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경록』
K1499
T2016
종경록 제55권/전체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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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록』
♣1499-055♧
종경록 제55권/전체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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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록
K1499V44P0316a01L
종경록 제55권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
무릇 법처의 색[法處色]을 논하는데 모두 몇 가지가 있는가.
【문】 다섯 가지가 있다.
1은 극략색(極略色)이요,
2는 극형색(極逈色)이요,
3은 수소인색(受所引色)이요,
4는 변계색(遍計色)이요,
5는 정과색(定果色)이다.
1의 극략색이라 함은 극미(極微)를 체성으로 삼는다.
이것은 저 5근(根)과 5진(塵)과 4대(大)와 정과색을 분석한다.
그리고 극미의 자리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곧 이 극미가 바로 극략색의 체성일 뿐이다.
2의 극형색이라 함은, 다음이다.
곧 공간(空間)의 여섯 가지 빛[光]ㆍ그림자[影]ㆍ밝음[明]ㆍ어둠[暗] 등의 거친 물질이다.
여기서 이 여섯 가지 거친 물질을 분석한다.
그래서 극미의 자리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미세한 물질을 취한다.
그래서 극형색의 체성으로 삼는다.
또 위아래의 공계에서 보는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과 빛ㆍ그림자ㆍ밝음ㆍ어둠 등 모두를 이름하여 공일현색(空一顯色)이라 한다.
그리고 만일 문과 창의 구멍이거나 틈 사이에서 나타난 경우라고 하자.
그러면 곧 모두를 형색(逈色)이라고 한다.
3의 수소인색이라 함은, 다음이다.
수(受)는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소인색(所引色)은 곧 다음이다.
사(思)의 종자가 나타난다.
그 위에서 있는 막고[防] 발생[發]하는 공능(功能)이 있다.
이를 소인색이라고 한다.
뜻으로 말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다.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이로써 이끌어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사(思) 종자가 나타난다.
그 위에서 막고 발생하고 하는 공능이 있다.
이를 소인색이라고 한다.
곧 이 막고 발생하고 하는 공능은 남에게 표시할 수 없다.
때문에 역시 무표색(無表色)이라 한다.
그래서 곧 무표색으로 체성을 삼는다.
4의 변계색이라 함은, 다음이다.
곧 허망한 마음으로 제 나름대로 헤아린다.
이를 가리킨다.
5의 정과색이라 함은, 다음이다.
선정[정定] 중에서 나타나는 경계가 있다.
이를 가리킨다.
이상 법처의 다섯 가지 색을 모두 분류한다고 하자.
그러면 세 가지문이 된다.
첫째는 영상문(影像門)이다.
둘째는 무표문(無表門)이다.
셋째는 정과문(定果文)이다.
첫째의 영상문이라 함은 다음이다.
우선 영(影)이란 무리[流類]라는 뜻이다.
상(像)이란 비슷하다는 뜻이다.
곧 소변(所變)인 상분(相分)이 있다.
이것은 본질(本質)의 무리다.
또 그 본질과 서로 비슷하다.
때문에 영상이라고 한다.
모든 존재의 극미[諸有極微]라 함은 다음이다.
바로 극략색과 극형색의 두 색이다.
이것은 마음을 관함에서만이 거친 것을 분석한다.
그래서 미세하게 이룬다.
그래서 가정으로 극미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마음을 관하는 데서만이 있는 영상이다.
그러므로 도무지 진실한 체성이 없다.
홀로 산의를 낸다[獨生散意] 함은
곧 정중독두와 명료의식과는 간별된다.
여기서는 산위(散位) 독두만을 취한다.
이는 어두운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 산위의식은 다섯 감관과 다섯 대경을 반연한다.
그러면서 물속의 달[水月]과 거울 속의 형상[鏡像]을 구상한다고 하자.
이 때, 그 뜻[情]에 마땅하게 변화로 일으킨다.
이처럼 제 나름대로 헤아리는 영상의 상분이다.
그래서 이것은 거짓이고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략색 등과 함께 하나의 영상문을 세운다.
【문】 물속의 달과 거울 속의 형상과 같은 것은
안식(眼識)으로 또한 반연한다.
그렇거늘, 어떻게 거짓이라 말하는가.
그러면서 의식(意識)만이 반연하는가.
【답】 물속의 달과 거울 속의 형상은 바로 법(法)의 경계일 뿐이다.
그리고 물과 거울로써만이 반연을 삼는다.
그 의식이 망령되이 달이 있다 형상이 있다고 헤아린다.
그리고 그와 아울러 안식의 경계는 아니다.
그러므로, 역시 이는 변계색에 섭수된다.
또 변계 이것은 허망한 마음이다.
극략 등의 이것은 마음을 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 같이 거짓된 영상이다.
때문에 통틀어 세웠다.
둘째의 무표문(無表門)에서, 다음의 경우들이 있다.
1은 율의유표색(律儀有表色)이다.
곧 스승 앞에서 계(戒)를 받는 때가 그것이다.
이 표색(表色)으로 말미암아서야 착한 사의 종자[善思種子]를 훈습하게 된다.
그리고 막거나 발생하는 공능이 있다.
그러므로 그를 무표색이라 이름 붙였다.
2는 불율의유표색(不律儀有表色)이다.
곧 칼로 내리쳐 생명을 죽이는 업을 짓고 있는 때가 있다.
그런 경우가 그것이다.
이 유표색으로 말미암아야 착하지 않은 사의 종자[不善思種子]를 훈습하게 된다.
그리고 막거나 발생하는 공능이 있다.
그러므로 그를 무표색이라 이름 붙였다.
만일 중도에 처하는[處中] 유표색이라고 하자.
그러면, 곧 부처님께 예배하는 때가 그것이다.
그리고 도를 수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내몰고 치고 욕설을 하는 때가 그것이다.
그 유표색과 무표색으로 말미암아야 착하거나 나쁜 사(思)의 종자를 훈습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 막거나 발생하는 공능이 있다.
그러므로 그를 무표색이라 이름 붙였다.
【문】 만일** 다음과 같다고 하자.
물속의 달과 거울 속의 형상은 바로 제6 의식이 행해를 짓는 마음으로 반연한다.
그리고 이것은 거짓일 뿐이다.
그래서 장단ㆍ방원(方圓)의 색에 섭수된다.
그러면** 이는 곧 발표의식이 물질 대경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거늘, 어떻게 이 독두의식이 변계색(遍計色)을 반연하는 데에 섭수되는가.
【답】 만일 지혜로운 이라고 하자.
그러면 이 보는 것의 모양이 거짓임을 안다.
그러므로 곧 색진처(色塵處)에 섭수된다.
하지만, 만일 미혹된 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다음과 같다.
허망한 집착으로 진실을 삼는다.
그래서 변화로 일어나는 영상이다.
그래서 이것은 거짓 상분이다.
이런 사정을 모른다.
그러므로 변계색에 섭수될 뿐이다.
그래서 법처(法處)에 속한다.
【문】
이른바 영상 이것은 두 가지 소연(所緣)의 것이라 한다.
이것은 무엇인가.
【답】 첫째의 친한 것[親者]은 영상(影像)이다.
성근 것[疎者]은 바로 본질(本質)이다.
먼저 영상을 밝혀 보자.
친한 소연연[親所緣緣]이라 함은 다음이다.
모든 상분과 능연(能緣)의 견분은 체성이 서로가 여의지 않는다.
그래서 곧 견분이 의탁할 바 경계가 있다.
이것은 헤아릴 바의 처소이다.
곧 의탁할 바를 연(緣)이라 한다.
그리고 헤아릴 바를 소연(所緣)이라 한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뜻을 소연연(所緣緣)이라 한다.
곧 이 영상에는 네 가지 이름이 있다.
1은 영상이다.
2는 상분(相分)이다.
3은 안에서 헤아리고 의탁할 바[內所處託]다.
4는 친한 소연연이다.
다음에는 본질을 밝혀 보자.
만일 능연의 자체와 서로 여읜다고 하자.
그러면 곧 성근 소연연[疎所緣緣]이다.
상분과는 동떨어지기 때문이다.
곧 본질 위에서 능연의 견분과 서로가 여읜다.
때문에 여읜다[離]고 한다.
【문】 이미 서로가 여의었다고 하자.
그러면 어떻게 소연연이라고 하는가.
【답】 본질은 상분을 일으켜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어나는 상분에서 본다고 하자.
그러면 견분으로 하여금 헤아릴 바가 있게 하기 때문이다.
곧 본질 소연을 일으킨다.
때문에 역시 소연연이라 한다.
그리고 친한 소연연으로 증상연을 삼는다.
때문에 역시 소연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곧 소연을 일으킨다.
때문에 역시 세 가지 이름이 있다.
첫째는 본질이라 한다.
둘째는 바깥으로 헤아리고 의탁할 바[外所處詮]라고 한다.
셋째는 성근 소연연[疎所緣緣]이라고 한다.
