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야바라밀다경』
K0001
T0220
제45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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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경』 ♣0001-456♧
제45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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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大般若波羅蜜多經卷第四百五十六
K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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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경』 ♣0001-456♧
◎◎[개별논의] ♥ ❋본문
● 법을 얻을 수 없는 가운데 생사현실에 일이 많은 사정
『대반야바라밀다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
▸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온갖 법은 모두가 있지 않아서 성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남이 없고 멸함이 없고 물들임이 없고 청정함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인가 하면 세존이시여,
그것은 반야바라밀다 내지 보시바라밀다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내공 내지 무성자성공이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진여 내지 부사의계가 끝내 멀리 여읜 까닭이며, ◂
...
『대반야바라밀다경』 ♣0001-456♧ 63. 무분별품(無分別品)
여기에서 온갖 법은 모두가 있지 않다고 제시한다.
성품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생멸이 없다고 제시한다.
물들음이나 청정함도 없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입장과 어긋난다.
물론 불교에서는 이를 일반인들이 일으킨 망상분별이라고 제시한다.
여기에서 온갖 법은 모두가 있지 않다고 제시한다.
성품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생멸이 없다고 제시한다.
물들음이나 청정함도 없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입장과 어긋난다.
물론 불교에서는 이런 상식적 입장을 일반인들이 일으킨 망상분별이라고 제시한다.
현실에서는 온갖 법(내용)을 얻는다고 여긴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과 외부세상이다.
평소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외부세상이라고 여긴다.
이런 수많은 것을 얻는다.
그런데 왜 있지 않다고 제시하는가.
현실에서 컵을 손으로 붙잡고 차를 마신다고 하자.
이 상황에 컵이 앞에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컵을 내 손이 붙잡고 있지 않은가.
현실이 이와 같다.
그런데 왜 이 현실에 그런 내용들이 없다고 하는가.
일반적으로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망상 분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경전을 살필 때마다 대단히 많이 반복된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또 대부분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에서 있다고 할 것은 명자 뿐이다.
즉, 경전에서 제시하듯 이러이러한 언설이나 관념분별만 있다.
이 말은 다음 의미다.
감각현실 영역에 얻는 내용을 감각현실○ 이라고 표현해보자.
눈을 뜨면 무언가를 얻는다.
그런 내용이 감각현실 ○ 이다.
한편 자신이 이를 대하면서 각 부분이 무엇이라고 분별을 일으킨다.
이 분별을 관념분별■ 이라고 표현해보자.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이 이를 대하기 이전에 있다고 할 내용을
본 바탕 실재# 라고 표현해보자.
이는 자신이나 자신의 마음과 관계없이도 본래 있다고 할 내용이다.
이 3 영역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에서 온갖 법이 없다고 제시하는 것은 다음 사정을 제시한다.
본 바탕 실재#에서 그런 감각현실 ○ 과 관념분별 ■ 을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 ○ 과 관념분별 ■ 은 한 주체가 그 마음에서 얻어낸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편 감각현실 ○ 에서는 관념분별 ■ 을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 ○ 은 관념분별 ■ 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관념분별 ■ 도 감각현실 ○ 이 아니다.
그리고 관념분별 ■ 에서도 감각현실 ○ 을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 ○ 은 관념분별 ■ 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관념분별 ■ 도 감각현실 ○ 이 아니다.
현실에서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자.
여기에는 분명 나고 드는 내용이 있다.
예를 들어 눈을 감았다가 뜬다고 하자.
그 순간에도 얻지 못했던 내용을 얻게 된다.
현실에서 이런 상황에서 감각현실이 없다가 있게 되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를 생한다라고 표현한다.
또 눈을 감으면 그 내용이 사라진다.
그래서 이를 멸한다라고 표현한다.
눈을 계속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자.
그러면 어느 순간 없던 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있던 꽃이 지는 모습도 보게 된다.
이 역시 생멸한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현실에서 생멸이라고 이해하는 내용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그런 감각 현실 어느 영역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 자체를 얻을 수 없다.
이미 그 사정을 앞에서 밝혔다.
한편 감각현실 ○ 에서는 관념분별 ■ 을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 ○ 은 관념분별 ■ 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관념분별 ■ 도 감각현실 ○ 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대하는 감각현실 ○ 영역에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내용 ■ 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무언가 a 를 그런 감각현실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다시 그 무언가 a 가 생겨난다거나 멸한다고도 할 수 없다.
더욱이 생한다 멸한다는 등은 관념영역에서의 내용일 뿐이다.
감각현실 영역도 그렇지만,
본 바탕 실재 # 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본 바탕 실재 # 에서는 더욱이 감각현실 ○ 이나 관념분별 ■ 역시도 얻을 수 없다.
