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
K0080
T0279
제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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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0080-052♧
제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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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제52권
우전국(于闐國) 삼장(三藏)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이운허 번역
37. 여래출현품 ③
5) 출현하는 경계와 행과 보리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경계를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는 지혜로
모든 세간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며,
모든 삼세 경계와
모든 세계의 경계와
모든 법의 경계와
모든 중생의 경계와
진여의 차별 없는 경계와
법계의 걸림없는 경계와
실제의 그지없는 경계와
허공의 분량 없는 경계와
경계 없는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자여,
모든 세간의 경계가 한량없듯이 여래의 경계도 한량이 없으며,
모든 삼세 경계가 한량없듯이 여래의 경계도 한량이 없으며,
내지 경계 없는 경계가 한량없듯이 여래의 경계도 한량이 없고,
경계 없는 경계가 온갖 곳에 있는 것 아니듯이,
여래의 경계도 그와 같아서
온갖 곳에 있는 것 아닙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마음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임을 알며,
마음의 경계가 한량없고 그지없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것 같이,
여래의 경계도 한량없고 그지없고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이러이러하게 생각하고 분별함으로써 이러이러하게 한량없이 나타나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마치 큰 용왕이 마음대로 비를 내리지마는,
그 비는 안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듯이,
여래의 경계도 그와 같아서
이렇게 생각하고 분별함을 따라서
이렇게 한량없이 시방에 나타나지마는,
비롯하여 오는 데가 없습니다.
불자여,
마치 바닷물이 다 용왕의 마음으로 생기듯이,
부처님 여래의 온갖 지혜의 바다도 그와 같아서
다 여래의 과거의 큰 서원으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불자여,
온갖 지혜의 바다는 한량없고 그지없고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지마는,
내 이제 간략히 비유를 말하리니
그대들은 자세히 들으십시오.
불자여,
이 염부제에는 2천 5백 강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고,
서구야니(西拘耶尼)에는 5천 강이 흘러 바다에 들어가고,
동불바제(東弗婆提)에는 7천 5백 강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고,
북울단월(北鬱單越)에는 일만 강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갑니다.
불자여,
이 사천하에서 이러한 2만 5천 강이 계속하여 끊이지 않고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물이 많겠습니까?”
대답하되 “매우 많겠나이다” 하였다.
“불자여,
다시 열 광명용왕이 바다에 내리는 물은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백 광명용왕이 바다에 내리는 물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대장엄용왕과 마나사용왕과 뇌진(雷震)용왕과 난다ㆍ발난다용왕과 무량광명용왕과
연주부단(連霔不斷)용왕과 대승(大勝)용왕과 대분신(大奮迅)용왕 등의 80억 용왕들이
바다에 내리는 비는 차례차례 앞의 것보다 또 배가 되며,
사갈라용왕의 태자 염부당(閻淨幢)이 바다에 내리는 물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됩니다.
불자여,
열 광명용왕의 궁전에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백 광명용왕의 궁전에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대장엄용왕과 마나사용왕과 뇌진용왕과 난다ㆍ발난다용왕과 무량광명용왕과
연주부단용왕과 대승용왕과 대분신용왕 등의 80억 용왕의 궁전이 각각 다르며,
그 가운데 있는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차례차례 앞의 것보다 또 배가 되며,
사갈라용왕의 태자 염부당의 궁전에 물이 흘러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됩니다.
불자여,
사갈라용왕의 계속하여 바다에 내리는 물은 또 앞의 것보다 배가 되고,
사갈라용왕의 궁전에 물이 솟아올라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또다시 앞의 것보다 배가 되며,
그 솟아오르는 물은 아청 유리[紺瑠璃]빛으로서 솟는 때가 있으므로 바다에 조수가 때를 어기지 않습니다.
불자여,
이렇게 큰 바다에는 물이 한량이 없고 보배도 중생도 한량이 없고
의지한 땅덩이도 한량이 없습니다.
불자여, 그대의 뜻은 어떻습니까.
저 큰 바다는 한량이 없겠습니까?”
“실로 한량이 없으며 비유할 수가 없겠나이다.”
“불자여,
이 바다의 한량없는 것으로,
저 한량이 없는 여래의 지혜 바다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내지 우파니사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다만 중생의 마음대로 비유를 하지마는,
부처의 경계는 비유도 할 수가 없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의 지혜가 한량없음을 알지니,
처음 마음낼 적부터 모든 보살의 행을 닦아 끊이지 않는 연고입니다.
마땅히 보배덩이가 한량없음을 알지니,
모든 보리분법이 세 가지 보배가 끊이지 않는 연고입니다.
마땅히 머물 바 중생이 한량없음을 알지니,
모든 배우고[學] 배울 것 없는[無學] 성문과 독각이 얻어서 사용하는[所受用] 연고입니다.
마땅히 머무는 자리가 한량없음을 알지니,
처음 환희지로부터 내지 끝까지 장애가 없는 자리[無障礙地]에 이른 보살들이 사는 데인 연고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한량없는 지혜에 들어가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경계를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마음의 경계들이 한량없듯이
부처님의 경계도 그와 같나니
마음 경계 뜻으로부터 났듯이
부처 경계 이렇게 관찰하시오.
용왕이 본처(本處)를 떠나지 않고
마음의 위력으로 큰비 내리니
빗물이 오고 가는 곳이 없어도
용왕의 마음 따라 흡족히 젖어.
열 가지 힘 무니도 그와 같아서
오는 데도 없으며 간 데 없으나
깨끗한 맘 있으면 몸을 나투어
법계처럼 큰 것이 털구멍에 들고.
바다의 진기함이 한량없거든
중생과 땅덩이도 그와 같으며
물의 성품 평등하여 차별 없으나
그 속에 나는 것은 이익이 각각.
여래의 지혜 바다 그와 같아서
갖가지 있는 것이 한량이 없어
학(學)과 무학(無學)과 지위[地] 있는 이
그 가운데 있어서 이익 얻는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행을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걸림없는 행이 여래의 행임을 알아야 하며,
진여의 행이 여래의 행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자여.
진여는 앞 짬[前際]에서 나지도 아니하고 뒤 짬에서 동하지도 아니하고 현재에 일어나지도 않듯이
여래의 행도 그러하여 나지도 않고 동하지 않고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불자여,
마치 법계가 한량 있는 것도 아니고 한량없는 것도 아니니,
형상이 없는 연고입니다.
여래의 행도 그와 같아서 한량 있는 것도 아니고 한량없는 것도 아니니,
형상이 없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마치 새가 허공에 날면서 백 년을 지난다 하여도
이미 지나간 곳이나 지나지 못한 곳이나 모두 측량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허공계가 끝이 없는 연고입니다.
여래의 행도 그와 같아서
어떤 사람이 백천억 나유타 겁을 지내면서 분별하여 연설하였다 하여도
이미 말하였거나 말하지 못한 것을 측량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여래의 행은 끝이 없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이 걸림없는 행에 머물러서는 머물 곳이 없지마는
일체 중생을 두루 위하여 행할 일을 보이어서
그들이 보고는 온갖 장애 되는 길을 벗어나게 합니다.
