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여섯 무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시되 비구들이 인연이 있으면 두 밤이나 세 밤을 군대 안에 머물도록 허락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군대 안에서 군인들이 전쟁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사람ㆍ코끼리ㆍ말을 살폈다.
그때에 여섯 무리 비구 가운데 한 사람이 군대의 진지를 구경하다가 화살에 맞았다. 동무 비구들이 옷에다 싸서 메고 돌아오니, 거사들이 보고 물었다. “이 사람은 어디가 아픈가요?” “아픈 곳은 없소. 아까 군인들의 진지와 전쟁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화살에 맞았소.”
그때에 거사들이 모두가 비난하였다. “우리들은 은애 때문에 군사를 일으켰거니와, 그대들은 출가한 사람으로서 군인들 사이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오?”
여러 비구들이 그에 대해 들었다.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여섯 무리 비구들을 비난하였다.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시되 ‘비구들이 인연이 있을 때에는 군대 안에서 두 밤이나 세 밤을 묵어도 좋다’ 하셨거늘, 그대들은 군대 안에서 두 밤 세 밤을 자면서 어찌하여 다시 전쟁하는 것을 가서 보다가 군대의 화살에 맞았는가?”
그때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들이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여섯 무리 비구들아, 여래가 비구들에게 일이 있으면 군대 안에서 두 밤ㆍ세 밤을 자도 좋다 하였거늘, 너희들은 어찌하여 군대 안에서 두 밤ㆍ세 밤을 자면서 게다가 군인들의 전쟁을 구경까지 하다가 화살에 맞았느냐?”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두 밤ㆍ세 밤 동안 군대 안에 자면서 군인들이 진치고 싸우는 것을 구경하거나 군대ㆍ코끼리ㆍ말 등의 세력 형편을 구경하러 다니면 또한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싸운다 함은 연습으로 싸우거나 참으로 싸우는 것이요, 군대라 함은 한 가지 종류의 군대로부터 네 가지 종류의 군대이며, 혹은 왕의 군대ㆍ도적의 군대ㆍ거사의 군대도 있느니라. 세력 형편이라 함은 코끼리 군대의 세력ㆍ말 군대의 세력ㆍ수레 군대의 세력ㆍ걷는 군대의 세력이요, 진지라 함은 네모진 진지, 둥근 진지, 반달 모양 진지, 퍼진 진지, 오무린 진지, 코끼리ㆍ말ㆍ사람ㆍ군대의 진지 등이니라.
그 비구가 군대들의 진지와 전쟁하는 것과 코끼리ㆍ말 군대의 세력 형편을 보러 가되 길에서 길로 가고, 길에서 길 아닌 데로 가고, 길 아닌 데서 길로 가고, 높은 데서 낮은 데로 가고, 낮은 데서 높은 데로 가서 보면 바일제이니라. 갔다가 보지 않으면 돌길라이며, 방편ㆍ장엄으로 가려 하다가 가지 않으면 모두가 돌길라이며, 비구가 앞서서 길을 가는데 군대들이 뒤에 따라오거든 피하여야 하는데 피하지 않으면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일이 있을 때나 할 말이 있거나 청하여 부르거나 힘 센 이에게 끌려가거나 목숨과 범행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거나 앞서서 길을 가는데 군대가 뒤에 와서 길을 피했거나, 물이나 육지의 길이 막혔거나 도적ㆍ나쁜 짐승ㆍ큰물에 막혔거나 힘 센 이에게 갇혔거나 목숨과 범행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길을 피하지 않은 것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51) 술을 마시지 말라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는 지타(支陀) 나라에 계실 적에 큰 비구들 1,250사람과 함께 계셨다. 그때에 존자 사가타(沙伽陀)가 부처님의 공양을 맡았는데, 그는 길을 떠나 편발(編髮) 범지에게 가서 말했다. “그대가 사는 곳에서 제일가는 방에 나도 하룻밤 자려 하는데 되겠는가?” 범지가 대답했다. “나는 쉬게 하기를 꺼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독한 용이 있으므로 해칠까 두렵습니다.” 비구가 말했다. “허락만 해 주시오. 나를 해치지는 못할 것이오.” 편발 범지가 말했다. “이 집이 넓으니 마음대로 머무르시오.” 그때에 장로 사가타가 그 방으로 들어가서 손수 풀자리를 깔고 가부좌를 맺고 앉아 생각을 한 곳에 모으고 있었다. 그때에 독한 용이 사가타가 가부좌를 맺고 앉은 것을 보고 연기를 뿜으니 사가타도 연기를 뿜었다. 독한 용이 성이 나서 다시 몸에서 불을 뿜으니, 사가타도 불을 뿜었다. 그때에 그 집에 불이 붙어서 마치 큰 화재가 난 것 같았으므로 사가타가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이 용의 불을 꺼서 용의 몸이 상하지 않게 하리라.’ 그때에 곧 용의 불을 꺼서 상하지 않게 하였다. 그러자 그 독한 용의 불빛은 빛을 잃고, 사가타의 불빛은 점점 성하여 푸른빛, 누른빛, 붉은빛, 흰빛, 초록빛, 보랏빛, 파리(頗梨) 빛으로 가지가지 광채가 났다. 그때에 사가타가 그날 밤에 독한 용을 항복시키어 발우에 담아 두었다가 이튿날 새벽에 편발 범지에게 가지고 가서 말했다. “그대가 말한 독한 용을 내가 이미 항복시켜서 발우 안에 두었는데, 지금 짐짓 가지고 왔으니 보여 주겠소.” 그때에 구섬미의 상주(商主)가 편발 범지의 집에 와서 자다가 생각하였다. ‘처음 보는 일이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이와 같은 큰 신통력이 있거늘 하물며 부처님이겠는가?’ 그는 곧 사가타에게 말했다. “만일 부처님께서 구섬미에 오시거든 말해 주시오. 한 번 뵙기를 원합니다.” 사가타가 대답했다. “대단히 좋소.” 그때에 부처님께서 지타 나라로부터 세상을 다니시면서 구섬미 나라에 오셨다. 그때에 그 상주는 부처님께서 1,25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그 나라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수레를 타고 나와 부처님을 맞이하였다. 그는 멀리서 부처님의 얼굴이 단정하시고, 모든 감관이 고요하시고, 마음이 가라앉아서 높은 조복을 얻어서 마치 길든 용이나 코끼리 같으며, 맑게 가라앉은 못과도 같음을 보았다. 그는 이것을 보고 독실한 신심을 내어 공경하는 마음으로 수레에서 내려 부처님께 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머물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설법하고 권고하고 교화해 주시어 기쁨을 얻게 하셨다. 구섬미의 상주는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설법하고 권고하시고 교화하심을 받아 큰 기쁨을 얻고서 대중을 돌아보니 사가타가 보이지 않으므로 비구들에게 물었다. “사가타 비구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비구들이 대답했다. “뒤에 곧 올 것입니다.” 그때에 사가타가 여섯 무리 비구들의 뒤를 따라 그곳에 이르렀다. 구섬미의 상주는 사가타가 온 것을 보고 곧 마중을 나와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그때에 사가타가 다시 가지가지 방편으로 설법하고 권고하고 교화하여 기쁘게 해 주었다. 그때에 구섬미의 상주는 사가타가 가지가지 방편으로 설법하고 권고하고 교화함을 듣고 기쁨을 얻은 뒤에 말씀드렸다. “무엇을 구하십니까? 말씀하십시오.” 사가타가 대답했다. “그만두시오. 그것이 곧 나에게 공양하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 말씀드렸다. “무엇이 필요하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여섯 무리 비구들이 그에게 말했다. “그대가 알겠는가? 비구의 의발과 니사단과 바늘통 같은 것은 얻기 쉬운 것이오. 다시 비구들이 얻기 어려운 것이 있으니, 그것을 주시오.” 그가 즉시에 물었다. “비구들이 얻기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여섯 무리 비구들이 대답했다. “술이 필요하오.” 그가 말했다. “필요하시면 내일 와서 마음대로 얼마든지 가져가시오.” 그는 사가타의 발에 절하고, 주위를 돈 뒤에 물러갔다. 이튿날 아침에 사가타가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구섬미의 상주 집에 가서 자리에 앉으니 구섬미의 상주는 가지가지 맛난 반찬과 음식을 내고 겸하여 술을 주어 배가 부르게 하였다. 그때에 사가타가 배부르게 마시고 먹고 한 뒤에 자리에서 떠났는데 중로에서 술이 취해 땅에 쓰러져 모두 토하니, 뭇 새들이 어지럽게 울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알면서도 짐짓 아난에게 물으셨다. “새들이 무엇 때문에 시끄러우냐?” 아난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사가타 비구가 구섬미의 상주가 올리는 가지가지 음식을 먹고 겸하여 술까지 마신 뒤에 술이 취해서 길에 쓰러져 많이 토하였으므로, 새들이 시끄러워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가타 비구, 어리석은 사람이 지금과 같아서는 작은 용도 항복시키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큰 용을 항복시키겠느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술 마시는 이는 대체로 열 가지 허물이 있으니,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얼굴빛이 나쁘고, 둘째는 힘이 적어지고, 셋째는 눈이 밝지 못하고, 넷째는 성내는 형상을 나타내고, 다섯째는 살림살이와 재산을 무너뜨리고, 여섯째는 질병이 더하고, 일곱째는 싸움이 늘고, 여덟째는 명예는 없어지고 나쁜 소문이 퍼지며, 아홉째는 지혜가 줄고, 열째는 몸과 목숨이 다하면 세 가지 나쁜 길에 떨어지느니라. 아난아, 이것이 술을 마실 때에 생기는 열 가지 허물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나를 스승이라 하는 이는 초목 끝으로라도 그것을 술 속에다 대었다가 입에 넣지 말지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사가타 비구를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가타 비구,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술을 마시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술이라 함은 나무 술[木酒]ㆍ멥쌀 술ㆍ보리 술 그 밖에 다른 방법으로 만드는 술이니라. 나무 술이라 함은 배즙 술ㆍ잠부나다 과일[閻浮果] 술ㆍ감자 술ㆍ사루가 과일[舍樓伽果] 술ㆍ요(蕤)즙 술ㆍ포도 술이니라. 배즙 술이라 함은 꿀ㆍ엿 등을 섞어서 만든 것이며, 내지 포도 술도 그와 같이 섞어서 만드느니라. 술이라 함은 술 빛ㆍ술 향기ㆍ술 맛으로서, 마시지 말아야 하며, 혹 어떤 술이 술 빛이 없으나 술 향기와 술 맛이 있으면, 마시지 말아야 하며, 혹 어떤 술이 술 빛과 술 향기가 없으나 술 맛만이 있어도 마시지 말아야 하며, 혹 어떤 술이 술 빛과 술 향기와 술 맛이 없더라도 마시지 말아야 하느니라. 