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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4일 토요일

불기2565-04-24_대반야바라밀다경-k0001-430


『대반야바라밀다경』
K0001
T0220

제43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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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대반야바라밀다경』 ♣0001-430♧





제43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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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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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개별논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般若波羅蜜多經卷第四百三十
K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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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경 제430권
삼장법사 현장 한역
김월운 번역


34. 천래품(天來品) ②


그때 제석천왕[天帝釋]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어떻게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와 그 밖의 시방(十方)의 그지없이 많은 세계에 있는 사천왕(四天王) 내지 색구경천(色究竟天)과 그 밖의 한량없이 많은 큰 위덕(威德)이 있는 용(龍)ㆍ약차(藥叉 : 夜叉)ㆍ건달박(健達縛 : 乾闥婆)ㆍ아소락(阿素洛 : 阿修羅)ㆍ게로다(揭路茶)ㆍ긴날락(緊捺落 : 緊拏羅)ㆍ마호락가(莫呼洛伽 : 摩候羅)ㆍ인비인(人非人) 등이 그곳에 와서 예를 올리고 경을 외우는 것을 보고,
그가 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며,
오른쪽으로 돌면서 기꺼이 보호하는 줄 알겠습니까?”


그때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셨다.
“교시가(憍尸迦)야,
이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가 있는 곳에 미묘한 광명(光明)을 보거나,
혹은 그 곳에서 그윽하고 특이한 향기를 맡거나,
혹은 하늘의 음악이 들리면 
그때는 큰 위신력이 있는 용과 하늘 등이 그 곳에 와서 경 외우는 것을 보고,
그가 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며 합장하고 기꺼이 보호하는 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또 교시가야,
이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순수하고 청정한 행을 닦고 그 곳을 장엄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깊은 경전에 공양(供養)하면 
그때는 큰 위신력이 있어서위덕(威德)이 성대한 모든 하늘ㆍ용 등이 그 곳에 와서 경 외우는 것을 보고,
그가 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며,
합장하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기꺼이 보호하는 줄 알아야 할지니라.

교시가야,
이와 같이 대위신력을 갖추어 위덕이 성대한 모든 하늘ㆍ용 등이 그 곳에 이르면 
그 안에 있는 삿된 귀신과 악한 귀신들이 모두 놀라 달아나서 감히 머무는 이가 없으리라.
이런 까닭에 이 선남자와 선여인 등은 마음이 넓어져서 맑고 훌륭한 지혜를 일으키며 닦는 선업은 갑절이나 불어나며,
온갖 하는 일마다 모두 장애가 없으리라.


이 때문에 교시가야,
만약 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심오한 경전이 있는 곳은 응당 두루두루 더러운 물건을 제거하고 쓸고 닦고 바르고 다듬으며,
향수(香水)를 뿌리고 보배 자리를 펴서 모신 뒤에 향을 피우고 꽃을 뿌리고 휘장과 일산을 치며,
보배 당기ㆍ번기ㆍ방울들로 사이사이에 치레하며,
모든 진기하고 묘한 의복(衣服)ㆍ영락(瓔珞)ㆍ금ㆍ은ㆍ보배 기구ㆍ음악ㆍ등불과 갖가지 비단으로 그 곳을 장엄할지니,
만일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에 공양하면 곧 한량없는 대위신력을 갖추어 위덕이 성대한 모든 하늘 등이 그 곳에 와서 경 외우는 것을 보고,
그가 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며,
합장하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기꺼이 보호하리라.
또 교시가야,
이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 능히 이와 같이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면 결정코 몸과 마음에 게으름이 없어지고,
몸과 마음이 즐거우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지며,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리라.
반야바라밀다에 생각을 매어두면 밤에 잘 때에 모든 나쁜 꿈을 꾸지 않고 오직 좋은 꿈만 꾸리니,
이른바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등각(正等覺)의 몸이 순금 빛이어서 32대장부상(大丈夫相)과 80수호(隨好)가 원만하고 장엄함을 갖추며,
큰 광명을 놓아 온갖 것을 두루 비추면서 성문(聲聞)과 보살(菩薩)들에게 둘러싸이셨거든 자신의 몸이 대중들 속에 있으면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시(布施)ㆍ정계(淨戒)ㆍ안인(安忍)ㆍ정진(精進)ㆍ정려(靜慮)ㆍ반야(般若) 바라밀다와 상응(相應)하는 법을 들으며,
다시 내공(內空) 내지 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과 4념주(念住)와 내지 18불불공법(佛不共法)과 상응하는 법을 듣느니라.
또 분별해 주신 보시ㆍ정계ㆍ안인ㆍ정진ㆍ정려ㆍ반야 바라밀다와 상응하는 뜻을 들으며,
또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과 상응하는 뜻을 듣느니라.
또 꿈속에 보리수를 보니 그 부피가 높고 넓으며,
온갖 보배로 장엄하였는데 어떤 큰 보살이 보리나무 밑에 나아가서 가부좌(跏趺座)를 맺고 앉아 악마의 군사를 항복받고,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였으며,
묘한 법륜(法輪)을 굴려 한량없이 많은 무리를 제도하시는 것을 보며,
또 한량없는 백천 구지(俱胝) 나유다(那庾多) 보살마하살이 갖가지 법과 뜻을 의논하고 결택(決擇)하되 응당 이와 같이 유정(有情)들을 이루어 주고 불국토(佛國土)를 장엄하며,
보살행(菩薩行)을 닦아서 마군을 항복 받고,
영원히 습기를 끊어서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라 함을 보느니라.



또 시방의 한량없는 백천 구지 나유다 부처님을 뵈며,
또는 그의 소리를 듣나니,
즉 어느 세계의 어떤 여래 ㆍ응공ㆍ정등각이 약간의백천 구지 나유다 보살마하살과 약간의 백천 구지 나유다 성문(聲聞)들에게 공경하며 빙 둘러 싸여서 설법하시는 것을 듣느니라.
또 시방의 한량없는 백천 구지 나유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것을 보며,
그 낱낱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는 각각 시주가 있어서 부처님의 설리라(設利羅)에 공양하기 위하여 일곱 가지 묘한 보배로써 각각 한량없는 백천 구지 나유다 수효의 솔도파(窣堵波)를 세우고,
다시 하나 하나의 탑마다 각각 한량없이 높고 묘한 꽃타래와 바르거나 뿌리는 등의 향과 의복ㆍ영락ㆍ보배로 된 당기ㆍ번기ㆍ일산과 모든 묘하고 진기한 음악과 등불로써 한량없이 많은 겁이 지나도록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함을 보리라.


교시가야,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와 같은 종류의 좋은 꿈을 얻으면 잘 때나 깰 때에 몸과 마음이 안락(安樂)하고,
모든 천신(天神)들이 그의 정기(精氣)를 도와서 그들로 하여금 직접 몸과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느니라.
이런 인연 때문에 음식ㆍ약ㆍ의복ㆍ침구류를 많이 매우 탐내지 않아서 네 가지 공양에 마음이 가벼워지나니,
마치 유가(瑜伽)의 스승들이 훌륭하고 묘한 선정에 들면 그 선정의 힘 때문에 몸과 마음이 윤택해지고,
선정에서 나온 뒤에는 비록 좋은 음식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이것도 그러하니라.


