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역경(譯經)삼장 조봉대부(朝奉大夫) 시광록경(試光祿卿) 명교대사(明敎大師) 신 법현(法賢) 지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는 마가타국(摩伽陀國) 왕사성(王舍城)의 동쪽 암라(菴羅) 동산 큰 바라문 촌락의 북쪽 비제희산(毘提呬山) 제석 바위[帝釋巖]에서 대중들과 함께 계시었다. 그때에 제석천주(帝釋天主)가 부처님께서 마가타국 비제희산 제석 바위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오계건달바(五髻乾闥婆) 왕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아느냐? 내가 들으니 부처님께서 마가타국 비제희산 제석 바위에 계신다 하니, 너와 함께 가서 부처님을 모셔다 공양하려고 한다.”
오계건달바 왕자는 이 말을 듣고 제석천주에게 말하였다. “네, 매우 좋습니다, 천주시여.” 오계건달바 왕자는 곧 유리 보배로 장식한 공후(箜篌)를 들고 제석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때 마침 하늘 무리들이 제석천주가 오계건달바 왕자와 함께 부처님을 모셔다 공양하려고 떠난다는 말을 듣고 그들도 각기 마음을 내어 부처님을 모셔다 공양하기를 원하였다.
그때 제석천주는 오계건달바 왕자와 하늘 무리들을 데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건강한 사람이 팔을 한번 굽혔다 펴는 동안과 같이 잠깐 사이에 마가타국 비제희산 곁에 도착하였다. 이때에 문득 커다란 광명이 그 산을 두루 비추었는데 마침 산 주위에 살던 사람들이 이 빛을 보고 서로 말하였다. “저 산이 무슨 까닭으로 불빛이 밝아서 본 모양을 가리워 꼭 보배 산 같구나.”
그때 제석천주가 오계건달바 왕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 산에 저렇게 미묘하고 이상한 빛이 있는 것을 보느냐? 부처님께서 이 산에 계시어서 네 가지 일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또 이 산에 있는 전당(殿堂)들은 다 보배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 주위에 사는 사람들도 번뇌가 다하고 모두 성자의 도를 증득하였으며, 나아가 큰 힘을 가진 여러 하늘도 늘 여기에 머무른다.”
또다시 말하였다. “이러므로 우리들이 이런 곳을 다시 만나기가 어려우니 먼저 말한 대로 부처님을 모셔다 공양하는 기회는 바로 이 때이다. 너 오계건달바 왕자는 가지고 있는 악기로 음악을 공양하여라. 이 때를 놓치면 실로 만나기 어려우니라.” 오계건달바 왕자는 이 말을 듣고 제석천주에게 말하였다. “네, 매우 좋습니다. 정말로 좋은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생각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천이통(天耳通)을 갖추셨으므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능히 다 들으시리라.’ 그리고 나서 곧 가지고 있던 유리 보배로 장식한 공후를 타니, 그 소리에서 노랫가락[伽陀]이 나오며 노래 속에서 다시 좋아하는 일을 말하였다.
그 노래는 이러하였다.
여보 어지신 일광 아씨여 마땅히 아버님께 청을 들여서 나랑 함께 짝을 지어 같이 삽시다. 이내 맘 알아주오, 어진 아씨여.
그대를 연모하는 이내 심정은 열병에 걸린 이가 몸이 달아서 시원한 자리를 생각하는 듯 목마른 저 사람이 물 생각하듯
병들어 앓는 이가 약 생각하듯 굶주린 젊은이가 밥 생각하듯 커다란 코끼리가 고리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과 같네.
그리고 성현님네 아라한들이 즐거이 열반 법을 구하듯이 내 지금 온갖 소원 바라는 것은 그 뜻도 또한 다시 이와 같구려.
탐심과 욕심 번뇌 더욱 더하여 이것이 참다운 것 아니건마는 소원을 바라도 이루지 못해 괴로운 온갖 번뇌 모두 받았네.
이내 몸 지은 복과 좋은 업으로 아라한 성현님께 공양하여서 과보를 얻게 되면 모두 다 바쳐 마땅히 그대 함께 같이 하리다.
내가 일광 아씨 그리워함은 이 마음 단단하여 변치 않으리. 저 모든 하늘 무리 제석천주여 마땅히 나의 소원 이뤄 주소서.
이때에 부처님께서 제석 바위에서 천이통으로 그 소리를 들으시고 곧 신통력으로 멀리 오계건달바 왕자에게 말씀하셨다. “참 잘한다. 건달바 왕자여, 네가 악기를 어루만져 줄을 탈적에 나오는 미묘한 소리는 마치 아름답고 묘한 노랫소리와 같고, 노랫소리를 지을 때는 다시 줄에서 나는 소리와 같구나.
이것이 무슨 이유인가 하면, 오랫동안 줄로써 음악을 단련하였으므로 그 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속에 노랫가락이 연주되었기 때문이니라. 또 노래 속에 세 가지 소리를 연주하였기 때문이니, 사랑스럽고 즐거운 소리[愛樂音]ㆍ용의 소리ㆍ아라한의 소리이니라.”
그때 오계건달바 왕자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서 멀리서 들려오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옵건대 지난날에 건달바 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동모라(凍母囉)였습니다.
그 왕에게 일광(日光)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제가 좋아하여 권속을 삼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 보았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그녀 앞에서 이와 같은 음악을 하여 악기의 줄에서 노랫가락이 연주되고 노랫가락 속에 세 가지 소리를 연주하였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 음악을 연주할 때에 선법회(善法會)에 있던 하늘 무리들이 서로 말하기를 ‘오계건달바 왕자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나 보네.
우리 부처님께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셨으니,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변지(正遍知)ㆍ명행족(明行足)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조어장부(調御丈夫)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여러 하늘에게 말하기를 ‘너희들 모든 하늘들이 부처님의 덕을 잘 찬양하는구나’라고 하니, 모든 하늘들이 대답하기를 ‘오계건달바 왕자여, 우리들이 부처님 찬양한 공덕을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대답하기를 ‘그대들이여, 내가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리라’고 하였나이다. 제가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부처님을 향하여 이런 음악을 아뢰었나이다.”
