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
K0079
T0278
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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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0079-014♧
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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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104_104908_nik_Ar28 구례 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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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104_133934_nik_ct18 구례 화엄사 연기암
○ 2019_1106_155759_can_ct8 화순 계당산 쌍봉사
○ 2019_1106_120238_can_Ar28 화순 영구산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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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方廣佛華嚴經卷第十四
K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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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제14권
동진 천축삼장 불타발타라 한역
이운허 번역
20.도솔천궁보살운집찬불품(兜率天宮菩薩雲集讚佛品)
그때 부처님 신력으로 시방으로 각각 만 부처 세계 티끌 수 세계를 지나,
그 밖에 여러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은 견고보(堅固寶)ㆍ견고락(堅固樂)ㆍ견고보왕(堅固寶王)ㆍ견고금(堅固金)ㆍ견고마니(堅固摩尼)ㆍ견고금강(堅固金剛)ㆍ견고연화(堅固蓮華)ㆍ견고청련화(堅固靑蓮華)ㆍ견고전단(堅固栴檀)ㆍ견고향(堅固香)이었다.
그리고 그 부처님들의 명호는 수무진당(壽無盡幢)ㆍ풍당(風幢)ㆍ청백당(淸白幢)ㆍ위의당(威儀幢)ㆍ명상당(明相幢)ㆍ상당(常幢)ㆍ상당(上幢)ㆍ자재당(自在幢)ㆍ범당(梵幢)ㆍ영태당(寧泰幢)이었다.
또 그 보살들 이름은 모두 같았는데,
그 이름은 금강당(金剛幢)ㆍ견고당(堅固幢)ㆍ용맹당(勇猛幢)ㆍ야광당(夜光幢)ㆍ지당(智幢)ㆍ보당(寶幢)ㆍ정진당(精進幢)ㆍ이구당(離垢幢)ㆍ진실당(眞實幢)ㆍ법당(法幢)이었다.
그 보살들은 모두 그 나라 부처님 처소에서 범행을 깨끗이 닦았었는데,
그들은 각기 만 부처 세계 티끌 수 같은 보살 권속들을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했다.
그러자 부처님 신력으로 그들이 온 방위를 따라 여의보장 사자좌를 변화로 만들어 시방에 가득하고,
부처님은 가부하고 거기 앉으셨는데,
희고 깨끗한 그물로 그 몸을 덮으셨다.
또 아승기 천억 나유타 광명을 놓으시니,
그 번뇌를 떠난 광명과 한량없는 광명은 시방을 두루 비추었다.
정직한 마음으로 삼보를 거두어 잡고 온갖 악을 멀리 떠났으니,
그것은 보살의 큰 서원으로 일어난 것으로서,
중생들은 아무리 보아도 만족할 줄 모르며,
또 보는 이는 헛되지 않아 모두 조복 되었다.
또 모든 부처님의 자재한 깨끗한 법을 나타내었는데,
그것은 일체 중생들의 귀의(歸依)하는 곳이 되어 그들을 교화해 보살의 큰 서원을 내게 하였다.
그 보살들은 모두 한량없는 법문을 성취하였으니,
이른바 시방의 일체 부처 세계에 두루 노닐되 아무 장애가 없는 신족통의 법문과 집착이 없는 깨끗한 법신(法身)을 보는 법문,
지혜의 몸에 머물러 무수히 변화한 그 몸으로 무량한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는 법문,
무량무변하여 불가사의한 여래의 자재함에 들어가는 법문,
무량무변한 일체지(一切智)의 법문,
한량없는 광명으로 모든 법을 두루 비추어 두려움이 없는 방편의 법문,
미래 세상이 다하도록 모든 공덕 창고를 분별해 연설하는 다함없는 변재의 법문,
일체 다라니 지혜의 광명으로 두루 비추는 법문,
청정한 지혜의 눈을 성취해 법계를 두루 관찰하는 법문,
지혜의 경계가 무량무변하고 속박 없고 집착 없어 끝내는 허공과 같은 법문 등이었다.
이 세계의 도솔천궁에 보살이 운집한 것처럼,
일체 세계 사천하 도솔천궁에 운집한 보살들의 온 나라와 부처님 명호도 그와 같았다.
그때 부처님이 두 무릎에서 백천억 나유타 광명을 놓아 시방의 허공계ㆍ법계 등 일체 세계를 두루 비추시니,
모든 사천하 도솔천궁의 여래의 자재한 신력이 다 나타났다.
그 여래의 자재한 신력을 볼 수 있는 보살은 다 노사나불 여래ㆍ응공ㆍ등정각 처소에서 보살도를 행하면서 한량없는 법문을 닦아 익힐 때의 선지식들이었다.
이 보살들은 항상 부처님의 매우 깊은 해탈의 자재한 신력을 좋아하여 무너지지 않는 법계의 몸을 얻고 걸림없는 삼매를 얻어,
불가사의한 부처님을 보아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었다.
걸림없는 마음은 법계에 가득하고 번뇌를 떠난 보배 마음은 언제나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부처님이 가지신 한량없는 신력을 얻어,
결정코 끝내는 저 언덕에 이르렀고 청정한 바른 생각으로 정각을 빨리 이룬 것이다.
모든 여래의 마음의 근원을 얻고 깊은 지혜에 들어 자재를 얻었으며,
매우 깊은 지혜에서 저 언덕에 이르렀다.
청정한 법신은 부처님 자리에 머물면서 일체지를 얻어 여래와 평등하였다.
그들은 다 지혜의 보배로부터 일어났고,
부처님의 묘한 세계에 태어나 청정한 지혜의 법문을 열었다.
금강 같은 큰 지혜의 저 언덕에 이르고 금강 같은 방편 삼매를 성취해,
모든 우치의 어둠을 떠나고 무량무변 무수한 중생을 교화하여 성숙하게 하며,
부처님의 일체 신통을 얻어 끝내 저 언덕에 이르렀다.
일체의 수(數)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일체의 수를 잘 배우고 일체 수에 대한 지혜를 얻어 진실한 법에 잘 머무른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무량무변하여 셀 수도 없고 끝도 없으며,
말할 수도 없는 온갖 공덕 창고를 성취한 것이다.
그때 금강당보살이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여래는 세상에 나지도 않고
또한 열반에 드는 일도 없지만
전생의 그 큰 원력으로 말미암아
자재한 법을 나타내 보이시네.
이 법은 진실로 헤아리기 어려워
그것은 마음의 경계 아니네.
저 언덕에 이르는 지혜 얻어야
비로소 부처 경계 볼 수 있으리.
물질로 된 육신이 여래 아니요
그 음성도 또한 부처 아니네.
그렇다고 육신과 음성을 떠나
부처님의 자재력 있는 것도 아니네.
깊고도 깊은 부처님의 경계는
조그만 지혜로는 알 수 없나니
전생의 업의 지혜 성취하여야
비로소 부처 경계 알 수 있으니.
모든 부처 오지만 오는 곳 없고
가더라도 그 또한 가는 곳 없네
그러나 청정하고 미묘한 법신
자재한 신통력을 잘 나타내네.
여래는 한량없는 그 세계에서
그 몸을 언제나 나타내 보여
미묘한 법을 널리 말씀하지만
그 마음엔 아무런 집착이 없네.
한량이 없고 그지없는 그 지혜
어떠한 법에도 아무 장애 없기에
저 깊은 법계 어디에도 들어가
자재한 힘을 나타내 보이시네.
중생들과 또 모든 법
아무런 장애 없이 환히 알고
변화하는 그 몸은 한량이 없어
그 어떤 세계에도 다 나타나네.
일체를 아는 그 지혜를 구하여
스스로 그 정각을 이루려거든
부디 먼저 그 마음 깨끗이 하여
갖가지 보살행을 닦아야 하네.
그리고 또 여래의 한량이 없는
자재한 신통 힘을 보려 하거든
먼저 가지가지의 의혹을 끊고
위없는 선지식을 항상 친근히 하라.
그때 견고당보살이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이 세상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
그 경계 매우 깊어 말할 수 없어
일체의 말의 길이 끊어졌나니
청정하여 마치 저 허공과 같네.
사람 가운데 사자(師子)를 보매
한량없는 자재한 힘 지녔나니
모든 부처님들 허망 없는데
이 세간 사람들 망상을 내네.
길잡이 부처님의 연설하시는
그 법은 매우 깊고 또 미묘하며
그리고 또 갖가지 인연을 따라
여래의 청정한 몸을 나타내시네.
이런 갖가지 대승의 지혜는
모든 부처님네의 경계이거니
만일 그 지혜를 구하려 하거든
언제나 부처님을 친해야 하네.
