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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8일 월요일

불기2565-06-28_대방광불화엄경-K1262-019





『대방광불화엄경』
K1262
T0293

제19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대방광불화엄경』 ♣1262-019♧





제19권







♥아래는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페이지 내용 업데이트 관련 안내]

❋본문
◎[개별논의]

○ [pt op tr]





○ 2019_1106_115843_nik_CT38_s12 화순 영구산 운주사



○ 2019_1105_111913_nik_CT33 순천 조계산 선암사


❋❋본문 ◎[개별논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方廣佛華嚴經卷第十九
K1262

○ [pt op tr]






『대방광불화엄경』 ♣1262-019♧


◎◎[개별논의] ❋본문




○ 덧붙여진 번역
경전을 읽다가 밤차지신이란 낯선 표현을 보게 된다.
밤차, 밤차지, 이런 말이 낯설다.
그런데 한문본을 보면 그냥 夜神 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왜 밤차지신이란 낯선 표현으로 번역되었을 지 생각해보게 된다.
번역표현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
희목관찰일체중생(喜目觀察一切衆生) 밤차지신을 향하여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

그런데 해당 한문 부분을 보면 단순히 [喜目觀察夜神]으로만 되어 있다.
희목관찰야신이란 부분이 희목관찰일체중생 밤차지신으로 번역된 것이다.
왜 이렇게 원문에 없는 내용을 덧붙이게 되었을까.
아마 그것은 번역자가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여서 그런 것으로 보게 된다.

그런데 야신이란 한자어를 번역할 때 밤이나 신이란 말 외에 '차지'가 왜 붙었는지는 알기 힘들다. 한글로도 한문으로도 무슨 의미를 덧붙였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데 차지신이라는 표현이 다른 부분에도 나온다.
그래서 곰곰히 다른 부분과 해당한문을 비교해보니
주야신[主夜神]이란 부분을 차지신이라고 번역했음을 보게 된다.
결국 여기서 차지라는 말은 무언가를 '차지해서' 자신 뜻대로 한다거나,
또는 주관(主管)하다, 책임(責任)지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순한글표현으로 생각된다.
'차지하다'라는 한글 표현은 사물이나 공간, 지위 따위를 자기 몫으로 가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렇게 살펴보면 밤차지신이란 표현의 의미를 이해할 만하다.
밤을 차지해서 자신이 주관하고 책임지는 능력을 가진 이라는 의미이다.

한 때는 국한문혼용체로 표현한 때도 있었다.
그래서 한글은 오로지 한자단어에 대한 조사정도만 표현해 사용하는 형태도 있었다.
오등은 자에...이런 식의 표현이다.
이런 경우 당연히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 많게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한자 표현을 오로지 순한글로만 나타내 표현하고자 하는 운동도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한글에서 단어를 만들어 내는 의미소(원소역할을 하는 단어)가 비교적 적다.
그래서, 기존 한자어를 이런 식으로 순한글로 표현하려다보면 의미 풀어쓰기 형태가 된다.
현재 살피는 화엄경은 아마도 그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번역표현으로 보인다.
물론 익숙해지면 이런 표현도 새로운 단어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불교용어 전반을 이렇게 순한글로 풀어 표현하다보면 문장 이해가 힘들게 된다.
한자는 의미소 역할을 하는 단어가 한단어 형태로 짧다.
그런데 한글은 이보다 길다.
그래서 각 단어를 이렇게 길게 풀어 표현하면 문장 파악이 힘들게 된다.
어차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불교용어는 불교를 수행하는 이가 익숙해져야 한다.
이런 경우 어떤 형태로 익숙해지는 것이 나은가가 문제될 뿐이다.
이런 경우는 차라리 한자어를 그대로 한글로 읽는 형태가 의미파악이 더 나으리라 본다.
경전 구절을 암송할 때도 한자어가 훨씬 편하다.
물론 각 단어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경우 불교사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불교사전을 참조할 경우에도 한자어 형태가 편하다.


