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양성교론』
K0571
T1602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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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양성교론』
♣05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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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顯揚聖教論卷第六
K0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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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양성교론 제6권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제2 섭정의품 ②
논하여 말하건대 이상과 같이 세속제(世俗諦)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승의제(勝義諦)는 어떠한가?
게송에서 말한다.
5법(法)과 3법(法)의 진실이며
그것은 다시 네 가지임을 알아야 하네.
그리고 네 가지 심사(尋思)와
네 가지 여실지(如實智)이네.
논하여 말한다.
‘5법(法)’이란
첫째는 양상[相]이고,
둘째는 명칭[名]이며,
셋째는 분별이고,
넷째는 진여이며,
다섯째는 정지(正智)이다.
‘양상’이란 간략히 말하면 온갖 언설의 의지처이다.
‘명칭’이란 모든 양상에 의지하여 언설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분별’이란 삼계에 포섭되는 모든 심왕법ㆍ심소법을 말한다.
‘진여’란 법무아에서 나타난 거룩한 지혜로 행하는 바이고,
온갖 언설이 의지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정지(正智)’란 모든 성문ㆍ독각과 모든 보살이 진여를 통달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보살들은 세간지와 출세간지로써 5명처(明處)에 대해 부지런히 배울 때에,
편만진여(遍滿眞如)가 현전에 많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속히 소지장(所知障)이 청정해지는 것을 증득한다.
‘세간ㆍ출세간의 바른 지혜[正智]’란 다음과 같다.
모든 성문과 독각들이 처음에 진여를 통달하고 나서,
처음에는 한결같이 출세간의 정지의 힘과 다음에 얻어지는 세간ㆍ출세간의 정지로 인하여,
여러 안립된 진리에 대하여
삼계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과
삼계의 고요한 곳을 애착하여 맛들이는 것을 일으키게 된다.
또한 그 정지가 현전에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속히 번뇌장이 청정해짐을 얻게 된다.
‘3법(法)’이란 세 가지 자체(自體)1)를 말한다.
첫째는 변계소집자체이고,
둘째는 의타기자체이며,
셋째는 원성실자체이다.
변계소집자체2)는 명칭ㆍ언어에 의지하여 자체를 가립하는 것이니,
세간의 언설에 수순하기 위한 까닭이다.
의타기자체3)는 조건[緣]을 따라 생겨난 법의 자체를 말한다.
원성실자체4)는 다음과 같다.
모든 법의 진여는 거룩한 지혜로 행할 바이고,
거룩한 지혜의 경계이며,
거룩한 지혜로 반연할 바이니,
지극히 청정함을 증득하고자 하기 때문이고,
온갖 형상과 거칠고 무거운 두 속박[麤重二縛]으로부터의 해탈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며,
모든 공덕을 이끌어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네 가지임을 알아야 함’이란 다음과 같다.
진실에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의 진실이고,
둘째는 도리의 진실이며,
셋째는 번뇌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고,
넷째는 소지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다.
‘세간의 진실’이란 일체 세간이 모든 일에서 관습으로 얻어진 것ㆍ깨달아 들어가는 지견(智見)으로 인하여 공통적으로 세속의 성품을 시설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땅에 대해서는 땅이라고 말하고 불 등이 아니라고 함과 같다.
이와 같이 물, 불, 바람과
빛깔ㆍ형태, 소리, 냄새, 맛, 촉감과
음식, 의복, 수레, 온갖 장엄구, 온갖 집기(什器), 향, 꽃타래,
화장품, 노래, 춤, 음악,
여러 친구들, 남자, 여자,
위의(威儀), 온갖 행동,
밭, 집, 재물 그리고 괴로움과 즐거움 등에 대하여,
괴로움에 대해서는 괴로움이요 즐거움이 아니라고 말하고,
즐거움에 대해서는 즐거움이요 괴로움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간략히 말하면 “이것은 이것이요,
그것이 아니다.”라고 하고,
“그것은 그것이요,
그 밖의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일이 세간의 유정들이 결정적인 승해(勝解)로 행할 바이고,
일체 세간이 옛적부터 전해온 명칭과 말로 결정적으로 자신과 남을 분별하는 것이라면,
모두 진실이 되고 삿된 생각으로 구성됨이 아니며 관찰로 취할 바이니,
이것을 ‘세간의 진실’이라고 이름한다.
‘도리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바른 지혜가 있는 이,
도리의 의취를 지닌 총명한 이,
매우 지혜로운 이,
추구하는 이,
살펴서 관찰하는 이,
심사(尋思)의 경지에 머무는 이,
스스로 변재를 갖춘 이,
범부 중생의 지위에 있는 이,
관행(觀行)을 따르는 이들이 현량(現量)5)ㆍ비량(比量)6)ㆍ지교량(至敎量)7)에 의하여 지극히 잘 결택하는 지혜로 행하는 바와 아는 바의 사실을 가지고 증성도리(證成道理)로써 건립된 것이다.
이런 까닭에 ‘도리의 진실’이라고 이름한다.
‘번뇌장이 청정해지는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란 다음과 같다.
모든 성문ㆍ독각들이 무루의 방편지혜와 무루의 바른 지혜[正智]와
다음에 얻는[後得] 무루의 세간지혜 등으로 행하는 경계이니,
이것을 ‘번뇌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을 반연함으로써 번뇌장에 대하여 지혜가 청정하게 되고,
다음에는 장애 없는 성품을 증득하여 머문다.
이런 까닭에 ‘번뇌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라고 이름한다.
【문】 이 중에서 무엇이 진실인가?
【답】 괴로움ㆍ집기(集起)ㆍ적멸ㆍ수도의
네 가지 명칭에서 현현되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이다.
이와 같은 사성제를 간택함으로 인하여 현관위(現觀位)8)에 들어가고,
현관위 중에서 진실한 지혜가 생겨난다.
‘소지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란 다음과 같다.
알아야 할 바[所知]에 대해서 능히 지혜를 장애하기 때문에
소지장(所知障)이라 이름한다.
진실한 성품이라면 바로 소지장을 해탈한 지혜로 행하는 경계이니,
이것을 ‘소지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라 이름한다.
마땅히 알라.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모든 보살ㆍ부처님 박가범께서,
법무아(法無我)에 들어 이미 지극히 청정함에 들어간 이를 위해서
일체법의 언설을 여읜 자성에 의지하여
자성을 가립한 것이고,
분별이 없는 평등지로 행하는 경계이니,
가장 수승한 진여이고,
최상의 알아야 할 바의 궁극적인 성품이다.
이 성품은 온갖 정법을 간택하고,
능히 회전(廻轉)하지 못하며,
능히 넘어서지 못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소지장이 청정한 지혜로 행하는 진실’이라고 한다.
‘네 가지 찾아 생각함[尋思]’9)란
첫째는 명칭을 심사함[名尋思]이고,
둘째는 사실을 심사함[事尋思]이며,
셋째는 자체를 임시로 세워 심사함[自體假立尋思]이고,
넷째는 차별을 임시로 세워 심사함[差別假立尋思]이다.10)
‘명심사’는 보살들이 명칭11)에 있어서 오직 명칭만을 보는 것이다.
‘사심사’는 보살들이 사물12)에 있어서 오직 사물만을 보는 것이다.13) ‘자체가립심사’는 보살들이 자체를 가립(假立)한 것에 있어서 오직 자체를 가립한 것만을 보는 것이다.
‘차별가립심사’는 보살들이 오직 차별을 가립한 것만을 보는 것이니,
이것을 ‘차별을 가립한 것에 대한 심사’라고 이름한다.14)
이 보살들은 명칭ㆍ사물의 두 종류에 대하여,
혹은 형상을 떠나서 관찰하거나,
혹은 형상에 계합하여 관찰하거나,
명칭과 사물에 의지하여 합해서 관찰함으로써 ‘자체를 가립함’과
‘차별을 가립함’에 통달하게 된다.
‘네 가지 여실지(如實智)’15)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명심사(名尋思)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이고,
둘째는 사심사(事尋思)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이며,
셋째는 자체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이고,
넷째는 차별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이다.
‘명심사(名尋思)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란 다음과 같다.
보살들이 명칭에 대해서 오직 명칭만 있다고 심사(尋思)함으로 인하여
명칭에 대해서 여실히 분명히 안다.
말하자면 이 명칭을 이 대상[義]16)으로 삼음으로써
이 사물에 대해서 건립하여 세간으로 하여금 생각ㆍ견해ㆍ언설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만약 빛깔ㆍ형태[色] 등 표상된 사물에 대해서
빛깔ㆍ형태 등의 명칭을 건립하지 않는다면,
모든 세간에서 능히 이 사물이 빛깔ㆍ형태 등이라고 표상지음이 없을 것이며,
만약 표상지음이 없다면
증익하고 집착함을 능히 일으키는 일이 없을 것이고,
만약 집착하지 않는다면 곧 언설이 없을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여실히 분명히 안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제1 명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라고 한다.
‘사심사(事尋思)’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란 다음과 같다.
보살들이 사물에 대해서 오직 사물만 있다고 심사함으로 인하여,
빛깔ㆍ형태 등 표상된 사물의 본성은
일체의 언설을 여읜 것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임을 여실히 분명히 안다.
이것을 ’제2 사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라고 이름한다.
‘자체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란 다음과 같다.
보살들이 빛깔ㆍ형태 등의 표상된 사물의 가립(假立)된 자체에 대하여
오직 가립이라고 심사함으로 인하여,
실제로 그 사물은 자체가 아니고
그 사물의 자체와 비슷하게 현현한 것임을 통달한다.
또한 능히 그 사물의 자체는 비유하면
변화ㆍ영상(影像)ㆍ메아리ㆍ빛의 그림자ㆍ물 속의 달ㆍ아지랑이ㆍ꿈ㆍ허깨비와 같아서
체성이 있음과 비슷한 것임을 능히 분명히 안다.
이것을 이름하여 ‘제3 자체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진
매우 심오한 의미에서 행해지는 경계의 여실지’라고 한다.
‘차별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지는 여실지’란 다음과 같다.
보살들이 차별의 가립에 대해서 오직 가립된 성품이라고 심사함으로 인하여,
빛깔ㆍ형태 등의 표상된 사물의 차별가립에 대해서
불이(不二)의 의미를 잘 통달한다.
말하자면 그 모든 사물들은 있음의 성품도 아니고 없음의 성품도 아니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자체가 성취되지 않기 때문에 있음의 성품이 아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체가 성취되기 때문에 없음의 성품도 아니다.
이와 같이 빛깔ㆍ형태가 있음이 아니니 마치 승의제(勝義諦)와 같기 때문이고,
빛깔ㆍ형태가 없음이 아니니 마치 세속제에서 빛깔ㆍ형태를 가립함과 같기 때문이다.
