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K0549
T1509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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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0549-001♧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권
용수(龍樹)1) 지음
후진(後秦) 구자국(龜玆國) 구마라집(鳩摩羅什)2)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1. 서품 중 연기(緣起)의 이치를 풀이함권제1
지도(智度)3)의 큰 도는 부처님에게서 나온 것이요
지도의 큰 바다는 부처님만이 끝까지 다 아신다.
지도의 실상(實相)4) 이치는 부처님만이 걸림 없으시니
지도의 비할 바 없는 부처님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유무(有無)의 두 견해,
남음 없이 다한 곳이
모든 법의 실상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나니,
항상 머물러 무너뜨리지 않으면 번뇌가 깨끗해지기에
부처님께서 소중히 여기신 법에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바다 같은 성인 무리,
복전(福田)5) 노릇 하시나니유학(有學)6)과 무학(無學)7)들로 장엄하셨네.
뒷몸 받을 애욕의 씨,
영원히 다하시고
내 것[我所]8)이란 집착 멸해 뿌리까지 없어졌네.
세간의 모든 사업 이미 다 버리시고
갖가지 공덕이 머무는 곳이니,
온갖 무리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에
참되고 깨끗한 대덕승(大德僧)9)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일심으로 삼보를 공경하고는
세상을 구제하는 미륵(彌勒)10) 등과
지혜가 으뜸이신 사리불(舍利弗)11)과
다툼 없는 공을 행한 수보리(須菩提)12)께도 경례합니다.
대지도[大智],
피안(彼岸)13)의 실상의 이치를
내가 이제 힘을 다해 연설코자 하오니
원컨대 여러 대덕,
거룩한 지혜 갖춘 이들이여
한마음 잘 모아서 나의 말을 들으시라.
【문】 부처님께서는 무슨 인연(因緣)14)으로 『마하반야바라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을 말씀하셨는가?
부처님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법을 설하시거나 또는 사소한 인연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으니,
마치 수미산왕(須彌山王)15)이 까닭 없이 사소한 인연으로 요동치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떠한 커다란 인연이 있기에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셨는가?
【답】 부처님께서는 3장(藏)16) 가운데에서 갖가지 비유를 널리 인용하시어 성문(聲聞)17)을 위해 법을 설하셨지만,
보살18)의 도를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오직 『중아함(中阿含)』19) 「본말경(本末經)」에서 부처님은 “미륵이여,
그대는 오는 세상에 부처를 이루리니,
이름을 미륵이라 하리라”고 수기(授記)20)하셨으나,
역시 갖가지 보살행을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부처님은 이제 미륵 등을 위해 보살의 행을 자세히 말씀하시려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설하시는 것이다.
또한 어떤 보살이 염불삼매(念佛三昧)21)를 닦는다면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이 삼매22)에서 더욱 훌륭한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하여
『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곧 『반야바라밀다』의 「초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신족(神足)23)을 나투시어 금빛 광명을 놓으시니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24) 세계를 두루 비추시고,
큰 몸을 나타내시어 청정한 광명과 갖가지 묘한 모습[妙色]이 허공에 가득했다.
부처님이 대중 가운데 계시니 단정하고 수묘(殊妙)함이 그에 미칠 이가 없었으니,
마치 수미산왕이 바다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보살들은 부처님의 신통을 보고는 염불삼매에서 더욱 훌륭한 이익을 얻었다.”
이러한 까닭에 『마하반야바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보살이 처음 탄생하셨을 때에 큰 광명을 놓아 시방에 두루 비추시고,
일곱 걸음을 걸으신 뒤에 사방을 돌아보면서 사자후(師子吼)25)를 지어 게송26)을 읊으셨다.
내가 태(胎)로 날 일은 끝났으니
이것이 마지막 몸이라네.
나는 이미 해탈을 얻었으니
다시 중생(衆生)27)을 구제하리라.
이렇게 맹세하신 뒤에 차츰 몸이 커지자,
친속(親屬)을 버리고 출가하여 위없는 도를 닦고자 했다.
어느 날 밤에 일어나서 광대ㆍ당직자ㆍ후궁ㆍ채녀 들을 보니,
그 모습이 마치 냄새나는 시체와 같았다.
당장에 차닉(車匿)28)에게 명해 백마(白馬)를 몰게 하고 한밤중에 성을 넘었다.
12유순(由旬)29)쯤 가서 발가바(跋伽婆)30) 선인이 사는 숲에 이르러
칼을 들어 손수 머리를 자르고
값진 보배옷을 벗어 버리고는
거친 베옷 승가리(僧伽梨)31)로 바꾸어 입었다.
니련선하(泥連禪河)32) 강가에서 6년 동안 고행하셨으니,
하루에 참깨[麻] 한 알 혹은 쌀 한 톨을 드시다가 ‘여기는 도를 닦을 곳이 아니로다’라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보살은 고행처(苦行處)를 버리고 보리수(菩提樹)33) 밑에 이르러 금강의 자리[金剛處]34)에 앉으셨다.
마왕(魔王)35)이 18억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보살을 해치려 했지만,
보살은 지혜공덕의 힘으로 마군들을 항복시키고는 즉시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36)를 얻으셨다.
이때에 삼천대천세계37)의 주인이며 식기(式棄)38)라 불리는 범천왕(梵天王)39) 및
색계(色界)40)의 신들41)과 석제환인(釋帝桓因)42)과 욕계(欲界)43)의 여러 하늘들과 사천왕(四天王)44)이 모두 부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세존(世尊)45)께 최초의 법의 바퀴[法輪]46)를 굴려 주시기를 청했다.
이는 보살께서 본래 원하시던 바이기도 하고 또한 대자대비하신 까닭에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법을 설하셨다.
모든 법 가운데 심히 깊은 것이 반야바라밀47)이니,
이 까닭에 부처님께서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부처님은 일체지(一切智)48)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기 때문이니,
어떻게 한 사람이 온갖 법을 다 알 수 있겠는가?”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반야바라밀에 머무시어 그 실상의 청정함은 마치 허공과도 같으시다.
무량무수의 법 가운데 스스로 참되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일체지인(一切智人)으로서 일체 중생의 의심을 끊어 주려 하노라”고 하셨다.
이런 까닭에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셨다.
또한 어떤 중생은 응당 제도를 받고자 하나,
부처님의 공덕과 지혜가 한량이 없고 알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삿된 스승에게 현혹되거나 마음이 삿된 길에 빠져서 바른 길에 들지 못한다.
이러한 무리들을 위하여 크게 인자한 마음을 일으키시고,
크게 가엾이 여기시는 손길을 뻗어 그들을 불도에 들게 하신다.
그러므로 스스로 가장 묘한 공덕을 나타내시고 큰 신력(神力)을 보이시나니,
이는 마치 『반야바라밀경』 「초품」 가운데 설해지는 바와 같다.
“부처님께서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49)에 드셨다가
삼매로부터 일어나셔서 천안(天眼)50)으로 시방세계를 두루 굽어보셨다.
온몸의 털구멍이 모두 열리고,
그 발바닥의 천폭륜상(千輻輪相)51)으로부터는 6백천만억의 갖가지 광명을 놓으시며,
발가락으로부터 위로는 육계(肉髻)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제각기 6천만억 가지 빛깔의 광명을 놓으시어
시방의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어서 마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불세계(佛世界)52)를 비추어 모두 환하게 밝히셨다.”53)
곧 부처님께서는 삼매에서 일어나셔서 온갖 법의 실상을 연설해 보여
일체 중생의 의혹[疑結]을 끊어 주려는 까닭에 『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어떤 사악한 사람은 질투심으로 부처님을 비방하기를
“부처님의 지혜라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
다만 환술을 부려 세인을 현혹시킬 뿐이다”라고 한다.
저들의 삿된 교만을 꺾기 위하여 한량없는 신력과 한량없는 지혜의 힘을 나타내어
『반야바라밀경』에서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신력과 공덕이 한량없고 삼계(三界)54)에서 아주 거룩하여 일체를 감싸고 보호하노라.
만약 한 번 악한 생각을 일으키면 한량없는 죄를 받고,
한 번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면 인간과 하늘의 즐거움을 받아 반드시 열반(涅槃)55)의 과보를 얻으리라.”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큰 스승이노라.
10력(力)56)과 4무외소(無畏所)57)를 지녔고,
성주(聖主)58)가 머무를 자리에 안립해서 마음이 자재로우며,
능히 사자후를 내어 묘한 법륜59)을 굴리니,
일체 세계 가운데 가장 존귀하고 가장 높으니라.”
또한 불세존께서는 중생들로 하여금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이 『반야바라밀경』을 설하시어
“그대들은 응당 크게 기뻐하는 생각을 내거라.
왜냐하면 일체 중생이 모두 삿된 소견의 그물에 들어 잘못된 가르침이나 삿된 스승에게 미혹당하지만 나는 온갖 그릇된 스승과 삿된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10력을 갖춘 대사는 만나기 어렵거늘 그대들은 이제 만났노라.
나는 때를 맞추어 37품(品)60) 등 모든 의미 깊은 법의 창고[法藏]61)을 열어 보이려 하노니,
그대들 마음대로 가져갈 일이니라”고 하셨다.
또한 일체의 중생들이 결사(結使)62)라는 병으로 괴로워하지만 무시의 생사 이래 아무도 이 병을 고쳐주는 이가 없었다.
항상 외도63)나 그릇된 스승에 현혹되고 있기에 “나는 이제 세상을 벗어나는 대의왕(大醫王)64)이 되어 온갖 법의 약65)을 다 모았으니,
그대들은 이 약을 먹어보라” 하셨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부처님은 사람과 다름이 없다.
생사(生死)도 있고,
실로 굶주림ㆍ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늙음ㆍ병듦 등의 괴로움을 겪는다.’
부처님은 그들의 이러한 생각을 끊어 주기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경』에서 “나의 몸은 헤아릴 수 없으며,
범천왕 등 모든 하늘의 할아버지이다.
항하의 모래수 만큼 많은 겁66)을 두고 나의 몸을 생각하거나 나의 음성을 찾으려 해도 끝내 얻을 수 없으니,
하물며 나의 지혜나 삼매이겠느냐”라고 말씀하시고는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을
모든 범천왕들과
온갖 천지(天地)의 주인들
모두가 미혹하여 알지 못하네.
이 법은 심히 깊고 묘하여
헤아릴 이가 없건만
부처가 나타나서 모두 보여 주노니
마치 밝은 해가 비치는 것과 같도다.
또한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실 때,
즉시에 보살들이 다른 세계에서 와서 부처님의 몸을 헤아리려 했으나
위쪽 허공으로 한량없는 불세계[佛刹]67)를 지나 화상불(華上佛) 세계에까지 이르러서도
부처님의 몸은 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므로 그 보살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허공이 끝이 없듯이
부처님 공덕도 그러하시니
부처님 몸을 재어보려 했으나
공연한 헛수고에 그쳤네.
위로 허공 세계의
한량없는 세계를 지났으나
석가모니 사자의 몸을 보건대
여전히 다름이 없으시네.
부처님의 몸매는 황금산 같아
큰 광명을 뿜어내시고
상호(相好) 스스로 장엄스러워
봄날이 꽃을 피우듯 하시네.
부처님의 몸매가 한량이 없듯이 광명과 음성 역시 한량이 없으시고 계ㆍ정ㆍ혜 등 모든 부처님의 공덕들도 모두가 한량이 없다.
『밀적경(密迹經)』에서 말씀하신 3밀(密)68)과 같으니,
여기에서도 마땅히 자세히 말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처음 탄생하실 적에 땅에 닿으시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는 스스로 발언하셨으며,
말이 끝남에 곧 침묵하셨다.
그리고는 보통의 어린아이로 돌아가 걸어다니거나 말하는 일이 없었으니,
젖먹여 기르는 세 해 동안을 여러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차츰차츰 자라났다.
그러나 부처님의 몸은 수효가 없어서 모든 세간을 초월했건만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범부와 똑같은 자취를 보이셨다.
무릇 사람이 태어날 때는 몸의 각 부분인 감관과 의식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몸의 네 가지 위의(威儀)인 앉고 눕고 다니고 멈추고 말하고 침묵하는 따위의 갖가지 인간의 법을 모두 알지 못하다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차츰차츰 배워 익혀 비로소 인간의 법을 갖추거늘,
지금의 부처님은 어찌하여 태어나시자마자 말도 하고 다니기도 하시더니,
나중에는 하시지 못했는가 하여 이를 괴이하게 여긴다.
다만 이러한 일을 이룸은 방편69)의 힘으로써 인간의 법을 행하심을 나타내시어 사람들의 위의와 같게 하신 것이니,
중생들로 하여금 깊은 법을 믿게 하셨을 뿐이다.
만일 보살이 탄생하실 때에 바로 다니거나 말을 했더라면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이 사람을 보건대 세상에는 드문 일이다.
