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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1일 수요일

불기2565-07-21_아비달마법온족론-k0945-010


『아비달마법온족론』
K0945
T1537

제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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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아비달마법온족론』 ♣0945-010♧




제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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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阿毘達磨法薀足論卷第十

K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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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번역문

아비달마법온족론 제10권



존자 목건련 지음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7. 근품(根品)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생문(生聞)이라는 범지(梵志)가 부처님께로 와서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조그마한 질문을 하려 합니다. 

교답마(喬答摩) 높으신 이여, 

허락하여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 그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물어 보아라. 

나는 너를 위하여 대답해 주겠노라.”



범지가 물었다.

“근(根)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스물두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스물 두 가지인가? 

안근(眼根)ㆍ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ㆍ의근(意根)과 

여근(女根)ㆍ남근(男根)ㆍ

명근(命根)과 낙근(樂根)ㆍ고근(苦根)ㆍ희근(喜根)ㆍ우근(憂根)ㆍ사근(捨根)과 신근(信根)ㆍ

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과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ㆍ이지근(已知根)ㆍ구지근(具知根)이니, 

이 스물 두 가지는 모든 근(根)을 다 포섭하느니라.”



그때에 범지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뛰면서 공경하고 떠나갔다.



어떤 것을 안근(眼根)이라 하는가? 

눈[眼]이 빛깔[色]에 대하여 이미 보았고 지금 보며 장차 볼 것과 피동분(彼同分)을 안근이라 한다.

또 눈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안식(眼識)이 빛깔에 대하여 이미 요별(了別)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안근이라 한다.

또 눈이 빛깔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碍]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안근이라 한다.

또 눈이 빛깔에 대하여 이미 행(行)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안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ㆍ미래ㆍ현재에 있는 모든 눈을 말하여 안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所知]이요 인식하는 것[所識]이며, 

통달하는 것[所通達]이요 두루 아는 것[所遍知]이며, 

끊는 것[所斷]이요 이해하는 것[所解]이며, 

보는 것[所見]이요 얻는 것[所得]이며, 

깨닫는 것[所覺]이요 현재 평등하게 깨닫는 것[所現等覺]이며, 

분명히 아는 것[所了]이요 평등하게 분명히 아는 것[所等了]이며, 

관하는 것[所觀]이요 평등하게 관하는 것[所等觀]이며, 

자세히 살피는 것[所審祭]이요 결택하는 것[所決擇]이며, 

접촉하는 것[所觸]이요 평등하게 접촉하는 것[所等觸]이며, 

증득하는 것[所證]이요 평등하게 증득하는 것[所等證]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淨色]로서 혹은 지옥에게 혹은 방생에게 혹은 아귀에게 혹은 하늘에게 혹은 사람에게 혹은 중유(中有)에게 혹은 닦아서[修] 이루어진 것을 모든 이름[名號]과 달리 부르는 말[異語]과 비유적인 말[增語]과 생각[想]과 평등한 생각[等想]과 시설(施設)과 언설(言說)로 말하여 눈[眼]이라 하고 안처(眼處)라 하며 안계(眼界)라 하고 안근(眼根)이라 하며 본다[見]고 하고 길[道路]이라 하며 가르쳐 이끈다[引導]고 하고 희다[白]고 하며 깨끗하다[淨]고 하고 간직한다[藏]고 하며 문(門)이라 하고 밭[田]이라 하며 일[事]이라 하고 흐른다[流]고 하며 못[池]이라 하고 바다[海]라 하며 상처[瘡]라 하고 상처의 문[瘡門]이라 하며 이 언덕[此岸]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안근은 내처(內處)에 속한다.

어떤 것을 이근(耳根)이라 하는가? 

귀[耳]가 소리[聲]에 대하여 이미 들었고 지금 들으며 장차 들을 것과 피동분(彼同分)을 이근이라 한다.

또 귀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이식(耳識)이 소리에 대하여 이미 요별(了別)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이근이라 한다.

또 귀가 소리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이근이라 한다.

또 귀가 소리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이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귀를 말하여 이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로써 혹은 지옥에서 나아가 닦아서 이루어진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귀라 하고 이처(耳處)라 하며 이계(耳界)라 하고 이근이라 하며 듣는다[聞]고 하고 길[道路]이라 하며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근은 내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비근(鼻根)이라 하는가? 

코[鼻]가 냄새[香]에 대하여 이미 맡았고 지금 맡으며 장차 맡을 것과 피동분을 비근이라 한다.

또 코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비식(鼻識)이 냄새에 대하여 이미 요별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비근이라 한다.

또 코가 냄새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비근이라 한다.

또 코가 냄새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비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코를 말하여 비근이라 하고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로써 혹은 지옥에게, 

혹은 중유에게, 

또는 닦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非修所成]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코라 하며 비처(鼻處)라 하고 비계(鼻界)라 하며 비근이라 하고 맡는다[嗅]고 하며 길이라 하고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근은 내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설근(舌根)이라 하는가? 

혀[舌]가 맛[味]에 대하여 이미 맛보았고 지금 맛보며 장차 맛볼 것과 피동분(彼同分)을 설근이라 한다.

또 혀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설식(舌識)이 맛에 대하여 이미 요별(了別)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설근이라 한다.

또 혀가 맛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설근이라 한다.

또 혀가 맛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설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혀를 말하여 설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淨色]로서 혹은 지옥에게 더 나아가 중유(中有)에게 또는 닦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혀라 하며 설처(舌處)라 하고 설계(舌界)라 하며 설근이라 하고 맡본다[嘗]고 하며 길이라 하고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설근은 곧 내처(內處)에 속한다.

어떤 것을 신근(身根)이라 하는가? 

몸[身]이 접촉[觸]에 대하여 이미 깨달았고 지금 깨달으며 장차 깨달을 것과 피동분을 설근이라 한다.

또 몸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신식(身識)에 대하여 이미 요별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신근이라 한다.

또 몸이 접촉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신근이라 한다.

또 몸이 접촉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신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몸을 말하여 신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로써 혹은 지옥에게 더 나아가서는 중유에게 또는 닦아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몸이라 하며 신처(身處)라 하고 신계(身界)라 하며 신근이라 하고 깨닫는다[覺]고 하며 길이라 하고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신근은 곧 내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여근(女根)이라 하는가? 

여인이요 여인의 본체[體]이며, 

여인의 성품[性]이요 여인의 세분(勢分)이며 여인의 작용(作用)이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배꼽 아래요 무릎 위에 있는 육신으로 힘줄과 맥이 뻗쳐 흘렀고 만일 이곳으로 남자와 교회(交會)하면 평등한 받아들임[領納]과 즐거운 느낌[樂受]이 발생한다. 

이것을 바로 여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남근(男根)이라 하는가? 

남자요 남자의 본체며, 

남자의 성품이요 남자의 세분(勢分)이며 남자의 작용이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배꼽 아래요 무릎 위에 있는 육신으로 힘줄과 맥이 뻗쳐 흘렀고 만일 이곳으로 여인과 교회하게 되면 평등하게 받아들이고 즐거운 느낌이 발생하나니, 

이것을 남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명근(命根)이라 하는가? 

저 여러 유정들이 다른 여러 유정의 무리 안에 있으면서 옮아가지 않고 바뀌지 않으며 파괴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상실하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수(壽)의 머무름으로 살아 있으면서 수호하고 따라 수호하며 움직이고 따라 움직이는 목숨[命]이요 목숨 뿌리[命根]를 바로 명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의근(意根)이라 하는가? 

뜻[意]이 법(法)에 대하여 이미 알았고 지금 알며 장차 알 것과 피동분을 의근이라 한다.

또 뜻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의식(意識)이 법에 대하여 이미 요별하였고 지금 요별하며 장차 요별할 것과 피동분을 의근이라 한다.

또 뜻이 법에 대하여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과 피동분을 의근이라 한다.

또 뜻이 법에 대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과 피동분을 의근이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뜻을 의근이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이냐 하면, 

심(心)ㆍ의(意)ㆍ식(識)이 혹은 지옥에게, 

더 나아가 혹은 중유에게 혹은 닦아서 이루어진 것을 모든 이름과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뜻이라 하며 의처(意處)라 하고 의계(意界)라 하며 의근이라 하고 안다[知]고 하며 도로라 하고 나아가 이 언덕이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근은 내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낙근(樂根)이라 하는가? 

순락촉(順樂觸)으로 생기는 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낙근이라 한다.

또 제3 정려(靜慮)를 닦아서 순락촉으로 생기는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낙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고근(苦根)이라 하는가? 

순고촉(順苦觸)으로 생기는 몸의 괴로움이요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고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희근(喜根)이라 하는가? 

순희촉(順喜觸)으로 생기는 마음의 기쁨이요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희근이라 한다.

또 제2 정려를 수행하여 순희촉으로 생기는 마음의 기쁨이요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희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우근(憂根)이라 하는가? 

순우촉(順憂觸)으로 생기는 마음의 근심[憂]이요 평등하지 않은 느낌[不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우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사근(捨根)이라 하는가? 

순사촉(順捨觸)으로 생기는 몸의 평정[捨]이요 마음의 평정이며 평등한 것도 아니고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닌 느낌[非平等非不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사근이라 한다.

또 미지정(未至定)과 정려의 중간과 제4 정려와 무색정(無色定)을 수행하여 순불고불락촉(順不苦不樂觸)으로 생기는 마음의 평정[捨]과 평등한 것도 아니고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닌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사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신근(信根)이라 하는가? 

출가(出家)와 원리(遠離)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모든 믿음[信]과 믿는 성품[信性]과 현전에서 믿는 성품[現前信性]과 따르고[隨順] 인가(印可)하고 애모(愛慕)하고 애모하는 성품[愛慕性]과 마음의 맑고 깨끗함을 신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學]의 믿음과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믿음과 온갖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非學非無學]의 믿음을 모두 신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정진근(精進根)이라 하는가? 

출가와 원리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부지런한 정진(精進)과 씩씩하고 세차고 맹렬하게 하며 격려하는 뜻[勵意]을 멈추지 않는 것을 정진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정진과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정진과 온갖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의 정진을 모두 정진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염근(念根)이라 하는가? 