왜냐 하면 교시가야,
이 선남자와 선여인 등은 이 삼천대천세계와 그 밖의 시방의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성문ㆍ보살ㆍ하늘ㆍ용ㆍ약차ㆍ건달박ㆍ아소락ㆍ게로다ㆍ긴날락ㆍ마호락가ㆍ인비인 등의 대위신력과 위덕을 갖춘 이들이 자비롭게 옹호하여 묘한 정기를그 몸에 불어넣어 그의 뜻이 용맹하고 몸이 충실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이와 같은 모든 현재의 공덕과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응당 일체지의 지혜[一切智智]의 마음을 일으켜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아 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심오한 경전을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받아 지니고 외우며 부지런히 닦아 익혀서 이치에 맞게 생각하고,
베껴 쓰거나 설명하여 널리 퍼뜨려야 하느니라.
교시가야,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비록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심오한 경전을 잘 듣고 받아 지니고 외우며 부지런히 닦아 익혀서 이치에 맞게 생각하고,
유정(有情)들에게 말하여 널리 퍼뜨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다만 베껴 써서 갖가지 보배로 장엄하고 다시 갖가지 높고 묘한 꽃타래와 바르거나 뿌리는 등의 향과 의복ㆍ영락ㆍ보배로 된 당기ㆍ번기ㆍ일산과 모든 묘하고 진기한 음악과 등불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여도 또한 앞에 말한 것과 같은 공덕과 이익을 얻으리니,
왜냐 하면 교시가야,
이 선남자와 선여인 등은 능히 한량없고 그지없는 유정들을 널리 이롭게 하기 때문이니라.



또 교시가야,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일체지의 지혜에 상응하는 마음으로써 얻을 것이 없는 것을 방편으로 삼아 이 반야바라밀다의 매우 심오한 경전을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받아 지니고 외우고 부지런히 닦아 익혀서 이치에 맞게 생각하고,
유정들에게 널리 말하여 퍼뜨리거나,
혹은 베껴 써서 갖가지 보배로 장엄하고 다시 갖가지 높고 묘한 꽃타래와 내지 등불로써 공양하면 얻는 복덕은 한량없고 그지없어서 다른 유정들이 그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한량없이 많은 종류의 좋고묘한 음식ㆍ의복ㆍ침구ㆍ약품 등 살림도구로 시방 세계의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그 제자들에게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한 것보다 나을 것이니라.
또는 시방의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열반에 드신 뒤에는 설리라(設利羅)에 공양하기 위하여 일곱 가지 묘한 보배로 탑을 세우되 높고 넓어서 웅장하고 화려하게 하며,
다시 한량없이 많은 하늘의 묘한 꽃타래와 내지 등불로써 그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한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왜냐 하면 교시가야,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모두가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 의하여 태어나기 때문이니라.”




35. 설리라품(設利羅品)


“또 교시가야,
가령 이 남섬부주(南贍部洲)에 가득한 부처님의 설리라로써 한 몫을 만들고,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로써 또 한 몫을 만들면 이 두 부분에서 너는 어떤 것을 취하겠느냐?”


제석천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두 몫에서 저는 차라리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취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제가 모든 부처님의 설리라를 신봉하지 않는 것도 아니요,
기뻐하여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지 않는 것도 아니오나 모든 부처님과 설리라는 모두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로 인하여 생기기 때문이며,
모두가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공덕(功德)과 세력(勢力)으로 쪼이고 닦아야 비로소 일체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소락 등이 한량없이 많은 종류의 높고 묘한 꽃타래와 내지 등불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리자(舍利子)가 제석천왕에게 말하였다.
“교시가여,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빛깔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대할 수도 없는 한 모양으로서 곧 모양이 없는 것이니,
모양이 없는 법은 취할 수 없는 것이거늘 그대는 어떻게 취하려 하느냐?
왜냐 하면 교시가여,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더함[增]도 없고 덜함[減]도 없으며,
모임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며,
이익도 없고 손해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청정함도 없어서 모든 부처님의 법과 상응하지 않고,
독각(獨覺)의 법과 상응하지 않으며,
아라한(阿羅漢)의 법과 상응하지 않고,
유학(有學)의 법과 상응하지 않으며,
이생(異生)의 법을 버리지 않고,
유위계와 상응하지 않으며,
무위계를 버리지 않고,
내공(內空)과 내지 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과 어울리지 않으며,
4념주(念住)과 내지 일체상지(一切相智)와 어울리지 않으며,
더러운 법을 버리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그때 제석천왕이 구수(具壽)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대덕(大德)의 말씀과 같습니다.
만일에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취할 수 없고 버릴 수 없으며,
내지 일체상지와 상응하지 않고,
더러운 법을 버리지도 않는 줄 사실대로 알면 이것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진실하게 취하는 것이며,
또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진실하게 수행하는 것이오니,
이 반야바라밀다는 두 가지 행(行)을 따르지 않고 두 가지 모양이 없기 때문이며,
이와 같이 하여 정려(靜慮) 바라밀다와 내지 보시(布施) 바라밀다까지도 두 가지 행을 따르지 않고 두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을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정말로 훌륭하구나.
참으로 네 말과 같으니라.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내지 보시 바라밀다는 모두 두 가지 행을 따르지 않나니,
왜냐 하면 교시가야,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바라밀다(波羅蜜多)는 모두가 두 가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야,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내지 보시 바라밀다에 두 가지 모양이 있게 하고자 하는 이들은 곧 법계(法界)ㆍ진여(眞如)ㆍ법성(法性)ㆍ실제(實際)ㆍ부사의계(不思議界)들도 두 가지 모양이 있게 하려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교시가야,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내지 보시 바라밀다는 모든 법계와 내지 부사의계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가 없고 두 곳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때 제석천왕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소락 등이 모두 지성(至誠)으로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온갖 보살마하살들이 모두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닦고 배워서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컨대 제가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선법전(善法殿)에 있는 제석천왕의 자리에 앉아서 하늘 대중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말할 때에 한량없이 많은 천자(天子)들이 모두 저에게 와서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고 오른 쪽으로 돌면서 예배 합장하고 물러가는 경우와 같나이다.
제가 만약 그 자리에 있지 않을 때에도 모든 천자들은 역시 그 곳에 오는데,
거기 와서 비록 저를 보지 못할지라도 제가 있을 때와 같이 공경ㆍ공양하면서 모두들 말하기를 ‘이곳은 제석천왕께서 우리들에게 법을 말씀하시던 자리이니,
우리들은 모두 천왕께서 계실 때와 같이 공양하고 오른 쪽으로 돌면서 예배하고 떠나야 한다’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반야바라밀다를 어떤 이가 써서 지니거나 외우고,
널리 유정들에게 말하여 퍼뜨리면,
이곳에는 언제나 이 국토와 그 밖의 시방에 그지없이 많은 세계의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하늘ㆍ용ㆍ약차ㆍ건달박ㆍ아소락ㆍ게로다ㆍ긴날락ㆍ마호락가ㆍ인비인(人非人)들이 모두 모일 것이며,
설사 설법하는 이가 없을지라도 법을 존중히 여기기 때문에 이곳에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며 예배하고 돌아갈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일체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모든 보살마하살들과 독각ㆍ성문과 온갖 유정들의 즐거운 기구가 모두 반야바라밀다에 의하여 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설리라도 반야바라밀다의 공덕으로 쪼이고 닦음으로써 공양을 받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와 모든 보살마하살의 행과 증득하는 일체상지는 인연이 되며,
의지가 되며,
끌어 일으키는 이가 되나니,
그러므로 제가 말씀하기를 ‘설사 이 남섬부주에 가득한 부처님의 설리라로써 한 몫을 삼고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쓰는 것으로써 다시 한 몫을 삼으면 이 두 부분에서 저는 차라리 이러한 반야바라밀다를 취하리라’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지니거나 외우거나 기억할 때에는 
마음이 법에 계합[契]하기 때문에 온갖 두려운 모양을 조금도 보지 못합니다.
왜냐 하오면 세존이시여,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말도 없고 설명도 없기 때문이니,
이 반야바라밀다가 모양이 없고 형상이 없으며,
말이 없고 설명이 없기 때문에 정려(靜慮)ㆍ정진(精進)ㆍ안인(安忍)ㆍ정계(淨戒)ㆍ보시(布施) 바라밀다와 내지 일체상지도 모양이 없고 형상이 없으며,
말이 없고 설명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반야바라밀다에 모양이 있고 형상이 있으며,
말이 있고 설명이 있어서 모양이 없고 형상이 없으며,
말이 없고 설명이 없는 것이 아니라면,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은 온갖 법의 모양이 없고 형상이 없으며,
말이 없고 설명이 없음을 통달하시어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시어 모든 제자들에게온갖 법의 모양이 없고 형상이 없으며,
말이 없고 설명이 없음을 말씀하시지 못하실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다는 모양ㆍ형상ㆍ말ㆍ설명이 없는 것이요,
모양ㆍ형상ㆍ말ㆍ설명이 있지 않나니,
그러므로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는 온갖 법의 모양이 없고 형상이 없으며,
말이 없고 설명이 없다는 것을 통달하시어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시고,
모든 제자들에게 온갖 법의 모양이 없고 형상이 없으며,
말이 없고 설명이 없음을 말씀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이런 까닭에 반야바라밀다는 응당 하늘ㆍ사람ㆍ아소락 등이 한량없이 많은 종류의 꽃타래와 내지 등불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어떤 이가 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지니고 외우며,
부지런히 닦고 배워서 이치대로 생각하고,
널리 유정들에게 말하여 퍼뜨리거나 혹은 써서 온갖 보배로 장엄하고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면,
결정코 지옥(地獄)ㆍ방생(畜生)ㆍ아귀(餓鬼) 등이나 변두리의 비천(卑賤)한 달서(達絮)나 멸려차(蔑戾車)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요,
성문과 독각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에 나아가고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뵈오며,
언제나 바른 법을 들어 착한 벗을 여의지 않고 불국토(佛國土)를 장엄하며,
유정들을 성숙(成熟)하게 해주고 한 국토에서 다른 한 국토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마하살들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할 것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가령 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세계의 부처님의 설리라(設利羅)로써 한 몫을 삼고 이렇게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쓰는 것으로 또 한 몫을 삼으면,
이 두 몫 중에 저는 차라리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취하겠나이다.



