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대비바사론』
K0952
T1545
제1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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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대비바사론』 ♣0952-152♧
제1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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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毘達磨大毘婆沙論卷第一百五十二 虧
K0952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52권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6. 근온(根蘊)
4) 등심납식 ②
【문】 무상정(無想定)의 자성(自性)은 어떠한가?44)
【답】 불상응행온(不相應行蘊)을 성품[性]으로 삼는 것이니
이것은 그것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세계[界]에 대해 말한다면 색계(色界)에 있으며,
지(地)에 대해 말한다면 근본(根本) 제4 정려의 지에 있다.
【문】 무엇 때문에 하지(下地)에는 이런 정(定)이 없는가?
【답】 밭[田]이 아니고 그릇[器]이 아니며......(이하는 생략함)
또 무상정은 심ㆍ심소(心心所)를 소멸하기 때문에 얻는 것인데 하지(下地)는 심ㆍ심소의 멸(滅)에 수순하지 않아서이다.
【문】 무엇 때문에 제4 정려는 심ㆍ심소의 멸에 수순하는데
하지에서는 그렇지 않는가?
【답】 그 정(定)에 들고 싶어 하는 모든 이는
먼저 욕계의 선의 마음을 일으키고 그 다음에는 초정려(初靜慮)에 들어간다.
그 다음에는 제2 정려에 들고,
그 다음에는 제3 정려에 들며,
그 뒤에는 제4 정려에 들어가서 제4 정려의 상ㆍ중ㆍ하의 마음에 대하여 상에서 중으로 들고,
중에서 하로 들어가 하품(下品)의 마음을 끊으면서 무상정에 들어간다.
비유하면 여인이 털을 이어 실을 만들 때에 거친 것은 없애고
가는 것은 모아서 잇다가 끝나면 손으로 그것을 끊어버리는 것과 같다.
무상정에 들어가는 것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하니
거친 데서부터 미세한 데로 들어가 모두 다 소멸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제4 정려에만 있다.
또 아래의 모든 지(地)에는 기뻐하고 근심하는 느낌[受]의 행상(行相)45)이 거칠게 움직여서
제거하여 없애기에 어려움이 있다.
제4 정려에서는 오직 중도에 처[處中]하는 느낌의 행상이 미세하여서 끊어 없애기 쉬운 것만이 있다.
그러므로 하지에는 무상정이 없다.
【문】 무엇 때문에 무색계에는 그 정(定)이 없는가?
【답】 오직 이생(異生)만이 이 정을 꾀하고 익힘으로써
무상의 열반[無想涅槃]을 증득[證]하게 됨이 있지만
무색계에는 무상(無想)의 이숙(異熟)46)을 꾀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무상정은 역시 무색계에는 없다.
또 모든 이생은 아주 없어지는 것[斷滅]을 두려워하는데
그 세계에는 형상[色]이 없으므로
만일 다시 마음까지 없애버리면 아주 없어지는 것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므로 그 세계에는 무상정이 없다.
【문】 이 무상정은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답】 어떤 이는 “오직 욕계에서만 일어난다.
욕계의 마음은 맹렬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힘[力]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느 다른 논사는 “욕계와 세 가지 정려[三靜慮]에서 모두 일어난다.
마음에 일찍이 닦았던 가행(加行)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역시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제4 정려에서도 나타내 일어날 수 있다.
무상천(無想天)은 제외되는 것이니
결과[果]와 원인[因]이 서로 꽉 죄인 것이 없기 때문이요,
거기서 죽으면 반드시 욕계에 태어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문】 무상정은 누가 일으키게 되는가?
【답】 오직 이생(異生)만이 일으키는 것이니
벗어난다는 생각[出離想]47)을 짓기 때문이며,
성자(聖者)는 유(有)의 법48)에 대하여 벗어난다는 생각이 없어서이다.
【문】 이 정을 일으킨 뒤에 견도(見道)에 드는 이가 있는가?
【답】 어떤 이는
“이 정으로 말미암아서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은 이생의 정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정을 일으킨 뒤에 견도에 들어갈 수 있다면
성자도 이 정을 성취하는 이가 있을 것이므로
이생의 정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을 일으킨 뒤에도 견도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한다.
【문】 만일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생의 정이라고 하는가?
【답】 성자는 비록 성취한다 하더라도 현행(現行)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은 현행에 의거하여 이생의 정이라 이름한다.
이 때문에 묘음(妙音)존자는
“이 정을 얻은 보특가라(補特伽羅)로서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든 이가 있으면 이 정에서 물러났다고 말해야 하니,
그것을 극히 싫어하여 현행(現行)하지 않기 때문이며
목숨을 마치고 제4 정려에 태어나면
그 처소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評】 앞에서 말한 것이 더 옳은 줄 알아야 한다.
【문】 이 무상정은 가행득(加行得)이 되는가,
이염득(離染得)이 되는가?
【답】 이것은 가행득이요 이염득은 아니니
제3 정려의 염(染)을 여읠 때에는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염득이라고 하면 성자가 제3 정려의 염을 여읠 때에도 얻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생의 정이라고는 하지 말아야 한다.
【문】 이 무상정은 또한 과거를 얻고[得] 미래도 닦는 것[修]인가?
【답】 어떤 이는 “그렇지 않다.
오직 유심정(有心定)에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만
무심정에서는 득(得)ㆍ수(修)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정(定)의 처음의 찰나에는 오직 현재의 것만을 성취하고
정의 그 밖의 찰나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것을 성취하며,
이 정에서 나온 뒤에는 다만 과거의 것만을 성취한다.49)
어떤 이는 “이 정에는 미래수(未來修)가 있으니 가행득(加行得)의 법에는 미래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정은 반드시 지극한 작의(作意)의 힘의 가행으로 말미암아 얻는데 어째서 미래수가 없겠는가?”라고 한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정의 처음의 찰나에는 미래와 현재의 것을 성취하고 정의 그 밖의 찰나에서는 삼세(三世)의 것을 성취하며,
이 정에서 나온 뒤에는 과거와 미래의 것을 성취한다.
【문】 만일 유심(有心)에서와 같이 득(得)ㆍ수(修)가 있다 하면
성자가 제3 정려의 염(染)을 여의는 제9 무간도(無間道)일 때에
제4 정려와 아울러 권속(眷屬)을 얻는 것처럼 역시 이 정을 얻어야 하고 이것은 이생의 정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답】 앞에서 이 정은 오직 가행득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생ㆍ성자가 제3 정려의 염을 여읠 때에는 모두가 다 얻지 못하며,
오직 이생들만이 그 염을 여읜 뒤에 가행의 힘으로써 힘써 구해야 얻는 것이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처음에 말한 것[初說]과 같아야 하니 유심정은 미래수(未來修)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정은 무심정이므로 미래수의 뜻이 없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과거의 것을 얻는다는 이치도 없으니 별해탈율의(別解脫律儀)처럼 이것도 그와 같다.”
【문】 이 무상정에는 물러남[退轉]이 있는가?
【답】 여기에는 물러남이 없다.
어찌하여 그런 줄 아느냐 하면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필추가 무상정을 얻고 이 정에서 나온 뒤에 모든 감관이 적연(寂然)하여 진지(進止)와 위의(威儀)와 언어(言語)며 옷을 입고 모든 음식을 받을 때에도 모두가 다 안정되어 있었다.
