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선업에게 말씀하셨다. “개사가 속히 부처를 얻으려면 명도무극을 찾되 보자(普慈)개사가 하듯이 해야 하느니라.” 선업이 말하였다. “지금 보자개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위쪽으로 630억이나 되는 불국토를 지난 곳에 향적불(香積佛)이라는 부처님께서 계시는데, 그 찰토의 이름은 중향(衆香)이니라.”
선업이 또 말하였다. “그곳에서 어떤 인연으로 명도를 찾으신 겁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전세에 행(行)과 공덕을 쌓아 본원(本願)을 성취하여 전에 이미 무앙수의 부처님을 공양하였느니라.
어느 때 보자개사가 누워 자고 있는데 천인이 꿈속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만약 큰 법을 깨치기를 원한다면, 깨어나는 즉시 그것을 구하십시오.’
보자개사는 그것을 구했으나 얻지를 못하고 마음속으로 실망하고 탄식하였다. 부처가 되기를 원하며 대명(大明)의 법을 들으려고 하였으나, 세간에는 부처님이 없었고 나라에는 정법(淨法)을 행하는 개사가 없기 때문에, 애통해 하길 마치 어떤 사람이 국왕이 계신 곳을 지나가다 재물을 모두 빼앗기고 부모와 자기 몸마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처럼 하였다. 이때 도리천인이 보자개사가 울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고는, 그가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도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천인이 곧 그 권속들 가운데 개사에게 부처님의 명호[字]를 가르쳐주도록 하였다. 즉 그 이전 시대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명호가 경법자예래왕불(景法自穢來王佛)이셨는데, 멸도한 지 오래도록 부처를 보지 못하고 경을 듣지 못하며 비구승을 보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꿈속에서 도리천인이 나타나개사에게 말하였다.‘이전에 명호를 경법자예래왕이라고 하는 부처님께서 계셨습니다.’ 개사는 꿈속에서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는 곧바로 깨어났다. 깨어나서는 크게 환희하여 권속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 몸을 던져서 목숨을 버려서 탐하는 것이 없게 하려고 큰 소리로 울면서 ‘악(惡)으로 인해 부처님을 보지 못하고 경을 듣지 못하여 개사가 행하는 법을 얻지 못하였구나’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선사(善士)여, 애통해 하지 말라. 명도(明度)라고 하는 큰 법이 있으니, 만약 수지하려는 뜻을 가지고 그 명도를 행하면 부처가 될 것이며, 속히 이러한 법을 구하려고 한다면 수지하고 행하는 자의 말을 들으라. 부처님의 공덕과 부처님 몸의 32상과 80종호를 얻으려면 경법으로 시방의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느니라.’ 공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향해 여쭈었다.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어디에 가서 어떤 방편을 찾아야 합니까?’ 공중으로부터 대답이 들려왔다. ‘동방으로 쉬지 말고 가되, 갈 때는 앞뒤ㆍ오른쪽ㆍ왼쪽ㆍ위아래를 돌아보지 말 것이며, 중지하지 말고 나가야 하며, 두려움이나 기쁨, 먹을 것과 마실 것, 앉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일어나서 가되, 도를 행하는 것을 그치지 말아야 하느니라.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말 것이며, 얻는 것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갖지 말 것이며, 내(內)ㆍ외(外)ㆍ5음(陰)ㆍ안(眼)ㆍ이(耳)ㆍ비(鼻)ㆍ구(口)ㆍ신(身)ㆍ심(心)ㆍ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 것이며, 중생이라는 생각ㆍ나라는 생각ㆍ나의 수명(壽命)이라는 생각ㆍ공(空)이 있다는 생각ㆍ공이 없다는 생각ㆍ도(道)가 있다는 생각ㆍ도가 없다는 생각ㆍ경(經)이 있다는 생각ㆍ경이 없다는 생각ㆍ천상에 태어난다는 생각ㆍ세간에 태어난다는 생각을 하지 말지니라. 개사는 선과 악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을 끊고 집착하지 않고 동방으로 가되, 이러한 행을 계속하여 그치지 않으면 당장 명도를 얻을 것이며, 오래지 않아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개사의 도를 구하도록 해 줄 것이니라. 이렇게 명도를 얻되, 그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여 행하면, 반드시 속히 부처가 될 것이니라.’ 개사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하늘의 가르침을 따르겠나이다.’ 공중의 소리가 대답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을 잃지 말지니라.’ 그리고는 이 말을 마치자 다시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가르침을 따라 동방으로 가되 생각하는 것이 없이도를 행하면서 마음속으로, ‘얼마나 더 가야 명도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다시 크게 애통해 하자, 허공 위쪽에서 부처님께서 화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찾으려고 하되 얻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니라. 이 같은 정진을 한다면 오래지 않아 얻을 수 있느니라.’ 보자개사가 손을 모으고 화현하신 부처님을 바라보니, 금빛을 띤 몸에서 10억이나 되는 불꽃이 32상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자 마음에 큰 환희심이 일어나 손을 모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설법을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의 법을 듣고 부처가 되기를 원하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가르침과 법을 받아 수지하라. 모든 경의 법은 본래 없는 것이니, 두려움도 없느니라. 본래 청정함도 그 실마리가 없는 것이며, 모든 경의 법에 머무는 것도 그 실마리가 없는 것이며, 설한 것도 없이 머물되 설한 가르침도 없는 것이니라. 이는 마치 허공은 모양이 없이 머물되 멸도(滅度)와 다름이 없고, 태어나는 것도 없으며, 모양도 없이 머무르는 것과 같으니라. 마치 물속에 비친 그림자와 같고, 꿈속에서 보는 것과 같아 다름이 없느니라. 부처님의 음성은 이와 같으니, 마땅히 경의 가르침에 따라 뜻을 삼고 청정함을 수지하되, 이로부터 동방으로 2만 리를 가면 향정(香淨)이라고 하는 불국토가 나오는데, 이곳은 법왕(法王)이 법으로 다스리는 곳으로, 그 국토는 즐거움이 풍성하고 백성이 매우 많으며, 성의 너비는 가로세로가 480리이며 모두 7보로 지어졌으며, 그 성의 일곱 겹으로 된 중간에 7보로 된 기이한 나무가 있느니라. 그 나무에는 여러 가지 보석과 곡식이 열려 있었으며, 휘장이 그 성을 덮고 있었느니라. 그 사이에는 보배 교로(交露)1)가 드리워져 있었으며, 성 밖 사방에 있는 성문 밖에는 희려(戱廬)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느니라. 성 주위에는 일곱 겹으로 된 연못이 있는데, 물 위에는 여러 종류의 푸른 연꽃과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꽃들이 피어 향기가 그 나라에 가득하였고, 빛과 색깔이 현란하여 지나가는 사람이 꽃에 가까이 가면 몸과 옷이 꽃빛과 같이 되었느니라. 연못 사이에 있는 육지에는 담복꽃[薝蔔花]ㆍ인중꽃[忍中花]과 기이한 꽃 수백 종류가 피어 있었으며, 여러 가지 새들이 있었는데, 물오리ㆍ기러기ㆍ원앙과 서로 다른 종류의 새들이 수백 가지가 되었느니라. 