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인연론』
K0646
T1651
십이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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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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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인연론』 ♣0646-001♧
십이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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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因緣論一卷
K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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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인연론』 ♣064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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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사고통의 원인과 죽음을 없애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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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hiv1395
◈Lab value 불기2565/06/09 |
○ 2020_1114_131206_can_Ab31.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blo-picasso-head-of-the-man ○ 2018_0419_135949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Doctor-heli.of.Kawasaki ♥American Bodhi Center, Waller County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Nilda Fernandez - Derriere Ma Fenetre ♥단상♥참된 인과관계와 책임을 묻는 사회적 상당 인과관계 사람이 총기 사고로 사망했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사고로 인한 문제를 의사나 변호사 법관 등이 다룬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망사고의 원인을 총상으로 보게 된다. 그 다음 이 총을 발사한 이를 이 사고의 가해자로 보게 된다. 그리고 가해자를 처벌하려고 하게 된다. 그래야 관계인이 대강 이해하고 납득하게 된다. 이것을 사회적 상당성에 바탕한 인과관계판단이라고 한다. 상당인과관계설이란 일반인의 일반적인 생활경험에 비추어 p라는 행위로부터 q라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에 개연성이 있다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현재 판례가 취하는 입장이다 참고 https://namu.wiki/w/인과관계 https://ko.wikipedia.org/wiki/인과관계 대충 상식적으로 그런 내용이 책임있는 원인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엉터리다. 이렇게 인과관계를 잘못 본다고 하자. 그러면 이 원인을 제거해서 그 피해자를 살펴낼 수도 없다. 또 그 피해를 예방할 수도 없게 된다. 설령 그런 판단으로 피해자를 처벌해도 다시 피해자를 살려내지 못한다. 그런데 참된 인과관계 판단의 경우는 이 모든 경우가 그렇지 않다. 그 반대다. 그 원인을 제거하면 그 피해를 제거할 수 있다. 또 그 원인을 바로 파악하면 그런 피해도 예방할 수 있다. 또 올바로 이를 판단하면 이것을 그대로 복구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올바른 인과판단이 필요하다. ● 사망 사고에서 죽음을 제거하게 하는 인과판단 현실에 다양한 사망사고가 있다. 수행자가 이런 현장에서 사망자를 놓고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한다고 하자. 수행자 자신이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려면 먼저 사망에 이른 인과관계를 잘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는 12 연기가 제시된다. 12 연기는 다음이다. 12가지 요소는 무명(無明, avidyā), 행(行, saṃskāra), 식(識, vijñāna), 명색(名色, nāma-rūpa), 6입(入, ṣaḍ-āyatana), 촉(觸, sparśa), 수(受, vedanā), 애(愛, tṛṣṇā), 취(取, upādāna), 유(有, bhava), 생(生, jāti), 노사(老死, jarāmaraṇa) 이다. 맨 뒷 부분이 현실에서 문제 현상인 노사(老死, jarāmaraṇa)다. 늙고 죽음이다. 이것이 생사과정에서 문제현상이다. 생사현실 안에서 이것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먼저 그 인과요소를 위 처럼 올바로 잘 판단해야 한다. 문제되는 a 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무엇이 그 상황 또는 전후 상황에서 없어야 그것이 사라지는가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 인과요소를 다음과 같이 잘 판단해야 한다.- ---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 자신이 눈을 뜨고 손을 부딪히니 소리가 들린다고 하자. 여기에서도 마찬가지 잘못된 판단을 행하기 쉽다. 자신이 눈으로 본 그 손들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원인으로 잘못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눈을 감아 그 손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하자. 그래도 소리는 듣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소리를 낸 원인으로 생각한 손모습들은 사실은 그 원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눈으로 보게 된 그 손 모습은 단지 소리를 듣는 그 상황에서 함께 얻어낸 내용들이다. 즉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는 내용들일 뿐이다. 