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미증유정법경』
K1408
T0628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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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미증유정법경』 ♣1408-005♧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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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說未曾有正法經 卷第五
K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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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미증유정법경』 ♣1408-005♧
◎◎[개별논의] ♥ ❋본문
● 있다는 망상분별과 없다는 망상분별 사이의 균형과 수행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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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pvu2078
◈Lab value 불기2565/06/18 |
○ 2020_0909_154549_can_CT27.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Claude-Monet-the-isle-grande-jatte-on-the-siene ○ 2016_1008_131550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ahindarama Buddhist Temple (Theravada), George Town, Penang, 말레이시아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상세정보=> https://buddhism007.tistory.com/5763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orneille - Comme Un Fils.lrc Corneille - Comme Un Fils ♥단상♥ 근본무명 수행론 이전 페이지들에서 리비도 수행론과 분노 수행론을 살폈다. 오늘은 여기에 이어 근본무명(어리석음) 수행론을 살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각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본능적으로 감성적으로 행하게 되는 반응 태도 자세가 있다. 그런 본능적 감성적 자세는 그 에너지가 대단히 강하다. 불교 이론에서도 이런 자세는 왠만한 수행으로는 평생 끊기 힘든 번뇌로 제시한다. [둔사] 어떤 견해나 지식에 대한 번뇌는 날카롭기는 해도 올바로 알기만 하면 바로 끊을 수 있다. 그런데 탐, 진, 치, 만심, 의심과 같은 번뇌는 그렇지 못하다. 그만큼 그 에너지가 강하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이에 지배받아 매 순간 행하고 태도를 취하기 쉽다. 왠만한 수행으로 잘 끊어지지 않는다. 꾸준히 수행을 닦아야 점차 줄어드는 성격이다. 그런데 매 경우 그런 본능적 감성적 반응을 해나가면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 그런 각 경우 => 그 본능적 감성적 에너지로 행하게 되는 반응이 있을 때 그 방향을 약간의 요소로 돌려서 수행방안 형태로 취하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탐, 진, 치(무명), 만, 의심 등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각기 본능적 감성적으로 일정한 반응을 취하게 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수행방향으로 전환할 약간의 요소를 마련해 낼 필요가 있다. 글을 올리면서 여러 노래를 듣게 된다. 그런데 처음 노래는 담배를 계속 피면 쓰러져 사망하게 되니, 그만 피라고 애절하게 호소한다. 그리고 또 다른 노래는 숙왕화님이 곧 열반에 들 것 같다는 예고를 한다. 현재 숙왕화님은 1 차 수술을 마시고 며칠 후 2 차 수술을 준비 중이다. 1 차 수술 예후가 안 좋아서 다시 수술을 기다리는 상태다. 그런데 그 수술을 잘 마친다해도 또 다른 수술을 하나 더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병원도 방문할 수 없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일도 달리 없다. 그냥 하던 추세로 멍하니 할 일을 계속 하는 도리 밖에는 없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처하면 오히려 담배나 술을 더 찾게끔 된다. 그런데 근본 무명 수행론이란 바로 이런 경우에 적용할 만하다., 본인 자신도 상태가 안 좋다. 그런데 주변 사람도 역시 상태가 비관적이다. 이런 경우 근본 무명 수행론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ie Laforet - Mon Village Au Fond De L'eau.lrc Marie Laforet - Mon Village Au Fond De L'eau 현실에서 현명한 사람은 이런 저런 분별을 잘 한다. 미리 인과를 따지고, 계산도 잘 한다. 그리고 무엇이 유리한가 불리한가도 잘 따진다. 그런데 어떤 이가 사리 분별을 잘 못한다고 하자. 인과를 잘 따지지도 못하고 계산도 잘 하지 못한다. 매 경우 손해만 보고 봉 노릇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수행방면에서 무엇을 놓고 대해도 오로지 보리심만 생각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다음이다. 본래 현실에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 단지 그렇게 모습이 나타나고 그런 분별을 일으켰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망집을 일으키고 임하게 된다. 어느 한 현실 단면에 어떤 일정 부분이 자신이나 영희, 철수라고 여기고 임하게 된다. 또 현실에 본래 얻지 못하는 생사나 생멸을 있다고 여기고 임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한다.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으로 여겨지는 상황에 처하고 묶이게 된다. 그래서 매 경우 현실을 그런 깨달음으로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서 행하는 모든 분별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계산도 하지 않고 매 경우 손해만 보는 것처럼 임하게 된다. 현실에서 글자나 숫자가 있다고 하자. 칠판에 그런 글자나 숫자를 써 놓고 묻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4 가 어디 있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이 경우 4 라고 쓰여진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이렇게 행하는 이를 현실에서 똑똑한 아이나 사리 분별을 행하는 이라고 칭한다. 