왜냐 하면 하오면 세존이시여,
일체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삼천대천세계의 부처님의 설리라는 모두가 반야바라밀다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삼천대천세계의 부처님의 설리라는 모두가 반야바라밀다의 공덕과 세력으로 쪼이고 닦음으로써 모든 하늘ㆍ인간ㆍ아소락 등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는 것이오니,
이런 까닭에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부처님의 설리라에 공양하고 공경하면,
결정코 세 갈래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하늘이나 인간에 태어나서 부귀(富貴)와 쾌락(快樂)을 누리며,
마음에 원하는 대로 3승(乘)의 법을 타고 열반에 나아갈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을 뵈옵거나,
혹은 써 놓은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뵈오면,
이 두 가지 공덕은 평등하여서 차이가 없사옵니다.


왜냐 하오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과 평등하여서 둘이 아니며,
두 이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세 가지로 보이고 인도하심[三示導]에 머물러서 모든 유정들을 위하여 바른 법,
즉 계경[契經 : 長文]과 내지 논의(論議)를 말씀하시고,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지니고 외우며 널리 남에게 설명하면,
이 두 가지 공덕은 평등하여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 하오면 그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세 가지로 보이고 인도하심과 말씀하신 열 두 가지로 나뉘어진 교법[十二分敎]은 모두가 반야바라밀다에 의거하여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시방 긍가(殑伽)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세 가지로 보이고 인도하심에 머물러서 모든 유정들을 위하여 바른 법,
즉 계경과 내지 논의를 말씀하시고,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지니고 외우며널리 남에게 설명하면,
이 두 가지 공덕은 평등하여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 하오면 시방 긍가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세 가지로 보이고 인도하시는 것과 말씀하신 열 두 가지로 나뉘어진 교법은 모두가 반야바라밀다에 의거하여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에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한량없이 높고 묘한 꽃타래와 내지 등불로써 시방의 긍가강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에게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고,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반야바라밀다를 쓰고,
또 한량없이 높고 묘한 공양 거리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면,
이 두 가지 공덕은 평등하여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 하오면 그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은 모두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생기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받아 지녀 외우며,
부지런히 닦아 배우고 이치대로 생각하며,
널리 유정들을 위하여 연설하여 퍼뜨리면,
그는 오는 세상에 지옥ㆍ방생ㆍ아귀에 떨어지지 않고,
성문이나 독각의 지위에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오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결정코 불퇴전지에 머물러서 온갖 재앙ㆍ질병ㆍ괴로운 일 따위를 멀리 여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 받아 지녀 외우며,
부지런히 닦아 배우고 이치대로 생각하며,
쓰거나 해설하여 널리 퍼뜨리며,
한량없이 높고 묘한 공양 거리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면,
그는 결정코 온갖 두려움을 영원히 여의게 되리니,마치 빛을 진 사람이 빚쟁이를 두려워하여 국왕에게 가서 가까이 하고 받들어 섬기면,
국왕이 세력에 의하여 두려움을 면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에서 왕은 반야바라밀다에 비유한 것이고 빚을 진 사람은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반야바라밀다를 믿으면 두려움을 여의는 데 비유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왕을 의지하기 때문에,
또 왕이 거두어 주기 때문에 모든 세간 사람들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는 것처럼 부처님의 설리라(設利羅)도 그러합니다.
이 반야바라밀다의 쪼임을 받기 때문에 모든 하늘ㆍ인간ㆍ아소락 등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을 것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에서 왕은 반야바라밀다에 비유한 것이고,
부처님의 설리라는 왕에게 의지하는 이를 비유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여래께서 얻으신 일체상지(一切相智)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성취한 것이니,
그러므로 제가 말씀드리기를 ‘가령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부처님의 설리라로써 한 몫을 삼고,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쓰는 것으로써 다시 한 몫을 잡는다면,
이 두 몫 중에서 저는 차라리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취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나이다.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설리라는 견고하기가 금강보다 더 견고하고,
갖가지 빛과 32대장부상(大丈夫相)과 80수호를 갖추었지만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해(無礙解)와 대자(大慈)ㆍ대비(大悲)ㆍ대희(大喜)ㆍ대사(大捨)와 18불불공법(佛不共法)과 내지 여래의 일체상지는 모두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다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보시 등 다섯 가지도 바라밀다라는 이름을 얻었나니,
왜냐 하면세존이시여,
만일 반야바라밀다가 없으면 보시 등은 저 언덕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만약 이 삼천대천세계와 혹은 그 밖의 다른 세계에 있는 왕도(王都)ㆍ성읍(城邑)ㆍ마을에서 어떤 이가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지니고ㆍ외우고ㆍ쓰고ㆍ설명하고,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면,
이 곳의 유정들은 오직 결정된 나쁜 업(業)으로서 반드시 받아야 할 것만을 제외하고는 일체 인비인(人非人) 등의 침해를 받지 않을 것이요,
이 가운데 유정들은 점차로 3승의 바른 행을 닦고 배워서 그 소원에 따라 나중에는 속히 3승의 열반을 증득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이 삼천대천세계에서 큰 이익을 일으키나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큰 위신력을 갖추어서 있는 곳마다 부처님이 계시면서 모든 불사(佛事)를 하시니,
이른바 온갖 유정들을 이롭게 하시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값비싼 보배 신주(神珠)가 한량없이 많은 갖가지 묘한 위덕(威德)을 갖추어서 어느 곳이든지 머무는 곳마다 이 신기로운 구슬만 있으면 인비인들이 해치지 못하며,
설령 어떤 남자와 혹 또 어떤 여인들이 귀신에게 잡혀서 몸과 마음이 고달플 때에 이 구슬을 가졌다가 보이면 구슬의 위력으로 귀신들은 곧 놓고 달아납니다.



