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성인의 활동은 현묘(玄妙)함을 통달해 걸림이 없어, 여러 방면에 감응하는 것이니, 한 길로만 구할 수 없는 것이요 한 이치로만 추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친 것은 거친 것으로써 응하고, 미세한 것은 미세한 것으로써 응한다. 거칠고 미세한 그 상대를 따르는 것은 이치가 본래 그런 것이다. 그런 까닭에 큰 광명을 놓고 온갖 신변(神變)을 나타내는 것은, 시방의 모든 큰 보살이 장차 거룩한 지위를 이으려는 것일 뿐이다. 만일 속세에 있어서 거친 것에 접하고 삿됨을 눌러 바른 데로 돌아가는 자는, 다시 인연을 따라 신통 변화로 사물의 형편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묘한 이치만으로 사물을 가리킴을 다 깨칠 수 있는 것이지만, 불가사의한 형질(形質)을 변화해 나타내고 그로써 불가사의한 미련한 견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성인도 사슴과 말을 구제하려면 사슴과 말 속에 있어야 하나니, 그렇다고 어찌 그가 사슴이나 말과 같겠는가. 만일 사슴이나 말과 다르지 않으려면 때를 따라 항상 흘러 이 신통 변화를 기다리지 않아야 함이 명백한 것이다.
(2) 통변부(通變部)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였다. “불자야, 한 여래께서 하나의 화신(化身)으로 변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은 말로는 할 수 없는 비유로 교화하고, 일체의 법계와 허공계(虛空界) 등의 세계를 털 끝으로써 두루 다 헤아리고, 하나하나의 털 끝에 말할 수 없이 수많은 불찰(佛刹)의 티끌과 같이 많은 화신을 순간마다 나타내어 교화하되 미래의 겁이 다하도록 하나니, 그 하나하나 화불(化佛)의 몸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머리가 있고, 그 낱낱 머리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혀가 있고, 그 낱낱 혀로 수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소리를 내며, 그 낱낱 소리로 말할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과 같이 많은 수다라(修多羅)를 설명하고, 그 낱낱 수다라마다 말할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법을 연설하며, 그 낱낱 법 안에서 말할 수 없이 많은 불찰의 티끌같이 많은 구신(句身)과 미신(味身)3)을 설명한다. 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불찰의 티끌과 같은 겁 동안 다른 구신과 미신을 설명하는 음성이 법계에 충만하여 일체 중생이 그것을 듣지 못하는 이가 없으며,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항상 법륜을 굴리는 여래의 음성은 변함도 없고 끊임도 없어 다할 수 없나니, 이것을 모든 부처님과 대력나라연당불(大力那羅延幢佛)의 머무르는 법이라 하느니라.”
또 『화엄경』에서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에게는 여덟 가지의 미묘한 음성이 있고 그 낱낱 음성에는 다 5백의 미묘한 음성의 권속이 있어서 셀 수 없는 백천의 음성으로 장엄하였다. 무량 무변한 묘한 소리의 음악은 다 청정하고 모든 부처님 정법의 뜻을 두루 잘 연설하여, 모두 공포를 여의고 무외(無畏)에 편히 머물면서 사자처럼 외쳐, 모든 법계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그 음성을 다 듣게 하고, 그 본행(本行)의 갖가지 선근을 따라 다 깨닫게 하나니, 이것을 모든 부처님의 가장 훌륭하고 위없는 구업(口業)의 장엄이라 하느니라.” 또 『처처경(處處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부처님께서 웃으셨다. 그 입에서 5색의 광명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다섯 가지 인연이 있다. 첫째는 사람들로 하여금 묻는 인연과 묻는 이익이 있게 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사람들이 부처님께서 웃으실 줄 모른다고 말할까 염려해서이며, 셋째는 입 안의 광명을 나타내기 위해서이고, 넷째는 지극한 정성이 아니기 때문에 웃는 것이며, 다섯째는 아라한이 공(空)을 지켜 보살의 도를 얻지 못함을 웃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광명이 다시 정수리로 들어가는 것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큰 광명이 있을 것을 보이기 위해서니라.” 또 『불설심명경(佛說心明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범지(梵志)를 위해 웃으셨다. 5색의 광명이 입에서 나와 시방 5취(趣)의 무리들을 비추었다. 그것은 지극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아귀들을 배부르게 하며, 지옥의 고통을 쉬게 하고, 축생들의 뜻이 열리고 죄가 없어져 광명을 찾아 부처님께 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모든 부처님께서 웃으시는 법에는 다 떳떳한 조짐이 있다. 보살에게 기별(記別)을 줄 때는 그 광명이 시방을 두루 비추다가 정수리로 들어가고, 연각(緣覺)에게 기별을 줄 때는 광명이 입으로 들어가며, 성문(聲聞)에게 기별을 줄 때는 광명이 어깨로 들어가고, 천상에 날 일을 말할 때는 광명이 배꼽으로 들어가며, 인간에 내려올 일을 말할 때는 광명이 무릎으로 들어가고 3취(趣)의 고통을 말할 때는 광명이 발바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실 적에는 탐욕 때문에 웃지 않고, 분노 때문에 웃지 않으며, 어리석음 때문에 웃지 않고 방탕 때문에 웃지 않으며, 이욕(利欲) 때문에 웃지 않고 영귀(榮貴) 때문에 웃지 않으며, 부하고 넉넉함 때문에 웃지 않으신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두루 평등하게 가엾이 여겨 대자(大慈)를 행하시기 때문에 웃는 것이니, 여기에는 이상의 일곱 가지가 없는 것이니라.”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실 때 응지(應持) 보살이 다른 지방에서 와서, 부처님 몸의 양(量)을 알려고 그 위의 허공과 무량한 불찰(佛刹)을 지나 화상(華上)세계에 이르러 부처님 몸의 여전함을 보았다. 그리고 게송을 읊었다.
허공이 그 끝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공덕도 또한 그렇네. 부처님 몸을 재어 보려 하여도 부질없이 수고롭기만 할 뿐 알 수 없었네.
저 위로 허공의 세계와 무량한 모든 불토를 지나서 석사자(釋師子)의 몸을 뵈오니 예전과 같아 다름이 없었네.
부처님의 몸은 금산(金山)과 같아 큰 광명을 쏟아 내나니 상호(相好)로 몸소 장엄한 것이 마치 봄날에 핀 꽃과 같네.”
또 『처처경(處處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저 하늘ㆍ귀신ㆍ용ㆍ사람 등이 다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설법을 들었다. 수백천 겁이나 지났지만 그 앞뒤에서 다 부처님의 얼굴을 보았다.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전생에, 앞뒤가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부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자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누울 때 부처님 계신 곳으로 머리를 두는 것은 부처님을 향하여 존경하기 위해서니라.”
(3) 염욕부(厭欲部) 『대장엄법문경(大莊嚴法門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왕사성(王舍城) 안에 음녀(婬女)가 있었다. 음녀의 이름은 금색(金色)이었으며 그녀에게는 광명(光明)과 위덕(威德)이 있었다.
그녀는 전생에 지은 선근의 인연 때문에 얼굴이 단정하고 온갖 상호[相]를 원만하게 갖추었다. 몸은 순금색으로 광명이 번쩍이고 얼굴은 아름다워 세상에 드문 존재였다. 신기한 지혜와 총명하고 민첩함과 걸림없는 말솜씨를 갖추고 있었으며 음성은 맑고 미묘하며 깊이가 있고 부드러우며 말할 때는 늘 웃음을 머금었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다 금빛으로 비추고 입은 옷도 다 금색이었다. 그녀를 보는 사람은 다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그녀가 노니는 곳에는 어디든 따라다녔다.
어떤 장자(長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상위덕(上威德)이라 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여 많은 재물을 주었는데 서로 마음이 맞아 장엄한 수레를 타고 동산으로 갔다. 그 때 금색녀는 전생 인연의 감응으로 문수사리에게 교화를 받아 도에 들어가서 신통 변화가 자재하였기 때문에 위덕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잠을 잤다. 곧 신통의 힘으로 누운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의 상(相)을 나타내었다. 몸은 퉁퉁하게 부어 오르고 문드러지고 냄새가 나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다. 잠깐 사이에 배가 갈라지고 창자가 찢어지면서 오장이 모두 드러나고 냄새가 지독했다. 대소변이 나오는 곳으로는 더러운 물질이 줄줄 흘러 넘치고 모든 기관과 사지에는 파리떼가 엉겨서 빠는 등, 그 참상은 다 말할 수 없었다.
그 때 장자의 아들은 이 시체를 보고 매우 두려워 온몸의 털이 모두 일어섰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를 구원할 사람이 없을까?’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귀의할 데가 없었으므로 더욱 무서워져 크게 두려워 떠는 목소리를 내었다. 장자의 아들은 두 가지 인연 때문에 크게 두려워했으니, 하나는 일찍이 이런 나쁜 일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대중이 그가 그녀와 같이 온 것을 아는데 그녀가 갑자기 거기서 죽었으니 그가 일부러 죽였다고 생각할까였기 때문이니 또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억울하게 자기를 죽일까 걱정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장자의 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숲 속에는 나 혼자뿐이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범부나 성인이나 누가 나를 구제해 주겠는가?’ 그 장자의 아들은 과거의 선근이 비록 익숙해지기는 했으나 문수사리에게 금색녀와 함께 설법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수사리는 곧 신통의 힘으로, 모든 나무들로 하여금 게송을 외우게 했다. 장자의 아들은 이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스스로 경하하며 다행스럽게 여겼다. 시체를 버리고 곧 숲을 나와 바로 부처님께 가서 이 두려운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마땅히 너에게 일체 두려움이 없게 하리라. 네가 부처님께 귀의하면 일체 두려움이 없어지리라.’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모든 두려움은 어디서 생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인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두려움은 주인도 없고 짓는 이도 없고 집착하는 이도 없다. 너의 지난번 그 애욕의 감정은 지금 어디 있느냐?’ 장자의 아들이 말하였다. ‘범부들은 이 세간에 보이는 좋은 색상과 나쁜 느낌에 집착하지만 성인의 법에는 그런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갖가지 방편으로 설법하셨다. 그리하여 그 때 장자의 아들은 순법인(順法忍)을 얻었다. 그 때 금색녀는 장자의 아들이 이미 교화된 것을 알고, 장엄한 5백 거마(車馬)에 앞뒤로 둘러싸이어, 부처님께로 가서 한쪽에 서 있었다. 그 때 문수사리가 장자의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이 여자를 알겠느냐?’ 장자의 아들이 대답했다. ‘나는 잘 압니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너는 어떻게 아느냐?’ 장자의 아들은 곧 문수사리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건대, 색(色)은 물거품 같고 모든 느낌[受]도 물거품 같으며 저 상상[想]은 아지랑이와 같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보건대 저 행(行)은 파초와 같고 식(識)도 또한 환상과 같나니 여자란 거짓으로 되어 있는 것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몸이란 감각 없는 나무와 같고 또 풀이나 기왓장과 조약돌 같으며 마음이란 도저히 볼 수 없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모든 범부들 취한 것 같아 착각으로 그 나쁜 감정 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물들지 않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마치 저 숲 속의 시체가 문드러져 더러운 냄새 나듯이 몸의 성질도 이와 같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과거는 본래 없어진 것 아니요 미래도 또한 생겨나는 것 아니며 현재는 잠깐도 머무르지 않나니 나는 이렇게 그를 압니다. 문수여, 부디 잘 들으시오. 저 은혜는 갚기 어렵네. 나는 본래 탐욕이 많았지만 그 더러움 보고 해탈하였소.
저 몸은 진실로 죽지 않았지만 나를 교화하려고 죽음 보였네. 중생을 슬퍼하여 보이었거니 누가 그것 보고 발심하지 않으리.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 또 모든 번뇌는 이런 것이며 저 법의 체성(體性)은 이러하나니 좋구나, 참으로 미묘하구나.
그 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금색녀와 상위덕 남자는 이미 과거에 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내게 하였었는데, 지금 또 설법을 듣고 순법인(順法忍)을 얻었다. 이 금색녀는 앞으로 90백천 겁을 지나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 그 명호를 보광(寶光) 여래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위덕 장자는 보광여래의 처소에서 보살의 몸을 얻어 이름을 덕광(德光)이라 할 것이요, 보광이 멸도한 뒤에는 그도 마땅히 부처가 되어 명호를 보염(寶焰)여래라 할 것이다. ’” 또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옛날 하안거(夏安居)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바라내국(波羅柰國)에 묘의(妙意)라는 음녀(婬女)가 누각 위에 있었다. 그녀는 과거에 부처님과 인연이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 신통으로 세 소년을 만들었다. 나이는 다 15세이고, 얼굴은 단정하여 세간의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났다. 이 여자는 저들을 보고는 몸과 마음으로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저들에게 말하였다.
‘장부(丈夫)여, 지금 나의 이 집은 공덕천(功德天)과 같고 부유하고 힘이 있어 자재로워 온갖 보배로 장엄했습니다. 지금 나는 내 노비들과 함께 장부님을 받들고 몸소 쓸고 닦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하는 것을 받아 주신다면 모든 것을 다 공급하여 아무것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에, 저 화인(化人:소년)이 밥상 앞으로 나가 미처 밥을 들기 전에, 다시 그 앞으로 가서 아뢰었다. ‘장부님, 내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화인은 거스리지 않고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서로 가까워졌다. 그녀는 하루 동안은 마음이 피로하지 않았으나, 이틀이 되자 사랑하는 마음이 차츰 식어졌고 사흘째 되던 날에는 장부에게 아뢰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십시오.’ 화인은 일어났으나 그녀를 안고 놓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싫증이 나서 장부에게 말하였다. ‘장부님, 다른 사람에게나 그렇게 하십시오.’ 화인이 말하였다. ‘우리 집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법에 무릇 여자와 통할 때에는 12일이 지나야 그만두게 되어 있다.’ 그녀는 이 말을 듣자, 마치 음식이 목에 걸려 토할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것과 같고, 몸이 고통스러운 것이 마치 절구에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나흘째 되던 날에는 수레에 갈리는 것 같았고 닷새째 되는 날에는 쇠탄알이 몸에 박히는 것 같았으며 엿새째 되는 날에는 사지 마디마다 다 아프고 화살이 심장에 박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들으니 가비라성(迦毘羅城)에 있는 정반왕(淨飯王)의 아들은 몸이 자금색이고 32상(相)을 갖추었으며, 장님들을 가엾이 여기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제하시는데 항상 이 성에 계시면서 늘 복의 구제를 행하고 금색의 광명을 놓아 모든 사람을 제도하신다고 한다. 그런데 왜 오늘은 나를 구제하러 오시지 않는가. 나는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결코 색(色)을 탐하지 않으리라. 차라리 호랑이나 이리와 한 굴에서 지낼지언정 색을 탐함으로써 이런 고통은 받지 않으리라.’
