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대비바사론』
K0952
T1545
제6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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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대비바사론』
♣0952-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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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毘達磨大毘婆沙論卷第六十 次
K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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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60권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김석군 개역
2. 결온(結蘊)
2) 일행납식 ⑤
【論】 3결(結)과 나아가 98수면(隨眠)은
앞의 것이 뒤의 것을 포섭하는가,
뒤의 것이 앞의 것을 포섭하는가?198)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 것인가?
【답】 분별론자(分別論者)의 ‘타성(他性)을 포섭한다’는 집착을 거듭하여 차단하고
응리론자(應理論者)의 ‘자성(自性)을 포섭한다’는 말을 거듭 열어 드러내면서
한층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이것을 논한다.
【論】 3결(結)과 3불선근(不善根)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199)
자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論】 3결과 3루(漏)에서는 3결과 2루의 일부분은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200)
3결은
욕루(欲漏)와 유루(有漏)의 유신견ㆍ계금취ㆍ의와는 서로 포섭하는 것이니
자성이 같기 때문이며,
무명루(無明漏)와 2루(漏)의 일부분과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 것이니
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뒤에서는 이것에 준하여 알아야 한다.
【論】 3결과 4폭류(瀑流)에서는 3결과 3폭류의 일부분은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201)
3결은 욕(欲)과 유(有)와 견폭류(見瀑流)의 유신견ㆍ계금취ㆍ의와는 서로 포섭하면서도 무명폭류(無明瀑流)와 3폭류의 일부분과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論】 4폭류를 배대한 것처럼
4액(軛)을 배대한 것도 그러하다.
자성이 같기 때문이다.
【論】 3결과 4취(取)에서는 3결과 1취와 3취의 일부분은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202)
3결은 계금취와 나머지 3취의 유신견ㆍ의와는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 3취의 일부분과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論】 3결과 4신계(身繫)에서는 1결과 1신계는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계금취결은 계금취신계와 서로 포섭하면서도 나머지 3신계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論】 3결과 5개(蓋)에서는 1결의 일부분과 1개는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의결(疑結)에서 불선(不善)의 것은 의개(疑蓋)와 서로 포섭하면서도 나머지 4개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論】 3결과 5결(結)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論】 3결과 5순하분결에서는 3결과 3순하분결은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3결은 5순하분결의 유신결ㆍ계금취결ㆍ의결과는 서로 포섭하면서도 나머지 2결203)과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論】 3결과 5순상분결에서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論】 3결과 5견(見)에서는 2결과 2견은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가 포섭하지 않는다.
앞의 2결은 5견의 유신견ㆍ계금취와는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 3견과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論】 3결과 6애신(愛身)은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論】 3결과 7수면(隨眠)에서는 3결과 1수면과 1수면의 일부분은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3결은 의수면(疑隨眠)과 견수면의 유신견ㆍ계금취와는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 5수면과 견수면의 나머지 3견과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論】 3결과 9결에서는 3결과 1결과 2결의 일부분은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3결은 9결의 의결과 견결의 유신견과 취결의 계금취와는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 6결204)과 견결의 나머지 2견과 취결의 견취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論】 3결과 98수면에서는 3결과 21수면은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3결은 98수면의 세 가지 유신견(有身見)ㆍ여섯 가지 계금취(戒禁取)ㆍ열두 가지 의수면(疑隨眠)과는 서로 포섭하면서도 나머지 77수면과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論】 이와 같아서 나아가 9결과 98수면에서는 7결(結)과 98수면은 서로 포섭하면서도 그 나머지는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
9결에서 앞의 7결은 98수면과 서로 포섭하면서도 뒤의 2결205)은 수면과는 서로 포섭하지 않으니 이 2결은 모두 수면의 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처음에 3결을 들고 뒤에 9결을 들어 뒤의 종류와 서로 포섭하는 것을 자세히 분별하면서 3불선근과 나아가 7수면은 뒤의 것과 서로 포섭하는 것을 생략하여 말하지 않은 것은 그 모양[相]이 알기 쉽기 때문이다.
【論】 3결과 나아가 98수면은 몇 가지가 욕유(欲有)를 상속하게 하고
몇 가지가 색유(色有)를 상속하게 하며
몇 가지가 무색유(無色有)를 상속하게 하는가?
【답】 온갖 모두는 분별하여야 한다.206)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 것인가?
【답】 다른 종(宗)을 중지시키고 자기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혹 어떤 이는 “염오하지 않은 마음[不染汚心]도 유(有)를 상속하게 한다”라고 집착하는데
마치 분별론자와 같다.
【문】그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집착하는가?
【답】 그는 계경에 의거하여 이렇게 집착하는 것이니 계경에서 “보살은 바르게 알면서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고 바르게 알면서 어머니의 태에 머무르며 바르게 알면서 어머니의 태에서 나온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이미 바르게 알면서 어머니의 태에 든다고 할 때 바르게 안다는 것은 곧 염오하지 않은 마음에 있기 때문에 염오하지 않는 마음도 유로 하여금 상속하게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이의 뜻을 차단하면서 오직 염오의 마음만이 유를 상속하게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것을 논하는 것이다.
【문】그가 인용한 계경을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답】 뒤바뀜이 없는 생각[無倒相]에 의거하여 바르게 안다는 말을 해야 한다.
모든 유정은 대부분이 뒤바뀐 생각을 일으키면서
어머니의 태 안에 들게 된다.
남자가 태에 들 때에는 어머니에게는 사랑[愛]을 일으키고
아버지에 대하여는 성[恚]을 내는 것이며,
여자가 태에 들 때에는 아버지에게는 사랑을 일으키고 어머니에 대하여는 성을 내는 것이니
자기와는 순위(順違)가 있기 때문이다.
후유(後有)의 보살이 어머니의 태 안에 들 때에는
마음에 뒤바뀜이 없으면서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머니라고 생각하며 한결같이 친애(親愛)한다 하더라도 다른 마음이 없다.
친애가 있기 때문에 마음에 염오(染汚)는 있으면서도 뒤바뀐 생각이 없어 바르게 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계경은 내가 말하는 뜻과 어긋나지 않는다.
또 이 논(論)을 지은 까닭은 어떤 이가 “오직 사랑하는 것과 성을 내는 것만이 유로 하여금 상속하게 한다”라고 집착하기 때문이니 비유자(譬有者)가 그와 같다.
【문】그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답】 계경에 의거한 까닭이다.
계경에서 “세 가지 일이 합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태 안에 들게 된다.
첫째는 부모가 서로 사랑하면서 화합하고,
둘째는 어머니의 몸이 바야흐로 수태의 시기이며,
셋째는 건달박(健達縛)이 바로 그 앞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건달박은 그들에게 두 마음을 서로 일으키는 것이니 사랑하는 마음과 성을 내는 마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오직 사랑하는 것과 성을 내는 것만으로 유를 상속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한다.
그런 이의 뜻을 차단하면서 온갖 번뇌는 모두 유(有)를 상속하게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논을 짓는 것이다.
【문】어떻게 그가 인용한 계경을 회통해야 하는가?
【답】 계경에서는 그 중유(中有)의 지위에서의 마음을 말한 것이어서 정작 결생(結生)할 때는 사랑과 성을 내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말한 것은 그 경에 어긋나지 않는다.
또 이 논을 짓는 까닭은 혹 어떤 이가 “악한 세계[惡趣]는 오직 성을 내는 마음만으로 생을 맺고[結生],
착한 세계[善趣]는 오직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생을 맺는다”라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의 뜻을 차단하면서 욕계의 온갖 처소에서는 36수면(隨眠)의 하나하나가 앞에 나타나 있으면서 생(生)을 상속하게 하고,
색계의 온갖 처소에서는 31수면의 하나하나가 앞에 나타나 있으면서 생을 상속하게 하며,
무색계의 온갖 처소에서는 31수면의 하나하나가 앞에 나타나 있으면서 생을 상속하게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논을 짓는 것이다.
