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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2일 월요일

불기2565-02-22_결정장론-k0598-003


『결정장론』
K0598
T1584

하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결정장론』 ♣0598-003♧

하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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決定藏論卷下
K0598

❋❋본문 ◎[개별논의]

결정장론 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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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장론 하권
決定藏論卷下

진제 한역
김철수 번역
梁天竺三藏眞諦譯

심지품 ③
心地品之三

경에는 말하는 바에 따르면
여섯 가지의 뛰어난 지혜가 있으니,
음(陰)ㆍ입(入)ㆍ계(界)ㆍ4제(諦)ㆍ인연(因緣)ㆍ22근(根)이다.

모습[相]ㆍ뜻[義]ㆍ분별과
차제(次第)ㆍ섭수(攝受)ㆍ의지(依止)이다.
이 여섯 가지 법에 의지하면
음(陰), 입(入) 등을 알 수 있네.

색(色)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열한 가지나 있으니,
안(眼) 등 5근(根)과
촉(觸)까지의 5경(境) 및
법입(法入) 가운데 색이 존재한다.

이 색은 4대(大)에 의지하여 존재하는데
이 4대는 모두 다 애[礙相]이다.

▸수(受)의 모습은 어떠한가?
여섯 가지가 있으니,
눈[眼] 등 6근(根)의 촉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세 가지의 수에는 두 가지의 의지(依止)가 있으니
색과 심을 의지하여
각각 신수(身受)와 심수(心受)라 한다.
왜냐하면 5근은 모두 색의 상(相)이기 때문이다.

謂有六種眼等觸生,又三種受,有二種依。謂色及心依色身受。
『결정장론』 3권(ABC, K0598 v17, p.341b11-b12) ◂



【문】만약에 다섯 가지 감각기관[根]이 모두 색을 의지하여
눈 등의 수가 생기는 것을 신수라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5근을 신(身)이라 하지 않습니까?

【답】5근은 각각 자상(自相)이 있어서
공용(功用)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에 상이 다른 경우라면
같은 신상(身相)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근수(根受)를 신수라 이름하지 않는다.

【문】
몸[身]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눈 등의 근이 존재하고
근을 의지하여 수를 낳기 때문에 신수라고 한 것이니,
여기에 아무런 허물이 없지 않는가?
만약에 떠나지 않음을 허물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음은 몸을 떠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심수(心受)를 또한 신수라고 할 수 있으니,
무릇 일체의 수를 다 신수라고 이름할 수 있다.

★★

---------
答曰
身與諸根不得相離
心不如是如有衆生生無色處離身有心是故
根受得名身受
心得離身故名心受
是一切受得有二名
謂一切受皆是用
相三種因緣
一者是塵勝力

*참고 [유가사지론]
【문】만약 몸을 떠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고 하면, 의근(意根)도 그러하여 몸을 떠나지 않고 구르므로, 의근에 의한 느낌도 응당 몸의 느낌이라 하여야 한다. 이는 곧 온갖 모두가 몸의 느낌이어서 마음의 느낌은 없는가.

【답】모든 색 있는 감관은 결정코 몸을 떠난 것이 아니지만, 뜻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 왜 그러한가. 무형 세계[無色界]에 나는 유정의 의근은 몸을 떠나서 구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섯 감관으로부터 나는 모든 느낌을 합하여 몸의 느낌이라고 하며, 뜻에 의한 것만을 유독 마음의 느낌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통틀어 두 가지라 말하니, 몸과 마음의 느낌이 그것이다. 또 온갖 느낌은 모두가 받아들임의 모양[領納相]이다.
『유가사지론』 53권(ABC, K0570 v15, p.917a01)

-----------

【답】신(身)과 모든 근(根)은 ★★그러나 마음은 이와 같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중생이 무색계의 처소에서 태어나면 몸을 떠나서 마음만 존재한다.
따라서 근의 수는 신수라고 할 수 있으나
마음은 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심수(心受)라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수는 두 가지 명칭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일체의 수는 모두 상(相)의 세 가지 인연을 사용한다.
첫째는 진승력(塵勝力)이고,
둘째는 사유승력(思惟勝力)이며,
셋째는 자재승력(自在勝力)이다.
상(想)의 양상[相]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여섯 가지가 있으니,
앞의 경우와 같다.
또 상(想)은 여섯 가지 모습[相]을 낳으니,
유상상(有相想)ㆍ무상상(無相想)ㆍ소상(小想)ㆍ대상(大想)ㆍ무량상(無量想)ㆍ무용상(無用想)이 있다.

이 일체의 상에는 두 가지 범주의 차이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이고,
둘째는 출세간이다.

욕계를 반연하는 것을 소상이라 하고,
색계를 반연하는 것을 대상이라 하며,
공식처(空識處)를 반연하는 것을 무량상이라 하고,
무소용처(無所用處)를 반연하는 것을 무용상이라 한다.

이 욕계 등에서는 유상상(有相想)이라 하며,
비상비비상처에서는 무상상(無相想)이며,
출세간상이란 모든 학인(學人) 및 무학인(無學人)의 상(想)을 말한다.
이 상은 온갖 상(相)으로 상(想)의 양상을 분별한 내용이다.

행의 양상[相]은 어떠한가?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섯 가지가 있고,
또한 다섯 가지 일[事]이 있다.
첫째는 모든 진경계(塵境界)와 함께하는 것이요,
둘째는 함께 갖추도록 하는 경우이고,
셋째는 유위(有爲)를 멀리 여의는 것이며,
넷째는 번뇌업을 일으키는 것이고,
다섯째는 마음이 자재함을 얻는 것이다.

또 간략히 말해서 세 가지가 있으니,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이다.

또한 일체의 과(果)를 이끄는 것을 행상이라 한다.
식(識)의 양상[相]은 어떠한가?
이에도 또한 여섯 가지가 있다.
이른바 안식(眼識)에서부터 의식(意識)까지이다.
또 식의 양상을 분류하면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용분(用分)이고,
둘째는 연다분경(緣多分境)이며,
셋째는 주제이분(住諸異分)이다.
응분에는 세 가지가 있고,
경분(境分)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며,
주분(住分)에도 세 가지가 있다.
이와 같은 지분들을 분별하면 총 열여덟 가지로서 진경계(塵境界)를 취하여 상(相)으로 삼는 것이며 5음(陰)의 양상[相]인 것이다.
음(陰)의 뜻은 무엇인가?
색이란 과거,
미래,
현재 내지 가깝거나 먼 일체의 색인데,
종합하여 음의 뜻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색(色)에서부터 식(識)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이 종합적으로 포함하여 모든 화합한 것을 다 음의 뜻이라고 한다.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화합이 음의 뜻이라고 하셨을까?
이 모든 음은 오로지 화합한 것일 뿐 실체적인 아(我)가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화합을 음의 뜻이라고 하신 것이다.
색음(色陰)이란 무엇인가?
분별해 보면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종류에 따름[隨類]이고,
둘째는 양상에 따름[隨相]이며,
셋째는 식(識)이 의지함과 의지하지 않음이고,
넷째는 식을 떠나거나 식을 떠나지 않음이며,
다섯째는 진경계에 대한 생각[想塵]이고,
여섯째는 색구경처(色究竟處)이다.
이 일체의 색이 소위 4대(大)이며 4대를 의지하는 것이므로 수류라고 하는 것이다.
색의 모습[色相]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정색(淨色)이요,
둘째는 정진(淨塵)이며,
셋째는 심진(心塵)이다.
공상(共相)이란 모든 것이 질애(質礙)인데 일체의 색은 다 공상이다.
식(識)이 의지함과 의지하지 않음이란 무엇인가?
중생의 종류[衆生數]를 의지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색이 있는 곳에 식이 맨 처음 들어가서 마침내 수(受)를 낳는 것을 식이 의지함이라 하고,
이와 같은 색을 떠나면 식이 의지하지 않음이라 한다.
식을 떠나거나 떠나지 않음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색이 식을 떠나지 않는 것을 자분(自分)이라 한다.
공통적으로 식들이 색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식을 떠난 것을 부자분(不自分)이라 한다.
유사하게 상속하여 촉을 생하는 것을 자분이라 하고,
비록 유사하게 상속하더라도 촉을 생하지 아니한 것을 부자분이라 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상[想]이 있으니,
색진(色塵)이라 한다.
첫째는 색상(色想)이요,
둘째는 애상(礙想)이며,
셋째는 종종상(種種想)이다.
색상에는 세 가지 양상이 있으니,
첫째는 색을 현현(顯現)하는 것이고,
둘째는 색을 장애함이며,
셋째는 색을 모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양상의 진(塵)은 순서대로 청색이나 흑색 등을 취하면 색상이라 하고,
사람을 방해하며 다니는 것을 애상이라 하며,
남녀나 전답,
가옥 등의 모습을 취하는 것을 중종상이라 한다.
진색색구경(塵色色究竟)이란 간략히 말해 두 가지가 있으니,
업의 증상연으로 하계인 욕계나 색계에 떨어지는 경우와 만일 네 가지 공처(空處)에 의지하면 업을 짓게 되더라도 색이 없고 자재정(自在定)에 의지하면 오묘한 광색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일체의 색종(色種)에서 자재한 지혜를 얻는가?
정(定)을 닦아 나타내기 때문에 이것은 오묘한 정(定)에서 비롯되는 색이다.
수음(受陰)이란 무엇인가?
분별하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受)의 품류이고,
둘째는 자상(自相)이며,
셋째는 생기는 처소[生處]이고,
넷째는 사유 분별이며,
다섯째는 소멸하는 처소[滅處]이다.
수의 품류란 무엇인가?
수용하는 처소의 법이다.
자상이란 무엇인가?
고(苦)ㆍ낙(樂)ㆍ불고불락(不苦不樂)이다.
낙수란 태어남의 즐거움[生樂],
머무는 즐거움[住樂]이니,
괴로움이 없어져 애착하는 인연이다.
고수(苦受)란 태어나는 괴로움[生苦],
머무는 괴로움[住苦]으로서 즐거움이 없어져 애착을 여의는 인연이다.
불고불락이란 행고(行苦)이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애착하는 인연이다.
이 일체의 수(受)는 모두 다 고(苦)이며 수고상(受苦相)이라 한다.
생기는 처소란 무엇인가?
열여섯 가지 촉을 따라 수음(受陰)이 생긴다.
열여섯 가지란 무엇들 말하는가?
육근촉(六根觸)ㆍ애촉(礙觸)ㆍ의언촉(依言觸)ㆍ고촉(苦觸)ㆍ낙촉(樂觸)ㆍ불고불락촉ㆍ욕촉(欲觸)ㆍ진촉(瞋觸)ㆍ무명촉(無明觸)ㆍ명촉(明觸)ㆍ비명무명촉(非明無明觸)이다.
근을 의지하여 진경계(塵境界)를 취하는 것을 육근촉이라 한다.
진을 의지하여 사유하면 애촉을 생한다.
마음을 의지하여 말을 내는 것을 의언촉이라 한다.
세 가지 수속은 결박[縛]과 해탈[解]을 의지한다.
탐욕,
진에,
우치(즉 무명)의 촉은 번뇌의 결박을 의지한다.
명족과 비명무명족은 해탈을 의지한다.
사유 분별이란 무엇인가?
모든 부처님에게는 여덟 가지로 분별하셨다.
“수(受)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수의 쌓임[集]이란 무엇인가?
수의 멸이란 무엇인가?
수집(受集)의 행도(行道)란 무엇인가?
수멸(受滅)의 행도란 무엇인가?
수미(受味)란 무엇인가?
수의 허물이란 무엇인가?
수가 멸하는 처소는 어디인가?
생기는 모습을 분별하면 세 가지 수가 있다.
“촉(觸)의 쌓임이 있기 때문에 수(受)의 쌓임이 있으며……”라고 경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이와 같이 여덟 가지 양상으로 수음을 분별하면 첫째는 자상분별(自相分別)이고,
둘째는 현인(現因)분별이며,
셋째는 인멸(因滅)분별이고,
넷째는 현재와 미래의 분별이며 다섯째는 수멸도(受滅道)분별이고,
여섯째는 탁용(濁用)분별이며,
일곱째는 청정(淸淨)분별이고,
여덟째는 수멸처(受滅處)분별이다.
이 상을 분별이라 한다.
멸처(滅處)란 무엇인가?
초선에서는 근심의 뿌리[憂根]를 멸하고,
2선(禪)에서는 괴로움의 뿌리[苦根]를 멸하며,
3선에서는 기쁨의 뿌리를 멸하고,
4선에서는 즐거움의 뿌리[樂根]를 멸하며,
멸진정에서는 평등의 뿌리 [捨根]를 멸하는 것을 수멸처분별(受滅處分別)이라 한다.
상음(想陰)이란 무엇인가?
분별하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종류를 따름[隨類]이고,
둘째는 양상을 따름[隨相]이며,
셋째는 전도(顚倒)이고,
넷째는 부전도(不顚倒)이며,
다섯째는 결정(決定)이다.
경계의 별상(別相)을 취하여 상(想)을 생하는 법을 그 종류에 따름이라 한다.
양상에 따르는 것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전에 설명한 경우와 같다.
경계를 취함이 비록 다르더라도 모든 생각[想]이 공상(共相)인 것을 양상에 따름이라 한다.
범부는 무지(無智)와 무명이 마음을 덮어 그릇된 사유를 일으킨다.
두 가지 전도를 의지하면 네 가지 전도가 출현한다.
무상한 것을 의지하여 항상한 것으로 여기니,
이렇게 항상하다는 생각을 닦으면 견취(見取)에 의지하여 두 가지 전도를 낳는다.
말하자면 괴로움 가운데서 즐거움을 헤아리고 깨끗하지 못한 데서 깨끗함을 헤아린다.
신견(身見)에 의지하면 아(我)에 대한 전도를 일으켜 무아(無我) 가운데서 법을 취하여 나의 모습[我相]이라 한다.
또한 재가인의 경우에서는 마음의 전도[心顚倒]라 하고 출가인이라면 견전도(見顚倒)라 한다.
분별해 보면 또한 다른 상전도(想顚倒)가 있다.
네 종류에서 그릇되게 닦는 생각을 내는 것을 생각의 전도[想顚倒]라 한다.
네 종류에서 결정적인 지혜를 냈다는 믿음을 일으켜 분별하면 이를 견전도라 한다.
전도되지 않은 생각이란 무엇인가?
지혜 있는 이들에게는 무명이 없어서 바른 사유를 일으켜 무상의 경계에 대해서는 무상으로 파악하고,
괴로움에 대래서는 괴로움으로 파악하며,
깨끗하지 못함에 대해서는 깨끗하지 못함으로 파악하고,
무아에 대해서는 무아로 파악하니,
바르게 닦을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전도되지 않은 생각이라 한다.

