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거다라니경』
K0388
T1340
제1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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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거다라니경』 ♣0388-016♧
제1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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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法炬陁羅尼經卷第十六 彼
K0388
대법거다라니경 제16권
사나굴다 등 한역
송성수 번역
39. 장호법사품(將護法師品)
“아난아,
그 때에 상명의(上名意)보살이 방광여래께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법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의 이름[名字]만을 말씀하셨는데,
만일 사람이 배우고 나서 성취하게 되면
그것은 세간의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여의는 것이니,
이 법 가운데 어떻게 상응(相應)하나이까?
▸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지(無相智)로 온갖 법을 안다면 이 온갖 법은 한 모양[一相]도 없겠거니와,
만일 법에 모양이 있어서 듣고 받을 수 있다면 어느 것이 바로 모양[相]이고,
또한 어찌하여 모양이며,
어떤 모양 때문에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모양을 알 수 있고,
다시 어떻게 방편의 업장[方便業藏]을 아나이까?’◂
만일 무상지(無相智)로 온갖 법을 안다면 이 온갖 법은 한 모양[一相]도 없겠거니와,
만일 법에 모양이 있어서 듣고 받을 수 있다면 어느 것이 바로 모양[相]이고,
또한 어찌하여 모양이며,
어떤 모양 때문에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모양을 알 수 있고,
다시 어떻게 방편의 업장[方便業藏]을 아나이까?’◂
그때에 방광부처님께서 상명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방편의 지혜[方便智]로 모든 법의 모양(法相)을 알면서
스스로 이 업장(業藏)이 오는 곳을 얻어야 하느니라.’
상명의 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비록 다시 모든 법의 방편으로
모든 부처님의 방편 언교를 해석하여 능히 받아 지니는 이와
능히 들어가 증득해서 깨달아 아는 이를 간략하게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이 세 가지 방편 업장을 저희들은 지금으로부터 부지런히 닦고 배우겠나이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들은 이미 모두 그와 같이 들어서 받았으며 그와 같이 들어 아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가운데 다시 여타의 중생들은 이 말씀을 듣고도
방편의 이치를 분명히 알지 못한 이들이 있사오니,
원하옵건대 이제 이들을 위하여 자세히 이와 같은 세 가지 업장의 방편 언교를 널리 펴 주소서.’
아난아,
그 때에 방광 여래ㆍ응공ㆍ정변각께서는 다시 상명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느니라.
‘마나바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혹시 어느 정도의 중생들이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을 아는지 아느냐?
너는 또 어느 정도의 중생들이 알지 못하는지 아느냐?’
그때에 상명의 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중생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언교 업장에 대해 사실대로 아나이까?
또 말씀하신 세 가지 언교의 이치를 모두 지닐 수 있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내가 앞서 이미 너에게 물었던 것처럼
어느 정도의 중생이 이 법에 대해 능히 듣고 받아 지닐 수 있겠느냐?
너는 지금 어찌하여 다시 이 세 가지 언교에 대해 아는 이가 있느냐고 묻느냐?
나는 실로 그와 같은 중생을 보지 못했느니라.’
그때에 부처님은 다시 그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여래가 이 세 가지 언교에 대해 해설할 적에
너희들은 능히 이해하고 능히 알아서
또한 저 인(人)과 비인(非人)의 무리들을 위하여 깨우쳐 주면서 연설할 수 있겠느냐?
오직 여래만이 세 가지 방편 언교를 알 수 있을 뿐이어서
간혹 다른 이를 위하여 자세히 그 이치를 해설하기도 하고
조그마한 부분을 깨우쳐 주기도 하느니라.
마나바야,
이와 같이 한량없고 가없는 세계를 관찰하건대,
애초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끝내 성취하지 못하고는
세 가지 언교 업장에 대해 해설할 수 없나니,
오직 여래ㆍ응공ㆍ정변각만이 비로소 해설할 수 있을 뿐이니라.
마나바야,
여래가 해설하고 나면 그 밖의 중생들은 간혹 조금은 이해하기도 하나
끝내 여래가 해설하신 세 가지 방편 업장을 이해한다고는 일컫지 못하나니,
여래 앞에서 해설하지도 못하고
또한 처음의 아자문(阿字門)도 알지 못하며
또한 세 가지 언교 업장에 들지도 못하느니라.
설령 갖가지로 방편을 사유한다 하여도 역시 들어갈 수 없거늘,
어찌 감히 말하고 알겠느냐?
이 때문에 나는 오직 여래만이 홀로
이와 같은 업도(業道)에서 청정할 수 있다고 말하느니라.’
상명의가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업도는 어떻게 청정하게 해야 하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지금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느니라,
너는 청정하지 않은 일이란 마땅히 그런 것이라고 알라.
마나바야,
나는 이미 세 번씩이나 말하면서 너에게 허락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다시 묻느냐?
또 이와 같이 내가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을 알게 한들
여타의 중생들은 알지 못하느니라.
마나바야,
너는 이와 같은 세 가지 방편 언교 업장의
아(阿)ㆍ가(迦)ㆍ나(那) 등의 구의(句義)를 다만 해설할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이 모든 구의를 알 수 있겠느냐?