★1★





◆vbip1216

◈Lab value 불기2565/06/28


○ 2020_0910_122315_can_ar32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atsushika-Hokusai-view-of-fuji-from-a-boat-at-ushibori-1837




○ 2016_1008_131328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พระพุทธรูปปางลีลา_วัดยานนาวา




♡보광심인당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상세정보=> https://buddhism007.tistory.com/3895

Jacques Brel - Je T'aime



♥단상♥지치지 않는 연구방안

요즘 많이 지친다.
그래서 자꾸 쉬면서 하게 된다.

컴퓨터도 같이 끄고 쉬게 된다.
그런데 컴퓨터는 인공지능을 획득했는지 자꾸 자신이 알아서 다시 켜진다.
여하튼 기기들이 오래되면 하나둘씩 인공지능을 취득한다.

선풍기마저도 자신이 돌고 싶으면 돌고, 돌기 싫으면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돌아가지 않는다.

쉬고 나면 그래도 조금 연구를 다시 할 수 있다.
그러나 쉬지 않고 계속 같은 연구를 하다보면 힘들다.

이런 경우 부록 자료가 도움이 된다.

사진도 보고 음악도 듣고
또 몇몇 게송이나 다라니를 외우면 조금 낫다.
음악을 듣다보면 평소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몇번 만나지 않은 사람인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 이름을 노래에서 자주 듣다보면 왠지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계속 듣다보면 시리즈로 이어진다.
그래서 마치 어떤 사연이 그 안에 담겨 있었던 것처럼도 느껴진다.
어떤 노래에서 어떤 이의 눈빛을 언급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듣는 노래마다 자주 그 내용이 나온다.
오늘도 또 그런 노래를 듣는다.
그래서 거기에는 일정한 사연이 있었을 듯 하다.
노래에 그런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이것은 일종의 망상이다.

다만 수행에 도움이 되면 그다지 나쁜 망상은 아니다.

부처님의 설법 가르침도 사정이 같다.
부처님의 설법도 희론이다.
그런데 그 희론은 중생의 망집을 제거하는 뗏목 기능을 하는 희론이다.
그래서 어떤 희론도 그런 기능을 가지면 긍정적이다.

다라니나 게송도 사정이 같다.

허공경계무변제가 50 번째 게송에 배당되어 있다.
이것을 외우느라 턱에 자리를 잡았다.
왜 턱이 허공경계무변제란 구절이 있어야 하는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몇달 지난 후에도 턱을 대하면서 그 구절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에 잘 결합이 안된다.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

71 손금선(라선)에는 아가사 타라라는 이상한 명칭이 부여되어 있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서로 엉뚱해보인다.
비약이 심하다.
이러면 나중에 그 내용을 꺼내기 힘들게 된다.
그러면 시공간 여행시 그것을 지니고 다니기 힘들게 된다.

손금선이 무슨 지하철 노선이라도 되는 것인가.
왜 손금선에서 아가사 에게 타라고 하는 것인가.

턱은 허공과 얼굴의 경계선이라도 되는가.
왜 턱에 허공경계무변제라는 구절이 붙는가.

왜 외국노래에서 한글소리가 들리는가.
그것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대하면서 보리심과 중생제도 서원을 떠올려서 이와 관련시켜 감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
화엄경 정행품에 나오는 유명한 보살님의 입장이 그와 같다.
생각해보면 억지에 가깝다.

그런데 그런 것이 수행자의 기본 원칙이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ie Laforêt - Mon amour, mon ami - Michel Drucker.lrc
Marie Laforêt - Mon amour, mon ami - Michel Drucker



● 허공경계 무변제의 증명

화엄경 게송에 허공경계무변제라는 구절이 제시된다.
그런데 허공에는 끝이 없음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본래 허공이란 자신이 감각하고 분별하는 대상이다.
이것을 모두 자신의 마음으로 파악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마음안에 들어 있으므로 곧 마음이 그 한계이고 끝이다.
이렇게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다시 다음처럼 생각할 수 있다.
사정은 그렇다.
그러나 그 마음에 담길 수 있는 공간이나 내용들이 쉼없이 들고 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자꾸 동쪽으로 걸어나가면
매번 다른 허공을 그 안에 담아두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온 지구풍광이 다 들고 날 것이다.
그가 한 자리에서 설령 빙빙 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담기는 내용은 한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아갈 공간이 달라진다.
그래서 역시 끝이 없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면 앞에 주장한 이는 다시 다음처럼 말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그렇게 담기는 내용은
모두 그의 마음안에 담기는 내용이다.
그는 마음 밖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여전히 그가 얻는 일체 내용은 그 마음이 끝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한계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논의가 서로 오갈 수 있다.

