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기귀내법전』
K1082
T2125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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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기귀내법전』
♣1082-002♧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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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海寄歸內法傳卷第二
K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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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기귀내법전 제2권
의정 지음
이창섭 번역
10. 의식소수(衣食所須)
무릇 의지함이 필요한 누추한 몸은 옷과 음식의 도움을 빌려야 비로소 생명을 건져갈 수 있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묘한 지혜는 적멸(寂滅)의 진리에 의거해야만 비로소 흥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것이 율의에 어긋난다면 곧 걸음걸음마다 죄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투명하게 맑은 마음이 궤도(軌道)를 잃게 되면 생각생각마다 미혹됨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의식(衣食)을 수용하는 가운데 해탈을 구하는 사람은 성인의 말씀에 순응해서 수용하여야 하며,
투명하게 맑은 마음이 있는 곳에 자리 잡아 진리를 실현하는 사람은 선대의 가르침에 부합함으로써 마음을 투명하고 맑게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모름지기 아래로 굽어 인생을 살펴보면 그것이 곧 길 잃은 중생들의 감옥임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적멸의 언덕이 밝혀져 깨달음과 적막의 빈 관문이 됨을 쳐다보고 그것이 오적(悟寂)의 빈 관문이 됨을 알아야만 비로소 고해의 나루터에 법의 배[法舟]를 띄울 수 있고 오래 지속되는 어두운 밤에 지혜의 횃불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복의 제작이나 음식의 법도에 있어서 만약 그것이 계율을 지킨 것인지 범한 것인지를 환하게 밝히려 한다면 계율에 만들어진 법칙이 있기 때문에 처음 배우는 무리라도 역시 무겁고 가벼운 차이를 알게 된다.
이것은 곧 그 득실이 사람마다 따로 한정되어 있기에 원래 번거롭게 비교하고 헤아려 정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두드러지게 율검(律檢)에 어긋남으로써 장차 지남석(指南石)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하게 한다.
혹 사람들은 익혀온 풍속대로 사는 것이 상도(常道)이니 거기에 허물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 어떤 사람은 부처님께서는 서쪽 나라에 태어나셨기에 그곳에서 출가한 사람은 서쪽 나라의 형식과 행동에 근거하게 되지만 우리처럼 동천(東川)에 살면서 속가를 떠난 사람들은 동천의 궤칙(軌則)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중국의 고상한 복장을 바꾸어 인도의 색다른 풍속을 받아드릴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기도 한다.
잠시 이러한 무리들을 위하여 대강 가려 뽑은 것이다.
무릇 이 의복의 율의는 곧 출가한 사람의 강요(綱要)이니 이치로 따져도 반드시 그 제작의 법도를 으뜸으로 삼아야 하는데 어찌 가볍게 보고 모든 것을 생략할 수 있겠는가?
또한 법중(法衆)들의 3의(衣)와 같은 것은 오천축국에서는 모두가 자엽(刺葉:여러 개의 천을 바느질하여 꿰매는 것)을 하는데
오직 동하(東夏)에서만은
벌려둔 채 바느질하지 않는다.
내가 몸소 『사분율(四分律)』을 행하는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 물어보았더니 모두가 같이 자엽(刺葉)한다 하였고 그냥 벌려두는 곳은 전혀 없었다.
서방에서 만약 중국의 법복을 얻게 된다면 꿰매야만 걸칠 수 있게 된다.
여러 부의 율문에도 모두 자합(刺合)이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몸에 충당되는 여섯 가지 물건에도 나름대로 엄격한 조문이 있으며 13자구(資具)에 대한 상세한 것은 율장의 설명과 같다.
6물(物)이라 말하는 것은
첫째는 승가지(僧伽胝)번역하면 복의(複衣)이다며,
둘째는 올달라승가(嗢呾囉僧伽)번역하면 상의(上衣)이다이며,
셋째는 안달바사(安呾婆娑)번역하면 내의(內衣)이다이다이 세 가지 옷은 모두를 지벌라(支伐羅:法服)라고 부른다.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흔히 법의를 가사라 부른다.
이것은 빨간 색의 옷이란 뜻이며 율법의 문전에 나오는 말은 아니다.
넷째는 바달라(波呾囉)발우를 말한다이며,
다섯째는 니사단나(尼師但那)좌와구(坐臥具)이다이며,
여섯째는 발리살라벌나(鉢里薩囉伐拏)물을 걸러내는 수라(水羅)이다.
계를 받을 때는 반드시 이 여섯 가지 물건을 갖추어야 한다이다.
다음 13자구(資具)라고 하는 것은
첫째 승가지,
둘째 올달라승가,
셋째 안달바사,
넷째 니사단나,
다섯째 군(裙),
여섯째 부군(副裙),
일곱째 승각기(僧脚崎)엄액의(掩腋衣)라 한다,
여덟째 부승각기(副僧脚崎),
아홉째 식신건(拭身巾),
열째 식면건(拭面巾),
열한째 체발의(剃髮衣),
열두째 복창개의(覆瘡疥衣),
열세째 약자구의(藥資具衣)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삼의와 좌구(坐具)와
군(裙)과 배자는 각각 두 개씩 있고
몸과 얼굴 닦는 수건과 머리 깎을 때 입는 옷과
부스럼 가리고 약 달일 때 입는 옷이라네.
이 열세 가지의 옷은 출가한 스님이 소유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미 거기에는 정해진 격식이 있으니 반드시 가르침에 따라 이를 사용하여야 하며,
이는 그밖에 갖고 있는 불필요한 물건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 열세 가지는 모두 따로 그 일을 기록해 두고 청정한가를 점검해서 잘 보존하고 간직하여야 한다.
얻게 되면 이를 간직하되 자신에게 만족한 모든 것을 아우르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
그 밖에 남는 옷은 일을 헤아려 분별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주단으로 된 이부자리나 털방석으로 된 자리같은 것은 반드시 주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이것을 받아 사용한다.
이것을 3의(衣) 10물(物)이라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번역한 사람의 생각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눈 것이며,
범본(梵本)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따로 3의를 말하고 10물을 분석하여 전개하고 있으며,
그 열 가지의 수효도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 의심스런 추측을 하게 하여 모두가 허망한 것에 근거하여 만들었으며,
십(什)을 해석하여 잡(雜)이라 한 것은 선인들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약자구의(藥資具衣)는 부처님께서 이것을 소유하는 것을 정하셨는데 마땅히 명주를 써야 하고 약 2장(丈)이나 혹 1필(疋) 되는 것들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미 병이 생겼는데 평소에 준비된 것이 없다면 갑자기 구해도 구하기가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것을 갖고 있을 것을 정하신 것이며 미리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
이것은 병이 생겼을 때 필요한 것이므로 마땅히 아무때나 문득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수행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문(門)에는 그 뜻이 모두를 공통적으로 구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이미 근기에 세 가지 구분이 있으니 한정하여 하나의 방법으로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4의(依)1)ㆍ4작(作)ㆍ12두다(杜多)2)는 수행이 뛰어난 자[上行]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축방(畜房)ㆍ수시(受施)ㆍ13자구(資具)는 수행이 보통이거나 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해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욕심이 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득 차서 남아도는 허물이 없게 하고
많이 구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한 허물이 없게 한 것이다.
위대하시구나.
자부(慈父)시여,
능숙하게 근기에 응하시어 인간계와 천계로 훌륭하게 인도하시니 조어자(調御者)라 일컬어졌도다.
그런데 공신백일(供身百一)이라 하는 표현은
4부(部)의 율문에는 보이지 않는 표현으로 비록 경전에 그런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이것은 특별한 경우의 내용일 것이다.
일 많은 속인들의 무리라도 오히려 가구(家具)가 50개가 넘지 않는데
인연을 줄여야 하는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도리어 가구가 백의 숫자를 넘기는 일이 어떻게 용납되겠는가?
도리(道理)에 기준해서 증명해보면 통용되는 것과 제약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시견(絁絹:거친 비단과 고운 비단)을 논해보면 이는 곧 성인께서 허용하신 일인데 무슨 일로 억지로 이를 제약하는가?
부질없는 절목(節目)을 위해서 생각으로 이를 단절하고 복잡하게 되는 것을 줄이고자 하지만 오천축국의 사부대중들은 모두가 이를 착용하고 있으니
어떻게 구하기 쉬운 거친 명주를 버리고 찾아도 얻기 어려운 가는 베를 찾아서야 되겠는가?
도를 방해하는 극치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제약할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제약한다는 것이 곧 그러한 유(類)에 속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것은 계율을 지키는 호사자(好事者)로 하여금
자만심을 더 부풀리게 하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게 한다.
구함 없이 욕심을 줄이는 사람에게는 안으로 부끄러움이 일어나서 밖으로 얼굴을 붉히게 한다.
이것은 곧 몸을 가로막고 도를 키우는 것이니 또한 다시 무슨 일을 말하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의 뜻은 곧 목숨을 해치는 곳에서 온 사람을 상자(傷慈)의 극치라 하고,
함식(含識:생명체)을 슬퍼하고 가엾게 여기는 일은 도리어 이치상 이것을 단절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일마저도 인연이 많아서 생명을 손상시키는 일인데
땅강아지나 지렁이 같은 것에는 한 번도 마음을 기울이지 않던 사람이
번데기나 누에에게는 어찌 그다지도 마음을 주는가?
만약 그 사람이 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사람이라면 존재하는 몸이 기탁할 곳마저 없게 되니 목숨을 던진다 해도 무엇에 인연하겠는가?
이치로 미루어 이를 따져보아도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소락(酥酪)을 먹지 않고 가죽신을 신지 않고 사면(絲綿)으로 된 옷을 입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이러한 부류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
무릇 살생을 논할 때는 먼저 고의로 그 생명체의 뿌리를 끊을 경우에만 비로소 업도(業道)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반드시 고의가 아니라면 부처님께서는 생명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삼처청정(三處淸淨)이면 이는 허물이 없는 곳에 있다고 판정된다.
설사 이 취지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다만 가벼운 허물만이 초래되니 이는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원인이 극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만약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되어 환하게 드러난다면 깨달음으로 인하여 명백하게 되어 허물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종지(宗旨)에 근거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밝혀지며,
3지(支)의 도리로도 또한 이미 명백한 일이다.
하물며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일을 무엇 때문에 수고스럽게 다시 천착(穿鑿)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5일(日)의 의심을 작자(作者)의 붓끝에서 나오게 하고 삼시(三豕)3)의 잘못으로 신봉하여 받들 말을 전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가 스스로 누에고치를 살려 달라고 빌면서 눈으로는 벌레가 손상되는 것을 경험하였다면
이는 세상 사람들도 오히려 행하지 아니할 일이거늘
하물며 마음으로 속세의 잡념을 끊기를 바라는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이런 비유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는다면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이루게 될 것이다.
만약 어떤 시주가 청정한 뜻으로 갖고 온 물건이 있다면 곧 기쁜 마음을 내어 그것을 받아서 몸을 돕고 덕을 길러 간다면 실로 허물은 없는 것이다.
오천축국의 법복은 바느질하는 것에 맡겨 옷의 실이 가로이든 세로이든 상관하지 않고 만드는 날짜도 15일을 넘기는 일이 없다.
계산해보면 비단 한 필로 7조(條)ㆍ5조 가사를 만들 수 있고,
내엽(內葉)은 3지(指)이며 바깥 가장자리[外緣]는 1촌(寸)이다.
바깥 가장자리에는 세 가닥의 자수(刺繡)가 있으나 내엽은 모두가 봉합한 것이다.
일을 충실히 행하고 위의를 나타내는데 또 무엇 때문에 정교한 솜씨를 빌릴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납의(納衣)를 입을 경우 이는 그 뜻이 일을 간략히 하는 데 있다.
이 경우 혹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것을 주워 입기도 하고,
혹 묘지[屍林]에 버려진 것을 취하기도 하는데,
얻는 것에 따라 곧 바느질하여 이를 사용하여 추위와 더위를 막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율장 가운데 와구(臥具)라 한 것은 그것이 곧 3의(衣)라고 말하는가 하면,
야잠(野蠶)을 규제한 글을 보고 곧 이의(異意)를 제기하며 더욱이나 법의(法衣)는 견직물[絹織]이 안된다고 하면서 마침내 무명[布]을 간절히 찾는다.