마나바야,
그러나 역시 한 가지 방편은 있나니,
만일 모든 중생들이 청정하게 계(戒)를 지닌다면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을 알 수 있고
또한 다른 이를 위하여 연설할 수도 있느니라.’
상명의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것은 어떠한 방편으로 알 수 있나이까?’
‘마나바야,
다른 방편은 없으며
오직 여래의 덕력(德力)과 가지(加持)가 있는 이러한 중생이라야 알 수 있을 뿐이니라.’
상명의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만일 장차 열반에 드신다면
누구로부터 다시 이와 같은 업장을 들을 수 있으며,
또한 누가 다시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석하오리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누구나 내 앞에서 친히 듣고 받은 이면,
그가 미래에 태어나는 곳마다 정거천(淨居天)의 모든 하늘들이 몸소 가서 알게 할 것이며,
혹은 여타 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위신(威神)이 와서
그 사람을 가지(加持)하여 먼저 들은 그대로 끝내 잊어버리지 않게 하리니,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은 마치 새처럼 현전하면서 광명을 지을 것이니라.
마나바야,
너는 그 때에 크게 기뻐하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隨喜心]을 일으켜야 하며,
이 모든 중생들은 다른 이를 위해 능히 이와 같은 언교를 해설하는데,
이것이 모두 여래의 신력으로 가지(加持)를 받은 것이니라.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여래 앞에서 이런 이치를 묻는다면,
그 사람은 하열(下劣)한 사람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끝내 어리석고 하열한 중생이라면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설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여래는 끝내 계를 깨뜨리는[破戒] 한 명의 나쁜 중생에게도 이 이치의 문[義門]을 해설하지 않거늘,
하물며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세계 가운데서
계를 깨뜨려 청정하지 못한 나쁜 중생에게 이와 같은 이치를 널리 연설하겠느냐?
반드시 그런 일은 없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이 가운데는 진실로 한량없이 미묘한 이치와 말이 있느니라.
만일 이와 같은 어리석은 중생을 위하여 가벼이 말하게 된다면
다시 그들로 하여금 업을 짓게 하는 것일 뿐
이 다라니 문구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못 되느니라.
마나바야,
이 다라니는 오직 모든 부처님ㆍ여래만이
이러한 모든 법의 광명과 가장 수승하고 으뜸가는 지혜[最勝上智]로 모든 법을 구족해서
청정한 곳에 감응해 연설할 수 있어서
모두 다 이 다라니경에 의지하여 저 듣기를 바라는 이를 위하여 연설하나니,
이 사람은 마땅히 저 장한 장부[善丈夫]에게로 나아가서
지극한 마음으로 청취해 받되
마치 여래 앞에서 정법(正法)을 듣는 것처럼 해야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장한 장부가
이와 같은 수다라를 연설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여래의 위신력 때문이니,
그러므로 법을 듣기 바라는 이면 반드시 이런 마음을 지으면서 즐거이 법을 들어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그러할 때에는 부디 법사를 괴롭히거나 어지럽히지 말 것이니,
만일 그 법사에게 번거로움이나 해로움이 없으면 세간을 크게 이롭게 하리라.
마나바야,
이 언교 업장은 지혜가 적은 중생이 행할 경계가 아니며
또한 적게 공양하고서 부처님께 얻어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세존의 처소에서 수행하고 공양한 이라야
비로소 들을 수 있고 바야흐로 배울 수 있나니,
그런 뒤에야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을 알고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설할 수 있느니라.
마나바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모든 중생에게 만일 법사가 없다면
자신의 힘으로 이와 같은 법을 얻을 수 있겠느냐?
모든 중생들이 법을 얻지 못한 것은 법사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설령 법사기 있다 하여도 그 법을 받을 사람이 먼저 청하지 않으면 해설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반드시 먼저 법사에게 청해야 하며
자기의 신력(身力)으로 받들고 공양한 후에야 해설하게 되느니라.
만약 법을 받을 사람이 법을 넓히기 위하여 법사에게 권청(勸請)한다면,
이 사람은 그 때에 마땅히 몸소 법사에게로 나아가서 공양하고 호위해야 하며,
만약 법을 받을 사람이 법사의 처소에 있으면 악행(惡行)하는 사람이 아첨하거나 비방하면서
법의 이치를 믿지도 않고 법사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 허물과 단점을 구한다 해도 편(便)을 들어서는 안 되느니라.
만일 법을 들으려는 사람이 감당해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큰 용맹을 일으켜 구족하게 정진하면서 그때그때 법사가 말하는 방편 언교를 능히 물으면,
그때 듣는 법은 빠트림이나 적어짐[闕少]은 없겠지만,
만일 물음이 없다면 그 때에 법사는 모든 부처님의 법문을 자세히 연설하지도 못해서
끝내 널리 드러내지 못하고 또한 부처님 법이 있다는 것을 아는 중생도 없느니라.
