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
K0650
T0099
제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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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0650-017♧
제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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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雜阿含經卷第十七
K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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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제17권
송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455. 상경(想經)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갖가지 경계[界]를 인연하기 때문에 갖가지 접촉[觸]이 생기고,
갖가지 접촉을 인연하여 갖가지 생각[想]이 생기며,
갖가지 생각을 인연하여 갖가지 욕망[欲]이 생기고,
갖가지 욕망을 인연하여 갖가지 지각[覺]이 생기며,
갖가지 지각을 인연하여 갖가지 번열(熱)이 생기고,
갖가지 번열을 인연하여 갖가지 추구[求]가 생기느니라.
어떤 것을 갖가지 경계라고 하는가?
이른바 18계(界)이니 안계(眼界)와……(내지)…… 법계(法界)니라.
어떤 것을 갖가지 경계를 인연하여 갖가지 접촉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고 ……(내지)……어떤 것을 갖가지 번열을 인연하여 갖가지 추구가 생긴다고 하는가?
이른바 안계(眼界)를 인연하여 안촉이 생기는 것이요
안촉을 인연하여 안계가 생기는 것이 아니니,
안계를 인연해야만 안촉이 생기느니라.
안촉을 인연하여 눈의 생각이 생기는 것이요
눈의 생각을 인연하여 안촉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안촉을 인연해야만 눈의 생각이 생기느니라.
눈의 생각을 인연하여 눈의 욕망이 생기는 것이요
눈의 욕망을 인연하여 눈의 생각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눈의 생각을 인연해야만 눈의 욕망이 생기느니라.
눈의 욕망을 인연하여 눈의 지각이 생기는 것이요
눈의 지각을 인연하여 눈의 욕망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눈의 욕망을 인연해야만 눈의 지각이 생기느니라.
눈의 지각을 인연하여 눈의 번열이 생기는 것이요
눈의 번열을 인연하여 눈의 지각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눈의 지각을 인연해야만 눈의 번열이 생기느니라.
눈의 번열을 인연하여 눈의 추구가 생기는 것이요
눈의 추구를 인연하여 눈의 번열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눈의 번열을 인연해야만 눈의 추구가 생기느니라.
이와 같이 이계(耳界)ㆍ비계(鼻界)ㆍ설계(舌界)ㆍ신계(身界)도 마찬가지며,
의계(意界)를 인연하여 의촉이 생기는 것이요 ……(내지)…… 뜻의 번열을 인연하여 뜻의 추구가 생긴다는 것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이 자세히 말씀하셨다.
이것이 비구들아,
‘갖가지 경계를 인연하여 갖가지 접촉이 생기고 ……(내지)…… 갖가지 번열을 인연하여 갖가지 추구가 생기는 것이요,
갖가지 추구를 인연하여 갖가지 번열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내지)…… 갖가지 접촉을 인연하여 갖가지 경계가 생기는 것이 아니니,
갖가지 경계를 인연해야만 갖가지 접촉이 생기고 ……(내지)…… 갖가지 번열을 인연해야만 갖가지 추구가 생긴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6내입처(內入處)에서와 마찬가지로 6외입처(外入處)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456. 정수경(正受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광명의 세계[光界]2)ㆍ청정한 세계[淨界]3)ㆍ한량없는 허공의 세계[無量空入處界]4)ㆍ한량없는 식의 세계[無量識入處界]5)ㆍ아무 것도 없는 세계[無所有入處界]6)ㆍ생각이 있는 것도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세계[非想非非想入處界]7)가 있고,
적멸의 세계[滅界]8)가 있느니라.”
이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광명의 세계ㆍ청정한 세계ㆍ한량없는 허공의 세계ㆍ한량없는 식의 세계ㆍ아무 것도 없는 세계ㆍ생각이 있는 것도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세계ㆍ적멸의 세계,
이와 같은 모든 세계는 어떤 인연으로 알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저 광명의 세계는 어둠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고,
청정한 경계는 더러움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으며,
한량없는 허공의 세계는 색(色)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고,
한량없는 식의 세계는 안[內]9)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으며,
아무 것도 없는 세계는 무언가 있는 것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고,
생각이 있는 것도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세계는 제일의 존재를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으며,
적멸의 세계는 존재하는 몸을 인연하기 때문에 알 수 있느니라.”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광명의 경계와 ……(내지)…… 적멸의 세계는 어떤 정수(正受)10)로 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광명의 세계ㆍ청정한 세계ㆍ한량없는 허공의 세계ㆍ한량없는 식의 세계ㆍ아무 것도 없는 세계,
이 모든 세계는 스스로 행하는 정수에서 얻고,
생각이 있는 것도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세계는 제일의 정수에서 얻으며,
적멸의 세계는 존재하는 몸이 소멸하는 정수에서 얻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57. 설경(說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동원(東園) 녹자모강당(鹿子母講堂)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는 저녁 무렵 선정에서 깨어나 강당 그늘에 자리를 펴고 대중 앞에 앉아 모든 비구들에게 우단나구(優檀那句)11)를 말씀하셨다.
“세계를 인연하기 때문에 말[說]이 생기는 것이니,
세계를 인연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인연하기 때문에 소견[見]이 생기는 것이니,
세계를 인연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인연하기 때문에 생각[想]이 생기는 것이니,
세계를 인연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낮은 세계를 인연하면,
저열한 말ㆍ저열한 소견ㆍ저열한 생각ㆍ저열한 의도ㆍ저열한 욕망ㆍ저열한 소망ㆍ저열한 사람ㆍ저열한 일ㆍ저열한 시설ㆍ저열한 세움ㆍ저열한 부분ㆍ저열한 나타냄ㆍ저열한 태어남이 생긴다고 나는 말한다.
보통 세계와 훌륭한 세계도 마찬가지이니,
훌륭한 세계를 인연하면,
그는 훌륭한 말ㆍ훌륭한 소견ㆍ훌륭한 생각ㆍ훌륭한 의도ㆍ훌륭한 욕망ㆍ훌륭한 소망ㆍ훌륭한 사람ㆍ훌륭한 일ㆍ훌륭한 시설ㆍ훌륭한 세움ㆍ훌륭한 부분ㆍ훌륭한 나타냄ㆍ훌륭한 태어남이 생긴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
이때 바가리(婆迦利) 비구가
부처님 뒤에서 부채를 들고 부처님을 부채질해드리고 있다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에 대하여 삼먁삼불타가 아니라는 소견을 일으킨다면,
그 소견도 또한 세계를 인연하여 생기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삼먁삼불타에 대하여 삼먁삼불타가 아니라는 소견을 일으키는 것도
또한 세계를 인연하여 생기는 것이요,
세계를 인연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범부의 세계는 무명의 세계이기 때문이니라.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저열한 세계를 인연하여 저열한 말과 저열한 소견 ……(내지)…… 저열한 태어남이 생기고,
보통 세계도 마찬가지이며,
훌륭한 세계를 인연하여 훌륭한 말과 훌륭한 소견 ……(내지)……훌륭한 태어남이 생기는 것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58. 인경(因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인(因)이 있어서 탐욕의 생각[欲想]이 생기는 것이니,
인이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이 있어서 성내는 생각[恚想]이 생기는 것이니,
인이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이 있어서 해치는 생각[害想]이 생기는 것이니,
인이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으로 탐욕의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탐욕의 세계를 인연하는 것이니라.
탐욕의 세계를 인연하기 때문에 탐욕의 생각[欲想]ㆍ탐욕의 욕망[欲欲]ㆍ탐욕의 지각[欲覺]ㆍ탐욕의 번열[欲熱]ㆍ탐욕의 추구[欲求]가 생긴다.
어리석은 범부는 탐욕의 추구를 일으킨 뒤에,
이 중생은 이른바 몸과 입과 마음,
이 세 가지로 삿됨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삿된 인연 때문에 현세에서 괴로움에 머물러 괴로움이 있고 걸림이 있고 번민이 있고 번열이 있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태어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인연으로 탐욕의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 하느니라.
성내는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인연으로 해치는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는가?
해치는 세계를 인연하여 해치는 생각[害想]ㆍ해치는 욕망[害欲]ㆍ해치는 지각[害覺]ㆍ해치는 번열[害熱]ㆍ해치는 추구[害求]가 생긴다.
어리석은 범부는 해치는 추구를 일으킨 뒤에,
이 중생은 이른바 몸과 입과 마음,
이 세 가지에서 삿됨을 일으킨다.
세 가지 삿된 인연을 일으킨 뒤에는 현세에서 괴로움에 머물러 괴로움이 있고 걸림이 있고 번민이 있고 번열이 있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태어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인연으로 해치는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만일 모든 사문 바라문이 이와 같이 삶에 안주하며 위험한 생각들을 하면서도 버리고 떠나기를 구하지 않고 깨닫지 못하고 뱉어버리지 못한다면,
그들은 현세에서 괴로움에 머물러 괴로움이 있고 걸림이 있고 번민이 있고 번열이 있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비유하면 성읍이나 마을에서 멀지 않은 넓은 벌판에 큰 불이 갑자기 일어난 것과 같다.