아라한으로서 먼저 원지(願智)를 얻은 이가 있었는데
그를 보고는 ‘이 선남자(善男子)는 반드시 뛰어난 법을 얻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증득한 것의 맨 끝[邊際]을 관찰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정에 들어가 원지의 힘으로써
그 필추가 무상정을 얻은 것을 보고 곧 정에서 일어나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증득한 것은 지극히 선(善)한 것이 아니오.
어떻게 부처님의 공덕의 보배 광[寶藏]을 만났는데
그것을 버리고 잘못되게 외도가 배우는 쓰레기[糞壞]의 정(定)을 취했단 말이오.
그대는 이제 빨리빨리 버려야 합니다.’
필추는 이 말을 듣고 나서 뜻을 지어 그것을 버렸지만 이 정은 따라 다녔으므로 버리거나 여의지를 못했으며,
심지어 도 닦기를 그치고 집으로 돌아갔어도 버리지 못했다가 목숨을 마친 뒤에는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이 정은 물러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자는 “여기에는 물러남이 있으니 온갖 업(業)은 모두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무간업(無間業)도 만일 뛰어난 연(緣)을 만나면 역시 바뀐다는 이치가 있다.
만일 무간업을 바꿀 수 없다 한다면 제일유(第一有)를 초월할 수 없어야 한다”라고 한다.
【評】 앞에서 말한 것이 더 옳은 줄 알아야 한다.
【문】 이 무상정은 중동분(衆同分)을 끌어당길 수 있는가?
다만 원만(圓滿)하게만 하는 것인가?
【답】 다만 원만하게만 할 수 있을 뿐이요,
끌어당길 수는 없다.
중동분은 오직 업(業)에 의하여 이끌어진 것인데 이것은 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 이 무상정은 순현법수(順現法受)라 하겠는가,
순차생수(順次生受)라 하겠는가,
순후차수(順後次受)라 하겠는가,
순부정수(順不定受)라 하겠는가?
【답】 오직 순차생수일 뿐이며 순현법수 등이 아니다.
순현법수가 아니라 함은 다른 곳에서 이 정을 닦은 뒤에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났을 때에야 비로소 과(果)를 주기 때문이다.
순후차수가 아니라 함은 이 정은 맹렬하고 날카로워서 빨리 과를 주기 때문이며,
순부정수가 아니라 함은 물러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 이것은 어느 곳에서 어떤 이숙과(異熟果)를 받는 것인가?
【답】 무상천에서 5온(蘊)의 이숙과를 받는다.50)
【論】 멸진정(滅盡定)에 들면 몇 가지의 근(根)이 소멸하는가?51) (이하는 생략함)
【문】 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다른 종지를 그치게 하고 자기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비유자와 분별론사 등은 “멸진정에는 미세한 마음이 있어서 소멸하지 않는다”라고 집착한다.
그들은 “유정으로서 색이 없는 이는 없고 또한 정(定)에 있고서 마음이 없는 것은 없다.
만일 정에 마음이 없다면 명근(命根)이 끊어져야 하고 곧 죽었다고 할 것이요,
정에 있는 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다”라고 집착한다.
그런 이의 뜻을 중지시키면서 멸진정에는 전혀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어떤 이는 “이 정에 비록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다만 색염(色染)만을 여의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니,
세계가 동일하기 때문이다”라고 집착한다.
그런 이의 뜻을 중지시키면서 멸진정은 반드시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염(染)을 여의어야 앞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니 비상비비상처의 마음이 등무간연(等無間緣)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세우(世友)존자는 “어떤 것이 멸진정인가?
이미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고 그쳐 쉬는 생각[止息想]과 작의(作意)를 우선으로 삼아 심ㆍ심소의 법을 소멸하는 것이니 이것을 멸진정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논한다.
【論】 멸진정에 들어갈 때에는 몇 가지의 근이 소멸하는가?
【답】 일곱 가지이다.
의근(意根)과 사근(捨根)과 신(信) 등의 5근(根)이다.
【論】 어느 계(繫)의 심ㆍ심소가 소멸하는가?
【답】 무색계계(無色界繫)이다.
이것은 세계의 부류[界類]의 총상(總相)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지만
오직 비상비비상처의 계(繫)일 뿐이다.
【論】 멸진정에서 나올 때에는 몇 가지의 근(根)이 앞에 나타나는가?
【답】 혹은 일곱 가지이기도 하고 혹은 여덟 가지이기도 하다.
유루의 마음[有漏心]이면 일곱 가지요,
무루의 마음[無漏心]이면 여덟 가지이다.
만일 비상비비상처의 마음으로 나오는 이면 일곱 가지의 근이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이니 앞에서의 설명과 같으며,
만일 무소유처의 마음으로 나오는 이면 여덟 가지의 근이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이니 앞의 일곱 가지와 이지근(已知根)과 구지근(具知根) 중의 어느 한 가지이다.
【論】 어느 계(繫)의 심ㆍ심소가 앞에 나타나는가?
【답】 혹은 무색계계이기도 하고 혹은 불계(不繫)이기도 하다.
만일 비상비비상처의 마음으로 나오는 이면 무색계계이며,
만일 무소유처의 마음으로 나오는 이면 불계이다.
여기서 말한 바로 말미암아 멸진정은 결정코 마음이 없다[無心]는 것이 증명된다.
정에 들어갈 때에는 다만 모든 근과 심ㆍ심소법이 소멸하는 것만을 말하면서 생기는 것은 말하지 않으며,
정에서 나올 때에는 다만 모든 근과 심ㆍ심소법과의 생기는 것만을 말하면서 소멸하는 것은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 멸진정의 자성(自性)은 어떠한가?52)
【답】 불상응행온(不相應行蘊)을 성품으로 삼는 것이니 이것은 그것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세계[界]에 대해 말하면 무색계에 있으며,
지(地)에 대해 말하면 근본의 비상비비상처의 지에 있다.
【문】 무엇 때문에 하지(下地)에 이 정(定)이 없는가?
【답】 밭이 아니고 그릇이 아니며......(이하는 생략함)
또 멸진정은 지극히 미세한 심ㆍ심소를 소멸하는 까닭에 얻는 것인데 하지는 지극히 미세한 심ㆍ심소의 소멸[滅]에 수순[順]하지 않는다.
【문】 무엇 때문에 비상비비상처는 지극히 미세한 심ㆍ심소의 소멸을 따르는데 하지에서는 그렇지 않는가?
【답】 그 정에 들고 싶어 하는 모든 이는 먼저 욕계의 선(善)의 마음을 일으키고 그 다음에 초정려에 들어간다.
그 다음에는 제2 정려에 들어가고 이와 같이 하면서 더 나아가 무소유처에 들어간다.
그 다음에는 비상비비상처에 들어가서 비상비비상처의 상ㆍ중ㆍ하의 마음에 대하여 상에서 중으로 들어가고,
중에서 하로 들어가 하품(下品)의 마음을 끊고서 멸진정에 들어가게 된다.
비유를 말하자면 앞에서와 같은 것53)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직 비상비비상처에만 있다.
또 아래의 모든 지(地)는 모두가 생각이 있다[有想]고 하는 것이니 행상(行相)이 거칠게 움직이면서 그쳐 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지를 생각도 생각 아님도 아니라[非想非非想]고 하는 것이니 행상이 미세하여서 그쳐 쉬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지에는 멸진정이 없다.
어떤 이는 “두 가지의 정(定)은 다 같이 마음이 없는 것이므로 각각 하나의 세계[一界]의 변(邊)에서 세운다.
무상정은 유색계의 변에서 세우고 멸진정은 무색계의 변에서 세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두 가지 정은 다 같이 마음이 없는 것이므로 각각 하나의 지(地)의 변에서 세운다.