이와 같이 세 가지 업장의 법을 모르기 때문에
저 모든 지혜 없고 눈먼 중생들은 모두가 광명이 없는 아주 캄캄한 곳에 떨어지는 것이며,
모든 법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 있는 이도 없고 수행하는 이도 없는 것이니,
세간은 모두 다 어둡고 캄캄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중생들은 모두 질투와 나[我]라는 마음의 때[垢]가 끼여 있는지라
이 때문에 법을 듣는 곳에 나아가지 못하고,
설령 나아갔다 하여도 역시 법을 듣지 않으며,
듣지 않기 때문에 선(善)과 악(惡)의 업행(業行)에 대해
이것을 해야 할지 하지 않아야 할지를 알지 못하나니,
그 때의 세간에는 대부분 이와 같은 중생이 있다는 걸 알지니라.’
40. 방광불본사품(放光佛本事品)
그 때에 방광여래는 상명의(上名意)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내가 기억하건대 옛날 태초에 난복(難伏)이라는 한 겁(劫)이 있었고,
다시 두 번째에 제락(除樂)이라는 겁이 있었는데,
이 겁이 지난 뒤에 다시 한 겁이 더 있었느니라.
이와 같이 세 겁 동안에는 텅 비어서 부처님이 없었으므로
그 겁 가운데 태어난 온갖 중생들은
일찍이 한 법음(法音)조차도 들은 적이 없었거늘,
하물며 다시 이와 같은 법을 행한 이가 있을 수 있었겠느냐?
만일 수행한 이가 있었다면 그것은 이치가 아니니라.
저 모든 중생들은 법 없는 세상에 태어나
오로지 나쁜 행만을 지으면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스승이나 어른들을 섬기지 않았으며,
사문이나 바라문을 공경하지도 않았고,
계율 지니기를 멀리 여의면서 나쁜 법에 의지하였으며,
언제나 방일(放逸)을 즐기고 어두운 것에 빠져 있었으며,
옳고 그른 것을 알지 못하고 선과 악을 알지 못했으며,
높고 낮은 이를 구별하지 않고 은혜로운 양육[恩養]을 생각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누가 아버지이고 누가 어머니인지도 알지 못했거늘 어떻게 형제와 자매가 있었겠느냐?
이와 같은 것 등을 몰랐기 때문에 저마다 모두 어리석고 캄캄한지라
여덟 가지 선근(善根)과 즐거운 행의 법[樂行法]을 잃고서 지옥의 깊고 먼 고통 가운데에 떨어졌나니,
마침내 어떤 분이 부처님이시고 법이며 스님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또한 다시 온갖 선근도 알지 못했느니라.
이와 같은 겁 때에 향상(香上)이라는 한 보살이 바라문의 집안[婆羅門家]에서 태어났나니,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모를 모두 잃었느니라.
이 보살은 몸이 점차 장대해지면서 모든 근(根)을 성취하여
정진의 힘을 갖추었고 선근이 순숙(純熟)해져서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였으며,
이미 출가한 뒤에는 고행(苦行)에 힘써서 어떤 숲의 나무 아래 의지하여
사십 넌 동안을 열매와 물 이외에는 어떠한 다른 것도 먹지 않았느니라.
그는 자신이 먹고자 하는 열매가 비록 익었다 하더라도 끝내 먼저 따 먹지 않았고,
반드시 구관조[鴝鵒]ㆍ앵무새,
원숭이 등의 모든 날짐승ㆍ길짐승이 쪼아 먹고
남은 나머지나 혹은 비록 벌레가 먹지 않았다 하더라도
때가 되어 익은 뒤에 바람이 불어 저절로 떨어진 것을 비로소 주워다 먹었으며,
그가 이것을 먹을 때도 반드시 칠 일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한 개씩을 먹을 뿐 끝내 두 끼는 먹지 않았으며,
먹을 때가 비록 이르렀다 하더라도 땅에 남아 있는 열매가 없으면 그대로 지나쳐서 역시 먹지 않았느니라.
사십이 년 동안을 혹 먹기도 하고 먹지 않기도 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애써 고행하면서 선정(禪定)을 닦아 익혔으며,
선정을 닦았기 때문에 다섯 가지 신통(神通)을 얻었느니라.
그러나 이 보살은 사십칠 년이 지나고 나서야 신통력으로 인해
인간의 눈보다 뛰어난 천안(天眼)을 얻어서 세계의 모든 중생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이들은 금계(禁戒)를 지니지 않고 전혀 복덕이 없었으며,
오로지 악업만을 지으면서 질투하고 헐뜯었으며,
부모를 섬기지 않고 사문을 공경하지 않았으며,
오랜 세월 동안 불길이 왕성하듯
뭇 악[衆惡]을 더욱 자라게 해서
서로 두려워하고 해치는 것이 원수보다 더 심하였느니라.
그 때에 보살은 이와 같은 악한 중생들을 보고 나서 크게 근심하고 슬퍼하면서
‘아, 슬프도다.
아, 슬프도다.
이들 중생들은 크게 잘못하고 있구나?
어찌 이 넓고 큰 세계 가운데 한 중생에게도 한 조각의 선근이 없는 것인가?
