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K0549
T1509
제8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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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0549-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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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智度論釋無盡方便品第六十七
K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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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80권
67. 무진방편품(無盡方便品)을 풀이함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
【經】그때 수보리가 생각하기를 ‘이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매우 깊으므로 나는 부처님께 물어야겠다’고 하고,
이렇게 생각한 뒤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반야바라밀은 다할 수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은 다할 수 없기[不可盡]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다할 수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질[色]은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은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며,
단바라밀(檀波羅蜜)은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고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과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과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과 선바라밀(禪波羅蜜)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며,
나아가 일체종지(一切種智)는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느니라.
다시 수보리야,
어리석음[癡]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고
지어감[行]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며,
분별[識]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고
이름과 물질[名色]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느니라.
여섯 가지 감관[六處]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고 여섯 가지 촉감[六觸]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며,
느낌[受]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고 갈애[愛]는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며,
취함[取]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느니라.
존재[有]는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고 태어남[生]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며,
늙어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함[老死憂悲苦惱]은 공하여서 다할 수 없기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12인연(因緣)은 유독 보살만의 법이어서 모든 치우쳐 뒤바뀐 생각을 없애 주나니,
도량[道場]에 앉았을 때에 이와 같이 관(觀)하여야 일체종지를 얻을 것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허공의 다할 수 없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12인연을 관찰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무르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의 도를 구하다가 도로 물러나는 자는 모두 반야바라밀의 생각[念]을 여의니,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허공의 다할 수 없는 법으로 12인연을 관찰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의 도를 구하다가 도로 물러나면 모두 이런 방편의 힘[方便力]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도로 물러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도로 물러나지 않는 이면 모두가 이런 방편의 힘을 얻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허공의 다할 수 없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을 관해야 하며,
허공의 다할 수 없는 법으로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12인연을 관할 때는 법이 인(因)과 연(緣)이 없이 생긴다고 보지 않고 법이 항상하여 소멸하지 않는다고도 보지 않으며,
법에 아(我)ㆍ인(人)ㆍ수자(壽者)ㆍ명자(命者)ㆍ중생(衆生) 내지는 지자(知者)ㆍ견자(見者)가 있다고도 보지 않으며,
법이 무상(無常)하다고 보지 않고 법이 괴롭다[苦]고 보지 않고 법이 나 없다[無我]고 보지 않으며,
법이 고요히 사라진다[寂滅]거나 고요히 사라지지 않는다[非寂滅]는 것도 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와 같이 12인연을 관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이때에는 물질이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거나 괴롭다거나 즐겁다거나 나라거나 나가 없다거나 고요히 사라진다거나 고요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는 것을 보지 않나니,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이때에 또한 반야바라밀도 보지 않고 또한 이런 법으로써 반야바라밀과 선바라밀 내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본다는 것도 보지 않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보지 않고 또한 이 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본다는 것도 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온갖 법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에 상응한 행이니라.
만일 보살이 얻을 것이 없는[無所得]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이때에 악마는 몹시 근심하면서 마치 화살이 그의 염통에 박힌 듯 괴로워하나니,
마치 부모의 상(喪)을 당한 사람 같으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이 악마는 보살이 얻을 것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보면 그때에 몹시 근심하면서 마치 화살이 그의 염통에 박힌 듯 괴로워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만 한 악마만이 근심하고 괴로워하는지요?
아니면 삼천대천세계 안의 악마들도 역시 다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삼천대천세계 안에 있는 모든 악마들이 모두가 근심하면서 마치 화살이 그의 염통에 박힌 듯 괴로워하며 저마다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이때 온갖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이 그의 틈[便]을 얻거나 그로 하여금 근심하고 괴롭게 하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야,
이 때문에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하면 이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며,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추어 닦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모든 바라밀을 구족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어떻게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그의 모든 보시(布施)를 모두 살바야(薩婆若)에 회향하나니,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그의 모든 지계(持戒)를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면 그것이 바로 시라바라밀을 두루 갖추는 것이요 보살마하살이 그의 모든 인욕(忍辱)을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면 이것이 바로 찬제바라밀을 두루 갖추는 것이며,
보살마하살이 그의 모든 정진(精進)을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면 이것이 바로 비리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이 그의 모든 선정(禪定)을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면 이것이 바로 선바라밀을 두루 갖추는 것이며,
보살마하살이 그의 모든 지혜(智慧)를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면 이것이 바로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는 것이니,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6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論】해석한다.
수보리는 부처님으로부터 반야바라밀에 대한 갖가지의 모양을 들었다.
맨 처음에는 필경 공한 모양이라고 들었고,
중간에는 마치 존재[有]하는 듯한 부촉[囑累]에 대해 들었으며,
나중에는 도로 공하다는 말을 들은 것이니,
이른바 “반야의 뜻은 한량없거니와 이름[名字]과 구절[句衆]은 한량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때에 수보리는 생각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매우 깊다.
나는 부처님께 그 매우 깊은 까닭을 물어야겠다’고 한다.
부처님이 보리의 조그마한 부분만을 말씀하신 것은 다만 중생들의 뒤바뀜을 깨뜨리기 위해서 갖추어 말씀하지는 않으셨으니,
그것은 왜냐하면 능히 받을 이[能受者]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여(如)의 모양을 취하면 부처님께서는 여(如)도 또한 공하다고 말씀하셨으니,
나고 머무르고 소멸하는[生住滅]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법에 나고 머무르고 소멸하는 것이 없다면 이 법은 곧 없는 것이니,
법성(法性)과 실제(實際)도 또한 그와 같다.
설령 필경공(畢竟空)을 취하는 이가 있어도 역시 “아니다”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만일 필경공이 일정한 모양이어서 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필경공이 아니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매우 깊다”고 말하면서 ‘나는 다시 부처님께 물어야겠다’고 하는 것이다.
수보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다시 ‘부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3세(世)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로써 도를 얻으셨는데도 반야는 짐짓 다하지 않았나니,
이미 다하지 않았고 지금 다하지도 않으며 장차 다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제 다하지 않는 이치[不盡義]만을 묻겠다’고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되 “마치 허공이 다하지 않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다하지 않는다.