유성(有性)ㆍ무성(無性)ㆍ유색(有色)ㆍ무색(無色)과 같이
그처럼 유견(有見)ㆍ무견(無見) 등17)의 여러 차별가립의 법문은
그 모든 것이 이 이취(理趣)에 의거해서 모두 알아야 한다.
만약 능히 차별가립이
이와 같이 불이(不二)의 뜻임을 여실히 분명히 안다면
이것을 ‘제4 차별가립심사에서 이끌어진 여실지’라고 이름한다.
이상과 같이 깨달아 들어가는 바의 사실과
능히 들어가는 원인과
능히 들어감을 분명히 알았다.
또한 다음에 게송에서 말한다.
세 가지 자체가 성립하는
차별, 업, 은밀함,
방편, 포섭, 차이점[別異],
이것은 각각 많은 종류가 있네.
논하여 말한다.
저 세 가지 자체(自體)가 성립하는 차별,
업, 은밀, 방편, 포섭, 차이가 각각 많은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립하는 많은 종류는 장차 「성무성품(成無性品) 」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과 같다.
‘차별’에 관한 것은 다음과 같다.
【문】 변계소집자체는 몇 가지가 있는가?
【답】 의타기자체 중에 있는 가립된 자체의 차별과 같아서
이 변계소집자체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변계소집자체도 한량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의타기자체 중에 두 가지 변계소집자체의 분별이 있나니,
수승한 깨달음을 따르는 것 및
자주 익히는 습기ㆍ수면(隨眠)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문】 의타기자체는 몇 가지가 있는가?
【답】 곧 모든 양상이 많은 종류의 차별이 있음과 같다고 알아야 하나니,
물질의 양상ㆍ심왕법의 양상ㆍ심소법의 양상ㆍ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의 양상 등 이와 같은 것들이다.
또한 간략히 말한다면 두 가지의 의타기자체가 있나니,
변계소집자체의 분별에서 일어난 것과 분별 아닌 것에서 일어난 것이다.
【문】 원성실자체는 몇 가지가 있는가?
【답】 원성실자체는 모든 곳에서 하나의 맛이기 때문에 차별을 건립할 수 없다.
‘업’에 관한 것은 다음과 같다.
【문】 변계소집자체는 능히 몇 가지 업을 짓는가?
【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능히 의타기자체를 생겨나게 함이고,
둘째는 곧 이 중에서 모든 언설을 일으킴이며,
셋째는 능히 이 가운데서 중생집(衆生執)18)을 생겨나게 함이고,
넷째는 능히 법집(法執)19)을 생겨나게 함이며,
다섯째는 능히 두 가지 집착의 습기ㆍ추중을 섭수함이다.
【문】 의타기자체는 능히 몇 가지 업을 짓는가?
【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능히 모든 잡염의 자체[體]를 생겨나게 함이고,
둘째는 능히 변계소집자체와 원성실자체의 의지처가 됨이며,
셋째는 능히 중생집의 의지처가 됨이고,
넷째는 능히 법집의 의지처가 됨이며,
다섯째는 능히 두 가지 집착의 습기ㆍ추중의 의지처가 됨이다.
【문】 원성실자체는 능히 몇 가지 업을 짓는가?
【답】 다섯 가지가 있다.
능히 두 가지의 다섯 업(業)으로 다스림과 생기(生起)함에서 반연할 바의 성품이 되기 때문이다.
‘은밀(隱密)’이란 장차 세 가지 자체의 뜻을 따라서 모든 불요의경(不了義經)을 해석함을 말한다.
한량없는 경전 중에 모든 여래의 은밀한 말씀 및 모든 보살의 은밀한 말씀이
모두 세 가지 자체를 따라야만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 경전에서 말씀한 바 3해탈문(解脫門),
그것은 어떻게 건립하는가?
【답】 세 가지 자체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변계소집자체에 의거함으로써 공해탈문(空解脫門)을 세우고,
의타기자체에 의거함으로써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을 세우며,
원성실자체에 의거함으로써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을 세운다.
【문】 경전에서 말씀한 무생법인(無生法忍)20),
그것은 어떻게 건립하는가?
【답】 세 가지 자체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변계소집자체에 의거함으로써 본래무생인(本來無生忍)을 말하고,
의타기자체에 의거함으로써 자연무생인(自然無生忍)을 말하며,
원성실자체에 의거함으로써 번뇌고구무생인(煩惱苦垢無生忍)을 말하나니,
이 세 가지 무생인은 물러서지 않는 경지[不退轉地]21)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차별된 뜻에 의거함으로써
나머지 일체의 은밀한 언어도 모두 세 가지 자체를 따라서 해석됨을 알아야 한다.
‘방편’이란 이와 같은 세 가지 자체를 분명히 알아서
능히 모든 성문ㆍ독각ㆍ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의 방편을 짓는 것을 말한다.
‘포섭’이란 세 가지 자체 및 양상ㆍ명칭ㆍ분별 등 다섯 가지 사실이 서로 포섭함을 말한다.
【문】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사실에서 처음의 자체22)는 몇 가지 사실을 포섭하는가?
【답】 없다.
【문】 두 번째 자체23)는 몇 가지 사실을 포섭하는가?
【답】 네 가지이다.
【문】 세 번째 자체24)는 몇 가지 사실을 포섭하는가?
【답】 한 가지이다.
‘차이점[別異]’이란 다음과 같다.
변계소집자체는 오직 바르게 마땅히 알아야 함이고,
의타기자체는 마땅히 알고 마땅히 끊어야 함이며,
원성실자체는 마땅히 알고 마땅히 증득해야 함이다.
이상과 같이 속제(俗諦)와 승의제(勝義諦)에 깨달아 들어가야 한다.
다시 게송에서 말한다.
12분교(分敎)를 듣고
가장 수승한 3보(寶)에 귀의하며
3학(學)과 3보리(菩提)로
유정의 청정을 위해 설하네.
논하여 말한다.
‘십이분교25)를 듣고’란
계경(契經),
응송(應頌),
기별(記別),
풍송(諷頌),
자설(自說),
연기(緣起),
비유(譬喩),
본사(本事),
본생(本生),
방광(方廣),
미증유법(未曾有法),
논의(論議)인 성교(聖敎)를 듣는 것을 말한다.
‘계경(契經)’26)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경전에서 부처님ㆍ박가범께서
여러 시기와 장소에서 갖가지로 교화하는 유정과 조복할 행위의 차별에 의지하여,
혹은 온(薀)에 포함되는 법ㆍ계(界)에 포함되는 법ㆍ처(處)에 포함되는 법을 말씀하기도 하고,
혹은 연기(緣起)에 포함되는 법27)을 말씀하기도 하며,
혹은 음식작용물[食]에 포함되는 법과 진리[諦]에 포함되는 법28)을 말씀하기도 하고,
혹은 성문ㆍ독각ㆍ여래에 해당되는 법을 말씀하기도 하며,
혹은 4념주ㆍ4정단ㆍ4신족ㆍ5근ㆍ5력ㆍ7각지(覺支)ㆍ8성도지(聖道支)에 포함되는 법을 말씀하기도 하고,
혹은 청정하지 않음ㆍ멈춤[息]ㆍ기억함ㆍ배움ㆍ증득함ㆍ청정 등에 포함되는 법을 말씀하는 것을 말한다.
여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결집(結集)29)하는 모든 이들이 기뻐하고 공경히 받아 지니며,
성교(聖敎)로 하여금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훌륭하고 미묘한 명칭ㆍ문구ㆍ글자 등으로써
그 상응하는 바와 같이 차례로 결집하고 차례로 배치하며,
능히 편찬하고,
온갖 의미와 이익을 이끌어내고,
온갖 청정행[梵行]과 갖가지 훌륭한 의미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계경’이라 이름한다.
‘응송(應頌)’30)이란 모든 경전 에서
혹은 중간이거나 혹은 최후에 게송으로써
모든 경전의 분명하지 않은 뜻을 거듭 밝히는 것이니,
이것을 응송이라 한다.
‘기별(記別)’31)이란 모든 경전에서,
여러 제자들이 목숨을 마친 후에 태어나는 곳의 차이를 말함과
모든 경전에서 요의설(了義說)을 밝힌 것이니,
이것을 기별이라고 한다.
‘풍송(諷頌)’32)이란 모든 경전에서,
산문[長行]으로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구절[句]으로써 엮은 것인데,
혹은 두 구절,
혹은 세 구절,
혹은 네 구절,
혹은 다섯 구절,
혹은 여섯 구절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풍송이라 한다.
‘자설(自說)’33)이란
모든 경전에서 청하는 이의 이름을 열거하지 않고 정법으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
성교(聖敎)를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 자연히 널리 말씀하는 것이니,
이것을 자설이라 한다.
‘연기(緣起)’34)란
모든 경전에서 청하는 이의 이름을 열거하고서 널리 말씀한 것이니,
모든 비나야(毗奈耶)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연기가 있는 가르침과 별해탈계경(別解脫戒經) 등이니,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비유(譬喩)’35)란
모든 경전에서 비유를 들어 설명한 것을 말한다.
비유로 인하여 본래 뜻이 명백해지나니,
이것을 비유라고 한다.
‘본사(本事)’36)란
전생에 있었던 갖가지 상응하는 일들을 말한 것이니,
이것을 본사라고 한다.
‘본생(本生)’37)이란
모든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과거 세상에서 갖가지 나고 죽음을 겪으면서
보살행을 행하신 것을 말함이니,
이것을 본생이라고 한다.
‘방광(方廣)’38)이란 모든 경전에서,
최상의 보리와 모든 보살도를 능히 증득하여
저들로 하여금 10력(力)과 걸림 없는 지혜 등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방광이라고 한다.
‘미증유법(未曾有法)’39)이란 모든 경전에서,
모든 부처님과 모든 제자들과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나(式叉摩那)ㆍ사미ㆍ사미니ㆍ오파색가(鄔波索迦)ㆍ오파사가(鄔波私迦) 등의 공통된 공덕과 공통되지 않은 공덕 및 그 외의 가장 수승하고 특별하고 놀랄만하고 매우 심오한 법을 널리 말씀한 것이니,
이것을 미증유법이라고 한다.
‘논의(論議)’40)란
일체의 마달리가아비달마(摩怛履迦阿毗達磨)로서 모든 경전의 뜻을 연구하여 해석하는 것이니,
이것을 논의라고 한다.
이와 같은 십이분교에는
경장ㆍ율장ㆍ아비달마장(阿毗達磨藏)이 있다.
여기서 말한
계경,
응송,
기별,
풍송,
자설,
비유,
본사,
본생,
방광,
미증유법은 경장(經藏)이 된다.
여기서 말한 연기는 율장이 되고,
여기서 말한 논의는 아미달마장이 된다.
