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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8일 금요일

불기2564-08-28_불설성법인경-K0750-001


『불설성법인경』
K0750
T0103

성법인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불설성법인경』 ♣0750-001♧





성법인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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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설성법인경(佛說聖法印經)

서진(西晋) 월지국삼장(月氏國三藏) 축법호(竺法護) 한역
최민자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잘 들어라, 
모든 비구들이여.”

“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그대들을 위하여 성 법인(聖法印)에 알맞는 위의(威儀)와 청정한 행을 나타내는 것을 말할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고 기억하여라.”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어떤 사람이, 
‘공(空)을 구하지 않고 
무상(無想)에 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뜻을 내어 스스로 거만하지 않은 선정(禪定)의 업에 이르려고 하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공법(空法)을 본받기를 좋아하며 
뜻을 무상(無想)에 두고, 
지극한 도[至要]에 이르려는 뜻을 내어 
스스로 잘난 체하고 교만한 마음을 없애고 
선정의 업에 이르려 한다면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 곧 도(道)에 따라 원(願)을 세우면 소견(所見)이 생기니, 
무엇 때문인가. 
공(空)을 본받아 좋아하고 
무상(無想)을 얻으려고 하며, 
교만하여 스스로 잘난 체하는 소견을 없애려 하기 때문이니, 
이렇게 하면 혜업(慧業)은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비구의 성법인이라고 하는가. 
성법인은 늘 닦아 익혀서 청정한 견해에 이르는 것이다. 


만일 비구가 한정한 곳에 있거나 나무 밑이나 인적이 드문 곳에 앉아서 

▸ 색(色)이 무상함을 깨닫고 
색이 본래 없음을 보아 이미 무상을 깨달아 
지극히 공하여 없음을 알면 
문득 모두 아득해져서[怳惚] 
아(我)도 없고 욕망도 없어져 마음이 곧 쉬게 되니, 
저절로 청정하게 되어 해탈을 얻으니, 

이것을 아직 교만과 스스로 거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선정의 청정한 소견의 업에 이른 공이라고 한다. 

비록 그러하나 유순(柔順)한 정(定)에 이르렀기 때문에 
곧 그 자리에서 
모든 색에 대한 상(想), 
소리에 대한 상, 
냄새에 대한 상을 제거한다. ◂
 


그러므로 무상(無想)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그러므로 아직 스스로 거만함과 교만을 버리지 못하고 
선정의 청정한 소견에 이른 무욕(無欲)이라고 한다.

그 마음이 계속 유순한 정(定)에 있으면 
그는 곧 지니고 있던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을 보고 제거한다. 

그러므로 아직 스스로 거만함과 교만을 제거하지 못하고 
선정의 청정한 소견에 이른 무욕(無欲)의 정(定)이라고 한다.


▸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나의 아(我)가 생겼다가 사라지니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라고 하고, 
곧 사유하여 
‘나의 아(我)가 의미를 익히고 
모든 식(識)을 분별하는 소인(所因)이니 
모두 인연에서 이러한 업에 이르고, 
이러한 인연에서 신식(神識)이 있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안다. ◂
 

또 생각한다.
‘이들 모든 인연은 유상(有常)할까, 
무상할까?’

▸ 또 생각한다.
‘인연이 합하여 이루어진 신식은 
모두 무상하고, 
근본이 없다. 
이 신식이 무상에 의지하여 망상(妄想)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인연에 따라 12인연이 있다. ◂
 

▸ 모든 것이 소멸[盡]로 돌아가니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무너져 없어지고 이별하고, 
욕심을 버리고, 
소멸하여 없어진다.’

이것을 분명히 깨달은 이라야 
근본이 없음을 알고, 
마음을 항복받고, 
모든 일어나는 생각이 없어져 도행(道行)에 들어간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스스로의 거만함을 없애 
교만과 방일이 없는 선정의 업에 이르러 청정한 행이 나타난다.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르고, 
구경(究竟)의 본말(本末)인 
성법인(聖法印)1)의 청정한 업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모든 비구들은 이것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이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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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원강(元康) 4년(294) 12월 25일 월지국 보살 사문 담법호(曇法護)가 
주천에서 이 경을 역출하고 
제자 축법수(竺法首)가 필사하여 이 심오한 법을 시방에 널리 유포시켜 대승이 항상 빛나게 하였다.


1)
1) 송본ㆍ원본ㆍ명본에 따라 유성법인(由聖法印)에서 유(由)를 생략하였다.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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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fr

_M#]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dith Piaf - La Valse Sans Joie (Sur Une Colline).lrc


 ● 망상과 신식(神識)과 12 인연과 교만 


일반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일반적으로 꽃과 바위를 대하면 저것은 꽃이다 바위다 
이렇게 분별하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 
대부분 상식적인 수준이 이와 같다. 
이를 바탕으로 현량이나 비량이 옳은 지식을 얻는 수단이라는 등의 주장이 행해진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망집에 바탕한 주장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망집을 제거하는데 초점이 있다.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입장이다. [참고: 금강경]

그런데 그렇게 제시하는 사정이 있다. 
물론 그런 감각이나 분별 및 입장 자체가 잘못이고 엉터리다. 
그런데 단지 그것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망상분별이 단순히 그것으로만 그친다면 그 피해는 적다. 
마치 꿈이나 만화에 나오는 내용과 사정이 비슷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갖는 망상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이는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근본원인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이를 제거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불설성법인경』은 내용이 짧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함축해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잘 살펴야 한다. 


이전에 우이경[經]과 하필경[經]에 대해 제시했다. 
https://buddhism007.tistory.com/17555
sfed--대보적경_K0022_T0310.txt ☞제104권

이는 과유불급 우이독경 이런 사자성어와 관련해 새로 만들어낸 신조어다. 
정도에 맞지 않게 지나치면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경우가 많다. 
이를 과유불급이라고 한다. 

한편 아무리 경전 내용을 반복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을 우이독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도에 맞지 않는 경전 내용이 제시되면 대부분 우이독경 상태가 되기 쉽다. 
경전에서도 부처님이 이를 감안하여 초학자를 대상으로 
일체개공이나 3 해탈문과 관련한 내용을 설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런 경우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해해도 그로 인해 오히려 잘못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악취공견]

그래서 처음 불교를 대하는 이에게는 세속적인 입장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법문을 방편상 먼저 제시하게끔 된다. 
처음에는 가장 기초적으로 하늘에 갈 수 있는 10선법 등의 법문[인천교적인 가르침]이나, 
업의 장애를 해소하고 3 악도에 묶이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 계행의 성취가 먼저 강조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점차 실상과 연기를 관하고 수행방안을 닦아 나가게끔 된다. 

그런데 오늘날 대승경전의 가장 수준 높은 경전이 대부분 무차별적으로 제공된다. 
그래서 어려움이 많다. 
그런 사정으로 경전의 가르침이 제시되어도 거의 대부분 우이독경 상태로 대하게 된다. 
예를 들어 경전의 한 부분을 가리키고 그 구절이 의미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오래 수행을 한 경우에도 잘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가장 기본적 내용으로 5 온이 있다,
그런데 5 온 가운데 색이 무언가. 수가 무언가. 이런 문제만 제기되어도 대부분 비슷한 상태가 된다. 
한자어를 통해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그래서 여러 사정으로 원하던 원하지 않던 대장경 내용은 
일반적으로 대부분 우이경 형태로 남아 있다. 

한편 하필경이란 또 다른 신조어다. 
'하필何必'이란, 사전을 참조하면 다음 의미다. 
일이나 상황이 못마땅한 상태가 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것이 그와 달리 되지 않고 어찌하여 꼭 그러한가라며 그 이유를 진지하게 캐물을 때 쓰인다.

그래서 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 이런 형태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갑자기 알 수 없는 질환에 걸렸다. 
또는 우연히 원치않은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왜 하필 그날 다리를 다쳐 그렇게 보고싶던 그 공연을 못보는가. 
또는 자신이 하필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지금 자신은 하필 이런 모습인가. 
이런 식으로 사용된다. 

반면 생사현실에서 대하는 상황이 자신의 뜻과 같을 때는 이런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필 이번에 복권에 당첨되었는가. 
이런 표현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질문은 삶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 
종이를 태우면 하필 연기와 재가 나타나는가. 
또는 눈을 뜨면 하필 이런 하늘과 이런 땅 모습을 보게끔 되는가. 
이렇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런 질문은 자신이 대하는 내용이 이와 다른 모습이면 안 되는 사정이라도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정은 무엇인가. 이런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는 순수하게 현실이 그렇게 되어야 할 사정이 무언가에 대한 의문이다. 
자신이 대하는 현실 내용은 자신이 매번 엇비슷한 내용을 대해서 익숙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신이 대하는 현실 하나하나가 그런 형태로 나타나는 사정은 불가사의하다. 
그래서 그 내용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그런 형태로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효용을 갖는 것은 결국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다. 
그리고 경전은 생사 고통을 겪게 되는 배경 사정을 설명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취지의 경전은 '하필경'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 핵심은 다음이다. 
그렇게 심한 생사고통을 겪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수많은 중생은 하필 그런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그 사정에 대한 설명이 행해진다. 
그리고 경전의 모든 가르침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경전에서 수행방안이 제시되는 핵심 배경 사정이 된다. 


