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K0056
T0397
제2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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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등대집경』
♣0056-025♧
제2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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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方等大集經卷第二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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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등대집경 제25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11. 보계보살품(寶髻菩薩品) ①
그때 세존께서 짐짓 욕계와 색계의 중간 큰 보배 궁전 가운데 계시면서
사자자리에 올라 큰 광명을 놓으시니,
그 광명의 밝기는 마치 해와 달 같고,
크게 자재롭기는 마치 범천과 제석 같고,
공덕이 높이 나타남은 마치 수미산 같고,
법계의 아주 깊음은 마치 큰 바다와 같았다.
이 대중 가운데에서 바른 법을 연설하시되,
처음과 중간과 끝에 걸쳐 문자와 이치의 진정함을 잘 말씀하시고
청정함을 원만히 갖추어 법행을 널리 선포하시며,
여러 보살을 위해 법인(法印)을 깨끗이 하여 보살들로 하여금 듣고서 닦도록 하셨다.
그때 동방으로 9만 2천 여러 불세계를 거쳐
그곳에 선화(善華)라 하는 세계에 정주(淨住)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하는 부처님이 계시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바른 법을 연설하셨다.
거기에 보계(寶髻)라 하는 한 보살이 8천의 보살들과 함께 그 세계를 출발하여 이 국토에 오고자 하여 묘한 보배 일산을 갖고서 부처님께 받들고자 하니,
그 일산이 1천세계를 두루 덮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써 부처님을 공양하고자,
묘한 음성으로 게송을 읊으면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그 어떤 사람이건 하늘이건
부처님 뵈면 큰 이익 얻으리라.
부처님이 겪으신 괴로움 한량없어
부지런히 정진하셨기에 보리 얻으셨네.
옛날에 정진하여 보리 닦으신 일
모든 보살보다 뛰어나시어
중생을 이익 되게 하려고
더없는 바른 법바퀴 굴리셨네.
여래는 이같이 뵈옵기 어렵고
말씀하신 바른 법 듣기 어려우며
사람 몸 얻기 또한 어려우매
모든 감관[根] 구족함도 그러하다네.
만약 중생으로서 착하지 못하면
세 가지 착한 업도 짓지 못하리니
그 누구든 큰 이익 얻으려면
응당 거룩하신 부처님 뵈올 것이며,
만약에 더없는 법을 받아 듣고
시방 보살들의 서른두 가지
묘상(妙相) 갖춤을 보려면
응당 큰 보배 궁전에 빨리 나아갈 것이며,
이제 만약 선근 심지 않으면
뒷날 큰 열반을 얻지 못하리니
사람 몸을 원만히 갖추고자 한다면
응당 사바세계로 빨리 나아갈 것이며,
3악취 파괴하려고
사람․하늘의 미묘한 즐거움 받고
더없고 견줄 데 없는 즐거움 얻으려면
응당 사바세계로 나아가야 하리라.
큰 의사께서 단 이슬 맛을 베푸시어
중생의 모든 번뇌를 없애시니
여래는 상주(常主)이시고 큰 법왕이시라
오늘 더없는 경계를 연설하시네.
보계보살이 이 게송을 읊을 적에 그 음성이 대천세계에 두루 가득하였는데,
때마침 사리불(舍利弗)이 이 게송을 듣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게송 소리는 어느 곳에서 연설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동방으로 9만 2천의 여러 불세계를 지나면 거기에 선화(善華)란 세계가 있고,
그 국토에 호를 정주(淨住)라 하는 부처님이 계시는데,
그 중에 보계(寶髻)란 보살이 8천의 보살과 더불어 함께 여기에 왔으니,
그의 말하는 소리가 대천세계에 들리어 중생으로 하여금 착한 법을 닦도록 권하는 것이니라.”
그때 보계보살은 8천의 보살과 한량없는 사람․하늘과 더불어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서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화세계의 정주 여래께서 ‘부처님께서는 거둥이 가볍고 펴안하시고 기력이 안녕하시나이까?
그리고 권속과 대중들도 즐거이 법을 받나이까?’라고 공경히 문안드리라 하셨나이다.
ᖰ 세존이시여,
제가 거기에서 이 세계에 온 것은
보살의 청정한 행 법인(法印)을 듣고자 함이오니,
원컨대 대자대비하신 여래께옵서 가엾이 여기시어 널리 분별 해설하여 주옵소서.
여러 보살로 하여금 듣고는 닦아서 온갖 번뇌의 습기를 끊고
보살의 행을 닦아서 온갖 중생의 마음을 분명히 알며,
보살의 모든 행상(行相)을 닦아 능히 지혜의 행을 이해하고,
온갖 번뇌의 행을 알아서 능히 보살이 닦을 법행을 닦고,
깊이 온갖 죄과(罪過)를 관찰하여 몸에 걸림이 없이 모든 부처님을 보게 하겠나이다.”ᖱ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야.
자세히 들어라.
내 이제 이러한 청정한 행을 10분의 1일이라도 말하리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네 가지 행이 있나니,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바라밀의 행이요,
둘째는 보리를 돕는 행이요,
셋째는 신통의 행이요,
넷째는 중생을 조복하는 행이니라.
바라밀의 행은 서원의 방편이고,
보리를 돕는 행은 수도하는 방편이고,
신통의 행은 마음으로 조복하는 방편이고,
중생을 조복하는 행은 보리심을 굳게 하는 방편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단(檀)바라밀이라 하느냐 하면,
단바라밀은 바로 이 청정한 행으로써 능히 어리석은 마음을 부수고 버리는 마음을 닦으며,
버리는 마음을 닦고 나서는 온갖 것을 보시하는 것이니라.
만약에 보살이 온갖 것을 보시한다면,
곧 네 가지 분별 없는 마음을 얻으리니,
네 가지 분별 없는 마음이란,
첫째는 중생을 분별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법을 분별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마음을 분별하지 않음이요,
넷째는 원(願)을 분별하지 않음이니,
이것을 넷이라 하느니라.
중생을 분별하지 않음이란,
이는 줄 수 있고 이는 줄 수 없다든가,
이는 많이 주고 이는 적게 준다든가,
이는 높여 주고 이는 낮추어 준다든가,
이는 공손히 주고 이는 경멸하며 준다든가,
이는 전부를 주고 이는 반만을 준다든가,
이는 계율을 지니는 것이고 이는 계율을 깨뜨리는 것이라든가,
이는 복밭(福田)이고 이는 복밭이 아니라든가,
이는 크게 갚을 수 있고 이는 크게 갚을 수 없다든가,
이는 바른 소견이고 이는 삿된 소견이라든가,
이 행은 정취(正聚)고 이 행은 사취(邪聚)라고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라.
선남자야,
만약에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마음을 얻는다면,
이것을 분별하지 않는 마음,
교만 없는 마음,
위와 아래가 없는 마음,
걸림이 없는 마음,
평등한 마음,
진정한 마음,
평등한 보시와 지계,
평등한 자비라고 하며 분별없기가 마치 허공과 같나니,
이것을 일러 중생을 분별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법을 분별하지 않음이란,
보살은 끝내 받는 자에게는 설하고 받지 않는 자에겐 설하지 않는다거나
법을 받은 자에겐 그에 필요한 것을 보시하고 법을 받지 않은 자에겐 공급하지 않는다는 이러한 분별을 하지 않으며,
또 범부에게는 베풀어 줄[惠施] 수 없고 현성(賢聖)에게는 응당 보시해야 한다고 관찰하지 않나니,
이것을 법을 분별하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마음을 분별하지 않음이란,
모든 중생을 관찰하되 마음을 다 평등하여서 갚음을 바라고 보시하지 않으며,
안팎으로 욕심이 없어 명예를 위해 보시하지 않고,
과보를 구하려고 보시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물건을 보시하고도 후회하지 않고,
중생을 거둬주기 위해 보시를 행하나니,
이것을 일러 마음을 분별하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원을 분별하지 않음이란,
보시할 때에 제석(帝釋)의 몸이거나 범왕(梵王)의 몸이거나 전륜왕(轉輪王)의 몸이거나 악마[魔]의 몸이거나 장자․대신의 몸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또 큰 자재를 위하거나 큰 권속을 위해서도 아니고,
천상에 태어나기를 위해서도 아니고,
성문승이나 벽지불승을 위해서도 아니고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한 것도 아니면서 보시를 행하나니,
이것을 일러 원을 분별하지 않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닦을 적에 이러한 네 가지 일을 원만히 성취한다면,
곧 여덟 가지 바르지 못한 소견을 멀리 여의게 되리니,
첫째는 나라는 소견[我見]이고,
둘째는 중생이란 소견[衆生見]이고,
셋째는 수명의 소견[壽命見]이고,
넷째는 장성의 소견[士夫見]이고,
다섯째는 상견(常見),
여섯째는 단견(斷見),
일곱째는 있다는 소견[有見],
여덟째는 없다는 소견[無見]이니라.
