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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9일 토요일

불기2565-06-19_법원주림-k1406-032





『법원주림』
K1406
T2122

제32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법원주림』 ♣1406-032♧





제32권







♥아래는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페이지 내용 업데이트 관련 안내]

❋본문
◎[개별논의]

○ [pt op tr]





○ 2020_0906_120022_can_ab41 천축산 불영사



❋❋본문 ◎[개별논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法苑珠林卷第三十二 橫 四十四紙
K1406

○ [pt op tr]




『법원주림』 ♣1406-032♧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urt Close - NUITS D'BWNE.lrc
Curt Close - NUITS D'BWNE

◎◎[개별논의] ❋본문


● 불가사의한 현실과 수행








★1★





◆vvno9642

◈Lab value 불기2565/06/19


○ [pt op tr] Renoir beaulieu-landscape-1893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Renoir helene-bellow-1908




○ 2020_0606_172101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British_Museum_Great_Court
● [pt op tr] fr British_Museum_Great_Court




♥Bulgaria ,Plovdiv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The Roman theatre of Philippopolis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https://buddhism007.tistory.com/5691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reille Mathieu - Quand On Revient.lrc


Mireille Mathieu - Quand On Revient

♥단상♥아만 수행론


현재 이어 살피는 리비도, 분노, 무명, 만심, 의심수행론은
현실에서 끊기 힘든 수혹 및 둔사에 맟춘 수행방안이다.
수혹은 탐,진,치,만을 들고 둔사는 이에 의심을 더한다.
주로 감정과 정서적 의지와 관련된 번뇌다.
이런 번뇌에 바탕해 업을 행하면 3 악도에 들어가게 된다.

수행자도 업을 행하면 생사현실에서 무량겁에 걸쳐 과보를 받아나가게 된다.
이는 일반 중생과 차이가 없다.

부처를 비롯한 높은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행하는 계행 및 수행을
어렵지 않게 여기고 원만하게 잘 행하는 상태다.
그런데 범부가 그런 상태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매 상황에서 주로 본능적 감성적인 형태로 반응해 업을 행하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업을 행하게끔 만드는 에너지와 힘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각 상황에서 그 에너지는 취하되,
그 에너지가 향하게 하는 방향만 조금 변형시켜 수행방안으로 행하게 하고자 하는 취지다.

이 가운데 만심은 타인을 경멸하고 자신을 높이는 거만한 마음을 뜻한다.
이런 만심은 수행자를 정체하고 퇴보하게 만든다.

수행자는 수행을 통해 약간 취득한 내용을 가지고 만심을 갖게 되기 쉽다.
예를 들어 일체가 차별없이 공함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통해 악취공견을 취하여 아무렇게나 행해도 무방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일반 범부보다 훨씬 빨리 3 악도에 들어가게 된다.



Debout Sur Le Zinc - L'arbre

만(慢, māna)은 주로 타인과 자신의 상태를 비교하는 분별심에서 출발한다.
불교에서 만과 비슷한 단어로 교(憍, mada)가 있다.
모두 마음을 오만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런데 교와 만은 통상 다음처럼 구분한다.
교는 단순히 자신이 가진 신분, 지위, 능력 등에 집착하여 갖는 마음이다.
만은 타인과 비교하여 갖는 마음이다.

교만한 마음을 갖게 하는 요소로, 자신의 건강, 혈통, 재산, 능력, 수명, 지혜, 선업 등을 들기도 한다.
만심은 다른 이와 비교하는 가운데 잘못된 판단을 행해서 오만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 각 경우를 7 경우로 나누기도 한다.
모두 본 상태에 적절하지 않게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다.