이 네 가지 종류에 대해
믿는 즐거움[信樂]을 일으키는 것을 마음이 전도되지 않음[心不顚倒]이라 한다.
이 네 가지 종류에 대해 바른 견해로 바르게 아는 것을 견해가 전도되지 않음[見不顚倒]이라 한다.
결정(決定)이란 무엇인가?
분별해 보면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진경계에 대한 결정이요,
둘째는 수용(受用)의 결정이며,
셋째는 가명결정(假名決定)이며,
넷째는 부실결정(不實決定)이며,
다섯째는 실의결정(實義決定)이다.

진경계에 대해 자상으로 취하거나
유사한 상[似相]으로 취하는 것을 진경계에 대한 결정이라 한다.
진경계를 수용하여 개별적으로 다르게 상을 취하는 것을 수용결정이라 한다.

자타에 의지하여 태어남이나 성씨[姓] 등의 세속의 언어를 따라
경계에 대해 생각을 짓는 것[作想]을 가명결정이라 한다.
전도되게 진경계를 취하는 것을 부실결정이라 하고,
여실하제 진경계를 취하는 것을 실의결정이라고 한다.

행음(行陰)이란 무엇인가?
분별해 보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진경계이고,
둘째는 개별적인 머무름[別住]이며,
셋째는 깨끗하지 못함이고,
넷째는 깨끗함이며,
다섯째는 현상[事]이다.
여섯 가지 사유[思]가 뛰어난 힘[勝力]을 모아 과를 이끌면 이를 행의 진경계[塵]라 한다.
태어남,
늙음,
머무름 등 불상응행이 화합하여 적취(積聚)하는 것을 개별적인 머무름의 행이라 한다.
왜냐하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머무르는 행이라 한 것이다.
삼독(三毒) 등의 행을 이름하여 깨끗하지 못함이라 한다.
신(信) 등 선근을 이름하여 깨끗한 행이라 한다.
앞서와 같은 다섯 가지 경우를 같이 진경계와 함께 아는 것을 현상[事]이라 한다.

식음(識陰)이란 무엇인가?
분별해 보면 이 또한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입처(入處)이고,
둘째는 깨끗하지 못함[不淨]이며,
셋째는 의지하는 까닭이고,
넷째는 머무는 까닭이며,
다섯째는 많은 종류이다.
욕계 가운데 식이 외색입(外色入)을 의지하면 이름하여 입처(入處)라 한다.

색계의 정천(淨天)에서 자신의 음(陰)을 의지하는 것을 색이라 한다.
식입처(識入處)에는 두 가지 입(入)이 있다.
4공처(空處)의 식(識)이 각기 사신의 음을 의지하는 것을 입처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입처의 분별이다.
이 범부의 식은 두 가지 낙(樂)에 의지하여 깨끗하지 못함을 낳는다.
즉 현재의 진경계를 의지하여 즐거움을 수용하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함이라 하고,
미래에 의지하여 늙음 들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낳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하므로 깨끗하지 못함이라 한다.
식이 의지하는 것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것들이 식을 낳는다.
즉 눈[眼] 등의 6입(入)을 의지하면 식이 의지함이 생기기 때문에 여섯 가지의 명칭을 얻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겨[糠]를 의지한 불,
쇠똥을 의지한 불의 경우에서와 같다.
이는 명칭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4식(識)의 주처(住處)를 분별해 보면 경에서는 “음(陰)이 의지하는 경계가 마음의 주처가 되니 색 가운데 식이 머무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자세한 것은 경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나아가 “나는 결코 식이 동쪽에 이른다고 말하지 않으며 다른 방향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현세의 법에 열반을 즐기지 않고 스스로 적정(寂靜)하여 청량함에 이르면 범자재(梵自在)를 얻는다고 나는 이와 같이 말하노라”라고 하셨다.
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경전의 말씀 가운데는 4식(識)의 머무는 처소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다시 간략히 세 가지로 요약하석 설명하면 인연(因緣)과 머무름[住]과 처소이다.
궁극적으로 인연은 적정함에 머문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 가지를 설하시어 4식주(識住)를 드러내셨다.
번뇌 경계의 종류와 번뇌가 의지하여 머무는 것을 번뇌 집착이라 한다.
이 두 가지를 경계를 집착함이라 하니,
첫째는 경계이고,
둘째는 취함[取]이다.
경계란 번뇌가 탐애를 반연하여 “이것이 내 물건이다”라고 말하면 이는 경계에 대한 집착이다.
또 나[我]라는 견해의 번뇌로 나라고 생각한다.
또한 네 가지 탐 등의 신결(身結)이 있으니,
이 업인연(業因緣)이 곧 경계를 취하는 것이다.
위에서 집착한 바와 같은 것이 마음이 머무는 처소[心住處]이다.
왜냐하면 모든 번뇌의 경계가 마음을 의지하여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축축한 옷감에는 티끌들이 묻기 쉽고,
기름진 땅에는 종자가 잘 자라나는 것과 같다.
모든 범부인들은 아직 애욕을 싫증내 떠나 대치하지 못하여 감수함[受]이 식을 이끈다.
따라서 미래세에 몸을 받아 태어나는 일을 갖추게 하고 나아가 범부의 성품을 버리지 못한다.
이곳에서 몸을 받아 태어나는 일을 갖추는 것을 능주(能住)라 하고,
이러한 상속하는 생을 생사의 처소라 한다.
그 밖의 나머지 머무르는 인연[住緣]에 관해서는 전에 말한 바와 같다.

이와 같은 일체를 인연과 머무름과 처소가 있다고 한다.

유색계(有色界)의 식들은 오고 감이 있으며 무색계(無色界)에서는 마음이 사라지거나 생기는 것이 있다고 만다.
이 세 처소에 머무름[處住] 내지 목숨을 버릴 경우에는 알의 두 처소와 마찬가지로 생겨나 증장하여 장대해진다.
이와 같이 사량하기 때문에 모든 식의 머무는 처소와 그 궁극적인 경지를 알 수 있다.
만약 어떤 주장에서 이 뜻과 다르게 말한다면 이는 오로지 문자의 차이일 뿐 그 이치는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문자의 뜻은 별도로 분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묻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대답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곧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대답하여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한다.
만약에 답을 한다면 후에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정말로 어리석었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을 했었단 말이야’라고 한다.
그러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일체의 색에서부터 행음(行陰)의 애(愛) 등 모든 번뇌에 이르기까지 단박에 항복시켰기 때문에 업의 결박을 낳지 않는다.
지혜가 있기 때문에 근본이 영원히 없어진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가 있는가?

모든 재가인들은 탐애와 성냄의 번뇌에 의하여 업진(業塵)을 짓나니
인연을 맛보고 인연을 원망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
출가인은 계금취견(戒禁取見)과 실결(實結)로 인해 업을 낳는다.
계금취견의 번뇌는 탐애와 똑같은 양상[同相]으로 하늘 세계에 태어나기를 구하고 실결번뇌는 성냄[瞋]과 똑같은 양상이기 때문에 열반을 비방하게 된다.
이와 같은 번뇌의 결박은 마음자리[心地]를 의지하여 생각으로부터 생기지만 이러한 모든 번뇌는 대치하면 멸하기 때문에 색 등을 취하여 경계로 삼으려는 것은 영원히 멸한다.
이렇게 멸하기 때문에 번뇌[惑]가 있는 식들은 네 가지 주처[四住處]에서 다시는 머무르지 않게 되니,
모든 대치된 식들이 진실로 청정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으면 머무는 처소[住處]가 고요함[寂靜]을 알 수 있다.

인연이 멸하기 때문에 미래세에 태어나 구족하며
마땅히 상속하는 일은 다시는 생기지 않으니,
이를 인연이 적정함에 머문다고 한다.

아마라식이 세간의 식을 대치하여
지극히 깊고 청정한 상태를 머무르지 않음[不住]이라 한다.

또한 이 식은 인연생이 아니고,
공해탈문(空解脫門)을 잘 닦아 익히기 때문에 업을 낳지 않으며,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을 잘 닦아 익히기 때문에 만족한 줄을 알며[知足],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을 잘 닦아 익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음[不動]에 머무를 수 있으니,
앞의 네 가지 뜻에서와 같이 바른 해탈[正解脫]을 얻을 수 있다.
또 진경계에 관행하여도 아(我)ㆍ아소(我所)에 대해 집작하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색 등 모든 진경계가 파괴되어 없어지고 마음에는 갈애가 없으니,
이 모든 상(相)들에 대한 마음이 지극히 청정하다.