하물며 완전히 갖춘 이겠느냐?’라고 탄식하였으며,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오늘 천안으로 이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한 중생이라도 선근의 구족을 구하는 이를 관찰했는데,
내가 만일 보았다면 크게 기뻐하였으리라.
왜냐하면,
나는 그런 이에게서 이런 큰 이로움을 얻기 때문이다.
만일 처소[處]를 알지 못하면 곧 이로 인하여 다시 서로 가르치고 알려서 선근이 나고 자라게 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
그때에 그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숲 속에 조용히 앉아 정(定)에 들어서 사유하고 관찰하였으니,
저 남방(南方)으로 스무 개의 세계를 지나 선광(善光)이라는 한 부처님 국토[佛土]가 있는데
그곳에 명호가 보당(寶幢) 여래ㆍ응공ㆍ정변각이라는 부처님이 계신 것을 보았느니라.
마나바야,
그 부처님을 무엇 때문에 보당이라 했는가?,
그 분이 탄생하실 적에 정수리 위에서 큰 광명을 발하였는데,
그 광명이 나올 때에 그 세계 안에서는 한 중생도
그 광명이 부처님의 정수리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아는 이가 없었고,
또한 그 광명의 모양과 빛깔이 청색인지 황색인지 적색인지 백색인지 흑색인지 자색인지 파리색(頗梨色)인지
분별하지도 못했으며,
모든 그 밖의 다른 색깔 모양과 나아가 한 모양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알지 못하였느니라.
그 광명이 나오자마자 저 부처님 세계의 국토는 다 함께 보배 빛으로 되었고,
그때에 모든 중생들은 그 세계의 국토가 그와 같이 장엄된 것을 보고
저마다 생각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보살이 세간에 출현하시면서
보배의 당기[寶幢]를 세웠기 때문에 세계가 변하여 보배로 된 것이다’라고 하였느니라.
마나바야,
이런 인연 때문에 그 부처님ㆍ여래를 보당이라 하느니라.
마나바야,
그 때에 보당여래는 정수리로부터 광명을 내시어
곧장 향상(香上)보살에게 비추시면서 정수리에 머물렀느니라.
그때에 그 보살은 선정 안에서 부처님의 광명이 자신의 정수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는
희유한 마음을 내면서 ‘나는 이제 이 삼매(三昧)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뒤에
곧 정(定)에서 일어나 그 광명이 어디서 왔는가를 관하다가
남방 선광(善光)세계의 보당세존 정수리에서 광명이 나온 뒤에
곧장 자기 몸을 향해 소멸되지도 않고 장애도 없이 오는 것을 보았느니라.
그리고 또한 그 보당세존께서 구십이 나유타(那由他) 성문 대중들에게 앞뒤로 에워싸여 계신 것을 보았으므로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오늘 저 부처님ㆍ세존의 발아래에 나아가서 부처님과 스님 대중께 공경하고 예배해야겠다’고 하였느니라.
향상보살이 이런 마음을 낼 때에 보당여래는 다시 광명을 거두어들였느니라.
광명이 없어지자 보살은 보통 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보고 아는 것이 없자 몹시 자신을 책망하면서
‘나는 이제 어찌하여 이런 큰 기회를 잃게 되었느냐?’고 하며,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다시 이 삼매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뒤에 곧 다시 정(定)에 들었느니라.
이미 선정에 들자마자 광명이 다시 와서 보살의 정수리에 머물렀는데,
저 부처님을 한량없는 대중들이 좌우에서 에워싸고 있는 것이 보였으므로
그때 저 보살은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저 부처님ㆍ세존께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자 광명은 다시 사라졌느니라.
그 광명이 없어지자 보살은 다시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다시 정에 들어야겠다.
이미 정에 들고 나면 무엇 때문에 다시 나오겠느냐?
나아가 저 부처님께도 가지 않아야겠다’고 하였느니라.
마나바야,
그때에 저 여래는 생각하기를
‘지금의 이 보살은 큰 용맹으로 정진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으므로
나도 역시 이 보살로 하여금 이런 원(願)을 버리다가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내 앞으로 오거나 혹은 몸과 목숨을 버리거나 그로 하여금 정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게 하겠으며,
그 자신으로 하여금 이 법문에서 손해나 줄어듦이 없게 하리라.
나는 이제 마땅히 그로 하여금 이와 같은 바른 법에 편안히 머무르게 해서 깨달아 알게 하겠으며,
이 보살로 하여금 온갖 법을 다 깨우쳐 이해할 수 있게 해서
그의 본래 서원[本願]을 원만하게 하리라’고 하였느니라.
마나바야,
그때에 저 여래는 이와 같이 생각하신 뒤에
그 세계에서 없어져서 홀연히 이 보살 앞에 서 계셨느니라.
마나바야,
그 때에 보살은 보당 여래ㆍ응공ㆍ정변각의 서른두 가지로 장엄된 몸의 상호(相好)가 특수하고 미묘해서
마치 금산(金山)과 같은 형상을 한 걸 홀연히 보고서 크게 회유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며
저 부처님이 마치 아버지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느니라.
