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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4일 목요일

불기2564-06-04_불설범망육십이견경_K0659_T0021


『불설범망육십이견경』
K0659
T0021

범망육십이견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불설범망육십이견경』 ♣0659-001♧





범망육십이견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용어풀이

ꊱ육십이견
‡육십이견
ω육십이견



유가사지론
18제악견취(十八諸惡見趣) - 18견

상견론(●常見論) - 4견
일분상견론(一分常見論) - 4견
유변무변상론(有邊無邊想論) - 4견
불사교란론(不死矯亂論) - 4견
무인론(無因論) - 2견

44제악견취(四十四諸惡見趣) - 44견

유상론(有想論) · 유견상론(有見想論) - 16견
무상론(無想論) - 8견
비유상비무상론(非有想非無想論) - 8견
단견론(斷見論) - 7견
현법열반론(現法涅槃論) - 5견



불설범망육십이견경(佛說梵網六十二見經)
월지(月支) 우바새(優婆塞) 지겸(支謙) 한역
최민자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구류국(俱留國)을 유행하시다가
대비구 대중 1천2백50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외도[異道] 수비(須卑)와 그의 제자 범달(梵達) 마납(摩納)이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을 따르고 있었다.


외도 수비는 부처님을 한없이[無央數] 비방하였고,
또 법(法)과 비구 스님들을 비방하였고,
제자 범달 마납은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찬탄하였다.


이들 스승과 제자는 곧 서로 다투며
각각 상대방이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항상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이 청을 받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이때 부처님께서 구류국에서 사위국(舍衛國)에 이르시어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머무셨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가리라(迦梨羅) 강당에 모여 앉아 함께 의논하였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외도 수비와 그의 제자 범달 마납이
항상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이 청을 받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외도 수비는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비방하고,
그의 제자 범달 마납은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찬탄합니다.”



부처님께서 천이통(天耳通)으로 모든 비구들이
함께 이 일을 의논하는 것을 멀리서 들으셨다.
부처님께서 곧 일어나시어 강당에 이르셨다.
부처님께서 곧 앉으시며 모든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아까 가리라 강당에 모여 의논한 것이 무엇인가?”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까 모여 함께 의논하기를,
‘외도 수비와 제자 범달 마납이
항상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이 청을 받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외도 수비는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비방하고,
그의 제자인 범달 마납은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찬탄한다.’고 하였습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모든 비구여,
반드시 항상 두 가지의 일을 행하여야 하니,
무엇이 둘인가?
첫째는 설법(說法)이요,
둘째는 사유(思惟)이다.”◂



▸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비방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이 성내지 않고
악행(惡行)이라고 생각하여 근심하면 선(善)이 될 것이요,
만일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비방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이 곧 성내고 근심하면
쇠(衰)함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찬탄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은 곧 기뻐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근심하지도 말아야 한다.
또한 기뻐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면
그대들은 곧 쇠함이 있을 것이다.


만일 또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비방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은 곧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은 진실한 말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여야 하니,
부처에게는 이런 일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찬탄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은 마땅히 ‘참으로 이러한 일이 있구나.’라고 생각하여야 하니,
왜냐 하면 지혜가 적은 이는 다만 계행만 있고 많이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곧 부처를 찬탄하기 때문이다.”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지혜가 적은 이는 다만 계행만 있고 많이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살생(殺生)하지 않으시고,
맺힌 원한[怨結]이 없으시고,
칼이나 몽둥이를 지니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선(善)을 행하도록 가르치시고,
모든 중생과 날아다니거나 꿈틀거리는 곤충류까지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며,
또한 남의 재물을 취하지 않으시고,
다만 보시하려고 하시며,
마음도 또한 보시하기를 생각하시고,
사람들이 남의 것을 약탈하는 것을 보면 불쌍히 생각하시고,
몸소 청정하게 수행하시고,
사람들이 죄법(罪法)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시고,
청정한 범행을 닦고 청정한 행을 좋아하시며,
나쁜 애욕법을 좋아하지 않으시며,
또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하는 말이 진실하시고,
참된 것을 좋아하고 헛되지 않으시며,
세간 사람들이 모두 그 말씀을 믿고 다른 뜻이 없으시며
또 허망한 생각을 하지 않고 양쪽에 서로 다른 두 가지 말을 전하여
남들이 싸우도록 하지 않으시고,
만일 언쟁하는 이가 있으면 화해시켜 각기 편안하게 하시며,
욕설과 거친 말을 하지 않으시고,
하는 말마다 많은 사람이 기뻐하도록 하시며,
다만 좋은 것만을 말씀하시고 속이는 말을 하지 않으시며,
때를 아시고 진실하시며,
옳은 수행과 법을 지녀 말하는 것마다 부드러우시며,
높고 화려한 평상에 앉지 않으시고,
또한 향이나 꽃으로 장식하지 않으시며,
노래와 춤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술을 마시지 않으시며,
또한 금ㆍ은ㆍ보배를 지니지 않으시며,
항상 법다운 음식을 드시되 그 시간을 어기지 않으시며,
남자든 여자든 노비를 받지 않으시고,
자라는 곡식을 따지 않으시고,
또한 닭ㆍ양ㆍ돼지를 받지 않으시며,
집을 지니지 않으시고 또한 사고 팔지도 않으시며,
저울과 말과 자로써 사람을 속여 손해를 입히지 않으시며,
칼이나 몽둥이로 때려서 두렵게 하는 것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비유하면,
외도들은 먹을 것을 탐내고 집착하여
이 집착 때문에 곡식ㆍ술ㆍ가축ㆍ의복의 약품을 많이 쌓아 두고 있지만,
사문 구담(瞿曇)은 이런 일들1)이 전혀 없다.

비유하면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항상 어리석은 업만 짓고,
천천히 다니면서 출입하고,
비방하고 질투하며,
다만 자신을 공경(恭敬)해 주기를 바라지만,
부처님께서는 항상 이러한 어리석은 업을 멀리하신다.

비유하면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ㆍ마을ㆍ집ㆍ곡식ㆍ나무ㆍ과일ㆍ채소밭을 소유하고 스스로 가꾸어 먹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높고 넓고 화려한 평상 위에 누웠다 일어나고,
금ㆍ은으로 훌륭한 그림을 그려 넣고,
그 위에 깔개를 깔고,
코끼리ㆍ말ㆍ가축의 가죽이나 나는 새의 털을 그 자리 위에 깔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을 모두 멀리하신다.

비유하면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곧 왕은 어떤지
도적은 어떤지
군인은 어떤지,
전쟁은 어떤지,
대신은 어떤지,
군ㆍ나라ㆍ현ㆍ읍은 어떤지,
여자는 어떤지 음방(婬房)2)의 일은 어떤지를 서로 묻고,
세간의 일을 말하고,
관(關)3)에 관한 일,
바다에 관한 일들을 말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수행은 헛되이 하고 겉으로만 진실한 체하여 겉과 속이 부합되지 않고,
법의 광명을 나타내어 재물의 이익을 구하고 항상 발우를 탐내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어리석은 견해를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곧 서로 다투되,
‘나는 법과 계율을 알고 그대는 법과 계율을 모른다.
그대는 삿된 견해를 지니고 있으니,
법과 계율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앞뒤가 뒤바뀌어 ‘나는 바른 소견이요,
그대는 소견이 삿되며,
그대는 졌고 나는 이겼으며,
그대는 악견(惡見)과 변견(邊見)을 지니고 있으니,
다시는 그 말을 들을 것도 없다.
그대는 배우고 수행해야 하니,
그대가 하는 것 중에 간직할 것이 있을까?’라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축생(畜生)의 가보를 받을 일을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항상 저포(摴蒲)ㆍ육박(六博)ㆍ의전(意錢)[朴掩]4)을 하고,
‘나는 이것으로 동개[鞬:활과 화살을 꽂아 등에 지는 물건]ㆍ재갈ㆍ갑옷을 얻었고,
저포에서 군(君)에서는 독(犢)을 얻었고,
새(塞)에서는 로(盧)5)를 얻었다’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목욕하고 여러가지 향을 몸에 발라 스스로 장엄하고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큰 비단 일산을 들고 신을 신고 머리를 묶고 구슬과 깃털로 장식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항상 나쁜 일을 행하고 보이니,
즉 손과 발로 싸우고,
머리와 얼굴을 서로 부딪치고,
코끼리ㆍ말ㆍ소ㆍ양에게 싸움을 붙이고,
남자ㆍ여자ㆍ어린아이들에게 싸움을 붙이고,
닭ㆍ돼지ㆍ오리에게 싸움을 붙이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삿되고 나쁜 소견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칼ㆍ창ㆍ활ㆍ화살을 분별하여 알고,
남녀ㆍ노소를 분별하여 관상을 보고,
코끼리ㆍ말ㆍ소ㆍ양을 분별하여 상을 보아 알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남자ㆍ여자와 어린아이의 의원이 되고,
코끼리ㆍ말ㆍ소ㆍ양의 의원이 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귀신을 섬기고,
옷과 이불을 만들고,
의원 노릇을 하고 여인의 의원 노릇도 하며,
주문으로 여인을 희롱하고,
오고 갈 때에 풀을 맛있는 음식인 듯 화작(化作)하여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하고,
곧 속임수로 좋은 물건을 찾게 하여
밥그릇과 옷을 화작(化作)하여 사람들에게 주고 날아다니도록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약을 남에게 주어 토하게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사람을 불러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가라고 말하며,
주문으로 서로 싸우고,
말다툼하고,
서로 사람을 치게 하며,
사람을 땅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주문으로 여인을 낙태시키기도 하고,
주문으로 갈대를 사람의 팔에 붙게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은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주문으로 밤 껍질에 독이 들게 하고
포도씨에 연기가 나게 하며,
주문으로 쥐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이기도 하며,
주문을 배워 사람이 나고 죽는 때를 알려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한 사람은 홍수가 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가뭄이 들 것이라 말하고,
한 사람은 쌀과 곡식이 풍년들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흉년이 들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쌀과 곡식이 비쌀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값이 쌀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큰 전염병이 돌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그렇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도적이 와서 이 나라를 파괴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왕이 죽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왕이 새로 즉위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땅이 크게 진동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달의 월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달의 월식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해의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해의 일식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해가 동에서 서로 운행한다고 하고
한 사람은 해가 서에서 동으로 운행한다고 하고,
한 사람은 달과 성수(星宿 : 28宿)가 동에서 서로 운행한다고 하고,
한 사람은 달과 성수가 서에서 동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길(吉)ㆍ흉(凶)6)이 있다고 하고,
한 사람은 해와 달과 성수가 동에서 서로 운행한다고 하고,
한 사람은 그러므로 해와 달과 별이 나왔다고 하고,
한 사람은 그러므로 해와 달과 별이 들어갔다고 하고,
한 사람은 구름이 해를 가릴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해가 구름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하늘이 맑고 구름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한 사람은 이 나라 왕이 가서 저 나라를 파괴시키고,
저 나라 왕이 와서 이 나라를 파괴시킬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이 나라 왕의 수레와 말과 가축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고,
사람들에게 해몽(解夢)해 주기도 하고,
주문으로 사람이 말을 못하게 하고,
사람이 입을 다물도록 하고,
남에게 글씨를 써 주고 그 값을 받고,
남에게 옷7)의 값을 계산해 주고 그 값을 받고,
물건이 좋고 나쁨을 분별해 주고 그 값을 받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문은 밥을 한 번만 먹고 해가 저물면 먹지 않아야 하니,
정해진 때에만 먹고[時食] 때 아닐 때에 먹는 것을 멀리해야 하고,
행동에는 그칠 줄을 알고,
가사와 발우에 만족하고,
식사는 얻는 것에 만족하여야 하며,
다니는 곳마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다녀 몸을 따르게 하는 것이
마치 나는 새가 가는 곳마다 두 날개를 그 몸을 따르게 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이 해야 하니,
가사ㆍ이불ㆍ밥ㆍ음식ㆍ발우는 얻는 것으로 만족하게 여겨야 하고,
가는 곳마다 가사와 발우를 몸에 지녀야 한다.