무상정은 유색지(有色地)의 변에 의거하여 세우고 멸진정은 무색지(無色地)의 변에 의거하여 세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두 가지의 정은 다 같이 마음이 없는 것이므로 각각 하나의 무더기[一聚]의 변에서 세운다.
무상정은 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지는 색[所造色] 무더기의 변에서 세우고 멸진정은 심ㆍ심소의 법 무더기의 변에서 세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온갖 지(地)에는 모두가 두 가지 초과(超過)하는 것이 있다.
첫째는 탐욕을 초과하는 것[過貪欲]이요,
둘째는 머무른 곳을 초과하는 것[過住處]이다.
초정려지의 탐욕을 초과한다고 함은 자기의 지[自地]의 성도(聖道)를 말하고,
머무른 곳을 초과한다고 함은 제2 정려를 말한다.
나아가 무소유처의 탐욕을 초과한다고 함은 자기의 지와 아래의 지[下地]의 성도를 말하고,
머무른 곳을 초과한다고 함은 비상비비상처를 말한다.
비상비비상처의 탐욕을 초과한다고 함은 아래의 지의 성도를 말하고,
머무른 곳을 초과한다고 함은 멸진등지(滅盡等至)를 말한다.
만일 아래의 지에서 멸진정이 있으면
아래의 모든 지는 세 가지의 초과하는 것이 있거나
혹은 두 가지 초과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비상비비상처에는 오직 한 가지의 초과만이 있을 뿐이므로
이와 같은 평등하지 못한 초과는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멸진정은 하지(下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정은 두 가지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세워서 해탈을 삼는다.
첫째는 온갖 소연(所緣)을 등지고 버리는 것[背捨]이요,
둘째는 맨 끝의 마음[邊際心]을 끊는 것이다.
만일 하지에서 멸진정이 있다면 온갖 소연을 등지고 버리는 것이 아니니,
위[上]의 소연에 대하여 아직 등지거나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 맨 끝의 마음을 끊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니,
중간의 마음을 끊었다 해도 맨 끝의 마음을 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 정은 차제정(次第定)54)에서 맨 끝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비상비비상처로부터 무간(無間)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등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아래의 모든 지(地)에서는 멸진정이 없고 오직 유정(有頂)에만 있을 뿐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55)
“어떤 것을 멸진등지라고 하는가?
온갖 비상비비상처를 초과(超過)하기 때문에 상(想)ㆍ수(受)의 멸(滅)을 몸소 작증(作證)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
【문】 멸진등지는 곧 비상비비상처의 계(繫)인데 무엇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온갖 비상비비상처를 초과한다고 말씀하시는가?
【답】 비록 곧 그의 계(繫)라 하더라도 적정(寂淨)함이 뛰어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초과한다고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을 가에 있는 아련야 처소는 마을의 경계에 있다 하더라도 역시 적정하므로 마을과 떨어졌다고 하는 것과 같다.
또 두 가지 비상비비상처가 있다.
첫째는 유심(有心)의 것이요,
둘째는 무심(無心)의 것이다.
온갖 비상비비상처를 초과하기 때문이라고 함은 유심의 비상비비상처에 의거한 말이며,
상(想)ㆍ수(受)의 멸을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함은 무심의 비상비비상처에 의거한 말이다.
유심과 무심처럼 상응한 것과 상응하지 않은 것ㆍ소의(所依)가 있는 것과 소의가 없는 것ㆍ행상(行相)이 있는 것과 행상이 없는 것ㆍ작의(作意)가 있는 것과 작의가 없는 것ㆍ소연(所緣)이 있는 것과 소연이 없는 것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또 두 가지의 비상비비상처가 있다.
첫째는 염오의 것이요,
둘째는 불염오의 것이다.
온갖 비상비비상처를 초과하기 때문이라고 함은 염오의 것에 의거한 말이요,
상ㆍ수의 멸을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함은 불염오에 의거한 말이다.
염오와 불염오처럼 견도에서 끊어야 할 것[見所斷]과 수도에서 끊어야 할 것[修所斷]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또 두 가지의 비상비비상처가 있다.
첫째는 일찍이 얻은 것[曾得]이요,
둘째는 아직 얻지 못한 것[未曾得]이다.56) 온갖 비상비비상처를 초과하기 때문이라고 함은 일찍이 얻은 것에 의거한 말이며,
상ㆍ수의 멸을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함은 아직 얻지 못한 것에 의거한 말이다.
일찍이 얻은 것과 아직 얻지 못한 것처럼 공통한 것과 공통하지 않은 것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또 두 가지 비상비비상처가 있다.
첫째는 이염득(離染得)의 것이요,
둘째는 가행득(加行得)의 것이다.57) 온갖 비상비비상처를 초과하기 때문이라고 함은 이염득의 것에 의거한 말이며 상ㆍ수의 멸을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함은 가행득의 것에 의거한 말이다.
또 지(地)를 차례로 초과하는 것에 의거한 말이다.
온갖 무소유처를 초과하여 비상비비상처에 들어가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함은 하지의 탐욕을 초과한 것에 의거한 말이다.
온갖 비상비비상처를 초과하기 때문에 상ㆍ수의 멸을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함은 자기의 지[自地]의 마음이 있어서[有心] 머무른 곳을 초과한 것에 의거한 말이다.
【문】 모든 무학자(無學者)는 온갖 비상비비상처를 초과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유정(有頂)에 대하여 탐욕(貪欲)과 머무른 곳[住處]의 두 가지의 초과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모든 유학자(有學者)는 그것에 대해서는 오직 한 가지의 초과58)만이 있을 뿐인데 어떻게 온갖 것을 초과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답】 온갖 것이라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온갖 것의 온갖 것이요,
둘째는 적은 부분[少分]의 온갖 것이다.
여기서의 유학자는 적은 부분에 의거한 말이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어떤 이는 “여기서는 다만 머무른 곳을 초과하는 것에 의거해서만 말한다.
모든 학자는 유정(有頂)의 수도에서 끊어야 할 탐욕에 대해서는 아직 온갖 것을 초과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유정의 머무른 곳에 있어서는 온갖 것을 초과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여기서는 잠시 동안의 초과에 의거한 말이다.
모든 학자는 잠시 동안 유심위(有心位)의 온갖 유정(有頂)을 초과하는 것이니,
유심(有心)에서 나와 무심(無心)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문】 멸진정 중에서는 온갖 심ㆍ심소의 법이 소멸하는데 무엇 때문에 다만 상ㆍ수의 소멸[想受滅]만을 말하고 심(心) 등은 말하지 않는가?
【답】 비유자는 “이 정(定)에서는 마음이 있어도 오직 생각과 느낌[受]만을 소멸할 뿐이다”라고 한다.
【문】 지금은 그것을 묻지 않고 다만 마음이 없는 것[無心]만을 물은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답】 상ㆍ수의 소멸을 말하면 그 밖의 나머지도 소멸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니 그 밖의 나머지 상응한 법[相應法]은 상ㆍ수를 여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여기서는 가장 훌륭한 것을 말한다.
모든 심품(心品) 중에서 상ㆍ수는 가장 훌륭하며 그 훌륭한 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그 밖의 나머지도 따라서 소멸한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는 문(門)을 나타내고 길[略]을 나타내며 나아가 들 데[趣入]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마음 더미[心聚] 안에는 근의 성품[根性]이 있고 근이 아닌 성품이 있다.
만일 수(受)59)을 말하면 이미 이것은 근의 성품을 말한 줄 알아야 하며,
만일 상(想)을 말하면 이미 근이 아닌 성품을 말한 줄 알아야 한다.
