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엄법문경』
K0187
T0818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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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엄법문경』 ♣018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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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문 ♥ ◎[개별논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莊嚴法門經卷上
K0187
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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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 상권
문수사리신통력경(文殊師利神通力經) 또는 승금색광명덕녀경(勝金色光明德女經)이라고도 한다.
수(隋) 나련제야사(那連提耶舍) 한역
김달진 번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의 무리 5백 명과 큰 보살의 무리 8천 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왕사성에 한 음녀(婬女)가 있었는데,
그 여자의 이름은 승금색광명덕(勝金色光明德)이었다.
그 여자는 숙세(宿世) 선근(善根)의 인연으로
형모(形貌)가 단정하고 여러 가지 상(相)을 구족하였으며,
몸은 진금색(眞金色)으로서 광명이 빛나고 용모와 위풍이 아름답고 깨끗한 것이 세상에 드문 모습이었다.
정신과 지혜는 총명하고 민첩하며 변재(辯才)는 걸림이 없었으며,
음성과 말이 맑고 오묘하며 심원(深遠)하고 유연(柔軟)하였다.
말할 땐 항상 웃음을 머금고 거칠고 추악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이리 저리 살피고 나아가고 멈추는 모습이 편안하고 세심하였으며,
그녀가 있는 곳은 가건 머물건 앉건 눕건 땅이 모두 금빛으로 광명이 빛났으며,
입는 옷마다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 역시 모두 금빛으로 변했다.
당시 왕사성의 모든 사람들은
왕자건 대신의 아들이건 장자의 아들이건 부호의 아들이건 보는 자마다
탐욕에 물들어 마음을 두고 애착(愛着)하였으며 연모의 정을 버리는 일이 없었다.
이 금색녀가 마을에 있거나 거리에 있거나 시장에 있거나 강가 언덕에 있거나
동산과 숲의 노는 곳에 있으면
남자건 여자건 어린 사내아이건 어린 계집아이건 모두들 그녀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면서 싫증내는 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위덕(上威德)이라는 장자의 아들이 그녀와 즐기고 싶어서
많은 재보(財寶)를 주고는 서로 합의하고 함께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에 올랐다.
그 수레는 전체가 금ㆍ은ㆍ유리ㆍ마니(摩尼)ㆍ진주 등 매우 오묘한 온갖 보물로 엄숙하고 장엄하게 장식되었고,
보당(寶幢)과 미묘한 번개(幡蓋)를 세웠으며,
보좌(寶座)와 화만(華鬘)에 바르는 향과 가루 향과 같은 온갖 것을 배합한 뛰어난 향을 발랐다.
첨복화(瞻蔔華)로 영락(瓔珞)을 만들어 그 몸을 장식하고는 함께 보배 수레에 올랐다.
보배 수레 앞에서는 온갖 기녀와 악사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며,
그 수레 뒤에서는 또 온갖 맛있는 음식과 의복과 침구(寢具)를 가지고 차례대로 따르며 동산의 숲으로 나아갔다.
이때 대중들은 남자건 여자건 어린 사내아이건 어린 계집아이건 모두들 쫓아가며 좌우에서 구경하였다.
그때 문수사리(文殊師利) 동자는 선정(禪定)에서 일어나 일체 중생에게 대비심(大悲心)을 일으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떤 중생이 대승(大乘) 가운데서 교화를 감수(堪受)할 수 있을까?
어떤 중생이 마땅히 신통으로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중생이 마땅히 과거의 업연(業緣)으로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중생이 마땅히 정법(正法)을 듣고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한 다음,
금색녀와 장자의 아들이 함께 보배 수레를 타고 동산의 숲으로 가려는 것을 보았다.
보고 나서는 곧 근성(根性)의 차별을 관(觀)하고,
차별을 관한 뒤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여자는 과거 선업(善業)의 인연으로 교화를 감수할 수 있다.
나의 법을 들으면 곧 믿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문수사리가 신통력으로 몸에서 광명을 놓자
그 빛이 햇빛마저 가려 모두 사라지게 하였으니,
하물며 다른 빛이겠는가.
이때 문수사리는 입고 있던 옷과 얼굴에서 각각 빛을 비춰 1유순(由旬)을 가득 채웠다.
그리하여 그 많은 무리들이 모두 보게 하였다.
또 온갖 여러 가지 보배와 영락과 천관(天冠)과 비인(臂印)으로 그 몸을 장엄하여 보는 자들이 탐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한 뒤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길에 서 있었다.
빛으로 여자의 몸과 장자의 아들을 비추자 말과 보배 수레에 있던 광명은 모조리 어둠속에 묻혀버렸으니,
마치 먹 덩어리가 진금(眞金)과 나란히 있는 것처럼 전혀 빛나지 않았다.
그 금색녀는 문수사리가 온갖 보배로 장엄하고 옷이 청결하며 광명이 멀리까지 비치는 것을 보고는,
저 사람은 하늘의 동자라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몸과 장자의 아들에 대해 비루하고 추악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다시는 사랑하거나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는 문수의 몸과 옷에 대해 탐착하는 마음을 일으켜 남모르게 혼자서 생각하였다.