어찌하여 본문에 원래 요[褥:
이부자리]라고 한 풀이에 맡기지 않는가?
고세야(高世耶)라는 말은 곧 누에의 이름인데 비단으로 짜여지고 나서 다시금 이 이름이 부여된 것이요 그 바탕이 귀한 물건이기 때문에 사용이 허용되지 않을 뿐이다.
이부자리를 만드는 법에는 두 종류가 있다.
혹 바느질해서 자루를 만들어 그 속에 털을 쟁여 넣는 경우가 있고,
혹 실을 짜서 만들어도 된다.
이것이 곧 담요나 모포 따위들이다.
그 요의 형태는 너비가 2주(肘),
길이가 4주(肘)이며,
시기에 따라 두텁고 얇게 만든다.
스스로 달라고 청하는 것은 금지되지만 다른 사람이 줘서 받는 경우는 죄가 없다.
전혀 허용되지 않는 것은 크게 엄금한 과목(科目)을 범하였을 때다.
이 여러 가지 까는 도구[敷具]는 3의가 아니다.
또한 다시 율에서 정명(正命)이라고 말한 것은 입과 배를 먼저 해결해야 되는 것을 말한 것이며,
땅을 일구고 갈 때에는 반드시 그 적절하게 해야 하며 씨를 뿌리고 심을 때도 가르침이나 규정을 어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법에 따라 먹고 사용한다면 그것으로 죄가 생기지는 않는다.
처음에 이르기를,
“몸을 세우면 능히 그 복을 자라나게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율의 가르침 그대로 거기에 의지하면 되는 것이다.
승가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모름지기 정인(淨人)이나 다른 가족들과 함께 그 수확물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모두가 똑같이 여섯으로 나누어 그 하나를 갖게 된다.
스님은 다만 소를 공급하고 땅을 주면 되고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모두 몰라도 된다.
또 수확물을 나눌 때에는 때를 잘 헤아려 짐작해야 한다.
혹 인색하고 탐욕스러워 수확물을 나누어 갖지 않고 스스로 노비를 시켜 몸소 영농을 점검하는 스님도 있으나 계율을 지키는 비구는 그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스님이 스스로 농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바르지 못한 생활로 몸을 자양하는 것이다.
노비를 부리자면 파종할 수 있도록 땅을 일굴 때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으며 벌레와 개미도 많이 상하게 된다.
하루에 먹는 것이 1승(升)에 불과한데 어느 누가 온갖 죄[百罪]를 감당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바르고 곧은 사람은 그 일의 번다함을 싫어하여 물병을 지니고 발우를 끼고 그곳을 버리고 멀리 달아나서 홀로 고요한 숲이 있는 들에 앉아 새 사슴과 짝이 되어 즐거워하고 명예와 이익으로 시끄러운 세상과는 인연을 끊고 열반의 적멸을 닦게 된다.
만약 대중들의 집을 위하여 경영하고 구하여 이익을 취한다면 이는 율법에서는 허용되는 일이지만 흙을 일구어 목숨을 해치는 것은 교문(敎門)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벌레를 손상케 하고 업을 방해하는 것이 어찌 이보다 더한 일이 있겠는가?
죄가 있는 사생(邪生)의 10경(頃)은 드러나 있는 것에는 그 조목의 해석이 나타나 있지 않으나 허물없는 바른 행의 3의(衣) 또한 어찌 문장과 글월의 수고를 빌릴 필요가 있겠는가?
아, 믿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 있으나 의심하는 사람과는 말하기 어려우니 이는 법을 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견해를 고집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탐마입저국(耽摩立底國)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원 바깥에는 한 네모진 토지가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 재가자가 채소를 가져와서 세 몫으로 나누어 스님에게 한 몫을 주고 두 몫은 자기가 갖고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대승등법사(大乘燈法師)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이 절의 스님들은 모두가 계의 수행을 많이 한 분들로서 스스로 씨뿌리고 심는 일은 큰 성인께서 금지하신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 곡물을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른 생활[正命]이 되는 것이며,
연(緣)을 줄여 자활하는 길이고,
거기에는 밭 갈고 개간하고 물을 대주면서 살생하는 죄가 없는 길입니다.”
또한 일을 맡아보는 비구[知事苾蒭]를 만났더니 새벽에 우물가에서 물을 관찰하고 벌레가 없어야 사용할 수 있고 일단 생명체가 있으면 반드시 수라로 걸러내야 한다고 하였다.
또 나는 다만 그것이 외부 사람이 가지고 와서 주는 물건일 경우에는 보잘것없는 한 포기의 채소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꼭 대중들에게 물어 본 후에 비로소 이를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보았다.
또한 절 안을 보니 강유(綱維:강령)를 세우지 않고 어떤 일이 있게 되면 모든 대중이 함께 헤아려 허락하였다.
만약 혼자의 생각에 연유하여 마음대로 일을 처단하고 승도들에게 손해나 이익이 되는 일을 대중의 바람에 따르지 아니하게 되면 이것을 구라발저(俱羅鉢底)라 부르며 대중들이 함께 그를 승단에서 몰아내었다.
또한 비구니가 비구 절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아뢴 후에 비로소 앞으로 나아갔고,
비구가 비구니들의 승방에 갈 때에도 물어 본 뒤에 나아갔다.
만약 절 밖으로 나갈 때는 두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길을 떠났고,
반드시 가야할 인연의 일이 있어 속인의 집에 가야만 할 때에는 대중에게 아뢰고 허락을 받은 다음 네 사람이 함께 길을 떠났다.
또한 달마다 네 번의 재일(齋日)에는 온 절 안의 대중이 저녁 때에 모두 모여서 함께 절의 규율을 듣고 거기에 따라 봉행하면서 깊은 경앙심(敬仰心)이 생겨났다.
또한 나는 어떤 소사(小師:上弟)가 그의 동자(童子)를 보내서 쌀 2승(升)을 가지고 오게 하여 집사람인 부녀자에게 보내 주는 것을 보았다.
이는 사정이 사사롭고 바르지 못한 것에 관련되는 일이라
어떤 사람이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니 대중이 그를 불러와서 대질하여 조사하였다.
셋이 모두 이를 승인하자 비록 악한 일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자책하여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 곧 절 문을 나와서 스님의 이름을 버리고 멀리 떠나가니
그의 스승은 다른 사람을 시켜 그의 옷과 물건들을 보내 주었다.
이것은 다만 모두 함께 준수할 대중의 법이며 관제(官制)에 구애될 것이 아니었다.
또한 부인이 절 안에 들어오면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낭하에서 함께 이야기하다가 잠시 후에는 곧 떠났다.
또 절 안에 갈라시라밀달라(曷羅尸羅蜜呾羅)라는 이름의 비구가 있었는데
당시 나이가 약 30세 가량 되었다.
그는 몸가짐과 행실이 뛰어나 이름이 높아 멀리까지 알려진 스님으로 하루에 『보적경(寶積經)』4)에 있는 7백 수의 게송을 외우고 내전(內典)의 삼장을 익히고 속언(俗言)의 사명(四明)을 훤히 꿰뚫어 동성방(東聖房:동인도)지방에서 추대하여 상수(上首)로 삼고 있었다.
그는 구족계를 받은 이후로 한 번도 여자와 마주하여 말한 일이 없었고
비록 어머니나 누이가 온다고 하더라도 나가서 볼 따름이었다.
당시 나는 그에게 “이것은 성인의 가르침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천성이 번뇌와 성욕이 많아서 이렇게 하지 않고는 그 근원을 막을 수 없다.
비록 이것이 성인이 금하는 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도(邪道)를 방지하는 것이 또한 무슨 잘못된 일인가?”라고 대답하였다.
또한 나는 학식이 많은 대덕(大德)을 만났는데,
혹 사람에 따라서는 창고에 쌓을 만큼 많은 경을 정밀히 연구한 사람도 있었다.
대중들은 이들에게 상방(上房)을 제공하였고 또한 정인(淨人)을 붙여주어 공양드리게 하며 그에게 강설을 하게 하였다.
보통 때는 승단의 일에서는 면제되며 출타할 때는 흔히 가마를 탔으나
안장을 갖춘 짐승의 등에는 타지 않았다.
또 보니 객승이 처음 절에 찾아왔을 경우 5일 동안 대중들과 화합하게 하고 그에게 좋은 음식을 주며 그가 짐을 풀고 쉬기를 바라다가
그 후에는 곧 스님들의 일상과 같이 하였다.
만약 그가 좋은 사람으로 스님들과 화합할 경우
그에게 그곳에 머물기를 청하고 그 해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와구(臥具)를 베풀어준다.
그러나 만약 학식이 없는 스님일 경우에는
보통 스님과 일체로 대우하며
학식을 갖춘 스님일 경우에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예우하며
이름을 승적에 걸어놓고
예전부터 머물고 있었던 사람처럼 대우하였다.
또 보니 좋은 마음으로 찾아온 사람이 있으면
자세히 찾아온 인연과 유래를 물어 보고
만약 그가 출가하기를 원하면
스님들과 화합시켜 머리를 깎아
이름이 왕적(王籍:호적)과 저촉되지 않게 하였다.
대중 스님들에게는 나름대로 부서(部書)가 있다.
뒤에 만약 파계를 하거나 비행을 저지를 경우 건치(犍稚)를 울리고 그를 쫓아낸다.
이것은 대중 스님들이 스스로 서로 검찰하기 때문에 허물을 일으키려 하여도 그 싹이나 조짐이 생기기 어렵다.
나는 당시 감탄하여 “예전에 내가 중국에 있을 때 스스로 율법에 밝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곳에 이르니 도리어 미혹된 사람이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만약 내가 전에 서방세계로 발걸음을 옮겨놓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 바른 법칙을 살펴볼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곧 절집의 대중들이 제정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별도로 행해지는 요심(要心)일 경우도 있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율문에 나타나 있다.
이는 말대(末代)의 주지에게는 극히 중요한 일들이며,
이것은 모두가 탐마입저국(耽摩立底國)의 발라하사(跋羅訶寺)의 법식이다.
그곳 나란타사(那爛陀寺)의 법은 훨씬 더 엄격하여 마침내 승려와 도반의 수효가 삼천 명을 넘어서게 되었고 그 봉읍(封邑)된 마을은 2백 곳이 넘었다.
이는 모두 여러 대에 걸쳐 군왕들이 받들고 보시한 것으로 그 맥을 이어 융숭하여 끊어지지 않게 된 것은 율법의 힘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을 논하겠는가?
또한 나는 세속의 관리가 관청에 정좌하여 앉아 있으면 승도는 걸어다니거나 그 옆에 서 있으면서 속이고 경멸하고 부르짖는 것이 일반 범부의 무리와 다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했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얼마나 길에서 고단하였던가?
만약 점검(點檢)이 이르지 않으면 공문(公門)으로 달려가서 조사(曺司:
관청)에 명을 구하는데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았다.
무릇 출가한 사람은 본래 감정이 속세를 떠나기를 바라기에 5외(畏)5)의 위태로운 길을 버리고 8정도(正道)6)의 평탄한 길을 따르는 것인데,
어찌 도리어 다시 속세에 달려가 거듭 번뇌의 그물에 걸려드는 일이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완전한 침묵함을 구하고자 하더라도 어찌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전연 해탈과는 어긋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고,
조용한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리로 보아 모름지기 12두다행과 13자구(資具)를 갖추어 인연따라 목숨을 건져 옛 습관을 말끔히 제거하고,
사승(師僧)과 부모의 큰 은택에 보답하고 천룡(天龍)제왕의 깊은 자애에 보답해야 한다.
이것이 곧 슬기롭게 조어사(調御師)의 율의에 순응하여 힘써 채찍질하며 수양하는 길과 일치하는 것이다.
생명을 보전하는 일을 논하는 과정에서 실제 행해지는 것을 다시 말했지만,
여러 대덕들이 번거롭게 반복되는 것을 꺼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부대중의 다른 점은 입은 치마[裙]로써 그 차이를 표시한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스님들은 두 가장자리가 바깥으로 향해 두 개의 주름을 잡은 치마를 입고,
대중부(大衆部)에서는 오른편 자락을 줄여서 왼편에 있게 하여 안으로 향해서 이를 꽂아놓고 그것이 떨어져 내리지 않게 한다.