(게송에서) ‘세 가지 가장 수승함에 귀의함’이란
부처님ㆍ교법ㆍ승단의 세 가지 귀의할 곳을 말한다.
‘3학(學)’이란
증상계학(增上戒學),
증상심학(增上心學),
증상혜학(增上慧學)을41) 말한다.
‘3보리(菩提)’란
성문의 보리,
독각의 보리,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말한다.
‘유정의 청정을 위해 설함’이란
유정으로 하여금 청정을 얻게 하기 위하여
차례로 이 세 가지 법을 널리 말씀한 것이니,
능히 지님ㆍ방편ㆍ증과를 말한다.
‘능히 지님’이란 듣고 귀의함을 말하고,
‘방편’이란 삼학을 말하며,
‘증과’란 삼보리를 말한다.
또한 이와 같이 들음[聞] 등에 대하여 어떻게 분별한다고 알아야 하는가?
게송에서 말한다.
들음,
귀의,
배움,
보리에는
여섯, 셋, 열둘, 다섯 가지이니
그 명칭ㆍ숫자의 차례에 따라
상응하는 바대로 자세히 분별해야 하네.
논하여 말한다.
‘들음[聞]’에 관한 여섯 가지 분별이란
첫째는 처(處)에 의지함이고,
둘째는 포섭에 의지함이며,
셋째는 청정에 의지함이고,
넷째는 행에 의지함이며,
다섯째는 이취(理趣)에 의지함이고,
여섯째는 의미[義]에 의지함이다.
‘처(處)에 의지함’이란
5명처(明處)42)에 의지함을 말하나니,
첫째는 내명처(內明處)이고,
둘째는 인명처(因明處)이며,
셋째는 성명처(聲明處)이고,
넷째는 의방명처(醫方明處)이며,
다섯째는 공업명처(工業明處)이다.
‘포섭에 의지함’에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성문장(聲聞藏)에 포섭됨이고,
둘째는 보살장에 포섭됨이다.
‘청정에 의지함’이란 열 가지 청정을 말한다.
말씀[說]의 청정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훌륭하게 말씀하는 분이 말씀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문자ㆍ글귀를 분명하게 말씀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아는 뜻을 총괄하여아는 뜻과 같이 말씀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쉬운 방편과 수행을 말씀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을 말씀하기 때문이다.
들음[聽]의 청정에도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허물 잡으려는 뜻으로 들음이 아니기 때문이고,
둘째는 열반을 구하려는 뜻으로 듣기 때문이며,
셋째는 매우 훌륭하게 자세히 듣기 때문이고,
넷째는 명칭[名身]ㆍ문구[句身]ㆍ글자[文身]의 의미에 의지해서
매우 훌륭하게 분별하여 듣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바르게 수행하려는 뜻으로 듣기 때문이다.
‘행에 의지함’이란
열 가지 법행(法行)을 말한다.
‘이취(理趣)43)에 의지함’에는 여섯 가지 이취가 있나니 진의이취(眞義理趣)와 나아가서는 의요이취(意樂理趣)를 말한다.
이 중에서 앞의 세 가지 이취는 뒤의 세 가지 이취에 의거해서 해석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이이변이취(離二邊理趣)에 의거하여 따라서 진의이취를 해석하고,
부사의이취(不思議理趣)에 의거하여 따라서 증득한 이취를 해석하며,
의요이취에 의거하여 따라서 교도이취(敎導理趣)를 해석한다.
여기서 진실된 의미[眞義]는 곧 이취이기 때문에 진의이취라고 이름하고,
나아가서는 의욕[意樂]은 곧 이취이기 때문에 의요이취라고 이름한다.
이런 저런 곳에서 뒤바뀜이 없는 성품이 이취(理趣)의 뜻이다.
‘진의이취(眞義理趣)’에는 대략 여섯 종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간의 진실과 나아가서는 소지장이 청정해진 지혜로 행하는 진실 및 내세우는 진실[安立眞實]과 내세움이 아닌 진실[非安立眞實]을 말한다.
이 중에서 앞의 네 가지 진실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안립진실이란 사성제를 말하나니,
괴로움은 참으로 괴로움이기 때문에 고성제를 내세웠으며,
나아가 도(道)는 참으로 도이기 때문에 도성제를 내세운 것이다.
【문】 무슨 인연 때문에 내세움[安立]이라 이름하는가?
【답】 세 가지 세속에 의거해서 안립된 바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세간의 세속에 의거함이고,
둘째는 도리의 세속에 의거함이며,
셋째는 증득의 세속에 의거함이다.
세간의 세속이란 밭ㆍ집ㆍ병(甁)ㆍ동이[盆]ㆍ군인ㆍ숲ㆍ수효[數] 등을 안립하고,
자아ㆍ유정 등을 안립함을 말한다.
도리의 세속이란 오온ㆍ십팔계ㆍ십이처 등을 안립함을 말한다.
증득의 세속이란 예류과 등을 안립하고,
그들이 의지하고 머무는 법을 안립함을 말한다.
다시 네 가지 안립이 있나니,
앞의 세 가지 및 승의ㆍ세속에 의거해서 안립함을 말한다.
승의제(勝義諦)의 성품은 안립할 수 없고 내면적으로 스스로 증득한 바에 의거하기 때문에,
그 지혜를 이끌어내는 것에 수순하기 위해서 세속에 의지해서 안립한다.
‘비안립진실’은 일체법의 진여실성(眞如實性)을 말한다.
‘증득이취(證得理趣)’에는 대략 네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일체 유정의 업보의 증득이고,
둘째는 성문승의 증득이며,
셋째는 독각승의 증득이고,
넷째는 대승의 증득이다.
‘일체 유정의 업보의 증득’이란,
일체 유정이 청정함과 청정하지 못한 업을 지어서 자신의 업에 의해서 5취(趣)에 유전하는 가운데 갖가지 이숙(異熟)44)을 초감하고 갖가지 이숙을 받는 것을 말한다.
‘성문승의 증득’이란 다음과 같다.
처음에 삼귀의를 받고,
나아가서는 문장엄(聞莊嚴)에 의지함으로써 다섯 가지 증득을 얻나니,
첫째는 지위[地]의 증득이고,
둘째는 지혜의 증득이며,
셋째는 청정의 증득이고,
넷째는 과위의 증득이며,
다섯째는 공덕의 증득이다.
‘지위의 증득’이란 세 가지 지위를 말하나니,
첫째는 견도의 지위[見地]이고,
둘째는 수도의 지위[修地]이며,
셋째는 궁극적 지위[究竟地]45)이다.
‘지혜의 증득’이란 아홉 가지 지혜를 증득함을 말하나니,
첫째는 법지(法智)이고,
둘째는 종류지(種類智)이며,
셋째는 고지(苦智)이고,
넷째는 집지(集智)이며,
다섯째는 멸지(滅智)이고,
여섯째는 도지(道智)이며,
일곱째는 이것 다음에 얻어지는 속지(俗智)이고,
여덟째는 진지(盡智)이며,
아홉째는 무생지(無生智)이다.46)
‘청정의 증득’이란 네 가지의 청정을 증득함을 말한다.
‘과위의 증득’이란 사문의 네 가지 과위47)를 말한다.
‘공덕의 증득’이란 무량48),
해탈49),
승처(勝處),
변처(遍處),
무쟁(無諍),
원지(願智),
무애해(無㝵解),
신통 등의 공덕을 말한다.
또한 ‘성문승의 증득’ 가운데 의지(依止)의 증득이란 먼저 세간도(世間道)50)를 닦아서 욕망을 여의고,
다음에 순해탈분(順解脫分)51)의 선근을 닦으며,
다음에 순결택분(順決擇分)52)의 선근을 닦는 것을 말한다.
‘독각승의 증득’은 대략 세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이전에 이미 순결택분의 선근을 얻음에 의해서이고,
둘째는 이전에 이미 무루(無漏)의 참다운 증득을 얻음에 의해서이며,
셋째는 차례로 증득함에 의해서이다.
여기서 앞의 두 가지를 증득한 이에 의거해서 홀로 수승한 깨달음이 아니라고 이름하고,53) 나중의 것을 증득한 이에 의거해서 무소뿔에 비유되는 깨달음이라고 이름한다.54)
‘대승의 증득’이란 대비(大悲)의 증득,
발심의 증득,
바라밀다의 증득,
섭사(攝事)55)의 증득,
지위[地]의 증득,
다섯 가지 무량으로부터 나아가 진여의 증득,
불가사의위덕의 증득,
불공불법(不共佛法)56)의 증득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그 모든 것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교도이취(敎導理趣)’에는 대략 세 부문에 포함됨이 있나니,
첫째는 장(藏)에 포함되는 것이고,
둘째는 마달리가(摩怛履迦)57)에 포함되는 것이며,
셋째는 그것에 함께 포함되는 것이다.
장(藏)에 포함되는 것이란 성문승장(聲聞乘藏)58) 및 대승장(大乘藏)을 말한다.
마달리가에 포함되는 것이란 열일곱 가지 본지(本地)59) 및 네 가지60) 포섭을 말한다.61) 그것에 함께 포함되는 것에는 대략 열 가지가 있는데,
앞에서 분별한 의미 중에서 열 가지 의미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모든 장(藏)에 포함되는 것 및 마달리가에 포함되는 것을 포섭하기 때문에 총략마달리가(摠略摩怛履迦)라고 이름한다.
또한 열두 가지 교법이 있다.
첫째는 사물에 관한 교법[事敎]이니,
빛깔ㆍ형태 등과 눈[眼] 등의 각기 다른 일체법을 널리 말씀한 교법을 말한다.
둘째는 상차별에 관한 교법[想差別敎]이니,
5온ㆍ18계ㆍ12처ㆍ연기ㆍ시처(是處)62)ㆍ비처(非處)63)ㆍ여러 근(根)64)ㆍ여러 진리[諦]65)ㆍ4념주ㆍ유색(有色)ㆍ무색(無色)ㆍ유견(有見)ㆍ무견(無見)ㆍ유대(有對)ㆍ무대(無對) 등,
이와 같이 자세히 설해진 한량없는 부처님 박가범의 상차별(想差別)의 가르침을 말한다.
셋째는 자기 종에서 관찰하는 교법[自宗觀察敎]이니,
계경ㆍ응송ㆍ기별 등의 교법을 말하며,
의섭석(依攝釋)66) 중에서 나타나게 되는 바이다.
넷째는 다른 종에서 관찰하는 교법[他宗觀察敎]이니,
일곱 가지 인명(因明)67)에 의지해서 다른 논의를 항복시키고 자기 논의를 성립시키는 교법을 말한다.
일곱 가지 인명은 논리의 자체[論體]와 논리의 처소[論處所] 등을 말하는데,
나중에 장차 분별하겠다.