곧 본질은 상분을 일으킨다.
그리고 상분은 견분을 일으킨다.
그리고 견분은 자증분(自證分)을 일으킨다.
그리고 자증분은 증자증분(證自證分)을 일으키게 된다.
곧, 본질은 헤아리고 의탁할 데서 보는 상분을 일으킨다.
때문에, 본질을 말하여 역시 소연연이라고 한다.
또한 법식(法識)같은 것은 온갖 법을 요별하는 것이다.
곧 제6의 의식에는 모두 다섯 가지가 있다.
그래서 모두가 법의 경계[法境]를 반연한다.
1은 정중독두(定中獨頭)이다.
이는 선정의 경계를 반연한다.
선정의 경계 중에는 본체[理]도 있다.
그리고 형상[事]도 있다.
그리고 현상 가운데는 극략색ㆍ극형색과 정자재소생색(定自在所生色)의 법처소섭의 색이 있다.
2는 산위독두(散位獨頭)이다.
수소인색과 변계소기색의 모든 법처색을 반연한다.
마치 다음과 같다.
허공 꽃ㆍ토끼 뿔ㆍ거울 속의 형상ㆍ물속의 달을 반연한다.
그러면서 낼 바를 구상기획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것이 다 같이 법처소법이다.
3은 몽중독두(夢中獨頭)이다.
꿈속의 경계를 반연한다.
그래서 제 나름으로 분별하는[遍計所執] 법처소섭의 색이다.
4는 명료의식(明了意識)이다.
다섯 감관의 문에 의하여
앞의 다섯의 식과 함께 다섯의 대경을 같이 반연한다.
그러면서 명료하게 경계를 취한다.
이러한 것을 명료의식이라고 한다.
5는 난의식(亂意識)이다.
이는 산(散)의 식이다.
다섯 감관 중에서 어지러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다섯의 식과 같이 반연하지는 않는다.
마치 다음과 같다.
열병을 앓는다.
그리고 청색을 본다.
그러면서 황색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경우와 같다.
이것은 안식이 아니다.
이것의 반연이다.
때문에 변계소집색을 반연한다.
또 명료의식은
다섯의 감관의* 문에서
다섯의 식과 같이 다섯의 대경을 반연한다.
때문에 다섯의 식으로 구유의(俱有依)를 삼는다.
그러나 독두(獨頭)로 일어나는 것만은 제외되어야 한다.
독두로 일어난다 함은 총괄하여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정중독두다.
선정의 경계를 반연한다.
그러면서 다섯의 식과는 같이 반연하지 않는다.
둘째는 몽중독두다.
법의 대경을 반연한다.
꿈속의 모든 모양은 역시 제 나름대로의 분별이다.
셋째는 산위(散位)독두다.
경계 모양을 구상하고 기획한다고 하자.
그러면 변계소기색을 반연한다.
넷째는 난의식이다.
역시 독두라고 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한다.
【문】 6식은 몇 가지 심소(心所)와 상응하는가.
【답】 논(論)의 게송에서 이르되, 다음과 같다.
“
∞
‘이 심소는/
변행(遍行)과 별경(別境)과 선(善)과 번뇌이며/
수번뇌(隨煩惱)와 부정(不定)의 심소이다. /
모두가 세 가지 느낌[三受]과 상응한다.’
∞∞
이 여섯의 전식(轉識)은 6위(位)의** 심소와 상응한다.
즉, 변행심소 등이다.
항상 마음에 의지한다.
그래서 일어난다.
그리고 마음과 상응한다.
그리고 마음에 매달렸다.
때문에 심소라고 한다.
마치 다음과 같다.
나의 물건에 속한 것을 내 것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와 같다.
마음은 반연할 바에서 전체 모양[總相]을 취할 뿐이다.
그러나, 심소는 그것에서 또한[亦] 개별 모양[別相]을 취한다.
마음이 하는 일을 돕는다.
그리고 이룩되게 한다.
그러므로 심소하는 이름이 붙여졌다.
마치 다음과 같다.
그림을 그리는 스승과 제자[師資]가 모형을 그려 놓는다고 하자.
그러면 채색을 칠한다.
이와 같다.
유가(瑜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식은 현상[事]의 전체 모양을 요별한다’고.
이처럼 설명했다.
작의(作意)는 이것이 아직 요별하지 못한 모양을 요별한다.
곧 모든 심소의 취할 바는 개별의 모양이다.
촉(觸)은 뜻에 맞음[可意] 등의 모양을 요별한다.
그리고, 수(受)는 거두어 줌[攝受] 등의 모양을 요별한다.
그리고 상(想)은 언설의 원인[言說因] 등의 모양을 요별한다.
그리고 사(思)는 바른 원인[正因]의 모양을 요별한다.
그러므로 작의 등을 심소의 법이라고 한다.
여기서 표시한 심소 역시 전체 모양을 반연한다.
이는 다른 데서 다시 설명하겠다.
욕(欲)은 또한 즐길 만한[可樂] 일의 모양을 요별한다.
승해(勝解) 또한 결정(決定)의 일 모양을 요별한다.
염(念) 또한 관습된[慣習] 일의 모양을 요별한다.
정혜(定慧) 또한 득실(得失) 등의 모양을 요별한다.
이로 말미암아 계경에서 선(善)과 염(染) 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모든 심소의 법은 모두가 반연할 바에서 겸하여 개별 모양을 취한다.
6위의 차별이라 함은 다음이다.
변행심소에 5종이 있다.
그리고 별경심소에도 5종이 있다.
그리고 선심소에 11종이 있다.
그리고 번뇌심소에 6종이 있다.
그리고 수번뇌심소에 20종이 있다.
그리고 부정심소에 4종이 있다.
이러한 6위를 합친다고 하자.
그러면 51종이다.
온갖 마음속에서 결정코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밖의 따로따로의 경계에서 내게 하기 때문이다.
착한 마음속에서만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질 이것은 근본 번뇌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번뇌 등만으로 성품을 물들이기 때문이다.
착함과 물듦 등에서 모두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지 이 6전식은 쉬이 벗어나며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세 가지 느낌과 상응한다.
모두가 순경(順境)과 역경(逆境)을 받아들이는 데에 두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순경의 모양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즐거워진다.
이러한 것을 즐거운 느낌[樂受]이라 한다.
역경의 모양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몸과 마음에 핍박이다.
이러한 것을 괴로운 느낌[苦受]이라 한다.
중도로 용납된 경계 모양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몸에서나 마음에서나 핍박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다.
이러한 것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樂受]이라고 한다”
위와 같이 말했다.
해석에서 이르되, 다음과 같다.
“위의 세 글귀 게송은
6위의 심소가 되는 전체의 이름을 나열했다.
그리고 아래 한 글귀는 느낌의 자리를 풀이했다.
심소의 행상(行相)이란,
마음은 경계의 전체 모양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總]만을 취할 따름이다.
그리고 따로따로 분별하여 ‘청색을 반연한다’고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총괄하여 청색만을 취한다.
그리고 다시 더 분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심소는 그것에서 전체 모양과 개별 모양을 다 취한다.
때문에 역시[亦]라고 하는 말로 설명했다.
마치 그림을 그리는 스승과 제자가 모형을 그린 뒤에 채색을 칠하는 것과 같다 함은, 다음이다.
사(師)는 박사(博士)다.
자(資)는 제자를 말하는 것이다.
마치
스승이 모형을 그려 주고 난다고 하자.
그러면 제자가 채색을 칠한다.
이와 같다.
채색은 모형에 칠하는 것이다.
모형을 떠나지는 않는다.
때문에
마치,
전체 모양을 취함과 같다.
하지만,
채색을 칠할 때는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게 한다.
이는 역시 개별 모양을 취하는 것과 같다.
심심소(心心所)의 법이 경계를 취하는 것도 그러하다.
식은 현상의 전체 모양을 요별한다.
그래서 개별 모양을 취한다고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만일 개별 모양을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곧 심소이기 때문이다.
작의(作意)의 이 한 법만은 여러 가지 많은 개별 모양을 요별한다.
작의로 말미암아 심심소로 하여금 경계를 취하는 공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통틀어서 많은 법의 개별 모양을 취하게 된다”
위와 같이 제시했다.
『유가론(瑜伽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의를 처음으로 삼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 논(論)에서는 촉(觸)으로 처음을 삼았다.
이는 화합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각각 한 이치씩을 들었다.
촉에는 세 가지를 취한다.
이는 뜻에 맞는 일[可意]ㆍ뜻에 맞지 않은 일[不可意]과 이것저것도 다 아닌 모양[俱相違相]을 말한다.
수(受) 중에서도 거두어
줌[攝受]ㆍ해를 끼침[損害]과 이것저것도 다 아닌 것 등이 있다.
상(想)은 언설의 원인되는 모양을 요별한다.
이는 다음을 말한다.
경계의 분제(分劑) 모양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푸르다 푸른 것이 아니다”라고 언설이 생긴다.
때문에 상의 모양이다.