불자여,
마치 금시조왕(金翅鳥王)이 허공에 떠서 돌아다니면서
청정한 눈으로 바닷속 용왕들의 궁전을 살펴보고
용맹한 힘으로 좌우의 날개를 뽐내며 바닷물을 쳐서 두 쪽으로 헤치고
암용과 수용의 목숨이 다한 것을 골라서 움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인 금시조왕도 그와 같아서 걸림없는 행에 머물러 있으면서
청정한 부처 눈으로 법계 궁전 안에 있는 모든 중생을 살펴보고 만일 일찍이 선근을 심어 성숙하였거든,
여래께서 용맹한 십력을 떨치어 지(止)와 관(觀)의 두 날개로 나고 죽는 애착의 바닷물을 쳐서 두 쪽으로 헤치고 들어다가
불법 가운데 두어 온갖 허망한 생각과 희롱의 말을 끊어버리고 여래의 분별 없고 걸림없는 행에 머물게 합니다.
불자여,
마치 해와 달이 짝이 없이 홀로 허공에 돌면서 중생을 이익하면서도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나니,
부처님 여래도 그와 같아서 성품이 본래 고요하고 분별이 없이
모든 법계에 다니면서 중생들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불사를 쉬지 않고 지으면서도 그렇게 희롱거리로 분별하여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향하여 간다’는 생각을 내지 않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한량없는 방편과 한량없는 성품과 형상으로써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행하시는 행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이때 보현보살이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진여는 멸하지도 나지도 않고
있는 곳도 없으며 볼 이 없으나
크게 이익하는 이의 행이 이러해
삼세를 지나가서 요량 못하고
법계는 계(界) 아니고 비계(非界)도 아니며
유량(有量)도 아니면서 무량 아니니
큰 공덕 있는 이의 행도 그러해
유량ㆍ무량 아님은 몸이 없는 탓.
나는 새가 억천 년 날아다녀도
허공은 예와 오늘 차별 없나니
많은 겁에 여래의 행 연설하여도
말하고 아니한 것 요량 못하네.
금시조왕 허공에서 큰 바다 보고
물 헤치고 수용 암용 움켜 가듯이
십력으로 선근 중생 가려 내어서
생사 바다 벗어나 의혹 없애며
해와 달이 허공에 떠서 다니며
모든 것 비추지만 분별 없듯이
세존도 온 법계에 두루 다니며
중생들 교화하되 동하지 않네.
“불자여,
보살마하살들이 어떻게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바른 깨달음을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여래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룸이 온갖 이치에 관찰함이 없고,
법에 평등하여 의혹이 없으며,
둘이 없고 모양이 없으며 행도 없고 그침도 없으며,
한량이 없고 짬이 없으며,
양 쪽을 떠나서 중도(中道)에 머물며,
모든 글자와 말을 넘어설 줄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중생의 마음에 행하는 바와 근성과 욕망과 번뇌와 습기를 알아야 하나니,
중요한 것을 말한다면 한 생각에 삼세 모든 법을 알아야 합니다.
불자여,
비유컨대 큰 바다에서는 사천하에 있는 모든 중생의 몸과 형상을 두루 나타내므로
다 같이 바다라 말하듯이,
부처님의 보리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의 마음과 근성과 욕망을 두루 나타내면서도 나타내는 것이 없으므로
부처님들의 보리라 이름합니다.
불자여,
부처님의 보리는 모든 글자로도 표현할 수 없으며,
모든 음성으로도 미칠 수 없으며,
모든 말로도 말할 수 없건마는,
다만 마땅함을 따라서 방편으로 열어 보입니다.
불자여,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이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에
모든 중생의 분량과 같은 몸[量等身]을 얻으며,
모든 법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국토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삼세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부처님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말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진여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법계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허공계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걸림없는 경계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서원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모든 행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으며,
적멸한 열반계의 분량과 같은 몸을 얻나니,
불자여,
얻은 바 몸과 같이 말과 마음도 그와 같아서
이렇게 한량없고 수없는 청정한 세 바퀴[三輪]를 얻습니다.
불자여,
여래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에
그 몸에서 모든 중생이 바른 깨달음 이루는 것을 두루 보며,
내지 모든 중생이 열반에 드는 것을 두루 보는 데,
모두 같은 성품으로 이른바 성품이 없음이니’ 무슨 성품이 없는가.
이른바 모양의 성품이 있고,
다하는 성품이 없고,
나는 성품이 없고,
멸하는 성품이 없고,
나라는 성품이 없고,
나가 아닌 성품이 없고,
중생의 성품이 없고,
중생 아닌 성품이 없고,
보리의 성품이 없고,
법계의 성품이 없고,
허공의 성품이 없으며,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성품도 없나니,
모든 법이 다 성품이 없음을 아는 연고로
온갖 지혜를 얻고 크게 가엾이 여김이 서로 계속하여 중생을 제도합니다.
불자여,
비유하면 허공은 모든 세계가 이루어지거나 무너지거나 간에 늘고 줄음이 없나니,
왜냐 하면,
허공은 나는 일이 없는 연고입니다.
부처님의 보리도 그와 같아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하거나 간에
늘고 줄음이 없나니,
왜냐 하면 보리는 모양도 없고 모양 아님도 없으며 하나도 없고 여러 가지도 없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항하의 모래와 같은 마음을 변화하여 만들고,
낱낱 마음마다 항하의 모래 같은 부처를 변화하여 만들되,
다 빛도 없고 형상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이와 같이 항하의 모래 같은 겁이 다하도록 쉬는 일이 없다면,
불자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사람이 마음을 변화하여 만들고 부처를 변화하여 만든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래성기묘덕보살이 말하였다.
“내가 알기에는 당신이 말씀하신 뜻이 변화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삽거늘
어찌하여 ‘얼마나 되겠는가’ 물으십니까?”
보현보살이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불자여,
그대의 말과 같아서 가령 모든 중생이 잠깐 동안에 모두 바른 깨달음을 이루더라도
바른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것과 평등하고 다르지 않으리니,
왜냐 하면 보리는 모양이 없는 연고입니다.
만일 모양이 없으면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을 것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이렇게 정등각을 이루는 것이 보리와 같아서 한모양이며,
모양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래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에
한 모양 방편으로 잘 깨닫는 지혜의 삼매에 들고,
들어가서는 바른 깨달음을 이룬 한 광대한 몸에 온갖 중생 수와 같은 몸을 나타내어 몸 가운데 머물며,
바른 깨달음을 이룬 한 광대한 몸과 같이,
모든 바른 깨달음을 이룬 한 광대한 몸도 그와 같습니다.
불자여,
여래는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문이 있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지니 여래께서 나투는 몸은 한량이 없으며,
한량이 없음으로써 여래의 몸을 말하여 한량없는 경계[界]며 중생계와 같다고 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의 몸의 한 털구멍 속에 일체 중생 수효와 같은 부처의 몸이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여래의 바른 깨달음을 이룬 몸은 끝까지 나고 멸함이 없는 연고입니다.