그리고 7보로 만든 배가 있었는데, 그 안에 탄 사람들은 물 위에서 오색의 당기[幢]와 번기[幡]를 세워 놓고 놀이를 즐기고 있었느니라. 주변에 있는 길이나 골목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꽃들이 덮여 있었는데, 마치 도리천의 제석전(帝釋殿)에 걸린 번기의 펄럭거리는 소리가 도(道)와 덕(德)을 근본으로 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들리는 것과 같았으며, 그 행과 정진은 마치 도리천의 난단원(難檀洹)에 있는 희려(戱廬)에서 음악이 나오는데, 그 소리가 즐겁고 끊임이 없는 것과 같았느니라. 성안에 있는 개사로서 성취하였거나 마음을 일으킨 이의 옷은 휘황찬란하고 진기(珍琦)하기가 끝이 없었는데, 그 중에 법래(法來)라고 하는 개사는 뭇 성인 중에 왕으로서 680만이나 되는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며, 모든 개사들이 항상 그를 공경하고 있었느니라. 이 나라 중앙에 높은 자리를 마련하고는 황금좌(黃金座)ㆍ백은좌(白銀座)ㆍ유리좌(琉璃座)ㆍ수정좌(水精座)를 차례대로 바꾸어서 그 위에는 모두 문양이 수놓아진 비단 덮개를 덮고, 자리 위에는 여러 가지 향기가 나는 꽃을 뿌렸으며, 머리 위에는 보석으로 꾸며진 일산[蓋]을 놓아두고, 자리 안팎과 주위에는 여러 가지 이름의 향을 피웠느니라. 법래개사는 항상 높은 자리에 앉아서 모든 개사들에게 명도를 설법해 주었느니라. 그 가운데 어떤 이는 베껴 쓰기도 하였고, 어떤 이는 배웠고, 어떤 이는 염송하고 수호하기도 하였으니, 그곳에 온 사람 모두에게 그것을 설해 주어 수천억의 전세(前世)에 걸쳐 항상 스승이 되었으니, 이는 마음을 일으킨 자들의 스승이었느니라.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신중하며 의심을 일으키거나 게으르지 않았느니라. 왜냐하면 변모명혜(變謀明慧)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폐사(弊邪)가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하되, 선사(善士)는 폐사의 가르침에 대해 조심해야 하며, 스승께서 깊은 궁전 안에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여 게으르지 말고 부처님과 같이 존경해야 하느니라. 경법에 의하되 재물과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탐욕이 없는 것을 보배로 삼고, 스승에 대해 존경하고, 자비로써 효순을 다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행한다면 금생에 큰 법을 얻으리라.’ 개사는 화현하신 부처님께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는 기뻐하며 몸을 버리고 정(定)에 들어 시방에 계신 부처님을 뵈려고 하자,
모든 부처님께서 감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선사여. 내가 일찍이 개사의 도를 구하였을 때 정진하였기 때문에 명도를 얻어서 일체지(一切智)의 32상(相)ㆍ80종호(種好)ㆍ10력[十種力]ㆍ4무소외(無所畏)ㆍ4사(事)를 이루었으되, 18불공법(不共法)은 얻지 않았으며, 또 모든 부처님의 찬탄을 얻었느니라. 만약 부처님의 자취를 찾으려고 하거든 마땅히 우리들이 행한 것과 같이 한다면 개사의 공덕으로 그것을 얻게 될지니라.’ 그때 보자개사가 정(定)에서 깨어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시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마치자 다시 애통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법래개사가 계신 곳까지 왔다가 곧 이곳을 떠나가던 길에 사소락(邪所樂)이라고 하는 나라에 왔는데, 그 성 밖에 있는 정원에 묵으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의 법은 보배로워 듣기가 어려우니, 힘껏 스승님을 공양해야겠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은 몸뚱이 하나뿐인 데다 가난하여 스승님께 공양할 진귀한 보배와 향이나 꽃이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곧바로 성으로 들어가 거리를 걸으면서 이렇게 생각하며 말하였다. ‘누구든 내 몸을 살 사람이 없을까?’ 그때 폐사가 성 밖에서 만 명이나 되는 채녀(婇女)들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폐사는 개사가 혼잣말하는 소리를 듣고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개사가 스스로 몸을 팔아서 법래개사에게 공양을 하려는 뜻을 품고 부처가 되려고 하는구나. 나의 경계를 벗어나면 많은 중생을 제도하리니, 내가 악한(惡漢)으로 변하여 온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모습을 보거나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그리하여 성안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의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였다. 개사는 몸을 팔려고 해도 팔지 못하자 곧 땅에 누워 울면서 말하였다. ‘내 몸을 팔아서 스승님을 받들려고 해도 아무도 나를 사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떡하지?’ 이때 제석이 멀리서 개사가 이와 같이 정진하는 것을 보고는 내려와서 부처님의 도를 이루려고 하는 그의 정성을 시험해 보려고 곧 범지(梵志)로 변하여 물어보았다. ‘고사(高士)여, 그대는 왜힘든 괴로움을 구하려고 이렇게 괴롭고 힘들어 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묻지 마십시오.’ 제석은 포기하지 않고 세 번의 질문을 하면서 개사를 도우려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개사가 대답하였다. ‘제 몸을 팔아서 스승님께 공양을 올리려고 합니다.’ 범지가 말하였다. ‘내 마침 큰 제사가 있어서 사람의 피와 고기와 골수와 심장이 필요한데 그대가 나에게 판다면 나를 도와주는 것이니 나에게 파시게.’ 그러자 개사는 그 말을 듣고는 크게 기쁜 마음이 일어서 곧 칼로 스스로 두 팔을 잘라 그 피를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두 넓적다리의 살을 도려내어 주고, 또 뼈를 잘라서 골수를 내주었다. 그리고 나서 가슴을 찌르려고 하였는데, 바로 그때 누각 위에 있던 장자의 딸이 멀리서 이 불쌍하고 비참한 광경을 보고는 5백이나 되는 기녀들을 데리고 개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물었다. ‘고사(高士)의 나이가 아직 어리고 이렇게 단정하게 생겼는데 왜 스스로 몸을 잘라내고 있습니까?’ 그러자 개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피를 내고 살을 도려내고 골수를 내어서 그것을 팔아 스승님께 공양하려고 합니다.’ 장자의 딸이 물었다. ‘만약 스승님께 공양을 한다면 무엇을 얻게 되며, 그 스승님의 이름은 무엇이며,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개사가 대답하였다. ‘스승님은 동방에 계시며, 명호는 법래이시며, 나를 위해 명도를 설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들으면 정행(淨行)을 수호하게 되어, 속히 부처님의 몸인 32상ㆍ10력ㆍ4무소외ㆍ4사를 얻을 것이고, 18불공법을 얻지 않게 되며, 법륜을 굴려 시방에 있는 사람들을 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장자의 딸은 이것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그대 말대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비할 데가 없이 귀한 것이라면서 그대는 왜 스스로를 괴롭히십니까? 내가 갖고 있는 이름난 보배와 몸과 이 여인들을 그대에게 줄 테니, 이것으로 스승님을 공양하여 깊은 경에 대해 들으십시오.’ 