그곳에 그 불을 끌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없다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들판의 모든 중생들은 다 불의 피해를 입을 것이니라.
이와 같이 모든 사문 바라문이 삶에 안주하며 위험한 생각들을 한다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모든 비구들아,
인이 있어서 탐욕에서 벗어난 생각[出要想]이 생기는 것이니,
인이 없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이 있어서 탐욕에서 벗어난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탐욕에서 벗어난 세계이니라.
탐욕에서 벗어난 세계를 인연하여 탐욕에서 벗어난 생각ㆍ탐욕에서 벗어난 욕망ㆍ탐욕에서 벗어난 지각ㆍ탐욕에서 벗어난 번열ㆍ탐욕에서 벗어난 추구가 생기느니라.
이른바 저 지혜로운 사람이 탐욕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할 때,
그 중생은 이른바 몸과 입과 마음,
이 세 가지에서 올바름을 일으킨다.
그는 이와 같이 바른 인연을 일으킨 뒤에,
현세에서 즐거움에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걸리지 않으며,
번민하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인연으로 탐욕을 벗어난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성내지 않는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을 인연으로 해치지 않는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해치지 않는 세계이니라.
해치지 않는 세계를 인연하여 해치지 않는 생각ㆍ해치지 않는 욕망ㆍ해치지 않는 지각ㆍ해치지 않는 번열ㆍ해치지 않는 추구가 생기느니라.
저 지혜로운 사람이 해치지 않기를 추구할 때,
그 중생은 이른바 몸과 입과 마음,
이 세 가지에서 올바름을 일으킨다.
그는 바른 인연이 생긴 뒤에,
현세에서 즐거움에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걸리지 않으며,
번민하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인연으로 해치지 않는 생각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모든 사문 바라문들이 삶에 안주해 해치지 않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버리고 여의지 않고 깨닫지 않고 뱉어버리지 않더라도 현세에서 즐거움에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걸리지 않고 번민하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계에 태어나느니라.
비유하면 성읍(城邑)이나 마을 변두리 넓은 벌판에서 큰 불이 갑자기 일어난 것과 같다.
그때 손발로 그 불을 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초목(草木)을 의지해 사는 저 모든 중생들은 다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사문 바라문이 삶에 안주하며 바른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버리지 않고 깨닫지 않고 뱉어버리지 않더라도 현세에서 즐거움에 머물러 괴로워하지 않고 걸리지 않고 번민하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세계에 태어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59. 자작경(自作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이때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세존과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중생(衆生) 스스로 짓는 것도 아니요,
남이 짓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을 나는 상대하지 않는다.
지금 그대 스스로 찾아와 놓고선 나에게 ‘스스로 짓는 것도 아니요,
남이 짓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구나.”
바라문이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구담(瞿曇)이시여,
중생은 스스로 짓는 것입니까,
남이 짓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내게 대답하라.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생에게 방편계(方便界)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방편을 쓸 줄 알게 하는 것인가?”
바라문이 말했다.
“구담이시여,
중생에게 방편계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방편을 쓸 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방편계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방편이 있는 줄 알게 한다면,
이것은 곧 중생 스스로 짓는 것이요,
이것은 곧 남이 짓는 것이니라.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생에게는 안주계(安住界)ㆍ견고계(堅固界)ㆍ출계(出界)ㆍ조작계(造作界)가 있어서 그 중생들로 하여금 조작이 있는 줄 알게 하는 것인가?”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중생들에게는 안주계ㆍ견고계ㆍ출계ㆍ조작계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조작이 있는 줄 알게 합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 안주계ㆍ견고계ㆍ출계ㆍ조작계가 있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조작이 있는 줄 알게 한다면,
이것은 곧 중생들 자신이 짓는 것이요,
이것은 곧 남이 짓는 것이니라.”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중생 자신이 직접 짓는 것도 있고 남이 짓는 것도 있습니다.
구담이시여,
세상일이 많아 이제 하직을 청합니다.”
“세상일이 많다면 마땅히 그 때를 알아야 하리라.”
이때 그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460. 구사라경(瞿師羅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拘睒彌國) 구사라원(瞿師羅園)에 계셨다.그때 구사라(瞿師羅) 장자가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존자 아난의 발에 절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존자 아난에게 아뢰었다.
“갖가지 세계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갖가지 세계라고 합니까?”
존자 아난이 구사라 장자에게 말하였다.
“어떤 안계(眼界)와 어떤 색계(色界)가 기쁜 것이면,
두 인연으로 식(識)이 생기고,
세 가지가 화합하여 접촉[觸]이 생기며,
또 기쁜 접촉[喜觸]을 인연하여 즐겁다는 느낌[樂受]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도 마찬가지이며,
뜻과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합니다.
또 장자여,
어떤 안계와 어떤 색계가 근심스러운 것이면,
두 인연으로 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괴로운 접촉이 생기며,
그 괴로운 접촉을 인연하여 괴롭다는 느낌[苦受]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도 마찬가지이며,
뜻과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합니다.
또 장자여,
어떤 안계와 어떤 색계가 평정한 것이면,
두 인연으로 식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접촉이 생기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접촉을 인연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도 마찬가지이며,
뜻과 법에 있어서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그때 구사라 장자는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발에 절하고 떠나갔다.
461. 삼계경(三界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의 구사라원에 계셨다.
그때 구사라 장자가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하고 한쪽에 앉아 존자 아난에게 아뢰었다.
“갖가지 세계[界]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갖가지 세계라고 합니까?”
존자 아난이 구사라 장자에게 말하였다.
“세 가지 세계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 세계인가?
이른바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존자 아난이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욕계를 환하게 깨달아 알고
색계도 또한 그렇게 알며
일체의 남음이 있는 것 버리고
남음이 없는 적멸(寂滅)을 얻으라.
이 몸이 화합한 세계에서
남김없이 완전하게 멸함을 증득하신
삼야삼불(三耶三佛)12)께서 말씀하셨네
더러운 때 벗어난 근심 없는 글귀를.
존자 아난이 이 경을 말하자,
구사라 장자는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절하고 떠나갔다.
462. 삼계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그때 구사라 장자가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 존자 아난에게 아뢰었다.
“갖가지 세계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갖가지 세계라고 합니까?”
존자 아난이 구사라 장자에게 말하였다.
“세 가지 세계가 있으니,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ㆍ멸계(滅界)입니다.
이것을 세 가지 세계라고 합니다.”
곧 게송을 말하였다.
▸ 만일 색계의 중생이거나
또는 무색계에 머무르면서
적멸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면
돌아와 또 모든 몸을 받으니라.◂
만일 저 색계를 끊고
무색계에도 머물지 않으며
적멸의 세계에서 마음이 해탈하면
영원히 생사를 벗어나리라.
존자 아난이 이 경을 말하자,
구사라 장자는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절하고 떠나갔다.
463. 삼계경 ③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 구사라원에 계셨다.그때 구사라 장자가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절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 존자 아난에게 아뢰었다.
“갖가지 세계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갖가지 세계라고 합니까?”
존자 아난이 구사라 장자에게 대답하였다.
“이른바 세 가지 출계(出界)이니,
어떤 것이 그 세 가지 출계인가?
이른바 욕계에서 벗어나 도달하는 색계,
색계에서 벗어나 도달하는 무색계,
일체의 모든 행과 일체의 의도(思)ㆍ생각(想)이 소멸한 세계,
이것을 세 가지 출계라고 합니다.”
곧 게송을 말하였다.
욕계에서 벗어날 줄 알고
색계를 초월할 줄 알며
일체의 행이 적멸한 세계를 알아
바른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라.
모든 애욕을 끊어버리면
모든 행이 완전하게 멸하리.
남아 있는 모든 것 알아
또는 존재로 돌아오지 말라.
존자 아난이 이 경을 말하자,
구사라 장자는 그 말을 따라 기뻐하면서 절하고 떠나갔다.
464. 동법경(同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섬미국의 구사라원에 계셨다.그때 존자 아난은 상좌(上座)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상좌라 불리는 이들에게 나아가 공경히 인사하고,
인사한 뒤에는 한쪽에 물러나 앉아 상좌라 불리는 이에게 물었다.
“만일 비구가 공터나 나무 밑,
한적한 방에서 사유(思惟)한다면,
마땅히 어떤 법으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해야 합니까?”
상좌가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여,
공터나 나무 밑,
한적한 방에서 사유하려는 사람은 마땅히 두 가지 법으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해야 하나니,
이른바 그침[止]과 관찰[觀]입니다.”
존자 아난이 또 상좌에게 물었다.
“그침을 닦고 익히며 많이 닦고 익히고 나면,
장차 무엇이 이루어집니까?
관찰을 닦아 익히며 많이 닦고 익히고 나면,
장차 무엇이 이루어집니까?”
상좌가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여,
그침을 닦고 익히면 결국에는 관찰이 이루어집니다.
관찰을 닦고 익히고 나면 또한 그침이 이루어집니다.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그침과 관찰을 함께 닦아 모든 해탈(解脫)의 세계를 얻습니다.”