한 털구멍이 법계에 두루하듯이 모든 털구멍도 그러하니,
마땅히 조그마한 허공에도 부처의 몸이 없는 데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은 이르지 않은 데가 없는 연고입니다.
그 능함을 따르고 그 세력을 따라서 도량의 보리수 아래 사자좌 위에서 갖가지 몸으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자기의 마음에 생각생각마다 항상 부처가 있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알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부처님 여래들이 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연고며,
자기의 마음과 같이 모든 중생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다 여래가 있어 바른 깨달음을 이룹니다.
넓고 크고 두루하여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여의지 아니하고 끊이지 아니하여 헤아릴 수 없는 방편 법문에 들어갑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여래가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깨달은 이 모든 법 분명히 아니
둘 없고 둘 여의어 모두 평등해
제 성품 청정하기 허공과 같아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별치 않네.
바다에 중생의 몸 나타나듯이
그러므로 큰 바다라 말을 하나니
보리에 마음과 행 모두 나타나
그리하여 이름을 바른 깨달음.
세계가 이뤄지고 무너지어도
허공은 더하거나 덜하지 않아
모든 부처 세간에 출현하시나
보리는 한모양이고 모양 없음이니
사람의 마음 화해 부처 지으나
화하고 화하잖고 성품 안 달라
모든 중생 보리를 이루거니와
이루고 안 이루고 증감이 없네.
부처의 삼매 이름 좋게 깨달음
보리 나무 아래서 이 선정 들고
한량없는 중생 수 광명을 놓아
여러 중생 깨우치기 연꽃이 피듯
삼세 여러 겁의 세계와 중생
그들의 생각이나 근성과 욕망
이렇게 많은 수효 몸을 나툴새
바르게 깨달음을 한량없다 해.
6) 법륜ㆍ열반ㆍ이익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법륜 굴리심을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여래는 마음의 자유자재한 힘으로써 일어남도 없고 굴림도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항상 일어남이 없음을 아는 연고입니다.
세 가지 굴림으로써 끊을 것을 끊고서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치우친 소견[邊見]을 여읨을 아는 연고입니다.
욕심의 짬[欲際]과 짬 아닌 것[非際]을 여의고서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의 공한 짬에 들어간 연고며,
말이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말할 수 없음을 아는 연고며,
끝까지 적멸하게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이 열반의 성품임을 아는 연고입니다.
온갖 글자와 온갖 말로써 법륜을 굴리나니
여래의 음성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 연고며,
소리가 메아리임을 알고 법륜을 굴리나니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을 아는 연고며,
한 음성 속에서 모든 음성을 내어서 법륜을 굴리나니 필경에 주재가 없는 연고며,
남김이 없고 다함이 없이 법륜을 굴리나니 안과 밖에 집착이 없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비유컨대 모든 글자와 말을 오는 겁이 끝나도록 말하여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법륜을 굴리심도 그와 같아서
모든 글자로 잘 정돈하여 나타내기를 쉬지 아니하여도 다할 수 없습니다.
불자여,
여래의 윤법이 모두 모든 말과 글자에 들어갔지마는 머무는 데가 없나니,
마치 글자가 모든 일ㆍ모든 말ㆍ모든 산수ㆍ모든 세간과 출세간으로 들어가지마는,
머무는 데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여래의 음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처소ㆍ모든 중생ㆍ모든 법ㆍ모든 업ㆍ모든 과보 가운데 두루 들어가지마는
머무는 데가 없습니다.
일체 중생의 갖가지 말이 다 여래의 법륜을 떠나지 않았으니,
왜냐 하면 말과 음성의 실상이 곧 법륜인 연고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여래의 법륜 굴리는 것을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또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여래가 굴리는 법륜을 알려거든,
마땅히 여래의 법륜이 생긴 곳을 알아야 하나니,
어떤 것이 여래의 법륜이 생긴 곳인가.
불자여,
여래는 모든 중생의 마음과 행과 욕망이 한량없이 차별함을 따라서
여러 가지 음성을 내어 법륜을 굴립니다.
불자여,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이 삼매가 있으니 이름이 끝까지 걸림없고 두려움 없음[究竟無礙無畏]이며,
이 삼매에 들고는 바른 깨달음을 이룬 낱낱 몸과 낱낱 입에서 각각 온갖 중생의 수효같은 음성을 내고,
낱낱 음성에 여러 음성이 구족하여 각각 차별한 것으로 법륜을 굴리어서 모든 중생들을 기쁘게 합니다.
이렇게 법륜을 굴리는 것을 알면 이 사람은 모든 부처님 법을 순종함이요,
이렇게 알지 않는 이는 순종하지 아니함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렇게 부처님의 법륜 굴리심을 알아야 하나니,
한량없는 중생 세계에 두루 들어가는 연고입니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여래의 법 바퀴는 굴림 없으며
삼세에 잃지 않고 얻음 없나니
글자들이 다하는 때 없음 같아서
열 가지 힘 법륜도 그와 같도다.
글자가 들어가도 간 데 없듯이
정각(正覺)의 법륜도 그와 같아서
모든 말에 들어가도 든 데 없으나
중생들로 하여금 기쁘게 하고
삼매 이름 ‘끝까지 걸림없다’고
이 선정에 들어서 법을 말하며
여러 가지 중생들 그지없거늘
그 음성 모두 내어 깨달아 알게.
낱낱 음성 가운데 각각 차별한
한량없는 말들을 다시 연설해
세상에 자재하여 분별 없으나
그들의 욕망 따라 듣게 하나니
글자는 안팎에서 나지 않으며
무너지고 쌓이지도 아니 하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법륜 굴리니
이렇게 자재함이 매우 기특해.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반열반하심을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여래의 큰 열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근본 성품을 알아야 하나니,
진여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실제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법계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허공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법의 성품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욕심의 짬을 여읜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모양 없는 짬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나의 성품의 짬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모든 법의 성품의 짬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고,
진여의 짬의 열반처럼 여래의 열반도 그러하니,
왜냐 하면 열반은 생겨나는 일도 없고 벗어나는 일도 없는 연고입니다.
만일 법이 생겨남도 없고 벗어남도 없으면 멸함이 없는 것입니다.
불자여,
여래는 보살을 위하여 여래의 필경 열반을 말하지 아니하며,
저들에게 그 일을 나타내지도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모든 여래가 그 앞에 항상 있음을 보게 하려 하며,
잠깐 동안에 지난 세상 오는 세상의 부처님들의 모습이 원만하여 모두 현재와 같음을 보게 하려는 때문이며,
둘이라 둘이 아니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은 모든 생각에 집착함을 아주 여읜 연고입니다.
불자여,
부처님 여래는 중생들로 하여금 즐김을 내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사모함을 내게 하려고 열반함을 보이지마는,
여래는 참으로 세상에 출현함도 없고 열반함도 없나니,
왜냐 하면 여래는 청정한 법계에 항상 계시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열반함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비유컨대 해가 떠서 세간에 두루 비치되
무릇 깨끗한 물이 있는 그릇에는 되비쳐 나타나서
여러 곳에 두루하지마는 오거나 가는 일이 없으며,
한 그릇이라도 깨지면 되비쳐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불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되비쳐 나타나지 않음이 해의 탓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릇이 깨진 탓이요,
해의 허물은 아닙니다.”