출가와 원리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모든 염(念)하고 따라 염하며 오로지 염하고 기억하며 잊지 않고 잃지 앉으며 빠뜨리지 않고 새나가지 않으며 잃지 않는 성품과 마음에 분명하게 기억하는 성품[心明記性]을 염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염(念)과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염과 온갖 착한[善]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의 염을 모두 염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정근(定根)이라 하는가? 

출가와 원리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마음의 머무름[住]과 평등하게 머무르고 가까이 머무르고 편안히 머무르며, 

흩어지지 않고[不散] 어지럽지 않고[不亂] 가다듬어 그치고[攝持] 평등하게 지니고[等持] 마음이 한 경계로 되는 성품[心一境性]을 정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선정[定]과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선정과 온갖 착한[善]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의 선정을 모두 정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혜근(慧根)이라 하는가? 

출가와 원리로 생기는 착한 법에 의하여 일어나는 법에 대하여 간택(簡擇)하고 지극히 간택하고 가장 지극하게 간택하며, 

환히 알고[解了] 평등하게 알고 가까이 알며, 

기민한 슬기가 있고 막힘이 없이 통하고 자세히 살피고 뛰어나게 밝으며, 

각(覺)과 명(明)과 혜(慧)의 행(行)과 비발사나(毘鉢舍那)를 혜근이라 한다.

또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지혜와 배울 것이 없는 이의 지혜와 온갖 착한[善] 배울 것이 있는 것도 배울 것이 없는 것도 아닌 이의 지혜를 모두 혜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이라 하는가? 

이미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어간 이에게 있는 모든 배울 것이 있는 이[學]의 지혜[慧]와 혜근(慧根)과 수신(隨信)ㆍ수법행(隨法行)의 성자(聖者)로서 4성제(聖諦)에 대하여 아직 현관(現觀)하지 못한 이가 현관하기 위하여 모든 근(根)이 움직이는 것을 미지당지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이지근(已知根)이라 하는가? 

이미 진리[諦]를 본 이에게 있는 모든 배울 것이 있는 이의 지혜와 혜근과 신승해(信勝解)ㆍ견지(見至)ㆍ신증(身證)의 성자로서 4성제에 대하여 이미 현관한 이가 현관으로 번뇌를 끊어 없애기 위하여 모든 근이 움직이는 것을 이지근이라 한다.

어떤 것을 구지근(具知根)이라 하는가? 

아라한에게 있는 모든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의 지혜와 혜근과 혜해탈(慧解脫)ㆍ구해탈(俱解脫)의 성자로서 4성제에 대하여 이미 현관한 이가 현관으로 현법락주(現法樂住)를 얻기 위하여 모든 근이 움직이는 것을 구지근이라 한다.


18. 처품(處品)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생문(生聞)이라 하는 범지(梵志)가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합장 공경하고 모든 사랑하는 말로써 세존께 위문하였고 부처님도 사랑하는 말씀으로 그를 위문하였으며 이렇게 위문하여 마치자 그는 물러나 한 쪽에 앉아 몸을 굽히고 합장하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조그마한 질문을 하려 합니다. 

교답마(喬答摩) 높으신 이여, 

원컨대 허락하시어 간략하게 말씀하여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 그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물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말해 주겠노라.”

범지가 물었다.

“온갖 법[一切法]이란 무엇을 온갖[一切]이라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온갖 법이란 12처(處)이니라. 

무엇이 열두 가지인가? 

안처(眼處)ㆍ색처(色處)ㆍ이처(耳處)ㆍ성처(聲處)ㆍ비처(鼻處)ㆍ향처(香處)ㆍ설처(舌處)ㆍ미처(味處)ㆍ신처(身處)ㆍ촉처(觸處)ㆍ의처(意處)ㆍ법처(法處)이니, 

이것이 12처이다.

만일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이것은 온갖 것이 아니다. 

온갖 것이 다시 따로 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다만 말만 있을 뿐이요 진실한 일이 없으므로 도리어 그에게 따져 물으면[詰問] 그는 분명히 알지 못할 것이며 뒤에 자세히 생각해 스스로가 헷갈리어 답답해 하리니, 

온갖 법은 그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니라.”

그때에 저 범지는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서 뛰다가 공경하며 떠나갔다.

어떤 것을 안처(眼處)라 하는가? 

안근(眼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그 모양[相]을 해설하여야 한다.

어떤 것을 색처(色處)라 하는가? 

빛깔[色]이 눈[眼]에 이미 보였고 지금 보이며 장차 보이게 될 피동분(彼同分)을 색처라 한다.

또 빛깔이 눈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안식(眼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了別)되었고 지금 요별하고 장차 요별할 피동분을 색처라 한다.

또 빛깔이 눈을 이미 거리끼게[碍]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색처라 한다.

또 빛깔이 눈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해질 피동분을 색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빛깔을 색처라 말하며 또한 아는 것[所知]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所等證]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과 구름[雲]ㆍ연기[烟]ㆍ먼지[塵]ㆍ안개[霧]와 길고[長] 짧고[短] 모나고[方] 둥근[圓] 것과 높고[高] 낮고[下] 바르고[正] 바르지 않은[不正] 것과 그림자[影]ㆍ빛[光]ㆍ밝고[明] 어두운[暗] 것과 공일현색(空一顯色)과 서로 뒤섞인 색[相雜色]과 홍색[紅]ㆍ자색[紫]ㆍ벽록색[碧綠]ㆍ흑색[皂]ㆍ갈색[褐]과 그 밖의 온갖 안근으로 보는 것과 안식으로 아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하는 말[異語]과 비유적인 말[增語]과 생각[想]과 평등한 생각[等想]과 시설(施設)과 언설(言說)로 말하여 빛깔이라 하며 색계(色界)라 하고 색처(色處)라 하며 저 언덕[彼岸]이라 한다. 

이와 같은 색처는 외처(外處)에 속한다.

어떤 것을 이처(耳處)라 하는가? 

이근(耳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모양을 설명해야 한다.

어떤 것을 성처(聲處)라 하는가? 

소리[聲]가 귀에 이미 들렸고 지금 들으며 장차 들을 피동분을 성처라 한다.

또 소리가 귀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이식(耳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될 피동분을 성처라 한다.

또 소리가 귀를 이미 거리끼게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성처라 한다.

또 소리가 귀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피동분을 성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소리를 말하여 성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코끼리 소리ㆍ말의 소리ㆍ수레의 소리ㆍ걷는 소리와 소라 소리ㆍ방울 소리ㆍ크고 작은 북소리와 노랫소리ㆍ읊는 소리ㆍ찬탄하는 소리ㆍ맑은 소리[梵聲]와 4대종(大種)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ㆍ밤에 또는 낮에 나는 언어와 음성이며 그 밖의 모든 이근(耳根)으로 듣는 것과 이식(耳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소리라 하며 성계(聲界)라 하고 성처(聲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성처는 외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비처(鼻處)라 하는가? 

비근(鼻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그 모양을 설명해야 한다.

어떤 것을 향처(香處)라 하는가? 

냄새가 코[鼻]에 의하여 이미 맡아졌고 지금 맡으며 장차 맡을 피동분을 향처라 한다.

또 냄새가 코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비식(鼻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될 피동분을 향처라 한다.

또 냄새가 코를 이미 거리끼게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향처라 한다.

또 냄새가 코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피동분을 향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냄새를 말하여 향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뿌리의 냄새ㆍ줄기의 냄새ㆍ가지의 냄새ㆍ잎사귀의 냄새ㆍ꽃의 냄새ㆍ열매의 냄새와 좋은 냄새ㆍ나쁜 냄새ㆍ평등한 냄새이며 그 밖의 모든 비근(鼻根)으로 맡는 것과 비식(鼻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냄새라 하며 향계(香界)라 하고 향처(香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향처는 외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설처(舌處)라 하는가? 

설근(舌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모양을 설명하여야 한다.

어떤 것을 미처(味處)라 하는가? 

맛[味]을 혀[舌]가 이미 맡보았고 지금 맛보며 장차 맛볼 피동분(彼同分)을 미처라 한다.

또 맛이 혀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설식(舌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될 피동분을 미처라 한다.

또 맛이 혀를 이미 거리끼게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미처라 한다.

또 맛이 혀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피동분을 미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맛을 말하여 미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으로 만들어진 뿌리의 맛ㆍ줄기의 맛ㆍ가지의 맛ㆍ잎사귀의 맛ㆍ꽃의 맛ㆍ열매의 맛과 밥의 맛ㆍ음료수의 맛과 모든 술의 맛ㆍ쓴 맛ㆍ신 맛ㆍ단 맛ㆍ매운 맛ㆍ짠 맛ㆍ싱거운 맛과 뜻에 맞는 맛ㆍ순사처(順捨處)의 맛이며 그 밖의 모든 설근(舌根)으로 맛보는 것과 설식(舌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맛이라 하며 미계(味界)라 하고 미처(味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미처는 외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신처(身處)라 하는가? 

신근(身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그 모양을 해설하여야 한다.

어떤 것을 촉처(觸處)라 하는가? 

감촉[觸]을 몸[身]이 이미 깨달았고 지금 깨달으며 장차 깨달을 피동분을 촉처라 한다.

또 감촉이 몸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신식(身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되는 피동분을 촉처라 한다.

또 감촉이 몸을 이미 거리끼게 하였고 지금 거리끼게 하며 장차 거리끼게 할 피동분을 촉처라 한다.

또 감촉이 몸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피동분을 촉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감촉을 촉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요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4대종과 4대종으로 만들어진 매끄러운 성품ㆍ껄끄러운 성품ㆍ가벼운 성품ㆍ무거운 성품과 차고 따뜻하고 배고프고 목마른 것과 그 밖의 모든 신근(身根)으로 깨닫는 것과 신식(身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과 언설로 말하여 감촉이라 하며 촉계(觸界)라 하고 촉처(觸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촉처는 외처에 속한다.

어떤 것을 의처(意處)라 하는가? 

의근(意根)과 같으므로 마땅히 그 모양을 해설하여야 한다.

