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모든 여래의 그 광대하신 위덕을 불세존께서 조금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자세히 들어라. 내가 이제 그대를 위해 여래의 광대한 위덕을 대략 말하리라.”
제개장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거룩합니다. 세존이시여, 바라건대 즐거이 듣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제개장보살이 그 가르쳐 주심을 받아 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가 대자(大慈)의 한량없고도 평등함을 성취하여 널리 일체 중생들에 미치느니, 여래는 한 중생에게 그 대자를 실행하고 나서 나머지 일체 중생계에 두루 대자를 실행함도 그러하고 허공계처럼 대자를 실행함이 역시 그러하지만 실상 여래의 대자는 그 변제(邊際)를 알 수 없느니라.
또 선남자여, 여래가 대비(大悲)의 공덕을 성취하여 일체 성문ㆍ보살과 더불어 동등하지 않으니 여래는 한 중생에게 대비를 실행하고 나서 나머지 온 중생계에 두루 대비를 실행함도 그러하고 나아가 저 중생들을 위해 널리 이익을 일으키느니라. 또 선남자여, 여래가 설법이 그지없음을 성취하여 그 성취한대로 혹은 1겁ㆍ백 겁ㆍ천 겁 나아가 무량 무수한 겁 동안의 그 중생들 갖가지 종류와 명언(名言)이 각각 다름과 이취(理趣)의 같지 않음을 여래는 능히 한꺼번에 설법하지만 여래의 설법은 그 변제(邊際)를 알 수 없느니라. 또 선남자여, 여래는 한량없는 문답을 성취하였으니, 가령 모든 중생과 중생의 수(數)에 있는 자들이 다 한꺼번에 각각 그 갖가지 차별된 명구[名句]와 문의(文義)를 가지고서 불세존에게 질문하더라도, 여래는 한 찰나 사이에 능히 다 대답하지만 실상 여래가 응답하는 변재의 그 궁극의 상(相)은 알 수 없느니라. 또 선남자여, 여래가 선정을 성취함은 거리끼는 경계가 없느니, 바로 일체 중생들을 다 10지(地)에 머물게 함으로써 저 중생들이 한꺼번에 다 무수한 백천 삼마지문에 들어가는가 하면 그 삼마지가 각각 다르지만 역시 여래의 모든 삼마지문과 삼마지의 경계는 알 수 없느니라. 또 선남자여, 여래는 한량없는 육신[色身]의 변화문[化門]을 성취하였으니, 만약 여래의 형상과 모습으로써 제도를 받아야 할 중생이라면 여래가 한 찰나 사이에 각각 그들 앞에서 여래의 몸을 나타낸다. 만약 그 밖의 별다른 형상과 모습으로써 제도를 받아야 할 중생이라면 여래가 역시 갖가지 별다른 몸을 다 나타내느니라. 또 선남자여, 여래는 한량없는 하늘 눈[天眼]의 경계를 성취하였으니, 만약 중생으로서 육안(肉眼)이 아닌 하늘 눈을 갖춘 자가 온 중생계에 가득하여서 이와 같은 중생의 종류가 산수(算數)와 생각과 계교를 초과하더라도 여래는 이것을 다 낱낱이 관찰해 보는데, 마치 손바닥 위의 암마륵과(菴摩勒果)를 보는 것처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여래는 한량없는 하늘 귀[天耳]의 경계를 성취하였으니, 만약 그지없는 세계에 가득 찬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일체 중생들이 있어서 이러한 중생들이 모두 한 찰나 사이에 각각 차별된 음운(音韻)과 곡조의 소리를 한꺼번에 내더라도, 여래는 역시 각각 다 풀이해 아노라. 또 선남자여, 여래는 한량없는 뛰어난 지혜를 성취하였으니, 가령 한량없고 그지없는 허공계와 같은 중생계의 모든 중생들이 제 나름대로 각각 생각하고 각각 계획하여 그 갖가지 생각과 계획에 따라 각각 업을 지은 차별이 다르더라도 여래는 역시 한 찰나 사이에 이 종류의 중생은 이러한 계획을 하는 것과 이 종류의 중생은 이러한 업을 지었기에 이러한 과(果)를 얻는 것임을 다 분명히 알며, 여래는 그 3유(有)에 거리낌이 없는 맑고 깨끗한 지혜의 힘으로써 다 아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항상 삼마지에 머물러 삼마지를 떠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가 생각한 것을 잃어버림이 없기 때문이고, 모든 감관이 산란하지 않기 때문이며, 다른 생각이 없기 때문이고, 여래는 적정(寂靜)하여 지극히 적정하기 때문이라. 선남자여, 만약 번뇌가 있으면 마음이 곧 산란하기 마련이고 마음이 산란하기 때문에 일체 옳은 법을 쌓아 모을 수 없나니, 이 때문에 여래가 번뇌를 끊고 나서 모든 더러움을 없애고 모든 번뇌를 다 끊고 나선 일체 법의 평등하고도 자재로움을 얻어 삼마지 경계의 그 뛰어난 행을 성취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낱낱의 거동하는 도에 있어서 그 낱낱의 삼마지를 항상 수행하여 열반에 들어갈 때에도 실천하는 과실이 없거늘 하물며 하나의 삼마지이겠느냐.
