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삼매경』
K0521
T0273
금강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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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자료출처 불교학술원 기금 후원안내페이지
『금강삼매경』 ♣0521-001♧
금강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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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개별논의]
○ [pt op tr]
○ 2020_0904_091512_nik_BW17
❋❋본문 ♥ ◎[개별논의]
[...]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북량(北凉) 실역 인명
[...]
2. 무상법품(無相法品)
[...]
저 중생들이 모두
심과 아[心我-대상과 주체]5) 라는 생각을 여의게 해야 하느니라.
주<5
심(心)은 심소(心所) 혹은 심수(心數)의 약어로 보고 대상으로 해석했으며,
아(我)는 이에 상대적 개념인 주체로 해석하였다.
일체의 대상과 주체는 본래 공적(空寂)한 것이니라.
만일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마음은 허깨비처럼
변화[幻化]되지 아니할 것이며,
허깨비[幻]도 없고
변화(變化)도 없으면
바로 생김[생生]이 없는 법을 얻을 것이요,
생김이 없는 마음은 변화함이 없는 데 있느니라.”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마음의 바탕은 본래 공적합니다.
그 공적한 마음의 주체는
아무런 색깔이나 모양이 없는데
어떻게 닦아서
본래 공적한 마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일체의 마음의 모습은 본래 근본이 없으며,
본래 근본이 없는 곳은 공적하여
생김이 없느니라.
만일 마음에 생김이 없으면
바로 공적함에 들어가나니,
공적한 마음의 경지에서
바로 마음의 공함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모습[상相]이 없는 마음에는
대상도 없고
주체도 없나니
일체의 법의 모습도 이와 같으니라.”
[...]
『금강삼매경』 ♣0521-001♧
◎◎[개별논의] ♥ ❋본문
◈Lab value 2023/05/06/토/03:00
불기2567-05-06
[...]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
북량(北凉) 실역 인명
[...]
2. 무상법품(無相法品)
[...]
저 중생들이 모두
심과 아[心我-대상과 주체]5) 라는 생각을 여의게 해야 하느니라.
주<5
심(心)은 심소(心所) 혹은 심수(心數)의 약어로 보고 대상으로 해석했으며,
아(我)는 이에 상대적 개념인 주체로 해석하였다.
일체의 대상과 주체는 본래 공적(空寂)한 것이니라.
만일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마음은 허깨비처럼
변화[幻化]되지 아니할 것이며,
허깨비[幻]도 없고
변화(變化)도 없으면
바로 생김[생生]이 없는 법을 얻을 것이요,
생김이 없는 마음은 변화함이 없는 데 있느니라.”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마음의 바탕은 본래 공적하다.
그 공적한 마음의 주체는
아무런 색깔이나 모양이 없는데
어떻게 닦아서
본래 공적한 마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자비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여,
일체의 마음의 모습은 본래 근본이 없으며,
본래 근본이 없는 곳은 공적하여
생김이 없느니라.
만일 마음에 생김이 없으면
바로 공적함에 들어가나니,
공적한 마음의 경지에서
바로 마음의 공함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모습[상相]이 없는 마음에는
대상도 없고
주체도 없나니
일체의 법의 모습도 이와 같으니라.”
[...]
◈Lab value 2023/05/06/토/03:00
불기2567-05-06
질문자는
중생의 마음의 바탕은 본래 공적하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어떻게 닦아서
본래 공적한 마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만일 마음에 생김이 없으면
바로 공적함에 들어간다.
若心無生卽入空寂
사실 이는 언뜻, 우문현답으로 보인다.
마음이 본래 공적하다고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 마음이 다시 공적한 마음을 얻는 방안을 묻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마음이 본래 공적하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다시 공적한 마음을 얻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얻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공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사정이 있다.
마음의 본 바탕은 공적하다.
그러나 생사현실의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마음안에 생사현실 내용 일체가 들고 나고 한다.
그런 가운데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이후는 그 마음의 본 바탕이 공적하다해도
현실에서의 마음은 온갖 내용을 얻어가며 망집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업을 행하고 생사고통에 노출된다.
그래서 이 생사현실안에서의 이 생사고통의 해결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마음 상태를 어떻게 갖고 임해야 하는가가 중요한 수행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것을 문제로 제기하게 된다.
즉, 어떻게 닦아야 본 바탕과 상응한 상태로서, 공적한 마음 상태가 되는가.
이것을 물은 것이다.
그래서 표현상은 우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우문은 아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마음에 생김이 없으면 공적함에 들어간다고 답한다.
이는 마음에 생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함을 전제로 한다.
물론 이렇게 질문과 답을 대할 때 그 표현만 놓고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자칫 혼돈과 혼란이 생길 수 있다.
한편으로는 본래 생김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생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처럼 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있고 없음의 문제에서 오락가락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각 경우 측면을 달리해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존재에는 망집에 바탕해 임하는 <생사현실의 분별의 측면>이 있다.
또 한편, 그 내용을 얻지 못하고 공하다고 제시하는 <본 바탕의 측면>이 있다.
이 경우 본 바탕의 측면에서는 생멸을 얻을 수 없고 공하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생사현실의 측면에서는
망집에 바탕해 현실에서 생멸이나 오고감이 있다고 여긴다.
이것은 그 현실의 정체나 내용을 잘못 이해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이에 바탕해 업을 행하고 생사고통을 겪게 된다.
그래서 이 상태를 생사현실 안에서 시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행자가 실상과 현실의 정체를 올바로 관한다.
그래서 마음에 생멸함이 있다고 여기는 망집을 제거한다.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을 대한다.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마음에 뭔가 내용이 들고 나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망집 상태를 떠나게 된다.
그러면 본 바탕의 공함에 상응하게 생사현실에 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기본 상태를 바탕으로 이후 중생제도를 위한 수행을 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표현에서 이 두 측면을 서로 구별하지 않고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매번 있다 없다를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
● 생멸과 오고감 등 운동과 과학 법칙
♥ 현실에서는 생멸이나 오고감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생멸이나 오고감을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차이가 크다.
그런데 이는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수행자에게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분명 현실에 이처럼 오고가는 현상이 분명 있다고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참된 진리의 판단을 행할 때는 이 어느 곳에도 오고감의 현상이 없다고 말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것이 과연 옳은가.
이것이 첨예하게 문제된다.
또 수행자에게서도 이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
♥ 그런데 왜 이 문제가 중요한가.
우선, 일반의 경우처럼 현실에서 오고감이 있다고 잘못 여긴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와같은 바탕에서 생사 고통도 겪을 도리 밖에 없다.
♥ 그러나 이 상황에서 오고감이 본래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그와 같은 바탕에서 현실에서 생사의 묶임을 벗어나게 된다.
즉 죽음을 초월하고 죽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살 때는 불로 소득, 불로 소비, 불로 장생을 구가하면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 수명을 누린다.
그러나 죽을 때는 죽음을 초월해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후 또 다른 생의 무대로 장소를 옮겨가서 무량겁에 걸쳐
또 위와 같은 형태로 생활을 해나갈 수 있게 된다.
또 그런 가운데 생사고통을 겪는 다른 생명을 잘 구출해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수행자의 목표가 된다.
따라서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일반의 경우처럼 예를 들어 현실에서 고속도로를 차를 달린다고 하자.
그래서 서울에서 시속 100km 로 4 시간을 달리면 부산에 도착하게 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기차던 자동차던, 여하튼 그렇게 하지 않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다.
그리고 그렇게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것이 욕계 현실이다.
그런데 왜 이 상황에 오고감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가.
♥이에 대해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거의 99% 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부분을 잘 파악해야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과학적인 해설이 약간 필요하다.
다만 설명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실험과 과학에 바탕을 둔 내용이라 이해가 어렵지 않다.
아주 간단하다.
그리고 실제 실험을 통해 쉽게 내용 이해가 가능하다.
♥실험을 해보기로 하자.
먼저 현실에서 눈을 감았다가 뜬다.
감았을 때 보이지 않다가 눈을 뜨면 얻는 내용들이 있게 된다.