근의 성품과 근이 아닌 성품처럼 밝음이 있는 것[有明]과 밝음이 없는 것[無明]ㆍ나타나 보임이 있는 것[有現見]과 나타나 보임이 없는 것[無現見]ㆍ관찰해야 하는 것[應觀察]과 관찰하지 않아야 하는 것[不應觀察]ㆍ묘한 것과 묘하지 않은 것ㆍ높은 것[尊]과 높지 않은 것ㆍ훌륭한 것[勝]과 훌륭하지 않은 것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상ㆍ수는 유가사(瑜伽師)들이 지극히 싫어하는 것이다.
수(受)의 힘으로 말미암아60)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색계에서 피곤[勞弊]하게 하고 상(想)의 힘으로 말미암아61) 무색계에서 피곤하게 한다.
이 때문에 세존께서는 상ㆍ수의 소멸을 말씀하셨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상ㆍ수는 두 세계에서 뛰어난 것이니,
수는 색계에서 뛰어나고 상은 무색계에서 뛰어나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즐거운 느낌[樂受]에 탐착하고 뒤바뀐 생각[倒想]을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유정으로 하여금 생사에 윤회하면서 모든 고뇌를 받게 한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상과 수는 저마다 따로따로 온(蘊)을 세우고 식주(識住)를 세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상과 수는 애욕[愛]과 견해[見]의 두 가지 번뇌를 일으킨다.
수의 힘 때문에 애욕을 일으키고 상의 힘 때문에 견해를 일으키는 것이니 온갖 번뇌는 이 두 가지를 우두머리로 삼는다”고 한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과 수는 두 가지 다툼의 근본이다.
수로 말미암아 모든 욕심에 탐착하여 재가자(在家者)들에게 모든 다툼이 일어나게 하며,
상으로 말미암아 모든 견해에 탐착하여 출가한 이들에게 모든 다툼이 일어나게 한다.
두 가지 다툼의 근본처럼 두 가지의 치우침[二邊]ㆍ두 가지의 화살[二箭]ㆍ두 가지의 희론[二戱論]ㆍ두 가지의 아소(我所)ㆍ두 가지의 잡염(雜染)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이는 “수행하는 이[行者]는 수와 상을 미워하기 때문에 멸진정에 들어간다”라고 한다.
이와 같은 뜻으로 말미암아 부처님께서는 오직 이 두 가지 법의 소멸하는 것만을 말씀하셨다.
『시설론(施設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떠한 가행(加行)이 멸등지(滅等至)를 일으키는가?
처음 업을 닦는 이[初修業者]는 온갖 행(行)에 대하여 가행을 짓지도 않고 모든 아소유(我所有)를 사유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아직 생기지 않은 상ㆍ수는 생기지 않게 해야 하고,
이미 생긴 상ㆍ수는 빨리 소멸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때에 모든 상ㆍ수가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은 생겨나지 않으며,
이미 생긴 것이 소멸하면 이것을 멸(滅)이라고 한다.
어찌하여 이 멸을 등지라고 하는가?
소멸한 법에 있어서 장애[障]도 없고 저버림[背]도 없으며 자재하면서 현실에서 드러나게 자기 몸으로 증득한 것이므로 등지라고 한다.
이런 일 때문에 세존께서는 ‘멸은 오직 한 찰나 동안의 등지의 상속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문】 마음을 평등하게 하는 것을 등지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마음이 없는 것[無心]을 어떻게 등지라고 하는가?
【답】 등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을 평등하게 하는 것이요,
둘째는 대종(大種)을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은 비록 평등한 마음을 끊어서 상속하지 않게 한다 하더라도 평등한 대종을 이끌어서 앞에 나타나 있게 하기 때문에 등지라고 한다.
【문】 무엇 때문에 두 가지 무심정[二無心定] 중에서 오직 멸진정만을 세워서 해탈(解脫)이라고 하고 무상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아니한가?62)
【답】 협존자(脅尊者)는 “부처님은 모든 법에 대하여 체(體)ㆍ상(相)ㆍ작용(作用)을 환히 통달하셔서 구경(究竟)에 이르셨지만 그 밖의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한다.
만일 법으로서 해탈의 모양이 있는 것이면 그것을 세우셨고 없는 것이면 세우지 않으셨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멸진정은 오직 내법(內法)63)에만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만 무상정은 오직 외법(外法)에만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 않는다.
내법과 외법처럼 성자와 이생(異生)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또 멸진정은 오직 잡염(雜染)을 등지고 청정(淸淨)을 향하는 이의 상속(相續) 중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만 무상정은 오직 청정을 등지고 잡염을 향하는 이의 상속 중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 않는다.
잡염을 등지는 이와 잡염을 향하는 이처럼 생사(生死)를 등지는 이와 생사를 향하는 이와 유전(流轉)을 등지고 유전을 향하는 이에 있어서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또 멸진정은 오직 아견(我見)을 등지고 무아견(無我見)을 향하는 이의 상속 중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만 무상정은 오직 무아견을 등지고 아견을 향하는 이의 상속 중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 않는다.
또 멸진정은 오직 살가야견(薩迦耶見)을 등지고 공관(空觀)을 향하는 이의 상속 중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만 무상정은 오직 공관을 등지고 살가야견을 향하는 이의 상속 중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 않는다.
또 앞에서 멸진정은 두 가지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세워 해탈로 삼는다고 말하였다.
첫째는 온갖 소연(所緣)을 등지는 것이요,
둘째는 변제의 마음[邊際心]을 끊는 것이다.
무상정에는 두 가지의 일이 다 같이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세우지 않는다.
또 멸진정은 오직 모든 세계[界]ㆍ모든 갈래[趣]ㆍ모든 생(生)을 장애하는 이의 상속 중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만 무상정은 오직 모든 세계ㆍ모든 갈래ㆍ모든 생을 장애하지 않는 이의 상속 중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해탈로 세우지 않는다.
또 모든 유[諸有]를 버리고 등지는 것[棄背]을 해탈이라고 한다.
멸진정은 모든 세계ㆍ모든 갈래ㆍ모든 생의 생사에 유전하는 생각[覺]을 버리고 등지나 무상정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등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두 가지의 무심정 중에서 오직 멸진정만을 세워 해탈로 삼는 것이요 무상정은 세우지 않는다.
【문】 무상정과 멸진정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64)
【답】 우선 이름에 차별이 있다.
무상정이라 하고 멸진정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또 세계[界]에도 차별이 있다.
무상정은 색계계(色界繫)이며 멸진정은 무색계계(無色界繫)이다.
또 지(地)에도 차별이 있다.
무상정은 제4 정려에 있으며 멸진정은 비상비비상처에 있다.
또 상속(相續)에도 차별이 있다.
무상정은 이생(異生)의 상속 중에 있으며 멸진정은 성자(聖者)의 상속 중에 있다.
또 무상정에 들어갈 때는 출리상(出離想)을 짓지만 멸진정에 들어갈 때는 지식상(止息想)65)을 짓는다.
또 무상정에 들어갈 때는 오직 상(想)만을 싫어하지만 멸진정에 들어갈 때는 상과 수(受)를 모두 다 싫어한다.
또 무상정에 들어갈 때는 오직 상만을 소멸하고자 하나 멸진정에 들어갈 때는 수(受)와 상을 소멸하고자 한다.
또 무상정에 들어갔을 때는 색계계의 심ㆍ심소의 법이 소멸하지만 멸진정에 들어갔을 때는 무색계계의 심ㆍ심소의 법이 소멸한다.