술 아닌 것이 술 빛ㆍ술 향기ㆍ술 맛이면 마셔도 좋고 술 아니고 술 빛이 아닌 것이 술 향기ㆍ술 맛이면 마셔도 좋으며, 술 아니고 술 빛 아니고 술 향기 아닌 것이 술 맛이면 마셔도 좋고 술 아니고 술 빛이 아니고 술 향기가 아니고 술 맛이 아니면 마셔도 좋으니라. 그 비구가 술이나 술을 끓인 것이나 술과 섞은 것을 먹거나 마시면 바일제이니라. 만일 단 맛이 있는 술을 먹으면 돌길라이며, 신 맛이 나는 술을 마시면 돌길라이며, 누룩을 먹거나 술 찌꺼기를 먹으면 돌길라이니라. 술을 술이라 생각하고 먹으면 바일제이며, 술을 의심하면 바일제이며, 술을 술 없다고 생각하면 바일제이며, 술이 없는데 술이 있다고 생각하면 돌길라이며, 술이 없는데 의심하면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이러이러한 병이 있어서 다른 약으로는 고쳐지지 못하므로 술에 약을 타든지 술을 종기에 바르는 것은 모두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52) 물속에서 장난하지 말라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열일곱 무리 비구가 아기라바제(阿耆羅婆提)강에서 장난을 하되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고, 물을 따라 흐르기도 하고, 물을 거스르기도 하고, 여기에서 숨어서 저기에서 솟기도 하고, 손으로 물을 긋기도 하고, 서로 물을 끼얹기도 하였다. 그때에 바사닉왕(波斯匿王)이 말리(末利) 부인과 함께 다락 위에서 구경하다가 멀리서 열일곱 무리 비구들이 이 강에서 장난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고, 순하거나 거스르기도 하고, 여기에서 숨어서 저기에서 솟기도 하고, 손으로 물을 긋기도 하고, 서로 물을 끼얹기도 하였다. 그는 이것을 보고 곧 말리 부인에게 말했다. “그대가 섬기는 사람들을 보시오.” 말리 부인이 대답했다. “이 비구들은 나이가 어리거나 처음 출가하여 불법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거나, 혹시 장로라면 어리석어서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리다.” 그때에 말리 부인이 급히 다락을 내려가서 나능가(那陵迦) 바라문에게 말했다. “너는 내 이름을 가지고 기수급고독원에 가서 부처님께 문안드리되 ‘걸으시기에 강녕하시며, 교화하시기에 피로하시지나 않으십니까?’ 하고, 이 한 덩어리의 엿을 부처님께 바친 뒤에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아뢰어라.” 그때에 바라문이 곧 부인의 분부를 받고 부처님께 가서 문안드린 뒤에 한쪽에 앉아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말리 부인이 짐짓 저를 시켜 부처님께 문안드리되 ‘걸으시기에 강녕하시며, 앉고 누우심에 거뜬하시며 교화하시기에 피로하시지 않으십니까?’ 하고, 이 한 덩어리의 엿을 받들어 올린 뒤에 이러이러한 사실을 자세히 아뢰라 하였습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무수한 방편으로 열일곱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들이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열일곱 무리 비구들아, 너희들은 어찌하여 아기바데강에서 장난하되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고, 물을 순했다 거슬렀다 하고, 여기에서 숨어서 저기에 솟고 손으로 물을 긋고, 서로 물을 끼얹었느냐?” 그때에 부처님께서 열일곱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신 뒤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물에서 장난을 하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장난이라 함은 제 마음대로 방자하게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거나 물을 거스르고 순하거나 여기에서 숨어서 저기로 솟거나 손으로 물을 긋거나 서로 물을 끼얹거나, 내지 발우에 물을 담아서 희롱하는 것이니, 모두가 바일제이니라. 물을 제외하고 소락ㆍ장물ㆍ맑은 소락ㆍ맑은 장물ㆍ쓴 술ㆍ보리 즙 같은 것을 그릇에 담고 희롱하면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길을 가다가 물을 건너게 되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거나 물에서 재목ㆍ대ㆍ뗏목을 끌게 되어 물을 순하고 거스르거나, 돌과 모래를 캐기 위해서나 물건을 잃어버렸는데 물속에 잠겼으므로 여기에서 숨어서 저기에 솟거나 헤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물에 떠서 팔을 치다가 물을 긋거나 물을 뿌리는 것은 모두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53) 간지럽히지 말라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여섯 무리 비구 중의 한 사람이 열일곱 무리 비구 중의 한 사람을 간지럽혀서 죽게 하였다. 비구들이 이 말을 들었는데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여섯 무리 비구들을 비난하였다. “어찌하여 열일곱 무리 비구 중의 한 사람을 간지럽혀서 죽게 하였는가?” 그때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들이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섯 무리 비구들아, 너희들은 어찌하여 열일곱 무리 비구 중에 한 비구를 간지럽혀서 죽게 하였느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손가락으로 서로 간질이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손가락이라 함은 손에 열이 있고 발에 열이 있는 것이니, 비구가 손가락이나 발가락으로 간질이면 모두가 바일제이니라.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제하고, 지팡이나 문 열쇠나 불자의 자루나 그 밖에 다른 물건으로 간질이면 모두가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짐짓 간질이지 않거나 조는 이를 흔들어 깨우거나 출입하는 곁에나 땅을 쓸다가 잘못 건드리거나 잘못하여 지팡이 끝으로 건드린 것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54) 충고하는 말을 거역하지 말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비 나라의 구사라 동산에 계셨다. 그때에 천타 비구가 계를 범하려 하니, 비구들이 충고하였다. “그대는 그러한 뜻을 일으키지 마시오. 그렇게 하지 마시오.” 천타 비구가 듣지 않고 끝내 계를 범하니, 여러 비구들이 이에 대해 들었다.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천타 비구를 비난하였다. “어찌하여 천타 비구는 계를 범하려 할 때에 비구들이 충고하는 것을 듣지 않고 끝내 범하였는가?” 그때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천타를 꾸짖으셨다. “네가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천타야, 너는 어찌하여 여러 비구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끝내 범하였느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천타 비구를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나 충고하는 말을 거역하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충고하는 말을 거역한다 함은 다른 이가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막되 ‘이것을 하지 마시오. 그렇게 하지 마시오’ 하는 것이니, 고의로 근본을 범하여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돌길라이며, 자기가 한 일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고의로 근본을 범하여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바일제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모두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무지한 사람이 와서 충고하거든 대답하되 ‘그대는 그대의 스승이나 화상에게 묻고 배우고 경을 외워서 충고하는 법을 안 뒤에야 충고하여라. 충고하면 받아들이겠다’ 하거나 희롱하고 웃으면서 말하거나 혼자서 말하거나 꿈속에 말하거나 이것을 말하려다가 잘못하여 저것을 말하면 모두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55) 남을 놀라게 하지 말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 파라리비(波羅梨毘) 나라에 계셨다. 그때에 존자 나가바라(那迦波羅) 비구가 항상 부처님의 좌우에서 모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였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비옷[雨行]을 가져오너라. 나는 거니는 곳에 가서 거닐려 한다.” 그는 곧 분부대로 비옷을 가져다 부처님께 바치니, 부처님께서 비옷을 받으시고 거니는 곳에 가셔서 거니셨다. 그때에 제석천왕이 황금의 거니는 집[經行堂]을 변화로 만들어 놓고 부처님 앞에서 합장하고 말씀드렸다. “우리 부처님이시여, 거니소서. 우리 선서(善逝)시여, 거니십시오. 부처님의 항상한 법에 거니실 때에는 공양하는 사람이 거니시는 길머리에 서 계셨습니다.” 그때에 나가바라 비구가 거니시는 길머리에 섰다가 초저녁이 지난 것을 알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초저녁이 지났으니 돌아가셔서 방으로 드시옵소서.” 그때에 부처님께서 잠자코 계시니, 나가바라는 밤중과 새벽녘이 지나 새벽 광명이 솟아 새들이 잠을 깨고 날이 밝으려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초저녁과 밤중과 새벽녘이 지나서 새벽 광명이 솟아 새들이 잠을 깨고 날이 밝으려 하오니, 세존이시여, 돌아가셔서 방으로 드십시오.” 그때에 부처님께서 또 잠자코 계시니, 나가바라는 생각하였다. ‘나는 차라리 부처님을 놀라게 하여서 방에 드시게 하리라.’ 그때에 나가바라가 구집(拘執)을 뒤집어쓰고 부처님께 와서 귀신의 흉내를 내어 말했다. “사문아, 나는 귀신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도 악하리라.” 제석천왕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중에도 이와 같은 사람이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중에도 이와 같은 사람이 있느니라.” 다시 제석천왕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일생 동안에 청정한 법을 얻으리라.” 그때에 제석천왕이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성인께서 혼자 걷되 방일치 않아 헐뜯고 칭찬함에도 동요치 않으시고 사자 영각 듣고서도 놀라지 않네. 풀밭에 바람이 지남과 같이 걸림 없이 온갖 중생 인도하시고 하늘과 인간들을 결정하시네.