만일 위 경우에 손으로 가리키지 못한다고 하자. 그가 장님이거나, 눈병이 있거나 시력이 약한 이가 아니라고 하자. 그런 경우 그는 사리 분별을 못하는 상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수행자는 사실은 이런 상태에 유사하다. 중생제도를 위해 그는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리고 중생과 눈높이를 맞춘다. 그래서 중생들이 망집에 바탕해 그런 부분을 4 라고 여기고 가리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 부분이 정작 4 가 아님을 이해하고 대한다. 그래서 현실 입장에서 대하면 그는 사리 분별을 잘 행하지 못하는 상태와 유사하다. 그런데 올바로 현실을 관하면 사실은 그 상태가 오히려 올바르다. 본 바탕이나 감각현실 측면에서 그가 생각하는 내용은 하나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그 망집에 바탕해 그런 내용이 그런 부분에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기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하고 생사고통에 처한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이해하게 되면 수행자는 이런 상태가 안타깝게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비심을 바탕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처음 사리 분별을 못하는 상태와 언뜻 유사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자칫 수행이란 억지로 분별을 못하는 상태를 향해 노력하는것인가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렇지는 않다. 현실에서 어떤 문제상황에 놓여 있다고 하자. 예를 들어 전기나 수도시설 또는 보일러가 고장이 날 수도 있다. 또는 사용하는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고장이 날 수도 있다. 또는 사업에 위험이 닥쳤을 수도 있다. 또는 투자한 자산이 파산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또는 기타 심한 질병에 걸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나 가까운 이가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 기타 등등 다양한 문제 상태가 현실에는 나타난다. 이런 경우 현실에서 다양한 내용을 잘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래서 세속에서 현명한 이는 온갖 지혜를 다 기울이게끔 된다. 그리고 이것을 잘 파악하지 못하면, 결국 문제상황에 남아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전기나 수도시설도 없이 보내거나,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고장난 상태로 지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문제다. 생계 자체가 위협받고, 가난에 시달릴 수도 있다. 또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또는 심한 질병에 걸리고,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문제해결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파악해야 할 내용이 있다. 현실에서 문제삼는 각 내용이 있는 영역을 # - ○ - □ 으로 표시해보자. ○ 은 한 주체가 눈을 뜰 때 얻는 감각현실이 있는 영역이다. 기타 다른 감각현실도 마찬가지다. 이를 색,성,향,미,촉 이렇게 나눌 수 있다. 한편 □ 은 이에 대해 분별을 일으킬 때 그런 분별이 머무는 영역이다. 그리고 # 은 자신과 관계없이도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의 실재 영역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어떤 감각현실을 얻고 일정한 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이를 감각현실● 분별내용 ■ 으로 표시해보자. 이 때 실재# - 감각현실 ● - 분별내용 ■ 의 관계를 먼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에서 매 순간 일정한 감각현실 ● 을 생생하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또 매 순간 명료하게 분별 ■ 을 행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일정하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 은 실재# 나 감각현실 ○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처럼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분별 영역 □ 에서 일으켜 얻는 것 뿐이다. 감각현실도 마찬가지다. 감각현실 ● 을 얻는 상황에서 그 감각현실은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즉, 감각현실 ● 은 본 바탕 실재#에서나, 분별 영역 □ 에서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제각각 마치 침대에 누어서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즉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기는 하지만, 그것은 꿈이나 환영과 같은 성격이다.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그처럼 얻는 것 뿐이다. 그래서 매 순간 얻어서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실답게 있는 것이 아니다. 꿈이나 환영처럼, 그렇게 실답지 않게 얻는 것 뿐이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ka - Le Pays De La Pluie.lrc Marka - Le Pays De La Pluie 한편, 이 상황에서 매순간 이런 내용을 얻게 하는 기본적인 정신이나 그 구조와 기제가 있다. 그래서 일정한 근본정신과 그 구조와 기제를 바탕해 매 순간 각 영역에서 각 감각현실● 과 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이 어디 있는가를 찾아 손으로 가리켜본다고 하자. 자신이 눈을 뜨고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책상 부분이 자신이라고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평소 자신의 몸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또 이 상황에서 영희나 철수라고 여기는 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또는 책상이나 바위로 여기는 부분을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이것을 손쉽게 할 수 있다. 