어떤 이가 온갖 열병이나 혹은 풍(風)이나 담(淡),
혹은 열(熱)ㆍ풍ㆍ담이 합하여서 병이 났을 때,
이 구슬을 꿰어서 몸에 지니면 이들 모든 병은 다 고쳐지며,
이 구슬이 어두운 곳에 있으면 광명이 되며,
더울 때에는 서늘하개 해주고,
추울 때에는 따뜻하게 해주며,
어느 곳이든지 이 신기한 구슬만 있으면 시절이 순조로워서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며,


어떤 지방이든지 이 신기한 구슬만 있으면뱀과 독사 따위의 독이 감히 앞을 가로막지 못합니다.설사 어떤 남자와 여인들이 중독이 되어 고통이 심할지라도 이 구슬을 보이면 구슬의 위세(威勢)로 독약은 곧 소멸되고 맙니다.
만일 모든 유정들이 몸에 혹ㆍ문둥병ㆍ악성 종양ㆍ작은 종기ㆍ어지럼증ㆍ눈을 가리는 등의 눈병ㆍ귓병ㆍ코병ㆍ혀병ㆍ인후병ㆍ몸의 병과 모든 마디마디가 다 병에 걸렸더라도 이 신기로운 구슬을 지니면,
이런 온갖 병이 모두 나아지며,
만일에 못ㆍ늪ㆍ샘ㆍ우물 등에 물이 흐리고 더럽거나,
혹은 마르려 하거든 이 구슬을 물에 던지면 곧 물이 넘쳐흘러 향기롭고 맑고 청정하여 여덟 가지 공덕을 구족(具足)하며,
만일 푸르고ㆍ누르고ㆍ붉고ㆍ희고ㆍ 분홍ㆍ자주ㆍ보라ㆍ초록 등 갖가지 빛깔의 비단과 갖가지 빛깔의 옷으로 이 구슬을 싸서 물에 넣으면 물은 곧 옷과 비단의 빛을 따라 같은 빛이 되오니,
이와 같이 값지고 큰 보배 신주의 위덕은 그지없어서 찬란하기가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만일 광주리에 이 구슬을 넣어두면 그 그릇도 그지없이 많은 위덕을 구족하게 될 것이며,
설사 빈 상자일지라도 이미 구슬을 두었었기 때문에 그 그릇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게 되나이다.”




그때 경희(慶喜)가 제석천왕에게 물었다.
“이와 같이 신비한 구슬은 하늘에만 있는가,
아니면 인간에게도 있는가?”
제석천왕이 대답하였다.
“인간이나 하늘에 모두 이 구슬이 있거니와 만일 인간에 있으면 형상이 작고 무거우며,
하늘에 있으면 형상이 크고 가볍습니다.
또 인간에 있는 구슬은 모양이 두루 두루 원만하며,
하늘의 구슬은 위덕이 수승하여서 인간에 있는 것보다 한량없이 많은 배수(倍數)의 세월을 지납니다.”
그때 제석천왕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도 이와 같사오니,
온갖 공덕의 근본이어서 능히 한량없이 많은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멸하며,
있는 곳마다 모든 유정들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다 제거하며,인비인(人非人)들이 해치지 못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값지고 큰 보배 신주는 다만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만 비유한 것이 아니요,
또한 여래의 일체상지에 비유한 것이며,
또한 정려 바라밀다와 내지 보시바라밀에 비유한 것이요,
또한 내공(內空)과 내지 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에 비유한 것이며,
또한 4념주(念住)와 내지 18불불공법에 비유한 것이요,
또한 법성(法性)ㆍ법주(法住)ㆍ법정(法定)ㆍ진여(眞如)ㆍ실제(實際)ㆍ부사의계에 비유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 하오면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공덕은 모두가 반야바라밀다의 큰 위신력(威神力)에 의하여 나타나서 그 공덕이 깊고 넓고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부처님의 설리라도 모든 공덕으로 쪼이고 닦은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신 뒤에는 온갖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소락 등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설리라는 지극히 원만하고 가장 청정한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 바라밀다와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과 4념주와 내지 18불불공법과 일체지(一切智)ㆍ도상지(道相智)ㆍ일체상지(一切相智)ㆍ대자(大慈)ㆍ잊음이 없는 법[無忘失法]ㆍ항상 평정에 머무는 성품[恒住捨性]ㆍ모든 번뇌의 습기를 영원히 뽑음과 그밖에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불법이 의지할 곳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온갖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소락 등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설리라는 지극히 원만하고 가장 청정한 공덕의 보배인 바라밀다가 의지하는 곳이기 때문에 온갖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소락 등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설리라는 지극히 원만하고 가장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청정함이 없으며,
생겨남이 없고 멸함이 없으며,
들어감이 없고 나옴이 없으며,
더함이 없고 덜함이 없으며,
옴이 없고 감이 없으며,
움직임이 없고 멈춤이 없으며,
이것이 없고 저것이 없는 바라밀다가 의지하는 그릇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온갖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소락 등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설리라는 지극히 원만하고 가장 청정하여 모든 법의 실다운 성품인 바라밀다가 의지하는 그릇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온갖 세간의 하늘ㆍ인간ㆍ아소락 등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나이다.
또 세존이시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부처님의 설리라는 그만 두고 가령 시방에 각각 긍가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세계에 가득한 부처님의 설리라로 한 몫을 삼고,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쓰는 일로써 또 달리 한 몫을 삼았을 적에,
이 두 몫 가운데서 저는 차라리 이 반야바라밀다를 취할 것이옵니다.
왜냐 하오면 세존이시여,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모든 설리라는 모두가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요,
모두가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 쪼이고 닦음에 의지하기 때문이며,
모두가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의지가 되는 그릇이기 때문에 온갖 하늘ㆍ용ㆍ약차ㆍ건달박ㆍ아소락ㆍ게로다ㆍ긴날락ㆍ마호락가ㆍ인비인(人非人)들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을 받을 만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부처님의 설리라(設利羅)에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면 하늘이나 인간에서 온갖 부귀와 쾌락을 누리되 끝이 없으리니,
인간에서는 대종성인 찰제리(刹帝利)ㆍ바라문(婆羅門)ㆍ장자(長者)ㆍ거사(居士)의 종성에 태어나고,
하늘에서는 4천왕의 무리에나 내지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태어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승한 선근(善根)에 의하여 마지막 몸에 이르러서는 괴로움의 끝까지 다 없어집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ㆍ지니고ㆍ독송하고ㆍ쓰고ㆍ설명하고 이치대로 생각하면,
이 때문에 반야바라밀다가 속히 원만하게 되고,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가 원만해진 까닭에 정려 바라밀다,
내지 보시 바라밀다와 4념처와 내지 18불불공법도 원만하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다시 성문과 독각의 지위를 뛰어넘어 보살의 바른 성품으로 생사(生死)를 여의는 데 들어가서 보살의 수승한 신통을 얻으며,
이 신통을 타고서 모든 불국토에 다니되 한 불국토에서 다른 한 불국토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며,
유정들을 성숙시켜주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깨끗하게 하며,
수승한 생각과 서원(誓願)을 일으켜 갖가지 몸을 받나니,
모든 유정들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혹은 전륜왕(轉輪王)이 되기도 하고,
혹은 그 밖의 작은 왕이 되기도 하며,
혹은 찰제리(刹帝利)가 되기도 하고,
혹은 바라문이 되기도 하며,
혹은 비사문(毘沙門)이 되기도 하고,
혹은 제석천왕이 되기도 하며,
혹은 범왕(梵王)이 되기도 하고,
혹은 다른 종류가 되어서 한량없이 많은 유정들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제가 모든 부처님의 설리라를 믿고 받들지 않는 것이 아니요,
기뻐하고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기뻐하고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지 않는 것은 아니오나,
그러나 이 매우 심오한반야바라밀다에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여서 얻는 공덕이 저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저의 생각에는 차라리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에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를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면,
곧 모든 불법(佛法)을 자라나게 하는 것이요,
또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부귀와 안락과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이며,
이와 같이 함으로써 이미 부처님의 설리라에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한 것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만일 시방의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세계의 온갖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색신(色身)과 법신(法身)을 항상 뵈옵고자 하면 응당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지극한 마음으로 듣고ㆍ지니고ㆍ독송하고ㆍ부지런히 닦고 배워서 이치대로 생각하고,
쓰거나 설명하여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시방의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세계의 일체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두 가지 몸을 뵈온 까닭에 차차로 반야바라밀다를 닦아서 속히 원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에는 응당 법성(法性)으로써 부처님을 관찰하고 따라서 생각함[觀佛隨念]을 닦아 익혀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법성(法性)은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유위(有爲)요,
둘째는 무위(無爲)입니다.
이 가운데서 어떤 것을 유위의 법성이라고 하겠습니까?
이른바 내공(內空)의 지혜와 내지 무성자성공(無性自性空)의 지혜,
4념주(念住)의 지혜와 내지 8성도지(聖道支)의 지혜,
3해탈문(解脫門)의 지혜,
부처님의 10력(力)의 지혜와 내지 18불불공법(佛不共法)의 지혜,
착하고 착하지 못한 법의 지혜,
유기법과 무기법의 지혜,
무루법과 유루법의 지혜,
유위법과 무위법의 지혜,
세간과 출세간 법의 지혜,
더럽거나 깨끗한 법의 지혜 등 온갖 이와 같은 한량없이 많은 문(門)의 지혜를모두 유위의 법성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서 어떤 것을 무위의 법성이라고 하겠습니까?


