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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31일 월요일

불기2566-01-31_증일아함경-k0649-043


『증일아함경』
K0649
T0125

제43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안내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증일아함경』 ♣0649-043♧




제43권 






♥아래는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페이지 내용 업데이트 관련 안내]

❋본문
◎[개별논의]

○ [pt op tr]
[#M_▶더보기|◀접기|

○ 2020_1114_144249_can_exc 삼각산 도선사


○ 2020_1114_133930_can_exc 삼각산 도선사


○ 2018_1022_134810_can_exc 공주 계룡산 갑사


○ 2020_1017_164916_nik_exc 삼각산 화계사


○ 2020_1017_153533_can_exc_s12 삼각산 화계사


○ 2020_1017_154758_can_exc 삼각산 화계사


○ 2020_0911_122558_nik_ori_rs 제천 의림지 대도사


○ 2020_0910_135230_nik_ori_rs 속리산 법주사


○ 2020_0910_113609_can_ori_rs 속리산 법주사


○ 2020_0909_160048_can_ori_rs 무주 백련사


○ 2020_0909_145404_nik_ori_rs 무주 백련사


○ 2020_0908_171523_can_ori_rs 합천 해인사 백련암


○ 2020_0908_142711_can_ori_rs 합천 해인사


○ 2020_0907_160818_can_ori_rs 양산 통도사


○ 2020_0904_085652_nik_ori_rs 여주 신륵사


○ 2019_1201_152217_can_exc_s12 원주 구룡사


○ 2019_1106_161526_can_exc 화순 계당산 쌍봉사


○ 2019_1106_121421_can_exc_s12 화순 영구산 운주사


○ 2019_1106_114714_can_fix 화순 영구산 운주사
● [pt op tr] fr
_M#]



○ 2019_1106_102545_can_fix 화순 영구산 운주사







『증일아함경』 ♣0649-043♧






◎◎[개별논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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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의 의문점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2/01/2562-02-14-k0121-001.html#001 
sfed--설무구칭경_K0121_T0476.txt ☞제1권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 현실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의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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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하 임시-- 편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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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이 마음내용이라고 할 때의 의문점


앞 글에 이어 살핀다. 

앞 글에서는 현실 내용이 마음내용임을 살폈다. 

그리고 현실 내용이 마음 내용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쉬운 실험 방안들을  살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논의주제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2-02-13-k0694-001.html#001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논의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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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재에 대한 일반적입장과 전도망상분별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2-02-13-k0694-001.html#002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존재에 대한 일반적입장과 전도망상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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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6/2562-02-13-k0694-001.html#003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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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는 추가 문제로  

현실 내용을 마음안 내용이라고 할 경우의 문제점에 대해 살피기로 한다. 




- 추가 문제 

- 현실 내용을 마음안 내용이라고 할 경우의 문제점의 상세한 고찰,



현실에서 한 주체가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현실 내용의 정체에 대해 판단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각 입장별로 극과극으로 달리 판단한다. 


일반적으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못 여긴다. 

우선 이런 현실 내용 가운데 일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은 모두 곧 외부 세계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 나머지는 자신의 감관이 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이들은 모두 정신과는 떨어져 있는 정신과 별개의 외부 물질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긴다.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영희나 철수를 포함하여 세계 인류가 같이 대하고 얻는다고 잘못 여긴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망집에 바탕해 현실 내용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행하기 쉽다. 


경전에서는 다음처럼 제시한다. 

한 주체가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마음안 내용이다. 

결국 앞과 같이 이해하는 것은 거꾸로 뒤집힌 전도몽상 분별임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방안을 이미 소개하였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다시 여러 문제가 이어진다. 


우선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 마음을 과연 있다고 할 것인가가 먼저 문제된다. 

그리고 마음내용을 얻는데 반드시 마음이 필요한가가 문제된다.  

즉 마음 내용을 단순한 육체의 물질적 관계로 얻을 수 없는가가 문제된다. 


그리고 또 있다면 그것이 존재하는 위치가 어디인가가 문제된다. 

이는 마음내용이 머무는 위치를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 어떤 부분을 좀 더 실다운 자신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편 일반적으로는 현실 내용의 일부분을 자신의 몸 및 감각기관으로 잘못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을 감각대상으로 잘못 보게 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렇다면, 감각과정에서는 어떤 감관이 무엇을 대상으로 해 그런 내용을 얻는가도 문제된다. 


또 사정이 이렇다고 하자. 

그런 경우 현실에서 생활이나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함께 문제된다. 


따라서 이에 관해 기본적으로 살펴나가기로 한다. 

-( 참고로 첫번째 항목은 별도 항목으로 따로 살피기로 한다. )


○ 마음 내용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판단 문제 


이를 위해서 그림을 살펴보기로 하자.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http://buddhism007.tistory.com/228 ☞○ 마음과 색의 의미에 관한 논의 
http://thegood007.tistory.com/1172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이는 1 이 눈을 떴을 때 보게 되는 내용들이다. 


그 상황에서 먼저, 현실에서 자신과 비슷한 강호 2 를 자신 옆에 있게 한다. 

그리고 강호 2가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하게 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 상황을 1 자신이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강호 2로부터 다음 보고를 받게 된다. 

즉 강호 2 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무엇을 보고 보지 못하게 된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1이 관찰할 때는 별 변화가 없다. 

그래서 그런 변화는 오로지 2 내부 안에서의 변화라고 보게 된다. 

그런 경우 이 상황을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즉, 이 경우 2가 눈을 뜰 때 보게 되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 내용은 그림처럼, 2 의 몸 가운데 '머리 부분'에 머무른다고 엉터리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그 사정을 위 그림의 5^처럼 나타내게 된다. 

이는 2 의 마음이 존재하는 위치를 2 영역안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입장이 된다. 


한편, 2 나 1 자신이 나란히 서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2 나 1이나 상황이 마찬가지라고 보게 된다. 

따라서, 1 이 눈을 떠서 본 내용 [앞 그림 전체]도 1 자신이 스스로 보는 1의 머리 안에 그처럼 머문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우선 이런 이해는 모두 잘못된 엉터리 추리다. 

그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다음처럼 알 수 있다. 



일단 그런 내용을 그처럼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 주장이 갖는 문제를 살핀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이해가 어떤 잘못이 있는가를 오히려 알기 쉽다. 

이는 가정적 비판 방식의 하나다. 


즉 다음 방식으로 살핀다. 

우선 상대의 주장이 엉터리다. 

그러나 일단 그렇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그런 가운데 그 주장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를 살핀다. 

그래서 이를 통해 처음 주장이 잘못이 있음을 살피는 방식이다. 


그래서 여기서 이를 가정적 비판방식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 1 자신의 마음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 


우선, 강호 2 가 본 내용이 강호의 머리 안에 모두 머문다고 하자. 

그래서 2 가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이 5^ 처럼 2 의 머리 안 영역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하자. 


그런데 2 나 1 자신이 나란히 서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2 나 1이나 상황이 마찬가지라고 보게 된다. 

따라서, 1 이 눈을 떠서 본 내용 [앞 그림 전체]도 1 자신이 스스로 보는 1의 머리 안에 그처럼 머문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에 1 자신이 눈을 떠서 본 내용은 위 그림 전체라고 했다. [즉 5 ] 

즉 자신이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지는 내용은 위 그림 전체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은 서로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2의 경우에서는 그것이 2 의 영역에만 한정한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1 자신의 경우는 그것이 1 부분에 한정하지 않는다. 

1 자신의 경우는 그림 전체 부분에 해당한다. 

따라서 1 자신의 마음이 위치한 영역을 1 부분에 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1 자신의 마음 가운데 눈과 관련된 마음(안식)만 판단한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오히려 위 그림 전체를 포함하는 전체 영역에 해당한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1 자신이 자신의 눈을 뜰 때 일정한 내용을 얻는다. 

그 가운데 한 부분으로 1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처럼 얻게 된 내용 일체가 다시 그 가운데 한 부분인 1 부분에 위치한다고 할 수는 없다. 


눈을 떠 얻는 일체 내용은 자신의 마음이 얻는다고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오히려 마음이 얻어낸 내용 일부분에 위치한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즉 자신의 마음이 1 부분에 위치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사정을 2를 놓고 간접적으로 추리해보기로 하자. 