“불자여,
여래의 지혜 해도 그와 같아서 법계에 두루 나타나되,
먼저도 없고 나중도 없으며,
모든 중생의 깨끗한 마음에는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는 데가 없어서,
마음 그릇이 항상 깨끗하면 부처님 몸을 항상 보고,
마음이 흐리고 그릇이 깨지면 보지 못합니다.
불자여,
만일 열반함으로써 제도할 중생이 있으면 여래께서 곧 열반을 보이거니와,
실상으로는 여래는 나는 일도 없고 없어지는 일도 없고 열반하는 일도 없습니다.
불자여,
비유컨대 화대(火大)가 모든 세간에서 불붙는 일을 하다가,
혹 한 곳에서 불이 꺼진다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러 세간의 불이 모두 꺼지겠습니까?”
“아닙니다.”
“불자여,
여래ㆍ응공ㆍ정등각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계에서 불사를 지으시다가,
혹 세계에서 할 일을 마치면 열반에 드심을 보이거니와,
모든 세계의 여래들이 모두 열반함이 아닙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크게 반열반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또 불자여,
비유컨대 요술쟁이가 요술하는 방법을 잘 알고서
요술의 힘으로 삼천대천세계의 여러 국토와 도시와 마을에서 눈어리 몸[幻身]을 나타낼 적에
요술의 세력으로 여러 겁을 머물거니와,
다른 데서 요술하는 일이 마치면 몸을 숨기고 나타내지 않나니,
불자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 요술쟁이가 한 곳에서 몸을 감춘다고 여러 곳에서 모두 없어지겠습니까?”
“아닙니다.”
“불자여,
여래ㆍ응공ㆍ정등각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지혜 방편인 갖가지 요술로 모든 법계에 몸을 나타내어
항상 머물러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하다가도
한 곳에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하는 일이 끝나면 열반함을 보이거니와,
한 곳에서 열반한다고 해서 온갖 것이 모두 없어진다 하겠습니까.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크게 반열반함을 알아야 합니다.
또 불자여,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이 열반함을 보일 적에는 부동삼매(不動三昧)에 드나니,
이 삼매에 들고는 낱낱 몸에서 각각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큰 광명을 놓고
낱낱 광명마다 아승기 연화를 내고
낱낱 연화에 각각 말할 수 없는 묘한 보배 꽃술이 있으며,
낱낱 꽃술에 사지좌가 있고,
낱낱 사자좌 위에 여래께서 가부하고 앉으셨으니,
그 부처님 몸 수효가 일체 중생의 수효와 같으며,
모두 가장 묘한 공덕과 장엄을 갖추었으니,
본래의 원력으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어떤 중생이나 선근이 성숙한 이가 부처님 몸을 보고는 교화를 받거니와,
저 부처님 몸은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필경까지 편안히 머물면서 마땅한 대로 모든 중생을 교화하되 한 번도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불자여,
여래의 몸은 방소가 있는 것 아니어서 실제의 것도 아니고 허망한 것도 아니며,
다만 부처님들의 본래 서원한 힘으로써 중생이 제도를 받을 만하면 나타나는 것이니,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렇게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크게 반열반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불자여,
여래는 한량없고 걸림없는 끝까지인 법계와 허공계에 머무시나니,
진여법의 성품은 나는 일도 멸하는 일도 없으며 아울러 진실한 짬이거니와 중생들을 위하여 때를 따라 나타나고,
본래의 서원으로 쉬지 아니하며 모든 중생과 모든 세계와 모든 법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때 보현보살마하살이 이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해에서 광명 펴서 법계 비추되
그릇 깨져 물 새면 그림자 없듯
가장 좋은 지혜 해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믿음 없어 열반을 보고
화대가 세간에서 불이 타다가
도시나 시골에서 혹시 꺼지듯
부처님 몸 법계에 두루하시나
교화가 끝난 데선 열반을 보이고
요술쟁이 모든 곳에 몸을 나투다
할 일이 끝난 곳엔 없어지나니
여래 교화 끝난 곳도 그와 같지만
다른 데선 부처님 항상 뵙나니
부처님의 삼매는 이름이 부동
중생 교화 마치면 이 정에 들어
몸에서 한량없는 광명 놓으니
광명에는 연꽃 나고 연꽃엔 부처.
부처님 몸 수없어 법계 같거든
복 지은 중생들이 능히 보나니
이렇게 수효 없는 낱낱 몸에는
목숨이나 장엄을 모두 구족해
나는 성품 없듯이 부처 나시고
멸하는 성품 없는 부처님 열반
말이나 비유들이 모두 끊어지니
온갖 이치 이루어 짝할 이 없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을 보고 듣고 친근하여
심은 선근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여래의 계신 데서 보고 듣고 친근하여 심은 선근이
모두 헛되지 않은 줄을 알아야 하나니,
다하지 않는 깨달음의 지혜를 내는 연고며,
모든 장난(障難)을 여의는 연고며,
결정코 끝닿은 데까지 이르는 연고며,
허탄함이 없는 연고며,
모든 소원이 만족하는 연고며,
함이 있는 행을 다하지 않는 연고며,
함이 없는 지혜를 따르는 연고며,
여러 부처의 지혜를 내는 연고며,
오는 세월의 짬까지 다하는 연고며,
온갖 가지 훌륭한 행을 이루는 연고며,
하염없는 지혜의 지위[無功用智地]에 이르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비유하면 장부가 금강을 조금만 삼켜도
마침내 소화되지 않고 몸을 뚫고서 밖에 나오는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금강은 육신에 섞여서 함께 있지 않는 연고입니다.
여래에게 조그만 선근을 심은 것도 그와 같아서,
모든 함이 있는 여러 행과 번뇌의 몸을 뚫고 지나가서 함이 없이 가장 높은 지혜에 이르나니,
왜냐 햐면 이 작은 선근은 함이 있는 행과 번뇌와
더불어 함께 머물지 않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가령 마른 풀을 수미산처럼 쌓았더라도
그 가운데 겨자씨만한 불을 던지면 죄다 타고 마는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불은 능히 태우는 연고입니다.
여래에게 조그만 선근을 심은 것도 그와 같아서
반드시 모든 번뇌를 태워 버리고 필경에 남음이 없는 열반을 얻나니,
왜냐 하면 이 작은 선근의 성품이 끝까지 가는 연고입니다.
불자여,
설산에 선견(善見)이란 약 나무가 있어서
보는 이는 눈이 깨끗하고 듣는 이는 귀가 깨끗하고 맛보는 이는 혀가 깨끗하고 닿는 이는 몸이 깨끗하며,
어떤 중생이 그 흙을 가져오면 병을 없애는 이익을 짓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불자여,
여래ㆍ응공ㆍ정등각의 위없는 약왕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하나니,
여래의 육신을 보는 이는 눈이 깨끗하고,
여래의 이름을 듣은 이는 귀가 깨끗하고,
여래의 계행 향기를 맡는 이는 코가 깨끗하고,
여래의 법을 맛본 이는 혀가 깨끗하여 넓고 긴 혀를 갖추어 말하는 법을 알고,
여래의 광명에 닿은 이는 몸이 깨끗하여 필경에 위없는 법신을 얻고,
여래를 생각하는 이는 염불하는 삼매가 청정하여집니다.