★%★
하필 지금 눈이 조금 아프다. 그래서 여기서 일단 멈추고 쉬고 이어나가기로 한다. 
★%★

하필경과 우이경이란 신조어는 대장경이 처한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지어낸 것이다. 
경전 내용은 각 생명이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 사정에 대해 설명한다. 
또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수행 방안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하필 그런 형태로 제시되는 사정이 있다. 
이런 측면을 하필경이란 표현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이런 경전 내용은 일반적인 상식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경전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측면을 우이경이란 표현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경전이 갖는 이런 특성은 
반대로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처한 상황들과 관련된다. 
즉 경전 입장에서 보면 생사현실에서 대부분 우이경[境]과 하필경[境]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여기의 경[境]이란 표현은 현실에서 각 생명이 놓인 상황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이가 생계에 곤란을 겪는다고 하자. 
또는 감옥에 갇히거나, 불치의 질환으로 고통을 겪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자신이 하필 이런 상태인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전후를 살피면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각 생명은 우선 기본적으로 자신이 대하는 현실 상황의 정체를 잘못 파악한다. [망상분별]
그런 가운데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모든 생명은 자신에게 좋은 상태를 추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바탕해 추구해나간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런 가운데 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 사정을 쉽게 이해하려면 사막의 낙타나 투우장의 소를 생각하면 쉽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닌다. 
그런 가운데 다른 존재를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고 죽는다. 
이런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한편 투우장의 소는 다음 상황을 나타낸다. 
투우장에서 투우사가 깃발을 흔들고 소를 유인한다. 
그러면 소는 흥분해 돌진해 달려간다. 
그러면 투우사가 피하며 등에 칼을 꼽는다. 

낙타나 소 입장에서는 이런 각 상황 하나하나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낙타나 소는 각 상황에서 자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결국 고통을 겪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낙타나 소가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는다고 하자. 
왜 하필 자신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가. 
왜 사람들이 자신을 하필 이처럼 대하는가. 
이런 질문을 일으킨다고 하자. 

사람들은 이 상황을 단순하게 다음처럼 파악하게 된다. 
낙타나 소는 몸만 크고 힘만 셀 뿐이다. 
그런 가운데 매순간 탐욕 분노에 이끌려 반응한다. 
그런 바탕에서 매 순간 자극하면 그에 따라 단순하게 반응해 활동한다. 
결국 그처럼 어리석다. 
그래서 사람보다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해가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체구도 작고 힘도 약한 사람에게 잡혀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 사정을 제시할 것이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는 상황은 
대부분 사정이 이와 성격이 같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처하는 하필경[境]과 관련된다. 

그런데 이런 낙타나 소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겨 누군가 그 사정을 알려주려고 한다고 하자. 
그것은 그들이 대하는 현실의 본 정체나 인과관계에 대한 내용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방안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설령 누군가 그 내용을 낙타나 소에게 말해준다고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리고 설령 알아들어도 그 상황에서 도저히 실천하기 힘들다. 
그래서 낙타나 소는 어쩔 수 없이 그런 고통을 겪게끔 된다고 보게 된다. 
이것이 낙타나 소가 처한 우이경[境]의 상황이 된다. 
그리고 각 생명이 처한 우이경[境]이란 이런 상태를 나타낸다. 

즉, 내용을 말해주어도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을 잘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방안을 실천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고통을 겪어 나간다. 
이런 사정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측면이 경전에서 하필경[經] 및 우이경[經]의 특성과 관련된다. 

부처님도 일반적으로 현실의 정체와 그 인과 과정을 설명한다. 
즉 중생이 생사고통을 겪게끔 되는 인과과정을 연기로 설명한다. 
그리고 또 반대로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날 방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일반적으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에서 대부분 상식적인 바탕에서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서 열심히 자신이 좋다고 보는 상태를 향해 자신의 방안으로 고집스럽게 나아간다. 
그리고 생사과정에서 고통에 묶이고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앞에서 비유로 든 낙타나 소가 처한 상황은 생사현실에 처한 생명들의 사정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것을 잘 해결해야만 한다. 




이 문제를 다시 이렇게 보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눈을 감았다가 뜬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상황에서 내용을 얻는 과정을 '현량'이라고 보통 칭한다. 

한편 그렇게 눈을 떠 일정한 모습을 보는 가운데 
일정한 부분을 꽃이나 바위, 그리고 영희, 철수, 자신 등으로 분별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더 상세한 분별도 행하게 된다. 

이들은 현실에서 각 주체가 얻는 내용이다. 
그러나 단지 그렇게 내용을 얻어냈다는 것뿐, 그 성격은 엉터리다. 
마치 침대에서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그 성격이 같다. 

그러나 망집을 일으킨 바탕에서는 이를 실답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해서 그 위에 점차 망집을 증폭시켜 쌓아 나간다. 

그래서 예를 들어 
눈을 뜰 때 얻게 된 이들 내용은 외부 세계의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이들 내용은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이들 내용은 마음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마음 밖의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을 비롯해 영희나 철수가 다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인과 판단도 역시 잘못 행한다. 
예를 들어 손을 부딪히니 소리가 난다. 
번개가 치니 천둥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판단에 바탕해 일정한 추론도 행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도 엉뚱하게 잘못 판단을 행하게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며 가리키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색수상행식 5 온과 같은 내용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사실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각 부분의 본 정체도 잘못 파악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자신의 본 정체라고 잘못 여긴다. 

또한 그런 바탕에서 생사과정에서 자신이 한번 죽으면 
이후 자신과 관련된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고 잘못 여긴다. [단멸관]
그래서 종합적으로 잘못된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현량이나 비량이란 표현은 일반적으로 낯선 표현이다. 
현량은 주로 감각기관 등을 통해 곧바로 내용을 얻는 경우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외 이와 유사한 경우를 몇몇 더 포함시킨다. 
한편 비량은 원칙적으로 관념판단과정 가운데 추론을 통한 관념분별을 가리킨다. 

그러나 관념분별을 일으키는 경로는 다양한다. 
감각현실을 대하고 바로 관념분별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5구의식]
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분별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경전처럼 권위 있는 이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또는 단순히 비유나 유추를 통해 분별을 행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홀연히 과거 관념분별을 연상하거나 상상해 떠올리기도 한다. [독산의식]
또는 꿈 속에서 얻는 내용도 있다. [몽중의식]

그러나 이들은 주로 관념분별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옳다고 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같은 문제점을 갖게 된다. 

거리에서 영희가 100 m 앞에 서있다가 자신을 향해 뛰어 온다고 하자. 
이 경우 처음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는 자신 손가락보다 작게 보인다. 
그러나 자신 앞에 다가오면 거의 자신과 비슷한 크기로 보인다. 
그리고 이 사이의 형태는 매 순간 다르다. 
예를 들어 그처럼 매순간 모습과 크기가 달라지는 모습을 다음처럼 기호로 표시하기로 하자. 
λμνξοπρςστ υφχψ

그런데 이들을 모두 묶어 다 영희라고 관념분별하게 된다. 
이 경우 감각현실로 얻는 매순간의 모습은 자상(自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영희의 매순간 구체적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을 모두 영희라고 분별한 내용은 이에 대한 공상(共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자상과 공상은 서로 상대적인 관계에 있다. 
이 경우 이들 제각각 다른 자상(自相)은 다 함께 그런 공상(共相)을 갖는다고 잘못 여긴다. 

영희가 매순간 달리 보인 모습을 놓고 검토해보자. 
λμνξοπρςστ υφχψ
그런데 관념분별은 어느 경우에서도 이들 안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또 관념분별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단지 그 주체가 매 경우 이들 내용을 대해 그런 관념분별을 같이 일으킨 것 뿐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 문제를 서로 혼동하게 된다. 

한편 그가 다 함께 영희로 여기는 다양한 모습을 놓고 보자. 
우선 이들 안에서도 하나의 공통된 내용은 찾아지지 않는다. 
그런 것이 무언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역시 관념분별 영역안에서의 일이다. 

그런 가운데 다양한 매순간의 내용 가운데 어떤 것이 과연 
참된 영희의 내용이라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이것이 현량의 옳고 그름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이가 돗수가 맞지 않은 안경을 썼다고 하자. 
또는 눈병이 걸렸다고 하자. 
또는 관찰자 자신이 대단히 빨리 움직이면서 관찰한다고 하자. 
이런 각 경우에서도 얻는 감각현실이 다르다. 
이 경우까지 포함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그리고 이런 감각현실을 기준으로 놓고 관념분별의 옳고 그름을 
문제삼는 경우 그것은 또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그 사정을 보았다.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가지고 이 둘을 관련시켜 옳다고 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관념영역안에서 관념분별을 대상으로 분별할 때는 이 사정이 조금 달라질 수있다. 
예를 들어 감각현실을 가리키지 않고 
단순히 1 더하기 1은 2 라는 식으로 분별하는 경우다. 
그러나 이런 분별도 감각현실 영역에 그 내용을 적용시키고자 할 때는 
역시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더 나아가 이들 감각현실과 관념분별 등을 
모두 본 바탕의 실재와 관련시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는 
모두 다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우선 이들은 본 바탕의 실재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실재는 끝내 직접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문제를 이와 관련시킬 경우 이들은 모두 엉터리 판단이 된다. 
마치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꿈과 사정이 같다. 
꿈 안에서는 황금꿈을 생생하게 꾸었다. 
그러나 이는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렇게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렇게 꾼 것뿐이다. 
그래서 꿈을 실답지 않고 평가하게 된다.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과 관념분별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은 일상적으로 누구나 행하는 작용들이다. 
그런 가운데 이처럼 감각과정이나 분별과정을 거쳐 얻는 내용을 옳다고 잘못 여긴다. 
특히 현량과 비량이 옳은 지식을 얻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하자. 
그렇다면 부처님은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이런 감각과 분별과정에 따른 내용을 
모두 옳다고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거울을 보고 일정한 부분을 자신으로 여긴다해도 
그대로 방치해둬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렇게 상을 취하고 임해도 무방하다고 방치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앞에서 밝혔듯 이들 내용은 하나같이 엉터리다. 
그리고 단순히 엉터리에 그치지 않는다. 
각 주체는 바로 이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집착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매순간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해결하려면 이 앞단계에서 미리 이런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엉터리임을 일단 제시한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영희가 저기에 서있다가 자신을 보고 달려온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 영희나 자신, 그리고 오고 감 이런 것을 모두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생사현실에 생멸이나 생사를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위 내용 일체는 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이들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없다. [유식무경]
이처럼 제시한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일반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앞에 말한 우이경[境]과 우이경[經]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상황은 낙타나 소가 처한 상황과 성격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먼저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다시 의문이 이어진다. 
사정이 본래 그렇다고 하자. 
이들 내용이 모두 자신 마음내용이라고하자. 
그런데 자신이 사과를 들어서 영희에게 건넨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자신은 무엇을 영희에게 건넨 것인가. 