그 내용을 잘 파악한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떠 얻는 내용 안에서 이제
평소 하던 것처럼 각 부분이 무언가를 판단한다.
우선 그 상황에서 각 부분을 나눠 본다.
우선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손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자신 비슷한 철수나 영희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또 손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인간 비슷한 생명체로 강아지나 고양이 등을 또 손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부분은 생명체가 아닌 물체들로서 가리킬 수 있다.
책상, 의자, 가방, 책 등등이다.
♥실험은 이처럼 간단하다.
그리고 이 현실 한 단면에 위 문제의 답이 모두 들어 있다.
따라서 이 현실 한 단면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것으로 이후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문을 찾아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 현실 한 단면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그렇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앞으로 매 순간을 맞이하면서 나아가게 된다.
그런 사정으로 그 상태로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헤매 돌아다니게 된다.
또 그런 경우 그 예후가 대단히 안 좋게 된다.
그것은 진리를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그런 바탕에서 계속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고통을 겪어 나가게 된다.
이는 그런 바탕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비극에 해당한다.
♥이 비극의 구체적 내용은
예를 들어 현실에서 아우슈비츠나 전쟁 상황과 같을 수도 있다.
또는 축사나 축생의 도살장 상황과 같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욕계 현실에서는 이것이 또 현실이다.
다만 본래 현실에 그런 내용이 원래 없는데도
욕계현실에 처한 생명은 대부분 모두 엉뚱하게
그 매 상황이 그렇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헤매 다니게 된다.
그래서 위 하나의 현실 단면을 놓고 위 문제를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 이것은 마술이나 최면이 아니다.
위 두 내용의 차이는 단순히 다음이다.
현실내용을 엉터리로 생각하고 무언가를 취하고 행동한다.
그러면 이후 그 상태로 계속 돌게 된다.
그러나 현실 내용의 정체를 올바로 파악한다.
그러면 이후 그렇지 않고 현실에 잘 임하게 된다.
이런 차이일 뿐이다.
● 내용이 간단하다.
앞에서 자신이 눈을 떠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가리킨 부분이 있다.
이제 간단한 과학 실험을 한다.
먼저 자신이 자신으로 여기며 손으로 가리킨 그 부분부터 잘 파악해본다.
♥그런데 그에 대한 결론은 다음이다.
그 부분은 자신이 아니다.
그 부분은 자신이 아니다.
이 내용이 중요해서 두번 반복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거의 99%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기고 취한다.
그러면 그 바탕에서 그 부분이 사라지고 없어지게 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곧 죽음이다.
그래서 처음 자신으로 여긴 부분이 자신이 맞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 그런 부분의 자신이 <살면서 생사를 겪는다>는 것이 옳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부분은 자신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 생사를 겪는 현상을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잃거나 하는 내용도 하나 없다.
이를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평소 벽돌을 자신 지갑으로 잘못 알고 지냈다고 하자.
이 상황에서 그 상황의 정체를 잘 이해해서 그런 잘못된 생각을 제거한다.
그렇다고 벽돌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갑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벽돌을 지갑으로 잘못 알고 지낸 그 상태만 제거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체나 현실의 정체를 잘 파악한다고 하자.
그 경우 과거에 자신으로 여긴 부분은 자신이 아님을 올바로 이해한다.
그렇다고 그런 부분이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처음 자신으로 잘못 여겨 겪어야 했던 생사나, 고통만 제거되는 것 뿐이다.
♥그래서 이 부분만 먼저 잘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이 내용을 영희나 철수, 강아지, 고양이, 책, 의자, 바위... 등등에 모두 같은 방식으로 적용하면 된다.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을 잘 파악하자.
그 부분은 눈을 떠 얻어낸 감각현실이다.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내용이다.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내용>에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자신>이 들어가 있을 이치가 본래 없다.
그런데 그처럼 <눈을 떠 얻어낸 내용>의 한 부분을 취해서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숨은 그림 찾아 오려내기 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 눈을 뜰 때 전체 내용을 한꺼번에 다 얻어내게 된다.
그런데 그 이후 자신은 그 가운데 일정부분은 자신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런 일정부분을 선을 따가며 오려 내듯, 마음에서 취해 낸다.
또 마찬가지로 다른 일정부분은 영희라고 여기면서 그 구분을 취해 낸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으로 여기며 가리키는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자신이 일정부분을 대해 영희라고 여긴다고 하자.
이 내용은 마음에서 일으킨 관념내용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으로 손으로 가리키게 되는 그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런데 감각현실은 관념내용이 아니다.
또 관념내용도 감각현실이 아니다.
♥이것을 다시 실험으로 확인해보기로 한다.
위 상황에서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도 앞 순간에 행하던 생각은 계속 할 수 있다.
자신, 영희, 철수, 강아지, 가방, 의자...등등 다 생각할 수 있다.
이것들은 그 성격이 관념이다.
그런 생각 속에 눈 감기 직전에 눈으로 본 내용이 찾아지는가 확인해보자.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관념은 감각현실이 아니다.
♥그 반대도 또 실험해보자.
눈을 뜨면 얻는 내용이 있게 된다.
이것은 자신이 눈을 떠서 얻어낸 감각현실이다.
그 감각현실 안에 그 직전에 마음으로 생각해낸 내용들이 있는가를 찾아 보자.
얻을 수 없다.
얻은 것은 감각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욕계에서는 처음 현실에서 행한 형태대로 생각하게 된다.
즉 눈을 떠 일정부분을 대한다.
그 부분을 대할 때 관념영역에서 그 부분이 철수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면 곧 그 부분에 그처럼 자신이 생각한 내용이 <있다>라고 여긴다.
그리고 또 그 부분이 곧 철수 <이다>라고 여긴다.
이것이 잘못된 판단이다.
또 그 반대로도 잘못을 행한다.
앞 상황에서 철수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일으키는 부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손으로 가리킨 그 부분에 철수가 있다라고 또 답하게 된다.
♥이 상황이 욕계상황이다.
욕계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끊임없이 임한다.
만일 그렇게 <손으로 가리킨 그 부분>이 정말 철수고 자신이라고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 그 철수나 자신은 생노병사 현상을 겪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부분을 과학적으로 계속 관찰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부분은 끊임없이 내용이 달라짐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비슷한 내용을 얻을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철수가 죽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첫 단면 뿐만 아니라 그 이후 단면 어느 부분에서도
그가 생각하는 내용은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여하튼 진리 판단 차원에서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현실에서 우선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손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자신 비슷한 철수나 영희로 여기고 대하는 부분을 또 손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인간 비슷한 생명체로 강아지나 고양이 등을 또 손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나머지 부분은 생명체가 아닌 물체들로서 가리킬 수 있다.
책상, 의자, 가방, 책 등등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리킨 부분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그 각 부분은 모두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또 자신이 생각하는 내용도 그런 부분이 아니다.
♥현실에서 기차를 보고 <바나나>라는 생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차는 길어, 길은 것은 바나나 이렇게 해서 그런 생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차가 바나나인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이다.
일정부분을 대해 그 부분이 자신이다. 영희다, 의자다, 이렇게 생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부분이 곧 그런 내용인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은 감각현실이다. 그리고 관념이 아니다.
♥만일 한 단면에서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매 순간 그런 상태로 매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면 무량겁을 두고도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그 상태로 무량겁을 두고 생사고통을 반복해서 겪어나가게 된다.
♥그래서 이 첫부분의 이해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거의 99.999 %가 이와 같은 사실을 제시하면 당혹하게 된다.
우선 자신이 이해하는 현실과 대단히 차이가 난다.
현실은 이렇다.
우선 어디를 가려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또 자신이 걸어가려고 움직인다고 하자.
그러면 매 순간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손으로 가리킨 그 부분>만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을 경험한다.
또 배가 고파서 과일을 먹으려고 한다고 하자.
이 때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손으로 가리킨 그 부분>에서 <손부분>을 움직여 <과일>을 붙잡아야 한다.
이 상황에서 그는 촉감도 느끼게 된다.