개사가 말하였다. ‘매우 훌륭하십니다.’ 범지가 말하였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개사의 높은 행과 정진은 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범지가 아니라 하늘의 왕인 제석으로 그대를 시험하러 왔노라. 그대가 무엇을구하든지 그것을 주겠노라.’ 개사가 대답하였다. ‘천왕께서 저를 가엾이 여기신다면 몸을 평상시대로 회복시켜 주십시오. 원하옵건대 몸의 상처를 치유하여 예전과 같게 하여 주시고, 예전과 같은 강한 힘과 기운을 갖게 해 주십시오.’ 제석이 곧 스스로 물러갔다. 장자의 딸이 보자개사에게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나의 부모를 뵙고 보배를 찾는다는 말을 하러 갑시다.’ 개사가 그 여자의 부모를 보고 그 여자가 진술한 대로 말하니, 부모가 말하였다. ‘매우 훌륭합니다. 나 역시 뜻이 있었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은 마음의 원(願)과 어긋났습니다. 만약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 말하십시오.’ 장자의 딸이 말하였다. ‘제가 원하는 것은 진귀한 보물과 기이한 물건입니다.’ 그녀의 부모가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하자, 그녀는 진기한 물건과 직물과 이름난 전단향과 여러 가지 보물들을 5백 대의 마차에 실으니 절로 무거워졌다. 5백이나 되는 시녀를 데리고 왔는데, 그 시녀들이 장자 딸의 부모에게 귀한 딸의 시중을 들면서 개사를 따라가겠다고 하자, 부모가 허락하여 곧 떠났다. 마차의 행렬이 점점 멀리 향정국(香淨國)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7보로 된 성곽과 당기와 번기와 여러 가지 보배 교로에서는 광채와 색깔이 새어나왔으며, 종과 요령에서는 음악이 연주되었고, 보배 나무와 희려(戱廬)에서는 마차가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서 기향(妓香)이 흘러나오는 것이 마치 천상(天上) 세계에서와 같았다. 개사와 여인들이 멀리서 이와 같은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말하였다. ‘우리들은 마차에서 내려 성으로 걸어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함께 서쪽 문으로 들어가서는 길 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어떤 대(臺)에 있는 7보가 저리도 아름답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말하였다. ‘현자께서는 모르고 계셨습니까? 법래(法來)라고 하는 개사가 계시는데, 사람 가운데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어 공양하고 예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개사께서는 명도(明度)로 이러한 대(臺)를 지으셨으며, 그 안에는 칠보함(七寶函)이 있는데, 자줏빛 마노[紫磨]와 황금으로 된 바탕 위에 명도를 써서 함 속에 넣었고, 몇 백 가지의 이름난 향이 있습니다. 법래개사께서는 매일 공양을 하시는데, 여러 가지 잡꽃과 유명한 향과 등불을 밝혀 번기[幡]에 걸어놓았으며, 꽃에는 여러 가지 보석이 덮여 있으며, 정음(正音)과 도악(道樂)으로 예를 다해공양하시며, 다른 개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도리천인이 밤낮으로 각각 세 번씩 천명화(天名花)로 명도에 공양합니다.’ 보자개사와 여인들은 이것을 듣고 매우 기뻐하고는 다 함께 여러 가지 향과 금비단으로 짠 천으로 옷을 만들어서 위에 펼쳐 번기를 만들고 벽을 바르고 땅에 깔았는데, 그 일이 끝나자 다 함께 법래개사가 앉아 있는 높은 자리가 있는 데와 멀지 않은 곳으로 갔다. 멀리 보니 높은 자리에는 나이가 젊고 용모가 단정한 이가 있었는데, 광채가 뿜어져 나왔으며, 몇 억만 사람을 위해 명도를 설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법래개사를 보자 여러 종류의 향과 약간의 보배로 만든 옷을 들고 스승께 올려 예를 올리고는 그 주위를 8백 번 돌고는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저희들이 높은 행으로 정진하여 존귀한 경을 얻게 해 주소서.’ 그러자 법래개사는 그를 위로하며 말하였다.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피곤하시지 않으십니까? 다른 곳에 사신을 보내 원하시는 것을 얻으시되 스스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사람들을 제도하는 스승이며, 좋아하거나 아까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보자개사가 말하였다. ‘제가 본래 명도를 찾으려다 못 찾고 산에서 애통해 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부처님께서 화현하셨는데, 몸에 32상이 있었고, 자줏빛 마노와 황금빛이 10억이나 되는 광명으로 뿜어져 나왔습니다. 부처님께서 저에게,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명도를 찾으려고 한다면 이곳에서 동방으로 2만여 리를 가면 향정(香淨)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는 법래(法來)라고 하는 개사가 있느니라. 사람 가운데 가장 존귀하며 항상 거듭 거듭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만약 그곳에 가서 가르침을 듣는다면 명도를 얻을 것이니라. 그 전 몇 억만 겁 동안 항상 사람들의 스승이 되어 왔으며, 처음 마음을 일으켰을 때의 스승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스승님의 명호를 듣고는 마음속으로 크게 환희심이 일어서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환희심으로 인해 곧바로 시방에 계신 부처님의 정(定)에 들어 모두 보게 되었으며, 그때 모든 부처님께서 저를 찬탄하시며,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내가 일찍이 부처가 되려고 명도를 찾아 스스로 부처가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선정(禪定)에서 깨어나니모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부처님은 어느 곳에서 왔다가 어느 곳으로 가실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원하옵건대 스승님께서 저를 위해 설하여 주십시오.’ 법래개사가 말하였다. ‘현자여, 잘 들으시오. 공(空)에는 원하는 것이 없고 생각이 없으며, 본래 오고 가는 것이 없고, 또 가야 할 곳도 없습니다. 부처님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계시는 곳이 없고 태어나심도 없으며 모양도 없습니다. 마술로 이루어진 것과 아지랑이와 꿈속의 사람이 멸도(滅度)하는 것이나 상상(想像)하는 것은, 생겨남이 없으며 자라지도 않으며 적당함도 없습니다. 경(經)의 세계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핵심[本端]은, 오는 곳이 없으며 가야 할 곳도 역시 없다는 것이니, 부처님을 알고자 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보자개사는 깊은 법이 이와 같이 비할 데 없고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듣고는 곧바로 그 자리에서 6만이나 되는 정(定)의 문(門)을 얻었다. 정의 문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처소가 없는 정(定), 모든 삿됨을 벗어나 두려움이 없는 정, 애욕(愛欲)의 근본을 벗어나는 정, 환란을 벗어나는 정, 셀 수 없이 많은 법구(法句)들로 들어가는 정, 바닷물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혜로 들어가는 정, 수미산을 공덕으로 장엄하는 정, 5음과 4대(大)와 6쇠(衰:根)의 모양이 없음을 관하는 정, 모든 부처님을 다 뵙는 정, 개사의 정, 모든 경(經)에는 모양이 없음과 보는 것이 없음과 설하는 것이 없음을 말하는 정, 진귀한 보배로 장식하는 정, 진귀한 보배를 모두 관하여 들어가는 정,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정. 