서방의 부녀자들이 입는 치마도 대중부의 스님과 다르지 않다.
상좌부(上座部)와 정량부(正量部)의 옷차림도 이와 같다.
다만 밖으로 향해 곧바로 뒤집어 옆에 꽂는 것만이 다르다.
허리띠의 격식도 역시 같지 않다.
비구니도 부파(部派)에 준하는 것은 비구와 같아 전연 다른 격식 없다.
또한 중국의 기지(祇支)ㆍ편단(偏袒)ㆍ복박(覆膊)ㆍ방군(方裙)ㆍ선고(禪袴)ㆍ포유(袍襦)와 같은 것은 모두 본 격식과는 어긋나는 것들인데 어찌 단지 동수(同袖)와 연척(連脊)으로 된 옷을 걸쳐서 입는 것만이 율의에 맞지 아니하겠는가?
이것을 입고 사용하는 것은 모두 죄를 얻게 되는 일이다.
이런 옷을 입고 서방에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쪽 사람들 모두에게 비웃음을 산다.
그리하여 부끄러운 마음을 품고 속으로 치욕이라 생각하여 찢어서 잡다한 용도로 쓰이게 되는데 이는 곧 모두가 법에 어긋난 의복이기 때문이다.
만약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알 길이 없어지고 또 만약 바른 말을 하고자 하면 또한 듣는 사람에게서 원망을 사게 될까 두렵다.
그런 까닭에 짧은 생각으로 글을 짓고 나아갈까 물러날까를 깊이 주저하고 있으니,
원컨대 지혜있는 사람은 소상하게 살펴서 의복의 본래의 율의를 알기 바란다.
또한 서방의 속인[俗侶]ㆍ관인(官人)ㆍ귀한 사람들은 오직 한 벌의 흰 명주옷만을 입고 빈천한 무리들은 오직 무명옷만을 입는다.
출가한 대중[法衆]들은 다만 3의(衣)와 6물(物)만을 소유하고 가득 채워 남아도는 것을 좋아하는 장자의 경우라야 비로소 13자구(資具)를 사용한다.
중국에서 동수(同袖)와 연척(連脊)으로 된 옷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대개 나름대로 중국에서 배워서 함부로 서쪽 나라를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섬부주(贍部洲)의 중부 및 여러 변두리 해안 지역 사람들의 의복에 대해 간략하게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또한 모하보리(莫訶菩提)에서 동쪽 임읍(臨邑)에 이르기까지 20여 개의 나라가 있는데 이는 바로 환주(驩州)의 남쪽 경계에 해당한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가면 바다에 이르게 되고 북쪽은 갈습미라(羯濕彌羅)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남해에는 10여 개의 나라와 사자주(師子洲)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모두 두 벌의 감만(敢曼:하체를 가리는 천)을 입는다.
이 옷은 허리띠도 없고 또한 마름질하거나 꿰매지도 않고 곧바로 넓게 두 길[尋]의 천으로 허리를 둘러 아랫도리를 보이지 않게 한다.
서천축국의 바깥 큰 바다의 변두리 구석진 곳에는 파랄사(波刺斯:
페르시아)와 다저국(多底國)이 있다.
이곳에서는 모두 적삼과 바지를 입고 있으며,
나국(裸國)에서는 아무 의복도 없이 남녀가 모두 벌거숭이다.
갈습미라에서 속리국(速利國)의 여러 오랑캐 나라와 토번(吐蕃)과 돌궐(突厥)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서로 비슷하다.
감만을 착용하지 않고 모직물과 가죽 옷을 주로 입는다.
그곳에는 적은 양의 겁패(劫貝 : 목화)가 있어 때로는 이것을 입는 사람도 있다.
그곳이 추운 땅인 까닭에 적삼과 바지는 보통 다 입는 옷이다.
이 여러 나라 가운데 오직 파랄사(波剌斯) 및 나국(裸國)ㆍ토번ㆍ돌궐에서만 원래부터 불법이 없고,
그밖에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불법을 신봉하고 있으나,
적삼과 바지를 입는 고을에서는 모두 몸을 씻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오천축국의 땅은 나름대로 청정하고 고매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 풍류가 부드럽고 반듯하며 예절을 갖추어 사람들을 만나고 영접하며 음식 맛이 순박하고 짙으며 인의(仁義)가 풍성하기로는 오직 중국뿐이며 나머지 다른 나라는 이곳을 능가할 만한 곳이 없다.
다만 식사 때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고
대소변을 본 뒤 손을 씻지 않으며
버드나무 가지를 씹지 않는 등의 이런 일들이 서역과 다를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법에 맞지 않는 의복을 입고도 곧 허물이 없다고 하는 어떤 사람이 그곳의 약교(略敎)의 글을 인용하여 이르기를,
“이 지방에서 부정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지방에서 청정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행하는데 죄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곧 번역한 사람의 오류이며 뜻은 그렇지 않다.
상세한 것은 다른 곳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만약 그렇다면 중국의 비구들에게는 3의(衣)를 제외하면 다른 옷은 모두 성인의 위의가 아니니,
이미 거기에 범한 죄가 있다면 이치상으로 보아서 입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서방은 따뜻한 땅이라 단포(單布)로도 나름대로 한 해를 마칠 수 있으나
설령(雪嶺)은 추운 고을이거늘 생존하며 견뎌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몸이 편안해야 업이 진척된다는 성인의 가르침이 있으니,
몸을 고통받게 하고 부단히 고단하게 하는 것은 곧 외도의 가르침이다.
버리고 취하는 이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하여 성인께서 입파(立播)의 의복을 허용하시어
공통적으로 추운 고을 사람들에게 덮게 하신 것은 이는 몸을 보양할 만하기 때문이리니,
이 또한 무슨 도에 방해가 되는 일이겠는가?
범어로 입파(立播)라 하는 말은 번역하면 과복의(裹腹衣) 즉 배를 싸는 옷이란 뜻이다.
그것을 만드는 방법과 그 형태와 모양을 간략하게 말하겠다.
이 옷은 곧 정배(正背)를 제거하고 곧바로 한쪽 어깨만을 드러내고,
한쪽에는 소매를 붙이지 않고 오직 한 폭만으로 겨우 손이 들어갈 수 있게 뚫는다.
어깨ㆍ소매는 넓지 않게 하여 왼쪽 옆에 붙여두는데 넓고 크게 만드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오른편에서 허리띠를 묶을 때에는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솜을 많이 넣어 두텁고 따뜻하게 하여야 한다.
또한 오른쪽을 바느질해서 합쳐 머리에서 관통하여 겨드랑이를 묶는다.
이것이 그 본래의 제작방식이다.
서방에서 눈으로 목격한 일이며 오랑캐 땅에서 온 스님들이 이 옷을 휴대하여 입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란타사(那爛陀寺)가 있는 곳에서는 이 옷을 보지 못했는데,
이는 그곳이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기준해 보면 이 옷을 입기를 허락하신 뜻은 바로 추운 고을의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 편단(偏袒)과 정배(正背)를 고증해 보면 원래 이것은 이 옷을 뒤이어 만든 옷이며,
오른편 가장자리를 남아돌게 덧붙인 것은 본래의 위의를 잃은 것이다.
옷을 만드는데 자기 스스로 멋대로 한다면 결국 정해진 법을 어기는 죄를 초래할 것이다.
심지어 입파(立播)로 배를 감싸고 나름대로 혹독한 추위를 면하며 두터운 치마를 통째로 걸치면 차가움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만하지만,
부처님의 형상이 있는 곳에서 예불하고 존상을 대할 때에는 어깨를 드러내는 것이 상례(常例)이며,
어깨를 가리면 곧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가한 사람은 일을 줄여야 하는 것인데 겨울에 방에 있을 때는 수시로 숯불을 피우면서 어째서 수시로 수고롭게 옷을 많이 껴입는가?
반드시 병이 있을 경우에만 꼭 입도록 하고 때에 따라 처단하여 위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혹독한 추위는 몸이 쪼개지듯이 심하니
만약 따뜻한 옷을 입지 않는다면 돌아가며 병들고 죽는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재난을 당하게 되었을 때는 이치로 보아 널리 구제하여야 하는 것이다.
방군(方裙)과 편단(偏袒)의 형태는 속인의 무리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오직 입파만은 추운 겨울에 잠시 입는 옷이니 본래의 법제가 아님을 알 수 있고 목숨을 위하여 임시방편으로 허용한 것이다.
비유하면 수레에 기름을 두르는 것과 같다.
마음속으로 커다란 부끄러움이 생길 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것을 입지 않는다면 이는 극히 좋은 일이다.
이밖에 승포(僧袍)ㆍ바지ㆍ잠방이ㆍ적삼 등의 종류는 모두 다 입어서는 안 되며 엄동설한이 지나고 난 후에도 이것을 몸에 두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다시 편삼(偏衫)을 입는 것은 실제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곧 번거로운 것을 제거하고 요체를 얻는 일로 우러러 성인의 정에 따라 스스로 거기에 따라간다면 곧 옳은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내 한몸에 전수받는 것이 혹 대중을 잘못 인도할까 두렵다.
만약 능히 이 옛 수레바퀴 자국을 고쳐서 새로운 발자취를 힘써 따를 수 있다면 곧 소실봉(小室峯)7)의 뒤를 이어 가파른 영취산(靈鷲山)에 걸터앉고 왕사성(王舍城)에 나란히 앉아 제향(帝鄕)으로 통하게 하면서 함께 에워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홍하(鴻河)는 문지(文池)에서 차수(泚水)와 합류한다.
가는 버들은 보리수처럼 빛나서 뽕나무밭이 변해서 무성하게 치솟아 겁석(劫石)이 다하도록 빛남을 드높이게 될 것이니 참으로 감탄할 일이며 참으로 힘써야 할 일이다.
다만 불일(佛日)이 이미 가라앉아 가르침은 후대 말세에 머물고 있기에 이를 행한다면 위대한 스승과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겠지만,
가르침을 등지고 나면 수많은 허물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경에 이르기를,
“만약 계율을 받들 수 있다면 내가 존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하셨다.
혹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예전부터 상덕 스님들도 모두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오늘날 후세 사람이 무슨 근거로 법칙으로 삼는가?’라고 하지만,
이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다.
법에 근거한 것이며 사람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교에 광범위한 설명이 있으니 율장을 고찰해 보라.
의식에 죄가 없는 것이라야만 비로소 취해도 되는 것이다.
이는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듣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인도한 사람에게야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거듭 말한다.
생명을 지닌 무리
먹고 입는 것 우선으로 삼나니
이것이 목칼 쇠사슬이 되어
삶의 터전으로 끌어당기는구나.
성인의 말씀과 법칙 받들면
소연(蕭然)히 속세를 벗어날 수 있지만
스스로의 뜻에 맡기면
곧 죄와 번뇌에 끌려 다닌다.
지혜있는 사람이면 반드시 비추어 보라.
일은 눈 앞에 있느니라.
옥이 진흙 속에 처해 있듯
연꽃이 물 속에 자리잡듯
8풍(風)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5포(怖)로 어찌 몸을 감으랴?
옷은 겨우 몸을 가리고
밥은 다만 목숨을 지탱하기 위한 것이니
오로지 해탈을 구하고
인간계와 천계 원하지 아니하며
두타로 목숨 마치고
중생구제로 해를 다하여
9문(門)8)의 허위 버리고
10지(地)9)의 원견(圓堅) 희구하면
500제자에게서 보시받기에 합당하여
삼천세계에 복덕과 이익되리라.
11. 착의법식(着衣法式)
3의(衣)를 입거나 또는 구뉴(呴紐)10)를 만드는 법식을 율에 근거하여 설명해 보겠다.
5주(肘) 길이의 옷감을 취해 접어서 세 번 주름잡아 어깨머리의 접은 곳은 천의 가장자리의 태를 4,
5지(指) 가량 없애고 사방 5지 가량으로 방첩(方帖)을 만들어 네 변(邊)을 두루 바느질한다.