모든 길잡이 부처님에게
청정한 마음으로 공양드리되
그 마음 언제나 싫증내지 않으면
끝내는 부처님의 도를 이루리.
다함이 없는 공덕 창고로
언제나 보리심을 자라게 하여
갖가지의 의혹을 멀리 떠나면
부처님 뵈옵기에 싫증 없으리.
이 세상 온갖 법을 모두 깨닫고
법에서 화생(化生)된 부처님 아들
그는 모든 부처님의 그 자재한
갖가지 신통력을 모두 알리라.
욕심은 모든 법의 근본이라고
지혜의 왕 부처님은 말씀했나니
부디 청정한 욕심 일으켜
위없는 도를 힘써 구하라.
만일 모든 부처님을 잘 공경하고
또 여래 은혜 갚을 줄 알면
그 사람은 언제나 저 길잡이
부처님 곁에서 떠나지 않으리.
만일 이렇게 부처님과
그 법을 보고 또 들으면
그는 청정한 서원 이루어
위없는 도를 끝내 얻으리.
그때 용맹당보살도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눈이 있고 또 햇빛 있으면
미세한 물건도 보는 것처럼
가장 훌륭한 신력 있기에
마음이 깨끗하면 부처님 보리.
용맹하고 부지런한 방편으로써
바다 밑바닥을 보는 것처럼
지혜의 힘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 바다를 다 볼 수 있으리.
마치 비옥한 밭에 씨를 뿌리면
그것은 무성하게 자라는 것처럼
깨끗한 마음 밭도 그와 같아서
부처의 법을 내고 자라게 하네.
가난한 사람이 보물 창고를 얻어
주리고 떠는 고통 면하는 것처럼
보살도 부처님의 그 법을 얻어
번뇌를 떠나 마음이 깨끗하네.
비유하면 저 가타(伽陀)라는 약이
일체의 독한 기운 푸는 것처럼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번뇌의 독을 모두 없애네.
선지식을 만나는 인연으로써
부처님 믿는 마음 나서 자라고
선지식을 만나는 인연으로써
부처님 모든 법 다 듣게 되네.
한량없고 셀 수도 없는 겁 동안
위없는 보시를 항상 행해도
단 한 사람이나마 잘 교화하면
그 공덕은 저것보다 훨씬 많으리.
여래의 장엄한 상호의 공덕
그것도 헤아리기 어렵지만
부처님의 갖가지 그 공덕 창고
그것은 아무도 측량 못하네.
모두를 바로 깨달으신 여래
앉으신 그 한 자리 떠나지 않고
일체의 모든 시방세계를
어디에도 두루 노니시네.
비유하면 허공의 성품이
남도 없고 멸함도 없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 법도 이와 같아
남도 없고 멸함도 없다네.
그때 야광당보살이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시방 모든 세계의
일체 중생 무리들
천상 인간에 가장 높으신
묘하고 청정한 법신 보나니.
비유하면 이 한 마음 힘이
갖가지 마음을 내는 것처럼
여래의 저 한 법신도
갖가지 몸을 나타내시네.
저 보리에는 두 법이 없고
그것은 또 제 성품 없지만
둘이 없는 저 깨끗한 법신
그것은 온갖 장엄 다 나타내네.
끝내는 마치 그 허공과 같고
또 마치 저 허깨비와 같지만
저 공덕의 다함이 없음
그것은 오직 부처님 경계네.
저 삼세의 모든 부처님
그 법신은 다 청정하지만
교화해야 할 중생 있기에
묘한 색신을 다 나타내시네.
중생이라는 생각도 내지 않고
나는 이런 형상이라 생각도 없이
모든 희망을 다 버렸으나
저절로 모든 중생 다 응해지네.
모든 법의 성품을 깨뜨리거나
또 법계에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갖가지의 형상을 나타내심은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네.
법신이란 변화하는 것도 아니요
또 변화하지 않는 것도 아니네.
모든 법에는 변화가 없지마는
변화가 있는 듯이 나타내 보이나니.
바른 깨달음 헤아릴 수가 없어
끝내는 저 법계와 평등하네.
그것은 깊고 넓어 가와 밑이 없기에
어떠한 말의 길도 다 끊어졌네.
온갖 갈래로 나아가는 길
여래는 그 참 이치 알아
모든 세계를 노니시면서
거기에 조금도 장애가 없네.
그때 지당보살도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갖가지 깊은 지혜에 들어
어디에도 아무 장애 없으면
그 마음은 한계가 없어
보살의 행을 닦아 익히리.
시방세계의 어디에서나
언제나 모든 부처 뵈옵지마는
그 부처는 어디에도 있는 데 없고
또 어떤 법에도 머물지 않네.
그 낱낱의 모든 여래
자재한 힘은 한량없나니
불가사의한 겁 동안에도
그것은 다 말할 수 없네.
삼세의 모든 중생 무리들
그 수는 다 알 수 있지만
길잡이님의 공덕 창고는
그 수량을 다 알 수 없네.
변화로 나타내는 갖가지의 몸
그것은 다시 없이 불가사의해
시방의 어디서도 다 보지마는
그 몸에는 달라진 것 조금도 없네.
비유하면 깨끗한 저 보름달이
어떤 물에도 두루 비치어
그 영상은 비록 한량없으나
본 달은 둘이 아닌 것처럼.
그와 같이 걸림없는 지혜로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성취해
일체 세계에 나타나지만
부처님의 그 몸에는 둘이 없었네.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며
또 한량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교화해야 할 중생 있기에
한량없는 몸 다 나타내네.
부처님 몸은 과거 아니요
그리고 또 미래도 아니지만
한 찰나 사이에 세상에 나고
성불하고 반연하심 다 보이시네.
허깨비로 된 모든 형상이
난 것도 멸한 것도 아닌 것처럼
부처님 몸도 그와 같아서
고요해 아무 생멸이 없네.
그때 보당보살도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여래의 몸은 한량없지만
중생들은 한량이 있다고 보네.
그러므로 그들을 교화하려고
길잡이는 그 몸을 나타내시네.
부처님 몸은 있는데 없지만
시방세계에 가득하나니
허공이 그 한계 없는 것처럼
부처님 몸은 헤아리기가 어렵네.
거기는 마음의 분별이 없고
일어나는 마음의 생각도 없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 경계
거기에는 끝내 생멸이 없네.
비유하면 저 눈 없는 사람
안팎의 아무 빛도 보지 못하듯
부처님이 세상에 안 나셨더라면
그 어떤 법도 못 보았으리.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셨나니
중생들은 나오심이 있다 보지만
실로는 세상에 나오심 없네.
부처 세계도 부처 아니요
낮이나 밤도 부처 아니며
해도 달도 또 한 찰나
그런 것 모두 부처 아니네.
부처의 해가 세간에 나왔다고
중생들 모두 말하지마는
여래가 스스로 깨달은 이치
그것은 깨끗한 해도 아니네.
모두 허망해 아무것도 없는 것
그것은 말의 길이 끊긴 것처럼
삼세의 저 모든 여래
세상에 나오심도 또한 그러네.
비유하면 밝고 깨끗한 해는
어두운 밤과 함께 있지 않지만
해와 밤의 모양 말하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도 또한 그러네.
삼세의 저 일체의 겁이
여래와 함께 있지 않지만
삼세의 부처라 다 말하나니
도사의 법이 그러하니라.
그때 정진당보살도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모든 길잡이 부처님은
그 몸도 이치도 다 같지마는
시방세계의 중생들 따라
알맞게 각기 다르게 나타내네.
거룩한 어른 부처님 보면
그 경계는 깊고도 또 미묘해
모든 법계에 가득히 차되
어디에도 빈틈이 조금도 없네.
모든 여래의 깨끗한 법신
그것은 몸 안에 있지도 않고
모든 여래의 깨끗한 법신
그것은 몸 밖에 있지도 않네.
저 중생들의 행하는 일과
갖가지의 그 업은 한량없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부처 볼 때는
갖가지의 그 몸이 다 같지 않네.
여래의 미묘한 법신
아무도 그것을 셀 수 없으며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려웁나니
오직 부처님만이 아는 경계네.
나[我]라는 것이 경계가 아니어서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부처님의 법신도 그와 같아서
아무도 그것을 측량 못하네.
세계는 헤아리기 어렵지마는
깨끗한 그 장엄을 보는 것처럼
부처님 몸도 그와 같아서
묘한 그 모습 어디고 나타나네.
비유하면 저 일체의 법은
모두 다 인연이 모여서 생기나니
그와 같이 인연이 모였기에
모든 여래 다 볼 수 있네.
또 비유하면 저 여의주가
중생들 마음을 만족시키듯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키네.