번개빛을 보고 천둥소리를 들었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 번개가 천둥소리를 내게 했다고 대부분 여긴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번개빛을 보지 못해도 천둥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들 관계도 연기관계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앞의 사례인 총기사망사고를 놓고 생각해보자. 어떤 갑이 총기사고로 사망했다. 이 구체적 사례에서 그 사고를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갑이 사망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설령 그런 총기사고가 없다고 해도 그는 이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원인을 잘못 잡았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는 사망이 가장 문제된다. 왜냐하면 각 개인이 자신의 생사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단히 집착한다. 수행자나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다. 수행자는 사실 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무엇을 없애야 사망을 제거할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자신도 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다른 이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수행이고 중생제도다. 그러려면 문제되는 내용 자체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생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경우는 생사과정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다음 내용을 잘 파악해야 한다. 또 이 내용을 잘 파악해서 현실에서 실천하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욱이 사망사고의 피해자도 역시 살려낼 수 있다. 경전에서는 본래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현실에서 이런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초적인 내용부터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갑(甲) 이라는 사람이 사망했다고 하자. 이 사망사고를 사례로 놓고 여기에서 갑(甲)이라는 사람을 살려내기로 하자. 그리고 이후 다시는 그런 사망을 겪지 않도록 하려고 한다고 하자. 갑(甲) 이 자기 자신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려면 다음 기초 내용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우선 이 사례에서 도대체 사망한 갑(甲)은 어떤 존재인가를 놓고 잘 생각해보자. 첫 번째 문제는 무엇을 갑이라고 하는가. 이 문제다. 사망진단서에 갑은 60 세 남자로 되어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도대체 어떤 부분의 무엇을 그 갑이라고 하는가. 이것이 처음 문제다. 그것을 먼저 확정해야 이 사망 사건사고에서 그 갑을 죽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또 이후 그 갑이 사망을 겪는 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그것을 확정하지 않으면 매번 문제가 모호해진다. 그런데 갑의 정체를 파악하는 첫 부분부터 모호하다. 현실에서 갑이라는 사람은 자신을 다음과 같이 파악할 것이다. 갓난아이 때의 자신 5 살 때 어린아이일 때의 자신 15 살 소년일 때의 자신 21 살 청년일 때의 자신 45 살 장년일 때의 자신 그리고 60 살 할아버지가 된 때의 자신 이렇게 여러 형태의 자신을 모두 자신으로 생각할 것이다. 한편 100 M 앞에서 갑이라는 사람이 자신 앞으로 걸어온다고 해보자.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은 다양한 내용을 갑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우선 100 M 앞에 서있는 갑을 다른 사람이 보게 되면 자신의 손톱보다도 작게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걸어올 때 그 형태나 크기가 매번 달라진다. 그리고 자신 앞에 서게 되면 이제 거의 자신만한 크기나 형태의 갑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기호로 나타내보자 α,β,γ,δ,ε,ζ,η,ι,κ,λ,μ,ν,ξ... 그래서 이 상황에서 어떤 모습과 형태가 과연 갑인가를 놓고 먼저 판단해야 한다. 또 다음 문제도 함께 판단할 필요가 있다. 갑이 아침에 식사를 하고 점심에 배설을 했다고 해보자. 또 매순간 호흡을 들이 쉬고 내쉰다고 해보자. 그러면 미세하지만, 그 구성요소가 조금은 달라진다. 알고보면 갓난아이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이 과정을 쉼없이 이어왔다. 그래서 그 모습도 점차 달라져온 것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의 어떤 내용이 과연 갑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현실에서 죽음에서 벗어나게 할 갑이 과연 어떤 내용의 무엇인가는 모두 이런 문제와 관련된다. 식사하기전 섭취할 밥의 형태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식사시 이것을 섭취한다. 그러면 이후 일정한 배설을 또 하게 된다. 이 두 과정에서 식사한 내용과 배설한 내용 사이의 변화는 한 주체의 구성요소의 변화와도 함께 관련된다. 5 살 아이가 60 세 노인의 모습으로 변화하기 까지 이런 내용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이다. 위 내용을 다시 다음처럼 기호로 나타내보자. ABCDEFGHIJ 처음 상태가 위와 같았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에서 섭취와 배설을 반복하는 과정을 다음처럼 숫자로 표시해보자. 이 과정에서 1 이라는 식품의 일부분이 섭취되었다. 그리고 앞의 A 라는 부분이 배설되었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후 단계의 구성요소는 다음처럼 표시하게 된다. BCDEFGHIJ1 이후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해 나간다고 가정해보자. 이 과정을 단순화해서 위와 같이 기호로 나타내보자. ABCDEFGHIJ BCDEFGHIJ1 CDEFGHIJ12 DEFGHIJ1234 EFGHIJ12345 FGHIJ123456 GHIJ1234567 ... 1234567890 현실에서 구성요소만 변화할 뿐 아니라, 전체 형태도 변화한다. 여하튼 그 내용을 위와 같이 추상적으로 기호로 나타내었다고 하자. 그리고 이것을 죽 나열한다고 하자. 