만일 중생이 여래께서 지나가신 땅이나 탑에 공양하면 역시 선근을 갖추어서 모든 번뇌와 근심을 제멸하고 성현의 즐거움을 얻습니다.
불자여,
내가 지금 그대에게 말하노니,
어떤 중생이 부처님을 보거나 들으면서도 업에 덮이어서 믿고 좋아함을 내지 못하더라도,
역시 선근을 심게 되어 헛되지 않을 것이며,
내지 필경에는 열반에 들게 되나니,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이와 같이 여래의 계신 데서 보고 듣고 친근하면 그 선근으로 모든 나쁜 법을 여의고 착한 법을 구족할 것입니다.
불자여,
여래께서 모든 비유로 여러 가지 일을 말하더라도 이 법을 말할 비유는 없는 것이니,
왜냐 하면 마음과 지혜의 길이 끊어져서 생각하거나
말할 수가 없는 연고입니다.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중생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비유를 말함이언정 최고의 법은 아닙니다.
불자여,
이 법문의 이름은 여래의 비밀한 곳[如來秘密之處]이며,
또 모든 세간이 알지 못하는 것[一切世間所不能知]이며,
또 여래의 법인에 들어감[入如來印]이며,
또 큰 지혜의 문을 열음[開大智門]이며,
또 여래의 종자 성품을 나타냄[示現如來種性]이며
또 모든 보살을 성취함[成就一切菩薩]이며
또 모든 세간이 깨뜨리지 못함[一切世間所不能壞]이며
또 한결같이 여래의 경계를 따름[一向隨順如來境界]이며
또 모든 중생의 세계를 깨끗이 함[能淨一切諸衆生界]이며
또 여래의 근본 성품으로 헤아릴 수 없는 끝까지 이르는 법[演說如來根本實性不思議究境法]이라 합니다.
불자여,
이 법문은 여래께서 다른 중생에게는 말하지 않고,
오직 대승에 나아가는 보살에게 말하며 부사의한 수레를 타는 보살에게 말하는 것이므로,
이 법문은 모든 중생의 손에는 들어가지 않거니와 보살마하살만은 제할 것입니라.
불자여,
마치 전륜왕에게 있는 일곱 가지 보배와 같아 이 보배로 말미암아 전륜왕임을 보이나니,
이 보배는 다른 중생의 손에는 들어가지 않거니와,
오직 첫째 부인이 낳은 태자로서 전륜왕의 모습을 갖춘 이는 제할 것입니다.
만일 전륜왕의 이런 태자로서 여러 덕을 갖춘 이가 없으면,
이 일곱 보배는 전륜왕이 죽은 뒤 이렛 동안에 모두 없어집니다.
불자여,
이 보배 경전도 그와 같아서 다른 중생의 손에는 들어가지 않거니와,
오직 여래의 참 아들로 여래의 가문에 나서 여래의 모습과 선근을 심은 이는 제할 것입니다.
불자여,
만일 이와 같은 부처님의 참 아들이 없으면 이런 법문이 오래지 않아 없어지나니,
왜냐 하면 온갖 이승(二乘)은 이 경을 듣지도 못하거든 하물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고 쓰고 분별하여 해석함이겠습니까,
오직 보살만이 이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이 법문을 듣고는 크게 기뻐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받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이 경을 믿고 좋아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빨리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보살들이 설사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겁에 여섯 바라밀을 행하고 여러 가지 보리분법을 닦더라도,
만일 이 여래의 부사의하고 큰 위덕 있는 법문을 듣지 못하였거나,
듣고도 믿지 않고 알지 못하고 따르지 않고 들어가지 못한다면,
참된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여래의 가문에 나지 못하는 연고입니다.
이 여래의 한량없고 부사의하고 막히지 않고 걸림이 없는 지혜의 법문을 들었으며,
듣고는 믿고 이해하고 따르고 깨달아 들어간다면,
이 사람은 여래의 가문에 나서 여래의 경계를 따르고 온갖 보살의 법을 구족하고
갖가지 지혜[一切種智]의 경계에 머물고 모든 세간의 법을 여의고 모든 여래의 행하시던 일을 내며,
모든 보살법의 성품을 통달하여 부처님의 자유자재에 대하여
마음에 의혹이 없고 스승이 없는 법에 머물러 여래의 걸림없는 경계에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법을 들으면 능히 평등한 지혜로 한량없는 법을 알고,
정직한 마음으로 모든 분별을 떠나고,
훌륭한 욕망으로 부처님을 뵈옵고,
생각을 내는 힘[作意力]으로 평등한 허공계에 들어가고,
자유자재한 생각으로 그지없는 법계에 행하고,
지혜의 힘으로 모든 공덕을 구족하고,
자연한 지혜로 모든 세간의 때를 여의고,
보리심으로 모든 시방의 그물에 들어가고,
크게 관찰함으로 삼세 부처님들의 동일한 성품을 알고,
선근을 회향하는 지혜로 이런 법에 널리 들어가되
들어가지 아니하면서 들어가며 한 법에도 반연하지 아니하고
항상 한 법으로써 모든 법을 관찰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런 공덕을 이루고는 조그만 공을 들여도 스승 없이 자연한 지혜를 얻습니다.”
그때 보현보살이 이치를 거듭 펴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부처님을 보고 듣고 공양하오면
그 공덕을 헤아릴 수가 없나니
함이 있는 가운데서 다하지 않아
모든 번뇌 멸하고 괴로움 여의리.
어떤 사람 금강을 조금 먹어도
언제나 녹지 않고 나올 것이니
부처님께 공양한 여러 공덕도
의혹 끊고 금강 지혜 이르느니라.
마른 풀이 수미산 같다 하여도
겨자씨 같은 불로 다 태우나니
부처님께 공양한 작은 공덕이
번뇌를 모두 끊고 열반 얻으리.
설산에 선견이란 약이 있어서
보고 듣고 맡는 이 병이 소멸돼
열 가지 힘 부처를 뵙고 들으면
좋은 공덕 얻어서 부처 이루리.
이때 부처님의 신통한 힘과 으레 그러한 법으로,
시방에 각각 열 갑절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니,
이른바 동에서 솟고 서에서 빠지며 서에서 솟고 동에서 빠지며,
남에서 솟고 북에서 빠지며 북에서 솟고 남에서 빠지며,
변두리에서 솟고 복판에서 빠지며 복판에서 솟고 변두리에서 빠지는 것이었다.