그때 제석천주가 생각하기를 ‘이제 오계건달바 왕자는 인연이 성숙되어 부처님 앞에 가기도 전에 벌써 공양을 베풀었도다’고 하고 나서 오계건달바 왕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말을 자세히 듣고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하고 여쭙되 ‘천주 제석이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절을 하고 문안하기를 병이 없으시고 괴로움도 없으며 기거가 편리하시고 기력이 건전하시며 드나드시는 데 피로함이 없으시옵니까?
제가 이제 도리천 무리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와 모시고 공양하려 하오며 부처님 뜻을 듣잡고자 하나이다’고 하여라.”
이때 오계건달바 왕자가 이 말을 듣고 제석에게 말하였다. “참 좋습니다, 천주시여.” 그리고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을 하고 한쪽에 물러서서 제석의 분부대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석천주와 도리천 무리들이 저를 시켜서 이곳에 가 부처님 두 발에 절하옵고 병이 없으시고 피로가 없으시며 기거가 편리하시고 기력이 건전하시며 드나드심에 피로함이 없으신가 물으며, 그들이 오늘 부처님께 와서 모시고 공양하려 하여 저를 보내어 부처님의 뜻을 듣잡고자 하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대답하셨다. “돌아가서 제석과 하늘 무리들에게 전하기를 ‘지금이 바로 때이니라’라고 하여라.” 오계건달바 왕자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바로 제석의 처소에 가서 그대로 전하였다. “지금이 바로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제석과 도리천 무리들은 곧 부처님께 가서 두 발에 절을 하고 한쪽에 물러가 있었다. 이때에 제석천주가 생각하기를 ‘이 제석 바위가 이렇게 좁으니 이 많은 하늘 무리들이 다 어떻게 앉을까?’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벌써 제석의 그러한 생각을 아시고 곧 신력으로 바위를 넓어지게 하여 모든 하늘 무리들이 서로 걸리지 않게 하였다. 제석천주와 하늘 무리가 각각 부처님께 절을 하고 차례로 앉은 다음에 제석천주가 합장하고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이 긴 밤에 부처님을 뵈옵고 바른 법을 듣고자 했나이다.
이때에 우리가 비사문궁(毘沙門宮)에 있었는데 그 궁중에는 묘비(妙臂)라는 한 부인도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화계삼매에 드신 것을 보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깨어나지 않으신 것을 뵈옵고 묘비에게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깨어나시기를 기다려 나의 정성을 전하여 부처님께 문안하되 <병이 없으시고 피로가 없으시며 기거가 편리하시고 기력이 건전하시어 드나드심에 피로하심이 없으시옵니까?> 하라’ 하고,
또다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깨어나시기를 기다려 나의 정성을 전하여 잊어버림이 없게 하라’ 하였사온데, 부처님이시여, 그런 사실이 있었사옵니까?”
부처님께서는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사실이 있었노라. 그 부인이 너를 대신하여 공경스럽게 문안한 일이 있었노라.”
부처님께서는 또 이어 말씀하셨다. “천주여, 내가 삼매에 들었을 적에도 또한 너의 말을 들었고, 그 뒤에 오래지 않아서 바로 삼매에서 깨어 나왔노라.”
그때 제석이 이 말씀을 듣고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일찍이 듣자오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큰 이익을 지으실 적에, 커다란 방편으로 중생의 근기를 따라 인도하시어 혹 사람의 형상을 숨기시고 하늘의 형상을 나타내신다’ 하더니, 제가 이제야 알았나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큰 이익을 지으시어 좋은 방편으로 중생의 근기를 따라 인도하실 적에 혹 숨기도 하시고 혹은 나타나시기도 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여러 성문(聲聞) 제자들이 부처님을 따라 집을 나와 깨끗한 계행을 닦아 지니므로 목숨이 다한 뒤에 도리천에 나게 되옵니다. 저 하늘 사람들은 세 가지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수명(壽命)과 좋은 모습과 명예이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옛적에 석가 족의 딸로서 밀행(密行)이라는 이가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깨끗한 계행을 지니며 늘 여인의 몸을 싫어하고 남자의 형상을 바라더니 목숨이 다한 뒤에 도리천에 태어나서 저의 아들이 되었는데 이름을 밀행이라 하였습니다. 큰 위력을 갖추었으니 이것이 대장부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또 세 비구니가 성문의 행을 닦았으나 탐욕을 끊지 못하였더니 목숨을 마친 뒤에 하늘에 와서 미나건달바(尾那乾闥婆)의 아들로 태어나 언제나 밀행 천자를 섬기는 시자가 되었는데, 밀행 천자가 미나건달바 왕자에게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이내 몸 옛적에는 여인이 되어 지혜를 갖추었고 이름은 밀행이라. 여인이 싫어져서 남자 되려고 언제나 불ㆍ법ㆍ승에게 공양하였네.
이때에 너희 세 사람들이 성문의 행을 닦음 나는 보았지. 지금은 낮은 가문 태어났기에 이내 몸 위하여 섬기게 됐네.
너희들 지금 마땅히 알아두어라. 내 지금 너희 위해 사실 말하리. 옛적에 너희들이 사람 됐을 때 네 가지가 모두 다 풍족했었네.
부처님 계행법을 지키지 않은 옛날의 부끄러움 이제 알아라. 마음을 깨달으면 바른 법이라. 슬기로운 사람만이 능히 깨치리.
이내 몸 옛적에 너와 함께 부처님 가까이에서 바른 법 듣고 신심을 일으키어 계행 지니고 거룩한 대중들을 공양하였네.
바른 행을 닦음으로 말미암아서 내 이제 제석천의 아들로 났네. 하늘의 큰 위력을 모두 갖추어 그 이름 밀행임을 스스로 아네.
수승한 저 궁전에 머물러 있어 여인 몸 바꾸어서 남자 되었네. 너희들 건달바의 아들들이여 부처님 행을 따라 범행 지녀라.
부처님 최상법을 들었지마는 도리어 이내 몸을 섬기게 됐네. 내 하늘세계 그 가운데서 여태껏 못 보던 일 지금 보았네.
성문의 행을 닦아 지녔지마는 하찮은 저 가문에 태어났으니 너희들 건달바의 아들이여 이내 몸 밀행의 교화 받으라.
너희들이 받아 태어난 지금 그 몸은 저 모든 부처님의 제자 아니다. 건달바 아들들은 말을 하였지, 하늘님[天] 그 말씀은 진실하다고.