분명히 하늘의 용이거나 귀신으로 그가 배우는 법은 우리들이 미칠 바가 아니리라.
왜냐하면 우리들의 나고 죽는 육신은 결(結)과 사(使)의 업보에 얽매여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니,
이렇게 깊은 법을 어찌 알겠는가.’
이렇게 스스로 절망하기 때문에 성현의 법기(法器)를 이루지 못하나니,
이런 사람을 위하는 까닭에 남비니(嵐毘尼)70) 동산에 태어나신 것이다.
비록 보리수(菩提樹)71) 밑에서 불도를 이루셨으나 방편의 힘으로써 아기ㆍ어린이ㆍ소년ㆍ어른이 됨을 드러내셨으니,
여러 때에 걸쳐 차례로 즐거움과 기예를 얻고 5욕을 누리시어 인간의 법을 갖추셨다.
나중에는 차츰차츰 노ㆍ병ㆍ사의 괴로움을 보고는 싫어하는 생각을 내어 한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하여 울특가(鬱特伽)72)와 아라라(阿羅羅)73) 선인에게로 가서 제자가 됨을 보이셨으나,
끝내 그들의 법을 행하지는 않으셨다.
항상 신통을 부리어 스스로 숙명을 억념하건대,
비록 가섭부처님[迦葉佛]74) 때에 이미 계행을 지니고 닦았지만 지금 고행을 닦는 모습 드러내 6년간 도를 구하셨다.
보살이 비록 삼천대천세계의 주인이 되었으나 마군을 항복시키고 위없는 도를 이루시는 모습을 나타내었으니,
세상의 법에 순응하기 위한 까닭에 이러한 뭇 변화를 나타내신 것이다.
이제 이 『반아바라밀경』에서 이러한 큰 신통과 지혜의 힘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땅히 부처님의 몸이 세간의 모든 것을 훨씬 초월하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제도될 만한데도 두 가지 치우침[二邊]에 떨어져 있으니,
혹은 지혜가 없는 까닭에 몸의 즐거움만을 구하거나 혹은 유위의 길에 치우친 까닭에 고행 닦기에만 집착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제일의(第一義)75) 가운데의 열반의 바른 길을 잃는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두 가지 치우침에서 구해내 중도에 들게 하기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생신(生身)과 법신(法身)에 공양하는 과보를 분별하는 까닭에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셨으니,
「사리탑품(舍利塔品)」 가운데 말씀하신 바와 같다.
다시 아비발치(阿鞞跋致)76)와 아비발치의 모습을 설명하려는 까닭에 말씀하셨으며,
또한 마라의 환술과 마라의 일 때문에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미래의 사람들이 반야바라밀에 공양할 인연이 되게 하기 위한 까닭에 또는 3승(乘)의 기별(記別)77)을 주기 위해서 이 『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셨나니,
부처님께서 아난78)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에 든 뒤에 이 반야바라밀이 남방으로 갈 것이고,
남방에서 다시 서방으로 갈 것이며,
뒤의 5백 세 동안에는 북방에 이를 것이다.
그곳에는 바른 법을 믿는 선남자 선여인79)이 많이 있어 갖가지 꽃ㆍ향ㆍ영락ㆍ당기ㆍ번기ㆍ풍악ㆍ등불ㆍ보물ㆍ재물로써 공양할 것이며,
손수 쓰거나 남을 시켜 쓰게 하거나 독송하거나 설법을 듣거나 잘 기억해서 수행하여 법으로써 공양하리니,
이 사람들은 이 인연으로 세간의 갖가지 즐거움을 받으며,
마지막에는 3승의 법을 얻어 무여열반(無餘涅槃)80)에 들리라.”
이렇게 여러 품 중의 인연을 관찰하셨기에 『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부처님께서 제일의실단(第一義悉檀)81)의 모습을 말씀하시기 위해 이 『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셨다.
네 가지 실단(悉檀)이 있으니,
첫째는 세계실단(世界悉檀)82)이요,
둘째는 각각위인실단(各各爲人悉檀)83)이요,
셋째는 대치실단(對治悉檀)84)이요,
넷째는 제일의실단이다.
네 가지 실단 가운데 일체의 12부경(部經)85)과 8만 4천 법의 창고가 포섭되니,
실로 이는 모두가 서로 위배되는 일이 없다.
불법 가운데의 유(有)는 세계실단인 까닭에 실유(實有)이며,
각각위인실단인 까닭에 실유이며,
대치실단인 까닭에 실유이며,
제일의제실단인 까닭에 실유인 것이다.
세계실단이라 함은 어떤 법이 인연 화합하는 까닭에 있을지언정 별달리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마치 수레가 빗장ㆍ축ㆍ바퀴ㆍ바퀴살 등이 화합한 까닭에 있을 뿐 달리 수레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5온[五衆]86)이 화합한 까닭에 있을지언정 달리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세계실단이 없다면 부처님은 진실한 말씀을 하시는 분인데,
어찌하여 “내가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을 보니,
선악의 업을 따라 여기에서 죽어서 저기에 태어나면서 과보를 받되 착한 업을 짓는 이는 하늘이나 인간 가운데 태어나고 악한 업을 짓는 이는 3악도(惡道)87)에 떨어진다”고 하셨겠는가?
또한 경에서 “한 사람이 세간을 벗어나면 여러 사람이 경사와 복락(福樂)과 이익을 얻나니,
이는 불세존88)이다”고 했으며,
『법구경』89)에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신(神)90)이 스스로 신을 구제할지언정 다른 사람이 어찌 신을 구제하리오.
스스로가 선(善)을 행하는 것이 지혜[智]이니,
이것이야말로 스스로를 가장 잘 구제하는 일이다.”
다시 부처님께서는 『병사왕영경(甁沙王迎經)』91)에서 “범부는 법을 듣지 못하고,
범부는 나에 집착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이야경(二夜經)』92)에서는 “부처가 처음으로 도를 얻은 저녁부터 반열반93)에 든 저녁에 이르기까지 두 밤사이에 설하신 경교(經敎)는 모두 다 진실하여 전도됨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참으로 사람이 없다면 부처님께서 어찌하여 “내가 천안으로 중생을 본다”고 하셨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니,
사람이 있다는 것은 세계실단인 까닭이지 제일의실단이 아니다.
【문】 제일의실단은 진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제일의라 한다면 나머지는 진실치 않다는 것인가?
【답】 그렇지는 않다.
이 네 가지 실단에는 각각 진실함이 있다.
여여(如如)94)함과 법성(法性)95)과 실제(實際)96)는 세계실단이기에 없고,
제일의실단이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 등도 그와 같아서 세계실단이기에 있고 제일의실단이기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5중(衆)의 인연으로 사람 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젖이 색과 냄새와 맛과 촉감의 인연 때문에 젖이란 것이 있는 것과 같으니,
젖이 진실로 없다면 젖의 인연도 없어야만 하는 것과 같다.
이제 젖의 인연이 진실로 있기 때문에 젖도 당연히 있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의 두 번째 머리나 세 번째 손과 같이,
인연이 없이 거짓 이름만 있는 경우와는 다르다.
이러한 모습을 세계실단의 모습[相]이라 한다.
어떤 것을 각각위인실단이라 하는가?
사람들의 마음씨[心行]를 관찰해서 설법해 주는 것이니,
한 가지 일에 대하여 듣는 이도 있고 듣지 않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경에서 “잡된 보업(報業) 때문에 잡되게 세간에 태어나서 잡된 촉감을 받고 잡된 느낌을 받는다” 하셨으며,
『파군나경(破群那經)』97)에서는 “촉감을 받을 사람이 없고,
느낌을 받을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문】 이 두 경은 어떻게 회통하는가?
【답】 어떤 사람은 오는 세상을 의심하여 죄와 복을 믿지 않고,
착하지 못한 행을 하여 단멸견(斷滅見)98)에 떨어지는데,
그들의 의혹을 끊어 그들의 나쁜 행을 버리고,
그들의 단견을 뽑아버려 주기 위해서 “잡되게 세간에 태어나서 잡되게 촉감을 받고,
잡되게 느낌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파군나(破群那)는 나가 있다거나 신(神)99)이 있다고 계교하여 항상함을 헤아리는 견해[計常]100) 가운데 떨어졌는데,
파군나101)가 부처님께 “대덕(大德)102)이시여,
누가 받습니까?”라고 물었다.
만일 부처님께서 “아무개[某甲],
아무개가 받느니라”고 말씀하셨다면 곧 계상 가운데 떨어져 그 사람은 아견(我見)103)이 더욱 굳어져서 옮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받는 이와 느끼는 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각각위인실단이라 한다.
대치실단이라 함은 존재하는 것[有法]104)은 대치(對治)105)할 때는 곧 있거니와 실제의 성품은 없다.
마치 매우 뜨겁고 기름지고[膩] 시고 짠맛이 뒤섞인 약초나 음식 등이 풍병(風病)106)에는 약이 되지만 다른 병에는 약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가령 약간 차고 달고 쓰고 떫은 약초나 음식 등은 열병(熱病)107)에는 약이 되지만 다른 병에는 약이 되지 않으며,
약간 맵고 쓰고 떫고 더운 약초와 음식은 냉병(冷病)108)에는 약이 되지만 다른 병에는 약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불법에서 마음의 병109)을 다스리는 것도 그와 같아서 부정관(不淨觀)110)으로 사유하는 것은 탐욕의 병에는 좋은 대치법이 되지만 성냄의 병에는 좋다고도 할 수 없고 대치법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몸의 허물을 관찰하는 것이 부정관인데 성내는 사람이 허물을 관찰하면 성냄의 불길이 더할 뿐이기 때문이다.
자심(慈心)111)으로 사유112)하는 것은 성냄의 병에는 좋은 대치방법이 되지만 탐욕의 병에는 좋다고도 할 수 없고 좋은 대치법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심은 중생에게서 좋은 일을 구하고 공덕을 관찰하는 것인데 만일 탐욕스런 이가 좋은 일을 구하거나 공덕을 관찰한다면 탐욕이 더욱 늘어나기 때문이다.
인연관법(因緣觀法)113)은 어리석은 병에는 좋은 대치법이 되지만 탐욕과 성냄의 병에는 좋지 못하며 대치법이 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이미 삿되게 관찰했기 때문에 삿된 소견을 낸 것이니,
삿된 견해가 곧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문】 불법 안에서 12인연(因緣)114)을 심히 깊다 하셨다.
곧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이 인연의 법은 심히 깊어서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관찰하기 어려우니,
마음이 섬세하고 지혜가 공교로운 사람이라야 알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얕고 가까운 법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심히 깊은 인연이겠느냐”고 말씀하셨거늘 이제 와서 어찌하여 어리석은 사람도 인연을 관찰하라 하는가?
【답】 어리석은 사람이라 해서 소나 양같이 어리석다는 뜻은 아니다.
이 사람은 진실한 도를 구하고자 하면서도 삿된 마음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갖가지 삿된 소견을 내나니,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법을 관찰해야 한다.
이것을 좋은 대치방법이라 한다.
만일 성을 내거나 탐욕을 행하는 사람이 쾌락을 구하거나 남을 괴롭히려 한다면 이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아서 대치방법이 아니다.
부정이나 자심(慈心)으로 사유함은 이런 두 가지 사람에게는 좋으며 대치의 법이 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관법은 성냄과 탐욕의 가시를 뽑아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영원함[常]에 집착하는 전도된 중생은 모든 법이 비슷하게 상속(相續)함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이 무상(無常)을 관한다면 이는 대치실단은 될지언정 제일의실단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자성(自性)115)이 공하기 때문이다.116)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보면
이것을 뒤바뀜[顚倒]이라 한다.
공한 가운데는 무상도 없거니
어디에서 항상함이 있음을 보랴.
【문】 온갖 만들어진 것[有爲法]117)이 모두 무상의 모습이라면,
응당 무상이야말로 제일의제[第一義]일 것이거늘 어찌하여 무상이 진실이 아니라 하는가?
온갖 유위의 법은 생(生)ㆍ주(住)ㆍ멸(滅)의 모습이니,
먼저는 생하고 다음은 머무르고 나중에는 멸한다.
그러니 어찌 무상이 진실치 않겠는가?
【답】 유위의 법에 세 가지 모습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 가지 모습이 진실치 않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법의 생ㆍ주ㆍ멸이 유위의 모습이라면 지금의 생 가운데에도 세 가지 모습이 있어야 하리니,
생이 유위의 법인 까닭이다.
이와 같이 낱낱 곳에 역시 세 가지 모습이 있어서 끝이 없을 것이며,
주와 멸도 그러할 것이다.
만일 모든 생ㆍ주ㆍ멸에 각각 다시 생ㆍ주ㆍ멸이 없다면 유위의 법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위법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모든 법이 무상하다 함은 제일의 실단이 되지 못한다.