위 그림에서 2가 눈을 떠 보게 될 내용을 5^로 가정해 그려 놓는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2 의 마음이 어느 부분에 위치하는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이 경우 2 가 본 '내용들' 일체가 다시 그 가운데 일 부분인 2^ 안에 머문다고 이해할 수 없다. 


한편, 2 가 그런 내용을 볼 때 작용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자. 

그런 내용을 얻는 2 의 '마음'이 그가 본 내용 가운데 일 부분인 2^ 안에 머문다고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정은 1과 2 가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1이 눈을 떠 본 1 부분에 1의 마음이 위치한다고 이해할 수 없다. 






- 2 등 다른 이의 마음의 위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편 자신은 2 나 3 부분을 다른 사람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그런 부분에 2 나 3 의 마음이 위치하고 있으리라고 잘못 여긴다. 

이것은 잘못된 이해다. 


이를 다음방식으로 검토해보자. 


먼저 앞에서 2가 눈을 떠 보는 내용은 2 영역 안에 있으리라 추정했다. 

그래서 이를 그림에서 5^ 부분으로 표시해보았다. 

일단 그런 내용을 가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런 바탕에서 위 내용을 다시 검토해보자. 


이제 거꾸로 1이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 내용을 다른 사람 2가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2는 1^로부터 다음 보고를 받게 될 것이다. 


즉 1^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무엇을 보고 보지 못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변화를 2 에게 언어로 보고한다. 

그런데 2 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 

그런데 1^ 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변화를 경험한다고 보고한다. 

따라서 그런 변화는 오로지 1^ 영역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여기게 된다. 

그런 경우 2는 이를 바탕으로 다시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즉, 1^가 본 내용은 '2가 본 1^부분(머리부분)'에 머문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2 의 입장에서는 그처럼 보이고 그처럼 이해되기 쉽다. 

그래서 이렇게 2 가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제 1 의 입장에서는 그런 내용을 다시 거꾸로 검토해본다고 하자. 

그러면 1의 입장에서는 2 의 그런 이해가 잘못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상황에 강호 2 가 본 4^와 같은 꽃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4^는 2 의 마음안 내용이다. 

따라서 1 입장에서는 1 자신이 4^ 부분을 상대한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즉, 2가 본 마음안 내용[4^]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편, 1 입장에서는 강호 2 가 본 1^ 부분을  그 자신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1^ 부분이 그 상황에서 4^와 관계한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한다. 


한편, 그 상황에서 1 자신이 눈을 떠 보게 된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 내용 역시 1^ 부분에 머문다고 여기지 않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 부분은 단지 강호 2 가 본 그런 내용일 뿐이다. 

따라서 2 가 처음에 한 이해내용은 잘못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 1 이 2에 대해 판단한 내용도 앞 내용과 성격이 같다. 

그래서 처음 1 이 2에 대해 판단한 내용도 역시 마찬가지로 잘못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처음 1은 다음처럼 이해했다. 

즉, 2가 눈을 떠 본 내용은 자신이 본 2 의 머리안에 머문다고 여겼다. 

그런데 여기서 1이 본 2 모습은 사실은 2 가 아니다. 

- 2 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2 의 입장에서 이런 내용을 검토한다고 하자. 

그 경우 2 자신이 다른 사람 (1 자신)이 눈을 떠 본 마음내용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님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1이 강호라고 본 2 부분은 사실은 강호는 아니다. 

즉 자신의 마음 안에 다른 이 강호2 가 머물러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은 단지 1의 마음에 얻어진 내용 가운데 한 부분일 뿐이다. 


한편 그 상황에서 다른 이 강호 2 가 눈을 떠 '얻는 내용'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내용이 1 자신의 마음 어느 부분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1 자신이 눈을 떠 본 2 와 같은 부분에 머문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이 2 의 '마음' 또한 자신이 본 내용 일 부분에 위치한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 판단은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평소 1은 1 부분을 스스로 자신의 몸이라고 잘못 여긴다. 

또 2 나 3 부분은 다른 사람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바탕에서 평소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위와 같이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평소 이해가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 행하는 판단은 거꾸로 뒤집힌 전도된 망상분별임을 이해할 수 있다. 









○ 감각과정의 대상의 문제 

- 감각과정의 주체와 대상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일으키는 배경 사정 


한편, 감각을 얻는 과정에서 무엇을 대상으로 얻는가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 

이를 그림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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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
[그림] 08pfl--image/진리의오류5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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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fl--ghpt/r1030.htm ☞○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1 이 처음 눈을 감았다가 뜨는 순간 

그 때 얻게 되는 내용을 위 그림처럼 표시하기로 하자. 

위 그림의 상황은 1 이 자신과 비슷한 다른 사람 영희나 철수 2나 3 을 위처럼 대하는 상황이다. 


현실에서 1 자신이 눈을 떠서 대하는 꽃을 자신의 손으로 만진다고 하자. 

이 때 1 자신의 손으로 여기게 되는 일정 부분을 보게 된다. 

또 꽃으로 여기게 되는 4 부분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두 부분이 닿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렇게 행할 때마다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런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이 꽃으로 보게 되는 그 부분이 손이 대한 외부 대상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또 그런 부분과 접촉한 손 부분은 자신의 감관이 위치한 부분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2 가 꽃을 손으로 만진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모습을 눈으로 보게 된다고 하자. 

그런데 그 경우마다 2 는 매번 촉감을 반복해 얻는다고 보고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이들 내용이 마치 주관과 대상 관계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게끔 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잘못된 이해는 잘못된 자신에 대한 견해를 갖게 한다. 

또 타인에 대해 잘못 상을 취해 임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자신과 남에 대해 각기 잘못된 집착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이해가 잘못임은 그 상황에서 눈을 감으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즉 이 상황에서 자신이 눈을 감는다고 하자. 

그래서 그런 모습들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래도 그 상황에서 촉감은 느끼게 된다. 

또 다른 사람 2 도 역시 촉감을 여전히 느낀다고 보고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앞에서 눈으로 본 부분들은 촉감을 느낄 때 상대한 대상이나 감관은 아니다. 

즉 이들은 촉감을 얻게 한 원인요소는 아니다. 

이들은 단지 촉감을 느낄 때 시각을 통해 함께 얻게 된 내용일 뿐이다. 

결국 이들 내용은 각기 서로간에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는 내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들을 외부대상이나 감관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런 입장과 일반적 입장은 서로 극과극으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 가운데 어떤 입장이 옳은가를 다시 좀 더 살피기로 한다. 



- 1 자신이 무언가를 감각하는 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우선 1 이 1 부분에 붙은 눈이  4 와 같은 꽃에 닿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그런 사정으로 4 와 같은 부분이 눈이 상대한 대상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선 1이 대하는 4 라는 꽃 부분은 1 의 마음 밖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외부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1 이 이런 부분을 상대해 어떤 감각내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앞 내용을 다음처럼 다시 다른 사람 강호 2를 놓고 반대로 살펴보자. 

이제 2 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1이 관찰하는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 상황에서 2 가 스스로 이해하는 내용을 놓고 검토해보자. 

그러면 좀 더 이해가 조금 쉽다. 


우선 위 상태에서 2 가 눈을 뜨고 감는 실험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2는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무언가를 보거나 보지 못한다고 보고한다. 

그 상황을 1이 옆에서 지켜본다고 하자. 

그러면 1 은 그 상황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보게 된다. 

다만 2 만 그런 변화를 보고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 변화는 오직 2 의 영역에서만 있는 변화일 뿐이라고 보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런 내용은 위 그림에서 5^ 와 같은 2 의 영역안에 있는 변화라고 보게 된다. 


우선 이런 추리는 잘못된 엉터리 추리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단  그런 추리를 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리고 그 상황에서 2 가 보았을 내용을 대강 추정해보자. 

그것은 1 자신이 그 상황에서 보는 내용과 엇비슷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한편, 그 상황에서 2가 눈을 통해 보고 얻는 것은 모두 5^ 영역에 들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2 가 그 상황에서 보았을 내용에 대해 각 부분에 대해 판단한다고 하자. 

그것은 또 평소 1 이 판단하는 내용과 유사할 것이다. 