또 이들이 모두 마음 내용이라고 하자. 
그런데 수많은 주체가 일정한 시간과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이 되면 '하필'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어가게 되는가. 
그리고 현실의 이런 사정을 보면 이런 내용을 실답게 여겨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의문이 이어진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하필경(境)과 관련된다. 

그래서 실답지 않은 내용임에도 
현실에서다수 주체가 그처럼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얻는 배경 사정을 다시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 사정을 이해시키기위한 경전 내용들이 결국 하필경(經)과 관련된다. 

그래서 하필 이런 내용을 얻게 되는가를 살펴보자. 

이를 위해 눈을 감아보자. 
여기에도 위 질문이 적용된다. 
눈을 감으면 보이던 것이 하필 이렇게 보이지 않게 되는가. 

그런 상태에서 다시 눈을 떠보자. 
그러면 책상도 보인다. 
멀리 산도 보인다. 
하늘도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해 다시 하필 이렇게 되는가를 살펴보자.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 눈만 뜨면 하필 이렇게 제각각 다른 색으로 다양하게 보이는가. 
이런 의문을 생각해보자.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그런데 이들 내용이 자신의 마음에 들 때는 그래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 대단히 들지 않는 경우는 이는 큰 문제다. 

앞에서 처음 제시한 생사고통의 현장에 자신이 처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질환이 생겨 가만히 있어도 온 몸이 아프다. 
질환이 특이해서 도무지 잘 낫지도 않는다. 
치료비도 없고 생계 자체가 어렵다. 
그리고 이전에 자신이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 
그 이후부터 수사관에 쫒기고 있다. 
언젠가는 감옥에 들어가야 할 듯 하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자신을 비난하고 욕한다. 
그런데 사정을 살펴보면 오해다. 억울하다. 
이런 등등의 상황에 처해 있다면 큰 문제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인의 심성으로 또는 지적 호기심에 바탕해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왜 눈만 뜨면 하늘이 저렇게 파랗게 보이는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황이 이와 달라서 앞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다르다. 
왜 이렇게 심한 고통을 겪게 되는가. 
이를 어떻게해야 벗어날 수 있는가. 
이런 측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런 극심한 생사고통 문제 해결을 위해서 
앞과 같은 우이경과 하필경 성격을 갖는 경전이 제시된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이것을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다시 처음의 우이경과 하필경의 상태에 들어가면 곤란하다. 
그래서 예를 들어 눈을 감고 떴을 때 무엇을 얻었다고 하자. 
그런 사정으로 그 내용들이 옳다고 엉터리로 잘못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 부분이 평소 자신이 바위나 꽃, 영희나 철수로 여기게 된다고 하자. 
또는 앞에 밥이 있다고 하자. 그래서 밥을 먹었다. 그러니 배가 부른다. 
그런 사정으로 처음 밥이라고 생각한 분별이 옳은 내용이라고도 잘못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바로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상식적 내용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일반적으로 처하는 우이경(境)과 관련된다. 

그리고 우이경(經)에 해당하는 경전들은 
하나같이 이런 망집을 벗어나라고 제시한다. 
그래서 경전에서 현실에서 상을 취하지 말라고 제시한다. 
그리고 온갖 수행을 하더라도 그처럼 상을 취하지 않는 바탕에서 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이런 수행을 힘들어도 이런 바탕에서 잘 성취해야 한다. 

아래에서 하필 (안 겪어도 되는) 생사고통을 심하게 겪게 되는 사정을 먼저 간단히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또 반대로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간단히 살피기로 한다. 
이를 위해 현실에 대하는 것들의 정체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일체가 마음안 내용인데 하필 그런 형태로 나타나는가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이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파악한 내용이 망상분별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어떻게 해야 생사고통을 벗어날 것인가를 이해햐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생사현실에 임해 어떻게 해야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쌓을 수 있는가를 이해햐야 한다. 
더 나아가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날 수있도록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할 수 있는가도 이해해야 한다. 

이하에서는 그간 살핀 이런 주제를 최대한 간략하게 살피기로 한다. 












[img9]
08pfl--image/8식-9.jpg



일단 내용을 간단히 압축해 제시하려니 과거에 적은 내용을 반복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일단 과거 글 링크부터 붙이고 최대한 압축해서 살피기로 한다. 

○ 마음현상에 대한 논의 - 전체 내용
https://buddhism007.tistory.com/4053
dict-list--editing_text.TXT



생사현실에서 어떤 이가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했다고 하자. 
이 생사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문제다. 
경전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이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어떤 이가 앞에 금처럼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고 하자. 
그래서 금이라 생각하고 이를 주으러 앞으로 걸어 나갔다가 벼랑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래서 다리가 부러져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해보자. 

이런 고통을 놓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통을 당하는 그 상황에서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우선 생각할 수 있다. 
또 한편, 미리 그런 상태에 처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두 방안을 놓고 생각하면 
예방방안을 취하는 데 드는 노력이 1 이라면 
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해 사후적으로 대처해 이를 제거하는데 드는 노력은 대강 100 정도 된다고 보게 된다. 

즉 앞의 사례를 놓고 보자. 
이 경우 미리 잘 판단해서 벼랑을 향해 가지 않아 사고를 예방하는 데 드는 노력을 1 이라고 하자. 
그런데 이미 다리가 부러진 상태에서 이를 제거하는데 드는 노력은 이보다 훨씬 힘들다. 
생사현실의 문제도 사정이 같다. 

생사고통을 겪는 과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처음 각 주체는 그가 대하는 세계나 자신의 정체에 대해 망상분별을 일으켜 잘못 판단한다. 
그런 바탕에서 탐욕과 분노에 집착해 업을 행해나간다. 
그리고 그 결과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 [혹 - 업 - 고 ]

그래서 사실은 원인단계에서 그런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하던 업을 중단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과거에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수행을 행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생사고통을 예방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이 예방방안에서 근본적으로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원칙적인 방안이다. 

물론 망집 자체만 놓고 보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것은 만화나 꿈과 성격이 비슷하다. 
그것만 살피면 좀 엉터리여도 그것만은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망집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업을 행하면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집의 제거가 강조된다. 
그리고 망집 가운데 특히 자신의 정체에 대한 잘못된 분별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사현실에서 일으키는 온갖 망집 가운데 모든 집착은 자신에 대한 망집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유신견] 

그리고 이런 망집이 제거되면 대단히 수준이 높은 수행단계에 이르러 성인의 지위에 이르렀다고 보게 된다. [ 수다원 이상 ] 
그런데 이 망집의 해결이 말처럼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처음 앞에서 제시했던 문제와 관련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뜨면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 가운데 평소 자신이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신이 대하는 외부 세계나 외부 대상으로 여기고 평소 대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눈앞에 일정한 부분을 꽃이나 영희라고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평소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이려고 하면 따라서 움직이는 부분을 자신의 몸이라고 여기고 대한다. 
이런 상황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런 분별을 떠나서는 일상생활 자체를 유지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위와 같은 망상분별을 제거하는 것은 말처럼 결코 쉽지 않다. 
우선 이들 내용은 이해하기도 힘들다. 
설령 이론적으로 이들 분별이 망상분별임을 이해해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평소 자신의 손과 발이라고 여기고 대한 부분이 잘라져서 피를 흘리면 
아무리 오래 수행을 해도 심한 고통을 느끼고 당황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용을 설령 이해해도 그 내용을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해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금강경』에서는 그처럼 상을 취하고 임하는 경우 수행자가 아니라고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망집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사정 때문에 처음 단계에서는 방편상 이런 망집을 그대로 바탕한 상태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단지 극심한 생사고통( 3 악도)에 처하지 않을 방안을 기초적으로 제시하게끔 된다. 
그렇게 제시하게 되는 사정은 앞에 제시한 사정 때문이다. 

그래서 기초적으로 우선 3 악도를 면할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반대로 하늘이나 인간의 상태를 오갈 수 있는 방안으로 
10 선법과 같은 내용을 기본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인천교]

그리고 생사고통에 묶이지 않게 하기 위해 우선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하게 된다. 
또한 그런 업의 장애를 만들어 내지 않게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계의 덕목을 성취할 것을 제시하게끔 된다. 
그렇게 되면 우선 3 악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런 가운데 점차적으로 계, 정, 혜 3 학의 수행을 행해나가게 된다. 
그래서 현실의 본 정체를 올바로 관하게 된다. 
그리고 망집을 제거해서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이끌게 된다. 
그런 가운데 유신견이 제거되고 계금취견을 비롯한 5하분결이 제거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색계의 하늘과 인간세계를 오가는 가운데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을 계속 해나가 망집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제 그 수행자 자신만은 처음 제시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아라한의 무여열반 ]
그래서 수행자 개인의 측면만 놓고 보면 이 상태가 수행의 궁극적 목표가 된다. 

그런데 이 경우는 생사현실에 남은 다른 중생들의 생사고통 해결이 어렵게 된다. 
즉 생사현실에 놓인 중생을 그대로 방치하면, 스스로 망집을 제거하고 벗어나오리라 기대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수행자는 다시 자비심을 바탕으로 중생제도의 서원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 다시 임해 중생과 눈높이를 맞춰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수행을 해나게 된다. 