만(慢) : 자신보다 열등한 이와 비교하여 자기가 뛰어나다고 우월감을 갖는 것.
과만(過慢) : 자신과 동등한 이와 비교하여 자기가 뛰어나다고 높이는 것.
만과만(慢過慢) : 자신보다 뛰어난 경우에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높이는 것.
아만(我慢) : 지나치게 자신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
증상만(增上慢) :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는데도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
비만(卑慢) :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이와 비교하여 자신이 조금 떨어질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사만(邪慢) : 악한 일을 한 뒤에도 스스로 잘했다고 뻐기는 것. 덕 없는 이가 스스로 덕 있는 줄로 잘못 알고, 삼보(三寶)를 경만하며 높은 체 하는 것


다른 이와 비교할 때 이런 만의 마음을 갖게 되면 곤란하다.
그러나 다른 이와 비교하는 가운데 문제되는 또 다른 마음 상태도 있다.
남과 비교해 자신의 상태가 낮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불만을 갖기 쉽다.
그리고 그 불만을 만들어 준 원인을 다른 이에게 찾기 쉽다.
그래서 그런 불만을 갖게 한 다른 이에 대해 불쾌감을 갖게 되기 쉽다.
그리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시기 질투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쉽다. [질(嫉) īrṣyā ]

그리고 이후 그런 바탕에서 그런 상대를 방해하고 해치려는 마음을 갖게 되기 쉽다.
한편 그런 바탕에서 스스로 만족감을 얻기 위해 다른 이를 비방하고 끌어 내리려 하기 쉽다. [ 해害, upaghāta]
이들은 넓게 분노의 범주에 속한다.
또 한편, 속마음을 숨기고 겉으로 친애하는 듯 거짓으로 외양을 꾸미고
공연히 아첨하는 경우도 있다. [ 諂, māya ]
이런 경우가 모두 수행에서 제거해야 할 수번뇌 항목에 들어간다.
즉 이들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근본번뇌에 딸린 부수적 번뇌에 속하게 된다.




Mickael Miro - Go Go Go
평소 현실에서 생활하게 되면 주변의 다른 이와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교를 행하게끔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마음 자세나 태도 경향이 모두 수행과정에서 문제된다.
우선 자신보다 열등한 이와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평소 자신이 만족을 얻기 위해 이런 식으로 비교를 행하려 하기 쉽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상태가 대단히 안 좋다고 하자.
그래도 넓게 살피면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수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가 어떤 부분에서 뛰어나다고 하자.
그래도 자세히 살피면 그런 이에게도 다른 부족한 점이 많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측면을 찾아 나서면 그런 내용을 쉽게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비교하면 스스로 만족을 얻기 쉽게 된다.

아무리 상태가 좋지 않아도, 만일 축사에 갇혀 지내는 축생과 비교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를 훨씬 낫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만족하고 우쭐대는 마음을 갖기 쉽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비교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그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불행을 즐거워하고 바라는 마음 상태가 되기 쉽다.
그리고 그로 인해 평소 '교만'한 자세로 현실에 임하기 쉽게 된다.
이런 태도는 수행자에게 올바르지 않다.
오히려 그런 경우에는 수행자는 자비의 마음으로 그 상황을 대하여 할 것이다.