마치 허공에는 어떤 법도 없고 그 이름만이 있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그와 같다.
반야바라밀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다할 수 없다”고 하신다.
또 묻기를 “어떻게 보살은 이 반야바라밀을 능히 내는 이[能生者]를 낼 수 있는지요?
보살은 어떻게 마음속에서 능히 행하고[能行] 능히 얻는[能得] 것을 내는지요?”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되 “물질은 다함이 없기[無盡]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한다”고 하신다.
물질의 경우 처음에서도 중간에서도 나중에서도 나는 것[生]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물질이 곧 나는 것이면서 물질은 얻을 수 없다면,
물질을 여의고서 나는 물질은 얻을 수 없으며,
나는 것도 얻을 수 없고 나는 것을 내는 것[生生]도 얻을 수 없나니,
앞에서 나는 것을 파괴하는[破生]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나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물질도 얻을 수 없고 물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물질이 나는 것도 얻을 수 없나니,
이 두 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물질은 마치 허깨비와 같고 마치 꿈과 같아서 다만 사람의 눈을 속일 뿐이다.
만일 물질에 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다하는 것이 있으리니,
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또한 다하는 것도 없다.
물질의 진실한 모양[眞相]이 곧 반야바라밀의 모양이다.
이 때문에 “물질은 다할 수 없고 반야바라밀도 또한 다할 수 없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과 단바라밀 내지는 일체종지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씀하신다.
또 ‘반야바라밀을 내어야 한다’고 함은 무명(無明)의 허공은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마침내 공하다고만 관찰하면 대개는 아주 없다[斷滅]고 하는 치우친 소견에 떨어지고,
만일 존재한다[有]고 관찰하면 대개는 항상하다[常]고 하는 치우친 소견에 떨어지고 만다.
이 두 가지의 치우친 소견을 여의기 때문에 “12인연은 공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만일 법이 인(因)과 연(緣)의 화합으로부터 생긴다면 이 법은 일정한 성품이 없으며,
만일 법에 일정한 성품이 없다면 곧 그것이 마침내 공이요 고요히 사라진[寂滅] 모양이어서 두 가지 치우친 소견을 여의기 때문에 임시로 이름을 붙여 중도(中道)라고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12인연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법이 없기 때문에 다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리석음[癡]도 또한 인과 연이 화합하여 생기기 때문에 제 모양[自相]이 없으며 제 모양이 없기 때문에 필경 공하여 마치 허공과 같다.
또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에 진실이 없다.
경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눈을 인하고 빛깔을 연하여 접촉의 생각[觸念]이 생기며,
그 접촉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데서부터 생긴다.
그 접촉한다는 생각은 눈 속에 있지도 않고 빛깔 안에 있지도 않으며,
안에 있지도 않고 밖에 있지도 않으며 또한 그 중간에 있지도 않다.
또한 시방 3세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어서 이 법은 정해진 모양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온갖 법은 여(如)에 들기 때문이다.
만일 이 무명(無明)의 정해진 모양을 얻는다면 곧 그것은 지혜요 어리석음이라고는 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어리석은 모양과 지혜의 모양에는 다름이 없다.
어리석음의 실상(實相)은 곧 그것이 지혜이니,
지혜의 모양을 취하고 집착하면 곧 그것이 어리석음이다.
이 때문에 어리석음의 실상은 필경 청정하며 마치 허공과 같아서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관(觀)을 얻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면 곧 반야바라밀이라 한다”고 말한다.
【문】만일 무명이 없다면 또한 모든 지어감[行] 등도 없거늘 어떻게 12인연을 말씀하시는가?
【답】12인연을 말하는 데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범부가 육안(肉眼)으로 보는 것은 뒤바뀐 것이어서 나라는 마음[我心]에 집착하여 모든 번뇌의 업을 일으켜 나고 죽고[生死] 하는 그 가운데서 왕래하는 것이다.
둘째는 성현은 법안(法眼)으로 모든 법을 분별하면서 늙고 병들고 죽는[老病死] 것을 마음에 싫어하여 세간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인연(因緣)을 구하면 그것은 태어남[生]으로 말미암으며,
이 태어남은 모든 번뇌의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는다.
왜냐하면 번뇌가 없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번뇌는 태어남의 인(因)이 되는 줄 알 수 있다.
번뇌의 인과 연은 바로 무명(無明)이다.
무명 때문에 마땅히 버려야 하는데도 취하고 있으며,
마땅히 취해야 하는 데도 버린다.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느냐 하면,
늙고 병이 드는 모든 괴로움의 인연인 번뇌는 마땅히 버려야 하는데도 작고 뒤바뀐 즐거움의 인연 때문에 취하고 있다.
지계(持戒)와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는 모든 선(善)의 근본이어서 이것이 바로 열반의 즐거움의 인연이라 이런 일은 마땅히 취해야 하는데도 버리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아는 이[知者]ㆍ보는 이[見者]ㆍ짓는 이[作者]가 없다.
왜냐하면 이 법에는 일정한 모양이 없고 다만 거짓된 인연이 상속(相續)하면서 생길 뿐이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이가 이것은 거짓이요 진실이 아닌 줄 알면 쓸모없는 이론[戱論]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괴로움을 멸하기 때문에 열반에 들 뿐이요,
모든 괴로운 모양을 끝까지 궁구하지는 않는다.
셋째는 모든 보살마하살로서 큰 지혜가 있는 사람은 근기가 예리하기 때문에 다만 12인연의 근본되는 모양만을 끝까지 다 궁구할 뿐이요,
근심하거나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침몰하지 않는 것이다.
그 모습을 구할 때도 일정한 모양을 얻지 못한다.
늙음[老]의 법은 마침내 공한 것이요,
다만 거짓으로 붙인 이름에서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법의 모양을 분별해서 늙음을 말하나 이것은 마음에 상응하지 않은 행[心不相應行]이어서 이런 모양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머리가 희다[頭白]는 등은 바로 빛깔의 모양[色相]이요 늙음의 모양[老相]은 아니며,
이 두 가지의 일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늙음의 모양은 없다.
