에 다시 자신이 들어가면 또 마찬가지가 된다. 그 말이 맞다. 이렇게 여기게 된다.
여하튼 케플러는 다른 어떤 이의 관찰 내용을 토대로 여러 법칙을 제시했다고 한다. 과학자의 이름들이 하나같이 이상하다. 티코 브라해 이런 이름의 관찰자가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행성의 운행에 대한 법칙을 세웠다고 한다.
여전히 어떤 이가 티코 브라해의 자리에 들어가 관찰하면 엇비슷한 내용을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케풀러의 자리에 들어가 연구하면 역시 비슷한 법칙을 보고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다음이다.
지구나 목성 등의 행성이 다 같이 태양을 주변으로 도는 것 같다. 이렇게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제 1 법칙이 타원 형태로 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왜 그런가를 또 생각해봐야 한다.
왜 원 형태로 돌지 않고 타원 형태로 도는가.
이것은 다음과 같이 추리하게 된다. 행성이 도는데 있어서 태양이 한 중심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또 다른 중심이 여기에 영향을 함께 미치는 듯하다. 이렇게 보아야 한다.
그것이 타원 운동의 의미다.
한점에서 일정한 거리로 움직인다면 원운동이다. 그런데 두 점에서 거리의 합이 같은 상태로 움직이면 그것이 타원 운동이다.
태양은 그런 한 점이다. 그런데 또 한 점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이 발생한다. 그런데 여하튼 그것이 행성을 돌게 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사바세계에서 수행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만 소화해 실천하려고 해도 힘들다. 그렇게 해도 또 충분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서방의 아미타부처님이나 동방의 약사여래님을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 남방 북방 상방 하방 등도 다 마찬가지다.
그런 내용을 『불설불명경』에서 살필 수 있다.
11 권에 부처님 명호가 처음 나열된다.
이 내용이 1권에서 10 권까지와 일정한 체계로 연이어져 있다고 하자. 그러면 먼저 그것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또 11 권 내용부터 새로 대해도 된다.
그런데 11 권에 나열된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단계부터 골치가 아파오기 쉽다.
이것은 더하기 곱하기 구구단이 안 되는 이가 세자리수 곱하기 문제를 암산으로 하려는 상태와 비슷하다.
그래서 일단 그 방안을 잘 살펴야 한다.
○ 시공간의 상대성과 념송력과 주관적 시간관념 문제
이미 해마가 제거된 환자를 통해 주관적 시간 관념문제를 살폈다.
아무리 같은 일이 반복되어도 매번 새로운 현재다.
어떤 이에게 과거 일이 떠오른다고 하자. 이 경우 그것은 사실은 현재 떠오르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관념이 떠오를 때 그 관념은 과거에 기억된 내용이라는 인식이 병행한다.
이 때 엄격하게 그 과거 당시 대한 감각현실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감각현실은 단 한순간 전도 그대로 다시 떠올려지지 않는다. 이것이 감각현실과 관념을 구분하는 기준도 된다.
박물관에서 전시물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고 하자. 그런데 그 직전에 눈으로 본 모습이 그대로 떠오르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과거에 본 내용들이 무언가는 떠오른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은 관념이다. 그런데 과거 당시 그런 관념을 일으키게 한 감각현실이 있다. 현재 순간의 상황과 사정이 같다.
그런데 과거에 일으킨 관념을 다시 떠올릴 때는 사정이 다르다.
그 과거로 자신이 돌아가 그 감각현실을 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관념을 일으켜 얻는 것도 아니다. 다만 관념만 보전된 것이다. 그리고 그 관념이 다시 떠올려질 때는 역시 현재순간의 관념이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감각현실을 상대하면서 일으키는 관념과 다르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과거를 회상해 떠올리는 관념이다.
이 경우 그 관념 자체는 현재 순간에 머무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그 당사자가 그것은 자신이 과거에 얻었던 관념임을 인식한다.
이 두 사정의 차이를 잘 구분해야 한다. 물론 일반적으로 이 두 내용을 잘 행한다. 그런데 과거관념을 기억해 되살려 재생하는 과정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과거 당시에 처음 관념을 얻었던 상황 지금 이 순간 처음 관념을 일으키는 상황, 이것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 과거로 돌아가 관념을 얻고 지금순간으로 되돌아 오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만일 이 상황에서 과거 관념을 다시 떠올린다고 하자. 그 관념이 과거 그 당시의 관념과 정확히 일치하는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과거로 대부분 되돌아가 확인할 도리가 없다. 물론 보조수단은 있다. 예를 들어 과거 내용을 기록한 책이나, 기록매체 등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된다.
예를 들어 다라니를 외었다. 그래서 다시 기억해 적어본다고 하자. 암기 시험문제와 사정이 비슷하다.
자신은 그 내용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답과 확인해보면 부분 부분 엉터리로 기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정확히 일치할 수도 있다. 문제는 두 경우 자신만은 다 맞다고 여길 수도 있다. 앞의 보조수단이 없다면 이 두 경우를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다. 그런데 엄격하게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보조수단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 기록물이 과거 그 당시의 내용인지는 무엇으로 다시 확정할 것인가.
해마가 제거된 상황을 놓고 살펴보면 이 경우 문제해결이 어렵다. 그런데 그 사정이 생사현실과 비슷하다.
