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설장아함경 제16권 후진(後秦) 불타야사(佛陀耶舍)ㆍ축불념(竺佛念) 한역 [제3분] ④ 24. 견고경(堅固經) 제5 [...]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난타(那難陀)1) 성의 파바리엄차(波婆利掩次)숲 속에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때 견고라는 어떤 장자의 아들이 있었다.
[...] 장자의 아들 견고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 이시여. 오직 원하건대 이제 모든 비구들에게 ‘만일 바라문이나 장자의 아들이나 거사가 오거든 마땅히 그를 위해 신통변화[신족神足]를 나타내어 상인(上人)의 법2) 을 보이라’고 명령하십시오.” [...] 부처님께서 견고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결코 모든 비구들에게 바라문이나 장자나 거사들을 위해 신통변화와 상인의 법을 나타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서 지내며 고요히 도를 생각하되, 만일 공덕이 있으면 마땅히 스스로 숨기고 만일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스스로 드러내라고 가르칠 뿐이다.” [...] 무슨 까닭인가? 세 가지 신통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신족(神足)이며, 두 번째는 남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교계(敎誡)이다.
[...] 저 믿음을 얻지 못한 장자나 거사는 믿음을 얻은 자에게 ‘나는 구라주(瞿羅呪) 주문이 능히 이렇게 한량없는 신통변화를 나타내고 나아가 선 채로 범천에까지 이른다고 들었다’고 말하겠다.” 부처님께서 장자의 아들 견고에게 말씀하셨다. “저 믿지 않는 자가 이런 말을 한다면 어찌 훼방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 무엇으로 말미암아 네 가지 요소인 지ㆍ수ㆍ화ㆍ풍이 멸하여 없어지는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굵고 가늠과 길고 짧음과 곱고 추함이 없어지는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명색(名色)이 남김없이 아주 멸하여 없어지는가? 이에 답하나니 식(識)은 형상이 없고 한량없으나 스스로 광명이 있네. 이것이 멸하면 네 가지 요소가 멸하고 굵고 가늠과 곱고 추함도 멸하며 결국엔 명색 또한 멸하니 식이 멸하면 나머지도 멸한다.
[...] 25. 나형범지경(倮形梵志經) 제6
[...] ‘사문 구담은 모든 제사법을 꾸짖고 고행하는 사람을 더러운 자라고 욕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법다운 말도 아니며, 법의 법을 성취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를 비방하기 위한 것으로서 성실한 말이 아니다.
[...] 나에게는 사문 바라문과 같은 법도 있고, 사문 바라문과 같지 않은 법도 있다.
[...] 가섭아, 이에 비구는 염각의(念覺意)를 닦을 때 지식(止息)을 의지하고 무욕(無欲)을 의지하며 출요(出要)를 의지한다.
법(法)ㆍ정진(精進)ㆍ희(喜)ㆍ의(猗)ㆍ정(定)ㆍ사(捨)의 각의(覺意)를 닦을 때에도 지식을 의지하고 무욕을 의지하며 출요를 의지한다.
가섭아, 이것을 도(道)라 하고 이것을 자취[迹]라 한다.
비구는 이 가운데서 수행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된다.
‘사문 구담은 때를 알아 말하는 사람이며, 진실을 말하고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된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옷을 벗은 나형들은 무수한 방편으로써 그 몸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들은 계(戒)를 구족하지 못했고 견해[見]를 구족하지 못했다.
그러니 부지런히 수행하지 못하고 또한 널리 펴지도 못하는 것이다.” [...]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여래ㆍ지진께서 세상에 나오시면 나아가 네 가지 선법[禪]을 닦아도 현세에서 쾌락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지런히 정진하고 생각을 한곳에 모으며 한적한 곳을 즐기고 방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섭아, 이것을 계율을 구족하고 견해를 구족한 것이라고 하는데 모든 고행보다 월등하고 제일 미묘한 것이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저 비구는 삼매(三昧)의 마음으로써 결국에는 3명(明)을 얻는다. [...] 가섭아, 이들을 사문 바라문이라고 이름하니 계율을 구족하고 견해를 구족하여 가장 훌륭하고 뛰어나며 제일 미묘한 자들이다.” [...]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학(異學)8) 이 우리 법 가운데 들어와서 집을 떠나 도를 닦고자 한다면
마땅히 넉 달 동안 머무르면서 관찰하여 대중의 마음에 든 이후에야 출가하여 계를 받을 수 있다.