개사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정, 진실로 물러나지 않으며 법륜(法輪)을 굴리는 정, 부처님의 공덕을 장엄하는 정, 들은 일들에 하자도 없고 더러움도 없어 청정한 정, 들은 일들이 바다와 같음을 아는 정, 얻을 것도 없고 지나칠 것도 없는 정, 경을 설하는 음성이 두루 퍼지는 것을 좋아하는 정, 경의 법의 장구[章]가 깃발[旗]과 번기에 드러나는 정, 여래의 몸[身]이 모양이 없음에 들어가는 정, 모든 경(經)에는 모양이 없어도 두루 볼 수 있는 정, 개사(闓士)가 인가(印可)한 정, 여래의 눈으로 보는 정, 경계(境界)를 밝게 비추는 정, 부처님의 세계에서 원하는 것이 모두 갖추어지는 정, 시방에 있는 어려움을 풀어 주는 정, 부처가 될 때를 장엄해주는 정. 여러 가지 다른 색의 꽃으로 이루어진 정,진귀한 보배가 많은 정, 법륜을 항상 굴리는 정, 모든 음성을 멀리서도 들을 수 있는 정, 시방에 있는 사람들을 근본으로 들어오게 하는 정, 삼계(三界)로 두루 가게 하는 정, 부처가 될 때의 모든 공덕으로 이루어진 정, 6도(度)를 넘어서지 않은 개사가 나무 아래에서 좌선할 때의 정, 다른 외도(外道)의 그물을 물리치는 정, 여래께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정,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으로 장엄한 정, 모든 진귀한 보배와 지혜와 공덕의 정, 일체지(一切智)의 지위에 있는 정, 모든 것이 스스로 청정한 정, 모든 것을 두루 밝혀 주는 정, 모든 시방에 있는 사람들을 인(因)의 경지로 들어가게 하는 정, 근본의 지혜를 벗어나는 정, 3세(世)가 모두 평등한 정 등이니, 보자개사는 이와 같이 6만이나 되는 정을 얻었다. 그러자 법래개사는 일어나서 궁중으로 들어갔다.
29. 법래개사품(法來闓士品)
이때 보자개사는 정에서 깨어나서 안온하였으며, 채녀들과 함께 법래개사가 있는 궁의 문 앞에 와서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말하였다. ‘나는 경법을 듣기 위해 왔다. 스승은 지금 안에 계시니, 앉지도 눕지도 말고 스승님이 나오셔서 높은 자리에 올라 명도무극을 설하시도록 청하고 난 뒤에 앉자.’ 여자들도 서 있었다. 이때 법래개사는 궁 안에서 채녀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경을 설하기를 마치자 목욕을 하고 다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명도대(明度臺) 위에 올라앉아서는 여러 가지 정(定)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7년 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동요하지도 않았으며, 보자개사와 여인들도 역시 경행(經行)하며 7년 동안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았다. 그 후 어느 날 천인(天人)이 공중에서 말하길 ‘7일 뒤에 법래개사께서 정에서 깨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보자개사는 천인의 말소리를 듣고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스승을 위해 자리를 깔고 청소를 하여 깨끗하게 해야겠다.’ 이에 모두들 경을 설하는 자리로 와서 특별히 스승을 위해 높은 자리를 마련하였으며,여인들은 각각 입은 옷으로 그 자리를 덮었다. 그러자 폐사가 말하였다. ‘이 개사가 지금 높은 자리를 마련하고 공경하여 부처가 되려고 쉬거나 게으르지 않고 맹렬히 정진하여 도를 얻으려고 하는구나. 나의 경계를 벗어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할 것이니 내가 악한(惡漢)이 되어야겠다.’ 폐사는 개사의 자리를 망가뜨리고, 맑은 날씨를 바꾸어 비가 오게 하고, 모래와 자갈과 돌과 가시와 마른 뼈로 자리를 더럽혔다. 이때 보자개사와 여인들은 땅에서 갑자기 모래ㆍ자갈ㆍ가시ㆍ마른 뼈가 솟아나 자리를 더럽히는 것을 보고는 말하였다. ‘지금 스승님께서 경을 설하시면 모든 제자들이 다 들으러 오실 테니 다시 청소하고 정돈해야겠다.’ 자리의 정돈이 끝나자 땅에서 갑자기 진흙이 솟아나와 스승과 개사들의 자리를 더럽혔다. 이에 이들은 물을 뿌리려고 물을 찾았다. 그런데 폐사가 물을 말라 버리게 하자 이렇게 생각하며 말하였다. ‘물을 찾으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으니 어떡하나? 그렇다면 몸에서 피를 내어 깨끗이 닦아야겠다.’ 이때 보자개사와 여인들이 각기 칼을 들고 곳곳을 찌르니 피가 나와 땅에 뿌려졌는데, 이는 법을 듣고자 하는 자비심 때문이었다. 그러자 제석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금세(今世)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정진하고 스승님을 공경하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효순을 다하는구나.’ 그리고는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도 훌륭하구나, 현자여. 진실로 어려운 일을 하고 있구나. 지금 명도에 대해 들으면 오래지 않아 부처를 얻을 것이니라. 현자여, 지금 달리 나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 현자와 같은 부류가 있다면 나는 마땅히 수호할 것이며,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얻게 해 주겠다.’ 보자개사가 대답하였다. ‘제가 얻으려고 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자 제석은 땅을 모두 수정과 유리로 바꾸고는 그 위에 있는 금모래로 보자개사와 여인들의 몸에 난 상처를 원래대로 돌아오게 해 주었다. 자리의 사방에는 유리로 된 연못을 생기게 했는데, 그 주위는 모두 진귀한 보배로 만든 난간이 둘러쌌고, 네 가지 보배로 된 연못 계단 양 옆에는7보로 만든 나무 수백 종류가 길게 늘어서 있어서 아름다웠다. 개사와 여인들은 다른 개사들을 위해 물을 넣어 두었는데, 하늘에서 온갖 꽃들을 비 오듯 내려왔는데, 그 광색(光色)이 온 나라를 비추었으며, 달콤한 향기가 사방을 덮었다. 그 향기를 맡으면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4천이나 되는 돌을 부드럽게 할 정도였다. 제석이 보자개사에게 말하였다. ‘이 꽃으로 명도에 공양하고 법래개사와 모든 개사들 위에 뿌리겠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의 옷 5백 벌로 법래개사의 자리 위를 덮자, 보자개사는 곧 그것을 받고는 주문(呪文)으로 발원하였다. 이때 법래개사는 7년 후에 정에서 깨어나 높은 자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2백억이나 되는 개사들과 함께 앉았는데, 앞에 앉은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러자 보자개사와 여인들이 다 함께 꽃을 뿌렸으며, 또 전단을 찧은 향과 이름난 잡향과 여러 가지 진귀한 보배를 들고 법래개사와 모든 개사들 위에 뿌리고는 머리와 얼굴을 개사의 발에 대어 예를 올리고는 일어나 주위를 세 번 돌고 그 자리에 앉아서 미세한 마음으로 법래의 큰 모임에 모인 사람이 40리에 가득 찬 것을 보았다. 법래개사는 사방으로 대회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는 경법으로 명도를 설하며 말하였다. ‘선사(善士)여, 들으라. 