식이 청정하기 때문에 스스로 파괴되어 없어지지 않으며 또한 다른 인연으로 인해 없어지지도 않는다.
또 상속함이 없기 때문에 시방의 처소에서 다시는 몸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
목숨에 대해 죽음에 대해 탐욕이 없기 때문에 욕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음은 나무와 같고 수(受)는 그림자와 같다.
그 때에는 두 가지가 다 없기 때문에 나무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것이다.
세속의 마음이 멸하기 때문에 현재법이 모두 없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무루심의 유학(有學)이 해탈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차제대로 적정(寂靜)을 얻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은 무학(無學)이 해탈하기 때문에 청정함을 얻는다.
네 가지 나머지가 멸하기 때문에 범자재(梵自在)를 얻는다.
【문】무엇 때문에 식들의 머무는 처소를 말하지 않는가?
【답】말은 자상(自相)이 아니기 때문에 식이 깨끗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마음의 자상은 깨끗하다[淸淨]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 가지 처소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일체의 번뇌가 지극히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
탐욕 등은 미세하여 알기가 어렵지만 색 등은 그렇지 않아서 번뇌인(煩惱因)이 아니다.
따라서 색 등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중생도 하나의 식처(識處)에서 애착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치 색 등에서와 같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식은 주처(住處)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를 식음주처분별(識陰住處分別)이라 한다.
많은 종류의 분별[多種分別]이란 이를 말하면 세 가지가 있다.

먼저 탐욕 있는 마음,
탐욕 없는 마음,
성냄 있는 마음,
성냄 없는 마음 등은 경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으며,
나아가 아직 해탈하지 못한 마음과 바르게 해탈한 마음이 있으니,
여래께서는 이를 첫 번째라 하셨다.
이는 계(界)를 분별하는 것을 떠난 분별의 경우이다.

욕계 중에는 마음에 네 가지가 있다.
즉 착한 마음,
선량하지 못한 마음,
오염된 마음,
오염되지 않은 마음이다.
색계 중에는 마음에 세 가지가 있으니,
앞의 것 가운데 선량하지 못한 마음은 제외된다.
무색계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무루(無漏)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학(學)과 무학(無學)이다.
욕계의 선심(善心)을 분별해 보면 두 가지가 있으니,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生得]과 배워 익혀 얻은 것[學得]이 있다.
오염되지 않은 마음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과보(果報)ㆍ위의(威儀)ㆍ공교(工巧)ㆍ변화(變化)이다.
욕계의 변화는 일종의 타고난 것인데 예컨대 천ㆍ용ㆍ귀(鬼) 등은 수혜(修慧)의 과(果)가 없다.
색계 중에서는 공교가 없으며,
무색계에서는 단지 과보만 있다.
선심(善心)은 아래에서부터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다 해당되니,
이것이 두 번째이다.
계(界)를 의지하여 분별해 보면 다양한 마음의 많은 종류로 분별할 수 있으니,
번뇌가 갖가지이기 때문이다.
욕계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및 수도(修道)로 파괴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색계와 무색계에도 욕계의 경우에서처럼 각기 다섯 가지가 있으므로 합하면 총 열다섯 가지이다.
여기에 무루심을 합하면 다시 열여섯 가지가 된다.
이를 세 번째라고 한다.

멸하기 때문에 첫 번째를 분별한 것이며,
바로 떠남[離]인 것이다.
다시 세 가지 품류의 조분(助分)을 분별하여 삼마제를 삼나니,
첫째는 사동(使動)이요,
둘째는 불사동(不使動)이며,
다시 첫째는 정(定)을 얻지 못함[不得定]이요,
둘째는 정(定)을 얻음이며,
다시 첫째는 바르고 청정하지 못함[不正淨]이요,
둘째는 바르고 청정함[正淨]이다.
첫 번째 품류에서는 더럽게 물든 마음을 가진 사람이 탐욕 등 장애의 마음을 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선심(善心)이나 무기심(無記心)을 가진 사람이 탐욕 등을 일으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분별하면 탐욕 등의 마음이 있기도 하고 탐욕 등의 마음이 없기도 하다.
두 번째 품류에서는 어떤 때는 안[內]을 의지하여 마음을 한 곳에 정안(定安)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경계에 대한 생각[念]이 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섯 경계에 대해 마음이 산란하게 되면 지극히 퇴몰해지기 때문에 나태해지고 번뇌가 덮어 장애하게 된다.
나태해져 희락경계(喜樂境界)에 떨어지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여 일시적으로 마음이 들떠 동요한다.
바르게 경계를 취할 경우에는 마음이 들뜨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마음이 침몰하거나 들떠 요동하면 번뇌장(煩惱障)으로 인해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지만 마음이 침몰하지 않는 등의 경우를 없애면 마음이 고요하게 된다.
바르게 사유함으로써 근본적인 선정(禪定)을 얻는 경우를 심정(心定)이라고 하고,
앞의 이러한 선정의 모습을 떠난 경우를 부정심(不定心)이라고 한다.
궁극적인 도[究竟道]에 이르렀기 때문에 바르게 닦았다[正修]고 하고 궁극적인 경지마저도 멸하였기 때문에 바른 해탈[正解脫]이라 하며 앞의 두 가지 양상을 떠나면 바르게 닦아 익힐 수 없으므로 바르지 못한 해탈[不正解脫]이라 한다.
여러 정(定)의 모습을 취해 살펴보면 세 번째의 품류를 알 수 있다.
이 상을 식음분별이라 한다.

식음(識陰)의 차제는 어떠한가?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낳아 지음[生作]이요,
둘째는 대치의 도[治道]이며,
셋째는 잡염의 인(因)이 짓는 것[染因所作]이고,
넷째는 머물러 짓는 것[住作]이며,
다섯째는 분별로 짓는 것[分別作]이고,
여섯째는 처지에 따라 짓는 것[如處作]이며,
일곱째는 거친 것에 따라 짓는 것[如麤作]이고,
여덟째는 그릇 등과 같이하는 일[如器等作]이다.
낳아 지음[生作]이란 무엇인가?
근(根)을 의지하고 색(色)을 의지하면 안식(眼識)을 낳는다.
의(意)를 의지하고 법(法)을 의지하는 것도 이와 같다.
『차제경(次第經)』에 따르면 앞에서 말한 색음(色陰)은 심수(心數)1)가 의지하는 것이고 뒤에서 말한 식음(識陰)은 수(受) 등의 심수가 그 안에 있으니,
이를 낳아 지음의 차제라 한다.
대치의 도[治道]의 차제란 무엇인가?

네 가지 전도(顚倒)를 제거하기 위해 4념처(念處)를 말하는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색에 대하여 깨끗한 것이라고 헤아리는 이에게 신념처(身念處)를 설해 주고,
수(受)에 대해서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이라고 헤아리는 이에게 수념처(受念處)를 설해 주며,
상(想)과 행(行)에 의지하여 무아(無我)를 아(我)라고 헤아리는 이에게 법념처(法念處)를 설해 주고,
마음에 의지하여 무상(無常)한 것을 항상한 것으로 헤아리는 이에게 심념처(心念處)를 설해 준다.
잡염의 인(因)이 짓는 것[染因所作]의 차제란 무엇인가?
남자가 여색을 보면 애욕의 잡염을 일으킨다.
무엇 때문인가?
애욕을 받아 맛보기 때문이다.
애욕을 받아 맛본다는 것은 상전도(想顚倒)에 의지한다.
상전도는 행(行)의 번뇌에 의지한다.
행번뇌는 식음(識陰)을 의지하고 근과 진경계를 의지한다.
진경계를 수용하여 수(受)를 낳고 많은 종류의 진경계를 취하는 것을 상(想)이라 한다.
현세의 진경계를 수용하여 온갖 번뇌를 낳는 것을 행(行)이라 한다.
온갖 번뇌에 의지하여 깨끗하지 못한 식과 선업이나 불선업을 낳아 미래에 그에 합당한 괴로움을 받기 때문에 다시 깨끗하지 못함[不淨]을 얻는다.
식(識)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할 것이다.
머물러 짓는 것[住作]의 차제는 어떠한가?
식(識)이 네 가지 처소에 머무는 것이니,
첫째는 색이요,
둘째는 수이며,
셋째는 상이고,
넷째는 행이다.
왜냐하면 욕계 가운데 색은 색이 머무는 처소[色住處]라고 하는데,
욕계에서는 색을 원만하게 갖추기 때문이다.
색계 가운데서는 수가 머무르는 처소[受住]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수가 현현하기 때문이다.
세 무색계에서는 상이 머무는 처소[想住處]라 하는데 왜냐하면 상이 현현하기 때문이다.
제4공(第四空)에서는 행이 머무는 처소[行住處]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큰 사유[大思]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팔만대겁은 사유의 결과이기 때문에 네 곳[四處]에 머문다고 말한다.
이상을 머물러 짓는 것의 차제라 한다.
분별로 짓는 것의 차제[分別作次第]란 어떠한가?
색음(色陰)으로 말미암아 색을 보거나 소리를 들어 다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수음(受陰)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위와 아래가 있어 괴로움과 즐거움을 낳는다.
상음(想陰)으로 말미암아 이름과 종성(種姓)을 알 수 있다.
행음(行陰)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과 지혜를 분별할 수 있다.
식음(識陰)으로 말미암아 음(陰) 가운데서 나[我]를 계착(計著)하게 된다.
이상을 분별로 짓는 것의 차제라 한다.
처지에 따라 짓는 것의 차제란 예컨대 재가인이라면 색이나 수의 인연으로 투쟁을 일으키고 만약 출가인이라면 상이나 행의 인연으로 또한 투쟁을 낳는다.
식은 두 처지 모두에 인연이 된다.
거친 것에 따른 짓는 것의 차제란 색이 가장 거친 것인데 6식(識)의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수음(受陰)을 드러내는 것은 세 가지 수(受)가 있기 때문이다.
남녀 등의 여러 가지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등은 스스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수ㆍ상ㆍ행ㆍ식을 떠나서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릇 등과 같이하는 일의 차제란,
색은 비유하자면 그릇과 같은데 세 가지 감수[三受]를 담기 때문이다.
수는 비유하자면 음식과 같은데 몸을 훼손하거나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상은 비유하자면 복어나 넙치와 같은데 다양한 수를 취하기 때문이다.
행은 비유하자면 음식이 이르는 것[食至]과 같은데 괴로움이나 즐거움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식은 비유하자면 음식을 먹는 사람과 같은데 수 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섭수(攝受)란 무엇인가?
몇 가지 음(陰),
몇 가지 입(入),
몇 가지 계(界),
몇 가지 인연분(因緣分),
몇 가지 처와 비처[處非處],
몇 가지 근(根)을 섭수하는가?
예컨대 색음에서부터 식음에 이르기까지의 음을 섭수하는 것이다.
색음은 하나의 음(陰)과 열 가지 입(入)과 열 가지 계(界)와 법입(法入)과 법계(法界) 가운데 일부분을 말하며 여섯 인연[緣] 가운데 일부와 처와 비처 가운데 일부와 일곱 가지의 근을 포함한다.
수음이 섭수하는 것은 하나의 음과 법입과 법계의 각각의 일부분을 말하며 하나의 인연분과 세 가지 연의 일부분과 처와 비처의 일부와 근 가운데 다섯 가지이다.
상음이 섭수하는 것은 하나의 음과 법입과 법계의 각각의 일부분을 말하며 세 가지 연의 일부분과 처와 비처의 일부를 포함하며 근은 섭수하지 않는다.
행음이 섭수하는 것은 하나의 음과 법입과 법계에 또한 일부분을 말하며 네 가지 인연분 및 다섯 가지 연(緣)의 일부분과 처와 비처의 일부와 근(根) 가운데는 63근 가운데 일부이다.
식음이 섭수하는 것은 하나의 음과 하나의 입(入)과 일곱 가지 계(界)와 두 가지 인연분과 세 가지 연의 일부분과 처와 비처와 근 가운데는 열세 가지 근 가운데 일부를 말한다.
이와 같이 음과 입에서부터 나아가 근에 이르기까지 서로 상호 섭수한다.
또 다른 섭수가 있으니,
열 가지 음 등 모든 법이 자신의 종자를 섭수하는데 이를 이섭(異攝)이라 한다.
음(陰) 등 모든 법이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섭수하면 이를 상섭(相攝)이라 한다.
음 등 모든 법이 일체의 처소에 두루하면 이를 생섭(生攝)이라 한다.
음 등 모든 법이 낙수(樂受) 등에 머무르면 이를 별주섭(別住攝)이라 안다.
예컨대 음 등이 일시에 함께 일어나면 이를 불리섭(不離攝)이라 한다.
모든 음법들이 삼세에 주재하면 이를 시섭(時攝)이라 한다.
모든 음법들이 처소에 의거하여 생기면 이를 처섭(處攝)이라 한다.
모든 음법들의 다섯 가지가 원만 평등할 경우에는 이를 구족섭(具足攝)이라 한다.
모든 음법들이 분분(分分)하여 갖추어지지 않았으면 이를 소분섭(少分攝)이라 한다.
모든 음들이 여여한 모습[如如相]인 경우에는 이를 진섭(眞攝)이라 한다.
이와 같이 음으로부터 근에 이르기까지 합하면 열여섯 가지 섭(攝)이 있다.