비구는 또한 그렇게 해야 하니,
현자(賢者)의 계(誡)를 받으면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몸을 관(觀)하고 다투거나 송사하지 말고,
도를 사유하고,
하는 일마다 편안하고 세밀하게 하며,
물건[色]을 보아도 상(想)을 일으키지 말고,
또한 서로 싸우는 사람을 보지 말고,
마음이 어지러운 이는 고요함을 유지하여 어리석지도 산란하지도 않게 하면
뜻에 맞지 않는 나쁜 일이나 좋지 않은 법도 그 뜻을 어지럽힐 수 없으니
모두 안근(眼根)을 지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구로서 현자의 계품(誡品:戒法)을 받드는 것이다.

현자는 이와 같이 6근(根)의 문(門)을 고요히 안정시켜
안으로도 싸움이나 산란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밥과 음식은 얻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요,
많이 먹지도 적게 먹지도 않아 적당히 중도를 지키며,
항상 한끼만 먹고 늘리거나 줄이지도 말고,
생명을 지탱할 정도로 먹고 근력(筋力)을 쓰려고 하지 말고,
다만 몸을 편안하도록 하고 고통스럽지 않을 정도의 기력(氣力)이 있어야
선정 수행을 할 수 있다.

미래세의 비구일지라도 마땅히
이 현명하고 훌륭한 법을 계(戒)로 삼아 받들어 행하며,
현명하고 훌륭한 법으로 밥과 음식을 얻는 것에 만족하고,
도를 사유하여야 한다.
초저녁과 새벽에 도를 수행하되,
묘법(妙法)에 상응하고,
치우쳐서 행동하지 말고 도를 구하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낮에도 좌선하거나 경행(經行)하며 나쁜 법을 생각하지 말고,
초저녁에도 경행하거나 좌선하며,
밤중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두 다리를 포개고 눕고,
뜻에 곧 생각이 일어나면 항상 그것을 알아 밝히려고 하며,
새벽에는 다시 앉아 도를 생각하고,
경행하더라도 나쁜 법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군(郡)ㆍ국(國)ㆍ현(縣)ㆍ읍(邑)에 들어가 탁발[分衛:걸식]할 때도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ㆍ국ㆍ현ㆍ읍에 들어가 탁발하되,
몸과 모든 근(根)을 지켜 항상 생각이 뜻에 부합되도록 하고,
탁발을 마치면 곧 군ㆍ국ㆍ현ㆍ읍을 나와야 한다.
식사를 마치면 손과 발을 씻고 발우를 거두어 곧 집어넣어야 한다.

홀로 밤에 좌선할 때에는
인가에서 떨어진[空間] 나무 아래,
한데[露處],
산중,
바윗돌 사이,
오두막집,
물살이 세찬 곳에 바로 앉아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세간의 어리석음을 멀리하며,
마음으로 행하기를 생각할 때에도 나쁜 뜻을 내지 말고,
자비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과 날아다니고 꿈틀거리는 무리들까지도 불쌍히 여기며,
뜻에 나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애욕을 버리며,
잠을 멀리하고,
항상 선정의 행(行)과 뜻을 빨리 얻기를 생각하며,
잠을 생각하지 말고,
의심하여 망설이는 모든 망상을 버리고,
나쁜 것을 말하지 말고 또한 생각하지도 말며,
안으로 뜻을 고요하게 안정시키고,
밖으로도 의심을 멀리하며,
많은 망상을 버리며,
행할 때는 나쁜 법을 행하지 말고,
뜻에도 또한 모든 망상을 생각하지 말고,
5개(盖)와 번뇌[塵勞]의 뜻을 모두 버려야 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이자돈을 빌려 다니며
장사하다가 마음대로 되어 돌아와 빚을 갚고도 남는 것이 있으면
풍족하게 스스로 생활하면서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노비가 되었다가
노비의 신분을 벗어나 출입이 자유롭게 되어
스스로 ‘나는 본래 종이었는데 지금은 벗어나 양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혔다가 사면(赦免)의 기회를 만나 풀려나면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중병을 얻어 여러 해 동안 앓다가
양의(良醫)를 만나 치료하여 병이 낫고 기력이 생겨 걸어다니고
출입하며 밥을 먹게 되면,

그 사람이 ‘옛날에 여러 해 동안 앓다가 지금은 치유되고
기력이 생겨 밥도 먹고 출입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험한 길을 지나다가
재물과 가축이 편안하게 좋은 길에 이르면,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도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역시 그와 같아서 5개(盖)를 버리는 것은,
마치 빚을 갚는 것과 같고,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고,
오랜 병이 치유되는 것과 같고,
종이 해방되어 양민이 되는 것과 같고,
험한 길을 통과하여 벗어난 것과 같이 마음이 기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지식이 적거나 혹시 들은 것이 많지 않은 이는 곧 여래를 비방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깨달은 법은 깊고 미묘하여 내가 아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이와
현자와 제자가 그것을 들으면 곧 여래를 찬탄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깊고 미묘한 법이기에
내가 아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현자와 제자가 그것을 듣고 곧 여래를 찬탄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무앙수(無央數:아승기, asaṃkhya)의 도(道)로
각각 그 일을 배워 그때의 일을 알게 되면 모두 18견(見)에 빠진 것이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미래의 일을 배워 무앙수의 도로 각각 그 일을 분명하게 알게 되면
모두 44견(見)에 빠진 것이다.


저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 일을 보고 무앙수의 도로
각각 그 일을 분명하게 알게 되면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니,


그 중 어떤 외도가 상견(常見)을 수행하고,
항상 스스로 세간을 향하여 유상(有常)을 말하면 이는 4견(見)에 빠진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외도가 무엇 때문에 4견에 빠져서
유상(有常)을 보고 스스로 세간을 향하여 유상을 말하는가?

만일 어떤 외도가 애욕을 끊고 선(禪)을 수행하여
법[像]에 여여하게 삼매정수(三昧正受)8)에 들면
과거 20겁의 일을 기억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아(我)와 세계는 유상(有常)하다.
왜냐 하면 나는 과거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는 알고,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는 모른다’고 한다.
그 사람은 곧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알지만 미래의 일을 버리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애욕을 끊고 법[像]에 여여하게 나아가면
삼매정수에 들어 미래 40겁의 일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아(我)와 세계는 유상하다.
왜냐 하면 나는 과거겁이 이루어지 소멸되는 때는 모르고,
다만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는 안다’고 한다.
그 사람은 곧 과거의 일을 버리고 그것을 모르지만 미래의 일을 생각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셋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애욕을 끊고 정진하여 적정(寂定:선정)을 수행하여
법에 여여하게 나아가면 삼매정의(三昧定意)9)에 들어
과거와 미래 80겁의 일을 기억한다.
그 사람은 곧 ‘아(我)와 세계는 유상(有常)하다.
왜냐 하면,
나는 과거와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를 알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 사람은 곧 과거와 미래에 아는 것을 생각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넷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정진하여 적정(寂定)을 일심(一心)으로 수행하며
악행을 끊고 법에 여여하게 나아가면 삼매정의에 들어
생각은 고요하지만 근(根)은 어리석은 생각에 머물러
그 사람은 스스로 세간을 향하여 ‘유상(有常)하다.
왜냐 하면 나는 과거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를 모르고,
또한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를 모른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외도가 유상을 말하고 유상을 보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유상을 말하는 것은
모두 이 4견에 빠져 그것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래는 이것을 모두 알고,
그 이상의 것도 미묘하게 안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가르치지 않고,
그러한 가르침을 멀리하고
무위(無爲)를 증득하였다.

여래는 통양(痛痒:受)으로 바뀌는 즐거움[樂]이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을 알고,
그러한 것이 일어난 유래[所從起]를 안다.
부처는 받아들임이 없는 뜻으로 보아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깨달은 법은 심오(深奧)하고 깊이 비추어
현자와 제자들이 그것을 들으면 곧 부처를 찬탄한다.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과거의 일을 기억하여
무앙수의 도(道)로 각각 그때의 일을 아는 것을 즐겨 말하는 것은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다.


무엇을 그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무앙수의 도로 각각 그때의 일을 알고 있음을 즐겨 말한다고 하는가?


어떤 외도가 각각 유상(有常)을 말하고,
유상을 보고 각각 세간 사람들에게 유상을 말하는 것은 모두 4견에 빠진 것이다.
무엇을 그 외도가 유상을 말하고 유상을 보고 세간 사람들에게 유상을 말한다고 하는가?

한 겁이 소멸할 때에는 하늘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곧 제12 아위화라천(阿衛貨羅天)에 올라 태어나고,
한 겁이 무너질 때에 그 천상 세계의 복덕이 줄어들어 목숨이 다하면
차츰차츰 내려와 범천(梵天)이라는 빈 허공에 태어난다.