또 그렇게 해서 <과일>을 먹으면 잠시후 배가 부르게 된다.
만일 이 상황에서 잘못해서 <벽돌부분>을 과일로 알고 붙잡아 먹으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도 상한다. 억지로 먹는다면 잠시후 큰 복통을 느끼게 된다.
또 차를 도로에서 운전해 먼 곳을 간다고 하자.
자신이 핸들을 붙잡고 엑셀을 밟아야 차가 움직인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목적지에 간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지 못한다.
여기에 평소 스스로 자신으로 여기고 가리킨 부분이 모두 적용된다.
또 영희나 철수, 강아지, 책상, 의자로 여기고 가리킨 부분이 모두 적용된다.
♥그래서 앞에 처음 제시한 내용이 오히려 잘못인 것처럼 잘못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상태 자체는 욕계에서 처음 생을 출발하기 이전부터 장착된 체계이다.
그래서 욕계에서 삶을 마칠 때까지는 계속 이 상태로 유지된다.
그래서 그 부분이 <자신>이나 <영희> <의자> 등이 아닌데도
왜 현실사정이 그렇게 되는가를 추가로 이해해야 한다.
♥우선 그 각 부분은 자신이 이해하는 그런 <자신>이나 <영희> <의자> 등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위와 같이 어김없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현실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 두 사정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또 필요하다.
♥사실 이 부분부터는 조금 복잡하다.
그러나 간단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우선 어떤 이가 부산에서 서울로 온다고 하자.
또는 어린아이 시절에 철수가 커서 어른 철수가 된다고 하자.
또는 철수가 죽어서 하늘에 가서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자.
이 과정이 모두 같은 원리에 의해 발생한다.
이 상황 어느 단면에도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위 내용이 모두 그처럼 있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우선 각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앞 내용부터 다시 살펴보자.
이것을 다음처럼 설명하게 된다.
분해는 조립의 역순이다.
또 조립은 반대로 분해의 역순이다.
♥이 과정을 <아-버-지> 이론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다음과 같이 실험해보자.
처음 눈을 감는다.
그런 상태에서 눈을 뜬다.
그러면 일정한 내용을 1순간에 함께 다 얻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이 얻어낸 내용이다.
이 때 이런 내용을 얻어낸 자신의 마음을 ○ 로 일단 표시해보자.
그런데 자신이 그런 내용을 얻기 이전에도 본래 일정한 내용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자신과 관계하지 않고도 그대로 있다고 할 실재 내용이다.
이것을 본래의 본 바탕 #실재라고 표시해보자.
그래서 본래의 본 바탕 #실재를 바탕으로 해서
자신이 눈을 뜨면 자신의 마음 ○ 이 관계한다. (안식-제1식)
그리고 자신 마음 ○ 안에 일정한 내용이 얻어진다.
그래서 눈을 뜨면 일정한 내용을 보게 된다.
이 상황에서 다시 자신 마음이 또 관계한다. (제6식)
그리고 각 부분을 대해 일정한 관념들을 일으킨다.
즉 저 부분은 <철수>다, <의자>다.
이 부분은 <나>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분별해 일으키게 된다.
이것도 마음안 내용이다.
그런데 이것은 위 감각현실과 성격이 다르다.
그래서 이것을 얻어내는 마음은 □ 이라고 구별해 표시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여러가지 언어표현도 하게 된다.
♥그래서 발생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본바탕실재 => ○ 눈으로 본 감각현실 => □ 관념내용
현실에서 이렇게 각 내용을 얻는다.
이는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본바탕실재 => ○ 눈으로 본 감각현실,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혀로 느끼는 맛, 몸으로 느끼는 촉감 => □ 관념내용 => 언어표현
이런 관계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 관계를 거꾸로 살핀다고 하자.
그래서 <아-버-지 이론>을 제시하게 된다.
아-버-지란 소리를 듣는다고 하자.
이 경우 이 소리를 연이어 들으면 거기에 <아버지>란 단어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그 아버지라는 소리는 일정한 관념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런 언어표현에는 일정한 관념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한편, 그런 관념은 손으로 가리키는 그런 감각현실 부분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눈을 떠 그런 모습을 감각할 경우라고 하자.
그러면 본 바탕 실재#에도 그런 감각현실과 같은 내용이 있어서 그런 내용을 얻게 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 이론>은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제시한다.
아-버-지 라는 소리에는 아버지가 없다.
<아> 라는 소리에는 아버지가 없다.
<버> 라는 소리에도 아버지가 없다.
<지> 라는 소리에도 아버지가 없다.
그리고 그런 언어표현에는 그런 관념이 없다.
또 그가 아버지로 여기며 가리키는 그런 감각현실 부분에는 그런 관념이 들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가 관계하지 않은 본 바탕 #실재에는 또 그런 감각현실이 들어 있지 않다.
또한 본 바탕#실재에는 그런 관념 역시도 들어 있지 않다.
이 사정을 <아-버-지>라는 언어표현을 놓고 먼저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눈을 떠 노란 색을 본다고 하자.
이 경우 그 노란 색은 본 바탕에 그런 내용이 그처럼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또 본 바탕이 그렇기에 자신이 눈을 뜨면 그런 내용을 얻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또 노란색은 소리 영역에서도 찾을 수 없다.
또 냄새영역이나 맛의 영역 촉감영역에서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관념영역에서도 찾을 수 없다.
각 영역간의 내용의 사정이 모두 이와 같다.
물론 각 영역에서 각 내용은 생생하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각 영역에서 얻는 각 내용은 이를 다른 영역에서는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각 영역에서 각 내용을 일으켜 얻는다.
그래서 다음의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들 사이에 이런 관계가 있다.
#본바탕실재 => ○ 눈으로 본 감각현실,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혀로 느끼는 맛, 몸으로 느끼는 촉감 => □ 관념내용 => 언어표현
각 영역 사이에서 각 내용의 관계가 다 사정이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쉽게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화학실험실에서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킨다. 그러면 물을 얻는다.
이 때 물을 얻었기에 그 이전 수소에는 그런 물의 내용이 들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래서 먼저 이 각 영역의 관계와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물의 모습이 성품을 수소나 산소에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관계는 마치 침대에서 꿈으로 꾸는 바다나 황금꿈과 성격이 같다.
꿈에서 바다나 황금을 생생하게 꾼다고 하자.
그런 경우 사정이 그렇기에 현실에도 그런 바다나 황금이 꼭 있을 것처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지 않다.
수소와 산소가 화합해서 물을 만들어 낼 때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수소와 산소에서 물의 모습과 성품은 얻을 수 없다.
각 영역간의 사정은 이와 같다.
그렇지만, 수소와 산소를 관계시키면 물을 매번 얻게 된다.
그리고 위 각 영역의 관계가 다 사정이 이와 같다.
♥욕계현실에서 살아가는 현실 입장을 생각해보자.
평소 차나 의자로 가리키는 부분이 있다.
앞에서 그 부분은 그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고 반복해 제시했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 부분을 대하면 대부분 거의 어김없이 <차>나 <의자>라는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다른 벽돌이나 영희를 대할 경우에는 <차>나 <의자>라는 생각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욕계의 기본 상황이다.
♥그런데 처음 앞부분에서는 각기 다른 영역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현실 각 영역의 내용은 서로간에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꿈과 그 성격이 같다.
이 상황에서 침대가 있는 것은 분명한다.
또 꿈에서 꾼 바다도 생생하게 꾼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제시하는 것은 침대에서 그런 바다를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
여기서 한 영역의 내용이 생생하게 얻을 수 있다.
그렇다해도 그 내용을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위 각 영역 내용 대부분은 각 주체가 현실에서 생생하고 명료하게 얻는다.
따라서 현실에서 이들 각 내용을 놓고 충분히 대조 실험을 반복한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 그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 자신이 평소 <자신>이나 <영희>라고 여기며 가리키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런 부분에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다.
이 점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평소 <자신>이나 <영희>라고 여기며 가리키는 부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자신>이나 <영희>가 아니다.