그런데 이 논의에서 먼저 논의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즉, 무엇을 허공이라고 하는가.
이 부분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의 두 주장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 허공의 정체를 먼저 정확히 규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위 논의는 대부분 현실 단면에서 모두 그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다.

한 주체가 항아리 속에 고개를 박고 있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 입장에서는 허공이 끝이 있다고 할 듯 하다.
그러나 여기서 허공이 과연 그런 것인가부터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허공을 처음 어떻게 인식하는가부터 살펴야 한다.
요즘 산에서 내려다보면 아파트 단지의 창문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그 창 넓이는 자신의 손가락보다도 작다.

그런데 자신 앞에 사과상자가 하나 있다고 하자.
이 사과 상자로 공간의 크기를 재어 본다고 하자.
자신의 손가락보다 적은 창문속으로 사과상자가 수없이 들어감을 확인할 것이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화엄경 게송에서는 다시 다음 내용이 이어진다.

,,,
한 개의 가느다란 털구멍 속에
말할 수 없는 세계가 차례로 들어간다.
...

그런데 과연 현실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가.
잘 보지 못한다.
그러면 이것이 단순한 상상적 주장인가.
또 그렇지도 않다.
이미 오늘날 빅뱅이론이 천문학에서 주장되고 있다.

그런데 이론상 이 관계를 이해해보자.
만일 현실 한 단면에서 위와 같지 않은 공간이 한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
이것을 먼저 생각해보면 된다.

현실은 꿈과 같다.
즉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현실에서 얻는다.
그런 가운데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한 주체는 공간이나 길이, 전후좌우방위,
그리고 시간의 선후, 이런 여러 관념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간이나 공간이 과연 한계가 없이 무한한가.
아니면 한계가 있는가를 논의한다.
그런 가운데 한계가 있다고 하면 그 한계 밖에는 다시 그 상태가
어떤 것인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이론상으로라도 이 문제를 생각하려면
먼저 자신이 논의하고자 하는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문제삼는 내용이 어떤 영역에 있는 어떤 내용을 놓고
문제삼는 것인가부터 먼저 정해야 한다.

본 바탕 실재에서는 현실에서 문제삼는 일체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 대해 논의할 바탕도 없다.
그래서 공한 실재 영역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의 전후도 얻을 수 없다.

만일 시간이나 공간의 전후나 크기 길이를 살핀다면
무엇을 붙잡고 자신이 문제삼고 있는지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그래서 그 내용을 우선 현실에서 손으로 가리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이 살피고자 하는 공간의 끝이나 한계란 무엇인가.
이 내용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ichel Sardou - Être une femme.lrc
Michel Sardou - Être une femme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6/2565-06-28-k1262-019.html#1216
sfed--대방광불화엄경_K1262_T0293.txt ☞제19권
sfd8--불교단상_2565_06.txt ☞◆vbip1216
불기2565-06-28
θθ









■ 선물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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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이 법장보살 때에 세운 서원과, 성불하여 얻은 위신력으로써 극락세계에 가서 날 인(因)도 불과상(佛果上)의 용(用)도, 원행(願行)도, 모두 없는 중생에게 회향(廻向)하여 주는 것.

답 후보
● 본원력회향(本願力廻向)
부루나(富樓那)
부정육(不淨肉)
부휴당집(浮休堂集)

분단삼도(分段三道)
분별설부(分別說部)
분위등류(分位等流)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2020_0907_141005_can_BW27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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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방광불화엄경_K1262_T0293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