모든 경의 법의 근본 핵심은 평등한 여래의 지혜로서 장애함이 없으니, 이는 마치 허깨비[幻]와 같아 모양이 없으며, 바람과 같아서 그 근본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명도도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나의 것[我所]이란 모두 근본을 끊어 본래 청정한 것이며, 명도도 또한 본래 청정한 것이니, 예를 들면 아지랑이나 상상 속의 사람은 본래 없는 것과 같고, 꿈속에서 바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과 같으며, 이름만 존재하는 사람은 본래 없는 것과 같고, 응의(應儀)의 멸도는 공하여 생겨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 명도도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여래의 멸도는 평등하여 다름이 없으며, 명도도 본래 평등하니, 예를 들면 불[火]이 때가 되면 꺼지는 것과 같이 본래 오는 곳이 없으며 가야 할 곳도 없는 것과 같고, 꿈에서 본 수미산은본래 없는 것과 같으며, 부처님이 화현하실 때 날아가는 것[飛]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명도도 또한 마찬가지이니라. 욕망[欲] 안에서 그 욕망의 모양[相]을 헤아림은 존재하지 않으니, 마치 사람의 이름과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마치 지금 온 것은 앞의 것에 대해서 볼 수 없으니 지은 인(因)을 생각하여 명도를 보고, 지은 것을 생각하되 본래 존재하는 것은 없는 것과 같으니라. 마치 마술사가 만들어 낸 형상은 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고, 허공에는 머무를 곳이 없는 것과 같으며, 마술사는 보여 주지 못하는 것이 없어도 과거ㆍ미래ㆍ현재는 하나로 합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명도에도 또한 3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름에는 본래 모양이 없으나 글자를 모아서 늘어놓아 모양이 있는 것이며, 명도는 이르지 못할 곳이 없으며,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공(空)에는 본래 색(色)이 없으며, 명도는 허공과 같아 이르지 못할 곳이 없으며, 들어가지 못할 곳이 없으니, 지ㆍ수ㆍ화ㆍ풍ㆍ공에 들어가고, 5음에 들어가며, 사람의 수명(壽命)ㆍ덕(德)이 있음ㆍ덕이 없음에 들어가고, 욕(欲)ㆍ불욕(不欲)과 유(有)ㆍ무유(無有)와 상(想)ㆍ무상(無想)과 원(願)ㆍ무원(無願)에 들어가며, 태어남으로 들어가고, 해ㆍ달ㆍ별[星宿]ㆍ질량신(質諒神)ㆍ용(龍)ㆍ귀왕(鬼王)ㆍ집악신(執樂神)ㆍ사인형신(似人形神)ㆍ협억행신(脇臆行神)ㆍ사구신(蛇軀神)으로 들어가며, 또한 금수ㆍ아귀ㆍ지옥ㆍ날아다니는 곤충ㆍ꿈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곤충ㆍ기어 다니는 곤충의 들고 나는 숨[喘息]에 들어가며, 빈천한 사람ㆍ부귀한 사람ㆍ현자ㆍ성인ㆍ지자(智者)ㆍ선인(仙人)ㆍ구항ㆍ빈래ㆍ불환ㆍ응의ㆍ연일각에 들어가며, 부처님의 경지로 들어가느니라. 멸도(滅度)ㆍ4의지(意止)ㆍ4의단(意斷)ㆍ4신족(神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도행(道行)ㆍ유지(有智)ㆍ무지(無智)ㆍ10력[十種力]ㆍ4무소외(無所畏)ㆍ사(事)ㆍ18불공법(不共法)을 얻지 않음ㆍ부처님의 경전ㆍ세간의 경전ㆍ무주(巫呪)에 들어가며, 숙명(宿命)ㆍ소행(所行)ㆍ전전(展轉)ㆍ생사(生死)ㆍ중유(中有)ㆍ고(苦)ㆍ무고(無苦)ㆍ자재(自在)ㆍ부자재(不自在)ㆍ해탈하는 것[度脫]의 좋음[好]ㆍ해탈하는 것의 좋지 않음[不好]ㆍ선(善)ㆍ불선(不善)ㆍ지(智)ㆍ부지(不智)ㆍ명(明)ㆍ불명(不明)ㆍ과거 미래 현재를 볼 수 있음ㆍ과거 미래 현재를 볼 수 없음ㆍ교법(敎法)이 존재함ㆍ교법이 존재하지 않음ㆍ모든 것에 모양이 있음ㆍ모든 것에 모양이 없음ㆍ들어가지 못할 것이 없는 것에 들어가느니라.’” 부처님께서 선업에게 말씀하셨다. “법래개사는 보자(普慈)를 위해 명도에 들어갈 바에 대해 설해 주었는데,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설하기를 밤낮없이 7일 동안 하였느니라. 이때 경을 듣는 사람들은 마치 밥 먹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금방 지나갔다고 생각하였느니라. 왜냐하면 법래개사의 위신력과 은덕 때문이니라. 보자개사는 이를 듣고는 크게 기뻐하였고, 여인들은 하늘의 옷과 8백이나 되는 석잡보(石雜寶)를 들고 법래개사에게 공양을 하였느니라. 제석은 또 하늘에 있는 이름난 꽃을 들고 법래개사와 모든 개사들 위에 뿌려 그 공덕이 더 많아졌느니라. 이때 한 부처님의 세계 안에 있는 나무와 꽃과 과실과 여러 가지 보배로 만든 나무들이 모두 몸을 활같이 구부려 법래개사를 향해 예를 올렸으며, 꿀같이 달콤한 향기가 나는 꽃의 향기가 부처님의 찰토 안에 퍼져 모든 사람들이 그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느니라. 그들은 법래개사가 높은 자리에 올라 경을 설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으며, 또 보자개사와 여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도 멀리서 예를 올렸으니, 그 국토 안이 전부 진동하였느니라. 이때는 몇 억만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무수한 경의 법을 얻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개사들이 모두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었느니라. 그러자 여인들이 보자개사 앞에 가서 아뢰었다. ‘저희들은 몸과 목숨을 바쳐 귀의하여 스승님을 위해 시봉하고, 5백 수레에 실은 진귀한 보배를 올리기를 원하옵니다. 스승님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크고 많은 괴로움을 참으셔서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지금 그 크신 은덕을 입어 존귀한 경을 듣게 되었으며,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스승님을 위해 몇 억만 겁 동안 시봉한다 하더라도 찰나의 은덕조차 갚지 못할 것입니다.’ 보자개사는 그것을 받고는 법래개사 앞으로 가서 아뢰었다. ‘지금 여인들이 몸과진귀한 보배를 대사(大師)께 올렸습니다. 바라옵건대 대사께서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기어 그것을 받아 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공덕을 얻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법래개사는 보자개사가 공덕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 그것을 받았다. 이에 보자개사가 말하였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여인들이 시봉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수레에 실린 진귀한 보배들을 드릴 수 있게 되었도다.’ 이것을 본 도리천 위에 있는 모든 천인들이 모두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훌륭하고도 훌륭하시도다. 보자개사께서 수많은 보배를 모두 스승님께 베푸셨으니, 그 마음은 행하기 어려운 것이라.’ 이때 몇 억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법래개사가 있는 곳에 와서 경을 듣게 되었고, 보자개사는 기뻐하여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6만이나 되는 정(定)의 문(門)을 얻었느니라. 정의 문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즐겁기를 발원하는 정, 위의(威儀)가 있는 정, 덕을 찬탄하는 정, 달이 원만하게 차오르는 정, 태양의 광명이 타오르는 정, 여래께서 행하시는 정, 부처님을 생각하는 정, 개사가 태어나는 정, 지혜를 좋아하는 정, 해탈에 견고하게 머무는 정, 모든 경계(境界) 가운데 머무르지 않는 정, 국토를 여러 가지로 장엄하여 들어가는 정, 여래의 상(相)으로 무상(無想)에 들어가는 정, 시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양과 인(印)으로 봉함이 없는 정, 여래께서 벗어나고 태어나는 정, 두려움 없고 즐거워하는 정, 진귀한 보배를 버리거나 남에게 주는 정, 여래의 세력으로 장엄하는 정, 모든 경의 법을 밝히고 좋아하는 정, 모든 법에는 오는 곳이 없다는 것을 일어나는 일마다 알게 되는 정, 범천(梵天)과 같이 청정한 정, 3세(世)에 있어 모두 평등하게 들어가는 정, 부처님을 장엄함을 갈무리하는 정, 부처님의 음성을 모두 성취하는 정 등, 이와 같은 6만이나 되는 정(定)의 문을 얻었느니라.