어떤 것을 법처(法處)라 하는가? 

법(法)을 뜻[意]이 이미 알았고 지금 알며 장차 알게 되는 것을 법처라 한다.

또 법이 뜻의 증상(增上)으로 일어난 의식(意識)에 의하여 이미 요별되었고 지금 요별되며 장차 요별되는 것을 법처라 한다.

또 법을 뜻이 이미 거리꼈고 지금 거리끼며 장차 거리낄 것을 법처라 한다.

또 법이 뜻에 의하여 이미 행하였고 지금 행하며 장차 행할 것을 법처라 한다.

이와 같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있는 모든 법을 법처라 하며 또한 아는 것이 나아가 평등하게 증하는 것이라 한다.

이것은 또 어떤 것인가? 

수(受)ㆍ상(想)ㆍ사(思)ㆍ촉(觸)ㆍ작의(作意)ㆍ욕(欲)ㆍ승해(勝解)와 신(信)ㆍ정진(精進)ㆍ염(念)ㆍ정(定)ㆍ혜(慧)와 심(尋)ㆍ사(伺)ㆍ방일(放逸)ㆍ불방일(不放逸)과 선근(善根)ㆍ불선근(不善根)ㆍ무기근(無記根)과 온갖 결(結)ㆍ박(縛)ㆍ수면(睡眠)ㆍ수번뇌(隨煩惱)ㆍ전(纏)과 모든 지견(智見)ㆍ현관(現觀)과 득(得)ㆍ무상정(無想定)ㆍ멸정(滅定)ㆍ무상사(無想事)ㆍ명근(命根)ㆍ중동분(衆同分)ㆍ주득(住得)ㆍ사득(事得)ㆍ처득(處得)과 생(生)ㆍ노(老)ㆍ주(住)ㆍ무상(無常)과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과 허공(虛空)ㆍ택멸(擇滅)ㆍ비택멸(非擇滅)과 그 밖의 모든 의근(意根)으로 아는 것과 의식(意識)으로 인식하는 것을 모든 명호와 달리 부르는 말과 비유적인 말과 생각과 평등한 생각과 시설의 언설로 말하여 법이라 하며 법계(法界)라 하고 법처(法處)라 하며 저 언덕이라 한다. 

이와 같은 법처는 외처에 속한다.


19. 온품(蘊品)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의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5온(蘊)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이니, 

이것을 5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색온이라 하는가? 

모든 물질[色]은 모두가 4대종(大種)이며 또한 4대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이것을 색온(色蘊)이라 한다.

어떤 것을 수온이라 하는가? 

모든 느낌[受]과 평등한 느낌[等受]과 따로따로의 느낌[別受]과 느낌의 성품과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수온(受蘊)이라 한다.

또 두 가지 느낌이 있는데 이것을 수온이라 하니, 

이른바 몸의 느낌[身受]과 마음의 느낌[心受]이다.

어떤 것을 몸의 느낌이라 하는가? 

5식신(識身)과 상응하는 모든 느낌이며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몸의 느낌[身受]이라 한다.

어떤 것을 마음의 느낌이라 하는가? 

의식(意識)과 상응하는 모든 느낌이며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마음의 느낌[心受]이라 한다.

또 두 가지 느낌이 있는데 그것을 수온이라 하니, 

이른바 유미의 느낌[有味受]과 무미의 느낌[無味受]이다.

어떤 것을 유미의 느낌이라 하는가? 

유루(有漏)의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유미의 느낌[有味受]이라 한다.

어떤 것을 무미의 느낌이라 하는가? 

무루(無漏)의 작의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무미의 느낌[無味受]이라 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욕계(欲界)의 작의와 상응하는 느낌을 유미의 느낌이라 하고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작의와 상응하는 느낌을 무미의 느낌이라 한다’고 한다.

지금 이 뜻에서는 유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느낌을 유미의 느낌이라 하고 무루의 작의와 상응하는 느낌을 무미의 느낌이라 한다.

유미의 느낌과 무미의 느낌에서와 같아서, 

타의 느낌[墮受]ㆍ불타의 느낌[不墮受]과 탐기의의 느낌[耽嗜依受]ㆍ출리의의 느낌[出離依受]과 순결의 느낌[順結受]ㆍ불순결의 느낌[不順結受]과 순취의 느낌[順取受]ㆍ불순취의 느낌[不順取受]과 순전의 느낌[順纏受]ㆍ불순전의 느낌[不順纏受]과 세간의 느낌[世間受]ㆍ출세간의 느낌[出世間受]에서도 또한 그러하다.

또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그것을 수온이라 하니, 

이른바 즐거운 느낌[樂受]과 괴로운 느낌[苦受]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이다.

어떤 것을 즐거운 느낌이라 하는가? 

순락촉(順樂觸)으로 생기는 몸의 즐거움과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즐거운 느낌[樂受]이라 한다.

또 초정려(初靜慮)와 제2ㆍ제3 정려를 닦아서 순락촉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즐거움과 평등한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즐거운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이 괴로운 느낌[苦受]이라 하는가? 

순고촉(順苦觸)으로 생기는 몸의 괴로움과 마음의 괴로움과 평등하지 않은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괴로운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이라 하는가? 

순불고불락촉(順不苦不樂觸)으로 생기는 몸의 평정[捨]과 마음의 평정과 평등한 것도 평등하지 않는 것도 아닌 느낌[非平等非不平等受]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라고 한다.

또 미지정(未至定)ㆍ정려 중간(靜慮中間)ㆍ제3 정려 그리고 무색정(無色定)의 순불고불락촉으로 생기는 마음의 평정[捨]이며 평등한 것도 평등하지 않은 것도 아닌 느낌이어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라고 한다.

또 네 가지 느낌이 있는데 그것을 수온이라 하니, 

이른바 욕계의 느낌[欲界受]과 색계의 느낌[色界受]과 무색계의 느낌[無色界受]과 불계의 느낌[不繫受]이다.

어떤 것을 욕계의 느낌[欲界受]이라 하는가? 

욕계의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욕계의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을 색계의 느낌[色界受]이라고 하는가? 

색계의 작의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색계의 느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무색계의 느낌[無色界受]이라 하는가? 

무색계의 작의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무색계의 느낌이라 한다.

어떤 것을 불계의 느낌[不繫受]이라 하는가? 

무루(無漏)의 작의와 상응하는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불계의 느낌이라고 한다.

또 다섯 가지 느낌이 있는데 그것을 온이라 하니, 

이른바 즐거운 느낌[樂受]ㆍ괴로운 느낌[苦受]ㆍ기쁜 느낌[喜受]ㆍ근심스런 느낌[憂受]ㆍ평정의 느낌[捨受]이니, 

이와 같은 다섯 가지 느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근품(根品)에서와 같다.

또 여섯 가지 느낌이 있는데 이것을 온이라 하니, 

이른바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眼觸所生受]이요 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이다.

어떤 것을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眼觸所生受]이라 하는가? 

눈[眼]과 빛깔[色]을 반연하여 안식(眼識)을 내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기 때문에 접촉[觸]을 내며 접촉을 반연으로 하여 느낌을 낸다. 

이 가운데서, 

눈은 증상(增上)이 되고 빛깔은 소연(所緣)이 되며 눈의 접촉은 인(因)이 되고 눈의 접촉은 등기(等起)가 되나니, 

이것이 곧 눈의 접촉의 종류요 이것이 곧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것이어서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作意)와 상응하는 안식(眼識)이 요별하는 빛깔에 대한 모든 느낌과 나아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이라 한다.

이와 같아서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느낌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역시 그러하다.

수온(受蘊)에서와 같아서, 

이 상온(想蘊)과 식온(識蘊)에 대하여 그에 맞추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어떤 것을 행온(行蘊)이라 하는가? 

행온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심상응의 행온[心相應行蘊]이요, 

둘째는 심불상응의 행온[心不相應行蘊]이다.

어떤 것을 심상응의 행온이라 하는가? 

이른바 사(思)ㆍ촉(觸)ㆍ작의(作意)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모든 지견(智見)과 현관(現觀)이며 또 그밖에 이와 같은 종류의 법(法)으로서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니, 

이것을 심상응의 행온이라 한다.

어떤 것을 심불상응(心不相應)의 행온이라 하는가? 

이른바 득(得)ㆍ무상정(無想定)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문신(文身)이며 또 그밖에 이와 같은 종류의 법(法)으로서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것이 있나니, 

이것을 심불상응의 행온이라 한다.

이와 같은 심상응의 행온과 심불상응의 행온을 통틀어 행온이라 한다.


20. 다계품(多界品) ①


어느 때 박가범께서 실라벌(室羅筏) 서다림(逝多林) 급고독원(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아난타(阿難陀)는 혼자 고요한 밤에 생각하였다.

‘모든 두려움[怖畏]을 일으키는 것과 재환(災患)과 요뇌(擾惱)의 일을 일으키는 이는 모두가 어리석은 범부요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 날 저녁때에 고요한 방으로부터 나와 세존께 가서 두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 쪽에 서서 생각했던 일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자, 

부처님께서 인가(印可)하시며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모든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과 재환과 요뇌(擾惱)의 일을 일으키는 이는 모두가 어리석은 범부들이요 모든 지혜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다. 

마치 불을 마른 갈대나 풀로 지은 집에다 놓아두면 누당(樓堂)도 대관(臺觀)도 불에 타게 되는 것처럼 어리석은 범부도 그러하여 지혜가 없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과 재환 등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경희(慶喜)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두려움과 재환과 요뇌는 모두 어리석은 범부가 내는 것이요 지혜 있는 모든 이들은 그렇지 않나니, 

지혜 있는 모든 이는 그런 것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니라.