또한 온갖 것의 진실한 성품118)이 무상하다면 행업(行業)119)의 과보(報)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상을 생멸이라 부르는 허물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썩은 종자는 열매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즉 행업이 없을 것이요,
행업이 없으면 어떻게 과보가 있겠는가?
지금 온갖 성현의 가르침에 과보가 있음을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믿어 받드는 바이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이런 까닭에 모든 법은 무상의 성품이 아니다.
이와 같은 한량없는 인연 때문에 모든 법이 무상의 성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곧 일체의 유위법이 무상하며,
고(苦)ㆍ무아(無我)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모습을 대치실단이라 부른다.
제일의실단이라 함은 온갖 법성(法性)120)과 온갖 논의ㆍ언어,
온갖 옳은 법ㆍ그른 법은 낱낱이 타파되고 흩어지지만 부처님들이나 벽지불121)ㆍ아라한122)들이 행하는 진실한 법은 파괴할 수도 없고 흐트러뜨릴 수도 없는 것이니,
위의 세 가지 실단 가운데에서 통(通)하지 않던 것이 여기에 모두 통한다.
【문】 어떻게 통하는가?
【답】 통한다고 하는 것은 온갖 허물을 여의어 바꿀 수 없고 이길 수도 없음을 말한다.
왜냐하면 제일의실단을 제하고는 나머지 논의나 실단은 모두 타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의경(衆義經)』123)에 이러한 게송이 있다.
제각기 자기의 견해에 의해
부질없이 싸움을 일으키나니
그들이 그른 줄 알기만 하면
그는 바른 견해를 아는 이라.
다른 이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를 어리석은 이라 하나니
이러한 희론을 일삼는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자기의 견해가 옳다고 여겨
온갖 희론을 일으키고
이를 맑은 지혜라 한다면
맑은 지혜 아닌 이 없으리.
이 세 게송 가운데에서 부처님은 제일의실단의 모습을 설명하셨으니,
이른바 세간의 중생들은 스스로의 견해에 의지하고,
스스로의 법에 의지하고,
스스로의 이론에 의지해서 다툼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희론은 다툼의 근본이 되고 희론은 모든 견해에 의해 생겨나니,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받아들인 법이 있기에 왈가왈부하거니와
받아들임이 없다면 무슨 논의가 있으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견해를
이 사람은 이미 모두 제해버렸네.
행자(行者)가 이 이치를 여실하게 알 수 있다면 온갖 법과 온갖 희론을 받아들이거나 집착하거나 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다투지 않음이니,
불법의 감로미(甘露味)124)를 잘 알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는 곧 법을 비방하는 일이다.
만일 남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알지도 못하고 취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지혜 없는 사람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논쟁자들은 모두 무지한 자이리라.
왜냐하면 서로가 상대방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어떤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법이 제일의로서 깨끗하다.
하지만 다른 법은 거짓말이요 깨끗하지 못하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건대 세간에서 법을 다스리는 것과 같나니,
법을 다스리는 이는 형벌을 주거나 살육을 하는 등 종종의 부정한 일을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믿고 받아 들여 참되고 깨끗하다 여기거니와 세상을 벗어난 성인들에게 있어서는 이는 가장 부정한 것이 된다.
외도의 출가한 사람들의 법에는 5열(熱)125) 속에서 한 발로 서 있거나 터럭을 뽑는 일을 니건자(尼犍子)126)의 무리들은 묘한 지혜라 여기지만 다른 사람은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여긴다.
마치 이와 같이 갖가지 외도ㆍ출가ㆍ백의(白衣)127)ㆍ바라문128)이 각각 자기의 법을 좋다 하지만 다른 이는 모두가 거짓이라 한다.
이 불법 안에서도 독자비구(犢子比丘)129)들은 “4대(大)130)가 화합해서 안법(眼法)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5중(衆)이 화합해서 사람[人法]이 있다” 고 말한다.
독자부의 『아비담(阿毘曇)』131)에서는 “5중이 인(人)을 여의지 않고 인이 5중을 여의지 않으니,
5중이 곧 인이라거나 5중을 여읜 것이 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인이란 다섯 번째의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장(法藏)132) 안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133)의 도인(道人)들은 “신인(神人)134)은 온갖 종자[種]와 온갖 때와 온갖 법문 안에서 구해도 얻을 수 없나니,
마치 토끼의 뿔이나 거북의 털과 같아서 항상 없는 것이다”고 하며,
또한 “18계135)와 12입136)과 5중137)이 실제로 있으나 이 가운데 인법이라고 할 것은 없다”고 한다.
또한 불법 안의 방광도인(方廣道人)138)은 “온갖 법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공하여 아무것도 없다.
마치 토끼의 뿔이나 거북의 털과 같아서 항상 없다” 하나니,
이와 같은 논사[論議師]들은 모두 스스로 자신의 법만을 고수하고 남의 법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말이다”고 한다.
만일 스스로가 그 법을 받아들여 자기의 법에만 공양하고 자기의 법만 수행하면서 남의 법을 받아들이거나 공양하지 않는다면 허물이 된다.
만일 이로써 청정을 삼아 제일가는 이익을 얻는다고 한다면 온갖 것이 청정 아닌 것이 없으리라.
왜냐하면 저 일체란 모두 스스로 애착하는 특성인 까닭이다.139)
【문】 모든 견해에 모두 허물이 있다면 이 제일의실단은 어떻게 해서 옳은가?
【답】 온갖 언어의 길을 초월했고 마음으로 더듬을 곳이 없으며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아무런 법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법의 실상은 처음도 없고 중간도 없고 나중도 없으며 다함도 무너짐도 없나니,
이것을 제일의실단이라 한다.
마하연의(摩訶衍義)의 게(偈)140) 가운데 설하는 바와 같다.
말로써 표현할 길이 다하고
마음으로 따질 수도 없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니
법이 그대로 열반이다.
모든 지어감[行]을 말한 곳을
세간의 법이라 하고
지어감이 없음을 말한 곳을
제일의제라 한다.
온갖 진실함과 진실 아님과
온갖 진실하기도 하고 진실하지 않기도 함과
온갖 진실 아니기도 하고 진실 아닌 것도 아닌 것
이들을 모든 법의 실상(實相)이라 한다.
이와 같이 경전의 곳곳에서 제일의실단을 말씀했지만,
이 이치가 심히 깊어서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말씀하시기 위해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장조(長爪) 범지141) 등 큰 논사들로 하여금 불법에 대하여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하여 이 『마하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셨으니,
장조라는 범지가 있었고 선니(先尼)142)ㆍ바차구다라(婆蹉衢多羅)143)ㆍ살차가(薩遮迦)144)ㆍ마건제(摩揵提)145)라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염부제146)에서 큰 논사들로서 “온갖 이론은 모두 부술 수 있다.
온갖 이야기는 모두 무너뜨릴 수 있다.
온갖 집착은 모두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을 법도 없고 공경할 법도 없다”고 말한다.
『사리불본말경(舍利弗本末經)』147)에 설하듯이 사리불의 외삼촌인 마하구치라(摩訶俱絺羅)148)가 그의 누이인 사리(舍利)149)와 토론을 하다가 졌다.
이에 구치라는 생각했다.
‘누이의 힘은 아닐 것이다.
반드시 지혜 있는 사람을 잉태했는데 엄마의 입을 통해서 하는 짓일 것이다.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러하니,
태어나서 자란 뒤엔 어떻게 감당하랴.’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교만한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널리 논의해 보기 위해 출가하여 범지의 몸으로 남천축(南天竺)150)에 들어가서 경서를 읽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물었다.
“그대 범지는 무엇을 구하려는가?
그리고 어떤 경서를 배우는가?”
장조가 대답했다.
“열여덟 가지 대경(大經)151)을 모두 다 읽고자 한다.”
사람들이 말했다.
“그대의 수명이 다하더라도 한 가지도 알기 어렵겠거늘 하물며 어찌 다 알겠는가?”
이때 장조가 생각했다.
‘지난 날 교만을 부리다가 누이에게 졌는데 지금 또한 이 여러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는구나.’
이 두 가지 일 때문에 스스로 맹세했다.
“나는 맹세코 손톱을 깎지 않으리니,
반드시 열여덟 가지 경서를 다 읽으리라.”
사람들은 긴 손톱을 보고 그를 장조(長爪) 범지라 부르게 되었다.
이 사람은 갖가지 경서의 지혜의 힘으로써 종종의 옳은 법과 그른 법,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진실함과 진실치 않음,
있음과 없음 등을 따지고 판단하여 남의 논리를 타파했으니,
마치 큰 힘을 지닌 미친 코끼리가 부딪치고 차고 밟고 설치면 아무도 제지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이 장조 범지가 토론의 힘으로 여러 논사들을 굴복시킨 뒤에 마가다국152)으로 돌아와 왕사성153)의 나라(那羅)154)라는 마을에 이르렀다.
그리고 본래 태어난 곳[本生處]으로 가서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내 누이가 낳은 자식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떤 사람이 대답했다.
“그대 누님의 아들은 여덟 살에 모든 경서를 다 읽은 뒤에 열여섯 살이 되자 토론으로써 모든 사람을 이겼소.
그때 마침 석씨 종족의 도인(道人)으로 성이 구담(瞿曇)155)인 분이 있어,
그의 제자가 되었소.”
장조가 이 말을 듣자 교만한 생각을 내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내 누이의 아들이 그토록 총명하다면 그는 도대체 어떤 술책으로 속이고 꾀어서 머리를 깎아 제자로 삼았겠는가?”
이렇게 말하고는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향했다.
이때 사리불은 처음으로 계를 받은 지 보름째가 되었는데,
그는 부처님 곁에 서서 부채로 부처님을 부쳐드리고 있었다.
장조 범지는 부처님을 뵙자 문안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아 이런 생각을 했다.
‘온갖 이론은 모두 깨뜨릴 수 있다.
온갖 말은 모두 무너뜨릴 수 있다.
온갖 집착은 모두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것이 모든 법의 진실 된 모습이며,
어떤 것이 제일의제인가?
어떤 성품과 어떤 모습이라야 전도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이처럼 생각해 봐도 마치 대해 가운데에서 살피나 바닥을 찾을 수 없는 것 같이,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진실로 마음을 기울여 들어갈 만한 법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그는 어떠한 이론으로 누이의 아들을 제자로 삼았을까?’
이런 생각을 한 뒤에 부처님께 말했다.
“구담이시여,
나는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조야,
그대가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는데,
그렇다면 그 견해는 받아들이는가?”
부처님께서 물으신 뜻은 ‘그대가 이미 사견(邪見)의 독약을 마셨기에 지금 그 독기를 뿜어 말하기를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했지만,
그렇다면 지금의 이러한 견해를 그대는 받아들이는가?’ 하신 것이다.
이때 장조 범지는 마치 좋은 말이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얼른 깨닫고 곧 바른 길로 들어서는 것같이 그 역시 이와 같았으니,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채찍의 그림자에 마음이 영입하게 되어 당장에 교만함을 버리고 뉘우치면서 고개를 숙여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은 내게 두 개의 지는 문[負門]을 제시했다.
만일 내가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면,
이 지는 문은 거칠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알고서 ≺스스로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그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는가?≻ 하리라.
이는 망어를 눈앞에 드러냄이니 거칠게 지는 문으로,
여러 사람이 다 알게 된다.
두 번째 지는 문은 미세하니 나는 이것을 받아들여야겠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부처님께 대답했다.
“구담이시여,
나는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이 견해 또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범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온갖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견해 또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니,
그렇다면 아무것도 받아들이는 것이 없어서 범부와 다를 것이 없거늘 어찌하여 그토록 도도하게 교만을 부리는가?”
이에 장조 범지는 대답하지 못한 채 스스로 졌음을 알고는 곧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156) 앞에 공경하는 마음과 믿는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졌건만 세존(世尊)께서는 나의 진 곳을 드러내시거나 시비도 따지지 않으시고 전혀 개의치도 않으신다.
부처님의 마음은 부드러우시고 으뜸가게 청정하시니,
온갖 말과 논의의 근거가 멸하고 크고 깊은 법을 얻게 하신다.
이것이야말로 공경할 만하다.
마음이 청정하기가 으뜸이니,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시어 삿된 소견을 끊어 주는 까닭이다.’
그리고는 앉은 자리에서 객진[塵]157)을 여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에 대하여 법의 눈이 맑아졌다.
이때 사리불이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아라한을 얻었으며,
이 장조 범지는 출가하여 사문158)이 되었으니,
큰 힘을 가진 아라한과를 얻었다.
만일 이 장조 범지가 반야바라밀의 기분(氣分)인 네 구절을 여의고 제일의제와 상응하는 법을 듣지 못했더라면 조그마한 믿음도 얻지 못했을 것이거늘 하물며 출가해서 도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큰 논사들과 예리한 근을 지닌 이들을 인도하시려는 까닭에 이 『반야바라밀다경』을 말씀하셨다.