한량이 없는 모든 세계에
도사님이 세상에 나오셨나니
그것은 본래의 원력으로서
저 시방세계에 두루 응하네.
그때 이구당보살도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부처님의 원만한 지혜의 광명
그것은 이 세간을 깨끗이 하고
세간을 깨끗하게 한 뒤에는
그들을 모두 불법에 들게 하네.
가령 어떤 사람이 중생 수 같은
부처님을 모두 다 보려 할 때는
여래는 그들에게 다 응하지만
실로 어디에서고 온 곳이 없네.
오로지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한량없는 마음을 내면
그가 보는 모든 여래의 수는
한량이 없는 그 마음과 같으리.
깨끗하고 흰 법을 모두 갖추어
그 이름이 시방에 가득히 차면
그는 일체의 지혜에 대해
그 마음 안정되어 흔들리지 않으리.
길잡이 부처님은 중생을 위해
근기를 따라 설법하시고
나타나야 할 그곳을 따라
가장 뛰어난 몸 두루 나타내시네.
부처님은 그 몸을 내 것이라 생각 않고
세계도 또한 그렇다 생각하며
마음도 내 것이 아니라 말하면서
나가 없음 깨달아 보리 이뤘네.
일체 사람 가운데의 사자로
자재한 신통 힘은 한량없나니
생각과 같은 몸을 나타내 보여
갖가지의 상호로 장엄하셨네.
세간이 바로 부처님의 몸이요
그 몸이 바로 부처님이네.
그 몸의 진실한 성품 아나니
그것이 부처님의 걸림없는 지혜이네.
모든 것을 다 알고 보는 이
일체의 법을 환히 비추나니
부처님 법과 또 보리를
아무리 구해도 얻을 수 없네.
도사님은 오거나 가는 일 없고
또한 한 곳에 머무는 일도 없어
온갖 뒤바뀐 생각 여의었나니
그것이 청정한 등정각이네.
그때 진실당보살도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시방 일체의 모든 세계에
부처님은 언제나 노니시되
한 세계도 떠나지 않고
모든 국토에 다 나타나네.
여래의 자재한 신통의 힘은
중생 따라 모든 몸 나타내나니
도를 얻고 또 법 바퀴 굴리시고
그리고 끝내는 열반에 드네.
누가 부처님을 헤아리는가
누가 부처님 헤아리지 못하는가
누가 여래를 모두 보는가
누가 평등하고 바르게 깨닫는가.
모든 법이란 모두 진여(眞如)요
모든 부처 경계도 또한 그러네.
그러므로 단 한 가지 법도
진여 속에서 생멸하는 것 없네.
중생들은 모두 허망하기 때문에
부처라 세계라 분별하지만
진실한 법을 아는 사람에게는
부처도 없거니와 세계도 없네.
중생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들 앞에 두루 나타나지만
부처님이 나타내는 그 몸이란
끝내는 하나도 얻을 수 없네.
일체의 업장을 다 멀리 떠나
걸림없이 편안히 머무르면서
모든 어려움 없애 버리면
일처 불법을 모두 갖추리.
일체 모든 여래의
신통의 그 힘은 자재하지만
삼세 가운데 두루 찾아도
어디서고 그것을 얻을 수 없네.
이와 같이 마음과 의식을 알고
일체의 법을 다 이해하면
그는 모든 것 다 알고 보아
등정각 부처님을 빨리 이루리.
여래의 자재한 힘이라 하나
그것은 다만 말로만 있을 뿐
그러므로 부처님과 그 자재는
말의 길이 아주 끊어져 있네.
그때 법당보살도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차라리 한량없는 오랜 겁 동안
모든 고통 갖추 갖추 받을지언정
마침내 여래를 멀리 여의어
자재한 그 힘 보지 않을 수 없다.
한량없는 생사 속을 헤매면서
일찍이 보리심을 못 냈더라도
여래를 보거나 그 이름을 들으면
부처님의 보리를 모두 이루리.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한번 도에 대해 마음 냈거든
내가 과연 부처를 이룰 수 있을까.
그대는 부디 의혹을 내지 말라.
한량없고 셀 수 없는 오랜 겁에도
보리심을 얻기란 어렵지마는
만일 한 마음으로 구하기만 한다면
끝내는 위없는 보리 이루리.
비록 한 찰나 한 찰나마다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하여도
진실한 이 방편을 알지 못하면
그것 모두 공양이라 말할 수 없네.
만일 이런 법 듣기만 하면
거기로부터 모든 부처님 나니니
한량없는 겁 동안 고통 받아도
끝내는 결정코 보리 얻으리.
모든 부처님의 타시는 수레
대승의 그 법을 한번 들으면
일체의 저 법계 가운데에서
삼세의 대도사 될 수 있으리.
그러나 미래겁이 다할 때까지
모든 부처 세계를 돌아다녀도
진실한 그 방편을 알지 못하면
마침내 그 보리를 얻지 못하리.
지난 세상의 한없는 겁에
중생들 생사에 헤매면서
진실한 법을 알지 못하매
여래가 이 세상에 나오심이네.
모든 법이란 깨뜨릴 수도 없고
또 그것을 깨뜨릴 이도 없어
모든 세간을 밝게 비추어
자재한 법을 나타내 보이시네.
21.
금강당보살품(金剛幢菩薩品) ①
그때 금강당보살은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보살의 명지(明智)삼매에 들었다.
그 삼매에 들자 시방으로 각각 백만 부처 세계 티끌 수 같은 세계 밖에 각각 백만 부처 세계 티끌 수의 부처님이 계시니,
그 여래의 명호는 모두 금강당이었다.
그때 그 부처님께서 금강당보살에게 말했다.
“장하다.
불자여,
그대는 그 보살의 명지삼매에 잘 들 수 있었구나.
선남자여,
그것은 시방의 각각 백만 부처 세계 티끌 수 같은 세계의 모든 부처님이 그대에게 신력을 주셨기 때문이요,
또 비로자나부처님의 본래의 원력과 위신력 때문이며,
그대의 지혜가 청정하기 때문이요,
모든 보살들의 선근의 힘 때문이다.
또 보살로 하여금 청정하고 두려움 없음을 얻게 하기 위해서요,
걸림없고 끊이지 않는 변재를 얻게 하기 위해서며,
부처님의 일체의 지혜와 광대한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요,
다함없는 선근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며,
걸림없는 깨끗한 법을 만족하기 위해서요,
넓은 문[普門]인 법계에 들게 하기 위해서며,
모든 부처님의 신력 변화를 나타내기 위해서요,
과거를 생각하는 지혜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며,
모든 부처님이 온갖 선근을 보호하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량없는 법문을 널리 연설하게 하기 위해서요,
한량없는 법을 들어 알고 지니게 하기 위해서며,
열 가지 회향을 갖추 연설하게 하기 위해서요,
일체 보살의 온갖 선근을 섭취[攝]하게 하기 위해서며,
출세간법에 편히 머물게 하기 위해서요,
일체의 지혜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며,
큰 서원을 내게 하기 위해서요,
진실한 이치에 들게 하기 위해서며,
법계를 알게 하기 위해서요,
일체 보살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며,
모든 부처님의 동일한 선근을 닦게 하기 위해서요,
모든 여래의 성품을 호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선남자여,
그대는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이런 법을 연설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는 부처님 집안에 편히 머물기 때문이요,
출세간의 온갖 공덕을 길렀기 때문이며,
다라니의 광명에 들었기 때문이요,
부처님의 멸하지 않는 제도하는 법에 들었기 때문이며,
법계를 두루 비추기 때문이요,
깨끗한 법을 쌓아 나쁜 법을 떠났기 때문이며,
광대한 지혜의 경계에 머물기 때문이요,
걸림없는 법의 광명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때 그 부처님은 곧 금강당보살에게 한량없는 지혜를 주고 글귀를 잘 분별하는 좋은 방편과 걸림없는 변재와 걸림없는 법의 광명과 모든 여래의 평등한 몸과 한량없는 미묘한 음성과 모든 보살의 불가사의한 삼매 방편과 평등한 마음으로 선근을 회향하는 지혜와 일체법을 관찰하여 내는 한량없는 방편과 어디서나 설법할 수 있는 끊임없는 변재 등을 주었으니,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삼매에 든 선근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때 그 부처님들께서 각기 오른손을 펴 금강당보살의 정수리를 만지자,
그 보살은 곧 삼매에서 일어나 여러 보살들에게 말했다.
“불자들이여,
그 보살마하살은 일체 중생을 다 구호하려는 불가사의한 큰 서원을 세운 뒤에는,
삼세 부처님의 회향을 배워 닦습니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회향인가.