그것이 처음에 한 주체가 자신의 내용을 나열한 내용이 된다. 그래서 이 가운데 무엇을 갑이라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제 현실의 한 순간 한 단면에서 갑과 을이 같이 있다고 해보자. 우선 이런 현실 한 단면에서 갑이 스스로 무엇을 자신이라고 여기는가를 놓고 생각해보자.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놓고 잘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 주체의 생사과정에서의 시공간 여행 과정의 이해와도 관련된다. 현실의 한 상황에서 갑이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눈을 떠서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았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갑은 어느 부분을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가를 판단해보자. [img8] 08pfl--image/8식-8.jpg 위 그림 [img8] 에서 1,2,3,4,5, 라고 표시한 영역은 다음을 의미한다. 1= 시각으로 얻는 내용 2= 청각으로 얻는 내용 3= 후각으로 얻는 내용 4= 미각으로 얻는 내용 5= 촉각으로 얻는 내용 그래서 현실에서 눈을 떴을 때 얻게 되는 내용 전체는 1 의 영역이다. 이 가운데 한 주체는 일정부분을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다. 그 1의 영역 내용을 다시 다음처럼 그림으로 나타내보자.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k0650-t0099-001-01.html#056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 03fl--ghpt/r1030.htm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누구나 눈을 감았다가 뜨는 동작을 반복해 실험할 수 있다. 이 상황에 철수가 2 의 형태로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 우선 자기 자신은 자신의 눈이나 이마 허리 등을 스스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 형태가 1 처럼 그려져 있다. 현실에서 위 실험을 스스로 반복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뜰 때 얻어낸 내용을 잘 붙잡아 놓고 판단해 보자. 이런 내용에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을 스스로 손으로 가리켜 보자. 또 만져볼 수 있다. 이 때 앞에 있는 각 부분들의 성격이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부분과 1 과 같은 부분은 특성이 다르다. 또 2 나 3 으로 표시한 부분처럼 자신과 비슷한 철수나 영희의 부분도 마찬가지다. 또 4 로 표시한 꽃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림에는 표시하지 않았지만, 앞에 책상이나 바위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부분도 또 다른 부분과 성격이 다름을 파악할 수 있다. 위 경우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스스로 손으로 가리켜보자. 현실에서 사망사건이 발생했다고 하자. 이 때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게 된다. 또 이런 사건이 법정에서 판단된다고 하자. 이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원확인 문제부터 문제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사람을 엉뚱한 사람의 사망사건과 관련시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 각 경우 모두 어떤 부분을 갑이라고 여기는가가 다 문제된다. 현실에서 수행자나 일반인이 사망을 겪게 하지 않고 유지하고자 하는 부분도 이 문제와 관련된다. 일반인들이 자신이나 다른 영희 철수의 사망 사건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경전에서는 그 경우 그 상황에 그가 생각하는 자신이나 영희 철수에게는 생멸이나 생사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본래 사람들이 문제삼는 그 상황에 무언가가 죽고 사라지는 현상 자체가 본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상황에서 각 주체나 의사 경찰관 법관은 매 경우 이 사망사건을 대단히 진지하게 문제삼는다. 이 두 차이가 위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위 그림을 놓고 처음에 무엇이 갑인가부터 잘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내용을 붙잡고 이 문제를 살펴나가게 된다. 이 상황의 이해를 위해서 블럭을 놓고 이 상황을 이해해보자. 아이들이 블럭을 가지고 논다. 그래서 레고 블럭 등을 가지고 처음에 사람의 형체를 하나 만들었다고 해보자. 그리고 옆에 돼지나 소의 형체도 하나 만들었다고 해보자. 그런데 이 상황에서 돼지나 소를 만든 블럭을 하나 떼어내서 사람의 형태에 자꾸 붙여 넣는다고 해보자. 그리고 또 사람의 형태에 붙여져 있던 블럭을 떼내 다시 돼지나 소의 형태에 옮겨 붙이는 작업을 계속 해나간다고 해보자. 이 사정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앞의 기호를 다시 참조해도 된다. 모형을 단순화해서 사람과 돼지형태로만 단순히 나눈다고 하자. 사람 ------ 돼지 ABCDEFGHIJ 1234567890 BCDEFGHIJ1 234567890A CDEFGHIJ12 34567890AB DEFGHIJ1234 4567890ABC EFGHIJ12345 567890ABCD FGHIJ123456 7890ABCDE GHIJ1234567 890ABCDEF ... 1234567890 ABCDEFGHIJ 물론 이 각 경우 블럭이 색이 있다고 하면 더 구분이 쉽다. 알파벳은 노란 색 블록이다. 숫자는 파란색 블록이라고 하자. 그러면 위 작업을 계속 하면 점차 색이 바꿔진다. 노란색으로 되어 있던 사람 형태가 나중에는 파란 색 블록으로 전부 바뀐다. 물론 위 과정에서 이들 블록으로 만든 형태는 일정하게 유지되거나 달라질 수도 있다. 그것이 또 처음 5 살 때 아이의 모습과 60 살 때 노인의 모습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갑은 스스로 위 전 과정을 모두 자신으로 여기게 된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각 단면의 내용이 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사정으로 이들 각 내용을 모두 자신으로 여기는가를 살펴야 한다. 만일 5 살 때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 내용은 15 살 때나 45 살 때부터 이미 사라져 있다. 