결국 수행자는 생사현실의 본 정체가 그와 같지 않음을 잘 관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다시 중생들이 처한 생사현실에 같이 임해 중생들이 갖는 망집에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중생을 제도할 방편지혜를 닦아 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런 바탕에서 다시 생사현실 안에서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할 수행을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결국 2 중적인 측면이 된다. 
즉 한편으로 생사현실의 본 정체가 그렇지 않음을 잘 관하여 상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생사현실에 처한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수행을 행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해가는 두 측면이 요구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계, 정, 혜의 수행덕목이 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경전에서 중생의 각 단계에 맞추어 다양한 가르침이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게 된다. 

즉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갖는 망집에 눈높이를 맞춘 내용이 제시된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3 악도를 벗어날 수 있는 내용들이 제시된다. 
그리고 또 한편, 
근본적으로 실상을 올바로 관하고 망집을 제거할 수 있는 내용도 제시된다. 
그리고 다시 그런 가운데 다시 생사현실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중생을 제도할 방안이 제시된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할 수행방안들도 제시된다. 

그런 사정으로 부처님이 설한 경전에서도 각 내용에서 조금씩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혼동을 일으키는 측면도 있게 된다. 
그리고 경전과 논서에서도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해되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제시된다. 
그리고 또 한편,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제시되는 사정이 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핵심은 결국 현실과 자신의 정체를 올바로 관하는 부분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수행에서 2 측면에서 필요하다. 

우선 기초적으로 3 악도의 고통을 벗어나려면 10선법을 행하거나, 계의 덕목을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부분부터 대단히 행하기 어려워한다. 
그것은 물론 망상분별에 바탕한 집착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관하면 이런 망집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이런 예방적 기본 수행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행할 수 있게 된다. 
또 이런 바탕에서 행하게 되면 그 기본 수행을 원만하게 성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선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한편, 생사현실에서 극단적인 고통을 겪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상을 올바로 관하고 상을 취하지 않게 되면 
이를 적용하여 그런 상태에서도 평안하게 임할 수 있다.[ 안인의 성취]
물론 앞에서 보았듯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실상의 정체를 잘 이해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그 방안이다. 
그리고 이렇게 안인이 성취되면 결국 '생멸을 얻을 수 없음'을 현실에 적용해 증득한 상태가 된다. [무생법인]
그리고 극단적인 고통에 직면해서도 물러나지 않고 수행에 정진하는 불퇴전위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후 생사현실의 어떤 상황도 모두 평안하게 극락과 같은 상태로 임할 수 있게 된다. [생사 즉 열반, ]
그렇게 되면 굳이 생사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아라한처럼 생사현실을 벗어나 무여열반에 들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그대로 임하여 중생제도를 행해 나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보살승]
그런 가운데 중생제도를 위해서 무량한 방편 지혜를 닦아 나가고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할 수 있게 된다. [ 무량행문 ]

따라서 이런 2 측면의 수행과정에서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관하는 것이 모두 필요하다. 

그래서 기초적으로 먼저 일반 입장과 눈높이를 맞추어 수행방안을 제시한다. 
또 한편,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깨달음을 얻는 상태에 이를 수 있는 내용이 제시된다. 
이처럼 각 측면의 내용이 종합적으로 제시되게끔 된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지금 살피는 불설 성법인경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
‘인연이 합하여 이루어진 신식은 
모두 무상하고, 
근본이 없다. 
이 신식이 무상에 의지하여 망상(妄想)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인연에 따라 12인연이 있다. ◂
 ...
『불설성법인경』 ♣0750-001♧


자세히 살피면 '신식이 무상에 의지하여 망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인연에 따라 12 인연이 있다'고 제시한다. 
이는 결국 망상에 바탕한 내용이 그처럼 제시되는 사정을 밝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망상을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경전에서 그 전후 부분에 제시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다. 

...
색이 본래 없음을 보아 이미 무상을 깨달아 
지극히 공하여 없음을 알면
...
『불설성법인경』 ♣0750-001♧

...
이것을 분명히 깨달은 이라야 
근본이 없음을 알고
...
『불설성법인경』 ♣0750-001♧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이 이처럼 제시되는 배경사정을 앞처럼 잘 살펴야 한다. 


여기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다. 
현실에서 영희가 거리에서 서서 자신을 보고 자신을 향해 달려온다. 
그래서 자신이 들고 있던 사과를 영희에게 건넨다. 
그러자 영희가 이를 받고 사과가 맛있다고 말한다고 하자. 

현실에서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다음처럼 판단하게끔 된다. 

자신이 평소 눈을 떠 자신의 몸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다른 부분과 다르다. 
즉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이려고 하면 그 부분만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이를 자신의 몸이라고 잘못 여기고 대하게끔 된다. 
그리고 그 외 부분을 외부 세상이라고 잘못 여기고 대한다. 
그런 가운데 영희나 철수도 사정이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또 영희나 철수라고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정 부분을 사과라고 여기고 대한다. 
자신의 손이 사과를 만진다면, 이 때 손이 대한 대상은 그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눈이 대한 대상도 바로 그 부분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이런 상황에서 영희의 오고감도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자신이나 영희 철수나 사과의 생멸이나 생사가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긴다. 

이런 내용을 이미 앞에서 보았다. 
이것이 전반적으로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망상분별임을 일반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 설령 이런 내용이 잘못된 망상임을 이해해도 현실에서 이를 적용해 실천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부분이 쉽지 않다. 

그것은 평소 자신으로 여긴 부분에서 
손과 발이 잘려지며 자신이 억울하게 극한 고통을 받는 상황을 놓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렇게 여기지만, 본 정체는 그렇지 않음을 제시한다. 
즉, 경전에서 제시된 것처럼 
자신이 그처럼 보는 색이 본래 없다. 
근본이 본래 없다. 
그리고 본래 생멸과 생사를 얻을 수 없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런데 도무지 이런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설령 이해해도 앞과 같은 상황에 처하면 
이를 그대로 적용해서 그런 상황에서 평안하게 임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망집에 바탕해서 생사고통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현실사정이다. 

그래서 우선 그런 현실을 놓고 앞과 같은 판단이 왜 엉터리고 잘못인가부터 
이론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단계적으로 점차 수행을 정진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결국 현실에서 그런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렇게 이해된 내용을 그대로 잘 적용해 나가는 상태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의 정체를 
하나하나 잘 판단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처음 자신이 눈을 뜰 때 일정한 내용을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보게 되는 내용의 정체와 성격이 어떤 것인가부터 잘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외부 세계나 외부 대상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마음안 내용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얻게 한 마음의 구조나 체계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내용의 정체와 성격을 또 잘 판단해야 한다. 


이들 내용을 그간 여러 곳에서 반복해 왔다. 
그런데 이를 다시 되풀이하면 내용이 길어지고 
간략하게 줄이면 내용이 부족한 어려움이 있다. 


이 사정을 간단히 나타내기 위해 그림을 사용해보기로 한다. 






[im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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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서 1, 2, 3, 4, 5로 표시한 부분은 
현실에서 각 주체가 감각으로 얻는 내용들을 나타낸다. 

1! 은 눈으로 본 모습 [색]
2! 는 귀로 얻는 소리[성] 
3! 은 코로 맡는 냄새[향] 
4! 은 혀로 느끼는 맛,[미] 
5! 은 몸으로 느끼는 촉감[촉]
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것을 두른 원은 그런 내용을 얻는 각 마음을 나타낸다. 

여기서 그런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마음을 그처럼 있다고 시설해야만 하는가부터 잘 살펴야 한다. 

오늘날 생리학자는 이런 감각을 단순히 외부물질과 육체의 자극 - 반응관계일 뿐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마음을 굳이 있다고 시설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왜 그런 마음이 있다고 시설하게 되는가하는 사정부터 기본적으로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은 그런 마음이 없다면 현실에서 이런 색,성,향,미,촉을 얻는 현상을 설명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제6,7,8,식이 시설되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하나하나 잘 살펴서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현실에서 한 주체가 매 순간 얻는 감각내용과 분별 내용등의 성격도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1! 로 표시된 내용만 먼저 놓고 그 사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것도 그림으로 표시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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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위 내용은 앞 그림에서 1! 부분을 조금 자세하게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다. 

어떤 이가 눈을 감았다가 뜬다고 하자. 
그러면 그 때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이 위와 같다고 가정하자. 

위 그림에서는 평소 자신이 철수나 영희라고 여기고 대한 2 나 3과 같은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외부에 있는 꽃이라고여긴 4 와 같은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평소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1 과 같은 부분도 보인다. 

이 부분도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이 눈을 뜨고 이런 모습을 볼 때 
스스로 자신의 눈이나 이마나 허리 등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1 과 같은 형태로 표시했다. 

그런 가운데 평소 1 과 같은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고 대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생활하다 보면 
다른 부분은 쉼없이 들고 나고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그런데 적어도 눈을 뜨고 대하는 이상 1 과 같은 부분을 늘 한 부분에 파악된다. 
그래서 들고 나는 것은 손님과 같은 성격이고 
1과 같은 부분은 주인과 같은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이려고 생각하고 움직이면 
그에 따라 1 부분은 움직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그렇지 않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1과 같은 부분은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한편, 자신의 손으로 사과나 꽃을 만진다고 한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촉감을 얻는 경험을 반복한다. 
그리고 그 경우와 스스로 자신이 1 부분을 만지는 경우 촉감의 내용이 다르다. 
즉 이 경우는 양 측면에서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가운데 1 부분은 그런 내용을 얻는 자신의 주관이 위치한 부분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그외 나머지 부분은 그런 주관이 상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또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런 판단이 일반적인 상식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곧 경전에서 망상분별이라고 지적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은 서로 극단적으로 동떨어진 내용이 된다. 

처음 우이경(境)과 우이경(經)이라고 제시한 내용이 이와 바로 관련된다. 

즉 일반적 입장에서는 앞에 나열한 내용이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생활해 간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바로 이런 여러 분별들이 모두 거꾸로 뒤집힌 잘못된 판단이라고 제시한다. 
그래서 본래 얻을 수 없는 생사나 생멸이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겪어 나간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부 대상에 대한 판단도 대단히 혼동을 일으킨다. 

