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
K1503
T2060
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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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1503-014♧
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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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堂集卷第十四 江西下卷第一曹...
K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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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14권
강서江西 마조馬祖 화상
회양懷讓 선사의 법을 이었고,
강서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일道一이며,
한주漢州의 시방현十方縣 사람으로서 속성은 마馬씨이다.
나한사羅漢寺에서 출가하여 회양에 의해 마음의 눈을 뜬 뒤로는 남창南昌에서 교화를 폈는데,
매번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은 지금 각자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어라.
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달마達摩 대사께서 남천축국南天竺國에서 오셔서 최상승最上乘의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시어 그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다.
또 그대들이 뒤바뀌어 이 일심의 법을 제각기 지니고 있음을 믿지 않을까 봐 여러 차례 『능가경』의 문장을 인용하여 중생들의 마음 바탕을 인증해 보이셨다.
그러므로 『능가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설명하시는 것으로 조종을 삼으셨고,
문 없음으로써 법문을 삼으셨다’ 하였다.”
선사가 또 말했다.
“무릇 법을 구하는 이는 구하는 바 없이 구해야 하나니,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다.
선善을 취하지도 말고,
악惡을 버리지도 말아야 하며,
더럽고 깨끗한 양쪽 모두에 의지하지 않고
죄의 성품이 공함을 통달하면 생각마다 그 죄성이 있을 수 없나니,
제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삼계는 오직 마음뿐이요,
삼라만상森羅萬像은 한 법이 찍힌 것으로
무릇 보이는 물질은 모두가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마음 스스로 마음이라 하지 못하고,
형상에 의해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언제라도 현상 그대로가 진리임을 말하되,
도무지 걸림이 없어야 한다.
보리의 도과道果도 그러하여서 마음에서 난 것을 형상이라 하는데,
형상이 공空임을 알기 때문에 생生이 곧 불생不生인 것이다.
만일 이 뜻을 체득하면 그저 때에 따라 옷을 입고 밥을 먹고,
성인의 태胎를 기르면서 인연에 따라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니,
다시 무슨 일이 더 있으랴.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고 게송을 들어라.”
마음 바탕을 때에 따라 말하나니
보리도 또한 그러할 뿐이다.
현실과 이치에 모두 걸림 없으면
생生이 곧 불생不生이다.
홍주洪州 대안사大安寺의 주지가 경과 논을 강론하는 좌주였는데,
오직 마조馬祖만을 비방하였다.
어느 날 밤 3경更에 귀신 사자가 와서 문을 두드리니,
주지가 물었다.
“누구인가?”
사자가 대답했다.
“귀신 세계의 사자인데,
주지 스님을 데리러 왔소.”
주지가 사자에게 말했다.
“내가 이제 67세인데 40년 동안 경과 논을 강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지니게 하였으나
오직 말다툼만을 일삼았고 수행은 미처 하지 못했으니,
하룻밤 하루 낮만 말미를 주어 수행하게 해주시오.”
사자가 대답했다.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기를 탐하면서도 수행을 못했다면
이제 다시 수행을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목마른 뒤에 우물을 파는 격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주지가 아까 말하기를 ‘경론 강하기만을 탐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지니게 했다’ 하는데,
옳지 못하다.
무슨 까닭인가?
경전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를
‘스스로를 제도한 뒤에 남을 제도하고,
스스로가 해탈한 뒤에 남을 해탈하게 하고,
스스로를 조복한 뒤에 남을 조복시키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한 뒤에 남을 고요하게 하고,
스스로가 편안한 뒤에 남을 편안하게 하고,
스스로가 때[垢]를 여읜 뒤에 남의 때를 여의게 하고,
스스로가 깨끗한 뒤에남을 깨끗하게 하고,
스스로가 열반에 든 뒤에 남을 열반에 들게 하고,
스스로가 즐거운 뒤에 남을 즐겁게 하라’ 하였는데,
그대는 자신조차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지 못했는데,
어찌 남으로 하여금 도업道業을 이루게 할 수 있으랴.
그대는 또 듣지 못했는가?
금강장金剛藏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기를 ‘내가 바른 행을 닦은 뒤에야 남으로 하여금 바른 행을 닦게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만일 스스로가 바른 행을 닦지 못하고서 다른 이로 하여금 수행하게 함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그대는 생사의 더러운 마음으로 입을 놀려 따지기만 하여 불교를 잘못 전하여 어리석은 중생을 속였다.
이 까닭에 저 세계의 왕이 그대에게 화가 나서
나로 하여금 그대를 잡아서 곧 저 가운데 도수刀樹 지옥에 넣어 그대의 혀를 끊으라 했으니,
끝내 면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대는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지 못했는가?
‘말로써 설한 법을 작은 지혜들은 망령되게 분별하나니,
그러므로 장애를 일으켜서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조차 알 수 없는데,
어찌 바른 도를 알리오.
그들의 뒤바뀐 지혜 때문에 온갖 죄악을 늘린다’ 하였다.
그런데 그대는 40년 동안 구업口業을 지었으니,
지옥에 들지 않고 어찌하리오.
또 옛 경전에도 분명한 기록이 있는데,
‘말로써 모든 법을 말하여도 실상實相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였다.
그대는 망상妄想의 마음을 가지고 입을 놀려 헛소리를 지껄였으니,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받아야 한다.
그저 자신을 탓할지언정 남을 원망하지는 말라.
이제 서둘러 가자.
만일 늦으면 저 왕께서 나를 꾸짖을 것이다.”
이에 둘째 사자가 말했다.
“저 왕께서 벌써 이런 사실을 아실 터이니,
그로 하여금 수행하게 해준들 무슨 방해가 있겠는가?”
그러자 첫째 사자가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하루쯤 놓아주어서 수행하도록 허락합시다.
우리들이 돌아가서 왕에게 아뢰어 허락해 주시면 내일 다시 오겠고,
만일 허락하지 않으시면 잠시 뒤에 다시 오겠소.”
사자들이 물러간 뒤에 주지가 이 일을 생각했다.
‘사자 귀신이 허락은 했으나 내가 하루 동안 어떻게 수행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계책이 없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릴 겨를도 없이 개원사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니,
문지기가 말했다.
“누구시오?”
“태안사 주지인데 대사께 문안을 드리러 왔소.”
문지기가 문을 열어 주니,
주지는 곧 마조馬祖 화상에게로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진술하고,
오체투지五體投地한 뒤에 말했다.
“죽음이 닥쳐왔는데,
어찌하여야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저의 남은 목숨을 자비로써 구제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그를 자기의 곁에 서 있게 하였다.
날이 저물자 사자 귀신이 태안사로 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개원사로 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이때 선사와 주지는 사자를 보았으나 사자는 선사와 주지를 보지 못했다.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용화龍華에게 물었다.
“주지는 그때 어디로 갔었기에 사자가 찾지 못했습니까?”
용화가 말했다.
“우두牛頭 화상이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국사께서는 매우 훌륭하였겠습니다.”
용화가 말했다.
“남전南泉 화상이니라.”
어느 날 공양 끝 무렵에한 스님이 와서 위의를 갖추고 법당으로 올라와 선사를 뵈니,
선사가 물었다.
“지난밤에는 어디에 있었는가?”
“산 밑에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는가?”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부엌에 가서 밥을 찾아 먹어라.”
그 스님이 대답하고 부엌으로 가니,
그때 백장이 전좌典座의 소임을 맡았었는데,
선뜻 자기 몫의 밥 반을 그에게 나누어 주어 공양하게 하였다.
그 스님은 밥을 다 먹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 뒤 백장이 법당으로 올라가니,
선사가 물었다.
“아까 밥을 먹지 못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대가 공양 좀 시킬 수 있겠는가?”
“예,
벌써 공양을 마쳤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뒷날 무량한 복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는 벽지불辟支佛의 지위에 이른 스님이기 때문에 그리 말했노라.”
“스님께서는 범인凡人으로서 어찌하여 벽지불의 절을 받으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신통변화로는 그러하지만 만약 불법을 한 구절을 이야기하라면 노승만 못하느니라.”
선사가 어느 날 승상에 올라서 앉자마자 침을 뱉으니,
시자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조금 전에 무슨 연유로 침을 뱉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노승이 여기에 앉으니,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삼라만상森羅萬像이 모두 여기에 있더구나.
그래서 그것이 싫어서 침을 뱉었느니라.”
“이는 좋은 일일 터인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싫어하십니까?”
“그대 편에서는 좋겠지만 나로서는 싫으니라.”
“이는 어떤 사람의 경지입니까?”
“이는 보살의 경지니라.”
나중에 고산鼓山이 이 인연을 들어 말했다.
“옛사람은 그러했지만 여러분들은 보살의 경지도 아직 얻지 못했으면서 저 보살들을 싫어한다.
비록 싫은 것이라 해도 먼저 보살의 지위를 증득한 뒤에 싫어한 것이라야 싫어함이 된다.
노승은 보살의 지위를 알지도 못했으니,
어떻게 그러한 일을 싫어하랴?”
서천西川에 황삼랑黃三郞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두 아들을 마조馬祖에게 귀의하게 하여 출가시켰다.
한 해 남짓 지나서 그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두 스님을 보자마자 살아 있는 부처님을 보는 듯하여 절을 하면서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이루어 준 이는 벗이다’ 했는데,
두 스님은 나의 벗으로서 이 늙은이를 이루어 주시오.”
두 스님이 말했다.
“아버지께서 비록 나이가 많으시나 그러한 마음이 있으시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노인은 몹시 기뻐하였는데,
이로부터 이 거사는 두 스님을 따라 마조에게 갔다.
