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
K0650
T0099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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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0650-001♧
제1권
[v2020-029]
▣- 서
I
▣- 경전내용 - 『잡아함경』 1 무상경
▣■ 고려대장경 영인본
▣■ 고려대장경 판본
▣■ 팔리본
▣■ 영어번역본
▣■ 요약-
▣○ 정관과 염리의 관계
▣○ 경전내용 요약
▣○ 5온과 현상의 범주
▣○ 불교의 기본적 진리
▣○ 일체에 공통된 내용
▣○ 개인적인 삶의 기본목표
▣○ 5온과 무상ㆍ고ㆍ공에 대한 의문내용
▣- 법문의 이해와 실천 수행의 순서
▣- 수행과 법문의 이해
▣○ 생사고통과 현실의 정체 이해
▣○ 일반적 입장에서 수행에 들어가는 기본 계기
▣- 기초적으로 세속의 묶임에서 벗어나기
▣- 고통의 임시적 제거와 근본적 제거 방안
▣- 좁고 짧고 얕은 관찰과 넓고 길고 깊은 관찰
▣- 넒고 길고 깊은 관찰에 바탕한 좋음
▣- 소원과 서원의 가치
▣-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바탕한 가치판단의 문제점
▣- 당장 외관에 드러나지 않는 내용들
▣- 각 주체의 내면 내용
▣- 초점 외 잠재된 내용
▣- 당장의 감각, 느낌에 치중
▣- 인과에 대한 무지
▣- 시장가격에 의한 판단
▣- 실질 가치 및 효용과 시장가격
▣- 눈에 보이지 않은 수익과 비용
▣- 생명과 신체의 소모분
▣- 생명과 신체의 소모분의 화폐가치 환산
▣- 화폐의 실질 가치와 시장가격
▣- 쓰레기와 보물
▣- 수행으로의 전환 계기
▣- 생사고통이 없음의 가치
▣- 고려하는 기간의 문제
▣- 장기간에 걸친 인과 판단
▣-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객관적 평가 (다른 생명들의 주관적 평가 )
▣- 단멸관과 수행
▣- 단멸관의 제거의 어려움과 믿음의 중요성
▣○ 종교 일반의 현실부정 공상주의적 이상성과 불교
▣-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는 합리적 입장
▣- 생사과정에서 수행의 가치
▣- 가치의 유지기간과 수행을 통해 얻는 자산
▣- 수행에 대한 의지를 갖기
▣- 수행의 여러 단계와 생사 고통 제거 방안
▣- 장래 결과 발생 원인제거
▣- 이미 발생한 고통에 대한 대처 방안
▣- 원래의 좋은 상태로 회복하는 추가 노력
▣- 과거에 쌓여진 업장의 추가제거
▣- 고통의 제거 순서 - 예방의 중요성
▣- 수행의 최초 진입 - 인천교적인 방안
▣- 인천교와 10선법
▣- 생사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의 예비단계
▣- 외범으로서 3현
▣- 5정심관
▣- 관신부정觀身不淨
▣- 관수시고觀受是苦
▣- 관심무상觀心無常
▣- 관법무아觀法無我
▣- 불교내 수행 예비단계 (난ㆍ정ㆍ인ㆍ세제일 4선근위)
▣- 고제(苦諦)의 4행상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
▣- 고집제(苦集諦)의 4행상 [인因ㆍ집集ㆍ생生ㆍ연緣]
▣- 고멸제(苦滅諦)의 4행상 [멸滅ㆍ정靜ㆍ묘妙ㆍ리離]
▣- 도제(苦滅道諦)의 4행상 [도道ㆍ여如ㆍ행行ㆍ출出]
▣-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수행의 필요성- 생사고통의 제거
▣○ 생사현실의 생사고통 [고제苦諦]
▣○ 생사고통을 겪는 원인 [고집제]
▣- 욕계의 소원의 성취 과정의 문제
▣- 망상분별과 번뇌 집착
▣- 자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 [신견身見]
▣- 영원함과 단멸관을 취함 [변견邊見]
▣- 탐ㆍ진ㆍ치ㆍ만 [미사혹, 수혹]
▣- 잘못된 인과 판단 문제 [사견邪見]
▣- 현실에 대한 온갖 잘못된 이해 [견취견見取見]
▣- 계금취견戒禁取見
▣-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의심 [의疑]
▣- 현실을 진짜이며 실답다고 여기는 자세의 문제
▣- 생사현실을 참된 진짜이고, 실답다고 잘못 이해하는 사정
▣- 풍부하게 중첩해 현실 내용을 얻음
▣- 감각현실과 관념을 재료로 망상분별을 일으킴
▣- 현실 내용을 외부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함
▣- 감각현실의 각 부분의 특성이 달라 그 실재가 있다고 여김
▣- 다수가 일정 내용을 반복 경험하기에 그 실재가 있다고 여김
▣- 본바탕 실재에 대한 다양한 잘못된 이해
▣- 참된 진짜 뼈대가 있기에 현실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분별함 [실체설]
▣○ 수행의 목표점 [고멸제]
▣- 근본적인 고의 제거방안 [자성청정열반, 유여의열반, 무여의열반, 무주처열반]
▣- 유여의열반
▣- 무여의열반 [회신멸지]
▣- 본래 자성청정열반
▣- 생사현실 안에서 '자성청정열반'에 대한 이해가 갖는 의미 - <생사 즉 열반>
▣- 중생제도를 위한 방안 [무주처열반]
▣○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단계적 방안들 [고멸도제]
▣- 본 수행
▣- 37 도품
▣- 4념처
▣- 4정단
▣- 4여의족
▣- 5근
▣- 5력
▣- 7각지
▣- 8정도
▣- 정견(正見)
▣- 정사유
▣- 정어
▣- 정업
▣- 정명
▣- 정정진
▣- 정념
▣- 정정
▣- 계ㆍ정ㆍ혜 3학을 통한 번뇌의 근본제거
▣- 기본적인 계의 덕목의 성취
▣- 본성적인 계와 차계
▣- 10선법과 계와 율의 관계
▣- 계와 율의 구분
▣-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에서의 계율
▣- 5계
▣- 8관재계
▣- 사미 사미니 10계
▣- 대승보살의 10중계(十重戒)
▣- 정(定: 삼매)
▣- 삼매의 공덕
▣- 삼매 수행의 내용
▣- 8해탈
▣- 8승처
▣- 10변처
▣- 3삼매
▣- 공삼매
▣- 무상삼매
▣- 무원삼매
▣- 4무량심
▣- 제불현전삼매
▣- 다양한 삼매
▣- 삼매의 단계
▣- 색계 4선
▣- 초선(初禪)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 2선(二禪)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 3선(三禪)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
▣- 4선(四禪)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 심(尋)과 사(伺)의 유무에 따른 분류
▣- 현법락주
▣- 무색계 4선
▣- 멸진정과 9차제정
▣- 사자분신삼매와 초월삼매
▣- 삼매의 다양한 표현
▣- samādhi
▣- cittaikāgratā
▣- samāhita
▣- samāpatti
▣- śamatha
▣- dhyāna
▣- dṛṣṭa-dharma-sukha-vihāra
▣- 삼매로 분별 및 수ㆍ상ㆍ행ㆍ식을 제거해가는 사정
▣- 세계의 의미와 욕계 색계 무색계
▣- 망집과 욕계
▣- 욕계의 망상분별과 3 악도의 생사고통
▣- 욕계의 산란 상태
▣- 욕계에서 초점 밖 영역
▣- 욕계의 심일경성 단계
▣- 색계 삼매
▣- 무색계 삼매
▣- 색계 무색계와 궁극적 수행목표
▣- 생득정과 해탈
▣- 중생 제도와 욕계를 택하는 사정
▣- 지혜를 통한 근본적 번뇌 제거
▣- 의심의 제거
▣- 계금취견의 제거
▣- 신견의 제거
▣- 변견의 제거(상견과 단견의 제거)
▣- 상견과 단견을 취하게 되는 배경사정
▣- 상견과 단견의 제거방안
▣- 무상ㆍ고ㆍ무아ㆍ부정을 기초적으로 제시하는 사정
▣- 2분법상의 유무 분별과 망집
▣- 2분법상의 상단 분별과 망집
▣- 2분법상의 생멸 분별과 망집
▣- 언설로 표현한 제일의제와 망집
▣- 14무기와 망집
▣- 상대의 입장에 맞춘 망집제거 방편
▣- 망집에 바탕한 62견
▣- 현실의 유무분별과 망집
▣- 유무판단의 논의 취지 - 실다움 여부의 판단
▣- 실답지 않음의 판단
▣- 다양한 유무판단
▣- 존재가 문제되는 다양한 영역
▣- 일반적 입장에서의 유무 문제
▣- 관념에 대응하는 감각현실 유무문제
▣- 관념으로 감각현실을 찾아 유무를 판단하는 경우
▣- 감각현실을 먼저 대한 후 유무 판단하는 경우
▣- 일반적 유무판단시 유무 양변을 모두 떠나야 한다는 입장
▣- 망상분별 부분이 논의핵심이 되는 사정
▣- 일반적인 유무판단과 망상분별
▣-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
▣- 아상(我相)[자신에 대한 상]
▣- 아(我)의 유무 논의의 효용
▣- 생멸 및 왕래에 대한 상
▣- 감각현실에 대응하지 않은 관념의 현실 유무 문제
▣- 실재 영역과 관련한 유무 문제
▣- 실재의 유무 논의와 생사고통
▣- 실체의 유무 문제
▣- 실다운 진짜를 찾는 사정
▣- 무아ㆍ무자성과 실재의 공함의 관계
▣- 현실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유무논의
▣- 관념 영역에서 관념의 유무 문제
▣- 관념영역에서 관념이 얻어지는가 여부의 문제
▣- 유무 논의의 성격 혼동 문제
▣- 실체의 존부 문제와 관념의 존부문제의 혼동
▣- 관념적 차원에서 유무 문제들
▣- 관념영역에 관념이 현재 머물고 있는가의 문제
▣- 수학문제에서 답의 '유무' 논의
▣- 수학문제를 풀수 있는가 여부의 유무논의
▣- 과거에 기억한 관념의 현재 존부문제
▣- 연상되어지는 일정한 관념내용의 유무
▣- 감각현실에 대응한 관념의 존부 문제
▣- 감각현실 자체를 잘 얻지 못하는 경우
▣- 감각현실 자체는 잘 얻는 경우
▣- 언어 영역에서 언어의 유무 문제
▣- 언어 시설의 문제
▣- 언어 시설로 감각현실 부분을 가리키는 경우
▣- 법처소섭색[감각할 가능성으로서 유무판단]
▣- 극략색
▣- 극형색
▣- 수소인색
▣- 변계소기색
▣- 자재소생색
▣- 상황에 따라 변하는 유무판단문제
▣- 내부 내용
▣- 장애물로 가려진 내용
▣- 먼 곳의 내용
▣- 감각에 필요한 요소 조건 등이 결여된 기타 여러 상황
▣- 다른 감각현실
▣- 다른 생명체의 다른 감관이 얻는 내용들
▣- 기계적 센서를 통해 얻어지는 내용
▣- 수행을 통한 6 신통등
▣- 공간의 유무문제
▣- 마음의 유무
▣- 마음의 시설
▣- 마음의 실다움과 다른 영역과의 관계
▣- 마음과 실재의 혼동과 구분
▣- 언어표현에서의 혼동 정리
▣- 있고 없음의 판단에서 각 영역의 상호관계를 살피는 형식
▣- 유무논의와 상단 논의를 통한 수행의 방향
▣- 사견의 제거
▣- 인과의 올바른 파악 [지혜]
▣- 견취견의 제거
▣- 탐ㆍ만ㆍ진ㆍ무명의 근본제거 - 수도
▣- 탐욕과 분노에 대한 집착의 제거
▣- 어리석음의 제거
▣- 만(慢)의 제거
▣- 번뇌를 끊어가는 수행단계 3도- 4향4과
▣- 수행을 통해 끊어야 할 번뇌의 구분
▣- 견혹
▣- 수혹
▣- 수번뇌
▣- 대수혹(대번뇌지법)
▣- 불신(不信)
▣- 해태(懈怠)
▣- 방일(放逸)
▣- 혼침(惛沈)
▣- 도거(掉擧)
▣- 산란(散亂)
▣- 실념(失念)
▣- 부정지(不正知)
▣- 치(癡)
▣- 중수혹(대불선지법)
▣- 무참(無慚)ㆍ무괴(無愧)
▣- 소수혹(소번뇌지법)
▣- 간(慳)
▣- 교(憍)
▣- 질(嫉)
▣- 한(恨)
▣- 분(忿)
▣- 해(害)
▣- 뇌(惱)
▣- 부(覆)
▣- 첨(諂)
▣- 광(誑)
▣- 근본번뇌의 수행단계별 분류
▣- 수행의 3도-견도ㆍ수도ㆍ무학도
▣- 4향4과
▣- 예류향
▣- 예류과
▣- 일래향
▣- 일래과
▣- 불환향
▣- 불환과
▣- 아라한향
▣- 아라한과
▣- 아라한과 대승 보살의 수행[<생사 즉 열반관>]
▣- 업과 집착의 기본적 제거
▣- 자신에 대한 잘못된 분별과 집착의 제거[아집(我執) 번뇌장(煩惱障)의 제거]
▣- 일반 현실에 대한 잘못된 분별과 집착[법집(法執), 소지장(所知障)]
▣- 자신과 근본정신에 대한 심층적 이해
▣- 외부 세상에 대한 잘못된 분별제거
▣- 잘못된 판단에 해당하는 부분을 올바로 찾기
▣- 생사현실 일체에 대한 부정과 긍정 - <생사 즉 열반>의 이론적 이해
▣- 생사현실내 안인성취와 <생사 즉 열반>의 실증
▣- 잘못된 악취 공견의 제거
▣- 무량행문을 통한 무량 방편지혜 구족과 중생제도
▣- 보살수행과 바라밀다
▣-보시(布施, dāna-pāramitā)
▣-정계(淨戒, 지계持戒, śīla-pāramitā)
▣-안인(安忍, 인욕忍辱, kṣānti-pāramitā)
▣-정진(精進, virya-pāramitā)
▣-정려(靜慮, 선정禪定, dhyāna-pāramitā)
▣-반야(般若, prajñā-pāramitā)
▣-방편(方便, upāya-pāramitā)
▣-원(願, praṇidhāna-pāramitā)
▣-력(力, bala-pāramitā)
▣-지(智, jñāna-pāramitā)
II
▣●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의미
▣- 일체를 분류하는 여러 방식과 5온
▣-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총괄적 의미
▣- 넓은 의미의 색과 좁은 의미의 색
▣- 수의 의미
▣- 상의 의미
▣- 행의 의미
▣- 식의 의미
▣- 식의 다양한 의미
▣- 마음작용에서 기관ㆍ작용ㆍ결과내용의 구분
▣● 색ㆍ수ㆍ상ㆍ행ㆍ식 5온 분류의 의미
▣- 현실 일체를 포함하는 범주로서 5온
▣- 자신의 구성요소로서 5온
▣- 평소 눈을 떠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의 정체
▣- 좁은 의미의 색
▣- 넓은 의미의 색(감각현실) 가운데 일부
▣- 자신이 얻어낸 내용 (마음 내용)
▣- 5온과 자기자신의 관계
▣- '색'이란 표현이 가리키는 부분에 대한 잘못된 판단들
▣- '색'은 자신의 몸이 아니다.
▣- 현실에서 자기자신으로 보는 내용의 검토
▣- 상일성
▣- 주재성
▣- 대상에 대한 주관
▣- 색의 일부분이 서로 다른 특성을 갖는 배경 - 구생기신견
▣- 잘못된 신견의 방치와 생사고통의 문제
▣- 분별기 신견이 잘못인 사정
▣- 얻어진 내용안에 '그 내용을 얻는 주체'가 있을 수는 없다.
▣- 관념은 감각현실 등 다른 영역에 얻을 수 없다.
▣- 본바탕인 실재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 참된 진짜 실체가 아니다.
▣- 자신의 부분이 갖는다고 여기는 특성이 있다. - 이는 잘못 파악한 내용이다.
▣- 상일하게 유지되는 부분이 아니다.
▣- 자신 뜻대로 주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 자신의 감관이 위치한 부분이 사실은 아니다.
▣- 색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 그림을 통한 설명
▣- 다른 이가 감각하는 과정의 관찰
▣- 다른 이가 감각하는 내용은 다른 이 내부의 변화다.
▣-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 - 이 부분은 자신이 아니다.
▣- 실질적 자신으로 보아야 할 부분
▣- 공통 요소
▣- 유사성
▣- 인과관계 전후 연결성
▣- 변화과정에 계속 존재하는 내용을 찾아내기
▣-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의 시설 문제
▣-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와 실질적 자신의 시설
▣- 자신의 현상적 본 정체성 - 정신과 육체
▣- 실질적인 자신과 현상적 자신의 관계
▣- 다른 이로 여기는 부분 - 이 부분은 다른 이가 아니다.
▣- 자신이 다른 이 철수로 보는 부분- 이는 철수의 외부 실재가 아니다.
▣- 자신 외부에 대한 잘못된 판단들
▣- 다른 이의 외부에 대한 판단
▣- 다른 이 철수가 행하는 외부세상 등에 대한 판단
▣- 다른 이의 외부세상 등에 대한 판단의 검토
▣- 다른 이 철수가 또 다른 이와 관련해 행하는 판단
▣- 다른 이 철수가 또 다른 이와 관련해 행하는 판단의 검토
▣- 자신의 외부세상 등에 대한 판단 검토
▣- 자신의 다른 이가 대하는 외부세상 등에 대한 판단 검토
▣- 외부 세상에 대한 잘못된 판단과 집착의 제거
▣- 감각과정 및 동작시 주관과 대상의 인과 관계 문제
▣- 현실에서 운동의 인과관계
▣- 감각현실이 객관적 실재가 아닌 사정
▣- 감각현실이 다수에게 일정한 관계로 반복 파악되는 사정
▣- 색은 객관적 실재 대상이 아니다.
▣- 감각현실은 실재 대상이 아니다.
▣- 관념적 내용은 외부 실재 대상이 아니다.
▣- 다른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은 실재대상이 아니다.
▣- 마음은 실재가 아니다.
▣- 실재에 대한 다양한 입장
▣- 색은 정신내용이다. - 정신밖 외부 물질이 아니다.
▣- 물질과 색의 표현의 의미 차이
▣- 색은 물질이 아니다 - 논의효용1- 근본 정신에 대한 올바른 파악과 단멸관의 제거
▣- 색은 물질이 아니다 - 논의효용2- 정신의 정체에 대한 올바른 파악과 집착의 제거
▣- 색에 대한 다양한 표현과 성격 지위
▣- 색이라고 표현할 경우의 의미
▣- 색과 수ㆍ상ㆍ행ㆍ식과의 차이
▣- 색과 수ㆍ상ㆍ행ㆍ식의 공통성
▣- 색은 정신영역 안의 내용이다.
▣- 색을 물질이라고 표현할 경우의 의미
▣- 물질개념1 - 느낌, 분별 등 정신적 내용과 다른 특성을 갖는 내용
▣- 물질개념2 - 정신영역과 떨어진 내용
▣- 색이 갖는 물질적 측면
▣- 감각현실이 물질적 특성을 갖는 사정
▣- 색이 물질과 다른 측면
▣- '감각 과정'을 물질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입장 - 생리학자의 입장
▣- 생리학자의 입장이 잘못인 사정
▣- 몸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판단
▣- 자신이 얻는 내용물이 담기는 그릇(~정신)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판단
▣- 다른 사람이 얻는 내용물 그릇(~정신)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판단
▣- 다른 사람이 행하는 다른 사람 자신에 대한 판단
▣-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그릇(~정신)에 대해 행하는 잘못된 판단
▣- 다른 사람 철수가 행하는 판단들의 검토
▣- 자신이 행하는 그릇(~정신)의 위치에 대한 판단의 검토
▣- 그릇(~정신)의 위치는 한 주체가 얻는 내용 밖에서 찾아야 한다.
▣- 그릇(~정신)과 실재의 문제
▣- 그릇(~정신)에 대한 실험관찰의 곤란성
▣- 감각작용은 물질적인 변화과정에 준하지 않는다.
▣- 감각현실과 얻어진 다른 내용의 공통점
▣- 정신적 그릇의 작용에 대한 실재 영역 추리
▣- 정신과 육체의 관계
▣- 5 온의 분류와 물질정신의 분류 차이
▣○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분류가 갖는 의미차이
▣● 일체를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보는 근거
▣- 일체에 대해 공통적으로 성립되는 진리 (5법인)의 성격
▣- 망집에 바탕한 희망과 일치하지 않는 5법인
▣- 권위적 판단에 대한 맹목적 추종
▣- 합리적 판단에 의한 이해
▣○ 현상 일체가 영원하지 않다고 제시하는 근거
▣○ 일체의 본바탕 실재
▣- 현실 내용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본바탕 실재의 문제
▣- 실재내용과 감각내용의 관계
▣- 실재를 찾는 문제
▣○ 감각현실과 실재내용의 관계
▣○ 비아, 또는 무아, 무자성 판단 문제
▣- 논의의 실익 문제
▣- 실체없음과 실재의 공함의 관계
▣● 무상ㆍ고ㆍ공ㆍ비아를 근거로 싫어하여 떠날 이유
▣○ 마음의 해탈(심해탈)의 효용
▣- 생사고통의 예방과 원인의 제거
▣- 생사고통을 받는 과정
▣- 가치에 대한 잘못된 판단
▣- 잘못된 희망의 잘못된 방안을 통한 추구
▣- 집착이 불러 일으키는 고통의 모습
▣- 현실에서 가치없는 것에 대한 집착의 제거
▣- 집착의 근원- 자신과 생명 등
▣- 생사고통의 원인으로서 집착
▣-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방안
▣○ 수행목표와 수행방편에 대한 집착의 제거
▣● 무상ㆍ고ㆍ공과 수행목표
▣● 해탈지견의 내용
▣○ 해탈과 단견의 차이
▣○ 윤회
▣○ 윤회와 삶의 목표
▣- 윤회의 증명 문제
▣● 수행목표 상태와 일반 상태의 차이점
▣- 수행의 어려움과 수행의 가치의 인식 필요성
▣-수행의 목표의 가치
▣- 수행의 현실에서의 가치
▣- 윤회를 전제로 한 수행의 가치
▣● 무상ㆍ고ㆍ공ㆍ비아와 수행목표 상태의 관계
▣○ 무상, 고와 수행목표로서 해탈과 열반의 성격
▣- 무상한 것은 왜 고통인가?
▣- 현실을 모두 즐거움으로 본다는 반대 주장
▣- 비관주의와 불교의 차이
▣○ 일반의 경우와 불교의 목표의 차이
▣- 인과상 나쁨의 결과를 가져오는 좋음
▣- 좋음을 얻는 기간의 문제
▣- 일시적인 좋음의 문제
▣- 고통의 근본적 해결방안의 문제
▣-고통과 열반의 관계- 생멸 즉 고통이 없어진 상태로서의 열반
▣- 생멸을 멸하는 방안 - 회신멸지의 니르바나
▣○ 회신멸지(灰身滅智) 니르바나의 문제점
▣- 일반인의 입장에서의 문제점
▣- 수행자 입장에서 회신멸지 상태의 문제점
▣○ <생사 즉 열반관>과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
▣- <생사 즉 열반>의 근거1
▣- <생사 즉 열반>의 근거2
▣- <생사 즉 열반>의 근거3
▣- <생사 즉 열반>의 근거4
▣- <열반 즉 생사>와 <생사 즉 열반>의 관계
▣○ 생사현실에 생멸을 본래 얻을 수 없음
▣- 3가지 존재영역 - 원성실상ㆍ의타기상ㆍ변계소집상
▣- 원성실상과 승의무자성
▣- 의타기상과 생무자성
▣- 변계소집상과 상무자성
▣- 유무극단을 떠난 3성 3무성의 관계
▣- 3무성과 생사현실의 실답지 않음
▣- 3무성과 <생사 즉 열반>
▣- <생사 즉 열반>과 수행의 필요성
▣- 관념이 실답지 않은 사정 - 환자와 가족의 비유를 통한 이해
▣○ 열반과 다양한 수행목표 선택 문제
▣-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과 <생사 즉 열반>
▣- 생사고통의 해결과 꿈의 비유
▣○ <생사 즉 열반>에서의 문제점
▣- 현실 그대로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착각함
▣- 망집에 바탕한 단순한 낙관주의
▣- 수행중 망상분별과 집착 상태로 다시 물러남[퇴전]
▣- 안인 수행과 지나친 고행주의
▣- <생사 즉 열반관>으로 없음에 치우쳐 모든 것을 부정하는 잘못
▣- <생사 즉 열반관>으로 개인의 해탈에 안주하고 중생제도를 외면함
▣- 집착이 없으면 아무렇게 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잘못(악취공견)
▣-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방안
▣- <생사 즉 열반>의 2 중적인 측면- 현실 긍정과 부정
▣○ 현실부정적인 측면 - 깨끗하지 못한 현실의 부정
▣○ 현실긍정적인 측면 - 깨끗한 형태로 현실의 긍정
▣○ 윤리적 이상추구 실천행의 측면
▣-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과 생사윤회 [변역생사]
▣- 무상한 현실내 수행의 의미 - 현실 부정과 현실 긍정과 이상추구
▣- 공, 비아와 수행목표의 관계
▣- 생사현실에서 공의 이해가 갖는 효용과 본바탕의 관계
▣● 수행목표와 염리, 희탐진
▣● 수행의 근거
▣- 수행에 대한 집착 제거 필요성
▣- 기본적 수행방안
<부록>
▣○ 경전의 불설 비불설 논의
▣- 경전 전파 경로와 원본 문제
▣- 분량의 장단과 원본 문제
▣- 다양한 설법 방식과 원본 문제
▣- 다양한 전파 번역 과정과 원본 문제
▣- 깨달음을 주는 소재로서 경전의 가치
▣- 마침
❋본문
◎[개별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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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104_105424_nik_AB7 구례 화엄사

○ 2020_1114_161242_can_Ar12 삼각산 도선사

○ 2018_1023_161336_can_Ar12 예산 덕숭산 수덕사

○ 2018_1024_173420_nik_AB7_s12 부여 고란사

○ 2018_1022_164457_can_ab41_s12 공주 태화산 마곡사

○ 2020_1002_122623_nik_Ar25_s12 파주 고령산 보광사

○ 2020_0930_134203_nik_AB4 화성 용주사

○ 2020_0910_152602_can_ar45 속리산 법주사

○ 2020_0908_155910_nik_bw24 합천 해인사

○ 2020_0904_093444_can_bw5 여주 신륵사

○ 2019_1105_165600_can_exc 순천 조계산 송광사

○ 2019_1106_155453_can_fix 화순 계당산 쌍봉사

○ 2018_1023_154659_nik_Ar12

○ 2020_1017_160530_can_ct18

○ 2020_1017_154637_can_CT38_s12

○ 2020_1017_152218_can_AB7

○ 2020_1017_145724_can_ab41_s12

○ 2020_0930_135047_nik_AB45

○ 2020_0905_164325_can_BW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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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개별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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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0650-001♧

◎◎[개별논의] ♥ ❋본문
♥Table of Contents
▣- 서
일반인 입장에서는 일반적 상식에 바탕해 생활한다.
본인도 상식적 입장에서 생활해왔다.
그러다가 젊은 시절 불교를 처음 대하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거나 의문을 갖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후 불교를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해왔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잡아함경』은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가장 기초적 내용이다.
처음 불교를 대하는 이가 익혀야 할 내용이다.
이를 통해 불교의 가장 기본적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오래 전에 처음 작성되었다.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불교를 접한 때는 젊은 청년시절이었다.
다시 몇 십년이 지난후 늦게 불교를 전공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이후 다시 수십년이 지났다.
처음 세상에 임하게 된다.
그런 경우 통상 일반적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좋음을 구해 이런 저런 노력을 하게 된다.
이처럼 누구나 삶의 방향을 찾는 때가 있다.
그런 가운데 상식적인 입장에서 불교를 쉽게 소개할 글이 필요해보인다.
이런 노력은 본 연구원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다음처럼 가르친다.
망집을 제거하지 못하는 한, 생사윤회를 반복한다.
그래서 이번 생에 수행이 완전하지 않다.
그러면 또 다음 생에서도 수행을 해야 한다.
매번 생을 맞이할 때마다 이번 생과 상황이 비슷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생에서도 다시 삶의 방향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불교의 가르침을 접하는 것도 쉽지 않다.
불교를 대해도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불교 가르침을 처음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번 생처럼 공연히 삶을 허비하지 않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올바로 방향을 찾아 수행을 잘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취지로 일반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쉬운 불교 소개글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다음 생에 불교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수행에 들어가게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불교 공부를 전공으로 공부한 이후 십여년 지난 무렵 처음 작성하였다.
그리고 다시 또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런 가운데 내용이나 편집 방식의 변경이 잦다.
매번 글을 대할 때마다 보완할 부분이 새로 눈에 띈다.
그리고 표현도 수정하게 된다.
처음에는 만연체로 글을 작성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글을 읽어본다.
그러면 글을 쓴 본인도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해가 쉽도록 문장들을 짧게 끊어 표현을 바꾸었다.
특히 조건절과 귀결절을 분리해보게 된다.
조건절과 귀결절을 함께 묶으면 글이 길어진다.
그리고 전제와 결론의 관계성을 바로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오히려 문장을 짧게 끊기에 이해하기가 더 힘들 수도 있다.
한편 웹에 글을 올린다.
그런 경우 책처럼 처음부터 살피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일정 주제가 문제될 때 각 주제를 독립해 대하게 되기 쉽다.
그런 사정으로 일정한 공통 내용을 반복 서술하게 된다.
그런 경우 같은 내용이 전체적으로 반복해 중복 서술되는 경향을 갖는다.
이런 경우 일부는 링크로 중복서술을 피한다.
그러나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그런 가운데 매번 조금씩 내용 및 표현 수정 보완을 반복하게 된다.
만일 완전한 만족을 얻으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앞으로도 몇 생을 더 노력해야 할 듯하다.
앞으로도 남은 생 동안 수정 보완 노력을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다음 생에서도 가능하면 이런 노력을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웹 상에 올리는 글이어서, 매번 수정 보완은 쉽다.
앞으로도 수정 보완할 내용이 발견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때 그 때 수정해나갈 생각이다.
그런데 이 경우 판본 변화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판본번호를 붙이기로 한다.
수정이 어떤 부분에서라도 행해진다고 하자.
그러면 판본 번호를 올려 표시한다.
그래서 수정이 이뤄졌음을 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주 작은 부분만 수정이 이뤄진 경우라고 하자.
그러면 주번호에-부기번호로 표시하기로 한다.
따라서 각 경우 번호가 높은 번호가 최신수정본에 해당한다.
웹 사이트 자체도 그간 변동이 많았다.
처음에 이용한 사이트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이후 국내외 포털 사이트를 전전하며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글과 사진 편집 편의상 요즘은 그 가운데 한 사이트를 정해 작업해 가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사이트에는 편집파일을 단순히 붙여 올려 놓게 된다.
일단 아래에 그간 웹 사이트 변경 내역을 붙여 놓기로 한다.
현재 판본 [v202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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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주 사이트
SINCE 불기2565-03-19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k0650-t0099-001-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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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보조 사이트
SINCE 불기2565-03-19 https://blog.naver.com/thebest007/222280859486
SINCE 불기2566-09-11 http://buddhism.egloos.com/694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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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업데이트 중단 : 불기2566-09-11 이후 중단 ( 편집상 문제로 기존파일 단순보관 사이트 )
SINCE 불기2566-09-03 https://reality007.tistory.com/17
SINCE 불기2565-04-22 https://thebest007.tistory.com/627
SINCE 불기2554-11-25 https://buddhism007.tistory.com/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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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없어진 사이트
(2022.09 ) https://blog.daum.net/thebest007/627
(2012.07 ) http ://blog.paran.com/buddhism007/41677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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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의부분 표시
♥Table of Contents
▣- 경전내용 - 『잡아함경』 1 무상경
0001. 무상경(無常經)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2)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正觀]이니라.
바르게 관찰한다.
그러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긴다.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긴다고 하자.
그러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또한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한다.
그러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한다.
그러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긴다.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긴다고 하자.
그러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마음이 해탈한 사람이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면 곧 스스로 증득할 수 있다.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했다.
범행은 이미 섰다.
할 일은 이미 마쳤다.
그리고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3)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 고려대장경에는 경명(經名)이 없다.
편의상 경 안에 있는 온타남과 경의 내용을 의거하여 경명을 붙였다.
2) 부처님께서 머무셨던 도량의 하나이다.
수달다(須達多) 장자가 기타(祇陀) 태자(太子)에게 토지를 사서
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보시하자,
기타 태자는 그 동산의 숲을 부처님께 보시하였다.
수달다 장자는 항상 가난하고 외롭게 사는 이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래서 급고독 장자라 불렸다.
따라서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기수급고독원이라 하였다.
3) 7번째 소경인 어색희락경 말미의 올타남(嗢拕南)에 의하면
5온의 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를 관찰하는 것이 낱낱의 소경으로 분류되어 있다.
♥Table of Contents
▣■ 고려대장경 영인본

