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삼매경론』
K1501
T1730
상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금강삼매경론』 ♣1501-001♧
상권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tienne Daho - Tombé Pour La France.lrc
일반적으로 유무를 구분한다.
K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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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삼매경론』 ♣15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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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tienne Daho - Tombé Pour La France.lrc
○ 마음의 유무와 유무문제
일반적으로 유무를 구분한다.
그래서 있는 것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없음이 아니다.
또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있음이 아니라고 보게 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금강삼매경론』에서 제시한다.
또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있음이 아니라고 보게 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금강삼매경론』에서 제시한다.
...
...
『금강삼매경론』 ♣1501-001♧
▸ 1심(一心)의 근원은
유(有)․무(無)를 떠나
독자적으로 청정하며
3공(空)1)의 바다는
진(眞)․속(俗)을 융합하여 밝고 고요하다.
밝고 고요하다는 것은
둘을 융합했다고 해서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니요,
독자적으로 청정하다는 것은
양 극[변邊]을 여의었다해서
중간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중간도 아니며
양극도 여의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법[불유지법不有之法]이라 해서
무(無)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모양이 없지 않다[무상지상不無之相]해서
유(有)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유(有)․무(無)를 떠나
독자적으로 청정하며
3공(空)1)의 바다는
진(眞)․속(俗)을 융합하여 밝고 고요하다.
밝고 고요하다는 것은
둘을 융합했다고 해서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니요,
독자적으로 청정하다는 것은
양 극[변邊]을 여의었다해서
중간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중간도 아니며
양극도 여의었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법[불유지법不有之法]이라 해서
무(無)에 머무는 것도 아니며,
모양이 없지 않다[무상지상不無之相]해서
유(有)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
『금강삼매경론』 ♣1501-001♧
이하에서는
마음을 설명하고 실상을 설명한다.
그러나 대부분 2분법적인 구분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형태로 서술한다.
우선 유무를 떠난다고 한다.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이는 있고 없음의 어중간한 상태로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중간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면 모호해진다.
이해하기 힘들다.
한편 진과 속을 융합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는 진인가 속인가.
그래서 이렇게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표현이 무슨 내용을 나타내는지 오락가락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서술하게 되는 그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있음과 없음'을 문제삼는 다양한 측면과 함께
이를 살피기로 한다.
○ 마음의 정체를 살필때 유무의 문제
일반적으로 유무를 문제삼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유무를 문제삼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마음은 유무를 문제삼는 현실 내용을 얻는다.
그러나 정작 그 마음 자체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정체를 파악할 때도
일반적으로 유무를 따지는 다양한 차원이 다 문제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다음처럼 살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유무를 따지는 다양한 차원이 다 문제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다음처럼 살필 수 있다.
○ 관념분별의 측면의 유무
마음을 문제삼으려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이미 관념으로서 그런 분별을 일으킨 가운데 문제삼게 된다.
즉, 마음에 대한 내용을 관념으로 일으킨다.
그것은 정확한 내용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주체가 그런 관념분별을 일으키고 그것을 문제삼는다.
또 그런 경우 일단 그런 관념분별의 측면에서 그런 내용은 있다고 할 것이다.
○ 언어 측면의 유무
한편 언어차원에서도 일단 '마음'이나 심, 의, 식 이런 표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표현을 통해 이를 살피게 된다.
예를 들어 한문이나 영어나 불어에 한글 '마음'이란 글자는 없다
그러나 여하튼 언어로 표현해 '마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는그런 '언어표현'이 그렇게 '언어표현'으로서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무언가를 없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그런 무언가를 관념분별하고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그런 경우에도 그런 언어표현만은 그런 측면으로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측면의 유무는 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런 측면의 유무논의는 실익이 없는 희론이 된다.
○ 감각현실 측면의 유무
감각현실은 보이거나 만져진다.
또 그럴 때 '있다'라고 표현하게 된다.
이런 감각현실은 마음을 통해 얻는다.
이런 감각현실은 마음을 통해 얻는다.
그러나 마음은 정작 마음 자신을 직접 보거나 만지지 못한다.
마치 눈이 눈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보거나 만져지는 측면에서는 마음은 '있다'고 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보거나 만져지는 측면에서는 마음은 '있다'고 하기 곤란하다.
○ 실재 측면의 마음
마음의 실재가 무언가가 문제될 수 있다.
이는 현실 내용의 본 바탕인 실재를 문제삼는 경우와 사정이 같다.
현실에서 감각내용이나 관념을 얻는다.
이런 경우 그 실재를 문제삼는다.
이 경우 실재에 대해 다음처럼 제시한다.
한 주체는 마음과 화합해 얻는 내용만 얻는다.
따라서 한 주체는 마음과 관계를 떠나, 본바탕이 되는 실재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이는 '있다거나 없다'라는 등의 2 분법상의 분별을 모두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자체로서 별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란 표현을 빌려 이를 나타내게 된다. [ 공 ]
그러나 한편 현실 각 내용은 그런 실재를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 각 내용은 본 바탕이 되는 실재의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음의 실재에 대해서도 위처럼 제시하게 된다.
마음은 실재의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음의 실재 역시 얻을 수 없다.
- 마음과 실재의 혼동 문제
마음과 실재에 대해서는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현실 내용은 마음을 통해 얻는다.
그런데 정작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
한편 실재도 마음을 떠난 것으로 현실에서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한다.
즉, 마음과 실재는 다 얻어지지 않는다.
한편 현실에서 마음으로 감각현실이나 관념내용들을 얻는다.
그런 상태에서 이들 현실 내용을 얻게 하는 본 바탕 실재가 무언가를 문제삼는다.
그런데 마음도 알고보면 이들 현실 내용을 얻게 한 본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엇비슷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동일한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실재를 문제삼을 때는 한 주체의 주관과 관계없이, 본래부터 그대로 있다고 할 것을 문제삼는다.
즉 각 주체의 마음을 떠난, 본 바탕의 상태를 문제삼는다.
그리고 마음은 얻어진 현실 내용을 얻는 것으로 관념된다.
따라서 현실 내용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마음은 현실내용과 실재의 경계에 위치한다.
따라서 실재와 마음은 동일한 지위에 있지 않다.
다만 마음의 실재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 경우에도 그 실재는 역시 공하다고 하게 된다.
그리고 마음과 실재의 관계를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마음은 실재를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게 된다.
이는 일반 현실 내용과 사정이 같다.
○ 진짜라고 할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실체로서의 마음
한편 마음을 놓고 그것이 '진짜'라고 할 영원불변한 실체인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또는 마음의 실체가 따로 있는가가 문제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역시 그런 것은 없다고 제시하게 된다. [무아, 무자성 ]
마음을 살필 때 매 생사과정을 통해서 한 주체의 근본마음(제 8식)을 제시하게 된다.
이는 생사와 관계없이 기본재료로서 무한히 이어진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그런 근본정신이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진짜로서 실체는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로서 진짜 자신의 정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아, 무자성]
○ 마음이란 언어표현[시설]으로서 문제삼는 또 다른 측면의 유무
마음은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감각기관을 통해 무언가를 본다거나 또는 만진다.
그리고 또 일정한 분별을 일으키거나 한다.
이들은 없다가 어느 순간 그처럼 얻게 된다.
감각현실이나 관념내용은 그런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이 경우 그처럼 얻어진 결과물을 통해
그런 내용을 얻게 하는 활동을 추리할 수 있다.
즉 얻지 못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얻는 변화를 일으키는 작용이나 활동을 추리할 수 있다.
한편 그런 기능을 맡아 행하는 기관도 추리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현실에서 얻어지는 감각내용이나 관념을 근거로 추리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내용을 얻는데 관여하는 '마음'을 시설해 제시한다.
현실에서 얻는 내용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에 관여하는 것이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마음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즉, '마음'이란 표현을 시설해 그에 관여하는 것을 나타낸다.
결국 이런 측면에서 마음이 '있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의 있음은 앞에 나열한 측면에서 '있음'들과는 의미가 다르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Brigitte Bardot - Tu Veux, Tu Veux Pas.lrc
'있음'과 '없음'을 문제삼는 다양한 차원이 있다.
○ 관념 영역에서 관념의 유무 문제
'있음'과 '없음'의 논의 과정에서는
일단 가장 먼저 관념분별 영역에서 이를 문제삼게 된다.
그리고 또 이를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관념내용이 관념영역에서 그처럼 얻어지는가 않는가를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일정한 관념이 그렇게 일으켜 얻어진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측면에서는 '있다'고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있음'과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러면 관념분별 영역에서 무언가 '없다'고 문제삼는 경우도
일단 그렇게 문제삼는 내용 자체는 그런 '관념'으로는 '있다'고 해야 한다.
즉, '마음'이란 표현을 시설해 그에 관여하는 것을 나타낸다.
결국 이런 측면에서 마음이 '있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경우의 있음은 앞에 나열한 측면에서 '있음'들과는 의미가 다르다.
○ 마음의 있고 없음에 대한 문제
어떤 것이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양한 측면에서 있고 없음이 문제된다.
그래서 그런 각 측면에서 이를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측면에서는 없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아주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이러이러한 측면으로는 있다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처럼 각 측면마다 있고 없음을 달리 문제삼게 된다.
그래서 각 경우마다 '있다' '없다'는 표현 자체가 갖는 의미가 구분된다.
그래서 그렇게 각 경우마다 각기 다른 측면에서 있고 없음을 달리 표현하게 된다.
그래서 오락가락 하면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마음을 살필 때는 결국
여러 측면에서 문제삼는 유무판단과 함께 그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각 경우마다 각기 다른 측면에서 그 유무를 달리 표현하게 된다.
『금강삼매경론』에서 제시하는 표현도 그 사정이 이와 같다.
마음의 '있고 없음'의 문제는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단순히 관념분별의 측면을 문제삼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마음'이란 관념을 일으키는 한, 그런 관념 측면에서는 그런 내용이 있다.
또 이를 언어로 표현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언어나 글자 형태로는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유무'를 문제삼을 때
그런 측면으로 마음의 '유무'를 살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글자로 마음이란 글자가 종이에 적혀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한편 마음은 감각현실이나 관념을 얻게 한다.
그런데 정작 마음이 감각현실이나 관념 자체는 아니다.
그런데 그처럼 무엇이 보이는가 만져지는가의 측면에서 유무를 따질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마음은 '없다'고 해야 할 듯하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그런 측면으로 따질 문제 자체가 아니다.
그런 영역에서는 마음은 얻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정확히 표현해 마음은 그런 측면으로 문제삼는 '유무'를 떠난다고 해야 한다.
한편 마음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본 바탕인 실재 지위에 있는 내용은 아니다.
또 마음의 실재는 역시 공하다.
또 마음도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영원하고 고정된 어떤 실체는 아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실체 또한 없다.
그래서 마음 역시 무아 무자성이다.
그래서 마음 역시 실답지 않다.
그래서 이런 내용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 [무아 무자성 공]
한편 마음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으로 현실에서 매 순간 생생하게 감각현실 등을 얻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는 기능이 행해진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는 그처럼 작용하는 마음이 그처럼 있다고 하게 된다.
이는 이를 통해 얻어진 현실 내용을 통해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현실 내용을 얻을 때 이를 얻게 한 마음이 아주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마음을 시설해 제시하게 된다.
그렇다고 실체가 있고 실재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즉 실다운 내용으로 이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마음을 실답다고 볼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유무를 논의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주로 본 바탕이 되는 '실재'가 문제된다.
그리고 이와 비교해 그 내용의 실다움 여부를 살피게 된다.
그리고 참된 '실체'의 존부도 문제삼는다.
실재는 현실에서 얻는 모든 내용들의 본바탕이 된다.
그런데 실재는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
=> 그래서 있고 없음의 분별을 모두 떠난다.
그리고 본 바탕의 실재는 공하다라고 제시한다.
또 '진짜'라고 할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실체가 있는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실체는 없다고 하게 된다. => [무아 무자성 ]
따라서 무아 무자성 공이라고 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각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이들 내용을 얻는 마음도 사정이 같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는 이들 일체는 역시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내용에 대해 갖기 쉬운 집착과 번뇌를 제거해야 한다.
현실에서 매 순간 생생하게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명료하게 관념분별을 행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들 내용을 얻는다.
따라서 전혀 없다고 할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참된 진짜로서 실체가 아니다.
그리고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꿈처럼 실답지는 않다.
그러나 현실은 또 정작 꿈 자체는 아니다.
꿈과 달리 다수 주체가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관계로 대단히 반복해 얻는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극심하게 겪는다.
따라서 이런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과제가 된다.
또 한편, 생사현실 내용이 좋고 좋은 형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파악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들 내용을 살피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의 유무문제를 문제삼게 되는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이처럼 각 측면마다 그 '있고 없음'을 달리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유무' 사이에서 어중간하고 애매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또 어떤 때는 있다가 어떤 때는 없기도 하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래서 단순히 유무 표현을 오락가락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각 측면에서 '유무'란 표현이 갖는 의미부터 잘 구분해 대해야 한다.
이처럼 마음을 유무를 문제삼는 각 측면과 관련시켜 살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일반적인 유무판단문제를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Brigitte Bardot - Tu Veux, Tu Veux Pas.lrc
●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있음'과 '없음'을 문제삼는 다양한 차원이 있다.
○ 관념 영역에서 관념의 유무 문제
'있음'과 '없음'의 논의 과정에서는
일단 가장 먼저 관념분별 영역에서 이를 문제삼게 된다.
그리고 또 이를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관념내용이 관념영역에서 그처럼 얻어지는가 않는가를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일정한 관념이 그렇게 일으켜 얻어진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측면에서는 '있다'고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 '있음'과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러면 관념분별 영역에서 무언가 '없다'고 문제삼는 경우도
일단 그렇게 문제삼는 내용 자체는 그런 '관념'으로는 '있다'고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토끼뿔은 현실에 없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는 경우에도
적어도 관념영역에서 그런 관념을 일으켜 이를 문제삼게 된다.
따라서 관념영역에서 그런 관념 형태로 그것은 있다.
그래서 이런 관념 측면에서 '있음'과 '없음'을 문제삼는 것은
그래서 이런 관념 측면에서 '있음'과 '없음'을 문제삼는 것은
결국 쓸모없는 희론이 된다.
○ 언어 영역에서 언어의 유무 문제
○ 언어 영역에서 언어의 유무 문제
한편 언어표현은
감각현실 형태로 일정한 글자모양이나 소리를 주로 사용한다.
한편 어떤 주체가 그런 글자모양이나 소리를 대하면 그에 대해 1 차적으로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따라서 그런 글자모양이나 소리를 대해 일으키는 관념 측면의 언어내용도 있다.
예를 들어 눈을 감고 '꽃'이란 글자 형태를 떠올린다고 하자.
또는 소리를 듣지 않는 상태에서 마음으로 'KKot 이란 말소리'를 떠올려 보자.
이런 경우 마음에서 떠올려지는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언어는 다른 일정한 내용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일정한 감각현실과 관념내용이 언어로 평가받는 것은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다.
한편 이런 언어가 가리키는 영역은 제한이 없다.
그런데 이런 언어는 다른 일정한 내용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일정한 감각현실과 관념내용이 언어로 평가받는 것은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다.
한편 이런 언어가 가리키는 영역은 제한이 없다.
언어는 각 감각현실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언어는 어떤 느낌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언어는 관념분별내용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외국어나 모국어를 비롯해 언어적 표현 그 자체[단어, 철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언어는 본 바탕의 실재내용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 언어는 참된 진짜 실체의 존부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논의에 모두 언어가 사용된다.
그것은 언어가 갖는 이런 기능 때문이다.
예를 들어 '꽃'이란 글자형태나 KKot 이란 소리를 놓고 생각해보자.
이런 언어표현을 통해
눈을 떠서 보는 화분에 있는 장미꽃 모습을 가리킬 수 있다.
또는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꽃관념을 가리킬 수 있다.
또는 그런 꽃 내용을 얻게 하는 본 바탕인 실재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차원의 내용들을 가리킬 수 있다.
한편 어떤 것의 '유무'를 문제삼을 때
언어 차원에서 어떤 내용의 '유무'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이는 관념분별측면에서 유무를 살피는 경우와 같은 문제를 갖는다.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단 그런 언어 측면에서만은 '있다'고 해야한다.
그런데 그런 글자는 일단 그렇게 제시된다. 그렇다면 그런 측면에서는 일단 있다.