또 다른 이를 중지시키고 자기의 뜻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법의 바른 이치를 나타내 보여 유정들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이 논을 짓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유(有)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여기에서의 유는 중동분(中同分)과 중동분을 따르는 유정수(有情數)의 5온(蘊)을 말한다.
예컨대 “온갖 욕계에 있으면서 죽고 나고 하는 이는 모두 욕유(欲有)를 받은 것인가?”라고 하는 그것도 중동분과 중동분을 따르는 유정수의 5온을 말한다.
예컨대 “모든 전(纏)과 소전(所纏)은 지옥의 유를 받는다”라고 하는 그것도 중동분과 중동분을 따르는 유정수의 5온을 말한다.
예컨대 “욕유를 받을 때에는 최초에 몇 가지 업으로 생긴 근(根)을 얻는가?”라고 하는 그것도 중동분과 중동분을 따르는 유정수의 5온을 말한다.
예컨대 “4유(有)는 본유(本有)ㆍ사유(死有)ㆍ중유(中有)ㆍ생유(生有)를 말한다”라고 하는 그것도 중동분과 중동분을 따르는 유정수의 5온을 말한다.
예컨대 “모든 욕유를 버리고 욕유를 받을 때에 저 온갖 욕계법은 소멸하고 욕계 법이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그것도 중동분과 중동분을 따르는 유정수의 5온을 말한다.
예컨대 “어떤 것이 유(有) 법인가?
온갖 유루법이다”라고 하는 그것은 온갖 유루법을 유라고 한다.
예컨대 “파륵구나(頗勒懼那)야,
식식(識食)은 후유(後有)를 생기게 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라고 하는 그것은 결생(結生)하는 마음과 권속(眷屬)을 유라고 한다.
예컨대 “아난타(阿難陀)야,
알아야 한다.
만일 업(業)이 후유를 상속하게 하면 이것을 유라고 한다”라고 하는 그것은 능히 이끄는 후유의 사(思)를 말하여 유라고 한다.
예컨대 “취(取)는 유(有)의 연이 된다”라고 하는 것을 아비달마(阿毘達磨)의 모든 논사들은 “그것은 시분(時分)의 5온(蘊)을 유라고 한 것이다”고 말하였다.
묘음(妙音) 존자는 “그것은 후유를 이끌어 오는 모든 업을 유라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였다.
예컨대 “7유(有)는 첫째는 지옥유(地獄有)요,
둘째는 방생유(傍生有)이며,
셋째는 귀계유(鬼界有)요,
넷째는 천유(天有)이며,
다섯째는 인유(人有)요,
여섯째는 업유(業有)이며,
일곱째는 중유(中有)이다”라고 하는 그것은 5취(趣)와 그것의 인(因)과 그것의 방편(方便)을 유라고 한다.
지옥유 등은 5취요,
업유는 그것의 인이며 중유는 그것의 방편이다.
예컨대 “어떤 것이 욕유인가?
모든 업(業)이 욕계계(欲界繫)의 취(取)를 연으로 삼아 뒤의 생(生)으로 나아가게 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라고 하는 그것은 업과 이숙(異熟)을 유라고 하며 취의 연을 말하지는 않는다.
【문】만일 그렇다면 문론(門論)에서 말한 것을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거기서 “욕유(欲有)에는 욕계의 온갖 수면(隨眠)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하고,
색유(色有)에는 색계의 온갖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하며,
무색유(無色有)에는 무색계의 온갖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욕유에서는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욕계 5부(部)의 업은 모두가 이숙을 받게 되는 것이므로 그것은 욕계의 온갖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유와 무색유에서는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그 세계에는 오직 수도에서 끊어지는 업만이 이숙을 받게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207)
【답】 그 문론에서는 “욕유에는 욕계의 온갖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하고,
색유에는 색계의 변행(遍行)과 수도에서 끊어지는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하며,
무색유에는 무색계의 변행과 수도에서 끊어지는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한다”라고 말했어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이다.
5부의 결유(結有)의 마음은 유(有)의 권속이기 때문에 역시 가설로써 유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한다’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그 문론(門論)에는 장(章)이 있고 문(門)도 있다.
장에서는 다만 업과 이숙만을 유(有)라 말하고 취(取)의 연(緣)은 말하지 않았지만 문에서는 그 업과 이숙을 함께 말하고 취의 연도 말했기 때문에 ‘온갖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한다’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한다.
【評】 그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논사는 먼저 장(章)의 뜻을 세우고 뒤에 문(門)으로써 통한 것인데 어떻게 문에서 장의 설명과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앞의 설명이 이치에서 보아 옳다고 하겠다.
【문】무엇 때문에 유(有)라고 하는가?
【답】 더한 것도 있고 덜한 것도 있기 때문에 유라고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성도(聖道)에도 더하거나 덜한 것이 있으므로 유라고 해야 한다.
【답】 만일 더하거나 덜한 것이 있으면서 역시 유(有)를 자라게 하고 거두어 이익되게 하며 맡아 지니는 것이 있다면 유라고 말하겠지만 성도에는 비록 더하거나 덜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유를 감소시키고 위해(違害)하며 파괴하기 때문에 유라고 하지 않는다.
또 만일 더하거나 덜한 것이 있으면서 역시 모든 유의 생ㆍ노ㆍ병ㆍ사를 단절하지 않게 한다면 유라 말하겠지만 성도에는 비록 더하거나 덜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유의 생ㆍ노ㆍ병ㆍ사를 모두 끊어 계속되지 않게 하기 때문에 유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 만일 더하거나 덜한 것이 있으면서 역시 고(苦)의 집(集)에 나아가는 행(行)이요 유의 세간의 생ㆍ노ㆍ병ㆍ사의 집(集)에 나아가는 행이라면 유라고 말하겠지만 성도에는 비록 더하거나 덜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고의 멸(滅)에 나아가는 행이요 유의 세간의 생ㆍ로ㆍ병ㆍ사의 멸에 나아가는 행이기 때문에 유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 만일 더하거나 덜한 것이 있으면서 역시 살가야견(薩迦耶見)의 일이요,
뒤바뀐 일이요,
탐애[愛]의 일이요,
수면(隨眠)의 일이요,
탐ㆍ진ㆍ치의 안족처(安足處)요,
역시 때[垢]가 있고 독이 있고 허물이 있고 가시[刺]가 있고 혼탁[濁]이 있고 유(有)에 떨어지고 고제(苦諦)ㆍ집제(集諦)에 떨어진 것이면 유라고 말하겠지만,
성도에는 비록 더하거나 덜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온갖 것과는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유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 어떤 이는 “이것은 두려워할 만하기 때문에 유라고 한다”라고 한다.
【문】만일 그렇다면 열반도 두려워할 만하므로 유(有)라고 해야 한다.
계경에서 “필추여,
알아야 한다.
견문이 없는 이생(異生)은 어리석기 때문에 열반을 두려워한다.
여기에는 아(我)가 존재[有]하지 않고 아소(我所)도 존재하지 않으며 아는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아소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답】 만일 두려워함이 있되 바른 견해[正見]를 지닌 이가 일으킨 것이면 열반이라고 하겠지만 비록 두려워함이 있다 하더라도 삿된 견해[邪見]를 지닌 이가 일으킨 것이기 때문에 유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 만일 두려워함이 있되 이생(異生)과 성자(聖者)가 모두 일으킨 것이면 유라고 말하겠지만 열반에는 비록 두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이생이 일으키는 것이요 성자가 일으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유라고는 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이것은 괴로운 법[苦法]의 그릇[器]이기 때문에 유라고 한다”라고 말한다.
【문】유(有)는 또한 쾌락의 법[樂法]의 그릇이다.
계경에서 “대명(大名)아,
알아야 한다.
색이 만일 한결같이 괴로운 것뿐이어서 즐거운 것이 아니고 즐거운 것이 따르는 것도 아니며 조그마한 즐거움도 따르는 것이 없다면 유정은 즐거움을 구하기 위하여 물질에 물들어 집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명아,
알아야 한다.