위 상황에서 철수 2 를 놓고 판단해보자. 
철수의 눈을 자신의 손으로 가린다고 해보자. 그러면 철수는 보지 못한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가린 손을 이제 치운다고 해보자. 그러면 철수는 이제 보인다고 보고한다. 

또 이 상황에서 앞 화분에 놓인 꽃4 를 치운다고 하자. 그러면 이제 철수는 꽃이 이제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꽃 4 를 앞에 놓는다고 하자. 그러면 철수는 이제 꽃이 보인다고 보고한다. 

그래서 이 상황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잘못된 판단을 하게끔 된다. 
즉 이 상황에서 철수는 2 에 붙은 눈을 통해 보게 된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이 상황에서 철수는 4 라는 꽃을 '대상'으로 해서 본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이들 내용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본 감각내용이다. 
그래서 이런 지위에 있는 내용이 본래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잘못된 판단을 행하게 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 판단이 옳다고 대부분 여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이 질못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이라면 앞에 실험한 내용들 사이에 그런 관계가 왜 그처럼 나타나는가를 다시 묻게끔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필경과 관련된 문제다. 

앞에 이해한 내용이 잘못이라고 하자. 
그런데 하필 왜 그런 관계로 그처럼 파악되게 되는가. 
그 배경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한편, 위와 같이 잘못된 판단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4와 같은 꽃을 역시 '자신의 경우에도' 자신의 눈이 대하는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렇게 잘못 여기게 되는 사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우선 위 상황에서 철수가 바로 자신의 옆에 있다고 하자. 
그러면 철수나 자신이나 그 상황이 엇비슷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앞 실험에서 4를 철수의 눈이 대한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러면 그 4 라는 꽃은 자신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눈이 대한 외부대상이라고 또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위 내용전체는 사실 자신이 눈을 떠서 얻게 된 내용이다. 
그래서 이런 사실들을 통해 4 라는 내용이 갖는 지위에 대해서 심한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처음 자신이 눈을 감은 상태라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눈을 떴다. 
그래서 위 내용 전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위에 그려진 내용 전체는 자신이 눈을 떠서 얻어낸 내용이다. 

그런데 이 안의 4 라는 부분은 철수를 옆에 놓고 실험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곧 철수의 눈이 대한 대상처럼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리고 이 내용을 자신에게 적용한다고 하자. 
그러면 4 는 자신에게도 자신의 눈이 대한 외부대상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 4 에 대해 여러 지위를 서로 혼동해 이해하게 된다. 

즉 이런 상황에서 4의 정체를 판단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자신의 눈이 대한 대상으로 먼저 잘못 여긴다. 
또 한편, 그것은 곧 자신의 눈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이 얻어낸 그 감각내용은 그 대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엉뚱하게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인명 인식론 계통에서 현량이 옳은 인식이라고 주장하는 배경사정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판단에 바탕한 내용이다. 

우선 철수가 무엇을 본다는 상황은 위와 같지 않다. 

예를 들어 자신이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철수가 본 내용이 있다. 
이 상황에서 자신은 '철수가 본 내용' 가운데 일정 부분을 대상으로 삼아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자신이 '철수의 마음안 내용'을 대상으로 꽃이나 어떤 사물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사정은 철수도 마찬가지다. 
철수가 무언가를 본다고 할 때도 사정이 이와 같다. 
1 자신의 눈으로 본 내용은 1 자신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보아 그런 1 마음안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서 철수가 무언가를 보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이 상황에서 마치 '1자신이 본 꽃'을 대상으로 철수가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뿐이다. 
그래서 이런 점을 주의깊게 잘 살펴야 한다. 


글이 길어졌다. 
그러나 대부분 내용은 이전에 살폈던 내용들이다. 

그러나 여하튼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거리에서 영희가 달려온다거나, 영희에게 사과를 건넨다는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경전에서 이 상황에 영희나 철수나 사과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또 영희의 오고감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우이경에 해당한다. 
그런데 경전에서 왜 그렇게 제시되는가를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앞의 두 그림을 놓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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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우선 2가 눈을 떠서 얻는 내용을 5^로 표시했다. 
이렇게 놓고 이 상황을 쉽게 살펴보자. 

2는 그가 본 내용 가운데 2^와 같은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길 수 있다. 
또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계나 영희나 병수 등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위 그림을 놓고 보면 그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2 의 마음안 내용이다. 

또 2 가 4 ^와 같은 꽃을 손으로 만질 때도 
4 ^가 손으로 만지는 대상이 아님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2가 눈으로 볼 때도 4^와 같은 내용이 그 대상이 아님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정은 위와 같은 내용을 전체적으로 보게 되는 1에게서도 마찬가지다. 
1이 보는 4 와 같은 꽃은 그가 손으로 만지는 대상이 아니다. 
또 눈으로 이런 내용을 볼 때 대하는 대상도 아니다. 
이들은 그가 눈을 통해 얻어낸 마음내용일 뿐이다. 

이 사정을 다음 그림을 통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im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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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2,3,4,5 는 한 주체가 얻는 감각내용으로서 색,성,향,미,촉을 나타낸다. 
그런데 1 과 같은 시각정보는 
예를 들어 5와 같은 촉각정보를 얻어내게 하는 원인이 아니다. 

또 반대로 5 와 같은 촉각정보는 
1 과 같은 시각정보를 얻어내게 하는 원인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 내용을 동시에 일반적으로 얻는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눈으로 보는 손부분이 사과를 닿게 되면 촉각을 느끼는 경험을 반복하게 된다. [ 부대상황의 관계]
그런 가운데 눈으로 보는 그런 내용이 촉각을 느끼게 하는 원인인 것처럼 잘못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눈으로 보는 손바닥이 손뼉소리를 내게 했다는 식으로 관계를 잘못 판단한다. 
또 눈으로 보는 번개빛이 천둥소리를 내게 한 원인이라는 잘못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눈을 감아서 그런 모습을 보지 않아도 그런 소리는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오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이렇게 얻는 색성향미촉이 외부세계나 외부대상, 외부물질이 아님도 위 그림을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각 주체가 마음으로 얻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들 내용에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영희나 철수, 그리고 이들의 오고감 등도 얻을 수 없다는 내용도 이를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일상적인 분별이 망상분별인 사정 


우선 감각으로 얻는 각 내용을 ○ 이라고 표시해보자. 
이런 감각현실을 얻는 가운데 
각 주체는 그 각 부분을 묶고 나누어서 여러 분별을 행한다. 

예를 들어 눈을 떠서 보게 될 때 
그는 한 부분은 꽃이고 한 부분은 철수이고 한 부분은 영희다 
이런 식으로 분별을 행하게 된다. 
이런 경우 이 분별내용은 ■ 이라고 표시해보자. 

현실에서는 이 두 내용이 동시적으로 얻어진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의 성격에 대해서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그러나 감각현실은 감각기관이 작용하는 각 순간에서만 얻어진다. 
그래서 예를 들어 시각정보는 눈을 감으면 얻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눈을 뜨면 그 순간에만 얻는다. 

그러나 분별을 이런 감관을 닫고 여는 것과 관계없이 어느 정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감각과 분별을 구분할 수 있다. 

분별을 이런 감각과 별개로 얻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혼동을 일으키는 부분은 감각과 동시에 분별을 행하는 경우다. 
이 경우 감각현실을 배경으로 놓고 그 각 부분이 무엇무엇이라는 형태로 분별을 행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는 그 감각현실이 그런 분별을 일으키는 소재가 되어준다. 

즉 눈을 떠 모습을 보는 가운데 저 부분은 바위다 저 부분은 나무다. 
이런 식으로 분별을 일으키는 경우다. 

이는 비유하면 연필이란 생각을 떠올리면서 이 연필이 기차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관계와 유사하다. 
그런데 연필이란 생각이 기차라는 생각을 일으킨다고 하여 연필이 기차는 아니다. 
또 연필이란 생각에 기차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한편 종이가 불에 타면 연기와 재가 나타나게 된다. 
사정이 그렇다고 종이가 연기나 재인 것은 아니다. 
또 종이에 연기나 재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비유를 통해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눈을 통해 일정한 모습을 보고 
그 상황에서 각 부분이 바위나 꽃, 영희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 상황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배경으로 그런 분별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그 감각현실이 곧 그런 분별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사정이 그렇다고 그 감각현실에 그런 분별내용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 상황에 감각현실도 얻고 분별내용도 일으켜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이 두 내용의 관계를 위와 같이 오해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두 내용을 동시에 다 얻기에 대부분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이 상황에서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누가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각 주체는 손가락으로 일정한 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그것은 대부분 각 주체가 감각현실로 얻는 내용 가운데 일정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그것은 결국 그런 감각현실 일정부분을 그런 관념분별 내용으로 혼동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상을 취하는 현상과 관련된다. 

즉 분별을 통해 일정부분이 영희라거나 바위, 꽃이라고 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그런 분별을 일으키게 한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상[相 Lakṣaṇa ]을 묶거나 잘라서 취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그런 감각현실 일정 부분이 곧 자신이 분별하는 그런 내용[想 Saṃjña)]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이 두 내용을 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기본적인 망집 현상과 관련된다. 

그것은 다음 사정때문에 망상이라고 칭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다음 상황을 생각해보자. 
본래 꽃에는 우주인이 없고, 꽃은 우주인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꽃을 붙들고 그것이 우주인이라고 여기면서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망상환자의 상태가 된다. 
그 상황에 꽃은 있다. 그리고 망상환자가 일으키는 망상의 내용도 분별영역에서 얻어진다. 
그러나 정작 문제되는 그 꽃 부분에 망상환자가 일으키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런 부분을 붙들고 그 안에 우주인이 있다고 여기며 대하기에 망상상태라고 하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상을 취하는 상태가 이와 성격이 같다. 
어떤 이가 눈을 떠 모습을 얻는다. 
그런 가운데 그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영희라고 여긴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손가락으로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이런 경우가 바로 상을 취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바위나 철수 자기자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에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은 그처럼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분별도 그런 바탕에서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과 분별을 얻어낸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그 감각현실 부분에는 그가 분별하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부분은 그가 분별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사정이 그렇기에 앞처럼 분별하는 것은 망상분별이 된다. 
즉 그것이 없고 아닌 일정한 부분을 취하면서, 그 부분이 그런 내용이라고 여기며 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망상분별이라고 칭하게 된다. 