○ [그림] 08pfl--image\Pitaka-K0650V18P0707a.jpg
♥Table of Contents
▣■ 고려대장경 판본
K0650V18P0707a03L;
如是我聞一時佛住ㅒ舍衛國祇樹給
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當觀色
無常如是觀者則爲正觀正觀者則
生厭離厭離者喜貪盡喜貪盡者說
心解脫如是觀受想行識無常如是
觀者則爲正觀正觀者則生厭離厭
離者喜貪盡喜貪盡者說心解脫如
是比丘心解脫者若欲自證則能自
證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
知不受後有如觀無常苦空非我亦
復如是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잡아함경』(신수, 2. p.001a)
1. 무상경
신수장경 : 2-1a
한글장경 : 잡-1-1
남전장경 : s.22.12~14
팔리어본, 산스크리트본, 독일어본, 영역본, 참조 https://suttacentral.net/
♥Table of Contents
▣■ 팔리본
s.22.12~14
https://suttacentral.net/sn22.12/pi#12-14
12. Aniccasutta
MS SC
Evaṃ me sutaṃ— sāvatthiyaṃ.
Tatra kho … pe …
“rūpaṃ, bhikkhave, aniccaṃ, vedanā aniccā, saññā aniccā, saṅkhārā aniccā, viññāṇaṃ aniccaṃ.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rūpasmimpi nibbindati, vedanāyapi nibbindati, saññāyapi nibbindati,
saṅkhāresupi nibbindati, viññāṇasmimpi nibbindati.
Nibbindaṃ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Paṭhamaṃ
♥Table of Contents
▣■ 영어번역본
https://suttacentral.net/sn22.12/en
Thus have I heard.
At Savatthi…. There the Blessed One said this:
“SC Bhikkhus,
form is impermanent,
feeling is impermanent,
perception is impermanent,
volitional formations are impermanent,
consciousness is impermanent.
Seeing thus, bhikkhus, the instructed noble disciple experiences revulsion
towards form, revulsion towards feeling, revulsion towards perception,
revulsion towards volitional formations,
revulsion towards consciousness.
Experiencing revulsion, he becomes dispassionate.
Through dispassion his mind is liberated.
When it is liberated there comes the knowledge:
‘It’s liberated.’ He understands:
‘Destroyed is birth, the holy life has been lived,
what had to be done has been done,
there is no more for this state of being.
♥Table of Contents
▣■ 요약-
현상의 일체 즉 오온(색ㆍ수ㆍ상ㆍ행ㆍ식)은 무상한 것이다.
그리고 괴로운 것이다.
그리고 공하다.
그리고 <나>가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바른 관찰이다.
그리고 이렇게 바르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상 일체 오온에 대한 기쁨과 탐욕을 끊는다.
그리고 심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해탈지견을 얻는다.
========
♥Table of Contents
▣○ 정관과 염리의 관계
『잡아함경』 0001. 무상경(無常經)은 짧다.
이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제시한다.
즉, 근본적 진리판단과 수행 목표와 방안에 대해 제시한다.
♥Table of Contents
▣○ 경전내용 요약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1 현실 일체는 색ㆍ수ㆍ상ㆍ행ㆍ식 5온이다.
이런 내용이 무상ㆍ고ㆍ공ㆍ비아 (無常,苦,空,非我)인 사실을 보라.
1 이렇게 보면 올바로 진리를 보는 것이다. [정관]
1 이렇게 올바로 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삶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 이들을 싫어하여 떠나야 한다. [염리]
그리고 즐거워함과 탐욕을 다해야 한다. [희탐진]
=> 그래서 마음이 번뇌에 묶인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심해탈]
=> 그러면 해탈상태로서 바라보는 세계관을 얻게 된다.
[해탈지견(=아생이진 범행이립 소작이작 자지불수후유 我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作 自知不受後有)]
♥Table of Contents
▣○ 5온과 현상의 범주
경전 앞 부분에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란 표현이 나온다.
이는 일체 현상세계를 나눈 범주(유개념)이다.
일체 현상세계는 이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포함된다.
현실에서 이 5 항목에 들지 않는 것은 없다.
또한 이 5온은 곧 일반적으로 자신으로 잘못 이해하는 5요소이기도 하다. [5취온]
또 마찬가지로 타인, 타 생명으로 잘못 이해하는 5요소이기도 하다.
♥Table of Contents
▣○ 불교의 기본적 진리
5온은 현실 내용 일체를 포함한다.
이에 대해 다음 기본적 판단이 얻어진다.
1 이들 내용 일체는 하나같이 영원하지 않다 [무상]
이는 생사현실에 대한 사실판단에 해당한다.
1 일체의 생멸하는 현실은 모두 고통과 관련된다. [고]
이는 생사현실에 대한 가치판단에 해당한다.
1 이들 내용의 본바탕 실재는 한 주체가 끝내 얻을 수 없고, 공하다. [공]
이는 현실내용의 본바탕 실재의 측면에 대한 판단이다.
1 현실 내용에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아, 무아, 무자성]
이는 현실내용에 대한 영원불변한 실체의 존부와 관련한 판단이다.
위 네 가지 판단은 일체 모든 것에 공통적으로 성립한다.
또 이들 내용은 열반적정과 함께 불교를 특징짓는 가장 기본적 진리다. [법인 法印= 법의 도장]
아함경은 불교의 근본 경전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문한 이들이 처음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 아함경 첫 부분에 이들 핵심 내용이 나열된다.
자칫 공, 무아는 대승불교만의 특유한 내용으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근본경전인 『잡아함경』 첫 부분에 이들 내용이 제시된다.
이를 통해 근본경전과 대승경전이 상호 관통되어 연결되어 있음도 파악할 수 있다.
♥Table of Contents
▣○ 일체에 공통된 내용
일체는 무상ㆍ고ㆍ공ㆍ비아(무아) 및 열반적정이다.
이들 내용은 현실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공통 적용된다.
현실에 각 개별 현상별로 각기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호랑이는 어떠어떠하다고 말한다.
또는 소나무는 어떠어떠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 내용은 다른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일체가 그렇다라고 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위 내용은 그렇지 않다.
모든 현실 내용에 공통된다.
따라서 위 내용은 일체에 공통되는 가장 기본적 진리다.
위 내용은 우주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일체에 대해 적용된다.
또 사후 어느 세계에 태어나도, 마찬가지다.
모든 현상이 이와 같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달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체에 대해 가장 기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된다.
♥Table of Contents
▣○ 개인적인 삶의 기본목표
무상ㆍ고ㆍ공ㆍ비아(무아)에 대한 기본 진리를 이해했다고 하자.
이후 이에 바탕해 삶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올바른가.
이에 대해 경전에서 다음 내용이 이어 제시된다.
이처럼 바르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염리, 희탐진]
그래서 탐욕 등의 온갖 번뇌를 끊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심해탈]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다음 사실을 증득하게 된다.
즉, '망집에 바탕해 있다고 여긴 나의 생이 있었다.
이런 생은 이미 다했다.
범행(청정한 수행)은 이미 섰다.
생사현실에서 해야 할 일은 이미 마쳤다.
이후로 다시 망집에 바탕해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증득하게 된다.
생사현실에서 어리석음에 바탕해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집착하여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간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풀려난 상태를 해탈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도달하는 상태를 니르바나(열반)라고 칭한다.
올바른 깨달음으로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이로 인해 해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니르바나의 상태를 증득하게 된다.
그래서 아라한의 상태가 된다.
여기서 아라한은 수행자가 개인적으로 수행의 최종적 목표를 성취한 상태다.
망집에 바탕한 업을 중단한다.
그리고 올바른 선업과 청정한 수행[범행梵行]을 닦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3악도 생사고통을 벗어난다.
그리고 잘못된 망상분별과 번뇌, 집착을 남김없이 제거한다.
그리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아라한의 지위에 이른다.
따라서 이는 불교 수행의 가장 기본적 목표가 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아함경 첫 부분에 담겨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처음 입문한 상태라고 하자.
이런 경우 수행자가 처음 배워야 할 근본 경전이 아함경이다.
수행자가 평소 세속에서 어떤 일정한 생활을 했을 수 있다.
또 평소 어떤 특정한 견해를 갖고 살아왔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든 마찬가지다.
이런 이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처음 출가했다고 하자.
또는 어떤 이가 집에 머물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와 같은 가르침을 가장 처음 받아 배우기 시작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방대하다.
그런데 이런 방대한 설법을 통해 전해주고자 하는 가르침의 핵심이 있다.
그 핵심들이 이 짧은 경전에 포함되어 나열된다.
아함경의 이 첫 부분이 이해가 잘 이뤄진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불교 수행을 원만하게 잘 실천해갈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 부분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부처님의 다른 가르침도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수행을 포기하기 쉽다.
또는 수행을 하더라도 원만히 행해나가기 곤란하게 된다.
또는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행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 첫 부분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Table of Contents
▣○ 5온과 무상ㆍ고ㆍ공에 대한 의문내용
『잡아함경』은 짧다.
그러나 불교의 핵심적 내용이 이 안에 제시된다.
그래서 이해가 쉽지 않다.
대부분 상식적 입장에서 생사현실을 대한다.
그런 가운데 경전을 처음 대하는 경우라고 하자.
이런 경우 이들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여러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의문들을 나열해 살펴보기로 한다.
● 색ㆍ수ㆍ상ㆍ행ㆍ식 5온의 의미
우선, 경전에서
"색(色)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또한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
라고 제시된다.
그런데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란 일반적으로 낯선 표현이다.
그래서 우선 이들 표현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색ㆍ수ㆍ상ㆍ행ㆍ식 5온 분류의 의미
불교에서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제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한 주체가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자신과 현실 세계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이런 자신과 현실세계가 이 색ㆍ수ㆍ상ㆍ행ㆍ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 판단한다고 하자.
이 경우 곧 현실 일체에 대해 모두 판단함이 된다.
이 경우 다시 다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자신과 세계를 왜 색ㆍ수ㆍ상ㆍ행ㆍ식으로 분류하는가.
또 이것이 왜 일체를 포괄하는 내용이 되는가.
이렇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한편 자신을 포함해 세계 일체에 대해 판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왜 이처럼 색ㆍ수ㆍ상ㆍ행ㆍ식으로 나누어 관찰하는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일체를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보는 근거
색ㆍ수ㆍ상ㆍ행ㆍ식 5온은 현실내용 일체를 뜻한다.
그런데 다시 이들은 모두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들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또 일체가 그와 같다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왜 바른 관찰이 되는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경전에서는 짧게 결론만 제시된다.
그리고 그 의미와 근거는 자세히 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 무상ㆍ고ㆍ공ㆍ비아를 근거로 싫어하여 떠날 이유
한편, 현실 일체가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하자.
즉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이 모두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하자.
그런 경우 다시 다음 의문을 갖게 되기 쉽다.
일체가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하자.
그렇다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는가.
또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는가. [염리厭離, 희탐진喜貪盡]
한편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반드시 그런 상태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또 그에 대해 싫어할 필요가 있다고 하자.
그래서 이들이 무상ㆍ고ㆍ공ㆍ비아임을 관한다,
그런 경우 그처럼, 싫어하여 떠나는 일이 잘 성취되는가.
또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상태[염리, 희탐진]가 잘 성취되는가?
이런 의문도 가질 수 있다.
경전에서는 다음처럼 제시한다.
"색(色)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또한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
괴로움, 공, 나가 아님도 같다.
이렇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긴다.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긴다고 하자.
그러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
그런데 일체가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로 인해 싫어할 마음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사실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다고 이로 인해 곧바로 현실을 싫어할 마음을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현실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성을 사랑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우선 음식을 영원하다고 여겨 좋아한 경우는 드물다.
또 아름다운 이성이 영원하리라 여겨 좋아하는 경우도 드물다.
한편 이제 이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갖는 경우도 드물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세상의 것들이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임을 잘 이해한다.
또 어떤 것이 한 순간밖에 얻을 수 없음도 잘 이해한다.
즉 이들 일체가 덧없음도 잘 이해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더 갈증을 일으켜 애착을 갖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어떤 소원이 성취되어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딱 한 번이라도 어떤 소원을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애착을 갖는 대부분 사정이 이와 같다.
그래서 다음 의문을 갖기 쉽다.
어떤 이가 현실 일체가 무상ㆍ고ㆍ공ㆍ비아 등을 관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이로 인해 어떤 이가 현실 일체를 반드시 싫어하게 되는가.
그리고 떠날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가.
이처럼 의문을 갖기 쉽다.
한편 다음 의문도 가질 수 있다.
현실 일체가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하자.
그렇다고 반드시 이에 대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가.
이처럼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일반적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음처럼 의문을 갖기 쉽다.
현실에서 자신이 좋아하고 애착을 갖는 것이 많다.
그리고 이것들이 자신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것을 굳이 싫어하고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또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을 굳이 없앨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편, 일체에 대해 기쁨과 즐거움을 없애야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오히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걱정하게도 된다.
평소 현실에 대해 집착을 갖고 임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계기로 이들이 무상ㆍ고ㆍ공ㆍ비아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이해만으로 현실에 대한 집착을 잘 버리지 못한다.
이런 경우 위와 같은 경전 내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위와 같은 의문을 놓고 그 사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무상ㆍ고ㆍ공과 수행목표
한편, 경전에서는 해탈지견 내용을 다음처럼 제시한다.
즉 어떤 이가 현실의 정체에 대해 바르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긴다고 하자.
그러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그래서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을 심해탈이라 한다.
...
그리고 이렇게 마음이 해탈했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이가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면 곧 스스로 해탈을 통해 얻는 지혜의 내용[해탈지견]를 증득할 수 있다.
이렇게 제시한다.
즉,
'나의 생은 이미 다했다.
범행은 이미 섰다.
할 일은 이미 마쳤다.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
[아생이진... 불수후유]..
이런 내용이다.
결국 수행자는 현실을 올바로 관함으로 마음의 해탈(심해탈)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심해탈을 통해 위와 같은 상태를 증득한다.
그래서 이런 해탈지견은 불교에서 성취해야 할 목표가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 다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우선 이런 해탈지견을 얻는 상태는 과연 어떤 상태인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해탈지견의 내용
심해탈을 통해 해탈지견을 증득할 수 있다.
해탈지견 내용은 다음이다.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후생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등이다.
[아생이진... 불수후유]
그런데 이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세상에서는 다음 견해를 갖는 경우도 있다.
우선 죽은 뒤 ‘자신은 아주 없어진다."
'그래서 자신과 관련된 것은 이후 아무 것도 없게 된다’
그리고 죽은 뒤에는 다른 생명형태로 윤회하지 않는다.
이런 견해를 갖는 경우가 있다.
이를 단견(斷見)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단견을 부정한다.
그리고 중생들이 망집을 제거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무한히 생사윤회를 반복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여기에서 다음을 제시한다.
심해탈을 통해 후생의 몸을 받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래서 이에 대해 다시 다음 의문을 갖게 된다.
후생 몸을 받지 않는다고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런데 이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이는 단견과 같은가?
즉 죽음 이후 아무 것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이와는 다른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 수행목표 상태와 일반 상태의 차이점
한편, 수행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그런데 이는 현실 일반 상태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수행을 행한다고 하자.
그래서 최종적으로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그래서 해탈지견을 증득한다.
그런 경우 일반적인 상태와는 어떤 차이가 있게 되는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무상ㆍ고ㆍ공ㆍ비아와 수행목표 상태의 관계
수행목표 상태는 일반 현실 상태와 일정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 일체에 대한 근본판단과 관련해 다시 다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즉, 처음 일체가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이런 수행목표 상태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일체는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수행으로 심해탈 상태가 된다.
그리고 해탈지견을 얻는다.
그러면 이제 무상ㆍ고ㆍ공ㆍ비아 '아닌' 상태가 되는가.
이렇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만일 심해탈이나 열반 상태는 무상ㆍ고ㆍ공ㆍ비아 상태가 아니라고 하자.
그러면 무상ㆍ고ㆍ공ㆍ비아가 아닌 경우도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일체가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처음 제시한 내용은 잘못이라고 해야 한다.
한편, 해탈과 열반도 일반 상태처럼 역시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하자.
그렇다면 수행목표 상태는 일반 현실과 어떤 의미 있는 차이를 갖는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런 전제에서 다시 다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 수행목표와 염리, 희탐진
심해탈 상태가 되어도 여전히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 상태 역시 무상ㆍ고ㆍ공ㆍ비아다.
따라서 다시 염리 희탐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즉, 수행목표 상태도 현실 내용처럼 역시 싫어하고 떠나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 수행의 근거
심해탈에 이르러도 여전히 무상ㆍ고ㆍ공ㆍ비아라고 하자.
그러면 이런 점에서는 일반 현실과 차이가 없다.
그런 경우, 수행을 통해 심해탈을 굳이 얻어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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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일반 상태와 어떤 차이가 있어야 이를 행할 필요성이 있다.
불교를 처음 대할 경우 이런 여러 의문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를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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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일반적으로 경전 내용에 대해 이런 의문들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아래에서 이들 내용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Table of Contents
▣- 법문의 이해와 실천 수행의 순서
『잡아함경』은 간결하다.
그리고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에 불교 핵심적인 사항이 들어 있다.
그래서 불교를 처음 접한 경우 이런 여러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일일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된다.
물론 부처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 바로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장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도 그런 자세가 낫다.
그처럼 '실천 수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따른 수행결과를 얻는다.
그런 경우 법문 내용 이해를 훨씬 쉽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실천을 우선 행하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그 의미를 점차 이해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처님 말씀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의미를 묻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불경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앞과 같은 사정으로 그 내용을 먼저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당장 내용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이기에 무조건 믿고 받아들인다.
그런 가운데 이를 실천해간다.
그러면 그로 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이들 가르침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이해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결과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경전 가르침을 믿고 바로 실천 수행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내용 이해는 이후 천천히 시간을 내, 이해하고 증득해가는 것이 낫다.
물론 내용 이해가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순서가 위와 같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불교에 관심을 가졌다고 하자.
그런 경우 우선 이들 내용을 바로 실천하는 것이 좋다.
즉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대부분 애착과 탐욕을 갖고 생활한다.
이에 대해 일단 경전 가르침을 적용하여 임한다.
그래서 경전에서 제시된 방식으로 관한다.
그리고 집착을 내려 놓는다.
그리고 마음의 해탈을 얻는 노력을 한다.
세상에서 애착을 갖는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가족, 지위, 명예...등이다.
그리고 이외 자신과 자신의 것과 관련된 것들, 그리고 세계 일체에 집착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색ㆍ수ㆍ상ㆍ행ㆍ식 가운데 하나에 포함된다.
그래서 이들 색, 수, 상, 행 식의 정체에 대해 먼저 올바로 관한다.
그래서 이들이 영원하지 않고, 고통이며, 참된 진짜가 아닌 무아며, 공임을 이해한다.
그래서 잘못된 망상분별을 제거한다.
그래서 이들이 집착을 가질만한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에 대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묶인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평안한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 망상분별에 바탕해 집착을 갖고 대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이에 대한 망집을 다 제거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사라지고 없어진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평안한 상태에 머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어 가진다.
그러면 이를 통해 마음의 해탈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해탈지견을 얻게 된다.
그래서 이런 노력을 먼저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상태에서 이후 이들 내용의 이해를 해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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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과 법문의 이해
경전내용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다.
그런 사정으로 무조건 진리라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즉 경전내용은 부처님이 제시했다.
그래서 이를 무조건 믿고 따르라고 권위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은 아니다.
이들 내용의 의미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불교 수행의 하나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올바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이 곧 수행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다음처럼 제시한다.
‘진리에 의존하고 자신에 의존하라.’
그래서 각 경전 내용을 스스로 잘 이해하고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일반적 의문사항을 나열하고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잡아함경』 첫 부분은 다른 대승경전을 이해하고자 할 때도 필요하다.
따라서 다른 대승 경전 내용도 관련되면 함께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다만 불교 특수용어는 일반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급적 피하기로 한다.
한편, 각 사항마다 논의를 구분해 살펴가기로 한다.
필요한 내용은 중복되더라도 각 부분에 반복 기재해가며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되도록 기초적 내용에 대해 간결하게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이후 다시 살펴나가기로 한다.
◧◧◧ para-end-return ◧◧◧
♥Table of Contents
▣○ 생사고통과 현실의 정체 이해
『잡아함경』 첫 부분에서 5온 내용이 제시된다.
그리고 무상ㆍ고ㆍ무아ㆍ공 내용이 제시된다.
그리고 심해탈ㆍ해탈지견 내용이 나온다.
이들 각 개념은 상당히 어려운 주제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무엇을 5온이라고 하는가.
왜 일체가 5온에 포함되는가.
그리고 이들 현실 일체는 왜 무상ㆍ고ㆍ무아ㆍ공인가.
그리고 이들 현실내용의 정체를 올바로 관한다고 하자.
그러면 왜 심해탈을 이루게 되는가.
또 심해탈을 이룬다고 하자.
그러면 왜 현실의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이런 등등의 어려운 주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는 현실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는 대단히 깊고 복잡한 철학적 주제와도 관련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많다.
그런데 『잡아함경』은 불교에 처음 입문한 이가 대하는 기본 경전이다.
그런데 이처럼 처음부터 현실에 대한 올바른 관찰을 강조한다.
본래 수행이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생사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 대해 올바른 관찰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현실에 대한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사정으로 처음부터 현실에 대한 올바른 관찰이 강조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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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 입장에서 수행에 들어가는 기본 계기
일반인도 좋음을 추구한다.
그리고 나쁨을 제거하려 한다.
이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세속에서 일반인이 취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수행방안은 이들과 방향이 크게 다르다.
『잡아함경』 첫 부분에서도 이런 사정을 볼 수 있다.
...
현실일체인 5온을 싫어하여 떠난다.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을 없앤다.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
이런 내용이 제시된다.
수행을 통해 생사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수행방안은 세속입장과 전혀 반대 방향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그처럼 내용이 제시되는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데에는 크게 다음의 사정이 있다.
- 우선 세계와 한 주체의 본 정체 파악에 차이가 있다. [실상론]
- 그런 가운데 한 주체의 삶으로 고려하는 기간에 차이가 있다. [단멸관]
- 또 인과관계의 파악에도 차이가 있다. [연기론]
- 그리고 무엇이 더 나은가라는 가치판단에도 차이가 있다. [수행론]
- 그리고 목표와 이를 성취하는 방안에서도 차이가 있다. [수행론]
일반적으로 망집을 일으켜 임한다.
그래서 이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한다.
그런 가운데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한다.
이 각 경우 실상을 꿰뚫어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관해야 한다.
그리고 각 내용의 관계를 넓고 길고 깊게 올바로 관찰해야 한다.
이런 경우 앞 입장과 결론을 정반대로 서로 차이 나게 만든다.
따라서 각 내용을 올바로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잘못된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일반입장에서 수행에 임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기본적으로 단멸관의 제거가 필요하다.
한 주체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경우 그 주체와 관련된 것은 모두 끝이다.
이렇게 잘못 여기기 쉽다.
이를 단멸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단멸관을 취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오로지 한 생만 고려해 가치판단을 행하기 쉽다.
따라서 세속에서는 대부분 현재 1생만 고려하며 삶에 임한다.
그리고 사후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생사윤회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사후 생을 고려한다고 하자.
그러면 비로소 넓고 길게 가치판단을 행하게 된다.
그런 경우 1생만 고려하며 행하는 가치판단과는 완전히 방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는 세속적 입장과 크게 다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가치판단이 세속을 떠나 수행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수행을 하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수행을 행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가장 먼저 단멸관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과정의 인과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망집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망집의 뿌리가 대단히 깊다.
그래서 일반적 상태에서는 이런 내용에 대해 깊은 이해가 곤란하다.
따라서 처음 상태에서는 일단, 부처님 가르침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되더라도 일단 믿음에 바탕해 수행을 실천한다.
그러면 일단 생사고통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복덕을 구족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수행에 따른 결과를 직접 증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또 직접 이들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떤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내용을 잘 실천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우선, 현실 입장에서라도 가치판단부터 잘 행해야 한다.
현실에서 가치가 적은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그로 인해 가치가 보다 큰 것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치가 훨씬 큰 내용들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일단 가치가 적은 것은 마음에서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가치가 큰 것에 초점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올바로 가치 판단을 한다.
그러면 먼저 생명의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생사과정에서 고통을 제거함이 중요함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생사과정에 이해가 깊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아직 완전히 단멸관을 제거하기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사후 상태에 대해 어느 입장이 옳은지를 잘 모른다.
그런 경우 사후의 다양한 가능성을 일단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의 생만 고려할 경우도 있다.
한편 사후 생까지 고려할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어느 경우나 모두 좋은 상태를 얻어낼 방안을 찾는다.
그래서 1생의 삶만 고려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가장 가치 있는 상태는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에서는 처음 이런 판단을 통해 수행을 시작할 수 있다.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상태를 추구한다고 하자.
그러면 수행을 시작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기본적 가치문제부터 먼저 자세히 살펴야한다.
물론 이는 수행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 입장에서 이런 기초적 판단부터 잘 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세속적인 입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계속 망집에 바탕해 현실에 임하게 된다.
일반적 입장에서 처음 수행을 시작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일반적인 입장에서 세속의 가장 기본적 내용부터 살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수행에 들어설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를 아래에서 먼저 자세히 살피기로 한다.
♥Table of Contents
▣- 기초적으로 세속의 묶임에서 벗어나기
일반적 입장은 망집의 뿌리가 깊다.
그런 가운데 좁게 자신만 집착해 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짧게 단멸관을 일반적으로 취한다.
즉, 삶의 문제를 1생에 국한해 짧게 관한다.
그리고 자신이 초점을 맞추는 측면만 집착한다.
또한 인과 판단도 넓고 길고 깊게 잘 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가치 판단을 잘못 행한다.
그런 가운데 삶의 목표를 잘못 설정한다.
그리고 또 이를 잘못된 방식으로 추구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우선 다양한 상태를 놓고 가치판단부터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먼저 잘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과정에서 심한 고통을 받지 않는 상태가 갖는 가치를 잘 인식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본적으로 세속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가운데 처음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적으로 단멸관을 제거한다.
그래야 비로소 경전에 제시되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기로 한다.
♥Table of Contents
▣- 고통의 임시적 제거와 근본적 제거 방안
망집을 바탕으로 생사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에 바탕해 좋음과 나쁨을 섞어 받게 된다.
현실에 좋음ㆍ나쁨ㆍ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음ㆍ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상태가 섞여 있다.
그런 가운데 생활 과정에서 어떤 나쁨을 겪는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우선 그 나쁨을 제거하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감기가 걸려 고통 받는다.
그러면 일단 약을 먹고 낫기를 원한다.
그러다가 다시 어깨가 아프다고 하자.
그러면 또 치료를 받아 통증을 없애기를 원한다.
이처럼 처음에는 생활에서 겪는 고통을 하나하나 제거하기를 원한다.
당장 고통에 직면하게 되면 수행도 힘들다.
따라서 당면한 고통을 제거하는 노력아 필요하다.
생사현실에서는 당장 간난신고의 고통을 겪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문제부터 잘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건강을 심하게 해치는 질병,
생계마저 해결하기 힘든 심한 가난,
노예처럼 묶여 지내는 신분적 예속,
또는 죄를 범해 감옥에 구금된 상태
이런 상태부터 우선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당면하는 고통을 하나하나 제거한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생사고통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고통의 근본적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은 단순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의 근본을 끊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결국 수행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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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고 짧고 얕은 관찰과 넓고 길고 깊은 관찰
일반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좋음을 얻기를 원한다.
그리고 좋음을 얻기 위한 여러 수단적 방편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건강ㆍ장수ㆍ시간ㆍ공간ㆍ즐거움ㆍ지혜ㆍ지식ㆍ미ㆍ인격,
직업ㆍ물질적 풍요ㆍ좋은 인간관계ㆍ사랑ㆍ결혼ㆍ가정ㆍ권력ㆍ지위ㆍ자유ㆍ여가를 원한다.
그리고 또 타인ㆍ사회ㆍ자연에 대한 다양한 희망을 추구한다.
그리고 이런 희망을 성취해 갈증, 불만, 불쾌를 해소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만족ㆍ기쁨ㆍ즐거움을 얻기를 원한다.
그리고 짜증, 우울함, 슬픔, 분노를 제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죄책감, 비난, 불안, 초조, 긴장, 강박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장래에 대한 두려움, 걱정, 공포를 제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생활에서 재미ㆍ웃음ㆍ보람ㆍ가치ㆍ평온ㆍ안정을 누리고자 한다.
그리고 의욕 없이, 무기력하고, 무료함에 빠진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의욕에 찬 생활을 원한다.
그런 가운데 아름답고 선한 희망을 추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런 가운데 일반적으로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해 삶에 임하기 쉽다.
즉 '좁게'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만 집착한다.
그리고 '짧게' 지금 당장의 순간만 고려하기 쉽다.
그리고 단멸관에 바탕해 길어도 자신의 1생 범위로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얕게' 자신이 초점을 맞춘 일부 측면만 관심을 둔다.
그러나 현실을 '넓고ㆍ길고ㆍ깊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 나쁨을 제거하고 좋음을 얻어낼 방안을 찾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좁고 짧고 얕은 관찰과는 대부분 반대 방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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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고 길고 깊은 관찰에 바탕한 좋음
수행방안과 일반적인 세속의 입장 차이는 먼저 가치판단 방식에 있다.
즉, 좋음에 대한 가치 판단에 차이가 있다.
먼저 단순히 나쁨과 '나쁘고 나쁨'은 차이가 있다.
단순히 자신에게 지금 당장 일정한 측면에서만 나쁨을 주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나쁨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자신도 나쁘고, 남도 나쁘고, 온 생명이 차별 없고 제한 없이 나쁘다.
그리고 지금도 나쁘고, 나중도 나쁘고, 오래오래 나쁘다.
그리고 이 측면도 나쁘고, 저 측면도 나쁘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에서 나쁜 경우가 있다.
한편, 좋음에도 단순히 좋음과 '좋고 좋음'은 차이가 있다.
단순히 자신에게 지금 당장 이 측면에서만 좋음을 주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어떤 좋음은 다음과 같다고 하자.
자신도 좋고, 남도 좋고, 온 생명이 차별 없고 제한 없이 좋다.
그리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오래오래 좋다.
그리고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에서 좋다고 하자.
이들은 단순한 고락과 선악의 차이에 상응한다.
이 두 내용은 차이가 크다.
삶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하고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얻고자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생사현실에서 나쁨은 일체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온 생명이 차별 없고 제한 없이 좋음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장구하게 좋음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두루두루 좋음을 얻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일체 고통과 악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생명이 다 함께 번뇌를 제거하고 생사고통을 제거한다.
그래서 자리이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서원을 성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스스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다.
그리고 다른 중생도 이를 구족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성불과 중생제도의 서원을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서원을 유희ㆍ자재ㆍ신통을 바탕으로 실천해나가야 한다.
물론 이런 내용은 너무 이상적인 요구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가운데 어느 부분이 결여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부분이 곧 삶의 생사고통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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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원과 서원의 가치
세속에서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는 다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각 주체는 제각각 모두 일정한 좋음을 얻고자 한다.
일반적인 소원은 주어가 보통 1인칭 자신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병이 낫게 되기를 바란다.
자신이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형태로 되어 있다.
그 주체 입장에서는 그런 상태가 좋음을 준다.
그러나 다른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에게 좋음을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신이 당장 배고픔을 면하려고 닭을 잡아먹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대는 생명과 신체를 침해받는다.
그래서 이런 업은 각 주체 간에 가해 피해관계를 쌓게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업장이 쌓인다.
그래서 이로 인해 자신이 고통을 되돌려 받아가게 된다.
이 사정을 자신을 놓고 이해해보자.
어떤 다른 주체가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해쳤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은 그에게 동등한 해를 끼쳐 보복하려 하게 된다.
이는 다른 주체를 장애하고 방해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런 가운데 그처럼 보복하려는 뜻이 성취된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주체는 고통을 돌려받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후 서로 입장이 바뀌게 된다.
그러면 이후 다시 상대가 그런 노력을 해나간다.
그래서 이후 이런 관계를 반복해간다.
그런 가운데 각 주체 간에 가해ㆍ피해 관계가 중첩된다.
결국 어떤 한 주체가 자신 입장에서 당장의 좋음만을 추구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는 다른 주체의 좋음을 침해하는 관계가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 각 주체들이 이를 놓고 다툼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이 각 주체를 생사고통에 묶이게 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각 주체의 업의 장애가 된다.
그래서 각 주체의 뜻의 성취가 대단히 힘들게 된다.
그리고 비록 성취되더라도 오래 유지되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이를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경우는 얻게 되는 좋음보다 나쁨이 많게 된다.
반면 어떤 희망이 다음과 같다고 하자.
예를 들어 자신도 좋고, 남도 좋고, 온 생명이 차별 없이 좋다.
또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오래오래 좋다.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모든 측면이 좋다.
이런 경우는 앞과는 다르다.
어떤 이가 이처럼 온 생명을 제한 없고 차별 없이 좋은 상태를 추구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우선 뜻의 성취를 방해하는 장애가 제거된다.
그리고 방해하던 힘은 성취를 돕는 에너지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그 뜻의 성취가 상대적으로 쉽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정으로 성취된 상태도 이후 오래 유지되게 된다.
이 두 경우는 좋음의 수와 양과 기간과 질이 다르다.
처음의 경우는 자신 입장에서 당장 일정한 측면에서의 좋음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온 생명이 오래오래 두루두루 좋음이 된다.
그래서 이런 상태가 갖는 좋음의 수와 양과 기간과 질이 훨씬 크다.
따라서 그 가치가 훨씬 크다.
따라서 평소 희망 내용을 이런 형태로 바꿔 추구한다.
이런 자세가 바람직하다.
한 주체가 갖는 희망을 이처럼 가치 있는 형태로 쉽게 바꿔 갖는 방안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병에 걸려 병이 낫기를 바란다고 하자.
이런 소원 내용에서 주어를 우선 온 생명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다시 피해를 받는 다른 주체가 없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래오래 그런 상태가 유지될 방안을 찾는다.
또 다른 측면에서도 더 좋은 상태가 얻어질 방안을 찾는다.
이런 형태로 희망을 바꾼다.
그러면 처음 희망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 내용이 된다.
그러면 곧 수행자의 서원에 가까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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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바탕한 가치판단의 문제점
삶에서 일반적으로 잘못된 가치판단을 행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사정이 있다.
우선 하나의 현실에서 잘못된 가치 판단을 행하는 사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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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외관에 드러나지 않는 내용들
가치 판단과정에서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이 사정을 상자로 비유해 살펴보자.
어떤 이가 상자를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우선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기 힘들다.
한편, 상자가 나타나게 된 과정을 보기 힘들다.
또 그 상자가 장래 변화될 내용도 보기 힘들다.
한편, 먼 곳에 놓인 상자는 역시 보지 못한다.
또 앞에 장애물이 놓여 있어도 보지 못한다.
또 어두워도 내용을 잘 보지 못한다.
한편 눈에 질병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눈을 감아도 보지 못한다.
또 상자를 보게 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단지 상자에 붙여진 라벨과 가격표에만 초점을 맞추기 쉽다.
그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색상이나 형태 및 다른 질적 측면들을 모두 외면하기 쉽다.
이처럼 상자 하나를 대할 때도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또 각 내용을 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고려할 도리가 없다.
가치를 판단할 경우에도 사정이 같다.
그래서 가치판단과정에서 이처럼 많은 것을 빠뜨리기 쉽다.
그리고 단지 초점을 맞춘 일부 내용만 고려하기 쉽다.
그런 가운데 잘못된 가치 판단을 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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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주체의 내면 내용
한 주체는 주로 자신만 고려하며 임하기 쉽다.
그래서 다른 이의 입장은 잘 의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무언가에 대해 각 주체가 얻는 느낌, 분별이 있다.
그러나 다른 주체의 마음안 내용은 서로 간에 의식하지 못하기 쉽다.
그런 가운데 외관으로 드러난 것만 주로 고려한다.
그래서 외관에 드러나지 않는 내용은 고려에서 빠뜨리게 된다.
따라서 잘못된 평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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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점 외 잠재된 내용
한편 각 주체는 세상 모든 내용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가치 있는 것을 모두 미리 고려하지 못한다.
특히 경험과 지식이 적은 경우 이런 경향이 심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닫힌 좁은 경험 범위에서 일정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주로 자신의 희망에 치우쳐 초점을 맞춘다.
그런 경우 초점을 맞춘 것은 그 실질보다 가치가 크다고 잘못 여긴다.
이는 현미경으로 작은 물건을 대하는 경우와 같다.
그런 경우 초점에 맺힌 것만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미세한 것을 마치 우주 전부인 양 여기기 쉽다.
현실에서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해 임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경우 다음 문제가 있다.
현실의 고와 낙은 서로 상대적 관계로 분별해 얻는다.
그래서 일정한 좋음에는 그 배후에 상응한 나쁨이 전제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시합에서 이겨 좋아한다.
이런 경우 이기지 못한 다른 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또 뜻을 지금 성취해 좋아한다.
그것은 다른 경우에 뜻이 성취되지 않아 좋아하지 않는 상태가 전제된다.
또 보석이 빛나 좋다고 여긴다.
그런 경우 그 외 나머지 부분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된다.
그런 경우 표면에 드러나는 좋음에 초점을 맞춘다고 하자.
그러면 의식 표면에서 좋지 않음은 일단 숨는다.
그러나 좋음을 얻는 뒷면에 그런 내용이 잠재되어 있다.
다만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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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의 감각, 느낌에 치중
장래나 먼 곳의 일, 또는 다른 주체의 입장은 이성적 분별로 헤아린다.
그러나 당장 대하는 현실은 감각과 느낌, 감정이 동반된다.
그래서 각 주체는 당장 대하는 현실에 좀 더 치우친다.
그래서 장래나 먼 곳의 현실은 외면하기 쉽다.
그래서 판단과정에서 이를 빠뜨린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가치 판단을 잘못 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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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과에 대한 무지
각 현실 내용은 인과관계상 서로 묶여 있다.
현실의 한 내용은 다양한 다른 요소와 결합한다.
그리고 다양한 결과를 만든다.
그런 사정으로 현재 내용은 과거의 다양한 내용과 인과관계로 묶여 있다.
또 미래의 많은 내용도 현재와 인과관계로 묶여 있다.
이처럼 하나의 현실 내용에 많은 원인과 결과가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각 내용은 각기 많은 좋음과 나쁨에 관련된다.
예를 들어 어떤 좋음을 얻기 위해서 인과관계상 일정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원인 과정이 고통을 주는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좋음이 나중에는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그와 인과관계로 묶인 전 과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선택으로 나타날 결과는 다양하다.
그래서 이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이들 내용은 당장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당장 보이지 않는 과거 원인이나 미래 결과를 빠뜨린다.
결국 판단과정에서 이런 사정으로 잘못 판단하기 쉽다.
망집에 바탕해 탐욕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좋음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이는 다른 주체들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
그리고 장래 다른 측면에서 고통을 되돌려 주게 된다.
결국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해 좋음을 추구한다고 하자.
이는 나중에 되돌려 받는 나쁨과 인과상 묶여 있다.
또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지금 이 측면에서 얻는 좋음이 있다.
이는 하나의 좋음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나쁨을 얻게 되는 주체는 무량할 수 있다.
또 장래 무량겁에 걸쳐 이로 인해 돌려받는 나쁨도 무량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 들어 있는 나쁨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 얻는 좋음보다 나쁨이 더 많게 된다.
그러나 당장에는 이런 내용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빠뜨린다.
그리고 잘못 판단하기 쉽다.
따라서 이런 내용을 늘 미리 잘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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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가격에 의한 판단
오늘날 필요한 물건을 대부분 시장에서 구한다.
그래서 시장이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크다.
시장에서는 물건마다 가격이 숫자로 매겨진다.
그래서 시장 가격은 대부분 뚜렷이 명확하게 의식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시장가격을 곧 가치 기준으로 잘못 여기기 쉽다.
그래서 시장가격의 배후에 있는 실질적 가치를 평소 잘 분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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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질 가치 및 효용과 시장가격
예를 들어 시장에서 물건이 희귀하다고 하자.
그러면 시장가격이 높아진다.
반면 물건이 흔하다고 하자.
그러면 시장가격이 낮아진다.
시장가격이 비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만큼 효용을 많이 얻을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반면 시장가격이 싸다고 하자.
그러면 효용이 적을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시장 내 교환가격과 효용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우선 시장가격은 물건을 거래 시에 기능한다.
본래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항목이라고 하자.
이런 경우 시장가격은 가치의 척도가 되기 곤란하다.
예를 들어 소비만을 목적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라고 하자.
이런 경우 시장가격은 효용을 얻는데 들이는 비용일 뿐이다.
그런데 소비자가 사용으로 얻는 효용이 있다.
이는 숫자로 제시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비용인 시장가격만 명확하게 의식된다.
그래서 시장가격만을 곧 가치로 판단하기 쉽다.
그런 경우 왜곡된 가치판단을 행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이 흔하다.
그래서 시장가격이 낮다.
그러나 사용 시 얻는 효용이 큰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공기나 물과 같은 것이다.
한편 최종적으로 지니고 사용함에 목적이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추억으로 지니는 기념품과 같다.
이 역시 시장가격이 낮다.
한편, 가치가 높아도 그 특성상 남에게 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생명 및 신체도 이와 같다.
예를 들어 눈과 귀 손과 발과 같은 것이다.
또 자신의 고유한 인격적 성격이나 생활 경험도 그렇다.
그 외 부모나 가족, 그 외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은 삶에서 그 가치가 높다.
그러나 이들은 시장에서 매매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숫자로 평가되지 않는다.
따라서 평소 그 가치를 잘 의식하지 못한다.
가치를 헤아려도 단지 모호하게 헤아린다.
그래서 명확히 의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가치가 높다고 여긴다.
그러나 정확히 얼마나 높은지는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그저 대강 높다고 모호하게 여긴다.
그래서 이들을 상실할 상황이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비로소 그 가치를 뚜렷하게 의식한다.
그런데 오직 시장가격만 고려해 선택한다고 하자.
그러면 소중한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잃어버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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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 보이지 않은 수익과 비용
생존에 필요한 물품이 있다.
이를 오늘날 시장을 통해 구한다.
따라서 시장가격은 수행자나 일반인 모두에게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한편 오늘날 시장 판매를 위해 재화 및 용역을 생산 공급한다.
그런 가운데 풍요로운 생활을 추구한다.
또 상인은 시장에서 매매 행위를 통해 차익을 구한다.
이런 경우 시장가격은 물건을 사고 팔 때 가치척도로 기능한다.
이런 입장에서 매 순간 시장가격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시장가격이 가치척도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한편, 시장에서는 흔한 것은 가격이 싸다.
그리고 소수만 가질 수 있고 희귀한 것은 가격이 비싸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소수만 갖는 희귀한 것에 초점을 맞춘다.
소수만 차지하는 지위나 명예 등도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잘못된 가치판단을 행하기 쉽다.
한편, 교환에는 화폐가 사용된다.
화폐는 다양한 재화를 구입할 가능성을 갖는다.
따라서 화폐는 교환가치를 대표한다.
그래서 화폐 보유액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가운데 삶에 임하기 쉽다.
그런데 올바른 가치판단을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우선 눈에 보이지 않는 수익과 비용을 잘 헤아려야 한다.
한편 화폐의 실질 가치도 잘 헤아려야 한다.
현실에서 좋음을 얻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누구나 어떤 활동을 하게 된다.
그것은 사업이거나 취업준비 활동일 수 있다.
이는 수행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그 결과로 얻는 이익 복덕이나 손해 고통을 미리 헤아려야 한다.
또 다른 선택 결과도 함께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비교해야 한다.
그런데 장래 이익 대부분은 눈에 당장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선택으로 받을 고통이나 손해도 당장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이에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도 헤아려야 한다.
그런데 그런 비용도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을 모두 빠뜨리기 쉽다.
그런 가운데 판단하기 쉽다.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내용만 놓고 선택해나가기 쉽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현실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임하기 쉽다.
따라서 올바른 판단을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함께 전반적으로 잘 살펴야 한다.
어떠한 좋음을 얻으려 한다.
그런 경우 일정한 노력이나 비용 고통을 치른다.
한편, 이를 통해 수익을 꾀한다.
이 경우 수익은 비용보다는 커야 한다.
이를 오늘날 회계에서 [이익 = 수익 - 비용] 식으로 제시한다.
이 경우 우선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부터 먼저 잘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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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과 신체의 소모분
무언가를 생산할 경우 하고 활동할 경우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일정기간이 지나며 그 가치가 소모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기계, 건물 등이다.
이는 토지나 현금 등이 일정 기간 그 가치가 비교적 유지되는 것과 다르다.
이런 경우 그 소모분은 매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소모되는 부분은 비용으로 잘 헤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현금 1억을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가 1억짜리 자동차를 구해 사업을 한다.
이 경우 자동차는 일정 사용 후 폐차 처분을 하게 된다.
이런 경우 폐차 직전까지 자동차는 잘 굴러간다.
그래서 자동차가 매 순간 얼마나 가치가 떨어져가는지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매 순간 소모 부분을 비용으로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전체 수익-비용 판단부터 잘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폐차되기 전까지 자동차로 9천만 원의 수익을 거두었다고 하자.
그러면 9천만 원 전체를 자동차로 얻은 이익으로 잘못 여기기 쉽다.
자동차 가치 소모 부분이 명확하게 의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폐차 후에는 그 비용 액이 명확해진다.
이 경우 처음 현금 1억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경우와 비교해보자.
그러면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오히려 천만 원을 손해를 보았음을 이해하게 된다.
일정기간 가치가 점차 소모되어 가는 요소가 있다.
이 경우 그 소모분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일정기간별로 그 소모분을 비용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를 회계에서 '감가상각비용'이라고 표현한다.
일반법인 회계에서 건물, 기계 등에는 이런 소모분(감가상각비용)을 반영해 임한다.
그러나 각 개인이 사업을 하거나, 타인에 노동을 제공한다.
그런 경우 각 개인은 자신의 생명과 신체 소모부분을 비용으로 의식하지 못한다.
이는 소풍을 가 인원을 셀 때 정작 자신은 빠뜨리고 세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사람이 무슨 활동을 하더라도 생명과 신체가 조금씩 소모된다.
그리고 사람은 100년이 지나지 않아 생명과 신체가 사라진다.
따라서 사람이 활동함에는 어느 경우나 생명과 신체 소모분(감가상각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사람이 어떤 활동을 하던 공통적으로 이런 비용이 들어간다.
이는 일체 활동에 공통 적용된다.
따라서 활동을 할 때는 최소한 그 비용을 넘는 가치를 얻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활동을 통해 이익보다는 손해를 얻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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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과 신체의 소모분의 화폐가치 환산
생명과 신체의 소모분(감가상각비용)을 파악해 삶에 임한다.
이런 경우 그 가치를 숫자로 환산해 표현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모호하게 파악하기 쉽다.
예를 들어 막연히 가치가 높다는 식으로만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숫자로 바꿔 표현해보자.
이 계산을 위해 먼저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가치부터 헤아려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우선 저울 양쪽에 문제되는 두 내용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 가운데 딱 하나만 취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그럴 경우 어떤 것을 취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물론 좋은 것을 다 함께 갖기를 원할 수 있다.
그래도 각각의 가치 우열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 위와 같이 이 가운데 하나만 취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그런 가운데 우선순위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이는 주관적으로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는가에 의존하게 된다.
이는 물론 객관적으로 적절한 판단이 아닐 수 있다.
객관적으로 적절한 판단을 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양한 내용을 잘 고려한다.
당장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내용도 잘 고려한다.
그리고 다른 주체 입장도 고려한다.
그리고 각 선택 이후 인과상 결합된 과거와 장래 내용도 고려한다.
또한 각 단면에 숨어 있는 여러 측면도 모두 잘 찾아내 고려한다.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이라고 하자.
자신이 이를 통해 사용하며 얻을 효용도 헤아린다.
한편 다른 주체 입장에서 얻는 효용도 고려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장래 얻을 수익도 잘 헤아린다.
또 그 양과 유지 기간도 고려한다.
그 상품의 다양한 기능과 특질도 고려한다.
한편 이를 얻는데 들이는 희생이나 비용도 고려한다.
이외 가능한 여러 측면을 함께 종합적으로 헤아린다.
그런 가운데 비교 판단한다.
그런 가운데 어느 하나만 최종적으로 선택한다고 가정하자.
이를 통해 무엇을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가를 알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가치를 평가해본다.
먼저 각 내용을 저울에 놓고 가치를 비교한다.
그런 경우 다음처럼 가치우열을 판단할 수 있다.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가치 > 우주의 가치 > ... 세계 각국의 자산액 > 1년 국가예산액 (2020년 대략 500조 이상)
이는 다음 사정 때문이다.
자신이 우주를 다 갖는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 일체가 다 함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우주나 다른 것들을 일일이 나열해 우선순위를 분별할 의미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한 국가 예산액보다는 세계 각국의 자산액이 더 가치가 크다.
그리고 이보다는 우주가 더 가치가 크다.
이런 식으로 나열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결국 우주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여긴다.
여기서 부등호는 최소한 다른 쪽보다는 더 가치가 큼을 의미한다.
이는 생명과 신체의 가치를 화폐가치와 비교하기 위한 식이다.
결국 화폐액으로 파악할 수 있는 큰 항목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런 판단은 죽음에 임박한 순간까지도 계속 유지된다.
소모된 부분과 관계없이 계속 자신의 생명의 가치를 크게 여긴다.
각 주체는 죽는 순간 직전까지도 어느 정도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소모되는 내용은 매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 생명과 신체 소모분은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생명과 신체는 한 생에서 100년이 지나지 않아 끝내 소멸된다.
따라서 자신이 활동하는 경우 이를 결국 건물이나 자동차, 기계처럼 생각해야 한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그 가치가 소모되어 사라진다.
결국 생명의 가치를 각 기간별로 평균해 소모부분(감가상각비용)을 산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부등호로 표시한 위 내용을 기준으로 화폐액으로 환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평소 활동에 대한 비용으로 반영한다.
다음 식을 화폐액 환산에 활용해보자.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가치 > 500조
이런 생명이 최대 100년을 넘지 않아 소멸된다.
그런 경우 1년당 평균 최소 5조원을 초과하는(>) 비용이 소모된다.
한편 이 소모분은 하루당 최소 137억 원을 초과한다. (>) [생명 신체의 감가상각비용]
한 주체가 무언가 활동한다.
이런 경우 공통적으로 이런 가치를 소모한다.
따라서 평소 활동할 경우 최소한 이런 비용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 이익을 얻는다.
이는 수행자가 아니라 단순한 사업가도 마찬가지다.
[이익 = 수익 - 비용]의 회계 원칙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최소한 그렇게 임해야 한다.
하물며 수행자는 더더욱 그렇다.
수행자는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또 다른 이를 벗어나게 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점을 더욱 명확히 의식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비용을 의식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외관에 보이는 내용만 놓고 살아가기 쉽다.
그런 활동으로 약간의 가치를 얻어낸다.
그러나 그 가치가 이런 감가상각비용조차 넘지 못한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그 활동으로 손해를 본 것이다.
금액으로 환산해 하루당 137억 원을 초과하는 손해다.
이런 손해가 계속 쌓이게 된다.
이런 경우 외관상 눈에 보이는 자산은 늘어 날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의 생명과 신체 소모분은 보이지 않는 형태로 쌓여간다.
결국 실질적으로는 손해가 쌓인다.
이로 인해 처음의 자산이 줄어든 상태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처음은 자산이 건물 1채 이었다고 하자.
그리고 일정기간 활동 후 건물이 2채가 된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으로 다음 상태라고 이해해야 한다.
처음은 건물 1채 + 생명신체 [ (>) 500조]
뒤에는 건물 2채 + 생명신체 [ (>) 1조]
눈에 보이는 건물만 고려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산이 증가된 것처럼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 신체 소모분(감가상각비용)을 함께 고려한다.
이 경우 오히려 자산이 크게 감소된 상태로 이해하게 된다.
이는 자동차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평소 자동차의 소모분(감가상각비용)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폐차장에서 비용정산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평소 보이지 않던 손실액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세속에서 집착하는 내용이 많다.
이들 대부분은 이런 소모분도 충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치 없는 내용들이다.
생명과 신체의 가치와 비교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들은 먼지나 티끌처럼 가치가 적다.
보잘 것 없다.
따라서 평소 가치 관련 회계 원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런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야 한다.
가치가 적은 세속 일에 관심이 제거된다고 하자.
그러면 비로소 가치가 높은 수행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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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폐의 실질 가치와 시장가격
사람은 노동을 제공하여 임금을 받는다.
이 경우 생명과 신체를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용역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대가를 받는다.
또 법인은 이를 비용으로 반영한다.
그런데 이런 활동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개인의 생명과 신체는 소모된다.
한편 개인 사업자도 같다.
또 법인을 소유해 경영하는 이도 같다.
즉 이런 경우에도 개인의 생명과 신체는 소모된다.
그래서 이 소모분(감가상각비용)을 일일이 반영해야 한다.
또 이런 활동으로 상품이 생산된다.
따라서 상품에도 이런 비용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장경제에서 이 내용이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먼저 화폐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화폐는 다양한 재화를 구매할 수 있다.
이 경우 화폐는 1000원이든 1억이든 단위당 가치가 같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화폐는 구매하는 재화에 따라 그 실질가치도 달라진다.
그래서 각 경우 화폐 단위당 실질 가치가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생존하려면 최소 생계비가 필요하다.
이 금액이 있으면 그 주체가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없으면 죽음에 내몰린다.
그런데 화폐가 이런 부분에 소모된다.
이런 경우 생계비 해당 화폐액은, 생명의 가치와 거의 같다.
그러나 화폐액이 이 범위를 넘는다고 하자.
그러면 화폐 가치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보유 화폐액이 수조원대로 많다.
그런 경우 구매가능한 자산도 많아진다.
그래도 그에 비례해 삶의 기간을 늘릴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하루에 10끼를 먹을 수 없다.
옷을 수십 벌 입을 수도 없다.
잠자는 공간을 일정 범위 이상 늘릴 도리도 없다.
결국 생계비를 넘는 화폐액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생계비를 한도로 화폐의 실질 가치가 달라진다.
이런 사정 때문에, 화폐 실질 가치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곤란하다.
이런 사정을 자세히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화폐액과 생명 신체의 관계는 다음처럼 평가한다.
생계비가 최소 한 달 30만원이라고 가정하자.
이 경우 그 30만원은, 생명신체의 가치로 평가할 수 있다.
생명 신체 가치 = 생계비 해당 화폐액 (30만원) > 생계비 초과 화폐액 500 조
이 식은 처음에 제시한 식과 조금 달라졌다.
화폐의 실질가치가 각 경우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상품을 시장에서 판매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화폐 소득을 얻는다.
이 경우 생계비(예 30만원)를 경계로 실질가치가 달라진다.
생계비 충당 화폐액은 생명 신체 가치와 버금간다.
사람이 활동함에 따라 생명 신체 가치가 소모된다.
그러나 이 경우 그 소모분을 훨씬 넘는 가치를 획득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 범위를 넘는 부분부터는 또 사정이 그렇지 않다.
이처럼 생계비를 한도로 화폐 실질 가치가 다르다.
그러나 시장에서 화폐는 또 차별이 없다.
그런 가운데 시장가격은 수요공급에 의존해 정해진다.
임금도 상품가격처럼 수요 공급에 의존해 정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이런 경우 현실에서는 일정한 일 전체를 하거나 않거나의 선택문제가 된다.
생계비를 경계로 화폐 실질가치는 다르다.
그렇다고 생계비를 얻는 부분까지만, 일하고 멈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결국 각 개인은 자신의 상황에 맞춰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화폐보유액이 많다고 하자.
그렇다고 보유액에 비례해 생명의 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재화와 용역을 구매해 소비할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다.
또 지위를 얻거나 다른 목적에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주관적 측면에서는 최종적으로 즐거운 맛을 얻는데 기여한다.
화폐나 재화로 이런 효용을 얻는다.
그런 경우 화폐는 이런 효용을 얻는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그런데 화폐나 재화를 얻는 과정에서 다시 일정한 노력과 비용이 소모된다.
그런데 즐거운 맛과 효용을 얻으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이에 들어가는 비용을 적게 들이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다.
이 경우 이를 얻는 방안은 다양하다.
따라서 반드시 화폐로 구매한 재화나 용역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원한 공원, 공기 맑은 숲, 가정 내 화목한 대화 등도 즐거운 맛을 얻게 한다.
따라서 즐거운 맛을 얻기 위해 화폐나 상품에만 의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그다지 현명하지 않다.
화폐로만 가치를 따진다고 하자.
그런데 시장에서 교환되지 않는 내용이 많다.
예를 들어 공기는 팔고 사지 않는다.
우선 그 성격상 거래되지 않는 항목이 있다.
예를 들어 눈과 심장, 손과 발과 같은 경우다.
이런 경우 화폐로 거래되지 않는다.
돈이 많아도 돈으로는 끝내 구할 수 없다.
거래되지 않기에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 무시하고 외면하기 쉽다.
그렇더라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이런 내용이 삶에 많은 효용을 준다.
오히려 시장에서 화폐로 구매 가능한 것보다 많은 효용을 준다.
따라서 가치가 높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보다 가치가 대부분 높다.
그래서 돈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저울에 두 내용을 올려놓고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 설 때 그 가치를 명확히 비교할 수 있다.
돈을 취하고, 심장을 포기할 경우가 드물다.
한쪽 저울의 화폐액을 아무리 많이 올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따라서 화폐로 도저히 환산할 수 없다.
그렇지만, 부등호 기호를 통해서라도 가치를 숫자로 환산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그 가치를 명확히 의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의 가치를 모호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오로지 시장가격과 화폐 보유액 자체만 집착하기 쉽다.
그러면 오히려 가치가 높은 것을 상실하기 쉽다.
따라서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생명의 가치는 화폐로 도저히 환산하기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작게 잡아도 최소한 500조원보다는 높다.
이런 식으로 숫자를 통해 명확히 가치를 의식해야 한다.
그래야 구체적 가치판단과정에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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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와 보물
일반적으로 일정한 수익 및 자산을 얻기 위해 활동을 한다.
그런데 그냥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통해 쓰레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또 어떤 경우는 많은 고통과 불쾌 번뇌를 받을 수 있다.
이는 폭탄을 만들어내는 경우와 같다.
그래서 각 항목의 특성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무엇이 진정한 보물인가부터 잘 판단해야 한다.
진정한 보물은 다음과 같다.
그 정체는 무엇인지 잘 모를 수 있다.
그것은 시장에서는 가격이 낮을 수 있다.
또는 아예 거래가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가 그것을 대할 때마다 온갖 좋음을 얻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그것을 대하면 만족감을 얻는다.
그리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는다.
그리고 보람과 가치도 느낀다.
또 평온감과 안정감을 얻어낸다.
그리고 새로운 아름답고 선한 희망과 의욕을 매번 일으키게 된다.
이런 것이 있다면 그것이 보물이다.
보물로부터 기대하는 온갖 좋음을 그로부터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떤 골동품이 시장에서 대단히 가격이 높을 수 있다.
하나의 도자기가 수십억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것을 보물로 여긴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를 대해 위와 반대되는 내용만 얻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고 하자.
그것을 대하면서 불만을 느낀다.
예를 들어 이를 잘못해 비싸게 샀다며 불만과 분노를 일으킨다.
그러다가 그 도자기가 깨지면 이를 슬퍼한다.
또는 가격이 떨어져 우울해한다.
한편 다른 이들은 이를 보고 질투와 시기심을 갖거나 자신을 비난한다.
그리고 자신은 죄책감을 갖고 보람도 느끼지 못한다.
또 누군가 훔쳐갈 것 같아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상태로 지낸다.
또 그로 인해 번뇌만 자꾸 늘어난다.
또 이를 대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좋은 희망이나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만일 이런 상태가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가격은 비싸다.
그러나 그로부터 번뇌와 고통만 얻는다.
그런 경우 값비싼 폭탄이나 덫과 같다.
그렇다면 값이 비싸더라도 보물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쓰레기보다도 못하다.
한편,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이에 들어가는 비용을 넘는 가치를 최소한 얻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활동을 하던 생명신체가 소모된다.
이 소모분(감가상각비용)을 화폐로 환산한다고 하자.
그러면 하루당 137억 원을 초과한다.
'현금'을 얻는 사업 가운데 이런 수익을 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돈으로 거래되는 품목은 대부분 이런 가치를 넘지 못한다.
위 숫자는 또한 부등호로 대략 표시한 금액이다.
이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실에 이런 가치를 얻는 활동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선 다른 이의 어려움을 돕는 봉사 활동이 이런 부분에 속한다.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하는 활동도 사정이 같다.
또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끝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다른 이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다른 이를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분야가 현실에 무량하다.
그것이 결국 수행이다.
따라서 아래에서 수행 분야를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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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으로의 전환 계기
현실에서 가치가 적은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가치가 보다 큰 것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치가 큰 것을 놓친다.
가치가 적은 것은 버리고 가치가 큰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런 자세가 현명하다.
그런데 한 정지된 단면을 대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가치판단을 잘 행하지 못한다.
그 사정을 이미 다양하게 살폈다.
이를 간단히 정리해보자.
우선 여러 사유로 외관에 내용이 당장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당장의 감각, 느낌에 치중한다.
그리고 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초점 밖에 잠재되어 있는 측면들은 무시하게 된다.
한편 인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이로 인해 인과로 묶인 과거와 미래의 내용도 무시된다.
한편 시장에서 표시되는 가격에 치우쳐 가치판단을 행한다.
그리고 명확히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부분은 무시한다.
이런 여러 현상들로 왜곡되고 잘못된 가치판단을 행한다.
특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는 판단이 더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해 임한다.
그런 가운데 잘못된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이를 잘못된 방안으로 추구하게 된다.
세속에서는 주로 당장 눈에 띄는 외관에 치우친다.
그래서 가치가 낮은 항목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래서 가치판단을 먼저 올바로 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가치판단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수행에 가까워진다.
이를 위해 우선 생명의 가치부터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세속에서 집착하는 것들이 많다.
이들과 생명의 가치를 비교해보자.
그러면 이들은 마치 옷에 묻은 먼지와 같다.
생명의 가치는 화폐로 환산하면 500조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
한편, 현실에서 대부분 100년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생명과 신체는 매일 조금씩 가치가 소모되어 없어진다.
이런 경우 생명과 신체의 소모분을 화폐로 환산해보자.
그러면 하루당 최소 137억 원을 초과하는 가치가 소모되어진다.
그래서 어떤 이가 활동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생명과 신체의 소모비용을 넘는 수익을 얻어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높은 가치를 갖는 항목을 찾는다.
그런 경우 세속에서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항목에서는 이를 찾기 힘들다.
이런 항목은 주로 어려운 이를 돕는 봉사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당장 생계해결이 힘든 이들이 많다.
고아나 홀로된 과부나 노인이나, 병자들의 경우다.
이런 경우 이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얼마간을 베푼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한다.
이런 경우 이런 도움이 없으면 홀로 생존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있으면 생존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활동은 결국 다른 이가 생명을 이어가게 해준다.
물론 그로 인해 당장 이익을 얻는 것은 그 상대다.
그렇지만, 이는 그런 행위를 행한 이가 얻어내는 가치도 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활동에 들어가는 생명과 신체의 가치 소모분을 넘는 수익이 된다.
그러나 이와 달리 단지 더 많은 현금을 얻기 위해 활동한다.
또 즐거움만을 얻기 위해 어떤 소비를 한다.
그런 경우 그것이 없다고 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다만 약간의 즐거움을 얻는 것뿐이다.
그러나 돈을 들이지 않고도 즐거움을 얻어낼 방안은 무량하다.
그리고 이런 각 경우 그 가치 차이가 대단히 크다.
한편 화폐소득을 얻는 다양한 활동이 있다.
그런데 얻어진 화폐소득이 이런 분야로 재투자된다고 하자.
그러면 또 이로 인해 그 화폐의 실질가치가 달라진다.
그래서 그 활동의 실질가치도 다시 달라진다.
어떤 이가 한 생에서 건강하게 생계를 유지한다고 하자.
이 내용이 갖는 가치가 크다.
그런데 수행의 가치는 이런 경우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수행을 시작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다음 판단이 특히 중요하다.
우선 생사 이후를 고려하는 자세가 전제된다.
그래서 먼저 단멸관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3악도의 생사고통을 제거함이 중요함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일단 기본적인 인천교적인 수행을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하늘과 인간세계를 오갈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단 '생사고통'에서 멀어진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후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수행에 들어갈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함이 갖는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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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사고통이 없음의 가치
현실에서 좋음을 적은 비용으로 얻고자 노력한다.
그런데 세속과 수행의 방향이 크게 다르다.
세속에서 많은 것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명예나 지위, 부를 추구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희망하고 부러워하는 상태가 많다.
그런데 수행자는 이런 것을 외면한다.
그리고 수행을 향해 간다.
그래서 이 사정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이후 수행이 가능하게 된다.
먼저 현실에서 문제되는 각 내용을 저울에 놓는다.
그리고 가치를 비교해 볼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처음 다음 식을 제시한다.
○ 생명과 신체의 가치 > 우주 > 500조원
500조원이 있어도 생명과 신체가 없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 화폐는 각 경우 따라 그 실질가치가 다르다.
생계비에 해당하는 금액은 생존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없으면 죽게 된다.
그래서 그 가치가 생명과 신체의 가치에 준한다.
그런데 대략적으로 1인의 생계비를 30만원이라고 가정하자.
그런 경우 다시 다음 식을 제시하게 된다.
○ 생명과 신체의 가치 ~ 생계비(30만원) > 우주 > 500조원
그렇지만, 생명이 모든 가치의 최고는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거꾸로 매달려 고통을 계속 받는 상태라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몇 분만 있어도 차라리 삶을 포기하려 하게 된다.
살아가는데 고통을 조금 겪을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 삶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고통을 참고 견딘다.
그러면 또 좋은 상태가 되리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런 경우는 또 고통을 참고 견뎌가게 된다.
`
그러나 어떤 고통이 대단히 극심하다.
그리고 그런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되고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런 가운데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를 통해 다음 같은 가치 서열을 제시하게 된다.
○ 죽음 > (극복하기 힘든 심한 고통을 겪는 상태)로서 생존 (생명)
처음에 다음 식을 제시했다.
○ 생명과 신체 ~ 생계비(30만원) > 우주 > 500조원
생명이 없는 상태라고 하자.
이런 경우 그 주체 입장에서는 나머지가 모두 다 함께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이 경우 우주나 500조원의 우열을 따질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하 항목은 단지 객관적 입장에서 우열을 나누는 것뿐이다.
○ 생명과 신체 ~ 생계비(30만원) > 죽음 ( 우주 > 500조원 > 0 )
그런데 극복하기 힘든 고통을 겪는 상태로서의 생존 (생명)은 죽음보다 못하다.
그래서 다시 다음처럼 묶어 표시하게 된다.
○ ( 견딜만한 상태로서) 생명과 신체~ 생계비(30만원) > 죽음 ( 우주 > 500조원 > 0 ) > 극복하기 힘든 고통을 겪는 생존
결국 극복하기 힘든 고통이 없는 상태가 중요하다.
이는 우주나 500조원보다 더 가치가 있다.
반대로 극복하기 힘든 고통이 있는 상태라고 하자.
그것은 죽음보다 못하다.
결국 극복하기 힘든 고통의 있고 없음의 가치차이가 크다.
그런데 수행은 삶에서 생사고통을 근본적으로 제거함이 목표다.
따라서 가치판단을 잘 한다고 하자.
그러면 비로소 수행에 관심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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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하는 기간의 문제
한편, 한 주체가 고려할 기간을 잘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봄만 생각하고 임한다.
그런 경우 봄에 씨를 뿌리는 일을 어리석다고 여긴다.
그러나 1년을 길게 보고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봄에 힘들더라도 씨를 남겨 밭에 뿌려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면 가을에 씨 하나당 100배가 넘는 수확을 얻는다.
옥수수알과 옥수수 관계와 같다.
짧게 1년만을 고려한 가운데 가치판단을 행한다고 하자.
이는 다시 10년을 고려하는 경우와 내용이 다르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기간을 고려해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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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간에 걸친 인과 판단
장기간에 걸친 인과판단은 정지단면에 대한 판단보다 훨씬 어렵다.
단순히 여러 항목을 늘어놓고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고 하자.
이 경우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 내용이 함께 복합된다.
그리고 인과관계로 묶여 이 각 내용이 구체적으로 불명확하다.
이런 경우는 판단하기 힘들게 된다.
예를 들어 단순히 500조원과 생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택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로 얽힌 경우는 판단이 어렵다.
예를 들어 다음처럼 문제가 제시된다고 하자.
어떤 일이 있다.
이 일을 하면 돈 400만원을 얻을 수 있다. ~~ ( 그러나 그로 인해 죽음에 장차 처할지 모른다. )
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돈을 벌지 못한다. ~~ ( 그러나 그로 인해 죽음에 처하지 않는다. )
이런 형태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각기 첫 부분만 외관에 드러난다.
괄호 내용은 선택과 인과로 묶인 장래 내용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각 주체가 이를 고려에 충분히 넣지 못한다.
그래서 당장 외관만 보고 판단하기 쉽다.
그래서 잘못된 판단이 이뤄진다.
매 경우 어떤 선택으로 어떤 결과를 맞이할 지 분명하지 않다.
미래로 나아갈수록 한층 파악이 어렵다.
인과 문제에서 지나치기 쉬운 문제가 있다.
자신의 생명은 우주보다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다른 생명에 대해서는 판단이 달라진다.
자신의 생명만 가치가 높다고 여긴다.
그런데 다른 생명의 가치는 가볍게 여긴다.
예를 들어 벌레는 가치가 적다고 가볍게 생각한다.
그러면 인과상 자신도 다른 주체들로부터 가볍게 평가받게 된다.
벌레도 생명을 집착한다.
벌레도 자신의 생명의 가치가 높다고 여긴다.
인간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떤 이가 벌레를 해친다.
그런데 해치기만 하고 살리지는 못한다.
이는 부수기는 잘 해도 만들지는 못하는 아이와 비슷하다.
벌레라고 해도 생명의 가치가 높다.
설령 자신이 500조원을 갖고 있어도 벌레를 다시 살려 내지 못한다.
어떤 이가 벌레의 생명까지도 가치 있게 여긴다고 하자.
그래서 죽을 벌레를 방생한다.
그러면 우선 그 벌레가 생명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당장은 그 벌레가 이익을 얻는다.
그렇지만, 이는 그렇게 다른 생명을 살려주는 이가 얻어내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수익을 그런 이가 되돌려 받게 된다.
그것이 수행을 통해 얻는 복덕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치판단을 잘 행해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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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객관적 평가 (다른 생명들의 주관적 평가 )
자신이 다른 생명에 대해 일정한 평가를 한다.
그런데 다른 생명도 또한 자신처럼 다른 생명에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
이는 서로 인과 관계에 놓인다.
이 관계를 다음처럼 표시할 수 있다.
○ 자신의 생명에 대한 객관적 평가 (다른 생명들의 주관적 평가 ) =~ 다른 벌레나 동물의 생명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평가
이는 다음 의미다.
자신의 생명이 객관적으로 존중받고 높게 평가받기를 원한다.
객관적 평가는 다른 이들의 주관적 평가가 모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주관적 평가는 자신의 다른 생명에 대한 자세와 관련된다.
자신이 다른 벌레나 동물의 생명의 가치를 평소 존중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벌레의 생명의 가치를 500억을 초과한다고 여긴다.
그러면 자신도 다른 생명으로부터 그 정도로 평가받게 된다.
그런데 다른 생명의 가치를 50원 미만으로 여긴다.
그러면 그 자신도 다른 생명들로부터 그 정도로 평가받게 된다.
생명은 제 각각 자신의 생명과 생존을 중시한다.
그런데 다른 생명이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생명의 가치를 자신의 생명만큼 존중한다.
그런데 다른 생명이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
이런 경우 자신의 생명을 존중하는 만큼 다른 생명의 가치를 반대로 여긴다.
그리고 각 생명마다 이런 형태로 판단한다.
따라서 이것이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
따라서 자신이 다른 생명에 대한 자세가 중요하다.
이에 따라 다른 생명들의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자신이 다른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높게 평가한다.
그러면 다른 생명 입장에서 그는 생존에 도움을 주는 존재다.
그런 경우 그의 생명의 가치도 함께 다른 생명들로부터 존중받게 된다.
반대로 오직 자신의 생명만 존중한다.
그리고 다른 생명의 가치를 경시하고 낮추어 평가한다.
이런 경우 다른 생명 입장에서는 그는 생존에 위협을 주는 존재다.
그런 경우 다른 생명들 입장에서는 그 가치를 마이너스로 보게 된다.
그래서 그가 하루 바삐 없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각 생명마다 이처럼 주관적으로 평가한다.
객관적 평가란, 다른 주체의 주관적 평가들은 모은 것이다.
따라서 이런 각 생명의 주관적 평가가 모아져 객관적 평가가 된다.
결국 자신에 대한 객관적 가치 평가는 이런 형태로 결정된다.
따라서 자신의 가치는 결국 다른 생명에 대해 그가 취하는 자세에 의존한다.
즉, 자신이 다른 생명의 가치를 주관적으로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가에 의존한다.
자신이 다른 생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존중한다.
그러면 자신의 객관적 평가치도 높아지게 된다.
자신의 객관적 평가치를 높이려 한다고 하자.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존중을 널리 받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이전에 자신부터 다른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자신의 생명의 가치를 높이는 방안이 된다.
그런데 수행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죽음에서 벗어나게 함에 목표를 둔다.
따라서 수행의 가치는 대단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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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멸관과 수행
한 주체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경우 그 주체와 관련된 것은 모두 끝이다.
이렇게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견해를 단멸관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가 단멸관에 바탕해 삶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폐해가 심하게 된다.
단멸관에 바탕해 가치를 판단한다고 하자.
한편 이와 달리 무량겁을 바탕으로 가치를 판단한다고 하자.
이 둘은 그 내용이 차이가 크다.
단멸관을 취한다고 하자.
이 경우 아무리 길어도 자신의 현생 이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로지 한 생만 고려해 가치판단을 행하게 된다.
사람은 100년을 넘지 않아 어차피 다 죽는다.
그런데 사후 이를 이어가는 주체가 전혀 없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주체 입장에서는 죽음으로 일체가 다 함께 의미를 잃는다.
이런 경우 토지나 현금과 기계 건물, 신체를 서로 구분할 의미도 별로 없다.
그리고 생명 신체 소모분(감가상각비용)을 고려할 의미도 별로 없다.
이후 이런 내용을 고려할 주체가 아예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소 생명의 소모분을 넘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수익을 크게 올리는 것은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정이 이와 같다고 하자.
그러면 단지 살아 있을 동안 얻는 수익이나 즐거움만 고려하게 된다.
그리고 삶에서 외관으로 눈으로 당장 보이는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숫자로 평가되는 측면만 초점을 맞추고 임하기 쉽다.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나, 비용은 외면하게 되기 쉽다.
이처럼 단멸관을 취해 짧게 한 생만 고려한다고 하자.
그러면,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하고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좁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범위만 고려한다.
그리고 짧게, 자신의 1생의 기간만 고려한다.
그리고 얕게, 자신이 초점을 맞추는 측면만 고려한다.
그런 가운데 좋음을 집착해 추구한다.
그리고 인과 관계도 역시 이처럼 대단히 짧게 관찰한다.
그런 가운데 목표에 대해 잘못된 방안을 찾는다.
그런 가운데 잘못된 선택을 매순간 행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사후에도 그 주체가 계속 이어진다.
예를 들어 한 주체가 사망해 화장터에 들어간다.
그런 경우 지금 기준으로 그 생명 신체는 없어진다.
그러나 근본정신과 기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후 다음 생이 이어진다.
그래서 단멸관에 바탕해 임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생사과정에서 생사고통을 반복해 겪는다.
즉, 이로 인해 생사과정에서 3악도의 고통을 장구하게 받아가게 된다.
6도 윤회과정에서 각 생명 형태별로 수명과 복덕의 차이가 크다.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와 크게 입장이 달라진다.
그래서 수행자와 일반인의 입장이 크게 달라진다.
이런 경우 사후 3악도에 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평소 업장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복덕을 쌓는 일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를 위한 수행 실천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경우는 생명 신체의 소모분(감가상각비용)을 고려할 의미가 크다.
평소 하루당 생명신체 소모분을 넘는 가치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 복덕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사후 생의 상태를 달리 만들게 된다.
한편 생사를 이어 계속 지닐 수 있는 자산이 있다.
수행과정에서 이를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게 된다.
현실에서 어떤 자산은 눈만 감아도 계속 지닐 수 없다.
예를 들어 눈을 떠서 보는 내용 일체가 그렇다.
그런데 생사를 넘어 계속 보전될 수 있는 자산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 무언가를 파악해야 한다.
평소 곧 썩어 없어지는 우유와 같은 자산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이런 자산을 현실에서 취득했다고 하자.
그런데 오랜 기간 자산을 유지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무량한 시간에 걸쳐 유지될 자산으로 이를 바꿔나가야 한다.
생사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사과정에 걸쳐 길게 좋음을 얻고자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자산을 취득해 유지해야 한다. [10무진장]
그리고 이런 목표를 갖고 행하는 수행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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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멸관의 제거의 어려움과 믿음의 중요성
단멸관이 잘못임을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리고 생사과정을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윤회의 주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즉 생사과정을 이어가는 주체를 이해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평소 자신의 정체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존속기간이 한 생에 국한되지 않는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통해 먼저 단멸관을 잘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사정을 깨닫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이해하는 일 자체가 수행 분야에 들어간다.
결국 처음에는 일반적으로 일단 믿음을 바탕으로 수행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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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일반의 현실부정 공상주의적 이상성과 불교
현실에 존재하는 종교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추구하는 세속적 가치를 부정한다.
그리고 대신 천국이나 하늘, 지옥과 같은 세계를 제시한다.
그리고 하늘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다. [인천교]
예를 들어 지옥은 고통과 두려움이 극심한 상태로 장구하게 지내는 상태다.
반대로 하늘은 즐거움과 희망이 가득한 상태로 장구하게 지낸다.
한편 각 종교는 각 종교에서 제시하는 절대자를 믿고 따른다.
그리고 선을 실천한다.
그래서 사후에 하늘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을 주된 목표로 제시한다.
이처럼 종교는 하늘이나 지옥 등의 세계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현실의 사람들이 당장 직접 보거나 경험하지 못한다.
즉, 살아 있는 동안, 현실에서 경험하고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쉽게 인정해 받아들이기 힘들다.
때문에, 현실 내용만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리고 각 종교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입장에서는 이런 내용은 모두 비현실적이며, 공상적이다.
그리고 허구의 종교적 내용이라고 여기기 쉽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가.
부처님도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과 같은 세계를 제시한다.
그리고 색계 무색계 하늘과 같은 초경험적인 세계를 제시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3계 6도의 내용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색계의 하늘 범천의 수명은 1겁을 넘는다고 제시된다.
이런 하늘 등에 태어난다고 하자.
그러면 그처럼 장구한 시간동안 안락하고 즐거운 생활을 함을 제시한다.
이와 함께 윤회설을 제시한다.
그래서 각 생명이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무량겁에 걸쳐 3계 6도의 생사 윤회고통을 겪게 됨을 제시한다.
이는 또 다른 종교와는 다른 점이다.
그래서 현실만을 중시하는 입장이라고 하자.
일반인 입장에서는 타화자재천이나 범천과 같은 하늘도 인정하기 힘들다.
더욱이 3계 6도를 윤회함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공상적 허구 내용을 제시한다고 오해하기 쉽다.
한편 불교는 전체적으로 3계 6도의 내용을 제시한다.
그리고 하늘과 지옥을 제시한다.
그래서 불교는 하늘에 태어남을 궁극적 목표로 제시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불교는 지옥 등 3악도를 우선 벗어나야 함을 제시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하늘과 인간을 오가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하늘에 태어남을 궁극적 수행목표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오히려 다음을 제시한다.
이런 하늘은 상상하기 힘든 장구한 수명을 갖는다.
그런 가운데 복을 누린다.
그런데 이 역시 모두 무상하다.
그래서 이는 전체적으로 생명이 괴로움을 받고 윤회하는 과정의 일부다.
그래서 이런 하늘의 안락함도 무상하다.
그리고 결국 끝이 있다.
따라서 불교가 제시하는 궁극적 목표 상태는 이런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이를 초월한 더 높은 상태를 목표 상태로 제시한다.
즉, 생사의 고통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를 목표로 제시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방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반적 입장에서는 더욱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 된다.
그런 점에서 불교는 한층 믿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런 내용을 생사현실로 제시한다.
그리고 오히려 이처럼 생사현실을 관하는 것을 올바른 관찰이라고 한다.
이런 차이를 비유로 살펴보자.
사람이 누리는 수명과 복을 일반 세균이나 곤충의 삶에 비교해보자.
그런 경우 인간의 삶은 이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복이 많고 수명이 길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이 번뇌와 고통에서 끝내 자유롭지 못하다.
이와 사정이 같다.
그런데 하늘이라고 해도 이와 사정이 같다.
인간세계에 비해 복과 수명이 수승하다.
그러나 현실은 무상하다.
그래서 번뇌와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끝내 자유롭지 않다.
한편 불교는 생사현실 일체가 무상하고 고 무아 공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대한 집착을 제거할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세속적 입장을 부정한다.
그런 경우 불교 또한 현실을 부정하는 입장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생사현실에서 근본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를 취해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외부 세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따라서 이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우선 망집에 바탕한 업을 중지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생사현실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망상분별과 번뇌를 제거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생사고통의 윤회를 끊을 수 있다.
그리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 해탈과 니르바나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세속을 부정하고 세속에서 현실에 갖는 집착을 제거할 것을 강조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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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는 합리적 입장