또한 부처님들의 설법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사람의 마음이 제도할 만한가를 관찰하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법의 모양[相]을 관찰하는 것이니,
지금 부처님께서는 모든 법의 실상을 말씀하시고자 하여 이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상불상품(相不相品)」159)에 설한 것처럼 모든 천자(天子)160)들이 부처님께 물었다.
“이 반야바라밀은 매우 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습[相]161)을 짓는지요?”
부처님께서 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공(空)162)이 곧 모습이니,
모습도 없고 지음도 없는 모습ㆍ생멸이 없는 모습ㆍ지어감이 없는[無行] 모습ㆍ항상 나지 않아 성품과 같은 모습ㆍ적멸의 모습이니라.”
또한 두 가지의 설법이 있으니,
첫째는 다투는 곳이요,
둘째는 다투지 않는 곳이다.
다투는 곳이란 다른 경에서 말씀하신 것들이니,
이제는 다툼이 없는 곳을 말하려는 까닭에 이 『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셨다.
이 밖에 형상 있음과 형상 없음,
물건 있음과 물건 없음,
의지할 곳 있음과 의지할 곳 없음,
대할 것 있음과 대할 것 없음,
위 있음과 위없음,
세계ㆍ비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다.
【문】 부처님은 마음이 대자대비하시니,
다만 다툼 없는 법만을 말씀하실 것이거늘 어찌하여 다투는 법까지 말씀하시는가?
【답】 다툼 없는 법은 모두가 형상 없고 항상 적멸하여서 말할 수 없거늘 이제 보시(布施) 등과 무상ㆍ고ㆍ공 등의 모든 법을 말하는 것은 모두가 적멸하여 희론이 없는 경지를 나타내기 위한 까닭에 말한 것이다.
예리한 근기를 지닌 이는 부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다툼을 일으키지 않거니와 둔한 이는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형상을 취하여 마음이 집착하는 까닭에 다툼을 일으킨다.
이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이 끝내 공한 경지인 까닭에 다툴 곳이 없다.
만일 끝내 공한 가운데서 다툼을 얻을 수 있다면 끝내 공하다 할 수 없다.
끝내 공하다 함[畢竟空]은 유무(有無)의 두 일이 모두 멸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경』을 다툼이 없는 곳이라 한다.
또한 다른 경에서 흔히 세 가지 법으로써 모든 법문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선문(善門)ㆍ불선문(不善門)ㆍ무기문(無記門)163)이다.
이제는 선문이 아닌 도리ㆍ불선문이 아닌 도리ㆍ무기문이 아닌 도리의 모든 법의 모습[法相]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밖에 배울 것 있는 이의 법[有學法]164)ㆍ배울 것 없는 이의 법[無學法]165)ㆍ배울 것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 이의 법[非學非無學法]166)ㆍ진리를 보아 끊는 법[見諦斷法]167)ㆍ사유로써 끊는 법[思惟斷法]168)ㆍ끊어지지 않는 법[無斷法]169)과 볼 수 있고 대함이 있는 것[可見有對]ㆍ볼 수 없으나 대함이 있는 것[不可見有對]ㆍ볼 수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 것[不可見無對]과 위ㆍ중간ㆍ아래의 법 등 크고 작은 무수한 법(法)170)이 있는데 이렇듯 세 등급의 법문도 이와 같다.
또한 다른 경에서 4념처(念處)171)를 말씀하여 성문의 법문에 따르게 하였는데,
여기에서 비구는 안몸[內身]의 서른여섯 가지 부정물[三十六物]172)을 관찰하여 탐욕의 병을 제거하며,
마찬가지로 밖의 몸과 안팎의 몸을 관찰한다.
이제는 4념처에서 다른 법문으로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려 하니,
이른바 보살이 안몸을 관찰하되 몸에 대해서 각관(覺觀)173)을 일으키지 않고 몸을 얻지 않으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밖의 몸과 안팎의 몸을 관찰함에도 몸에 대해서 각관을 내지 않고 몸을 얻지 않으니,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신념처(身念處)에서 몸을 관찰하되 몸의 각관[身覺觀]을 내지 않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나머지 세 가지 염처도 역시 그러하다.
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4선(禪)ㆍ4제(諦)174) 등의 갖가지 네 수로 이루어진 법문[四法門]도 그러하다.
또한 다른 경에서 부처님은 5중(衆)의 무상ㆍ고ㆍ공ㆍ무아상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여기에서는 5중을 다른 법문으로 말씀하시기 위하여 『반아바라밀경』을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보살이 만일 색(色)175)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ㆍ상ㆍ행ㆍ식176)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색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이는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ㆍ상ㆍ행ㆍ식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하셨다.
이밖에 5수중(受衆)177)ㆍ5도(道)178) 등 갖가지 다섯 수로 된 법문들도 모두 이와 같으며,
그 밖의 6ㆍ7ㆍ8에서 무량한 법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다.
마하반야바라밀이 한량없고 끝이 없듯이 반야바라밀의 인연을 말하는 일 역시 한량없고 끝이 없다.
이 일은 광대하기에 이제 간략히 마하반야바라밀다의 인연법을 말하기를 마친다.
2. 초품(初品) 중 여시아문일시(如是我聞一時)를 풀이함
【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論】 【문】 모든 불경(佛經)에는 어찌하여 첫머리에 ‘이와 같이[如是]’라고 말하는가?
【답】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다.
‘이와 같이’179)라고 함은 곧 믿음이니,
만약에 마음속에 믿음이 청정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이 없다면 불법에 들어갈 수가 없다.
믿지 않는 자는 ‘이 일은 이와 같지 않다’ 하니,
이는 믿지 않는 모습이거니와 믿는 이는 ‘이 일은 이와 같다’ 한다.
마치 쇠가죽이 부드러워지기 전에는 꺾어 구부릴 수 없는 것과 같나니,
믿음이 없는 사람 역시 그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쇠가죽이 이미 부드러워진 뒤에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나니,
믿음이 있는 사람 역시 그와 같다.
또한 경에서 믿음에 대해 ‘손과 같다’ 하셨는데,
마치 손이 있는 사람은 보배산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보물을 취하는 것과 같다.
믿음이 있는 사람 역시 이와 같아서 불법의 무루180)의 근(根)181)ㆍ역(力)182)ㆍ각도(覺道)183)ㆍ선정(禪定)184)이라는 보배산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취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이는 마치 손이 없는 것과 같다.
손이 없는 이는 보배산에 들어가도 아무것도 취할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믿음이 없는 이는 불법의 보배산에 들어가도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이 사람은 나의 큰 법의 바다에 들어와서 사문의 과위를 얻어 헛되지 않으리라.
머리 깎고 물든 가사185)를 입었지만 만약에 믿음이 없다면 이런 사람은 나의 법의 바다 속으로 들어올 수가 없느니라.
마치 죽은 나무가 꽃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하리니,
비록 머리를 깎고 물든 옷을 입고 갖가지 경전을 읽고 갖가지 진리를 묻거나 대답할 수 있어도 불법 가운데에서는 전혀 얻는 바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이와 같이”라는 구절[義]이 불법의 첫머리에 있나니,
좋은 믿음의 상징인 까닭이다.
또한 불법은 깊고도 멀어서 부처님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나니,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비록 당장에 부처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믿음의 힘 때문에 불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범천왕(梵天王)이 부처님께 최초의 법륜을 굴려 주시기를 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염부제(閻浮提)에서 먼저 벗어나셨으니
온갖 부정한 법이 많습니다.
바라건대 감로186)의 문을 여시어
청정한 도법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나의 법은 매우 어려워서 얻기 어려우나
능히 모든 번뇌를 끊나니
3유(有)187)에 애착심이 있는 이는
이 법을 알지 못한다.
범천왕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덕188)이시여,
세간의 지혜는 상등ㆍ중등ㆍ하등이 있는데,
곧은 마음을 잘 익힌 이는 쉽게 제도하려니와 이 사람이 불법을 듣지 못하면 온갖 악난(惡難)에 물러나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비유하건대 물속의 연꽃이 어린 것도 있고 성숙한 것도 있으며,
물 밖에 나온 것도 있고 물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것도 있는데,
이들이 모두가 햇빛을 받지 못하면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불법 역시 그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로써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해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3세의 부처님들께서도 모두가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법을 설하셨으니,
나 역시 마땅히 그렇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시고는 범천왕 등 여러 신들의 청을 받아들여 법을 설하기로 하셨으니,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답하셨다.
나 이제 감로법189)의 문을 여노니,
누군가가 믿기만 하면 기쁨 얻으리.
모든 사람 가운데 묘한 법 설함은
남을 괴롭히려 함이 아니라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 가운데 보시하는 사람이 환희를 얻는다 하시지 않았고 또한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행하는 사람이 환희를 얻는다고도 하시지 않으신 채 오직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뜻은 다음과 같으리라.
‘나의 제일가는 심히 깊은 법은 미묘하여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하고 흔들리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190) 집착되지 않고 얻을 수 없는 법이어서 일체지(一切智)를 얻은 이가 아니면 알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불법에는 믿음의 힘으로써 첫머리를 삼으니,
믿음의 힘으로써야 들어갈지언정 보시ㆍ지계ㆍ선정ㆍ지혜 등으로써 불법의 첫머리를 삼거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들 마음이 흔들려
복된 과보만을 좋아하고
복의 원인은 심지 않으니
유(有)만을 구하고 멸(滅)은 구하지 않네.
앞서부터 삿된 견해의 법을 들어
마음에 집착하여 깊이 들어갔나니
나의 이 심히 깊은 법은
믿음이 없고서야 어찌 들어가리오.
제바달(提婆達)191)의 큰 제자인 구가리(俱迦梨)192) 등은 가르침을 믿지 않는 까닭에 나쁜 길에 떨어졌으니,
이 사람은 불법에 대해서 믿음이 없이 스스로 지혜를 부려 구하였지만 얻지 못했다.
왜냐하면 불법은 매우 깊기 때문이다.
범천왕이 구가리를 가르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한량없는 법을 헤아리려 하나
지혜로운 이는 헤아리지 않네.
한량없는 법을 헤아리려 하면
이 사람,
스스로를 묻어버리리.
또한 ‘이와 같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마음이 착하여 곧게 믿으면 이 사람은 법을 들을 수 있거니와 만일 그러한 모습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듣는 이는 단정히 바라보며 목마른 이가 물을 마시듯
일심을 기우려 말씀 속의 이치로 들어가네.
법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하나니
이러한 사람이라야 마땅히 말해 줄 수 있다네.
또한 ‘이와 같이’라는 말씀이 부처님 가르침의 첫머리에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이로움이나 뒷세상의 이로움이나 열반의 이로움 등 모든 이로움의 근본이 믿음을 큰 힘으로 삼음을 말한다.
또한 온갖 외도로서 출가한 사람들은 ‘나의 법은 미묘하고 청정하고 제일이다’ 하나니,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행하는 법은 찬탄하고 남이 행하는 법은 헐뜯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서로 치고 싸우다가 후세에는 지옥193)에 떨어져서 갖가지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자기의 법을 사랑하는 물듦 때문에
다른 이의 법을 헐뜯나니
비록 계행을 지키는 사람이라도
지옥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리.
이는 불법 안에서 모든 애착과 모든 소견과 모든 아만을 버리고 남김없이 끊어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벌유경(筏喩經)』194)에 “너희들이 나의 뗏목의 비유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이때에 착한 법도 버려야 하겠거늘 하물며 착하지 못한 법이겠는가” 하신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반야바라밀에 대해서도 생각하거나 의지하지 않으셨거늘 하물며 의지할 다른 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불법의 첫머리에 ‘이와 같이’라고 한 것이니,
부처님의 뜻은 다음과 같으리라.
‘나의 제자는 법에 애착하지 않고,
법에 물들지 않고,
패거리를 짓지 않고 오직 괴로움을 여의어 해탈하기만을 구해 모든 법의 모양을 희론하지 않는다.’
『아타바기경(阿他婆耆經)』195)에서 마건제(摩犍提)196)가 게송으로 따져 물었다.
결정적인 모든 법에서
어지러이 갖가지 생각을 냈다가
안팎의 모든 것을 모두 버리고는
어떻게 도를 얻을 수 있으리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결코 듣고 알고 느끼는 것도 아니요
계를 가짐으로써 얻는 것도 아니고
보고 듣는 것 아님도 아니며
계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도 아니네.
이와 같은 논의 모두 버리고
나(我)197)와 내 것(我所)198) 모두 버리어
모든 법상 취하지 않아야
비로소 도를 얻을 수 있으리.
마건제가 물었다.
보고 듣는 것도 아니요
계를 지켜서 되는 것도 아니요
보고 들음 아님도 아니요
계를 지니지 않음도 아니라면
내가 관찰해 생각건대
벙어리의 법이라야 도를 얻으리.
부처님께서 대답했다.
