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진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 대중 5백 인과 함께 계셨다. 그때 아난(阿難)이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깊이 아시어 무슨 일이건 살피지 않는 것이 없으시어 미래ㆍ과거ㆍ현재의 3세를 모두 분명히 요달하시는가 하면, 과거 모든 부처님의 성자(姓字)ㆍ명호와 제자와 보살이 따르고 모시는 그 많고 적음을 모두 아시고, 1겁, 백 겁 나아가 무수한 겁을 모두 관찰함도 그러하시며, 국왕ㆍ대신과 인민들의 성자까지 분별하시고, 지금 현재 국토 경계에 대한 모든 것도 분명히 요달하십니다. 얼마나 먼 장래에 미륵이 출현할 것입니까? 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이시여, 그 변화를 듣고자 하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좌우에서 모시는 것과 부처님 경계의 풍족하고도 안락함이 얼마만큼의 시기 동안 지속될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도로 자리에 앉아서 내가 말하는 미륵의 출현과 국토의 풍족하고 안락함과 제자들의 많고 적음을 듣고서 잘 생각해 마음에 간직하여라.” 이때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곧 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먼 장래 이 나라 경계에 시두(翅頭)라는 성곽(城郭)이 있어 그 동서가 12유순(由旬)이고, 남북이 7유순인 데다가 토지가 비옥하고 인민이 치성하여 거리마다 줄을 이룰 것이며, 그때 성중에 수광(水光)이란 용왕이 있어서 밤에는 향 비[香澤]를 퍼붓고 낮에는 맑게 개이는가 하면, 이때 시두성 안엔 또 엽화(葉華)라는 나찰(羅刹) 귀신이 있어서 그 소행이 법에 수순하여 바른 교훈을 어기지 않을 뿐더러 매번 인민들이 잠이 든 뒤에 더럽고 나쁜 온갖 부정한 것을 제거함과 동시에 항상 향즙[香汁]을 땅에 뿌리므로 그 땅이 매우 향내가 나고 깨끗하리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때 남섬부주[閻浮]는 동서남북이 각각 천만 유순인 데다가 모든 산과 강과 석벽(石壁)이 다 저절로 소멸되고, 4대해(大海)의 물은 각각 넘치거나 줄어듦이 없으며, 그때 남섬부주의 땅은 매우 판판하게 정돈됨이 거울이 청명한 것과 같으며, 온 남섬부주 안에 곡식이 풍부하고 인민이 치성하고 모든 값진 보물이 많고, 마을끼리 서로 가까워 닭 울음소리가 마주 들리며, 이때엔 나쁜 꽃이나 과일나무의 시들고 더러운 것도 저절로 소멸되는 반면 그 밖의 감미로운 과일나무로서 향기롭고 좋은 것만이 다 땅에 자라난다.
그때엔 또 시기(時氣)가 화창하고 사시가 그 절후에 알맞으므로 사람의 몸에 108가지 걱정 거리가 없는가 하면,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도 크게 염려할 것이 없고, 사람의 마음이 다 고르고도 똑같은 뜻이어서 서로가 즐거운 얼굴로 대하고 착한 말로 수작하기에 그 말씨의 한결같고 차별없음이 저 우단월(優單越) 사람들과 다름이 없다. 이때 남섬부주 안의 인민들은 크거나 작거나 다 똑같아서 약간의 차별도 없으며, 그때 남자ㆍ여자 할 것 없이 똥오줌을 누려는 뜻이 있으면 땅이 저절로 열렸다가 일이 끝난 뒤에 땅이 도로 합쳐진다.
그때 남섬부주 땅에는 멥쌀[粳米]이 저절로 자라나되, 껍질도 없이 매우 향내나고 맛있어서 먹기에 힘이 들지 않는다.
이른바 금ㆍ은 값진 보배와 차거(車𤦲)ㆍ마노(馬瑙)ㆍ진주(眞珠)ㆍ호박(虎珀)들이 각각 땅에 흩어져 있어도 살펴보는 사람이 없는가 하면, 이때 인민들은 손에 이 보물을 잡고 서로가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이 보물 때문에 서로 해치고 옥에 갇히어 무수한 고뇌를 받게까지 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 보물이 기와나 돌 같은 종류이어서 누구도 수호하는 이가 없네’라고 하리라.
그리고 그때 양거(蠰佉)라는 법왕이 출현하여 바른 법으로 다스려 교화함으로써 7보를 성취하리니, 이른바 7보란 윤보(輪寶)ㆍ상보(象寶)ㆍ마보(馬寶)ㆍ주보(珠寶)ㆍ옥녀보(玉女寶)ㆍ전병보(典兵寶)ㆍ수장보(守藏寶)이니, 이것이 바로 7보이니라. 남섬부주의 땅 안을 진압하되, 칼ㆍ몽둥이 등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다 굴복하리라.