즉, 이 상태에서 2 내부 안에서 2 가 본 꽃 모습이 있을 것이다. 

이를 4^ 로 표시하기로 하자. 

그리고 2 스스로 자신의 모습으로 본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를 2^ 로 표시하기로 하자. 


이 때 2 입장에서 자신의 감각과정을 다음처럼 이해한다고 하자. 

즉,  4^ 부분을 대상으로 2^ 부분이 관계해 감각내용을 얻게 된다고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강호 2 가 촉감을 얻는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2^ 의 손 부분이 4^와 같은 꽃에 닿는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하자. 

2는 매번 이런 경우 촉감을 느낀다. 

그런 사정으로 2는 4^ 와 같은 부분을 촉감을 느끼게 한 대상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이처럼 2 는 2  자신이 얻은 5^ 안의 내용안 각 부분이 서로 관계한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즉 그 안에서 외부대상과 감관을 잘못 찾기 쉽다. 


그런 2 의 판단을 다시 1의 입장에서 검토해본다고 하자. 

그러면 2 의 그런 이해는 옳지 않은 판단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강호 2 가 얻는 시각정보 내용들이 있다고 하자. 

이들은 눈을 통해 2 가 얻는 5^안의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 시각 정보내 각 부분이 서로 대상과 감관으로 관계한 것이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런 내용들이 서로 관계해 2 가 무언가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또 그런 내용들이 서로 관계해 촉감을 느끼게 된 것도 아니다. 

1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1의 입장에서는 2가 본 내용들은 그런 감각을 얻게 하는 요소는 아님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2 가 느끼는 감각내용은 적어도 2가 눈을 떠 얻는 내용[즉, 5^] 밖의 어떤 것들이 관계해 얻는 것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처음 1의 입장에서 행한 판단도 역시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처음 1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하자. 

그것이 그림에 표시되어 있다. 

1 에게 있어서는 위 그림내 내용 전체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앞의 경우에 준해서 그 잘못을 이해해야 한다. 

처음 1 자신이 눈을 통해 얻는 일체 내용[그림전체]는 그가 마음에서 얻는 시각정보다. 

그래서 그 안의 4 부분이나 1 부분이 서로 관계해 시각정보를 얻는다고 이해하면 잘못이다. 


처음 1 입장에서는 다음처럼 잘못 이해하기 쉽다. 

우선 그림에서 1 부분에 달린 눈이나 손을 감관으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4 부분이 그 감관이 상대하는 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이런 각 부분이 서로 관계해 자신이 일정한 감각을 얻게 된다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그런 1 의 생각은 앞에서 2가  잘못 이해한 내용과 그 성격과 구조가 같다. 

즉, 처음 2가 2 자신의 감각과정에  대해 생각한 내용과 그 구조가 같다. 

그래서 1의 입장에서 행하는 1 자신의 감각과정에 대한 판단도 잘못임을 이해할 수 있다. 


즉 평소 자신이 감각기관이라고 이해한 부분은 사실은 그런 부분이 아니다. 

또 그런 감관이 상대하는 외부 대상이라고 이해한 부분도 사실 그런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감관이 위치한 자신의 몸부분이라고 이해한 부분도 사실 그런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이해를 시정해야 한다. 




- 다른 이가 감각하는 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한편, 1 의 입장에서 2가 눈을 떠 보게 되는 과정을 관찰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2 가 감각을 얻는 과정에 대해 다음처럼 잘못 추리하게 된다. 


우선, 그런 상황에서 2 의 내부에서 일정한 내용 5^를 얻는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런데 1 입장에서는 2 내부의 내용 5^와는 별도로 그 밖에 위치한 4 부분과 2의 몸 부분을 보게 된다. 

그리고 2 부분에 달려 있는 손이나 눈이 보인다. 

그래서 1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곧 2 의 감관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1 입장에서는 그런 2의 부분과 4 부분이 서로 관계한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부분은 사실은 1이 감각한 내용일 뿐이다. 

즉 2 부분이나 4 부분은 모두 다 함께 1 이 감각한 내용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판단 역시 잘못된 판단이다. 


처음 1은 다음처럼 이해했다. 

우선 처음 1이 눈을 떠서 보는 내용이 있었다. 

그 안에서 일 부분에 꽃 4 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일 부분에 강호 2 가 있었다. 

그런데 강호 2  는 이런 4 부분을 대상으로 삼아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추리했다. 

그리고 강호 2 가 얻는 내용은 그림에서 5^와 같은 부분에 그렇게 있다고 잘못 추리했다. 

그래서 처음 위 그림처럼 1 이 2 가 무언가를 보는 과정을 추리해 표시한 것이다. 

이런 판단은 엉터리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임을 다음과 같이 이해해보자. 

2 가 반대로 1 자신을 옆에서 관찰하게 되는 경우를 놓고 살펴보기로 하자. 


2 가 눈을 떠서 5^ 와 같은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리고 그 상태에서 2 가 반대로 1^ 라는 사람을 관찰한다고 하자. 

이 때 1^ 라는 사람이 눈을 뜨면 무언가가 보인다고 보고한다. 

그리고 또 눈을 감으면 무언가를 보지 못하게 된다고 보고한다. 

그런데 그 상황을 2가 계속 지켜보니 별로 변화가 없다. 

그런데 1^ 이 그런 보고를 한다. 

그러니 1^ 이 보고하는 그런 변화란 오직 1 ^ 안에서 있는 변화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은 1 ^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 가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에 대해 그가 다음처럼 이해한다고 하자. 

우선 2 입장에서 그가 꽃으로 보는 4^란 부분이 있다. 

그런데 1^는 이 4^부분을 대상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1^의 눈이 4^를 대상으로 삼아서 관계맺어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 다음 이런 관계를 통해 1^가 얻게 되는 내용은 1 ^ 부분안에 머문다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1 ^ 부분 안에 표시해야 한다고 잘못 추리하게 된다. 

그래서 2 입장에서 이 상황을 이처럼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1 입장에서 이처럼 2가 이해하는 내용을 다시 검토해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 2 가 행한 해석이 잘못임을 쉽게 파악한다. 

무엇보다 우선 1 자신이 2 의 마음 안에 있다고 할 수 없다. 

즉, 2 가 눈으로 본 내용[ 5^]안의 1 ^ 부분으로 1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2 의 마음에 얻는 4^ 와 같은 내용을, 1 이 대상으로 상대한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1 이 눈을 떠서 무언가를 본다고 하자. 

그런데 1 이 얻는 내용이 2 의 마음안 내용 [즉, 5^] 에 들어 있다고 하기 곤란하다. 

즉, 그 가운데 2 가 보는 1 ^ 부분에,  1 이 얻은 내용이 머물게 된다고 하기 곤란하다. 

이런 해석은 하나같이 이치에 맞지 않다 


1 은 결코 강호 2가 눈을 통해 본 마음안 내용[즉, 5^]을 대상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다. 

또 1 의 감관이 2가 눈을 통해 본 마음안 내용[즉, 5^] 안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처럼 2 가 이해한 내용은 잘못이다. 


그런데 1 과 2 의 입장은 서로 성격이 같다. 

그래서 반대로 1 이 처음 2가 눈으로 무언가를 보는 과정에 대해 이해한 내용은 잘못이다. 



- 다른 감각과정에 대한 잘못된 이해 


앞에서는 주로 시각 감각과정과 촉각을 놓고 살폈다. 

그러나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다. 

어떤 한 주체가 얻는 감각현실이 다양하다. 

이들은 모두 한 주체가 감각해 얻는 마음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각 내용간의 관계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우선, 시각 정보가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 정보를 얻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4라는 꽃 모습이 향기를 얻게 해준다고 이해할 것인가.  - 그렇지 않다. 

촉감을 얻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처음 1이 눈을 떠서 4 라는 시각정보를 얻었다. 

그런데 이 시각 정보 내용을 대상으로 삼아 어떤 촉감을 얻는다고 이해하면 잘못이다. 

그 4 부분은  그런 지위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즉 이는 여러 감각과정에서 감관이 상대하는 대상이 아니다. 


이런 사정은 각 감각을 얻는 과정을 놓고 다음처럼 검토해볼 수도 있다.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을 얻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눈을 감아 시각정보를 얻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은 여전히 관계없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눈으로 본 내용은 그런 감각의 대상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각기 서로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는 내용들일 뿐이다. 


