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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30일 일요일

불기2565-05-30_아차말보살경-k0070-007


『아차말보살경』
K0070
T0403

제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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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아차말보살경』 ♣0070-007♧




제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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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개별논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阿差末菩薩經卷第七

K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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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말보살경 제7권



서진 월지국 삼장 축법호 한역

이진영 번역



ᖰ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보살이 수행하는 7각의(覺意) 또한 다함이 없으니, 

그 일곱 가지란, 

첫째는 뜻의 각의이고, 

둘째는 법의 각의이며, 

셋째는 정진의 각의이고, 

넷째는 기쁨의 각의이며, 

다섯째는 믿음의 각의이고, 

여섯째는 선정의 각의이고, 

일곱째는 옹호의 각의입니다.  ᖱ 


그 뜻의 각의가 무엇인가 하면, 

법을 사색하기 위해 경전을 관찰하되 올바른 생각으로 경전의 법에 들어가 그 뜻을 한결같게 하여 법의 모습이 아닌 깨달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모든 법에 모습이 없는가 하면, 

그 모습이 원래 다 공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는 것이, 

뜻의 각의입니다.


그 법의 각의가 무엇인가 하면, 

8만 4천의 모든 법장(法藏)을 분별하여서 

이치에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은 법과 이치에 멀고 가까운 법과 청정하고 심오한 법을 가려서 취하는 것입니다. 

또 가장 으뜸이 되는 이치의 법을 깨닫되, 

그 법이 화합하고 흩어지는 것과 해결되고 해결되지 않는 것과 같은 온갖 법의 처음과 끝을 다 알아서 가려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의 각의입니다.


그 정진의 각의가 무엇인가 하면, 

이러한 뜻으로 법을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의 힘과 성스러운 지혜를 거두어 취하고, 

미묘한 힘으로 더욱 굳건한 의식에 머물러서 능히 방해하지 못하니, 

이러한 평등한 행을 닦아 정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진의 각의입니다.


그 기쁨의 각의가 무엇인가 하면, 

법을 사랑하고 즐기는 믿음이 돈독하여 법을 여의지 않는 동시에 항상 기쁨에 잠겨 겁약하지 않음으로써 몸ㆍ입ㆍ뜻이 안정이 되어 힘써 도의 법을 생각하고 번뇌와 애욕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쁨의 각의입니다.


그 믿음의 각의가 무엇인가 하면, 

그 몸과 마음을 영원히 여의고자 하는 굳은 신념으로 모든 번뇌와 애욕에서 벗어나 다만 고요한 마음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각의입니다.


그 선정의 각의가 무엇인가 하면, 

선정에 듦으로 말미암아 모든 법을 깨우치되 분별의 바른 지혜로 정진을 더하여 온갖 전도된 소견을 끊을 뿐만 아니라, 

나라든가 사람이라든가 중생이라든가 하는 생각이 없음을 깨달아 모든 법의 평등한 경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정의 각의입니다.


그 옹호의 각의가 무엇인가 하면, 

법계를 분별하고 사유하여 마음이 가는 대로 내닫지 않고 세속의 법에 의지하지 않으며 마음이 한량없는 것입니다. 

또 세속의 법에 미혹되지 않고 거짓된 것에 머무르지 않으며 동요함이 없고 기쁨과 슬픔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바른 길을 얻어 유순한 법의 지혜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옹호의 각의입니다.

이와 같이 7각의(覺意)는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또 8정도(正道)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첫 번째, 

바른 견해[正見]가 무엇인가 하면, 

세간을 제도하는 성현이 나라든가 사람이라든가 수명에 의지하는 소견을 버리고,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소견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공덕의 근본에 머물지도 않고, 

그밖에 예순두 가지 삿된 소견에 빠져서 의심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견해입니다.

두 번째, 

바른 생각[正念]이 무엇인가 하면,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ㆍ번뇌의 고통들은 범부들이 생각하는 것이고, 

보살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 

오직 보살은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지견(解脫知見)을 생각하여 법품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도의 이치를 생각하고 그 뜻을 한결같게 하여 마음에 삿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른 생각입니다.

세 번째, 

바른 말[正語]이 무엇인가 하면, 

말을 하는 데 있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드러운 말로 하되 거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또 이러한 가르침을 널리 연설하여 성스러운 도에 들어가게 할 뿐, 

잡담이나 이롭지 않은 말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른 말입니다.

네 번째, 

바른 수행[正治]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수행을 죄와 복에 두지 않고 오직 평등한 이치에 따라 올바른 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수행입니다.