그렇다면 왜 60 살이 된 지금 5 살 때 그 자신의 장례식이나 제사를 치루지 않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제 60 살 때 갑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모습이 또 있다고 하자.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60 살 때 갑이 사망했다면 그것은 60 살 때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이 이제 현실에서 더 이상 그 형태로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위 그림에서는 그것이 사실은 잘못된 판단임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의 차이를 먼저 기초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각 과정에 12 연기의 내용의 이해가 기초적으로 필요하다. 글이 길어지므로 먼저 결론적 내용만 제시해보자. 위 단면에서 매 순간 갑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이 있다. 그리고 한 단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손으로 가리키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한 부분은 잘못된 판단이다. 이는 전도된 망상분별이다. 즉 거꾸로 뒤집힌 가운데 잘못 행한 판단이다. 이런 잘못된 판단을 행하는 데에는 근본 무명 어리석음이 작용한다. 그래서 그렇게 잘못된 부분을 취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현실에 임한다. 그렇게 취한 그 부분은 위에서 살피듯 매 순간 그 내용이 바뀌고 변화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 부분은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찾아내지 못하게 된다. 현실에서 각 주체가 자신이나 타인의 사망 사건으로 이해하는 내용은 이 망상과 관련된다. 그러나 이 모든 각 경우에 본래 그렇게 임하게 만드는 배경 사정이 있다. 그리고 그 배경 사정에 있는 내용은 그런 내용과 무관하게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그 전후에 그 재료는 늘거나 줆이 없다. 그래서 본래 이 상황에서 훼손되거나 파괴되는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래 이 상황에 갑이나 을이 있다고 여기는 생멸이나 생사는 본래 얻을 수 없다. 다만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붙잡고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바탕에서 어떤 내용이 사라지고 없어졌다고 '잘못' 여기고 대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여기는 생노병사의 근본 원인은 그런 잘못된 분별을 행하는 근본 무명과 망집에 기원한다. 이것을 12 연기가 제시한다. 그런데 이 각 상황에서 그 원인이 되는 근본 무명과 망집만 제거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황에서 훼손되거나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스스로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매 사망 사고에서 각 주체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는 본래부터 없던 생사 생멸을 그처럼 없었다고 재 확인하는 의미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각 주체는 각 경우마다 생멸 생사과정을 겪는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위 모든 내용은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상을 잘못 취하고 임해 겪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 내용을 한 정지된 단면을 붙잡고 스스로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한 주체의 본 정체를 잘 파악하려면 다음 그림도 함께 참조할 필요가 있다. [img9] 08pfl--image/8식-9.jpg 그러면 이 상황에서 2중적인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 각 주체들이 각 상황에서 갑이나 을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한편, 그런 망집을 일으켜 임하게 만드는 각 정신들의 계층 구조와 기제 및 본 바탕이 되는 #실재가 있다. 그래서 이 2 중적인 측면은 한쪽은 생사를 겪게 하는 생멸문이 된다. 또 다른 한쪽은 그런 생사고통을 근본적으로 벗어나게 하는 해탈문의 성격을 갖게 된다. 그래서 생사를 벗어나려 할 때 이 상황에서 무엇을 생사를 벗어나게 하려고 하는가를 놓고 먼저 기초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 망집을 일으킨 경우 겪게 되는 생사윤회 과정 수행자는 현실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취하면 안 된다. 그러면 생사고통을 겪는 범부의 상태가 된다. 그렇지만, 또 수행자는 범부가 생사를 겪는 생사현실에 함께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래야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범부의 망집을 바탕으로 상을 취해 임하는 측면을 갖게 된다. 그런 가운데 다시 올바른 진리판단(보리의 깨달음)에 바탕해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 즉, 열반 해탈의 측면을 함께 2 중적으로 갖추어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구호중생 이중생상이라는 구절로 표현된다. 이는 10 회향의 한 항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금강경』에 강조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생사고통을 벗어난 상태를 니르바나(열반)라고 표현한다. 수행자는 생사 현실 안에서 그 생사현실 즉 열반임을 관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니르바나의 상태로 여여하게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제도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곧 중생을 생사고통 및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한편으로 중생의 상태를 이해하면서도 다시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바탕으로 계속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앞의 경우와 대단히 달라진다. 