다섯째는 요의가 아닌 교법[不了義敎]68)이니,
계경ㆍ응송ㆍ기별 등에서 박가범께서 그 의미를 대략적으로 나타내고 아직 자세히 분별하지 않은 것을 말하며,
마땅히 다시 열어 보여야 할 교법이다.
여섯째는 요의인 교법[了義敎]이니,
앞의 것과 상반된다고 알아야 한다.
일곱째는 세속제인 교법[俗諦敎]이니,
온갖 언로(言路)로 나타내는 그 모든 것을 다 속제(俗諦)라고 이름한다.
또한 명칭ㆍ관념ㆍ더욱 향상된 언설에 의지해서 일으켜진 양상ㆍ명칭ㆍ분별도 역시 속제이다.
여덟째는 승의제인 교법[勝義諦敎]이니,
사성제의 교법 및 진여ㆍ실제(實際)ㆍ법성의 교법을 말한다.
아홉째는 은밀한 교법[隱密敎]69)이니,
대부분 성문장의 교법을 말한다.
열째는 현요의 교법[顯了敎]이니,
대부분 대승장의 교법을 말한다.
열한째는 기별할 수 있는 사실의 교법[可記事敎]이니,
네 가지 법의 올타남(嗢拕南)의 교법과 같은 것으로서 “일체의 행(行)은 무상하고,
나아가 열반은 고요함[寂靜]이다.”70)라고 하는 이와 같은 교법들을 말한다.
열두째는 사실을 말할 수 없는 교법[不可記事敎]이니,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세간은 항상함인가,
무상함인가?”라고 물으면,
여래께서는 그때 침묵하여 대답하지 않으시고[不記] 다만 그에게 말씀하기를 “나는 이 사실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없다[不可記別].”고 하고,
나아가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는 존재하지 않음인가,
존재하지 않음이 아닌가?”라고 물으면,
여래께서는 그때 침묵하여 말씀하지 않으시고[不記] 다만 그에게 말씀하기를 “나는 이 사실에 대해 말할 수 없다[此事不可記].”고 한다.
여기서 네 가지 인연 때문에 기별할 수 없는 사실[不可記事]을 널리 말씀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체성이 없기 때문에 기별(記別)할 수 없음이니,
마치 어떤 이가 “나는 모든 온(薀)과 더불어 다른가,
다르지 않은가?
항상함인가,
무상함인가?”라고 묻는 그와 같은 것들이다.
둘째는 능히 이익이 없음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기별할 수 없음이니,
마치 『승섭파섭경(升攝波葉經)』에서 “한량없는 법을 내가 이미 증득하고 깨달았지만 널리 말하지 않노라.
왜냐하면 그 법은 능히 이익 없는 것을 이끌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셋째는 매우 심오하기 때문에 기별할 수 없음이니,
다음과 같다.
어떤 이가 “자아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라고 물으면,
이것은 기별할 수 없나니,
왜냐하면 만일 여래께서 “자아는 있는 것이다.”라고 기별하면 그 사람은 혹은 온(薀)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집착하거나 혹은 온을 여읜 것에 자아가 있다고 집착한다.
만일 “자아는 없는 것이다.”라고 기별하면,
그 사람은 혹은 세속의 언설로 비방하여 “자아는 역시 없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아가 어떤 이가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는 존재함인가,
존재하지 않음인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함인가?
존재함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음도 아닌가?”라고 묻는 것 등이니,
매우 심오하기 때문에 모두 기별할 수 없다.
넷째는 그 양상은 법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에 기별할 수 없음이다.
말하자면 모든 법의 진여는 그 모든 법과 더불어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를 기별할 수 없다.
그 진여의 양상은 법이 본래 그러함으로 인하여,
다른 성품이라거나 다르지 않은 성품이라고 안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네 가지 인연이 있어서 여래께서 기별할 수 없은 사실을 널리 말씀함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이런 사실은 외도가 말하는 바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이익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오직 다투어 논하는 속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인연이 있어서 이익을 이끌어내지 못함을 알아야 하나니,
첫째는 인과(因果)에 관한 사유를 멀리 떠나기 때문이고,
둘째는 잡염ㆍ청정에 관한 사유를 멀리 떠나기 때문이다.
‘두 쪽을 떠나는 이취[離二邊理趣]’에는 대략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실유(實有)가 아닌 것을 증익(增益)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고,
둘째는 참다운 실유에 대해 손감(損減)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며,
셋째는 상주라고 집착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고,
넷째는 무상이라고 집착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며,
다섯째는 욕락을 수용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고,
여섯째는 스스로 괴로움을 수용하는 극단을 멀리 떠나는 것이다.
‘불가사의이취(不可思議理趣)’에는 대략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한 사실이 있다.
첫째는 자아에 대한 불가사의이고,
둘째는 유정에 대한 불가사의이며,
셋째는 세간에 대한 불가사의이고,
넷째는 일체 유정의 업보에 대한 불가사의이며,
다섯째는 정려(靜慮)를 증득한 이 및 정려의 경계에 대한 불가사의이고,
여섯째는 모든 부처님 및 모든 부처님 경계의 불가사의이다.
‘의요이취(意樂理趣)’에는 대략 열여섯 가지의 의욕[意樂]71)이 있다.
첫째는 열어 보이려는 의욕이고,
둘째는 욕망을 여의려는 의욕이며,
셋째는 권하고 인도하려는 의욕이며,
넷째는 장려하려는 의욕이고,
다섯째는 찬탄ㆍ기쁨에 대한 의욕이며,
여섯째는 들어가게 하려는 의욕이고,
일곱째는 의심을 없애려는 의욕이며,
여덟째는 성숙시키려는 의욕이고,
아홉째는 안정(安定)에 대한 의욕이며,
열째는 해탈에 대한 의욕이고,
열한째는 개별적인 뜻에 의지하려는 의욕이며,
열두째는 행을 일으키고 증득하는 이의 허물없고 환희에 대한 의욕이고,
열셋째는 듣고 행하는 이로 하여금 법을 설하는 스승에게 존경을 일으키게 하려는 의욕이며,
열넷째는 법안(法眼)을 유포하려는 의욕이고,
열다섯째는 선(善)을 증광시키려는 의욕이며,
열여섯째는 온갖 상(相)을 무너뜨리려는 의욕이다.
‘의미에 의지함’이란 불요의(不了義)와 요의(了義)를 말한다.
‘세 가지 분별에 귀의함’이란 첫째는 성취이고,
둘째는 건립이며,
셋째는 차별이다.
‘성취’란 오직 부처님ㆍ교법ㆍ승단이 참다운 귀의처이고 그 외의 하늘 등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두 가지 원인 때문이니,
첫째는 능히 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현전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능히 하는 바가 없음’이란 무엇인가?
모든 천신(天神)은 온갖 중생을 위해서 능히 이로운 일을 짓지 못함을 말한다.
이 모든 천신은 혹은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혹은 공경하고 섬길만한 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며,
혹은 피로와 괴로움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고,
혹은 자비가 없기 때문이며,
혹은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참다운 귀의처가 아니니,
말하자면 능력이 없기 때문이고,
편당(偏黨)에 떨어지기 때문이며,
자신이 피로하고 괴로워지는 것을 피하고 자재함이 없기 때문이고,
연민이 없기 때문이며,
덕이 미약하고 하열하기 때문이다.
‘현전에 보지 못함’이란 무엇인가?
모든 천신은 현전에 증득하여 보지 못하나니,
세간에서 현전에 보지 못한 주인이 능히 귀의처가 되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귀의하고 믿을 만하여 현실로 다른 이를 섭수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그 외에 현전에 보고 의지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문】 꿈속에서 보았기 때문에 마땅히 귀의처가 아닌가?
【답】 욕망의 생각에서 보이는 것이므로 혹은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다.
또한 다시 깨었을 때에는 어째서 현전에 보지 못하는가?
비록 꿈속에서 약간 실상을 보았더라도 이것 역시 욕망의 생각이 지은 바이다.
또한 온갖 조건[緣]이 현전하여 꿈속에 있는 이로 하여금 약간 보는 바가 있더라도 이것 역시 허망함이 많다.
또한 다섯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모든 천신 등은 귀의처가 아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모습에 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체에 의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업에 의하기 때문이고,
넷째는 법이 본래 그러함에 의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원인ㆍ결과에 의하기 때문이다.
‘모습에 의하기 때문’이란 모든 천신은 세상에서 현전에 보지 못하고 담론(談論)도 없기 때문이고,
얼굴 빛깔이 분노를 띠어 (사람들이) 두려워함이 있기 때문이며,
잡염되고 방일하며 탐애가 있기 때문이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함을 버려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며,
지을 것과 짓지 않을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진실한 뜻을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의할만한 곳이 아니다.
어떤 모습이기 때문에 부처님은 귀의할만하다고 하는가?
세상에서 현전에 볼 수 있고 담론이 있기 때문이고,
얼굴 빛깔이 평화롭고 고요하여 (사람들이)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이며,
방일을 멀리 여의고 탐애가 없기 때문이고,
다른 이를 이롭게 함을 버리지 않고 큰 자비가 있기 때문이며,
지을 것과 짓지 않을 것을 잘 알 수 있고 진실한 뜻을 통달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섯 가지 모습으로 인하여 부처님은 귀의할만하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유정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대보리를 증득하셨기 때문이고,
현실로 대중에 계시면서 정법의 눈을 뜨게 하시기 때문이며,
원수거나 친한 유정을 평등히 이롭게 하기 때문이고,
모든 집안에 대하여 섭수하되 탐착을 버려서 모든 감관이 고요하기 때문이며,
일체 중생의 의심의 그물을 잘 없애주기 때문이다.
‘자체에 의거하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다.
여래께서는 모든 번뇌를 영원히 끊음으로 인하여 스스로 이미 조복하고 또한 다른 이를 조복하기 때문에 귀의할 만 하다.
그러나 여러 천신 등은 온갖 번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도 조복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다른 이를 조복하겠는가?
그러므로 귀의할만한 곳이 아니다.
‘업에 의하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다.
여래께서는 광대하고 때 없는[無垢] 정려(靜慮) 등에 안주하는 업이 있고,
또한 다시 능히 중생을 이롭게 하는 업이 있기 때문에 귀의할만한 곳이다.
그러나 천신 등은 욕락을 더럽고 열등하게 수용하는 것에 안주하는 업이 있고,
또한 온갖 중생을 살해하는 업이 있기 때문에 귀의할만한 것이 못된다.
‘법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다.
일체 세간과 출세간의 공덕과 수승한 이익은 모두 자기의 공력에 의지해서 얻은 바이며,
만일 자기의 공력을 떠나서는 비록 천신에게 깊은 공경과 믿음을 내더라도 또한 증득하지 못한다.
설령 천신에게 공경과 믿음을 내지 않더라도 다만 자신의 공력으로 반드시 능히 증득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천신은 귀의처가 아니다.