또 시각정보도 반대로 마찬가지다. 

시각 정보가 청각, 후각, 미각 촉각정보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각 정보가 시각정보 자체를 대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 감각내용이 그런 감각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그런 감각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은 적어도 이런 내용 밖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각기 서로간에 부대상황의 관계에 있는 내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일단 이 상황을 비유로 이해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 주체가 눈을 통해 얻는 시각감각 내용 (시각정보)를 얻는다. 

그런데 이 과정을 오늘날 TV의 모니터 화면과 같다고 생각해보자. 

TV 가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그림으로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 그런 그림이나 모니터화면에서 어떤 사람이 컵에 손을 대는 모습이 있다고 하자. 

즉, 그 그림안의 손 부분이 컵 모양에 닿는다. 

그런데 그 경우 그로 인해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게 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는 그 그림에 그려진 사람이 촉감을 느끼게 된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비유가 앞 상황과 성격이 같다. 

TV나 그림책을 보게 되면 그렇게 그 내용을 이해하게는 된다. 

그러나 본 사정은 그렇지는 않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자. 

앞 그림이나 화면에 어떤 이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취한다고 하자. 

그래서 공이 날라가 유리를 깨는 모습이 다음화면에 나타난다고 하자. 

그러나 앞 그림 내용이 유리를 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또 그런 화면 내용이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TV 등에서 그런 내용을 그 순간에 동시에 반복해 경험한다고 하자. 

그래서 화면을 지켜보면 마치 이들 각 부분이 그처럼 관계 맺는 것처럼 잘못 여겨지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모니터 각 화소가 그런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다. 


TV 모니터 화면상에서 어떤 이가 컵을 바닥에 던졌다. 

그렇게 컵이 깨지가 소리가 스피커에 났다. 


그런데 컵에 해당한 모니터 화소가 바닥에 해당하는 모니터 화소에 부딪힌 것이 아니다. 

또 그런 화소가 그 소리를 낸 것도 아니다. 

모니터 화소가 서로 그런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서로 그런 작용이나 영향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림책에 그려진 그림 각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화면이나 그림을 대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반복해서 그런 관계를 경험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각 부분이 서로 그처럼 관계맺는 것처럼 잘못 여겨지게 된다. 

따라서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 현실 내용을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하는 문제


한편, 현실내용을 객관적 실재로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이렇게 잘못 여기게 되는 사정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 꽃을 옆에 있는 강호 2나 혜수 3에게 건넨다고 하자. 

그러면 그 꽃을 강호나 혜수가 받는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내용을 보고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마치 모두가 함께 대하는 객관적 실재의 내용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현실 내용을 실다운 내용이라고 집착하게끔 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내용은 그 주체의 마음 내용이다. 

이런 사정을 앞의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또 다음처럼 이런 판단이 잘못임을 알 수도 있다. 

박물관에서 어떤 조각상을 자신과 강호 혜수가 함께 관람한다고 하자. 

이 때 자신은 정면에서 그 조각상을 본다. 

그리고 강호는 조각상 왼편에서 이를 본다. 

그리고 혜수는 조각상 오른편에서 이를 본다. 

이런 경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자. 

그러면 서로 같은 조각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래서 마치 서로 같은 모습을 대한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 세 사람은 각 순간에 동일한 모습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한편, 한 사람이 각기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을 번갈아 감으면서 본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도 각 경우 보게 되는 모습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일정 순간에 본 모습은 모든 사람이 함께 얻는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얻는 감각내용을 모든 주체가 다 함께 대하는 객관적인 실재라고 이해하면 잘못이다. 



- 망집을 시정해야 하는 사정 


본 바탕 실상은 차별없이 공하다. 

그런데도 현실 생활에서는 위와 같은 관계로 각 내용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들 현실 내용은 모두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마음안 내용을 곧 외부 세상으로 잘못 여긴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눈을 뜨면 엇비슷한 내용을 얻는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얻는 내용에 대해 그 성격이나 지위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이 감각한 현실 내용이 있다고 하자. 

이 가운데 일정 부분을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을 외부 세상의 내용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또 이들 나머지 부분을 각 감각기관이 상대하는 외부 대상으로 잘못 여긴다. 

그리고 이들 부분은 정신과는 떨어져 있고, 정신과는 별개의 것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이들 부분을 그런 정신과 구별되는 별개의 물질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부분을 물질이라고 표현할 때는 그런 전제에서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질과 정신)


한편 이들 내용은 모든 이가 함께 대하는 외부에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내용으로 잘못 여긴다. 

그래서 각 주체는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이 외부에 그처럼 실재한다고 잘못 여긴다. 

한편 이와 상대적으로 구분되는 부분을 또 스스로 자신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이처럼 각 부분의 정체에 대해 잘못 파악한다. 

그리고 각 부분이 갖는 의미나 성격 지위에 대해 다음처럼 잘못 판단하게 된다. 


그런 부분이 자신이다. 

또 그런 부분이 자신이 대하는 자신의 물건들이다. 

이런 식으로 잘못 여기게 된다. 

그래서 결국 일반적 입장에서 그처럼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이해를 오히려 더 적절한 판단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들 내용에 대해 잘못된 집착을 갖게끔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자꾸 업을 행하게 된다. 

그러면 욕계 내에서 그런 주체들간에서 서로 가해와 피해를 주고 받는 관계가 된다. 

그래서 업의 장애가 그런 바탕에서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생사현실에 묶여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간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무량겁에 걸쳐 그 상태로부터 벗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즉,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는 과정이 바로 그와 같다. 


그래서 이를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에 묶이는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되도록 원인 단계에서 미리 원인을 제거해 예방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처음 현실에서 행하게 되는 잘못된 판단과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이 잘못된 내용임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하고 대하는 내용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즉 그런 내용들은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서 본래 얻을 수 없는 내용임을 이해해야 한다. [불가득 공]

또 그런 내용들에는 참된 진짜에 해당하는 실체가 없음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무자성 무소유]

그래서 결국 현실 내용은 마치 꿈과 같음을 이해해야 한다. 

즉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그 성격이 같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현실 내용에 대해 갖게끔 되는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제거할 수 있다. 

또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수행으로 전환해 임해야 한다. 

그래서 이미 쌓아 놓은 업의 장애를 다시 제거해내야 한다. 

또 그래야 생사고통을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전반적인 수행을 통해 그런 생사현실의 묶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앞과 같은 상태로 각 내용을 반복해 얻는다. 

그리고 그런 사정 때문에 처음에 일으킨 망상분별을 계속 붙들고 임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것을 계속 고집하게끔 된다. 

그래서 그런 노력이 원만하게 성취되지 못하게 된다. 

이런 현실이 문제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렇게 망상분별을 일으키게끔 되는 배경사정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 망집을 일으키는 배경 사정의 이해 


현실에서 각 내용은 자신과 외부 세상처럼 여겨지기 쉽다. 

또 자신과 외부 대상처럼 여겨지기 쉽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손이 꽃을 닿는 모습을 본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촉감을 얻는 관계를 반복해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들 각 내용이 대상과 감관이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정신과 성격이 다른 물질이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또 이들 내용은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컵을 다른 이가 들고 있는 컵과 부딪힌다고 하자. 

그 때 함께 그 소리를 듣고 촉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소리나 촉감은 자신만 얻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에 상대방도 같이 얻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얻는 내용은 모든 이가 함께 얻는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여기게끔 된다. 



그런데 이들 각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들 현실 내용은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 대상도 아니고 객관적 실재의 내용도 아니다. 


현실 내용들은 사실 그런 내용이 아니다. 

다만 현실 내용을 얻고 나서 각 부분의 관계를 그렇게 잘못 이해하게끔 될 뿐이다. 


이를 위해 처음에 현실 일체 내용이 마음안 내용임을 확인하는 기초적 실험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 망집 상태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는 사정 



1-- 올바로 사정을 이해해도 그렇게 잘못 여기게끔 한 배경사정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음 


예를 들어 처음 일체가 마음안 내용이라고 제시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내용을 이론상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실 내용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이 없음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해를 한다고 그것만으로 곧바로 그런 배경 사정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전처럼 여전히 감각현실을 얻고 또 분별을 행하게끔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생활에 임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다시 이전에 행하던 일반적 이해 방식이 오히려 그럴 듯하다고 여기게끔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 임해 생활한다고 하자. 