경희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범부는 두려움이 있지만, 

지혜가 있는 이는 두려움이 없고 어리석은 범부는 재환이 있지만 지혜가 있는 이는 재환이 없으며, 

어리석은 범부는 요뇌가 있지만 지혜가 있는 이는 요뇌가 없나니, 

그러므로 경희야, 

어리석은 범부의 법과 지혜가 있는 이의 법을 알고 나서는 모든 어리석은 범부의 법을 멀리 여의고 지혜 있는 이의 법을 바르게 받아서 행할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무엇을 한정하여 모든 어리석은 범부의 수(數)를 시설(施設)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계(界)ㆍ처(處)ㆍ온(蘊)에 대한 것과 연기(緣起)와 처ㆍ비처의 법[處非處法]에 대하여 선교(善巧)하지 못한 이면 그가 어리석은 범부에 해당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무엇을 한정하여 모든 지혜 있는 이의 수(數)를 시설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계ㆍ처ㆍ온에 대한 것과 연기와 처ㆍ비처의 법에 대하여 선교를 얻은 이면 그가 지혜 있는 이에 해당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계(界)에 대한 선교(善巧)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는 18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계의 선교[界善巧]이니, 

이른바 안계(眼界)ㆍ색계(色界)ㆍ안식계(眼識界)와 이계(耳界)ㆍ성계(聲界)ㆍ이식계(耳識界)와 비계(鼻界)ㆍ향계(香界)ㆍ비식계(鼻識界)와 설계(舌界)ㆍ미계(味界)ㆍ설식계(舌識界)와 신계(身界)ㆍ촉계(觸界)ㆍ신식계(身識界)와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6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6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욕계(欲界)ㆍ에계(恚界)ㆍ해계(害界)ㆍ무욕계(無欲界)ㆍ무에계(無恚界)ㆍ무해계(無害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6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낙계(樂界)ㆍ고계(苦界)ㆍ희계(喜界)ㆍ우계(憂界)ㆍ사계(捨界)ㆍ무명계(無明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4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수계(受界)ㆍ상계(想界)ㆍ행계(行界)ㆍ식계(識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선교이니, 

이른바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ㆍ멸계(滅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과거계(過去界)ㆍ미래계(未來界)ㆍ현재계(現在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열계(劣界)ㆍ중계(中界)ㆍ묘계(妙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선계(善界)ㆍ불선계(不善界)ㆍ무기계(無記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3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학계(學界)ㆍ무학계(無學界)ㆍ비학비무학계(非學非無學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2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유루계(有漏界)와 무루계(無漏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또 2계(界)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계의 선교이니, 

이른바 유위계(有爲界)와 무위계(無爲界)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며 이것을 곧 지혜 있는 이의 계(界)에 대한 선교(善巧)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처(處)에 대한 선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는 12처(處)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처소의 선교[處善巧]이니, 

이른바 안처(眼處)ㆍ색처(色處)와 이처(耳處)ㆍ성처(聲處)와 비처(鼻處)ㆍ향처(香處)와 설처(舌處)ㆍ미처(味處)와 신처(身處)ㆍ촉처(觸處)와 의처(意處)ㆍ법처(法處)를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며 이것을 지혜 있는 이의 처에 대한 선교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온(蘊)에 대한 선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는 5온(蘊)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온의 선교[蘊善巧]이니, 

이른바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며 이것을 곧 지혜 있는 이의 온에 대한 선교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연기(緣起)에 대한 선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는 12연기(緣起)의 순(順)ㆍ역(逆)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연기의 선교[緣起善巧]이니, 

이른바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긴 까닭에 저것이 있다 함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니라.

이를테면 무명(無明)을 반연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반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을 반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반연하여 6처(處)가 있으며, 

6처를 반연하여 촉(觸)이 있고, 

촉을 반연하여 수(受)가 있으며, 

수를 반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반연하여 취(取)가 있으며, 

취를 반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반연하여 생(生)이 있으며, 

생을 반연하여 노사(老死)가 있고, 

수(愁)ㆍ탄(歎)ㆍ고(苦)ㆍ우(憂)ㆍ요뇌(擾惱)가 발생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곧 순수하고 큰 괴로움의 쌓임[純大苦蘊]이 쌓인다는 것을 사실대로 알고 보느니라.

그리고 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는 까닭에 저것도 소멸한다 함을 사실대로 알고 보느니라. 

이를테면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기 때문에 식이 소멸하며, 

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기 때문에 6처가 소멸하며, 

6처가 소멸하기 때문에 촉이 소멸하고, 

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수가 소멸하며, 

수가 소멸하기 때문에 애가 소멸하고, 

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가 소멸하며, 

취가 소멸하기 때문에 유가 소멸하고, 

유가 소멸하기 때문에 생이 소멸하며, 

생이 소멸하기 때문에 노ㆍ사ㆍ수ㆍ탄ㆍ고ㆍ우ㆍ요뇌가 소멸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곧 순수하고 큰 괴로움의 쌓임이 소멸한다는 것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곧 지혜 있는 이의 연기에 대한 선교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지혜 있는 이의 처(處)ㆍ비처(非處)에 대한 선교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는 이가 처ㆍ비처에 대하여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처ㆍ비처의 선교[處非處善巧]이니라.

이를테면, 

도리에도 맞지 않고[無處] 그리 될 수도 없는[無容]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의 악행(惡行)을 하는데도 사랑할 만하고 즐거울 만하고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는 이숙(異熟)을 받게 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有處] 그리 될 수 있는 것[有容]은 바로 몸과 말과 뜻의 악행을 하면 사랑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고 기뻐할 수 없고 뜻에 맞지 않는 이숙을 받게 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의 묘행(妙行)을 하는데도 사랑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고 기뻐할 수 없고 뜻에 맞지 않는 이숙을 받게 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몸과 말과 뜻으로 묘행을 하면 사랑할 만하고 좋아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고 뜻에 맞는 이숙을 받게 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으로 악행을 행한 뒤에는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모든 착한 세계[善趣]에 태어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몸과 말과 뜻으로 악행을 행한 뒤에는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면 모든 악한 세계[惡趣]에 떨어진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으로 묘행을 행한 뒤에는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고 나서 모든 악한 세계에 떨어진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몸과 말과 뜻으로 묘행을 행한 뒤에는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치고 나서 모든 착한 세계에 태어난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 곧 처ㆍ비처의 선교[處非處善巧]이니라.

또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한꺼번에 두 분의 전륜왕(轉輪王)이 하나의 세계에 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한 때에 한 분의 전륜왕이 하나의 세계에 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한꺼번에 두 분의 여래(如來)께서 하나의 세계에 나신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한 때에 한 분의 여래께서 하나의 세계에 나신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바로 처ㆍ비처의 선교이니라.

또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여인이 전륜왕ㆍ제석(帝釋)ㆍ마왕(魔王)ㆍ범왕(梵王)이 되고 그리고 독각(獨覺)의 보리(菩提)를 증득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남자가 전륜왕ㆍ제석ㆍ마왕ㆍ범왕이 되고 그리고 독각의 보리를 증득하거나 혹은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곧 처ㆍ비처의 선교이니라.

또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거룩한 소견[聖見]을 갖춘 이가 고의(故意)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아버지를 살해하며 아라한을 해치고 화합승(和合僧)을 파괴하며 그리고 악한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 몸에 피를 낸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모든 이생(異生)인 자면 5무간업(無間業)을 짓게 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곧 거룩한 소견을 갖춘 이가 고의로 중생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곧 모든 이생(異生)인 자면 고의로 중생의 목숨을 끊게 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거룩한 소견을 갖춘 이가 고의로 모든 학처(學處)를 어긴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모든 이생인 자면 고의로 모든 학처를 어기게 된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거룩한 소견을 갖춘 이가 뛰어난 학처를 버리고 하열한 학처에 나아가며 혹은 외도(外道)를 구하여 스승으로 삼거나 혹은 외도를 구하여 복전(福田)으로 삼거나 혹은 외도의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의 얼굴을 우러러 쳐다보거나 혹은 갖가지 모든 길상(吉祥)에 대하여 점을 치는 일에 집착하면서 청정하다고 여기거나 혹은 제팔유[第八有:都無事]를 받들거나 한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모든 이생인 자면 이러한 일이 있게 된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을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바로 처ㆍ비처의 선교이니라.

또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5개(蓋)에 마음이 더럽혀진지라 지혜의 힘[慧力]을 파괴하게 하고 도품(道品)을 장애하며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아직 끊지 못한 이가 마음으로 4념주(念住)에 편안히 머무른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5개에 마음을 더럽혀서 지혜의 힘을 파괴하게 하고 도품을 장애하며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이미 끊은 이가 마음으로 4념주 안에 편안히 잘 머무른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5개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아직 끊지 못한 이가 마음으로 아직 4념주에도 머무르지 못하면서 7등각지(等覺支)를 닦아 익힐 수 있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5개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내지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이미 끊은 이가 4념주 안에 이미 잘 머무르고 그리고 7등각지를 잘 닦아 익힌다는 것이니라.

도리에도 맞지 않고 그리 될 수도 없는 것은 바로 5개(蓋)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내지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아직 끊지 못한 이가 마음으로 아직 4념주 안에 잘 머무르지 못하고 아직 7등각지도 닦아 익힐 수 없으면서 성문(聲聞)이나 독각(獨覺)이나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無上正等菩提]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요, 

도리에도 맞고 그리 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5개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함) 나아가 열반에 어긋나는 일들을 이미 끊은 이가 마음으로 4념주 안에 이미 잘 머무른 뒤에 7등각지를 능히 닦아 익히고서야 비로소 성문이나 독각이나 최상의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니, 

이와 같이 사실대로 알고 보는 것이 바로 지혜 있는 이의 처ㆍ비처에 대한 선교라 하느니라.”

아난타가 말하였다.

“지금 이 법문은 그 이름이 무엇이며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경희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법문의 이름은 사전(四轉)이라 하고 또한 대법경(大法鏡)이라 하며 또한 감로고(甘露鼓)라 하고 또한 다계(多界)라고 하니, 

마땅히 이와 같이 지녀야 하느니라.”

그때에 아난타는 기뻐하며 공경히 받았다.

어떤 것을 안계(眼界)라 하는가? 

이른바 안근(眼根)과 같다.

어떤 것을 색계(色界)라 하는가? 

이른바 색처(色處)와 같다.

어떤 것을 안식계(眼識界)라 하는가? 