그때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제석은 날더러 두려운 까닭에 그런 말을 한다고 여기고 있나.
그때에 제석천왕이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곧 몸을 감추고 떠났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밤이 지나 새벽이 되어 비구들을 모으시고 이 사실을 자세히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 나가바라는 나를 놀라게 하려 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나가바라를 꾸짖으신 뒤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를 놀라게 하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놀라게 한다 함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으로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빛으로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인가? 코끼리ㆍ말ㆍ귀신ㆍ새 같은 형상을 짓는 것이니, 이와 같은 형상으로 사람을 두렵게 하여 그가 보도록 하면 놀랐거나 놀라지 않았거나 바일제이며, 이러한 형상으로 사람을 두렵게 하여 앞에 사람이 그것을 보지 못했으면 돌길라이니라. 어떤 것이 소리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인가? 소라북ㆍ바라ㆍ코끼리ㆍ말ㆍ낙타 따위의 울음 소리니 이와 같은 소리로써 사람을 놀라게 하면 그 사람이 놀라거나 놀라지 않거나 바일제이며, 이러한 소리로써 사람을 두렵게 하였으나 그가 듣지 못했으면 돌길라이니라. 어떤 것이 냄새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인가? 뿌리의 냄새, 살라(薩羅) 나무의 냄새, 나무 진의 냄새, 껍질의 냄새, 살의 냄새, 잎의 냄새, 꽃의 냄새, 열매의 냄새와 혹은 좋은 냄새, 구린내 같은 것을 짓는 것이니, 이러한 냄새로써 사람을 두렵게 하여 그 사람이 그 냄새를 맡으면 놀라거나 놀라지 않거나 바일제이며, 이러한 냄새로써 사람을 놀라게 하였으나 앞에 사람이 맡지 않으면 돌길라이니라. 어떤 것이 맛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인가? 시고, 달고, 쓰고, 떫고, 짠 맛과 가사(袈裟) 맛 같은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니, 이러한 맛으로써 사람을 두렵게 하여 그 사람이 맛을 보면 놀라거나 놀라지 않거나 바일제요, 그가 맛보지 않으면 돌길라이니라. 어떤 것이 닿임으로써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인가? 뜨거움ㆍ차가움ㆍ가벼움ㆍ무거움ㆍ가늘음ㆍ거칠음ㆍ미끄러움ㆍ껄끄러움ㆍ보드라움ㆍ굳음 등을 닿게 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닿임으로 사람을 두렵게 하여 그에게 닿게 하면 놀라거나 놀라지 않거나 바일제이며, 이러한 닿임으로써 사람을 두렵게 하되 그 사람에게 닿이지 않으면 돌길라이니라. 어떤 것이 법으로써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인가? 앞의 사람에게 말하되 ‘나는 이러이러한 징조 꿈을 보았는데 그대가 죽거나 의발을 잃거나 도에서 물러나리라. 혹은 그대의 스승이나 화상이나 아사리가 죽거나 의발을 잃거나 도에서 물러나리라. 혹은 부모가 큰 병을 얻거나 죽으리라’ 하는 것이니, 이러한 법으로써 사람을 두렵게 하여 그가 알면 놀라거나 놀라지 않거나 바일제이며, 이러한 법으로써 남을 놀라게 하여 그가 알지 못하면 돌길라이니라. 만일 비구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으로써 사람을 두렵게 하되 분명하게 말하면 바일제요. 분명하지 않게 말하면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등불이 없어 어두운 곳이나 변소에 앉은 것을 멀리 보고 생각하되 ‘그것이 코끼리ㆍ도적ㆍ나쁜 짐승이다’ 하여 스스로가 놀랐거나, 혹은 어두워서 등불이 없는 곳이나 변소에 갔다가 다니는 소리, 초목이 부딛는 소리, 기침 소리, 재치기 소리 같은 것을 듣고 두려워하거나, 혹 빛을 사람에게 보여 놀라게 하려는 뜻이 없거나 혹은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거나 그러한 징조를 보았거나 꿈에 본 일에 그가 죽거나 도에서 물러나거나 의발을 잃거나, 그의 화상ㆍ스승이 죽거나 도에서 물러나거나 의발을 잃거나 그의 부모가 큰 병에 걸렸거나 죽게 되었을 때에 그에게 말하되 ‘나는 그대의 이러이러한 변괴의 모양을 보았소’ 하거나, 혹은 희롱하고 웃으면서 말하거나 빨리빨리 말하거나 혼자서 말하거나 꿈속에 말하거나 이것을 말하려다가 잘못하여 저것을 말한 것은 모두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56) 반드시 보름 만에 목욕하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열성의 가란타 대숲 동산에 계셨는데 그 안에는 못 물이 있었다. 그때에 마갈 나라의 병사왕(洴沙王)이 여러 비구들에게 항상 못에서 목욕하도록 허락하니, 여섯 무리 비구들이 새벽녘에 아직 먼동이 트기 전부터 못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였다. 그때에 병사왕이 새벽녘에 아직 먼동이 트기 전에 궁녀들을 거느리고 못에 가서 목욕을 하려 하다가 여섯 무리 비구들이 씻는 소리를 듣고 좌우에 물었다. “여기서 누가 목욕을 하느냐?” “비구들이옵니다.” 왕이 분부하였다. “큰 소리를 내지 말라. 비구들이 목욕을 다 하지 못하고 가면 안 된다.” 그 여섯 무리 비구들이 갖가지 가루약으로 번갈아 씻으면서 날이 밝기에 이르니, 병사왕은 끝내 목욕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여러 대신들은 모두가 비방하여 수군거렸다. “이 사문 석자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겉으로는 내가 바른 법을 안다고 자칭하지만, 이렇거늘 어떻게 바른 법이 있으랴? 새벽녘부터 떼를 지어 못에 들어가서 갖가지 약으로 번갈아 씻다가 날이 밝기에 이르러서 왕으로 하여금 끝내 목욕을 하시지 못하고 돌아가게 하였는가?” 그때에 여러 비구들이 그에 대해 들었다.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여섯 무리 비구들을 비난하였다. “어찌하여 새벽녘에 못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면서 갖가지 가루약으로 번갈아 씻다가 날 밝기에 이르러서 왕이 목욕을 못하게 하였는가?” 그때에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들이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새벽녘에 못에 들어가서 갖가지 가루약으로 번갈아 목욕하다가 날이 밝기에 이르러서 왕이 목욕을 하지 못하고 가게 하였느냐?”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보름 만에 목욕할 것을 어기면 바일제이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계를 제정해 주었다. 그때에 비구들이 더운 날에 몸이 부풀고 땀이 나고 때가 묻어나서 냄새가 났으나 두려워서 감히 목욕을 하지 못했으니 보름 만에 목욕하는 법을 어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에게 더운 때에는 자주 자주 목욕하기를 허락하노니, 지금부터는 이와 같이 계를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보름 만에 목욕할 것을 어기면 특수한 때를 제외하고는 바일제이니, 특수한 때라 함은 더운 때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신 뒤에 비구들 가운데 병든 이는 몸이 부풀고 땀이 나고 냄새가 나거나, 혹 대변과 소변을 싸거나 토하여서 더러워도 두려워서 감히 씻지 못했으니, 보름 만에 목욕하는 법을 어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병들은 비구들은 자주 자주 씻도록 허락하노니, 지금부터는 이와 같이 계를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보름 만에 목욕할 것을 어기면 특수한 때를 제외하고는 바일제이니, 특수한 때라 함은 더운 때와 병든 때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신 뒤에 비구들이 일을 하다가 몸이 더러워서 냄새가 났으나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기어 감히 씻지 못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에게 일할 때에는 자주 자주 씻기를 허락하노니, 지금부터는 이와 같이 계를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보름 만에 목욕할 것을 어기면 특수한 때를 제외하고는 바일제이니, 특수한 때라 함은 더운 때와 병든 때와 일할 때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신 뒤에 비구들이 비바람 속을 다니다가 몸이 부풀고 땀이 나고 티끌이 끼어 더러워도 조심스러워서 감히 씻지 못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에게 바람 불고 비가 올 때에는 자주 자주 씻도록 허락하노니, 지금부터는 이와 같이 계를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보름 만에 목욕하는 것을 어기면 특수한 때를 제외하고는 바일제이니, 특수한 때라 함은 병든 때와 일할 때와 바람이 불 때와 비가 올 때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계를 제정해 주신 뒤에 비구들이 길을 가다가 몸에 열이 나서 부풀고 땀이 나서 더러웠으나 조심스러워서 감히 씻지 못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에게 길을 갈 때에는 자주 자주 씻도록 허락하노니, 지금부터는 이와 같이 계를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보름 만에 하는 목욕을 병이 없거든 받아들여 어기지 말아야 하거늘 특수한 때를 제외하고 어기면 바일제이니, 특수한 때라 함은 더운 때와 병든 때와 일할 때와 바람 불고 비 올 때와 길을 갈 때이니, 이것이 특수한 때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더운 때라 함은 봄의 45일과 여름의 처음 한 달이니, 이것이 더운 때이며, 병들었다 함은 최하로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이니, 이것이 병든 것이요, 일 한다 함은 최하로 집 앞의 땅을 쓰는 것이오. 