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비일체지덕경』
K0089
T0285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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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비일체지덕경』
♣0089-004♧
제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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漸備一切智德經卷第四
K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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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비일체지덕경 제4권
서진 월지 축법호 한역
이한정 번역
7. 현묘주품(玄妙住品)
이에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시여,
보살 대사가 제6 도지(道地)를 청정하게 다스려 구족하게 안주해서,
선권(善權) 지혜를 행하는 제7 도지를 섭입하게 되면,
현묘(玄妙)한 도를 수습(修習)하는 10사(事)가 있습니다.
어떠한 것이 10사인가?
공(空)을 행하되 무상(無常)ㆍ무원(無願)에 전념해서 진제(眞諦)를 준수하는 것이고,
인욕의 힘을 성취해서 대자대비[愍傷慈哀]로써 중생을 호념하는 것이고,
불법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고,
여래에 대한 공양을 기뻐하는 것이고,
독실한 믿음에 어긋나지 않고 마음속에 지혜의 법문을 간직하는 것이고,
언제나 공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고,
무궁한 복덕을 쌓아 삼계의 공함[虛]을 깨닫는 것이고,
3세에 있어서 중생을 교화하여 번뇌를 영원히 소멸시키는 것이고,
평안함에 연유해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모든 번뇌를 끄는 것이고,
중생의 탐음(貪婬)ㆍ진에(瞋恚)ㆍ우치(愚癡)를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所有]가 마치 허깨비 같고 허수아비 같고 꿈같고 메아리 같아서 아지랑이나 물에 비친 달과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나 죄와 복을 짓는 일은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습니다.
국토가 허공과 다름없음을 의념(意念)해서 중생을 장엄국토의 청정한 법신으로 인도하여 내영(來迎)1)의 이치를 새기고 일체 부처님의 명호 및 색신의 상호(相好)와 종호(種好)를 구족하게 섭입하여 스스로를 장엄하면서 집착 없이 행하게 됩니다.
음향(音響)을 여읜 여래의 음성이 본래 적정하여 청정하다는 것을 믿어 즐거워하고 중생[群黎]의 각종 언어를 이해해서 그들을 이롭게 이끌어 장엄하게 하니,
한순간에 3세를 깨달아 모든 불세존의 업을 섭입하게 됩니다.
다시 몇 겁[時劫]을 널리 섭입해서 모든 중생수(衆生數)를 분별하고 중생의 품성에 연유한 행을 판정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것이 10사입니다.
제6 도지에서 수특(殊特)하게 도를 수습해서 제2)주에 이르는 것을 현묘(玄妙)라 이름합니다.
이처럼 보살 대사는 선권방편의 반야바라밀[智度無極]을 언제나 부지런히 닦아서,
제7 도지에 들어가 제7 도지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중생의 부류를 교화하게 되니,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법을 베풀어 고뇌 받는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 세계의 무수히 많은 거룩하고 청정한 불국토를 섭입하고,
불가사의한 몇 품(品)의 경장(經藏)의 가르침을 섭입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ㆍ정각(正覺)의 성스러운 지혜의 도업(道業)을 섭입하고,
한량없고 셀 수 없이 많은 겁수를 섭렵하여 모든 부처님의 셀 수 없이 많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소행(所行)을 섭입하고서,
셀 수 없이 많은 중생의 부류를 교화해서 독실한 믿음의 수특(殊特)한 행 섭입하게 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께서 나타내신 화신(化身)을 섭입해서 셀 수 없이 많은 중생의 근성을 터득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르침의 말씀[言敎]을 섭입하여 일체 중생을 기쁘게 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중생의 사유 형태의 온갖 심행(心行)을 섭입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ㆍ대성인께서 혜당(慧堂)으로 이롭게 인도하시는 것을 섭입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께서 시절 인연에 따라 성문을 이롭게 교화하시어 독실한 믿음으로 돌이키는 것을 섭입하여서,
셀 수 없이 많은 모든 부처님의 말씀을 즐기고,
셀 수 없이 많은 연각(緣覺)의 대중을 잘 인도하여 가르치고 교화시켜 성취하게 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부처님ㆍ지성(至聖)의 깊은 이치의 지혜에서 연출되는 도문(道門)을 섭입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여러 보살 대중의 보살행을 섭입하여 모든 부처님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승의 업에 펼쳐진 도혜(道慧)로 이끌어 주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헤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불지(佛地)에까지 이르기에,
‘일체가 평등하여 현묘한 대각(大覺)의 지(地)’라 이름하니,
그 행이 수특해서 무엇이라고 한정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약간의 무앙수ㆍ억ㆍ백천해의 겁수에 이르도록 이처럼 불법의 성업을 쌓을 수 있어야만,
‘우리가 이 같은 도를 건립하였다’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재물을 탐내지 않으면서 재물이라는 생각조차 내지 않고 뭇 행(行)을 구족하며,
이 같은 것을 자세히 살펴서 신통혜(神通慧)를 반연하여 늘 정진을 행해서 도행(道行)에 들어가 선권 지혜로 성도(聖道)에 잘 머무르되,
그 행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한결같이 때를 어기지 않고[一時] 도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되 이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니,
마음이 가는 대로 지욕(志欲)에 따르는 행이 이러해야만 업이 뚜렷하게 됩니다.
앉거나 일어서거나 경행(經行)하거나 눕거나 잠자거나 말을 할 때에도 번뇌[蓋]가 없이 고요하며,
언제나 위의를 세우고 일체를 잊지 않으며,
이 같은 도를 호념하는 행을 여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이 일어날 때면 한 찰나에 보살의 10바라밀을 갖추게 되고 공훈이 널리 쌓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보살 대사가 이처럼 있는 곳마다 발심하여 받들어 닦아 무극(無極)의 대비를 일으키면,
이로써 중생의 스승이 되어 중생을 부처님 법으로 인도하여 여래의 지혜로 교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덕의 근본을 중생에게 베풀되,
불도를 익히게 하는 것이 바로 보시바라밀[施度無極]이고,
온갖 번뇌를 소멸시키는 것이 지계바라밀[戒度無極]입니다.
만약 끝없는 자비[愍慈無盡]의 지혜로 중생의 근원[無]을 몸소 터득한다면,
바로 이러한 것이 인욕바라밀[忍度無極]입니다.
이처럼 친히 덕의 근본을 행하면서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려는 염원을 익혀 이 같은 방편을 수습(修習)하는 것이 바로 정진바라밀[進度無極]입니다.
도를 버리지 않고 일체지(一切智)로 향하는 것이 선정바라밀[禪度無極]입니다.
만약 본래 청정한 자연의 행에 다시 태어나는 문이 없음을 깨닫고 법인(法忍)을 얻게 하는 것이 지바라밀[智度無極]입니다.
이처럼 이롭게 인도하여 한량없이 거룩한 지혜로 시방의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권방편바라밀[權方便度無極]이며,
이처럼 극상(極上)의 묘한 지혜를 몸소 닦아서 도업을 기리는 것이 바로 서원바라밀[誓願度無極]이며,
온갖 외도를 모두 항복받고 마군의 무리를 제압하는 것이 바로 세력바라밀[勢力度無極]이며,
지성으로 보살펴서 일체 법을 초월하여 대비의 의행(義行)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혜바라밀[慧度無極]입니다.
이리하여 이 같은 10바라밀을 구족하여 잠깐 사이에 4은(恩)의 업을 갖추고 37도품의 법을 모두 이루어 3해탈문에 이르게 되니,
늘 평등한 마음과 한결같은 생각으로 점차로 구비해서 널리 갖추되 이같이 건립해야 합니다.”
이때 이름이 해탈월(解脫月)이고 밝게 통달한 보살이 있었는데,
금강장 대사에게 질문하였다.
“보살의 행 가운데 어떠한 업으로써 제7 도지의 일체를 구족하게 됩니까?
만약 보살도를 성취하려면 반드시 10주에 이르러야만 합니까?”
대답하였다.
“불자시여,
모든 보살의 보살행의 도는 반드시 10주의 도지를 모두 구족하고 나서야 이것에 의해 제도하고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이 같은 7주의 보살에 의한다고 하겠습니까?
왜냐하면 불자시여,
이처럼 보살도지의 행을 구족하여 신통혜(神通慧)에 들어가 일체의 도품을 구족하고,
또한 모든 10주를 성취하고서야 해탈에 매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발의로도 이러한 7주를 구비하게 되니,
왜냐하면 불자시여,
보살도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신통혜를 갖춘 뭇 행을 구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불자시여,
처음 발의하는 무렵,
제1주에서 점차로 도품을 가깝게 구족하고자 하는 일체의 서원을 세우는 마음에서 제2지를 따르게 되고,
그런 다음에 제3지 홍요(弘要)의 업에 이르고,
법광요(法光曜)의 제4 도지의 순종하는 업과 제5지의 광명을 감추고 세속에 따르는 행을 체득하고,
다시 제6지의 심묘한 법을 섭입해서 모든 부처님의 법을 교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제7주를 성취하여 신통혜를 섭입하면,
바로 제8주에 이르러 무가업지(無家業地)를 철저히 통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두 가지 세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염오[瑕疵]이고,
두 번째는 청정(淸淨)이니,
본제(本際)가 평탄하여 똑같이 청정한지라,
그 제도도 역시 똑같게 됩니다.
이 같은 두 가지 계(界)는 서로 넘나들 수 없는 것이니,
대신통과 지극한 세력의 원력으로만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보살이 청정한 개사의 행에 주력하게 되면 마침내 통달할 수 있게 되니,
게을리 하지 말고 오직 큰 서원[弘誓]ㆍ선권(善勸)ㆍ지혜ㆍ신통의 힘을 널리 구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자 다시 질문하였다.
“제7주는 어떠하기에 다시 진로행(塵勞行)에 가까워질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여러 가지 보살의 업을 관찰해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불자시여,
처음 발의해서 10주에 이르기까지 보살지에 머물러서 진로와 화복(禍福)의 업을 모두 소멸하고 도의 근원[道元]을 증장하려면,
반드시 이같이 관찰해야 합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동일한 도일지라도 이치를 따로 따로 분별하여 깨닫기 때문에 제7지라 이름합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보배 코끼리를 타고 사방 천하로 행보하면서 시비를 가려서 궁핍하고 고통스러운 환난과 더불어 진로에 섞여 사는 이들의 온갖 잡다한 더러움을 씻어 주어,
다시는 그러한 번뇌[瑕穢]에 더럽혀지거나 이를 범하지 않게 해서,
인간의 위덕을 성취하여 마침내 인간의 성품을 버리고 범천에 태어나되,
범천의 궁전으로 승천하여 천계(天界)를 살피고 범천에 머무르면서 광명을 드러내어 인간세계로 내려오지 않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처음 발의하는 무렵,
보살주에서 바라밀[度無極]을 타고 일체 중생의 행을 모두 깨닫고서 번뇌에 오염되지 않고 도당(道堂)으로 나아가되,
계율을 범하지 않는 것을 제7주라 이름합니다.
가령 모든 행을 버릴 수 있다면,
이로써 제7주에서 제8주에 이르게 되고,
또한 청정한 보살승(菩薩乘)을 계승하여 일체 중생의 행을 요지(了知)해서 진로에 집착하지 않고 번뇌에 더럽혀지지 않기에 영원히 이를 범하지 않게 되고,
잠깐 사이에 현묘한 법을 섭입하는 단계로 뛰어넘게 됩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보살이 만약 이 같은 제7주에 이르렀거나 음종(婬種)에 자리한 경우라도,
모든 욕심을 여의고 그와 같은 욕계에 머물면서 청정법을 행하기에 그들에게 번뇌가 있다 없다고 말할 수 없으니,
비록 욕계에서 수습할지라도 진로(塵勞)가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만약 여래의 지혜를 기원[願]하되 미처 구족하지 못하였다면,
이를 일컬어 진로를 여의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같은 지(地)에 머물게 되면,
지성(志性)의 청정과 신행(身行)의 결백[淸白]이 구경토록 순결하기에,
입으로 하는 말이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완전히 청정해져서 그 마음으로 호념하는 일 모두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되니,
여래를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유형ㆍ무형의 여러 가지 선업을 모두 평등하게 깨치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에 순종하여 이를 어기지 않는지라,
다시는 세속의 모든 기술[工匠]이나 외도[異術]를 따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마치 제5주의 보살도에서 세간을 흠모하지 않고 중생의 스승이 되고 친구가 되어 그들이 바라는 것을 이루게 해 주는 것과 같이,
여래의 법[至眞法]에 있어서의 미증유(未曾有)한 즐거움으로 인도하면서 삼천대천세계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모신다 하더라도 제8주 보살도의 행에 견줄 수 없게 됩니다.
지성(志性)과 행이 언제나 인자하고,
또 그러한 마음을 바탕삼아 언제나 선정에 정진하고,
아울러 신통 및 3해탈의 법문을 모두 전심으로 닦아 도문(道門)을 받들어 행하되,
바라는 바가 없어도 아직 제8 보살도를 성취하지 못하였기에 이 같은 지(地)에 머무는 것뿐입니다.
일체의 발의로써 선권 지혜를 계승하여 모두 갖추고,
도품(道品)을 닦아 제7주의 보살도지의 업을 구족하니,
이로써 개사가 잘 결택하여 선념의정(善念義定)ㆍ의승정(意勝定)ㆍ분별의정(分別義定)ㆍ심선법정(審宣法定)ㆍ선주본정(善住本定)ㆍ혜통문정(慧通門定)ㆍ수법계정(修法誡定)ㆍ약간의장정(若干義藏定)ㆍ생사무위정(生死無爲定)3)이라 이름하는 삼매와 정수(正受)를 차례대로 얻게 됩니다.
보살이 이같이 삼매와 정수를 체득해서 이러한 백만 가지의 정의(定意)를 구비해야 도지(道地)가 청정해지는 것이니,
그 정수에 기인하고,
이 같은 정의에 의거하여 청정한 선권 지혜를 얻게 됩니다.
다시 무궁한 대비[大哀]의 힘을 섭입하여 성문지(聲聞地)를 벗어나고 연각지(緣覺地)를 뛰어넘어 혜문(慧門)에 가까이 가는 것이니,
이 같은 정(定)에 머물게 되면 한량없는 신행(身行)의 업에 순응하게 됩니다.