또 열 여덟 가지 모양으로 흔들리니,
이른바
흔들흔들ㆍ두루 흔들흔들ㆍ온통 두루 흔들흔들ㆍ
들썩들썩ㆍ두루 들썩들썩ㆍ온통 두루 들썩들썩ㆍ
울쑥불쑥ㆍ두루 울쑥불쑥ㆍ온통 두루 울쑥불쑥ㆍ
우르르ㆍ두루 우르르ㆍ온통 두루 우르르ㆍ
와르릉ㆍ두루 와르릉ㆍ온통 두루 와르릉ㆍ와
지끈ㆍ두루 와지끈ㆍ온통 두루 와지끈하는 것이다.
하늘의 것보다도 더 좋은
모든 꽃 구름ㆍ모든 일산 구름ㆍ당기 구름ㆍ번기 구름ㆍ향 구름ㆍ화만 구름ㆍ바르는 향 구름ㆍ
장엄거리 구름ㆍ큰 광명 마니보배 구름ㆍ모든 보살 찬탄하는 구름ㆍ
말할 수 없는 보살들의 차별한 몸 구름을 비내리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구름과 깨끗하고 부사의한 세계구름을 비내리며,
여래의 말씀 소리 구름을 비내려서 그지없는 법계에 가득하였다.
이 사천하에서 여래의 신통한 힘으로 이렇게 나타내어 보살들을 모두 기쁘게 하듯이,
시방에 가득한 모든 세계에서도 역시 이와 같았다.
이때 시방으로 각각 팔십 갑절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세계의 티끌 수 세계 밖에
각각 팔십 갑절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세계의 티끌 수 여래가 있으니
이름은 다 같은 보현(普賢)이라,
앞에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하다, 불자여,
능히 부처님의 위신의 힘을 받잡고
법의 성품을 따라서
여래가 출현하는 부사의한 법을 연설하는구나.
불자여,
시방의 팔십 갑절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세계의 티끌 수 이름 같은 우리 부처들도 다 이 법을 말하며,
우리가 말하는 것 같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들도 그렇게 말씀하느니라.
불자여,
이 회중에 있는 십만 부처 세계의 티끌 수 보살마하살이 모든
보살의 신통과 삼매를 얻었으니,
우리들이 모두 수기를 주어 한 생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하며,
부처 세계의 티끌 수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낸 이들도
우리들이 수기를 주어 오는 세상에 말할 수 없는 세계의 티끌 수 겁을 지내서
모두 부처를 이루어 불수승경계(佛殊勝境界)라 이름하리라 하며,
우리는 또 미래의 여러 보살이 이 법을 듣게 하려고 함께 보호하노라.
이 사천하에서 제도하는 중생과 같이
시방의 백천억 나유타 한량없고 수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법계와 허공계의 모든 세계에서
제도하는 중생도 이와 같으니라.
그때에 시방 부처님들의 위신의 힘과 비로자나불의 본래 서원한 힘과 으레 그러한 연고와 선근의 힘과 여래가 지혜를 일으키어 생각을 뛰어 넘지 않는 연고와 여래가 인연을 따라 때를 놓치지 않음과 때를 따라 보살들을 깨우침과 과거에 지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음과 보현의 광대한 행을 얻게 하려는 연고와 온갖 지혜의 자유자재함을 나타내려는 연고로,
시방으로 각각 열 갑절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세계의 티끌 수 세계 밖에 있는 열 갑절 말할 수 없는 백천억 나유타 세계의 티끌 수 보살들이 여기 와서 시방의 모든 법계에 가득하였으며,
보살들의 광대한 장엄을 나타내고 큰 광명 그물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세계를 진동하고 온갖 마군의 궁전을 깨뜨리며,
모든 나쁜 갈래의 고통을 소멸하고 모든 여래의 위덕을 나타내며,
여래의 한량없이 차별한 공덕의 법을 찬탄하고 모든 가지가지 비를 널리 내리며 한량없이 차별한 몸을 보이고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받았느니라.”
부처의 신통한 힘으로 각각 이렇게 말하였다.
“장하다, 불자여,
여래의 깨뜨릴 수 없는 법을 능히 말하는구나.
불자여,
우리들의 이름은 다 같은 보현이라.
각각 보광명(普光明) 세계의 보당자재(普幢自在)여래 계신 데로부터 왔으니,
저 모든 곳에서도 이 법을 말하며,
이런 글귀와 이런 이치와 이렇게 말함과 이렇게 결정함이 모두 여기 같아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느니라.
우리들은 부처님의 신통한 힘을 받잡고 여래의 법을 얻었으므로 여기 와서 그대들을 위하여 증명하나니,
우리가 여기 온 것처럼 시방의 허공과 법계에 가득한 모든 세계의 사천하에도 이와 같으니라.”
그때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신통한 힘을 받자와 모든 보살 대중을 관찰하고,
여래의 출현하시는 광대한 위덕과,
여래의 바른 법을 무너뜨릴 수 없음과 한량없는 선근이 모두 공하지 않음과,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시면 온갖 훌륭한 법을 갖춤과 중생들의 마음을 잘 살핌과 마땅한 대로 법을 말하되 때를 놓치지 않음과,
보살들의 한량없는 법의 광명을 내는 일과,
모든 부처님의 자재한 큰 행으로부터 생기는 것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말하였다.
한량없는 여래의 지으시는 일
세간의 비유로는 말 못하지만
중생들을 깨우쳐 알게 하려고
비유 아닌 비유로 보이시나니
이렇게 비밀하고 깊고 깊은 법
백천만겁 지나도 못 듣지마는
정진과 지혜로써 조복한 이야
이렇게 깊은 이치 얻어 들으리.
누구나 이 법 듣고 기뻐하는 인
한량없는 부처님을 공양하옵고
부처님의 가지(加持)로 거둬 주신 이
천상 인간 찬탄하고 공양하리라.