한편 이런 경우 그런 글자형태를 대해 관념분별도 행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도 일단 있다.
따라서 결국 이런 측면의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쓸모없는 희론이 된다.
한편, 어떤 언어 표현을 놓고 그 표현이 특정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표현인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kkot 이란 단어가 영어나 불어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표현인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또는 그런 kkot 이란 표현이 영어나 불어 사전에 올려져 있는가 여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또는 예를 들어 blue 란 영어단어가
영어권에서 '활기차고 희망참'이란 의미를 나타내는데 사용되는가 등을 문제삼을 수도 있다.
또는 어떤 표현에 일정한 의미를 본래 갖고 있다고 볼 것인가를 놓고 문제삼을 수도 있다.
이들은 언어학적인 논의 대상은 될 수 있다.
다만, 무언가의 유무를 문제삼을 때
관념영역에서나 언어 차원에서의 유무는 보통 문제삼지 않는다.
○ 일반적 입장에서의 유무 문제
현실에서 있고 없음은 주로 다음 측면에서 문제삼게 된다.
즉,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
빛도 비추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가 보인다.
그런데 그 일정 부분을 대해 '꽃'이라는 관념분별을 자신이 일으킨다.
그런 상태에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이 곧 꽃'이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현실에서 그처럼 생각을 하며 그 부분을 대한다.
이런 경우 그 부분에 꽃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꽃이 '없다'라는 표현은 다음 상태를 나타낸다.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
빛도 비추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물도 보인다.
따라서 만일 그런 꽃이 거기에 있다면. 앞과 같은 형태로 일정한 모습이 보일 것이다
즉 꽃이라는 생각을 일으킬 일정한 감각현실이 얻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경우 거기에 꽃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기에 꽃이 '없다'고 표현한다.
현실에서 문제삼는 유무 판단은 대부분 이런 바탕에서 행하는 유무판단이다.
그런데 이는 망집을 바탕으로 행하는 유무판단이다.
따라서 문제가 많다. 이를 이어 살핀다.
○ 일반적인 유무판단과 망상분별
일반적 입장에서 행하는 유무판단은 전도망상을 바탕으로 한 분별이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다음 사정으로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우선 한 주체가 일정 감각현실을 얻는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뜨면 무언가 내용을 보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그 감각현실의 일정 부분에 대해 어떤 관념을 일으킨다.
이 경우 그런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이 그런 관념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일정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 관념분별을 일으키면
다음과 같은 망상분별을 관념영역에서 이어 일으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의 각 부분은 다 같은 형태가 아니다.
즉 눈을 뜰 때 보는 내용은 그 전체가 하나의 흰색이거나 검은 색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한 주체는 일정 감각현실의 부분을 대해 일정 관념을 반복해 '일으킨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감각현실과 관념을 병행해 동시에 얻게 된다.
그런 가운데 다른 부분과는 달리 일정부분을 대하면 일정한 분별을 반복해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과 그 관념을 서로 '대응시켜' 대한다.
즉, 이들 감각현실과 관념을 얻고 이를 재료로 관념영역에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그 감각현실 부분을 대하며 그것이 그런 관념내용'이다'고 잘못 여긴다.
또 그 부분에 그런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그가 대하는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감각현실 영역에서 관념내용은 얻을 수 없다.
이처럼 어떤 내용을 얻을 수 없는 부분을 대하며 그것이라고 잘못 여기며 대한다.
그러므로 이런 분별을 망상분별이라고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눈을 떠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일정 부분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리고 반대로 다른 부분은 또 그런 꽃이 '아니다'라고 여긴다.
또 다른 부분에는 그런 꽃이 '없다'라고 여긴다.
이런 현상은 눈으로 얻는 시각정보 외에도 다른 감각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귀,코,입,몸 등으로 얻는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정보의 경우에서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이에게 장미꽃은 무엇인가.
그 장미꽃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손가락으로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이 경우 그는 그렇게 가리킨 부분이 그가 분별하는 장미꽃'이다'라고 잘못 여기는 상태다.
그런 바탕에서 손가락으로 그렇게 가리킨다.
엄격히 보면 일체의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또 일체의 관념분별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래서 일체의 감각현실 영역에 그가 문제삼는 관념분별은 얻을 수 없다.
어떤 A 라는 내용으로부터 어떤 B 라는 내용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렇다고 A 라는 내용이 B 는 아니다.
또 A 라는 내용에 B 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연필을 떠올리고 난후 이로부터 기차를 떠올렸다고 하자.
이 경우 연필이란 생각이 기차라는 생각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연필이 기차인 것도 아니다.
또 연필이란 생각에 기차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감각현실 일정부분을 대해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킨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부분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있고 없음을 문제삼게 된다.
즉, 일반적 입장에서는 현실에 무언가가 있고 없음은 위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우선 일정한 상황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이 얻어진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꽃을 찾는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내용이 찾아진다고 하자.
경전에서도 망집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일정한 언어를 시설해 설명한다.
이 경우 그런 언어 시설은 이런 내용을 그처럼 가리키기 위한 방편이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이 상태에 그쳐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런 감각현실을 대해 그런 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런 상황에서 그런 부분은 곧 그런 분별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그런 상태에서 그런 내용이 '있다'고 표현하게 된다.
이런 상태를 상(相)을 취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것을 아상을 취한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런 망집을 바탕해 현실을 대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의 바탕에서 일정 부분이 꽃'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 감각현실 다른 일정 부분은 바위라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은 영희나 철수'이다' 라고 잘못 여긴다.
또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은 자기 자신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 이런 경우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분별내용'이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그런 자신이나 영희 철수가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긴다.
한편 일정 상황에서 영희가 저기에서 여기로 오고감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한편 종이를 태워 연기나 재가 나타난다고 하자.
즉 연기나 재가 없다가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종이나 연기 재 등의 '생멸함'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마찬가지로 자신이나 영희나 철수가 겪는 '생사'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대부분 이런 측면에서의 '있고 없음'을 표현한다.
이런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경전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경전에서는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
우선 이런 각 상황에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생멸이나 생사를 본래 얻을 수 없다.
우선 감각현실 영역에서부터 그가 생각하는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이런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처음 일으킨 망집이 생사에 묶이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된다.
이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근본적으로 이런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즉, 현실에서 그렇게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붙들고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무상해탈삼매]
따라서 경전에서 현실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취하면 수행자가 아니라고 제시한다. [참고. 『금강반야바라밀경』]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는 앞처럼 망집을 바탕으로 유무를 판단하게 된다.
사정이 그렇기에 경전 내용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본 바탕인 실재 영역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공하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잘 관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이 실답다고 여기는 망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해탈삼매]
여하튼 이 문제는 실재영역의 문제를 살핀 다음, 나중에 함께 다시 살피기로 한다.
○ 본 바탕인 실재 영역과 관련한 유무 문제
현실에서 눈을 떠 어떤 모습을 본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그가 눈을 감으면 이제 그 모습은 사라지고 얻지 못하게 된다.
이 때 그 모습은 눈을 감으면 아주 사라져 버리고 없어진 것인가.
아니면 눈을 감아도 그와 관련된 어떤 것은
자신의 주관이나 마음과 관계없이 별도로 실재한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래서 그런 것이 자신이나 주관과 관계없이 실재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실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가 문제된다.
결국 자신의 주관과 관계없이 실재하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실재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눈을 떠서 본 모습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눈을 감아 어떤 모습을 보지 못하는 상태와 같다고 할 것인가.
또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내용이나 성품 A 인가 아닌가.
등등이 모두 문제된다.
○ 실재를 문제삼는 취지 - 현실 내용이 실다운가를 판단하기 위함
이런 실재는 단순히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현실내용이 실다운 것인가를 판단하는데 중요하다.
그래서 현실 내용에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것인가를 판단하는데 중요하다.
경전에서 실재가 공함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시 하는 사정도 이것이다.
이는 다음 사정과 같다.
우선 현실에서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생생하게 꾸었다고 하자.
그 꿈 자체는 생생하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꿈을 실답지 않다고 여긴다.
꿈은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만 임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정작 꿈을 꾼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꿈 내용은 그에 기대하는 여러 성품을 갖지 못한다.
이런 사정으로 아무리 생생하게 꾸었더라도 꿈은 실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꿈이 실답지 않음을 판단하려면 꿈만 살펴서는 알 수 없다.
꿈을 꾼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의 내용을 함께 대조해 살펴 알게 된다.
그런데 현실 내용도 그 성격이 꿈과 같은가가 문제된다.
즉, 현실이 실다운가가 문제된다.
이 경우에도 앞과 문제성격이 같다.
우선 현실 내용은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하게 얻는다.
그런데 이런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는가 여부를 살필 때는
현실 내용만 살펴서는 알 수 없다.
그런 현실이 실다운가는 다른 영역의 상태를 살펴야 알 수 있다.
그래서 본 바탕이 되는 '실재'나 참된 '실체'의 존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의 본바탕인 실재가 무언가를 살피게 된다.
결국 실재를 살피는 것은 현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는 않은가를 살피는 문제다.
그런데 실재의 영역에서는
문제삼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한 주체는 오직 마음이 화합해 얻어낸 내용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주관)을 떠나 그대로 실재하는 내용은 그 주체는 끝내 얻을 수 없다.
=> 따라서 있고 없음의 2 분법상의 분별을 모두 떠난다.
그리고 본 바탕의 실재는 공하다라고 제시하게 된다.
한편 이들 내용에는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실체로서
'진짜'라고 할 내용이 있는가도 문제된다.
이 경우 => 그런 것은 '없다'고 제시한다. [무아 무자성 ]
즉 현실내용은 본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그런 조건에서 얻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망집에 바탕한 업을 제거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행함에 있어서 이 부분이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
즉 본 바탕에 현실 내용과 일치하거나 상응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하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이해하여 현실이 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침대에서 얻을 수 없는 엉뚱한 내용을 꿈 속에서 얻는다.
현실에서 얻는 내용의 성격이 그와 같다.
따라서 그것이 비록 생생하고 명료해도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이들은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를 집착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집착에 바탕해 업을 행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런데 정작 꿈 자체는 아니다.
꿈과는 달리 현실 내용은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 다수 주체가 얻는다.
그리고 일정 공간과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형태로 무량겁에 걸쳐
대단히 장구하게 반복해 얻게 된다.
또 현실은 색,성,향,미,촉,법 등처럼 다양하고 생생하게 얻는다.
이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지만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대하게끔 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각 주체가 생사고통을 대단히 생생하게 장구하게 겪어나간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고 하여 그대로 방치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이는 곧 수행자가 해결해야 하는 생사현실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본 바탕인 실재가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그런 망집을 일으키는 근본 무명 어리석음과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 경우 그것을 당장 제거하기는 힘들다.
그런 경우에는 망집을 바탕으로 처하게 되는 생사현실을 우선 좋은 형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즉, 생사고통을 극심히 받는 3 악도에 묶이지 않도록 우선 예방해야 한다. [인천교적인 방안]
그러러면 우선 망집에 바탕해 행하게끔 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또 기존에 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러면 우선 계의 수행덕목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집착을 갖고 대하는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그런 가운데 복덕자량을 성취하고 지혜자량을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무명 어리석음과 망집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생사고통을 근본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 성문승, 벽지불승의 기본 수행 목표- ]
그런데 한편 수행자 자신이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경우
생사현실에 남아 있는 중생들이 문제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중생 제도를 위해 다시 그런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임해 그런 중생과 다시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제도를 위해 필요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을 행할 때
생사현실의 이런 기본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임해야 한다.
즉 생사현실의 재료 자체는 본래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 즉 열반임을 잘 관하고 여여하게 생사현실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 [대승 보살승의 수행목표 ]
사실 본 바탕의 실재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현실 안에서 이렇게 하던 저렇게 하던 차별이 없다.
따라서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는 망집을 일으킨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실답지 않지만, 그런 내용을 상을 취하고 실답다고 여기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겪는다.
따라서 이런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런 바탕에서 현실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 대해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본 바탕인 실재에 현실내용과 상응한 어떤 내용을 얻을 수 있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있는가를 또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있고 없음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문제삼는 유무 논의의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러나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제시하게 된다.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주체는 어떤 내용을 자신의 마음에서 화합해서만 얻게 된다.
따라서 그런 주체로서는 끝내 그 내용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2분법적인 분별을 행할 수 없다.[불이법]
따라서 이는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좋다 나쁘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등의 모든 2분법적인 분별을 떠난다.
그리고 일체 언설을 떠난다.
그래서 실재는 이와 같은 상태라고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시설하여 이를 나타내게 된다.
이는 없다는 '무'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또 a 라는 무엇이 있다는 '유'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 유무 분별을 모두 떠남 ]
그리고 현실 내용[감각현실 및 관념분별]과 실재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실재는 현실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현실내용은 실재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 내용은 실재를 떠나 얻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재도 현실내용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해야 한다.
결국 현실은 본 바탕에서나 다른 영역에서 얻지 못하는 내용을 그렇게 얻는다.
그래서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다.
그래서 생사현실 내용을 실답다고 여기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이 논의의 초점이 된다.
★%★
○ 감각현실과 실재의 관계
한편 그런 공한 실재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
감각현실은 여러 조건이 화합해서
A + B => c 와 같은 관계해 마음에서 그 내용을 얻게 된다고 이해한다.
예를 들어 눈을 떠 무언가 보는 과정을 다음처럼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눈을 뜨는 상황에서
그런 조건에서 빛과 물체와 눈과 마음 등이 관계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얻게 된다고 이해한다.
이런 일반적 이해방식이 옳은가는 차후 다시 논의할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일단 이런 일반적 이해를 받아들인다고 하자. [=가정적논의]
그런 경우 현실에서 얻는 그런 내용 C 는
이런 조건을 떠나서도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이 되는 '실재'의 지위의 내용이 아니다.
위 관계식을 통해 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실재는 이런 관계를 떠나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다.
그래서 실재는 그렇게 얻는 현실 내용이나 언설 분별을 모두 떠나는 상태라고 하게 된다.
[연기(인과) 즉 공]
그러나 한편, 이런 감각현실이나 현실의 모든 내용은 그런 실재를 떠나 얻는 것도 아니다.
한편 실재는 직접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현실 내용이 나타나는 관계는 현실 안의 내용들로 그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 참고로 마음에 어떤 내용이 얻어지는 관계는
일반적으로는 위와 같이 그 관계성을 이해한다.
여기서는 그런 입장을 일단 받아들인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살핀다[가정적 논의]
>>>
- 참된 진짜의 내용[실체, 본질, 본성, 자성 등]의 있고 없음의 문제
한편 무엇이 있고 없음이 문제될 때는
그에 해당하는 진짜의 내용이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꽃'이란 글자형태나 KKot 이란 소리를 놓고 생각해보자.
이런 언어표현을 통해
눈을 떠서 보는 화분에 있는 장미꽃 모습을 가리킬 수 있다.
또는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는 꽃관념을 가리킬 수 있다.
또는 그런 꽃 내용을 얻게 하는 본 바탕인 실재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차원의 내용들을 가리킬 수 있다.
한편 어떤 것의 '유무'를 문제삼을 때
언어 차원에서 어떤 내용의 '유무'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이는 관념분별측면에서 유무를 살피는 경우와 같은 문제를 갖는다.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단 그런 언어 측면에서만은 '있다'고 해야한다.
예를 들어 '라꾸'라는 언어표현을 놓고 이런 측면에서 그 유무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글자는 일단 그렇게 제시된다. 그렇다면 그런 측면에서는 일단 있다.
한편 이런 경우 그런 글자형태를 대해 관념분별도 행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도 일단 있다.
따라서 결국 이런 측면의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쓸모없는 희론이 된다.
한편, 어떤 언어 표현을 놓고 그 표현이 특정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표현인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kkot 이란 단어가 영어나 불어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표현인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또는 그런 kkot 이란 표현이 영어나 불어 사전에 올려져 있는가 여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또는 예를 들어 blue 란 영어단어가
영어권에서 '활기차고 희망참'이란 의미를 나타내는데 사용되는가 등을 문제삼을 수도 있다.
또는 어떤 표현에 일정한 의미를 본래 갖고 있다고 볼 것인가를 놓고 문제삼을 수도 있다.
이들은 언어학적인 논의 대상은 될 수 있다.
다만, 무언가의 유무를 문제삼을 때
관념영역에서나 언어 차원에서의 유무는 보통 문제삼지 않는다.
○ 일반적 입장에서의 유무 문제
현실에서 있고 없음은 주로 다음 측면에서 문제삼게 된다.