바람 불고 비 오는 때라 함은 최하로 한 돌개바람이니 한 방울 물이 몸에 닿는 것이며, 길을 간다 함은 최하로 반 유순을 왕래하는 것이니라. 만일 비구가 보름 만에 목욕할 것을 특수한 때를 제외하고 한 번만 물을 끼얹어도 바일제이며, 몸의 반만을 씻어도 바일제이며, 방편과 장엄으로 씻으려 하다가 씻으러 가지 않으면 모두가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목욕하거나 더운 때, 병든 때, 일할 때, 바람 불 때, 비 올 때, 길을 갈 때에 자주 자주 씻거나 힘 센 이에게 끌려서 강제로 씻기우면 범하지 않은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57) 한데[露地]에다 불을 놓지 말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 광야성에 계셨다. 그때에 여섯 무리 비구들이 수군거렸다. “우리는 상좌의 앞에서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은 곧 밖으로 나가 한데에다 풀 검불과 썩은 나무그루 같은 것을 모아다 놓고 불을 붙인 뒤에 쪼이고 있었다. 그때에 썩은 나무 구멍 속에 독사가 한 마리 있었는데 더운 기운이 제 몸으로 닥친 까닭에 나무 구멍으로 뛰쳐나오니, 비구들이 보고 모두가 놀랐다. “독사다, 독사야.” 그들이 불붙은 장작 쪽을 동서로 어지러이 던지니, 불이 옮아서 부처님의 강당을 태우게 되었다. 여러 비구들이 그에 대해 들었다.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여섯 무리 비구들을 비난하였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서로 수군거리되 ‘우리들이 상좌의 앞에서는 마음대로 말할 수 없다’ 하고, 밖으로 나가서 초목과 큰 나무 포기를 주어다가 한데다 놓고 불을 지른 뒤에 쪼이었으며, 빈 나무 구멍 속에서 독사가 나오니, 놀라서 타던 나무 가지를 동서로 어지러이 던지고 가서 불이 옮아 부처님의 강당을 태우게 하였는가?” 그때에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들이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섯 무리 비구들아, 너희들은 어찌하여 서로서로 공론하되 ‘우리들이 상좌의 앞에서는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없다’ 하고 밖으로 나가서 초목과 큰 나무를 주어다가 한데에다 놓고 거기에 불을 지른 뒤에 쬐었으며, 빈 나무 구멍에서 독사가 나오니, 놀라서 타던 나무를 사방으로 던져 불이 옮아서 여래의 강당을 태웠느냐?”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신 뒤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자신이 쬐기 위해 한데에다 자기가 불을 놓거나 남을 시켜 불을 놓으면 바일제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셨는데 병든 비구들이 조심스러워서 자기가 불을 놓지도 못하고 남을 시켜서 불을 놓게 하지도 못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병든 비구들은 한데서 불을 피우거나 남을 시켜 불을 피우도록 허락하노니, 지금부터는 이와 같이 계를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병이 없으면서도 자기가 한데에다 불을 피우거나 남을 시켜 불을 피우게 하면 또한 그것은 바일제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셨다. 그때에 비구들이 병든 비구들을 위해서 죽을 쑤고 국과 밥을 끓이거나 온실에서나 부엌에서나 욕실에서나 발우에 연기를 쏘이거나 옷에 물을 들이거나 등불을 켜거나 향을 피워야 하겠지만, 모두가 조심스러워서 감히 하지 못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일들은 하도록 허락하노니, 지금부터는 이와 같이 계를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병이 없으면서도 자기가 쬐기 위해 한데에다 불을 피우거나 남을 시켜 피우면 특수한 때의 인연을 제외하고는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병들었다 함은 불에 몸을 쬐어야 하는 사람이니라. 만일 비구가 병이 없으면서도 자기가 쪼이기 위해 한데에다 불을 피우되 초목의 가지나 잎과 모시ㆍ삼ㆍ추마ㆍ쇠똥ㆍ겨ㆍ쓰레기ㆍ보릿겨 같은 온갖 것을 태우면 바일제이며, 불을 초목의 가지나 잎과 삼ㆍ모시ㆍ쇠똥ㆍ겨ㆍ쓰레기ㆍ보릿겨 같은 것에다 놓아서 태우면 모두가 바일제이니라. 만일 불에 타다가 반만 거스른 것을 불에다 던지면 돌길라이며, 숯을 피우면 돌길라이며, 앞 사람에게 ‘그대가 이것을 살피라. 이것을 맡아라’ 하지 않으면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앞의 사람에게 ‘이것을 살피라. 맡으라’ 하거나, 병든 이가 손수 피우거나 사람을 시켜 피우거나 어떤 때에 인연이 있어서 병든 사람을 간호하거나 병든 사람을 위해서 미음ㆍ죽ㆍ국ㆍ밥을 짓거나 부엌에 있거나 온실에 있거나 욕실에 있거나 발우에 연기를 쪼이거나 옷을 삶거나 물들이거나 등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는 것은 모두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58) 남의 의발을 감추지 말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어떤 거사가 여러 스님들에게 다음 날 아침에 공양을 받으시라고 청했다. 그날 밤에 갖가지 맛나고 좋은 음식을 장만하고 이튿날 아침에 절에 가서 공양 때가 되었음을 말씀드렸다. 그때에 열일곱 무리 비구들이 의발과 방석과 바늘통을 한쪽에다 놓고 거닐면서 빨리 밥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여섯 무리 비구들은 저들이 거닐다가 돌아서는 때를 틈타서 저들의 의발ㆍ방석ㆍ바늘통을 가져다 감추었다. 저들이 밥 때가 되었다고 아뢰는 말을 듣고 살피면서, “우리들의 의발과 방석과 바늘통이 여기에 있었는데 누가 가져갔을까?” 하였다. 다른 비구들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소.” “우리들은 여기에서 의발과 방석과 바늘통을 한쪽에 놓고 거닐면서 밥 때가 오기를 기다렸소.” 여섯 무리 비구들이 앞에서 조롱하니, 다른 비구들이 살피다가 여섯 무리 비구들이 조롱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의발을 감추었음을 알았다. 여러 비구들이 그에 대해 들었다.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여섯 무리 비구들을 비난하였다. “어찌하여 그대들은 열일곱 무리 비구들의 의발과 바늘통을 감추었는가?” 그때에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들이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섯 무리 비구들아, 너희들은 어찌하여 열일곱 무리 비구들이 거닐다가 돌아서는 틈을 타서 그들의 의발ㆍ방석ㆍ바늘통 같은 것을 몰래 가져다 감추었느냐?”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들의 의발이나 방석ㆍ바늘통 같은 것을 감추되 자기가 감추거나 남을 시켜 감추고 최하로 희롱하여 웃기만 하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그 비구가 다른 비구의 의발이나 방석ㆍ바늘통 같은 것을 감추되 자기가 감추거나 남을 시켜 감추고 최하로 희롱하여 웃기만 하여도 바일제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참으로 그 사람ㆍ물건 형상을 알아 자세히 확인한 뒤에 가지거나, 한데에서 바람에 날리고 잠긴 것을 가지거나 그 물건의 주인이 본래 간수하기를 게을리 하여 그의 의발ㆍ방석ㆍ바늘통 같은 것이 어지러이 흩어졌으므로 그것을 경계해 주기 위해서 주워다가 감추거나 저의 옷을 빌려 입었는데 그가 다시 거두지 않으므로 잃을까 두려울 때에 가져다 감추거나 혹은 이 의발과 다른 물건 때문에 목숨과 범행을 지니는데 어려움이 있을 때에 가져다 감추면 모두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59) 진실로 깨끗하게 주었던 옷을 말없이 가져다 입지 말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여섯 무리 비구들이 친한 비구들에게 진실로 옷을 주었다가 뒤에 그 주인에게 말도 없이 도로 갖다 입었다. 여러 비구들이 그에 대해 들었다.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여섯 무리 비구들을 비난하였다. “어찌하여 그대들은 먼저 친한 비구에게 옷을 주었다가 뒤에 그 주인에게 말도 없이 도로 갖다가 입었는가?” 그때에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들이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섯 무리 비구들아, 너희들은 어찌하여 먼저 친한 비구에게 옷을 주었다가 뒤에 그 주인에게 말도 없이 다시 가져다 입었느냐?”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신 뒤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비구나 비구니나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에게 옷을 주었다가 뒤에 그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도로 가져다 입으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옷이라 함은 열 가지가 있으니 위와 같고, 옷을 준다 함은 깨끗이 옷을 보시하는 것이니라. 옷을 보시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진실로 깨끗하게 보시하는 것과 차츰차츰 깨끗하게 보시하는 것이니라. 진실로 깨끗하게 보시한다 함은 ‘이것은 나의 남는 옷이어서 깨끗하지 못한데 이제 깨끗하기 위하여 장로에게 줍니다. 