그 보살은 이와 같이 존경의 일이 생기고 나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나자
어쩔 줄을 모르고 부끄러워하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로 나아가 두 무릎을 꿇고 머리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는 오른편으로 세 바퀴 돈 뒤에 물러나 한쪽에 섰느니라.
이와 같이 보살이 부끄러워하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할 때에 그 부처님은 이내 손으로 그의 정수리를 어루만졌느니라.
이 보살은 곧 생각하기를 ‘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이 애초에 이런 비원(悲願)을 행하시는 것을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는데,
저 생사가 빈 들판[生死空野]인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겁(劫) 동안에 크게 이롭게 하기 위해서이구나.
이처럼 은혜와 양육도 알지 못하는 법에 어그러진 중생들은 삼보를 믿지 않고,
사문과 바라문을 공경하지 않으며,
부모에 효순하지 않고,
형제에 우애가 없으며,
존비(尊卑)를 알지 못하는데,
이와 같은 정신 잃은 중생들은 공겁(空劫)에 떨어져
오로지 나쁜 법만을 행하는 이들을 제도하려 함에서구나.
나는 이때에 모름지기 법의 인[法因]을 지어서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고 교화(敎化)를 빛내고
드날려 다 함께 이런 서원을 구족하게 일으키게 해야겠다’고 하였느니라.
이때에 그 여래는 이 보살이 속으로 이와 같은 그 서원과 정진을 품은 것을 아시고는
그를 위하여 세 가지 업장(業藏)을 말씀하셨으며,
보살은 이러한 말씀을 듣자마자 일찍이 과거의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들었던 이 세 가지 업장이 모두 앞에 나타나 있었느니라.
이 보살은 보당부처님으로부터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을 들었기 때문에
드디어 부처님 앞에서 큰 서원을 세우면서
‘저는 반드시 이 큰 공겁(空劫)에서 세존의 가르치심대로 불사(佛事)를 베풀고 짓겠나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때에 그 여래는 이 보살에게
이와 같은 견고한 서원이 구족한 것을 아시고는 즉시 위로하고 아울러 경계하시되,
‘마나바야,
네 마음이 원했듯이,
부디 놓아 버리지 말라.
너는 마땅히 모든 약한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야 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하신 일을 부지런히 배우면서 끝내 세 가지 방편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항시 이 세 가지 업장 법문을 염(念)해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네가 만일 어떤 인연이 있어 산란한 마음이 생기면 오직 모든 부처님ㆍ세존만을 염해야 하리니,
그 때에는 다만 이것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느니라.
그때에 보당여래는
그 보살에게 이와 같이 가르쳐 경계하시고는
즉시 큰 신통을 써서 본래 계셨던 세계로 돌아가셨느니라.
또한 마나바야,
그 때에 향상 보살마하살은 보당부처님으로부터 세 가지 언교를 들은 뒤에
언제나 굴리고 언제나 염(念)하며 언제나 현전케 하면서
‘나는 이제 어떠한 방편을 지어서 모든 중생들에게 널리 드날리고 해설하면서
모두에게 부처님께서 현존(現存)하신다는 것을 알게 할까?’라고 하고,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를 ‘오직 신통만이 큰일을 이룰 수 있으리라’ 하고는
곧 신통으로 제칠의 바람[風聚]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큰 소리를 내어 말하기를 ‘그대들 중생은 이와 같이 파괴되고 있거늘,
어째서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는가?’라고 하였느니라.
마나바야,
그 때에 보살이 지른 음성이 삼천대전세계에 가득 찼으므로
온갖 중생들은 이 소리를 듣자마자
모든 악(惡)을 버리고 밤낮으로
몸을 단정히 하고 정념(正念)으로 머물렀느니라.
그 때에 보살은 모든 중생들이 정념(正念)을 낸 것을 알고 다시 생각하기를,
‘어떻게 단 한 번의 음성으로 모든 세계에 두루할 수 있었을까?’라고 하고,
또한 그 때에 곧 생각하기를 ‘이 중생들은 지극히 나쁜 행(行)을 저지르고 있으니,
나는 이제 법답게 가르치고 보여야겠구나’라고 하였느니라.
마나바야,
그때에 그 보살은 차례로 온갖 중생들을 가르쳐서 모두가 바른 법 안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였느니라.
칠 년이 지난 뒤 그 모든 중생들은 법의 행[法行]에 머물러서 모든 선근을 심을 수 있었으며,
이 보살은 이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갖가지 행을 행하고 갖가지 법을 얻을 수 있게 하였느니라.
마나바야,
이런 인연 때문에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그 때의 중생은 모든 법 가운데서 결함(缺減)이 없었으며,
그리고 모두가 저 보당여래를 말미암아
스무 개의 부처님의 세계를 지나 어떤 중생을 보아도 법의 그릇(法器)이 될 수 있었느니라.
또 향상보살이 이와 같이 용맹스런 정진으로 큰 서원을 세워 장엄한 까닭에
그들을 위하여 세 가지 언교 법장(言敎法藏)을 펼칠 수 있었느니라.
마나바야,
또한 그 여래는 저 구십이억 나유타 대중을 버려두고
스스로 내림(來臨)하여서 향상보살을 가르쳐 성취하게 하기 위함이니라.