그리고 언설의 원인이다.
사(思)는
바른 원인[正因]과 삿된 원인[邪因]과
이것저것도 다 아님 등을 요별한다.
이것이 곧 경계 위의 빠르거나 삿된 모양 등이다.
그리고 업(業)의 원인이다.
온갖 마음속에서 결정코 얻을 수 있다 함은 다음이다.
곧 변행(遍行)의 심소이다.
어느 마음을 막론하고 일으키기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 밖의 따로따로의 경계에서 내게 된다 함은 다음이다.
곧 다섯 가지 별경(別境)의 심소이다.
착한 마음에서만이 낼 수 있다 함은 선(善)심소의 열한 가지의 법이다.
착한 마음에서만이 있는 것이다.
자체 이것이 근본이다.
그래서 모든 혹(惑)을 내게 된다.
곧 탐(貪) 등의 여섯 가지이다.
착함과 물듦 등에서 모두가 일정하지 않다 함은 다음이다.
곧 부정(不定)심소의 네 가지이다.
착함ㆍ물듦ㆍ무기(無記)의 3성(性)의 마음이 모두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6전식은 쉬이 벗어나며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함은, 다음이다.
이 6식은 7식ㆍ8식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체가 모두 쉬이 벗어난다.
그러면서 항상 정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쉬이 벗어난다[易脫]는 다음이다.
이것은 끊임이 있다.
그리고 바뀌면서 변한다는 뜻이다.
정해지지 않았다[不定]는 것은 다음이다.
기쁨과 슬픔과 이것저것도 아닌 평등한 행이 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두 세 가지 느낌에 다 통한다.
【문】 어떻게 이 6식은 현실로 일어나는 분위(分位)인가.
【답】 유식송(唯識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근본식(根本識)에 의지한다.
그래서 5 식은 인연 따라 일어난다.
혹은 함께하기도 한다. 그리고 함께하지 않기도 한다.
이러 함이 마치 파도가 물에 의지함과 같다.
의식(意識)은 언제나 현실로 일어난다.
다만 무상천(無想天)에 가 나는 경우와
그리고 무심정(無心定)의 2 가지 선정과
잠을 자고 기절하는 때만은 제외된다.
∞∞
근본식이란 아타나(阿陀那)식이다.
염오와 청정의 모든 식이 나는 근본이다.
그러하기 때문이다.
의지한다[依止] 함은
앞의 6전식을 말한다.
근본식으로 함께 의지함을 삼는다.
5 식이란 앞의 5전식(轉識)이다.
이는 종류가 서로 비슷하다.
때문에 총괄하여 설명했다.
인연 따라 나타난다[隨緣現]
이 말은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인연[緣]은 작의(作意)와 감관[根]과 경계[境] 등의 인연을 말한다.
5식신(識身)은 안으로는 본식(本識)에 의지한다.
그리고 밖으로는 작의ㆍ5근ㆍ5경 등에 따른다.
그래서 뭇 인연이 화합하여야 비로소 눈앞에 나타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혹은 함께하기도 한다.
혹은 함께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일어나기도 한다.
이는 다음 사정 때문이다.
바깥 인연이 합한 것에는 단번의 다름이 있다.
또는 점차의 다름이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마치 다음과 같다.
물의 파도는 인연의 많고 적음에 따른다.
이와 같다.
다섯 전식(轉識)의 행상은 거칠게 움직인다.
그래서 의뢰할 뭇 인연이 때로 많아도 다 갖추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일어날 때는 적다.
그리고 일어나지 않을 때는 많다.
하지만 제6의 의식은 다음과 같다.
거칠게 움직이기는 한다.
그러나 의뢰할 인연이 없을 때는 다 갖추어지지 않는다.
인연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때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제7식ㆍ8식의 행상은 미세하다.
그래서 의뢰할 뭇 인연은 언제나 있다.
때문에 반연의 장애는 없다.
그리고 모두를 행해지지 않게 한다.
또 5식신은 생각[思慮]할 수도 없다.
그리고 문 바깥에서만 굴린다.
그리고 많은 인연을 일으키고 의뢰한다.
때문에 끊어지는 때가 많다.
그리고 현행(現行)하는 때는 적다.
하지만 제6의 의식은 스스로가 생각할 수가 있다.
그리고 안팎의 문으로 구른다.
그리고 많은 인연에 의뢰하지 않는다.
다만 5 자리[五位]에서 언제나 현실로 일어나는 것만은 제외된다.
때문에 끊어지는 때가 적다.
그리고 현실로 일어나는 때는 많다.
이로 말미암아 여기서는 <인연 따라 나타난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의지(依止)라 함은 앞의 6전식을 말한다.
근본식으로 함께 의지함을 삼는다
이는 다음을 말한다.
이 앞의 여섯 식은 근본식으로 함께 의지를 삼는다.
이를 말한다.
곧 현행의 본식(本識)이다.
식 모두는 함께한다.
때문에 친히 의지한다고 함은 곧 종자식(種子識)이다.
저마다 따로따로의 종자이기 때문이다.
앞의 5 전식은 종류가 서로 비슷하다 함에는 5가지가 있다.
첫째는 다 함께 물질의 감관을 의지한다.
둘째는 같이 물질의 대경을 반연한다.
셋째는 다 함께 현재만을 반연한다.
넷째는 다 함께 현량(現量)으로 얻는다.
다섯째는 다 함께 끊임이 있는 종류가 서로 비슷하다.
때문에 전부 합쳐서 설명했다.
마치 물의 파도가 인연의 많고 적음을 따른다 함은, 다음을 말한다.
『해심밀경(解深密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마치 다음과 같다.
큰 폭포의 흐르는 물이 있다.
여기에, 만일 하나의 물결이 일 인연이 앞에 나타난다고 하자.
그러면 하나의 물결만이 일어난다.
그리고, 내지 많은 물결이 일 인연이 앞에 나타난다고 하자.
그러면 많은 물결이 인다’
이처럼 제시했다.
모든 식도 그러하다.
그래서 마치 폭포의 흐르는 물과 같다.
아타나(阿陀那)에 의한다.
때문에 모든 식이 전변(轉變)하게 된다.
이 다섯의 식은 파도에다 비유했다.
그리고 본식(本識)은 폭포수에 비유했다.
5식신(識身)은 사려(思慮)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거친 생각[尋]과 세밀한 생각[伺]이 없다.
때문에 스스로가 일으킬 수 없다.
그리고 다른 것을 의뢰하여 이끈다.
그러하기 때문이다.
제6 의식은 스스로가 사려할 수 있다.
그리고 안팎의 문으로 구른다.
다만 무상천(無想天)ㆍ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ㆍ수면(睡眠)ㆍ민절(悶絶) 등의 다섯 자리만이 제외된다.
언제나 현실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라고, 이처럼 제시했다.
또 옛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는 물결이 많은 것과 같다.
그래서 하나의 큰 바다를 의지로 삼는다.
그래서 많은 물결을 일으킨다.
둘째는 거울의 형상과 같다.
하나의 큰 거울을 의지로 삼는다.
그래서 많은 형상을 일으킨다”
라고 이처럼 제시했다.
바다와** 거울의 두 가지 법으로 본심식(本心識)에 비유한다.
그리고, 물결과 형상으로 전식(轉識)에 비유했다.
한 생각 동안에는 4 가지의 업이 있다.
1은 기업(器業)을 요별한다.
2는 의업(依業)을 요별하한다.
3은 아업(我業)을 요별한다.
4는 경업(境業)을 요별한다.
이 모든 요별은 찰나찰나마다 함께 구른다.
그려면서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식은 하나의 찰나마다 이와 같은 등의 업용(業用)의 차별이 있다.
마치 『밀엄경(密嚴經)』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다.
∞
마치 흐르는 전기와 뜬 구름과 같다.
그래서 모두가 거짓이다. 그래서 진실이 아니다.
마치 공장이가 병(甁) 등을 만듦과 같다.
그래서 분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어진 이여,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세간에 있는 모든 유정들은
습기로 언제나 마음을 가리운다.
그래서 갖가지 쓸모없는 이론을 낸다.
말나식(末那識)과 제6의 의식은
모든 식과 아울러 서로 잇는다.
다섯 가지 법[五法]과 세 가지 성품[三性]이다.
그리고 두 가지의 무아(無我)이니라.
항상 함께한다. 그러면서 상응한다.
이러한 것은 마치 다음과 같다.
바람이 폭포의 물을 친다.
그래서 모든 식의 물결을 더욱더 일으킨다.
그러면 물결이 인다.
그러면서 흐름은 안 멈춘다.
이와 마찬가지다.
아뢰야식도 그와 같으니라.
비롯함이 없는 모든 습기는
마치 저 폭포의 흐름과 같다.
경계의 바람에 동요를 받는다.
그러면서 모든 식의 물결을 일으키느니라.
항상 끊어지는 때가 없다.
그러면서 여덟 가지 흐름이 마음에 쏟아진다.