자신보다 못한 경우와 비교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어떤 측면에서 자신이 뛰어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현실에 맞는 판단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여기고 우월감을 가지면 잘못이다.
그 본 사정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미미한 곤충을 비롯하여 현실 일체의 생명이 부처와 그 근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다.
또 무량겁에 걸쳐 과거생의 인연을 놓고 판단하면 이 모든 생명이 하나같이 다 과거생에 자신의 부모였다.
또 한편 이들 일체 생명은 무량겁에 걸쳐 장차 성불할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을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먼저 잘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자신이 특정한 측면에서 조금 낫다고 자신이 뛰어나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자신이 다른 이보다 수학이나 영어를 조금 잘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보다 못하는 이에 대해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고 우쭐댄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경우 다른 기준으로 비교하면 그 상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잘 하는가, 또는 수영을 잘 하는가 등으로 비교하면 또 달라진다.
그런데 자신이 어느 측면에서 조금 뛰어나다고 우쭐대고 다른 이를 업신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자신이 수행에 태만하게 되고 퇴보되게 된다.
또 이를 대하는 이들은 자신에 대해 불쾌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악의를 갖고 방해하고 해치려는 마음까지도 갖게끔 한다.
그래서 중생 제도의 경우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경우 자신이 어느 측면에서 뛰어나다고 스스로 느낄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교, 만의 마음으로 우쭐대거나 타인을 경멸하면 곤란하다.
이런 경우 수행자는 판단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우선 자신이 설령 어떤 점이 뛰어나도 세상에는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이들이 많음을 알아야 한다.
또 자신이 어느 부분이 뛰어나도 그렇지 못한 많은 부분이 더 많음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이가 설령 어느 부분이 부족하다 해도 다른 뛰어난 점이 많음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균형잡힌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 가운데 자신의 부족한 점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개선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또 지나치게 자신을 자책하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수행자는 또 한편, 늘 자신이 장차 성불할 존재라는 의식을 갖고 스스로 긍지를 갖고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거없이 만심을 갖고 임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공연히 자신이 열등하다고 비하하는 상태도 벗어나야 한다.
이 두 상태를 모두 떠나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한편, 만심을 갖고 임하는 경우 스스로 자만에 빠져 스스로 칭찬하며 임하기 쉽다.
또 반대로 다른 이에게서는 그 단점을 찾아내 비방하거나 비난하며 임하기 쉽다.
그런 경우 다른 이들이 대부분 이런 이를 불쾌하게 여기게끔 된다.
물론 이 경우 다른 이들의 이런 자세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가 자만에 빠져 스스로 자랑을 일삼고 자화자찬을 행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이들이 그와 함께 기뻐해주면 될 것이다.
또 어떤 이가 다른 이의 단점을 찾아내 지적하고 비난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이의 지적한 문제점을 반성하고, 그 단점을 고치려 노력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부분 이런 경우 불쾌감을 느끼고 분노를 일으킨다.
그리고 오히려 반발하고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즉 서로 상대의 다른 단점을 찾아내며 다투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중생제도를 하려는 수행자는 일단 중생들의 일반적 경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제각기 자화자찬을 일삼고 다른 이를 비난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리고 또 남이 자화자찬하면 대부분 불쾌감을 갖는다.
또 남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면 반발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리고 비난을 받으면 비난으로 되돌려주고 보복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래서 중생제도를 하려는 수행자는 이런 중생상태를 먼저 잘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임할 때는 먼저 이런 중생 상태에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 상황에서 어떤 자세가 중생제도에 효과가 있는가를 놓고 살펴야 한다.
결국 중생들이 싫어하고 효과없는 방법을 택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중생제도가 강조되는 대승 계율에서 원칙적으로 이는 중요항목이 된다.
즉, 중생제도에 임하는 수행자는 '자찬훼타'하는 자세를 떠나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평소 교, 만의 자세를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이가 갖춘 장점을 찾아내 긍정하고 칭찬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런 사정으로 자신의 장점은 숨기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런데 한편 수행자가 이렇게 임하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이가 오히려 자신을 공연히 비방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수행자는 이를 평안히 참고 대해야 한다.

한편, 다른 이가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이를 비방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일단 과도히 책망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대부분 그런 경향을 갖는 것이라고 일단 여겨야 한다.
즉 대부분 자기 자랑에 열중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다른 이의 비방에 열중한다.

그런데 대부분 이와 같다고 일단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과도하게 책망하지 않도록 한다.

상대가 다른 이를 자꾸 비난하고 비방해 문제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을 자신이 다시 비난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도 그 상대와 똑같은 문제가 있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상대가 자주 작은 일로 화를 내서 문제라고 하자.
사정이 그렇다고 자신이 앞으로 화를 내지 말라고, 화를 내면서 크게 소리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그런 자신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먼저 그런 경향을 점차 제거할 좋은 방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를 먼저 자신과 상대에게 적용해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실에서 다른 이의 문제점을 찾아내려면 끝이 없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세간의 말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이런 경우 수행자는 마치 유치원생을 상대하는 선생님처럼 상황을 대해야 한다.
즉, 유치원생이 조금 실수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선생님이 유치원생처럼 반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수행자도 이 비유처럼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더라도 그 장점을 붙잡고 좋은 상태로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각 경우에 어떤 방편이 좋은 것인가를 놓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잘 판단해야 한다.