선남자여, 여래가 이와 같이 무수한 겁에 공덕을 쌓아 모으는 지라, 이 때문에 여래의 모든 공덕은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으며, 생각할 수도 없고 계교할 수도 없느니라.”
그때 제개장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 여래께서 3아승기겁에 공덕을 쌓아 모으는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니라. 선남자여,
▸ 여래의 경계는 부사의하기 때문에 부사의한 경계에 머무는 보살이라야 바야흐로 쌓아 모을 수 있고 세 아승기겁에 쌓아 모을 수는 없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일체 법의 평등함에 들어가는 자라야 바야흐로 겁의 수에 들어가지 처음 발심한 자로서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니라.”◂
제개장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말씀하신 여래의 광대한 위덕을 만약 어떤 사람이 듣고 나서 능히 맑고 깨끗한 믿음과 흐뭇한 즐거움을 낸다면, 이 사람은 큰 복덕을 갖추고 모든 선업을 짓고 모든 업장을 끊고 많은 신해(信解)를 넓히는 자인 줄 알겠으며, 또 이 사람은 보리에 친근할 수 있겠거늘, 하물며 이 법을 듣고 나서 능히 받아 지니고 읽어 외워 통달하며, 다시 다른 사람을 위해 널리 베풀어 말하는 자이겠습니까.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서 응당 이러한 여래의 광대한 위덕을 얻어 출생할 것이 틀림없음을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고 그러하느니라. 선남자여, 너의 말한 바와 같으니라. 저 사람은 마땅히 모든 부처님께서 거둬 주고 옹호해 주심을 얻어 깊이 선근을 심어 많은 부처님을 존중 공경하리라. 이 때문에 어떤 선남자ㆍ선여인이든 여래의 큰 위덕을 듣고 나서 의혹하지 말고 주저하지도 말아야 한다. 만약 저 선남자ㆍ선여인이 밤낮 이레 동안에 생각을 전일하게 하고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여 여래의 광대한 위덕을 사모하되 그 사모함에 따라 뜻 가짐을 심고(深固)하게 하고 믿어 알기를 심고하게 하며, 그 깨달아 들어가는 대로 밤낮 이레를 경과하고 나선 마땅히 장엄하고도 청결하게 갖가지 공양거리를 설비해 두는 한편, 깨끗한 새 옷을 갈아입고 맑고 깨끗한 마음을 일으켜서 현전에 자세히 생각한다면 곧 그날 밤에 여래를 보게 되리라. 그리고 다시 그 법식대로 하지 못하거나 법식을 줄이는 일이 있더라도 전일한 마음을 지극히 한다면 이 사람은 목숨이 끝날 때 역시 여래가 그 앞에 나타나시게 되리라.”
제개장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혹시 사람으로서 여래의 큰 위덕을 들을 때 믿지 않는 마음을 내는 자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역시 중생들 중에는 여래의 큰 위덕을 듣고 나서 추악한 뜻을 일으키고 손상하는 마음을 다하여 그 설법사에게 나쁜 벗이라는 생각을 내는 이가 있느니라. 이 때문에 그런 중생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날 때 지옥 가운데 떨어지기 마련이니라. 선남자여,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의 큰 위덕을 들을 때 맑고 깨끗한 신심을 내어서 저 설법사에게 훌륭한 벗이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높은 스승이라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러한 사람은 결단코 과거세로부터 일찍이 여래의 이 같은 광대한 위덕의 법을 듣고 대대로 내려와 금생에 이르러서 또 이 대중의 모임 가운데 여래의 공덕을 듣게 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어떤 사람이건 이 바른 법을 얻어 듣는 자라면, 이 사람은 다 과거세에 이미 일찍이 들었기 때문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그 맑고 깨끗한 혀 모양을 펴 두루 낯 둘레[面輪]를 덮으시는가 하면 낯 둘레를 덮고 나서는 다시 이마 둘레를 덮고, 이마 둘레를 덮고 나서는 도로 몸 둘레를 덮고, 몸 둘레를 덮고 나서는 사자자리를 두루 덮고, 다음엔 보살ㆍ성문들의 모임과 제석(帝釋)ㆍ범왕(梵王)ㆍ호세천왕(護世天王)들의 큰 모임을 덮어 이와 같이 차례차례 두루 널리 덮은 뒤에, 그 혀 모양을 거둬 본래대로 돌리시고 대중의 모임을 향해 널리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 선남자여, 너희들은 여래의 이러한 혀 모양을 볼지니, 이것은 여래의 말씀이 허망하지 않음을 표시하는 것이니라. 너희들 각자가 뛰어나고 맑고 깨끗한 신심을 더 일으킨다면 마땅히 그대들로 하여금 기나긴 밤 오랫동안에 큰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하리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 그 모임 가운데의 8만4천 보살들은 생사 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를 얻고 무수한 백천 중생들은 번뇌를 완전히 없애고서 맑고 깨끗한 법 눈[法眼]을 얻으며, 다시 무수한 중생으로서 일찍이 보리심을 내지 못한 자는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었다.