또 세 가지가 일체의 법을 섭수하는 경우가 있으니,
예컨대 색음(色陰)ㆍ법계(法界)ㆍ의입(意入)이다.
음(陰)이란 무엇인가?
몇 가지 색을 의지하면 색음이 생기며,
몇 가지 처소를 의지하면 명칭[名]에 포함되는 음이 생기는가?
6처(處)를 의지하면 색음이 생기나니,
첫째는 의처(依處)이며,
둘째는 주처(住處)이며,
셋째는 와구처(臥具處)이며,
넷째는 근처(根處)이며,
다섯째는 근의처(根依處)이며,
여섯째는 행(行)이 능(能)한 경우의 모든 정지처(定地處)이다.
식은 일곱 처를 의지하면 명칭에 포함된 음이 생긴다.
첫째는 욕(欲)이요,
둘째는 색이고,
셋째는 진경계이며,
넷째는 각(覺)이며,
다섯째는 관찰이며,
여섯째는 정행방편(淨行方便)이며,
일곱째는 청정(淸淨)이다.
욕(欲) 등 네 가지 처는 재가인을 위해 설한 것이고,
관찰의 처는 바로 출가인이 정근(精勤)하여 계를 지키는 것이다.
정행방편이란 미래선을 얻음이고 일곱번째 청정이란 근본선을 얻음이다.
이렇듯 네 종류의 사람을 위하여 일곱 가지에 다시 네 가지로 재분류하여 설하였다.
색음을 분별함에 대해서는 바로 뒤에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색을 의거해 분별하여 울다남으로 말한다.

물질과 종류와 인허(隣虛)
생겨남과 형상과 상속(相續)
업(業) 등과 찰나와 단독[獨]
경계의 뒤섞임을 말하니 열 가지라.

다시 몇 가지의 물질이 색음에 포함되는가?
눈은 모습[相] 하나의 물질을 섭수하는데 이는 안식이 의지하는 바이다.
이 색은 청정하다.
떠나지 않고 포섭하는[不離攝] 경우에는 일곱 가지의 물질이 있나니,
말하자면 눈[眼]ㆍ몸[身]ㆍ땅[地]ㆍ빛깔[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觸]이다.
여기에다 세 가지 계가 포함되면 열 가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잇는데,
일곱 가지는 앞의 것과 같고 여기에 물ㆍ불ㆍ바람의 계(界)가 부가된 것이다.
눈이 물질을 대하는 경우에서와 같이 귀나 코 그리고 혀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네 가지의 근(根)2)을 떠나기 때문에 신근(身根)에는 아홉 가지 물질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네 가지 근을 떠나는 경우에도 몸은 홀로 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리의 계[聲界]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곳에서는 소리가 있다고 별도로 설한다.
열한 가지 진물(塵物)을 분별해 보면 예컨대 세(細)ㆍ활(滑)부터 건(健)에 이르기 깨끗하지 못하고 견고하지 못한 것을 의지하여 거칠거나 가벼운 것을 생하며,
깨끗함이 잘 합해지지 않으면 연촉(軟觸)을 생한다.
바람과 물이 서로 섞이는 것을 의지하면 냉촉(冷觸)을 생한다.
지탱할 인[持因]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기갈을 낳고 또한 파리하고 약하게 된다.
지탱할 인이 잘 갖추어지면 요소[大]에 의지하여 원만 평등한 힘과 포만한 촉(觸)이 생기고,
요소가 적절하지 못하면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고 온갖 병촉(病觸)이 생긴다.
몸이 전변하여 4대가 조화되지 않으면 노촉(老觸)을 생한다.
명근(命根)이 전변하면 4대가 조화되지 못하고 사촉(死觸)을 생한다.
피가 원만하게 갖추어지지 못하면 병환을 낳는 경우가 있고,
음식에 독한 성분이 있으면 잠시 기절하는 촉이 있게 된다.
땅과 물이 서로 섞이면 탁촉(濁觸)이 생긴다.
가고 오고 움직이고 굴러 마음이 번뇌를 일으키면 피로와 권태의 촉이 생긴다.
이상의 인연을 떠나면 모든 것이 꺼지고 쉬는 촉[消息觸]이 생긴다.
4대가 조화되면 신색(身色)이 감소하지 않고 편안하게 쉬고 강건한 촉[休健]을 생하며 모든 촉을 잘 화합한다.
4대가 별도로 머묾[別住]에 관해 설하자면 여섯 가지가 있으니,
깨끗한 대와 모두 깨끗하지는 않은 대,
견고한 대와 모두 견고하지는 않은 대,
섭수하지 못하는 대,
그리고 섞이지 못하는 대,
원만 평등한 대,
원만하고 평등하지 못한 대이다.
일체의 진색(塵色) 등은 촉(觸)에 이른다.
두 가지 식으로 자식(自識)과 심식(心識)을 아는데,
동시에 아는 경우도 있고 동시가 아닌 경우도 있다.
색계 중에는 향(香)과 미(味)가 나타나지 않으며 종자의 근본[種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식(摶食)이라는 것도 없다.
식욕을 떠났기 때문이며,
향과 미 두 가지 진(塵)은 단식을 거두기 때문에 코와 혀 두 가지 식은 작용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종자의 근본은 존재한다.
색음에 포함되는 색에는 아홉 가지 물질이 있으니,
4대와 대(大)를 의지하는 5진(塵)이다.
일체 다른 색들은 가명으로 음(陰)이라 한다.
법입 가운데 색은 두 가지를 얻으니,
물유(物有)와 가유(假有)이다.
정자재(定自在)를 의지하여 정 가운데서 색을 관찰하는 것을 물유라 한다.
바로 정(定)의 과(果)인 것이다.
정을 변화시켜 식진(識塵)과 함께하면 계색(戒色)이든 계색이 아니든 모두 가명(假名)이다.
또 정진(定塵)은 색처(色處)의 과(果)인데 정처(定處)의 색이 상응하기 때문이다.
정대(定大)를 의지하면 세간법을 생할 수 있다.
유루정이나 무루정의 색을 의지하면 이는 세간법이며 출세간법은 아니다.
왜냐하면 상(相)이 있으면 사유하는 정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일체의 정인(定人)은 색을 생할 수도 있고 색을 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유하자면 화생(化生)과 같다.
만일 사유하지 않고 앞의 자재함을 의지하면 어둠과 장애가 없어 깨끗한 광명이 자연함을 얻어 현재세에 이른다.
이를 물유사유(物有思惟)라 한다.
해탈을 사유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모든 색을 볼 수 있으나 색이 아직 현전하지 않는 것은 가명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출세간의 정,
경계의 진은 아니다.
출세간의 정색(定色)은 사유할 수가 없다.
욕계의 색은 색계의 색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색계의 색은 청정하여 광명이 출현하며,
극히 오묘하고 미세하여 하근(下根)의 진(塵)이 아니며,
고수(苦受)가 없거나 고수를 넘어서며,
사유할 수 없어 인허진(隣虛塵)3)에 머물러 방해됨이 없으며,
심상(心想)을 따라 거칠거나 미세함[麤細]을 얻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가 욕계의 색과 다르다.
간략히 말하자면 색음에는 여섯 가지 모습이 있으니,
자상ㆍ공상ㆍ능의와 소의상[依依者相]ㆍ수용상[用相]ㆍ업상(業相)ㆍ미묘상[妙相]이다.
땅,
물 등의 요소[大]가 견고하거나 윤택하게 적시거나 움직이거나 하는 것이 사대의 자상이다.
안(眼) 등 모든 근은 깨끗함이 그 자상이다.
이를 일컬어 자상이라 한다.
모든 것에 막아 장애함이 있으면 이는 색의 공상(共相)이다.
사대가 서로 의지하여 5진(塵)이 되면 이는 상관상(相關相)이다.
내입(內入)은 색이 있으면 이를 수용하여 증상하기 때문에 외진(外塵)이 다양한 종류를 낳게 된다.
어떤 한 색이 쌓이면 견촉(堅觸)이라 하고,
축축하게 적시거나 열기가 있거나 움직임이 있거나 하는 요소가 서로 섞이어 내입(內入)에 수용하면 이를 용상(用相)이라 한다.
땅 등 사대는 섭수하고 성숙시키고 이고는 것에 의존하니,
이 일이 업상(業相)이다.
또한 별도의 업이 있으니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인허세색(隣虛細色)을 묘상(妙相)이라 한다.
이 미묘한 상에는 세 가지가 있다.
나누어 부서짐이 극히 미세하여 극히 세밀함을 낳으니 자재하게 극히 세밀히 나누어 부서지는 경우와,
인허극미가 극히 세밀함을 낳는 경우와,
바람 등 온갖 미세한 것과 중음(中陰)의 색과 색계 중의 색과 무색계의 색이 자재하게 세밀한 경우이기 때문에 극미라는 이름을 얻는다.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말씀하시길 “인간의 삶에 머물면서 평등심을 얻고 자신의 마음을 닦고 자신의 마음을 장엄하고 자재심을 지어 함께 딴 곳에서 머물되,
서로 장애하지 않으니 또한 번뇌의 해악이 없다”고 하신 바와 같다.
만약에 이 이후에 색구경천(色究竟天)의 대범자재(大梵自在)로 태어난다면 이는 그 생처(生處)가 하열한 염부제인데 법을 듣기 위해서이다.
하나의 털끝을 열여섯 부분으로 나눈다.
땅은 하나의 전체로 된 부분이다.
중천(衆天)이 함께 머물러도 서로 장애되지 않으면 이를 자재극미라 한다.
이와 같이 색음(色陰),
물질의 종류[物種],
사유,
인허,
색상이 몇 종인가를 분별하여 간략히 다섯 가지로 말했나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경에서 본지(本地)의 지혜에 대해서 말한 바와 같다.
즉 나누어 쪼개지기 때문에,
종류가 분별되기 때문에,
단독의 자분(自分)이기 때문에,
공동으로 동반하는 부분[共伴分]이기 때문에,
방분(方分)4)이 없기 때문이다.
색(色)의 궁극[究竟]을 분석하는 지혜가 결정적이고 이 인허분(隣虛分)은 몸[身]이 있는 것이라고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인허라는 것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여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색이 모인다고 해서 인허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인허를 분별해 보면 열다섯 가지가 있으니,
안(眼) 등 5근과 색(色) 등 5진(塵)과 4대(大)와 법색(法色)이다.
자상을 분별하여 이를 독분(獨分)이라 하고,
인허를 화합한 것을 공동으로 동반하는 부분[共伴分]이라 하는데,
왜냐하면 땅 등 인허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장애하는 법이 있는데 하나의 처소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공동으로 동반하여 머물기 때문이니,
장애함이 없지는 않으나 예컨대 마음[心]과 대지(大地)가 근(根)에 합해짐이 유사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수용하여 유사한 업을 낳는 것과 같다.
증상연이 있기 때문에 모든 색이 화합되며 공동으로 근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게 된다.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모든 것이 화합된 것이라 할 수 없으니 안식(眼識) 등의 진(塵)과 근의 진[根塵]을 사용한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동으로 동반하여 서로 떨어지지 않으면 어떤 일종의 색이 장애를 하던 장애를 하지 않던 예컨대 중음에서부터 범색에 이르기까지를 공동으로 동반하는 부분이라고 하는데 색이 구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모든 인허(隣虛)의 색에는 방분(方分)이 없는데 화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색을 화합하여도 인허의 방분이 한 방향의 처소를 떠난다면 인허색이 없는 것이니,
앞에서 말한 대로 다섯 가지 인허가 있는 것이다.
다섯 종류의 눈이 있으니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이다.
다섯 가지 인허는 몇 종류 눈의 경계일까?
인허는 육안이나 천안으로는 볼 수가 없고 나머지 세 종류의 눈으로는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색이 화합했을 경우에는 전안으로 안과 밖,
위와 아래,
앞과 뒤의 밝고 어두움을 볼 수 있으나 인허는 볼 수가 없다.
인허는 지혜로써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인허의 색상(色相)은 체(體)로써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무엇 때문에 인허가 생겨남도 없고 멸함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말할 수 있다고 하는가?
【답】온전히 갖추어져 화합하면 앞의 것이 생기기 때문이며,
아직 이르지 않았거나 나중인 때에는 별도의 체(體)를 얻을 수 없고 중간에 멸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물방울과 같다.
다섯 가지 양상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인허에 대한 사유가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색을 화합하면 자체(自體)가 있기 때문에 인허가 머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첫 번째 바르지 못한 사유이다.
바르게 사유하지 못하여 인허가 생멸한다고 여기는 것이 그 두 번째이다.
인허의 색이 공동으로 동반한다거나 동반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이 그 세 번째이다.
오직 인허 중에서만 색이 화합하여 머문다고 여기는 것이 그 네 번째이다.
인허는 화합하여 다른 색을 화합할 수 있고 다른 색은 인허와는 다르게 생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그 다섯 번째이다.
이와 같은 것들은 인허에 대한 바르지 못한 사유이다.
예컨대 바른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상(相)을 취하더라도 앞의 다섯 가지 바르지 못한 사유를 떠나 인허에 대해 바르게 사유하므로 다섯 가지 공덕을 일으킨다.
색처(色處)를 화합하는 인허를 분석하는 까닭에 이를 잘 적용하여 수도(修道)를 행하고 모든 경계에 대해 의혹이 없어 이를 바탕으로 자재하게 되니,
이것이 첫 번째 공덕이다.