아난아, 지금의 네 군데 큰 보장(寶藏)인 건타월국(乾陀越國)의 이라발(伊羅鉢) 보장에 온갖 값진 구슬과 이상한 물건이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둘째 미제라국(彌梯羅國)의 주라(綢羅) 큰 보장에도 값진 보물이 많고, 셋째 수뢰타대국(須賴吒大國)의 큰 보장에도 값진 보물이 많고, 넷째 바라내(波羅㮈)의 양거(蠰佉) 큰 보장에도 값진 보물이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듯이 이러한 네 군데의 큰 보장이 저절로 나타남으로써 그 보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각각 와서 왕에게 아뢰기를, ‘원컨대 대왕께서 이 보장의 물건을 빈궁한 이에게 은혜로 베푸소서’라고 하면, 그때 양거 대왕은 이 보물을 얻고 나서 다시 살펴보지 않는가 하면, 그 뜻에 재보라는 생각조차 없으리라.
때에 남섬부주의 땅 안에는 저절로 나무 위에서 옷이 생겨나서 매우 가늘고도 부드러우므로 사람들이 그것을 가져다 입기를 지금의 우단월(優單越) 사람이 저절로 나무 위에서 생겨난 옷을 입는 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그리고 그때 저 왕에게 수범마(修梵摩)라는 대신이 있는데, 왕이 어릴 때부터 같이 좋아하는 사이라 왕이 매우 사랑하면서도 존경하는가 하면, 또 얼굴이 단정하여 크지도 작지도 않고 살찌거나 여위지도 않고, 희지도 검지도 않고, 늙지도 젊지도 않다.
이때 수범마의 아내 범마월(梵摩越)이란 여인도 역시 여인 중에 가장 뛰어나고 미묘하여 천제(天帝)의 후비와 같은가 하면, 입에서는 우발라꽃[優鉢羅華]과 연꽃의 향내가 나고, 몸에서는 전단향(栴檀香)의 향내가 나는 등 부인으로서의 84가지 태도가 영원히 다시는 없으며, 또 병이나 어지러운 생각도 없으리라.
그때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그 부모의 늙지도 젊지도 않음을 보고 곧 내려와서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출생하리니, 내가 오늘날 오른쪽 옆구리에서 출생한 것과 다름 없이 미륵보살도 그러하리라.
도솔천의 여러 하늘들은 각각 외치기를, ‘미륵보살이 이미 내려가 신령하게 출생하였네’라고 할 것이며, 이때 수범마는 곧 아들의 이름을 미륵이라 지을 것이며, 미륵보살은 32상(相)과 80종호(種好)로써 그 몸을 장엄해 몸이 황금빛이 되리라.
그때는 사람들의 수명이 매우 길고 아무런 걱정이 없으므로 다 8만 4천 세의 수명을 누리는가 하면, 여인은 나이 5백 세가 된 뒤에라야 시집을 간다.
그때 미륵이 속가에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 출가하여 도를 배우되, 그때 시두성(翅頭城)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도수(道樹)가 있으니, 그 이름이 용화(龍花)이고, 높이가 1유순에 너비가 5백 보(步)이다.
때에 미륵보살이 그 나무 아래 앉아서 위없는 도과(道果)를 그 밤중에 이룩하는데, 미륵이 출가한 바로 그날 밤에 위없는 도를 이룸으로써 때에 삼천대천 찰토(刹土)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지신(地神)들이 각각 서로 말하기를, ‘이제 미륵이 성불하였네’ 하고, 이 소문이 차츰 사천왕 궁전에 들리어 ‘미륵이 이미 불도를 이루었네’라고 하며, 다시 삼십삼천과 염천(豔天)과 도솔천(兜率天)과 화자재천(化自在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환히 들리고, 점차 범천에까지 들리므로 역시 ‘미륵이 이미 불도를 이루었네’ 하리라.
그때 대장(大將)이란 마왕(魔王)이 법으로써 다스려 교화하다가 여래의 명호와 음성을 듣고 어쩔 줄 모르게 뛸 듯이 기뻐하여 7일 날, 7일 밤을 잠을 자지 않는가 하면, 이때 마왕이 욕계(欲界)의 무수한 하늘 사람들을 데리고 미륵불의 처소에 가서 공경히 예배하고, 미륵 성존(聖尊)은 그 여러 하늘 사람들에게 점점 미묘한 논(論)을 설법하리라.
이른바 논이란 보시의 논[施論]ㆍ계율의 논[戒論]과 천상에 태어나는 논[生天之論]이니, 그 애욕은 부정하다는 생각과 해탈하는 이치로써 묘법을 삼는 것이니라.
그때 미륵이 여러 인민들이 이미 환희심 내는 것을 보고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항상 설법하시는 그 고(苦)ㆍ집[習]ㆍ멸[盡]ㆍ도(道)의 진리를 여러 하늘 사람들에게 그 이치를 자세히 분별함으로써 그때 자리에 있던 8만 4천의 천자들은 모든 번뇌가 다하여 법 눈[法眼]이 청정해짐을 얻으리라.
그때 대장 마왕이 그 세계 인민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빨리 출가하여라. 왜냐하면 미륵이 오늘날 이미 저 언덕[彼岸]에 도달했으므로 너희들도 제도하여 저 언덕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리라.