비록 약간의 체성이 없더라도
혹은 인연 따라 단번에 일어난다.
그리고 때로는 점차로 생기기도 한다.
경계를 취함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점차 또는 단번으로 차별한다.
그러면서 마음은 집에서 구르게 된다.
그리고 해와 달과 그리고 별과
나무의 가지ㆍ잎과 꽃과 열매며
산과 숲과 그리고 군사들에 굴린다.
이와 같은 따위의 모든 곳에서
다 점차로 생긴다. 또는 단번에 생긴다.
그러면서 대개가 단번에 나타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혹은 점차로 차별을 일으킨다.
어떤 때에는 꿈속에서
옛날 겪었던 경계를 본다.
그리고 생각[想念]이 처음 나면서부터
늙어서 죽는 데에 이르기까지
뭇 물건을 세고 헤아린다.
그리고 글귀의 뜻을 성글게 생각한다.
그리고 기이한 문채를 자세히 살핀다.
좋은 음식들을 받아들이는
이와 같은 경계에서
점차로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단번에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능히 취한다.
심성(心性)은 본래부터 깨끗한지라
생각할 수도 없다. 그리고 말할 수도 없다.
이것이 미묘한 여래장(如來藏)이다.
마치 다음과 같다.
금이 광석(鑛石) 속에 있다.
이와 같다.
뜻이 나는 것은 장식(藏識)으로부터다.
그 밖의 여섯도 다시 그러하다.
식의 6 가지는 혹은 대개가 3계(三界)에서 차별되기도 한다.
아뢰야식과 능훈(能熏)과
그리고 그 밖의 마음의 법 등은
염오(染汚)와 청정함의 모든 종자들이
비록 같이 머무른다. 그러나 물들음이 없다.
부처의 종성(種姓)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일정하거나 일정하지 않거나 늘 청정하다.
마치 다음과 같다.
바닷물이 항상 머무른다.
그러나 물결이 인다.
그러면서 옮기고 움직인다.
이와 같다.
아뢰야식도 그러하다.
그래서 모든 자리의 차별을 따라
수행함에는 하ㆍ중ㆍ상이 있다.
그리고 물듦을 버리면서 밝게 드러난다.
∞∞
위에서 자세히 의근[意根 ; 뜻의 감관]이 경계를 반연하는 것을 밝힌다.
이와 같다.
그래서 모든 식에서 분별이 가장 강하다.
그런 까닭에 온갖 선악에는 뜻[의意]이 선도(先導)가 된다.
그래서 뜻의 일어남은 빠르다.
그리고 뜻은 말하기 전에 있다.
그리고 뜻이 착하다고 하자.
그러면 곧 법이 바르다.
그리고 뜻이 나쁘다고 하자.
그러면 곧 경계가 삿되다.
마치 다음과 같다.
하나의 숨을 들이쉰다고 하자.
그러면 곧 따뜻하다.
내쉰다고 하자.
그러면 곧 찬 것과 같다.
하나의 물이 차다고 하자.
그러면 곧 언다.
그리고 따뜻하다고 하자.
그러면 곧 풀린다.
이와 같다.
한 마음이 방종하다고 하자.
그러면 곧 범부다.
그러나 광대하다고 하자.
그러면 곧 성인이다.
이런 일에 비유된다.
바뀌고 변함은 비록 다르다.
그러나 참 성품은 이지러짐이 없다.
마치 『앙굴마라경(鴦崛摩羅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다.
∞
뜻의 법은 앞서서 행해진다.
그리고 뜻은 뛰어나다. 그리고 뜻은 낸다.
그리고 뜻의 법에 믿음이 깨끗해야 한다.
그래서 말하거나 또는 짓거나 한다고 하자.
그러면 쾌락이 저절로 따른다.
이러한 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름 같다.
∞∞
나는 성문승(聲聞僧)을 위하여 이 게송을 말한 것이다.
뜻[의意]이란, 여래장이라는 뜻이다.
만일 제 성품이 청정하다고 하자.
그러면 뜻 이것이 여래장이다.
온갖 법에서 뛰어나다.
그리고 온갖 법 이것은 여래장이 짓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깨끗한 뜻의 법은 온갖 번뇌를 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我]의 경계를 보기 때문이다.
만일 스스로 믿음이 깨끗하다고 하자.
그러면 여래장이 있다.
그런 뒤 말하거나 짓거나 해야 한다.
그러면 성불하는 때를 얻는다.
그리고, 말하거나 짓거나 한다고 하자.
그러면 온갖 세간을 제도한다.
마치 사람이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다.
여래장을 보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이 때문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마치 그림자가 따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
뜻의 법은 앞서서 행해진다.
그리고 뜻은 뛰어나다. 그리고 뜻은 낸다.
뜻의 법이 나쁘게 되어
말하거나 짓거나 한다고 하자.
그러면 뭇 고통이 저절로 따른다.
이는 마치 수레바퀴가 자취를 따름 같다.
∞∞
이 게송은 번뇌의 이치를 설명한다.
뜻의 법이 나쁘다 함은, 다음이다.
한량없는 번뇌에 가리워진다.
그래서 모든 악을 짓는다.
때문에 나쁘다고 한다.
제 성품이 청정하다.
그러한 마음의 여래장이다.
여기에 한량없는 번뇌가 들어간다.
이러한 뜻이다.
이와 같이 시끄럽다.
그리고 흐림이 쉬지 않는다.
이러하기 때문이다.
만일 말하거나 짓거나 한다고 하자.
그러면 온갖 고통들이 언제나 따른다.
그러면서 끊어지지 아니한다.
이러한 일은 마치 다음과 같다.
즉, 수레바퀴가 자취를 따르는 것과 같다.
모든 악이 쌓이고 모은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의 윤회로 유전된다.
그리고 온갖 중생들은 세 가지 나쁜 갈래[惡趣] 안에서 돈다.
이는 마치 수레바퀴가 자취를 따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복(福)에서의 더디고 느리다.
이러한 것은 마음이 나쁜 법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석하여 보자.
한 생각의 마음이 깨끗함은 여래장의 성품이다.
그래서 자기도 제도한다.
그리고 남도 제도하게 한다.
그래서 적멸(寂滅)의 즐거움을 받는다.
이러한 일은 마치 다음과 같다.
즉, 그림자가 몸을 따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만일 한 생각의 마음이 나쁘다고 하자.
그러면 진로(塵勞)의 그물에 들어간다.
그래서 모든 나쁜 갈래 안에 떨어진다.
그래서 생사의 고통을 받는다.
이러한 일이 마치 수레바퀴가 자취를 따르는 것과 같다.
한편 그림자의 따름으로 비유한다.
이는 곧 언제나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수레의 자취로 비유한다.
이것은 곧 빠르게 구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선악이 마음을 따른다.
그리고 끊이는 일이 없다.
만일 소견이 착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자리서 해탈한다.
그런 까닭에
『대승이취경(大乘理趣經)』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보살이 다섯의 덮개[五蓋]가 무엇으로 인해서 일어나는가를 관찰하는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멀리 여윌 것인가를 관찰하는가.
보살은 마땅히 먼저 다음과 같이 관찰해야 한다.
색욕(色欲)은 마치 물속의 달과 같다.
그래서 물이 움직인다고 하자.
그러면 달이 움직인다.
그리고 마음이 생긴다고 하자.
그러면 법이 생긴다.
탐욕의 마음 또한 그와 같다.
그래서 생각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빨리 일어난다.
그리고 빨리 소멸한다.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라고 했다.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청정한 마음은 선업(善業)의 근본이 된다.
그리고 착하지 않은 마음은 악업(惡業)의 근본이 된다”
이와 같이 제시했다.
마음이 청정하다.
때문에 세계가 청정하다.
그리고 마음이 더럽다.
때문에 세계가 더럽다.
나의 불법 중에는 마음을 주인으로 삼는다.
온갖 모든 법은 마음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그런 까닭에 다음과 같다.
수제(樹提)가 맹렬히 타는 불 속에서 태어났다.
그렇지만, 불이 해치지 못했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아이의 업보다.
나의 짓는 일이 아니니라”라고.
이처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다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 마음으로 지은 바다.
다른 이 힘에서 옮기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르거나 잠기는 길은 멀지 아니하다.
그리고 검거나 흰 과보는 여기에 있다.
선악의 과보가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허망한 생각의 마음 거울에서부터 나타나는 바다.
마치 『입능가경(入楞伽經)』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과 같다.
∞
마치 거울 속의 형상과 같다.
그래서 보인다. 그러나 있는 것이 아니다.
훈습된 거울의 마음으로 본다.
그러면서 범부는 둘이 있다고 말한다.
오직 마음으로 본다.
이러한 일을 모른다.
그리고 이 때문에 둘이라 분별한다.
사실대로 마음인 줄 안다고 하자.
그러면 분별은 곧 생기지 않으리라.
∞∞
그러므로
진실로 마음을 안다고 하자.
