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경록』
K1499
T2016
제5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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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록』
♣1499-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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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鏡錄卷第五十七 ...
K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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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록 제57권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
무릇 능가경(楞伽經)에서 밝힌 세 가지 식은 진식(眞識)과 현식(現識)과 분별사식(分別事識)인데,
이 중의 세 가지 식은 여덟의 식 안에서 어떻게 분별이 되는가.
【답】 진식은 본각(本覺)을 말하고,
현식은 제8식을 말하며,
나머지 일곱 가지를 싸잡아 분별사식이라고 한다.
비록 제7식은 바깥 대경을 반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제8식을 반연하기 때문에 일일이 분별한다고 한다.
진식은 본각을 말한다 함은 곧 제8식의 성품이다.
경에서 아홉의 식이라는 설명이 있는 것은
여덟의 식 이외에 9식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니,
이것이 곧 진식이다.
만일 성품의 거둠에서 본다면 역시 여덟의 식을 여의지 않나니,
성품이 온갖 처소에 두루하기 때문이다.
【문】 아뢰야식 등의 여덟 식만을 설명해도
세속 이치[俗諦]에서는 이미 드러났거늘,
어떻게 열한 가지의 식(識)을 해설하는가
또 마지막에는 하나의 진실한 성품만으로 돌아가기를 지시하면서,
또 어째서 자세함과 간략함 따위의 모든 식을 해설하는가.
【답】 모양[相]으로 인하여 성품[性]을 드러냄에는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니요,
끝[末]을 껴잡아 근본으로 돌아감에는 스스로 단유(端由)가 있는 것이다.
섭대승론(攝大乘論)에서 이르되,
“만일 결정코 온갖 법에는 식만이 있다고 밝히지 않는다면
진실한 성품은 나타날 수가 없고,
만일 열한 가지 식을 갖추어 설명하지 않는다면 세속 이치를 설명하되 다하지 아니하며,
만일 전 5식만을 해설한다면 세속 이치의 근본만을 얻고
세속 이치의 차별된 이치를 얻지 못하며,
만일 세속 이치를 해설하되 두루하지 아니하면 진식이 명료하지 못하고
진식이 명료하기 못하면 세속 이치를 버림에 다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열한 가지 식을 갖추어 해설하여 세속 이치를 통틀어 껴잡는다.
그러므로 세속에 성품 없음[無性]을 분명히 알면 곧 진공(眞空)을 요달하고,
진공은 비록 공하다 하더라도 파괴되지 않은 모양이요
세속의 존재[俗有]가 비록 존재한다 하더라도 항상 체성은 공허하다.
그러므로 인연을 따름[隨緣]은
있는 것이 아닌 참된 이치[眞諦]라
현상[事]과 다르지 않으면서 나타나고,
고요히 사라짐[寂滅]은 없는 것이 아닌 세속 이치라
항상 진리와 다르지 않으면서 성립된다”고 했다.
위에서 인용된 두 가지 식ㆍ세 가지 식ㆍ여덟 가지 식ㆍ아홉 가지 식ㆍ열한 가지 식 등은 한 마음의 종[一心宗]에서 벗어나지 아니한다.
그런 까닭에 능가경(楞伽經)에서 이르되,
“오갖 모든 제도[度]의 문은 부처 마음이 첫째가 된다”고 했으며,
또 이르러 “부처님이 말씀하되,
‘마음을 종(宗)으로 삼고,
문 없음[無門]을 법의 문을 삼는다’고 하셨다”고 했다.
말한 종이란 마음의 진실된 곳이니,
그 참 마음의 성품에서 보면 그 도리에 따라 체성[體]과 작용[用]의 두 문이 열린다.
곧 기신론(起信論)에서 세운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과 같다.
진여 이것은 체성이요 생멸 이것은 작용이다.
그러나 모든 식은 체성과 작용의 두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 체성의 마음이 바로 적멸(寂滅)의 마음이니,
곧 아홉 식의 체성이다.
둘째 작용의 마음이 바로 생멸(生滅)의 마음이니,
곧 전8식의 작용이다.
체성과 작용은 숨고 드러남의 두 마음임을 해설하나니,
작용이 곧 체성이기 때문에 생멸이 곧 생멸하지 않음이요,
체성이 곧 작용이기 때문에 생멸하지 않음이 곧 생멸이다.
생멸은 성품이 없는지라 작용이면서도 많지 않고,
적멸과 수연(隨緣)은 체성이면서도 하나가 아니다.
여럿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지라
체성과 작용은 언제나 명합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지라
체성과 작용은 언제나 명합하고,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지라 체성과 작용은 항상 나타나나니,
식의 성품 이것은 체성이요 식의 모양은 이것은 작용이다.
체성과 작용은 서로서로 이룩하되,
모두가 종경(宗鏡)으로 돌아간다.
유식소초(唯識疏鈔)에서 이르되,
“식의 성품과 식의 모양은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고,
심왕(心王)과 심소(心所)는 모두 식뿐[唯識]이라고 하는 것이니,
원성실성(圓成實性) 이것은 식의 성품이요,
의타기성(依他起性) 이것은 식의 모양이라고 모두가 마음을 여의지 않는다.
혹은 모든 무위법(無爲法)을 식의 성품이라 하고,
득(得) 등의 분위(分位)와 색(色) 등의 소변(所變)을 식의 모양이라 할 수도 있나니,
모두가 마음을 여의지 않는다.
식으로서의 상응함을 심소라 하고 식으로서의 제 성품을 심왕이라 하나니,
심왕이 가장 훌륭하므로 주인[主]이라고 일컫는다.
좇는 마음을 섭수하면 마음으로 돌아간다[歸心]고 하고,
득등(得等)의 분위와 색 등의 소변을 겸하여 껴잡아 견분(見分) 등에 돌아가면 모양을 없앤다[泯相]고 하나니,
성품과 모양은 서로가 여의지 않으므로 통틀어 식뿐이라고 한다”고 했다.
【문】 경계는 식을 여의지 않고 식은 경계를 여의지 않는 다만,
어찌하여 식뿐이라고만 하고 경계뿐[唯境]이라고는 이름하지 않는가.
【답】 경계는
마음의 분별로 말미암아 나고 마음으로 말미암아 나기 때문에 식뿐이라고 하지만,
식은 경계의 분별로 말미암아 나지 않고 경계로 말미암지 않기 때문에
경계뿐이라고는 이름 할 수 없다.
【문】 마음 이것은 경계라는 집에서는
증상연(增上緣)이라 경계는 마음을 빌려서 생기므로 식뿐이라고 하지만,
경계 이것은 마음이라는 집에서는 소연연(所緣緣)이라
마음은 경계를 빌려서 생기므로 경계뿐이라고 이름해야 한다.
【답】 마음을 여의고 경계에 집착하는 이것은 허망이라
허망한 마음을 막기 위하여 식 뿐이라고 하지만,
마음을 깨치면 나[我]가 없고 침몰한 데서 벗어나는지라
두 인연에 결부하면서 경계뿐이라고는 이름하지 않는다.
또 경계가 있고 경계가 없는 것은 모두가 자기 마음이요 그 마음에서 모두가 생긴다.
첫째,
만일 있는 경계에 반연하여 마음을 낸다면
이것이 곧 자기 식의 상분(相分)이니,
온갖 실재의 경계는 능연(能緣)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며
자기 식 외에는 실로 그런 경계가 없다.
둘째,
만일 없는 경계를 반연하여 마음에 생긴다면 마치 독산의식(獨散意識)과 같나니,
과거와 미래와 허공 꽃과 토끼 뿔 등의 온갖 없는 법을 반연할 때에도
마음은 역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백법초(百法鈔)에서 이르되,
“예전에는 이르기를
‘반연에는 생각[慮]을 내지 않음이 없되,
바르지 않다’고 했다”고 한 것과 같다.
【문】 어째서 바르지 않은가.
【답】 마치 허공 꽃과 토끼 뿔과 같은 온갖 없는 법을 반연할 때도
마음은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째서 반연에는 생각을 내지 않음이 없다고 하느냐 하면,
그러므로 알라.
독영경(獨影境)에서 속마음의 상분(相分)이 있으면
이 상분을 견분(見分)에서 볼 때는 역시 소연연(所緣緣)의 이치가 이루어지지만,
만일 속마음의 상분이 없다면 그 마음은 곧 생기지 않는다.
당(唐)의 삼장(藏)이 이르되,
“경계는 진실이 아닌데도 생각이 일어나고 증험하며 앎은 식이 있어서일 뿐이다”고 했다.
비록 제 나름으로 분별한 성질의 것이거나 비록 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속마음의 상분은 마음을 끌어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내 구절로 분별된다.
1은 그림자[影]는 없고 바탕[質]이 있으면 그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2는 그림자는 있고 바탕이 없으면 그 마음은 생기게 된다.
3은 그림자와 바탕이 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는 그림자와 바탕이 모두 없으면 마음 또한 생기게 되나니,
곧 근본지(根本智)로 진여를 증득하는 그것이다.
유식론(唯識論)에서 이르되,
경계가 있으면 마음을 끌어낸다.
만일 진리로 경계를 삼으면 지혜의 마음을 끌어내고,
만일 세속 이치로 경계를 삼으면 식의 마음[識心]을 끌어 낸다.