화인도 성을 내며 말하였다. ‘아아, 이 나쁜 여자는 내 사업을 다 망쳐 놓았구나. 내가 지금 너와 함께 한 곳에서 몸을 합한다는 것은 일찍 죽는 것보다 못하다. 만일 부모와 종친이 나를 찾아오면 나는 어디 숨을까? 나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이런 치욕은 견디지 못하겠다.’ 여자가 말하였다. ‘다 떨어진 물건, 내게는 필요 없다. 너는 죽고 싶으면 죽으려무나.’ 이때 화인이 칼을 들고 제 목을 찔렀다. 쏟아져 흐르는 피가 여자의 몸을 더럽히면서 그 화인은 땅에 쓰러졌다. 그러나 여자는 할 수 없어 그대로 두었다. 이튿날에는 푸르딩딩해지고 사흘째에는 퉁퉁 부어 올랐으며 나흘째에는 썩어 문드러졌고 닷새째에는 점점 더 문드러졌으며 엿새째에는 살이 떨어져 나갔고 이레째에는 냄새나는 뼈만 남아 마치 아교나 칠처럼 그녀의 몸에 붙었다. 일체의 대소변과 온갖 나쁜 벌레와 피와 고름 등이 여자의 온몸에 묻었다. 여자는 매우 싫고 미웠으나 떼어 버릴 수가 없었다. 여자가 발원했다. ‘만일 모든 천신(天神)이나 선인(仙人)이나 정반왕의 아드님이 저를 이 고통에서 구해 주시면 저는 우리집과 일체의 보배를 다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발원했을 때 부처님께서 아난(阿難)과 난타(難陀)를 데리고 그리로 떠나셨다. 제석천은 앞에서, 범천왕은 뒤에서 따랐다. 부처님께서는 늘 광명을 놓아 천지를 비추시고 모든 대중은 다 여래께서 이 여자가 있는 누각으로 가시는 것을 보았다. 이때 여자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부끄러워하였으나 그 뼈를 숨길 수가 없었다. 흰 모포로 그 시체를 싸 놓았지만 냄새가 여전하여 감출 수가 없었다. 여자가 세존을 보고 예배하고 부끄럽기 때문에 몸으로 뼈 위를 덮어 가렸다. 냄새나는 뼈는 갑자기 여자의 등 위에 있었다. 여자는 더욱 부끄러워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여래의 공덕과 자비는 한량이 없으십니다. 만일 저를 이 고통에서 구해 주신다면 저는 여래의 제자가 되어 결코 퇴진하지 않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신력(神力)으로 그 냄새나는 뼈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크게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제가 가진 보배를 모두 부처님께 보시하겠나이다. 저를 위해 축원해 주소서.’ 부처님의 범음(梵音)은 유창했다. 여자는 이 축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곧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고, 5백의 시녀들은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다 위없는 보리심(菩提心)을 내었으며 한량없이 많은 범중(梵衆)들은 부처님의 신통 변화를 보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제석천왕이 데리고 온 모든 하늘은 보리심을 낸 자도 있었고 아나함(阿那含)을 얻은 자도 있었다.” 또 『백연경(百緣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위성(舍衛城)의 어떤 장자(長者)의 부인이 한 아들을 낳았다. 그 얼굴이 너무도 추하고 형상은 사나운 귀신 같아서, 누구나 보면 다 버리고 떠나갔다. 차츰 자라나자 그 부모는 미워하여 쫓아내어 멀리 가게 하였다. 심지어는 축생까지도 그 추함을 보고는 오히려 겁을 냈거늘 하물며 사람들이겠는가. 또 어느 때에는 숲 속에 들어가 과일을 따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날아다니는 새와 기어다니는 짐승들이 모두 겁을 내어 달아나 자취를 끊고 살지 않았다. 세존께서는 그를 가엾이 생각하여 비구들을 데리고 그 숲으로 가시어, 그를 제도하려 하셨다. 그는 부처님을 보고 피해 달아났으나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 가지 못하게 하셨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나무 밑에서 가부좌하고 선정에 들어 있었다. 세존께서 신통력으로 한 추한 사람으로 변화하여 밥이 가득한 발우를 들고 점점 추한 사람을 향해 갔다. 그는 형상이 자기와 같은 것을 보고 마음으로 기뻐하며 말하였다. ‘지금 이 사람은 참으로 내 벗이 될 만하다.’ 그리고는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하면서 발우 밥을 같이 나누어 먹었다. 밥을 다 먹었을 때, 그 화인(化人:부처님)은 갑자기 단정한 얼굴이 되었다. 추한 사람이 물었다. ‘그대는 지금 어떻게 갑자기 그처럼 단정한 얼굴이 되었는가?’ 화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이 밥을 먹고 선한 마음으로 저 나무 밑에 앉아 참선하는 비구들을 보았기 때문에 단정한 얼굴이 되었다.’ 추한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그것을 본받아 이내 단정하게 되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곧 화인에 대해 깊은 신해(信解)를 내었다. 이에 화인은 다시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추한 사람은 부처님의 32상(相)과 80종호(種好)와 그 광명이 백천의 해처럼 빛나는 것을 보고는 곧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그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여 그는 곧 수다원의 과(果)를 얻고, 부처님 앞에서 출가하기를 희망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여.’ 그러자 그의 수염과 머리털은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그는 곧 사문이 되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아라한의 과를 얻었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이 일을 보고, 부처님께 전생의 인연을 말씀해 주시기를 간청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무량한 세상에 불사(弗沙)라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셔서, 한 나무 밑에서 가부좌하고 앉아 계셨다. 나와 미륵은 다 보살이 되어 그 부처님께 나아가 갖가지로 공양하고, 한 발을 든 채 7일 동안 다음 게송으로 그 부처님을 찬탄했었다.
천상에도 세간에도 부처님 만한 이 없고 저 시방세계에도 또한 이런 이 없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두루 모두 보아도 부처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네.
그 보살이 이 게송을 마쳤을 때, 그 산에 있던 어떤 귀신(鬼神)이 누추한 형상을 지어 와서 우리를 두렵게 했다. 나는 신통력으로 그가 다니는 곳을 험한 벼랑으로 만들어 그가 지나 다닐 수 없게 했다. 그 때 그 산신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나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위협했다. 그러므로 저들은 지금 내가 다니는 곳을 다 험난하게 만들어, 나를 지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나는 저들에게 가서 아까 지은 죄를 참회하리라.≻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우리에게 와서 참회하고 또 발원하고 갔다.’ 부처님께서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산신은 나를 위협했기 때문에 5백 세(世) 동안 형상이 누추하여 그를 보는 사람들마다 다 달아났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참회했기 때문에 지금 나를 만나 출가하여 도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게송을 읊는다.
큰 성인의 신통 변화는 일을 따라 몽매한 이 깨우치며 머금은 꽃이 활짝 피어나 서로 호응하여 깨치게 하네.
그릇된 도를 항복받으려 변화로 신통력을 나타내되 숨었다 나타났다 세상 이롭게 하여 고상한 행적의 법이 되었네.
어떤 중생도 비방을 그치고 느끼고 깨쳐 다 일어나며 가만히 운행하여 자재하시니 보는 사람들 다 공경하네.
만나기 어려운 이런 성인은 세상에 뛰어난 신령스런 용이라. 중생들 모두 큰 복이 있어 아름다운 공덕을 만났구나.” 감응연(感應緣)[대략 스물다섯 가지 증험을 인용하였다.]
신기한 조화(造化)의 여러 가지 변화를 통틀어 서술 주(周)나라 때에 좌자(左慈)의 변화 설타산(舌埵山)에 제녀(帝女)의 변화 하곤(夏鯀)과 조왕(趙王) 여의(如意)의 변화 위(魏)나라 양왕(襄王) 때 여자의 변화 한(漢)나라 건평(建平) 때 남자의 변화 한나라 건안(建安) 때 남자의 변화 진(晋)나라 원강(元康) 때 여자의 변화 진나라 혜회(惠懷) 때 남녀의 변화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사람의 변화 한나라 선제(宣帝) 때 닭의 변화 진(晋)나라 태강(太康) 때 방게와 게의 변화 공자(孔子)가 진(陳)의 여관에서 거문고로 노래할 때 메기의 변화 양조(梁朝)의 거사 위영(韋英)의 아내 양(梁)씨가 시집 가서의 변화[이 이야기는 본문에 없음:역자] 진(晋)나라 예장군리(豫章郡吏) 역발(易拔)의 변화 진나라 의양현(宜陽縣)의 팽아(彭娥)라는 여자의 변화 진나라 태말현(太末縣)의 오도종(吳道宗) 어머니의 변화 진나라 부양현(復陽縣)에 소의 변화 염제(炎帝)의 딸의 변화 제전잡기(諸傳雜記)의 변화 진(秦)나라 때 강남(江南)에 정묘신(亭廟神)의 변화 진(秦)나라 때 남방(南方)에 낙민(落民)의 머리가 날아다닌 변화 고양씨(高陽氏)가 부부(夫婦)를 같이 낳은 변화 위(魏)나라 심양현(尋陽縣) 북산(北山)의 오랑캐가 요술을 부린 변화 위나라 청하(淸河) 송사(宋士)의 어머니가 목욕으로 인한 변화 ① 신기한 조화(造化)의 여러 가지 변화를 통틀어 서술 대개 자비로 구제하는 도는 옛날의 법에서 보지만 신통 변화의 방법은 원래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방외(方外)의 큰 성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역내(域內)의 범부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궁구해도 그 근원을 다 캐낼 수 없고 아무리 연구해도 다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범부와 성인은 비록 다르다 해도 그 변화는 같은 것이 있으니, 이것은 진실로 지혜의 얕고 깊음이 있고 업장(業障)의 거칠고 섬세함이 있으며 작용의 크고 작음이 있고 변화의 넓고 좁음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생사의 근본은 그 변화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 의거하면 인과(因果)를 분명히 믿어 인연이 서로 의지해야 비로소 변화를 이루는 것이요, 만일 외속(外俗)에 의거하면 대방(大方)을 깨달아 알지 못하고 오직 연기(緣起)만 믿고 인성(因成)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보기(千寶記)』에서 말하였다. “하늘에는 5기(氣)가 있어 만물이 변화생성[化成]하는 것이다. 정목(精木)은 인(仁)이요, 화정(火精)은 예(禮)요, 금정(金精)은 의(義)요, 수정(水精)은 지(智)요, 토정(土精)은 은(恩)이다. 5기가 다 순수하면 성인의 덕이 갖추어진다. 목(木)이 탁(濁)하면 허약[弱]하고, 화(火)가 탁하면 음란[淫]하며, 금(金)이 탁하면 포악[暴]이요, 수(水)가 탁하면 간탐[貪]하고, 토(土)가 탁하면 미련[頑]하다. 5기가 모두 탁하면 민(民)이 하열[下]하다.” 중토(中土)에는 성인이 많으니 화기(和氣)가 합하기 때문이요 절역(絶域)에는 괴물(怪物)이 많으니 이기(異氣)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진실로 이 기(氣)를 받으면 반드시 이런 형상[形]이 있고, 진실로 이런 형상이 있으면 반드시 이런 성품[性]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곡식을 먹는 것은 지헤로우면서 아름답고, 풀을 먹는 것은 힘이 세면서 어리석으며, 뽕을 먹는 것은 실이 있는 나방이요 고기를 먹는 것은 용감하면서 사나우며, 흙을 먹는 것은 마음이 없으면서 쉬지 않고, 기운을 먹는 것은 정신이 밝으면서 오래 살며,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은 죽지 않으면서 신기롭다. 굵은 허리치고 수컷이 없고 가는 허리치고 암컷이 없다. 수컷이 없으면 밖에서 교접하고 암컷이 없으면 밖에서 기른다. 3화(化)의 벌레는 먼저 새끼를 배고 뒤에 교접하며 겸애(兼愛)의 짐승은 스스로가 수컷ㆍ암컷이 된다. 겨우살이는 높은 나무를 남편으로 삼고, 여라(女蘿)는 복령(伏苓)에 의탁한다. 나무는 흙에 뿌리를 박고 부평(浮萍)은 물에 떠서 살아간다. 새는 허공을 밀치며 날고 짐승은 열매를 밟고 달린다. 벌레는 흙 속에서 엎드려 살며 물고기는 못 속에 잠겨 산다. 하늘을 근본으로 하는 것은 위를 친근히 하고, 땅을 근본으로 하는 것은 밑을 친근히 하며, 때를 근본으로 하는 것은 곁을 친근히 하나니, 이것은 각각 그 유(類)를 따르기 때문이다. 천 년된 꿩은 바다에 들어가 대합조개가 되고, 1백 년된 참새는 강에 들어가 조개[虫合]가 되며, 1천 년된 거북과 자라는 능히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하고 1천 년된 여우는 일어나 미녀가 되며, 1천 년된 뱀은 끊어도 다시 붙고, 1백 년된 쥐는 능히 점을 치나니, 이것은 수(數)의 지극함이다. 춘분(春分) 날에는 매가 변해 비둘기가 되고, 추분(秋分) 날에는 비둘기가 변해 매가 되나니, 이것은 때의 변화이다. 그러므로 썩은 풀이 개똥벌레가 되고 썩은 갈대가 귀뚜라미가 되며, 벼가 메뚜기가 되고 보리가 호랑나비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깃과 날개가 생기고 눈이 생기며 심지(心智)가 생기니, 이것은 무지(無知)가 유지(有知)로 변화하는 것으로서 기(氣)가 바뀌는 것이다. 또 학이 노루가 되고 뱀이 자라가 되며 귀뚜라미가 두꺼비가 되는 것은 그 혈기(血氣)를 잃지 않고 형성(形性)이 변하는 것이니 이런 따위의 일들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변함을 따라 움직이면 이것은 상도(常道)에 순응함이나, 조금이라도 그 상도에서 어긋나면 곧 요망한 재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체(下體)가 위에 생기면 이것은 기(氣)의 배반이요, 사람이 짐승을 낳고 짐승이 사람을 낳으면 이것은 기의 어지러움이며, 남자가 여자로 변화하고 여자가 남자로 변화하면 이것은 기의 질박함[質]이다. 노우애(魯牛哀)는 병을 얻어 7일 동안 앓다가 호랑이로 변화하였는데, 형체가 변하고 발톱과 이빨이 길게 자라났다. 그 형이 그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더니 그 형을 잡아먹었다. 그가 사람으로 있을 때는 장차 호랑이가 될 줄 몰랐고 호랑이로 있을 때는 사람이 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또 진(晋)나라 태강(太康) 때의 진유원사(陳留院士)란 사람은 살무사에게 물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그 상처를 자꾸 냄새 맡았는데 조금 있다가 살무사 두 마리가 코 속에서 생겼다. 또 원강(元康) 연중에 역양(歷陽)의 기원재(紀元載)는 길을 가다가 거북을 잡아먹었는데 조금 있다가 병이 생겨 의사가 약을 썼다. 그는 여러 되나 되는 거북의 새끼를 항문으로 낳았다. 크기는 작은 엽전만하고 머리와 발과 알과 무늬와 껍질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약에 중독이 되어 죽고 말았다. 대개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화육(化育)의 기운이 아니요 코는 새끼를 배는 곳이 아니며 형도(亨道)는 사물의 도구가 아니다. 이로써 관찰하건대 만물의 생사와 그 변화는 통신(通神)의 생각이 아니다. 비록 그것을 자기 몸에서 찾아 보더라도 어찌 어디서부터 온 것임을 알겠는가. 그러나 썩은 풀이 개똥벌레가 되는 것은 풀이 썩었기 때문이요, 보리가 불나방이 되는 것은 촉촉한 기운 때문이니, 그렇다면 만물의 변화는 다 그 까닭이 있는 것이다. 농부가 보리의 변화를 막으려면 그것을 잿물에 담그어야 하고 성인이 만물의 변화를 다스리려면 도로써 구제해야 하는 것이니, 그 이치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지금 느낀 일만으로는 진실로 그 변화의 극치를 궁구하기에 부족하다. 이것은 곧 중생들의 본식(本識)이 온갖 업을 만들고 인종(因種)이 이미 익으면 연(緣)이 외형(外形)을 빌어,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그 연을 따라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만일 먼저 종자가 없으면 비록 그 연을 만나더라도, 연이 성글고 힘이 약하여 혼자서는 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因)은 연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종자는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요, 연은 인을 빌려야 하기 때문에 연은 홀로 갖출 수 없는 것이다. 인과 연이 화합하고 힘과 작용이 서로 도와야 만물이 그로 인해 생기는 것이요 하나만으로는 건립할 수 없는 것이다. 바라노니 장래의 철인(哲人)들로서 어찌 다른 점 따위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② 주(周)나라 때에 좌자(左慈)의 변화
좌자(左慈)의 자(字)는 원방(元放)이고 여강(廬江) 사람이며 신통이 있었다. 일찍이 조공(曹公)의 좌석에 앉아 있을 때 조공이 말하였다. “오늘 같은 이런 좋은 모임에 오(吳)나라 송강(松江)의 농어회를 먹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구나.” 원방이 말하였다. “농어회를 구할 수 있소.” 그리고는 구리쇠 쟁반에 물을 담아 오라 했다. 원방은 낚시에 미끼를 단 낚시대를 쟁반에 드리웠다. 조금 있다가 농어 한 마리를 낚아 내었다. 조공은 크게 손뼉을 치고 그 모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다 놀랐다. 조공이 말하였다. “한 마리로는 이 좌석에 다 돌릴 수 없소. 두 마리면 좋을텐데.” 원방은 다시 미끼를 단 낚시를 넣었다. 조금 있다가 또 한 마리를 낚아 올렸는데, 모두 3척 남짓하며 매우 싱싱하고 좋았다. 조공은 곧 그 자리에서 회를 쳐서 좌석에 두루 돌렸다.