그런 가운데 예를 들어 컵을 만지면서 두드려 소리를 듣는다고 하자. 

또는 차의 향기를 맡는다고 하자. 

또는 차를 마셔서 차 맛을 느낀다고 하자. 

또 컵을 손으로 만지면서 촉감을 느낀다고 하자. 

그러면 여전히 그런 부분이 자신이 대하는 대상처럼 잘못 여겨지게끔 된다. 


또 그 컵에 차를 따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넨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대인 영희나 철수도 또 자신과 상황이 마찬가지임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대하는 내용은 객관적 실재인 것처럼 잘못 여겨지게끔 된다. 

따라서 다시 처음 입장으로 다시 물러나 되돌아가게 된다. 


본래 생사현실에서 일정한 정신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감각현실과 분별을 행한다. 

또 그런 상태에서는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끔 된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행하는 분별이 잘못임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그런 이해만으로 그 배경이 되는 정신구조와 기제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생사현실에 임하는 한 그런 상태는 계속된다. 



2 - 실재의 외부대상과 주관은 직접 얻지 못함 


현실내용의 각 부분은 올바른 외부 대상과 주관은 아니다. 

단지 그런 내용으로 잘못 이해되는 내용들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현실내용 대신 참된 외부대상과 주관을 찾아내려고 한다고 하자. 

그러나 한 주체는 이들 내용은 직접 얻어내기 곤란하다. 

한 주체는 오직 마음에 들어온 내용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외부대상 자체와 주관 자체는 마음에 직접 들어오지 못한다. 

따라서 생사현실에서는 단지 마음에 들어온 감각 현실 내용을 바탕으로 임하게 된다. 

즉, 이들 감각현실을 시원적인 바탕으로 놓고 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일반 생활은 이런 바탕에서 행해 나가게 된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 식사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부분을 대상으로 대하여 식사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또 일상에서 거리를 걷거나 운전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정 부분을 외부 세상으로 여기고 임할 도리 밖에 없다. 

만일 현실 내용을 그런 형태로 대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생활 전반을 유지하기 힘들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망집을 벗어나기 위한 수행자체도 이런 바탕에서 행하게 된다. 


이런 사정들 때문에 일반적으로 망상분별을 일으켜 이를 고집하면서 머물게 된다. 



3 -- 현실 내용이 실답게 여겨지는 사정 


평소 현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데 이를 평소 자신이나 세상으로 여기고 대했다고 하자. 


- 잘못된 오개념의 시정 

이런 경우 그런 현실 내용이 마음내용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현실내용의 정체와 성격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들 현실 내용이 그가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 아님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현실 내용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가진 오개념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기존에 잘못된 관념판단에 바탕해 가진 집착도 함께 제거할 수 있다. 


-실답지 않음의 이해

현실 내용에 대해 잘못된 오개념을 갖는다고 하자. 

예를 들어 이 부분은 자신의 몸이다. 저 부분은 영희다. 또는 책상이다 

이 부분은 외부 세상이다. 외부대상이다. 물질이다. 객관적인 실재다. ...

이런 식으로 각 부분에 적절하지 않은 잘못된 이해와 판단을 한다고 하자. 

그런 잘못된 분별은 오개념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그에 바탕해 현실에서 상을 취하여 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각 부분에 잘못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대하게 된다. 

또 한편, 그런 내용이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여기기 쉽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참다운 진짜로서 실체를 갖는다고 여기기 쉽다. 

이처럼 그런 잘못된 판단을 바탕으로 다시 그것이 실답다고 여긴다고 하자. 

그러면 그에 바탕해 잘못된 집착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이런 부분만 떼어 놓고 보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분별 판단을 시정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이에 바탕해 잘못된 방향으로 업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겪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원인단계가 되는 부분에서부터 망집을 제거하는 것이 낫다. 


따라서 이를 위해 먼저 

그런 현실 내용 각 부분에 대해 갖는 오개념(잘못된 분별)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또 이들 현실 내용은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실의 본 바탕은 공함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본 바탕에서는 현실 내용과 같은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이 참된 진짜라고 할 실체가 없음도 이해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현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바탕해 현실 내용에 대해 갖던 집착도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생사고통을 발생시키는 업도 중단할 수 있다. 

그리고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수행도 원만하게 잘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야 생사고통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전체적인 입장에서, 다음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우선 현실 내용이 마음내용임을 이해하고 

기존에 각 부분에 대해 가졌던 오개념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 사정상 이를 어렵게 하는 사정들이 다음처럼 있다. 

따라서 이들 부분을 추가로 잘 살펴나갈 필요가 있다. 


- 마음 내용 각 부분이 달리 갖는 특성 


감각현실이 마음내용임을 제시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다시 다음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기 쉽다. 


이들 감각현실 내용이 다 함께 각 주체의 마음안 내용이라고 하자. 

이들 감각현실은 전체가 함께 하나로 얻어진다. 

그런 경우 마음안 내용의 각 부분은 모두 마음 내용인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래서 감각현실 각 부분이 모두 다 같은 특성만 가져야 할 것처럼 여겨지기 쉽다. 

그런데 생활과정에서 이 각 부분에 각기 특성이 서로 다름을 분별하게 된다. 


먼저 감각현실 안에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처음 그런 자신과 나머지 다른 부분을 크게 2 분해 대하게 된다. 

그런데 나머지 부분에서도 다시 각 부분 특성이 달리 파악된다. 

우선 자신과 비슷한 인간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들이 있다. 

또 인간과 비슷한 생명체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다시 일반 물체(무정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들 각 부분은 서로간에 각기 특성이 다름을 분별하게 된다. 

그래서 이 각 내용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마음안 내용임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 연기관계에 바탕해 나타남 


한편, 일체가 자신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 경우 다음처럼 이에 대해 오해하기 쉽다. 

먼저 사정이 그렇기에 이들 일체가 자신 마음대로 나타나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이들 일체를 자신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도 쉽다. 

또 사정이 그렇기에 이들 일체를 자신 마음대로 아무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감각현실 내용은 마음안 관념이나 꿈처럼 다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감각현실이 마음 내용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감각내용이 마음내용이기에 주체가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연기관계에 바탕해 각 요소에 의존해 마음에 나타난다. (의타기상)

한편 감각현실은 감관이 엇비슷한 다수 주체가 함께 얻게 된다. 

그런 가운데 한 주체가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한다고 하자. 

업을 행할 때 그 내용은 역시 감각을 통해 파악한다. 

그러나 업을 행하면 그 내용은 본 바탕과 관련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다만 그 업으로 인한 결과 내용들을 감각을 통해 파악하게 되는 것 뿐이다. 

예를 들어 손을 자신이 움직여 떨어진 물건을 주으려 움직였다고 하자. 

그것이 뜻처럼 움직여져 그 물건을 잡게 되었는가 여부는 감각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결국 각 주체는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마음안 내용으로서 감각현실 -> 분별(판단) -> 운동신경 -> 업 -> [....... 본 바탕 영역.....]  -> 감각과정 -> 마음안 내용으로서 감각현실 ->


그리고 이를 감관이 엇비슷한 주체들이 함께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감관이 엇비슷한 다른 주체에게도 일정한 영항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각 주체간에 가해와 피해관계를 형성하게 되기 쉽다. 

그리고 이것이 욕계에서 생사고통에 묶이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감각현실이 한 주체의 마음내용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사정으로 마음대로 업을 행해도 무방하다고 잘못 생각하면 곤란하다. 


- 다수주체가 일정시기 조건에 따라 반복해 얻어가는 관계성 


한편 감각 현실 내용은 꿈이나 마음속 관념과 함께 다 같이 마음안 내용이다. 

그러나 감각현실은 또 꿈과는 다른 일정한 특성이 파악된다. 

즉, 다수 주체가 일정한 시기와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엇비슷한 내용을 반복해 무량겁에 걸쳐 얻어나간다. 

그래서 현실 배경에 무언가 실다운 바탕이 있기에 그런 특성이 있게 된 것으로 추정하기 쉽다. 