또 무상정에 들어갔을 때는 제4 정려의 심ㆍ심소의 법이 소멸하지만 멸진정에 들어갔을 때는 비상비비상처의 심ㆍ심소의 법이 소멸한다.
또 무상정은 색계의 이숙(異熟)을 불러오지만 멸진정은 무색계의 이숙을 불러온다.66)
또 무상정은 제4 정려의 이숙을 불러오지만 멸진정은 비상비비상처의 이숙을 불러온다.
또 무상정은 오직 순차생수(順次生受)의 이숙만을 부르지만 멸진정은 순차생수와 순후차수(順後次受)와 순부정수(順不定受)의 이숙을 부르는 것이니67) 때문에 차별이 있다.
세우(世友)존자는 이것을 문답으로 말씀하셨다.
“무상정과 멸진정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답】 하나는 무상정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멸진정이라고 하기 때문에 차별이 있다.
또 세계와 지와 상속(相續)과 상(想)과 싫어함[厭]과 욕락(欲樂)과 멸하는 것[所滅]과 이숙(異熟)에서 모두 차별이 있다.
(이하는 생략함)
또 이생은 무상정에 들어가서 무상처(無想處)의 과(果)를 받고 성자는 멸진정에 들어가서 유정처(有頂處)의 과를 받는다.
또 무상정은 모든 이생으로 하여금 색계의 이숙과를 받게 하지만 멸진정은 모든 학자로 하여금 무색계의 이숙과를 받게 하고 무학자(無學者)68)로 하여금 무색계의 등류과(等流果)를 받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무상정과 멸진정의 차별이라 한다.”
【문】 8해탈 가운데서 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오직 제3과 제8의 해탈만을 “몸소 작증한다[身作證]”고 하셨고 그 나머지는 그렇지 아니한가?69) 예컨대 계경에서 “정해탈(淨解脫)을 몸소 작증하며,
상수멸해탈(想受滅解脫)을 몸소 작증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답】 다른 계경에서도 8해탈에 대하여 세존께서는 모두 몸소 작증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있다.
예컨대 『대인연경(大因緣經)』에서 부처님은 8해탈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모두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문】 비록 적은 경에서 8해탈에 대하여 몸소 작증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많은 경에서 오직 두 가지만을 말씀하시면서 몸소 작증한다고 하셨다.
무엇 때문에 그러하셨는가?
【답】 이 두 가지의 해탈은 8해탈 가운데서도 명의(名義)가 가장 뛰어난 것이니 이 때문에 치우치게 말씀하셨다.
어떤 이는 “이 두 가지 해탈은 다 같이 가행(加行)과 공력(功力)을 들여서 증득하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 두 가지는 각각 하나의 세계의 변(邊)에 있기 때문이다.
정해탈은 색계의 변에 있으며,
상수멸해탈은 무색계의 변에 있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 두 가지의 해탈은 각각 하나의 지(地)의 변에 있기 때문이다.
정해탈은 제4 정려의 변에 있으며,
상수멸해탈은 비상비비상처의 변에 있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정해탈은 대종(大種)으로 만들어진 물질 무더기[聚]의 변제(邊際)에서 세우며,
상수멸해탈은 심ㆍ심소의 법 무더기의 변제에서 세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정해탈70)은 비록 색(色)의 깨끗한 모양[淨相]을 취한다 하더라도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뛰어나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몸소 작증한다는 이름을 세우셨다.
상수멸해탈은 마음이 없기[無心] 때문에 몸에는 있으면서도 마음에는 없으며,
몸의 힘으로 일으키는 것이지 마음의 힘으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몸소 작증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계경에서 8해탈을 몸소 작증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모두 이 두 가지의 해탈 때문에 몸소 작증한다는 이름을 얻는다”라고 한다.
이런 등의 이치로 말미암아 오직 두 가지만을 몸소 작증한다고 한다.
‘구족하게 머무른다[具足住]’고 함은 여러 곳에서 구족하게 머무른다는 말을 하였다.
혹은 어떤 곳에서는 색온(色蘊)의 적은 부분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이 있고,
혹은 선(善)의 5온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이 있다.
혹은 선의 4온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이 있고,
혹은 불상응행온(不相應行蘊)의 일부분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이 있다.
혹은 적멸(寂滅) 열반(涅槃)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하는 말한 것이 있다.
색온의 일부분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함은 게송에서의 말과 같다.
미묘한 지혜[妙慧]의 성스러운 가르침[聖敎]에 대하여
시라(尸羅)에 구족하게 머무르면
온갖 것은 모두가 어질고 착하여서
공덕의 보배 광[寶藏]이 많다.
선(善)의 5온(蘊)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은 마치 “초정려와 나아가 제4 정려에서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과 같다.
선의 4온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은 마치 “공무변처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에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과 같다.
불상응행온(不相應行蘊)의 일부분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은 마치 이 8해탈 중에서 “상수멸해탈을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과 같다.
적멸 열반에 대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은 마치 “열반을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한 것과 같다.
【문】 멸진정에는 몇 종류가 있는가?71)
【답】 어떤 이는 “네 가지가 있다.
구박자(具縛者)72)가 일으킨 것과 상(上)의 3품(品)을 여읜 이가 일으킨 것과 중의 3품을 여읜 이가 일으킨 것과 하의 3품을 여읜 이가 일으킨 것이니 종류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또 네 가지를 말하는 이가 있다.
6품ㆍ7품ㆍ8품ㆍ9품의 염(染)을 여읜 이가 일으킨 바를 각각 한 가지로써 삼는다.
그는 “구박자와 나아가 5품의 염을 여읜 이는 모두가 아직 이 정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 정(定)에는 아홉 가지가 있다.
상상품(上上品)을 여읜 이가 일으킨 것과 나아가 하하품(下下品)을 여읜 이가 일으킨 것이다.
오직 구박자만은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에는 열 가지가 있다.
구박자가 일으킨 것과 나아가 하하품을 여읜 이가 일으킨 것이다”라고 한다.
【문】 만일 구박자가 이 정을 일으킬 수 있다면 모든 이생의 무리는 어째서 일으키지 못하는가?
【답】 속박[縛]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견도에서 끊어야 할 것이요,
둘째는 수도에서 끊어야 할 것이다.
유정(有頂) 가운데서는 만일 견도에서 끊어야 할 속박을 결여하여도 수도에서 끊어야 할 속박을 갖추는 이면 이 정을 일으킬 수 있으며 두 속박을 다 갖춘 이면 일으키지 못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이 멸진정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구박자가 일으킨 것과 상상품을 여읜 이가 일으킨 것과 나아가 하하품을 여읜 이가 일으킨 것과 시해탈(時解脫) 아라한으로서 근성을 연마[練根]하여 부동(不動)을 얻는 이가 일으킨 것이다.”
【문】 이 열한 가지의 체(體)에는 다름이 있는가?
【답】 어떤 이는 “다르지 않다”라고 한다.
【문】 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열한 가지를 말하는가?
【답】 계위[位]의 구별로 말미암기 때문이며 체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이 열한 가지는 그 체가 저마다 다르다.
계위에 따라 일으킨 것의 종류마다 구별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문】 만일 그렇다면 구박자가 일으킨 것과 나아가 시해탈 아라한으로서 근성을 연마하여 부동을 얻은 이가 일으킨 것의 차별은 어떠한가?
【답】 구박(具縛)이 있었을 때에 멸진정을 일으키고 곧 그는 나아가 1품(品)의 염(染)을 여읠 때에도 다시 멸진정을 일으킨다.