또 세간 사람들은 늙음의 모양을 말하면서 머리가 희고 이가 빠지며 얼굴에 주름살이 지고 몸이 구부러지며 수척해지고 힘이 약해지며 모든 감관이 어두워지는 등의 이러한 것을 늙음의 모양이라 하지만 이런 일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것은 왜냐하면 머리가 흰 것은 늙은이만이 그런 것이 아니요 나이 젊어서도 머리 흰 이가 있으며,
늙은 사람에게도 머리가 검은 이가 있기 때문이니,
수척하고 주름살지고 구부러진 것 등도 또한 그러하다.
어떤 사람은 늙었는데도 모든 감관이 밝고 예리한 이가 있으며,
젊었는데도 어둡고 막힌 이가 있기도 하다.
또 나이를 돌리는 약[還年藥]을 먹으면 늙은이라 할지라도 건장해지므로 이와 같은 늙음에 있어서도 일정한 모양이 없으며 일정한 모양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이 화합하여 임시로 늙음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또 마치 수레바퀴와 굴대와 끌채와 바퀴살이 임시로 한데 합치면 수레라고 하는 것과 같아서 이것은 임시 이름이요 진실이 아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과보(果報)의 5중(衆)을 말하기에 그 모양을 늙음이라 한다”고 한다.
이것 역시 그렇지 않다.
그것은 왜냐하면 온갖 유위의 법[有爲法]은 생각생각마다 나고 없어지면서 머무르지 않으며,
만일 머무르지 않으면 그 모양도 없고 모양이 없으므로 늙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온갖 유위의 법에 만일 머무름이 있다면 무상(無常)하다는 것이 없고 만일 무상하다는 것이 없으면 곧 항상하다[常]는 것이니,
만일 항상하다면 늙는다는 것도 없거늘 하물며 항상 있는 것도 아니요 무상한 것도 아닌 필경공 가운데서 늙는다는 것이 있겠는가.
또 모든 법의 마침내 공한 가운데서는 태어나는 모양도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늙는 것이 있겠는가.
이와 같은 갖가지의 인연으로 늙음의 법을 구하여도 얻을 수가 없으며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모양이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아 다할 수 없나니,
마치 늙음[老]에서와 같이 무명(無明)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다.
무명을 깨뜨리는 일에 대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보살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은 마침내 공이어서 아무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고 관하며 또한 이런 일에 집착하지도 않기 때문에 중생들에 대하여 대비(大悲)의 마음을 내거니와 중생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진실하지도 않고 뒤바뀌며 허망한 법 가운데서 모든 괴로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처음의 12인연은 다만 범부의 사람만을 위한 것이므로 여기에서 잘잘못을 가릴 것은 없고,
두 번째의 12인연은 2승(乘)의 사람과 아직 무생법인(無生法忍)의 법을 얻지 못한 보살들이 관하는 것이며,
세 번째의 12인연은 무생법인을 얻은 이로부터 도량(道場)에 앉은 보살에 이르기까지가 관한다.
그러므로 “무명의 허공은 다할 수 없으며,
나아가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함[憂悲苦惱]의 허공도 다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때문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이와 같이 인연의 법[因緣法]을 깊이 관한다.
“모든 치우친 소견과 뒤바뀜을 여읜다”고 함의 치우친 소견[邊見]이란 항상하다 하는 치우친 소견[常邊]과 아주 없다 하는 치우친 소견[斷滅邊]과 있다 하는 치우친 소견[有邊]과 없다 하는 치우친 소견[無邊]과 진실하다 하는 치우친 소견[實邊]과 공하다 하는 치우친 소견[空邊]과 세간은 있다 하는 치우친 소견[世間有邊] 등을 말한다.
모든 치우친 소견에 집착하여 뒤바뀐 이는 무상한 것 가운데서 항상하다는 등의 모든 뒤바뀐 번뇌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이 12인연의 법을 관하면 모든 치우친 소견의 뒤바뀜이 소멸하게 된다.
모든 번뇌에는 두 갈래가 있다.
첫째는 외도의 삿된 소견[邪見]을 지닌 사람을 치우친 이라 하며,
둘째는 그 밖의 중생들의 번뇌를 뒤바뀐 이라 한다.
12인연을 관하면 이런 두 가지의 번뇌는 모두가 소멸한다.
이 세 번째의 12인연관(因緣觀)은 매우 깊어서 오직 도량에 앉은 모든 보살만이 관할 수 있다.
앞에서 비록 관했다 하더라도 아직 구족하지는 못한 것이니,
마치 『성비유경(城譬喩經)』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나는 본래 도를 얻지 못했을 적에 생각하기를 ‘중생을 가엾이 여겨야 한다’고 하고 험한 길로 들어간 것이니,
이른바 자주자주 태어났고 자주자주 늙었으며 자주자주 죽으면서 세간을 왕래하며 벗어날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때 다시 생각하기를 ‘어떤 인연으로 늙어 죽는 것이 있을까’라고 이렇게 찾고 구하자,
그때에 ‘태어남[生]의 인연이 바로 늙고 죽는 등이로구나’ 하는 등의 진실한 지혜를 얻게 되었다”고 하신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세 번째의 관(觀)은 도량에 가 앉아야만이 비로소 얻는 줄 알아야 한다.
경에서 널리 말씀하신 것과 같다.
또 이와 같이 인연의 법을 관하면 2승을 지나가서 일체종지를 얻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 도에서 물러나면 그는 모두 이 매우 깊은 관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니,
만일 이 관을 얻으면 물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필경공 가운데에 깊이 들어가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보지 못하며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와 같이 인연의 법을 관하면 그는 인연 없이 자재하게 생기는 정해진 어느 한 법도 보지 않나니,
온갖 법은 자재하지도 않고 모두가 인연으로 생기는 데에 속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비록 온갖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보기는 하나 삿된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여긴다.