이른바 온갖 법의 생겨남이 없고 멸함이 없으며,
머무름이 없고 변함이 없으며,
더러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으며,
더함이 없고 덜함이 없으며,
모양이 없고 무위인 모든 법의 자성(自性)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모든 법의 자성이겠습니까?
이른바 온갖 법의 성품이 없는 자성을 말하는 것이니 이런 것들을 무위의 법성이라고 합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느니라,
그렇느니라.
네 말과 같으니라.
교시가야,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이미 증득하셨고,
장차 증득하실 것이며,
현재 증득하시느니라.
또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의 성문(聲聞) 제자들이 모두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예류(預流)ㆍ일래(一來)ㆍ불환(不還)ㆍ아라한(阿羅漢)의 과위를 이미 증득했고 장차 증득할 것이며 현재 증득하느니라.
또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독각(獨覺)들도 모두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독각의 깨달음을 이미 증득했고 장차 증득할 것이며 현재 증득하느니라.
왜냐 하면 교시가야,
이 반야바라밀다의 비밀한 창고에는 3승(乘)에 상응하는 법을 널리 말씀하셨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여기에서 하신 말씀은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方便)을 삼기 때문에 성품이 없고 모양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기 때문이요,
생겨남이 없고 멸함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기 때문이며,
더러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기 때문이요,
조작이 없고 지음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기 때문이며,
더함이 없고 덜 함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기 때문이요,
들어감이 없고 나옴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기 때문이며,
취함이 없고 버림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기 때문이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모두가 세속(世俗)에 의한 것이요,
진리[勝義]에 의한 것은 아니니라.
왜냐 하면 이러한 반야바라밀다는 이 언덕이 아니요 저 언덕도 아니며,
육지도 아니고 물 속도 아니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평등한 것도 아니고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며,세간도 아니고 출세간도 아니며,
유루도 아니고 무루도 아니며,
유위도 아니고 무위도 아니며,
착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며,
유기(有記)도 아니고,
무기(無記)도 아니며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교시가야,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부처님의 법과 함께 하지 않고 보살마하살의 법과 함께 하지 않으며,
독각의 법과 함께 하지 않고 성문의 법과 함께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생의 법을 버리지도 않느니라.”




그때 제석천왕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는 큰 바라밀다이고,
최상의 바라밀다이며,
어디에 비교해도 동등할 만한 것이 없는 바라밀다이오니,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비록 온갖 유정(有情)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경계의 차별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고 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유정을 얻지 못하며,
내지 안다는 것[智者]과 본다는 것[見者]을 얻지 못하고,
물질[色]과 내지 의식[識]을 얻지 못하며,
눈[眼]과 내지 뜻[意]을 얻지 못하고,
빛과 내지 법을 얻지 못하며,
안식(眼識)과 내지 의식(意識)을 얻지 못하고,
눈의 접촉[眼觸]을 얻지 못하며,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受]과 내지 뜻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을 얻지 못하고,
보시 바라밀다와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얻지 못하며,
내공과 내지 무성자성공을 얻지 못하고,
4념주와 내지 18불불공법을 얻지 못하며,
보리(菩提)를 얻지 못하고 열반(涅槃)을 얻지 못하며,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법을 얻지 못하나라.
왜냐 하오면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다는 온갖 법에서 얻을 것이 있는 것을 의지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전혀 자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요,
또한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며,
얻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요,또 얻는 주체와 얻을 대상,
이 두 가지가 의지하는 곳도 그 성품과 모양이 모두 공(空)한 것이어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느니라,
그렇느니라.
네 말과 같으니라.
교시가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오랜 세월 동안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배워도 오히려 보리를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보살의 법을 얻을 수 있겠느냐?”
그때 제석천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다만 반야바라밀다만을 행합니까?
아니면 다섯 가지 바라밀다도 행하여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아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다 함께 행해야 하나니,
이른바 모든 보살마하살은 보시 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보시(布施) 바라밀다를 얻지 못하고 베푸는 이와 받는 이를 얻지 못하며,
정계(淨戒) 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정계 바라밀다를 얻지 못하고 계율을 지니는 이와 계율을 범하는 이를 얻지 못하며,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반야바라밀다를 얻지 못하고 묘한 지혜를 갖춘 이와 나쁜 지혜를 갖춘 이를 얻지 못하느니라.
또 교시가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로 어른을 삼고 앞잡이를 삼아서,
일체 바라밀다를 수행하여 속히 원만하게 하나니,
이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닦을 때에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로써 어른을 삼고 앞잡이를 삼으면,
수행하는 보시 바라밀다가 집착하는 것이 없게 하고 속히 원만하게 해주며,
내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로써 어른을 삼고 앞잡이를 삼으면,
수행하는 반야바라밀다가 집착하는 것이 없게 하고 속히 원만하게 해주느니라.