중심에 해당하는 곳을 송곳으로 뚫어서 작은 구멍을 만들고 그곳에 옷 끈코를 만든다.
그 끈코는 혹 끈으로 만들기도 하고 혹 비단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굵고 가는 것은 적삼 끈코와 비슷하게 하여 길이는 2지(指) 가량 되게 하고 동심결(同心結) 모양으로 매듭짓는다.
그 나머지는 잘라내고 끈코를 구멍에 넣어 밖으로 끌어내서 십자(十字)형으로 바꾸어 가며 잡아매면 곧 두 개의 끈코가 된다.
다음에 끈을 그 속으로 넣어서 가슴 앞 접은 곳 가장자리 테두리에 끈을 안치하는 것도 역시 적삼의 끈과 같이 한다.
이것이 곧 그 법식이다.
먼저 근본 제도를 보여 주고 줄여서 그 대강에 준하여 만들면 된다.
만약 오묘하게 그 법을 체득하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직접 대면해서 전수받아야 할 것이다.
옷의 아래쪽[下畔]도 역시 코와 끈을 베푼다.
뜻에 따라 거꾸로 걸친다 하더라도 이것은 성인이 허용한 일이다.
두 머리의 모서리에서 8지(指) 가량 되는 곳에 각기 코와 끈 하나를 만드는 것은 식사할 때 필요한 것으로 뒤집어 가슴 앞에서 주름잡아 끈이 서로 합치게 하는 것이 그 요령이 된다.
무릇 절 안에 있을 때나 혹 때로 대중들과 상대할 때는 반드시 허리끈과 어깨를 덮어 옷을 걸치는 법은 없다.
그러나 만약 외부로 나가서 유행(遊行)하거나 또는 욕사(浴舍)에 들어갈 때에는 바야흐로 끈을 휴대할 필요가 있으나 나머지 다른 때에는 다만 어깨 위에 얹어놓을 따름이다.
개인적인 것을 물리치고 집무할 때는 마음대로 뒤집어 줄여도 되지만,
만약 존용(尊容)을 대할 경우에는 일을 모름지기 정제(整齊)하게 갖추어야 한다.
옷의 오른편 모서리를 넓게 왼쪽 어깨 위에 걸어 등 뒤로 드리우게 하되 팔꿈치 위에 얹어서는 안 된다.
만약 끈을 휴대하고자 할 때에는 곧 온 어깨에 걸치고 나서 끈을 코로 넣어서 돌려 어깨 뒤로 향하게 하고 그것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모서리를 어깨 위에 걸치게 되면 옷이 곧 목을 에워싸게 되고 두 손은 밑으로 나오며 한쪽 모서리는 앞을 향하게 된다.
아육왕상(阿育王像)이 바로 그런 법식에 해당된다.
밖으로 나갈 때 일산(日傘)을 잡고 가면 그 형용과 거동이 좋다.
이것이 곧 가르침에 근거한 정제(整齊)된 상의(上衣)를 입는 법이다.
일산은 대나무로 짜서 만드는 것이 좋고 대바구니와 같게 홑겹으로 얇게 한다.
크고 작은 것은 사정에 따라 정하고 넓이는 2,
3척(尺)이면 된다.
정수리 가운데를 이중으로 겹쳐서 만드는 것은 거기에 손잡이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손잡이의 길고 짧은 양은 덮개의 넓이와 같게 하고 혹 엷게 옻칠을 하여도 된다.
또 혹 갈대를 짜서 만들어도 되며 혹 등모(藤帽)의 종류와 같은 것으로 거기에 종이를 끼우게 되면 단단해진다.
중국에서는 비록 전부터 행해지지는 않았으나 이것을 하려면 역시 그 요령이 필요하다.
이 일산을 지니게 되면 갑자기 비가 내려도 의복이 비에 젖지 않으며 몹시 더운 날에는 실로 서늘한 바람을 부를 수 있다.
이렇게 이미 율에 근거하여 몸을 돕는 것이니 이를 받쳐든다 하더라도 물론 손상이 없다.
이렇게 논한 것 등등에는 요긴한 일이 많아도 모두 중국에서는 행해지지 않고 있다.
가사의 모서리를 밑으로 드리우는 것은 바로 코끼리의 코에 해당한다.
인도 스님들이 여기에 오게 된다면 모두 또한 놀라게 될 것이니,
이는 자못 명주가 매끄러워 어깨에서 떨어져 내릴 것이기 때문인데 결정코 이것은 정칙(正則)을 잘못 바꾸어지게 만든 것이다.
그 후 당(唐)의 삼장법사(三藏法師)11)가 인도에서 돌아와 어깨에 걸치는 법[搭肩法]을 전하였으나 옛 대덕들 가운데는 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았다.
과거의 습관을 고수하여 지키려 드는 미혹됨은 도처에 모두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3의에 짧은 끈을 매달고 긴 끈을 잘라내는 것은 가르침을 어기는 허물을 실제로 면하게 되고 횡군(橫裙)을 착용하면서 허리의 태[腰緣]를 없애는 것은 바느질하는 수고도 행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갖고 있는 병과 발우는 각기 어깨에 걸어놓고 겨우 겨드랑이 밑에 이르게 하되 서로 얽히게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그 옷고름은 길지 않고 다만 어깻죽지를 통과할 정도일 뿐이다.
만약 가슴 앞에서 서로 얽히게 되면 사람의 호흡을 답답하게 만든다.
이는 원래 근본제도가 아니므로 행하여서는 안 된다.
발우를 담는 주머니의 양식은 곧 아래에서 살펴볼 내용과 같다.
북방 속리국(速利國)의 여러 사람들은 흔히 가슴 앞에서 얽는 법[交絡]을 많이 행하고 있는데,
이는 지방에 따라 바뀌어진 것으로 사실은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는 아니다.
이밖에 설사 다른 옷이 있다고 하더라도 길게 어깨 위로 걸쳐놓은 후에 완전히 걸쳐서 그 옷과 발우를 덮는다.
만약 그때 절로 향하거나 혹은 속인의 집을 찾아가는 경우라면 반드시 승방이나 요사에 이르러 산개(傘蓋)를 내려둔 다음에야 비로소 옷끈을 풀고 그의 옷과 발우를 걸어 놓는다.
승방 앞의 벽 위에는 대개 상아(象牙)를 놓아두었는데 임시로 물건을 갖다 놓을 곳이 없게 하여서는 안 된다.
나머지 일은 제26장의 객구상우(客舊相遇)에서 말할 내용과 같다.
그러나 그 엷은 비단으로 가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개 그것이 매끄러워 어깨에 붙어있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예배할 때 곧 땅에 떨어지지 않는 천을 반드시 취해서 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굵고 거친 명주나 흰 모직물 등을 취하는 것이 곧 그 요령이다.
승각기의(僧脚崎衣)라 하는 것은 곧 어깨를 덮는 옷인데 다시 1주(肘)의 길이를 더해야만 비로소 본래 위의법에 맞게 된다.
그것을 입고 걸치는 법은 마땅히 오른편 어깨가 나오게 하여 교차시켜 왼쪽 어깨 위에 걸친다.
방 안에서 항상 착용하는 것은 이것과 치마뿐이다.
밖으로 나가서 존귀한 사람에게 예를 행할 때는 마음에 맡겨 다른 옷을 더 입는다.
치마를 입는 법식에 관해서 잠시 그 대체의 정황만을 말해 주겠다.
가령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스님들이 입는 치마의 제작을 예로 든다면 크기가 가로 5주(肘) 세로 2주이며,
굵은 올의 명주나 무명으로 있는 것에 따라 이를 만든다.
서국에서는 모두 홑겹옷으로 만들지만 중국에서는 사정에 따라 겹옷으로도 만든다.
가로 세로의 크기는 임의대로 정하여 몸에 둘러 추켜올려서 배꼽 위를 넘게 하고 오른손으로 왼쪽 가장자리의 웃모서리를 안으로 끌어당겨 허리의 오른편을 향하게 한다.
왼쪽 상군(上裙)은 밖의 가장자리를 취하여 좌반(左畔)을 가린다오른손에 가까운 것이 우군(右裙)이 되고 왼손에 가까운 것이 좌군(左裙)이 된다.
두 손으로 두 끝을 들어올려 바르고 평평하게 하고 중간은 뾰족하게 곧게 하면 곧 세 개의 주름을 이루게 된다.
그 후에 두 손으로 각기 조여서 허리에 이르게 하며 다만 세 겹으로 접은 것을 가지고 뒤를 향하게 하여 이를 가린다.
두 모서리는 각기 3지(指) 가량 추켜올려 함께 꽂아 등뼈를 향해서 아래로 내려오게 하고 허리사이에서 3지 가량 안으로 넣는다.
이렇게 하면 이는 설사 아직 실끈을 매달지 아니한 것이라 할지라도 곧 몸에 붙어 떨어져 내리지 않는다.
그 후에 길이 5주(肘) 가량의 허리띠 끈으로 바로 중심에 갈고리를 채워서 들어올려 배꼽 아래를 향하게 한다.
치마의 웃 테두리를 없애 뒤를 향해 나란히 두개를 안배하여 바꾸어 가며 재서 앞으로 뽑아내고 한편으로는 좌우로 끌어당긴다.
또한 각기 한 손으로 굳건하게 두 가장자리를 누르고 거기에 두 개의 실을 감아 세 번 감게 한다.
그리하여 남아도는 것이 있으면 잘라버리고 적으면 다시 덧붙인다.
허리띠의 끝은 비단을 모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원정(圓整)하게 치마를 입는 법이며 살바다부를 이루는 법이다.
발리만다라착니바사(鉢履曼茶羅著泥婆娑)12)가 곧 그 진짜 호칭이다.
이것을 번역하면 ‘원만하고 정돈되게 치마를 입는다’는 뜻이 된다.
그 끈의 넓이는 손가락 표면과 같으며 신발의 끈과 속옷 허리띠 따위는 혹 네모나기도 하고 혹 둥글기도 하나 둘 모두 손상됨은 없다.
삼 줄[麻繩] 같은 종류는 율문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무릇 작은 걸상이나 나무 받침대에 걸터앉을 때는 치마 위와 자락 아래의 모서리를 끌어당겨 팽팽하게 치마단을 눌러 사타구니 아래로 누른다.
그리하여 다만 두 무릎만을 가리고 정강이는 노출되어도 손상됨은 없다.
높이는 모름지기 배꼽둘레를 덮어야 하며,
아래로는 복사뼈에서 4지(指)를 올라간다.
이는 곧 속가에서의 의법(儀法)인데 만약 절 안에 있을 경우에는 장딴지 반 정도가 된다.
이 제한을 둔 것은 부처님께서 몸소 친히 제정한 것이며 사람의 뜻으로 곧 높고 낮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찌 고의로 교지를 어기고 스스로 보통 사람들의 정에 따를 수 있겠는가?
입은 치마가 길게 퍼져 땅을 쓸게 되면 첫째는 믿는 마음으로 깨끗하게 보시한 것을 손상시키는 것이고,
둘째로는 큰 스승의 격언(格言)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 되니,
설사 간절하게 알려 준다고 하더라도 누가 능히 그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만 사람 가운데 자못 한두 사람이라도 그런 일에 마음을 두겠는가?
서쪽 나라의 치마는 모두 가로로 입는다.
그 지방의 흰 모직물은 폭의 넓이가 2주(肘)이거나 혹 그 절반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난한 사람은 구하기 어렵다.
그것을 얻으면 곧 양쪽 끝을 바느질해서 서로 합쳐지게 하고 안을 열어서 일에 충당한다.
이 옷을 입는 위의는 율문에 자세하게 그 제도가 있으나 여기서는 다만 그 큰 강요(綱要)만을 간략하게 말하였다.
세밀하게 논하자면 면대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또한 출가한 모든 사람의 의복은 염색해서 건타(乾陀)로 만들어야 한다.
물감으로는 혹 지황(地黃)13)의 노란 가루나 혹 형벽(荊糪)의 누런 것 등을 사용하는데 이는 모두 붉은 흙이나 붉은 돌로 갈아서 즙을 내서 이를 섞고 빛깔의 얕고 깊음을 헤아려 요령 있게 일을 해나가야 한다.