한편 시두성(翅頭城) 안에는 선재(善財)라는 장자가 있어 마왕의 교령(敎令)을 들음과 동시에 미륵불의 음성을 듣고서 8만 4천의 대중을 데리고 미륵불의 처소에 이르러 엎드려 예배한 다음 한쪽에 앉으리라. 그때 미륵은 역시 미묘한 논(論)을 점차로 설하리니, 이른바 논이란 보시의 논ㆍ계율의 논과 천상에 태어나는 논이며, 욕심은 부정하다는 생각과 해탈하는 이치로써 묘법을 삼는 것이니라.
그때 미륵이 여러 인민들의 마음이 열리고 뜻이 깨달아짐을 보고서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고ㆍ집ㆍ멸ㆍ도를 여러 인민들에게 자세히 분별함에 따라 그때 자리 위의 8만 4천 사람들의 모든 번뇌가 다하여 법 눈이 청정해짐을 얻는가 하면, 이때 선재가 8만 4천 사람들을 데리고 곧 나아가 미륵불에게 아뢰고 출가할 것을 구하여 범행(梵行)을 잘 닦음으로써 다 아라한의 도를 얻으리라.
그때 미륵의 맨 처음 법회에 8만 4천 사람이 아라한을 얻으며, 이때 양거왕(蠰佉王)이 미륵이 이미 불도를 이루었음을 듣고 곧 미륵불의 처소에 이르러 법을 듣고자 하므로 때에 미륵불은 왕에게 초선(初善)ㆍ중선(中善)ㆍ경선(竟善)의 깊고 깊은 이치를 설법하리라.
그때 대왕은 다시 다른 때에 태자를 세워 왕으로 삼는가 하면, 이발사[剃頭師]에게 값진 보물을 주고 또 잡 보배를 여러 범지(梵志)들에게 주고는 8만 4천 대중을 데리고서 미륵불 처소에 이르러 사문이 되기를 구하여 다 도과(道果)를 이룩해 아라한을 얻으리라.
그리고 이때 수범마(修梵摩) 큰 장자가 역시 미륵이 이미 불도를 이루었음을 듣고서 8만 4천 범지의 무리들을 데리고 미륵불 처소에 이르러 사문이 되기를 구하고 아라한을 얻고, 수범마 한 사람만은 세 가지 번뇌[結使]를 끊어 반드시 그 괴로움의 진리를 깨달으며, 이때 미륵불의 어머니 범마월(梵摩越)이 다시 8만 4천 채녀(婇女)의 무리들을 데리고서 미륵불 처소에 이르러 사문이 되기를 구한다.
그때 모든 여인들이 다 아라한을 얻고 범마월 한 사람만은 세 가지 번뇌를 끊어 수다원(須陀洹)을 이룩하리며,
그때 여러 찰리(刹利) 부인들도 미륵여래가 세간에 출현하여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함을 듣고서 수천만의 무리들이 미륵불 처소에 이르러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각각 마음으로 사문이 되기를 구해 출가하여 도를 배우되, 혹은 절차를 넘어서 증득하는 이가 있고, 혹은 증득하지 않는 이가 있으리라.
아난아, 그때 절차를 넘어서 증득하지 않는 이는 다 법을 받드는 사람으로서 일체 세간을 싫어하여 즐겨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닦는 이이니라.
그때 미륵이 3승(乘)의 교법을 설하면 나의 오늘날 제자 가운데 대가섭(大迦葉)이 12두타(頭陀)를 행함에 있어 과거 모든 부처님들의 범행(梵行)을 잘 닦는 것과 같으리니, 이 사람도 미륵을 보좌하여 인민들을 권해 교화하리라.”
그때 가섭이 여래와 멀지 않은 거리에서 가부좌하고 바른 몸과 바른 뜻으로 전일하게 생각하면서 앞에 있었는데, 그때 세존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나이 이미 노쇠하여 여든을 넘었지만, 그러나 지금 여래에겐 네 사람의 큰 성문이 있어 다니면서 교화함을 감당할 만한 지혜가 다함이 없고 뭇 덕을 구족했으니,
이른바 네 성문은 대가섭 비구와 도발탄(屠鉢歎) 비구와 빈두로(賓頭盧) 비구와 라운(羅云) 비구이다.
너희들 네 사람 큰 성문은 요컨대 열반에 들지 말고 우리의 법이 다 없어질 때까지를 기다린 뒤에 열반에 들어야 하며, 대가섭 역시 열반에 들지 말고 미륵이 세간에 출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리니,
왜냐하면 미륵이 교화한 제자는 다 석가모니 제자로서 내가 남긴 교화로 말미암아 그 번뇌를 다했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마갈국(摩竭國) 경계의 비제촌(毘提村) 가운데 대가섭이 저 산중에 머물 때에, 또 미륵여래가 무수한 천 사람 대중을 데리고서 앞뒤로 둘러싸여 이 산중에 이르고, 드디어 부처님의 은혜를 입어 여러 귀신들이 문을 열어서 가섭의 선굴(禪窟)을 보게 하리니, 이때 미륵이 오른손을 펴 가섭을 가리키면서 여러 인민들에게 말하기를, ‘오랜 과거의 석가모니부처님 제자 가섭이 지금 현재도 두타를 닦는 고행이 가장 제일이다’라고 하리라.