물질은 한결같이 괴로운 것뿐만이 아니요,
또한 즐겁고 즐거운 것도 따르며 조그마한 즐거움이 따르기 때문에 모든 유정들은 즐거움을 구하기 위하여 물질에 물들어 집착하는 일이 있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계경에서 “결정코 3수(受)를 뒤섞임이 없도록 건립해야 하니 첫째는 즐거움[樂] 느낌이요,
둘째는 괴로운[苦] 느낌이며,
셋째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非苦樂] 느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계경에서 “도(道)는 도구(道具)에 의지하고 열반은 도에 의지한다.
도의 즐거움 때문에 즐거운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유(有)는 오직 괴로움의 그릇[苦器]만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어째서 유의 이름을 괴로움의 그릇으로 해석하는가?
【답】 나고 죽는 법에는 비록 조그마한 즐거움이 있다 하더라도 괴로움이 더 많기 때문에 괴로움의 그릇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렇기 때문에 모든 유에는 괴로움의 그릇이란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마치 독이 든 병에 한 방울의 꿀을 넣었을 때 이로 말미암아 꿀병이라고는 하지 않고 다만 독병이라고만 하는 것은 독이 많기 때문인 것처럼 유(有)도 그와 같아서 괴로움이 많은 장소이므로 다만 괴로움의 그릇이라 할 뿐이다.
그리고 모든 상속(相續)에는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유(中有)의 상속이요,
둘째는 생유(生有)의 상속이며,
셋째는 시분(時分)의 상속이요,
넷째는 법성(法性)의 상속이며,
다섯째는 찰나(刹那)의 상속이다.
중유의 상속이란 사유(死有)의 온(蘊)이 소멸하면서 중유의 온이 생기는 것이니,
이 중유의 온이 사유의 온을 잇기 때문에 중유의 상속이라고 한다.
생유의 상속208)이란 중유의 온이 소멸하거나 혹은 사유의 온이 소멸하면서 생유의 온이 생기는 것이니,
이 생유의 온이 중유의 온을 잇거나 혹은 사유의 온을 잇기 때문에 생유의 상속이라고 한다.
시분의 상속이란 갈랄람(羯剌藍)과 나아가 성년(盛年)의 시분(時分)의 온이 소멸하면서 알부담(頞部曇)과 나아가 노년(老年)의 시분의 온이 생기는 것이니,
이 알부담과 나아가 노년의 시분의 온이 갈라람과 나아가 성년의 시분의 온을 잇기 때문에 시분의 상속이라고 한다.
법성의 상속이란 선법(善法)의 무간(無間)에 불선법(不善法) 혹은 무기법(無記法)이 생기는 것이니,
이 불선법 혹은 무기법이 앞의 선법을 잇기 (불선법 혹은 무기법의 무간에서의 자세한 설명도 그러하다.) 때문에 법성의 상속이라고 한다.
찰나의 상속이란 앞과 앞의 찰나(刹那)의 무간에 뒤와 뒤의 찰나가 생기는 것이니,
이 뒤와 뒤의 찰나가 앞과 앞의 찰나를 잇기 때문에 찰나의 상속이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 상속은 다시 두 상속[二相續]에 포섭되니 앞의 셋은 법성(法性)과 찰나의 두 상속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법성도 찰나에 들게 되는 것이니,
온갖 것은 모두가 찰나의 성품[刹那性]이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 상속의 세계[界]를 말하면 욕계에서는 다섯 가지를 모두 다 갖추고 색계에서는 시분(時分)을 제외한 네 가지일 뿐이며 무색계에서는 중유와 시분을 제외한 오직 세 가지일 뿐이다.209)
갈래[趣]를 말하면 지옥에서는 시분을 제외한 네 가지이고 그 나머지 네 가지 갈래에서는 모두 다섯 가지를 다 갖춘다.
나기[生]를 말하면 4생(生)에서는 모두 다섯 가지의 상속을 다 갖춘다.
여기에서는 중유와 생유의 두 가지의 상속에 의해서만 논을 지었을 뿐이다.
【論】 3결(結)은 3유(有)를 상속하게 한다.
이것은 갖가지 종류(種類)에 의거한 설명이나 이 3결은 삼계계(三界繫)에 모두 통하는 것이니 욕계계(欲界繫)인 것은 욕유(欲有)를 상속하게 하고,
색계계(色界繫)인 것은 색유(色有)를 상속하게 하며,
무색계계(無色界繫)인 것은 무색유(無色有)를 상속하게 한다.
생유와 중유는 최초의 찰나에 그 어느 하나가 앞에 나타나면서 결생(結生)하기 때문이다.210)
그 밖의 나머지는 본론(本論)에 따라 이치대로 알아야 한다.
【문】수면(隨眠)은 모든 유(有)를 상속하게 하되 전(纏)도 아니요 구(垢)도 아니니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며 의지(意地)의 번뇌는 유를 상속하게 하지만 5식신(識身)은 그렇지 못한 것이니
결생할 때에는 반드시 의식(意識)은 있으면서도 5식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본 논(論)211)에서는 “5개(蓋)와 질결ㆍ간결과 코ㆍ혀의 접촉으로 생긴 애신[鼻舌觸所生愛身]은 욕유를 상속하게 하고 눈ㆍ귀ㆍ몸의 접촉으로 생긴 애신은 욕유ㆍ색유를 상속하게 하며 도거(掉擧)의 순상분결(順上分結)은 색유ㆍ무색유를 상속하게 한다”라고 말하는가?
【답】 본론에서는 “탐욕ㆍ진에ㆍ의개는 욕유를 상속하게 하고 탐ㆍ만ㆍ무명의 순상분결은 색유ㆍ무색유를 상속하게 하며 뜻[意]의 접촉으로 생긴 애신은 3유(有)를 상속하게 하면서도 나머지 2개(蓋)와 질결ㆍ간결과 도거의 순상분결과 앞의 다섯 가지 접촉[前五觸]으로 생긴 애신은 유를 상속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야 하는데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 것은 이 글에는 그와 다른 뜻이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아직 나머지 2개 등을 해탈하지 못하고서 목숨을 마친 뒤에 도로 욕유 등에 나기 때문에 “그는 욕유 등을 상속한다”는 말을 해야 하나 결생할 때에는 그의 힘으로 말미암지 않아서이다.
또 세 가지 연[三緣]으로 말미암아 모든 번뇌는 유를 상속하게 한다.
첫째는 아직 끊지 못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유의 이숙과(異熟果)를 받기 때문이며,
셋째는 결생할 때에 유를 적셔주기[潤] 때문이다.
모든 의지(意地)에 있는 불선(不善)의 수면(隨眠)은 이 세 가지 연이 갖추어져 있지만 무기의 수면은 유를 받을 수 없으므로 다만 두 가지 연이 있을 뿐이며 모든 5식(識)에 있는 불선의 수면은 유를 적셔주지 못하므로 다만 두 가지 연이 있을 뿐이다.
무기의 수면은 아직 끊지 못한 것만이 있으므로 나머지 두 가지의 연이 없고 불선의 전(纏)ㆍ구(垢)는 다만 두 가지 연이 있을 뿐 유를 적셔주는 것이 없으며 무기의 전ㆍ구는 오직 한 가지 연이 있을 뿐이니 아직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침개(惛沈蓋) 등은 아직 끊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유를 받게 되기 때문에 유가 상속한다고 말하면서도 유를 적셔주는 것은 아니므로 도리에서는 어긋난 것이 없다.
【論】 3결과 나아가 98수면은 어느 정(定)에 의하여 멸하는가?212)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 것인가?213)
【답】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실 때에 뛰어난 일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니 『시설론(施設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섬부주를 빙 둘러서 전륜왕이 다니는 길이 있는데 그 너비는 1유선나(喩繕那)이다.