● 두번째 살펴야 할 문제는 다음이다.
앞과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대부분 그처럼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사정이 왜 그런가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 부분이기도 하다.
수소와 산소에는 각기 물의 성품과 모습이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결합하면 물의 성품과 모습이 나타난다.
여기서 산소를 마음이라고 이해해보자.
본 바탕에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본 바탕에서 마음이 관계하면 일정한 감각현실을 얻어내게 된다.
눈이 관계해 내용을 얻는 마음을 처음 ○로 표시했다.
그런데 마음의 관계를 자세히 살피면 이 마음을 8 가지로 분류하게 된다.
♥처음 욕계에서 태어나기 이전에
그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제8식과 제7식이 관계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기능하는 각 감관과 의식이 발생하게 된다.
즉 5가지 정신(식)과 제 6식이 분화 생성된다.
5식은 눈,귀,코,귀, 몸과 관련해 각 감각을 담당한다.
그리고 제 6식은 분별 판단을 담당한다.
그런 가운데 처음 욕계에 태어나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제1식부터 제 6식까지가 주로 내용을 얻어 낸다.
그리고 이 상태는 욕계에서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유지된다.
그런데 욕계에서 삶을 마쳐도 가장 근본이 되는 제 8식 등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래서 이런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 때문에 욕계 현실에서는 그런 형태로 살아가게 된다.
욕계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내용은 결국 이런 바탕에서 얻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각기 다른 영역에서 본래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각 내용이 마치 다른 영역에서도 얻어낼 수 있는 내용인 것처럼 실답게 여긴다.
그런 가운데 계속해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욕계 현실에서 생각하는 삶이기도 한다.
●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니 지면이 부족한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별도 링크로 대신하기로 한다.
그리고 여기서는 우선 위 내용을 파악하여 얻는 현실적 효용을 기술하고 마치기로 한다.
우선 처음 <자신>으로 여기고 손으로 현실에서 가리키는 부분이 있다.
이것이 진리판단 측면에서는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은 판단이라고 제시했다.
그런데 그렇게 여기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형태가 욕계에서는 99.99% 이다.
그런 가운데 생활해간다고 하자.
그러면 이로 인해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두 차이는 우선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는가 아닌가의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중요하다.
왜 욕계현실에서는 생사고통을 겪게 되는가.
그 사정은 간단하다.
현실에서 차를 원한다거나 물을 마시기를 원한다고 하자.
그 상황에서 그런 희망은 제6식 관념 영역에서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 희망이 성취되었다고 여기는 상황은 이와 다르다.
어떤 주체가 차나 물을 원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가 차나 물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그가 <차나 물로 여기고 가리키는 감각현실 부분>과 관련이 된다.
즉, 감각현실 부분에 그가 원하는 형태가 갖춰져야 그는 비로소 희망이 성취된 것으로 여긴다.
이것이 첫 부분에서 살핀 내용이다.
그래서 감각현실에서 그런 상황이 얻어지면 좋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겪는 상태에 노출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잘못이다.
이를 처음에 살폈다.
그가 차나 물로 여기고 손으로 가리키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부분에는 하등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욕계 내 생명은 거의 대부분 그 부분을 그런 내용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래서 그가 평소 차로 여기고 가리키는 부분을 대하면 차로 여긴다.
그러나 또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 상태에서 생활한다.
그런 사정으로 그 상황에 따라 고통과 안락함을 엇갈려 받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이 장구하게 극심하게 되는 상태가 바로 지옥과 하늘이 된다.
이것이 모두 욕계내 차별 상황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욕계에서 일으키는 망집에 바탕해 처하게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첫 부분에서 현실 내용의 정체를 올바로 관해야 한다.
그래야 우선 이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게 된다.
즉 자신이 <차>나 <물>로 여기고 가리키는 부분이 <차>나 <물>이 아니다.
이런 사정을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자신>이나 <영희>로 여기고 평소 대하는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먼저 잘 파악한다고 하자.
그러면 같은 욕계 현실에 처해 있어도 근본적으로 다른 상태가 되게 된다.
다만, 일단 욕계에 놓인 이상 그 상황에서 받는 감각이나 느낌은 일으키게 된다.
그렇지만,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는 상황에 놓여도 보다 쉽게 이를 극복하게 된다.
이 경우 그는 이것이 본 바탕이나 다른 영역에서는 얻지 못함을 이해하고 대하게 된다.
그래서 보다 쉽게 그 상황을 벗어나올 수 있게 된다.
즉 생사 과정에서 생노병사의 상황에 처해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상태가 되게 된다.
♥한편, 그렇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우선 현실 내용을 평소 생각하는 내용과 같이 그대로 고착되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현 단면에서 취하는 <자신>이 곧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 경우 또 그렇게 <자신>으로 여기고 가리키는 부분이 없어지게 된다고 하자.
그러면 <자신>의 삶도 모두 끝이라고 잘못 여기게 된다.
그런데 사정이 본래 그렇지 않다.
♥우선 평소 자신이 눈을 뜰 때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정말 그 부분이 자신이라고 하자.
그런데 자신이 그 상황에서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이 없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현실적으로 대부분 눈으로 자신 모습을 보지 못해도
여전히 자신은 존재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처음 판단이 잘못임도 이해해야 한다.
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생각을 일으키지 못하는 순간도 마찬가지이다.
의식을 상실해도 근본정신은 계속 존재한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이 모두 사라진다고 하자.
그렇다해도 본래 이런 내용을 일으키는 근본 정신은 계속 존재한다.
그래서 이런 사정부터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 부분에서 <자신>의 정체를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런 사정 때문에
<자신>이 평소 의도한 것과는 전혀 엉뚱하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평소 이 사정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욕계 현실에서 대부분 이해하는 내용은 잘못이다.
즉, <자신>이나 <영희> <의자>로 여기고 가리키는 부분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이런 내용을 앞에서 살폈다.
그렇지만, 그런 현실내용과 그 인식이 욕계에서는 중요하다.
즉, 욕계에서 생활하는 이상은 그런 부분이 또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 두 서로 다른 측면에서 2중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즉 생사현실에서 고통을 겪을 때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는 측면을 취해 이를 극복한다.
♥그러나 한편, 생사현실에서 중생제도를 위해 활동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위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욕계현실내에서 대부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에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즉 욕계현실에서 생명을 구출하려면 우선 상대와 눈높이를 맞춰서 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 수행자는 한편으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영희라고 여기면서 가리키는 부분>이 <영희>가 아님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욕계에서는 대부분 그 부분이 <영희>라고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2중적으로 다시 그런 측면을 취해, 그런 상태에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어 일단 임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그 상태에서 상대를 구호하는 데 필요한 자량을 구족하는 것이 요구된다.
즉 이런 상태에 놓인 다른 생명을 구출하려면 자신부터 무량한 복덕과 지혜, 수명을 일단 구비해야 한다.
그런 경우 이를 구족하기 위해서는 또 이런 욕계현실에서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아-버-지 이론에서 설명했다.
<아>에도 <아버지>는 얻을 수 없다.
<버>에도 <아버지>는 얻을 수 없다.
<지>에도 <아버지>는 얻을 수 없다.
그래도 현실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아> <버> <지>를 순서대로 연이어 차례대로 잘 소리를 내야 <아버지>란 단어가 된다.
♥화학실험실의 내용과 같다 .
수소에도 물이 없다.
산소에도 물이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물이 필요하면 수소와 산소를 화학 반응을 시켜야 물이 얻어진다.
다른 방안으로는 잘 되지 않다.
예를 들어 벽돌과 소금을 부딪혀서 물을 얻어내는 것은 곤란한 것과 사정이 같다.
그래서 수행자는 먼저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인과에 따라 구족해야 한다.
또 그러려면 위 내용을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만일 현실의 정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래서 평소 <영희>라고 여기면서 가리키는 부분이 <영희>라고 이해하고 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그런 부분이 사라지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또 잘못 이해하게 된다.