그 상서로운 감응을 찬양하고자 입으로 외치고 마음으로 헤아려 보더라도 끝이 없는데다가,
청정하게 진리[諦]를 인견(忍見)해서 광명이 뚜렷한지라,
참으로 무생법인[無所從生法忍]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처음 발의하는 때에 제1주를 얻고 나면,
그 신ㆍ구ㆍ의 3업이 성문과 연각을 넘어서는 것이 아닙니까?”
대답하였다.
“넓디넓은 마음을 힘써 닦기 때문에 행이 제7주에 이르면 바로 자기의 행을 비할 데 없이 자유자재로 이루게 됩니다.
마치 어떤 이가 왕가에 태어나 왕자가 되어 남다른 덕망을 갖추었기에 모든 신하가 이를 보고 받들고 공경하나 스스로 방자하게 행동하지 않고,
장성해서 자신의 권세가 중신들을 뛰어넘어 국왕의 자리에 거론되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처음 발의하는 때에 모든 성문ㆍ연각의 지위를 넘어서되 심성이 부드럽고 끝없이 넓은 것이 제7주의 보살지입니다.
자신의 지혜가 자재하여 제7주에 섭입한 보살은 몹시 심묘하고 적연한 무행(無行)에까지 이르게 되고,
신ㆍ구ㆍ의[心] 3업으로 도업을 체득하면 다시 나아갈 것도 없으니,
이치를 구한다 하더라도 구한다거나 버린다는 것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구하거나 버리지 않더라도 바로 대도(大道)에 계합하는 것입니다.”
다시 질문하였다.
“불자시여,
보살주의 도지(道地)란 무엇이고,
나아가 보살이 적멸을 성취하는 정진(正眞)의 행이란 무엇입니까?”
대답하였다.
“이미 6주에 다다라서 이 같은 법을 행할 수 있다면 이는 곧 제7주의 보살도지에 이르게 되니,
일시에 발심하여 마음속으로 거듭 호념해서 적멸에 이르러 정행(正行)을 성취할 수는 있지만,
이것을 멸진(滅盡)의 증득(證得)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신ㆍ구ㆍ의의 행이 불가사의하여 그 짓는 것[所作]에 따라 혹시 보살이 본제(本際)에 이르더라도 증득을 이루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자시여,
마치 어떤 장부(丈夫)가 큰 바다로 나아가는 커다란 배의 선장이 되어,
항해에 밝고 뱃길을 잘 알아 큰 바다로 나아가 재난을 만나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불자시여,
보살도 이처럼 보살행을 건립하여 제7주에 다다르면,
바라밀이라는 도법(道法)의 배를 타고 본제로 유행(遊行)하면서 증득을 이루지 않더라도,
이 같은 성스러운 지혜의 세력(勢力)에 이르는 것만으로 삼매의 힘을 이어받아 모든 행을 성취하고 도의(道意)를 깨치게 됩니다.
커다란 선권 지혜의 힘으로 생사문(生死門)을 나타내어 행보하다가도 잠깐 사이에 열반을 이루고[滅度],
있는 그대로의 심성으로 몸을 나타내어 권속과 함께 여래의 왕래를 옹호하게 됩니다.
어지러운 속에서도 늘 정근하여 적정을 이루게 되나 그가 본래 발원했던 것에 의해 삼계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세속에 더럽혀지지 않고 출입과 진퇴가 고요하고 담담하게 이루어진다면 선권의 광명이 어찌 빛나지 않겠습니까?
번뇌의 타오름[焦然] 없이 부처님의 지혜에 이르기에 성문이나 연각의 지위로 물러나지 않고 불장계(佛藏界)를 획득하게 됩니다.
마계(魔界)에 몸을 나타내더라도 네 종류 마군(魔軍)의 무리를 굴복시키고 그 부류[部]에 행보하면서 마군을 제도하는 일을 행하니[현재 이학(異學)에는 96종류,
일체의 사도(邪道)에는 62견이 있다.],
외도와 이학을 교화하여 삿된 학술을 버리게 해서 불도에 거슬리지 않게 합니다.
현재의 모든 세간의 세속업을 평등하고 유익하게 인도하니,
세간을 건너는 법을 일체의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揵沓和]ㆍ아수라[阿須倫]ㆍ가루라[迦留羅]ㆍ긴나라[眞陀羅]ㆍ마후라[摩睺勒]ㆍ사람ㆍ사람 아닌 것[非人]ㆍ제석천ㆍ범천ㆍ사천왕에게 보여 주어 그 풍속에 따라 차림새를 거룩하고 청정하도록 묘하게 꾸미되,
마음속에는 법락의 즐거움을 버리지 않으니,
지혜가 이러해서 보살도지를 구경토록 구족해서 그와 같이 다가가기 힘든 우뚝하고 아득한 법에 깊숙이 머무르게 됩니다.
이처럼 그 수를 셀 수조차 없이 한량없이 많은 백천억ㆍ해(姟) 모든 대성인이신 부처님을 공양하되,
법의ㆍ음식ㆍ평상ㆍ와구를 올리고,
병이 드셨을 때에 의약품을 공급해서 편안하게 하면서,
목숨을 다하여 이 같은 여래에게 귀의하고 모든 부처님의 도화(道化)를 받들기에,
온갖 성문법과 연각법을 초월하여 좋은 때를 물어보면서4) 삼계를 비길 데 없이 독보하게 됩니다.
또 그와 같은 보살이 중생을 섭수하고자 하는 법인(法忍)이 청정하기에 곧 현요(玄耀)하게 드러나서 그 선덕(善德)의 근본이 무앙수억ㆍ백천해 겁 동안 이어져 더욱 풍성해지고 청정해지는 것입니다.
불자시여,
마치 기이한 보배가 여러 가지 보배 속에 섞여 있더라도 광채가 비길 데 없이 유독 우뚝하게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불자시여,
보살이 이 같은 묘법(妙法)에 머물게 되면,
개사의 도업이 이루기 힘들더라도,
이 같은 덕의 근본으로 선권방편바라밀과 지바라밀을 성취하면 바로 무상도(無上道)의 현성(顯成)이라 이름하는 것으로,
성문이나 연각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자시여,
마치 햇빛이나 달빛이 천하를 두루 비추어 만물을 기르고 진흙탕을 마르게 하는 것과 같이 해와 달의 빛에는 막힘이 없어 통하지 않거나 이롭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불자시여,
보살주(菩薩住)가 이토록 현묘하기에 참으로 이루기 힘든 것이 개사의 도업일지니,
덕의 근본[德本]이 결여된 이라도 공덕이 뚜렷하게 전전하여 일체의 성문과 연각을 모두 교화하고 수치를 느끼게 해서 온갖 진로를 제거하여 성품을 청정하게 해 줍니다.
불자시여,
이것이 바로 보살 대사의 현묘하여 이루기 힘든 제7 도주입니다.
보살 대사가 만약 제7주를 성취해서 자재의 성취가 늘어나서 혹 천왕이라도 되면,
시절 인연에 따른 지혜로 곳곳마다 법을 건립하여 정진의 업[精進業]을 행하거나 혹 보시를 행하여 인자함으로 아끼고 공경하여 이롭게 권화하되,
평등하고 은혜롭게 베풀면서[利義] 마음속으로 늘 부처님을 호념하며 잊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나아가 보혜(普慧)의 일지민지(一智愍智)로 마음속으로 중생이 부처님의 최정각(最正覺)을 이루는5) 때가 언제인지 생각하지 않고,
중생 가운데 처해서 가장 성스러운 존자가 되어 중생을 이롭게 이끌면서 일체지(一切智)를 보여 주게 됩니다.
발심할 때에는 이 같은 모양으로 투철한 정진으로 잠깐 사이에 백천억ㆍ조ㆍ해나 되는 삼매ㆍ정수(正受)를 이루고,
모든 보살들이 억ㆍ백천해의 권속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살피게 됩니다.
이러한 서원력으로 보살에게 보이는 수특한 공덕을 계승하고,
이로써 신변(神變)을 나타내게 됨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으니,
수억ㆍ백천해의 겁 동안 닦아 온 공덕의 이치가 한량없습니다.”
이때 금강장보살이 이같이 설법하고 나서 그 이치를 다시 풀이하고자 게송으로 이렇게 읊었다.
현묘한 성혜(聖慧)의
제일가는 구의(句義)에 순응해서
마음속으로 제6주를 깨쳐서
신행(身行)을 다스리되
도의 가르침을 힘써 닦아
마침내 선교방편과 지혜와 상응하면
잠깐 사이에 존귀한
제7 도지에 들어가리라.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願願)으로
자비를 행하고
모든 부처님의 도법을
받들면서 공양한다면
온갖 성혜를 깨닫는
공덕의 힘으로 싫증내지 않고
이 같은 행에 의해
제7 도지에 들어가네.
삼계의 환난에 머물더라도
도리어 고요하기에
모든 중생의 번뇌를 소멸시키고
진로(塵勞)의 불길을 꺼 주니
마치 그림자ㆍ무지개ㆍ허깨비
꿈속 같을지라도 행법(行法)에 의해
제7주에 들어가서
자비의 업을 드러내네.
거룩하고 청정한 불국토는 공하고
세간의 성품 또한 상(想)이 없어서
가장 뛰어난 상(相)을 점차로 갖춰서
동요법(動搖法)을 버리며,
묘한 음성을 일으켜
중생의 번뇌를 덜어내고
본래 공함[本空]을 사유하는 지혜가
가장 뛰어나기에 평등하게 이끌어 이롭게 하네.
이 같은 법을 수행하여
이를 밝게 드러내어
뛰어난 도지[地]로 나아가
중생을 즐겁게 하니
이 같은 지에 머물더라도
중생의 행은 한량없이 많은 것이라
안주법(安住法)을 헤아려 살펴서
한량없이 되풀이하여 보살피네.
수없는 국토의
대중이 저마다 다른 생각 내더라도
독실한 믿음을 간직한 지성(志性)으로
심행(心行)의 품류에 따라
삼승교(三乘敎)를 선포해서
무량한 평등심으로 잘 거두고
우리들이 모두 정진하고
경을 배워 저들 무리를 교화함이라.
이 같은 지혜의 마음이라야
수특하고 묘한 도를 이루니
위의(威儀)에 4사(事)를 갖추고
선권의 지혜를 좇아
모든 생각마다
도의 공훈을 이룬다면
능히 이 같은
10바라밀의 업을 구족하리라.
마음을 발의해서
보시로써 중생을 교화하고
계율로써 온갖 진로(塵勞)를 없애고
인욕으로 생각을 끊네.
정진으로 힘써 닦아
상지(上地)로 전전하는 행업을 늘려 나가며
도에 있어서 동요하지 않고
지혜의 공덕에 뜻을 세우면
무생법인(無生法忍)으로
번뇌를 여읜 지혜가 거룩하고 존귀하리니
권화(勸化)의 선권 지혜를 발원하여
영원히 의심 끊고
세력을 갖추어
성스러운 명(明)으로 널리 구제하노니
도의 공훈이 이러해서
일체를 시절에 따라 알맞게 베푸네.
예전 품지의 행을 이같이 지어야
구족이라 이름하리니
마음의 더러움을 벗겨내고
투쟁의 근원을 끊어내네.
제4주에서도 이처럼 도를 받들어
제5주의 업을 이루고서
아견(我見)이 없어6) 분별을 내지 않고
바로 제6주로 올랐으니,
이처럼 제7주에 이르러
그와 같은 시절의 공훈을 성취하여
약간의 행이나마 준수한다면
그 서원이 헤아릴 수 없으리.
어떠한 것으로
이 같은 성혜의 업을 받는가
제8주에 이른다면
일체가 모두 청정하게 되리라.
현미(玄微)한 행은 이루기 힘들고
지혜는 무앙수로도 헤아리지 못하니
마치 다른 나라로 가고자
국경을 넘는 것과 같다네.
7주법을 수행하면
마치 횃불처럼 집착이 없으리니
만약 도의(道義)에 머물면서
용맹하게 일체를 초월한다면
제8주에 들어가리니
예전 품지도 성혜의 지(地)이기에
심념(心念)의 경계를 넘어서서
지혜의 업에 머물고
범천에서 언제나 중생을 보살펴도
세속으로 기울지 않으니
이처럼 집착 없는 성현의 행이
마치 연꽃 같을세라.
이처럼 약간의 품지에 머물러
온갖 진로(塵勞)를 초월하며
진로가 없는 행도
다함이 없으리니,
이같이 도주(道住)의 진로와
번뇌가 없는 행에 이르면
가장 뛰어날지니,
환(幻)이란 본래 뿌리 없는 것이기에
지혜로써 그러한 결점을 소멸시키며,
공인(工人)이 익히는 보잘것없는
세간의 업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밝게 통달하여
세존의 가르침에 머물도록 교화하네.
일심에서 얻는 신통이야말로
받들어 행하는 힘이니
이를 약간이나마 다스려
3품의 정(定)을 얻네.
온갖 성문과
연각을 초월해서도 이렇게 행한다면
제7주에 머물러
보살의 행을 닦은 업으로
본심(本心)의 성행(性行)에 머물러
참다운 지혜의 명(明)을 이루리니
여러 성인들의 종자를 이루자면
도력(道力)을 길러가되
정근(精勤)의 행을 늘려야만
깊고 미묘함을 섭입하리니
마음의 귀취(歸趣)가 소멸되어도
증득을 이루지 않는 것이
마치 큰 바다로 들어가는
뱃전에 서서
일체의 물이
늘지도 줄지도 않음을 살핌과 같다네.
만약 이 같은 행을 힘써 받들어
선권 지혜가 뛰어나게 된다면
일체 중생의 모든 부류에게
공덕장(功德藏)을 감추지7) 않으리니
억 년 동안 부처님께 공양하여
도업을 더욱 청정히 하면
약간의 영락(瓔珞)이라도
무앙수 값어치의 진기한 보물과 같으리라.
이 같은 행에 현명하게 머무르는 것은
뛰어난 지혜의 광명일지니
애욕의 샘물을 말리고
만월이 빛나듯 하니
이 같은 지(地)를 섭입하여 머무르면
마음대로 성왕(聖王)도 될 수 있으니
최상도(最上道)의 이치를 닦아
지혜의 과실(果實)을 널리 펴게 된다네.