전륜왕이 없을 때에는 바닷물에 덮여 있어서 볼 수 없다가 만일 전륜왕이 세간에 출현하면 큰 바다의 물이 1유선나로 줄어들면서 이 윤왕의 길이 나타나는데 금모래가 두루 깔리고 뭇 보배로 장엄되었으며 전단향(栴檀香)이 그 위에 뿌려져 있다.
전륜성왕은 이 섬을 순행(巡幸)하면서 네 종류 군사들과 함께 이 길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와 같아서 모든 부처님께서 아직 세간에 출현하시기 전에는 근본지(根本地)214)의 의지[依]는 볼 수 없으므로 모든 유(有)에서 끊는 결(結)은 모두 변지(邊地)215)에 의지한다.
그러다가 10력(力)216)을 갖춘 전법륜왕(轉法輪王)께서 세간에 출현하시면 근본지의 의지가 그제야 출현하는데 보리분법(菩提分法)217)의 금모래가 두루 깔리고 갖가지 공덕의 뭇 보배로 장엄되었으며 4증정(證淨)218)의 물이 그 위에 뿌려지는 것이니,
부처님은 한량없고 끝이 없는 권속과 함께 이 길에 노니시면서 열반의 성(城)으로 나아가신다.”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런 논을 짓는 것이다.
또 분별론자(分別論者)가 “모든 번뇌는 정(定)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멸하는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어떤 성자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나 있으면서도 그에게 성도(聖道)가 앞에 나타나 있다는 뜻이 없다가 수명이 다할 때에야 번뇌도 다하면서 아라한이 되므로 재정(齊頂)219)이라고 한다”라고 한다.
그런 이의 집착을 차단하면서 정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멸하는 번뇌는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것을 논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이라 함은 대치의 도[對治道]를 나타낸다.
대치의 도를 혹은 정(定)이라 하기도 하고 도(道)라 하기도 하며 대치(對治)ㆍ작의(作意)ㆍ행(行)이라 하기도 한다.
말은 비록 다르지만 그 뜻에는 차별이 없다.
여기에서 멸한다[滅]고 함은 영원히 끊어졌다[永斷]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
이 영원히 끊어진 것을 혹은 멸한다ㆍ다한다[盡]ㆍ염을 여윈다[離染]ㆍ계박을 여윈다[離繫]ㆍ해탈한다고 하기도 한다.
말은 비록 다르지만 그 뜻에는 차별이 없다.
옛날 이 법 안에 두 논사(論師)가 있었다.
한 분은 시비라(侍毘羅)요,
또 한 분은 구사벌마(瞿沙伐摩)라 하였다.
존자 시비라는 “여기에서 영원히 끊어졌다는 말은 남김없이 끊어졌고[無餘斷]ㆍ마지막까지 끊어졌고[畢竟斷]ㆍ조그마한 그림자조차도 없이 끊어졌다[無片影斷]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원히 끊어진 이는 이생이 아닌 성자요 이것은 성도만이 가능하고 세속의 도로써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칠의경(七依經)』으로 인하여 이 논(論)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 경에는 4정려(靜慮)와 아래의 3무색[下三無色]의 7근본지(根本地)를 말했을 뿐이요,
근본지로서 세속의 도가 있어서 번뇌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자만이 무루도(無漏道)로써 끊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존자 구사벌마는 “여기에서 말한 영원히 끊어졌다는 것은 남김없이 끊어졌고 마지막까지 끊어졌고 조그마한 그림자조차도 없이 끊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원히 끊어진 이는 성자이기도 하고 또한 이생이기도 하며 이것은 성도로써도 가능하고 세속의 도로써도 가능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문】어찌하여 이 논(論)이 『칠의경』으로 인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이생이 근본지에 의지하여 세속의 도를 일으키는 데에 영원히 끊어졌다는 뜻이 있는가?
【답】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아비달마(阿毘達磨)가 계경 등을 환히 비추어 알게 하는 것이 마치 밝은 등불과 같다고 하는 것이니 계경 등에서 아직 말하지 못한 것을 여기에서는 말하고 있고 아직 나타내지 못한 것을 이 안에서는 나타내고 있다.
그 경은 남음이 있는 말[有餘說]이지만 이 논은 남김 없는 말[無餘說]이다.
이 때문에 성자와 모든 이생은 7근본지와 8변지(邊地)에 의지하여 성도와 세속의 도를 일으켜 다 함께 번뇌[結]를 영원히 끊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두 가지 설[二說]이라야 다 같이 잘 회통하게 되는 것이니,
이 본론의 글에서는 두 가지 뜻을 용납하기 때문이다.
【論】 3결은 사(四)에 의지하거나 혹은 미지(未至)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
사(四)라 함은 4정려지(靜慮地)를 말한다.
미지라 함은 미지지(未至地)와 정려중간(靜慮中間)을 말하니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아직 자리에 이르지 못했음을 이름하기 때문이다.
【문】이 지(地)는 무엇 때문에 미지라고 하는가?
【답】 아직 근본지에 들어가기 전에 능히 앞에 나타나 있으면서 모든 번뇌를 끊기 때문에 미지라고 한다.
【문】계경에는 오직 근본(根本)만을 의지한다[依]고 말하고 미지지에 의지한다고 하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3결은 사(四)에 의지하거나 혹은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고 말하는가?
【답】 여기에서는 ‘사(四)에 의지하거나 혹은 미지에서 멸하게 된다’고 말해야 하고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라고는 말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이다.
뒤의 의지한다[依]는 말은 근본을 거듭하여 말하는 것이다.
이 뜻을 말하면 3결은 혹은 사(四)에 의지하여 멸한다고 함은 ‘혹은 4근본을 의지로 하여 멸한다’는 것이요,
혹은 미지에 의지하여 멸한다고 함은 ‘혹은 미지와 4근본을 의지로 하여 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다른 이에게 “당신은 성(城)에 들어가서 이 일을 할 것인가,
성에 들어가기 전에 이 일을 할 것인가?”라고 물을 때 여기에서는 하나의 성을 앞뒤에서 재차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의지한다[依]는 말도 그러하므로 이치에 있어서는 어긋나는 것이 없다.
다시 의지한다는 말에는 전체에 미치는 것[通]이 있고 따로따로의 것[別]이 있다.
따로따로의 것은 모든 근본지만을 말하는 것이니 마치 『칠의경(七依經)』에서와 같으며,
전체에 미친다 함은 근본(根本)과 변지(邊地)를 모두 말한 것이니 여기에서의 말[說]과 같다.
그러므로 이 의지한다는 말도 이치에 있어서는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3결은 욕계와 나아가 비상비비상처에 의지하여 그렇게 할 수 있다.
욕계의 것은 오직 미지에 의지해서만 멸하게 되고,
초정려(初靜慮)의 것은 초정려에 의지하거나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되며,
제2 정려의 것은 두 가지 정려에 의지하거나 혹은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되고,
제3 정려의 것은 세 가지 정려에 의지하거나 혹은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되며,
제4 정려와 4무색(無色)의 것은 네 가지 정려에 의지하거나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
왜냐하면 3결이 영원히 끊어지고 남음 없이 끊어진,
마지막까지 끊어지고,
조그마한 그림자조차 없이 끊어지는 것은 반드시 견도(見道)로써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견도는 오직 6지(地)에 의지할 뿐이니 네 가지 정려와 미지정과 정려중간이다.
만일 미지정에 의지하여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들면 이와 같은 3결은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되며 나아가 제4 정려에 의지하여 정성이생에 들면 이와 같은 3결은 제4 정려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
비록 제4 정려와 4무색지의 3결만은 사(四)에 의지하거나 혹은 미지에 의지하여 멸한다 하더라도 전체의 종류에 의지하여 말한 것이므로 그 밖의 것도 허물은 없으며 비록 8지의 변(邊)220)에 의지하여 세속의 도를 일으켜 역시 3결을 나누어 끊었다 하더라도 영원히 끊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3결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은 오직 도류인(道類忍)에만 있기 때문이니 만일 따로따로 말하면 “유신견결(有身見結)이 영원히 끊어지는 것은 오직 고류인(苦類忍)에만 있기 때문에 사(四)에 의지하고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고 한다.