즉 <영희>가 죽어서 화장터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영희>는 끝이라고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모든 활동을 해나가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경우 그 이후 생부터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 묶이게 된다.
이것은 그가 처음 진리 판단을 엉터리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방향을 찾아 행하기에 그런 결과가 초래된다.
이런 경우 1 생에서는 그럴 듯하게 들어 맞은 내용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현실 한 단면에서부터 옳지 않는 내용이다.
더욱이 무량겁에 걸친 관계에서는 그 내용이 거의 정반대 방향으로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현실의 본 사정이 그렇지 않음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런데 조립-분해는 서로 순서가 역순이 된다.
그래서 이 관계를 파악하면 한 주체가 무량겁을 걸쳐 계속 이런 형태로 살아가는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즉, 매 순간 <영희>라고 여기면서 가리키는 부분은 매순간 달라진다.
그럼에도 그렇게 파악하게 만든 근본 정신과 구조 기제는 무량겁을 두고 사라지지 않고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한 주체가 삶을 고려할 기간은 한 생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각 생의 내용은 서로 간에 모두 관련을 맺게 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무량겁을 놓고 이들 내용을 고려해 임해야 한다.
이 역시 화학실험의 내용과 사정이 같다.
수소에도 물이 없다.
산소에도 물이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물이 필요하면 수소와 산소를 화학 반응을 시켜야 물이 얻어진다.
그런데 한번 실험실에서 수소와 산소를 화학반응을 일으켰다고 하자.
그러면 그 이후 실험실 내용은 바로 이 바탕에서 전개 된다.
물론 물의 모습과 성품이 수소나 산소에서 얻어지지는 않는다.
이것을 처음에 제시했다.
그리고 이 사정은 그 실험실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다 .
그런데 물은 바로 그런 바탕에서 얻어진다.
그래서 이후 실험실 내용은 이런 바탕에서 다시 전개 된다.
♥이것을 삶과 관련시켜 말하면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무엇이라고 여기면서 행위를 한다.
예를 들어 물을 마신다.
그런데 이것들은 사실 본 바탕에서 하나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후 물을 마셔서 배가 부르거나 소변을 보는 일은 이 바탕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어느 상황에서나 그가 생각하는 내용은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욕계에서 <각기 있다고 보는 내용들>은 바로 이런 바탕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한번 행한 업은 무량겁을 두고 사라지지 않는다 .
그리고 그 과보를 나타나게 한다.
그리고 욕계 현실의 측면에서는 이것이 한 생에 그치지 않고 무량겁을 두고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가 2 측면을 2중적으로 고려할 때는
이 2 측면을 모두 다 함께 고려하면서 잘 임해야 한다.
그것은 오늘 현실 내용이 갑자기 홀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무량겁 후 장래의 내용도 이와 사정이 같다.
따라서 무량겁을 두고 욕계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수명 지혜를 얻어내려면
이 측면을 함께 고려해서 잘 임해야 한다.
이미 이것을 아-버-지 이론에서 설명했다.
<아>에도 <아버지>는 얻을 수 없다.
<버>에도 <아버지>는 얻을 수 없다.
<지>에도 <아버지>는 얻을 수 없다.
이것을 처음에 제시했다.
그래도 현실에서 <아버지>라는 말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아> <버> <지>를 순서대로 연이어 차례대로 잘 말해야 <아버지>란 단어가 된다.
또 반대로 <아버지>란 말이 좋지 않을 경우도 있다.
그 경우는 위와 반대로 해야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관계가 1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런 바탕에서 행한 업은 그 측면에서 무량겁을 두고 과보를 나타나게 한다.
♥한편, 무한한 시간 동안 근본정신이 유지된다.
이는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수학에서 무한의 증명은 다음과 같이 행한다.
아무리 큰 수를 생각한다고 하자.
그래도 다시 거기에 1을 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무한을 증명한다.
한 주체가 무한히 근본정신을 바탕으로 현실 내용을 얻어가게 됨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한 주체가 눈을 떠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그 이전에 미리 조립-분해 역순의 관계상
먼저 근본정신과 제 7 식등의 체계가 갖춰져 있었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번 생에 존재한 주체는 이전 생에서도 그 근본정신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한 주체가 <영희>나 <자신>으로 여기던 내용이 사라지는 죽음의 상황에서도 이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을 과거로 소급하거나, 또는 미래로 추급해 나가도 그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 주체는 그런 근본정신의 체계와 구조를 바탕으로 무량겁을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욕계현실에 임하게 되는 상황이 매 생마다 전개된다.
그래서 욕계현실의 측면에서는 복덕을 갖추고 복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상황도 있다.
또 한편 수용소에 구금되어 고통을 겪고 살아가는 상황도 있다.
이런 차별이 심하게 발생한다.
이것이 결국 3 악도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수행자는 중생제도를 위해 욕계 생사현실에 들어가 임해야 한다.
그런 경우 욕계 생사현실 측면에서도 늘 무량한 복덕과 수명 지혜를 잘 구족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욕계에서 적용되는 인과률에 따라 수행을 기본적으로 잘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소에 물이 없다.
산소에 물이 없다.
그렇지만 물이 필요하면 수소와 산소를 잘 구해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이런 내용과 같다.
수소에 물이 없다. 이런 부분은 첫 부분에 제시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극복할 때 사용할 내용이다.
그런데 물이 현실에서 필요하면 수소와 산소를 잘 화학반응시킨다.
이것은 욕계현실에서 무량한 복덕과 지혜 수명을 구족하고자 할 때 사용할 내용이다.
이처럼 2 측면의 내용을 2 중적으로 모두 잘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결국 생사현실에서 수행자가 실천해야 할 내용들이다.
● 오고감이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각 경우마다 잘 오고가야 할 사정이 있다.
현실에서는 부산에 a 가 있다.
그 a가 시공간을 거쳐 서울로 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한다.
그런데 한 단면에도 a 가 없다고 제시했다.
그러면 어떻게 부산에서 서울로 a가 오는 현상이 현실에 있는가.
이것은 다음처럼 설명한다.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에서 본래 a를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망집을 일으켜 일정 상황에서 a가 처음 있다고 취한다.
비유하면 수소를 붙잡고 산소인 마음이 화합해 물이라고 처음 여긴다.
이것이 부산의 한 시공간 단면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그리고 이후 그러한 상태로 꾸준히 임한다.
그런 가운데 서울에 와서도 또 그처럼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대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본래 a는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상황에서 그는 부산의 경우처럼 일정부분을 대해 a가 있다고 취하는 것이다.
즉 매순간,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그처럼 일정부분을 a로 여기며 매번 취해 붙잡는다.
그리고 이처럼 취하는 내용을 그 주체가 계속 나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그가 부산에서 서울로 왔다고 이해나는 내용이 된다.
갓난아이가 어른이 되었다고 여기는 현상도 이와 성격이 같다.
매 순간 근본정신을 바탕으로 자신으로 여기고 잘못 취하는 내용이 있게 된다.
이것을 전 생애에 걸쳐 죽 나열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이 자신이 이해하는 자신의 갓난아이 때 모습과 어른이 된 모습들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 어떤 갓난아이라는 A 가 있어 지금 어른이 된 시점으로 이동해 온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전생에서 사람이었던 이가 장래에 하늘에 가거나 지옥에 간다는 현상도 이와 성격이 같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렇게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화학실험실의 사정과 같다.
인과율에 따라 지금 어떤 행위를 어떻게 행하는가에 따라 이후 내용이 달라진다.
그런데 정작 그 각 내용이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같이 침대에 누어 꾸는 꿈과 성격이 같다.
♥이는 전자게임의 상황과 같다.
여기에 2 측면이 있다.
우선 모니터에 나타나는 내용은 현실 어느 영역에도 얻을 수 없다.
키보드나 하드디스크에도 없다.
그래서 실답지 않다.
그러나 모니터에 나타나는 내용은 일정한 관계에 따라 나타난다.
그래서 모니터 안에서 좋은 아이템을 많이 구비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그에 필요한 내용을 잘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열심히 마우스로 돌리고 키보드도 두드려야 한다.