혹은 한 가지 극심(棘心:
가시나무의 속) 만을 사용하기도 하거나 혹 붉은 흙이나 붉은 돌을 사용하기도 하고 혹 당리(棠梨)의 자줏빛 흙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 번 염색하면 떨어질 때까지 지속되는데 무엇 때문에 다른 것을 구하겠는가?
그러나 뽕나무 껍질의 푸른빛과 녹색은 바로 금지하는 조항이다.
순수한 자주색과 갈색은 서방에서는 입지 않는다.
신발과 짚신 등속도 나름대로 가르침을 이룬 것도 있으며 장화(長靴)와 실로 짠 짚신은 전혀 법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채색하고 수놓아 문채가 드러나는 물건은 모두 부처님께서 제약하여 끊게 하셨으니,
그 내용은 피혁(皮革)에 관한 일 가운데서 자세히 설명한 내용과 같다.
12. 니의상제(尼衣喪制)
동하(東夏)의 비구니의 옷은 모두가 속세와 관련되어 있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착용하면 의법(儀法)과 어긋나는 것이 많다.
율문에 설명한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비구니에게는 다섯 가지의 옷이 있다.
첫째는 승가지(僧伽知)이며,
둘째는 올달라승가(嗢呾羅僧伽)이며,
셋째는 안달바사(安呾婆娑)이며,
넷째는 승각기(僧脚崎)이며,
다섯째는 군(裙)이다.
이 가운데 네 가지 옷은 큰 스님들의 위궤(儀軌)와 다르지 않으나 오직 치마만은 틀린 점이 있다.
범어로 구소락가(俱蘇洛迦)라 하는데 번역하면 천의(篅衣)라는 뜻이다.
그 양쪽 머리를 꿰매므로 형태가 작은 대나무로 만든 통과 같기 때문이다.
그 길이는 4주(肘)이며 너비는 2주이다.
위로는 배꼽을 덮을 수 있고 아래로는 복사뼈 위 4지(指)에 이르게 한다.
입을 때는 안으로 들어가서 추켜올려 배꼽을 지나게 하여 양 가장자리를 각각 졸라 두 곳 모두 밀쳐내서 등뼈를 누르게 한다.
끈을 매는 법과 끈의 크기는 스님들의 경우와 같다.
가슴과 겨드랑이 사이에는 매고 누르는 것이 조금도 없다.
가령 젊고 건장한 사람이거나 혹 노쇠한 나이의 비구니라도 가슴에 두껍게 살이 붙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참으로 허물이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니 어찌 사람들에게 부끄럽다 하여 교검(敎檢)을 살펴보지 않는가?
함부로 거동을 꾸며서 옷을 입고 벗는 일은 허물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임종 때가 되면 죄가 앞이 보이지 않는 빗줄기와 같이 쏟아져 내릴 것이다.
만 가지 경우라 해도 한 때에 다시금 고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외부로 나가든지 혹은 비구 앞에 있을 때나 아울러 속인의 집으로 가서 다른 사람이 청한 음식을 받아먹을 때는 가사로 목을 두르고 몸을 덮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때는 어깨끈을 풀고 가슴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여 밑으로 손을 내밀어 식사를 하여야 한다.
기지(祇支)ㆍ편단(偏袒)ㆍ삼고(衫袴) 따위는 큰 성인께서 친히 막으신 일이니 그것을 입지 말아야 한다.
남해의 여러 나라에서는 비구니 대중들은 따로 한 가지 옷을 착용한다.
이것은 비록 그 제도가 서방의 제도는 아니지만 그것을 함께 승각기복(僧脚崎服)이라 부르고 있다.
이 옷은 길이도 2주(肘),
너비도 2주인데 양쪽 끝을 함께 꿰매고 1척(尺) 가량을 남겨 두며 모서리 끝을 1촌(寸) 가량 바느질해 붙인다.
위로 들어올려 어깨를 꿰뚫고 머리를 꿰뚫어서 오른편 어깨를 뽑아낸다.
다시 허리띠는 매지 않고 겨드랑이를 가리고 가슴을 덮고 아래로 무릎을 지나게 한다.
만약 이 옷을 입고자 한다 하더라도 법에 손상되는 것은 없다.
오직 두 가닥의 실만 소비하는 것으로도 형체의 추한 부분을 가리고 막을 만하다.
그러나 만약 이 옷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큰 비구승과 같은 승각기복을 입으면 된다.
그들의 절 안에서나 승방 가운데서는 구소락가(俱蘇洛迦)와 승각기 두 가지 옷으로 충분하다범본(梵本)에 기준하여 점검해 보니 어깨를 덮지 않는 옷의 이름이 곧 승각기의(僧脚崎衣)이다.
이는 곧 기지(祇支)의 원래 이름인데 기왕에 이것을 치마라 말하지 않은 것은 대개의 경우 번역한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땅히 법에 어긋나는 옷을 버리고 법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승각기는 혹 명주나 무명 한 폭 반을 취하여 길이는 4,
5주(肘) 가량 되게 하고 마치 5조(條) 가사를 걸치듯 반대로 어깨 위에 걸치는 것이 곧 그 의법이다.
만약 다른 곳으로 향할 경우에는 꼭 형상을 가리고 마치 병방(屛房)에 있을 때와 같이 하여 어깨를 드러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봄이나 여름같은 계절에는 이것으로 몸을 가릴 수 있으나 가을이나 겨울에는 사정에 맡도록 따뜻하게 입는다.
발우를 받쳐 들고 걸식하면 몸을 보양할 만하니 비록 여자라 하더라도 대장부의 뜻을 가져야 한다.
어찌 항상 베틀에서 일하며 여러 잡된 업을 짓고 온통 의복을 만들기 위해서 10중(重)ㆍ5중으로 일하는가?
선송(禪誦)에는 한 번도 마음을 두지 않아 쫓기듯 바빠 늘 마음와 정신을 고달프게 하면서 속인과 같이 화장하고 멋을 내면서 계경(戒經)은 돌아보지 않는 것이 용납되겠는가?
마땅히 문도들과 함께 서로 점검하여야 한다.
서쪽 나라의 비구니 대중들에게는 이런 일이 전연 없다.
모두가 나란히 걸식하여 몸을 떼우고 가난한 곳에 살며 소박한 생활을 지킬 따름이다.
만약 그렇다면 출가한 비구니 대중에게는 이양(利養)은 아주 희귀한 일이고 머물러 거처하는 절에도 흔히 여러 가지 음식이 없으리니 만약 분수 따라 살아가지 않는다면 목숨을 살릴 길이 없게 되어 번번히 계율의 가르침을 어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인의 마음과 어긋나게 되니 나아가고 물러설 두 갈래 길에서 절충할 수 있겠는가?
몸이 편안하면 도가 성한다는 말을 자세히 듣지 못하였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본래 출가를 기약하고 마음으로 해탈을 희구하면서 세 그루의 해로운 종자[三株之害種]14)를 끊고 네 폭포의 큰 물줄기[四瀑之洪流]15)를 막으려면 끝까지 두타행에 뜻을 두어 고락(苦樂)의 잘못된 길을 제거하고 마음을 두텁게 하여 욕심을 적게 하고 침묵의 진실한 길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계율을 받들면 이것이 곧 도를 융성하게 하는 것이다.
어찌 몸을 편안히 할 것만을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겠는가?
만약 계율을 지켜 거짓됨으로부터 진실을 구별해낼 수 있다면 용과 귀신과 하늘과 인간 존재들이 자연히 따르고 공경하게 될 것이니 무엇 때문에 살길이 없다고 근심하여 부질없이 괴로움을 일삼겠는가?
심지어 5의(衣)16)와 병과 발우만으로도 충분히 몸을 보전할 수 있으며 한 칸의 작은 방에서도 더욱 목숨을 보양할 만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일을 간소하게 하여 문도의 수고로움을 줄여준다면 옥이 진흙 속에 있듯이 또는 연꽃이 물 속에서 피어나는 것과 같으니 비록 근기가 아래인 중생[下衆]이라 하더라도 그 지혜는 실로 상인(上人)과 같아질 것이다.
또한 부모가 죽어 장례를 치를 경우 스님이나 비구니들은 거기에 멋대로 예의(禮儀)를 마련하게 된다.
혹은 속인과 똑같이 슬퍼하고 곧 효자가 되려하여 혹 승방에 영궤(靈几)를 설치하여 거기에 공양을 드리기도 한다.
혹 참포(黲布)를 걸치고 승단의 평상 법식을 어기기도 하고 혹 긴 머리카락을 남겨두어 법칙을 어기기도 하고 또 혹 곡장(哭杖:
상중에 짚는 지팡이)을 짚고 혹 여막(廬幕)의 거적자리에서 자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들은 모두가 교의(敎儀)가 아니다.
행하지 않아도 허물이 없다.
이치로 보아서 마땅히 그 죽은 사람을 위해서 방 하나를 깨끗하게 꾸미고 혹 때에 따라 일시적으로 덮개와 휘장을 설치하고 독경ㆍ염불하면서 향화를 갖추어 죽은 혼령이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로소 효자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보은이 되는 것이거늘 어찌 3년 동안 피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자신의 공덕을 드러내는 것으로 삼으며 7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아야 비로소 은혜를 갚는 일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은 곧 반복해서 진로(塵勞:
번뇌)를 맺어 다시 쇠사슬에 얽히는 결과가 될 것이며 어둠에서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연기(緣起)의 3절(節)을 깨닫지 못하고 죽음에서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이니 어떻게 원성(圓成)한 10지(地)의 경지를 증득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면 비구로서 죽은 사람은 결정적으로 그의 죽음이 확인되면 그날로 두 사람이 시신을 마주 들고 태울 곳으로 가서 곧 불로 태워야 한다.
시신을 태울 때가 되면 친한 벗들이 모두 모여 한쪽에 앉는데 혹 풀을 엮어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혹 흙을 모아 대(臺)를 만들기도 하며 혹 벽돌을 갖다놓고 이것으로 앉을 자리를 충당하기도 한다.
경을 잘 외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상경(無常經)』17)을 반 장 혹은 한 장 외우게 하되 피곤하게 오래 지속하지 못하게 한다그 경은 별록(別錄)에 첨부하였다.
그런 다음에 각기 무상(無常)을 생각하면서 다시 거주하는 곳으로 돌아와서 절 밖 연못 안에서 옷을 입은 채 함께 목욕한다.
연못이 없는 곳에서는 우물에 나아가 몸을 씻는다.
이 경우 모두 헌옷을 사용하고 새 옷은 더럽히지 않고 따로 마른 옷을 입은 후에 방으로 돌아가서 땅을 소똥으로 깨끗이 바른다.
그 밖의 다른 일은 모두 예전과 같이 한다.
의복의 위의는 일찍이 한 조각도 다른 점이 없다.
혹 그의 사리를 거두어 죽은 사람을 위하여 탑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을 구라(俱攞)라 부르며 형상이 작은 탑과 같으나 위에 윤개(輪蓋)가 없다.
그러나 탑에는 보통사람과 성인의 구별이 있음은 율장 안에서 자세히 논한 것과 같다.
어찌 석가모니의 성교(聖敎)의 가르침를 버리고 주공(周公)의 속례(俗禮)를 쫓아 몇 달을 호곡(號哭)하고 3년 동안 상복을 입는 일이 용납되겠는가?
일찍이 듣건대 영유법사(靈裕法師)란 스님이 있어 거상(擧喪)과 발상(發喪)을 하지 않고 상복(喪服)을 입지 않고 먼저 죽은 분을 추모하면서 그를 위하여 복업을 닦았는데,
수도에 사는 여러 스님들 가운데도 역시 이 전철(前轍)을 따른 사람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효도가 아니라고 하였으나 그것이 곧 율의 뜻에 부합된다는 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13. 결정지법(結淨地法)
정지(淨地)에는 다섯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기심작정지(起心作淨地)이며,
두 번째는 공인지정지(共印持淨地)이고,
세 번째는 여우와정지(如牛臥淨地)이며,
네 번째는 고폐처정지(故廢處淨地)이고,
다섯 번째는 병법작정지(秉法作淨地)이다.