즉,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
빛도 비추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가 보인다.
그런데 그 일정 부분을 대해 '꽃'이라는 관념분별을 자신이 일으킨다.
그런 상태에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이 곧 꽃'이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현실에서 그처럼 생각을 하며 그 부분을 대한다.
이런 경우 그 부분에 꽃이 '있다'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꽃이 '없다'라는 표현은 다음 상태를 나타낸다.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
빛도 비추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물도 보인다.
따라서 만일 그런 꽃이 거기에 있다면. 앞과 같은 형태로 일정한 모습이 보일 것이다
즉 꽃이라는 생각을 일으킬 일정한 감각현실이 얻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경우 거기에 꽃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기에 꽃이 '없다'고 표현한다.
현실에서 문제삼는 유무 판단은 대부분 이런 바탕에서 행하는 유무판단이다.
그런데 이는 망집을 바탕으로 행하는 유무판단이다.
따라서 문제가 많다. 이를 이어 살핀다.
○ 일반적인 유무판단과 망상분별
일반적 입장에서 행하는 유무판단은 전도망상을 바탕으로 한 분별이다.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다음 사정으로 전도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우선 한 주체가 일정 감각현실을 얻는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뜨면 무언가 내용을 보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 그 감각현실의 일정 부분에 대해 어떤 관념을 일으킨다.
이 경우 그런 감각현실의 일정부분이 그런 관념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일정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 관념분별을 일으키면
다음과 같은 망상분별을 관념영역에서 이어 일으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의 각 부분은 다 같은 형태가 아니다.
즉 눈을 뜰 때 보는 내용은 그 전체가 하나의 흰색이거나 검은 색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한 주체는 일정 감각현실의 부분을 대해 일정 관념을 반복해 '일으킨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감각현실과 관념을 병행해 동시에 얻게 된다.
그런 가운데 다른 부분과는 달리 일정부분을 대하면 일정한 분별을 반복해 일으킨다.
그래서 그런 감각현실 부분과 그 관념을 서로 '대응시켜' 대한다.
즉, 이들 감각현실과 관념을 얻고 이를 재료로 관념영역에서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그 감각현실 부분을 대하며 그것이 그런 관념내용'이다'고 잘못 여긴다.
또 그 부분에 그런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런데 그가 대하는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감각현실 영역에서 관념내용은 얻을 수 없다.
이처럼 어떤 내용을 얻을 수 없는 부분을 대하며 그것이라고 잘못 여기며 대한다.
그러므로 이런 분별을 망상분별이라고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눈을 떠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리고 그 일정 부분을 대해 일정한 관념을 일으킨다고 하자.
예를 들어 그 감각현실 일정 부분은 꽃이다라고 여길 수 있다.
이런 경우 그는 그 일정부분은 곧 자신이 생각하는 관념분별 내용인 꽃'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또는 그 감각현실에 자신이 생각하는 관념분별 내용인 꽃이 '있다'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반대로 다른 부분은 또 그런 꽃이 '아니다'라고 여긴다.
또 다른 부분에는 그런 꽃이 '없다'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귀,코,입,몸 등으로 얻는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정보의 경우에서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망상분별을 일으킨 상태는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이에게 장미꽃은 무엇인가.
그 장미꽃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손가락으로 일정부분을 가리킨다.
이 경우 그는 그렇게 가리킨 부분이 그가 분별하는 장미꽃'이다'라고 잘못 여기는 상태다.
그런 바탕에서 손가락으로 그렇게 가리킨다.
엄격히 보면 일체의 감각현실은 관념분별이 아니다.
또 일체의 관념분별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래서 일체의 감각현실 영역에 그가 문제삼는 관념분별은 얻을 수 없다.
어떤 A 라는 내용으로부터 어떤 B 라는 내용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렇다고 A 라는 내용이 B 는 아니다.
또 A 라는 내용에 B 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연필을 떠올리고 난후 이로부터 기차를 떠올렸다고 하자.
이 경우 연필이란 생각이 기차라는 생각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연필이 기차인 것도 아니다.
또 연필이란 생각에 기차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감각현실 일정부분을 대해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킨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부분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있고 없음을 문제삼게 된다.
즉, 일반적 입장에서는 현실에 무언가가 있고 없음은 위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우선 일정한 상황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이 얻어진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예를 들어 어떤 이가 꽃을 찾는다고 하자.
이 경우 꽃이 있는가를 문제삼는다.
그런데 철수가 방에 꽃이 '없다'고 한다고 하자.
또 영희는 다른 방에 꽃이 '있다'고 한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그런 표현은 일반적으로 다음상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뜨면 보게 되는 내용이 있다.
이를 □ 이라고 표시해보자.
또는 일정한 관념으로 '가리키게 되는' 감각현실이 얻어진다고 하자. 그런데 철수가 방에 꽃이 '없다'고 한다고 하자.
또 영희는 다른 방에 꽃이 '있다'고 한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그런 표현은 일반적으로 다음상태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눈을 뜨면 보게 되는 내용이 있다.
이를 □ 이라고 표시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일정한 관념을 '일으킬' 감각현실이 얻어진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내용이 찾아진다고 하자.
경전에서도 망집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일정한 언어를 시설해 설명한다.
이 경우 그런 언어 시설은 이런 내용을 그처럼 가리키기 위한 방편이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이 상태에 그쳐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런 감각현실을 대해 그런 분별을 일으킨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런 상황에서 그런 부분은 곧 그런 분별내용'이다'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그런 상태에서 그런 내용이 '있다'고 표현하게 된다.
이런 상태를 상(相)을 취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것을 아상을 취한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런 망집을 바탕해 현실을 대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의 바탕에서 일정 부분이 꽃'이다'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 감각현실 다른 일정 부분은 바위라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은 영희나 철수'이다' 라고 잘못 여긴다.
또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은 자기 자신고 잘못 여길 수 있다.
또 이런 경우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 그런 '분별내용'이 들어 '있다'고 잘못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그런 자신이나 영희 철수가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긴다.
한편 일정 상황에서 영희가 저기에서 여기로 오고감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한편 종이를 태워 연기나 재가 나타난다고 하자.
즉 연기나 재가 없다가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종이나 연기 재 등의 '생멸함'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또 마찬가지로 자신이나 영희나 철수가 겪는 '생사'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대부분 이런 측면에서의 '있고 없음'을 표현한다.
이런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는 경전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경전에서는 다음 내용을 제시한다.
우선 이런 각 상황에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생멸이나 생사를 본래 얻을 수 없다.
우선 감각현실 영역에서부터 그가 생각하는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이런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처음 일으킨 망집이 생사에 묶이게 하는 근본 원인이 된다.
이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근본적으로 이런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즉, 현실에서 그렇게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붙들고 상을 취하지 않아야 한다. [무상해탈삼매]
따라서 경전에서 현실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취하면 수행자가 아니라고 제시한다. [참고. 『금강반야바라밀경』]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는 앞처럼 망집을 바탕으로 유무를 판단하게 된다.
사정이 그렇기에 경전 내용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본 바탕인 실재 영역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공하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잘 관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이 실답다고 여기는 망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해탈삼매]
여하튼 이 문제는 실재영역의 문제를 살핀 다음, 나중에 함께 다시 살피기로 한다.
○ 본 바탕인 실재 영역과 관련한 유무 문제
현실에서 눈을 떠 어떤 모습을 본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그가 눈을 감으면 이제 그 모습은 사라지고 얻지 못하게 된다.
이 때 그 모습은 눈을 감으면 아주 사라져 버리고 없어진 것인가.
아니면 눈을 감아도 그와 관련된 어떤 것은
자신의 주관이나 마음과 관계없이 별도로 실재한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래서 그런 것이 자신이나 주관과 관계없이 실재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실재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가 문제된다.
결국 자신의 주관과 관계없이 실재하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실재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눈을 떠서 본 모습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눈을 감아 어떤 모습을 보지 못하는 상태와 같다고 할 것인가.
또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내용이나 성품 A 인가 아닌가.
등등이 모두 문제된다.
○ 실재를 문제삼는 취지 - 현실 내용이 실다운가를 판단하기 위함
이런 실재는 단순히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현실내용이 실다운 것인가를 판단하는데 중요하다.
그래서 현실 내용에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것인가를 판단하는데 중요하다.
경전에서 실재가 공함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시 하는 사정도 이것이다.
이는 다음 사정과 같다.
우선 현실에서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생생하게 꾸었다고 하자.
그 꿈 자체는 생생하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꿈을 실답지 않다고 여긴다.
꿈은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만 임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정작 꿈을 꾼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꿈 내용은 그에 기대하는 여러 성품을 갖지 못한다.
이런 사정으로 아무리 생생하게 꾸었더라도 꿈은 실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꿈이 실답지 않음을 판단하려면 꿈만 살펴서는 알 수 없다.
꿈을 꾼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의 내용을 함께 대조해 살펴 알게 된다.
그런데 현실 내용도 그 성격이 꿈과 같은가가 문제된다.
즉, 현실이 실다운가가 문제된다.
이 경우에도 앞과 문제성격이 같다.
우선 현실 내용은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하게 얻는다.
그런데 이런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는가 여부를 살필 때는
현실 내용만 살펴서는 알 수 없다.
그런 현실이 실다운가는 다른 영역의 상태를 살펴야 알 수 있다.
그래서 본 바탕이 되는 '실재'나 참된 '실체'의 존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의 본바탕인 실재가 무언가를 살피게 된다.
결국 실재를 살피는 것은 현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는 않은가를 살피는 문제다.
그런데 실재의 영역에서는
문제삼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한 주체는 오직 마음이 화합해 얻어낸 내용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주관)을 떠나 그대로 실재하는 내용은 그 주체는 끝내 얻을 수 없다.
=> 따라서 있고 없음의 2 분법상의 분별을 모두 떠난다.
그리고 본 바탕의 실재는 공하다라고 제시하게 된다.
한편 이들 내용에는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실체로서
'진짜'라고 할 내용이 있는가도 문제된다.
이 경우 => 그런 것은 '없다'고 제시한다. [무아 무자성 ]
즉 현실내용은 본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그런 조건에서 얻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망집에 바탕한 업을 제거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수행을 행함에 있어서 이 부분이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
즉 본 바탕에 현실 내용과 일치하거나 상응하는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하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이해하여 현실이 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침대에서 얻을 수 없는 엉뚱한 내용을 꿈 속에서 얻는다.
현실에서 얻는 내용의 성격이 그와 같다.
따라서 그것이 비록 생생하고 명료해도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이들은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따라서 이를 집착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집착에 바탕해 업을 행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벗어나려면 수행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그 사정은 다음과 같다.
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런데 정작 꿈 자체는 아니다.
꿈과는 달리 현실 내용은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 다수 주체가 얻는다.
그리고 일정 공간과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형태로 무량겁에 걸쳐
대단히 장구하게 반복해 얻게 된다.
또 현실은 색,성,향,미,촉,법 등처럼 다양하고 생생하게 얻는다.
이런 사정으로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지만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대하게끔 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각 주체가 생사고통을 대단히 생생하게 장구하게 겪어나간다.
그래서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고 하여 그대로 방치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이는 곧 수행자가 해결해야 하는 생사현실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본 바탕인 실재가 공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그런 망집을 일으키는 근본 무명 어리석음과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킨 경우 그것을 당장 제거하기는 힘들다.
그런 경우에는 망집을 바탕으로 처하게 되는 생사현실을 우선 좋은 형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즉, 생사고통을 극심히 받는 3 악도에 묶이지 않도록 우선 예방해야 한다. [인천교적인 방안]
그러러면 우선 망집에 바탕해 행하게끔 되는 업을 중단해야 한다.
또 기존에 쌓은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러면 우선 계의 수행덕목을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집착을 갖고 대하는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 그런 가운데 복덕자량을 성취하고 지혜자량을 성취해야 한다.
그래서 무명 어리석음과 망집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생사고통을 근본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 성문승, 벽지불승의 기본 수행 목표- ]
그런데 한편 수행자 자신이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는 경우
생사현실에 남아 있는 중생들이 문제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중생 제도를 위해 다시 그런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 임해 그런 중생과 다시 눈높이를 맞추어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제도를 위해 필요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자가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을 행할 때
생사현실의 이런 기본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임해야 한다.
즉 생사현실의 재료 자체는 본래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 즉 열반임을 잘 관하고 여여하게 생사현실에 임할 수 있어야 한다. [대승 보살승의 수행목표 ]
사실 본 바탕의 실재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현실 안에서 이렇게 하던 저렇게 하던 차별이 없다.
따라서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사현실에서는 망집을 일으킨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실답지 않지만, 그런 내용을 상을 취하고 실답다고 여기는 가운데 생사고통을 겪는다.
따라서 이런 본 바탕의 사정을 이해하고 그런 바탕에서 현실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에 대해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본 바탕인 실재에 현실내용과 상응한 어떤 내용을 얻을 수 있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있는가를 또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있고 없음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문제삼는 유무 논의의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러나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제시하게 된다.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주체는 어떤 내용을 자신의 마음에서 화합해서만 얻게 된다.
따라서 그런 주체로서는 끝내 그 내용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2분법적인 분별을 행할 수 없다.[불이법]
따라서 이는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좋다 나쁘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등의 모든 2분법적인 분별을 떠난다.
그리고 일체 언설을 떠난다.
그래서 실재는 이와 같은 상태라고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시설하여 이를 나타내게 된다.
이는 없다는 '무'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또 a 라는 무엇이 있다는 '유'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 유무 분별을 모두 떠남 ]
그리고 현실 내용[감각현실 및 관념분별]과 실재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실재는 현실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현실내용은 실재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 내용은 실재를 떠나 얻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재도 현실내용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해야 한다.
결국 현실은 본 바탕에서나 다른 영역에서 얻지 못하는 내용을 그렇게 얻는다.
그래서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다.
그래서 생사현실 내용을 실답다고 여기는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이런 부분이 이 논의의 초점이 된다.
★%★
○ 감각현실과 실재의 관계
한편 그런 공한 실재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
감각현실은 여러 조건이 화합해서
A + B => c 와 같은 관계해 마음에서 그 내용을 얻게 된다고 이해한다.
예를 들어 눈을 떠 무언가 보는 과정을 다음처럼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눈을 뜨는 상황에서
그런 조건에서 빛과 물체와 눈과 마음 등이 관계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얻게 된다고 이해한다.
이런 일반적 이해방식이 옳은가는 차후 다시 논의할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일단 이런 일반적 이해를 받아들인다고 하자. [=가정적논의]
그런 경우 현실에서 얻는 그런 내용 C 는
이런 조건을 떠나서도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이 되는 '실재'의 지위의 내용이 아니다.
위 관계식을 통해 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실재는 이런 관계를 떠나 그대로 있다고 할 내용이다.
그래서 실재는 그렇게 얻는 현실 내용이나 언설 분별을 모두 떠나는 상태라고 하게 된다.
[연기(인과) 즉 공]
그러나 한편, 이런 감각현실이나 현실의 모든 내용은 그런 실재를 떠나 얻는 것도 아니다.
한편 실재는 직접 얻을 수 없다.
그래서 현실 내용이 나타나는 관계는 현실 안의 내용들로 그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인과관계[연기]와 실상의 관계를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이해가 수행과 관련해서 중요하다.
# 참고로 마음에 어떤 내용이 얻어지는 관계는
일반적으로는 위와 같이 그 관계성을 이해한다.
여기서는 그런 입장을 일단 받아들인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살핀다[가정적 논의]
이는 그런 바탕에서 실재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이다. [세속제를 통한 승의제의 이해]
그러나 본래 어떤 내용은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본래 어떤 내용은 마음안 내용이다.
그리고 마음내용이 마음에 얻어진 내용을 원인으로 얻어진다고 이해하기 곤란하다.
눈으로 무언가를 볼 때 빛과 물체와 눈 등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들 원인요소로 나열하는 내용은 본래 마음으로 얻은 내용들이다.
그런데 마음으로 얻어놓은 내용이 거꾸로 이들 마음내용을 얻게 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예를 들어 눈으로 본 시각정보안의 어떤 내용이 그 시각정보를 얻게 한다고 이해하기 곤란하다.
또는 시각정보가 다른 청각정보나 촉각정보를 얻게 하는 원인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곤란하다.
또는 시각정보가 다른 청각정보나 촉각정보를 얻게 하는 원인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는다.