그대는 사견의 문에 의지해 있나니
나는 그대의 어리석은 길을 아노라.
그대가 망상을 보지 않는다면
그때엔 저절로 벙어리가 되리라.
또한 나의 법은 진실이고 다른 법은 망어이다,
나의 법은 제일이고 다른 법은 진실치 못하다 한다면 이는 투쟁의 근본이다.
이제 ‘이와 같다’고 하는 뜻은 사람들에게 다툼 없는 법을 보임이니,
남이 말한 바를 듣고는 그 말한 사람에게 머묾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경전의 첫머리에서 ‘이와 같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다는 이치를 이상으로써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이제 나[我]라고 함을 설명하리라.
【문】 불법에서는 ‘모든 법이 공하여 모든 것에 나라 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불경 첫머리에 내가 들었다고 하는가?
【답】 비록 부처님의 제자들이 나 없음을 알기는 하나 세속의 법을 따라 나라 할지언정 실제의 나는 아니다.
비유하건대 금화로 동화[銅錢]를 사더라도 아무도 비웃을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사고파는 법이 의례 그렇기 때문이다.
나라는 것도 그와 같아서 무아(無我)의 법 가운데 나를 말함은 세속을 따르는 까닭이니,
힐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천문경(天問經)』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어떤 나한 비구199)가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아라한 비구가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네.
세간의 법[世界法]에서 나라고 함은 제일의제의 진실한 뜻 가운데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공하여 나가 없으나,
세계의 법에 따라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또한 세간의 말에는 세 가지 근본이 있으니,
첫째는 삿된 소견이요,
둘째는 교만이요,
셋째는 이름이다.
이 가운데서 두 가지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요 한 가지는 깨끗하다.
모든 범부들은 세 가지 말을 하니,
삿된 소견과 교만과 이름이 그것이다.
견도(見道)의 학인200)은 두 가지 말을 하니,
교만과 이름이요,
성인은 한 가지 말만 하니,
이름이 그것이다.
속마음으로는 진실한 법을 어기지 않으나 세간의 사람을 따르는 까닭에 더불어 이러한 말로 의사를 전한다.
하지만 세간의 삿된 소견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세속을 따라도 다툼이 없다.
이런 까닭에 두 가지 부정한 말의 근본을 제거하고 세속을 따르는 까닭에 한 가지 말만을 사용한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세속을 따르기 때문에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이 나 없는 형상에 집착되어 “이것만이 진실하고 나머지는 거짓말이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당연히 “그대여,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나 없음이거늘 어찌하여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하는가?”라고 힐난 받으리라.
이제 모든 불제자들은 모든 법이 공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고 여기에 집착되지도 않는다.
또한 모든 법의 실상에 집착되었다고도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나 없는 법에 마음이 집착되리오.
그러므로 “어찌하여 나라고 말하는가?”라며 힐난해서는 안 된다.
『중론(中論)』201)에서 게송으로 말했다.
공하지 않은 바가 있다면
의당 공한 바가 있으려니와
공하지 않은 바도 없거늘
어찌 하물며 공함을 얻으랴.
보통 사람들은 공하지 않음을 보고
또한 다시 공함도 보지만
보는 것이 곧 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열반임을 보지 못한다.
불이(不二)의 안온 법문이
모든 사견을 깨뜨리나니
부처님들이 행하시는 경지라야
이를 무아(無我)의 법이라 한다.
나라는 뜻을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이제 ‘듣는다’202) 함을 설명하리라.
【문】 듣는다는 것은 어떻게 듣는가?
귀[耳根]로 듣는가,
귀의 의식[耳識]203)으로 듣는가,
뜻의 의식(意識)으로 듣는가?
만일 귀로 듣는다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
만일 귀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귀의 의식은 한 생각뿐이기 때문에 분별치 못하며 또한 듣지 못한다.
만일 뜻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뜻의 의식 또한 듣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5식(識)204)이 5진(塵)205)을 안 뒤에야 뜻의 의식이 알기 때문이다.
뜻의 의식은 현재의 5진을 알지 못하고 오직 과거와 미래의 5진만을 아나니,
만일 뜻의 의식이 현재의 5진을 알 수 있다면 소경이나 벙어리도 빛과 소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뜻의 의식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답】 귀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요,
귀의 의식이나 뜻의 의식으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여러 인연이 화합함으로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니,
한 법이 소리를 듣는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식은 무색(無色)ㆍ무대(無對)ㆍ무처(無處)인 까닭에 역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소리 자체는 감각이 없고 감관도 없기 때문에 또한 소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귀가 망가지지 않고,
소리가 들을 수 있는 곳에 이르렀고,
뜻으로 듣고자 한다면 정(情)과 진(塵)과 뜻[意]206)이 화합하였기 때문에 이식이 생기며,
이식이 생기기만 하면 의식이 갖가지 인연을 분별하여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런 까닭에 “누가 소리를 듣는가?”라며 힐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불법에도 어느 한 법이 짓거나 보거나 아는 일이 없나니,
이런 게송이 있다.
업도 있고 과도 있지만
업과 과를 짓는 이가 없다.
이는 가장 높고 심히 깊으니
이 법은 부처님만이 아신다.
공하지만 단절됨[斷]은 아니요
상속하지만 항상함[常]도 아니다.
죄와 복 또한 잃지 않으니
이런 법을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들었다’ 함을 간략히 풀이하여 마친다.
이제부터 ‘어느 때[一時]’207)라 함을 설명하리라.
【문】 불법 가운데에는 수효[數]208)나 시간 등의 법이 실로 없나니,
음(陰)209)ㆍ입(入)210)ㆍ지(持)211)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어느 때라 하는가?
【답】 세속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때라 하여도 허물이 없다.
마치 진흙이나 나무를 조각해서 신상[天像]212)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그 신상을 생각하기 때문에 예를 올려 절을 한다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어느 때라 한 것도 이와 같으니,
실제에는 어느 때라 할 것이 없지만 세속을 따라 어느 때라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문】 어느 때라 함이 없을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한 사람이 세간을 벗어나면 여러 사람이 즐거움을 얻는다” 하셨다.
이는 누구를 가리킨 말이겠는가?
바로 불세존이시니,
게송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나의 행은 스승의 보호가 없고
하나에 뜻을 두어 동행자가 없으며
하나의 행을 쌓아 부처의 경지를 얻으니
자연히 성스런 도에 통한다.
이러한 뜻을 부처님은 곳곳에서 말씀하셨으니,
마땅히 ‘어느 하나[一]’란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한 법이 화합했기 때문에 그 물건을 하나라 한다.
만일 진실로 한 법이 없다면 어찌하여 한 물건에 대해서는 한마음만 생기고 둘이나 셋이 생기지 않는가?
또한 두 물건에 대해서는 두 마음만 생기고 하나나 셋은 생기지 않으며,
세 물건에 대해서는 세 마음만 생기고 둘이나 하나가 생기지 않는가?
만일 진실로 모든 수효가 없다면 어느 한 물건에 대해서도 두 마음이 생겨야 할 것이요,
두 물건에 대해서도 한마음이 생기기도 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미루어 3ㆍ4ㆍ5ㆍ6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결정코 알게 되니,
한 물건 안에 한 법이 있고,
이 법이 화합하기 때문에 한 물건에서 한마음이 생기리라.
【답】 만일 어느 하나와 물건이 하나라든지 혹은 하나와 물건이 다르다든지 한다면 이 둘에는 모두 허물이 있다.
【문】 어느 하나가 있은들 무슨 허물이 되는가?
【답】 가령 하나의 병(甁)이라 하면 이는 하나의 이치가 된다.
마치 인제리(因提梨)213)와 석가(釋迦)214)가 역시 하나라는 이치가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어디에나 하나가 있는 곳엔 응당 모두가 병이어야 된다.
비유하건데 인제리가 있는 곳마다 석가가 있는 것과 같다.
지금 옷 따위의 모든 물건도 모두가 병이어야 하리니,
하나의 병과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다면 곳곳마다 하나는 모두 다 병이어야 하리니,
병의 경우와 같이 옷 따위들도 모두가 한 물건이어서 다른 차별이 없어야 한다.
또한 하나가 수효에 속하는 법이라면 병도 역시 수효의 법이어야 한다.
병의 몸[體]에는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병에도 다섯 가지 법이 있어야 한다.
병에는 모양도 있고 몸[體]도 있으므로 하나에도 모양과 몸이 있어야 한다.
만일 어디서나 하나를 병이라 할 수 없다면 이제 병과 하나라는 수효는 하나로서 같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라고 한다면 병이 포함되지 않고 병이라고 한다면 하나가 포함되지 않나니,
병과 하나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를 말하려면 병을 말해야 되고 병을 말하려 해도 역시 하나를 말해야 되리니,
이와 같다면 혼돈이 생긴다.
【문】 하나라 할 때의 허물이 그렇다면 다르다 할 때는 어떤 허물이 있는가?
【답】 만일 하나와 병이 다르다면 병은 하나가 아닐 것이요,
병과 하나가 다르다면 하나는 병이 아닐 것이다.
만일 병과 하나가 합친 것을 하나라 한다면 이제 하나와 병이 합친 것은 어찌하여 하나라 하지 않고 병이라 하는가?
그러므로 병은 하나와 다르다 할 수 없다.
【문】 비록 하나라는 수효와 합하기 때문에 병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가 병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답】 모든 수효의 첫머리가 하나이다.
하지만 하나는 병과 다르니,
그러므로 병을 하나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가 없기 때문에 많음도 없다.
왜냐하면 먼저가 하나이고 나중이 많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름 가운데서는 하나라는 것도 없다.
그러기에 두 부문에서 한 법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음ㆍ입의 경지에 속하겠는가?
다만 불제자들은 세속의 말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고 하거니와 실제로는 집착하지 않으면서 수효의 법이나 명자[名字]가 있다고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에서는 한 사람,
한 스승,
어느 한때라 하여도 삿된 소견의 허물에 빠지지 않는다.
‘어느 하나’를 풀이해 마친다.
이제 ‘때[時]’215)에 관해서 설명하리라.
【문】 천축(天竺)에서 시간을 말할 때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가라(迦羅)216)요,
또 하나는 삼마야(三摩耶)217)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찌하여 가라로 말씀하시지 않고 삼마야로 말하는가?
【답】 가라로 말한다 하여도 역시 의문이 있다.
【문】 가볍고 쉽게 말하기 위해서는 가라로 해야 된다.
가라는 두 음절이요 삼마야는 세 음절이니 말이 겹치고 어렵기 때문이다.
【답】 삿된 소견을 제하기 위하여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온갖 천지의 좋고 나쁜 것은 모두가 때[時]로써 원인을 삼는다”고 말했으며,
『시경(時經)』218)에서는 이렇게 게송으로 말하고 있다.
때가 오면 중생이 익어지고
때에 이르면 재촉을 하고
때가 능히 사람을 깨우친다.
그러므로 때가 원인이 된다.
세계는 수레바퀴 같아
때가 변함은 바퀴가 굴러감과 같으니
사람도 수레바퀴와 같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문】 어떤 사람은 “비록 천지의 좋고 나쁜 모든 물건을 때가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때는 변치 않는다.
인(因)은 실제로 있는 것이나 때의 법칙[時法]은 섬세하여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꽃이나 열매 따위의 결과에 의하여 때가 있음을 안다.
작년이나 금년의 오래고 가깝고 더디고 빠른 모습을 보기만 하면 때는 보지 못하더라도 때가 있음을 알 수는 있다.
왜냐하면 결과를 보면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의 법칙이 있나니,
때의 법칙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한다.
【답】 진흙 덩어리는 현재의 때[時]요,
흙이나 먼지는 과거의 때요,
병(甁)은 미래의 때다.
때의 모습이 항상한 까닭에 과거의 때는 미래의 때가 되지 못한다.
그대들의 경서(經書)의 법에서 때는 한 물건이라 했다.
그렇기에 과거의 세상은 미래의 세상이 되지 못하고 역시 현재의 세상도 되지 못한다.
잡된 과거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세상에는 역시 미래의 세상도 없으니,
그렇기에 미래의 세상이 없다.
현재의 세상 역시 그러하다.
【문】 그대가 과거의 흙과 먼지의 때를 용인하는 경우,
만일 과거의 때가 있다면 반드시 미래의 때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때의 법칙은 실제로 있다.
【답】 그대는 내가 이미 말한 것을 듣지 못했는가?
미래 세상은 병이요,
과거 세상은 흙과 먼지이다.
미래의 세상은 과거 세상을 만들지 못하니,
미래 세상의 모습에 떨어진다면 이는 미래 세상의 모습의 때[相時]이거늘 어찌 과거의 때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과거의 때도 없다.
【문】 어찌 때가 없는가?
반드시 때가 있다.
현재에는 현재의 모습이 있고,
과거에는 과거의 모습이 있고,
미래에는 미래의 모습이 있다.