수행에 처음 들어가는 입장에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믿음을 통해 단멸관을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믿음도 없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먼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경우를 나열해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경우에서 모두 현명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비로소 수행에 가까워질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사후에 자신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
이런 경우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하자.
그러면 죽음 이후를 대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이 아닐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또 죽음 이후를 전혀 대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이 가운데 어느 경우가 옳은지를 모른다.
그런 경우 다양한 경우수를 전체적으로 현명하게 잘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후의 생은 전혀 없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사후의 생이 있을 수도 있다.
한편, 사후 생이 있어도 어느 기간까지만 유지될 수도 있다.
또는 그것이 무한하게 이어질 수도 있다.
또 사후 상태의 종류도 여러 형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경우를 함께 고려한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도 좋은 결과를 얻을 방안을 찾는다.
먼저 사후의 생이 없다고 하자.
그런 경우 오로지 1생만 고려한다고 하자.
그래도 수행은 최상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수행은 1생의 삶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상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후 생이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당연히 수행이 최상의 선택이 된다.
한편 한 주체가 무한히 이어지는가가 문제될 수 있다.
이는 수학에서 무한을 증명하는 것과 사정이 같다.
임의로 어떤 가장 큰 수를 정한다.
그래도 그 위에 1을 더할 수 있다.
그래서 수를 무한하다고 하게 된다.
한 주체의 변화과정도 마찬가지다.
지금 전후와 지금의 관계가 달라질 사정이 본래 없다.
그래서 그런 관계로 무시무종의 시간대를 나아가게 된다.
한편 생사 전후의 업과 과보의 구체적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런 관계는 직접 수행을 통해 파악할 내용이 된다.
그런데 수행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내용은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행을 통해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이런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다음 사정과 같다.
개미와 같은 벌레가 있다.
이 개미가 인간의 삶의 과정을 파악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은 개미나 다른 곤충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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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사과정에서 수행의 가치
죽음은 생명과 신체를 소멸시킨다.
그래서 생명과 신체의 소모분(감가상각비용) 문제도 이로 인해 발생한다.
그런데 단멸관을 벗어난다고 하자.
그러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망집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바탕에서 무량겁에 걸쳐 생사과정을 이어가게 된다.
그런데 생명이 계속 이어진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것만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단지 현실에서 당장 고통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만 처해도 이를 견디기 대단히 힘들다.
예를 들어 소변을 3일간 참으면 500조원을 받게 된다고 하자.
설령 그래도 끝내 소변을 참아낼 도리가 없다.
결국 500조원을 받는 것보다 그런 고통을 겪지 않는 상태를 선택하게 된다.
한편 평소 자신의 생명이 우주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그래도 참기 힘든 고통이 계속된다.
또 그 고통을 벗어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 경우는 자신의 생명마저도 포기하려 하게 된다.
삶이 대단히 가치 있다.
그렇지만 매순간 고통을 계속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형태로 가치 우열을 판단하게 된다.
참기 힘든 고통을 받는 생존 < 죽음 ( ...< 500조원 < 우주) < 고통이 없는 생존
이처럼 현실에서 고통은 견디기 힘들다.
반대로 고통을 벗어남이 갖는 가치는 대단히 크다.
그런데 생사과정이 무한함을 이해한다.
그런 경우 3악도에서 고통을 겪게 된다.
예를 들어 축생이나 지옥 아귀계에 처한다.
이런 경우 단순히 죽음을 맞이한 상태라고 하기 힘들다.
그래서 단순히 생명과 신체 가치가 0 이 된 상태라고 할 수 없다.
고통을 심하게 받는다.
따라서 (마이너스) 상태가 된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인간이나 하늘세계에 태어난다.
그런 경우 3악도의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와 차이가 크다.
한편 더 나아가 생사의 묶임 자체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이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게 된다.
자신만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도 가치가 크다.
그런데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널리 다른 생명까지 모두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그러면 그 가치는 훨씬 크다.
그런데 모든 생명을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면 그 가치는 다시 훨씬 크다.
그런데 다른 중생을 그처럼 도우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수행자가 다시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중생과 눈높이를 같이 해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을 도울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부터 생사현실에서 복덕과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수행은 이런 상태를 하나하나 성취하게 해준다.
따라서 수행의 가치는 무량하다.
그래서 이런 기본적 가치판단을 잘 행한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의 가치를 잘 비교한다.
그러면 이들이 태양과 먼지처럼 차이가 큼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가치판단을 통해 세속의 쓸데없는 관심을 모두 끊을 수 있다.
그런 경우 비로소 수행에 관심을 갖는 계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수행에 전념해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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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치의 유지기간과 수행을 통해 얻는 자산
현실에서 어떤 항목은 일시적으로 보전된다.
그러나 어떤 항목은 1생 동안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어떤 항목은 생사과정을 넘어 계속 보전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우유나 생선은 곧바로 썩는다.
반대로 금이나 보석은 오래 간다.
그렇지만 이런 금도 생사과정을 넘어 지닐 수는 없다.
이들 재화는 죽음 이후 가져가지 못한다.
현실에서 눈으로 보고 얻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당장 눈만 감아도 얻어낼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내용은 그렇지 않다.
생사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유지되는 것이 있다.
그 가운데 다시 좋음을 무량하게 주는 내용이 있다.
수행을 통해 얻는 항목은 생사과정을 넘어 계속 보전 가능하다.
그 가운데 가치 있는 다음 항목들이 수행자 자산이 된다.
[ 3보(불ㆍ법ㆍ승), 7재(신ㆍ계ㆍ참ㆍ괴ㆍ문ㆍ시ㆍ혜), 10무진장(신ㆍ계ㆍ참ㆍ괴ㆍ문ㆍ시ㆍ혜ㆍ념ㆍ지ㆍ변)]
예를 들어 믿음을 갖는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내용을 속속들이 몰라도 당장 실천할 바를 행할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은 곧바로 수행에 따른 과보를 얻게 해준다.
한편, 수행자가 직접경험이던 간접경험이던 어떤 잘못을 기억하고 반성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무량겁에 걸쳐 같은 실수나 손해를 보는 일을 제거하게 된다.
그래서 발생할 손해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이는 반대로 이익이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행자는 수행을 위해 먼저 생계를 해결한다.
그런데 생사과정을 통해 계속 지닐 수 있는 가치 있는 자산이 있다.
수행자는 이들 자산이 무언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수행을 통해 이런 자산을 얻어내도록 노력한다.
또한 이를 되도록 적은 노력과 시간 비용을 들여 얻어내야 한다.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가치 있는 자산을 많이 쌓아가야 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가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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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에 대한 의지를 갖기
가치 있는 품목을 얻어내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얻어내는 방안이 다양하다.
어떤 물건을 놓고 생각해보자.
어떤 물건은 길을 가다가 주어 얻을 수도 있다.
또는 원하는 물건은 직접 만들어내 얻을 수도 있다.
또는 물건을 사고팔아서 얻을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이가 원하는 일을 해주고 대가로 얻을 수도 있다.
또는 범죄적인 방안으로 얻고자 할 경우마저 있다.
또는 그냥 노력 없이 거저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그 방안이 다양하다.
이는 수익이 얻어지는 인과 판단 문제가 된다.
그래서 어떤 좋은 상태를 성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기 위해 우선 올바른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가치 있는 서원을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온 생명이 제한 없고 차별 없이 좋게 되는 상태를 추구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뜻의 성취를 방해하는 장애가 우선 제거되게 된다.
그리고 뜻의 성취를 방해하던 힘은 성취를 돕는 에너지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그 뜻의 성취가 상대적으로 쉽게 된다.
또 이런 사정으로 성취된 상태도 이후 오래 유지되게 된다.
그러나 뜻을 원만히 잘 성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그 성취 방안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잘 모른다고 하자.
그러면 좋은 뜻을 가져도 성취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조금 어려움에 부딪히면 곧바로 포기하기 쉽다.
그래서 먼저 서원을 일으키고 의지를 굳건히 해야 한다.
그리고 실천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천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잘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지혜를 취득하게 된다. [4여의족, 욕,진,념,혜]
좋은 서원을 성취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일단 생사현실에서 기본적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해나갈 기본 여건을 확보해야 한다.
그 이후 현실에서 얻게 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이를 꾸준히 더 가치 있는 내용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뜻을 성취함에 있어서는 복잡하고 긴 과정이 있게 된다.
그런데 그런 변화는 관념이나 언어영역에서부터 쉽게 가능하다.
그래서 이런 마음안 내용부터 가치 있는 형태로 채운다.
그러면 자신의 의식이 변화한다.
이후 행동 -> 습관 -> 성격 -> 인격 등이 변화해간다.
그런 가운데 긴 과정을 짧게 줄일 방안이 있다.
일정한 희망을 갖는다.
그런 경우 그 희망이 뜻과 같이 성취된 상태를 먼저 그려낸다.
그리고 먼저 다음 사항을 확인한다.
그런 희망이 뜻처럼 성취된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이 그 상태에서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하려하는가를 먼저 확인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당장부터 행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그런 경우 당장 그런 내용부터 먼저 실천해간다.
이는 뜻을 다 성취한 후 행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성취하는 것이 된다.
그런 가운데 그 성취를 위한 방향으로 노력한다.
그 노력도 당장 할 수 있는 쉬운 일부터 행해간다.
그러면 그로 인해 그 서원 전체도 훨씬 쉽게 성취된다.
그래서 처음 수행을 어렵게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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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의 여러 단계와 생사 고통 제거 방안
생사과정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려 한다.
그런 경우 먼저 생사고통의 정체와 인과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정체를 먼저 잘 관한다.
그리고 그 발생 원인을 잘 관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이 없어진 목표 상태와 그 방안을 잘 관한다. [4성제, 고집멸도]
생사고통의 발생과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한 주체가 어리석음, 망집, (탐진치)번뇌를 일으킨다.
=>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의업, 구업, 신업)을 행한다.
=>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런 단계로 진행된다.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출생단계 이전에 근본 무명에 바탕한다.
=> 그런 가운데 망집번뇌를 일으킨다. (예: 구생기俱生起신견, 변견)
=> 출생 후 의식표면에서 분별을 행한다.
=> 그런 가운데 다시 망집번뇌를 일으킨다. (예: 분별기신견)
=> 자신을 유지 생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 그런 가운데 탐ㆍ진ㆍ치ㆍ만 등의 정의적 번뇌를 일으킨다. [수혹,미사혹]
=> 이후 삶에서 잘못된 분별을 일으켜 번뇌를 갖는다. [신견, 계금취견, 변견, 사견, 견취견 등의 미리혹]
=> 그리고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 집착에 바탕해 일상생활에 임한다.
=>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 잘못된 소원을 추구한다.
=>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해 나간다.
=> 이로 인해 욕계 각 주체들 간에 가해와 피해관계가 쌓여진다. [업의 장애]
=> 그래서 그런 망집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 나가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음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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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래 결과 발생 원인제거
생사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그 발생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원인들이 잘 제거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로 인해 장차 발생할 생사고통이 발생하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생사고통이 예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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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발생한 고통에 대한 대처 방안
생사고통을 예방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원인을 일단 제거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곧 생사고통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미 발생한 생사고통은 이로 인해 제거되지 않는다.
이미 발생한 생사고통이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일단 고통을 더 키우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해 잘못된 반응과 대처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일단 이를 평안히 참고 견뎌야 한다.
이 경우 어떤 한 내용에 집중한다.
그러면 의식에서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
이런 방안도 당면한 고통을 제거하는 하나의 방안이다.
또는 상을 취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그대로 평안히 견디는 노력을 한다.
이런 방안도 고통을 극복하는 방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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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의 좋은 상태로 회복하는 추가 노력
고통이 이미 발생한 상태라고 하자.
이 상태에서 이미 발생한 고통을 제거했다고 하자.
이 상태에서 좋은 상태를 다시 회복해 얻어내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고통을 발생시킬 원인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경우 이미 발생한 나쁜 상태를 제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좋은 상태가 나타나게 할 원인 요소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고통이 없었던 원상태로 회복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발생한 나쁜 상태를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후 복덕을 얻는 좋은 상태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는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손에 상처가 나서 흉터가 생겼다.
이를 잘 아물게 한다.
그리고 이 부분이 원래의 상태처럼 되게 한다.
그리고 이후 그 부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노력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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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쌓여진 업장의 추가제거
과거에 쌓아 놓은 업의 장애가 있다.
이를 제거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업장은 장차 생사고통을 다시 발생시키게 된다.
그런데 장차 고통을 발생시킬 원인을 중단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이런 업의 장애까지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완전히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과거에 쌓아 놓은 업장까지 제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여러 노력은 마치 상처의 회복과정과 같다.
칼로 상처가 생겨 피가 흐른다고 하자.
그 상태에서 계속 칼로 상처를 낸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피가 또 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원인 행위는 일단 중단한다. [원인 중단-예방]
그런 경우 앞으로 상처가 나는 일은 예방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곧 피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또 그것만으로 원 상태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즉, 그것만으로 이미 난 상처를 없앨 수는 없다.
그런 경우 일단 고통을 평안히 참아야 한다.
그리고 상처를 더 키우지 않아야 한다. [고통에 대한 대처]
한편, 상처가 원래대로 회복되도록 별도로 노력한다. [고통을 제거하고 좋음을 얻는 노력]
예를 들어 상처를 깨끗이 한다.
그리고 약을 복용한다.
그리고 영양분을 잘 섭취한다.
그리고 건강을 관리하는 노력을 한다.
한편, 자신이 과거에 행한 업의 장애가 쌓여 있다.
이로 인해 상처가 자꾸 나게 될 수 있다. [업장 제거]
예를 들어 자신이 어떤 이를 욕했다.
또는 싸웠다.
그래서 원한관계가 있다.
그래서 원수가 자신을 해치고 상처를 줄 수 있다.
이처럼 과거에 행한 업으로 장애가 쌓여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다시 상처가 나게 할 잠재 원인이 남아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그런 업장도 함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에 대해 사과한다.
또는 좋음을 베푼다.
그래서 상대와 화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사현실에서의 생사고통의 제거도 이와 같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일단 생사고통을 발생시키는 원인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것을 중단한다. [원인 중단-예방]
그 상태에서 이미 발생한 고통에 대한 잘 대처해야 한다. [고통에 대한 대처]
그래서 당면한 고통을 평안히 잘 참고 견딘다.
한편 원래의 좋은 상태로 회복하는 추가 노력을 병행한다. [고통을 제거하고 좋음을 얻는 노력]
그리고 기존에 이미 쌓아 놓은 업의 장애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런 업장을 해소시키는 노력을 병행한다. [업장 제거]
이런 내용들이 수행의 기본 항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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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제거 순서 - 예방의 중요성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직접 당면해 받는다.
이런 경우 생사고통을 쉽게 극복해 벗어나지 못한다.
만일 이런 상태에서 상을 취하지 않고, 평안히 임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대단히 수행이 깊은 수행자다.
안인을 성취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한다.
그리고 더 이상 범부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불퇴전위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상당히 장구한 기간 수행을 닦아야 성취된다.
일반적인 경우는 처음부터 이런 방안을 취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 훨씬 낫다.
예방을 위한 수행도 약간의 고통이 따른다.
이런 경우 예방하지 않을 때 맞이할 고통과 잘 비교해야 한다.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하자.
그러면, '고진감래(苦盡甘來)'나 '감진고래(甘盡苦來)'나 마찬가지라고 잘못 여긴다.
어차피 마찬가지라고 하자.
그래도 예방이 낫다.
다만, 장래 일은 단지 관념으로만 추리한다.
그리고 당장 겪는 즐거움이나 고통은 좀 더 크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당장 힘든 예방 노력을 회피하기 쉽다.
그러나 대부분 예방 노력과 고통이 훨씬 적다.
예를 들어 산에서 벼랑에 떨어지지 않으려 주의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조차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벼랑에 떨어진다고 하자.
그래서 다리나 허리가 부러진다.
그런 경우 나머지 생을 불구로 지내게 된다.
생사고통 예방 노력도 마찬가지다.
예방에 드는 노력이 훨씬 적다.
그래서 예방방안을 잘 취해야 한다.
한편, 원인단계 예방은 발생과 역순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망상분별을 그대로 둔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도 일단 고통에 처하지 않을 방안을 취한다.
그리고 이후 점차 근본 원인을 제거해간다.
그래서 수행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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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의 최초 진입 - 인천교적인 방안
생사고통을 예방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생사고통을 겪는 데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혹- 업 -고]
생사고통의 가장 근본원인은 무명 어리석음과 망상분별과 집착이다.
그래서 근본적인 원인 제거를 원칙적 예방 방안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망집은 그 뿌리가 깊다.
그래서 당장 곧바로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편 생사과정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고 하자.
그러면 수행자체가 곤란하게 된다.
그래서 일단 망집을 그대로 둔다.
그런 가운데 생사과정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일단 벗어나도록 한다.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 일단 생활상 겪는 고통부터 하나하나 제거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수행을 행할 여건부터 확보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수행부터 실천한다.
생사과정에서 3악도에 처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일단 인간과 하늘을 오가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세속 입장에서는 이런 기본 수행도 쉽지 않다.
이런 수행은 후생의 생사고통을 예방한다.
이 경우 먼저 단멸관이 제거 돼야 한다.
그래서 사후 생까지 고려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잘못된 신견이 먼저 제거돼야 한다.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 가운데 일부를 취해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신견]
그런데 이것이 정말 자신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그런 자신은 생사과정에서 끊기게 됨을 보게 된다.
그래서 생사과정에서 사후에 계속 자신의 삶이 이어짐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먼저 잘못된 신견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과정의 정체를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잘못된 견해의 제거가 쉽지 않다.
결국 처음 수행은 믿음에 바탕해 시작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일단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다양한 사후 상태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놓고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그런 가운데 사후가 있거나 없거나 수행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임을 판단한다.
그리고 생사과정에서 3악도를 벗어나는 수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인간과 하늘을 오가는 상태를 목표로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10선법과 같은 인천교적 가르침이 먼저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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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교와 10선법
각 주체가 망집을 바탕으로 현실에 임한다.
이런 경우 각 주체가 각기 집착하는 좋음이 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생명, 재산, 가족...등에 애착을 갖는다.
한 주체가 자신 입장에서 당장의 좋음을 추구한다.
그런 경우 이는 다른 주체의 좋음을 침해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각 주체들이 가해와 피해의 관계에 놓인다.
이런 업의 장애로 인해 3악도의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이런 3악도의 생사고통을 예방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단 그런 업을 중단해야 한다.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내용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주체에게 불쾌나 손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각 주체가 일으키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그런 업을 행하는 기본 원인이 된다.
따라서 현실에서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한편 이미 쌓아 놓은 업의 장애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선업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업장을 제거해가야 한다.
이런 내용이 결국 3악도의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예방방안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이 10선법의 내용으로 제시된다. [신업3, 어업4, 의업3]
10선법 내용은 다음이다.
1, 살생하지 않는다. [불살생不殺生] - 죽을 생명을 살린다. [방생放生]
2, 도둑질하지 않는다. [불투도不偸盜] - 좋음을 필요한 이에게 베푼다. [보시布施]
3, 간음하지 않는다. [불사음不邪婬] - 바르고 깨끗한 행위를 한다. [청정범행淸淨梵行, 정행淨行]
4, 거짓말하지 않는다. [불망어不妄語] - 참된 말을 하라. [진실어眞實語]
5, 이간질하지 않는다. [불양설不兩舌], - 화합시키는 말을 하라. [화합어和合語, 화쟁어和諍語]
6, 욕하거나 멸시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불악구不惡口] - 부드럽고 순박하며 사랑스러운 말을 한다. [유순어柔順語, 유연어柔軟語]
7, 실없고 잡된 말을 하지 않는다. [불기어不綺語] - 쓸모 있고 이치에 맞는 올바른 말을 한다. [질직어質直語]
8,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불탐욕不貪欲], - 탐욕의 더러움을 관하여 탐욕을 버리고, 선한 서원(誓願)을 갖는다. [부정관不淨觀, 무탐無貪, 서원誓願]
9,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다. [부진에不瞋恚] - 자비로운 마음을 갖고, 욕됨을 참는다.[인욕忍辱, 무진無瞋, 자비慈悲]
10, 어리석음에 바탕해 그릇된 견해에 빠지지 않는다. [불사견不邪見] - 원인과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하여, 어리석음을 없애고, 지혜를 갖춘다. [인연관[因緣觀, 무치無癡, 지혜智慧]
생사고통을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태어나고자 하는 하늘을 존중하고 믿는 가운데 이들 10선법을 닦아야 한다.
한편, 생사의 묶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수행자는 일단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하늘과 인간을 오가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10선법은 수행에서 기초적으로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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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의 예비단계
10선법을 닦아 일단 극심한 생사고통으로부터 멀어진다.
그렇다고 생사 묶임에서 풀려나 벗어난 것은 아니다.
생사과정에서 3악도의 고통을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우선 하늘과 인간을 오가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고통을 제거하는 방안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생사고통의 과정을 다시 깊이 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임시적인 방안임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마치 한 생 안에서 고통을 잠시 해결하고 벗어나는 방안과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병에 걸려 죽음에 직면해 있다.
이 때 그는 당장의 병만 치유하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긴다.
그래서 병을 치유한다.
그렇다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사과정에서 하늘에 태어남도 이와 같다.
하늘세계는 상대적으로 수명이 장구하다.
그러나 이는 무량겁에 걸친 생사고통의 근본 해결 방안은 되지 못한다.
한 주체가 하늘세계에 이른다.
그런데 이런 사실 자체가 그런 하늘 역시 변화하고 무상함을 의미한다.
하늘세계도 영원불변하지 않다.
따라서 역시 무상하다.
그래서 이런 상태는 결국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후 다시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가게 된다.
그래서 결국 생사고통에 다시 묶인다.
생사고통을 완전히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생사 묶임 자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천교와 별도로 불교 수행방안이 필요하다.
인천교는 하늘에 태어남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불교는 근본적으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남을 목표로 한다. [해탈, 열반]
이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처음에 다음 예비단계가 필요하다.
이런 예비단계는 2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불교의 가르침 4제법에 들어서기 이전 단계다.
그래서 이를 외범이라고 칭한다. [외범]
이는 먼저 고통의 원인을 개별적으로 대치해 해결한다. [5정심관]
한편, 무상ㆍ고ㆍ무아ㆍ부정을 관해 집착을 제거한다. [별상념주, 총상념주]
즉 본격적으로 4제법에 들어가기 아전에 망집 번뇌와 집착을 약화시킨다. [외범, 3현(5정심관+별상념주+총상념주), 자량위]
또 하나는 불교 가르침 안에서의 예비 단계다.
이는 불교의 4제법에 대해 기초적인 이해를 시작하는 단계다. [내범, 4선근위, (난ㆍ정ㆍ인ㆍ세제일법), 가행위]
이들 내범과 외범을 모두 합쳐 7방편위(方便位)라고 한다.
이들은 범부의 지위 가운데서는 가장 높은 단계다.
생사 묶임을 벗어나는 수행이라는 측면에서는 높은 단계다.
그러나 본격적 수행이 성취되지 않은 점에서는 낮은 단계다.
즉, 성인의 단계로 보지는 않는다.
이는 현인의 단계다.[범부위]
일반 입장에서는 처음 이런 형태로 수행에 들어서게 된다.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입장이라고 하자.
이런 경우는 오히려 이런 기초 내용의 이해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를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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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범으로서 3현
아직 불교교리를 접하지 못한 상태라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기초적 수행은 행할 수 있다. [외범(外凡), 자량위(資糧位)]
즉, 생사고통의 묶임을 벗어나는 기초적 수행을 닦을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셋으로 나뉜다. [3현(三賢)]
첫째 5정심관(五停心觀)을 행한다.
둘째 별상념처(別想念處)를 닦는다. [4념처]
셋째 총상념처(總想念處)를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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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정심관
생사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탐ㆍ진ㆍ치 번뇌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업을 행한다.
그러면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생사에 묶이게 된다.
따라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원칙적으로 망집번뇌를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 망집번뇌의 뿌리가 깊다.
그래서 일단 번뇌가 나타날 때마다 그 때 그 때 이를 대치해 약화시킨다.
즉, 문제 상황마다 서로 다른 대치 방안을 사용한다.
고통을 발생시키는 주된 원인은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의 번뇌다.
그 외 자신과 세상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는 자세가 문제된다.
한편 집중하지 않고 들떠 산란함도 문제된다.
또는 반대로 침울하게 가라앉은 마음 상태도 문제된다.
한편 과거에 쌓은 업장도 장애 원인이 된다.
이런 각 경우 각기 다음 대치 방안을 통해 이를 제거할 수 있다.
그래서 번뇌를 약화시킨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하지 않도록 예방한다.
그래서 이런 방안이 결국 5 정심관 내용이 된다. [5정심관五停心觀, 5도관문五度觀門]
그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탐욕심이 일어날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대상이 깨끗하지 못함을 생각한다.
이를 통해 탐욕을 약화시킨다. [부정관不淨觀 aśubhā-smṛti]
사람은 누구나 신체, 생명에 강한 집착을 갖는다.
더 나아가 이성에 강한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외부 상태에 집착한다.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할 때 이런 자세는 악하고 더러운 결과를 일으킨다.
때문에 탐욕을 잘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것에 들어 있는 나쁨을 찾아낸다.
또 다른 더 좋은 내용들이 없는 측면을 관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에 애착을 갖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몸에 있는 더러운 면을 찾아낸다.
또는 죽어서 신체가 부패하고 썩어가는 과정을 관할 수도 있다.
이처럼 신체의 더러움을 관한다.
이를 통해 탐욕의 마음을 중화시킨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집착을 떨쳐 낸다.
이런 수행법이 부정관이다.
부정관은 탐욕과 집착에 대치하는 방안이다.
그래서 독을 중화시켜 치유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당장 초점을 맞추는 좋음이 있다.
그리고 이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소원을 일으킨다.
이런 소원을 추구하면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따라서 이런 쓸모없는 소원은 남김없이 제거한다.
그리고 대신 맑고 깨끗한 서원을 일으켜 추구하고 성취해야 한다.
즉, 자신과 타인 그리고 모든 생명이 좋게 되는 상태를 원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오래 오래 좋은 상태를 원해야 한다. '
또 이 측면도 좋고 저 측면도 좋고 두루두루 좋은 상태를 원해야 한다.
한편 분노가 일어날 경우가 있다.
어떤 상태에 분노를 일으킬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그에 더 다른 나쁨이 없음을 생각한다.
한편 다른 좋음이 있음을 생각한다.
한편 어떤 상대에 대해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경우 상대와 입장을 바꿔 바라본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과 입장이 다를 바 없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의 입장에 공감할 바를 찾아본다.
한편, 무량겁에 걸쳐 모든 생명이 자신과 부모 자식 관계에 있었음을 관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
한편 모든 중생이 장차 모두 부처님이 될 위대한 존재임을 관한다.
따라서 이에 바탕해 존중하는 마음을 갖는다.
한편, 상대에 가엾이 여길 만한 점을 생각한다.
대부분 망집과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 묶인다.
따라서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긴다.
그래서 자비의 마음을 일으킨다.
한편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를 대하듯 상대를 관한다.
또는 현명한 부모가 철부지 아이를 대하듯 상대를 관한다.
그래서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임해도 이를 평안히 참는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갖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상대를 최상의 상태로 이끌려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널리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자비관慈悲觀 maitrīsmṛti]
한편 어리석음에 싸여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사물이 변화하는 과정과 관계를 반복하여 살핀다.
이로써 지혜를 얻어낸다. [연기관緣起觀 인연관, idaṃpratyayatā-pratītyasamutpāda-smṛti]
한편, 번뇌들로 마음이 들떠 산란할 경우가 있다. [도거掉擧]
또는 마음이 어둡고 혼미할 경우도 있다.
그래서 침울하여 무겁고 둔하게 가라앉은 경우도 있다. [혼침惛沈]
이런 경우 자신의 들숨 날숨을 세며 마음을 집중한다.
그래서 마음을 적정하게 안정시킨다. [수식관數息觀]
한편, 자신과 세상에 대해 집착을 강하게 갖는 경우가 있다.
이로 인해 많은 번뇌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경우 각 계[영역]을 잘 관찰한다.
즉, 3계 6도의 3계(욕계, 색계, 무색계),
그리고 18계 등의 정체와 상호 관계를 잘 관한다.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계 등이다.
이를 통해 이들 모든 존재가 근본적으로 화합의 결과임을 이해한다.
즉 이들 현실 내용은 각 영역에서 그처럼 얻어진다.
그러나 이는 다른 영역에서는 본래 얻어지지 않는 내용이다.
다만 다른 영역의 내용들과 화합을 통해 얻어지는 것뿐이다.
즉, 이들 일체는 지수화풍공식(地水火風空識)과 같은 요소[六界]가 화합하여 나타난다.
그래서 이들은 마치 침대에서 꾸는 바다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리고 이들에는 본래 영원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 (무아無我, 무자성無自性)
이는 비유하면 수소와 산소가 화합해 물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물은 그처럼 수소와 산소가 화합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수소와 산소에서는 물의 성품과 모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침대에서 꾸는 바다 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이들 각 영역[界]의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
그래서 이들 각 영역의 현실 내용은 본래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이들은 집착을 가질만한 것이 아님을 이해한다.
그래서 집착을 끊어낸다. [계분결관界分別觀 dhātu-prabheda-smṛti ]
한편. 이외에도 공연히 두려움과 불안, 걱정을 갖는 경우도 있다.
또는 이미 쌓은 업장으로 인해 핍박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당장 심한 고통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부처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부처님을 본받고 의지하는 마음을 갖는다. [념불관念佛觀]
이들은 각 문제 상황에 대응해, 각 방편을 대치해 사용한다.
5정심관의 5항목을 들 경우 계분별관을 넣기도 하고, 대신 념불관을 넣기도 하다.
- 별상념주 총상념주
망집 번뇌를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세상과 자신의 정체와 성격에 대해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망상 분별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다만, 망집의 뿌리는 대단히 깊다.
그래서 처음 기초적으로 다음 내용을 관한다.
먼저 자신의 몸[신身]과 느낌[수受], 마음[심心], 그리고 나머지 외부 현상[법法]을 관한다. [4념주관四念住觀]
그리고 이에 대해 각기 다음처럼 관한다.
즉, 먼저 몸이 깨끗하지 못함을 관한다. [관신부정觀身不淨]
그리고 느낌이 고통임을 관한다. [관수시고觀受是苦]
그리고 마음이 변화하며 영원하지 않음을 관한다. [관심무상觀心無常]
그리고 다른 일체 외부현상[法]이 참된 진짜가 아니며 실체가 없음을 관한다. [관법무아觀法無我]
이것이 별상념주다.
한편, 다시 이들 전체에 대해 부정, 고, 무상, 무아를 함께 관한다.
즉, 처음 별상념주로 몸이 부정함을 관했다.
이후 이를 통해 몸과 느낌, 마음, 일반현상 일체가 모두 부정함을 관한다.
또 고통, 무상, 무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이들 일체가 모두 고통이 됨을 관한다.
또 이들 일체가 모두 변화하고 무상함을 관한다.
또 이들 일체가 참된 진짜가 아니며 실체가 없음을 관한다.
결국 이들 신ㆍ수ㆍ심ㆍ법 일체가 부정(不淨),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임을 관한다. [부정不淨,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
이를 총상념주라고 칭한다.
이를 통해 기본적인 망집을 약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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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신부정觀身不淨
현실에서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평소 이에 대해 망집을 갖고 집착한다.
즉 몸이 영원하다.
몸이 즐거움을 준다.
이 몸이 진짜 참된 자신이다.
이 몸이 깨끗하다.
이런 식으로 잘못 여긴다. [상락아정常樂我淨]
그런 집착을 갖고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바탕해 일정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바를 함부로 침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각 주체 간에 가해 피해관계가 중첩해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업으로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따라서 처음 이런 잘못된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망집의 뿌리는 대단히 깊다.
그래서 우선 이런 망집을 약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이를 위해 우선 이런 몸이 사실은 깨끗하지 못함을 관한다.
몸 안에는 피 고름과 소대변이 차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 썩어 없어진다.
그래서 사체가 썩어 없어지는 모습을 하나하나 관한다.
이를 관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아홉 가지 방안이 있다.[9상九想]
시신이 부풀어 팽창한다는 생각 [방창상胮脹想 vyādhmātaka-saṃjnā]ㆍ
고름이 곪아 터진다는 생각 [농란상膿爛想 vipūyaka-saṃjnā]ㆍ
시신의 색이 붉으죽죽하게 변한다는 생각 [이적상異赤想 혈도상血塗想 vilohitaka-saṃjnā]ㆍ
시신의 색이 푸르게 어혈진다는 생각 [청어상靑瘀想 vinīlaka-saṃjnā]ㆍ
새나 짐승이 시신을 파먹는다는 생각 [탁담상啄噉想 vipaḍumaka-saṃjnā]ㆍ
새나 짐승에게 먹혀 시신이 분열된다는 생각 [이산상離散想 vikṣiptaka-saṃjnā]ㆍ
육신이 다해 백골만 남게 된다는 생각 [해골상骸骨想 asthi-saṃjmā]ㆍ
백골이 불에 태워진다는 생각 [분소상焚燒想 vidagdhaka-saṃjnā]ㆍ
시신이 부패하여 없어진다는 생각 [멸괴상滅壞想 파괴상破壞想 괴란상壞爛想 vikhāditaka-samjnā)
등이다. ( 『대반야바라밀다경』 제2분 환희품 제2)
그래서 몸은 애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현실 일체에 적용한다.
예를 들어 집착을 심하게 가져 문제가 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집착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에 숨겨진 나쁜 점을 찾아내 관한다.
또는 인과상 결합된 과거나 미래의 나쁜 점을 찾아내 관한다.
또는 그것을 더럽고 좋지 않게 보고 싫어할 입장이 있다.
그런 입장에서 이를 대해 관할 수 있다.
또는 더 좋은 점이 없는 점을 관할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좋은 점들이 없는 점을 관할 수도 있다.
또는 대신 있을 좋은 점이 없는 점을 관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깨끗하지 않고 더럽고 나쁜 측면을 관한다.
그래서 집착을 제거한다.
앞에 9상을 나열했다.
이에 다시 다음 생각을 더하면 10상이라고도 한다.
즉, 온갖 세간은 모두 즐겁지 못하다는 생각[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을 더하기도 한다.
(『대반야바라밀다경』 초분 보살품 제12지2)
다만 처음 부정관을 닦는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일단 몸을 관하는 것이 쉽다.
그래서 별상념주와 총상념주의 구분이 있게 된다. [관신부정觀身不淨]
나머지 항목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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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수시고觀受是苦
느낌에는 즐겁고 좋은 느낌이 있다. [낙수樂受]
또 고통스럽고 나쁜 느낌이 있다. [고수苦受]
그리고 고통스럽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모호한 느낌도 있다. [사수捨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또 심지어 일부는 좋고 일부는 나쁜 느낌도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모든 느낌이 고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현실에서 고통이 아닌 경우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통이 문제다.
그리고 고통의 해결이 요구된다.
이런 입장에서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앞과 달리 판단한다.
즉, 이들이 끝내 고통과 관련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야 생사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사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이 모든 경우가 고통과 관련된 측면을 살피게 된다.
그런 입장에서 이 모든 경우가 다 고통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각 주체는 좋음에 집착한다.
그런 집착 때문에 다른 생명을 함부로 침해한다.
또 한편, 나쁨을 받으면 분노를 일으킨다.
그리고 상대를 보복하고 해치게 된다.
그리고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는 경우는 다시 무관심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생명의 고통을 외면하게 된다.
이로 인해 고통을 되돌려 받는 상태에 처한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는 이들 일체가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한편, 좋음에 집착한다고 하자.
그러나 좋음은 영원하지 않아 끝내 사라진다.
이런 경우 좋음에 집착한 만큼 그에 비례해 고통을 받게 된다. [괴고壞苦]
한편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는 경우라고 하자.
그 역시 영원하지 않고 변화한다.
그래서 결국 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 [행고行苦]
그리고 당장 고통스런 나쁨이 있다고 하자.
이는 당장 그런 고통을 겪게 된다. [고고苦苦]
이처럼 각 경우가 모두 고통과 관련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먼저 이해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에 대한 집착을 제거한다.
일체가 모두 고통에 귀결되는 사정을 관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느낌을 놓고 관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이후 현실 일체에 이 방식을 적용한다.
그래서 별상념주와 총상념주의 구분이 있다. [관수시고觀受是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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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무상觀心無常
현실 각 내용은 변화한다.
그래서 끝내 영원하지 않다.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
그러면 이에 대해 갖는 집착을 완화시킬 수 있다.
일체가 무상함을 관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마음을 관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이후 현실일체에 이 방식을 적용한다.
그래서 별상념주와 총상념주의 구분이 있다. [관심무상觀心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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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법무아觀法無我
한 주체가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가운데 각 부분은 자신이나 또는 영희, 고양이, 꽃, 바위 등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대하는가에 따라 매 경우 달라진다.
각 감관별로 얻는 내용도 다르다.
예를 들어 눈을 뜨고 대하는 내용과 코로 대하는 내용이 다르다.
가까이 대할 때와 멀리 대할 때도 다르다.
정지해서 대할 때와 움직이며 대할 때도 다르다.
아침에 대할 때와 밤에 대할 때도 다르다.
그렇지만 한편, 이 각각은 일정한 모습과 성품을 지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여전히 일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참된 진짜로서 뼈대가 되는 실체가 이 안에 있어서 그렇다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현실 각 내용에 이런 참된 실체가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면 이들 내용은 꿈과 다른 성격을 갖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실답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집착한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묶이게 된다.
그러나 이를 깊게 관한다고 하자.
그러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즉, 현실 일체는 변화하고 무상하다.
그런데 이런 참된 진짜로서 영원하고 고정된 뼈대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런 현실 내용도 얻어질 도리가 없다.
따라서 그런 실체는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진짜로서의 참된 실체가 따로 있다고 하자.
그런데 현실 일체는 변화하고 무상하다.
그래서 현실 일체가 이런 실체와 관련 맺을 사정도 없다.
변화하는 것이 영원하고 고정된 것이 될 도리가 없다.
만일 변화하는 것이 영원한 것이 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실체 역시 변화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실체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지 않게 된다.
그래서 변화하는 현실 입장에서는 이런 실체와 관련 맺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실체를 별도로 살필 실익도 없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먼저 기초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본래 실체가 없음을 잘 관해야 한다.
즉, 꿈과 달리,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뼈대는 없다.
따라서 현실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일체가 이러함을 관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처음에 일반적인 외부현상을 놓고 관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이후 현실일체에 이 방식을 적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실일체가 모두 참된 진짜가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일체에 참된 실체가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별상념주와 총상념주의 구분이 있다. [관법무아觀法無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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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상념주 총상념주등을 잘 닦는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 일체가 부정(不淨)ㆍ고(苦)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임을 잘 관하게 된다.
그러면 생사현실에 대한 집착을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사의 묶임에서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후 본격적인 수행을 시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예비 단계의 수행이 된다.
이들 내용은 4념주와도 관련된다.
4념주는 불교 정식 수행항목이다.
또 무상ㆍ고ㆍ무아ㆍ열반적정ㆍ공은 불교 가르침의 핵심이다.[법인설]
이들은 이런 가르침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이들은 기초적 내용이다.
따라서 상식적 입장에서도 깊게 관찰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즉, 부처님 가르침을 본격적으로 닦지 않은 상태에서도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불교 밖의 일반적인 수행 예비단계로 본다. [외범]
한편 이는 망집 번뇌를 본격적으로 제거하는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아직은 범부 단계다.
다만 이런 기본 수행을 잘 성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집착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일반 상태에서는 가장 높은 현인의 단계다.
이런 상태에서 좀 더 불교의 가르침을 닦을 수 있다.
그런 경우는 기초적으로 4제법의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경우 불교내 수행 예비 단계가 된다. [내범]
이를 이하에서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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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내 수행 예비단계 (난ㆍ정ㆍ인ㆍ세제일 4선근위)
불교의 수행에 들어선다고 하자.
그런 경우 기초적으로 4제법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고제- 고집제 - 고멸제 - 고멸도제다.
생사현실에서 고통의 제거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의사가 병을 치료한다.
그런 경우 병의 정체ㆍ병의 발생원인ㆍ병이 치유된 목표 상태ㆍ병의 치유방안을 살펴야 한다.
생사고통의 해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4제법 내용이 부처님 가르침이 된다.
그리고 4제법을 관하고 닦는 것부터 불교내 수행 단계가 된다. [내범]
4제법을 처음 닦는 단계로 4선근위(四善根位)가 있다.
난위(煗位)ㆍ정위(頂位)ㆍ인위(忍位)ㆍ세제일위(世第一位)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고ㆍ집ㆍ멸ㆍ도 4제의 16행상을 관하고 닦는다.
즉, 모두 4제법을 관하고 닦는 수행이다.
다만 그 정도에 따라 단계를 나눈 것이다.
여기서는 간단히 4제 16행상을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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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제(苦諦)의 4행상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
생사현실에서 고통을 겪는다.
이 상태가 문제다.
그것은 다음 바탕에서 나타난다.
현실 일체는 연에 의존해 생멸 변화한다.
따라서 영원한 것이 아니다.
무상하다. [비상非常 anitya]
그런데 이런 현실에 집착을 갖는다.
그러면 일체는 고통에 귀결된다. [고苦 duḥkha]
한편 현실의 본바탕 실재는 각 주체가 끝내 얻지 못한다.
그래서 언어 분별을 떠난다.
다만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란 표현을 빌려 표현하게 된다. [공空 śūnya]
본바탕 실재는 생사와 생멸도 떠난다.
그래서 실재는 본래 고통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니르바나다.
현실은 그런 실재를 바탕으로 얻는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생멸과 생사 고통을 겪어 나간다.
한편, 현실 일체에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그런데 현실 일체는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없다. [비아非我 anātman]
그러나 현실에서 이를 실답다고 여겨 집착을 갖는다.
그러면 이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그래서 고통과 관련해 비상(非常)ㆍ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를 관한다.
이를 통해 상(常), 락(樂), 생멸, 아(我) 등의 잘못된 견해를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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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집제(苦集諦)의 4행상 [인因ㆍ집集ㆍ생生ㆍ연緣]
고통은 일정한 인과에 의해 나타난다.
즉,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런 가운데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래서 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망집 번뇌와 업(業)이 고통을 낳는 씨앗[種子]에 해당한다.
즉, 고통을 낳는 직접 원인이 된다. [인因 hetu]
그래서 고통의 결과들이 모여져 나타난다.[집集 samudaya]
그리고 고통의 존재를 이어 상속시켜 나타난다.[생生 prabhava]
그리고 이들이 고통의 결과를 나타나게 하는 조건들(연)이 된다. [연緣 pratyaya]
그래서 고통의 발생과 관련해 이런 측면을 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과와 관련한 잘못된 견해를 다스린다.
즉, 무인론, 단일원인론, 실체론에 바탕한 전변론, 적취론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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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멸제(苦滅諦)의 4행상 [멸滅ㆍ정靜ㆍ묘妙ㆍ리離]
수행의 목표 상태는 고통이 멸한 상태다.
즉, 일체 고통과 번뇌 망집이 소멸된 상태가 목표다.
이를 해탈, 니르바나[열반]이라고 표현한다.
해탈 열반의 상태는 모든 현실의 얽매임이 다해 사라진 상태다. [멸滅 nirodha]
그리고 탐ㆍ진ㆍ치 번뇌의 시끄러움이 쉬고 적정한 상태다. [정靜 śānta]
그리고 3계를 벗어나 온갖 근심이 없어진 묘한 상태다. [묘妙 Pranīta]
그리고 온갖 생사고통과 재액(災厄)을 멀리 벗어나 여읜 상태다. [리離 niḥsaraṇa]
그래서 해탈과 니르바나를 이처럼 관한다.
이로써 해탈과 관련한 잘못된 견해를 다스린다.
즉 해탈이 없다고 잘못 여기는 경우가 있다.
또는 해탈이 고통이라고 잘못 여기는 경우가 있다.
또는 정려의 즐거움 등만 묘하다고 잘못 여기는 경우가 있다.
또는 해탈상태가 생사현실로 다시 물러난다고 잘못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해탈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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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제(苦滅道諦)의 4행상 [도道ㆍ여如ㆍ행行ㆍ출出]
고멸도제는 고통을 제거한 상태를 성취하는 수행방안이다.
이는 진리를 깨달아 열반에 들어가는 길이다. [도道 mārga]
그리고 이는 실상과 생사현실의 올바른 이치와 같고 들어맞는다. [여如 nyāya]
이는 열반적정의 상태로 올바로 향해 실천해 나아가게 한다. [행行 pratipad]
그리고 이는 생사의 묶임을 영원히 초월해 벗어나게 해준다. [출出 nairyāṇika]
이처럼 수행방안을 관한다.
따라서 열반과 관련한 잘못된 견해들을 다스린다.
즉 현실에서 열반에 이를 방안이 없다고 잘못 여기기도 한다.
또 열반에 이름에 있어 잘못된 방안을 취하기도 한다.
또는 부족함이 있는 방안을 잘못 취하기도 한다.
또는 중간에 물러남이 있는 방안을 잘못 취하기도 한다.
이처럼 열반에 이르는 잘못된 방안들을 제거한다.
4선근위에서는 이처럼 4제법을 관한다.
그리고 4제법을 닦아 나간다.
4제법은 부처님의 기본 가르침이다.
이는 곧 고통의 정체와 그 발생원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관련된다.
그리고 고통이 제거된 목표상태과 그 성취방안을 이해하고 닦는다.
처음 고제를 관하는 과정에서부터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을 닦게 된다.
이는 제행무상ㆍ일체개고ㆍ제법무아ㆍ열반적정ㆍ일체개공과 같은 기본 가르침과 관련된다. [법인설]
이들은 일체에 대해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본 진리다.
그리고 이들 내용이 불교의 기본 핵심이 된다.
따라서 이는 불교내 예비 수행단계에 포함된다. [내범]
그리고 4선근위는 불교 수행의 기초적 예비단계다. [가행위加行位]
다만, 이는 아직 망집 번뇌를 본격적으로 제거한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아직은 범부의 상태다.
그러나 범부 입장에서는 최상위다.
다만 이는 수행 정도와 깊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4선근위 안의 차별도 4제법의 이해와 수행 정도에 따른 구분이다.
4선근위는 생사 고통과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다음 차이가 있다.
난위煗位의 상태는 3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열반을 끝내 증득할 정도에 도달한 상태다.
4제법을 관해서 이런 정도에 이른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난위라고 칭한다.
한편, 정위頂位는 3악도에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끝내 선근은 잃지 않는 정도에 도달한 상태다.
한편, 인위忍位는 이제 더 이상은 3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된 정도에 이른 상태다.
한편, 세제일위世第一位는 번뇌를 가진 범부 상태에서는 최상에 이른 상태를 가리킨다.
현인의 최상위에서 이후 조금만 수행을 더 닦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제 성자의 수행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결국 이들은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와 수행 정도에 따른 구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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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수행의 필요성- 생사고통의 제거
현실에서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러면 자신의 몸도 보이고 영희나 철수나 꽃이나 바위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의 정체에 대해 기본적으로 올바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생사현실에서 많은 생명들이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반복해 겪는다.
그래서 이 생사고통을 미리 예방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 처할 때 이를 극복해 제거해야 한다.
한편, 생사현실에서 다시 무량한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다른 생명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생사고통의 정체와 그 발생원인부터 살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이 제거된 목표 상태와 그 성취 방안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다음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우선 각 주체는 근본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망집 번뇌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업으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예방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이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즉 이는 생사현실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는 수행과 곧바로 직결된다.
생사고통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명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일으킨 망집이다.
그러나 망집의 뿌리가 대단히 깊다.
한편 각 주체가 처한 생사현실의 상황은 각기 다르다.
그래서 각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리 방안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방안에는 다양한 단계가 시설된다.
그리고 단계별로 생사현실의 정체를 파악하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이를 먼저 불교 전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4제법에 해당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4제법은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그래서 이 내용을 먼저 살피기로 한다.
그런 가운데 기초 내용을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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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사현실의 생사고통 [고제苦諦]
각 주체는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당장 고통을 겪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크게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을 넓게 살펴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 삶에서 각 주체가 겪는 고통이 많음을 살필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생사고통을 잘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실에서 각 주체가 겪는 생사고통을 대강 살펴보자.
먼저 한 주체가 처음 생의 출발단계에 망집을 일으킨다.
그래서 망집에 바탕해 일정부분을 취해 자신으로 여긴다.
그런 가운데 각 주체는 생로병사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이 생로병사 과정에서 먼저 고통을 겪는다. [생로병사고]
각 주체는 처음 낯선 환경에 태어난다.
그래서 고통을 겪으며 삶을 시작한다. [생生]
그러다가 어느덧 뜻과 달리 늙어간다.
그리고 각 신체 기능이 쇠퇴한다.
그래서 불편과 고통을 겪는다. [노老]
또 살면서 사고나 질병을 만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병病]
그러다가 죽음에 직면해 두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이를 피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는다. [사死]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이런 생사를 반복해 나간다.
현실에서 당장 이런 고통을 당면한 상태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임한 이상 그 누구도 이런 고통을 피할 수 없다.
한편 각 주체는 망집에 바탕해 현실에 임한다.
그런 가운데 소원을 일으킨다.
그런데 현실에서 소원을 뜻처럼 잘 성취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로 인해 갈증ㆍ불만ㆍ불쾌ㆍ걱정ㆍ불안ㆍ슬픔ㆍ두려움ㆍ고통 등을 겪는다. [구부득고]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우선 한 주체는 망상분별에 바탕해 삶에 임한다.
한 주체는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가운데 그 일부분을 취해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외 나머지를 외부 세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한다.
그러면 각 주체 간에 해치고 보복하는 관계가 된다.
그래서 원수를 만나 고통을 겪어 나간다. [원증회고]
또 반대로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을 겪는다. [애별리고]
그리고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망집에 바탕해 삶에 임한다.
그런 경우 그 자신[5취온] 일체가 모두 고통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얻는 생사현실 일체가 고통이 된다. [5음성고五陰盛苦]
현실 일체는 다음 형태로 모두 고통과 관련된다.
우선 현실 일체는 본래 화합을 통해 얻는다.
따라서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현실 일체는 변화해간다.
그런 가운데 망집에 바탕한 삶은 결국 고통을 맞이하게 된다. [행고]
한편, 일시적으로 좋음을 얻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가 애착을 갖는 일체[5음]는 끝내 변화하고 허물어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고통을 받게 된다. [괴고]
그런 가운데 각 주체는 원치 않는 고통을 직면하게 된다.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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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사고통을 겪는 원인 [고집제]
생사현실에서 생사 고통을 겪는다.
이에는 일정한 인과 관계가 있다.
즉, 근본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망상분별 번뇌를 일으킨다.
=>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의업,구업,신업]
=>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
이런 인과관계가 있다.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생사과정에서 근본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처음 망집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이 부분을 자신으로 여긴다. [구생기 신견]
그리고 있다ㆍ없다ㆍ영원하다ㆍ단멸한다는 등의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구생기 변견]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자신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탐욕, 분노를 일으키며 반응해간다. [탐ㆍ만ㆍ진ㆍ치]
그런 가운데 생을 출발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임한 이후 다시 온갖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우선 현실에서 자신과 외부 세상에 대해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정체에 대해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다. [분별기 신견]
그리고 그 유ㆍ무 상ㆍ단에 대해서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다. [분별기 변견]
그리고 현실 각 내용의 생멸과 인과에 대해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다. [사견]
그런 가운데 세상의 각 내용에 대해 온갖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견취견]
또한 가치와 이를 성취할 방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계금취견]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얻는 현실 내용을 실답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엉터리로 분별한 내용도 역시 실다운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후 이런 망집번뇌에 바탕해 소원을 일으켜 추구한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해간다.
그런데 이처럼 망집을 일으킨 주체가 대단히 많다.
그래서 이로 인해 각 주체들이 서로 가해 피해 관계를 중첩해 쌓아가게 된다.
그래서 이로 인해 업의 장애가 쌓인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묶이게 된다. [혹-업-고/ 욕계내 3악도]
현실 사례를 놓고 생각해보자.
현실에서 사고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쉬려고 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멀리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그것을 금으로 잘못 볼 수 있다. [망집번뇌-혹]
그래서 금을 주우려고 그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업]
그러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졌다.
그래서 허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남은 생을 평생 장애 상태로 고통을 받고 지내게 된다. [고통]
이런 사고의 경우 하나도 이처럼 관계를 나열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고통은 어느 순간 아무 원인 없이 받게 된 것이 아니다.
즉 다음처럼 받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침대에서 누어 잤다.
그러나 일어나 보니 홀연히 낭떠러지에 떨어져 있다.
그리고 허리가 부러진 상태가 된 것이 아니다.
또는 절대적 신에 의해 어쩔 도리 없이 고통을 받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침대에서 누어 잤다.
그런데 신이 갑자기 자신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낭떠러지에 자신을 집어 던졌다.
그래서 갑자기 허리가 부러진 것이 아니다.
또는 숙명에 의해 어쩔 도리 없이 발생한 일도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침대에서 누어 잤다.
그런데 자신의 뜻과 달리 숙명적으로 산에 올라가게끔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뜻과 달리 낭떠러지를 향해 옮겨 갔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생사현실내 고통은 위와 같이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생사현실에서 생사 고통을 겪는 데에는 일정한 인과관계가 있다.
즉, 망상분별 번뇌 - 이에 바탕해 행하는 업 - 고통의 인과관계가 있다.
이렇게 그 과정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여기서 먼저 가장 근본적 원인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처음 어리석음에 바탕해 망상분별과 번뇌를 먼저 일으킨다.
따라서 이 내용부터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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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계의 소원의 성취 과정의 문제
현실에서는 대부분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한다.
그리고 자신의 좋음을 집착한다.
그래서 탐욕을 일으켜 추구해간다.
그리고 나쁨에는 분노로 반응한다.
이처럼 망상분별과 탐ㆍ진ㆍ치 3 독에 바탕한다.
그런 가운데 소원을 일으킨다.
또한 인과도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한다.
그런 가운데 소원을 성취할 방안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업을 행해간다.
그처럼 한 주체가 자신의 소원 성취를 추구한다.
그래서 감각현실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행한다.
그런 경우 이에 따라 다른 주체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 경우 각 주체의 입장이 각기 다르다.
그래서 각 주체들 간에 가해 피해관계가 형성된다.
욕계에서 각 주체는 일정한 감각현실을 엇비슷하게 얻는다.
그리고 한 주체가 감각현실을 변화시키면 다른 주체도 영향을 받게 된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감각현실은 각 주체가 얻어낸 마음 내용이다.
그래서 감각현실을 변화시키려 업을 행한다.
이런 경우 언뜻 다른 주체와는 관계가 없을 것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감각현실은 오로지 그 주체의 마음만으로 얻어내는 것은 아니다.
물론 본바탕 실재 영역에서 그런 감각현실은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감각현실은 실재를 바탕으로 각 주체의 마음이 화합해 얻어낸다.
그리고 일정한 연기관계에 구속을 받는다. [의타기상]
그런 경우 감각현실은 관념에 응해 바로바로 얻어질 수는 없다.
감각현실 영역은 여러 조건에 의해 변화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성취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주체가 업을 행한다.
그러면 이는 실재 영역에 대해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각 주체가 함께 대하게 된다.
그리고 각 주체가 감각현실을 얻어 나가게 된다.
따라서 한 주체가 감각현실을 변화시키면 다른 주체도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런데 각 주체 간에 이해관계와 입장이 다르다.
그래서 어떤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러면 다른 주체는 상대적으로 피해를 받는 상태가 되기 쉽다.
예를 들어 자신이 닭을 잡아 끼니를 때운다고 하자.
자신은 이런 상태가 좋음을 준다고 여긴다.
그러나 상대는 이로 인해 지극한 고통을 받게 된다.
이처럼 각 주체 간에 이해관계와 입장이 다르다.
그로 인해 각 주체는 서로 가해와 피해를 주고받는 관계에 놓인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상대를 해치거나 보복을 주고받게 된다.
그리고 각 주체 간에 가해 피해관계가 중첩해 쌓이게 된다. [업을 통한 가해피해관계의 중첩]
그래서 장애가 쌓이게 된다. [업의 장애]
이는 결국 각 주체의 소원 성취를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만일 한 주체의 업이 순수하게 그 주체 영역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하자. [예: 마음안 공종자]
그렇다면 다른 주체와 관계될 이치는 없다.
그런데 각 주체는 이들 실재를 바탕으로 내용을 얻게 된다.
본바탕 실재는 공하다.
그러나 이는 실재에 전혀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각 주체가 본바탕을 함께 대한다.
그런데 각 주체의 감각기관과 인식기관 구조가 서로 엇비슷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각 주체는 서로 비슷한 감각현실을 얻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한 주체가 감각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업을 행한다.
이 상황에서 다른 주체도 본바탕 실재에 바탕해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그로 인해 다른 주체도 영향을 받는다.
다만, 이 경우 실재와 현실의 관계도 이와 함께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바탕 실재는 한 주체가 끝내 얻어내지 못한다.
한 주체는 그가 관계해 화합해 얻는 내용만을 얻는다.
본바탕 실재는 그런 관계를 떠나 있는 그대로의 상태다.
그래서 한 주체가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 내용은 각 주체가 화합해 얻어낸다.
그래서 실재와 감각현실의 관계는 마치 침대에 누워 꾸는 바다 꿈과 성격이 같다.
그런 의미에서 감각현실은 실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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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상분별과 번뇌 집착
한 주체가 현실에서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이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상으로 잘못 여긴다.
이처럼 생사현실의 정체에 대해 잘못 이해한다.
그런 가운데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바탕해 가치와 인과를 판단한다.
그래서 좁게, 오직 자신이나 가족만 고려한다.
또 짧게, 당면한 당장의 순간만 고려한다.
또는 대단히 짧은 기간만을 고려한다.
또 얕게, 자신이 관심 갖고 초점을 맞추는 측면만 고려한다.
그런데 넓고 길고 깊게 생사과정을 이어 이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와 대부분 정반대 방향이 된다.
그런 가운데 좋고 나쁨을 분별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현실 내용에 애착을 갖는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 등의 번뇌를 일으킨다. [탐진치 3독]
그리고 이에 집착을 일으킨다. [망집번뇌]
그런 경우 인과관계에 대해 잘못된 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인과관계 문제를 대단히 짧게 관찰한다.
생사과정에서 한 주체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경우 자신과 관련된 것은 모두 끝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사후에 자신과 관련되는 것은 전혀 없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오직 현재의 한 생만을 짧게 고려하며 삶에 임하게 된다. [단멸관]
이처럼 망상분별에 바탕해 단멸관을 취한다.
그러면 단멸관에 바탕한 목표나 방안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단멸관이 일으키는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비유로 농사를 들어보자.
봄에 씨를 뿌린다.
그러면 가을에 열매를 맺어 수확할 수 있다.
그러나 짧게 봄만 놓고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봄에 씨를 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여긴다.
그래서 봄에 씨를 다 식량으로 먹어 없애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그런 경우 길게 1년, 10년을 놓고 판단하는 경우와 정반대 방향이 된다.
그런데 단멸관에 바탕해 좋다고 여기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뜻을 성취하는 방안을 찾는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업]
그리고 오히려 각 주체가 희망한 내용과 반대 상태에 처하게 된다. [ 구부득고]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 나간다. [생사고통]
생사현실도 이와 사정이 같다.
짧게 1생만 놓고 판단한다.
그런 경우 무량겁을 놓고 판단하는 경우와 대부분 반대 방향이 된다.
생사현실에서 이런 고통이 문제된다.
따라서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한다.
이런 고통을 삶에서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먼저 생사고통의 정체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인과 전개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즉, 생사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인과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에 바탕해 생사 고통을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근본 원인은 근본 무명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일으키는 잘못된 망상분별과 집착이다.
따라서 잘못된 망집 번뇌 가운데 대표적 내용을 아래에 나열해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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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 [신견身見]
어떤 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경우 그 가운데 일부분을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긴다.
색ㆍ성ㆍ향ㆍ미ㆍ촉 및 수ㆍ상ㆍ행ㆍ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즉, 5온을 나[我] 또는 나의 것[我所]이라고 잘못 여긴다. [유신견有身見, 살가야견薩迦耶見 satkāya-dṛṣṭi]
그러나 현실내용은 그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이런 내용을 얻는 그 자신'이 들어 있을 이치가 없다.
따라서 위 판단은 잘못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대부분 이런 부분을 취해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먼저 그런 부분은 살아가는 동안 늘 일정하게 있는 부분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런 부분이 늘 영원히 유지되는 내용으로서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 [상일]
또 그 부분은 자신 뜻대로 움직이고, 또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잘못 여긴다. [주재]
그리고 그 부분에 대상을 파악하는 감관이 위치한다고 여긴다.
즉, 그런 부분에 주관이 위치한다고 잘못 여긴다. [대상에 대한 주관]
그래서 그 부분을 곧 자신으로 잘못 취한다.
이런 사정으로 이를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잘못 분별한다.[분별기신견]
그런 가운데 그 부분은 다른 부분과 달리 깨끗하다고 여긴다. [상-락-아-정]
그리고 집착을 갖고 임한다.
그런데 이는 사실은 생을 출발하는 단계 이전에 일으킨 망상분별에 그 근원을 둔다.[구생기신견]
즉 처음 제7식이 이미 일정부분을 취하여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아치我癡ㆍ아견我見ㆍ아만我慢ㆍ아애我愛]
그리고 이에 바탕해 태어나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후발적으로 다시 의식 표면에서 분별을 행한다.
즉, 제6식이 다시 신견을 일으키게 된다.[분별기신견]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 가운데 일부를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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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함과 단멸관을 취함 [변견邊見]
상(常)과 단(斷) 두 극단[二邊]에 집착하는 입장이 있다.[변집견邊執見, antagrāha-dṛṣṭi]
현실에서 스스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겨 취한다.
그런 경우 그 부분은 계속 그 상태로 영원히 유지된다고 잘못 분별하기 쉽다. [상견常見, nityadrsti, śāśvatadrsti]
그처럼 자신의 정체에 대해 잘못 이해한다.
그런 경우 이들에 참된 영원불변한 실체가 있다고 여기기 쉽다.
그리고 그런 실체 때문에 그런 내용을 그처럼 얻게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현실은 이런 실체적 요소가 쌓여 얻어진다고 여기기도 한다. [적취설積聚說]
또는 현실은 이런 실체가 각 경우 변화해 얻어지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전변설轉變說]
그리고 현실에 그처럼 영원히 상주불변하는 실체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러나 실체가 영원불변하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한편 변화하는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주장은 앞뒤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즉, 자체 모순이다.
따라서 이는 잘못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견해를 갖는다.
그런 경우 이는 유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이다.
이 경우 현실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고 집착한다.
그래서 그 바탕에서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이는 생사고통을 겪는 주된 원인이 된다.
또 한편 다음처럼 단멸관을 취하는 입장도 있다.
현실에서 스스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겨 취한다.
그런 경우 자신의 몸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듯 여겨진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몸은 조금씩 변화한다.
그래서 자신의 육체는 생사과정에서 끝내 소멸된다.
그러면 이로 인해 자신의 삶은 그것으로 모두 끝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죽음 이후 자신과 관련된 것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고 잘못 이해한다. [단멸관]
이는 또한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잘못된 입장이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단멸관을 취한다.
그런 경우 자신은 한 생만 놓고 관찰한다.
그래서 이런 한 생만 고려하며 삶에 임한다.
그리고 삶의 목표도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잘못 설정한다.
그런 경우 매순간, 세속적 감각적 쾌락에만 초점을 맞추고 임하기 쉽다.[순세파 Lokāyata]
그리고 그 성취방안도 마찬가지로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해 찾는다.
그래서 이처럼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한 가운데 삶에 임한다.
그런 가운데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런 경우 이로 인해 대부분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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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ㆍ진ㆍ치ㆍ만 [미사혹, 수혹]
현실 내용 가운데 일 부분을 스스로 '자신의 몸'이라고 잘못 여긴다.[신견]
그리고 이들 내용이 영원하다고 잘못 여긴다. [상견-변견]
또는 이들 내용이 사후 끊겨 아주 없게 된다고 여긴다. [단견-변견]
이런 신견과 변견은 태어나 살면서 분별하는 과정에서도 일으킨다. [분별기分別起 신견, 변견]
그러나 신견과 변견은 사실은 생을 출발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일으킨다. [구생기俱生起 신견, 변견]
즉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갖는 선천적인 번뇌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너무 바삐 생활한다.
그래서 스스로 일정부분을 자신으로 의식하지 못한다.
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사고로 의식을 상실할 수 있다.
그래도 평소 스스로 자신으로 여긴 부분은 평소대로 유지된다.
예를 들어 너무 바쁘다.
그래서 머리나 손과 발을 일일이 자신 몸이라고 '분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어떤 모임에 바삐 나갔다.
그렇다고 그런 각 부분이 따로 떨어진 상태로 옮겨가는 것은 아니다.
이들 부분은 현실에서 하나의 몸이 갖는 일정한 특성을 계속 갖는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제 6의식에서 행하는 분별에 바탕하는 것이 아니다.
분별하지 않아도 그런 부분이 그런 특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는 구생기 신견에 바탕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을 출발하기 이전에 제7식에서 구생기(俱生起) 신견과 변견을 일으킨다.
이런 바탕에서 생을 출발한다.
그런 분별 과정에서 다시 신견과 변견을 일으키게 된다. [분별기 신견, 변견]
즉, 제 6의식에서 행하는 분별은 후발적이다.
그래서 신견, 변견의 근원은 깊다.
처음 근본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생을 출발하기 이전 단계에서 처음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러면 이에 바탕해 그에 집착한다. [아치ㆍ아견ㆍ아애ㆍ아만]
그리고 그런 부분을 계속 유지해 가려 한다.
그런 가운데 이런 자신에 무언가가 유리하고 좋은가를 판단한다.
그리고 좋음에 탐욕을 일으킨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에 만심을 갖는다.
한편, 자신에 손해되고 나쁨을 주는 것에 분노를 일으킨다.
그래서 이런 과정으로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의 번뇌를 일으킨다.
먼저 자기의 뜻에 잘 맞고 좋아하는 내용이 있다.
이런 경우 이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싫어함이 없다.
그래서 이에 애착을 갖는다.
그리고 이에 달라붙어 감촉을 계속 행하려 한다.
그리고 이를 좋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를 바라고 구한다.
이를 탐이라고 한다. [탐貪 lobha, rāg, rāga, abhidhyā]
탐욕(貪欲)ㆍ탐애(貪愛)ㆍ탐착(貪著)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는 간단히 욕(欲)ㆍ애(愛)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한편 자기의 뜻에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
이런 경우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
또는 미워한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뜨겁게 괴롭힌다.
그리고 평안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서 떨어져 멀어지려 한다.
또는 이를 부수어 파괴하고자 한다.
이를 진(瞋)이라 한다. [진瞋, pratigha, dveṣa]
진에(瞋恚)ㆍ진노(瞋怒)ㆍ에(恚)ㆍ노(怒)등으로도 표현한다.
진(瞋)은 탐ㆍ진ㆍ치 3독 가운데 그 허물이 극히 심하다.
치(癡)는 진실을 바르게 알지 못함을 의미한다.
이치와 사물에 대해 어두운 상태다. [치癡 moha, 무명無明, avidyā․mūdha]
모든 번뇌는 치(癡)가 결부되어 일어난다. (『성유식론』 권6)
만(慢)은 타인과 비교하여 오만한 마음 상태를 뜻한다. [만慢 māna] 29)
만은 다시 7만으로 나누기도 한다.
① 자신보다 열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한다. 또는 동등한 이에 대해서 동등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마음을 높이 들어올린다. 이를 만(慢)이라 한다.
② 자신과 동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혹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과만(過慢)이라 한다.
③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만과만(慢過慢)이라 한다.
④ 자신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五取蘊]을 영원한 나(我)다, 나의 것[我所]이라고 집착한다. 이로 인해 마음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를 아만(我慢)이라 한다.
⑤ 아직 예류과(預流果) 등의 뛰어난 과를 증득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미 증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를 증상만(增上慢)이라 한다.
⑥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가 있다.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만 열등하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비만(卑慢)이라 한다.
⑦ 없는 덕을 있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사만(邪慢)이라 한다.
(『입아비달마론』 권 상)
이들은 모두 자기와 타인의 높고 낮음 등을 따진다.
그런 가운데 타인을 경멸한다.
그리고 자신의 저열한 상태에서 자만에 빠진다.
그래서 보다 높은 선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이를 근본 번뇌로 삼는다.
이들 탐ㆍ진ㆍ치ㆍ만 번뇌는 생을 유지하는 한, 쉽게 끊어내기 힘들다.
이런 탐ㆍ진ㆍ치ㆍ만은 감정적이고 의지적인 번뇌의 성격을 갖는다. [미사혹迷事惑 ]
그리고 이후 이런 바탕에서 현실에 임한다.
그 상태에서 이후 이치에 어긋난 잘못된 망상분별을 계속 일으켜 나간다. [미리혹迷理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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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인과 판단 문제 [사견邪見]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 과정에는 다양한 요소가 관련된다.
그래서 이들 각 요소의 관계를 넓고 길고 깊게 잘 관찰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피상적으로 관찰한다.
그래서 잘못된 인과 판단을 행한다. [사견邪見, mithyā-dṛṣṭi]
우선 현실에는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고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인과부정론]
그러나 현실에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편, 그렇다고 모든 것이 서로 인과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단지 선후로 이어지는 내용일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과를 잘못 이해하면 이들을 원인과 결과로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현실에서 인과의 정체나 성격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많이 행한다.
예를 들어 원인에 이미 그 결과가 들어 있었다고 치우쳐 이해한다. [인중유과론]
또는 원인에 결과는 없었다고 치우쳐 이해한다. [인중무과론]
한편, 인과론을 통해 기계적 인과율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런 경우 다음처럼 이해하기 쉽다.
모든 현실은 인과에 의해 그렇게 나타나도록 결정된 것이다. [기계적 인과율에 의한 결정론]
또는 현실은 과거에 행한 업에 의해 어쩔 도리 없이 나타난다. [숙명론]
또 미래 내용도 이미 과거에 모두 그처럼 나타나도록 정해진 것이다. [사전결정론, 예정설]
이런 식으로 이해하기 쉽다.
삶에서 어떤 이가 인과부정론이나 우연론을 취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수행과 관련한 4성제(四聖諦)도 부정하게 된다.
그런 경우 생사고통을 피할 올바른 방안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수행노력도 기울이지 않기 쉽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아무 것도 행하지 않으려 한다.
또는 반대로 생각나는 대로 그 때 그 때 아무렇게 행하려 한다.
그렇게 아무렇게 임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또 한편, 삶에서 숙명론이나 사전 결정론을 취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생사고통 일체를 체념해 받아들이려 하기 쉽다.
즉, 고통은 본래 피할 수 없도록 정해진 것이라고 이해하기 쉽다.
또는 반대로 장래 좋은 결과는 노력 없이 저절로 성취된다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피할 올바른 방안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수행노력도 기울이지 않기 쉽다.
그리고 일체를 숙명에 맡긴다.
그리고 방일한 자세를 취하기 쉽다.
한편, 현실에 적용되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이런 내용이 본바탕에도 실재한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런 경우 현실 내용이나 그 관계를 실답게 여기며 집착한다.
그런 가운데 잘못된 방향으로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러나 본래 인과관계를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통해 오히려 본바탕 실재가 공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인과의 구체적 관계와 의미를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의 원인을 엉뚱한 것에 찾게 된다.
그래서 엉뚱한 것에 그 책임을 지나치게 묻게도 된다.
또 그런 경우 삶을 전체적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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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 대한 온갖 잘못된 이해 [견취견見取見]
한 주체가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분을 취해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 [신견]
그런 경우 이를 바탕으로 그 나머지 부분은 '외부 세계'라고 잘못 여긴다. [외부세계]
그리고 현실내용을 자신과 외부로 2분해 대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을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한다.
즉 이들 내용은 자신과 영희 철수가 다 함께 대하는 외부내용으로 잘못 이해한다. [외부의 객관적 실재]
한편 이들 내용을 감관이 대한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우선 자신의 감각과정에서, 자신이 대한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자신의 감각의 외부대상]
한편 이를 자신이 동작할 때 손발 등 운동기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도 잘못 여긴다. [자신의 동작의 대상]
한편 이는 다른 영희나 철수의 감각과정에서 그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도 잘못 여긴다. [타인들 감각의 외부대상]
또 이는 다른 영희나 철수가 동작할 때 손발 등 운동기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도 잘못 여긴다. [타인들 동작의 대상]
한편, '감각현실'은 다른 느낌이나 관념과 그 성격에 차이가 있다.
그런 가운데 이들 감각현실은 정신이 얻어낸 내용이 아닌 외부의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또는 이들 감각현실은 정신과 떨어져 있는 별개의 내용으로 여긴다.
한편 '물질'은 일반적으로 정신과 상대적으로 구분되는 개념이다.
그런 가운데 이들 감각현실을 외부 '물질'로 잘못 여긴다. [외부물질]
이처럼 기본적으로 현실 내용의 각 정체와 성격에 대해 잘못된 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사정으로 반대로, 자신과 외부 세상에 해당할 부분을 잘못 '가리킨다'.
그런데 사실 이들 내용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이런 성격과 지위를 갖는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
그러면 현실 각 내용의 정체와 관계를 잘못 파악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감각현실은 자신이 대한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런데 그 감각현실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이 경우 대상과 그 대상으로부터 얻어낸 내용이 서로 일치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감각현실은 자체적으로 옳은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이처럼 하나의 감각현실에 대해 잘못된 지위와 성격을 부여한다.
그런 가운데 이런 혼동을 일으킨다.
한편 감각현실과 분별의 관계도 잘못 이해한다.
더 나아가 본바탕 실재와 감각현실의 관계도 잘못 이해한다.
또 본바탕 실재와 관념분별의 관계도 잘못 이해한다.
한편 현실에서 현실 내용 일부를 다른 내용을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한다. [예: 말소리, 글자]
예를 들어 감각현실과 분별 가운데 일부를 취해 이처럼 다른 내용을 가리키는데 사용한다.
이를 언어라고 한다. [언설명자]
한편 언어는 영역과 성격이 다른 수많은 각 내용을 다 가리킬 수 있다.
그런 사정으로 다시 언어와 이들 각 내용의 관계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그런 가운데 세상에 대해 온갖 잘못된 견해와 주장을 내세운다.
그리고 언설로 이를 주장하며 고집하게 된다. [견취견見取見 dṛṣṭiparāmarśa]
그런 가운데 서로 간에 견해를 달리 가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서로 간에 시시비비를 다툰다.
또 잘못된 견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이들은 견해에 바탕한 번뇌다.
이들은 그 폐해가 현실에서 대단히 날카롭다. [이사利使]
예를 들어 세상의 많은 다툼과 전쟁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이런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다만, 그 견해의 잘못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이런 지적 번뇌는 오히려 쉽게 끊어낼 수 있다.
그래서 감정적, 정서적, 의지적 번뇌와 대조적이다.
예를 들어 탐ㆍ진ㆍ치ㆍ만과 같은 번뇌는 그런 방식으로 쉽게 끊지 못한다.
여하튼 각 주체는 이들 번뇌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따라서 이를 올바로 시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삶은 잘못된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행해가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는 생사고통을 겪는 근본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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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금취견戒禁取見
현실에서 각 내용의 정체와 성격을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서로간의 인과 관계도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가치에 대한 판단도 잘못 행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무언가 좋은 것을 구한다.
그러면 잘못된 내용을 목표로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도 잘못된 방안으로 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현실의 고통을 피해 하늘에 가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런데 산 생명을 죽여 하늘에 제를 올리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엉뚱하게 생각한다.
또는 단지 하늘만 믿으면 악을 함부로 행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또는 고행으로 하늘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올바른 목표를 위해 성취할 계율이나 금지사항에 잘못된 견해를 갖는다.
이를 계금취견[戒禁取見 śīla-vrata-parāmarśa]이라 칭한다.
그런 경우 올바른 계를 성취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함부로 행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잘못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오히려 생사고통을 더 장구하게 겪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는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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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바른 가르침에 대한 의심 [의疑]
근본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삶에 처음 임한다.
그래서 각 현실내용의 본 정체와 성격 및 관계를 올바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과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런 경우 올바른 진리도 알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올바른 내용을 스승이나 부처님이 제시한다.
그래도 그 내용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자꾸 의심한다.
그리고 뜻을 결정하지 못한다.
그런 유예 상태로 임하게 된다. [의疑 saṃdeha]
이처럼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심한다.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에 의심을 갖는다.
그리고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좁고 짧고 얕은 관찰과 경험에 바탕해 잘못된 견해를 갖는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해나간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이는 생사고통을 겪게 하는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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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을 진짜이며 실답다고 여기는 자세의 문제
한 주체가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경우 이에 대해 잘못된 분별을 행한다. [신견ㆍ변견ㆍ사견ㆍ계금취견ㆍ견취견]
그런 가운데 각 현실 내용의 정체나 지위를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 이를 꿈과 달리, 실다운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를 집착하게 된다.
특히 집착에 있어서는 신견이 가장 문제된다.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해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신견]
그리고 이런 내용을 참된 진짜이며 실다운 내용으로 여긴다.
그러면 이에 집착을 강하게 갖게 된다.
그리고 한 주체가 일으키는 집착은 대부분 이런 자신의 집착에 바탕한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소원을 일으킨다.
그리고 업을 행해 나간다.
그러면 다른 주체와 가해 피해 관계를 쌓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에 처한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예방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업을 중단해야 한다.
업이 고통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업을 중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견ㆍ변견ㆍ사견ㆍ계금취견ㆍ견취견 등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 내용이 진짜며 실답다고 여긴다.
그러면 이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집착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현실이 참된 진짜가 아님을 잘 이해해야 한다.
즉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현실을 대부분 참된 진짜며 실답다고 여긴다.
그런데 현실을 이처럼 실답게 여기게 되는 배경 사정이 있다.
그래서 이런 배경사정이 결국 현실에서 이런 집착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업을 행하게 만든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실답게 받아 나간다.
그래서 이런 배경사정은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현실을 실답게 여기게 만드는 배경 사정부터 잘 살펴야 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이 참된 진짜가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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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사현실을 참된 진짜이고, 실답다고 잘못 이해하는 사정
생사현실은 참된 진짜가 아니다.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런데 생사현실이 완전히 꿈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 생사고통을 겪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 단지 꿈을 깨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쉽게 생사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
또는 생사현실을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하며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면 별도로 수행 노력할 필요성이 적다.
한편, 생사현실을 누구나 쉽게 꿈처럼 여기며 임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역시 별도로 수행 노력이 그다지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현실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일반적으로 생사현실을 대부분 참된 진짜로 여긴다.
그래서 꿈과는 달리 실답고 참된 진짜내용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에 잘못된 집착을 갖는다.
현실은 본질적으로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현실을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 되는 사정이 있다.
이를 요약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 풍부하게 중첩해 현실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현실은 실답다고 여긴다.
- 감각현실과 관념을 재료로 망상분별을 일으켜 결합시킨다. 그래서 실답다고 여긴다.
- 현실 내용을 외부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실답다고 여긴다.
- 감각현실의 각 부분의 특성이 다르다. 그리고 그에 상응한 실재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실답다고 여긴다.
- 다수가, 일정 시간, 장소, 조건에서 일정 내용을 반복 경험한다. 이는 외부에 상응한 실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실답다고 여긴다.
- 본바탕 실재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한다. 그래서 이를 실답다고 여긴다.
- 참된 진짜 뼈대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현실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분별한다. 그래서 현실이 실답다고 여긴다. [실체설]
즉, 현실은 이처럼 꿈과 다른 여러 특성을 갖는다.
이런 여러 사정들로 현실을 꿈과 달리 실답게 여긴다.
이를 아래에서 하나하나 나열해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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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부하게 중첩해 현실 내용을 얻음
한 주체는 현실에서 다양한 성격의 내용을 얻는다.
먼저 각 주체는 각 감각현실을 매순간 생생하게 중첩해 얻는다. [색ㆍ성ㆍ향ㆍ미ㆍ촉]
그리고 이에 대해 좋고 나쁨의 느낌을 얻는다. [수]
그리고 이에 대해 명료하게 분별을 일으키고 업을 행한다. [상ㆍ행ㆍ식]
그런데 이들은 모두 다른 것에 의존해 일으켜 얻은 것이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꾼 바다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렇지만, 이들 각 내용을 각 영역에서 화합해 다양하게 얻는다.
이들 각 내용은 서로 대조하면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사과를 하나 대한다.
이 경우 눈으로 색을 본다.
손으로 두드려 소리를 듣는다.
또 코로 대해 향을 맡는다.
또 입으로 맛을 본다.
또 손으로 만져 촉감을 얻는다.
그런데 눈으로 본 색은 소리, 향, 맛, 촉감과 대단히 엉뚱하다.
또 사과를 두드린 소리는 사과의 색, 향, 맛, 촉감과 대단히 엉뚱하다.
또 눈을 감고 사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역시 각 감각현실과는 대단히 다르다.
이처럼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이 서로 대단히 다르고 서로 엉뚱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각 감각현실을 생생하고 다양하게 얻는다.
좋고 나쁨의 느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에 대해 관념영역에서 분별을 명료하게 행한다.
그런 가운데 이들 각 내용은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상태에 놓인다.
그런 가운데 이를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세상에 가짜가 많이 있다.
그런데 이들 가짜가 서로를 보증하고 긍정한다.
그러면, 이후 가짜가 서로서로 진짜처럼 행세하게 된다.
이런 현상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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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현실과 관념을 재료로 망상분별을 일으킴
먼저 다음 비유를 살펴보자.
어떤 이가 기차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후 바나나란 생각을 연상해 '일으킨다'고 하자.
그렇다고 기차에 바나나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기차가 곧 바나나인 것은 아니다.
또 손바닥을 부딪쳐 소리가 난다.
그렇다고 손바닥에 소리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손바닥이 곧 손뼉소리인 것도 아니다.
침대에 누워 바다 꿈을 꾼다.
그렇다고 침대에 바다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침대가 바다인 것도 아니다.