거기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삼세 부처님들께서 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열 가지란 이른바 첫째는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나는 회향이요,
둘째는 무너지지 않는 회향이며,
셋째는 모든 부처님들과 평등한 회향이요,
넷째는 온갖 곳에 이르는 회향이며,
다섯째는 다함없는 공덕 창고의 회향이요,
여섯째는 평등한 선근을 따르는 회향이며,
일곱째는 일체 중생을 따라 평등하게 관찰하는 회향이요,
여덟째는 진여 모양의 회향이며,
아홉째는 속박도 집착도 없는 해탈의 회향이요,
열째는 법계에 머무르는 한량없는 회향이니,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회향으로서 삼세 부처님이 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란 생각을 떠난 회향인가.
그 보살마하살은 단(檀)바라밀을 행하고 시(尸)바라밀을 깨끗이 하며,
찬제(羼提)바라밀을 닦고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을 행하며,
선(禪)바라밀에 들고 반야(般若)바라밀을 분별하며,
자애(慈哀)ㆍ슬픔[愍悲]ㆍ기쁨[歡悅喜]ㆍ버림[堪忍捨] 등을 수호해 쌓습니다.
이런 무량한 선근을 닦고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닦은 선근으로 일체 중생을 다 이롭게 하고 끝까지 청정하게 하며,
내가 닦은 이 선근으로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다 지옥ㆍ아귀ㆍ축생ㆍ염라왕 등 한량없는 괴로움을 면하게 하리라.’
그리고 다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이 선근을 회향하여 일체 중생들의 집[舍]이 되리니 그들의 고뇌를 멸하기 위해서요,
일체 중생들의 구호자가 되리니 그들을 고뇌에서 해탈하게 하기 위해서며,
일체 중생들의 귀의처가 되리니 그들을 공포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서요,
일체 중생들의 길이 되리니 그들을 일체의 지혜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며,
일체 중생들의 안온처가 되리니,
그들로 끝내 안온한 곳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일체 중생들의 큰 광명이 되리니 그들로 하여금 우치의 어둠을 멸하고 지혜의 광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요,
일체 중생의 횃불이 되리니 그들로 하여금 무명의 어둠을 멸하게 하기 위해서며,
일체 중생의 큰 등불이 되리니 그들로 하여금 끝까지 밝고 깨끗한 곳에 편히 머물게 하기 위해서요,
일체 중생들의 길잡이가 되리니 그들로 하여금 방편의 법에 들게 하기 위해서며,
일체 중생들의 주보신(主寶臣)이 되리니 그들로 하여금 걸림없는 깨끗한 지혜의 몸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이런 한량없는 선근을 회향하여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의 지혜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친하거나 원수를 위해 온갖 선근을 회향하되 그것은 평등해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평등한 관찰에 들어가 원수나 친한 이가 없기 때문에 항상 인자한 눈으로 중생을 보아,
혹 어떤 중생이 나쁜 마음을 품고 그 보살에 대해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더라도,
그는 그 중생들의 선지식이 되어 깊고 묘한 모든 법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비유하면 큰 바다는 어떤 독으로도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지각없고 어리석어 지혜 없으며,
은혜 갚을 줄 모르고 성 잘내며,
잘난 체 하고,
계율을 깨뜨리며 눈이 어두워 장님 같은 등의 이런 한량없이 나쁜 사람도 그 보살의 보리심을 어지럽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저 해가 떠서 천하를 두루 비출 때,
그것은 장님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 해서 숨고 나타나지 않는 일이 없는 것처럼,
또 건달바성(乾闥婆城)이나 사방에 티끌이 가리거나 아수라의 장애나,
염부제의 나무 그늘이나 또 산들이 막는 등의 이런 무량한 장애 때문에 숨고 나타나지 않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언제나 그 바른 생각은 산란한 일이 없고,
깊고 넓은 마음은 고요해 근심이 없으며,
바른 뜻과 생각으로 공덕과 지혜를 다 이루려 합니다.
그리고 청정한 법의 광명으로 세간을 두루 비추고 진실한 이치를 나타내 보이며,
모든 법문의 지혜를 깨끗이 닦습니다.
중생들을 위해 항상 선근을 닦을 때 아무리 중생들에게 많은 죄악이 있더라도,
그 보살마하살은 그런 중생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미워해 회향을 행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또 중생들을 다스리기 어렵다 해서 선근을 버리고 물러나 회향을 행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비록 중생들이 나쁜 소견을 가졌고 분노하며 마음이 흐렸더라도,
큰 장엄에서 그 마음이 물러나거나 큰 서원을 버리지 않고 중생을 구호하며,
중생들이 흐리고 악해 신심이 없고 은혜를 갚을 줄 모르더라도 보리 닦기를 게을리 하거나 폐하지 않으며,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과 일을 같이 해도 괴로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밝고 깨끗하고 원만한 지혜의 해로서 이 세간에 나와 일체 중생을 다스려 깨끗하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보살마하살은 한 중생만을 위해 마음을 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해 그 선근을 회향하는 것이 아니요,
한 부처 세계만을 깨끗이 하려는 것이 아니며,
한 부처님만을 믿으려는 것이 아니요 한 부처님만을 보려는 것이 아니며,
한 가지 불법만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는 일체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 선근을 회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체의 부처 세계를 모두 깨끗이 하고 일체의 부처님을 믿으며 일체의 부처님을 뵈옵고 일체의 부처님을 공경 공양하며,
일체 부처님의 바른 설법을 듣고 일체의 큰 서원을 모두 이루기 위해 온갖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보리심 보배를 내는 것은 곧 여래 경계의 힘이다.
그러므로 광대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게으르지 않고,
일체의 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을 배우고 닦아 모든 부처님들과 평등하게 되자.’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온갖 선근을 관찰하고는 신심이 깨끗해지고 대비심을 기릅니다.
모든 중생을 위해 그 선근을 진심으로 회향하되 다만 말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중생에 대해 기뻐하는 마음과 밝고 깨끗환 마음,
부드러운 마음,
인자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보호하려는 마음,
이롭게 하려는 마음,
가장 뛰어난 마음 등을 내어 그 선근을 회향하는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은 그 선근을 회향할 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회향하는 이 공덕으로 중생들이 모두 청정한 세계[趣]를 얻고 청정한 생(生)을 얻으며,
공덕이 원만하여 이 세간의 아무도 그것을 깨뜨리지 못하며,
언제나 끝없는 존경을 받되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모든 갈래를 다 분별해 알며,
부처님들을 생각하고,
몸ㆍ입ㆍ뜻의 업을 다 장엄하며,
모든 공덕을 완전히 장엄하게 되어지이다.’
그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회향하는 이 선근의 공덕으로 중생들이 언제나 부처님을 뵈옵고 그 부처님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신심을 얻으며,
모든 부처님에게서 바른 법을 듣고는 온갖 의혹을 떠날 뿐 아니라,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해 말대로 수행하여지이다.
그리고 여래의 처소에서 부드러운 마음을 얻고 몸ㆍ입ㆍ뜻의 업을 깨끗이 하며,
그 마음은 언제나 뛰어나고 묘한 선근에 편히 머무르고,
탐법(貪法)을 아주 떠나 칠재(七財)를 성취시키며,
부처님의 배운 것을 모두 배워 온갖 선근을 얻고,
평등하고 깨끗하고 묘한 해탈과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성취하게 되어지이다.
또 모든 중생에 대한 인자한 눈을 얻고,
그 몸은 청정하여 상호로 장엄하고,
언론 변재의 지혜와 공덕이 구족하며,
모든 감관을 제어하여 십력을 성취하고,
모든 선업을 일으켜 그 마음이 만족한 데 머무르고,
집착하는 곳이 없으며,
중생들이 다 부처님의 즐거움을 갖추게 하고,
한량없는 경계에 머물러 부처님 자리에 머물게 하여지이다.’
그 보살마하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생들은 한량없는 선하지 않은 업을 짓고 그 업을 인(因)으로 하여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리하여 여래를 보지 못하고 바른 법을 듣지 못하며 청정한 승가를 알지 못한다.
저 중생들은 한량없는 큰 죄악의 업을 지었으니 반드시 무량무변한 고초를 받을 것이다.
나는 저 삼악도(三惡道)에서,
그들을 대신해 그 고통을 받음으로써 그들이 다 해탈을 얻게 하리라.
나는 그 한량없는 고통을 대신 받더라도 그것을 괴롭다 해서,
마음이 물러나거나 두려워하거나 게으름으로써 저 중생을 버리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나는 중생들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평등한 서원을 완전히 이룸으로써,
그들을 일체의 생ㆍ노ㆍ병ㆍ사와 근심ㆍ괴로움 등 한량없는 고난에서 제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생사에 흘러 다니면서 온갖 나쁜 소견으로 갖가지 선법(善法)을 잃고는 우치하고 무지하다.