그 스님들이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대사는 곧 법당으로 올라갔다.
황삼랑도 법당 앞으로 나아가니,
대사께서 꾸짖으면서 말했다.
“쯧,
서천의 황삼랑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서천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황삼랑은 서천에 있는가,
홍주洪州에 있는가?”
“가정에는 두 가장이 없고,
나라에는 두 왕이 없습니다.”
“그대의 나이는 얼마인고?”
“85세입니다.”
“비록 그렇다 치더라도 나이는 왜 따지는가?”
“만일 화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뻔하였습니다.
화상을 뵌 뒤에는 칼로 허공을 긋는 것 같습니다.”
“만일 진실로 그러하다면 어디를 가나 진실에 맡겨라.”
황삼랑이 어느 날 대안사大安寺에 이르러 마루 앞에서 통곡을 하니,
양亮 좌주가 물었다.
“무슨 일로 통곡하십니까?”
황삼랑이 대답했다.
“좌주를 위해 웁니다.”
“나를 위해 울다니,
무슨 뜻입니까?”
“황삼랑이 마조馬祖께 의지해 출가해서 가르침을 받자마자 문득 깨달았다는 말을 들으셨을 터인데,
여러분 좌주들은 공연한 이야기나 지껄여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좌주가 이 말에 발심하여 곧 개원사開元寺로 가니,
문지기가 대사에게 말했다.
“대안사의 양 좌주가 와서 대사를 뵙고자 하고,
또 불법을 묻고자 합니다.”
이에 대사가 문득 법상에 오르니,
좌주가 와서 대사를 뵈었다.
대사가 좌주에게 물었다.
“듣건대,
좌주는 60본本 경론204)을 강講했다는데,
사실인가?”
좌주가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어떻게 강하는가?”
“마음으로 강합니다.”
“아직은 경론을 강할 줄 모르는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마음은 주인공이요,
뜻은 조연이라 했는데,
어찌 경론을 강할 줄 알겠는가?”
“마음이 강할 수 없다면,
허공은 강할 수 있습니까?”
“허공은 강할 수 있느니라.”
좌주가 뜻에 맞지 않아 당장 나와서 섬돌을 내려서려다가 크게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절을 하고 사례하니,
대사가 말했다.
“이 아둔한 중아,
절은 해서 무엇 하려는가?”
양 좌주가 일어나니 등에 땀이 줄줄 흘렀다.
밤낮으로 엿새 동안 대사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시다가 후에 좌주가 선사에게 말했다.
“제가 화상의 곁을 떠나 스스로의 수행 길을 살피려 하오니,
바라옵건대 화상께서 오래오래 세상에 계시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해 주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좌주가 본사로 돌아와서 대중들에게 고했다.
“내 일생 동안의 공부를 앞지를 이가 아무도 없다고 여겼더니,
오늘 마조 대사께 꾸지람을 맞고서야 망정妄情이 몽땅 사라졌다.”
그리고는 학도들을 모두 물리치고 한 번 서산으로 들어간 뒤에는 다시는 소식이 없었다.
양 좌주가 이런 시구를 남겼다.
30년 동안 아귀 노릇을 하다가
오늘에야 사람의 몸을 회복했네.
푸른 산에는 원래 외로운 구름의 벗이 있는데
동자가 다른 이를 따라 다른 사람을 섬겼네.
장남漳南이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허공이 경을 강하면 어떤 사람들이 듣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아까 잠시 남을 따라 기뻐했었습니다.”
장남이 말했다.
“무슨 뜻인가?”
“만일 다른 사람이라면 바로 거두시라 했을 것입니다.”
이에 장남이 말했다.
“그대는 역시 불을 잡을 뜻이 있구나.”
선사가 상당하여 양구하고 있으니,
백장이 면전에 있던 자리를 치워 버렸다.
그러자 곧 자리에서 내려왔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바로 그대의 목숨을 놓아 버릴 곳이니라.”
“4구句와 백비百非205)를 떠나서 서쪽으로부터 오신 뜻을 바로 보여 주십시오.
번거로이 여러 말씀을 하실 필요 없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오늘은 아무 생각도 없어서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서당西堂에게 가서 물어라.”
그 스님이 서당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서당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화상께 묻지 않는가?”
“화상께서 저더러 상좌께 물으라고 하십니다.”
이에 서당이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몹시 머리가 아파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해(海:백장) 사형께 가서 물어라.”
그 스님이 백장百丈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물으니,
백장이 말했다.
“나는 그 경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 스님이 다시 와서 선사에게 말하니,
선사가 말했다.
“장(藏:서당)의 머리는 희고,
해(海:백장)의 머리는 검도다.”
선사가 인편에 선경산先徑山 도흠道欽에게 글을 보냈는데,
글 속에는 다만 원상圓相만이 그려져 있었다.
경산이 이를 보자마자 붓을 들어 원상 안에다 한 획을 보탰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충忠 국사에게 전하니,
국사가 말했다.
“흠欽 대사가 또 마馬 대사에게 속았구나.”
어떤 사람이 선사의 앞에서 네 획을 그었는데,
위의 한 획은 길고 아래의 세 획은 짧았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가 길다고 해서도 안 되고 셋이 짧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 네 구절을 떠나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한 획을 긋고 말했다.
“길다고도 말할 수 없고,
짧다고도 말할 수 없으니,
그대에게 대답해 주었노라.”
충 국사가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르게 대답했다.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았던가?”
어떤 좌주가 선사에게 물었다.
“선종에서는 어떤 법을 전하고 있습니까?”
선사가 도리어 좌주에게 물었다.
“좌주는 어떤 법을 전하고 있는가?”
“40본 경론206)을 강의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사자후獅子吼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선사가 “쉬쉬” 하고 소리를 내니,
좌주가 말했다.
“그것도 법입니다.”
“그게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을 나서는 법입니다.”
그러자 선사가 한동안 침묵했다.
좌주가 말했다.
“이 역시도 법입니다.”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에 있는 법입니다.”
그러자 선사가 물었다.
“들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좌주가 대답을 못하고 마침내 하직하고 문밖을 나서니,
선사가 불렀다.
“좌주여.”
“예.”
“이것이 무엇인가?”
좌주가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말했다.
“이 아둔한 중아.”
후백장後百丈이 다음과 같이 대신 말했다.
“보았는가?”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회남淮南에서 왔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동호東湖의 물이 찼던가?”
“아직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비가 왔는데도 아직 차지 않았구나.”
이에 도오道吾가 말했다.
“찼습니다.”
운암雲巖이 말했다.
“담담湛湛하였습니다.”
동산洞山이 말했다.
“어느 겁엔들 줄어든 적이 있었습니까?”
선사가 다음날 아침 입멸하려는데,
그날 저녁에 원주가 물었다.
“화상께서 4대大가 평안하지 못하셨는데,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니라.”207)
분주汾州 화상이 좌주로 있을 때 42본 경론208)을 강하고 선사에게 와서 물었다.
“3승 12분교는 제가 대략 그 뜻을 압니다만 종문宗門의 뜻은 어떠하옵니까?”
선사가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좌우에 사람이 많으니 일단 가거라.”
분주汾州가 문을 나오는데 발을 문턱에 걸치자마자 선사가 “좌주야” 하고 불렀다.
이에 분주가 돌아보면서 “예” 하고 대답했다.
선사가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분주汾州가 당장에 깨닫고 절을 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제가 42본 경론을 강하면서 아무도 나를 이길 이가 없다고 여겼었는데,
오늘날 화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뻔하였습니다.”
선사가 백장百丈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는가?”
백장이 불자를 세움으로써 대답하니,
선사가 다시 물었다.
“다만 그것뿐인가,
아니면 따로 있는가?”
백장이 불자를 던졌다.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석문石門에게 물었다.
“한마디의 말로써 마 대사의 두 뜻을 점칠 수 있는 길을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석문이 불자를 들어 일으키면서 말했다.
“평소부터 어쩔 수 없었느니라.”
선사에게서 친히 법을 이어받은 제자 중 세상에 나와 교화를 편 이는 88인이고,
숨어서 지낸 이는 그 수효를 알 수 없다.
선사의 성품은 인자하고 모습은 준수하며,
발바닥에는 두 개의 바퀴무늬가 있고,
이마에는 주름이 세 가닥 잡혀 있다.
설법하며 세상에 머무르기 40여 년,
현현한 무리가 천여 명이다.
선사가 정원貞元 4년,
무진戊辰 2월 1일에 입적하니,
늑담氻潭 보봉산寶峰山에 탑이 있다.
칙명으로 대적大寂 선사 대장엄지탑大莊嚴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배상裵相이 편액을 썼고,
좌승상左丞相인 호득흥護得興이 비문을 지었다.
정수淨修 선사가 송했다.
마조馬祖 도일道一 선사는
수행이 온전하여 금석金石과 같다.
근본을 깨달아 초연하고
가지를 찾아 애쓰셨다.
오랫동안 선정禪定하신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내던져 버리고
남창南昌에서 크게 교화를 펴니
1천 척尺짜리 겨울 소나무 같구나.
대주大珠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월주越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혜해慧海이며,
건주建州 사람이다.
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그대들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지 말라.
그대들의 마음이 곧 법이니,
법을 가지고 법을 구하지 말라.
부처와 법이 화합한 것이 승가의 본체이니,
이를 일체삼보一體三寶라 부른다.
경에서 말하기를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 가지는 차별이 없다’ 하였으니,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청정함을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신 것이라 하고,
3업業이 청정하지 못함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이라 한다.