아난이 또 상좌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모든 해탈의 세계라고 합니까?”
상좌가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여,
저 끊어진 세계[斷界]ㆍ탐욕이 없는 세계[無欲界]ㆍ적멸의 세계[滅界],
이것을 모든 해탈의 세계라고 합니다.”
존자 아난이 또 상좌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끊어진 세계이며,
……(내지)…… 적멸의 세계입니까?”
상좌가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여,
일체의 행을 끊으면 이것을 끊어진 세계[斷界]라 하고,
애욕을 끊어 없애면 이것을 탐욕이 없는 세계[無欲界]라고 하며,
일체의 행(行)이 소멸하면 이것을 적멸의 세계[滅界]라고 합니다.”
이때 존자 아난은 상좌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기뻐하였다.
또 5백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공경히 인사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 5백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만일 비구가 공터나 나무 밑,
한적한 방에서 사유한다면 그 때,
마땅히 어떤 법을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해야 합니까?”
이때 5백 비구들은 존자 아난에게 “마땅히 두 가지 법으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해야 합니다.
……(내지)…… 적멸의 세계라고 합니다”라고 상좌들의 말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때 존자 아난은 5백 비구의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기뻐하였다.
또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린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공터나 나무 밑,
한적한 방에서 사유한다면,
마땅히 어떤 법을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비구가 공터나 나무 밑,
한적한 방에서 사유한다면,
마땅히 두 가지 법을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해야 하느니라.
……(내지)…… 적멸의 세계라고 하느니라”라고 하셨으니,
저 5백 비구의 말과 같았다.
이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큰 스승님과 모든 제자들은 모두가 같은 법ㆍ같은 글귀ㆍ같은 이치ㆍ같은 맛입니다.
제가 오늘 상좌들께 나아가 상좌라고 불리는 이에게 이와 같이 묻자,
그 역시 이와 같은 이치ㆍ이와 같은 글귀ㆍ이와 같은 맛으로 저에게 대답하였는데,
지금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제가 또 5백 비구들에게 가서 또한 이와 같은 이치ㆍ이와 같은 글귀ㆍ이와 같은 맛으로 묻자,
그 5백 비구들 역시 이와 같은 이치ㆍ이와 같은 글귀ㆍ이와 같은 맛으로 대답하였는데,
지금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스승과 제자는 모두가 같은 법ㆍ같은 이치ㆍ같은 글귀ㆍ같은 맛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 상좌가 어떤 비구인 줄 아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알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상좌는 바로 아라한(阿羅漢)이다.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였고 무거운 짐을 이미 벗어버렸으며,
바른 지혜로 마음이 잘 해탈한 사람이니라.
저 5백 비구들 역시 모두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65. 착사경(着使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그때 존자 라후라(羅睺羅)가 세존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저의 이 식신(識身)과 바깥 경계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 따위의 번뇌에 얽매인 것이 없어지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지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라후라야,
▸ 만일 비구가 존재하는 모든 땅[地界]에 대하여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할 것 없이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나와 다른 것도 아니며,
나와 나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물[水界]ㆍ불[火界]ㆍ바람[風界]ㆍ허공[空界]ㆍ식[識界]에 대해서도
또한 마찬가지라고 하자.
라후라야,
비구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본다면,
나라고 여기는 식을 갖춘 몸과 바깥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 따위의 번뇌에 얽매인 것이 없어질 것이다.
라후라야,
만일 비구가 이 식신과 바깥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 따위의 번뇌에 얽매임을 없앤다면,
이것을 애욕(愛欲)으로 묶는 모든 결박을 끊고 모든 애욕을 끊고 교만을 그치며,
빈틈없는 한결같음으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라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66. 촉인경(觸因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존자 라후라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저의 이 식신과 바깥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 따위의 번뇌에 얽매인 것이 없어지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괴롭다는 느낌ㆍ즐겁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이 세 가지 느낌은 무엇이 인이 되고,
무엇이 발생이 되며,
무엇이 태어남이 되며,
무엇이 변하는 것이 되는가?
이른바 이 세 가지 느낌은 접촉이 인이 되고,
접촉이 발생이 되며,
접촉이 태어남이 되며,
접촉이 변한 것이다.
이런저런 접촉이 인이 되어 이런저런 느낌이 생기는 것이니라.
만일 이런저런 접촉이 소멸하면 이런저런 느낌도 또한 소멸하고 그치며,
맑고 시원해지고 사라지나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
나라고 여기는 이 식신과 바깥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 따위의 번뇌에 얽매이는 것이 없어지게 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라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67. 검자경(劍刺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존자 라후라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저의 이 식이 있는 몸과 바깥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이다,
내 것[我所]이다’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과 같은 번뇌의 얽매임이 없어지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괴롭다는 느낌ㆍ즐겁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즐겁다는 느낌을 관찰할 적엔 괴로움이라는 생각을 하고,
괴롭다는 느낌을 관찰할 적엔 칼에 찔린다는 생각을 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관찰할 적엔 무상(無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라.
만일 그 비구가 즐겁다는 느낌을 관찰해 괴로움이라는 생각을 하고,
괴롭다는 느낌을 관찰해 칼에 찔린다는 생각을 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관찰해 무상한 것이라서 언젠가는 소멸하고 만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것을 바른 소견[正見]이라고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즐거움을 관찰하여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괴롭다는 느낌은 칼에 찔린 것처럼 여기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선
무상하고 소멸한다는 생각 닦으면
그런 이는 곧 비구로서
바른 소견을 성취한다네.
적멸(寂滅)하여 편안하고 즐거운 도(道)
가장 마지막 그 끝에 머무르며
모든 번뇌를 영원히 벗어나
그 많은 악마의 군사 무찔러 항복 받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라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68. 삼수경(三受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게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존자 라후라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린 뒤,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저의 이 식신(識身)과 바깥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과 같은 번뇌의 얽매임 따위가 없어지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괴롭다는 느낌ㆍ즐겁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즐겁다는 느낌을 관찰해 즐겁다는 느낌의 탐하는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梵行)을 닦고,
괴롭다는 느낌의 성내는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을 닦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의 어리석은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을 닦는 것이다.
라후라여,
만일 비구가 즐겁다는 느낌의 탐하는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롭다는 느낌의 성내는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의 어리석은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안다면,
이것을 비구가 애욕의 결박을 끊어 없애고 모든 결박과 교만을 버리며 빈틈없고 한결같아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즐겁다는 느낌을 받을 때
즐겁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면
탐욕이라는 번뇌에 휘둘려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리.
괴롭다는 느낌이 받을 때
괴롭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면
성냄이라는 번뇌에 휘둘려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바르게 깨친 이의 말씀대로
자세히 잘 관찰하지 못하면
끝내 저 언덕으로 건너가지 못하리.
비구들아,
부지런히 정진하여
바르게 알고 흔들리지 말라.
이와 같이 모든 느낌을
지혜로운 사람은 깨달아 아나니
그 모든 느낌을 깨달아 아는 자
현세에서 모든 번뇌 다하리.
밝고 지혜로운 자 목숨 마치면
중생의 부류로 떨어지지 않나니
중생으로의 윤회가 이미 끊어져
영원히 반열반(般涅槃)에 머무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라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69. 심험경(深嶮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큰 바다는 깊고 험한 곳이라고들 하지만,
이는 세간의 어리석은 범부들이 하는 말이지 현성(賢聖)의 법(法)과 율(律)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세간에서 말하는 것은 그저 물이 많이 쌓이고 모인 수치일 뿐이다.
만일 몸에서 여러 느낌이 생겨 갖가지 고통이 들이닥치면 번민하기도 하고 혹은 죽기도 하나니,
이것을 큰 바다에 있는 매우 깊고 험한 곳이라고 하느니라.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이 몸에서 여러 가지 느낌이 생겨 고통이 들이닥치고 괴롭거나 혹은 죽게 되면 근심과 슬픔으로 원망하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워 발광하기도 하며,
길이 잠기고 빠져 쉴 곳이 없느니라.
그러나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몸에서 온갖 느낌이 생겨 고통이 들이닥치고 괴롭거나 혹은 죽게 되더라도 근심하고 슬퍼하거나 울부짖거나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미치는 일이 없으며,
나고 죽음에 빠지지 않고 쉴 곳을 얻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몸에서 여러 괴로운 느낌 생기면
그것들 들이닥쳐 죽음에 이를 때
근심과 슬픔을 참아내지 못해
울부짖으며 발광하리라.
마음에서 저절로 생기는 장애
온갖 괴로움 더욱 더 불러모으고
영원히 나고 죽는 바다에 빠져
편안히 쉴 곳을 알지 못하리.
이 몸의 모든 느낌 버릴 수 있으면
몸에서 생긴 괴로움과 번민
들이닥쳐 죽음에 이르게 되더라도
근심과 슬픔 일으키지 않아
눈물 흘리며 울부짖지 않고
어떤 괴로움도 스스로 참아낼 수 있으리.
마음에서 장애가 생기지 않아
온갖 괴로움 더욱 불러모으지 않고
나고 죽음에 빠지지 않아
안온한 곳 영원히 얻게 되리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70. 전경(箭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다는 느낌ㆍ즐겁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낸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들도 또한 괴롭다는 느낌ㆍ즐겁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을 낸다.