삿된 인연이라 함은 작은 티끌[微塵]과 세간의 성품[世性] 등이니,
이 때문에 말하기를 “인연이 없이 생기는 어떤 법도 보지 못하고 또한 항상 있는 인연과 작은 티끌과 세간의 성품으로부터 생기는 어떤 법도 보지 못한다.
마치 허공이 항상 있는 것처럼 항상 있기 때문에 나는 것이 없으며 허공도 또한 물건에 인(因)이 되어 주지도 않나니,
이 때문에 항상 있는 인연으로부터 생기는 어떤 법도 없다”고 한다.
또 보살은 이와 같이 “온갖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긴 데에 속하므로 자재하지도 않고 자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없으며,
나아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도 없다”고 관하는 것이다.
그때 보살은 마침내 공한 데에 편히 머물러 12인연 가운데서 온갖 물질 등의 법을 ‘있다,
없다’는 등으로 보지도 않고 또한 반야도 보지 않으며 또한 이런 법을 써서 반야를 행한다고도 보지 않나니,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바로 ‘보살의 얻을 것이 없는[無所得]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이 얻을 것이 없는 반야를 얻으면 온갖 법 가운데서 곧 장애가 없는 반야를 얻게 되나니라.
그때에 모든 악마는 몹시 크게 근심하고 괴로워한다.
왜냐하면 이 보살은 12인연의 마침내 공한 가운데로 깊이 들어가서 ‘있다,
없다’ ‘있는 것도 아니다,
없는 것도 아니다’ 등 62종의 모든 삿된 소견의 악마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는 이제 보살에게서 틈[便]을 얻을 수 있는 어떠한 법도 없다”고 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고기잡이가 한 마리의 큰 고기가 큰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 버리는 것을 보고 갈고리나 그물로써는 잡을 수 없으므로 절망하면서 근심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새로 부모의 상(喪)을 당하는 것과도 같다.
또 보살이 이와 같이 얻을 것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곧 단바라밀(檀波羅蜜)을 두루 갖출 수 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법을 행하면 모든 번뇌장(煩惱障)을 반야의 법으로 모두 꺾고 얇게 하므로 모든 악마의 백성들로서는 그의 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모든 바라밀이 두루 갖춰지게 된다.
이제까지 비록 6바라밀을 행했다 하더라도 아직 이와 같이 구족하지 못했으므로 수보리는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떻게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수 있으며 단바라밀 등의 모든 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시되 “보살은 그의 모든 보시를 모두 살바야에 회향하느니라”고 하신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사람이 있나니,
근기가 연약한 이[軟根]와 근기가 예리한 이[利根]다.
근기가 연약한 이는 많건 적건 간에 모두 모양을 취하면서 보시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는 이요,
근기가 예리한 이는 이런 취하는 모양을 깨뜨리면서도 공법(空法)에 대해 쓸모없는 이론을 펴며 믿는 힘이 갈수록 얇아져 살바야를 이용하지 않고 다만 모든 법의 실상(實相)만을 구하는 이다.
이 두 가지 사람은 모두가 단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없나니,
첫째 사람은 믿는 힘은 많되 지혜의 힘이 적으며,
둘째 사람은 지혜의 힘은 많되 믿는 힘이 적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믿는 힘과 지혜의 힘이 똑같기 때문에 살바야에 회향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살바야를 생각한다’ 함은 바로 믿는 힘이요,
‘살바야와 같이 회향한다’ 함은 바로 지혜의 힘이다.
나아가 반야바라밀도 또한 그와 같다.
68. 육도상섭품(六度相攝品)을 풀이함①
【經】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檀波羅蜜)에 머무르면서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때에 이 보시를 가져다 살바야에 회향하고 중생들에 대하여 인자한[慈]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에 머무르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시라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찬제바라밀(羼提波羅蜜)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받는 이가 성을 내고 욕하고 꾸짖고 거친 말을 하여도 이때에 보살은 욕됨을 참으면서 성을 내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받는 이가 성을 내고 욕하고 꾸짖고 거친 말을 하여도 보살은 보시할 마음을 더욱더 하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보시하면서 아끼는 것이 없어야 한다’고 하고,
즉시 몸의 정진[身精進]과 마음의 정진[心精進]을 내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의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선바라밀(禪波羅蜜)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살바야에 회향하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나아가지 않으면서 다만 일심으로 살바야만을 생각할 뿐이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선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보시는 공하여 마치 허깨비와 같은 줄 알면서 중생들을 위한 보시에 이익이 있고 없음을 보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단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몸과 입과 뜻으로 보시의 복덕을 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돕고 이 공덕을 지니어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취하지 않으며,
시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지 않고 남의 물건을 겁탈하지 않으며,
삿된 음행을 행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이간질을 하지 않고 거친 말을 하지 않으며 꾸미는 말을 하지 않고 탐내거나 시새우지 않으며,
성을 내지도 않고 삿된 소견을 지니지도 않느니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시하되 배고픈 이에게는 밥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는 마실 것을 주며,
탈 것을 구하면 탈 것을 주고 의복을 구하면 의복을 주며,
향을 구하면 향을 주고 영락을 구하면 영락을 주며,
바르는 향[塗香]ㆍ침구ㆍ방사ㆍ등촉과 살림에 필요한 것은 모두 다 대 주느니라.
이러한 보시를 지니어 중생들과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나니,
이와 같이 회향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단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만일 어떤 중생이 와서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도 보살은 그러한 일에 성을 내거나 한 생각까지도 내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큰 이익을 얻었다.
중생이 와서 나의 몸을 갈가리 찢어 가는데도 나는 한 생각조차도 성을 냄이 없었으니 말이다’고 하나니,
이것이 바로 시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찬제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몸의 정진과 마음의 정진을 항상 버리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온갖 중생들은 나고 죽는 가운데에 헤매고 있으므로 나는 그들을 구출하여 감로의 땅[甘露地]에 놓아 두어야 한다’고 하면,
이것이 바로 보살이 시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비리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선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초선(初禪)ㆍ제2선ㆍ제3선ㆍ제4선에 들어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탐내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선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온갖 중생을 나고 죽음에서 건져 주어야 한다’고 하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선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은 시라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짓는 법[作法]이라거나 유위의 법[有爲法]이라거나 수효의 법[數法]이라거나 모양 있는 법[相法]이라거나 있다[有]거나 없다[無]고 볼 수 있는 어떠한 법도 없고 다만 모든 법은 여의 모양[如相]에 불과하다고 볼 뿐으로 반야바라밀의 구화구사라(漚和拘舍羅)의 힘1)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니라.”