▸ 그때 세존께서 다시 제개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세속을 잘 알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비록 물질의 쌓임[色蘊]을 시설(施設)하더라도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물질의 쌓임을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取着)할 것도 없고, ◂
다시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 따위의 쌓임을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의식 따위의 쌓임을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으며, 둘째 비록 땅의 경계[地界]를 시설하더라도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땅의 경계를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고, 다시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과 의식의 경계를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다. 셋째 비록 눈의 곳[眼處]을 시설하더라도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눈의 곳을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고, 다시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의 곳을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뜻의 곳을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으며, 넷째 비록 나를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나를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으며, 다섯째 비록 중생을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중생을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으며, 여섯째 비록 수자(壽者)ㆍ양자(養者)와 사부(士夫)ㆍ보특가라[補特迦羅]를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이것을 다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으며, 일곱째 비록 세간을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세간을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으며, 여덟째 비록 세간의 법을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세간의 법을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으며, 아홉째 비록 불법을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불법을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으며,
▸ 열째 비록 보리를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보리를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고 다시 보리를 얻을 자도 없음이라.◂
▸ 선남자여, 이러한 명상(名相)과 시설을 세속의 법이라 이르지만, 뛰어난 진리도 역시 세속의 법을 떠나서 있는 것은 아니니라.
이 때문에 만약 세속의 법이 없으면 곧 저 뛰어난 진리를 얻을 수 없으리니, 보살이 이러한 곳에서 세속을 깨달아 아는 그것이 바로 세속의 법을 잘 해득하는 것이니라.
그런 가운데 좋음을 추구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의 정체를 먼저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에 다음 내용이 나온다.
▸ 그때 세존께서 다시 제개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다음의 열 가지 법을 수행한다면 세속을 잘 알리니, 이른바 그 열 가지 법이란 무엇인가? 첫째 비록 물질의 쌓임[色蘊]을 시설(施設)하더라도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물질의 쌓임을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取着)할 것도 없고, ◂
다시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 따위의 쌓임... 둘째 비록 땅의 경계[地界]... 다시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과 의식의 경계... 셋째 비록 눈의 곳[眼處]... 다시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의 곳... 넷째 비록 나... 다섯째 비록 중생... 여섯째 비록 수자(壽者)ㆍ양자(養者)와 사부(士夫)ㆍ보특가라[補特迦羅]... 일곱째 비록 세간을... 여덟째 비록 세간의 법... 아홉째 비록 불법...
▸ 열째 비록 보리를 시설하더라도 그 뛰어난 진리 가운데엔 보리를 얻을 수 없거니와 취착할 것도 없고 다시 보리를 얻을 자도 없음이라.◂
▸ 선남자여, 이러한 명상(名相)과 시설을 세속의 법이라 이르지만, 뛰어난 진리도 역시 세속의 법을 떠나서 있는 것은 아니니라.
이 때문에 만약 세속의 법이 없으면 곧 저 뛰어난 진리를 얻을 수 없으리니, 보살이 이러한 곳에서 세속을 깨달아 아는 그것이 바로 세속의 법을 잘 해득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수행하는 이라면 곧 세속을 잘 알리라.”◂
...
눈 앞에 사과 하나가 있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사과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된다. 그런 부분을 자신이 사과라고 여기고 대한다. 이것을 상을 취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을 손을 뻗쳐 잡으면 그 상황에서 촉감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뻗친 손은 자신의 손이고 그런 부분이 자신이라고 또 여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상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여기고 현실을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그런 내용을 취하고 집착하게 된다. 이것을 취착(取着)이라고 경전에서 표현한다.