감각현실을 ○ 이라고 표시하고 
관념분별을 ■ 이라고 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관계는 다음처럼 표시할 수 있다. 
일정한 상황에서 감각현실 ○ 을 얻고 또 관념분별 ■ 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감각현실 ○ 과 관념분별 ■ 을 모두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감각현실 ○ 에는 관념분별 ■ 을 '얻을 수 없다.' 
또 감각현실 ○ 은 그런 사정으로 그런 관념분별 ■ 이 '아니다.' 
반대로 관념분별 ■ 영역에서는 그런 감각현실 ○ 이 '없다'. 
또 그 관념분별 ■ 은 그런 사정으로 그런 감각현실 ○ 이 '아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기본적으로 잘 파악해야 한다. 
이 두 내용을 혼동하면 곤란하다. 

일정한 감각현실 ○ 이 현실에서 일정한 관념분별 ■ 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눈을 떠 모습을 보고 일정부분이 영희나 바위라는 생각을 '일으킬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고 그런 감각현실 일정부분 ○ 이 곧 그런 관념분별 ■ 은 '아니다'.  

이 관계는 비유에서 연필이 기차라는 생각을 일으킨 경우와 사정이 같다. 
사정이 그렇다고 연필이 기차는 아니다. 

현실에서 종이를 태우면 연기가 나타나는 관계와도 같다. 
이 경우는 선후관계로 나타나기에 그런 착각을 덜 하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감각현실 ○ 을 얻고 분별■을 일으키는 것은 거의 동시에 행해진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을 접착시켜 앞과 같은 망상분별 상태에 대부분 빠지게 된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그가 분별을 일으킨 바위나 꽃 영희 철수가 어디 있는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의 일정 부분 ○ 이 그런 내용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에서 상을 취하는 망상분별 현상과 관련된다. 

따라서 이런 망상분별 현상을 잘 제거해야 한다. 



○ 망상분별의 문제점 - 생사고통의 근본원인 

망상분별 현상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만화를 놓고 생각해보자. 
선으로 그린 그림이 영희일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선으로 그린 일정한 그림부분이 영희라고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만화에서 영희가 무언가를 행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되었다거나 유명인이 되었다고 만화에 그림이나 글로 제시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말 그 그림부분이 영희이고 그 상황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만화를 보면 그렇게 여기면서 만화를 보게 된다. 
이 상황에서도 누군가 만화에 나오는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물으면 
앞처럼 그림의 일정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즉 사실이 아니고 조금 엉터리인 생각이나 분별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곧 큰 문제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그런 엉터리 분별로 큰 고통을 겪지 않는한, 그 분별 자체만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생사현실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우선 현실도 그 성격이 꿈이나 만화와 같다. 
그러나 현실은 또 꿈이나 만화 자체는 아니다. 

즉 현실은 꿈이나 만화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즉 다수의 주체가 일정한 시간과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이 되면 
엇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무량겁에 걸쳐 받아나가는 관계에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한번 행한 업은 무량겁에 걸쳐 사라지지 않고 그 과보를 받는다고 경전에서 제시된다. 
그리고 이런 점이 생사현실이 꿈과 다른 측면이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비록 꿈과 성격이 같지만, 
그러나 생사현실은 꿈은 아니다. 
그리고 꿈과 달리 갖는 이런 특성이 문제된다. 
즉 이런 사정 때문에 생사현실안에서 겪는 생사고통이 큰 문제가 된다. 

만일 사정이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방치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를 들어 꿈에서 악몽을 꾸고 시달려도 그것은 일시적이다. 
그리고 꿈만 깨면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체도 그런 꿈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쉽게 이해한다. 

생사현실은 기본적으로 꿈과 성격이 같다. 
그런데 정작 생사현실은 꿈은 아니다. 
그래서 꿈과 다른 특성을 갖는다. 

우선 생사현실은 각 주체에게 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 
그리고 그 주체는 그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오히려 위와 같은 사정때문에 생사현실을 실답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생사현실의 내용에 강한 집착을 갖게끔 된다. 
그런데 그렇게 잘못된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여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도 일시적이 아니고 대단히 장구하게 무량겁에 걸쳐서 묶이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비록 꿈과 성격이 같지만, 
이를 그대로 방치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이런 생사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수행이 강조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수행의 필요성은 생사현실이 실답게 '잘못 여겨지는' 그 정도에 비례한다. 

즉 본래 실답지 않은 생사고통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면서 받아나가는 상태가 문제다. 
바로 이런 문제때문에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수행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그런 망집을 그대로 바탕으로 하더라도 
그런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에는 처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점차 그 생사현실 자체가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마치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그런 고통의 묶임에서 비로소 온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아서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 생사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 

생사현실이 꿈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생사현실의 한 단면의 각 내용은 그 성격이 꿈과 같다. 
즉 꿈처럼 실답지 않다. 


즉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은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각 영역에서 그처럼 화합해 얻게 되는 내용일 뿐이다. 

이는 마치 침대에 누어서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그 성격이 같다. 
즉 실답지 않다. 
꿈은 생생하게 꾼다. 
그러나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은, 정작 누어 꿈을 꾼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아무리 생생하게 꿈을 꾸어도 그 꿈은 실답지 않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생사현실도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img9]
08pfl--image/8식-9.jpg



생사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을 위 그림처럼 표시했다고 하자. 
각 주체가 이런 내용을 각 영역에서 얻는다. 
이 가운데 어느 내용을 하나 붙들어 놓고 살펴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색성향미촉을 나타내는 1,2,3,4,5 가운데 어느 하나를 붙들고 살펴도 마찬가지다. 
또는 그런 상황에서 분별을 일으킬 때 그 분별을 나타내는 6 @ 부분을 붙들고 살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얻을 때 그 주체와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실재# 내용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눈으로 보는 시각정보를 놓고 생각해보자. 
현실에서 사과를 눈으로 보는 상황을 놓고 대한다고 하자. 

이 때 눈으로 본 시각정보로서 사과모습은 
손으로 사과를 두드린 소리와는 전혀 엉뚱하다. 
또 코로 냄새 맡은 향기와 비교해도 전혀 엉뚱하다. 
또 입으로 맛본 맛과 비교해도 전혀 엉뚱하다. 
또 손으로 만져 느낀 촉감과 비교해도 전혀 엉뚱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그 주체가 그 부분은 사과라거나 과일이라고 분별할 수 있다. 
이 분별 내용은 눈을 감고서도 계속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눈을 감고 사과란 생각을 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그런 생각 내용에 직전에 보았던 사과 모습이 단 한 부분이라도 얻어지는가를 스스로 살펴보자. 
전혀 그렇지 않다. 

감정적으로만 생각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그 분별내용이 곧 
앞에서 얻은 그런 감각현실들이거나 적어도 그와 유사한 것인양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이 마치 그런 분별내용인 것처럼 심정적으로 여기고 대하기 쉽다. 
그래서 사과가 어디 있는가라고 물으면 손가락으로 감각현실 가운데 일정부분을 가리키게끔 된다. 
그러나 사실상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를 망상분별 현상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그 사정을 위 그림을 통해서 살피면 쉽다. 
1,2,3,4,5,6,7,8 로 각 내용을 얻는 영역을 표시했다. 
한편 이런 마음을 떠나 그대로 있다고 할 실재는 # 으로 표시했다. 

그런 가운데 이들 각 영역의 내용을 서로 비교해볼 수 있다. 
그렇게 비교해보면 이들 각 영역의 내용은 
서로간에 마치 침대에서 누어서 꾼 바다나 황금꿈처럼 대단히 서로 엉뚱한 내용임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혹자는 다음처럼 망상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으로 그런 사과모습을 마음에서 본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것은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은 마음 밖에도 그와 일치한 실물이 있어서 그렇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렇다고 일단 해보자. 
그러면 자신이 눈으로 사과 모습을 본다면 마음 밖에 그런 사과모습에 해당한 실물이 있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실재와 눈으로 본 감각현실 사이는 일치한다. 
그래서 이 경우는 침대에서 꾼 바다나 황금꿈의 관계와는 다르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보기 힘들다. 

우선 눈으로 보는 내용은 그 주체가 그렇게 마음에서 얻는다. 
그런데 마음 밖의 내용은 그 주체가 끝내 얻을 수 없다. 
이 점부터 두 내용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한편 마음 밖에 눈으로 본 사과 모습이 그대로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 가운데 다음 상황을 놓고 판단해보기로 하자. 
사과를 앞에 놓고 눈으로 본다. 
그리고 사과를 손으로 두드려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손으로 만져 촉감을 얻는다.  
이 상황만 놓고 보면 자신은 하나의 사과를 대해 이들 각 감각내용을 달리 얻는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눈으로 본 사과 모습이 마음 영역 밖에 그렇게 있다고 처음 가정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를 귀로 대하면 소리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를 손으로 만지면 촉감을 얻게 된다. 
이렇게만 살펴도 역시 눈으로 본 모습과 소리와 촉감은 대단히 엉뚱하다. 

반대로 소리나 촉각을 기준으로 거꾸로 살펴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미 현실에서 얻어내는 각 내용들은 서로간에 대단히 엉뚱함을 보았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실재 영역에 그대로 밀어 넣는다고 하자. 
그러면 역시 이 영역에서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설령 그렇게 해도,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과 관계를 살피면 서로 간에 대단히 엉뚱하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모두 함께 모아 넣어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 경우 적어도 어느 한 일부는 일치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종합적으로 엉뚱하고 엉터리가 된다. 