이때 여러 사람들이 이 사실을 보고 나서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하는가 하면, 무수한 백천 중생들이 모든 번뇌가 다하여 청정한 법 눈을 얻고, 혹 어떤 중생은 가섭의 몸을 보고 나면 이것이 바로 최초의 법회이어서 96억 사람들이 다 아라한을 얻으리니, 이러한 사람들이 다 나의 제자이니라.
왜냐하면 모두 나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며, 또 네 가지 일의 인연인 은혜롭게 보시함[惠施]과 인자하게 사랑함[仁愛]과 남을 이롭게 함[利人]과 평등히 이롭게 함[等利]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그때 미륵여래가 가섭의 승가리(僧伽梨)를 가져와 입자, 이때 가섭의 몸이 문득 별처럼 사라지는가 하면, 이때 미륵은 다시 갖가지 향ㆍ꽃으로써 가섭을 공양하리니,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다 바른 법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미륵도 역시 나에게 받은 바른 법의 교화로 말미암아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룩했느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미륵불이 두 번째 법회 때에 94억 사람들이 다 아라한을 얻으리니, 이들 역시 내가 남긴 교법의 제자로서 네 가지 일의 공양을 행하므로 그렇게 되는 것이며,
또 미륵의 세 번째 법회 때에 92억 사람들이 다 아라한이리니, 이들 역시 내가 남긴 교법의 제자이니라.
그때 비구들의 성명을 다 자씨 제자(慈氏弟子)라고 일컫기를 마치 나의 오늘날 성문들을 다 석가 제자라고 일컫는 것과 같으리라.
그리고 그때 미륵은 여러 제자들과 함께 설법하기를, ‘너희들 비구야, 마땅히 무상(無常)하다는 생각과 즐거움이란 것은 괴로움이라는 생각과 나[我]라는 것은 내가 없다는 것이다[無我]라는 생각과 실(實)이란 것은 공(空)하다는 생각과 물질이란 것은 변한다는 생각과, 푸르게 멍든다는 생각[靑瘀之想]과1), 부풀어 터진다[膖脹之想]2)는 생각과, 음식이란 소화되지 않는다[食不消想]는 생각과, 피고름이란 생각[膿血想]과, 일체 세간은 즐길 수 없다는 생각을 관찰할지니, 왜냐하면 비구야, 알아 두라.
이 열 가지 생각은 다 과거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너희들에게 설해 주어 번뇌의 마음을 다하고서 해탈을 얻게 하셨기 때문이니라.
이러한 대중 가운데엔 석가모니부처님 제자로서 과거세 때 범행을 닦아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또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서 삼보를 공양하여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서 손가락 튀기는 찰나라도 선의 근본을 닦아 여기에 왔거나, 혹은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서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행하여 여기에 왔거나, 혹은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서 5계(戒)와 3자귀법(自歸法)을 수지하여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서 신사묘(神寺廟)를 세워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서 묵은 절을 보수하여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서 8관재(關齋)의 법을 받아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서 향ㆍ꽃을 공양하여 여기에 왔거나, 혹은 또 저 처소에서 법을 듣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피 울어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또 석가모니부처님 처소에서 전일한 뜻으로 법을 받아들여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또 형체와 수명이 끝날 때까지 범행(梵行)을 잘 닦아서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또 베껴 쓰고 읽어 외워서 나의 처소에 왔거나, 혹은 또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여 나의 처소에 온 이들이니라’라고 하며, 이때 미륵은 또 이 게송을 읊어 말하리라.
계율ㆍ다문(多聞)의 덕과 선정 및 생각하는 업을 더 늘려 범행을 잘 닦았기에 이제 나의 처소에 이른 것이며 보시하기를 권하고 기쁜 마음을 내며 마음의 근본을 수행하여서 뜻에 약간의 생각이 없었기에 다 나의 처소에 이른 것이며 혹은 평등한 마음을 내어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고 음식을 성중(聖衆)에게 주었기에 다 나의 처소에 이른 것이며 혹은 계율과 경전을 읽어 잘 익히고 사람들에게 일러 주어서 법의 근본을 치성케 하였기에 이제 나의 처소에 이른 것이며 석종(釋種)으로서 잘 교화하며 모든 사리(舍利)를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되 법공양을 하였기에 이제 나의 처소에 이른 것이며
혹은 경전을 베껴 써서 널리 지상에 선포하고 경전을 공양함이 있었기에 다 나의 처소에 이른 것이며
비단ㆍ채색 등 모든 물건으로 신사(神寺)에 공양하면서 스스로 ‘나무불(南無佛)’이라 일컬었기에 다 나의 처소에 이른 것이다.