신견(身見)이 멸하고 도가 점점 늘어나 훌륭하게 되니 이것이 두 번째 공덕이다.
아만(我慢)이 멸하고 도(道)의 방편이 생기니,
이것이 세 번째 공덕이다.
온갖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일어났다가 잠깐 사이에 그쳐 마음이 청정하게 되니,
이것이 네 번째 공덕이다.
공(空),
무상(無相) 두 가지 해탈문으로 수혜(修慧)를 얻으니,
이것이 다섯 번째 공덕이다.
생겨나는 것에 관해서 간략히 말해 보면 색이라는 물질에는 다섯 가지의 생(生)이 있다.
말하자면 의지하여 생겨남[依生],
종자에 의해 생겨남[種生],
이끄는 세력에 의해 생겨남[牽生],
증장하여 생겨남[長生],
무너지며 생겨남[壞生]이다.
의지하여 생겨남이란 무엇인가?
사대(四大)가 조색(造色)에 의지하여 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대는 조색이라 이름하지 않으며 이 사대가 빌 경우에 색이 생기는 것이다.
이 색의 화합이 사대가 의지하는 것이니,
색의 자상(自相)을 알 수 있으며 화합하는 가운데 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시 인허가 있는 경우라면 그 자상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개별적인 색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간략히 말해 상이 있음과 상이 없음의 경우에 관해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인허가 볼 수는 없어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만약에 공상(共相)에 의지하면 똑같은 물질이 되는가,
아니면 똑같지 않은 물질이 되는가?
그 뜻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분량이 있기 때문이고,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똑같은 분량이 아니라면 마땅히 조금밖에 알 수 없을 것이고 조금 아는 것조차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니,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약에 세력이 있기 때문에 물질에 의지함이 똑같지 않다고 한다면 자상을 떠나기 때문에 별도의 세력이 없으니 세력이 똑같지 않다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를 의지하여 생겨남[依生]이라 한다.
종자에 의해 생겨남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종자로부터 생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비유하자면 곡물의 낱알은 많은 인연이 이르면 싹이 계지(界地)나 재[灰] 등에서 생기는 것과 같다.
여러 가지 인연을 만나면 딱딱한 사물이 부드럽게 되고 부드러운 사물이 딱딱하게 된다.
열이 없던 것이 열을 내고 열이 있던 것이 열이 없어지며,
움직이지 않던 것이 움직이고 움직이던 것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색(色)을 좋아하거나 색을 좋아하지 않거나 자상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종자가 되어 많은 종류를 낳게 된다.
이를 종자에 의해 생겨남[種生]이라 한다.
이끄는 세력에 의해 생겨남이란 무엇인가?
내입(內入)의 업이 증가하면 움직이지 않는 외부의 사물이 생겨나니,
비유하자면 기세간(器世間)과 같다.
숙업이 이끌기 때문에 내입이 생겨나니,
비유하자면 업에 따라 5도(五道)에 들어가 바깥 세계의 모든 색물(色物)을 생한다.
또 세 가지 업이 이끈다.
첫째,
울단월(鬱單越)은 과보를 의지하여 스스로 생하니 사천왕천(四天王天)은 제4천에 이른다.
둘째,
업이 드러나 나타나 스스로 외색(外色)을 이끌어 생하게 되니 마치 제5천에서와 같다.
셋째,
다른 사람의 생각의 업[他念業]을 의지하면 외색이 생겨나니,
예컨대 46천에서와 같다.
이상을 이끄는 세력에 의해 생겨남이라 한다.
증장하여 생겨남이란 무엇인가?
인연을 잘 갖추면 많은 종류를 생할 수 있다.
말하자면 색이 증장하는 것을 말하니,
물이나 비가 잘 갖추어지고 물을 잘 대주면 싹 등이 증장하는 것과 같다.
이를 증장하여 생겨남이라 한다.
증장하여 생겨남의 양상을 떠나면 이를 무너짐의 생겨남[壞生]이라 한다.
조색의 생함[造色生]이란 예컨대 많은 사물이 있어도 돌로 갈아 화합시키면 분별할 수가 없어서 개별적인 모습을 알 수가 없는 것과 같으니,

참깨, 콩, 보리 등의 사물이 한 곳에 쌓여 있을 때 그 종류를 분별하여 알 수 있는 경우와는 같지 않다.
왜냐하면 생겨나는 양상[生相]이 능히 그 일의 쓰임[事用]을 낳으니,
그 생하는 인(因)이 증상의 조색으로 인해서 생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일체의 행이 자신의 종자의 근본으로부터 후에 곧 생기게 된다면,
무엇 때문에 사대색(四大色)을 의지하여 조색이 생한다고 말하는가?

【답】4대가 증가하거나 감함이 있고 색을 지음도 대(大)를 따라 또한 증가하거나 감소함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안식(眼識)은 사대를 떠나면 별도로 생기지 않으니,
비유하자면 대지(大地)와 같다.
사대가 간직되기 때문이니,
비유하자면 연지의(綖持衣)와 같다.
세 가지 인연 때문에 대지는 증가하거나 감소함이 있으며 방편은 능히 조색을 증가하게 하거나 감소하게 할 수 있다.
공용(功用)이 있기 때문에,
엄의 인연이기 때문에,
정자재(定自在)이기 때문이다.
대지(大地)는 능히 조색을 증가하게 하거나 감소하게 할 수 있으니,
세 가지 힘 때문이다.
세 가지란 무엇인가?
파괴하거나 증장시킬 수 있는 힘,
기계(器界)를 수응할 수 있는 힘,
생인(生因)이 될 수 있는 힘이다.
수대(水大)는 축축하게 적시는 힘이 있기 때문에,
불은 익히기 때문에,
바람은 건조시키기 때문이니,
이러한 공용이 있기 때문에 사대의 증감(增減)은 조색을 증감시킨다.
전업(前業)이 유사한 여러 사대를 생하면 유사함을 얻게 되나니,
따라서 조색은 사대와 유사하다.
이를 업인연이라고 한다.
정자재(定自在)란 앞의 것이 대지(大地)에 이르면 나중에 조색을 증감시킬 수 있으니,
예컨대 사대를 전변하여 조색하는 경우이다.
땅이 물로,
물이 땅으로 변하여 달라지게 하는 것이 정자재이다.
또한 간략히 말해서 다섯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른 모습의 사대가 다른 결과를 낳게 하니,
사대의 힘과 공용력(功用力)ㆍ주술력ㆍ신통력ㆍ업행력 때문이다.
이 이후로부터 아직 몸을 받아 태어나지 않은 상태의 중음(中陰)에서는 모든 색이 화합하는데 어떤 인연 때문인가?
자신의 종자를 바탕으로 생겨나는 업을 이끌기 때문이다.
이는 증상연인데,
무슨 뜻이 있기에 중음 가운데서 생한다는 것이며,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이후로부터는 심법(心法) 및 심수법(心數法)에 의지하지 않으면 다시는 다른 처소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메아리와 같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근(根)에 어지러움이 있으면 마치 달이 두 개로 보이는 것과 같다.
만일 중음이 없다고 생각하여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고 비유한다면 이 또한 이치에 맞지 않다.
왜냐하면 거울의 면(面)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림자의 비유는 옳지 않다.
만일 다시 마음이 경계를 취함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중간식(中間識)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대의 비유는 옳지 않다.
마음은 나아감[去]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비유들이라면 파괴되나니 중음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믿을 만하며 이를 색음(色陰)이라 한다.
생분(生分)의 사유는 이미 색음을 생하였다.
그런데 무엇이 먼저 나아가 생처(生處)를 취하여 다른 색의 처소가 생기는 것인가?