꿈을 깨어난 후, 침대가 놓인 현실과 꿈을 서로 대조해 본다.
그러면 이들이 서로 엉뚱함을 이해한다.
그래서 꿈은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대해 관념을 일으킨다.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또 관념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이들 두 내용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이 경우도 그 성격은 꿈과 마찬가지다.
감각현실과 관념의 관계는 침대에 누워 꾼 바다 꿈과 성격이 같다.
그런데 감각현실과 관념은 또 꿈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꿈과 달리' 한 주체의 내부에 함께 머문다. [5구의식]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 경우 처음 감각현실 일정 부분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감각현실 => 관념)
그런 경우 감각현실과 관념 내용을 한 주체가 동시에 얻게 된다.
한편 평소 일정한 부분을 대할 때 일정한 관념을 반복해 일으킨다.
그런데 한편, 그는 다른 부분을 대할 때는 그런 생각을 잘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
그래서 이후 반대로 그런 관념내용으로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관념 => 감각현실)
이들은 본래 서로 성격이 다르다.
그렇지만, 이 두 내용이 함께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일으키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런 가운데 이들을 서로 결합시켜 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를 지지하고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사정으로 이후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즉 관념영역에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재료로 다음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먼저 감각현실을 중심으로 다음처럼 잘못 분별한다.
즉, 그 감각현실 일정 부분에 그런 관념이 본래 들어 '있었다'고 잘못 여긴다.
또 감각현실 부분은 곧 그런 관념 '이다'라고 잘못 분별한다.
그래서 성격이 다른 두 내용을 이처럼 결합시켜 잘못 이해하게 된다.
또 한편, 반대로 관념을 중심으로는 다음처럼 다시 잘못 분별한다.
우선 그런 감각현실 부분은 곧 그런 관념의 '구성요소'가 된다고 이해한다.
즉 그 관념은 그런 감각현실을 그 내용으로 갖고 있다고 잘못 분별한다.
그리고 그 관념은 곧 그런 감각현실'이다'라고 잘못 분별한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이들 두 내용을 서로 양방향으로 결합시켜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을 서로 접착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평소 일정부분을 대해 '책'이라는 생각을 반복해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책이란 관념을 바탕으로 일정한 감각현실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이후 관념영역에서 관념과 감각현실을 결합시키게 된다.
그리고 관념영역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래서 현실에서 상을 취하며 임하게 된다.
즉 그런 생각[想]을 바탕으로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相 Lakṣaṇa]을 취한다.
그리고 곧 그 부분이 그런 책'이다'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 누군가 책이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일정 부분을 책이라고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이는 그가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그런 관념내용'이다'라고 잘못 분별하기 때문이다.
한편, 그런 관념 내용이 감각현실 영역에 그처럼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그런 감각현실 부분은 곧 그런 책'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관념내용으로서 책이 들어 '있다'고 여긴다.
한편 그런 사정으로 그 부분을 대할 때 그런 생각을 반복해 일으키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처럼 감각현실과 관념을 결합시켜 이해한다.
그러나 그가 가리키는 부분은 감각현실 부분이다.
이 경우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또한 관념도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관념 안에 감각현실은 없다. [변계소집상의 상무자성]
물론 어떤 관념은 처음부터 감각현실에서 상응한 내용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토끼뿔, 거북털, 도깨비, 허수 등 독영경獨影境 )
그러나 일정한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고 하자.
이런 경우의 관념은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관념은 감각현실 영역에 그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는 경우로 이해한다. (성경性境, 또는 대질경帶質境)
그런 사정으로 이들 관계에 대해 다음처럼 잘못 이해한다.
즉, 이런 관념들은 감각현실과의 관계가 <꿈과 현실의 관계>와 다르다고 이해한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워 꾼 바다 꿈은 서로 엉뚱한 관계다.
그러나 이 경우는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관념이 그처럼 실답게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 경우는 그런 부분을 대해 적절한 관념을 정당하게 일으킨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이들 관념은 꿈과 달리,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긴다.
또 현실에서 대부분 이런 바탕에서 일상생활을 유지해가게 된다.
* 이런 망상분별의 문제가 관련되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비슷한 내용을 관련부분에서 반복해 살피게 된다.
[참고 ▣- 감각현실과 관념을 재료로 망상분별을 일으킴]
[참고 ▣-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
[참고 ▣- 무상삼매 ]
[참고 ▣- 관념이 실답지 않은 사정 - 환자와 가족의 비유를 통한 이해]
♥Table of Contents
▣- 현실 내용을 외부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함
-- 감각현실을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함
한 주체가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먼저 이런 현실내용의 정체나 성격을 잘못 이해한다.
예를 들어 조각상 하나를 영희와 철수와 함께 대한다.
이 상황에 영희는 조각상 뒷면을 대한다.
또 철수는 조각상 옆면을 대한다.
그리고 자신은 조각상 앞면을 대한다.
그래서 각 주체가 얻는 내용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이들이 관찰한 내용은 각 주체가 각기 얻어낸 내용이다.
이 상황에서 자신은 '철수가 얻은 내용'을 대상으로 감각하는 것이 아니다.
철수도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을 대상으로 감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각 주체는 다음처럼 잘못된 분별을 일으킨다.
즉, 이 경우 각기 자신이 얻는 내용을 다른 주체가 함께 대한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
그런데 각 주체 상태가 엇비슷하다.
그래서 망집을 일으키는 현상도 서로 엇비슷하다.
한 주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부분을 취해 스스로 자신으로 여긴다.
또 그 나머지 부분은 외부 세상, 외부대상, 외부물질로 여기고 대한다.
그런 경우 다른 주체도 망집의 상태가 엇비슷하다.
그래서 제각각 그런 부분을 그처럼 여긴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다수 주제간 언어 소통을 행한다.
그런 가운데 각기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러면 그런 감각내용이 곧 외부에 실답게 존재한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감각현실을 실다운 내용으로 잘못 이해한다.
-- 관념내용을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함
한편 이들 감각현실 각 부분에 대해 제각각 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각 부분의 정체나 성격에 대해 잘못된 분별을 행한다.
그런데 이 경우 그런 분별내용이 감각현실 영역에 그처럼 '있다'고 잘못 이해한다.
그러면 다시 그런 분별내용도 또한 그처럼 그 부분에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잘못 이해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정부분을 바위라고 여긴다.
그 상황에서 다른 영희나 철수도 개별적으로 일정한 내용을 각기 얻는다.
그리고 다른 영희나 철수가 각기 엇비슷하게 일정부분이 바위라고 여긴다.
한편 각 주체는 다른 이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즉, 각기 다른 주체가 어떤 감각현실을 얻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없다.
또 그런 감각현실을 대해 어떤 분별을 일으켰는지는 직접 확인하기 곤란하다.
그런 가운데 서로 언어 소통을 행한다.
이런 경우 자신(갑)이 바위로 여기며 대하는 일정부분이 있다.
그런데 언어소통을 통해 다른 이들이 그런 부분을 함께 대한다고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또 이를 다 함께 바위로 여긴다고 잘못 이해한다.
처음 자신이 감각현실을 얻었다.
그런데 이를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
즉 이 내용을 자신과 철수 등이 다 함께 대하는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그에 대해 일으킨 관념분별 내용이 있다.
이 경우 그런 관념분별 내용도 역시 그처럼 외부에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런 관념분별 내용도 그처럼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
이는 천문학자들의 관찰과 사정이 같다.
어떤 천문학자가 처음 망원경으로 어떤 별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학계에 보고한다.
예를 들어 하늘에 별이나 달이 떠 있다고 보고한다.
이 때 그 천문학자는 그가 관찰한 내용을 곧 자신이 대한 외부대상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다른 이들이나 천문학자들이 그 상황에 들어가 망원경에 눈을 댄다.
그러면 그들도 엇비슷한 내용을 다시 얻는다.
그리고 그들도 제각각 그 내용을 자신의 감관이 대한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이들이 관찰한 내용은 각 주체가 각기 얻어낸 내용이다.
그리고 (갑)은 (을)이 본 내용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이 각기 관찰한 내용은 각 주체가 대한 외부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각기 관찰한 내용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다.
즉 자신과 갑, 을이 모두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서로 언어소통을 한다.
이 상황에서 제 각각 감각해 얻어낸 현실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런 감각현실을 객관적인 실재로 제각각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 제각각 이해한 내용이 다시 있다.
그런 가운데 처음 천문학자가 관찰 보고한 내용이 비교적 적절하다고 하자.
이 경우 각 주체는 그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분별내용이 그처럼 '있다'고 잘못 이해한다.
그러면 그런 분별내용도 또한 객관적으로 실재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현실에서 행하는 나머지 분별내용들도 사정이 같다.
각 주체가 감각현실 각 부분에 대해 일으키는 분별이 무량하다.
이들은 대부분 각 주체가 일으킨 잘못된 분별 내용이다.
물론 감관과 상태가 전혀 다른 생명들이 현실에 많다.
이런 경우 그런 다른 생명체는 그런 내용을 그처럼 얻지 못한다.
그런 경우 분별 판단도 그처럼 공통된 형태로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경우 서로 간에 언어소통도 되지 않는다.
그런 사정으로 다른 생명체들의 입장은 무시된다.
예를 들어 천문학자가 개나 고양이의 입장까지 고려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다수가 서로 엇비슷한 감관을 갖는다.
그리고 엇비슷한 상태에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언어소통을 한다.
그리고 일정한 내용을 서로 지지한다.
각 주체가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이 경우 먼저 이를 다수가 함께 대하는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일정한 분별을 일으킨다.
다만 이 경우 모든 이가 똑같은 분별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일정한 내용을 대해 시인은 다른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내용을 연상해 떠올린다.
또 일정한 내용에 대해 좋고 나쁨의 판단은 각 주체마다 많이 다르다. [가치판단]
그러나 다수가 비교적 공통적으로 일으키는 관념분별도 있다. [사실 판단]
이 경우 이런 관념분별 내용은 그런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 이런 분별내용을 그런 감각현실과 결합시켜 이해한다.
이런 사정으로 이들 현실 내용은 꿈과 달리, 실다운 내용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Table of Contents
▣- 감각현실의 각 부분의 특성이 달라 그 실재가 있다고 여김
현실에서 한 주체가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내용에, <이들 내용을 얻는 주체>가 들어 있을 이치는 없다.
또 그런 내용에, <이들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들어 있을 이치도 없다.
이들 현실 내용은 그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주체가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감각현실을 살핀다.
이 경우 각 부분의 특성이 달리 파악된다.
예를 들어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를 놓고 생각해보자.
그런 경우 생활 경험상 이들 내용의 각 부분은 특성이 달리 파악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움직이고자 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 뜻에 따라 움직여 변화하는 부분과 아닌 부분이 나뉜다.
또 각 부분에 손을 댄다고 하자.
그 경우 촉감이 느껴지는 면도 다르다.
그래서 이처럼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 각 부분의 특성이 다르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부분을 자신의 몸으로 여긴다.
또 다른 부분은 자신과 비슷한 다른 사람, 영희 철수로 여긴다.
언어 소통을 통해 이들은 자신과 거의 비슷한 특성을 갖는 것을 관찰한다.
또 다른 부분은 다른 생명체, 개, 고양이 등으로 여긴다.
이 경우 언어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외관상 거의 자신과 비슷한 특성을 가짐을 관찰한다.
또 다른 부분은 무생물체인 바위, 산 등으로 여긴다.
이들 부분은 생명체와 많이 특성이 다름을 관찰한다.
그래서 이들 각 부분은 여러모로 특성이 달리 파악된다. [ 자신의 몸- 동일한 인간 - 생명 - 무생물 ]
그래서 그 사정이 무엇인가를 추리하게 된다.
이는 물론 다음 사정 때문이다.
우선 태어나기 전에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임한다.
그런 가운데 각 주체는 실재를 바탕으로 현실내용을 얻는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일으킨다.
그러나 각 주체가 이런 사정을 미처 잘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경우는 이들 내용 자체가 곧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긴다.
이는 앞에서 살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이해한다.
즉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임을 이해한다.
그런 경우 다시 자신이 얻어낸 내용 밖에 이에 상응 일치하는 내용이 있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런 내용을 그처럼 얻게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각 현실내용에 상응 일치한 내용이 외부에 그대로 실재한다고 여긴다.
그러면 그 만큼 그 각 내용은 꿈과 달리, 실다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
즉, 침대에서 꾸는 바다 꿈과 사정이 다르다고 여긴다.
♥Table of Contents
▣- 다수가 일정 내용을 반복 경험하기에 그 실재가 있다고 여김
현실에서 한 주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 경우 이들은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즉, 눈을 통해 얻어낸 시각 감각내용이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그 주체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본바탕에서 그런 내용은 얻어낼 수 없다.
이런 내용은 다른 감각영역에서도 얻어낼 수 없다.
즉, 청각ㆍ후각ㆍ미각ㆍ촉각 등 감각영역에서도 얻어낼 수 없다.
그리고 관념영역 등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어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현실내용 하나하나는 꿈과 성격이 같다.
즉 침대에서 꾸는 바다 꿈과 성격이 같다.
즉 이들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런 내용을 그처럼 얻어내는 것이다.
현실 각 내용의 상호간의 관계가 이와 같다.
그러나 이들 현실 내용은 정작 꿈은 아니다.
현실내용은 꿈과 다른 특성을 다음처럼 갖는다.
-- 먼저 다수가 함께 엇비슷한 내용을 얻는다.
-- 또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내용을 반복해 얻는다.
-- 또 일정한 장소 상황에서 엇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얻는다.
-- 또 일정한 관계로 일정한 조건에 일정한 내용을 결과로 반복해 얻는다.
[상속相續,시時,처處,작용作用]
일반적으로 현실내용은 이런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이런 사정으로 현실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현실의 이런 특성은, 그 실재가 따로 그처럼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꿈과는 다르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렇게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경우 생사현실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 된다.
그러나 이런 특성은 전자게임이나 그림, 연극, 영화 등과 사정이 같다.
전자 게임의 화면 내용을 놓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이들 내용은 다수에게 일정하게 규칙성을 갖고 반복해 나타난다.
그렇지만, 게임 화면 내용 하나하나는 현실에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 하나하나는 역시 침대에서 꾸는 바다 꿈과 성격이 같다.
따라서 실답지 않은 내용이다.
현실도 그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한 주체는 마음에서 일정한 내용을 반복해 일정하게 얻는다.
그리고 이들 내용을 다수 주체가 함께 엇비슷하게 얻는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는 역시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실답지 않다.
그런데도 현실 내용이 그처럼 파악된다.
따라서 그 배경사정이 무언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실 내용을 철수나 영희 등 제3자가 함께 엇비슷하게 얻는다.
이 경우 그 사유가 만일 오로지 한 주체의 마음 영역에만 있다고 하자. [예: 공종자]
그런 경우 현실에서 함께 엇비슷한 내용을 얻는 현상을 설명하기 힘들다.
이 경우 마음 밖 본바탕 실재를 생각한다.
그래서 본바탕 실재영역에 외부 실재 대상을 추리한다.
즉 그런 대상이 실재영역에 일정하게 있다고 일단 시설한다.
그리고 각 주체가 이를 함께 대한다고 추리한다.
그런데 각 주체의 감관 등의 상태가 엇비슷하다.
그리고 이런 실재 대상을 각 주체가 엇비슷한 관계로 대한다.
그래서 각 주체는 각기 엇비슷한 내용을 얻게 된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실재 영역의 외부 대상을 #으로 막연히 표시해보자.
그리고 이를 대하는 각 주체의 마음을 A로 표시하자.
그리고 그 주체가 얻어내는 내용을 C로 표시하자.
각 주체가 실재대상을 대한다.
그리고 제각각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경우 이 관계는 다음이다.
# + a => C
그런데 각 주체에서 이 관계가 서로 엇비슷하다.
그래서 서로 엇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얻는다.
이처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각 주체가 얻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실재에서 얻을 수 없다.
즉 위 경우 C(현실)는 앞의 #(실재)에서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이들 하나하나는 모두 꿈과 성격이 같다.
즉, 침대에서 꾸는 바다 꿈과 관계가 같다.
따라서 실답지 않다.
그리고 현실이 실답지 않음은 바로 이 측면을 말한다.
따라서 이 사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편 위 식에서 본바탕 실재 대상을 막연히 기호 #로 표시했다.
그러나 실재대상의 구체적 내용은 정작 각 주체가 얻어낼 수 없다.
따라서 본바탕 실재가 정확히 무언가가 대해 다시 다양한 논의가 있게 된다.
♥Table of Contents
▣- 본바탕 실재에 대한 다양한 잘못된 이해
감각현실 각 부분은 특성이 서로 달리 파악된다. [자신-다른 인간-생명-무생물체 등]
그리고 감각현실은 다수가 일정한 시기, 공간적 상황에서, 일정한 관계로 반복해 얻는다.[상속ㆍ시ㆍ처ㆍ작용]
이들 감각 현실은 이런 점에서 꿈과 다르다.
즉 현실은 꿈과 달리 이런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그 사정이 무언가가 문제된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얻어진 내용 밖에서 그 사정을 찾는다.
이 경우 본바탕 실재가 무언가가 문제된다.
실재는 어떤 주체와 관계없이도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다.
그런데 그 실재가 과연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이런 가운데 본바탕 실재에 대해 유ㆍ무 양극단에 치우친 분별을 일으키기 쉽다.
우선, 다음 입장이 있다.
이들 현실 내용 일체는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마음 밖에는 전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유식학파 일부입장]
이런 경우 이는 각 주체의 마음 안에 있는 종자로 인해 그렇게 된다고 주장한다. [공종자共種子]
다만 그 종자가 다수 간에 공통된 내용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사정으로 각 주체가 다 함께 엇비슷한 내용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입장은 이런 이해를 통해 현실 내용을 실답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무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현실 내용을 지나치게 무시 외면하는 경향을 갖기 쉽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현실 사정을 설명하는데 여러 난점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도로 옆에 건물을 하나 세운다.
이 경우 이 건물을 거리를 지나는 다수가 보게 된다.
그런데 이를 다음처럼 해석한다.
건물을 짓는 이가 거리를 지나갈 수많은 이들의 마음안의 공종자를 변화시켰다.
그래서 그렇게 다수가 같은 건물을 보게 된다.
이렇게 설명하려는 것이 된다.
이는 너무 지나친 무리한 해석이다.
이런 주장은 마음 밖에는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먼저 전제한다.
그런 사정으로 이런 무리한 해석을 하게 되는 것뿐이다.
마음은 물론 마음 밖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음 밖에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본바탕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본바탕 실재는 한 주체와 관계없이 있다고 할 내용이다.
그런데 각 주체는 그 주체가 관계해 얻어내는 내용만 얻는다.
그래서 이런 실재는 한 주체 입장에서는 끝내 얻지 못한다.
그래서 실재는 2분법적으로 분별할 수 없다.[불이법]
즉, -이 있다, -이 없다, ~이다, 아니다, ~와 같다, 다르다 등과 같은 분별을 행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언설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방편상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란 표현을 빌려 표현하게 된다. [불가득, 공]
그런데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위 사실 만으로도 충분하다. [공해탈삼매]
즉, 현실내용과 실재의 차이만 이해하면 된다.
현실 내용은 각 주체가 매순간 생생하게 얻는다.
그런데 이런 현실 내용은 먼저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실재는 어떤 주체와 관계없이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편 실재는 현실내용과 달리 얻어낼 수 없다.
그리고 실재 영역에서 현실 내용을 역시 얻어낼 수 없다.
그러나 현실 내용은 이와 달리 매 순간 생생하게 얻는다.
그리고 이런 사실만으로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침대에 누워 꾸는 꿈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꿈은 실답지 않다.
이는 침대가 놓인 현실과 꿈이 서로 엉뚱하기 때문이다.
꿈 밖 현실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꿈 밖 현실에 아무것도 없어야만 꿈이 실답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즉, 꿈 밖에 침대와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도 두 내용이 서로 차이가 있다.
즉, 현실과 꿈의 내용이 서로 엉뚱하다.
그래서 꿈을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실재와 현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현실 내용은 각 주체가 생생하게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실재는 '얻어낼 수 없다'.
그래서 실재는 유무분별을 떠나며, 공하다. [불가득 공]
이처럼 두 영역의 사정이 서로 차이가 난다.
이 사정만으로도 현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실재에 대해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입장이 있다.
그래서 실재가 공하다는 입장 외에도 다른 입장들이 있다.
우선 일반적 입장은 다음과 같다.
즉, 자신이 얻은 감각현실 자체를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여긴다. [일반적 입장]
그러나 현실내용은 자신이 얻은 내용이다.
따라서 이런 이해는 잘못이다.
이런 사정은 이미 살폈다.
그러나 현실 내용이 자신이 얻은 내용임을 인정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여러 다른 입장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외부 실재 영역에 현실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이 실재한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한편, 실재는 현실과 유사하거나 비례한 형태로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들은 모두 유의 극단에 치우친 입장이다. [설일체유부, 경량부]
즉, 이들은 다음 입장이다.
본바탕에 현실 내용을 얻게 된 정당한 근거가 그만큼 있다.
이처럼 여기고자 하는 입장이다.
이런 경우 이런 사정으로 현실내용을 대단히 실답다고 여긴다.
그리고 각 입장에 따라 현실 내용을 실답게 여기는 정도가 달라진다.
♥Table of Contents
▣- 참된 진짜 뼈대가 있기에 현실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분별함 [실체설]
현실 내용에는 참된 진짜 실체가 있는가가 문제된다.
여기서 실체는 꿈과 다른 특성을 갖는 참된 진짜를 의미한다.
어떤 내용이 꿈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실답지 않음을 의미한다.
꿈은 일정한 조건에서만 임시적으로 그 내용을 얻을 수 있다. [임시성]
그리고 그 조건이 사라지면 그것을 얻지 못한다. [조건의존성]
또 그 내용은 꿈 밖 다른 영역들에서는 얻을 수 없다. [다른 영역에서의 불가득]
또 그 내용은 일반적으로 그에 기대하는 다른 특성도 갖추지 못한다. [가짜성품]
예를 들어 꿈에서 보는 물은 마실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 경우 이는 가짜며, 실답지 않다고 해야 한다.
반대로 어떤 내용이 꿈과 달리, 실다운 것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꿈이 갖는 특성을 갖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참된 진짜 실체는 앞과 같은 꿈의 특성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 이런 참된 진짜 실체가 있는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이는 현실 내용이 꿈과 달리, 실답다고 볼 내용인가를 문제 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내용은 우선 각 주체별로 달리 얻는다.
그리고 시기와 상황별로 내용을 달리 얻는다.
예를 들어 바위 하나를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아침과 저녁에 각기 그 내용을 달리 얻는다.
그래서 각 감각현실은 임시적이다. [임시성]
또 각 주체는 각 감관에 의존해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감관별로 내용을 달리 얻는다. [조건의존성]
또 현실 내용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눈으로 보는 색은 소리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한편 이들 현실 내용은 본바탕 실재 영역에서도 역시 얻을 수 없다. [다른 영역에서의 불가득]
이런 사정은 이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런 사정은 이들 현실 내용이 위에서 찾는 실체가 아님도 나타낸다.
그렇지만, 또 한편 현실 내용은 또 일정한 규칙성을 띄고 일정하게 파악된다.
예를 들어 산은 산이다.
그리고 물은 물이다.
이처럼 분별할 수 있다.
매 순간 이들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그렇게 분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현실에는 그 안에 일정한 참된 실체가 있다고 여기게끔 된다.
즉 현실 내용을 얻게 하는 참된 진짜 뼈대가 그 안에 있다.
그래서 현실 내용을 그처럼 일정하게 얻게 된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즉 이는 현실 내용은 뼈대가 되는 실체가 있어 그처럼 나타난다고 이해하려는 입장이다.
그래서 과연 그런 실체가 있는가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일단 꿈과 다른 특성을 갖는 어떤 것을 관념영역에서 몽타주로 그려 내게 된다.
그리고 그 몽타주에 해당한 내용이 정말 각 영역 어딘가에 있는가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런데 이는 관념 영역에서 그런 몽타주가 있는가 여부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관념영역에서는 어떤 내용을 관념으로 그려낸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만으로 그런 관념은 관념영역에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실체의 존부는 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논의의 초점은 그런 몽타주에 해당한 내용이 현실 영역에 정말 있는가 여부다.
예를 들어 관념으로 그런 진짜 실체의 관념을 구상한다고 하자.
그러면 관념 영역에서 그런 관념은 있다.
그렇다고 진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관념에 해당한 내용이 현실 영역에 정말 있는가 여부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문제를 서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참된 진짜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관념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현실 내용을 현실처럼 얻어낼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다양하게 얻는다.
그리고 변화한다.
따라서 이를 통해 실체가 있을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자세한 논증과정은 관련된 부분에서 따로 살핀다.
그런 결과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는 없다고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논의과정에서 어떤 이가 현실에 실체가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사정으로 인해 현실은 꿈과 달리 대단히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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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럼에도 현실은 위에 나열한 여러 사정으로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끔 된다.
이미 이들 사정을 다양하게 살폈다.
다시 간단히 요약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 풍부하게 중첩해 현실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현실은 실답다고 여긴다.
- 감각현실과 관념을 재료로 망상분별을 일으켜 결합시킨다. 그래서 실답다고 여긴다.
- 현실 내용을 외부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한다. 그래서 실답다고 여긴다.
- 감각현실의 각 부분의 특성이 다르다. 그리고 그에 상응한 실재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실답다고 여긴다.
- 다수가, 일정 시간, 장소, 조건에서 일정 내용을 반복 경험한다. 이는 외부에 상응한 실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실답다고 여긴다.
- 본바탕 실재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한다. 그래서 이를 실답다고 여긴다.
- 참된 진짜 뼈대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현실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분별한다. 그래서 현실이 실답다고 여긴다. [실체설]
이런 여러 사정들로 현실을 꿈과 달리 실답게 여긴다.
그런 경우 생사고통을 실답고 생생하게 받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가 겪는 생사고통은 그가 일으킨 망집의 정도에 비례한다.
따라서 이런 생사고통을 그대로 방치하기 곤란하다.
생사고통을 받는 데에는 일정한 인과관계가 있다.
즉 망집-업-고통의 인과관계가 있다. [혹-업-고]
근본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앞에 나열한 여러 사정들로 현실내용을 실다운 내용으로 여긴다.
즉, 이들 내용을 참된 진짜로 여긴다.
그런 가운데 집착을 갖는다.
특히 스스로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취해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신견]
그런 경우 이 내용에 특히 집착을 강하게 갖는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과 만심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일정한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업으로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실답게 겪어 나간다.
따라서 이런 망집이 생사고통의 근본 원인이다.
생사고통을 예방하고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가장 먼저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망상분별에 바탕해 집착을 일으킨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집착의 정도에 비례해 업을 중단하기 힘들다.
한편 집착은 현실을 실답게 여기는 정도에 비례한다.
따라서 이처럼 현실을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 하는 그 배경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 경우 현실을 실답게 여기게 하는 배경사정도 결국 고통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이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올바로 이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잘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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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의 목표점 [고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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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적인 고의 제거방안 [자성청정열반, 유여의열반, 무여의열반, 무주처열반]
생사과정은 근본 무명이 그 근원이 된다.
본래 그런 생사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고통도 역시 본래는 얻을 수 없다. [자성청정열반]
그러나 어떤 이가 망집을 일으켜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런 경우 그 바탕에서 생사현실이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이 자세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근본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러면 일정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에 바탕해 임한다.
그런 가운데 처음 일정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취한다. [구생기신견]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다시 각 정신을 분화 생성시킨다.
그런 가운데 매 생을 맞이해 임하게 된다. [무명-행-식-명색-6입-...12연기]
그리고 그런 정신 구조와 기제를 바탕해서 현실을 대한다.
그런 경우 정신 표면에서 감각으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런 내용 가운데 일부분을 다시 자신으로 잘못 분별해 취하게 된다. [분별기신견]
그런 가운데 매순간 자신으로 여겨 취하는 내용을 죽 이어 나열한다고 하자.
그것이 생사과정에서 윤회를 겪어 나가는 과정이 된다.
한 생에서 어린아이에서 노인이 되기까지 과정이 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바로 위와 같은 내용을 매순간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것이다.
즉 어린 아이 때는 그러그러한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겨 취해 임한다.
그리고 노인이 된 때는 또 이러이러한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겨 취해 임한다.
이처럼 각 순간에 자신으로 잘못 여겨 취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을 나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주체의 한 생의 변화 모습들이 된다.
한 주체의 생사나 생멸은 이런 망집에 바탕한 것이다.
즉, 어리석음에 바탕해 일정부분을 처음 자신으로 취한다.
생사과정은 바로 이런 어리석음이 근본 원인이 된다.
그리고 일정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가 그런 망집을 일으키는 바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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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여의열반
생사현실에 처해 생사고통을 받아 나간다.
그런 경우 생사 생멸의 묶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생사고통을 받는 원인이 있다.
망집 번뇌에 바탕해 업을 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그런 업을 중지해야 한다.
업으로 생사를 받게 된다.
한편 업을 행하면 업의 장애가 쌓이게 된다.
따라서 쌓인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한편 업은 번뇌에 바탕해 행한다.
따라서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본래 생사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망집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 생멸이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생사, 생멸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신견 등 망집 번뇌를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ㆍ탐ㆍ진ㆍ치ㆍ만ㆍ의]
그런데 이들 번뇌는 출생 이전 단계에서부터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그 근원과 뿌리가 깊다. [구생기 신견ㆍ구생기 변견 등]
그래서 신견ㆍ변견ㆍ탐ㆍ진ㆍ만ㆍ의 등의 근원적인 번뇌까지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번뇌를 근본적으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생사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해탈의 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생사를 받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래도 일단 한 생을 출발해 임했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신체는 아직 멸하지 않고 남아 있다.
현재의 신체는 과거의 업을 통해 받게 된 내용이다.
그래서 한 생은 남은 일정 기간 유지된다.
그런 상태를 유여의열반이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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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여의열반 [회신멸지]
처음 망집에 바탕해 일정한 부분을 취한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그런 주체의 생사나 생멸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이런 경우 수행을 통해 업장을 제거한다.
그리고 망집번뇌를 제거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해탈을 이룬다.
그리고 더 이상 망집을 일으켜 생사에 묶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유여의열반 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남은 생의 기간 동안 머물게 된다.
이 경우 그 몸은 생을 출발한 상태에서 얻게 된 내용이다.
그런데 끝내 이런 부분까지 생사과정을 통해 제거된다고 하자.
한편 망집을 일으키게 하는 정신구조와 기제가 있다.
그런데 이후 이런 내용까지 제거한다고 하자.
그래서 가장 근본 되는 정신만 남는 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이후 망집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면 다시 망집을 일으킬 근본이 제거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후 다시 생사에 묶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 이것을 무여의열반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이를 회신멸지의 상태라고도 표현한다. [회신멸지灰身滅智]
평소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
그래서 현실에 각 요소(5온)나 그 생멸 생사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러나 망집을 완전히 제거한다고 하자.
그러면 물(物)ㆍ심(心)의 속박도 사라져 없는 상태가 된다. [멸滅]
그래서 탐진치 3 독을 비롯해 온갖 번뇌의 시끄러움이 함께 사라져 없다.
그리고 본바탕 실재만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로 남아 드러나게 된다. [정靜]
그리고 3계의 온갖 근심과 고통이 사라져 얻을 수 없게 된다. [묘妙]
그리고 온갖 재액(災厄)이 사라져 여읜 상태가 된다. [리離]
생사고통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니르바나라고 한다.
그런데 본래 본바탕 실재에서는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망집에 바탕해 생사에 묶인다.
그런데 망집을 제거한다.
그러면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그래서 본래의 청정한 니르바나 상태만 드러나 남게 된다. [이계과, 택멸, 무위열반]
그래서 이런 상태가 곧 생사고통이 제거된 상태로 제시된다. [고멸제]
이는 비유하면, 망상에서 시작한 꿈에서 깨어나는 상태와 같다.
그리고 더 이상 앞으로는 꿈에 들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이가 꿈을 꾸다가 깬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내용과 이를 대조한다.
그래서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꿈에 대해 다음처럼 이해하게 된다.
꿈 내용은 실답지 않다.
그래서 하나같이 쓸데없다.
예를 들어 꿈에서 바다에 빠졌어도 관계없다.
꿈에서 황금을 얻었어도 쓸데없다.
그렇다고 본래 없는 황금이 생겨나는 일이 없다.
또 꿈에서 얻었던 황금을 강도에게 뺏기거나 잃어버려도 관계없다.
그렇다고 없던 황금이 있다가 다시 없어지는 일 자체가 없다.
이렇게 이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이가 꿈만 들면 위 사실을 다 망각한다.
그리고 또 꿈에 휘둘린다.
그러면 문제다.
그런 경우 꿈에서 깨어남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수행을 통해 얻는 유여의열반, 무여의열반 의미다.
어떤 이가 꿈속에서 노력해 자신이 대하는 이들 내용이 꿈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직 꿈은 다 깨지 못한 상태다.
유여의 열반이란 이런 상태와 같다.
그러다가 꿈을 마저 다 깬다.
이 상태에서는 꿈속의 것들은 모두 의미를 잃는다.
꿈에서 자신 몸이라고 잘못 여겼다.
그런데 이 역시 엉터리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꿈속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알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 역시 엉터리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들 모두 쓸데없고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즉, 꿈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
그래서 다시는 이처럼 실답지 않은 꿈을 되풀이해 꾸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모두 제거한다.
그리고 이런 꿈이 다시 발생할 근거까지 제거한다.
그래서 다시 잠이 들고 꿈을 꾸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이후 그런 내용을 다시 겪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러면 현실을 가리던 꿈은 사라진다.
그리고 현실만 대하게 된다.
그런데 무여의열반은 이런 상태와 같다.
그래서 이를 회신멸지라고 표현한다.
다만 꿈은 비유다.
그래서 무여의열반 등과는 다른 점이 있다.
우선 꿈을 깬다.
그러면 그는 곧바로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을 놓고 대조할 수 있다.
그래서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실재와 현실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본바탕 실재는 어떤 주체와의 관계를 떠나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다.
그런데 한 주체는 그 주체의 마음이 화합해 얻어낸 내용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주체가 본바탕 실재를 직접 얻어낼 도리는 없다.
그렇기에 실재의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를 얻어 현실과 비교할 도리가 없다.
실재는 공하고 얻을 수 없다.
또 실재는 실재를 아는 일도 없다.
또한 실재는 생사고통이나 생멸을 본래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실재에서는 이런 생사고통을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일도 없다.
그래서 이런 실재상태는 사실상 현실에서 헤아려 행하는 판단이다.
현실에서 이런 사정을 이해하던 않든 본바탕은 차별 없이 공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본바탕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에서 본바탕의 사정을 이처럼 헤아려 이해한다.
그러면 현실 안에서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집착을 제거하고 생사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이런 사정을 이해함이 갖는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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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자성청정열반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에 묶인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처음 수행을 시작한다.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열반의 상태를 얻게 된다. [택멸, 이계과, 유여의열반, 무여의열반]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행한다.
그런 경우 수행이 열반을 얻는 원인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열반은, 본래 없다가 생겨나는 어떤 상태는 아니다.
즉 수행으로 비로소 생겨나는 어떤 상태는 아니다.
열반은 본래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자성청정열반]
이는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꿈에서 어떤 노력을 해 꿈을 깬다.
그러면 그 꿈 내용이 다 사라진다.
그리고 현실을 맞이한다.
이 때 다음처럼 착각할 수 있다.
자신이 꿈속에서 꿈을 깨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런 노력으로 인해 현실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오해할 수 있다. [~이계과, 택멸]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현실은 본래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 [~자성청정열반]
어떤 이가 꿈에 들거나 않거나, 본래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이다.
자성청정 열반 상태도 이와 사정이 같다.
열반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상태다.
그런 열반은 본래부터 그렇게 갖춰져 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다.
그러면 이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놓인 입장이라고 하자.
이런 경우 우선 수행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얻어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상태가 갖는 의미가 깊다.
그런 경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고 열반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수행을 닦아 열반을 얻는다.
그런 경우 이런 열반 상태는 없었던 상태가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어떤 이가 최면 걸린 상태와 같다.
현실에서 최면에 걸렸다가 노력해 풀려난다.
그 때 관객이 앉아 있는 객석을 비로소 의식한다.
그렇다고 그런 관객들이 최면상태에서의 노력으로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입장에서는 최면이 풀리는 순간 그런 현실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여겨지는 것뿐이다.
이것이 자성청정 열반과 유여의 열반이나, 무여의 열반과의 의미 차이다.
♥Table of Contents
▣- 생사현실 안에서 '자성청정열반'에 대한 이해가 갖는 의미 - <생사 즉 열반>
본바탕 실재에서는 본래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실재에서는 그런 사정으로 생사고통을 문제 삼은 적도 없다.
또 그런 사정으로 실재에서는 생사고통을 제거하라고 요구하는 일도 없다.
또 실재에서는 이런 일을 안다는 일도 없다.
그리고 어떤 주체가 이런 내용을 이해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거나 겪지 않거나, 마찬가지다.
어떤 주체가 이해를 하거나 않거나, 본바탕은 차별을 얻을 수 없다.
본바탕은 이에 차별 없이 본래 그런 니르바나 상태다. [자성청정열반]
본래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각 주체가 개별적으로 망집을 일으킨다.
그러면 현실을 실답게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과정을 겪어 나간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본바탕은 이와 관계없이 니르바나 상태다.
한 주체가 생사고통을 겪거나 이를 벗어나거나, 언제나 그런 상태다.
본바탕은 그러하다.
그리고 본래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다.
사정은 이와 같다.
그렇지만, 생사현실내 생사고통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본바탕은 자성청정열반의 상태다.
그래도 망집을 일으킨 주체는 생사현실을 실답게 여긴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실답게 받아나간다.
그러나 망집을 제거한다.
그러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생사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이를 그대로 방치할 도리가 없다.
생사현실에서는 생사현실을 실답게 여기는 정도에 비례해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따라서 수행을 통해 이런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근본원인인 망집을 제거한다.
그러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각 주체는 수행을 통해 유여의열반, 무여의열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한 주체가 망집을 제거한다.
그러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 열반을 증득한다.
그렇다고 없었던 열반이 새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각 주체가 얻는 열반은 본래 있었던 상태다.
따라서 유여의열반, 무여의열반은 각 주체의 문제가 된다.
각 주체에게 원래의 상태를 가린 망집이 있었다.
이런 망집을 개별적으로 제거하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생사고통을 겪는 입장에서는 열반이 갖는 의미가 크다.
각 주체가 생사고통을 겪거나, 열반에 이르거나 본바탕은 차별이 없다.
자성청정열반은 본래 이런 내용을 나타낸다.
그런데 생사고통을 겪는 주체가 있다.
이 경우 이런 자성청정 열반은 다음처럼 생사현실 안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망집을 일으켜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에 있다.
그런 현실 상태에서 본바탕 실재는 그런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현실의 본바탕이 공함을 이해한다.
즉, 생사현실 안에서 본바탕이 자성청정열반 상태임을 이해한다.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그런 깨달음과 이해가 망집을 제거하게끔 이끌어 준다.
따라서 '생사현실 안에서' 본바탕이 자성청정열반 상태임을 '이해'함이 중요하다.
'생사현실 안에서' 어떤 이가 그 본바탕이 자성청정열반임을 '이해'한다.
그런데 설령 그가 그런 이해를 하지 않아도 본바탕은 본래 그렇다.
그러나 그가 생사현실에서 그런 이해를 하게 된다.
그러면 이는 생사현실 안에서 그 주체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이런 이해를 통해 그는 생사현실 안에서 현실이 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이치상 생사현실이 열반과 다르지 않음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도 평안히 임할 수 있게 된다.
생사현실 안에서 본바탕이 공함을 이해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을 이런 본바탕과 대조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 안에서 본바탕 진여의 측면을 99% 취해 여여하게 임한다.
그런 경우 생사현실 안에서 겪는 고통도 평안하게 임할 수 있게 된다.
본래 니르바나는 생사고통을 벗어난 상태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여여하게 니르바나상태로 임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생에 임하는 한 기본적인 감각과 느낌을 얻는다.
그래서 이치처럼 생사고통에 처해 평안하게 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치를 먼저 확고하게 이해한다.
그리고 수행 노력을 통해 생사고통에 처해 평안하게 임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런 경우 생사현실이 곧 열반임을 현실에서 실증하는 상태가 된다. [무생법인]
그런 경우 생사현실을 굳이 벗어날 필요도 없게 된다.
본래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
그렇더라도 생사현실에 그대로 임해도 무방하게 된다.
그런 경우 또 생사현실 안의 무량한 선법을 굳이 제거하지 않아도 된다.
생사의 묶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회신멸지의 무여열반에 든다.
그런 경우 생사현실을 모두 떠나게 된다.
그런 경우 이는 생사현실 안의 다른 선법까지도 함께 제거하게 된다.
그래서 문제점이 있게 된다.
생사현실 안에서 고통을 겪는다.
그 경우 처음 이런 생사고통의 제거를 원한다.
그런 경우 그는 고통만 제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고통과 관련 없는 나머지 부분은 제거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
그런 경우 그 외 나머지 부분들도 결국 고통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
즉 이들은 일체가 생사고통과 결국 관련된다.
그리고 생사현실 일체는 다 함께 망집에 바탕한 것이다.
그리고 생사현실 일체는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래서 생사현실 일체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안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 몸에 종기가 나서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이 종기를 몸에서 제거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몸의 나머지 부분은 남겨두기를 원한다.
그런데 몸의 나머지 부분이 결국 이런 종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
그래서 종기를 없애기 위해 몸 전체를 없앤다.
그러면 처음 종기만 없애려고 했던 취지와는 달라진다.
그런데 이에는 사정이 있다.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생사현실 일체가 고통에 귀결된다.
따라서 이 망집을 완전히 제거한다.
그러면 망집에 바탕한 생사현실 일체가 사라진 상태가 된다.
반면, 청정한 본래의 니르바나가 드러나게 된다.
그런데 현실을 기준으로 이를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상태를 위와 같이 이해하는 것이다.
즉 종기를 제거하기 위해 몸 자체까지 다 제거한 상태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나 이를 모두 제거하여 본래의 니르바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망집 상태에서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마치 종기를 없애려고 몸까지 없앤 것으로 잘못 오해하게 되는 것 뿐이다.
생사현실에서 본바탕이 공하다.
그래서 본바탕에서는 생멸이나 생사고통 일체를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생사현실 안에서 이해한다.
그런 경우 생사현실이 꿈과 같음을 이해한다.
즉 침대에 누워 꾸는 바다 꿈과 성격이 같다.
본바탕은 공하여 얻지 못한다.
그런데 생사현실은 매 순간 생생하게 얻는다.
그리고 그런 생사현실은 실재 영역에서 얻지 못한다.
따라서 현실은 침대에 누워 꾸는 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한다.
그러면 생사현실 안에서도 생사현실을 곧 열반으로 관할 수 있다.
이는 비유하면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임을 이해하고 꿈꾸는 상태와 같다.
어떤 이가 꿈을 꿀 때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그런데 꿈을 깨면, 그것이 실답지 않은 꿈임을 이해한다.
그런데 다시 꿈을 꾸면 그것을 잊는다.
그리고 또 악몽에 시달린다.
그런데 꿈 일체는 실답지 않고 부질없다.
그래서 꿈을 깬 다음 다시는 꿈에 들지 않는 것을 해결 방안으로 처음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이가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임을 이해하며 꿈을 꾼다.
이 경우는 꿈이 꿈인 줄 알고 대하는 상태다.
그러면 설령 꿈을 꾸어도 큰 문제가 없다.
이는 꿈을 깬 상태에서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며 대하는 상태와 마찬가지다.
그런 경우 꿈이 어떤 내용이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그냥 꿈을 꾸고 임하더라도 무방하다.
그래서 이제 꿈 안에서 그것이 꿈임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꿈을 꾸면서 꿈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그가 그것이 꿈임을 이해한다.
그 상태에서, 침대가 놓인 현실 측면을 99% 취해 대한다.
그러면 이는 마치 꿈을 깨고 난 상태에서 꿈을 대하는 상태와 마찬가지다.
생사현실도 마찬가지다.
생사현실 안에서 본바탕 측면을 99% 취해 현실을 대한다.
즉 생사현실 안에서 본바탕이 본래자성청정열반임을 이해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을 대한다.
그러면 생사현실이 침대에 누워 꾸는 꿈과 같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러면 생사현실 안의 내용이 어떻더라도 여여하게 니르바나 상태로 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다고 하자.
그래서 생사현실을 실답게 여긴다.
그러면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본래 본바탕은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
그래서 니르바나 상태다.
그럼에도 그런 니르바나 상태를 거꾸로 생사고통으로 여기고 임하게 된다.
이는 거꾸로 '열반 즉 생사'로 생사현실을 대하는 상태다.
그리고 생사현실안의 일반적인 경우는 오히려 이런 상태다.
그래서 이를 본래 본바탕의 상태로 되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즉, 우선 '<생사 즉 열반>'의 상태임을 이론적으로 잘 이해한다.
그리고 생사현실 안에서 그런 측면을 취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을 대한다.
그러면 생사현실에 임하면서도 여여하게 임할 수 있다.
즉 생사고통의 묶임을 제거한 상태가 된다.
그런 상태로 현실에 임하게 된다.
본바탕은 '본래자성청정열반'이다.
그런데 이 사정을 생사현실에서 확고하게 이해한다.
그러면 생사현실 안에서 이런 상태가 된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 '본래자성청정열반'임을 이해함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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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제도를 위한 방안 [무주처열반]
무주처열반은 생사현실에 임해 중생을 제도하는 일과 관련된다.
어떤 이가 수행을 통해 망집을 제거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을 완전히 벗어난다.
그런데 다른 중생은 여전히 생사현실에 남아 있다.
그래서 다른 중생의 제도가 여전히 문제로 남게 된다.
그가 생사현실을 완전히 벗어난다.
그런 경우 그는 이들 중생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 각 주체는 각기 알아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대단히 힘들게 된다.
수행자가 자비심을 일으킨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제도하려 한다.
그런 경우, 수행자가 생사현실을 벗어나면 곤란하다.
그래서 중생과 떨어지면 안 된다.
그러면 중생을 제도할 수 없다.
따라서 중생들이 처한 생사현실에 들어가 함께 임한다.
그래서 다른 중생들과 입장을 같이해 현실을 대한다.
그런 가운데 점차 다른 중생들이 꿈을 깨어나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그런 경우 수행자는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한다.
그런 경우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생사현실의 극한 고통에 당면하게 될 경우도 있다.
사정이 그렇다고 수행자가 이를 회피하면 곤란하다.
생사현실의 어떤 극한 고통에 당면해서도, 이를 평안히 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수행자는 자신부터 '<생사 즉 열반>'임을 잘 관해야 한다.
생사현실에 본래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현실 일체의 본바탕이 청정한 열반이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침대에 누워 꾸는 바다 꿈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단지 이론적으로 이해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런 이론적 이해를 현실에 적용해 잘 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생법인]
특히 생사현실에서 극한 고통에 당면할 경우 이런 내용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평안한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굳이 이런 내용을 이해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극한 고통에 당면한다.
그런 경우 생사현실의 본바탕이 청정한 열반 상태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측면을 취해 그 현실에서 그대로 평안하게 임할 수 있어야 한다. [안인의 성취]
그래서 이를 위해 현실에서 망상분별에 바탕해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망집을 일으키는 범부 상태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 [불퇴전위]
수행을 통해 생사현실 일체를 모두 니르바나처럼 평안히 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이런 상태를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완전히 멸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꿈에서 그것이 꿈인 것을 알고 꿈을 대하는 상태와 같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런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을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에서 이처럼 오직 본바탕 측면만 취한다고 하자.
그래서 늘 니르바나 상태처럼 머물려 한다.
그러면 또 곤란하다.
중생제도를 위해서는 생사현실 내용이 다시 중요하다.
생사현실 안의 중생들은 생사현실 내용을 집착하고 대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런 중생과 눈높이를 일단 같이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다시 중생을 제도할 방편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도 오직 본바탕 측면만 취하며 임하면 곤란하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본바탕과 중생의 생사현실 두 측면을 다 함께 적절하게 취해야 한다.
즉, 수행자는 본바탕의 측면과 생사현실의 측면을 2중적으로 함께 취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적절히 임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2중적 측면은 다음을 요구한다.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런 경우 우선 그 자신부터 범부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집착한 상태로 머물면 곤란하다.
그리고 생사에 묶인 상태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생사가 곧 열반임을 이해한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즉, 생사현실에서 그 생사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잘 관한다.
생사현실의 본바탕에서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현실은 꿈과 같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이런 사정을 잘 관한다.
그러면 이는 꿈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꿈을 꾸는 상태와 비슷하다.
그러나 만일 오로지 이것만 강조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음처럼 생각하게 되기 쉽다.
즉, 생사현실은 본래 실답지 않다.
따라서 그대로 방치하고 외면해도 무방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리고 생사현실이 본래 열반인 측면만을 취해 임하려 하기 쉽다.
그러나 중생은 본래 생사현실이 그런 상태임에도 망집을 일으킨다.
그러면 망집을 일으킨 정도에 비례해 생사고통을 실답게 여긴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실답게 겪어 나간다.
그래서 현실이 실답지 않다고 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그래서 수행자는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그런 생사현실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 중생과 눈높이를 같이 해 임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이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한다.
또 이를 위해 생사현실에서 수행자부터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열반의 측면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즉, 단지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는 측면에만 너무 치우쳐 머물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 자체를 외면하고 피하지 않아야 한다.
한편 생사현실에 임해 다시 없음의 측면에만 치우치면 안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이들 현실이 실답지 않음만 관하며 생사현실을 외면해 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나 열반 어디에도 집착해 머물지 않아야 한다.[無住]
그런 가운데 2중적인 측면에서 모두 좋은 상태를 얻어내야 한다.
우선 생사현실에서 본바탕의 자성청정열반의 측면을 취한다.
그리고 이 측면을 통해 생사현실 안의 생사고통과 번뇌를 모두 제거한다.
그래서 수행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통도 잘 극복한다.
그런 가운데 다시 생사현실 안에서는 중생제도를 위해 필요한 방편을 잘 구족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생사현실에서 수행자부터 복덕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 계의 덕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보시를 행한다.
그리고 이런 수행도 상에 머물지 않고 집착을 떠나야 한다. [무주상]
그래야 이들 수행도 원만히 성취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무량한 보시를 행해 나간다.
그리고 그런 수행노력으로 복덕자량을 구족하게 된다.
그런 상태가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생사현실에서 지혜자량도 잘 구족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을 다시 이롭게 해나가야 한다.
본바탕에서는 실다운 중생은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각 주체가 망집을 일으켜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그래서 그 사정을 함께 잘 이해한다.
그런 가운데 이런 중생제도 수행도 상에 머물지 않고 집착을 떠나야 한다.[무주상]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해간다.
그래야 중생 제도의 수행이 원만하게 성취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리고 이후 생사현실 안에서 무량한 중생을 제도해간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중생들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중생들이 모두 열반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본바탕의 측면이나 생사현실 양 측면에서 나쁨을 제거하고, 좋음을 성취한다.
그리고 수행자는 그 어느 경우에나 생사현실에 집착하지 않는다.
본바탕의 측면을 취해 온갖 생사고통과 번뇌를 제거한다.
그래서 생사에 묶이지 않는다.
그리고 생사현실의 측면에서는 중생제도를 행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다.
한편 생사현실에서 이런 수행을 할 때에도 집착해 머묾이 없이 머문다. [무주처]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 안에서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다.
그리고 양 측면에서 모두 나쁨을 제거하고 무량한 선법을 얻어낸다.
그래서 이를 무주처열반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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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단계적 방안들 [고멸도제]
각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고통스런 생사를 겪는다.
따라서 이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멸도제는 이를 위한 수행방안이다.
생사현실에서 생사에 묶인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간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원인이 있다.
즉, 근본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망상분별 번뇌를 일으킨다.
=> 이에 바탕해 업[의업, 구업, 신업]을 행한다.
=>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 나간다.
따라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즉, 망상분별과 번뇌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그 뿌리가 깊다.
그래서 단계적으로 이를 제거해가게 된다.
우선 망상 분별을 일단 그대로 둔다.
그런 상태에서 일단 3악도의 생사고통을 벗어난다.
그래서 10선법과 같은 기초적 수행을 먼저 행한다.
그래서 하늘과 인간세계를 오갈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인천교]
그래서 일단 욕계 내 3악도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는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는 아니다.
여전히 생사윤회에 묶여 있다.
그래서 이후 생사의 묶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예비적 수행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처음 각 번뇌의 개별적 대치 방안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탐욕에는 부정관을 사용한다.
분노에는 자비관을 사용한다.
어리석음에는 인연관을 사용한다.
산란하거나 가라앉은 마음에는 수식관을 사용한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집착이 많은 경우 계분별관을 사용한다.
불안 두려움 기타 장애에 처할 때는 념불관 등을 통해 극복한다. [5정심]
그리고 다시 신ㆍ수ㆍ심ㆍ법을 관한다.
그런 가운데 부정ㆍ고ㆍ무상ㆍ무아를 관한다.
이를 통해 집착을 완화시킨다. [별상념주, 총상념주]
그래서 망집 번뇌에 바탕한 업을 중단시킨다. [외범, 3현,자량위]
그리고 다시 부처님의 4제법을 관하고 닦는다.
이는 그 수행 정도에 따라 난ㆍ정ㆍ인ㆍ세제일법으로 나뉜다. [내범, 4선근,가행위]
이들은 모두 본격적 수행에 들어가기 전의 예비적 수행단계다. [7방편행(3현+4선근)]
그래서 이런 예비적 수행이 충실히 이룬다.
그러면 이제 계ㆍ정ㆍ혜 3학의 수행을 본격적으로 닦아 나갈 수 있다.
고멸도제의 내용으로 8정도 37도품 등을 기본적으로 제시한다.
이에는 계ㆍ정ㆍ혜 3학의 수행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아래에서는 이들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나가기로 한다.
♥Table of Contents
▣- 본 수행
망집 번뇌는 발생적으로는 다음 순서로 일으키게 된다.
우선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신견과 변견을 일으킨다. [구생기신견, 변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탐ㆍ만ㆍ진ㆍ치의 정서적 의지적 번뇌를 일으킨다. [탐ㆍ만ㆍ진ㆍ치]
그리고 이후 분별기에 다시 지적 번뇌를 일으킨다.
먼저 자신과 세상의 정체에 잘못된 분별을 행한다. [분별기 신견, 변견]
그리고 인과 및 수행목표와 성취방안 및 다양한 견해를 일으킨다. [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
그런 가운데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한다. [의]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고통의 생사현실에 묶이게 된다.
따라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원인 망집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한 수행이 필요하다.
망집 번뇌는 발생적으로는 위에 나열한 순서가 된다.
그러나 이를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제거가 쉬운 번뇌부터 하나씩 제거해 간다.
분별기에 이치에 미혹해 일으킨 번뇌가 있다. [이사, 견혹, 미리혹, 5 견]
이런 번뇌가 비교적 제거가 쉽다.
그래서 이런 번뇌부터 제거한다.
그 다음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번뇌가 있다. [구생기 신견, 변견, 탐ㆍ만ㆍ진ㆍ치]
이는 주로 정서적 의지적 번뇌다. [미사혹]
이들은 오랜 수행을 통해 제거해야 한다. [수혹]
그래서 이후 수행노력을 통해 이들 번뇌를 점차 제거해간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번뇌를 모두 제거한다.
그런 경우 결국 4제법을 통해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관해야 한다. [정견, 반야바라밀다]
그런 바탕에서 다시 정서적 의지적으로 뿌리 깊은 번뇌를 수행노력으로 끊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결국 수행방안이 된다.
그것이 곧 8정도(八正道)를 비롯한 37조도품(助道品)이다.
그리고 대승에서는 이를 6바라밀행(波羅蜜行) 또는 10바라밀행(波羅蜜行)을 제시한다.
이들은 결국 계ㆍ정ㆍ혜 3학의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이런 수행방안을 닦아 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런 내용이 고멸도제 내용이 된다.
이를 아래에서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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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도품
깨달음[菩提]을 성취하는 37가지 길이다.
이를 37보리분법이라고도 한다. [37보리분법菩提分法 saptatriṃśad-bodhi-pakṣikā-dharmāḥ]
이는 깨달음 즉 보리(菩提)의 일부를 이루는 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깨달음을 통해 망집번뇌를 제거한다.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방안이다.
이 37도품의 내용은 다음 구조로 되어 있다.
- 사실과 가치에 대한 올바른 판단 [4념처]
- 목표의 올바른 설정 [4의단]
-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 [4신족]
-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와 능력 [5근ㆍ 5력]
- 지혜를 얻기 위한 올바른 방안 [7각분]
- 그리고 생활 전반을 올바로 살기 위한 종합적 방안[8정도]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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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념처
이는 4념주라고도 한다. [4념처四念處, 4념주四念住, catvāri smṛty-upasthānāni]
먼저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을 순서로 따로따로 관한다.
이를 별상념처관(別相念處觀)이라 한다.
1 신(身: 몸)- 몸의 깨끗하지 않음을 관한다.
2 수(受: 감수) - 느낌을 괴로움으로 관한다.
3 심(心: 마음) - 마음현상이 영원하지 않음을 관한다.
4 법(法: 그 외 나머지 현상) - 법을 잘 관찰하여 이에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아我]가 없음을 관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총합하여 관한다.
이를 총상념처관(總相念處觀)이라 한다.
즉, 신ㆍ수ㆍ심ㆍ법 일체가 모두 부정ㆍ고ㆍ무상ㆍ무아임을 관한다.
4념처는 예비 수행단계 3현과정의 별상념주, 총상념주와도 관련된다. [3현]
그러나 본 수행에서도 이런 기본적 판단은 역시 중요하다.
이는 한편 삼매시 닦아 나갈 기본 중요 주제가 된다.
몸의 깨끗하지 못함[부정]ㆍ느낌의 고통ㆍ마음의 무상함을 관한다.
그러면 집착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법에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없음[무아]를 관한다.
그러면 근본적인 망상분별을 제거할 수 있다.
결국 이들은 현실에 대해 올바로 가치와 사실에 대해 판단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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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정단
이는 4정근이라고도 한다. [4정단四正斷, 4정근四正勤, catvāri prahāṇāni]
1. 이미 일어난 악(惡)을 끊는다. 이를 위해 부지런히 행한다. [단단斷斷]
2. 아직 일어나지 악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이를 위해 계율과 위의(威儀)로써 부지런히 행한다. [율의단律儀斷]
3.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善)은 생겨나게 한다. 그래서 정도(正道)를 따라 부지런히 행한다. [수호단隨護斷]
4. 이미 일어난 선(善)은 더욱 키운다. 이를 위해 부지런히 행한다. [수단修斷]
이런 4 의단은 계율과도 관련된다.
그리고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 내용이 된다.
수행자가 올바로 가치와 사실을 판단한다.
그러면 일반적인 소원은 망상분별에 바탕한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소원은 본래 현실에서 얻을 수 없음도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쓸데없는 소원은 다 제거한다. [무원무작삼매]
그리고 그 대신 올바른 서원을 일으켜 채워 넣는다.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일으킨 소원이 있다.
그래서 먼저 이들 소원을 다 제거해낸다.
그리고 망집을 없애고자 한다.
한편, 수행자는 생사고통에 묶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먼저 악업을 끊어야 한다.
각 생명은 모두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가족 등을 집착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함부로 침해한다.
그러면 서로 가해 피해관계가 중첩해 쌓이게 된다.
그러면 생사고통을 받아나게 된다.
따라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먼저 이런 악업을 중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에 행한 악은 더 키우지 않는다. [단단斷斷]
또한 새로운 악은 행하지 않아야 한다. [율의단律儀斷]
한편 이미 그런 업을 통해 업의 장애가 쌓여 있다.
이런 경우 그 업의 장애도 제거한다.
과거에 염산을 바닥에 부어 놓았다.
그런 경우 과거로 돌아가 이것을 되담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이후 그와 반대되는 알칼리 양잿물을 그만큼 붓는다.
그러면 과거의 염산이 알칼리가 합해져 물이 된다.
수행도 마치 이와 같다.
과거에 행한 업장이 쌓여 있다.
이런 경우 그와 반대되는 선행을 많이 닦는다.
즉, 생명들에게 널리 좋음을 널리 끊임없이 베푼다.
즉, 올바른 선과 지혜, 즐거움과 이익을 베푼다.
그러면 이런 노력으로 과거에 쌓아 놓은 업장을 제거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은행 계좌와 사정이 같다.
처음 잔고에 부채만 있었다.
그런데 꾸준히 저금을 하다.
그러면 이후 부채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후 자산이 증가하게 된다.
선업을 닦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업을 닦는다. [수호단隨護斷]
그러면 처음 쌓여진 업장이 제거된다.
그리고 업장이 다 제거된다.
그러면 3악도의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일단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이후 이런 노력을 꾸준히 해 키워 나간다. [수단修斷]
그러면 다시 복덕자량이 쌓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복덕자량이 쌓이지 않게 된다.
그러면 지혜자량을 닦기 힘들게 된다.
예를 들어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런 상태에서 정려나 지혜를 닦기 힘들게 된다.
그러나 선업을 행한다.
그러면 복덕자량이 쌓인다.
그러면 이후 지혜 자량을 닦아나갈 바탕이 마련된다.
그러면 이를 통해 근본 무명 번뇌를 끊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생사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런 내용을 잘 성취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다른 중생들도 그처럼 행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 전체가 곧 수행자가 현실에서 추구할 수행목표가 된다.
즉, 수행자의 서원 내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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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여의족
4여의족은 4신족이라고도 한다. [4여의족四如意足, 4신족四神足, catvāra-ṛddhipādāḥ]
정(定)을 얻는 수단에 욕(欲)ㆍ정진(精進)ㆍ념(念, 심心)ㆍ혜(慧, 사유思惟)의 넷을 든다.
여의족에서 여의는 뜻대로 자유자재한 신통을 뜻한다.
족은 이런 신통이 일어나게 하는 발로서 수단을 의미한다.
여기서 욕(慾 희망)은 수행을 해서 결과를 증득하려는 서원을 의미한다.
한편 정진(精進: 노력)은 악을 그치고 선을 끊임없이 닦아 나감을 의미한다.
념(念, 심心 기억)은 일정한 내용을 마음에 머물게 하여 집중함을 의미한다.
혜(慧, 사유思惟 지혜)는 실상을 꿰뚫어 부처님의 가르침과 이치를 헤아림을 의미한다.
이들은 삼매와 지혜를 균등히 하여 서원을 성취하게 해준다.
이들은 예비 수행단계에서는 4선근위의 정위[頂位]와 관련된다. [참조 구사론 권25]
이들은 삼매[정定]를 일으키고 또한 뛰어난 힘을 이끌어낸다. [대비바사론 권141]
그리고 이에 의해 다음처럼 삼매를 나눈다
[욕삼마지단행성취신족欲三摩地斷行成就神足, chanda-samādhi-prahāṇa-saṃskāra-samannāgata-ṛddhi-pāda]
[근삼마지단행성취신족勤三摩地斷行成就神足, vīya-samādhi-prahāṇa-samannāgata-ṛddhi-pāda]
[심삼마지단행성취신족心三摩地斷行成就神足, citta-samādhi-prahāṇa-saṃskāra-samannāgata-ṛddhi-pāda]
[관삼마지단행성취신족觀三摩地斷行成就神足, vīmāṃsā-samādhi-prahāṇa-saṃskāra-samannāgata-ṛddhi-pāda]
일반 현실을 놓고 생각해보자.
어떤 이가 소원이 아예 없다.
그런데 어떤 좋은 상태가 저절로 성취돼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좋은 상태를 성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먼저 그에 대해 소원을 일으켜 가져야 한다.
한편 그런 소원을 일으켜 갖는다.
이런 경우 이를 성취할 방안을 미리 다 알면 편할 것이다.
이미 많은 이가 경험해 그에 관련되어 정리된 내용이 쌓여 있다.
그런 경우는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의 간접경험을 취득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지도와 같다.
처음 탐험가가 수차례 탐험을 해서 지도를 그려 놓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지도가 있다.
그러면 그 지도를 보고 쉽게 길을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각 부분마다 그런 내용이 모두 미리 갖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현실에 그런 지도와 같은 내용이 없을 수 있다.
그런데도 늘 지도와 같은 내용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고 고집한다.
그러면 목적을 성취하기 곤란하다.
어떤 실천 노력이 없다.
그러면 그에 관련된 내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곤란하다.
그런 경우는 자신이 직접 탐험가 입장으로 임해야 한다.
그래서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목표에 가깝게 보이는 방향을 찾는다.
그리고 일단 그런 내용부터 실천한다.
그런 경우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경험을 정확히 잘 기억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쌓인다.
그러면 지혜를 얻게 된다.
그래서 이를 통해 자신이 새로운 지도를 만들 수도 있다.
일반 현실에서 소원을 성취하려 한다.
그런 경우에도 이런 요소들이 중요하다.
현실에서 어떤 길을 가고자 한다.
이런 경우 지도를 갖추고 있다.
그러면 지도를 보고 잘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지도가 없다.
그러면 탐험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경우 그곳에 가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일단 길을 나서야 한다.
그런데 경험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면 엉뚱한 곳을 계속 반복해 헤매 돌게 된다.
그래서 한번 경험한 내용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시행착오를 통해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도를 잘 만들어낸다.
그러면 이후에는 이 지도를 통해 원하는 상태를 잘 찾아 도달하게 된다.
한편 이처럼 뜻을 잘 성취한다.
그러면 이를 신통하다고 하게 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요소가 결국 뜻을 신통하게 잘 성취하게 하는 방안이 된다.
수행에 있어서도 이런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현실에서 망상분별에 바탕해 소원을 일으킨다.
그래서 수행자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한다.
그리고 이런 쓸데없는 소원은 모두 제거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업을 중지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사고통을 제거 예방한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더 나아가 다른 중생들도 그처럼 이끈다.
그러기 위해 또 생사현실에서 복덕과 지혜를 갖춘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수행자의 목표가 된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런 목표를 현실에서 잘 성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런 내용에 대한 서원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실천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각 내용을 마음에 오래 념해 머물게 한다.
그리고 지혜를 갖춘다.
그리고 이런 방편을 통해 삼매를 잘 성취한다.
그래서 마음을 집중하여 뛰어난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래야 또 이런 목표를 뜻처럼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결국 수행목표를 잘 이루는 방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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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근
생사 묶임에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망집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망집 번뇌에 물든 마음[염오심染污心]과 언제나 함께 따르게 되는 번뇌가 있다. [대수혹, 대번뇌지법]
불신(不信), 해태(懈怠), 방일(放逸), 실념(失念), 혼침(惛沈), 도거(掉擧), 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 등이다.
그래서 먼저 이런 여러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5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먼저 불ㆍ법ㆍ승 3보 및 그 가르침과 인과를 믿는다. [신근信根, 믿음, śraddhendriya)
이를 통해 대수혹 가운데 불신을 제거한다.
그 다음 용맹하게 악을 제거하고 선을 닦아 나간다. [진근進根, 노력, vīyendriya)
이를 통해 대수혹 가운데 해태 방일을 제거한다.
그 다음 올바른 진리를 잘 기억해 지닌다. [념근念根, 기억, smṛtīndriya)
이를 통해 대수혹 가운데 실념을 제거한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고 산란하게 임하지 않는다. [정근定根, 삼매, samādhīndriya)
이를 통해 대수혹 가운데 혼침ㆍ도거ㆍ산란을 제거한다.
그리고 실상을 꿰뚫어 현실의 정체를 관한다. [혜근慧根, 지혜, prajñendriya)
이를 통해 대수혹 가운데 부정지를 제거한다.
이들은 번뇌를 항복시킨다.
그리고 올바른 깨달음에 나아가게 한다.
이런 부분에서 뛰어난 작용을 갖는다.
예를 들어 믿음이 없다.
그런 경우 올바른 가르침에도 의심을 갖고 주저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파악한 후에 행하려 한다.
그러면 수행을 실천하지 못한다.
어떤 경우 생사현실의 정체나 인과를 낱낱이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먼저 인과나 스승의 가르침에 믿음을 갖는다. [신근信根]
이는 불신(不信)을 제거한다.
그러면 바로 수행을 실천할 수 있다.
나머지도 이와 사정이 같다.
그리고 수행을 열심히 노력해 닦아 나간다. [진근進根]
즉 악을 제거하고 선을 닦아 나간다. 곧 4정근을 열심히 행한다.
이는 해태(懈怠), 방일(放逸)의 번뇌를 제거한다.
해야 할 일이 a라고 하자.
그런데 그런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임하는 것이 방일이다.
그런데 그런 a를 생각한다.
그런 경우에 이를 게을리해 행하지 않는 것을 해태다.
이런 상태면 수행을 성취하기 힘들다.
그리고 각 내용을 잘 기억해 마음에 머물게 한다. [념근念根]
이는 실념(失念)의 번뇌를 제거한다.
기억하고 지니는 힘을 지닌다.
그러면 이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삼매를 얻게 된다. [정근定根]
마음이 집중해 삼매 상태를 얻게 된다.
그런 경우 이는 혼침(惛沈), 도거(掉擧), 산란(散亂)의 번뇌를 제거한다.
그러면 곧 실상에 대한 이치를 곧 알게 된다.
그리고 실상을 꿰뚫어 현실의 정체를 함께 관할 수 있게 된다. [혜근慧根].
이는 부정지(不正知)를 제거한다.
그리고 이런 요소를 통해 깨달음의 과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나아가 탐ㆍ진ㆍ만ㆍ무명 어리석음 등의 근본 번뇌를 제거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進) 념(念) 혜(慧) 등은 이미 4 여의족에서도 제시된 바 있다.
그런데 이들은 번뇌를 누른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게 함에 특별히 뛰어난 작용을 갖는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다시 5근이라고 칭하여 나열한다. [오근五根 pañcendriyāṇi]
여기서 근(根)은 최승(最勝)ㆍ자재(自在)ㆍ증상(增上)의 뜻이다.
즉, 작용이 우수한 것을 나타낸다.
5감관을 육체에서 다른 부분과 구별해 5근이라고 한다.
이 경우도 사정이 같다.
그리고 이들은 다 함께 22근에 포함된다.
이는 일체 법 중에서 작용(作用)이 가장 수승(殊勝)한 22법이다.
22근을 함께 나열할 경우 5근은 5선근이라 표현한다.
6근(根):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3근(根): 남(男), 여(女), 명(命)
5수근(受根): 우(憂), 희(喜), 고(苦), 락(樂), 사(捨)
5선근(善根): 신(信), 근(勤), 념(念), 정(定), 혜(慧)
3무루근(無漏根): 미지당지(未知當知), 이지(已知), 구지(具知)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그리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는 마치 현실에서 길을 잘 모르는 이가 처음 산 너머 마을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 경우 그 길을 아는 이가 알려준다.
그러면 이를 믿고 산을 올라가는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험한 산길에서 길을 헤매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길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집중해야 한다.
또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산에 올라가게 된다.
그 전까지는 산 너머 마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을 다 오른다.
그러면 그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이가 다음처럼 자세를 취한다.
즉, 미리 산 너머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산을 올라가려 한다.
그리고 길을 알려주는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산을 올라가는 노력이나 지혜 등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면 끝내 산을 올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산 너머 모습도 보지 못하게 된다.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도 사정이 같다.
결국 이들은 올바른 목표의 성취를 하게 한다.
그런 뛰어난 작용을 갖는다.
그래서 목표를 성취하게 도와주는 기초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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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력
5력은 목표를 성취하게 하는 기초가 되는 5가지 힘이다. [오력五力, pañca balāni]
이들 내용은 5근에 의해 생겨나고 늘어난 역량을 뜻한다.
그래서 수행을 유지하고 해탈에 이르게 해준다.
그래서 뛰어난 작용을 갖는다.
먼저 불법승 3보 및 그 가르침과 인과를 믿는 힘이 있다.
이런 힘은 잘못되고 삿된 믿음을 제거한다.
그리고 망상분별을 제거한다. [신력信力, 믿음의 힘, śraddhā-bala]
그 다음 용맹하게 악을 제거하고 선을 닦아 나가는 힘이 있다.
이는 4정근을 닦는 힘이다. [정진력精進力, 노력의 힘, vīrya-bala]
그 다음 올바른 진리를 잘 기억해 지니는 힘이 있다.
이는 4념처와 관련된다. [념력念力, 기억의 힘, smriti-bala]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고 산란하게 임하지 않는 힘이 있다.
그래서 수승한 힘을 끌어낸다.
그리고 번뇌가 사라진 적정한 상태에 이른다. [정력定力, 삼매의 힘, samādhi-bala]
그리고 4제법을 닦고 실상을 꿰뚫어 현실의 정체를 관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보리를 성취한다.
그리고 해탈을 얻게 한다. [혜력慧力, prajñā-bala]
5근과 5력은 모두 순서대로 점차 닦는 형태로 되어 있다.
5근과 5력은 그 실질 내용이 같은 동체다.
다만 다음 점에서 차이가 있다.
수행자가 처음 서원을 일으켜 수행한다.
이 경우 아직 그 기초가 단단하지 않다.
그런데 5가지 내용을 닦는다.
그러면 이제 그 각 기초가 확립된다.
그래서 이후 뛰어난 작용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처음 근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5가지 요소가 행해진다.
그래서 번뇌를 무너뜨리는 뛰어난 역량을 보이게 된다.
이를 5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5근은 아직 초보인 상태[鈍根者]에서 닦는 내용이다.
그리고 5력은 좀 더 뛰어난 상태에서 닦는 내용이 된다.
이들은 5근과 함께 올바른 목표의 성취를 이루게 하는 기초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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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각지
이는 7각분이라고도 한다. [칠각지七覺支, 칠각분七覺分, sapta-saṁbodhyaṅga / saptabodhyaṅgāni]
여기서 각(覺)은 깨달음, 보리(菩提) 지혜를 뜻한다.
7가지 내용은 올바른 지혜를 얻도록 돕는다.
그리고 해탈 열반을 얻도록 돕는다.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속 깊이 새긴다.
그리고 이를 잃어버리지 않고 머물게 한다. [념각지念覺支, 기억 smṛti-saṁbodhyaṅga]
그리고 지혜로써 각 내용을 택해 관찰한다.
그리고 또 그 진위 선악을 간별한다.
그래서 참되고 선한 법을 선택한다.
그리고 거짓되고 악한 법은 버린다. [택법각지擇法覺支, 선택 dharma-pravicaya-saṁbodhyaṅga]
그리고 게으름과 방일을 떠난다.
그리고 참되고 선한 법을 닦는다.
그리고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 [정진각지(精進覺支, 노력 vīrya-saṁbodhyaṅga]
참된 진리와 선한 법을 얻는다.
그리고 환희심에 차 기뻐한다. [희각지喜覺支: 기쁨 prīti-saṁbodhyaṅga]
잘못된 망상분별과 번뇌 집착을 제거한다.
그래서 이를 통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안온하게 한다. [경안각지輕安覺支, 심신의 경쾌안온함, 제각지除覺支 의각지猗覺支 praśrabdhi-saṁbodhyaṅga ]
산란함과 들뜸 가라앉음을 떠난다.
그리고 하나의 대상에 집중해 삼매를 닦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망상분별과 번뇌를 제거한다. [정각지定覺支, 삼매 samādhi-saṁbodhyaṅga]
집착을 여읜다.
그리고 거짓되고 악한 내용을 버린다.
그리고 거짓되고 악한 내용을 쫒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한쪽에 치우쳐 기울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평등하고 균형 잡힌 상태를 유지한다. [사각지捨覺支, 평정 upekṣā-saṁbodhyaṅga]
이 가운데 택법, 정진, 희각지는 혜(慧)의 작용에 속한다.
따라서 마음이 어둡고 가라앉는다고 하자.[혼침]
그런 경우는 택법, 정진, 희각지가 도움이 된다.
한편, 경안, 정, 사각지는 삼매[定]의 작용에 속한다.
따라서 마음이 들떠 흔들린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경안, 정, 사각지가 도움이 된다.
한편 념각지는 정혜를 겸한다.
따라서 삼매와 지혜를 균등히 닦음에 도움 된다.
결국 위에 나열된 7가지 요소는 실상을 꿰뚫어 올바른 지혜를 얻게 해주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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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정도
8정도는 8 성도라고도 한다. [8정도八正道, 8성도八聖道, ārya-aṣṭāṅgika-mārga]
한 주체가 생활하는 가운데 행하는 온갖 행위가 있다.
이 가운데 수행에 의미 있는 내용을 8가지를 세운다.
그리고 이 각 내용을 모두 올바르게 잘 행해야 한다.
그래서 8정도는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으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망상분별과 번뇌를 제거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번뇌를 제거하고자 한다.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행을 한다.
이런 경우 그 수행은 극단적 두 변을 떠나야 한다.
즉, 지나치게 안락한 상태를 피해야 한다.
그리고 고통스런 상태도 피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가장 좋은 수행결과를 얻어내는 방안을 택해야 한다.
이는 거문고와 같은 악기의 줄과 같다.
줄이 너무 팽팽하면 끊어진다.
너무 느슨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두 상태를 떠난나.
그러나 그렇다고 모두 좋은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다.
이 두 극단을 떠나야 한다.
그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상태를 다시 잘 찾아야 한다.
그래서 석존은 처음 법륜을 펼칠 때 중도(中道)를 실천해야 함을 제시했다.
그리고 중도를 실천하는 것이 곧 정도에 해당한다고 설했다.
그런 가운데 8정도를 나열한다.
이 8정도는 4제법에서 도제(導體)의 핵심이 된다.
8정도의 각 항목은 반드시 순서에 따라 닦아야 할 내용은 아니다.
깨달음을 얻는 과정에서 필요한 각 내용을 나열한 것이다.
8정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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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견(正見)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 경우 세상과 자신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는 결국 가치와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정견正見 samyag-dṛṣṛi]
한 주체가 잘못된 판단을 한다.
그러면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그러면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따라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가장 근본적으로 잘못된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한 주체가 세상을 살아갈 때 다양한 내용을 분별 판단한다.
한 주체가 판단하는 내용에는 크게 다음 부분이 있다.
우선 세상과 자신의 본 정체를 판단한다. [정체 성품 사실판단]
그리고 그 발생과 소멸에 관해 인과를 판단한다. [인과 사실판단]
또 각 내용에 대해 좋고 나쁨의 가치를 판단한다. [가치판단]
그래서 가장 좋은 상태를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이를 성취하는 원인 방안을 판단한다. [목표와 실현방안]
그런 가운데 행위를 해나간다.
그런데 한 주체가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 경우 한 주체가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일정한 판단이 작용한다.
따라서 이런 판단들이 특히 문제된다.
이런 측면에서 잘못된 견해를 크게 다음과 같이 나열할 수 있다.
즉 신견, 변견, 견취견, 사견, 계금취견이다. [5견]
먼저 한 주체는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집착한다.
그리고 이후 모든 집착은 이에 바탕해 일으킨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에 대해 잘못된 판단이 가장 문제된다. [신견]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과정에서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편, 자신에 대해 집착을 갖는다.
이련 경우 그 자신이 사후 계속 존재하는가 등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따라서 있고 없음, 영원함, 단멸함 등의 판단이 문제된다. [변견, 단견, 상견]
이는 한 주체가 고려하는 기간과 관련된다.
그리고 삶에서 인과를 판단하는 범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삶에서 구체적 목표를 선택 결정함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 성취 방안을 선택함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짧게 한 생만 고려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길게 후생까지 고려한다.
이런 경우 이들은 대부분 정반대 방향으로 결론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는 한 주체의 선택방향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 부분의 판단이 잘못 된다.
그러면 현실에서 매 경우 엉뚱한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리고 이를 잘못된 방안으로 추구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사고통을 심하게 겪게 된다.
따라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
한편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상으로 여긴다.
이런 세상의 내용은 무량하다.
그리고 그 각각에 살필 내용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성품, 모습, 전체와 부분의 구조, 본체, 다른 것들과의 관계, 힘, 작용, 원인, 결과, 효과, 시간상 변화과정 등이 다 문제된다.
그리고 이 각각에 대해 수많은 잘못된 판단을 일으킬 수 있다. [견취견]
다만 이들은 자신과 관련될 경우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견해를 내세워 고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옳고 그름을 두고 서로 날카롭게 대립한다.
그런 가운데 다투기 쉽다.
한편, 현실 내용은 다양하게 발생하고 소멸한다.
이 과정에 일정한 인과관계가 있다.
이런 인과의 이해는 현실의 본 정체를 이해함에도 중요하다.
한편 인과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무상, 고, 무아, 공 등의 이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인과에 대해 잘못 판단한다. [사견]
그러면 현실의 본 정체를 파악함에도 문제가 발생한다.
또 매 경우 잘못된 형태로 삶에 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연론, 무인론이나, 숙명론을 취한다.
그런 경우 삶에서 수행 노력이 필요 없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한편 한 주체가 자신의 삶에서 좋은 상태를 성취하기를 원한다.
그러면 인과 판단에 바탕해 성취 방안을 찾게 된다.
이는 결국 목표의 성취와 관련된다.
그리고 이는 결국 수행목표의 성취 방안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를 잘못 판단한다고 하자. [계금취견]
그러면 엉뚱한 목표를 위해 엉뚱한 행위를 고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못에 앉아 주문을 외우면, 후생에 하늘에 태어난다고 믿는다.
그러면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 그런 엉뚱한 행위를 하게 된다.
그런 경우 그가 원하는 상태는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원치 않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견해가 문제된다.
그런 잘못된 견해는 엉뚱하고 잘못된 업을 행하게 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이처럼 잘못된 망상분별이 다양하다.
이런 경우 이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집착을 일으킨다.
그러면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가게 된다.
따라서 이런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견해는 올바른 이해로 제거할 수 있다.
다만 세상에서 살펴야 할 주제나 범위가 무한하다.
따라서 올바른 이해를 하려 할 경우 그 순서나 범위가 중요하다.
현실에서 고통의 제거가 가장 문제된다.
그래서 고통을 다 제거한다.
그 경우 나머지로 좋은 상태, 또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는 상태만 남는다.
그런데 이들은 있거나 없거나 삶에 큰 관계가 없다.
따라서 생사고통과 관계된 내용이 우선 중요하다.
생사고통과 관계없는 내용이 있다.
그런 내용은 당장 알거나 모르거나 큰 관계가 없다.
알아도 크게 삶에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래서 쓸데없고 실익이 없는 희론으로 그친다.
그래서 이런 논의를 일삼아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 생사고통의 제거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수행자는 이런 부분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먼저 생사고통과 그 발생원인부터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한편 수행의 목표 상태와 그 실현 방안에 대해서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즉 고통을 제거해 없어진 상태가 목표상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행방안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결국 4제법의 내용이 된다.
업을 행해 그 결과로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그런 업은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해 행하게 된다.
그래서 업을 중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망집 번뇌를 잘 제거해야 한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자신을 가장 집착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모든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래서 이 부분과 관련된 망집번뇌부터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현실에서 자신의 본 정체를 올바로 관한다.
그래서 신견을 잘 제거한다. [신견의 제거]
한편, 자신이 영원하다고 여긴다.
그러면 이를 실답다고 여긴다.
그리고 집착을 갖게 된다.
그래서 상견을 잘 제거해야 한다.
한편, 죽음 이후 모든 것이 끝이라고 여긴다.
그러면 또 잘못된 목표를 잘못된 방안으로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윤회과정에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게 된다.
따라서 단멸관을 잘 제거해야 한다. [변견(단견, 상견)의 제거]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한 주체가 고려해야 할 기간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과정에서 업과 관련한 인과를 이해해야 한다.
한번 행한 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무량겁에 걸쳐 그 과보를 받게 한다.
그래서 이런 업에 따른 인과 문제부터 잘 살펴야 한다. [사견의 제거]
또한 수행목표를 성취할 수행방안을 잘 이해해야 한다. [계금취견의 제거]
그 외 잘못된 견해가 수없이 많다.
이 가운데 삶에서 엉뚱한 업을 행하게 만드는 내용이 있다.
그런 경우부터 하나하나 잘 제거한다. [견취견의 제거]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 전반에 대해 올바로 이해한다.
연기법도 잘 이해한다.
그리고 현실의 정체와 관계 전반을 실상을 꿰뚫어 잘 이해한다.
이를 통해 앞에 나열한 5 견을 잘 제거한다.
그리고 근본 무명을 제거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되기 위해 3혜를 잘 닦아나가야 한다.
즉, 평소 올바른 가르침을 주의 깊게 듣고 읽는다. [문혜]
또 그 내용을 놓고 올바로 생각한다. [사혜]
그리고 그 내용을 현실에서 올바로 실천한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을 검토해나간다.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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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사유
정사유는 정지(正志) 정분별(正分別)라고도 한다. [정사유正思惟, samyak-saṃkalpa]
8정도에서 정견, 정사유 내용은 서로 혼동될 수 있다.
글자만 대하면, 정견은 눈을 통해 똑바로 정확히 보는 활동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리고 정사유는 올바로 생각하고 분별하는 활동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정견은 4제법을 통해 올바로 관함을 의미한다.
세상의 정체나 인과, 그리고 수행목표, 그 실현 방안에 관해 올바로 관한다.
정사유는 올바른 뜻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정견을 바탕으로 선악을 올바로 분별한다.
그리고 신구의 3업에서 의업을 깨끗이 한다.
즉 어리석음, 탐욕, 분노에 바탕해 의업을 일으키지 않는다.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하지 않는다.
그릇된 견해에 바탕해 의업을 일으키지 않는다.
현실의 정체에 대해 깊이 헤아린다.(사실판단)
가치와 선과 관련해 깊이 헤아린다. (가치판단)
인과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인연관因緣觀, 지혜智慧]
쓸데없는 희론을 일삼지 않는다.
탐욕의 더러움을 관한다.
쓸데없는 탐욕을 버린다.
탐욕에 바탕해 뜻을 갖지 않는다.
대신 선한 서원(誓願)을 갖는다. [불탐욕不貪欲, 부정관不淨觀, 무탐無貪, 서원誓願]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다. [불진에不瞋恚, 인욕忍辱, 무진無瞋, 자비慈悲]
보복하고 해치려는 뜻을 일으키지 않는다.
억울한 고통과 욕됨에 처해 평안히 참는다.
미움과 원망을 제거한다.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자비심을 일으킨다.
그래서 온 생명을 차별없고 제한없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고자 한다.
이런 뜻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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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어
정어는 바르게 말함을 의미한다. [정어正語, samyag-vāc]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불망어不妄語]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불양설不兩舌]
욕하거나 멸시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불악구不惡口]
실없고 잡된 말을 하지 않는다.[불기어不綺語]
생활에서 잘못된 말이 다른 이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된다.
잘못된 판단과 번뇌를 일으키게 한다.
잘못된 업을 행하게 한다.
다른 이가 생사고통을 겪게 한다.
그런 경우 자신도 그로 인해 고통을 되돌려 받게 된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필요한 경우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상대의 말부터 경청한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을 찾는다.
그런 가운데 올바르고 옳은 말을 한다.
그렇다고 관련된 일체를 다 나열해 장황하게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꼭 필요한 범위에서 간결하게 말한다.
그리고 상대가 이해하기 쉽도록 되도록 분명하고 명쾌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상대가 그 내용을 존중하며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더 나아가 그 내용을 상대가 오래 잃어버리지 않고 지닐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상대가 올바르고 옳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말을 하는 의미와 가치가 있다.
참된 말을 한다. [진실어眞實語]
서로를 화합시키는 말을 한다. [화합어和合語, 화쟁어和諍語]
부드럽고 순박하고 사랑스런 말을 한다. [유순어柔順語, 유연어柔軟語]
쓸모 있고 이치에 맞는 올바른 말을 한다. [질직어質直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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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업
정업은 올바른 업을 행함을 뜻한다. [정업正業, samyak-karmānta]
업에는 넓게 신ㆍ구ㆍ의 3업이 있다.
구업, 의업은 정어, 정사유 항목에 포함된다.
정업에서는 신업만 살핀다.
수행자는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것을 침해하지 않는다.
각 생명은 각기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가족 등에 집착한다.
자신의 좋음을 얻기 위해 이런 것을 함부로 침해한다.
그런 경우 서로 간에 가해 피해관계가 형성된다.
그리고 이후 보복을 서로 행한다.
그래서 가해 피해를 반복해 주고 받는다.
이로 인해 서로 간에 업의 장애가 쌓인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간다.
따라서 상대가 집착하는 바를 침해하지 않는다.
다른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불살생不殺生]
다른 이의 재산을 훔치지 않는다. [불투도不偸盜]
간음하지 않는다. [불사음不邪婬]
각 생명을 가장 좋은 상태로 이끈다.
다른 생명이 끝내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도록 이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고 망집을 제거하도록 이끈다.
이를 위해 자신부터 먼저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온다.
그리고 자신부터 깨달음을 얻고 망집을 제거한다.
그리고 되도록 좋은 선교방편을 통해 중생을 제도한다. [선교방편]
이를 위해 다른 생명이 복덕과 수명, 지혜를 갖추도록 이끈다.
또 이를 위해 자신부터 복덕과 수명 지혜를 구족한다.
죽음에 처한 생명을 살린다. [방생放生]
좋음을 아낌없이 필요한 이에게 베푼다. [보시布施]
고통과 공포를 덜어준다. [무외시]
올바른 길과 지혜를 베풀어준다. [법보시]
중생들이 집착하는 좋은 물건을 베푼다. [재보시]
바르고 깨끗한 행위를 한다. [청정범행淸淨梵行, 정행淨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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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
정명은 올바른 생활을 뜻한다. [정명正命, samyag-ājīva]
살아가려면 의식주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삶의 방편을 찾아 행한다.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릇된 생활 방도[사명邪命]를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에서 범죄가 되는 방식으로 생활하지 않는다.