그렇다면 아직 마음이 없는 경계는 있지 못하며 일찍이 경계가 없는 마음은 없다”고 했다.
【문】 여덟의 식 가운데서 인위 (因位)에서 보아 초지(初地) 이후에는 몇 가지 식이 무루(無漏)를 이루는가.
【답】 고덕(古德)이 해석하며 이르되,
“6ㆍ7의 두 식만이 무루를 이룬다.
6은 곧 제6식으로서 초지 문 안의 22의 심소는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이루며 7은 곧 제7식으로서 22의 심소는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이룬다.
이 두 지혜와 상응하면 다 함께 장애의 물듦[障染]을 여의기 때문에 무루라고 한다.
만일 5ㆍ8 등의 식은 결정코 이것은 유루(有漏)이다”고 했다.
【문】 어째서 제6식이 무루를 이루게 되는가.
【답】 초지에서 무루에 들 때에는 2장애를 분별하는 종자(種子)와 현행(現行)의 습기를 끊기 때문에 무루이다.
【문】 제6식은 미혹을 끊을 수 있어서 미혹을 끊는지라 무루를 이루지만 제7식은 혹을 끊을 수 없거늘 무엇 때문에 역시 무루를 이루는가.
【답】 제7식 이것은 제6식의 소의(所依)의 감관이다.
제6식은 바로 능의(能依)의 식이니,
능의의 식인지라 무루를 이룬다.
제7의 소의 역시 무루를 이루나니,
제6식이 생공(生空)ㆍ법공(法空)의 두 공을 관할 때에 제7식 안에서는 다 함께 아집(我執)ㆍ법집(法執)을 내되 현행(現行)이 조복되면서 일어나지 않게 하기 때문에 제7식은 무루를 이룬다.
【문】 무엇 때문에 제8식 이것이 유루인가.
【답】 제8식 이것은 총체적인 업보[總報]의 주인으로서,
종자를 지니며 훈습을 받는다.
만일 인위 중에서 무루를 이룬다면 곧 온갖 유루의 잡염(雜染) 종자는 모두가 흩어져 소멸되기 때문에 이내 성불하게 되거늘,
어째서 다시금 2겁(劫) 동안을 수행할 것인가.
【문】 앞의 다섯 식은 이미 총체적인 업보의 주인이 아니거늘,
어째서 무루를 이루지 않는가.
【답】 앞의 다섯ㆍ감관은 바로 제8식의 친(親)한 상분이다.
능변(能變)의 제8식이 벌써 유루라 소변(所變)의 다섯 감관 또한 유루이다.
다섯의 감관 이것은 소의로서 오히려 유루인지라 능의인 다섯의 식 또한 유루를 이룬다.
위에서와 같이 경론에 의거하여 모든 식을 분별하였으나,
열리고 닫음이 같지 않되 모두 체성[體]과 작용[用]에 의한다.
체성에서 보면 차별이 없으면서 차별되고 전부 작용을 하는 체성이라 작용을 장애하지 않기 때문이요,
작용에서 보면 차별되면서도 차별이 없고 전부 체성을 하는 작용이라 체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온 바다가 물결을 이루되 바다를 잃지 않고 온 물결이 바다를 이루되 물결을 장애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어야 식의 성품을 궁구하고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아야 마음의 근원을 궁구할 수 있다.
마치 고덕(古德)이 이르되,
“모든 식의 문에서 보면,
비록 하나거나 여럿임이 정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두 이는 체성과 작용의 연기(緣起)요 근본과 끝이 서로 섭수한다.
근본이란 아홉의 식이요,
끝이란 다섯의 식이다.
근본으로부터 끝을 향하여 고요하면서도 항상 작용하고,
끝으로부터 근본을 향하여 작용하면서도 항상 고요하다.
고요하면서도 항상 작용하기 때문에 조용하면서 맺히지 않고,
작용하면서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동요하면서 어지럽지 않다.
조용하면서도 맺히지 않기 때문에 전혀 이것은 연기요,
동요하면서도 어지럽지 않기 때문에 연기 이것은 진여이다.
진여 이것이 연기이기 때문에 열반마다 생사(生死)하지 않음이 없나니,
곧 8과 9가 6과 7이 된다.
연기는 진여이기 때문에 생사마다 열반하지 않음이 없나니,
곧 6과 7이 8과 9가 된다.
생사마다 열반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법계(法界) 모두가 생사요,
열반마다 생사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법계 모두가 열반이다.
법계 모두가 열반이기 때문에 생사는 뒤섞여 어지럽지 않고,
법계 모두가 생사이기 때문에 열반은 고요한 것이 아니다.
생사는 뒤섞여 어지러운 것이 아닌지라 중생이 곧 부처요,
열반은 적정한 것이 아닌지라 부처가 곧 중생이다.
그러므로 법계가 어기기 때문에 열반 이것이 생사라고 말하나니 곧 진리는 망정[情]에 따라 작용하며,
법계가 순종하기 때문에 생사 이것이 열반이라고 말하나니,
곧 망정은 진리에 따라 작용한다.
이렇게 분명할 때에,
망정은 진리 밖의 것이 아니고 진리는 망정 밖의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망정은 진리 밖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實]에 즉(卽)하여 6과 7이 8과 9로 된다고 설명하는 까닭이니 진실이란 체성이며,
진리는 망정 밖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짓[假]에 즉하여 8과 9가 6과 7로 된다고 설명하는 까닭이니 거짓이란 작용이다.
거짓과 진실이 걸림이 없기 때문에 인(人)과 법(法)이 모두 공하고,
체성과 작용이 걸림이 없기 때문에 공(空)과 무(無)가 공할 만하다.
인과 법이 모두 공하기 때문에 절대(絶待)임을 말하고,
공과 무가 가히 공하기 때문에 묘용(妙用)임을 말하나.
이렇게 설명한다면 역시 이는 망정을 배제하는 말이다.
그 지극한 진실을 논한다면 이름과 모양[名相]으로써 얻을 수 없으며,
지극함이란 두 가지 진리로써 밝힐 수가 없다.
이름과 모양으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말과 형상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두 가지의 진리로 밝힐 수 없기 때문에 있다 없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르되,
‘지극한 진리는 말이 없고 현인ㆍ성인은 잠잠하며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도 소멸한다’고 했나니,
바로 신령함[神]으로써 알 수 있고 마음으로써는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문】 깨달음의 바다[覺海]는 근원이 맑고 하나의 마음은 고요하거늘,
어떻게 맨 처음에 모든 식의 물결이 일어나는가.
【답】 비록 “식의 물결이 일어나는 곳은 좇아옴도 없고[無從] 비롯됨도 없고[無始] 생김도 없다[無生]”고 말한다 하더라도 식의 성품을 궁구할 수 있으며,
다만 모르는 결에 갑자기 생각이 생김은 마치 맑은 물결 위에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는 것과 같을 뿐이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되 용솟음치는 큰 물결은 하늘까지 넘치고,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로되 뒤바뀐 미친 마음은 경계에 두루하다.
기신론(起信論)에서 이르되,
“참된 법이 하나임을 모르기 때문에 마음이 서로 응하지 못하여 홀연히 생각이 동요하는 것을 무명이라 한다”고 했다.
이는 바로 근본무명은 가장 미세함을 나타낸 것으로,
아직 능(能)ㆍ소(所)와 심왕ㆍ심소의 차별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응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니,
심왕과 심소가 같이 상응한 것이 아니다.
이 무명만이 물듦의 법의 근원이 되고 가장 미세한 이것이요,
다시는 물듦의 법으로서 이의 근본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에 ‘홀연히 생각이 일어난다’고 한다.
무명이기 전에는 따로 법이 있어서 비롯되고 모이게 되는 근본이 없기 때문에 ‘비롯됨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홀연히’라는 뜻으로서,
시절에 결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요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므로 시초가 없는 것이다.
또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에서 이르되,
“ ‘여실(如實)히 진여의 법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不覺)의 마음이 일어난다’ 함은,
이는 곧 근본불각(根本不覺)이 일어나는 인연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근본불각은 무슨 인연 때문에 일어나게 되면서 존재하는가 하면,
인연이 여(如)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게 되면서 존재한다.
어떠한 법 중에서 여하지 않느냐 하면,
세 가지 법안에서 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무슨 뜻이 있느냐 하면,
여긴다는 뜻이 있다.
무엇이 세 가지 법이냐 하면,
첫째는 실지(實知)의 한 법이요,
둘째는 진여(眞如)의 한 법이요,
셋째는 일심(一心)의 한 법이니,
이것을 세 가지 법이라 한다.
실지의 법이라 함은 온갖 깨달음[一切覺]을 말하는 것으로 곧 능히 통달하는 지혜[能達智]요,
진여의 법이라 함은 평등한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곧 통달할 경계[所達境]며,
일심의 법이라 함은 일법계(一法界)를 말하는 것으로 곧 의지할 체성[所依體]이니,
이 세 가지 법에서 모두 어기기 때문에 무명이 원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여실히 진여의 법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의 마음이 일어난다’고 했나니,
저 세 가지 법은 모두 1을 지키는 가운데서 끝내 여의지 않기 때문에 통틀어 1이라고 한다”고 했다.