【論】해석한다.
상품(上品)의 끝에서는 “어떻게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6바라밀을 두루 갖추는지요”라고 하여 부처님께서는 낱낱이 대답하셨고 이 품(品) 가운데서는 수보리가 묻기를 “어떻게 보살은 하나의 바라밀을 행하면서 다섯 가지 바라밀을 포섭하는지요”라고 한다.
【문】6바라밀은 저마다 다른 모양이거늘 어떻게 하나의 바라밀을 행하면서 다섯 가지 바라밀을 포섭한다 하는가?
【답】보살은 방편의 힘 때문에 한 가지 바라밀을 행하면서도 다섯 가지 바라밀을 포섭할 수 있다.
또 유위의 법은 인연(因緣)과 과보(果報)가 상속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이루게 하니,
착한 법은 착한 법의 인연이기 때문이다.
이 바라밀은 모두가 착한 법이기 때문에 하나를 행하면 곧 다섯이 포섭되고 한 가지의 바라밀을 주(主)로 삼으면 그 밖의 바라밀에는 분한이 있다.
어떤 보살마하살은 깊이 단바라밀을 수행하면서 단바라밀 가운데에 편히 머물러 중생에게 보시할 때에 인자한 마음[慈心]을 얻고 인자한 마음으로부터 인자한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때 보살은 곧 시라바라밀을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자한 업은 바로 3선도(善道)이어서 시라바라밀의 근본이기 때문이니,
이른바 탐내지 않음[不貪]ㆍ성내지 않음[不瞋]ㆍ바른 소견[正見]의 이 세 가지 인자한 업은 세 가지의 신업과 네 가지의 구업을 일으킨다.
인자한 그것이 바로 착한 업이어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인자하다’ 한다.
‘찬제바라밀을 취한다’ 함은,
보살은 온갖 지혜를 위하여 보시하는데 받는 이가 성을 내므로 그 시주(施主)는 부르짖기를 “나는 온갖 것을 다 보시할 수 있다”고 하면,
그 받는 이는 얻은 것이 뜻에 맞지 않으므로 말하기를 “누가 당신에게 나를 청하여 나의 뜻에 맞지 않게 하라 했소”라고 할 적에 성을 내면 그것은 마음의 악업(惡業)이요,
욕을 하면 그것은 입의 악업이며,
때리고 해치면 그것은 몸의 악업이다.
성을 내는 데도 상ㆍ중ㆍ하가 있어서 상은 살해하는 것이요,
중은 욕을 하고 꾸짖는 것이며,
하는 마음에서 성을 내는 것이니라.
이때에도 보살은 세 가지의 악업을 내지 않는다.
의업(意業)은 바로 그 근본이 되기 때문에 다만 의업만을 말해 보면,
그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바로 나의 죄다.
나는 그 사람을 청해 놓고 뜻에 맞게 얻지 못하게 했으니 말이다.
나는 박복(薄福)한 까닭에 갖추어 베풀어 줄 수가 없구나.
내가 만일 성을 낸다면 이제는 재물도 잃고 게다가 복덕까지 잃게 되리라’고 하면서,
이 때문에 성을 내지 않아야 한다.
‘비리야바라밀을 취한다’ 함은,
만일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받는 이가 때리고 해를 끼쳐도 마음에 침몰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면서 보시하는 것이니,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보시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으로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전생에 전혀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받는 이의 뜻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다만 부지런히 보시만 해야 하고 그 밖의 자질구레한 일은 헤아리지도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선바라밀을 취한다’ 함은 보살은 보시하면서 이 세상의 복과 쾌락을 구하지 않고 또한 후세(後世)에 전륜성왕이나 천상의 왕이나 인간의 왕이 되겠다고 구하지도 않으며,
또한 세간의 선정의 즐거움도 구하지 않고 중생들을 위하여 열반의 즐거움도 구하지 않으면서 다만 이 모든 뜻만을 가다듬어 일체종지(一切種智) 가운데에 있으면서 산란하지 않게 할 뿐이다.
‘반야바라밀을 취한다’ 함은 보살이 보시를 할 때에 온갖 유위의 만들어진 법은 거짓이요 견고하지 않아서 마치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다고 관하면서 중생에게 베풀 적에는 그에게 이익이 있고 없음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보시한 물건은 반드시 즐거움의 인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그 음식을 먹고 배가 불러서 죽기도 하고 때로는 재물을 얻어 도둑의 해를 입기도 하며,
또한 재물을 얻었기 때문에 간탐하는 마음이 생겨서 아귀(餓鬼) 안에 떨어지기도 한다.
또 이 재물은 유위(有爲)의 모양이기 때문에 생각생각마다 나고 없어지면서 무상한 것이라 괴로움을 내는 인연도 된다.
또 이 재물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마침내 공함 가운데에 들어가 이익이 있거나 이익이 없거나를 분별하지 않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받는 이에게 은분(恩分)을 구하지도 않고 보시에 대한 과보도 바라지 않는다.
설령 보답을 구한다 해도 그가 갚지 않는다 하여 원망하지도 않으면서 보살은 생각하기를 “모든 법은 마침내 공한 것이므로 나는 준 것도 없다”고 한다.
만일 과보를 구한다면 마땅히 필경공(畢竟空)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보시하는 모양과 같이 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익이 있다고 보지 않으며 마침내 공한 것이기 때문에 이익이 없는 것도 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단바라밀 편에서 다섯 가지 바라밀을 취하는 것이다.
보살은 시라바라밀을 주(主)로 삼아 그의 모든 몸과 입과 뜻의 선업(善業)과 보시(布施)와 다문(多聞)과 사유(思惟)와 지계(持戒) 등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돕지만,
지계의 힘이 가장 크기 때문에 통틀어 시라바라밀이라 한다.