경전에서 무언가가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런 사정을 제시한다.
그리고 무언가가 없다고 제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지 있다고 할 것은 관념영역에서 그 주체가 일으킨 관념분별 뿐이다.
이 말은 감각현실을 그처럼 얻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는 그런 관념분별을 그처럼 일으키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가 일으킨 관념분별 내용이 다른 영역들에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있는 것이 아님을 제시하는 것이다.
---
과거에 이 내용을 반복해 살폈다.
지금 이 부분을 정리 중이다.
여기서는 그 페이지만 간단히 링크를 걸고 자세한 내용을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나중에 북마크가 생성되면 링크를 만들어 붙이기로 한다.
★★★
관소연연론_K0628_T1624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2562-05-07-k0628-001.html
★★★
★1★
◆vauy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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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0910_133726_nik_ar47.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ablo-picasso-a-simple-meal-1904 ○ 2018_0419_132454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innon_Wat_Phra_Kaew ♡King Ashoka Temple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상세정보=> https://buddhism007.tistory.com/3928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Salvatore Adamo - Partir.lrc Salvatore Adamo - Partir ♥단상♥고가철도의 붕괴 멕시코시티에서 고가철도가 붕괴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터넬과 고가 도로의 나라다. 터넬과 고가도로가 대단히 많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터넬이나 다리는 무너지기 전까지는 무너질 지 안 무너질 지 잘 알기 힘들다. 무너진 다음에 정확히 알 수 있다. 자신이 터넬이나 다리를 지날 때 중간에 무너질 것을 알았다면 건너겠는가. 몰라서 건넌 것이다. 그런데 무너진 다음에는 분명히 알게 된다. 큰 부상을 입고 고통을 받게 된다. 이제 분명히 알았다. 만일 그것을 분명히 안다면, 과거로 돌아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무너지지 않도록 잘 수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보통, 무너진 것을 이렇게 정확히 안 시점에는 위 내용이 큰 효용이 없다. 대부분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 바탕에는 전제와 후제, 즉 앞시간과 뒷시간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시공간 조종 방안에 의해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하자. 그래서 다음처럼 생각한다고 하자. 그래서 모두 큰 사고를 겪은 다음 지금 이 순간대로 다시 되돌아왔다고 생각하자. 그것이 지금이다. 그래서 그것을 막을 수행을 해야 한다. 여기서 사고란 단어가 상징하는 내용이 대단히 많다. 기근, 전쟁, 내란, 폭동, 파산, 질병, 가난, 투옥,. 이런 등등의 내용이 다 해당된다. 지금 그런 내용을 다 경험하고 그것을 다시 없애려고 지금 이 시간대로 되돌아왔다고 생각하자.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좋다. 그것을 잘 이해하면 현재 수행에 전념할 수 있다. 시간대 여행을 이해하려면 녹음 테이프나 하드디스크를 놓고 생각한다. 테이프를 듣는데 2 번째에 무슨 곡이 있었는지 몰랐다. 그런데 대단히 곡이 안 좋다고 하자. 그래서 1번째 곡 끝 부분에 왔다. 그리고 이후 부분을 다시 입히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 시간 이론과 인과이론 인과이론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고 잘못 여긴다.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면 지금 순간도 확정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냥 지금 이 확정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내용도 그대로 있는 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이 극심한 생사고통이라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그냥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른 회피 방안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행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미래는 미리 잘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멀리 잘 알 수 없는 미래로 놓고 살피면 곤란하다. 자신이 미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의하기 힘들다. 그런데 앞 뒤 순간과 지금 순간은 자신이 그 내용을 모두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앞 뒤 순간과 지금 순간을 놓고 이 문제를 이해하면 쉽다. 이 3 순간의 내용이 확정되어져 있다고 하자. 그렇게 여기면 무량겁에 걸친 내용이 모두 확정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 각 순간마다 이 관계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이 시공간대에 있는 생사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어디에도 탈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벗어날 해탈문이 제시된다. 이 내용의 이해를 위해서는 현재 단면에서 어떤 것이 확정되어 있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현재 한 단면을 붙잡자. 현재 한 단면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과 자신 외부세상이다.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외부 세상으로 여긴다. 만일 그렇게 여긴다면 이 현실 단면은 그렇게 확정된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이 현실 한 단면을 붙잡고 그런 내용인가를 살펴야 한다. 오늘 살피는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한다. 『대반야바라밀다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 ▸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온갖 법은 모두가 있지 않아서 성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 『대반야바라밀다경』 ♣0001-456♧ 63. 무분별품(無分別品) 이 현실 한 단면에 그가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이를 앞 부분에서 살폈다. 