【답】 만일 세 세상의 때에 모두 자상(自相)219)이 있어야 한다면 모두가 현재의 세상일 뿐이요,
과거나 미래의 때는 없어야 한다.
만일 지금 미래가 있다면 미래라 부르지 않고 응당 현재라 일컬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맞지 않다.
【문】 과거의 때와 미래의 때는 현재의 모습 속의 행이 아니다.
과거의 때는 과거의 세상에서 행해지고,
미래의 세상은 미래의 때에서 행해진다.
그러므로 각각의 법상(法相)에는 때가 있는 것이다.
【답】 만약에 과거가 다시 지나갔다고 한다면 곧 과거의 모습을 깨뜨리게 되며,
과거가 비과거라면 과거의 모습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자상(自相)이 버려지기 때문이다.
미래의 세상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때의 법이란 진실함이 없거늘 어찌 하늘과 땅의 좋고 나쁜 것들과 꽃 열매 등 모든 물건을 내겠는가?
이러한 갖가지 방법으로 삿된 소견을 제하기 위하여 가라로 말하지 않고 사마야로 말한 것이다.
음(陰)과 계(界)와 입(入)의 생멸을 보고서 거짓으로 때라 말했으나 달리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방위와 때,
여읨과 합함,
하나와 다름,
긺과 짧음 따위의 명칭이 나오매 범부는 마음으로 집착해서 이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법이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세간의 명칭과 언어의 법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문】 만일 때가 없다면 어찌하여 때에 맞는 음식은 먹어도 좋다 하고 때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말라 함이 곧 계(戒)가 되는가?
【답】 나는 이미 세간의 명칭의 법에는 ‘때’가 있지만 실제의 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대는 따져 묻지 말라.
또한 이 비니(毘尼)220) 가운데 결계(結戒)의 법은 세속의 법으로서 실제로 있지만,
제일의제의 실다운 법[實法]의 모습은 아니다.
나라는 법의 모습은 실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사람이 가책하는 까닭이며,
또는 불법을 보호하여 오래 보존시키고자 해서 제자들의 예법을 제정하려는 까닭에 삼계(三界)의 세존께서는 모든 계를 제정하셨다.
그러니 여기에서 “어떠한 진실이 있는가,
어떠한 명칭이 있는가,
어떤 것이 상응(相應)하는가,
어떤 것이 상응치 않는가,
어떤 것이 법[是法]으로서 여실한 모습인가,
어떤 것이 법으로서 여실치 않은 모습인가?”라고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일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 만약에 때에 맞는 음식221)ㆍ때에 맞는 약222)ㆍ때에 맞는 옷223)이 모두 가라가 아니라고 한다면224) 이들은 어찌하여 사마야로 말하지 않는가?
【답】 이것은 비니 가운데 설해진 것으로,
속인[白衣]225)은 듣지 못한다.
외도가 어떻게 듣고서 삿된 소견을 내겠는가?
다른 경은 통틀어 누구나 들을 수 있으니,
그렇기에 삼마야를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삿된 소견을 내지 않게 했다.
삼마야는 거짓으로 때를 이름 지은 것이며,
때[時] 역시 거짓 이름이다.
불법에는 대개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한 경우는 적다.
적다고 해서 힐난하지 말라.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라는 다섯 어구226)의 뜻을 각각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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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어로는 Nāgārjuna.
2)
범어로는 Kumārajīva.
줄여서 나집(羅什)이라고도 한다.
3)
범어로는 Prajñā-Pāramitā.
반야바라밀은 대승불교의 실천덕목인 6바라밀의 하나로 무상정등각을 향해 나아가는 보살마하살이 구족해야 하는 으뜸가는 자량이다.
여기에서 반야(prajñā)란 직관적이고도 종합적인 통찰의 지혜로 알음알이[知識,
vijñāna)와는 구별된다.
4)
범어로는 lakṣaṇa.
5)
범어로는 puṇyakṣetra.
6)
범어로는 śaikṣa.
배울 것이 남아 있는 상태로 아직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고인(苦忍)에서 아라한과에 이르기 직전의 3과(果) 4향(向)의 7종의 학인을 말한다.
7)
범어로는 aśaikṣa.
아라한과에 도달한 자를 말한다.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는 성자의 경지로서 여기에는 9종이 있다.
8)
범어로는 attāttamīya.
9)
범어로는 bhadanta.
혹은 āyuṣmat.
10)
범어로는 Maitreya.
아일(阿逸,
Ajita)은 미륵보살의 이칭이다.
11)
범어로는 Śāriputra.
석존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지혜제일이라 칭해진다.
12)
범어로는 Subhūti.
13)
범어로는 pāra.
팔리어로는 pārimaṃ tīraṃ.
‘저편 언덕’이라는 말로서 번뇌가 그친 상태나 열반의 경지를 가리킨다.
불도수행에 있어서 도달의 목표가 되는 ‘이상의 경지’ 혹은 ‘이상 세계’를 의미한다.
14)
범어로는 hetu-pratyaya.
15)
범어로는 Sumerupravarta-rāja.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산으로 주변을 구산팔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으며,
그 높이가 8만 요자나(yojana)라고 한다.
16)
범어로는 tripiṭaka.
경ㆍ율ㆍ논의 3장을 말한다.
17)
범어로는 śravaka.
원래는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따르던 불제자를 뜻하던 말이다.
출가 수행승만을 지칭하게 된 것은 후대의 일이다.
대승의 입장에서 본다면 성문은 독각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깨달음을 위해 수행에 전념하는 성자이다.
18)
보살마하살(bodhisattva)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19)
범어로는 Madhyāmagama.
20)
범어로는 vyākaraṇa.
미래에 대한 ‘예언’을 의미한다.
원래는 ‘언어의 분석’ 혹은 ‘설명’을 의미하는 말이다.
21)
범어로는 buddhānusmṛti-samādhi.
부처님을 관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22)
범어로는 samādhi.
어떤 대상에 집중된 상태를 말한다.
23)
범어로는 ṛddhipāda.
24)
‘항하’란 지금의 갠지스강(Gaṅgānadī)을 말한다.
곧,
갠지스강의 모래 수에 비유될 만큼 헤아릴 수없이 많은 수를 가리킨다.
25)
범어로는 siṁhanāda.
26)
범어로는 gāthā.
불교경전(佛敎經典) 가운데 시구로 이루어진 부분을 말한다.
가타(伽他)ㆍ가타(迦陀)로 음역하기도 한다.
27)
범어로는 sattva.
‘생명을 지닌 존재’라는 뜻으로 감정이나 의식을 지니는 일체 생류를 통칭하는 말이다.
유정(有情)이라고도 한다.
28)
범어로는 Chaṇḍaka.
원래 석가족의 노예의 자식으로 석존께서 성도후 최초로 고향을 방문했을 때 귀의했다.
성질이 고약해서 다른 수행자들을 경멸하고 욕을 잘 했다고 한다.
29)
범어로는 yojana.
유순나(由旬那)의 약칭이다.
거리의 단위로 약 7마일 혹은 9마일에 해당한다.
또는 제왕이 하루 동안에 행군하는 거리라고도 한다.
30)
범어 Bhagavat의 음역어.
여래 10호 가운데 하나로 부처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 뜻은 ‘지극한 복을 지니시는 분,’ ‘세상에서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 등의 의미가 있다.
어원적으로 보면 ‘행복(bhaga)’을 ‘지니시는 분(vat)’이 된다.
바가바(婆伽婆)라고도 하며 세존(世尊)은 의역어이다.
31)
범어로는 Saṃghāti.
비구가 걸치는 세 가지 옷 가운데 겉옷을 말한다.
32)
범어로는 Nairanjara.
33)
범어로는 bodhidruma,
bodhivṛkṣa.
34)
범어로는 vajrāsana.
‘견고하고 깨어지지 않는 금강(vajra)과도 같은 자리’라는 의미이다.
35)
범어로는 Māraḥ,
Mārapāpīpān.
36)
범어로는 anuttarā samyaksaṃbodhiḥ.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뜻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를 이르는 말이다.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고도 한다.
원시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도수행의 궁극의 목적인 깨달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37)
범어로는 tri-sāhasra-mahāsāhasra loka-dhātuḥ.
천을 삼승한 만큼의 세계이다.
한편 백억의 수미산과 백억의 일월을 삼천대천세계라고도 한다.(百億須彌山百億日月名爲三千大千世界.
『대지도론』 「초품」 제15권.)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에 사대주가 있고,
다시 그 주위에 아홉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물이 있는데,
이를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고 한다.
그리고 이 하나의 소세계가 천 개 모이면 소천세계(小千世界)가 된다.
다시 이 소천세계가 천 개 모여 중천세계(中千世界)가 되며,
이 중천세계가 천 개 모여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를 이루는 것이다.
혹은 천 개의 해ㆍ천 개의 달ㆍ천 개의 염부제ㆍ천 개의 구타니(衢陀尼)ㆍ천 개의 울달라월(鬱怛羅越)ㆍ천 개의 불바제(弗婆提)ㆍ천 개의 수미산ㆍ천 개의 사천왕천ㆍ천 개의 32천ㆍ천 개의 야마천ㆍ천 개의 도솔타천ㆍ천 개의 화자재천ㆍ천 개의 타화자재천ㆍ천 개의 범세천ㆍ천 개의 대범천을 소천세계라 하고 주리(周利)라고도 한다.(『대지도론』 「초품」 제15권.)
38)
범어로는 Sikhi.
39)
범어로는 Brahma sahāpati.
범천(梵天).
40)
범어로는 rūpa-dhātu.
색계(色界).
욕계에서의 본능적 욕망을 여의고 오직 순수한 물질로만 이루어진 생존계를 가리킨다.
41)
범어로는 Devāḥ.
42)
범어로는 Śakradevendra.
6욕천(欲天) 가운데 두 번째 천인 도리천(忉利天),
곧 삼십삼천의 주인이다.
수미산 꼭대기에 거주하며 그가 거주하는 성을 선견성(善見城)이라고 한다.
43)
범어로는 kāma-dhātu.
성욕ㆍ식욕ㆍ수면욕 등 본능적 욕망이 지배하는 생존계를 가리킨다.
44)
범어로는 Catvāra-lokapālā.
수미산 중복(中腹)에 있는 사왕천(四王天)의 주인으로 제석천을 떠받들고 불법의 수호를 염원해 불법에 귀의하는 이들을 지켜주는 호법신이다.
사왕천은 동방의 지국천(持國天),
남방의 증장천(增長天),
서방의 광목천(廣目天),
북방의 다문천(多聞天)을 말한다.
45)
범어로는 Bhagavat.
여래 10호 가운데 하나로 부처님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 뜻은 ‘지극한 복을 지니시는 분,’ ‘세상에서 존경받아 마땅하신 분’ 등의 의미가 있다.
어원적으로 보면 ‘행복(bhaga)’을 ‘지니시는 분(vat)’이 된다.
바가바(婆伽婆)는 음역어이다.
46)
범어로는 dharmacakra.
47)
범어로는 prajñā-pāramitā.
반야(prajñā)는 지혜를,
바라밀(pāramitā)은 완성된 상태를 가리킨다.
반야바라밀은 대승보살의 실천도인 6바라밀의 하나이자 다른 5바라밀을 이끈다고 한다.
48)
범어로는 sarvajña.
‘일체를 아는 자’라는 뜻으로 붇다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불교나 쟈이나교에 있어서 sarvajña는 부처님(Buddha)의 동의어 내지는 그 대응어로 쓰이고 있으며,
나아가 인도의 철학과 종교에서는 쉬바신이나 비쉬뉴신과 같은 최고신의 신성이나 특징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한편,
『대지도론』 일체지를 정의해 “12입(入)을 알기 때문에 일체지라 부른다”고 한다.
49)
범어로는 samādhirājasamādhi.
모든 삼매 가운데 최상의 삼매를 말한다.
50)
범어로는 divyacakṣus.
51)
범어로는 cakrāńgapāda.
52)
범어로는 buddha-kṣetra.
불국토(佛國土)ㆍ불찰(佛刹)이라고도 한다.
53)
광명을 놓는 이유에 대해 『대지도론』(제25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어떤 이가 부처님께서 무량한 몸으로 대광명을 내뿜는 것을 보면 마음에 믿음이 청정해지고 공경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로 인해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다(有人見佛無量身放大光明.
心信淸淨恭敬故.
知非常人).”
54)
범어로는 tri-dhātu.
삼계(三界)는 유정이 생사윤회하며 머무는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세 가지 미혹의 세계이다.
①욕계(欲界,
kāma-dhātu):음욕과 식욕 등 본능적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②색계(色界,
rūpa-dhātu):음욕과 식욕을 여의었으며,
절묘한 물질[色]로 이루어진 청정한 세계이다.