첫 번째,
기심작정지라 하는 것은 처음 절을 지을 때 주춧돌을 정하고 나서 한 비구가 검교(檢校)하는 사람이 되었을 경우 아마도 다음과 같은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이 한 절에 혹은 한 승방에 스님들을 위하여 곧 깨끗한 주방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
공인지정지라 하는 것은 절의 기초를 정할 때 만약 세 사람의 스님이라면 마땅히 한 사람의 비구가 다른 비구들에게 고하기를,
“스님[具壽]들이여,
모두 마음을 써서 이곳을 정하여 한 절에 혹은 한 승방에 스님들을 위하여 청정한 주방을 만들기로 합시다”라고 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스님도 마땅히 이와 같이 말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인지정지이다.
세 번째,
여우와정지라고 말하는 것은 그 절의 집들이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처럼 되어 방과 문이 정해진 장소가 없다.
설사 법으로 만든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이곳이 곧 그 청정을 이루게 되는 곳이다.
네 번째,
고폐처정지라 하는 것은 이곳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스님이 버리고 폐사가 되었던 곳인데 만약 다시 온 사람이 있어 예전에 접촉하였던 곳에 이르게 되면 곧 그곳이 정지가 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하룻밤을 묵지 않게 되면 곧 법을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병법작정지라 말하는 것은 백이갈마(百二羯磨)18)를 주도하는 사람이 경계를 결성하는 것을 말한다.
그에 관한 글은 백일갈마(百一羯磨)에서 설한 내용과 같다.
앞에서 말한 다섯 종류의 정법을 짓고 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비구들에게 두 종류의 안락함을 얻게 한다.
첫 번째는 안에 있는 사람은 음식을 익히고 밖에 있는 사람은 저장하게 되며,
두 번째는 밖에서 음식을 익히게 되면 안에서 저장하게 되어도 모두 허물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사부대중의 스님들을 검험(檢驗)해 보고 눈으로 당장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을 보았으며 아울러 다시 율장의 취지를 소상하게 보았더니 대략 이 정지를 건립하는 일과 같았다.
아직 정지를 만들기 전에 만약 함께 음식을 먹거나 같은 경계에서 잠을 잤을 경우에는 모두에게 요리하고 잠자는 것의 허물이 있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 법이 더해진 경우에는 비록 같은 경계안에서 함께 잠을 잤다고 하더라도 요리하고 자는 죄는 없으니 이것이 그곳의 가르침이었다.
여기서 한 절이라고 말한 것은 총체적으로 머무는 곳 전체를 깨끗한 주방으로 삼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경우 방마다 날 것과 익힌 것을 모두 저장하게 된다.
만약 그 안에서 자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어찌 스님들을 밖으로 내보내서 머물게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첫째 스님들이 숙소를 수호하지 못하게 되고 둘째로는 비축을 한다 하더라도 허물이 없다.
서쪽 나라에서 이어온 전통은 모두가 온 절 안을 정주(淨廚)로 삼는 것이다.
만약 국한하여 한쪽만을 취하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허용되는 한계가 있으니 이 점은 중국의 율사들의 견해와 같지 않다.
또한 아직 의복을 둘 장소를 결정하지 아니하고 숙소를 떠나는 것은 허물을 초래하게 된다.
승단에서 만약 경계가 결정되었다면 떠나도 잘못은 없다.
정주(淨廚)도 또한 그렇다.
이미 그것이 성인이 허락하신 일이니 보통 사람들의 정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옷을 지키는 법의 경계는 나무나 또 다른 장소가 있다.
다만 경계의 몫을 지킨다는 것은 그 뜻이 여자를 삼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정인(淨人)이 주방 안에 들어갈 경우 어찌 이것을 곧 마을에서 거두어들인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가령 누군가 마을에 들어갈 때 법의를 지니는 것은 원래 여자에 대해 자신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유나(維那)가 옷을 가지고 가 검교하는 것은 또한 함부로 손상시킴이 심한 것이다.
14. 오중안거(五衆安居)
전안거(前安居)의 경우는 5월의 흑월(黑月:
한 달의 뒷 15일)의 첫날에 하고 후안거(後安居)의 경우는 6월 흑월의 첫날에 한다.
오직 이 두 날에만 안거를 시작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 중간의 날짜에 대해서는 안거를 허락한 글이 없다.
그리하여 8월 보름에 이르게 되면 전안거(前安居)가 끝나게 되고,
9월 보름에 이르면 후안거가 끝나게 된다.
이때는 법승과 속인들이 크게 공양을 일으킨다.
8월 보름 이후를 가율저가월(歌栗底迦月)이라 이름하는데,
강남에서는 가제(迦提)라 하여 모임을 마련한다.
바로 이때가 전안거가 끝나는 때이다.
8월 16일은 곧 갈치나의(羯絺那衣:
공덕의)를 걸치는 날이다.
이것이 그 옛 법이다.
또 율문에 이르기를,
““무릇 하안거 기간 안에 불법의 규칙에 따르는 인연이 있을 경우에는 모름지기 수일(受日:
휴가)하여야 한다.
많고 적은 인연이 찾아옴에 따라 곧 소요되는 날짜에 준해서 말미를 받아야 한다.
하룻밤 자고 올 일이 생기게 되면 하루의 말미를 받고 이와 같이 하여 7일에 이르면 모든 다른 사람과 상대한다”라고 하였다.
그 후 다시 인연 있는 사람이 찾아오면 율에서는 거듭 청해서 떠나도록 하고 있다.
만약 7일을 넘을 경우 8일로 국한하여 그 이상 40일 밤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의 갈마에서는 8일 이상이 소요되는 날짜의 말미를 받고 떠난다.
그러나 하안거의 절반이 넘도록 외부에 있으면서 숙식할 수는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것은 오직 40일 밤만 허락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병으로 말미암거나 그밖에 여러 어려운 일이 있어 꼭 다른 곳으로 가야 할 경우에는 비록 수일(受日)하지 않아도 안거를 깨는 것이 아니다.
출가한 5부대중이 안거를 시작하고 나서 하중(下衆)에게 바깥에 나갈 인연이 생길 경우 말미를 내려 줄 것을 부탁하고 떠난다.
하안거에 이르기 전에 미리 방과 요사[房舍]를 나누고 상좌 스님은 그 가운데 좋은 곳을 취하여 차례로 나누어서 마지막 스님에 이르게 한다.
나란타사(那爛陀寺)에서는 현재 이 법을 행하고 있다.
대중들은 해마다 언제나 방과 요사를 나누고 있는데 이는 세존께서 친히 가르치신 법으로 매우 요익한 것이 되나니,
첫째는 그들의 아집을 제거하게 되고,
두 번째는 두루 승방을 보호하게 된다.
출가한 대중은 이치로 보아 모름지기 이 법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강 남쪽의 여러 절에서는 때로 절을 나누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고덕(古德)들이 전해온 법으로 아직도 그 법을 행하고 있다.
어찌 한 선원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곧 그것을 자기 소유로 삼고 합당한 곳인지 합당하지 않은 곳인지를 관찰하지 않고 마침내 형체가 다할 때까지 그곳에 있는 것이 용납되겠는가?
이는 참으로 상대(上代)에서 행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후세 사람들이 법을 잃어버리게 된 결과이다.
만약 가르침에 준하여 나눌 수 있다면 참으로 깊은 이익이 있을 것이다.
15. 수의성규(隨意成規)
무릇 하안거를 마침으로써 한 해의 안거가 끝나는 때가 되면 이 날을 마땅히수의(隨意)라 이름지어야 한다.
즉 이것은 그의 의사에 따라 3사(事)19) 가운데에서 어떠한 것이라도 거론하고 발설하여 죄를 설하고 허물을 제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 날을 자자(自恣)라 한 것은 뜻으로 번역한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14일 밤에 한 분의 경사(經師)를 초청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 불경을 암송하게 한다.
이때는 속인 대중들[俗士]이 구름같이 많이 달려오고 법도들이 안개처럼 모여들어 등을 켜서 계속 밝히며 향화를 공양한다.
이튿날 아침에는 모두 밖으로 나가서 마을과 성을 돈다.
이때 각자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여러 제저(制底)에 예배하며 붕거(棚車)에 불상을 싣는다.
북소리와 음악이 하늘에 울려 퍼지고 당번[幡]과 일산[蓋]이 그물처럼 얽혀 바람에 나부끼며 해를 가리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삼마근리(三摩近離)라 부른다.
이 말을 번역하면 화집(和集)이란 뜻이 된다.
큰 재일(齋日)에는 모두가 이와 같이 하는데 이것이 곧 중국에서의 행성법(行城法)이다.
그리하여 우중(禺中:
巳時)이 되면 비로소 절로 돌아와서 해가 오시(午時)가 되면 바야흐로 큰 재를 하게 된다.
오시가 지나면 모두 모여서 각기 신선한 잔디 한줌 가량을 취하여 손에 쥐고 발로 밟으며 수의(隨意)의 일을 하게 되는데 비구가 먼저 하고 난 뒤에 비로소 비구니 대중이 하며 마지막으로 아래 위치의 삼부대중이 하게 된다.
이 경우 만약 대중들이 시간이 지연될까 몹시 두려워한다면 마땅히 많은 사람을 차출해서 나누어 수의를 받게 하여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이 행한 죄를 거론하면 곧 법에 준해서 그 죄를 제거하는 법을 설법해 준다.
이때가 되면 혹 속인들이 보시를 하거나 또 혹 대중승단에서 스스로 보시하여 가지고 있는 물건이 곧 대중 앞에 이르게 되면 그 가운데 오덕(五德)을 지닌 스님이 마땅히 상좌스님에게 “이 물건들을 대중스님들에게 주어 수의물(隨意物)로 삼아도 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이때 상좌스님이 “된다”라고 대답하면 거기 있는 의복과 칼ㆍ바늘ㆍ송곳 따위들을 받고 나서 균등하게 나눈다.
이것이 그곳의 가르침이다.
이날 칼ㆍ바늘 등을 받드는 이유는 그 스님들이 총명하고 예리한 지혜를 얻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수의의 행사가 끝나게 되면 마음대로 각각 동서남북으로 떠난다.
이것은 곧 좌하(坐夏)20)가 이미 두루 끝났으니 다시 하룻밤을 지낼 수고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상세한 것은 다른 곳에서 설명한 내용과 같으며 여기서는 상세히 말하지 않겠다.
여기서 설죄(說罪)라 말한 것은 죄를 진술하고자 자기가 앞서 저지른 허물을 말하고,
지난 허물을 고쳐 다가올 미래의 수행을 하고자 지성으로 간절하게 자책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름마다 포쇄타(褒灑陀)를 하고 아침 저녁마다 범한 죄를 기억한다포쇄(褒灑)는 장양(長養)이란 뜻이며,
타(陀)는 정(淨)이란 뜻이다.
뜻풀이를 하면 선(善)을 길이 길러서 파계한 허물을 깨끗이 제거한다는 뜻이다.
예전에 이것을 포살(布薩)이라 한 것은 와전되고 생략된 말이다.
첫 편(篇)에서 만약 범한 죄가 있을 경우 이는 다스릴 수가 없다.
둘째 편에서는 어긴 것이 있을 경우 20명이 필요하다.
만약 가벼운 허물을 저질렀을 경우 자신과 처지가 같지 않은 사람과 마주하여 이를 제거하고 참회하게 한다.
이것을 범어로 아발저발라저제사나(痾鉢底鉢喇底提舍那)라 하는데,
아발저라는 것은 죄ㆍ허물을 뜻하며,
발라저제사나는 곧 다른 사람과 상대해서 말한다는 뜻이다.
자기의 잘못을 말하고 청정하게 되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각기 제한된 분수에 근거하여야만 죄가 소멸되기를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총체적인 모습으로 허물을 말하게 된다면 이것은 계율에서 허락한 일이 아니다.
예전에 참회라고 말한 것은 설죄(說罪)와 관계되는 일이 아니다.
왜냐 하면,
참마(懺摩)라는 말은 서쪽 발음인데 나름대로 참는다[忍]는 뜻에 해당한다.