우리들 탐욕으로 말미암아서 건달바 무리들에 떨어졌나니 우리도 이제부터 정진하여서 부처님 바른 법을 염하리라고.
탐욕이 허물 됨을 알아서 탐욕심 어서 끊어라. 탐욕은 번뇌 속박 근본 되나니 그 힘이 마군보다 훨씬 더하네.
부처님 참된 법을 버림으로써 훌륭한 저 하늘에 나지 못하네. 제석천 하늘님과 범천의 왕은 선법회 이 모임에 앉아 계시네.
저 모든 하늘들은 묘한 행으로 저 모든 하늘세계 놀고 계신데 이내 몸은 낮은 가문 태어났으니 하늘의 좋은 세계 구경왔도다.
이내 몸 온갖 행실 바르지 못해 훌륭한 좋은 과보 얻지 못했네. 그때에 밀행 천자 저분께서는 아버지 제석에게 말하였도다.
마땅히 부왕께서는 아시오리다. 우리의 높으신 분 부처님께서 인간의 저 세상에 출현하시어 저 모든 마군들을 항복 받음을.
그 이름 석가모니 훌륭하셔라. 이 세 건달바들은 높은 분 부처님의 제자들로서 참되고 바른 생각 잃어버리어
건달바 무리에 떨어졌다네. 저 세 건달바 가운데 한 사람만은 깨닫지 못하였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바른 길 들어
언제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향하여 바른 법 받아 지녀 수행하나니 내가 본 모든 성문 중에는 이 사람 따를 이가 하나 없도다.
욕심과 탐내는 맘 멀리 여의고 일체의 번뇌 법을 끊어 버렸네.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다시는 딴 생각 내지도 않네.
아직껏 깨닫지 못한 법들을 저 두 사람 모두 바로 알아서 마땅히 훌륭하온 과보 받아서 범천의 저 세계에 태어나리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밀행 천자가 말하는 이 게송을 듣고 의심되는 일이 있기에 부처님께 여쭈려 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말씀하여 주옵소서.”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생각하시기를 ‘제석천주가 긴 밤중에 게으름이 없고 중도에 폐지함이 없으며 번뇌와 허물도 없으니 그가 묻는 것은 진정코 몰라서 묻는 것이요, 부질없이 마군(魔軍)의 희롱을 하는 것이 아니니, 묻는 것을 마땅히 대답해 주리라’고 하시고 곧 게송으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제석아 듣거라, 너는 알아라. 네 마음 그 속에서 좋아하는 것 묻고자 하는 일이 만약 있거든 물어라, 너를 위해 말해 주리라.
이때 제석천주는 이 게송으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자기도 게송으로 여쭈었다.
이제야 부처님의 허락 받자와 이내 몸 마음속에 좋아하는 것 마땅히 제가 이제 묻자 오리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말씀해 주소서.
제석천주는 게송을 마치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 “부처님이시여, 모든 하늘ㆍ인간ㆍ아수라ㆍ건달바와 다른 온갖 중생들이 무엇을 번뇌라 하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미워함과 사랑함이 번뇌가 되느니라. ◂
▸ 제석천주여, ◂
모든 하늘ㆍ인간 ㆍ아수라ㆍ건달바와 다른 온갖 중생들이 생각하기를 ‘아, 내가 저들에게 먼저 침해한 일이 없고, 또 억울하게 한 일도 없으며 싸우지 않고 다투지도 않았으며, 소송하거나 대립한 일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도리어 이런 일을 하는고?’ 하나니, 온갖 허물을 남에게 원망만 하나니라. 이와 같은 일이 미움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니, 미움과 사랑이 일어나므로 드디어 번뇌가 생기느니라.”◂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정말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제가 이제 그런 줄을 알았습니다. 미움과 사랑이 번뇌가 된다는 말씀에 의혹을 끊고 즐거운 마음이 만족하였사옵니다.”
이때 제석천주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들은 뒤라 기뻐하여 의심 없이 믿고 그대로 받아 지니고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미움과 사랑의 번뇌가 어떤 원인에서 어떻게 모이며 어떻게 생기며 어떻게 인연하옵니까? 또 어떤 원인으로 있게 되오며 어떤 원인으로 없어지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석천주여, 미움과 사랑의 번뇌는 원망하는 것과 친절한 것이 원인이 되고, 원망하고 친절하므로 모음[集]이 되며, 원망과 친절함으로부터 생기고 원망하고 친절함이 인연이 되느니라. 원망함과 친절함으로 말미암아 미움과 사랑의 번뇌가 있나니, 만일 원망함과 친절함이 없으면 미움과 사랑이 없느니라.”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제가 이제 부처님에게서 이 뜻을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미움과 사랑의 번뇌가 원망함과 친절함의 원인이 되옵니다. 만일 원망함과 친절함이 없었다면 곧 미움과 사랑도 없으리이다.”
제석은 또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원망함과 친절함은 무엇 때문에 있으며 무엇으로 좇아 모이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무엇을 의지하여 반연하며, 무슨 원인으로 있게 되며 무슨 원인으로 없게 되옵니까?”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욕심이 원인이 되며 욕심으로 좇아 모이며, 욕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욕심에 의하여 반연하며, 욕심으로 인하여 원망함과 친절함이 있느니라. 만일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원망함과 친절함이 곧 없게 되리라.”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원망함과 친절함이 욕심 때문에 생기는 줄로 아옵니다.”
그리고 나서 제석은 다시 말을 이었다. “부처님이시여, 욕심내는 바는 무엇을 인하여 있으며 무엇으로 좇아 모이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무엇에 의하여 반연하고, 무슨 원인으로 있게 되며 무슨 인연으로 없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석이여, 욕심은 의혹으로 인하여 있으며 의혹을 좇아 모이며, 의혹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의혹에 의하여 반연하느니라. 의혹에 의하여 욕심이 있나니, 만일 의혹이 없으면 곧 욕심낼 바가 없느니라.”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욕심이 의혹으로 인하여 있사옵니다.”
제석은 또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의혹은 무엇에 원인하고 무엇으로 좇아 모이며, 어떻게 나며 어떻게 반연합니까? 또 이 의혹이 무엇을 인하여 있게 되오며 무엇을 인하여 없게 됩니까?”