다른 생명을 해치고 괴롭히는 일로 생활하지 않는다.
그릇된 생활은 업의 장애를 쌓게 한다.
그리고 생사에 묶이게 만든다.
따라서 청정한 방편을 통해 생활한다.
출가 수행자는 이 요구가 더욱 엄격하다.
옷 세 벌, 구걸해 식사를 해결할 그릇, 무덤가 숲속거처만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수행에 전념한다.
수행시에도 옷, 음식, 약, 가구 등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필요한 물품을 법답게 구한다.
출가수행자는 기망이나 사술, 점이나 주술 등으로 생활하지 않는다. [五邪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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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진
이는 올바른 노력을 뜻한다. [정정진正精進, 정직방편正直方便, samyag vyāyāma]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 경우 망집 번뇌를 제거한다.
또한 악업을 중단하고 선업을 닦아 나간다.
이는 4정근과 관련된다.
즉, 이미 일어난 악은 키우지 않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은 행하지 않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은 부지런히 행한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선은 더욱 키운다.
그래서 업장을 제거한다.
그리고 마음을 깨끗이 한다.
그런 가운데 깨달음[菩提]를 얻는다.
그래서 이런 수행노력을 해태와 방일함을 떠나 꾸준히 노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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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념
수행을 통해 올바른 선과 옳은 진리의 내용을 익힌다.
정념은 이처럼 익힌 내용을 잊지 않고 마음에 잘 머물게 함을 의미한다. [정념正念 samyak-smṛti]
정념은 실념(失念, muṣitasmṛtitā) 또는 망념(忘念)과 반대된다.
실년 망념은 내용을 잊어버림을 의미한다.
수행을 통해 경험하고 닦아 익힌 내용이 있다.
그런 경우 이를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다.
그리고 이를 잘 기억한다.
그리고 마음에 지닌다.
그리고 필요할 때 마음에 바로 떠올린다.
그리고 그 내용을 마음에 머물려 있게 한다.
그래야 필요한 내용을 올바르게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정념을 갖추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잘못을 같은 형태로 무한히 반복한다.
또한 수행을 해도 수행결과가 쌓이지 않는다.
그리고 진전이 없게 된다.
정념은 4념처 수행과도 관련된다.
4념처는 신ㆍ수ㆍ심ㆍ법(身受心法)의 부정ㆍ고ㆍ무상ㆍ무아 등을 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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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
정정은 하나의 내용에 마음을 집중함을 뜻한다.
그래서 마음이 바르고 안정된 상태에 이름을 의미한다. [정정正定 samyak-samādhi]
이를 통해 산란한 상태를 떠난다.
그리고 들뜨거나 가라앉은 상태를 떠난다.
이를 통해 번뇌와 악업을 제거한다.
또한 이에 의존해 올바른 보리의 깨달음을 얻어나간다.
8정도는 이와 같이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으로 되어 있다.
8정도는 크게 계ㆍ정ㆍ혜로 나눌 수 있다. [3학]
이들 계ㆍ정ㆍ혜는 다 함께 깨달음을 증득하는데 필요하다.
수행을 잘 성취하고자 한다.
이런 경우 먼저 계가 성취되어야 한다.
계가 성취되면 복덕자량을 갖추게 된다.
복덕자량이 갖춰져야 삼매를 잘 닦을 수 있다.
그리고 삼매를 닦아야 지혜를 잘 성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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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ㆍ정ㆍ혜 3학을 통한 번뇌의 근본제거
수행은 일반인의 세속적 생활과 크게 다르다.
생사현실에 근본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탐욕ㆍ분노ㆍ어리석음의 번뇌를 일으킨다.
그리고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러나 극심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간다. [망집번뇌(혹)-업-고]
이런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세속에서 추구하던 내용과 방식 일체를 버린다.
그리고 계ㆍ정ㆍ혜 3학을 닦는다.
이는 세속에서 취하는 방안과 정반대다.
일반적으로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래서 수행은 계의 실천에서부터 시작한다.
계를 통해 잘못된 업을 중단한다.
이를 자세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계율에는 일반 신도의 5계(戒), 8재계(齋戒), 10계(戒)가 있다.
출가 수행자인 경우 구족계(具足戒)로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가 나열된다.
한편 수행을 위해선 마음을 하나의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들뜬 마음상태를 벗어난다.
또 침울하게 가라앉은 마음 상태도 벗어난다.
이를 위해 삼매 수행을 행한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을 심일경성이라 표현한다.
욕계 상태로 이런 심일경성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러나 욕계상태는 망상분별로 상을 취하고 임한다.
불교에서는 이런 상태를 떠난다.
그리고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색계 4선 무색계 4선을 닦아 나간다.
그리고 지혜를 닦는 수행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번뇌를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이들 계ㆍ정ㆍ혜 3학을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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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인 계의 덕목의 성취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 경우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을 시작한다.
이런 경우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계율을 잘 닦아야 한다.
재가 신자가 닦는 계로 5계, 8관재계가 있다.
그리고 정식 출가수행자가 행하는 사미 사미니 10계(戒)가 있다.
비구 비구니의 구족계(250, 348 具足戒)가 있다.
한편, 보살수행자가 준수하는 보살계가 있다.
8정도 가운데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항목이 모두 계의 덕목에 해당한다.
계의 덕목은 업장을 제거한다.
그리고 복덕 자량을 쌓게 한다.
6바라밀다 가운데 보시, 정계, 안인 덕목이 모두 복덕자량을 쌓게 한다.
또한 정진바라밀도 계율과 4무량심을 닦는 경우 복덕자량을 쌓게 한다.
또한 정려바라밀도 4무량심을 닦으면 복덕자량을 쌓게 한다.
한편 정진과 정려는 또 한편 지혜자량을 쌓게 한다. (『유가사지론』 제3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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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성적인 계와 차계
5계 가운데 처음 4항목은 살생(殺生)ㆍ투도(偸盜)ㆍ사음(邪婬)ㆍ망어(妄語)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 행위는 다른 생명이 집착하는 것을 침해한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죄악의 성격을 갖는다.
이런 업은 각 주체 간에 가해피해 관계를 만든다.
따라서 업장을 쌓게 한다.
그리고 고통의 과보를 받게 만든다.
따라서 수행시 기본적으로 금한다. [성계性戒]
그러나 음주(飮酒)는 이와 성격이 다르다.
그 본질이 악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수행에 장애를 초래한다.
따라서 부처님이 수행을 위해 금한 항목이다. [차계遮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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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선법과 계와 율의 관계
5계나 8재계 앞 4항목은 10선법과 유사하다.
따라서 계와 10선법의 성격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0선법은 망집을 전제로 당면한 생사고통을 벗어남에 취지가 있다.
그래서 인간에서 하늘에 태어나는 것이 주된 목표다.
그러나 계는 생사 묶임에서 벗어남을 목표로 한다.
즉, 해탈 열반을 목표로 한다. [계戒 śila]
이런 점에서 계율과 10선법은 취지를 달리한다.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면 근본적으로 망집을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계는 이런 취지의 수행에 요구되는 규범이다.
그러나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기본적으로 생사고통을 받는 3악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수행자는 10선법을 당연히 기본으로 닦고 성취한 상태여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생사 묶임에 벗어나기 위한 수행을 해나간다.
그래서 수행에는 결국 이들 내용이 함께 포함된다. (10선법 => 8정도의 정사유ㆍ정어ㆍ정업, 4정근)
그래서 10선법 내용은 수행자가 닦아야 할 규범에 넓게 포함된다.
그래서 계는 크게 섭선법계ㆍ섭율의계ㆍ섭중생계(요익중생계)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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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와 율의 구분
계와 율의 성격구분이 필요하다.
수행자는 출가해 집단을 이뤄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이런 경우 각 수행자는 다른 수행자의 수행에 장애를 일으키지 않아야한다.
그리고 단체 생활에서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 단체 수행에 필요한 규칙이 추가된다. [율律 vinaya]
이는 단체 수행의 구체적 상황에 맞추어 수행을 증진시키는 방편 성격을 갖는다.
결국 율은 단체 수행에서 각 수행자가 함께 지켜야 할 규칙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이는 부처님이 수범수제(隨犯隨制) 방식에 의해 제정한다.
즉, 문제가 구체적으로 발생할 경우에 하나하나 제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단은 이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그리고 수단은 그 목적으로부터 가치를 부여 받는다.
발생관계는 수단이 성취되어 목적이 달성되는 관계다.
그러나 가치의 경우는 목적이 갖는 가치를 통해 그 수단이 가치를 갖게 되는 관계다.
그래서 수행의 핵심목표에 따라 계율 내용도 조금씩 변동이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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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에서의 계율
수행목표가 자신의 생사 해탈인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계의 수행덕목을 닦아 업의 장애를 제거한다.
그런 바탕에서 지혜자량을 닦는다.
그리고 망상분별을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에서 벗어난다.
한편, 수행목표가 중생의 제도인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수행자는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한다.
그래서 제도하려는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임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스스로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한다.
그래서 이 경우 역시 생사현실에서 계를 잘 성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을 쌓는다.
이를 통해 지혜자량을 닦을 바탕을 마련한다.
그리고 지혜자량을 닦는다.
그래서 중생을 제도할 방편을 구족한다.
다만. 이 경우 제도하려는 중생의 상태가 제각각 다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구체적 계율 내용이 변동이 있게 된다.
이는 어떤 방편이 목표의 성취에 가장 적절한가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개인 생사해탈이 목표일 수 있다.
그런 경우 그 목표에 맞춰 계율이 제시된다.
술도 엄격히 금한다.
또 수행에 방해되는 오락행위나, 이성과의 접촉도 금한다.
이런 식이다.
한편 수행자들이 출가해 단체를 이뤄 수행한다.
그런 경우 각 수행자는 다른 수행자의 수행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의 수행에 장애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수행 단체가 전체 사회로부터 비난받고 배척당하는 행위도 곤란하다.
그래서 전체 수행자가 함께 수행을 잘 성취할 방안이 필요하다.
이런 취지에서 규칙이 제정된다.
한편, 다른 중생의 제도가 수행목표인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위 원칙을 고수한다고 하자.
그러면 오히려 중생제도가 더 힘들 수 있다.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자는 일단 중생과 눈높이를 같이해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중생과 접촉을 자주 해야 한다.
그런 특성 때문에 보살계의 구체적 내용은 조금 달리 제시되게 된다.
이는 병원 상황과 같다.
병원에는 당장 병을 나아 퇴원이 목표인 환자도 있다.
그런데 장차 의사가 되어 환자를 치료하려는 입장도 있다.
또 현재 의사가 되어 환자를 치료하는 입장도 있다.
이런 각 경우 규칙이 조금씩 달라진다.
환자 입장이라고 하자.
이 경우 일단 그 환자 자신이 병을 나아 퇴원하는 것이 가장 주된 목표다.
그래서 이를 위해 지켜야 할 규범이 있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이가 자신의 병을 치유하려 한다.
그런데 동시에 장차 의사가 되어 다른 환자치료도 하려 한다.
이 경우 자신부터 병을 잘 치유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편 의사가 되고 환자를 치료하는 방안도 익혀야 한다.
한편 현재 의사가 되어 환자를 치료하는 입장이 있다.
이 경우 의사부터 병에 걸리면 곤란하다.
그런데 환자가 병을 낫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 내용이 있다.
이는 의사도 당연히 함께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 입장과는 다르다.
즉, 오로지 자신의 병을 치료해 퇴원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그래서 의사의 규범은 환자 치료를 위해 내용이 달라진다.
결국 각 계율은 수행의 최종목표와 관련되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어떤 방안이 수행목표를 잘 성취하게 하는가에 의존한다.
이는 비유하면 전등을 켜고자 하는 상황과 같다.
그래서 이를 위해 스위치가 어디 있는가를 잘 찾아야 한다.
이런 경우 극단적으로 방바닥과 천정 쪽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극단을 떠난 나머지 모든 부분이 다 스위치는 아니다.
그래서 스위치가 있는 곳을 그 때 그 때 잘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결국 반야지혜로 매 경우 실상을 꿰뚫어 각 경우를 잘 분별해야 한다.
계율도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수행목표를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목표를 잘 성취할 방안이 무엇인가를 그 때 그 때 잘 찾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매 경우 주어진 조문을 기계적으로 해석해 임하기 쉽다.
여하튼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계를 가장 기본적으로 잘 성취해야 한다.
수행자가 개인적으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 경우 먼저 업장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후 복덕을 구족해야 한다.
그런 바탕이 되어야 지혜를 잘 닦아나갈 수 있다.
그런데 계를 닦아야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복덕자량을 구족할 수 있다.
그래서 계의 성취가 필요하다.
그런데 수행자가 다시 다른 중생을 제도하려 한다.
그런 경우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리고 중생을 제도하려면 수행자 자신부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런데 계를 닦아야 복덕자량을 구족할 수 있다.
그리고 복덕자량이 구족되어야 이후 정려나 지혜의 덕목을 원만히 닦아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되어야, 불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제도해갈 수 있다.
그리고 수행목표를 원만히 잘 성취할 수 있다.
이런 사정으로 계는 어느 경우나 가장 기본적 필수 수행덕목이 된다.
여기서는 재가신자의 5계, 8 재계, 사미 10계, 보살 10중계의 항목만 간단히 살피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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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계
재가신자는 먼저 불ㆍ법ㆍ승 3 보에 귀의하고 5계를 준수한다. [오계五戒, pañca-śīla]
1. 생명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는다. [불살생계不殺生戒].
2. 타인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불투도계不偸盜戒]
3. 남녀 간에 성도덕을 문란하게 하는 간음을 하지 않는다. [불사음계不邪婬戒]
4.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불망어계不妄語戒]
5. 술을 마시지 않는다. [불음주계不飮酒戒]
이는 재가의 불교 신자가 준수하는 5종의 항목이다.
재가의 남자 신자 여자 신자는 우바새(優婆塞 upāsaka) 우바이(優婆夷 upāsikā)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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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관재계
재가자가 8일ㆍ14일ㆍ15일ㆍ23일ㆍ29일ㆍ30일 6재일에 각기 하루 동안 받아 지키는 계율이다.
이는 재가자가 하루 동안 출가승단의 생활을 본받아 익히는 수행이다.
재가신도가 승가에 가까이 머물러, 출가 선근 공덕을 익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8관재계는 5계 항목에 다음 3 항목이 추가된다. [팔관재계八關齋戒 aṣṭāṅga-samanvāgatopavāsa ]
6. 꽃다발 쓰거나 향 바르고 장식물로 꾸미지 않는다.
노래하고 풍류를 즐기지 않으며 구경하지 않는다.
[블이화만 장식자신不以華鬘 裝飾自身, 불가무 관청不歌舞 觀聽]
7. 높고 넓고 잘 꾸민 평상에 앉지 않는다. [부좌와 고광화려상좌不坐臥 高廣華麗床座.]
8. 때 아닌 때에 먹지 않는다. [불 비시식 不非時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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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미 사미니 10계
출가한 사미 사미니가 준수할 10항목의 기본 계율이다.
재가신자 5계 항목에 다음이 추가된다.
6. 향수나 꽃다발로 바르거나 치장하지 않는다. [불도식향만계不塗飾香鬘戒].
7. 노래와 춤을 듣지 않고 보지 않는다. [불가무 관청계不歌舞觀聽戒].
8. 사치스럽고 화려한 자리에 앉지 않고 눕지 않는다. [부좌 고광대상계不坐高廣大牀戒]
9. 때 아닌 식사를 하지 않는다. [불 비시식계不非時食戒].
10. 금이나 은 등의 보물을 받지 않고 비축하지 않는다. [불축 금은보계不蓄金銀寶戒].
이는 실질적으로 재가산자 8 재계 항목에 10번째 항목이 추가된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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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승보살의 10중계(十重戒)
1. 불살계(不殺戒).
2. 불도계(不盜戒).
3. 불음계(不婬戒).
4. 불망어계(不妄語戒).
5. 술을 사거나 팔지 않는다. [불고주계不酤酒戒].
6. 재가, 출가의 보살 및 비구,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하지 않는다. [불설과죄계不說過罪戒]
7. 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하지 않는다. [불자찬훼타계不自讚毁他戒].
8.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는다. [불간계不慳戒].
9. 화내지 않고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인다. [부진계不瞋戒].
10. 불ㆍ법ㆍ승 3보를 비방하지 않는다. [불방삼보계不謗三寶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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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定: 삼매)
정(定)은 삼매, 삼마제, 삼마지라고도 한다.
정(定)은 일정한 대상에 대해 마음을 집중한다.
그리고 자세하고 바르게 관찰함을 말한다. [심일경성心一境性, 심정관찰審正觀察]
이런 삼매 수행은 수행항목 전반에 걸쳐 중요하다.
이는 수행 예비단계인 5정심내 부정관, 자비관, 수식관과도 관련된다.
한편, 본 수행의 다음 항목과도 관련된다.
예를 들어 4념처ㆍ5근의 정근ㆍ5력의 정력ㆍ7각지의 정각지ㆍ8정도의 정정ㆍ9차제정ㆍ3삼매 등이다.
그리고 6바라밀다의 정려바라밀다 등도 삼매 수행과 관련된다.
삼매의 기본은 마음을 하나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함에 있다.
수행자가 집중된 상태로 임한다.
그런 경우 먼저 다음 번뇌를 제거한다.
우선 탐욕과 분노의 상태는 집중에 좋지 않다.
따라서 탐욕은 부정관에 의해 제거한다.
또 분노는 자비관으로 제거한다.
그리고 인자함, 자애로움, 어짊, 착함 등을 관한다.
이를 통해 분노를 제거한다.
또 마음이 침울하게 가라앉은 상태는 집중에 좋지 않다. [혼침惛沈, styāna]
또 잠에 빠지는 것도 집중에 좋지 않다. [수면睡眠, Middha]
이런 혼침과 수면은 광명상을 마음에 그려 제거한다.
또 공연히 들떠 산란한 상태도 집중에 좋지 않다. [도거掉擧, auddhatya]
또 후회하는 마음 상태도 집중에 좋지 않다. [악작惡作, kaukṛtya]
이런 도거 악작은 사마타 수행을 통해 제거한다.
즉, 망념(妄念)을 쉰다.
그리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 머문다.
이런 노력으로 도거 악작 상태를 제거한다.
한편 스승과 가르침 등에 대해 의혹을 일으키고 망설이기 쉽다.
이런 상태도 집중에 바람직하지 않다. [의疑, saṃdeha]
이는 연기(緣起)관에 의해 제거한다.
즉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는 노력으로 제거한다.
(『유가사지론』 제11권 삼마희다지三摩呬多地 )
한편 집중을 잘 이룬다.
그러면 반대로 이들 번뇌가 제거될 수 있다.
불쾌하고 분노를 느낀다.
그러면 일정 대상에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수고 해치는 행위로 나아간다.
그래서 삼매와는 반대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분노 상태에는 삼매에 들기 곤란하다.
그러나 반대로 삼매에 든다.
그리고 집중하는 상태가 된다.
그런 경우 그런 상태에서는 분노는 없는 것이 된다.
삼매에 들기 위해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한다.
그런 가운데 하나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한다.
집중을 이루는 방안은 다양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숨을 세는 수식관이 비교적 바람직하다.
이 방법의 장점은 다음을 생각할 수 있다.
호흡을 센다.
이는 의식을 갖는 한 어떤 상태에서도 행할 수 있다.
한편, 이는 몸과 뜻을 함께 하나로 만드는 훈련도 된다.
몸 부분에는 뜻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예: 손과 발의 동작]
또 반대로 뜻을 기울여도 뜻대로 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예: 내장 기관]
그런데 호흡은 이 중간 영역이다.
숨은 평상시 자신이 뜻을 기울이지 않아도 쉬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뜻을 이에 기울인다.
그러면 그 뜻에 따라 숨을 들이 쉬고 내 쉬게 된다.
따라서 이런 중간 영역에서 수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자신의 뜻과 몸을 하나로 할 수 있다.
처음 자신의 들숨 날숨을 센다.
그런 가운데 이에 마음을 집중한다. [수식관數息觀, 지식념]
그리고 호흡이 오가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집중한다.
마음을 들숨과 날숨에 집중한다.
그리고 열까지 세는 동안 오직 숨만 생각한다. [수식數息]
그리고 숨을 따라 생각을 머문다. [수식隨息]
예를 들어 숨이 들고 날 때 그것이 어느 정도 멀리 이르는지를 생각한다.
열까지 헤아리는 동안 마음이 산란해질 수 있다.
그런 경우 다시 하나에서 열까지 차례로 헤아린다.
숨을 세는 동안 숨만 생각한다.
그런 가운데 다른 잡념이 일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하자.
그러면 마침내 삼매 상태를 획득한 것이 된다. (『아비달마구사론』 제 22 권 6. 분별현성품分別賢聖品)
처음 초점을 맞춘 내용에 집중을 이룬다.
그런 경우 이를 통해 반사적으로 다른 내용들은 의식에서 사라진다.
따라서 이를 통해 마음에서 망집 번뇌 등이 우선 제거된다. [사마타, 지]
그래서 삼매를 통해 기본적으로 분노와 도거 등의 번뇌를 제거할 수 있다.
한편,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악업으로부터도 떠나게 된다. [정려율의]
또 이런 수행을 통해 몸가짐 등이 저절로 율의에 들어맞게 된다.
그래서 계체(戒體)를 얻게 된다. [정려율의靜慮律儀 정공계定共戒]
한편, 이처럼 집중된 상태라고 하자.
그러면 마음의 산란함이 방지된다.
그러나 단지 집중한 상태로만 계속 머문다.
그런 경우 그로 인해 멍한 상태가 되기 쉽다.
그래서 오히려 졸음을 일으킨다.
그리고 수면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처음 집중된 이후 자신이 관찰하려는 주제 내용을 선택한다.
이는 관념 영역에서 그려내는 관념[想]에 해당한다.
그리고 집중된 상태에서 마음에 이런 상[想]을 떠올린다.
그리고 기존의 생각과 바꿔 대치해 넣는다. [관상觀想]
예를 들어 4념처 가운데 처음 몸을 관한다.
그런 경우 몸 가운데 발뼈에 처음 초점을 맞춘다.
이 경우 눈을 통해 보이는 감각현실이 있다.
그리고 이를 대해 일정부분에 상(相)을 취한다.
그런 가운데 일으키는 관념분별이 있다.
그런 상태에서 마음으로 광명을 떠올려 그려낸다.
이는 제6의식 관념 영역에서 떠올리는 별도의 관념내용[想]이다.
이런 광명은 감각현실에 바탕해 상(相)을 취하여 일으킨 관념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이런 관념[想]을 관한다. [관상]
이 상태에서 관상을 통해 일으킨 관념[想]으로 대치해 넣는다.
그래서 기존에 일으킨 관념은 제거한다.
즉 감각현실 일정부분에 상을 취해 일으킨 관념은 제거한다.
이를 통해 처음 욕계 망집 상태에서 기본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색계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후 몸과 느낌, 마음, 법 각 내용을 관해 나간다. [4념처의 경우]
이처럼 집중된 상태로 임한다.
그리고 이후 이에 대해 관련 내용을 세밀하게 두루두루 살펴 나간다.
예를 들어 그 모습과 성품, 전체와 부분의 관계, 힘과 작용, 원인과 조건, 결과, 과보, 본말 등이다.
그런 가운데 현실의 정체를 실상을 꿰뚫어 올바로 파악한다. [사유수思惟修, 심정관찰審正觀察, 정사正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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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매의 공덕
마음의 집중은 햇빛을 초점에 모으는 것과 같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은다.
그러면 종이도 태울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한 초점에 집중해 모은다.
그러면 산란한 상태와 달리 다양한 공덕을 '끌어낸다'. [samāhita, 삼마희다三摩呬多, 등인等引]
예를 들어 사려 분별도 명확하고 빠르게 행하게 된다.
그리고 6신통의 공덕도 끌어내게 된다.
그리고 4무량심을 주제로 삼매를 닦는다.
그러면 복덕자량을 얻게 된다.
그리고 지혜자량도 얻게 한다.
(『유가사지론』 36권)
삼매를 닦는다.
그러면 지혜가 청정해진다.
그리고 적정하게 안정되고 수승한 상태에 '이른다'. [samāpatti, 삼마발제三摩鉢提, 삼마발저三摩鉢底, 등지等至]
그리고 의식 상태는 욕계에서 색계와 무색계상태로 옮겨가게 된다.
그런 결과 욕계의 고통에서도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 집중을 반복해간다.
그러면 점차 집중된 범위 밖 내용은 사라진다.
이를 통해 여러 번뇌를 끊는다. [피분열반(彼分涅槃)]
예를 들어 삼매를 통해 처음 탐욕ㆍ분노ㆍ혼침(惛沈)ㆍ도거(掉擧) 등을 벗어난다.
그리고 이후 말ㆍ색상(色想)ㆍ심(尋-거친 생각)ㆍ사(伺-세밀한 생각)ㆍ기쁨ㆍ즐거움 등의 번뇌도 끊는다.
그래서 이처럼 번뇌를 끊는다.
그리고 번뇌를 일으키는 재료나 망식의 작용도 끊는다.
그러면 점차 번뇌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렇지만 이는 결정적(決定的)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삼매를 닦다가 푼다.
그러면 다시 본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이는 궁극적 구경열반(究竟涅槃)은 아니다. [차별열반(差別涅槃)] <유가사지론 제52권>
그러나 삼매를 바탕으로 지혜 보리 자량을 얻는다.
따라서 삼매 수행을 바탕으로 이후 반야 지혜를 원만히 닦아 나간다.
그런 가운데 근본 무명을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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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매 수행의 내용
삼매 과정에서 관찰할 주제는 다양하다.
예를 들어 신ㆍ수ㆍ심ㆍ법과 부정ㆍ고ㆍ무상ㆍ무아의 내용도 있다. [4념처]
한편 탐욕을 제거하기 위해 사체가 부패하는 모습을 관할 수도 있다. [9상, 부정관]
또한 다음의 8해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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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해탈
8해탈은 내관(內觀)에 의한 선정 방안이다.
이를 통해 5욕(欲)을 일으키는 경계를 멀리한다.
그리고 탐욕과 집착을 버린다. [8배사背捨]
이를 통해 3계의 번뇌를 끊는다.
따라서 이를 8해탈이라고 칭한다. [8해탈八解脫]
먼저 안으로 색욕(色欲)을 탐하는 생각이 있다.
이런 경우 사체의 퍼렇게 어혈든[靑瘀] 모습 등을 관한다.
이처럼 밖의 부정한 모습을 관한다.
그래서 탐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를 <내유색상 관외색해탈>(內有色想觀外色解脫)이라 한다.
한편 안으로 색욕을 탐내는 생각은 이미 없어졌다.
그런 상태에서 이 상태를 더욱 굳게 한다.
그래서 사체의 퍼렇게 어혈든 모습 등을 계속 관한다.
그래서 탐심을 다시 일으키지 않는다.
이를 <내무색상 관외색해탈>(內無色想觀外色解脫)이라 한다.
한편, 깨끗한 색을 관하여 탐심을 일으키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이를 정해탈(淨解脫)이라고 한다.
이 정해탈을 몸으로 완전하고 원만하게 증득한다.
이를 통해 정(定)에 든다.
이를 <정해탈 신작증 구족주>(淨解脫身作證具足住)라고 한다.
이외 8해탈에는 다음 내용이 추가된다.
<공무변처 해탈>(空無邊處解脫).
<식무변처 해탈>(識無邊處解脫).
<무소유처 해탈>(無所有處解脫).
<비상비비상처 해탈>(非想非非想處解脫).
<멸수상정 해탈 신작증구족주>(滅受想定解脫身作證具足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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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승처
한편 삼매에는 다음의 8승처도 있다.
<내유색상 관외색소>(內有色想觀外色少)
<내유색상 관외색다>(內有色想觀外色多)
<내무색상 관외색소>(內無色想觀外色少)
<내무색상 관외색다>(內無色想觀外色多)
<내무색상 관외청>(內無色想觀外靑)
<내무색상 관외황>(內無色想觀外黃)
<내무색상 관외적>(內無色想觀外赤)
<내무색상 관외백>(內無色想觀外白)
이는 8해탈을 닦은 후, 명상에 숙달한 상태에서 행한다.
이는 자유자재로 부정(不淨)과 정(淨)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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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변처
또 다음의 10변처도 있다.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
공무변처(空無邊處)ㆍ식무변처(識無邊處)다.
이는 10가지 관법(觀法)이다.
즉, 6대(大)와 4가지 색[(顯色] 하나하나가 일체처(一切處)에 가득한 것으로 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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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삼매
한편 공, 무상, 무원무작의 3삼매도 있다. [3삼매三三昧, trayaḥ samādhaya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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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삼매
생사현실의 본바탕을 실재 또는 실상이라고 칭한다.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그 본바탕 실재는 사실은 공하다. [공空]
그래서 실재 영역에서는 그런 생사고통을 본래 얻지 못한다.
그리고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뼈대에 해당하는 실체가 없다. [무아無我]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로 인해 생사현실을 실답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 집착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따라서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일으키는 번뇌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경우 현실의 본바탕 실재의 정체를 관한다.
그리고 현실을 실재와 잘 대비해 살핀다.
그래서 실재가 공함을 잘 관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을 실재의 관계를 잘 이해한다.
그리고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가 없음도 잘 관한다.
이를 통해 생사현실은 마치 꿈과 같음을 이해한다.
즉 현실은 침대에서 꾸는 바다 꿈과 성격이 같다.
이를 통해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래서 집착을 제거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취지로 먼저 실재가 공함을 관한다. [공삼매空三昧, śūnyatā-samādhi]
이 삼매는 4제법 가운데 고제의 공(空) ㆍ무아(無我) 2행상에 상응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번뇌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를 공해탈문이라고 칭한다. [空解脫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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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삼매
한편 현실에서 취하는 일체 형상이 잘못임을 관한다. [무상삼매無相三昧 animitta-samādhi]
이 사정을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자.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뜬다.
그러면 그는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상태에서 그에게 바위가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관념[想]을 바탕으로 그런 부분을 찾는다.
그리고 일정부분을 바위로 여긴다.
그래서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즉 그는 그런 부분을 바위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 바위 상(相)을 취한다.
처음 그가 얻게 된 전체 감각현실 내용이 있다.
이 경우 관념영역에서 그런 전체를 대하며 일부분을 마치 가위로 오려내 듯 취한다.
즉 그는 각 부분을 묶고 나눈다.
그런 가운데 일정 부분에 '바위'상(相)을 취한다.
그리고 그처럼 오려 취한 부분을 곧 그런 바위의 모습[상相]으로 여긴다.
현실에서 각 관념마다 이처럼 상(相)을 취해 임한다.
그런데 그렇게 취하는 각 부분은 실질적으로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는 그가 생각하는 그런 관념[想]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념[想]이 '아니다'.
또 반대로 그런 관념[想 saṁjñā]에는 그런 감각현실[상相 lakṣaṇa]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대해 그런 관념[想]을 '일으킨 것' 뿐이다.
현실에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상相]과 생각[想]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가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상相]을 대한다.
그리고 일정한 생각[想]을 '일으킨다'
그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想]을 그런 부분[상相]을 떠나 일으킨 것은 아니다.
즉, 그는 그런 관념을 다른 부분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일으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바위 부분을 대해 바위라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일으킨다.
그러나 물을 대할 경우에는 바위라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잘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부분[상相]과 생각[想]은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상相]을 대하여 일정한 생각[想]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그런 생각[想]을 바탕으로 일정한 부분[상相]을 그런 내용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이후 그런 생각[想]은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부분[상相]을 취해 '가리키게' 한다.
그래서 이들은 현실에서 상호간에 다음의 관계를 갖는다.
감각현실 => ( 일으킴 ) => 관념[想]
관념[想] => ( 가리킴 ) => 감각현실
현실에서 그처럼 일정 부분을 오려내듯 상[相]을 취한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취한 그 부분[상相]은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그 부분을 대해 일으키는 생각[想]은 관념이다.
그런데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또 관념도 감각현실이 아니다.
따라서 그처럼 취한 부분[상相]에는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想]이 본래 없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대해 일정한 관념[想 saṁjñā]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ㆍ생명ㆍ수명. 남ㆍ녀, 생ㆍ주ㆍ멸 등등 온갖 생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생각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그에 대한 상을 찾아 취한다.
예를 들어 마음에서 연필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방에서 연필을 찾아 댄다.
이와 같다.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 a가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a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이 'a의 상'[상相]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그런 a가 들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곧 그런 a라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갖는 부분'[상相]은 본래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잘 관한다. [무상삼매無相三昧]
현실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내용[상相]이 있다고 여긴다.
이는 잘못된 망상 분별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러면 이에 바탕해 그런 관념이나 분별내용을 실답다고 여긴다.
즉 그런 관념분별[想]은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그처럼 실답게 내용으로 갖고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관념분별[想 saṁjñā]은 현실에서 그러그러한 일정 부분[상相]'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런 관념분별을 실다운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에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 묶인다.
따라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
한편, 현실에서 각 개인은 자신과 자신의 목숨, 생명에 가장 집착한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집착은 이에 바탕해 일으킨다.
따라서 수행자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을 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실에서 '그런 생각에 해당하는' [상相]을 본래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무상삼매無相三昧]
그래서 올바른 깨달음을 갖는다.
그러면 생사현실은 본래 자신이 생각하는 생멸을 떠난 상태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은 본래 생사고통을 떠난 상태임도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이 삼매는 4제법 가운데 멸제(滅諦)의 멸ㆍ정ㆍ묘ㆍ리(滅靜妙離) 4행상에 상응한다.
한편 현실에서 그런 망상을 바탕으로 상(相 lakṣaṇa)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를 통해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집착을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망집 번뇌의 묶임에서 해탈을 얻는 방안이다.
따라서 이를 무상해탈문이라고 칭한다. [無相解脫門]
* 이런 망상분별의 문제가 관련되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비슷한 내용을 관련부분에서 반복해 살피게 된다.
[참고 ▣- 감각현실과 관념을 재료로 망상분별을 일으킴]
[참고 ▣-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
[참고 ▣- 무상삼매 ]
[참고 ▣- 관념이 실답지 않은 사정 - 환자와 가족의 비유를 통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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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원삼매
현실에서 망집을 바탕으로 임한다.
그리고 온갖 쓸데없는 희망과 소원을 일으켜 추구한다.
그런데 그런 소원에 해당하는 내용은 본래 현실에서 얻을 수 없다.
모든 법의 본 정체를 올바로 관한다.
그러면 그런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관한다. [무원삼매無願三昧 apraṇihita-samādhi)]
그리고 이를 통해 망집에 바탕한 일체 소원을 다 제거한다.
그러면 그런 소원에 바탕해 행하던 행위도 함께 제거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무원무작삼매(無願無作三昧)라고도 칭한다.
현실에서 일으키는 소원은 대부분 망집에 바탕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좋은 보석을 갖기를 원한다.
이 경우 그런 소원은 관념영역에서 일으킨다.
즉, 관념영역에서 평소 좋다고 여기는 내용을 이리저리 조합한다.
그래서 그런 소원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러그러한 내용이 있다면 좋을 텐데...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것이 현실에서 각 주체가 갖는 소원이 된다.
그리고 그 소원을 추구하며 업을 행해나간다.
그런데 이런 관념은 그가 대하는 감각현실에서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감각현실 일정부분을 대하면 반복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그런 경우 그런 관념내용으로 그런 일정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다음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즉,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관념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더 나아가 그런 부분이 곧 그런 관념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러나 본래 그런 감각현실은 그런 관념이 아니다.
또한 관념도 그런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망집에 바탕한 경우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두 내용을 서로 결합시켜 접착시켜 대한다.
그런 가운데 관념으로 일정한 소원을 갖는다.
이런 경우 이런 소원에는 공통적으로 다음 내용이 담긴다.
우선 일정한 관념으로 희망을 만들어 갖는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보석을 갖기를 원한다.
그 상태에서 그가 생각하는 보석은 관념이다.
이런 내용은 물론 이미 그의 관념영역에 있다.
그런 가운데 단순히 그 관념을 다시 한 번 똑같이 일으킨다.
그렇다고 소원이 성취되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소원이 성취된 것으로 여기는 상태는 다음이다.
현실에서 각 주체는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
그래서 관념에 해당하는 상[相]을 감각현실에서 취한다.
그런 경우 소원에 해당하는 상[相]도 감각현실에 따로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대하는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실이 그런 상태가 된다.
그러면 이를 소원이 성취된 것으로 여긴다.
현실에서 이처럼 일정한 관념으로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가 현실에서 보석으로 여기는 부분이 따로 있다.
그래서 손으로 가리키게 되는 감각현실 부분[상相]이 따로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런 부분[상相]을 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즉, 그는 그런 소원에 해당하는 감각현실 상태를 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보석을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에게 보석이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
그런 경우 그는 일정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
이는 그가 그런 부분에 그런 보석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그런 부분이 그런 보석'이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런 보석으로 여기고 가리킬 그런 감각현실 내용을 원한다.
따라서 이처럼 망상분별에 바탕해 소원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에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추구한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한다.
그래서 감각현실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추구한다.
즉 그런 관념을 일으켜 얻을 감각현실을 찾아 구한다.
그런 결과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상태가 된다.
그런 경우 그는 감각현실에서 그런 일정 부분[상相]을 취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대해 다시 일정한 관념[想]을 일으킨다.
그래서 처음 가진 희망(관념)과 일치하는 관념을 얻는다.
이런 경우 자신의 원래 희망이 성취된 것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업을 행해 일정한 상태가 변화된다.
그래서 그 일정 부분을 대해 보석이란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그 내용이 처음 소원내용과 일치함을 의식한다.
그런 경우 소원이 뜻대로 성취되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추구한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러면 이로써 괴로움을 겪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관념이 모두 관련된다.
그리고 문제된다.
그래서 관념은 현실의 고통의 문제와 기본적으로 관련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잘못된 망상분별에 바탕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 각 부분[상相]과 관념[想]의 관계가 문제다.
이 각 경우 이들 분별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이를 이미 앞 무상삼매에서 살폈다.
[참고 ▣- 무상삼매 ]
본래 그런 감각현실은 그런 관념이 아니다.
또한 관념도 그런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망상분별에 소원을 일으켜 갖는다.
그런 경우 그 소원 일체는 잘못된 망상분별에 바탕한다.
그래서 현실일체에 본래 그런 소원에 해당하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소원을 제거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런 소원을 집착한다.
그리고 이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에 묶인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받아간다.
따라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망집에 바탕해 일으킨 이들 소원일체를 제거해야 한다. [무원삼매無願三昧]
그리고 이를 통해 업을 중단한다. [무원무작해탈삼매]
그래야 생사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해탈을 얻는다.
따라서 무원무작삼매는 4제법 가운데 고제의 고(苦)ㆍ무상(無常)의 2 행상에 상응한다.
또 집제의 인ㆍ집ㆍ생ㆍ연(因集生緣) 4행상에 상응한다.
즉 현실 일체에서 소원에 해당한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런 사정으로 망집에 바탕해 대하는 현실 일체는 고(苦)ㆍ무상(無常) 상태다.
그런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이를 잘 깨닫고 관한다.
그러면 이로 인해 망집 번뇌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생사 묶임에서 해탈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무원무작 해탈문이라고도 칭한다. [無願無作解脫門]
3삼매와 3해탈문은 이처럼 서로 관련된다.
여기에서 번뇌를 낳는[유루有漏] 정(定) 상태는 3삼매라 칭한다. [3삼매 trayaḥ samādhayaḥ]
번뇌를 제거해 낳지 않은[무루無漏] 정(定)은 3해탈문이라고 구분한다. [3해탈문 tṛīṇi vimokṣa-mukhāni] (『대승의장』 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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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무량심
삼매의 주제는 4무량심 내용도 있다. [사무량심四無量心 catvāri-apramāṇacittāni]
이는 자ㆍ비ㆍ희ㆍ사의 무량심을 뜻한다. [자慈 maitrī ㆍ비悲 karuṇāㆍ희喜 muditāㆍ사捨 upekṣā]
생명들에게 널리 올바른 선과 지혜, 즐거움과 이익을 베푼다.
반대로 악과 어리석음, 고통과 손해를 덜어준다.
그리고 악하고 어리석고 고통 받는 상태를 안타까워하며 따라 슬퍼한다.
그리고 이를 구제하려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선한 일과 수행의 공덕을 따라 기뻐한다.
한편 생명을 널리 원(怨)ㆍ친(親)의 구별을 두지 않고 평등하게 대한다.
그리고 가치 없는 일에 대해서도 평등하게 집착을 버린다.
이런 4무량심을 주제로 삼매를 닦는다.
그러면 이는 복덕자량을 쌓는 행이 된다.
특히 중생제도를 위해 수행하는 경우라고 하자.
이런 경우 이는 중요한 삼매 주제가 된다.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자가 색계 4선과 무색계 4선을 증득한다.
그러면 색계 무색계에 태어난다.
그런 경우 중생제도가 힘들게 된다.
색계 무색계는 수명이 장구하다.
그리고 당장은 생사고통의 문제가 멀다.
따라서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자는 방편상 이런 상태를 증득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중생제도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며 삼매를 닦아야 한다.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자가 색계 4선과 무색계 4선을 닦는다.
이런 경우 중간에 4무량심을 주제로 삼매를 닦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비유하면 다음과 사정이 같다.
어떤 이가 잠을 든다.
그러면 다음날 중요한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그러면 자기 전에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잠을 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냥 잠에 빠지기 쉽다.
이와 사정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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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불현전삼매
한편, 삼매 수행시 부처님을 념하여 관할 수도 있다. [념불관]
예를 들어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 반주삼매[般舟三昧 pratyutpanna-samādhi)가 나온다.
이는 제불현전삼매(諸佛現前三昧) 또는 불립삼매(佛立三昧)라고도 한다.
이는 수행을 통해 현재 눈앞에 모든 부처님을 관하는 삼매다.
이를 통해 부처님을 본받아 수행에 정진해갈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도 있다.
그 외 삼매의 주제 자체는 무량하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자유롭게 주제를 택해 삼매를 닦을 수 있다. [7각지의 택법]
중국 선종에서 수많은 화두나 공안을 들어 선정을 닦는 것도 이에 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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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삼매
삼매는 관찰하는 주제, 형식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또 그로 인해 제거되는 번뇌나 특징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다.
따라서 경전에는 다양한 삼매가 나열된다.
삼매 명칭은 삼매의 주제에 따라 붙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해인삼매, 화엄삼매, 무량의삼매 등과 같다.
또는 그 삼매의 강도에 따라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금강삼매, 여금강삼매 등과 같다.
한편 삼매의 방식이나 특징 또는 지위에 따라 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삼매 중에 심[尋]과 사[伺]의 있고 없음에 따라 3삼매를 구분하기도 한다.
심[尋]은 각[覺]이라고도 한다. 이는 거친 대강의 생각을 가리킨다.
한편 사[伺]는 관[觀]이라고도 한다. 이는 세밀하게 살피는 생각을 가리킨다.
그래서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ㆍ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ㆍ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 등을 나열한다.
한편, 정(定)ㆍ혜(慧)를 겸하여 닦는가에 따라 3삼매를 나열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분수삼매(一分修三昧)ㆍ공분수삼매(共分修三昧)ㆍ성정삼매(聖正三昧) 등을 나열한다.
이 가운데 정(定) 또는 혜(慧)의 어느 하나만을 닦는 것이 일분수삼매다.
정(定)ㆍ혜(慧)를 겸하여 닦는 유루정(有漏定)이 공분수삼매다.
정(定)ㆍ혜(慧)를 겸하여 닦는 무루정(無漏定)을 성정삼매라 칭한다. (『성실론』 권12)
또 정(定)의 성질(性質) 여하에 따라서 미정(味定)ㆍ정정(淨定)ㆍ무루정(無漏定)의 3정[三定, 3등지三等至]로 나눈다.
미정(味定)은 탐애(貪愛)와 상응하여 삼매의 공덕에 애착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미등지味等至 āsvādana-samāpatti)]
정정(淨定)은 유루(有漏)의 탐욕없는 선심(善心)과 상응(相應)한 경우를 가리킨다. [정등지淨等至 śuddha-samāpatti]
무루정(無漏定)은 이를 의지해 번뇌를 끊고 무루지(無漏智)를 얻는 경우를 가리킨다. [무루등지無漏等至 anāsrava-samāpatti]
삼매를 행하는 자세에 따라 다음을 나열하기도 한다.
상좌(常坐)ㆍ상행(常行)ㆍ반행반좌(半行半坐)ㆍ비행비좌(非行非坐)삼매
삼매를 행하는 주체와 그 특징으로 다음처럼 4종선을 나열하기도 한다.
우부소행선(愚夫所行禪)ㆍ관찰의선(觀察義禪)ㆍ반연진여선(攀緣眞如禪)ㆍ제여래선(諸如來禪).
우부소행선은 성문(聲門)이나 외도가 인무아(人無我)를 알고 닦는 선이다.
그래서 무상(無常)ㆍ고(苦)ㆍ부정(不淨)의 상(相)을 관하여 무상멸정(無相滅定)에 이르는 선을 가리킨다.
관찰의선은 보살이 인무아ㆍ법무아(法無我)와 모든 법의 성품없음[無性]과 그 밖의 이치들을 널리 관찰하는 선이다.
반연진여선은 사려(思慮)나 분별을 넘어, 있는 그대로 진여(眞如)를 깨닫는 선이다.
그래서 인무아ㆍ법무아라는 생각마저 일어나지 아니하는 선을 가리킨다.
제여래선은 여래(如來)의 깨달음에 들어가 법락(法樂)을 받는다.
그리고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부사의(不思議)한 작용을 나타낸다. (『대승입능가경』 권3)
이외에도 경전에는 수많은 삼매가 나열된다.
예를 들어 수능엄삼매, 삼매왕삼매, 사자분신삼매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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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매의 단계
삼매과정에서 삼매 수행에 따른 집중이 깊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점차 끊어가게 되는 번뇌가 달라진다.
그래서 다양한 단계가 시설된다. [색계 4선, 무색계 4선, 멸진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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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계 4선
색계 선정은 삼매 각 단계의 깊이에 따라 다음처럼 특징을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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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선(初禪)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
초선에서는 근심, 걱정[憂]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욕탐(欲貪)ㆍ분노ㆍ해침의 3가지 심(尋)ㆍ사(伺), 계율을 범함, 산란함을 다스린다.
초선은 심(尋 거친 생각)ㆍ사(伺, 세밀한 고찰)ㆍ기쁨[희喜]ㆍ즐거움[낙樂] ㆍ삼매[등지等持, 정)의 요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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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선(二禪)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제 2선에서는 심(尋)ㆍ사(伺)ㆍ고(苦) 등을 여의고 다스린다.
그리고 안의 평등하고 깨끗함[內等淨]ㆍ기쁨[喜]ㆍ즐거움[樂]ㆍ삼매[等持]의 요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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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선(三禪)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
제 3선에서는 기쁨[喜]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다스린다.
그리고 평등하게 버림을 행함[행사行捨]ㆍ올바른 기억[정념正念]ㆍ올바른 지혜[정혜正慧]ㆍ즐거움을 느낌[수락受樂]ㆍ삼매[等持]의 요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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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선(四禪)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제 4선에서는 즐거움[樂]의 묶임 등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평등하게 버림의 깨끗함[행사청정行捨淸淨]ㆍ기억의 깨끗함[념청정念淸淨]ㆍ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느낌[비고락수非苦樂受]ㆍ삼매[等持]의 요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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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尋)과 사(伺)의 유무에 따른 분류
삼매는 각 단계에서 심(尋)ㆍ사(伺)의 유무에 따라 다음처럼 분류하기도 한다.
먼저 여기에서 심(尋)과 사(伺)의 자세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유가사지론』 권5에 의하면, 심과 사 둘은 모두 사(思)와 혜(慧)의 일부분을 그 본체로 한다.
심(尋)ㆍ사(伺)는 낱말[명신名身]ㆍ문장[구신句身]ㆍ음소[문신文身]에 의한 의미를 대상으로 한다.
찾아 구하고[심구] 찾아 살피는 것[사찰]이 그 행위의 모습이다.
심(尋)ㆍ사(伺)는 말[語言]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편, 모든 심(尋)ㆍ사(伺)는 반드시 분별(分別)에 해당한다.
그러나 분별은 심사보다는 넓은 개념이다.
또한 이런 심사는 욕계 6도 각각과 초선상태에 걸쳐 작용한다. (『유가사지론』 권5)
한편 『유가사지론』 권 33에서는 삼매 상태의 심사에 대해 다음처럼 설명한다.
삼매 상태에서 연(緣)에 대하여 맨 먼저 갑자기 일어난다.
그리고 문득 대상[경境]에 바삐 급하게 지어지는 거친 뜻과 말의 성품[의언성意言性]을 심(尋)이라고 한다.
그리고 곧 그 연에 대하여 그에 따라 일어난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한다.
그리고 대상[경]을 천천히 겪으면서 지어지는 미세한 뜻과 말의 성품을 사(伺)라고 한다.
若在定地於緣最初率爾而起 悤務行境麤意言性是名爲尋
卽於彼緣隨彼而起隨彼而行徐歷行境細意言性是名爲伺
...
한편 『입아비달마론』 권상에 의하면
심(尋: vitarka)은 대상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거칠게 추구하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분별(分別) 사유라고도 한다.
그리고 사(伺: vicāra)는 대상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세밀하게 추구하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이를 쉽게 이해해보자.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바위에 대해 생각을 한다.
처음에는 단지 바위란 말 자체나 바위에 대한 대강의 모습 정도만 떠올려 생각한다.
그런 다음, 점차 바위의 모습, 성품, 바위의 각 부분, 전체와의 관계, 원인, 결과...등에 대해 세밀하게 살펴나간다.
그래서 이런 정신작용을 심(尋) 사(伺)라고 각기 구분해 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초정려(初靜慮) 단계는 이 심과 사의 작용이 함께 있다.
그래서 이는 유심유사(有尋有伺)삼매에 해당한다. [유각유관정有覺有觀定]
한편 제2정려(第二靜慮)에 들어가는 예비단계[近分定]가 있다.
그런데 초정려와 이 예비단계 사이의 중간단계를 다시 중간정(中間定)이라고 칭한다.
이를 닦으면 대범천(大梵天)에 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단계는 심(尋) 작용은 사라진다.
그리고 사(伺) 작용만 남아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는 무심유사(無尋唯伺) 삼매에 해당한다. [무각유관정無覺有觀定]
한편, 제2선에 들어가는 단계[近分定]이후는 심과 사의 작용이 모두 사라진다.
그래서 제2선 근분정 이후부터 무색계(無色界) 정까지는 모두 무심무사(無尋無伺) 삼매다. [무각무관정無覺無觀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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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법락주
색계 삼매 수행을 닦는다.
그러면 현재에 있어 법락을 느낀다.
그리고 안주(安住)함을 얻게 된다. [현법락주現法樂住]
자기를 이롭게 하고 그의 마음은 지극하게 적정해진다.
탐애를 멀리 여읜다.
모든 생명[有情]을 해침이 없고 괴롭힘이 없다.
이로써 다른 이를 이롭게 한다.
또 이로 인해 장차 오는 세상에서 색계 하늘에 태어나게 된다. [생정려]
예를 들어 초정려에 범중천 등 3천이 있다.
범중천梵衆天(Brahma-pāriṣadya)
범보천梵輔天(Brahma-purohita)
대범천 大梵天(Mahā-brahman).
그리고 제2정려에 소광천 등 다음 3천이 있다.
소광천少光天(Parīttābha),
무량광천無量光天(Apramāṇābhā),
극광정천極光淨天(Ābhāsvara)
또 제3정려에 소정천 등 다음 3천이 있다.
소정천少淨天(Parītta-śubha),
무량정천無量淨天(Apramāṇa-śubha),
변정천遍淨天(Śubha-kṛtsna).
제4정려에 무운천 등 8천이 있다
무운천無雲天(Anabhraka),
복생천福生天(Puṇya-prasava),
광과천廣果天(Bṛhat-phala),
무번천無煩天(Avṛha),
무열천無熱天(Atapa),
선현천善現天(Sudṛśa),
선견천善見天(Sudarśana),
색구경천色究竟天(Akaniṣṭha).
이들이 색계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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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색계 4선
색계4선을 닦는다.
그리고 이후 더욱 삼매에 집중한다.
그러면 무색계정 상태로 들어간다.
먼저 색상(色想)을 여읜다.
그래서 의식에 허공만 끝없이 펼쳐진 상태로 임한다.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ākāśānantyāyatana]
이후 앞 단계의 허공상(空想)을 여읜다.
그리고 식(識)만 끝없이 펼쳐진 상태로 임한다.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vijñānānantyāyatana]
이후 다시 식무변(識無邊)의 상(想)을 여읜다.
그리고 의식에 있는 바가 없는 상태로 임한다.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ākiñcanyāyatana]
이후 무소유(無所有)의 상(想)을 여읜다.
그리고 의식이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님도 아닌 상태로 임한다.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naiva-saṃjñānāsaṃjñāyat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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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진정과 9차제정
무색계 4선에서 비상비비상처정에 이른다.
이후 더욱 집중해 나간다.
그러면 느낌[受]과 생각[想]이 모두 사라진 상태가 된다.
이를 멸수상정(滅受想定, 멸진정)이라고 칭한다.
수행자가 각 단계를 차례차례로 들어서 최종적으로 멸수상정(滅受想定, 멸진정)까지 들어간다.
이를 9차제정이라고 칭한다.
각 단계를 이어 옮겨감에 있어 사이에 다른 생각을 넣지 않는다.
그래서 끝내 멸수상정(滅受想定)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일체 망식의 작용을 멈추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삼매의 구극점에 도달한다.
이를 연선(鍊禪)이라고도 칭한다.
마치 금을 단련시키는 것과 같다고 하는 뜻이다. [구차제정九次第定, navānupūrva-samāpattayaḥ]
삼매 수행의 단계가 깊어진다.
그럴수록 그 이전 단계의 번뇌와 장애를 여읜다.
그런 가운데 단지 비고락수(非苦樂受)와 삼매(等持, 정)의 요소를 갖는다.
즉, 사(捨, 평정)와 심일경성(心一境性)의 두 선정 요소만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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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분신삼매와 초월삼매
삼매수행을 닦아 삼매에 자재하게 된다.
그러면 각 단계를 차례대로 간격없이 신속하게 들고 날 수 있다.
이를 사자분신삼매라고 칭한다.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 siṃha-vijṛmbha-samādhi ]
삼매는 반드시 차례에 따라 순차적으로만 닦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삼매수행을 닦아 삼매에 자재하게 된다.
이런 경우 각 단계를 뛰어 넘어 높은 단계의 정(定)을 들고 나며 닦을 수도 있다.
이를 초월삼매(超越三昧)라고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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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매의 다양한 표현
경전과 논서에 삼매와 관련된 다양한 표현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번역에 따른 사정도 있다.
여하튼 이런 사정으로 삼매와 관련된 다양한 표현이 있다.
그래서 이들 표현을 놓고 많은 혼동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본래 삼매는 정신적 수행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 가운데 마음으로 닦는 수행의 각 상태를 언어로 표현한다.
이 경우 이런 표현만으로 각 내용을 뚜렷이 구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각 표현은 어느 정도 각기 특징적인 측면을 나타낸다.
따라서 각 표현은 수행자가 삼매를 닦아 나가는데 대강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수행자는 실제 삼매를 닦아가며 그 구체적 내용을 스스로 찾고 증득해갈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삼매와 관련해 다양한 표현이 제시된다.
그 사정은 다음처럼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이가 공을 던진다. 그래서 유리가 깨졌다.
이런 상황을 놓고 생각해보자.
이를 처음 공을 던지는 기본자세 측면에서 대할 수 있다.
또 공을 던지는 과정에서 그가 생각한 취지나 내용 측면에서 대할 수도 있다.
한편 그 공이 향하는 대상 측면에서 이를 대할 수도 있다.
또 공을 던짐으로서 대신 하지 않게 된 여타 내용 측면에서 이를 대할 수 있다.
또 그 공이 던져진 결과의 측면에서 이를 대할 수도 있다.
또는 그 공이 던져져서 이후 발생하는 여타 효과 측면에서 이를 대할 수도 있다.
상황은 하나다.
그러나 이를 살피는 측면은 이처럼 다양하게 세울 수 있다.
삼매와 관련된 여러 표현도 이와 마찬가지다.
여러 표현을 범어 원어를 기준으로 번역 표현을 함께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이 각 표현에 대해 사전적 설명을 간략하게 붙인다.
각 표현은 그 의미하는 내용의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즉, 욕계의 산란한 상태, 욕계, 색계, 무색계, 그리고 무심위에 해당되는지 여부가 조금씩 다르다.
여기서 유심 무심의 구별은 제6식의 활동여부를 기준으로 한 구분이다.
무심위는 수면상태ㆍ기절한 상태[민절위悶絶位]ㆍ무상정(無想定)ㆍ무상생(無想生)ㆍ멸진정(減盡定)ㆍ무여열반(無餘涅槃) 등의 상태를 말한다.
무심정(無心定)에는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의 2무심정(無心定)이 있다.
이들은 모두 제1~6식 범위의 심(心)ㆍ심소(心所)가 없어진 상태다.
그러나 무상정은 범부 및 외도가 닦는 경우다.
그래서 무상(無想) 상태를 참된 깨달음으로 오인(誤認)하여 닦는 경우다.
멸진정은 성자(聖者)가 정(定)으로 무여(無餘) 열반의 적정(寂靜)을 닦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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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ādhi
samādhi 는 번역상 다음과 같은 다양한 표현이 사용된다.
정(定)ㆍ삼매(三昧)ㆍ정사(正思) / 등지(等持)ㆍ삼마제(三摩提)ㆍ삼마제(三摩帝)ㆍ삼마지(三摩地)ㆍ정정(正定)ㆍ조직정(調直定)ㆍ정심행처(正心行處).
일정한 대상에 대해 마음을 집중한다.
그리고 자세하고 바르게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심일경성心一境性, 심정관찰審正觀察]
이는 정(定)의 체(體)로 본다.
이는 산란한 상태ㆍ집중[定]상태ㆍ유심위에 통한다.
『금강삼매경론』에서 3계에 통한다고 제시한다.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에서는 삼매(三昧=正思)와 삼마제(三摩提=三摩地=等持)를 구분한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한 번역상의 표현차이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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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ttaikāgratā
질다예가아갈라다(質多翳迦阿竭羅多)ㆍ심일경성(心一境性).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모아 선정(禪定)에 드는 것을 뜻한다.
이는 정(定)의 자성(自性)으로 본다.
『금강삼매경론』에서는 다음같이 제시한다.
이는 산란한 마음에는 통하지 않는다. 욕계의 방편심에만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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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āhita
삼마희다(三摩呬多)ㆍ등인(等引).
등(等)은 혼침(惛沈)ㆍ도거(掉擧)를 여의어 마음을 평등케 함이다.
인(引)은 모든 공덕을 일으킴을 뜻한다.
유심 무심에 통한다. 다만 산란한 상태는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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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āpatti
삼마발제(三摩鉢提)ㆍ삼마발저(三摩鉢底)ㆍ등지(等至).
등(等)은 혼침(惛沈)이나 도거(掉擧)를 떠나 심신이 평온하게 안정된 상태를 뜻한다.
이런 등의 상태에 이르게 하므로[지至] 등지라 한다.
이는 정(定)의 자상(自相)으로 본다.
유심 무심에 통한다.
다만 산란한 상태는 제외한다.
『금강삼매경론』에서는 삼마희다보다 더 범위가 좁다고 제시한다.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3삼매에 통하지 않는다고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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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śamatha
사마타(奢摩他)ㆍ지(止)ㆍ정수(正受)ㆍ지식(止息)ㆍ적정(寂靜)ㆍ능멸(能滅).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한다.
그리고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망념(妄念)을 쉬는 것을 뜻한다.
유심(有心)의 정정(淨定)에 한한다.
『금강삼매경론』에서 사마타는 심일경성 측면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제시한다.
다만, 사마타를 심일경성을 통해 반사적으로 망념 등이 제거되는 측면으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사마타가 행해지는 기본 영역은 심일경성 영역과 같다.
즉 욕계에서 심일경성을 닦는다고 하자.
그러면 욕계 영역 범위에서 사마타도 행해진다.
다만 구체적 대상만 차이가 있다.
심일경성을 A를 대상으로 행한다.
그러면 A 이외의 것이 사마타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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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hyāna
태연나(駄演那)ㆍ선(禪)ㆍ선나(禪那)ㆍ선정(禪定)ㆍ정려(靜慮)ㆍ사유수(思惟修)ㆍ기악(棄惡)ㆍ공덕총림(功德叢林).
마음을 산란하지 않도록 통일한다.
그래서 고요하게 진리를 명상하는 것을 뜻한다.
색계(色界)의 4근본정(根本定)이 지[止 사마타奢摩他]와 관[觀 비발사나毘鉢舍那]이 균등하다.
따라서 이를 정려(靜慮)라 부른다.
유루무루ㆍ유심ㆍ무심위에 통한다.
이는 사유에 의미를 둔다.
따라서 무색계정은 제외한다.
『금강삼매경론』에서 다음같이 제시한다.
이는 욕계에 통하지 않는다.
경안[輕安]에 들어가는 경지만 통한다.
그리고 삼마희다와 범위와 같은 것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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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ṛṣṭa-dharma-sukha-vihāra
현법락주(現法樂住)
일체의 망상을 여읜다.
그리고 현재에 있어 법락을 느낀다.
그리고 안주(安住)함을 얻음을 뜻한다.
색계(色界)의 4근본정(根本定)에 한정한다.
각 표현이 가리키는 범위를 다음처럼 대강 표시해보기로 한다.
다만 각 입장에 따라 구체적 의미 범위에는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를 감안하여 참고하기로 한다.
【욕계산란】【욕계】【색계_______________】【무색계】|【무심 상태 】
【유루】
========================================
【○ ______】【○___】【○ samādhi______】【○_____】|【X__________】 : 산(散)ㆍ정(定)ㆍ유심위, 3계에 통한다.
【X _______】【○ __】【○ cittaikāgratā_】【○_____】|【○_________】 : 삼매의 본질, 단, 산란한 마음에는 통하지 않는다. 욕계의 방편심에만 통한다.
【X _______】【X __】【○ samāhita______】【○_____】|【○_________】 : 유심 무심 -다만 산위, 욕계는 제외
【X _______】【X __】【○ samāpatti_____】【○_____】|【○_________】 : 유심 무심 -다만 산위 욕계는 제외 -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3삼매에 통하지 않는다.
【X _______】【○__】【○ śamatha______】【○______】|【X__________】 : 유심(有心)의 정정(淨定) - 사마타는 심일경성 측면에는 통하지 않는다.
【X _______】【X __】【○ dhyāna________】【X______】|【○_________】 : 유루무루, 유심무심 -무색계는제외, + 욕계에 통하지 않는다. 경안[輕安]에 들어가는 경지만 통한다.
【X _______】【X __】【○ dṛṣṭa-d~s~v~】【X______】|【X__________】 : 색계(色界)의 4근본정(四根本定)에 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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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매로 분별 및 수ㆍ상ㆍ행ㆍ식을 제거해가는 사정
삼매를 닦는다.
이 경우 단계가 깊어질수록 다양한 망집 번뇌를 제거해가게 된다.
처음 말ㆍ색상(色想)ㆍ심(尋-거친 생각)ㆍ사(伺-세밀한 생각)ㆍ기쁨ㆍ즐거움 등을 제거해간다.
이후 무색계 멸진정 단계로 들어간다고 하자.
그러면 식ㆍ행ㆍ수ㆍ상도 점점 없어지는 단계로 나아간다.
이는 세간 입장과는 반대방향이다.
세간에서는 더 많이 감각하고 분별하려 한다.
그래서 삼매의 이런 방향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는 다음 사정 때문이다.
생사현실에서 생사 고통을 겪게 된다.
수행은 이런 생사고통을 제거하고자 한다.
그리고 생사 묶임에서 벗어남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생사고통을 받는 데에는 일정한 인과 관계가 있다.
즉, 근본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처음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겪는다.
특히 3악도의 생사고통은 욕계 상황에서 문제된다.
욕계는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
즉 현실에서 상을 취한다.
그리고 소원을 일으켜 추구한다.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한다.
그런데 현실은 이런 뜻에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현실이 뜻과 일치한다고 하자.
그러면 만족을 얻는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면 불만 불쾌 고통을 느끼게 된다.
한편, 각 주체는 뜻에 맞는 상태에 희망을 그려간다.
그러나 뜻에 맞지 않는 상태에서는 걱정 두려움을 갖는다.
이런 사정으로 욕계에는 6도의 상태가 있게 된다.
그리고 3악도의 생사고통은 이런 상태에서 겪는다.
따라서 이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근본 상황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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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의미와 욕계 색계 무색계
수행자가 삼매를 닦는다.
그러면 일단 욕계의 상황을 떠나게 된다.
욕계(欲界)에서 삼매[定]의 상태를 얻으려 한다.
그러면 수행(修行)이 필요하다.
이를 수득정(修得定)이라고 한다.
그 단계에 따라 색계 4선은 정정려(定靜慮)라고 한다.
무색계 4선은 정무색(定無色)이라고 부른다.
현실은 욕계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삼매에 들면 욕계 상태를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색계ㆍ무색계에 들게 된다.
그런데 삼매를 행하는 수행자를 옆에서 관찰한다.
이 경우 외관상 이전과 큰 차이 없이 수행자를 여전히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차이가 있기에 이런 구분을 하는지 의문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수행단계와 관련된다.
그래서 그 사정을 살피기로 한다.
우선 계의 의미에 대해서 쉽게 파악해보자.
현실에서 눈으로 인식하는 영역을 안식계라고 칭한다.
색깔과 형체[色境]를 눈[眼根]에 의존하여 시각[眼識]으로 인식한다.
한편 귀로 인식하는 영역은 이식계라고 칭한다.
또 코로 인식하는 영역은 비식계라고 칭한다.
또 혀로 인식하는 영역은 설식계라고 칭한다.
또 몸으로 인식하는 영역은 촉식계라고 칭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 주체가 눈을 감은 상태로 생활한다고 하자.
그러면 안식계는 내용이 맺히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그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귀나 코ㆍ혀ㆍ몸에 의존한 감각현실은 그대로 얻는다.
그러나 여하튼 그 주체가 얻어 들이는 내용은 이전과는 달라진다.
이 경우 그의 눈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또 눈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시 눈을 뜬다.
그러면 이전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
삼매에 의한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이동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선 한 주체가 세계라고 평소 이해하는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높은 산에 올라가서 풍광을 내려본다.
또는 밤에 하늘을 보고 별을 헤아려 본다.
또는 천체망원경으로 우주를 살펴본다.
또는 현미경을 구해 사물을 살펴본다.
이런 각 경우 각 주체는 평소 무엇을 세계라고 여기는가를 살펴보자.
각 경우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부를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외부 세상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가 이해하는 외부세계는 그런 것이다.
즉, 그는 그가 얻어낸 그런 내용을 평소 세계로 여기고 부른다.
나머지 내용도 이와 마찬가지다.
평소 귀고 듣거나, 코로 맡거나, 혀로 맡거나, 몸으로 느낀다.
이들 내용도 마찬가지다.
즉, 안ㆍ이ㆍ비ㆍ설ㆍ신을 통해 색ㆍ성ㆍ향ㆍ미ㆍ촉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느낌ㆍ생각ㆍ업(의업ㆍ구업ㆍ신업)ㆍ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에서 자신이 얻어내는 내용이다.
그래서 한 주체가 세계라고 이해하는 내용은 곧 이들 내용이다.
그래서 이들이 각각 하나의 구분된 영역이 된다.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광의'의 색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수ㆍ상ㆍ행ㆍ식은 통상 명 또는 비색, 무색이라고 칭한다.
따라서 색계와 무색계는 기본적으로 이들을 재료로 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욕계는 무엇인가를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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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집과 욕계
현실에서 어떤 아이가 게임이나 만화나 영화에 빠진다.
그러면 이를 바탕으로 또 하나의 가상 세계가 만들어진다.
그런 상황은 일반적인 상황과 다른 특성이 추가된다.
그래서 이를 게임계나 만화계, 영화계라고 부를 수 있다.
욕계도 마찬가지다.
처음 한 주체는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얻는다.
그런데 이들을 기본재료로 망집을 일으킨다.
그러면 망집을 바탕으로 상을 취하고 임한다.
그리고 망집을 바탕으로 소원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추구하며 업을 행한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바탕으로 계속 임한다.
그래서 이를 욕계라고 칭하게 된다.
이 상황을 다음처럼 이해해보자.
현실에서 어떤 이가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을 대한다.
그러면 그는 그 상황에서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이후 그가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그러면 이에 바탕해 반대로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들 각 내용은 다음 관계를 갖는다.
감각현실 => ( 일으킴 ) => 관념[想]
관념[想] => ( 가리킴 ) => 감각현실
이 때 그가 가리키는 부분은 그가 얻어낸 감각현실이다.
그런데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또한 관념도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는 그가 생각하는 관념이 들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 감각현실 부분은 그가 생각하는 그런 관념이 '아니다'.
무상삼매를 살필 때 이들 내용을 이미 살폈다.
[참고 ▣- 무상삼매 ]
그런데 욕계는 오히려 바로 이런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임한다.
그래서 일정한 부분에 상을 취해 임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 일정 부분을 꽃이라고 여긴다.
그런 경우 그에게 꽃이 지금 어디있는가라고 묻는다.
그러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그리고 일정 부분을 꽃으로 여기며 손으로 가리킨다.
이는 그 일정부분이 곧 그런 꽃'이다'라고 잘못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그 일정부분에 그런 꽃이 들어 '있다'라고 잘못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런 생각[想]을 바탕으로 그런 일정부분에 꽃의 상[相]을 취하는 현상이다.
한편 손으로 일정 부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반대로 그 부분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러면 그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부분은 바위라고 답한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일정 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바위'란 생각[想]을 일으킨다.
그리고 곧 그런 부분이 '바위'다라고 여긴다.
이 역시 그런 생각[想]을 바탕으로 그런 일정부분에 바위의 상[相]을 취하는 현상이다.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현실에서 이처럼 일정한 분별[想]을 바탕으로 일정한 부분에 상을 취해 임한다.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즉, 그런 부분에는 그가 생각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또 그 부분은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오히려 이와 반대로 생각한다.
그렇게 상을 취한 부분을 대한다.
그 경우 그는 그 부분에 그가 생각하는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그 부분은 곧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생활해간다.
그리고 한 주체는 그런 가운데 소원을 일으켜 갖는다.
이 경우 그런 희망은 관념영역에서 만들어낸다.
그래서 좋다고 보는 내용을 떠올린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그런 내용이 얻어졌으면 좋겠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만약 그런 좋은 상태가 된다면 좋겠는데,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마음 상태가 희망을 갖는 상태다.
그런데 그 희망이 성취되었다고 여기는 상태는 다음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좋은 자동차를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동차로 여기고, 가리키게 되는 부분[상相]이 따로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런 부분[상相]을 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상태가 되도록 업을 행한다.
그래서 주로 이런 부분에 이후 계속 초점을 맞추고 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욕계에서 희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형태다.
즉 욕계는 이런 상태로 희망을 추구하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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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계의 망상분별과 3악도의 생사고통
욕계는 망집에 바탕해 상을 취해 임한다.
그런 바탕에서 희망을 추구한다.
이런 것이 욕계의 특징이 된다.
그런데 감각현실은 여러 조건에 의존해 나타난다. [의타기상]
그런데 희망은 이와 별개로 관념영역에서 일으킨다.
이 둘은 그래서 서로 늘 일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감각현실은 때로는 희망에 들어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사정으로 욕계에는 3악도가 나타나게 된다.
현실이 뜻에 들어맞는다.
그러면 좋음을 얻고 만족을 얻게 된다.
또 좋은 뜻이 성취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희망과 의욕을 갖게 된다.
그리고 주로 이런 상태만 오가며 지낸다고 하자.
그러면 하늘의 상태가 된다.
그러나 반대가 된다고 하자.
그러면 다양한 고통과 공포, 두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주로 고통과 공포 두려움을 겪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면 지옥 상태가 된다.
한편, 당장 고통을 겪는 가운데 장차 희망이 성취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고통과 희망을 갈구하는 상태를 오가며 지낸다고 하자.
그러면 아귀의 상태가 된다.
한편, 당장 뜻대로 성취해 만족을 얻는다.
그런데 장차 원하지 않는 과보를 받을 것을 예상한다.
그래서 당장의 만족과 두려움을 오가며 지낸다고 하자.
그러면 아수라의 상태가 된다.
한편 이런 일체는 근본적으로 어리석음에 바탕한다.
그런데 이런 어리석음에 바탕해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어리석음에 바탕해 계속 헤매 돈다.
그러면 축생의 상태가 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지혜를 갖춘다.
그러면 인간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여러 상태 가운데 우선 3악도가 당장 문제다.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생명은 생사윤회과정에서 이런 욕계 6도 상태에 들어 생사를 받아 나가게 된다.
그래서 생사윤회에 묶인 3계 6도 전체가 함께 바람직하지 않다.
생사고통과 공포 두려움 등은 문제다.
이를 근본적으로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생사 묶임에서 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수행목표가 된다.
♥Table of Contents
▣- 욕계의 산란 상태
현실에서 한 주체가 초점을 맞추어 임한다. [작의作意 Manaskāra]
그런 경우 기본적으로 망상분별에 바탕해 상을 취한다.
그리고 욕계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다시 다른 부분에 초점을 옮긴다.
그러면 그 다른 부분에 대해 또 역시 상을 취한다.
예를 들어 그 다른 부분은 꽃이라고 분별을 일으킨다.
이 역시 망상분별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또 다른 부분에 초점을 옮긴다.
그러면 또 앞 상황을 반복한다.
즉, 초점을 맞춘 부분에 상을 취한다.
그리고 그 일정 부분에 대해 분별을 일으킨다.
이처럼 계속 상을 옮겨 취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에 따라 망상분별을 이어 일으킨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태가 욕계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욕계의 산란한 상태가 된다.
한편 욕계에서 일으키는 희망도 이런 상태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꽃을 갖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희망이 성취된 상태는 앞과 같은 상태를 전제로 한다.
즉 현실에서 꽃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꽃이라고 가리키게 되는 부분[상相]이 따로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런 부분[상相]을 취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추구해간다.
그래서 희망의 성취를 위해 노력한다.
이 경우는 희망에 해당하는 일정한 관념[상想 Saṃjña]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에 상응한 상(相 Lakṣaṇa)을 찾는 상태다.
예를 들어 꽃을 구하려 한다.
그러면 그는 거리에서 계속 초점을 맞추어 옮긴다.
그런 가운데 꽃에 해당한 부분[상相]을 찾아대는 상황이 된다.
그런 가운데 쉼 없이 초점을 옮겨 분별을 행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업을 행해나간다.
그래서 이 역시 욕계의 산란한 상태가 된다.
♥Table of Contents
▣- 욕계에서 초점 밖 영역
현실에서 일정 부분에 초점을 맞춰 대한다.
그런 경우 망상분별에 바탕해 상을 취한다.
그런데 이 경우 초점 밖 부분을 생각해보자.
이들 부분도 감각현실이다.
따라서 광의의 색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는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일정한 상을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 따른 분별도 따로 일으키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 내용을 얻는다.
이 때 앞부분만 초점을 맞추어 바라본다.
그 경우 '그 부분이 꽃이다'라는 식으로 분별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때 그 부분만 따로 떼어 내어 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대단히 넓은 내용을 함께 본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는 별다른 분별을 따로 일으키지 않는 상태다.
이 상황에서 다음 실험을 해보기로 하자.
예를 들어 갑자기 오른쪽 끝 부분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 순간에서 그가 그 부분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미처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 경우 그 부분이 무엇이라고 곧바로 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부분에 다시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이후 그 부분에 대해 분별을 일으킨다.
그래서 예를 들어 '오른쪽 끝 부분은 바위이다'라고 다시 답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다시 왼쪽 끝이 무언가를 묻는다.
그러면 역시 앞과 마찬가지가 된다.
한편 현실에서 눈을 뜨고 멍한 상태로 임한다.
이런 경우 그 전체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이 경우 전반적으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로 임한다.
눈을 처음 뜰 때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 내용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내용이다.
즉 하나의 감각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대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 경우 이는 본래 얻는 감각현실 그대로다.
즉 이에 대해 일일이 분별이 대응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는 그냥 감각현실 그대로 상태다.
그래서 결국 처음 색ㆍ수ㆍ상ㆍ행ㆍ식 가운데 색 자체다.
그래서 이 상태는 색계 상태에 준한다.
♥Table of Contents
▣- 욕계의 심일경성 단계
처음 현실에서 여러 부분에 산란하게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산란하게 상을 일으켜 임한다.
그런 가운데 일정 부분에 초점을 맞춰 집중한다.
이런 경우 초점을 맞춘 부분에만 관념을 일으킨다.
한편, 이런 경우 집중으로 나머지 영역에 대한 분별도 제거된다.
이런 경우, 초점을 맞추지 않은 부분이 있다.
집중을 통해 이런 부분은 아무런 분별을 대응시키지 않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 얻는 색 그대로 남게 된다.
한편 집중을 통해 분별 영역에서 다른 잡념 등도 일으키지 않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이 경우는 오직 초점을 맞춘 부분만 상(相 Lakṣaṇa)을 취한 상태다.
이 경우 처음 그 부분을 대해 일정한 관념분별[상想 Saṃjña]을 일으킨다.
이 경우 그런 생각[想]을 바탕으로 그런 일정부분에 상[相]을 취한다.
그래서 이 경우 이 부분만 욕계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의 상태다.
이 사정은 이미 앞에서 살폈다.
따라서 욕계의 심일경성은 이런 망상분별에 바탕한다.
♥Table of Contents
▣- 색계 삼매
욕계에서의 심일경성 상태를 이룬다.
그런 경우 그 부분만 욕계 상태에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일정부분을 대해 꽃이라는 생각을 하며 집중한다.
그런 가운데 초점을 맞춘 부분만 분별이 대응한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다시 일정한 주제로 상을 떠올려 관한다.
예를 들어 부처님 광명에 대한 상을 떠올려 관한다. [관상]
그런 경우 초점을 맞춘 그 부분에서 그런 빛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관념영역에서 그런 빛에 대한 관념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으로 처음 일으킨 관념분별[상想 Saṃjña]을 대체시킨다.
그러면 욕계의 기본 상태에서 벗어난다.
이 경우 그는 감각현실과 관념도 얻고 있다.
즉 상을 관해 떠올리는 관념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심과 사의 작용을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욕계 상태와 다르다.
즉, 일정한 생각[想]을 바탕으로 일정부분에 상[相]을 취하는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처음 현실에서 상을 취해 망상분별을 일으켜 임하는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욕계 상태애서 벗어난다.
그리고 색계의 삼매 상태가 된다.
♥Table of Contents
▣- 무색계 삼매
처음 현실에서 일정 내용에 초점을 맞춰 집중한다.
그런 가운데 색계 삼매 상태가 된다.
삼매를 닦는 한 일정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는 자세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
즉, 처음에 감각현실 영역에서 일정 부분에 상(相 Lakṣaṇa)을 취해 집중했다.
그리고 이런 집중상태는 계속 유지한다.
이는 산란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 경우 일정 주제로 상을 관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 속의 상[想 Saṃjña]은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심과 사의 작용을 행할 수도 있다.
다만, 이는 일정한 생각[想]을 바탕으로 일정부분에 상[相]을 취하는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욕계 상태와 다르다.
그리고 이후 계속 삼매의 단계를 밟아나간다.
그래서 점차 심과 사를 제거해간다.
그래서 이후 단계별로 우수(憂受)ㆍ희수(喜受)ㆍ고수(苦受)ㆍ낙수(樂受)가 끊어진다.
그리고 단지 비고락수(非苦樂受)만 남는다.
그런 가운데 다시 무색계 삼매 상태에 들어간다.
처음 공무변처정에 들어간다.
여기서 먼저 색과 허공의 의미를 구분해 살펴보자.
여기서 색은 보거나 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허공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하늘을 본다.
일정 부분에는 구름이 보인다.
또 산이 보인다.
그래서 각 부분을 가리키며 그 부분이 무언가를 묻는다.
그러면 그 부분바다 일정하게 분별을 일으켜 답하게 된다.
즉 저 부분은 구름이다.
또 이 부분은 산이다.
이렇게 답하게 된다.
그런데 중간의 허공 부분을 가리킨다.
그 경우는 별다른 분별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답하기 곤란하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감각현실 영역에 별다른 분별을 일으키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허공이라고 칭한다.
이 경우 굳이 그 부분을 분별하려 한다.
이 경우 다른 사물을 의존해 간접적으로 분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 부분에 어떤 사물을 넣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사물이 들어갈 수 있는 빈 영역이라고만 분별하게 된다.
이것이 곧 허공이나 공간 관념이다.
그런데 처음 감각현실을 얻었다.
이 경우 초점을 맞추고 대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에 따라 분별을 대응시켜 일으킨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이 있게 된다.
이 각 경우 성격이 다르다.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부분을 살펴보자.
이 경우는 처음 감각현실 그대로다.
그리고 그에 대응한 분별을 따로 일으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는 실질적으로 허공에 준한다.
물론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분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부분에 일정한 분별을 행할 수 있다.
단지 그 부분이 허공인 경우는 별다른 분별을 행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러면 분별이 행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는 결국 허공이어서 분별하지 못한 경우와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실질적 차별이 없게 된다.
무색계 삼매는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처음 무색계 삼매에 들기 위해 허공에 대하여 승해(勝解)를 일으킨다.
그리고 색과 장애의 갖가지 상[유색유대有色有對]을 마음에서 제거한다.
그 때문에 갖가지 그런 상에 초점을 맞추지 아니한다.[종종상부작의種種想不作意]( 『유가사지론』 제33권)
그래서 감각현실에 대해 일체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후 오로지 수ㆍ상ㆍ행ㆍ식 영역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 이후 집중하는 대상이 달라진다.
이 경우 감각현실에서 일체 취하는 부분이 남지 않게 된다.
즉 감각현실에서 취하는 상(相 Lakṣaṇa)이 일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앞 단계와는 성격이 다시 달라진다.
그래서 이후 단계는 무색계 삼매 단계가 된다.
욕계 상태와 이들 각 삼매 단계의 특성 차이를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평소에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이 경우 초점이 산만하다.
그래서 산만하게 각 부분에 대응해 대강의 분별을 따라 일으킨다.
예를 들어 평소 어느 한 부분에 초점을 뚜렷이 맞추지 않고 임한다.
그런 가운데 길을 걸어간다.
그런 경우에도 산만한 가운데 각 부분에 일정한 분별을 대강 행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앞에는 대강 건물과 길이 놓여 있다고 의식한다.
그리고 이처럼 산만하게 대강 분별을 행하고 임한다.
이 경우 그 감각현실 부분이 허공에 해당한 부분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만 별다른 분별이 따로 일어나지 않는다. [욕계 산란상태]
그런데 이후 한 부분에 초점을 집중한다.
그러면 나머지 부분에 대한 분별은 상대적으로 점차 사라져간다.
그리고 점차 그에 집중을 강하게 한다.
그럴수록 나머지 부분에 대한 산만한 분별은 온전히 사라진다. [욕계 심일경성]
한편, 초점을 맞춰 집중하는 부분이 있다.
이 경우 처음 이에 대한 분별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처럼 상을 취해 일으킨 '분별[想 Saṃjña]은 대체해 제거한다.
그러면 '감각현실에 대응한 분별'은 행해지지 않는다.
다만 감각현실 부분에 상(相 Lakṣaṇa)을 취해 집중을 유지하는 상태가 된다.
이를 통해 색계 삼매상태가 된다. [색계 삼매]
이후 집중을 계속 유지한다.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에 상(相 Lakṣaṇa)을 취해 집중하는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감각현실 영역은 그 전체가 모두 허공에 준하는 상태가 된다.
물론 감각현실 영역에는 여전히 내용이 맺혀 들어온다.
만약 이 경우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 분별을 한다.
그러면 구름이나 산이라고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만 본래 허공인 부분만 딱히 분별을 일으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이 여전히 그렇게 들어오는 상태다.
일반 상태나 색계ㆍ무색계 삼매시 감각현실을 얻는 자체는 다르지 않다.
즉 삼매 수행은 감각기관 자체를 제거해 임하는 것이 아니다.
또 감각기관에 독을 발라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도 아니다.
또 일부로 감각기능을 중단시키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삼매 수행시 눈을 감거나 귀를 막고 닦는 것이 아니다.
눈도 있다.
그리고 눈도 뜬다.
그래서 감각현실도 얻는다.
그래서 감각현실 자체는 시종일관 계속 얻는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처음 욕계 상태와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다만 집중을 행해 삼매를 닦는다.
그러면 이를 통해 처음 의식 상태와 성격이 달라진다.
그런데 이처럼 감각현실 일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 대응한 분별이 따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경우 감각현실은 단지 막연한 감각현실로만 남는다.
그래서 이들 전체는 허공과 실질적으로 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그리고 이후 집중은 색을 떠나 수ㆍ상ㆍ행ㆍ식 부분으로 옮겨 가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는 무색계 삼매 단계가 된다. [무색계 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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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계 무색계와 궁극적 수행목표
일반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러면 일정한 분별을 따라 일으킨다.
이 경우 일정한 분별[想]을 바탕으로 감각현실 일정부분에 상[相]을 취하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분별은 대부분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 5이사(利使)]
그리고 이에 바탕해 일으키는 탐ㆍ진ㆍ치ㆍ만ㆍ의 정서적 의지적 번뇌도 마찬가지다.[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 5둔사]
물론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이를 거꾸로 생각한다.
이들을 곧 실다운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분별을 옳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런 분별을 행함을 지혜롭다고 잘못 여긴다.
그러나 이들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번뇌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집착한다.
그리고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그런데 삼매 수행을 한다.
그래서 일정 내용에 마음을 집중한다.
그러면 초점을 맞춰 집중한 내용만 남는다.
그리고 초점 밖 나머지 내용은 의식에서 사라진다. [사마타]
이를 통해 대부분 산란한 망상분별과 번뇌가 제거된다.
처음 색계 초선단계는 심(尋-거친 생각)ㆍ사(伺-세밀한 생각)ㆍ희(喜 기쁨)ㆍ낙(樂 즐거움)ㆍ삼매[등지等持] 요소를 갖는다.
그리고 이후 말ㆍ색상(色想)ㆍ심(尋)ㆍ사(伺)ㆍ희(喜)ㆍ낙(樂) 등의 번뇌를 끊어 나간다.
그리고 이런 분별과 번뇌를 일으키는 기본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악업으로부터도 떠나게 된다. [정려율의]
또한 이를 통해 지혜도 청정해진다.
그래서 예를 들어 끝내 멸수상정까지 들어간다.
그러면 색ㆍ수ㆍ상ㆍ행ㆍ식 일체가 의식에서 제거된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들이 현실에서 잘못된 망상분별과 번뇌를 일으키는 재료다.
그래서 이들이 모두 제거된 상태가 된다.
현실에서 의식 표면 내용만을 문제로 본다고 하자.
그래서 이 측면만 본다고 하자.
그러면 망집번뇌가 모두 다 제거된 듯하다.
그런 경우 이들 표면 내용만 제거해 생사묶임에서 벗어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삼매 외에 이를 제거할 다른 방안도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감관 및 인식기관에 독을 발라, 기능을 정지시킨다.
또는 감관이나 인식기관을 아예 제거한다.
심지어 아예 죽음을 택한다.
그러면 당연히 이런 의식표면 내용도 제거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런 방안들도 생사묶임에서 벗어나는 방안이 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의 표면상 망집 번뇌는 일정한 근본정신 구조와 기제에 바탕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이런 망집 번뇌를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이들 방안으로 그 배경 사정은 달라지지는 않는다.
즉 이런 방안으로 제8식 제7식의 근본 구조와 기제가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과거에 쌓은 업장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는 다음 생도 마찬가지다.
한편,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갖는 번뇌가 있다. [구생기 신견과 변견, 탐ㆍ진ㆍ만ㆍ의 등]
이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 위와 같은 방안만으로는 생사 묶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삼매 수행으로 의식표면의 내용을 제거한다.
그렇다고 이런 근본정신과 구조 자체가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삼매에 든 상태에서 다시 이를 벗어난다.
그러면 다시 원래의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는 궁극적 구경열반(究竟涅槃)은 아니다. [차별열반(差別涅槃)] <유가사지론 제52권>
따라서 삼매로 얻는 이런 상태는 궁극적 해탈 열반 상태로 볼 수 없다.
결국 이는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방안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삼매 수행이 전혀 무용한 것은 아니다.
삼매는 일단 많은 망집번뇌를 제거해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혜 보리 자량을 얻게 한다.
따라서 삼매는 수행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다만 삼매만으로 완전한 열반을 얻는 것이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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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득정과 해탈
삼매를 닦는다.
그러면 번뇌와 악행을 멈추게 된다.
또 몸가짐 등이 저절로 율의에 들어맞게 된다.
그래서 계체(戒體)를 얻는다. [정려율의靜慮律儀]
이는 장차 색계 무색계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생득정生得定]
그래서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난다.
이런 경우 자연히 삼매 상태로 임하게 된다.
이를 생득정(生得定)이라 표현한다.
색계는 <생 정려>(生靜慮)라 표현한다.
무색계는 <생 무색>(生無色)으로 표현한다.
한편, 색계와 무색계에는 3악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순수한 하늘만 존재한다.
따라서 일단 욕계 3악도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욕계 하늘보다 수명이 상대적으로 길다.
예를 들어 욕계 하늘 가운데 4대천왕을 살펴보자.
이 경우 인간 50세(歲)가 4대천왕중(大天王衆)의 1일 낮밤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낮밤 30일을 1달로 하고 12달을 1세(歲)로 한다.
그런 가운데 4대천왕중(大天王衆) 수명은 500세다.
한편, 도리천은 다음과 같다.
인간 100세(歲)가 33천(天)의 1일 낮밤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낮밤 30일을 1달로 하고 12달을 1세(歲)로 한다.
그리고 그 천(天)들의 수명은 천세이다.
그리고 위 단계 하늘로 갈수록 이들 내용이 각기 2 배씩 증가한다.
인간계 햇수로 환산한다고 하자.
그러면 각 하늘의 일반적인 수명은 다음과 같다.
4천왕천 하루 (인간계의 50년) * 360 * 수명 500세 = 9,000,000 년
도리천 하루 (인간계의 100년) * 360 * 수명 1000세 = 36,000,000 년
야마천 하루 (인간계의 200년) * 360 * 수명 2000세 = 144,000,000 년
도솔천 하루 (인간계의 400년) * 360 * 수명 4000세 = 576,000,000 년
화락천 하루 (인간계의 800년) * 360 * 수명 8000세 = 2,304,000,000 년
타화자재천 하루 (인간계의 1600년) * 360 * 수명 16000세 = 9,216,000,000 년
한편 각 색계 천들의 수명은 겁으로 헤아릴 만큼 길다.
한편 무색계천의 수명은 이보다 훨씬 길다.
공무변처(空無邊處)의 수명은 2만겁(萬劫)이다.
식무변처(識無邊處)의 수명은 4만겁(萬劫)이다.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수명은 6만겁(萬劫)이다.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수명은 8만겁(萬劫)이다.
( 『유가사지론』 제4권 )
이처럼 각 하늘의 수명이 길다.
3악도 생사고통을 벗어남을 목표로 한다.
이런 경우 자칫 색계와 무색계 하늘을 그 해결 방안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 역시 인천교 문제점을 갖는다.
이는 처음 10선법으로 하늘에 태어나는 수행과 성격이 같다. [인천교]
욕계나 색계 무색계 하늘에 태어난다.
이 자체만 놓고 보면 이는 생사고통에서 벗어난 상태다.
색계 무색계 천의 수명이 대단히 길다.
예를 들어 비상비비상처의 8만겁은 대단히 긴 기간이다.
그런데 이 8만겁을 다시 9번 나열한 기간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를 다시 8만겁과 비교한다.
그런 경우 무시무종 시간대에서 8만겁은 역시 찰나 쪽에 오히려 가깝다.
그리고 이런 수명이 끝난다.
그러면 다시 3계 6도에서 생사고통의 윤회를 밟아나간다.
따라서 이는 완전히 생사 묶임에서 벗어난 상태가 아니다.
이는 그 기간이 비록 길어도 임시방편에 그친다.
그래서 이를 궁극적 목표 상태로 삼기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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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생 제도와 욕계를 택하는 사정
삼매는 현실에서 색계ㆍ무색계 삼매를 닦을 수 있다. [수득정修得定]
한편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난다.
이런 경우 자연히 삼매 상태로 임하게 된다. [생득정生得定]
이런 경우 일단은 임시적으로 욕계 생사고통에서 벗어난다.
또한 이런 삼매를 통해 번뇌도 임시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궁극적 구경열반(究竟涅槃)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삼매 수행을 바탕으로 이후 지혜를 원만히 닦아 나가야 한다.
삼매를 바탕으로 지혜 보리 자량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근본 번뇌와 무명을 제거한다. [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ㆍ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
그런 경우 수행의 깊이에 따라, 각 상태가 달라진다.
그래서 이를 예류과ㆍ일래과ㆍ불환과ㆍ아라한과 등으로 구분한다.
현생에서 이들 번뇌를 다 제거해 아라한 상태에 이른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욕계와 색계ㆍ무색계 하늘을 오가는 가운데 구경열반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색계 무색계는 수행과정에서 태어나는 곳이 된다.
그러나 정작 수행의 궁극적 목표지는 아니다.
그런데 한편, 중생제도를 목표로 수행하는 경우가 있다. [보살승]
이런 경우 삼매를 닦아 색계ㆍ무색계에 태어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색계 무색계는 전체가 하늘로만 구성된다.
그리고 그 수명이 겁을 단위로 헤아릴 만큼 길다.
그래서 여기서는 생사고통 문제를 강 건너 불로 대하게 된다.
그만큼 색계ㆍ무색계 중생은 생사 문제에 여유를 갖는다.
그래서 정작 수행에 관심을 갖지 않기 쉽다.
그래서 이런 세계에서 중생제도를 하려 한다고 하자.
이는 당장 병자가 없는 곳에 병원을 개업하는 것과 비슷하다.
수행자가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취지로 수행을 한다.
그런데 그 수행자가 삼매 수행을 통해 충분히 색계 무색계에 태어날 수 있는 상태다.
그런 경우 이를 증득해 색계 무색계에 태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욕계에서 중생들이 고통 받는다.
따라서 이런 상태의 중생에 대해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방편을 취해 욕계로 태어나는 것을 권장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삼매를 닦을 때 4무량심을 주제로 삼매를 닦아야 한다.
이는 잠에 들기 전 다음날 할 일과 일어날 시각을 생각하며 잠드는 것과 같다.
이런 경우 삼매를 닦는 순서는 색계4선ㆍ4무량심ㆍ무색계4선의 단계로 닦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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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를 통한 근본적 번뇌 제거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그런 경우 망집 번뇌를 완전히 제거한다.
그런데 이는 중독환자가 중독 증세를 끊어내는 일과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도박, 흡연, 음주, 마약중독에 빠져 있다.
이런 경우 먼저 그가 이런 일이 길게 보아 좋지 않음을 모를 수 있다.
즉 그런 행위가 좋은 일이라고 잘못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경우 먼저 그것이 넓고 길고 깊게 보아 좋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 그것이 좋지 않음을 잘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중독자의 경우 그 행위를 쉽게 끊지 못한다.
이성적으로는 좋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그 행위를 끊지 못하고 반복한다.
즉 생각과 마음과 몸 행위가 각기 따로따로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이 경우 우선 그런 중독행위가 잘못이고 좋지 않음을 확고하게 뚜렷이 인식한다.
이후 이에 바탕해 그 행위를 단호하게 뚝 끊는다.
그리고 이후 겪는 금단현상이나 불만ㆍ고통을 평안히 잘 참고 견딘다.
그리고 올바른 희망을 일으켜 그에 전념해 나간다.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는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처음 근본 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집착한다.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반복해 받아 간다.
이런 상태에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데 이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망집 번뇌는 발생적으로는 다음 순서로 일으킨다.
우선 근본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임한다.
그런 경우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구생기 신견, 아견ㆍ아애ㆍ아취ㆍ아만]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유ㆍ무, 상ㆍ단의 분별을 통해 변견을 일으킨다. [구생기 변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탐ㆍ만ㆍ진ㆍ치의 정서적 의지적 번뇌를 일으킨다. [탐ㆍ만ㆍ진ㆍ치]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생을 출발한다.
그런 경우 이런 사정으로 분별을 행할 때도 마찬가지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먼저 자신과 세상의 정체에 잘못된 분별을 행한다. [분별기 신견, 변견]
그리고 인과 및 수행목표와 성취방안 등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일으킨다. [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
그런 가운데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한다. [의]
또 이런 근본번뇌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번뇌를 일으킨다. [20수번뇌]
그리고 이에 집착한다.
그리고 이런 망집 번뇌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고통의 생사현실에 묶인다.
따라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원인 망집번뇌를 제거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이런 상태에서 신견 하나를 제거해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평소 이에 대해 대단히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그가 삶에서 일으키는 모든 집착은 이에 바탕한다.