모든 비구들아,
범부와 성인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건대 자세히 설명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법을 들은 뒤에 틀림없이 받아들여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몸의 접촉으로 여러 느낌이 생겨 고통이 들이닥치고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면,
우수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 원망하며 울부짖느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해주리라.
모든 비구들아,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몸의 접촉으로 여러 가지 느낌이 생겨 온갖 고통이 증가하고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면,
우수에 잠겨 원망하고 울부짖으며 마음이 미친 듯 혼란스러워진다.
그때 두 가지 느낌을 더하고 자라나게 하나니,
몸의 느낌이거나 혹은 마음의 느낌이니라.
비유하면 사부(士夫)가 몸에 두 개의 독화살을 맞고 아주 고통스러워하는 것과 같으니라.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
이 두 가지 느낌을 더하고 자라게 하여 아주 고통스러워한다.
왜냐하면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는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5욕에 대하여 즐겁다는 느낌과의 접촉을 일으키고 5욕의 즐거움을 누리며,
5욕의 즐거움을 누리기 때문에 탐욕이라는 번뇌의 부림을 당한다.
괴롭다는 느낌과 접촉하기 때문에 곧 성내게 되고,
성내기 때문에 성냄이라는 번뇌의 부림을 당한다.
이 두 가지 느낌에 대하여 그것의 발생ㆍ그것의 소멸ㆍ그것에 맛들임ㆍ그것의 재앙ㆍ그것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겨 어리석음이란 번뇌의 부림을 당한다.
그리하여 즐겁다는 느낌에 얽매여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괴롭다는 느낌에 얽매여 끝내 벗어나지 못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에 묶여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에 묶이는가?
이른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에 묶이게 되고,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에 묶이게 되느니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몸의 접촉으로 괴로운 느낌이 생겨 큰 고통이 들이닥치고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더라도 근심과 슬픔으로 원망하거나 울부짖거나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발광하지 않는다.
그런 때를 당해서는 오직 한 가지 느낌만 일으키나니,
이른바 몸의 느낌[身受]만 일으키고 마음의 느낌[心受]은 일으키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사부가 하나의 독화살만 맞고 두 번째 독화살은 맞지 않는 것처럼,
그런 때를 당해 오직 한 가지 느낌만 일으키나니,
이른바 몸의 느낌만 일으키고 마음의 느낌은 일으키지 않느니라.
즐겁다는 느낌과 접촉하더라도 탐욕의 즐거움에 물들지 않고,
탐욕의 즐거움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그 즐겁다는 느낌에 대해서 탐욕의 번뇌에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괴로움과 접촉한 느낌에 대하여도 성내지 않고,
성내지 않기 때문에 성냄이라는 번뇌에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그 두 가지 번뇌의 발생ㆍ소멸ㆍ맛들임ㆍ재앙ㆍ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고,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서 어리석음이란 번뇌에 부림을 당하지 않느니라.
그리하여 즐겁다는 느낌에서 해탈하여 묶이지 않고,
괴롭다는 느낌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에서 해탈하여 묶이지 않는다.
무엇에 묶이지 않는가?
이른바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에 묶이지 않고,
태어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과 근심ㆍ슬픔ㆍ번민ㆍ괴로움에 묶이지 않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많이 들어 아는 이라 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고 지각하지 못하는 것 아니네.
그들은 차라리 저 범부들보다
사실은 더 많이 지각하느니라.
즐겁다는 느낌에 방일(放逸)하지 않고
괴로움과 접촉해도 근심 더하지 않으며
괴로움과 즐거움 둘을 함께 버려
따르지도 않고 어기지도 않느니라.
비구는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바른 지혜로 휩쓸리지 않고
이런 모든 느낌에 대해서
총명한 지혜로 분명히 알 수 있네.
모든 느낌을 분명히 알기에
현세(現世)에 있어선 모든 번뇌 다하고
죽은 뒤에도 수(數)13)에 떨어지지 않아
영원히 반열반(般涅槃)에 머무르게 된다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71. 허공경(虛空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허공에서 거센 바람이 갑자기 일어나 사방에서 불어올 때,
먼지가 섞인 바람ㆍ먼지가 없는 바람ㆍ비습바(毘濕波) 바람ㆍ비람바(鞞嵐婆) 바람ㆍ옅은 바람ㆍ두터운 바람 ……(내지)…… 회오리바람이 있는 것과 같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의 바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갖가지 느낌,
즉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ㆍ몸이 즐겁다는 느낌ㆍ몸이 괴롭다는 느낌ㆍ몸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ㆍ마음이 즐겁다는 느낌ㆍ마음이 괴롭다는 느낌ㆍ마음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ㆍ즐거운 음식이라는 느낌ㆍ괴로운 음식이라는 느낌ㆍ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음식이라는 느낌ㆍ즐거움이 없는 음식이라는 느낌ㆍ괴로움이 없는 음식이라는 느낌ㆍ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은 것조차 없는 음식이라는 느낌ㆍ탐욕은 즐거운 것이라는 느낌ㆍ탐욕은 괴로운 것이라는 느낌ㆍ탐욕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라는 느낌ㆍ출요(出要)는 즐거운 것이라는 느낌ㆍ출요는 운 것이라는 느낌ㆍ출요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이라는 느낌이 일어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허공에서
갖가지 거센 바람이 이는 것과 같으니
동ㆍ서ㆍ남ㆍ북에서 바람이 불고
4유(維)에서도 또한 그와 같네.
먼지가 섞인 바람,
먼지가 없는 바람
나아가,
회오리를 일으키는 바람
그와 같이 이 몸 가운데
모든 느낌의 일어남도 또한 그러하다네.
즐겁거나 혹은 괴롭다는 느낌
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음식이 있고 음식이 없다는 느낌
탐착하고 탐착하지 않는다는 느낌.
비구는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바른 지혜로써 휩쓸리지 않고
이런 모든 느낌에 대해
총명한 지혜로 분명히 아네.
모든 느낌을 분명히 알기에
현세에 있어선 모든 번뇌 다하고
죽은 뒤에도 수(數)에 떨어지지 않아
영원히 반열반(般涅槃)에 머무르게 된다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72. 객사경(客舍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객사에 온갖 사람들인,
찰리(刹利)ㆍ바라문(婆羅門)ㆍ장자(長者)ㆍ거사(居士)ㆍ야인(野人)ㆍ사냥꾼ㆍ계(戒)를 지키는 사람ㆍ계를 범한 사람ㆍ재가인ㆍ출가인이 모두 그 안에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 몸에서도 또한 그와 같이 갖가지 느낌이 생기나니,
즉 괴롭다는 느낌ㆍ즐겁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ㆍ몸이 즐겁다는 느낌ㆍ몸이 괴롭다는 느낌ㆍ몸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ㆍ마음이 즐겁다는 느낌ㆍ마음이 괴롭다는 느낌ㆍ마음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ㆍ즐거운 음식이라는 느낌ㆍ괴로운 음식이라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음식이라는 느낌ㆍ즐거움이 없는 음식이라는 느낌ㆍ괴로움이 없는 음식이라는 느낌ㆍ괴롭지 않고 즐겁지 않음조차 없는 음식이라는 느낌ㆍ탐착이 즐겁다는 느낌ㆍ탐착이 괴롭다는 느낌ㆍ탐착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ㆍ출요(出要)가 즐겁다는 느낌ㆍ출요가 괴롭다는 느낌ㆍ출요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객사(客舍) 안에
온갖 사람들이 머무는 것 같네.
찰리와 바라문과
장자와 거사 등이며
전다라와 야인과
계를 지키는 자와 계를 범한 자
재가인과 출가인
이와 같은 온갖 사람이니라.
이 몸도 또한 그와 같아
여러 느낌이 생기나니
즐겁거나 혹은 괴롭다는 느낌
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음식이 있고 음식이 없다는 느낌
탐착하고 탐착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비구는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바른 지혜로 휩쓸리지 않고
이런 모든 느낌에 대해
총명한 지혜로 분명히 알 수 있네.
모든 느낌을 분명히 알기에
현세에 있어선 모든 번뇌 다하고
죽은 뒤에도 수(數)에 떨어지지 않아
영원히 반열반(般涅槃)에 머무르게 된다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73. 선경(禪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어떤 비구가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사유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을 말씀하시고선,
또 존재하는 모든 느낌은 다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선정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한 쪽에 물러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사유하다가 ‘세존께서는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을 말씀하시고 나서,
또 존재하는 모든 느낌은 다 괴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하고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행(行)은 무상(無常)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행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느낌은 다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행은 무상한 것이고
모두가 변하고 바뀌는 법임을 알기에
느낌은 모두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나니
바르게 깨우친 이가 아는 것이라네.
비구는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바른 지혜로 휩쓸리지 않고
이런 모든 느낌에 대해
총명한 지혜로 분명히 알 수 있네.