그는 그때에 먼저 일으켰던 것은 얻었으면서도 몸에 있지 않고 성취했으면서도 앞에 나타나 있지 않으나 지금 일으킨 것은 얻어서 또한 몸에 있고 성취하여 또한 앞에도 나타난다.
곧 그가 나아가 시해탈로서 근성을 연마하여 부동(不動)을 얻을 때에도 그는 그때에 앞의 모든 계위 중에서 일으켰던 멸진정은 얻었으면서도 몸에는 있지 않고 성취했으면서도 앞에 나타나 있지 않으나 지금의 부동위에서 일으킨 멸진정은 얻어서 또한 몸에 있고 성취하여 앞에도 나타난다.
이로 말미암아 체의 유[體類]는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 이 정에 상ㆍ중ㆍ하의 품류(品類)의 구별이 있는가?
만일 있다 한다면 『시설론』의 말을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거기서 “멸(滅)에는 차별이 없다”라고 하였다.
만일 없다 한다면 부처님과 독각과 성문이 일으킨 것에는 뛰어남[勝]과 하열함[劣]이 없는가?
【답】 어떤 이는 “이 정에는 상ㆍ중ㆍ하가 없다”라고 한다.
【문】 『시설론』에서 멸에는 차별이 없다고 한 것은 비록 이미 잘 통한다 하더라도 부처님과 독각과 성문이 일으킨 것에는 훌륭함과 하열함이 없는가?
【답】 체(體)에는 훌륭함과 하열함이 없는 것이니 모두가 심ㆍ심소의 소멸을 그 성품으로 삼기 때문이다.
다만 가행(加行)으로 말미암아 차별이 있다고 말한다.
부처님은 이 정을 일으키는 데에 가행을 쓰지 않으시며,
독각은 하(下)의 가행이요,
성문은 혹은 중,
혹은 상의 가행을 하게 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이 멸진정에는 상ㆍ중ㆍ하의 품류의 차별이 있다.”
【문】 3승(乘)이 일으킨 것에 훌륭함이 있고 하열함이 있다는 것을 비록 이미 잘 회통한다 하더라도 『시설론』에서 멸에는 차별이 없다는 말은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답】 심ㆍ심소의 법을 끊어 없애는[斷滅] 데에 차별이 없다고 하는 뜻에 의거하여 차별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멸진정은 유위(有爲)이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유위에서와 같이 상ㆍ중ㆍ하가 있는 것이니 근성(根性)과 계분(階分)의 차이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얻은 것은 상(上)이요,
독각이 얻은 것은 중이며,
성문이 얻은 것은 하이다.
성문승(聲聞乘) 중에서도 많은 차별이 있다.
우선 유학위(有學位)에서는 구박(具縛)이 일으킨 것을 하하(下下)로 삼고,
나아가 여덟 가지 품을 끊은 이가 일으킨 것을 상상(上上)으로 삼는다.
무학위(無學位) 중에서는 퇴법종성(退法種姓)이 일으킨 것을 하하로 삼고 나아가73) 비로소 부동종성(不動種姓)을 얻은 이74)가 일으킨 것을 상하(上下)로 삼으며,
그 밖의 다른 이 가운데 본래부터 부동종성을 얻은 이가 일으킨 것을 상중(上中)으로 삼고,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성문(聲聞)이 일으킨 것을 상상(上上)으로 삼는다.
하나하나의 종성 중에는 근품(根品)의 차별에 의하여 일으킨 것에 각각 상ㆍ중ㆍ하 품류의 차별이 있다.
이 때문에 멸진정에는 많은 품류가 있다.
【문】 이 멸진정은 몇 가지의 물(物)을 체(體)로 삼는가?
【답】 어떤 이는 “이 정은 하나의 물건[一物]을 체로 삼는 것이니 만일 멸(滅)이 앞에 나타나면 무심(無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문】 어떻게 하나의 멸이 찰나 동안에 앞에 나타나는 것을 무심이라 하는가?
【답】 하나의 느낌[一受]이 찰나에 앞에 나타나는 것을 곧 느낌이 있다[有受] 하고,
하나의 생각[一想]이 찰나에 앞에 나타나는 것을 곧 생각이 있다[有想] 하며,
하나의 식[一識]이 찰나에 앞에 나타나는 것을 곧 식이 있다[有識]고 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하나의 멸(滅)이 찰나에 앞에 나타나는 것을 마음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어떤 이는 “이 정은 열한 가지의 물건[十一物]을 체로 삼는 것이니 10대지법(大地法)과 마음이 소멸한 까닭이다”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 정은 스물한 가지의 물건을 체로 삼는 것이니 10대지법과 10대선지법(大善地法)과 마음이 소멸한 까닭이다”라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가 있다.
“그 만큼의 심ㆍ심소의 법[心心所法]을 소멸함에 따라 곧 그 만큼의 물건이 있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니 이것을 정의 체로 삼는다.”
【문】 이 멸진정의 자체(自體)는 이미 그렇다 하고 그의 상(相)은 어떠한가?
【답】 자체가 곧 상이요 상이 곧 자체이니,
온갖 법은 체를 여의고 따로 그 상을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우(世友)존자는 “이 멸진정은 해탈을 상으로 삼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정에 머무른 이는 심ㆍ심소의 법이 해탈하고,
훌륭하게 해탈[勝解脫]하고,
지극히 훌륭하게 해탈[極勝解脫]하며,
계박을 여의고[離繫],
훌륭하게 계박을 여의고[勝離繫],
지극히 훌륭하게 계박을 여읜다[極勝離繫]”고 하셨다.
【문】 이 정은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없는데 어떻게 이 정에 머무른 이는 심ㆍ심소의 법을 해탈한다는 등의 말을 하는가?
【답】 이 정에 머무른 이는 심ㆍ심소의 법을 잠시 동안 해탈하고 나아가 잠시 동안 지극히 훌륭하게 계박을 여의는 것이니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며,
이것이 모든 번뇌를 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만일 법으로서 생각함[想]과 미세함[微細]을 인(因)으로 삼고 미미함[微微]을 등무간(等無間)으로 삼아 그것과 함께 하지도 않고 성취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이면75) 이것을 해탈이라고 한다”고 한다.
【문】 이것은 어떠한 법을 말하는가?
【답】 어떤 이는 “이것은 멸진정(滅盡定)을 말한다”고 한다.
만일 “이것은 멸진정을 말한다”고 하는 것을 주장한 이면 그는 “이 정은 생각과 미세함을 그의 인으로 삼는 것이니 한 가지의 인(因)은 곧 동류인(同類因)이요,
미미함을 또한 함께 인으로 삼는 것이니 한 가지의 인은 곧 동류인이며,
또한 함께 등무간연(等無間緣)으로 삼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이것은 멸진정을 말한다”고 주장한 이면 그는 “만일 법으로서 생각함과 미세함을 인으로 삼고 미미함을 등무간연으로 삼는다”고 말해야 하고 “그것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는 않아야 하니,
그 멸진정은 바로 앞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성취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니 정에 머무를 때는 그는 정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것은 정에서 나온 마음[出定心]을 말한다”고 한다.