이는 또한 네 단계 선정[四禪]에 의해 도달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③무색계(無色界,
arūpa-dhātu):물질의 얽매임을 뛰어넘어 고도의 정신만이 존재하는 세계로 네 단계 무색정[四無色定]에 의해 도달되는 경지이기도 하다.
55)
범어로는 nirvāṇa.
번뇌가 그친 평온한 상태를 가리킨다.
56)
범어로는 daśa-bala.
10력은 부처님만이 지니는 열 가지 지적인 힘으로,
①도리에 맞는 것과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힘[處非處智力].
②업의 원인과 그 과보를 여실히 아는 힘[業異熟智力].
③4선ㆍ8해탈ㆍ3삼매ㆍ8등지 등의 선정을 아는 힘[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④중생근기의 높낮이를 아는 힘[根上下智力].
⑤중생의 갖가지 바람을 아는 힘[種種勝解智力].
⑥중생 및 제법의 본성을 아는 지력[種種界智力].
⑦중생이 사후에 지옥이나 열반 등을 향해 감을 아는 힘[遍趣行智力].
⑧자신 및 남의 과거를 기억해 내는 힘[宿住隨念智力].
⑨중생이 나고 죽는 모양을 아는 힘[死生智力].
⑩번뇌를 다한 경지와 그에 도달하는 방법을 아는 힘[漏盡智力]이다.
57)
범어로는 catur vaiśāradya.
법을 설함에 있어서 흔들림 없는 네 가지 자신감을 말한다.
곧,
①‘나는 정등각자이다’라고 알아,
현실세계를 고제(苦諦)라고 명언함에 두려움이 없음[正等覺無畏].
②‘나의 번뇌는 다했다’라고 알아,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모두 단절했다고 명언함에 두려움이 없음[漏永盡無畏].
③‘나는 길을 장애하는 원인인 번뇌를 설했다’라고 알아,
끊어야 할 번뇌를 설함에 두려움이 없음[說障法無畏].
④‘나는 제자들을 위해 출리의 길을 설했다’라고 알아,
번뇌의 단멸에 이르는 길을 설함에 두려움이 없음[說出道無畏]이다.
58)
범어로는 āriya.
59)
범어로는 dharma-cakra.
60)
범어로는 sapta-triṁśad-bodhipakṣa.
37조도품(助道品) 또는 37보리분법(菩提分法)이라고도 한다.
61)
범어로는 dharmapiṭaka.
62)
결[saṃyojana]은 ‘얽어 매임’을 사[anuśaya]는 내면에 깃든 악한 성향을 가리킨다.
결과 사는 모두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63)
범어로는 tīrthika,
tīrtha-kara.
일반적으로는 불교 외의 종교 철학 내지는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나아가 정론(正論)에서 벗어난 삿된 이론이나 삿된 이론을 펴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64)
범어로는 mahāvaidyarāja.
65)
범어로는 dharmabhaiṣajya.
66)
범어로는 kalpa.
시간의 단위 가운데 가장 긴 것을 가리킨다.
67)
범어로는 buddha-kṣetra.
68)
밀교에서는 신ㆍ구ㆍ의 3업이 부처님의 작용으로 나타날 때 각각 신밀(身密)ㆍ구밀(口密)ㆍ의밀(意密)이라 부른다.
69)
범어로는 upāya-kauśalya.
방편(方便).
수단과 방법을 의미하는 말로 상대의 능력과 소질 등에 맞추어 법을 가르치는 불보살의 인도 방법을 뜻한다.
70)
범어로는 Lumbini.
71)
범어로는 bodhidruma,
bodhivṛkṣa.
72)
범어로는 Udraka-Rāmaputra.
73)
범어로는 Ālāra-kālāma.
74)
범어로는 Kāśyapa.
75)
범어로는 paramārtha.
최상의 진리ㆍ궁극의 진리를 제일의제(第一義諦,
para- mārtha-satya)라고 한다.
76)
범어로는 Avaivarti.
‘불퇴전(不退轉)’을 의미한다.
아유월치(阿惟越致)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77)
범어로는 vyākaraṇa.
수기를 말한다.
78)
범어로는 Ānanda.
79)
범어로는 각각 kula-putra,
kula-putrī.
‘훌륭한 가문의 젊은 남녀’를 의미한다.
대승불교에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바른 믿음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며,
통상 보살에 대한 호칭으로 쓰인다.
80)
범어로는 nirupadhiśeṣa-nirvāṇa.
생존의 근원을 단절시킨 경지이다.
한편 육신의 근거만을 남기는 경지를 유여열반(有餘涅槃,
sopadhiśeṣa-nirvāṇa)이라고 한다.
81)
범어로는 pāramārthikasiddhānta.
실단(悉檀,
siddhānta)은 ‘범주’나 ‘입장’을 의미하며 ‘성취,’ ‘종(宗)’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네 개의 실단은 불교에 대한 『대지도론』의 교상판석적 입장이기도 하다.
82)
범어로는 laukika-siddhānta.
네 개의 실단 가운데 하나이다.
중생의 소망에 응해 세계의 법을 말해주어 환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성립 이치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83)
범어로는 prātipauruṣika-siddhānta.
그 사람의 능력과 자질에 맞추어 진리가 설해지는 것을 말한다.
84)
범어로는 prātipākṣika-siddhānta.
네 가지 실단의 하나이다.
부처님이 중생의 근기에 응하여 미혹을 대치하고 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85)
범어로는 dvādaśāńga-dharmapravacana.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용과 형식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12분교(分敎) 혹은 12분성교(分聖敎)라고도 한다.
전승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다.
①경(經,
sūtra):산문형식의 경설.
②중송(重頌,
geya):산문형식에 교설에 운문의 게송을 붙여 그 내용을 거듭 나타낸 형식.
③기별(記別,
vyākaraṇa):문답체에 의한 교설.
④게(偈,
gāthā):산문이 없이 운문만으로 이루어진 교설.
⑤자설(自說,
udāna):스스로의 감흥에 의해 설해진 교설.
⑥여시어(如是語,
ityuktaka):‘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교설.
⑦본생(本生,
jātaka):부처님의 전생이야기.
⑧방광(方廣,
vaipulya):제자들이 환희를 거듭하면서 질문을 거듭해 가는 일종의 교리문답.
⑨미증유법(未曾有法,
adbhutadharma):부처님 및 불제자들의 뛰어난 덕상을 찬탄하는 교설.
⑩인연(因緣,
nidāna):경과 율들이 설해지게 된 배경이나 이유에 대한 설명.
⑪비유(譬喩,
avādana):주로 부처님 이외의 인물들에 대한 전생이야기.
⑫논의(論議,
upadeśa):부처님이나 불제자들이 간략한 경설을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86)
범어로는 pañca-skandha.
존재를 이루는 다섯 부류,
곧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을 말한다.
이 다섯 부류가 모여 비로소 개아를 이루는데,
이른바 신심(身心)의 불교적 표현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87)
범어로는 tridurgati.
지옥ㆍ아귀ㆍ축생의 셋을 가리킨다.
악도(惡道,
durgati)란 괴로움의 세계를 가리킨다.
88)
범어로는 Buddho bhagavān.
89)
팔리어로는 dhammapāda.
한역 『법집요송경(法集要頌經)』을 말한다.
90)
범어로는 ātman.
91)
범어로는 Phālguna-sūtra.
92)
범어로는 Dharmarātridvaya-sūtra.
93)
범어로는 parinrvāṇa.
‘완전한 열반’이라는 뜻으로 석존의 입멸을 가리킨다.
94)
범어로는 tathatā.
있는 그대로의 모습,
진리.
진여(眞如)와 같은 말이다.
95)
범어로는 dharmatā.
존재의 모습,
제법의 진실된 본성을 말한다.
96)
범어로는 bhūta-koṭi.
진리의 경계를 의미한다.
97)
『파군사경(破群邪經,
Phālgunasūtra)』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다.
98)
범어로는 ucchedadṛṣṭi.
사후 다시 태어나는 일 없고 선악업의 과보도 없다는 견해이다.
세상과 나는 죽으면 단절되어 존족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단견(斷見)이라고도 한다.
99)
범어로는 puruṣa.
이 역시 ātman과 함께 상주불변한 나를 가리킨다.
100)
범어로는 śāśvatadṛṣṭi.
곧 앞의 단멸견과 반대되는 상견(常見)을 말한다.
101)
범어로는 Nāgasena.
102)
범어로는 āyuṣmat.
구수(具壽)ㆍ명자(命者)ㆍ혜명(慧命)ㆍ정명(淨命)ㆍ장로(長老)ㆍ장자(長者)ㆍ존자(尊者)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103)
범어로는 ātma-dṛṣṭi.
상주불변의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를 말한다.
104)
범어로는 bhūtasvabhāva.
105)
범어로는 pratipakṣa.
106)
범어로는 vāyuvyādhi.
107)
범어로는 tejovyādhi.
108)
범어로는 śītavyādhi.
109)
범어로는 cetovyādhi.
110)
범어로는 aśubhāvanā.
5정심관(停心觀) 가운데 하나이다.
번뇌와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 육체의 부정한 특징을 관찰하는 관법이다.
예를 들어 버려진 시신이 차례로 썩어가서 이윽고 백골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기까지를 관찰한다.
그 관찰의 단계를 아홉으로 나눈 것이 9상(相)이며,
열로 나눈 것이 10상(相)이다.
111)
범어로는 maitrīcitta.
112)
범어로는 manasikāra.
작위(作爲)라고도 한다.
113)
범어로는 hetupratyayaparīkṣa.
연기관(緣起觀)을 말한다.
114)
범어로는 dvādaśahetupratyaya.
115)
범어로는 svabhāva.
고정된 속성을 지니고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본체 내지는 실체를 말한다.
116)
그런 사람은 다시 무상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로 일체법은 자성이 없이 공하기에 무상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117)
범어로는 saṃskṛta-dharma.
다양한 원인과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 일체를 가리킨다.
118)
진실한 성품은 범어로는bhūtasvabhāva이다.
119)
범어로는 karmavipāka.
행위의 결과가 익는 것을 말한다.
업이숙(業異熟)이라고하기도 한다.
120)
범어로는 dharmatā.
121)
범어로는 pratyekabuddha.
벽지불(辟支佛)이란 홀로 수행해 부처님이 되고자 하는 수행자로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무불(無佛)시대에 출현해 스승이나 도반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는 성자를 뜻한다(獨覺).
‘인연법 혹은 12연기를 관해 깨달음을 얻는 자’라는 의미에서 연각(緣覺)이라고도 한다.
122)
범어로는 arhat.
불교흥기 당시의 인도의 여러 종교에서 ‘수행완성자,’ ‘존경할 만한 수행자’를 의미하던 말이다.
원래 아라한(arhat)이란 어근 √arh(~할 가치가 있다,
~에 필적하다)에서 유래한 현재분사의 형태로 ‘공양드릴 만한 가치가 있는 자’를 의미한다.
여래 10호에서 보듯이 초기불교에서는 ‘부처님’을 가리키던 말이지만,
부파시대가 되면 그 의미는 협소해져 단순히 불제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계위를 가리키게 되었다.
응(應)ㆍ응공(應供)ㆍ불생(不生)ㆍ살적(殺賊) 등으로 의역하거나,
나한(羅漢)ㆍ아라가(阿羅訶) 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123)
범어로는 Arthavargīyasūtra.
실역(失譯).
124)
범어로는 amṛta.
불사의 맛 또는 경지를 의미한다.
125)
범어로는 pañca-tapas.
다섯 가지 가학적인 고행방식을 말한다.
126)
범어로는 Nirgrantha-putra.
‘속박을 여읜 자’라는 뜻으로 쟈이나(Jina)교의 실질적인 교주이다.
부처님과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로서 본명은 Vardha-māna이며,
득도 후에는 Mahāvīra,
혹은 Jina라 불렸다.
30세에 출가해 12년 동안 고행한 끝에 42세에 깨달음을 얻어 승리자(Jina)가 되었다.
72세에 입멸하기까지 인도 각지를 유행하며 교화했다고 한다.
127)
범어로는 śvetāmbara.
재가를 의미한다.
재속인은 주로 흰옷을 입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128)
범어로는 brāhmaṇa.
인도의 사성계급 중 최상위에 위치하는 성직자 계급이다.
129)
범어로는 Vātsīputra.
독자부(Vajiputtiyā)는 20부파 가운데 하나로 상좌부에서 분파되었다고 한다.
용수에 의하면 『사리불아비담론(舍利弗阿毘曇論)』은 독자부의 소의논서라 한다.
130)
범어로는 caturmahābhūta.
4대란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로 견고함을 본질로 하는 지대(地大,
pṛthivi-dhātu)ㆍ습기를 모으는 수대(水大,
ab- dhātu)ㆍ열을 본질로 하며 성숙작용을 지니는 화대(火大,
tejo-dhātu)ㆍ생장작용을 하는 풍대(風大,
vāyu-dhātu)를 말한다.