가섭아, 비록 이런 법이 있기는 하지만 또한 그 사람을 보아서 결정할 뿐이다.” [...] 26. 삼명경(三明經) 제7 [...] 바실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3명(明) 바라문11) 은 갖가지의 도를 말하니 곧 자재욕도(自在欲道)ㆍ자작도(自作道)ㆍ범천도(梵天道)입니다. 이 3도는 다 범천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세존께서는 그 말을 다짐받고 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어떠냐? 3명 바라문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범천을 본 자가 있는가?” [...] “어떠냐? 바실타야, 3명 바라문의 선사(先師) 중에는 범천을 본 사람이 있는가?” [...] 부처님께서 또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음탕한 사람이 ‘나는 저 단정한 여인과 교통하였다’고 말하며 음탕한 행위를 자랑한다고 하자. [...] ‘너는 그 여자가 키가 큰지 작은지, 몸집이 뚱뚱한지 약한지, 피부가 검은지 흰지, 얼굴이 고운지 미운지 아는가?’ ‘모른다.’ 어떠냐? 바실타여, 그 사람이 자랑한 것이 사실이겠는가?” “사실이 아닙니다.” “이와 같다. 바실타야, 3명 바라문의 말도 그러하여 진실이 아니다.
[...] 저 3명 바라문들은 다섯 가지 욕망에 물들고 애착이 굳어져서 그 허물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을 모른다. 그는 다섯 가지 욕망에 묶여 있다.
그들은 해와 달과 물과 불을 섬기며 ‘저를 인도하여 범천에 태어나게 하십시오’라고 외치지만 그것은 될 수 없는 것이다. [...] 어떤 사람이 이쪽 기슭에 몸이 단단히 묶여 있으면서 부질없이 저쪽 기슭을 향해 와서 ‘나를 그쪽 기슭으로 건네주시오’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저 기슭이 와서 이 사람을 건네 줄 수 있겠는가?”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에게도 미워하는 마음이 없고 자비를 행하는 비구에게도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가는 곳이 같고 해탈이 같다. 그러므로 범천과 비구는 함께 한다. [...]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라.
자비를 행하는 비구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화살이 날아가는 것과 같은 짧은 순간에 범천에 태어난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 바실타와 파라타는 곧 그 자리에서 번뇌의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 가운데서 법안(法眼)을 얻었다.