또 논에서 이르되,
“무명이 훈습된 힘으로 불각의 마음이 움직여서 맨 처음에 그 업식(業識)을 이루고,
이 업식으로 인하여 다시 전식(轉識) 등이 생긴다”고 했다.
논의 해석에서 이르되,
“맨 처음의 불각을 제1의 업상(業相)이라 일컫나니,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에 차별이 없고 심왕과 생각하는 법이 분석될 수 없으면서 오직 자세히 움직이고 숨어서 흐른다는 이치가 있을 뿐이므로 업(業)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움직이고 흐르는 것은 불각으로 말미암을 뿐이다.
제2의 전상(轉相)은 업상의 생각으로 소의를 삼기 때문에,
회전하여 능연(能緣)을 조작하고 운전하면서 요별하는 모양을 이룬다.
제3의 현상은 요별하면서 이전하는 것으로 소의를 삼는지라 쓸모없는 이론의 경계가 완전하게 앞에 나타나고,
소연(所緣)의 상분이 원만하게 퍼지므로 이에 의하여 견분(見分)은 저 상분을 나타낸다.
또 동요의 모양[動相]이란 동요는 업식이 되고 그 이치는 극히 미세하다.
본각의 마음은 무명의 바람으로 인하여 온 체성이 미약하게 움직이고 미약하게 움직이는 모양은 아직은 바깥으로 반연하지는 못함은 곧 불각 때문이니,
본각으로부터 불각의 생김이 있는 것이 곧 업상이 된다.
마치 바다의 미약한 물결이 고요함에서부터 미약하게 움직였으나 아직은 이로부터 본래 처소로 이전하지 못한 것과 같다.
전상이라 함은 무명의 힘을 빌려서 업상을 도와 회전하여 능연을 이루는 것이니,
능견(能見)의 작용이 있으면서 외면(外面)을 향하여 일어남을 곧 전상이라 한다.
비록 전상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은 다섯 대경의 반연할 경계 모양을 나타내지 못함은,
마치 바다의 물결이 바람의 힘을 빌려서 미약하게 움직이는 것을 돕고 이로부터 물결을 치며 옮아가면서 일어나는 것과 같다.
현상이라 함은 전상으로부터 이루어진 현상이니,
바야흐로 물질의 대경인 산ㆍ하천ㆍ대지 등의 기세간(器世間)이 있게 된다.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에서 이르되,
“그때,
세존이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먼저 다시 무슨 모양으로 머무르며 관찰합니까’고 물었지만,
보살마하살은 ‘허깨비 몸인지라 허깨비로 보면 바로 평등함에 머물러서 그[彼]와 나[我]라는 것이 없다’고 이렇게 관찰해야 하나니,
이렇게 관찰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이롭게 하느니라.
그러나 모든 유정들은 오랜 옛 겁(劫)으로부터 처음 찰나식(刹那識)은 목석(木石)과는 달랐나니,
태어나면서부터 염오(染汚)와 청정(淸淨)을 얻어서 각각 스스로 한량없고 수 없는 염오와 청정한 식의 근본이 되느니라.
처음 찰나의 말로는 할 수 없는 겁으로부터 금강(金剛)의 마지막 한 찰나에 이르기까지 말로 할 수 없고 말로는 할 수 없는 식(識)이 있으면서 모든 유정들의 색법(色法)ㆍ심법(心法)의 두 법을 내었나니,
색은 색온(色蘊)이라 하고 심은 4온(蘊)이라 하지만 모두가 쌓이고 모인 성질로서 진실을 숨기고 가리느니라”고 하였다.
옛 해석에서 이르되,
“처음 찰나식은 목석과는 다르다 함은,
어떤 이는 말하기를 ‘처음의 식은 어느 갈래[趣]를 따라 생위(生位)를 계속하는 동안에 맨 처음 찰나의 제8식이니,
식에는 연려(緣慮)가 있으므로 목석과는 다르다’고 한다.
어떤 이는 설명하기를 ‘처음 식은 마치 능가경(楞伽經)에서 말한 바와 같아서,
모든 식에는 세 가지 모양이 있나니,
전상(轉相)ㆍ업상(業相)ㆍ진상(眞相)이다.
진상이라 함은 본각(本覺)의 참 마음으로서 허망한 인연이 의뢰하지 않으므로 스스로의 참 모양이라고 한다.
업상이라 함은 근본무명이 일어나 움직여 극히 미세한 업식이 되기 때문이며,
전상이라 함은 이는 능견(能見)의 모양으로서 앞의 업상에 의하여 회전하며 능연(能緣)을 이루는 것이니 비록 능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소연(所緣)인 경계를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상이란 곧 경계의 모양으로서 앞의 전상에 의하여 경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고 한다”고 했다.
또 이르되 “자기 마음으로,
몸과 몸의 안립(安立)을 나타내는 수용한 경계를 단번에 분별하여 안다”고 하였나니,
다음과 같은 즉 근신(根身)과 바깥 기세간의 색깔 등의 다섯 대경은 언제나 저절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3세(細)인 곧 본식(本識)이기 때문이요,
맨 처음의 업식(業識)이 시초가 됨은 일어나는 문[生起門]에 의하여 차례를 삼기 때문이다.
또 오랜 겁으로부터 온지라 때에 시초가 없고 과거와 미래에도 체성이 없음은 마음만으로 허망한 생각을 훈습하여 그것을 시초로 삼아 진리를 어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 조용함에서부터 동요를 일으킴을 업(業)이라 하고,
안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아감을 옮아감[轉]이라 한다.
진여의 성품은 더하거나 줄어들 수 없으므로 참 모양이라 하고,
또한 진식(眞識)이라고 하나니,
이 진식은 곧 업(業)ㆍ전(轉)ㆍ현(現) 등의 세 성품이요 곧 신령하게 아는 성품으로서 허공과는 같지 않으므로 공통하게 식이라 한다.
또한 스스로의 모양[自相]이라 함은 다른 것을 의뢰하여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지혜 모양[智相]이라고도 함은 깨달아 비추는 성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르되,
“본각인 참 마음은 허망한 인연을 의뢰하지 않으며,
참 마음의 체성 이것이 곧 본각으로서 움직여 옮는 모양이 아니니,
이것은 깨달음의 성품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 해석에서 이르되,
“처음 찰나식은 목석과는 다르다고 함은,
한 생각의 식은 깨닫는 것과 느낌이 있기 때문에 목석과는 다른 것이니,
곧 앞생각 가운데에 끝의 마음이 있음을 나타낸다”고 했다.
보게 되는 붉고 흰 두 더러운 것도 바깥 기세간의 목석의 종류와 같은 것이나,
이 식이 생길 때에는 그것에 의해 몸을 삼기 때문에 목석과는 다르다.
【문】 먼 겁(劫)에서도 시초가 없다면 어찌하여 처음 식[初識]이라고 하는가.
【답】 과거와 미래는 체성이 없고 찰나마다 훈습은 현재에 속할 뿐이며,
현재에서 바로 허망한 생각을 일으킬 때에 허망한 생각은 진리를 어기므로 처음 식이라 하는 것이요,
이것이 과거에 식이 시작하고 일어남이 있어서 처음 식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알라.
가로로는 온갖 곳을 싸잡고 세로로는 한량없는 때를 꿰뚫는 것이니,
모두가 이는 지금 현재 의 한 마음이요 다시는 따로 이치가 없다.
그런 까닭에 법화경(法華經)에서 이르되 “나는 오랜 옛적을 보는 것이 마치 오늘날과 같다”고 했나니,
그러면 삼세의 망정이 소멸되어 때[時]가 없는 바른 길에 계합하면 하나의 참된 도(道)가 나타나서 유식(唯識)의 원만한 종(宗)을 증득하리라.
【문】 경에서 밝힌 대로 “처음 찰나식은 목석과는 다른지라 태어나면서 염오와 청정을 얻어서 각각 스스로 한량없고 수없는 염오와 청정한 식의 근본이 되고,
처음 찰나의 불가설(不可說)의 겁으로부터 금강의 마지막 한 찰나에 이르기까지 불가설 불가설의 식이 있으면서 모든 유정들의 색법ㆍ심법의 두 법을 내었다”면,
염오도 있고 청정도 있으며 생김도 있고 소멸도 있으리니,
이 식을 생멸문(生滅門) 안에 결부하면 몇 가지의 생멸이 있는가.
【답】 참된 문[眞門]은 성품을 따라 묘하게 생멸 없음[無生]에 합하고,
세간 모양[世相]은 인연을 따라서 분류되고 생기고 다하는 것과 같다.
능가경(楞伽經)에서 이르되,
“대혜(大慧)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식에는 몇 가지의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함[生住滅]이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식에는 두 가지의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함이 있어서 사량(思量)으로는 알 바가 아니니,
유주(流注)가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함과 상(相)이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하느니라’ ”고 하였다.
옛 해석에서 이르되,
“유주라 함은 제8식만을 지목할 뿐으로서,
세 모양[三相]이 미세하고 은밀하여 종자와 현행이 끊이지 아니함을 유루라 한다.