다시 네 가지 공덕을 멀리 여의게 되리니,
첫째는 범부의 공덕,
둘째는 성문의 공덕,
셋째는 연각의 공덕,
넷째는 다른 습기의 공덕이니라.
이와 같이 보시한다면
떳떳한 모양[相],
즐거운 모양,
나의 모양,
청정한 모양의 이 네 가지 모양을 관찰하지 않으며,
몸을 깨끗이 함과 입을 깨끗이 함과 마음을 깨끗이 함과 서원을 깨끗이 하는 이 네 가지 법을 깨끗이 하며,
과보의 걸림과 성문의 걸림과 후회하는 마음의 걸림을 멀리 여의게 되리라.
선남자야,
보살은 이러한 보시를 닦을 적에 세 가지 두려움을 멀리 여의나니,
그 세 가지란 교만의 두려움과 상만(上慢)의 두려움과 악마의 일[魔業]의 두려움이니라.
보살은 또 이러한 보시를 닦을 적에
내공(內空)의 인(印),
외공(外空)의 인,
중생의 공한 인,
보리의 공한 인,
이 네 가지 인을 원만히 갖추며,
이와 같이 보시할 적에는 네 가지 정진을 갖추나니,
첫째는 중생을 가득하게 하기 때문에 정진을 갖추고,
둘째는 불법을 옹호하기 때문에 정진을 갖추고,
셋째는 32상과 80종호를 갖추기 때문에 정진을 갖추고,
넷째는 불토를 깨끗이 하기 때문에 정진을 갖추느니라.
이때 다시 네 가지의 염(念)을 갖추게 되나니,
첫째는 보리심을 염하고,
둘째는 부처님을 보고자 염하고,
셋째는 항상 마음에 자애[慈]를 염하고,
넷째는 번뇌 여읠 것을 염하며,
이와 같이 보시할 적에는 자기의 몸과 다른 사람의 몸과 보리,
이 세 가지 일을 깨끗이 하며,
또 경계[界]의 지혜,
중생을 만족케 하는 지혜,
서원의 지혜,
보리를 돕는 지혜,
이 네 가지 지혜를 깨끗이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약에 이러한 법을 행한다면,
단바라밀을 깨끗이 한다고 하리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이 청정한 시(尸)바라밀을 행하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한 가지 청정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보살은 온갖 세간의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성문․벽지불의 사람보다 뛰어나서 능히 보배덩이를 원만히 갖추어 방일함이 없는 것이니라.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모든 중생에게 나쁜 마음을 내지 않음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중생을 조복하여 보리에 나아가게 함이니라.
선남자야,
다시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몸의 온갖 나쁜 업을 멀리 여의기 때문에 몸을 깨끗이 함이요,
둘째는 입의 온갖 나쁜 업을 멀리 여의기 때문에 입을 깨끗이 함이요,
셋째는 온갖 탐내고 성내는 삿된 소견을 멀리 여의기 때문에 뜻을 깨끗이 함이니라.
다시 네 가지가 있으니,
중생들을 권하여 금하는 계율을 범하지 않음이 그 첫째요,
중생들을 권하여 청정한 계율을 원만히 갖춤이 그 둘째요,
모든 계율 헐뜯는 자를 조복함이 그 셋째요,
계율 지니는 자를 보고서 공양 공경하고 존중 찬탄함이 그 넷째이니라.
다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계율을 지니고도 교만(憍慢)을 내지 않음이요,
둘째는 계율 헐뜯는 자를 보아도 경만(輕慢)을 내지 않음이요,
셋째는 계율 지닌 자를 보고서 마음에 질투함이 없음이요,
넷째는 끝까지 성문승을 구하지 않음이요,
다섯째는 벽지불승을 염하지 않음이니라.
다시 여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계율을 벗어나려 하기 때문에 부처님을 염하고,
둘째는 계율을 벗어나고도 마음에 후회하지 않기 때문에 법을 염하고,
셋째는 능히 여래의 계율을 원만히 갖추기 위하여 스님을 염하고,
넷째는 모든 존재의 과보를 구하지 않기 위하여 계를 염하고,
다섯째는 온갖 것을 다 베풀어 주기 위하여 보시를 염하고,
여섯째는 모든 착한 법을 원만히 갖추려고 하기 때문에 하늘을 염하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깊이 일체의 불법을 믿는 것이고,
둘째는 힘써 정진을 행하여 불법을 얻는 것이며,
셋째는 지혜를 구족하여 일체 모든 불법을 아는 것이고,
넷째는 이미 들은 일체 불법을 능히 설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부모,
스승과 화상에게 공양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현재와 미래의 악업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참괴심을 가지는 것이다.
다시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이끗[利養]을 위해서 이상한 것을 나타내어 중생을 의혹시키지 않음이요,
둘째는 온갖 것을 여의기 때문에 자기 일을 말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마음에 만족함을 알기 때문에 공양을 가리지 않음이요,
넷째는 착한 법을 즐겨하기 때문에 성인의 종성(種姓)을 행함이요,
다섯째는 신명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두타(頭陀)의 법을 따름이요,
여섯째는 세간 일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고요함을 즐겨함이요,
일곱째는 3세(世)를 싫어하기 때문에 마음 깊이 법을 즐겨함이요,
여덟째는 신명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마음껏 법을 옹호함이니라.
다시 아홉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3세(世)와 다섯 가지 갈래 중생의 사는 곳을 벗어나기 때문에 아홉 가지 나쁜 마음을 여읨이요,
둘째는 깨끗하기를 염하고,
셋째는 닦기를 염하고,
넷째는 착한 법을 더 자라게 하고,
다섯째는 마음으로 고요함을 즐겨하고,
여섯째는 번뇌의 생각을 여의고,
일곱째는 사마타(舍摩他)를 장엄하고,
여덟째는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아홉째는 중생을 속이지 않음이니라.
다시 열 가지가 있으니,
몸의 세 가지 업을 깨끗이 함이 그 하나요,
입의 네 가지 업을 깨끗이 함이 그 둘이요,
뜻의 세 가지 업을 깨끗이 함이 그 셋이요,
질투를 멀리 여읨이 그 넷이요,
아첨하고 그릇된 마음을 여읨이 그 다섯이요,
마음껏 계율을 염함이 그 여섯이요,
계율을 지니기 이하여 부지런히 정진을 행함이 그 일곱이요,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부드럽게 말함이 그 여덟이요,
중생의 심부름을 위하여 몸을 받음이 그 아홉이요,
모든 복밭[福田]에서 교만을 내지 않음이 그 열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이 시(尸)바라밀을 행하는 것인가 하면,
두 가지 청정한 행이 있으니,
첫째는 마음을 지니고 모양을 지니고[有心有相]
또 장엄으로써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라도 끝까지 계를 무너뜨리지 않음이요,
둘째는 마음이 없고 모양이 없고[無心無相]
장엄도 없음으로써 일체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음이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그 두 가지란 안의 감관[內入]을 깨끗이 함과 온갖 바깥 감관[外入]을 구하지 않음이며,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항상 보리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 그 하나요,
본래 보리에 나아가는 계의 모양[戒相]을 관찰하지 않는 것이 그 둘이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이 찬제(羼提)바라밀의 행을 깨끗이 하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욕설을 들어도 보복하지 않음은 입의 업[口業]이 깨끗한 때문이며,
구타를 당하여도 보복하지 않음은 몸의 업[身業]이 깨끗하기 때문이니라.