진실하게 깨끗함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하는 것이며, 차츰차츰 깨끗하게 보시한다 함은 ‘이것은 나의 남는 옷이어서 깨끗하지 못한데 이제 깨끗하기 위하여 장로에게 줍니다’ 하거든 그는 반드시 ‘장로여, 들으시오. 장로께서 이와 같이 남는 옷을 가져 깨끗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나에게 준 까닭은 깨끗하기 위함 때문이니, 나는 받습니다’ 하여라. 받은 뒤에 그에게 묻되 ‘누구에게 주겠소?’ 하거든 ‘아무에게 주겠소’ 할 것이며, 그는 반드시 ‘장로께서 이와 같이 남는 옷을 가져서 깨끗지 못하였는데 이제 나에게 주시니, 깨끗하기 위하여 나는 받았고, 받은 뒤에는 다시 아무에게 주었으니, 이 옷은 아무의 것이오. 그대는 아무를 위해서 수호해 가지고 마음대로 사용하시오’ 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진실로 깨끗이 보시한 것은 반드시 주인에게 물은 뒤에 가져다 입을 것이며, 차츰차츰 깨끗이 보시한 것은 말하거나 말하지 않거나 마음대로 가져다 입을 것이니라. 만일 비구가 진실로 깨끗하게 보시한 옷을 그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가져다 입으면 바일제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진실로 깨끗이 보시한 것을 주인에게 말하고 가져다 입거나, 차츰차츰 깨끗이 보시한 것을 말하거나 말하지 않고 가져다 입는 것이니, 모두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60) 물들이지 않은 새 옷을 입지 말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여섯 무리 비구들이 흰 옷을 입고 다니니, 거사들이 보고 모두가 비난하였다. “이 사문 석자들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만족함이 없이 받는다. 겉으로는 내가 바른 법을 닦는다고 하지만, 지금 보건대 어떤 바른 법이 있겠는가? 어찌하여 흰 새 옷을 입고 다녀 마치 국왕 대신과 같이 하는가?” 여러 비구들이 그에 대해 들었다.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여섯 무리 비구들을 비난하였다. “어찌하여 그대들은 흰 새 옷을 입고 다니는가?” 그때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들이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여섯 무리 비구들아, 너희들은 어찌하여 흰 옷을 입고 다녔느냐?”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새 옷을 얻으면 세 가지 빛을 섞어서 빛을 부수되[壞色] 낱낱 빛을 마음대로 부술지니, 푸른빛ㆍ검은빛ㆍ목란(木蘭) 빛이니라. 만일 비구가 세 가지 빛, 즉 푸른빛ㆍ검은빛ㆍ목란 빛을 섞어서 빛을 부수지 않고 다른 새 옷을 입으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새것이라 함은 새로 만든 옷이나 처음으로 남에게 받은 것이니, 그것은 모두가 새 옷이니라. 옷이라 함은 열 가지가 있으니, 위에서 말한 것과 같고, 빛을 부순다 함은 물을 들여서 푸른빛ㆍ검은빛ㆍ목란 빛으로 물들이지 않고, 다시 다른 새 옷을 입으면 바일제이니라. 만일 무거운 겨울옷이 있는데 깨끗이 하지 않고 두면 돌길라이며, 가벼운 옷이 있는데 깨끗이 하지 않고 두면 돌길라이며, 옷 아닌 것, 즉 발우 주머니ㆍ신발 주머니ㆍ바늘이나 수건 주머니ㆍ선대ㆍ허리 띠ㆍ모자ㆍ버선ㆍ땀 씻는 수건ㆍ신을 싸는 수건을 깨끗이 하지 않고 두면 돌길라이며, 물들이지 않은 옷을 속인의 집에 맡겨 두면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흰 옷을 얻으면 물들여서 세 가지 빛, 즉 푸른빛ㆍ검은빛ㆍ목란 빛으로 만들거나 무거운 옷을 깨끗이 하여 두거나 가벼운 옷도 깨끗이 하여 두거나 옷 아닌 것, 즉 발우 주머니와 내지 신발 싸는 보자기를 모두 깨끗이 하여 두거나 물들인 옷을 속인의 집에다 맡겨 두거나 옷에 물이 빠져서 다시 물들이는 것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61) 고의로 축생들의 목숨을 빼앗지 말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존자 가류타이가 새를 보기 싫어하여 활을 만들어 쏘고 또 쏘아서 새를 많이 죽이니, 절 안에 큰 주검의 무더기를 이루었다. 그때에 거사들이 절에 와서 예배하다가 이 새 주검의 큰 무더기를 보고 모두가 비방하면서 수군거렸다. “사문 석자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비한 마음도 없이 중생의 목숨을 빼앗는다. 겉으로는 내가 바른 법을 닦는다고 자칭하지만, 지금 보기에는 어찌 바른 법이 있겠는가? 뭇 새들을 쏘아 죽여서 큰 노적을 이루다니.” 그때에 여러 비구들이 그에 대해 들었다.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가류타이를 비난하였다. “어찌하여 새들을 쏘아 죽여서 큰 노적을 이루었는가?” 그때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아시면서도 짐짓 가류타이에게 물으셨다. “너는 참으로 새들을 보기 싫어하여 대 활로 쏘아 죽여 끝내 큰 노적을 이루었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가류타이를 꾸짖으셨다. “네가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가류타이야, 너는 어찌하여 뭇 새들을 쏘아 죽여서 큰 노적을 이루었느냐?” 이와 같이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축생의 목숨을 끊으면 바일제이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와 같이 계를 말씀해 주신 뒤에 비구들이 앉고 서고 다닐 적에 미세한 벌레를 많이 죽이게 되어 그 중에는 바일제의 참회를 하는 이도 있고, 혹은 두려워하는 이도 있었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이 사실을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알지 못하고 죽이는 것은 범하지 않는 것이니 지금부터는 이와 같이 계를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고의로 축생의 목숨을 끊으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축생이라 함은 변화하지 못하는 것이며, 그의 목숨을 끊는다 함은 자기가 끊거나 사람을 시켜 죽이거나 심부름꾼을 보내거나, 심부름꾼이 가고 오면서 죽이거나 심부름꾼을 거듭 보내서 죽이거나, 자기가 심부름꾼을 구하거나 사람을 시켜 심부름꾼을 구하거나, 자기가 칼 가진 사람을 구하거나 사람을 시켜 칼 가진 사람을 구하거나, 몸의 형상과 입으로 말하거나 몸과 입으로 하거나 심부름꾼을 보내서 시키거나 글을 보내서 시키거나, 함정을 파 놓아 죽이거나 항상 의지하는 곳에 칼을 놓아 두거나, 독약이나 죽이는 기구를 앞에 놓아 두거나, 이와 같은 방편을 하거나, 그 밖에 다른 방법으로 축생을 죽이려 하여 죽이면 바일제이며, 방편으로 죽이려 하다가 죽이지 않으면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돌길라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고의로 죽이지 않거나 기왓장ㆍ돌ㆍ지팡이를 딴 곳에 던졌는데 잘못 죽였거나, 비구가 집을 짓다가 기와나 돌을 놓쳐서 잘못하여 죽였거나, 흙벽돌ㆍ재목ㆍ기둥ㆍ도리ㆍ들보ㆍ서까래 같은 것을 손으로 잡았다가 놓쳐서 죽였거나 병든 이를 일으키다가 죽였거나, 돌려 뉘다가 죽였거나 목욕을 시키다가 죽였거나 약을 먹이다가 죽였거나 방에서 나오다가 죽였거나 낮에 앉혔다가 죽였거나 그늘에 있다가 죽였거나,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해치려는 마음이 없었는데 죽으면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62) 벌레 있는 물을 마시지 말라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여섯 무리 비구들이 벌레가 섞인 물을 떠다 마시니, 거사들이 보고 모두가 비난하였다. “저 사문 석자들은 인자한 마음이 없이 벌레의 목숨을 해친다. 겉으로는 내가 바른 법을 닦는다고 하지만, 이렇거늘 어찌 바른 법이 있겠는가? 벌레가 섞인 물을 떠다 먹다니.” 그때에 여러 비구들이 그에 대해 들었다. 그 중에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고 두타행을 하고 계율 배우기를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여섯 무리 비구들을 비난하였다. “어찌하여 그대들은 인자한 마음이 없이 벌레가 있는 물을 마셔서 그 목숨을 죽였는가?” 그때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를 숙여 발 앞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서 이 사실을 자세히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비구들을 모으시고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셨다. “너희들이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법이 아니며, 청정한 행이 아니며,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벌레가 섞인 물을 마셔 그 목숨을 해쳤느냐?” 그때에 부처님께서 무수한 방편으로 여섯 무리 비구들을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가지 유루의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내지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벌레가 섞인 물을 마시면 바일제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신 뒤였다. 그때에 비구들이 벌레가 있고 없음을 알지 못하다가 뒤에야 알고서 바일제의 참회를 하는 이도 있고 두려워하는 이도 있어서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알지 못한 것은 범하지 않는 것이니, 지금부터는 이와 같이 계를 말하여라. ‘어떤 비구가 벌레 있는 물임을 알면서도 마시면 바일제이니라.’ 비구의 정의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니라. 그 비구가 벌레 섞인 물임을 알면서도 마시면 바일제이며, 물을 제외하고 벌레가 섞인 장ㆍ술ㆍ청락ㆍ청장ㆍ맑은 보리즙을 마시면 바일제이니라. 벌레가 있는 물을 벌레가 있다고 생각하면 바일제이며, 벌레 있는 것을 의심하면 돌길라이며, 벌레 없는 물을 벌레 있는 물이라고 생각하면 돌길라이며, 벌레 없는 물을 의심하면 돌길라이니라. 비구니는 바일제이며, 식차마나와 사미ㆍ사미니는 돌길라이니, 이것들은 범하는 것이니라. 범하지 않는다 함은 벌레가 있고 없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굵은 벌레가 있거든 물을 건드려서 가게 하거나 물을 걸러서 마시면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범하지 않는다 함은 맨 처음으로 계를 제정하기 전이거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이니라.”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otoya_Hokkei-eighteen-old-addages-taking-gifts-to-the-temple