무명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처음에 업식(業識)을 일으키기 때문에 생긴다[生]고 말하고,
오랜 겁 동안 서로 잇기 때문에 머무른다[住]고 말하며,
금강정(金剛定)에 이르러 한 생각을 평등하게 깨치면 근본의 무명이 끊어지므로 유주가 소멸한다[滅]고 한다.
상이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한다 함은,
그 밖의 일곱 식이 마음과 경계에서 거칠게 나타나기 때문에 상(相)이라고 하며,
비록 7이 8을 반연하고 6에서 보면 미세하기는 하나 4혹(惑)이 갖추어져 있는지라 역시 “거칠다[麤]”고 말한다.
때문에 그 현식(現識)에 의하여 자기 종자와 모든 경계의 인연이 합하여 7을 내므로 상이 생긴다고 하고,
오랜 겁 동안 훈습한지라 상이 머무른다고 하며,
끝으로부터 근본을 향하여 점차로 조복하여 끊으면서 7의 자리까지 가득 차므로 상이 소멸한다고 말한다.
앞의 생김과 소멸에 의하여 미혹과 깨침의 의지[依]를 세우고,
뒤의 생김과 소멸에 의하여 염오와 청정의 의지를 삼으며,
뒤는 짧고 앞은 길므로 일이 두 가지로 구별되나니,
바로 이것이 유주가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함과 상이 생기고 머무르고 소멸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바닷물이 바람을 만나면 변하여 파도의 모양을 이루듯이 마음의 물이 경계를 만나면 은밀히 유주(流住)의 생김을 이룬다.
앞의 물결이 뒤의 물결을 이끌어 큰 바다를 치면서 끊어지지 않듯이 새로운 생각이 옛 생각에 잇달아 마음 바다에 뛰놀면서 언제나 일어나나니,
이로부터 맑은 근원이 어지럽게 되고 깨달음의 바다를 혼미하게 한다.
그러므로 알라.
진실로 인하여 허망을 일으켜 불각(不覺) 무명의 동요함은,
마치 물로부터 물결을 이루되 전혀 이것은 바깥의 바람으로 치게 됨과 같으며 안팎의 화합된 인연은 싹을 내어 마침내는 능견(能見)의 마음을 이루고 곧 볼 바의 경계를 나타낸다.
비춤[照]으로 인하여 지혜 거울이 갑자기 생기고 지혜로 인하여 곱거나 미움을 분별하나니,
이렇게 취하고 버리는 것으로부터 망정은 사랑과 미움으로 나뉘며 마음은 변하여 다섯의 대경에서 집착함이 굳게 되어 6정(情)의 감관을 향하여 계속되면서 끊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애욕의 강 밑바닥에 빠지면서도 조심함이 없고 오욕의 불길 속에 태우면서도 두려워함이 없으며,
마음에 달게 여겨 검은 성[黑城]의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생명이 없어지기 까지 꿈집[夢宅]의 덧없는 영화를 탐내면서 깨나기도 어렵고 깨치기도 어렵다.
만일 맨 처음의 한 생각을 환히 알면 생김과 소멸이 어디서부터 오겠는가.
생멸 없음에 단번에 들어가 본래의 참된 깨달음에 복귀하리라.
그러면,
대경대경마다 고요히 사라져서 6취(趣)의 무리가 얽매기 어렵고,
생각생각마다 오묘하여져서 9결(結)의 그물이 훔쳐 매지 못하리니,
마치 큰 바다에 바람이 쉬면 잔 물결조차도 일지 않는 것과 같다.
동요의 모양이 본래 공함을 관찰하고 인연으로 생김이 체성 없는 줄로 보면,
깊은 근원의 축축한 성질이 잔잔해지고 맑아져서 삼라만상이 명백하게 드러나리라.
그런 까닭에 현겁정의경(賢劫定意經)에서 이르되,
“온갖 것의 공함을 분명히 아는 것을 한 마음[一心]이라고 한다”고 했다.
【문】 종경(宗鏡)으로 현묘함을 찾고 있거늘,
어떻게 식을 해설하는가.
【답】 다만 식의 성품은 오묘해서 본말(本末)을 궁구하기 어려울 뿐이요,
부처님만이 능히 알 수 있고 아래 지위에서는 알지 못한다.
자취도 없고 형상도 없되 만유(萬有)의 근본이 되고,
깊을 뿐이요 오묘할 뿐이로되 뭇 성인의 근원이 된다.
마치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의 오도심식품(五道尋識品)에서 이르되,
“그때,
세존은 현식(現識)의 나아갈 바,
도식(道識)ㆍ속식(俗識)ㆍ유위식(有爲識)ㆍ무위식(無爲識)ㆍ유루식(有漏識)ㆍ무루식(無漏識)ㆍ화식(華識)ㆍ과식(果識)ㆍ보식(報識)ㆍ무보식(無報識)ㆍ천식(天識)ㆍ용식(龍識)과 귀신(鬼神)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迦)ㆍ인비인(人非人)의 식이며,
위로는 28천(天)까지의 식과 아래로는 무구지옥(無救地獄)까지의 식을 보이려 하시면서,
그 때 세존은 이내 태(胎) 안에서 구쇄해골(句鎖骸骨)을 나타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가득 채우고는 아기타(阿祈陀)에게 말씀하셨다.
‘이 해골의 식을 분별할 수 있겠느냐.’ 대답하였다.
‘분별하지 못하겠나이다.
왜냐하면 아직은 분명히 통달하지 못하였사오며 수행의 힘은 아직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미륵(彌勒)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하늘 안에서 아직 신통을 얻지 못했는가.’ 미륵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성취한 것도 있고 성취 못한 것도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구쇄해골을 자세히 살피어 모든 대중으로 하여금 나아갈 바를 알게 하며 분별하고 결단하여 의심으로 걸림이 없게 하라.’
그때,
미륵보살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금강칠보신장(金剛七寶神杖)을 집고 구쇄해골을 들고는 그 해골의 음성을 들으며 이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사람은 죽으면 성냄의 번뇌가 많은지라 식(識)은 용(龍) 안에 떨어지겠으며,
(다시 다른 뼈를 휘저으면서) 이 사람의 전생 몸은 10적(跡)의 행을 갖춘지라 천상에 가 나겠으며,
(다시 다른 뼈를 휘저으면서) 이 사람은 저 생에 계율을 깨뜨렸는지라 지옥에 가 나겠나이다’ 하고,
이와 같이 뼈를 휘저어서 유루ㆍ무루와 유위ㆍ무위며 28천(天)으로부터 아래로 무구지옥에 이르기 까지 나아갈 선악의 과보와 백흑의 행보[白黑行報]를 알았다.
하나의 모자람이 없는 전신사리(全身舍利)가 있었는데,
그때에 미륵은 지팡이로 휘저으면서 이 식에 대해 추구하고 찾았으나 마침내 그 처소를 알지 못하자,
이렇게 세 번을 휘젓고는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사람의 신식(神識)은 마침내 알지 못하겠나이다.
장차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은 아니옵니까.’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처의 지위를 계승하여 장차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위없는 도를 이룰 터인데,
어째서 사리를 휘저어 보면서도 식의 처소를 모르는가.’ 미륵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은 불가사의라 한량없사오며,
우리들의 경계로써는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옵니다.
이제 의심이 있사오니,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해설하여 주소서,
다섯 갈래[五道]에 대한 신식은 그의 선악에 나아갈 바를 모두 다 알 수 없어서 감히 의심이 있지 않사오나,
여래의 처소에서 이제 이 모자람이 없는 사리에 대해 이 식을 말씀하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알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 사리의 유포(流布)는 그대들의 경계로써는 분별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사리는 바로 나의 사리라 어찌 여래의 신식을 찾고 궁구할 수 있겠는가.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분별하리라.
여래의 상ㆍ중ㆍ하의 식과 살바야(薩婆若)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같지 않느니라.
초주(初住)의 보살은 아직 근기와 덕의 힘이 서지 못한다.
비록 신통을 얻은 2주(住) 보살이라 하더라도 천안(天眼)으로써 자세히 살펴야 나아갈 바의 퇴지(退地)와 불퇴지(不退地)를 알며,
또한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것을 보거나 혹은 또 동방의 수없는 부처 세계에 나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계율을 받들며 걸림이 없음을 보기도 하며,
또한 저 수기(授記)를 받은 겁수의 1겁 2겁으로부터 백천억 겁까지를 아느니라.
혹은 어떤 보살로서 3주(住)의 자리면 사리를 보고는 유여열반(有餘涅槃)과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나아갈 바를 알기도 하나 4주(住)의 해할 바의 식과 나아갈 바는 보지 못하며,
4주 보살은 1주ㆍ2주ㆍ3주의 사리 법을 보기는 하나 다시 5주의 사리의 식법(識法)과 나아갈 바는 보지 못하며,
내지 부처님만이 부처의 신식의 생각한 바를 아느니라’고 하셨다.
단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읊으셨다.
신식은 형상이 없는 법이라
다섯 가지 요소[五大]로 집을 삼으며
선과 악의 행을 분별하게 되고
가고 오고하면서 참과 거짓을 구별한다.
식이 착한 길[善道]의 것임을 보이면
영원히 안온한 길에 이르며
식은 제6을 왕으로 삼고
그 밖의 요소[大]는 가장 같지 않다.