모든 느낌을 분명히 알기에
현세에 있어선 모든 번뇌 다하고
죽은 뒤에도 수(數)에 떨어지지 않아
영원히 반열반에 머무르게 된다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74. 지식경(止息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존자 아난은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사유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을 말씀하시고,
또 존재하는 모든 느낌은 다 괴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선정에서 일어나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사유하다가 ‘세존께서는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을 말씀하시고선,
또 존재하는 모든 느낌은 다 괴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행(行)이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행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느낌은 다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또 아난아,
나는 모든 행이 점차로 고요히 소멸하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고,
모든 행은 점차로 그치고 쉬기 때문에 말하나니,
일체의 모든 느낌은 다 괴로운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모든 행이 점차로 고요히 소멸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초선(初禪)의 삼매에 들 때는 언어(言語)가 고요히 소멸하고,
제2선의 삼매에 들 때는 각(覺)과 관(觀)이 고요히 소멸하며,
제3선의 삼매에 들 때는 기쁜 마음[喜心]이 고요히 소멸하고,
제4선의 삼매에 들 때는 드나드는 숨결[出入息]이 고요히 소멸하며,
공입처(空入處)의 삼매에 들 때는 빛깔에 대한 생각[色想]이 고요히 소멸하고,
식입처(識入處)의 삼매에 들 때는 공입처에 대한 생각[空入處想]이 고요히 소멸하며,
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의 삼매에 들 때는 식입처에 대한 생각[識入處想]이 고요히 소멸하고,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의 삼매에 들 때는 무소유입처에 대한 생각[無所有入處想]이 고요히 소멸하며,
상수멸(想受滅)의 삼매에 들 때는 생각[想]과 느낌[受]이 고요히 소멸하나니,
이것이 점차로 모든 행이 고요히 소멸한다는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점차로 모든 행이 그치고 쉬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초선의 삼매에 들 때는 언어가 그치고 쉬며,
제2선의 삼매에 들 때는 각과 관이 그치고 쉬며,
제3선의 삼매에 들 때는 기쁜 마음이 그치고 쉬며,
제4선의 삼매에 들 때는 드나드는 숨결이 그치고 쉬며,
공입처의 삼매에 들 때는 빛깔에 대한 생각이 그치고 쉬며,
식입처(識入處)의 삼매에 들 때는 공입처에 대한 생각이 그치고 쉬며,
무소유입처의 삼매에 들 때는 식입처에 대한 생각이 그치고 쉬며,
비상비비상입처의 삼매에 들 때는 무소유입처에 대한 생각이 그치고 쉬며,
상수멸의 삼매에 들 때는 생각과 느낌이 그치고 쉬나니,
이것이 점차로 모든 행이 그치고 쉰다는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점차로 모든 행이 그치고 쉰다는 것이었군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또 훌륭한 그치고 쉼ㆍ기이하고 특이한 그치고 쉼ㆍ높은 그치고 쉼ㆍ위없는 그치고 쉼이 있나니,
이와 같은 그치고 쉼 보다 더 뛰어난 어떤 그치고 쉼도 없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훌륭한 그치고 쉼ㆍ기이하고 특이한 그치고 쉼ㆍ높은 그치고 쉼ㆍ위없는 그치고 쉼으로서,
어떤 그치고 쉼도 그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탐욕의 마음을 좋아하지 않고 해탈하며,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좋아하지 않고 해탈한다면,
이것이 훌륭한 그치고 쉼ㆍ기이하고 특이한 그치고 쉼ㆍ높은 그치고 쉼ㆍ위없는 그치고 쉼으로서,
어떤 그치고 쉼도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은 없다는 것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75. 선지경(先智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바시(毘婆尸)여래께선 부처를 이루기 전에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사유하시다가 이와 같이 관찰하셨으니,
즉 모든 느낌을 관찰하셨다.‘무엇이 느낌이고,
무엇이 느낌의 발생이 되며,무엇이 느낌의 소멸인가?
무엇이 느낌이 발생하는 길이며,
무엇이 느낌이 소멸하는 길인가?
무엇이 느낌에 맛들임이며,
무엇이 느낌의 재앙이며,
무엇이 느낌에서 벗어남인가?’
그리하여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런 세 가지 느낌이 있다.
접촉의 발생이 곧 느낌의 발생이 되며,
접촉의 소멸이 곧 느낌의 소멸이 된다.
만일 느낌을 사랑하고 좋아하며,
찬탄하고 물들어 집착하며,
견고히 머무른다면 이것을 느낌이 발생하는 길이라고 한다.
만일 느낌을 사랑하거나 좋아하지 않고,
찬탄하거니 물들어 집착하거나 굳건히 머무르지도 않는다면 이것을 느낌이 소멸하는 길이라 한다.
만일 느낌을 인연하여 즐거움과 기쁨이 생긴다면 이것을 느낌에 맛들임이라고 하고,
만일 느낌이 무상한 것이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느낌의 재앙이라고 하며,
만일 느낌에 대하여 욕탐(欲貪)을 끊고 욕탐을 초월한다면 이것을 느낌에서 벗어남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비바시불에 대하여 설하신 소경에서와 마찬가지로 식기불(式棄佛)ㆍ비습파부불(毘濕婆浮佛)ㆍ가라가손제불(迦羅迦孫提佛)ㆍ가나가모니불(迦那迦牟尼佛)ㆍ가섭불(迦葉佛)과 나 석가문불(釋迦文佛)이 부처를 이루기 전에 모든 느낌을 사유하여 관찰한 것을 설한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476. 선사경(禪思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어떤 비구가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사유하다가 다음과 같이 모든 느낌을 관찰하였다.
‘무엇이 느낌이고,
무엇이 느낌의 발생이며,
무엇이 느낌의 소멸인가?
무엇이 느낌이 발생하는 길이며,
무엇이 느낌이 소멸하는 길인가?
무엇이 느낌에 맛들임이고,
무엇이 느낌의 재앙이며,
무엇이 느낌에서 벗어남인가?’
이때 그 비구는 선정에서 깨어나서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홀로 어느 고요한 곳에서 선정에 들어 사유하다가 ‘무엇이 느낌이고,
무엇이 느낌의 발생이며,
무엇이 느낌의 소멸인가?
무엇이 느낌이 발생하는 길이며,
무엇이 느낌이 소멸하는 길인가?
무엇이 느낌에 맛들임이고,
무엇이 느낌의 재앙이며,
무엇이 느낌에서 벗어남인가?’ 하고 모든 느낌에 대하여 관찰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다.
접촉의 발생이 곧 느낌의 발생이요,
접촉의 소멸이 곧 느낌의 소멸이다.
만일 느낌에 대하여 사랑하고 좋아하며,
찬탄하고 물들어 집착하며,
굳건히 머무른다면 이것을 느낌이 발생하는 길이라고 하고,
만일 느낌에 대하여 사랑하거나 좋아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물들어 집착하지도 굳건히 머무르지도 않는다면 이것을 느낌이 소멸하는 길이라고 한다.
만일 느낌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긴다면 이것을 느낌에 맛들임이라고 하고,
만일 느낌이 무상한 것이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느낌의 재앙이라고 하며,
만일 느낌에 대하여 욕탐(欲貪)을 끊고 욕탐을 초월한다면 이것을 느낌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77. 아난소문경(阿難所問經)
다른 비구가 물었다[異比丘問]라고 한 소경에서와 같이 존자 아난이 물은 이 경의 내용도 그와 같다.
478. 비구경(比丘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엇이 느낌이고,
무엇이 느낌의 발생이며,
무엇이 느낌의 소멸인가?
무엇이 느낌이 발생하는 길이며,
무엇이 느낌이 소멸하는 길인가?”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원하옵건대 자세히 말씀하여 주소서.
모든 비구들은 그 설법을 들은 뒤에 마땅히 받들어 행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도록 하라.
지금 너희들에게 설명해주리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니라.
접촉의 발생이 곧 느낌의 발생이 되며,
접촉의 소멸이 곧 느낌의 소멸이 된다.
만일 느낌에 대하여 사랑하고 좋아하며,
찬탄하고 물들어 집착하며,
굳건히 머무른다면 이것을 느낌이 발생하는 길이라고 하고,
만일 느낌에 대하여 사랑하거나 좋아하지 않고,
찬탄하지도 물들어 집착하지도 굳건히 머무르지도 않는다면,
이것을 느낌이 소멸하는 길이라고 한다.