나는 그들을 제도하여 그 온갖 고통을 면하게 하리라.
또 중생들은 언제나 애욕의 그물에 싸이고 무명에 덮이어,
생존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기 때문에 스스로 심부름꾼[使]이 되어 자재를 얻지 못한다.
그리하여 괴로운 지옥에 얽매어 있으면서 마군의 온갖 업을 따르고,
부처님에 대해 의혹을 내므로 출세간의 도를 얻지 못하고 안온한 곳을 보지 못하여,
한량없는 생사의 광야를 항상 달리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이 생사의 진흙에 빠져 갖가지 고초를 당하는 것을 보고는 대비심을 일으키고,
그들을 이롭게 하여 좋은 이익을 얻게 하고 그 고난을 면하도록 선근을 회향합니다.
큰 회향으로 회향하되 삼세 보살들의 회향과 같이 하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회향경(大廻向經)과 같이 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다 청정하고 선근을 모두 갖추어 일체의 지혜를 다 이루게 합니다.
그는 또 생각합니다.
‘나는 저 중생들로 하여금 위없는 지혜와 안온한 곳을 얻게 하리라.
내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저들로 하여금 생사의 흐름에서 나와 일체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며,
그들을 나쁜 길과 험한 골짜기에서 나오게 하고,
한량없는 고통에서 구제해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하리라.’
그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일체 중생을 위해 무량한 고통을 받을지라도,
그들을 다 생사의 지옥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일체 중생을 위해 모든 세계의 모든 지옥에서 모든 고통을 다 받더라도 끝내 저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또 나는 낱낱 나쁜 세계에서 미래겁이 끝나도록 중생들을 대신해 무량한 고통을 받으리라.
왜냐하면,
나는 차라리 나 혼자서 그런 온갖 고통을 받을지언정,
저 중생들로 하여금 그런 온갖 고초를 받지 않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으로 저 나쁜 세계 중생들의 죄를 대신 받고,
그로써 저들을 해탈하게 하리라.’
보살마하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일체 중생을 위해 진실한 말 하는 사람이 되고,
해치려는 마음을 떠나 저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나는 중생들을 인(因)하여 보리심을 내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지마는,
그로써 부귀를 구하지도 않고 오욕(五欲)을 구하지도 않으며,
세간의 갖가지 향락을 구하지도 않고 보살도를 행한다.
왜냐하면,
오욕은 곧 세간법이요,
마군의 경계며,
우치한 사람의 행하는 것으로서 모든 부처님이 나무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체의 고뇌를 내나니,
지옥ㆍ아귀ㆍ축생ㆍ염라왕의 처소에서 분노하고 싸우며 서로 소송하는 것은 다 오욕 때문이다.
오욕을 자꾸 쌓으면 부처님을 멀리 떠나 하늘에 나는 길을 막거늘 하물며 최상의 도겠는가.’
보살은 이런 무량한 허물이 다 오욕에 있는 것을 환히 보기 때문에,
그 오욕을 위해 보살행을 닦지 않고,
다만 중생들을 이롭고 편안하게 하기 위해 보리심을 내어 최상의 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의 이익을 얻고 갖가지 큰 서원을 갖추게 하여 그들의 갖가지 번뇌 낚시의 미끼를 끊고 한량없는 고통에서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보살마하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이 선근의 회향으로써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갖가지의 즐거움과 구극의 즐거움,
이익의 즐거움,
독특한 즐거움,
고요한 즐거움,
집착 없는 즐거움,
흔들리지 않는 즐거움,
한량없는 즐거움,
버리지도 물러나지도 않는 즐거움,
멸하지 않는 즐거움,
일체를 아는 지혜의 즐거움 등을 얻게 하리라.
또 나는 일체 중생을 위해 그들을 다스리는 스승[調御師]이 되고 재정을 맡은 신하가 되며,
큰 횃불이 되어 안온한 곳을 보여 온갖 고난을 떠나고 모든 법을 알게 하리라.
또 나는 그들로 하여금 매우 깊은 모든 이치를 알게 하고,
또 나는 일체를 아는 지혜의 배가 되어 그들을 생사의 바다에서 건네 주리라.
또 나는 그들로 하여금 선근의 회향을 알게 하고,
저 언덕을 다 보여 주리라.’
보살마하살은 이 한량없는 선근을 회향하여,
일체 중생을 구호해 생사의 바다를 건너게 하고 모든 여래들을 기쁘게 하며,
일체의 지혜를 얻어 갖가지 마군을 떠나게 하며,
나쁜 벗을 멀리 떠나 보살들의 뛰어난 선지식을 친하게 하고,
깨끗한 업을 성취해 갖가지 악을 다 멸하게 하며,
보살의 무량한 서원과 일체의 선근을 모두 갖추게 합니다.
보살마하살은 이런 선근을 다 바로 회향한 뒤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천하의 낱낱 중생이 있다고 해서 낱낱 해가 뜨는 것은 아니니,
다만 한 해가 떠서 모든 천하를 다 비추는 것이다.
또 중생들은 자신의 광명으로 밤과 낮이 있는 줄 알아 돌아다니고 관찰하면서 온갖 업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해가 나와 천하를 두루 비추기 때문에 중생들이 모든 업을 다 짓는 것이다.
보살도 그와 같아서 갖가지 선근을 닦아 회향하는 것은 다 중생들을 위해서인 것이다.’
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중생들은 지혜의 광명이 없어 자신도 비추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비출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혼자 내 뜻한 바가 독특하구나.’
그리고는 갖가지 선근을 닦아 회향하여 일체 중생을 해탈시키고자 하며,
일체 중생을 두루 비추고 일체 중생을 분별하며,
일체 중생을 모두 알아 그들을 모두 매우 깊은 법에 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포섭하고 그들을 성취시키며,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부드럽게 하며,
또 그들의 의혹을 다 풀어 줍니다.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합니다.
‘나는 저 해가 일체를 두루 비추어도 그 은혜의 갚음을 구하지 않는 것을 배우자.’
그리하여 한 중생이 악하다 하여 큰 장엄을 버리지 않고,
또 한 중생이 악하다 하여 모든 중생을 다 버려 제도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만 선근을 부지런히 닦아 회향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일체의 안락을 얻게 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선근을 거두어 광대하게 회향하는데,
만일 그 모든 선근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지 못하면 그는 끝내 선근을 회향했다 할 수 없으며,
온갖 선근으로 다 중생들과 함께 발심하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게 하기 위해 회향하며,
중생들의 성품을 따라 회향하되 이르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보살은 이렇게 회향하지만 또한 집착하는 바가 없고 어떤 성품도 취하지 않으며,
선근에 편히 머물러 상(相)을 취하지 않는 회향이요,
업보는 허망하여 아무것도 없으므로 집착하는 바가 없고 오음(五陰)의 모양을 깨뜨리지도 않는 회향이요,
허망한 업을 취하지 않는 회향이며,
과보를 구하지 않고 허망한 인연을 일으키지 않으며,
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으며 머무르지도 않되,
견고하다는 생각에 머물지 않고 허망한 법에 머물지도 않으며,
중생이란 모양을 취하지 않고 세계를 분별하지 않으며,
마음의 뒤바뀜과 생각의 뒤바뀜과 견해의 뒤바뀜에 머물지도 않고 말의 길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만 중생들로 하여금 진실한 법을 알게 하는 회향이요,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관찰하는 회향이며,
법계의 인(印)으로 모든 선근을 인(印)치는 회향이며,
탐욕 등의 법을 떠난 선근을 관찰하는 회향이요,
모든 법을 알고 뒤바뀐 생각을 떠나 모든 선근을 얻으며,
둘이 없는 법으로 법계를 관찰하는 회향으로서,
그 회향은 어떤 법도 내지 않고 어떤 법도 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선근으로 회향하면 모든 법을 다스리는 법의 회향을 수행하여 일체 선근을 관찰하고 그것을 다 출세간법에 회향하므로 그 선근에 대해 둘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습니다.
살바야(薩婆若)가 곧 업이 아니지만 업의 회향을 떠난 것도 아니며,
일체의 지혜를 관찰할 때,
그것은 곧 업이 아니지만 또한 업을 떠나 살바야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서원에 대한 지혜의 업의 광명이 청정하기 때문에 과보의 광명도 청정하며,
과보의 광명이 청정하기 때문에 살바야의 광명도 청정하므로,
일체의 산란[動亂]과 각(覺)과 관(觀)과 교만과 방일을 버리고,
방편의 지혜를 따라 선근으로 회향하여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다 진실을 얻어 끝까지 해탈하게 합니다.