‘나는 저 사람에게 가서 함께 즐겁게 놀며 마음 내키는 대로 욕망을 따라주고 그의 옷을 얻으리라.’
이런 생각을 했을 때,
문수사리의 위신력으로 비사문왕(毘沙門王)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하늘에서 내려와
여자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저분에게 탐욕의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저분은 청정하여 탐욕이 없기 때문이다.”
금색녀가 말하였다.
“이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비사문(毘沙門)이 말하였다.
“이분은 바로 문수사리(文殊師利) 동자보살이시다.”
금색녀가 말하였다.
“무엇을 보살이라 합니까?
잘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늘을 말합니까,
그것은 야차(夜叉)입니까,
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입니까,
그것은 제석(帝釋)입니까,
그것은 범천(梵天)입니까,
그것은 사천왕천(四天王天)입니까?”
비사문이 말하였다.
“하늘이 아니며,
야차가 아니며,
건달바가 아니며,
아수라가 아니며,
가루라가 아니며,
긴나라가 아니며,
마후라가가 아니며,
제석도 아니며,
범천도 아니며,
사천왕천도 아니다.
그와 같은 무리는 모두 보살이 아니다.
보살이란 일체의 중생이 바라고 구하는 대로 그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아까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런 이를 보살이라 한다.”
이때 승금색녀(勝金色女)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말한 것과 같다면 내가 지금 옷을 구하면 반드시 얻겠구나.’
곧 수레에서 내려 문수사리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 이르러서는 말하였다.
“문수사리님,
입고 계신 옷을 저에게 베풀어 주시길 원합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누이여,
그대가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대에게 옷을 주겠습니다.”
▸여인이 말하였다.
“문수사리님,
무엇을 보리심(菩提心)이라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대의 몸이 곧 보리(菩提)입니다.” ◂
여인이 말하였다.
“왜 제 몸이 곧 보리입니까?
제가 이해하도록 거듭 자세히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여인이 게송을 설하여 옷을 구하였다.
문수께선 보리의 원 일으키신 지 오래 되셨으니
몸에 입으신 옷을 지금 저에게 주실 수 있으리다.
만약 베풀지 못한다면 보살이 아니니
말라버린 강(江)에 물이 없음과 같으리라.
이때 문수사리가 게송으로 답하였다.
그대가 만약 보리심을 낼 수 있다면
내 마땅히 소원에 따라 그대에게 옷을 주리다.
만약 보리가 견고한 사람이 있다면
일체 천인(天人)이 모두 공양하리라.
이때 승금색녀(勝金色女)가 다시 게송으로 물었다.
보리에는 어떤 뜻이 있고
보리는 누구에게서 얻으며
보리는 누가 줄 수 있으며
보리는 어떤 행(行)으로 이룹니까?
이때 문수사리가 금색녀에게 말하였다.
“지금 현재 부처님께서 계시니
그 명호는 석가모니 다타아가도(多他阿伽度:如來)ㆍ아라하(阿羅訶:應供)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正等覺)이십니다.
그 부처님께서 설하시기를 몸과 보리(菩提)는 모두 평등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대 몸에 5음(陰)과 12입(入)과 18계(界)가 있습니까?”
이 여인은 과거의 선근인연(善根因緣)으로 이 말을 듣고는 곧 법의 광명[法光]을 얻었다.
법의 광명을 얻은 다음 문수에게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저의 이 몸에는 5음과 12입과 18계가 있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대의 뜻에는 어떻습니까?
색이 깨달을 수 있고 알 수 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깨달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리 또한 그와 같아서 깨달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색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 또한 평등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말한 것입니다.” ◂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그대의 뜻에는 어떻습니까?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깨달을 수 있고 알 수 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깨달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리도 또한 그와 같아 깨닫거나 알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 또한 평등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말한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그대의 뜻에는 어떻습니까?
이 색을 두고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안에 있다,
밖에 있다,
중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ㆍ파리(頗梨)ㆍ잡색(雜色)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리도 역시 그와 같아 단정적으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색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 또한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말한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수ㆍ상ㆍ행ㆍ식을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안에 있다,
밖에 있다,
중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청ㆍ황ㆍ적ㆍ백ㆍ파리ㆍ잡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여인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색을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수ㆍ상ㆍ행ㆍ식 또한 말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보리도 또한 그와 같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수ㆍ상ㆍ행ㆍ식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말한 것입니다.
또 5음(陰)은 허깨비[幻]처럼 체성(體性)이 실답지 않으니,
전도(顚倒)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보리도 역시 허깨비와 같아서 체성이 실답지 않으며,
전도된 까닭으로 세속에서 생을 설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허깨비가 평등한 까닭에 5음이 평등하고,
허깨비가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또 5음은 꿈과 같아 체성이 불생(不生)입니다.
보리 역시 그와 같아 체성이 불생입니다.
이와 같이 꿈이 평등한 까닭에 5음도 평등하며 꿈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또 5음은 아지랑이와 같아 업연(業緣)으로 인해 생기는 것입니다.
보리 역시 아지랑이와 같아 업(業)도 없고 과보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아지랑이가 평등한 까닭에 5음이 평등하며,
아지랑이가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또 5음은 거울 속 형상과 같아 체성이 공(空)하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습니다.