회(悔)라는 것은 동하(東夏)의 문자며 지난 일을 뒤쫓아 후회한다는 것이 골자가 된다.
그러므로 후회하는 것과 참는 것과는 멀어 서로 관련이 없는 일이다.
만약 정확하게 범본(梵本)에 근거한다면 모든 죄를 면제받을 때는 마땅히 진심으로 설죄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소상히 살펴본다면 참마(懺摩)를 추회(追悔)라 번역한 것은 그 유래가 거의 없는 듯하다.
서쪽 나라 사람들은 다만 잘못 건드렸거나 몸이 잘못하여 서로 부딪치기만 하여도 나이가 많고 적은 것을 가리지 않고 연장자는 손을 드리우고 서로 마주 보며 어린 사람의 경우는 합장하여 경건하게 공경을 표시한다.
혹 몸을 쓰다듬어도 되고 혹 때로는 어깻죽지를 잡고 입으로 참마(懺摩)라 말한다.
이 뜻은 용서를 청하며 원컨대 성을 내서 책망하지 말라는 뜻이다.
율장 가운데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 사과를 할 때는 곧 참마라는 말을 하고 만약 자기의 죄를 말할 경우에는 곧 제사나(提舍那)라 말한다고 하였다.
뒤에 원한이 남아있을까 두려워하여 이 말을 써서 앞의 미혹한 일을 아뢰는 것이다.
오래도록 풍속과 습관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일은 모름지기 근본에 근거하여야 한다.
범어로 발라바라나(鉢刺婆刺拏)라는 말을 번역하면 수의(隨意)란 뜻이 된다.
이는 또한 배부르고 풍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며,
또한 이는 다른 사람의 뜻에 따라 그가 범한 허물을 들어올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16. 시저합부(匙筯合否)
서방의 식사하는 법은 오직 오른손만을 사용하는데,
모름지기 병을 앓을 경우에만 숟가락을 지니는 것이 허용된다.
젓가락은 오천축국에서는 들어보지 못했고,
4부(部)에서도 역시 보지 못하였는데 오직 중국에서만 이 두 가지를 함께 쓴다.
속인의 무리에서는 나름대로 이것이 예전부터 내려온 법이나,
승려의 경우에는 사정에 따라 이것을 쓰거나 쓰지 않기도 한다.
젓가락은 이미 허락되지도 않았고 금지되지도 않아 이것은 곧 약교(略敎)에 해당하여 이를 사용할 때에도 대중 사이에 비난하는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것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도 이것을 사용하면 속인들 가운데 비웃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서쪽 땅에서는 원래 이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약교의 뜻이 이런 것이다.
17.
지시이례(知時而禮)
무릇 절하고 공경하는 법은 모름지기 그 위의에 맞아야 한다.
만약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평지에서조차 넘어지고 엎어질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두 가지 더러움에 접촉[汚觸]했을 경우 절을 받아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절을 하여서도 안 된다.
만약 가르침을 어기는 사람은 절할 때마다 나쁜 행동을 하는 죄[惡作之罪]를 초래할 것이니라.”
무엇이 두 가지 더러움에 접촉함인가?
첫째는 음식의 더러움이다.
즉 만약 여러 가지 음식물을 먹었을 때부터 한 조각의 약을 삼키고 씹는 일에 이르기까지 먹고 난 후 만약 입을 양치질하고 손을 씻고 오지 않는다면 모두 절을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절을 하여서는 안 된다.
혹 장(漿)이나 물을 마셨거나 차(茶)ㆍ꿀 등의 끓인 물 및 소락(酥酪)ㆍ사탕 따위를 먹었을 경우에도 만약 양치질하고 손을 씻지 않고서 절하거나 절을 받으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죄를 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깨끗하지 못한 더러움이다.
즉 대소변을 보고 나서 아직 몸을 깨끗이 씻지 않았거나 세수나 양치질을 하지 않았을 때이다.
또는 몸이나 옷에 대소변의 깨끗하지 못한 것과 콧물이나 침 등이 묻어 더렵혀진 것을 아직 깨끗하게 닦지 않았을 경우이다.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직 치목(齒木)을 씹지 않고 절하거나 절을 받을 경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죄를 범하는 것이다.
또한 대중이 모여 재(齋)모임을 갖는 차례에는 합장하면 그것으로 공경을 표하는 것이며 일부러 완전한 절을 할 필요는 없다.
절을 하면 곧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 된다.
또 혹 비좁고 시끄러운 곳이나 혹 부정한 땅이나 혹 길 가운데서 절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은 모두 율문에 나타나 있다.
다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받고 추운 나라에 살다가 보니 가르침대로 따르기를 갈구한다 한들 역시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와 같은 사람이 많다는 점을 끌어들여 그것으로 스스로를 위안 삼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조그마한 죄에 마음을 머물러 있게 하려 하는가?
18. 변리지사(便利之事)
대소변을 보는 일에 대해서 간략하게 그 율의(律儀)를 설명하겠다.
아래에는 씻고 목욕할 때 입는 치마[裙]를 입고 위에는 승각기복(僧脚崎服)을 걸친 다음 촉병(觸甁)을 가지고 와서 물로 가득 채우고 이것을 가지고 변소에 오른 뒤 문을 닫아서 몸을 가린다.
이때 흙은 반드시 14개의 덩어리를 화장실 밖의 벽돌 위나 혹은 작은 판자 위에 놓아둔다.
그 벽돌이나 판자의 크기는 길이가 1주(肘),
너비는 반 주이다.
그때 그 흙을 부숴 가루로 만들어서 열지어 두 줄로 만들고 하나하나를 따로 모아 다시 한 덩어리를 안배하고 다시 세 덩어리를 가지고 변소 안에 들어가 한쪽 가장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그중 하나는 몸을 닦는 데 쓰고 하나는 몸을 씻는 데 쓴다.
몸을 씻는 법은 반드시 왼손으로 먼저 물로 깨끗하게 씻는다.
나머지 한 개로는 대강 한 번 그의 왼손을 씻는다.
만약 산대조각이 있다면 가지고 들어가도 좋다.
그것을 사용하고 나면 변소 밖으로 던져버려야 한다.
반드시 헌 종이를 사용하되 그것은 변소 속에 버려야 한다.
깨끗이 씻기를 마치면 비로소 오른손으로 그 옷을 끌어내리고 물병을 한쪽에 두고 오른손으로 옆문을 밀어 연 다음 다시 오른손으로 병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혹은 왼팔로 물병을 안고 왼손은 주먹 쥐고 오른손을 사용하여 문을 닫고 떠나도 된다.
그 후 그 흙이 있는 곳에 나아가 웅크리고 한쪽에 앉는다.
이때 만약 앉을 물건이 필요하면 때에 따라 적당한 곳을 헤아린다.
그 후 물병을 왼쪽 허벅지 위에 놓고 왼팔로 아래를 향하여 누른다.
먼저 몸 가까이에 있는 일곱 개의 흙덩어리를 취하여 따로따로 그의 왼손을 씻고 나서 나머지 일곱 덩어리를 하나씩 사용하여 양손을 함께 씻는다.
그때 벽돌이나 나무 위는 반드시 깨끗하게 씻어야 하고 남아있는 한 덩어리의 흙으로 병을 씻는다.
다음으로 팔과 허벅지와 발을 씻어 모두 청결하게 한다.
그런 다음에 마음대로 그곳을 떠난다.
이 병의 물을 입에 넣어서는 안 된다.
다시 방안에 이르러 깨끗한 병의 물로 입을 헹구어야 한다.
만약 그 일을 하다가 이 병을 건드린 사람은 다시 손을 씻고 입을 헹구어야 비로소 다른 기구를 잡을 수 있다.
이것이 곧 대변을 보는 의식이다.
이것은 대략 설명하면 이와 같으나 반드시 일을 줄여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가 스스로 하도록 맡긴다.
다행히 모시는 사람이 있어 씻게 한다고 하더라도 허물은 아니다.
소변을 본 뒤에는 한두 덩어리의 흙을 사용하여 손을 씻고 몸을 씻으면 된다.
이는 곧 청정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공경의 기본이 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작은 일이라 생각하려 하지만 율의 가르침에서 크게 꾸중하신 대목이 있다.
만약 깨끗이 씻지 않는다면 승상(僧牀)에 앉아서도 안 되고 또한 삼보에 절을 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신자(身子:
舍利弗)가 외도들을 굴복시킨 법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로 인하여 총체적으로 비구를 위해 제도로 정하셨으니,
그것을 수행하여 율법을 받들면 복이 생겨날 것이요,
행하지 않으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겨 죄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 법은 중국에는 전해지지 않았으나 그 유래는 오래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설령 이를 계시(啓示)한다 하더라도 마침내 혐오하는 마음이 일어나 곧 이르기를,
“대승은 허허로워 두루 통하는 것이거늘 무엇이 깨끗하고 무엇이 더럽단 말인가?
뱃속에 항상 가득한 것을 밖에서 씻는다고 어찌 이익이 되겠는가?”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그것이 교검(敎檢)을 경멸하고 기만하며 성심(聖心)을 속인다는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또한 절을 받거나 절을 하거나 모두 죄와 허물을 초래하고 옷을 입고 밥을 먹어도 천신(天神)이 함께 혐오할 것이다.
만약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오천축국이 함께 비웃을 것이며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에게서 모두 비난받게 될 것이다.
크게 법통을 계승할 사람은 특히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옳을 것이며 이미 더러운 세속을 싫어하여 속세를 떠나서 집을 버리고 집이 아닌 곳에 달려갔다면 곧 간절하게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거늘 어떻게 율법에서 말씀하신 것에 눈을 흘기고 외면할 수 있겠는가?
만약 믿지 못한다면 이 말에 근거해 살피면 다행한 일일 것이니,
즉 씻은 뒤 5,
6일이 지나면 문득 씻지 않았던 허물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에는 반드시 물을 따뜻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 세 계절의 일은 곧 그 마음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화장실에 통(筒)ㆍ조(槽)ㆍ백불(帛拂)이 있다는 것은 본래의 율문이 아니다.
또 혹 물을 입에 머금고 가는 것도 역시 정법(淨法)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무릇 스님들의 거처에서는 먼저 반드시 화장실을 깨끗하게 다스려야 하는데,
만약 스스로는 힘이 없다면 교화해서 그것을 만들어 시방(十方)의 스님들에게 말씀드려 이치로써 속세와 성인에게 모두 통하게 하며 소요되는 비용도 많이 쓰지 않게 한다.
이것이 그 요점이다.
이것은 청정하게 바로잡는 업으로서 처음부터 허망한 일이 아니다.
이치로 보면 1,
2석(石)들이 큰 물통에 흙을 담아 화장실가에 놓아둘 필요가 있다.
대중들은 개인이 쓰는 방 안에 흙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갑자기 물병이 없을 경우에는 자기ㆍ기와 등으로 만든 주발을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며 여기에 물을 담아 가지고 들어가 한쪽에 놓아두었다가 오른손으로 물을 뿌려 씻는 것도 역시 법에 손상되는 것은 없다.
강회(江淮)지방에서는 항아리로 변기를 삼는 경우[瓮厠]가 많은데,
여기에서는 깨끗하게 씻을 수가 없으니 마땅히 다른 곳에 따로 씻는 곳을 만들어 물이 흘러 통하게 하여 나오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분주(汾州)의 포복산(抱腹山)과 대악(岱岳)의 영암사(靈巖寺)와 형주(荊州)의 옥천사(玉泉寺)와 양주(楊州)의 백탑사(白塔寺)의 화장실이 설치된 곳에는 제법 그 법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물과 흙을 안배해 놓는 일만은 빠져 있다.
과거에 일찍이 어떤 사람이 있어서 이를 가르쳐 행하게 하였더라면 그 법은 왕사성(王舍城)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곧 선현들이 아득하고 멀었기 때문이니 어찌 후진들이 어리석음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겠는가?
그리고 화장실 안에 흙을 저장해 놓고 물병을 갖다놓는 일은 모두 편안하게 해야 하며 빠뜨린 일이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물병에 붙어있는 두레박에는 마개를 붙이는 것이 좋으며 군지(君持:
물병)를 비축할 경우 앞에서 말한 내용에 준하면 된다.