법의 성품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무량무변한 선근을 회향하고,
법에는 업보가 없지만 업보를 잘 냅니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선근을 회향하면 모든 악을 떠나 부처님의 찬탄을 받을 것이니,
불자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난 첫째 회향입니다.”
그때 금강당보살은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의 일체 중생과 법계를 두루 관찰하고는 깊은 글귀의 이치에 들어가 큰 자비로 일체 중생을 감싸고,
삼세의 부처 종자를 보호해 끊어지지 않게 하며,
모든 부처님의 공덕 창고에 들어가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법신을 내고,
일체 중생들 마음과 과거에 심은 그 선근을 잘 분별하고,
때의 알맞음을 알아 법신을 두루 갖추었으되,
청정한 색신(色身)을 잘 나타내어 게송을 외웠다.
불가사의한 겁에 닦은 행으로
언제나 중생들을 이롭게 하며
정진하는 굳은 마음 걸림이 없어
부처님의 묘한 공덕 항상 구하네.
청정한 그 마음은 분노를 떠나
부처님을 공경하고 또 공양하며
모든 법을 깊이 알아 중생 구제하나니
그는 회향 창고에 잘 들어가네.
용맹하게 정진하는 힘을 갖추고
지혜의 힘도 밝고 또 청정하며
참는 마음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으면서
언제나 중생들을 구호해 주네.
최상의 경지에서 마음이 편안하고
뜻은 항상 청정하여 기뻐 뛰놀며
보살의 참는 힘은 대지(大地)와 같아
모든 중생들을 다 이롭게 하네.
그 고생은 자기 쾌락 위함 아니요
대자자비로 한량없는 행을 일으켜
언제나 중생들을 구호하니
그는 빨리 걸림없는 지위에 드네.
온 시방에 가득한 모든 세계의
그 가운데 중생들을 다 포섭하고
그들 마음 편하게 하기 위하여
한량없는 모든 회향 다 배워 닦네.
기뻐하는 마음으로 보시 행하고
맑고 깨끗한 계율 모두 지키며
씩씩하게 정진하는 마음은 견고하여
청정한 그 지혜로 잘 회향하네.
그 마음은 광대하여 한량이 없고
참는 힘 견고하여 늘 회향하며
일체의 모든 선정 깨끗이 닦고
깊고 묘한 지혜는 부사의 하네.
온 시방에 가득한 세계에
맑고 깨끗한 행을 원만히 닦아
지혜로 모든 공덕 회향하나니
그로써 일체 중생 즐겁게 하네.
보살이 닦아 모은 온갖 좋은 업
한량없고 그지없어 셀 수 없는데
중생들이 그것을 모두 수행해
깊고 묘한 지혜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네.
일체의 중생들을 건지기 위해
무량 겁 동안을 지옥 속에 살면서
보살의 마음은 게으른 일이 없이
결정코 그 공덕을 언제나 회향하네.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 구하지 않고
일체의 좋은 촉감 바라지 않고
언제나 최상의 지혜 구하여
중생들을 구제해 해탈시키네.
보살 지혜 깨끗하기 허공과 같고
한량없는 보살행을 항상 행하며
부처님 행하시는 깨끗한 업과
한량없는 그 명예를 늘 수행하네.
보살은 온 세계를 다 노닐면서
언제나 중생들을 편하게 하고
그들을 모두 다 기쁘게 하되
보살행을 닦으면서 싫증이 없네.
마음의 온갖 번뇌 모두 없애고
가장 높은 지혜를 생각하며 닦지만
자기 몸의 안락을 구하지 않고
언제나 중생들을 이롭게 하려 하네.
그 보살 회향으로 저 언덕에 이르러
마음의 한량없는 더러움을 버리고
삼세 부처님의 그 한량없는
청정한 온갖 공덕 완전히 닦네.
보살은 그 색(色)에 대해 집착이 없고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에도 또한 그러며
삼계의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가진 온갖 공덕을 다 회향하네.
부처님이 아시는 모든 중생을
모두 다 포섭하여 남기지 않고
마침내는 그들을 모두 구제하나니
그것 일러 뛰어난 보살행이라 하네.
보살은 어디서도 그 마음 편안하고
한량없는 모든 중생 다 깨우치며
우치 떠난 바른 생각,
모든 감관 항복 받아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언제나 고요하네.
안팎의 모든 법은 다 허망하여
거기에는 아무런 실체 없나니
바람이 걸림없이 허공 다니듯
보살의 마음 행도 그러하니라.
몸으로 짓는 업이 항상 청정해
일체 부처님을 기쁘게 하고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하기에
그 마음은 오로지 여래를 향하네.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세계의
부처님 계신 데는 모두 나아가
거기서 대비 세존 만나 뵈옵고
모두 다 공경하고 또 공양하네.
그 마음은 언제나 모든 악 떠나
대중 속에 있어서도 두려움 없고
여래도에 편안히 머물면서
삼유(三有)의 시원하고 맑은 못 되네.
모든 법을 분석해 잘 닦으며
온갖 있고 없음을 갖추 깨닫고
진실한 법성으로 행해 나가며
다툼 없는 삼매에 잘 깊이 들어가네.
보살의 견고한 행 닦아 익히어
어떤 중생도 그것을 부술 수 없고
매우 깊은 이치를 환히 알아
삼세 어떤 법에도 집착이 없네.
끝까지 회향하고 저 언덕에 이르러
중생들을 모두 다 깨끗이 하고
일체의 집착을 아주 여의었나니
보살행은 어디고 의지한 데가 없네.
한량없는 중생을 말하는 법도
그의 지혜에서는 걸림이 없고
교묘하게 변론해도 애착이 없어
걸림없는 자라 마음이 편안하네.
보살은 이와 같이 회향을 행해
한량없는 좋은 마음 공덕 창고는
시방 모든 세계에 계신 여래
그분들을 모두 다 기쁘게 하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의 둘째의 깨뜨릴 수 없는 회향이란 어떤 것인가.
그 보살마하살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여래 계신 데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어 그 부처님을 다 기쁘게 하고,
모든 보살의 처소에서 내지 처음으로 한 생각을 내어 보살의 선근과 일체의 지혜를 구하여 그 보살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으며,
모든 불법 안에서 한결같은 곧은 마음이 무너지지 않아,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으며,
모든 여래 법을 수호하여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고 항상 사랑스런 눈으로 일체를 평등하게 보고 그 선근을 회향하여,
그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좋은 이익을 얻게 하는 데에서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습니다.
희고 깨끗한 선근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나니,
왜냐하면 일체의 선근을 닦아 모으기 때문이요,
일체 보살의 회향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나니 곧은 마음으로 해탈하여 만족을 얻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과 법사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나니 그들에게 대해 다 여래라는 생각을 완전히 일으키기 때문이요,
부처님의 자재한 신력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나니 모든 부처님의 불가사의함을 분명히 믿기 때문이며,
모든 보살의 방편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나니,
갖가지로 무량 무수한 행의 경계를 섭취(攝取)하기 때문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깨뜨릴 수 없는 믿음에 편히 머물러 모든 부처ㆍ보살ㆍ성문ㆍ연각과 여래의 바른 법과 일체 중생 등,
이런 무량한 경계에 온갖 선근을 심고 온갖 선근을 분별하며,
보리심을 기르고 대자(大慈)에서 생기는 선근을 닦으며,
대비(大悲)를 널리 닦아 평등하게 관찰하고,
부처님의 배운 것을 따라 배우며,
일체의 청정한 선근을 거두어 지니고,
진실한 이치에 깊이 들어가 공덕 창고를 모으며,
큰 보시를 행해 온갖 공덕을 닦고 삼세를 다 평등하게 관찰합니다.
보살마하살은 이런 선근 공덕을 일체의 지혜에 회향하여,
언제나 부처님을 뵈옵고 선지식을 친하며,
언제나 무량한 보살들과 함께 모이고,
살바야를 생각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법을 보호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성숙시키면서도 그 마음은 언제나 출세간에의 회향에서 떠나지 않고,
모든 법사를 공양하고 수호하며,
모든 법을 분명히 알며,
일체의 큰 서원(誓願)을 수행해 완전히 이룹니다.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무량한 선근을 부지런히 닦고,
그 선근을 길러 쌓으며,
바른 생각으로 경계의 진실하고 평등한 뜻을 생각하고 관찰하며,
부처님을 공경 공양하고 위의를 원만히 갖추고 선근을 회향합니다.