그러면 마치 다음과 같다.
거울 속에서 스스로가 얼굴 형상을 본다.
이러한 일과 같다.
그래서 끝내 바깥 대경에서
망령되이 집착을 내지 않는다.
이러한 일을 알 것이다.
이미 상박(相縛)에서 해탈한다.
그래서 업의 바다가 완전히 마른다.
마치 다음과 같다.
『현겁정의경(賢劫定意經)』에서 다음처럼 이른다.
“온갖 있는 업이 소멸된다고 하자.
그러면 온갖 중생들의 근원을 볼 것이다.
이것을 지혜라고 한다”라고 한다
마치 이와 같다.
【문】 의식(意識)이 5위[-무상정 등 다섯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어떻게 이 5위의 행상(行相)이 의식으로 하여금 일어나지 않게 하는가.
【답】 『식론(識論)』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무상천(無想天)이란 다음이다.
그 선정에서 거친 생각[麤想]을 싫어하는 힘을 닦는다.
그래서 그 하늘에 나는 것이다.
한결같이 상속(相續)하지 않는 마음[不恒行心]과 심소를 어긴다.
그래서 생각의 소멸을 으뜸으로 삼는다.
이러한 것을 무상천이라 한다.
그리고 마음이 없는 두 선정이라 함은 다음이다.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이다.
모두가 6식이 없다.
때문에 마음이 없다고 한다.
무상정이라 함은, 이생(異生)이다.
변정탐(遍淨貪)을 조복한다.
그리고 아직 그 이의 염오(染汚)는 조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벗어나려는 생각[出離想]의 작의(作意)로 우선을 삼는다.
이로 말미암아 한결같이 상속하지 않은 마음과 심소로 하여금 소멸되게 한다.
그래서 생각의 소멸을 으뜸으로 삼는다.
그래서 생각 없다[無想]는 이름이 붙여진다.
그리고 몸이 편안하고 온화하게 한다.
때문에 역시 선정이라고 한다.
멸진정이라 함은, 다음이다.
유학(有學)ㆍ무학(無學)이거나 혹은 유학의 성인으로서 이미 혹(惑)을 조복한다.
그리고 무소유탐(無所有貪)을 여의었다.
그러나 그 위의 탐욕은 선정에 장애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쳐 쉬는 생각[止息想]을 지음으로 우선을 삼는다.
이로 말미암아 다음을 소멸되게 한다.
즉, 한결같이 상속하지 않거나 한결같이 상속하는[恒行] 염오(染汚)의 마음과 심소로 하여금 소멸되게 한다.
그래서 모두 소멸되었다[滅盡]고 하는 이름이 붙여진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하다. 그리고 온화하게 한다.
때문에 역시 선정이라고 한다.
무심한 잠[睡眠]과 기절함[悶絶]이라 함은, 다음이다.
아주 깊이 잠을 잠을 말한다.
그리고 기절하였음을 말한다.
앞 6식으로 하여금 모두 현행하지 않게 한다.
여기까지의 다섯 자리[五位] 안에서
이생(異生)에게는 네 가지가 있다.
멸진정에 있는 성인을 제외하고는 뒤의 세 가지 뿐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 여래와 자재한 보살은 한 가지가 있게 될 뿐이다.
잠과 기절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이와 같이 제시했다.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무상천의 거친 생각을 싫어하는 힘이라 함은, 다음이다.
모든 외도는 생각[상想]으로 생사하는 원인을 삼는다.
그래서 곧 치우치게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앞 6식만의 생각이다.
그리고 제7식ㆍ제8식의 것은 아니다.
때문에 거친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세한 생각[細想]은 존재한다.
때문에 다음과 같다.
6식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7식ㆍ8식의 미세함은 그가 알지 못한다.
때문에 소멸되지는 않는다.
무상정은 변정탐을 조복했다 함은 다음이다.
제3선(禪)에서는 없다.
그리고 제4선 이상의 탐은 아직은 조복되지 못한다.
그래서 욕심 여윔[離欲]을 드러낸다.
벗어나려는 생각이라 함은, 다음이다.
생각함이 곧 열반을 하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일을 나타낸다.
한결같이 상속되지 않는[不恒行] 등의 소멸이라 함은, 다음이다.
이는 소멸할 식(識)의 많고 적음을 나타낸다.
작의(作意)로 물듦을 조복하면서 정(定)에 든다 함은, 다음이다.
생각[상想]은 마치 다음과 같다고 관찰한다.
마치 병든 것과 같다.
그리고 종기와 같다.
그리고 화살과 같다
이처럼 관찰한다.
그러면서, 일어나게 되는 갖가지 생각 안에서
싫어한다.
그리고 저버린다.
그러면서 머무른 생각이 없다.
그리고 고요하다.
그래서 미묘할 뿐임을 말한다.
생각이 없는 가운데서도 마음을 지닌다.
그러면서 머무른다.
이와 같이 점차로 모든 반연할 바[所緣]를 여읜다.
그러면 마음은 이내 고요히 소멸한다.
멸진정에서 유학ㆍ무학 등이라 함은 다음이다.
유학의 성인은 초과(初果)와 2과(果)는 제외된다.
그리고 몸소 불환(不還)을 증득한 제3과의 사람이다.
유학 중에서 이생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무소유탐을 떠나 그 위의 탐(貪)은 선정을 장애하지 않는다 함은, 다음이다.
멸진정은 비상정(非想定)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그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처음 2승을 닦는 이에 의하여 여읨[離]을 말한다.
그리고 보살이면 여의지 않은 탐[不離貪]을 조복한다.
이것 또한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고도 한다.
이 다섯 자리 중에서 이생에게는 네 가지가 있다는 등은, 다음이다.
멸진정을 제외한 성인에게는 뒤의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다.
부처님과 8지(地) 이후의 보살은 하나의 멸진정이 있게 될 뿐이다.
잠과 기절의 두 가지는 없기 때문이다.
나쁜 법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잠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실은 없기 때문이다.
곧 2승과 무학에게는 역시 기절함은 있다.
【문】 멸진정과 무상정을 다 같이 마음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두 선정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답】 네 가지 뜻의 같지 않음이 있다.
옛 해석에서 이르되, 다음과 같다.
“1은 얻은 사람에게서 본 다름이다.
멸진정 이것은 성인이 얻는다.
그리고 무상정 이것은 범부가 얻는다.
2는 비는 소원의 다름이다.
멸진정에 든 이는 생각을 쉬기 위해 든다. 그리고 공덕을 구하려고 든다.
그리고 무상정은 해탈하려고 든다.
3은 과보를 느끼고 과보를 느끼지 않음이 다름이다.
무상정은 유루(有漏)다.
그래서 무상천이라는 별보(別報)의 과보를 불러 들인다. **
멸진정은 무루(無漏)다.
그래서 3계(三界)의 과보를 불러 들이지 않는다.**
4는 소멸되는 식이 많고 적음의 다름이다.
멸진정에서는 소멸되는 식이 많다.
겸하여 제7의 염분말나(染分末那)가 소멸된다.
하지만, 무상정에게는 소멸되는 식이 적다.
그리고 공하다.
그리고 앞의 6식이 소멸된다”라고,
위와 같이 제시했다.
【문】 멸진정과 같은 마음이 없는 자리 등에서는
이미 이는 마음이 없다.
그러거늘, 어째서 3계를 벗어나지 않는가.
【답】 마음이 없다[無心]고 함은, 다음이다.
다만 앞 여섯의 식의 거친 마음만을 조복한다.
그래서 역시 마음이 없다고 일컫는다.
그런데, 7식ㆍ8식의 마음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온전히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다음과 같다.
『성업론(成業論)』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다.
1은 집기심(集起心)이다.
한량없는 종자가 모여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2는 종종심(種種心)이다.
반연할 바의 행상(行相)이 차별되면서 구르기 때문이다”라고.
이와 같이 제시함과 같다.
멸진정 등의 자리에서는 두 번째의 마음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없다고 한다.
마치 다음과 같다.
발 하나가 있는 말이 있다고 하자.
이는 발이 하나 없다.
때문에 역시 발이 없다고 한다.
이런 일과 같다.
【문】 다섯의 감관은 4대종(大種)으로 안팎의 온갖 법이 이루어졌다.
그러거늘 어느 법이 대(大)를 갖추었는가.
그리고 어느 법은 종(種)을 갖추었는가.
【답】 옛 해석에서는 네 구절로 분별하였다.
첫째는 다음이다.
이것은 대(大)이다.
그러나 종(種)은 아니다.
곧 허공은 두루하다.
때문에 이는 대이다.
그러나 낳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종은 아니다.
둘째는 다음이다.
이것은 종이다.
그러나 대는 아니다.
곧 다섯의 감관 등은 능히 낸다.
때문에 종이라고는 한다.
그러나 두루하지 않다.
때문에 대는 아니다.
셋째는 다음이다.
종이기도 하고 대이기도 하다.