한편 자신이 자신보다 뛰어난 이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수행내용과 결과인 경우에는 뛰어난 상태에 대해
수행자는 따라 기뻐하는 마음(수희심)을 갖고 함께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수행과 관련해서 그런 내용이 자신도 필요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도 함께 즐겁게 서원을 갖고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수희 원요의 수행덕목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수행덕목과 관련이 없는 경우는 그저 무시하고 지나치면 된다.
그런 경우까지 같이 따라 기뻐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이가 악행을 행하는 경우까지 따라 기뻐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이로 인해 장차 생사고통을 겪는 과보를 받게 된다.
그래서 무조건 수희 원요를 행하는 것이 수행은 아니다.
한편, 여하튼 이런 비교를 통해 일단 자신의 상태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이미 자신이 갖춘 것에 만족을 느끼고
자신에게 불필요한 부분들은 외면하고 무시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더 나아가 그것이 악한 측면인 경우는 적극적으로 이를 끊어 없애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수행자가 올바른 수행결과를 얻으려면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임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단순히 차를 거리에 세워 놓고 그저 즐겁게 임할 경우도 있다. pass
또 어떤 경우는 적극적으로 차를 멈추고 중지해야 할 경우도 있다. stop
또 어떤 때는 다른 나은 상태를 찾아 초점을 맞추고 방향을 돌려야 할 경우도 있다. turn
그러나 어떤 경우는 가야할 목표를 찾아 꾸준히 노력해 달려가야 한다. go
이처럼 수행자가 구체적 현실의 각 경우에 취할 태도와 자세가 매 경우 다르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chel Sardou - Je N'aurai Pas Le Temps.lrc

Michel Sardou - Je N'aurai Pas Le Temps

사정이 이와 같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검토하거나 다른 이와 비교할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마다 대부분 주로 문제되는 형태로 자세를 취하기 쉽다.
그것이 우선 당장 자신에게 만족을 준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다른 이보다 우월해야 좋다고 여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의 단점이나 결점을 찾으려 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이를 깍아 내리려 노력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가진 몇몇 장점을 붙잡고 우쭐대려 하게끔 된다.

그러나 그렇게 임하면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각 경우 그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내용을 찾아 적용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다른 상태와 비교할 상황에 놓였다고 하자.
이런 경우 평소 앞과 같은 방식으로 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자.
이 때 그 방향을 수행방안에서 제시하는 쪽으로 살짝 바꿔 주어야 한다.

우선, 비교하는 다른 이들에서 열심히 장점을 찾는다.
단점이 보여도 그것은 대부분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문제삼지 않는다.
그리고 장점만 부각한다.
또 기회가 되면 이를 긍정해주고 칭찬한다.
다만 없는 것을 만들어서 칭찬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경우는 거짓된 아첨이 되어서 지나친 것이 된다.

원래는 자신에 대해 그런 노력을 열심히 하는 경향을 갖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 방향을 다른 이로 돌려 임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방향을 쉽게 돌리려면
그 다른 이가 남이 아니라는 의식이 먼저 필요하다.

부처님이 제시한 방안도 사정이 비슷하다.
본래 무량겁에 걸쳐 다른 이와 수없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이와 반드시 부모 자식간의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다른 이가 무량겁에 걸쳐 끝내 성불하는 상태가 된다고 하자.
이 경우도 장래에 상대가 오로지 부처님 상태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가운데 이런 측면만 끌어내 초점을 맞추고 대하라고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상대를 가깝게 여기게 하는 한편, 또 상대를 존중하고 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곤충과 같은 미물부터 그렇게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자신은 지금 현재, 과거생의 부모가 변화한 모습을 현재 대하고 있는 중이다.
또 장래 성불한 부처님의 과거생( 즉 현재)에서의 모습을 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의식하고 대해야 한다.