현재세의 모든 부처님과 과거세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이는 선정의 그 바르고 평등함이 역시 더하거나 덜함이 없나니 이 때문에 불법에 있어서 성중(聖衆)을 받들어 섬기고 전일한 마음으로 삼보를 섬긴다면 반드시 함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미륵여래가 저 대중 가운데에 있으면서 이 게송을 읊음에 따라 그때 저 대중 가운데의 여러 하늘과 인민들이 이 열 가지 상(想)을 생각할 것이며, 11해(姟)의 사람들이 모든 번뇌를 다하고 법 눈[法眼]의 청정함을 얻으며,
미륵여래의 천 년 동안에는 뭇 승가들이 아무런 허물이 없고, 항상 이 게송으로써 금계(禁戒)를 삼으리라.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몸으로도 범하는 바 없어 이 세 가지 행을 제거하면 빨리 생사의 관(關)을 벗어나리라.
천년이 지난 뒤에도 계율을 범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 계율을 다시 세우며, 미륵여래가 8만 4천 세의 수명을 누리고 열반한 뒤에도 남긴 법은 8만 4천 년을 더 유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중생은 다 근기가 영리한지라, 그 선남자ㆍ선여인으로서 미륵부처님과 세 번에 걸친 법회의 성문들과 시두성(翅頭城)을 보려고 하는 자이거나, 또는 양거왕과 네 군데 큰 광[藏]의 값진 보물을 보려는 자이거나 저절로 자라나는 멥쌀을 먹고 저절로 생기는 옷을 입으려는 자이거나, 목숨이 끝난 뒤에 천상에 왕생하려는 자 등 저 선남자ㆍ선여인들이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게을리하지 않으며, 또 여러 법사를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되, 유명한 꽃과 훌륭한 향으로 갖가지 공양하여 실수됨이 없게 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리라.”
그때 아난을 비롯한 그 모임의 대중들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서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
『개원록』을 살펴보니, 한역본에는 이 본이 없다.
그 가운데 법호가 한역한 『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 일명 『미륵당래하생경(彌勒當來下生經)』에 잠깐 이 경이 보인다.
즉 저 잃어버린 본을 도리어 얻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집(羅什)이 한역한 『미륵성불경』의 제목 아래 주에서 말하기를,
“『하생경』의 이역본[異本]과 함께 법호가 한역한 『미륵성불경』도 같은 본이다. 두 한역 본에서 하나를 빼면 저 잃어버린 본이니, 이 『하생경』을 여섯 번 한역하고, 세 번 잃어버린 본 중 하나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였다.
또 살펴보면, 고산 지원(孤山智圓)이 재교정한 「금강반야후서」에서 말하기를, “고덕들이 경을 나눌 때에 쓰는 종이 수는 모두 1지(紙), 25행이고, 1행에 열일곱 자(字)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살펴보니, 잃어버린 본의 『미륵경』 제목 아래 주에서 말하기를 17지라고 하였다.
즉 계산하면 7,222자인데 이 경은 다만 3,176자이어서 오히려 그 반도 안 되니, 어찌 이것이 바로 저 경이겠는가.
곧 거란장경에는 이 경이 없으나 이 경문은 다소 한경(漢經)이나 진경(晉經)의 주와 비슷하며, 또한 “한운(漢云)”이라는 말이 있으니, 도리어 이것이 바로 세 잃어버린 본 가운데 첫 번째 본의 기록이 아닐까 싶어서 “지금은 서진(西晉)에 붙여 놓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송(宋)나라 장경에서 도리어 그것을 편입해 놓아서 거기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기록에는 모두 법호가 한역한 『하생경』이 없는데, 지금 법호가 한역하였다고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엎드려 현철(賢哲)을 기다린다.
---- 1) 탐욕을 없애고 혹업(惑業)을 멀리하기 위해서 시신(屍身)에 대해 수행하는 아홉 종류의 관상(觀想) 중 하나인 청어상(靑瘀想)이다. 즉, 시체가 바람을 맞고 햇빛을 받아 색이 변하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2) 9상(想)의 하나. 시신이 부어 팽창하는 것을 관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법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법이란 용어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법계란 표현도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하나의 표현이 다양한 의미를 갖게 되면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법계라는 표현을 피하기로 한다. 그리고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사용해보기로 한다.
올바른 진리의 세계와 오류의 세계가 있다고 하자. 예를 들어 쉽게 이런 관계를 다음처럼 비유해보자.
어떤 산수문제가 있다. 4 더하기 1 은 답이 5 라고 하자. 그런데 이렇게 답을 제대로 알고서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그 답을 잘 모르고 사는 경우가 있다. 또는 엉터리로 답을 알고 사는 경우도 있다.
산수문제가 위 경우는 쉽다. 그렇지만, 산수문제가 어려우면 실제로 그런 경우들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콩을 심으면 콩이 나게 됨을 제대로 알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콩이란 아무 원인없이 그저 갑자기 나타난 것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각 주체의 입장이 서로 다르다.
그런데 이들이 섞여서 살아가게 된다.
비유하면 수학시간에 문제 답을 모르는 학생과 아는 학생이 같이 섞여서 수업을 같이 듣는 상황과 같다.