다섯 번째, 

바른 업[正業]이 무엇인가 하면, 

성현의 말씀에 환희심을 내고 만족함을 알아서 절도를 잃지 않으며 이익을 내는 것을 탐하지 않고 간사한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또 그 마음이 방일하지 않아서 곧 도를 닦아 훌륭한 위의를 기르고, 

다른 사람이 얻은 공양물을 보게 되더라도 질투하지 않으며 자신이 얻은 공양물에 대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즐겁게 받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수순하여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업입니다.

여섯 번째, 

바른 방편[正便]이 무엇인가 하면, 

방편을 닦되 바른 가르침을 따를 뿐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ㆍ애욕에 물들지 않고 항상 이러한 것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또 함이 없는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좋아하여 항상 이러한 것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방편입니다.

일곱 번째, 

바른 뜻[正意]이 무엇인가 하면, 

항상 그 뜻을 진리에 두어서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고 생사의 환란을 다 벗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이 없는 길과 참된 길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뜻입니다.

여덟 번째, 

바른 선정[正定]이 무엇인가 하면, 

선정으로 말미암기에 곧 평등하고 이로 말미암기에 모든 법이 다 평등한 것입니다. 

또 바른 선정에 들기에 평등함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니, 

만약 보살이 이 선정에 머무르게 된다면 모든 중생들을 평등이 제도하여 바른 지혜를 벗어나지 않게 합니다. 

이것이 바른 선정으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들도 다 이 길을 따랐으니, 

어떠한 보살이라도 이러한 가르침에 수순하여 배우고 널리 설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8정도(正道)의 다함 없는 것입니다.”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고요히 법을 관찰하는 것 역시 다함이 없습니다.

어떠한 것이 고요한 것인가 하면, 

그 마음이 담담하고 적막하므로 모든 감관이 산란하지 않아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또 그 마음이 안온하여 성급하지 않으므로 순리에 맞아 조용하고 마음을 거슬리는 생각을 버리며, 

한 가지 이치에 잠겨서 온갖 번잡함을 버립니다. 

또 그 몸이 고요하고 적막한 곳을 좋아하므로 마음도 산란함이 없어 조용한 곳에 머물고자 합니다.

또 온갖 사악함이 없으므로 그 허물을 숨기려하지 않고,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만족할 줄 알며, 

그 성품이 청정하여 위의를 다 갖추었으므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때를 알아서 거동하므로 가르침에 따라 공양을 받게 됩니다. 

또 공덕의 힘을 다 지니더라도 스스로 훌륭한 체 하지 않고, 

명성을 바라지 않더라도 그 공훈이 멀리 들리며, 

그 마음은 한적한 곳에서 선정에 드는 것을 좋아하더라도 자비심을 일으켜 그것을 행합니다. 

또 환희심으로 받들어 관찰하여서 제1의 선정에서부터 제8의 부사의한 선정의 문에 듭니다. 

이것이 고요한 것입니다.

또한 그 고요함의 업도 한량이 없으니, 

만약 이 업을 능히 통달하면, 

이것을 일컬어 고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찰이라고 하는 것은, 

분별의 지혜로써 도를 받들어 행하되 나라든가 사람이라든가 수명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며, 

5음(陰)과 4대(大)를 관찰하고 6쇠(衰)를 마치 허공처럼 관찰하는 것입니다. 

또 12연기(緣起)에 대해 분별하고 관찰하여서 혼란이 없고 모든 견해를 여의고 모든 인과응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그 인연의 과증(果證)으로 말미암아 바르고 참된 도에 들어가 모든 성스러운 지혜를 체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관찰이라고 하는 것은 평등한 법의 눈으로 모든 법을 보되, 

진리 그대로를 관찰할 뿐 다른 법을 보지 않으므로 공ㆍ무상ㆍ무원의 해탈문에 들어가며, 

어떤 처소를 보거나 생멸을 보지 않으므로 전도된 소견과 망령된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 소견이 없어 영원히 소견이 없고, 

어떤 것을 보더라도 본다는 소견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리 그대로를 보기 때문에 곧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우치게 되고, 

이와 같이 보기 때문에 보살인 것이니 허무한 행에 빠지지도 않고 바른 행에 머물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관찰인 것입니다. 

이러하기에 곧 이것을 일컬어, 

보살이 고요히 법을 관찰하는 것 역시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행에 빠지거나 집착하지 않고, 

바르게 관찰할 수 있으므로, 

보살이 관찰하는 고요한 마음이란 끝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아차말이 다시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다라니[總持]의 변재[辯] 또한 다함이 없습니다.

다라니라고 하는 것은, 

공덕의 근본을 쌓는 것이니, 

큰 업을 성취하기 위해 8만 4천의 그 많은 법장(法藏)을 다 외우고 받아 지니더라도 정진하는 것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또 다라니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법을 연설하는 것을 다 받아 지니니, 

성문ㆍ연각ㆍ보살의 대중과 일체 중생들의 문자와 말로써 법의 이치를 설하여도 다 능히 압니다. 