그러면 매 경우 본래 얻을 수 없는 생사고통을 심하게 겪어 나가게 된다. 그런 생사고통은 중생이 생사윤회과정에서 3 악도의 상황에서 가장 극심하게 문제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은 다음 3 측면으로 구분된다. 우선 가장 기초적으로는 각 중생이 일으키는 기본 망집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10 선업을 구족해서 3 악도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인, 천을 오가는 상태를 일단 목표로 하게 된다. [인천교적인 방향 ] 그래서 망집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우선 당장 극심한 고통을 겪는 축생, 아귀, 지옥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수행의 1 차 목표다. 이후 중생이 생사를 겪는 욕계, 색계, 무색계에서 그 자신이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를 목표로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이 회신멸지로 아라한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이는 망집에 바탕해 붙잡은 엉터리 자신이 있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일으킨 온갖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망상분별을 지혜나 지식이라고 잘못 여긴다. 예를 들어 엉터리로 각 내용이 서로 관계된다고 잘못 여기고 현실을 대한다. (상당 인과관계) 그래서 그런 엉터리 망상분별 내용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의 묶임에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를 위한 기본적인 수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후에는 다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생사현실에 임할 때는 생사 즉 열반의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는 꿈을 꾸는 가운데 그것이 꿈임을 이해하면서 꿈꾸는 상태와 같다. 꿈을 깨면 꿈은 침대에서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꿈을 꿀 때는 침대 밖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꿈을 깨 침대를 대해야만 그것이 꿈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나 꿈을 꾸는 상황에서도 그 안에서 그것이 꿈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꿈을 꾸는 상황이나, 꿈을 깨 침대를 대하는 상황이나 둘다 무방하다. 현실의 생사고통도 이와 마찬가지다. 현실 밖의 본 바탕 실재는 현실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생사현실에 임해 현실만 100% 붙잡고 대하면 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생사현실에 임하는 상황에서도 본 바탕 실상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함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에 임하나, 생사를 벗어나 임하나 어느 경우나 니르바나의 상태로 여여하게 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본 바탕이 공함을 잘 이해한 가운데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생사현실에서 실재의 측면을 99% 취하여 현실이 침대에서 꾸는 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3계의 생사현실에 임해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해 중생을 제도하고 성불하는 상태가 목표가 된다. 그렇게 해야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다른 중생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단지 자신만 생사에서 벗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중생까지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더 나아가 성불에 이르게 하는 것을 목표로 수행하게 된다. 이는 병원 상태에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환자는 우선 병원안에서 상태가 좋아져야 한다. (=> 인천교) 그 다음에는 병원에서 완전히 퇴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그런데 병원에는 각기 상태가 다른 수많은 환자들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이들 환자도 함께 치료해 퇴원시켜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건강해져 퇴원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자신이 이들 다른 환자를 대해 치료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니다. 건강한 이가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를 치료할 여러 방편 지식을 익히고 훈련해야 한다.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하는 수행자도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이 경우 다른 중생을 제도하려면, 다시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을 제도할 여러 방편을 함께 구족해야 한다. 이는 결국 복덕 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는 수행이 된다. 한편, 망집을 일으켜 상을 취한다고 하자. 그런 중생의 상태는 이와 사정이 정 반대로 다르게 된다. 중생이 임하는 생사현실에서 본래 생사나 생멸은 얻을 수 없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근본무명에 바탕해 망집을 일으킨다. 그래서 얻을 수 없는 그런 생사나 생멸이 그 현실에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반복해 겪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각 중생이 생사현실에서 대하는 내용들이 된다.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기로 하자. 중생이 겪는 생사현실 가운데 가장 극심한 상태가 있다. 예를 들어 3 악도에 묶여 무량겁을 지내게 되는 경우다. 