물론, 현재 상태는 그와 거리가 멀 수도 있다.
또 과거나 미래 각 순간에는 이와 다른 내용이 더 많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측면만 뽑아 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상대를 가깝고 친근하게 여기고 존중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의 그런 자세로 인해 그 관계도 점차 바람직한 형태로 바꾸어지게 된다.

물론 이는 수행자쪽의 노력이다.
이렇게 행해도 상대는 여전히 그렇게 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위와 같은 원칙적 방안이 가장 좋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대하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부모님처럼 관한다고 하자.
이 경우 부모님의 허물이 조금 보인다해도 너무 책망하고 비난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숨겨진 장점을 찾아내 그것을 칭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더욱이 장래 자신이 대할 부처님이라면 더더욱 그런 자세가 바람직하다.

반면, 허물이나 단점은 자기자신에서 보다 엄격하게 찾아내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식을 가지면 그 허물이나 단점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그것이 훨씬 자신에게 좋음을 많이 가져다 준다.
그래서 그런 자세로 바꿔 현실에 임하도록 한다.

처음 다른 이를 상대할 때, 자신의 만족이나 좋음을 얻기 위해
교만한 태도를 갖고, 또 다른 이를 비난하고 깍아내리려 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렇게 행하는 주체를 서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훨씬 쉽게 좋음을 오래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한편, 상대를 과거생의 부모나 장래 부처님으로 관한다고 하자.
그러나 이 경우 현실에서 상대를 그렇게 정식으로 칭하고 대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면 상대도 어색하게 여기고 더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에 나오는 내용처럼 오히려 상대가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자신을 그렇게 조롱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다시 다음 방안을 사용할 수 있다.
우선 상대가 좋아할 타이틀을 생각한다.
사업을 하는 경우는 회장,
강의를 한다면 총장 이런 타이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상대가 그 방향으로 활동하면 언젠가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
또 상대가 가장 높은 부처님이 되기전 그런 상태도 중간에 거쳐갈 것이다.
그렇게 여길 수 있다.
그런 가운데 평소 그런 타이틀을 붙여 상대를 관하고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타이틀은 너무 지나치지 않아서 농담처럼 평소에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그 타이틀에 맞춰 상대의 장점을 찾아내고 이끌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우선 자신의 인격 수행이 부족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경우는 다시 다음의 보조적 방안을 취할 수 있다.

우선 위와 같이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이만 높은 상태가 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가 현실에서 자신이 상대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상태와 어느 정도 엇비슷한 상태라고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사실 현실에 적절하지 않은 교와 만의 상태에 가깝다.
그러나 방편상 그렇게 생각해서라도 일단 현실에서 그런 자세로 임하는 것이 낫다.


이처럼 좋은 타이틀을 붙여 상대나 자신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은
정식 수행방안에서도 사용되는 방안이다.

본래 이론상 부처와 범부, 그리고 닭, 오리, 개, 양, 돼지는 하나같이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 점에서는 그렇다.

이것이 부처님 자신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실 범부를 그 상태 그대로 놓고도
이론상 부처님과 대등한 존재로 관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는 사실은 이론상 본 바탕의 측면을 놓고 살필 때 그렇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론상,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다고 해도
그 반대 방향으로 이를 취할 수도 있다.
즉, 부처와 범부나 닭, 오리가 본 바탕에서 차별없이 공하다고 하자.
그래서 범부나 닭을 부처라고 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그 반대로 부처나 범부를 거꾸로 닭이나 오리라고 관할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앞과 마찬가지 사정 때문이다.
그렇게 관해야 수행자도 스스로 긍지를 갖고 수행에 임할 수 있다.
또 다른 상대도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측면을 뽑아 강조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 행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이 된다.

이것을 수행에서 '이즉' 이라고 표현한다.

이론상, 일체 중생은 다 부처다.
이런 내용이다.
다만 생사현실에서는 돼지는 돼지고 부처는 부처다.
그래서 그 차이가 극단적이다.