또,
교시가야,
이 보살마하살이 온갖 법에 대하여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아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기 때문에 집착이 없어지고,
수행하는 것이 속히 원만하게 되나니,
이른바 물질에 대해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고,
내지 일체상지에 대해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느니라.
교시가야,
비유하면 남섬부주(南贍部洲)에 있는 나무ㆍ가지ㆍ줄기ㆍ꽃ㆍ잎ㆍ열매들이 비록 갖가지 형색이 있어서 같지 않으나 그 그늘은 조금도 차별이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앞의 다섯 가지 바라밀다는 비록 제각기 다른 점이 있으나 반야바라밀다가 포섭함에 의하여 일체상지로 회향(廻向)하고,
얻을 것이 없는 것으로써 방편을 삼기 때문에 온갖 차별된 모양을 전혀 얻을 수 없느니라.”



그때 제석천왕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는 광대(廣大)하고 수승(殊勝)한 공덕을 성취하고,
일체의 수승한 공덕을 성취하며,
원만하고 수승한 공덕을 성취하고,
한량없이 많은 수승한 공덕을 성취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승한 공덕을 성취하고,
그지없이 많은 수승한 공덕을 성취하며,
비교해서 동등한 것이 없을 만큼 수승한 공덕을 성취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에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써서 온갖 보배로 장식하고 한량없이 많은 종류의 으뜸가고 미묘한 공양 거리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며,
이 경에 말씀에 의지하여 이치대로 생각하는 것과 또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써서 남에게 주어 지니게 하여 널리 퍼뜨리면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복덕(福德)이 더 많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야,
내가 도리어 너에게 묻겠으니 네 마음대로 대답하라.
만약 선남자와선여인 등이 남에게 부처님의 설리라를 빌어서
보배 그릇에 담아 높고 좋은 곳에 두고,
다시 한량없이 으뜸가고 미묘한 꽃타래와 내지 등불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며,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 등은 남에게 얻은 부처님의 설리라를 남의 겨자씨만큼이라도 나누어주어 그로 하여금 공경히 받들고 법답게 지니게 하며,
다시 갖가지 으뜸가고 미묘한 꽃타래와 내지 등불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게 하면 네 생각엔 어떠하냐?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더 복덕이 많겠느냐?”





제석천왕이 대답하였다.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잘 이해해 보건대 저 두 가지 복에서 뒤의 것이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유정들을 관찰하시되 마땅히 모든 부처님의 설리라가 있는 곳에 가서 공양ㆍ공경함으로써 제도를 받을 이에게는 장차 열반에 드실 때에 금강유삼마지(金剛喩三摩地)의 힘으로 금강처럼 단단한 몸을 부수어 겨자씨만 하게 만드시고,
다시 매우 넓고 크게 불쌍히 여기시는 신통력으로 이와 같은 부처님의 설리라를 나타내시어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어떤 이가 겨자씨 만한 한 개의 사리를 얻어서 공양ㆍ공경하면,
거기서 얻는 복덕이 한량없고 하늘과 인간 세계에서 많은 부귀와 쾌락을 누리며,
끝내는 마지막으로 괴로움의 경계를 다하게 하시나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베푸는 이의 복덕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제석을 칭찬하시었다.
“그렇느니라,
그렇느니라.
네 말과 같으니라.
교시가야,
이 반야바라밀다도 그와 같아서 자신이 직접 지니거나 남에게 주어 퍼뜨리면 이 두 가지 중에 뒤의 복덕이 훨씬 더 많으니라.
왜냐 하면 남에게 베푸는 이는 능히 한량없고 그지없이 많은 유정들이 법의 기쁨[法喜]을 얻게 하기 때문이니라.
또 교시가야,
어떤 이가 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에서말씀하신 뜻을 사실대로 남에게 설명하여 바른 지혜를 얻게 하면,
그 공덕으로 얻는 복덕은 남에게 주어서 퍼뜨리는 공덕보다 백천 곱이나 더 많으리라.
교시가야,
이 법사(法師)를 공경하되 부처님과 같이 공경할 것이며,
또는 부처님과 같은 큰 지혜가 있어서 범행(梵行)을 닦는 이도 똑같이 하라.


왜냐 하면 교시가야,
반야바라밀다가 곧 모든 부처님임을 지금 알았고,
모든 부처님이 곧 반야바라밀다임을 지금 알았으며,
반야바라밀다가 모든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금 알았고,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금 알았기 때문이니라.
왜냐 하면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열심히 정근(精勤)하고 배워서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셨고,
모든 성문ㆍ독각의 종성(種性)으로서 범행을 닦는 이도 역시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열심히 정근하고 배워서 성문의 과위(果位)와 독각의 깨달음을 얻었으며,
보살의 종성인 보특가라(補特迦羅)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열심히 정근하고 배워서 성문과 독각의 지위를 뛰어넘어 보살의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가 점차로 모든 보살행을 닦아 보살의 불퇴전지(不退轉地)에 머물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에 교시가야,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현재 세상에서 모든 부처님을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써서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해야 할 것이니라.


교시가야,
나는 이 이치를 관찰했으므로 처음 부처를 이루었을 때에 생각하기를 ‘나는 어디에 의지하여 머물러야 하나?
누가 나의 공양과 공경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 하였느니라.
이렇게 생각할 때에 모든 하늘ㆍ악마ㆍ범(梵)과 그밖에 다른 세간의 인간과 인비인(人非人)들이 나와 똑같은 것을 전혀 보지 못했거늘더구나 나보다 나은 이가 있었겠는가?
또,
생각하기를 ‘나는 이 법을 의지하여 이미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하였으니,
이 법은 매우 깊고 미묘하고 고요하도다.
나는 이제 이 법을 의지하여 머물고 또 이 법을 공양ㆍ공경하리라’라고 하였느니라.
그 법은 곧 반야바라밀다이니라.



교시가야,
내가 이미 성불(成佛)한 뒤에도
아직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고 또 공양ㆍ공경하였거늘 하물며 선남자와 선여인 등이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면서
이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배우며,
또 이를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왜냐 하면 교시가야,
매우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는 능히 보살마하살을 내며,
이 보살마하살을 좇아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이 나며,
모든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을 의지하여 성문과 독각들이 나오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교시가야,
ᖰ 보살승(菩薩乘)이나 독각승(獨角乘)이나 성문승(聲聞乘)이나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모두 반야바라밀다를 부지런히 닦고 배우며,
한량없이 많은 종류의 높고 미묘한 꽃타래와 내지 등불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해야 할 것이니라.”ᖱ 


● [pt op tr] fr




『대반야바라밀다경』 ♣0001-430♧






◎◎[개별논의] ❋본문


● 현실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반야바라밀다를 닦는 것인가.