조공이 또 말하였다. “회는 다 얻었는데 이제는 촉(蜀)나라의 생강이 없어 유감스럽구나.”
원방이 또 말하였다. “그것도 얻을 수 있소.” 그러자 조공은 어디 가까운 데서 사오려는가 보다고 생각하고는 말하였다. “나는 전에 사람을 시켜 촉나라에 가서 비단을 사오라 했소. 지금 그대가 생강을 사러 보내는 사람 편에 먼저 내가 보낸 사람에게 비단 두 필을 더 사오라 해야겠소.” 원방은 사람을 보냈다. 조금 있다가 그 사람은 생강을 사가지고 돌아와서 말하였다. “비단 점방에서 조공께서 먼저 보낸 사람을 만나 비단 두 필을 더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 후 한 해 남짓 지난 뒤에 조공이 먼저 보냈던 사람이 과연 비단 두 필을 더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 물었다. “아무 달 아무 날에 점방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들으니 비단 두 필을 더 사오라 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 뒤에 조공은 가까운 교외에서 사인(士人)과 그 종자(從者) 1백 명과 함께 있었다. 원방은 술 한 항아리와 고기포 한 조각을 내어놓고 손수 항아리를 기울여 백관(百官)들에게 술을 돌렸다. 백관들은 다 취하고 배불러 했다.
조공은 돌아와 술집을 조사해 보았더니 어제 술과 포가 모두 없어졌다고 했다. 조공은 원방을 미워해 원방을 죽이려 했다. 원방이 조공과 한 자리에 있을 때 조공이 그를 잡으려 했으나 원방은 벽 속으로 들어가 자취가 묘연했다.
조공은 사방에 사람을 보내 잡으려 했다. 혹 시장에서 보고 잡으려 하면 시장 사람들의 형상이 다 원방과 닮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 어떤 이가 원방을 양성산(陽城山) 꼭대기에서 보았다고 하여 사람을 보내 쫓게 하였다. 그러자 원방은 염소떼 속으로 들어갔다. 쫓아간 사람들은 그 염소떼 속에 원방 있음을 알고 그에게 말하였다. “조공이 그대를 죽이려 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그대의 술(術)이 어떤가를 이미 징험해 본 것일 뿐이다. 다만 만나고 싶어할 뿐이다.”
염소들 속에서 갑자기 한 큰 늙은 숫양이 앞에서 두 무릎을 굽히고 사람처럼 서서 말하였다. “빨리 잡아가라.”
그들이 말하였다. “저 숫양이 바로 원방이다.” 그리고는 다투어 쫓아가 잡으려 했다.
수백 마리의 양들은 다 숫양이 되어 모두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사람처럼 서서 말하였다. “빨리 잡아가라.” 그래서 사람들은 잡아갈 수 없었다.
노자(老子)가 말하였다. “내게 큰 걱정이 되는 것은 내게 몸이 있다는 것이다. 내게 몸이 없을 때엔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만약 노자와 같은 무리라면 능히 몸을 없앨 수 있을 만하다. 그런 일이 어찌 어렵겠는가.
③ 설타산(舌埵山)에 제녀(帝女)의 변화 설타산(舌埵山)에 있던 임금의 딸이 죽어서 괴상한 풀로 변했다. 그 잎은 위유(萎蕤) 같고 꽃은 황색이며 열매는 토사자(菟絲子)와 같았다. 그러므로 그 괴상한 풀을 먹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에게 아첨했다고 한다. 주(周)나라 선왕(宣王) 33년에 유왕(幽王)이 태어났다. 이 해에 어떤 말이 여우로 변화하였다. 진(晋)나라 헌공(獻公) 2년에 주(周)나라 혜왕(惠王)이 정(鄭)나라에 있었다. 정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왕부(王府)에 들어가서 물여우로 변화해 사람들을 쏘아 많이 죽였다. 그 때 장홍(萇弘)이 죽자 촉(蜀)나라 사람이 그 피를 간직했는데 그 피는 3년이 지나 푸른 색[碧]으로 변했다.
한(漢)나라 영제(靈帝) 때에 강하(江夏)의 황씨(黃氏) 어머니는 반석물에 엎드려 목욕하였다. 오랫동안 나오지 않더니 그만 자라로 변했다. 그 여종이 놀라 달려가서 이웃에 알리니 이웃집 사람들이 몰려왔다. 자라는 점점 깊은 못으로 들어가더니 그 뒤로는 가끔 한 번씩 나타났다. 처음 목욕할 때의 머리핀과 은비녀는 그 머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황씨는 여러 대 동안 감히 자라 고기를 먹지 않았다.
오(吳)나라 보정(寶鼎) 원년(266) 6월 그믐날, 단양(丹陽) 선건(宣騫)의 어머니는 나이가 80세였는데, 못에서 목욕하다가 변하여 자라가 되었다. 그 형상은 위의 황씨(黃氏) 이야기와 같았다. 선건의 형제 네 사람은 문을 닫고 어머니를 호위했다. 그리고 그 방 안에 큰 구덩이를 파고 물을 대어 놓았더니 그 자라는 거기 들어가 헤엄치며 놀았다. 하루 이틀 동안 항상 물 위로 목을 길게 뻗어 문을 엿보다가, 문이 조금 열리자 곧 몸을 뒤쳐 깊은 못으로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④ 하곤(夏骨系)과 조왕(趙王) 여의(如意)의 변화 하(夏)나라의 곤(骨系)은 천자(天子)의 아버지요 조왕(趙王) 여의(如意)는 한조(漢祖)의 아들이다. 그런데 하나라의 곤은 누런 곰이 되고, 여의는 푸른 개가 되었다.
⑤ 위(魏)나라 양왕(襄王) 때 여자의 변화 위(魏)나라 양왕(襄王) 3년에 어떤 여자가 머리로부터 남자로 변화하여, 그 아내와 더불어 아들을 낳았다. 그러므로 『경방역전(京房易傳)』에서 말하였다. “여자가 남자로 변화하면 이것은 음(陰)이 성하기 때문이며, 천한 사람이 왕이 되는 징조이다. 남자가 여자로 변화하면 이것은 음(陰)이 양(陽)을 이기는 것으로서 재앙이 없어지는 징조이다.”
⑥ 한(漢)나라 건평(建平) 때 남자의 변화 한(漢)나라 건평(建平) 때에 예장(豫章)에 사는 어떤 남자가 여자로 변화해서는 시집가서 남의 아내가 되어 한 아들을 낳았다. 장안(長安)의 진봉(陳鳳)이 말하였다. “양(陽)이 변해 음(陰)이 되었으니 장차 그 계통이 끊어질 것이다. 그들이 낳은 아들도 장차 한 대(代)만 지나면 곧 끊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애제(哀帝)는 죽고 평제(平帝)는 망하여 왕망(王莽)이 그 왕위를 빼앗았던 것이다.
⑦ 한(漢)나라 건안(建安) 때 남자의 변화 한(漢)나라 건안(建安) 7년(202)에 월준(越嶲)에 사는 어떤 남자가 여자로 변화하였다. 주군(周群)이 말하였다. “애제(哀帝) 때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장차 대(代)가 바뀌는 일이 있을 것이다.” 25년에 이르러 헌제(獻帝)가 산양공(山陽公)으로 봉(封)해졌다.
⑧ 진(晋)나라 원강(元康) 때 여자의 변화
진(晋)나라 원강(元康) 때에 안풍(安豊)에 사는 주세녕(周世寧)이라는 여자는 나이 8세가 되자, 차츰 남자로 변화하더니 나이 17, 8세 때에는 남자로서의 기질과 성품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자의 몸으로도 완전하지 못하고 남자의 몸으로 변화해서도 철저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아내를 두었으나 아들이 없었다.
⑨ 진(晋)나라 혜회(惠懷) 때 남녀의 변화
진(晋)나라 혜회(惠懷) 때, 경락(京雒)에 어떤 사람은 한 몸에 남녀의 두 몸을 가졌으면서도 두 가지를 다 쓸 수 있었는데 더욱 음(婬)을 좋아했다. 천하의 병란(兵亂)은 남녀의 기(氣)가 어지러워 요사스런 몸이 되기 때문이다. 또 중흥(中興) 연간에는 어떤 여자의 음부[陰]가 배에 있었다. 그녀는 양주(楊州)에 살았는데 그 성질이 음색(婬色)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경방역전(京房易傳)』에서 말하였다. “요사스런 사람이 자식을 낳아 음이 머리에 있으면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그것이 배에 있으면 천하에 일이 있으며, 그것이 등에 있으면 천하에 후사가 없다.”
⑩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사람의 변화 한(漢)나라 경제(景帝) 원년 9월에, 교동(膠東)에 사는 하밀(下密)이라는 사람은 나이 70여 세에 머리에 뿔이 나고 그 뿔에 털이 났다. 그러므로 『경방역전』에서 말하였다. “몽매한 재상이 정치를 잘못하면 요사스런 사람에게 뿔이 난다.” 또 『오행지(五行志)』에서 말하였다. “생각하건대 사람에게 부당하게 뿔이 나면 이것은 마치 제후(諸侯)가 부당하게 군사를 일으켜 경사(京師)로 향하는 것과 같다.” 그 뒤에 7국(國)의 난리가 일어났다.
⑪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 닭의 변화 한(漢)나라 선제(宣帝) 황룡(黃龍) 원년(B.C. 49)에 미앙전(米央殿) 낙령구(車各軨廐) 안에 있는 암탉이 수탉으로 변화하였는데 털까지도 변했다. 그러나 울지도 못하고 암탉을 거느리지도 못하며 뒷발톱도 없었다. 또 원제(元帝) 초원(初元) 때에는 승상 부사(丞相府史)의 집에서 기르던 암탉이 수탉으로 변했는데 볏과 뒷발톱이 있고 울기도 하고 암탉을 거느리기도 했다. 또 영광(永光) 연간에는 어떤 이가 바친 수탉에 뿔이 났다. 『오행지(五行志)』에서 말하였다. “이것은 왕씨(王氏)에 상응하는 것이다.”
⑫ 진(晋)나라 태강(太康) 때 방게와 게의 변화 진(晋)나라 태강(太康) 4년(283)에 회계군(會稽郡)에서 방게와 게가 다 쥐로 변화하여 온 들을 덮고 벼를 먹는 재난이 있었다. 처음 된 쥐라서, 털과 살은 있으나 뼈가 없었다. 그래서 다닐 적에도 밭두덕을 지나가지 못하다가 며칠 뒤에야 완전히 장성했다. 6년에 이르러 남양(南陽)에서 두 발을 가진 호랑이를 잡았다. 호랑이는 음정(陰精)으로서 양(陽)에 사는 것이다. 금(金)은 짐승이요 남양은 불의 이름이니, 금정이 불에 들어가면 그 몸을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왕실(王室)이 어지럽게 될 요괴(妖怪)스런 일이다.
⑬ 공자(孔子)가 진(陳)나라 여란에서 거문고로 노래할 때 메기의 변화 공자(孔子)는 진(陳)나라에서 액난(厄難)을 만나, 여관에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밤에 키가 9척 남짓한 어떤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높은 관을 쓰고 있었다. 그가 큰 소리로 꾸짖자 좌우가 진동했다. 자공(子貢)이 나가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는 곧 자공을 들어 옆구리에 꼈다. 자로(子路)가 그를 끌고 나와 뜰에서 싸웠으나 한참 동안 승부가 나지 않았다. 공자는 살펴보다가 그 갑거(甲車) 사이를 보니 가끔 열리는 모습이 마치 손바닥 같았다. 공자가 말했다. “왜 그 갑거를 찾아서 그것을 끌어내어 휘두르지 않는가?” 자로가 그대로 따랐다. 그러자 손이 없는 어떤 물건이 땅에 엎어지는데 그것은 곧 큰 메기였다. 길이는 9척이 넘었다. 공자가 탄복하면서 말하였다. “이 물건이 무엇하러 여기 왔는가. 내 들으니, 물건이 늙으면 온갖 정령(精靈)이 거기 의지한다고 한다. 내가 이처럼 노쇠해서 이것이 온 모양이다. 어찌 내가 액난을 만나 양식이 떨어졌다 해서 종자(從者)까지 병들게 하겠는가. 대개 6축(畜)과 거북ㆍ뱀ㆍ물고기ㆍ자라ㆍ풀ㆍ나무 등이 오래 되면 신(神)이 거기 붙어 요괴(妖怪)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5유(酉)라 한다. 5유란 5행(行)의 방위마다 다 그 물건이 있다는 것이다. 유(酉)는 늙다[老]라는 뜻이니 그러므로 사물이 늙으면 요괴(妖怪)가 된다. 죽이면 그 뿐인데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혹은 하늘이 사문(斯文)을 죽이지 못해 이것으로 내 목숨을 매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 지경에 이르게 하겠는가.” 거문고와 노래를 그치지 않았다. 자로가 그것을 삶으니 그 맛이 아주 좋았다. 그 고기를 먹은 병자도 병이 다 나았다. 그들은 이튿날 다 그곳을 떠났다.[이상 열세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⑭ 양조(梁朝)의 거사 위영(韋英)의 아내 양(梁)씨가 시집 가서의 변화[이 이야기는 본문에 없음:역자]
⑮ 진(晋)나라 예장군리(豫章郡吏) 역발(易拔)의 변화
진(晋)나라 때 예장군(豫章郡)의 아전 역발(易拔)이 의희(義熙) 연간에 휴가를 맡아 집에 돌아왔다가 기일을 어기고 돌아가지 않았다. 군(郡)에서 사자를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다. 역발은 평상시와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또 일도 하였다. 사자가 떠날 채비를 하라고 독촉하자 역발이 말하였다. “너는 내 얼굴을 보라.” 사자가 그의 얼굴을 보았더니 그의 눈이 모로 찢어지고 몸에 누런 반점이 있었다. 그가 곧 문 밖으로 한 발을 내딛자, 그가 전에 살던 집이 있는 산에서 사슴이 세 발 가진 큰 호랑이로 변하고 그가 세운 다리는 꼬리로 변하였다.[이 한 가지 증험은 『이원(異苑)』에 나온다.] 진(晋)나라 의양현(宜陽縣)의 팽아(彭娥)라는 여자의 변화 진(晋)나라 영가(永嘉)의 난리에 그 군현(郡縣)에는 일정한 주인이 없어 강자와 약자가 서로 횡포를 부렸다. 의양현(宜陽縣)에 팽아(彭娥)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부모와 형제 열 식구가 모두 장사(長沙)의 적(賊)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 때 팽아는 물동이를 이고 시내에 나가 물을 긷다가 적이 온다는 말을 듣고 곧 달려 돌아왔다. 그 집의 벽이 다 부서진 것을 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적과 격투했다. 적은 팽아를 결박하고 시내로 끌고 나가 죽이려 했다. 시냇가에 높은 산이 있었는데 그 석벽이 수십 길이나 되었다. 팽아는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어 말하였다. ‘황천(皇天)이여, 과연 신(神)이 있습니까. 내게 무슨 죄가 있기에 이런 변을 당하게 하나이까?’ 그리고는 곧 산을 향해 달려갔다. 산은 곧 갈라져 너비가 수장이나 되었고 평탄한 길은 숫돌과 같았다. 또 도적떼가 쫓아 오므로 팽아는 그 산 사이로 들어갔다. 산은 무너지면서 다시 합쳐져 전과 같아졌고, 도적들은 모두 죽어 땅 속에 묻히면서 머리만 나와 있었다. 팽아는 숨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팽아가 버린 물그릇은 돌로 변해 그 모양이 닭과 같았으므로 그 지방 사람들은 그것을 돌닭산[石雞山]이라 하고 그 물을 ‘팽아의 못’이라 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유명록(幽冥錄)』에 나온다.]