보리 역시 이와 같아 가는 일이 없고 오는 일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거울 속 형상이 평등한 까닭에 5음이 평등하며,
거울 속 형상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또 5음은 다만 거짓 이름일 뿐이며,
보리 역시 이와 같아 다만 거짓 이름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5음이 평등한 까닭에 보리도 평등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또 5음은 짓는 사람이 없으니,
짓는 사람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체성(體性)이 없으니,
체성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불생(不生)이니,
생(生)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무상(無常)하니,
상(常)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즐거움이 없으니,
즐거움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청정하지 않으니,
청정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취(取)함이 없으니,
취함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집이 없으니,
집을 벗어났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가고 오는 일이 없으니,
가고 오는 일이 없다는 뜻이 곧 보리입니다.
5음은 성인(聖人)의 법론(法論)이고,
보리 역시 성인의 법론입니다.
이와 같이 논(論)과 비론(非論)의 법과 5음의 체성을 여래께서 일체를 다 깨달으셨기에 이를 보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5음의 체성(體性)이 곧 보리의 체성이고,
보리(菩提)의 체성은 곧 일체 모든 부처님의 체성입니다.
그대 몸속 5음의 체성이 곧 일체 모든 부처님의 체성인 것처럼 모든 부처님의 체성이 곧 일체 중생 5음의 체성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설한 것입니다.
또 5음을 깨닫는 것을 보리를 깨닫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5음을 떠나 부처님이 보리를 얻는 것이 아니고,
보리를 떠나 부처님이 5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방편의 지혜이니,
일체 중생은 모두 보리와 같고
보리도 또한 일체 중생과 같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설한 것입니다.
또 소위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라는 4대(大)의 법(法)이 생기지만
그 지계(地界)는 나[我]가 아니며,
중생(衆生)이 아니며,
수명(壽命)이 아니며,
포사(哺沙:丈夫)도 아니며
부가라(富伽羅:補特伽羅)도 아닙니다.
지계(地界)의 평등함이 곧 보리니,
과거에는 취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계(水界)의 평등함이 곧 보리니,
체성이 불생(不生)이기 때문입니다.
화계(火界)의 평등함이 곧 보리니,
체성이 깨달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풍계(風界)의 평등함이 곧 보리니,
체성이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계의 체성을 여래께선 깨달으셨기 때문에 보리를 얻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계ㆍ화계ㆍ풍계를 여래께선 깨달으셨기 때문에 보리를 얻으신 것입니다.
지의 성품을 깨닫는 것,
이것을 곧 보리라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또 지계는 물을 모르고,
수계는 불을 모르며,
화계는 바람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여러 요소들은 이름이 없고 설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또 그대의 몸에서 눈이라는 법이 생겼습니까?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생겼습니까?
누이여,
이 가운데 눈은 공(空)한 것이니 눈의 공한 체성이 곧 보리입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은 공한 것이니,
뜻의 공한 체성이 곧 보리입니다.
또 만약 눈의 체성이 공하다면 색은 설할 수 없으니,
색의 공한 체성이 곧 보리입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체성이 공하면 일체의 법은 설할 수 없으니,
법의 공한 체성이 곧 보리입니다.
또 눈은 색을 취하지 않고 보리 역시 눈처럼 색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은 소리와 향과 맛과 감촉과 법을 취하지 않으며,
보리 역시 그와 같아 일체의 법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안식계(眼識界)는 색계(色界)에 머물지 않고,
안식계(眼識界)와 색계(色界)는 보리에 또한 머물지 않습니다.
이식계(耳識界)와 비식계(鼻識界)와 설식계(舌識界)와 신식계(身識界)도 마찬가지며 의식계(意識界)는 법계(法界)에 머물지 않고,
이와 같이 의식계와 법계는 보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안식계(眼識界)와 보리계(菩提界)는 둘이 없고 다름이 없으며,
나아가 의식계와 보리계도 둘이 없고 다름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설한 것입니다.
또 눈을 깨닫는 것,
이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깨닫는 것,
이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눈의 체성은 공하니,
이와 같이 체성(體性)이 공(空)함을 깨달을 수 있으면 곧 이것이 보리입니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체성은 공하니,
이것을 깨달을 수 있으면 이것이 곧 보리입니다.
또 눈의 체성은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
이것이 곧 보리입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체성은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
이것이 곧 보리입니다.
눈에는 주인이 없고 취(取)하는 자도 없으며,
보리 또한 주인이 없고 취하는 자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역시 주인이 없고 취하는 자가 없으며,
보리도 역시 주인이 없고 취하는 자도 없습니다.
눈에는 남자라는 법과 여자라는 법이 없으며 또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보리에는 남자라는 법과 여자라는 법이 없으며 또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는 남자라는 법과 여자라는 법이 없으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은 또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보리에는 남자라는 법과 여자라는 법이 없으며,
보리 역시 남자가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또 눈[眼]과 색(色)은 여여(如如)로부터 온 것이니,
이와 같음을 깨닫는 까닭에 보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뜻[意]과 법(法)은 여여(如如)로부터 온 것이고,
이와 같음을 깨닫는 까닭에 보리라고 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또 그대의 몸에는
나[我]가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壽命)이 없고,
포사(脯沙)가 없고,
부가라(富伽羅)가 없고,
사람[人]이 없고,
마나마(摩那摩)1)가 없고,
짓는 자[作者]가 없고,
받는 자[受者]가 없고,
보는 자가 없고,
듣는 자가 없고,
냄새 맡는 자가 없고,
맛보는 자가 없고,
느끼는 자가 없고,
아는 자도 없습니다.