발심[發意]할 때에는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힘으로
부처님을 친견하되
그 수효가 천백억ㆍ해에 이를지니
스스로 잘 닦아
시방세계를 널리 보살피면서
원력을 더욱 늘려가니
끝없이 존귀한 공훈이어라.
실로 다하기 힘든 세간이라도
자유로이 도연(道緣)을 행하니
이것이 바로 제7주의
거룩하고 청정한 선권의 지혜라.
이때 여러 보살 대중의 존위(尊位)가 신묘(神妙)하여 뚜렷해졌으니,
한량없는 하늘ㆍ용과 수없는 사람들로서 그 말씀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대중이 편안한 자리와 꽃ㆍ향ㆍ당기ㆍ번기ㆍ잡향ㆍ진기한 보배ㆍ의복ㆍ일산을 연이어 공양한 것이 셀 수도 없이 많았으며,
온갖 영락들도 역시 비 내리듯 뿌렸다.
여러 천신들이 천상에서 부처님을 찬양하는 부드럽고 묘한 음성들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화음을 자연스럽게 이루어서,
중우(衆祐) 및 모든 불자를 받들고,
능인ㆍ세존의 한량없이 많음이 모두 성인 가운데에서도 최상임을 감탄하였다.
부처님의 경계를 살피시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셨으니,
그 음성은 단비나 큰 우레나 악기가 울리는 듯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약간의 음성으로 모든 부처님께서 무한 억ㆍ백천해 수효만큼 계시고,
제왕의 국토 또한 항하의 모래같이 많이 있어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되,
온 나라에 비할 데 없이 가장 넉넉하게 하더라도,
능화(能化)의 위신력으로 한 터럭의 털구멍 속에 수용(受用)하시는 부처님의 경계를 목도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번뇌를 여읜 무궁한 법도 마치 한 터럭의 전의에서와 같이 펼치시니,
어찌 어려움이 있겠는가?
국토와 처소 및 사방의 강토와 여러 종류의 하천과 큰 바다를 머금은 철위산과 수미산이 모두 있는 그대로 드러났어도 모두 비좁지 않게 털구멍 속으로 섭입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자자(自恣)를 행하니,
지옥ㆍ아귀ㆍ축생ㆍ천상의 사람이나 귀신의 무리와 아수라가 그 죄와 복이 서로 다르더라도 부처님의 경계 가운데 모두 와서 모였다.
일체의 국토를 행보하면서 여러 지방마다 존귀하고 묘한 법륜을 있는 그대로 현현해서 부드럽게 말씀하시어 중생의 마음속에 그 음성이 울려 퍼졌으니,
수행에 따라 중생[群黎]의 신체도 제각기 달랐다.
중우의 국토에 있는 중생 또한 신체를 가졌기에 그 신체를 이룬 곳에 따라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는 것도 제각기 달랐으나,
일체 중생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의 가르침대로 미세한 상(想)의 온갖 더러운 번뇌를 없애고,
도를 이루려는 마음[道念]을 일으켰다.
광대한 불국토의 모든 부처님께서 신족통(神足通)으로 이 같은 기적을 일으키시자,
세간의 모든 사람들이 이를 찬양하려 해도 어떻게 형용할 수조차 없었다.
모든 부처님께서 이처럼 도혜(道慧)가 무궁하신 데다 목소리조차 부드럽고 미묘하셨기에 이때 회상의 모든 대중이 말없이 기뻐하며 공경스럽게 우러러보았다.
가장 수특하신 성인께서 회상의 대중이 고요하게 사유에 든 것을 아시고,
마치 월식(月蝕)이 지나간 것처럼 그 광명을 다시 되돌리셨다.
“이제는 제8주의 설명을 듣고자 하오니,
원컨대 지금 행자(行者)가 섭입해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십시오.”
8.
부동주품(不動住品)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께서는 잘 들으십시오.
보살 대사가 이처럼 제7주를 궁극토록 성취하였다면,
진리[諦]를 흠모하는 지원(志願)과 청정한 업을 구하는 선권의 지혜로 뭇 행(行)을 수순하여,
기꺼이 보시하는 무극(無極)의 큰 서원으로 여래께서 세우신 밀지(密旨)를 계승하게 됩니다.
숙세의 덕본(德本)에 힘입어 여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의 세력을 이루고서 정각(正覺)의 18불공(不空)의 모든 부처님의 법을 사유하게 됩니다.
어진 지성(志性)과 청정을 호념하는 공덕 및 성스러운 지혜의 위세로 상지(上地)로 옮겨 가되,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계를 가엾이 여기면서도 법락(法樂)을 버리지 않고,
한량없이 많은 일체의 제법(諸法)을 자유자재로 섭입하여 무생(無生)에 이르게 되면,
유상(有相)이 없어 유(有)에 결합되지 않습니다.
궁극에 이르거나 소멸을 이루지 않으면서도 혜명(慧明)을 잃지 않기에 소유(所有)가 없어 본원을 평등하게 섭입하고,
다시 상지로 전전해서 득도(得度)합니다.
널리 일체 심념(心念)의 식상(識想)을 제거하여 평등하게 섭수하려는 지성으로 본래의 청정이 오염되는 것조차도 이로써 초월하기에 시절 인연에 따라 무생법인[無所從生法忍]을 체득한다고 일컫게 됩니다.
보살이 이 같은 법인을 체득해서 바로 보살지에 머무르게 되면,
다시 동요되지 않고,
곧 보살의 깊은 이치의 행을 획득하게 됩니다.
현묘해서 알기 어렵더라도 이를 훼손하지 않고,
일체의 상(想)을 소멸시키고 온갖 생각을 거두어 마침내 구경을 체득하면,
일체 성문과 연각의 대중은 그같이 적막한 일이 있는지도 깨닫지 못할 만큼 한량없이 많고 비할 데 없는 순일함으로 있는 그대로 현현(顯現)하게 됩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신족통을 얻은 비구는 생각이 모두 자재하여 점차로 전진해서 적멸의 삼매(三昧)ㆍ정수(正受)에 다다르고,
모든 망상을 다 제거하게 됩니다.
보살도 이와 같이 보살주에 머물자마자 온갖 속업(俗業)을 버리고 업재(業財)가 없는 지진(至眞)의 법을 이루어,
신ㆍ구ㆍ의 3업으로 훈습하는 환락을 여의고,
적막(寂寞)에 머무르게 됩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꿈속에서라도 큰 공덕을 이루어 이를 깨우쳐야 할지니,
이 같은 대정진력으로 인해 널리 득도하여 깨달음[解覺]을 이루고 나면,
밤늦도록 사유하는 수습의 방편으로 호락(好樂)을 제거하게 됩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보살 대사가 무극의 정진으로 보살지에 머무르게 되면,
동요하지 않고 일체의 업을 멀리해서 온갖 일[宜]을 훈습하되 변함없이 행하게 됩니다.
다시 평등하게 수행해서 친근함이 없어야 불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범천에 태어나 범궁에 머물더라도 욕행(欲行)에 집착하지 않으면 진로가 없게 됩니다.
이처럼 보살이 이러한 도지(道地)에 머물면서 마음으로는 여러 곳을 다니며 행을 훈습(熏習)하여 비록 이러한 행에 머물더라도,
그 행에 염오(染汚)가 없기에 마음속으로 행을 지어가는 곳을 깨닫게 됩니다.
보살의 행은 열반[泥洹]의 행조차도 행으로 삼지 않는데,
하물며 세속의 행이겠습니까?
보살 대사가 이같이 도지를 섭입하는 본원력에 의거하여 여래ㆍ정각ㆍ무극대성(無極大聖)을 찾아가더라도,
이 같은 법전문(法典門)으로 여래의 법을 인도하고 성스러운 지혜를 일구기에 여래께서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族姓者)여.
이처럼 여러 정사(正士)의 제일법인(第一法忍)은 모두 불법으로 귀착되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또 ‘족성자여,
그대가 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의 불법의 존위(尊位)를 갖추지 못했으니,
이같이 부지런히 행하면서 추구하되 열심히 정진해서 이러한 도인문(道忍門)에 어긋나지 말고 중생을 위해 잘 받들어 수행해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족성자여,
그대가 이를 체득하여 행이 적정하더라도,
어리석은 범부가 이를 잃고 적정하지 못하고 수없는 진로의 행을 훈습하여 약간의 상(想)에도 피해를 입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또 ‘족성자여,
중생이 수억8)이라도 숙세(宿世)의 서원을 기억하고 무명[暗冥]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서 도를 구하여 적막하고 불가사의한 성혜의 도문(道門)을 받들어 행하되 끝끝내 게을리 하거나 중도에 그만두지 말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족성자여,
이 같은 제법(諸法)의 인(因:本)은 법에서 나와 여래를 일으키고 여래의 건립에 의거하여 법계(法界)에 머무르니,
여래ㆍ지진과 행이 다르지 않기에 일체의 성문이나 연각은 이 같은 무상법(無相法)에 이르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또 ‘족성자여,
아신(我身)을 관찰해 보면,
이를 언어로 한정지을 수도 없고,
지혜로도 논할 수 없고,
국토도 헤아릴 수 없고,
명(明)도 헤아릴 수 없고,
도량(道場)도 헤아릴 수 없고,
음성의 청정함도 헤아릴 수 없으니,
이러한 까닭에 자비롭게 행동하여 업(業)을 드러내 일으켜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족성자여,
언의(言義)를 결정해서 하는 말마다 광명정대해야 할지니,
일체 법을 논하더라도 상념(想念)이 없어야 광명정대하게 되느니라.
여러 족성자여,
법의 밝음[法明]은 이와 같고,
여래에 의한 행은 변제(邊際)가 없는 행이기에 비록 권속이 한량없을지라도 이들을 섭입하고자 일으키는 행은 이처럼 뚜렷해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또 ‘족성자여,
그대는 여기 시방의 한량없이 많은 모든 불국토의 한량없는 중생을 관찰하여 그들에게 경전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풀이해서 일체 중생을 널리 섭입하되 언행이 언제나 일치해야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부처님께서는 하늘 가운데 하늘[天中天]이시듯이,
보살의 행도 이에 비견되는 부류이어야 중생을 한량없이 많은 이익의 도문(道門)으로 인도하여 교화하게 됩니다.
만약 한량없이 많은 성혜를 분별하고 풀이해서 중생을 인도하는 업을 구족하게 성취하는 보살이 있다면,
부처님께서 ‘이 같은 여러 불자들을 내가 너에게 부촉(咐囑)하리라’라고 칭찬하십니다.
혹 모든 부처님께서 이처럼 보살로 화현하여 중생 가운데 들어가 이로운 도문으로 인도하시더라도,
이러한 이유에서 중생을 멸도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열려지게 되니,
모든 불세존께서도 이같이 권화하여 모든 보살법의 한량없이 많은 혜업(慧業)을 일시에 인도하여 중생을 이롭게 해 주는 것입니다.
성업(聖業)으로 인해 중생의 수장(首長)이 되는 것이니,
초발의(初發意)에서 제7주까지의 방편을 합해 보면,
이에 연유한 공훈을 백 배ㆍ천 배ㆍ만 배ㆍ수억만 배의 수로 계산하더라도 끝내 이와 같이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숙세(宿世:宿命)에 한 몸으로 중생을 인도하되,
이로운 업으로 이끌어 이 같은 도주를 이루는지라,
여러 보살행을 평등하게 유인하고,
몸에 관한 일[身事]을 분별하여 행의 힘을 성취하고,
한량없이 많은 음성으로 정법의 가르침을 선양하여 널리 풀이하고,
한량없이 많은 지혜를 닦아 한량없는 이익으로 인도하고,
태어나는 곳마다 거룩하고 청정함이 한량없이 많기에,
여러 불국토를 한량없이 많이 교화하게 됩니다.
또 중생의 부류가 한량없이 많은 제불의 정각(正覺)을 공양하고 받들어서 한량없이 많이 일어나는 제법의 도문(道門)과 신통력이 한량없으니,
이를 해설하여 중생을 환난에서 교화하고 한량없이 제도하면서 대중이 모인 도량으로 다니며 머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에,
신ㆍ구ㆍ의를 가지(加持)하여 보살의 모든 요행(要行)을 쌓아가는 것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불자시여,
이처럼 큰 범선이 큰 바다로 들어가듯이 평안하다고 방일하지 않고 서서히 나아가서 한량없이 많은 진보(珍寶)와 묘옥(妙玉)을 얻은 다음에 다시 큰 바다에 다다르게 되면 바람을 살펴 순풍에 돛을 올려 한나절만에 큰 바다를 지나가니,
이 모든 재보로부터 얻는 이익이 무앙수의 창고에 모두 가득 차서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보살도 이와 같이 무극(無極)의 광대한 덕의 근본을 쌓아 대승을 취합해서 보살행을 얻어 도법(道法)의 지혜 바다를 순식간에 지나치고,
성명(聖明)의 재물과 무극의 도보(道寶)를 얻어 일체지를 섭입하게 되는 것으로,
전생에 쌓은 세속의 재보 따위는 이에 비길 수 없어서 백 겁,
천 겁,
만 겁,
무앙수겁 동안 생각해 보고 헤아려 보아도 비유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불자시여,
이처럼 보살이 만약 제8 도지를 건립하였다면 지대한 선권방편바라밀과 지바라밀[智度無極]을 널리 펴서 무재업(無財業)의 이치를 교화하게 됩니다.
만약 보살이 일체지를 터득하여 받든다면 시방세계에 여러 불국토가 성립하는 것을 내다보고,
이에 다시 불국토가 무너지는 것도 헤아리게 됩니다.
이처럼 세계가 무너지거나 세계가 성립하는 것을 터득하되,
어떠한 인(因)에서 세계가 무너지고 어떠한 연(緣)에서 세계가 성립되는지 모두 깨닫게 됩니다.
지대(地大)의 종류가 적은지 지대의 종류가 많은지,
지대의 종류가 유한한지 지대의 종류가 무한한지,
모두 분별하여 터득하게 됩니다.