마치 성났을 때에는 기쁨이 없고,
기쁠 때에는 성냄이 없는 것과도 같아서,
오직 한마음뿐이고 작용 또한 두 바탕이 없다.
근본 지혜가 으레 그러하듯 무루無漏의 법을 눈앞에 나타내나니,
마치 뱀이 용으로 변할 때 그 비늘을 바꾸지 않고,
중생이 마음을 돌려 부처가 될 때에 그 얼굴을 고치지 않는 것과 같다.
본성은 본래 청정해서 닦아 이루기를 기다리지 않나니,
증득함이 있고 구함이 있다면 바로 증상만憎上慢과 같다.
진공眞空은 막힘이 없고,
응용應用은 때가 없어서 시작도 마침도 없다.
영리한 근기가 먼저 무등등無等等209)의 지혜를 활용하면 그것이 아뇩보리阿耨菩提요,
성품에 형상이 없는 것이 바로 미묘한 색신色身이다.
형상 없음이 곧 실상實相이요,
성품과 본체가 본래 공한 것이 곧 끝없는 법신法身이요,
만행萬行으로 장엄하는 것이 곧 공덕이니,
바로 만 가지 변화의 근본이어서 이르는 곳에 따라 이름을 세웠을 뿐이니라.
지혜와 작용이 무진한 것을 무진장無盡藏이라 하고,만 가지 법을 내는 것을 대법장大法藏이라 하며,
온갖 지혜를 갖추는 것을 지혜장智慧藏이라 하고,
만법이 동일한 진여인 것을 곧 여래장如來藏이라 한다.
경에서 말하기를 ‘여래如來라 함은 모든 법이 여여如如하다는 뜻이라서,
온갖 세간의 생멸법 가운데 어느 한 법도 이 여如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하였느니라.”
왕王 장리長吏라는 이가 물었다.
“법사法師와 율사律師와 선사禪師 중 어느 쪽이 가장 수승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법사法師는 사자좌에 걸터앉아 폭포 같은 웅변을 토하여 빽빽하게 모인 여러 사람들을 상대로 반야의 묘한 문을 열고 3륜輪210)이 공적空寂한 경지에 이르게 한다.
만일 용상龍象이 도사린 기틀이 아니면 어떻게 사람들을 감당하리오.
율사律師는 비니毘尼의 법장을 열어 명예와 이익을 쌍으로 행하고,
가지거나 범하거나 열거나 막아서 위의는 남의 모범이 된다.
세 번 거듭하는 갈마211)를 행하여 4과果212)의 첫 인연을 만드나니,
만일 전생에 덕을 쌓은 흰 눈썹[白眉]이 아니면 어찌 감히 섣불리 하리오.
선사는 추요樞要213)를 찾아내어 마음의 근원을 곧장 깨닫고,
들고나고 펴고 오므림이 자유로이 사물에 응한다.
현실과 이치를 모두 균등히 하여 한순간에 여래如來를 활짝 보고 생사의 깊은 근원을 뽑아 버려 현전의 삼매를 얻는다.
만일 선정에 안정하여 조용히 생각하는 이가 아니면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어리둥절하리라.”
어떤 좌주가 물었다.
“제가 선사의 뜻을 물으려는데 되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맑은 못의 달그림자를 마음대로 만지작거려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맑은 못에 얼굴을 대했을 때가 부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좌주가 어리둥절해서 다시 물었다.
“선사께서는 어떠한 법을 말해서 사람들을 제도합니까?”
“법이 있은 적이 없느니라.”
“선사는 한결같이 이러하군요.”
선사가 도리어 법사에게 물었다.
“어떤 법을 말하는가?”
“『금강경』을 20여 회 강하였습니다.”
“『금강경』은 누구의 말씀인가?”
“선사께서는 어찌 부처님의 말씀임을 모르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만약 여래께서 설한 법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곧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니,
그런 사람은 내가 말한 뜻을 알지 못한다.
만약 경전이 불설佛說이 아니라 한다면 그것은 곧 경전을 비방하는 것이니,
이것을 떠나 노승을 위해 법을 설하여라.”
법사가 대답이 없었다.
이에 선사가 다시 말했다.
“이 뜻을 잠시 제쳐두고 그 이치는 그만두고라도 경에서 말하기를 ‘만일 32상相으로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이 곧 여래일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만일 색色으로 나를 보려고 한다면 곧 여래를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였으니,
경은 그만두고 대덕에게 묻노니,
일러 보라.
어떤 것이 여래인가?”
좌주가 대답했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어리둥절해집니다.”
선사가 꾸짖으면서 말했다.
“경을 20여 회나 강했다면서 전혀 여래를 알지 못하는구나.”
그리고는 또 말했다.
“여래라 함은 모든 법의 여여如如한 뜻이라 했는데,
대덕은 어째서 모르는가?”
법사가 다시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모두가 여여하겠습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틀렸다,
틀렸다.”
“경에 그렇게 말했는데,
어째서 옳지 않다 하십니까?”
“법사는 여여한가?”
“예,
여여합니다.”
“목석木石이 여여한가?”
“여여합니다.”
“그대와 목석이 모두 여여하다는 말인가?”
“두 가지 여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대덕은 초목과 무엇이 다른가?”
법사가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이 사람은 문답하기 참 어려운 사람이로다.”
어느 때에 어떤 속관(俗官:세속 관리)이 물었다.
“법사는 어째서 선법禪法을 믿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름과 형상은 알기 쉬우나 지극한 이치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어떤 행자行者가 물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하는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그대는 어떤 것이 부처가 아니라고 의심하는가?
지적해 보라.”
행자가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말했다.
“통달하면 온 경계가 그것이요,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어긋나서 멀어지느니라.”
『화엄경』을 강하는 좌주 몇 사람이 물었다.
“선사들은 어찌하여 청청한 푸른 대[竹]가 법신이요,
울창한 개나리꽃이 반야임을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법신은 형상이 없으나 푸른 대를 상대하여 형상을 이루고,
반야는 알음알이가 없으나 노란 개나리꽃을 상대하여 형상을 나타내나니,
그 노란 꽃이나 푸른 대를 떠나서 반야와 법신이 있을 수 있겠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의 참 법신은 허공과 같아서 사물에 응하여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마치 물속의 달과 같다’ 하였으니,
노란 꽃이 반야라면 반야는 곧 무정지물과 같을 것이요,
푸른 대가 법신이라면 푸른 대가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가?”
좌주 몇 사람이 모두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백장百丈 정政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강서에서 살았다.
그의 행적을 보지 못해서 생애는 알 수 없다.
선사가 스님에게 말했다.
“그대가 나를 위해 밭을 일구어 주면 내 그대에게 큰 이치를 말해 주리라.”
스님이 말했다.
“밭을 다 일구었으니,
스님께서 큰 이치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가 두 손을 활짝 펴 보였다.
어떤 노숙이 창틈으로 햇살이 스며드는 것을 보고 물었다.
“창이 해 곁으로 갔습니까,
해가 창 곁으로 왔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장로의 방에 손님이 오셨으니 가 보시는 것이 좋겠소.”
삼산杉山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지주池州에서 살았다.
이름은 지견智堅이며,
그의 실록을 보지 못해 생애는 알 수 없다.
운암雲巖이 달을 보고 선사에게 말했다.
“매우 좋은 달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비추기는 하는가?”
운암이 고개를 숙여 버렸다.
선사가 남전에서 제1좌第一座로 있었는데,
남전이 수생(收生:중생교화)을 하면서 말했다.
“생生이다.”
선사가 말했다.
“무생無生입니다.”
“무생이라 하여도 역시 끝이니라.”
남전이 이렇게 말하고는 대여섯 걸음 걸으니,
선사가 “큰스님” 하고 불렀다.
남전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어째서 그러는가?”
“그래도 끝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서 순덕順德에게 물었다.
“남전이 말하기를 ‘생이다’ 한 뜻이 무엇입니까?”
순덕이 말했다.
“급한 물결에 배를 띄우는 것이니라.”
“삼산이 ‘무생입니다’ 말한 뜻은 무엇입니까?”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나무 또한 움직이지 않느니라.”
“무생이라 해도 역시 끝이라 한 뜻이 무엇입니까?”
“칼날을 갈고,
칼끝을 문지르는데,
그대는 어떻게 피하려는가?”
“남전을 부른 뜻이 무엇입니까?”
“승전보를 들으려면 따로 행해 지녀야 하느니라.”
“남전이 고개를 돌린 뜻이 무엇입니까?”
“코끼리가 발길을 돌리니,
사자獅子가 신음을 하느니라.”
“‘끝이란 말씀을 마십시오’라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묘하게 몸을 피하니 고금에 드무니라.”
안국安國이 이 일을 들어서 명明 상좌에게 물었다.
“옛사람은 무생에 해당하는가,
무생에 해당하지 않는가?”
“무생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삼산의 뜻이 무엇인가?”
명 상좌가 대답이 없으니,
명진明眞 대사가 대신 말했다.
“그대가 들어 말해 보라.”
선사가 남전과 함께 불을 쪼이는데,
남전이 물었다.
“동쪽 서쪽을 가리키지 말고,
본분의 일을 곧장 일러 보시오.”
선사가 얼른 부젓가락을 집어 던지니,
남전이 말했다.
“그대가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왕 노사에 견주면 여전히 실 한 가닥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남전이 다시 조주에게 묻자,
조주가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리고 그 복판에 점 하나를 찍었다.
남전이 말했다.