진(晋)나라 태말현(太末縣)의 오도종(吳道宗) 어머니의 변화 진(晋)나라 의희(義熙) 4년(408)에 동양군(東陽郡) 태말현(太末縣)에 살고 있는 오도종(吳道宗)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 있으면서 아직 아내를 두지 못했었다. 하루는 도종이 품팔이로 나가 집에 없었는데, 그 집에서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웃 사람들은 가만히 엿보다가, 그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검은 반점이 있는 호랑이만을 보았다. 그들은 놀라면서 호랑이가 그 어머니를 잡아먹을까 봐 두려워해, 곧 북을 울려 사람을 모으고 함께 가서 그녀를 구출하려고 집을 에워싸고 돌진했다. 그러나 호랑이는 보이지 않고 그 어머니만 있어 평상시와 같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말 뜻은 알 수가 없었다. 그 아들이 돌아오자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다. “전생에 지은 죄에 쫓김을 당해 앞으로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 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어머니를 잃어버렸다. 그 고을에 호랑이 재앙이 자주 일어났다. 사람들은 모두 말하였다. “그 어머니가 검은 반점의 호랑이로 변화해 백성들을 해치는 것이다.” 그리고는 곧 사람을 풀어 호랑이를 잡으려 하다가 여러 사람이 죽었다. 뒤에 사람들은 그 호랑이를 활로 쏘고 또 창으로도 그 배를 찔렀지만 잡을 수는 없었다. 며칠 뒤에 호랑이는 그 집에 돌아와 옛 평상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드디어 평상에 엎드려 죽고 말았다. 그 아들은 울부짖으며 그 어머니를 법대로 장사지내고, 아침 저녁으로 거기 가서 곡(哭)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제해기(齊諧記)』에 나온다.]
진(晋)나라 부양현(復陽縣)에 소의 변화 진(晋)나라 부양현(復陽縣) 어느 마을에 어떤 집 아이가 소를 쳤다. 그 소는 갑자기 이 아이를 핥았는데, 소가 핥은 자리의 살이 다 하얗게 되면서 아이는 조금 뒤에 죽었다. 그 집에서는 이 아이를 장사지내고 그 소를 잡아 손님들을 대접했다. 이 쇠고기를 먹은 남녀 20여 인은 다 호랑이로 변했다.[이 한 가지 증험은 『고미광주기록(顧微廣州記錄)』에 나온다.]
염제(炎帝)의 딸의 변화 염제(炎帝)의 딸 아(娃)는 동해(東海)에서 헤엄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그는 정위(精衛)로 변화해 그 형상이 마치 까마귀와 같이 되었다. 그것은 항상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물고 와서 동해를 메우려 했다. 과부(夸父)는 해와 경주하면서 목이 말라 강물을 마셨다. 강물이 다 말라 버리자 다시 북쪽으로 가서 큰 못물을 마시러 갔으나 미처 거기에 가기 전에 길에서 죽었다. 그가 버린 지팡이는 등림(鄧林)으로 변화하였다.[위의 한 가지 증험은 『산해경(山海經)』에 나온다.]
제전잡기(諸傳雜記)의 변화 『박물지(博物志)』에서 말하였다. “송지(松脂)가 땅에 스며들어 천 년이 되면 복령(伏苓)으로 변화하고 복령이 천 년이 되면 호박(虎魄)이 된다. 호박은 일명 강주(江珠)라고 하는데 태산(太山)에는 복령은 있으나 호박은 없고, 익주(益州) 영창(永昌)에서는 호박은 나지만 복령은 없다.” 혹은 또 말하기를 “벌집을 태워 만든다”고도 한다. 이 두 가지 설(說)이 있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신농본초경(神農本初經)』에서 말하였다. “계란의 흰자위와 노란자위를 한데 섞어 삶되, 아직 연할 때에 마음대로 거기에 무슨 물건이나 새긴 뒤에 쓴 술에 담가 며칠 밤 지나 이미 단단해지거든 분(粉) 속에 묻어 둔다. 이것은 가짜로 진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이것은 세상에서 흔히 하는 일인데 무엇이나 만들 수 있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서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늙은 부추[韮:향초의 일종]는 늙으면 관(雚)이 되고 부들은 늙으면 갈대가 된다.” 또 『수신기(搜神記)』에서 말하였다. “토봉(土蜂)을 과라(蜾蠃:나나니벌)라 하는데, 요새 세상에서 말하는 열옹(蠮螉:나나니벌)으로서 허리가 가는 벌의 일종이다. 그것은 수컷만 있고 암컷은 없어 교접도 못하고 새끼를 낳지 못한다. 항상 뽕나무 벌레의 새끼를 잡아다가 그것을 길러 제 새끼로 만든다.”
진(秦)나라 때 강남(江南)에 정묘신의 변화 진(秦)나라 주방(周訪)은 젊을 때에는 상인(商人)들과 함께 강을 거슬러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저녁이 되어 궁정묘(宮亭廟) 밑에서 잤다. 저희들끼리 의논하였다. “누가 저 사당 안에 들어가 잘 수 있겠는가?” 주방의 성품이 담대하고 용감하였으므로 주방이 사당에 올라가 잤다. 밤이 다 지날 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그는 사당 안에서 머리가 하얀 노인을 보고 그를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숫오리로 변화했다. 주방은 그것을 잡아 가지고 배로 돌아와서 삶으려 했다. 그런데 그것이 곧 날아가 버렸다. 그 뒤에 아무 일도 없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술이기(述異記)』에 나온다.]
진(秦)나라 때 남방(南方)에 낙민(落民)의 머리가 날아다닌 변화 진(秦)나라 때에 남방(南方)의 어떤 낙민(落民)은 그 머리가 날아다녔다. 그 종족 사람들의 부락에서 지내는 제사를 충락(蟲落)이라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오(吳)나라 때 장군(將軍) 주환(朱桓)은 한 계집종을 두었는데, 밤마다 누운 뒤에는 문득 그녀의 머리가 날아가곤 했다. 혹은 개구멍으로 드나들기도 하고 혹은 창문으로 드나들기도 했다. 그 때는 그 귀를 날개로 삼아 새벽이 될 때면 다시 돌아오곤 했다. 자주 이렇게 하였으므로 곁의 사람들이 괴상히 여겨 밤중에 불을 켜고 살펴 보았다. 오직 몸만 있고 머리는 없었다. 그 몸에는 약간 찬 기운이 돌았고 숨은 겨우 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불로 덮어 두었다. 새벽이 되어 머리는 돌아왔으나 몸이 이불에 덮여 있었으므로 붙을 수가 없어 두 번 세 번 땅에 떨어지면서 한숨지으며 매우 시름했다. 그 몸은 숨길이 급하고 곧 죽을 것 같았는데 이불을 벗기자, 머리는 다시 목에 붙어 조금 있다가 평온을 되찾았다. 주환은 큰 괴물이라 하여 두려워서 그녀를 집에 둘 수 없어 쫓아냈다. 그 뒤에 그것이 큰 괴물임을 알았다. 그 때 남정대장(南征大將)도 가끔 그것을 만났다. 또 전에 어떤 사람은 그것을 구리쇠 소반으로 덮어두었더니 머리가 다시 붙지 못해 드디어 죽고 말았다.
고양씨(高陽氏)가 부부(夫婦)를 같이 낳은 변화 옛날 고양(高陽)씨의 때에 함께 나서 부부가 된 사람이 있었다. 임금은 그들을 공동산(崆峒山) 들로 쫓아내었다. 그들은 서로 안고 죽었다. 신조(神鳥)가 불사초(不死草)로 그들을 덮어 두었다. 7년 뒤에 아들과 딸이 한 몸으로 태어났는데, 머리는 둘이요 발은 넷이며 손도 넷이었다. 이것을 몽쌍씨(蒙雙氏)라 한다.[위의 두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위(魏)나라 심양현(尋陽縣) 북산(北山)의 오랑캐가 요술을 부린 변화 위(魏)나라 때 심양현(尋陽縣) 북쪽 산중에 어떤 만인(蠻人)이 있었는데 술수[術]가 있었다. 그는 능히 사람을 호랑이로 변화시켰는데 그 털 빛과 그 몸이 진짜 호랑이와 같았다. 다른 고을 사람 주진(周畛)은 종 한 명을 두고 있었는데 그를 시켜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라고 했다. 그 종은 그 아내와 누이동생과 함께 갔다. 산에 이르러 종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우선 저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내가 하는 것을 보아라.” 그들은 그 말대로 했다. 조금 있다가 종은 풀 속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누런 반점이 있는 큰 호랑이가 되어 풀 속에서 나왔다. 대단한 기세로 부르짖으니 매우 무서웠으므로, 두 사람은 크게 두려워했다. 한참 있다가 그것은 다시 풀 속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다시 사람이 되어 나와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집에 돌아가서는 부디 이런 말을 하지 말라.” 그러나 그 뒤에 그들은 결국 친한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종도 그런 줄을 알았다. 이에 그들은 그에게 독한 술을 먹여 아주 취해 잠들게 하고는 사람을 시켜 그 옷을 벗기고 몸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아무것도 다른 점이 없었다. 다만 그 상투 속에 종이 한 장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큰 호랑이가 그려져 있고 호랑이 곁에 부적(符籍)만 있었다. 주진은 가만히 그것을 다 베껴 간직했다. 종이 술에서 깨어나자 그들은 그를 불러 따져 물었다. 종은 사실이 다 탄로난 줄을 알고 드디어 그 본말을 자세히 말했다. “전에 내가 만인들에게서 쌀을 사들일 때, 어떤 만인의 스승이 ‘내게 술(術)이 있다’고 말하기에, 베 석 자와 백미 한 말과 붉은 수탉 한 마리와 술 한 말을 그에게 주어 이 법을 얻었다.”
위(魏)나라 청하(淸河) 송사(宋士)의 어머니가 목욕으로 인한 변화 위(魏)나라 때에 청하(淸河)에 살고 있던 송사종(宋士宗)의 어머니는 황초(黃初) 연간 여름에 욕실에서 목욕하려고, 집안 자녀들을 다 문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 방 안에 있었다. 한참 있다가 그 집 사람들은 그녀의 뜻을 알 수 없어 벽 틈으로 가만히 엿보았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목욕통에는 큰 자라 한 마리만이 있었다. 그래서 모두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끝내 사람의 모습이 되지 않고, 전에 꽂고 있던 은비녀는 머리 위에 그대로 있었다. 모두 지켜 보면서 울었으나 어찌할 수 없었으며, 나가라고 하고 싶었으나 영 들어 주지 않았다. 며칠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것은 스스로 문 밖으로 튀어 나와 빨리 달아났는데 아무리 쫓아도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드디어 어떤 물로 들어갔다. 며칠 뒤에 그것은 갑자기 집에 돌아와 평상시와 같이 집을 돌아다니다가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가버렸다. 그 때 사람들은 사종에게 상례(上禮)를 지내고 복(服)을 입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종은 “어머니의 몸은 비록 변했으나 살아 있으니 이치로 보아 아직 그렇게 할 수 없다” 하고 끝내 치상(治喪)하지 않았다. 이것은 강하(江夏)의 황모(黃母)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위의 두 증험은 『속수신기(續搜神記)』에 나온다.]
양(梁)나라 때의 개선사(開善寺)는 경조(京兆) 사람 위영(韋英)의 저택이었다. 위영은 일찍 죽고 그 아내 양(梁)씨는 초상도 치르지 않고 다시 하내(河內)의 향자집(向子集)을 남편으로 맞이했다. 비록 개가(改嫁)는 했다 하나 위영의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었다. 위영은 이것을 알고 대낮에 말을 타고 여러 사람을 데리고 그 집 뜰에 와서 “아양(阿梁)아, 그대는 나를 잊었는가?”라고 했다. 자집이 놀라 활을 쏘니 위영은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나, 그는 곧 복숭아 사람으로 변하고 그가 탔던 말도 띠풀말로 변했으며 데리고 온 여러 사람도 다 부들 사람으로 변했다. 양씨는 두려워하여 드디어 자집을 버리고, 그 집을 절로 만들었다.[이것은 『낙양사기(洛陽寺記)』에 나온다.]
26. 면몽편(眠夢篇)[여기에 5부가 있다.]
술의부(述意部) 삼성부(三性部) 선성부(善性部) 불선부(不善部) 무기부(無記部)
(1) 술의부(述意部) 원래 이 한 마음이 쌓여 삼계(三界)가 되었는데 어리석은 무리들은 자만하다가 거기 떨어져 헤매고 있다. 그 한계를 알고자 하나 그 근본을 헤아리기 어렵구나. 그러므로 저 멀리 무시(無始)로부터 지금의 몸에 이르기까지 생사에 떠돌아다님은 티끌처럼 많은 겁으로도 견줄 데 없다. 밝고 어두움이 번갈아 오고 섶과 불로는 비유할 수 없으며, 흘러가는 물이 빠른 것이 아니라, 그릇의 달을 보전하기 어렵도다. 또 성쇠(盛衰)의 도(道)는 시간과 더불어 서로 얽히고 수몽(睡夢)의 길은 마음으로 인해 움직인다. 움직임은 내식(內識)을 말미암고 경계는 외훈(外熏)을 말미암으며 연(緣)은 아름답고 추함[好醜]을 훈(熏)하고 꿈은 3성(性)에 통한다. 만일 잠에 선악이 있으면 꿈에 길흉(吉凶)이 있으니 이것을 유기(有記)라 하고, 만일 습관에 선악이 없으면 평범한 일을 두루 보나니 이것을 무기(無記)라 한다. 만일 낮에 청황(靑黃)을 만연하면 꿈의 생각도 도리어 같나니 이것을 생각의 꿈이라 하고, 만일 오르고 잠김을 보면 물과 불이 번갈아 침노하나니, 이것을 병(病)의 꿈이라 한다. 비록 꿈이 3성(性)에 통하나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나니 이 일을 알고자 하면 그것은 아래의 경전에서 말한 것과 같다.