곧 땅[地]ㆍ물[水] 등은 바탕이 넓다. 그리고 크다.
때문에 대라고도 한다.
그리고 지어지는 물질의 의지가 되어 준다.
때문에 종이라고도 한다.
넷째는 다음이다.
대도 아니고 종도 아니다.
곧 고요한 데로 나아가는 성문(聲聞)이다.
【문】 여섯의 감관은 보고[見] 듣고[聞] 깨닫고[覺] 아는 것[知]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그런데 모두 몇 가지 양(量)을 갖추는가.
【답】 유가(瑜伽)에서는 3량(量)이 있다.
1이 증량(證量)이다.
2는 비량(比量)이다.
3은 지교량(至敎量)이다.
논(論)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3량으로 여섯 감관을 세운다고 하자.
그러면, 증량에 의한 가운데서
눈 감관의 심심수(心心數)의 법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밖의 것에 의한 귀 등의 다섯 감관의 심심수의 법을 안다고 한다.
그리고 비량에 의한 심심수의 법을 깨닫는다 한다.
그리고 지교량에 의한 심심수의 법을 듣는다고 한다”라고
위와 같이 제시했다.
또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보거나 알거나 하여 말을 한다.
이것은 현량(現量)에 의한다.
깨달아서 말을 한다.
이것은 비량에 의한다.
만일 듣거나 하여 말을 한다고 하자.
이것은 지교량에 의한다”라고.
위와 깉이 제시했다.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증량이라 함은, 다음이다.
곧 경계가 눈앞에 있다.
그래서 분명하게 증명한다.
그래서 안다.
이러한 일을 증량이라 한다.
눈의 심심수를 본다고 한다.
귀 등의 다섯 감관의 심심수법은 증량 중에서 자기 경계를 안다.
이러한 때를 통틀어 안다고 한다.
그리고 뜻 감관의 심심수의 법을 비량 중에서 경계를 요별한다.
이러한 일을 깨닫는다고 한다.
마치 다음과 같다.
담 너머에서 뿔이 보인다.
그러면 소라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래서 안다.
이런 일과 같다.
헤아리고 추구하는 것은 뜻 감관에 있을 뿐이다.
지교량에 의한 심심수의 법을 듣는다고 한다.
곧 최상의 성인께서 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지교량이라고 한다.
또한 성언교량(聖言敎量)이라고도 한다.
서토(西土)에서 간별하는 법에서는
모름지기 이 3량을 갖추어야 한다.
【문】 4대(大)와 6근(根) 중에서는 무엇이 임자[主]가 되는가.
【답】 마음으로 임자를 삼는다.
4대 등은 자체가 없다.
그러한 사정 때문이다.
서로가 힘과 작용이 없다.
마음으로 인해서만 있게 된다.
때문에 임자라고 일컫는다.
『유교경(遺敎經)』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 다섯의 감관에서는 마음이 임자가 된다”라고
위와 같이 제시했다.
이것은 다음 사정을 밝힌다.
태 안에서 마음이 모든 감관의 시초가 된다.
그래서 임자라고 한다
이러한 사정을 밝혔다.
그러나 비록 일생 동안 임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역시 고정(固定)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천태교(天台敎)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그 마음은 모든 감관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음은 전체의 문에서 받아들인다.
그래서 다음과 같다.
만일 몸이 병든다고 하자.
그러면 마음도 따라 병이 든다.
그러거늘 어찌 이것이 임자가 될 수 있겠느냐”라고.
위와 같이 제시했다.
때로는 서로서로 임자로 논하게 된다.
이는 다음이다.
마치 다음과 같다.
땅이 4미(微)를 갖춘다고 하자.
그러면 둔하다.
그래서 물의 제어를 받는다.
물에는 3미가 있다.
그러므로 불의 제어를 받는다.
그리고 불은 2미뿐이다.
그러므로 바람의 제어를 받는다.
그리고, 바람은 1미가 있다.
그러므로 마음의 제어를 받는다.
그리고 마음에는 미(微)가 없다.
그러므로 임자가 될 수 있다.
마치 이러한 일과 같다.
또 4대는 괴로움을 받는다.
그래서 임자로서의 이치는 성립되지 않는다.
때문에 정식 임자는 없다.
또 만일 4대가 각각 그 성질을 지킨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아야 한다.
땅은 견고한 성질을 지킨다.
그래서 동요하지 않아야 된다.
물은 습기의 성질을 지킨다.
그래서 물결이 일지 않아야 한다.
불은 뜨거운 성질을 지킨다.
그래서 불길이 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바람은 동요의 성질을 지킨다.
그래서 유지되지 않아야 된다.
본 성질을 상실했다.
때문에 이것은 진실하지 않다.
그리고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공하다.
『청관음경(請觀音經)』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땅에는 견고한 성질이 없다.
그리고 물의 성질은 머무르지 아니한다.
그리고 불은 인연으로부터 생긴다.
그리고 바람의 성질은 걸림이 없다.
그래서 낱낱 모두는 여실(如實)의 동아리에 들어간다”라고.
이와 같이 제시했다.
또 마음 역시 고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악이 서로가 빼앗는다.
그리고 강하게 성숙된 업이 이끈다.
『식론(識論)』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심(心)ㆍ의(意)ㆍ식(識)은 하나의 법이다.
그러나 이름이 다르다.
수에 대하는 것[對數]이다.
그래서 마음이라 한다.
능히 낸다.[能生]
그래서 뜻이라 한다.
분별(分別)한다.
그래서 식이라 한다”라고.
위와 같이 제시했다.
또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일어난다.
그러므로 마음이라 한다.
그리고 다음에 일어난다.
그래서 뜻이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안다.
그래서 식이라고 한다.
혹은 다음과 같다.
이 세간에서 마음은 선행을 한다.
그런데도 전생의 악업이 성숙된다.
그래서 이미 시절이 되었다.
그래서 악한 과보를 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숙된 업에 이끌린다.
혹은 다음과 같다.
일생 동안 마음은 비록 악행을 했다.
그렇더라도 죽으려 할 때에 착한 마음이 맹렬하게 인다.
그러면 이내 선행을 따라 올라간다.
때문에 강한 업의 이끌림을 받는다.
세간에서는 하나의 법도 결코 자체가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인연을 따라 구른다.
그러므로 생각생각마다 얻을 수 없다.
이러한 까닭을 안다.
그래서 결정코 하나의 문에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취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버리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다.
이미 낱낱의 법은 체성이 없다.
그리고 작용이 없다.
그리고 자재하지 않다.
그래서 생각생각마다 얻을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모두가 여실의 동아리에 들 것이다.
그리고 실제(實際) 중에서는 이름과 이치가 모두 쉬게 된다.
이는 다음이다.
마치 다음과 같다.
네 가지 눈에서는 불안(佛眼)에 들어간다.
그리고 열 가지 지에서는 실지(實智)에 들어간다.
이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이름조차 상실되리라.
마치 음식물이 꿀에 섞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시냇물이 바다에 모이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낱낱의 다른 맛들은 달거나 짜거나 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마치 다음과 같다.
만 가지법이 종경(宗鏡) 안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똑같이 하나의 길을 좇는다.
마치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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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경계에 따라 저마다 6식(識)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이것은 다음 설명에 의한 것이다.
다섯의 형상 있는 감관이 아직 자재하지 못하다.
이러한 설명에 의한 것이다.
자재한 자리에서 어떻게 분별되는가.
【답】 만일 자재한 자리 안에서라고 하자.
그러면 모든 감관은 서로서로 작용한다.
이런 일이 마치 법화(法華)에서의 설명과 같다.
그래서 코 감관도 곧 빛깔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관심론(觀心論)』 등에서 다음가 같이 이른다.
“만일 자재하게 되어 모든 감관이 서로서로 작용한다고 하자.
그러면 하나의 감관이 식(識)을 내어 온갖 경계를 반연할 것이다.
다만 감관을 따라야 할 뿐이다.
그리고 서로가 외람되거나 잘못이 없으리라.
내지 『불지경(佛地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는 유정의 심행(心行)의 차별을 결택한다.
그래서 3업(業)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4기(記) 등을 짓는다’라고 설명한다.
만일 반연이 두루하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능력이 없다.
이와 같기 때문이다”라고.
위와 같이 제시했다.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3업의 변화를 합친다고 하자.
그러면 10 가지가 있다.
불지경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몸의 변화에는 3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용을 나타내는 변화다.
둘째는 생(生)을 받아 나타내는 변화다.
셋째는 업의 과보를 나타내는 변화이다.
말의 변화에도 3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경하하고 위로 하는 말의 변화다.
둘째는 방편으로 하는 말의 변화다.
셋째는 물건을 밝히면서 하는 말의 변화이다.
뜻의 변화에는 4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결택(決擇)하는 뜻의 변화다.
둘째는 조작(造作)하는 뜻의 변화다.
셋째는 일으키는 뜻의 변화다.
넷째는 받아들이는 뜻의 변화이다.