그래서 본래 오고감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관계를 통해 오고감이 있다고 여기고 대하는 상황이 된다.
모니터 안에서 공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굴러간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A라는 공이 왼쪽에 있어서 오른 쪽으로 간것이 아니다.
한 상황에서 일정화소부분을 취해 A 라고 여겼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상태로 매순간 대한다.
그리고 나중에 오른쪽 부분에 있는 화소를 A라고 다시 여긴다.
그런 가운데 이를 죽 나열하면 그는 A 라는 공이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옮겨 갔다고 여기는 것 뿐이다.
그런데 그 모니터 화면에 그가 생각하는 내용은 처음부터 얻을 수 없다.
이를 처음 제시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에서는 모니터를 대한다.
그런 경우 공이 자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간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모니터를 대하게 된다.
그래서 이 두 측면이 각기 2중적인 측면이 된다.
그런데 수행자가 중생제도를 위해 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 이 두 측면을 모두 외면하기 곤란하게 된다.
♥그리고 이 2 측면에서 모두 좋은 내용을 잘 얻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에서 수행자의 기본 수행목표가 된다.
♥결국 결론은 다음이다.
수행자는 현실에서 겪는 생사고통은 그것이 꿈과 같음을 이해해서 잘 극복한다.
그러나 한편 현실은 또 꿈이 아니다.
그래서 현실은 현실대로 이 안에서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현실 안에서 인과에 따라 필요한 노력을 잘 실천해서 성취해야 된다.
♥그래서 또 생사현실 안에서는
불로소득의 극대화,
불로소비의 극대화,
불로장생의 극대화가 요구된다.
♥생사현실 안에서 같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노동이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자신이 수고와 고통 희생을 치뤘다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 노력만큼 비용이 들어간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 보상을 원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일은 임금을 받고 하게 된다.
그런데 헬스클럽에서 자신이 원해 운동하는 경우라고 하자.
이 경우도 같은 에너지와 노력이 들어간다.
그래도 이 경우는 이와 반대로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즐겁게 하기에 자신이 오히려 클럽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여긴다.
일정한 활동을 할 때 [이익=수익-비용]식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수익은 가능한 키우려 한다.
그리고 비용부분은 가능한 최소하하려고 한다.
이 때 비용부분을 최소하하려면 비용부분을 먼저 0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후 더 나아가 이 부분을 마이너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노동이 먼저 0이 된다.
그러면서 비용 부분에서 먼저 즐거움과 이익을 거꾸로 얻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또 한편 얻는 수익은 최대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즐겁게 잘 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곧 불로 소득의 극대화의 이념이 된다.
♥또 소비도 마찬가지이다.
소비를 할 때 일정한 돈을 비용으로 치뤄서 재화나 용역을 구매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정한 효용을 얻게 된다.
이 경우도 [순효용= 효용- 지출비용]의 식이 적용된다.
이 경우도 앞과 마찬가지다.
즉, 가장 적은 희생과 비용을 치뤄서
무량한 효용을 얻는 것이 곧 불로 소비의 극대화 이념이 된다.
현실에서 예를 들어 입장료나 비용을 하나도 지불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 가운데 방대한 면적의 국립공원의 온갖 편의시설을 다 즐겁게 잘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와 이와 가깝다.
♥그런 가운데 매 생을 불로 장생하면서 서원을 온전히 성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간에 생사를 겪게 되면 서원의 성취가 불완전해진다.
그래서 이런 형태로 근본정신을 매생 잘 이동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런 상태를 성취하려 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기초적으로 처음에 제시한 내용을 잘 파악해야 한다.
욕계에서 각 주체가 각 곳에서 달리 태어난다.
예를 들어 하늘에서 태어나거나 축사에서 또는 지옥에서 태어난다.
그런데 이는 그저 우연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현실에서 그렇게 되는 원리부터 먼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그 인과율에 따라 잘 실천해나가야 한다.
이를 이미 화학실험이나 전자게임의 원리를 통해 살폈다.
각 화면에 나타나는 내용이 화면 영역 밖에서 얻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그렇지만 매 화면에 나타나는 내용들이 우연에 의한 것도 아니다.
그 각 내용이 모두 일정한 인과관계에 따라 나타난다.
이런 사정부터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매생 불로소득을 극대화하고 불로소비를 극대화하고 불로장생하는 가운데
자신의 서원을 원만히 잘 성취해야 한다.
욕계현실은 그러나 반드시 이런 형태가 아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상황이 대단히 많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를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예방하고 햬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뜻과 같지 않게 태어난다고 하자.
그래서 태어날 때부터 고통을 심하게 겪는 상황에 태어나 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살다보니 감옥이나 수용소에 감금되어 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더 심한 경우는 아예 축사에서 축생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욕계현실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욕계현실에서 어떤 경우 그렇게 되는가 하는 사정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각 주체는 욕계현실에서 이런 3악도 상태를 우선 피해야 한다.
그리고 늘 하늘과 인간 세계를 오갈 수 있는 상태가 기본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인천교]
그리고 이것이 욕계측면에서 기초적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이후 그런 상태에서 다른 생명을 또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수행]
♥그래서 수행자가 수행과정에서 다음 내용을 모토로 갖게 된다.
즉, 무량한 대원을 유희 자재 신통하게 잘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여기서 유희는 <즐겁게>를 의미한다.
그리고 자재 신통은 서원을 뜻과 같이 <잘> 성취함을 의미한다.
즉 자신의 서원을 <즐겁게 잘> 성취해 나가는 것이 수행자의 목표가 된다.
♥내용이 너무 간단해서 간단히 적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글이 너무 길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다음 이하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 ▣- 현실에서 자기자신으로 보는 내용의 검토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03/k0650-t0099-001-01.html#334
또는 다음 내용도 참고가 된다.
불설노모인경
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itemId=ABC_IT&cate=bookName&depth=3&upPath=Z&dataId=ABC_IT_K0216_T_001
♥현실에서 자신의 부모가 이미 돌아가셨다고 하자.
그런 경우 과거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또 과거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과연 돌아가신 뒤 아무 것도 없게 된 것인가 .
아니면 앞에 설명한 것처럼 근본정신의 구조와 기제를 바탕으로
현재 과거와 다른 모습과 형태로 또 살아가고 계신가.
이런 의문을 갖는 경우가 았다.
그런데 위에 링크를 연결한 『불설노모인경』이 이런 내용과 관련된다.
과거 어머니였는데 스스로 그 정체를 모른다.
그리고 어떻게 각 생마다 무량한 겁에 걸쳐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이동해가는가.
이런 것을 묻는다.
그런데 이 내용은 위 내용과 관련된다.
현실에서 철수와 영희가 본래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부산에서 서울로 철수와 영희가 오고 간다고 여긴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위 경전내용이 이 내용과 같다.
경전이 대단히 짧다.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위에 설명한 내용을 참조하면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본다.
♥수행자는 이런 기본 내용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무량겁에 걸쳐서 언제나 제각각 모두 원하는 최상의 상태를 잘 성취해야 한다.
>>>
제법실상 팔부중도론에 의한다고 하자.
불생불멸 불상부단 불일불이 불래불거임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이해하는 한편, 현실에서 일반적인 입장으로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 두 내용의 차이가 심함을 느끼게 된다.
생멸이 없고 오고감이 없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매일 아침 일어나서 현실을 대할 때마다 생멸이나 생사가 현실에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오고가는 일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또 현실에서 그렇게 오고가는 이도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또한 오고가는 장소나 세계도 각기 그처럼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불생불멸.. 불래불거 이런 내용을 놓고
현실에서 생각한다고 하자. 이 두 내용 사이에 대단히 차이가 난다.
현재 살피는 『금강삼매경』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방안이 없는가 쉬면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자가 한 때 누어 꿈을 꾸면서
나비가 되어 열심히 날아 다니다 꿈을 깼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한참동안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가.
아니면 장자가 나비가 되었던 것인가.
이런 식으로 오락가락하고 비몽사몽간을 한참 헤맸다고 전한다.