이런 경우 먼저 그런 부분이 참된 진짜로서의 자신이 아님을 뚜렷이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외 여러 망상분별도 마찬가지다. [미리혹]
그래서 이런 망상 집착이 생사고통을 얻게 한다.
이런 사정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즉, 어떤 부분이 참된 자신의 몸이 아님을 잘 이해한다.
그래도 평소 자신의 신체 부분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신체로 여기는 부분에 상처가 난다.
그러면 우선 감각적으로 심한 통증의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불쾌와 고통을 느끼게 된다. [미사혹]
그리고 분노나 슬픔을 일으키게 된다.
즉,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상대나 상황에 대해 미움을 갖는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무언가를 부수거나 해치는 반응을 한다.
그리고 그런 의지를 갖기 쉽다.
그리고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들 부분은 이성적인 생각이나 판단과 성격이 다르다.
그가 이론상 그런 정서적 의지적 반응이 안 좋음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도 그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평안히 참고 견디기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 지적 이해만으로 감각이나 정서적 태도나 의지를 바로 끊기 힘들다.
그래서 이는 수행을 반복해 끊어내게 된다.
번뇌를 끊어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위와 같은 단계를 하나하나 차례대로 잘 밟아 끊어야 한다.
번뇌와 생사고통은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
즉, 망집 번뇌 -> 업 -> 생사고통의 관계가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계를 닦아 업부터 중단함에 치중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업을 중단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번뇌를 다시 제거해 간다.
이 경우도 업과 관련이 깊은 번뇌부터 집중해 제거한다.
한편 번뇌는 당장 제거가 쉬운 것부터 제거한다.
제거가 어려운 것부터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수혹]
그러면 일단 시간과 노력이 오래 걸린다.
그러면서도 그 제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로 인해 다른 번뇌도 함께 제거가 되지 않은 상태가 된다.
그러나 쉬운 것부터 제거한다. [견혹]
그러면 그 제거가 일단 쉽다.
그래서 이런 번뇌부터 하나씩 제거한다.
그러면 이를 통해 처음에 제거가 어려웠던 번뇌들도 보다 쉽게 제거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런 방안을 취한다.
망집 번뇌는 발생적으로는 위에 나열한 순서가 된다.
그러나 이런 망집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제거가 쉬운 표면상 번뇌부터 하나씩 제거한다.
우선 수행 예비단계에서 3현(賢)ㆍ4선근(善根)을 닦는다. [자량위ㆍ가행위]
세제일위는 이 단계의 최후 단계다.
이런 세제일위(世第一位) 직후 번뇌를 낳지 않는[무루無漏] 지혜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후 다음 번뇌들부터 제거한다.
이는 분별기에 이치에 미혹해 일으킨 번뇌들이다.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의 5리사(五利使),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의 5둔사(五鈍使)가 이에 해당한다.
올바로 이치를 관해 이런 번뇌를 제거한다.
그런 경우 이런 노력만으로 제거하기 힘든 번뇌가 남는다.
즉, 정서적 의지적으로 뿌리 깊은 번뇌들이 남게 된다.
이런 경우 이들은 꾸준한 수행노력을 통해 끊어 나간다.
이들이 수행을 닦아 끊어야 할 번뇌가 된다.
구사종에서는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을 이런 번뇌로 나열한다.
대승유식종에서는 구생기 신견ㆍ구생기 변견을 이에 추가한다.
결국 이들 탐ㆍ진ㆍ치ㆍ만과 구생기 신견ㆍ구생기 변견은 이런 수행노력으로 끊어가야 한다.
한편 각 수행단계별로 끊게 되는 번뇌를 나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수행단계를 나눈다.
이들 내용은 번잡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는 뒤에서 따로 살피기로 한다.
그러나 수행과정에서 어떤 단계 어떤 상황에서든 이들 번뇌를 끊어야 한다.
그래서 먼저 위 10 가지 근본번뇌를 중심으로 이를 끊을 방안을 대략적으로 살핀다.
이를 우선 끊기 쉬운 번뇌부터 순서대로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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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의 제거
세상과 자신의 정체에 대해 먼저 올바로 옳게 판단한다.
그리고 현실이 나타나는 인과에 대해서도 옳은 판단을 한다.
한편 무엇이 가장 가치 있고 좋은 상태인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서도 올바로 판단한다.
그래서 올바로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이를 성취할 올바른 방안을 찾는다.
그래야 그에 따라 올바른 방안을 통해 올바른 목표 상태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 전반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는 경우가 있다.
잘못된 환경에서 잘못된 스승을 만난다.
그런 가운데 지식을 습득한다.
그런 경우 이런 위험이 증가된다.
그런 가운데 엉뚱한 내용을 현실에서 올바른 내용으로 여긴다.
그런 가운데 올바르지 않은 목표를 추구한다.
따라서 생사고통에 묶인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결국 위에 나열한 내용에 대해 올바르고 옳은 판단을 해야 한다
이들 내용은 기본적으로 부처님이 제시하는 4제법이나, 연기법 내용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이 가운데 자신이 경험하고 확인 가능한 내용이 있다.
이는 주의 깊게 반복해 관찰해서 스스로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되는 내용의 전후관계나 인과관계를 살핀다.
그리고 같고 다름을 분별한다.
그런 현실 경험을 통해서 실증적으로 확인한다.
그런데 내용에 따라 현실에서 쉽게 진위를 판단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 내용을 당장 경험해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공간상 멀리 떨어진 영역에 대한 판단도 그와 같다.
또는 시간상 과거 미래로 떨어진 영역도 그와 같다.
또는 감관이나 인식기관과 관련된 장애로 경험하지 못하는 영역도 있다.
한편 3계 6도에서 하늘이나 지옥 등 다른 세계와 관련된 내용도 있다.
각 주체가 직접 그런 상태에 놓인다.
그러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또 그런 상태가 아니라고 하자.
그러면 그 주체는 결국 직접 알지 못하게 된다.
또 현생의 업과 사후 상태의 관계도 사정이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업을 행한다.
그러면 사후에 하늘에 가게 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양쪽 상태를 함께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그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한편 본래 한 주체가 끝내 얻을 수 없는 영역의 내용도 있다.
본바탕 실상의 정체를 확인하는 문제가 그런 경우다.
이런 경우 이 내용을 아는 이의 가르침을 대한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직접 경험만을 의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이런 내용에 바탕해 수행을 닦지 못하게 된다.
또 이로 인해 그 과보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수행을 처음 시작함에는 이런 어려움이 있게 된다.
이는 자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먼 곳을 가는 경우와 같다.
이런 경우 먼저 직접 그 장소를 본 후 출발하겠다고 고집한다.
그러면 끝내 그런 장소는 갈 도리가 없다.
가봐야만 그 장소를 보고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그 장소를 가서 보았다.
그런 경우는 그는 그 사정을 알게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이에게 그 사정을 말로만 알려준다.
그러면 이 말을 듣는 이는 또 처음 상태와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수행에는 이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수행의 결과를 얻으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처음에는 스승과 법을 믿고 내용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가운데 실천 수행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다만 처음 어떤 스승과 어떤 내용을 먼저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위험성이 있다.
잘못된 스승과 내용에 대해 맹신의 자세를 갖는다고 하자.
그러면 오히려 수행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 확인할 수 없다.
그러면 해당 내용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위험에 노출된다.
이런 경우는 보조적으로 다음 방안을 택한다.
그래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우선 귀납추론의 방식을 택할 수 있다.
이는 다음 방식이다.
어떤 이가 경험 가능한 내용과 그렇지 않는 내용을 함께 제시한다.
이 가운데 자신이 경험하고 확인 가능한 내용을 검토한다.
그런 가운데 거짓이 많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머지도 역시 거짓이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
반대로 거짓이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머지도 역시 거짓이 없을 가능성이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이는 개연성일 뿐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들 내용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전히 의문을 갖는 상태로 남게 된다.
그래도 막연히 의문을 갖는 상태와는 달라진다.
한편 두 번째는 거짓을 제공할 가능성과 경우를 검토해본다.
입장을 반대로 놓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가능성이 많은가를 헤아려본다.
이런 방식도 판단에 도움이 된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거짓을 말할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로 다음을 나열할 수 있다.
우선 그 자신부터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
그런 가운데 잘못된 내용을 확신하며 진술한다.
그래서 내용이 잘못인 경우도 있다.
한편, 그 자신부터 잘 알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다양한 사유로 진술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장난삼아 거짓을 말할 수도 있다.
또는 단순히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해 없는 일을 꾸며 말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일부로 거짓을 말할 경우도 있다.
상대를 속여 이익이나 지위 등을 차지하기 위해 거짓을 말할 수도 있다.
또는 좋은 취지에서 거짓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임시방편으로 상대를 속여 좋은 상태로 이끌려고 거짓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형태로 다앙한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의 진위를 판정하려고 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어떤 기자가 외국을 다녀와 경험한 내용을 보고한다.
이 경우 자신은 이 내용을 직접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여러 경우와 가능성을 검토해본다.
그래서 과연 거짓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로 높은가를 검토해볼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사정이 비슷하다.
처음 부처님을 대하는 입장에서는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할 수 있다.
그런 경우 이런 여러 방안을 통해 검토해 볼 수 있다.
일단 현실 단면에서 직접 그 진위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내용부터 검토해본다.
그런데 이 영역에서부터 잘못된 판단이 많다고 하자.
그러면 나머지 영역도 거짓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정이 그렇지 않다.
한편, 거짓을 말할 가능성을 다양하게 검토한다.
이런 경우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런 가능성이 적음을 판단할 수 있다.
현실에서 부처님이 직접 이익이나 지위를 탐하지 않는다.
또 수행자에게도 역시 그런 상태를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세속의 이익이나 지위에 대한 탐심을 제거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반사적으로 이익을 구하는 가능성도 없다.
그런 점에서 세속에서 거짓을 말하게 되는 경우와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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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금취견의 제거
현실에서 성취해야 할 올바른 목표가 있다.
그런데 목표를 올바로 찾지 못한다.
또 올바른 목표를 찾아도 성취할 올바른 방안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엉뚱한 목표를 엉뚱한 방안으로 성취하려 임하는 경우가 많다.
수행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방안이 필요하다.
즉 계율이나 일정한 금지사항 등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게 된다.
이를 계금취견[戒禁取見 śīla-vrata-parāmarśa]이라 칭한다.
예를 들어 못에 올라 앉아 고행을 한다.
그러면 하늘에 태어난다고 잘못 여기는 경우와 같다.
이런 계금취견을 갖는다.
그런 경우 올바로 계를 성취하지 못한다.
그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함부로 행해 나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잘못된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오히려 생사고통을 더 장구하게 겪어나가게 된다.
따라서 수행을 올바로 성취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계금취견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수행목표와 성취방안의 관계는 결국 인과 문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부처님이 제시하는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판단을 얻을 수 있다.
즉, 4제법이나, 연기법 내용들을 통해 이를 제거한다.
다만 이 경우 의심[疑]의 항목에서 살핀 문제가 제기된다.
수행목표와 방안은 생사에 걸친 인과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 원인이나 결과를 이번 생에 경험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어떤 행을 과거에 닦았기에 지금 축생으로 태어나 사는가가 문제된다.
또는 지금 어떤 행을 닦아야 죽어서 3악도를 벗어나는가가 문제된다.
또 어떤 행을 닦아야 죽음 이후 하늘에 태어나게 되는가가 문제된다.
또 어떤 행을 닦아야 죽음 이후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는가가 문제된다.
이들은 모두 전생ㆍ현생ㆍ후생에 걸친 인과 문제다.
그래서 현생 안에서 이들 관계를 경험으로 확인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삿된 스승이나 가르침이 제시돼도 직접 진위를 확인하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 삿된 스승이나 가르침을 맹신하게 된다.
그러면 곧 잘못된 계금취견을 취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올바른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을 잘 선택해 믿어야 한다.
다만 각 주체는 여러 주장 가운데 어떤 것이 옳고 올바른지를 직접 확인하기 힘들다.
그런 경우 결국 의심(疑)의 제거 항목에서 살핀 방안에 의존해 이 문제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이는 중복을 피해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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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견의 제거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해 스스로 자신으로 여긴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뜬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손으로 가리켜보자.
그리고 또 자신의 몸 아닌 부분을 손으로 가리켜보자.
현실에서 이처럼 대부분 탁자나 꽃 바위와 자신의 몸을 구분한다.
결국 그런 부분이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다.
현실에서 이처럼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
이는 색ㆍ수ㆍ상ㆍ행ㆍ식 전반에 걸쳐 있다.
그런데 이런 판단은 잘못이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부분을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망상분별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집착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 묶인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잘못된 신견을 제거해야 한다.
현실에서 일정한 부분을 자신으로 여겼다고 하자.
그런 경우 우선 이런 판단이 잘못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 경우 우선 그렇게 자신으로 여긴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 본 정체는 무엇인가를 함께 잘 파악해야 한다.
한편, 그 부분은 그런 내용이 아님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다시 다음 문제를 추가로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긴 부분은 사실은 실질적 자신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자꾸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임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하는 배경사정을 다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그런 부분이 자신이 아님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하자.
그 경우 그 부분에 대해 자신이 잘못 이해했던 내용이 있다.
이 경우 이제 그런 내용에 해당할 부분은 대신 무엇인가를 또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판단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후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다시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이 상황을 비유로 들어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어떤 어리석은 이가 벽돌을 자신으로 잘못 여겼다.
이 경우 이것이 잘못임을 이해하려 한다.
그 경우 자신으로 여기고 대한 벽돌 부분이 있다.
이 경우 먼저 그 벽돌은 그 정확한 정체가 무엇인가를 파악한다.
그래서 그런 벽돌 부분이 자신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이 경우 그 벽돌을 처음 자신으로 잘못 이해했다.
그래서 자신에 해당하는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님을 이해한다.
그런 경우 자신은 이제 그 벽돌 대신 어떤 부분에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다음 문제가 있다.
이제 벽돌이 자신이 아님을 이해한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그가 벽돌을 자꾸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데에는 일정한 배경 사정이 있다.
그래서 그 사정이 무언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정들은 어떤 연유로 그렇게 주어지는가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 이제 벽돌이 자신이 아님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 경우 현실에서는 이후 어떻게 임해야 하는가를 다시 잘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갖는 신견의 문제도 이와 사정이 같다.
신견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우선 자신의 정체에 대해 올바로 관해야 한다.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은 색ㆍ수ㆍ상ㆍ행ㆍ식 전반에 걸쳐 있다.
그런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우선 이들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은 모두 그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즉 평소 자신으로 여긴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본 정체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따라서 그런 내용 안에 <그런 내용을 얻는 '자신'>이나 <외부세상>이 들어 있을 이치는 없다.
그래서 이런 판단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가운데 그 가운데 일부를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즉 자신이 눈을 통해 얻어낸 감각현실이다.
자신의 눈을 통해 마음에서 얻어낸 마음내용이다.
이런 마음 내용에 그 내용을 얻게 한 자신이 들어가 있을 이치는 없다.
그래서 평소 눈을 떠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자.
이런 부분은 사실은 참된 자신이 아니다.
이처럼 이들 내용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임을 이해한다.
그래도 여전히 일정 부분은 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긴다.
이런 경우 다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이들은 자신이 얻어낸 마음 내용이다.
그러나 이들 내용이 그처럼 파악되는 데에는 사정이 있다.
즉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로서의 자신이 뼈대로 있기에 그렇다.
이런 식으로 잘못 여긴다.
이런 경우 이에 바탕해 그런 내용을 실답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에 집착을 갖고 임하게 된다.
그러나 우선 참된 진짜로서 영원하고 고정된 뼈대로서 실체는 없다.
그런 것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런 변화현상도 일어날 도리가 없다.
또 그런 것이 설령 있다고 하자.
그런데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내용은 변화한다.
따라서 무상하다.
그래서 이런 현실의 자신은 이런 실체와 관련 맺을 이치가 없다.
그래서 이를 살필 실익도 없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먼저 기초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무아, 무자성]
한편, 다시 다음처럼 잘못 생각하기 쉽다.
즉, 마음 밖 본바탕에 그런 자신의 실재가 그처럼 있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게 된다고 여긴다.
이런 경우에도 이에 망상분별에 바탕해 그런 내용을 실답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에 집착을 갖고 임하게 된다.
그러나 한 주체는 자신의 마음이 관계해 얻는 내용만 얻는다.
자신이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런데 본바탕 실재는 자신의 마음과 관계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다.
그래서 한 주체는 그런 실재를 끝내 얻어낼 도리가 없다.
그래서 실재는 공하다. [공삼매]
그리고 본바탕에서는 그런 부분을 역시 얻지 못한다.
따라서 현실 내용은 침대에 누워 꾸는 바다 꿈과 같다.
따라서 꿈처럼 실답지 않다.
현실 내용은 본바탕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현실 내용이 본바탕 실재에 그처럼 있다고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 신견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실재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한다.
그리고 이에 집착을 갖는다.
따라서 이런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한편, 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의 관계도 이와 사정이 같다.
우선 일정 부분을 대해 그 부분이 자신이라고 분별을 일으킨다.
현실에서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손으로 가리켜본다.
이 때 자신이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이는 그런 부분이 곧 그런 분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또 이런 경우 그런 내용이 실답게 그런 부분에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실답게 여긴다.
그리고 집착을 갖는다.
이처럼 일정한 관념분별에 바탕해 현실에서 상(相)을 취해 가리킨다.
그런데 그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런데 그 부분을 대해 평소 일으키는 생각 분별은 관념 내용이다.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또한 관념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무상삼매]
그리고 이를 통해 아상과 아집을 기본적으로 제거한다.
한편, 4제법을 통해 다음의 관계도 함께 잘 관한다.
일정 부분을 잘못 자신으로 취한다.
그러면 이에 바탕해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번뇌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업을 행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는다.
따라서 이런 망집번뇌와 생사고통의 인과를 이해한다.
그래서 4제법과 연기법 등을 올바로 관한다.
한편 그런 현실 일체는 무상ㆍ고ㆍ무아ㆍ공이다.
이런 사정을 함께 잘 이해한다. [고제ㆍ고집제]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사실은 참된 자신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자꾸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임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정으로 그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는가를 다시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일정한 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이렇게 되는데에는 일정한 배경사정이 있다.
우선 이런 부분은 늘 그런 상태로 유지된다고 여긴다. [상일]
거리를 걷는다.
그러면 배경부분은 달라진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잠시 들고 나는 손님과 같다고 여긴다. [객진]
그러나 평소 자신으로 여긴 부분은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 부분은 앞과 달리 주인의 위치에 있는 자신으로 여기게 된다.
또 평소 이런 부분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다.
즉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이려는 뜻을 갖고 움직인다.
그 경우 평소 자신으로 여긴 부분만 따라 움직인다.
이런 경험을 반복한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자신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자신의 몸으로 여긴다.
그리고 사정이 그렇기에 이런 부분이 자신의 뜻처럼 즐거움을 준다고 여긴다. [주재]
한편, 그런 몸 부분을 다른 바위나 꽃에 댄다.
그러면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긴 부분에서 일정한 촉감을 느낀다.
한편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몸을 손을 댄다.
이 경우 양쪽 부분에서 모두 촉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긴 부분과 다른 부분은 특성이 다르다.
그래서 이런 몸 부분은 주관이 위치하는 부분으로 여긴다. [대상에 대한 주관]
그런데 자세히 이를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파악하게 된다.
우선 그런 부분이 늘 그런 상태로 유지되는가 부터 살펴보자.
갓난아이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정신적인 내용이나 육체적 내용을 살핀다.
그런데 어느 한 요소도 계속 유지되는 것이 없다.
이는 숨을 쉬고 내쉬는 찰나 간에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무상]
자신의 몸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선 자신의 몸 가운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머리카락을 자신의 뜻으로 움직이게 할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다.
한편, 자신의 몸에는 자신과 별개로 생활하는 다른 생명들이 많다.
예를 들어 내장에는 많은 세균이 있다.
자신의 몸에서 이처럼 미생물을 포함한 다른 생명을 모두 제거한다고 하자.
그러면 실질적으로 자신의 몸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
이 상황을 버스 운전사의 상황으로 비유할 수 있다.
버스 운전사가 운전을 한다.
그러면 버스와 버스에 탄 승객이 모두 다 운전사 뜻대로 이동해간다.
그래서 버스 운전사가 이들을 모두 자신의 몸으로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버스에 탄 승객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정 지점이 되면 그 버스에서 내리게 된다.
평소 자신의 몸으로 대하는 부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에는 작은 세균이나 기생충도 있다 .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는 별개로 따로 움직인다.
그래서 자신의 몸 부분이 모두 자신의 뜻대로 자재하게 되는 부분이 본래 아니다.
한편 이 부분은 전체적으로도 자신의 뜻대로 자재하게 되는 부분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몸으로 여긴 부분은 생로병사과정을 겪는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생로병사 과정을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겪는 것도 아니다. [고]
한편, 평소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에 자신의 감관이나 정신 주관이 위치한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이들은 사실은 모두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래서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자신의 주관이나 대상이 들어 있을 이치는 없다.
더욱이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자신이 들어가 있을 이치도 없다.
그래서 이들 판단은 모두 잘못이다.
더욱이 이들 부분은 자신이 집착을 가질 만큼 깨끗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사정도 관해야 한다. [부정]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긴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상ㆍ락ㆍ아ㆍ정의 상태가 아니다.
결국 4제법을 통해 이런 사정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무상ㆍ고ㆍ무아ㆍ부정]
이런 판단은 잘못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따로 자세히 실파기로 한다.
즉 아래에서 색ㆍ수ㆍ상ㆍ행ㆍ식 문제를 살핀다.
이 때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피기로 한다.
(참조▣- 현실에서 자기자신으로 보는 내용의 검토)
여하튼 이런 관찰을 잘 행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갖는 아상과 아집을 제거해가야 한다.
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이 자신이 아니라고 하자.
그래도 현실에서 그 부분은 다른 부분과 여러모로 특성이 다르다.
이미 앞에서 이런 사정을 보았다.
그래서 그 배경사정을 다시 살펴야 한다.
즉, 어떤 사정으로 그 부분이 그런 특성을 갖는지 사정을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취한다.
그래서 이를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분별은 사실은 후발적으로 발생한다.
즉, 현실에서 신견을 갖는다.
이런 신견은 분별기 이후에 형성된 신견이다. [분별기신견]
그리고 이런 잘못된 분별을 행한다고 하자.
그런 사정 때문에 그런 부분이 그런 특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 바삐 참석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자신의 몸에 대해 일일이 분별하지 못한다.
그런 상태로 바삐 길을 나섰다.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긴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분별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이런 부분이 떨어진 채 모임에 가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부분은 자신의 분별이 없어도 여전히 그런 일정한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분별기에 갖는 신견은 오히려 후발적이다.
이와 같은 자신에 대한 망상분별은 그 뿌리가 깊다.
태어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망집을 일으킨다.
즉, 근본적으로 근본정신과 제7식을 바탕으로 신견을 일으킨다. [구생기 신견]
그리고 이런 분별기 신견은 그런 망집에 바탕해 일으키게 된다.
즉 분별기 신견은 <구생기 신견>에 바탕해 일으킨다.
현실 표면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취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사실 일정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그 바탕으로 한다.
이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기호로 ))) 로 표시한다고 하자.
처음 근본정신과 제7식을 바탕으로 일정 부분을 취해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구생기 신견]
그리고 이후 이에 바탕해 각 기관을 분화 발달시킨다. [3능변]
그리고 이런 ))) 바탕에서 현실에 태어나 임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 의식 표면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 내용을 취해 자신으로 여긴다. [분별기 신견]
그래서 현실 의식표면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이런 경우 그런 망상분별은 사실 이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 )))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 )))는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다.
그리고 분별기 신견은 이에 바탕한다.
어느 정도 청소년기가 되면 스스로 자신이 무엇이라는 의식을 갖는다.
이런 내용이 분별기 신견이다.
결국 이는 근본적으로 출생 전에 가진 구생기 신견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이들 망집은 구생기 신견에 그 배경원인이 있다.
그런 상태로 태어난다.
그리고 이후 그런 상태로 생을 유지한다.
이런 경우 구생기신견은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이런 구생기 신견은 1생에 걸쳐 지속된다.
따라서 삶을 유지하는 한 이는 쉽게 제거할 수 없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그 제거가 쉽지 않다.
한편 분별기 신견은 위와 같은 사정으로 후발적으로 얻는다.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후발적인 신견을 방치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부작용이 심하게 발생한다.
이는 병의 경우와 같다.
어떤 병을 원인으로 통증을 겪는다.
그 경우 통증은 후발적인 증상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통증을 방치한다.
그러면 그 통증으로 일상생활을 잘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일단 그 통증부터 완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통증만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런 통증을 일으킨 원인까지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신견의 제거도 이와 마찬가지다.
분별기 신견은 구생기신견을 바탕으로 일으킨다.
그런데 분별기 신견을 방치한다.
그러면 이런 망집에 바탕해 계속 잘못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 묶인다.
따라서 일단 분별기 신견부터 먼저 잘 제거한다. [견혹]
즉, 그런 견해가 잘못임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앞에 나열된 내용을 잘 검토해 살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신견이 잘못임을 확고하게 인식한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자신이 아님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분별기 신견을 제거한다.
그렇더라도 신견과 관련된 번뇌가 남는다.
즉 이런 신견이 현실에서 곧바로 모두 제거되지 않는다.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긴 부분은 이전과 마찬가지다.
즉 그 부분에서 여전히 일정한 감각을 계속 얻게 된다.
또 그에 따른 일정한 감정이나 의지를 일으켜 갖게 된다.
평소 신견에 바탕해 일정한 업을 행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사정으로 여전히 그런 업을 행하게 되기 쉽다.
예를 들어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정 부분을 취해 자신의 몸이라고 여긴다.
이는 사실은 잘못된 분별이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 어떤 이가 바늘을 꼽는다.
그러면 감각으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 상황에서 그 부분이 자신이 아님을 반복해 살핀다.
그래도 그것만으로 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그에 따른 일정한 감정이나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반응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렇게 바늘을 찌른 상대가 있다.
그러면 그에 대한 분노를 일으킨다.
그리고 해치려는 의지를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업을 행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묶인다.
그런데 예를 들어 바늘을 꼽는 일이 치료를 위한 것이라고 하자.
이 경우 바늘을 꼽으면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몸을 비틀며 움직이기 쉽다.
또 상대가 실수하면 심한 원망을 갖기 쉽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가만히 있어야 치료가 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 통증에도 불구하고 평안히 참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통증을 느낀다.
그런 경우 일정한 의지를 갖게 된다.
즉 비명을 지르거나 몸을 움직이려는 의지를 갖는다.
그러나 이를 억제한다.
그리고 역시 가만히 평안히 참고 견딘다.
그리고 부동자세로 치료에 임해야 한다.
현실에서 신견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이런 수행도 이와 마찬가지다.
평소 잘못된 신견에 바탕해 일정한 업을 행한다.
그런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업을 중단해야 한다.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이 자신의 몸이 아님을 확고히 인식한다.
한편, 그런 업이 초래하는 고통의 인과 결과를 뚜렷이 인식한다.
그런 가운데 업을 중단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꾸준히 참고 견디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수행은 단순히 이론적 이해만으로는 쉽게 성취되지 않는다.
신견이 잘못임을 이치상 이해한다.
그래도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긴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에서 여전히 일정한 감각을 얻는다.
또 그에 바탕해 여전히 정서적 의지적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상태에서 꾸준한 수행 노력이 필요하다.
즉, 그런 감각적인 자극이 있다.
그래도 필요한 수행자세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또 정서적, 의지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즉 평소 그런 신견에 바탕해 업을 행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업을 중단한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계속 평안하게 참고 임해야 한다.
또 이와 반대로 이를 벗어날 수행방안이 있다.
이를 전념해 실천해야 한다.
결국 이런 수행 노력이 행해져야 한다.
그래서 감각적, 정서적, 의지적인 부분을 함께 제어해야 한다.
그런 꾸준한 수행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삶을 유지하는 한 구생기 신견은 쉽게 제거할 수 없다.
이는 생사과정을 겪는 과정에서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분별기 신견부터 확고하게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구생기 신견이 제거되지 않는 상태라고 하자.
그 경우 일정한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를 기본으로 갖게 된다.
이는 그런 신견을 바탕으로 갖게 된다.
그리고 이는 그 주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즉 그런 몸을 유지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일정한 음식을 섭취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하여 탐욕을 갖게 된다.
또 자신을 침해하는 것이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침해를 막아야 한다.
그래서 이에 분노를 바탕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리고 보복하는 행위를 해나게 된다.
생사현실에 처한 주체는 망상분별이 이처럼 뿌리 깊다.
그런 상태에서 현실에 임한다.
그래서 곧바로 이들 번뇌를 제거하는 것이 곤란하다.
그런 경우 우선 이치상 잘못된 분별부터 확고하게 제거한다.
그래서 잘못된 분별기신견부터 잘 제거한다. [견혹, 견도]
그리고 4제법을 통해 이런 사정을 올바로 이해한다.
그리고 다시 그런 상태에서 꾸준한 수행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신견은 그런 과정을 통해 끊어가야 한다. [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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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견의 제거(상견과 단견의 제거)
변견은 상(常)과 단(斷)의 두 극단[二邊]에 집착하는 견해다. [변집견邊執見, anta-grāha-dṛṣṭi]
상견(常見)은 세간(世間)과 자아(自我)는 사후(死後)에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견해다.
예를 들어 아트만[我, 자아]과 범천 등이 영원불멸[常]한 존재라고 여기는 경우와 같다.
반대로 단견(斷見)은 세간(世間)과 자아(自我)는 사후(死後)에 완전히 소멸된다는 견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면 이후 자신과 관련되어 이어지는 것이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여긴다.
이런 입장이 단견이다.
이는 인과의 상속, 업(業)의 상속 또는 생사윤회를 부정한다.
상견을 잘못 취한다.
그러면 이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현실을 대단히 실답게 여긴다.
그리고 집착을 갖고 임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한편, 단멸관을 잘못 취한다.
이런 경우 인과 문제를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관한다.
그래서 이런 한 생만 고려한다.
그런 가운데 삶에 임한다.
그리고 삶의 목표도 대단히 잘못 설정한다.
그런 경우 넓고 길고 깊게 관찰하는 입장과 대부분 반대가 된다.
그래서 일시적인 내용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임한다.
그래서 매순간, 세속적 감각적 쾌락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가운데 삶에 임하기 쉽다. [순세파 Lokāyata]
또 그 소멸에 대해서도 크게 슬픔과 분노의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인과를 대단히 짧게 관찰한다.
그런 가운데 짧은 기간에 국한된 잘못된 목표를 추구한다.
그리고 또 잘못된 방안을 취해 행한다.
그래서 이로 인해 생사과정에서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받아가게 된다.
결국 이런 잘못된 상견과 단견은 문제다.
이런 경우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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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견과 단견을 취하게 되는 배경사정
상견과 단견은 극단에 치우친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한 주체는 자신에 대해 집착한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취하는 상견과 단견이 특히 문제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상견과 단견을 취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그 배경사정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예를 들어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현실 내용 가운데는 있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내용도 있다.
예를 들어 불이나 폭발물과 같다.
또는 우유나 생선의 경우도 이에 준한다.
이들은 곧바로 썩어 없어진다.
그런데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금은보석이나 바위등과 같다.
그래서 예를 들어 눈을 떠 금을 본다.
그런 경우 금은 계속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그 모습과 성품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각 물체가 변화를 한다.
그래도 일정하게 산은 산, 물은 물, 바위는 바위로 분별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의 각 내용을 이처럼 일정하게 파악한다.
그런 경우 이들 안에는 영원한 실체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즉 영원하고 고정된 뼈대가 그 안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이런 내용을 얻게 된다고 여긴다.
한편 한 주체가 일정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해 스스로 자신으로 여긴다.
이런 부분도 마찬가지다.
짧은 기간 동안은 그런 부분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오랜 기간을 놓고 살핀다.
그러면 이 부분은 아이에서 노인으로 생로병사과정을 거친다.
그렇지만, 또 이런 다양한 모습을 모두 한 주체로 일정하게 분별하게 된다.
그래서 그 안에 영원하고 고정된 참된 자신의 뼈대가 있다고 또 여긴다.
즉, 참된 자신의 주체가 이 안에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그처럼 매 순간 그런 내용을 얻게 된다고 여긴다.
한편, 이런 내용은 앞에 살핀 신견과도 관련된다.
그런데 신견을 살필 때 선천적인 구생기 신견 문제를 살폈다.
그런데 상견도 이런 구생기 상견이 역시 문제된다.
즉,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일으키는 망상분별이 문제된다.
즉, 처음 근본정신과 제7식을 바탕으로 임한다.
그런 가운데 일정 부분을 취해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구생기 신견]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앞과 같은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구생기 상견]
즉 그런 부분이 영원한 존재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이를 집착해 취한다.
한편 단견을 잘못 취한다.
이 배경사정을 살펴보자.
현실 내용 가운데는 오랜 기간 유지되는 내용도 있다.
예를 들어 금이나 산, 바위 등과 같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곧바로 없어지는 내용도 많다.
예를 들어 우유나 생선 등과 같다.
이들이 일정시간이 지나 없어진다.
그런데 곧바로 다시 원상회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다음 생각을 갖게 된다.
어떤 것이 한번 사라진다.
그러면 이는 아주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기기 쉽다.
한편 자신이나 타인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짧은 기간을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한 주체는 일정하게 그 모습을 유지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생사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경우 다시 그 모습을 이전처럼 대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다음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면 자신은 사라진다.
그러면 이는 아주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임하게 된다.
한편 단견도 상견처럼 구생기 단견이 역시 문제된다.
즉,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런 망상분별을 일으킬 수 있다.
즉, 처음 근본정신과 제7식을 바탕으로 임한다.
그런 가운데 일정 부분을 취해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구생기 신견]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앞과 같은 망상분별을 일으킬 수 있다. [구생기 단견]
그러면 역시 마찬가지 부작용을 일으킨다.
그래서 대단히 짧은 기간에 국한해 잘못된 목표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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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견과 단견의 제거방안
상견과 단견의 두 극단에 치우쳐 임한다.
그러면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이를 제거해야 한다.
이런 상견과 단견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먼저 유무 문제부터 살펴야 한다.
이들 문제는 결국 유무의 극단 문제와 성격이 같다.
예를 들어 있고 없음을 분별하려 한다.
그러면 최소한 그것을 문제 삼을 어떤 a를 전제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a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 a의 유무, 생멸, 상단을 다 함께 논의할 수 없다.
이를 이미 무상상매ㆍ공삼매의 내용에서 살폈다.
유무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있고 없음의 분별 자체가 관념영역 안의 문제다.
그런데 감각현실 영역에서 그런 관념 내용에 일치한 상(相)을 본래 얻을 수 없다. [무상삼매]
더욱이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 역시 얻을 수 없다.[무아, 무자성]
그리고 본바탕 실재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실재는 공하다. [공삼매]
그래서 있음[有] 없음[無]의 분별 자체가 본래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또한 같은 사정으로 '없다가 있음'[生], '있다가 없음'[滅]
또한 '늘 영원히 없음', '영원히 있음'[常] '있다가 아주 없음'[斷]
이런 내용들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모두 망상분별에 해당한다.
즉 유ㆍ무, 생ㆍ멸, 상ㆍ단 등의 분별이 모두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경전에 제시된다.
...
이 안에서는 오히려 눈의 영역 등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그것의 항상함과 덧없음이 있겠는가.
...
(『대반야바라밀다경』 제146권 제30품 교량공덕품 44)
따라서 상(常) 무상(無常)의 분별을 모두 떠나야 한다.
이는 다른 분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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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상ㆍ고ㆍ무아ㆍ부정을 기초적으로 제시하는 사정
근본적으로는 유(有)ㆍ무(無), 상(常)ㆍ단(斷), 생멸(生滅) 이들 견해를 모두 떠나야 한다.
또한 무상(無常)ㆍ상(常), 고(苦)ㆍ락(樂), 무아(無我)ㆍ아(我), 정(淨)ㆍ부정(不淨) 등 치우친 분별도 모두 떠나야 한다.
그러나 수행 예비단계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ㆍ부정(不淨) 이런 측면을 먼저 강조한다.
예를 들어 3현 가운데 별상념주 총상념주의 경우가 이와 같다.
몸의 부정(不淨)ㆍ감수의 고(苦)ㆍ심의 무상(無常)ㆍ법의 무아(無我)를 먼저 관한다.
그래서 각 경우 경전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어떤 사정으로 서로 다른 내용이 제시되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생사현실에서 망상분별- 업-생사고통의 인과관계가 있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일단 3악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일단 업부터 먼저 중단시켜야 한다.
그런데 업은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해 행한다.
따라서 일단 그런 업을 일으키게 하는 집착부터 일단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부분 '있는' 내용에 집착을 갖는다.
즉 유(有)에 먼저 집착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이 영원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보다 강한 집착을 갖게 된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여긴다.
영원하다[상常]ㆍ즐겁다[락樂]ㆍ참되고 실다운 진짜다[아我]ㆍ깨끗하고 좋다[정淨] [상ㆍ락ㆍ아ㆍ정]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집착한다.
그래서 먼저 이들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임시적으로 이들 견해를 제거하는 방편을 취한다.
그래서 부정(不淨)ㆍ고(苦)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의 측면을 관하게 한다.
현실에서 일정한 관계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러나 이들 내용 일체는 그 관계를 떠나면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를 통해 현실 내용이 영원하다는 견해를 제거하게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떠 금을 본다.
그러면 그런 금은 늘 영원히 그대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그에 대해 집착을 갖는다.
그러나 이렇게 눈으로 얻는 내용 일체는 눈을 감으면 사라진다.
그래서 이들 일체는 그런 측면에서 영원하지 않다.
즉, 무상(無常)하다.
그래서 일단 현실에 갖는 집착을 완화시킨다.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다.
생사과정에서 3악도의 생사고통을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단멸관이 문제된다.
단멸관을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죽음 이후 자신과 관련된 일은 아주 없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 경우 이에 바탕해 생사현실 문제를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관한다.
그리고 잘못된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역시 잘못된 방안으로 추구한다.
그래서 이로 인해 생사과정에서 장구하게 생사고통에 묶인다.
이런 경우는 일단 그런 단멸관을 제거해야 한다.
이처럼 단(斷)에 치우친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무량겁에 걸친 생사윤회를 강조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상락아정의 상태를 제시하게 된다. [열반경]
예를 들어 눈으로 본 금 모습이 있다.
이는 눈을 감으면 사라진다.
그런 경우 이제 금은 반대로 사라져 아주 없어진다고 잘못 여긴다.
이런 사정으로 단멸관을 취한다고 하자.
그러나 다시 눈을 떠 대한다.
그러면 다시 그 금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한번 사라진다고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단멸관의 입장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생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사와 관련해서도 상견과 단견을 제거해야 한다.
우선 자신의 자아가 영원불멸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런 상견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또 반대로 단멸관도 잘 제거해야 한다.
한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런 가운데 한 주체가 죽음으로 생을 마친다.
그렇다고 죽음 이후 자신과 관련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또 다음 생을 이어간다.
이는 생사윤회 현실이다.
이는 망집에 바탕해 전개된다.
즉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생사윤회를 이어간다.
그래서 생사 문제를 짧게 관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생사에 걸쳐 전개되는 업과 과보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한번 행한 업은 무량겁을 두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쳐 그 과보를 받게 된다.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상견과 단견의 극단적인 2 변을 모두 떠나야 한다.
결국 한 주체의 생사과정에 대해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생사윤회의 과정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한 주체는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 가운데 일부분을 취해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이런 내용을 매순간 얻어내게 된다.
여기에는 배경 사정이 있다.
이는 일정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 )))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매생 매 순간 이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임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매순간 표면 의식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는 매순간 얻어진 내용 일부를 취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매순간 표면에서 얻는 내용이 변화해간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죽 이어 나열한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한생 안에서 자신의 생로병사의 과정의 모습이 된다.
그러나 생사 전후에서도 그 사정이 이와 같다. [생사윤회]
즉 이런 근본정신 자체는 생사과정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생사 전후 세계와 생명 형태를 달리한다.
그런 가운데 상속이 전개된다.
그래서 생사 전후에 걸쳐 이처럼 표면에서 얻는 내용이 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취해 매순간 자신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죽 이어 나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이 한 주체의 생사 윤회과정의 모습이 된다.
그런데 이런 생사과정을 살핀다고 하자.
이 때 무엇을 진정한 자신으로 놓고 살피는가가 다르다.
그리고 이에 따라, 매번 판단이 달라진다.
먼저 자신에 대해 상견을 취하는 입장을 생각해보자.
그래서 이 경우 근본정신에 바탕한 구조와 기제 )))를 기준으로 한다고 하자.
그래서 이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긴다.
그런 경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가 그런 참된 자아인 것으로 여기기 쉽다. [보특가라, 인상]
즉 이를 생사윤회의 주체로 여긴다. [보특가라補特伽羅, 인人, 삭취취數取趣. pudgala ]
그런 경우 참된 자아가 이런 형태로 늘 존재한다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 상견을 잘못 취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도 '참된 진짜' 자신은 역시 아니다.
즉 실체로서의 자신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상견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해심밀경』 1권 3. 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
한편, 한 생의 의식 표면에서 얻는 내용을 기준으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내용이 그것이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이 가운데 일부분을 취해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런데 엄격하게 이런 내용만을 참된 자신으로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예를 들어 숨을 한번 들이쉬고 내쉰 전후를 살펴본다.
엄밀하게 보면 호흡하나로도 자신의 육체적 내용은 달라졌다.
또 생각이 한번 일으키고 사라지는 전후를 살펴본다.
엄밀하게 보면 이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정신적 내용은 달라졌다.
따라서 찰나 전후로도 계속 유지되는 자신은 세우기 곤란하다.
이런 경우 당연히 상견을 유지하기 힘들다.
오히려 이런 입장에서는 매 찰나 단견의 입장을 취해야 할 듯하다.
이제는 자신에 대해 단견을 취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일부분을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자신으로 여기는 모습이 있다.
그런 경우 자신이 5살 때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또 반대로 자신이 5살 되던 때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 순간 자신으로 여기는 내용을 기준으로 잡아보자.
그런 경우 그런 내용은 지금 이 순간 없다.
몇 십 년이 지나면서 그런 내용은 사라져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모두를 다 자신으로 여긴다.
즉 어린아이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변화한 각 내용을 다 자신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 사정이 무언가를 살펴야 한다.
-- 인과연속관계
이들이 단순한 인과 연속관계로 이어져서 그렇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 주체가 변화해간다.
그런데 그 전후에 인과관계에 있는 내용을 모두 나열한다.
그래서 이 모두를 한 주체로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한 주체가 섭취하는 채소나 음식이 있다.
이것도 현재 자신의 원인요소가 된다.
그래서 이들도 자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한 주체가 배설행위를 한다.
그런 경우 이 배설물도 자신과 인과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도 자신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한편 정신적으로는 한 주체가 지식을 습득한다.
그런 경우 이런 지식이나 책 내용도 현재 자신과 인과관계가 있다.
그래서 이들도 자신의 정신 내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자신이 지식을 말하거나 글로 전달한다.
그런 경우 이들 내용도 자신과 인과관계에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도 자신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들 내용을 모두 자신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 공통요소
한편, 이 변화과정 전후에 공통한 요소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즉, 어떤 하나의 요소가 계속 핵심으로 들어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찾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사정으로 이들 각 모습을 한 주체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갓난 아이 시절의 모습과 노인이 된 모습들이 있다.
엄밀히 보아 이들은 그 정신적, 육체적인 내용이 모두 다르다.
이들은 결국 생사윤회 과정의 일부다.
이 사정을 이미 앞에서 제시했다.
즉, 현실에서 한 주체가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데 이는 일정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 )))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는 매순간 얻어진 내용 가운데 일부를 취한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죽 이어 나열한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한생 안에서 자신의 생로병사 과정의 모습이 된다.
그래서 갓난아이와 노인을 모두 한 주체의 모습으로 관하게 된다.
그런데 한 생의 범위를 놓고 살핀다고 하자.
이 경우 그렇게 어느 정도 일정한 자신이 유지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런 대강의 내용을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평소 그의 몸으로 여겨 대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생사과정에서 그런 부분은 사라져 없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죽어 화장터에서 화장을 했다.
그러면 이후 그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리고 이후 그런 몸 부분과 관련되어 이어지는 내용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이후 그 주체는 아주 없어진 것으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단멸관]
그러나 이런 단멸관은 잘못이다.
즉 근본정신은 생사과정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생사 전후 세계와 생명 형태를 달리한다.
그런 가운데 상속이 전개된다.
그리고 생사 전후에 걸쳐 표면에서 얻는 내용이 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죽 이어 나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이 한 주체가 윤회해가는 생사윤회의 모습이 된다.
다만 그 내용은 인간과 축생 하늘중생 이런 형태로 차이가 심하다.
그래서 한 생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 전후의 달라진 모습을 다 함께 하나의 주체로 보기 힘든 것뿐이다.
망집에 기초해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러면 매 순간 이런 내용을 취한다.
그리고 자신으로 여긴다.
그런 가운데 삶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 [혹-업-고의 연기관계]
즉 현생에서 일정한 업을 행한다.
그러면 후생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3악도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이를 생사과정에서 잘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3악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경전에 다음 게송이 전한다.
가령 백겁을 지내어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나니
인과 연이 마주칠 때에
과보를 저절로 받게 되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제18권)
이런 3악도 생사고통을 일단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단 10선업부터 잘 닦는다.
그래서 악업을 중단한다.
그래서 우선 3악도를 벗어난다.
그리고 인간과 하늘을 오가는 상태가 된다. [인천교]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이후 근본적으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 경우 일단 계부터 잘 성취한다.
그리고 업의 장애를 제거한다.
그리고 복덕자량을 구족한다.
그런 바탕에서 삼매와 지혜를 닦는다.
그리고 근본번뇌를 제거한다.
이를 위해 우선 상(常)과 단(斷)의 입장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상견을 취한다.
그러면 자신에 집착을 심하게 갖는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에 처한다.
반대로 단견을 취한다.
그러면 너무 짧게 관한다.
그리고 한 생에 국한해 목표와 방안을 찾는다.
그래서 이로 인해 생사과정에서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상견과 단견을 일단 벗어나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을 정진해야 한다.
상(常)에 치우친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 무상(無常)을 먼저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상견을 벗어나도록 한다.
그러나 한편 단(斷)견에 치우친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또 반대로 루량겁에 걸친 생사윤회를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내용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양 입장이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잘못 여길 수 있다.
즉 이에 대해 다음처럼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상견이 잘못이라고 하자.
그러면 단견을 취해야 할 듯하다.
그런데 단견이 또 잘못이라고 하자.
그러면 반대로 상견을 취해야 할 듯하다.
그래서 갈피를 잡지 못하기 쉽다.
그리고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어떻게 보면 입장이 모호해 보인다.
그래서 각 입장을 오락가락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상대의 입장 때문이다.
상대가 2분법상의 망상분별을 행한다.
그리고 상대가 판단 기준을 매번 달리한다.
그런 사정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유ㆍ무, 생멸, 상ㆍ단 문제를 근본적으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 상견과 단견을 우선 급하게 제거해야 한다.
우선 당장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일으키는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초적으로 제시된 내용이 있다.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ㆍ부정(不淨)이 그 내용이다.
위와 같은 내용이 제시된 배경사정이 있다.
각 주체는 상견과 단견으로 당장 부작용을 겪는다.
그래서 일단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임시방편으로라도 이런 상견과 단견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업을 중단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망집 상태에서도 쉽게 이해할 방편을 취한다.
그리고 위와 같은 내용을 방편상 기초적으로 제시한다.
한편, 상대가 2분법상의 망상분별을 행하는 상태다.
그런 경우 일단 그 상대에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상대가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내용들이 방편상 기초적으로 제시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제시된 배경사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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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법상의 유무 분별과 망집
어떤 이가 2분법상의 망상분별을 행한다.
이런 경우 다음처럼 매번 잘못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먼저 현실에서 무엇인가 집착을 일으키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 수 있다.
이를 a 라고 표시해보자.
현실에서 본래 그런 a 자체를 얻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이미 무상삼매와 공삼매를 살피면서 보았다.
[참고 ▣- 무상삼매 ]
감각현실에서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무상삼매]
또한 그에 해당한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도 없다.
한편 본바탕 실재에서도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공삼매]
그래서 그런 내용은 단지 관념 영역에서만 있다.
그런 내용일 뿐이다.
그런데 유(有)ㆍ무(無), 상(常)ㆍ단(斷), 생멸(生滅), 무상無常)등의 여러 분별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단지 관념영역에서만 있다.
즉, 관념분별 내용일 뿐이다.
그런데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
그러면 일단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a라고 여기며 임한다.
그리고 현실에 그런 a가 있다고 여긴다.[有]
그리고 그에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 묶인다.
그런데 우선 생사고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 그런 업을 중단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그에 대한 집착을 우선 당장 제거해야 한다.
본래 있음[有]과 없음[無] 이런 두 판단이 다 함께 잘못이다.
그래서 사실은 이 유무 양변을 함께 떠나야 한다.
그러나 일단 현실에서는 있다[有]는 분별을 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일으키는 집착의 폐해가 가장 크다.
그래서 일단 있다[有]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떠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먼저 '있음[有]'을 부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방편상 그것의 무[無]를 제시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 경우 없음을 통해 있다[有]는 집착은 일단 제거한다.
그런데 상대가 여전히 망집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면 상대는 여전히 2분법상의 분별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위 내용을 통해 다시 '없음'의 입장을 취한다.[無]
그리고 다시 무[無]에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일체 생사현실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임하게 되기 쉽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다시 이런 부작용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있음[有]을 방편상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유무 양변의 치우친 분별을 함께 떠나야 한다.
그런데 상대가 이를 통해 끝내 망집에서 벗어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유무 2분법상 분별에 매여 있다고 하자.
그러면 오히려 있음[有]과 없음[無] 양변만 치우쳐 오락가락하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유와 무의 분별 문제에서부터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본래 이런 방편을 취하는 사정이 있다.
그것은 상대가 그런 망집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즉, 상대가 망집에 바탕해 2분법상 분별에 매여 있다.
그래서 그런 상대에 맞추어 임해야 한다.
즉 그런 상태의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사정으로 앞과 같은 방편적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있음[有]과 없음[無] 각 분별 집착을 일단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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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법상의 상단 분별과 망집
2분법상의 분별과 망집에 바탕해 임한다.
그러면 나머지 상(常)ㆍ단(斷), 생멸무상(生滅無常)에서도 문제가 나타난다.
유무 분별의 극단은 상견과 단견에서 다시 나타난다.
먼저 다음처럼 분별하는 경우가 있다.
-- <시간상 지금 있다. 그리고 이후 또 있다. 그런 형태로 죽 늘 있다.>
또는 반대로 무의 극단을 취한다.
그러면 다시 단견을 갖게 된다.
이 경우 다음처럼 분별한다.
-- <지금 있다. 그런데 이것이 한번 사라진다. 그리고 이후 전혀 없게 된다.>
이렇게 분별한다.
이들은 유무 관념으로 조합한 복합관념이다.
그런데 이런 복합관념으로 다른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경우들이다.
<없고 없고 죽 늘 없다>
<없다가 한번 있다. 그러면 이후 죽 있다>
이런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현실적으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무언가 유무를 논의하려 한다.
그러면 일단 유무를 논의할 a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없고 없고 죽 늘 없다>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 경우 그런 논의를 할 a가 없다.
그래서 논의대상으로 처음부터 되지 않는다.
또 현실에서 이에 집착과 업을 일으킬 경우가 드물다.
한편 <이전에는 없다. 그런데 있게 된다. 그러면 그 이후 죽 있다>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없다> 이 부분은 논의대상이 되지 않는다.
논의를 할 a가 없다.
그래야 이를 전제로 유무 논의가 행해지기 곤란하다.
다만 <있게 된다. 그러면 그 이후 죽 있다>는 부분은 상견에 포함시킬 수 있다.
단순히 유무로 조합해 여러 복합 관념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현실적으로 논의할 가치가 비교적 적다.
다만 생멸은 현실적인 논의대상이 된다.
생은 <무에서 유>로의 변화다.
멸은 <유에서 무>로의 변화다.
무언가 a가 '늘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고 하자.[常]
이 경우는 단순히 유에 집착하는 경우보다 더 이를 실답게 여긴다.
그리고 더 집착한다.
그래서 폐해가 한층 심하다.
그런데 앞에서 보았듯, 있고 없음 분별 자체가 잘못이다.
따라서 늘 있다는 상견은 마찬가지로 잘못이다.
그래서 상견을 부정해야 한다.
그리고 단견도 마찬가지다.
'있다가 없다. 그 이후로는 죽 아주 없다'는 견해를 취한다고 하자.[斷]
이 역시 없음에 치우친다.
그리고 짧은 기간만 고려한다.
그리고 잘못 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래서 이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있고 없음 분별 자체가 잘못이다.
그래서 결국 상견과 단견을 모두 부정해야 한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생멸 무상을 제시해 부정하게 된다.
생멸이 일단 이해하기 쉬운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상견과 단견을 제거한다.
생(生)은 <'없다가 있게 됨'>을 의미한다.
멸(滅)은 <'있다가 없게 됨'>을 의미한다.
즉, <'있다가 없다.'> 그리고 <'없다가 있다'>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상견과 단견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생하고 멸한다>. 이를 반복한다. => 그래서 늘 있는 것이 아니다.
<멸한다. 그러나 또 다시 생한다> => 그래서 한번 사라진 후 죽 없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상견과 단견의 망집번뇌를 일단 제거한다.
그러나 이는 일단 상견과 단견을 제거하는 임시적 방편이다.
상견과 단견의 폐해가 심하다.
그런데 생멸은 일반 입장에서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사정으로 사용하는 임시적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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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법상의 생멸 분별과 망집
생멸(生滅)이나 무상(無常)을 관한다.
그러면 이를 통해 상견과 단견의 망집번뇌를 일단 제거할 수 있다.
생멸의 경우 극단적 입장으로는 찰나생멸설도 있다.
다만 무상은 반드시 그런 의미는 아니다.
즉 반드시 찰나에 생하고 멸하는 경우만 무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1겁 동안 있다가 찰나만 없다.
이런 경우도 무상(無常)이다.
물론 찰나생멸도 무상이다.
그러나 여하튼 생멸을 통해 상견과 단견을 제거할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이 둘은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망집에 바탕해 2분법상의 분별을 행한다.
그런 경우 이를 통해 다시 생멸(生滅)이나 무상(無常)에 집착한다.
그런 경우 생멸이나 무상의 분별도 문제다.
이 역시 유무의 잘못된 분별에 바탕한다.
이런 경우 본바탕 실상에 대해 올바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현실 내용의 정체도 역시 올바로 판단하지 못한다.
결국 생사현실에서 유무와 생멸 분별 자체를 떠나야 한다.
『중관론』 등에서는 이런 사정으로 8부중도를 제시한다.
즉, 불생불멸(不生不滅)ㆍ불상부단(不常不斷)ㆍ불일불이(不一不異)ㆍ불래불출(不來不出)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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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설로 표현한 제일의제와 망집
실상과 현실의 본 정체를 파악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본래 생멸과 생사를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래서 생멸을 부정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2분법상의 분별에 바탕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유무에 대한 망상 분별 자체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위 불생(不生) 불멸(不滅)의 표현에서도 다시 불(不)에 집착한다.
그래서 마치 실상은 생하지 '않음'이 그처럼 있다고 오해한다.
또는 반대로 다음처럼 오해한다.
예를 들어 무언가가 생하고 멸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자.
예를 들어 허공과 같은 것이다.
그런 경우 그런 사정으로 그것이 곧 실재 내용이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위 표현이 나타내고자 한 내용을 잘못 이해한다.
현실 일반적 입장에서 분별하여 옳다고 보는 내용이 있다.
이를 세제(世諦)라고 칭한다.
반면 실재의 입장에서 언설분별을 떠난 진리가 있다.
이를 제일의제 또는 진제(眞諦)라고 칭한다.
그런데 언설을 통해 제일의제를 나타낸다고 하자.
그런 경우 언어 표현은 본래 2분법적인 바탕에 있다.
그래서 이로 인해 여전히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경우 2분법적인 분별 안에서 이런 2분법적 자세를 벗어날 방편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래서 다시 불생(不生) 불멸(不滅) 표현 앞에 비(非)를 붙여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불생(不生) 비불생(非不生)이런 표현을 한다.
이는 본래 그런 내용을 모두 다 함께 말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처음 불생(不生)의 표현으로 일정한 오해를 한다.
그래서 다시 비(非)를 앞에 붙인다.
그래서 그런 망집을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길장(吉藏)의 3종중도(三種中道)설에서는 다음 내용도 제시된다.
먼저 현실측면에서 실재의 공함을 중도적 입장에서 살핀다.
그래서 본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무생멸(無生滅)인 생멸(生滅)을 제시한다. [세제중도]
한편 다시 무아 공인 실재 측면에서, 현실을 중도적 입장에서 함께 살핀다.
그래서 생멸(生滅)인 무생멸(無生滅)을 제시한다. [진제眞諦 중도]
한편, 앞에 설한 내용을 다시 다 함께 부정한다.
이는 언어사려 분별을 모두 떠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비생멸(非生滅)이면서 비무생멸(非無生滅)이라고 제시한다.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中道) 비속비진중도(非俗非眞中道)](『중론소』 권1)
경전과 논서에서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 본 취지는 상대에 맞추어 망집 분별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래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 표현을 사용한다.
언어표현은 그런 취지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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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무기와 망집
불생불멸(不生不滅) 이런 표현이 제시된다.
또는 비생멸(非生滅), 또는 비무생멸(非無生滅) 이런 표현이 제시된다.
그러나 2분법상의 망집을 벗어나오지 못할 상태라고 하자.
그런 경우 여전히 혼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유ㆍ무, 상ㆍ단, 무상, 생멸, 이런 2분법 분별체계 안에서 헤매 돌아다니게 된다.
그래서 끝내 망집 번뇌를 벗어나오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언어적 설명도 효용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런 경우는 부처님은 무기설의 입장을 취하게끔 된다.
즉 유무 문제에 일체 언급을 하지 않는 상태로 임하게 된다.
이런 성격의 논의에 14무기설이 있다.
즉 망집에 묶인 이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세간(世間)이 영원한가. 무상한가. 영원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영원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은가.
[世間常, 世間無常, 世間亦常亦無常, 世間非常非無常]
세간(世間)은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가.
[世間有邊, 世間無邊, 世間亦有邊亦無邊, 世間非有邊非無邊]
여래(如來)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如來死後有, 如來死後無, 如來死後亦有亦非有, 如來死後非有非非有]
명(命)과 신(身)은 하나로 동일한가. 아니면 다른가. [命身一, 命身異]
( 『잡아함경』 제16권 408, 제34권 962, 『중아함경』 제60권 전유경(箭喻經) 제10)
상대가 망집에 묶인 가운데 이런 질문을 제기한다.
그런 경우 부처님께서 어느 형태로든 일체 답을 하지 않는다.
부처님 입장은 다음과 같다.
...
이는 이치(義)에 합당하지 않다.
법(法)에 합당하지 않다.
또한 범행(梵行)의 근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지혜(智)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覺)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열반(涅槃)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설하지 않는다.
...
이런 견해를 갖거나 갖지 않거나 생로병사와 슬픔ㆍ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생사고통의 해결에는 4제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4제법은 위와 같은 논의와 같지 않다.
그래서 4제법을 설한다.
그리고 이것이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은 말하지 않고, <말하여야 할 것>은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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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의 입장에 맞춘 망집제거 방편
부처님께서 상(常)과 무상(無常)에 대해 언제나 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잡아함경』 첫 부분에서부터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설함을 볼 수 있다.
"색(色)은 무상(無常)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正觀]이니라."
(『잡아함경』 제1권)
한편,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는 위 14무기설과 비슷한 내용에 대해 나온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또 대할 수 있다.
즉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다양한 판단을 한다.
‘나(我)와 세간은 항상하다’[아급세간我及世閒 상常]
‘나와 세간은 덧없다’[아급세간我及世閒 무상無常]
‘나와 세간은 항상 하기도 하고 덧없기도 하다’[아급세간我及世閒 역상역무상亦常亦無常]
‘나와 세간은 항상한 것도 아니고 덧없는 것도 아니다’[아급세간我及世閒 비상비무상非常非無常]
‘나와 세간은 끝이 있다[유변有邊]’[아급세간我及世閒 유변有邊]
‘나와 세간은 끝이 없다[무변無邊]’[아급세간我及世閒 무변無邊]
‘나와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아급세간我及世閒 역유변역무변亦有邊亦無邊]
‘나와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아급세간我及世閒 비유변비무변非有邊非無邊]
‘목숨[명자命者]이 곧 몸이다’[명자즉신命者卽身]
‘목숨은 몸과 다르다’[명자이신命者異身]
‘여래는 돌아가신 뒤에 계신다’[여래사후如來死後 유有]
‘여래는 돌아가신 뒤에 계신 것이 아니다’[여래사후如來死後 비유非有]
‘여래는 돌아가신 뒤에 계시기도 하고 안 계시기도 하다’[여래사후如來死後 역유역비유亦有亦非有]
‘여래는 돌아가신 뒤에 계신 것도 아니고 안 계신 것도 아니다’[여래사후如來死後 비유비비유非有非非有]
이와 같이 다양하게 집착한다.
그리고 이것만이 진실이요 나머지는 다 어리석고 허망하다고 한다.
...
(『대반야바라밀다경』 305권 41. 불모품 ②)
그리고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부처님께서 설하신다.
...
즉, 색 수ㆍ상ㆍ행ㆍ식이 진여(眞如)와 같다.
법계(法界)와 같다.
법성(法性)과 같다.
허망하지 않다.
변하지 않는다.
분별이 없다.
형상이 없다.
작용(作用)이 없다.
희론(戱論)이 없다.
얻을 바도 없다.
...
(『대반야바라밀다경』 305권 41. 불모품 ② (K0001 v3, p.33c01-p.41a01)
이렇게 제시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부처님께 다음처럼 질문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즉 어떤 경우는 이에 대해 답을 하신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답을 하지 않으신다.
그 연유가 무엇인가.
(『잡아함경』 961.유아경 915. 도사씨경)
결국 앞과 같은 사정이다.
상대가 망집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언설을 통해 망집을 벗어날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망집이 너무 심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떤 언설을 통해서도 2분법적인 극단에 끝내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설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의 상태에 따라서 약의 처방을 달리한다.
그 사정은 이미 살폈다.
생사현실에서 망집 번뇌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아나간다.
현실에 망집번뇌-업-생사고통의 인과관계가 있다. (혹업고)
이론상으로만 이 문제를 살핀다.
그러면 가장 근본적으로 망집번뇌를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
그런데 현실적으로 근본 망집의 뿌리가 깊다.
그래서 그 제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상대가 망집번뇌에 깊이 묶인 상태다.
그런 경우는 일단 그 망집을 그대로 둔다.
그 상태에서 3악도의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것이 일단 급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업을 중단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 업을 행하게 되는 번뇌부터 먼저 제거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이후 제거가 쉬운 번뇌부터 하나하나 제거해간다.
그런데 이 순서를 뒤바꾼다.
그러면 오히려 처음부터 망집번뇌를 제거하기 힘들게 된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심하게 받는 상태에 처한다.
그런 경우 오히려 이후 번뇌제거가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수행의 처음 단계에서는 기초적 번뇌제거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일단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경우 상단에 치우친 번뇌부터 제거한다.
이런 견해가 집착을 강하게 갖게 한다.
그런 경우 일단 일체가 무상이라고 설한다. [제행무상]
그리고 이에 의해 일단 상견과 단견을 제거한다.
그래서 그에 바탕한 업을 중단한다.
그런 경우 처음 목표 상태는 성취된다.
그래서 상대가 그런 상태에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렇게 설하게 된다.
그러나 14무기설 경우를 보자.
이 경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상대가 먼저 4구분별로 나누어 질문을 한다.
그런 상태의 상대에게 무상을 설한다고 하자.
그 경우 무상으로 상견은 제거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다시 무상을 취해 치우쳐 고집하게 된다.
그래서 끝내 4구 분별체계에 갇힌다.
그리고 망집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경우 언설분별로 어떤 형태로던 답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래도 이를 통해 상대가 망집 번뇌를 제거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일체 언설로 답을 하지 않게 된다.
결국, 각 상대의 상황과 상태가 각기 다르다.
그런데 한편, 기본 수행을 잘 성취한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 계를 비롯해 정과 혜의 수행이 잘 성취된 상태다.
그리고 이미 생사고통 묶임에서 벗어난 상태다.
그런 경우 이제 근본적 번뇌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그래서 생사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그런 경우 이와 관련된 제일의제를 잘 증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런 일체 분별이 본래 망상분별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무상(無常)ㆍ상(常), 고(苦)ㆍ락(樂), 무아(無我)ㆍ아(我), 정(淨)ㆍ부정(不淨)
그리고 유(有)ㆍ무(無), 상(常)ㆍ단(斷) 생멸(生滅) 무상(無常)에 대해서도 분별을 다 함께 떠나야 한다.
그래서 깊은 제일의제에 대해 설하시게 된다.
그런데 이런 차이는 결국 설법을 듣는 상대의 상태에 따른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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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집에 바탕한 62견
상견과 단견에 관련하여 외도들의 견해가 다양하게 많다.
그래서 이를 다양한 형태로 62견으로 묶어 나열한다. [六十二見, dvāṣaṣti dṛṣtayaḥ]
이들은 앞에서 살핀 14무기설과도 관련된다.
경전과 논서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외도의 62견이 제시된다.
먼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3세(世)에 각각 5온(蘊)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낱낱이 4구(句)의 이견(異見)을 배열한다.
과거 5온에 상(常) 무상(無常)과 관련된 다음 4구를 배당한다. [常ㆍ無常ㆍ常無常ㆍ非常非無常]
현재 5온에 변(邊) 무변(無邊)과 관련된 다음 4구를 배당한다. [有邊ㆍ無邊ㆍ有邊無邊ㆍ非有邊非無邊]
미래 5온에 시후 여래 존부, 생사왕래와 관련된 다음 4구를 배당한다. [如去ㆍ不如去ㆍ如去不如去ㆍ非如去非不如去]
그리고 다시 신(神)과 신(身)이 동일한가. 다른가의 문제를 배당한다.
(참조 『마하반야바라밀경』 권14 불모품 제48, 『대지도론』 권70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소』 )
이는 앞에서 살핀, 『대반야바라밀다경』의 내용과 관련된다.
『대지도론』은 『마하반야바라밀경』의 해설서다.
그리고 『마하반야바라밀경』은 『대반야바라밀다경』을 축약한 판본이다.
그래서 큰 차이는 본래 없다.
다만 이를 62견 형태로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구조로 다만 4구만 달리 배당한 형태도 있다.
즉 과거에 如去 등 4구, 현재에 常등 4구, 미래에 有邊 등 4구를 배당하는 형태다.
또는 5온과 아(我)의 관계로서 4구를 만들어 살피는 형태도 있다.
다음 형태로 분별한다.
색(色)이 곧 아(我)다. [色是我]
색을 떠나 아(我)가 있다. [離色而有我]
색은 크다. 아(我)는 작다. 아(我)는 색 가운데 머물러 있다. [色為大,我為小,我住於色中]
아(我)는 크다. 색은 작다. 색은 아(我) 가운데 머물러 있다. [我為大,色為小,色住於我中]
그리고 다시 수ㆍ상ㆍ행ㆍ식에 위 형태를 적용한다.
한편, 또는 본겁본견의 설 18종, 말겁말견의 설 44종으로 62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본겁(本劫)은 과거시를 말한다.
그리고 본견은 과거에서 상견(常見)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말겁(末劫)은 미래시를 말한다.
그리고 말견은 미래세에서 단견(斷見)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다만 각 경전과 논서에서 개별 명칭에 표현차이가 있다.
『유가사지론』 제87권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나열된다.
옆 [괄호]에 『장아함경』의 표현을 부기해 놓기로 한다.
18제악견취(十八諸惡見趣) - 18견
-상견론(常見論) -[包括常論] - 4견
-일분상견론(一分常見論) [亦常亦無常論]- 4견
-유변무변상론(有邊無邊想論) [邊無邊論] - 4견
-불사교란론(不死矯亂論) [種種論]- 4견
-무인론(無因論) [無因而有論]- 2견
44제악견취(四十四諸惡見趣) - 44견
-유상론(有想論)ㆍ유견상론(有見想論) [包括有想論]- 16견
-무상론(無想論) -[無想論] 8견
-비유상비무상론(非有想非無想論) [非有想非無想論]- 8견
-단견론(斷見論) -[斷滅論] 7견
-현법열반론(現法涅槃論) -[現在泥洹論] 5견
(『유가사지론』 제87권, 『장아함경』 권14 범동경 21, 『불설범망육십이견경』, 『대승의장』 제6권,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99권)
이외에도 경론에 따라 달리 62견을 나열하는 경우가 있다. [ 대승법원의림 권4 (남본) 『열반경』 권 23)
그래서 이런 망집에 바탕한 입장들이 상당히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이들은 극단적으로 유ㆍ무, 상ㆍ단에 치우친 잘못된 견해이다.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망상분별을 잘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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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유무분별과 망집
극단적으로 유무 상단에 치우친다.
그런 가운데 잘못된 견해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
그런데 여전히 현실에서는 이들이 문제된다.
예를 들어 망집에 바탕해 현실에 임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자신이나 영희를 대한다.
또는 예를 들어 바위나 금을 대한다.
이 경우 현실에 이들이 있다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없다고 해야 하는가.
이들이 영원하다고 하는가.
있다가 사라지면 아주 없어지는 것으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생멸한다고 할 것인가.
이런 등등의 논의가 여전히 일어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올바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결국 이 모두는 잘못된 유무 분별에서 비롯한다.
상ㆍ단, 유변ㆍ무변 등의 분별도 모두 이 유무 판단을 그 요소로 한다.
유무 분별을 시간적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극단에 치우친다.
그러면 상단의 견해를 취하게 된다.
<'있고 또 있고 늘 있음'>이 상에 해당한다.
또는 <'있다가 없게 된다. 이후 죽 없다'>는 단멸관에 해당한다.
또 공간적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극단에 치우친다.
그러면 공간과 관련해 유변ㆍ무변의 견해를 취한다.
한편 <'없다가 있음'>이 생이다.
그리고 <'있다가 없음'>이 멸이다.
그리고 생멸함이 무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들 문제를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가장 기본 되는 유ㆍ무 판단부터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있음[有]'과 '없음[無]'을 문제 삼는 다양한 차원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분별과정에서 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이 이미 앞에 본 다양한 입장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래에서 유ㆍ무 판단에 대해 기본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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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무판단의 논의 취지 - 실다움 여부의 판단
유무문제를 행한다.
이는 단순히 지적호기심 때문에 살필 수도 있다.
그런데 수행에서 생사고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 경우 생사고통은 번뇌 - 업 - 생사고통의 관계를 통해 받는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예방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먼저 이를 받게 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현실 내용에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현실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판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영역에 그 내용이 그처럼 그대로 있는가 여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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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답지 않음의 판단
현실에서 침대에 누워 바다 꿈을 생생하게 꾸었다.
그 꿈 자체는 생생하다.
그리고 꿈에서는 바다가 있다고 여긴다.
꿈에서는 그것이 진짜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 바다는 꿈에서는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바다가 있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꿈을 실답지 않다고 여긴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꿈은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만 임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임시성]
즉 그런 조건과 상황을 떠나면 얻을 수 없다. [조건의존성]
한편, 꿈 내용은 정작 꿈을 꾼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다.
즉 꿈 내용을 얻는 영역 외에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다른 영역에서의 불가득]
한편 평소 일정한 내용은 일정한 여러 성품을 갖는다고 여긴다.
그런데 꿈 내용은 그런 성품을 갖지 못한다.
즉 꿈 내용에서는 그에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성품들을 얻지 못한다. [가짜성품]
예를 들어 꿈에서 보는 바다 모습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어떤 측면에서는 바다처럼 여겨진다.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그림이나 사진에서 보는 바다와 성격이 같다.
바다에 배를 띄울 수도 없다.
짜지도 않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꿈은 실답지 않다고 한다.
생생하게 꾸었다해도 꿈은 실답지 않다.
이 경우 꿈이 실답지 않음을 판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꿈속에서만 꿈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꿈이 실답지 않음을 파악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워 자면서 바다 꿈을 꾼다.
이 경우 바다 모습을 꿈에서 생생하게 꾼다.
그런 경우 이것이 실다운 바다인가를 판단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꿈 안에서 꿈 내용만 살펴서는 알 수 없다.
꿈을 꾼 본바탕인 현실이나 다른 영역의 내용을 함께 살펴야 한다.
이 경우 꿈은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 꾸었다.
침대가 놓인 현실은 꿈을 꾼 바탕이 된다.
그래서 침대가 놓인 현실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을 서로 대조해 살펴야 한다.
그런 결과 꿈이 살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바다 꿈은 실답지 않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표현은 다음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선 그런 바다 꿈을 생생하게 꾸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는 침대가 놓인 현실에 아무 것도 없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꿈은 그 상황에서 생생하게 꾸었다.
=> 즉 꿈은 꿈 영역에 그처럼 '있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그래서 꿈내용도 '있다'.
한편 현실도 그러그러하게 '있다'.
즉, 현실은 현실대로 현실 영역에 그처럼 있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따라서 침대가 놓인 현실에 아무 것도 없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작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 그런 꿈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런 꿈 내용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반대로 꿈 영역에도 현실 내용은 없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즉, 현실 영역에 꿈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있지 않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통해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꿈은 꿈 속에서 꾸어서 그렇게 꿈 속에 '있다'.
그러나 <실답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뜻이다.
그래서 유무 문제에서 이들 각 내용을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한편 현실과 꿈의 정체를 서로 대조해본다.
그리고 이 현실과 꿈 내용을 서로 대조 비교해 본다.
그런 경우 현실에 비추어 보면 꿈은 서로 엉뚱하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 내용과의 정체판단.-이다ㆍ아니다 사실판단]
꿈은 현실이 아니다.
또 현실은 꿈이 아니다.
그래서 이는 참된 존재라고 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 판단하게 된다.
꿈은 가짜다.
그리고 허망하다.
그런 의미에서 '없는' 내용이라고도 표현한다.
즉 이는 꿈은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의미한다.
즉, 꿈은 실답지 않게 '있다'.
그래서 꿈이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따라서 꿈내용을 현실에 관통시켜 이해하면 곤란하다.
현실도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먼저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이 경우 그 관념이 집착을 가질 만큼 실다운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래서 그 관념의 유무 문제를 살핀다.
이 경우도 앞 경우와 마찬가지다.
그런 경우 그 내용이 그 영역에 그처럼 얻어져 있음만 판단한다고 하자.
그러면 부족하다.
관념 영역에서 관념은 그렇게 일으켜 얻고 있다.
따라서 관념은 관념영역에 그처럼 있다.[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어떤 경우 감각현실이 관념을 일으킨 바탕이 된다.
이 경우 그런 감각현실도 감각영역에서 그처럼 얻어진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그러나 이는 본 유무논의의 초점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다음과 같은 유무판단과 성격을 혼동하면 안 된다.
여기서 관념의 유무논의는 다음에 초점이 있다.
즉, 이런 관념이 다른 영역에도 그처럼 있는가 여부가 주된 초점이다.
그런 관념이 다른 영역에도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만큼 실다운 내용이다.
그러나 반대로 다른 영역에 있지 않다.
그러면 그것은 실답지 않다.
그런 경우 그런 사정으로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경전과 논서에서는 이런 취지로 주로 유무판단을 하게 된다.
즉, 그 내용이 다른 영역에 그처럼 그대로 있고 없음 여부를 주로 판단한다.
그래서 유무 논의의 초점은 대부분 이 부분을 초점으로 한다.
그래서 이 경우 먼저 감각현실영역에 관념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핀다.[한 내용의 다른 영역 유무판단]
또 더 나아가 본바탕 실재 영역에 관념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된다.
그래서 각 경우 유무논의의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성격이 다른 유무논의를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여기서 경전에서 주로 논의되는 유무논의를 기호로 표시해 명확히 이해해보자.
여기서 본바탕 실재를 #, 감각현실을 ○, 관념을 ■이라고 표시하기로 하자.
그런데 경전에서 일정한 관념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거나, <없다>고 제시한다.
이는 다음을 나타낸다.
우선 이는 현실에서 그런 감각현실○이나 관념■을 얻지 못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일정한 관념■을 그처럼 일으켜 얻는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그런 형태로 있다.
그러나 감각현실○에서 그런 관념■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본바탕 실재#에서도 그런 관념■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관념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관념과 감각현실의 관계는 결국 다음처럼 제시할 수 있다.
감각현실에 관념은 얻을 수 없다.
관념에서도 감각현실은 없다.
한편 관념을 다른 영역 내용과 대조해본다.
이런 경우 각 내용은 서로 엉뚱하다.
이는 어떤 한 내용을 다른 영역의 내용과 비교해 정체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다ㆍ아니다의 사실판단을 행한다.
즉,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관념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 일정한 감각현실에서 관념을 일으킨다.
그래서 일정한 관념은 일정한 감각현실을 떠나 얻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서로 완전 무관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현실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편 관념과 실재 관계를 다음처럼 살필 수 있다.
실재에서도 이들 관념내용은 얻을 수 없다.
관념에서도 본바탕인 실재를 얻을 수 없다.
실재는 관념이 아니다.
관념도 실재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실재를 떠나 관념을 얻는 것도 아니다.
결국 관념은 관념영역에 있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그래서 명자뿐이다.
이렇게 제시한다.
이는 그런 관념이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제시한다.
이런 관념은 본바탕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도 아니다.
한편 관념은 실체도 아니다. [법무아, 승의무자성]
즉 참된 진짜라고 할 영원불변한 실체가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마치 꿈이나 환영과 같다.
그래서 참된 진짜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이는 실답다고 볼 만한 진실한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관념을 놓고 이런 내용을 살폈다.
그런데 감각현실을 놓고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다음처럼 살필 수 있다.
관념에 감각현실은 없다.
감각현실에서도 관념은 얻을 수 없다.
관념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그러나 감각현실은 또 일정한 관념을 떠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서로 완전 무관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현실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편 각 감각현실 사이에서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종류의 감각현실은 우선 다른 종류의 감각현실에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한 종류의 감각현실은 다른 감각현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색은 소리의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또 소리는 색의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색은 소리가 아니다.
소리도 색이 아니다.
그리고 각 감각현실 색ㆍ성ㆍ향ㆍ미ㆍ촉 각각의 관계가 서로 이와 같다.
그러나 각 감각현실은 또 완전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일정한 모습을 볼 때 소리를 반복해 듣는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은 동시 부대 상황의 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현실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편 감각현실과 실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실재에서 이들 감각현실은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에서도 본바탕인 실재는 얻을 수 없다.
실재는 감각현실이 아니다.
감각현실도 실재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실재 본바탕을 떠나 감각현실을 얻는 것은 아니다.
감각현실은 그런 실재를 바탕으로 얻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재 본바탕과 감각현실은 서로간에 완전 무관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서로 맞닿아 즉해 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현실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판단을 통해 감각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어떤 내용이 실다운 내용인가를 판단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실체의 유무도 함께 문제된다.
즉, 이 경우 이들 내용이 꿈과 다른 참다운 진짜인가를 살펴야 한다. [실체의 존부문제]
그런 실체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꿈과 다른 성격의 것이다.
따라서 실다운 것이다.
그러나 실체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꿈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그래서 실다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 실체의 존부가 문제된다.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내용의 정체를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집착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각 내용이 '실재나 다른 영역에' 있는가를 함께 잘 살펴야 한다.
따라서 경전과 논서에서 이런 측면에서 유무논의를 행한다.
이런 경우 다음 측면의 유무 논의가 주된 초점이다.
즉 그런 내용이 '다른 영역'에 정말 있는가 여부가 초점이다.
어떤 내용이 실다운가를 판단함에 이런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유무를 논의하게 된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 유무판단]
이 경우 다음 측면의 유무 논의와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각 내용이 그 자체의 각 영역에 그처럼 있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또는 각 내용이 그 자체의 영역에서 그처럼 얻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유무를 살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앞의 유무논의와 성격이 다르다.
예를 들어 관념이 관념영역에 그처럼 '있다'.
감각현실이 감각현실 영역에 일정하게 '얻어진다'.
본바탕 진여 실재가 공한 상태로 '여여하게 있다'.
이런 내용도 유무판단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측면의 유무논의는 앞에서 살핀 유무논의와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이들을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생사현실에 본래 생멸과 생사가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이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부를 취해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나머지를 외부 세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그런 A의 생멸이나 생사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이 경우 그가 생멸이나 생사가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내용으로 여기며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각 영역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본바탕 실재 영역도 사정이 그와 같다.
그리고 어느 영역에도 이에 해당한 참된 진짜 실체는 없다.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생멸함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영원함이나 아주 없어짐도 있다고 여긴다.
또 무언가가 서로 같고 다름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여기저기 오고 감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유로 이들 내용은 본래 다른 영역에서 모두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는 꿈과 현실의 관계와 성격이 같다.
이는 그런 관념이나 감각현실을 얻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각 영역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따라서 그런 영역에 그런 내용은 있다.
그러나 다른 영역에서는 이를 얻을 수 없다.
한편 이들에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없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 같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그래서 유무 상단 등의 논의가 행해진다고 하자.
이런 경우 어떤 측면에서의 유무 논의인가를 잘 이해하고 대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위해 다양한 유무판단을 살피기로 한다.
♥Table of Contents
▣- 다양한 유무판단
현실에서 어떤 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대하며 관념영역에서 이렇게 묶고 저렇게 나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그 부분을 자신으로 여긴다. [자신]
또 마찬가지로 일정부분은 영희나 철수라고 여긴다. [인간]
또 일정부분은 양이나 개나 나무라고 여긴다. [유정물]
또 일정 부분은 바위나 물이라고 여긴다. [무정물]
이 경우 이들 각 부분은 모습과 특성이 다른 것으로 분별된다.
그리고 이처럼 현실에 임한다.
그런데 경전 등에서 그런 영희나 자신은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리고 그 생멸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오고감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는 이들이 어떻다고 제시하는 것인가를 살펴보자.
현실에서, 주로 존부를 논의하게 되는 다양한 영역이 있다.
그래서 먼저 이를 표시해보자.