‘인과에 의하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다.
지금 천신을 섬기는 이에게 묻노라.
천신의 체성은 하늘의 업으로 인하여 얻어진 것[感得]인가,
하늘에 공양함으로 인하여 감득(感得)된 것인가,
원인 없이 감득된 것인가?
만약 하늘의 업으로 감득된 것이라면 곧 마땅히 업에 귀의해야 하고 하늘이 아닐 것이다.
만약 원인 없이 감득된 것이라면 마땅히 원인 없는 것에 귀의해야 하고 하늘이 아닐 것이다.
만약 천신에 공양함으로 인하여 감득된 것이라면,
오직 공양함으로 인하여 천신의 자체를 감득하는 것인가,
오직 천신으로 인하여 원인을 삼는 것인가?
두 가지가 만약 오직 공양함에 의해서라면 곧 헛되이 천신을 섬기는 것이니,
어디서라도 공양만 하면 모두 마땅히 능히 하늘의 과보를 감득할 것이다.
만약 오직 천신으로 인한 것이라면 곧 헛되이 공양을 베푸는 것이니,
비록 공양하지 않더라도 다만 천신으로 인하여 마땅히 하늘의 과보를 감득할 것이다.
만약 함께 두 가지로 인한 것이라면,
다만 공양을 베풀기만 하면 천신이 섭수하여 기원하는 모든 일들이 다 마땅히 결과를 이룰 것이다.
또한 일곱 가지 기원하는 일들에 있어서 결정코 결과를 이루지 못하며,
이런 까닭에 옳지 못하다.
첫째는 공양하는 연(緣)에서 섭수함이고,
둘째는 믿고 이해하는 연에서 섭수함이며,
셋째는 그를 믿고 이해하는 이에게는 믿음과 이해를 일으키고 가장 수승한 천신의 자체를 능히 감득하게 함이고,
넷째는 가장 수승하게 누리는 부(富)ㆍ즐거움을 능히 감득함이며,
다섯째는 아수라[阿素洛=阿修羅] 등의 원적(怨敵)을 꺽어 무너뜨리는 것이고,
여섯째는 출생에서이며,
일곱째는 죽음에 있어서이다.
‘건립’이란 다음과 같다.
【문】 몇 가지 귀의처가 있는가?
【답】 세 가지 귀의처가 있나니,
부처님ㆍ교법ㆍ승단을 말한다.
【문】 무슨 원인으로 오직 세 가지 귀의처가 있는가?
【답】 네 가지 원인 때문에 오직 여래가 귀의처가 된다.
훌륭하게 스스로 조복하기 때문이고,
온갖 종류의 조복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며,
재물로써 공양함을 마음에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고,
수행으로써 공양함을 마음에 기뻐하시기 때문이니,
이러한 덕을 갖추기 때문에 그 분께서 말씀하신 법과 제자의 무리들도 역시 귀의처가 된다.
【문】 무엇에 한하여 능히 귀의함이라고 이름하겠는가?
【답】 네 가지 원인을 갖춤으로써 능히 귀의함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첫째는 덕이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고,
둘째는 차별을 잘 알기 때문이며,
셋째는 스스로 맹세하고 받기 때문이며,
넷째는 다시는 그 외에 귀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 귀의하는 행은 어떠한가?
【답】 네 가지 귀의하는 바른 행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선인(善人)을 가까이 하고,
둘째는 정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이치에 맞게 작의(作意)하고,
넷째는 법을 따르는 법행[法隨法行]72)이다.
다시 네 가지 바른 행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모든 감관을 잘 거두어서 들뜨거나 동요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바른 계율[學處]을 받는 것이며,
셋째는 중생을 연민히 여기는 것이며,
넷째는 수시로 삼보에 여법하게 공양하는 것이다.
【문】 삼보에 귀의하면 어떤 이로움이 있는가?
【답】 네 가지 이로움이 있다.
첫째는 광대한 공덕을 얻음이고,
둘째는 광대한 환희를 얻음이며,
셋째는 뛰어난 등지(等持)를 얻음이고,
넷째는 선(善)ㆍ청정을 얻음이다.
다시 네 가지 이로움이 있다.
첫째는 크게 보호하여 구족함이고,
둘째는 일체의 삿된 이해로 인한 장애가 점차 미약해지고 두루 모두 소멸해진다.
셋째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바르고 지극히 착한 사람들 속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이른바 큰 스승[大師]과 같이 청정하게 수행 하는 대중들이다.
넷째는 성인의 가르침을 믿는 모든 천신들에게 사랑과 기뻐함을 받게 됨이니,
그 모든 천신 등이 만일 삼귀의를 받은 이를 보게 되면
크게 환희하여 전전히 서로 알려주기를
“우리들도 옛날에 모두 삼귀의를 성취함으로 인하여
그 목숨을 마친 후에 이 곳에 와서 태어났으니,
이 선남자 등도 지금 역시 이 삼귀의를 성취하고 많이 안주하여 버리지 않나니
머지 않아 미래에 우리들의 벗이 되리라”고 한다.
‘차별’이란 여섯 가지 원인에 의해서
삼보의 차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양상에 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업에 의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믿음ㆍ이해에 의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행(行)에 의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좇아서 기억함에 의하기 때문이고,
여섯째는 복을 일으킴에 의하기 때문이다.
‘양상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스스로 깨달음을 증득하는 양상이 불보(佛寶)이고,
깨달음을 증득한 결과의 양상이 법보이며,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라서 바르게 수행하는 양상이 승보임을 말한다.
‘업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바른 설법을 굴리는 업이 불보이고,
번뇌ㆍ괴로움이 끊어진 것을 반연할 바의 경계로 삼는 업이 법보이며,
더욱 부지런히 용맹 정진하는 업이 승보임을 말한다.
‘믿음ㆍ이해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불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가까이 하고 공경히 섬기며,
바른 법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믿고 공경하고 증득하며,
모든 승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같은 법으로 함께 머물고 공경하며 믿고 가까이 함을 말한다.
‘행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불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맞아들이고 청하며 영접하고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는 행을 일으키고,
바른 법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이치에 맞는 방편으로 닦아 익히는 행을 일으키며,
모든 승보에 대해서는 마땅히 재물과 법을 서로 함께 수용하는 행을 일으킴을 말한다.
‘생각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차별됨’이란 삼보에 대하여 응하는 바에 따라 각각 별도의 행을 일으키는 것을 따라서 기억함을 말한다.
경전에서 “이 박가범ㆍ여래ㆍ응공ㆍ정등각.....(나아가 자세히 말함)”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복을 일으킴에 의하기 때문에 차별됨’이란 다음과 같다.
불보에 있어서는 한 유정에 의지해서 가장 수승한 복을 일으키고,
바른 법보에 있어서는 더욱 향상된 법에 의지해서 가장 수승한 복을 일으키며,
모든 승보에 있어서는 많은 유정에 의지해서 가장 수승한 복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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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체(自體)는 본체ㆍ본성ㆍ자성(自性)의 개념이다.
모든 존재의 본성이나 사물의 존재하는 상태이다.
여기서 세 가지 자체는 3자성(自性) 즉 변계소집자성ㆍ의타기자성ㆍ원성실자성을 가리킨다.
변계소집(자)성은 집착과 미망(迷妄)의 세계를,
의타기(자)성은 서로 의지하는 연기(緣起)의 세계를,
원성실(자)성은 깨달음의 세계를 가리킨다.
현상계(迷界)와 본체계(悟界)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의 양상을 설명한다.
그런데 현상계 즉 유위법(有爲法)의 실성(實性)이 본체계 즉 무위법(無爲法)이듯이,
삼법은 별개의 자체가 아니다.
삼성 중에서 변계소집성은 의타기성의 잡염분(雜染分)이고,
원성실성은 의타기성의 청정분(淸淨分)이다.
의타기성 즉 연기의 법칙에 대해 미혹하면 변계소집성의 세계가 전개되고,
연기법을 확연히 깨치면 아집ㆍ법집이 영원히 사라져
아공ㆍ법공의 2공소현(空所顯)의 원성실성이 전개된다.
2)
변계소집자성(遍計所執自性,
parikalpita-svabhāva)은 ‘두루 계탁하여 집착된 바의 성품’ 즉 의식ㆍ말나식(能遍計)에 의해 나ㆍ나의 것으로 집착되어 가상(假想)된 존재형태(所遍計)이다.
두루 분별하여 착각하며 집착하는 것을 주체면에서 능변계(能遍計:의식ㆍ말나식),
대상면에서 소변계(所遍計:의타기성의 94法 중에서 의식ㆍ말나식 제외)로 나눈다.
의식과 말나식에 의해서 아집과 법집이 일어난다.
예를 들면 의식은 5온(蘊)을 나라고 착각 집착하고,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나라고 착각 집착하는 것이다.
또한 존재의 구성요소[法]들이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집착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연기법에 의해 존재하므로 불변ㆍ독존(獨存)의 실체성이 없는 공(空)이다.
우리는 자아나 외부대상이 실재성이 있는 줄로 착각하여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갖지만,
사실은 허망분별에 의해 가상된 변계소집성으로서 허공 꽃[空華]처럼 실재성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식에 의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며,
개념이나 언어로써 파악 집착된다.
3)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
paratantra-svabhāva)은 ‘다른 것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 즉 연기(緣起)의 성품이다.
인연화합에 의해 생멸하는 존재들의 세계를 말한다.
유식학적으로 말하면 아뢰야식을 기반으로 하는 심법(心法:8식과 51심소)을 가리킨다.
물론 연기성이므로,
유식학의 제법분류법(諸法分類法)인 5위백법(位百法:色法 11ㆍ心王法 8ㆍ心所法 51ㆍ不相應行法 24ㆍ無爲法 6가지) 중에서 무위법을 제외한 94법이 이에 해당되지만,
만법유식(萬法唯識)의 입장에서 의타기성은 특히 8식을 중심으로 한 심법을 가리킨다.
4)
원성실자성(圓成實自性,
pariniṣpanna-svabhāva)은 ‘원만히 성취되어 있는 진실한 성품[圓滿成就眞實性]’ 즉 본래부터 원만 성취되어 있는 ‘진여’를 말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 가운데 최고의 가치를 갖는 승의(勝義:勝智對境)이다.
그것은 존재면에서 진여이고,
인식적으로는 무분별지혜이다.
의타기성이 변계소집성을 멀리 여읜 것이 원성실성이다.
즉 심법(心法:의타기성)에서 아집ㆍ법집의 모든 번뇌 오염(변계소집성)이 소멸되어 항상 없는 것이 반야의 무분별지혜(원성실성)이다.
5)
범어 pratyakṣa의 번역어로서,
감각기관과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서 아는 감각지(感覺知)를 말한다.