그가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알고보면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한 내용일 뿐이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평소 계속해서 그것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한다. 현실 한 단면은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본 바탕 실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실의 한 순간 한 단면도 자신이 생각하듯 확정된 것이 아니다. 사정은 그럼에도 자신은 평소 자신이 현실을 대할 때 그처럼 임한다. 예를 들어 평소 자신의 손과 발로 여긴 부분을 여전히 손과 발로 여기고 대한다. 컵이라고 여긴 부분도 마찬가지다. 외부 세상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망상분별이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이다. 수행자가 이 사정을 알아도 이 생사현실에 들어와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이것을 응용해보자. 생사현실에서 누구나 자신이 좋은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 앞에서 제시한 사건 사고를 놓고 생각해보자. 그런 것이 자신에게 있으면 좋겠는가. 또 중생제도 과정에 있으면 좋겠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있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런 내용을 제거되어야 한다. 현실에서 인과를 살핀다. a 와 b 가 있으면 이후 C 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관계를 살핀다. 그런데 현실 한 단면에도 그런 a 나 b 나 C 를 얻을 수 없다. 다만 그가 감각현실을 대하면서 각 부분이 그런 a 나 b 나 C 라고 여기는 것 뿐이다. 그래서 이것은 꿈처럼 실답지 않다고 제시한다. 꿈에서 꿈꾸면서 그 상태에서 황금이나 바다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현실을 대하는 이들이 대부분 이처럼 현실에 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컵이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옆에 있는 영희나 철수가 손으로 일정 부분을 가리킨다. 그것은 제각각의 감각현실의 일정 부분이다. 그런 부분에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임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을 받아나간다. 이것이 문제다. 그 입장에서는 자신이 컵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그 부분은 컵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입장에서는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그 부분에 들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그렇게 손으로 가리킨 것이다. 이것이 현실에서 망상분별에 바탕해 상을 취해 임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상을 취하면 이에 바탕해 생사윤회가 진행된다. 그런 바탕에서는 a 와 b 가 있으면 이후 C 가 나타나게 된다고 여기게 된다. 그가 처음 일정부분을 a 와 b 또는 C 로 여기고 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부분들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가 가리킨 부분이 전혀 내용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부분들은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경전에서 반복해 제시하는 내용도 이 부분이다. 그는 사실 앞 뒤 현실 단면이 서로 같고 다른지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그가 매순간 일정부분을 그처럼 a 와 b 또는 C 로 여기고 대한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런 증상을 대다수가 함께 일으키고 현실에 임한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는 그런 관계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하나 내용이 실답지 않다. 즉 그가 가리킨 각 영역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다만 그러그러한 내용을 얻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그러한 내용을 그가 매순간 a 와 b 또는 C 로 여기고 대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이 사정을 꿈과 같다고 제시한다. 그가 꿈을 꾸며 침대에 놓인 베개를 황금이라고 여기고 붙잡는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생각하는 황금은 현실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베개를 황금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현실에 침대와 베개도 있다. 꿈에서도 바다나 황금을 생생하게 꾸었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그가 꾼 그 내용은 현실의 침대나 베개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놓고 꿈은 실답지 않다고 표현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실도 마찬가지다. 그가 있다고 생각하는 각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다. 더욱이 본 바탕 실재에서도 얻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그가 매 순간 무엇무엇이라고 여기면서 현실을 대하고 있는 것 뿐이다. 이 상황이 문제다. 실답지 않는 내용이 어떤 현실을 이처럼 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질문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여기게 되는 본 사정이 위와 같다. 한 단면에서도 확정적으로 있는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망상에 바탕해서 그렇게 현실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대하는 것이다. 이제 생사현실에 임한 수행자가 이 사정을 놓고 다시 이 생사현실에 들어와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이것을 응용한다고 하자. 이 때 필요한 것이 보리심이다. 본 바탕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에서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각 중생은 그렇게 여기며 생사을 받아간다. 따라서 안타깝다. 그래서 이들을 자비심을 바탕으로 제도하고자 생사현실에 임한다. 그래서 서원을 일으켜 생사현실에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반야바라밀다다. 