왜냐하면 욕계(欲界) 안에서는 계율을 지니는 것이 으뜸이 되며,
그 밖의 보시와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 등은 욕계에서 마음이 산란하기에 힘을 얻는 것이 미미하고 희박하기 때문이다.
마치 아비담(阿毘曇) 가운데서 벗어나는 법[出法]을 말하면서 “욕계에서는 계(戒)에 매이고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서는 청정한 선정(禪定)과 유학(有學)ㆍ무학(無學)의 법 및 열반에 매인다”고 한 것과 같다.
보살은 지계(持戒) 등의 법으로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나아가지 않고 다만 시라바라밀 가운데에 편히 머무르면서 중생의 목숨을 빼앗지 않으며,
나아가 삿된 소견을 내지도 않고 이 도를 돕는 계율[助道戒]에 머물러 10선도(善道)의 계율을 두루 갖출 뿐이다.
보살은 이 두 가지의 계율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중생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음식을 구하면 음식을 주나니,
음식 등에 대한 이치는 초품(初品)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모두가 이 복으로써 부처님 도에 회향하며 2승(乘)에 나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에게는 두 가지의 파계(破戒)가 있기 때문이니,
첫째는 열 가지의 착하지 않은 길[十不善道]이요,
둘째는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 향하는 것이다.
이것과 반대의 것이 바로 두 가지의 지계(持戒)이다.
‘찬제바라밀을 취한다’ 함은 보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인욕(忍辱)바라밀을 두루 갖추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중생이 와서 그의 몸을 갈갈이 찢어서 가져간다 해도 성을 내는 한 생각조차도 일으키지 않거늘 하물며 몸과 입의 악업(惡業)을 일으키겠는가.
【문】인욕은 온갖 것을 침범당하고 빼앗기는 데서도 능히 참는다는 것이거늘 무엇 때문에 다만 몸을 베고 찢는 것만을 말하는가?
【답】집착할 물건에는 안팎의 것이 있다.
안[內]은 자기의 몸을 말하는 것으로 머리와 눈ㆍ골수ㆍ뇌 따위이며,
바깥[外]은 처자식이나 값진 보물 등을 말한다.
비록 다 같이 집착하는 곳이나 안에 대한 집착이 더 깊다.
또 어떤 사람이 비록 재물을 따르다가 죽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몸을 위해서이다.
또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몸을 아낀다.
때로는 재물을 더 아끼는 이가 있기는 하나 몸보다 재물을 아끼는 이는 적기 때문에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은 몸조차도 오히려 아끼지 않거늘 하물며 그 밖의 다른 물건이겠는가.
이 때문에 다만 큰 인연만을 말했을 뿐이니,
큰 것은 벌써 작은 것을 포함하는 줄 알아야 한다.
【문】한 생각조차도 성을 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이라면 그는 변화로 된 몸[變化身]인가,
아니면 부모에게서 태어난 몸[父母生身]인가?
만일 그가 변화된 몸이라면 아직 그는 번뇌[結]를 끊지 못한 사람이거늘 어떻게 한 생각조차도 성을 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답】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는 번뇌업의 인연으로 태어난 몸이다”고 한다.
이 보살은 한량없는 겁 동안 중생들을 위하여 인자한 마음[慈心]을 닦고 쌓았기 때문에 비록 그의 몸이 베어지고 끊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성을 내지 않는다.
마치 인자한 어머니가 젖먹이를 기르면서 설령 똥오줌에 몸을 더럽힌다 해도 깊은 애정 때문에 성내지도 않으며 또 그의 철없음을 가엾이 여기는 것과 같다.
보살이 중생들에 대한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아직 성인의 도를 얻지 못한 이는 모두가 어린아이와 같다고 여기면서 “나는 보살이다.
마땅히 인자한 마음을 내어야 하며 마땅히 부모와 같아야 한다.
중생들이 비록 나에게 악한 일을 하더라도 나는 성을 내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중생들은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번뇌에 부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보살은 한량없는 겁 동안 항상 마침내 공한 법을 닦았으므로 몸을 베는 이나 욕하는 이를 보지 않으며 또한 착한 이와 나쁜 이도 보지 않으면서 모두가 마치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이 여긴다.
그러면서 성을 내는 이들은 모두가 어리석은 자들인데 만일 내가 그에게 도로 갚는다면 그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
또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성을 내야 할 데에 성내지 않으면 곧 큰 이익이 된다’고 한다.
‘비리야바라밀을 취한다’ 함은,
시라바라밀에 머무른 이는 거의 모두가 출가(出家)한 사람이며 때로는 집에 있는[在家] 이도 있기는 하다.
출가한 사람은 모두 한량없는 계율의(戒律儀)를 얻고 40종의 착한 길[善道]을 두루 갖추며 깊이 모든 법의 실상(實相)에 들어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넘어서는데,
이 세 가지의 계율을 시라바라밀이라 하거니와 집에 살고 있는 이는 한량없는 계율의가 없기 때문에 구족하게 시라바라밀에 머무르지 못한다.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세간의 쾌락을 버리고 도(道)에 들어 있으므로 지계(持戒)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계는 바로 그 밖의 공덕이 머무르는 곳이다.
만일 이 머무르는 곳만 얻고 있으면 그 밖의 다른 공덕은 얻지 못하게 되므로 이익을 얻는 것이 아주 박(薄)하다.
마치 사람이 보물로 된 섬[寶洲]에 있으면서 수정주(水精珠)만을 얻는다면 그 이익이 박한 것과 같다’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다섯 가지 바라밀을 두루 갖추기 위하여 몸과 마음으로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다.
몸의 정진[身精進]이라 함은 법대로 재물이 이르면 그것으로 보시 등에 이용하는 것이요,
마음의 정진[心精進]이라 함은 간탐(慳貪) 등의 모든 나쁜 마음이 와서 6바라밀을 파괴하려 하면 들어올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정진을 얻은 뒤에는 생각하기를 ‘온갖 중생들이 나고 죽는 데에 빠져 있으므로 나는 그들을 건져내어 감로의 땅[甘露地]에다 놓아 두어야 한다.