외관상으로는 그래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각 내용을 대하는 데에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무유정법과 인과이론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번 살폈다. 그런데 이것이 생사현실과 관련된다.
본래 생사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런 생사나 생멸을 말할 어떤 그 무엇을 현실에서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그처럼 잘 이해하고 현실에 임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또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 임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함께 섞여 있다.
인과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예를 들어왔다. 손을 마주치면 현실에서 손뼉소리를 듣게 된다. 번개가 치는 것을 보게 되면 곧 천둥소리를 듣게 된다. 공을 손을 뻗쳐 만지면 촉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공을 굴리면 공이 굴러가는 것을 보게 된다. 또 공을 주어 영희에게 건네면 영희도 그 공을 받아 촉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생사현실에 그런 각 내용의 생멸이 분명하게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각 내용을 서로 원인과 결과로 이해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이해가 망상분별에 바탕한 것임을 살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의 한 내용을 놓고도 대부분 이들이 생멸하고 또 이들이 각각 원인 결과의 관계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이렇게 이해하고 현실에 임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사실은 현실에서 대다수가 이와 같다.
그런데 또 이런 생사현실에서 그런 각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잘 이해하고 임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이 모두 다 함께 같은 내용을 대한다해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수행이란, 기본적으로 한 주체가 망상과 오류에 바탕해 임하던 상태에서 이를 벗어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망상분별에 바탕해 임하면, 생사를 겪게 된다. 그러나 망상분별을 제거하면,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생사의 묶임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생사를 겪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는 하나의 생사현실을 다 함께 대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차이다.
한편 어떤 이가 그렇게 생사를 벗어나면 다시 다른 중생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게끔 하도록 노력하게 된다. 그런 경우 다시 일반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함께 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각 경우마다 사정이 조금 복잡하다.
하나의 현실을 대하는 가운데 이런 차이가 있다.
앞에서 이미 이 사정을 비유로 들었다.
책상에 공이 놓여 있다고 하자. 이제 이 상황에서 무엇을 공이라고 하는가가 첫 문제다. 이것이 산수문제와 같다.
처음 이 상황에서 판단을 잘못 한다고 하자. 그러면 무언가를 공이라고 여기고 취하게 된다. 그러면 그런 망상에 바탕해서 그 무엇인가가 생멸한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서로 관련지어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첫 단면의 문제를 잘 이해해야 한다. 앞 상황에서 무엇이 공인가. 이 문제다.
이것을 한 현실 단면에서 무엇을 자신이라고 하는가의 문제와 성격이 같다. 그렇게 무언가를 취해 자신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바탕해서 그런 자신이 생사를 겪는다고 여기게 된다. 그렇게 처음 무언가를 취해 붙잡고 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처음 문제를 잘 이해해야 한다.
산수문제가 주어졌다. 여기에 그 문제의 정체나 답을 알고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처음 문제를 잘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 탁자 앞에 꽃이 놓여 있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무엇을 꽃이라고 하는가. 이렇게 첫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자신이 꽃이라고 여기는 일정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경전에서 잘못된 망상분별이라고 하는 부분은 이 과정에도 해당된다. 즉, 그렇게 여기는 그 자체가 망상분별이다. 즉 잘못된 판단이다.
그런데 대부분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그렇게 손으로 가리킨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왜 그 부분을 꽃이라고 하는가를 그 상대에게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대는 다음과 같이 답하게 된다.
그것은 그냥 꽃이다. 그것은 너무 당연하다. 너무 당연한 것을 문제삼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그래서 자신이 손으로 가리킨 부분을 꽃이라고 함은 따로 증명을 필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자세를 '즉자적'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냥 그 상황을 대하면 바로 그것이 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입장이다.
현실에서 무엇을 영희라고 하는가. 또 무엇을 자신이라고 스스로 여기는가. 이 경우도 위와 사정이 마찬가지다. 앞처럼 똑같이 임하게 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들부터 잘못이다. 수많은 망상분별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망상분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앞과 같은 문제에서 대부분 이를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임한다. 또 그 만큼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즉, 그가 꽃이라고 여기고 손으로 가리키는 그 부분은 꽃이다. 또 그가 영희라고 여기고 손으로 가리키는 그 부분은 영희다. 또 그가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손으로 가리키는 그 부분은 자신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은 너무 당연하다. 따로 증명을 요하지 않는다.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인 이상 이는 누구나 다 그렇게 여긴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완강하게 임하는 만큼 생사현실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것이 옳지 않다. 그렇지만, 현실 사정이 위와 같다. 그래서 사실 이 부분은 일단 보류하게 된다. 방편상 그렇다.
그래서 이 상태에서는 그런 망상을 바탕해서 고통을 벗어나서 당하지 않는 상태에 일단 상대가 처하게 하는 것이 차선책이 된다.