[img1]
08pfl--image/존재의_영역_설명.png
♥Table of Contents
▣- 존재가 문제되는 다양한 영역
존재 여부가 특히 문제되는 주된 영역이 있다.
이를 다음같이 나열해볼 수 있다.
우선 감각기관을 통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는 감각현실[색ㆍ성ㆍ향ㆍ미ㆍ촉]!이다.
그래서 이들 감각현실이 먼저 문제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따라서 관념분별@이 문제된다.
이들은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정확히 살피면 한 주체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 내용이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이 관계하지 않고도 실재하는 내용을 추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실재#라고 표현한다고 하자.
이 경우 실재 영역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또 이들 내용에 꿈과 달리,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가 있는가도 문제된다.
한편 이런 각 영역의 내용을 가리키기 위해 언어%가 사용된다.
예를 들어 유무 판단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각기 어떤 영역의 무엇을 문제 삼는가부터 잘 살펴야 한다.
이 사전에는 '바위'가 들어 있다. [언어로서의 바위]
저 산에 '바위'가 보이고 있다. [감각현실로서의 바위, 시각정보, 색]
'바위'는 물체에 포함된다. [관념으로서의 바위]
'바위'의 실상은 공하다. [실재로서의 바위]
참된 실체로서의 '바위'는 없다. [실체로서의 바위]
이들 각 문장에서 언어표현만으로는 각 부분의 바위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각 문장에서 같은 표현이 가리키는 영역이 크게 차이가 있다.
따라서 유무 논의에서 먼저 이점을 명확히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잘 구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서로 논의의 대상에 대해 혼동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어떤 사전에 글자로서 '바위'가 있는가를 논의한다.
그런데 이를 산에 바위가 있는가 없는가의 논의로 이해한다.
그러면 서로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유무 논의를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어떤 영역의 무엇을 문제 삼는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한편, 이들 논의는 주로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을 기초로 전개한다.
이 경우 정신의 각 영역과 구조를 다음처럼 표시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이들 논의는 다음에서 어떤 부분에 대한 논의인가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img8]
08pfl--image/8식-8.jpg
위 그림에서 각 번호는 다음을 의미한다.
1은 눈으로 얻어낸 내용을 의미한다. [시각정보, 좁은 의미의 색]
2는 귀로 얻어낸 내용을 의미한다.[청각정보, 성]
3은 코로 얻어낸 내용을 의미한다.[후각정보, 향]
4는 혀로 얻어낸 내용을 의미한다.[미각정보, 미]
5는 몸으로 얻어낸 내용을 의미한다.[촉각정보, 촉]
6은 분별로 얻어낸 관념내용을 의미한다.[관념분별, 법]
7은 제7식 내용을 의미한다.
8은 제8식 내용을 의미한다.
현실에서 어떤 것의 있음[有]'과 '없음[無], 또는 얻을 수 없음, 얻을 수 있음을 논의한다.
이 경우 위에 나열한 내용 외에도 다양한 내용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존재를 분류할 때 5위 75법, 5위 100법 등을 나열하기도 한다. [색법, 심법, 심소법, 색불상응행법, 무위법]
이들 항목이 다 이런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유무 판단에서 논의 초점이 되는 주된 내용이 있다.
아래에서는 이런 부분만 간단히 나열해 살펴보기로 한다.
즉 기초적인 내용만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Table of Contents
▣- 일반적 입장에서의 유무 문제
♥Table of Contents
▣- 관념에 대응하는 감각현실 유무문제
일반 현실에서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주로 다음 측면에서 유무를 문제 삼는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
빛도 비추고 있다.
사물이 무언가에 가려져 있지도 않다.
그래서 무언가 감각현실 내용을 얻는다.
그래서 그 일정 부분을 대해 예를 들어 '꽃'이라는 관념분별을 자신이 일으킨다.
이런 경우 그 부분에 꽃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꽃이 '없다'라는 표현은 다음 상태를 나타낸다.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
빛도 비추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물도 보인다.
따라서 만일 그런 꽃이 거기에 있다고 하자.
그러면 앞과 같은 형태로 일정한 모습이 보일 것이다
즉 꽃이라는 생각을 일으킬 일정한 감각현실이 얻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경우 거기에 꽃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기에 꽃이 '없다'고 표현한다.
현실에서 문제 삼는 유무 판단은 대부분 이런 성격의 유무판단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있다 없다는 표현에 담는 의미도 대강 위와 같다.
현실에서 이처럼 있다 없다를 판단하는 과정으로는 두 경우가 있다.
먼저 유무를 문제 삼는 내용이 있다.
이런 내용을 먼저 관념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이후 감각현실에서 그에 상응한 내용이 있는가를 찾는다.
그런 형태로 이 유무를 문제 삼기도 한다.
또는 먼저 감각현실을 얻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후발적으로 무언가의 유무를 판단하기도 한다.
이를 일단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Table of Contents
▣- 관념으로 감각현실을 찾아 유무를 판단하는 경우
현실에서 철수가 공원에서 영희를 찾는다.
그런 경우 먼저 관념영역에서 찾을 영희의 몽타주를 떠올린다.
이는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이는 관념내용이다.
그런 가운데 공원을 둘러보며 찾는다.
이 경우 눈을 떠 얻는 내용은 감각현실이다.
그런 감각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찾는다.
즉 영희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는다.
그런데 찾아아내지 못한다.
그런 경우 영희는 공원에 없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철수는 공원에 영희가 '없다'고 보고 한다.
그런데 철수가 그처럼 찾다가 영희가 공원에 '있다'고 보고 한다.
그 상황에서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그에게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철수가 손가락으로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이는 철수가 그런 감각현실 부분이 곧 그런 관념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또 그런 부분에 그런 영희가 그처럼 '있다'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평소 손가락으로 그렇게 가리킨다.
♥Table of Contents
▣- 감각현실을 먼저 대한 후 유무 판단하는 경우
한편 감각현실을 먼저 얻는다.
그런 상태에서 후발적으로 유무를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를 □이라고 표시해보자.
그런데 그 각 부분에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일정 부분을 대해 영희라고 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경우 그 부분에 영희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각 부분을 대해 영희라는 분별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누군가 영희가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영희는 보지 못했다.
여기에 영희는 없다.
이런 식으로 답하게 된다.
♥Table of Contents
▣- 일반적 유무판단시 유무 양변을 모두 떠나야 한다는 입장
일반적 입장에서 유무판단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유무판단은 대부분 망상분별이 된다.
이 사정은 무상해탈삼매 부분에서 자세히 살핀다.
[참고 ▣- 무상삼매 ]
따라서 내용이 많이 중복된다.
그러나 현실의 유무 분별과정에서 망상분별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결국 이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중복되더라도 다시 자세히 살피기로 한다.
현실에서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데 그 일정 부분을 대해 영희라고 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경우 그 부분에 영희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또 영희가 없다고 판단한다.
먼저 영희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후, 공원에서 그 영희를 찾아 나선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영희라고 '가리킬'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찾아진다.
그런 경우 그 부분에 영희가 그처럼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찾아보아도 찾아지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또 영희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이런 유무의 판단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래서 앞과 같은 상태에서 있다거나 없다고 판단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영희가 '있다'는 경우 집착을 더 많이 갖는다.
그리고 또 대부분 이런 있음의 판단에 바탕해 더 많이 업을 행한다.
그래서 '있음'의 분별과 그로 인한 집착의 폐해가 훨씬 크다.
그래서 우선 다음처럼 말하게 된다.
이 상황에 영희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제시한다.
한편 상대가 유무 2분법상의 분별에 매여 있는 경우라고 하자.
그러면 위와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자 하는 취지로 '없다'고도 표현한다.
물론 두 표현은 엄밀히 같은 표현은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영희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즉 이 상황에서 있고 없음의 분별을 모두 떠나야 한다.
그러나 방편상 그처럼 말한다.
그래서 일단 '있다'는 판단을 떠나게 하려는 취지다.
이런 경우 일반적 입장에서는 의문을 갖게 된다.
분명 영희에 해당하는 모습(감각현실)을 자신이 얻고 있다.
그런데 왜 영희가 이 현실에 있을 수 없다고 하는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영희가 '있다'고 분별함은 망상분별이다.
그래서 이 상황에 영희는 '있지 않음'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는 이 상황에서 다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그러그러한 '감각현실'을 얻지 못함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또 그 감각현실 가운데 일정부분을 대한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관념' 분별(예: 영희)을 일으킨다.
따라서 그 상황에서 그런 분별을 일으키지 못함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 그러그러한 '관념'을 얻는다.
그래서 그런 분별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또 반대로 일정한 관념으로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을 가리킬 수 있다.
그래서 그렇게 일정한 부분을 가리킬 수 없음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고 있다.
관념도 일정한 내용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논의의 초점이 아니다.
다만 이 경우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관념이 들어 '있지 않음'을 제시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런 성격의 유무논의가 중요하다.
처음에 공원에서 영희를 찾아 나선다.
이 상황에서 눈을 감는다.
그런 경우에도 영희에 대한 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이는 관념내용이다.
즉, 영희라는 관념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그의 관념영역에 그런 일정한 관념이 있다.
그러나 유무논의에서 이는 처음부터 문제되지 않는다.
즉 어떤 관념이 관념영역에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여기서 논의의 초점이 아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토끼에게 뿔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토끼의 뿔의 존부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 경우 그런 토끼뿔의 관념을 일으킨다.
그런 경우 그런 관념은 일단 관념영역에서는 있다.
그런데 이는 유무 논의의 초점이 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경우는 그런 관념을 일으키는 감각현실이 있는가가 초점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관념이 감각현실 부분에 있는가 여부가 초점이다.
이처럼 유무논의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
한편 눈을 뜬다.
그런 경우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즉,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사실 또한 논의의 초점이 되지 않는다.
감각현실을 얻는 상황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
이는 당연하다.
그래서 이는 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유무 논의 핵심은 다음이다.
처음 어떤 생각 A를 떠올린다.
그것은 영희일 수도 있다.
또는 책일 수도 있다.
또는 안경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일단 관념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현실에서 찾아 나선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일반적인 경우에서는 <그런 관념을 일으키는 일정한 감각현실>상(相)이 있는가가 초점이다.
그런데 여기 유무논의는 그런 논의가 아니다.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자신이 찾는 그런 관념내용 A가 있는가 없는가가 초점이다.
그런데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관념 내용 A는 본래 '있지 않다.'
이는 그런 A가 실답지 않은 내용임을 파악함에 초점이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정확히 살핀다고 하자.
여기서 유무를 문제 삼는 A는 관념이다.
한편 '있고 없음' 분별 자체도 관념영역 내에서 행하는 관념분별이다.
그런데 감각현실 영역에는 본래 관념 일체를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감각현실 영역에 대해서는 그런 관념 A 의 유무 판단 자체를 본래 세울 수 없다.
그런 사정으로 감각현실 영역에 대해서는 <있고 없음>의 분별을 모두 떠나야 한다.
그래서 그런 관념 A 는 감각현실 영역에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리고 한편,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부분이 본 유무 논의의 핵심이다.
♥Table of Contents
▣- 망상분별 부분이 논의핵심이 되는 사정
경전과 논서에서 유무판단을 행한다.
이런 경우 주로 실재에 그런 내용이 있는가가 초점이다.
이 경우는 주로 공삼매와 관련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행하는 유무판단도 관련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유무논의의 핵심은 다음이다.
감각현실 부분에 그가 찾는 일정한 관념 A에 해당한 내용은 '있지 않다'.
이 부분이 그런 경우의 유무논의의 초점이다.
그리고 이는 무상삼매와 관련된다.
[참고 ▣- 무상삼매 ]
그런데 이 부분이 유무논의의 초점이 되는 데에는 사정이 있다.
우선 진리를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 경우 현실의 사정이 위와 같다.
즉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관념내용은 '있지 않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는 그런 내용이 '있지 않다'.
그래서 이를 먼저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또 다음 측면에서 중요하다.
현실의 본 사정이 위와 같다.
그런데 일반 현실에서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즉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켜 임한다.
즉, 현실에 그런 내용이 '있지 않다'.
그런데도, 그런 내용이 거기에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바로 이 잘못된 판단이 생사고통과 관련된다.
이 판단은 생사고통 문제와 관련이 깊다.
만일 이 판단이 생사고통 문제와 큰 관련이 없다고 하자.
즉, 감각현실에 그런 내용이 있다거나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어느 경우나 생사고통 문제와 별 관계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논의에 그친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어떤 이가 어떤 내용에 대해 옳게 판단할 수도 있다.
또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곧 생사고통을 겪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과 같은 경우 잘못된 유무판단을 행한다.
이 경우 단순히 그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 경우 그에 바탕해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런 경우 이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 묶인다.
그리고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간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런 판단과 생사고통은 서로 인과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일정한 분별을 행한다.
그러면 일정한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일정한 업을 행한다.
그러면 일정한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일정한 분별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또 일정한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 일정한 업을 행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또 일정한 생사고통에 묶이지 않게 된다.
이런 관계가 있다.
그런 경우 처음의 분별과 생사고통은 인과관계가 있다.
물론 위 경우 일정한 판단 자체가 곧 생사고통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 판단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겪어나간다.
그래서 이들은 인과로 묶여 있다.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원인을 제거해 예방하는 것이 쉽다.
그래서 앞과 같은 분별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처음 행한 분별이 옳은가 그른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행하는 유무분별이 옳지 않다.
예를 들어 그런 내용이 정말 있다고 하자.
그래서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생사고통 문제 해결은 방안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유무분별이 오히려 옳다고 하자.
그리고 그 분별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겪는다.
이런 상황이라고 하자.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생사고통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생사고통 제거 노력은 기울여야 한다.
다만, 처음 행한 유무분별이 옳다.
그런 경우라면 그 부분은 진리차원에서 문제 삼을 수 없다.
다만 이 경우 생사고통 해결을 위해 다른 방편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이후의 단계를 차단하는 방안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현실에서 먼저 취하는 기초 수행방안 내용과 같다.
그런데 이 부분의 옳고 그름을 자세히 살핀다.
그런 경우 그 부분이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즉 이런 유무분별은 옳지 않다.
즉 그런 내용이 그 영역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잘못 판단한다.
그래서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
생사고통을 받는 데에는 일정한 인과관계가 있다.
즉, 망상분별~집착 - 업 - 생사고통의 관계다.
그래서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받는다.
이 경우, 일단 처음 판단 자체가 잘못이다.
그런데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는다.
따라서 생사고통을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근본적으로 처음의 잘못된 판단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된다.
다만 현실에서 이는 정작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근본 망상분별의 뿌리가 깊다.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는 쉬운 차선책부터 먼저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일단 이 망상분별 부분은 그대로 두게 된다.
즉, 처음 분별이 옳지 않다.
그렇더라도 그런 분별을 그대로 둔다.
그리고 그런 분별을 그대로 전제한 상태로 임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이후 예방노력을 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는데 있어서 먼저 다음 방편을 취한다.
즉 일단 다양한 방편으로 그런 업을 중단하도록 이끈다.
예를 들어 일단 믿음에 바탕해 10선업을 행하게 한다.
그리고 계를 지키게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업을 중단한다.
한편, 집착이 업을 행하게 한다.
그래서 다양한 방편으로 그런 집착을 제거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기초적으로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가르침이 제시된다.
즉 집착을 갖게 되는 일정한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다음 판단을 하게 한다.
그런 내용은 더럽다. [부정] => 집착을 가질만한 내용이 아니다.
이들은 고통을 주는 내용이다. [고] => 집착을 가질만한 내용이 아니다.
이들은 영원하지 않다. [무상] => 집착을 가질만한 내용이 아니다.
이들은 참된 진짜가 아니다. [무아] => 집착을 가질만한 내용이 아니다.
이런 내용이 제시된다.
그래서 이런 판단을 통해 집착을 벗어나도록 이끈다.
그것이 성취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업도 쉽게 중단한다.
그래서 그런 노력으로 일단 생사고통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런데 이런 방안들은 처음 망집을 그대로 전제한 상태에서 행한 것이다.
즉 처음 분별을 그대로 옳다고 받아들인 상태에서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처음 유무분별이 옳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경우 생사고통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다고 하자.
그러면 앞에 제시한 기초적 수행방편이 바로 그 내용이 된다.
그래서 이 두 경우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런 기초적 수행이 잘 성취되었다고 하자.
그래서 생사고통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다.
그런 경우 이제 생사의 묶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본 수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본 수행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근본적인 망집 번뇌의 제거를 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근본적인 망집 제거를 꾀하게 된다.
이 경우는 이전 단계와 다르다.
처음에는 망상분별 판단이 옳던 그르던 일단 그대로 받아들였다.
망상분별의 뿌리가 깊다.
그래서 쉽게 곧바로 제거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분별이 일단 옳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이후 단계 부분을 차단했다.
즉 집착과 업을 제거함에 치중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생사고통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 계를 잘 성취해 복덕자량이 갖추어졌다.
그러면 이후 정과 혜를 함께 닦는다.
그래서 지혜자량을 닦고 갖출 바탕이 마련된다.
그런 경우 이제 지혜자량을 갖춘다.
그래서 망상분별을 근본적으로 제거해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처음 원인이 되는 망상분별을 제거한다.
그래서 이제는 처음 분별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잘 살핀다.
그런 경우 처음 분별이 옳지 않다.
그래서 이 사정을 잘 이해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한 번뇌 등을 잘 제거한다.
그래서 이 부분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유무판단에서 일으키는 온갖 망상분별을 제거한다.
이는 유ㆍ무, 상ㆍ단, 생ㆍ멸 등의 온갖 망집을 제거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근본적인 망집번뇌를 제거한다.
그래서 수행도 이런 단계로 밟아 나가게 된다.
다만 이런 본 수행은 일반 입장과 대단히 거리가 멀다.
즉 일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을 곧바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일반 입장에서는 망상분별에 뿌리 깊게 묶여 있는 상태다
그래서 이 부분의 해결이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일반적인 형태로 유무분별을 행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분별이 옳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계속 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나간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 묶이게 된다.
또 그런 경우 그런 분별이 잘못임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단계별로 꾸준하고 깊은 수행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국 일반적으로 행하는 유무분별이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불교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이 내용을 아래에 이어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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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 유무판단과 망상분별
일반 현실에서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망상분별 형태가 된다.
현실에서 있고 없음을 분별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영희의 유무를 논의한다.
이 경우 먼저 관념을 먼저 일으킨다.
그 다음 그 내용을 현실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영희를 공원에서 찾는다.
그래서 철수가 주변을 둘러 영희를 찾아본다.
이 경우 아직 아무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속에 자신이 찾는 영희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다.
이 상태에서 마음에 갖고 있는 것은 영희에 대한 관념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찾는다.
그러다가 어느 부분에서 영희로 여겨지는 부분을 찾아낸다.
그래서 영희가 공원에 '있다'고 보고 한다.
그 상황에서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그에게 묻는다.
그러면 철수가 손가락으로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이는 그가 그런 감각현실부분이 곧 그런 관념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또 그런 부분에 그런 영희가 그처럼 '있다'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평소 손가락으로 그렇게 가리킨다.
한편 감각현실을 먼저 대한다.
그리고 이후에 분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도 사정이 같다.
어떤 이가 공원에서 일정 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리고 그 부분이 무엇인가를 철수에게 묻는다.
이 상황에서 철수가 눈을 떠 가리킨 부분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 경우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감각현실 일정부분을 잘 살핀다.
그리고 그 부분이 영희인 것 같다고 답한다.
이 경우 이는 철수가 다음과 같이 판단한 것이다.
거기에 영희가 그렇게 있다.
그 부분은 영희이다.
이렇게 판단한 것이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있다' '없다'란 표현은 주로 이런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는 현실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는 무상상매해탈 부분과 관련이 깊다.
[참고 ▣- 무상삼매 ]
따라서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Table of Contents
▣-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
현실에서 망상분별은 다음 과정을 통해 일으키게 된다.
현실에서 한 주체는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색성향미촉]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시각 감각현실]
그런 가운데 그런 감각현실을 대한다.
그런 경우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상相]을 대한다.
그리고 다시 일정한 생각[想]을 '일으킨다.'.
이 경우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이 그런 관념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관념을 같은 형태로 반복해 일으킨다.
이는 그가 다른 부분을 대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을 대해 그 부분이 영희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다른 부분을 대할 때는 영희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감각현실과 관념이 서로 완전히 무관한 관계는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반복되어 쌓인다.
그러면 이후 그런 생각[想]은 반대로 작용한다.
즉, 그런 생각은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부분[상相]을 취해 '가리키게' 한다.
그래서 이들은 현실에서 상호간에 다음의 관계를 갖는다.
감각현실 => (일으킴) => 관념[想]
관념[想] => (가리킴) => 감각현실
그리고 엄밀히 이 부분까지는 망상분별이라고 할 수 없다.
각 영역의 다른 내용이 서로 다른 영역의 일정 내용을 일으킬 수 있다.
또 그런 사정으로 일정 영역의 내용으로 다른 영역의 내용을 가리킬 수 있다.
한편, 이 상황에서 한 주체는 감각현실과 관념을 함께 얻는다. [오구의식]
그런 경우 그런 감각현실 부분과 그런 관념을 서로 '대응시켜' 임한다.
그래서 감각현실 일정 부분[相]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그런 경우 그 부분[相]이 곧 그런 관념내용'이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부분[相]에 그가 일으킨 관념분별 내용이 들어 '있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반대로 관념으로 다음 자세로 임한다.
일반적으로 그런 생각[想 Saṃjña]을 바탕으로 감각현실의 일정한 부분[상相]을 단순히 '가리킨다'
그런데 이제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즉 관념을 기준으로 감각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별한다.
이 경우 일정한 관념[想 Saṃjña]을 바탕으로 감각현실을 대한다.
그리고 감각현실의 일정 부분[상相]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라고 판단하다.
그리고 그런 판단을 전제로 그렇게 일정부분을 마치 오려내듯 잘라 취한다.
이는 일정 부분을 단순히 가리키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그리고 이를 상[相]을 '취한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위 상태는 처음 상태와 다르다.
그리고 이런 판단을 전제로 현실에 임한다.
그러면 그런 상[相]에 '머문다'라고도 표현한다.
또 이런 판단을 전제로 소원을 일으키고 업을 행한다.
그러면 그런 상[相]을 '행한다'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모두 앞과 같은 망상분별을 전제로 임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를 이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 내용을 얻는다.
이처럼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이것이 문제는 아니다.
그런 가운데 그런 감각현실의 일정 부분을 대해 영희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것도 이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아니다.
처음 눈을 떠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것도 이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또 감각현실을 얻고 난 후 어떤 느낌을 얻는다.
이것도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다시 관념을 일으켜 얻는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그런 감각현실도 얻는다.
그리고 그런 관념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이들 자체는 각기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또 그런 관념으로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역시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이런 상태에만 있다고 하자.
이런 상태는 망상분별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들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은 마음 안에 함께 병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
그런 경우 대부분 감각현실과 관념을 재료로 망상분별을 다시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과 관념은 망상분별의 재료가 되어 준다.
즉, 이를 재료로 관념영역에서 다음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이런 경우 그런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相]이 곧 영희'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부분은 또 그런 영희가 '아니다'라고 여긴다.
또 그 부분에는 그런 영희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다른 부분에는 그런 영희가 '없다'라고 여긴다.
이 경우 영희는 관념적 내용[想 Saṃjña]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일정한 관념[想 Saṃjña]을 바탕으로 감각현실을 대한다.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 일정 부분이 곧 그런 내용[想 Saṃjña]'이다'라고 여긴다.
그래서 예를 들어 이런 바탕에서 그런 일정부분이 곧 영희'아다'라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상[相]을 취한다.
처음에 눈을 떠 일정한 내용을 얻었다.
그래서 감각현실도 얻는다.
일정한 관념을 단순히 일으켜 얻는다.
그런데 상[相]을 취한 경우는 단순히 이런 상태와 다르다.
즉 얻어낸 감각내용과 관념을 재료로 추가로 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다.
즉 이들을 재료로 감각내용 일부분을 오려 취한다.
그런 가운데 그 부분을 일정한 관념과 결합시킨다.
그래서 성격이 다른 두 내용을 서로 접착시킨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그에게 영희가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일정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이는 그가 그런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相]이 곧 영희'이다'라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또 그 부분에는 그런 영희가 '있다'고 잘못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이처럼 그가 가리킨 부분을 놓고 살펴보자.
일정한 관념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그가 가리키는 부분이 있다.
즉, 일정한 관념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오려 취한다.
그런데 그 부분[相]의 정체는 감각현실이다.
한편 그런 부분을 대해 그가 일정한 생각 A를 일으킨다.
그 경우 그런 생각 A는 관념내용[想 Saṃjña]이다.
그리고 이 경우 '있다' '없다'는 분별 자체도 관념내용[想 Saṃjña]이다.
그런데 관념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또한 관념에 감각현실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반대로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그리고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즉, 그처럼 취한 부분[相]에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想 Saṃjña]이 본래 없다.
감각현실 영역에서는 본래 관념내용은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감각현실 영역에서는 어떤 관념의 유무도 분별할 수 없다.
즉, 그가 취한 부분[相]은 본래 그런 관념 내용[想 Saṃjña]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그런 부분[相]에는 그런 관념 내용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또 반대로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부분 그런 부분[相]이 일정한 관념 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러므로 이런 분별을 망상분별이라고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망상분별 환자가 있다.
그가 칫솔을 대해 자꾸 개라고 여긴다.
그런데 다른 부분은 개라고 여기지 않는다.
유독 칫솔을 대할 때마다 개로 여기고 대한다.
이런 경우라고 하자.
그러면 의사는 이런 환자를 망상환자라고 하게 된다.
그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가 개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부분에는 그런 개가 없다.
그런데 그처럼 개가 없는 부분을 대한다.
그런데 그 부분을 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상황과 일반인의 상황이 성격이 같다.
다만 현실에서 대부분 일정 부분을 대한다.
그리고 엇비슷한 분별을 일으킨다.
즉 일정 부분을 대한다.
그러면 대부분 바위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다만 현실의 병원에서 치료받는 망상환자가 있다.
이 경우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일반인 대부분은 칫솔 부분을 대할 때 개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망상환자만 그렇게 임한다.
그래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반인 대부분이 행하는 분별도 그 실질은 마찬가지다.
즉, 망상분별환자의 분별과 성격이 같다.
어떤 A라는 내용으로부터 어떤 B라는 내용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A라는 내용이 B는 아니다.
또 A라는 내용에 B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연필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후 이로부터 기차를 떠올린다.
이 경우 연필이란 생각이 기차라는 생각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연필이란 생각에 기차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연필이 기차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을 대한다.
그런 상태에서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감각현실을 대해서 일정한 관념을 일으킬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고 감각현실 안에 그런 관념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감각현실 영역은 본래 그런 관념내용 일체를 본래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에서 관념 내용은 얻어낼 수 없다.
단지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내용을 일으킨 것 뿐이다.
이 두 내용을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더욱이 그 감각현실이 그런 관념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그것'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런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는 망상분별의 성격을 갖는다.
예를 들어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모습을 얻는다.
그리고 일정부분을 대해 꽃이란 관념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상황에 꽃 외에 다양한 관념을 일으켜 가질 수 있다.
관념은 다양한 종류의 관념을 나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꽃, 식물, 물질, 풍경, 존재, 여인, 소년, 포크...등이다.
이들을 놓고 하나하나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여러 꽃을 다 묶어 '식물'이라는 관념도 일으킬 수 있다.
또는 '물질'이라는 관념도 일으킬 수 있다.
또는 전체 부분을 보고 '풍경' 또는 '존재'라는 관념도 일으킬 수 있다.
한편 시인은 꽃에서 여인이나 소년을 연상해낼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고 꽃에 그런 여인, 소년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없다.
어떤 망상증 환자가 있다.
그런 경우 그 모습을 대해 엉뚱한 생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꽃모습을 보고 포크를 연상해낼 수도 있다.
사정이 그렇다고 그런 꽃 부분에 그런 포크가 들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대부분 그 상황에서 일정부분을 대해 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사정이 그렇다고 그 부분에 꽃이 들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감각현실과 관념의 기본관계는 이 모든 경우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있고 없음이나, 아름다움과 같은 추상관념을 놓고 생각해보자.
또는 생겨남이나 멸함과 같은 복합 관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일정한 감각현실을 대한다.
그런 경우 그런 추상관념이나 복합 관념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감각현실에서 그런 관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겨남이란, 없음과 있음을 묶은 복합 관념이다.
생겨남이란 즉 <'없다가 있음'>을 의미한다.
멸함은 그 반대다.
<'있다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감각현실은 한 순간에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하나의 감각현실에는 '있음' 과 '없음'을 함께 얻을 수는 없다.
감각현실에 그 생멸 생사의 관념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다.
꽃이 없다가 피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내용을 같이 한 화면에 찍어 놓을 수 있다.
그래도 역시 같은 문제가 있다.
감각현실엔 관념과 같은 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다.
다만 그런 감각현실을 대해 그런 관념을 일으켰을 뿐이다.
만일 감각현실 안에 그런 관념이 본래 들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다음처럼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정부분을 대한다.
그리고 그 부분을 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자신이 평소 꽃의 관념을 지니고 있다.
관념은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 경우 그 감각현실에서 그런 관념을 다시 또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런데 꽃과 같은 구체적 관념이나 고유명사에서는 혼동을 가질 수 있다.
통상적으로 꽃을 보고서 꽃이란 생각을 동시에 일으켜 얻는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의 관계를 혼동하기 쉽다.
이 경우 원래 그 감각현실 안에 본래 이런 내용이 다 들어 있었다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이런 경우 이 관계를 이해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음 사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관념을 갖는다.
한편 관념영역에서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부분을 묶고 나눈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그래서 어떤 이가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정작 그 감각현실 부분이 그처럼 묶이거나 나누어지지는 않는다.
한편 어떤 감각현실을 얻는다.
이런 경우에도 그 감각현실이 일정 부분마다 묶고 나누어지며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정 부분을 묶고 나누는 것은 관념 영역안의 문제다.
즉, 감각현실 영역에서의 일이 아니다.
관념 작용에서 일으키는 이런 작용을 변계소집(遍計所執)이라고 표현한다.
즉, 두루두루 헤아려 집착을 갖는 작용[변계소집遍計所執]이다.
어떤 이가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런 바탕에서 다시 꽃이란 관념을 일으킨다.
그런 경우 이 감각현실과 이 관념은 무언가 서로 엇비슷하다고 여기기 쉽다.
마음에서는 감각현실과 관념은 매우 유사하다고 여긴다.
일정한 감각현실을 대해 관념을 일으킨다.
이 상황은 마치 노끈을 놓고 뱀이라고 여기는 경우와 같다.
그렇지만, 정작 뱀[관념내용]은 노끈[감각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당정현상(當情現相) 또는 중간존경(中間存境)]
그래서 감각현실과 관념은 이런 관계에 있다.
이런 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감각현실에는 그런 관념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부분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래서 일정한 감각현실에 일정한 관념내용이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일반적 입장에서는 현실에서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해 임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런 분별이 잘못이라는 인식을 거의 갖지 못한다.
여기에는 일정한 배경사정이 있다.
본바탕 실재를 #, 감각현실을 ○, 관념을 ■이라고 표시하기로 하자.
감각현실○은 관념■이 아니다.
그리고 감각현실○에 관념■이 들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 현실에서 본바탕 실재#를 바탕으로 감각현실○과 관념■을 얻는다.
그런데 일정한 감각현실○과 관념■을 동시에 자주 얻는다.
그리고 이들 내용이 마음에 같이 머물게 된다.
이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
그러면 그런 사정으로 이 둘을 접착시켜 이해하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감각현실○이 곧 관념■이라고 여긴다.
또 감각현실○에 관념■이 들어 있다고 여긴다.
이런 부분이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그런 망상을 일으킨 상태라고 하자.
그리고 이 둘의 성격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쉽다.
이 경우 다음처럼 자꾸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반대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자신이 지금 감각현실○를 생생하게 얻고 있다.
그래서 이런 감각현실○을 대한다.
그리고 일정한 관념■을 명료하게 분별해 얻는다.
그런데 왜 자꾸 이 상황에 그런 관념■이 있지 않다고 하는가.
이런 식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일정한 감각현실○를 대해 관념■을 일으킨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관념■은 단지 그런 관념영역에 있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이 들어 있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따라서 혼동을 일으키면 곤란하다.
그리고 이는 영역이 각기 다른 내용들 사이에서도 사정이 같다.
즉, 본바탕실재ㆍ감각현실ㆍ각기 종류가 다른 감각현실들ㆍ관념 들 상호간에 사정이 같다.
* 이런 망상분별의 문제가 관련되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비슷한 내용을 관련부분에서 반복해 살피게 된다.
[참고 ▣- 감각현실과 관념을 재료로 망상분별을 일으킴]
[참고 ▣-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
[참고 ▣- 무상삼매 ]
[참고 ▣- 관념이 실답지 않은 사정 - 환자와 가족의 비유를 통한 이해]
♥Table of Contents
▣- 아상(我相)[자신에 대한 상]
감각현실에 관념 b@가 있지 않다.
이는 감각현실 안에 그런 관념이 있지 않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다음 사실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혼동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우선 그 상태에서 감각현실 A는 그 상황에서 그처럼 생생하게 얻고 있다.
따라서 그 상태에서 감각현실 A를 얻지 못한다고 제시한 것이 아니다.
한편, 그 상태에서 관념 b@를 일으킨다.
그래서 관념영역에 그런 관념 b@를 일으키지 못한다고 제시한 것도 아니다.
관념 b@는 관념영역에서 그처럼 명료하게 얻는다.
눈을 뜬다.
그러면 감각영역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
관념을 얻는 것도 이와 사정이 같다.
그래서 그 상태에서 관념 b@를 일으켜 얻는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그런 관념을 얻으면 안 된다고 한 것도 아니다.
한편, b@는 관념영역에 그런 형태로 있다.
따라서 그런 b@가 관념영역에 없다고 한 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다음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감각현실 A부분에 관념 b@는 있지 '않다'.
또 감각현실 A부분은 관념 b@가 '아니다'.
또 반대로 다음도 제시한다.
관념 b@는 그런 감각현실 A를 그 구성요소로 갖지 않는다.
관념 b@는 그런 감각현실 A가 아니다.
이렇게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각 내용에서 서로 혼동을 일으키면 곤란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망집을 바탕해 현실을 대한다.
그런 망집의 바탕에서 일정 부분은 자기 자신'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또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은 영희나 철수'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또 일정부분은 다른 생명체(고양이, 개, 나무 등등)'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 감각현실 다른 일정 부분은 바위'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일으키는 많은 분별이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이런 바탕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곧 '자신'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이를 아상을 취한다고 한다.
이 부분이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일으키는 문제가 심대하다.
현실에서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가장 크다.
그리고 한 주체가 일으키는 집착 대부분은 이에 바탕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 묶인다.
그래서 이 부분이 잘못임을 이해함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망상분별을 잘 제거해야 한다.
비유를 들어 이 문제를 살펴보자.
어떤 이가 벽돌(감각현실)을 자신의 지갑(관념)으로 잘못 여긴다.
그러면 이후 그 벽돌을 대하며 잘못 업을 행하게 된다.
벽돌을 지갑으로 여기고 취해 들고 갈 수도 있다.
또 벽돌을 누군가 손댄다.
그러면, 지갑을 훔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분노를 일으키고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이 경우는 벽돌이 지갑이 아님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위와 같은 업을 행하지 않게 된다.
이를 위해 우선 벽돌의 본 정체가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또 반대로 지갑은 대신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한편 이런 노력으로 벽돌이 지갑이 아님을 이해한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벽돌이 어디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벽돌은 여전히 벽돌 그대로 얻는다.
또 지갑이라는 관념도 그대로 마음에 일으킬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망상분별만 제거된다.
즉, 벽돌을 지갑으로 잘못 이해하는 분별만 제거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일으키는 행동만 중지된다.
즉 그런 업을 행하려는 의지가 제거된다.
그래서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한 업만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이 차이를 잘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이후 다음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벽돌은 지갑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자꾸 벽돌을 지갑으로 여기고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렇게 되는 배경사정까지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임해야 할 올바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
현실에서 <자신>에 대한 분별도 이와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임한다.
평소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정 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이를 자신으로 여긴다.
그래서 현실에서 자신이 어디 있는가 묻는다고 하자.
이 때 자신이 손으로 가리킨다.
그런데 그 부분의 본 정체는 사실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그 부분들의 정체부터 잘 확인한다.
그 부분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들이다. [색ㆍ수ㆍ상ㆍ행ㆍ식 5온]
그런 가운데 그 부분이 자신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한편, 그런 경우 이제 실질적으로 자신으로 가리켜야 할 부분을 대신 알아내야 한다.
그래서 이제 자신이란 관념으로 가리킬 부분을 찾는다.
이런 경우 그런 부분은 차라리,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까지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도 현실에서는 대부분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임한다.
그 부분은 본래 자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그처럼 잘못 여기고 임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임하게 되는 배경사정을 또 잘 살펴야 한다.
이는 생을 출발하기 이전에 일으킨 망상분별 때문이다.
즉, 일정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임한다.
그리고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그런 망상분별을 먼저 일으킨다. [아견, 아애, 아취, 아만 ]
그런 바탕에서 생을 출발한다.
그래서 현실의 표면의식에서 다시 그런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사정을 이렇게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전까지 대하던 감각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자신이란 관념이 관념영역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얻어낸 내용에 대해 일으킨 망상분별만 사라지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런 상태에서 현실에서 임해야 할 올바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
이는 다음에 이어서 살피기로 한다.
♥Table of Contents
▣- 아(我)의 유무 논의의 효용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제 망집을 벗어난다.
그래서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삶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 경우 차이가 크다.
관념영역에서 처음 그런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러면 이후 이를 바탕으로 소원을 일으킨다.
그리고 다시 업을 행한다.
즉, 일정한 뜻과 말, 행동 자세 태도를 취한다.
이 경우 관념영역에서 의지를 갖는다.
그리고 이에 따라 운동신경을 반응시켜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감각현실 내용이 결과적으로 변화한다.
이 경우 이는 그 자신의 마음내용만 단순히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각 주체는 본바탕 실재를 바탕으로 감각현실을 얻는다.
다만 실재는 한 주체가 직접 얻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감각현실 내용만 놓고 살피게 된다.
그래서 감각현실이 변화된다고 하자.
이 과정에는 본바탕 실상이 관여한다.
그리고 이 실재를 다수 주체가 함께 바탕해 임한다.
그래서 이로 인해 다른 주체들도 함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 다른 주체들과 자연스럽게 가해 피해관계가 쌓이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상호간 업의 장애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3악도의 생사고통에 장구하게 묶이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처음 원인 부분을 잘 제거해 예방해야 한다.
현실에서 다음처럼 잘못된 판단을 한다.
즉,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해 자신'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이는 앞에서 '신견'으로 살핀 내용이다.
그런 경우 그 일정 부분에 자신이 들어 '있다'고 잘못 판단한다. [유무판단]
이 경우 자신과 관련한 상견 단견으로 나아가기 쉽다.
그래서 그런 자신은 늘 있다고 잘못 이해한다. [상견]
또는 자신은 사후 아주 없게 된다고도 이해한다. [단견]
또는 자신은 생멸한다고도 여기게 된다. [생멸, 무상]
즉 <없다가 있다>, <있다가 없다>라고 잘못 여긴다.
이런 식으로 유무와 관련해 잘못된 망상 분별을 행한다.
그리고 각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경우마다 집착의 정도가 심해진다.
또 인과 판단 범위도 좁게 갖는다.
이런 폐해 등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견해를 제거해야 한다.
현실에서 일정 부분이 자신'이다'라고 잘못 여기지 않아야 한다.
또 일정 부분에 자신이 '있다'라고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런 부분에 이다, 아니다. 있다 없다 등의 분별을 본래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2분법상의 망상분별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이들 부분에 갖던 집착을 제거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일으킨 소원도 잘 제거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하던 업도 중단한다.
이런 망상분별과 업의 제거를 서원으로 가져야 한다.
그래서 망상분별을 잘 제거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들은 태어난 이후 일으킨 분별이다. [분별기 신견, 변견]
그래서 태어나기 이전 단계부터 일으킨 망상분별은 여전히 남게 된다. [구생기 신견, 변견]
그리고 생을 유지하는 한 이런 구생기 신견에 바탕해 임하게 된다.
그래서 이론적 이해만으로 근본 번뇌에서 바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분별기 번뇌부터 잘 제거해야 한다.
이 부분이 현실에서 많은 업을 일으킨다.
그래서 분별기 신견을 방치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폐해가 증가된다.
그래서 일단 분별기에 일으킨 망상분별부터 잘 제거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감각은 여전히 일정 부분에서 얻게 된다.
또 그에 바탕해 정서적 의지적 반응을 계속 일으키게 된다.
이는 평소 자신으로 잘못 여긴 부분과 모두 관련된다.
그리고 이는 이론의 이해만으로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생을 유지하는 한 이 상태가 지속된다.
따라서 정서적 의지적인 억제와 수행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
이는 이론처럼 쉽지 않다
감각과 느낌 생각 의지 등이 계속 발생한다.
그래서 이를 꾸준히 계속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존의 망상분별에 바탕해 신구의 3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노력을 꾸준히 계속 해나간다.
그런 경우 일정한 불쾌나 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이런 불쾌나 고통을 평안히 참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반대로 생사현실에서 성취할 내용은 잘 성취한다.
즉, 계와 정과 혜의 수행을 잘 닦아야 한다.
그리고 쌓여진 업의 장애를 잘 제거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생사과정에서 근본번뇌를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만 중생제도를 꾀하는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 중생들은 생사현실에 묶여 있다.
따라서 수행자는 중생이 처한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중생이 일으킨 망집에 같이 맞춰 임해야 한다.
그런 경우 2중적인 측면을 취해 임해야 한다.
수행자가 그런 취지로 생사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반적으로 중생과 마찬가지로 망상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이런 망상분별을 한편으로 잘 제거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의 극심한 생사고통을 평안히 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한편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 방편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한다.
그리고 성불하는 상태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 중생을 잘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중생을 제도한다.
그리고 다른 중생들도 끝내 이런 상태가 되도록 이끌어가야 한다.
그래서 이처럼 양 측면에서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중생제도를 위한 생사현실의 수행 과정이 된다.
♥Table of Contents
▣- 생멸 및 왕래에 대한 상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대해 일정한 관념[想 saṁjñā]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자신, 생명, 수명, 남ㆍ녀, 생ㆍ주ㆍ멸 등등 온갖 생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생각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상을 찾아 취한다.
예를 들어 마음에서 연필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방에서 연필을 찾아 대는 것과 같다.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 a가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a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이 그가 취하는 'a의 상'[상相]이다.
즉 그는 그런 부분이 곧 그런 a'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바탕해 감각현실 일정 부분[상相]을 오려내 취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갖는 부분'[상相]은 본래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잘 관해야 한다. [무상삼매無相三昧]
그렇지만, 대부분 그런 부분을 곧 그런 a'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한편 이 경우 그런 부분에 그런 '분별내용 a'가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분별 내용 A가운데 특히 중요한 내용이 있다.
우선 자신이 중요시 하는 '자신'이나 '타인' '타 생명'이 있다.
예를 들어 일정 부분이 자신이나 영희 철수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런 부분에 그런 자신이나 영희 철수가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생사'나 '생멸'의 관념이 중요하다.
현실에서 자신이나 영희나 철수의 '생사'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영희가 태어난다.
그리고 살다가 죽는다.
그래서 화장터에서 화장을 한다.
그래서 현실에 영희의 생사가 있다고 여긴다.
또 예를 들어 현실에 생멸이 있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색ㆍ성ㆍ향ㆍ미ㆍ촉 감각현실을 모두 색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색이 생멸한다고 표현한다.
이 경우 감각현실 안 여러 내용이 들고 나는 것을 곧 생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 그런 가운데 현실에 연기와 재 등의 생멸이 있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종이를 태워 연기나 재가 나타난다.
이 경우 연기나 재는 <없다가 있게 된다>고 여긴다.
또 종이는 <있다가 없게 된다>고 여긴다.
그런 사정으로 각 내용의 유ㆍ무, 생ㆍ주ㆍ멸의 인과를 찾아 나선다.
한편, 운동 변화와 관련된 관념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영희가 저기에서 여기로 오고감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이는 생사과정에서는 생사왕래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런 측면에서 다양한 상을 취한다.
예를 들어 감각현실 영역에서 그런 관념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상을 취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위에서 살핀 유무문제와 모두 관련된다.
그런 경우 먼저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관념 a가 하나의 감각현실 단면에서 일으킨 내용이라고 하자.
그래도 감각현실의 한 단면에서 그런 관념 a는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생멸이나, 생사는 유무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복합 관념이다.
예를 들어 생은 '없음'과 '있음'의 복합 관념이다.
이런 복합 관념은 사정이 더욱 그렇다.
왕래, 운동 등은 변화와 관련된 복합 관념이다.
예를 들어 왕래에서 '옴'은 <이전에 저곳에 있었다. 그리고 움직여 지금 이곳에 왔다.>를 뜻한다.
즉, 이런 형태로 각 관념이 결합되어 묶인 관념이다.
그래서 이들은 본래 한 단면의 감각현실에 세울 수 없다.
그래서 이들 관념은 상응한 감각현실 단면을 2 이상 필요로 한다.
나머지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결국 이런 경우의 관념들은 감각현실 한 단면에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 여러 다수의 감각현실에 걸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련의 감각현실을 대하는 가운데 그런 관념을 일으키는 것뿐이다.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바탕으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한다.
그런 경우 이런 관념내용이 그런 감각현실 영역에 그처럼 자리 잡고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망집에 바탕해 현실을 대한다.
따라서 다음을 서로 잘 구분해 이해해야 한다.
본바탕 실재를 바탕으로 눈을 뜸 => 일으켜 얻음 => 감각현실
감각현실 => 일으킴 => 느낌
감각현실, 느낌 => 일으킴 => 관념
관념 => '가리킴' => 감각현실, 느낌
이 경우 감각현실ㆍ느낌ㆍ관념 등이 마음 안에 동시에 병존한다.
이런 각 내용은 한 주체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위에 나열한 상호 관계는 다음 망상분별 내용과는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어 위 경우에 다음처럼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키기 쉽다.
즉, 감각현실 안에 관념이 '있다.'
감각현실 일정부분의 정체가 그런 관념'이다'.
관념이 그런 감각현실을 관념의 구성요소로 한다.
관념이 곧 그런 감각현실 일정부분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이해들은 잘못된 망상분별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이런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망집을 바탕으로 현실에 임한다.
사정이 이와 같다.
그래서 또 경전의 표현이 가리키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경전에서는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
어떤 이가 일정한 내용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 유무를 현실에서 문제 삼는다.
그런데 현실 상황에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우선 감각현실 영역에서부터 그런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생멸이나 생사 또한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나 망상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그런 관념을 실답게 있는 내용으로 여긴다.
그리고 집착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게 한다.
따라서 처음 일으킨 망집이 생사에 묶이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을 근본적으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즉, 현실에서 일정한 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경우 이런 분별바탕으로 그에 해당한 내용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경우 그런 부분을 곧 그런 관념내용으로 여겨 취하지 않아야 한다.
즉,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무상해탈삼매]
따라서 경전에서 다음처럼 제시한다.
현실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취하면 보살 수행자가 아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Table of Contents
▣- 감각현실에 대응하지 않은 관념의 현실 유무 문제
관념은 반드시 감각현실에 대응해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상상만으로 어떤 내용을 연상해 떠올릴 수도 있다.
단순히 달을 생각한다.
그런데 이 달로부터 다시 다른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 감각현실을 배경으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즉, 이들은 처음부터 감각현실을 배경으로 일으킨 관념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 내용이 감각현실에 있는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한편, 감각현실에 대응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에 대해 추상명사나 집합명사를 떠올릴 수 있다.
어떤 공원 모습을 대해 평화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화를 떠올린다.
그런 경우 평화가 그 구체적 현실에 대응하는가가 문제된다.
또는 명사 이외 조사나 부사 형용사도 있다.
한편 수많은 군인들을 보았다.
그런 사정으로 군대를 떠올릴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런 관념이 구체적 현실에 실재하는가가 문제된다.
이런 논의가 '유명론'과 '실재론'의 논의로 서양에서 논의된 적이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 이 논의는 유개념에 국한된 논의였다.
그리고 여기서 '실재'는 관념이 감각현실 영역에 '있음'을 나타낸 표현이다.
그래서 본바탕 영역을 가리키는 실재와는 의미가 다르다.
불교에서는 다음을 제시한다.
일체 관념이 감각현실에서 본래 얻을 수 없다.
즉, 모든 관념은 감각현실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다.
이 경우 관념에는 고유명사나 추상, 집합명사, 보통명사 등이 다 포함된다.
또 상대적 개념, 운동 변화 관련개념, 유개념, 종개념 등도 다 포함된다.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이 '있음' '없음'의 문제와 다르다.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런 사정으로 감각현실에 일정한 관념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감각현실에 관념이 들어 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모두 망상분별이 된다.
다만 이는 관념영역에서 관념으로는 있다.
그래서 존재 일반을 살핀다고 하자.
이런 경우 5위법으로 존재 일반을 나누어 살피기도 하다.
이런 경우 관념은 색심불상응행법의 범주로 살핀다.
다만, 이런 측면의 유무 문제는 성격이 다르다.
즉, 일정내용이 자체 영역에 있는가 없는가의 유무판단이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따라서 다른 성격의 유무논의와 다르다.
따라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내용이 실다운 내용인가를 판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한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도 그처럼 있는가가 주된 초점이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따라서 각 유무판단의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혼동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Table of Contents
▣- 실재 영역과 관련한 유무 문제
실재는 일정 주체와 관계없이 있다고 할 본바탕을 뜻한다.
그리고 이런 실재 영역과 관련되어 유무 논의가 행해진다.
현실 내용은 대단히 생생하다.
그리고 명료하게 얻는다.
그런데 이런 현실 내용이 실다운가를 살피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현실 내용만 살펴서는 알 수 없다.
현실이 실다운가는 다른 영역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실재를 살피는 것은 이런 사정이다.
그래서 본바탕이 되는 '실재'를 살핀다.
이는 현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는 않은가를 살피기 위함이다.
이 경우 '실재 영역'에 현실 내용이 있는가 없는가를 살핀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실재가 무언가를 살핀다.
따라서 다음 차원의 유무 논의와 구분해야 한다.
현실 내용이 현실 영역에 있다. 없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실재내용이 실재 영역에 여여하게 있다, 없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이런 논의와는 성격이 다르다.
실재는 한 주체와 관계없이도 자체적으로 그대로 있다고 할 본바탕 내용이다.
그런 것을 실재라고 칭한다.
현실내용은 이런 실재를 바탕으로 얻는다.
그런 실재를 파악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주체는 자신의 마음이 관계한 내용만 얻는다.
즉 마음이 관계해 화합해 얻어내는 내용만 얻는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 삼는 실재는 그런 관계를 떠난 내용이다.
따라서 그런 실재는 한 주체로서는 끝내 얻지 못한다. [불가득]
=> 따라서 실재는 모든 2분법적인 분별을 떠난다. [불이법]
즉,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좋다 나쁘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등의 분별을 떠난다.
또한 그런 사정으로 언설을 떠난다.
그래서 이를 공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내게 된다.
여기서 공은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표현이다.
그래서 본바탕의 실재는 공하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 공이란 표현은 없다는 '무'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또 a라는 무엇이 있다는 '유'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얻지 못함은 있고 없음의 양변을 떠남을 말한다.
즉, 얻지 못함은 없음[무]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또 a라는 무엇이 있음[유]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있고 없음의 분별을 모두 떠남]
또 이는 실재에 대해 어떤 성품을 얻어서 이를 기술한 내용이 아니다.
이는 비유하면 눈이 소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눈은 소리를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소리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눈은 소리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소리가 있고 없음을 말할 수 없을 뿐이다.
이제 현실내용이 실재영역에 있는가 없는가를 살핀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현실 내용 가운데 감각현실과 관념을 놓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감각현실이 실재영역에 있는가, 없는가.
실재는 공하다.
그래서 실재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없다고 할 수 없다.
실재는 유무 분별을 모두 떠난다.
관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실 내용[감각현실 및 관념분별]과 실재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현실 내용은 각 주체가 얻는다.
그러나 본바탕 실재는 얻지 못한다.
현실은 실재가 아니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 내용과의 정체판단.-이다,아니다 사실판단]
실재도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실재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재도 현실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결국 이들의 관계는 침대에 누워 꾸는 바다 꿈과 같다.
현실 내용은 현실에서 그렇게 생생하게 얻는다.
그러나 본바탕에서나 다른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이는 마치 바다 꿈과 현실의 침대의 관계와 같다.
따라서 이런 관계를 통해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실에 대한 집착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사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경전에서 실재의 공함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 한다.
실재 영역에도 현실 내용이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또 그런 사정으로 현실 내용을 실답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에 묶인다.
따라서 실재의 공함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망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해탈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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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재의 유무 논의와 생사고통
실재는 공하다.
실재는 현실과 같은 차별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실재가 실재를 아는 일도 없다.
또한 생멸이나 생사, 고통도 얻을 수 없다.
그런 사정으로 실재영역에서는 생사고통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일도 없다.
생사고통은 생사현실 안에서의 문제다.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이 생사고통을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생사현실 안에서 본바탕 실재의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즉, 생사현실 안에서 본바탕인 실재가 공함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과 이 실재를 서로 대조해 살펴야 한다.
즉, 현실 내용은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하게 얻는다.
그런데 본바탕 실재는 공하다.
그리고 본바탕 실재에서는 그런 생사현실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실재에 그런 생사현실은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는 실재영역에서의 현실 내용의 유무 논의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이처럼 실재의 사정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현실 생사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편 이런 이해는 생사현실 안에서 행한다.
이는 마치 꿈이라는 것을 꿈 안에서 인식하는 것과 같다.
꿈을 꿀 때마다 악몽을 꾸어 고통 받는다고 하자.
그런데 꿈을 깨면 꿈인 것을 안다.
그러나 꿈을 꿀 때는 모른다.
그러면 꿈 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임을 안다.
그러면 꿈을 꿈 밖 침대에서 대하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꿈 안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생사현실 안에서 실재 영역의 사정을 이해함이 요구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다음 사정을 이해한다.
실재영역에서 현실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실재영역에서 이들 현실 내용은 있다고 할 수 없다 .
실재는 유무 분별을 떠난다.
그런데 현실은 생생하게 얻는다.
그래서 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다.
즉 침대에서 꾸는 바다 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현실이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이해한다.
그러면 현실에 대해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업을 잘 제거 중단할 수 있다.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잘 성취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편 생사고통을 직면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본바탕의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런 생사고통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또 본 바탕에서는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본 바탕의 측면으로 현실을 대한다.
그러면 그 고통을 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실재영역에서의 유무논의는 중요하다.
그리고 생사현실안에서 실재의 사정을 이해함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생사현실의 생사고통을 벗아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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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체의 유무 문제
현실 내용이 실다운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실체의 유무 논의가 중요하다.
참된 진짜의 내용을 실체, 본체, 본성, 자성 등으로 표현한다.
어떤 것에 그런 참된 실체가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실다운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그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수행에 있어서 이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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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다운 진짜를 찾는 사정
한 주체가 사물이나 자신 모습을 대한다.
그런데 시시각각 그 내용이 다름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어떤 꽃이나 바위를 대한다.
이는 매 순간 매 상황마다 그 모습이 다르다.
그렇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규칙적이다.
그래서 일정한 형태를 보게 된다.
그래서 다음처럼 잘못 여긴다.
현실에서 매번 달리 내용을 얻는다.
그렇지만, 꽃은 꽃이다.
그리고 바위는 바위다.
그리고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
이처럼 분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 각각의 참된 진짜 뼈대가 들어 있다.
그렇기에 이처럼 분별하게 된다고 여긴다.
즉, 다음처럼 추리한다.
참된 진짜 실체가 있다.
즉 그런 참된 뼈대가 그 안에 있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그런 각 모습을 그처럼 보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이런 각 내용을 얻게 된다.
이처럼 추리한다.
이 경우 참된 진짜로서 실체가 있다고 하자.
그런 내용은 꿈과는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
즉, 그런 진짜는 꿈과는 달라야 한다.
꿈을 실답지 않다.
꿈을 실답지 않다고 보는 사정이 있다.
이미 이를 살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살펴본다.
꿈은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만 임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임시성]
즉 그런 조건과 상황을 떠나면 얻을 수 없다. [조건의존성]
한편, 꿈 내용은 정작 꿈을 꾼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다.
즉 꿈 내용을 얻는 영역 외에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다른 영역에서의 불가득]
한편 평소 일정한 내용은 일정한 여러 성품을 갖는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바위는 단단하다. 무겁다. 이런 등등의 여러 성품을 갖는다.
그런데 꿈 내용은 그런 성품을 갖지 못한다.
꿈에서 본 바위는 현실의 바위와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가짜성품]
그러나 단단하지도 않다.
그리고 무겁지도 않다.
즉 그 내용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성품들을 얻지도 못한다.
꿈은 이런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것이 이처럼 꿈이 갖는 특성을 갖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것은 실답지 않다.
반대로 어떤 것이 꿈과 달리 참된 진짜라고 하자.
그런 경우 꿈이 갖는 이런 특성은 갖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꿈이 갖는 특성과 반대되는 특성을 가져야 한다.
즉, 꿈과는 달리 실답다고 볼 성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참된 진짜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참된 실체는 어떤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내용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꿈과 달리 늘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내용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을 다른 것과 구분하게 하는 영원불변한 성품[자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 경우 그것을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체에 대한 관념을 이처럼 만들어 갖게 된다.
이 경우 먼저 관념 영역에서 그런 실체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된다.
즉, 꿈과는 다른 참된 성품을 갖는 어떤 것을 관념한다.
이는 관념영역에서 몽타주 형태로 찾는 내용을 그려내는 작업이 된다.
그래서 관념영역에서 실체에 대한 몽타주를 만들어 놓게 된다.
이 경우 이는 관념영역에서 만들어낸 관념이다.
그리고 이를 '실체나 본체'라고 언어로 표현한다.
그래서 실체는 관념 차원에서 관념으로는 있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또 언어표현 자체로는 있다.
그러나 실체의 유무 문제는 이런 문제는 아니다.
이 경우 과연 그런 몽타주에 해당한 것이 현실에 있는가가 문제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실체가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다.
관념영역에서는 몽타주 형태로 그려낸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이 어딘가에 정말 있는가를 찾는 문제다.
그리고 이는 결국 불교의 무아ㆍ무자성 논의다.
불교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그런 실체는 없다. [무아, 무자성, 승의무자성, 인무아, 법무아, 무소유]
실체의 유무 논의는 현실내용이 실다운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하다.
현실 내용이 이런 실체를 갖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을 실답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실체가 없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것은 꿈처럼 실다운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 이에 집착을 갖고 대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실체의 유무 문제는 수행에 큰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실체의 유무가 문제된다.
실체가 없음을 밝히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온 시간대 온 공간대를 통해 실체의 유무를 확인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는 곤란하다.
따라서 실체 없음은 추론을 통해 판단하게 된다.
실체의 없음을 판단하는 추론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실체의 관념을 관념영역에서 구상해 몽타주를 만든다.
그리고 그런 몽타주에 해당하는 것이 어느 영역에라도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이 경우 3개 이상의 실체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실체의 관념이 요구하는 내용을 자체적으로 충족시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실체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전 영역에 단 1개 또는 2개에 그쳐야 한다.
그리고 전 영역에서 이외에 다른 존재를 세울 수 없다.
그런 경우 현실 내용도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없다고 하게 된다.
실체 관념이 필연적으로 이런 내용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한편, 현실에서 한 주체는 현실 내용을 얻는다.
따라서 그런 실체는 반대로 없다고 해야 한다. [귀류논증]
그래서 실체에 대한 추론은 이런 구조를 취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통해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얻게 된다.
다만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단지 대강의 추론 구조만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실체의 관념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요구한다.
우선 어떤 내용이 다른 것과 구분되는 성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영원하고 고정되고 영원불변한다.
그런 가운데 현재 대하는 현실이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내용을 찾는다.
그런 경우 관념영역에서부터 이들 조건을 함께 충족시키는 내용은 세울 수 없다.
따라서 결국 실체는 존재하지 않음을 관념영역에서 판단하게 된다.
이 경우 그런 실체가 3개 이상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이런 경우 각 요구 조건이 서로 모순된다.
따라서 이런 경우는 곤란하다.
즉, 이런 각 조건을 만족하는 내용을 관념영역에서부터 세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세상에 실체가 a, b, c 이런 형태로 3개 이상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또 이들이 각기 고정되고 영원불변하다.
그런 실체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
이 경우 관념영역에서부터 이런 요구를 함께 충족시킬 내용을 세우기 곤란하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실체가 a, b, c 이런 형태로 3개 이상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그런 경우 위 규정상 a는 ,
나머지 b, c도 마찬가지다.
즉 b는 ,
또 c는 , 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a와 b와 c는 처음 규정에 의해 서로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 ,
결국 a는 a임, ,
이는 다시 다음을 의미한다.
a 는 a임, =[(*
이 경우 부분만 놓고 다시 살펴보자.
이는 (a가 아니고 c가 아님)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는 a이기도 하고 c이기도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는 하나의 내용이 서로 다른 특성인 a와 c를 오감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은 규정상 고정되고 영원불변함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런 상태를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내용은 처음 규정과 모순된다.
결국 이런 내용을 함께 충족하는 내용을 관념영역에서부터 세우기 곤란하다.
그러나 그런 실체가 1개 또는 2개 존재한다고 하자.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내용은 관념영역에서 세울 수 있다.
그런 경우는 일단 앞에서 본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는 또 한편, 이외의 제3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게 된다.
이런 경우 역시 앞과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는 수많은 내용이 현실에 존재한다.
그런데 처음 내용은 현실과 같은 제3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관념영역에서부터 세운 내용은 존재하지 않음을 판단하게 된다.
즉, 제3의 존재를 허용하면서 동시에 앞 내용을 함께 충족시키는 내용을 세울 수는 없다.
따라서 결국 실체는 존재하지 않음을 관념영역에서 판단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 실체는 현실에서 논의 실익이 없음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체는 꿈과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는 변화를 떠난 것이다.
그런데 한 주체는 현실적으로 변화하는 바탕에 있다.
그런데 한 주체가 현실에서 노력해 얻는 것이 있다고 하자.
이는 결국 실체적 내용이 될 수 없다.
실체가 그렇게 얻는 것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실체가 아님도 함께 나타낸다.
따라서 한 주체는 실체와 떨어져 있다.
설령 실체가 있다고 해도 그 사정이 이와 같다.
따라서 실체는 현실의 주체가 논의하고 살필 실익이 없다.
그래서 무익한 논의를 진행할 필요는 없다.
여하튼 실체의 유무 논의는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판단함에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에 주된 초점이 있다.
현실 내용에서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실 내용은 실답지 않다.
따라서 현실 내용에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헤 업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내용을 제시함에 취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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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아ㆍ무자성과 실재의 공함의 관계
실체없음은 무아ㆍ무자성이라고 표현한다.
한편 실재는 공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공하다는 표현은 실체가 없음도 함께 포함된다.
즉 공함은 무아ㆍ무자성도 함께 나타낸다.
그 사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실재는 주관과 관계없이 있다고 할 본바탕 내용이다.
그래서 본바탕 내용이 무언가를 살핀다.
그런 경우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그 내용을 직접 끝내 얻어낼 수 없다.
그래서 일체의 2분법상의 분별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있다ㆍ없다ㆍ-이다ㆍ-아니다ㆍ-과 같다ㆍ-과 다르다 등의 분별을 행할 수 없다.
그리고 언설을 떠나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공하다'라고 표현하게 된다.
여기서 공은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표현이다.
이 경우 공은 무아ㆍ무자성과 완전히 같은 측면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재가 공함을 제시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이는 참된 '실체'는 없음[무아ㆍ무자성]도 함께 제시하는 것이 된다.
그런 가운데 '실재'는 얻을 수 없음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 된다. (무소유+ 불가득 )
실체의 유무 논의에서 어떤 A의 실체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실재가 무언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바로 그런 A를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것은 없다. [무아ㆍ무자성]
즉, 그런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는 없다.
그런 경우 실재가 무언가 문제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실체를 제시할 수 없다. [무아ㆍ무자성ㆍ무소유]
그런 가운데 본바탕 실재는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불가득 공]
그래서 공하다고 제시한다.
따라서 공이라는 표현에는 결국 무아ㆍ무자성도 그 전제로 포함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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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유무논의
현실 내용이 실다운가를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현실 내용이 다른 영역에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다음 측면에서 유무논의가 필요하다.
즉 관념이 감각현실 영역에 있는가 여부를 살핀다.
또 관념이 실재 영역에 있는가 여부를 살핀다.
감각현실도 마찬가지다.
감각현실이 관념 영역에 있는가 여부를 살핀다.
감각현실이 실재 영역에 있는가 여부를 살핀다.
한편 이들 감각현실이나 관념에 실체가 있는가도 중요하다.
즉, 꿈과 다른,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가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주로 이런 측면의 유무논의가 경전과 논서에서 제시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유무논의 외에도 다양한 유무논의가 있다.
그래서 유무 논의 과정에서 이런 논의와 서로 구분을 잘 해야 한다.
그래서 각기 혼동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현실에서 논의되는 다양한 유무논의도 함께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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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념 영역에서 관념의 유무 문제
♥Table of Contents
▣- 관념영역에서 관념이 얻어지는가 여부의 문제
관념은 관념영역에서 일으킨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일정한 관념이 일으켜 얻는다.
이런 경우 그 관념은 관념영역에 그렇게 있다.
그런데 그런 측면에서 유무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즉, 어떤 관념이 그처럼 관념영역에 있는가를 논의한다.
그런데 이 경우 '있음'과 '없음' 자체가 하나의 관념분별이다.
그리고 유무 문제도 관념분별 영역에서 문제 삼는다.
그리고 이를 언어로 표현한다.
그래서 어떤 관념내용이 관념영역에서 그처럼 얻어지는가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즉, '있음'과 '없음'을 그런 측면에서 문제 삼는다.
그런 경우는 유무 논의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무언가 '없다'고 문제 삼는다.
그런 경우에도 그렇게 문제 삼는 내용 자체는 그런 '관념'으로는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을 생각한다.
토끼는 뿔이 없다.
그런데 토끼뿔이 있는가 없는가를 논의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관념영역에서는 그런 관념을 일으켜 이를 문제 삼는다.
그래서 어떤 유무 논의가 다음 성격의 논의라고 하자.
즉, 어떤 관념내용이 관념영역에서 있는가를 문제 삼는 논의라고 하자.
그런 경우 세상 이곳저곳을 살필 필요도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관념 내용자체는 이미 그렇게 관념 영역에 있다.
즉, 관념영역에서 관념 형태로 있다.
그래서 이처럼 관념 측면에서 '있음'과 '없음'을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결국 쓸모없는 희론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을 현실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찾고자 하는 것을 몽타주 형태로 그릴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나 특징과 성품을 먼저 관념으로 나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그런 몽타주 내용만은 먼저 관념 영역에 그렇게 있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 있고 없음을 살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런 논의는 별 의미 없이 장난삼아 하는 희론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런 논의가 행해질 경우는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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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무 논의의 성격 혼동 문제
경전이나 논서에서 유무논의를 행한다.
그런데 유무 논의가 다음 성격이라고 하자.
즉, 어떤 관념을 관념영역에 있는가 여부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생각을 하고 문제 삼는다.
그러면 그런 관념 자체는 이미 그렇게 관념 영역에 있다.
그래서 이런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이런 측면의 논의가 행해질 경우도 별로 없다.
그래서 경전에서 행해지는 유무 논의는 적어도 이런 성격의 논의가 아니다.
이런 점을 미리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유무 논의가 관념의 존부 논의인 것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관념 가운데는 상대관념이나 운동관념 등이 있다.
또 추상관념, 집합관념, 유개념 등도 있다.
이런 경우 이런 혼동을 특히 많이 일으킨다.
예를 들어 앞은 뒤와 상대된다.
왼쪽은 오른쪽과 상대된다.
부모는 자식과 상대된다. [상대적 관념]
한편 온다, 간다, 앉는다, 쉰다 등은 동작과 관련된다. [운동]
군인 다수가 모여 조직을 이루면 군대라고 한다. [집합관념]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은 식물이다.
영어선생님, 국어 선생님, 수학선생님은 모두 선생님이다. [종개념, 유개념]
또 여럿이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이런 경우 사랑이나 평화를 떠올릴 수 있다. [추상관념]
이런 다양한 관념을 나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유무를 논의한다.
그래서 현실에 '앞'과 '뒤'의 유무를 논의한다.
또는 앞시간 뒷시간의 유무를 논의한다.
또는 오고감의 유무를 논의한다.
군대의 유무를 논의한다.
선생님의 유무를 논의한다.
사랑의 유무를 논의한다.
이런 식으로 논의한다.
이 때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대해 이런 일정한 관념들을 일으킨다.
그래서 관념영역에 그런 관념이 있다.
그래서 이들이 현실에 있다고 여기기 쉽다.
즉, 자신이 어떤 내용을 관념으로 떠올린다.
그러면 그것만으로 그 내용이 현실에 있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그래서 각 경우 논의 초점이 무엇인가를 잘 살펴야 한다.
이 경우 관념영역에서 그런 관념이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혼동을 일으키면 곤란하다.
그러나 유무 논의를 관념의 유무 문제로 혼동한다고 하자.
그러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실체의 존부가 경전에서 자주 논의된다.
이는 가짜 진짜의 존부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경우 이를 단순한 관념의 존부문제와 혼동하기 쉽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물건을 찾는다.
그런데 이런 경우 먼저 마음속에서 그에 대해 대강의 관념을 갖는다.
이는 범인을 찾을 때 그리는 몽타주와 비슷하다.
그런데 어떤 것이 대강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에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를 가짜라고 표현한다. (가짜금, 가짜 보석 등)
예를 들어 금을 찾는다.
그런데 금과 비슷하다.
그러나 금이 아닌 물건이 있다.
예를 들어 종이에 비슷하게 물감을 칠한 경우다.
이런 경우는 이를 가짜 금이라고 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 다음처럼 생각하기 쉽다.
현실에 가짜가 있다.
그런데 가짜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상대되는 관념으로 진짜란 관념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정으로 진짜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쉽다.
이 경우 듣기에는 언뜻 그럴 듯하다.
그런데 이는 논의 초점에 혼동을 일으킨 경우다.
이는 진짜라는 '관념'이 있을 수 있는가 여부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또 진짜라는 관념을 마음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가 여부를 문제 삼은 것도 아니다.
또 진짜라는 관념을 지금 마음에 떠올리고 있는 상태인가를 문제 삼은 것도 아니다.
진짜라는 관념은 마음에서 일으킬 수 있다.
진짜라는 관념은 가짜에 상대되는 관념으로 그렇게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몽타주도 다시 관념영역에서 만들어 가질 수 있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그러나 이 경우 관념에 해당한 내용을 현실에서 찾을 수 있나를 문제 삼는다.
이런 측면으로 유무를 문제삼는다.
그래서 이는 다른 유무논의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관념 내용을 감각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다.
또는 관념 내용을 실재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다.
그러면 이들 경우는 위와 다르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경전과 논서에서 살피는 유무문제가 많다.
그런데 이들과 관련해 의외로 혼동을 많이 일으킨다.
따라서 이를 먼저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하다.
♥Table of Contents
▣- 실체의 존부 문제와 관념의 존부문제의 혼동
불교에서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있는가가 문제된다.
이를 이미 살폈다.
[참조▣- 실다운 진짜를 찾는 사정]
그런데 이 경우도 관념의 유무 문제와 혼동하기 쉽다.
실체의 존부 문제는 다음 취지로 문제 삼는다.
꿈은 실답지 않다.
꿈 내용은 생생하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꿈 내용은 일정한 조건에서 일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현실 등 다른 영역에서 얻지 못한다.
또 그에 기대하는 성품들을 갖지 않는다.
예를 들어 꿈속에서 본 바다는 짜지 않다.
이와 같다.
그래서 꿈은 그 내용을 생생하게 얻더라도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도 사정이 이와 같다.
그런데 한편, 현실은 꿈과는 다른 참된 특성을 갖는가가 문제된다.
그런 것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꿈과 다르다.
그래서 현실은 꿈과 달리 실답다고 해야 한다.
따라서 그에 대한 자세를 달리해야 한다.
그래서 실체의 존부 여부가 문제된다.
예를 들어 진짜 참된 어떤 실체(본체)로서의 자신이 있는가.
그리고 그런 자신의 본성이 있는가를 문제 삼는다.
그런데 그런 것은 없다고 제시한다. [무아, 무자성, 무소유, 승의무자성]
그런데 이 경우에도 그런 관념 자체는 만들어 논의한다.
그래서 그런 관념 자체를 관념영역에서 일으킬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이 그런 관념을 떠올린다.
그래서 그런 실체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이 논의를 관념내용의 존부 문제로 혼동한 것이 된다.
그러나 실체의 유무문제는 이런 측면에서 유무를 살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을 서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한편 경전에서 현실에서 생멸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 경우 생멸이란 관념 자체를 못 일으킨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어떤 내용이 자신의 생각으로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된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자신이 관념영역에서 그런 관념을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관념이 관념영역에 있다.
그런 내용을 주장하는 의미 밖에 갖지 못한다.
그런 경우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처럼 관념의 존부 측면에서 유무를 논의한다고 하자.
이는 사변 철학에 해당한다.
그러다가 경전 논의를 대한다.
그러면 경전의 유무 논의도 이런 성격의 논의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 주체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다.
현실에서 이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수행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순수하게 사변적 내용은 논의 초점이 되지 않는다.
즉, 희론성격을 갖는 내용은 논의초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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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념적 차원에서 유무 문제들
관념이 일정하게 얻어지는가를 현실에서 다양하게 논의한다.
물론 이들은 불교에서의 유무 논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측면에서 유무를 많이 문제 삼는다.
또 이는 단순히 관념의 존부 문제를 논의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유무 논의에서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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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념영역에 관념이 현재 머물고 있는가의 문제
관념은 다양한 경로로 얻는다. (몽중의식ㆍ독산의식ㆍ정중의식ㆍ오구의식 등)
관념은 감각현실을 배경으로 일으킬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감각현실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일으키기도 한다.
또 다른 관념으로부터 단지 연상해 떠올리는 경우도 있다.
꿈 내용도 그 성격은 관념적 내용이다.
정려 수행 중 얻는 내용도 관념적 내용이다.
대강 이런 경우만 놓고 보자.
그런데 한 주체의 의식에 일정한 관념이 있는가를 문제 삼을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관념의 관념영역 내 존부 문제가 된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그런데 이런 형태로 관념의 존부가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수학문제에 답이 '있다' '없다'를 논의하는 경우도 있다.
또 수학문제를 풀거나 풀지 못했는가 여부로 답의 유무를 논의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단지 연상되어지는 일정한 내용의 유무를 문제 삼는 경우도 있다.
또는 과거에 기억한 관념을 지금 떠올릴 수 있는가 여부로 유무문제를 삼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관념영역에서 관념의 존부를 문제 삼는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차원의 유무 논의가 많다.
그래서 불교의 유무 논의와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미리 이들 각각의 성격을 잘 구분해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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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문제에서 답의 '유무' 논의
관념영역에서 여러 조건을 만든다.
그리고 그런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관념이 얻어지는가를 문제 삼을 경우가 있다.
이는 어떤 관념이 일정한 규정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여부를 문제 삼는다.
예를 들어 수학문제를 놓고 보자.
제곱해서 2가 되는 정수가 있는가가 수학문제로 제시된다.
그런 경우 그런 정수는 '없다'고 답하게 된다.
'제곱해서 2가 되는 정수'라는 생각자체는 할 수 있다.
다만 수가 정수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
그리고 어떤 수를 제곱하면 2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그런데 어떤 수가 이 두 조건을 함께 만족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그런 수는 없다고 제시한다.
이는 그런 수에 대해 생각자체를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어떤 수가 이 두 조건을 함께 만족할 수는 없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제곱해서 -4가 되는 수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다시 제출된다고 하자.
한편 음수(-)나 양수(+)나 제곱하면 양수가 된다고 먼저 약속되어 있다.
그래서 음수나 양수에서는 이런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떤 수가 이들 조건을 함께 만족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경우 역시 그런 수는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제곱하면 음수가 되는 수를 새로 '허수'라고 약속한다.
그러면 결국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수를 다시 제시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런 문제에 제출할 내용이 다시 있다고 해야 한다.
불교 논의에서도 이런 문제로 유무 논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실체의 존부 문제도 이런 성격을 갖는다.
어떤 내용이 다른 것과 구분되는 성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영원하고 고정되고 영원불변한다.
그런 가운데 현재 대하는 현실이 나타나야 한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내용을 찾는다.
그런 경우 관념영역에서부터 이들 조건을 함께 충족시키는 내용은 세울 수 없다.
따라서 결국 실체는 존재하지 않음을 관념영역에서 판단하게 된다.
현실에서 잘못된 망집을 갖고 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입장에서 온갖 잘못된 주장을 행한다.
예를 들어 현실 내용이 참된 진짜 내용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실재하는 실다운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따라서 이런 주장을 비판하고 깨뜨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중론』과 같은 논서 등에서는 이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논증을 펼치게 된다.
실재영역에서 일정한 관념의 유무 논의도 이런 성격을 갖는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우선 그런 주장은 관념 영역 안에서도 형식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제시해 그런 주장을 깨뜨릴 수도 있다.
어떤 내용이 다른 것과 관계를 떠나 본바탕에 실재한다고 하자.
그런데 한편 그 내용이 또 다른 내용과 의존하는 관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내용을 관념영역에서 세울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어떤 관념이 이들 두 내용을 함께 만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관념을 배척하게 된다.
즉 이 두 내용은 서로가 모순된다.
그래서 이 가운데 하나만 택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그런 형태의 관념은 실재영역에 있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일정한 내용은 그 주체나 다른 내용과 상대적 관계로만 세울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상대적 관계없이는 그 내용을 본래 세울 수 없다.[ 예: 좌우, 전후, 아버지와 자식]
그런 경우 이는 그런 관계를 떠나 자체적으로 그대로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내용은 실재 내용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처럼 제시해 그런 주장을 깨뜨릴 수도 있다.
결국 그런 관념이 실재함을 귀류논증형태로 배척하게 된다.
한편, 그 어떤 내용이 있다고 전제한다.
그러면 반드시 잘못된 결론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 사정을 밝혀 잘못된 견해를 깨뜨리게 된다.
다만, 이런 측면의 유무 문제는 성격이 다른 유무논의들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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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문제를 풀 수 있는가 여부의 유무논의
수학문제가 제출되었다.
그래서 답안지에 답을 적어야 한다.
그런데 수학문제에서 요구하는 답이 본래 얻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단순히 답을 적어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수학문제에서 요구하는 답이 본래 있다.
그러나 단지 어떤 이가 수학문제를 잘 풀지 못할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단순히 답을 적어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이와 달리 수학문제를 잘 풀어 답을 적어 놓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각 경우 유무를 다음처럼 문제 삼을 수 있다.
우선 어떤 내용이라도 적혀 있는가 없는가 측면에서 답의 유무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또는 올바른 답이 적혀 있는가 측면에서 답의 유무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경전 내용과 관련해서도 이런 문제로 유무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전과 논서에서 여러 어려운 주제가 제시된다.
이 경우 그 주제와 관련해 가장 적절한 내용을 얻어낼 필요가 있다.
눈으로 얻는 내용은 색인가.
색은 자신인가.
자신은 사후에 존재하는가.
실재는 색인가 아닌가.
이런 문제가 제출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대해 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답 자체를 얻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실재는 이다 아니다 있다 없다의 분별을 떠난다.
그래서 실재는 색인가 아닌가.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그에 대한 답을 본래 제시하기 곤란하다.
이런 경우 답이 있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어떤 경우는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눈으로 얻는 내용은 색인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이 경우 좁은 의미의 색의 개념정의가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그래서 답이 있다.
그런데 답이 있어도 답을 몰라 답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그 주체에게는 의식에 올바른 답이 없는 상태다.
어떤 이가 색의 개념을 미리 배우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눈으로 얻는 내용은 색인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답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
한편, 어떤 경우는 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틀린 답인 경우도 있다.
그가 색의 개념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색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일단 색의 개념 정의에는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틀린 답이라고 하게 된다.
이 경우 올바른 답은 그 주체의 의식에는 아직 없다.
다만, 이런 측면의 유무 문제는 다른 성격의 유무논의들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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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기억한 관념의 현재 존부문제
과거에 어떤 이를 만났다.
그런데 당시 그가 어떤 옷을 입었는가를 물어본다.
그런데 당시는 분명히 알았다.
그런데 지금 단지 그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경우는 그에 대한 관념내용이 현재 의식에 '없는' 상태다.
또 한편, 어떤 이가 방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또는 무언가에 대해서 배우고 학습했다.
그런데 그가 건망증 환자다.
그래서 어느 순간 무엇을 찾는지 자체를 잊어버렸다.
또 과거에 배운 내용을 지금은 잊어 버렸다.
이 경우 이런 관념내용은 반드시 감각현실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
한편 그가 그에 대해 일정한 내용을 배웠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4념처 내용에 대해 과거에 배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그 구체적 내용이 생각이 잘 안 떠오른다.
그런데 나중에 그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4념처는 신ㆍ수ㆍ심ㆍ법을 말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이처럼 그 내용이 떠오른다.