Artist: Totoya_Hokkei
Totoya Hokkei ( 魚屋 北 渓 , 1780-1850) 는 우키요에 (Yukyo-e style ) 로 가장 잘 알려진 일본인 예술가이다 . 호 케이 사 (Hokkei)는 호쿠사이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학생 중 한 사람으로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에서 일했으며 지문, 책 삽화 및 그림에서 많은 양의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또한 Aoigazono ( 葵 園 ), Aoigaoka ( 葵 岡 ) 및 Kyōsai ( 拱斎 ) 라는 예술 이름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Hokkei Title : eighteen-old-addages-taking-gifts-to-the-temple Info
English: Yakushi-ji's West Pagoda in Nara, Nara prefecture, Japan. Yakushi-ji was registered as part of the UNESCO World Heritage Site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Nara".
日本語: 薬師寺 西塔, 奈良県奈良市。薬師寺はユネスコ世界遺産「古都奈良の文化財」の一部。
Camera: Sony NEX-5
Lens: Sony SEL1855
Date 25 September 2010
Source Own work
Author 663highland
Permission
(Reusing this file)
GFDL+creative commons2.5
Camera location 34° 40′ 06.08″ N, 135° 47′ 03.52″ E Kartographer map based on OpenStreetMap. View this and other nearby images on: OpenStreetMap - Google Earth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수국사(서울)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무유정법과 인과이론이란 제목으로 인과에 대해서 살핀다. 그런데 인과론은 의외로 살필 논점이 많다. 한번에 이것을 다 적으려면 지치게 된다. 또 과거에도 이런 내용을 산만하게 적은 적도 있다. 그래서 일부 내용은 중복된다. 그래서 이것을 조금씩 나누어서 연재물로 써나가기로 했다. 과거에 신문에 연재소설란이 있었다. 신문을 보면서 거의 보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또 한 두번씩 읽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형태로 조금씩 생각날 때마다 이어 쓰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현실에서 자신이 어떤 바람직하고 좋은 상태로 되기를 원한다. 더불어 세상도 그런 좋은 상태가 되기를 원한다. 삶이란 그런 노력이다. 수행자도 마찬가지다.
수행자가 중생제도를 잘 하려면 우선 자신부터 복덕과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변화해가야 한다.
자신부터 현실에서 구호가 필요한 상태에 처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이런 가정을 해보자. 자신부터 전염성이 강한 <나> 병에 걸려 있다고 하자. 세상사람들은 망집에 바탕해 매번 나만 강조하면서 자신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자신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불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나> 병이다. 거의 대부분 욕계 중생이 이런 <나> 병에 걸려 있다. 그래서 생사현실 곳곳에서 다른 이들과 시시비비를 일삼고 갈등을 일으킨다. 그 극단에는 전쟁이 있다. 이 <나>병의 전염성이 대단히 강하다. 거의 대부분 세계 중생이 이 <나>병에 걸려 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생계도 잘 해결하지 못하고 가난에 찌들어 있다. 절대적으로 생계자체가 곤란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 대부분 가난은 상대적 빈곤 문제다. 즉 남과 비교하여 자신이 덜 풍요롭게 살고 무한한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 아귀처럼 갈증을 일으키면서 현실에서 허덕이는 증세다. 그런데 이 상대적 빈곤이 일으키는 부작용이 대단히 강하다.
또 그런 가운데 자신이 번뇌에 묶여서 자유롭지 않고 매 순간 번뇌의 부림을 받으면서 종처럼 묶여 사역당한다.
노예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주인이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매를 맞거나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그런 고통을 당하지는 않게 된다. 그래서 그런 구조로 매순간 묶여서 무언가를 억지로 행하는 상태가 노예의 상태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비록 신분은 자유롭지만, 그 실질은 대부분 이와 같다. 자신이 무언가를 원해서 자유롭게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그 주체의 마음에 들어간 내용 자체가 자신의 내용이 아니다. 대부분 욕계내 마 파순이 넣어준 내용들로서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다. 그래서 이런 번뇌에 묶여서 스스로 사역을 당하고 또 다른 생명을 그처럼 묶어 사역시켜 나간다. 이렇게 행하면 결국 마파순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 된다.
현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잘 성취한다고 하자. 그래서 자신은 노예가 아니고 자유롭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이 상태가 바로 마파순과 번뇌에 묶여 사역을 당하는 상태다. 그래서 이를 타승이라고도 표현한다. 자신이 계를 지키지 않고 원하는대로 행하는 것은 결국 마파순을 즐겁게 해준다. 그리고 마파순이 이기게 되는 상태라는 뜻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성취하는 것이 왜 자신의 성취가 아니고 마파순의 성취가 되는가. 그것은 자신의 마음안에 들어온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쉽게 이 상황을 비유를 들어 이해해보자. 돼지 축사가 있다고 하자. 어떤 숫돼지가 축사안의 암퇘지들을 마음대로 취해서 돼지새끼를 수없이 낳는다고 가정해보자. 숫돼지가 마치 과거 황제가 된 듯 그렇게 행세하여 숫돼지는 대단히 좋은 상태라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누가 가장 좋다고 여기겠는가를 생각해보자. 숫돼지보다는 그 축사를 경영하는 주인일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양봉업자가 로이얄젤리를 주고 여왕벌을 만들어서 벌들을 낳게 한다고 하자. 또 그 각 벌들은 자신의 뜻대로 마음껏 날아다니면서 꽃가루를 채취한다고 하자. 이 모두는 벌들이 자유롭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꿀벌통에 집도 짓고 꿀을 가득 채웠다고 하자. 이것을 여왕벌도 꿀벌들이 좋다고 하겠지만, 사실 가장 이를 좋아할 이는 따로 있다.
그외 낙타나 곰의 사례도 다 마찬가지다.
곰이 자신이 꾀를 부려 재주를 피운다고 하자. 그 경우에도 좋아하는 이는 사육사나 관중이다.
낙타가 짐을 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고 오아시스를 찾아 물을 먹는다고 하자. 이 경우에도 이를 좋아하는 이는 이를 부리는 카라반이다.
현실에서 치자부다 현상이 발생한다. 어리석은 이가 많은 것을 차지하려 하고 많은 것을 매고 세상을 돌아다니려 한다. 이 현상이 곰이나 낙타 벌의 상태와 같다. 그렇게 움직이는 그 본 바탕에 망집에 바탕해 일으킨 소원이 있다. 그래서 그 주체가 그런 망집에 바탕해 그처럼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다.
언뜻보면 그 주체의 뜻대로 행하고 성취하기에 그 주체가 그 좋음을 얻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착시현상이다. 잠깐 그 주체가 그것을 차지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장구하게 그것을 차지하게 되는 이는 그가 아니다. 욕계에서 장구한 수명을 누리는 마파순의 차지다. 그리고 곰이나 낙타 벌의 역할을 한 주체들은 잠깐 그것을 만들어 놓고 차지하고는 생사과정에서 더 이상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생사과정에서 그것을 하나도 못 가져간다. 그리고 그렇게 이용당하고 삶을 의미없게 마치는 것이다.
낙타나 곰 벌의 사례를 놓고 그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오기 힘들게 된다.