그런데 이는 다음 과정으로 그런 상태에 처하게 된다. 우선 처음 망집을 일으켜 상을 잘못 취하여 임하게 된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붙잡고 그 부분을 스스로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고 임한다. 이런 경우가 그런 예다. 한 주체가 극심한 고통을 겪는 3 악도로 옮겨가게 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 주체는 자신이 일으킨 망집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그래서 기본 바탕을 휘젖어 놓게 된다. 그러면 같은 망집을 일으킨 주체들 간에 서로 가해와 피해를 주고 받는 상태로 얽히게 된다. 그러면 그 내용이 근본정신에 축적이 된다. 이것이 업의 장애를 쌓게 만든다. 그러면 이후 생사과정에서 근본정신은 3 악도의 상황에 들어가 묶이게 된다. 그러면 그로 인해 장구한 기간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형태로 생사과정을 겪게 된다. [ 혹(근본무명, 번뇌- 업 - 고 ] 이런 생사과정에서 처음 7 식 부분에서 기본적으로 망집을 일으켜 임하게 된다. 이 경우 그런 바탕에서 현실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지금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 형태처럼 다시 임하게 된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일정 부분을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기고 임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사과정에서 각 주체는 3악도에 묶이면, 다시 특정한 축생이나 아귀 지옥 중생의 형태를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기고 임하게끔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 전반에 걸쳐서 그런 망집에 해당하는 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다. 이는 어느 상황에서나 다 사정이 같다. 그럼에도 망집을 일으키면 이 상황에서 엉뚱한 내용을 자신이라고 취해 붙잡아 임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무량겁에 걸쳐 스스로 벗어나오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이처럼 생사고통을 겪어나가는 상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수행의 기본 목표가 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Guesch Patti - Voila Voila.lrc Guesch Patti - Voila Voila [img9] 08pfl--image/8식-9.jpg [img9] 의 그림을 놓고 이 사정을 이해해보기로 하자. 위 그림에서 1! 영역은 한 주체가 눈을 떠 얻는 내용을 가리킨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눈을 뜨면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일 부분을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현실에 임하게 된다. 이 경우 그 부분은 여러 점에서 다른 특성을 갖는다. 이 부분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나 이 부분이 매 경우 늘 파악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이려고 하면 그 부분만 변화해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이 부분을 다른 부분에 대면 일정한 촉감 등을 얻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그 다른 부분을 자신이 대한 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기고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마치 자신인 것처럼 잘못된 망상분별[신견]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런 망상분별은 위 그림처럼 출생 이전 단계에서 7 식에서 일으킨 망집이 배경이 된다. 결국 현실에서 매 순간 위와 같이 망집을 일으켜 일정부분을 스스로 자신인 것으로 잘못 여기고 상을 취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처럼 망집을 일으켜 상을 잘못 취하게 되는 배경사정은 결국 위 그림처럼 1,2,3,4,5,6,7,8 식의 형태로 이뤄진 일정한 정신기제와 구조 때문이다. 그래서 매 단면마다 이 2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엉뚱한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며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한다. 그러면 이후 상황이 점차 악화된다. 그런데 이렇게 된 근본원인은 근본 무명을 바탕으로 제 7 식 부분이 일으킨 망집이 그 배경이 된다. [구생기신견] 그리고 이런 배경에서 현실에서는 다시 1! 영역의 일부분을 취해 그런 부분을 자신이라고 제 2 차적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이는 분별기 신견이 된다. 그래서 이 분별기신견은 위와 같은 배경에서 일으키게끔 되는 망집이다. 그런데 이 2차적 망집을 다시 잘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후 그 바탕에서 그 상태가 점차 악화된다. 그런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 나간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위와 같은 정신구조와 기제는 극심한 고통을 받는 3 악도의 상태에 묶이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면 이 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매 순간 임해야 한다. 그래서 망집을 제거하고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해야 한다. 그리고 매 상황에서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현실에서 자신이 대하고 있다고 여기는 내용들은 사실은 본 바탕에서 전혀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이 사정은 침대에서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사정이 같다. 꿈 속에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자신이 황금을 얻었다가 뺏긴다고 하자. 