【문】 마음[心]과 식[識]이란 두 가지 이름인데,
어느 것이 훌륭하고 열등한가.
【답】 마음은 여래장(如來藏)이요,
마음은 진여(眞女)의 성품이로되,
식은 마음에서 나는 바라 하나의 법도 참 마음의 성품으로부터 생기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수능엄경(首楞嚴經)에서 이르되 “모든 법이 생기게 됨은 마음만으로 나타난 바다”고 했나니,
마음 이것은 근본이라 훌륭하지만 식 이것은 의지[依]라 곧 열등하다.
마치 원각소(圓覺疏)에서 이르되,
“생김의 법은 본래가 없고 온갖 것은 유식(唯識)이니,
식은 꼭두각시요 꿈과 같으며 이는 하나의 마음일 뿐이다”고 함과 같다.
【문】 만일 식에 그 체성이 없다면,
어떻게 이 마음이 얻어지는가.
【답】 식의 근본이 바로 마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에는 체성이 없으며 이 한 마음이라면,
어떻게 경계는 식으로부터 생기고 경계를 포섭하여 식으로 돌아가는 것과 다르겠는가.
만일 공통으로 논한다면 본래 이것은 하나의 마음이요 마음이 변하여 식이 되며 식은 모든 경계를 변하는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경계를 포섭하여 식으로 돌아가고 식을 포섭하여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 앞에서 이미 식의 모양을 자세히 설명하였지만,
어떤 것이 지혜[智]인가.
마치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이르되,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식이라 말한 것은 눈으로 알 바의 빛깔과 귀로 알 바의 소리와 코로 알 바의 향기와 혀로 알 바의 맛과 몸으로 알 바의 접촉과 뜻으로 알 바의 법(法)을 요별하는 것이니,
이것을 식이라 하느니라.
지혜라 말한 것은,
안에서 고요하고 밖에서 행하지 아니함은 오직 지혜에 의지할 뿐이며 하나의 법에서 분별과 갖가지 분별을 내지 않음을 바로 지혜라고 하느니라.
또 사리불(舍利弗)아,
경계로부터 생김을 바로 식이라 하고 작의(作意)로부터 생김을 바로 식이라 하며 분별로부터 생김을 바로 식이라 하지만,
취함도 없고 붙잡음도 없고 반연할 바[所緣]도 없고 요별할 바도 없고 분별이 없는 것을 바로 지혜라 하느니라.
또 사리불아,
식이라고 말한 것은 유위(有爲)의 법에 머무른다.
왜냐하면,
무위(無爲)의 법 중에서 식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니,
만일 무위의 법을 요달하면 이것을 지혜라고 하느니라”고 함과 같다.
또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의 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요하지 않은 것 이것이 생각[想]이요
고요히 사라진 것 이것이 지혜[智]이니
만일 생각의 제 성품을 알면
문득 모든 생각에서 떠난다.
만일 있는 생각[有想]을 버리게 되면
이야말로 도리어 있는 생각이며
그는 생각의 희론(戱論)을 행한지라
이 사람은 생각을 여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마음을 짓되
이 생각을 누가 일으키며
이 생각을 누가 증득할 것이며
누가 이 생각을 소멸할 수 있을까.
생각의 법을 일으키는 것
모든 부처님도 얻을 수 없나니
곧 이 곳에서 있게 된다면
나[我]도 없고 취하거나 집착함을 여윈다.
만일 그 마음 생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생각을 일으키게 되겠는가
만일 마음이 해탈하게 되면
그는 곧 말미암아 일으킴이 없다.
만일 해탈을 증득하게 되면
마음은 곧 불가사의하며
마음이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불가사의함을 성취하게 된다.
나는 본래부터 생각하기를
마음자리에 편안히 머무르고 나면
온갖 마음을 버리오리니
원컨대 불가사의 이룩하여지이다.
희고 깨끗한 법[白淨法]의 과보로
함이 없음[無爲]을 보게 된다면
한 생각 동안에 모든 중생의
온갖 생각들을 분명히 알게 된다.
중생 이것이 곧 마음이요
마음 이것이 곧 여래이니
모든 부처의 불가사의로
이 마음을 분명히 알게 되느니라.
【문】 심왕(心王)의 미묘한 뜻과 여덟 식의 참 근원을 바른 도리로 뚜렷하게 밝히면서 성인의 교법에 의거하여 정량(定量)을 삼았고 본체[理]와 현상[事]을 나란히 들은지라 이미 조그마한 의심조차 끊어졌지만,
심소(心所)의 문은 어떻게 열면서 뛸 것인가.
【답】 여기서는 제2의 심소유법(心所有法)을 말하겠다.
이 심소는 6위(位)로서 모두 51의 법이 있다.
변행(遍行)에 5종이 있고,
별경(別境)에 5종이 있으며,
선(善)에는 11종이 있고,
근본번뇌에는 6종이 있으며,
수번뇌(隨煩惱)에는 10종이 있고,
부정(不定)에는 4종이 있다.
변행이라 함은 네 가지 온갖 것[四一切]에 두루한다는 것이다.
네 가지 온갖 것이란,
1은 성질의 온갖 것[性一切]이니,
곧 3성(性)으로서 첫째는 선(善)이요,
둘째는 불선(不善)이요,
셋째는 무기(無記)의 성질 등이다.
2는 땅의 온갖 것[地一切]이니,
곧 9지(地)로서 첫째는 욕계의 다섯 갈래[五趣] 땅이요,
색계의 4선(禪)인 넷의 땅이며,
무색계의 4공(空)인 넷의 땅이다.
3은 때의 온갖 것[時一切]이니,
때는 곧 동일한 찰나의 때이다.
이 작의(作意) 등의 다섯 가지 심소는 모두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때의 온갖 것이라 한다.
4는 함께하는 온갖 것[俱一切]이니,
함께한다는 것은 곧 모든 마음 등과 여덟의 식이 두루 함께한다는 것이다.
뜻으로 말하면,
“이 작의 등의 다섯 가지 변행심소는 8식의 심왕과 함께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동시에 서로 응하는 다섯 가지 수(數)가 있다”는 것이다.
또 여덟의 식이 함께 일어날 때에는 모두 변행심소의 다섯 가지 수가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함께하는 온갖 것”이라고 한다.
곧 네 가지 온갖 것은 바로 돌아다닐 바[所行]요 두루할 바[所遍]요,
촉(觸) 등의 다섯 가지 수는 바로 능히 돌아다님[能行]이요 능히 두루함[能遍]이니,
두루함[遍]이란 원만[圓]하다는 뜻이고,
돌아다님[行]이란 노닐며 돌아다닌다[遊履]는 뜻으로서 경계를 반연한다는 뜻이다.
다만 견분(見分)만으로 능히 반연[能緣]하는 네 가지 온갖 것만을 취하고 안의 두 분[內二分]은 취하지 않나니,
안의 두 분은 서로서로가 반연할 뿐이요 곧 바깥으로 온갖 것을 반연하지는 못한다.
또 별경의 욕(欲) 등의 다섯 가지 수라면 돌아다님은 있되 두루한 것은 아니니,
돌아다님 이것은 능연(能緣)이요 두루함 이것은 소연(所緣)으로서 곧 즐길 바 등의 네 가지 경계[四境]이다.
네 가지 경계는 능연인 욕(欲) 등으로 하여금 두루 반연할 바가 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돌아다님은 있되 두루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네 가지 구절로 분별해야 한다.
1은 이것은 돌아다니기는 하되 두루한 것은 아니니,
곧 별경이다.
2는 이것은 두루하기는 하되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니,
곧 진여이다.
3은 두루하기도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나니,
곧 변행이다.
4는 두루한 것도 아니고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니,
곧 물질 등이다.
현양론(顯揚論)에서 이르되,
“심소유법(心所有法)이란,
만일 법이 아뢰야의 종자로부터 나는 것이라면,
심소에 의해 일어나는 것과 마음이 함께하면서 구르는 것과 상응한 것이다.
그것은 또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변행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1의 작의(作意)라 함은 마음 일깨우는 것을 체성(體性)으로 삼으며 반연할 바 경계에 대해 마음을 인도하는 것을 업용(業用)으로 삼는다”고 했다.
【문】 작의는 종자 지위에 있으면서 마음을 일깨우는 것인가,
현행(現行)에 있으면서 마음을 일깨우는 것인가.
【답】 종자 지위에 있으면서 마음을 일깨운다.
작의의 자성(自性)은 밝고 날카로운지라 비록 종자의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어떤 경계가 이르게 되면 심심소(心心所)의 종자를 일깨워 일어나고 나타나게 한다.
비유를 들면,
마치 같은 한 방에서 잠을 자는데 바깥에서 도둑이 왔을 때에,
대중 가운데서 어느 한 사람이 본래 잠이 적은지라 이내 다른 사람들을 깨우는 것과 같나니,
이 사람이 비록 자신은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깨워서 일어나게 한 것이다.
또한 속마음의 상분(相分)이 비록 견분(見分)과 같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으레 마음의 공능(功能)을 끌어냄이 있는 것처럼,
지금의 작의 역시 그러하여 그 작의의 종자는 벌써 그 모든 심심소의 종자를 일깨워서 현행을 내고 난지라 작의가 현행한다.