ᖰ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아무리 욕설을 들어도 응수하지 않음은 중생을 옹호하기 때문이며,
모든 쓰라린 시달림을 받아도 보복하지 않음은 후세를 옹호하기 때문이며,
손과 발이 끊기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내지 않음은 보리를 옹호하기 때문이며,
요구하는 자를 보고서 마음에 미워하지 않음은
네 가지 거둬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보리의 도를 더하고 인색한 마음을 헐고 악마의 일[魔業]을 부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염불(念佛)을 닦고 나서 인욕을 행하되
온갖 괴로움을 받음은 불신(佛身)을 얻기 위함이니라.ᖱ
선남자야,
다시 보살이 인욕을 닦음은 10력을 원만히 갖추려고 하기 때문이며,
또 보살이 인욕을 닦음은 큰 사자후를 이룩하려고 하기 때문이며,
3세의 걸림 없음을 알기 위한 때문이며,
대자대비의 힘을 얻기 위한 때문이며,
온갖 지혜를 갖추기 위한 때문이니라.
ᖰ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두 가지 힘을 원만히 갖추어서
능히 참음[忍 ]을 성취하나니,
첫째 지혜의 힘이요,
둘째 닦는 힘이니라.
지혜의 힘을 지님으로써 몸과 마음을 관찰하나니,
그러므로 참음이라 하고,
닦는 힘을 지님으로써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참음이라 하느니라.ᖱ
선남자야,
참음을 깨끗이 하는 보살은 일체 법 가운데 중생이 없음을 관찰하나니,
그러므로 참음을 닦는다 하고,
일체 법은 그 성품이 해탈한 것이므로 보살은 일체 법을 관찰하되 참음도 없고 성냄도 없나니,
만약 모든 법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을 참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두 가지 참음이 있으니,
첫째는 법신(法身)과 같이 관찰함이요,
둘째는 법계와 같이 관찰함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만약 이와 같이 두 법을 관찰한다면 이를 일러 보살이 찬제바라밀의 행을 깨끗이 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의 행을 깨끗이 닦는 것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수행에 있어 쉬거나 후회하지 않고 모든 착한 법에 있어 만족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며,
또한 다섯 바라밀 수행하기를 즐겨하고 항상 온갖 착한 법을 장엄하고 바른 법을 옹호하여 연설하기를 즐겨하며,
중생을 조복하되 마음에 쉬는 적이 없고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벗어나 온갖 바른 불법을 옹호하며,
모든 고행을 닦아도 그 마음은 후회하지 않아 끝내 옛날의 선근을 상실하지 않으며,
널리 닦고 많이 들어도 마음에 싫거나 지침이 없고 중생을 위하여 심부름하되 근심하거나 뉘우치지 않나니,
이것을 정진이라 하느니라.
이러한 정진을 어떻게 깨끗이 한다 하느냐 하면,
몸은 마치 그림자의 모습과 같고 입은 말함이 없고 마음은 끝까지 깨끗하다고 관찰하여 다한 지혜[盡智]로써 모든 멸하는 법을 관찰하고 무생법인으로써 모든 존재의 다함을 알며,
이와 같이 관찰할 때에는 능히 세 가지 정진을 장엄하나니 그 세 가지란 몸의 장엄과 깨달음의 장엄과 분별의 장엄이다.
다시 눈에 집착하지 않음과 색에 집착하지 않음과 식별에 집착하지 않는 세 가지의 정진에 집착하지 않음이 있으며,
내지 법도 그러하느니,
이른 취(取)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정진이라 하느니라.
이같이 부지런히 정진을 원만히 갖추고는,
은혜로운 보시를 취하지 않고 인색하고 탐냄을 버리지 않으며,
계 지님을 취하지 않고 계 헐뜯음을 버리지 않으며,
참음을 취하지 않고 성냄을 버리지 않으며,
정진을 취하지 않고 게으름을 버리지 않으며,
선정을 취하지 않고 어지러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며,
지혜를 취하지 않고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으며,
착한 법을 취하지 않고 나쁜 법을 버리지 않으며,
불도를 취하지 않고 성문승과 벽지불승을 버리지 않나니,
이를 일러 두 가지 부지런한 정진이라 함이니라.
이 두 가지 정진은 능히 불법을 갖추느니라.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안과 바깥이니,
만약 보살로서 능히 이같이 부지런한 정진을 닦는다면,
이는 비리야바라밀의 행이 깨끗하다고 하리라.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이 선(禪)바라밀의 행을 깨끗이 하는 것인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선의 갈래[禪支]를 취하고 모든 선의 갈래를 관찰하되 관찰하고는 정(定)에 들며,
정에 들고 나서는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눈의 선 내지 의식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색의 선 내지 법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땅․물․불․바람․허공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느니라.
해와 달,
제석․범천․자재천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욕계․색계․무색계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이것저것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몸과 마음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위․아래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4취(取)1)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선이라 하느니라.
중생(衆生)․수명(壽命)․사부(士夫)․나[我]․남[人] 모양[相]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상견(常見)․단견(斷見)과 있고 없는 소견의 선에 탐착하지 않으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필경 번뇌를 다하는 선이 아니므로 이를 선이라 하며,
정취(正聚)에 들어가는 선이 아니므로 이를 선이라 함이니,
사문의 과[沙門果]를 얻는 선이 아니니라.
이러한 선은 필경 행의 선이 아니라 공으로 조복한 선이라 하지만,
참된 공의 선은 아니며,
모양 없이[無相] 조복한 선이라 하지만,
진실로 모양 없는 선은 아니며,
원 없이[無願] 조복한 선이라 하지만,
진실로 원 없는 선은 아니니,
이를 일러 보살은 대자대비한 온갖 공한 행의 선을 원만히 성취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온갖 공함을 갖춤이라 하는가 하면,
능히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방편과 자(慈)․비(悲)․희(喜)․사(捨),
4제(諦)의 보리(菩提)와 지혜․서원의 장엄함과 사마타(舍摩他)․비바사나(毘婆舍那)․해탈(解脫)․부끄러움[慚愧] 따위를 관찰하지 않는 이것을 부처님의 방편․삼매․신통․걸림 없는 지혜라 하며,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法)을 섭취(攝取)하되 2승(乘)에 더럽히지 않느니라.
모든 습기를 끊고 한량없는 큰 신통의 지혜를 갖추어 온갖 중생의 귀의할 곳이 되며,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장엄하여 온갖 중생을 조복하되 네 가지 폭류와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게 하며,
모든 얽어 묶음을 끊고 일체 법성을 청정케 하는 이것을 성품의 고요함이라 하느니라.
법의 고요함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면서도 법의 버리는 성품에 취향(取向)하여 분명히 법의 눈이 어두운 성품에 나아가고,
들음이 있으면 법의 귀먹은 성품에 나아가며,
부지런히 조복하여 법의 머묾에 나아가고,
멸하고 고요하여서 불꽃처럼 왕성함을 조복하는 이것을 온갖 행의 공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마치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사람이 다 그림을 잘 그릴 줄 알되,
그 중에 진흙으로 잘 바르는 이도 있고 색칠을 잘하는 이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몸뚱이는 그릴 줄 알아도 손발은 그릴 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손발을 그릴 줄 알아도 얼굴을 그릴 줄 모르는데,
때마침 어떤 국왕이 담요 한 장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부면서 말하기를 ‘그림 그릴 줄 아는 여러 사람은 다 이 담요 위에 모여와서 내 몸의 화상을 그려라’고 하자,
그때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기능에 따라 공동으로 만들되,
어떤 화공 한 사람이 사고로 인연하여 오지 못한 채 여러 사람은 그림을 마쳤다 해서 왕에게 함께 올렸다면,
선남자야,
이 그림을 여러 사람이 다 모여서 만들었다고 말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야,
내가 이 비유로 말함도 그 이치가 아직 분명히 나타나지 못하였느니라.