그 양 측면의 사정을 그처럼 관하고 현실에서 중생을 대해야 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중생이 있다고 여기는 생사고통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본 바탕의 측면이나 감각현실 측면, 그리고 관념분별 영역에서 그런 문제는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본래 니르바나다. 즉 생사고통을 벗어난 상태다. 그러나 앞처럼 망상을 일으키면 그런 니르바나가 곧 그에게는 생사고통이다. 그래서 본 바탕 사정을 잘 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중생을 제도하려면 그 안에서 다른 중생들을 제도할 수단 방편을 갖춰야 한다. 그것은 곧 복덕 자량과 지혜자량이다. 이것을 생사현실에서 갖추어야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중생들이 관하고 여기는 측면에서 계의 덕목을 성취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지혜자량을 구족해가야 한다. 그리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이 모든 내용이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필요한 내용들이다. 그렇지만, 본 바탕의 측면에서는 앞과 마찬가지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laude Francois - Ya Le Printemps Qui Chante.lrc Claude Francois - Ya Le Printemps Qui Chante 앞과 같이 내용을 제시하면 대부분 다음 의문을 일으킨다. 나는 지금 생각한다. 그것도 앞과 같이 생각한다. 즉 상식적인 입장에서 다음처럼 생각한다. 내가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나다. 그리고 내가 컵이나 꽃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컵이고 꽃이다. 내가 손을 뻗어 붙잡으면 그런 부분이 붙잡힌다. 그리고 내가 움직이고자 하면 나라고 여긴 그 부분이 움직인다. .. 그래서 내가 평소 생각한 내용이 옳다. 이렇게 여기게 된다. 그런 부분이 나 자신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활동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활동하는 것은 있지 않은가. 이런 등등으로 망상분별을 증폭시켜 나간다.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할 경우에도 이와 상황이 같다. 그것을 살피기 위해서 『관소연연론』에서 여러 내용을 함께 살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먼저 간단히 이 내용을 살펴보자. [img9] 08pfl--image/8식-9.jpg 1! 2! 3! 4! 5! 는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들이다. 6@ 는 이런 내용을 얻는 가운데 각 부분에 대해서 분별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분별을 행할 때 이들 내용을 동시에 행하고 얻기도 한다. [동연의식] 또는 분별만 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눈을 감고도 분별은 행할 수 있다. 그래서 감각현실과 분별을 구분할 수 있다. 현실에서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영역이 6@ 이다. 그런데 그것은 생을 출발하기 이전에 7@ 영역에서 일으킨 망상분별이 바탕이 된다. 현실에서는 눈으로 본 감각현실 가운데 a! 부분 같은 것을 대하면서 그것을 자신이라고 스스로 여기게 된다. 자신이 움직이고자 하면 이 부분이 따라 움직인다. 매번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부분을 손으로 만지면 양 부분에서 촉감을 얻게 된다. 즉 그런 모습을 1! 부분에서 보게 될 때 5! 부분에서 동시에 촉감을 얻는다. 그러나 1!의 시각내용이 5!의 촉각을 일으키는 관계에 있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동시에 함께 일어나는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다. 여하튼 이런 사정으로 a! 와 같은 부분을 스스로 자신의 몸이라고 여기면서 현실에 임한다. 이것이 망상분별이다. 그런 망상분별이 6 @ 영역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업을 행한다. 그래서 이런 바탕에서 생사현실에 임한다. 이것이 욕계내 상황이다. 욕계란, 그런 망상분별에 바탕하는 세계다. 본래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1! 2! 3! 4! 5! 라는 감각현실 영역에서 얻을 수 없다. 더욱이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마치 꿈에서 보는 황금이나 바다가 현실의 침대나 베개에 없는 것과 사정이 같다. 현실이 이와 같다. 그럼에도 한 주체는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고 그런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러면 그가 생각하는 내용이 그처럼 생사현실에 있다고 여기며 임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여기면서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을 그처럼 있다고 계속 생각하면서 임하는 세계가 욕계가 된다. 현실에서 상을 취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현실에서 이런 망상분별은 위 그림과 같은 정신구조와 기제에서 발생한다. 망식이 일어나는 구조다. 현실에서 예를 들어 a! 와 같은 부분을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다고 하자. 그렇게 여기게 되는 배경 사정은 위와 같다. 그런 정신구조와 기제에서 그렇게 임하게끔 된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정작 a! 부분에는 얻을 수 없다. 오히려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과 비슷한 부분은 차라리 7, 8 부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 생에서 그리고 생사과정을 통해 계속 유지되면서, 이어지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부분도 그가 생각하는 그런 분별 내용 자체는 아니다. 또 그런 영역에 그런 분별 내용은 얻을 수 없다. 또한 이들은 꿈과 다른 참된 진짜의 내용도 아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도 역시 집착을 갖고 임하면 곤란하다. 다만 그런 영역에서 그런 구조와 기제로 현실에서 그처럼 망상 분별을 일으키게 되는 바탕이 된다. 결국 현실에서 한 주체가 있다고 여기는 각 내용은 이런 구조와 기제에서 일으키는 망상안에 존재한다. 수행자는 본 바탕의 사정과 함께 생사현실의 이런 사정을 함께 잘 파악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생사현실에 임해서 생사고통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또 생사현실에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고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5/2565-05-06-k0001-456.html#1522 sfed--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txt ☞제456권 sfd8--불교단상_2565_05.txt ☞◆vauy1522 불기2565-05-06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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