또 마음의 현행을 인도하여 앞의 대경에 나아가게 하나니,
곧 이 작의에는 두 가지의 공능이 있다.
첫째는 마음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에 일깨워서 일어나게 한다.
둘째는 만일 일어난 뒤라면 인도하여 대경으로 나아가게 한다.
첫째의 것이 바로 체성이요,
둘째의 것이 바로 업용이다.
2는 촉(觸)이다.
감관[根],
경계[境],
식[識]의 세 가지 일이 화합하여 분별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수(受)의 의지(依)가 업용이 된다.
또 세 가지 화합의 이것은 원인이요,
촉 이것은 그의 결과이니,
심심소로 하여금 경계에 접촉하게 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수(受)ㆍ상(想)ㆍ사(思) 등의 의지할 바[所依]가 업용이 된다.
접촉이 만약 생기지 않았을 때에는 그 밖의 느낌[受]의 한 심소조차도 생길 수가 없다.
온갖 마음과 심소가 화합하여 앞의 경계에 같이 접촉하게 하는 이것이 접촉 자체만이 지니는 성품이요,
곧 모든 마음이 경계를 반연할 때에 모두가 이는 접촉이 지닌 공능의 제 성품이며 곧 이 접촉은 저 세 가지 화합과 비슷하게 느낌 등의 의지할 바가 되는 이것이 접촉의 업용이다.
3은 수(受)이다.
받아들이는 것이 체성이 되고,
욕망하며 반연하는 것이 업용이 된다.
4는 상(想)이다.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의 훈습을 반연 삼아 모양을 취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말과 의론을 내는 것이 업이 된다.
또 상(想)은 제 경계의 분제(分劑)를 세우나니,
만일 마음이 일어났을 때에 이 상이 없다면 경계의 분제 모양을 취할 수 없다.
경계에 대하여 형상을 취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갖가지 명언(名言)을 시설하는 것이 업용이 된다.
갖가지의 명언은 모두가 상에서 말미암으며 이것이 상의 공능이다.
5는 사(思)이니,
생각하는 마음을 말한다.
온갖 선악의 총체적인 업보와 개별적인 업보를 조작하는 것이 사의 체성이 되고,
착한 품류 등에 대해 마음을 부리는 것이 업용이 된다.
촉 등의 다섯 가지 법은 마음이 일어나면 반드시 있게 되기 때문에 이것은 변행이지만,
그 밖의 것은 변행이 아니다.
별경(別境)에도 다섯 가지가 있지만 욕(欲) 등은 마음에 두루하지 않기 때문이며,
네 가지 경계가 따로따로라 별경이라고 한다.
1은 욕이니,
즐길 바의 경계에 대해 희망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애써 함[動]의 의지가 업용이 된다.
또 온갖 일에 대해 관찰하려고 하는 이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며,
만일 관찰하려 하지 않고 경계로 인한 세력에 따라 저절로 반연한다면 전혀 욕이 없는 것이니,
이런 이치로 말미암아 욕은 변행심소가 아니다.
2는 승해(勝解)이니,
결정할 경계에 대해 그에 알맞는 대로 똑똑히 아는 것이 체성이 되고,
이끌어 옮아갈 수 없는 것이 업용이 된다.
또 삿됨과 바름 따위의 교리로 증명하는 힘을 말하는 것으로,
취할 바의 경계에 대해 살피고 결정하여 똑똑히 지니는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다른 인연으로 끌어 옮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계에 망설이는 것은 승해가 전혀 없으며,
살피어 결심한 것이 아니면 역시 승해는 없으므로 변행에는 속한 것이 아니다.
3은 염(念)이니,
익혔던 경계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분명히 기억하여 잊지 않게 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등지(等持)의 의지할 바가 업이 된다.
또 일찍이 체험하지 못한 종류의 경계 중에서는 기억을 일으키지 않게 되고,
설령 예전에 체험한 것이라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없으면,
염은 역시 생기지 않기 때문에 염은 반드시 변행심소의 소속이 아니다.
염과 정(定다)은 의지할 바가 되므로 업용이 되고,
바른 선정[正定]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선정의 의지가 업용이 된다”고 말한다.
4는 정(定)이다.
등지(等持)라고도 하나니,
관(觀)할 바 경계에 대해 오로지 한 가지 반연에만 마음을 쓰는 것이 체성이 되고,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며 지혜의 의지가 업이 된다.
또 정으로 말미암아 오로지 마음을 써서 산란하지 않게 하면 이에 의하여 결택(決擇)하는 지혜의 생김이 있지만,
만일 마음을 매어 경계 자리에 오로지 쏟지 아니하면 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변행심소가 아니다.
5는 혜(慧)이니,
관할 바 경계에 대해 간택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의심을 끊는 것이 업이 된다.
또 경계를 관하는 것이 아니고 우매한 마음속에서는 간택이 없기 때문에 변행심소에 속한 것이 아니니,
이 별경심소의 다섯 가지는 자리에 따라 있거나 없는 것이며 소연과 능연이 반드시 함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善)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1은 신(信)이니,
본받을 것이 있고 덕이 있고 능함이 있는 것에 대해 마음의 청정한 것이 체성이 되고,
믿지 않음[不信]의 장애를 끊고 보리(菩提)의 양식을 얻어 웬만해지는 것이 업용이 된다.
또 식론(識論)에서 이르되,
“믿음은 마음의 청정함을 성품으로 삼나니,
이 성품은 맑고 깨끗하여 마음 등을 깨끗하게 할 수 있고 마음은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청정함이란 이름을 붙였다.
마치 수청주(水淸珠)가 흐린 물을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해석에서 이르되,
“믿음 이것만이 청정하게 할 수 있고 그 밖의 선 등은 모두가 청정할 바이기 때문이다.
심왕을 주인으로 삼는지라 마음의 청정함만을 말하고 심소는 말하지 않았으며,
물은 마음 등에 비유하고 수청주는 믿음의 체성에다 비유했다.
수청주를 넣었기 때문에 흐린 물은 이내 깨끗해지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은 드디어 청정해진다”고 했다.
2는 참(慚)이니,
제 자신에 대하여 왕성하게 그리고 법에 대하여 왕성하게 저지른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체성이 되고,
제 부끄럼이 없음[無慚]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용이 된다.
3은 괴(愧)이니,
세간에 대하여 왕성하게 저지른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체성이 되고,
남 부끄럼이 없음[無愧]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이 된다.
4는 무탐(無貪)이니,
존재함이 있는 기구에 대해 싫어하여 여의고 고집함이 없으며 간직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고 집착함도 없는 것이 체성이 되고,
탐냄[貪]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이 된다.
5는 무진(無瞋)이니,
모든 유정들에 대해 마음으로 손해 끼침이 없이 인자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이 체성이 되고 성냄[瞋]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이 된다.
6은 무치(無癡)이니,
진실을 바르게 아는 것이 체성이 되고,
어리석음(癡)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이 된다.
7은 정진(精進)이니,
마음이 용맹하여 타락함이 없고 자신을 가벼이 여기거나 천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게으름[懈怠]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이 된다.
8은 경안(輕安)이니,
묵직함을 멀리 여의고 몸과 마음이 쾌적하고 화창하게 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추중(麤重)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이 된다.
9는 불방일(不放逸)이니,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이 모두 섭하여 정진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방일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이 된다.
10은 사(捨)이니,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는 것을 통틀어 거두는 것이 체성이 되고,
이 사에 의하여 마음이 평등하게 되고 마음이 정직하게 되면 마음에서 발동함이 없으므로 이 발동함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이 된다.
11은 불해(不害)이니,
모든 유정들을 괴롭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가엾이 여기고 측은하게 여기는 것이 체가 되고,
해침[害]의 장애를 끊는 것이 업용이 된다.
근본번뇌(根本煩惱)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1은 탐(貪)이니,
5취온(取蘊)에 대하여 좋아하고 감추고 보존 집착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자기와 남을 해쳐서 나쁜 길[惡道]에 나아가는 것이 업이 된다.
2는 진(瞋)이니,
유정들에 대해 손해를 끼치려는 것이 체성이 되고,
성냄 없음[無瞋]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3은 자만[慢]이니,
남은 자기보다 못하고 자기는 훌륭하다고 헤아리면서 마음으로 높은 체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난체함이 없음[無慢]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4는 무명(無明)이니,
진실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바르게 아는 것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5는 삿된 소견[邪見]이니,
다섯의 소견이 체성이 된다.
첫째,
살가야견(薩迦耶見)이니,
5취온에 대해 나[我]와 내 것을 헤아리면서 지혜[慧]를 더럽히는 것이 체성이 되고,
나 없음[無我]과 뒤바뀜 없음[無顚倒]의 견해를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둘째,
변집견(邊執見)이니,
5취온에 대해 단견(斷見) 또는 상견(常見)을 고집하면서 지혜를 더럽히는 것이 체성이 되고,
덧없음과 뒤바뀜 없음의 견해를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셋째,
삿된 소견이니,
원인과 결과를 비방하면서 지혜를 더럽히는 것이 체성이 되고,
분별기(分別起)만으로 바른 소견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넷째,
견취(見取)이니,
앞의 세 가지 소견과 소견이 의지할 바 쌓임[見所依蘊]에 대해 가장 훌륭하고 첫째가는 것이라 헤아리면서 지혜를 더럽히는 것이 체성이 되고,
분별기만으로 괴로움[苦]과 청정하지 않음[不淨]과 뒤바뀜 없음의 견해를 장애하는 것이 업용이 된다.