선남자야,
한 사람이 오지 않음으로써 다 모여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고,
그 화상도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나니,
ᖰ 불법의 행이란 것도 그와 같아서
만약 한 가지 행이라도 성취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여래의 바른 법을 원만히 갖추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행을 원만히 갖추어야만
위없는 보리(菩提)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ᖱ
이 법을 말씀하실 적에 6만의 보살이 모든 행에 대하여 공함을 원만히 갖추게 되었다.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이 반야(般若)바라밀을 깨끗이 하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열두 가지의 지혜를 갖추나니,
과거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하나요,
미래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둘이요,
현재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셋이요,
함이 있음[有爲]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넷이요,
함이 없음[無爲]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다섯이요,
온갖 세상의 조작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여섯이요,
출세함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일곱이요,
변재(辯才)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여덟이요,
진실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아홉이요,
세간의 진리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열이요,
그 으뜸가는 진리를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열 하나요,
모든 중생의 영리함과 우둔함을 알되 걸림 없음이 그 열둘이니,
이를 지혜라 이르는 것이니라.
깨뜨리기 어려움을 능히 깨뜨리고,
관찰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이해하되,
마치 금강(金剛)을 저지하거나 파괴할 수 없음과 같은 이것을 출세의 지혜,
필경의 지혜,
온갖 중생의 마음을 진실히 아는 지혜라 하느니라.
다니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고 보기도 어렵고 아주 깊어서 배우기도 어려우며,
바른 소견과 정취(正聚)로써 모든 소견과 습기를 멀리 여의고,
스스로 앎이 분명하여서 온갖 중생의 마음을 알며,
법의 지혜와 이치의 지혜로써 아무런 탐착이 없고,
넓고 큰 광명으로 싸움도 없고 핍박함도 없으며,
시절(時節)과 시절이 지남을 잘 알아 정법취(正法聚)를 옹호하고 필경의 깨달음․바른 깨달음․진실의 깨달음으로 모든 더러움을 여의어 아무런 가책을 받지 않으며,
한 가지 행으로써 행이 없고 온갖 중생의 행이면서도 발자취의 행이 없느니라.
온갖 세간의 행을 여읠지라도 그 세간의 행을 멀리 여의지 않고,
세계를 여읠지라도 불토는 여의지 않고,
온갖 행의 장엄을 여읠지라도 중생 조복하기를 멀리 여의지 않고,
모든 행을 여읠지라도 착한 행은 여의지 않고,
중생 마음의 행[心行]의 인연을 여읠지라도 중생 마음의 행 알기를 여의지 않고,
세간의 행은 여읠지라도 세간의 법은 여의지 않고,
모든 몸을 여읠지라도 중생의 마음에 들어가는 이것을 지혜라 하나니,
이러한 지혜는 매우 얻기 어려우니라.
선근이 잘 익지 않으면 마침내 얻을 수 없고,
착한 법을 항상 수행하지 못한 자도 이러한 지혜를 얻을 수 없고,
보리 나무 아래에서라야 얻을 수 있어서 참으로 법성을 알아 모든 부처님의 옹호를 받고 저 언덕에 이르러 일체 법 보시와 단 이슬의 맛을 알게 되리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이러한 지혜는 마침내 온갖 인연과 온갖 모양[相]과 온갖 중생심의 소행을 분명히 아나니,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지혜라 하느니라.
이러한 지혜는 두 가지 고요함이 있으니,
그 두 가지란 걸리는 모양[礙相]을 아는 고요함과 걸림 없는 모양을 아는 고요함이며,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깨달음이 없는 것의 깨끗함이 그 하나요,
모든 소견을 여의는 것의 깨끗함이 그 둘이니라.
이러한 지혜로써 보살마하살은 항상 중생의 영리하고 우둔한 근기 속에나 중생의 마음속에나 일체 법 가운데에 놀면서 모든 번뇌를 관찰하니,
이것이 바로 지혜이니라.
보살은 온갖 세계에 머물러도 법계에 많이 머물러서 시방세계를 잘 관찰하되,
온갖 번뇌[蓋]를 여읨은 다 불법의 근본이라고 보며,
더없는 모든 불법을 원만히 갖추어서 모든 법을 배우지 않고 모든 법을 여의지도 않으며,
한 가지 법을 헐지 않고 한 가지 법을 이룩하지도 않느니라.
보살은 이러한 지혜를 성취함으로써 능히 공덕을 짓고 불법을 읽어 외우고 말하며,
온갖 복덕을 다 얻고 온갖 착한 법을 닦아 이룩하나니,
이것을 일러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행을 깨끗이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적에 2만 2천의 중생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
8천의 보살은 무생법인을 얻고,
5백의 비구는 번뇌가 다하여 해탈하게 되고,
십천의 하늘과 사람은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그때 온갖 하늘과 사람은 같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누구든지 이 경전을 믿기만 하여도 마땅히 이 사람은 여러 부처님께 옹호까지 받을 것이거늘,
하물며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고 베껴 쓰고 공양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선남자야,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보리의 행을 깨끗이 하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신념처(身念處)을 관찰함에 두 가지 행이 있으니,
깨끗하지 못한 행이 하나요,
깨끗한 행이 또 하나이다.
깨끗하지 못한 행이란 몸의 깨끗하지 못함으로써 냄새와 더러움이 가득하여 덧없고 머묾이 없어 모든 범부를 속이는 것인 줄 관찰함이요,
깨끗한 행이란 보살마하살이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깨끗하지 못한 몸으로 인하여 깨끗한 부처님 몸을 얻고 깨끗한 법신(法身)과 깨끗한 공덕의 몸과 온갖 중생의 보기 즐겨하는 몸을 얻으리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몸을 관찰하고 나서 또 두 가지 행을 깨끗이 하나니,
첫째는 덧없음이요,
둘째는 떳떳함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몸이 덧없으므로 마침내 반드시 죽는다고 관찰하며,
이렇게 관찰하고는 몸을 위하기 때문에 나쁜 업을 짓거나 삿된 생활[命]로 스스로 살지 않고서 세 가지 견고한 법을 닦나니,
첫째는 몸의 견고함이요,
둘째는 목숨의 견고함이요,
셋째는 재물의 견고함이니라.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서 능히 중생을 위해 심부름하여 곧 몸과 입과 뜻의 그릇됨을 멀리 여의게 되므로,
보살은 이 몸의 덧없음을 관찰하고 이러한 한량없는 공덕을 얻느니라.
어떤 것을 떳떳하다 하는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덧없음을 관찰하고는 곧 떳떳한 몸을 얻고,
덧없음을 인하므로 공덕의 몸을 얻고,
덧없음을 인하므로 불․법․승의 종자를 끊지 않느니라.
선남자야,
또 떳떳함이란 곧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음이란 곧 함이 없고[無爲],
함이 없음이란 곧 온갖 지혜의 행하는 곳이고,
온갖 지혜의 행하는 곳이란 곧 공하고 모양 없고 원 없는 곳이며,
또 떳떳함이란 바로 이 허공이므로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을 마치 허공과 같다고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야,
다시 보살은 신념처를 닦아서 온갖 중생의 몸은 필경 이 부처님의 몸이고 부처님의 몸처럼 법신(法身)도 그러하고,
이 두 가지 몸과 같이 나의 몸도 그러하다고 관찰하나니,
이것을 일러 보살이 번뇌 없는 몸을 관찰한다는 것이니라.
보살이 그때 얻는 착한 법은 그 많고 적음에 따라 다 번뇌가 없으므로,
이러한 법으로써 발원하여 온갖 갖가지의 지혜에 회향하며,
번뇌를 없애고 마침내 번뇌를 일으키지 않느니라.
번뇌란 것은 이른바 욕심의 번뇌,
존재의 번뇌,
무명의 번뇌,
이 세 가지니,
보살은 세 가지 번뇌를 분명히 알고 나서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욕계에 태어나기는 하지만,
욕심과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고 색계․무색계에서도 그러하느니라.