(2) 삼성부(三性部) 『선견율(善見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꿈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4대(大:온몸)가 고르지 못한 꿈이요, 둘째는 먼저 보았던 것을 꾸는 꿈이며, 셋째는 천인(天人)의 꿈이요, 넷째는 생각했던 것을 꾸는 꿈이다. 【문】 어떤 것이 4대가 고르지 못한 꿈인가? 【답】 만약 잠을 잘 때 혹은 꿈에서 산이 무너지는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허공으로 날아 오르기도 하며 혹은 호랑이ㆍ이리ㆍ사자ㆍ도적 등에게 쫓기기도 하나니 이것이 바로 4대가 고르지 못한 꿈으로서 거짓이요 참이 아니다. 【문】 어떤 것을 먼저 보았던 것의 꿈이라고 하는가? 【답】 혹은 낮에 해를 보았거나 혹은 흰 것을 보았거나 혹은 검은 것을 혹은 남자를 혹은 여자를 보면 밤에 잠을 잘 때 꿈에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먼저 보았던 것을 꾸는 꿈이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참이 아니다. 【문】어떤 것을 천인의 꿈이라 하는가? 【답】만약 선지석(善知識)이나 천인들이 그를 위하여 선(善)한 꿈을 나타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선하게 하거나, 또는 악지식(惡知識)이 그를 위해 악한 꿈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곧 진실한 것이다. 【문】 어떤 것을 생각했던 것을 꾸는 꿈이라고 하는가? 【답】 이 사람의 전신(前身)이 혹 복덕이 있거나 혹은 죄장(罪障)이 있는 것이니, 만일 복덕이 있으면 좋은 꿈이 나타나고 죄장이 있으면 나쁜 꿈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어머니와 같은 경우이니 보살이 처음 어머니의 태 안에 들어갈 때에, 꿈에 흰 코끼리가 도리천(忉利天)에서 내려와 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는 것을 본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각했던 것을 꾸는 꿈이다. 또 만일 꿈에 부처님께 예배하고 경전을 독송하며 지계ㆍ보시 등의 갖가지 공덕을 지으면 이것도 생각했던 것을 꾸는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문】 꿈은 선(善)인가, 불선인가, 무기인가? 【답】 선도 되고 불선도 되며 무기도 된다. 만일 꿈에 부처님께 예배하거나 법을 듣거나 설법하는 것을 보면 이것은 바로 선한 공덕이요 만약 꿈에 살생ㆍ도둑질ㆍ음행 따위를 보면 이것은 바로 불선한 꿈이며 만약 꿈에서 청ㆍ황ㆍ적ㆍ백ㆍ흑 등의 빛깔을 보면 이것은 무기의 꿈이다. 【문】만약 그렇다면 반드시 과보를 받아야 하는가? 【답】 과보를 받지 않는다. 왜냐 하면 마음으로 지은 업은 미약하여 과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律)에서 말하기를 ‘꿈 속에서 생긴 일은 제외하나니 범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가전연론(迦旃延論)』에서 말하였다. “【문】 어떤 것을 일체의 잠[睡]과 꿈이 서로 상응(相應)한다고 하는 것인가? 【답】 혹은 수(睡)하되 면(眠)하지 않는 것이 서로 호응하는 것이니, 마치 면하지 않을 때에는 몸도 마음도 유연[軟]하지 않고 몸도 마음도 무거우며 몸도 마음도 몽매하고 몸도 마음도 시끄러우며 몸도 마음도 수(睡)하나니 이렇게 수에 얽매이는 것을 수와 불면(不眠)이 서로 호응한다고 말한다. 【문】 어떤 것을 면(眠)과 불수(不睡)가 서로 호응한다고 하는가? 【답】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의 면몽(眠夢)이니, 이것을 면(眠)과 불수(不睡)가 서로 호응한다고 말한다. 【문】 어떤 것을 수와 면이 서로 호응한다고 하는가? 【답】 더럽고 물든 마음의 면몽을 바로 수와 면이 서로 호응한다고 한다. 【문】 어떤 것을 수하지도 않고 면하지도 않는다 하는가? 【답】 이상의 사실을 다 제외한 것이다. 【문】 면이란 선인가, 불선인가, 무기인가? 【답】 면은 혹 선이 되기도 하고, 혹은 불선 혹은 무기가 되기도 한다. 【문】 어떤 것이 선이 되는가? 【답】 선한 마음의 면몽이다. 【문】 어떤 것이 불선이 되는가? 【답】 불선한 마음의 면몽이다. 【문】 어떤 것이 무기가 되는가? 【답】 이상의 사실을 제외한 것이다. 꿈 속에서 보시하여 복을 짓거나 계를 지키고 재(齋)를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선한 마음으로 잠을 잘 때에 지은 복과 같은 것은 마땅히 다른 복의 회향(迴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니 이것을 선이라고 한다. 【문】 어떤 것을 잠을 잘 때에 지은 복이 아니라 하며, 마땅히 회향이라고 해야 하는가? 【답】 마치 꿈 속에서 살생하거나 도둑질하는 것 등과, 불선한 마음으로 잠을 잘 때와, 다른 복을 짓지 않는 마음의 회향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불선이라고 한다. 【문】 어떤 것이 잠을 잘 때에 복과 복이 아닌 것을 짓는 것이며, 마땅히 회향이라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답】 잠을 잘 때에 복의 마음도 아니요 복이 아닌 마음도 아닌 회향과 같은 것이니 마치 무기와 같은 마음이다. 잘 때에 지은 복이나 복이 아닌 것은 마땅히 회향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무기라고 한다. 【문】 꿈이란 어떤 등류의 법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답】 이것은 다섯 가지 번뇌[蓋] 가운데 무명개(無明蓋)이다.”
(3) 선성부(善性部) 『출생보리심경(出生菩提心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 가지의 좋은 꿈은 훌륭한 법을 얻는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하면 이른바 잠자다가 꾼 꿈에 연꽃을 보거나 혹은 일산을 보거나 혹은 달을 보거나 또는 부처님의 형상을 보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는 스스로 경행(慶幸)해야 하느니라. 즉 ≺나는 훌륭한 법을 만났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게송을 설하셨다.
만일 꿈에서 연꽃을 보거나 또 꿈에서 일산을 보거나 또 혹은 꿈에서 달을 보면 반드시 큰 이익을 얻으리라.
또 만일 꿈에서 부처님 형상이나 모든 상(相)을 구족한 장엄한 몸을 보면 그것을 본 중생은 기뻐하면서 틀림없이 조어사(調御師) 되리라 생각하라.”
또 『잡보장경(雜寶藏經)』에서 말하였다. “옛날 악생왕(惡生王)은 잔인하고 사나운 행을 행하고 자비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이 사견(邪見)만 가지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가전연(迦旃延)을 보내어 그가 태어난 본국을 교화하게 하여 악생왕과 그 부인으로 하여금 신심을 내게 하였다. 왕의 대부인 시바구사(尸婆具沙)가 뒤에 태자를 낳았는데 그 이름을 교파라(喬波羅)라고 하였다. 그 때 왕은 잠을 자다가 꿈에 여덟 가지 일을 보았다. 첫째는 머리에 불이 붙은 것이고, 둘째는 뱀 두 마리가 왕의 허리를 감은 꿈이며, 셋째는 가는 쇠그물이 왕의 몸을 얽어맨 꿈이고, 넷째는 붉은 물고기 두 마리가 왕의 두 발을 문 것이며, 다섯째는 흰 학 네 마리가 왕을 향해 날아오는 꿈이고, 여섯째는 핏빛 진흙탕을 걸어가는데 그 진흙이 겨드랑이까지 올라온 꿈이며, 일곱째는 태백산(太白山)을 올라가는 꿈이고, 여덟째는 황새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꿈이었다. 왕은 꿈에서 깨어나 매우 불길하다 생각하고 근심하고 걱정하다가 곧 외도 바라문을 찾아갔다. 외도는 이 왕의 꿈 이야기를 듣고, 평소부터 왕을 꺼리었고 또 존자 가전연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그 꿈 이야기를 듣고 곧 왕에게 말하였다. ‘그 꿈은 매우 불길합니다. 만일 신에게 빌지 않으면 그 화가 대왕님께 미칠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는 진실로 그러리라고 믿고는 더욱 근심하고 괴로워하면서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 신에게 기도를 하려면 어떤 물건이 필요하오?’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다 대왕님이 매우 아끼는 물건들입니다. 내가 만약 말하더라도 대왕님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이 꿈이 너무도 나빠서 다만 큰 화가 내 몸에 미칠까 두려울 뿐이오. 내 몸 외에 아무것도 아낄 것이 없으니 부디 날 위해 거기에 필요한 물건을 말해 주시오.’ 바라문은 왕의 간절함을 보아 그 마음의 지극함을 알고는 곧 왕에게 말하였다. ‘그 꿈이 여덟 가지이니 거기에 필요한 것도 여덟 가지라야 그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왕이 공경하는 부인 시바구사를 죽여야 하고, 둘째는 왕이 사랑하는 태자 교파라를 죽여야 하며, 셋째는 재상[輔相]인 대신을 죽여야 하고, 넷째는 왕의 소유인 오신(烏臣)을 죽여야 하며, 다섯째는 하루에 3천 리를 가는 왕의 코끼리를 죽여야 하고, 여섯째는 하루에 3천 리를 가는 왕의 낙타를 죽여야 하며, 일곱째는 왕의 좋은 말을 죽여야 하고, 여덟째는 왕이 존경하는 스님 가전연을 죽여야 합니다. 지금부터 7일까지 이 여덟 가지를 죽이고 그 피를 모아 가지고 다니면 그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자기 목숨이 중하기 때문에 곧 허락했다. 그리고는 궁중으로 돌아와 근심하고 괴로워했다. 그 부인이 왕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왕은 부인에게 이상의 불길한 꿈에 대하여 다 이야기하고, 또 바라문이 말한 재앙을 물리치는 데 필요한 것에 대해서도 다 말했다. 부인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말하였다. ‘다만 대왕의 몸만 걱정이 없고 편안하게 된다면 이 천한 첩의 몸이야 무엇이 귀하다 하겠습니까.’ 이어 또 아뢰었다. ‘지금부터 7일 뒤면 나는 죽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저 존자 가전연에게 가서 6일 동안 계를 받고 법을 들으려고 하니 허락해 주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그럴 수 없소. 만일 그대가 저기에 가서 혹 이런 사정을 다 이야기해, 만일 그가 알게 되면 나를 버리고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오.’ 그러나 부인이 하도 간절히 청하였으므로 왕은 허락하였다. 부인이 존자에게 가서 예배하고 문안한 지 사흘이 지나갔다. 존자가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부인은 지금까지 여기 와서 잔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왜 평상시와 다릅니까?’ 부인은 왕의 나쁜 꿈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고 ‘지금부터 7일 후면 왕은 우리들을 죽여 액땜을 할 것입니다. 남은 목숨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일부러 와서 설법을 듣는 것입니다’ 하고 다시 왕의 꿈을 이야기했다. 존자 가전연이 말하였다. ‘그 꿈은 매우 좋은 꿈입니다. 반드시 경사가 있을 것이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첫째 머리에 불이 붙었다는 꿈은 보주국(寶主國)에서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있는 천관(天冠)을 가지고 와서 왕에게 공물(貢物)로 바칠 것이니 정녕코 그렇게 될 꿈입니다.’ 부인은 마음이 급했다. 앞으로 7일이 차면 왕에게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 천관이 오는 시기가 늦어질까 걱정이 되어 부인은 존자에게 물었다. ‘그것이 언제 오겠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오늘 저녁 때에는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두 번째 꿈인 두 마리 뱀이 허리를 휘감았다는 것은, 월지국(月支國)의 왕이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있는 쌍검(雙劍)을 바칠 꿈이니, 그것도 오늘 저녁 때 올 것입니다. 세 번째 가는 쇠그물이 몸을 얽어맨 꿈은 대진국(大秦國)의 왕이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구슬 영락을 바칠 꿈이니, 그것은 내일 새벽에 올 것입니다. 네 번째 빨간 물고기가 발을 물었다는 꿈은 사자국(師子國)의 왕이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비유리(毘琉璃)신을 바칠 꿈이니, 그것도 내일 아침 밥 먹을 때가 되면 올 것입니다. 다섯 번째 흰 학 네 마리가 왔다는 꿈은, 발기국(跋耆國)의 왕이 금을 바칠 것이니, 그것도 내일 점심 때에 올 것입니다. 여섯 번째 핏빛 진흙탕 속을 거닐었다는 꿈은, 안식국(安息國)의 왕이 10만 냥 금의 값어치가 나가는 사슴털로 짠 흠바라의(欽婆羅衣)를 바칠 꿈이니, 그것도 내일 해질 때에 올 것입니다. 일곱 번째 태백산으로 올라갔다는 꿈은, 광야국(曠野國)의 왕이 큰 코끼리를 바칠 꿈이니, 내일 저녁 때에 올 것입니다. 여덟 번째 황새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는 꿈은, 왕과 부인 사이에 비밀한 일이 있을 것이니, 그 일은 닥치면 스스로 아실 것입니다.’ 과연 존자의 말과 같이 기한이 되자 여러 나라에서 바치는 물건들이 모두 도착했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시바구사 부인이 전에 썼던 천관(天冠)에다 보주국에서 바친 천관을 겹쳐 씌워 주었다. 왕은 그리고 다시 장난삼아 시바구사 부인이 쓰고 있는 천관 하나를 벗겨 금만(金鬘) 부인의 머리에 씌웠다. 그러자 시바구사 부인이 성을 내면서 말했다. ‘만일 나쁜 일이 있었다면 내가 먼저 당했을 것인데, 지금 얻은 천관을 저이에게 씌우십니까?’ 그러면서 타락 그릇을 왕의 머리에 던졌다. 왕의 머리에는 온통 타락이 묻어 더러워졌다. 왕은 매우 화를 내어 칼을 뽑아 부인을 치려 했다. 부인은 두려워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걸어버렸다. 왕은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왕은 존자가 말한 ‘남모르는 사사로운 일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왕은 부인과 함께 존자 가전연에게 가서 위의 사실을 자세하게 이야기한 뒤에 ‘만일 우리가 법답지 않은 사악한 말을 믿었더라면 존자님과 처자와 대신과 사랑하는 것들을 다 죽일 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존자의 은혜를 입어 그런 나쁜 일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하고는 존자를 공경하며 받들어 공양하였다. 그리고는 이도 바라문들은 다 멀리 국경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왕이 존자에게 물었다. ‘어떤 인연이 있어 저 여러 나라에서 그런 보물을 내게 바쳤습니까?’ 존자는 대답하였다. ‘과거 91겁 전에 비바시(毘婆尸)라는 부처님께서 계셨습니다. 그 부처님께서 출현하셨을 때에 반두(槃頭)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왕태자는 불법을 믿고 좋아하면서 정진하였습니다. 그는 그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 공양하고 예배한 다음에 자신이 쓰고 있던 천관과 보검ㆍ영락ㆍ큰 코끼리ㆍ보배 수레ㆍ흠바라의(欽婆羅衣) 등을 그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이 복의 인연으로 태어나는 곳마다 존귀하게 되어 가지고 싶은 모든 보물이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렀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더욱 삼보(三寶)에 대하여 깊이 공경하고 믿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하여 왕은 예배하고 궁중으로 돌아왔다.”