처음 생사현실이 문제될 때는 이런 상황에 바탕해 문제삼게 된다. 조금만 분별 있는 이들은 이것을 모두 다 잘 한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엉터리 망상분별인 것이다. 각 주체가 그처럼 여기고 가리키는 그 부분에는 그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단지 그러그러한 감각현실 ● 을 얻고, 또 그러그러한 분별 ■ 을 일으켰을 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통상 그가 가리킨 부분은 그 성격이 감각현실이다. 그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또 관념분별도 그런 감각현실이 아니다. 이런 관계는 본 바탕 실재와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 ● 은 본 바탕 실재#에서나, 분별 영역 □ 에서도 얻을 수 없다. 관념분별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이를 이미 앞에서 살펴 보았다. 그런 관념내용 ■이 아니고, 그런 관념내용을 얻을 수 없는 감각현실 ● 부분을 붙잡고 그런 것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잘못된 망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망상분별에 바탕해 집착을 일으키고 업을 행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생사고통으로 여기게 되는 상황에 처하고 묶이게 된다. 한 주체가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는 모두 이런 바탕에서 각 내용을 문제삼는다. 그런데 그가 문제삼는 내용은 본 바탕 실재 영역#이나 감각현실 ●이나 ○ 영역에 본래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정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한편, 그가 문제삼는 그 자신의 신체나 생명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가 문제삼고 붙잡는 부분은 사실 그가 생각하는 그런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그와 관계없이, 그 주체의 근본정신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가장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각 경우마다 망집에 바탕해서 행하게끔 되는 망상분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외관상 마치 현실에서 사리분별이나 계산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런데 수행자는 사실은 2 중적인 측면을 갖게 된다. 한편으로는 앞에 설명한 기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또 한편, 그런 생사현실에서 중생들이 일으키는 망집 내용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망집을 일으킨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고 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다고 각 상황에서 중생들이 망집에 바탕해 행하듯 분별하고 업을 행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구호하고자 하는 중생과 상태가 같아지게 된다. 그래서 그 자신부터 생사고통을 겪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면서도 앞과 같은 기본 상태를 잘 이해하면서 임해야 한다. 이런 2 중적인 상황이 경우 따라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문제가 없는 기본 상태를 100% 다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아무 것도 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또는 아무렇게 행해도 무방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만일 그 주체가 생사현실에서 늘 그런 상태로 무한정 임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주체만은 관계없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그가 상대하는 상대방이나 다른 중생의 생사고통을 구호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그런 상태로 시종일관하면 그가 굳이 생사현실에 그렇게 있어야 할 이유도 별로 없다. 그러나 이제 중생의 망집 상태를 100% 다 취해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그저 망집에 바탕해 생사고통을 겪는 일반 범부 중생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이 각 입장을 조화롭게 잘 취해 생사현실에 임할 필요가 있다. 그 기준은 다음이다. 우선 그 당사자가 생사고통에 묶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받는 3 악도에 처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중생제도를 위해 온갖 방편을 다 취하다 보면 수행자도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이고 보충적인 수단으로만 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생사현실에서 임하는 방안이 다른 일반 중생을 제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안이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일반 중생을 제도하는데 도움되는 정도로 생사현실을 취해 임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우선 기본적으로 계를 구족해야 한다. 보시, 정계, 안인, 정진이 계를 닦는 기본 수행 덕목이 된다. 이렇게 되면 생사현실 안에서도 그 수행자는 복덕자량을 구족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생사현실 안에서도 무량한 방편지혜를 닦아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무량한 중생을 제도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 이념적 완성 상태가 성불이다. 그래서 법신을 증득해 성불해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취하는 온갖 수단 방안은 그런 측면의 방편적인 내용이 된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 단지 생사를 건너는 뗏못의 임시방편 기능만 하게 된다. 