또는 강도에게 붙잡혀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는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황금을 얻는다고 해서 없던 황금이 그 상황에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황금을 잃는다고 해서 있던 황금을 잃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사정을 꿈에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에서 계속 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리고 현실은 이런 꿈의 비유와 사정이 같다. 즉, 현실에서 생사 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려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매 순간 생생하게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일정한 분별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 각 내용은 각기 실재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 내용을 매 순간 그처럼 그런 상황 조건에서 얻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 사정이 하나같이 다 침대와 꿈의 관계와 사정이 같다. 이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매 순간, 그 상황을 악화시키는 업을 행하지 않게 된다. 또 반대로 자신을 생사에 묶이게 만드는 업의 장애를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행하게 된다. 이것이 수행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망집에 바탕해 행하게끔 되는 업은 그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본래 매 상황에서 자신이 조금씩 훼손되고 사라진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 상황에 그런 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다. 그가 그런 망집을 갖는다고 해서 본래 없던 그런 내용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런 부분이 사라진다고 해서 있던 내용이 없어지게 되는 것도 역시 아니다. 다만 그가 그처럼 매 상황을 잘못 이해하고 대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런 망집을 일으켜 임할 때는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음에도, 그처럼 본래 얻을 수 없는 생사고통을 실답고 생생하게 매순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계없이, 망집을 일으키는 정신 구조와 기제 자체는 무량겁을 두고 이어진다. 그래서 매 순간 이 사정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3 악도에 처하게끔 만드는 업의 장애를 제거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평소 수행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이후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할 때도 역시 3 악도에 묶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복덕과 지혜자량을 구족한 바람직한 상태로 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중생제도를 위해서는 수행자가 생사과정에서 이런 상태로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기존에 생사과정에서의 시공간 여행의 과정으로 설명했다. 눈을 떠 얻는 내용 가운데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그림에서 a! 부분이라고 하자. 평소 눈을 뜬 상태에서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여기는 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그 부분이 그림에서 a! 부분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평소 일반적으로 자신이라고 여기게 되는 부분이 된다. 그런데 평소에 눈을 감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a! 부분은 더 이상 얻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처음에 자신이 손으로 가리킨 a! 부분이 정말 자신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위 상황에서는 그런 자신은 없어졌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자신이 눈을 감아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 자신은 스스로 여전히 자신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 눈을 뜬 상황에서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여긴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그런데 1,2,3,4,5 와 같이 감각현실로 얻은 내용들은 사정이 모두 위와 같다. 이제 의식을 상실한 경우가 있다. 심하게 다치거나, 술을 많이 마셔 감각과 분별을 모두 못하는 상태다. 이 상태를 놓고 이 전후 상황을 살펴보자. 이 상황에서도 그 주체는 계속 이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비록 그 주체는 감각과 분별을 못한다해도 제 3 자는 이 사정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의식을 상실한 이가 의식을 깨면, 그 자신도 그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제 이 주체가 생사과정에서 화장터에 들어가는 전후에도 마찬가지다. 이 사정을 현실에서 각 순간마다 다 확인할 수 있다. 즉, 위 그림에서 나타낸 1,2,3,4,5,6,7,8 식의 구조와 기제는 한 생을 걸쳐 매 순간의 단면과 그 전후과정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관계가 무량겁을 두고 이어진다. 그런데 처음 망집에 바탕해 a!와 같은 부분을 취해서 스스로 자신으로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 부분은 매 경우 들고 남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 망집을 바탕할 경우 그런 부분은 생멸 및 생사를 겪는다고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렇지만, 그런 정신구조와 기제 자체는 이와 사정이 다르다. 