부처님도 중생들과 눈높이를 맞춰 그런 입장에서 세속의 온갖 법을 시설해 제시한다.
그런데 승의제(뛰어난 진리) 가운데에서는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하고 취착할 것도 없고 그런 가운데 깨달음을 얻는 자 조차도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그처럼 시설한 세속의 법을 바탕해 얻게 된다고 제시한다.
중생들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곧 이런 내용을 얻게 하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그런 승의제를 꿰뚫어 잘 관하고 생사현실을 대하는 것이 또 세속의 법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첫 부분이 문제다.
왜 사과라고 여기면서 그런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문제인가. 왜 그런 부분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사과를 얻을 수 없는가.
이런 부분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그간 수없이 반복했다.
여기서 간단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과 관계없이도 있다고 할 내용을 본 바탕 #실재라고 표시해보자.
그리고 자신이 관계해서 예를 들어 눈으로 또는 귀, 코, 입, 몸 등으로 얻는 !감각현실을 ● 이라고 표시해보자. 그리고 이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분별내용을 □ 으로 표시해보자.
각 주체는 현실에 임해 매순간 감각현실● 을 얻고 또 분별 □ 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들 각 내용의 관계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우선 감각현실 ● 에는 관념내용 □ 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관념내용 □ 에는 감각현실 ● 을 얻을 수 없다. 감각현실 ● 은 관념분별 □ 이 아니다. 그리고 관념분별 □ 도 감각현실 ● 이 아니다.
다만 그 주체가 그런 감각현실 ● 을 대하면서 그러그러한 관념 □ 을 일으켰을 뿐이다.
한편, 본 바탕 실재#에는 ● 을 얻을 수 없다. 또한 본 바탕 실재#에는 □ 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각 내용이 침대에 누어서 꾸는 엉뚱한 황금이나 바다꿈과 성격이 같다. 그리고 경전에서 그런 사정을 위와 같이 표현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감각현실 ● 과 관념분별 □ 을 동시에 얻는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감각현실에 그대로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사과가 어디 있는가 영희, 철수, 자신이 어디 있는가라고 물으면 감각현실 각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곧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기기도 한다. 또 그렇지 않더라도 본 바탕 실재에는 그런 내용이 그처럼 그대로 들어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업을 행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안에서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이 부분이 문제다. 만일 생사고통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실답던 실답지 않던 무방하다.
이들 내용은 본래 실답지 않다. 그럼에도 그것을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하게 얻으면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이것이 문제다. 본래 얻을 수 없는데도 그것이 그처럼 있다고 망집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매순간 업을 행해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이를 시정하는 것이 수행이다.
만일 생사현실이 꿈이라면 그냥 방치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꿈과 성격이 같지만, 정작 꿈은 아니다.
매번 이들 내용을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는다. 그래서 꿈과 달리 이를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처럼 실답게 여기고 대하므로 이에 매순간 집착을 갖게 된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 있다고 여기는 내용이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또 한편 사정이 그런데도 매순간 그렇게 여겨지는 배경 사정까지 잘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희가 어디 있는가 사과가 어디 있는가의 문제가 이와 관련된다. 이 경우 일정 부분을 자신이 영희나 사과로 여기고 손으로 가리킨다고 하자. 그렇게 가리킨 부분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이런 분별을 바탕으로 생활하게끔 된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그 배경사정까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내용은 관련된 부분에서 따로 살피기로 하고 중복을 피해 생략하기로 한다.
자꾸 미뤄지지만, 현재 『관소연연론』 부분에서 이 내용을 정리해가는 중이다. 아직도 일부만 정리 중이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매번 반복하는 것보다는 이 부분을 참조하는 것이 나을 듯 하다.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Summer_Palace_at_Beijing_41
https://en.wikipedia.org/wiki/File:Summer_Palace_at_Beijing_41.jpg English: Summer Palace at Beijing, China Author Kallgan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Buddhism in Brunei [san-chn]
pratiprasrambhaṇa 休息, 捨, 棄捨 [san-eng]
harṣaśokānvitaḥ $ 범어 subject to joy and sorrow [pali-chn]
akusala 不善, 惡 [pal-eng] [Eng-Ch-Eng]
三劫 Three kalpas, three eons. (1) An abbreviation of 三阿僧祇劫. (2) In the True Word school, a term for deluded attachment. (3) The three kalpas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Muller-jpn-Eng]
六結 ロクケツ six knots\n\nロッケツ\nsix knots [Glossary_of_Buddhism-Eng]
GENEROSITY☞ See: Anathapindika; Golden-Colored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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