만일 느낌을 인연하여 기쁨과 즐거움이 생긴다면 이것을 느낌에 맛들임이라고 하고,
만일 느낌이 무상한 것이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이것을 느낌의 재앙이라고 하며,
만일 느낌에 대하여 욕탐(欲貪)을 끊고 욕탐을 초월한다면 이것을 느낌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79. 해탈경(解脫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모든 느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느낌의 발생ㆍ느낌의 소멸ㆍ느낌이 발생하는 길ㆍ느낌이 소멸하는 길ㆍ느낌에 맛들임ㆍ느낌의 재앙ㆍ느낌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했다면,
나는 모든 하늘ㆍ세간ㆍ마(魔)ㆍ범(梵)ㆍ사문ㆍ바라문 등 하늘과 사람들 가운데서 해탈하지도 벗어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모든 뒤바뀜에서 해탈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느낌에 대하여,
또 느낌의 발생ㆍ느낌의 소멸ㆍ느낌이 발생하는 길ㆍ느낌이 소멸하는 길ㆍ느낌에 맛들임ㆍ느낌의 재앙ㆍ느낌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았기 때문에 모든 하늘ㆍ세간ㆍ마ㆍ범ㆍ사문ㆍ바라문 등 하늘과 사람들 가운데서 벗어났으며,
모든 뒤바뀜을 해탈하였고,
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얻었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0. 사문바라문경(沙門婆羅門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문 바라문이 모든 느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느낌의 발생ㆍ느낌의 소멸ㆍ느낌이 발생하는 길ㆍ느낌이 소멸하는 길ㆍ느낌에 맛들임ㆍ느낌의 재앙ㆍ느낌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는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도 아니며,
사문답지 않고 바라문답지도 않으며,
사문의 도리가 아니요 바라문의 도리도 아니니라.즉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에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모든 느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느낌의 발생ㆍ느낌의 소멸ㆍ느낌이 발생하는 길ㆍ느낌이 소멸하는 길ㆍ느낌에 맛들임ㆍ느낌의 재앙ㆍ느낌에서 벗어남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는 곧 사문 중의 사문이요 바라문 중의 바라문이며,
사문답고 바라문다우며,
사문의 도리요 바라문의 도리이니,
즉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에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는 것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사문과 사문이 아닌 것에 대해 설하신 경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문의 수에 들어가고 사문의 수에 들어가지 않는 것에서도 또한 그와 같다.
481. 일사능가라경(壹奢能伽羅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일사능가라국(壹奢能伽羅國)14)에 있는 일사능가라 숲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곳에서 보름동안 좌선하고자 한다.
모든 비구들아,
걸식과 포살(布薩)을 제외하고는 다른 일로 유행하지 말라.”
그리곤 곧 좌선하시며 걸식과 포살을 제외하곤 유행하지 않으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보름이 지난 뒤,
대중들 앞에 자리를 펴시고 앉아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으로 부처가 되었을 때 사유했던 선법(禪法)의 한 부분으로써 이번 보름동안 사유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중생들에게 느낌이 생기는 데에는 다 인연이 있다.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그 인연인가?
욕망[欲]이 그 인연이요,
지각[覺]이 그 인연이며,
접촉[觸]이 그 인연이다.’모든 비구들아,
욕망이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고,
지각이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으며,
접촉이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으면,
그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나니,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은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는 것이니라.
그 욕망이 소멸하여 고요해지더라도 지각이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고 접촉이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으면,
그 인연으로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나니,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은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는 것이니라.
그 욕망이 소멸하여 고요해지고 지각도 소멸하여 고요해지더라도,
접촉이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으면 그 인연으로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나니,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은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는 것이니라.
그 욕망이 소멸하여 고요해지고 지각이 소멸하여 고요해지며 접촉이 소멸하여 고요해지더라도 그 인연으로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나니,
그것들이 소멸하여 고요해진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는 것이니라.
삿된 소견[邪見]을 인연하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며,
삿된 소견이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은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긴다.
삿된 뜻[邪志]ㆍ삿된 말[邪語]ㆍ삿된 업[邪業]ㆍ삿된 생활[邪命]ㆍ삿된 방편[邪方便]ㆍ삿된 기억[邪念]ㆍ삿된 선정[邪定]ㆍ삿된 해탈[邪解脫]ㆍ삿된 지혜[邪智]를 인연하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며,
……(내지)…… 삿된 지혜가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은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긴다.
바른 소견[正見]을 인연하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며,
바른 소견이 소멸하여 고요해진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긴다.
바른 뜻[正志]ㆍ바른 말[正語]ㆍ바른 업[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기억[正念]ㆍ바른 선정[正定]ㆍ바른 해탈[正解脫]ㆍ바른 지혜[正智]를 인연하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며,
바른 지혜가 소멸되어 고요해진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느니라.
만일 그가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고,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며,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려 한다면,
그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며,
그것이 소멸되어 고요해진 인연 때문에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나니,
이것을 소멸하여 고요해지지 않은 인연으로 중생에게 느낌이 생기고 소멸되어 고요해진 인연 때문에 느낌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이와 같은 연(緣)과 연(緣)ㆍ연과 연의 발생ㆍ연과 연의 소멸ㆍ연과 연이 발생하는 길ㆍ연과 연이 소멸하는 길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는 사문 중의 사문이 아니요 바라문 중의 바라문이 아니며,
사문 중의 사문답지 못하고 바라문 중의 바라문답지 못하며,
사문의 도리가 아니요 바라문의 도리가 아니니,
즉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쳐 후세에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이 연과 연ㆍ연과 연의 발생ㆍ연과 연의 소멸ㆍ연과 연이 발생하는 길ㆍ연과 연이 소멸하는 길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는 사문 중의 사문이요 바라문 중의 바라문이며,
사문답고 바라문다우며,
사문의 도리요 바라문의 도리이니,
즉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증득하여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쳐 후세에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는 것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2. 희락경(喜樂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보내고 계셨다.이때 급고독(給孤獨) 장자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시어 보여 가르치고 기쁘게 해주셨다.
갖가지로 설법하여 보여 가르치고 기쁘게 해주시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여러 대중들과 함께 3개월 동안 저에게서 의복ㆍ음식과 병을 치료하는 탕약을 받아 주소서.”
그때 세존께서 잠자코 허락하셨다.
이때 급고독 장자는 부처님께서 잠자코 청을 허락하신 것을 아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3개월이 지난 뒤,
그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부처님께서 급고독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장자여,
3개월 동안 의복ㆍ음식과 병에 맞추어 탕약을 공양하였구나.
너는 위로 올라가는 길을 장엄하고 깨끗이 닦았으니미래 세상에서는 반드시 안락한 과보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지금 잠자코 이 법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말라.
너는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기쁨[喜]과 즐거움[樂]에서 멀리 떠나기를 때때로 배워 완전히 몸으로 증득해야 하느니라.”
이때 급고독 장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때 존자 사리불이 대중들 가운데 있다가 급고독 장자가 떠난 것을 알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기이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너는 3개월 동안 여래의 대중들에게 빠짐없이 갖추어 공양하여 위로 오르는 길을 깨끗이 닦았으니,
미래 세상에서는 반드시 안락한 과보(果報)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잠자코 있어야지 이 복을 즐거워하거나 집착하지는 말라.
너는 마땅히 기쁨과 즐거움에서 멀리 떠나기를 때때로 배워 완전한 몸으로 증득해야 한다’고 급고독 장자를 위해 훌륭히 설법하시고,
급고독 장자를 잘 격려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움에서 멀리 떠나기를 배워 완전히 몸으로 증득하게 한다면,
그들은 다섯 가지 법(法)을 멀리 여의고 다섯 가지 법을 닦아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 가지 법을 멀리 여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탐욕에 의해 자라난 기쁨을 끊고,
탐욕에 의해 자라난 근심을 끊으며,
탐욕에 의해 자라난 평정을 끊고,
착하지 않은 것에 의해 자라난 기쁨을 끊고,
착하지 않은 것에 의해 자라난 근심을 끊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법을 멀리 여읜다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법을 닦아 만족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따라서 기뻐함[隨喜]ㆍ즐거워하며 기뻐함[歡喜]ㆍ편안히 쉼[猗息]ㆍ즐거워함[樂]ㆍ한마음[一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만일 거룩한 제자가 기쁨과 즐거움에서 멀리 떠나기를 닦고 배워 완전히 몸으로 증득한다면 다섯 가지 법을 멀리 여의고 다섯 가지 법을 닦아 만족할 것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3. 무식락경(無食樂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음식이 필요한 기억이 있고,
음식이 필요 없는 기억이 있으며,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기억이 있다.
음식이 필요한 즐거움이 있고,
음식이 필요 없는 즐거움이 있으며,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즐거움이 있다.
음식이 필요한 평정이 있고,
음식이 필요 없는 평정이 있으며,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평정이 있다.
음식이 필요한 해탈이 있고,
음식이 필요 없는 해탈이 있으며,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해탈이 있다.
음식이 필요한 기억[食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5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기억이다.
음식이 필요 없는 기억[無食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가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떠남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초선(初禪)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 없는 기억이라고 한다.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기억[無食無食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가 지니고 있던 각(覺)과 관(觀)을 쉬고 안으로 깨끗한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제2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기억이라고 하느니라.
음식이 필요한 즐거움[有食樂]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5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기쁨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한 즐거움이라고 한다.
음식이 필요 없는 즐거움[無食樂]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지니고 있던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깨끗한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 없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즐거움[無食無食樂]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가 기쁨과 탐욕을 떠나 평정한 마음으로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에 머무르고,
저 성인들께서 말씀하신 평정에 안락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즐거움이라고 하느니라.
음식이 필요한 평정[有食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5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평정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한 평정이라고 한다.