그렇게 잘못 판단하게 되면 다시 집착을 제거하기 힘들게 된다. 


본 바탕 실재 내용은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실재가 공함은 그 내용을 얻지 못하므로 유무 분별을 떠난다. 

그렇다고 본 바탕에 아무 것도 전혀 없다고 극단적으로 무에 치우쳐 이해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현실 내용을 오직 마음 영역만의 일로 이해할 것은 아니다. [예; 공종자 이론]

그렇지만 또 한편 현실 내용을 본 바탕 영역에서 그대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본 바탕 실재와 현실내용의 관계는 마치 꿈과 성격이 같다. 

즉, 마치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꾸는 것처럼 서로의 관계가 엉뚱함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해야 현실 내용에 대한 집착을 잘 제거할 수 있다. 



-- 추가 배경 사정의 설명 


감각현실은 이처럼 다른 현실내용과 다른 특성을 갖는다. 

이 상태에서 그런 현실이 마음안 내용임을 반복해 제시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평소 이에 대해 갖고 있던 망집이 이것만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 각 부분이 그렇게 파악되게끔 되는 배경 사정을 추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즉, 이들이 다 함께 마음안 내용이다. 

그렇지만, 감각현실 각 부분간에 그런 차별적 특성이 나타나는 배경 사정을 살펴야 한다. 

한편, 감각현실이 마음 내용이지만, 일정한 연기관계에 의존해 나타나는 배경 사정도 설명해야 한다. 

또 이들 내용을 여러 주체가 함께 일정한 관계로 엇비슷하게 반복해 얻게 되는 사정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경우 쉽게 비유적으로 이렇게 되는 사정을 이해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자게임이나, 영화나 만화그림 등을 생각하면 쉽다. 

전자 게임의 화면 내용을 살펴보자. 

이들 내용은 모두 모니터 화면 상에 있는 내용이다. 

또 하나같이 모니터 밖의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따라서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각 부분마다 마우스를 대면 달리 반응하는 특성을 갖는다. 

또 일정부분에 마우스를 대면 일정한 아이템이 얻어진다고 하자. 

이는 그 전자게임을 행하는 이는 모두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이 모두 다 모니터 화면안의 내용 임은 마찬가지다. 

또 현실에서 얻지 못하는 실답지 않은 내용이라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에 집착해 현실에서 문제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사정을 이해해 그런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에 묶여 지내는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현실 내용도 이와 사정이 같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이해하면 쉽다. 


영화나 만화나 그림도 이와 비슷하게 이 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들은 스크린이나 무대나 종이에서 나타나는 내용이다. 

또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런 비유는 이들 배경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은 아니다. 

다만 이해에 도움을 주는 기능을 갖는 것 뿐이다. 



그래서 감각현실이 위와 같은 특성을 갖고 나타나는 배경사정을 직접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처음 각 주체가 마음을 바탕으로 현실내용을 얻게 되는 배경사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한 생명이 태어나 현실에 임하게 되는 배경 과정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한 생명의 정신 구조와 기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야 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한 생명의 근본정신(제 8식)을 통해 이 과정을 설명한다. 

생사과정에서 각 주체의 근본정신은 먼저 제 7 말나식 등을 분화생성시킨다. 

그리고 이후 감각을 담당하는 제 1~5 식 및 분별을 담당하는 제 6 의식을 분화생성시킨다. 

그런 상태로 각 생명은 생사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의 한 단면에서 대하게 되는 내용은 이런 구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관계로 현실에서는 각 내용 간에 관계성을 그처럼 파악하게끔 되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정신 구조와 기제는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키게끔 하는 배경이 된다. 


그리고 그런 배경에서 일단 현실에 임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그런 바탕에서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주체는 결국 그런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망집을 일으켜 그에 바탕해 생활에 임하게 된다. 



-- 추가 배경 사정을 살펴도 잘 제거되지 않는 망집의 문제점 


만일 이런 배경사정을 살피지 않는다고 하자. 

그리고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는 이 두 주장만 계속 반복한다고 하자. 

그러면 결국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처음 잘못된 해석에 되돌아가 머물게 되기 쉽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현실이 마음내용임을 반복해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이에 다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들이 그처럼 잘못 이해되게끔 되는 배경 사정까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런 노력을 통해 그 배경사정을 이론상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이해를 통해 잘못된 망집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지만 그런 배경사정의 이해가 그 배경사정 자체를 제거하는 힘을 갖지는 못한다. 

다만 이렇게 올바로 이해하여 망집을 제거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로 인해 망집에 바탕한 업을 중단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추가로 발생시킬 생사고통의 문제를 예방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이해만으로 곧바로 그런 정신구조와 기제가 모두 제거되고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이해만으로 생사의 묶임에서 곧바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생사과정에서 형성된 그런 정신구조와 기제는 한 생을 통해 계속 유지되게 된다. 


그래서 그가 그런 상태에서 다시 현실에 들어가 생활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와 같은 바탕에서 다시 생활할 도리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이전과 같은 망상분별을 일으키게 되고 이에 다시 붙잡히게 되기 쉽다. 


이는 눈병이 걸린 경우와 사정이 비슷하다. 

처음 눈병에 걸려 허공에 없는 꽃 모습 등이 잘못 보이게 된다고 하자. 

그런데 일정한 계기로 자신이 눈병이 걸린 사정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게 사정을 이해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만으로 곧바로 눈병이 치료되어 눈병 증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눈병 자체가 치료되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상태로 그런 모습을 계속해 보게끔 된다. 

그래서 여전히 이전처럼 잘못된 판단을 행하기 쉽다. 


다만 이런 상태에서 자신이 눈병에 걸린 상태를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모습이 보여도 이 정체에 대해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후에는 그에 대해 갖던 잘못된 자세를 수정해 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 갖던 망집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망집에 바탕한 업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수행방향으로 자세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으로 망집이 이후 일으키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노력을 통해 그 근본 배경이 되는 원인까지도 제거해 나갈 수 있다. 


한편, 수행자가 이런 망집을 근본적으로 잘 제거한다고 하자. 

그렇지만, 수행자가 다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서원을 갖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런 수행자는 다시 중생과 눈높이를 맞추어 생사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런 경우 수행자 역시 다시 생사현실의 상황에 중생과 같은 상태로 임하게끔 된다. 

그래서 역시 중생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위 문제는 이런 각 경우마다 잘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된다. 




- 망집을 증폭시키는 입장


한편 여러 사정으로 망집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이에 바탕해 다시 또 다른 망상분별을 증폭시켜 일으키게 된다. 


그런 가운데 다시 또 다른 망상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문제점을 조화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어떤 해석방안들이 있는가를 그 상태에서 검토해 나가야 한다. 


예들들어 처음 자신이 눈을 떠 얻는 현실내용이 마음내용임을 이해한다고 하자. 

현실에서 여전히 자신이 컵이라고 보는 부분이 있다. 

한편, 자신의 손이라고 보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 두 부분을 서로 갖다 댄다고 하자. 

그러면 그 순간 반복해서 촉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들이 마음내용임에도 이런 관계성을 갖는 사정을 살피게 된다. 

그런 경우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들을 다음처럼 살필 수 있다. 

우선 처음에 다음처럼 설명하기 쉽다. 


자신이 현실에서 눈을 떠 얻는 내용은 자신의 마음 안 내용이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그런 내용을 마음에서 얻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마음 밖에 그와 같은 내용이 그대로 똑같이 있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런 내용을 시각으로 보게 되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그 경우 그처럼 시각으로 본 내용이 그 마음 밖에 그대로 실재한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실재가 있기에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잘못 여기기 쉽다. 


이는 마음에서 얻는 그 내용을 마음 밖의 영역에 그대로 밀어 넣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고 여기기 쉽다. 


즉 자신이 눈을 떠서 꽃의 모습을 본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마음 밖에도 그런 내용이 그대로 똑같이 있다. 

때문에 그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본다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한편, 촉감을 얻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꽃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 

또 손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 

이 두 부분을 서로 갖다 댄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의 마음 밖에서도 그와 똑같은 내용이 그렇게 서로 닿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 순간에 촉감을 얻는다. 

이렇게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런가가 문제다. 


경전에서는 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한다. 