그런 가운데 심하면 죄를 범하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질병-가난-노예-죄수의 상황이 극복하기 힘든 생사고통의 내용이 된다.
결국 생사현실에서 이런 상태를 극복하고 벗어나와야 한다. 또 다른 중생도 그런 상태를 벗어나오게 해야 한다. 또 생사현실에서 그렇게 하려면 그 수행자 자신부터 그런 상태를 벗어나와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 부분부터 인과관계 문제가 관련된다.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된다. 이 내용이 곧 인과관계의 내용이다.
그런데 인과 내용에 대해서 각 입장이 서로 다르다. 그리고 그 입장 차이는 현실에서 제각각 다른 문제해결방안을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각 입장마다 현실 문제에 대해서 달리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부작용이 심하다.
이미 그 내용을 대강 살폈다.
그런데 무엇이 각 입장의 문제인가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무엇이 왜 엉터리인가도 잘 파악하지 못한다.
이 문제를 살피려면 현실에서 하나의 단면을 놓고 먼저 그 정체부터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손바닥을 부딪혀 손뼉소리를 낸다. 이런 경우를 놓고 보자.
여기서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가. 이 문제부터 잘 살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처음 그 현실 한 단면에서 무엇이 손바닥이고 무엇이 손뼉소리인가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직전 직후를 놓고 이 관계를 잘 살피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인과판단을 행하게 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천둥소리는 번개가 만들어 냈다는 식으로 엉터리 판단을 행한다.
마치 밤은 낮이 만들어 냈다.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다. 또는 배나무에 배가 떨어진 것은 배나무에 앉았다 날아가는 새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도 잘못 판단한다.
이들이 무언가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인과관계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법정에서 행하는 인과판단은 훨씬 더 엉터리다. 위에서 말하는 판단을 모두 생략한다. 그런 가운데 다시 또 엉터리 판단을 행하게 된다.
위 문제에 그것이 다 들어 있다.
손바닥을 부딪혀 손뼉소리를 낸다. 이 현상을 놓고 설명해보자.
왼손과 오른손이 부딪혀야 손뼉소리가 난다.
그런데 손뼉소리가 좋은 내용이라고 하자. 그려면 그 경우 왼손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왼손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 소리가 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그 좋은 내용은 모두 왼손 자신 때문에 얻은 것이다. 그러니 왼손 자신이 그 이익을 모두 차지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게 된다.
그런데 손뼉소리가 이제 나쁜 내용이라고 하자. 그려면 그 경우 왼손이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오른 손이 없다고 하자. 그러면 그 소리가 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그 나쁜 내용은 모두 오른 손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그 피해는 모두 오른 손이 부담하고 자신에게 그 피해를 배상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게 된다.
이 논리를 따르면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형식대로 오른 손도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이 법정에서 문제된다고 하자. 누가 정당하게 그 이익을 차지할 권리가 있는가. 또는 누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수없이 현실에서 제기된다.
법정에서는 물리학적 조건을 살피고 인과설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다. 권총으로 사람을 상해했다고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 물리적으로는 권총알이 관통해서 상해를 입힌 것이다. 그러나 권총이나 총알 또는 권총 제조사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는 재판관은 없다.
그래서 주된 관심은 사람이다. 또 결과를 발생시킨 모든 조건을 다 나열해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입장을 사회적 상당 인과관계설 이라고도 칭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기여한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 가운데 특정인에게만 책임을 묻는다. 반대로 다른 이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더 나아각 다른 이는 오히려 정반대로 이익을 귀속시킨다. 이런 현상이 문제가 된다.
물리적으로 손뼉소리가 나게 된 데에는 왼손과 오른 손이 함께 개입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왜 이 가운데 왼손에게만 책임을 묻고 또 반대로 오른 손에게 이익을 귀속시키게 되는가. 이런 것이 구체적 현실에서 문제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온갖 가해 피해관계를 놓고 이 문제를 살피면 같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이미 이것을 황진이 사건을 놓고 살폈던 적도 있다. 황진이가 지족선사에게 다가가 유혹을 한다. 그래서 지족선사가 황진이에게 매료당해 껴안으려 하다가 실패했다. 그리고 황진이가 이것을 미투운동 형태로 세상에 소문을 냈다. 그래서 지족선가가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매장되었다.
이 간단한 하나의 사건에 누가 지옥에 가야할 주체라고 보는가. 이것이 1심 2 심 3 심 마다 다 판단이 달라졌다.
왼손 오른손의 문제 성격이 여기에도 관련된다.
그래서 판단이 어렵다.
첫 1 심에서는 일반인 상식처럼 지족선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결이 내려졌다. 그런데 지족선가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제 2 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혔다.
제 2 심에서는 황진이에게 그 사건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결이 내려졌다. 판결이유가 다음과 같다. 평소 지족선사가 여성을 희롱하는 일들이 없고 수행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황진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황진이는 동네에서도 그런 유사사건이 많았다. 예를 들어 동네 총각이 황진이를 보고 말라죽는 일들과 같은 일이다. 그래서 그 사건은 황진이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고 지족선사는 오히려 피해자인 것이다.
그래서 미투운동과는 운동방향이 정반대인 아베크 무아(無我) avec moi 운동가들의 뜻대로 판결이 났다.
그러자 황진이가 다시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서 다시 제 3 심이 열렸다. 황진이도 사정이 그렇다고 주장했다. 황진이도 같이 지내는 여자 기생들과 심지어 옷을 다 벗고 목욕을 한다해도 평소 아무 일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동네 총각이나 지족선사의 경우에만 그런 특이 반응이 일어난 것임을 주장했다. 그래서 제 3 심에서는 양쪽의 엇비슷한 주장을 다 받아들여 공동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이 판결에서는 손뼉 소리가 나려면 왼손 오른손 어느 한 손만으로는 안 되고 양 손이 다 함께 있어야 소리가 난다는 이론이 그 근거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양쪽 다 불만을 갖게 했다.
그래서 양쪽이 다시 해결방안을 찾았다. 그래서 이후 Un 산하 국제형사 및 사법재판소에 다시 사건을 민형사적으로 제소했다. 그리고 황진이는 따로 여성 인권 침해 문제등으로 국제인권심판소에도 심판을 청구했다.
그러자 지족선사 측 변호사가 관할권 없음을 주장해서 사건이 모두 계류중이다. 종교 수행자가 관련되는 한 세속 재판부는 관할권이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래서 다시 황진이가 불교내 계율심판소에 재판을 걸었다. 종교 수행자가 세속인을 희롱했다는 취지다.
그래서 처음 근본 설일체 유부 계율심판소에서 다시 지족선사가 계율을 어겨 책임이 있는 것으로 심판을 내렸다. 또 법장부 사분율 계율심판소에서도 연이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다시 지족선사가 상급 대승계 범망 계율심판소에 심판을 청구했다. 그러자 다시 책임없다는 취지의 판단이 내려졌다. 그 판격취지는 대강 다음과 같다. 우선 수행자가 중생을 제도하려면 결국 여인을 접촉해서 여인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여인이 접근한 취지에 부응해야 한다. 그래야 중생제도가 가능하다. 그래서 당시 지족선사가 그런 가운데 자세를 취한 것 뿐이다. 그런데 다만 황진이가 이중적인 자세로 즉 꽃뱀과 같이 교묘하게 행했기에 문제가 된 것 뿐이다. 그래서 이는 황진이가 그런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 데에 책임이 있다. 지족선사는 당시 중생제도를 위한 방편을 취한 것 뿐인데 다만 황진이라는 여성이 이중적인 의도를 갖고 접근하여 구체적으로 상황에 잘 들어맞지 않았을 뿐 큰 책임이 없다. 이런 취지의 판결이다.
그리고 황진이가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로 수행자에 접근해 수행자의 수행을 방해하고 이로 인해 세간에서 수행자를 비난받게 하고 더 나아가 불교 전반에 대해 훼손을 가한 책임이 크다. 따라서 무간지옥 직행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자 다시 황진이가 상급 패잔소인 여래 심판소에 재판을 재심을 신청했다.
그래서 가섭여래 재판소에서 판결이 나왔다. 그 현실 상황에 우선 원고 피고에 대한 인정신문과정에서 당사자적격을 갖춘 이들이 없음이 먼저 문제되었다. 즉 그 현실 상황에 지족선사라는 이를 얻을 수 없다. 그리고 황진이도 역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또 당연이 그런 주체들의 행위도 얻을 수 없다. 다만 망집에 빠져 활동한 캐릭터들만 꿈처럼 당시 있다고 여겨졌을 뿐이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다음 판결문이 주어졌다.
일체중생성청정, 종본무생무가멸 즉차신심본시환 환화지중무죄복
해독하면 다음과 같다.
일체 중생은 성(?)은 깨끗하다. 본래부터 생겨나는 것이 없고 멸할 것이 없다. 이 몸과 마음은 본래 환이다. 환 속에서는 죄와 복을 얻을 수 없다.
결국 원고 피고에 해당하는 이가 생사현실에 없다는 판단이 먼저 내려졌다. 그리고 본안에서는 설령 캐릭터가 당시 있었다해도 모두 본래 innocent하다는 무죄 판결을 함께 받았다.