【답】사대가 먼저 존재하여 생처(生處)를 향수(向受)하니,
사대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처소[處]에서 조색과 대가 함께 생하며 사대의 처소가 생하는 처소를 장애하기 때문에 생한다.
또한 조색(造色)의 자상(自相)이 두루하기 때문에,
그리고 대(大)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능히 생처를 장애할 수 있다.
땅[地] 등 사대(四大)는 그것의 거칠거나 세밀함을 알 수 있으니 차례대로 말하자면 먼저 지계(地界)는 간직하는 성품이 있기 때문에 사업(事業)을 지을 수 있으니,
그 결과가 있게 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물, 불, 바람의 계(界)는 흐르고,
태우고 부는 것이 이 세 가지 대(大)의 업(業)이다.
모든 소리는 생멸(生滅)함이 있으니,
색이 화합한 상태에서 오래 이어지지[相續] 않는다.
이 소리는 내외(內外) 두 곳을 의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시에 생처에서 들을 수 있으며 모두 가득 차게 되니,
다치 불꽃의 광명이 이름[至]에는 전후(前後)가 따로 없고 느리거나 빠름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바람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움직임[動]과 움직이지 않음[不動]이다.
바퀴는 움직이지 않음이고 공중에서 나아가는 것은 움직임이다.
물건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항상 수순하거나 허깨비[幻化]를 간직하는 것인데 허깨비를 간직하는 것은 움직이지 않음이다.
이와 다른 것은 다 움직임이다.
허공계란 명암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모두 조색이니,
이를 공계(空界)라 한다.
명암 등을 떠나면 공계의 별도의 양상[別相]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움직임이 없다.
중생의 처소에는 항상 광명이 있기도 하고 항상 어둠이 있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는 움직임이 없다.
만약에 이러한 처소와 다르다면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색이 화합함에 의지하여 청정하고 허랑(虛朗)하면 광명에 소속되고 청정하거나 허랑하지 않은 것 역시 색에 포함된다.
【문】형색(形色)이란 길고 짧음 등을 말하는데 이것은 실유(實有)하는 법입니까,
아니면 가명입니까?
【답】이것은 가명이다.
왜냐하면 모여 집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처소이다.
이것은 형색이다”고 말하는 것은 오직 언어이기 때문이고,
오로지 헤아리고 분별하기[度量] 때문이며 여덟 가지 상(相) 가운데서 별도의 뜻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관찰해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체성(體性)이 섞이기 때문에 마치 수레 등의 예에서와 같다.
혜(慧)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명을 설하는 것이다.
다음,
법입(法入)의 선정과(禪定果)인 색은 오로지 색상만이 있는 것이니 왜냐하면 나머지 향,
미,
촉 등을 생하는 원인이 없기 때문이며,
다시는 그런 공용(功用)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공중에서 지나가는 바람과 모든 향 따위의 진(塵)은 함께 생하는 것[共生]이 아니며 서로 가까이 있기 때문에 바람 속에 향이 있는 것이다.
또한 광명 속에 나오는 바퀴[輪] 이외의 것에서는 만약에 모든 대(大)의 법이나 향 따위의 진(塵)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 선정과(禪定果)의 색은 법입(法入) 속에서 선정을 의지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사대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의 색(色)과 유사하기 때문에 또한 조색(造色)이라 하며 이는 사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문】색음(色陰) 가운데서 몇 가지 법이 눈으로 볼 수도 있고 그것이 공간을 장애하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답】첫째,
두 가지 안식(眼識)의 행처(行處)는 법입(法入)의 색은 떠나며,
그 밖의 나머지 모든 색은 모두 다 볼 수 없고 장애하는 바도 없다.
【문】이와 같은 분류는 색음 가운데 형태[形]에 대한 사유가 계속 이어지는[相續] 것인데 이는 색음 가운데 몇 종류가 있는가?
【답】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의(依)이고,
둘째는 보생(報生)이며,
셋째는 장양(長養)이다.
의지함[依]에는 네 가지가 있다.
즉 보의(報依)ㆍ장양의(長養依)ㆍ부등의(不等依)ㆍ체성의(體性依)이다.
보생(報生)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전품(前品)이고,
둘째는 상속(相續)이다.
전품은 이숙과보 등에 이끌어지는 경우이고,
다음의 과보가 나중에 생기면 이를 상속이라 한다.
장양(長養)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 만처장양(滿處長養)과 상증장양(相增長養)이다.
만처란 색에 증장함이 있는 것이니 음식,
잠자리,
범행,
선정을 의지하여 증장하는 것을 말한다.
또 상증이란 음식을 의지함을 비롯한 만처를 의지하기 때문에,
항상 즐거움을 향수하기 때문에 때가 이르러 성숙하게 됨[時熟]을 의지하기 때문에 증장하게 된다.
모든 유색법(有色法)은 이 두 가지를 의지하여 증장하며 무색법(無色法)에서는 오로지 상(相)만이 늘어남으로써 증장하는 것이다.
욕계의 모든 색은 네 가지 식(食)이 장양한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사(思)ㆍ식(識)ㆍ단(摶)ㆍ촉(觸)이다.
앞의 두 가지 식은 아직 이끌지 않은 것을 이끌기 때문에 생겨남[生]의 인연이 된다.
뒤의 두 가지 식은 머묾[住]의 인연이 된다.
촉식(觸食)은 수음(受陰) 등이 머무르는 연[住緣]이다.
그 밖에도 수면(睡眠) 등이 능히 색을 증장할 수 있다.
색계의 색은 단식(摶食)을 의지하지 않고,
잠자는 것을 의지하지 않고,
범행(梵行)을 의지하지 않고 증장될 수 있다.
【문】모든 유색근(有色根)은 두 가지 흐름을 따르니,
이 두 가지를 떠나면 별도의 의지해야 할 흐름이 없다.
과보는 상속하고 증장되고 장대해지며 어떤 때는 볼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 과보에 속하는 것을 장양이라 하지 않는가?
【답】이 과보의 색은 예컨대 처(處)에 안치하는 것과 같아 증가하거나 감소함이 없이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양상속(長養相續)은 의보상속(依報相續)과는 어긋나기 때문에 증가함이나 감소함이 있다.
비근색(非根色)에는 모두 세 가지의 흐름이 있으니,
심심수법(心心數法)과 의류(依流)를 의지함과 보류(報流)를 의지함이다.
만약에 상(相)이 증장하는 것에 의지하면 증장함이 있으나 법입(法入)의 색에는 과보로 생겨남[報生]이 없다.
그 밖의 모든 법은 심법(心法)ㆍ심수법(心數法)에서와 같은 줄 알 수 있다.
욕계 안에 있는 모든 내외(內外)의 색은 과보를 생할 수 있으며,
색계에서는 향(香)과 미(味)를 제외한 그 밖의 나머지에서 과보를 생한다.
다시 욕계 안에서는 모든 근(根)이 원만하게 갖추어지지 않아도 과보가 있으나 색계에서는 모든 근이 잘 갖추어져야 과보가 있게 된다.
소리의 계[聲界] 또한 과보가 있으나 소리는 그렇지 아니하다.
이상을 색음의 상속에 대한 사유라 한다.
업은 색음 가운데 지계(地界)는 몇 가지 업이 있고 나아가 풍계(風界)에는 몇 가지 업이 있는가?
일체의 사대(四大)에는 각기 다섯 가지의 업이 있다.
이 지계(地界)에는 개발전업(開發轉業)ㆍ처소지업(處所持業)ㆍ위작의업(爲作依業)ㆍ호상위업(互相違業)ㆍ평등증업(平等增業)이 있다.
수계(水界)의 업은 흐름[流]ㆍ습기를 포함함[攝濕]ㆍ적심[潤]ㆍ거스름[違]ㆍ증장함[增長]이 있으니 이것이 다섯 가지이다.
화계(火界)의 업이란 빛[光]ㆍ익힘[熟]ㆍ파괴ㆍ거스름ㆍ증장함이 있으니 이것 또한 다섯 가지이다.
풍계(風界)의 업에는 가벼움[輕]ㆍ움직임[動]ㆍ참담하게 만드는 일[令慘]ㆍ거스름ㆍ증장함이 있으니 이를 풍업(風業)이라 한다.
또한 사대가 소조색이 생기는 데에도 다섯 가지 업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능생(能生),
둘째는 여의(與依),
셋째는 주처(住處),
넷째는 승지(勝持),
다섯째는 증장(增長)이다.
그 까닭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생하는 것을 개발하여 현전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이를 능생이라 하며,
이미 생겨난 것은 처소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의지하는 대상과 함께함[與依]이라 하며,
증가하거나 파괴하는 따위와 유사한 성품이기 때문에 주처(住處)라 하며,
양과 같이 감소하지 않고 능히 뛰어나게 지니기 때문에 승지(勝持)라 하며,
늘려 장양시키기 때문에 증장이라 한다.
무엇 때문에 눈과 귀의 진색(塵色)에는 선(善)이 있고 불선(不善)이 있는데 나머지 것들의 진색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답】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 즉 연품(軟品)의 사(思),
중품(中品)의 사,
상품(上品)의 사가 있다.
연품의 사(思)란 무엇인가?
사유할 때의 사,
결정할 때의 사,
업을 지을 때의 사이다.
이 연품의 생각은 선이나 불선의 신ㆍ구업을 짓는다.
지극한 상품의 생각을 의지하면 두 가지 색이 생하기 때문에 따라서 업색(業色)에는 선이나 불선이 있다.
그러므로 나머지 진(塵)들은 이와 같은 것을 얻지 못한다.
【문】화합한 색으로부터 동요하면 다른 상[異相]이 되는가,
아니면 다르지 않은 상[不異相]이 되는가?
【답】다르지 않은 상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물의 처소는 이미 생긴 것[已生],
아직 생기지 않은 것[未生],
이미 파괴된 것[已壞],
아직 파괴되지 않은 것[未壞]이어서 움직인다는 뜻이 맞지 않다.
만약에 움직임이 이미 생했는데 후에 움직인다고 한다면 자상(自相)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만약에 아직 생하지 않았다면 움직임은 없는 것이다.
만약에 이미 파괴되었다면 움직일 수 없다.
이는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만약 파괴되지 않았다면 그 행상(行相)이 없으므로 분명히 별도의 체로서 다른 저 인연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이 뜻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동요(動搖)에는 별도의 실유(實有)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색음(色陰)의 업분(業分)에 대한 사유이다.
찰나에는 이것을 구족한 까닭이고 색음이 찰나찰나에 멸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행법(行法)이 생했다가 멸하는 것에는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 생인(生因)이 곧 멸인(滅因)이라고 한다면 이 뜻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의 인(因)에 다른 과[果果]가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미 생겨났다면 그 인(因)을 짓는 별도의 상(相)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법은 스스로 멸하며 다른 것을 연(緣)하지 않는다.
행념(行念)의 멸에는 장애가 없으니 마치 불 따위가 시물을 파괴하는 인(因)인 것과 같다.
만약에 사유(思惟)일 경우라면 이 뜻은 옳지 않다.
모든 행법과 불 따위는 똑같이 생멸하기 때문에 앞서 생긴 것과는 유사하지 않으며,
오직 인(因)만이 능히 짓는 것이므로 이 불 따위의 사물이 멸하는 것이 멸인(滅因)이라는 이치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멸이란 행법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멸이 만약에 이미 존재했었다가 행이 멸하는 가운데 있다면 모든 행[諸行]의 상속은 이미 단멸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기 있기 때문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멸은 멸의 체성(體性)이 없으므로 멸의 인(因)을 능히 짓는다는 것도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약에 멸이 멸인(滅因)이라면 일시에 멸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멸인을 짓는 전후(前後)가 차이가 없기 때문에 모든 상속법(相續法)은 영원히 생기지 않게 되어 버린다.
만약에 멸이 다른 체(體)라면 멸은 다른 뜻이 되어 버린다.
별도의 멸상(滅相)이 존재한다면 멸은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만약에 불 따위가 멸하는 것과 동반하여 멸한다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심법(心法),
심수법(心數法) 등과 등불 따위의 자체에 멸함이 있게 되는 것이니,
마땅히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만약에 힘[力]이 두 가지를 서로 성립시키고 능히 멸한다고 할 경우에는 이것이 멸하는 대상도 되고 멸하는 주체도 되기 때문에 분별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한 만약 두 가지 법이 각기 공능분[能分]을 가지고 있어 함께 멸하는 것이 갖추어질 수 있다고 하면,
이 두 가지는 각기 절반은 공능을 갖추고 절반은 공능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은 등의 분류가 색음 가운데 찰나멸에 관한 사유인 것이다.
자체가 멸하기 때문에,
모든 대(大) 따위의 법이 멸인(滅因)이라고 하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에,
두 가지가 멸인이라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모든 행[諸行]은 마음의 결과이기 때문에 마치 마음에서처럼 모두 찰나에 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그 다음 사대(四大) 소조색(所造色)에는 개별적인 모습[別相]이 있어서 구별할 수 있는가?
【답】구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개별적인 모습을 이근경(異根境)이라고 한다.
다른 나머지 근의 대경(大境)과 다른 나머지 조색(造色)의 경계가 이를[度] 수도 있고 이르지 않을[不度] 수도 있기 때문이니,
예컨대 여러 꽃향기를 참깨 가운데 옮겨 놓으면 원만하게 이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 변하거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니.
예컨대 채소 따위는 삶거나 끓이면 색이나 맛이 변하지만 견고함 따위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모습[別相]의 조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대(四大)의 조색에는 개별적인 모습이 있으나 그 체는 하나이다.
비유하자면 나무그루를 보고 두 가지 인식 지혜를 일으키는 것과 같아 모습을 취함에는 다름[異]이 있어도 그 체는 하나이니,
첫째는 경계에 대한 의지(疑智)이고,
둘째는 경계에 대한 결정지(決定智)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이치에 맞지 않다.
비록 개별적인 모습이 있더라도 하나의 체를 지을 수 있으니,
사대 가운데서도 역시 이와 같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사대에는 각기 자신의 개별적인 모습이 있으니 만약에 결정적으로 이와 같은 사대가 하나의 체라면 마땅히 네 가지가 존재할 수 없게 되어 버리므로 이 뜻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색(造色)과 사대는 별도의 체이다.
이를 단독이면서 단독 아님[獨不獨]의 뜻에 관한 사유라 한다.
【문】경계는 모든 색법을 말하는데,
그것에는 몇 가지 근(根)과 몇 가지 진(塵)이 포함되는가?
【답】다섯 가지 색이 근(根)이고 여섯 가지 색이 진(塵)이다.
어떻게 근은 모든 진을 경계로 성립시키는가?
근(根)이 파괴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경에서 자세히 설한 바와 같다.
【문】초지(初地) 가운데서는 몇 가지의 인연이 여러 근을 파괴하거나 파괴하지 않는가?
【답】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파리하고 쇠약함이며,
둘째는 모두 다 잃음이다.
이러한 뜻과 같지 않으면 모두 다 근(根)을 이룬다.
간략히 말해서 네 가지 변하여 달라지는 인연이 있다.
첫째는 외부의 조건[外緣]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모든 외진(外塵)을 이용하면 거스름[逆]과 따름[從]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손상하기도 하고 손상된 것을 치유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외연이라 한다.
둘째는 내부적인 조건[內緣]을 따르는 것이니,
안[內]에서 선하지 못한 것[不善]을 사유하면 탐욕 따위가 생겨 모든 근이 손감된다.
바른 사유나 삼마제로부터는 모든 근이 증익된다.
셋째는 업연(業緣)으로 생겨나는 것이니,
예컨대 지난날의 업연에 강함과 약함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애착할 만한 것이 되거나 애착할 만한 것이 아니게 된다.
넷째는 자체(自體)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일체의 근은 자상(自相)을 의지하기 때문에 때에 따라 손감되고 때에 따라 증익된다.
【문】또 다음에는 심근(心根)이 파괴되는 인연에는 몇 가지가 있는가?
【답】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개(蓋)로부터 지어진 인연 때문이니,
5개(蓋)5) 가운데 하나를 따르면 마음을 덮는다.
둘째는 산란한 마음이 짓는 인연 때문이니 산란한 마음을 짓는다는 것은 예컨대 귀신 등에 집착함이다.
셋째는 구하는 바를 아직 얻지 못한 인연 때문이니 4공정(空定)이나 6신통(神通)을 아직 얻지 못했을 때 스스로 얻었다고 말하는 경우이다.
그릇된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구하는 것을 아직 얻지 못함[求未得]이라고 한다.
넷째는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짓는 인연 때문이니 예컨대 다문(多聞)이나 여러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경우이다.
이상 네 가지 인연의 뜻을 의지하면 마음이 파괴된다.
또 그 다음에,
색 등의 모든 진(塵)은 어떻게 근(根)에서 명료하게 되는가?
색은 눈에 닿아 이르지 않아야 오히려 명로하며 극히 미세하지 않아야 또한 명료하다.
그리고 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덮거나 막는 장애가 없어야 하며,
또한 광명이 있는 곳이어야 하며,
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야 눈에 의대(依對)하는 앞의 진경계(塵境界)가 눈에 명료하다.
어떤 중생들의 경우에는 어두운 실내에서도 색을 분별해 알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오직 한 가지 볼 수 없는 색[不可見色]은 예컨대 앞에 있는 여러 진경계를 육안으로는 볼 수 없으나 모두 다 천안(天眼)으로는 볼 수 있다.
소리[聲]의 경우는 이르는데 장애함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이르는 경우라도 빛과 어둠 속에서 미세함을 지나지 못하여 경계의 처소에 머물게 되어 명료하게 된다.
향(香)ㆍ미(味)ㆍ촉(觸)은 자신의 근(根)에 이르러 닿아 경계의 처소에 머무는 경우이다.
모든 천안(天眼)으로 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비록 미세하거나 장애함이 있거나 먼 곳에서 이르러도 경계의 처소에 머물면 다 명료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계의 처소에 머물지 못하면 인식할 수가 없다.
다시 모든 성인(聖人)들의 성스러운 혜안(慧眼)은 모든 종류의 색에 대해 환히 깨달아 안다.
예컨대 초지(初地)에서는 여섯 가지 경계를 설하는데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첫 번째 경계란 모든 색이 다 중생의 세간이나 기세간(器世間)에 들어갈 수 있다.
두 번째 경계는 세 가지 종성을 의지하니 모두 다 분별함이 있다.
첫째는 상분별(相分別)이요,
둘째는 사분별(事分別)이며,
셋째는 주분별(住分別)이다.
이와 같이 청색ㆍ적색ㆍ백색 등을 분별하고 나아가 자세하게 설하는 것을 상분별이라 하며,
사분별이란 작색(作色)ㆍ무작색(無作色)ㆍ계색(戒色)ㆍ비계색(非戒色)ㆍ비계비비계색(非戒非非戒色)을 말한다.
주분별이란 여의색(如意色)이나 불여의색이며 평등한 처소[捨處]가 있는 것을 색분별(色分別)이라 한다.
성분별(聲分別)이란 중생수인(衆生數因)ㆍ비중생수인(非衆生數因)ㆍ중생비중생수인(衆生非衆生數因)이다.
사분별(事分別)이란 입으로 짓는 것이며 주분별(住分別)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향분별(香分別)이란 뿌리ㆍ줄기ㆍ껍질ㆍ복심ㆍ잎사귀ㆍ꽃ㆍ열매 등의 냄새를 말하니,
이것이 향분별이다.
향ㆍ미ㆍ촉 가운데는 사분별이 없다.
주분별은 앞의 색에서 설한 바와 같다.
맛[味]의 상분별은 달거나 쓴 것 등을 말한다.
주분별은 앞에서와 같다.
촉에도 많은 종류의 분별이 있으니 앞에서와 같다.
세 번째 경계는 시방(十方) 가운데서 알 수 있다.
네 번째 경계에는 과거ㆍ미래ㆍ현재라는 삼세의 분별이 있으며,
다섯 번째 경계는 실(實)과 부실(不實)을 취하여 분별함으로써 알 수가 있다.
여섯 번째 경계는 하나의 변처(邊處)에서 취하여 갖출 수 있다.
이와 같이 자분(自分)의 모든 유색(有色)의 진(塵)을 훤히 알아 분별할 수 있다.
사유란 무엇인가?
능히 식(識)을 생하는 것이니 모든 것과 모든 근(根)에 대해 파괴하지 않으며 진(塵)을 훤히 아는 것과 함께 발심(發心)하도록 돕는다.
이와 같이 사유는 모든 의식 작용[識]을 낳을 수 있다.
이상을 색음의 경계분(境界分)에 대한 사유라 한다.
잡사유는 욕계의 음입(陰入)이 이 처소에 머물며 색계의 색은 이 몸에서 생긴다.
어떻게 상계(上界)의 여러 색과 하계(下界)의 여러 색이 함께할 수 있으며 별도의 처소에 있는 것들이 어떻게 별도의 처소가 아닌 처소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인가?
【답】별도의 처소가 아닌 처소에 머무는 것은 마치 모래가 섞인 물과 같다.
이를 색음의 잡분(雜分)에 대한 사유라 하니,
이는 색음을 분별하여 사유한 것은 아니다.
이상으로 『결정장론』 하권을 마친다.