받아들임[領受]의 변화 중의 4기라 함은 다음이다.
첫째가 일향기(一向記)다.
둘째가 분별기(分別記)다.
셋째가 반문기(反問記)다.
넷째가 묵치기(黙置記)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상이 6식의 모양이다.
통틀어 3업의 문을 이룬다.
아직 전의(轉依)되지 못한 동안에는
흐름을 따른다.
그리고 경계를 좇는다.
그러면서 잡염(雜染)의 종자를 낸다.
그리고 생사의 근본을 맺는다.
그리고 오직 개전(蓋纏)만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집(苦集)에 얽힐** 뿐이다.
그래서 청정한 깨달음의 성품을 저버린다.
그리고 계처(界處)의 허망한 대경에 영합한다.
그리고 3유(有)의 담장을 세운다.
그리고 4류(流)의 물결을 짓는다.
전의의 지위에 이른다고 하자.
그러면 진리에 합한다.
그리고 흐름을 돌이킨다.
그리고 지혜의 행을 따른다.
그리고 무루(無漏)의 선(善)을 이룩한다ㅓ.
그래서 도의 진리[道諦]에 소속된다.
그리고 바른 도리에 상응할 것이다.
그래서 묘관찰지(妙觀察智)의 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4생(生)의 의심 그물을 결단한다.
그리고 성소작지(成所作智)가 된다.
그래서 3륜(輪)의 교화 근원을 일으키리라.
만일 마음을 궁구한다고 하자.
그러면 진로(塵勞)도 보리의 묘한 작용이 된다.
그리고 종지(宗旨)를 잃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상락(常樂)도 생멸의 괴로운 바퀴가 되리라.
그러므로 알라.
염모와 청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얻고 잃음은 나에게 있다.
마치 손을 뒤집고 엎고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마치 사람의 취하고 깨고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다.
뒤집어도 손이다.
그리고 엎어도 손이다.
이러하기 때문이다.
요는 다음이다.
뒤집은 때는 엎을 때가 아니다.
그리고 엎은 때는 뒤집은 때가 아니다.
그러나 다 같이 손을 떠나지는 않았다.
취해도 사람이다.
깨어도 사람이다.
요는 다음이다.
취할 때는 깨지 않았을 때다.
그리고 깼을 때는 취한 것이 아닐 때다.
그러나 취한 것을 떠나서 깨어난 것이 있지도 아니하다.
그리고 또한 취한 것을 즉(卽)해서 이는 깨어나지도 아니한다.
마치 다음과 같다.
헷갈려도 이는 마음이다.
그리고 깨쳐도 이는 마음이다.
이와 같다.
요는 다음이다.
헷갈렸을 때는 깨치지 않았을 때다.
그리고 깨쳤을 때는 헷갈리지 않았을 때이다.
그러나 헷갈림과 깨침은 구별된 것이 아니다.
시절에 즉하여 다름이 있다.
오직 반야(般若)에만 있다.
그러면서 바뀌고 변함이 다달았을 적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하나의 몸은 옮아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천 가지 차이가 저절로 구별될 것이다.
헷갈린다고 하자.
그러면 억울하게 침몰을 만난다.
그래서 생각생각마다 범부를 이룬다.
그리고 깨친다고 하자.
그러면 본래부터 스스로 뚜렷하다.
그리고 밝아진다.
그래서 마음마음마다 성인을 증득한다”라고.
위와 같이 제시했다.
【문】 온갖 모든 법은 모두 인연을 의뢰한다.
그래서 생긴다.
그래서 여덟의 식 안에서는 저마다 몇 가지 인연을 갖추는가.
그러면서 성립하는가.
【답】 눈은 아홉 가지 인연을 갖춘다.
1은 공의 인연[空緣]이다.
비고 성글음을 말한다.
앞의 경계에서 장애되는 물건이 없다.
때문에 장애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능연(能緣)의 식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요
또 이중지(離中知)이기 때문이다.
2는 밝음의 인연[明緣]이다.
밝음은 광명을 말한다.
어둠의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며다.
그리고 분명히 안다.
그래서 능연의 식을 열고 인도하기 때문이다.
3은 감관의 인연[根緣]이다.
자기 눈 감관은 의지할 바[所依]가 되기 때문이다.
4는 경계의 인연[境緣]이다.
능연의 식에 반연할 바[所緣]가 되어 주기 때문이요
능연의 식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5는 작의의 인연[作意緣]이다.
마음과 뜻[心意]을 솟구쳐 일으킨다.
때문에 마음 종자 자리에서는 깨우쳐 나타나게 한다.
그리고 현행(現行) 자리에서는 마음을 이끈다.
그래서 경계에 닿게 한다.
6은 근본의 인연[根本緣]이다.
제8식은 그 안식(眼識) 등에게 줄기가 된다.
그리고 근원이 된다.
이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 7식에게는 의지할 바가 되기 때문이다.
7은 염오와 청정의 인연[染淨緣]이다.
제7식은 앞의 여섯 식에게 모두 염오와 청정의 의지할 바가 되기 때문이다.
8은 분별의 인연[分別緣]이다.
제6식은 앞의 경계를 분명하게 요별하기 때문이다.
9는 종자의 인연[種子緣]이다.
안식의 종자를 능히 내고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결과를 친히 이룩함의 인연[親辦自果緣]이라고도 한다.
자기 식[自識]의 현행을 몸소 실제로 이룩한다.
때문에 자기 결과[自果]라고 한다.
이식(耳識)은 곧 바로 나는 소리를 반연한다.
그래서 앞의 여덟 가지 인연만을 갖춘다.
그리고 앞의 밝음의 인연이 제외된다.
설령 어두운 가운데서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ㆍ혀ㆍ몸의 세 가지 식은
냄새ㆍ맛ㆍ닿임을 반연한다.
이 때에 일곱 가지 인연만을 갖춘다.
앞의 공의 인연ㆍ밝음의 인연이 제외된다.
이 세 가지는 바로 합중지(合中知)이다.
때문에 공의 인연을 빌리지 아니한다.
제6의 의식은 온갖 경계를 반연할 때에 다섯 가지 인연만을 갖춘다.
첫째는 근본의 인연이다.
둘째는 감관의 인연이다.
셋째는 작의의 인연이다.
넷째는 종자의 인연이다.
다섯째는 경계의 인연이다.
공ㆍ밝음ㆍ분별ㆍ염오와 청정의 네 가지 인연은 제외된다.
또 제6의 의식은 네 가지 가운데서,
정중(定中)ㆍ몽중(夢中)ㆍ독산(獨散)의 이 세 가지는
다섯 가지 인연을 갖춘다.
명료의식은 앞의 다섯 식에 따라 혹은 7ㆍ8ㆍ9 등의 인연의 다소를 갖춘다.
제7식의 유루위(有漏位) 중에서 제8의 견분(見分)을 반연한다.
그리고 나[아我]를 삼는다.
이 때에는 세 가지 인연을 갖출 뿐이다.
첫째는 근본의 인연으로 곧 제8식이다.
둘째는 작의의 인연이다. ,
셋째는 종자의 인연이다.
제8식은
종자의 근신(根身)과 기세간(器世間)을 반연할 때는 네 가지 인연을 갖출 뿐이다.
첫째는 경계의 인연으로 곧 앞의 세 가지 경계다.
둘째는 감관의 인연으로 곧 제7식이다.
셋째는 종자의 인연이다.
넷째는 작의의 인연이다.
만일 등무간연(等無間緣)을 보탠다고 하자.
그러면 앞의 여덟의 식 위에 다시 각각 하나의 인연을 더할 것이다.
그러므로 눈은 곧 열 가지 인연을 갖추게 된다.
【문】 여덟의 식은 3계(三界)에서 모두 다 갖추고 있는가.
【답】 갖추고 있지 않다.
옛 해석에서 다음과 같이 이른다.
“여덟의 식을 3계와 9지(地)에서 갖추어 있고 없고 한다.
이러한 것은, 다음이다.
욕계(欲界)의 한 자리에서는 여덟 가지 식을 다 갖추어 있다.
그리고 색계(色界)의 초선(初禪)의 한 자리에서는 여섯 의 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코와 혀의 두 가지 식은 없다.
그리고 2선(禪) 이상에서 무색계(無色界)까지는 뒤의 세 가지 색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앞의 다섯 가지 식은 없다.”라고.
위와 같이 제시했다.
욕계의 인간ㆍ천상ㆍ귀신ㆍ축생의 네 갈래[趣]가 있다.
여기에는 여덟 가지 식을 모두 갖추어 있다.
그리고 지옥 갈래 중의 무간(無間) 지옥에서는 앞의 다섯 식은 없다.
그리고 뒤의 세 가지 식이 있을 뿐이다.
혹은 제6식조차 없기도 한다.
지극한 중벌로 기절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문】 어떻게 이 모든 식이 두루 헤아림이 있고 없고 하는가.
【답】 고덕(古德)이 다음과 같이 이른다.