눈과 빛깔이 반연이 되어 생기는 것이 안식(眼識)이며 이 가운데서 눈은 증상(增上)이 되고 빛깔은 소연(所緣)이 되어 눈으로 아는 빛깔에 대하여 모든 빛깔을 요별(了別)하고 다르게 요별하며 저마다 따로따로 요별하는 것을 바로 안식계라고 한다.

그 밖의 다른 15계(界)에 대해서도 응함에 따라 자세한 설명은 역시 그러하다.

어떤 것을 지계(地界)라 하는가? 

지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지계라 하는가?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단단한 성품[堅性]이요 단단한 종류[堅類]로서 집수(執受)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른바 머리카락ㆍ터럭ㆍ손발톱ㆍ이 나아가 대변까지이다.

또 그밖에도 몸 안에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단단한 성품과 단단한 종류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 있나니, 

이것을 바로 안의 지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밖[外]의 지계라 하는가? 

이 몸 밖에 있는 모든 바깥에 소속된 단단한 성품과 단단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無執無受]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른바 대지(大地)ㆍ산ㆍ모든 돌ㆍ기와ㆍ조약돌과 민물조개ㆍ달팽이ㆍ구리ㆍ쇠ㆍ주석ㆍ납ㆍ말니(末尼)ㆍ진주ㆍ유리ㆍ나패ㆍ산호ㆍ벽옥이며, 

금ㆍ은ㆍ석장(石藏)ㆍ저장(杵藏)ㆍ파지가(頗胝迦)ㆍ적주(赤珠)ㆍ석선(石旋)ㆍ모래ㆍ흙ㆍ풀ㆍ나무ㆍ가지ㆍ잎사귀ㆍ꽃ㆍ열매 등이다. 

혹은 또 땅이 수륜(水輪)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있는 것도 있다.

또 그밖에도 이 몸 이외에 있는 단단한 성품과 단단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밖의 지계라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여기의 밖의 것을 통틀어 지계라 한다.

어떤 것을 수계(水界)라 하는가? 

수계에도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수계라 하는가? 

이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축축한 성품[濕性]과 축축한 종류[濕類]로서 집수가 있는[有執有受]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모든 눈물ㆍ땀 나아가 소변까지이다.

또 그밖에도 몸 안에 저마다 따로따로의 축축한 성품과 축축한 종류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안의 수계라 한다.

어떤 것을 밖[外]의 수계라 하는가? 

이 몸 이외에 있고 모든 바깥에 소속된 축축한 성품과 축축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떠한 것들인가? 

이른바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 등의 즙(汁)과 이슬ㆍ술ㆍ우유ㆍ타락ㆍ소(酥)ㆍ기름ㆍ꿀ㆍ사탕ㆍ못ㆍ호수ㆍ긍가하(殑伽河)ㆍ염모나하(鹽母那河)ㆍ살랄유하(薩剌渝河)ㆍ알씨라벌지하(頞氏羅筏底河)ㆍ막혜하(莫呬河)와 동해ㆍ서해ㆍ남해ㆍ북해의 큰 바닷물이며, 

혹은 또 물이 풍륜(風輪)에 의지하며 머무르고 있는 것도 있다.

또 이것 외에 있는 나머지 축축한 성품과 축축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밖의 수계라고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이 밖의 것을 통틀어 수계라 한다.

어떤 것을 화계(火界)라 하는가? 

화계에도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화계라고 하는가? 

이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따뜻한 성품[暖性]과 따뜻한 종류[暖類]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 몸속에 있는 모든 덥고[熱], 

평등하게 덥고, 

두루 더운 것이어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먹은 것과 마신 것이 곧바로 쉽게 소화되며 만일 이것이 너무 성하면 몸으로 하여금 불에 타듯 더워지게 한다.

또 그밖에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따뜻한 성품과 따뜻한 종류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곧 안의 화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밖[外]의 화계라고 하는가? 

이 몸 밖에 있는 모든 바깥에 소속된 따뜻한 성품과 따뜻한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無執無受]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들인가? 

땅의 따뜻함과 불ㆍ해ㆍ약ㆍ말니(末尼)ㆍ궁전(宮殿)ㆍ별ㆍ불무더기ㆍ등불ㆍ불꽃과 마을을 태우고 성(城)을 태우고 산천을 태우고 들을 태우는 불과 십ㆍ이십ㆍ삼십ㆍ사십ㆍ오십ㆍ백ㆍ천ㆍ혹은 한량없이 많은 땔나무를 태우는 등 불이 왕성하고 밝고 환한 것이며 혹은 산ㆍ진펄ㆍ하천ㆍ못ㆍ바위ㆍ굴ㆍ방ㆍ전당ㆍ누각ㆍ풀ㆍ나무ㆍ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사귀ㆍ꽃ㆍ열매 등에 있는 따뜻한 기운이다.

또 그밖에 열(熱)이 있는 성품과 열이 있는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밖의 화계라고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이 밖의 것을 통틀어 화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풍계(風界)라 하는가? 

풍계에도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풍계라 하는가? 

이른바 이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움직이는 성품[動性]과 움직이는 종류[動類]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 몸 속의 혹은 위로 나오는 바람[上行風]이거나 혹은 아래로 나오는 바람[下行風]이거나 혹은 곁으로 나오는 바람[傍行風]이거나 겨드랑 바람[脇風]ㆍ등 바람[背風]ㆍ가슴 바람[胸風]ㆍ뱃속 바람[肚風]ㆍ염통 바람[心風]ㆍ배꼽 바람[臍風]과 올발라풍(嗢鉢羅風)ㆍ필발라풍(蓽鉢羅風)ㆍ도풍(刀風)ㆍ검풍(劒風)ㆍ침풍(針風)ㆍ결풍(結風)ㆍ전풍(纏風)ㆍ철풍(掣風)ㆍ노풍(努風)ㆍ강풍(强風)과 팔다리의 마디뼈를 따라 부는 바람[隨支節風]과 들숨ㆍ날숨의 바람[入出息風]이다.

또 그밖에도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 움직이는 성품과 움직이는 종류로서 집수가 있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안의 풍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밖[外]의 풍계라고 하는가? 

이 몸 밖에 있는 모든 바깥에 소속된 움직이는 성품과 움직이는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이른바 동풍(東風)ㆍ서풍(西風)ㆍ남풍(南風)ㆍ북풍(北風)과 먼지가 있는 바람[有塵風]ㆍ먼지가 없는 바람[無塵風]ㆍ회오리바람[旋風]ㆍ사나운 바람[暴風]과 폐람바 바람[吠嵐婆風]ㆍ작은 바람[小風]ㆍ큰 바람[大風]ㆍ한량없는 바람[無量風]ㆍ풍륜의 바람[風輪風]과 허공에 의지하여 부는 바람[依空行風]이다.

또 그 밖의 움직이는 성품과 움직이는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을 바로 밖의 풍계라고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여기의 밖의 것을 통틀어 풍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공계(空界)라고 하는가? 

공계에도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안[內]이요 둘째는 밖[外]이다.

어떤 것을 안[內]의 공계라고 하는가? 

이 몸 안에 있는 모든 저마다 따로따로의 속이 빈 성품[空性]과 속 빈 종류[空類]로서 집수(執受)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들인가? 

이 몸속에 있는 가죽ㆍ살ㆍ피ㆍ뼈ㆍ골수 등에 따라 속이 비어 있는 데와 눈구멍ㆍ귓구멍ㆍ콧구멍ㆍ입ㆍ목구멍ㆍ심장ㆍ장(腸)ㆍ뱃속 등에 있는 구멍이며 이로 말미암아 마신 것ㆍ먹은 것을 통하게 하고 저장하고 그리고 아래로 내보내는 것이다.

또 그 밖의 몸 안에 있는 저마다 따로따로 속이 빈 성품과 속이 빈 종류가 있다. 

이것을 바로 안의 공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밖[外]의 공계라고 하는가? 

이 몸 밖에 있는 모든 바깥에 소속된 속이 빈 성품과 속이 빈 종류로서 집수가 없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밖에 속이 텅 비고 휑한 것[空]과 인아가색(隣阿伽色)이니, 

이것을 바로 밖[外]의 공계라고 한다.

앞의 안의 것과 여기의 밖의 것을 통틀어 공계라고 한다.

어떤 것을 식계(識界)라고 하는가? 

5식신(識身)과 유루(有漏)의 의식(意識)을 식계라고 한다.


● [pt op tr] 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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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법온족론』 ♣0945-010♧






◎◎[개별논의] ❋본문


● 희견보살과 아비달마법온족론의 관계


희견보살상이 법주사에 있다. 

그런데 희견보살과 아비달마법온족론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일반적으로 논서를 읽기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다. 

아비달마법온족론도 예외가 아니다. 

잘 모른다. 

알아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읽어보니 졸립다. 

일반적으로 논서를 대하면 이런 느낌을 많이 호소하게 된다. 


그런데 희견보살은 즐겁게 본다는 의미를 명호에 담고 있다. 

왜 읽어야 하는가. 

먼저 읽어야 할 취지를 알아야 대하게 된다. 

그 다음 읽을 때 나열되는 문장의 의미나 단어의 85 % 를 이미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읽는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전부 다 알면 또 재미가 반감된다. 

그리고 나머지 모르는 15% 을 알아서 삶에서 바로 효용을 얻어야 한다. 

아는 내용과 현실이 동떨어지면 효용을 바로 얻기 힘들다. 

효용은 간단히 말해 좋음이다. 

재미있는 게임을 반복해 즐겁게 하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경전 공부는 게임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단순한 좋음이나 즐거움이 아니다. 

무량겁을 두고 또 얻고 또 얻어낼 수 있는 즐거움과 좋음이다. 

그것을 대해 알게 되는 즉시부터 삶에서 얻어내야 한다. 

그러면 경전 공부가 늘 즐겁게 된다. 


오늘은 처음에 뿌리에 대해서 소개한다. 

먼저 22 근이 있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독자는 여기서 먼저 다음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22 근을 알면 뭐 하는가. 

삶에서 무슨 좋음을 얻는가. 

무엇때문에 그런 것을 알려고 하는가. 