이것이 다라니입니다.

또 가령 겁화(劫火)로 온 천지가 타버리는 재난이 닥쳐서 수명이 끝나고, 

보살 역시 이러한 재난을 당하더라도 마음속에 간직한 다라니만은 잊어버리거나 미혹되지 않으니, 

그 성스러운 지혜의 눈으로써 모든 법을 마치 손바닥 보듯이 관찰합니다. 

이러한 다라니 역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또 변재가 다함이 없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이른바 변재라고 하는 것은 걸림이 없이 말하는 것입니다. 

즉, 

때에 맞아 이를 막을 이가 없고, 

사리에 통달하여 이를 방해할 이가 없으며, 

언변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갑자기 질문을 받더라도 묻는 대로 대답하고, 

그 근기에 따라 설법하니 마치 흘러가는 물처럼 막히지 않습니다. 

이 변재는 전생에 청정한 수행을 닦은 과보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부처님의 가호와 모든 천인들의 호위를 받습니다. 

또 연설함에 있어서 끝내 당황하지 않고 장애가 없어 함이 없는 도로 나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변재를 다 갖추고도 더욱 겸손하게 낮추어서 사람들의 근기에 맞게 설법하기 때문에, 

설법을 듣는 이마다 각각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것을 얻습니다. 

또 누가 와서 질문을 하게 되면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그 사람의 근기에 알맞게 설법하여 다 환희심을 내게 하고, 

전생 때부터 인간으로 태어난 그 몇 겁(劫)에 걸친 유래를 설명하여서 진정한 성품에 돌아가게끔 쉴새없이 모든 경전을 다 널리 설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곧 보살의 변재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또 보살은 일체의 법을 연설함에 있어, 

만물을 다 무상(無常)하고 나의 것이 아닌 것으로 돌리니, 

그 지혜로운 연설 또한 다함이 없습니다. 

또 보살은 일체가 다 괴로운 것이고 모든 법에 나[我]가 없음을 말하니, 

이러한 변재 역시 다함이 없습니다.

이른바 무상(無常)의 이치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일의 처음과 끝을 관찰하여서 다 무상하고 일정한 법칙이 없는 것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또 무상하지 않게 할 수 없는 것이고 시종 이래로 무상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상의 이치라고 합니다.

이른바 괴로움의 이치라고 하는 것은, 

비록 즐거움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다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고 현재의 원(願)도 오래도록 지속되지 않으며, 

지금 말하는 온갖 괴로움도 다 허무하게 됩니다. 

그 허무함이라는 것은 역시 공허하여 실제가 없는 것입니다. 

허무함은 곧 괴로움의 이치로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또 나[我]가 아닌 것이란, 

시작도 끝도 없이 나에게 나가 없는 것이고, 

그것 역시 비어 있어서 실제가 없는 것입니다. 

공함과 공의 이치를 헤아려 보면, 

다 나가 없습니다.

또 고요함의 이치라고 하는 것은, 

고요함에 고요함이 없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해탈이라고 하는 것도 담박(澹泊)함에 또한 담박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요함입니다. 

이른바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고요함을 닦아 일체의 생각을 지우는 것으로 일체의 생각을 지우고 나면, 

이것을 일컬어 열반의 고요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고요함의 이치인 것입니다.

이처럼 보살이 행하는 그 4제(諦)의 법 역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또 보살은 한 가지의 도를 항상 닦을 뿐 다른 행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 한 가지의 도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보살이 홀로 뛰어나 비할 자가 없게 되면, 

오직 그만이 위없이 바른 진리를 성취하여 최정각(最正覺)을 이루게 됩니다.

또 보살은 이 도를 닦는 데 있어서, 

큰 공덕의 갑옷을 입고 스스로 정진하여서 끝없는 세력을 갖추게 되면, 

비로소 자신이 독립하여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모든 세속의 힘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거닐게 됩니다. 

또 견고하고도 비상한 공덕의 갑옷을 입고서 일체의 중생들을 교화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교화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모든 성현들의 성스러운 가르침과 보살의 가르침으로써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이 바로 교화인 것입니다. 

또 보살은 보시ㆍ계율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의 6도무극을 반려(伴侶)로 삼아 수행하되, 

그 6도무극에 집착하지 않고 받들어 수순합니다.