그 보리 역시
나가 없고,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고,
포사가 없고,
부가라가 없고,
사람이 없고,
마나마가 없고,
짓는 자가 없고,
받는 자가 없고,
보는 자가 없고,
듣는 자가 없고,
냄새 맡는 자가 없고,
맛보는 자가 없고,
느끼는 자가 없고,
아는 자도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일체의 법은 알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보리(菩提)라고 설한 것입니다.
또 이 몸은 앎[知]이 없고,
깨달음[覺]이 없고,
지음[作]이 없는 것이 마치 풀이나 나무,
돌이나 벽과 같습니다.
안의 지계(地界)나 밖의 지계를 땅의 체성이라고 하는데,
이 지계의 성품을 여래께서는 반야지(般若智)의 힘으로 이미 깨달으셨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의 몸이 곧 보리라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또 누이여,
그대는 마음ㆍ뜻과 화합하여 헤아리고 분별합니다.
그러나 이 마음과 뜻의 헤아림과 분별은 깨달음이 없고 앎도 없습니다.
피부에 있지 않고,
근육에 있지 않고,
골수(骨髓)에 있지 않고,
모발(毛髮)에 있지 않고,
손톱에 있지 않고,
안과 밖에도 있지 않고,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지 않습니다.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니며,
확고하게 머무르지도 않고 확고하게 머무르지 않는 것도 아니며,
여기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저기에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색(色)이 아니라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고,
장애하는 것도 없고,
분별도 없고,
쥘 수 없고,
화합하지 않고,
집에 머물거나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며,
청정하고 가장 청정하며,
광명이 밝게 빛납니다.
그 마음과 뜻은 헤아리고 분별하지만
번뇌와 화합하지 않고 또한 청정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체성이 깨끗한 까닭에 번뇌와 화합하지 않으며,
화합하지 않는 까닭에 청정한 광명인 것입니다.
또 그 광명은 몸이 없습니다.
몸이 없기 때문에 번뇌와 화합하지 않으며 역시 청정한 것도 아닙니다.
이와 같이 음(陰)ㆍ계(界)ㆍ입(入)의 체성이 곧 보리이며,
보리의 체성이 곧 음ㆍ계ㆍ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대 몸의 음ㆍ계ㆍ입의 성품이 곧 보리라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벗어나지 않으므로 보리라 하기 때문입니다.
음ㆍ계ㆍ입을 떠나 일 가운데서 보리는 얻을 수 없습니다.
음ㆍ계ㆍ입을 깨달으면 곧 이것이 보리입니다.
이런 까닭에 일체의 법이 평등함을 깨달으면 이를 보리라 한다고 제가 설한 것입니다.” ◂
이때 문수사리 동자가 이 법을 설하고 나자 때마침 허공에 5백의 여러 하늘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또 승금색광명덕녀(勝金色光明德女)를 따르던 남자와 여자와 어린 사내아이 어린 계집아이 등 200여 명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며,
하늘 사람 60명이 모든 법에서 법안(法眼)2)이 청정해졌다.
이때 승금색녀(勝金色女)는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였고,
마음이 청정해졌다.
그녀는 5체(體)를 땅에 던져 문수사리의 발에 예배하고 이와 같이 말하였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法]에 귀의합니다.
승가(僧伽)에 귀의합니다.”
3보(寶)에 귀의한 다음 범행(梵行)인 5계(戒)를 받고,
계법(戒法)을 받은 다음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마음을 낸 다음에 문수(文殊)에게 말하였다.
“저는 이제 이와 같은 가르침을 듣게 되었으니 일체 중생이 안온(安穩)함을 얻게 하기 위해 자비로운 마음을 일으키고,
부처의 씨앗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지극한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킵니다.
문수사리께서 저를 위해 이 보리의 법을 설하심과 같이 저도 마땅히 따라 행하며 또한 널리 일체 중생을 위해 이와 같은 법을 설하겠습니다.
문수사리여,
이와 같이 불법은 적멸(寂滅)하고 대적멸(大寂滅)합니다.
저는 알지 못한 까닭에 나쁜 각관(覺觀)3)에 따라 전도(顚倒)된 마음을 일으켜 신견(身見)4)을 집착하고,
스스로 육신을 탐착하며 또 남들로 하여금 탐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지극한 마음으로 청정하게 일체의 죄업(罪業)을 참회합니다.
문수사리의 말씀처럼 탐욕은 적멸의 법이며,
일체의 화합한 법들도 또한 이와 같이 적멸합니다.
만약 이 법을 알지 못해 탐착(貪著)을 일으키는 중생이 있다면 제가 그를 탐착에서 멀리 벗어나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편안히 머물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번뇌는 마치 죽은 사람과 같으며,
단지 전도된 망상(妄想) 때문에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도된 온갖 망상이 없다면 번뇌는 곧 사라집니다.