어떤 주체가 그런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되면 원래 망상분별과 생사현실 문제가 더 악화된다. 

즉, 처음에 일으킨 망상분별보다 그 증상이 오히려 더 심화된 상태다.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실답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수행의 방안으로 전환해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와야 한다. 


그런데 앞과 같은 입장은 그렇게 되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 내용이 실재에서도 그처럼 그대로 있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일반적 입장보다 훨씬 더 심화된 망상분별과 집착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증상이 더욱 악화된 상태가 된다. 


그런 가운데 이 두 입장을 그렇게 오락가락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수행은 수행대로 원만히 성취하지 못한다. 

끝내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불완전한 상태로 남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만 반복해 제시한다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기는 부족하다. 

그리고 그 바탕에서 수행의 방향으로 전환해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해탈문에 들어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에 머물지 못하게 된다. 


일체가 마음내용이라고 한다고 하자. 

사정이 그런데도  현실에서 각 주체가 앞과 같은 경험을 반복하게 되는 사정까지 잘 살펴야 한다. 

또 일반적으로 전도망상분별을 자꾸 일으키게 되는 배경 사정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마음에 관한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헤아려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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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교학에서는 

실상(實相 dharmatā ; dharma-svabhāva) - 상(相 Lakṣaṇa ) - 상(想 Saṃjña)의 관계를 살핀다. 


-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무의 측면 


이 경우 실상은 차별없이 공하다고 제시한다. 

실재는 그 내용을 얻을 수 없고, 공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감각현실을 얻는다고 하자. 

이는 본 바탕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화합해 얻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은 꿈이나 환영처럼 실답지 않다. 

즉 침대에 누어 바다나 황금꿈을 꾼 것과 사정이 같다. 


또 그를 바탕으로 행하는 관념분별 내용도 실답지 않은 내용이다. 

즉, 다른 영역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런 조건에서 얻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임시적이고 실답지 않기에 '가'라고 보통 표현한다. 



- 그러나 일정 영역에서 내용을 얻는 유의 측면 


생사현실은 꿈처럼 실답지 않고 환과 같다. 

그러나 정작 생사현실은 꿈이 아니다. 

그것은 꿈과 다르다. 

그래서 다수 주체가 일정한 공간과 상황에서 일정한 조건으로 엇비슷한 내용을 무량겁에 걸쳐 반복해 얻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 그것을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극심한 생사고통을 그 안에서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생생하게 겪어 나간다. 

그래서 이를 실답지 않다고 방치할 수 없다. 


- 생사현실 안의 생사고통의 해결 문제 


매 순간 현실에서 생생하게 얻게 된다. 

그런 생사현실 안에서 생사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이런 생사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모든 논의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행이 필요하다. 

그리고 수행 역시 생사현실 안에서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생사현실은 실답지 않고 환과 같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 그렇게 수행을 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반복하는 그 하나하나는 그 성격이 꿈처럼 실답지 않다. 

그런데 다수 주체가 일정한 상황에서 반복 경험한다. 

그리고 아무리 실답지 않다고 해도 이런 내용을 현실에서 얻는다. 

그리고 이 생사현실에서 겪는 고통이 문제된다. 

그래서 이를 완전히 없는 것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결국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이 문제되기에 그 상태에서 수행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행자도 그런 생사현실 안에서 수행을 행해 나가게 된다. 


실재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이나 그런 문제를 본래 얻을 수 없다. 

실재영역에서는 생사문제를 본래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수행은 실재 영역에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아니다. 

또 수행은 그런 실재 때문에 행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두 측면을 각 측면마다 잘 취해 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3 해탈문의 내용과 관련이 된다. 

이들은 현실 한 단면에서 함께 붙어 있다. 

즉,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3 해탈문이 현실 단면에 있다. 

한편, 반대로 생사 생멸문도 바로 이 현실 단면에 그렇게 함께 있다. 


본래 청정한 니르바나인 상태다. 

즉 본래 생사고통이나 생멸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아나가는 생사현실이 전개된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업을 행해 그런 3 악도로 진입해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이 양 측면을 다 잘 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러려면 공한 실상의 측면과 현실의 측면을 다 잘 헤아려서 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도 실상관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것을 합쳐 공가중...이렇게도 표현한다. 


그리고 공한 실상에서 하필 이런 이상한 현실을 대하고 임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 일체가 마음이라는 사정과 수행의 관계



생사현실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도 이들 내용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잘 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이런 생사고통을 잘 극복해야 한다. 

한편, 수행 가운데 특히 안인 수행은 수행자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려면 현실에서 상을 취하지 않고 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러려면 평소 현실에서 이해하는 내용이 잘못임도 잘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 입장과 경전 입장이 서로 극과 극으로 다르다.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해결하고자 수행한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억울하고 불쾌하고 고통스럽다고 느낄 상황이 있다. 

그런데 수행자도 생사현실에서 억울한 고통을 대단히 많이 겪게 된다. 


그런데 수행자는 일반의 경우처럼 전도망상분별을 일으켜 이를 대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억울해하면 수행자 자격이 없게 된다. 


일반적으로 각 주체가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자신이나 자신의 신체, 생명 목숨, 등등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런 상을 전혀 일으켜 갖지 않아야 한다. 

『금강경』에서는 수행자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가지면 

수행자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


그래서 전혀 분노나 원망의 마음을 갖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그대로 평안히 그것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안인을 성취하게 된다. 


『금강경』에 다음 사례가 나온다. 

별 이유도 없이 갑자기 가리왕에게 체포된다. 

그리고 사지를 절단당하는 형을 당한다. 

경전에서는 그 상황에 그런 억울함이나 그런 고통을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것이 있다고 여기고 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수행자로서는 수행자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대단히 억울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다.  

현실에서 수행자가 이유없이 억울하게 매를 맞고 고문을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알고보면 모든 책임이 상대에게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문제를 대한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런 내용은 거기에서 얻을 수 없다. 

그런 내용은 실답지않고 환과 같다. 

억울한 상황 -> 억울함을 느껴야 할 그런 내용이 거기에 없다. 

고통이나 억울함을 느낄 내용이 본래 얻을 수 없다. 

=> 그래서 억울해 할 이유가 없다. 

=> 그래서 또 그에 대해 일반적으로 행하게 되기 마련인 그런 반응을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수행자는 억울하다고 느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내용 일체를 평안하게 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안인 수행을 원만하게 잘 성취하게 된다. 


그런 것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어이없이 고통을 당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자신이 그렇게 손해를 최소한으로 막은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라도 시감상을 하며 잘 대처해야 한다. 


수행자는 이런 부분에서 잘 임해야 한다. 

그래야 안인 수행을 원만히 성취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행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임한다고 하자. 

먼저 망상분별을 일으킨다. 

그리고 집착을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런 상태에서 억울함과 고통을 심하게 겪게 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행위하고 반응한다고 하자. 


그러면 사태가 더 나빠지게 된다. 

이런 경우 넓고 길고 깊은 광장심 관찰을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로 인해 생사고통이 증폭됨을 관찰하게 된다. 

즉 그로 인해 상태가 더 악화된다. 


a 라는 고통을 안인 수행으로 잘 극복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다음에는 a 보다 더 심한 b 로 옮겨가게끔 된다. 

b 에서 또 잘 극복하지 못하면 b 보다 더 심한 c 로 옮겨가게 된다. 

이런 상태로 무량하게 나아가게 된다. 


a 라는 고통을 잘 견디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사정이 그렇기에 그 이후 a 보다는 조금 낫고 편한 상태로 수행자를 옮겨가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한편 그 반대는 그 반대가 된다. 

처음 a 를 억울하게 여기는 입장은 이후 더 억울하다고 여기게끔 되는 상태로 나아가게 된다. 


그러나 만일 처음 그 a 를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그 반대가 된다. 


그렇게 되는 사정은 현실에서 다 함께 전도망상분별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과 같이 a -> b -> c 이렇게 한없이 나아간다고 하자. 

그런 입장에서는 나중에는 너무 억울하다고 여기게 된다. 

처음 이유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 부터가 억울하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나중에는 거꾸로 매달려 있게 되었다. 

그래서 더 억울하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계속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것을 중지한다고 하자. 