그런 상태에서 그 내용만 놓고 대하면 그렇게 관계를 잘못 이해하게끔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손바닥을 마주치면 그런 상황에서 소리를 얻는 관계를 반복해 경험한다.
그리고 이들 내용 간에 그런 관계성이 파악된다.
그래서 그 관계를 그처럼 잘못 이해하게끔 된다.
그러나 본래는 그런 형태로 마음안 내용이 얻어진다고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부대상황의 관계라고 이해해야 한다.
즉 눈으로 무언가를 보게 되는 상황에서 귀로 어떤 소리를 들은 관계다.
다만 이를 반복 경험하는 가운데 이들이 서로 인과관계에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되는 것뿐이다.
다만 이 부분은 별도로 관계되는 부분에서 살피기로 한다.
>>>
○ 꿈이 실답지 않음과 진짜의 존부문제
한편 무엇이 있고 없음이 문제될 때는
그에 해당하는 진짜의 내용이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 생생한 꿈을 실답지 않다고 보는 사정
예를 들어 꿈을 꾸는 조건에서는 그 꿈 내용을 생생하게 얻는다.
그러나 그것을 실답지 않다고 하게 된다.
이는 다음 사정 때문이다.
우선 그런 꿈은 꿈을 꾸는 일정한 조건에서만 그런 내용을 생생하게 얻을 뿐이다.
그리고 다른 현실 영역에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내용에서 기대하게 되는 성품들을 얻지도 못한다.
그리고 꿈 안에서는 황금과 바다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꿈을 깬 상황에서는 그런 황금과 바다는 얻지 못한다.
또 그 꿈을 꾼 현실의 침대에서도 그런 황금과 바다는 역시 얻지 못한다.
또 한편 꿈에서 본 바다나 황금은
어떤 측면에서는 바다나 황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그림이나 시진에서 보는 바다나 황금과 성격이 같다.
배를 띄울 수도 없다. 무겁거나 딱딱하지도 않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은
그런 조건에서만 그런 영역에서 일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이는 참된 존재라고 하기 힘들다.
즉 비록 생생하게 꾼 꿈이라도 실답지 않다.
○ 감각현실을 실답지 않다고 보는 사정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도 꿈과 성격이 같다.
바위를 놓고 평소 자신이 볼 때는 어떤 모습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눈에 파란 색안경을 쓰고 볼 때는 달라진다.
또 돗수가 다른 안경을 쓰고 볼 때도 모습이 달라진다.
아침 빛에 보는 바위나 저녁 빛에 보는 바위가 다르다.
그리고 바위를 어느 각도에서 보는가에 따라 형태가 다르다.
그리고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떨어져 보는가에 따라서
그 색상이나 그 형태 크기가 다 다르다.
현실에서 이런 내용을 경험한다.
그래서 어떤 한 순간 한 상황에서 얻는 모습은
역시 그런 조건에서만 얻는 모습일 뿐이다.
그리고 매 순간 각 상황에서 달리 얻는다.
그리고 이 가운데 어떤 한 내용도 이들 내용들의 대표라고 보기 힘들다.
또 실재영역을 비롯해서 다른 영역에서 이들 내용을 얻지 못한다.
실재는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본 바탕이 된다고 보는 영역이다.
그런데 그런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한편 다른 감각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은 얻지 못한다.
시각으로 일정한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그런데 청각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또 후각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또 미각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또 촉각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각 감각영역에서 얻는 내용을 놓고 비교하면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한편 이에 대해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런 관념영역에서도 역시 그런 감각 내용은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눈을 떠 얻는 감각현실이 있다.
이를 □ 이라고 표시해보자.
이 때 사과를 보았다고 가정해보자.
그 상황에서 손으로 두드려 소리를 듣는다.
코를 대어 향을 맡는다.
입으로 먹어 맛을 느낀다.
손으로 만져 촉감을 얻는다.
그런데 이들 내용을 얻는 각 영역에서
모두 시각으로 얻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또 그 부분이 사과이고 과일이나 음식이라는 관념분별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관념분별 영역에서 그런 감각현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도 사정이 같다.
실재영역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얻는 이런 감각현실은 그런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꿈과 마찬가지로 실답지 않다.
결국 이들 현실내용은 실다운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면 곤란하다.
○ 꿈과 달리 실다운 진짜를 찾는 사정
한 주체가 주변 사물이나 자신 모습을 반복해 대한다고 하자.
이런 가운데 시시각각 얻는 내용이 다르다.
그렇지만 이들 내용은 어느 정도 규칙적이고 일정한 형태를 띈다.
어떤 꽃이나 바위나
그리고 이런 경험 때문에
꽃이던 바위던 매 순간 매 상황마다 그 모습은 다르다.
그래도 꽃은 꽃이고 바위는 바위라고 분별하게 된다.
그리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서 현실에서 구분해 분별하게 된다.
사정이 이렇기에 이런 현실 내용에는 어떤 실답고 진짜라고 할 뼈대가 있다고 추리하게 된다.
즉, 이렇게 되는 것은 어떤 실답고 진짜라고 할 내용이 뼈대가 있기에
그래도 일정하게 그런 내용을 얻게 된다고 추리한다.
예를 들어 꽃은 꽃만이 갖고 있는 진짜 내용이 안에 있기에 그런 내용을 얻는다고 추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진짜는 꿈과는 달라야 한다.
그래서 꿈이 갖는 실답지 않은 특성은 없어야 한다.
꿈이 갖는 그런 특성이 있으면 이를 실답지 않다고 해야 한다.
따라서 꿈이 갖는 특성과는 반대되는 특성을 가져야 진짜라고 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실답다고 볼 성품을 가진 진짜의 내용이
현실 내용과 관련해 어딘 가에 있는가가 문제된다.
이는 결국 어떤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내용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꿈과 달리 늘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내용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을 다른 것과 구분하게 하는 영원불변한 성품[자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현실과 관련해 과연 있는가를 문제삼게 된다.
이 주제는 현실내용을 실답다고 여길만한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
그리고 현실 내용을 집착을 갖고 대할 만한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
따라서 수행에 큰 의미를 갖는다 .
그런데 이런 추리는
관념영역에서 내용을 일종의 몽타쥬 형태로 그려서
그에 해당하는 내용이 과연 어딘가에 정말 있는가 없는가를 찾는 성격의 문제가 된다.
이런 몽타쥬를 그리는데
꿈이나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다고 보게 되는 성품이 바탕이 된다.
관념 영역에서 분별을 통해 관념을 갖게 된다.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을 '실체나 본체[실상]'라고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
그리고 이는 결국 불교의 무아 무자성 논의에 해당한다.
그리고 불교의 입장은 그런 것은 없음을 제시한다.
[무아, 무자성, 승의무자성, 인무아, 법무아, 무소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그리고 간단한 내용만 제시한다.
우선 그렇게 관념으로 구상해 찾는 몽타쥬에 해당하는 것이 어느 영역에라도 있다고 하자.
그러면 반대로 현실 내용은 나타날 수 없다.
그리고 한 주체가 현실 내용과 같은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을 근거로 그와 같이 판단하게 된다.
○ 무아 무자성과 실재의 공함의 관계
어떤 이가 눈을 떠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주관이 관계하거나 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있다고 할 실재 영역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즉 본 바탕에 현실 내용을 얻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가를 문제삼게 된다.
또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확히 무엇인가라고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데 진짜의 존부를 문제삼는 가운데
진짜에 해당하는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어떤 것 A 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위 질문이 제기될 때 바로 그런 A 를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것은 없다. [무아, 무자성]
한편 실재의 내용은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그 내용을 직접 끝내 얻어낼 수 없다.
그래서 일체의 2 분법상의 분별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있다 없다 -이다 -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등의 분별을 행할 수 없다.
그리고 언설을 떠나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를 나타내게 된다.
공하다는 표현은 원칙적으로 무아 무자성과 완전히 같은 측면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재가 공함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는 없음(무아, 무자성)도 함께 제시하는 것이 된다. [무소유+ 불가득]
즉, 그런 진짜는 없다.
따라서 실재가 무언가 문제될 때 그런 진짜가 있다고 제시할 소 없다. [무아 무자성 ]
한편 실재는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공하다는 표현은 결국 이런 사정을 함께 포함해 제시하는 것이 된다. [무아 무자성 공]
○ 언어표현 [시설]을 통해 문제삼는 또 다른 측면들의 유무
앞과 같이 크게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 각 내용을 살폈다.
그런데 이들에 넣기 힘든 형태로 유무를 문제삼는 경우를 또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일반적 입장에서는
방에 꽃이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경우 빛이 밝은 상황에서 눈을 떠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꽃이라고 여기게 되는 어떤 내용을 감각한다고 하자.
그러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것은 보인다.
그렇지만, 꽃이라고 여길 그런 부분을 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거기에 꽃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주로 이런 측면에서 유무 판단을 행한다.
즉, 감각기관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무언가가 보이거나 대할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측면으로 유무를 문제삼더라도 모호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를 잘게 갈거나 또는 현미경을 통해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주 작은 입자를 다시 대하게 된다.
그런 경험을 통해 다음과 같이 추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어떤 모습을 대한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작은 입자는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 상황에 앞과 같이 잘게 나누면 작은 입자를 대하게 되리라 여긴다.
또는 현미경으로 대하면 보게 될 작은 입자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현실에서 어떤 사물의 극미나 원소의 존부를 문제삼는다.
비유적으로 이 상황을 이해해보자.
멀리서 산의 숲모습을 본다고 하자.
이런 경우 정작 나무는 낱낱이 보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 숲에 나무가 있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될 수 있다.
극미 등의 존부문제는 이런 경우와 성격이 같다.
한편 허공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밀페된 공간에 어떤 공기를 주입한다고 하면
갑자기 구토를 느끼거나 질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상황에서도 냄새도 맡지 못하고 모습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통해
그 상황에 그런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질소나 수소나 헬륨 등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허공의 명암이나 빛 그림자를 위처럼 미세하게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극미상태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한편 어떤 이가 평소 어떤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하자.
그래서 턱걸이를 하게 되면 턱걸이를 100 회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의 신체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상태가 되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와 철봉앞에서 실험을 해본다고 하자.
그러면 그 예측대로 차이를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수행자가 계율을 지켜 익히면
어느 단계 이후는 일반적으로 분노가 일으킬 상황에서도 분노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또 일반적으로 탐욕을 일으킬 만한 상황에서도 탐욕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런 경우 그런 수행자에게 무언가 일반인과 달리 갖추게 된 무언가가 '있고 없음'을 문제삼을 수 있다.
한편 거울에 어떤 꽃이 비추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또 물에 달이 비추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직접 대하는 꽃이나 달과는 다르다.
그러나 여하튼 이들은 거울 자체나 물 자체와도 다르다.
그런 가운데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따라서 여하튼 그렇게 달리 파악하게 하는 무언가가 거기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
한편 일정한 생각을 하는 가운데 현실을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생각으로 그 현실을 달리 여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경우 솥으려 여기고 대한다.
그런데 거북을 보고 놀란 이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솥뚜겅을 거북으로 잘못 여겨 놀랄 수도 있다.
이처럼 일반의 경우와 달리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경우 그런 반응을 하게 하는 무엇이 이 상황에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한편 정려 수행 중에서 경험하는 특수 현상이 있다.
이런 내용도 역시 문제된다.
다만 정려 수행은 특수하고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에서 이를 함께 살피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최면은 비교적 일반인도 종종 경험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최면술사가 최면에 걸었다고 하자.
그래서 손가락을 대며 그것이 아주 뜨거운 물이라고 최면에 걸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 상대는 화상을 입을 때 나타나는 수포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는 혁대를 뱀이라고 최면에 걸었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는 이를 대하면서 소름이 돋거나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이런 내용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일반적인 상태와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서
그 주체와 관련해 있어서 그렇게 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내용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경우는
있다 없다의 문제를 판단할 때
처음 살핀 일반적 입장과는 조금 차이난다.
즉 그것은 어떤 것이 눈에 보이거나 만져져서
있다고 하는 상태는 아니다.
즉, 감각현실을 직접 얻는 상태이기에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순전히 관념영역 안의 관념적 내용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들은 감각현실에 준해 무언가가 그 상황에 있기에 그렇게 된다고 생각되는 경우들이다.
그래서 이들 경우는 조금 모호한 영역에 놓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하튼 그런 내용의 유무가 문제된다.
따라서 유무 논의에서는 이런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참고: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극략색(極略色)ㆍ
극형색(極逈色)ㆍ
수소인색(受所引色~ 무표색)ㆍ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ㆍ
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 등 ]
- 상대적 특정 관계에 따라 변하는 유무판단문제
그 외에도 또 다음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자 속에 어떤 과일이 들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상자를 닫아서 다시 열수 없다.
그리고 그 내용에서 기대하게 되는 성품들을 얻지도 못한다.
예를 들어 침대에서 황금과 바다꿈을 꾸었다고 하자.
꿈 안에서는 그런 조건에서 황금과 바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꿈 안에서는 황금과 바다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꿈을 깬 상황에서는 그런 황금과 바다는 얻지 못한다.
또 그 꿈을 꾼 현실의 침대에서도 그런 황금과 바다는 역시 얻지 못한다.
또 한편 꿈에서 본 바다나 황금은
어떤 측면에서는 바다나 황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그림이나 시진에서 보는 바다나 황금과 성격이 같다.
배를 띄울 수도 없다. 무겁거나 딱딱하지도 않다.
이런 식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은
그런 조건에서만 그런 영역에서 일시적으로 얻는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이는 참된 존재라고 하기 힘들다.
즉 비록 생생하게 꾼 꿈이라도 실답지 않다.
○ 감각현실을 실답지 않다고 보는 사정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도 꿈과 성격이 같다.
바위를 놓고 평소 자신이 볼 때는 어떤 모습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눈에 파란 색안경을 쓰고 볼 때는 달라진다.
또 돗수가 다른 안경을 쓰고 볼 때도 모습이 달라진다.
아침 빛에 보는 바위나 저녁 빛에 보는 바위가 다르다.
그리고 바위를 어느 각도에서 보는가에 따라 형태가 다르다.
그리고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떨어져 보는가에 따라서
그 색상이나 그 형태 크기가 다 다르다.
현실에서 이런 내용을 경험한다.
그래서 어떤 한 순간 한 상황에서 얻는 모습은
역시 그런 조건에서만 얻는 모습일 뿐이다.
그리고 매 순간 각 상황에서 달리 얻는다.
그리고 이 가운데 어떤 한 내용도 이들 내용들의 대표라고 보기 힘들다.
또 실재영역을 비롯해서 다른 영역에서 이들 내용을 얻지 못한다.
실재는 그런 감각현실을 얻는 본 바탕이 된다고 보는 영역이다.
그런데 그런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한편 다른 감각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은 얻지 못한다.
시각으로 일정한 내용을 얻었다고 하자.
그런데 청각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또 후각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또 미각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또 촉각영역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각 감각영역에서 얻는 내용을 놓고 비교하면 서로 대단히 엉뚱하다.
한편 이에 대해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런 관념영역에서도 역시 그런 감각 내용은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눈을 떠 얻는 감각현실이 있다.
이를 □ 이라고 표시해보자.
이 때 사과를 보았다고 가정해보자.
그 상황에서 손으로 두드려 소리를 듣는다.
코를 대어 향을 맡는다.
입으로 먹어 맛을 느낀다.
손으로 만져 촉감을 얻는다.
그런데 이들 내용을 얻는 각 영역에서
모두 시각으로 얻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또 그 부분이 사과이고 과일이나 음식이라는 관념분별을 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관념분별 영역에서 그런 감각현실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도 사정이 같다.
실재영역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얻는 이런 감각현실은 그런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현실에서 얻는 감각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꿈과 마찬가지로 실답지 않다.
결국 이들 현실내용은 실다운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집착을 갖고 대하면 곤란하다.
○ 꿈과 달리 실다운 진짜를 찾는 사정
한 주체가 주변 사물이나 자신 모습을 반복해 대한다고 하자.
이런 가운데 시시각각 얻는 내용이 다르다.
그렇지만 이들 내용은 어느 정도 규칙적이고 일정한 형태를 띈다.
어떤 꽃이나 바위나
그리고 이런 경험 때문에
꽃이던 바위던 매 순간 매 상황마다 그 모습은 다르다.
그래도 꽃은 꽃이고 바위는 바위라고 분별하게 된다.
그리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서 현실에서 구분해 분별하게 된다.