수대(水大)의 종류,
화대(火大)의 종류,
풍대(風大)의 종류 또한 이처럼 많은가 적은가,
큰가 작은가,
유한한가 무한한가를 낱낱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번뇌들이 아무리 미묘하더라도 여러 진점(塵點:塵限)의 겁수(劫數)의 소재(所在)를 헤아려서 3세의 시간적 차별에 따라[隨時] 어떤 세계나 어떤 종류가 한량없어서 그 온갖 번뇌가 미묘하여 깨닫기 힘들더라도 모두 터득해서,
어떤 품류의 번뇌거나 있는 그대로 합성하여 여러 부처님 세계의 모든 번뇌까지도 남김없이 깨달아 분간하게 됩니다.
중생의 수나 국토의 수효와 형태 및 신체의 장단과 대소와,
지옥의 처소나 금수 및 아귀의 성행(性行)까지 남김없이 깨닫되,
왜 이러한 곳으로 떨어지게 되었는가를 모두 깨닫게 됩니다.
행의 다소에 의해 여러 번뇌의 합수(合數)에 해당하는 아수라의 행이나 여러 천신이 머무는 곳이나 세상 사람이 처한 곳을 모두 남김없이 깨닫되,
교화에 적당한지 모두 알게 됩니다.
욕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거나 색계와 무색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모두 터득하고,
많은가 적은가,
큰가 작은가,
유한한가 무한한가를 모두 깨달아서 삼계를 얻고 잃는 이치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교화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성취하게 되면,
중생의 여러 가지 신체의 방편을 터득해서 갖가지 신체의 형상이 소재하는 처소를 터득하고 생처(生處)로 다니되,
모든 부처님께서 유행하시는 곳을 숙지하여 중생의 부류와 마찬가지로 태어난 곳마다 안거하면서 몸소 수행을 쌓아갑니다.
그 신체의 행에 따라 자신(自身:己身)을 국토신(國土身)으로 건립하면,
자신의 건립에 수반하는 그 의념[意]이 끝없기에 자신을 건립하되 신체 없는[無身] 신체로 건립하고,
자신의 국토신과 죄복신(罪福身)에서 다시 죄와 복의 보응신(報應身)을 건립하게 됩니다.
자기의 신체를 끝이 없는 신체의 뜻인 신체 없는 신체로 건립하며,
그 자기의 신체가 끝이 없음으로 인해 중생류신(衆生類身)ㆍ국토신(國土身)ㆍ연보응신(緣報應身)ㆍ성문신(聲聞身)ㆍ연각신(緣覺身)ㆍ보살신(菩薩身)ㆍ여래신(如來身)ㆍ성혜신(聖慧身)ㆍ법신(法身)도 시절 인연에 따라 건립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여러 신체를 나타내어 중생을 모두 해탈시킵니다.
죄복신ㆍ보응신ㆍ진로신(塵勞身)ㆍ색신(色身)ㆍ무색신(無色身)ㆍ국토신이 많거나 적거나,
크거나 작거나,
더럽거나 깨끗하거나 하는 것이 광대무량 하더라도,
이를 모두 올바르게 손감(損減)시켜 평등으로 이롭게 인도하고자 말해 주어야 하는 보응을 모두 숙지하니,
죄복신의 행에서 얻어지는 과보가 합쳐지고 흩어지는 것을 모두 터득하고,
다시 성문승ㆍ연각승ㆍ보살승이 행하는 업이 합쳐지고 흩어지는 귀취를 터득하게 됩니다.
여래의 성체(聖體)에서 최상의 정각을 성취하는 것이니,
그 신체의 서원에서 신체의 멸도에 이르기까지 신체를 건립하되 금색상과 상호로써 신체를 장엄하게 합니다.
그 행자신(行者身)ㆍ가의신(可意身)ㆍ자대신(自大身)ㆍ겸각신(謙恪身)ㆍ공덕신(功德身)ㆍ성혜신(聖慧身)ㆍ보응신(報應身)ㆍ근신행업성혜신(勤愼行業聖慧身)으로 귀의시켜 제도하여 해탈시키는 것도 모두 깨닫게 됩니다.
평등법신(平等法身)의 신체 없는 신체가 모든 곳에 널리 섭입하는 것이 한량없으니,
유신(有身)이든 무신(無身)이든 어찌 그 궁극까지 낱낱이 분별하여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한 신체로 이 같은 행업을 체득하여 수자재(壽自在)에 이르는 것이고,
마음을 깨닫는 것[心得]도 자신의 행위에 의하니,
자자(自恣)에도 어려움이 없기에 행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생(生)조차도 자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는 본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독실한 신심으로 인해 신족(神足)의 은혜와 성혜의 행에 힘입고 마땅히 행하여야 할[所將] 법에 의해 체득하게 됩니다.
이 같은 보살의 십사자재(十事自在)로써 자재를 성취하게 되면,
한량없이 많은 혜명의 생각할 수조차 없이 넓은 성스러움에 다다르는 것으로,
참으로 그 성스럽기가 비길 데 없습니다.
이같이 섭입하여 구경토록 영원히 태어난 신체[所生身]가 없이 전전하여 행을 수습하고,
영원히 태어나지 않기[無生] 때문에 제행을 전전하여 지혜를 으뜸삼아 신체를 전전하는 행을 수습하고,
지혜를 으뜸삼아 구업(口業)을 전전하여 행을 수습하게 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반야바라밀[智度無極]은 커다란 횃불의 광채와 같은지라,
대비(大悲)를 으뜸삼아 선권의 방편을 분별하고 깨달아서 이를 포기하지 않는 지극한 원력으로 모든 여래의 위신력에 건립되는 것이 끊임없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지혜로써 일체의 중생에 감응하여 끝없는 모든 부처님 세계로 다니면서 이치를 선포하여 번뇌[結]를 풀어내게 됩니다.
불자시여,
또 보살이 언제나 닦아야 하는 평등한 도주의 체득을 잘 살펴서 동요하지 말고,
일체의 모든 부처님의 법전(法典)을 이루어 신ㆍ구ㆍ의의 행을 전전하여 업을 증진시켜서 이 같은 도주를 획득해야 합니다.
그러한 힘과 지성(志性)으로 견고하게 머물러 일체의 진로를 모두 제거하게 됩니다.
마음이 인화하고 세력이 견고하고 강해서 중생의 수장이 되어 중생을 마음대로 교화하는 것도 대비의 힘에서 건립되는 것이니,
중생에게 베풀고자 하는 까닭에 바라거나 버리는 것 없이 더욱 건립을 늘려가는 대자의 힘으로 일체 중생의 부류를 보호하게 됩니다.
필요한 힘을 총지(摠持)해서 견고한 도주를 성취하여 중생을 버리지 않으니,
그러한 서원력(誓願力)으로 일체 불법에 실답게[諦] 머물러 선택 분별해서 이치에 맞게[善諦] 건립하니,
신통력으로 한량없는 세월에 머물게 됩니다.
제행의 근본[本]에 대하여 일체 중생의 부류를 옹호하면서 원력에 견고하게 머무르고,
일체의 보살도업을 버리지 않는 바라밀의 힘으로 그 같은 행에 견고하게 머물러 일체 모든 부처님의 경전을 결집하고,
여래께서 건립하신 힘에 바르게 머물면서 정각의 일체지(一切智)를 성취하여 이 같은 행을 섭입하게 됩니다.
이 같은 힘으로 일체의 신변(神變)을 무궁하게 나타내어 일체의 취(趣)로 나아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금강장보살이 다시 말했다.
“불자시여,
이처럼 혜지(慧地)에 머물러 동요하지 않는 모든 보살업을 대연(對緣)이 없는 것[無侶]이라 부르고,
또 불퇴전지(不退轉地)라 부르니,
그 지혜가 다시 물러남이 없기에 실로 일체 중생이 체득하기 어렵다고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동진지(童眞地)로 태어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지(地)이고,
발원한 것에 대해 자재하여 모두 없애 버린 지이고,
짓는 것이 없는 구경의 지이고,
진정한 지혜가 쌓인 무위(無爲)의 지이고,
지원(志願)을 잘 닦아 건립되는 지이니,
지음[所作]이 없이 득도하는 무재업(無財業)이기에 숙세에서 행해진 온갖 고를 제거하여 삿된 도를 항복시키게 됩니다.
불자시여,
보살 대사가 불종(佛種)에 들어가면 부처님의 공훈과 위신력이 멀리 비추는 것을 계승하게 됩니다.
여래의 위의에 귀의하는 지극한 업에 의한 불경계문(佛境界門)은 언제나 여래를 위해 건립되는 것이니,
제석천ㆍ범천왕ㆍ사천왕ㆍ금강역사가 늘 시봉하면서 정(定)의 힘을 이루기에,
신체가 한량없어서 색장(色藏)을 항복받아 한량없는 번뇌를 풀어내어 영원히 없애,
여러 가지 신행(身行)의 힘으로 무극의 대신통력을 구족하게 성취하여 행의 보응으로 자재하게 됩니다.
한없는 정의(定意)로 한량없는 것을 수별(受莂)하여 자신부터 걸림 없이 자자(自恣)하여 익은 근기에 따라[如機淳淑] 중생을 깨우쳐 제도하면서 이치를 시현합니다.
이 같은 행을 섭입하여 도량마다 들어가 무극의 큰 지혜로 커다란 신통 지혜의 업을 행하면서,
늘 대성(大聖)의 지혜 광명을 펼치되 장절과 구절로써 이를 베풀어 주니,
계(界)에 상관없이 세계의 시방 국토를 분별하여 이에 알맞게 장절과 구절로 풀이해서 일체 업으로 공훈의 덕을 드러내게 됩니다.
자재심을 일으켜서 실답게 사유하여 과거ㆍ미래ㆍ현재를 숙지해서 일체의 온갖 마군의 길을 전향시키니,
아래로는 성혜로써 여래의 촌락ㆍ마을의 경계 안이나 가없는 국토에 있는 법당으로 다니며 보살행을 받들되,
잘 인도하여 승진하게 해서 퇴전하지 않게 하기에,
이러한 연고로 ‘동요가 없는 지로 섭입한다[入無動地]’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금강장보살이 말했다.
“불자시여,
이러한 까닭에 보살이 무동전지(無動轉地)를 체득하여 언제나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신 모든 여래의 한량없음을 보고 거슬리거나 멀리하지 않게 됩니다.
그와 같은 행이 구경에 이르러 삼매정(三昧定)을 성취하면,
그 위력으로 이를 섭입해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공양올리고 섬기고 귀의해서 늘 이를 잊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겁수마다 그 세계에서 보이는 강당마다 여러 부처님께서 나타나 계시기에 무앙수억ㆍ백천해의 부처님마다 일일이 공양을 올리되,
일체를 보시하여 편안히 모시면서 머리 숙여 귀의하여 여래를 예배합니다.
세계를 환히 요달하여 중생의 수장이 되어 부처님의 뒤를 이어 도명(道明)으로 인도해서 수지한 법의 가르침을 더욱 증장시키되,
부처님께서 멸도하실 때까지 더욱 증장시켜 나가니,
그 행이 비할 데 없이 뚜렷하게 뛰어남이 대중과 확연히 다릅니다.
세계를 안위하고자 법을 펼쳐 널리 전하되,
무앙수억ㆍ백천ㆍ해의 겁수 동안 덕의 근본을 돌이켜 현묘한 곳으로 나아갑니다.
불자시여,
여기 염부제(閻浮提)에는 그 가치가 한 곳의 염부제만큼이나 비할 데 없이 귀한 명월주가 있어 이를 목에 건다면,
모든 천하의 사람이 착용한 영락도 이에 비할 수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불자시여,
보살이 이 덕의 근본으로 부동전지(不動轉地)에 머물러 그 대명을 이루셨으므로 일체의 성문이나 연각의 대중이 미칠 수가 없습니다.
7주의 보살행업으로 보살이 이 같은 도지를 섭입하게 되면,
무극의 지혜를 계승하여 중생의 일체 진로를 없애 주고,
성혜의 미묘한 도문(道門)을 살피게 됩니다.
불자시여,
만약 범천의 천주가 되면,
자애로운 행이 대천세계에 두루 해서 그 광명이 널리 비추는 것처럼,
보살 대사도 이러합니다.
이 같은 보살의 부동전지에 머물러 백천의 모든 불찰토(佛刹土)에 가득한 미진수(微塵數)를 비추기에 광명이 한량없이 많은 불국토에 가득해서 일체 중생의 진로를 남김없이 비추어 마음속에서 3독(毒)의 때[塵垢]를 서서히 제거하게 됩니다.
불자시여,
이러한 것이 보살주이니,
이 같은 동요 없는 전행(轉行)에서 올바르게 선양하는 것이기에 보살의 공덕은 제8 도지에서 넓어집니다.
모든 겁에 끝이 없듯이 보살이 머무는 것도 구경을 다할 수 없으니,
이로써 천(千) 세계의 주(主)가 되는 범천의 대범천왕이나 성문ㆍ연각도 보살의 행(行)에 이를 수 없습니다.
바라밀로 세계를 분별하여 비할 데 없이 닦으면서 법문을 듣고서 인연을 일으키고 방편의 업으로써 베풀고 아끼며 남을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이롭게 합니다.
일체를 구제하면서도 언제나 부처님을 호념하여 어긋나거나 저버리지 않고 온갖 행을 구족하여 일체지에 이르도록 대도(大道)에만 전념합니다.
어떠한 수행으로 중생존(衆生尊)이 되어 일체가 수특하기에 널리 성인을 따르면서 시방을 보살피는가?
발의할 때 따르는 모양이 이와 같이 힘써 받들어 정진해서 잠깐 사이에 십천 세계의 백천 찰토에 가득한 여러 미진수와 같은 삼매 정수를 구족하게 이루고,
아울러 십천ㆍ백천 수의 삼천세계에 가득 찬 여러 미진수와 같은 여러 보살들이 그 권속에 에워싸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같은 발원에 따르는 보살의 세력은 그 서원이 수특해서 어찌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명료한 지혜를 헤아릴 수 없으니,
이렇게 억ㆍ백천해 겁수에 한량없는 시간[載]을 보태어 한량없는 겁을 행했다고 따져 보더라도 공훈은 끝이 없으니,
실로 비유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 금강장보살 대사가 다시 이 같은 이치를 되풀이하여 설명하고자 게송을 읊었다.