『대반야바라밀다경』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ᖰ 보살승(菩薩乘)이나 독각승(獨角乘)이나 성문승(聲聞乘)이나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모두 반야바라밀다를 부지런히 닦고 배우며, 
한량없이 많은 종류의 높고 미묘한 꽃타래와 내지 등불로써 
공양ㆍ공경ㆍ존중ㆍ찬탄해야 할 것이니라.”ᖱ 

『대반야바라밀다경』 ♣0001-430♧

이 구절을 보면 반야바라밀다를 닦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꽃 내지 등불로써 공양 공경 존중 찬탄해야 한다고 제시된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반야바라밀다이길레 이렇게 해야 하는가. 

여하튼 수행자는 반야바라밀다나 경전에 꽃 내지 등불로써 
공양 공경 존중 찬탄해야 한다는 내용을 반복해 대하게 된다. 

여기서 꽃 내지 등불이라고 표현된 부분에 주의해야 한다. 

학교에 철수와 영희를 포함해 700 여명이 다닌다고 하자. 
이런 경우 철수 내지 영희라고 표현한다. 
내지가 그런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 그 안에 생략된 것들을 많이 찾아내야 한다. 
꽃과 등불은 그런 것들을 대표하는 특성을 갖는다. 

일단 아름답다. 구하기 힘들다. 희소하다. 향이 좋다. 
효용이 좋다. 대하면 즐거움을 느낀다. .... 등등이다. 

일전에 보물을 정의한 적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 그 정체는 잘 모르지만, 
그것이 보물에서 기대하는 여러 좋음을 주는 것이면 보물이다. 
이렇게 정의했다. 

어떤 것이 그 정체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것만 대하면 
만족, 즐거움, 기쁨, 재미, 웃음, 보람, 아름다움, 가치, 평온, 안정, 무량한 선한 희망, 의욕, 
이런 것을 가져다 준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보물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가 있다. 
시장에서는 대단히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그런데 그것만 대하면 
불만, 불쾌, 짜증, 분노, 죄책감, 무가치, 불안, 초조, 긴장, 권태, 무료함, 두려움, 공포, 경악...
그리고 아집에 바탕해 자신의 분노와 탐욕의 성취를 위한 사악한 욕망, 
이런 것을 가져다 준다고 하자. 
그러면 정반대가 된다. 

그래서 각 경우 무엇들이 각기 이것을 가져다 주는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어떤 이가 자신에게 대단히 소중한 것을 들고와 선물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을 받은 이들이 모두 공포에 떨고 불안해 했다고 하자. 
그러면 문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소중한 눈을 직접 뽑아내서 피가 묻어 있는 눈을 주었다고 하자. 
그런 경우가 그런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경전에서 공양, 공경, 존중, 찬탄이란 표현이 반복된다. 
수행자가 평소 수행과정에서 행할 중요한 항목이다. 
그래서 양, 경, 존, 찬 이렇게 외우고 다니게 된다. 
평소 그런 것을 찾아서 해야 하고 그 품목을 또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구체적인 경우에 보물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내 
그것을 가치 있는 부분에 공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찬탄을 하려면 또 평소 짧게 아름다운 시를 짓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이미 제시된 내용도 자주 대해서 외우기도 해야 한다. 
쉽지 않다. 
 



○ 반야 바라밀다는 무엇인가. 

이 문제를 이렇게 생각해보자. 
현실에서 수많은 중생이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무언가가 그런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반대로 무량겁에 걸쳐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가져다 준다고 하자. 

그것이 무언가가 문제다. 
그것이 반야바라밀다다. 

왜 그런가. 

현실 사정을 살펴보자. 

어떤 이가 눈을 떠서 걸어다닌다. 
앞에 좋은 꽃이 보인다. 
그래서 손을 뻗쳐 꽃을 잡아서 향기를 맡는다고 하자. 

바로 이 상황이 문제다. 

이 상황에서 거의 대부분 자신이 대한 그 꽃이 
손이 붙잡은 외부대상인 것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촉감을 느낀다고 하자. 
그러면 그 촉감을 얻게 한 외부대상도 바로 그 꽃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이 상황에서 그런 촉감을 얻게 한 감관은 그런 손에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마찬가지로 자신의 눈이 대한 외부대상도 바로 그런 부분이라고 여긴다. 
더욱이 그가 대하는 그런 일정부분이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꽃이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그 상황에서 꽃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손으로 그가 꽃이라고 여기는 그 부분을 가리키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그 상황에서 그 자신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묻는다고 하자. 
이 경우 앞과 마찬가지로 일정부분을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며 가리키게 된다. 

이 경우 앞에 서술한 내용이 모두 공통된다. 
그리고 한 주체가 현실에서 행하는 일체 내용은 모두 이 부분에 바탕한다. 

자신, 자신의 신체, 자신의 생명, 자신의 물건, 자신의 재산. 자신의 가족...
이런 것이 한 주체가 삶을 영위해가는 주된 주제이자 테마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에서 망상에 바탕해 상을 취해 임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바로 이처럼 현실에서 임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물론 이 자체만 놓고 보면 큰 문제가 없다. 
현실에서 잘못되고 엉터리인 생각을 한없이 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것만으로 당장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위에 기술한 내용 대부분은 오히려 대단히 옳은 판단인 것처럼 잘못 여겨진다. 

그런데 어떤 주체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가장 근본 바탕은 위와 같은 내용들이다. 
그런 바탕에서 각 주체가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켜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서는 그런 업을 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정이 그렇기에 매순간 그렇게 그런 업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후 3 악도에 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미리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예방에 들이는 노력이 가장 쉽고 효과가 좋다. 
그것은 처음 일반적인 현실 상황에서 위와 같이 잘못된 망상분별을 일으켜 임하는 자세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을 행하지 못하고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래서 직접 3 악도에 처한 상태에서는 이후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대단히 힘들다. 
아무리 빨라도 1 생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무량겁을 그런 상태로 계속 임하게끔 된다. 
지금 이 순간 그것이 곤란하다고 하자. 
그런 상태로 매순간을 이어 나가게 된다. 
그런 결과 무량겁을 그런 상태로 묶여 임하게끔 된다. 

그래서 평소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을 때 그런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평소 아무리 생각해도 위 상황에서 위와 같이 판단을 잘못 행하게끔 된다. 
그리고 위 상황에서 앞에 나열한 내용이 무엇이 잘못인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 결국 반야다. 

그래서 이를 통해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니르바나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생사고통을 여기고 대하는 생사현실마저도 
여여하게 니르바나의 상태로 대해 임하게 만든다. [생사 즉 열반]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해 임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다른 이도 그처럼 이끌어 이르게 하는 것이 바라밀다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보물을 나열하면 
결국 반야바라밀다를 꼽게 된다. 

그것이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 무량한 좋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 가운데 
다시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게 한다.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반야 바라밀다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앞에 처음 제시한 문제를 다시 살펴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 생사현실에 임해 처음 제시한 형태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옳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이에 바탕해 일체의 생각과 말과 행동 태도 자세를 취해 나간다. 
즉, 한 주체가 이후 행하는 일체의 생각과 말과 행동 태도 자세는 
처음과 같은 망상분별에 바탕해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거꾸로 뒤바뀐 잘못된 판단임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경전에서 그것이 잘못된 망상분별임을 반복해 강조한다. 
그런데 그런 내용만 반복해 제시하면 부족하다. 

왜 그런 판단들이 엉터리로서 잘못된 분별인가를 살펴서 깨닫고 이해해야 한다. 
이를 지금까지 반복해 설명했다. 
그런데 매번 이 문제를 다시 살펴야 한다. 
생사고통의 해결을 위해서는 매 경우 이 망집의 해결이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전에서 매 경우 이 부분이 반복된다. 

물론 도무지 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는 
차선책이 제시된다. 