저는 이제 문수사리께서 말씀하신 법요(法要)를 듣고 일체의 번뇌가 구름이나 안개처럼 그 체성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번뇌는 번개와 같아 한 생각도 머물지 않고,
번뇌는 바람과 같아 체성이 불생(不生)입니다.
번뇌는 허공에 그린 그림과 같으니 볼 수 없기 때문이며,
번뇌는 물에 그린 그림과 같으니 그리자마자 곧 없어지기 때문이며,
번뇌는 야차귀(夜叉鬼)와 같으니 나쁜 각관(覺觀)을 낳기 때문이며,
번뇌는 열병(熱病)과 같으니 헛소리를 지껄이기 때문이며,
번뇌는 체성이 없는 것이니 나쁜 각관이 생기기 때문이며,
번뇌는 버리기 어려우니 ‘나다.’,
‘나의 것이다.’ 하고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물(物)이 없는데 망령되게 객진(客塵)5)을 취하는 것이니,
번뇌가 망령되게 생기기 때문입니다.
번뇌는 생각[想]을 따라 나타나니 나쁜 각관(覺觀)으로 취하기 때문이며,
번뇌는 눈[眼]과 같으니 온갖 경계가 일어나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번뇌는 그 체(體)가 다함이 없으니 마음이 탁함으로 인해 생기기 때문이며,
번뇌는 체성이 없으니 화합의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이며,
번뇌는 둥근 덩어리와 같으니 음ㆍ입ㆍ계가 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번뇌는 알 수 없는 것이니 명색(名色)이 없기 때문이며,
번뇌는 알 수 없는 것이니 좋은 깨달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번뇌는 씨앗과 같으니 보리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번뇌를 원인으로 해야만 보리를 만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님,
보리는 금강궐(金剛橛)6)과 같으니 중생의 번뇌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보리는 금강적(金剛跡)7)과 같으니 일체의 번뇌가 파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법계(法界)는 방편으로 깨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님,
번뇌를 보는 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경계는 보리를 순응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보리는 머무는 곳이 없고,
일체의 번뇌도 머무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生)은 곧 멸(滅)이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님.
이처럼 마음의 체성은 설명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또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설할 수도 없습니다.
탐(貪)ㆍ진(瞋)ㆍ치(癡)의 체성 또한 이와 같습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번뇌를 알기 때문에 탐욕이 많은 중생과 성냄이 많은 중생과 어리석음이 많은 중생을 잘 교화하며,
그렇다고 그 중생들을 괴롭히거나 혼란스럽게 하지도 않습니다.
나아가 평등한 부류의 중생들을 교화하면서 역시 괴롭히거나 혼란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문수사리님,
저의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처럼 일체 중생의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저의 번뇌처럼 일체 중생의 번뇌도 또 이와 같습니다.
또 문수사리님,
비유컨대 사나운 불길은 어떤 풀과 나무에도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모든 번뇌에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태양이 어둠과 함께 머물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미혹(迷惑)과 함께 머물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큰 바람은 어떤 산과 나무도 막을 수 없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일체 세간의 번뇌와 경계가 막을 수 없습니다.
비유컨대 허공은 겁화(劫火)8)에도 타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모든 번뇌의 불길이 또한 태우지 못합니다.
비유컨대 철애(鐵愛)9)라는 보살은 더러운 것에 머물지 않고 머무는 곳마다 일체가 청정해지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일체의 번뇌에 또한 머물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허공은 땅과 합하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번뇌의 온갖 결박과 화합하지 않습니다.
철위산(鐵圍山)은 바람이 움직일 수 없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일체의 번뇌가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물과 젖이 섞여 있어도 창곡(倉鵠)은 젖만 빨아먹고 물은 취하지 않듯이,
이와 같이 지혜롭게 행하는 보살은 일체의 번뇌와 화합할지라도 지혜만 취하고 번뇌는 취하지 않습니다.
울단월국(欝單越國:北俱盧洲)에서는 남녀가 화합할 때 모두 나무 아래로 가는데,
만약 친족(親族)이 아니면 나무 가지가 아래로 쳐져 그 몸을 가려 준다고 합니다.10) 보살도 이와 같아 근기(根機)가 미숙한 중생에게는 지혜를 드리워 교화하지 않습니다.
또 문수사리님,
저는 지금 이 일체의 번뇌에 대해 놀람과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일체 번뇌의 성품을 알기 때문이며,
보살의 두려움 없는 투구를 잘 썼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용맹한 사람이 싸움에 임하여 두려워하지 않음과 같으니,
만약 두려움을 일으킨다면 곧 용맹한 사람이 아닙니다.
보살 또한 그와 같습니다.
모든 번뇌에 대해 두려움을 일으킨다면 곧 보살이 아닙니다.
또 사람이 싸움터에 들어가 서로 싸울 때 남을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남에게 해침을 당한다면 용맹한 남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모든 보살이 번뇌로부터 해침을 당한다면 보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문수사리님,
물을 맑히는 구슬을 흐린 물에 던지면 물이 곧 깨끗해지고 그것은 흐린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처럼,
보살은 비록 번뇌와 화합한다 하더라도 번뇌에 오염되지 않습니다.”