♥본 바탕의 공함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이런 본 바탕과 현실을 서로 대조적으로 살핀다고 하자.
그런 경우 생사현실은 마치 침대에 누어 꾸는 바다꿈과 같다고 말하게 된다.
그 상황에 침대도 분명하게 있다. 또 바다꿈도 생생한다.
그런데 그처럼 꿈에서 꾼 바다는 침대가 놓인 현실에는 얻을 수 없다.
생사현실과 본 바탕 실재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멸과 오고감 등을 모두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외 현실에서 생각하는 일체 내용도 이에 준해서 말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오고감이 있고 그렇게 오고가는 이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본 바탕을 놓고 이를 생각한다고 하자. 사정이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현실에서 오고가는 이와 장소가 있다고 여긴다.
또 그렇게 오고감이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 일체가 곧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일과 성격이 같다.
그런 가운데 장자가 꿈을 꾸면서 자신이 그처럼 날아다니는 것으로 여기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현실이 꿈과 같다.
그러나 한편 현실은 꿈과 다른 점이 또 많다.
현실이 꿈과 같다는 것은 <현실은 꿈은 아님>도 함께 나타낸다.
우선 꿈은 잠시 꾸다 깨면 그것으로 문제가 곧 해결된다.
현실은 꿈과 같다.
그러나 생사과정에서 현실의 문제상태가 그처럼 잘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차이가 나는 사정이 있다.
우선 꿈을 깨면 곧바로 꿈과 다른 현실 내용을 대하게 된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을 대조한다고 하자. 곧바로 꿈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현실의 생사과정에서는 다르다.
생사과정에서 일단 현실 상황을 벗어나도
본 바탕 내용을 그 주체가 곧바로 얻지 못한다.
한 주체는 자신의 마음이 화합해 얻는 내용만을 얻기 때문이다.
본 바탕 실재는 한 주체의 마음과 관계를 떠나 그대로 있는 내용을 가리킨다.
그래서 생사과정에서도 한 주체가 실재를 끝내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꿈의 경우와 달리, <현실과 비교할> 본 바탕 실재 내용 자체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곧바로 이 두 내용을 대조해 현실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기 힘들다.
♥한편 꿈을 깨면 현실로 복귀해 오래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 생사과정은 이와 다르다.
즉 생사과정에서 생을 마치게 되어도 본바탕 실재에 오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어서 그 이전 생과 엇비슷한 상태로 중음신이 다음 생의 무대로 이어 옮겨 가게 된다.
그래서 생사과정에서는 꿈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즉 본 바탕 실재보다는 실답지 않은 현실 측면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그래서 현재 단면에서 현실이 꿈과 같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상태로 무량겁을 그대로 생사현실에 묶여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또 그런 상태로 생사고통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면서 받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사현실의 문제점이다.
그외에도 생사현실은 꿈과 달리 이를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끔 사정이 많다.
♥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실이 꿈의 경우와는 달리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현실이 꿈과 같음>을 이해하는 것이 갖는 의미가 크다.
우선 이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겪을 경우 이를 대단히 실답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극심하게 생사를 겪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 생사현실 안에서 불생불멸, ...불래불거의 본 사정을 있는 그대로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 이는 비유한다고 하자. 다음과 같다.
꿈 안에서 <그 꿈이 현실과 다르고 꿈내용임을 알면서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꿈인줄 모르고 꿈을 꾸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특히 악몽을 꿀 때 이 차이가 크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생사현실 안에서 본 바탕이 공함을 이해하는 것은 이와 상태와 같게 된다.
현실에 임한 상황에서 현실이 본 바탕과 전혀 다르고 엉뚱한 내용임을 안다고 하자.
그래서 현실이 꿈처럼 실답지 않음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이후 이후 현실의 어떤 극한 상황도 모두 다 잘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생사현실 일체를 모두 다 극락과 같은 상태로 평안히 대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꿈을 꿀 때 <그것이 꿈인 줄 알고 꿈을 꾸는 경우>와 같다.
이 경우는 꿈을 꾸는 상태에서도 마치 <꿈을 깬 후 침대에서 꿈 내용을 대하는 상태>와 마찬가지가 된다.
그런 경우 그 꿈이 어떤 내용이라도 다 무방하다고 여기게 된다.
현실에서 현실 사정 뿐만 아니라, 본 바탕 사정까지 올바로 이해하는 경우는, 이와 같은 상태가 된다.
다만,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인줄 알고 꾸는 일도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그런데 노력한다고 하자. 그러면 또 그렇게 된다.
예를 들어 꿈을 꾸다보면 갑자기 절벽에서 떨어지거나,
또는 우주 공간에서 혹성과 계속 부딪히면서 빛의 속도로 나가는 꿈도 꾼다.
이는 본 연구원의 실제 경험이기도 한다.
본 연구원이 꿈을 꿀 경우 꿈 안에서 이것이 꿈인줄 알고 꾸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경우 본 연구원이 꿈속에서 빛의 속도로 날라가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혹성 혜성들 속으로 빛의 속도로 나아가며 혹성들과 부딪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꿈인 줄 알고 그 내용을 대하기에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무방한다.
심지어 오히려 더 부딪히려고 그 쪽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꿈을 꾸게도 된다.
그런데 현실도 사정이 이와 마찬가지다.
♥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이런 사정을 이해함이 대단히 중요하다.
즉 생사현실 안에서 이것을 알고 임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에서 만나는 일체 극심한 고통을 다 잘 제거하고 극복해나갈 수 있게 된다.
또 반대로 이런 진리에 바탕해서
그 생사현실 내용도 원하는 형태대로 즐겁게 잘 성취할 수 있게 된다.
즉, 인과에 따라 무량한 복덕과 수명 지혜를 구족하는 형태로 잘 성취할 수 있게 바뀐다.
그래서 <생사현실 안에서 이 내용을 이해하는 사실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
물론 어느 경우나 그로 인해 본 바탕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사현실 안에서 이를 이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서로 차이가 크다.
특히 온 생명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활동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기초적으로 필요하다.
♥ 현실에서 어떤 사정을 올바로 이해하고 대하는가 아닌가는 그 차이가 크다.
그 차이를 쉽게 표현한다고 하자. 이는 다음과 같다.
♥ 예를 들어 장난감 모조 거미나 뱀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것을 어떤 이가 갑자기 들고와 자신 얼굴에 던진다.
이런 경우 그것이 장남감 모조 거미나 뱀인 줄 모르고
그것이 정말 실다운 거미나 뱀이라고 여기는 이가 있다고 하자.
그래서 그가 그런 상태에 처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는 그 상황에서 기겁을 하고 놀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반응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후 현실에서 그 예후가 대단히 나쁘게 된다.
예를 들어 심하면 심장 마비를 일으킬 수도 있다.
또는 너무 놀래서 이를 피하다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 수도 있다.
그리고 달리는 차와 부딪혀 사고를 당하고 이후 남은 생 내내 장애를 겪을 수도 있다.
그외 기타 등등 그 예후가 대단히 나쁘다.
♥ 그런데 어떤 이가 그것이 장난감 거미나 뱀이라는 것을 미리 올바로 알고 있는 상태라고 하자.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이를 대한다고 하자.
그러면 앞의 경우와는 전혀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거미를 자신의 얼굴에 던지거나 뱀을 던지는 경우라고 하자.
그런 경우에도 그는 이 사정을 알기에 평안하고 안락하게 임하게 된다.
또 그렇게 임하기 때문에 그 이후의 예후도 대단히 좋게 된다.
그리고 또 그런 사정을 알기에 이후 내용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훨씬 좋게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 현실도 사정이 이와 같다.
현실이 꿈과 같음을 잘 이해한다고 하자.
그래서 이런 상태로 현실에 임한다고 하자.
이를 통해 생사현실의 온갖 고통을 쉽게 극복해갈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이후 계속 이어지는 무량겁의 생사현실의 내용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훨씬 좋게 잘 성취해나갈 수 있게 된다.
♥ 따라서 이 사정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대단히 크다.