보살마하살은 선근을 회향하고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선근 회향으로 얻은 의과(依果)로 말미암아 내가 보살행을 닦을 때에는 찰나마다 모든 부처님을 뵈옵게 하고 저 모든 부처님이 모두 다 환희하게 하며,
그 여래ㆍ응공ㆍ등정각에 대해 부처님에게 한 것 같이 공양하되 아승기 보배와 아승기 꽃과 아승기 향,
아승기 바르는 향,
아승기 화만,
아승기 옷,
아승기 일산,
아승기 당기,
아승기 번기,
아승기 장엄,
아승기 장엄거리,
아승기 공급이며,
아승기 가루향,
아승기 믿음과 좋아함,
아승기 공경하는 생각,
아승기 깨끗한 믿음과 아승기 견고 향,
아승기 맛난 음식,
아승기 공경,
아승기 예배며,
아승기 일체 보배 자리,
아승기 일체 꽃 자리,
아승기 일체 향 자리,
아승기 일체 화만 자리,
아승기 일체 청정한 전단향 자리,
아승기 일체 옷 자리,
아승기 일체 금강 자리,
아승기 일체 마니보 자리,
아승기 일체 보배 비단 자리,
아승기 일체 보배빛 자리,
아승기 일체 보배 바퀴,
이승지 일체 꽃 바퀴,
아승기 일체 향 바퀴,
아승기 일체 화만 장엄 바퀴,
아승기 일체 보배 옷 바퀴,
아승기 일체 보배 장엄 바퀴,
아승기 일체 보배 비단으로 깔아 세운 바퀴,
아승기 일체 보배 다라(多羅) 나무가 높이 솟은 바퀴,
아승기 일체 보배 난간 바퀴,
아승기 일체 보배 그물에 덮인 바퀴며 천상의 궁전보다 장엄하고 뛰어난 아승기 일체 묘한 보배 궁전,
아승기 일체 꽃 궁전,
아승기 일체 향 궁전,
아승기 일체 보배 화만 궁전,
아승기 일체 전단 궁전,
아승기 일체 견고향 창고 궁전,
아승기 일체 금강 궁전,
아승기 일체 마니보배 궁전으로서 그것은 천상의 궁전보다 뛰어난 것 등 이런 것으로 공양하게 하십시오.
아승기 온갖 보배 나무,
아승기 온갖 향 나무,
아승기 온갖 보배 옷 나무,
아승기 묘한 음악 나무,
아승기 묘한 음성 나무,
싫증나지 않는 아승기 보배 나무,
비단 보배 번기를 드리운 아승기 나무,
아승기 보배로 장엄한 나무며,
아승기의 일체 꽃,
일체 화만,
일체 향,
일체 바르는 향,
일체 일산,
일체 당기,
일체 번기 나무 등,
이런 온갖 보배 나무의 뛰어난 장엄으로 무수한 궁전을 장엄한 것,
아승기 보배 난간 장엄과 아승기 보배 창문 장엄,
아승기 보배 편누각 장엄,
아승기 속 휘장 장엄,
아승기 반달 장엄,
아승기 누각 장엄,
아승기 보배 휘장 장엄과 아승기 흰 보배 그물로 그 위를 덮고,
아승기 견고향을 사르며,
아승기 보배 옷을 그 땅에 깔았으니,
그런 갖가지 장엄거리로 무수한 궁전을 장엄하여,
그것은 다 천상의 궁전보다 뛰어났으니,
이런 것으로 공양 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그 보살마하살은 이런 가장 묘한 공양으로 무량 무수하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
모든 감관을 다스리면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체 여래께 공양했습니다.
그 부처님들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는 그 사리에 공양하였으니,
그것은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면서 일체 중생의 선근을 거두어 지니게 하며,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한량없는 고통을 떠나 보리심을 내게 하며,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큰 장엄으로 스스로 장엄하게 하려는 것이니,
한량없는 그 장엄은 일체 중생의 경계를 뛰어났었습니다.
그리고 불법의 만나기 어려움을 나타게 보이고,
아승기 여래의 힘을 만족시키며,
청정한 신심으로 도사께 공양하고 일체 불법을 받들어 지니며,
수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현재의 부처님께 공양하고,
그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는 그 사리에 공양하는데,
그 공양거리는 무량 아승기겁 동안에도 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부처님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해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저 여래께 공양해야 한다’라고 하고는 그는 물러나는 마음이 없고 쉬는 일이 없으며 게으른 일도 없으면서도 고달파하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마음에 아무 생각이 없으며,
어떤 법에도 물들지 않고 의지하는 데가 없으며,
선근에도 맛들이지 않아 모든 집착을 떠났고,
진실한 법인(法印)으로 업의 법문에 인(印)치며,
일체의 법을 내되 부처님 머무는 곳에 머물며,
생멸이 없는 성품을 관찰하고는 경계의 법인(法印)으로 그 발심에 인(印)칩니다.
보살은 여래의 청정한 회향을 받들어 지니는데,
그것은 평등한 법성을 관찰하는 회향이요,
행이 없는 방편에 들어가 모든 행을 내지만 그 마음에 일체를 버리는 회향이며,
한량없는 방편 회향이요,
일체의 존재[有]를 떠나는 회향이며,
형상[相]을 떠난 방편에 편히 머물러 법문의 선근을 닦는 회향입니다.
보살이 처음으로 발심한 뒤로 일체 묘한 선근을 닦아 그것을 다 회향하는 것은,
이 선근으로 생사 속에 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일체의 지혜를 구하면서 물러나지 않으며,
일체의 존재[有]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면서 생사에 집착하지 않으며,
걸림없는 지혜의 문을 얻어 보살행을 닦는 그 선근은 다함이 없어,
세간의 어떤 법도 그것을 깨뜨릴 수 없고,
청정한 바라밀을 다 갖추어 일체 지혜의 힘을 모두 성취합니다.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우치의 어둠을 버리고 보리심을 이루어,
일체를 두루 비추고 깨끗한 법을 기르며,
선근을 회향하고 온갖 행을 다 갖추는 것입니다.
청정하고 곧은 마음으로 평등한 이치를 관찰하고 모든 법에 깊이 들어가,
업은 꼭두각시와 같고,
업의 과보는 번개와 같으며,
모든 행은 허깨비와 같고,
인연으로 생긴 법은 메아리와 같으며,
보살행까지도 다 그림자와 같은 줄을 아는데,
그것은 집착 없는 법안(法眼)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리하여 짓는 이도 지어지는 것도 없고,
그 성품이 적멸하여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에 모두 들어가며,
모든 법에는 두 가지가 없음을 깨달아 여실한 성품을 알고 보살의 온갖 행상(行相)을 분별하면서도 그 모든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며,
방편을 잘 알아 함께 일하는[同事] 업에 들어가되,
희고 깨끗한 업을 버리지 않고,
일체의 장애를 떠나 걸림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언제나 부처님의 돌보아 주심을 받아 어리석음을 아주 떠납니다.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선근을 성취하고 선법을 내어,
업보를 깨뜨리지 않고,
진실을 분명히 보아 회향할 줄을 잘 압니다.
방편의 힘으로써 업보를 내지만 법의 성품을 끝까지 알아 저 언덕에 이르고,
모든 법을 잘 알아 큰 지혜에 회향하며,
선업의 선근으로 그 마음이 청정하여 행하는 일이 없이 행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선근을 회향하는 것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 부처 종자가 끊이지 않으며,
온갖 악업과 그 과보를 모두 없애어 일체 중생에 회향하고,
한량없는 지혜를 얻고 일체의 지혜를 이루어 세간의 경계를 떠나며,
온갖 번뇌를 없애고 끝내는 지혜를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깊은 방편에 들어가 생사의 고통을 버리고,
모든 부처님의 무량한 선근을 성취하여 마군의 업을 꺾어 항복 받으며,
평등한 법인(法印)을 얻어 모든 업에 인(印)치고,
일체 지혜의 위없는 보리를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선근을 회향하여,
밝고 깨끗한 그 선근은 일체를 두루 비추고,
살바야승(薩婆若乘)을 원만히 성취합니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보살마하살의 둘째의 무너지지 않는 회향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이 회향에 편히 머무는 때에는 한량없이 무수한 부처님을 뵈올 것이요,
한량없는 청정한 묘한 법을 모두 얻을 것이며,
중생들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얻을 것이요,
어리석음을 버려 모든 법에 들어갈 것이며,
부처님의 자재한 신력을 얻어 온갖 마군을 항복 받고 모든 마군의 업을 없앨 것이요,
생귀(生貴)의 보리심을 원만히 갖출 것입니다.
그리하여 걸림없는 지혜를 얻되 남에 의해 깨치지 않을 것이오,
모든 법의 진실한 뜻을 볼 것이며,
모든 부처 세계에 대해 그 모양을 다 분별해 받들어 지닐 것이요,
지혜를 모두 갖추어 중생을 두루 비출 것입니다.”
그때 금강당보살이 부처님 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을 외웠다.