결국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어떤 방편을 취해 임하는 가는 이런 목적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수행자 자신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다른 중생을 제도하는 데 효과적인가가 그 방편의 가치를 정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에 따라 수행자가 본 바탕의 측면과 생사현실의 측면을 어느 정도 균형을 맟줘 임할 것인가도 이에 따르게 된다.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극복하고 벗어날 때는 본 바탕의 측면을 99% 정도 취한다고 하자. 그려면 훨씬 효과적으로 생사고통을 극복해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 제도를 위해 온갖 방편 지혜를 닦고 중생제도를 행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는 생사현실의 측면을 오히려 99% 정도 취하고 생사현실에서 계에 해당하는 보시, 정계, 안인, 정진, 등의 수행을 잘 닦아 나가야 한다. 그에서 생사현실에서 선한 무량한 법을 닦고 복덕과 지혜를 구족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이는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지만, 생사현실에서는 중생제도를 위해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근본 무명 ( 어리석음)에 바탕한 수행은 그 방향을 매 경우 잘 잡아야 한다. 사실, 생사현실안의 모든 생사고통은 그 근본이 근본 무명 어리석음 때문에 겪게 된다. 그래서 근본 무명에 바탕해 임하면 그것이 생사고통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사정은 본래 없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수행자가 임하면, 앞과 같은 사정으로 양 측면을 함께 병행해 취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는 금강경에서 제시한 내용과 사정이 같다. 본래 구제할 중생을 하나도 얻을 수 없다. 본래 생사를 겪는 상황이 하나도 얻을 수 없다. 본래 고통이라고 할 내용이 생사현실에 하나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망집을 일으킨 중생은 생사현실에서 그 망집을 바탕으로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이를 수행자는 스스로 벗어나야 하고 또 한편 다른 이도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본래 구호할 중생을 하나도 얻을 수 없지만, 그러나 무량하게 그런 망집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보시덕목을 잘 닦아야 한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래 보시를 행하는 이, 받는 이, 보시하는 물건, 내용, 보시하는 행위 일체를 얻을 수 없다. 그것이 기본적인 측면이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 중생은 그런 내용이 매 생사현실 단면에 그처럼 있다고 여기고 임한다. 이 상황에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고, 복덕을 구족해 중생을 제도하려면 계의 수행덕목 가운데 가장 기본인 이 보시덕목을 잘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을 늘 함께 취해 잘 행해야 한다. 그것이 구호중생 이 중생상이란 구절로 표현된다. 또 상을 취하지 않고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늘 꾸준히 행한다는 표현에 압축된다. 그것이 매 경우 본 바탕 측면과 생사현실 측면을 2 중적으로 조화롭게 취해 임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구체적 경우마다 조금씩 어려움을 겪게 된다. 생사현실의 복잡한 사정이나 내역도 한편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런 망상 분별에 바탕해 업을 행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이렇게 하려면 그 내용을 잘 알면서도 사실은 하나도 모른 것처럼 분별을 제거해 임해야 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앞에서 처음 일정한 불어 노래에서 담배를 피면 죽게 된다. 또는 숙왕화님이 곧 죽을 것이다 라는 내용을 전한다고 적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불어 노래에 그런 한국어가 들어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불어 노래를 부른 가수가 그런 의미로 노래를 불렀겠는가.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 한국어를 알고 불어를 잘 모르는 이가 들으면 그렇게 듣게도 된다. 어떻게 된 일인가. 불어 노래가 불려진 장소와 한국은 거리가 멀어도 대단히 멀다. 그런 가운데 불어 노래에 그런 한국어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망상이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설령 숫자 4 를 써 놓고 그것이 4 라고 여겨도 망상이다. 그래서 불어 노래를 듣고 그것을 불어로 정확하게 이해해도 역시 망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불어노래를 듣고 한국어로 이해한다면 더 심한 망상이다. 본래 생사를 얻을 수 없는데 죽음을 겪는다고 제시하는 것도 엉터리다. 그런데도 생사현실에서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사정이 같다. 부처님의 일체 설법은 희론이고 본래 엉터리다. 그런 내용을 본래 하나도 얻을 수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생사현실에서 높은 가치를 갖게 되는 사정은 다음이다. 그런 희론을 뗏목삼아 망집에서 벗어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희론은 바로 그런 점에서 대단히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다. 위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구체적인 경우에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러면 오히려 매 경우 사리 분별을 잘 행하는 것보다 못 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래서 매 경우 긍정적인 수행방향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취해 사용하는 방안을 익히는 것이 낫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올바른 사리 분별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를 갖기에 도움이 된다. 노래에서 담배를 그만 피라고 한다. => 본래 생사현실에 피움이 없다. => 그런데도 생사현실에 임할 때 이런 망집으로 의미를 취하는 것이 도움될 경우도 있다. 