즉, 세세생생 험악한 생사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반복해 받아가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가 크다.
♥현실이 꿈과 같다. 그리고 생사현실에서 생멸과 오고감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설명하기에 좋은 비유가 하나 또 있다.
아바타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아바타는 화신이라는 의미다.
영화에서 실질적인 자신은 따로 있고 아바타는 이와 다른 세계 영역에서 활동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봐서 내용을 아는 경우에는 이 내용이 도움이 된다.
다음과 같다.
현실에서 스스로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대하는 내용이 있다.
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기고 손으로 가리키게 되는 그런 부분이다.
그것을 평소 자신으로 알고 생활한다.
현실에서 이 부분이 다른 의자나 책상에 닿으면 촉감도 느낀다.
움직이려면 이 부분만 움직인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꼭 이런 부분이 진짜 자신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잘못 이해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런 부분을 자신으로 여겨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이런 부분을 기준으로 생멸함과 생사가 있다고 여기게끔 된다.
그 부분은 늘 변화하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해 사라지게 된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영희나 철수를 놓고 보면 결국 생사가 있다고 여기게 된다.
또 오고감도 마찬가지다.
그런 부분을 영희나 철수 또는 자신으로 여겨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바탕에서 현실에 영희나 철수 또는 자신의 움직임, 그리고 오고감이 그처럼 있다고 여기게끔 된다.
그런데 이렇게 평소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은 사실은 아바타 상황과 같다.
물론 아바타 상황은 그 내용대로 욕계현실에서는 중요하다.
생사현실에서 일반적인 경우 거의 99.99%는 그렇게 여기고 임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사현실에서 이런 중생을 제도하려는 수행자라고 하자.
그런 경우는 이런 내용도 좋게 해야 한다.
수행자는 그것이 잘못된 망상임을 이해한다.
그렇다해도 중생들이 집착하는 그 생사현실을 중생과 눈높이를 같이해서 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생사현실에서 무량한 복덕자량과 지혜자량을 구족해야 한다.
그래야 이후 생사현실 안에서 중생제도가 원만하게 성취된다.
그래서 생사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기게 되는 그런 부분도 중요하다.
그것이 일종의 화신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아바타는 아바타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이와 관계없이 그대로 유지되는 본래 실질적인 자신이 따로 근본정신 제 8식에 있다.
그리고 제 7식이 현실에서 일정부분을 자신으로 취하여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한 생 내내 유지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생동안 아바타 활동을 하게 된다.
이는 생사현실에서 눈을 통해 안식이 얻어내는 일체 내용 가운데 일부분을 제 6식이 자신으로 분별하며 임하는 현상과 성격이 같다.
물론 이 부분은 복잡하다.
전문적으로 이는 아뢰야식 말나식 등으로 설명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여하튼 현실에서 자신으로 보는 내용은 아바타와 같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 자신은 이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런 바탕에서 세세생생 좋게 되는 방안을 중생제도를 위해 다시 찾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생사현실에 처해 수행자가 중생제도를 위해 행하게 되는 무량행문의 수행이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일반적으로 망집에 바탕해 임해서 좋게 된다고 여기는 방안들이 있다.
그런데 수행자의 수행은 대부분 이와 방향이 반대가 된다.
이 두 방향의 차이가 크다.
그리고 이것이 이후 세세생생 아바타가 임하게 되는 생사현실의 내용에서 극단적인 차이를 낳게 된다.
즉, 그것이 아바타가 활동하는 생사현실에서 극락과 지옥의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세세생생 아바타 활동을 잘 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사정을 먼저 기초적으로 잘 파악해야 한다.
또 그래야 세세생생 불로소득 불로소비 불로장생을 잘 하게 된다.
그리고 무량한 복덕 수명 지혜를 구족하고,
다른 고통받는 생명을 잘 구줄해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바로 이런 사정을 올바로 이해한 바탕이 된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 이를 통해 무량한 복덕 수명 지혜를 구족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또 그런 바탕에서 고통받는 다른 생명을 구출하기 위해
유희 신통 자재하게 서원을 잘 성취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 차이가 대단히 크다.
그리고 이런 이해는 이번 생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수행자는 세세생생 이 사정을 잘 파악하고 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또 그렇기에 내용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런 사정으로 긴 내용을 압축해 키워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
불생불멸 불래불거-꿈과 같은 현실 -
장자와 나비꿈
장난감 거미와 뱀을 알고 모름의 차이,
아바타(화신)
이렇게 키워드를 압축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지니고 다니면 세세생생, 차이가 크게 된다. (10무진장-념)
그래서 이를 통해
수행자는 다 함께 세세생생 매생마다 불로 소득 불로 소비 불로 장생을 극대화하고
또 세세생생 매생마다 무량한 복덕과 수명과 지혜를 구족해야 한다.
그리고 서원을 뜻과 같이 모두 보람되게 잘 성취해가야 한다.
◆vfmm4897
◈Lab value 불기2567/05/05 |
○ 2020_1114_124920_can_ct18_s12.jpg ○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atsushika-Hokusai-fishing-by-torchlight-in-kai-province-from-oceans-of-wisdom-1833.jpg!HD ○ 2018_0419_141754_can.jpg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Administrative_building_of_University_of_Thessaly,_Volos Mbabane swaziland, Description Portable market hut, Mbabane, Swaziland. Photo taken in the winter of 1979 Date 1 January 1979, 00:00 Source Portable market hut, Mbabane, Swaziland Author John Atherton 출처관련링크 Danyel Gerard - Le Petit Gonzales ♥단상♥ 모처럼 논의 글을 길게 썼다. 그리고 글을 마치는데, 옆에 들리는 노래에서 내용이 지극히 간단하다. 그런데 심하다. 길게 쓴다. 이런 소리가 들린다. 앞에 <아-버-지> 이론을 소개했다. <아버지>란 말을 할 때 <아>에도 아버지는 없다 . <버>에도 아버지는 없다 . <지>에도 아버지는 없다 . 그래도 <아> <버> <지> 란 소리를 이어내면 아버지란 말로 들리게 된다. 외국 노래도 사정이 같다. 외국어 본래 가사에는 그런 말은 없다. 그러나 한국어로 외국어 노래를 듣다보면 일정부분에 꼭 자신이 아는 한국말이 그처럼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함께 올려보기로 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Edith Piaf - Y'en A Un De Trop] >>> 본 연구원은 장래 생에 불교를 전공하고 불교 부분의 1타강사로 활동해보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노래를 조금 더 들어보니 그런 경우 사찰 주지가 되어야 한다. 아니다. 다른 방향이 더 낫다. 이런 여러가지 이야기가 들리는 듯 하다. 자동차로 먼 곳을 갈려고 할때 네비게이션을 켜놓고 상황을 검토해가면서 가게 된다 . 그리고 핸들을 매 순간 잘 돌려가며 운전해야 한다. 그래야 원만하게 자신의 목적지에 잘 도착하게 된다. 이처럼 현실의 삶도 역시 앞 상황을 미리 잘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서원을 잘 성취할 방안을 잘 찾아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한자나 단어등 강사활동에 필요한 것들에서 외울 것을 찾아 열심히 외우고, 힘을 내야 한다.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3/05/2567-05-05-k0521-001.html#4897 sfed--금강삼매경_K0521_T0273.txt ☞금강삼매경 sfd8--불교단상_2567_05.txt ☞◆vfmm4897 불기2567-05-05 θθ |
■ 선물 퀴즈
방문자선물 안내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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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南中) 3교의 하나.
부처님이 맨 처음에 모든 보살들을 위하여 고상하고 묘한 『화엄경』을 한꺼번에 설하여,
해가 뜰 때에 먼저 높은 산을 비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답 후보
● 돈교(頓敎)
동산(洞山)
동체삼보(同體三寶)
득대세(得大勢)
등각(等覺)
등정각(等正覺)
라운(羅云)
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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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_0606_192604_can
™善現智福 키워드 연결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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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삼매경_K0521_T0273 [문서정보]- 일일단상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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