【論】 3불선근(不善根)과 욕루(欲漏)는 미지(未至)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
욕염(欲染)을 여읠 때에 그것은 영원히 끊어지기 때문이니 이생이거나 성자거나 유루의 도거나 무루의 도거나 간에 다 같이 미지에 의지하여 욕염을 여의기 때문이다.
【論】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는 칠(七)에 의지하거나 혹은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
칠(七)은 4정려와 아래의 3무색인 7의정(依定)을 말하는 것이요,
미지는 미지정과 정려중간은 말하니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미지지(未至地)라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루는 초정려로부터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될 수 있고,
무명루는 욕계로부터 비상비비상처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비상비비상처의 염(染)을 여읠 때에야 바야흐로 영원히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비상비비상처의 염은 9지도(地道)221)에 의지하여 영원히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칠에 의지하거나 혹은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명루의 욕계의 것은 오직 미지에서만 멸하게 되고,
유루와 무명루의 초정려의 것은 초정려에 의지하거나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되며,
제2 정려의 것은 두 가지 정려222)에 의지하거나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되고,
나아가 식무변처의 것은 네 가지 정려와 아래의 2무색(無色)에 의지하거나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되며,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의 것은 네 가지 정려와 아래의 3무색에 의지하거나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
통틀어서 종류에 의지한다면 역시 그 밖의 나머지도 ‘7에 의지하거나 미지에 의지하여 멸하게 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다만 두 가지의 영원히 끊는 것만을 말한 까닭에 오직 성자의 무루의 도일 뿐이니 이것이 곧 최후의 금강유정(金剛喩定)이다.
그 밖의 나머지는 알맞은 바에 따를 것이니 본론(本論)의 설명과 같다.
이생과 성자와 세속과 성도와의 영원히 끊어진 차별은 그 이치대로 알아야 한다.223)
【論】 모든 결(結)이 과거이면 그 결은 이미 계박[已繫]하였는가?224)……(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 것인가?
【답】 다른 종(宗)을 중지시키고 바른 이치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혹 어떤 이는 “과거와 미래는 실로 존재하는[實有] 체(體)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또 어떤 이는 “번뇌가 끊어진 뒤에는 마침내 물러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그런 이들의 주장을 차단하면서 과거와 미래는 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 번뇌가 끊어진 뒤에도 물러남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것을 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먼저의 것을 이미 계박하였다고 하고 나중의 것을 장차 계박할 것이다라고 하며 현재의 것을 지금 계박한다고 한다.
또 여기에서 어떤 이는 “결(結)의 작용[用]을 계박이라고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결의 득(得)을 계박이라 한다.225) 그러나 결은 득에 대하여 세 종류226)가 있다.
첫째는 큰 소[牛王]처럼 득을 이끌고 앞에서 가고,
둘째는 송아지처럼 득을 따라 뒤에서 가며,
셋째는 형체와 그림자처럼 득과 함께한다.
큰 소와 같다 함은 먼저 결이 있고 뒤에 득이 있다는 것이요,
송아지와 같다 함은 먼저 득이 있고 뒤에 결이 있다는 것이며,
형체와 같다고 함은 결과 득이 함께한다는 것이다”라고 한다.
【論】 모든 결이 과거이면 그 결은 이미 계박하였는가?
【답】 모든 결이 과거이면 그 결은 이미 계박하였다.
결이 과거에 있으면 그의 득(得)도 과거이니 계박된 것이기 때문에 이미 계박하였다고 말한다.
【論】 어떤 결은 이미 계박하였으면서도 그 결은 과거가 아닌 것이 있다.
결은 미래와 현재이면서 이미 계박된 것이니 곧 모든 결은 미래와 현재에 있으면서 그 득은 과거에 있었고 일찍이 계박되었기 때문이다.
이 결은 마치 송아지와 같아서 득을 따라 뒤에서 가기 때문이다.
【論】 모든 결이 미래이면 그 결은 장차 계박할 것인가?
【답】 4구(句)를 만들어야 한다.
뜻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論】 어떤 결은 미래이면서도 그 결은 장차 계박하는 것이 아닌 것이 있다.
결은 미래이면서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으며 이미 소멸하였고 이미 뱉어버려서 반드시 물러나게 되지 않는 경우이다.
여기에서 이미 끊었다고 함은 이미 단변지(斷遍知)를 얻은 것이요,
이미 두루 알았다 함은 이미 지변지(智遍知)를 얻은 것이며,
이미 소멸하였다 함은 이미 택멸(擇滅)을 얻는 것이요,
이미 뱉었다 함은 이미 계득(繫得)을 끊었고 이미 이계득(離繫得)을 증득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으며 이미 소멸하였고 이미 뱉었다고 함은 똑같이 버렸다[捨]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라고 말한다.
반드시 물러나게 되지 않는다고 함은 불퇴법(不退法)227) 아라한의 미래 삼계(三界)의 견도와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지 않고,
퇴법(退法) 아라한의 미래 삼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지 않으며,
불퇴법 불환(不還)으로서 만일 이미 무소유처의 염(染)을 여읜 이면 미래 삼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과 아래 8지(地)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지 않고,
나아가 만일 아직 초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미래 삼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과 욕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지 않게 되며,
퇴법의 불환과 예류(預流)와 일래(一來)이면 미래 삼계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지 않는다.
불퇴법의 이생(異生)으로서 만일 이미 무소유처의 염을 여의어 마치 보살과 같은 이228)면 미래의 아래 8지(地)의 견도ㆍ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지 않으며,
나아가 이미 욕계의 염은 여의었으나 아직 초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미래의 1지(地)의 견도ㆍ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것을 ‘어떤 결은 미래이면서도 그 결은 장차 계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論】 어떤 결은 장차 계박할 것이면서도 그 결은 미래가 아닌 것이 있다.
결은 과거이어서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으며 이미 소멸하였고 이미 뱉어버렸으면서도 반드시 물러나게 되는 경우이다.
여기에서의 모든 구절의 뜻은 앞에서의 해석과 같다.
반드시 물러나게 된다고 함은 퇴법 아라한의 과거 삼계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는 것이 있고,
퇴법 불환으로서 이미 무소유처의 염을 여읜 이면 과거의 아래 8지(地)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는 것이 있으며,
나아가 아직 초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과거의 1지의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는 것이 있고,
퇴법 이생으로서 이미 무소유처의 염을 여읜 이면 과거의 아래[下] 8지의 견도ㆍ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는 것이 있으며,229) 나아가 이미 욕계의 염을 여읜 이로서 아직 초정려의 염을 여의지 못한 이면 과거 1지의 견도ㆍ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은 반드시 물러나게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니,
이것을 ‘어떤 결은 장차 계박할 것이면서도 그 결은 미래가 아닌 것이 있다’고 한다.
【論】 어떤 결은 미래이면서 그 결도 장차 계박하는 것이 있다.
결의 미래를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으며 이미 소멸하였고 이미 뱉어버렸으면서도 반드시 장차 물러나게 되는 경우이다.
여기에서 이미 끊었다는 것은 첫 번째 구절에서 해석한 것과 같고,
반드시 물러나게 된다는 것은 두 번째 구절에서와 같다.
그러나 앞은 과거의 것을 말한 것이고 지금은 미래의 것을 설명할 뿐이다.
【論】 어떤 결은 미래도 아니면서 그 결도 장차 계박할 것이 아닌 것이 있다.
결이 과거이어서 이미 끊었고 이미 두루 알았으며 이미 소멸하였고 이미 뱉어버렸으므로 반드시 장차 계박할 것이 아니며 현재의 결인 경우이다.
여기에서의 모든 구절은 첫 번째 구절의 해석한 것과 같으나 앞에서는 미래를 설명한 것이요,
지금은 과거를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결이라 함은 현재의 결이면서도 또한 미래가 아니라는 말이니 현재이기 때문이요,
또한 장차 계박할 것도 아니니 지금의 계박이기 때문이다.