음식이 필요 없는 평정[無食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저 비구가 기쁨과 탐욕을 떠나 평정한 마음으로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에 머무르고,
저 성인들께서 말씀하신 평정에 안락하게 머무르는 제3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 없는 평정이라고 한다.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평정[無食無食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가 괴로움도 여의고 즐거움도 쉬어,
근심과 기쁨은 이미 벗어났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 평정하며,
깨끗한 기억에 한마음인 제4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평정이라고 하느니라.
음식이 필요한 해탈[有食解脫]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색(色)과 함께 행해지는 것이다.
음식이 필요 없는 해탈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무색(無色)과 함께 행해지는 것이다.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해탈[無食無食解脫]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저 비구가 탐욕에 물들지 않고 해탈하며,
성냄과 어리석음에 마음이 물들지 않고 해탈하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해탈이라고 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4. 발다라경(跋陀羅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그때 존자 발다라(跋陀羅) 비구와 존자 아난도 함께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존자 아난이 존자 발다라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서로 문안인사를 나누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섰다.
이때 아난이 발다라 비구에게 물었다.
“무엇을 봄[見]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까?
무엇이 들음[聞] 중에 제일이고,
무엇이 즐거움[樂] 중에 제일이며,
무엇이 생각[想] 중에 제일이고,
무엇이 존재[有] 중에 제일입니까?”
존자 발다라가 존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자유자재로 만들어내고 마음대로 변화하는 세간의 아버지인 범천(梵天)이 있습니다.
만일 그 범천을 본다면 이것을 봄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떠남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곳곳마다 윤택하고 곳곳마다 기쁨에 넘치며 온 몸에 가득 차지 않는 곳이 없나니,
이른바 떠남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냅니다.
그는 삼매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쳐 온 대중들에게 ‘지극한 고요함은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고,
지극한 즐거움은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는다면 이것을 들음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또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이 몸에서 기쁨을 여읜 즐거움이 윤택하여 곳곳마다 윤택하고,
기쁨이 넘치고 충만하여 온 몸에 충만하지 않은 곳이 없나니,
이른바 기쁨을 여읜 즐거움입니다.
이것을 즐거움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생각 중에 제일인가?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일체의 식입처(識入處)를 벗어나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에 원만하게 머무릅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것을 생각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존재 중에 제일인가?
또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무소유입처를 벗어나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에 원만하게 머무릅니다.
만일 그런 존재를 일으킨다면 이것을 존재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존자 아난이 존자 발다라 비구에게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또한 그들과 같으니,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제가 방편을 써서 당신에게 묻겠으니 당신은 자세히 들으십시오.
당신을 위해 설명하겠습니다.
그 관찰한 바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봄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 들은15) 바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들음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생겨난 즐거움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즐거움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 생각한 바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생각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대로 관찰하여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존재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이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 논설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485. 우다이경(優陀夷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병사왕(甁沙王)16)은 존자 우다이(優陀夷)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이때 병사왕이 존자 우다이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모든 느낌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우다이가 말하였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병사왕이 존자 우다이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라고 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두 가지 느낌인,
즐겁다는 느낌과 괴롭다는 느낌만 있어야 마땅합니다.
만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곧 적멸(寂滅)입니다.”
이와 같이 세 번을 말했지만,
우다이는 왕에게 세 가지 느낌이라는 것을 설득시킬 수 없었고,
왕도 또한 두 가지 느낌이라고 존자를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섰다.
이때 존자 우다이가 앞에 했던 말들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고 여쭈었다.
“저는 세 가지 느낌이라고 왕을 설득시킬 수 없었고,
왕도 또한 두 가지 느낌이라고 저를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일부러 함께 찾아와 세존께 그 뜻을 여쭙습니다.
정확히 몇 가지 느낌이 있습니까?”
▸ 부처님께서 우다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때로는 한 가지 느낌을 말하고,
때로는 두 가지 느낌을 말하며,
세 가지ㆍ네 가지ㆍ다섯 가지ㆍ여섯 가지ㆍ열여덟 가지ㆍ서른여섯 가지 ……(내지)…… 백 여덟 가지 느낌을 말하고,
때로는 한량없는 느낌을 말한다.◂
어떤 것이 내가 말하는 한 가지 느낌인가?
존재하는 모든 느낌은 다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한 가지 느낌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 느낌인가?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두 가지 느낌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 느낌인가?
즐겁다는 느낌ㆍ괴롭다는 느낌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느낌인가?
이른바 욕계(欲界)에 얽매이는 느낌ㆍ
색계(色界)에 얽매이는 느낌ㆍ
무색계(無色界)에 얽매이는 느낌과
얽매이지 않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을 다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즐거움의 근본ㆍ
기쁨의 근본ㆍ
괴로움의 근본ㆍ
근심의 근본ㆍ
평정의 근본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여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안촉(眼觸)에서 생기는 느낌과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감촉에서 생기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을 열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6희행(憙行)을 따르고,
6우행(憂行)을 따르며,
6사행(思行)을 따르는 느낌이니,
이것이 열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여섯 가지 탐착(貪着)을 의지한 기쁨,
여섯 가지 탐착을 여읜 것을 의지한 기쁨,
여섯 가지 탐착을 의지한 근심,
여섯 가지 탐착 을 여읜 것을 의지한 근심,
여섯 가지 탐착을 의지한 평정,
여섯 가지 탐착 을 여읜 것을 의지한 평정이니,
이것을 서른여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백 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서른여섯 가지 느낌에서
과거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과
미래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과
현재의 서른여섯 가지 느낌을 합한 것이니,
이것을 백 여덟 가지 느낌이라고 말는 것이다.
어떤 것을 한량없는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런 느낌
저런 느낌 등을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
이와 같이 한량없는 이름으로 말하는 것,
이것을 한량없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우다이여,
나는 이와 같이 느낌의 참다운 뜻을 갖가지로 말하느니라.
세간에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논쟁하고 서로 반대하며,
끝내 나의 법(法)과 율(律)에서 진실한 뜻을 얻지 못해 스스로 쉬지 못하느니라.
우다이여,
만일 내가 말한 이 갖가지 느낌의 이치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이해하고 안다면
논쟁이나 서로 반대하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일어났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다툼도 이 법과 율로써 그쳐 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다이여,
두 가지 느낌이 있으니,
탐욕의 느낌과 탐욕을 여읜 느낌이니라.
어떤 것을 탐욕의 느낌이라고 하는가?
5욕(欲) 공덕(功德)을 인연하여 생긴 느낌이니,
이것을 탐욕의 느낌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탐욕을 여읜 느낌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탐욕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으며,
여읜으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초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탐욕을 여읜 느낌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이가 ‘중생들이 이 초선을 의지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즐거움이요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또 이보다 더 훌륭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것인가?
이른바 비구가 지니고 있던 각과 관을 여의고 안으로 깨끗해져서,
선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제2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훌륭한 즐거움이라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내지)……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까지 점점 더 훌륭한 것을 말한다.
만일 어떤 이가 ‘오직 이 이치만이 있다.
나아가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이 최고의 즐거움이요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또한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또 이보다 더 뛰어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것인가?
이른바 비구가 일체의 비상비비상입처를 뛰어넘어 생각[想]과 느낌[受]의 소멸을 몸으로 증득하여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저것보다 더 훌륭한 즐거움이라고 하느니라.
만일 어떤 출가한 이학(異學)이 ‘사문 석종자(釋種子)는 〈생각과 느낌의 소멸이 지극한 즐거움이다〉라고 말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느낌 중 즐거움의 수효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느낌 중 즐거움의 수효는 이러이러하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다이여,
네 가지 즐거움이 있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이른바 탐욕을 여읜 즐거움ㆍ
멀리 여읜 즐거움ㆍ
적멸(寂滅)의 즐거움ㆍ
보리(菩提)의 즐거움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우다이와 병사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6. 일법경(一法經) 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한 가지 법에 대하여 정녕 싫어하여 여읠 마음을 내고 좋아하지 않으며 등지고 버린다면 모든 번뇌를 다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음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이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명(名)과 색(色)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음식[食]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이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내외입처(內外入處)니라.
또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17)이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8법이니라.
또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중생들의 아홉 거처18)이니라.
또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10업적(業跡)19)이니라.
이러한 10법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좋아하지 않으며 등지고 버린다면 모든 번뇌를 다하게 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7. 일법경 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한 가지 법에 대하여 바르게 싫어하여 여읠 마음을 내고 즐거워하지 않으며 등지고 버린다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다해 괴로움에서 해탈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음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이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명(名)과 색(色)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음식[食]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이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내외입처(內外入處)이니라.
또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8법이니라.
또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중생들의 아홉 가지 거주처이니라.
또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10업적(業跡)이니라.
이러한 10법에 대하여 진정 싫어하는 마음을 내고 좋아하지 않으며 등지고 버린다면 괴로움을 끝을 끝까지 다해 괴로움에서 해탈하게 될 것이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8. 일법경 ③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가란다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한 가지 법에 대하여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 관찰하며,
탐욕을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하고,
소멸하는 것이라 관찰하며,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한다면 모든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음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이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명(名)과 색(色)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음식[食]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이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내외입처(內外入處)니라.