마나바야,
너는 이제 망령되이 생각을 내서 저 향상이 다른 사람이었다고 여기지 말 것이니,
그 때의 향상보살이 바로 지금의 나의 몸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나는 한량없고 가없는 세계의 갖가지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세계 안에 있는 중생과 그 중생들이 갖고 있는 심념(心念)을 한 찰나 사이에 나는 모두 능히 아느니라.
또한 나는 이 모든 중생들이 생각하는 법의 뜻 및 억백천 종류의 머무는 곳도 한 생각[一念] 동안에 모두 아나니,
세간의 모든 부처님 국토에서 어떤 중생이 선근의 성숙에 따라 세 가지 언교 업장을 감당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나는 거기로 가서 오로지 그들을 위하여 세 가지 언교 업장의 문을 널리 연설해야 하느니라.
마나바야,
가령 한량없고 가없는 모든 세계 중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곳에서
다만 어떤 중생이라도 세 가지 언교 업장을 반아 지닐 수 있는 이가 있으면,
나는 곧 거기로 가서 부처님 몸으로 나타나 이 모든 중생들을 교화하고 열어 보이느니라.
왜냐하면 그 선근 중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지혜의 처소를 상실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마나바야,
나는 언제나 이와 같이 두루 관찰하면서 중생이 터럭만큼의 선근이라도 보이기만 하면 곧 가서 교화하거늘,
하물며 중생이 몸소 나의 앞에 있으면서 나에게 귀의하고 나에게 순복하여 스승으로 삼고 있는 이겠느냐?
그런데도 거두어 주지 않고 널리 해설하지 않으면서 다시 숨기거나 감춘다는[秘藏] 일은 있을 수조차 없느니라.
또 마나바야,
나는 이제 너에게 다시 비유를 들으리니,
비유이기 때문에 지혜 있는 사람은 속히 이해하니라
마나바야,
마치 연꽃 연못에 물이 가득 차서 연꽃이 피어 물 위에 나타나 있는데,
해가 진 뒤 찬 이슬이 내릴 적에는 오므라들어서 밤에는 지었다가 햇빛이 나오려 할 적에는 다시 피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이 꽃에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하는 줄 알아야 하나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연못의 물이 항시 차 있으면서 바짝 마르게 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그 물의 양이 조절되어 꽃이 지지 않게 하는 것이니라.
이처럼 마나바야,
여래도 역시 그러해서 모든 보살마하살들에게 두려운 곳[怖處]을 멀리 여의게 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마땅히 깊이 가호(加護)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두 가지 소견에 대하여 집착이 없으면
마음의 지혜로 행하는 곳[心智行處]이 많은 공(功)을 들이지 않고도 저절로 원만하게 되며,
만일 마음의 지혜로 행하는 곳이 지극히 원만해지면 곧 저 세 가지 업장의 지혜문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마나바야,
여래는 이미 너희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세 가지 언교 업장을 해설하였는데도
아직도 무거운 짐을 버리거나 여의지 못하고서 다시 여래에게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의 인연을 묻는구나.’
41. 교증법품(敎證法品)
아난아,
그 때에 상명의 보살이 다시 방광여래에게 아뢰었느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길 보살은 법을 구할 때
무거운 짐을 버리지 않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시 세존께 물어야 한다고 하셨나이다.
이런 인연 때문에 저는 이제 정진의 무거운 짐을 버리지 않고 자주자주 세존께 청하나이다.
세존께서 비록 저를 버린다고 하시더라도 저는 거듭 원하면서 세존께 묻사옵니다.
비유하면 마치 바라문 대중들이 모이는 때에
보고 들음이 적은 어느 한 바라문이 부르거나 청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나타나 함부로 맨 윗자리[最上座]를 구했는데,
여러 사람들이 질문하자 대답할 바를 몰라서 칠 일이 지나도록 밥을 얻어먹지 못한 것과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문의 법에는 견문(見聞)이 적어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설사 칠 일이 된다 해도 한 끼의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오히려 남에게 축출당하는 걸 면치 못하지만
거기에 모인 대중들은 그를 가엾이 여기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도 그와 같아서 여래께서 하신 말씀을 자주 들었사오나
철저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마치 축출당하는 것과 같사온데,
지금 비록 버림을 당하여 모든 말씀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희들은 성실한 염원과 은근함으로 오히려 버리지 않고 법의 무거운 짐을 구하면서 세존께 묻사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지혜가 없고 어리석은 사람이 현재는 비록 악(惡)이 많다 하더라도
오랜 뒤에는 역시 부처님이 되기 때문이오니,
만일 장차 부처님이 된다면 반드시 물어야 하나이다.
만일 묻지 않으면 법문(法門)에 어둡게 되고,
만일 법문에 어두우면 부처님의 지혜를 얻지 못하며,
또한 다시 힘[力]과 두려움 없음[無畏]도 얻지 못하고,
나아가 부처님의 다라니 방편 언설에 이르기까지도 얻지 못하며,
나아가 도를 이루신 부처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나이다.