무명의 번뇌란 것은 이미 그 뿌리를 뽑아야 하나니,
왜냐하면 무명(無明)을 뽑음으로써 곧 소견[見]의 번뇌가 없게 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몸의 염을 닦고 나서 이 몸 가운데에 나[我]와 내 것[我所]을 보지 않고 교만을 내지 않아 나와 내 것을 여의기 때문에 온갖 재물을 구하거나 취하지 않으며,
구하거나 취하지 않기 때문에 재물에 대해 싸움이 없으며,
싸움이 없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고요함이니라.
무릇 고요함이란 곧 참음이니,
참음에 머문다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음이니,
높거나 낮지 않음은 곧 법답게 머묾이요,
법답게 머묾이란 착한 법을 행하지도 않고 나쁜 법을 행하지도 않는 것이니라.
높거나 낮지 않으면 착한 벗을 얻나니,
착한 벗을 얻으면 착한 지식을 만나고 착한 지식을 만나기 때문에 바른 법을 듣게 되며 바른 법을 들음으로써 번뇌의 마음을 지녀 번뇌 있는 법에 회향하지 않나니,
이것을 일러 모든 번뇌의 경계를 벗어났다 하느니라.
번뇌의 경계를 벗어나며 언제나 선정에 들고 이미 선정에 들었다면 나아가 한 가지 법에 이르기까지도 분별을 내지 않나니,
분별이 없으므로 한 법을 짓지 않고 한 법도 변하지도 않으니,
이를 참다운 법이라 하고 일체 법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만약에 이러한 모든 법의 평등을 얻는다면 이를 온갖 지혜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만약에 이와 같이 몸의 염하는 대상을 관찰한다면,
이를 몸을 관찰하는 몸의 염이라고 이르니라.
선남자야,
보살은 그때 차례대로 수념처(受念處)를 관찰하여 느낌이 있는 것에 대해서 자비한 마음을 내고 모든 중생을 향하여 이런 말을 하느니라.
‘필경의 즐거움이란 온갖 느낌을 끊음이니라.
누구든지 온갖 느낌을 끊는다면 이것이 바로 떳떳한 즐거움이리라.’
보살은 그때 느끼는 것에 따라 자비한 마음을 내나니,
자기로서나 다른 사람으로서나 즐거움을 느낄 적에 애욕의 마음을 여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내며,
괴로움을 느낄 때라도 성내는 마음을 여의고 슬퍼하는 마음을 내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무명의 마음을 여의고 버리는 마음을 내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탐착하지 않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성내거나 미워하지 않고,
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음을 느낄 때에는 무명을 내지 않나니,
보살은 그때 온갖 느낌의 덧없고 괴롭고 나 없음을 관찰하여서 즐거움 느끼는 것을 보고는,
이것이 바로 괴로움인 줄 알고,
괴로움 느끼는 것을 보되 마치 헌 데나 부스럼같이 하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은 이 고요하지 않음이라 보고,
즐거움의 느낌은 바로 덧없음이라고 관찰하고,
괴로움의 느낌은 바로 허무하다고 관찰하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은 곧 나 없음이라고 관찰하느니라.
보살은 그때 이런 관찰을 하고 나서,
이 모든 느낌은 곧 느낌 없음이라고 보고,
온갖 느낌은 곧 함이 있다[有爲]고 보나니,
만약에 함이 있다면 이는 곧 나고 멸하고 흩어지고 새고 머묾이 없는 것이라고,
이렇게 관찰하고는 나[我]를 보지 않고 느낌을 보지 않나니,
이를 보살의 큰 지혜 방편이라 하느니라.
이 방편으로 인하여 온갖 느낌은 덧없이 나고 멸한다고 보고,
일체 법은 다 허무하여서 느낌 없고 느낄 것도 없고 조작 없고 조작할 것도 없이 인연에 따라 나고 인연에 따라 멸한다고 관찰하며,
매임도 없고 취함도 없어 모든 인연에 각(覺)과 관(觀)을 내지 않고 각과 관이 없음을 인하여 ‘모든 인연의 법은 다 공한 것이다’라고 말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관찰할 때에 느낌의 염하는 대상을 이룩하여 능히 몸과 마음을 다 고요하게 해서 온갖 행을 아나니,
이를 일러 느낌의 염하는 대상을 느낀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은 심념처(心念處)를 닦는다 하는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보리심에 머물러서 이 심성(心性)을 관찰하되,
안으로 느끼는[內入] 마음을 보지 않고 바깥으로 느끼는[外入] 마음을 보지 않고 안팎으로 느끼는[內外入] 마음을 다 보지 않고 음(陰) 속의 마음을 보지 않고 계(界) 속의 마음을 보지 않으며,
이미 보지 않고는 이런 생각을 하느니라.
‘이러한 마음과 인연은 다른 것인가 다르지 않은 것인가.
만약에 마음이 인연과 다르다면 같은 때에 응당 두 가지 마음이 있을 것이요,
마음이 바로 인연이라면 응당 다시는 자기의 마음을 관찰할 수 없으리니,
마치 손가락 끝이 스스로 촉감할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역시 그러하리라.’
이런 관찰을 하고 나서 마음은 머묾이 없고 덧없어서 변하거나 달라진다고 보고,
인연하는 대상이 멸한다면 곧 이 마음은 인연 따라 나는 것도 아니고 인연 따라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떳떳함도 아니고 끊임도 아니고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줄을 아나니,
마음을 관찰하되 이와 같이 한다면 진리다운 법에 방해되지 않고 마음의 고요함을 아는 것이니라.
이것을 보살이 마음으로 마음의 염함을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마음을 관찰하되 색이 아니므로 볼 수 없고 각과 관이 아니라 하나니,
이를 일러 보살이 마음의 염하는 대상을 닦는다 함이니라.
심(心)과 같이 심수(心數)도 그러하고 심수와 같이 심의 행도 그러하고 심의 행과 같이 심의 구하는 법도 그러하고 구하는 법과 같이 보리도 그러하고 보리와 같이 온갖 착한 법이 다 그러하느니라.
보살이 마음 관찰하기를 원숭이가 물에 그림을 그리고 아침이슬과 왕벌[蜂王]과 고기의 어미[魚母]처럼 하며,
강물과 불꽃처럼 하고,
먼 일을 생각하듯 하며,
홀로 다녀 몸이 없고 항상 굴러서 머묾이 없고 모든 경계에 탐착해서 차례로 나고 멸한다고 하느니라.
능히 이와 같이 한량없는 마음을 거둬서 한 곳에 머물게 하고 움직이거나 굴리지 않고 새거나 섞이지 않고 산란하지 않나니,
이것을 사마타(舍摩他)라고 하느니라.
보살이 능히 이같이 관찰한다면,
이는 마음을 관찰하되 마음의 염하는 대상을 성취함이라 하고,
마음의 경계를 안다 하고,
마음의 법계를 안다 하고,
마음의 진실한 모양을 안다 하고,
마음의 진실한 성품을 안다 함이니,
이는 곧 널리 알고 깨끗이 알고 진실히 알고 허깨비[幻] 같음을 분명히 알므로 이를 일러 법을 안다 하고,
심성을 안다 하고,
마음의 마지막을 안다 하고 취(取)함이 없는 앎,
걸림 없는 앎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같이 관찰하고 나서 온갖 중생의 심성을 잘 알며,
알고는 응하는 대로 그들을 위해 설법하느니라.
자기의 심성을 아는 것처럼 온갖 중생의 심성을 앎도 그러하고,
자기의 마음의 모양[心相]을 아는 것처럼 중생의 마음의 모양을 앎도 그러하느니라.
자기의 마음 공함을 아는 것처럼 중생의 마음 공함을 앎도 그러하고 자기의 마음 평등함을 관찰함도 그러하여서,
이렇게 관찰하고는 법계에 움직이지 않나니,
이를 일러 보살이 마음으로 마음의 염하는 대상을 닦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법의 염하는 대상을 닦는다 하는가 하면,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관찰하느니라.