또 부모ㆍ국왕ㆍ중생ㆍ3보의 4은(恩)을 반려로 삼아 보답하되 그 4은을 보답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약하여 말하면, 

보살 자신은 모든 공덕의 근본을 건립(建立)함으로써 그 공덕 이외에 다른 반려 없이 금강장(金剛場)에 머물며 자신만의 힘으로 모든 마군의 항복을 받아서 끝내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성취하여 최정각을 이룹니다. 

이것이 보살의 한 가지의 도로서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아차말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뛰어난 방편 또한 다함이 없습니다.

그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께서 때에 맞추어 중생들에게 도의 법으로 교화하되 방편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도의 마음에 가까이 가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허공처럼 그지없는 중생들의 성품에 따라 때때로 교화하여서 가장 뛰어난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보시ㆍ계율ㆍ인욕 등의 모든 도무극을 구족하여서 중생들로 하여금 몸ㆍ입ㆍ뜻의 행을 기르게 하고 정진하는 것을 그만둠이 없이 부처님의 도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뛰어난 방편이 없다면, 

정진하는 것을 그만 두게 되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스러운 지혜에 나아갈 수 없고, 

생사의 환란을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또 뛰어난 방편의 자비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중생을 기르고 보호하여 어질지 못한 점은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에 허덕이는 그 일체 중생을 다 교화하는 것에 싫증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의 기뻐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안락하지 못한 중생들을 다 고뇌에서 벗어나 안락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의 옹호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공덕의 근본을 닦아서 중생들로 하여금 물러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의 천안(天眼)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10안(眼)을 얻어 그 가없는 시방을 두루 다 살펴보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의 천이(天耳)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10이(耳)를 얻어 그 마음이 생각하는 대로 시방의 음성을 다 듣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란, 

중생들의 근기를 살펴서 그 처음과 끝을 환히 아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의 과거의 일을 아는 것이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3세(世)의 일을 환히 아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란, 

그 시방 국토에 이르는 것에 한계가 없고 이르는 곳마다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들의 성품을 알아서 방편으로써 그에 따라 중생들을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들의 상(相)에 대해 처음과 끝을 환히 알아서 시종 수행해야 할 일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중생들을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이르게 해 주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세간에 들어가 중생들을 교화하여 그 모든 애욕과 번뇌를 제거해주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5음(陰)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에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해 주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유한한 행과 말로써 헤아릴 수 없는 경전들을 중생을 위해 널리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낮은 근기를 가진 자들에게 수승한 근기를 성취하게끔 권유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때를 아는 것으로, 

때가 아닐 때에는 더하고 덜하고 나아가고 물러남이 있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삿된 길에 들어서 그 길에 머무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바른 길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보잘것없이 하찮은 것을 크게 변화시키고, 

큰 것을 더욱 크게 하여 한계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증오하여 싸우는 자들을 화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소승에 머물고 있는 무리들로 하여금 미묘한 대승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생사에 허덕이는 중생들로 하여금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얽매임과 번뇌의 그물에서 풀어 주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번뇌의 마음을 제거하고 인욕(忍辱)에 뜻을 두게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고요한 경지에 머물되 없다[斷滅]는 소견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의 수행을 갖추어 위의와 예절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중생들을 살펴서 계율을 더럽히지 않고 항상 그것에 수순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감싸안아서 다툼이 없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도를 크게 일으켜서 시방에 널리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삼계에서 홀로 뛰어나 근심걱정과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함이 없는 행으로 해탈문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세간에 있더라도 물들지 않고 현명하지 못한 행실은 버리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도와 더불어 있어서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함이 없는 경지에 있더라도 이것을 버리고 능히 생사에 들어가 중생들의 온갖 환란을 구제해 주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마군의 경계에 들어가 모든 번뇌와 애욕의 근본을 비추어 주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를 헤아려서 일체가 없더라도 또한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일컬어 곧 보살이 행하는 뛰어난 방편은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이 뿐만 아니라, 

보살이 행하는 여든 가지 법의 품(品) 또한 다함이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이 다 여기에 연유하여 나오기에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아차말보살이 이 모든 법문을 설할 때에, 

이제까지 그 마음을 내지 못했던 7만 8천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내었고, 

5만 2천 명의 보살들이 다 무생법인을 얻었으며, 

그 밖의 일체 대중들이 함께 갖가지 꽃ㆍ향ㆍ보배 일산을 받들어 여래ㆍ지진과 아차말보살에게 공양하는가 하면, 

허공에서는 모든 천인들이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며 다음과 같이 높은 음성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무수한 겁(劫)이래로 공덕의 근본을 쌓아 스스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일체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셨네. 

그 인연으로 이제 아차말보살이 한량없는 경전의 이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널리 설하니, 

어떤 사람이라도 이 한량없는 경전의 이치를 듣게 된다면 그것이 다함이 없을 것이고 의혹을 품지도 않으리라. 