“그대가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왕 노사에게 견주면 여전히 한 올의 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중에 운문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남전은 다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높은 곳을 향해 오르기만 할 뿐 허공 속에서 놓아 버릴 줄은 몰랐다.”
“어떤 것이 본래의 몸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온 세상에 그와 비슷한 것은 없느니라.”
선사가 고사리나물을 들어 보이면서 남전에게 물었다.
“이것은 공양하기에 딱 좋겠습니다.”
남전이 대답했다.
“그것뿐이 아니라 설사 백미진수라도 그는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선사가 다시 말했다.
“비록 그러나 저마다 그에게 갚아야 합니다.”
명계茗溪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으나 행장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를 알 수 없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수행의 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훌륭한 중아,
공연히 나그네 신세가 되지 말라.”
“끝내 어떠합니까?”
“가만히 놓아둘 수는 없느니라.”
선사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큰 병이 있으니,
세상 의원으로서는 고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이 말로써 선조산先曺山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에게 큰 병이 있으니,
세상 의원으로서는 고칠 수 없다’ 하였는데,
그게 어떤 병입니까?”
조산이 대답했다.
“활촉으로 뚫을 수 없는 병이니라.”
“일체 중생에게도 이 병이 있습니까?”
“사람마다 모두 있느니라.”
“일체 중생은 어찌하여 앓지 않습니까?”
“중생이 만일 앓는다면 이미 중생이 아니니라.”
“화상께도 이 병이 있습니까?”
“일어나는 곳은 바야흐로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느니라.”
“부처님들께도 이 병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있다면 어째서 앓지 않습니까?”
“또렷또렷하기 때문이니라.”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른 수행의 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열반한 뒤에야 있음직한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한 뒤에 있음직한 것입니까?”
“씻을 얼굴이 없는 것이니라.”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얼굴이 없어서 씻으려 해도 씻을 수 없느니라.”
석공石鞏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혜장慧藏이며,
출가하기 전에 사슴을 쫓아 마조의 암자 앞을 지나다가 물었다.
“스님,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셨습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예,
저는 사냥꾼입니다.”
“그대는 활을 쏠 줄 아는가?”
“압니다.”
“한 화살로 몇 마리의 짐승을 잡는가?”
“한 화살로 한 마리를 잡습니다.”
“그대는 전혀 활 쏠 줄을 모르는구나.”
이에 석공이 말했다.
“스님께서도 활을 쏠 줄 아십니까?”
“안다.”
“한 화살에 몇 마리나 잡으십니까?”
“한 화살에 한 떼를 잡는다.”
“피차가 모두 같은 생명인데,
어찌 그들을 쏘십니까?”
“그대가 이미 이와 같음을 아는데,
어째서 자신을 쏘지 않는가?”
“저 자신을 쏘라고 하시지만 손 쓸 곳이 없습니다.”
이에 마조가 말했다.
“이 놈의 무명번뇌가 한순간에 몽땅 사라지는구나.”
선사가 즉석에서 활과 화살을 꺾어 버리고,
칼을 뽑아 머리를 깎고 마조에게 귀의하여 출가하였다.
그 뒤의 어느 날,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마조가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소를 먹입니다.”
“어떻게 먹이는가?”
“한번 풀밭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얼른 콧구멍을 잡아 끌어냅니다.”
이에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참으로 소를 먹일 줄 아는 사람이다.”
선사가 서당에게 물었다.
“그대는 허공을 잡을 줄 아는가?”
서당이 대답했다.
“잡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잡는가?”
서당이 손으로 허공을 잡는 시늉을 하니,
선사가 말했다.
“그래 가지고 어떻게 잡겠는가?”
서당이 되레 물었다.
“스님은 어떻게 잡으십니까?”
선사가 서당의 코를 잡아끄니,
서당이 아픔을 참으면서 끙끙 소리 내어 말했다.
“지독하게 사람의 코를 잡아끌다니,
당장 놓아주시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반드시 이렇게 허공을 잡아야 한다.”
언젠가 스님이 와서 뵈니,
선사가 말했다.
“아까는 어디를 갔더냐?”
스님이 대답을 했다.
“여기에 있었습니다.”
“어디에 있었는가?”
스님이 손가락을 튀겨서 대답을 대신했다.
어떤 스님이 절을 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아무아무 곳에서 옵니다.”
“그것을 얻어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스님이 손가락을 두세 번 튀겨서 대답을 대신했다.
삼평三平 화상이 선사를 뵈니,
선사가 화살을 당기면서 외쳤다.
“화살을 보아라.”
삼평이 가슴을 벌리고 받는 시늉을 하니,
선사가 얼른 화살을 던지면서 말했다.
“30년 동안 여기에 있었지만 오늘에야 겨우 반 토막의 성인을 쏠 수 있었다.”
나중에 삼평이 주지住持가 된 뒤에 말했다.
“그날에는 내가 덕을 봤다고 여겼는데,
지금 살펴보건대 도리어 덕을 잃었다.”
석문이 이 일을 들어 명진明眞에게 물었다.
“어떻게 말했어야 반 토막의 성인이란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습니까?”
명진이 할을 하면서 말했다.
“이 들여우 요괴야.”
이에 석문이 말했다.
“알았다 해도 좋은 솜씨를 놀리지 말아야 합니다.”
선사가 농주음弄珠吟을 읊었다.
밝디 밝은 명주가 온 누리에 빛나니
삼라만상이 거울 속에 나타난다.
광채는 삼천세계를 꿰뚫어 대천大千을 넘으니
4생生과 6류流가 같은 신령한 근원이다.
범부도 성인도 구슬에 대해 들으매 누가 부러워 않으랴마는
잠시라도 마음을 내어 구하면 전혀 보지 못한다.
얼굴을 맞대고 구슬을 보면서도 구슬인 줄 모르나니
구슬을 찾아 물건을 쫓으면 즉시에 변화한다.
천 가지,
만 가지로 구슬을 비유하나니
구슬은 백비百非를 떠나고 4구句를 초월한다.
이 구슬이 생겼다지만 생긴 것 아니요,
무생無生을 위함이 아닐 때 구슬은 비로소 존재한다.
여의주如意珠ㆍ대원경大圓鏡이여,
또한 인간 속의 본성이라고도 불린다.
몸을 백ㆍ억 세계로 나누는 것,
내 구슬의 본분이나
예부터 본래 맑은 것,
지금껏 청정하다.
일상생활의 참 구슬이 부처님이시니
어찌 수고로이 사물을 따르기에 허둥대는가?
숨었건 드러났건 두 모습 아니니
얼굴 맞대고 구슬을 보라.
알아볼 수 있던가?
자옥紫玉 화상
마조 대사의 법을 이었고,
양양襄陽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통道通인데,
행장을 보지 못해서 그의 생애를 확실히 알 수 없다.
양양襄陽의 염사廉師 우적于迪 상공相公이 자기 관내에 명을 내리기를 “우리 관내에서 행각行脚하는 스님이 있거든 모두 쫓아가서 한 스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무수히 했다.
선사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상공을 만나러 가기 위해 대중에 같이 동행할 사람을 모으니,
열 사람이 나왔다.
선사가 열 사람을 거느리고 마침 그 경계 앞에 이르니,
열 사람은 겁이 나서 아무도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선사가 홀로 경계 안으로 들어갔다.
군인들이 선사가 오는 것을 보고 붙들어다가 칼을 씌워서 관아로 보냈다.
선사가 칼을 쓰고 문 밖에 이르러 가사를 수하고 대청으로 오르니,
상공이 검을 뽑아 들고 거만하게 걸터앉아서 호통을 쳤다.
“에끼,
이 중아,
양양의 절도사가 함부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선사가 대답했다.
“법왕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화상의 머리에도 귀가 있는가?”
“눈썹과 눈이 서로 장애하지 않듯이,
내가 상공을 만나는 데 무슨 장애가 있으리오?”
그러자 상공이 문득 칼을 버리고 관복을 정돈하고서 절을 한 뒤에 물었다.
“듣건대 경전에서 말하기를 ‘거센 바람이 배를 불어 나찰귀국羅刹鬼國으로 떨어뜨린다’ 하였다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우적于迪아” 하고 부르니,
상공의 얼굴빛이 변하였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찰귀국이 멀리 있지 않느니라.”
상공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우적이여” 하고 불러 상공이 대답을 하자,
선사가 말했다.
“다른 곳에서 구하지 말라.”
상공이 이 말에 크게 깨달아 절을 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약산에게 이야기하니,
약산이 말했다.
“그 놈을 결박해 죽였어야 했을 것이니라.”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떠하십니까?”
약산이 말했다.
“이게 무엇인고?”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삼계를 벗어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그 안에 얼마나 있었던가?”
“어찌하여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푸른 산은 흰 구름이 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느니라.”
남원南源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표주表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명道明이며,
동산洞山이 처음 남원에 와서 법당으로 오르는데,
선사가 동산을 보자 말했다.
“이미 만나 보았으니,
더 올라올 필요가 없다.”
동산이 이 말을 듣고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 뒤에 다시 조실로 찾아와 물었다.
“아까 말씀하시기를 ‘벌써 만났다’ 하셨는데,
어디가 저와 만난 경지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마음과 마음이 끊임없이 성품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느니라.”
“놓칠 뻔하였습니다.”
닷새가 지난 뒤 동산이 선사에게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 편에 부탁할 일이 있는데,
되겠는가?”
동산이 절을 하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사가 말했다.
“불법을 많이 배워서 널리 이익을 펼쳤다.”
“불법을 많이 배우는 일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널리 이익을 펴는 일입니까?”