‘법은 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며,
나와 중생과 수명과 장정도 없고,
또 나거나 멸함이 없고 빠지거나 나오는 것도 없으므로 이를 법성(法性)이라 하나니,
만약에 법을 구할 수 있다면 이는 나는 법[生法]이라 하고,
법을 구할 수 없다면 이는 멸하는 법[滅法]이라 하리라.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것이나 나는 것도 인연에 따르고 멸하는 것도 인연에 따른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에 세 가지 행을 관찰하나니,
이른바 나쁜 행과 착한 행과 움직이지 않는 행이니라.
이 세 가지 행 가운데에서도 ‘나는 항상 복되고 착한 일을 행하리라’고 하여 열 가지의 착한 법을 삼느니라.
열 가지 착한 법이란,
몸의 업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여래의 32상과 80종호를 구함에 있어 다른 것이 해칠 수 없게 하려는 것이며,
입의 업을 깨끗이 함이란 모든 말씀한 것을 중생들이 즐거이 듣게 하려는 것이니라.
마음의 업을 깨끗이 함이란 모든 중생에게 그 마음을 평등이 하며 항상 선정에 들어 4무애지를 깨끗이 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중생에게 항상 즐거움을 베풀고 슬퍼하는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한량없는 세간에 중생을 위해서 괴로움을 받아도 그 마음을 뉘우치지 않으며,
10력을 깨끗이 함은 중생들의 모든 근기의 영리하고 우둔함을 알기 때문이요,
4무소외를 깨끗이 함은 중생들의 장애가 있고 없음을 알기 때문이요,
열여덟 가지 법을 깨끗이 함은 3세의 장애 없음을 알기 때문이요,
모든 불법을 깨끗이 함은 온갖 중생으로서는 더 뛰어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능히 이렇게 관찰하여 모든 착한 법과 공덕에 만족하여 생각을 내지 않고서 착한 행에 친근하고 나쁜 행과 번뇌의 습기를 멀리 여의어 진실로 움직이지 않는 행을 분명히 알며,
탐내지 않음을 알고서 자재롭게 되어도 원에 따라 왕생(往生)하되,
업대로 태어나지 않고 욕계에 태어남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착한 방편을 얻어 법의 염하는 대상을 관찰하되,
보리 돕는 법을 닦고 장엄하여서 보리를 장애하는 온갖 더러움을 멀리 여의나니,
이 공덕을 얻고는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에 다 집착하지 않고,
또 이 두 가지 소견을 멀리 여의고서 중도(中道)를 행하느니라.
중도에는 착하지 않은 염과 무명,
이 두 가지 법이 있는데,
이 두 가지 법에서도 마음의 방일하지 않음을 중도라 하느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지어감[行]과 식별[識]이 그것이며,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 는 이름과 색[名色],
둘째는 6입(入)이며,
다시 닿임[觸]과 느낌[受]의 두 가지 법이 있고,
애욕[愛]와 취함[取]의 두 가지 법이 있고,
존재[有]와 남[生]의 두 가지 법이 있고,
늙고 죽음의 두 가지 법이 있느니라.
이 여러 두 가지 법에서도 방일하지 않는 것을 중도라 하나니,
이러한 중도는 세간의 지혜로써 볼 수 없고 설할 수 없고 나타내 보일 수도 없으며,
어떤 모양이나 색이 없고 있는 곳이 없고 취함도 버림도 없으면서 청정하고 고요하니라.
선남자야,
무릇 중도란 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내지 몸으로 부딪치지 않으며,
또 이르는 곳이 없고 세간이면서 출세간이며,
설할 수 없고 많거나 적은 것이 아니므로 중도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나와 나 없음[無我]을 두 가지 변견[二邊]이라 하나니,
만약에 말하기를,
상견(常見)도 단견(斷見)이 아니고 수명도 장정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고 깨달음 아닌 것도 아니고,
실다운 것도 아니고 실다운 것도 헛된 것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함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어감도 아니고 지어감이 아닌 것도 아니고,
생사도 아니고 열반도 아니라고 하여,
두 가지를 말하지 않는다면 이를 중도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법으로 법의 염함을 관찰하되 법계를 분별하지 않고 법계와 같이 중생계도 분별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두 세계를 허공계라 하느니라.
일체 법은 다 법계에 들어감으로 법계가 바로 중생계인 동시에 중생계는 분별이 없으므로,
이를 일러 일체 법을 관찰한다 하며,
온갖 세계를 평등하게 보는 것이 바로 법계이므로,
비록 분명히 보아서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분별함이 없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살 눈[肉眼]이나 하늘 눈[天眼]이나 지혜 눈[慧眼]으로 법의 염하는 대상을 관찰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이러한 세 가지 눈은 어떤 모양이 없기 때문이요,
법 눈[法眼]으로 법을 관찰하기 때문에 비록 분명히 알아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 집착하지 않는다 해서 법계를 잃어버리지 않나니,
이를 부처님 지혜라 하며,
능히 이러한 아주 깊은 법계를 알고서도 온갖 지혜의 염함을 잃어버리지 않나니,
이를 보살이 법으로 법의 염하는 대상을 닦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무엇 때문에 4념처(念處)를 닦느냐 하면,
네 가지의 뒤바뀜을 멀리 여의려고 하기 때문이니,
신념처(身念處)를 닦음은 깨끗함에 대한 뒤바뀜을 여의기 위함이요,
수념처(受念處)를 닦음은 즐거움에 대한 뒤바뀜을 여의기 위함이요,
심념처(心念處)를 닦음은 떳떳함에 대한 뒤바뀜을 여의기 위함이요,
법념처(法念處)를 닦음은 나에 대한 뒤바뀜을 여의기 위함이니라.
또 4식(食)을 여의나니,
신념처를 닦음은 단식(摶食)을 여읨이요,
수념처를 닦음은 촉식(觸食)을 여읨이요,
심념처를 닦음은 식식(識食)을 여읨이요,
법념처를 닦음은 사식(思食)을 여읨이며,
또 식(識)의 네 가지 머무는 곳을 멀리 여의나니,
신념처를 닦음은 색(色)에 머무는 곳을 여읨이요,
수념처를 닦음은 느낌[受]에 머무는 곳을 여읨이요,
심념처를 닦음은 생각[想]에 머무는 곳을 여읨이요,
법념처를 닦음은 행(行)에 머무는 곳을 여읨이니라.
다시 5음(陰)을 여의나니,
신념처를 닦음은 색음(色陰)을 멀리 여읨이요,
수념처를 닦음은 수음(受陰)을 멀리 여읨이요,
심념처를 닦음은 식음(識陰)을 멀리 여읨이요,
법념처를 닦음은 상음(想陰)과 행음(行陰)을 멀리 여읨이니,
이를 보살이 네 가지 염(念)하는 행을 깨끗이 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어떤 것을 보살이 4정근(正勤)한 행을 닦는다 하느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항상 온갖 착한 법을 즐거이 닦아서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쁜 법은 미리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이미 생긴 나쁜 법은 멀리 여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며,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한량없는 세간에 착한 행을 닦으므로 성품이 착하여 어떤 방편으로 나쁜 짓을 생기지 않게 하지는 않느니라.
만약에 보살이 4정근(正勤)을 닦는다면 마음이 자재롭게 되리니,
4정근이라 함은 보살은 어느 때나 심(心)과 심수(心數),
대자대비를 함께 행함으로써 정근이라 하느니라.
보살은 그때를 따라 또 4신족(神足)을 닦나니,
그 네 가지란 욕심과 마음과 정진과 지혜이다.
전일한 생각과 지극한 마음으로 보리를 염하므로 욕심이라 하고,
큰 슬픔[大悲]을 닦음으로 깨닫는 마음이 가뜬함을 마음이라 하고,
나쁜 법을 멀리 여의므로 정진이라 하고,
방편을 얻으므로 지혜라 하나니,
보살은 이 4신족을 닦고 나서 네 가지의 자재로움을 얻느니라.
첫째는 수명의 자재로움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비록 짧은 수명으로 태어났더라도 스스로 긴 수명을 얻을 수 있느니라.