7주지를 점차 갖추어서
청정한 지혜로 선권(善權)을 행하고
실답게 도업(導業)을 보살펴
무극의 원을 세우고,
공을 쌓아 덕을 길러서
인중상(人中上)에 굳게 머무니
성혜를 즐거이 발원하여
제8주를 속히 섭입하노라.
대성혜의 공덕을 심어
정진하되 자비를 행하고
마음이 한량없어
생각이 허공 같네.
법을 듣고 밝게 깨우쳐
대성인의 세력에 들어가고
생(生)이 없는 법인(法忍)의 힘으로
적막한 가운데 미묘법을 따르네.
생을 받아 아상(我相)이 없기에
있다 없다는 생각이 없어서
무너질 것이 없어 멸하지도 않고
새겨볼 것도 없노라.
처하는 곳마다 있는 그대로 행하니
숙세의 업장이 없고 생각까지도 버리고
마음이라는 성품조차 여의었으니
사념이 허공 같구나.
이 같은 인(因)으로
방일하지 않고 행을 이루어
깊은 행에 감응하여
마침내 담박한 행을 체득하나,
중생은 이를 모르고
부질없이 업만 지으니
마음속 생각을 헤아려
온갖 마음 씀씀이를 꿰뚫어 보네.
뜻을 이같이 세우더라도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이 없으니
비구가 번뇌를 소멸하듯이
무소착(無所着)을 체득하네.
마음속의 온갖 생각이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 같으니
범천이 모든 것을 갖추었듯이
욕계도 이와 같네.
본원에 안주해서
누차 중생을 권화하고
제일가는 인(忍)으로
아유안(阿惟顔)9)을 성취하네.
법을 깨닫는
우리들 지혜의 세력이 현묘하여
그와 같이 나의 것[我所]이라는 것이 없기에
정진하여 행을 닦네.
적멸을 받들어
일체 애욕의 그물을 없애며
속세에 타오르는 진로의
불길을 끄고
스스로 전생의 원력을 헤아려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니
예리한 지혜를 이룩하여
모든 중생[黎庶]를 힘써 구제하네.
언제나 이 같은 법을 높이되
무상(無想) 아닌 것에 머물러
부처님께서 일체의 주(住)를 아시는 것이
성문과 연각을 초월하는 것이다.
세간의 위세(威勢)로는
이 같은 10력을 당하지 못하고
그 지혜가 한량없기에
3세에 걸림이 없네.
비견될 데가 없기에
천신조차 이를 공경하니
모두 거두어 교화하시면서
수없는 지혜문을 행하네.
가장 뛰어난 법을 성취해서
한량없이 많은 피안에 들어가며
전생부터 행해 온 불도(佛道)의
시절 인연을 따르네.
이처럼 현명(賢明)을 체득하여
수특한 성지를 섭입하노니
일시에 널리
시방세계에 다다르네.
지혜로 돌이켜
모든 신통을 이루니
큰 바다와 같이
심지어 천상의 보배일지라도
마음속의 탐욕을 영원히 끊고
지혜의 도업을 이루고
여러 찰토를 선택하되
머물 자리를 숙지해서
네 가지 경계에 임하니
일체의 탐욕이 끊어지며
여섯 가지 미세(微細)와 세 가지 추광(麤獷)을
평등하게 지각해서 이치를 깨치네.
삼천대천세계 일체에
가득한 미진수 같은
중생의 근본을 헤아려 보면
모두 4대에서 생겨난 몸이리라.
모든 소원을 헤아리되
6취(趣)를 모두 통달해서
지혜 경계를 베푸니
그 한량없이 많음이 헤아릴 수 없어라.
지혜로 심의(心意)를 살피고
일체의 심식에 이르니
그와 같이 자신의 행을 닦는 것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라.
일체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약간의 색이라도
온갖 형색을 낱낱이 살펴보되
세월을 기약하지 않도다.
태양의 운행이
허공 속을 지나면서
궁전이나 오두막이나 가리지 않고
밝은 빛을 널리 비추듯이
본무(本無)의 지혜로 제어하는
법계는 본래 움직임이 없기에
모든 중생의 성품이 청정해서
도의 밝음이 두루 비추네.
중생의 본성에 따라
그 신체가 달리 있으니
일체 중생의 신체를 드러내어
천당과 세간을 비추어 교화함에
자기의 몸으로 자재를 얻고
무종성(無種性:無性)의 행으로 외도를 항복받으니
안주하는 신체를 시현하여
온갖 상호를 장엄하네.
중생의 국토에 따라
죄와 복에 따르는 몸을 받으니
약간의 성종(聖種)으로도
법의 혜체(慧體)를 이루고
허무를 신계(身界)로 삼아
평등한 업을 수지하니
온갖 신변을 나타내어서
모든 중생의 갖은 더러움을 소멸시키는구나.
10력이 광대 자재해서
지혜로써 무극을 넓히니
성종을 이루어 혜명을 터득하고
대비심을 내도다.
일체에서 가장 뛰어난 가르침은
도업(道業)을 낳은 법에 기인하여
3사(事)를 근신하여 보호하고
수미산처럼 흔들림이 없구나.
모든 중우가 보살피는 힘의
열 가지10) 힘에 걸림이 없으니
이 같은 대사야말로 퇴전이 없어서
온갖 천마(天魔)도 어쩔 수 없으리.
부처님께서 세우신 법
제석천이나 범천도 이를 공경할지니
그 금강역사가
위신력으로 언제나 옹호하는구나.
이 같은 처소에
모인 덕이 한량없으니
억ㆍ백천 겁이라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리.
수억 나술(那術)의
모든 부처님께 머리 숙여 귀의하여
최상의 도를 성취하니
마치 엄한 군왕에게 굴복하는 것과 같네.
이 같은 도지(道地)의 처소에
모인 보살에 비하면
대범천일지라도
소소한 계(界)의 공덕에 불과하니
3승의 업을 선양함에
그 한계가 없어서
청정한 자비심과
지혜의 광명으로 번뇌를 없애는구나.
발심할 때는 한순간에
백천의 국토에 이르러
찰토마다 가득한 미진수와 같이
모든 정의(定意)의 근원을 이루는구나.
용맹하게 처소를 관하여
시방에서 중생을 관하고
원력 역시 이와 같이
장엄하고 존귀하기가 한정(限定)이 없구나.
요점을 말하자면
제8 주지의 뛰어난 자재는
억천 겁을 설명해도
이를 다 헤아릴 수가 없으리.
이처럼 제8주를 설명할 때,
때맞추어 백억의 불국토가 진동하였으니,
이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불가사의한 공훈이 뚜렷해서 한량없는 묘한 광명을 연출하여 일체 신형(身形)의 부류를 나타내었으니,
여러 국토를 비추어서 여러 중생을 편안하게 하였다.
무앙수천 수효의 보살 대중이 허공에 머물면서 천상의 물건보다 좋은 공양구를 부처님께 올렸으니,
모두 뛰어나고 특이한 것이었다.
대신묘(大神妙) 천주가 그 권속들인 자재천신들과 함께 기뻐하면서,
약간의 물건을 세존께 공양하여 그 바다와 같은 공덕을 받들어 모셨다.
무수억천의 여러 천상의 옥녀가 뛸 듯이 기뻐하였으니,
모든 감관이 쾌락하여 기묘한 기악(伎樂)과 천상의 풍악을 울려 대성인께 공양하였다.
이 같은 갖가지 기악으로 대신성(大神聖)을 기쁘게 하였다.
이처럼 수천 가락의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부드럽게 어울리자,
마음이 고요해지고 담박해졌기에,
온갖 근심을 덜고 갖가지 더러운 번뇌를 여의어 마침내 토지를 버렸다.
지진(至眞)께서 행하시는 것이 가장 뛰어나시기에 이를 중생에게 베풀려는 까닭에 시방으로 다니시면서 대신통을 나타내시어 최상의 행을 드러내시되,
뜻이 허공 같으시고,
마음 또한 이러하셨다.
천상 가운데 가장 존귀하시고,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하신 데다 최상의 명(明)을 깨치셨기에 경계가 현묘하고 공훈이 끝이 없어서 시방에서 거룩하고 청정하게 도의 문을 받들었다.
중우(衆祐)의 제자가 도로써 한량없는 부처님의 공훈을 현시하고 성혜(聖慧)를 따라 행하되,
공훈을 구하지 않았기에 한 곳의 찰토에서 움직이지 않았으니,
이처럼 모두들 여러 국토를 보살펴[周] 번뇌가 없게 하였다.
널리 중생의 부류를 가엾이 여기시기에 수장이 되어,
일체를 소멸하는 음향인(音嚮忍)과 상념이 없는 유창한 변재로 백천 가지 비유를 들어 주시기에 만약 그 가르침을 듣게 되면,
어리석은 중생이라 마음이 하열하더라도 스스로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되었다.
그들이 만약 말씀을 알아듣는 경우,
지성(至聖)께서 몸소 찾아가셔서 그 본행(本行)에 따라 교화하셨다.
또 어떤 중생이 비록 모든 감관이 명달(明達)하였으나 마음이 너무 좋은 인연으로 의욕이 없는 경우,
그에게 번뇌를 여의어 지혜가 밝아지는 이치를 말씀해 주셨다.
또 어떤 중생이 동정심이 있고 마음이 너무 인자한 경우,
부처님께서 그 처소로 가셔서 정행(正行)을 간곡하게 보여 주셨다.
또 어떤 중생이 뜻을 상지(上地)의 존귀함에 두고 이 같은 법을 의요(意樂)하는 경우,
그들에게 한량없이 많은 불신(佛身)을 현시하셨다.
마치 환사(幻師)처럼 화현하시되 여러 처소를 두루 하시어 무앙수억ㆍ천해의 화신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불자가 만약 이처럼 혜환(慧幻)을 좋아하면,
일체의 행을 나타내시어 모든 소유(所有)를 여의게 하시되,
수백 수천 가지의 유순인(柔順忍:柔軟)의 설명과 인화(仁和)의 음향인(音響忍)으로 말씀하셨다.
이에 천신과 옥녀가 이 세상으로 내려와 부처님께 귀의하여 말없이 고요함을 즐겼으니,
회상에 모인 대중이 기뻐하며 부처님께서 안정되게 머무시는 것을 노래하고 공덕을 기렸으나,
공훈이 한량없이 뚜렷해서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같이 보살의 제8 도지를 설명하자,
모두들 정법을 받들어 행하여 마침내 대승(大乘)을 깨달았다.
9.
선재의주품(善哉意住品)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시여,
보살 대사는 이처럼 한량없이 많으신 모든 부처님의 지혜행에 전전하여 재차 증익해서 마침내 적막(寂寞)에 노닐며,
뜻을 해탈문(解脫門)에 두기에 모든 여래의 지혜를 늘리는 공덕이 지극해집니다.
또 인자한 마음으로 여래의 비밀장(秘密藏)을 닦고 행하기에,
이로써 불가사의한 대도(大道)의 지혜를 깨우쳐,
유행하면서 지극한 법요(法要)를 선택하고 삼매 정수(正受)를 청정하게 총지(總持)하게 됩니다.
청정하지 못한 온갖 업을 버리고 일체를 이롭게 인도하되,
대신통을 성취해서 세계를 넓고도 멀리 분별하여 중생[黎庶]을 교화하면서 홀로 행보할 때는 10력(力)ㆍ4무외(無畏)와 모든 부처님의 법인 18불공법(不共法)과 견줄 만한 것이 없습니다.
도의 근본[道本]을 엄히 다스려서 여래ㆍ지진께서 법륜을 굴리시면,
그 국토로 나아가 귀의하여 대비[大哀]를 건립하고,
대원(大願)에 머물러 시방을 버리지 않으면서 보살의 제9 도지를 섭입합니다.
이 같은 도지(道地)에 머물고 나서 선악의 마음을 행하되 결정하도록 하지 않고 여실하게 깨닫도록 하고,
경전을 공양하고 지진(至眞)을 받들어 모시면서,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법이나 속세(俗世)와 도세(度世)의 법에 걸맞게 행을 닦아가기에,
그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구경토록 계승하되 법을 결단하여 요달하려 하지 않고 성문과 연각의 법에 순응하면서 보살도를 받들어 행합니다.
이러한 도를 공경하므로 서원을 이루고자 시절 인연에 따라 여래의 도지에 시의(時宜) 적절하게 귀의하니,
유위법을 가까이하더라도 뜻을 무위법에 두고 여실하게 깨닫도록 하는 이 같은 혜명(慧明)으로 중생의 심행(心行)에서 취해지거나 버려지는 귀취(歸趣)를 잘 깨닫고 진로(塵勞)의 더러움에서 화와 복을 받는 모든 감관을 섭수하는 행을 여실하게 깨닫습니다.
여러 종류의 귀취가 되는 심성이야말로 온갖 번뇌[結]가 이루어지는 처소임을 진실하게 믿고서 태어나는 곳을 받아 그곳에 머물면서 업이 어우러져 3취(聚)를 확연히 요달하여 여실하게 깨닫기에 중생의 마음에서 행해지는 시비(是非)를 살펴보게 됩니다.
어떤 품류의 마음은 잠깐 사이에도 진퇴가 있기에 합해질 때도 있고 흩어질 때도 있으나,
마음에는 본래 바탕[身]이 없어서 참으로 한량없는 것입니다.
일체가 생겨나는 것도 다 마음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진로(塵勞)가 있는 마음이거나 진로가 없는 마음이거나 결박된 마음이거나 풀린 마음이거나 모두 허깨비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마음을 깨닫고 보면 머무는 것마다 모두 인연의 진퇴로 귀착되는 것입니다.
다시 진로를 끊고 멀리 다니면서 중생을 제도하여[療治] 미래에는 등류(等類)의 업이 없게 합니다.
모든 맺어진 인연이 머무는 처소인 마음이 한 곳에 모여 있다가 만약 떨어져 나가더라도 다시 생하는 자리로 현재에 맴돌면서 나아가고 머물고 가고 오는 것이니,
삼계의 은애(恩愛)를 분별하는 무명과 여러 가지 삿된 소견의 병이 되는 스스로 잘난 체하는 어리석음과 끝없는 죄악을 끊어 소멸시키게 됩니다.