(4) 불선부(不善部) 『발각정심경(發覺淨心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마땅히 스무 가지의 수면(睡眠)의 온갖 허물을 보아야 한다. 무엇이 그 스무 가지인가? 첫 번째는 수면을 즐기는 자는 마땅히 게으를 것이요, 두 번째는 몸이 무거울 것이며, 세 번째는 피부가 더러울 것이요, 네 번째는 피부가 꺼칠꺼칠할 것이다. 다섯 번째는 모두가 크게 더럽고 탁하며 위덕(威德)이 박약할 것이요, 여섯 번째는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을 것이며, 일곱 번째는 몸에 부스럼이 생기고 여덟 번째는 게으름을 많이 피울 것이다. 아홉 번째는 어리석음의 그물이 증장할 것이요, 열 번째는 지혜가 약할 것이며, 열한 번째는 피곤해지기 쉬울 것이요, 열두 번째는 어둠 속으로 나아갈 것이며, 열세 번째는 남들이 공경하지 않을 것이요, 열네 번째는 성품이 어리석을 것이다. 열다섯 번째는 온갖 번뇌가 많고 마음이 온갖 번뇌로 향할 것이요, 열여섯 번째는 선법(善法)에 대해 욕심을 내지 않을 것이며, 열일곱 번째는 모든 깨끗한 법이 감소될 것이며, 열여덟 번째는 항상 두려움 속에 있을 것이요, 열아홉 번째는 정진하는 사람을 보면 헐뜯고 욕할 것이요, 스무 번째는 대중 속에서 남의 천대를 받을 것이다.’” 또 『국왕불리선니십몽경(國王不黎先泥十夢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불리선니(不黎先泥)라는 어떤 나라의 왕이 열 가지 꿈을 꾸었다. 첫 번째는 세 개의 병이 나란히 있는데, 양쪽 가에 있는 병에서는 가득한 기운이 나와 서로 오가면서도 가운데의 빈 병에는 들어가지 않는 꿈이었고, 두 번째는 어떤 말이 입으로도 먹고 꽁무니로도 먹는 꿈이었다. 세 번째는 조그만 나무에 꽃이 피어 있는 꿈이었고, 네 번째는 조그만 나무에 열매가 맺어 있는 꿈이었다. 다섯 번째는 어떤 사람이 새끼를 꼬고 있는데, 그 뒤로 염소와 염소 주인이 새끼를 먹는 꿈이었고, 여섯 번째는 여우가 금평상 위에 앉아 금그릇의 밥을 먹고 있는 꿈이었다. 일곱 번째는 큰 소가 도리어 송아지의 젖을 먹는 꿈이었고, 여덟 번째는 네 마리 소가 사방에서 울며 와서 서로 싸우려 하면서 싸움이 붙을 듯 말 듯하다가 사라지는 꿈이었다. 아홉 번째는 큰 물이 복판은 흐릿하고 네 가장자리는 맑은 꿈이었고, 열 번째는 큰 개울물이 빨갛게 흐르고 있는 꿈이었다. 왕은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나서는 그 나라와 자신과 처자들이 망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튿날 왕은 공경(公卿) 대신과 모든 도인과 꿈 해몽(解夢)에 밝은 자들을 불러서 물었다. ‘내가 어젯밤에 이런 열 가지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깨어나 몹시 불안함을 느꼈다. 누가 이 꿈을 해몽할 수 있겠는가?’ 어떤 바라문이 말했다. ‘제가 그 꿈을 풀이할 수는 있으나 왕이 들으시면 몹시 근심하고 불쾌해 하실까 두렵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경이 아는 대로 숨기지 말고 다 말하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대왕님의 꾸신 꿈은 다 나쁜 징조입니다. 그 애지중지하는 부인과 태자 및 친척ㆍ시자(侍者)ㆍ노비 등을 다 죽여 하늘에 제사 지내야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가지신 침구와 몸에 장식한 보배 장식품들을 모조리 불태워 하늘에 제사 지내야 다른 탈이 없을 것입니다.’ 왕은 꿈이 아주 나쁘다는 말을 듣고 매우 걱정이 되고 불안하여 곧 재실 방에 들어가서 이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부인 마니(摩尼)가 왕에게 와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재실방에 들어와 걱정하고 불안해 하고 계십니까? 혹 내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당신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소. 그저 내게 걱정이 있을 뿐이오.’ 부인이 다시 묻자 왕이 말하였다. ‘내게 묻지 마시오. 당신도 들으면 불쾌할 것이오.’ 부인이 다시 말했다. ‘나는 왕의 반쪽 몸입니다. 설사 좋건 나쁘건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말해야 할 터인데, 왜 말하지 않습니까?’ 왕이 할 수 없이 열 가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다 말했다. 부인이 말하였다. ‘왕께서는 아무 걱정 마십시오. 마치 사람이 금을 살 적에 돌에 갈아보면 좋고 나쁜 빛깔이 저절로 돌에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지금 부처님께서 여기서 멀지 않은 가까운 정사(精舍)에 계십니다. 왜 거기 가서 물어 보지 않습니까? 만일 부처님께서 해몽해 주시거든 왕께선 그 말씀을 따르십시오.’ 왕은 그 말을 따라 곧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레를 장엄하게 꾸며 타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대어 예를 올리고 아뢰었다. ‘내가 어젯밤에 열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갖추어진 내용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나서는, 내 나라와 처자들이 망하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이 열 가지 꿈에 대하여 해몽해 주십시오. 그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왕이 꾼 꿈은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 꿈의 내용은 모두 후세에 다가올 일이지 금세의 나쁜 일이 아닙니다. 이 뒷세상의 사람들은 법으로 금하는 계율을 두려워하지 않고 음일하고 이익을 탐하고 질투하며 만족할 줄 모르고, 의리가 적고 자비심이 없으며 기뻐하고 성내면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첫 번째 꿈에서 본, 나란히 있는 세 개의 병에서 가득한 기운이 나와 가에 있는 두 병에만 서로 왕래하면서 가운데 빈 병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부귀한 사람은 부귀한 사람끼리만 서로 따르고 가난한 사람과 친근히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이 꾼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라와 태자와 부인에게도 다 별 탈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두 번째 꿈에 보인 말이 입으로도 먹고 꽁무니로도 먹었다는 것은, 후세 사람이 제 왕과 대신은 국고에서 먹고 현관(縣官)은 봉록(俸祿)에서 먹으면서 또 백성들의 것을 빼앗아 먹으면서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세 번째 꿈에 보인 작은 나무에 꽃이 핀 것은, 후세 사람들은 나이 30세도 못되어 머리에 백발이 나고 탐하고 음란하고 욕심이 많아서 나이는 젊은데도 쉽게 늙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네 번째 왕의 꿈에 보인 작은 나무에 열매가 맺은 것은, 후세의 여자들은 나이 15세가 못 되어 시집갔다가 아이를 안고 돌아오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다섯 번째 꿈에 보인 어떤 사람이 새끼를 꼬고 있는데 그 뒤로 염소와 염소 주인이 새끼를 먹은 것은, 후세 사람들은 남편이 장사하러 밖으로 나가면 그 아내는 뒤에서 남의 집 남자와 간통하면서 그 재물을 먹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여섯 번째 왕의 꿈에 보인 여우가 금평상 위에 앉아서 금그릇의 음식을 먹은 것은, 후세 사람은 미천한 사람이 갑자기 존귀해지고 재산이 있어 여러 사람들이 존경하고 두려워하며, 공후(公侯)의 자손들은 다시 빈천하게 되어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뒤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일곱 번째 왕의 꿈에 보인 큰 소가 도리어 송아지의 젖을 먹은 것은, 후세 사람들은 예의(禮儀)가 없어, 어머니가 도리어 딸을 위해서 중매를 서서 다른 집 남자를 꾀어다가 딸과 간통하게 하고는 재물을 구해 살아가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덟 번째 왕의 꿈에 보인 네 마리 소가 사방에서 울며 와서 서로 싸우려 하면서 싸움이 붙을 듯 말 듯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은, 후세의 제왕과 장리(長吏) 및 백성들이 지성스런 마음이 없고 서로 속이고 거짓말하고 어리석고 성내면서 친지를 공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가 제때에 오지 않으면 장리와 백성들은 기도하여 비가 오기를 빕니다. 사방에서 구름이 일어나고 번개 치고 천둥 치면 장리와 백성들은 다 비가 올 것이라고 좋아하나, 잠깐 사이에 구름은 흩어지고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왕과 장리와 백성들이 충성하고 정직하며 사랑하고 어진 마음이 없기 때문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아홉 번째 왕의 꿈에 보인 큰 물이 복판은 흐릿하고 네 가장자리는 맑은 것은, 후세에 중국은 시끄럽고 다스려지지 않아 백성들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지 않으나 변방 나라는 사면이 다 맑고 평온하여 백성들은 화목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잘 따른다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열 번째 왕의 꿈에 보인 큰 개울물이 빨갛게 흐른 것은, 후세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다투어 군사를 일으키고 무리지어 서로 공격할 때 거병(車兵)ㆍ보병ㆍ기병을 만들어 서로 싸우고 죽여 그 수를 셀 수 없어 길에서 죽은 사람들의 피가 빨갛게 흐른다는 것이니, 왕의 꿈은 바로 이것입니다. 왕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라와 태자와 부인에게도 다 별일 없을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꿇어앉아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지금 부처님의 은혜를 입고 아주 안온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예배하고 돌아가, 정부인과 궁중 신하들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이로부터는 모든 외도와 바라문들을 믿지 않았다.”
(5) 무기부(無記部)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비구가 대중 속에 있으면서 졸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로 머리를 씻는 것을 허락하겠다. 그래도 졸음이 온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비구들로 하여금 다섯 가지 법으로써 물로 남을 씻어 주게 하셨다. 첫째는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서이고, 둘째는 남을 괴롭히지 않으려는 것이며, 셋째는 잠을 졸거나 잘 때요, 넷째는 머리를 벽에 기댈 때이며, 다섯째는 다리를 펴고 앉을 때이다. 그래도 졸음이 그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는 공을 던지는 것을 허락하셨고, 또 그래도 졸음이 그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는 선장(禪杖)으로 때리는 것을 허락하셨다. 만약 선장을 취할 때에는 마땅히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두 손으로 선장을 잡고 졸고 있는 사람의 정수리 위에 가볍게 놓는다. 그래도 졸음이 그치지 않으면 마땅히 일어나서 졸고 있는 다른 사람을 살펴 선장으로 때리고, 때리고 난 뒤에는 도로 자리에 앉는다. 만약 조는 이가 없으면 선장을 본래 있던 자리에 두고 앉는다. 만약 그래도 졸음이 그치지 않으면 부처님께서는 선진(禪鎭)을 쓰도록 허락하셨다. 홀(笏) 같은 것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 안에 노끈을 꿰고 그 끝에 매듭을 지어서 귀에 걸되, 이마에서부터 거리가 네 손가락쯤 떨어지게 한다. 선진을 착용할 때 선진이 땅에 떨어지면 잠에서 깨어나는 방식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진을 떨어뜨린 사람은 곧 일어나서 거위의 걸음처럼 천천히 걸어야 한다.’ 게송을 읊는다.
혼침(昏沈)과 수면(睡眠)의 번뇌도 온갖 생각에 노니는 허망함을 나타내나니 친족들이 헛되이 모여 부질없이 좋은 잔치 음식 먹는다.
깨고 나면 허무한 것을 망령되게도 애착하고 그리워하니 비록 3성(性)을 통했으나 마침내 7변(變)을 이룬다.”
① 한(漢)나라 감릉부승(甘陵府丞) 문영(文穎) 한(漢)나라 남양(南陽)에 사는 문영(文穎)의 자(字)는 숙량(叔良)이다. 건안(建安) 연간에 감릉부승(甘陵府丞)이 되어 국경을 지나다가 거기서 머물러 잤다. 밤 3경(更) 때 꿈에 어떤 사람이 앞에 와서 꿇어앉아 말하였다. “옛날 내 선인(先人)이 나를 여기에 묻었습니다. 물이 내 무덤을 돌아 흘러 내 관이 물에 잠겨, 반쯤은 말랐지만 그래도 따뜻한 기운이 없습니다. 들으니 마침 당신이 여기에 있다 하기에 와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내일 잠깐 여기 머무르면서 나를 높고 마른 곳으로 옮겨 주셨으면 다행스럽겠습니다.” 귀신은 그의 옷을 헤쳐 문영에게 보였는데 그 옷이 다 젖어 있었다. 문영은 꿈에서 깨어 슬퍼하는 마음으로 결국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측근 사람들이 말하였다. “꿈이란 허망한 것이라, 어찌 족히 괴상하다 하리요.” 그래서 문영은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이 되려 할 때 다시 꿈에 그 사람이 나타나 문영에게 말하였다. “나는 몹시 곤궁하여 당신에게 알렸는데, 당신은 왜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까?” 문영은 꿈 속에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본래 조(趙)나라 사람으로서 지금은 주송민(注送民)의 신(神)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문영이 다시 말하였다. “당신 무덤은 지금 어디 있소?” 그는 대답하였다. “당신이 있는 천막 북쪽 10여 보쯤의 물가에 있는 마른 버드나무 밑에 있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날이 장차 밝으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니, 당신은 잘 기억해 두십시오.” 문영은 승낙하고 이내 잠을 깨었다. 날이 밝아 떠나게 되자 문영은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비록 꿈이라 괴상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찌 이대로 떠날 수 있겠는가?” 좌우 사람들이 말하였다. “어찌 잠깐 동안 징험해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영은 곧 일어나 수십 명의 사람을 데리고 물을 따라 올라가다가 과연 마른 버드나무를 보고는 말하였다.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는 곧 그 밑을 파게 했다. 얼마 안 내려가 과연 관을 발견했는데, 그 관은 매우 썩고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문영은 좌우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 말을 들을 때는 헛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상에 전하는 말이 다 징험이 없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리고는 그 관을 옮긴 뒤에 철제(醊祭)를 지내고 거기서 떠났다.[이 한 가지 증험은 『수신기(搜神記)』에 나온다.]
② 송(宋)나라 진수원(陳秀遠) 송(宋)나라 진수원(陳秀遠)은 영천(穎川) 사람이다. 일찍이 상주(湘州)의 서조(西曹)가 되어 임상현(臨相縣)에서 나그네로 있었다. 젊어서부터 삼보(三寶)를 신봉하여 나이 60세가 넘도록 가업에 더욱 독실히 하여 쇠퇴하지 않게 하였다. 송나라 원휘(元徽) 2년 7월 어느 날 저녁 때에 한가히 누워 잠을 자지 못하고, 만물이 생사에 유전하면서 안정하지 못함을 탄식하며 생각하고, 자신이 어디서 왔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일심으로 기원하면서 꿈의 영감이 있기를 바랐다. 그 날 저녁은 날씨가 음산하였는데 밤에는 촛불조차 없었다.
한참 있다가 베갯머리에서 반딧불 같은 것이 반짝거리면서 날아가더니, 조금 있다가는 온 방이 환하여 마치 낮과 같이 밝았다. 수원은 급히 일어나 합장했다. 잠깐 사이에 뜰 한복판에 4, 5장 높이로 한 다리가 놓여 있었다. 붉게 채색한 난간이 공중에 우뚝 서 있었다. 수원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떠오르는 듯하더니, 조금 있다가 자신이 다리 옆에 편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다리 위에는 남녀들이 왕래하면서 거리를 메웠다.
그 의복과 장식은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끝에는 나이가 30세쯤 된 여자가 위에는 푸른 옷을 입고 아래에는 흰 베치마를 입었으며 수원의 왼쪽에 와서 서 있었다. 조금 있다가 또 어떤 부인이 온몸에 흰 베옷을 입고 왼쪽으로 머리 따아 올리고 손에는 향과 꽃을 들고 수원의 앞에 서서 수원에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 전생의 몸을 알고 싶습니까? 내가 곧 그것입니다. 이 꽃으로 부처님께 공양했기 때문에 여자의 몸을 바꾸어 당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흰 옷 입은 여자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여자는 바로 내 전생의 몸입니다.” 말을 마치고는 떠나갔다.
그녀가 떠난 뒤에 다리도 점점 사라지면서 수원은 홀연히 밑으로 내려가는 듯했다. 그 때 빛도 차츰 사라졌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③ 송(宋)나라 태수(太守) 제갈복(諸葛覆)
송(宋)나라 낭야(琅邪)의 제갈복(諸葛覆)은 송나라 영가(永嘉) 연간에 구진군(九眞郡)의 태수(太守)가 되었다.
그 집은 여러 대를 내려오도록 양도(陽都)에 있었고 오직 맏아들★★ 원숭(元崇)만을 데리고 와서 벼슬을 하고 있었다. 제갈복이 구진군에서 병으로 죽자 나이 겨우 19세된 원숭은 고향에 돌아가 초상을 치르려고 했다.
제갈복의 문생(門生)인 하법승(何法僧)이 그의 재물을 탐하여 친구들끼리 짜고 원숭을 밀어 물에 떨어뜨려 죽였다.
그리고 그 재물을 나누어 가졌다.
그 날 밤에 원숭의 어머니 진(陳)씨가 꿈을 꾸었다. 원숭이 돌아와 그 아버지가 죽은 일과 자신이 피살된 일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고 “시체는 물에 떠다니며 지극한 원한이 비길 데 없습니다. 여러 해로 받들지 못하다가 하루 아침에 영원히 하직하게 되었으니 머금은 슬픔과 씹는 한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면서 흐느낌을 이기지 못해 했다.
그리고 또 말하였다. “너무 빨리 오느라고 피로가 극심하여 그대로 창 앞에 누웠다가 지금 평상 위에서 머리를 창에 기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누워 있는 자리를 보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진씨는 슬픔에 놀라 깨어 일어나 불을 들고 아들이 누웠던 자리를 비추어 보았다. 그 자리는 마치 사람의 몸처럼 축축히 젖어 있었다. 이에 온 집안 사람들은 슬피 울고 비로소 그 사정을 들어 알았다.
그 때 서삼지(徐森之)는 처음으로 교주(交州)에 제수(除授)되었고 서도립(徐道立)은 장사(長史) 태수가 되니 도립(道立)은 곧 진씨 종고(從姑)의 아들이었다. 진씨는 꿈에 본 일을 글로 적어 두 서씨에게 그것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도립은 길에서 제갈복의 시체를 실은 배를 만나, 그 부자의 죽은 날과 맞추어 보니 그 귀신(원숭)의 말과 같았다. 이에 흉악한 짓을 한 범인 두 사람을 잡아 자백 받고, 법에 의해 그들을 죽이고, 다시 사람을 서울로 보내어 장례를 치루게 하였다. [이 한 가지 증험은 『원혼지(寃魂志)』에 나온다.]