▸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한 것이 원인이 되며 허망으로 좇아 모이며, 허망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허망에 의하여 반연하느니라. 허망한 까닭으로 의혹이 있기 때문에 욕심낼 바가 있고, 욕심으로 인하여 원망함과 친절함이 있게 되고, 원망함과 친절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미움과 사랑이 있게 되며, 미워하고 사랑하므로 칼을 잡고 서로 겨누며 소송하고 다투며 아첨하고 꾸며대어 말이 진실치 못하나니,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죄업의 좋지 못한 법을 일으키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많은 고통의 무더기가 쌓이게 되는 것이니라.◂
제석천주여, 만일 허망함이 없으면 곧 의혹이 없고, 또 의혹이 없으면 욕심낼 것이 없으며, 욕심낼 것이 없으면 원망함과 친절함이 어찌 있으며, 원망함과 친절함이 성립되지 않으면 미워함과 사랑함이 저절로 없어지리라.
미움과 사랑이 없으므로 칼을 서로 겨누거나 소송하거나 다투고 아첨하며 꾸며대는 마음과 진실치 못한 말을 하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죄업의 좋지 못한 법이 다 없어질 것이니라. 이렇게 되면 커다란 고통의 무더기가 저절로 없어지리라.”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허망으로 인하여 곧 의혹 됨이 있었나이다.”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면 허망한 것은 무슨 법으로 없애오며 비구는 마땅히 어떻게 수행하오리까?”
▸ 부처님께서 천주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함을 없애는 데는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正道]이 있느니라.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라 함은, 바른 소견[正見]ㆍ바른 생각[正思惟]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위[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노력[正精進]ㆍ바른 기억[正念]ㆍ바른 선정[正定]이니라. 이 여덟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허망함을 없앨 수 있느니라. ◂
만약 모든 비구들이 이 법을 실행하면 이는 곧 허망을 없애는 행이 되느니라.”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허망을 없애는 것은 오직 이 여덟 가지 바른 길이라 생각하나이다.”
제석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없앨 바의 허망한 법을 만일 비구가 행하려면 별해탈법(別解脫法) 가운데 몇 가지 법이 있사옵니까?”
부처님께서는 천주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한 법이란 것은 별해탈법 가운데 여섯 가지 법[六種法]이 있으니, 그 여섯 가지는 눈으로 빛을 보는 것, 귀로 소리를 듣는 것, 코로 냄새를 맡는 것, 혀로 맛을 보는 것, 몸으로 부딪힘[觸]을 아는 것, 뜻으로 법진(法塵)을 분별하는 것 등이니라.
천주(天主)여, 눈으로 빛을 보는 데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가히 볼 것과 가히 보지 못할 것이 그것이니라. 가히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온갖 더러운 법 경계는 가히 보지 않는 것이요,
가히 볼 것이라 함은 온갖 좋은 법의 경계는 가히 관찰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눈으로 빛의 경계를 보는 것처럼 귀로 소리를 듣는 것으로부터 뜻으로 법진을 분별하는 것까지도 또한 다 그러하니라.”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께 듣자와 이러한 뜻을 알았나이다. 가히 보지 못할 것이라 함은 눈으로 보는 경계의 좋지 못한 법이니, 만일 그것을 보았다면 더러운 법이 늘어서 좋은 법을 덜어 버리는 것이요, 가히 볼 것이라 함은 눈으로 보는 경계의 모든 좋은 법이니, 만일 그것을 보았다면 좋은 법을 늘리고 더러운 법을 덜게 되는 것이옵니다. 이와 같이 뜻으로 법진을 분별하는 데 이르기까지도 다 그러하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이러한 법을 듣잡고 바라던 마음이 만족하여 의혹을 끊었습니다.”
또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비구가 허망한 것을 없애려 하면 마땅히 몇 가지 법을 끊고 몇 가지 법을 실행해야만 되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주여,
▸ 만일 비구가 허망한 법을 없애려 하면 마땅히 세 가지 법을 끊고 세 가지 법을 실행해야 하느니라. 첫째는 의혹이요 둘째는 희망이요 셋째는 뜻 없는 말이니라. ◂
이 세 가지 법에도 할 것이 있고 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하지 못할 것이라 함은 세 가지 좋지 못한 법은 마땅히 끊어 버리고 행하지 말 것이요, 만일 이것을 행하는 이는 좋지 못한 법을 더하고 좋은 법을 덜게 되느니라.
가히 할 것이라 함은 이 세 가지 좋지 못한 법을 부지런히 닦아 끊어 버리면 좋지 못한 법은 줄고 좋은 법은 더 늘어나게 되느니라.”
제석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옵니다. 제가 이제 부처님께 듣자와 이 뜻을 알았습니다. 의혹과 희망과 뜻이 없는 말 등의 세 가지 법을 만일 다시 한다면 좋은 법이 줄어들고 좋지 못한 법이 늘어날 것이요,
만일 비구가 이 세 가지 법을 부지런히 닦아 끊어 없애 버리면 좋지 못한 법은 줄어들고 좋은 법이 더할 것이옵니다.”
또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비구로서 허망함을 없애는 법을 행하는 이는 몇 가지 몸이 있사옵니까?”
부처님께서는 천주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비구가 허망함을 없애는 법을 실행하는 데는 세 가지 몸이 있느니라. 세 가지 몸이라 함은, 알맞은 몸[適悅身]과 괴로운 몸[苦惱身]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몸[捨身]이니라. 알맞은 몸이란 것이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가히 행할 것과 가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라. 가히 행할 것이란 온갖 좋은 법을 말함이요, 가히 행하지 못할 것이란 온갖 좋지 못한 법을 말하는 것이니라. 괴로운 몸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몸도 이와 마찬가지니라.”
제석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정말 그러하옵니다. 이제 부처님에게서 이 뜻을 알았나이다. 만일 비구가 허망함을 없애는 법을 실행하려 하면, 알맞은 몸ㆍ괴로운 몸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몸, 이 세 가지의 몸에서 온갖 좋은 법을 행할 것이요, 온갖 좋지 못한 법은 다 행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때 제석은 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중생이 욕심내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빛깔 모습이 다 같습니까, 같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같지 않느니라. 천주여, 중생들이 욕심내는 바가 같지 않으며, 생각하는 바도 같지 않으며, 빛깔과 모습도 다 같지 않느니라. 천주여, 모든 중생들이 비록 각각 자기 세계에 살더라도 또한 각기 그 세계의 차별을 알지 못하느니라. 세계의 차별을 알지 못하므로 캄캄한 길을 걷고 있으면서 도리어 어리석은 법에 집착하고도 진실하다고 여기느니라. 이러한 모든 중생들이 세계의 여러 가지 차별을 알지 못하고 안다는 것은 오직 캄캄한 세계뿐이며, 비록 안다손 치더라도 또한 늘 캄캄한 길을 걸으며 어리석은 법을 집착하여 진실한 것이라 하느니라.”