【論】 모든 결이 현재이면 그 결은 지금 계박하는가?
【답】 모든 결이 현재이면 그 결은 지금 계박하는 것이니 현재의 모든 결은 반드시 현재의 득(得)이 있다.
마치 형체와 그림자와 같아서 반드시 함께 있기 때문이다.
【論】 어떤 결은 지금 계박하면서도 그 결은 현재가 아닌 것이 있다.
결은 과거와 미래이면서 지금 계박하는 경우이다.
곧 과거와 미래의 결이면서 현재의 득이 있는 것이다.
과거의 결은 마치 큰 소와 같아서 득(得)을 끌고 앞에서 가는 것이요,
미래의 결은 마치 송아지와 같아서 득을 따라 뒤에서 가는 것이니 그 득은 현재이기 때문에 지금 계박한다고 한다.
【論】 모든 이 도(道)로써 욕계의 결을 끊었다면 이 도에서 물러날 때에는 도로 그 결의 계박을 얻는가,
얻지 않는가?230)……(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 다른 종(宗)을 중지시키고 바른 이치를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혹 어떤 이는 “반드시 물러나서 모든 번뇌를 일으킨다고 하는 뜻은 없다”라고 집착하니 분별론자(分別論者)가 이와 같다.
그는 세간의 현실의 비유를 인용하여 증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병이 깨진 뒤에는 오직 병 조각만 있어 다시 병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아라한도 그와 같이 금강유정(金剛喩定)으로 번뇌를 깨뜨린 뒤에는 다시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면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
나무가 불에 탄 뒤에는 오직 남은 재만 있을 뿐이요 도로 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모든 아라한도 그와 같이 무루지(無漏智)의 불로 번뇌를 태운 뒤에는 다시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면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
그는 이러한 세간의 현실의 비유를 인용하면서 ‘물러나 모든 번뇌를 일으킨다는 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니 그런 이의 집착을 차단하면서 물러나 모든 번뇌를 일으킨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만일 물러남[退]이 없다면 계경과도 어긋난다.
계경에서 “아라한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퇴법(退法)이요,
둘째 불퇴법(不退法)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 계경에서 “다섯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시해탈(時解脫) 아라한을 물러나게 하고 숨어 없어지게 하며 실망하게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많은 사업을 경영하고,
둘째는 모든 쓸모없는 의논[戱論]을 좋아하며,
셋째는 싸우는 자들을 화합시키기 좋아하고,
넷째는 먼 길을 가기를 기뻐하며,
다섯째는 몸에 항상 병이 많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또 계경에서 “구지가(瞿底迦)라는 아라한이 있었다.
그는 시해탈 아라한인데 여섯 번 물러난 뒤에 일곱 번째에는 다시 물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칼로 자해하여 열반에 들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반드시 번뇌를 일으켜서 물러나는 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만일 물러나는 뜻이 있다면 분별론자가 인용한 현실의 비유를 어떻게 회통해야 하는가?
【답】 반드시 회통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달람(素怛纜)도 아니요 비나야(毘奈耶)도 아니요 아비달마도 아니며,
다만 세간의 조잡하고 비천한 현실의 비유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법이 다르고 성현의 법이 다른 것이므로 세간의 법을 끌어다 성현의 법을 따지지 말 것이다.
반드시 회통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 비유의 허물을 말해야 하니 비유에 허물이 이미 들어 있다면 증명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마치 병이 깨진 뒤에는 남은 조각이 반드시 있는 것처럼 아라한이 된 뒤에는 남은 번뇌가 있겠는가,
없겠는가?
번뇌가 있다면 아라한이 아니어야 하고 번뇌가 없다면 이치가 비유와 달라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마치 나무가 불에 탄 뒤에는 반드시 남는 재가 있는 것처럼 아라한이 된 뒤에는 남은 번뇌가 있겠는가,
없겠는가?
번뇌가 있다면 아라한이 아니어야 하며 번뇌가 없다면 이치가 비유와 달라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나 세간의 나무는 불에 탄다는 뜻이 없다.
다만 나무의 극미(極微)는 불의 극미의 인(因)이 되어 이미 소멸하였고,
이 불의 극미는 재의 극미의 인이 되어 이미 소멸했을 뿐이므로 “나무는 불의 인(因)이고 불은 재의 인이나 세간에서는 불은 나무를 태워서 나무가 재가 되게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나무가 이미 소멸한 뒤에도 오히려 남은 재가 있어서 전혀 물질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야 하므로 비유는 법과 뜻이 서로 비슷하지 않다.
또 아라한이 모든 번뇌를 끊었다 해도 전혀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니,
과거와 미래의 번뇌의 성상(性相)은 여전히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상속(相續)에서 번뇌를 어기는 도(道)가 아직 나타나 있지 않으면 그때를 번뇌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요,
만일 상속에서 번뇌를 어기는 도가 이미 앞에 나타나 있으면 모든 계득(繫得)을 끊고 이계득(離繫得)을 증득하여 번뇌를 성취하지 않으므로 번뇌가 이미 끊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聖道)를 닦아 익히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보기드믄 일이다.
이제 아라한이 비록 번뇌를 끊었다 하더라도 없게 하지는 못하는구나”라고 말해야 한다.
이 때문에 묘음(妙音) 존자는 “번뇌가 자기 몸에 있으면서 작용하지 않으면 끊어졌다고는 하나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치 천수(天授)가 집에 없다고 말하지만 이 말이 천수가 다른 곳에도 없다는 뜻은 아닌 것처럼 번뇌가 끊어진 때에도 그러한 줄 알아야 하리니 과거에는 있기 때문이다.
만일 물러날 인연[退緣]을 만나면 그것이 인(因)이 되어 미래의 번뇌를 이끌어낸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반드시 번뇌를 일으키면서 물러난다는 뜻이 있다.
【문】분별론자는 어떻게 응리론자(應理論者)가 인용한 계경을 회통해야 하는가?
【답】 그는 “물러날 때에는 도(道)에서 물러나는 것이요 과(果)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니,
사문과(沙門果)는 무위(無爲)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문】이미 물러남이 있다고 인정한다면 도에서 물러나건 과에서 물러나건 같은 것인데 어떠한 차별이 있기에 물러남이 없다고 말하는가?
또 그는 무학의 도[無學道]에서 물러남을 인정할 때에 유학의 도[學道]를 얻는다는 것인가,
전혀 얻지 못한다는 것인가?
【답】 만일 유학의 도를 얻는다면 과에서도 물러나야 하리니 무학의 과(果)로 유학의 도를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전혀 얻지 못한다면 큰 허물이 있게 되리니 무학의 도에서 물러나면서도 유학의 도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으로 만일 그렇다면 이생의 지위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생도 유학도 무학도 아니라면 범부ㆍ성인을 여의고 따로 유정이 있어야 하리니 이것을 인정한다면 세존의 제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번뇌를 일으키면서 물러남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분별론자는 또 “수면(隨眠)은 전(纏)의 종자이어서 수면의 자성(自性)은 마음과 상응하지 않지만,
모든 전의 자성은 마음과는 상응한다.
전은 수면으로부터 생기면서 전이 앞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모든 아라한에서 물러난다 해도 이미 수면을 끊었다면 전은 이미 생기지 않는데 그가 어떻게 물러나겠는가?
그러므로 물러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바른 이치에 맞다”라고 말한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무지(無知)의 결과요 진리에 어두운 결과이며,
무명의 결과요 방편에 힘쓰지 않은 결과이다.
그러나 진실로 번뇌를 일으킨다는 뜻이 있으므로 그의 종(宗)을 중지시키고 물러남의 법[退法]은 바른 도리와 상응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것을 논하는 것이다.
【문】물러남[退]은 어떤 법을 자성(自性)으로 삼는가?
【답】 어떤 이는 “만일 이와 같은 번뇌를 일으킬 때 모든 전(纏)이 앞에 나타나는 까닭에 물러난다고 하면 이 법을 물러남의 자성으로 삼는다”라고 말한다.