예를 들어 탁자앞에 꽃이 희귀한 꽃이라서 꽃 하나에 수천만원이라고 하자. 또 영희는 그 상대가 가장 좋아하고 집착하는 여인이라고 하자.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은 스스로 우주보다 더 가치있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리고 현실은 이런 상태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꽃이 도난당하거나 훼손당한다고 하자. 또 영희가 갑자기 병이 들어 사망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도 재산이 사라져 파산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뒤에 어떤 사건으로 감옥에 갇히고 또 심한 전염병에 걸려 고립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이런 상황이 현실에서 발생한다. 이는 처음 일으킨 망집에 바탕한 내용 가운데 하나다. 망집에 바탕하더라도 그렇지 않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처음 망집을 바탕한 가운데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면 불가피하다. 그 망집이 그런 내용을 전제로 이미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극심한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에는 처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장 기초적으로 다음 수행이 필요하다. 즉,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태에서 벗어나게끔 할 방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가장 기초적인 인천교적인 내용이 된다. 이 경우 처음 극복해야 할 내용이 있다. 한 주체가 생사과정에서 한번의 생사로 끝이 아님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즉 한 주체는 한 생에서는 갓난아이에서 청년 노인 등으로 변화해간다. 그런데 생사과정에서는 한 주체가 다양한 생명형태로 변화해간다는 사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넓고 길고 깊게 이 관계를 잘 관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망집 어리석음 번뇌 => 그에 바탕해 행하는 행위[업] => 3악도의 생사고통
이런 관계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벗는 3악도를 일단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를 통해 인간과 하늘 세계를 오가는 상태에 일단 임해야 한다. 그러려면 10 선법을 먼저 닦아서 성취해야 한다는 사정부터 먼저 잘 이해햐야 한다.
그런데 우선 이 이해가 쉽지 않다. 또 정작 이해가 잘 되면 또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 경우는 장래 하늘에서 살아가려고 선을 행하는 장삿꾼 상태가 되기 쉽다. 그래서 처음 선행을 행하는 이의 본 자세처럼, 잘 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처음 선을 행하는 입장은 다른 생명이 고통을 겪는 것이 안타까워서 돕기 위해서 행한다. 또 그 자체가 자신이 즐거워서 행한 것이다. 그런데 생사 과정의 관계를 잘 파악한 경우는 이와 입장이 달라진다. 그래서 장래 하늘에서 지내려고 선을 행하는 자세를 취하기 쉽다. 이 경우는 외관은 비슷해도 그 실질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10 선법도 잘 성취하지 못하고 생사고통을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잘 성취되지 않으면 결국 3 악도에 묶이게 된다.
그런데 현실 안에서도 이미 이에 준하는 고통의 상황들이 많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이나 재산이 없어지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감옥에 묶이고 남에게 묶인다. 이런 상태로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이렇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드물다. 그런데 넓게 세상을 보면 이보다 훨씬 심한 경우가 더 많다. 당장 축생들의 상태만 보아도 그 사정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해 장차 그런 상태가 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가능하면 미리 그런 상태를 예방할 방안을 잘 취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미리 벗어나와야 함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그 방안을 먼저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인천교적인 가르침이 된다.
그런데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그것은 처음 문제가 잘못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 방식은 근원적인 생사고통 해결방안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임시 방편, 보조적, 차선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한 가운데 잠시 고통을 벗어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일단 이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상태에서 이후에 처음의 문제나 다른 문제도 잘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앞의 수학 교실과 사정이 같다. 이제 같은 내용을 대해도 올바로 현실의 정체를 이해하고 임하게 된다. 이 차이가 크다.
그런데 이 두 내용이 모두 쉽지 않다.
그래서 각 경우마다 어중간한 상태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우선, 생사현실의 정체에 대하여 어중간한 이해에 머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부분에서도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수도 있다. 그런 경우는 그 각 부분마다 문제상황에 처하게 된다.
쉽게 다음처럼 경우를 살펴보자.
자신이 일체가 공하고 꿈과 같음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리고 자신이 현실에서 이해한 내용이 망상분별임도 이해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내용이 단순히 이론상 이해에 불과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 생사현실에서 극심한 고통에 처하면 이것만으로 그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이론상 그런 내용을 이해해도 별 효과가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하자. 자신이 강도에게 붙잡혔다. 그래서 묶여서 손발을 잘리운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이들 현실이 꿈과 같음을 생각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당장 느껴지는 억울함과 고통을 극복하기 힘들다. 즉 일체가 공함을 이론상 이해해도 별 효과가 없다. 일체가 공함을 이해한다고 해도 손이 잘리워지는 상황에서 평안하게 임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위 내용을 정작 현실에서 그대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3 악도를 벗어날 기초 수행도 성취되지 못했다고 하자. 그러면 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상황에 반복해서 장구하게 처하게 된다. 그러면 설령 이론상 생사현실이 공하고 꿈과 같음을 잘 이해해도 별 효과가 없게 된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매순간 생생하게 겪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위 내용의 이해만으로 곧바로 생사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또 그런 상태에서는 3악도를 벗어날 기초 수행마저도 잘 성취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서로 맞물려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수행 자체가 대단히 고통스럽게 힘들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 결과로 맞이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또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이 두 부분은 사실 다 함께 힘들다.