-----
1)
심소(心所)와 같은 뜻이다.
2)
신근(身根)을 제외한 안,
이,
비,
설의 근(根).
3)
극미(極微)와 같은 뜻이다.
4)
상하사방(上下四方)의 방위를 의미한다.
5)
심성(心性)을 덮어 선법(善法)이 생겨나지 못하게 하는 다섯 가지 번뇌,
즉 탐욕ㆍ진에ㆍ혼면(惛眠)ㆍ도거(掉擧)ㆍ의(疑)이다.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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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논의] ❋본문

● 판본의 결정과 각 판본별 다른 표현의 맵핑문제

『결정장론』은 『유가사지론』 제 51 권 이하의 부분역이다.
그러나 표현과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각 경론의 표현을 대할 때 주의할 바가 있다.
각기 다른 표현이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내용을 붙잡고 엉뚱한 내용을 논의해가기 쉽다.

한글에서도 동음이의어가 많다.
그래서 오늘 '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는 과일 '배'를 논의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조선소에서 만드는 '배'에 대해 논의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또 어떤 이는 병원 내과에서 살피는 '배'에 대해 논의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이 셋 모여 논의하면 서로 엉뚱한 내용을 놓고 논의해가기 쉽다.
이런 경우는 문제가 있게 된다.
물론 이는 비유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경론을 살피는 과정에서 매순간 문제된다.

『결정장론』에서 다음을 제시한다.
...

▸수(受)의 모습은 어떠한가?
여섯 가지가 있으니,
눈[眼] 등 6근(根)의 촉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또 세 가지의 수에는 두 가지의 의지(依止)가 있으니
색과 심을 의지하여
각각 신수(身受)와 심수(心受)라 한다.
왜냐하면 5근은 모두 색의 상(相)이기 때문이다. ◂



謂有六種眼等觸生,又三種受,有二種依。謂色及心依色身受。
『결정장론』 3권(ABC, K0598 v17, p.341b11-b12)

그런데 처음 수(受)가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에서부터 혼동이 발생하게 된다.
『결정장론』 번역본에서는 다음처럼 제시한다.
...

▸눈[眼] 등 6근(根)의 촉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




...

그런데 『유가사지론』은 달리 표현해 제시한다.

...

▸요약하면 여섯 가지가 있으니, 눈 따위의 여섯 가지 닿임[觸]에 의하여 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색을 의지[依]로 삼는 것은 몸의 느낌[身受]이라 하고,
색 없는 것을 의지로 삼음은 마음의 느낌[心受]이라 한다.
왜 그러한가. 앞의 다섯 감관[五根]은 모두가 색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




....

『유가사지론』 53권(ABC, K0570 v15, p.917a01)

표헌은 비슷해보인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면 차이가 심하다.
그래서
'촉이 생기는 것'을 수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촉에 의하여 (다시) 생기는 것'을 수라고 할 것인지가 먼저 문제된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우선 대부분 사람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내용들이다.
굳이 경전과 논서에 의존하지 않아도 큰 불편없이 다 행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그 가운데 어떤 부분을 경전과 논서에서 어떤 표현으로 나타낸 것인가의 문제다.
즉 표현과 그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서로 잘 상응시켜 이해하는 문제다.
이것이 잘못되면 논서를 읽어도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지도(map)를 살핀다고 하자.
이 때 지도의 각 표시가 거리의 어떤 내용을 표시한 것인가가 문제된다.
지도에 특정 부분에 # 기호가 표시되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나타낸 것인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도를 보아도 의미를 알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지도를 살필 때는 각 표시나 기호가 가리키는 바를 잘 상응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처럼 '기호'와 '그 기호가 가리키는 내용'을 서로 잘 대응시켜 이해하는 활동을 '맵핑'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각 경전과 논서를 살필 때 다 문제된다.
특히 역자가 다른 여러 판본이 있을 때 특히 더 문제된다.
번역자마다 또는 각 시대마다 조금씩 표현을 달리할 수 있다.
그래서 각기 다른 표현마다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를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편 마음 현상을 다루는 경론의 표현은 더 문제가 어렵게 된다.
마음현상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사정이 그렇기에, 혼동이 발생할 때 이것을 외부에 꺼내 객관적으로 검사하거나 확정하기 힘들다.
그래서 하나의 표현이 가리킬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 여럿일 때 이 의미를 확정하기 곤란해진다.