그리고 반대방향으로 수행의 방안을 통해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중생제도 측면에서도 자신이나 상대나 더 좋아진다. 



그런데 이런 수행이 말처럼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바세계에서 안인 수행 테스트에서 낙방하기 쉽다. 


그리고 마음의 현상에 대한 연구가 이 측면에서 중요하다. 

마음에 대한 논의는 이런 문제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사정이 본래 그렇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을 실답다고 잘못 여기게 된다. 

즉, 현실을 그처럼 이해하기 쉽다. 

그런 가운데 억울하고 고통과 불쾌를 받는 상태에 처한다. 


따라서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은 본래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일체가 마음내용이다. 

그런 가운데 3 능변을 통해 자신이 현재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와야 한다. 

그래서 이를 살피는 것이다. 







❋❋본문 ◎[개별논의]








★1★





◆vcti1581

◈Lab value 불기2566/01/31


○ 2020_0930_141033_can_AR6.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rnst-Ludwig-Kirchner-colourful-dance-1.jpg!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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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Ernst-Ludwig-Kirchner

Ernst Ludwig Kirchner (6 May 1880 – 15 June 1938) 독일 표현주의 화가 이자 판화 인 이었으며
Die Brücke 또는 20 세기 예술 의 표현주의 의 기초가되는 핵심 그룹 인 The Bridge 의 창시자 중 한 명입니다 .
그는 제 1 차 세계 대전 에서 군 복무에 자원 했지만 곧 붕괴를 당하고 퇴역했습니다.
1933 년, 그의 작품은 나치에 의해 " 퇴보 " 라는 브랜드가 붙여졌고 ,
1937 년에는 600 점이 넘는 그의 작품이 팔리거나 파괴되었습니다.
[...이하 줄임...]
from https://en.wikipedia.org/wiki/Ernst_Ludwig_Kirchner
Title : colourful-dance-1.jpg!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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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áirc_Mhílaoise_na_bPáistí,_Gaillimh_-_Millenium_Children's_Park,_Gal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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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The Millennium Children's Park in Galway, next to one of the city's many canals. 
Author Sulmac at English Wikipedia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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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중학교


○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Naver 지도

○상세정보=> http://buddhism007.tistory.com/4154

Gerard Lenorman - La Belle Et La Bte


♥단상♥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2/01/2566-01-31-k0649-043.html#1581
sfed--증일아함경_K0649_T0125.txt ☞제43권
sfd8--불교단상_2566_01.txt ☞◆vcti1581
불기2566-01-31
θ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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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다음에 해당하는 단어를 본 페이지 에 댓글로 적어주시면 됩니다.



 (1) 『화엄경』. (2) 화엄경에 의하여 세운 화엄종. (3) 화엄종의 교의(敎義).

답 후보
● 화엄(華嚴)
화현(化現)

환사(幻師)
환희지(歡喜地)
회(悔)
회신멸지(灰身滅智)
회향문(廻向門)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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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Piaf Edith - Regarde Moi Toujours Comme Ca
Jane Birkin - There`s A Small Hotel
Dalida - Tesoro Mio
LARA FABIAN - Je T'aime
Jane Birkin - Norma Jean 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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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Sardou - Medley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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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eng] abhinikkhamati $ 팔리어 abhi + ni + kam + agoes forth from; retires from the world.
[Eng-Ch-Eng] 大乘 Mahayana 大乘 also called Great Vehicle or Bodhisattva Vehicle. It is a school of Buddhism prevalent in China, Korea, Japan, Mongolia, Tibet and other places in the Far East. It is also called Northern Buddhism. Mahayana is described as seeking Buddhahood and transforming beings, thus self-benefiting for the benefits of the others.\n"Great vehicle." A translation of the Sanskrit term maha^ya^na, the name attached to a late Indian sectarian movement which was to become extremely influential later in East Asia. The term was developed together with the disparaging hi^naya^na 小乘, which was used by the former group to distinguish the two. In the polemical sense, the concept of "great vehicle" is intended to refer to the fact that the group considered their doctrines to be more open and universalistic in terms of advocating that enlightenment was something which was attainable by all sentient beings, rather than just by monks and nuns who practiced in the pure environment of the monastery. The Maha^ya^na movement produced a large body of new sutras, in which their new model practitioner, the bodhisattva 菩薩, preached the doctrine of the emptiness 空 of all things. The schools which considered themselves to be Maha^ya^na (Ma^dhyamika 中觀派, Yoga^ca^ra 瑜伽行派, etc.) were to predominate in the transmission to East Asia, and therefore the later schools which were formed in East Asia also considered themselves as heir to the Maha^ya^na teachings.
[Muller-jpn-Eng] 分段同居 ブンダンドウゴ dwelling together in samsaric existence
[Glossary_of_Buddhism-Eng] ANGULIMALA☞
See also: Paritta.
“According to the Angulimala Sutra, Angulimala originally studied under a teacher of Brahmanism in Shravasti. 
[fra-eng] aspirez $ 불어 aspire


■ 암산퀴즈


272* 248
451319 / 979


■ 다라니퀴즈

자비주 31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31 번째는?




31
길을 잃었을 때에
이 주문을 외우는 연고로
착한 신과 용왕이
사람으로 변화하여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며
● 지리니 地唎尼<三十一> dhi ri ṇi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31
바란 슈라바나 다마리뎨
鉢蘭<二合引>輸囉嚩那<引>怛沒哩諦<二合三十一>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31일째]
일일불법불가설 $ 031▲毘薄底毘薄底為 一 ● 毘佉擔, ○□□□□,種,出,轉,於

□□□□□□□, 種種清淨不可說,
出妙音聲不可說, 轉正法輪不可說。
□□□□□□□, 종종청정불가설,
출묘음성불가설, 전정법륜불가설。

하나하나 부처님 법 말할 수 없고
가지가지 청정함도 말할 수 없고
미묘하게 내는 음성 말할 수 없고
법 바퀴 굴리는 것 말할 수 없어



[32째]
어피일일법륜중 $ 032▲毘佉擔毘佉擔為 一 ● 稱量, ○□□□□,演,於,分,於

□□□□□□□, 演修多羅不可說;
於彼一一修多羅, 分別法門不可說;
□□□□□□□, 연수다라불가설;
어피일일수다라, 분별법문불가설;

저러한 하나하나 법 바퀴마다
수다라 연설함도 말할 수 없고
저러한 하나하나 수다라에
분별하는 법문도 말할 수 없고





●K0152_T0674.txt★ ∴≪A증계대승경≫_≪K0152≫_≪T0674≫
●K0649_T0125.txt★ ∴≪A증일아함경≫_≪K0649≫_≪T0125≫
●K1198_T1372.txt★ ∴≪A증혜다라니경≫_≪K1198≫_≪T1372≫

법수_암기방안


31 넓적다리 thigh
32 무릎 knee
31 넓적다리 thigh
31 넓적다리 thigh

67456
461

○ 2020_1125_144445_nik_BW22


○ 2020_1125_124729_nik_BW17


○ 2020_1125_124716_nik_Ab31


○ 2019_0731_174451_can_CT28


○ 2019_0113_131254_nik_ab41_s12


○ 2019_0113_130415_nik_ar7


○ 2019_0113_130405_nik_ar16


○ 2019_0113_121058_can_ct8_s12


○ 2019_0113_111552_nik_bw0_s12


○ 2020_1114_133631_can_Ab31


○ 2018_1022_173744_can_AR25


○ 2018_1022_141408_nik_BW17


○ 2020_1002_122148_nik_BW21_s12


○ 2020_1002_115855_nik_bw24


○ 2020_0910_122803_can_CT33


○ 2020_0910_121225_can_AB7


○ 2020_0905_131841_can_ab41


○ 2019_1201_152240_can_ab12_s12


○ 2019_1106_124113_can_BW17


○ 2019_1105_155252_nik_Ar26_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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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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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 증일아함경_K0649_T0125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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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일아함경』 ♣0649-043♧
[관련키워드]
제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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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6-01-31_증일아함경-K0649-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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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ed--증일아함경_K0649_T0125.txt ☞제43권
sfd8--불교단상_2566_01.txt ☞◆vcti1581
불기256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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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back--불기2566-01-31_증일아함경_K0649_T0125-ti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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