만일 그런 말을 한다면 물러남은 불선(不善)과 유부무기(有覆無記)를 그의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어느 다른 논사는 “만일 물러날[退墮] 때에 물러남에 따르면 물러나는 것이 자성이다”라고 말한다.
만일 그런 말을 한다면 온갖 법을 물러남의 자성으로 삼는 것이니,
물러날 때에는 모든 법이 모두 물러남에 따른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비유 존자(譬喩尊者)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물러나는 데에는 자성이 없으며 오직 가정으로 말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몸에 먼저 모든 착한 공덕이 있었다가 이제 물러날 인연을 만나 이 법에서 물러나고 상실하는 것인데 무슨 자성이 있겠는가?
비유컨대 재물을 지니고 있다가 도둑에게 빼앗긴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대는 이제 재물을 잃었으니 무엇을 체[體]로 삼을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재물 주인은 ‘나는 본래는 재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도둑에게 빼앗겨서 다만 재물이 없을 뿐인데 무슨 체가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옷을 입고 있다가 다른 이에게 빼앗겨 버려서 알몸이 되어 서 있는데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그대는 지금 옷이 없는데 무엇을 체로 삼을 것인가?’라고 하면 그 옷 주인은 ‘나는 먼저 옷을 입고 있었으나 지금은 빼앗겨 버렸는데 무슨 체가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사람이 옷이 해어졌는데 어떤 사람이 ‘그대는 지금 옷이 해졌는데 무엇을 성품[性]으로 삼을 것인가?’라고 하면 옷이 해진 이는 ‘나의 옷은 먼저는 완전했었으나 지금은 해졌는데 무슨 성품이 있는 줄 알겠는가?’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아서 몸에 먼저는 훌륭한 덕이 있었지만 지금은 물러나고 잃었을 뿐인데 무슨 자성이 있다 하겠는가?”
【評】 물러남의 자성이라 함은 성취하지 않는 것[不成就]으로서 무부무기이며 곧 비득(非得)이어서 심불상응행온(心不相應行蘊)에 포섭된다.
곧 또 그 밖의 것으로서 이와 같은 종류의 법이 있으며 심불상응에 포섭되어 있는 것이니 퇴(退)와 순퇴법(順退法)231)은 다른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퇴는 성취하지 않은 비득을 자성으로 삼으며 무부무기요 심불상응행온에 포섭되지만,
순퇴법은 온갖 불선(不善)과 유부무기(有覆無記)를 그의 자성으로 삼는 것이니 마치 승파(僧破)가 파승죄(破僧罪)232)와 다른 것과 같다.
승파는 화합하지 않는 것[不和合]을 자성으로 삼으며 무부무기요 심불상응행온에 포섭되지만,
파승죄는 거짓말[虛誑語]을 자성으로 삼는다.
승가[僧]는 파괴를 성취하고 승가를 파괴한 사람은 죄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처럼 퇴는 순퇴법과 다르기 때문에 물러남의 자성은 결정코 실재로 존재하며[實有] 불상응행온에 포섭되는 것이요,
곧 비득(非得)이라는 그 이치가 아주 잘 성립된다.
-----
198)
앞 절(節)에서는 3결과 나아가 98수면(隨眠)의 하나하나가 오직 98가지 수면 가운데 몇 가지의 수면을 포섭하느냐에 대해서만 말했는데 본 절(節)에서는 이들의 앞이 되는 종류와 뒤의 것과의 서로에 대한 포섭관계를 말한다.
아울러 포섭한다[攝]고 함은 자성(自性)을 포섭한다는 뜻임을 거듭 밝히는 문단(文段)이다.
199)
3결은 유신견(有身見)ㆍ계금취(戒禁取)ㆍ의(疑)이며 3불선근(不善根)은 탐(貪)ㆍ진(瞋)ㆍ치(癡)인데,
이 양자 간에는 자체(自體)가 같은 것이 없으므로 서로 포섭하지 않는다고 한다.
200)
3루(漏)에서 욕루(欲漏)는 욕계 5부(部)의 탐(貪)ㆍ진(瞋)ㆍ만(慢)과 견(見:有身ㆍ邊執ㆍ邪見ㆍ見取ㆍ戒禁取와 욕계 4부의 12견)과 의(疑)와 전(纏)을 자성(自性)으로 삼기 때문에 그 중의 견ㆍ의에 있어서는 자성이 같지만 그 밖의 나머지는 같지 않다.
유루(有漏)는 색계ㆍ무색계의 탐(貪)ㆍ만(慢)ㆍ견(見)ㆍ의(疑)를 자성으로 삼는지라 그 중의 견ㆍ의에 있어서는 자성이 같지만 그 밖의 다른 것은 같지 않다.
이 때문에 3결은 3루 가운데 2루의 일부분은 포섭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명루(無明漏) 중에는 전혀 같은 것이 없다.
201)
4폭류(瀑流)와 4액(軛)에서 욕폭류(欲瀑流)ㆍ욕액(欲軛)은 욕계의 탐(貪)ㆍ만(慢)ㆍ진(瞋)ㆍ의(疑)ㆍ전(纏)을 자성으로 하고,
유폭류(有瀑流)ㆍ유액(有軛)은 상(上) 이계(二界)의 탐(貪)ㆍ만(慢)ㆍ의(疑)를 자성으로 하며,
견폭류(見瀑流)ㆍ견액(見軛)은 삼계의 견(見)을 자성으로 삼는지라 그 중의 의ㆍ견에 있어서는 3결의 자성과 같으므로 곧 이상의 3폭류ㆍ3액의 일부분은 포섭하지만 다른 것은 그 자체가 같지 않기 때문에 그 중의 일부분은 포섭하지 않는다.
무명폭류(無明瀑流)와 무명액(無明軛)은 전혀 포섭하지 않는다.
202)
욕취(欲取)는 욕계의 탐(貪)ㆍ무명(無明)ㆍ의(疑)ㆍ만(慢)ㆍ전(纏)을 자성으로 하고,
견취(見取)는 삼계의 각 견(見)을 자성으로 하며,
아어취(我語取)는 색계ㆍ무색계의 탐(貪)ㆍ만(慢)ㆍ무명(無明)ㆍ의(疑)를 자성으로 삼는지라 그 3취(取)의 일부분과 계금취(戒禁取)와는 어느 것이나 3결(結)에 포섭된다.
203)
나머지 2결이란 탐(貪)과 진(瞋)의 순하분결(順下分結)이다.
204)
애(愛)ㆍ만(慢)ㆍ무명(無明)ㆍ에(恚)ㆍ질(嫉)ㆍ간(慳)의 6결(結)을 말한다.
이어서 9결(結) 가운데 견결(見結)은 유신견(有身見) 외에 사견(邪見)과 변견(邊見)을 포섭하며,
취결(取結)은 계금취(戒禁取) 외에 견취견(見取見)을 포섭한다.
205)
2결(結)은 9결 가운데 질결(嫉結)과 간결(慳結)을 말하며,
이들은 10전(纏)에 포섭되는 수번뇌(隨煩惱)이기 때문이다.
206)
모든 번뇌 가운데 어느 것이 우리로 하여금 삼계의 유(有)에 윤회하게 하는가를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 본 절(節)의 과제이다.
207)
색계ㆍ무색계의 수면(隨眠)과 그의 득(得)은 모두가 무기(無記)이어서 이숙(異熟)을 받지 않는다.
오직 수도에서 끊어지는 법에서 유루의 선업(善業)만이 이숙을 받을 수 있다.
만일 앞의 설명에서와 같이 유(有)가 업(業)과 이숙만을 의미한다고 하면 욕계의 경우는 그러해야 하나,
색계ㆍ무색계의 유에 대해서는 수도에서 끊어지는 수면은 따라다니며 번뇌를 더하게[隨增] 할 수 있되 앞의 4부(部:見所斷)는 그 변행(遍行)의 미혹[惑]을 제외하고는 끝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하는 것이 없으므로 온갖 수면이 따라다니며 허물을 더하게 한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 묻는 이의 뜻이다.