다 같은 질문이다. 

그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논서에서 직접적으로 잘 알려주지 않는다. 

논서를 기술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문제는 이미 당연히 충족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가 알아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잘 찾지 못한다. 

그래서 또 대부분 논서를 멀리한다. 

심지어 불교가 쇠퇴하고 대중에게 멀어진 사정을 논서에서 찾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누구나 논서를 대하면 그렇게 피로감을 느끼고 골치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 멀리하게끔 된다. 

그러니 불교가 쇠퇴하고 대중에서 멀어졌다면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하게끔 된다. 


그런데 사실 논서는 논서대로 그렇게 자세히 살펴야 할 사정이 있다. 

그래서 논서인 것이다. 

그리고 불교가 대중에게 멀어진 사정을 논서에서 찾는 것도 부적절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불교신자는 논서를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고 요구한적이 없다. 

예를 들어 사찰에서 논서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사찰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사정이 그런데도 불교가 대중에서 멀어진 것이다. 

그래서 불교가 대중에게 멀어진 원인을 논서에 떠넘기면 곤란하다. 


불교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냥 힘세고 뛰어난 어떤 존재가 있다. 믿자.  현실문제가 해결된다. 

이런 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멀리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 불교를 대해 좋은 곳으로 옮겨 가버린다. 

그래서 불교가 흥한 곳은 그런 분들이 다 옮겨가고 남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앞과 같은 상태의 대중만 가득 남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 결과가 그런 형태로 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축사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이 축사에 누가 가장 오래 남아 있는가라는 퀴즈가 있다. 

그리고 시일이 지나 축사에 가득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런 상태에서 판단을 하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불교를 접한 이들은 축사를 되도록 빨리 떠난 상태다. 

남아 있는 것은 불교를 접한 경우와는 오히려 거리가 먼 경우다. 

이렇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처음 22 근 문제를 보자. 

그 취지는 역시 생사고통의 해결과 보리심과 중생제도 무량복덕 지헤취득에 있다. 

앞으로 어떤 주제가 나오던 이 내용과 관련시키면 된다. 

설령 논서내용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사현실의 내용을 대할 때 위 내용과 관련시켜서 관하라는 것이 

문수보살님의 가르침이다. 화엄경 정행품에 그런 내용이 제시된다. 


더욱이 논서내용도 사정이 같다. 

당장 이해가 안 되더라도 그렇게 놓고 관련성을 찾아가야 한다. 

끝내 안 찾아지면, 독자 자신의 문제가 된다. 

생사현실 일체가 다 관련된다. 그런데 

그 가운데 특히 더 중요해서 논서에서 뽑아 살피는 것이다. 

그러니 안 찾아질 리가 없다. 

그래서 못 찾으면 독자 자신의 문제라고 해야 한다. 


두번째로는 다음 질문을 해야 한다. 

22 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아는 단어가 몇개인가. 

일반적으로는 3% 정도만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은 것은 글자. 흰것은 여백, 이 정도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일단 단어와 친숙해져야 한다. 


그 다음 85% 정도 알게 되면 

나머지 15% 를 가지고 자신의 도전을 해야 한다. 


왜 22 근이라고 하는가. 

23 근은 안 되는가. 

19 근은 안 되는가. 

이것은 여기에 넣으면 안 되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vorc2191

◈Lab value 불기256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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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louis-comfort-tiffany

Louis Comfort Tiffany (1848 년 2 월 18 일 -1933 년 1 월 17 일)는 장식 예술 분야에서 일하면서 스테인드 글라스 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미국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입니다 . 그는 아르 누보 ( Art Nouveau ) 및 미적 움직임 과 가장 관련이있는 미국인 예술가이다 . 그는 록우드 드 포레스트 (Lockwood de Forest) , 캔더스 휠러 (Candace Wheeler ), 새뮤얼 콜먼 (Samuel Colman) 등의 Associated Artists로 알려진 디자이너들의 권위있는 공동 작업자와 제휴했습니다 . 티파니는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램프 , 유리 모자이크, 불어 유리, 도자기, 보석, 법랑과 금속 세공을 디자인했습니다. [2]그는 아버지 찰스 루이스 티파니 (Charles Lewis Tiffany)가 설립 한 가족 회사 인 Tiffany & Co. 의 첫 디자인 디렉터였습니다 .[...이하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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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andoned Ship, oil painting by Lawrence Ha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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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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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6 August 2017
Source Own work
Author Jc86035
니콜라스 마스 ( Nicolaes Maes , 1634 년 1 월 - 1693 년 11 월 24 일)는 장르와 초상화의 네덜란드 황금기 화가였다.[...이하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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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guna Madre and Río Bravo Delta ,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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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Cowboys Fringants - Vacances 31


♥단상♥ 이어지는 핸드폰 수리와 무유정법 인과 이론  

최근에 밧대리 없이 핸드폰을 사용하기 위해 수리를 몇개 했다. 
그 뒤로 계속 또 수리를 하게 된다. 

사정이 있다. 
부품가격이 택배비보다 싸다. 
그래서 한번 주문시 여러 개 구입했다. 

그런 가운데 과거에 사용하던 기기를 살펴보니 
이번에 한번에 다 수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열어보면 대부분 밧대리가 부풀려 있다. 
완전히 작동이 멈출 때 하면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때 새로 또 수리하려면 시간이 더 들어간다. 
잘못하면 화재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은 집중해서 할 때 한번에 하는 것이 낫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처음에는 한 3 개 정도 수리하고 만족해했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lG 구형 핸드폰 상태를 보니 애매하다. 
배 부분이 약간 부풀어진 상태인데 
충전기를 꼽아 놓으면 그래도 작동이 되는 상태다. 

그런데 하는 김에 하자고 수리를 시작했다. 
그런데 Lg 폰은 다른 폰과 상태가 다름을 알게 되었다. 

우선 단자에 전선 연결시키는 부분부터 차이가 있었다. 
단자에 끼어 넣을 바늘구멍이 잘 보이지 않는다. 
원칙은 납땜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납땜은 사실 서툴고 힘들다. 
경험상 잘 안 된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 간신히 단자에 끼어 넣었다. 

그런데 해보니 초기에 밧대리 에러 표시만 나타나고 부팅이 안 된다. 

2 A 어댑터에서 3 A 찌리 어댑터로 바꿔보았다. 그래도 안 된다.
처음에는 붙이는 어댑터 A 용량 문제인가 생각하고 
그래서 이제 4 A 짜리 어댑터를 찾아 바꿔보았다. 
출력 볼트도 조금 더 올려보기도 했다. 
다 안 된다. 

그래서 밧대리를 그 상태에서 넣어 붙여 보니 부팅이 된다.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조금 더 찾아보니 lg 폰의 경우는 밧대리 붙은 단자 부위를 
떼내서 여기에 붙여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기에서 먼저 밧대리인지 아닌지 체크를 한다.
그래서 이 부품을 그대로 떼어 붙여줘야 한다.  




그런데 때내는 과정에서 중간부분에서 실수를 했다. 
단자가 밧대리 쪽에 붙어 떨어졌다. 

이후 이 부분에 선을 붙이자니 납땜을 해야 한다. 
그래서 최근 구입한 권총 인두기를 다시 꺼냈다. 

그런데 실패했다. 
역시 납땜은 힘들다. 

그런데 납땜이 힘든 원인이 있다. 
우선 위 상태에서 하나도 고정시키지 못한 가운데 납땜을 급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단자 부분도 인두기를 댈 때마다 흔들린다. 
선도 또 흔들린다. 
붙이려는 납도 같이 흔들린다. 
붙잡은 인두기도 흔들린다. 
손이 두개인데 이것을 다 함께 고정시키고 납땜하려니 힘들다. 
납이 녹아도 다 녹아 없어지거나, 굴러가거나 난리다.

앞으로는 미리 좀 생각해보고 인두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결국 공연히 기판과 주변 플라스틱 부분만 태우고 끝내 실패했다. 

단자 주변부위가 엉망이 된 상태에서 원래 선을 붙일 단자부분과 - 부분이
전기가 서로 통하는가 체크해본다. 
그런데 이제는 연결도 안된다. 
완전히 이상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 선은 처음 단자부분에 그냥 붙여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다행히 된다. 

그 다음은 이것을 고정시켜주는 문제가 남는다. 
글루콘을 사용해야 한다고 안내된다. 

그런데 글로콘이 한 때 있다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떼어 놓고 사용할 방안을 찾아보게 된다. 

그러면 이제 단자 4 부분을 떨어뜨려 놓고 다 납땜하던지해서 여하튼 선을 연결해야 한다. 
그것도 별로다. 

그래서 나무지지대를 생각하게 되었다. 
글루콘보다는 나무지지대가 의미도 좋아 보인다. 

깊은 지혜로서 큰 것을 알고 의존하다. 
이런 의미가 아니겠는가. 

글루콘은 접착되어 속인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니면 글로써 번뇌(루)가 생겨 반대한다? 충돌한다. 이런 의미일 수도 있다. 

물론 글루콘이 있어 사용하려고 했을 때는 
다시 반대로 해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하튼 나무지지대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번에 수리하면서 나무 젖가락의 고마움을 새삼 느꼈다. 
저런 형태의 지지대가 필요하다고 통나무를 하나 구해야 했다면 얼마나 힘들 것인가. 
그러나 막상 나무 젓가락이 필요할 때 딱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것보다 몇배 힘들었다. 
그런데 젓가락을 찾으면서 생각해보니 젓가락의 철자법에 혼동이 온다. 
그리고 왜 젓가락을 젓가락이라고 한 것인지도 알기 힘들다. 
우리나라 순한글에는 말을 만들어내는 어근이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 
그런데 가락이 들어간 말을 생각해보면 
손가락, 발가락, 숟가락 몸가락 등은 서로 연상이 어느 정도 된다.
그런데 젓가락은 조금 연상이 잘 안 된다. 

결국 여하튼 수리를 맞추니 잘 된다. 

그리고나서 기기 보직을 이전시켰다. 