이것으로 사태가 진정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섭여래 재판부는 양 당사자 측이 이 판결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앞으로 서로 화목하게 조화롭게 보리심을 바탕으로 수행해서 생사의 묶임과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계없이 생사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실 황진이가 당시 가한 피해는 지족선사에게 치명적이었다. 직업적으로 기생 업무에 종사한 황진이가 꽃뱀형태로 접근하여 농락당했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수행자로서의 명예가 회복불능한 상태로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또 황진이는 달리 생각한다. 자신이 비록 기생신분이지만, 적어도 지족선사만은 수행자로서 자신을 점잖게 대해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 달리 고결한 수행자마저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여 인격적 모독과 수치심을 깊게 받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깊게 받았다고 이해한다.
그리고 쌍방 당사자 측들은 이런 바탕에서 서로 미움과 원망을 갖고 이후 500 년간 상호 보복과 비난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현재도 여전히 같은 유형의 사건을 현실에서 빈번하게 대하는 것이 그 사정이다. 그리고 오늘날 미투 운동가와 아베크 무아 운동가들은 거리에서 만나면 서로 피켓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양상이 심하다.
물론 법정의 판단은 물리 실험실의 인과판단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역시 인과판단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완전히 인과판단을 떠나면 결국 불합리한 억지가 된다.
그래서 결국 이를 인과판단의 일반적 문제와 함께 잘 살펴야 한다.
어떤 이가 점집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당신은 태어난 날짜가 이런 날이니 앞으로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고 잘 안 될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부적을 사서 집에 붙여야 한다. 그리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도 지내고 굿도 해야 한다. 그래서 천만원을 내라. 이것을 안 하면 앞으로 1 년안에 죽을 것이다.
이렇게 종합적인 처방을 제시받았다고 하자. 여기에 영향을 안 받는다면 모르지만 대부분 받게 된다.
이런 내용도 결국 인과이론의 이해와 관련이 된다.
처음 수행자가 중생제도를 위해서 되고자 하는 상태가 있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되는가도 역시 인과이론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문제들이 모두 인과이론과 관련된다. 그런데 이것을 엉터리로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매 경우 엉터리로 판단하고 엉터리로 행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엉망이 된다.
법정에서 엉터리로 인과판단을 하면, 애꿎은 이들이 엉터리로 고통을 받게 된다. 또 엉터리로 엉뚱한 이들이 반대로 이익을 보게 된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
다른 경우도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문제를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서양철학자들이 논의하는 인과이론을 검토한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엉터리임을 보게 된다. 그러나 또 대부분 그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처음 문제되는 한 단면과 그 직전 직후를 놓고 이 문제를 처음부터 잘 살펴야 한다.
과연 천둥소리는 번개빛이 낸 것인가. 이것은 손뼉소리는 자신이 눈으로 보는 왼손바닥과 오른 손바닥이 낸 것인가. 이 문제와 성격이 같다.
이 상황에서 그가 설령 눈을 감아 번개빛을 보지 못한다고 하자. 그래도 천둥소리는 들을 수 있다. 그러니 이는 인과관계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 판단은 엉터리임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시각정보가 청각정보를 얻게 하는 원인이 아니다.
현실에서 눈을 뜨고 이 상황을 대하면 그렇게 여겨지는 것 뿐이다.
다만, 이들 내용이 전혀 관계 없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눈을 뜨고 이 상황을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각 내용은 서로간에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이들의 관계는 같은 상황에서 함께 얻게 되는 관계일 뿐이다. 즉 (동시) 부대 상황의 관계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잘 살펴야 한다.
이외 인과론에 덧붙여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론에 사전 결정론, 필연론, 우연론 등이 있다. 이들 내용도 마찬가지다. 엉터리다. 이런 내용이 엉터리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를 통해 곧 운명론 숙명론에 빠진다.
그리고 마치 최면에 걸리듯 이런 엉터리 이론에 영향을 받고 묶이게 된다.
그래서 평소 자신의 계획하고 노력하며 자신 뜻대로 다 행한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다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엉터리 자세를 취하고 현실에 임한다. 즉, 행위는 자신이 행하면서 그 책임이 문제되면 운명에 그 책임을 떠 넘기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엉터리 삶을 살아가게 된다.
또 다른 엉터리 입장도 있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은 과거에 행한 업 때문에 정해져 나타난다. 또는 모든 것은 신의 뜻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이런 주장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인과론과 무유정법이 갖는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 두 내용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컴퓨터 전자게임을 놓고 이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쉬울 수 있다.
전자게임 화면을 본다고 하자.
어떤 위치에서 어떤 부분을 클릭하고 버튼을 누르면 어김없이 보물 아이템이 얻어진다고 하자. 또 반대로 다른 곳에서는 어김없이 캐릭터 주인공이 손해나 부상을 입게 된다고 하자.
매번 반복해봐도 사정이 같다. 이것이 인과론과 관련이 된다. 물론 이는 프로그래머가 그렇게 프로그램을 짜 놓아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화면 하나를 놓고 잘 살펴보자.
그 내용이 현실에 있는 내용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물론 비슷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현실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더 살펴보면 다음내용까지 말하게 된다.
자신이 게임에서 철수라고 여기고 대하는 화면 부분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그 부분을 손으로 가리켜 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부분에는 그가 생각하는 철수를 얻을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화소일 뿐이다. 그런데 그 부부을 묶어 대하면 그가 그 부분이 철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뿐이다. 이 관계와 이 내용을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그런 화소가 그런 생각을 일으킨다. 그렇지만, 그 화소가 있는 부분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그화소부분이 그런 내용인 것도 아니다.
이들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앞에서 프로그래머가 짜 놓은 내용을 또 잘 이해해야 한다. 일정한 부분을 클릭하면 일정한 내용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리고 바로 그런 관계가 이들 내용이 엉터리이고 가짜임도 알려준다.
즉 이들 내용은 그런 관계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자체는 게임을 하는한 무량겁을 두고 반복해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런데 바로 그런 내용 때문에 그 내용이 가짜암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다른 영역에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같은 성격이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는 하나도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화면에 반복해 진짜처럼 나타나고 사라지는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이해하고 그 게임을 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 내용이 바로 생사현실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현실에서 이 두 측면을 취해 이중적으로 임하게 된다.
우선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생사현실에서 문제삼는 온갖 생사, 생멸 문제가 사정이 다 그렇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생사고통이나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해야 한다.
그런데 또 한편, 그런 사정을 이해하고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의 측면에 임해야 한다.
또 그 안에서는 중생제도를 위해서 그 캐릭터가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중생제도를 위해서 그런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사현실안에서 수행이 필요하다. 마치 게임화면이 엉터리지만, 그 안에서 일정한 아이템을 얻으려면 열심히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행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래서 매 경우 범부가 망집에 바탕해 행하게 마련인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그에 따라 어김없이 생사현실에서 3 악도에 처하게 된다. 즉 예를 들어 그 주체가 움직이게 하는 캐릭터는 축사 등에 갇혀서 활동하게 된다. 하나하나 그 내용이 실답지 않다해도 현실내용은 그런 사정으로 그처럼 나타난다. 그리고 이 관계가 무량겁에 걸쳐 이어진다.
즉 생사현실에서 업을 행하면 그에 따른 과보를 무량겁에 걸쳐 받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게임화면의 사정과 같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이들 내용 하나하나 그 일체가 가짜이고 실답지 않음도 밝혀진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무유정법'이라는 구절이다. 그리고 바로 이 내용이 그렇게 생사에 묶인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원리가 된다.
【범】catvāri-āryasatyāni 【팔】cattāri-āriyasaccāni 사성제(四聖諦)라고도 함.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불교의 강격(綱格)을 나타낸 전형(典型)으로서 유력(有力)한 것. 제(諦)는 불변여실(不變如實)의 진상(眞相)이란 뜻. (1) 고제(苦諦). 현실의 상(相)을 나타낸 것이니, 현실의 인생은 고(苦)라고 관하는 것. (2) 집제(集諦). 고(苦)의 이유근거(理由根據) 혹은 원인(原因)이라고도 하니, 고의 원인은 번뇌인데, 특히 애욕과 업(業)을 말함. 위의 2제는 유전(流轉)하는 인과. (3) 멸제(滅諦). 깨달을 목표. 곧 이상(理想)의 열반. (4) 도제(道諦). 열반에 이르는 방법. 곧 실천하는 수단. 위의 2제는 오(悟)의 인과. 이 사제설(四諦說) 자신에는 아무런 적극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 않지만, 후대에 이르면서 매우 중요시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체계를 포괄(包括)하여 조직적으로 취급한 것이 있다. 고제는 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ㆍ5온(蘊) 설(說)을, 집제ㆍ멸제는 연기설(緣起說)을, 도제는 8성도(聖道) 설을 표하는 것. 그리고 고제ㆍ집제는 12인연의 순관(順觀)에, 멸제ㆍ도제는 역관(逆觀)에 각각 해당함.
34 강이나 호수나 바다를 다닐 때 독룡이나 교룡이나 마갈수(摩竭獸)와 야차와 나찰과 독한 고기 자라떼를 만나도 이 주문을 듣거나 외우면, 스스로 숨어버리며 ● 마마바마라 摩摩罰摩囉<三十四> ma ma va ma r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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