또 외우고 받아 지녀서 널리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부처님의 말씀을 독실히 믿는 그 공덕으로써 한량없는 경전의 이치를 체득하게 되리라.”

그때 부처님께서 아차말보살에게 자신이 옷을 벗어 주시자, 

모든 대중들이 역시 때를 같이하여 아차말보살을 찬양하였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아차말보살이여, 

이 경전을 쾌히 설하였구나. 

여래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그것을 권유하고 기뻐하시니, 

시방 항하사[江沙] 세계의 현재 부처님들께서 다 같이 칭찬하시리라.”

아차말보살 또한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옷을 그 이마 위에 올려 받들고서 찬탄하며 말하였다.

“제가 세존의 옷을 밤낮으로 받들어 섬김으로써, 

이 천상과 세간 사람들로 하여금 다 세존께서 옹호하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입게 하겠나이다.”

그러자 때마침 시방의 불국토로부터 보배 옷ㆍ보배 깃발ㆍ보배 일산 따위가 저절로 이르러 아차말보살의 머리 위를 덮는가 하면, 

그 보배 옷ㆍ보배 깃발ㆍ보배 일산 가운데에서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려 왔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아차말보살이여, 

이 한량없는 법문을 쾌히 설하였으니, 

시방의 부처님들께서 다 같이 칭찬하시리라.”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지금의 이 옷ㆍ보배 깃발ㆍ보배 일산들은 어디에서 와서 이러한 음성을 내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이것은 아차말보살이 일찍이 중생들을 교화하되, 

그들로 하여금 다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의 마음을 내어 제각기 시방에서 정각을 성취하게 하였기에 비롯된 것이니라. 

그래서 시방에 계시는 여래께서 보살의 공덕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일부러 이러한 옷ㆍ보배 깃발ㆍ보배 일산을 보내어 큰 모임에 법을 선포하고 또 경전을 공양하기 위해 아차말보살의 머리 위를 덮은 것이니라.”

그때에 대중들이 이러한 변화를 보고 나서 곧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 

더욱 더 아차말보살을 공경하여 뛸 듯이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우리들의 과거세 인연이 두터워서, 

이제 아차말보살을 만나 그에게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이 설법을 듣게 되었으니, 

참으로 한량없는 복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아차말보살의 명호만을 듣더라도 그 복이 한량없거늘, 

하물며 직접 만나보고서 경전의 법을 들은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또한 큰 성인이신 부처님께서도 그를 칭찬하고 권유하셨는데 하물며 우리 범부들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어떤 족성자(族姓子)와 족성녀(族姓女)가 보살승(菩薩乘)을 배우기 위해 한 겁 동안을 세간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하되, 

그가 가진 것을 다 부처님께 보시하고, 

계율을 받들어서 파괴하거나 훼손하지 않고, 

온갖 사람들의 괴롭힘과 위해를 다 참아 견디고, 

중생들을 위해 정진하기를 마치 불붙은 머리카락을 끄듯이 하고, 

한결같이 선정을 닦아 그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고, 

지혜롭게 관찰하여 그 때를 잃지 않는 등, 

이와 같이 한 겁이 지나도록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공경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것에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만약 다른 족성자나 족성녀가 이 경전을 듣고서 돈독히 믿어 받아 지니고 받들어 행함으로써 나아가거나 물러나거나 간에 항상 마음에 간직하여 부처님께서 찬탄하신 이 6도무극을 다 갖춘다면, 

이 사람은 곧 위없는 진리의 도를 문득 성취할 것이다.

왜냐 하면 만약 어떤 보살이 이 경전을 배워서 스스로 발심하게 되면, 

‘내가 이 경전을 배워서 구족한 뒤에 다른 사람을 위해 두루 연설하리라’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일컬어 시도무극(施度無極)을 다 구족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경전을 받들어 지니는 것은 온갖 보시 가운데 부처님의 도에 가장 가까운 법 보시를 헤아리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또 계율을 구족하고 6도무극을 닦아서 번뇌의 짐을 지는 것이 없으면 온갖 행에도 단 하나의 번뇌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것을 일컬어 계율도무극이라고 하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이 만약 모든 계율을 다 갖추어 이 경전을 널리 설하게 되면 일체의 중생들이 능히 일컬을 수 없으니 공덕의 공훈을 따를 자가 없기 때문이니라.

또 만약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게 되면 온갖 사람들의 괴롭힘과 해침을 당하더라도 마음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이 경전의 법만을 읽고 외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 그 수행의 지혜를 다 널리 설하니, 

인도무극(忍度無極)을 구족하게 얻기 때문이니라.