곧 그곳에서 가장 존귀한 범천이라고 여기고,
스스로 ‘내가 모든 일을 만들고
이곳에서 가장 높고 모든 것을 만든 아비이며,
이치를 아는 것도 모든 천인 중에 가장 훌륭하다’라고 한다.

그 범천이 스스로 ‘마땅히 어느 곳에서 사람들을 오게 하여
이곳에 태어나게 할까?’라고 생각하였다.
마침 이런 뜻을 내는 사이에 하늘 아래 있던 사람들이 곧 알고 그 천상에 태어났다.

그때 범천은 이것으로 인하여 소견을 내어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사람들을 화작(化作)하였다.’
그 사람들도 역시 스스로 소견을 내어 말하였다.
‘범천이 우리들을 모두 화작하였다.
왜냐 하면,
범천이 먼저 태어났고 우리들이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화작하였다.’
그 먼저 태어난 범천이 가장 단정하고 아름답고 정결하며,
위엄과 신령스러움이 높고 당당하다.

그 밖의 모든 천인(天人)들은 법에 따라 복덕이 엷어져
목숨이 다하면 차츰차츰 내려와
인간 세상에 태어나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一心)으로 수행하면 곧 법(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三昧定意)에 들어
옛날에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말한다.
‘천상 세계에 가장 먼저 태어난 범천은 항상 존재하며 영원히 옮기거나 변동이 없다.
또한 죽지도 않으며 항상 존귀한 천상 세계인 범천에 존재하며
우리들을 화작(化作)하고,
항상 변하지도 죽지도 않는다.’
이것을 유상(有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것은 옳지 않다.
이것이 첫 번째의 견해이다.


둘째는 어떤 외도가 그가 범천에 있던 것으로 인하여 소견을 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에게는색법(色法)ㆍ통양(痛痒:受)ㆍ사상(思想:想)ㆍ행(行)ㆍ식(識)이 있는데,
이러한 법(法)들 또한 유상하고,
변동하거나 죽지 않는다.
나에게는 지종(地種:地大)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ㆍ공종(空種)이 있는데,
이것은 무상(無常)하고 견고하지도 않다.’
그 범천에 있던 사람 중에 복록과 복덕이 엷은 이는
마침내 죽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태어나는데,
그 사람이 정진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의 범천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말한다.
‘저 범천의 색법ㆍ통양ㆍ사상ㆍ행ㆍ식의 법은 유상하고 견고하지만
이 인간 세상의 지종ㆍ수종ㆍ화종ㆍ풍종ㆍ공종의 이러한 법은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아 마침내 없어진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셋째,
어떤 외도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름이 기타파도(幾陀波屠)인 천상 세계에서는 그곳에 있으면 서로 즐기고 쾌락한다.
그 후에도 언제나 몸에 병이 들어 병상에 눕는 것을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복록과 복덕이 엷어지면 마침내 죽어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나 그 사람이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여 그 사람이 곧 말한다.
‘그 천상 세계의 천인들의 즐거움과 쾌락은 항상 존재하여 변동하거나 마침내 없어지지 않지만 이 인간 세상의 즐거움은 무상하고 견고하지도 않아 마침내 없어진다.
저 천상 세계는 유상하지만 이 인간 세상은 무상하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넷째,
어떤 외도가 말하는 것은 이름이 산제(散提)인 하늘이 있는데,
그 천상 세계에는 함께 머물다가 갑자기10) 서로 성을 내어 본래의 자리를 벗어나기도 한다.
그 천상 세계의 천인 중에 복록과 복덕이 엷은 이는 마침내 죽어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난다.
그 사람이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에 태어났던 천상 세계를 기억하고,
그 사람이 말한다.
‘저 모든 천인들이 함께 머물면서 서로 즐기는 것은 항상 존재하고 견고하여 영원히 없어지지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인간 세상은 무상하고 견고하지도 않아 마침내 없어지니,
저 천상 세계는 유상하고 우리 인간 세상은 무상하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모든 외도들이 각각 말하는 유상과 각각 세간 사람들에게 유상을 말하는 것은
모두 이 4견에 빠진 것이고,
이 4견을 벗어날 수 없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다시 이것을 벗어나 그 이상의 것을 절묘(絶妙)하게 안다.
그런 까닭에 꾸짖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無爲)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痛痒:受)으로 인하여 바뀌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고,
방편이 생긴 유래와 그것에서 비롯된 견해임을 알아 받아들이는[受] 뜻이 없이
잘 해탈하였다.

부처가 아는 법은 심오하고,
깊이 비춘다.
나는 모두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떤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알면 곧 여래를 찬탄한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며 옛날의 행을 기억하여 헤아릴 없는 도로,
각각 그 일을 아는 것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외도는 하기를,
‘나는 이곳에 저절로 태어났고 다른 곳에서 와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어느 곳에 태어난 기억이 없는 것으로 인하여 소견을 내어
‘본래 세간이 없다가 지금 세간이 있다’고 하니,
모두 2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이기에 ‘나는 이곳에 저절로 태어났고,
다른 곳에서 와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세간이 없었는데 지금 세간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름이 무상입(無想入)인 하늘이 있는데,
그곳은 사상(思想:想)도 없고,
통양도 없다.
그 곳의 천인이 만일 사상을 내면 복록과 복덕이 곧 엷어지고 없어져서
마침내 죽어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난다.
그 사람이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정의(定意:선정)를 닦으면 뜻이 곧 법에 여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삼매는 옛날에 태어났던 곳을 기억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곧,
‘본래 세간이 없다가 지금 마침 세간이 있다.
나는 옛날에는 없다가 지금 저절로 태어났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뜻과 생각이 어리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한다.
‘본래 세간이 없다가 지금 마침 세간이 있구나.
나도 본래 없다가 지금 저절로 생겨나 있구나.
왜냐 하면 나는 본래 없다가 지금 저절로 생겨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래 세간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그 외도가 ‘나는 본래 태어나게 된 곳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태어나게 된 곳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이니,
이것으로 인한 견해로 ‘본래 세간이 없고 지금 마침 세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모두 이 2견에 빠진 것이다.
이 2견은 앞에서 말한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이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다시 그것을 벗어나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꾸짖지도 않고,
또한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인하여 바뀌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고,
방편이 생긴 유래와
그것에서 비롯된 견해임을 알아
부처는 곧 받아들이는 뜻이 없이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고 깊게 비춘다.
나는 그것을 모두 분명하게 깨달아 아니,
만일 어떤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를 찬탄할 것이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 일을 보고 옛날에 행한 것을 기억하여 헤아릴 수 있는 수의 도(道)로 각각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좋아한다면
그것은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다.
어떤 외도 중에 어느 사람은 ‘내가 보기에 한계[崔底]가 있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내가 보기에 한계가 없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내가 보기에 한계가 있기도 하고 한계가 없기도 하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내가 보기에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데,
모두 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들이 아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어떤 외도가 이와 같이 행하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유한(有限)하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말한 것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고 허망하다.
어떤 이는 세간 사람들에게〈무한(無限)하다〉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고 하기도 하지만
후자의 말들 역시 허망한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말[誑語]을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내가 보기에는 세간이 유한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내가 행하는 것과 보는 것은 무한하니,
아(我)와 세간은 무한함을 알겠다.’고 말한다.
그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고 여기고,
그 사람은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
나만이 진실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리석으면서도 도리어〈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라고 하는데,
이러한 말들은 속이는 말을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셋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한 것을 안다.
내가 말하는 것만이 진실하고 나머지 말들은 어리석고 허망하면서도
도리어〈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다〉고 하지만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말이다.
왜냐 하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넷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람은 ‘나는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본 것을 기억하여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은 것을 안다.
내가 말한 것만이 진실하고,
그 나머지는 어리석고 허망한 말인데도,
도리어〈아(我)와 세간은 유한하다〉,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라고 말하니,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말이다.
왜냐 하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 무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외도들이
어떤 이는 ‘유한하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무한하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다’고 한다.
아(我)와 세간에 대한 견해는 모두 이 4견에 빠져 있어서
이 4견을 벗어날 수 없지만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다시 이것을 벗어나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꾸짖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알고,
방편이 일어난 유래를 알고 받아들임도 집착도 없이 부처는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고 깊게 비추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를 찬탄할 것이다.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옛날에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고,
헤아릴 수 없는 도로 각각 그 일을 아는 것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다.
각각의 외도 등이 함께 논쟁하여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이 와서 일을 물으면 곧 함께 논쟁하며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르니,
‘나는 아무개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어느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니,
모두 이 4견에 들어 있다.
그 외도 등이 함께 논쟁하며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각각의 외도들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나는 후세(後世)가 있는지 후세가 없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또한 보지도 못했다,’
‘나는 후세가 없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나 또한 보지 못했다,’
‘나는 보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하고,
이러한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지 않으니,
그 사람이 독단적으로 자기의 말만 한다,’
‘내가 보는 것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삿된 소견을 받아들인 사람은 몸이 죽어
니리(泥犁)지옥의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다.
만일 사문과 바라문이 수행과 지식이 많고,
영리하고 슬기로워 그 뜻을 해설하며,
그 말이 틀림이 없는가 자세히 관찰하며,
그의 명성이 먼 지방까지 알려지고 다른 이의 소견을 버렸더라도
그곳에 와서 자세히 묻는 이를 깨우쳐 주어 보내지 못하면,
그 외도는 죽어서 악도에 떨어진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외도의 견해가 이와 같고,
말하는 것이 이와 같다.
‘나는 선과 악의 재앙과 복이 있는 것을 모르고,
또한 선과 악의 재앙과 복이 없는 것을 모른다.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한 보지 못하니,
만일 선과 악의 재앙과 복이 있다고 말하면 내가 집착하는 것이요,
선과 악의 재앙과 복이 없다고 말하면 내가 집착을 벗어난 것이요,
만일 내가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도리어 받아들인[受] 것이다.’
만일 사문과 바라문이 수행과 지식이 많고 영리하고 슬기로워 그 뜻을 해설하고,
그 말한 것이 틀림이 없는가를 잘 관찰하며 명성이 먼 지방까지 알려지고,
다른 소견을 버리고,
그곳에 와서 자세히 묻는데,
깨우쳐 보낼 수 없으면 그 외도가 와서 물을까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만일 와서 묻는 이가 있으면 곧 논쟁하며 아무개에게는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또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또한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셋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말하는 것이 이와 같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며,
어떤 것을 행해야 하고,
어떤 것을 행하지 않아야 하며,
어느 곳이 악도(惡道)이고 어느 곳이 선도(善道)이며,
무엇이 현세의 보배이고 무엇이 후세의 보배이며,
평상시에 무엇을 행해야 괴로움이 되고,
무엇을 행해야 즐거움이 되는지를 나는 모른다.’고 한다.
만일 사문과 바라문이 수행과 지식이 많아 그 뜻을 풀이하고,
그 말하는 것이 틀림이 없는지를 자세히 관찰하며 명성이 먼 지방에까지 알려지고,
다른 소견을 버리며,
어떤 사람이 그곳에 와서 자세히 묻기를,
‘무엇이 선과 악이며,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선도이고 악도이며,
무엇이 현세와 후세의 보배며,
평상시에 무엇을 행해야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는가?’라고 와서 묻는다.
깨우쳐 보낼 수 없으면 악도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여,
만일 어떤 일을 묻는 이가 있으면 곧 함께 논쟁하며 말하는 것이 각각 달라
아무개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또한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넷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그 외도의 뜻과 생각이 어리석어
만일 어떤 일을 묻는 이가 있으면 곧 함께 논쟁하고 그 말하는 것이
각각 달라 아무개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이렇게 해야 하고 또한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또한 이렇게 해야 하고,
또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이른바 외도들이 함께 논쟁하고,
또한 말하는 것이 각각 달라 만일 어떤 일을 묻는 이가 있으면 곧 함께 논쟁하며,
‘아무개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이렇게 해야 하고,
또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이 4견 중에 빠져 있어 이 4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아는 것이 다시 그것을 벗어나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꾸짖지도 않고,
또한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인 것을 알고,
방편이 일어난 유래를 알아 부처는 지금 받아들이는 것 없는11) 뜻으로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듣고 아는 이는 곧 부처를 찬탄한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알고 옛날에 행했던 일을 기억하여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도로 각각 그 일들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은
모두 이 18견에 빠져 있어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와 같은 것을 모두 알고 또 그 이상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꾸짖지 않고 비방하지 않고 부처는 지금 받아들임이 없는 뜻으로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를 찬탄할 것이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도를 행하고
각각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좋아한다면
이것은 모두 이 4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과 행을 알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도로
각각 그 일들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좋아한다.
만일 어떤 외도가 행에 대한 상[行想]과 견해에 대한 상[見想]을 지니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상(想)을 말하면 16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행에 대한 상과 견해에 대한 상을 지니고
스스로 세간을 향하여 상을 말하면 16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서
‘아(我)와 색(色)이 있어 후세의 상이 된다’고 하면서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라고 말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어떤 외도가 ‘색은 없고 아(我)가 있어서 후세는 없다’고 말하면서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어떤 외도가 행에 대한 상과 견해에 대한 상을 지니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상을 말하기를,
‘색이 있기도 하고 색이 없기도 하며 아(我)는 있다.
내가 말한 것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어떤 외도가 ‘또한 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이 없는 것도 아니며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째,
어떤 외도가 ‘세간은 유한하고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여섯째,
어떤 외도가 ‘세간은 무한하고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견해이다.