만일 부처님ㆍ세존께 청하여 묻지 않는 이라면,
어떻게 미래에 불사(佛事)를 이룰 수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오늘 비록 제가 쫓겨나서 법문 밖에 있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세존께 이와 같은 세 가지 언교 업장에 대해 청해 여쭈어야겠나이다.’
아난아,
그 때에 방광여래는 이 보살이 이와 같이 묻는 것을 듣고 나서 생각하시기를,
‘이 큰 보살은 정진이 용맹스러우며 안으로 믿는 마음을 갖추었고 지혜가 깊고 날카롭구나.
이제 나는 그를 위하여 해석해 주어서 진실로 버리고 싶지 않구나.
이 보살은 끝내 두려워함도 없고 또한 잠시도 쉬지 않으면서 오직 구하면서 묻기만 하는구나.
나는 이제 마땅히 그를 위하여 이 아(阿) 등의 법문을 해설하여
비유와 해석으로 점차 이 세 가지 언교의 이치를 배우게 해야겠다.
이 글자의 문[字門]으로 인해 궁전(宮殿)에 들어가고
또한 이 억수(億數)의 모든 보살들도 이 법문을 사유하고 분별하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바라밀의 방편과 행할 곳을 증득하여 알아야 하리니,
이 바라밀에 있는 모든 이치는 이 방편 언교 가운데서 스스로 보아야 한다.
그 모든 보살들이 이렇게 묻는 때는
사유(思惟)가 어지럽지 않고
마음이 왕성하게 분별해서 수고로움도 꺼리지 않고 묻고 말할 수 있으니,
바로 그 때에는 큰 기쁨이 생기고 기쁨이 생긴 뒤에는
점차로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의 문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하였느니라.
아난아,
방광여래께서 바른 사유[正思惟]를 하실 때에
모든 보살들은 부처님의 가피력을 입었기 때문에 여래의 마음을 알았느니라.
아난아,
그 때에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이런 마음을 내었니라.
‘우리들은 이제 진실로 이 세 가지 구의 뜻[三句義]을 사유하여야겠다.
어느 것이 이 세 가지 언교 업장인가?
이른바 아(阿)ㆍ가(迦)ㆍ나(那) 등의 모든 글자의 문[字門]일 뿐이다.
아 자라 함은 맨 처음 방편으로 열어서 인도하는 것이요,
가 자라 함은 그 중간에 우리가 들어가서 알아야 하는 것이며,
나 자라 함은 다시 맨 뒤에 널리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니,
우리는 이제 아자문으로부터 사유하고 분별하면서 기억해 받아 지닐 것이요,
다시는 여래께 이런 이치를 묻지 않아도 또한 여래의 방편과 교시(敎示)를 알겠도다.’
모든 보살들이 이렇게 생각한 뒤에
저마다 대중 가운데 단정하게 서서 한 때[一時] 동안
아자 법문의 방편의 이치를 사유하고 관찰하였으며,
잠시라도 그 밖의 다른 일은 생각하지 않았느니라.
그때 모든 보살들은 칠 일이 다하도록
이와 같이 사유하여 저 아자문의 궁전의 이치[宮殿義處]를 증득하여 알았느니라.
증득하여 알았다는 말이 무엇인가?
증득하여 안다[證知]는 말은 여래께서 말씀했듯이,
마치 판자[板]를 가져다 방편으로 취하여 깨지지도 무너지지도 않게 하고서
잘 깎아서 편편하게 다듬어 깨끗하게 하고는
재고 헤아려서 길거나 짧게 하고,
그런 뒤에는 색깔을 칠하고 볕에서 마르게 하고
마른 뒤에는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문지른 뒤에는 붓을 가지고
판자 위에다 글을 써 놓아야 비로소 글자가 성립되는 것과 같으니라.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 판자를 이와 같이 잘 다듬어서 뜻한 바를 이루면
색상(色相)을 볼 수 있거나 이름을 말할 수 있느냐?’
모든 보살들이 말하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정녕 그러하느니라.
마나바야,
이때에는 색상으로 취할 만한 것이나 이름으로 말할 만한 것이 없으며,
오직 언설(言說)뿐이라서
이와 같이 우리가 들은 수다라 문구(文句)의 차례만이 있을 뿐이니라.
마나바야,
너희들은 내가 방편으로
해설하는 이 비유의 문[譬喩門]을 듣고 다시 그와 같이 지녀라.
바르게 다스려지지 않은 그 판자의 먼지나 때를 지우고
색을 칠하거나 글을 쓸 적에 다시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거늘,
문자나 글귀에 장애가 될 수 있겠느냐?
그렇고 그러하니라.
마나바야,
이 때문에 내가 ‘사대(四大)의 몸으로 궁전에 들 수 있다’고
설명한 것이 마치 그 판자와 같으니라.
마나바야,
궁전에 든다고 하는데,
어떻게 들어가는가?
마나바야,
그러나 이 모든 계[諸界]에는 두 가지 일이 있어서
방편으로 가르쳐 주기 때문에 궁전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두 가지의 일이라 하는가?