또 항상 그 몸ㆍ입ㆍ뜻에 대한 정진을 행하되 일체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일찍이 게으르거나 쉬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진도무극(進度無極)이라고 하느니라. 

또 오직 이 경전에만 힘을 쓰기에 한결같이 선정을 닦아 그 선정을 산란하게 하지 않으니, 

이것이 적도무극(寂度無極)이니라. 

또 이 경전으로 말미암아 현재의 모든 지혜를 관찰함으로써 그 이치를 깨달아 나아갈 곳을 알고 행하니, 

이것이 지도무극(智度無極)이니라.

그러므로 사리불아, 

이 경전을 치밀하게 배우는 이라면 그는 곧 조그마한 행으로 인하여 보살의 6도무극을 다 구족하게 되고, 

또 이러하기에 마땅히 그것을 관찰하게 되느니라. 

다시 말하면, 

어떠한 보살이라도 이 경전을 읽고 외워 마음에 간직하거나, 

대나무나 비단 위에 써서 경전으로 만들게 되면 그 일체의 법을 다 거두어 지닐 수 있느니라.

또 부처님의 경전을 항상 손바닥으로 받들므로, 

가령 4대(大)의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더라도 누가 다른 위력(威力)을 더하여 그의 도의 마음을 방해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이 경전을 보살의 인(印)이라고 하기 때문이니, 

보살은 마땅히 이러한 인을 구하느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이 인을 받들게 되면 일체의 법을 능히 다 따르고 받들게 되리라.”

그때 사천왕(四天王)이 그의 시종들과 함께 갖고 있던 무기를 다 한쪽에 밀쳐 놓고는 합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 사천왕도 부처님의 제자들로서 도의 자취를 얻었으므로, 

이 경전을 받들어 지니고 외우는 족성자와 족성녀들을 앞뒤로 둘러싸 호위하고 공양하되, 

마치 부처님을 모시는 것과 같이 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법이 다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어 제석천(帝釋天)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이 지금까지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것이 거의 백천 번이나 되지만, 

이처럼 의심을 남김없이 완전히 깨우쳐 경전의 이치를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또 저희들이 옛날 도리천(忉利天)에서 자주 경전을 듣기는 했지만, 

아직 이러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국토의 도시ㆍ촌락 그 어느 곳에서라도 이 경전을 선포하는 자가 있다면, 

저희들이 그 처소에 나아가서 설법을 듣는 동시에 법사를 옹호하되, 

그 기력을 더욱 증장시키고 용맹정진하여 두려워하지 않게 하며, 

변재(辯才)를 날카롭게 하고 홀로 걸어도 두려움이 없게 할 것이니, 

만약 족성자가 대중 속에 홀로 있거나 외진 곳에 떨어져 있더라도 두려움 없이 이 경전을 널리 선포하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제석천이여, 

만약 그와 같은 용감한 뜻으로 법사를 옹호한다면 법사로 하여금 어떤 어려움 없이 용맹 정진하는 힘을 더하게 하리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제석천이여, 

법사에 대한 옹호가 곧 경전을 옹호하는 것이고 경전에 대한 옹호가 곧 일체 중생을 옹호하는 것이니라.”

이어 범천(梵天)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저희들은 마땅히 범천의 안락함을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선정의 평등한 마음으로 경전을 널리 설하는 저 법사의 처소에 나아가 법사를 옹호하고, 

네 가지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내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이 범천과 권속들이 대중의 모임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겠습니다.

그 상서로운 네 가지란, 

첫째가 미묘한 광명을 보게 하는 것이고, 

둘째가 하늘의 향기를 맡게 하는 것이며, 

셋째가 설법하는 법사의 음성이 유창하여 거리낌이 없게 하는 것이고, 

넷째가 법구의 이치를 서로 어긋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그 네 가지입니다.

또 이 경전을 널리 설함에 있어, 

마음에 잊어버림이 없고 변재가 더욱 지혜로워져서 모임의 대중들이 다 법사를 시험하려고 해도 어지럽게 할 수 없게 하겠습니다. 

또 이들이 법을 생각하고 한결같이 경전을 듣게 하겠습니다. 

또 이 네 가지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냄으로 말미암아 이 범천과 권속들이 대중의 모임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겠습니다.”

그때에 마왕 파순(波旬)이 또한 부처님 앞에 나와 아뢰었다.

“이 경전으로 말미암아 저희들처럼 미약하고 용렬한 자는 모든 세력을 다 잃게 되리니, 

만약 보살들이 이 경전을 듣고 기별[受決]을 받게 되면, 

그가 노니는 곳마다 온 국토의 백성들이 마치 부처님을 대하듯 우러러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저도 이제 아차말보살의 그 성스러운 위신력(威神力)을 보았기에 스스로 훌륭한 체하는 온갖 거만함을 버림은 물론, 

앞으로는 이 경전을 옹호하기 위해 법사를 돕겠습니다. 