일곱째,
어떤 외도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며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 견해이다.


여덟째,
어떤 외도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으며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덟 번째 견해이다.



아홉째,
어떤 외도가 ‘하나의 상(想)이 있는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라고 하니,
이것이 아홉 번째 견해이다.


열째,
어떤 외도가 ‘몇몇의 사상(思想)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들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 번째 견해이다.


열한째,
어떤 외도가 ‘가지가지의 사상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한 번째 견해이다.


열두째,
어떤 외도가 ‘끝없이 많은 수의 사상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두 번째 견해이다.


열셋째,
어떤 외도가 ‘하나의 즐거움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세 번째 견해이다.


열넷째,
어떤 외도가 ‘괴로움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네 번째 견해이다.



열다섯째,
어떤 외도가 ‘괴로움과 즐거움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다섯 번째 견해이다.



열여섯째,
어떤 외도가 ‘또한 괴롭지도 않고 또 즐겁지도 않은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여섯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외도가 행에 대한 상과 견해에 대한 상을 지니고 세간 사람들에게 상(想)을 말하는 것은
모두 이 16견에 빠져 있어 다시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아는 것이 이것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으며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痛痒)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알고,
방편이 일어난 유래를 알아 지금 집착도 받아들임도 없는 뜻으로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를 찬탄할 것이다.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옛날의 행을 기억하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도로 각각 그 일을 알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 이 4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는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외도가 행(行)이 무상(無常)하고,
보는 것이 무상하다는 견해를 지니고 세간 사람들에게 무상을 말하는 것은
모두 8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행(行)에 대한 (想)이 없고 견해에 대한 상(想)이 없다는 견해를 지니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상(想)이 없다고 말한다.
그 외도의 견해가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색(色)이 있고,
아(我)가 있지만 상(想)이 없어 죽은 후에 후세가 없다’고 말하면서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행에 대한 상이 없고 견해에 대한 상이 없다는 견해를 지니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상(想)이 없음을 말하며,
즉 ‘색(色)이 없고 아(我)가 있고 상(想)이 없어서 죽은 후에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색이 있기도 하고 색이 없기도 하며,
아(我)는 있지만 상(想)이 없어 죽은 후에 후세가 없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네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이 없는 것도 아니며,
아(我)와 세계는 있지만 죽은 후에 후세가 없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아(我)와 세계는 유한하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여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아(我)와 세계는 유한하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견해이다.
일곱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 견해이다.


여덟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덟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은 모두 4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견해에 상(想)이 없고,
행에 상(想)이 없으며,
또한 상이 없지도 않다는 견해를 지니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我)와 세계에 대한 상(想)이 없음을 아는 것이니,
모두 8견(見)에 빠진 것이다.


첫 번째 견해,
어떤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색(色)이 있고,
아(我)가 있고,
상(想)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없는 것도 아니어서 죽은 후에 후세가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어떤 외도가 ‘색이 있기도 하고 색이 없기도 하며,
아(我)가 있으며 상(想)은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아 죽은 후에 후세가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색이 있기도 하고 색이 없기도 하며,
아(我)가 있으며,
상은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네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색이 있지도 않고 색이 없지도 않으며,
아(我)가 있고,
또한 상(想)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세계는 유한하고,
아(我)가 있으며 또한 상(想)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여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세계는 무한하고,
아(我)가 있으며 또한 상(想)이 있지도 않고 상이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견해이다.



일곱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세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며,
아(我)가 있으며,
또한 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 견해이다.



여덟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세계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으며,
아(我)가 있으며,
또한 상(想)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덟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외도들이 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행에 대하여 상이 있지도 않고 상이 없지도 않으며,
견해에 대하여 상이 있지 않으며,
또한 행에 대해 상이 있지 않다는 등의 견해를 지닌 것은
모두 이 8견에 빠져 있어 이 8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아는 것이 이것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으며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알고,
방편이 일어난 유래를 알아 지금 집착이 없는 뜻으로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고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의 공덕을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무앙수의 도로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은 모두 4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외도가 ‘행이 없고 견해가 없으며,
사람ㆍ생각ㆍ허공ㆍ지(知)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7견(見)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행이 없고 견해가 없으며,
사람ㆍ생각ㆍ허공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외도의 견해가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4대(大)로 이루어진 아(我)라는 색(色)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음식을 먹고 자라지만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그 몸을 목욕시키고 옷을 입혀도 죽으면 땅에 묻혀 뼈마디가 떨어져 나가
뿔뿔이 다른 곳으로 흩어지고,
바람이 불면 그 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무너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소멸되어 없어진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두 번째 견해,
또 어떤 외도가 ‘죽으면 이와 같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또 그곳을 뛰어넘어 올라가니,
어느 곳으로 이 아(我)가 그곳을 뛰어넘어 올라가는가?
그 아(我)는 색천(色天)과 욕행천(欲行天:欲天)으로 올라간다.
그 아(我)가 죽으면 무너지고 부서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어도 이와 같이 무너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다른 아(我)가 있어서 그곳을 뛰어넘어 올라가는데,
그 아(我)는 색에 대하여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그 아(我)가 죽으면 무너지고 부서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네 번째 견해,
또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어도 이와 같이 무너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다시 그곳을 뛰어넘어 위로 올라가니,
그 아(我)는 무엇인가?
그 아(我)는 색에 대한 상(想)을 지닌 하늘을 모두 뛰어넘고,
성내는 상(想)을 지닌 하늘을 모두 뛰어넘어 가지가지 무앙수(無央數)의 허공지천(虛空知天:空無邊處)에서의 가행(加行)을 생각한다.
그 아(我)가 죽으면 무너지고 없어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으면 이와 같이 무너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그곳을 뛰어넘어 위로 올라간다.
그 아(我)는 무엇인가?
그 아(我)는 모든 허공지천(虛空知天)을 뛰어넘어12) 무앙수의 이름이
식지천(識知天)인 하늘에서의 가행(加行)을 생각한다.
만일 그 하늘이 무너져 없어지지 않을 때에는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여섯 번째 견해,
또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어도 이와 같이 무너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그곳을 뛰어넘어 위로 올라간다.
그 아(我)는 무엇인가?
모든 식지천(識知天)을 뛰어넘어 다시는 집착하지 않고 이름이
무식지천(無識知天)인 하늘에서의 가행을 생각한다.
그 하늘에서 아(我)는 죽어서 무너지고 없어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견해이다.



일곱 번째 견해,
또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어도 이와 같이 무너져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그곳을 뛰어넘어 위로 올라간다.
그 아(我)는 무엇인가?
모든 무식지천(無識知天)을 뛰어넘은 그 하늘의 천인들은
상(想)이 없기도 하고 상(想)이 있기도 하며 가행을 생각한다.
그 하늘에서 아(我)는 죽어서 무너지고 없어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이른바 외도들이 단멸견[滅壞見]을 행하며,
행(行)도 없고 상(想)도 없고,
사람ㆍ생각ㆍ허공도 없다고 하는 것이니,
모두 이 7견에 빠져 있어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그 아는 것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안다.
그러므로 그것이 생긴 유래를 알고,
현재 부처는 집착이 없는 뜻으로 잘 해탈하였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의 공덕을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무앙수의 도로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은 모두 44견에 빠진 것이다.
어떤 외도가 스스로 ‘지금 현재 생각과 행(行)의 무위(無爲)를 얻었고,
현재 견해의 무위를 얻었다’고 말하며,
만일 어떤 사람이 그가 있는 곳으로 오면,
곧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말하니,
모두 이 5견에 빠진 것이다.