이는 세상 뛰어난 제일 보배며
이는 여러 중생들 구제할 이며
이가 능히 청정한 도를 내리니
그대들이 지니고 방일치 말라.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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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jou - La Fille Du Pere Noel ○ 2019_1106_114442_can_ar20_s12.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blo-picasso-a-hat-with-flowers-1940 [#M_▶더보기|◀접기| Artist: pablo-picasso https://en.wikipedia.org/wiki/Pablo_Picasso Title : a-hat-with-flowers-1940 Info Permission & Licensing : Wikiart ● [pt op tr] fr _M#] ○ 2018_0419_085332_nik.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gasthiyamalai_range_and_Tirunelveli_rainshadow [#M_▶더보기|◀접기|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gasthiyamalai_range_and_Tirunelveli_rainshadow.jpg English: The Agasthiyamalai range of the western ghats Author w:user:PlaneMad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_M#]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Bijou - La Fille Du Pere Noel.lrc ♥잡담♥아상이 없어도 겪는 통증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을 가지면 수행자가 아니다. 이런 내용이 금강경에 제시된다. 망집을 가진 이를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자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상을 취하지 않고 생사현실에 임해도 통증이 느껴진다. 심지어 눈을 뜨면 보인다. 그리고 걸어가면 움직인다. 평소 아상으로 대하던 그 부분이 그렇게 움직인다. 본래 아상을 취하지 않는 문제는 일반적으로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상황을 놓고 제시한 내용이다. 그래서 위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게끔 되어 있다. 그것이 일반적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이 상황에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 상황에서 자신으로 여긴 부분에서 피가 흐르거나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고 하자. 그리고 이제 곧 죽어 자신이 몸이 허물어질 것이 예상된다고 하자. 이것이 일반적으로 자신이 여기는 고통과 생사과정이다. 그것은 이를 치료하는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환자로 여기고 대하는 내용은 일종의 타상이다. 그런 부분이 곧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또 그 부분을 대해 수술하거나 치료하면 또 그 부분이 나을 수도 있다. 생사현실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경전에서 잘못된 망집이라고 제시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그래서 일단 이해가 쉽지 않다. 그리고 설령 그 내용을 이해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위와 같이 감각하고 느끼고 분별을 일으키는 상태에서 그런 아상을 취하지 않고 임하기가 쉽지 않다. 또 설령 아상을 취하지 않더라도 생사현실에서 감각하고 느끼는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분별을 통해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도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가리왕이 사지를 절단하는 고문을 가할 때 상을 갖지 않는다고 하여 고통을 극복해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생사현실에서 이런 상황에서 일정부분에 대해 상만 갖지 않으면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라면 차라리 정려 수행을 통해 사마타 수행을 하는 것이 낫다. 이는 수술실에서 수술을 할 때 마취제를 투여하고 수술하는 상황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참고 견뎌야할 고통 자체가 그 주체에게 느껴지지 않는 상태다. 사마타 수행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러나 안인을 성취하고 무생법인을 증득하는 수행은 이와 성격이 다르다. 고통을 주는 감각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발 통증이 심하다. 신견의 제거, 이런 문제를 적고 나서 곧바로 발에 통증을 느끼게 되니 조금 묘하다. 이런 상황에서 감각도 느껴지고 운동도 되는 이들 내용을 왜 자신이 아니라고 하는가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반응하면 생사에 묶이는 방향이고 그렇지 않으면 생사에서 풀려나는 방향이다. 무상해탈문 쪽으로 일단 걸어 나와야 한다. 그리고 다시 중생제도를 향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눈을 뜨고 본 내용도 매 순간 다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갓난아이부터 청소년 장년 노년 시기마다 다르다. 한 정지단면에서 파악한 부분을 자신이라고 한다면 다른 부분은 자신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일정하지 않다. => 그렇지 않다. 자신이 자동차를 운전할 때 자동차나 자동차 안 승객이 다 함께 자신 뜻대로 움직이는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자신이 아닌 것과도 사정이 같다. 그리고 생노병사 현상 자체가 자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또 그 부분을 사과 나 다른 사물에 대면 그 순간 촉감을 느낀다. 그래서 마치 그 부분에 자신의 주관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 =>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은 그런 주관이 위치하는 부분도 아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마음안에 그렇게 얻어지는 내용들일 뿐이다. 이런 부분이 객관적 실재로 실답다고 여겨진다. => 이런 부분은 감각한 내용으로 마음안 내용이다. 한편 마음 밖 실재 영역에 그에 상응하고 일치하는 내용도 얻어지지 않는다. 한편, 실재는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재는 한 주체가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 그것은 2 분법상의 분별을 떠난다. 그래서 공하다고 표현한다. 마음에서 얻어진 내용은 이런 실재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이런 사정은 현실에서 다른 마음 영역에서 얻는 내용들과 대조해도 사정이 같다. 소리나 촉감 등은 눈으로 보는 색깔과 대단히 엉뚱하다. 색,성,향,미,촉 그리고 분별 내용들의 사정이 다 같다. 즉, 평소 자신으로 여기도 대한 내용은 다 함께 다른 영역에서 얻어지지 않는 내용들이다. 단지 그런 조건에서 그렇게 임시적으로 얻어지는 내용일 뿐이다. 이들 간의 관계도 역시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 실답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그러나 일정 부분은 부분적으로 이런 특성을 갖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관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마치 사람이 걸친 '옷'과 성격이 비슷하다. 자신이 걸친 옷도 걸친 동안은 위 특성들을 갖는다. 사정이 그렇다고 옷에 너무 집착하면 그로 인해 문제상황에 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옷이 기계에 빨려 들어간다고 하자. 이 경우 옷에 집착하면 자신까지 같이 빨려들어 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그런 특성을 얻게 한 배경사정은 잠재된 영역에 그 원인이 있다. 매생 생을 출발하는 단계에서 형성된 망집이 배경원인이다. [3 능변] 이 사정을 벽돌을 비유로 설명을 해보기로 한다. 벽돌을 제 7 식에서 자신으로 처음 대한다고 하자. [아견, 아애, 아취, 아집,] 그러면 이 부분을 붙잡고 다른 정신과 기관을 분화시킨다. [ 무명- 행- 식 - 명색 - 6 입 ..] 그리고 이후 생을 출발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 후발적으로 그런 벽돌 부분이 위와 같은 특성을 갖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현실에서 의식표면에서 행하는 분별은 후발적이다. [구생기(태생적)신견 =>분별기 신견] 따라서 그런 바탕에서는 현실에서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 것처럼 여겨진다. 또 현실에서 그런 분별을 제거한다고 위 상태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이들 상태는 생을 출발할 때 가진 신견에 의해 구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식을 상실해 감각과 분별을 못하는 상황에서도 유지된다. 그리고 한 생이 다 마쳐지고 해체되기 전까지는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그래서 후발적으로 분별기 신견만 제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일정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지 않아도 여전히 위 특성들이 파악된다. 예를 들어 너무 바빠서 자신의 얼굴이나 손과 발을 의식하지 않고 바삐 모임에 나갔다고 해보자. 그렇게 의식하지 않았다고 해서 얼굴을 떼 놓고 모임에 가게 되지는 않는다. 오늘 모임에 올 때 얼굴을 신경쓰지 않아서 얼굴은 놓고 왔다. 미안하다. 현실에 이런 경우가 없다 . 그리고 계속 감각도 느끼고 통증도 느끼고 활동도 그에 바탕해서 행하게끔 된다. 사정은 그렇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은 설령 망집을 제거하나 하지 않으나 별 차이가 없는 것 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 부분이 중요하다. 사정이 그렇다해도 후발적으로 갖는 신견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음 사정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집착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망집을 바탕으로 이후 업을 행해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근본 정신에 축적이 된다. 그리고 이 내용들이 이후 생을 형성하는 씨앗 기능을 하게끔 된다. 