④ 송(宋)나라 마건백(馬虔伯) 송(宋)나라 마건백(馬虔伯)은 파서(巴西) 낭중(閬中) 사람이다. 젊어서 불법을 믿었고 일찍이 선한현(宣漢縣)의 현령이 되었었다. 원가(元嘉) 12년(437) 7월 어느 날 밤에 현에서 꿈을 꾸었다. 하늘 끝에 세 사람이 있는데 키는 2장이 넘고 얼굴은 엄숙하고 아름다웠으며 구름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든 하늘의 음악 소리가 공중에 가득 찼다. 그들은 건백을 보고 말하였다. “그대의 재액(災厄)은 형초(荊楚)에 있고 그 날짜는 무인년(戊寅年) 8월 4일이다. 그대가 만일 산이나 못에 있으면 그 화(禍)는 사라질 것이요 인간에서 재계(齋戒)해도 또한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 기일만 무사히 지나가면 도를 깨칠 것이다.” 그 때 건백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잘 알고 지내던 양섬(楊暹) 등 여덟 사람이 다 사슬에 묶이고 차꼬에 채워져 있었다. 또 도사(道士) 호료(胡遼)도 보였다. 몸이 반쯤은 땅 속에 있고 반쯤은 하늘 복판과 하늘 끝에 걸쳐 있는 신인(神人)들은 다 이 여덟 사람의 목숨이 다할 연월(年月)을 적고 오직 호료에게만 말하였다. “만일 공덕을 닦아 쌓으면 목숨을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양섬 등은 다 기약한 날에 죽었고, 호료는 두려워해 법을 받들고 산에 살면서 더욱 정진했다. 그 뒤에 건백은 양주(梁州)의 서조(西曹)가 되었는데 그 때 양주의 장군은 소사화(蕭思話)였다. 소사화는 남만(南蠻)으로 옮겨가서 다시 행참군(行參軍)이 되었다. 건백은 ‘형초의 액’이라는 말을 생각하고 마음 속으로 더욱 두려워하였다. 소사화에게 해직(解職)하고 형산(衡山)으로 가겠다고 청했다. 그러나 소사화는 애써 허락하지 않았다. 15년은 곧 무인(戊寅)년이었다. 6월 말에 병에 걸려 8월 4일에 이르러서는 더욱 위독해져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 날 황혼에 갑자기 눈이 트여 세상이 환히 보였다. 즉 멀리 서쪽에 어떤 세 사람이 있는데 키는 다 2장이 넘어보였다. 앞의 사람은 옷이 풍족하고 수염은 아래로 길게 드리워졌으며 정수리의 광명이 원만하게 밝았다. 뒤의 두 사람은 몸 바탕이 금빛처럼 빛났고 위의가 단정하며, 땅에서 두어 길 되는 공중에 늘어서 있었다. 건백이 자세히 살펴보니 다 전날 꿈에 보았던 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금 후 보이지 않고, 남은 향기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져갔다. 같이 있던 여러 사람들도 다 그 향내를 맡았다. 건백은 곧 땀을 흘리고 병이 조금 나았다. 건백의 본래 거처하던 곳은 누추했다. 그 때에 스스로 큰 전당에 있었는데 행랑채 온 벽이 다 빛났으며 그것은 다 보배처럼 느껴졌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병은 차츰 회복되었다.[이 한 가지 증험은 『명상기(冥祥記)』에 나온다.] ⑤ 제(齊)나라 사문 석승호(釋僧護) 고제(高齊) 때에 석승호(釋僧護)는 도를 지키고 마음이 곧았으나 혜업(慧業)을 구하지 않았다. 1장 8척의 석상(石像) 만들기를 원하였으므로 모두 그 말을 괴상하게 여겼다. 나중에 그 절 북쪽 골짜기에서 그는 누워 있는 돌 하나를 보았는데 그 길이가 1장 8척이었다. 이에 장인(匠人)을 고용하여 석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1년이 지나 얼굴은 대강 완료되었으나 그 등은 땅에 그대로 붙어 있었으므로 6구(具)로 그것을 들려 했으나 처음과 같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밤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이 되자 돌은 스스로 뒤집어졌다. 곧 석상을 만들어 마치고 불당으로 옮겨 안치했다. 진주(晋州)가 함락되던 날에 그 석상에서 땀이 흘렀다. 주(周)나라의 군대가 제나라에 들어와 모든 절을 다 불살랐으나 이 석상만은 빛깔도 변하지 않았다. 또 그것을 넘어뜨리려고 사람과 소 등 60명이 잡아당겼으나 끄떡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이상한 스님이 나타나 그 석상 주위에 기와와 나무와 흙으로 참루(塹壘)를 둘러 쌓았는데 잠깐 사이에 다 마치고 그 스님은 간 곳이 없었다. 뒤에 그 석상은 어떤 신심 있는 사람의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내 손가락에 질환이 생겨 아프다.” 그 사람은 꿈에서 깨어나 가보았더니 과연 나무에 두 손가락이 손상되어 있었으므로 곧 그것을 보수(補修)했다. 개황(開皇) 10년(590)에 어떤 도적이 그 석상의 번기와 일산을 훔치려 했다. 도적의 꿈에 1장 8척쯤 되는 사람이 그 방에 들어와 그를 꾸짖었다. 도적은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참회하고 사과했다. 그 석상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⑥ 당(唐)나라 사문 석지흥(釋智興)
당(唐)나라 서울에 있는 대장엄사(大莊嚴寺) 석지흥(釋智興)은 속성은 송(宋)씨이고 낙주(洛州) 사람이다. 겸손하고 검소하고 노력하며 열심히 실천하고 굳고 총명했다. 수율사(首律師)에 의지하여 경을 외우고, 계율을 지키면서 마음과 입이 서로 도와 밤낮을 쉬지 않았다.
대업(大業) 5년(609) 중동(仲冬)에 유나(維那)의 직책을 맡을 차례가 되어 때를 맞추어 종을 쳤으나 스님들은 조금도 동요함이 없었다. 그 절에 삼과(三果)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의 형은 양제(煬帝)를 따라 남쪽으로 강도(江都)로 가다가 도중에 죽었다. 그러나 그 흉변을 통고해 온 적이 없었는데 그 아내의 꿈에 그가 나타나 말하였다. “내가 팽성(彭城)에 이르러 불행하게도 병으로 죽었소. 그러나 나는 재계(齋戒)를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지금 지옥에 떨어져 5고(苦)를 겪으면서 고생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누가 내 고통을 알겠소. 그러나 다행히 이 달 초하룻날에 장엄사의 지흥 스님이 치는 종소리가 이 지옥까지 울려 퍼져서 이 지옥을 진동시키는 은혜를 입어 같이 고통을 받던 자들까지 한꺼번에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소. 지금은 안락한 곳에 태어나서 그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하오. 그대는 비단 열 필을 가지고 가서 그 스님에게 드리고 또 내 뜻을 전하면서 지성으로 사례하시오.”
아내는 놀라 잠에서 깨어나 괴상한 꿈의 연유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얼마쯤 지나서 다시 되풀이해서 그런 꿈을 꾸었는데 또 여러 무당들도 다 전에 말한 것과 같은 말을 하였다.
10일이 지난 뒤에 갑자기 그 흉보(凶報)가 왔는데 그 꿈과 꼭 같았다. 그녀는 곧 비단을 가지고 가서 지흥에게 주었다.
그러나 지흥은 그것을 받을 공덕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 비단을 대중들에게 골고루 보시했다. 그 절의 주지 공선(恭禪) 스님과 온 절의 대덕(大德) 스님들이 다 지흥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종을 쳤기에 이런 감응이 있단 말이오.”
지흥이 말하였다. “내게는 특별한 술법[術]이 없습니다. 『부법장전(付法藏傳)』에 보면, ‘계니타왕(罽膩吒王)이 고통을 받을 때 종소리를 듣고 그로 인해 그 고통이 멎었다’고 했고,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명종게(鳴鐘偈)에는 ‘복과 공경이 이 자취를 따르는 것이니, 부디 힘써 행하라’고 했습니다.”
한겨울에 누각에 올라 바람이 살을 에일 때, 다른 스님이 염소가죽 장갑을 지흥에게 주면서 그것을 손에 끼고 종방망이를 잡고 종을 치라고 했다.
그러나 지흥은 뜻을 가다듬고 맨손으로 종을 치다가 손바닥에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그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았다. “또 종을 칠 때는 먼저 좋은 서원을 세웁니다. 즉 ‘원컨대 모든 성현이 다 함께 도량에 들어와 법의 음식을 함께 받으소서’ 하고 그 다음에 세 번 칩니다.
길게 치려 할 때는 먼저처럼 정성을 드리고 ‘원컨대 모든 악취(惡趣)들이 이 종소리를 듣고, 다 함께 고통을 여의고 빨리 해탈을 얻어지이다’ 합니다. 이런 원행(願行)을 항상 받들어 닦거늘, 어찌 오직 이번만 정성이 지극해 멀리 감응했겠습니까.” 모두 이 말에 감복하고 그 징험이 틀림없으리라는 믿음을 배나 더 내었다.
정관(貞觀) 6년(632) 3월에 잠깐 동안 병을 앓았는데 그 몸을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는, 스승과 벗을 불러 음식을 먹고 작별을 고하고는 곧 장엄사에서 죽으니 나이는 45세였다. [위의 두 가지 징험은 『당고승전(唐高僧傳)』에 나오는 것이다.]
----------- 3) 구신(句身)은 두 개 이상의 문장이 모여서 된 글귀. 예를 들면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리켜서 한 말이다. 미신(味身)은 집착하는 것이다.
현재 이어 살피는 리비도, 분노, 무명, 만심, 의심수행론은 현실에서 끊기 힘든 수혹 및 둔사에 맟춘 수행방안이다. 수혹은 탐,진,치,만을 들고 둔사는 이에 의심을 더한다. 주로 감정과 정서적 의지와 관련된 번뇌다. 이런 번뇌에 바탕해 업을 행하면 3 악도에 들어가게 된다.
수행자도 업을 행하면 생사현실에서 무량겁에 걸쳐 과보를 받아나가게 된다. 이는 일반 중생과 차이가 없다.
부처를 비롯한 높은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행하는 계행 및 수행을 어렵지 않게 여기고 원만하게 잘 행하는 상태다. 그런데 범부가 그런 상태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매 상황에서 주로 본능적 감성적인 형태로 반응해 업을 행하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업을 행하게끔 만드는 에너지와 힘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각 상황에서 그 에너지는 취하되, 그 에너지가 향하게 하는 방향만 조금 변형시켜 수행방안으로 행하게 하고자 하는 취지다.
이 가운데 만심은 타인을 경멸하고 자신을 높이는 거만한 마음을 뜻한다. 이런 만심은 수행자를 정체하고 퇴보하게 만든다.
수행자는 수행을 통해 약간 취득한 내용을 가지고 만심을 갖게 되기 쉽다. 예를 들어 일체가 차별없이 공함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를 통해 악취공견을 취하여 아무렇게나 행해도 무방하다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일반 범부보다 훨씬 빨리 3 악도에 들어가게 된다.
만(慢, māna)은 주로 타인과 자신의 상태를 비교하는 분별심에서 출발한다. 불교에서 만과 비슷한 단어로 교(憍, mada)가 있다. 모두 마음을 오만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런데 교와 만은 통상 다음처럼 구분한다. 교는 단순히 자신이 가진 신분, 지위, 능력 등에 집착하여 갖는 마음이다. 만은 타인과 비교하여 갖는 마음이다.
교만한 마음을 갖게 하는 요소로, 자신의 건강, 혈통, 재산, 능력, 수명, 지혜, 선업 등을 들기도 한다. 만심은 다른 이와 비교하는 가운데 잘못된 판단을 행해서 오만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이 각 경우를 7 경우로 나누기도 한다. 모두 본 상태에 적절하지 않게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다.
만(慢) : 자신보다 열등한 이와 비교하여 자기가 뛰어나다고 우월감을 갖는 것. 과만(過慢) : 자신과 동등한 이와 비교하여 자기가 뛰어나다고 높이는 것. 만과만(慢過慢) : 자신보다 뛰어난 경우에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높이는 것. 아만(我慢) : 지나치게 자신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 증상만(增上慢) :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는데도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 비만(卑慢) :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이와 비교하여 자신이 조금 떨어질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사만(邪慢) : 악한 일을 한 뒤에도 스스로 잘했다고 뻐기는 것. 덕 없는 이가 스스로 덕 있는 줄로 잘못 알고, 삼보(三寶)를 경만하며 높은 체 하는 것
다른 이와 비교할 때 이런 만의 마음을 갖게 되면 곤란하다. 그러나 다른 이와 비교하는 가운데 문제되는 또 다른 마음 상태도 있다. 남과 비교해 자신의 상태가 낮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불만을 갖기 쉽다. 그리고 그 불만을 만들어 준 원인을 다른 이에게 찾기 쉽다. 그래서 그런 불만을 갖게 한 다른 이에 대해 불쾌감을 갖게 되기 쉽다. 그리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시기 질투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 쉽다. [질(嫉) īrṣyā ]
그리고 이후 그런 바탕에서 그런 상대를 방해하고 해치려는 마음을 갖게 되기 쉽다. 한편 그런 바탕에서 스스로 만족감을 얻기 위해 다른 이를 비방하고 끌어 내리려 하기 쉽다. [ 해害, upaghāta] 이들은 넓게 분노의 범주에 속한다. 또 한편, 속마음을 숨기고 겉으로 친애하는 듯 거짓으로 외양을 꾸미고 공연히 아첨하는 경우도 있다. [ 첨諂, māya ] 이런 경우가 모두 수행에서 제거해야 할 수번뇌 항목에 들어간다. 즉 이들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근본번뇌에 딸린 부수적 번뇌에 속하게 된다.
Mickael Miro - Go Go Go 평소 현실에서 생활하게 되면 주변의 다른 이와 여러가지 측면에서 비교를 행하게끔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마음 자세나 태도 경향이 모두 수행과정에서 문제된다. 우선 자신보다 열등한 이와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평소 자신이 만족을 얻기 위해 이런 식으로 비교를 행하려 하기 쉽다. 예를 들어 자신의 상태가 대단히 안 좋다고 하자. 그래도 넓게 살피면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수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이가 어떤 부분에서 뛰어나다고 하자. 그래도 자세히 살피면 그런 이에게도 다른 부족한 점이 많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측면을 찾아 나서면 그런 내용을 쉽게 찾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비교하면 스스로 만족을 얻기 쉽게 된다.