“한 물건도 위하지 않는 것이니라.”
동산은 그 뒤로 두 해를 더 머물렀다.
백장百丈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강서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회해懷海이며,
복주의 장락현長樂縣 사람이다.
성은 황黃씨이며,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나서 불상을 가리키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저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처님이시다.”
“형상이 사람과 같아서 나와 다름이 없으니,
뒷날 나도 부처가 되겠습니다.”
그 뒤에 스님이 되어 최상승最上乘을 흠모하여 바로 대적(大寂:마조의 호)의 회상으로 가니,
대적이 선사를 한 번 보고 맞이하여 입실하게 하여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선사가 평생 동안 고결한 성품으로 수행한 일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또한 날마다 울력에도 반드시 남보다 먼저 나서니,
주사主事가 차마 볼 수 없다 하여 연장을 숨기고 쉬기를 청하니,
선사가 말했다.
“내게 아무런 덕이 없는데,
어찌 남들만 수고롭게 하겠는가?”
선사가 여기저기 연장을 찾다가 찾지 못하면 공양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 하는 말이 천하에 퍼졌다.
어떤 스님이 울면서 법당으로 들어오니,
선사가 물었다.
“어째서 그러느냐?”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스님께서 장사지낼 날을 잡아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우선 오늘은 돌아갔다가 내일 오너라.
한꺼번에 묻어 주리라.”
선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한 사람을 서당에게 보내어 말을 전하려 하는데,
누가 가겠는가?”
오봉五峰이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전하겠는가?”
“서당을 만나면 바로 말하겠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
“돌아와서 화상께 고하겠습니다.”
위산潙山이 밤늦게 선사를 뵈러 왔는데,
선사가 그를 보고 말했다.
“화로의 불을 좀 돋우어다오.”
위산이 말했다.
“불이 없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아까 불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리고 벌떡 일어나 화롯가로 가서 손수 불을 헤쳐 한 덩이의 불을 집어 들고는 말했다.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위산이 당장에 깨달았다.
선사가 위산과 더불어 일을 하다가 물었다.
“불이 있는가?”
위산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위산이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두어 번 분 뒤에 선사에게 바치니,
선사가 말했다.
“벌레가 나뭇잎을 먹은 것 같구나.”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아무개라 합니다.”
“그대는 나를 아는가?”
“분명합니다.”
선사가 불자拂子를 세워 들고 말했다.
“그대는 이 불자를 보는가?”
“봅니다.”
이에 선사가 말을 그쳤다.
어느 날 울력을 하는데,
어떤 스님이 갑자기 북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 내어 웃으면서 절로 돌아오니,
선사가 말했다.
“장하도다.
그것이 관음이 진리에 드는 문이로다.”
그리고는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아까는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그렇게 크게 웃었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제가 아까 북소리를 듣자돌아오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겠구나 싶어,
그래서 크게 웃었습니다.”
선사가 그만두었다.
이에 장경이 대신 말했다.
“그 또한 재齋 때문에 찬탄한 것이로다.”
어떤 이가 물었다.
“경에 의해서 뜻을 풀이하면 3세의 부처님이 원수요,
경을 떠나서 한 글자라도 말하면 마魔의 말과 같다 하는데,
어찌합니까?”
선사가 말했다.
“동작을 굳이 지키고 있으면 3세의 부처님이 원수요,
이 밖에 따로 구하면 마의 말과 같다.”
어떤 스님이 서당西堂에게 물었다.
“물음이 있고 대답이 있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묻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썩을 것을 걱정해서 무엇 하려는가?”
선사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전부터 나는 그 노장[老漢]을 수상히 여기고 있었느니라.”
스님이 물었다.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일합상一合相을 얻을 수 없느니라.”
선사가 어떤 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시켰다.
“장경에게 가서 그가 상당하여 설법하려고 하면 절을 하고 일어나서 그의 신발 한 짝을 들고 소매로 그 위의 먼지를 턴 뒤에 머리에 거꾸로 이고 나오라.”
그 스님이 장경에게 가서 선사의 지시대로 낱낱이 시행하니,
장경이 말했다.
“노승의 허물이로다.”
선사가 행각行脚할 때에 선권사善勸寺에서 경을 보려 하니,
사주(寺主:주지)가 허락하지 않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승의 의복이 깨끗하지 못하여 경을 더럽힐까 두렵소.”
선사가 그래도 경 보기를 간절히 요구하니,
사주가 마침내 허락하였다.
선사가 경을 다 본 뒤에 바로 대웅산大雄山에 가서 출세出世하였다.
그 뒤 공양주供養主를 하던 스님이 선권사로 와서 사주를 만나니,
사주가 물었다.
“어디서 떠났는가?”
“대웅산에서 왔습니다.”
“누가 주지로 계시는가?”
“아마도 우리 화상께서는 행각하실 때,
이 절에서 경을 보신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해(海:백장) 상좌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에 사주가 합장을 하고 말했다.
“나는 참으로 범부로다.
그때 그가 인천人天의 참 선지식善知識임을 몰랐었다.”
또 물었다.
“여기까지 오신 뜻이 무엇인가?”
“소疏를 지으려 합니다.”
사주가 손수 소를 지어 온갖 일을 가르쳐 준 뒤에 공양주와 함께 백장에게로 왔다.
선사가 이 소식을 듣고 얼른 산 밑으로 내려와서 그들을 맞아 산으로 돌아와서 모든 인사를 마치고 사주에게 선상禪床에 앉을 것을 권하면서 말했다.
“내가 꼭 한 가지를 사주에게 물으려는 것이 있습니다.”
사주가 사양하다 못해 자리에 오르니,
선사가 문득 물었다.
“바야흐로 강을 하실 때에는 어떻게 하시는가요?”
사주가 대답했다.
“마치 금 소반 위에 구슬을 굴리듯 합니다.”
“금 소반을 들어 버리면 구슬은 어디에 있소?”
사주가 대답을 못했다.
또 물었다.
“교에서 말하기를 ‘분명하게 불성佛性을 보면 문수보살의 경지와 같아진다’ 하였는데,
이미 분명하게 불성을 보았다면 의당 부처님과 같아야 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겨우 문수와 같다 하오?”
사주가 또 대답하지 못했다.
이 일로 인하여 곧 납의衲衣를 입고 선禪을 배워 호를 열반涅槃 화상이라 했으니,
그가 곧 제2의 백장百丈이었다.
선사가 어느 날 저녁 깊은 잠에서 깨어나 갑자기 탕(湯:더운물)이 마시고 싶어졌다.
그러나 시자도 깊은 잠에 빠진 터라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조금 뒤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시자를 부르면서 말했다.
“큰스님께서 탕을 먹고자 하오.”
시자가 벌떡 일어나탕을 끓여 선사에게로 가져가니,
선사가 놀라 물었다.
“누가 그대더러 이렇게 탕을 끓여 오라 하던가?”
시자가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선사가 손가락을 튀기면서 탄식했다.
“노승이 시종 수행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도다.
만일 수행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도 느끼지 못하고 귀신도 알지 못해야 하는데,
오늘 나는 토지신土地神에게 내 마음을 들키어 그렇게 하게 하였도다.”
선사가 운암雲巖을 보자,
다섯 손가락을 들어 세우면서 말했다.
“어느 것이 그대인가?”
운암이 말했다.
“다 아닙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어찌 그렇겠는가?”
어느 날,
선사가 법당에서 4경更까지 앉아 있었다.
그때 시자이던 운암이 세 차례나 화상의 곁에 와서 모시고 섰었는데,
세 번째 왔을 때는 선사禪師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침을 뱉었다.
시자가 물었다.
“큰스님,
아까 무슨 연유로 침을 뱉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경계가 아니니라.”
시자가 다시 물었다.
“큰스님께 고하옵니다.
저는 화상의 시자입니다.
저에게 이야기를 못하시면 누구에게 하시겠습니까?”
“물을 필요가 없느니라.
그대가 물을 일도 아니요,
또 내가 말할 일도 아니니라.”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라도 알고자 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선사가 대답했다.
“사람을 몹시도 괴롭히는구나.
내가 사람이 되지 못해서 조금 전에 갑자기 보리와 열반이 생각이 났었느니라.
그러기에 침을 뱉었느니라.”
“만일 그러시다면 어째서 그토록 오랜 동안 보리와 열반과 요의了義와 불요의不了義를 말씀하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남에게 전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대가 물을 일이 아니며,
또 그대의 경계도 아니라 했던 것이다.”
선사가 법어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목구멍도 입술도 다물고서 속히 일러 보라.”
어떤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학인은 말할 수 없습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하기는 사양하지 않겠으나,
뒷날 내 자손들을 속일 것이니라.”
이 말에 운암이 대답했다.
“스님,
지금도 있습니다.”
이에 선사가 문득 소리를 높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자손들을 망쳤도다.”
선사가 또 다음과 같이 법어를 내렸다.
“견해의 강물은 코끼리를 떠내려 보낼 수 있느니라.”
어떤 스님이 얼른 물었다.
“스님께서는 보셨습니까?”
“보았느니라.”
“보신 뒤에는 어떠하셨습니까?”
“견해가 둘이 아님을 보았느니라.”
“견해가 둘이 없음을 보셨다 하셨는데,
견해로써 견해를 볼 수는 없습니다.
만일 견해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앞의 것을 보십니까,
뒤의 것을 보십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견해를 볼 때에 견해는 견해가 아니니라.
견해라는 견해까지도 여읜 것이어서 견해로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선사가 또 다음과 같이 법어를 내렸다.