현재 음악공양 시설을 운영하는 곳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번에 수리된 lg 폰은 선명칭길상왕여래님 국토에서 
천불의 아버님으로 유명하신 보염여래님 국토로 보직을 옮겼다. 
화면이 커서 경전을 텍스트로 보기 편하다. 
그런데 보염여래니 기지에서 주로 쉬면서 게송이나 다라니 텍스트를 찾아보곤 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국토는 사바세계다. 안인을 수행하는 곳이다. 
그런데 보염여래님 국토는 근적정세계라고 한다.  
보염여래님은 천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이 천명이 모두 부처님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행혜보살님이 이 세계에서 활동 중이다. 

그런데 오늘 22 근의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뭔가 관련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보염여래님 기지에서 음악공양에 사용하던 기기를 다시 또 확인해 보게 되었다. 
역시 조금 밧대리가 배가 부풀어져 있다. 
솔직히 당분간은 그냥 두어도 될 듯도 하다. 

그런데 역시 문제가 생긴 다음 다시 부품 찾고 연장 찾아서 수리하러면 더 힘들다. 
그래서 이번에 하는 김에 수리를 해서 붙이기로 했다. 

수리함에 있어 아쉬움이 있다. 
숙왕화님의 중고 핸드폰이 성능좋은 것으로 2 개가 있다. 
기타 다른 연구원들의 중고핸드폰도 또 몇개 더 있다. 
그런데 이 분들의 핸드폰은 박대리를 붙여도 안 된다. 
그렇게 망가뜨렸다. 

적당히 될 때 신형으로 바꾸면서 중고가 된 상태가 좋다. 
그것도 너무 최신형은 더 힘들다. 
최신형은 방수처리까지 해서 케이스를 분해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적당한 중고가 좋다. 


텍스트 잠깐 보고, 
무선랜 통해서 인터넷 음악방송을 공양하거나, 
메모리 카드에 음악담아 공양하거나, 
그런 용도다. 
물론 그것은 본인 입장이다. 

그런데 아예 액정이 파손된 핸드폰, 
또는 처음부터 밧대리는 정상이지만 부팅이 안된 상태의 핸드폰 
이런 것은 곤란하다. 

그러면에서 숙왕화님은 아쉬움이 많다. 
 


그런데 이것이 수행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그리고 무유정법 인과이론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없어도 찾아야 한다. 
솔직히 중고수리해 사용한다고 수행자가 칭찬받기 힘들다. 


오늘 수리하는 핸드폰은 상당히 오래된 핸드폰이다.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니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수리를 마치면 다시 앰프와 연결되게 된다. 
지금까지 밧대리가 있는 상태로 3 년 이상 계속 공양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밧대리를 빼고 가동된다. 

그리고 이 기기는 보직을 옮긴다. 
앞으로는 선명칭길상왕여래님 국토에서 음악공양을 담당하게 된다. 
메모리카드에도 곡이 많지만, 
당분간 와이파이를 통해 인터넷 음악방송으로 음악을 공양할 예정이다.  
앰프에 연결해 음질 테스트까지 마쳤는데 상당히 좋다. 

남겨진 밧대리들을 모아 놓으니 산처럼 쌓인다. 
이것으로는 장차 태양광 꽃 공양시스템을 개발해보려 구상중이다. 
이것도 공양과 관련되기에 연구실에서 허용되는 일이다. 

통상 이런 말이 있다. 

뭔가를 자신이 직접 수리하고 만들고 하는 일을 '다이'라고 표현한다. 
Do it yourself  를 줄여 말한 것이라고 한다. 
직접 수리하고 만들면 재미가 있다. 
아이 때 블록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런 다이 업무를 하다보면 빨리 늙고 말대로 빨리 죽기 쉽다. 
그렇지 않으면 공장에 취직하거나 곰이 된다. 
이런 말이 있다. 
그렇게 말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어설픈 도구나 기술을 가지고 직접 행하니 힘이 많이 든다. 
그런데 그처럼 힘들지만, 정작 거둔 수익은 보잘 것 없다. 
심지어 만든 작품도 조잡하거나 조악해 보인다. 
사정이 그렇기에 옆에서 이런 평가를 자주 하게 된다. 

그런 사정이 사실 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하던, 보리심과 중생제도와 관련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그런 평가를 반복해 듣게 된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계속 이런 일을 행하기 힘들다. 

접시 깨진 것과 냄비 뚜겅 등을 현재 꽃공양 제작 부품으로 몰래 모아 놓고 있다. 
led 등으로 꽃을 만들려고 구상중이다. 
그런데 발견되면 큰 일이다. 
깨진 접시 냄비 뚜겅 사이에 함께 끼워져 내버려지기 쉽다. 

현재 구상은 다음과 같다. 
태양광을 받아서, 전기로 만드는 부품이 있다.
여기에 현재 사용하지 않는 밧대리를 연결해 충전을 한다. 
그러면 밤이 되면 led 등으로 만든 꽃등이 피어나게 된다. 

다만 이미 배가 부푼 밧대리는 이 경우도 사용곤란하다. 
사실 이 경우는 밧대리로서는 사망 상태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배가 부풀은 밧대리 원상회복 방안이 있다고 한다. 
일단 적게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게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아이들처럼 전원문제에 매달리지 말고 
앞으로는 예술적인 형태나 활동부분에 뛰어들게 한다. 
그렇게 과감히 변신해야 한다. 

밧대리 파이팅! 

현재 보성여래님 국토에는 앰프 전용 음악공양기기가 붙어 있지 않다. 
이는 작업용 pc 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24시간 공양이 계소되는 다른 국토 공양기기와 사정이 다르다. 
이 곳도 24 시간 쉼없는 공양을 위해 구형 핸드폰을 물색해보게 된다.
그러나 구형 핸드폰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핸드폰이 아니어도 mp3 플레이어 정도도 가능하다. 
다만 핸드폰이 기능이 많아서 더 좋은 것 뿐이다.

이번 수리과정에서 노트북을 하나 문서 작업용으로 확보했다. 
사실은 액정 깨진 노트북을 수리하면서 이 일이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액정 깨진 노트북은 그간 음악공양기기로만 전용 사용되었다. 
그런데 수리후 보직을 이동시키고 이후 연쇄적인 핸드폰 수리가 시작되고 
보직 이동이 연이어 이뤄진 것이다. 
연구실이 전자제품수리센터처럼 변하고 조금 힘들었다. 

그리고 음악공양시설 수리를 다 마치고 쉬었다. 

그런데 음악 방송을 듣다가 오늘 가진 의문에 대한 답을 들었다. 
젓가락을 처음에 왜 젓가락이라고 부르게 된 것인가에 대하여 불어노래를 부른 가수가 
답을 해주는 듯하다. 

그런데 음악을 핸폰을 통해 인터넷 방송으로 들으면 약간 문제가 있다. 
곡이 재생될 때 곡 명을 알아내야 한다. 
곡이 끝나면 알아내기 힘들다. 
알려주어도 곡이 재생될 때만 알려준다. 

어떤 방송은 곡명을 아예 올려주지 않기도 한다. 
노래를 들어도 단어도 모른다.
그런 경우 곡명을 알아내기 힘들다. 
이런 경우 특히 불어에 약한 본인은 치명적이다. 
그러나 이번에 다행히 창에 가수 제목과 노래 제목 첫 부분이 보여서 
간신히 찾아냈다. 

다만 조금 오해여지가 있어 바로 올리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이 곡 내용이 본인 의문에 대한 답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이어지는 곡을 다시 들으니 곡을 올려서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하는 듯하다. 

STROMAE - Alors On Danse

젓가락이라고 처음 하게 된 연유

Michel Delpech - J't'aime Bien Lili

이 노래에서 그 말을 처음 만들어 사용한 취지는 
유모가 이유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알게 된다고 제시하는 듯 하다. 
즉 가락을 어떤 것의 연장선으로 보게 된다. 이런 해석인 듯 하다. 
몸가락이 목을 포함한 사지를 의미하고
노래가락이 노래가 이어지는 연장선인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한자어에서 연원을 찾아나서게 된다. 
그런데 처음 문제는 순한글로 대할 때 연원을 찾는 것이었다. 
그처럼 말을 조합해 사용하게 된 첫 취지가 무엇이었는가.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외국 음악을 듣다보면 잠시 다음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한글을 외국 사람들이 더 잘 아는 듯하다. 


답을 적어올렸더니 다음 노래가 또 이어진다. 

MYLENE FARMER - Desenchant

답을 통해서 사실대로 알게 된다. 
이런 취지인 듯 하다. 

그런데 말 뜻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한자어도 도움이 많이 된다. 
노래가락이나 가락은 즐길만 하다. 
한자어의 도움을 통해 이런 의미도 얻을 수 있다. 
이런 말들이 불어까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그 이후 
티벳과 인도를 넘어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외국 음악 방송 사이트 링크를 일일이 찾아 알아내려면 조금 힘들다. 
음악 방송 링크를 알아내는 몇몇 방식이 있기는 하다. 
세계적으로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악방송을 하는 곳이 대단히 많다. 
streamwriter라는 프로그램이 비교적 사이트 주소를 알기 쉽다. 
다른 앱은 방송은 듣지만, 주소까지는 알기 힘들다. 

한편 아주 오래된 핸드폰에서도 사용가능한 음악방송 앱이 많지는 않다. 
aimp 같은 일부 앱은 최근 핸드폰은 지원되지만, 과거 핸폰은 일단 앱이 깔리지 않는다. 
그래도 비교적 오래된 핸드폰에서도 음악방송을 청취가 되는 앱이 하나 있다. 
토털커맨더 앱이다. 
테스트해보니 대강 10 여년전 모델에도 이 앱은 깔린다. 
그리고 실행된다. 

여기에 m3u8 형태로 방송링크주소를 적어 저장한다.
그리고 이 파일을 터치하고 이 앱으로 재생하면 된다. 
음악방송 링크의 경우, 구형핸폰에서는 실행전에 조금 잔소리가 있다.
그래도 계속 체크하면 여하튼 재생이 된다. 
그리고 음악링크 재생시 방송링크를 터치하면 상단 부분에 곡명이 작게 나타난다. 
물론 음악방송국에서 곡명을 올려주는 경우에 그렇다. 
그래서 조금 힘들다. 