만일 “이것은 정에서 나온 마음을 말한다”고 주장한 이면 그는 “이 정에서 나온 마음은 생각과 미세함을 그의 인으로 삼는 것이니 한 가지의 인은 곧 동류인(同類因)이요,
미미함을 또한 함께 인으로 삼는 것이니 한 가지의 인은 곧 동류인이며,
또한 함께 등무간연으로 삼기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이것은 정에서 나온 마음을 말한다”고 주장한 이면 그는 “만일 법으로서 생각함과 미세함을 인으로 삼고 미미함을 등무간연으로 삼는다”고 말해야 하고 “그것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니,
정에 머무를 때에 그는 정에서 나온 마음이 앞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성취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니,
정에 머무를 때에 그는 정에서 나온 마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먼저 정에서 나온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증명하여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이것은 정에 든 마음[入定心]을 말한다”고 한다.
만일 “이것은 정에 든 마음을 말한다”고 주장한 이면 그는 “이 정에 든 마음은 생각[想]으로 그의 인(因)으로 삼는 것이니 한 가지의 인은 동류인이고,
미세함을 또한 인으로 삼는 것이니 한 가지의 인은 곧 동류인이며,
또한 함께 등무간연으로 삼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이것은 정에 든 마음을 말한다”고 주장한 이면 그는 “만일 법으로서 생각을 그의 인으로 삼으며 미세함을 등무간으로 삼는다”고 말해야 하고 “그것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니 정에 머무를 때에 그는 정에 든 마음[入定心]이 앞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성취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야 하니 정에 머무를 때에 그는 정에 든 마음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
44)
본절에서는 특히 무상정에 관한 모든 문제를 논의하고 그로써 무상정의 성질을 밝히려고 한다.
여기는 『발지론(發智論)』에서 보면 방론(傍論)이다.
무상정의 체(體)는 심ㆍ심소법을 소멸하게 하는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몸속에서 생각[想]이 없는 것을 생각이 없는 이[無想者]라 하고 생각이 없는 이의 선정이므로 무상정(無想定)이라 한다.
혹은 선정 자체에 생각이 없는 것을 무상정이라 한다(『구사론』 제5권 참조).
45)
기뻐하고 근심하는 느낌의 행상이란 욕계에는 근심하는 행상으로서 고수(苦受)ㆍ우수(憂受)의 두 가지 느낌이 있고,
제2 정려에는 기뻐하는 행상으로서 희수(喜受)가 있으며,
제3 정려에는 즐거워하는 행상으로서 낙수(樂受)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제4 정려에는 오직 처중(處中)의 느낌으로서 곧 사수(捨受)만이 있다.
46)
무상이숙(無想異熟)이란 무상정(無想定)을 닦음으로써 태어나게 되는 무상천(無想天)을 말한다(『구사론』 제5권 참조).
47)
벗어난다는 생각이란 이생(異生)이 무상이숙(無想異熟)을 참된 해탈이요,
열반이라고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48)
유(有)의 법이란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의 3유(有)를 말한다.
49)
여기서 과거의 것을 성취한다고 함은 오직 이 한 세상[一生]만을 성취한다는 뜻이요,
과거의 세상[過去世]까지도 성취한다는 것이 아니다.
중동분(衆同分)을 버리는 때에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구사론』 제5권 참조).
50)
비록 무상천(無想天)의 유정(有情)이라 하더라도 처음 태어날 때와 뒤에 죽을 때에는 잠시 동안이나마 심ㆍ심소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5온의 이숙과(異熟果)를 받는다고 한다.
51)
본절은 멸진정에 들어가는 때에 소멸하는 근의 수와 소멸하는 심ㆍ심소법의 계계(界繫) 분별과 아울러 멸진정에서 나오는 때에 앞에 나타나는 근의 수와 앞에 나타나는 심ㆍ심소법의 계계 분별을 밝히는 문단이다.
여기는 『발지론』의 송문(頌文)에서 보면 ‘2정(定)’ 중 뒤의 1정에 해당한다.
52)
본절은 여러 절에 걸쳐 멸진정에 관한 모든 문제를 논구하면서 먼저 멸진정의 자성을 정의하고 멸진정의 계지(界地)를 분별하며 그로써 멸진정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을 알게 하는 문단이다.
멸진정의 체(體)는 곧 심ㆍ심소법을 소멸하는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이다.
53)
앞에서와 같다고 함은 제152권의 처음에 무상정(無想定)이 하지(下地)에는 없는 이유를 논하는 때에 인용한 여인이 털로 짜는 예를 가리킨다.
54)
차제정이라 함은 곧 9차제정을 뜻하는 데 네 가지 정려[四靜慮]와 네 가지의 무색[四無色]의 정(定)에다 아홉 번째에 멸진정(滅盡定)을 두는 것을 말한다.
55)
본절은 멸진정을 정의하는 경문(經文)과 『시설론(施設論)』의 글을 예로 들어서 이의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멸진정의 성질을 밝히고자 하는 문단이다.
56)
일찍이 얻은 비상비비상처란 이생(異生)이 일찍이 유루도(有漏道)에 의하여 아래의 여덟 가지의 지(地)의 염(染)을 여의고 비상비비상처를 얻음이 있었던 것을 말한다.
일찍이 얻지 못한 비상비비상처라고 함은 성자가 얻는 멸진정을 말한다.
57)
비상비비상처는 무소유처(無所有處)의 염(染)을 여의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므로 이염득(離染得)이지만 멸진정(滅盡定)은 지식상(止息想)으로 가행(加行)을 쓰지 않으면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가행득(加行得)이요 이염득은 아니다.
58)
여기서 한 가지 초과[過]라고 함은 머무르는 처소를 뛰어넘어 지나쳤다는 것을 말한다.
유학자(有學者)이기 때문에 유정(有頂)의 수혹(修惑)을 전혀 끊지 못했으므로 아직 탐욕은 초과하지 못한다.
59)
느낌[受]에는 22근(根) 중에 희수(喜受)ㆍ낙수(樂受)ㆍ사수(捨受)ㆍ고수(苦受)ㆍ우수(憂受)의 다섯 가지 수근(受根)이 있으므로 여기서 이것은 근의 성품[根性]이라고 한다.
생각[想] 중에는 근으로서 세울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근이 아닌 성품[非根性]이라고 말한다.
60)
수(受)의 힘으로 말미암는다 함은 초(初)ㆍ제2 정려에서는 희수(喜受)요,
제3 정려에서는 낙수(樂受)와 같은 훌륭한 느낌이 있는지라,
유가사가 제2 정려의 염(染)이나 혹은 제3 정려의 염을 여의는 데에 장애가 있고 방해가 되는 것이 마치 포악한 옥졸(獄卒)과 같다고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대비바사론』 제81권 참조).
61)
상의 힘으로 말미암는다 함은 공무변처(空無邊處)는 모든 허공의 모양[虛空相]을 사유하여 이 모양을 취하고 나서 가상(假想)으로 승해(勝解)한 뒤에 끌어 일으키는 것이다.
또 식무변처(識無邊處)는 모든 식의 모양[識相]을 사유하여 이 모양을 취하고 나서 가상으로 승해한 뒤에 끌어 일으키게 된다.
이와 같이 무색계에는 뛰어난 생각이 있는지라 이렇게 말한다.
62)
본절에서는 동일한 무심정인 무상정(無想定)과 멸진정(滅盡定)의 구별을 밝히려는 것이 과제이다(『구사론』 제5권 참조).
멸진정을 제8해탈로 삼는 것은 『대비바사론』 제84권을 참조할 것이다.
63)
내법이란 불교(佛敎)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고 외법이란 외도를 말한다.
64)
여기서는 무상정과 멸진정의 차별을 논한다.
이 두 가지 정의 들고 나는[入出] 차별에 대해서는 『중아함(中阿含)』 제58권 「법락비구니경(法樂比丘尼經)」과 「대구치라경(大拘絺羅經)」에서 논하고 있다.