제석은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제 부처님께 듣자와 이 뜻을 알았나이다. 모든 중생들이 욕심내는 바가 같지 않으며 생각하는 바도 같지 않으며 빛깔 모습도 같지 않사옵니다. 중생들이 차별됨을 알지 못하므로 어리석고 어두움을 집착하여 진실하다고 여기나이다.” 그때에 제석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사문ㆍ바라문들이 모두 끝끝내 깨끗한 범행(梵行)을 얻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다 얻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두 가지 뜻이 있느니라. 천주여, 만일 사문ㆍ바라문들이 저 애욕의 법을 다하지 못하면 결정코 구경(究竟:이법[理法]의 지극한 경지)의 깨끗한 범행을 얻지 못하느니라. 만일 사문ㆍ바라문들이 애욕의 법을 다하였다면 이내 가장 높은 해탈과 심정(心正) 해탈을 얻을 것이니, 이것을 구경의 깨끗한 범행을 얻었다고 하리라.”
제석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그러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이제 부처님께 배워 뜻을 알았나이다. 만일 사문ㆍ바라문이 애욕의 법을 다하지 못하였으면 결정코 구경(究竟)의 깨끗한 범행을 얻지 못할 것이요 만일 사문과 바라문 등이 저 애욕의 법을 다하였다면 결정코 가장 높은 해탈[無上解脫]과 심정 해탈(心正解脫)을 얻으리니, 이런 것을 구경의 깨끗한 범행을 얻은 것이라 이름하는 것이옵니다.”
이때 제석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어떻게 해야 모든 견해의 병을 여의어 다시 나지 않게 되오리까? 이 모든 견해의 병이 심식(心識)으로부터 생겨났다면 저의 이 심식이란 어떠한 것이옵니까? 또 제가 비록 부처님께 여러 가지 뜻을 여쭈었는데도 어찌하여 성인의 과보를 얻어서 부처님과 같은 정등각(正等覺)을 얻지 못하였습니까? 원하옵나니 저를 위하여 의혹의 근본이 되는 온갖 견해의 병을 끊어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주여, 너는 아느냐? 옛적에 사문과 바라문도 이 뜻을 물은 일이 있는 것을 모르느냐?”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어느 때에 큰 위력이 있는 모든 하늘들이 도리천의 선법회에 모였을 적에 그 모임가운데에 있는 모든 하늘 사람들이 법을 모르면서도 부처가 되려고 하여 이와 같은 뜻으로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어리석고 어두움을 살피시고 수기(授記)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하늘들이 저희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마음에 불평을 품고 일어나서 각기 제 곳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 곳에 가지 못하고 타락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때에 모든 하늘들이 타락한 까닭에 크게 놀라 마음으로 의혹을 일으키고 각기 생각하기를 ‘본래의 세계[本界]에 나타나지 않으니 필연코 타락한 것이로다. 내가 만일 사문과 바라문을 만나면 곧 가서 당신이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이냐고 물어보리라’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제가 혼자 거닐고 있으려니까 모든 하늘들이 저를 보고 달려와서 묻기를 ‘그대여,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하였습니다. 저는 답하기를 ‘나는 제석천주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하늘들이 마음이 괴로우므로 말하기를 ‘천주여, 어찌하여 우리들이 고뇌 받는 줄을 모르시오. 우리들이 부처님께 마땅히 법을 물어야 할 것인데도 묻지 않고, 귀의해야 할 것을 귀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불평을 품고 본래의 세계로 돌아갔는데 본 곳에 나타나지 않은걸 보니 필연코 타락한 모양입니다. 이러므로 걱정하고 있는 중이니 바라건대 우리들을 좀 구원하여 주시오.
어쩌다 사문들을 만나 보거나 때마침 바라문을 만나 보거든 나아가 어서어서 물어보아라. 당신이 바로 정각(正覺)이냐고.
만일에 그가 바로 정각이거든 내 이제 귀의하여 공양하려고 이내 몸 그대에게 묻자옵나니 마땅히 어떠하게 공양할까.
네 지금 물은 것이 저 부처님의 진실한 바른 도를 알지 못하고 때마침 모든 하늘 저 무리들이 마음에 좋아함을 알지 못하고
마음과 마음 할 바 그 모든 법을 의혹하고 분별할 뿐이리라. 내 아노니 저들의 마음 쓰는 법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냥 그대로
내가 마땅히 말해 주리라. 저 3계 가운데서 오직 부처님 세존만이 이 세상의 가장 높은 스승이시라.
큰 마군을 잘도 항복 받으시고 모든 중생들을 능히 제도하시어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게 하시니 여래는 크게 깨친 어른이시라.
하늘이나 또 인간 세상에 어깨를 같이할 이 하나 없으니 두려움 없는 대장부시라, 탐욕의 모든 병을 잘 끊으시리. 여래는 큰 태양과 같으신 어른 너는 지금 머리 숙여 경례하여라.
이때 제석천주가 모든 하늘들에게 이렇게 말하여 마치자 부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천주여, 너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느냐? 저 분별의 이로움과 기쁨의 이로움에 대해서 말이다.”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옛적에 하늘이 아수라와 싸워서 하늘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었습니다. 저는 생각하기에 하늘 사람의 쾌락과 아수라의 쾌락을 나 혼자 받아 기쁘도다. 이러한 기쁨의 이로움을 얻기 위하여서는 한 평생을 마땅히 싸우고 칼과 군사로 서로 해치게 되나니, 이런 것을 말하여 기쁨의 이로움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분별의 이로움이라 함은 한평생 싸움이 없고 다툼이 없으며 칼과 군사를 서로 겨눔이 없나니, 이것이 분별의 이로움이 된다고 봅니다.”