어떤 외도의 견해가 이와 같고 말과 행이 또 그러하여
그가 집에 있으면서 스스로 기뻐하고,
5욕(欲)으로 스스로 즐기며,
그 사람은 ‘나는 현재 무위를 얻었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두 번째 견해,
또 어떤 외도가 ‘다른 사람들이〈아(我)가 있어서 무위를 얻었다〉는 것과는 다르니,
다른 아(我)가 있어서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
무엇을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가 욕망을 멀리하고 좋지 못한 나쁜 법을 벗어나면
뜻ㆍ생각ㆍ행(行)이 있어도 훌륭하게 안락을 성취하니,
곧 제1 선정이다.
그 사람이 죽어 없어지면 아(我)는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현재에 무위를 얻은 것이다’라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
또 어떤 사문 도인(道人)이 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이 아(我)가 현재에 무위를 얻은 것이 아니고,
다른 아(我)가 있어서 또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 것과 다르고,
그보다 훌륭하다.
무엇을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가?
그 비구의 뜻이 소멸되고 마음속이 적정(寂定)하여
그 뜻이 전일하고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또 행도 없으면 삼매에 들어 희락(喜樂)을 성취하니,
이것이 곧 제2 선정을 행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지만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네 번째 견해,
또 어떤 사문 도인(道人)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이 아(我)가 현재에 무위를 얻은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아(我)가 있어서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 것과 다르고,
그보다 훌륭하다.
무엇을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가?
그 비구가 즐거이 음욕을 멀리하고 관행(觀行)을 즐거워하며,
언제나 적정(寂靜)의 즐거움을 누리며,
현자(賢者)가 관행을 하는 것과 같아 항상 안락하면
곧 제3 선정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 번째 견해,
다시 어떤 사문 도인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이 아(我)가 현재에 무위를 얻은 것이 아니고,
다른 아(我)가 있어서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 것과
다르고, 그보다 훌륭하다.
무엇을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가?
그 비구가 즐거움도 끊고 괴로움도 끊었으며,
지난 일에 대하여 뜻에 맞음과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한 괴롭지도 않고,
또 즐겁지도 않으며,
항상 청정(淸淨)을 받들어 행하면 곧 제4 선정을 행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현재에 무위를 얻어 죽어 없어진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른바 어떤 사문 도인이 말하는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
견해에 대한 현재의 무위를 얻었다,
생각에 대한 현재의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 것은
모두 이 5견에 빠져 있어 이 5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그 아는 것이 다시 그것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 않고 비방하지도 않으며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알고 방편이 생긴 유래를 알아
지금 집착하는 마음 없이 잘 해탈하였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의 공덕을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외도가 유상(有常)을 생각하고 유상을 보아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가 유상하다’라고 말하며 4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13)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이것이 습기(習氣)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외도가 상품(上品)의 행과 중품의 행을 말하면서 각각 보이는 것이 다르고,
각자 사람들14)에게 세계가 유상하다고 말하여 2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이것이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각각 유상(有常)을 생각하고 유상을 보아
각자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는 유상(有常)하다’라고 말하며 4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아(我)와 세계에 대하여 유한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또 무한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또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또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어
4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함께 논쟁하며 말하는 것이 각각 달라
4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행을 익히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상(想)을 말하고 상(想)을 지어[行]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에는 상(想)이 있다’고 말하여 16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상(想)이 없음을 생각하고 상(想)이 없음을 보고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에는 상(想)이 없다’고 말하여 8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상(想)을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상(想)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에는 상(想)이 없다’고 말하여
 8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괴멸(壞滅)을 말하며,
언제나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는 괴멸한다’고 말하여 7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현재의 무위(無爲)를 말하며,
현재의 무상을 보고 사람들에게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말하여 5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무앙수(無央數)의 도(道)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18견에 빠진 것이고,
저 여러 외도들이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무앙수의 도(道)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44견에 빠진 것이니,
모두 합하여 62견에 빠진 것이다.
그 속에서 맴돌고 그 속에 머물러 있으며
그 속에 태어나 함께 만나 행(行)을 계속하여
그 그물 속에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며 벗어나지 못한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물고기를 잘 잡는 스승이 있는데,
그의 제자가 그물 코가 작은 그물을
작은 샘물 속에 쳐 놓고
곧 그 앞에 서거나 앉거나 하면,
그 사람이
‘샘물이 작아 모든 고기들이 떠다니다가
모두 그물 위로 올라와 그 속에서 갔다 왔다 하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모든 외도들이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옛날에 행하던 것을 알아
무앙수의 도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18견에 빠진 것이고,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미래의 일을 생각하여 말하며
무앙수의 도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44견에 빠진 것이니,
모두 62견에 빠져 있다.
그 속에서 맴돌고 그 속에 머물러 있으며,
그 속에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며 함께 만나 행(行)을 계속하여
그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부처의 몸은 모든 집착을 끊고 항상 거기에 머물러 있어
모든 천인과 사람들이 모두 보지만,
부처가 반니원(般尼洹:열반)에 든 후에는 볼 수 없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실 때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가 여섯 가지로 바뀌며 진동하였다.

그때 나야화류(那耶和留)비구가 부처님 앞에 서서 부처님께 부채를 부쳐드리고 있었다.
그때 현자(賢者) 나야화류가 장궤(長跪)하고 차수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껏 없었던 일입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이 경의 깊이가 이와 같아 깊게 비칩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고,
그 이름을 어떻게 지녀야 합니까?”







▸ 부처님께서 나야화류에게 말씀하셨다.
“구루진(拘樓秦)부처님ㆍ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께서 이 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이름을 법망(法網)이라고 하셨으며,

가섭(迦葉)부처님ㆍ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 이 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이름을 『견망』(見網)이라고 하셨다.

지금 내가 또한 이 경을 말하니,
이름을 범망(梵網)이라고 하여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이 모두 기뻐하며 부처님 앞으로 나와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

1)
1) 송본ㆍ원본ㆍ명본에 따라 사(事)를 보입하였다.
2)
2) 고려본에는 질(妷)로 되어 있으나 원ㆍ명본의 일(泆)을 따랐다.
3)
3) 고려본에는 개(開)로 되어 있으나 관(關)으로 바로잡는다.
4)
4) 저포ㆍ육박ㆍ의전은 모두 도박의 이름이다.
5)
5) 군(君)과 새(塞)는 말판의 자리 이름이고,
독(犢)과 로(盧)는 패의 이름이다.
6)
6) 고려본에는 서(西)로 되어 있으나 송본ㆍ원본ㆍ명본의 흉(凶)을 따랐다.
7)
7) 고려본에는 교(校)로 되어 있으나 송본ㆍ원본ㆍ명본의 의(衣)를 따랐다.
8)
8) 삼매(samdhi)를 의역(意譯)하여 정수(正受)라 한다.
즉,
범어와 한어(漢語)를 겹쳐 쓴 것이다.
9)
9) 정의(定意)도 삼매의 의역이다.
10)
10) 고려본에는 평(平)으로 되어 있으나 원본ㆍ명본의 졸(卒)을 따랐다.
11)
11) 고려본에는 무(無)가 없으나 앞뒤의 동일한 문장에 근거하여 무(無)를 보입하였다.
12)
12) 고려본에는 유(喩)로 되어 있으나 명본의 유(踰)를 따랐다.
13)
13) 고려본에는 시(示)로 되어 있으나 뒤의 동일한 문장에 근거하여 불(不)로 바로 잡는다.
14)
14) 고려본에는 대(大)로 되어 있으나 뒤의 동일한 문장에 근거하여 인(人)으로 바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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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ANAIS - Mon Coeur Mon Amour.lrc


Lab value 불기2564/06/05/금/08:38


62 견은 62 는 18 + 44 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표현한다.
18제악견취(十八諸惡見趣) - 18견
상견론(●常見論) - 4견
일분상견론(●一分常見論) - 4견
유변무변상론(有●邊無邊想論) - 4견
불사교란론(不●死矯亂論) - 4견
무인론(無●因論) - 2견
44제악견취(四十四諸惡見趣) - 44견
유상론(有●想論) · 유견상론(有●見想論) - 16견
무상론(●無想論) - 8견
비유상비무상론(●非有想非無想論) - 8견
단견론(●斷見論) - 7견
현법열반론(現法●涅槃論) - 5견

이는 잘못된 망상분별의 대표로 나열된 것이다.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물고기를 잘 잡는 스승이 있는데,
그의 제자가 그물 코가 작은 그물을
작은 샘물 속에 쳐 놓고
곧 그 앞에 서거나 앉거나 하면,
그 사람이
‘샘물이 작아 모든 고기들이 떠다니다가
모두 그물 위로 올라와 그 속에서 갔다 왔다 하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모든 외도들이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옛날에 행하던 것을 알아
무앙수의 도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18견에 빠진 것이고,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미래의 일을 생각하여 말하며
무앙수의 도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44견에 빠진 것이니,
모두 62견에 빠져 있다.
그 속에서 맴돌고 그 속에 머물러 있으며,
그 속에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며 함께 만나 행(行)을 계속하여
그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이런 견해에 붙잡혀 생사고통을 겪게 됨을 나타낸다. 

그런데 수행자는 결국 이런 주제를 놓고 
이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또 반대로 말하면 무엇이 옳은 내용인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 온갖 유무 망상의 폐해 

기본적으로 망상분별을 제거하고 수행에 임하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수단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과 같은 성인이 된다.

망상분별을 갖는 것과 이 망상분별을 제거하고 벗어나는 것의
기본적인 차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62 견이라고 제시하지만,
이는 결국 견혹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자세히 살핀 것이다.
수행자가 기본적으로 제거해야 할 잘못된 견해다.
이들은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견(見取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 등 10종으로 묶게 된다.
그리고 4제와 관련해서는 욕계, 색계,무색계 88사로 다시 분류하게 된다.

그래서 이는 수행과정에서 제거해야 할 공통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votw4136
◈Lab value 불기2564/06/04


Jean-Louis Murat - Over And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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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numental Ensemble of the Alcazaba of Almería,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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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망상에 의한 시감상

어떤 노래에서 마님으로 등장하는 초등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다른 노래에서도 자주 마님으로 등장한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가끔은 이런 이상한 시감상을 통해 혼자 웃게도 된다.
그래서 망상적 시감상에서도 시리즈가 있다고 여긴다. 