곧 ① 멸진정에 들었을 때는 상(想)ㆍ(受)를 소멸하며,
무상정에 들었을 때는 상ㆍ수를 소멸하지 않는다.
② 멸진정에서 나올 때에는 멸진정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짓지 않으며 무상정에서 나올 때에는 생각이 있는 것[有想]인가 생각이 없는 것[無想]인가라는 생각을 짓는다.
65)
흩어지고 동요하는 마음을 그치고 쉬겠다는 생각을 말한다.
멸진정에서는 고요히 머무르겠다는 것을 구하기 위한 것이므로 지식상의 작의(作意)를 먼저하고 들어간다.
66)
무상정의 이숙은 색계의 이숙이기 때문에 5온(蘊)이지만 멸진정의 이숙은 무색계의 이숙이기 때문에 4온이다.
67)
멸진정은 유정(有頂)의 이숙과(異熟果)를 목적으로 하여 닦는 것이 아니요 오직 흩어지고 동요하는 마음을 그치고 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닦는 것이므로 초래하는 과보는 반드시 순차생수(順次生受)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멸진정에는 전혀 이숙과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곧 아라한이 멸진정을 얻고 욕계에서 반열반(般涅槃)하는 경우와 같은 것을 말한다(『구사론』 제5권 참조).
68)
무학자는 후유(後有)를 받지 않기 때문에 멸진정의 이숙과인 유정(有頂)의 4온(蘊)의 이숙을 받지 않지만 선(善)의 등류과(等流果)는 그것을 받는다.
69)
본절은 멸진정의 정의 중에서 “상수(想受)의 소멸을 몸소 작증하여 구족하게 머무른다[具足住]“고 하는 것에서의 몸소 작증한다는 것과 구족하게 머무른다는 것에 대하여 논구하고 있다.
몸소 작증한다는 경우는 8해탈 중의 제3과 제8의 해탈에 한하며 구족하게 머무른다고 말하는 경우는 다섯 가지가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 이 절의 내용이다.
70)
제2해탈이 부정관(不淨觀)에 의하여 색탐(色貪)을 대치(對治)하는 것에 대하여 정해탈(淨解脫)은 정(淨)의 행상(行相)을 지어서 부정의 모양[不淨相]을 대치하고 청정한 모양을 관하면서 번뇌를 일으키지 않을 때에 이것은 성만(成滿)하게 된다(『대비바사론』 제84권 참조).
71)
본절은 멸진정의 종류,
그 체(體)가 같고 다름,
품류 차별이 있고 없음,
그리고 몇 가지의 물(物)을 체로 삼는가,
또 그 모양[相]은 어떠한가 등의 문제를 논구하는 문단이다.
멸진정의 종류에는 유정(有頂)의 수혹(修惑)을 끊고 끊지 못한 것에 의거하여 4종 혹은 9종 혹은 10종으로 삼는 것이 본문에서와 같다.
이와 같이 말하는 자는 다시 시해탈(時解脫)이 다시 불시해탈(不時解脫)이 되는 경우를 더하여 11종으로 삼는다.
72)
견도에서 끊어야 할[見所斷] 혹(惑)을 완전히 끊은 뒤면서도 유정(有頂)의 수도에서 끊어야 할[修所斷] 혹을 아직 1품도 끊지 못한 성자를 말한다.
73)
여기서 나아가[乃至]라고 말하면서 생략한 것을 언급하면 사법종성(思法種姓)이 일으킨 바를 하중(下中)으로 삼고,
호법종성(護法種姓)의 것을 하상(下上)으로 삼으며,
안주법종성(安住法種姓)의 것을 중하(中下)로 삼고,
감달법(堪達法)의 것을 중중(中中)으로 삼으며,
부동법(不動法)의 것을 중상(中上)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6종성(種姓) 아라한에 관해서는 『대비바사론』 제60권을 참조할 것.
74)
비로소 부동종성을 얻은 이라고 함은 시해탈이 근성을 연마하여 불시해탈이 되는 이를 말한다.
75)
본절은 “만일 법으로서 상(想)과 미세(微細)를 인(因)으로 삼고 미미(微微)를 등무간연으로 삼아 그것(멸진정)과 함께 하지도 않고 성취하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이면 이것을 바로 해탈이라 한다”고 하는 어떤 이의 설명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밝히며,
또한 상심(想心)ㆍ미세심(微細心)ㆍ미미심(微微心)이란 어떠한 것인가를 논구함으로써 이들과 멸진정과의 관계를 밝히려고 하는 문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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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야
만약 어떤 사람이 세상의 괴로움을 싫어해서
길게 삶의 줄거움을 구하면
마땅히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청정하게
결계(結界: 깨끗이 재계를 지키고 공부할 도량을 정하는 것)하고
옷을 주문을 외우며 입고,
또 물과 음식과 향과 약을
108 편(一百八遍)씩 주문을 외우고 먹으면
반드시 목숨이 120세 되도록 길어질 것이니라.
만약 능히 여법하게 결계하고
법대로 받아 지니면
모든 것을 다 성취하나니
그 결계법이란
혹은 칼을 가지고 주문을 21 편(遍) 외우고
땅을 그어서
경계를 삼으며
혹은 깨끗한 물을 가지고 주문을 21편 외우고
사방에 뿌려 경계를 삼으며
혹은 하얀 개자(介子)를 가지고 주문을 21편 외우고
사방 상하로 던져 경계를 삼으며
혹은 깨끗한 회(灰)를 가지고 주문을 21 편 외우고
사변(四邊)을 둘러 싸 경계를 삼으며
혹은 생각 가는 곳으로 경계를 삼으며
혹은 오색실(五色線)을 가지고 주문을 21편 외우고
사변(四邊)을 둘러 싸 경계를 삼아도
되느니라.
만일 법대로 받아 지니면,
자연히 과를 얻을 것이니라.
● 사바하 娑婆訶<六十五> s vā hā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83
사다바 사라
薩怛嚩<二合>娑<引>囉<八十三>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299일째]
어피일일법문중 $ 041▲周廣周廣為 一 ● 高出, ○□□□□,又,於,所,於
□□□□□□□, 又說諸法不可說;
於彼一一諸法中, 所有決定不可說;
□□□□□□□, 우설제법불가설;
어피일일제법중, 소유결정불가설;
저러한 하나하나 법문 가운데
또 말씀한 모든 법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모든 법 중에
갖고 있는 결정한 뜻 말할 수 없어
[300째]
어피일일결정중 $ 042▲高出高出為 一 ● 最妙, ○□□□□,調,不,不,不
□□□□□□□, 調伏眾生不可說。
不可言說同類法, 不可言說同類心,
□□□□□□□, 조복중생불가설。
불가언설동류법, 불가언설동류심,
하나하나 결정한 저 뜻 가운데
중생을 조복함도 말할 수 없고
같은 종류 법들을 말할 수 없고
같은 종류 마음을 말할 수 없어
●K0953_T1559.txt★ ∴≪A아비달마구사석론≫_≪K0953≫_≪T1559≫
●K0952_T1545.txt★ ∴≪A아비달마대비바사론≫_≪K0952≫_≪T1545≫
●K0944_T1544.txt★ ∴≪A아비달마발지론≫_≪K0944≫_≪T1544≫
법수_암기방안
41 발뒤꿈치 (발굽) the heel
42 발 옆면 foot side
65 견상(肩 =
83 장딴지근 ~사다바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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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달마대비바사론_K0952_T1545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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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대비바사론』 ♣0952-152♧
[관련키워드]
제1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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