사정이 이렇기에 이런 현실 내용에는 어떤 실답고 진짜라고 할 뼈대가 있다고 추리하게 된다.
즉, 이렇게 되는 것은 어떤 실답고 진짜라고 할 내용이 뼈대가 있기에
그래도 일정하게 그런 내용을 얻게 된다고 추리한다.
예를 들어 꽃은 꽃만이 갖고 있는 진짜 내용이 안에 있기에 그런 내용을 얻는다고 추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진짜는 꿈과는 달라야 한다.
그래서 꿈이 갖는 실답지 않은 특성은 없어야 한다.
꿈이 갖는 그런 특성이 있으면 이를 실답지 않다고 해야 한다.
따라서 꿈이 갖는 특성과는 반대되는 특성을 가져야 진짜라고 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실답다고 볼 성품을 가진 진짜의 내용이
현실 내용과 관련해 어딘 가에 있는가가 문제된다.
이는 결국 어떤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내용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꿈과 달리 늘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내용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신을 다른 것과 구분하게 하는 영원불변한 성품[자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현실과 관련해 과연 있는가를 문제삼게 된다.
이 주제는 현실내용을 실답다고 여길만한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
그리고 현실 내용을 집착을 갖고 대할 만한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
따라서 수행에 큰 의미를 갖는다 .
그런데 이런 추리는
관념영역에서 내용을 일종의 몽타쥬 형태로 그려서
그에 해당하는 내용이 과연 어딘가에 정말 있는가 없는가를 찾는 성격의 문제가 된다.
이런 몽타쥬를 그리는데
꿈이나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다고 보게 되는 성품이 바탕이 된다.
관념 영역에서 분별을 통해 관념을 갖게 된다.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을 '실체나 본체[실상]'라고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진짜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
그리고 이는 결국 불교의 무아 무자성 논의에 해당한다.
그리고 불교의 입장은 그런 것은 없음을 제시한다.
[무아, 무자성, 승의무자성, 인무아, 법무아, 무소유]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그리고 간단한 내용만 제시한다.
우선 그렇게 관념으로 구상해 찾는 몽타쥬에 해당하는 것이 어느 영역에라도 있다고 하자.
그러면 반대로 현실 내용은 나타날 수 없다.
그리고 한 주체가 현실 내용과 같은 내용을 일체 얻을 수 없다.
이런 사정을 근거로 그와 같이 판단하게 된다.
○ 무아 무자성과 실재의 공함의 관계
어떤 이가 눈을 떠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이 경우 그런 주관이 관계하거나 하지 않거나 관계없이
있다고 할 실재 영역은 무엇인가가 문제된다.
즉 본 바탕에 현실 내용을 얻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가를 문제삼게 된다.
또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확히 무엇인가라고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데 진짜의 존부를 문제삼는 가운데
진짜에 해당하는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어떤 것 A 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위 질문이 제기될 때 바로 그런 A 를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것은 없다. [무아, 무자성]
한편 실재의 내용은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그 내용을 직접 끝내 얻어낼 수 없다.
그래서 일체의 2 분법상의 분별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있다 없다 -이다 -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등의 분별을 행할 수 없다.
그리고 언설을 떠나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공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를 나타내게 된다.
공하다는 표현은 원칙적으로 무아 무자성과 완전히 같은 측면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재가 공함을 제시하는 것은
결국 그런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는 없음(무아, 무자성)도 함께 제시하는 것이 된다. [무소유+ 불가득]
즉, 그런 진짜는 없다.
따라서 실재가 무언가 문제될 때 그런 진짜가 있다고 제시할 소 없다. [무아 무자성 ]
한편 실재는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공하다는 표현은 결국 이런 사정을 함께 포함해 제시하는 것이 된다. [무아 무자성 공]
○ 언어표현 [시설]을 통해 문제삼는 또 다른 측면들의 유무
앞과 같이 크게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 각 내용을 살폈다.
그런데 이들에 넣기 힘든 형태로 유무를 문제삼는 경우를 또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일반적 입장에서는
방에 꽃이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경우 빛이 밝은 상황에서 눈을 떠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꽃이라고 여기게 되는 어떤 내용을 감각한다고 하자.
그러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것은 보인다.
그렇지만, 꽃이라고 여길 그런 부분을 보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거기에 꽃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주로 이런 측면에서 유무 판단을 행한다.
즉, 감각기관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무언가가 보이거나 대할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측면으로 유무를 문제삼더라도 모호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를 잘게 갈거나 또는 현미경을 통해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주 작은 입자를 다시 대하게 된다.
그런 경험을 통해 다음과 같이 추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어떤 모습을 대한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작은 입자는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 상황에 앞과 같이 잘게 나누면 작은 입자를 대하게 되리라 여긴다.
또는 현미경으로 대하면 보게 될 작은 입자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현실에서 어떤 사물의 극미나 원소의 존부를 문제삼는다.
비유적으로 이 상황을 이해해보자.
멀리서 산의 숲모습을 본다고 하자.
이런 경우 정작 나무는 낱낱이 보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 숲에 나무가 있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될 수 있다.
극미 등의 존부문제는 이런 경우와 성격이 같다.
한편 허공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밀페된 공간에 어떤 공기를 주입한다고 하면
갑자기 구토를 느끼거나 질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상황에서도 냄새도 맡지 못하고 모습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통해
그 상황에 그런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질소나 수소나 헬륨 등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허공의 명암이나 빛 그림자를 위처럼 미세하게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극미상태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한편 어떤 이가 평소 어떤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하자.
그래서 턱걸이를 하게 되면 턱걸이를 100 회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의 신체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상태가 되었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와 철봉앞에서 실험을 해본다고 하자.
그러면 그 예측대로 차이를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수행자가 계율을 지켜 익히면
어느 단계 이후는 일반적으로 분노가 일으킬 상황에서도 분노를 일으키지 않게 된다.
또 일반적으로 탐욕을 일으킬 만한 상황에서도 탐욕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런 경우 그런 수행자에게 무언가 일반인과 달리 갖추게 된 무언가가 '있고 없음'을 문제삼을 수 있다.
한편 거울에 어떤 꽃이 비추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또 물에 달이 비추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직접 대하는 꽃이나 달과는 다르다.
그러나 여하튼 이들은 거울 자체나 물 자체와도 다르다.
그런 가운데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따라서 여하튼 그렇게 달리 파악하게 하는 무언가가 거기에 있다고 여기게 된다.
한편 일정한 생각을 하는 가운데 현실을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생각으로 그 현실을 달리 여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경우 솥으려 여기고 대한다.
그런데 거북을 보고 놀란 이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솥뚜겅을 거북으로 잘못 여겨 놀랄 수도 있다.
이처럼 일반의 경우와 달리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경우 그런 반응을 하게 하는 무엇이 이 상황에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한편 정려 수행 중에서 경험하는 특수 현상이 있다.
이런 내용도 역시 문제된다.
다만 정려 수행은 특수하고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에서 이를 함께 살피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최면은 비교적 일반인도 종종 경험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 현실에서 어떤 최면술사가 최면에 걸었다고 하자.
그래서 손가락을 대며 그것이 아주 뜨거운 물이라고 최면에 걸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 상대는 화상을 입을 때 나타나는 수포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는 혁대를 뱀이라고 최면에 걸었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는 이를 대하면서 소름이 돋거나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이런 내용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일반적인 상태와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서
그 주체와 관련해 있어서 그렇게 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내용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경우는
있다 없다의 문제를 판단할 때
처음 살핀 일반적 입장과는 조금 차이난다.
즉 그것은 어떤 것이 눈에 보이거나 만져져서
있다고 하는 상태는 아니다.
즉, 감각현실을 직접 얻는 상태이기에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순전히 관념영역 안의 관념적 내용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들은 감각현실에 준해 무언가가 그 상황에 있기에 그렇게 된다고 생각되는 경우들이다.
그래서 이들 경우는 조금 모호한 영역에 놓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하튼 그런 내용의 유무가 문제된다.
따라서 유무 논의에서는 이런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참고: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극략색(極略色)ㆍ
극형색(極逈色)ㆍ
수소인색(受所引色~ 무표색)ㆍ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ㆍ
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 등 ]
- 상대적 특정 관계에 따라 변하는 유무판단문제
그 외에도 또 다음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자 속에 어떤 과일이 들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상자를 닫아서 다시 열수 없다.
한편 그것을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자.
그래서 이후 상자를 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이후 상자를 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자에 과일이 계속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또 다음 경우도 있다.
벽이 있다. 이 경우 벽 안의 흙이나 벽 뒤의 내용도 이와 비슷하다.
또 어두운 방에서 불이 꺼졌다고 하자.
또 다음 경우도 있다.
벽이 있다. 이 경우 벽 안의 흙이나 벽 뒤의 내용도 이와 비슷하다.
또 어두운 방에서 불이 꺼졌다고 하자.
이 경우 직전에 본 사과가 그대로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또는 깊은 산속에 지내는 이가 있다.
그가 산너머에 바닷가가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도 있다.
또 자신이 묶여 있다.
또 자신이 묶여 있다.
그 상태에서 눈을 떠 세상을 본다.
그런데 자신의 눈썹과 이마나 허리 등은 보지 못한다.
그 상황에서는 그는 눈썹과 이마나 허리 등의 모습도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한다.
그러나 나중에 거울을 통해서 이를 볼 수 있다.
또 나중에 손이 풀리면 만질 수도 있다.
이처럼 상황이 달라지면 그것을 감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든 현재 직접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만지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이들의 있음과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어떤 측면에서 유무를 논의하는 것인지 모호해진다.
또 다음 문제도 있다.
노란 색을 장님을 놓고 보자.
이 경우 이것을 있다고 할 지 없다고 할지 애매하다.
또 아름다운 피아노소리를 소리를 못 듣는 이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도 애매해진다.
그 주체는 상대적으로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을 감각하여 얻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다음 경우들이 있다.
개는 맡지만 사람은 못 맡는 냄새가 있다.
고래는 듣지만 사람은 못듣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의 있고 없음의 판단도 결국 앞과 같은 문제가 된다.
한편, 현실에서는 자신이 끝내 가보지 못할 아주 먼 어떤 곳에
자신이 평소 보지 못한 이상한 동식물이 있다고 다른 이가 보고한다고 하자.
오늘날 기자나 학자가 현지를 가서 사진이나 글로 보고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그것이 정말 그처럼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사진이나 글만으로 그 있고 없음을 판단하기 곤란할 수 있다.
한편 요즘 과학기계가 발달해
적외선이나 자외선, 기타 X선 초음파 이런 측정장치를 통해서 영상을 얻는다.
그 때마다 사람이 눈으로 보는 내용과는 다른 내용을 얻는다.
이 경우도 기준 따라 달라진다.
사람의 시각을 기준으로 하면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측정수단을 동원하면 파악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어떤 주체가 기계 상태로 직접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그 기계가 직접 어떤 상태를 얻는지는 파악하기 힘들다.
한편 경전이나 수행과 관련해서는
수행을 통해 6 신통을 증득하거나,
부처님의 입장이 되어 불안 법안 혜안 천안 육안과 같은 5 안을 갖추는 상태를 제시한다.
이 경우 특수한 내용을 얻게 됨을 제시한다.
이들은 일반적인 입장에서 시간 공간의 장애나 감관의 문제로 얻지 못한다.
이런 경우 일반적 입장에서 그런 내용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경전에서 3 계 6 도를 제시한다.
이 경우 지옥과 지옥중생이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
또는 아귀세계와 아귀 중생이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경전에서 부처님이 제시하는 이런 내용은 어느 정도
기자의 보고와 성격이 비슷하다.
다만 이들 경우는 모두 다음 성격의 유무 판단문제다.
우선 감각현실을 얻는 관계가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얻게될 성격으로 제시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재 그 일부 요소가 결여되어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그 내용들의 유무를 판단하는 경우들이다.
그래서 단순히 관념영역에서 관념분별 내용의 유무를 살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설 속의 도깨비뿔의 유무를 살피는 것은 단순한 관념문제다.
한편 이는 실재영역을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실재 영역은 처음부터 현실 내용을 얻는 주관과의 관계를 떠나 본 바탕을 문제삼는다.
그래서 유무 논의시 문제 성격을 잘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을 감은 상태에서 직전에 보았던 상자가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나 없나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경우 아예 주관과의 관계를 떠난 그 무엇[실재]를 찾는 경우인가.
아니면 그런 상태에서 다시 눈을 떠 보게 될 내용[현실내용]을 찾는 경우인가를 잘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경우를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이런 경우에서 '있고 없음'을 논의한다고 하자.
이 경우 상황이 달라지면 그런 내용을 감각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당장 직접 그 상황에서 보거나 만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얻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는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앞에서 일반적으로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경우와 구분된다.
경전에서 제시되는 3 계 6 도 안의 지옥이나 아귀 하늘 등의 존부 문제가 있다.
이들은 각 주체가 그런 세계에 그런 중생의 상태에 처하면,
결국 지금 현실에서 경험하는 내용처럼 경험하는 성격의 내용이다.
즉, 경전에서 그런 성격의 내용으로 제시한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지금은 그런 내용을 직접 감각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그 내용을 지금은 직접 얻지 못한다.
따라서 그 유무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게 된다.
한편 공간은 직접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공간은 생주멸 변화를 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공간의 크기나 유무를 문제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하늘 위에서 점으로 보이는 공간이 보인다.
그런데 옆에서 의자는 이 점보다 대단히 커 보인다.
그런데 그 작은 점으로 보인 곳이 알고보면 수천명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일 수 있다.
공간은 일정한 기준 사물을 가지고 크기를 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준이 되는 사물을 넣고 빼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느 부분이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자.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간이 그만큼 있다거나 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 경우 공간의 크기를 재는 기준 사물에 따라 공간의 유무나 크기 관념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경우를 생각해보자.
어느 공간에 어떤 사물을 넣어보려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산소 10톤 분량은 이상하게 들어간다.
이런 경우 무엇을 기준으로 공간의 크기를 재는가에 따라 공간의 유무나 크기의 관념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는 상대적인 차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끝내 직접 감각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감각하는 내용을 근거로 그 유무나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공간의 유무판단은 결국 그런 성격의 유무 판단 성격을 갖게 된다.
- 마음의 유무 문제
눈을 통해 사물을 본다.
그러나 눈이 눈 자신은 보지 못한다.
마음도 성격이 비슷하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일체 내용은 마음으로 얻는다.
그러나 정작 마음 자체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마음에 대해서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가 눈을 떠 모습을 본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정작 그런 모습을 보게 하는 마음이 따로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마음은 굳이 없어도 보는 데 지장이 없는가가 문제된다.
마음의 있고 없음의 문제는 이런 성격의 논의다.
경전에서 마음을 시설해 그런 마음이 있다고 제시한다.
마음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경우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마음이 있다고 제시하게 된다.
물리적인 작용의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 그 파장이 호수가에 가 닿는다.
또는 도미노를 세워 놓고 한쪽에서 쓰러뜨리면 연달아 쓰러져 끝 부분이 쓰러진다.
이들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다.
그런데 생리학자들이
마음현상을 이런 물리적 현상의 하나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즉 외부 물질이 있다. 그리고 한 주체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있다.
이들 간에 작용-반작용 자극-반응 이런 운동 변화관계가 마음현상일 뿐이다.
이처럼 이해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경전은 마음의 존재를 제시한다.
그리고 다음처럼 제시한다.
마음 현상이란 마음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현실에서 얻는 일체 내용은 마음이 별도로 존재함을 전제해야만 한다.
현실에서 생리학자들이 판단하는 각 현실 내용도 그런 바탕에서 얻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후 그런 판단들을 행하게 된다.
따라서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판단은
이 관계를 거꾸로 뒤집혀 행한 잘못된 판단이다.
즉, 마음으로 얻어진 결과물로서 마음 현상이 일어난다고 이해한다.
이는 이들 관계를 거꾸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한편, 이런 마음은 현실 내용을 얻어내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직접 보거나 얻지 못한다.
따라서 처음 문제삼는 본 바탕의 실재 영역과 혼동하기 쉽다.
마음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을 준거로 한다.
이런 현실 내용을 얻는데 기능하는 그 무엇을 마음으로 표현해 문제삼는다.
반면, 실재영역은 한 주체가 이런 마음을 통해 얻는 내용과 그런 마음을 떠난 것을 문제삼는다.
즉, 그런 마음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의 내용을 문제삼는다.
따라서 서로 구분된다.