“옛사람이 한 손을 들거나 한 손가락을 세우고서 그것을 선禪이다,
도道라 하였는데,
이 말은 무수한 사람을 속박하여 그칠 날이 없었느니라.
설사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역시 입으로 짓는 허물이로다.”
부怤 상좌가 이 일을 들어 취암翠巖에게 물었다.
“말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도리어 입의 허물이라 하였습니까?”
취암이 대답했다.
“그저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부 상좌가 이틀을 말없이 지냈는데,
취암이 문득 부 상좌에게 물었다.
“엊그제 그렇게 상좌에게 대답했지만 상좌의 뜻에 맞지 않는 모양인데,자비를 버리지 마시고 상좌에게 방편을 내려 주십시오.
말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오히려 입의 허물이라 했습니까?”
상좌가 손을 번쩍 들어 세우니,
취암이 오체투지를 하고 소리를 내어 통곡을 하였다.
선사가 어느 날 시자로 하여금 제1좌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묻게 하였다.
“실제의 이치는 한 티끌도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불사를 하는 문 안에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는다 하였는데,
요의에 속하는가,
불요의에 속하는가?”
제1좌가 대답했다.
“요의의 가르침에 속한다.”
시자가 돌아와서 화상에게 말하니,
화상이 시자를 때려서 내쫓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대승으로서 도道에 들어 활짝 깨닫는 법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먼저 모든 반연을 쉬어라.
만사를 쉬어서 착한 일,
착하지 못한 일 등 세간의 온갖 일들을 모두 놓아 버려 기억하지도 말고 반연하지도 말며 그 몸과 마음을 버려 두어 자유롭게 하면,
마음은 목석같이 되고 입으로는 말할 것이 없고,
마음으로는 분별할 길이 없어져서 마음은 허공 같아서 지혜의 해가 저절로 드러나니,
마치 구름이 흩어지면 해가 비치는 것과 같으리라.
온갖 반연을 쉬고 탐욕ㆍ성냄ㆍ애착 등을 모두 쉬어서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생각이 다하여 5욕欲214)과 8풍風215)을 대하더라도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에 속박 당하지 않고,
모든 경계에 홀림을 받지 않게 되면 자연히 신통과 묘용을 구족하리니,
이는 해탈한 사람이다.
온갖 경계를 대하되 마음에 조용함도 어지러움도 없고 거둠도 흩어 버리는 것도 없어서 온갖 빛과 소리를 만나더라도 걸림이 없으면 이는 도인道人이라 하느니라.
온갖 선악과 더러움과 깨끗함,
유위有爲 세계의 복과 지혜에 얽매이지 않으면 이는 부처의 지혜라 하고,
옳고 그르고,
아름답고 추하고,
이치와 이치 아님 등 온갖 소견을 모두 다하여 얽매이지 않고 곳곳에서 자유로우면 이는 처음 발심한 보살이 당장에 부처의 지위에 오른 것이라 하느니라.
온갖 모든 법은 스스로 공이라 말하지 않고,
스스로 색이라 말하지 않으며,
시비是非와 구정垢淨이라 말하지 않고,
사람을 속박할 생각도 없지만 단지 사람들이 스스로 허망하게 계교하고 집착하여 갖가지 견해를 짓고 갖가지 소견을 일으킨다.
만일 구정의 마음이 다하여 얽매임에 머무르지 않고 해탈에도 머무르지 않아서 온갖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견해가 없어져 평등한 마음으로 생사에 대처한다면 그 마음은 자유로울 것이다.
마침내는 헛된 번뇌와 온계蘊界와 생사와 모든 감관과 어울리지 않고 훤칠하게 뛰어나 의지한 곳이 없으리라.
어디에도 구애됨이 없고 가고 옴에도 걸림이 없으니,
생사의 길에 왕래하되 마치 문을 여닫는 것 같으리라.
만일 갖가지 괴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으며,
명예나 의식 등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온갖 공덕이나 이익 등을 탐내지 않고 세상 법에 마음이 걸리지 않는다면 비록 친하고 사랑하고 괴롭고 즐거운 것이라도 마음에 두지 않고 거친 음식으로 목숨을 잇고 옷을 입되 추위와 더위를 막을 뿐,
멍하니 바보 같고 귀머거리같이 되어야 비로소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몫이 있느니라.
생사의 길에서 알음알이를 널리 배우거나 복과 지혜를 구하여도 진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나니라.
오히려 알음알이의 경계가 일으키는 바람에 떠내려가생사의 바다로 돌아가게 되리라.
부처는 구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난다.
진리는 구하는 것이 없는 이치이니,
구하면 잃는다.
만일 구함이 없는 것에 집착하면 도리어 구함이 있는 것과 같나니,
이 법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다.
만일 한평생 동안 마음이 목석과 같아서 5음ㆍ5욕ㆍ8풍에 흔들리지 않으면,
생사의 원인이 끊어져서 가고 옴이 자유로워 일체 유위有爲의 인과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며,
다른 날에는 도리어 속박 없는 몸과 같아서 중생을 이롭게 하되 속박 없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응대하며,
속박 없는 지혜로써 일체 속박을 풀며,
또한 병에 따라 약을 주게 되리라.”
어떤 이가 물었다.
“지금 계를 받고 몸과 마음이 청정하고 온갖 착한 법을 이미 다 갖추었다면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조금은 해탈할 수 있으나 심해탈心解脫을 얻지 못했고,
일체의 해탈도 얻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이 심해탈입니까?”
“부처도 구하지 않고 알음알이도 구하지 않아서 더럽고 깨끗한 생각이 다한 뒤에도 구함 없는 경지를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경지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지옥의 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천당의 즐거움도 즐겨하지 않으며,
일체 법에 구애되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하여 걸림이 없다 하나니,
몸과 마음 등 일체를 모두 해탈했다 하느니라.
그대들은 조그마한 계행이나 선행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항하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무루無漏의 계戒ㆍ정定ㆍ혜慧를 가졌다 하더라도 전혀 쓸모가 없으니,
노력하여 용맹정진 하라.
귀먹고 눈 어두워서 늙음의 고통이 몸에 미치기를 기다리지 말라.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마음은 두려움에 떨면 갈 곳이 없으리라.
그러한 때에 가서 행동을 정리한다면 설사 복과 지혜와 지식이 있다 하여도 전혀 구제할 수 없으리라.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고 오직 모든 경계를 반연하여 돌이킬 줄 모르고 도를 보지 못한다면 일생 동안의 악업이 모두 앞에 나타나 혹은 기쁘고 혹은 두려우며,
6도와 5온이 눈앞에 나타나면 모두가 훌륭한 집ㆍ배ㆍ수레로 그 빛이 찬란하게 보이는데,
이는 마음껏 탐욕과 애착을 따랐기에 보이는 것이 모두 좋은 경계로 변하여 중하게 여기는 바를 따라 태어나서 전혀 자유가 없게 된다.
따라서 용이 될지,
축생이 될지,
양반이 될지,
상놈이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어찌하여야 자유로워집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지금 5욕과 8풍을 대해 버리거나 취할 마음이 없고,
더럽거나 깨끗함이 모두 없어져서 마치 해와 달이 하늘에 떠서 반연하지 않고 비추는 것같이 되어,
마음이 목석과 같고 코끼리가 강을 건너는 것같이 하여 전혀 의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에 걸리지 않으리라.”
선사가 또 말했다.
“경을 읽거나 가르침을 볼 때 언어는 완곡하게 돌아 모두 자기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온갖 교법은 오직 지금 현재 감각하는 성품인 자기만을 밝힐 뿐이니,
그저 온갖 유무의 모든 경계에 끄달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도사께서도 온갖 유무의 경계를 꿰뚫었으니,
이것이 금강의 인印이고 자유와 독립의 경지이다.만일 그렇게 되지 못하면 설사 12부의 위타圍陁216)를 다 외운다 하여도 모두가 증상만增上慢을 이룰 뿐이어서,
도리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니,
이는 수행이 아니다.
경이나 어록을 보는 것이 만약 오직 세상이 착한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혹은 이치에 밝은 사람 쪽으로만 향하여 헤아리기 때문이라면 이는 옹색한 사람이다.
10지의 사람이 세상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생사의 강으로만 흘러 들어가는데,
지식으로써 어구를 찾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지식은 탐욕에 속하고,
탐욕은 병을 이루나니,
지금이라도 유무의 모든 법을 모두 여의어 3구句 밖으로 뚫고 나아가면 자연히 부처님과 차이가 없게 되리라.
이미 스스로가 부처이거니,
어찌 부처가 말을 하지 못할 것을 근심하랴.
오직 부처가 아니라서 유무 등 모든 법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서지 않았는데 복과 지혜가 있다면,
이는 마치 천한 이가 귀한 이를 부리는 것과 같나니,
차라리 진리가 먼저 선 뒤에 복과 지혜가 있어 때에 맞추어 행동하면,
흙을 잡아 금을 만들고,
바닷물을 소락蘇酪으로 바꾸고,
수미산을 뭉개어 먼지를 만들며,
한 이치를 무량한 이치로 하고,
무량한 이치를 한 이치로 하는 것만 못하리라.”
그 밖의 교화한 인연은 실록에 갖추어져 있다.
조칙으로써 시호를 대지大智 선사라 했고,
탑호는 대보승大寶勝이라 하였다.
노조魯祖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지주池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보운寶雲이니,
기개와 격조가 매우 현묘하고 높아서 무릇 학자가 뵈러 오면 벽을 향해 앉았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입이 어디에 있는가?”