그런데 무엇보다 본 바탕의 실재영역은 기본적으로 얻지 못한다. 
즉, 실재는 본래 각 주체가 마음에서 얻을 수 없다. 
각 주체는 마음을 통해 내용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과의 관계를 떠난 실재는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처럼 현실과 일치한 내용이 실재에서 그처럼 실재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처음부터 근거가 없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은 침대에서 꾼 바다나 황금꿈과 그 성격이 같다. 
즉 실답지 않다. 
그런 가운데 매순간 생생하게 얻는 내용일 뿐이다. 



한편, 생멸이나 오고감 등등은 모두 앞에서 살핀 내용이 적용된다.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분별영역에서 일으키는 관념내용이다. 

물론 현실에서 감각기관을 열 때 얻고, 닫으면 사라지게 된다. 
이런 현상을 생멸이라고 여길 수 있다. 
또 눈을 뜨고 볼 때 그 내용에서 각 부분이 들고 나고 하는 것을 생멸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영역은 감각현실 영역이다. 
그래서 관념영역에서 세운 이들 내용들은 하나같이 그 영역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다. 
더 나아가 본 바탕인 실재에서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기서 실재#와 각 감각현실 ○ 그리고 관념분별 ■ 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들 각 내용은 그렇게 설정할 수는 있다. 
그리고 감각과 관념은 현실에서 각 주체가 생생하고 명료하게 그처럼 얻는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영역의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는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즉, 각 감각현실 ○은 관념분별 ■ 이 아니다. 
그리고 각 감각현실 ○ 에는 그런 관념분별 ■을 얻을 수 없다. 
또 관념분별 ■ 도 각 감각현실 ○ 이 아니다. 
또 관념분별 ■ 에서 각 감각현실 ○ 은 없다. 


한편, 실재#와 감각현실 ○ 의 관계 마찬가지다. 
각 감각현실 ○은 실재# 가 아니다. 
그리고 각 감각현실 ○ 에서 그런 실재# 를 얻을 수 없다. 
또 실재 # 는 각 감각현실 ○이 아니다. 
또 실재#  에서 각 감각현실 ○은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실재#와 관념분별 ■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각 관념분별 ■은 실재# 가 아니다. 
그리고 관념분별 ■ 에서 그런 실재내용# 은 얻을 수 없다. 
또 실재 # 는 각 관념분별 ■ 이 아니다. 
또 실재#  에서 각 관념분별 ■은 얻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생사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다고 제시한다. 
물론 침대에서 바다나 황금꿈을 꿀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침대와 꿈에서 꾼 바다나 황금의 관계가 이와 성격이 같다. 

이는 생사현실을 그처럼 얻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내용을 얻지만, 그것은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얻는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생사 현실은 그 하나하나의 성격이 꿈과 같다고 설한다. 
이는 내용은 얻지만 그 내용이 마치 꿈처럼 실답지 않다는 의미다. 

생사현실에 생멸이나 생사가 있다고 일반적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런 사정으로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게 된다. 

즉 생멸이나 생사, 오고감 등으로 여기고 대하게 되는 그런 감각현실 자체는 얻는다. 
그런데 정작 그 감각현실 영역에서 우선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현실을 본래 생멸을 떠난다고 제시한다. [불생불멸] 

그런데 이 표현을 혼동해 이해하면 곤란하다. 
현실에서 영희나 철수 또는 자신으로 여기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런 부분이나 내용이 있다.  
또 영희의 오고감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그런 내용도 얻는다. 
또 영희나 철수의 생사로 여기며 대하는 그런 내용도 얻는다. 
또 꽃이 피고 짐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그런 내용도 얻는다. 
종이를 태우면 연기가 없다가 나타난다고 여기면서 대하는 그런 내용도 얻는다. 
그런 감각현실은 그처럼 얻는다. 

그런데 정작 그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각 분별내용은 얻을 수 없다. 
또 본 바탕인 실재 # 영역에서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에 각 주체가 분별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감각현실을 얻고 관념분별을 동시에 일반적으로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이 두 내용부터 접착시킨 가운데 혼동을 일으킨다. 
더 나아가 그런 분별 내용은 본 바탕인 실재#에도 그처럼 실재한다고 잘못 여긴다. 
이런 분별 부터가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분별은 자신이 감각한 내용과 분별한 내용을 하나같이 실답다고 여기게 만든다. 
그런 가운데 그에 집착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부분까지만 놓고 보면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여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분별에 바탕해 업을 행하면 
그로 인해 그런 바탕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이 생사고통을 해결하려면 그 이전 단계에서부터 망상을 제거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런 예방노력이 생사고통을 직면한 상태에서 해결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런 사정으로 경전에서 이 사정을 반복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im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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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망상의 제거가 이 단계에서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잘 되지 않으면 그 이후 노력이 점점 힘들어진다. 

그런 노력으로 설령 자신에 대한 망집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3 악도에 묶이게 하는 업을 행하지 않을 수 있다면 무방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망집을 갖고 임하는 경우 
매순간 자신에 대한 집착을 바탕으로 업을 행할 도리 밖에는 없게 된다. 

그 경우 그 업은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하면 당장 자신에게 좋음을 주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 상황은 비유로 제시한 낙타나 소의 상황과 사정이 같다. 
매 순간 낙타나 소가 최선을 다해 그처럼 임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극심한 고통을 받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중생들이 처하는 하필경과 우이경의 상황이다. 
이 관계를 생사를 넘어 관찰하면 그것이 곧 경전에서 제시하는 3 악도의 과보가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3 악도에 묶이기 이전단계에서 미리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에서 제시한 그림들은 본 사정이 그러함에도 
현실에서 반복해서 망집을 일으키게 되는 배경사정을 이해하기 위한 그림이다. 

즉, 그런 기제에 바탕해서 여러 정신이 파생되어 생성된다. 
그런 가운데 감각과 분별이 현실의 표면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각 주체는 감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눈으로 일정한 내용을 보고 
귀로 일정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 일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래서 이 내용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실재와 감각현실○ 관념분별 ■ 의 관계로 살핀 내용이 모두 여기에 적용된다. 

현실에서 이들 내용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의식표면에서 감각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또 그런 분별 내용■ 도 그처럼 일으키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 ○ 일정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분별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본 바탕인 실재#에서나 
또 감각현실 ○ 영역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얻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매순간 여기면서 현실에 임하게 하는 배경 사정이 있다. 
그렇게 되는 그 기제를 위 그림처럼 제시한 것이다. 

처음 감각현실○ 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제 이런 기제를 이해하게 되면 다시 또  이런 기제 자체가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런 경우 예를 들어 생사를 넘어 계속 이어지는 제 8 식과 같은 부분을 놓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본 정체라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런데 이 경우에서도 사정이 같다. 
즉, 그런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본래부터 얻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그렇게 시설한 기제에 해당하는 내용 자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는 감각현실 ○ 과 관념분별 ■의 관계와 사정이 같다. 

감각현실 ○ 의 일정부분을 바위 ■ 라고 잘못 분별한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그 감각현실 일정 부분에는 그런 분별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사정은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감각현실 ○ 을 그처럼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런 분별을 그 상황에서 일으키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감각현실 ○ 부분에는 그런 분별 내용 ■을 얻을 수 없는 것 뿐이다. 
그래서 이 관계를 먼저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위와 같이 그림으로 표시한 #실재와 각 정신들의 관계도 이와 같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 『불설성법인경』의 다음 내용과도 관련된다. 


....
▸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나의 아(我)가 생겼다가 사라지니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라고 하고, 
곧 사유하여 
‘나의 아(我)가 의미를 익히고 
모든 식(識)을 분별하는 소인(所因)이니 
모두 인연에서 이러한 업에 이르고, 
이러한 인연에서 신식(神識)이 있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안다. ◂
 

또 생각한다.
‘이들 모든 인연은 유상(有常)할까, 
무상할까?’


▸ 또 생각한다.
‘인연이 합하여 이루어진 신식은 
모두 무상하고, 
근본이 없다. 
이 신식이 무상에 의지하여 망상(妄想)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인연에 따라 12인연이 있다. ◂
 ....


이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자. 
처음 위와 같은 기제를 바탕으로 하여 어떤 주체가 분별을 행하기 시작하게 된다. 
그런 분별에 바탕해 판단하면 
이들 내용을 그처럼 분별해 배열하게끔 되는 사정이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분별을 통해 가리키는 그 부분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렇지만, 또 그렇게 가리키는 그 내용 자체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영희라고 일정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상황도 위와 같다. 
그렇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부분은 정작 자신이 생각하는 영희가 아니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그렇게 손가락으로 가리키게 되는 그 부분 자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을 벽돌의 비유로 이해해보자. 

자신이 망상증에 걸려서 벽돌을 자신의 지갑으로 잘못 여겼다고 해보자.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망상증이 해소되었다. 
그래서 이제 벽돌이 자신의 지갑이 아님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지갑으로 잘못 여겼던 벽돌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벽돌은 벽돌대로 그렇게 얻어진다. 
그리고 자신이 가졌던 망상분별도 분별로는 남아 있을 수 있다. 
다만 이제 벽돌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자신의 지갑이라고 여기는 망상증상만 제거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비유를 통해서 위 문제를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일정한 내용들이 있다. 
이것이 현실에서 망상분별 증상과 관련된다. 
그래서 이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 망집을 방치하면 이후 생사고통에 처하게끔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망집을 미리 제거해서 예방해야 한다. 

그래서 이 망집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며 가리켰던 그런 내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망집을 일으켜 현실에 임하게끔한 바탕 기제들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다만 그런 망집을 제거하면 
그런 부분이나 기제를 대하면서 그것이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는 망상증상만 제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갖는 의미가 크다. 