208)
생유(生有)가 상속하는 경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유(中有)의 온(蘊)이 소멸하면서 생유(生有)가 생기는 때요,
둘째는 사유(死有)의 온이 소멸하면서 생유가 그것에 계속되는 때다.
첫 번째 경우는 욕계ㆍ색계의 두 세계에 유정이 나는 때이니 다시 더 자세히 말하면 욕계ㆍ색계의 두 세계에서 죽어서 욕계ㆍ색계의 두 세계에 나는 이와 무색계에서 죽어서 욕계ㆍ색계의 두 세계에 나는 이는 모두가 생유ㆍ사유ㆍ중유ㆍ생유의 상속이 있게 되므로 이것이 첫 번째 경우에 속한다.
두 번째 경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욕계에서 죽어서 무색계에 가 나는 이요,
색계에서 죽어서 무색계에 가 나는 이며,
무색계에서 죽어서 도로 무색계에 가 나는 이이다.
사유의 다음에 중유를 말하지 않는 것은 무색계에는 중유가 없기 때문이다.
209)
색계ㆍ무색계와 지옥에 시분상속(時分相續)이 없는 것은 그곳의 유정은 모두 오직 화생(化生)일 뿐이며 단번에 나면서도 모든 몸과 감관이 완전무결하고 또한 단번에 없어지면서 남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210)
무색계에 나는 이는 그 생유(生有)가,
욕계와 색계에 나는 이는 그 중유(中有)가 그 최초의 찰나에 저마다 3결을 일으키면서 결생(結生)하게 된다.
211)
『발지론』을 말하고,
이 부분의 인용은 생략되어 있다.
212)
앞에서는 모든 번뇌론(煩惱論)의 일반과 모든 문[諸門]의 분별 등을 말했는데,
본 절(節)에서는 그러한 번뇌의 소멸을 논하려 한다.
그리고 분별론사(分別論師)는 번뇌가 저절로 소멸한다는 자연소멸론(自然消滅論)을 주장한데 대하여 비바사사(毘婆沙師)는 선정[定]에 의거하지 않으면 번뇌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213)
논제(論題)를 제기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에는 뛰어난 일[勝事]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요,
둘째는 분별론자(分別論者)의 번뇌의 자연소멸론(自然消滅論)을 깨뜨리기 위해서이다.
214)
여기에서 근본지(根本地)라 함은 7근본지의 뜻이어서 4정려(靜慮)와 아래[下]의 3무색정(無色定)을 말한다.(有頂을 더하지 않은 것은 유정은 성품이 어둡고 둔하여 무루도가 없기 때문이다.)
215)
변지(邊地)라고 함은 8변지로서 또는 8근분정(近分定)이라고도 한다.
4정려와 4무색정(無色定)의 하변(下邊:그것들의 預備定)의 지(地)를 말한다.
초정려지(初靜慮地)의 근분(近分)을 특히 미지(未至)라 하고,
제2 정려의 근분을 정려중간정(靜慮中間定)이라고 하며,
또는 미지라고 하는 때도 있다.
216)
10력(力)은 부처님의 10력을 말한다.(『비바사론』 제30권 참조)
217)
37보리분법(菩提分法)을 말한다.[『구사론』 제25권 참조]
218)
4증정(證淨)이란 불증정(佛證淨)ㆍ법증정(法證淨)ㆍ승증정(僧證淨)ㆍ성소애계(聖所愛戒)이다.
219)
재정(齊頂)이란 모든 번뇌는 유정(有頂)을 끝[齊]으로 한다는 뜻이다.
220)
8지(地)의 근분(近分)이라는 뜻이다.
221)
9지도(地道)라고 함은 4근본지(根本地)와 아래의 3무색지(無色地)와 두 미지지(未至地),
즉 미지(未至)와 정려중간(靜慮中間)이다.
222)
초정려(初靜慮)와 제2 정려를 가리킨다.
223)
이 부분에 대한 『발지론』의 인용은 생략되어 있다.
224)
다음에서는 법이 3세에 실제로 존재한다[實有]는 것과 번뇌가 끊어진 뒤에도 오히려 물러남[退]이 있다는 것을 예상하면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결(結)과 그 결의 작용 또는 득(得)과의 관계를 법전(法前)ㆍ법후(法後)ㆍ법구(法俱)의 세 가지 득(得)으로 밝히려고 하는 문단(文段)이다.
225)
여기에서 이계(已繫)ㆍ당계(當繫)ㆍ금계(今繫)라고 하는 계박[繫]의 의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결(結)의 작용(作用)을 계박이라고 한다는 설과,
또 하나는 결의 득(得)을 계박이라고 한다는 설이다.
226)
이 세 가지 득(得) 중에서 첫째는 법후득(法後得)이요,
둘째는 법전득(法前得)이며,
셋째는 법구득(法俱得)이라고 한다.
227)
견도(見道)는 불퇴(不退)라는 것을 앞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여기서 퇴법(退法)ㆍ불퇴법(不退法)이라고 함은 수혹(修惑)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다음의 법상(法相)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228)
보살과 같은 이라고 함은 아주 근기가 예리한[利根] 종성(種性)의 이생(異生)이어서 결정코 물러나지 않을 이[不退者]라는 뜻이다.
229)
퇴법(退法)의 이생(異生)에게는 견도에 끊어지는 결(結)에서도 물러나는 일이 있다고 함은 이생은 아직 견도(見道)를 얻지 못하였으나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을 세속지(世俗智)로 나누어 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견도를 이미 얻은 경우와 같이 영원히 끊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견도에서 끊어지는 결에서도 수도에서 끊어지는 결에서와 같이 물러나는 것이 있다.
230)
번뇌를 끊는 때의 도(道)와 끊은 뒤에 도로 물러난 때에 얻는 결(結)의 득(得)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먼저 번뇌로부터 물러난다는 일이 과연 있는가 없는가를 논하고 이어서 물러남의 자성[退自性]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문단(文段)이다.
231)
순퇴법(順退法)이란 온갖 번뇌를 말한다.
232)
승파(僧破)란 단순히 승단(僧團)을 분열시키려는 움직임이나 그 상태를 말하며,
파승죄(破僧罪)란 그 승파를 일으키는 동기 등 도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온갖 행위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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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른 정토에 옮겨 태어나
연꽃에 화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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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는 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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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법력불가설 $ 076▲睥羅睥羅為 一 ● 謎羅, ○□□□□,菩,彼,彼,修
□□□□□□□, 菩薩法住不可說,
彼諸正念不可說, 彼諸法界不可說,
□□□□□□□, 보살법주불가설,
피제정념불가설, 피제법계불가설,
보살의 법력을 말할 수 없고
보살의 법에 있음 말할 수 없고
저들의 바른 생각 말할 수 없고
저들의 모든 법계 말할 수 없고
[206째]
수방편지불가설 $ 077▲謎羅謎羅為 一 ● 娑攞荼, ○□□□□,學,無,究,彼
□□□□□□□, 學甚深智不可說,
無量智慧不可說, 究竟智慧不可說,
□□□□□□□, 학심심지불가설,
무량지혜불가설, 구경지혜불가설,
방편 지혜 닦는 일 말할 수 없고
깊은 지혜 배우는 일 말할 수 없고
한량없는 지혜를 말할 수 없고
끝까지 이른 지혜 말할 수 없고
●K0953_T1559.txt★ ∴≪A아비달마구사석론≫_≪K0953≫_≪T1559≫
●K0952_T1545.txt★ ∴≪A아비달마대비바사론≫_≪K0952≫_≪T1545≫
●K0944_T1544.txt★ ∴≪A아비달마발지론≫_≪K0944≫_≪T1544≫
법수_암기방안
76 *무지 마름
77 *무지 첫마디
49 두째발가락 second toe
97 족~비탈 ~측면 [ 신조어 ]
130390
733
○ 2019_1004_165157_can_bw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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