예를 들어 안식(眼識)이 안근(眼根)을 통해 색경(色境)을 인식하는 것 등이다.
6)
범어 anumāna의 번역어로서,
이미 아는 사실을 가지고 비교해서 아직 알지 못하는 사실을 추측하여 아는 형태의 추리지(推理知)이다.
예를 들면 어느 곳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미루어 그 밑에 불이 있다는 것을 안다거나,
나비와 벌이 모이는 것을 미루어서 꽃이 있음을 아는 것 등이다.
7)
범어 śabda의 번역어로서 성언량(聖言量)ㆍ성교량(聖敎量)ㆍ정교량(正敎量)이라고도 한다.
성자의 말씀에는 잘못이 없다고 믿어서 이것에 의해 여러 가지 사실을 미루어 아는 것이다.
8)
현관(現觀,
abhisamaya)은 현전(現前)에서 지혜로 직접 명료하게 관(觀)하는 것이다.
현관위는 견도(見道)를 가리킨다.
견도에 들어가 번뇌를 여읜 무루지(無漏智)로 진리를 관한다.
9)
유식학에서 실천수행의 계위(階位)를 5위(位:資糧位ㆍ加行位ㆍ通達位ㆍ修習位ㆍ究竟位)로 나눈 가운데 제2의 가행위에서 닦는 유식의 관법이다.
우리들의 개념적인 인식은 명칭과 인식대상에서 성립하는데,
이 둘의 관계를 관찰하여 대상의 비존재성을 체득하는 것이다.
인식대상의 명(名:명칭)ㆍ사(事 또는 義:그 명칭에 상응하는 사물)ㆍ자성(自性:자체의 體性)ㆍ차별(差別:형상과 작용의 차별성)의 4법은 임시적인 존재[假有]이고 실무(實無)라고 심구(尋求)하여 사찰(思察)하는 관법이다.
가행위에서의 네 단계인 4선근위(善根位:난위ㆍ정위ㆍ忍位ㆍ世第一位) 중에서 난위(煖位)와 정위(頂位)에서 닦는다.
난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하품으로 관찰하고(下品의 尋思觀:明得定),
정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투철하게 상품으로 관찰한다(上品의 尋思觀:明增定).
10)
명칭[명, nāma],
사물[義, artha],
명칭과 사물의 자성(svabhāva, 自體),
명칭과 사물의 차별(viśeṣa)의 네 가지는 가적(假的)인 존재로서 실재하지 않는다고 심사(尋思,
paryeṣaṇā)하는 것이다.
11)
명칭(名, nāma)은 어떤 의미를 갖는 최소단위의 말 내지 개념이다.
12)
사물[事, vastu]은 인식대상으로서의 사물,
명칭으로 나타내는 외적인 사물을 가리킨다.
13)
우리는 여러 명칭을 사용해서 갖가지 사물을 인식하며,
그들 명칭에 상응하는 사물이 실재한다고 무반성적(無反省的)으로 생각한다.
이런 무반성적인 상식을 타파하기 위해서 우리들의 구체적인 인식내용을 명칭과 사물로 이분화하고,
각각 서로 독립시켜서 순수하게 관찰한다.
예를 들면 ‘책’이라는 명칭으로 책이라는 사물을 인식할 경우,
우선 책이라는 명칭에 의식을 집중시켜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명칭뿐이라고 관찰한다.
다음 책이라는 사물에 의식을 집중하여 존재하는 것은 오직 사물뿐이라고 관찰한다.
이런 관찰은 명칭과 사물의 비존재성을 인식하는 것이 목적이다.
책이라는 명칭은 존재하지만,
그 존재성은 임시적인 존재[假有,
prañapti-sat]에 지나지 않는다.
책이라는 명칭으로 파악되어지는 책이라는 사물은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는다.
책을 본 순간 그것이 책이라고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라는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비로소 그것이 책이라고 인지할 수 있다.
14)
명심사와 사심사 다음에 계속해서 명칭과 사물은 오직 식(識,
vijñapti)이며 가유(假有)일 뿐이라고 추구한다.
이 단계가 자체가립심사와 차별가립심사이다.
여기서 ‘자체(自體) 혹은 자성(自性)’은 명칭과 사물이 결합하여 구체적으로 인식되는 사물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이것은 책이다.”라고 인식할 때의 책을 말한다.
‘차별’은 책을 분석해서 “물질이고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사각형이다”라고 인지할 때의 ‘물질’ ‘종이로 만들어짐’ ‘사각형’ 등의 성질을 가리킨다.
이런 자성이나 차별은 모두 가립된 것으로서 실재하지 않는다고 추구하는 것이 자체가립심사와 차별가립심사이다.
가립(假立,
prajñpti)이란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언어를 부여해서 잠정적으로 그 존재를 설정함을 말한다.
책ㆍ물질ㆍ종이로 만들어짐ㆍ사각형 등은 단지 명칭일 뿐이며,
그 명칭에 대응하는 사물이나 성질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자체가립심사와 차별가립심사이다.
15)
인식의 대상이 가유(假有)이고 실무(實無)라고 하는 심구사찰(尋求思察) 뒤에 다시 명확히 인가(印可) 결정하고 또 이와 같이 관(觀)하는 마음(能取心)까지도 가유이고 실무라고 인가 결정하는 관법이다.
사선근위 중에서 제3 인위(忍位)와 제4 세제일위(世第一位)에서 닦는다.
인위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인가하고 인식주체도 공함을 관찰하여 인가하고(下品의 如實智觀:印順定),
세제일위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공함으로 쌍(雙)으로 인가한다(上品의 여실지관:無間定).
16)
사심사(事尋思, vastu-paryeṣaṇā)를 의심사(義尋思, arthap-aryeṣaṇā)라고도 한다.
vastu나 artha는 인식대상으로서의 사물,
명칭으로 나타내는 외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특히 artha는 사물ㆍ의미ㆍ대상ㆍ목적 등의 뜻으로서 흔히 의(義)로 번역된다.
곧 크게 모든 사물, 모든 사물의 의미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구체적인 인식작용에서는 분리될 수 없는 결합관계에 있다.
어떤 ‘사물’이 인식된다는 것은 그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의미를 생각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것에 대응하는 사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명칭이다.
이런 명칭과 사물의 관계와 그 비존재성을 고찰하는 것이 명심사와 사심사이다.
17)
물질에 있어서 유대(有對)ㆍ무대(無對)를 가리킨다.
유견유대 유견무대 무견유대 무견무대이다.
18)
여기서 중생은 보특가라(補特伽羅, pudgala)의 이명(異名)이다.
이 집착은 인집(人執)ㆍ아집(我執)ㆍ생집(生執)이라고 한다.
5온(蘊)이 화합해서 성립된 몸에 상일주재(常一主宰)의 실아(實我)가 있다고 주장하는 집착을 말한다.
19)
객관의 물(物)ㆍ심(心) 현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집착하는 것이다.
20)
여기서 인(忍)은 인가(忍可)ㆍ인인(認忍)의 뜻으로서 확실히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은 무생의 법리(法理) 곧 불생불멸의 진여를 깨달아 알고,
거기에 안주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초지(初地)나 7지ㆍ8지ㆍ9지에서 얻는 깨달음이다.
21)
아비발치(阿毘跋致, avinivartanīya:不退位)라 하여,
불도를 구하는 마음이 견고하여 다시는 퇴전하지 않으며 반드시 성불할 것이 결정되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위이다.
부파불교에는 대체로 아라한과를 향해 결정코 불퇴위에 오른 예류과(預流果)를,
대승에서는 초지(初地) 또는 8지보살을 일컫는다.
22)
변계소집자체를 가리킨다.
23)
의타기자체를 말한다.
24)
원성실자체를 의미한다.
25)
부처님의 교설을 그 경문(經文)의 성질과 형식에 따라 열두 가지로 구분한 것으로서 12부경(部經)이라고도 한다.
26)
범어 sūtra의 의역(意譯)이며 수다라(修多羅)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산문체(散文體)의 경문을 말한다.
27)
십이연기의 각 지분(支分)을 말한다.
28)
특히 4성제(聖諦)를 말한다.
29)
불전편찬회의(佛典編纂會議)를 말한다.
범어 saṁgīti의 번역으로서 합송(合誦)한다는 뜻이다.
석존의 입멸후(入滅後) 불제자들이 모여서 부처님의 유교(遺敎)의 산실(散失)을 막고 아울러 교권의 확립을 위해 불설(佛說)을 외워 내어 정리 집성함으로써 교법을 전승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일을 말한다.
제1회 결집은 석존께서 입멸한 그 해에 왕사성 근교 칠엽굴에서 가섭존자를 상수로 한 오백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행했으며,
그 뒤에 여러 이론(異論)이 생겨서 제2ㆍ제3 등의 결집이 행해졌다.
암송의 구전(口傳) 방식이었다가 제3회 결집부터 필록(筆錄)되었다.
30)
범어 geya의 의역으로서 중송(重頌)이라고도 하며,
기야(祇夜)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산문체 경문 뒤에 그 내용을 운문으로써 노래한 것이다.
31)
범어 vyākaraṇa의 의역으로서 수기(授記)라고도 하며,
화가라(和伽羅)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경전 중에서 말한 뜻을 문답 해석하거나,
또는 제자가 다음 세상에 어디서 어떻게 성불하는가를 예언하는 내용이다.
32)
범어 gāthā의 의역으로서 고기송(孤起頌)이라고도 하며,
가타(伽陀)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4언(言)ㆍ5언ㆍ7언의 운문이다.
33)
범어 udāna의 의역으로서 무문자설(無問自說)이라고도 하며,
우다나(優陀那)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다른 이가 묻지 않는데 부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다.
『아미타경』 등이 그 예이다.
34)
범어 nidāna의 의역으로서 인연(因緣)이라고도 하며,
니다나(尼陀那) 등으로 음역한다.
경전 중에서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들은 인연 등을 말한다.
35)
범어 avadāna의 의역이며 아파다나(阿波陀那) 등으로 음역한다.
경전 중에서 비유로써 말씀하신 부분이다.
36)
범어 itivṛtaka의 의역이며 이제왈다가(伊帝曰多伽)로 음역하기도 한다.
불제자들의 지난 세상의 인연을 말한 것이다.
37)
범어 jātaka의 의역이며 사타가(闍陀伽)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부처님 자신의 지난 세상에 행하신 보살행을 말한 경문이다.
38)
범어 vaipulya의 의역으로서 방등(方等)이라고도 하며,
비불략(毘佛略)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방정(方正)ㆍ광대한 진리를 말한 경문이다.
39)
범어 adbhutadharma의 의역으로서 희법(希法)이라고도 하며,
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 경문이다.
경전을 설하게 된 인연에 부사의한 일을 말씀하는 부분과 같은 것 등이다.