여하튼 이와 같은 각 경우마다 문제되는 어떤 A 의 있고 없음을 판단하고 논의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언어표현을 통해 그런 내용을 가리키며 살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의 존부를 문제삼을 때
그 유무는 앞에서 살핀 측면에서의 유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우선 토끼뿔처럼 순수하게 오로지 관념영역에서 일으킨 관념의 측면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또 단순히 언어표현을 언어표현 영역에서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직접 감각하여 보고 만지는 어떤 감각내용을 얻는가 여부를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한편, 주관과 전혀 관계없이 실재하는 내용을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진짜라고 할 실체의 존부를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 얻는 각 내용을 통해 살필 때 이를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일단 언어로 그런 내용을 일정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 있고 없음을 문제삼게 된다.
따라서 마음의 유무를 살필 때는 이런 기본 사정을 잘 파악한 바탕에서 살펴야 한다.
○ 있고 없음의 판단에서 각 영역의 상호관계를 살피는 형식
있고 없음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그 있고 없음 자체가
관념영역에서만 이뤄진다.
이런 사정을 먼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등등이 그 자체가 모두 관념내용이다.
그래서 이 관념영역을 벗어난 영역에서는
이들 유무 관념내용 자체는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있고 없음'을 모두 본래 떠나야 한다.
예를 들어 실재나 감각현실의 영역은 모두 유무분별을 떠난다.
그렇지만, 그렇게 '유무' 분별이나 언어표현을 통해 '가리키는'
그 내용을 전혀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즉 실재나 감각현실이란 표현으로 가리키는 영역이
전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이 두 측면을 잘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감각현실에 문제삼는 관념분별 내용으로서 A 가 있는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또는 그런 감각현실이 그런 A 인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감각현실 이 그런 관념 내용 자체는 아니다.
또 그런 감각현실이 진짜라고 볼 실다운 내용도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어떤 생생한 내용을 감각현실로 얻는다.
그리고 어떤 이가 어떤 감각현실의 한 부분을 그렇게 묶고 나누어서
그것을 A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주체는 일단 그 부분을 다른 부분과는 구별되는 상태로 얻는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분별을 행한다.
즉 어떤 이가 눈을 떠서
어떤 부분을 꽃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이 경우 예를 들어 눈을 떠 오로지 하얀 색만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체적으로 같은 색을 보는 가운데
생각만으로 일정 부분을 꽃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감각현실 ~ 관념분별의 상호관계를 살필 때는 원칙적으로 다음방식으로
그 관계를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해야 한다.
먼저 감각현실 그 자체가 곧 관념분별 A 인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반대로 관념분별 A 그 자체가 곧 그 감각현실인가를 살펴야 한다.
한편, 그러한 관념분별 A 는 그런 감각현실을 완전히 떠나 있는가.
그래서 이들은 전혀 무관한가.
관념분별은 감각현실과 관게없이 독자적으로 그렇게 얻게 된 것인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이는 감각현실과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관념분별과 감각현실의 관계
관념분별과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음과 그 마음에 얻어진 내용(감각현실, 관념분별내용)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음과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외 꿈과 현실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거울이나 거울에 나타난 모습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 망상분별 집착현상과 유무 판단
언어 표현 자체와
그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각기 다른 차원이나 측면을 이미 살폈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 일으키는 망집현상과 관련해
다음을 일단 명확하게 잘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관념영역에서 일정 부분을 묶고 나누게 된다.
그래서 일정 부분에 대해 꽃이라고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또는 일정 부분은 바위, 산, 들이라고 분별을 일으킨다.
또는 일정 부분은 영희, 철수, 자신이라는 등으로 분별을 일으킨다.
이처럼 그런 부분을 대해 그런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통해감각현실 그 부분은 곧 그런 분별내용'이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에 곧 그런 분별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경전이나 논서에서 있고 없음을 문제삼을 때는
그런 측면으로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에 들어가 눈을 떠 살펴보니 꽃으로 여기게 되는 무언가가 보인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러그러한 생생한 감각현실이 얻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꽃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얻는다.
그러나 그렇게 얻는 감각현실에 자신이 생갹하는 꽃의 관념이 그 자리에 있지 않다.
또한 꽃의 관념은 그런 감각현실을 그 안에 갖고 있지 않다.
즉, 관념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또 관념이 아니다.
이 상황을 비유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본 바탕을 '라면'이라고 가정 해보자.
이런 본 바탕을 대해 엉뚱하게 '벽돌'의 모습을 얻게 된다.
한편 이 벽돌의 모습을 대해 그것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이 경우 각 내용의 관계는
라면 (실재) => 벽돌 (감각현실) => 사람(관념분별)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사람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경우 관념분별 영역에서 그처럼 사람이란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 경우 관념영역에 그런 관념분별이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한편 감각현실에서 그런 벽돌과 같은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고 있다.
그런데 감각현실에 그런 감각현실을 얻고 있는가를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이 경우 사람의 유무 논의는 다음 측면의 논의다.
즉, 벽돌이란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사람이란 관념분별 자체가 '있다'고 할 것인가.
또는 감각현실 영역에서 그런 관념을 '얻을 수 있는가' 등을 문제삼는다.
그런데 이것을 문제삼는가 사정이 있다.
만일 그런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도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사정으로 그 내용을 실답다고 대할 가능성이 많아지게 된다.
한편 사정이 그렇지 않다면
그런 사정으로 그것은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고 보게 된다.
그것은 침대에 누어 꾼 꿈의 경우와 사정이 같다.
그래서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내용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경전에서는 이런 취지로 유무 논의를 살핀다.
즉,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 그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살핀다.
따라서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즉, 침대에서 누어 꾼 황금이나 바다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이 다른 내용에서 얻어지는가 측면으로 유무를 판단하게 된다.
이 사정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놓고 그런 바다나 황금꿈이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이는 그런 바다나 황금꿈을 생생하게 꾸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또 현실에 침대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그런 침대도 있다.
꿈에서는 그런 바탕에서 그런 바다나 황금꿈을 생생하게 꾸었다.
그러나 현실의 침대에 그런 바다나 황금은 없다는 의미다.
사정이 그렇기에 꿈에서 생생하게 본 바다나 황금은 실답지 않다.
따라서 이에 집착을 갖고 대하면 안 됨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이에 해대 어떤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 상황에서 그런 내용의 유무를 문제삼는 취지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 입장에서는
그런 사정으로 그런 관념분별이 그런 감각현실 안에 그처럼 '있다'고 망집을 일으킨다.
이 부분이 망집현상이다.
한편 그 상황에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이 그런 망집을 일으킨 재료가 된다.
그러나 정작 그 재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망집을 일으킨 바탕에서는 그런 재료가 주어지면 일반적으로 그런 망집을 일으켜 대하게끔 된다.
그러나 망집을 일으킨 그 '재료'와 그 재료로 일으킨 '망집'은 구분해야 한다.
한편 그런 망집은 결국 관념 영역안에서 일으킨다.
즉 관념영역에서 일으킨 관념분별을 바탕으로
이를 다른 영역에서 얻는 내용과 접착시켜 대한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 되면
이후 이에 바탕해 감각현실 각 부분이 자신이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여기고 대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각 부분에 상을 취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또 그렇게 업을 행하면 그런 바탕과 전제에서는
고통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망집을 일으킨 경우
실재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다시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고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그런데 실재는 이들 현실 내용을 얻는 본 바탕이 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본 바탕이 되는 실재도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게 된다.
또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자신이 그런 감각현실도 그처럼 얻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분별도 그렇게 하게 된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증폭시켜 나가게 된다.
그리고 또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하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 혹- 업 - 고 ]
따라서 그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 영역을 놓고 각 내용의 있고 없음의 문제를 살피게 된다.
이처럼 망집을 일으키는 사정은 다음과 같이
서로 엉뚱한 내용을 관련시키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으로 손을 본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손을 마주치면 그 상황에서 소리를 듣거나 촉감을 얻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눈으로 손모습을 본다.
그리고 귀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손으로 촉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시각과 청각과 촉각 내용은 서로 대단히 엉뚱한 내용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현실에서 매번 그런 손이 마주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소리나 촉감을 얻는 경험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이 듣는 그 손뼉 소리나 촉감이
자신이 눈으로 보는 그 모습에 들어 있다고 여긴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매번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 가운데
눈으로 보는 그런 모습안에서 귀로 듣는 소리를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또는 눈으로 보는 모습에 그런 소리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또는 눈으로 보는 그 모습은 곧 자신이 듣는 그 소리'이다'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색의 영역에서는 소리를 얻을 수 있는가를 먼저 살핀다.
그래서 색의 영역에 소리는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렇다고 눈으로 보는 색을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귀로 듣는 소리를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색은 색대로 그렇게 얻는다.
또 소리는 소리대로 그렇게 얻는다.
다만 색의 영역에서 소리는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꽃을 생각할 때 이 생각으로 다시 나비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꽃에 나비가 있는 것이아니다.
또 꽃이 나비인 것도 아니다.
일정한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키는 경우도 사정이 같다.
감각현실과 관련해 일으키는 망집도 이들과 사정이 같다.
현실에서 어떤 감각현실을 얻으면
그런 상황에서 매번 자신이 일정한 분별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런 감각현실안에서 그런 관념분별 내용을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분별이 '있다'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또 그런 감각현실은 곧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념분별'이다'라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따라서 이를 망집현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망집 현상이 증폭되게 된다.
그러나 앞와 마찬가지로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경전에서 어떤 한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한다.
이는 그것이 곧 침대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얻는 꿈고 마찬가지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생사현실은 집착을 갖고 대할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제시하는데 초점이 있다.
그래서 무엇이 있고 없음을 이런 취지에서 문제삼는다.
이런 경우 그런 관념분별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런 감각현실 자체를 얻지 못함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을 대해 그런 관념을 일으킬 수 없음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관념분별을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무 판단 문제에서 이들 각 내용을 서로 혼동하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생멸이나 오고감 영희 등으로 여기고 대하는 감각현실이 있다.
이 경우 경전에서 현실에서 생멸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또 오고감이나 오고가는 영희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일체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일으킨 분별내용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그런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대하는 그 감각현실에 그런 분별내용을 얻을 수 없다.
=> 그래서 그 분별내용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나머지 영역 내용도 이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분별 영역에서 일정한 분별을 일으켜 무언가를 문제삼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에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그런 분별 일체는 관념 영역 외의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즉, 실재영역과 감각현실 영역에서 이들 분별내용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실답지 않다.
그리고 이들 관념내용은 또한 진짜라고 할 실체도 아니다.
그런 실체는 없다.
따라서 그런 분별 내용은 하나같이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이해시키고자
위와 같은 측면에서 그 유무를 문제삼고 살펴나가게 된다.
즉 그런 관념내용을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있다고 할 것인가를 문제삼고 살피게 된다.
이것이 관념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파악하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는
각 영역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경우
그런 사정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고자 다시 다음 방편을 사용한다.
즉, 그런 내용을 각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일단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정한 방편 시설을 사용하게 된다.
즉, 언어를 통해서 임시로 시설해 그런 부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를 시설, 안립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가운데 그 사정을 설명해 나가게 된다.
이런 경우 이런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각 내용과 그 의미를 놓고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는 망집을 바탕으로 각 영역의 내용을 접착시켜 대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언어표현이 갖는다고 이해하는 내용과 서로 혼동하기 쉽다.
예를 들어 거리에 일반적으로 영희라고 보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는 그가 생각하는 영희는 얻을 수 없음을 설명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사정을 상대에게 이해시키려면
일단 그 부분을 '영희'라는 형태로 언어로 가리키며 설명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입장에서 그 부분을 영희라고 언어로 시설해 표현하게 된다.
이런 방편 시설은 결국 다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그 언어가 가리키는 그 부분에 그런 '영희'는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영희'라고 칭하자. 이런 뜻이다.
그런데 그 부분을 영희라고 언어로 표현하면
일반적 입장에서는 망집을 바탕으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다.
즉, 그 부분에 영희가 있다.
또 그 부분은 곧 영희이다.
이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부분을 혼동하기 쉽다.
부처님이 처음에 중생들의 수준에 눈높이를 맞춰서 내용을 설한다.
이 경우 대부분의 가르침이 이런 사정에 놓인다.
그래서 이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경전에서 예를 들어 일체는 생멸하며 무상하다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런 내용이 현실에 있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렇게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그래서 경전에서 제시하는 뗏목의 비유를 잘 이해해야 한다.
여하튼 경전에서는 이런 사정과 이런 취지에서
이런 시설 방편을 통해 내용을 제시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분별을 일으키고 문제삼는 그 모든 것은
진짜라고 할 내용이 없어서 무아 무자성임을 제시한다.
또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처럼 문제삼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등의 온갖 2 분법상의 분별과
언설을 떠난다.
그래서 의미를 갖지 않는 공하다는 표현으로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은 그런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그것들이 하나같이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망집과 번뇌를 잘 제거해야 한다.
★2★
○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과 수행의 필요성의 혼동 문제
- 여론 [차후 살펴야할 주제]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 일체가
위와 같은 사정으로 꿈처럼 실답지는 않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실답지 않다고 하여,
전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또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은 꿈 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정작 꿈 자체는 아니다.
각 주체가 그런 조건에서는 그런 형태로 대단히 반복해 그 내용을 얻게 된다.
또 그것은 그 주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 다수가 그런 형태다.
그래서 무한히 그런 내용을 대단히 다양하고 생생하게 얻게 된다.
또 그 안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간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된다.
이는 마치 게임기의 상황과 마찬가지다.
그것이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
그러나 게임에 임한 이들에게는
그런 형태가 그처럼 다수에게 생생한 형태로 반복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실답지 않지만,
이를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받아들이게 된다.
생사현실이 공하여 실답지 않다.
그러나 그 공한 현실이 예를 들어 심하게 억울하고 고통을 받는 상황인 경우는 문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별 이유도 없이 붙잡혀
수용소에 갇혀 계속 폭행과 고문을 당한다고 하자.
또는 다리를 만드는 중노동 등을 수십년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아니면 별 잘못도 없는데 어느 순간 음주운전자가 모는 자동차에 받혀
고통을 겪는다고 하자.
그래서 불구가 되어 평생 통증을 느끼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자.
또는 가해자는 도망쳐 자신이 병원비 수억원을 갚아야 한다고 하자.
또는 생활하기 힘들게 되자 가족들마저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하자.
그래서 자신 혼자 이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외에도 현실에서 겪는 다양한 억울하고 고통스런 상황들이 많다.
이런 상황을 놓고 생각해보자.
경전에서는 이런 생사현실이 공하여 실답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그 현실은 본래 생멸과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이런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통해
그 생사고통을 잘 벗어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 본 바탕이나 생사현실에서 주어지는 재료 자체에는
그런 생사고통이나 생멸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재료가 현실에서 주어진 이후
그런 바탕에서 망집을 일으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하여 그로 인해 이후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 생사고통의 현실이 위와 같다.
그리고 그 상황에 그런 망상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재료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재료가 주어지면
망집을 일으켜 하나같이 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받는다.
따라서 이런 내용이 수행을 통해 해결해야 할 생사현실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생사고통을 어떻게 해야 잘 해결하고 벗어날 수 있는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생사현실에서 평소 자신이 자신이나 세상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이들 내용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
그리고 자신이나 세상의 본 정체가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마음 내용이다.
그리고 외부 세상이나 외부 대상 등이 아니다. [유식무경]
그래도 현실에서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하자.
그런 경우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만 따라 변화해 움직인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공간에서
일정한 관계를 통해 일정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는다.
그래서 여전히 이런 현실 내용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끔 된다.
그리고 기존에 가졌던 망상 분별을 오히려 더 적절하다고 여기고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매순간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또 그런 바탕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3 악도에 묶이게 된다.
이들의 본 바탕은 공하고 실답지 않다
그 일체는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그 안에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은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 임하게 되면
이처럼 그런 내용이 곧 세상이고 자신이라고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한 주체는 그런 바탕에서 매순간 업을 행해가게 된다.
그리고 매 생을 그런 형태로 시작하고 마친다.
그리고 그런 형태로 무량하게 생사를 반복해 받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그 배경사정까지 잘 파악해야 한다.
또 이런 자신이나 세상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제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다음을 다시 잘 파악해야 한다.