다섯째,
계금취(戒禁取)이니,
앞이 모든 소견과 소견이 의지할 바 쌓임에 대해 청정하고 해탈하고 벗어나게 된다고 고집하면서 지혜를 더럽히는 것이 체성이 되고,
분별기만으로 앞에서와 같은 뒤바뀜 없음의 견해를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해석에서 이르되,
“살가야견이란 이를 번역하면 신견(身見)이다.
견취란 논(論)에서 이르되,
‘온갖 다툼[鬪諍]의 의지할 바가 업이 된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모든 소견과 의지할 바 쌓임에 대해 가장 훌륭하여 열반의 청정한 법을 얻을 수 있다고 고집하는 이것이 견취이니,
이로 말미암아 저마다 서로가 모든 소견 등을 훌륭하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온갖 의도들의 다툼은 이로 인하여서 일어난다.
계금취란 또 이르되,
‘이익이 없는데도 애쓰며 수고하는 것의 의지할 바가 업이 된다’고 했나니,
모든 소견에 의하여 받게 된 계율로서 이 계율은 훌륭하고 열반을 얻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계로 말미암아 온갖 외도들은 머리 뽑는 계[拔髮戒] 등을 받아 지니어서 이익이 없이 애쓰고 수고한다”고 했다.
6은 의(疑)이니,
모든 진리[諦]에 대해 망설이면서 결단하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분별기만으로 의심 없음[無疑]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문】 이 열 가지 번뇌는 어느 식과 상응하는가.
【답】 제8의 장식(藏識)에는 전혀 없고,
제7의 말나식(末那識)에는 네 가지가 있으며,
제6의 의식(意識)에는 열 가지 모두를 갖추었고,
앞의 다섯 식에서는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다.
옛 해석에서 이르되,
“다섯의 식[五識]에는 세 가지 뿐이다.
분별이 없기 때문에 만(慢) 등은 없나니,
만 등은 반드시 수념분별(隨念分別)과 계탁분별(計度分別)이 있으면서 생기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 자만으로 말미암아 칭량문(稱量門)에서 열등하다 훌륭하다 함을 일으키기 때문이요,
의심으로 망설임은 간택문(簡擇門)에서 일어나고 소견은 추구문(推求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나,
다섯의 식은 이런 따위의 행상(行相)이 없기 때문이다.
7식에서는 아치(我癡) 등의 네 가지 번뇌를 갖추고 있으나 오히려 자세히 살피면서 결단하기 때문에 의심이 일어날 수가 없고,
나[我]를 애착함으로 말미암아 진(瞋)은 나게 되지 않는다.
하나의 심왕(心王) 중에는 두 가지의 지혜가 없기 때문에,
그 밖의 소견은 생기지 않는다.
수번뇌(隨煩惱)에는 스무 가지가 있다.
석론(釋論)에서 이르되,
“이것은 번뇌의 분위차별(分位差別)로 등류의 성질 뿐이기 때문에 수번뇌라고 한다”고 했다.
이 스무 가지 종류에는 세 가지구별이 있다.
분(忿) 등의 열 가지는 저마다 따로따로 일어나기 때문에 소(小) 수번뇌라 하고,
무참(無慚) 등의 두 가지는 불선(不善)에 두루하기 때문에 중(中) 수번뇌라고 하며 도거(掉擧) 등의 여덟 가지는 염심(染心)에 두루하기 때문에 대(大) 수번뇌라고 한다.
1은 분(忿)이니,
현재의 거슬린 일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분이 나게 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성냄 없음[無瞋]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2는 한(恨)이니,
과거의 거슬린 일에 대해 원한을 맺으며 버리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성냄 없음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3은 부(覆)이니,
잘못 범한 일에 대해 남이 타이르거나 타이르지 않거나 간에 지었던 나쁜 일을 숨기는 것이 체성이 되고,
허물을 들추어서 후회함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4는 뇌(惱)이니,
잘못 범한 일에 대해 남이 타이르면 추악한 말을 퍼부으면서 마음이 난폭해지고 참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착한 벗[善友]을 장애하는 것이 업용이 된다.
5는 질(嫉)이니,
다른 이가 지니고 있는 공덕과 명예에 대해 마음에 시새우면서 기뻐하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인자(仁慈)함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6은 간(慳)이니,
쌓고 모으면서 괴상하게 집착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탐냄 없음[無貪]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7은 광(誑)이니,
남을 헷갈리게 하여 진실 아닌 일을 나타내면서 마음에 속이는 것이 체성이 되고,
사랑하고 공경함[愛敬]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8은 첨(諂)이니,
그를 속이기 위하여 거짓으로 공손하고 순종한 체하면서 마음에 번듯하지 못한 것이 업이 된다.
9는 교(僑)이니,
세간에서 흥성함 따위를 믿고 뽐내면서 꺼리는 바가 없는 것이 체성이 되고,
싫어 여윔[厭離]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0은 해(害)이니,
유정을 괴롭히면서 가엾이 여김도 없고 측은하게 여김도 없는 것이 체성이 되고,
해치지 않음[不害]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1은 무참(無慚)이니,
잘못된 죄악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부끄러움[慚]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2는 무괴(無愧)이니,
세간에 대하여 잘못을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남 부끄러움[愧]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3은 혼침(惛沈)이니,
마음으로 하여금 흐리멍덩하게 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비발사나(昆鉢舍那)를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4는 도거(掉擧)이니,
바르지 않게 찾고 구하는 마음에 의하여 고요하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사마타(奢摩他)를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5는 불신(不信)이니,
본받을 것이 있고 덕이 있고 능함이 있는 것에 대해 마음에 깨끗하게 믿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믿음[信]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6은 해태(懈怠)이니,
마음에서 힘써 하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올바르게 애씀[正勤]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7은 방일(放逸)이니,
온통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체성이 되고,
멋대로 놀아나지 않음[不放逸]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8은 실념(失念)이니,
더러움에 물들어서 기억되지 않는 것이 체성이 되고,
잊지 않고 기억함[不忘念]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19는 산란(散亂)이니,
닦을 바 착한 마음에 대해 기뻐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바깥 일에 내닫고 흩어지는 것이 체성이 되고,
등지(等持)를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20은 부정지(不正知)이니,
세 가지 업[三業]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면서 지혜를 더럽히는 것이 체성이 되고,
바르게 앎[正知]을 장애하는 것이 업이 된다.
● [pt op tr] fr
_M#]
『종경록』
♣1499-057♧
◎◎[개별논의] ♥ ❋본문
● 현실과 마음의 관계에 대한 판단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마음의 존부나 현실의 관계에 대해 판단한다고 하자.
이 경우 가장 기초적인 내용은 감각현실을 얻는 과정에 대한 문제다.
현실에서 눈을 뜬다고 하자.
그러면 일정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상황은 대부분 엇비슷하다.
그런데 그렇게 얻어진 내용의 정체에 대한 판단은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 부분부터 망집이 시작된다.
이 상황에서 어느 부분이 자신에 해당하는 부분인가를 손으로 가리켜보자.
그리고 자신이 아닌 외부 세계가 무엇이라고 여기는가를
손으로 가리켜보자.
그처럼 손으로 가리킨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 경우 손으로 가리킨 부분에 대한 판단을 그처럼 행한 것이다.
즉 자신이라고 여기고 손으로 가리킨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그 부분을 자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기초적인 잘못된 판단이다.
또 외부세상이나 외부 대상이라고 여겨 손으로 가리킨 부분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그 부분을 외부 세상이나 외부대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기초적인 잘못된 판단이다.
그리고 마음의 정체나 마음의 관계에 대한 판단도 이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처럼 잘못된 판단에 바탕해 일상생활에서
각종 선택과 활동을 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과정을 통해 그는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받아나가게 된다.
이것이 생사현실 문제다.
그래서 가장 먼저 현실에서
먼저 진리와 가치에 대한 기본 판단을 잘 행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이 자신인가.
무엇이 마음인가.
무엇이 마음밖 외부세상인가.
무엇이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진정한 외부 대상인가.
등부터 먼저 잘 판단해야 한다.
그 다음 그런 가운데
현실에서 어떻게 임하는 것이
가장 좋은 상태를 얻게 하는가를 생각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수행의 방안을 경전에 제시된 것처럼 제시하게 하는 바탕이다.
그래서 이 내용을 가장 기본적으로 잘 파악해야 한다.