아무리 상태가 좋지 않아도, 만일 축사에 갇혀 지내는 축생과 비교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를 훨씬 낫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만족하고 우쭐대는 마음을 갖기 쉽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비교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그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의 불행을 즐거워하고 바라는 마음 상태가 되기 쉽다. 그리고 그로 인해 평소 '교만'한 자세로 현실에 임하기 쉽게 된다. 이런 태도는 수행자에게 올바르지 않다. 오히려 그런 경우에는 수행자는자비의 마음으로 그 상황을 대하여 할 것이다. 자신보다 못한 경우와 비교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어떤 측면에서 자신이 뛰어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현실에 맞는 판단일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여기고 우월감을 가지면 잘못이다. 그 본 사정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미미한 곤충을 비롯하여 현실 일체의 생명이 부처와 그 근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다. 또 무량겁에 걸쳐 과거생의 인연을 놓고 판단하면 이 모든 생명이 하나같이 다 과거생에 자신의 부모였다. 또 한편 이들 일체 생명은 무량겁에 걸쳐 장차 성불할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을 경전에서 제시한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먼저 잘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자신이 특정한 측면에서 조금 낫다고 자신이 뛰어나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자신이 다른 이보다 수학이나 영어를 조금 잘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보다 못하는 이에 대해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고 우쭐댄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경우 다른 기준으로 비교하면 그 상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잘 하는가, 또는 수영을 잘 하는가 등으로 비교하면 또 달라진다. 그런데 자신이 어느 측면에서 조금 뛰어나다고 우쭐대고 다른 이를 업신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자신이 수행에 태만하게 되고 퇴보되게 된다. 또 이를 대하는 이들은 자신에 대해 불쾌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악의를 갖고 방해하고 해치려는 마음까지도 갖게끔 한다. 그래서 중생 제도의 경우에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경우 자신이 어느 측면에서 뛰어나다고 스스로 느낄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교, 만의 마음으로 우쭐대거나 타인을 경멸하면 곤란하다. 이런 경우 수행자는 판단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우선 자신이 설령 어떤 점이 뛰어나도 세상에는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이들이 많음을 알아야 한다. 또 자신이 어느 부분이 뛰어나도 그렇지 못한 많은 부분이 더 많음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이가 설령 어느 부분이 부족하다 해도 다른 뛰어난 점이 많음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균형잡힌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 가운데 자신의 부족한 점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개선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또 지나치게 자신을 자책하면서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수행자는 또 한편, 늘 자신이 장차 성불할 존재라는 의식을 갖고 스스로 긍지를 갖고 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거없이 만심을 갖고 임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공연히 자신이 열등하다고 비하하는 상태도 벗어나야 한다. 이 두 상태를 모두 떠나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한편, 만심을 갖고 임하는 경우 스스로 자만에 빠져 스스로 칭찬하며 임하기 쉽다. 또 반대로 다른 이에게서는 그 단점을 찾아내 비방하거나 비난하며 임하기 쉽다. 그런 경우 다른 이들이 대부분 이런 이를 불쾌하게 여기게끔 된다. 물론 이 경우 다른 이들의 이런 자세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가 자만에 빠져 스스로 자랑을 일삼고 자화자찬을 행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이들이 그와 함께 기뻐해주면 될 것이다. 또 어떤 이가 다른 이의 단점을 찾아내 지적하고 비난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이의 지적한 문제점을 반성하고, 그 단점을 고치려 노력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부분 이런 경우 불쾌감을 느끼고 분노를 일으킨다. 그리고 오히려 반발하고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즉 서로 상대의 다른 단점을 찾아내며 다투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중생제도를 하려는 수행자는 일단 중생들의 일반적 경향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제각기 자화자찬을 일삼고 다른 이를 비난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리고 또 남이 자화자찬하면 대부분 불쾌감을 갖는다. 또 남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면 반발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리고 비난을 받으면 비난으로 되돌려주고 보복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래서 중생제도를 하려는 수행자는 이런 중생상태를 먼저 잘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 임할 때는 먼저 이런 중생 상태에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 상황에서 어떤 자세가 중생제도에 효과가 있는가를 놓고 살펴야 한다. 결국 중생들이 싫어하고 효과없는 방법을 택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중생제도가 강조되는 대승 계율에서 원칙적으로 이는 중요항목이 된다. 즉, 중생제도에 임하는 수행자는 '자찬훼타'하는 자세를 떠나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평소 교, 만의 자세를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이가 갖춘 장점을 찾아내 긍정하고 칭찬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런 사정으로 자신의 장점은 숨기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는 것이 차라리 낫다.
그런데 한편 수행자가 이렇게 임하면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무시하고 경멸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이가 오히려 자신을 공연히 비방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수행자는 이를 평안히 참고 대해야 한다. 한편, 다른 이가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이를 비방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일단 과도히 책망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일반적으로 대부분 그런 경향을 갖는 것이라고 일단 여겨야 한다. 즉 대부분 자기 자랑에 열중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고 다른 이의 비방에 열중한다.
그런데 대부분 이와 같다고 일단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과도하게 책망하지 않도록 한다. 상대가 다른 이를 자꾸 비난하고 비방해 문제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것을 자신이 다시 비난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도 그 상대와 똑같은 문제가 있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상대가 자주 작은 일로 화를 내서 문제라고 하자. 사정이 그렇다고 자신이 앞으로 화를 내지 말라고, 화를 내면서 크게 소리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그런 자신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먼저 그런 경향을 점차 제거할 좋은 방편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이를 먼저 자신과 상대에게 적용해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실에서 다른 이의 문제점을 찾아내려면 끝이 없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세간의 말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이런 경우 수행자는 마치 유치원생을 상대하는 선생님처럼 상황을 대해야 한다. 즉, 유치원생이 조금 실수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선생님이 유치원생처럼 반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수행자도 이 비유처럼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더라도 그 장점을 붙잡고 좋은 상태로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각 경우에 어떤 방편이 좋은 것인가를 놓고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잘 판단해야 한다.
○ 한편 자신이 자신보다 뛰어난 이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수행내용과 결과인 경우에는 뛰어난 상태에 대해 수행자는 따라 기뻐하는 마음(수희심)을 갖고 함께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수행과 관련해서 그런 내용이 자신도 필요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도 함께 즐겁게 서원을 갖고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수희 원요의 수행덕목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수행덕목과 관련이 없는 경우는 그저 무시하고 지나치면 된다. 그런 경우까지 같이 따라 기뻐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이가 악행을 행하는 경우까지 따라 기뻐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이로 인해 장차 생사고통을 겪는 과보를 받게 된다. 그래서 무조건 수희 원요를 행하는 것이 수행은 아니다. 한편, 여하튼 이런 비교를 통해 일단 자신의 상태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이미 자신이 갖춘 것에 만족을 느끼고 자신에게 불필요한 부분들은 외면하고 무시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더 나아가 그것이 악한 측면인 경우는 적극적으로 이를 끊어 없애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수행자가 올바른 수행결과를 얻으려면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임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단순히 차를 거리에 세워 놓고 그저 즐겁게 임할 경우도 있다. pass 또 어떤 경우는 적극적으로 차를 멈추고 중지해야 할 경우도 있다. stop 또 어떤 때는 다른 나은 상태를 찾아 초점을 맞추고 방향을 돌려야 할 경우도 있다. turn 그러나 어떤 경우는 가야할 목표를 찾아 꾸준히 노력해 달려가야 한다. go 이처럼 수행자가 구체적 현실의 각 경우에 취할 태도와 자세가 매 경우 다르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chel Sardou - Je N'aurai Pas Le Temps.lrc
그런 경우마다 대부분 주로 문제되는 형태로 자세를 취하기 쉽다. 그것이 우선 당장 자신에게 만족을 준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다른 이보다 우월해야 좋다고 여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의 단점이나 결점을 찾으려 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이를 깍아 내리려 노력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가진 몇몇 장점을 붙잡고 우쭐대려 하게끔 된다.
그러나 그렇게 임하면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각 경우 그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내용을 찾아 적용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다른 상태와 비교할 상황에 놓였다고 하자. 이런 경우 평소 앞과 같은 방식으로 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자. 이 때 그 방향을 수행방안에서 제시하는 쪽으로 살짝 바꿔 주어야 한다.
우선, 비교하는 다른 이들에서 열심히 장점을 찾는다. 단점이 보여도 그것은 대부분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문제삼지 않는다. 그리고 장점만 부각한다. 또 기회가 되면 이를 긍정해주고 칭찬한다. 다만 없는 것을 만들어서 칭찬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경우는 거짓된 아첨이 되어서 지나친 것이 된다.
원래는 자신에 대해 그런 노력을 열심히 하는 경향을 갖는다고 하자. 그런데 그 방향을 다른 이로 돌려 임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방향을 쉽게 돌리려면 그 다른 이가 남이 아니라는 의식이 먼저 필요하다.
부처님이 제시한 방안도 사정이 비슷하다. 본래 무량겁에 걸쳐 다른 이와 수없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이와 반드시 부모 자식간의 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다른 이가 무량겁에 걸쳐 끝내 성불하는 상태가 된다고 하자. 이 경우도 장래에 상대가 오로지 부처님 상태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가운데 이런 측면만 끌어내 초점을 맞추고 대하라고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상대를 가깝게 여기게 하는 한편, 또 상대를 존중하고 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곤충과 같은 미물부터 그렇게 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자신은 지금 현재, 과거생의 부모가 변화한 모습을 현재 대하고 있는 중이다. 또 장래 성불한 부처님의 과거생( 즉 현재)에서의 모습을 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의식하고 대해야 한다.
물론, 현재 상태는 그와 거리가 멀 수도 있다. 또 과거나 미래 각 순간에는 이와 다른 내용이 더 많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측면만 뽑아 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상대를 가깝고 친근하게 여기고 존중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의 그런 자세로 인해 그 관계도 점차 바람직한 형태로 바꾸어지게 된다.
물론 이는 수행자쪽의 노력이다. 이렇게 행해도 상대는 여전히 그렇게 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위와 같은 원칙적 방안이 가장 좋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대하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부모님처럼 관한다고 하자. 이 경우 부모님의 허물이 조금 보인다해도 너무 책망하고 비난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 보다는 숨겨진 장점을 찾아내 그것을 칭찬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더욱이 장래 자신이 대할 부처님이라면 더더욱 그런 자세가 바람직하다.
반면, 허물이나 단점은 자기자신에서 보다 엄격하게 찾아내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식을 가지면 그 허물이나 단점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그것이 훨씬 자신에게 좋음을 많이 가져다 준다. 그래서 그런 자세로 바꿔 현실에 임하도록 한다.
처음 다른 이를 상대할 때, 자신의 만족이나 좋음을 얻기 위해 교만한 태도를 갖고, 또 다른 이를 비난하고 깍아내리려 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렇게 행하는 주체를 서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훨씬 쉽게 좋음을 오래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한편, 상대를 과거생의 부모나 장래 부처님으로 관한다고 하자. 그러나 이 경우 현실에서 상대를 그렇게 정식으로 칭하고 대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면 상대도 어색하게 여기고 더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에 나오는 내용처럼 오히려 상대가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자신을 그렇게 조롱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다시 다음 방안을 사용할 수 있다. 우선 상대가 좋아할 타이틀을 생각한다. 사업을 하는 경우는 회장, 강의를 한다면 총장 이런 타이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상대가 그 방향으로 활동하면 언젠가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 또 상대가 가장 높은 부처님이 되기전 그런 상태도 중간에 거쳐갈 것이다. 그렇게 여길 수 있다. 그런 가운데 평소 그런 타이틀을 붙여 상대를 관하고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타이틀은 너무 지나치지 않아서 농담처럼 평소에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그 타이틀에 맞춰 상대의 장점을 찾아내고 이끌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 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우선 자신의 인격 수행이 부족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경우는 다시 다음의 보조적 방안을 취할 수 있다.
우선 위와 같이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이만 높은 상태가 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이가 현실에서 자신이 상대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상태와 어느 정도 엇비슷한 상태라고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경우는 사실 현실에 적절하지 않은 교와 만의 상태에 가깝다. 그러나 방편상 그렇게 생각해서라도 일단 현실에서 그런 자세로 임하는 것이 낫다.
이처럼 좋은 타이틀을 붙여 상대나 자신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은 정식 수행방안에서도 사용되는 방안이다.
본래 이론상 부처와 범부, 그리고 닭, 오리, 개, 양, 돼지는 하나같이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 점에서는 그렇다.
이것이 부처님 자신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실 범부를 그 상태 그대로 놓고도 이론상 부처님과 대등한 존재로 관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는 사실은 이론상 본 바탕의 측면을 놓고 살필 때 그렇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론상,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다고 해도 그 반대 방향으로 이를 취할 수도 있다. 즉, 부처와 범부나 닭, 오리가 본 바탕에서 차별없이 공하다고 하자. 그래서 범부나 닭을 부처라고 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그 반대로 부처나 범부를 거꾸로 닭이나 오리라고 관할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앞과 마찬가지 사정 때문이다. 그렇게 관해야 수행자도 스스로 긍지를 갖고 수행에 임할 수 있다. 또 다른 상대도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측면을 뽑아 강조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 행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이 된다.
이것을 수행에서 '이즉' 이라고 표현한다.
이론상, 일체 중생은 다 부처다. 이런 내용이다. 다만 생사현실에서는 돼지는 돼지고 부처는 부처다. 그래서 그 차이가 극단적이다.
그리고 사실 수행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 부분이다. 그래서 이후 계속 같은 방식을 적용하게 된다.
수행을 시작하게 되면 우선 타이틀을 부여한다. 일단 명칭부터 좋은 명칭을 골라 자신이나 상대에게 붙인다. 그리고 그렇게 대하고 임한다.
수행자가 성불에 이르는 과정에서 가장 쉽게 행할 수 있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기도 하다.
우선 자신이 수행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상태를 마음에서 그려 낸다. 그리고 그것을 압축해 명칭과 타이틀로 표현한다.
수행의 나머지가 잘 되어도 이것이 끝내 잘 안 되면 곤란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것이 잘 되면 나머지 부분도 점차 잘 되게 된다.
늘 자신이 그런 타이틀을 통해 자신이나 상대를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최소한 기분으로라도 그와 비슷한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그런 상태라면 각 경우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인가도 평소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점차 그런 방향으로 바꾸어 임하는 노력도 행할 수 있다.
이것을 수행에서 '명자즉' 이라고 표현한다.
이후 수행은 꾸준히 그런 바탕에서 행해 나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 바탕으로 수행해 끝내 자신이 본래 목표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하자. 그것을 '구경즉' 이라고 표현한다.
이 경우는 자신이 성불을 목표로 했다면, 정말 부처님이 된 상태다.
그래서 이를 '6즉'이라고 칭한다. 이는 이즉- 명자즉 -관행즉 - 상사즉 - 분진즉 - 구경즉으로 나열된다.
즉 명자즉을 통해 타이틀만 갖추고 난 후 정식 수행은 이후 단계에서 행해 이처럼 나아가는 것이다. 즉, 계, 정, 혜 3 학과 6 바라밀을 닦아 나가면서 점차 부처님 상태와 비슷해지는 수행과정을 나타낸다.
이를 거꾸로살핀다고 하자. 자신이 생사현실에서 벗어나고 가장 높은 상태가 빨리 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당장 할 일이 있다. 우선, 먼저 자신이나 상대를 부처로 관하고 부처의 타이틀을 마련해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훈련을 먼저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쉽다. 그리고 이후 수행은 이 바탕에서 행해 나가면 된다.
다른 이를 부처로 관하고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이 교나 만의 마음을 함부로 가질 수 있겠는가. 또 자신이 부처님보다 낫다고 우쭐 댈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편 자신도 긍지를 갖게 하는 측면이 있다. 자신도 스스로 장래 부처님이 될 존재라고 스스로 긍지를 갖고 수행에 임할 수 있다.
수행단계가 높아지면 결국 그런 상태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등일체제불 회향의 항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런 방식을 평소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바로 성불하고자 하면 과거 부처님의 분신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또 다음에 부처가 된다는 미륵불의 타이틀을 갖고 활동할 수도 있다. 오히려 수행과정을 더 늘려잡기를 원하면 혼자 적당한 명호를 정해 수행에 임할 수도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수행자가 수행과정에서 수행시 사용하는 자신 내부용 명호가 될 수 있다. 한편 한번 성불을 해도 이후 또 다시 수행자 상태로 내려와 다시 수행을 행할 수도 있다. 경전에서는 그런 사례도 전한다. 그러나 언제나 부처님의 마음 상태로 다른 이와 세상을 대하려 노력하는 것이 수행의 핵심요건이 된다.
참고로 본인은 현재 수행중 화동불이란 명칭을 수행을 위해 잠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차 수행을 통해 화동여래가 되는 것이 꿈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이 하나 성불하면 이로 인해 일체 중생이 자연스럽게 다 성불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수행과정에서 이런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Silver Pagoda, Phnom Penh [san-chn]
pañca gandhāḥ 五香 [san-eng]
mūrdhajā $ 범어 hair (from the head) [pali-chn]
dvattiṃsa mahā-purisa-lakkhaṇāni 三十二大丈夫相, 三十二大人相 [pal-eng]
vacanapatha $ 팔리어 m.the way of saying. [Eng-Ch-Eng]
TWO FORMS OF DEATH Two Forms of Death 二死 1.Natural death of the life 2.Death form external cause and conditions [Muller-jpn-Eng]
無量淸浄經 ムリョウショウジョウキョウ Sutra of Immeasurable Life [Glossary_of_Buddhism-Eng]
BODHISATTVA☞ See also: Bodhi Mind; Four Means of Salvation; Paramita.
14 제가 이때 마음으로 환희하며 곧 서원을 발하기를 '제가 만일 당래 세상에 능히 일체 중생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한다면 바로 내 몸에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이 구족되어지다'하고 서원을 세우고 나니 바로 몸에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이 다 구족되었으며 10방에 대지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10방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이 내 몸과 10방에 끝이 없는 많은 세계에 동시에 광명을 놓아 비추어 주셨습니다. ● 살바아타두수붕 薩婆阿他豆輸朋<十四> sar va a thā du śu tuṃ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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