구리병은 뚜껑을 꽂아 입은 넓으나 원래 씻고 청정하게 하는 데는 맞지 않다.
만약 그 배 언저리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어 놓고 정수리는 주석으로 이를 굳혀서 높이 뾰족한 대(臺)가 나오게 하여 그 가운데 작은 구멍을 안배한다면 이것도 역시 일시적으로 사용하여 때에 따른 필요성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말한다.
종이와 붓을 사용하여 수고롭게 기록하면서 몇 번이나 간절히 말했던가?
흐름에 따르고 충고에 따르는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큰 성인께서는 이미 쌍림에서 열반[寂體]하셨고,
보살들도 역시 오인(五印:
五忍)21)으로 몸이 재가 되었다.
그 분들이 남기신 법과 가르침의 영향은 이 중국에도 미친다.
행(行)은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을 짝하여 의거하고 흥(興)은 속세를 버린 사람들을 손님으로 삼아 따른다.
혼돈된 세계의 번뇌와 더러움을 버리고 교교(皎皎)한 맑은 경계를 그리워한다.
외부의 때묻은 것과 내부의 헷갈림 함께 없어지고 위에서 맺은 것[上結]과 아래로 얽은 것[下縛]이 함께 인멸하면 그 자취 쓸쓸해지고 그 정신 맑으리라.
4위의(威儀)22)에 연루됨이 없으면 3존(尊)23)과 친숙해진다.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데 어찌 죽은 왕의 노여움 살 것을 무서워하겠는가?
9거(居)24)를 이롭게 하면서 크게 근심한 것이 꽃다운 인연이 되었으니 다행히 만에 하나라도 고칠 수 있게 된다면 어찌 20년의 어려움과 고통을 마다하겠는가?
1)
①법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
②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는 것.
③뜻[義]에 의지하고,
말[語]에 의지하지 않는 것.
④지혜에 의지하고,
의식[識]에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
①재아란야처(在阿蘭若處):인가를 멀리 떠나 산속이나,
광야의 한적한 곳에 있는 것.
②상행걸식(常行乞食):늘 밥을 빌어서 생활하는 것.
③차제걸식(次第乞食):빈ㆍ부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걸식하는 것.
④수일식법(受一食法):한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아니하는 것.
⑤절량식(節量食):발우 안에 든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
⑥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정오가 지나면 과실즙ㆍ석밀(사탕) 따위도 마시지 아니하는 것.
⑦착폐납의(着弊衲衣):헌 옷을 빨아 기워 입는 것.
⑧단삼의(但三衣):중의(重衣)ㆍ상의(上衣)ㆍ내의(內衣) 외에는 쌓아두지 아니하는 것.
⑨총간주(塚間住):무덤 곁에 있으면서 무상관(無常觀)에 편리케 하는 것.
⑩수하지(樹下止):있는 곳에 대한 애착을 없애기 위하여 나무 밑에 있는 것.
⑪노지좌(路地坐):나무 아래서 자면 습기ㆍ새똥ㆍ독충의 해가 있으므로 노지에 앉는 것.
⑫단좌불와(但坐不臥):앉기만 하고 눕지 않는 것을 말한다.
3)
글자를 잘못 읽는 일.
기해(己亥)를 잘못 보고 삼시(三豕)라 하고,
금은(金銀)을 잘못 보고 금근(金根)이라 읽었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이다.
4)
보물을 쌓아 놓은,
즉 법보의 누적이라는 뜻을 가진 경전으로 보통 원명을 따라 『대보적경』이라고 한다.
120권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이것은 단독경이 아니라 여러 경들을 모아서 편집한 혼합경이다.
당나라의 보리류지가 왕명으로 그 당시까지 유포되었던 경전들을 모아서 이미 번역되어 있는 23권과 뜻이 통하지 않는 것을 다시 번역한 15권과 아직 번역되지 않은 12권을 번역하여 편집한 것으로 주로 보리류지가 번역했지만 축법호ㆍ의정ㆍ달마급다 등 명성 높은 번역가들의 한역 부분도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보적경』 120권은 49회 77품으로 되어 있는데 매 회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보살의 실천덕목ㆍ보리심의 행위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5)
초학(初學)의 보살에게 있는 다섯 종류의 두려움으로서 불활외(不活畏)ㆍ악명외(惡名畏)ㆍ사외(死畏)ㆍ악도외(惡道畏)ㆍ대중위덕외(大衆威德畏)를 말한다.
6)
8성도(聖道)라고도 한다.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여덟 가지 길로서 정견(正見:올바른 견해)ㆍ정사유(正思惟:올바른 생각)ㆍ정어(正語:올바른 말)ㆍ정업(正業:올바른 행동)ㆍ정명(正命:올바른 생활)ㆍ정정진(正精進:올바른 노력)ㆍ정념(正念:올바른 마음씀)ㆍ정정(正定:올바른 정신통일)을 말한다.
7)
숭악(嵩岳)의 별봉(別峯).
위나라의 효문제가 불타(佛陀)선사를 위하여 이곳에 소림사를 세웠다.
달마대사가 9년 동안 면벽(面壁)했던 곳이다.
8)
9거(居)와 같은 말이다.
앞의 서(序) 주 19) 참고.
9)
보살이 수행해야 하는 52단계 중 특히,
제41위에서 제50위까지를 10지라고 한다.
이 10위는 불지(佛智)를 생성하고,
능히 주지(住持)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온갖 중생을 짊어지고 교화 이익되게 하는 것이,
마치 대지가 만물을 싣고 이를 윤택하고 이롭게 하는 것과 같아서 지(地)라 이름한 것이다.
10)
가사를 입을 경우 그 양끝에 붙인 고리와 끈을 연결하여 떨어지지 않도록 한 용구이다.
11)
경ㆍ율ㆍ논의 3장에 정통한 승려에 대한 존칭으로 가령 구마라습에 대해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당나라의 현장(玄獎)법사를 말한다.
12)
발리(鉢履)는 원(圓),
만다라(曼茶羅)는 정(整),
니바사(泥婆娑)는 군(裙)이란 뜻이다.
13)
현삼과의 다년생 식물로 뿌리는 보혈 강장ㆍ지혈의 약재로 쓰인다.
14)
삼주(三株)란 탐(貪)ㆍ진(瞋)ㆍ치(癡)의 세 가지 독(毒)을 말한다.
15)
4폭류(瀑流)로 번뇌가 마음속 선한 성질을 씻어내는 것이 폭류와 같은 까닭에 번뇌의 다른 이름으로서 폭류라고 한다.
①욕폭류(欲瀑流):욕계에서 일으키는 번뇌.
중생은 이것 때문에 생사 세계를 바퀴 돌 듯 한다.
②유폭류(有瀑流):색계ㆍ무색계의 번뇌 ③견폭류(見瀑流):3계의 견혹(見惑) 중에 4제(諦)마다 각각 그 아래서 일어나는 신견(身見)ㆍ변견(邊見) 등의 그릇된 견해.
④무명폭류(無明瀑流):3계의 4제와 수도(修道)에서 일어나는 우치(愚癡)의 번뇌.
16)
비구의 3의(이에 대해서는 앞의 권1의 주 47) 참고)에 대하여 비구니의 정장으로서의 5의를 말한다.
3의에 복견의(覆肩衣:오른쪽 어깨를 덮음)와 궐수라의(厥修羅衣)를 더한 것이다.
17)
1권으로 되어 있다.
당나라 의정이 번역한 것으로 노(老)ㆍ병(病)ㆍ사(死)의 3법을 설하였다.
후에 5언송 12수,
7언송 4수를 부가해 무상게라 하였고 서천(西天)의 승려들이 장례 때에 이것을 염송했다.
18)
백일갈마와 같다.
백일의 뜻은 백일공신(百一供身)의 백일과 같다.
법이 많으므로 백이라고 한 것인데,
그 많은 법이 각각 일종의 갈마가 있으므로 백일갈마라 하였다.
갈마는 승가 가운데서 무슨 일이고 하려면 대중의 동의와 찬성을 얻어서 그 일을 하는 작법(作法)이다.
19)
탐욕[貪]ㆍ성냄[瞋]ㆍ어리석음[痴]의 세 가지를 말한다.
20)
여름 우기(雨期) 때 90일간 많은 수도승이 한 장소에 거주하며 수해하는 것.
안거(安居)를 말한다.
21)
보살이 법리를 깨닫고 마음이 편안히 머무는 정도에 따라 세운 다섯 가지 법위(法位)로 복인(伏忍)ㆍ신인(信忍)ㆍ순인(順忍)ㆍ무생인(無生忍)ㆍ적멸인(寂滅忍)을 이른다.
22)
인간의 행동을 네 종류로 구별한 것으로 행(行:가는 것)ㆍ주(住:머무는 것)ㆍ좌(坐:앉는 것)ㆍ와(臥:눕는 것)의 네 가지를 말한다.
23)
중존(中尊)과 협시(脇侍)의 한조로,
석가 삼존은 석가ㆍ문수ㆍ보현 보살을,
미타삼존은 미타(彌陀)ㆍ관음(觀音)ㆍ세지(勢至) 보살을,
약사 삼존은 약사ㆍ일광ㆍ월광 보살을 말한다.
24)
앞의 서(序)의 주 19) 참고.
● [pt op tr] fr
_M#]
『남해기귀내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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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초조 보리달마(菩提達磨)가 520년(양 보통 1년 9월)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것을 말하며, 이 일은 중국 불교 사상에 신기원을 마련한 것이므로 특히 이렇게 부름.
답 후보
● 조사서래(祖師西來)
종(宗)
종자만다라(種子曼茶羅)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좌선(坐禪)
주반무진(主伴無盡)
죽비(竹篦)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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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ler-jpn-Eng] 己心法門 コシンホウモン the method of seeing the function of one's own mind
[Glossary_of_Buddhism-Eng] NAME OF BUDDHA / BODHISATTVA ☞
See also: Pure Land Buddhism (Summary); Voice of a Buddha.
“The name of a Buddha or a Bodhisattva is presumed to embody
his virtues and powers. Hence, invocation of the name of the Buddha
【book-page-490 491】
or Bodhisattva activates those virtues and powers. When the term
‘the Name’ is used as an epithet in Pure Land discourse, it means
Amitabha’s name, or more properly, the form used in invoking his
name. That form is the Chinese expression Namo-Amito-fo.” ( Jp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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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법하게 외우고 지니는 이는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대비를 갖춘 자라,
오래지 않아 부처님이 될 것이며
보게 되는 모든 중생이
이 주문을 외우게 하고
귀로 듣게 하여서
깨달음[菩提]의 원인(因)을 만들어 준다면
이 사람의 공덕은
무량하고 끝이 없어
찬탄하여도 다할 수 없나니라.
● 사바하 娑婆訶<六十七> s vā hā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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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가리 다구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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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일째]
불가언설이류법 $ 043▲最妙最妙為 一 ● 泥羅婆, ○□□□□,不,不,不,念
□□□□□□□, 不可言說異類心,
不可言說異類根, 不可言說異類語,
□□□□□□□, 불가언설이류심,
불가언설이류근, 불가언설이류어,
다른 종류 법들을 말할 수 없고
다른 종류 마음을 말할 수 없고
다른 종류 근기를 말할 수 없고
다른 종류 언어를 말할 수 없어
[302째]
념념어제소행처 $ 044▲泥羅婆泥羅婆為 一 ● 訶理婆, ○□□□□,調,所,所,於
□□□□□□□, 調伏眾生不可說。
所有神變不可說, 所有示現不可說,
□□□□□□□, 조복중생불가설。
소유신변불가설, 소유시현불가설,
찰나찰나 다니는 여러 곳에서
중생을 조복함도 말할 수 없고
갖고 있는 신통 변화 말할 수 없고
보이어 나타냄도 말할 수 없어
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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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_암기방안
43 꼬마(새끼)발가락 the little toe
44 네째발가락 the fourth toe
67 주관절(肘關節) 팔꿈치
85 고관절(股關節) 각서(coxa 영어발음)= a hip joint
893958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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