40)
범어 upadeśa의 의역이며 우파제사(優波提舍)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교법의 의리(義理)를 논의 문답한 경문을 말한다.
41)
증상(增上,
aupacayika,
adhipati)은 증승상진(增勝上進)ㆍ증진증가(增進增加)의 뜻으로서 힘을 더하는 작용이 조장진전(助長進展)되어서 강대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대승보살의 3학(學)을 말할 때 증상이란 표현을 덧붙인다.
증상계학은 언행을 조심하여 몸을 잘 보호하는 계율이고,
증상혜학은 번뇌 망상을 없애고 진리를 깨치려는 학문이며,
증상심학은 정학(定學)으로서 산란심을 방지하여 안정하게 하는 법이다.
42)
범어 pañca-vidyā-sthāna의 번역으로서 5명(明)이라고도 한다.
다섯 가지 학예(學藝)라는 뜻으로서,
인도에서 사용한 학문과 기예(技藝)의 분류법을 말한다.
여기서 명(明)은 배운 것을 분명히 한다는 뜻이다.
이에 내오명(內五明:불교도로서의 학예)과 외오명(外五明:세속 일반의 학예)이 있다.
내오명은 ①성명(聲明:언어ㆍ문학ㆍ문법을 분명히 밝힌 학문) ②인명(因明:正邪를 연구해서 眞僞를 분명히 밝힌 인도논리학) ③내명(內明:불교의 진리 특히 自宗의 宗旨를 밝힌 학문) ④의방명(醫方明 ; 의학ㆍ藥學 등을 알게 하는 학문) ⑤공교명(工巧明:공예ㆍ기술ㆍ曆數에 관한 학문)이다.
외오명은 일반적으로 성명,
의방명,
공교명,
주술명(呪術明),
부인명(符印明)을 말한다.
43)
의취(義趣)ㆍ지취(旨趣) 등과 같은 의미이다.
44)
범어 vipāka의 번역으로서 과보(果報)라고도 번역한다.
과보를 이숙(異熟)이라 말함은,
선(善) 또는 악의 업인(業因)에 의해서 이것과 성질이 다른 무기(無記:非善非惡)인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45)
무학위(無學位)ㆍ아라한위을 가리킨다.
46)
10지(智) 중에서 타심지(他心智)를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가지이다.
47)
성문사과(聲聞四果)인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를 말한다.
48)
4무량심(無量心)을 가리킨다.
49)
8해탈을 가리킨다.
50)
현위(賢位)에 들어가기 전의 방편으로서 청정계(淸淨戒)에 안주하여 신기(身器)를 청정하게 하고,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의 3혜(慧)를 부지런히 닦는 기간이다.
51)
범어 mokṣabhāgiya의 번역으로서 3현위(顯位)를 말한다.
해탈은 열반이고 분(分)은 인(因)이란 뜻으로서,
3승(乘)의 3현위는 열반에 순응(順應)하여 해탈하기 위한 인(因)이 된다는 뜻에서 순해탈분이라고 이름한다.
참고로 말하면 소승의 3현(賢)은 5정심위(停心位:五停心觀에 의해 貪ㆍ瞋ㆍ痴ㆍ我見ㆍ散亂心의 다섯 가지 마음을 눌러서 견제하는 位),
별상염주위(別相念住位:身ㆍ受ㆍ心ㆍ法을 개별적으로 순서있게 不淨ㆍ苦ㆍ非常ㆍ無我라는 自相을 觀하고,
또한 그 어느 것도 無常ㆍ苦ㆍ空ㆍ無我라는 共相을 觀하는 四念住를 닦는 位),
총상염주위(總相念住位:四念住 전체가 그대로 無常ㆍ苦ㆍ空ㆍ無我라는 共相을 觀하는 位)를 말한다.
여기서 5정심위는 사마타(奢摩他,
止)를 성취하고,
다음의 2위에서는 비발사나(毘鉢舍那,
觀)을 성취한다.
대승의 3현(賢)은 십지 이전의 보살 계위인 10주(住),
10행(行),
10회향(廻向)을 가리킨다.
52)
4선근위(善根位)를 말한다.
즉 견도(見道)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서의 견도 직전의 경지이며,
이 지위에서 닦는 유루(有漏)의 선근은 무루의 성도(聖道) 즉 결택(決擇)의 일부분이 되고,
견도를 가지고 오는 작용이 있으므로 순결택분이라 이름한다.
4선근위는 난위(煖位),
정위(頂位),
인위(忍位),
세제일위(世第一位)를 말한다.
53)
독각(獨覺)에는 부행(部行)과 인각유(麟角喩)의 두 부류가 있는데,
본문에서는 전자를 가리킨다.
본래는 성문(聲聞)이던 자가 후에 아라한을 얻을 때에 부처님 곁을 떠나서 독오(獨悟)하는 성자이다.
이들은 다른 성문승과 달리 여러 사람이 부처(部處)를 지어서 수행하기 때문에 부행독각(部行獨覺)이라 한다.
또는 4선근(善根)을 얻기까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나 그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독각(獨覺)한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성문보다 이근(利根)이므로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위차(位次)를 거치지 않고 오직 일과(一果) 뿐이다.
그 단혹(斷惑)의 순서는 유루지(有漏智)로써 욕계의 견혹(見惑)ㆍ수혹(修惑)을 단진(斷盡)하고 가행위(加行位)로부터 견도에 직입(直入)하여 16심(心)을 일으켜서 색계ㆍ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고,
다시 무간도(無間道)ㆍ해탈도에서 각각 72심을 일으켜서 색계ㆍ무색계의 수혹(修惑)을 끊어서 무학과(無學果)를 증득한다.
54)
인각유독각(麟角喩獨覺)의 단혹차제(斷惑次第)를 말한다.
이 독각은 무불세(無佛世)에 오직 독생(獨生)하여 자연현상 등에서 12인연법의 도리를 관찰하여 독오(獨悟)하는 것이 마치 기린이 외뿔인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인각유(麟角喩)라고 부른다.
인유독각(麟喩獨覺)을 백육십심(百六十心:견도에서 16심,
무간도ㆍ해탈도에서 각각 72심) 일좌성각(一座成覺)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처럼 한 번 성도의 자리에 나아가면 무학과를 증득하기까지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일좌(一座)에서 정각을 성취한다는 뜻이다.
55)
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때 취하는 태도인 4섭사(攝事:보시ㆍ愛語ㆍ利行ㆍ同事)ㆍ4섭법(攝法)을 가리킨다.
56)
공통이 아닌 공덕법이란 뜻으로서 불공법(不共法)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이나 보살에게만 갖추어져 있고 범부나 2승(乘)에게는 갖추어져 있지 않는 훌륭한 특질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3념주(念住)ㆍ대비(大悲)를 합해서 18불공법(不共法)이라 한다.
57)
범어 mātṛkā의 음역으로서 마달리가(摩怛理迦) 등이라고도 하며,
모(母)ㆍ본모(本母)ㆍ논모(論母)ㆍ지모(智母)ㆍ행모(行母) 등으로 의역한다.
경전이나 논서 중에서 반복 연찬(硏鑽)해서 부처님의 진정한 교의(敎義)를 해석한 것으로서 12분교(分敎) 중 우파제사(優波提舍)를,
3장(藏) 중 논장(論藏)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것을 모(母)라고 함은 지(智)와 행(行)을 낳는다는 뜻에서이다.
남전(南傳)의 논서에서는 그 처음에 혹은 1장(章) 첫머리에 있는 목차적(目次的) 표거(標擧) 즉 주석해야 할 기본적인 사항을 가리킨다.
58)
독각승을 포함한다.
59)
『유가사지론』의 「본지분(本地分) 」에서 50권에 걸쳐서 3승(乘)의 근본 17지(地)의 뜻을 약(略)으로 광(廣)으로 분별하고 있는데,
이것을 17본지(本地)ㆍ17지(地)라고 이름한다.
삼승의 경(境)을 관하고,
삼승의 행을 일으키며,
삼승의 과(果)를 증득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17지의 명칭은 ① 5식신상응지(識身相應地) ② 의지(意地) ③ 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 ④ 무심유사지(無尋唯伺地) ⑤ 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 ⑥ 3마희다지(摩呬多地) ⑦ 비삼마희다지(非三摩呬多地) ⑧ 유심지(有心地) ⑨ 무심지(無心地) ⑩ 문소성지(聞所成地) ⑪ 사소성지(思所成地) ⑫ 수소성지(修所成地) ⑬ 성문지(聲聞地) ⑭ 독각지(獨覺地) ⑮ 보살지(菩薩地) (16)유여의지(有餘依地) (17)무여의지(無餘依地)이다.
이 중에서 ①~⑨는 삼승의 경(境)이고,
⑩~⑮는 삼승의 행(行)이며,
(16)(17)은 삼승의 과(果)에 해당된다.
60)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의 지(地)의 네 가지 뜻[四義]을 가리킨다.
지(地)는 범어 bhūmi의 번역으로서 ‘생겨나게 하고 머물러 지님[生成住持]’의 뜻이다.
최승자(最勝子,
Jinaputra)의 『유가론석(瑜伽論釋)』에서 지(地)의 뜻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해석한다.
①경계의 뜻[境界義]:유가사(瑜伽師)가 행하는 경계이기 때문에 지(地)라고 이름한다.
용마지(龍馬地)와 같은 경우이다.
오직 이 안에서 행하고 함부로 외부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②소의의 뜻[所依義]:유가사가 이 처소에 의지하여 청정법[白法]을 증장하기 때문에 지라고 이름한다.
가색지(稼穡地)와 같은 경우이다.
혹은 유가사지(瑜伽師地)에 포섭되는 지혜는 이것에 의지해서 현행하고,
이것에 의지해서 증장하기 때문에 지라고 이름한다.
진보지(珍寶地)와 같은 경우이다.
③소행의 뜻[所行義]:유가사의 행은 이 안에 있으면서 청정법을 수행(受行)하기 때문에 지라고 이름한다.
우왕지(牛王地)의 경우와 같다.
혹은 모든 여래를 유가사라고 이름한다.
평등성지(平等性智) 등의 행은 일체의 희론이 없는 경계,
무주열반(無住涅槃)의 유가 중에 있기 때문이다.
④소섭의 뜻[所攝義]:그것의 포섭하는 바이기 때문에 지라고 이름한다.
17지(地)에 모든 유가사를 포섭하기 때문이다.
국왕지(國王地)의 경우와 같다.
61)
4의십칠지(義十七地)라고 하여 17지를 크게 나누어 4의(義)에 배속한다.
즉 제1 오식신상응지와 제2 의지는 경계의 뜻이고,
제3 유심유사지~제5 무심무사지는 소의(所依)의 뜻이며,
제6 삼마희다지~제12 수소성지는 소행(所行)의 뜻이고,
제13 성문지~제17 무여의지는 소섭(所攝)의 뜻이다.