그런데 방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후 맥락을 통해서 표현이 가리키는 바를 찾아내는 방안이다.

또 마음안의 어떤 내용을 기술할 때 다음 방안을 사용할 수도 있다.
우선 마음 내용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일반적으로 얻게 되는 전후 과정을 잘 기술해 가리키는 것도 한 방안이다.

감각현실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다른 이에게 자신이 감각하는 내용을 직접 전달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감각현실을 직접 제시하기는 곤란하다.
그렇지만 감관을 통해서 일정 내용을 얻는 과정을 잘 기술하면 이런 어려움을 덜 수 있다.
그래서 감각현실이란 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비교적 혼동을 일으키지 않고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처럼 설명한다고 하자.
철수가 눈을 감았다.
그런 상태로 있다가 눈을 떴다.
그 순간에 무언가 철수가 얻게 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눈을 감자 사라지게 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것이 눈을 통해 얻는 감각현실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비교적 감각현실이란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음현상은 본래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
그래서 설명은 어렵다.
그렇지만, 정신현상은 각 주체가 공통적으로 늘 행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자신이 정신현상을 설명할 때는 위 방안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 경전과 논서에서 사용된 표현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언어표현은 본래 다양한 의미를 가리킬 수 있다.
그래서 다양한 의미 가운데 정확히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가가 문제될 때는
언어 자체는 큰 힘을 갖지 못하게 된다.
결국 전후 맥락을 통해서 그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과거 경전이나 논서 표현이 문제된다.
그래서 여기서 촉이나 수란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가가 먼저 문제된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파악하려면
먼저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정신활동을 먼저 잘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앞에 제시한 현실 상황이 여기서 그대로 문제된다.

철수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떴다.
그 순간에 무언가 철수가 얻게 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다시 눈을 감자 사라지게 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것을 감각현실이라고 표현해보자.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과정이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다시 다음을 살펴보자.

눈을 떠서 보니 고양이 사체가 보인다.
창자가 터져 나와 있다. 썩은 냄새가 난다.

그런 순간에 그는 이런 감각현실에 바탕해서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한편 그 전날 자신이 전재산을 일정 종목에 투자했다고 하자.
그런데 오늘 살펴보니 그 종목의 폭락했다.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이제 '우울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자.

여기서 '불쾌감' '우울감' '절망감'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현실에서 그런 상황에서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이 상황을 놓고 『결정장론』 이나 『유가사지론』의 각표현이 이 가운데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먼저 찾아보아야 한다.

수(受 vedanā)란 표현에 대해 사전적 풀이만 참고하면 이 경우들이 모두 다 포함될 수도 있다.
넓게 어떤 주체가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을 일단 모두 가리킬 수 있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그렇다.

그러나 촉과 수를 구분해 사용한다면 또 사정이 달라진다.
이 용어는 색수상행식으로 5 온을 나열할 때도 사용된다.
무명-행-식-명색-6입-'촉'-'수'-애-... 이런 식으로 12 인연을 나열할 때도 사용된다.
고수 낙수 불고불락수라고 표현할 때도 사용된다.
작의 '촉' '수' 상 사 등으로 심소법을 나열할 때도 사용된다.
그래서 각 경우마다 하나하나 잘 구분해 살필 필요가 있다.

색이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근 경 식의 관계로 안근 -색 - 안식으로 나열할 때 '색'과
'색수상행식'으로 5 온의 요소를 나열할 때 '색'이 가리키는 바가 서로 다르다.

촉도 마찬가지다.
신근 - 촉 - 촉식으로 나열할 때 '촉'과
무명-행-식-명색-6입-'촉'-'수'-애-로 나열할 때 '촉'
그리고 작의 '촉' '수' 상 사 등을 나열할 때 '촉'이 서로 가리키는 바가 다르다.

그래서 매 경우 단순하지 않다.
그런 사정으로 매 경우 혼동을 발생시킬 여지가 많다.
여하튼 논서 내용을 살피려면 우선 자신이 행하는 정신현상 가운데 무엇을 수라는 표현으로 가리키는가부터
살펴야 한다.

일단 이는 감각현실이 아니고 느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느낌은 비록 감각에 의존하지만, 감각현실과 느낌은 다르다.

예를 들어 다음 경우를 살펴보자.
영희를 보게 되어서 반가움을 느낀다고 하자.
영희 모습을 보는 것은 감각과정이다.
그런데 이후 반가움을 느끼는 것은 감각과정이 아니다.
그러면 반가움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느낀 느낌이다.

그런데 한편 시세가 떨어진 종목을 다음날 보니 다시 올랐다고 하자.
이 경우에 상당히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들 경우에서 '반가움'이나 '기쁨'이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그런데 여기 『결정장론』에서 표현하는 '수'는 이런 반가움이나 기쁨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다음을 살피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영희를 '눈'으로 보아 느낀 '반가움'은 '신수'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세가 오르고 내림에 따라 이를 분별한 가운데 느끼는 '절망감'이나 '기쁨' 등은 심수에 해당한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고자 하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글자 표현만 놓고 보면 혼동이 발생할 여지가 남아 있다.

★1★


◆vryn1589
◈Lab value 불기256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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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Utagawa-Kuniyoshi-yamamoto-kansu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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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ęba ,Po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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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Poreba Po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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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ette Greco - L'homme Du P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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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경전 인용부분 강조 색상 표시의 어려움

현재 각 사이트마다 편집기가 변경되었다.
이후 겪는 편집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각 편집기가 공연히 htm 코드를 제멋대로 변경시킨다.
아마 편집기에서 사용자 편의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라고 판단된다.
예를 들어 웹주소를 기재해 넣으면 그 페이지를 별도 형태로 구현해 나타낸다.
그런데 사용자가 이런 형태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문제다.
본인의 경우가 그렇다.

그외 여러 형태로 많은 장애를 일으킨다.

대장경을 살피는 가운데 핵심부분으로 보이는 부분
또는 논의시 인용하거나 강조할 부분을 색상을 입혀 구별한다.
htm 코드로 이를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편집기에서 이 부분이 에러를 발생시킨다.

4~ 5 번 htm 코드를 살피면서 수작업으로 편집을 해야 겨우 편집을 마치게 된다.
여기에도 여러 사정이 있다.

일정부분을 색상으로 구분하려고 할 때
div 나 span 이나 p 코드를 적용해 일정 부분을 구분시킨다.
그런데 여하튼 편집기마다 어려움이 발생한다.

한편 편집기가 바뀐 이후로는 일정 텍스트를 복사해 붙여 넣을 때도 역시 문제가 발생한다.
유트브 영상이나 구글 맵 풍광부분도 복사해 붙이려면 에러가 발생한다.
역시 여러 사정이 있다.

여하튼 종전에 간단하게 편집할 수 있던 부분 하나하나
다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다른 테스트 페이지를 하나 만들어서 좀 더 살펴보아야 할 듯하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2/2565-02-22-k0598-003.html#1589
sfed--결정장론_K0598_T1584.txt ☞하권
sfd8--불교단상_2565_02.txt ☞◆vryn1589
불기2565-02-22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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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Vāmalokāyata 박마로가야타(縛摩路伽耶陀)라고도 음역. 역순세외도(逆順世外道)ㆍ좌순세외도(左順世外道)라 번역. 인도 외도(外道)의 1파. 세정(世情)에 맞는 교를 세우는 순세외도에 반하여, 세정에 거슬리는 교를 세우는 1파.

답 후보
● 역로가야타(逆路伽耶陀)
연기(緣起)
연설(演說)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열반성(涅槃城)
염(念)
염념상속(念念相續)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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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ng] bhu–jati $ 팔리어 bhuj + .m + aeats; enjoys.
[Eng-Ch-Eng] 喝食 The young attendant who announces mealtimes in a Chan/Son/Zen monastery.
[Muller-jpn-Eng] 曜母 ヨウモ (term) Grāha-mātṛkā
[Glossary_of_Buddhism-Eng] HORIZONTAL ESCAPE☞
Syn: Horizontal Transcendence.
See also: Special Teaching; Universal Method; Vows / Rebirth in Pure
Land.

[fra-eng] heurtant $ 불어 colliding

■ 암산퀴즈

903* 856
651903 / 839

■ 다라니퀴즈

자비주 53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53 번째는?

53
이 다라니를 외우고 가지는 사람은
곧 부처님 몸을 지닌 곳간[佛身藏]이니
99억 항하사의 모든 부처님께서
사랑하시고 아껴주시는 까닭이니라.
● 싯다야 悉陁夜<五十三> sid dhā y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53
니라감 다라보로 오도아나 사
你囉鑑<二合>哆囉部嚕<二合>塢睹誐曩<引>舍<五十三>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53일째]
여시섭수안주이 $ 053▲懺慕陀懺慕陀為 一 ● 瑿攞陀, ○□□□□,所,入,入,意

□□□□□□□, 所有境界不可說,
入時方便不可說, 入已所作不可說,
□□□□□□□, 소유경계불가설,
입시방편불가설, 입이소작불가설,

이렇게 받아 넣고 머무른 뒤에
갖고 있는 경계를 말할 수 없고
들어갈 때 방편도 말할 수 없고
들어가서 짓는 일도 말할 수 없어

[54째]
의근명료불가설 $ 054▲瑿攞陀瑿攞陀為 一 ● 摩魯摩, ○□□□□,遊,勇,自,所

□□□□□□□, 遊歷諸方不可說,
勇猛精進不可說, 自在神變不可說,
□□□□□□□, 유력제방불가설,
용맹정진불가설, 자재신변불가설,

의근(意根)이 분명함을 말할 수 없고
여러 방위 다님도 말할 수 없고
용맹하게 정진함도 말할 수 없고
자유로운 신통 변화 말할 수 없고

055□

●K1078_T2112.txt★ ∴≪A견정론≫_≪K1078≫_≪T2112≫
●K0598_T1584.txt★ ∴≪A결정장론≫_≪K0598≫_≪T1584≫
●K1050_T2121.txt★ ∴≪A경율이상≫_≪K1050≫_≪T2121≫

법수_암기방안

53 (귀)코 nose 鼻 【비】
54 입 mouth 口脣 【구순】
53 (귀)코 nose 鼻 【비】
53 (귀)코 nose 鼻 【비】

772968
777


○ 2019_1104_103112_nik_Ar26_s12




○ 2020_1114_143744_can_AR25


○ 2020_1114_140806_can_ar42


○ 2018_1023_172723_nik_ar24


○ 2020_1017_173732_nik_CT33


○ 2020_1017_161142_nik_ct19_s12


○ 2020_0930_145009_nik_CT19


○ 2020_0910_152147_can_BW28


○ 2020_0910_152058_can_ar47


○ 2020_0910_114849_can_ar16


○ 2020_0909_144151_can_AB7


○ 2020_0909_132754_can_ar45


○ 2020_0907_150640_can_ar47


○ 2020_0906_114531_can_CT27


○ 2020_0904_132934_can_bw24


○ 2019_1105_134504_can_ct9_s12 ■%■


○ 2019_1106_165148_can_CT33


○ 2019_1106_164347_can_ab19_s12


○ 2019_1106_113443_can_Ab31_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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