제석이 다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께 바른 법을 듣잡고 더욱 믿음이 깊어지고 행원(行願)을 일으키되 ‘원컨대 제가 목숨이 다하고 인간의 부귀한 가문에 태어나서 재물과 곡식이며 보배며 연(輦)이며 수레와 완구(玩具)를 많이 쌓아 두고 권속이 왕성하며 여러 가지가 구족하여 늘 모자람이 없을 것이니, 원컨대 제가 마땅히 이러한 훌륭한 집의 지혜로운 이에게 태어나서 신체가 원만하고 형상이 미묘하며 맛좋은 음식을 먹고 존귀하고 자재하여 수명이 길며 바른 믿음을 일으켜 부처님께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 비구가 되어서 항상 범행을 지니되 결함 되거나 범하는 일이 없으며,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의 과(果)를 증득하며 마침내 고통의 변제(邊際)가 다함을 얻어지이다’ 하였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들으매 색구경천이 있다 하오니, 원하옵건대 제가 인간에서 목숨을 마친 뒤에 그 하늘에 태어나지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주여, 참으로 착하다. 천주여, 그대가 원하는 바와 같으리로다. 무슨 인과 무슨 연으로 그런 수승한 과보가 있게 되었는가?”
제석이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별다른 원인이 없고 다만 부처님에게 바른 법을 듣잡고 깊이 믿음을 일으키어 원력을 세웠으므로 이러한 과보를 얻게 되었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이제 이 모임 가운데에서 바른 법을 듣잡고 법의 힘으로써 그 지혜를 더하고 또 수명을 길게 하였나이다.”
이때에 제석천주가 이러한 원력을 내었으므로 번뇌의 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으며, 또 8만 하늘 사람들도 법의 눈이 깨끗하여졌었다. 그때에 제석천주가 법을 듣고 법을 보고 깨달아 법에 머무는 것이 견고하고 온갖 의혹을 끊었다.
이렇게 법을 증득하고는 곧 일어나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해탈을 얻었나이다, 제가 해탈을 얻었나이다.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여 우바새의 계를 지니겠나이다.”
이때 제석천주가 부처님 앞에서 오계건달바 왕자를 돌아다보며 말하였다. “네가 이제 나에게 좋은 이익을 많이 끼치었으며,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었도다. 네가 전에 묘한 음악으로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므로 우리들이 법을 듣고 좋은 결과를 얻었도다. 내가 천궁에 돌아가서 너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그때 제석천주는 다시 도리천 대중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범천(梵天)의 음성으로 ‘부처님께 세 번 귀의하옵니다’라고 하여라. 너희들 뜻에는 어떠하냐? 이제 부처님께서 고요한 열반에 머물러 계시느니라.”
이때 하늘 대중들이 제석의 말을 듣고 부처님을 빙 둘러싸고 세 번 돌고는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을 하고 서서 이구동성으로 범천의 소리를 내어 부처님께 귀의함을 제창하였다.
제석천주와 하늘 대중들이 부처님께 세 번 귀의하는 제창을 반복하고는 오계건달바 왕자와 같이 회중에서 사라져 하늘세계로 돌아갔다. 그때에 사바세계의 주인 되는 대범천왕이 이 날이 지나고 밤이 되매 부처님께 나오는데 몸의 광채가 휘황찬란하여 제석 바위에 비추며 부처님 앞에 이르러서 두 발에 절하고 나서 한쪽에 물러가 앉아서 합장하고 게송을 읊었다.
제석이 많은 이익을 위하여 부처님께 바른 법을 물었네. 부처님께서 미묘한 음성으로 의혹을 모두 끊어 주셨네.
그때 대범천왕은 이 게송을 읊고 나서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바른 법을 말씀하실 적에 제석천왕이 번뇌의 때를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하여졌으며 8만 하늘 사람들도 또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도다.”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믿고 그대로 받고 예배하고는 몸을 숨겨 하늘세계로 돌아갔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그 날 밤중에 비구들에게 가셔서 둘러싸여 앉으셔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날이 지나고 밤이 되어서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이 나의 처소에 와서 내 발에 절을 하고 합장 공경하여 게송을 읊으리라.
제석이 많은 이익을 위하여 부처님께 바른 법을 물었네. 부처님께서 미묘한 음성으로 의혹을 모두 끊어주시었네.
또 나에게 말하기를 ‘제석천주가 정법을 들을 때에 법의 눈이 깨끗해졌으며, 8만 하늘 사람들도 또한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다’고 하였나니,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를 ‘그러하니라’라고 하였노라.
그때에 범왕이 나의 말을 듣고 기뻐하여 믿고 받고 내 발에 절을 하고는 몸을 숨기어 하늘세계로 돌아갔느니라.”
이때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허망한 것이 원인이 되며 허망으로 좇아 모이며, 허망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며 허망에 의하여 반연하느니라. 허망한 까닭으로 의혹이 있기 때문에 욕심낼 바가 있고, 욕심으로 인하여 원망함과 친절함이 있게 되고, 원망함과 친절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미움과 사랑이 있게 되며, 미워하고 사랑하므로 칼을 잡고 서로 겨누며 소송하고 다투며 아첨하고 꾸며대어 말이 진실치 못하나니,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죄업의 좋지 못한 법을 일으키느니라. 이로 말미암아 많은 고통의 무더기가 쌓이게 되는 것이니라.◂
...
▸ 만일 비구가 허망한 법을 없애려 하면 마땅히 세 가지 법을 끊고 세 가지 법을 실행해야 하느니라. 첫째는 의혹이요 둘째는 희망이요 셋째는 뜻 없는 말이니라. ◂
생사현실에서 친절함, 사랑, 희망 등은 긍정적인 내용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이것이 곧 생사현실에서 많은 고통의 무더기가 쌓이게 되는 근본원인이라고 제시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의아하게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다음처럼 생각하게 된다. 희망은 좋은 것이 아닌가. 희망이 없으면 매일 의욕도 없이 우울하고 침울하게 보낼 것 아닌가. 그리고 살아가는데 친절한 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리고 다른 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 아닌가. 이렇게 단순히 생각한다.