‘ 개사가 정에서 깨어나니, 모두들 제법(諸法) 가운데에서 지혜의 힘을 얻게 되었다. 보자개사가 아뢰었다. ‘스승님께서 저를 위해 부처님의 음성은 어떠한지 알 수 있도록 설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래개사가 말하였다. ‘현자여, 잘 들으시오. 마치 공후(箜篌)라는 악기는 한 가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둥도 있고 줄도 있어서, 누구든 손으로 흔들거나 두드리면 그 음이 자유자재로 나와 어떤 곡이든 타고 싶은 대로 나오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음성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와 같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개사가마음을 일으키고 누세에 걸쳐 지어온 공덕이 있다면 부처님의 일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물어서 이러한 일이 합해지면 부처님의 몸[佛身]을 얻게 되는데, 음성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법은 모두 인연(因緣)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개사의 행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행을 떠나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부처님의 몸에 의해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의 몸을 떠나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현자여, 부처님의 몸과 음성을 알려고 한다면 몸과 음성이 합해져서 부처님의 음성을 얻게 됩니다. 또한 현자여, 이는 마치 생황을 부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연주가 노래와 잘 맞는 것과 같습니다. 생황은 대나무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 것으로, 어떤 사람이 불면 연주와 노래가 잘 합해져서 애달픈 소리를 내게 됩니다. 여래의 몸도 한두 가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누대에 걸쳐 지어온 얼마간의 공덕으로 인해 그 사람을 도의 본원(本願)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몸의 모습[相]과 종호(種好)가 그와 같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었는데,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부처님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보는 사람마다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이에 꽃ㆍ향ㆍ비단으로 공양하였습니다. 현자는 그 형상에 부처님의 위신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보자개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그 형상을 만든 이유는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삼가게 하고 예경하도록 하며, 스스로 경책하여 수행하며 그 복을 얻도록 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 또한 한두 가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금(金)이 있어야 하고,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하며, 부처님과 같은 시대에 살아 부처님을 뵌 사람이 있어야 하고,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부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형상을 만들어 시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양하게 하여 그 복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법래개사가 대답하였다. ‘현자의 말과 같이 부처님의 몸을 이루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개사의 행이 있어야 하고, 부처님을 찾는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또한 항상 부처님을 뵙는 것으로 공덕을 지어야 하니, 이와 같기 때문에 부처님의 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혜ㆍ변화(變化)ㆍ비행(飛行)과 부처님의 모든 종호(種好)가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북을 만들려면 대ㆍ나무ㆍ가죽ㆍ북채가 있어야 그것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몸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몇 백천 가지가 있어야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일으킨 마음[初發意]이 있어야 하고, 6도무극(度無極)의 행이 있어야 하며, 본래 없음[本無]과 생겨난 바가 없는 것[無所從生]을 알고 나서, 나무 아래에 앉아서 폐사의 권속을 항복시키고 모든 경의 법이 허깨비[幻]와 같아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부처님의 몸을 이루게 됩니다. 예를 들면 그림 그리는 화공이라면 벽과 채색 물감과 붓과 손이 있어야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수천 가지가 있으니, 보시를 하고 계를 지켜 열 가지 악한 일을 저지르지 말고 항상 선지식[善師]을 따라 평등한 마음으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며 무너지지 않게 한다면 세세생생 부처님을 보게 됩니다. 개사는 이러한 행에 대해 듣고는 견고하게 수지하여 잊지 않도록 하며, 아첨하지 않고 진실함을 지켜 항상 정성을 다해 행합니다. 또 예를 들면 무결애천(無結愛天)이 지관(止觀)으로 광요천(光燿天)에 오르면 단정하고 아름답게 되는데, 이 천(天)이 설법하여 제도하는 것[第舍]2)은 스스로 짓는 것이 아니고, 누가 와서 짓는 것도 아니며, 본래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역시 없으니, 이는 인연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며, 그 사람이 전세에 지은 공덕의 소치로서, 중생들에게 보시하였기 때문에 그곳에 태어나 설법으로 제도하고 있는 가운데 지관[止]을 하는 것입니다. 