長 ■ ( 길 장 /어른 장 )
073▲ 亚夜雨長长 ■ 아야우장장 73 ( 버금 아 / 누를 압 ) ( 밤 야 / 고을 이름 액 )( 비 우 )( 길 장 /어른 장 )( 길 장 /어른 장)
008▲ 丁七八勹厂 ■ 정칠팔포한 8 ( 고무래 정/장정 정 --CF* 고무래( 곡식을 그러모으고 펴거나, 밭의 흙을 고르거나 아궁이의 재를 긁어모으는 데에 쓰는 丁 자 모양의 기구) )( 일곱 칠 )( 여덟 팔 )( 쌀 포 )( 기슭 한 / 기슭 엄, 공장 창 )
재춘법한자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Chotrul Duchen [san-chn]
kāma-rūpârūpyâvacara 欲界色界無色界, 欲界色界無色界 [san-eng]
dur-bhrātṛ $ 범어 bad brother [pali-chn]
devānaṃ piyo 天愛 [pal-eng]
kusinaaraa $ 팔리어 f.the chief city of the Mallas. [Eng-Ch-Eng]
四神足 The 'four bases of supernatural power.' These are: (1) 'desire power,' (yushenzu 欲神足), the desire to gain excellent meditation; (2) 'effort power' (qinshenzu 勤神足) the effort to gain excellent meditation; (3) 'concentration power' (xinshenzu 心神足) the gaining of control over thoughts and (4) 'wisdom power' (guanshenzu 觀神足), the good function of analytical meditation. [Muller-jpn-Eng]
業厄 ゴウヤク karmic constraints [Glossary_of_Buddhism-Eng]
TUNHUANG☞ See also: Ajanta; Lung-Men. “Important Chinese political, commercial, and military center in northwest Kansu Province, at the eastern end of the Silk Road, during the first millenium; site of the Thousand Buddhas caves, a superb repository of fourth to fourteenth century Buddhist painting and sculpture.” Okaz: 187 “For over 1,000 years, one of most important Buddhist centers in China. From the Han Dynasty (206 BC–220 AD), an important stage-post at the east end of the ‘Silk-Road’ to Central Asia, it became a great Buddhist center and place of pilgrimage. In 366 the first of the Buddhist cave temples was begun; the construction of temples and grottoes continued throughout the next millenium, until the close of Yuan Dynasty (1368). At the height of its fame, it boasted 1,000 grottoes, of which only some 480 remain, in which have been preserved thousands of sculptures and murals, recording the triumphs of Buddhist art in China. During the Sung Dynasty (960-1279), when flames of war spread to Tun-Huang, the monks of the cave temples, before taking flight, sealed up their scriptures, scrolls and documents in one of the caves. These were accidentally discovered by a Taoist priest in 1900; in 1907 Sir Aurel Stein, and later Paul Pelliot, brought thousands of these scriptures, pictures and scrolls to the West…” Ling: 258-259 “Oasis town in the province of Kansu in northwestern China, where there are famous caves known by the name of Mo-kao-k’u. It is the largest preserved complex of Buddhist cultic caves in the world. The earliest are from the beginning of the 4th century. Today some 492 caves are still preserved. The complex extends on five levels over a distance of one kilometer. The caves are primarily famed for their frescoes, which cover a surface area of 45,000 square meters. In addition they contain over 2,400 painted statues. In one of the caves (no. 16), thousands of written scrolls, for the most part sutras, were discovered.” Sham: 236 #0139 Note: The one thousand Buddha caves at Tun-Huang in Northwestern China provide the most fertile source for representations of the Pure Lands.
73 너희들 대중과 범왕과 제석과 사천왕과 천용과 귀신들은 다 마땅히 공경하여 가벼이 생각하는 마음과 오만한 마음을 내지말며 항상 모름지기 이 보살께 공양하고 명호를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稱念]하며 예찬(禮讚)하면 무량한 복을 얻고 무량한 죄를 멸하며 목숨이 마치면 극락세계인 아미타불(阿彌陀佛) 국토에 가 태어나게 되리라." ● 사바하 娑婆訶<七十三> s vā hā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원전서지
삼국유사 제4권 의해 제5(三國遺事 卷第四 義解 第五)
승려 보양(寶壤)의 전기에는 그의 고향과 성씨가 실려 있지 않다.
청도군(淸道郡)의 문서를 살펴보면 이러한 기록이 있다.
“천복(天福) 8년 계묘(서기 943)[고려 태조가 왕위에 오른 지 26년이다.] 정월 모일에 청도군 계리심사(界里審使) 순영(順英)과 대내말(大乃末) 수문(水文) 등이 작성한 공문을 보면,
운문산선원(雲門山禪院)의 경계표는 남쪽은 아니점(阿尼岾) 동쪽은 가서현(嘉西峴)이다.[라고 하였다.] 절의 간부 승려 중에서 주된 사람은 보양화상(寶壤和尙)이고 선원의 주인은 현회장로(玄會長老)이며,
선원의 일은 현량상좌(玄兩上座)가 담당하고 직세(直歲)는 신원선사(信元禪師)이다.”[위의 공문은 청도군의 토지대장에 의한 것이다.]