이때 승금색녀는 이 말을 하고나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은 번뇌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번뇌의 생(生)을 알고,
번뇌의 멸(滅)을 안다면 그것은 번뇌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밝은 등(燈)이 온갖 어둠을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으니,
만약 어둠과 함께한다면 등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보살이 번뇌의 생을 보고 번뇌의 멸을 본다면 곧 번뇌를 벗어난 보살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번뇌를 벗어난 보살은 번뇌를 보지 않고 청정함도 보지 않으며,
보는 것도 아니고 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심(心)ㆍ의(意)ㆍ식(識)11)을 벗어난 것을 번뇌를 벗어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저런 곳에 대해 마음으로 분별하고 나아가 열반을 염(念)한다면 그것을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心]이나 심수(心數:
心所)가 생겨 죄와 복을 반연하기 때문입니다.
이 반연을 일체의 행을 지음[作行]이라 하고 행을 짓고 나면 이것을 유전(流轉)이라 하며,
만일 유전하는 법이라면 이를 실다운 유전이라고 하고 일체의 유전을 번뇌라고 합니다.
또 화합하는 것을 번뇌라고 합니다.
무엇이 화합하는가?
눈과 빛깔이 화합하고,
귀와 소리가 화합하며,
코와 향기가 화합하고,
혀와 맛이 화합하며,
몸과 감촉(感觸)이 화합하고,
뜻과 법(法)이 화합하며,
삼매(三昧)와 번뇌가 화합합니다.
왜냐하면 삼매에 들고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번뇌라고 합니다.
나쁜 각관을 벗어난 것을 번뇌를 벗어남이라 하며,
마음의 작용[心行]을 벗어난 것을 번뇌를 벗어남이라 하며,
공용(功用)이 없는 것을 번뇌를 벗어남이라 하며,
수량(數量)을 벗어난 것을 번뇌를 벗어남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살이 스스로 번뇌를 벗어나고 또 남도 번뇌를 벗어나게 하며,
일체 중생의 결박을 풀어주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한다면 여래(如來)께서는 이런 사람을 번뇌를 벗어나 정진하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이때 승금색녀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을 가장 뛰어나게 정진하는 보살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만약 보살이 공법(空法)을 증득하지 않아 신견(身見)을 가진 중생에게 비심(悲心)을 버리지 않으며,
무상(無相)을 증득하지 않아 악견(惡見)을 가진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무원(無願)을 증득하지 않아 소원하는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무작(無作)을 증득하지 않아 지음이 있는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무생법(無生法)을 증득하지 않아 태어나 늙고 죽는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무출법(無出法)을 증득하지 않아 생멸하는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으며,
성문(聲聞)과 벽지불(辟支佛)의 과(果)를 증득하지 않고 보살의 지위에 머물면서 일체 중생에게 비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을 가장 뛰어나게 정진하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비유컨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어려우니,
왜냐하면 좋은 방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문과 연각(緣覺)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법에 들어가면 방편이 없는 까닭에 스스로 나오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가장 뛰어나게 정진하는 보살은 방편이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도 있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싸움터에 뛰어들어 전투를 벌인다면 몸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의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에 들어도 방편이 있는 까닭에 곧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곧 보살의 방편이라 합니다.”
▸승금색녀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의 방편이란 무엇입니까?”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방편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생사(生死)를 버리지 않는 것이고
둘은 열반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공문(空門)이며 둘은 악견문(惡見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상문(無相門)이며 둘은 상(相)을 각관(覺觀)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원문(無願門)이며 둘은 원생문(願生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작문(無作門)이며 둘은 선근(善根)의 행을 심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생문(無生門)이며 둘은 시생문(示生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출문(無出門)이며 둘은 음입계문(陰入界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적멸문(寂滅門)이며 둘은 출생문(出生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문(定門)이며 둘은 교화문(敎化門)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법계문(法界門)이며 둘은 정법(正法)을 수호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문(聲聞門)이며 둘은 깊은 마음으로 보리를 행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벽지불문(辟支佛門)이며 둘은 4무애문(無礙門)입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은 두 가지 법문(法門)에서 남들을 위해 시현(示現)하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며,
일체의 법문에서도 또한 그와 같이 한다면 이를 방편이라 합니다.
또 두 가지 문이 있으니,
하나는 탐욕의 문이며 둘은 탐욕을 벗어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냄의 문이며 둘은 성냄을 벗어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 문이 있으니,
하나는 어리석음의 문이며 둘은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 문이 있으니,
하나는 번뇌의 문이며 둘은 번뇌를 벗어나는 문입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일체가 생하는 문이며 둘은 생을 벗어나는 문입니다.
이것을 보살의 방편문(方便門)이라고 합니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일체 범부(凡夫)가 행하는 문이며 둘은 일체의 학(學)12)과 무학(無學)13)과 성문과 벽지불과 부처와 보살과 여래(如來)의 문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 문을 알 수 있다면
이를 보살의 가장 뛰어난 방편이라고 합니다. ◂
-----------
1)
mānava의 음역으로 마나바(摩那婆)라고도 하며,
유동(儒童)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아(我)의 일종이다.