그리고 사실 수행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 부분이다.
그래서 이후 계속 같은 방식을 적용하게 된다.

수행을 시작하게 되면 우선 타이틀을 부여한다.
일단 명칭부터 좋은 명칭을 골라 자신이나 상대에게 붙인다.
그리고 그렇게 대하고 임한다.

수행자가 성불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장 쉽게 행할 수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우선 자신이 수행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상태를 마음에서 그려 낸다.
그리고 그것을 압축해 명칭과 타이틀로 표현한다.

수행의 나머지가 잘 되어도 이것이 끝내 잘 안 되면 곤란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것이 잘 되면 나머지 부분도 점차 잘 되게 된다.

늘 자신이 그런 타이틀을 통해 자신이나 상대를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최소한 기분으로라도 그와 비슷한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그런 상태라면 각 경우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도
평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점차 그런 방향으로 바꾸어 임하는 노력도 행할 수 있다.

이것을 수행에서 '명자즉' 이라고 표현한다.

이후 수행은 꾸준히 그런 바탕에서 행해 나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 바탕으로 수행해 끝내 자신이 본래 목표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하자.
그것을 '구경즉' 이라고 표현한다.

이 경우는 자신이 성불을 목표로 했다면, 정말 부처님이 된 상태다.

그래서 이를 '6즉'이라고 칭한다.
이는 이즉- 명자즉 -관행즉 - 상사즉 - 분진즉 - 구경즉으로 나열된다.

즉 명자즉을 통해 타이틀만 갖추고 난 후 정식 수행은
이후 단계에서 행해 이처럼 나아가는 것이다.
즉, 계, 정, 혜 3 학과 6 바라밀을 닦아 나가면서
점차 부처님 상태와 비슷해지는 수행과정을 나타낸다.

이를 거꾸로살핀다고 하자.
자신이 생사현실에서 벗어나고 가장 높은 상태가 빨리 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당장 할 일이 있다.
우선, 먼저 자신이나 상대를 부처로 관하고 부처의 타이틀을 마련해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훈련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쉽다.
그리고 이후 수행은 이 바탕에서 행해 나가면 된다.

다른 이를 부처로 관하고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이 교나 만의 마음을 함부로 가질 수 있겠는가.
또 자신이 부처님보다 낫다고 우쭐 댈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편 자신도 긍지를 갖게 하는 측면이 있다.
자신도 스스로 장래 부처님이 될 존재라고 스스로 긍지를 갖고
수행에 임할 수 있다.

수행단계가 높아지면 결국 그런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등일체제불 회향의 항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런 방식을 평소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바로 성불하고자 하면 과거 부처님의 분신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또 다음에 부처가 된다는 미륵불의 타이틀을 갖고 활동할 수도 있다.
오히려 수행과정을 더 늘려잡기를 원하면 혼자 적당한 명호를 정해 수행에 임할 수도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수행자가 수행과정에서 수행시 사용하는 자신 내부용 명호가 될 수 있다.
한편 한번 성불을 해도 이후 또 다시 수행자 상태로 내려와 다시 수행을 행할 수도 있다.
경전에서는 그런 사례도 전한다.
그러나 언제나 부처님의 마음 상태로 다른 이와 세상을 대하려 노력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요건이 된다.

참고로 본인은 현재 수행중 화동불이란 명칭을 수행을 위해 잠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차 수행을 통해 화동여래가 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이 하나 성불하면 이로 인해 일체 중생이 자연스럽게 다 성불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수행과정에서 이런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6/2565-06-19-k1406-032.html#9642
sfed--법원주림_K1406_T2122.txt ☞제32권
sfd8--불교단상_2565_06.txt ☞◆vvno9642
불기2565-06-19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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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을 찬탄하는 말.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의 견지에서 초목 국토가 다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원묘(圓妙)한 종지.

답 후보
● 일승원종(一乘圓宗)
일체개공종(一切皆空宗)
일합상(一合相)

입도(入道)
입적(入寂)
자력회향(自力廻向)
자비량(自比量)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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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주림_K1406_T2122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