그 상황에서 그런 내용이 자신이라고 망집을 일으키고 임하면 
그 망집으로 인해 이후 그가 행하는 업의 성격이나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묶여서 받게 되는 생사고통 부분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이전단계에서 그 원인을 미리 제거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서 수행 과정에서 이것을 강조해 반복해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은 결국 이런 망집을 제거하는 노력이 핵심이 된다. 

설령 망집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도 
이는 생사현실에서 받게 되는 생사고통을 예방해주는 효과를 우선 갖는다. 

그런 노력으로 망집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여전히 유신견을 바탕으로 
일정한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기고 계속 생사현실을 돌게 된다. 

그런 경우 유신견과 같은 망집을 바탕으로 업을 행하면 
결국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묶이게끔 된다. 
그래서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일단 그런 상태에만은 묶이지 않도록 예방하는 수행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이 결국 생사현실에서 3 악도에 들어가지 않도록 
10선법을 닦거나 또는 계의 수행덕목을 잘 성취하는 것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런 수행을 어렵게 하는 사정이 있다. 
그것은 곧 현실에서 각 주체가 자신에 대한 갖는 망집이다. 
그런 망집 때문에 그런 수행을 행하기 힘들게 된다. 

즉 다른 생명에게 좋음을 베푸는 것도 아끼게 된다. 
또 자신의 좋음을 얻기 위해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좋음을 함부로 침해하게 된다. 
또 반대로 자신이 다른 생명으로부터 침해를 당하면 곧바로 분노를 일으키고 
이에 대해 보복하고 가해행위를 해나가게 된다. 

이런 등등의 행위가 바로 그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행하게끔 되는 업의 성격이다. 
이렇게 행하면 그 업으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묶이게 된다. 
이것이 그가 행한 업으로 쌓아 놓은 업의 장애 현상이다. 

처음 어떤 주체가 하필 이런 생사고통을 받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배경사정을 위처럼 하나하나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사실 이를 미리 예방하려면 
미리 그렇게 되는 인과의 관계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우선 당장 그런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간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앞에서 행한 업과는 반대 성격의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과정에서 그런 수행을 곤란하게 만드는 사정이 있다. 
그것이 바로 가장 기본적으로 자신과 관련해 일으키는 망집이다. 

그래서 위와 같은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이 측면의 수행에 대단히 필요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런 망집이 제거되게 되면 
그 만큼 10선법이나 계의 덕목의 성취도 쉽게 원만히 성취될 수 있다. 

즉 자신에 대한 망집이 조금이라도 제거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에 대한 집착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다른 생명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수행부터 원만히 성취해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수행의 가장 기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수행을 행하는 경우 자제가 드물다. 
그것은  주체가 제각각 모두 자신에 대한 망집을 바탕으로 임하는 사정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망집을 조금이라도 줄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만큼 이런 기본 수행부터가 원만히 성취되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수행도 역시 같은 바탕에서 원만하게 성취되게 된다. 

그래서 비록 망집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도 
이런 망집을 제거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우선 당장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하늘과 인간세계를 오가게 된다. 

그리고 이후 완전히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런 망집을 제거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다시 생사현실에 남아 있는 중생을 제도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노력이 요구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생사현실에 임해 극단적이 고통을 받게 되는 상황을  극복하려면 
이런 수행 노력을 통해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행 전반을 통해서 이런 망집의 제거가 강조되는 사정이 있다. 


여기까지 살피고 일단 마친다. 
과거에 서술한 내용을 중복한 부분이 많다. 
부족한 부분은 링크로 대신하기로 한다. 



○ 마음현상에 대한 논의 - 전체 내용 
https://buddhism007.tistory.com/4053 
dict-list--editing_text.TXT 


































































◆viac1956
◈Lab value 불기2564/08/28


○ 2019_1004_140252_nik_BW25.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louis-comfort-tiffany-windows-church-of-the-covenant-bosto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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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louis-comfort-tiffany
Louis Comfort Tiffany (1848 년 2 월 18 일 -1933 년 1 월 17 일)는 장식 예술 분야에서 일하면서 스테인드 글라스 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미국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입니다 . 
https://en.wikipedia.org/wiki/Louis_Comfort_Tiffany
Title : windows-church-of-the-covenant-bosto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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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9_Peking_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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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fr
_M#]


♡Wat Si Khom Kham วัดศรีโคมคำ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상세정보=> https://buddhism007.tistory.com/4242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Pierre Bachelet - Papillon.lrc





♥단상♥강물처럼 흐르는 세월 


경전을 랜덤으로 뽑아 살핀다. 
음악이나 사진 예술작품도 랜덤으로 뽑아 살핀다. 
그러다보면 전에 보았던 경전, 음악, 사진, 예술작품을 
반복해 대하게 된다. 
랜덤이지만, 반복해 뽑히는 내용이 많다. 
심지어 노래를 들으며 시감상하는 내용도 반복되는 듯하다. 



본인도 조각글 등에 글을 적는다. 
그런데 매번 비슷한 주제로 비슷한 내용을 적게 된다. 
역시 연구의 초점이 그런 부분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조금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기 위해 학위논문이나 학회지논문도 살피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일정 주제가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요즘 문제되는 표절 시비 문제는 아니다. 
단지 연구하는 이들이 초점을 맞추는 주제가 엇비슷함을 말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들 논문을 다 살피면 수명이 부족할 듯하다. 
그런 가운데 연구 시간의 대부분이 이들 자료를 찾고 목록을 살피는데 소요된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논문들을 쉽게 열람하게 해주는 학회 사이트도 많다. 
그러나 대단히 불편하고 끝내 열람하기 곤란한 사이트도 많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제공해주는 사이트 자료만 해도 넘친다.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또 일일히 살펴보기 힘든 건강이다. 

대학 진학 전 학창시절은 1년이 요즘 10 년 정도 느낌의 기간이었다.  
요즘은 1 년이 그 당시 1달 정도 느낌의 기간이다. 
세월이 흐르는 강물 같다. 
특히 나이를 먹고 난 이후는 폭포를 내려가는 물 같다. 
그런 가운데 공부하고 익혀야 할 내용이 벅차다. 

어제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을 대강 살폈다. 
난신해품은 대단히 비슷한 구조의 문장이 많이 나열된다. 
그런데 이 부분을 한번 살폈다. 
그래서 더 적지 않았다. 
오늘 『불설성법인경』을 살핀다. 
이 내용도 전에 한번 살핀 듯 하다. 

그런데 두 경전 모두 대단히 중요한 주제를 제시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글을 적으려니 이들 내용이 대부분 전에 반복해 적었던 내용임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좀 달리 접근해서 내용을 제시하고 싶다. 
조금 쉬면서 연구를 해보기로 한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8/2564-08-28-k0750-001.html#1956
sfed--불설성법인경_K0750_T0103.txt ☞성법인
sfd8--불교단상_2564_08.txt ☞◆viac1956
불기2564-08-28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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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들의 거문고. 듣고자 하면 아수라의 복덕에 의하여 타지 않아도 저절로 소리가 난다 함. 
『대지도론(大智度論)』 17, 『법화현의(法華玄義)』 6의 상, 『왕생론주(往生論註)』 하권에는 법신의 설법에 비유.

답 후보
● 아수라금(阿修羅琴)
아촉(阿閦)

악(惡)
악취(惡趣)
안립진여(安立眞如)
암몰라녀(菴沒羅女)
애어(愛語)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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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Vulture Peak.

[fra-eng] pleurai $ 불어 w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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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체 깨끗한 법[백법白法]과 모든 공덕을 기르기 위함이며,
● 옴 唵<七> oṃ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25
다래 미냐- 바 라아
怛<二合引>尾你野<二合>波<引>囉誐<二十五>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241일째]
일미진처무변제 $ 112▲阿僧祇轉阿僧祇轉為 一 ● 無量, ○□□□□,無,十,剎,一

□□□□□□□, 無量諸剎普來入,
十方差別不可說, 剎海分布不可說。
□□□□□□□, 무량제찰보래입,
십방차별불가설, 찰해분포불가설。

한 티끌 있는 곳이 끝단 데 없어
한량없는 세계가 다 들어오니
시방의 차별함을 말할 수 없고
세계해의 분포(分布)도 말할 수 없어



[242째]
일일찰중유여래 $ 113▲無量無量為 一 ● 無量轉, ○□□□□,壽,諸,甚,神

□□□□□□□, 壽命劫數不可說,
諸佛所行不可說, 甚深妙法不可說,
□□□□□□□, 수명겁수불가설,
제불소행불가설, 심심묘법불가설,

하나하나 세계마다 계시는 여래
수명이 몇 겁인지 말할 수 없고
부처님의 행하심도 말할 수 없고
깊고 깊은 묘한 법 말할 수 없어





●K1164_T1371.txt★ ∴≪A불설성대총지왕경≫_≪K1164≫_≪T1371≫
●K0750_T0103.txt★ ∴≪A불설성법인경≫_≪K0750≫_≪T0103≫
●K1154_T1284.txt★ ∴≪A불설성보장신의궤경≫_≪K1154≫_≪T1284≫

법수_암기방안


112 [elbow] 팔꿉
113 [radius] 노뼈
7 갈비 【협】
25 손바닥( 팜 palm) ~다래 미냐- 바 라아
● [pt op tr] fr
_M#]




○ [pt op tr]
● 불설성법인경_K0750_T0103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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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성법인경』 ♣07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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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법인

■ 본 페이지 ID 정보
불기2564-08-28_불설성법인경-K0750-001
https://buddhism007.tistory.com/17573
sfed--불설성법인경_K0750_T0103.txt ☞성법인
sfd8--불교단상_2564_08.txt ☞◆viac1956
불기2564-08-28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8/2564-08-28-k0750-001.html
htmback--불기2564-08-28_불설성법인경_K0750_T0103-tis.htm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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