현자여, 부처님의 몸이 인연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알려고 한다면 세간의 사람들이 부처님을 뵈려고 하는 것과 그 사람들이 전세에 이미 공덕을 지어놓은 것과 여덟 가지 악한 곳을 멀리 떠나 부처님에 대한 지혜와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몸을 나타내시는 이유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마치 산 속에서 나는 소리는 한두 가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산이 있어야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듣는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본래 형상이 없으시고, 집착도 없으시며, 인연으로 태어나시고, 세세생생 공(空)을 익히고 행하시며, 생사의 인연에 대해 모두 아시고, 생사가 본래 없다는 것과 멸도도 역시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이와 같은 것을 드러내 보여 주심으로써 이와 같이 설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마술사[幻師]가 조화를 부려 전륜왕(轉輪王)을 만들어서 자비로운 음성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듣는 이마다 기뻐하게 하니, 사람들이 진귀한 보배와 아끼던 이불이나 옷을 갖고 찾아와서 왕에게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왕이대중 가운데 앉고 일어나고 행하고 걷는 모습에는 위의가 있고 안온하니, 그것을 본 사람마다 예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이것도 한두 가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술사가 있어야 하고, 주문이 있어야 하며, 모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니, 그들이 기뻐하므로 만들어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어떤 영리한 사람이 그것이 만들어진 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리한 사람은 그 만들어진 사람[幻人]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 역시 없으며, 본래 공한 것으로, 마술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과 인연의 소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지은 공덕이 있어야 하고, 덕을 기뻐해야 하며, 중생을 안온하게 해 주려는 생각을 해야 하고, 경의 법을 퍼지게 하여 그것을 가르쳐 선정[棄定]ㆍ사유(思惟)ㆍ분별(分別)을 행하게 하여 사람들을 위해 경을 설하고 배우게 할 원력을 가진 개사가 있어야 하며, 언제나 기뻐하는 모든 하늘의 백성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에는 스스로 교만한 이ㆍ뉘우칠 줄 모르는 이ㆍ음란하고 인색하고 욕심 많은 이ㆍ강량(强梁)이 스스로 썼던 이ㆍ싸우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말리지 않는 이ㆍ사음과 화냄과 어리석음으로 덮인 이ㆍ셀 수 없이 많은 악을 행한 이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대중 가운데 계실 때는 단정하고 아름다우시며, 앉고 일어나고 행하고 걷는 모습에는 법도와 위의가 있고 안온하며, 모든 악(惡)이 다 없어지고 오직 덕(德)만 있으므로 사람들을 평안하게 해 주며, 또한 스스로 부처님의 일을 행하시되 본래 공(空)하여 집착하지 않으시는 것이 마치 마술사가 만든 사람이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개사는 부처님의 몸이 이와 같음을 보아야 합니다. 비록 본다고 하더라도 집착하지 않고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며, 비록 본래 공하여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 끊임없이 공경하고 예를 올리고 공양한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일은 각각 인연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사가 이와 같이 생각하고 행을 수호한다면 부처를 얻을 것입니다.’ 법래개사가 부처님의 몸에 대해 설할 때 4만 8천이나 되는 개사가 곧바로 그 도리를 다 알고 그 행을 믿게 되었으며, 백억이나 되는 개사가 장애가 없이 묻는 것을 얻었고, 묻는 것마다 대답할 수 있었으며, 4백억이나 되는 개사가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얻었고, 8백억이나 되는 개사가 모두 염부제[阿閻浮]에 머무는 법을 얻었다. 이때 천(天)들이 이름난 꽃을 들고 와서 법래개사와 모든 개사 위에 뿌렸으며,법래개사의 위신력으로 한 부처님 세계에 있는 모든 음악이 저절로 소리를 내었으며, 수천만이나 되는 천들이 허공에서 하늘의 옷을 뿌려 음악을 만들어 내어 법래개사와 모든 개사들을 즐겁게 하였으며, 그 옷들을 모두 펼쳐서 한 부처님 세계를 덮자 모든 천(天)들이 여러 가지 향을 피우니, 그 향이 퍼져 한 부처님 세계에 두루 퍼지게 되었고, 땅이 모두 진동하였다. 법래개사가 모든 부처님을 두루 뵙자, 모든 부처님이 멀리서 법래개사를 찬탄하면서 말하였다. ‘훌륭하고도 훌륭하도다.’ 이때 모든 부처님께서 보자개사에게 나중에 내마가기다파라(內摩迦祇陀頗羅)라고 하는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주셨다. 여래께서는 정진도(正眞道)와 최정각(最正覺)에 집착하지 않으셨으니, 여인들은 모두 곧바로 남자가 되었으며, 세세생생 태어날 때마다 부처님을 여의지 않고, 항상 대명(大明)의 가르침을 시방에 있는 중생들에게 가르쳐서 부처가 되도록 해 주었다.” 부처님께서 선업에게 말씀하셨다. “개사가 속히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명도무극을 찾아 정진하고 공경하되 보자개사가 하던 것과 같이 하라.”
30. 촉루아난품(囑累阿難品)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명도무극의 경으로 그대에게 부촉하노니, 잘 지녀서 그 글자와 구절을 잘 받아들이되 빠뜨리거나 좌우를 돌아보지 말도록 하라. 이것은 무진장의 경(經)을 담고 있되, 모든 법이 다 그 가운데에서 나오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권(經卷)은 여러 가지 다른 지혜로 인해 생겨난 것이므로 백성들이 약간이라도 좋아하거나 도의 경을 행한다면 지혜 속으로 들어가느니라. 모든 것은 다 명도의 보장(寶藏)에서 나오는 것이니라. 여러 가지 보이는 모양과 여러 가지 행과 여러 가지 어리석음의 종류와 지혜의 종류와 백성들이 없애려고 하는 것과 지혜를 구하는 것들은 모두 명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래께서는 아시느니라. 이 경은 여래의 집착 없는 정진도와 최정각의 어머니이며, 지혜의 눈[慧眼]과 나의 몸은 모두 여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만약내가 말한 법을 공경한다면 나를 공경하는 것이 되느니라. 만약 스스로의 몸으로 부처님께 자비와 효순으로 공경하되 이 경을 지니고 명도를 받들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되느니라. 만약 몸과 입과 마음으로 부처님께 자비와 효순으로 공경하되 효순이 없음에 대해 말하지 않고, 항상 부처님의 위의를 얻어 늘 법에 의하고 마음이 항상 깨끗하여 더러움이 없으며, 부처님을 뵙고 뵙지 않음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이와 같은 것은 모두 부처님의 은덕을 받는 것이니라. 아난아, 이 명도 가운데 한 구절 한 글자라도 잊거나 버리고 베껴 쓰지 않는다거나, 나를 보지 않는다거나,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고 공양하지 않는다면 부처님의 은덕을 배반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만약 명도를 잘 받아들이고 잘 생각하여 부처님께 자비와 효순으로 공경하여 그 가르침을 잘 받들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부처님ㆍ천중천(天中天)께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실 것이니라. 이러한 공양으로 중생에게 대자비로 대하면 불장(佛藏)에 가까워져 지니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이 경을 수호해야 하며, 그 마음이 줄어들지 않도록 해야 하느니라. 내 손으로 부촉하니 개사 대사는 받을 것이니라. 개사 대사가 이것을 지닌 까닭은 모든 수고와 생사와 감옥을 모두 무너뜨리고,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 어리석음에 매이고 집착하는 것을 모두 풀어 주려고 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폐사와 그의 권속들이 모두 항복하게 되는 것이며, 욕심으로 인해 생긴 법들도 모두 없어지게 되어 부처님의 자리로 올라가 무상정진도를 짓게 되는 것이며, 어리석음을 보지 않는 백성들에게는 모두 더 이상의 바른 법이라고는 없는 으뜸가는 대도(大道)로서의 무상정진도와 최정각혜(最正覺慧)의 정법(正法)을 열게 해 주느니라. 