그런 경우는 그 내용이 그 순간에 그 마음에 있다.
그러나 생각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자.
그러면 마음의 표면에는 일단 그런 내용이 없다.
그런 경우 그 내용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가를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러다가 다시 그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경우 그런 내용이 어디에 머물러 있다가 떠오르게 되는가를 문제 삼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관념의 유무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일정한 관념내용이 생각이 안 난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이들 관념이 지금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이런 유무문제도 살필 수 있다.
이는 불교에서는 근본정신의 유무문제와도 관련된다.
과거에 행한 업종자나 명언 종자가 이롸야식에 보관된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이런 아뢰야식의 존부 확인문제가 있다.
다만, 이런 측면의 유무 문제는 다른 성격의 유무논의들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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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상되어지는 일정한 관념내용의 유무
어떤 관념을 얻는다.
그러면 이로부터 또 일정한 관념을 연상해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를 생각한다.
그러면 이후 -> 사과는 맛있다 -> 맛있는 것은 바나나다 -> 바나나는 길다 -> 긴 것은 기차다.
이런 식으로 다른 관념을 계속 연상해 일으킬 수 있다.
또 감각현실을 대해서도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그래서 이처럼 어떤 경우에 일정한 관념을 떠올리는 것을 요구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종이에 일정한 글자가 쓰여 있다.
그래서 일반인이 정상적인 상태로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일반적으로 그 글자가 가리키는 일정한 의미에 대한 관념을 얻는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를 대해 그런 관념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면 현실에서 생활에 장애를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상태인가 확인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다.
그런 경우 Lakṣaṇa가 무슨 의미인가를 묻는다.
그런 경우 이런 글자나 단어로부터 연상되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답을 못한다.
그런 경우 요구되는 관념이 그 주체의 마음에는 '없는 상태다' [상대적 무]
한편, 일정한 관념을 연상해 꺼낸다.
그러나 요구되는 내용과 다른 엉뚱한 내용을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Lakṣaṇa는 한자로 모습[相]이란 의미를 가리킨다.
그런데 '각 주체 서로간'이라는 의미를 꺼낸다.
그러면 원래 갖는 의미와는 엉뚱한 의미를 꺼낸 경우가 된다.
그리고 원래 요구된 의미는 그 의식에 없는 상태다.
경전에서도 이런 측면에서 관념유무가 문제될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 낯선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이들 각 표현은 일정한 의미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다.
그래서 이를 대하는 이가 이들 표현으로 나타낸 의미를 잘 꺼내야 한다.
그래서 표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특히 경전에서 마음 현상에 대해 일정한 표현으로 기술한다.
그런데 마음내용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각 표현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
한편, 하나의 표현이 다의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색이란 표현은 어떤 경우는 눈으로 얻는 내용만 가리킨다. (색-안-안식)
그러나 어떤 경우는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의 감각현실을 다 가리킨다.(5온의 색)
그래서 각 경우 서로 의미가 다르다.
한편, 하나의 표현에 대해 일상생활에서 다수가 이해하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 표현이 학술적인 논의에서 갖는 특별한 의미도 있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 달라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자로 '문(文)'이란 글자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는 한 문장의 의미로 이해한다.
그러나 불교 논서에서는 이는 문자를 가리킨다. [명ㆍ구ㆍ문]
예를 들어 한글에서 ㄱ ㄴ ㄷ 과 같은 문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서로 착오가 발생한다.
한편, 어떤 이가 일정한 표현으로 일정한 의미를 나타낸다.
그런데 이 표현을 대한 이는 그와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각 주체가 이해하는 의미가 서로 일치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
한편 어떤 의미를 나타내려고 어떤 이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뜻과 달리 표현을 잘못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도 표현으로 나타내고자 한 의미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각 경우 각 표현이 원래 나타내고자 한 의미가 있다.
그래서 표현을 대할 때 그런 의미를 적절히 꺼내 일으켜야 한다.
그래서 표현이 나타내는 의미를 잘 이해함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각 경우 그에 적절한 관념이 일으켜지는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적정한 관념의 유무가 문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 참ㆍ괴, 심ㆍ사, 촉ㆍ수ㆍ상ㆍ행ㆍ식, 변집론, 유변 무변 이런 식의 한자어도 많다 .
그런데 참이 무슨 의미인가,
참과 괴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심은 무슨 의미인가.
심과 사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촉은 무슨 의미인가.
촉과 수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변견의 변의 의미가 무엇인가.
한편 변견의 변과 유변론의 변이 같은 의미인가.
이런 식으로 묻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답을 잘 하는 경우가 있다.
또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 답을 하더라도 원래 경전과 논서에서 가리키는 의미와 다른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각 경우의 차이가 문제될 수 있다.
다만, 이런 측면의 유무 문제를 다른 성격의 유무논의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Table of Contents
▣- 감각현실에 대응한 관념의 존부 문제
♥Table of Contents
▣- 감각현실 자체를 잘 얻지 못하는 경우
일정 상황에서 적절히 일으켜야 하는 관념이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관념의 존부도 논의될 수 있다.
그런데 일정한 경우 그런 관념을 잘 일으키지 못한다고 하자.
그래서 요구되는 관념은 일으키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그 사정이 감각현실 영역에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안경점에서 시력을 검사한다.
어떤 물체가 무엇인가를 판단하려 한다.
그러려면 일정한 감각현실이 일정한 정도로 얻어져야 한다.
그런데 우선, 감각현실 자체가 잘 얻어지지 않는다.
그 사정이 다양할 수 있다.
감각현실 하나를 얻기 위해 여러 요소가 구비되어야 한다.
이 가운데 무언가가 결여되거나 불충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여러 경우가 있다.
우선 물체가 멀리 떨어져 있다.
또는 물체가 크기가 작다.
또는 물체가 형체가 쉼 없이 변화하고 뚜렷하지 않다. 예를 들어 연기나 안개와 같다.
또는 물체가 빨리 이동한다.
또는 물체가 무언가에 가려져 있다. 예를 들어 상자에 든 물건과 같다.
또는 빛이 어둡다,
또는 빛이 산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등이 켜졌다 꺼졌다 반복한다.
또는 빛이 반대로 너무 눈부실 경우도 있다.
또는 눈에 병이 들었다.
또는 눈에 무언가가 가려졌다.
또는 아예 눈꺼풀이 떨려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한다.
그런 경우 감각현실 자체가 잘 얻어지지 않는다.
이는 감각현실이 아예 얻어지지 않는 경우와는 다르다.
다만 일정한 사정으로 모습이 잘 얻어지지 않는 경우다.
그래서 평소의 일반적 경우와는 달리 뚜렷하게 분별할 수 없는 경우다.
이처럼 감각현실이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얻어진다.
그래서 그에 대해 적절한 관념을 일으키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자판에 4라고 글자가 쓰여 있다.
그런데 시력 판의 글씨가 작다.
그리고 그가 눈이 나쁘다.
그리고 시력 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어떤 이가 이런 사정으로 4라고 글자를 읽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안경점에서 시력 판에 글씨가 적혀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곳에 글씨가 있다.
다만 그가 글씨가 희미하게 잘 안 보인다.
그러면 그에 대해 관념을 일으키기 곤란하다.
그래서 답하기 곤란하다.
만일 이 경우 글씨가 잘 보인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것이 4 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이 경우 그 주체의 마음에 그에 대한 적절한 관념내용이 '없는' 상태다.
♥Table of Contents
▣- 감각현실 자체는 잘 얻는 경우
일정한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일반적으로 얻어야 할 관념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상황에서 일정한 감각현실 자체는 얻었다.
그렇지만, 이후 어떤 이가 일정한 사유로 그런 관념을 잘 일으키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식만 잃은 경우도 있다.
또는 알코올이나 약물에 취한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것에 집중해서 파악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한편, 경험이나 필요한 배경 지식, 학습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그런 사정으로 적절한 관념을 일으키지 못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로 쓰인 시력 판을 놓고 시력검사를 한다.
그리스어 αβ는 알파 베타라고 읽는다.
그런데 그가 그리스 철자를 배우지 않았다.
이 경우 그 글자 모습은 보인다.
다만 각 글자 형태를 무엇이라고 읽거나 표현할지 모른다.
즉 글자의 소릿값이나, 의미를 모른다.
그래서 이를 대해 어떤 요구되는 관념을 적절히 일으키지 못한다.
그래서 그 의식에 그런 관념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그에 대해 답하지 못한다.
그런 경우 그는 그에 대해 모른다고 답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그 소릿값이나 의미를 아는 경우가 있다.
감각현실 자체를 잘 얻는다.
그리고 그런 감각내용을 대해 일반적으로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
어떤 관념을 일으키는데 학습이나 경험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그런 내용마저도 잘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런 관념을 잘 일으킨다.
예를 들어 αβ란 글자를 보고 알파 베타라고도 읽는다.
감각현실을 대할 때 각 주체의 관념영역의 상태가 각기 다르다.
그래서 이 두 차이를 놓고 문제 삼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실적으로 감각현실에 대해 알고 모름의 상태를 구분한다.
그래서 이 가운데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한편, 감각현실에 대해 분명하게 내용을 얻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일정한 형태로 답하기 곤란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분별하는 과정에서 착오를 일으키는 형태도 있다.
예를 들어 <-> >-< 이런 두 형태에서 선이 그려져 있다.
이 가운데 어느 쪽이 짧은가. 이런 문제와 같다.
심리학에서 드는 유사한 사례가 많다.
하나의 색은 어떤 색 주변에 놓이는가에 따라 색 분별에 착오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 경우 어떤 이가 감각 자체를 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다만 주변 색에 영향 받아 색에 대한 분별을 잘 하지 못한 경우다.
또 감각현실을 분명하게 얻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a이다 아니다로 답하기 곤란한 경우가 있다.
즉, 단순히 2분법적인 관념분별을 행하기 곤란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가 입체적이다.
그래서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으로도 보인다.
그리고 꽃으로도 보이는 형태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어느 하나만 답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이가 그것이 꽃이라고 주장한다.
그 경우 이 주장이 참인가 거짓인가를 살펴야 한다고 하자.
이 경우 이런 사정으로 참이라고도 단정할 수 없다.
또 거짓이라고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한편, 점을 종이에 흩뿌린다.
그것이 거미로도 보인다.
그리고 사람으로도 보일 수 있다.
이 경우 사실 이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
단지 점을 흩뿌린 것뿐이다.
이 경우도 위와 비슷하다.
한편, 예를 들어 옷감에 검은 점과 흰점이 섞여 있다.
그런데 그 옷이 흰옷인가 아닌가를 묻는다.
이 경우에도 그 옷이 흰옷이다. 아니다로 답하기 곤란하다.
즉 이다 아니다의 2분법만으로는 구분해 답하기 곤란하다.
그런데 '이 옷은 흰옷이다'라고 진술한다.
이 경우 이를 참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또 거짓이라고도 하기 곤란하다.
한편, 피아노 소리가 하얀 색인가 아닌가를 묻는다.
이 경우에도 피아노소리를 하얀색이다 또는 ‘아니다’라고만 답하기 곤란하다.
이 경우 감각현실도 분명하게 얻었다.
즉, 감각현실 자체가 얻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별할 대상내용으로서 감각현실 자체는 분명하게 얻었다.
그리고 분별을 행할 수 없는 상태도 아니다.
분별시 이런 사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4구 분별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분별한다.
a이다.
a가 아니다.
a이기도 하고 a아니기도 하다.
a도 아니고 a아닌 것도 아니다.
유무 문제도 마찬가지다.
있다.
없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이런 식으로 4구 분별 방식이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차원에서 추론체계도 같이 문제된다.
추론체계가 참과 거짓으로만 2분되어 처리되는 체계라고 하자.
그런 경우 위와 같은 경우 추론과정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어떤 내용에 대해 참, 거짓으로 단정하기 곤란하다.
다만, 이런 측면의 유무 문제를 다른 성격의 유무논의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들은 어떤 이가 일정한 관념을 일으키고 있는가 여부의 문제다.
즉, 일정한 감각현실을 대해 요구되는 일정한 관념을 일으켜 얻어 내는가의 문제다.
그래서 다음 유무 논의와는 측면이 다르다.
즉, 일정한 관념이 감각현실 영역에 있는가의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또 실재 영역에 일정한 관념이 그대로 있는가의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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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영역에서 언어의 유무 문제
언어표현은 감각현실 형태로 일정한 글자모양이나 소리를 주로 사용한다.
어떤 주체가 일정한 글자모양을 대한다.
그런 경우 그에 대해 1차적으로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는 마치 바위 모습을 보는 경우와 같다.
이제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그 바위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본다.
이 경우 직전에 본 감각현실을 직접 떠올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관념영역에서 대강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이에 선으로 그려 보는 대강의 모습과 같다.
그런데 이들은 관념적 내용이다.
현실에서 언어인 글자모습을 대할 때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 글자 자체의 모습에 대한 관념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한편 말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런 경우 그 소리 자체에 대해 1차적으로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 경우도 물소리를 듣는 경우와 같다.
귀를 닫고 소리를 듣지 않는 상태라고 하자.
이 경우 그 직전의 소리를 그대로 다시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의 관념영역에서 직전에 들은 소리를 대강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글자모양이나 소리를 대해 일으키는 관념이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눈을 감고 '꽃'이란 글자 형태를 떠올린다.
또는 소리를 듣지 않는 상태에서 마음으로 'kkot 이란 말소리'를 떠올린다.
이런 경우 마음에서 떠올려지는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언어는 다시 다른 일정한 내용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그래서 그런 경우 일정한 감각현실과 관념내용이 언어로 평가받는다.
일정한 감각현실과 관념내용이 언어로 되는 것은 이런 사정에서다.
한편 이런 언어가 가리키는 영역은 제한이 없다.
언어는 각 감각현실의 각 부분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언어는 어떤 느낌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언어는 관념분별내용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언어적 표현 그 자체[단어, 철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언어는 본바탕의 실재내용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언어는 참된 진짜 실체의 존부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논의에 모두 언어가 사용된다.
그것은 언어가 무언가를 가리키는 기능 때문이다.
예를 들어 '꽃'이란 글자형태나 kkot 이란 소리를 놓고 생각해보자.
이런 언어가 가리킬 수 있는 내용에는 다양한 차원이 있다.
예를 들어 눈을 뜬다.
이런 경우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예를 들어 화분에 있는 장미꽃 모습일 수 있다.
한편,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꽃에 대한 관념도 있다.
한편 본바탕인 실재도 있다.
즉 주체와 관계없이 본래 있다고 할 본바탕 내용이다.
이런 실재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래서 자신이 얻는 감각현실과 관련된 실재내용을 추리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참된 진짜로서 뼈대가 되는 실체의 존재도 추리하게 된다.
또는 꽃이란 한글 단어는 영어의 flower에 해당한다.
그리고 불어 fleur에 해당한다.
독일어 die Blume에 해당한다.
일본어 はな에 해당한다.
그리고 한자 花에 해당한다.
이런 식으로 언어차원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언어는 이들 여러 차원의 내용들을 모두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 논의할 때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여러 주체가 이들 내용을 함께 논의하게 된다.
이는 언어가 갖는 이런 기능 때문이다.
한편 어떤 것의 '유무'를 언어 차원에서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이는 관념분별측면에서 유무를 살피는 경우와 같은 문제를 갖는다.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한다.
그러면 일단 그런 언어 측면에서만은 '있다'.
예를 들어 '라라꾸'라는 언어표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단지 언어측면에서 그 유무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글자는 일단 그렇게 제시된다.
그렇다면 그런 측면에서는 일단 있다.
한편 이런 경우 그런 글자형태를 대해 관념분별도 행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도 일단 있다.
따라서 결국 이런 측면의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쓸모없는 희론이 된다.
다만, 언어학적으로는 다음 측면에서 여전히 이들 주제가 문제될 수 있다.
언어는 일정한 내용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그래서 일정한 언어 표현은 일정한 지역에서 일정한 의미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그런 '라라꾸'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의미가 있는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한편, 어떤 언어 표현이 특정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표현인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kkot 이란 단어를 영어권에서 사용하는 표현인가를 문제 삼을 수 있다.
또는 그런 kkot 이란 단어가 영어사전에 올려져 있는가 여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한편, blue란 단어가 영어에 사용된다.
그런데 영어권에서 blue 란 단어가 '활기참'이란 의미를 나타내는가 여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이들은 언어학적인 논의 대상은 될 수 있다.
다만, 이런 측면의 유무 문제를 다른 성격의 유무논의와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관념영역에서나 언어 차원에서의 유무는 보통 문제 삼지 않는다. [일정내용 자체 영역 유무판단]
생사고통의 문제를 살피기 위해 무언가의 유무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런 측면의 유무는 주된 초점이 되지 않는다.
다만 언어표현이 일정한 의미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 언어표현이 일정한 의미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 일정한 의미가 일정한 언어표현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 경우 그런 의미가 그런 언어표현에 본래 들어 있는가를 문제 삼을 수 있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그리고 이들 유무 논의는 앞과는 다른 성격이 된다.
그런 경우 언어표현에 그런 의미가 본래 들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언어표현은 일정한 의미를 가리키기 위한 사회적 약속일뿐이다.
한편, 그런 언어표현은 곧 그런 의미 자체인가 여부도 문제 삼을 수 있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 내용과의 정체판단.-이다,아니다 사실판단]
이 경우도 언어표현이 곧 그런 의미자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여하튼 이처럼 각 논의에서 논의 성격을 서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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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시설의 문제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다.
이런 경우 각 경우마다 그 논의의 초점이 다르다.
우선 일반 현실에서 행하는 유무판단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방에 꽃이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 삼는다.
이런 경우 먼저 관념영역에서 꽃에 대한 관념을 떠올린다.
그리고 빛이 밝은 상황에서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 상황에서 일정 부분을 대해 꽃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런 경우 꽃이 거기에 '있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상황이 이와 다른 경우가 있다.
눈을 뜬다.
그 상황에서 다른 것은 보인다.
그렇지만, 꽃이라고 여길 그런 부분을 보지 못한다.
그러면 꽃은 '없다'고 표현한다.
현실에서는 주로 이런 측면에서 유무 판단을 행한다.
즉, 감각기관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무언가가 보이거나 대할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측면에서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꽃이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일정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이는 그가 그 감각현실 부분이 그런 관념 내용'이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 유무판단은 바로 이런 바탕에서 행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일정한 관념[想]을 바탕으로 상(相 Lakṣaṇa)을 취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일정한 상(相)을 찾아나가는 바탕에 있다.
그런데 언어표현을 하는 경우도 이에 준한다.
'방에 꽃이 있다'고 언어로 표현한다.
이 경우 그 표현이 위와 같은 내용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가 그와 같다.
그런데 한편, 이와는 다른 경우도 있다.
즉 일정한 언어표현이 단지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경전에서 생사현실을 설명한다고 하자.
이 경우 상대는 망집에 바탕해 현실에 임한다.
그래서 그런 상대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 일정한 언어를 시설해 설명하게 된다.
이 경우 그런 언어 시설은 이런 내용을 그처럼 '가리키기' 위한 방편이다. [시설施設ㆍ안립安立ㆍ가명假名]
예를 들어 감각현실 내용을 예를 들어 색이라고 칭한다고 하자.
이는 언어표현은 그처럼 일정한 감각현실 들을 가리키기 위한 방편이다.
그런데 이는 그런 관념내용이 감각현실에 그처럼 '있다'라고 제시하는 취지는 아니다.
또는 일정한 감각현실 부분이 곧 그런 관념내용'이다'라고 제시함도 아니다.
단지 그런 언어를 통해 그런 감각현실 부분을 그처럼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는 다양한 차원의 내용을 각기 가리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감각현실 일정부분만 가리킬 수도 있다.
또는 본바탕 실재를 가리킬 수도 있다.
기타 관념적 내용이나, 언어 차원의 내용이나, 실체적 내용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렇게 언어방편은 일정 내용을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일정 내용을 가리키기 위해 언어표현을 시설해 사용한다.
이런 경우 그 언어는 원칙적으로는 이처럼 일정한 내용을 가리킴으로만 이해하고 그쳐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 이를 넘어서, 일정 부분에 그런 관념이나 언어내용이 '있다'고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두 내용은 서로 다른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꽃이 있다'고 표현했다.
그 경우 이 표현은 그가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는 사실을 나타낼 수 있다.
즉, 꽃이란 언어가 가리키는 일정한 감각현실이 있다.
그런 감각현실을 얻고 있다는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이 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고 하자.
어떤 이가 꽃에 대해 관념을 일으킬 수 있다.
한편 그는 일정부분을 그런 꽃이라고 가리킨다.
그래서 거기에 '꽃이 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표현이 다음을 의미한다고 이해한다고 하자.
즉, 그런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내용이 그처럼 들어 있다.
또 감각현실 일정부분이 곧 그런 관념이나 언어내용'이다'
이런 식으로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잘못이 된다.
그리고 이 두 내용은 서로 다른 문제가 된다.
따라서 이들을 잘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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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시설로 감각현실 부분을 가리키는 경우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가리키기 위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가리키기' 위해 언어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그 경우 어떤 표현 A가 적절하게 대응해 가리키는 감각현실이 있다.
예를 들어 '바위모습' 이란 단어가 그렇게 사용된다고 하자.
그런데 현재 바위 모습에 해당하는 일정한 '감각현실'이 얻어진다.
그러면 지금 바위모습이 보인다고 표현할 수 있다.
또 바위모습이 '있다'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 표현은 결국 그런 감각내용이 그렇게 얻어짐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경우 바위라는 '관념'이 그 감각현실 부분에 들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경우의 구체적 의미가 서로 다르다.
이 사정을 앞에서 보았다.
그런데 언어표현만으로는 이 각 경우를 구분하기 힘들다.
즉 바위라는 언어표현이 있다고 하자.
이것이 정확히 어떤 내용을 가리킨 것인가를 표현만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다.
이 표현은 각 경우에 따라 다양한 영역의 내용을 가리킬 수 있다.
그래셔 관념 내용이나, 실재, 실체, 언어표현, 감각현실 자체를 가리킬 수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단순히 순수한 감각현실 부분으로서 바위를 가리킬 경우도 있다.
그리고 관념과 접착된 감각현실로서 바위모습[상相]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는 감각현실과 접착된 형태의 관념으로서 바위를 의미할 경우도 있다.
또는 단순히 바위에 대한 관념만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각 경우를 표현만으로는 구분하기 힘들다.
이는 결국 전체 맥락을 통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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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처소섭색[감각할 가능성으로서 유무판단]
언어표현이 일정한 감각현실을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된다고 하자.
예를 들어 '바위가 저기 있다'라고 표현한다.
이 경우 현재 바위 모습에 해당하는 일정한 '감각현실'이 얻어진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단순히 가리키기 위한 표현이 된다.
그리고 이 경우는 바위라는 '관념'이 그 감각현실 부분에 들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측면으로 감각현실에 대해 언어를 시설해 가리킬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일정한 감각현실의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일정한 내용들을 언어로 시설해 나열할 수 있다.
그런 입장에서도 다시 약간 모호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다.
일정한 내용을 지금 당장은 감각하지 못한다.
즉, 감각현실을 직접 얻는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는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진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일정한 내용을 감각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현재는 그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 상태에서는 그런 내용이 단순히 잠재한 상태다.
그런데 이를 일정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고 제시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내용이 순전히 관념영역 안의 관념내용도 아니다.
그리고 감각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를 가리킨 것도 아니다.
이는 감각할 수 있는 내용이기는 하다.
다만 당장 얻는 감각내용을 가리키는 내용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감각해 대할 수 있는 다른 상태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이는 관념영역에서 그 가능성을 분별해 이를 표현하는 경우가 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의 유무문제는 조금 모호한 중간 영역에 놓인다.
이런 경우 이들은 제6의식이 얻어내는 법처에 포함되는 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법처 소섭색이라고 표현하게 된다.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그런 사정으로 여하튼 현실에서 그런 내용의 유무도 문제된다.
따라서 유무 논의에서는 이런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 극략색(極略色)ㆍ극형색(極逈色)ㆍ수소인색(受所引色 무표색)ㆍ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ㆍ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 등]
이들 내용을 대강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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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략색
예를 들어 어떤 물체를 잘게 갈거나 또는 현미경을 통해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주 작은 입자를 대하게 된다.
그런 경험을 반복한다.
그런 경험을 통해 다음과 같이 추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어떤 모습을 대한다.
그 상황에서 작은 입자는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 상황에 앞과 같이 잘게 나눈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더 작은 입자를 대하게 되리라 여긴다.
또는 현미경으로 대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보게 될 작은 입자가 있다고 여긴다.
현실에서 이처럼 어떤 사물의 극미나 원소의 존부를 문제 삼는다.
이를 비유적으로 살피면 다음과 같다.
멀리서 산의 숲 모습만 본다.
그리고 정작 나무는 낱낱이 보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 상황에 나무가 있다고 할 것인가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입장 따라 유무 판단을 달리하게 된다.
이 때 나무가 있다고 하는 입장이라고 하자.
이는 다음 의미다.
지금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서 대한다.
또는 망원경으로 살펴본다.
그러면 분명 나무를 볼 수 있다.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극미 등의 존부문제는 이런 경우와 성격이 같다. [극략색極略色, 극미極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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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형색
한편 평소 허공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에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밀폐된 공간에 어떤 공기를 주입한다.
그런데 갑자기 구토를 느낄 수 있다.
또는 질식할 수도 있다.
그런데 냄새도 맡지 못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런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질소나 수소나 헬륨 등등이 그런 경우다.
그런 가운데 허공의 명암이나 빛 그림자를 위처럼 미세하게 극미 차원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재료의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 경우도 있다.[극형색極逈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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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소인색
한편 어떤 이가 평소 어떤 운동을 열심히 한다.
그래서 턱걸이를 100회 할 수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그의 신체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상태가 되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와 철봉 앞에서 실험을 해본다.
그러면 그 예측대로 차이를 보게 된다.
이 경우도 그렇지 않은 경우와 무언가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외관상은 그런 내용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외관만 놓고 살피면 그런 내용은 없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무언가의 내용이 이 상태에 잠재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경우는 또 그런 내용이 그처럼 있다고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수행자가 계율을 지켜 익힌다.
그러면 어느 단계 이후는 그의 상태가 달라진다.
어떤 상황이 일반적으로 분노가 일으킬 상황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런 경우에서도 분노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또 일반적으로 탐욕을 일으킬 만한 상황이다.
그런 경우에서도 탐욕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런 경우 그런 수행자는 무언가를 일반인과 달리 갖추게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그 상태는 5계 8계 등 계를 받아서 끌어내진 색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수소인색이라고도 한다.[수소인색受所引色, 무표색無表色]
그래서 이런 측면으로 무언가가 '있고 없음'을 문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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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계소기색
한편 일정한 생각을 하는 가운데 현실을 대한다.
그런 경우 그런 생각으로 그 현실을 달리 여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경우 솥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런데 그가 거북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거북이를 생각하는 중이다.
그런 경우는 솥뚜껑을 대하며 거북으로 잘못 여길 수 있다.
그리고 놀랄 수도 있다.
그래서 일반의 경우와 달리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편, 거울에 어떤 꽃이 비추이고 있다.
또는 물에 꽃이 비추인다.
그것은 물론 직접 대하는 꽃과 다르다.
그러나 여하튼 거울 자체나 물 자체와는 다르다.
그런 가운데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또 이런 경우는 바위가 비추이는 거울과는 다르다.
또 바위가 비우이는 물의 상태와도 다르다.
따라서 이 경우 그렇게 달리 파악하게 하는 그 무언가를 추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것이 거기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런 경우 그런 반응을 하게 하는 무엇의 유무를 문제삼을 수 있다.
그래서 그 상황에 그런 것이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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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재소생색
한편 정려 수행 중에서 경험하는 특수 현상이 있다.
정려 수행에서는 그 힘으로 변화시켜 일으키는 색성향미촉이 있음을 제시한다.[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
그런 경우 이런 내용의 정체와 그 유무도 문제된다.
다만 정려 수행은 특수하고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에서 이를 함께 살피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최면은 비교적 일반인도 종종 경험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최면술사가 최면에 걸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댄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뜨거운 물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이런 경우 상대는 손에 수포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수포는 화상을 입을 때 나타난다.
또는 혁대를 뱀이라고 최면에 걸었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는 이를 대하면서 소름이 돋을 수 있다.
또는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이런 내용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이를 대하는 주체의 입장을 고려해 살펴보자.
이 경우 여하튼 일반적인 상태와는 다르다.
그리고 이는 무언가로 인해 그렇게 된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주체와 관련해서는 그런 무언가 내용이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내용의 있고 없음을 문제 삼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차이를 낳는 그 무엇을 달리 가리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일정한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정려 수행중의 자새소생색도 이에 준해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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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에 따라 변하는 유무판단문제
이미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으로 여러 내용을 살폈다.
극략색(極略色)ㆍ극형색(極逈色)ㆍ수소인색(受所引色)ㆍ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ㆍ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 등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경우를 다시 여러 경우를 나열할 수 있다.
지금은 감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장차 감각현실을 얻는 관계와 조건이 모두 충족된다고 하자.
그러면 감각해 얻게 될 내용이 있다.
즉, 상황이 달라지면 일정한 내용을 감각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상태에서 이들 내용의 유무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러나 이 경우 그 내용을 지금 얻는 상태는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단지 그 내용을 감각할 가능성의 유무만으로 '있고 없음'을 논의한다.
그러나 이 경우 단순히 관념영역에서 관념분별 내용의 유무를 살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도 제6의식이 얻는 법처에 포함되는 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예로 다음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자 속에 어떤 과일이 들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상자를 닫아서 다시 열수 없다.
한편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이런 상태에서 상자에 과일이 계속 있다고 할 것인가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리고 이런 경우 유무판단을 한다고 하자.
이는 그 상황에서 그런 내용을 당장 직접 감각해 얻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있다'고 표현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일단 일반적으로 '있고 없음'을 표현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한편, 이는 본바탕이 되는 실재영역을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실재는 처음부터 현실 내용을 얻는 주관과의 관계를 떠난다.
그런 가운데 본바탕의 내용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이는 그런 경우는 아니다.
예를 들어 눈을 감기 직전에 상자를 보았다.
그런데 눈을 감고 그 상자가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나 없나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이는 주관과의 관계를 일체 떠난 무엇[실재]를 찾는 경우는 아니다.
이 경우는 다시 눈을 뜨면 보게 될 내용[현실내용]을 문제 삼는다.
그래서 이 두 경우를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이런 경우들로 다음과 같은 여러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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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 내용
예를 들어 벽이 있다.
이 경우 벽 안에 흙이 있는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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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물로 가려진 내용
한편, 벽이 있다고 할 때 또 벽 뒤에 어떤 내용이 있는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도 위와 비슷하다.
♥Table of Contents
▣- 먼 곳의 내용
한편 깊은 산속에 지내는 이가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바다는 산 너머 멀리 있다.
그래서 그가 바다를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런 경우 산 너머에 바닷가가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한편, 현실에서 자신이 끝내 가보지 못할 아주 먼 어떤 곳이 있다.
그런 곳에 자신이 평소 보지 못한 이상한 동식물이 있다.
이를 보고 온 다른 이가 이를 자신에게 보고한다.
예를 들어 기자가 현지에 가서 특이한 동물의 사진을 찍어 왔다.
또는 학자가 어떤 내용을 글로만 적어 보고한다.
그런 경우 그것이 정말 그처럼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런 경우 그런 내용만으로 그 있고 없음을 판단하기 곤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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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에 필요한 요소 조건 등이 결여된 기타 여러 상황
어두운 방에서 불이 꺼졌다.
그러면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경우 직전에 본 사과가 그대로 있는가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한편 어떤 이가 묶여 있다.
그 상태에서 눈을 떠 세상을 본다.
그런데 자신의 눈썹과 이마나 허리 등은 보지 못한다.
그 상황에서 그런 모습도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 거울을 통해서 이를 볼 수 있다.
또 나중에 손이 풀리면 만질 수도 있다.
이처럼 상황이 달라지면 그것을 감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하튼 어떤 사정으로든 현재 직접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만지지도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이를 있다거나 없다고 표현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는 어떤 측면에서 유무를 표현하는 것인가가 문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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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감각현실
현실에 다음 문제도 있다.
장님에게 노란 색을 말한다.
이 경우 장님입장에서 이것을 있다고 해야 할 지가 모호해진다.
또 귀가 안 들리는 이가 있다.
이런 이 입장에서 아름다운 피아노소리가 있는지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주체는 상대적으로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을 감각하고 얻는다.
이런 경우 어떤 상태를 기준으로 유무를 판단할 지가 애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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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생명체의 다른 감관이 얻는 내용들
한편, 개는 냄새를 맡는다.
그러나 사람은 못 맡는다.
고래는 듣는다.
그러나 사람은 못 듣는 소리가 있다.
이런 경우 이런 것들의 있고 없음의 판단을 한다고 하자.
이 경우도 같은 성격의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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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적 센서를 통해 얻어지는 내용
요즘 과학기계가 발달했다.
그래서 적외선이나 자외선, 기타 X선 초음파 이런 측정 장치가 있다.
그래서 영상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사람이 눈으로 보는 내용과 다른 내용을 얻는다.
이 경우도 기준 따라 달라진다.
사람의 시각을 기준으로 하면 '없다'.
그러나 다른 측정수단을 동원하면 파악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어떤 주체가 기계 상태로 직접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그 기계는 직접 어떤 상태를 얻는지는 파악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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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을 통한 6신통 등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시간 공간의 장애나 감관 등의 문제로 얻지 못한다.
그런데 그런 내용들을 감각하고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경전에서 제시된다.
그런 경우 일반적 입장에서 그런 내용이 있고 없음을 문제 삼는 경우가 있다.
경전에 수행을 통해 6신통을 증득한다는 내용이 제시된다.
한편 부처님이 되면 5안을 갖추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여기서 5안은 불안ㆍ법안ㆍ혜안ㆍ천안ㆍ육안을 말한다.
또 예를 들어 부처님이 경전에서 3계 6도를 제시한다.
그리고 지옥이나 아귀 하늘 등을 제시한다.
이 경우 지옥과 지옥 중생이 있는가를 문제 삼을 수 있다.
또는 아귀세계와 아귀 중생이 있는가를 문제 삼을 수 있다.
경전에서 부처님이 이런 성격의 내용을 제시한다.
이 경우 각 주체가 그런 세계에 그런 중생 상태에 처한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지금 현실에서 경험하는 내용처럼 경험하게끔 되는 내용이다.
즉, 경전에서 그런 성격의 내용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런 경우 이는 현실에서 기자가 행하는 보고와 어느 정도 성격이 비슷하다.
다만 일반적인 입장에서 그런 내용을 직접 감각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그 내용을 지금 직접 얻지 못한다.
따라서 그 유무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게 된다.
다만 이들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감각할 수 있는 내용을 가리킨다.
현재는 그런 내용을 얻는데 필요한 일부 요소가 결여된 상태다.
그래서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그 내용들의 유무를 판단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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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의 유무문제
공간은 직접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그런데 공간의 크기나 유무를 문제 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하늘 위에서 점으로 보이는 공간이 보인다.
그런데 옆에 놓인 의자는 이 점보다 대단히 커 보인다.
그런데 그 작은 점 부분이 알고 보면 하나의 도시일 수 있다.
공간은 일정한 기준 사물을 가지고 크기를 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준이 되는 사물을 넣고 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부분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간이 그만큼 있다거나 없다고 여긴다.
이 경우 공간의 크기를 재는 기준 사물을 달리 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공간의 유무나 크기 관념이 달라질 수 있다.
공간은 일반적으로 생ㆍ주ㆍ멸 변화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하튼 이런 상대적 관계를 통해 공간의 유무나 크기 여부를 달리 문제 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경우를 생각해보자.
어느 공간에 어떤 사물을 넣어보려고 해도 들어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집에 아무리 10톤 트럭을 넣어보려도 들어갈 공간은 없다.
그러나 산소 10톤 분량은 이상하게 들어간다.
이런 경우 무엇을 기준으로 공간의 크기를 재는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공간의 유무나 크기의 관념이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상대적인 차이다.
다만 문제 삼는 공간을 직접 감각하기는 곤란하다.
현실에서 감각하는 다른 내용들을 근거로 그 유무나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공간은 결국 감각현실과 관련된 유무 판단 성격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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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유무
불교 내 유무 논의에서 단순한 관념의 존부 문제는 논의 초점이 아니다.
그런데 마음의 존부 문제를 살핀다고 하자 .
이런 경우 단순한 관념의 존부 문제와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우선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있다고 경전에서 제시한다.
이 경우 어떤 이가 그런 마음을 단지 생각해 낸다고 하자.
그래서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마음의 유무도 단순한 관념의 존부문제로 논의한 것이 된다.
그러나 마음의 경우는 그렇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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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시설
마음의 존부문제는 다음 성격을 갖는다.
우선 현실에서 다음의 관계를 밝힌다.
현실에 그런 마음이 없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현실 내용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런 관계가 현실에서 밝혀진다.
그러면 그런 마음이 있다고 시설할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는 단지 사변적으로 생각만으로 만들어 내는 관념은 아니다.
그래서 성격이 다르다.
아래에서는 마음을 있다고 시설하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눈을 통해 사물을 본다.
그러나 눈이 눈 자신은 보지 못한다.
마음도 성격이 비슷하다.
마음은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일체 내용을 얻는데 작용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마음에 대해서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에서 마음현상으로 이해하는 내용들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떠 모습을 보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정작 그런 모습을 보게 하는 마음이 따로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마음은 굳이 없어도 보는 데 지장이 없는가가 문제된다.
마음의 있고 없음의 문제는 이런 성격의 논의다.
경전에서 마음을 시설해 그런 마음이 있다고 제시한다.
물론 그 마음을 일반적인 경우처럼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
그렇지만,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경우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마음이 있다고 시설해 제시하게 된다.
[참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의 시설 문제 ]
이런 현상을 물질간의 작용 변화관계로만 이해하는 입장도 있다.
현실에서 물리적인 작용 관계로 파악하는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파장이 호숫가에 가 닿게 된다.
또는 도미노를 세워 놓고 한쪽에서 쓰러뜨린다.
그러면 연달아 쓰러져 끝 부분이 쓰러진다.
이들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물리적 현상처럼 마음현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
오늘날 생리학자들은 마음현상을 이런 물리적 현상의 하나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즉 외부 물질이 있다.
그리고 한 주체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있다.
그리고 이들 간에 작용~반작용 자극~반응 이런 운동 변화관계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마음현상은 이런 현상일 뿐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오늘날 생리학자들은 주로 이런 형태로 마음현상을 이해한다.
이 가운데 어떤 입장이 옳은가.
불교 경전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먼저 마음이 존재함을 제시한다.
그리고 다음처럼 제시한다.
마음이 별도로 존재한다.
그런 상태에서 이들 내용을 얻는다.
즉, 마음 현상이란 마음을 전제로 해서 얻는다.
현실에서 얻는 일체 내용은 마음이 별도로 존재함을 전제해야만 한다.
현실에서 생리학자들이 판단하는 각 현실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러 내용들도 그런 바탕에서 얻는 내용이다.
현실에서 생리학자들이 판단하는 그런 각 현실 내용들이 있다고 하자.
예를 들어 빛이나 물체 그리고 눈이 관계해 뇌에서 어떤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내용은 그 생리학자가 얻어낸 내용이다.
즉 이는 생리학자의 마음이 얻어낸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그처럼 마음으로 얻어진 결과물로 그런 마음 현상이 일어난다고 이해한다.
이는 관계를 거꾸로 뒤집혀 행한 잘못된 판단이 된다.
[참조▣- 생리학자의 입장이 잘못인 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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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실다움과 다른 영역과의 관계
유무 논의에서 각 논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혼동을 많이 일으킨다.
그래서 각 유무 논의에서 논의 성격을 먼저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을 위와 같은 사정으로 있다고 시설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참된 실체를 갖는가도 문제된다.
이 경우 마음의 참된 실체도 역시 없다고 해야 한다.
이 경우 다시 다음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이 '실재 영역에도' 그런 형태로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실재 영역은 본래 유무를 분별할 수 없다.
따라서 실재 영역에서 마음의 유무도 사정이 같다.
실재 영역에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정으로 마음도 참된 실다운 존재는 아니다.
그런데 마음과 본바탕 실재를 서로 혼동하기 쉽다.
따라서 이를 아래에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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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과 실재의 혼동과 구분
한 주체가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마음은 한 주체가 그런 현실 내용을 얻어내는 바탕이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을 직접 보거나 얻지 못한다.
그런데 실재도 현실의 본바탕이다.
한 주체의 관계를 떠나서도 그대로 있다고 할 본바탕 내용이다.
또 그런 사정으로 이를 한 주체가 끝내 얻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마음과 공통점이 있다.
한 주체가 얻지 못하는 점과 현실내용의 본바탕으로 보는 점이 같다.
그래서 마음과 실재를 서로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마음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준거로 한다.
그리고 마음은 이런 현실 내용을 얻는데 기능한다.
반면 실재는 그런 마음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본바탕의 내용을 가리킨다.
그래서 마음을 통해 얻는 내용들을 떠난다.
또 그런 마음도 떠나게 된다.
이를 그릇으로 비유해보자.
그런 현실 내용을 얻는 그릇과 같은 것을 마음으로 표현해 가리킨다.
그런데 실재는 그런 그릇을 떠나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을 가리킨다.
결국 마음을 기준으로 살핀다고 하자.
이 때 마음 안에 얻어진 내용이 현실 내용이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은 그런 현실내용을 바탕으로 시설하게 된다.
반대로 실재는 그런 마음을 떠난 본 바탕 내용이다.
즉 마음과의 관계를 떠나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을 가리킨다.
그래서 현실내용과 실재의 경계선에 마음이 위치한다. [심진여문心眞如門 심생멸문心生滅門]
실재와 마음은 이처럼 서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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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표현에서의 혼동 정리
이상 다양한 유무 논의를 살폈다.
이런 논의를 위해서는 현실에서 일정한 언어표현을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언어는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내용을 가리킬 수 있다.
그래서 각 경우 그 언어표현으로 가리킨 각 내용을 정확히 구분해 잘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마음의 존부를 문제 삼는다.
이 경우는 오로지 관념영역에서 일으킨 관념의 존부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또 단순히 언어표현을 언어표현 영역에서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직접 감각하여 보고 만지는 어떤 감각현실을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또는 주체나 마음과 전혀 관계없이 실재하는 본바탕 내용을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진짜라고 할 실체의 존부를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감각현실이나 관념을 얻는다.
이런 경우 이를 통해 이를 얻게 하는 마음을 전혀 없다고 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일단 언어로 그런 내용을 일정하게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있고 없음을 문제 삼게 된다.
그래서 언어가 각기 가리키는 차원이나 측면이 각기 다르다.
언어표현만으로는 이들 각 측면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기 힘들다.
그래서 전체 내용과의 관계를 통해 맥락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각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유무 논의 시에는 이런 기본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한편 언어로 내용을 표현하는 입장도 이런 점에 함께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각 언어표현이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바를 혼동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Table of Contents
▣- 있고 없음의 판단에서 각 영역의 상호관계를 살피는 형식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유무문제를 나열해 살필 수 있다.
이 경우 먼저 관념영역에서 주제를 생각하게 된다.
이는 문제를 살피려는 내용이다.
이는 관념영역에서 살핀다.
그러나 그 관념도 언어 형태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그것은 예를 들어 감각현실 내용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어나, 관념내용, 또는 실재, 실체 등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를 관념영역에서 예를 들어 A라는 언어관념(표현)형태로 가리키게 된다.
그리고 그 유무를 문제 삼게 된다.
언어표현은 각 영역의 각기 다른 내용을 모두 가리킬 수 있다.
그래서 언어표현 자체만으로는 쉽게 이를 구분하기 힘들다.
그래서 논의에서는 각 언어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전체적 내용과의 맥락을 통해 이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유무 문제는 그 성격을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즉,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유무판단]과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이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유무판단]은 다음과 같은 유무판단이다.
예를 들어 관념이 관념영역에 있는가 없는가를 살피는 측면이다.
또는 감각현실이 감각영역에서 그처럼 얻어지는가 여부를 살피는 측면이다.
그러나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유무판단이다.
예를 들어 관념이 '감각현실' 영역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는가여부를 살핀다.
또는 관념이 '실재 영역'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는가여부를 살핀다.
또는 감각현실이 관념영역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는가여부를 살핀다.
또는 감각현실이 실재 영역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는가여부를 살핀다.
이는 이들 각 내용이 꿈과 달리, 실다운 내용인가를 판단하기 위함이다.
즉, 현실 내용이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인가를 판단하기 위함이다.
현실에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런 경우에는 이런 유무논의가 갖는 의미가 크다.
그래서 이런 논의에 초점을 두게 된다.
한편 각 유무논의에서 이들 각 논의 성격을 잘 구분해야 한다.
있고 없음의 문제를 살핀다.
이 경우 가장 기본적인 유무판단은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유무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그 유무 분별 자체는 일단 관념영역에서 행한다.
즉,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등은 모두 그 자체가 관념 분별내용이다.
이런 사정을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관념영역을 벗어난다고 하자.
그래서 예를 들어 실재나 감각현실의 영역을 놓고 살핀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 영역에서는 이들 관념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래 이런 영역에 대해서는 있고 없음의 분별을 모두 떠나야 한다.
그런 분별 내용이 이런 영역에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의 사정이 이와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언어표현은 이들 각 내용을 일단 가리키게 된다.
그리고 또 분별도 그에 대해 여전히 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예를 들어 눈을 떠서 일정한 모습이 보인다.
그런 경우 그런 사실 자체에 대해 분별을 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일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즉 자신이 눈을 떠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고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해 스스로 분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취지로, 언어표현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런 일정한 모습이 '있다'거나 '없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감각영역에서 단순히 그런 감각내용이 얻어짐을 나타낸다. [일정내용 자체 영역 유무판단]
물론 감각현실 영역에서 관념분별은 얻을 수 없다.
즉 감각현실 영역에 본래 유무판단과 같은 분별은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와 같이 관념분별을 행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언어적 표현을 한다.
그래서 이런 취지로 일정한 언어표현을 행한다.
그런 경우 이 표현을 대하는 가운데 혼동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즉, 위 표현을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의 유무판단으로 잘못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이 상황에서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분별내용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언어표현이 그렇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를 서로 구분해야 한다.
이 경우 <언어 자체>ㆍ<언어가 가리키는 관념내용>ㆍ<언어가 가리키는 감각현실내용>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구체적인 표현에서 이들을 서로 잘 구분해 파악해야 한다.
실재에 대한 분별을 행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실재는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언어표현으로 실재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런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영역을 살핀다.
그러나 한 주체는 이런 실재를 직접 얻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런 실재가 전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실재는 공하다고 표현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내용 A가 있다.
그래서 그 A가 실재 영역에 그처럼 있는가를 문제 삼는다고 하자.
그래서 다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현실내용 A는 실재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언어표현을 대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실재는 공하다.
현실내용 A는 실재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언어표현에서 각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잘 구분해야 한다.
즉 실재라는 언어 표현은 언어표현상 그렇게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언어표현상으로는 그렇게 있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한편, 이 경우 그런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일정한 관념내용도 있을 수 있다.
실재라는 표현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이런 표현으로 마음에서 떠올리는 일정한 관념분별내용이 있을 수 있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그런데 또 한편, 그런 언어표현으로 본래 가리키고자 한 본바탕 실재가 있다.
그 경우도 본바탕 실재는 본래 그처럼 여여하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정내용의 자체 영역 내 유무판단]
그리고 이 각각의 내용은 서로 다른 측면이다.
한편 무언가가 실다운 내용인가를 판단하려 한다.
이 경우는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을 문제 삼는다.
그래서 이들 각 내용의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
이런 경우는 한 내용이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있는가를 초점으로 한다.
그래서 각기 다른 영역에서의 각 내용의 관계를 잘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이 문제 삼는 관념분별 내용 A가 있다.
그런데 먼저 그런 내용이 감각현실에 있는가를 문제 삼는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그래서 감각현실 ~ 관념분별의 상호관계를 살핀다.
이 경우 원칙적으로 그 관계를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해야 한다.
먼저 감각현실 그 자체가 곧 관념분별 A 인가를 살펴야 한다.
또 반대로 관념분별 A 그 자체가 곧 그 감각현실인가를 살펴야 한다.
이 두 내용은 서로 같은 내용이 아니다.
예를 들어 경찰은 모두 사람이다.
그러나 사람이 모두 경찰은 아니다.
따라서 주어를 각기 바꿔 그 관계를 각기 살필 필요가 있다.
한편,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관념분별이 그처럼 얻어지는가를 살펴야 한다.
또 관념분별 영역에 그런 감각현실이 그처럼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물론 이 각 경우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들 각 내용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잘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시 다음을 살펴야 한다.
그러한 관념분별 A는 그런 감각현실을 완전히 떠나 얻는가.
즉, 관념분별은 감각현실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홀로 얻게 된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전혀 무관한가를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바탕으로 관념을 일으킨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이들은 전혀 무관한 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한편, 감각현실과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 형식은 마찬가지다.
또 관념분별과 감각현실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 형식은 마찬가지다.
관념분별과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 형식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음과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 형식은 마찬가지다.
마음과 그 마음에 얻어진 내용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 형식은 마찬가지다.
즉, 마음과 감각현실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 형식은 마찬가지다.
마음과 관념분별내용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 형식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꿈과 현실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 형식은 마찬가지다.
거울이나 거울에 나타난 모습의 관계를 살필 때도 이 형식은 마찬가지다.
결국 이런 방식을 통해 각 영역의 내용의 관계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특히 수행에서는 다음 부분이 중요하다.
현실에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각 내용이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인가.
꿈과는 다른 실다운 내용인가.
이런 측면에서 유무논의를 행한다.
꿈 내용은 현실 영역에서는 얻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그래서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에 초점이 주어진다.
그런 경우 각 영역의 관계를 위와 같이 먼저 잘 판단한다.
그런 가운데 살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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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 유무논의와 상단 논의를 통한 수행의 방향
다양한 측면에서 유무논의를 살폈다.
일반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현실에서 갖는 집착은 대부분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집착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런 사정으로 자신에 대해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처음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렇게 얻는 내용 가운데 일부분을 통상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생사과정에서 한 생을 마친다.
그런 경우 그런 자신은 그것으로 모두 끝이라고 잘못 여긴다.[단멸관]
이런 경우 목표와 실현방안을 잘못 찾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한편 자신에게 참된 진짜인 자아가 있다고 잘못 여기기도 한다. [상견]
즉, 자신의 영원불변한 참된 실체가 있다고 여긴다.
이런 경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 자신의 유무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잘못된 견해부터 제거해야 한다.
이들 내용을 여러 유무논의를 살피는 가운데 살폈다.
그러나 유무논의가 다양한 측면에서 문제된다.
그래서 서로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따라서 여기서 다시 이들 내용을 요약해 정리하기로 한다.
먼저 단멸관부터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현실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는 과정부터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 매순간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일정한 분별을 행한다.
그처럼 의식 표면에서 이런 내용을 얻는다.
그런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자신으로 여긴다.
그래서 매순간 그처럼 자신으로 여기는 이들 내용을 죽 나열해 잇는다.
그러면 그것이 곧 한 주체의 한 생에서의 생로병사 된다.
그런데 의식표면에서 이런 내용을 얻는 데에는 일정한 배경사정이 있다.
현실 내용은 일정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해 얻는다.
처음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 가운데 매 생 다양한 정신을 분화 생성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매 순간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현실 내용은 의식 표면에서 작용하는 정신을 통해 얻는다.
그런 가운데 얻어진 내용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기는 내용이 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이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현실 내용은 모두 이런 근본정신과 구조 기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이런 근본정신은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잘못 일으키게 하는 배경이 된다.
그런데 이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는 한 생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생사과정을 통해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망집을 바탕으로 자신을 취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생사윤회는 한 생으로 끝나지 않게 된다.
무량겁을 두고 생사 윤회과정이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생사과정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사정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우선 생사윤회과정에서 3악도의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처음에는 의식표면에서 얻는 내용의 일부를 자신으로 잘못 여겼다.
그런데 이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통해 생사윤회과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가 참된 자신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리고 이런 근본정신이 자신의 참된 진짜 실체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영원불변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갖는 상견도 함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상견에 바탕해 일으키는 집착도 제거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유무 분별을 잘 행해야 한다.
특히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어떤 내용이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내용이 집착을 가질 만한 내용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경우 유무판단은 일상적인 유무판단과는 다르다.
이는 다음을 논의 초점으로 한다.
즉 일정한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 그처럼 실답게 얻어지는가가 초점이다. [한 내용의 다른 영역에서의 유무판단]
이를 통해 현실내용이 꿈과 다른 성격의 내용인가를 살펴야 한다.
즉, 침대에서 꾸는 바다 꿈과 성격이 다른가를 살펴야 한다.
꿈을 생생하게 꾼다.
현실에 침대도 그렇게 있다.
그러나 침대에서 꿈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렇기에 꿈은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현실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실 내용이 실재영역에서 얻어지는가가 초점이다.
그리고 또 현실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 얻어지는가가 초점이 된다.
그런데 관념으로 자신을 분별한다.
그리고 먼저 이런 내용이 감각현실 영역 등에 그대로 있는가부터 살핀다.
그런 경우 그런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한편, 이런 취지로 본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을 살핀다.
그런 경우 이들은 우선 본바탕 실재에서 얻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즉, 현실 내용은 실재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침대에서 꾸는 꿈과 성격이 같다.
한편, 현실 내용이 실다운가를 판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내용에는 꿈과 달리 실체가 있는가도 살펴야 한다.
그런 경우 현실 내용은 실체가 없음을 판단하게 된다.
즉,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뼈대가 없다.
현실에서 일정 내용을 얻는다.
그런 경우 이런 현실 내용에서 일부를 자신으로 여긴다.
그리고 나머지를 외부 세상으로 여긴다.
그런데 현실을 이처럼 실상을 꿰뚫어 관한다.
그런 경우 현실의 정체에 대해 다음처럼 이해할 수 있다.
현실 내용 일체는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은 한 주체의 '마음'이 얻어내는 '마음 내용'이다.
또 그 본바탕이 되는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실재는 공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없다.
그래서 현실 내용은 결국 침대에 누워 꾸는 바다 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현실 내용에 대해 일으키는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까지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도 현실에서는 대부분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임한다.
그 부분은 본래 자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그처럼 잘못 여기고 임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임하게 되는 배경사정을 또 잘 살펴야 한다.
이는 생을 출발하기 이전에 일으킨 망상분별 때문이다.
즉, 일정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먼저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아견, 아애, 아취, 아만 ]
그런데 이런 바탕에서 태어나 현실에 임한다.
그런 가운데 마음이 화합해 현실내용을 의식표면에서 얻게 된다.
본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매 순간 마음이 화합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이는 일정한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한다.
현실에서 각 내용을 화합해 얻는다.
그렇지만 정작 본바탕이 되는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 사정으로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이런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산소와 수소를 폭발시킨다고 하자.
그런 경우 물이 나타난다.
그래서 이 경우 산소와 수소가 화합해 물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산소와 수소에서는 물의 성품이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현실과 실재의 관계도 이와 사정이 같다.
현실에서 마음이 화합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러나 마음 밖 실재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또 근본정신과 구조를 바탕으로 임한다.
그러면 의식 표면에서 일정한 내용을 그처럼 화합해 얻게 된다.
이렇게 본 사정을 이해한다.
즉 자신이 얻어낸 내용에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은 있지 않다.
또 그런 내용은 본바탕 실재에도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도 없다.
이렇게 사정을 이해한다.
그래서 집착을 제거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전까지 대하던 감각현실 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자신이란 관념이 관념영역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올바로 사정을 파악하고 이해를 한다.
그러면 이로 인해 망상분별만 사라지는 것이다.
즉 현실 내용에 대해 일으킨 잘못된 분별만 사라진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분별을 바탕으로 갖게 될 의지나 업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구생기 신견이나 변견은 남아 있게 된다.
이는 태어나기 전 단계에 일으킨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이는 생을 유지하는 한 계속 유지된다.
따라서 생을 유지하는 한 이를 바탕으로 한 번뇌도 계속 유지된다.
즉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가 계속 이어진다.
따라서 이런 정서적 의지적 번뇌를 꾸준히 수행으로 제거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실의 본 정체와 관계를 올바르게 확실히 관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일단 망상분별에 바탕해 행하는 업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정서적 의지적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수행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생사과정에서 완전히 번뇌를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수행자가 중생제도를 위해 수행을 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다시 중생이 처한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과 입장을 같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중생과 눈높이를 맞춰 일단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중생을 상대해 제도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2중적인 측면을 취해야 한다.
본래 생사현실은 망상분별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즉 본바탕의 측면에서는 이들 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다.
따라서 현실내용은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곧 꿈과 같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곧 니르바나이다. [<생사 즉 열반>]
그리고 이런 사정을 현실에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사현실의 고통을 평안히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편, 중생들이 망집을 일으켜 생사현실에 묶여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임해 복덕 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즉 본래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사정으로 그 안에서 좋은 내용을 다시 얻어내야 한다.
그래야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중적인 측면을 취하게 된다.
즉 본바탕의 측면을 통해 생사고통을 제거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관한다.
그런데 중생이 임하는 생사현실의 측면을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생이 임하는 생사현실 안에서 복덕과 지혜 자량을 얻어낸다.
그래서 이를 위해 생사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관할 필요가 있다.
즉 실상을 꿰뚫어 그 정체를 관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 정체와 인과를 넓고 길고 깊게 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현실에서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찾는다.
그리고 그 실현방안도 올바르고 지혜롭게 찾는다.
그래서 중생제도를 위한 선교방편을 먼저 잘 찾아야 한다.
그래서 그처럼 목표와 실현방안을 찾는다고 하자.
한편 이런 내용을 좁고 짧고 얕게 관찰한 바탕에서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각 내용은 대부분 서로 반대 방향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봄만 놓고 판단한다.
그런데 어떤 농부가 1년을 두고 판단한다.
이 두 경우는 서로 결론이 큰 차이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다.
결국 수행목표와 수행방안은 일반 세속 입장과 큰 차이가 있다.
그 사정이 이외 같다.
그래서 이를 잘 이해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이상으로 변견과 유무판단의 문제를 마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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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견의 제거
사견(邪見, mithyā-dṛṣṭi)은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견해다.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부정한다.
따라서 4성제(四聖諦)도 부정한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불교에서는 연기관계라 표현한다.
이런 사견을 제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결국 인과에 대해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아래에서 이 문제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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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과의 올바른 파악 [지혜]
어떤 결과를 얻어내려 한다.
그런 경우 그렇게 될 수 있는 인과를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이가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면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부터 정확하게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이가 총기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 경우 대부분 총기 사고가 죽음의 원인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사례에서 설령 총기사고가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그 주체가 죽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고나 질병으로 죽게 된다.
그래서 12연기를 나열할 때는 이런 것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게 된다.
인과(연기)관계를 넓고 길고 깊게 관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다음 입장에서 원인을 살피게 된다.
생사현실에서 어떤 것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에서 죽음이 없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 있다.
그런 경우 죽음이 있다고 하자.
그런 관계에 있는 그 어떤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야 한다.
그것이 죽음을 만드는 원인이다.
그 내용이 곧 12연기에 해당한다.
결국 근본 무명이 어리석음이 생사를 겪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한다.
그렇다 해도 쉽게 성취하지 못한다.
반대로 근본 무명을 제거한다.
그러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따라서 이처럼 원인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것을 잘 성취할 수 있다.
한편 한 주체가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런 경우 그 가치가 대단히 크다.
즉, 한 생에서 한 주체의 생명과 신체의 가치가 크다.
그런데 이는 그 이상의 무량한 가치를 갖는 것이 된다.
그래서 수행의 가치가 크다.
그런 경우 다음의 관계를 통해 현실에서 연기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어떤 것들이 현실에서 이런 관계가 파악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들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 a를 빼거나 넣거나 한다.
그 상황에서 그에 따라 다른 b의 유무생멸에 변화가 있다.
그러면 이런 관계를 통해 a 때문에 b의 그런 변화가 있다고 보게 된다.
이런 관계가 곧 인과 (연기)관계다.
그래서 위 내용은 연기관계에 대한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연기관계의 식에 들어맞는 내용들이 무엇들인가를 살펴보자.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데 일정한 요소가 필요하다.
그런 요소로 다음을 나열할 수 있다.
우선, 이런 내용을 얻게 하는 대상과 마음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런 상태에서만 이 인과의 문제를 살필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이 먼저 전제가 된다.
그리고 전후관계에서 이들 내용을 얻게 하는 요소들을 또 고려하게 된다.
결국 그런 내용으로는 모두 4연을 나열하게 된다. [인연ㆍ증상연ㆍ소연연ㆍ등무간연]
예를 들어 현재 사과를 하나 대한다.
그래서 이 사과의 생주멸의 원인을 찾는다고 하자.
이 경우 사과의 무엇을 문제삼는가를 먼저 잘 확인해야 한다.
관념으로서 사과가 관념영역에 어떻게 일으키게 되었는가를 문제삼는가.
아니면 사과로 여기고 취하는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문제삼는가.
이것부터 명확히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
통상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인 사과의 생주멸을 파악하려 한다.
그런 경우 먼저 <이런 사과모습을 보게 된 마음내 사정>을 먼저 고려한다. [등무간연],
그리고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 내지 <그렇게 얻어진 내용 자체>을 고려한다. [소연연]
다만 여기서 실재영역의 실재 대상은 한 주체가 직접 얻지 못한다.
그래서 실재 대상을 연기판단 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삼는 내용이 없으면, 그 연기도 당연히 문제를 살필 수 있다.
따라서 문제삼는 내용이 일단 필요하다.
현실에서 이것을 일반적으로 그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한 주체가 그런 관계로 얻어낸 내용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색은 안근에 의존하여 <안식을 통해 얻어낸 내용>이다.
성은 이근에 의존하여 <이식으로 얻어낸 내용>이다.
향은 비근에 의존하여 <비식으로 얻어낸 내용>이다.
미는 설근에 의존하여 <설식으로 얻어낸 내용>이다.
촉은 신근에 의존하여 <신식으로 얻어낸 내용>이다.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이 모두 얻어진 내용이다
여기서 이들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를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런데 여하튼 어떤 내용이 나타난 연기관계를 살피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렇게 살피는 내용은 일단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당연히 그에 대한 연기를 살필 수 없다.
그리고 한편 현실에 사과가 그런 형태로 나타나게 된 요소를 나열할 수 있다.
먼저 처음 <사과가 나타나게 한 핵심 요소>로 사과 씨를 생각할 수 있다. [인연]
그리고 이런 씨가 싹이 나고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는 과정이 있다.
그래서 땅이나 물, 공기 등도 이런 <사과를 낳게 한 원인요소>에 포함시켜 나열해야 한다. [증상연]
그래서 현실에서 이를 간단히 a+b => C 로 표현한다고 하자.
이런 연기관계를 통해 다시 다음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 사이에 이런 관계가 있다.
그런 사정 때문에 C는 무상한 것이다.
또 그런 사정 때문에 C는 고통에 귀결된다.
또 그런 사정 때문에 C는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현실에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가 없다.
또 그런 사정 때문에 C를 얻게 한 본바탕은 공하다.
또 그런 사정 때문에 C를 얻게 한 본바탕은 본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니르바나다.
이런 사정을 모두 위 관계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
즉 위 식은 이들 내용을 다 함께 나타내고 있다.
본래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취해 C라고 여긴다.
이 자체가 망상분별이다.
즉 현실에 그런 C가 그처럼 있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망상분별이다.
이는 변견에서 유무논의를 살필 때 사정을 먼저 살폈다.
[참조▣- 일반적인 유무판단과 망상분별 ]
[참조▣- 무상삼매 ]
그러나 일단 양보하여 현실에 그런 a, b, C 등이 그처럼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들 관계가 위처럼 a+b => C의 관계로 파악된다.
즉 일정한 상황에서 a가 있으면 C가 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a가 없으면 C가 없게 된다.
그런 경우 그 상황에 a가 있기 '때문에' C가 있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간에 연기의 관련성이 있다고 보게 된다.
이것이 연기관계가 의미하는 바다.
그런데 일정한 상황에서 a가 있거나 없거나 한다.
그런데 이런 a의 <있고 없음>과 관계없이 C가 '있다'고 하자. (또는 없다. 일어난다. 사라진다. )
이런 경우들은 이것만으로는 그 상황에서 a와 C 사이에 연기관계성을 밝히기 곤란하다.
어떤 경우에 그런 관계성이 파악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곧바로 이들은 서로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인과관계가 없음을 단정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경우들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그 상황에 다른 원인요소가 함께 병존할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로 인해 이들이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석유로 인해 불이 나는 상황이다.
이 경우 나무를 빼거나 넣거나 관계없이 불은 일어 난다.
그래서 이런 경우 이런 내용으로는 다음사실들을 단정하기 곤란하다.
즉, 나무와 불이 서로 인과관계에 있다고 단정하기 곤란하다.
그렇다고 나무와 불이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도 곤란하다.
이는 단지 그 상황에서 석유가 불을 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경우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하튼 일정한 요소 간에 연기관계가 있음을 파악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일단 a+b => C처럼 기호로 표시하기로 하자.
이 식은 위와 같은 a, b, C 간에 서로 연기관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런데 위 식은 일단 다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일정한 조건에서는 그런 C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떠나면 그런 C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는 사라진다.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 식은 곧 그런 C는 '무상'한 존재임을 제시한다. [제행무상]
즉, 그런 C는 연기관계에 의존해 나타나는 무상한 존재다.
한편, 이런 사정 때문에 그런 C는 고통에 귀결된다.
이런 사정도 연기관계를 통해 함께 이해해야 한다.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이런 C를 집착해 대한다.
C가 좋은 내용이어서 집착할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그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진다.
그래서 고통을 준다. [괴고]
또 C가 나쁜 내용인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일정 조건이 갖춰진다고 하자.
그려면 나타난다.
그래서 고통을 겪게 된다. [고고]
한편 그런 C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C는 위처럼 일정한 조건에 의해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래서 일정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도리가 없다. [행고]
이런 사정 때문에 그런 C는 고통에 귀결된다.
따라서 연기관계는 이런 사정도 함께 제시한다.
한편, 위 식은 <그런 C가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가 아님>도 나타낸다.
우선 위 식은 그런 C가 그런 관계로 나타난 내용임을 나타낸다.
그런데 참된 진짜인 실체에 요구하는 내용이 있다.
실체는 꿈과 다른 특성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어떤 조건에 의존하지 않고 불변해야 한다.
그런데 위 식은 그런 C가 그런 특성을 갖지 않음을 함께 제시한다.
또 그런 사정 때문에 현실에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가 없음도 나타낸다.
즉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 위와 같은 관계가 나타날 수 없다.
그래서 이를 통해 참된 진짜로서의 실체가 없음을 파악하게 된다. [무아, 무자성]
[참조▣- 실체의 유무 문제]
한편 위 식은 그런 C를 얻게 한 본바탕이 공함도 나타낸다.
위 식은 그 앞 요소에서 그런 C의 품성과 모습을 얻을 수 없음을 함께 나타낸다.
그런데 현실 내용은 한 주체가 이런 연기관계를 통해 얻는다.
즉, 마음에서 화합해 얻게 된다.
그런데 본바탕은 결국 이런 관계를 일체 떠나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바탕은 그런 사정으로 각 주체가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공하다고 표현하게 된다. [불가득 공]
한편 위 식은 그런 사정 때문에 다음도 나타낸다.
즉, 본바탕에서는 본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니르바나임도 나타낸다.
현실에서 생사나 생멸 고통을 문제 삼는다.
그런데 이들 현실 내용은 이와 같은 관계로 얻는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떠난 본바탕을 생각한다.
그 본바탕에서는 그런 내용과 그 생사나 생멸 자체를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바탕은 생사 생멸을 떠난 니르바나 상태다.
그리고 위 식이 그런 관계를 함께 제시한다. [열반적정]
또 위 식을 통해 생사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
그런 경우 생사현실의 생사고통 또한 실답지 않을 이해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이런 사정을 잘 관하여 임한다.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여여하게 니르바나 상태로 머물 수 있게 된다. [<생사 즉 열반관>]
그런 경우 생사현실을 굳이 떠나지 않아도 된다.
기타 연기관계에 대해 살핀 논점은 많다.
예를 들어 원인에 이미 그 결과가 들어 있었다고 치우쳐 이해한다. [인중유과론]
또는 원인에 결과는 없었다고 치우쳐 이해한다. [인중무과론]
이들은 처음 잘못된 유무판단에서부터 비롯한다.
즉 현실 한 단면에 무언가 a가 <있고 없음>에 대해서부터 잘못 분별한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분별이 인과 판단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유무 극단에 치우친 잘못된 견해를 낳는다.
또는 현실은 매 경우 우연히 나타난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우연론]
또는 현실은 각 관계가 필연적으로 정해져 나타난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필연론]
현실에 이미 나타난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a 다음에 결과 b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 주장들은 그런 내용 외에 다른 가능성의 유무 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들 가능성은 현실에 나타나지 않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런 가능한 내용들이 그 상황에 있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우연론을 취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 상황에 c, d, e 와 같은 가능한 다른 내용이 있었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음처럼 해석하게 된다.
즉 현실에 그런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b가 나타났다.
이렇게 이해한다.
그런 경우 우연론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가능한 내용들이 당시 없었다고 가정하자.
즉, 그 상황에 c, d, e 와 같은 가능한 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b 외에 다른 것이 나타날 가능성이 없었다.
이렇게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필연론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판단은 다른 가능성의 유무 판단이 그 전제가 된다.
그런데 가능성이란 그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던 내용이다.
즉, 이런 가능성은 경험되지 않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런 성격의 내용을 사변적으로 전제한다.
그리고 주장을 내세우는 것뿐이다.
한편, 연기(인과)는 차유고피유 차무고피무의 관계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연기를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관계의 성격을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마치 이들이 서로 간에 직접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관계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삼는 이 각 요소는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즉,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안의 각 부분이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작용을 미친다고 보기 곤란하다.
예를 들어 감각현실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런데 이들 각 부분이 서로 작용한다고 잘못 이해한다.
그런 결과 다른 감각현실 부분을 나타낸다고 잘못 이해한다.
예를 들어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부분을 취해 공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또 다른 일부분을 취해 병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런데 이렇게 얻어낸 내용 가운데, 일정한 한 부분이 또 다른 부분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즉, <얻어낸 내용 한 부분으로서 공>이 <얻어낸 내용 다른 한 부분인 병>을 깨뜨린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한편, <하나의 감각현실>이 <또 다른 종류의 감각현실>을 나타나게 한다고도 잘못 이해한다.
마치 <눈으로 본 손 모습>이 <귀로 듣게 되는 손뼉소리>를 내게 한다고 이해하는 것과 같다.
즉 시각정보가 청각정보를 나타나게 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한 상황에서 각 감관별로 얻어낸 감각현실들이다.
즉 각 감각현실을 병행해 얻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눈으로 무엇인가를 본다.
그런 상황에서, 귀로 소리를 듣는다.
또 그런 상황에서, 코로 냄새를 맡는다.
또 그런 상황에서, 혀로 맛을 본다 .
또 그런 상황에서, 손으로는 촉감을 함께 얻는다.
이런 상태다.
그래서 이들 각 감각내용은 서로 부대 상황의 관계에 있다.
다만 이들은 함께 실재에 바탕해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근본정신을 바탕으로 각 주체가 현실에 임한다.
그런 가운데 여러 식들이 분화 생성되어 삶에 임한다.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는 이들 감각내용들이 서로 관계를 갖는 것처럼 인식된다.
이외에도 연기(인과)와 관련되어 살필 주제는 많다.
그리고 인과와 관련하여 다양한 형태로 잘못된 견해를 취한다.
다만 여기서 이들을 모두 나열해 살피기 곤란하다.
그래서 나머지 부분은 따로 별도의 장에서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견은 결국 인과에 대한 옳은 판단을 함으로써 제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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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취견의 제거
견취(見取, drstiparāmarśa)는 그릇된 견해를 올바른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세상의 온갖 내용에 대해 각기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한 주체가 가질 수 있는 견해는 무량하다.
한 주체가 현실에서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일정부분을 취해 자신으로 여긴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외부 세상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 각각마다 모두 일정한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 가운데 집착을 일으키기 쉬운 부분을 먼저 살피게 된다.
그리고 방편상 제거가 쉬운 부분부터 살피게 된다.
그래서 먼저 수행목표와 수행방안에 관련된 계금취견을 살폈다. [계금취견]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부분은 신견 등에서 살폈다. [신견]
그리고 상견ㆍ단견 등의 변견을 살폈다. [변견]
그리고 인과와 관련된 사견도 살폈다. [사견]
그 외 나머지 온갖 잘못된 견해는 견취견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특히 외부 세상으로 이해하는 내용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많다. [외부세상의 정체]
현실에서 외부세상으로 이해한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들은 사실 그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
한 주체가 얻어낸 내용에 그 자신이나 외부 세상이 들어 있을 이치가 없다.
그래서 이런 견해도 잘못이다.
한편 이렇게 자신이 얻어낸 감각현실 내용이 있다. [외부 객관적 실재]
그런데 이것을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한다.
즉 이들 내용을 자신뿐만 아니라 영희 철수가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이는 사실 그 주체가 얻어낸 내용이다 .
그런 내용을 다른 철수가 대할 이치가 없다.
또 자신도 다른 철수나 영희가 얻어낸 내용을 대하는 것이 아니다.
각 주체는 제각각 내용을 얻는다.
한편 이들 외부 세상은 자신의 주관이 대하는 외부대상으로 잘못 이해한다. [감관이 대하는 외부대상]
그런데 이들 내용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따라서 이들 내용에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있을 이치가 없다.
그래서 외부대상에 대한 이해도 잘못된 견해다.
현실에서 옆에 영희를 세워 놓고 관찰한다.
그리고 영희 앞에 사과를 놓고 눈을 뜨고 감게 한다.
그 경우 영희가 눈을 뜨면 무언가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경우 자신 입장에서 이 상황을 관찰한다.
그런 경우 자신은 그런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변화는 오직 영희로 보는 부분에서만 있는 변화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 경우 영희가 앞에 놓인 사과를 대상으로 그런 내용을 얻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런 판단도 잘못된 견해다.
이는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면 쉽다 .
자신이 무언가를 본다.
이 때 영희가 본 내용을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또 자신이 영희가 본 내용 안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영희도 마찬가지다.
영희가 자신이 본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다.
또 영희가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자신이 영희로 보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또 영희 밖에 놓인 사과로 보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이들 내용 일체가 사실은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다.
그런데 영희가 자신이 얻어낸 이런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 무언가를 보는 것은 아니다.
또 영희가 자신이 얻어낸 내용 안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견해는 모두 잘못된 견해다.
또한 현실 내용은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다. [외부물질]
그래서 마음 밖에 따로 있는 별개의 외부 물질이 아니다.
그 외에도 자신과 외부세상의 정체나 관계 등에 대해 수많은 잘못된 견해를 갖는다.
가장 기본적으로 본바탕 실재- 감각현실 - 관념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잘못된 견해를 갖는다.
그리고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온갖 지식과 분별을 행한다.
그래서 이런 전체적인 망상분별을 제거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견취견의 제거 문제가 된다.
이들은 관련되는 부분에서 따로 자세히 살피기로 한다.
[참조▣- 자신 외부에 대한 잘못된 판단들]
[참조▣- 색은 정신내용이다. - 정신밖 외부 물질이 아니다. ]
이 경우에도 일단 현실에서 집착을 일으키기 쉬운 견해부터 잘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제거가 쉬운 견해부터 하나하나 제거해가야 한다.
그런데 중생제도를 위해 수행을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중생이 집착하는 온갖 견해를 하나하나 다 해결하고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런 중생의 번뇌는 각 경우마다 다르다.
그래서 세상의 티끌처럼 무량하다.
그래서 중생 제도를 위한 번뇌제거의 수행도 무량하게 펼쳐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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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ㆍ만ㆍ진ㆍ무명의 근본제거 - 수도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업을 중단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를 잘 제거해야 한다.[탐貪 rāga, 진瞋 dveṣa, 치癡 mūḍha, 만慢 māna]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를 제거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따라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하자.
이를 위해서는 먼저 탐ㆍ진ㆍ치ㆍ만의 정체를 먼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들 번뇌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고집제 항목에서 살폈다.
[참조▣- 탐ㆍ진ㆍ치ㆍ만 [미사혹, 수혹]]
그리고 이들 번뇌가 일으키는 문제점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이들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를 제거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들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는 신견, 변견과 관련이 깊다.
즉, 현실에서 어리석음에 바탕해 일정부분을 자신으로 취해 집착한다. [치癡]
그런 가운데 이런 자신에 무언가가 유리하고 좋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탐욕을 일으킨다.[탐貪]
그리고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에 만심도 갖게 된다.[만慢]
그리고 한편, 자신에 손해되고 나쁨을 주는 것에는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진瞋]
그래서 이런 과정으로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를 일으키게끔 된다.
그래서 먼저 신견과 변견의 번뇌부터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신견과 변견의 근원은 깊다.
즉 이들 번뇌는 생을 출발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가진 번뇌가 바탕이 된다.
즉 구생기 신견과 구생기 변견이 바탕이 된다.
현실에서 평소 자신이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분별을 행한다.
그리고 이런 분별이 잘못된 신견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분별이 잘못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만으로 곧바로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게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자신이 너무 바빠서 자신에 대한 분별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어떤 모임에 바삐 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평소 자신으로 대하던 부분을 빼놓고 모임에 가게 되지는 않는다.
또는 어떤 경우 무언가에 부딪혀 의식을 잠시 잃었다.
이처럼 분별을 아예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 경우에 자신에 대한 분별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긴 부분은 여전히 일정한 활동을 한다.
결국 현실에서 행하는 신견은 오히려 후발적으로 일으킨 분별이다.
그리고 이들 번뇌는 생을 출발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가진 신견과 변견이 바탕이 된다. [구생기신견, 구생기변견]
그리고 현실에서 일으키는 신견은 이에 바탕해 후발적으로 행하는 잘못된 분별이다. [분별기신견, 분별기변견]
이 경우 분별기신견과 분별기변견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구생기신견ㆍ구생기변견까지 바로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해서, 분별기의 신견과 변견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런 경우 다시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해나가게 된다.
그래서 그 부작용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일단 분별기의 신견과 변견부터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한 업을 잘 중단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구생기의 신견과 변견을 또 제거해 가야 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한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도 제거해 가야 한다.
이는 질병의 치유과정과 같다.
질병이 통증을 일으킨다.
그 경우 통증만 제거한다.
그렇다고 질병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증을 방치한다.
그러면 또 이로 인해 일상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다른 사고도 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일단 통증부터 완화시키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근본적인 질병을 치유하게 된다.
신견과 변견, 탐ㆍ진ㆍ치ㆍ만의 제거도 사정이 이와 같다.
결국 분별기에서 후발적으로 일으키는 신견ㆍ변견, 탐ㆍ진ㆍ치ㆍ만을 먼저 잘 제거한다.
그런데 이런 번뇌는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가 그 바탕이 된다.
그런 바탕에서 처음 일정부분을 취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구생기 신견]
이런 집착 자체는 근본무명 어리석음에 바탕해 일으킨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그에 집착을 일으키게 된다. [아치ㆍ아견ㆍ아애ㆍ아만]
그리고 그런 부분을 계속 집착하며 유지해 가려 한다.
그리고 이들 번뇌는 생을 유지하는 한, 쉽게 끊어내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구생기 신견과 변견에 바탕해 탐ㆍ진ㆍ치ㆍ만의 번뇌를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런 탐ㆍ진ㆍ치ㆍ만은 감정적이고 의지적인 번뇌 성격을 갖는다. [미사혹迷事惑 ]
그래서 이들 번뇌는 오랜 수행을 통해 끊어나가야 한다.
이 경우 이들 번뇌의 정체나 그 문제점을 먼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이론적인 이해만으로 곧바로 이들 번뇌가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즉 그런 견해가 잘못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반응이나 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는 이론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생을 유지하는 한 구생기 신견과 변견이 남아 있다.
그런 가운데 평소 자신으로 여긴 부분을 바탕으로 계속 일정한 감각을 얻게 된다.
그리고 또 그에 따른 느낌이나 분별을 일으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