어떤 노래에서는 아내가 4 명이라고도 말하는 듯 하다.
처음 일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내가 많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한 8만 4 천명 정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알고보면 갓난아이가 8만4 천명이 있는 상황과
사정이 비슷하다.
한 사람마다 갖는 소원이 무량하고 충족시켜야 할 희망이 무량하다.
그러다가 하나라도 잘못하면 책망을 듣게 된다.
그래서 처음 수행자가 서원을 구상할 때 주의해야 한다.
중생제도 서원을 성취할 방편의 구상은 수행자 자유다.
그런데 실수하지 않으려면 그런 서원이 충족된 상태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부터 먼저 잘 점검해야 한다.



이번에 『불설범망육십이견경』을 살핀다.
여기에 망상분별에 바탕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된다.
생각해보면 62 란 수는 최소공약수를 찾기 힘든 수다.
2 로 나누면 31 이란 솟수가 나온다. 
그리고 그 망상분별적인 견해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래서 이는 반드시 62 란 가지수가 되어야 할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이것은 상당히 내력이 있는 망상분별이다. 
직접 수행을 하는 가운데 갖게 되게끔 되는 망상분별 
그리고 단지 이론적 추리를 통해 갖게 되는 망상분별로 
시리즈 형태로 나열되는  잘못된 견해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과거 부처님 시대에서부터 문제되었던 
대표적인 망상분별을 나열한 것이다. 
그래서 일단 수행자는 이런 62 가지 종류의 견해를 
잘 정리해 기억할 필요도 있다. 

각 경전과 논서별로 명칭이 다르다. 
이런 경우 하나를 붙잡고 외우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나머지를 그 하나에 결합시키면 된다. 

8제악견취(十八諸惡見趣) - 18견
상견론(●常見論) - 4견
일분상견론(●一分常見論) - 4견
유변무변상론(有●邊無邊想論) - 4견
불사교란론(不矯亂論) - 4견
무인론(無●因論) - 2견

44제악견취(四十四諸惡見趣) - 44견
유상론(有想論) · 유견상론(有●見想論) - 16견
무상론(無想論) - 8견
비유상비무상론(●非有想非無想論) - 8견
단견론(●斷見論) - 7견
현법열반론(現法●涅槃論) - 5견


62 = 18 +44
62   = ( 4+4+4+4+2)  (16+8+8+7+5)
62  =  (상, 일, +[변] +[사]+[인])   ( [유,상,비]+ [단]+[열])

이렇게 일단 나열해보았다. 
결국 시간, 공간 유한성여부 문제
선악문제, 인과문제, 사후문제, 단견, 수행목표인 열반문제 
이렇게 되어 있다. 

한편 경전을 살펴보면 
그런 망상분별을 갖게 된 배경이나 내용은 제시된다. 
그런데 정작 그것이 어떤 사정으로 왜 잘못된 견해인가는 생략되어 있다.

단지 그것은 잘못된 엉터리견해라는 내용만 제시된다.
그래서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것은 수행자가 별도로 잘 해결해야 한다.


처음 영원한가 우주에 끝이 있는가.
이런 문제에서
대부분 기본적인 문제부터 잘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접근하게 된다.

이 문제를 정말 과거겁이나 먼 우주 공간까지 가보고 나서
알고자 한다면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
설령 그가 개인적으로 수행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자.
그렇다 해도 그렇지 못한 일반적인 나머지 경우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나머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다.

그래서 만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부처님의 입장이나 다른 견해 가운데
자신 임의로 하나를 취사선택한 다음 믿거나 할 것이다. 
그 근거나 기준도 없다. 
그래서 결국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 해결은 사실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으면 간단하다. 
그 문제를 현재의 단면과 그 전후 시간대에 놓고 
살피면 바로 해결될 수 있다.
문제삼는 내용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붙잡고 이를 살피면 된다. 
그런데 이를 생략하면, 무한한 시 공간대를 오간다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정지단면의 내용자체도 해결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망견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왜 잘못이고 엉터리인가를 이해하려면
위와 같은 방안으로 접근해서 해결해야 한다.




요즘 경전과 함께 부록을 살핀다.
부록은 랜덤 형태로 추출된다.
경전과 별개다.
그런데 그런 부록 내용도 경전 내용과 관련이 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세계의 유한 무한 문제를 살필 때는
먼저 자신이 논의하고자 하는 세계를 무엇이라고 하는가부터
살펴야 한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사후문제를 살피려면
무엇을 자신이라고 하는가부터 살펴야 한다.
그것을 먼저 살피지 않으면 논의하는 가운데 방향을 잃게 된다.


한가위가 되면 본 사이트에서 가짜 달 주의보를 올리곤 한다.
그것은 현실에서 대부분 달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이
가짜 달이니 주의하라는 경고다.

최근에 본인이 오락하나를 개발했다.
어릴 때 불놀이를 본 적이 있다.
들판에서 빈 깡통에 불을 놓고 돌리는 놀이다.
그렇게 깡통에 불을 놓고 원을 돌리면
밤에 동그란 불이 보이게 된다.

참고로 다음 노래가 연상되어 올려본다 .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옥슨 80 (Oxen 80) - 불놀이야 (1980).lrc

저녁 노을 지고 달빛 흐를때 작은 불꽃으로 내마음을 날려봐
꼬마불꽃송이 꼬리를 물고 동그라미 그려 너의 꿈을 띄워봐
저 들판 사이로 날면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저하늘로 떠난 불꽃을 보며 힘껏 소리치며 우리 소원 빌어봐
꼬마불꽃송이 꼬리를 물고 동그라미 그려 너의 꿈을 띄워봐
저 들판사이로 날면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팔을 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저 들판사이로 날면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팔을 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 불놀이2020-06-05_ct33.jpg


그런데 이 불놀이를 잘못 행하면
주변이 불바다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불놀이 오락을 개발했다.
밤에 달을 붙잡고 돌려 버리는 놀이다.
이는 해도 가능하다.
해를 붙잡고 돌리는 놀이다.
이것이 쉽게 가능하다.

다만 해는 대낮에 해놀이를 하면 여러 사람들의 업무에 지장이 있게 된다.
눈도 조금 아프게 된다.
그래서 아침에 해뜰때 정도에 행하면 좋다.

응용하면 별 놀이도 가능하다.
앞과 같은 방식이다.


이렇게 다양한 불놀이를 행하고 나서
본 논의에서 무엇을 붙잡고 논의할 것인지를
먼저 잘 정해야 한다.

불에 대해서 논의한다면
이 불인가 저 불인가를 먼저 잘 정해야 한다.
이것을 빠뜨리고 논의에 들어가면
무량겁을 두고 헤메면서
망상분별과 생사고통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먼저 한가위 가짜 달에 대한 내용부터 잘 살펴보자.
한가위 밤에 달을 보게 된다.

이 경우 자신이 바라보는 달을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대하는가가
첫 문제다.

있고 없음을 따지는 문제에서도 사정이 비슷하다.
무엇을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하는가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의가 혼미에 빠지게 된다.

이는 별도 링크로 붙이기로 한다.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k1501t1730.html#069
sfed--금강삼매경론_K1501_T1730.txt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sfd8--불교단상_2562_08.txt ☞○있고 없음의 일반적 판단문제



그런데 여하튼 현실에서 달을 보게 되면
대부분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이를 대하게 된다.

자신이 보는 달은 자신 마음 밖의 외부세계의 내용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눈이 대하는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는 마음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마음과는 다른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 달을 자신 뿐 아니라 영희와 철수도 함께 나와 같이 보고 있으니
이는 여러 사람이 같이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긴다. 
이렇게 잘못 여긴다.

이렇게 잘못 이해한 바탕에서 이 달을 포함해 외부 세계의 유한 무한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또 그런 바탕에서 이런 달이 파악되는 시간대의 유한 무한을 논의한다.
그리고 며칠전은 초승달이고 반달이었는데 지금은 온달이 아닌가.
그리고 곧 그믐달이 된다.
이런 과정은 앞으로도 무한하고 뒤로도 무한한 것인가.
아니면 어딘가에 끝이 있는가.
이런 식으로 논의한다.


이런 상황에서 논의가 전개될 때
대처 방안에 여럿이 있다.

그런데 우선 이 논의를 하는 이의 상태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그 자신 자체부터 기본적으로 생사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있다.
또는 적어도 극심한 3 악도의 생사고통의 묶임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경우가 있다.
또는 최소한 망집을 제거하고 자신만은 생사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다.
이런 식으로 제각각 상태가 다르다.

그래서 이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논의를 살피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62 견 문제로 제시하는 주제는
경전에서는 14 무기설로도 제시한다.
또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제거해야 하는 견혹의 문제로도 제시한다.
그 각 경우마다 부처님의 제시 내용도 다르다.
그래서 비슷한 주제가 화엄경과 법화경과 열반경, 반야경 그리고 아함경 등에서
각기 조금씩 달리 내용이 제시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정이 있다.

기본 바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용을 제시하면
일단 이해를 잘 하지 못한다.
두번째 이해를 해도 그 이해를 바탕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뛰어 다니게 된다.
그 대표가 악취공견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중생의 상태에 맞춰서 이에 대해 내용을 제시하게 된다.

현재 『불설범망육십이견경』에서는
엉터리 견해를 갖게 되는 배경사정과 그 종류만 나열한다.
그리고 이것이 엉터리라고 제시하고 자세한 사정을 제시하지 않는다.

한편 어떤 이가 비슷한 형태로 질문하는 다른 경우는
아예 답 자체를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침묵을 지킨다.
심한 망집 상태에서는 어떤 답도 부작용을 일으키게끔 된다.
그런 사정 때문이다.

또 어떤 경우는 수행자에게 무상, 고, 무아, 무자성, 공과 관련된
가르침을 베푼다.

그런데 또 어떤 경우는 이와 또 다른 내용을 제시하신다.
일체 설법을 뗏목처럼 여기고 잘 사용하고 집착을 버리라고도 하신다.
그런데 그렇게 제시하게끔 되는 사정이 있다.

그런데 인터넷 상황에서는 여하튼 이런 여러 경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일단 살펴야 한다.


