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K0648
T0026
제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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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 ♣0648-046♧
제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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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中阿含經卷第四十六
K0648
▸ 중아함경 제46권
승가제바 한역
14. 심품 제3②
176)행선경(行禪經) 제5 제4 분별송◂
승가제바 한역
14. 심품 제3②
176)행선경(行禪經) 제5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선(禪)을 닦는 사람에는 진실로 네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衰退)했다고 생각하고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며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알고
또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안다.”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 선을 닦는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正思]을 닦아 익히면
곧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息]이요 고요함[寂]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초선을 잃어버리고 선정을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定)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 또 선을 닦는 사람은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2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 선을 닦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몸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생각[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평정하여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몸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생각[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3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 선을 닦는 사람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생각[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생각[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4선에서 무량공처(無量空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4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禪)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 선을 닦는 사람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무량공(無量空)이 되고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무량공(無量空)이 되고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無量識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공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無量識)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곧 무량식(無量識)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無所有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식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 선을 닦는 사람은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無所有)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無所有)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소유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소유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갔으며
▸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小想]들을 사유하며
제2선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想]을 사유하여 초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2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想]을 사유하여 초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2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하고 전일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생각하며 제3선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2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3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2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3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
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4선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3 선에서 제4 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3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4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제3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4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함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공처(無量空處)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4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공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4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공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서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無量空)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식처(無量識處)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량공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식처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량공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식처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처가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을 생각하며 무소유처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無所有處)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량식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소유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량식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소유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소유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비유상비무상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소유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비유상비무상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소유처를 지나
곧 비유상비무상이 되고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소유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비유상비무상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定]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일체 무소유처를 지나
곧 비유상비무상이 되고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소유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비유상비무상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定]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無量識處)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소유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량공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공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색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공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기쁨과 걱정은 벌써 이미 멸하였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제3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4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몸의 즐거움을 느낀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거룩한 평정ㆍ
기억ㆍ즐거움에 머묾과 공이 있는 제3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3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초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2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과 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욕심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초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과 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욕심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초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과 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곧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세상에서 선을 닦는 사람에는 진실로 네 종류가 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행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577자이다.
▸ 177) 설경(說經) ◂
제6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것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내나니
그 이름을 사종설경(四種說經)이라고 한다.
이 사종설경의 뜻을 분별해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이제 설명해 주겠노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사종설경의 뜻을 분별하는 것인가?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하며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욕계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하며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욕계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초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초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초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초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2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초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초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초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2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2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2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2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고,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3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3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2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3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3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3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3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定]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이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4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4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3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
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3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4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4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4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제4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
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
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공처(無量空處)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
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4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想]조차 기억[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색(色)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량공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량공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량공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무량공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성취하여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량식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공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공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량식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량식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량식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식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하여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소유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소유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식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소유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소유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소유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무소유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비유상비무상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싫어함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소유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 생각[想]이 있고 앎[知]이 있어
이와 같이 알게 되면
나아가 제일인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까지도 알게 될 것이니라.”◂
이와 같이 알게 되면
나아가 제일인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까지도 알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설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820자이다.
『중아함경』 제46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6,397자이다.1)
1)
1)제46권에 수록된 소경 두 개의 숫자를 합하면 5, 397자인데
여기에서는 6, 397자로 되어 있어 1, 000자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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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지극히 오랜 시간을 표현하는 말. 『법화경』에 의하면 2종의 진점겁이 있다.
(1) 3천 진점겁.
삼천 대천 세계를 모두 갈아서 먹물을 만들고,
일천 국토를 지나갈 때마다 티끌만큼의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려서
그 먹물이 다 없어졌을 때에,
그 지나온 국토를 모두 모아 부수어 티끌을 만들고,
그 티끌 하나를 1겁으로 세어 그 수효를 모두 계산하는 수.
(2) 5백 진점겁.
5백 천만억 나유타 아승기(百千萬億那由他阿僧祇) 삼천 대천 세계를 부수어 티끌을 만들고,
5백 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국토를 지나갈 때마다 티끌 하나씩을 떨어 뜨리곤 하여
티끌이 다 없어졌을 때에
지나온 국토를 모두 모아 부수어 티끌을 만들고
티끌 하나를 1겁으로 세어, 그 수효를 모두 계산하는 것.
답 후보
● 진점겁(塵點劫)
차안(此岸)
찰제리(刹帝利)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천자(天子)
천태사교(天台四敎)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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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i-chn] dhamma-vicaya 擇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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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Ch-Eng] three undefiled faculties 三無漏根
[Muller-jpn-Eng] 耽源 トンゲン Danyuan
[Glossary_of_Buddhism-Eng] KANISKHA☞
See: Kanisha (100 A.D.).
[fra-eng] lamentent $ 불어 l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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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체 나쁜 업과 큰 죄를 멸해주기 위함이며,
● 마하사다바야 摩訶薩跢婆耶<五> ma hā sa t vā y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53
니라감 다라보로 오도아나 사
你囉鑑<二合>哆囉部嚕<二合>塢睹誐曩<引>舍<五十三>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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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일째]
어피일일법륜중 $ 032▲毘佉擔毘佉擔為 一 ● 稱量, ○□□□□,演,於,分,於
□□□□□□□, 演修多羅不可說;
於彼一一修多羅, 分別法門不可說;
□□□□□□□, 연수다라불가설;
어피일일수다라, 분별법문불가설;
저러한 하나하나 법 바퀴마다
수다라 연설함도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수다라에
분별하는 법문도 말할 수 없고
[162째]
어피일일법문중 $ 033▲稱量稱量為 一 ● 一持, ○□□□□,又,於,調,或
□□□□□□□, 又說諸法不可說;
於彼一一諸法中, 調伏眾生不可說。
□□□□□□□, 우설제법불가설;
어피일일제법중, 조복중생불가설。
저러한 하나하나 법문 가운데
모든 법문 또 설함도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모든 법 중에
중생을 조복함도 말할 수 없어
●K0950_T1541.txt★ ∴≪A중사분아비담심론≫_≪K0950≫_≪T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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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천 진점겁.
삼천 대천 세계를 모두 갈아서 먹물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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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나온 국토를 모두 모아 부수어 티끌을 만들고,
그 티끌 하나를 1겁으로 세어 그 수효를 모두 계산하는 수.
(2) 5백 진점겁.
5백 천만억 나유타 아승기(百千萬億那由他阿僧祇) 삼천 대천 세계를 부수어 티끌을 만들고,
5백 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국토를 지나갈 때마다 티끌 하나씩을 떨어 뜨리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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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하나를 1겁으로 세어, 그 수효를 모두 계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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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한 하나하나 법문 가운데
모든 법문 또 설함도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모든 법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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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종아리 [캪]calf
5 목 ●
53 (귀)코 nose 鼻 【비】_M#]
[5] 멸죄업장 => 마하사다바야
[53] <니라감 다라보로 오도아나 사 >
[32] 어피일일법륜중 => 연수다라 => 어피일일수다라 => 분별법문
법륜 => 수다라 => 법문 => ( 제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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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아함경_K0648_T0026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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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 ♣0648-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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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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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6-09_중아함경_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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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d8--불교단상_2564_06.txt ☞◆vnmq1605
불기256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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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back--불기2564-06-06_중아함경_K0648_T0026-ti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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