또 중생을 조복하여 긴 수명을 주기 위해서는 바른 법을 연설하고 긴 수명에서도 짧은 수명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보살의 태어나는 곳에 따라 사람이든 하늘이든 수명의 자재로움을 얻느니라.
둘째는 몸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마음대로 몸을 만들고 마음대로 색을 만들며,
중생을 위하여 위의를 나타내 보이므로 보살이 만약에 여러 중생들과 그 몸을 동등하게 하고자 한다면,
높고 크거나 가늘고 적은 것을 모두 만들 수 있느니라.
셋째는 법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온갖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알아서 중생들에게 온갖 세간의 일을 보여 주어도 출세간의 행에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며,
깊고 깊은 12인연을 분명히 알고 걸림 없는 지혜를 얻어 능히 중생들에게 갖가지 법을 연설하므로,
중생들이 듣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넷째는 서원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니,
자재롭기 때문에 사방의 큰 바다를 합하여 한 개의 바다를 만들지라도 오거나 가지 않고 움직임도 굴림도 없이 본래와 다름없게 하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수미산을 합하여 한 개의 산을 만들지라도 오거나 가지 않고 움직임도 굴림도 없이 본래와 다름없게 하고,
사천왕과 삼천대천세계에서도 방해되거나 걸림이 없게 하며,
삼천대천세계로 하여금 모두 금보배나 7보,
전단․꽃․향․영락과 허공․물․불을 만들고자 하더라도 다 마음대로 이룩하나니,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의 자재로움을 얻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만약에 네 가지의 신족을 얻는다면,
곧 시방 여러 부처님을 직접 뵈옵고 함께 말하고 한 곳에서 거처할 수 있을 것이며,
온갖 범천․제석․사천왕과 아수라․건달바․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또한 그러하느니라.
어떤 것이 4신족을 깨끗이 장엄하는 것인가 하면,
선남자야,
만약에 부모․스님․화상․어른․덕 있는 이를 공양하며,
중생을 보고는 마음껏 문안하되 부드럽고 연하게 말하고 말과 같이 행동하며,
여러 중생을 대함에는 그 마음을 평등이 하여 착한 마음․바른 마음․공경하는 마음․부끄러운 마음으로 대하고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멀리 여의고 속이거나 탐내거나 더럽히거나 인색함이 없는 것이니라.
다른 사람의 사업을 자기 사업처럼 경영하고 세력 없는 자에겐 그 세력을 도와주며,
진흙탕이 된 곳에는 흙과 돌로써 다스리고,
강이나 시내,
개천과 도랑에는 다리[橋]를 만들어 주거나 몸으로 업기도 하고 배[船]에 태워 건네주기도 하여 언제나 중생의 필요한 문자를 베풀며 입으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을 말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의 범죄를 비웃지 않고 죄지은 자가 있더라도 법답게 다스리고는 여러 번뇌를 일으키지 않게 하며,
소중한 물건을 남에게 베풀어 주더라도 이미 베푼 뒤에는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느니라.
중생들을 위해 발원 회향하고 신심으로 착한 일을 중생에게 권하고,
목숨[身命]을 아끼지 않아 욕심을 적게 하고,
만족을 알아서 다른 사람의 이끗[利養]에 바라는 것이 없으며,
항상 출가하기를 염하여 중생에게 권하고,
선지식을 염하되 마음에 버리는 일이 없으며,
원수나 친한 사람이나 평등이 보아 둘이 없고,
갖가지 승(乘)으로써 아무 관계없는 사람에게까지 베풀며,
여위고 약한 사람에겐 평상과 친구를 보시하고,
공포를 느끼는 자에겐 구호하여 주고,
여러 중생 보기를 부모처럼 생각하며,
훼계(毁戒)한 이를 깔보지 않고,
가난한 이에게 재물을 보시하느니라.
병든 자에게 약품을 공급하고,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서 스스로 자랑하지 않고,
끝까지 삼보의 종성(種性)을 끊지 않으며,
항상 함이 없음[無爲]을 염하고,
세간의 일과 온갖 착하지 않는 법을 멀리 여의어 세간법에 물들지 않고,
보리를 잃어버리지 않고서 지심을 염한다면,
이를 일러 4신족의 행을 깨끗이 장엄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
1)
1) 욕취(欲取)․견취(見取)․계금취(戒禁取)․아어취(我語取)의 넷을 말한다.
● [pt op tr] fr
_M#]
『대방등대집경』
♣0056-025♧
◎◎[개별논의] ♥ ❋본문
● 수행덕목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보리의 완성
★1★
◆vsvj8533
◈Lab value 불기2565/06/23 |
♥단상♥ 대장경 및 불교를 쉽고 재미있게 연구해가는 방안 일정한 계기를 통해 대장경 연구를 한다고 하자. 그 분량이 1 생을 다 들여도 채우지 못할 만큼 많다. 그래서 지치게 되기 쉽다. 그러나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거의 하루 종일 연구를 한다고 여긴다. 심지어 잠자면서 꿈을 꿔도 그런 주제로 꿈을 꾸는 것을 경험한다. 요즘은 처음 그런 진리를 어떻게 획득하게 되는가를 연구 중이다. 일반인은 경전을 보아서 얻는다. 그런데 처음 그런 가르침을 베푼 입장에서는 또 어떤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진리를 획득하는 방안으로 인명론 분야에서 많이 논의된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현량과 비량을 든다. 그런데 불교 대장경에 담긴 진리는 이와 조금 성격이 다르다. 우선 경전에 담긴 가르침을 듣거나 봐야 한다.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내용이 드물다. 그래서 여기에는 그런 내용을 일단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믿음으로 다른 이가 해주는 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것은 성언량이라고 칭한다. 비량으로 얻을 수 있는 진리는 사실은 드물다. 현량은 더더욱 엉터리다. 그래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경전에서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비유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편, 부처님이 궁극적으로 알려주고자하는 내용은 승의제다. 이 승의제는 곧바로 얻기 힘들다. 그것을 얻어낼 방편으로 세속제가 사용된다. 이런 세속제가 시설되어야 이를 통해 승의제를 이해하게 된다. 이 사정을 비유로 설명해보자. 꿈을 꾸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가 꿈 속에서 꿈밖의 상황을 알고자 한다고 하자. 그러면 꿈을 깨어나면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침대가 놓인 상황을 살필 수 있다. 꿈은 그렇다. 생사현실도 이런 상황에 많이 비유된다. 즉 생사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다. 그런데 생사현실에 처해 있으면서 생사현실 밖의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고 하자. 즉 마음 밖에 본래 있다고 할 실재 내용을 파악하려 한다고 하자. 이 경우는 위 방안이 적용되지 않는다. 꿈을 꾸다 깨어 침대를 보는 것처럼 생사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오려 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는 위와 상황이 다르다. 우선 수행을 통해 회신 멸지의 상태에 이르러, 마음에서 마음안 현실 내용을 다 비운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그 마음이 마음 밖 내용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한편 마음이 끝내 마음 자신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 그래서 이 상황이 바꿔지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마음 밖 사정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된다. 결국 회신멸지의 상태를 몇백번을 반복해도 꿈을 깨는 것처럼 현실 밖의 내용을 얻어낼 길이 없다. 이 사정을 3 세 제불 불가득, 필경리, 이런 형태로 표현하게 된다. 설령 부처님이라고 해도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 부처님을 모두 동원해도 이 문제는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그래서 끝내 문제되는 그 내용을 얻지 못하고 또 끝내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사정을 이해하려면 다른 방안을 사용해야 한다. 한편, 그런 실상에 대한 깨달음이 중요한 영역은 바로 생사현실 안이다. 본 바탕은 본 바탕을 직접 알지 못한다. 본 바탕은 또 어떤 문제나 고통을 호소한 적이 없다. 그래서 본 바탕의 측면에서는 무언가 수행을 해야 한다고 요청한 적도 없다. 그런데 이런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생사현실안에서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사현실 안에서 겪는 생사고통 문제를 이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사현실 밖의 본 바탕 사정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본 바탕 사정을 생사현실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 방안은 결국 생사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과 같은 사정으로 마땅한 방안이 없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단 세간에서 옳다고 할 세제 내용부터 확립해야 한다. 물론 승의제 입장에서 볼 때는 이들 내용은 하나같이 엉터리다. 그렇지만, 승의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내용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승의제를 이론상 이해해야 한다. 