또 개운(開運) 3년 병오(서기 946)의 운문산선원의 장생표탑에 관한 공문에는,
장승은 열한 개로 아니점ㆍ가서현ㆍ묘현(畝峴)ㆍ서북매현(西北買峴)[면지촌(面知村)이라고도 한다.]ㆍ북저족문(北猪足門) 등에 있다고 하였다.
또 경인년(서기 1230) 진양부첩(晉陽府貼)에는,
5도 안찰사가 각 도의 선종과 교종이 처음 창건된 연월과 그 실제의 상황을 상세히 조사하여 장부를 만들 때,
차사원 동경장서기 이선(李僐)이 자세히 조사하여 적었다고 하였다.
정륭(正隆) 6년 신사(서기 1161)[금(金)나라의 연호이다.
우리 고려 의종(毅宗)이 왕위에 오른 지 16년이다.] 9월의 「군중고적비보기(郡中古籍裨補記)」에 의하면,
청도군 전 부호장(副戶長) 어모부위(禦侮副尉) 이칙정(李則楨)의 집에는 옛 사람들의 소식과 우리말로 전해 내려오는 기록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상호장(上戶長)을 지낸 김양신(金亮辛),
호장(戶長)을 지낸 민육(旻育),
호장동정(戶長同正) 윤응전(尹應前),
기인(其人) 진기(珍奇) 등과 당시 상호장 용성(用成) 등의 말이 실려 있다.
이때 태수 이사로(李思老)와 호장 김양신은 나이 89세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70세 이상이었으며 용성은 나이가 60세 이상이었다.[‘라고 하였다.’라는 말은 이후부터는 쓰지 않는다.]
신라시대 이래로 이 청도군의 절로써 작갑사(鵲岬寺)와 그 이하의 중소 사원 중에서,
후삼국이 싸우는 사이에 대작갑사(大鵲岬寺)ㆍ소작갑사(小鵲岬寺)ㆍ소보갑사(所寶岬寺)ㆍ천문갑사(天門岬寺)ㆍ가서갑사(嘉西岬寺) 등 다섯 갑사가 모두 붕괴되어 없어졌다.
그래서 다섯 갑사의 기둥만 대작갑사에 모아 두었다.
이 절의 시조인 지식(知識)[위의 글에서는 보양(寶壤)이라고 하였다.]이 중국에서 불법을 전해 받고 돌아오는 길에,
서해 중간에 이르렀을 때 용이 그를 용궁으로 맞아들여 불경을 외우게 하고,
금빛 비단 가사 한 벌을 시주하였다.
아울러 아들 이목(璃目)에게 조사를 모시고 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용왕이 부탁하여 말하였다.
“지금 후삼국이 어지러워 불법에 귀의한 왕이 없지만,
만일 내 아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서 작갑(鵲岬)에 절을 짓고 머문다면 적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수년 이내로 반드시 불법을 보호하는 어진 임금이 나와 삼국을 평정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서로 작별한 뒤 돌아왔다.
이 골짜기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어떤 노승이 자신을 원광(圓光)이라 하고는 도장이 든 상자를 안고 나와 조사에게 주고는 사라졌다.[살펴보건대,
원광은 진나라 말에 중국으로 들어가서 개원 연간에 돌아왔다.
가서갑에 머물다가 황륭사에서 세상을 떠났다.
청태 초까지 연수를 계산하면 무려 300년이나 된다.
이제 여러 갑사가 모두 없어진 것을 슬피 탄식하다가 보양이 와서 다시 일으키려는 것을 보고 기뻐하여 이렇게 말해준 것이다.] 그래서 보양법사는 없어진 절을 일으키려고 북쪽 고개에 올라 바라보니,
뜰에 5층의 황색탑이 있었다.
하지만 내려와서 찾아보면 흔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올라가 바라보니 까치가 땅을 쪼고 있었다.