무량하고 무수한 업을 수행해
그 법은 견고하여 무너뜨릴 수 없어
모든 부처님을 기뻐하게 하나니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회향하네.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드리고
보시와 계행으로 감관을 다스리며
일체 중생들 위해 그는 회향 닦나니
그들을 다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이네.
일체의 가장 묘한 꽃과 또 향과
무량하고 무수한 온갖 보배 옷
갖가지의 장엄과 보배 일산 등
이로써 여래께 공양드리네.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양거리로
헤아리기 어려운 오랜 겁 동안
조어사(調御史)를 공경하고 공양하면서
마음 항상 기쁘고 싫증 없었네.
전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할 때
일체 세간의 밝고 큰 등불이신
지금 시방세계에 계시는 부처님
눈앞에 계시는 듯 다 뵐 수 있네.
헤아릴 수가 없는 한량없는 겁
보시를 행하면서 만족할 줄 모르고
헤아릴 수가 없는 한량없는 겁
온갖 선근 닦을 때도 그러하였네.
갖가지 중생 마음 분별해 알고
여실히 관찰하여 허망 없으며
중생들 모든 근기 낱낱 다 알아
언제나 그 무리들 이롭게 하네.
기뻐하는 마음은 한량이 없고
청정한 신심으로 또 공경하며
불가사의한 겁 동안 참고 살면서
중생들을 구제하고 이롭게 하네.
저 모든 부처님 열반하신 뒤에는
사리를 공양하되 싫증이 없어
한량없는 갖가지 묘한 보배로
항사(恒沙) 같은 온갖 탑을 모두 세우네.
거룩한 형상을 무수히 만들고는
보배 창고 순금으로 장엄하나니
그것은 크고 높아 수미산 같고
그 수는 한량없어 부사의 하네.
공부해 쌓아 모은 갖가지 공덕
묘하고 견고하여 못 부수나니
보살은 그를 알고 회향하지만
그것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네.
만일 이와 같이 회향 닦으면
그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나니
가장 좋은 지혜로 모든 법 보아
거기는 생멸 없음 분명히 아네.
방편 닦아 마음을 청정히 하여
모든 것이 부처님과 평등하나니
그 끝이 없는 갖가지 방편으로
다함없는 여래의 창고에 회향하네.
위없는 보리심을 일으켰기에
이 세간에 아무데도 의지하는 데 없고
시방 여러 세계에 두루 다녀도
어디에도 그 마음 장애가 없네.
방편으로 중생 마음 다 열어 주어
모두 부처 보리를 내게 하지만
평등한 중생 마음 관찰할 때에
찾아봐도 진실은 얻을 수 없네.
일체의 법이란 법 그 모두는
그 성품이 없음을 환히 아나니
집착 없고 청정한 그 눈 회향해
일체 세간 고통을 아주 떠나네.
온 존재를 청정하게 하려 하지만
어떤 법의 모양도 함부로 안 취하며
있는 것과 없는 것 잘 분별하여
그 마음을 깨끗하고 기쁘게 하네.
부처 세계 견고하지 않음을 알아
한 부처 세계에도 집착 않나니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취하지 않고
또 그 법의 자성(自性)에도 집착 안하네.
방편으로 일체 지혜 다 회향하고
위없는 지혜로 스스로 장엄하여
일체 부처님을 다 기쁘게 하나니
이것이 곧 보살의 회향하는 그 업이네.
보살은 일심으로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와 묘한 방편 생각하고
모든 부처님처럼 집착이 없어
나도 그런 공덕을 다 얻게 하네.
언제나 일체 중생 이롭게 하여
한량없는 모든 악업 떠나게 하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려 하나니
그 마음은 조금도 헛되지 않네.
머무는 그곳마다 법을 지키고
열반을 보이지만 멸하지 않네.
여래에게는 두 법 없나니
나도 또한 그와 같이 회향했으면
일체 세계의 모든 갈래에 있는
함이 있는 모든 법에 집착 없나니
보살의 말의 길[語言道]도 의지하지 않지만
또한 말이 없는 데도 집착 안 하네.
시방세계 계시는 모든 여래
모든 법을 거두어 남김이 없고
모든 갈래를 떠나 생(生)을 받지만
생을 떠난다는 것 허망 아니네.
한 장엄으로 모두 장엄하지만
그런 법에 대하여 분별 않나니
세상이란 모두 다 허망한 줄을 알아
실은 그의 하는 일,
없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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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음(樹蔭) :
뒷글자는 어(於)와 금(禁)의 반절이다.
우척(憂慼) :
뒷글자는 창(倉)과 력(歷)의 반절이다.
혐한(嫌恨) :
앞글자는 호(戶)와 겸(兼)의 반절이다.
해폐(懈廢) :
뒷글자는 방(方)과 폐(肺)의 반절이다.
착류(錯謬) :
앞글자는 창(倉)과 각(各)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미(靡)와 유(幼)의 반절이다.
하부(荷負) :
앞글자는 호(胡)와 가(可)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방(房)과 우(又)의 반절이다.
중담(重擔) :
뒷글자는 도(都)와 람(濫)의 반절이다.
면속(免贖) :
앞글자는 망(亡)과 변(辨)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신(神)과 촉(蜀)의 반절이다.
가책(訶責) :
앞글자는 호(虎)와 하(何)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측(側)과 혁(革)의 반절이다.
투쟁(鬪諍) :
앞글자는 도(都)와 두(豆)의 반절이고,
뒷글자는 측(側)과 병(迸)의 반절이다.
구이(鉤餌) :
뒷글자는 잉(仍)과 리(吏)의 반절이다.
무려(無侶) :
뒷글자는 력(力)과 거(擧)의 반절이다.
외고(巍高) :
앞글자는 어(語)와 위(圍)의 반절이다.
● [pt op tr] fr
_M#]
『대방광불화엄경』
♣0079-014♧
◎◎[개별논의] ♥ ❋본문
★1★
◆vpdw1692
◈Lab value 불기2565/07/12 |
♥단상♥무유정법과 인과이론 5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7/2565-07-12-k0079-014.html#1692 sfed--대방광불화엄경_K0079_T0278.txt ☞제14권 sfd8--불교단상_2565_07.txt ☞◆vpdw1692 불기2565-07-12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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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4-001♧
85
가리 다구사라
訖哩<二合>哆俱舍羅<八十五>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193일째]
견제보살불가설 $ 064▲奚麼怛羅奚麼怛羅為 一 ● 鞞麼怛羅, ○□□□□,發,請,敷,現
□□□□□□□, 發生智慧不可說,
請問正法不可說, 敷揚佛教不可說,
□□□□□□□, 발생지혜불가설,
청문정법불가설, 부양불교불가설,
여러 보살 보는 일을 말할 수 없고
지혜를 내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바른 법 묻는 것도 말할 수 없고
불교를 널리 폄도 말할 수 없어
065□
[194째]
현종종신불가설 $ 065▲鞞麼怛羅鞞麼怛羅為 一 ● 鉢羅麼怛羅, ○□□□□,詣,示,普,處
□□□□□□□, 詣諸國土不可說,
示現神通不可說, 普遍十方不可說,
□□□□□□□, 예제국토불가설,
시현신통불가설, 보편십방불가설,
여러 몸 나타냄을 말할 수 없고
여러 국토 나아감도 말할 수 없고
신통을 보이는 일 말할 수 없고
시방에 두루함을 말할 수 없고
●K0150_T0462.txt★ ∴≪A대방광보협경≫_≪K0150≫_≪T0462≫
●K0079_T0278.txt★ ∴≪A대방광불화엄경≫_≪K0079≫_≪T0278≫
●K0080_T0279.txt★ ∴≪A대방광불화엄경≫_≪K0080≫_≪T0279≫
법수_암기방안
64 척골(尺骨)[자뼈]
65 견상(肩 =
37 종지뼈 ( the kneecap, / the patella무릎 종지뼈)
85 고관절(股關節) 각서(coxa 영어발음)= a hip joint
33530
606
○ 2020_1126_160801_can_ct19
○ 2020_1126_160441_nik_BW17
○ 2020_1126_160419_nik_ab41_s12
○ 2020_1126_160105_can_ct8_s12
○ 2020_1126_155531_nik_BW22
○ 2020_1126_155347_nik_ct9_s12
○ 2020_1126_153637_can_BW17
○ 2020_1126_153544_can_Ab15
○ 2018_1025_175200_can_BW25_s12
○ 2018_1025_171937_can_AR25
○ 2018_1025_162257_nik_BW22
○ 2019_1004_175027_nik_ct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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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_1004_150513_can_bw16
○ 2019_1004_145316_nik_BW25
○ 2019_1004_160827_nik_CT33
○ 2019_1004_142541_can_BW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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