삼장(三藏)의 보배를 깨달아 자세히 숙지하고,
8만 4천의 온갖 진로행에서 죄ㆍ복과 선(善)ㆍ불선(不善)의 이치를 결정하지 못하는 무명이 심당(心黨)을 어지럽히는 것임을 깨우쳐 주어 다른 업[異業]이 없이 중우(衆祐)를 사유하게 하고,
그 보응으로써 온갖 이익을 쌓아 친히 지은 행에 대하여 그 과실은 잃지 않고,
받아야 하는 과보는 보응하지 않게 하니,
마침내 어둠[黑冥]이 밝아져서 청정함[白]을 얽어매는 어둠이 없어집니다.
이같이 설법하더라도 행에 반연하는 과보에는 한계가 있으나 죄와 복의 밭은 한량이 없으니,
현인과 성인이 세상에 있으면서 법을 다스리는 일을 행하더라도 현재의 죄와 복은 미래에 훈습되어야 다시 세간에 유전할 수 있습니다.
승교(乘敎)를 터득하여 그치지 않고 나아가 시절 인연에 따른 방편을 분별하고 해득하되 8만 4천 법문이 한결같이 평등하다는 것을 숙지하니,
적은 품류의 죄업이라도 원인과 결과를 자세히 가려내어 모든 감관의 유연함과 하열(下劣)함과 그 중간을 모두 통달해서 그 근본을 밝게 깨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중생의 근본에 따라 전생에서 파계한 일[毁壞之事]과 계율을 청정하게 지킨 업[不壞之業]과 그것의 미묘한 중간을 숙명(宿命)으로 숙지하되,
진로에 속하는 하열한 행에는 유재업(有財業)이 없더라도 본행의 마음에 수순해서 확연히 요달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확연히 요달하지 못한다면 진리의 근원[眞厚]을 교화하더라도 모든 감관의 그물에 막혀 퇴전하는 것을 분별해서 온갖 상(想)을 섭수하여 호귀(豪貴)하고 하열한 온갖 상(相)에 따라 가고 오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에 맴돌더라도 결코 이를 회피하지 않고,
궁극에는 3세를 꿰뚫어 알고 끊임없이 다니면서 아무도 없이 홀로 나아가게 됩니다.
약간의 품에 대하여 8만 4천 법문이 평등하되 몇 종류의 근이라도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니,
요약하건대 신요(信樂)로써 유연함과 하열함과 그 중간의 모든 감관을 통달해서 항상 모든 감관을 따르면 8만 4천 법문이 신요하게 되어 모두 통달하게 됩니다.
몇 가지의 품에 있어서 중생의 행(行) 중에서 그 경계의 유연함과 하열함,
그리고 그 중간을 모두 통달해서 모든 감관을 따르는 8만 4천의 법문 중에서 여러 종류의 4대(大)와 상심(上心)ㆍ중심(中心)ㆍ하심(下心)의 성행(性行)의 선악에 수순하여 모든 감관의 귀취(歸趣)를 터득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마음의 성행은 심의(心意)를 동반하고 지원(志願)과 함께 하기에 그 마음이 결합하거나 떨어지는 경우라도 아득하고 멀리 유행할 것이니,
혹시라도 스스로 잘난 체함이 있으면 그것이 없도록 그 마음을 조순해서 온갖 싫증을 내지 않고,
또한 방일하여 중도에 그만두지 않으면서 언제나 일심(一心)으로 해탈문의 삼매 정수(正受)와 신통의 이치를 계승해야 합니다.
이에 계합하지 못하면 삼계에 얽매이게 됩니다.
지극히 여실한 마음으로 원(願)을 세워 뭇 행을 익히지 않고 다만 도의 문을 익혀 섭입하므로,
실로 언교(言敎)가 없어서 무리를 짓지도 않고 재업의 일도 없기에,
이계(異界)도 없고 대연(待緣)도 없이 도의 문을 수습하여 실답게 정도(正道)를 터득합니다.
중생의 행에 약간 품의 행할 만한 자리가 생겨나면 그러한 행에 머무르고자 심지어 지옥ㆍ아귀ㆍ축생 속이나 아수라의 여러 천상이나 백성의 여러 의지처나 색계와 무색계의 소생처와 상무상(想無想)의 소생처에 태어납니다.
그 죄와 복의 보응도 은애(恩愛)와 정욕(情欲)에 연유하는 것으로,
무명의 어둠에 싸인 정신(精神)의 종류가 다시 생(生)으로 윤회해서 명색(名色)을 동반하므로 도업(道業)이 없어 생사로 어리석게 치달린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은애를 가까이하여 탐욕에 이르고 정애(情愛)를 추구하되,
간혹 영예를 구하지 않더라도 중생이 즐기는 것은 여전히 삼계의 취(趣)입니다.
마음을 진실하게 가져 상해(傷害) 받는 바 없이 그 지행(志行)이 머무는 것을 자세하고 실답게 깨치고 보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여래에게 귀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도리어 습기(習氣)에 매인 중생의 행에 따라 각각의 죄와 복으로 인해 진로를 훈습하기에 선과 악을 가리지 못하고 본말이 짓는 것[所作]에 따라 끝없이 윤회하게 됩니다.
다시 전전하여 되돌아와서 본소행(本所行)에 귀의하더라도 멀리 유행하지 못하니,
욕망을 끊고 음진(淫塵)을 뽑아 없애기가 참으로 힘들기에 탐애와 질투의 헛된 일이 쉽게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밝혀 통달하면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짓는 일마다 무소유(無所有)에 이른다면 실답게 자세히 터득하여 중생의 행을 구경까지 결단코 요달하게 됩니다.
결단코 요달하지 못하면 뜻을 삿된 업에 두어 어긋난 소견의 어리석은 혹업(惑業)으로 치닫게 되지만,
정견에 뜻을 두고 정업(正業)으로 안정을 얻어 온갖 두려움을 없앤다면 구경에 이르지 못함이 없습니다.
다시 5역죄(逆罪)에 해당하는[中間] 환난이 있으면,
5근을 궁극까지 터득해서 진정(眞正)한 행으로 바르게 나아가 두려움을 버리더라도 끝끝내 구경에 이르지 못하게 되니,
삿된 적멸과 바른 적멸 및 계율을 범하는 일을 깨우쳐 적멸의 업으로 나아가야 다시 귀환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삿된 업에 떨어지면 행을 돌이켜 퇴전(退轉)하기에 현인과 성인의 위없는 정도(正道)를 개시하여 인도하더라도 끝내 요달하지 못하고 시절 인연에 따라 결(結)로 흩어지게 되니,
어찌 정업(正業)의 비호[護]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법을 선양하고자 하면 여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불자가 이와 같이 하여 이러한 지혜로 귀의한 보살 대사는 바로 선재의지(善哉意地) 보살주에 안립(安立)하게 되니,
이 같은 지(地)에 머무르게 되면 일체 중생의 행업을 깨닫고 그에 따른 행을 쌓아 해탈시키고 개화하게 됩니다.
중생의 근본을 밝혀서 시절인연에 따라 인도하기에 소문을 듣고서 성문과 연각을 유인하고자 여러 보살로 화현하여 여래지를 설법하되,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해서 이롭게 인도하여 해탈시키니,
그 성행에 따라 근원에 의지해서 해탈시키고자 법을 설하게 됩니다.
그 행에 기인하여 본말을 편력하고 교화해서 승법(乘法)에 따라 해탈문의 사유를 수습하니,
그 해탈문에 기인하여 도법을 풀이합니다.
이 같은 도지에 머물러 대법사(大法師)께서 출세하시는 것을 관찰해서 여래 무극의 법장(法藏)을 옹호하니,
그들이 만약 법사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 질문해서 한량없음을 섭입하여 성혜(聖慧)를 깨닫게 되면,
이를 받들어 널리 포교하되 4분별변(分別辯)의 보살행으로 근기에 따라 설법하면서 언제나 계율을 어기지 않고 행을 닦습니다.
보살 대사는 4분별변에 의지하여 퇴전 없이 유행하니,
어떠한 것이 4분별변인가?
첫째는 분별법(分別法)이고,
둘째는 이치의 해득[曉了義]이고,
셋째는 차례의 순응[順次第]이고,
넷째는 해변재(解辯才)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분별법은 제법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명료하게 풀이하는 것이고,
이치의 해득은 법의 귀취를 순일하게 해득하는 것이고,
차례의 순응은 제법을 어긋나지 않게 분석해서 심원한 지혜를 펼치는 것이고,
해변재는 결박(結縛)됨이 없이 법의 무단(無斷)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별변의 법으로 법을 해득한다는 것은 법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자연신(自然身)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치의 해득이란 지혜 광명으로 관조하여 터득해서 모든 경전에 귀의하는 것이고,
차례의 순응이란 일체 법을 펴되 순일하게 해석해서 단절함이 없게 하는 것이며,
분별변이란 그 도의 가르침에 따르되 달리 구하지 않고 끝없이 펼치는 것입니다.
법의 순일한 해득이란 현재법에 통달하여 귀취를 선양하는 것이고,
이치의 해득이란 과거ㆍ미래법이 보응하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고,
차례의 순응이란 과거법ㆍ미래법ㆍ현재법을 풀이해서 계율에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분별변이란 낱낱이 설명해서 이심(二心)도 없고 변제(邊際)도 없이 법의 광명을 떨치는 것입니다.
법의 순일한 해득이란 제법을 가려내어 온갖 일을 판단하는 것이고,
이치의 해득이란 모든 이치를 분별해서 자비로움에 굴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고,
차례의 순응이란 중생들이 쓰는 언어의 종류에 따라11) 설법하는 것이며,
분별변이란 일체 심성의 행을 관찰하고 이로써 경전을 펼치는 것입니다.
법의 순일한 해득이란 방편을 깨달아 법혜(法慧)를 명료하게 풀이해서 온갖 선법(善法)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고,
이치의 해득이란 본무(本無)를 명료하게 통달해서 양변을 여읜 지혜[無二慧]에 머무르되 중생을 위하여 낱낱이 밝게 알려주는 것이고,
차제(次第)의 순응이란 업을 해설해서 성혜의 재부(財富)를 파괴하지 않는 것이며,
분별변이란 온갖 이치를 해득해서 시절 인연의 이치에 따라 본말을 깨치는 것입니다.
법의 순일한 해득이란 일체 법의 근원이 하나인데도 그 본원을 잃고 폭류(暴流)에 쓸려가 생사의 윤회에 끝이 없음을 숙지하는 것이고,
이치의 해득이란 5음과 4대와 다시 18처[衰入]를 건너는 해탈의 방편으로 12인연에 실마리[端緖]가 없음을 밝히는 것이고,
차례의 순응이란 일체 중생의 근원을 널리 연설하되 5취(趣)를 맴돌아 지성(志性)이 화목하고 음성이 유연해서 이를 듣는 이는 널리 수지하게 되는 것이며,
분별변이란 법요(法要)의 말씀을 펼쳐서 그 명(明)을 끝없이 돌이켜 증익시키되 광명을 널리 비추어 중생의 우명(愚冥)을 제거해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법의 순일한 해득이란 일품으로 이롭게 인도하여 약간의 성취 따위에 만족하는 일 없이 보살 대사가 한없는 대자(大慈)를 일으키고 끝없는 대비(大悲)를 세워서 대승을 개발하는 것이고,
이치의 해득이란 온갖 승교(乘敎)를 분별하여 중생을 제도하되 경계가 한결같으므로 대연(待緣) 없이 평탄하고 넓디넓은 행으로 회상의 대중 사이를 홀로 행보하는 것이고,
차례의 순응이란 일체의 모든 승법(乘法)에 대한 지원(志願)을 풀이해서 그 학(學)이 상품이거나 중품이거나 하품이거나 모두 계율에 어긋나지 않도록 이끌어서 대도(大道)로 섭입하는 것이며,
분별변이란 변제(邊際)가 없는 1승법(乘法)으로 정법을 포교해서 불타는 삼계의 고통스러운 재액으로부터 번뇌[陰蓋]를 제거하여 삼매를 체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법의 순일한 해득이란 모든 보살 성혜의 업을 받들어 수법행(修法行)을 준수해서 도명(道明)의 초월이 한량없게 뚜렷한 것이고,
이치의 해득이란 10주에 처하는 본말을 부연해서 학인이 각자 성취한 처소를 일러 주어 지행(志行)을 잃지 않고 세속에서 득도하되 통하지 않음이 없게 하는 것이고,
차례의 순응이란 법의 금계(禁戒)를 널리 포교하여 각기 이를 흠모하게 해서 점차로 도의 가르침으로 개변시키되 파계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분별변이란 일체의 행을 끝없이 널리 펴서 본업을 강설하고 정진(正眞)을 이루어 성문과 연각의 2승법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법의 순일한 해득이란 자연의 마음으로 일체 여래께서 모두 한결같이 부처님의 여러 세력이 한량없음을 통달하고,
이 같은 이치를 깨쳐서 법륜에 기인해서 일체지(一切智)에 이르러 제도하는 것이고,
이치의 해득이란 또한 약간 종류의 지해(知解)라도 알게 되면,
정진에 머물도록 즉시 그 나아가는 도속(道俗)의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널리 포교하지 않음이 없는 것입니다.
차례의 순응이란 정각(正覺) 그대로 언설로 분석하고,
상ㆍ중ㆍ하의 행과 마음의 깊고 얕은 근본을 관찰해서 교화하는 것이며,
분별변이란 풀이하고자 하는 법의 장절과 구절을 낱낱이 약간의 이치로 풀어내는 지혜가 끝없이 단절되지 않게 해서 법에 목말라 하는 것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법의 순일한 해득이란 여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과 일체의 10력 및 무소외와 모든 부처님의 18불공법을 널리 청하여 대비를 닦고 법륜을 굴려서 무궁한 일체 민혜(敏慧)를 구경까지 통달하는 것이고,
이치의 해득이란 중생의 8만 4천의 법문 중에서 약간의 행을 인지하여 그 지성(志性)에 따라 그들의 근원을 살펴서 신요하는 바에 따라 여래의 음성을 선양하여 그 결(結)을 풀어 주는 것이고,
차례의 순응이란 일체의 행에 처해 파계(破戒)하지 않고 사자후(師子吼)를 토하며 여래의 음성을 나타내어 8부(部)의 말씀12)으로 시방에 울리게 해서 무표업(無表業)을 환히 보는 것이며,
분별변이란 여래 지혜의 위신과 광명을 전하여 온갖 어둠과 어리석음에 눈이 먼 것을 제거해서 스스로 도량으로 나아가는 세력으로 중생을 그 신요(信樂)에 따라 교화하여 각자 소득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이와 같은 불자는 제9주의 보살입니다.