그제야 서해 용이 ‘작갑’이라 했던 말이 생각나서,
그곳을 찾아가 땅을 파보니 과연 예전 벽돌이 무수히 나왔다.
이것을 모아 높이 쌓아올려 탑을 완성하였는데,
남는 벽돌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곳이 이전 시대의 절터였음을 알았다.
절을 다 창건하고 머무르면서 작갑사(鵲岬寺)라고 하였다.
얼마 후 고려 태조(太祖)가 삼국을 통일하였는데,
보양법사가 여기서 절을 창건하고 머물러 있다는 말을 듣고 곧 다섯 갑의 밭 500결을 합하여 이 절에 바쳤다.
청태(淸泰) 4년 정유(서기 937)에 절 이름을 운문선사(雲門禪寺)라 내리고,
가사의 신령스러운 음덕을 받들게 하였다.
이목(璃目)은 항상 절 옆의 작은 연못에 살면서 불법의 교화를 남몰래 도왔다.
어느 해에 갑자기 가물어서 밭의 채소가 말라 죽을 지경이었다.
보양이 이목에게 비를 내리게 하자 한 고을이 충분할 정도의 비가 내렸다.
그러나 천제는 이목이 자신의 직분을 어겼다며 죽이려고 하였다.
이목이 보양에게 위급함을 알렸고,
법사는 이목을 침상 밑에 숨겨 주었다.
그러자 잠시 후에 천사가 뜰에 내려와 이목을 내어달라고 청하였다.
법사가 뜰의 배나무를 가리키자 곧 벼락을 친 후에 하늘로 올라갔다.
배나무가 시들고 부러졌지만 용이 어루만지자 곧 다시 살아났다.[법사가 주문을 외워서 살렸다고도 한다.]
그 나무는 최근에 땅에 쓰러졌는데,
어느 사람이 빗장 방망이를 만들어서 선법당(善法堂)과 식당에 두었다.
그 방망이 자루에는 글이 새겨져 있다.
처음에 법사는 당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서는 먼저 추화군(推火郡)의 봉성사(奉聖寺)에 머물렀다.
마침 고려 태조가 동쪽을 정벌해서 청도(淸道) 지역까지 이르렀는데,
산적들이 견성(犬城) [산봉우리가 물을 굽어보며 뽀족하게 서 있는데,
지금 세간에서는 그것을 미워하여 견성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에 모여서 교만을 부리면서 항복하지 않았다.
태조가 산 밑에 이르러 법사에게 산적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술책을 묻자,
법사가 말하였다.
“무릇 개란 짐승은 밤에만 지키지 낮에는 지키지 않으며,
앞만 지키지 그 뒤는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마땅히 낮에 그 북쪽으로 쳐야 할 것입니다.”
태조가 그 말을 따랐더니 과연 적이 패하여 항복하였다.
태조는 법사의 신통한 계책을 가상히 여겨 해마다 주변 고을의 세금 50석을 주어 향불을 받들도록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태조와 보양법사의 두 성인의 초상화를 모시고 이름도 봉성사(奉聖寺)라 하였다.
후에 법사는 작갑사로 옮겨 크게 절을 창건하고 세상을 마쳤다.
법사의 행장은 고전(古傳)에는 실리지 않았고,
단지 민간에 이러한 말이 있다.
“석굴사(石崛寺)의 비허사(備虛師)[비허(毗虛)라고도 한다.]와 형제가 되어 봉성ㆍ석굴ㆍ운문 등 세 절이 이어진 산봉우리에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서로 왕래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을 고쳐 지으면서,
작갑사의 탑과 이목의 사실을 원광법사의 전기 속에 잘못 기록하였다.
견성의 사실을 비허의 전기에 넣은 것도 이미 잘못된 것이다.
또 『해동고승전』을 지은 사람이 이에 따라 글을 다듬고 보양의 전기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후인들이 의심하거나 잘못 알게 되었다.
이 얼마나 무망(誣妄,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남을 속임)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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