이는 커피 맛을 백과사전을 이해하는 경우와 비슷하게 된다. 아무리 백과사전 글자를 읽고 또 읽어도 이를 통해 커피맛을 직접 맛보기는 힘들다. 그래도 그렇게 읽으면 약간은 비슷한 상태가 된다. 이런 뜻이다. 다만 그렇게 이해한 내용이 커피맛 그 자체라고만 착각하지만 않으면 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고 어렵다. 처음 세속에서 옳다고 확립한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것이 세속제다. 그런데 이를 통해 승의제를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는 이들 내용이 하나같이 엉터리고 희론인 사정을 다시 이해해야 한다. 1 + 1 은 2 라거나 명백해 보이는 추론 법칙이나, 인과법칙도 마찬가지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눈을 뜨고 대할 때 얻는 어떤 것의 모습이나 성품조차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 일체가 엉터리인 그 사정을 세속제를 통해서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간단한 것은 아니다. 세속에서 주장되는 수많은 엉터리 주장을 하나하나 살피고 그 문제점을 파악해야 한다. 처음에는 그럴 듯하다고 여긴 내용이 왜 엉터리인가를 그 내용을 통해 거꾸로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통해 반사적으로 본 바탕 내용을 대강 이론상 이해하는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본 바탕을 직접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어느 경우에나 문제되는 본 바탕을 떠나 있는 경우도 또 없다. 그런 이상한 주제를 놓고 잘 살펴나가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이 부분에서 골치를 아파하게 된다. 잘 이해 안되는 내용을 수없이 경전에서 반복하는 것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시, 이런 과정을 쉽고 재미있게 해나갈 방안을 추가로 연구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는 것은 일단 사찰 곳곳을 탐방하면서, 조금씩 그 파편을 대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템플 스테이 까지는 아니어도, 템플뷰 훈련을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본래는 문, 사, 수 이런 내용이 수행에서 강조된다. 신, 해, 행, 증도 강조된다.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려면 사찰에 가서 대웅전 문을 붙들고 문을 사수해야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려면 신도증도 필요하지만, 신해행증이라는 신분증도 함께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불교내 전문 용어로 3 혜, 4 분, 이렇게도 표현한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6/2565-06-23-k0056-025.html#8533 sfed--대방등대집경_K0056_T0397.txt ☞제25권 sfd8--불교단상_2565_06.txt ☞◆vsvj8533 불기2565-06-23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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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즉(異時卽). “즉(卽)”이란 자가 동시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는 동시즉이라 한다. 이를테면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진다”고 할 때, 시간의 간격이 없이 오는 것을 나타내는 경우에 쓴다.
답 후보
● 동시즉(同時卽)
득탈(得脫)
등류상속(等流相續)
등지(等至)
라찰녀(羅刹女)
로가야타(路迦耶陀)
리그베다(梨俱吠陀)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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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bud] Buddhism in Venezuela
[san-chn] pūti-kaḍevara 穢身
[san-eng] vinā $ 범어 without
[pali-chn] puñña 福
[pal-eng] kaayappakopa $ 팔리어 m.misbehaviour.
[Eng-Ch-Eng] 倒 (1) Upside down, perverted, inverted, contrary, mistaken. Same as 顛倒. (viparya^sa, viparyaya, paryasta, viparita). (2) But, nevertheless, and yet.
[Muller-jpn-Eng] 因緣觀 インネンカン meditation on causes and conditions
[Glossary_of_Buddhism-Eng] SON☞
See also: Sonjong.
“(Kor.), Korean counterpart of Japanese Zen and Chinese C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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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t: 344 #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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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든 중생이
대비신주(大悲神呪)를 외우고 수행하는 자가
목숨이 마칠 때면
10방의 모든 부처님이 오셔서
손을 주시며
어느 부처님 계신 국토든 원하는 대로 태어나게 되나이다.
다시 부처님께 말씀하시되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중생이
대비신주를 외우고 지니는 자가
삼악도에
떨어지게 되면
나는 맹세코 성불하지 않겠습니다.
또 대비신주를 외우고 지니는 자가
만약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맹세코 정각을 이루지 않겠습니다.
● 다질타 怛姪他<十八> ta dya thāoṃ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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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가마라사나
迦摩羅薩曩<六十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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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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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일째]
어중시겁불가설 $ 045▲訶理婆訶理婆為 一 ● 一動, ○□□□□,於,菩,諸,一
□□□□□□□, 於中差別不可說,
菩薩悉能分別說, 諸明算者莫能辨。
□□□□□□□, 어중차별불가설,
보살실능분별설, 제명산자막능변。
그 가운데 겁과 시간 말할 수 없고
그 가운데 차별도 말 못할 것을
보살이 분별하여 다 말하지만
산수에 능한 이도 분별 못하네.
[175째]
일모단처대소찰 $ 046▲一動一動為 一 ● 訶理蒲, ○□□□□,雜,如,一,以
□□□□□□□, 雜染清淨麁細剎,
如是一切不可說, 一一明了可分別。
□□□□□□□, 잡염청정추세찰,
여시일체불가설, 일일명료가분별。
한 터럭 끝에 있는 작고 큰 세계
물들고 깨끗하고 굵고 잔 세계
말로 할 수 없는 여러 세계를
낱낱이 분명하게 분별하리라.
kṣetra
●K0167_T0992.txt★ ∴≪A대방등대운경청우품제육십사≫_≪K0167≫_≪T0992≫
●K0056_T0397.txt★ ∴≪A대방등대집경≫_≪K0056≫_≪T0397≫
●K0065_T0415.txt★ ∴≪A대방등대집경보살염불삼매분≫_≪K0065≫_≪T0415≫
법수_암기방안
45 발등 instep / top (side) of the foot
46 발 곡면 [신조어] 곡면( Arch)
18 아래팔뚝 (forearm)
66 상완(上腕)
23664
702
○ 2019_1104_175211_nik_ar47 지리산 피아골
○ 2019_1104_110136_nik_bw24 구례 화엄사
○ 2019_1104_161756_can_BW21_s12 구례 쌍계부근
○ 2020_1114_154230_can_Ab35 삼각산 도선사
○ 2019_0106_160912_can_ct6 의정부 도봉산 망월사
○ 2019_0106_151127_can_AB4_s12 의정부 도봉산 망월사
○ 2018_1023_122758_can_bw4_s12 예산 덕숭산 수덕사
○ 2020_1002_124335_can_Ab31_s12 파주 고령산 보광사
○ 2020_1002_115020_nik_BW21_s12 파주 고령산 보광사
○ 2020_0908_163737_can_ct18 합천 해인사
○ 2020_0908_153624_nik_Ab27 합천 해인사
○ 2020_0906_115011_can_ar45 천축산 불영사
○ 2020_0906_112104_can_Ab27 천축산 불영사
○ 2020_0905_171945_can_ct9 오대산 적멸보궁
○ 2020_0905_152052_can_ar47 오대산 적멸보궁
○ 2020_0905_143221_can_ab41 오대산 상원사
○ 2019_1201_162859_nik_CT27 원주 구룡사
○ 2019_1106_151417_can_AR35_s12 화순 계당산 쌍봉사
○ 2019_1105_132305_nik_ct21_s12 순천 조계산 선암사
○ 2019_1106_115910_nik_ct19_s12 화순 영구산 운주사
○ 2020_1126_160730_nik_CT28
○ 2020_1126_160401_nik_ori
○ 2020_1126_160236_nik_AR25
○ 2020_1126_153544_can_exc
○ 2020_1126_153509_nik_exc
○ 2020_0224_115213_nik_ct19
○ 2020_0224_104702_nik_ct18_s12
○ 2018_1025_175200_can_bw0_s12
○ 2019_1004_165037_can_ct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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