“저는 입이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차나 밥을 먹는가?”
나중에 동산洞山이 그 스님을 대신하여 말했다.
“그는 시장한 일이 없는데,
무엇을 먹는다 합니까?”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들의 스승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머리 위에 보배 일산이 있는 이는 아니니라.”
“어찌하여야 합니까?”
“머리 위에 보배 일산이 없어야 하느니라.”
남전 화상이 오자 선사가 얼른 벽을 향해 앉았다.
남전이 손으로 선사의 등을 치니,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보원普願입니다.”
“요즘 어떠한가?”
“그저 그렇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 그리 일이 많은가?”
남전이 어느 날,
채소밭을 돌아보다가 돌을 던져 원두圓頭를 맞추었다.
원두가 고개를 돌려보니 선사인지라,
곧 위의를 갖추어 절을 하고는 말했다.
“화상께서 지금 하신 일은 저를 깨우쳐 주신 것이 아니시겠습니까?”
남전이 얼른 한 발을 들고 말했다.
“깨우치는 것은 그만두고,
그럴 때는 어찌하는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으니,
남전이 그 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시켰다.
“그대는 노조에게로 가라.
그러면 무슨 소식이 있을 것이다.”
그 스님은 남전을 하직하고 바로 노조에게 갔다.
이때 선사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벽을 향해 앉으니,
그 스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도로 남전에게로 돌아갔다.
이에 남전이 물었다.
“노조에게 갔었던가?”
“갔었습니다.”
“어찌 그리 빨리 돌아왔는가?”
“노조 화상께서 저를 보자마자 바로 벽을 향해 앉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내 돌아왔습니다.”
이에 남전이 말했다.
“왕王 노승老僧이 처음세상에 나오실 때,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기 이전의 경지에서 알아들어야 한다’ 하였다.
그리해도 하나의 반도 채 얻지 못하는데,
그처럼 해서야 나귀 해가 되어도 하나의 반이나 얻을 수 있겠는가?”
안국安國 화상이 이 일을 들어 운거雲居에게 물었다.
“노조에게 어떠한 허물이 있었기에 남전의 꾸지람을 들었습니까?”
운거가 꾸짖자,
안국이 소리를 높여 곡을 하였다.
운거가 말했다.
“도리어 칭찬이 되었느니라.”
안국이 이로부터 마음이 트였다.
보복保福이 이 일을 들어 장경長慶에게 물었다.
“노조에게 어떠한 훌륭함이 있었기에 남전의 그러한 말을 들었습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자기가 물러서고 남에게 양보하는 사람은 만에 하나도 얻기 어렵다.”
뒷날 장경이 이 일을 들어 말했다.
“그가 벽을 향해 앉은 것에서 생각할 것이 있다.
갑자기 당당하게 앉는다면 그대들은 어디를 향하여 구하겠는가?”
어떤 스님이 용천龍泉에게 물었다.
“이산怡山이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입니까?”
용천이 말했다.
“귀머거리에다 벙어리까지 겹쳤느니라.”
고성高城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는 법장法藏이니,
실록을 보지 못해 그의 생애를 알 수 없으나 노래 한 수가 세상에 퍼지고 있다.
옛사람은 금보다 의리를 소중히 여겼나니
곡조는 고결하나 화답하는 이는 적어 알아주는 이 드물다.
요즘의 지사志士들도 역시 그러하여서
말하고 침묵함에 자취를 찾기 힘들다.
애달프다.
세상의 기로에서 헤매는 자여,
종일토록 구차하게 어지러이 마음을 쓴다.
평탄한 길의 전단栴檀을 가지려 하지 않고
험난한 산에 올라 춘림椿林을 찾는구나.
가난한 아들이 아비를 버리고 멀리 떠나니
본 고향과는 소식이 아주 끊어졌도다.
가난한 아씨의 집안에 값진 보물 있건만
도리어 저울을 들고 남의 집 금을 사려 하네.
마음은 형상 없으나 작용은 도리어 그윽하니
무상한 경계가 침입하지 못한다.
운용할 적에는 높고 낮음을 따르나
신령한 광채는 본래가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다.
형상 없고 마음 없음이 운용을 빛나게 할 수 있나니
소리와 빛에 응하여 방향 따라 비춘다.
비록 사방에 있으나 사방에 있는 것이 아니니
높낮음이 자유로워 모든 것에 오묘히 작용한다.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데
신령한 광채의 작용이 어디서 일어나는가?
지금 일어나는 것이 곧 마음이거니
마음 씀이 밝을 때,
그대 아니고 무엇이랴.
사방에 머물지 않아 찾을 수 없나니
운용하는 데 자취도 없고 흔적도 없다.
지금 분명하게 찾는 사람 안다면
종일토록 다른 곳에서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음 부지런히 해서 배우고 총림을 가까이하여
병든 눈으로 화침花針을 잘못 알지 말라.
설교의 근본은 무상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니
널리 읽기만 하여서는 원래의 마음을 모른다.
마음을 알아내어 경계를 알아차리고
심식心識을 깨달으면 선禪의 강이 고요하다.
그저 경계만 깨달을 수 있다면 마음을 알 수 있나니
일체 법이 모두 건달바성217)의 그림자 같다.
권하나니,
더 배울지언정 스승이 되지는 말지니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려 하지 말라.
평탄한 들판은 금강으로 뚫을 필요 없나니
칼날 가운데서 잘못 송곳을 쓰는도다.
예전부터 너와 나를 가리지 않나니
산승의 곡조에 화답하는 이 드물다.
공空과 무상無相의 이치를 알면 그것이 법사法師이니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 필요 없어라.
그 안에서 깨닫기만 하면 대단히 장한 일이니
큰 사람은 그윽하여 불가사의하여라.
자기 품속의 참 보물은 망가뜨리고
종일토록 남에게서 누더기를 구걸하네.
경계를 취하면 망정이 생기나니
마치 물 위에 물결 하나 이는 것 같다.
경계를 마주해도 망정과 계교가 없기만 하면
수면이 본래 평평함과 같으리라.
큰 몸에 응하고 작은 몸에 응하나니
운용함이 그저 여의주와 같도다.
털을 쓴 이,
뿔을 인 이 형상은 다르나
응하는 본마음은 원래 다르지가 않다.
눈에 응할 때에 천 개의 해 같으니
만상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범부는 다만 보지 못할 뿐이니
그 어찌 스스로 가벼이 여겨 뒤로 물러서리오.
귀에 응할 때는 깊은 골짜기 같으니
크고 작은 음성이 부족함이 없다.
시방의 종과 북이 동시에 울려도
신령한 광채는 운운運運하여 항상 끊임없도다.
뜻에 응할 때는 분별은 끊기고
삼라만상 비추어서 길이길이 끊임없다.
산하와 석벽을 꿰뚫고 지나니
비칠 때에는 언제나 적멸해야 하느니라.
경계는 허망한 것,
겁내지 말지니
종일토록 비추어도 상대할 형체 없다.
설사 허깨비 같은 허망한 몸 지탱한다 하여도
운용함에는 혀도 몸도 뜻도 없어라.
선사는 또 『대승경음의大乘經音義』를 편집하였는데,
해장海藏218)에 퍼지고 있다.
장경章敬 화상
마조의 법을 이었고,
장안長安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회휘懷暉요,
성은 사謝씨이며,
천주泉州의 동안현同安縣 사람이다.
어떤 스님이 석장을 들고 와서 선사를 세 바퀴 돈 뒤에 석장을 짚고 섰으니,
선사가 말했다.
“옳다,
옳다.”
그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이에 장경長慶이 대신 말했다.
“화상의 불법심佛法心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스님이 다시 남전에게로 가서 선상을 세 바퀴 돈 뒤에 석장을 짚고 섰으니,
남전이 말했다.
“틀렸다,
틀렸다.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은 모두가 망가지게 될 것이다.”
스님이 물었다.
“장경 화상께서는 저에게 ‘옳다’ 하셨는데,
화상께서는 어찌하여 ‘틀렸다’ 하십니까?”
남전이 대답했다.
“장경은 옳지만,
그대는 틀렸다.”
장경이 그 스님을 대신하여 말했다.
“화상께서는 이 무슨 마음씨이십니까?”
어떤 이가 물었다.
“마음의 법이 멸할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영인郢人219)이 별 재주도 없으면서 공연히 도끼를 휘두르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동산洞山에게 이야기하니,
동산이 말했다.
“비록 그러나 작가作家를 가까이해야 하느니라.”
“그 뜻이 무엇입니까?”
동산이 말했다.
“모름지기 도끼를 휘둘러야 하느니라.”
“어디를 향해 휘둘러야 합니까?”
“이르지 못하는 곳을 향해 휘둘러야 하느니라.”
선사가 흥선사興善寺의 대철大徹 선사에게 가니,
대철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천태산天台山에서 왔습니다.”
“천태산의 높이가 얼마나 되던가?”
선사가 대답했다.
“스스로 보십시오.”
운거雲居가 나서서 다시 물었다.
“보는 힘을 다하여도 보이지 않을 때에는 또 어찌합니까?”
그리고는 스스로가 대신하여 말했다.
“세간과 다릅니다.”
선사가 대적大寂220)의 법을 깨친 뒤에 승속이 모두 법회에 모여들었는데,
이로 인해 그의 명성이 황도까지 퍼져서 황제에게 전해졌다.
원화元和 초에 왕의 조칙을 받들어서 배알하러 가니,
그의 자리를 승록僧錄 수좌 밑에 배치하였다.