다만 현실에서는 과거에 생각했던 내용을 되살릴 경우는 그런 인식이 병존한다. 즉 이 내용은 과거에 한번 경험한 내용임을 스스로 인식하면서 일으킨다.
현재 어떤 사물을 대할 때 일으키는 기시감과 비슷하다. 즉 이것은 과거에 한번 대한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 경우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사실은 제 8 식을 시설하는 하나의 배경이 된다.
다른 정신들은 현재 순간에 대하는 내용과 대부분 관련된다. 그런데 이 경우는 과거에 얻었던 내용과 관련된다. 그래서 여하튼 이 현상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해마가 제거된 환자의 상황과 일반인의 상황의 차이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다시 이 문제는 수행에서도 중요하다.
어떤 이가 『불설불명경』에 나열된 부처님 영호를 1 시간에 걸쳐 다 외었다고 하자. 그런데 일반적인 경우 어떤 이는 1 시간에 5 분 명호만 외었다고 하자. 그런데 해마가 제거된 경우는 1 시간에 1 분 명호도 못 외운다고 하자.
암산 문제도 비슷하다. 어떤 이가 한 시간에 수많은 계산문제를 풀었다고 하자. 암산 분야에서 이정희 여사가 그런 차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어떤 이가 1시간에 5 문제만 풀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제 뇌의 어떤 부분이 제거된 환자가 1 시간에 1 문제도 못 푼다고 하자. 이 차이도 역시 문제된다.
이 차이가 다시 시간의 주관적 관념과 관련된다.
일반인을 기준으로 하여 1 시간의 의믈 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경우는 다른 일반인의 수십년을 보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또 어떤 경우는 정작 수십년을 보내고도 1 분도 안 지낸 것처럼 된다.
또 다른 주관적 시간 관념이 있다.
벼랑에서 나무에 줄로 매달려 있다. 아래는 100 층 높이로 바위만 있다. 구조팀이 올지 안 올지 모른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1 시간을 그 상태로 있다고 하자.
또 다른 경우도 있다. 오래만에 정다운 이를 만나서 대화를 즐겁게 나눈다고 하자. 지극히 쾌적하고 평안하다. 들리는 음악도 마음에 맞다. 사이사이 맛보는 음식도 감미롭다.
이런 경우 1 시간을 보내고 일어선다고 하자.
시계 바늘 자체는 두 경우다 1 시간 지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각 경우 그 1 시간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
그래서 각 경우 목표점이 달라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1 시간에 다른 일반적인 경우의 1000 년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적인 경우의 1000 년의 의미를 1 순간 정도로 느끼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수행에서 그대로 요구된다.
그런 사례를 아난존자나 세친, 용수보살, 구마라집 법사들이 실례로 보여준다.
수행 자체는 유희 자채 신통으로 임한다. 그렇게 임하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상태와 다르다. 천년을 보내도 한 순간 보낸 것처럼 가볍게 대하게 된다.
그런데 하루에 게송을 천게송씩 충분히 외운다. 그러면 또 반대가 된다. 일반적인 경우를 기준으로 하면 하루에 일반적인 경우 천년 걸려야 할 일을 행한 것이 된다.
여하튼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이 수행에 있어서 바람직하다.
그런데 업의 장애가 있으면 이것이 곤란을 겪게 된다.
이미 그 사정을 앞 부분에서 살폈다.
현실 사정과 마찬가지다. 어떤 이가 범죄를 행해서 감옥에 갇힌다고 하자. 그러면 교도소에 들어가기 직전 노트북이나 핸드폰도 모두 따로 보관하게 된다. 볼펜이나 종이마저도 사정이 비슷해진다.
가해와 피해관계가 중첩되면 생사과정에서 이 현상이 심해진다. 그래서 매생마다 분단 생사과정을 겪게 된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각 경우 그 본 상태 자체는 차별이 본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도 생사현실 과정에서는 이 구체적 차이가 크다.
어떤 특수한 암기능력이나 학습 방법도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보리심을 갖추고 다른 중생을 이롭게 하고 도우려는 마음자세로 생사현실에 임하는가 아닌가가 이 차이의 핵심이다.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Mazu Daoyi [san-chn]
astādaśehi varttehi 十八事 [san-eng]
pacati $ 범어 (1 pp) to cook [pali-chn]
paññêndriya 慧根 [pal-eng]
parinibbaana $ 팔리어 nt.final release from transmigration; death after the last life-span of an arahant. [Eng-Ch-Eng]
勤修 To endeavor; to practice with vigor (prayujyate, vi^rya, prayoga). [Muller-jpn-Eng]
麁重相識 ソジュウソウシキ the sluggish, or dense aspect of the store consciousness [Glossary_of_Buddhism-Eng]
HINDUISM / BUDDHISM☞ See also: Ambedkar; Hinduism; India (Buddhism in –). “Buddhism was initially established as a reform movement opposed to vedic authority, brahmanic ritualism and the caste system of Hinduism. However in the ninth century Hinduism launched a counter-attack. Buddhist ideas were deliberately incorporated into Hinduism and the historical Buddha declared an incarnation of the god Visnu. What once had been attractive in Buddhism could now be found [theoretically] in Hinduism as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