♥단상♥ 전자제품 수리와 무유정법 인과 이론  -11

전자제품을 수리해보면 불교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이 옳지 않은 듯 여겨지기도 한다. 

이미 이런 내용을 앞글들에서 살펴왔다. 

번개와 천둥, 
손바닥과 손뼉소리 
이런 내용을 통해서 살폈다. 

이들이 언뜻 서로 인과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서로간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는 내용일 뿐이다. 
이런 내용을 살폈다. 

현실에서 원인과 결과로 관련짓는 내용은 그 대부분 마음안 내용이다. 
마음안 내용이 다른 마음 내용과 전혀 관련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과 문제로 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감각현실이 대부분이다. 
이 때 시각이 청각의 원인이 된다고 하면 곤란하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청각내용이 촉각을 얻는 원인이 아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들이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 문제들을 앞 페이지들에서 살펴왔다. 
그리고 최근 반야경전을 살필 때도 그 대강을 지적했다.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다음 문제들을 이해해야 한다. 

처음에 현실에서 있다고 보는 내용을 왜 얻을 수 없다고 하는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두번째 사정이 그런데, 왜 생사현실에서 이들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가를 
또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이들이 왜 서로 관련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가도 포함된다. 

그리고 일체를 얻을 수 없는데, 왜 또 수행을 하필 경전에 제시된 형태로 해야 하는가. 
이 사정을 다시 이해해야 한다. 

하나하나 어렵다. 

처음 부분은 주로 중관반야 분야에서 다룬다. 
뒷 부분은 유식 분야의 설명을 참조해야 한다. 

여기서는 이것을 다 살필 수가 없다. 
그러나 과거에 이미 충분히 많이 살폈다. 

현재는 관소연연론 부분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정리중이다. 
그런데 정리중이라고 하지만, 거의 손을 못 대고 있다. 
다만 중복 설명된 부분을 삭제하고 줄이는 수정이 필요해서 방치 중이다. 
여하튼 관련 내용은 해당 부분을 참조할 수 있다. 

★★★
불기2562-05-07_관소연연론-K0628-001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2562-05-07-k0628-001.html
★★★



이번에는 거리 관념과 무유정법 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 전에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문제가 대단히 쉽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그런 말을 종종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이것을 대단히 힘든 일로 여긴다. 
어떻게 한 명도 아니고 십만 명도 아니고 수조, 수십조... 더 나아가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것을 넌센스 문제로 대하면 쉽다. 

일체 중생을 띄어쓰기를 붙여서 
일-- 체중생을 제도하는 문제로 바꿔 대하는 것이다. 

일체의 문제를 단 하나의 문제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이 해결되면, 일체 문제가 같은 방식으로 해결된다. 

그런데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안 된다. 
그런데 대부분 하나의 문제는 바로 해결된다. 
나머지는 모두 이와 같음을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쉽다는 것이다. 

일체중생 -을 일-- 체중생의 문제로 바꾼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 그런 중생을 얻을 수 없음을 보게 된다.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이 문제를 그렇게 잘 해결한다고 하자. 
그러면 같은 원리로 일체중생의 문제가 다 해결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그렇지 못하게 된다. 
마치 도미노 이론과도 같다. 
하나가 쓰러진다면 다 쓰러질 수 있다. 
그러나 안 쓰러진다면 역시 곤란하다. 

공무변처정, 식무변처정 이런 선정 단계는 힘들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처음 초선에 들면 같은 방식으로 계속 나아가면 된다. 
그런데 처음 초선에 들어가지 못하면 역시 다 힘들다. 

수많은 분야가 다 성격이 같다. 


넌센스 문제를 떠나 생사현실과 무유정법의 관계를 하나만 보자. 

현실에서 선을 제대로 붙이면 소리가 난다. 
그런데 붙이지 않으면 스피커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하자. 

분명히 자신이 시각으로 대하는 내용들이 청각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듯 하다. 

그리고 손을 뻗쳐 선을 붙잡는다고 하자. 
그러면 뻗친 손이 선을 대상으로 붙잡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후 여러가지 수리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면 수리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리가 되지 않는다. 
이런 차이가 현실에 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엉터리라고 하는가. 
이것을 살펴야 한다. 

앞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현실에서 상식적으로 옳다고 보는 내용이 엉터리라고 하는 사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엉터리이면서도 매번 할 때마다 그런 관계가 일정하게 
파악되게 되는 그 사정을 또 다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 가운데 좋은 내용[서원]을 구상해서 잘 성취해야 한다. 

이런 것이 수행이다. 

이들 내용을 각기 이해하는 것이 복잡하다. 

그런데 여기서도 딱 한 단면의 하나의 내용만 잘 이해하면 된다. 
그 다음 그것을 모든 영역에 적용하면 된다. 
그렇지 못하면 또 다른 분야 이해들이 함께 곤란하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눈을 뜨고 사물을 보자. 
그리고 창 너머 산이나 달 하늘 모습을 본다고 하자. 

여기에서 원근법을 적용하면 
평소 자신이 자신으로 부터 먼 곳에 있는 사물을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일단 다음 방식으로 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만일 자신이 시각만 오로지 갖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어떤 것이 먼 곳에 있는가를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래서 무엇을 근거로 어떤 것은 가깝고 어떤 것은 멀다고 한 것인지를 
판단할 내용을 찾아내보자. 
그러다보면 경전에서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 멀고 가까움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하는 사정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또 무유정법을 이해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실에서 일컫는 일체를 얻지 못한다고 하는 사정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첫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다음을 생각해보자. 
이제 촉각을 함께 동시 병행한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자신의 손을 뻗쳐 본다. 
이 때 산도 가릴 수 있고 달도 가릴 수 있다. 
그리고 책상 앞의 책이나 연필도 가릴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경우 차이가 있다. 
어떤 경우는 그 동작을 할 때 촉감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촉감을 느낀다. 

그런 현실경험을 통해 이제 여기서 하나의 착각을 일으킨다. 
즉 다음과 같이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즉, 촉감을 얻게 한 감관은 자신의 시각으로 본 내용[손모습]이다.
그리고 그 사물모습은 손이 대한 대상이라고잘못 관계를 짓게 된다. 

그래서 과연 이 내용이 옳은가를 놓고 또 살펴야 한다. 
현실판단이 엉터리라는 것은 이 부분을 놓고 잘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매번 그렇게 관계가 되는가를 다시 또 살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글이 길었다. 
핸드폰 수리 문제를 너무 길게 적었다. 
쉬기로 한다. 지금시계 바늘이 딱 붙어 있다. 물론 정확한 시계는 아니다.
12 날짜 변경선을 지나고 있다.
쉬기로 한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7/2565-07-21-k0945-010.html#2191
sfed--아비달마법온족론_K0945_T1537.txt ☞제10권
sfd8--불교단상_2565_07.txt ☞◆vorc2191
불기256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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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지가 하나로 융화함. 이에 세 뜻이 있다. (1) 이물상합(二物相合). 본래 하나가 아닌 것을 하나로 합일한 “즉”. (2) 배면상번(背面相翻). 겉으로는 둘인 것처럼 보이나, 본래는 일체인 뜻의 “즉”. 종이의 겉과 속을 말하는 것과 같음. (3) 당체전시(當體全是). 한 물건의 체 그대로가 다른 물건인 뜻의 “즉”. 물과 물결의 관계와 같음. ⇒<유사어>당체즉시<참조어>당체즉시(當體卽是)ㆍ<유사어>상즉<참조어>상즉(相卽)

답 후보
● 즉(卽)

증상연의(增上緣依)
지(止)
지과(智果)
지론종(地論宗)
지옥(地獄)
지전삼현(地前三賢)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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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산퀴즈


845*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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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라니퀴즈

자비주 46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94 번째는?




46
만약 성문 구하는 사람이
이 다라니를 듣고
한 번 귀에
스쳐가거나,
이 다라니를 쓰고
순수하고 곧은 마음으로 여법하게 수행하면,
네가지 성문과를 구하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얻게 되느니라.
● 모지야모지야 菩提夜菩提夜<四十六> bo dhi ya bo dhi y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94
마하 미가라 마만다
摩賀<引>尾迦囉<二合>摩滿哆<九十四>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202일째]
일체정장불가설 $ 073▲泥羅泥羅為 一 ● 計羅, ○□□□□,觀,寂,了,智

□□□□□□□, 觀察諸法不可說,
寂然在定不可說, 了達諸禪不可說,
□□□□□□□, 관찰제법불가설,
적연재정불가설, 료달제선불가설,

갖가지 선정의 광 말할 수 없고
모든 법 관찰함도 말할 수 없고
고요히 정에 있음 말할 수 없고
모든 선정 통달함을 말할 수 없고



[203째]
지혜통달불가설 $ 074▲計羅計羅為 一 ● 細羅, ○□□□□,三,了,明,修

□□□□□□□, 三昧自在不可說,
了達諸法不可說, 明見諸佛不可說,
□□□□□□□, 삼매자재불가설,
료달제법불가설, 명견제불불가설,

지혜로 통달함을 말할 수 없고
삼매에 자재함을 말할 수 없고
모든 법 잘 아는 것 말할 수 없고
부처님 밝게 봄도 말할 수 없고

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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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_암기방안


73 소지 (~새끼)
74 무명지 (~약지 )
46 발 곡면 [신조어] 곡면( Arch)
94 검지(~두째) 발가락 [신조어 ]

609245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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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1126_153929_nik_AR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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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0405_152547_nik_Ab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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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달마법온족론_K0945_T1537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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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법온족론』 ♣0945-010♧
[관련키워드]
제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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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5-07-21_아비달마법온족론-K094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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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아비달마법온족론_K0945_T1537.txt ☞제10권
sfd8--불교단상_2565_07.txt ☞◆vorc2191
불기2565-07-21
https://blog.naver.com/thebest007/222439586280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7/2565-07-21-k0945-010.html
htmback--불기2565-07-21_아비달마법온족론_K0945_T1537-ti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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