또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8법이니라.
또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중생들의 아홉 거처니라.
또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10업적(業跡)이니라.
이러한 10법에 대하여 무상하다고 바르게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 관찰하며,
탐욕을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하고,
소멸하는 것이라 관찰하며,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 관찰한다면,
모든 번뇌가 다하게 되느니라.”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9. 일법경 ④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한 가지 법에 대하여 무상한 것이라고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탐욕은 여의어야 할 것이라고 관찰하고,
소멸하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버리고 여의어야 할 것이라고 관찰한다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다하게 될 것이니,
이른바 일체 중생은 음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는 것이니라.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명(名)과 색(色)이니라.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 가지 느낌이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음식[食]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이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내외입처(內外入處)이니라.
또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 이른바 7식주(識住)니라.
또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8법이니라.
또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중생들의 9가지 거주처이니라.
또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10업적(業跡)이니라.◂
이러한 10법에 대하여 무상한 것이라고 관찰하고,
변하고 바뀌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탐욕은 여의어야 할 것이라 관찰하고,
소멸하는 것이라고 관찰하며,
버리고 여의어야 할 것이라고 관찰한다면,
괴로움의 끝을 끝까지 다해 괴로움에서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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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대장경과 신수대장경에는 이 경이 없이 번호를 뛰어넘어서 454 다음에 456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대만 발행 불광대장경에서는 송ㆍ원ㆍ명 3본에 의거하여 455번째 소경을 보충해 넣었으므로 역자도 결여된 번호의 소경을 채우기 위해 이에 의거하여 번역해 넣어 둔다.
2)
팔리어로는 ābhādhātu이고 색계(色界) 2선천(禪天)을 말한다.
3)
팔리어로는 subhadhātu이고 색계 3선천을 말한다.
4)
팔리어로는 ākāsānañcāyatanadhātu이고 곧 무색계(無色界) 중 하나인 공무변처계(空無邊處界)를 말한다.
5)
팔리어로는 viññāṇañcāyatanadhātu이고 무색계 중 하나인 식무변처계(識無邊處界)를 말한다.
6)
팔리어로는 ākiñcaññāyatanadhātu이고 무색계 중의 하나인 무소유처계(無所有處界)를 말한다.
7)
팔리어로는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dhātu이고 무색계 중 가장 높은 비상비비상처계(非想非非想處界)를 말한다.
8)
팔리어로는 saññāvedayitanirodhadhātu이고 멸진정(滅盡定)을 닦아 얻는 선정의 과보로서 상수멸진정(想受滅盡定)이라고도 한다.
9)
원ㆍ명 2본에는 ‘내공(內空)’으로 되어있다.
10)
팔리어로는 samāpatti이고 신역에서는 등지(等至)라고 한역하였다.
이는 정신이 평등하고 적정한 상태에 이미 도달한 것을 말한다.
11)
팔리어로는 udāna이고 법구(法句)로 한역하기도 한다.
즉 12부경 가운데 하나인 무문자설(無問自說)을 말한다.
12)
팔리어로는 samyaksambuddha이고 여래 10호의 하나로서 정변지(正徧智)로 한역한다.
13)
윤회(輪廻)하며 떠도는 횟수를 뜻한다.
14)
팔리어로는 Icchānaṅgala이고 이차능가라국(伊車能伽羅國)이라고도 한역한다.
15)
고려대장경에는 ‘문(問)’자로 되어있으나 앞뒤의 문맥으로 보아 ‘문(聞)’자라야 옳다.
‘문(聞)’자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16)
16)팔리어로는 Bimbisāra이고 빈바사라왕(頻婆沙羅王)으로 한역하기도 한다.
중인도 마갈타국의 왕으로 독실한 불교신자 였다.
17)
7식처(識處)라고도 한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신이상이식주(身異想異識住)ㆍ신이상일식주(身異想一識住)ㆍ신일상이식주(身一想異識住)ㆍ신일상일식주(身一想一識住)ㆍ공무변처식주(空無邊處識住)ㆍ식무변처식주(識無邊處識住)ㆍ무소유처식주(無所有處識住)이다.
18)
9지(地) 혹은 9유(有)라 한다.
욕계(欲界)가 1지(地)이고 4색계와 4무색계가 각각 4지씩 있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오취잡거지(五趣雜居地)ㆍ잡생희락지(雜生喜樂地)ㆍ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ㆍ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ㆍ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ㆍ공무변처지(空無邊處地)ㆍ식무변처지(識無邊處地)ㆍ무소유처지(無所有處地)ㆍ비상비비상처지(非想非非想處地)이다.
19)
10악업(惡業)을 말한다.
● [pt op tr] fr
『잡아함경』 ♣0650-017♧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Louis Aubert - Téléphone - Un Autre Monde.lrc
◎◎[개별논의] ♥ ❋본문
● 수(受)의 분류와 108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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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nur1473
◈Lab value 불기2565/05/07 |
○ 2020_0606_173213_can.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Theophile Steinlen-le-verrou.jpg!HD ○ 2020_0606_130229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John_H._Twachtman_001 ♡Kōzan-ji in Shimonoseki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日本語: 下関市功山寺の仏殿(2007年9月28日、Wiki708撮影)。Category:下関市の画像、Category:日本の寺の画像 Date 8 October 2007 (original upload date) Source Transferred from ja.wikipedia to Commons by Bamse using CommonsHelper. Author The original uploader was Wiki708 at Japanese Wikipedia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TETE - A La Faveur De L'Automne.lrc TETE - A La Faveur De L'Automne ♥단상♥투자 판단의 착오 시세차를 노리고 어떤 종목을 투자했다. 그런데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팔았다. 그런데 그 뒤부터 그 종목가격이 수직상승한다. 어떤 종목을 샀다. 그런데 상당히 많이 올라서 팔았다. 그런데 다시 그 뒤로 그 몇십배가 오른다. 어떤 종목을 샀다. 그런데 폭락했다. 그래서 그것을 팔았다. 그런데 그것이 다시 급상승한다. 이런 경험을 현실에서 종종 하게 된다. 아직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직접 경험하지 않고 간접 경험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잘 기억하는 것이 좋다. 과거 시세변동표를 보고 살피면 그런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사실은 매 경우 위 반대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좋음을 원해서 매 경우 선택하는 과정은 수행도 마찬가지다. 이 선택이 중요하다. 매 경우 선택을 잘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선택을 해야 잘 선택하는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방안을 이미 과거에 살폈다. 어느 양극단의 상황에서도 가장 좋은 선택은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다. 3 계가 불타는 집과 같다. 수행이 벗어나는 길이다. 현실에서 투자를 할 때도 원칙을 잘 정해야 한다. 당장 잃어버려도 관계없고 무방한 자금만 가지고 투자를 한다. => 없어져도 무방하므로 평안해진다. 매번 도박을 하지 않는다. 주사위를 놓고 매번 원하는 숫자가 나오게 할 능력이 없다. 또 주사위를 던져서 나올 숫자를 매번 정확하게 맞출 능력이 없다. 그런 가운데 주사위 맞추기를 하는 것은 도박을 하는 것이다. 도박을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자신의 수술처럼 임해야 하다. 1% 의 사망확률이 있어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여기에 수행을 적용해보자. 어떤 경우의 최극단이던지 마음에 떠올려 본다. 그 각 경우에 무방한 방안이 있다. 그것이 수행이다. 왜 그러한가. 생사현실에서 이번 1 생만 놓고 보아도 수행이 가장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 준다. 그런데 무량겁의 생사를 전제해도 역시 수행이 가장 최상의 상태를 만들어 준다. 이것을 이해해야 도박을 행하지 않고 수행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1 생에서 가장 좋은 것을 알려면 먼저 문제되는 것들의 인과관계와 가치를 비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보면 가치 회계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 프니불자연 재단의 설립기초를 오늘 촬영했다. 동전 가운데 금속 성분이 다르다. 오늘 알았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Robert Charlebois - Que C'est Que Cest !!!.lrc 프니불자연 재단은 10 명의 연구원을 100 년간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이다. 연구 특성상 연구결과물이 시장에서는 교환될 수 없다. 그런 관계로 순수 지출만 100 년간 계속되는 형태가 된다. 2 년내 재단 기금이 천억원이 만들어진다면 좋겠지만, 안 만들어져도 연구는 계속된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5/2565-05-07-k0650-017.html#1473 sfed--잡아함경_K0650_T0099.txt ☞제17권 sfd8--불교단상_2565_05.txt ☞◆vnur1473 불기2565-05-07 θθ |
■ 선물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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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도(道)의 하나. 다시 노력 정진한 공이 현저하여 진지(眞智)를 발하고, 한창 번뇌를 끊는 자리, 번뇌 때문에 간격(間隔)되지 않으므로 무간이라 한다.
답 후보
● 무간도(無間道)
무등등(無等等)
무루도(無漏道)
무명루(無明漏)
무법애(無法愛)
무상(無相)
무상방편지(無相方便地)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 2020_0125_152138_can_AB7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keyword.html
○ [pt op tr]
● 잡아함경_K0650_T0099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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