그래서 다음 생에도 다시 벽돌을 붙잡고 생을 출발할 것인지. 아니면 메뚜기 몸을 붙잡고 그렇게 할 것인지 등등이 이들 내용에 바탕해 정해진다. 한국어를 익혔다. => 외국노래를 듣는다. => 한국어로 들린다. 외국어를 익혔다. => 외국 노래를 듣는다. => 외국어로 들린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다. 이와 같이 사후 중음신이 된 상황에서 어떤 상태에 의탁하게 되는가는 현실에서 행한 분별과 업이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번 생 안에서 어떤 분별을 바탕으로 어떤 업을 행하는가가 중요하다. 신견을 바탕으로 행한 업의 성격은 다음 생에서 어떤 형태로 살아가게 되는가와 관련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책벌레 같다. 돈벌레 같다, 바퀴벌레 같다. 일벌레같다. 또는 아귀같다. 또는 화내는 모습이 아수라같다. 지옥중생같다. 소같다. 또는 천사같다. 등등의 평가를 듣는다면 다음 생에 정말 그런 형태가 되기 쉽다. 처음 10 선업 등을 제시하는 것은 이런 나쁜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신견의 완전한 제거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그런 신견을 전제로 해서 3 악도에 처해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비교적 상태가 좋은 인간세계나 하늘세계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 그 목표다. 이 경우 어떤 사정으로 사후 그런 세계에서 생활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또 반대로 이번 생에 현재 상태에 처하게 된 배경사정은 무엇인가부터 잘 살펴야 한다. 현실에서도 거리를 거닐면서 한 사람이 어떤 가게에 들어간다고 하자. 그리고 수많은 가게가 있는데 왜 하필 그 가게에 들어갔는가 그 배경사정을 찾아본다고 하자. 그것은 그 이전에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한 업들과 관련이 된다. 그래서 어떤 이가 하필이면 그 가게에 들어가는가 하는 맥락과 사정이 설명된다. 예를 들어 그 이전 상태에서 배가 고프면 식당을 찾아 들어가는 것과 사정이 같다. 중음신이 다음 생을 의탁하는 과정에도 이처럼 이번 생에 일으킨 망집과 업이 작용한다. 따라서 그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업을 정화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한편 완전히 생사과정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망집을 제거하고 수행을 통해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해소시켜야 한다. 그래야 생사에 묶이지 않게 된다. 한편, 평소 망집을 제거해야 하는 또 다른 사정도 있다.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하려는 입장이 있다. 이런 경우는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제도에 필요한 복덕자량을 축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계의 덕목의 성취가 생사현실에서 요구된다. 그래서 수행과정에서 계에 해당하는 덕목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그 과정에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수행이 원만하게 성취되기 때문이다. 기존에 일으킨 망집처럼 아집을 갖고 무언가 얻을 바가 있다고 행하면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그 업의 성격이 장삿꾼의 장사행위와 같아진다. 예를 들어 하늘에 가서 편안하게 살려면 지금 적은 희생과 비용을 치룬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장삿꾼이 미리 대금을 싸게 지불하고 물건을 구하는 성격이 된다. 그래서 그 행위의 성격자체가 바뀌게 된다. 그래서 주의해야 한다.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자신이라고 망집을 일으켜 대하면 곤란하다. 그런 상태에서는 평소 그에 바탕한 반응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축적되면 결국 3 악도에 묶이게 된다. 일반적인 경우 대부분 성인군자처럼 임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해가 걸리는 상황에서는 그 형태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일들에는 대범하게 임한다. 그러나 누가 자신의 지갑 하나를 가지고 가면 불처럼 화를 내고 분노를 일으킨다. 그리고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게 된다. 특히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에서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 평안히 참는 수행이 잘 성취되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하게끔 되는 반응을 그대로 행하면 업의 장애가 증폭된다.
그리고 결국 3 악도에 묶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의해야 한다. ◧◧◧ para-end-retur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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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자(觀行者)의 통칭. 관행인 선정(禪定)과 상응하는 사람. 이것은 현교(顯敎)와 밀교(密敎)에 통하나 주로 밀교의 관행자를 말함.
답 후보
● 유가사(瑜伽師)
유루(有漏)
유루인(有漏因)
유리태자(瑠璃太子)
유미(乳味)
유부비나야(有部毘奈耶)
유순인(柔順忍)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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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bud] Gaya
[san-chn] vyākṣepa-saṃsarga 諠雜
[san-eng] avyaktā $ 범어 toward the unmanifested
[pali-chn] kāyasakkī 身證
[pal-eng] pa.tikankhita $ 팔리어 pp. of pa.tikankhatiwished or longed for.
[Eng-Ch-Eng] 五蓋 Also written 五蓋. "The Five Coverings (of Wisdom)." Five kinds of affliction which block off the true mind: desire 貪欲, anger 嗔恚, dullness 沈, agitation 掉悔, and doubt 疑.
[Muller-jpn-Eng] 三十三尊觀音 サンジュウサンソンカンノン (term) thirty-three representations of Avalokiteśv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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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 Middle Way School.
[fra-eng] vallée $ 불어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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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주 13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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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가 그때 처음에는
초지(初地: 보살 수행단계의 십지 중 첫 단계)에 머물러 있다가
한 번 이 주문을 듣고는 제 8 지(八地)에 뛰어 올랐습니다.
● 혜리마발다사미 醯唎摩皤哆沙咩<十三 >he ri ma va dha ṣa me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61
바리 마뉴- 날- 사 냐-
必哩<二合>麽抳喩捺哩舍<二合>你野<六十一>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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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일째]
청정실상불가설 $ 040■ ■清 於於不念於 一以此於虛
040▲ 伺察伺察為 一 ● 周廣, ○□□□□,說,於,演,於
□□□□□□□, 說修多羅不可說,
於彼一一修多羅, 演說法門不可說;
□□□□□□□, 설수다라불가설,
어피일일수다라, 연설법문불가설;
청정하온 실상을 말할 수 없고
말씀하신 수다라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수다라에
연설하신 법문도 말할 수 없어
[170째]
어피일일법문중 $ 041▲周廣周廣為 一 ● 高出, ○□□□□,又,於,所,於
□□□□□□□, 又說諸法不可說;
於彼一一諸法中, 所有決定不可說;
□□□□□□□, 우설제법불가설;
어피일일제법중, 소유결정불가설;
저러한 하나하나 법문 가운데
또 말씀한 모든 법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모든 법 중에
갖고 있는 결정한 뜻 말할 수 없어
●K0150_T0462.txt★ ∴≪A대방광보협경≫_≪K0150≫_≪T0462≫
●K0079_T0278.txt★ ∴≪A대방광불화엄경≫_≪K0079≫_≪T0278≫
●K0080_T0279.txt★ ∴≪A대방광불화엄경≫_≪K0080≫_≪T0279≫
●K1262_T0293.txt★ ∴≪A대방광불화엄경≫_≪K1262≫_≪T0293≫
법수_암기방안
40 중앙 발가락 [신조어 ] center part (middle) toe
41 발뒤꿈치 (발굽) the heel
13 노뼈 [radius]
61 액와(腋窩) ~ 겨드랑이
● [pt op tr] fr
_M#]
○ [pt op tr]
● 대방광불화엄경_K0080_T0279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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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0080-052♧
[관련키워드]
제5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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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6-17_대방광불화엄경-K008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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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대방광불화엄경_K0080_T0279.txt ☞제52권
sfd8--불교단상_2564_06.txt ☞◆vwax2420
불기2564-06-17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4-06-17-k0080-052.html
htmback--불기2564-06-17_대방광불화엄경_K0080_T0279-ti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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