제9 도주를 건립한 이는 그 지혜 공덕의 근본이 이처럼 뚜렷합니다.
변재가 이와 같기에 여래의 무극 도량을 체득하고 대법사가 되어 이치의 기틀을 세워 이치의 법왕(法王:君)이 되는 것이니,
의구(義句)를 획득하는 것이 현묘총지(玄妙總持)이고,
삼계를 구하는 것이 법주(法主)총지입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는 성혜(聖慧)와 신통으로 제도하는 것입니다.
조명(照明)총지는 시방을 관조하는 것이고,
선의(善意)총지는 일체의 의(意)를 섭수하는 것이고,
여지(如地)총지는 그 행이 허공 같은 것이고,
그 위신력을 헤아리기 어려운 제주(帝主)총지의 요체는 무극법문이고,
소향(所向)총지는 유행(流行)이 한량없는 것이고,
회전(廻轉)총지는 왕래(往來)를 주선하는 것입니다.
약간 종류의 방편 총지를 체득하되,
이 같은 부류를 모두 구족하게 구비해서 열 가지 신체13)로 헤아릴 수 없는 백천의 총지를 체득하니,
음성이 부드럽고 막히는 것이 없어서 한량없는 법문을 분별하여 풀이하는 경전이 수용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 같은 총지로 정법의 도의 문을 한량없이 수용하는 것이니,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불세존께서 금색신을 나타내시어 펼치신 법을 한번 들으면 이를 잊지 않고 들은 대로 풀이하되,
이에 보태어 논하지 않습니다.
일일이 여래의 처소마다 찾아가 여쭈어 보고 이를 수지해서 열 가지 신체로 헤아릴 수 없는 백천의 총지를 외우는 것이 마치 한 분의 여래 처소에서 끝이 없는 여래ㆍ지진의 위없는 법을 교화하듯 하면서도 이처럼 이계(異計)가 없기에,
그들이 머리 숙일 무렵에 바로 전전하고 증익하여 무앙수의 지진ㆍ등정각에게 도법문(道法門)을 수지하니,
성문이나 연각으로서는 도저히 이를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박문수음총지(博聞受音總持)를 수습해서 마침내 이 같은 총지를 체득하면,
은혜로운 보시를 이루되,
총지의 공덕으로 백천 겁 동안 이 같은 가지(加持)를 이루고 변재를 획득하기에 그 건립이 이처럼 뚜렷하게 됩니다.
정법의 거룩한 대중이 만약 모인다면 일체의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게 되니,
중생을 수순하는 마음에서 응현(應現)하여 교화하되 법을 설하고자 법좌로 나아가 법좌에 앉게 되면,
여래의 성지를 받들어 체득한 10주의 아유안지(阿惟顔地)는 그 밖의 다른 모든 자재보다도 자재해서 비길 데 없이 존귀하여 그 광명이 비추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법좌에 자리하여서 잠깐 사이에 하나의 음성으로 약간의 음향인(音響忍)을 연출하여 회상의 대중에게 널리 고하면서 한순간에 광명을 입으로 내비추고 모든 털구멍마다 모든 음향을 연출해서 도화(道化)를 널리 펼쳐 해득시키지 못함이 없습니다.
삼천대천세계 내지는 유색계와 무색계에 모두 법음(法音)을 연출하여 난증리(難證理:難問)14)의 의리(義理)를 상세하게 해설하므로 수없는 일에 대해 질문 받더라도 다시 거론하지 못하게끔 개시해서 제각각 이해시킵니다.
그때에 보살이 잠깐 사이에 온갖 음향인을 섭수해서 여러 가지 음성으로 설명하되,
하나의 언교로써 일체 대중에게 일러 줍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두 곳의 삼천대천세계나 세 곳,
네 곳,
다섯 곳,
열 곳,
스무 곳,
쉰 곳 내지는 백 곳의 삼천대천세계 및 헤아릴 수 없는 대천세계에 그 언교가 두루 해서 법사(法事)를 빛나게 지어 여래 위신력의 성지(聖旨)를 건립하게 됩니다.
언제나 때에 따라 감응해서 여러 중생을 위해 불사를 일으키고자 신체를 나타내어 건립하고,
이 같은 성혜로 전전하여 다시 증진시켜서 광명을 떨치면서 정진을 행하는 것이 낱낱의 모든 털구멍에서 비롯하니,
마치 끝없는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득한 여러 미진수와 같아서 약간의 숫자로는 한정지을 수도 없는 여러불국토 및 그 대중이 도량에 모이고,
이에 한분 한분의 여래께서 무앙수 중생의 부류에게 경전을 풀이하는 것을 살펴서 약간의 중생에게도 결(結)을 풀어 주고자 합니다.
하나하나의 중생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루 셀 수가 없어서 마음이 제각각 다르다 하더라도 이롭게 하는 법으로 권화하고 이로써 개화하니,
한 분의 여래가 제도 해탈시키는 것처럼 일체의 여래도 이러해서 다른 헤아림이 없습니다.
마치 하나의 털구멍에서 모든 털구멍과 동일하게 법음을 연출하듯이 우리들이 3학(學)에 처하는 것도 마땅히 이러해야 합니다.
그 지원을 크게 해서 평등하게 이치를 사유하고,
못 미치는 이들을 인도해야 하니,
일체의 여래께서 한순간에 그 신체를 널리 나타내시어 법명(法明)을 수지하게 하는 이 모두가 비록 하나의 음성이지만 그 즐기는 것에 따라 조순(調順)해서 이를 찬탄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모든 중생이 모여 도량에 가득하더라도 법을 듣고자 하는 욕구를 모두 구족하게 구비한 것처럼 우리들도 그들처럼 해야 합니다.
지혜의 광명과 변재가 밝게 자재한 청정한 업으로 잠깐 사이에 중생을 기쁘게 이해시키고자 그 신체를 맴돌아 약간 세계의 모든 중생이 이 보살 도지를 체득해 머무르게 하니,
밤을 새우는 정진으로 전전하여 승진(勝進)하되,
그 생각이 변하지 않고 부처님의 도행(道行)을 섭입하여 여래의 평등한 가르침을 체득해서 보살의 심묘한 해탈문을 이룹니다.
이 같은 지혜의 섭입으로 언제나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되 거역하여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의 겁수마다 무앙수억ㆍ백천해 수효의 모든 여래존(如來尊)을 친견하고 공양하고 시봉하면서 모든 여래께 법을 질문해서 그 말씀하신 것을 수지하고 경전을 간직해서 이를 풀이하기에 그 공덕의 근본이 재차 무성해져서 견줄 바 없이 뛰어나게 됩니다.
불자시여,
마치 세공사가 절묘한 재주로 영락을 만들어 무늬를 넣고서 전륜성왕이나 왕비의 패물로 진상하여,
그들이 이를 착용하게 되면 비할 데 없이 뚜렷하게 빛나서,
이를 갖추고 석양 무렵에 높은 누각에 올라가 사방 천하를 널리 비추면,
중생의 영락은 보잘것없어지고 홀로 휘황하게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불자도 이처럼 보살 대사가 이 같은 선재의개사도주(善哉意開士道住)의 행을 체득하면,
그 공덕의 근본을 무성하게 전의(轉依)하여 견줄 바 없이 초월해서 모든 성문과 연각의 승법(乘法)을 넘어서게 될 것이니,
초발의(初發意)를 넘어선 제7주나 제8주에서 드러나는 덕본(德本)의 명(明)은 중생의 모든 진로(塵勞)의 마음을 소멸시켜 모두 밝게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은혜를 받잡고 악법(惡法)을 버리고 선법(善法)으로 향하고자 속세를 버리고 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불자시여,
대범천의 광채가 일체의 삼천국토를 두루 비추어 그 밝음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기에 뭇 사람이 모두 그 빛을 받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서 이 같은 선재개사도지(善哉開士道地)에 머무르게 되면,
일체 덕본(德本)의 빛나는 광명이 중생을 널리 비춰서 그 성명(聖明)이 멀리 이르게 되니,
도법의 광채로 온갖 어두운 진(塵)을 소멸시켜 일체 중생을 속세에서 되돌려 도(道)로 나아가게 합니다.
불자시여,
이와 같은 보살 대사를 선재의(善哉意) 제9 도주의 평등한 가르침과 아득하고 넓은 업이라 이름합니다.
그 덕을 널리 해설하되 무앙수겁으로도 구경(究竟)을 다하지 못할 만큼 그 끝을 다하기 힘듭니다.
보살 대사가 이 같은 지(地)에 머무르는 것은 범천왕이나 대범천왕이 삼천세계에 자재하게 거주하는 것과 같아서,
성문과 연각의 법을 세우는 보살행을 지어 바라밀[度無極]을 해설하는 명(明)에 견줄 수가 없습니다.
중생을 돌보는 지성(志性)의 본말을 이른바 도업이라 하니,
남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자애와 인화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되 평등하게 권화하여 그 재업(財業)15)을 균등히 합니다.
이 같은 4은(恩)으로 일체를 널리 제도하면서 이 같은 공덕을 쌓아 언제나 부처님을 호념(護念:感念)하여 마음속으로라도 이를 어겨 멀리하지 않으며,
나아가 온전한 도지의 구비를 이루어 일체지를 성취하고자 하는 생각을 잊지 않아서 ‘어떻게 모든 중생의 가장 존귀한 무극(無極)을 이루는가?’라고 합니다.
보성(普聖)에 다다라 미치지 못하는 이를 인도하고자 발의하는 무렵,
이와 같은 색상(色像)16)으로 힘써 닦아 정진해서 잠깐 사이에 열 가지 신체로 무앙수ㆍ백천 수효의 불국토에 가득한 여러 미진수와 같은 정의(定意)와 정수(正受)를 구족하게 갖추어 모든 보살을 친견하게 됩니다.
또한 열 가지 신체로써 헤아릴 수 없는 불국토에 가득한 여러 미진수와 같은 대사(大士)의 권속이 모인 것도 묘한 원도력(願道力)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니,
여러 보살의 원력이 수특해서 이에 감동하여 변화한 중생이 이루 헤아릴 수 없기에 헤아릴 수 없는 억ㆍ백천해 수효의 무한한 겁 동안이라도 모두 논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에 금강장보살이 이 같은 이치를 자세하게 풀이하고자 그 뜻을 다시 새겨 게송으로 읊었다.
이 같은 힘 한량없어
부처님의 요도(要道) 받들어 행하니
제일가는 미묘한 지혜
중생이 깨닫기 힘들어라.
이러한 비밀장(秘密藏)을
중우(衆祐)를 향해 간직하여
중생을 위해서
제9주(住)로 들어가네.
이렇게 총지와 삼매를
체득하는 존귀한 무극(無極)과
넓디넓은 신통의 업으로
국토마다 두루 섭렵하네.
성혜(聖慧)를 확연히 요달하는 역세(力勢)로
가장 뛰어나게 처소에 시현하니
지원의 마음[志願心]으로 대비를 일으켜
제9 도주에 바로 머문다네.
이 도지(道地)로 통하는
법장(法藏)을 간직해서 상지(上地)로 승진하니
진묘한 법요(法要)
그 이치의 공덕은 분별하지 못하리.
유루행(有漏行)에 머물러
세간에서 성현[賢聖]의 몸을 받으니
부사의한 마음자리는
존각(尊覺)만이 지극한 이치를 알리라.
제법(諸法)을 순창하게 분별해서
구경(究竟)을 사유하니
3승(乘)의 일을 깨달아
짓는 것을 헤아리고
유위(有爲)이거나 무위(無爲)이거나
행할 바를 깨달아
두 가지 일을 함께 지어
세간 따라 이에 섭입하네.
이 같은 지혜를 섭입하는
마음이 미묘하고 뛰어나고 특별하기에
중생심을 섭수해서
그 본말을 따져 보아
구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멀리 찾아가 전향시키니
마음으로 한량없이 헤아리되
햇살처럼 두루 섭렵하는구나.
여러 진로(塵勞)의 문을
반려로 삼아 환난을 구제하니
온갖 결(結)을 받는 처소를
주선하여 도리어 환난에 가까이 가서
약간 종류를 지은 것이라도
업을 가려내고
하근기라도 과보를 없애고
인연을 소멸시키노라.
근기가 유연한지 하열한지
중간인지 밝게 섭입해서
과거에 파계한
하근기도 미래에 통하는 이치 있기에
독실한 믿음으로 무앙수의
청정과 불청정을
두루 편력하되 8만 가지 행에다
4천 가지 일을 보태노라.
어리석은 사견(邪見)의 번뇌[塵]로 이루어진
여러 부류를 섭입하고자
자유자재로 몸을 받되
한도 없고 끝도 없으리.
마음의 결박을
반려삼아 함께 유행하면서도
평등하게 사유하는 마음을 지녀
끝없는 결박도 마다하지 않노라.
지성(志性)이 가는 길에
온갖 결(結)이 마치 달빛 가리듯 하여도
처소도 정하지 않고
또한 머물지도 않으니
환난을 교화해서
사람들을 본원(本源)에 어긋나지 않도록
금강(金剛)으로 끊어내니
그 도에 다름 헤아림 없으리.
부행(部行)에 따라 섭입해서
6취(趣)에 태어나니
욕정은 애욕을 기름지게 하고
무명은 죄와 복의 밭이 되기에
신식(神識)으로 씨앗을 심고
행을 지어 명색을 이루니
이처럼 삼계를
유행하되 가없이 하노라.
천상에 좌정한 채로
진로(塵勞)의 심행(心行)에 따라
모든 곳을 두루 다니면서
생사를 되풀이하니
중생이 3품에 처하도록
왕반(往反)을 이루노라.
온갖 사견의 불길에서
신식(神識)의 자취가 심어지니
이처럼 행을 체득해서
도지에 머물게 되리라.