이에 왕이 승수僧首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승수가 대답했다.
“스님은 여름을 지낸 법랍法臘에 의합니다.”
선사禪師는 이때 60세이므로 조칙에 의하여 좌수座首로 옮겨졌다.선사가 황제에게 선문禪門의 법교法敎를 이야기하니,
황제의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이 만연했고,
존경하고 은근함이 남달랐다.
왕명으로 장경사章敬寺에서 살게 된 뒤로 서울을 크게 교화하여 부처님의 빛[佛日]을 높이 밝히니,
장안의 이름난 귀인들과 진리를 배우려는 무리가 앞을 다투어 구름같이 모였는데,
선사가 우렛소리를 크게 떨치니 뭇 영재英才들이 고개를 숙여 굴복하였고,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맞는 이는 뜻을 얻고 말을 잊었다.
원화元和 13년 무술戊戌 12월 21일에 천화遷化하니,
칙명으로 시호를 대각大覺 선사라 하고,
탑호를 대보광大寶光이라 하였다.
장사長沙의 가도賈島가 비명을 썼는데,
다음과 같다.
본래의 성은 사謝씨인데
석가의 제자라 일컬었고
이름은 회휘懷暉이나
자字는 모를레라.
속가는 천주泉州 땅
안집리安集里이고
관직은 없었으나
부처의 지위에 있었다.
병신丙申에 시작하여
을미乙未에 마치셨다.
--------
204)
60권본卷本 『화엄경華嚴經』을 말한다.
205)
사구분별四句分別ㆍ사구문四句門이라 하여 변증법辯證法의 한 형식이다.
4구는 정립定立ㆍ반정립反定立ㆍ긍정종합肯定綜合ㆍ부정종합否定綜合이니,
이제 유有와 공空으로 만유 제법을 판정할 때에 제1구의 유有는 정립,
제2구의 공空은 반정립,
제3구의 역유역무亦有亦無는 긍정종합,
제4구의 비유비공非有非空은 부정종합이며,
처음 2구를 양단兩單,
뒤의 2구를 구시구비俱是俱非 또는 쌍조쌍비雙照雙非라 한다.
백비는 부정否定을 거듭하는 것으로서,
몇 번이고 부정을 거듭할지라도,
참으로 사물의 진상을 알기 어려울 때에 중생들로 하여금 유무有無의 극단적 견해에 걸림이 없게 한다.
206)
40권본 『화엄경』을 말한다.
207)
『불설불명경佛說佛名經』(보리류지 역) 제7권에,
월면불月面佛은 그 수명이 일일일야一日一夜이고,
일면불日面佛은 그 수명이 1천8백 세가 된다는 말이 나온다.
208)
『화엄경』의 42반야바라밀문般若波羅蜜門을 말한다.
209)
비견할 것이 없을 만큼 뛰어남을 뜻한다.
따라서 부처님에 대한 존칭尊稱으로 쓰인다.
210)
신身ㆍ구口ㆍ의意 3업業을 가리킨다.
211)
업業ㆍ사事ㆍ소작所作ㆍ작법作法 등으로 한역한다.
널리는 교단 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의식이나 작법을 말하며,
여기서는 스님이 되기 위해 계를 받는 것을 말한다.
계를 받을 때는 계사戒師가 세 번 다짐하는데,
그것을 ‘3갈마羯磨’라고 한다.
212)
도를 수행하여 얻는 네 가지 성과成果,
또는 소승의 수행에서 얻어지는 네 가지 성과를 말한다.
213)
가장 요긴하고 중요한 것을 말한다.
214)
눈ㆍ귀ㆍ코ㆍ혀ㆍ몸의 5관官에 의하여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다섯 가지에 대한 감관적感官的 욕망을 말한다.
215)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행幸과 불행不幸의 상태나 경향.
이익[利]ㆍ손실[衰]ㆍ욕됨[毁]ㆍ명예[譽]ㆍ칭찬[稱]ㆍ비방[譏]ㆍ괴로움[苦]ㆍ즐거움[樂]의 여덟 가지.
8법法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물건을 움직이는 바람에 비유한 것이다.
216)
고대 인도의 성전聖典인 베다를 말한다.
217)
실체實體가 없이 공중에 나타나는 성을 뜻한다.
218)
부처님의 설법.
부처님의 설법은 바다와 같이 넓고 깊다는 뜻.
특히 『화엄경』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으니,
『화엄경』은 용수龍樹가 용궁에서 가져왔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
219)
영郢 지방의 사람으로 벽을 바르는 명인名人.
일설에는 중국 고사故事에 나오는 목수木手로,
그는 남의 코끝에 진흙을 발라 놓고 도끼를 멀리서 내리쳐서 진흙을 떼어내되 코를 상하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220)
대적정大寂定.
커다란 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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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1503-014♧
◎◎[개별논의] ♥ ❋본문
● 조사들의 넌센스 대화법과 생사현실
★1★
◆vgek4306
◈Lab value 불기2565/07/03 |
♡진도 청용사(청용선원)
Charles Trenet - A La Brocante
♥단상♥도반 만들기 숙왕화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피 주머니를 떼내게 되었다고 한다. 피 주머니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지만, 말로만 들어도 조금 끔직하다. 아마 수술후 처치 과정인 듯 하다. 세탁기가 오래 되었다. 돌아갈 때 소리가 심하다. 균형이 잡히지 않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버리려던 욕실 슬리퍼로 다시 균형을 맞혔다. 그런데 세탁기 균형을 맞춰주는 작업과정에서 숙왕화님이 행한 만행을 보게 되었다. 여기저기에 독극물 처리를 해두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사체를 보게 되었다. 아무리 수행단계가 높은 수행자라고 해도 결국 업을 행하면 과보를 받게 됨을 보게 된다. 연구실에서만은 그런 만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런지 연구실 의자 밑에 한 바퀴벌레가 1인 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았다. 평소 바퀴벌레를 보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가끔 보게 되는 날에는 나름 연유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본인 의자 바로 밑에 바퀴벌레가 뒤짚어져 바둥거리고 있다. 그런데 본인이 의사면허가 없다. 그리고 또한 나 역시 의자 바로 밑에 바퀴벌레를 두고 연구를 하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비로 쓸어 담아 화분 옆으로 옮겨 주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이것도 비인도적인 처사로 볼 여지도 있다. 그래도 이 정도에 그쳐야 한다. 이것을 넘으면 생사를 이미 벗어난 상태의 수행자 외는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 그렇게 행하면 그로 인해 결국 생사고통에 묶이는 상태에 처하게끔 된다. 그리고 생사현실 안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수행이다. 삶이 저물어가고 있다. 요즘은 조금만 연구하게 되면 몸에 피로가 심하게 온다. 그래서 조금 연구하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다음 생 연구사업을 기획하는데 보내게 된다. 다음 생은 영어 문화권에서 연구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갖는다. 참회가 수행에 있어서 중요하다. 참회가 있으면 무량겁에 걸쳐 같은 손해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무량겁에 걸쳐 무량한 손해를 제거해준다. 그래서 수행자의 보물이고 자산이 된다. 참괴가 수행자 자산 7 재나 10 무진장의 중요 항목이 되는 사정이다. 다음 생에는 행복과 이상사회 현상의 진리란 주제로 연구하는 가운데 처음부터 불교를 잡고 연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생에서는 이런 연구를 종합적으로 할만한 어떤 학과나 분야를 잘 찾지 못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phelp 란 약자로 대표되는 분야를 함께 공부하는 방안으로 접근했다. 철학, 역사, 경제학, 법률, 정치 그런 분야다. 그런 분야가 위 주제에 가깝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보니, 불교가 이 모든 것을 다 망라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 생에는 일찍 불교 연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생에서는 거의 삶의 중반에서야 불교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인과관계 문제를 살피려다 불교 분야를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늦게 연구하게 된 만큼 손해였다고 볼 수 있다. 연구가 잘 마무리되면, 처음 영어권 그 다음 스페인문화권 그 다음 불어권 그 다음 독일어권 이런 식으로 외국에서 불교 연구를 하고자 한다. 숙왕화님이 앞으로도 3 생을 같은 형태로 도와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계획 중이다. 도반은 결국 요철관계가 바람직하다. 제각각 자신의 서원을 성취하고자 수행하지만, 그래도 서로 상보적인 관계가 바람직하다. 신해행증이 있어야 사찰출입이 자유롭게 된다. 그런데 숙왕화님은 신해행증에서 행 부분이 뛰어나다. 그래서 요철관계가 조화롭게 이뤄진다고 보게 된다. 이번 생에 연구실에서 오로지 연구만 하면서도 큰 불편없이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숙왕화님의 정신적 후원과 격려 때문이다. 현재 오랜 기간 숙왕화님이 병원 생활을 하고 있기에 다양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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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선천제(斷善闡提)라고도 함. 천제는 범어 일천제(一闡提)의 준말. 성불할 성품이 없는 이. 대승을 비방하여 온갖 선근을 끊어버린 사람을 가리킴.
답 후보
● 방법천제(謗法闡提)
방편정열반(方便淨涅槃)
방편화토(方便化土)
백비(百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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意業清淨不可說, 信解清淨不可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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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업청정불가설, 신해청정불가설,
몸의 업[身業]이 청정함을 말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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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법 청정함을 말할 수 없고
믿는 이해 청정함을 말할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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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수_암기방안
55 이마 forehead, 額上 【액상】 이마의 위
56 눈거풀 瞼 【검】 eye lid
28 새끼 ( LITTELE finger)
76 *무지 마름
9955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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