또 이제부터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감히 어기지 않게 스스로를 다스림과 동시에 이 경전이 유포되는 곳을 따라 다니며 더욱 유포시키되, 

감히 방해하거나 어지럽히지 않겠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마땅히 이 경전을 받아 간직하여 부지런히 읽고 외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 널리 설함으로써 이러한 바른 법을 영구히 존속하게 해야 하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경전의 법을 받아 간직하고 읽고 외워서 통달할 수 있지만, 

다른 여러 보살처럼 널리 유포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가만히 있어도 되느니라. 

이제 이 모임의 보살 가운데 바른 법을 널리 유포시키고 옹호하여 큰 교화를 일으킬 그러한 사람이 있느니라.”

그 때, 

그 모임에 있던 60억의 보살 대중들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가 바른 법을 옹호할 것을 부처님 앞에 아뢰었다.

“큰 성인이신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다 함께 이 경전의 대회법품(大會法品)을 받들어, 

수시로 시방의 부처님세계와 이 사바세계에 두루 유포하여서 그 은혜로움을 입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미륵(彌勒)보살이 법왕의 경전을 보다 더 널리 선포함으로써,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라도 5탁(濁)의 말세에 처해 있는 보살들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울 때에 그 모든 것이 다 미륵보살이 건립(建立)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여러 보살들을 칭찬하셨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여러 보살들이여, 

너희들이 바른 법을 옹호하기 위해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 맹세하는 것을 보니, 

시방 항하사세계의 부처님의 바른 법이 널리 유포되리라.”

그때에 아차말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큰 성인께서 용서해 주시길 바라옵니다. 

지난번에 제가 경전을 설하기는 했지만, 

워낙 미약하고 지혜가 얕아 그 법구의 이치를 풀이함에 있어서 혹 갖추지 못한 것이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부처님께 귀의하여 저의 잘못을 바로 잡는 동시에, 

여러 보살들로 하여금 그 다함 없는 법을 받들게 하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아차말보살에게 대답하셨다.

“지난번에 그대가 설한 법구의 이치는 그 절차를 어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걸림이 없었다. 

만약 보살이 어떠한 번뇌도 없다면, 

누구나 다 허물없이 도의 가르침을 선창하고 부처님의 말씀대로 경전의 이치를 분별할 수 있거늘, 

하물며 이 경전을 안팎으로 통달한 그대와 같은 보살이 미치지 못할 것이 있겠느냐?

이제 그대가 4분별(分別)과 지혜로운 변재(辯才)를 얻어 자재로우니, 

의지함 없이 홀로 대승에 뛰어나 온갖 의심을 끊고 피안(彼岸)에 도달하게 되리라.

그리고 어떠한 보살이라도 이러한 도의 지위에 머물러서, 

그 몸ㆍ입ㆍ뜻이 끝내 결함이 없고 일체의 지혜를 으뜸으로 삼아 모든 것을 다 통달하고 또 몸ㆍ입ㆍ뜻의 행을 다 갖춘다면, 

시방의 무수한 백천억의 부처님들이 다 그를 칭찬하리라. 

또한 빠짐없이 안팎으로 통달한 그대의 강설을 지금 내가 증명하듯이 시방의 부처님께서도 다 그렇게 하리라.”

그때에 다시 아난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이 경전의 이름은 무엇이며, 

이 경전을 받들어 간직해야 하는 것은 또 무슨 까닭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대답하셨다.

“이 경전의 다함이 없는 법구의 이치를 아차말보살이 설하였기 때문에 「아차말품(阿差末品)」이라고 하느니라. 

또 누구라도 이 경전의 법을 받아 지닌다면, 

그는 곧 백천 배나 마음이 굳건하고 맑아서 의리(義理)를 알고 공훈을 세우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널리 설하고 불사를 일으키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그때에 아차말보살과 현자 아난을 비롯한 보살들과 그 모든 천룡ㆍ귀신들이 다 기쁨에 넘쳐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떠나갔다.


● [pt op tr] fr

_M#]



『아차말보살경』 ♣0070-007♧






◎◎[개별논의] ❋본문

● 칠각의와 화두 수행 


『아차말보살경』에 칠각의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

ᖰ 아차말보살이 다시 말하였다. 

“보살이 수행하는 7각의(覺意) 또한 다함이 없으니, 

그 일곱 가지란, 

첫째는 뜻의 각의이고, 

둘째는 법의 각의이며, 

셋째는 정진의 각의이고, 

넷째는 기쁨의 각의이며, 

다섯째는 믿음의 각의이고, 

여섯째는 선정의 각의이고, 

일곱째는 옹호의 각의입니다.  ᖱ 

...