중생의 심성에 따라
모든 감관을 수순해서 해득하게 하고자
경전법을 설해서
일을 가려 풀이해 주니
이 같은 의리를 분석해야
선권(善權)의 참된 변재이리라.
법사를 찾아가되
잠깐 사이에 그 처소에 이르러
가르침을 받아 집착을 없애니
마치 수미산과도 같을세라.
단비에 부드럽게 적셔지듯이
감로로 중생을 윤택케 하는
각의(覺意)의 근력(根力)이
바다처럼 충만해서
지혜로 선법(善法)의 이치를 깨닫듯
법의 해득도 이러할지니
일체가 소멸되면
변재를 이루게 되리라.
명(明)을 획득하는 무앙수
1만 가지의 총지로써
빗물이 바다로 모이듯
온갖 법요를 간직하노라.
이 같은 총지로
청정삼매를 체득하고
일시에 수없는
억백천의 부처님을 뵙는지라
법보(法寶)를 귀담아 듣고
거듭 풀이해 주니
자연의 묘한 음성으로
청백법(淸白法)을 순일하게 설명하노라.
발심(發心)하는 잠깐 사이에
삼천대천세계를 깨치니
대중이거나 한 사람의 중생까지도
그 바라는 것에 따라
그 마음의 근기에 맞춰
모든 대중을 기쁘게 하네.
사방천지로
섭입하는 것도 이러해서
공덕이 바다보다 뛰어나기에
법요를 총지해서 정진을 이루니
그 사유가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진실로 한량없노라.
안주해서 법을 설하여
범부 중생을 교화하되
소식을 듣게 되면 바로 찾아가 수지하게 하니
마치 밭에 파종하는 것과 다름없으리.
여러 중생이
시방세계에 처해 있으니
이들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자
모두 한 곳으로 모으고
이 같은 성행(性行)의 염원이
시방에 두루 펴져서
하나의 음성으로
널리 충족시키노라.
인중존(人中尊)께서 이처럼
최상의 법왕인지라
돌이켜 모든 국토로 나아가
세존자(世尊子)를 성취하고
항상 밤늦도록 닦아
뛰어난 법을 얻어 지원(志願)에 계합해서
심묘한 적막과
용맹한 지혜의 해탈문에 머무노라.
억ㆍ해(姟) 수효의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양하여 섬기면서
실다운 도를 뚜렷이 성취해서
장엄하게 법륜을 굴려
광명으로 진로를 끄되
빛을 받는 곳마다
마치 범천의 광명이
삼천대천세계를 비추듯 밝게 떨치네.
도지에 머무는 공훈을 간직하는
무극은 범천에 비견되기에
부처님께서 분별 해설하시어
3승(乘)을 건립하셨네.
수행에 힘써서
중생을 가엾게 여기고
일체지를 섭입해서
성혜(聖慧)의 공덕을 체득하여
왕사성 등으로부터
셀 수 없는 국토에 이르기까지
한순간에 사유하는 삼매의
위세로 시방을 편력(遍歷)하고
시방의 부처님을 친견하니
중우의 유연한 음성으로
미묘한 원(願)을 이루어
그 마음이 한량없네.
이것이 제9 도주이니
깊고 미묘해서 해득하기 어려워도
마침내 이에 안주해서
대승의 행업을 펼치게 되리라.
여러 정거천(淨居天) 억ㆍ재 수효의 천신이 회상에 와서 위없는 정교(正敎)의 이 같은 행을 듣고자 허공에 머물러 있다가,
뛸 듯이 기뻐하면서 공경하고 스스로를 낮춰서 잘 받들어 섬겨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였다.
무량억ㆍ해의 여러 보살 대중이 공[虛無]에 처하게 되자 기쁜 마음으로 온갖 꽃과 향을 비 내리듯 뿌리면서 한없이 기뻐하였으니,
중생의 진로의 더러움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였다.
자재천왕도 몹시 기뻐하면서 억ㆍ천의 대중과 함께 허공에 머물러 있었으니,
공경하는 마음에서 여러 가지 좋은 법의[妙衣]를 베풀었다.
범천 등도 적연(寂然)히 진기한 보배를 가지고 일심으로 귀의하였으니,
여러 옥녀의 무리가 한없이 기쁜 얼굴로 온갖 억ㆍ백천해 가락의 풍악을 울리면서 예배드리자 모든 곳에 이 같은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렇게 중우의 권속이 불국토에 가득 앉아 있었기에 그 광명이 휘황하여 모든 찰토를 비추자 억ㆍ재 수효의 모든 중생신(衆生身)이 약간이나마 유연해졌으니,
그 광명이 법계에 두루 해서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래ㆍ지진의 한 가닥 털이 빛을 발하자 그 빛이 휘황해서 중생의 번뇌를 소멸시켰다.
찰토의 미진수는 오히려 셀 수가 있었으나 이 회상에 모인 사람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때가 되어 부처님 금색신의 미묘한 여러 상호를 모두가 보게 되자,
그만 모든 전륜왕조차 다른 세계로 비켜 갔으니,
이토록 여래의 행은 가장 으뜸이면서도 뚜렷하게 아름다웠다.
천인성(天人聖)으로 나타내는 여러 대신존(大神尊)이 도솔천[兜術天]에 처(處)해서 모태에 들어 다시 출생하셨으니,
비록 태중에 계시더라도 무수억의 국토에 화현하셔서 지상에 태어나 그 불국토를 시현하셨다.
도사(導師)의 본원(本願)이 중생에게 베푸는 것이기에 다시 출가하셔서 불도(佛道)를 이루시고 최정각(最正覺)이 되시며 법륜을 굴려 무수억ㆍ재(載)의 여러 불국토를 시현하셨다.
마치 마술사[幻師]가 주술을 잘 배워 수명(壽命)에 따라 수없는 술법을 나타내는 것처럼,
세존께서도 이처럼 지혜를 배우고 닦아 중생에게 베풀고자 다시 출가하신 것이다.
공무한 적막(寂寞)이 본래 청정하여 상이 없기에[無相] 제법이 평등해서 마치 허공과 같아 부처님의 교계(敎誡)가 공[本無]에 가장 유익해서 가장 뛰어나게 시현하므로 부처님께서 다니시거나 머무시는 모든 안주행(安住行)이 모두 있는 그대로 계합되었다.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고 경전을 이룩하셔서 여러 상(相)의 상 가운데 평등한 상을 보이셨으니,
참으로 일체 제법 가운데 제일가는 무상(無相)이었다.
모든 중우의 이치는 성혜를 따라 온갖 상을 버리는 것이니,
유상(有想)이나 무상(無想)의 행에서 제행을 평등하게 해득하셔서 중생의 법주[上]를 속히 성취하셨다.
이 같은 음향이 무수ㆍ억ㆍ천의 부드러운 화음으로 울리자 세간에서 온갖 마왕과 천녀를 항복 받으시고 대중의 회상을 훈도하시는 저 지진의 적막이 마치 만월처럼 천하를 비추었다.
다시 금강장보살이 약간 품을 펼칠 때에 여러 불자가 대승 10사의 업을 닦되,
그 행을 베풀어 집집마다 공훈의 업을 행하였으니,
모두들 이 같은 서응(瑞應)을 보게 되자,
기쁜 마음으로 상인(上人)의 성혜를 다 함께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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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ㆍ보살이 이 세상에 나타나 염불 행자를 맞아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2)
원문에는 ‘십(十)’으로 되어 있으나 신수대장경에 의거하여 ‘칠(七)’로 번역하였다.
3)
원문에는 ‘생사무위정문(生死無爲定門)’이라고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 세 본에 의거하여 ‘문(門)’을 빼고 번역하였다.
4)
원문은 ‘소문이시(所問以時)’이다.
kāle pṛcchati의 역문으로 ‘시의 적절하게 질문한다’는 뜻이 아니라 소승의 시해탈아라한에 빗대어 둔근(鈍根)을 지칭하는 말이나,
본문에서는 여래의 법회가 개시되는 시분을 가리킨다.
5)
원문에는 ‘불체(不逮)’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 세 본에 의거하여 ‘체(逮)’로 고쳐 번역하였다.
6)
원문은 ‘무기(無起)’.
여기서 기(起)는 아견(我見)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7)
원문에는 ‘한(限)’으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 세 본에 의거하여 ‘은(隱)’으로 번역하였다.
8)
원문에는 ‘억(憶)’으로 되어 있으나 신수대장경에 의거하여 ‘억(億)’으로 번역하였다.
9)
산스크리트로 avinivartanīya.
아유월치(阿惟越致)ㆍ아비발치(阿鞞跋致)라고도 쓰며,
불퇴(不退)ㆍ무퇴(無退)ㆍ불퇴전(不退轉)ㆍ불퇴위(不退位)라 번역한다.
반드시 성불이 결정되었다는 것과 동시에 보살위에서 타락하지 않을 위치이다.
소승 유부종에서는 예류과(豫流果)를,
대승에서는 초주(初住)ㆍ초지(初地)ㆍ8지(地)를 불퇴라 한다.
10)
원문에는 ‘사(士)’로 되어 있으나 송ㆍ원ㆍ명 세 본에 의거하여 ‘십(十)’으로 고쳐서 번역하였다.
11)
원문은 ‘중생음언사원근(衆生音言辭遠近)’.
인도 오천축의 언어,
즉 중국의 언어를 기준으로 기타 토속어나 지방어를 가리켜 ‘원근(遠近)’이라고 표현했다.
12)
‘여시어(如是語)’에 해당하는 ‘팔성언(八聖言)’을 가리킨다.
13)
원문은 ‘체십(逮十)’.
여기서 십(十)은 수위(數位)가 아니라,
보살해경(菩薩解境)의 10신(身)을 가리킨다.
10신의 해설은 본 경(經)의 제8품에 자세히 나와 있다.
14)
‘난문(難問)’은 단순하게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
종(宗)에 소인(所因)되는 유례(喩例)의 확립이 현량(現量)에 내포되지 않는 추론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 문답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난증리(難證理,
ańidarsna)라는 인명(因明)의 공식용어로 고쳐 번역해 둔다.
『능엄경』에 보이는 솔잎이 푸른 이유에 대한 질문 등이다.
15)
재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재사제(有財四諦)’를 가리킨다.
16)
계율은 무표색에 소속되기에 본문에서 이에 빗대어 성업(聖業)의 형상(形相)을 ‘색의 형상’이라 한 것이다.
이 같은 교상(敎相)은 설일체유부의 소론(所論)이다.
● [pt op tr] fr
_M#]
『점비일체지덕경』
♣0089-004♧
◎◎[개별논의] ♥ ❋본문
★1★
◆vtne1746
◈Lab value 불기2565/05/31 |
GERALD DE PALMAS - J'En Rêve Encore
♥단상♥경전이 재미있는 사정 현실에서 쉽고 안전하고 깨끗하면서 그러나 수익은 막대한 사업이 있다고 하자. 그런 분야가 경전 공부다. 경전공부에 어떤 위험이 따르지 않는다. 바이러스 문제도 거의 없다. 경전공부가 쉬운가 어려운가는 상대적이다. 그런데 아주 쉬운 내용부터 대단히 어려운 내용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다. 그래서 선택하기 나름이다. 본인 경우는 이런 경전연구가 없으면 할 일이 거의 없어진다. 그러면 대단히 고역이었을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경전 연구를 다해도 연구해야 할 경전이 사라지지 않는다. 소일거리의 최고다. 그런데 경전을 연구하면 하루당 기대수익이 최소한 137 억원 이상이 발생한다. 이는 생명과 신체 감가상각비용이 제거되면서 발생하는 기본 소득이다. 그래서 최소한 수익액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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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ssary_of_Buddhism-Eng] ANTHOLOG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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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용과 귀신들은
다 마땅히 공경하여
가벼이 생각하는 마음과
오만한 마음을 내지말며
항상 모름지기 이 보살께 공양하고
명호를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稱念]하며
예찬(禮讚)하면
무량한 복을 얻고
무량한 죄를 멸하며
목숨이 마치면
극락세계인 아미타불(阿彌陀佛) 국토에 가
태어나게 되리라."
● 사바하 娑婆訶<七十三> s vā hā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43
나사바 라미다 자라나
捺舍波<引>囉弭哆<引>左囉拏<四十三>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151일째]
어불가설제일중 $ 022▲彌伽婆彌伽婆為 一 ● 毘攞伽, ○□□□□,一,於,又,於
□□□□□□□, 一一現色不可說,
於彼一一諸色內, 又現光明不可說。
□□□□□□□, 일일현색불가설,
어피일일제색내, 우현광명불가설。
말로 할 수 없는 낱낱 해에서
나타내는 낱낱 빛깔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빛깔 속마다
광명을 또 나투어 말할 수 없고
[152째]
어피일일광명내 $ 023▲毘攞伽毘攞伽為 一 ● 毘伽(上)婆, ○□□□□,現,一,一,光
□□□□□□□, 現不可說師子座,
一一嚴具不可說, 一一光明不可說。
□□□□□□□, 현불가설사자좌,
일일엄구불가설, 일일광명불가설。
저 하나하나 광명 속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사자좌를 나타내나니
하나하나 장엄거리 말할 수 없고
하나하나 광명도 말할 수 없어
●K0612_T1587.txt★ ∴≪A전식론≫_≪K0612≫_≪T1587≫
●K0089_T0285.txt★ ∴≪A점비일체지덕경≫_≪K0089≫_≪T0285≫
●K0421_T0839.txt★ ∴≪A점찰선악업보경≫_≪K0421≫_≪T0839≫
법수_암기방안
22 엄지 첫마디 [ 썸 넉클 THUMB knuckle]
23 엄지 (THUMB)
73 소지 (~새끼)
43 꼬마(새끼)발가락 the little toe
508485
213
○ 2020_1126_160652_nik_AB7_s12
○ 2020_1126_160419_nik_ct18_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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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1126_155404_nik_AR25
○ 2020_1126_155347_nik_Ab31
○ 2020_1126_153813_nik_ct18_s12
○ 2020_1126_153813_nik_ct8_s12
○ 2020_1126_153600_can_ct18_s12
○ 2020_1126_153202_nik_CT27
○ 2020_0224_113630_nik_Ar37_s12
○ 2020_0224_113210_nik_Ar37_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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