그런데 희망은 아귀의 특징이다. 아귀가 고통을 받는 과정도 희망을 갖고 탐욕을 많이 갖기 때문이다. 아귀는 배고픈 귀신을 뜻한다. 배가 고파 힘들지만, 음식을 구하는 희망을 갖고 임한다. 그래서 평소 그 희망이 성취될 때까지 갈구하면서 갈증을 겪는다. 희망이 성취되지 않는한 마음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러다가 음식을 구해 먹게 되면 그로 인해 목이 타는 듯한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망집에 바탕한 소원을 남김없이 제거하는 것이 수행의 기본이다. 그러나 수행자가 그로 인해 의욕없이 매일 침울하게 보내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본적으로 옷 세벌 한끼 식사로 생계가 해결되는 한 소욕지족의 상태로 만족한 가운데 수행자는 이후 무원무작해탈 삼매를 닦는다. 그래서 망집에 바탕한 부질없는 소원을 남김없이 제거한다. 그리고 이후 중생제도를 원하는 수행자는 다시 생사현실에 임할 때 자비의 마음으로 임한다. 이 경우 수행자는 소원을 4홍서원의 형태로 바꾸어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다.
중생의 소원이 무량하듯, 수행자의 서원도 함께 무량하다. 수행자가 평소 무료하거나 한가할 겨를이 없는 사정이기도 하다.
사랑이나 친절도 깊게 생각할 점이 많다. 이미 인과관계상 이것이 생사고통을 낳게 하는 과정을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런 제시에 각 경우마다 비약이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을 놓고 원인을 살피면 대부분 그 사정이 위와 같음을 보게 된다. 어떤 유명한 이들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든는다. 그런데 한참지나, 이혼하거나 자살을 한다는 소식을 다시 듣기도 한다. 그 과정을 살피면 결국 마찬가지 사정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사랑의 의미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어떤 이들이 한우사랑이란 구호를 외치는 경우를 보았다. 이는 현실에서 대부분 사랑이란 단어를 이렇게 이해함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이 한우를 사랑하면 할수록 한우는 고통을 더 많이 겪게 된다.
이것은 강도강간범이 여인을 사랑하고 여인의 재산을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 이런 사랑이 최소한 애완견사랑 정도라도 올라가려면 한참 걸린다. 애완견 사랑은 적어도 그 애완견이라도 그 상태가 조금 더 편해지고 좋아진다. 그래서 앞 경우보다는 조금 낫다.
그런데 공원에서 개나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왜 그렇게 되는가를 또 생각해야 한다. 알고보면, 개나 고양이를 사랑하기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관계가 있다.
현실에서 그나마 바람직한 형태는 어질고 현명한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회 악은 바로 이런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어머니가 자신만 집착하지 않고 자식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면만 보면 긍정적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자식에게만 그런 자세로 임한다. 그리고 다른 이나 다른 이 자식에게는 냉정하다. 그런 사정 대문에서 현실에서 대단한 악을 행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사례는 현실을 지켜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부모들이 하나같이 이런 자세로 임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의 좋은 점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그것이 하나같이 감옥에 가야 할 원인임을 쉽게 보게 된다. 이런 모습은 거의 일반적이다. 그런데 특히 좋은 지위를 얻기 위해 교육받고 경쟁하고 학교에 진학하는 과정에서 그 모습이 심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부모들의 교육열이 치열하다. 이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부작용도 대단히 심하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이 수없이 반복되고 세간에 회자된다.
그런데 이를 자신 입장에서 보면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이고 자식에 대한 애정의 노력이다. 그러나 다른 입장에서 보면 이는 하나같이 사회적으로는 큰 범죄라고까지 보게 된다. 그래서 부모마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지 말고 이 측면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결국 사랑이 온 생명에 대하여 그 범위를 닫지 않고, 차별없고 제한없이 좋음을 주고 끝내 가장 좋은 상태로 이끌고자 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사랑이 아무리 범위가 넓어도 그 범위가 닫히면 같은 문제가 된다. 히틀러의 아리안 인종에 대한 사랑은 결국 유대인과 집시의 대량학살을 일으키는 배경이 된다. 그 범위 밖에서 보면 오히려 처음 단순히 강간범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해악보다 훨씬 그 해악이 넓고 크다. 그러나 이 해악의 특성은 각 경우마다 공통한다. 한우사랑, - 애완견사랑 - ....-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 -.... 민족 사랑 - 인종 사랑 -- 이런 형태가 알고보면 그 범위 밖으로 점점 해악이 강해지는 측면을 볼 수 있다.
인류사랑을 외치는 경우도 그 범위가 닫히면 서로간에 테러를 일삼는 형태가 나타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악마로 여기면서 대립한다.
원래 인류를 사랑한다는 뜻은 좋다. 그런데 그것이 인류'만' 사랑한다고 하면 역시 문제가 된다. 모든 생명을 제한없이 사랑한다. 그래서 가장 좋은 상태로 이끌고자 한다. 그런데 먼저 인류를 우선하겠다. 그 정도만 되어도 좋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온 생명을 제한없고 차별없이 사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자비의 정신을 갖고 생사현실에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왜 다른 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 생사고통을 무더기로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이 깔려 고통받게 하는 일인가를 먼저 깊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친절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에서 친절함을 좋은 덕목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이 친절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보통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특별히 친절하게 대하면, 상대는 엉뚱한 오해를 하게 된다. 어떤 다른 저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일단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상품판매를 위해 그렇게 행한 것임을 알고 씁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 경우에는 다시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엉뚱하게 오해하기도 한다. 또 그런 바탕에서 엉뚱하게 엉뚱한 기대를 갖고 대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기대가 성취되지 않으면 그 기대한 정도에 비례해 원망과 미움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그나마 좋은 경우가 그 친절로 인해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앞에서 본 것과 같이 닫힌 범위의 사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정으로 앞에서 제시한 형태의 부작용을 모두 일으켜 갖게도 된다. 그래서 결국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벗어나려면, 결국 같은 방식으로 임해야 한다. 널리 온 생명을 차별하지 않고 제한없이, 평등하게 존중하면서 좋음을 널리 공평하게 베푸는 자세로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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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jtj7680
◈Lab value 불기2565/06/21
○ 2019_1105_165119_nik_BW17.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alvador-Dali-portrait-of-the-artist-s-mother-dofia-felipa-dome-domenech-de-dali
Artist: Salvador-Dali https://en.wikipedia.org/wiki/Salvador_Dalí Title : portrait-of-the-artist-s-mother-dofia-felipa-dome-domenech-de-dali Info
본래 탐욕에는 부정관을 사용하고 분노에는 자비관을 사용한다. 어리석음에는 인연관을 사용한다. 이런 방안은 그 대상에 따라 각기 다른 방안을 사용함을 의미한다.