“5식과 8식은 집착이 없다.
인연으로 변한다.
때문에 현량(現量)일 뿐이다”라고.
위와 같이 제시했다.
무릇 집착한다 함은 다음이다.
반드시 억지로 생각한다.
그리고 헤아림 등의 집착이 있어야 한다.
제6식과 제7식만이 두루 헤아리며[遍計] 분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곧 제6식과 제7식의 두 식만이 집착이 있다.
또 네 구절이 있다.
1은 두루하다.
그러면서도 헤아림은 아니다.
곧 제6의 독두의식(獨頭意識)은
온갖 것을 두루 반연은 한다.
그러나 헤아려서 집착하지는 않는다.
위와 같기 때문이다.
2는 헤아리면서도 두루함은 안다.
곧 제7식은 아뢰야식만을 반연한다.
그래서 헤아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3은 두루하기도 하고 헤아리기도 한다.
제6식의 인연 중에서 두루하고 헤아리는 것이 있다.
4는 헤아림도 아니고 두루함도 아니다.
곧 다섯의 식은 반연만 한다.
그리고 다섯의 대경은 헤아림은 없기 때문이다.
앞의 다섯 가지 식은 스스로 경계를 증험한다.
그리고 명언(名言)을 띠지 않는다.
이는 현량일 뿐이기 때문이니다.
제8식 역시 그러하다.
『종경록』 55권(K1499 v44, p.316a01)
『종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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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淨] (缺譯)
07-01 पुनरपरं भगवानायुष्मन्तं सुभूतिमेतदवोचत्-
punaraparaṁ bhagavānāyuṣmantaṁ subhūtimetadavocat |
다시 또 복덕갖춘분께서 장로인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punaraparaṁ] ① punar(ƺ.) + aparaṁ(adv.) → [다시、 또]
② punar(ƺ. again, further, moreover, once more; back; on the other hand)
② aparam(adv. again, moreover, in future) < apara(nj. other, another; later)
▼[bhagavānāyuṣmantaṁ] ① bhagavān(ƾ.nom.) + āyuṣmantaṁ(nj.→ƾ.nom.) →
▼[복덕갖춘분께서、 장로인]
② āyuṣmat(nj. alive, living; longlived; lasting) < * + mat(possessive affix) < āyus(ƿ.
life, duration of life; vital power; food)
▼[subhūtimetadavocat] ① subhūtim(ƾ.acc.) + etad(ƺ.) + avocat(aaor.Ⅲ.sg.) →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② etad(ƺ. in this manner, thus, so, here, at this time)
② vac(2.ǁ. to speak, say, tell)
출처 봉선사_범어연구소_현진스님_금강경_범어강의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密多經) - 범어 텍스트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ṁ
♣K0116-001♧
♣K011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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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게송
[50일째]
허공경계무변제 $ 050■ ■虛 於入如意所 身妙出一知
050▲ 達攞步陀達攞步陀為 一 ● 訶魯那, ○□□□□,悉,如,菩,於
□□□□□□□, 悉布毛端使充滿,
如是毛端諸國土, 菩薩一念皆能說。
□□□□□□□, 실포모단사충만,
여시모단제국토, 보살일념개능설。
虛空境界無邊際,
끝단 데를 모르는 저 허공 안에
털 끝을 가득 세워 채운다 하고
이러한 털 끝마다 있는 국토를
보살이 한 생각에 능히 말하고
[51째]
어일미세모공중 $ 051▲訶魯那訶魯那為 一 ● 摩魯陀, ○□□□□,不,毛,諸,入
□□□□□□□, 不可說剎次第入,
毛孔能受彼諸剎, 諸剎不能遍毛孔。
□□□□□□□, 불가설찰차제입,
모공능수피제찰, 제찰불능편모공。
於一微細毛孔中,
한 개의 가느다란 털구멍 속에
말할 수 없는 세계 차례로 드니
털구멍은 여러 세계 능히 받지만
세계는 털구멍에 두루 못하며
●K0335_T1343.txt★ ∴≪A존승보살소문일체제법입무량문다라니경≫_≪K0335≫_≪T1343≫
●K1499_T2016.txt★ ∴≪A종경록≫_≪K1499≫_≪T2016≫
●K0318_T1337.txt★ ∴≪A종종잡주경≫_≪K0318≫_≪T1337≫
■ 암산퀴즈
117* 870
24700 / 650
■ 다라니퀴즈
구족수화길상광명대기명주총지 50 번째는?
불정광취실달다반달라비밀가타미묘장구(佛頂光聚悉怛多般怛羅秘密伽陁微妙章句) 50 번대 10개 다라니는?
부처님 108 명호 50 번째는?
50 좋은 말씀은 모든 농사(農事)를 능히 이루어 줍니다.
바라지 리, 波囉祁<上聲>[口*梨]<五十>
pra-ghr
(~!~) 마음의 보호를 성취케 하시고, 온갖 눈병(惡相)으로부터 보호하소서
『대승대집지장십륜경』
♣0057-001♧
050 바라 바라 자야 ◐鉢囉<二合>婆囉<引>闍耶<光王五十>◑prabhā-rājāya
051 다타아다야 ◐怛他揭多耶<五十一>◑tathāgatāya
052 아라하뎨삼먁삼몯다야 ◐阿囉訶帝三藐三菩陁耶<五十二>◑arhate samyaksaṃbuddhāya//
053 나모바가바뎨 ◐娜牟婆伽筏帝<五十三>◑Namo bhagavate
054 사보스비다바라라 자야 ◐三布瑟畢多娑囉囉<引>闍夜<娑羅花王五十四>◑saṃpushpita-sāla-rājāya
055 다타가다야 ◐怛他揭多耶<五十五>◑tathāgataya
056 아라하뎨삼먁삼몯다 야 ◐阿囉訶帝三藐三菩陁<引>耶<五十六>◑arhate samyaksaṃbuddhāya//
057 나모바가바뎨 ◐娜牟婆伽筏帝<五十七>◑Namo bhagvate
058 사갸 모나예 ◐舍抧也<二合>母娜曳<釋迦牟尼><佛五十八>◑śākhyamunaye
059 다타가다야 ◐怛他揭多耶<五十九>◑tathāgatāya
●10방 여래께서는
이 주문의 비밀심인을 지니시어
능히 10방세계에서 정수리를 만져 수기를 내리시니,
자기 과위(果位)를 아직 성취하지 못한 행자는
10방 어디에서나 부처님의 수기를 받느니라.
불정광취실달다반달라비밀가타미묘장구(佛頂光聚悉怛多般怛羅秘密伽陁微妙章句) -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K0426-007♧
050
자재하게 변화하시는 왕께 귀의합니다.
南無自在變化王
『불일백팔명찬』佛一百八名讚
♣1183-001♧
101790
38
법수_암기방안
5 목 ●
50 턱 chin, 【악골】顎
51 눈썹 아이부러워eyebrow 眉 【미】
50 턱 chin, 【악골】顎
■ 오늘의 경전 [이야기, 게송,선시 등]
2569_0219_234859 :
대장경 내 게송
형상이 없기 때문에 수승하며
장엄이 아니기 때문에 장엄성(莊嚴性)이 허용된다.
출전:
한글대장경 K0557_T1513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론석(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論譯) 무착보살조송.
세친보살석.
당 의정역
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論釋 【無著菩薩造頌.
世親菩薩釋.
唐 義淨譯】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통합대장경
https://kabc.dongguk.edu/m
■요가자세 익히기
요가_활 자세
●세계사이트방문일자: 불기2568-12-21-토
London/South_West
[사진]
[지도내 사진] https://maps.app.goo.gl
[거리뷰1] Hampton Court Palace
https://maps.app.goo.gl
https://maps.app.goo.gl
[세계내-위치]
[설명 1] https://en.wikipedia.org
[설명 2] https://en.wikipedia.org
[동영상 1] 4:51
https://youtu.be
SOUTH WEST LONDON BEAUTIFUL RESIDENTIAL AREA - Walking Tour 4K HD
[동영상 2]
[현지음악]
[위키 그림 감상]
https://www.wikiart.org
https://www.wiki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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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_1008_141227_can_e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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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_0418_122113_can_e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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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_0419_125633_can_ar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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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_0419_134155_can_c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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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_0419_135027_can_a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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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0525_175347_can_ar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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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0606_124532_can_c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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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0606_134417_can_c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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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_0411_153550_can_BW25_장안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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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_0411_152101_can_CT28장안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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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_0411_153458_can_ar14_s12장안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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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_1116_155335_HP_BY_YJ_ar38과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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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_1116_163743_can_BW25과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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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_0216_180047_can_ar47꽃과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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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_0909_150056_can_CT33꽃,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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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_0122_144609_nik_CT27꽃,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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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_1109_134516_can_ar38인천대공원_인천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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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_0216_165639_nik_BW17꽃,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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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_0530_113019_can_ar38뚝섬공원_국제정원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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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_0411_154505_can_AB7장안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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