자기 자신만을 제도하는 성문조차도 오히려 게으르지 않아야 하겠거늘 하물며 보살은 자신을 제도하고 그리고 온갖 중생들을 위해야 할 터인데 어찌 게으름을 피우겠느냐.
이런 일 때문에 나는 게으르지 않아야 하며 비록 몸이 고달프고 괴롭다 하더라도 마음만은 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대승(大乘)의 법은 만일 운용하지 않으면 실패하고 파괴되기 때문이다’고 해야 한다.
‘선바라밀을 취한다’ 함은 보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도 더러는 아직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번뇌의 바람이 불어오면 서원의 나무[願樹]가 동요되고 그 시라바라밀이 파괴되려고 한다.
그때에는 마땅히 선정의 즐거움을 구하면서 5욕의 즐거움을 물리쳐야 한다.
5욕의 즐거움을 물리치기 때문에 계덕(戒德)이 청정해지고 그럼으로써 번뇌를 아직 끊지 못했다 하더라도 벌써 꺾고 조복했기 때문에 산란함이 생길 수 없다.
비유하건대 마치 독사가 주술(呪術)의 힘 때문에 독을 뿜어낼 수 없는 것과 같다.
선(禪)이란 4선(禪)과 4무색정(無色定)과 4무량심(無量心) 등의 모든 선정이다.
보살은 선정의 마음을 얻어 비록 유연하고 편안하게 시라바라밀에 안주한다 하더라도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를 취하지는 않는다.
이 보살은 다만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선바라밀을 행하면서 소승의 열반도 위하지 않고 또한 과보를 위하지도 않아야 한다.
다만 온갖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모든 법의 실상만을 설해야 한다’고 해야 한다.
이 진실한 지혜[實智]는 선정에서 생긴다.
이 마음은 거친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에 동요되지도 않고 또한 탐욕이나 성냄[瞋恚]에도 흐려지지 않으니,
마음이 한 곳에 매여 청정해지고 유연해지면 이 진실한 지혜가 생기게 된다.
마치 물이 맑아지고 고요해지면 거울을 비추듯이 분명한 것과 같다.
보살은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이 선정을 얻고 이 선정을 얻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해지며 마음이 청정해지기 때문에 모든 법의 실상을 알게 된다.
유위의 법[有爲法]은 인(因)과 연(緣)의 화합에서 생기며 거짓된 것이다.
보살은 혜안(慧眼)으로 관찰하므로 이 유위의 법을 진실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유위의 법에는 갖가지의 이름이 있나니,
이른바 작법(作法)과 유위(有爲)와 수법(數法)과 상법(相法) 및 ‘있다[有],
없다[無]’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유위 때문에 무위(無爲)를 말할 수 있으나 유위의 모양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무위이겠는가.
【문】유위의 법은 있는 모양[有相]이고 무위의 법은 없는 모양[無相]이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유위의 모양 가운데서 없는 모양을 말씀하시는가?
【답】무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양이 없는 것으로서,
고요히 사라져서 쓸모없는 이론도 없는 열반과 같은 것이요,
둘째는 상대(相待)로서 있는 것을 말미암지 않고도 생기는 것이니,
마치 묘당(廟堂) 위에 말[馬]이 없으므로 없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다.
이 ‘없다는 마음’이 바로 모든 번뇌를 내는 인연이거늘 어떻게 이것이 무위의 법이겠는가.
이런 보살은 이 ‘있다,
없다’는 등의 법도 보지 않고 다만 모든 법의 여(如)와 법성(法性)과 실제(實際)만을 볼 뿐이다.
【문】그대는 앞에서 “있는 것[有]을 여의면 없는 것[無]도 없다”고 하였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여와 법성과 실제를 본다고 하는가?
【답】유위의 법을 항상하다[常]거나 즐겁다[樂]거나 나[我]라거나 청정하다[淨]라고 보지 않으니,
이것은 바로 거짓된 법이라 만일 없다 한다면 그것이 곧 모든 법의 진실이어서 생겨남이 없는 법[無生法]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때문에 생겨남이 있는 법[有生法]을 여읠 수 있다.
이 생겨남이 없는 법은 정해진 실체로서의 모양을 취할 만한 것이 없으며,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인 생멸이 있는 법을 여의게 하려고 ‘생겨남이 없다[無生]’고 한다.
만일 이와 같은 지혜를 얻으면 방편의 힘[方便力]과 본래의 원(願)인 비심(悲心) 때문에 2승의 증득을 취하지 않고 곧장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게 되나니,
이것을 바로 보살이 시라바라밀에 머무르면서 다섯 가지 바라밀을 취한다 한다.
1)
반야바라밀의 방편선교(Upāyakauśalya)의 힘을 말한다.
● [pt op tr] fr
_M#]
『대지도론』
♣0549-080♧
◎◎[개별논의] ♥ ❋본문
● 반야바라밀다를 낸다는 행위의 의미
★1★
◆vcvm1858
◈Lab value 불기2565/06/30 |
Piaf Edith - Madeleine Qu'avait Du Coeur
♥단상♥망상계로의 방향 전환 노래를 듣다보니 부인이 4 명이라는 노래를 듣게 된다. 오래 전에 PRINCE 님이 아이들 기저귀갈고 돌보는 것처럼 여인을 만나고 사귀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토로한 적이 있다. 본인도 그에 공감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혼자서는 살기 힘들다. 서로 도와야 한다. 라이터 화두가 의미하는 바는 그런 것이다. 라이터 하나도 혼자 만들려면 300 만년 이상 걸린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어울려 지혜를 모으면 마트에 가서 몇백원만 주면 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도 도반관계를 형성해 서로 도우면 수행을 쉽게 성취한다. 연구를 하다보면 연구의 1/2 이상이 자료를 모으고 살피는 일이 된다. 그런데 오늘날 링크만 클릭하면 대장경을 열람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데 한반도에서만 800 년 이상이 걸렸다. 그런데 그것도 한반도에 살아가는 이들만으로 이룬 것이 아니다. 컴퓨터 하나만 놓고 보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 도반들이 서로 요철관계를 이루어서 서로 부족한 것을 돕고 수행을 하면 대단히 좋다. 숙왕화님이 수술을 마치고 조금 기력을 회복했는지 오늘 전화가 왔다. 전화가 왔다는 것 자체가 희소식이다. 연구를 조만간 1 단락 짓고 망상계로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그러나 마무리가 잘 지어지지 않는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6/2565-06-30-k0549-080.html#1858 sfed--대지도론_K0549_T1509.txt ☞제80권 sfd8--불교단상_2565_06.txt ☞◆vcvm1858 불기2565-06-30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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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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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나이다. 대사(大士)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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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지 법과 가지가지 다라니를 들었으나
일찍이 이와 같은
광대무애대비심다라니신묘장구(廣大無㝵大悲陁羅尼神妙章句)는
설함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대사께서는
나를 위하여
널리 이 다라니의 모양을 설해주소서.