그런데 처음 문제를 잘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다. 그래서 일단 기초적인 수행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3 악도의 생사고통을 일단 벗어나야 한다. 즉 일단 축사에는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인간과 하늘에서 조금 여유가 있어야 한다. 즉 복덕 자량을 먼저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지혜자량을 쌓을 바탕이 된다.
그런 가운데 첫 문제를 놓고 먼저 기초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처음에는 망집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상태가 곧 아라한의 상태가 된다.
그런데 또 문제가 복잡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위 상태는 그 주체만 놓고 보면 가장 이상적인 구극의 상태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주체를 제외한 나머지 중생들이다. 이 경우 한 주체가 그렇게 사정을 잘 파악하고 벗어난다고 하자. 그리고 그 주체가 오로지 그렇게만 머문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생사고통을 겪는 다른 중생들이 그런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기가 곤란하게 된다. 그래서 위 상태를 최종 목표라고 하기 곤란해진다.
그래서 다시 그런 주체가 생사현실에 다시 임해서 다른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을 행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런데 처음 그 주체 입장에서는 그 생사현실은 문제상황 그 자체였다. 그래서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다시 그 생사현실에 임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하자. 이는 병원에서 퇴원한 환자의 상황과 비슷하다. 처음 자신이 병에 걸려 고통받았다. 그런데 노력해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병원에 남아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다시 병원에 임해야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우선 그 주체부터 걱정하게 된다. 또 이 경우는 자신이 단순히 건강해져 퇴원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즉,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해서 다른 환자를 치료할 의사가 된 것으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경우는 위 문제들을 또 다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또 조금 복잡해지게 된다.
여기에는 다음 문제가 관련된다. 처음에는 그 주체의 생사현실이 문제였다. 그래서 이를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니르바나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후에는 그처럼 생사현실을 기피하는 자세부터 극복해야 한다. 즉 생사현실 자체도 니르바나라는 사정부터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즉 망집을 바탕으로 대하면 생사현실은 문제다. 그러나 이 망집을 제거하고 임하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이론상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내용을 현실에서 이해하고 또 실천해 성취해야 한다. 그것을 앞에서 예로 들었다.
즉 극심한 가난과 질병 등을 겪거나 묶여서 부림을 받는다고 하자. 또 묶여서 손과 발을 잘리운다고 하자. 이처럼 생사고통을 억울하게 받는 상황에서조차도 그 내용을 잘 성취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즉, 생사현실에서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는 상황 조차도 니르바나임을 잘 이해하고 그렇게 평안하게 잘 임할 수 있는 상태가 먼저 되어야 한다. 즉 생사 즉 열반이라는 사정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현실에서 그 수행자가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아라한의 상태가 되더라도 이후 생사현실에 다시 들어와 임하는 데에는 조금 더 많은 수행이 필요하다.
그 다음 문제가 또 있다. 생사현실에 그렇게 들어와서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임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중생을 잘 제도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어떤 이가 병원에서 전염병을 잘 치료해서 퇴원한다고 하자. 그런데 병원에는 그런 환자가 가득하다. 그래서 그가 다시 병원에 들어가 환자를 돕고자 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는 그가 병이 나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때부터 다시 환자를 치료하고 도울 방안을 갖출 필요가 있게 된다. 단순히 건강한 상태와 남을 잘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상당히 차이가 많다. 그래서 결국 병원에 들어가 다른 이를 잘 도우려면 결국 의사처럼 되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임해 다른 중생을 제도하려면 필요한 내용이 많아진다.
먼저 자신부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에 묶이는 상태가 다시 되면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우선 당장 자신부터 힘들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도 곤란하다.
그래서 이 경우 수행자가 생사현실에 임할 때는 우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는 가장 기초적으로 계의 덕목부터 잘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복덕자량을 구족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중생을 제도할 바탕이 마련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하려면 또 그에 필요한 지혜자량을 구족해 나가야 한다. 이 내용의 취득이 쉽지 않다. 병원 상황을 비유로 들면 환자가 퇴원한 후 다시 의대에 들어가 의사가 되는 훈련을 하는 것과 사정이 비슷하다. 그래서 자신만 병을 나아 퇴원한 상태와 이 상태는 차이가 크게 된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바탕에서 중생제도를 위한 무량행문을 닦아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구극적인 지점에 성불의 상태가 있게 된다.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Sutra of Forty-two Chapters [san-chn]
prajahāti 棄捨, 能斷除 [san-eng]
gīta $ 범어 (n) song [pali-chn]
ānejja 不動業 [pal-eng]
dhota $ 팔리어 pp. of dhovatiwashed; rinsed; cleansed. [Eng-Ch-Eng]
不動地 The stage of immovability (acala^), which is the eighth of the ten stages 十地 of the bodhisattva path. The stage at which all good practices can be carried out effortlessly. In the Sam!dhinirmocana-su^tra, the most subtle of the latent afflictions are eliminated at this stage. 〔解深密經 T 676.16.707c17〕 [Muller-jpn-Eng]
上衍 ジョウエン superior vehicle [Glossary_of_Buddhism-Eng]
NET OF INDRA☞ See: Jewel Net of Ind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