마나바야,
마치 저 판자를 아주 좋게 다듬는 것과 같나니,
곧 들었던 그대로 분별하고 사유하면서
‘이것이 나의 몸이라서 편안히 머무르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며,
또 마치 저 판자가 잘 다듬어졌기 때문에
많은 공력(功力)을 들이지 않고도 글자를 쓸 수 있어서
그 사람이 이런 것을 보고 나서 기쁜 마음을 낸 것과 같으니라.
그렇고 그러하니라.
마나바야,
한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해서[一心正念] 모든 번뇌를 제거하고 들은 바를 사유(思惟)하며,
해야 할 일을 두루 알면서 한 곳에 바르게 머무르는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마나바야,
또 마치 저 판자를 잘 다듬은 뒤에
좋은 붓과 먹을 얻어서 방편을 사유하면
글자의 점과 획이 분명하여
문자(文字)와 장구(章句)가 모두 다 원만하게 이루어지거니와,
마나바야,
만일 그 판자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붓과 먹이 정교하지 않게 되면
거기에 쓴 문자와 장구는 심히 분명하지도 않고 잘 알 수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렇고 그러하니라,
마나바야,
만일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지 않고 번뇌로 더러워지고 흐려져서
의업(意業)이 착하지 못하면,
해설한 바를 밝게 비출 수 없는 것이
마치 판자와 붓이 정교하지 못하여 문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마나바야,
너희들은 마땅히 이와 같은 아자문을 해설하여
점차 궁전에 들어가서 저 판자의 비유처럼 잘 지녀야 하나니,
만일 환히 알지 못하면 곧 다시 가서 여래께 물어야 하느니라.
그 때에 모든 보살들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런 인연으로 저희들 모두가 다시 이 방편문(方便門)을 잘 사유해야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다만 한쪽[一邊]만을 사유하여 알 뿐이지
다른 한쪽은 모르므로 이제 가르침을 받들어서
다시 정묘하게 사유하나니,
정묘하게 사유하여 알 수 있으면 문득 대선(大善)이 되지만,
만일 알지 못하면 다시 세존께 청하겠나이다.’
그 때에 방광여래는 다시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이런 인연으로
나는 이제 이 수미산 꼭대기에서
이와 같은 이치에 대해 모두 해석하지는 않으리라.
모름지기 뒤에 다시 대지(大地)에 내려가서
도달한 뒤에야 이 이치를 모두 해설하겠나니,
온갖 세간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니라.’
모든 보살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가령 여래께서 억 겁 동안 머무르신다 해도
저희는 끝내 이 정진의 마음을 버리지 않겠사오며
반드시 이 세 가지 구의 뜻[三句義]을 물어야겠나이다.’
부처님은 다시 그 모든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마나바야,
너희들은 대자비의 마음[大慈悲心]을 버리지 말며,
또한 오늘 여래가 우리들을 버린다는 생각도 내지 말라.
왜냐하면 여래가 하는 말은 거짓이 없기 때문이니,
여래의 구업(口業)은 끝내 허망하게 말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이 무엇인가?
모든 부처님ㆍ세존께서 구업으로 나온 것은
일체를 다 안락하게 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니라.
마나바야,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는 자비를 완전히 갖추심은
단지 모든 중생들을 연민하기 때문이니,
무릇 하시는 일이나
나아가 온갖 거동과 언어는 모두 온갖 중생들의 단 이슬[甘露]이자
좋은 약[良藥]이 되지 않음이 없느니라.
마나바야,
여래ㆍ세존께서는 때를 알아서 그들을 위하여 해설하시느니라.
왜냐하면,
마나바야,
이 모든 범부들은 여래께 정해진 업[定業]이 없기 때문이니,
가령 뒷날에 조그마한 인연을 얻는다 해도
도리어 어지러운 마음을 일으키므로
너희들은 이 법 가운데서 고달파하거나 게으름을 내지 말 것이니라.’”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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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Mahāprajāpatī 또는 마하비야화제(摩訶卑耶和題). 번역하여 대애도(大愛道). 줄여서 발제부인(拔提夫人). 구담족(瞿曇族)의 여성이란 뜻으로, 교담미(憍曇彌)라 한다. 중인도 가비라 성주 정반왕의 부인. 석존의 어머니 마야부인의 동생. 마야부인이 죽은 뒤, 정반왕의 부인이 되어 석존의 양육을 맡았다. 뒤에 난타(難陀)를 낳아 두 아들을 양육하였다. 석존이 성도한 뒤 제2년에 고향에 돌아가 포교할 때에 교법을 들었다. 그 뒤 성도 후 제5년에 정반왕이 죽자, 석존의 태자 때의 부인 야수다라와 함께 5백의 석가 종족의 여자들과 비야리의 대림정사(大林精舍)에서 출가하기를 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뒤 아난타의 도움으로 겨우 교단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것이 비구니의 처음이다. 석존이 입멸하기 3개월 전에 비야리성에서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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請問正法不可說, 敷揚佛教不可說,
□□□□□□□, 발생지혜불가설,
청문정법불가설, 부양불교불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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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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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에 두루함을 말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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