또 이 상황에서 이런 정신구조와 기제의 본 바탕이 되는 실재가 있다. 이런 실재도 마찬가지다. 즉 이런 내용은 이 전후과정을 통해서 늘거나 줆이 없다. 그리고 망집에 바탕해 있다고 여기는 생사나 생멸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과정이나 생사현실에 임할 때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생사현실에서 감각현실 a! 을 얻는다. 그리고 동시에 관념영역에서 이에 대해 분별 a@ 와 관련된다. 이 상황에서 그 주체에게 자신이나 영희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자신이나 영희는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문제삼는 영희나 자신은 그 정체가 관념내용이다. 그런데 이 경우 그런 영희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감각현실 가운데 a! 와 같은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그런데 이는 그가 현실에서 일으키는 가장 기본적인 망상분별이다. 그가 손으로 가리킨 부분은 그 마음이 얻어낸 감각현실이다. 그래서 그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또 관념분별은 그런 감각현실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 감각현실을 본 바탕 실재의 내용이 아니다. 본 바탕 실재는 또 그런 감각현실이 아니다. 이들 관계는 마치 침대에 누어서 꾸는 바다나 황금꿈의 관계와 같다. 그래서 이 사정을 생사현실 안에서 잘 깨닫고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생사에 묶이지 않게 된다. 그러나 만일 망집을 바탕으로 매 상황에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를 바탕으로 매순간 업을 행하게끔 된다. 즉 매순간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좋다고 여기는 부분을 붙잡고 아끼며 베풀지 않게 된다. 또 이를 위해 다른 주체가 집착하는 좋음을 함부로 침해하게 된다. 그리고 나쁨(-)을 가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침해받게 되면, 불같이 분노를 일으키고, 보복을 가하게 된다. 이것이 그 주체에게 업의 장애를 쌓게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극심한 생사통을 받는 상태에 묶이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 과정 전반에 걸쳐 그가 집착하는 그런 내용은 어느 단면에서도 본래 얻을 수 없다. 다만 그가 일으킨 망집을 바탕으로 할 때만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욕계 현실에서는 이처럼 망집을 일으켜 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또 욕계에서 중생은 3 악도의 생사고통에 묶여 지내게 된다. 수행자가 이처럼 망집을 바탕으로 하여 상을 취하게 되면 마찬가지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 역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 묶이게 된다. 그러면 다른 중생도 역시 제도해나갈 방편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행자가 현실에서 그런 잘못된 아상,인상 등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그런 부분이 침해되더라도 평안히 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업장을 해소하고 복덕자량을 쌓는 수행을 원만히 행할 수 있다. 즉 좋음을 아낌없이 베풀게 된다. [보시] 또 나쁨을 함부로 가하지 않게 된다. [정계] 그리고 설령 나쁨을 받는 상황에서도 이를 평안히 참고 [안인] 수행에 쉼없이 정진할 수 있게 된다. [정진]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처음 범부상태로 물러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대단히 수준높은 수행단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사현실 전체를 니르바나의 상태로 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이 중요하다. 끝으로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 a! 부분이 있다. 이 부분도 위와 같이 임할 때 그 상태가 좋게 유지된다. 예를 들어 마하파사바제는 부처님의 이모로써 100 살 가까이 살았던 분이다. 그리고 심지어 100 살 가까이 되었을 때도 젊었을 때 상태로 계속 지냈다고 경전에 전한다. 그리고 이는 그 주체가 가지니 서원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결국 망집에 바탕해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도 그 부분대로 계속 좋게 유지하는 방안도 된다. 그리고 이 부분이 점차 발전되면, 결국 무량수불의 국토의 중생이 갖는 수명이나 외관처럼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또 이런 부분마저도 가장 바람직한 상태로 무량하게 유지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는 또 이대로 중생이 집착하는 내용을 기준으로 그것을 무량하게 유지해가는 방안이 된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6/2565-06-09-k0646-001.html#1395 sfed--십이인연론_K0646_T1651.txt ☞십이인연 sfd8--불교단상_2565_06.txt ☞◆vhiv1395 불기2565-06-09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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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漏)의 하나. 누는 번뇌의 다른 이름. 3계(界)에 일어나는 15종의 치(癡)번뇌. 3계에 각기 4제(諦)와 수도(修道)의 5부에 치번뇌가 있으므로 합하여 15. 치(癡)는 미(迷)의 근본이므로 따로 내어 1루라 한다.
답 후보
● 무명루(無明漏)
무상(無相)
무상방편지(無相方便地)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무색계계근본번뇌(無色界繫根本煩惱)
무생상사과류(無生相似過類)
무아관(無我觀)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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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이인연론_K0646_T1651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