2)
교법(敎法)을 듣고 진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법안으로 소승은 초과에서 4성제(聖諦)의 진리를,
대승은 초지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3)
각(覺)은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것,
관(觀)은 세밀하게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심사(尋伺)라고도 한다.
4)
색(色)ㆍ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이 임시로 화합한 것인 신체에 실존하는 아(我)가 있다고 집착하고,
또 가변적 요소들을 영원한 속성을 가진 아(我)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를 말한다.
5)
번뇌를 가리키는 말이다.
번뇌는 모든 법의 체성(體性)에 대하여 본래의 존재가 아니므로 객(客)이라 하고,
또 그 번뇌는 더러운 것이므로 진(塵)이라 한다.
6)
수법(修法)을 할 때 단(壇) 위 네 귀퉁이에 세우는 기둥이다.
7)
금강저(金剛杵)라고도 한다.
승려들이 수법(修法)할 때 쓰는 도구의 하나이다.
금강(金剛)은 단단해 깨트리기 어렵다는 뜻이고,
저(杵)는 본래 무기의 일종으로 번뇌의 적을 쳐부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8)
세계가 파멸할 때 일어난다는 큰 불이다.
9)
ayaskānta.
자석(磁石)을 말한다.
10)
북구로주(北俱盧洲)에서는 얼굴 모양이 동일하여 서로 구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결혼할 수 있는 사이를 가리기 위해 나무 아래로 가는데,
친족이 아닐 경우 나무 가지가 밑으로 쳐져 가려 준다고 한다.
11)
심(心)은 범어 Citta의 번역으로 집기(集起)의 뜻,
의(意)는 범어 Manas의 번역으로 사량(思量)의 뜻,
식(識)은 범어 Vijñāna의 번역으로 요별(了別)의 뜻이다.
12)
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해 배우고 수행하는 과정에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13)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 더 이상 배우고 닦을 것이 없는 아라한(阿羅漢)을 말한다.
● [pt op tr] fr
_M#]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Dolcenera - Niente Al Mondo.lrc
◎◎[개별논의] ♥ ❋본문
● 일체의 차별없음과 생사현실에서의 차별의 관계
『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에서
문수보살님이 일체가 차별없이 공함을 강조하는 내용이 제시된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하다는 내용은
현실이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꿈과 그 성격이 같음을 나타낸다.
현실에는 온갖 차별이 있다.
그러나 본 바탕에는 일체 그런 차별을 얻을 수 없다.
그런 내용을 제시한다.
이런 경우 다음 의문을 갖기 쉽다.
그 내용을 다시 문수보살님에게 적용해보기로 하자.
그렇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경우와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차별이 없을 것이다.
또 그런 내용을 이해한 경우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차별이 없을 것이다.
또 보리심을 일으킨 경우거나 일으키지 않은 경우도마찬가지로 차별이 없을 것이다.
또 수행을 행하는 경우거나 행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차별이 없을 것이다.
소나 돼지나 개 말 닭 등과 부처님도 마찬가지로 차별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그런 가르침을 베풀 필요가 있는가.
또 보리심을 일으켜야 할 필요가 있는가.
또 수행을 할 필요가 있는가.
이에 대해 잘 판단을 해야 한다.
일체가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에서도
다시 그런 사정을 잘 깨달아 이해하고 그리고 보리심을 일으켜 수행에 정진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본래 그런 상태임에도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하고 수행에 정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받지 않아도 될 극심한 생사고통을 생생하고 명료하게 장구히 받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정을 처음 내용과 함께 잘 헤아려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 para-end-return ◧◧◧
◆vtoi1062
◈Lab value 불기2565/02/24 |
○ 2019_1105_104838_can_ct10.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Giovanni-Battista-Piranesi-ruins-of-egyptian-and-greek-architecture.jpg!HD [#M_▶더보기|◀접기| Artist: Giovanni-Battista-Piranesi https://en.wikipedia.org/wiki/Giovanni_Battista_Piranesi Title : ruins-of-egyptian-and-greek-architecture.jpg!HD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_M#] ○ 2020_0606_141425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GirlsRunning_Steer [#M_▶더보기|◀접기| English: Girls running; Walberswick Pier Author [show]Philip Wilson Steer (1860–1942)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_M#] ♥Eerste Exloërmond - Borger-Odoorn ,Netherlands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Barbara - La Fleur La Source Et Lamour ♥단상♥다양한 등척 운동의 개발 요즘 외출이 자유롭지 않다. 요즘 주변에 코로나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실내에서도 운동을 해야 한다. 하루 종일 연구작업하면서 타이핑할 일이 많다. 그래서 타이핑할 순간에도 병행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등척성 운동이 있다. 플랭크 운동과 비슷한 형태다. 플랭크 운동이나 등척성 운동이나 다 생소하고 어렵다. 그래서 플랭크~톤! 운동이라고 명칭을 새로 붙여본다. 바다에 떠서 광합성을 하는 것이 플랭크톤이다. 이들은 바다에 가만히 떠 있는 듯 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흡수한다. 그래서 생명활동의 기초가 되어 준다. 신체를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운동이 된다. - 혈관 뚫는 <등척성 운동>- 현재 이를 응용해 앉아서 타이핑하면서 병행할 수 있는 등척 운동방식을 찾는 중이다. 우선 앉아서 다리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힘을 줘 밀어대는 방안이 있다. 또는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약간 엉덩이를 들고 자세를 유지해보는 방안 정도를 찾아 보았다. 다만 조금 행하기 힘들다. 여하튼 의자에 앉아 타이핑 작업을 하면서도 함께 잘 병행할만한 등척성 운동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누어 쉴 때도 다양한 방안으로 운동이 가능하다. 양 손을 서로 깍지 끼어 서로 반대방향으로 당긴다. 바로 누어서 발굽으로 받치고 다리나 엉덩이 부분을 살짝 들어 유지한다. 한 손을 머리에 대고 머리는 손쪽으로 밀고 손은 머리쪽으로 민다. 작은 공을 힘을 주어 1 분간 쥐는 방안도 있다. 이런 방식이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2/2565-02-24-k0187-001.html#1062 sfed--대장엄법문경_K0187_T0818.txt ☞상권 sfd8--불교단상_2565_02.txt ☞◆vtoi1062 불기2565-02-24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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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종 계의 하나인 정공계(定共戒). →삼종계(三種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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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正精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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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산퀴즈
69* 215
218322 / 933
■ 다라니퀴즈
자비주 55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55 번째는?