62)
바른 도리라는 뜻이다.
63)
옳지 못한 도리라는 뜻이다.
64)
근(根)은 범어 indriya의 번역으로서 힘이 있어 강한 작용을 갖는다는 뜻이다.
본문에서 제근(諸根)은 6근(根: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근)ㆍ5수근(受根:苦根ㆍ樂根ㆍ憂根ㆍ喜根ㆍ捨根)ㆍ5무루근(無漏根:信根ㆍ勤根ㆍ念根ㆍ定根ㆍ慧根)ㆍ3근(根:未知當知根ㆍ已知根ㆍ具知根)의 22근을 가리킨다.
65)
사성제,
승의제,
세속제 등
66)
6합석(合釋:범어의 合成語를 해석하는 6종 방법)의 하나로서 의주석(依主釋)ㆍ섭주석(攝主釋)이라고도 한다.
복합사(複合詞) 중의 전절(前節) 부분은 명사(名辭) 또는 명사와 같이 보아야 할 것으로서,
이것이 후절(後節) 부분에 대해서 항상 격(格)의 관계를 갖는 경우이다.
이에 협의(狹義)와 광의(廣義)가 있다.
전자는 예를 들면 산사(山寺)가 ‘산에 있는 절’이란 뜻으로서 앞의 것은 어격(於格),
뒤의 것은 소유격이다.
후자는 지업석(持業釋)과 대수석(帶數釋)을 포함하여,
모두 전절(前節)의 말에 의해서 후절(後節)의 말의 의미를 제한하는 복합사이다.
67)
인명(因明)은 범어 hetu-vidyā의 번역으로서 5명(明)의 하나이다.
인(因)은 원인ㆍ이유이고,
명(明)은 학문이란 뜻으로서 이유를 밝혀서 논증(論證)을 행하는 논리학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도에서는 논리학을 니야야(nyāya,
正理)라고 하며,
불교에서는 특히 인명(因明)이라 부른다.
인명에는 고인명(古因明:陳那 이전 및 正理派)과 신인명(新因明:陳那 및 그 이후)이 있다.
고인명에 속하는 이론이 설해진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5권에 인명을 일곱 가지 항목으로 분류하는데,
이것을 7인명(因明)이라 한다.
곧 논의(論議)의 전개에 필요한 일곱 가지 요건인 ①논체성(論體性:논의의 본체적 요소인 언어) ②논처소(論處所:논의하는 데 적당한 장소) ③논소의(論所依:立論의 근거) ④논장엄(論莊嚴:論議가 整然한 것) ⑤논타부(論墮負:論議의 敗北) ⑥논출리(論出離:미리 잘 관찰해서 논의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⑦논다소작법(論多所作法:논의를 잘 하는 바탕)을 말한다.
68)
불법의 도리가 현요(顯了)하게 다 서술되어 있는 교법을 요의교(了義敎)라 하고,
이렇게 설하는 경전을 요의경이라 한다.
이에 반하여 중생의 이해의 정도에 맞추기 위해 현요한 뜻을 직접 설하지 않고 점차로 진실한 교법으로 유인하는 방편의 교법을 불요의교(不了義敎)라 하고,
이것을 설하는 경전을 불요의경이라 한다.
69)
부처님의 설법에는 은밀과 현요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전자는 설법하는 분의 본의(本意)는 있으나 문장 속에 은밀한 것이고,
후자는 문자의 겉면에 분명히 나타난 것이다.
70)
사법인 아함경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
71)
범어 āśaya의 번역어로서 휴식처ㆍ주처(住處)ㆍ사의(思意)ㆍ의향(意向) 등의 뜻이 있으며,
의요(意樂)ㆍ의욕(意欲)ㆍ지원(志願)으로 의역된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생각인데,
특히 선정 중의 작의(作意)를 가리킨다.
72)
‘법과 법에 수순해서 수행하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법은 증득되는 대상[所證]인 열반을 가리키고,
수법행(隨法行)은 그 법에 수순해서 실제적으로 수행하는 능증(能證)의 팔정도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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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양성교론』
♣0571-006♧
◎◎[개별논의] ♥ ❋본문
● 승의제의 파악이 갖는 삶의 가치
『현량성교론』 제 6 권에서 세속제를 통해 승의제를 파악하는 일에 대해
논의한다.
그런데 승의제란 무엇때문에 파악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파악한 승의제는 도대체 삶에서 어느 용도에 사용하는 것인가.
이런 것이 수행과정에서 중요하다.
물론 그것은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풀려나고
또 한편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데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의제를 파악함으로서 얻는 효용도 여기에 집중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얻는 과정에서도 또 대단히 효용을 갖게 된다.
우선 승의제를 파악해야 이를 통해 생사현실의 정체를 잘 파악하게 된다.
이는 꿈을 꾸는 가운데 현실의 사정을 파악하는 노력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자신이 누어 있는 침대에서는 꿈과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꿈 안에서 그 꿈 내용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려면 꿈 안에서 겪는 일체 문제를 다 잘 극복할 수 있다.
승의제를 파악해야 이를 통해 현실의 정체를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이란,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현실 안에서 현실과 본 바탕 실재의 관계를 이해해야
생사현실의 일체 생사고통을 잘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또 한편,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생사현실 안에서의 내용들도
바람직한 형태로 서원처럼 잘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어차피 차별없이 생사현실 일체가 다 공하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는 대변은 대변이고 금은 금이다.
그리고 누구나 생사현실 안에서 대변처럼 더러운 상태를 피하고 싶어한다.
또 금처럼 귀하고 가치있는 것들을 얻고 싶어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태도 이와 사정이 같다.
자신이 마치 축생이나 아귀 또는 지옥 중생처럼 살고 있다고 하자.
또는 자신이 병들고, 가난하고, 그리고 신분이 낮아 남에게 종으로 묶여 지내고,
또 더 나아가 죄까지 지어 감옥에 갇혀 지낸다고 하자.
이런 상태에서 생사현실을 임하면 대단히 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갖추고 살기를 원하다고 하자.
더 나아가 그런 상태에서 불국토를 장엄하고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다고 하자.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곧 수행자의 수행 문제다.
그것은 곧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데 왜 이 경우는 하필 그런 고통을 겪는 상황에 처하고
또 이 경우는 그렇지 않고 복덕을 누리는 상태에 처하게 되는가의 문제다.
또 반대로 그런 상태가 되기 위해서 일정한 수행을 하면
왜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하필 그런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은 다 같은 문제다.
즉 승의제는 다음 내용이다.
본 바탕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생사현실 일체가 차별없이 그와 같다.
그런데 왜 생사현실에서는 이런 차별이 그렇게 매경우 어김없이 나타나게 되는가.
이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생사현실에서 뜻한 바대로 무량겁에 걸쳐 유희자재 신통력을 바탕으로
임할 수가 있게 된다.
문제는 간단하다.
본 바탕이 차별없이 공하다.
그렇다고 물이 놓여진 그릇에서 다음 순간에 황금을 나타나게 할 수 있는가.
또 병이 든 상태에서 병이 낫고 가난한 상태에서 풍요로운 상태가 될 수 있는가.
3 악도에 처한 상태에서 갑자기 극락세계에 가서 불퇴전의 수행자가 될 수 있는가.
이런 등등의 문제가 다 이와 관련된다.
그리고 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승의제를 정확히 잘 파악하는 것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
★1★
◆vvii6530
◈Lab value 불기2565/07/07 |
Mathieu Mireille - Creo Que Va A Volver
♥단상♥고려시대에 고려 청자를 얻는 일과 같은 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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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지론』 5분(分)의 처음 본지분(本地分)에 나옴. 오식신상응지(五識身相應地)ㆍ의지(意地)ㆍ유심유사지(有尋有伺地)ㆍ무심유사지(無尋有伺地)ㆍ무심무사지(無尋無伺地)ㆍ삼마혜다지(三摩呬多地)ㆍ비삼마혜다지(非三摩呬多地)ㆍ유심지(有心地)ㆍ무심지(無心地)ㆍ문소성지(聞所成地)ㆍ사소성지(思所成地)ㆍ수소성지(修所成地)ㆍ성문지(聲聞地)ㆍ연각지(緣覺地)ㆍ보살지(菩薩地)ㆍ유여의지(有餘依地)ㆍ무여의지(無餘依地).
답 후보
● 십칠지(十七地)
아고(阿家)
아나함(阿那含)
아누루타(阿㝹樓馱)
아리야(阿梨耶)
아바라밀(我波羅蜜)
아비지옥(阿鼻地獄)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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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eng] dīp.h $ 범어 to adorn, to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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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ng] mudu $ 팔리어 adj.soft; mild; tender.
[Eng-Ch-Eng] 勝論師 A Vai/ses!ika teacher or philoso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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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일째]
일체중생불가설 $ 059▲極量極量為 一 ● 阿麼怛羅, ○□□□□,一,知,知,知
□□□□□□□, 一切佛剎不可說,
知眾生身不可說, 知其心樂不可說,
□□□□□□□, 일체불찰불가설,
지중생신불가설, 지기심요불가설,
갖가지 중생들을 말할 수 없고
갖가지 부처 세계 말할 수 없고
중생의 몸 아는 일도 말할 수 없고
그 마음 아는 것도 말할 수 없고
[189째]
지기업과불가설 $ 060■ ■知 知知菩見現 處清清修持
060▲ 阿麼怛羅阿麼怛羅為 一 ● 勃麼怛羅, ○□□□□,知,知,知,知
□□□□□□□, 知其意解不可說,
知其品類不可說, 知其種性不可說,
□□□□□□□, 지기의해불가설,
지기품류불가설, 지기종성불가설,
업과 과보 아는 일을 말할 수 없고
그 뜻을 아는 일도 말할 수 없고
그 종류 아는 일도 말할 수 없고
그 종성(種性) 아는 일도 말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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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_암기방안
59 순[입술] 치아[아] 설 口脣 【구순】 齒牙 【치아】
60 완수[腕首] - 손목
32 무릎 knee
80 거골[=발목뼈중 가장 윗뼈]
376748
412
○ 2020_1126_160903_nik_AB7_s12
○ 2020_1126_161131_nik_ct19
○ 2020_1126_155822_can_Ab15
○ 2020_1126_155725_nik_ab41_s12
○ 2020_1126_153440_nik_ar24
○ 2020_0224_104807_nik_ar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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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_1025_172202_can_BW17
○ 2018_1025_160908_can_ct9_s12
○ 2019_1004_175453_nik_ab20
○ 2019_1004_172610_can_ct31
○ 2019_1004_171305_nik_ct15
○ 2019_1004_161312_nik_ar38
○ 2019_1004_175805_nik_ct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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