즉 생사현실에서 수행자는 도대체 무엇을 그런 수행을 행하는 주체로 삼아
수행을 행하는가를 우선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제도할 다른 생명으로 대해 수행해 가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또 어떤 바탕에서 무량겁에 걸쳐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가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장엄할 불국토로 하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성불한 상태라고 하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런 생사현실의 배경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통해 망집과 생사에 묶이게 되는 업의 장애를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또 한편 다른 중생들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
이런 자비심을 바탕으로 다른 중생들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중생이 생사를 받는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을 제도할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정진해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런 현실 사정과 그 정체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의 파악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에 필요한 내용을 하나하나 잘 살펴 실천해 가야 한다.
◧◧◧ para-end-return ◧◧◧
■ 퀴즈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
삼념처(三念處)와 같음.
답 후보
● 삼념주(三念住)
삼매승(三昧僧)
삼먁삼보리(三藐三菩提)
삼무위(三無爲)
삼백사십팔계(三百四十八戒)
삼사(三思)
삼상(三相)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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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 금강삼매경론_K1501_T1730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그러나 나중에 거울을 통해서 이를 볼 수 있다.
또 나중에 손이 풀리면 만질 수도 있다.
이처럼 상황이 달라지면 그것을 감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든 현재 직접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만지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 이들의 있음과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런 경우 어떤 측면에서 유무를 논의하는 것인지 모호해진다.
또 다음 문제도 있다.
노란 색을 장님을 놓고 보자.
이 경우 이것을 있다고 할 지 없다고 할지 애매하다.
또 아름다운 피아노소리를 소리를 못 듣는 이를 기준으로 판단할 때도 애매해진다.
그 주체는 상대적으로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을 감각하여 얻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다음 경우들이 있다.
개는 맡지만 사람은 못 맡는 냄새가 있다.
고래는 듣지만 사람은 못듣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의 있고 없음의 판단도 결국 앞과 같은 문제가 된다.
한편, 현실에서는 자신이 끝내 가보지 못할 아주 먼 어떤 곳에
자신이 평소 보지 못한 이상한 동식물이 있다고 다른 이가 보고한다고 하자.
오늘날 기자나 학자가 현지를 가서 사진이나 글로 보고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그것이 정말 그처럼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사진이나 글만으로 그 있고 없음을 판단하기 곤란할 수 있다.
한편 요즘 과학기계가 발달해
적외선이나 자외선, 기타 X선 초음파 이런 측정장치를 통해서 영상을 얻는다.
그 때마다 사람이 눈으로 보는 내용과는 다른 내용을 얻는다.
이 경우도 기준 따라 달라진다.
사람의 시각을 기준으로 하면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측정수단을 동원하면 파악이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어떤 주체가 기계 상태로 직접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그 기계가 직접 어떤 상태를 얻는지는 파악하기 힘들다.
한편 경전이나 수행과 관련해서는
수행을 통해 6 신통을 증득하거나,
부처님의 입장이 되어 불안 법안 혜안 천안 육안과 같은 5 안을 갖추는 상태를 제시한다.
이 경우 특수한 내용을 얻게 됨을 제시한다.
이들은 일반적인 입장에서 시간 공간의 장애나 감관의 문제로 얻지 못한다.
이런 경우 일반적 입장에서 그런 내용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 경전에서 3 계 6 도를 제시한다.
이 경우 지옥과 지옥중생이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
또는 아귀세계와 아귀 중생이 있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경전에서 부처님이 제시하는 이런 내용은 어느 정도
기자의 보고와 성격이 비슷하다.
다만 이들 경우는 모두 다음 성격의 유무 판단문제다.
우선 감각현실을 얻는 관계가 조건이 모두 충족되면 얻게될 성격으로 제시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현재 그 일부 요소가 결여되어 내용을 얻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그 내용들의 유무를 판단하는 경우들이다.
그래서 단순히 관념영역에서 관념분별 내용의 유무를 살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설 속의 도깨비뿔의 유무를 살피는 것은 단순한 관념문제다.
한편 이는 실재영역을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실재 영역은 처음부터 현실 내용을 얻는 주관과의 관계를 떠나 본 바탕을 문제삼는다.
그래서 유무 논의시 문제 성격을 잘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을 감은 상태에서 직전에 보았던 상자가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나 없나를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경우 아예 주관과의 관계를 떠난 그 무엇[실재]를 찾는 경우인가.
아니면 그런 상태에서 다시 눈을 떠 보게 될 내용[현실내용]을 찾는 경우인가를 잘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경우를 서로 혼동하면 안 된다.
이런 경우에서 '있고 없음'을 논의한다고 하자.
이 경우 상황이 달라지면 그런 내용을 감각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당장 직접 그 상황에서 보거나 만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얻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는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앞에서 일반적으로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경우와 구분된다.
경전에서 제시되는 3 계 6 도 안의 지옥이나 아귀 하늘 등의 존부 문제가 있다.
이들은 각 주체가 그런 세계에 그런 중생의 상태에 처하면,
결국 지금 현실에서 경험하는 내용처럼 경험하는 성격의 내용이다.
즉, 경전에서 그런 성격의 내용으로 제시한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지금은 그런 내용을 직접 감각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그 내용을 지금은 직접 얻지 못한다.
따라서 그 유무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게 된다.
한편 공간은 직접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한다.
공간은 생주멸 변화를 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데 공간의 크기나 유무를 문제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하늘 위에서 점으로 보이는 공간이 보인다.
그런데 옆에서 의자는 이 점보다 대단히 커 보인다.
그런데 그 작은 점으로 보인 곳이 알고보면 수천명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일 수 있다.
공간은 일정한 기준 사물을 가지고 크기를 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준이 되는 사물을 넣고 빼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느 부분이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자.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간이 그만큼 있다거나 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 경우 공간의 크기를 재는 기준 사물에 따라 공간의 유무나 크기 관념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경우를 생각해보자.
어느 공간에 어떤 사물을 넣어보려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산소 10톤 분량은 이상하게 들어간다.
이런 경우 무엇을 기준으로 공간의 크기를 재는가에 따라 공간의 유무나 크기의 관념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는 상대적인 차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끝내 직접 감각하기 곤란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감각하는 내용을 근거로 그 유무나 내용을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공간의 유무판단은 결국 그런 성격의 유무 판단 성격을 갖게 된다.
- 마음의 유무 문제
눈을 통해 사물을 본다.
그러나 눈이 눈 자신은 보지 못한다.
마음도 성격이 비슷하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일체 내용은 마음으로 얻는다.
그러나 정작 마음 자체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마음에 대해서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가 눈을 떠 모습을 본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정작 그런 모습을 보게 하는 마음이 따로 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마음은 굳이 없어도 보는 데 지장이 없는가가 문제된다.
마음의 있고 없음의 문제는 이런 성격의 논의다.
경전에서 마음을 시설해 그런 마음이 있다고 제시한다.
마음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경우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마음이 있다고 제시하게 된다.
물리적인 작용의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일어나 그 파장이 호수가에 가 닿는다.
또는 도미노를 세워 놓고 한쪽에서 쓰러뜨리면 연달아 쓰러져 끝 부분이 쓰러진다.
이들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다.
그런데 생리학자들이
마음현상을 이런 물리적 현상의 하나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즉 외부 물질이 있다. 그리고 한 주체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있다.
이들 간에 작용-반작용 자극-반응 이런 운동 변화관계가 마음현상일 뿐이다.
이처럼 이해하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나 경전은 마음의 존재를 제시한다.
그리고 다음처럼 제시한다.
마음 현상이란 마음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현실에서 얻는 일체 내용은 마음이 별도로 존재함을 전제해야만 한다.
현실에서 생리학자들이 판단하는 각 현실 내용도 그런 바탕에서 얻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후 그런 판단들을 행하게 된다.
따라서 현실에서 일반적으로 행하는 판단은
이 관계를 거꾸로 뒤집혀 행한 잘못된 판단이다.
즉, 마음으로 얻어진 결과물로서 마음 현상이 일어난다고 이해한다.
이는 이들 관계를 거꾸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한편, 이런 마음은 현실 내용을 얻어내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직접 보거나 얻지 못한다.
따라서 처음 문제삼는 본 바탕의 실재 영역과 혼동하기 쉽다.
마음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을 준거로 한다.
이런 현실 내용을 얻는데 기능하는 그 무엇을 마음으로 표현해 문제삼는다.
반면, 실재영역은 한 주체가 이런 마음을 통해 얻는 내용과 그런 마음을 떠난 것을 문제삼는다.
즉, 그런 마음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의 내용을 문제삼는다.
따라서 서로 구분된다.
여하튼 이와 같은 각 경우마다 문제되는 어떤 A 의 있고 없음을 판단하고 논의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언어표현을 통해 그런 내용을 가리키며 살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의 존부를 문제삼을 때
그 유무는 앞에서 살핀 측면에서의 유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우선 토끼뿔처럼 순수하게 오로지 관념영역에서 일으킨 관념의 측면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또 단순히 언어표현을 언어표현 영역에서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직접 감각하여 보고 만지는 어떤 감각내용을 얻는가 여부를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한편, 주관과 전혀 관계없이 실재하는 내용을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진짜라고 할 실체의 존부를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 얻는 각 내용을 통해 살필 때 이를 전혀 아무 것도 없다고 하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일단 언어로 그런 내용을 일정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 있고 없음을 문제삼게 된다.
따라서 마음의 유무를 살필 때는 이런 기본 사정을 잘 파악한 바탕에서 살펴야 한다.
○ 있고 없음의 판단에서 각 영역의 상호관계를 살피는 형식
있고 없음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그 있고 없음 자체가
관념영역에서만 이뤄진다.
이런 사정을 먼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즉,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등등이 그 자체가 모두 관념내용이다.
그래서 이 관념영역을 벗어난 영역에서는
이들 유무 관념내용 자체는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있고 없음'을 모두 본래 떠나야 한다.
예를 들어 실재나 감각현실의 영역은 모두 유무분별을 떠난다.
그렇지만, 그렇게 '유무' 분별이나 언어표현을 통해 '가리키는'
그 내용을 전혀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즉 실재나 감각현실이란 표현으로 가리키는 영역이
전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는 아니다.
따라서 이 두 측면을 잘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감각현실에 문제삼는 관념분별 내용으로서 A 가 있는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또는 그런 감각현실이 그런 A 인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런 감각현실 이 그런 관념 내용 자체는 아니다.
또 그런 감각현실이 진짜라고 볼 실다운 내용도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어떤 생생한 내용을 감각현실로 얻는다.
그리고 어떤 이가 어떤 감각현실의 한 부분을 그렇게 묶고 나누어서
그것을 A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주체는 일단 그 부분을 다른 부분과는 구별되는 상태로 얻는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분별을 행한다.
즉 어떤 이가 눈을 떠서
어떤 부분을 꽃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이 경우 예를 들어 눈을 떠 오로지 하얀 색만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체적으로 같은 색을 보는 가운데
생각만으로 일정 부분을 꽃이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감각현실 ~ 관념분별의 상호관계를 살필 때는 원칙적으로 다음방식으로
그 관계를 있는 그대로 잘 파악해야 한다.
먼저 감각현실 그 자체가 곧 관념분별 A 인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반대로 관념분별 A 그 자체가 곧 그 감각현실인가를 살펴야 한다.
한편, 그러한 관념분별 A 는 그런 감각현실을 완전히 떠나 있는가.
그래서 이들은 전혀 무관한가.
관념분별은 감각현실과 관게없이 독자적으로 그렇게 얻게 된 것인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이는 감각현실과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관념분별과 감각현실의 관계
관념분별과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음과 그 마음에 얻어진 내용(감각현실, 관념분별내용)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음과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외 꿈과 현실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거울이나 거울에 나타난 모습의 관계를 살필 때도 마찬가지다.
○ 망상분별 집착현상과 유무 판단
언어 표현 자체와
그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각기 다른 차원이나 측면을 이미 살폈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 일으키는 망집현상과 관련해
다음을 일단 명확하게 잘 이해해야 한다.
● 망집을 일으킨 재료와 망집의 혼동 문제
- 감각현실 및 관념사이의 유무 판단의 혼동 문제일반적으로는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관념영역에서 일정 부분을 묶고 나누게 된다.
그래서 일정 부분에 대해 꽃이라고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또는 일정 부분은 바위, 산, 들이라고 분별을 일으킨다.
또는 일정 부분은 영희, 철수, 자신이라는 등으로 분별을 일으킨다.
이처럼 그런 부분을 대해 그런 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통해감각현실 그 부분은 곧 그런 분별내용'이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에 곧 그런 분별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경전이나 논서에서 있고 없음을 문제삼을 때는
그런 측면으로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에 들어가 눈을 떠 살펴보니 꽃으로 여기게 되는 무언가가 보인다고 하자.
이런 경우 그러그러한 생생한 감각현실이 얻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꽃이라는 생각을 일으켜 얻는다.
그러나 그렇게 얻는 감각현실에 자신이 생갹하는 꽃의 관념이 그 자리에 있지 않다.
또한 꽃의 관념은 그런 감각현실을 그 안에 갖고 있지 않다.
즉, 관념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감각현실은 또 관념이 아니다.
이 상황을 비유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본 바탕을 '라면'이라고 가정 해보자.
이런 본 바탕을 대해 엉뚱하게 '벽돌'의 모습을 얻게 된다.
한편 이 벽돌의 모습을 대해 그것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고 가정해보자.
그래서 이 경우 각 내용의 관계는
라면 (실재) => 벽돌 (감각현실) => 사람(관념분별)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사람의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고 하자.
이 경우 관념분별 영역에서 그처럼 사람이란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 경우 관념영역에 그런 관념분별이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한편 감각현실에서 그런 벽돌과 같은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고 있다.
그런데 감각현실에 그런 감각현실을 얻고 있는가를 문제삼는 것도 아니다.
이 경우 사람의 유무 논의는 다음 측면의 논의다.
즉, 벽돌이란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사람이란 관념분별 자체가 '있다'고 할 것인가.
또는 감각현실 영역에서 그런 관념을 '얻을 수 있는가' 등을 문제삼는다.
그런데 이것을 문제삼는가 사정이 있다.
만일 그런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도 있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사정으로 그 내용을 실답다고 대할 가능성이 많아지게 된다.
한편 사정이 그렇지 않다면
그런 사정으로 그것은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고 보게 된다.
그것은 침대에 누어 꾼 꿈의 경우와 사정이 같다.
그래서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내용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경전에서는 이런 취지로 유무 논의를 살핀다.
즉,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 그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살핀다.
따라서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즉, 침대에서 누어 꾼 황금이나 바다꿈과 성격이 같음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이 다른 내용에서 얻어지는가 측면으로 유무를 판단하게 된다.
이 사정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놓고 그런 바다나 황금꿈이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이는 그런 바다나 황금꿈을 생생하게 꾸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또 현실에 침대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그런 침대도 있다.
꿈에서는 그런 바탕에서 그런 바다나 황금꿈을 생생하게 꾸었다.
그러나 현실의 침대에 그런 바다나 황금은 없다는 의미다.
사정이 그렇기에 꿈에서 생생하게 본 바다나 황금은 실답지 않다.
따라서 이에 집착을 갖고 대하면 안 됨을 제시한다.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는다.
그리고 이에 해대 어떤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이 상황에서 그런 내용의 유무를 문제삼는 취지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 입장에서는
그런 사정으로 그런 관념분별이 그런 감각현실 안에 그처럼 '있다'고 망집을 일으킨다.
이 부분이 망집현상이다.
한편 그 상황에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이 그런 망집을 일으킨 재료가 된다.
그러나 정작 그 재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망집을 일으킨 바탕에서는 그런 재료가 주어지면 일반적으로 그런 망집을 일으켜 대하게끔 된다.
그러나 망집을 일으킨 그 '재료'와 그 재료로 일으킨 '망집'은 구분해야 한다.
한편 그런 망집은 결국 관념 영역안에서 일으킨다.
즉 관념영역에서 일으킨 관념분별을 바탕으로
이를 다른 영역에서 얻는 내용과 접착시켜 대한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 되면
이후 이에 바탕해 감각현실 각 부분이 자신이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라고 여기고 대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각 부분에 상을 취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업을 행해 나가게 된다.
또 그렇게 업을 행하면 그런 바탕과 전제에서는
고통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망집을 일으킨 경우
실재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로 다시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현실에서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고 관념분별을 일으킨다.
그런데 실재는 이들 현실 내용을 얻는 본 바탕이 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본 바탕이 되는 실재도
그런 내용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게 된다.
또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자신이 그런 감각현실도 그처럼 얻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분별도 그렇게 하게 된다고 여긴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증폭시켜 나가게 된다.