131)
범어로는 Abhidharma.
그 어의는 ‘법(dharma)에 관하여(abhi)’라는 의미로 아비달마(阿毘達磨)ㆍ비담(毘曇)이라 음역하거나 대법(對法)ㆍ무비법(無比法)ㆍ승법(勝法) 등으로 의역한다.
이 중 무비법ㆍ승법은 dharma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고 이에 대한 불제자들의 해석을 아비담이라고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 말은 불제자들의 아비담에 대한 이해를 묶은 책인 논서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기원전 2세기 부파불교시대부터 만들어진 논서들을 모아 논장(abhidharma- pitaka)이라 부른다.
여기에 원시불교시대에 성립된 경장과 율장을 더해 3장(tri-pitaka)이 된다.
스리랑카 상좌부와 북쪽의 설일체유부에서는 6족론에 『발지론』을 더해 7론을 논장으로 삼았는데,
뒤에 이 7논을 주석한 아비담이 다수 만들어진다.
이렇듯 본래 아비담의 취지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해명하려던 것이었는데,
시대가 지남에 새로운 교리체계로 발전되는 등 그 분석방식이 지나치게 세밀해지면서 오히려 번쇄함을 더하게 된다.
이는 결국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진의를 일탈하게 되며,
이를 계기로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132)
범어로는 dharmapiṭaka.
133)
범어로는 Sarvāstivādin.
유부(有部) 또는 설인부(說因部,
Hetuvādin)라고도 한다.
기원전 1세기 경 상좌부에서 분파되었는데,
부파불교 가운데 가장 세력이 컸다.
바수미뜨라[世友]의 설을 이 부파의 정통설로 간주하는데,
그에 의하면 3세에 실유하는 법이 항상 자기 본래의 성품을 유지하면서 세 가지 작용방식,
곧 작용이 아직 끝나지 않음ㆍ현재 작용하고 있음ㆍ이미 작용이 끝남 등에 의해 미래ㆍ현재ㆍ과거의 법이 구분된다고 한다.
또한 5온상속설(蘊相續說)을 주장하는데,
5온이 순간마다 상속하는 까닭에 인간이 존재한다고 한다.
134)
범어로는 pudgala.
135)
범어로는 dhātu.
136)
범어로는 āyatama.
137)
이 셋을 3과(科)라고도 한다.
138)
대승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공(空)을 무(無)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139)
저들 일체는 모두 스스로 애착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140)
범어로는 Mahāyānārthagāthā.
141)
범어로는 brahmacārin Dīrghanakha.
142)
범어로는 Seniya.
원래는 견계행자(犬戒行者)였으나 뒤에 불제자가 되었다.
승군(勝軍)이라고 의역하기도 한다.
143)
범어로는 Śreṇika Vatsagotrā.
왕사성 부근에 거주하던 외도로 개나 소처럼 행동하며 살았다고 한다.
144)
범어로는 Satyaka Nirgranthīputra.
바이샤리에 살던 쟈이나 외도로 나중에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145)
범어로는 Mākandika.
146)
범어로는 jambudvīpa.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대주 혹은 일곱 대륙 가운데 하나로 남쪽에 있기에 남섬부주(南贍部洲,
Dakṣiṇa-jambudvīpa)라고도 한다.
원래는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147)
범어로는 Śāriputrāvadānasūtra.
148)
범어로는 Mahākauṣṭhila.
여기에서는 장조범지와 동일한 인물이다.
구지라(俱祉羅)ㆍ구치라(俱絺羅)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149)
범어로는 Śārī.
150)
범어로는 dakṣiṇāpatha.
남인도를 가리킨다.
천축(天竺)이란 인도를 가리키던 옛 말로서 이는 인더스 강의 옛 이름인 Sindhuḥ의 음사어이거나 혹은 Sindhu의 미얀마어인 Thindhu,
Tindhu의 음역이라고도 한다.
151)
열여덟 가지 바라문 성전(śāstra)을 말하며,
18명처(明處)라고도 한다.
인도의 정통 종교와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학술서를 열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Ŗg-veda(讚頌)ㆍYajur-veda(歌頌)ㆍSāma-veda(祭祀)ㆍAtharva-veda(攘災)의 4베다,
Śīkṣā(음운론)ㆍVyākaraṇa(어법)ㆍKalpa(제식)ㆍJyotiṣa(천문)ㆍChandas(詩)ㆍNirukta(語源)의 6론,
Mimāṁsā(철학)ㆍNyāya(논리)ㆍItihāsaka(古事)ㆍSāṁkhya(數論)ㆍYoga(수습)ㆍDhanur-veda(弓杖)ㆍGandharva(음악)ㆍArtha-śāstra(의약)의 8론을 말한다.
152)
범어로는 Magadha.
고대 인도 왕국으로 이른바 16대국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의 인도 비하르주 갠지스강 남부 지역을 가리킨다.
고오타마 부처님이 활약하던 B.C.
6세기 중엽 불교를 보호한 왕인 빔비사라왕 때 강대해졌다.
B.C.
3자성년 알렉산더 대왕이 북서인도에 침입했을 때까지도 마가다왕국은 강대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후에 아소카는 남인도로 세력을 뻗고 대제국을 창설했는데,
그는 불교정신에 기반한 복지국가를 실현시켰다.
아소카왕의 사후 급격히 쇠락해 붕괴했다.
153)
범어로는 Rājagṛha.
154)
범어로는 Nāḷaka-grāma.
나란타사(那爛陀寺)가 세워졌던 곳이다.
155)
범어로는 Gautama.
156)
범어로는 sarvajñāna.
157)
범어로는 āgantukopakleśa.
우연히 만나게 된 번뇌를 말한다.
158)
범어로는 śramaṇa.
출가 수행자를 가리킨다.
159)
범어로는 Lakṣanālakṣaṇa-parivarta.
160)
범어로는 devatā.
161)
범어로는 lakṣaṇa.
162)
범어로는 sūnyatā.
163)
범어로는 avyākṛta.
아직 선(善)이나 악(惡)이 발현하지 않은 상태이다.
164)
범어로는 śaikṣadharma.
165)
범어로는 aśaikṣadharma.
166)
범어로는 naivāśaikṣadharma.
167)
범어로는 darśanaheya-dharma.
4제(諦)를 관찰해 번뇌를 끊는 단계를 말한다.
168)
범어로는 bhavanāheya-dharma.
견제단의 관법수행을 마친 뒤 다시 수습을 더해 사유의 의혹을 끊는 단계를 말한다.
169)
범어로는 aheya-dharma.
170)
범어로는 dharma.
어근 √dhṛ(떠받치다)에서 보듯이 dharma는 그 어떤 현상을 근본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경전 속에서 법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데,
대략 ‘가르침,’ ‘속성,’ ‘덕성,’ ‘특성,’ ‘사물,’ ‘의식의 대상’ 등을 의미한다.
171)
범어로는 catvāri smṛtyupasthānāni.
몸[身]ㆍ느낌[受]ㆍ마음[心]ㆍ법(法)에 염을 집중하는 관법이다.
4념주(念住)라고도 한다.
172)
인간에 몸에 있는 서른여섯 가지 부정한 것을 말한다.
173)
범어로는 각각 Vitarka,
Vicāra이다.
각과 관은 선정 중에 나타나는 일종의 사유작용으로 선정이 깊어감과 더불어 소멸된다.
대표적인 선정 수습법인 4선(禪) 가운데 초선과 제2선은 각관이 소멸해 가는 순서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각은 어떤 대상이 문득 떠오르고 다시 이를 분별하는 사유작용으로 일종의 ‘거친 사유’이다.
한편 관은 이렇게 떠오른 사유작용이 점점 미세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곧 정신집중이 깊어지고 안정됨에 따라 생각이 사라져 가는 와중에 해당된다.
이 두 사유작용이 완전히 그친 경지가 다름 아닌 제4선의 사념청정(捨念淸淨:대상에 무관심해진 채 다만 의식만이 맑게 존재하는 상태)이라 하는 것이다.
174)
범어로는 cataḥ satya.
깨닫지 못한 생존은 고(苦)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리[苦諦]ㆍ고의 원인을 밝히는 진리[集諦]ㆍ고가 멸한 경지에 관한 진리[滅諦]ㆍ고의 소멸로 이르는 길에 관한 진리[道諦]를 말한다.
175)
범어로는 rūpa.
물질 일반 혹은 유정의 몸을 말한다.
어근√rūp(모양을 취하다)에서 만들어진 말로 ‘형태나 색깔을 갖춘 것’을 의미한다.
한편 √rū(무너지다)에서 파생되었다고 보아 ‘무너지는 존재,’ ‘변화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176)
수(受,
vedanā)는 외부로부터 인상(印象)을 받아들이는 감수작용,
상(想,
saṃjñā)은 마음으로 생각을 일으키는 표상작용,
행(行,
saṃskāra)은 의지 혹은 잠재적 형성력,
식(識,
vijñāna)은 인식 혹은 식별작용을 말한다.
177)
범어로는 pañca-upādānaskandha.
178)
범어로는 pañca-gati.
179)
범어로는 evaṃ.
180)
범어로는 anāsrava.
181)
범어로는 indriya.
182)
범어로는 bala.
183)
범어로는 bodhimārga.
184)
범어로는 dhyāna.
185)
범어로는 kāṣāya.
가사의(袈裟衣)를 가리킨다.
186)
범어로는 amṛta.
187)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셋을 말한다.
욕계는 식욕과 성욕을 지닌 존재가 머무는 곳으로 위로는 6욕천,
중앙에는 인간,
아래로는 지옥이 있다.
색계는 식욕ㆍ성욕을 떠난 존재들이 머무는 물질로 이루어진 곳이며,
무색계는 마음만으로 이루어진 비물질의 세계이다.
188)
범어로는 bhadanta.
189)
범어로는 amṛta-dharma.
불사(不死)의 가르침을 말한다.
190)
범어로는 anāśraya.
191)
범어로는 Devadatta.
192)
범어로는 Kokālika,
Kokāliya.
제바달과 함께 석존의 교단을 떠났다고 한다.
193)
범어로는 naraka.
194)
범어로는 Kolopama-sūtra.
195)
범어로는 Arthavargiya-sūtra.
196)
범어로는 Mākandika.
197)
범어로는 ātman.
198)
범어로는 ātmīya.
199)
범어로는 arhat-bhikṣu.
나한은 아라한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200)
처음으로 무루지(無漏智)를 내어서 진리를 비춰보게 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한다.
견도(dṛṣṭimārga)란 3도(道) 가운데 하나이다.
201)
범어로는 Madhyamaka-śāstra.
「관행품(觀行品)」 제8게.
202)
범어로는 śrutam.
203)
범어로는 vijñāna.
식별작용을 가리킨다.
204)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을 말한다.
205)
5식의 대상인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말한다.
206)
근(根)ㆍ경(境)ㆍ식(識) 삼사를 말한다.
207)
범어로는 ekasmin.
208)
범어로는 saṁkhya.
209)
범어로는 skandha.
210)
범어로는 āyatana.
이른바 심ㆍ심작용의 의지처를 말한다.
211)
범어로는 dhātu.
212)
범어로는 devapratimā.
213)
범어로는 Indra.
214)
범어로는 śakra.
215)
범어로는 samaye.
216)
범어로는 kāla.
실시(實時)라 의역하기도 한다.
217)
범어로는 samaya.
가시(假時)라 의역하기도 한다.
218)
범어로는 Kāla-sūtra.
219)
범어로는 svalakṣaṇa.
220)
범어로는 Vinaya.
221)
범어로는 kālabhojana.
222)
범어로는 kālabhaiṣajya.
223)
범어로는 kālavastra.
224)
율(律)에서는 시식(時食)ㆍ시약(時藥)ㆍ시의(時衣)에 대해 가라(kāla)라고 하기 때문이다.
225)
범어로는 avadātavasana.
226)
곧,
evaṃ me śrutaṃ ekasmim samaye라는 다섯 어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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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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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prajñāpāramitā 구족하게는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라 음역.
지도(智度)ㆍ도피안(到彼岸)이라 번역. 6바라밀의 하나.
반야는 실상(實相)을 비춰보는 지혜로서, 나고 죽는 이 언덕을 건너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배나 뗏목과 같으므로 바라밀다라 한다.
답 후보
●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발원문(發願文)
방등(方等)
방생(傍生)
방편력(方便力)
방편토(方便土)
방할(棒喝)
대아(大我). ↔실아(實我)ㆍ가아(假我). 열반에 갖추어 있는 4덕(德)의 하나. 열반의 체가 변하지 않고 진실하며, 그 작용이 자유자재하므로 아(我)라 함.
답 후보
● 진아(眞我)
진이숙(眞異熟)
질다(質多)
차닉(車匿)
찬불승(讚佛乘)
참회오법(懺悔五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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ॐ मणि पद्मे 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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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054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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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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