★1★
◆vmxd1350
◈Lab value 불기2565/11/23 |
● 투자종목의 결정과 망집 현실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활동을 하면 이익 또는 손해를 보게 된다. 수행도 이런 바탕에 있다. 수행이 거두는 이익을 이해하려면 가치회계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즉 무엇이 무엇보다 얼마나 가치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주식이나 토큰 또는 예술작품의 가격이 변동한다. 그런데 이런 수행가치를 이해하려면, 이런 종목들의 가격변동의 사정을 이해하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현실에서 어떤 이가 abcd 4 종목에 각기 균등하게 100 만원씩 투자했다고 하자. 그런데 3 일 후 a 는 종전 가격그대로다. B 는 15% 상승하였다. c 는 15% 하락하였다. d 는 현금이다. ( 종전과 그대로다. ) 이제 이 시점에서 종목의 보유비율을 바꾸어서 다음 1주일에 좀더 수익을 거두려고 한다고 하자. 어떻게 보유비율을 바꾸는 것이 좋은가. 이런 문제가 제기된다고 하자. 이 때 3 일간의 가격변동 상태를 참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앞으로 1 주일간의 가격변동이 이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가 문제된다. 가격변동의 데이터는 과거 차트에 쌓여 있다. 이것을 검토하면, 과거의 변동 내역과 그 이후 1 주일간의 변동 내역간의 관계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는 도움이 크게 되지 못한다. 시를 감상해보자. 과거에 올랐으니, 앞으로도 오를 것이다. 과거에 올랐으니, 앞으로는 내려갈 것이다. 이 두 문장이 다 말이 된다. 또 반대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내렸으니, 앞으로도 계속 내릴 것이다. 과거에 내렸으니, 앞으로는 오를 것이다. 이 두 문장도 역시 다 말이 된다. 또 그대로인 종목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그대로였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대로일 것이다. 과거에 그대로였으니, 앞으로는 오르거나 내릴 것이다. 이 두 문장도 역시 다 말이 된다. 그런데 각 경우마다 특정한 형태로만 시감상을 한다고 하자.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위 내용가운데 첫 문장만 취해 시감상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이후 선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형태로 미래 시세를 그가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목 보유비율을 바꾸었다고 하자. 그런 선택후, 1 주일후 그는 과연 그의 예상과 같은 결과를 얻었을 것인가. 좋은 투자를 하려면 위 여러 문장을 골고루 검토해봐야 한다. 그래서, 위 문장 가운데 어느 한 문장만 고집하고 현실을 대하지 않아야 한다. 위 문장을 골고루 취한다고 하자. 그러면 여러 가능한 형태 가운데 어떤 형태가 실제로 나타날 것인가를 정확히 이해함이 사실 중요함을 이해하게 된다. 또 그러려면 현실 하나하나의 본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가를 이해함이 중요함도 이해하게 된다. 그래야 각 경우의 가치의 비교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엉터리 판단에 의해 현실 단면을 이해한다. 그리고 이후 어떤 내용이 나타나는 관계도 엉터리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에 바탕해 매 순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희망하지 않는 상태에 묶이게 된다. 그것이 곧 현실의 생사고통의 문제가 된다. [예제] 현재 1시간 사이에 50% 오른 종목을 지금 갖고 있는 자금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좋다. 나쁘다 모르겠다. ...(지금 상황) ( 어차피 모르니까. 현재 가격 끝자리수가 홀수면 산다. 짝수면 안 산다. 얍! 앗... 어이쿵. 야호...) ○ ( 어차피 모르니까. 현재 가격 끝자리수가 홀수면 산다. 짝수면 안 산다. 얍! 앗... 어이쿵. 야호...)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udith Fais passer le mot.lrc Judith Fais passer le mot https://youtu.be/f2-zO0dHcUM Edith Piaf Roulea tambours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Edith Piaf Roulea tambours.lrc https://youtu.be/2ImOc6eu8fw Gerard Lenorman - Et Moi Je Chante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Gerard Lenorman - Et Moi Je Chante.lrc https://www.youtube.com/watch?v=SNIvNXnwHFA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1/11/2565-11-23-k1499-057.html#1350 sfed--종경록_K1499_T2016.txt ☞제57권 sfd8--불교단상_2565_11.txt ☞◆vmxd1350 불기2565-11-23 θθ |
■ 선물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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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과(異熟果)를 가져온 습기.
무기성(無記性)인 우리들의 신체를 나게 한 선ㆍ악의 업종자와 같은 것.
유식가(唯識家)에서는 제6식으로 선악의 업을 지을 때에 그 업은 그대로 소멸하지 않고, 반드시 장래의 결과를 가져올 종자를 제8식에 훈습(熏習)하여 둔다고 함.
이것은 역시 제8 이숙식(異熟識)을 불러오는 증상연(增上緣).
답 후보
● 이숙습기(異熟習氣)
이아견(二我見)
이인(二忍)
이족존(二足尊)
이종세간(二種世間)
이처삼회(二處三會)
인(因)
부처님의 가장 수승하고 위 없는 지혜.
답 후보
● 불혜(佛慧)
비류박차(毘留博叉)
비바사바제(毘婆闍婆提)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비시식(非時食)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
빈두로(賓頭盧)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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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 Louis Aubert - Téléphone - Un Autr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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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 Edward Conze
[san-chn] anupaśyin 見, 觀
[san-eng] pujayati $ 범어 (10 pp) to worśip
[pali-chn] anuttara-sammā-sambodhi 阿耨多羅三藐三菩提
[pal-eng] randhita $ 팔리어 pp. of randhetiboiled or cooked.
[Eng-Ch-Eng] 取 (1) Obtain, take, hold, seize, grasp, gather. (2) Cognition through the faculties of perception (anupalabdhi). (3) To grasp, comprehend, understand. (4) Attachment. The mental function of incessant desiring and grasping (anupa^da^na). (5) As 'attachment' or 'grasping,' the ninth of the twelve factors of conditioned arising. (6) An indicator of the accusative case.
[Muller-jpn-Eng] 和上 ワジョウ a senior monk (a teacher-monk) who has the authority to administer the precepts
[Glossary_of_Buddhism-Eng] MOUNT SUMERU☞
See: Sumeru (Mount –).
[fra-eng] révoquez $ 불어 revoke
■ 암산퀴즈
446* 152
339885 / 581
■ 다라니퀴즈
자비주 15 번째는?
성관자재보살 명호 3 번째는?
15
이로부터 다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 계시는 곳과
무량한 법회 가운데서도
거듭 이 다라니를
친히 얻어 들어 받아 가지고
다시 무량하게 뛸듯이 환희하였고,
문득 무수억겁토록
미세한 생사를 초월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저는 항상 이 주문을 지송(持誦)하되
일찍이 조금도 폐하거나 잊어버리지 아니했으며
이 주문을 가진 힘으로써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부처님 앞에 연꽃에
화생(化生)하고
태(胎)에 드는 몸을 받지 않았습니다.
● 아예염 阿逝孕<十五> a je yaṃ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3
하리 다바 라
賀哩<二合>哆婆<引>囉<三>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
■ 삼매_게송퀴즈
■ 오늘의 게송
[327일째]
수행어시불가설 $ 069▲薜羅薜羅為 一 ● 諦羅, ○□□□□,其,有,一,持
□□□□□□□, 其心過去不可說,
有求皆施不可說, 一切悉施不可說,
□□□□□□□, 기심과거불가설,
유구개시불가설, 일체실시불가설,
보시를 행하는 일 말할 수 없고
그 마음 지나간 일 말할 수 없고
찾는 대로 보시함을 말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보시함도 말할 수 없고
[328째]
지계청정불가설 $ 070■ ■持 成起一智修 菩修彼彼無
070▲ 諦羅諦羅為 一 ● 偈羅, ○□□□□,心,讚,愛,成
□□□□□□□, 心意清淨不可說,
讚歎諸佛不可說, 愛樂正法不可說,
□□□□□□□, 심의청정불가설,
찬탄제불불가설, 애요정법불가설,
계행이 청정함을 말할 수 없고
마음이 깨끗함을 말할 수 없고
부처님 찬탄함을 말할 수 없고
바른 법 좋아함을 말할 수 없고
●K0335_T1343.txt★ ∴≪A존승보살소문일체제법입무량문다라니경≫_≪K0335≫_≪T1343≫
●K1499_T2016.txt★ ∴≪A종경록≫_≪K1499≫_≪T2016≫
●K0318_T1337.txt★ ∴≪A종종잡주경≫_≪K0318≫_≪T1337≫
법수_암기방안
69 요골동맥-손-맥박(脈搏)재는곳
70 장지
15 어깨 (shoulder)
3 밥통 【위】
67792
585
○ 2019_1104_101428_can_Ab27
○ 2020_0908_153303_can_Ab27
○ 2020_0906_123135_can_CT33
○ 2020_1126_161143_nik_ar34
○ 2020_1126_160730_nik_BW17
○ 2020_1126_160619_nik_bw4_s12
○ 2020_1126_160054_can_Ar37_s12
○ 2020_1126_155347_nik_CT33_s12
○ 2020_1126_154954_nik_AB4_s12
○ 2020_1126_153601_nik_ar24
○ 2020_1126_153544_can_ori
○ 2020_1126_153151_nik_Ab35
○ 2020_0224_123016_nik_Ar37_s12
○ 2020_0224_112240_nik_Ab31
○ 2020_0224_105525_nik_bw6
○ 2020_0224_105341_nik_Ab15
○ 2018_1025_170527_can_AR25
○ 2018_1025_164028_nik_CT33_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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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_1025_162004_nik_CT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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