그런데 먼저
이 논의의 실익이 무엇인가부터 잘 파악한다.
그것이 논의하는 이와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좋은 상태를 원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각 주체가 가장 집착하는 주제는 자신이다.
그리고 나머지 집착은 모두 여기에서 파생한다.
안드로메다에 오늘 지진이 발생해서 그곳 생명 수십만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재산도 파괴되었다.
그렇다해도 나는 오늘 평안하다.
이 사정이 현실 대부분 주체의 상황이다.
자신과 관련이 없다.
있다고 해도 경미하다.
그렇게 되는 사정은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는 거리를 다니는 대부분이 성인군자의 외관을 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의 지갑이나 돈 백만원이라도 피해를 보게 되면
순간 이들이 다 난폭한 외관을 띄고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안드로메다를 지나가면 우주의 끝이 나오는가 아닌가는
쓸데 없는 논의다.
그 경우는 그 자신부터 지옥, 아귀 축생계를 벗어나기 힘들게 되어 있다.
그런 상태에서 여래가 사후에 어떻게 되는가를 의문을 제기해보았자 별 필요없다.
이런 경우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부터 집중하고 해결해야 한다.
삶에서 자신을 생사고통에 묶이게 하는 3 독부터 제거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급하다.

이 경우는 위 논의를 붙잡고 늘어질수록 그 문제 해결에 장애가 발생한다.
이것이 14 무기와 관련된다. 



그러나 기본 수행이 원만하게 성취된 경우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이런 경우는 다시 문제되는 내용을 한 단면을 붙잡고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의 정체를 먼저 명확히 하는 것이다.
논의하는 가운데 혼동 방지를 위해서다.

배를 같이 논의하는데
어떤 이는 먹는 배로 이해하고 논의할 수 있다.
어떤 이는 타는 배로 이해하고 논의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밥먹고 손으로 두드리게 되는 배로 이해하고 논의할 수 있다.
그렇게 논의하면 서로 논의할 수록 혼미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 한 정지 단면을 놓고
무엇을 논의하고자 하는가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이들이 영희에 대해서 논의한다고 하자. 
그들이 영희라는 표현으로 가리키는 것이 무언가부터 먼저 확인한다. 
이들이 제각각 영희라고 여기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켜보자고 제의한다. 
이 때 이들이 한 현실단면에서 제각각 영희라고 여기는 것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손으로 가리키는 부분이 일치한다고 하자. 

이것이 일종의 망상분별의 하나로서 신견이다. 
엉터리 견해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상을 취하고 현실에 임한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바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이것을 살피면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두가지 방식을 취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자. 
이렇게 일단 받아들인다. 
갑,을,병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그 부분이 정말 영희라고 하자. 
또는 달이라고 하자. 이런 식으로 임하는 것이다. 

그렇게 상을 취하면 그 전제에서 생사 윤회와 인과가 전게 된다. 
이 부분이 바로 망집에 의한 생사윤회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그렇게 무량겁에 걸쳐 
그런 형태로 생사에 묶여 지내게 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는 그런 망집에 바탕해서 업을 행하게 된다. 
매 순간 그 망집을 전제로 할 때는 
도저히 어떤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여기면서 업을 행하게 된다. 

마치 바둑의 9단 커제나 이세돌 선수가 10 억원을 걸고 
초보선수와 바둑을 두는 상황과 같다. 
9단이 두면 상대는 매순간 일정한 곳에 둘 수 밖에 없다고 여기면서 
바둑알을 따라 놓게 된다.
또 이 경기에는 오메가컴도 개입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커제나 이세돌 선수라도 결과는 패배다.
그런데 현실의 모든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주식시장도 비슷하다.
여기에서는 서로 거래 당사자의 얼굴을 보지 않고 거래를 행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자산 운영규모가 30 조원대를 넘는 투자자도 있고
300 만원을 가지고 투자하는 이도 있다.
한쪽은 오메가컴퓨터에 준한 컴퓨터를 가지고 전체 시장의 빅데이터를 처리하면서
거래에 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는 자신이 초점을 맞추는 몇몇 종목만 뚫어지게 보면서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종목의 거래 정상가가 백만원이라고 하자. 그런데 거래시점에 잘못 만원에 판다고
호가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 1 분 정도 후에 잘못을 알고 고치려 했다.
그런데 다 팔렸다. 실수라고 해도 안 돌려준다.
결국 회사가 파산한다.

욕계내 생사현실의 상황이 이와 유사하다.

자신은 온갖 지혜를 다 발휘해서 자신에게 좋은 것을 매순간 추구한다.
그것은 마치 벌이 온갖 지혜를 다 발휘해서 꽃을 찾아 다니는 것과 사정이 같다.
그런데 숲에 한 아저씨가 철만 되면 꿀통에 가득한 꿀을 들고 간다.
그리고 대신 설탕을 채워 넣는다.
이런 식이다.
알고보면 낙타나 곰의 운명과 같다.
온갖 수고와 재주는 낙타와 곰이 행한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여기에서 저기까지 힘들여 옮겨다 놓는다.
곰은 공 위에서 온갖 묘기를 부린다.
그런데 최종 수익은 조련사가 챙긴다.
그리고 이것이 서커스라면 그 재미는 관중이 본다.

이 세 역할이 욕계에서 생사를 받아가는 안타까운 중생의 사정이다.

그런데 망집에 바탕해서 임하면
매순간 그렇게 업을 행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의 지갑을 빼앗고 뛰어간다.
그러면 지갑을 왜 가져갑니까 내놓으시오 하고 소리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같이 따라 뛰어가게끔 된다.

그러자 상대가 멈처 서서 자신을 붙잡고 한 대 때린다.
아프다.
자신도 함께 주먹을 휘두르지 않을 수 없다.

대강 이런 식이다.

설령 모든 집착을 다 제거해도 집착의 근본이 되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갖는 경우는 결국 마찬가지다.
이 병목지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마찬가지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이런 상태는 수행자 자격이 없다.

그런데 처음 자신 지갑부터 집착하는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망집에 바탕해서 매순간 자신에게 좋다고 보는 상태를
모든 생명이 추구한다.
그래서 업을 행한다.
그러면 끝내 3 악도에 들어가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이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그런데 가장 기본되는 부분이 일반적으로 해결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차선책을 제시하게 된다.
예방책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인천교 가르침이다.

그렇게 매순간 임하면 결국 지옥 아귀 축생계에 끌려 들어간다.
그러니 최소한 이것만은 일단 방지하자는 것이 그 가르침의 핵심이다.

가고자 하는 하늘의 주인을 믿고 
10 선법을 행하자. 
그러면 일단 지옥 아귀 축생은 면하게 된다. 
이런 가르침이다. 

그런데 하늘이 층층이다. 
가장 아래 하늘이라고 해도 그 하늘에서 2 일이 인간 100 년에 해당한다. 

이런 사정은 다음을 놓고 이해하면 쉽다. 
자신이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이 있다고 하자. 
이 부분을 오늘날 현미경으로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그 부분은 
수많은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임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이 매 순간 대장균에게 이렇게 행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식세포에게 이렇게 저렇게 행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알아서 한다. 
바이러스- 세균 - 암세포 - 기생충 - 해충 이런 식으로 층증으로 되어 있다. 
자신 몸만 놓고 보아도 사정이 같다. 
그래서 평소 자신의 몸으로 여긴 그 부분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빙의되어 있는 상태와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어떤 이가 어떤 음식을 주로 먹는가 경향은 
그 자신의 뜻이라기 보다는 대장에 있는 세균들의 집합 의사에 의한다고도 한다. 
왜냐하면 오늘 우유를 먹는다. 하루 종일 설사를 한다. 
그러면 우유가 싫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 그런 작용이 개입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장에 좋다는 유산균이 요즘 시장에서 팔린다. 
용량당 값이 우유값보다 조금 비싸다. 

그런데 유산균을 조금 쉽게 먹을 방안도 있다. 
우유를 하나 사고 유산균음료를 하나 산다. 
그리고 그 음료를 우유에 넣는다. 
그러면 하루 이틀 지나면 우유가 유산균 음료 형태로 변한다. 
유산균은 생명체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이에 그처럼 대량 번식을 한다. 

그렇다고 다시 두번 세번 하면 처음 유산균 음료 맛을 느끼기 힘들게 된다. 
이런 문제는 이후 유산균 종자를 생산하는 기업과 상의해야 한다. 

그런데 유산균이 어느날 자신을 우유에 넣고 키우는 사람의 
수명을 헤아린다고 가정해보자. 

그 상황이 인간이 하늘의 수명을 헤아리는 상황과 유사하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상층부로 올라가는 비율은 
산의 흙과 손바닥안의 한 줌의 흙의 비율로 제시된다. 
입시시험이라면 100 대 1 이 아니고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률이다. 
그 하늘과 그 상부 하늘의 관계도 또 마찬가지다. 

그리고 인간에서 가장 선해서 하늘에 간다고 해도 
그 하늘에서는 맨 아래층에 해당한다. 

다른 종교에서도 이런 사정을 제시한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이도 하늘에 가면 별 볼일 없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리고 그 종교에서도 첫째 하늘 두째 하늘 세째 하늘 이런 식으로 
각 하늘의 단계를 제시한다. 
유명한 바울이나 요한도 그런 사정을 제시한다. 


불교도 사정이 같다. 
그러나 일단 3 악도에 들어가 고통을 직접 겪는 상황을 
벗어나려면 일단 인천교의 가르침부터 잘 소화해야 한다. 

앞 내용이다. 

이는 성인의 단계는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수행을 해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나고 
성인의 단계에 이른다. 
이것이 불교의 기본적 수행목표상태인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들이다. 

수다원을 놓고 보면 하늘 가운데 욕계 하늘을 넘어서 
색계하늘과 욕계를 7 번정도 왕래하는 가운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태다. 

그 상태가 되려면 처음에 일으킨 망집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생사에 묶이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즉, 수행을 원만하게 성취해야 한다. 
그러면 그렇게 된다. 


그리고 망집에 빠진 상태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 

경계점에 신견의 제거유무가 있다. 

그래서 이 신견의 제거에 일단 집중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앞에 나열한 온갖 문제도 병행되어 해결된다. 

그런데 이 신견의 제거에서도 온갖 혼동이 개입된다. 

그것이 유무의 극단 문제다. 

신견을 제거한다고 하자.
이는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것들이 본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로 인해 아무것도 아주 없음을 의미한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이 사정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벽돌이나 지갑의 비유를 들게 된다.
평소 자신이나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대한 것이 있다고 하자.