일반적인 칠각지 내용과 표현히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칠각지는 다음 내용을 나열한다. 


념(念)

택법(●擇法),

정진(精●進),

희(喜),

경안(●輕安)

정(定),

사(捨)


ω칠각지


★1★





◆vzxy2336
◈Lab value 불기2565/05/30


○ 2020_0930_134950_can_CT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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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0525_183223_ni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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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Grand Palace, Bangkok,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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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tinje, Monten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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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5/2565-05-30-k0070-007.html#2336
sfed--아차말보살경_K0070_T0403.txt ☞제7권
sfd8--불교단상_2565_05.txt ☞◆vzxy2336
불기2565-05-30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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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also: Five Teachings; Tien T’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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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7
290140 / 445


■ 다라니퀴즈

자비주 72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42 번째는?




72
아난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보살 마하살은
다시 어떤 이름이 있으며
이와 같은 큰 다라니를
잘 수행하시고 잘 설하신 이래
또 얼마나 오랜 겁을 지나셨나이까.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이 보살의 명호와
겁의 수효와 장단과
또 무슨 선근을 성취하셨기에
이와 같은 큰 다라니(陀羅尼)를 잘 설하실 수 있는지
설하여주십시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보살의 명호는
관세자재(觀世自在)이며
일명 견색(羂索)이며
또한 천광안(千光眼)이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관세자재보살은 불가사의한 위신력이 있으니
이미 과거무량무수한 아승기겁 전에
성불하였으니
명호는 정법명여래(正法明如來)니라.
대비원력으로
일체 중생을 성숙시키고
안락을 얻게 하고자 하는 까닭에
보살의 형상을 나타내셨느니라.
이 보살의 명호도
듣기 어려운데
어찌 뵐 수 있겠느냐.
● 마바리승갈라야 摩婆唎勝羯囉夜<七十二> ma va ri śaṅ ka ya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42
보미바라 미자야
部弭鉢囉<二合>尾左野<四十二>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150일째]
어불가설제월중 $ 021▲阿婆鈐阿婆鈐為 一 ● 彌伽(上)婆, ○□□□□,一,於,復,於

□□□□□□□, 一一現光不可說,
於彼一一光明內, 復現於日不可說。
□□□□□□□, 일일현광불가설,
어피일일광명내, 부현어일불가설。

말할 수 없이 많은 모든 달마다
나타내는 낱낱 광명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광명 속에서
해[日]를 다시 나타냄도 말할 수 없네.



[151째]
어불가설제일중 $ 022▲彌伽婆彌伽婆為 一 ● 毘攞伽, ○□□□□,一,於,又,於

□□□□□□□, 一一現色不可說,
於彼一一諸色內, 又現光明不可說。
□□□□□□□, 일일현색불가설,
어피일일제색내, 우현광명불가설。

말로 할 수 없는 낱낱 해에서
나타내는 낱낱 빛깔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빛깔 속마다
광명을 또 나투어 말할 수 없고





●K1018_T2045.txt★ ∴≪A아육왕태자법익괴목인연경≫_≪K1018≫_≪T2045≫
●K0070_T0403.txt★ ∴≪A아차말보살경≫_≪K0070≫_≪T0403≫
●K0027_T0313.txt★ ∴≪A아촉불국경≫_≪K0027≫_≪T0313≫

법수_암기방안


21 큰 마름 [엄지쪽 큰마름(뼈) ~ 트러피지엄trapezium]
22 엄지 첫마디 [ 썸 넉클 THUMB knuckle]
72 소지첫마디 = 손 허리뼈 / (=-매타카펄 metacarpal )
42 발 옆면 foot side

7756
652

○ 2020_0606_192604_can_bw17


○ 2020_0606_192513_can_ab9


○ 2020_0606_191410_can_ct27


○ 2020_0606_191033_can_ab1


○ 2020_0606_190916_can_ct27


○ 2020_0606_180325_can_bw17


○ 2020_0606_141658_can_bw17


○ 2020_0606_134327_can_bw17


○ 2020_0525_185948_can_exc


○ 2020_0525_174504_can_ar21


○ 2018_0419_143717_can_exc


○ 2018_0419_134729_can_exc


○ 2018_0419_125633_can_ar22


○ 2016_1008_150508_can_ct27


○ 2016_1008_144020_nik_exc



○ 2016_1008_141328_can_ar45


○ 2016_1008_131550_can_ab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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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M#]



○ 2018_0419_125824_can_ct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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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말보살경』 ♣007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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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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