55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곧 자비를 지닌 곳간이니,
항상 이 다라니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 보호하는 까닭이니라.
● 마하싯다야사바하 摩訶悉陁夜娑婆訶<五十五> ma hā sid dhā ya s vā hā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55
녤- 가 오례바리바 니
禰哩伽<二合引>虞隸波哩嚩<引>抳<五十五>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55일째]
소유사유불가설 $ 055▲摩魯摩摩魯摩為 一 ● 調伏, ○□□□□,所,所,一,身
□□□□□□□, 所有大願不可說,
所有境界不可說, 一切通達不可說,
□□□□□□□, 소유대원불가설,
소유경계불가설, 일체통달불가설,
그 가운데 생각함도 말할 수 없고
그 가운데 큰 서원도 말할 수 없고
거기 있는 경계도 말할 수 없고
온갖 것 통달함도 말할 수 없고
[56째]
신업청정불가설 $ 056▲調伏調伏為 一 ● 離憍慢, ○□□□□,語,意,信,妙
□□□□□□□, 語業清淨不可說,
意業清淨不可說, 信解清淨不可說,
□□□□□□□, 어업청정불가설,
의업청정불가설, 신해청정불가설,
몸의 업[身業]이 청정함을 말할 수 없고
말하는 법 청정함을 말할 수 없고
마음의 법 청정함을 말할 수 없고
믿는 이해 청정함을 말할 수 없고
●K0587_T0201.txt★ ∴≪A대장엄론경≫_≪K0587≫_≪T0201≫
●K0187_T0818.txt★ ∴≪A대장엄법문경≫_≪K0187≫_≪T0818≫
●K1504_Txxxx.txt★ ∴≪A대장일람집≫_≪K1504≫_≪Txxxx≫
법수_암기방안
55 이마 forehead, 額上 【액상】 이마의 위
56 눈거풀 瞼 【검】 eye lid
55 이마 forehead, 額上 【액상】 이마의 위
55 이마 forehead, 額上 【액상】 이마의 위
14835
234
○ 2020_1114_154540_can_ori 삼각산 도선사
○ 2018_1023_150018_nik_AR25 예산 덕숭산 수덕사
○ 2018_1022_174637_can_ct18_s12 공주 태화산 마곡사
○ 2018_1022_170216_can_ar16 공주 태화산 마곡사
○ 2020_1017_160500_can_ar45 삼각산 화계사
○ 2020_1017_154620_can_exc 삼각산 화계사
○ 2020_0930_145733_can_CT34 화성 용주사
○ 2020_0930_145351_can_AB12 화성 용주사
○ 2020_0911_122234_nik_Ab27 제천 의림지 대도사
○ 2020_0910_181652_nik_ab41 월악산 신륵사
○ 2020_0910_115514_can_Ab31 속리산 법주사
○ 2020_0909_155350_can_ct9 무주 백련사
○ 2020_0908_155322_can_AB7 합천 해인사
○ 2020_0905_152209_can_ori_rs 오대산 적멸보궁
○ 2020_0904_132101_can_Ab31 원주 구룡사
○ 2020_0904_084251_nik_BW25 여주 신륵사
○ 2019_1201_162835_nik_Ab31_s12 원주 구룡사
○ 2019_1106_162011_can_Ab31_s12 화순 계당산 쌍봉사
○ 2019_1106_155200_can_BW25 화순 계당산 쌍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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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106_135714_can_ar45_s12 화순 영구산 운주사
[##_Image|kage@cPttqK/btqYuryw8RR/KHQs2YljkKjVIN9LEwgml1/img.jpg|alignCenter|style="max-width: 100%;" data-original-height="1292" data-original-width="875" data-origin-width="0" data-origin-height="0" data-ke-mobilestyle="widthContent"|||_##]
○ 2020_0909_155350_can_ct9 무주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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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엄법문경_K0187_T0818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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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엄법문경』 ♣018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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