우선 당장 10 선법을 행해 하늘에 올라가는 것, 
또는 망집을 제거하지 못한 바탕에서라도 우선 당장은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 
즉 계를 성취해서 우선 당장은 3 악도에 묶이지 않는 것, 
이런 내용들이 기초적으로 제시된다. 

또 그것보다 더 상태가 안 좋은 경우는 
일단 상대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상대가 소원하는 것을 성취시켜주면서 수행으로 이끌어가는 내용이 제시된다. 

그런데 다시 그것보다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또 있다. 
아무리 말해도 망집을 고집해 막무가내로 임하는 경우들이다. 
마치 손오공처럼 자신의 재주만 믿고 날뛰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또 다른 방편이 필요하다. 
금강 방편이 필요하다. 

그런데 가장 원칙적인 방안은 처음 일반 상황에서 일으키는 망상분별을 
붙잡고 그것이 왜 잘못인가를 스스로 잘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다시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 어떤 형태로 임해야 하는가를 잘 파악해 
수행에 정진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그간 많이 반복했다. 
어느 부분에 이것을 잘 정리하고자 생각 중이다. 
매번 반복하다보면 지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표현해 기술하는가에 따라 
매 경우 사정이 달라진다. 
과거의 글을 읽어보면 본인도 때로는 이해가 잘 안 된다. 
과거 버전의 본인이 불만을 일으킨다. 
~~~ 한 무엇이 ~~~~한 무엇을 하는데, 그러나 ~~~~~한 것이 ~~~ 해서...
이런 식으로 만연체로 이어진다. 
본인도 무엇을 말하고자 그렇게 글을 적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그리고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표현해 서술하는가에 따라 또 다르다. 
그래서 여러 번 반복해 읽어서 표현을 고쳐야 한다. 
이것이 요즘 과제다. 

현재는 『관소연론』 부분에서 이 주제를 함께 취급해 다루고 있다. 

페이지를 걸어 놓고 살핀다. 
같은 내용이 한 페이지에도 반복해 서술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자꾸 읽어서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내용도 조금 쉽게 순서를 바꿔서 서술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무엇보다 읽어야 할 동기나 취지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글 내용이 재미가 없다. 
여러가지로 해결할 과제가 많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판단하는 내용이 무었때문에 잘못인가. 
이것을 이해하려면 결국 그 부분을 붙잡고 살펴야 한다. 

일단. 여기서는 정리 작업 중간에 있는 해당 부분을 링크만 걸고 
넘어가기로 한다. 
본래 링크를 걸려면 해당 부분에서 키워드를 뽑고 북마크를 해야 한다. 
현재는 그 작업 자체가 안 된 상태다. 
그래도 중복 서술을 피해서 일단 페이지만 연결시키기로 한다. 

일전에 이렇게 작업 중인 페이지에 링크를 거는 특수기호를 
마련했었다. 그런데 지금 잊었다. 
이는 나중에 이 부분을 정식 링크로 바꿔 주고 정리하기 위한 용도다. 
생각해봐야 한다. 

★★★

『관소연론』-- 현실에서 일으키는 분별이 잘못된 망상분별인 사정 


★★★






◆vfwg2920

◈Lab value 불기2565/04/24


○ 2020_0606_140816_can.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laude-Monet-ice-floes-misty-mornin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FE06_226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onumentvalley




♥Rio Abiseo National Park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Michel Sardou - L'amour Formica (Avec Johnny Hallyday)



♥단상♥사역의 원리-다른 생명을 괴롭히며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을 선물하는 경우는 현실에 많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스토커 범죄자로 고발당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경우마다 다르다. 

물론 위드미 운동이나 미투 운동이 성격이 서로 정반대로 다르다. 
미투 운동은 상대가 자신을 괴롭히고 불쾌하게 만드는 경우다. 
그래서 상대를 고발하고 감옥에 가두려는 운동이다. 

그런데 위드미 운동은 그 반대다. 
상대가 좋아서 상대와 함께 같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는 운동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그 성격이 그다지 다르지는 않다. 
다만 구체적인 경우에 그 특성이 다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이가 자신은 손을 잡으면 좋다. 
그런데 싫어하는 이가 혐오스런 방식으로 자신의 손을 잡으면 대단히 불쾌하다. 
이런 차이다. 
외관만 놓고 보면 손을 잡는다는 자체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각 경우 구체적인 성격 차이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여성들이 미투 운동을 전개하면 그 심정을 헤아려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경우 위축되기 쉽다. 
무엇을 하면 상대가 불쾌감을 느끼는가. 
외관상은 이 경우나 저 경우가 다 같아 보인다. 
그래서 더 어렵다. 
그래서 아예 여인이 나타나면 외면하고 무시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잘못하면 크게 고통을 당하기 때문이다. 
또 현실에서는 이런 사정 때문에 오히려 이런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즉 꽃뱀이나 제비라고 칭해지는 분야다. 
그런 경우 잘못 걸리면 큰 고통을 당한다. 
셑업 범죄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그런 사정 때문에 아예 상대를 외면하려는 경향도 생긴다. 

그렇지만 사정이 그렇다고 어떤 여인이 주변으로부터 무관심과 무시 냉대를 받기를 원하는 것은 또 아니다. 
그래서 문제가 또 어려워진다. 

친하게 여겨서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고 손을 잡는다. 
경악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고발당할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그로 인해 친근감을 느낄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가 어렵다. 
그래서 아예 외면한다. 
그러면 또 상대가 대단히 불쾌감을 받는다. 
역시 그로 인해 고통을 되돌려 받게 된다. 
이른바 괘씸죄에 해당하는 댓가를 치루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가 어렵다. 

그런데 여인은 자신을 대하는 이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내심 바라는가. 
이것을 찾아내야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을 경전에서 요약해 제시한다. 
그래서 그것을 평소 잘 외어둬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경우 
그것이 열쇠가 된다. 

그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그 상황에 내용을 찾아 행하면 된다. 
그렇지 못하면 무엇을 어떻게 해도 고발 당한다. 
또는 고통을 받게 된다. 

상대를 칭찬하고 찬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자. 

그런데 지금 상대가 큰 소리로 방귀를 뀌었다고 하자. 
일반적인 경우는 불쾌감을 느끼고 비난하면서 피하기 쉽다. 

그런데 칭찬과 찬탄을 해야 한다는 방향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달리 대하게 된다. 

상대가 그로 인해 더욱 청정하고 향기가 난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초점을 맞추고 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몸 안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일정 분량이 빠져 나갔다. 
그래서 그 만큼 청정하고 깨끗해졌다. 
또 그것을 대비해 대함으로써 청정함이 더 뚜렷하게 인식된다. 

이렇게 살필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을 설명이 아니라, 
시적인 표현으로 잘 표현해야 한다. 
상대가 초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않아도 그 내심의 그런 뜻을 이해하기 힘들다. 

잘못 표현하면, 비꼬는 것으로 또 오해하기 쉽다. 
미리 연습을 잘 해야 한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4/2565-04-24-k0001-430.html#2920
sfed--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txt ☞제430권
sfd8--불교단상_2565_04.txt ☞◆vfwg2920
불기256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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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防非) 지악(止惡)하는 조규(條規)인 계율을 기록한 경전.

답 후보
● 계장(戒藏)
고려장경본(高麗藏經本)
고집(苦集)
공경(恭敬)
공교무기(工巧無記)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공안(公案)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2020_0908_150805_nik_ct9 합천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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