그것을 비유로 벽돌이나 지갑이라고 하자.
어느 상황에서 벽돌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했다.
그렇게 대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어디론가 가자고 마음을 갖고 움직이면
그 상황에서 매번 그 벽돌이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데 늘 그 벽돌이 한 구석에 파악된다.
다른 것은 그렇지 않다.
그런 여러 사정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은 벽돌일 뿐이고 자신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지갑도 마찬가지다.
평소 그것을 자기 지갑으로 잘못 여기고 대해 왔다.

그런데 어느 계기를 통해서던지 경전을 통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 상황이 다시 문제다.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해도 벽돌과 지갑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렇게 파악된다.
이 부분이다.

평소 자신과 자신의 것으로 여긴 내용이 망상분별임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러면 평소 집착을 갖고 대한 벽돌이나 지갑이 어디론가
사라져 없어지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대로다.
다만 그 벽돌을 붙잡고 자신이라고 여긴 망집만 제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대단히 크다.
그 망집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벽돌을 자신으로 여기고 붙잡고
삼악도까지 묶여 들어간다.

그런데 그 망집을 제거하면 그렇지 않다.
일단 현실에서 별 차이는 없다.
벽돌을 자신으로 여기던 여기지 않던 별 차이가 없다.

여전히 어디론가 움직이고자 하면 그 벽돌이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망집을 제거하고 임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생사과정에서 차이가 극심해진다.

극단적으로 생사현실을 대하면서 니르바나의 상태에 여여하게 머물고
무량한 복덕과 수명을 지혜를 얻는다.
그 바탕에서 중생을 제도해간다.

그런데 망집을 일으키고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극단적으로 본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니르바나를 붙잡고
생사고통을 겪는 상황으로 대한다.
그리고 무량겁을 그 상태로 돌게 된다.
그것은 그 망집의 전제에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유의 극단과 무의 극단을 함께 제거해야 한다.
무언가  ■가 얻어진다고 할 때 유의 극단은 다음이다.

이것이 다른 영역에도 그처럼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이 관념이라면 감각현실 영역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
또 본 바탕에도 그런 내용이 그처럼 있다.
더 나아가 거기에는 진짜라고 할 참된 실체가 있다.
이런 식으로 망집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그 내용을 실답게 여기고 대한다.

그것은 침대에서 누어 꾼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그 꿈 자체는 생생하고 명료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꿈을 꾼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경전은 생사현실에 대해 이 사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일으켜 얻는다.
한 주체가 세계나 자신이라고 여기는 내용은 그 속성이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위와 같은 성격이다.
그래서 그 사정을 이해하라는 취지다.


그래서 그런 것이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꿈처럼 실답지 않아도 꿈과는 다르다.
그것은 그런 바탕에서
수많은 주체가 일정한 공간과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유사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한번 업을 행하면 무량겁에 걸쳐 사라지지 않고
과보를 받게 된다.
이런 사정으로 현실을 꿈과 달리 실답게 여기는 경향이 생긴다.
그런데 본 사정은 그렇지 않다.

마치 만화나 게임과 사정이 같다.

종이에 연필을 들고 영희를 그리고 영희는 바보라고 적었다고 하자.
그 그림은 현실내용과 대비해 보면 실답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연필로 선을 그려 나가면 어느 순간
영희처럼 보이게 된다.
그리고 영희가 화를 내게 된다.

게임도 사정이 비슷하다.
게임 화면내용은 현실과 비추어 볼 때 하나도 실답지 않다.
그래도 그 화면안에서 무언가를 클릭해서 아이템을 획득하면
그 이후 일정하게 다른 내용이 나타난다.
이 관계는 게임을 하는 이상 다수가 공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아이템은 백만원에도 거래가 되기도 한다.

현실이 이런 상황과 같다.

하나하나 실답지 않다.
이는 그 영역에서 그런 내용을 생생하게 얻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얻지 못하는 내용임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런 전제에서 그런 내용이 계속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조정하지 않으면
결국 그런 바탕에서 무량겁에 걸쳐 생사윤회를 받아나가게 된다.
한 정지화면에서 망집을 일으켜 상을 취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전제에서 무량겁을 임하게 된다.
그리고 3 악도에서 대단히 생생하게 명료하게 고통을 겪어나가게 된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 경우조차도 그 내용은 실답지 않다.
그러나 평소 비교적 평안한 가운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경우엔 해결이 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처럼 망집이 해결이 안 된 경우는
일단 그런 상태에 처하는 것을 예방하는 수행부터 먼저 잘 성취해야 한다.

또 사정상 생사현실에 임해 그런 상태의 중생을 제도하는 경우도
그 사정이 마찬가지다.
자신부터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다른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는 계의 덕목의 성취가 우선이다.
그 가장 기본이 좋은 무엇인가를 다른 중생에게 베푸는 일이다.
이 기초부터 원만히 성취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나머지는 살필 필요가 없다.

그 사정은 여럿이다.
그것이 좋다. 아깝다.
그래서 다른 중생에게 그런 좋은 무언가를 베풀면 나부터 불편하다. 
이런 상태는 망집이 해결이 안된 상태다. 
그 상황에 그런 것이 있다고 여기고 임하는 상태다. 
그러면 나머지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이런 상태로 방치하면 그대로 3 악도에 들어가게끔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기초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우선 급하다. 
3 독부터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좋음(+)을 베풀어야 한다. [보시] 
다른 중생이 집착하는 좋음을 침해하지 않고 나쁨(-)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 [정계]
자신은 나쁨(-)을 받아도 그 상황에서 상을 취하지 않고 
평안히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안인]
그런 상태로 매순간을 임하면서 정진해야 한다. [정진]
이런 기본적인 계의 덕목이 성취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부터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복덕자량을 구족하게 된다.


이런 수행을 원만히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평소 현실에서 잘못된 망집을 잘 제거해야 한다.

a 가 있다고 해야
그 a 의 시간적 관계나 공간적 관계를 살필 수 있다.
또 그 a 가 발생하는 인과문제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그 a 의 좋고 나쁨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좋은 a 를 성취할 좋은 방안도 다시 살필 수 있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으로 현실에서 그렇게 문제삼을
a 를 얻을 수 없다.
이것부터 잘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a 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는 것을
다시 잘못 이해해서 없음의 극단으로 나아가면 안 된다.

그 a 를 얻을 수 없음 [또는 없음]을 제시하는 것은 이 의미다.

각 내용을 얻는 영역이 다음과 같이 다양한다.

실체 - 실재 - 감각현실 - 관념현실 - 좋고 나쁜 느낌  등등이다.
$ - # -  ○ - ■ - **
이런 식이라고 하자.  

여기서 자신이 처음 문제삼는 것은 관념분별의 성격을 갖는다. 
관념영역에서 있고 없음을 문제삼는다. 
그것을 ■ 이라고 하자. 

여기서 제시하는 것은 다음이다. 
그 ■ 은 $ 형태로 있지 않다. => 없다. [무아, 무자성, 무소유]
그 ■ 은 # [본바탕인 실재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 [불가득 공, 공해탈삼매]
그 ■ 은 ○ [감각현실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 [무상해탈삼매]

비록 감각현실 ○ 내용을 대하고 ■ 이라는 관념분별을 일으켰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일으켰을 뿐이다.
그러나 그 ■ 은 ○ 안에서 얻을 수 없다.

그리고 나머지 영역들과의 관게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먹고 맛이 있다고 여겼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음식을 먹고 맛을 느꼈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고 그 맛이 음식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사정은 그 음식을 10 그릇을 계속 먹게 되면 알게 된다.
이제 그 음식을 먹게 되면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 사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그 상황에서 얻는 ■ 이 실답지 않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비록 현실에서 얻어서 있더라도
그것은 실답지 않은 형태로 있는 것이다.
그것이 침대에 누어 꾼 바다나 황금 꿈의 성격과 같다.

그렇지만, 이런 내용이 그런 ■ 등이 아주 전혀 없다고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없음의 극단에 치우치는 것이 된다.
사정이 그렇지 않다.

꿈을 포함해 어느 영역의 어떤 내용이던 실답지 않다. 
그런데 그런 형태로 그렇게 얻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형태로는 얻어진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의 성격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것이 현실 문제다.

지금 자신이 다리가 부러졌다.
손가락이 끊어져서 피가 솓구친다.
이대로 주면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갖는 본질적 성격이 그와 같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답지 않지만, 이런 고통을
전문적으로 장구하게 당하는 3 악도의 상태를
가능한 미리 예방해야 한다.


그래서 평소 대하는 상황에서부터 망집을 제거해야 한다.
그 망집이 파생시키는 부작용이 대단히 심각하다.
그 단계에서 이를 예방해야 한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그 상황에 그처럼 있다고 잘못 여겨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생사를 윤회하는 과정에 작용하는 근본정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예방단계에서는 생사고통은 현실에서 직접 겪지 않는다. 
그리고 예방단계에서는 1의 노력으로 그런 생사고통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면 결국 업을 행하고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1의 노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고통을
무량하게 증폭시켜 받아나가게끔 된다.
원칙적인 방안이 이 상황에서도 이론상 적용될 수는 있다.
3 악도의 상황 자체도 예방단계의 상황과 그 성격 자체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방단계에서 망집을 제거하기 힘들었다고 하자. 그래서 예방단계에서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수행의 성취가 힘들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사실상 3악도에서 직접 고통을 대면해 겪는 그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 잡담 ♥글 중간작업중 표시 ★%★

현재 과거 조각글 부분을 링크로 연결하고 중복 서술을 피하고자 정리 중이다. 
그런데 정리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이번에 연결시킨 부분도 사정이 비슷하다.
일단 여기까지만 살피고 정리 작업부터 천천히 해나가기로 한다.

최근 ★%★ 를 개발했다. 
이것은 더 살필 내용이 많지만, 사정상 중단한다는 표시다.
다음에 이 표시를 찾아서 이어 살피려는 취지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k0659t0021.html#4136
sfed--불설범망육십이견경_K0659_T0021.txt ☞범망육십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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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4-06-04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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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대장경_안내
 욕심ㆍ성냄ㆍ어리석음. 이 셋은 수행인을 해롭게 하는 것이 가장 심하므로 3독(毒)이라 함.

답 후보
● 탐진치(貪瞋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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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달(通達)
투도(偸盜)
파문(破門)
파사현정(破邪顯正)
팔경계(八敬戒)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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