현실에서 불을 끄려면 물을 사용한다. 어디론가 가려면 자동차나 자전거, 기차를 이용한다. 즉 구체적인 경우마다 취해 사용하는 방편이 다 다르다. 그리고 각 방편의 가치는 이를 통해 성취하려는 목표상태에 의해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물 하나가 경우마다 다 다른 가치를 갖는다. 아귀에게는 물은 타는 불처럼 여겨지게 된다. 사막에 있는 이에게는 물은 금보다 소중하게 여겨지게 된다. 일반인에게는 그냥 물은 물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 예를 들어 원효대사와 같은 경우는 해골물마저도 깨달음을 가져다 준 법수가 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일전에 살핀 바 있다. 수행자는 자신이 생사고통을 벗어나고 다른 중생을 제도함에 이런 사정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각 경우가 다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각 경우마다 다른 방편을 찾자면 무량함에 빠지게 된다. 중생제도를 위해 수행자가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야 하는 사정이기도 하다. 또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자신부터 안인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의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평안하게 참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불퇴전위에 이르러 수준 높은 수행자가 된다. 중생제도를 위해 무량한 방편지혜를 취득해 실천하는 무량행문은 그 이후부터 문제된다.
그 이전에는 먼저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수행 내용을 잘 성취해야 한다. 본래 모든 경우에 원칙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수행방안이 이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생이 처한 구체적 상황이 다 제각각 다르다. 그런 경우 보충적으로 방편지혜를 사용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선교방편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신부터 안인의 성취가 이뤄지지 않으면 방편을 잘못 취하면 곤란하다. 어떤 방편을 취하면 생사현실내 연기관계에 의해 자신이 장래 그 과보를 되돌려 받게 된다. 이는 물리의 법칙과 같다. 하나하나 실답지 않지만, 그 내용이 연기관계에 따라 나타난다. 그래서 수행자라도 한번 업을 행하면 그에 따른 과보를 무량겁에 걸쳐 받게 된다.
그래서 자신부터 안인의 성취가 되어야 무량행문을 닦아 나갈 수 있다. 그전에는 단순히 다라니 삼매에 의존해야 한다. 이는 부처님의 가피와 통제하에 구체적 방편을 사용함을 의미한다.
자신이 안인을 성취하지 않고 무생법인을 증득하지 않은 상태라고 하자. 그리고 표준적이고 원칙적인 방안을 우선 실천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리고 방편에서도 선교방편을 우선 취하지 않는다고 하자. 심지어 악취공견에 바탕해 아무렇게 함부로 생사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우선 그 수행자가 상대한 상대가 먼저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 수행자 자신부터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생사현실에서 다른 중생을 널리 제도할 수도 없게 된다. 이런 경우 단순히 지옥에 처한 공수행자로 시종 일관하게 된다. 그래서 늘 수행자는 표준적 일반원칙 - 그리고 선교방편을 우선해야 한다. 그것은 설령 자신이 안인을 성취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 생사현실에 임해 수행자가 수행하는 의미 자체가 없게 된다.
● 사찰 탐방 계획
며칠 후면 숙왕화님이 제 2 차 수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 때문에 병원을 환자외 방문할 수 없다.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도 없다. 공교롭게 또 다른 연구원분까지 비슷한 수술을 거의 같은 시기에 하였었다.
그런데 현재 본인 상태도 여러가지로 좋지 않다. 최근에는 눈까지도 안 좋아졌다.
그런 가운데 현재 경전 연구가 밀려 있다.
그런데 연구원들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사라져서 연구실이 텅 빈 상태가 되어 버렸다.
가끔 나타나던 인턴연구원들도 이제는 거의 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이 외롭게 되어 버렸다.
어차피 생노병사는 홀로 외롭게 겪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아프다고 대신 아파줄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래도 누군가 병이 들면 옆에서 조금 병 문안이나 간병도 하면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런데 요즘 상황이 코로나로 이상해져서, 그런 것도 곤란하게 되어 버렸다.
숙왕화님이 없게 되면, 사실 연구원 활동이 곤란해지게 된다.
그래서 일단 경전 연구를 뒤로 미루고 일단 숙왕화님 건강회복을 기원하면서 몇 주 또는 몇 달간 전국 사찰이나 돌아다녀볼까 하는 생각을 갑자기 해보게 된다.
그러나 수행자가 연구원들 몇분이 아프다고 해서, 연구원 분만 쾌차하라는 기도를 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온 생명 건강과 질병쾌유 및 보리 증득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면서 전국사찰 탐방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또 너무 극단적으로 온 세상에 질병이 일체 없게 되기를 기원하면 곤란하다.
현재 사람들 질병치유로 인해 활동하는 인력이 대단히 많다. 이 분야는 거의 역사이래, 전통적으로 불황을 모르는 직업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 질병이나 사고가 완전히 없어지면 이 분야에 종사자들이 거꾸로 실직 상태가 된다. 어떤 기원을 할 때는 그 기원이 초래하는 부작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자신 입장에서 좋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을 곤경에 처하게 하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래서 가능하면 모든 사람들이 병에 걸려도 감기 정도를 한 1 주일 정도 앓고 그 기간에 가까운 사람도 한번 만나보고 그러다가 안락하게 생사 시공간 여행을 떠나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보리를 깨닫고 수행에 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야 근본적으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 생사현실에서 생사 즉 니르바나의 상태로 모두 여여하게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원 내용 자체를 위와 같이 일단 정해보게 된다.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Samantabhadra [san-chn]
māra-pratyarthikatva 魔怨 [san-eng]
kukkuṭaḥ $ 범어 (m) cock [pali-chn]
salla 毒箭 [pal-eng] [Eng-Ch-Eng]
一分家 A branch of Weishi 唯識 psychology traced back to Sthiramati 安慧, that teaches, in opposition to theories that consciousness has three or four parts, that it only has one part. This position was disputed by the school of Dharmapa^la 護法, which argued that consciousness has four aspects 四分. [Muller-jpn-Eng]
眞法界 シンホウカイ the true realm of dharma [Glossary_of_Buddhism-Eng]
TARA☞ Tibetan for the Bodhisattva Avalokitesvara (q.v.). Editor: 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