나와 모든 대중은 즐겨 듣기를 원하나이다."
관세음보살께서
대범천왕에게 말씀하시되
"너는 방편으로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이와같이 묻는구나.
너는 잘 들어라.
내가 너희들 대중을 위하여
간략하게 말하리라."
관세음보살께서
말씀하시되,
"크게 자비로운 마음[大慈悲心]이 다라니의 모양이며,
평등한 마음[平等心]이 이것이며,
생기고 멸함이 없는 마음[無爲心]이 이것이며,
번뇌에 물듦이 없는 마음[無染着心]이 이것이며,
공을 관하는 마음[空觀心]이 이것이며,
공경하는 마음[恭敬心]이 이것이며,
낮추는 마음[卑下心]이 이것이며,
잡되고 어지러움이 없는 마음[無雜亂心]이 이것이며,
번뇌로 괴롭힘과 해침이 없는 마음[無惱害心]이 이것이며,
잘못된 견해에 대한 집착이 없는 마음[無見取心]이 이것이며,
위없이 가장 훌륭한 깨달음의 마음[無上菩提心] 이 이것이다.
이와같은 마음이
곧 다라니의 모양임을 알아야 하리라.
너희들은 마땅히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하여야 하리라."
대범천왕이 말씀하되,
"저와 대중은 지금에
비로소 이 다라니의 모양을 알았으니
지금부터 받아 지니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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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마라 摩囉摩囉<二十五> ma la ma l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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布哩嚩<二合>鼻婆<引>史<七十三>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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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게송
[181일째]
입시겁수불가설 $ 052▲摩魯陀摩魯陀為 一 ● 懺慕陀, ○□□□□,受,於,一,如
□□□□□□□, 受時劫數不可說,
於此行列安住時, 一切諸劫無能說。
□□□□□□□, 수시겁수불가설,
어차행렬안주시, 일체제겁무능설。
들어갈 때 겁의 수효 말할 수 없고
받을 때의 겁의 수효 말할 수 없어
여기서 줄을 지어 머무를 적에
모든 겁을 누구도 말할 수 없네.
[182째]
여시섭수안주이 $ 053▲懺慕陀懺慕陀為 一 ● 瑿攞陀, ○□□□□,所,入,入,意
□□□□□□□, 所有境界不可說,
入時方便不可說, 入已所作不可說,
□□□□□□□, 소유경계불가설,
입시방편불가설, 입이소작불가설,
이렇게 받아 넣고 머무른 뒤에
갖고 있는 경계를 말할 수 없고
들어갈 때 방편도 말할 수 없고
들어가서 짓는 일도 말할 수 없어
●K1058_T2153.txt★ ∴≪A대주간정중경목록≫_≪K1058≫_≪T2153≫
●K0549_T1509.txt★ ∴≪A대지도론≫_≪K0549≫_≪T1509≫
●K1339_T0404.txt★ ∴≪A대집대허공장보살소문경≫_≪K1339≫_≪T0404≫
법수_암기방안
52 눈 eye 眼 【안】
53 (귀)코 nose 鼻 【비】
25 손바닥( 팜 palm)
73 소지 (~새끼)
615649
414
○ 2019_1104_133926_nik_Ab31_s12 구례 화엄사 연기암
○ 2019_1104_114631_can_bw24_s12 구례 화엄사 구층암
○ 2018_1022_170209_can_ct19 공주 태화산 마곡사
○ 2018_1022_130700_can_ct11 공주 계룡산 갑사
○ 2020_1017_163651_can_BW21_s12 삼각산 화계사
○ 2020_1017_155221_nik_ct18 삼각산 화계사
○ 2020_1002_125159_can_bw17_s12 파주 고령산 보광사
○ 2020_0910_121937_nik_ct9 속리산 법주사
○ 2020_0910_115627_can_Ab31 속리산 법주사
○ 2020_0909_144731_can_bw24 무주 백련사
○ 2020_0909_134744_can_ar33 무주 백련사
○ 2020_0906_105948_nik_CT28 천축산 불영사
○ 2019_1201_151527_can_ct18_s12 원주 구룡사
○ 2019_1201_143723_can_Ar28 원주 구룡사
○ 2019_1105_172425_can_AR35_s12 순천 조계산 송광사
○ 2019_1106_161111_can_AR35_s12 화순 계당산 쌍봉사
○ 2019_1105_161804_nik_BW17 순천 조계산 송광사
○ 2019_1106_103125_nik_Ar28 화순 영구산 운주사
○ 2019_1104_171641_can_exc
○ 2019_1104_122550_can_exc_s12
○ 2018_1023_141139_can_ori
○ 2018_1022_174634_can_ori
○ 2018_1022_134242_can_exc
○ 2020_1017_160803_can_ori_rs
○ 2020_1017_163440_can_exc_s12
○ 2020_0211_134833_can_exc
○ 2020_0211_134600_can_exc_s12
○ 2019_1201_154413_can_exc_s12
○ 2019_1201_151759_can_e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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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1017_145704_can_exc_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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