그리고 또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하고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 혹- 업 - 고 ]
따라서 그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 영역을 놓고 각 내용의 있고 없음의 문제를 살피게 된다.
이처럼 망집을 일으키는 사정은 다음과 같이
서로 엉뚱한 내용을 관련시키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으로 손을 본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손을 마주치면 그 상황에서 소리를 듣거나 촉감을 얻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눈으로 손모습을 본다.
그리고 귀로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손으로 촉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시각과 청각과 촉각 내용은 서로 대단히 엉뚱한 내용이다.
그런데 어떤 이가 현실에서 매번 그런 손이 마주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소리나 촉감을 얻는 경험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이 듣는 그 손뼉 소리나 촉감이
자신이 눈으로 보는 그 모습에 들어 있다고 여긴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매번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 가운데
눈으로 보는 그런 모습안에서 귀로 듣는 소리를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또는 눈으로 보는 모습에 그런 소리가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또는 눈으로 보는 그 모습은 곧 자신이 듣는 그 소리'이다'라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경우 색의 영역에서는 소리를 얻을 수 있는가를 먼저 살핀다.
그래서 색의 영역에 소리는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렇다고 눈으로 보는 색을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귀로 듣는 소리를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색은 색대로 그렇게 얻는다.
또 소리는 소리대로 그렇게 얻는다.
다만 색의 영역에서 소리는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꽃을 생각할 때 이 생각으로 다시 나비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꽃에 나비가 있는 것이아니다.
또 꽃이 나비인 것도 아니다.
일정한 감각현실을 대해 일정한 관념분별을 일으키는 경우도 사정이 같다.
감각현실과 관련해 일으키는 망집도 이들과 사정이 같다.
현실에서 어떤 감각현실을 얻으면
그런 상황에서 매번 자신이 일정한 분별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런 감각현실안에서 그런 관념분별 내용을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에 그런 관념분별이 '있다'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또 그런 감각현실은 곧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념분별'이다'라고 잘못 여기면 곤란하다.
따라서 이를 망집현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망집 현상이 증폭되게 된다.
그러나 앞와 마찬가지로 그 사정이 그렇지 않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 경전에서 시설하는 언어방편에 대한 혼동
경전에서 어떤 한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한다.
이는 그것이 곧 침대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얻는 꿈고 마찬가지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생사현실은 집착을 갖고 대할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제시하는데 초점이 있다.
그래서 무엇이 있고 없음을 이런 취지에서 문제삼는다.
이런 경우 그런 관념분별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런 감각현실 자체를 얻지 못함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감각현실을 대해 그런 관념을 일으킬 수 없음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감각현실 영역에 그런 관념분별을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무 판단 문제에서 이들 각 내용을 서로 혼동하면 곤란하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생멸이나 오고감 영희 등으로 여기고 대하는 감각현실이 있다.
이 경우 경전에서 현실에서 생멸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또 오고감이나 오고가는 영희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그런 감각현실을 일체 얻을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일으킨 분별내용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그런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대하는 그 감각현실에 그런 분별내용을 얻을 수 없다.
=> 그래서 그 분별내용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
이런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나머지 영역 내용도 이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분별 영역에서 일정한 분별을 일으켜 무언가를 문제삼는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에 집착을 갖는다.
그리고 업을 행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그런 분별 일체는 관념 영역 외의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즉, 실재영역과 감각현실 영역에서 이들 분별내용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실답지 않다.
그리고 이들 관념내용은 또한 진짜라고 할 실체도 아니다.
그런 실체는 없다.
따라서 그런 분별 내용은 하나같이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이해시키고자
위와 같은 측면에서 그 유무를 문제삼고 살펴나가게 된다.
즉 그런 관념내용을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있다고 할 것인가를 문제삼고 살피게 된다.
이것이 관념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파악하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는
각 영역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런 경우
그런 사정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고자 다시 다음 방편을 사용한다.
즉, 그런 내용을 각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일단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정한 방편 시설을 사용하게 된다.
즉, 언어를 통해서 임시로 시설해 그런 부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를 시설, 안립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가운데 그 사정을 설명해 나가게 된다.
이런 경우 이런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각 내용과 그 의미를 놓고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그런데 일반적 입장에서는 망집을 바탕으로 각 영역의 내용을 접착시켜 대한다.
그런 가운데 그런 언어표현이 갖는다고 이해하는 내용과 서로 혼동하기 쉽다.
예를 들어 거리에 일반적으로 영희라고 보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런 부분에는 그가 생각하는 영희는 얻을 수 없음을 설명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사정을 상대에게 이해시키려면
일단 그 부분을 '영희'라는 형태로 언어로 가리키며 설명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입장에서 그 부분을 영희라고 언어로 시설해 표현하게 된다.
이런 방편 시설은 결국 다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그 언어가 가리키는 그 부분에 그런 '영희'는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영희'라고 칭하자. 이런 뜻이다.
그런데 그 부분을 영희라고 언어로 표현하면
일반적 입장에서는 망집을 바탕으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다.
즉, 그 부분에 영희가 있다.
또 그 부분은 곧 영희이다.
이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부분을 혼동하기 쉽다.
부처님이 처음에 중생들의 수준에 눈높이를 맞춰서 내용을 설한다.
이 경우 대부분의 가르침이 이런 사정에 놓인다.
그래서 이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경전에서 예를 들어 일체는 생멸하며 무상하다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런 내용이 현실에 있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렇게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그래서 경전에서 제시하는 뗏목의 비유를 잘 이해해야 한다.
여하튼 경전에서는 이런 사정과 이런 취지에서
이런 시설 방편을 통해 내용을 제시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분별을 일으키고 문제삼는 그 모든 것은
진짜라고 할 내용이 없어서 무아 무자성임을 제시한다.
또 그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처럼 문제삼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과 같다 -과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등의 온갖 2 분법상의 분별과
언설을 떠난다.
그래서 의미를 갖지 않는 공하다는 표현으로 나타내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한편,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은 그런 실재의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그것들이 하나같이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님을 잘 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망집과 번뇌를 잘 제거해야 한다.
★2★
○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과 수행의 필요성의 혼동 문제
- 여론 [차후 살펴야할 주제]
현실에서 문제삼는 그 일체가
위와 같은 사정으로 꿈처럼 실답지는 않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실답지 않다고 하여,
전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또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은 꿈 처럼 실답지 않다.
그러나 정작 꿈 자체는 아니다.
각 주체가 그런 조건에서는 그런 형태로 대단히 반복해 그 내용을 얻게 된다.
또 그것은 그 주체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영희나 철수를 비롯해 다수가 그런 형태다.
그래서 무한히 그런 내용을 대단히 다양하고 생생하게 얻게 된다.
또 그 안에서 극심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받아나간다.
그래서 그것이 문제가 된다.
이는 마치 게임기의 상황과 마찬가지다.
그것이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
그러나 게임에 임한 이들에게는
그런 형태가 그처럼 다수에게 생생한 형태로 반복된다.
그래서 이런 사정으로 실답지 않지만,
이를 대단히 생생하고 실답게 받아들이게 된다.
생사현실이 공하여 실답지 않다.
그러나 그 공한 현실이 예를 들어 심하게 억울하고 고통을 받는 상황인 경우는 문제다.
예를 들어 자신이 별 이유도 없이 붙잡혀
수용소에 갇혀 계속 폭행과 고문을 당한다고 하자.
또는 다리를 만드는 중노동 등을 수십년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자.
아니면 별 잘못도 없는데 어느 순간 음주운전자가 모는 자동차에 받혀
고통을 겪는다고 하자.
그래서 불구가 되어 평생 통증을 느끼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자.
또는 가해자는 도망쳐 자신이 병원비 수억원을 갚아야 한다고 하자.
또는 생활하기 힘들게 되자 가족들마저 자신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하자.
그래서 자신 혼자 이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외에도 현실에서 겪는 다양한 억울하고 고통스런 상황들이 많다.
이런 상황을 놓고 생각해보자.
경전에서는 이런 생사현실이 공하여 실답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그 현실은 본래 생멸과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이런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경전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통해
그 생사고통을 잘 벗어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 본 바탕이나 생사현실에서 주어지는 재료 자체에는
그런 생사고통이나 생멸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재료가 현실에서 주어진 이후
그런 바탕에서 망집을 일으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하여 그로 인해 이후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 생사고통의 현실이 위와 같다.
그리고 그 상황에 그런 망상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재료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재료가 주어지면
망집을 일으켜 하나같이 고통을 생생하고 실답게 받는다.
따라서 이런 내용이 수행을 통해 해결해야 할 생사현실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생사고통을 어떻게 해야 잘 해결하고 벗어날 수 있는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생사현실에서 평소 자신이 자신이나 세상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이들 내용은 하나같이 실답지 않다.
그리고 자신이나 세상의 본 정체가 아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마음 내용이다.
그리고 외부 세상이나 외부 대상 등이 아니다. [유식무경]
그래도 현실에서 자신이 어디론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하자.
그런 경우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만 따라 변화해 움직인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간과 일정한 공간에서
일정한 관계를 통해 일정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는다.
그래서 여전히 이런 현실 내용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끔 된다.
그리고 기존에 가졌던 망상 분별을 오히려 더 적절하다고 여기고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망집을 바탕으로 매순간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또 그런 바탕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는 3 악도에 묶이게 된다.
이들의 본 바탕은 공하고 실답지 않다
그 일체는 마음내용이다.
그리고 그 안에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은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 임하게 되면
이처럼 그런 내용이 곧 세상이고 자신이라고 망집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한 주체는 그런 바탕에서 매순간 업을 행해가게 된다.
그리고 매 생을 그런 형태로 시작하고 마친다.
그리고 그런 형태로 무량하게 생사를 반복해 받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그 배경사정까지 잘 파악해야 한다.
또 이런 자신이나 세상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제 수행자는 생사현실에서 다음을 다시 잘 파악해야 한다.
즉 생사현실에서 수행자는 도대체 무엇을 그런 수행을 행하는 주체로 삼아
수행을 행하는가를 우선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제도할 다른 생명으로 대해 수행해 가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또 어떤 바탕에서 무량겁에 걸쳐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는가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장엄할 불국토로 하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성불한 상태라고 하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런 생사현실의 배경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수행을 통해 망집과 생사에 묶이게 되는 업의 장애를 잘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나야 한다.
또 한편 다른 중생들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
이런 자비심을 바탕으로 다른 중생들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중생이 생사를 받는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고통을 받는 중생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그런 가운데 중생을 제도할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정진해 원만히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런 현실 사정과 그 정체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내용의 파악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에 필요한 내용을 하나하나 잘 살펴 실천해 가야 한다.
◧◧◧ para-end-return ◧◧◧
◆vhav3841
◈Lab value 불기2561/08/25/금/08:55 |
○ [pt op tr] ▼ mus0fl--Yves Duteil - Jonathan.lrc○ [pt op tr]Clos_luce_04_straight ♥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 ,Georgetown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상세정보=> https://buddhism007.tistory.com/5349 ● 수행자의 선교 방편과 현실에서 루팡의 방편 현실에서 교묘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가 많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지혜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경우는 중국역사에서는 제갈공명과 같은 책략가를 생각할 수 있다. 또 소설에서는 루팡과 같은 이를 생각할 수 있다. 요즘 전자화폐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사기를 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곤충을 기르면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사기를 행하기도 한다. 일정한 기간 아주 성실하게 수익이나 이자를 지급하여 수많은 투자자를 모으고 사라지는 사기 사건 피해도 많다. 이런 사기를 일반적으로 폰지사기라고 한다. 투자자가 제공한 원금을 가지고 다른 투자자에게 지불할 이자나 수익을 제공한다. 그런 식으로 계속 돌려막기를 한다. 어느 기간까지는 그런 수익을 지불한다. 그런다가 어느 단계에 투자금이 모이면 그것을 모두 가지고 도망가는 사기 유형이다. 처음 사업을 할 때는 누구나 다른 투자자의 자금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투자계획을 설명하고 투자금을 투자받는다. 또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처음 계획처럼 반드시 다 그렇게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과 실퍠를 겪는 것은 모든 기업이 다 마찬가지다. 다만 사기의 경우는 처음부터 그런 계획이 없이 그저 외관만 그렇게 갖추고 투자자를 모은다. 그리고 고의적으로 기망하고 피해를 준다. 이런 부분이 문제다. 한편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는 이런 양상이 더 심각해진다. 전쟁에선 상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격퇴시켜야 한다고 여긴다. 이 경우 상대와 바로 맞붙어 승부를 겨루는 정공법도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상대를 기망하는 해서 속이는 방법이 무량하게 사용한다. 그리고 그 최종목적이 여하튼 상대에게 피해나 손해를 주는데에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발생하기까지 상대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또 발생한 후에도 누가 어떻게 그것을 발생시켰는가를 잘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지혜를 기울인다. 이런 점에서 이는 결국 좁고 짧고 얕은 관찰에 바탕한다. 그런데 그로 인해 일단 손해나 피해가 발생하면 설령 어린이라도 그 사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그 과정과 사정을 곧바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여 그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처럼 한번 행한 업은 무량겁을 두고 소멸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형태로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내용을 경전에서 제시한다. ◧◧◧ para-end-return ◧◧◧ ○ 수행자의 선교 방편 [복팡?] 수행자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편을 사용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소설에 나오는 루팡과는 다른 취지와 형태로 방편을 사용한다. 소설에 나오는 루팡은 교묘한 지혜로 번뇌[루]를 무량하게 증폭시킨다. [팡!] 그래서 자신이나 상대를 생사고통에 묶는다. 이는 넓고 길고 깊게 고통을 주고 받게 한다. 이에 반해 수행자는 이와 반대로 임한다. 그래서 이와 반대로 복덕과 지혜 자량을 무량하게 증폭해 얻게 한다. 그 방안은 간단하다. 먼저 이런 취지를 갖고 마음에 그런 서원을 장착한다. 그런 가운데 매 상황을 대하고 바라본다. 그러면 그 상황마다 그에 걸맞은 내용을 반야지혜를 통해 얻게 된다. 이 경우 한 개인이 갖는 지식이나 기술의 양이나 깊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한 개인은 그런 자세하고 구체적인 기술이나 지식을 모두 갖출 수 없다. 그렇다해도 어떤 한 개인이 그런 심성으로 현실에 임하면 필요시마다 그에게 그런 도움을 받게 된다. 또 부처님이나 대력보살도 역시 그런 수행자를 돕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마음이 향하는 방향 즉 그 심성의 내용이다. 자신이 처음 어떤 취지로 어떤 방편을 취하여 임하는 가에 따라서 이후 생사과정이 달라진다. 자신이 생사에 묶이고 번뇌를 증폭시켜서 무한히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는 상태가 되는 루팡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또는 생사묶임과 생사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복덕과 지혜 자량을 무한히 증폭시켜 얻어나가는 반대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런 차별이 생겨난다. 원래 본 바탕에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공한 가운데 각 생명이 공수래 공수거한다. 그런데 어떤 형태로 임하는 가에 따라 생사현실에서 공한 극락의 수행자가 되기도 한다. 또 반대로 공한 지옥에 묶인 수행자가 되기도 한다. 처음 우주가 극히 미세한 공간에서 폭발을 일으켜 현재의 상태처럼 되었다는 이론이 있다. 이를 빅뱅[팡!] 이론이라고 칭한다. 망집에 바탕해 지혜를 발휘하여 번뇌[루]가 빅뱅현상처럼 증폭 확장되어 가는 경우가 있다. 이를 루팡의 형태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한 수행자가 무량한 복덕과 지혜를 갖추고 중생제도와 불국토의 서원을 성취시켜 나감으로서 중생세간이 불국토가 되어 가는 형태도 있다. 이를 이와 반대로 복팡이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 para-end-return ◧◧◧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1-08-25-k1501-001.html#3841 sfed--금강삼매경론_K1501_T1730.txt ☞상권 sfd8--불교단상_2561_08.txt ☞◆vhav3841 불기2561-08-25 θθ |
■ 퀴즈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
삼념처(三念處)와 같음.
답 후보
● 삼념주(三念住)
삼매승(三昧僧)
삼먁삼보리(三藐三菩提)
삼무위(三無爲)
삼백사십팔계(三百四十八戒)
삼사(三思)
삼상(三相)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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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 순전한 잡담부분
● = 논의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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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2/10/08/월/00:33
불기256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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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삼매경론_K1501_T1730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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