그런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자. => 그러면 이런 말을 다시 바꿔 그만 피워를 => go만 개피. 이렇게 바꿔 엉뚱하게 취해 임한다. 그것도 한 방안이 된다. 또 노래에서 곧 죽을 것라고 한다고 하자. => 그런데 본래 생사현실에 그런 생사를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갈 이도 얻을 수 없다. => 그런데 그렇다고 말한다고 하자. 그것도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그렇게 의미를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런데 또 도움이 안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말도 바꿔 취한다. 죽을 것이네 => 죽을 먹을 것이네, (보물을) 주을 거네, 이런 식으로 바꿔 취한다. 본래 이런 내용은 하등 생사현실에 얻을 수 없다. 그러나 망집에 바탕해 잘못 취해 그런 것이 있다고 여기고 임하기 쉽다. 그렇게 취할 것인가 아니면 넌센스적으로 엉뚱하게 취할 것인가는 희론 영역의 문제다. 그것은 중생제도나 생사고통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가에 따른다. 그래서 각 경우마다 그에 따라 의미를 취해 임하면 충분하다. 노래를 듣다보면 담배는 끊을 필요가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다만 수행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만 적당히 피우는 것이 좋다. 또 수행정도가 높아지면 마음껏 필 수 있다고 하니 수행정도를 좀 더 높이는 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한편, 숙왕화님은 망집에 걸린 이들의 입장에서는 죽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관계없이 숙왕화님은 숙왕화님대로 자신의 서원을 잘 성취해가며 생사현실에서 앞으로도 무한히 대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약간 질병에 걸려 힘들어 하지만 마치 유마거사님이 그렇듯 곧 죽을 먹고 완쾌할 것이다. 수행자가 병에 걸리고 생사를 겪는 것은 중생이 그런 것이 있다고 여기고 임하게 된 망상분별이란 병에 걸려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유마거사님도 그런 사정을 그처럼 시한 적이 있다. 중생이 병에 걸려서 유마거사님도 병에 걸린 것이다. 이런 내용이다. 그리고 사정을 살펴보면 그 사정이 그렇다. 현실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사물이나 다른 이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편견과 고정관념은 자신의 생활경험상 얻은 내용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귀납추론의 오류를 항상 그 안에 지니고 있다. 이는 800 만장의 복권용지의 오류와 같다. 800 만장의 복권용지가 모두 당첨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다음 복권용지가 당첨이 아닌 것을 보증해주지 않는다. 일체에 모두 적용되는 내용이 아닌 것을 구체적 경우에 잘못 적용하여 큰 잘못을 범하게 된다. 『수능엄경』에서는 수행자는 부처나 보살에 대해 갖는 고정관념도 버려야 함을 제시한다. 『금강경』에서도 색이나 음성으로 부처나 자신을 찾으려 하면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그런데 부지불식간에 수행자가 이런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귀납추론을 바탕으로 현실에 임하면, 생활에는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망상분별이다. 이런 경향을 벗어나려면 현실에서 대하는 사물이나 상대에 대해 일종의 시감상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낫다. 리비도 수행론이나 분노 수행론 무명 수행론에 이어 다음에는 아만 수행론, 의심 수행론을 이어 나가게 된다. 그런데 방식이 같다. 일반적으로 일정한 경우 망집을 바탕으로 본능적 감성적으로 행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행하면 문제상황에 처하게 된다.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그 에너지는 그대로 갖되 다만 그 상황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시감상을 통해 달리 감상하여 수행방향으로 전환시켜 임하는 방식이다. 리비도라는 말이 있다고 하자. 여기에서 유식한 이는 이 뜻이 무엇인가를 고정관념으로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떠날리, 아닐비 길도 이렇게 음미해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말은 바른 도가 아닌 것을 떠난다. 이런 의미로 감상하게 된다. 그런데 수행자의 시감상에는 일정한 결론적 내용이 있다. 그것은 이런 방안이 결국 수행방안으로 쉽게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결론은 보리심과 중생제도에 있다. 무엇을 대하던 어떤 상대를 대하던 그것으로 얻어낼 내용은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 어리석은 시인이 될 수 있다. 늘 꺼내오는 결론적 내용이 보리심과 중생제도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다만 주어진 내용에서 그런 내용으로 옮겨 가는 방식만 다채로울 수 있다. 이를 과일로 연습해볼 수 있다. 사과 => 아라한 등의 4 향 4 과 참외 => 참회진언 포도 => 도를 베품 이제 예제로 연습을 해보자. 커피 => ( ) => ( ) => 보리심, 중생제도 답은 늘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 답에 이르는 중간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내용만 매번 달라질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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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어>준지 <참조어>준지(准胝)ㆍ <유사어>칠구지불모
<참조어>칠구지불모(七俱胝佛母)
답 후보
● 준제(準提)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
중품상생(中品上生)
즉가(卽假)
증상과(增上果)
증오(證悟)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2020_0930_135416_can_BW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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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 불설미증유정법경_K1408_T0628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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