이것은 명도(明度)의 수기이니, 내가 멸도한 뒤 삼천대천국토와 그 백성들이 만약 가르침으로 법 가운데 들어간다면 응의도(應儀道)를 성취하게 하여, ‘가르침을 보여 이와 같이 들어갑니다’라고 말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하되 1겁이 백 겁이 되도록 경을 설하여 멸도를 얻게 한다고하더라도 아직은 나를 받드는 일에는 충분하지 않으니, 차라리 한 구절의 가르침을 지니고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이와 같이 칭찬하며 명도를 부촉하기를 1겁에서 백 겁에 이르도록 해도 다 마치지 못하므로 그 대강(大綱)을 말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가사 속에서 팔을 드시더니 오른손을 아난의 머리 위에 얹으시고 머리를 쓰다듬으시더니 다시 아난의 어깨에 올려놓으시고는 말씀하셨다. “아난아,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님께 자비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부처님ㆍ천중천이시여, 알겠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님께 효순해야 하겠느냐?” 다시 세 번째로 물으시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부처님ㆍ천중천이시여,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크나큰 자비로 부처님의 은덕을 갖추는 것으로 보답해야 하느니라. 명도의 법을 존귀하게 여기고 받들고 그 법을 공경해야 하느니라. 그 경의 뜻과 구절을 수지하되 마음속에 분명하게 새기고 생각하며, 다른 것은 버려서 일심(一心)으로 그 경에 있는 것을 베껴 쓰되 글자를 정확하게 쓰고 구절을 바로잡아서 그것을 취하고 지니고 배울 때에 마땅히 잘 받아서 개사와 함께 경의 위아래 구절을 서로 얻도록 해야 하느니라. 베껴 쓸 때에는 좋은 붓으로 좋은 종이 위에 써야 하며, 이렇게 받들고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며 예경을 올리고, 마치 천상(天上)에 있는 결정향(潔淨香) 같은 화향(花香)ㆍ도향(擣香)ㆍ소향(燒香)ㆍ택향(澤香)ㆍ비단 일산[繒蓋]ㆍ번기[幡]를 공양하되, 참기름을 바른 좋은 등불을 켜고는 머리를 땅에 대고 귀의하고 심지를 돋우고 더욱더 예를 올려 공경하며, 그 일을 받들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명도무극에 대해 설하실 때 왕사성의 계산(鷄山)에 모든 제자와 개사들이 있었는데, 중앙에 부처님께서 앉아 계셨고, 나이 30세에 부처님이 되셨으며, 12월 15일 식사를 끝마치신 뒤에 경을 설하기를 끝마치셨다. 그곳에 있던 제자들과 개사들과 천(天)ㆍ질량신(質諒神)ㆍ용(龍)ㆍ귀왕(鬼王)ㆍ백성 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며 부처님 앞에 예배를 올리고는 물러갔다. ------ 1) 보배 옥으로 만든 휘장. 옥빛이 이슬이 햇볕에 빛나는 것 같으므로 교로라 한 것이다. 2) 범어 Tirna bhasya의 음역으로, 제사(提舍) 또는 저사(底沙)라고도 표기하며, 번역하면 설법(說法)으로 사람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 명칭마다 다른 특징의 보살들 『대명도경』에 보자개사가 나온다. 그리고 법래개사도 나온다. 이분들은 다른 경전에서는 살타파륜 sadāprarudita-bodhisattva 보살, 담무갈 Dharmodgata 보살 이런 형태로 나온다. 또는 상제보살, 법성(法盛)ㆍ법용(法勇)ㆍ법상(法上)ㆍ법기(法起)보살 이런 명칭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분들의 본 정체가 문제된다. 우선 표현이 다르기에 이분들의 본 정체가 다른가 같은가가 문제된다. 또 표현이 같으면 같은 분인가도 문제된다. 형식상 표현이 다르면, 같다고 할 수 없다. 한편 표현이 같은 경우는, 그런 사정으로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분들이 나오는 경전에서 이에 대해 사실을 말해준다.
그런데 결국 본 정체를 살필 때는 같고 다름 양 측면을 모두 떠나야 한다. 그리고 경전에서 이 분들은 단지 명칭 뿐이다. 이렇게 제시된다.
상당히 허망하다. 무언가 각 보살에게는 특별히 대단한 것이 있을 줄 알고 살피면 실망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보살들이 하나같이 명칭 뿐인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도 사정이 같다. 그리고 일반 중생도 사정이 같다.
그래서 문수보살님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당신이 나를 문수보살님이라고 하면 여기에 2 문수가 있게 된다. 그러면 엉터리다. 이렇게 제시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그 사정을 자세하게 제시하는 것이 『대명도경』이고 『대반야바라밀다경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세상에 유명한 보살 중에 관세음보살이 계신다. 연화부 보살로서 자비를 활동 모토로 삼고 중생제도에 임한다. 대부분 보살이 관세음보살로 대표되어 활동한다고 할 수 있다. 중생들이 불이 나면 119 에 신고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 가까운 곳에 연락해 소방차가 나가는 것과 같다. 소방소원은 수없이 많아도 하나로 일체화되어 활동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떤 특별한 보살이 마음에 들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보살 가운데 가장 힘이 센 보살로 숙왕화보살이 경전에 나온다. 그렇다고 숙왕화보살의 명호를 따로 념한다고 특별히 효력이 좋은 것이 아니다.
중생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수많은 개별 보살의 명호를 념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관세음보살이 대표로 접수하고, 필요한 경우는 다른 보살의 도움을 또 요청해서 중생을 돕게 된다. 그래서 관세음보살 명호만 념해도 충분하다. 불이 났을 때 가까운 소방서의 개별 전화를 찾아서 전화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관세음보살의 명호가 다양하다. 현재 부록에 이 분의 108 명호를 붙어 틈날때마다 열심히 외운다. 자꾸 잊어 먹는다. 그래도 또 외운다.
그런데 그 첫번째 명호가 다음과 같다. 다냐타 혜바나나 가리 다가리 다냐
다라니와 비슷해서 뜻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도 잘 살펴보면 이 명호를 통해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우선 보살이 108 명호가 있다는 것은 보살도 최소 108 명은 된다는 의미다. 보살은 본래 명칭 뿐이기 때문이다. 보살이 활동하는 캐릭터나 중생제도에 임하는 콘셉 자체가 최소 108 개는 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정이 있다. 관세음보살의 서원과 특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으로 본인은 거리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모두 다 관자재보살로 관한다. 다냐타 혜바나나 가리 다가리 다냐 라는 명호를 놓고 뜻을 헤아리다 보면 그런 감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만나는 이들 대부분 범부 속성만 파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그런 자체가 곧 관자재 보살 특성이라고 관하게 된다. 잘 살피면 세상의 각 생명이 모두 그런 형태로 여하한 도움이든 중생에게 도움을 준다. 그런 측면으로 관하면 그렇다.
예를 들어 전자제품 수리기사님도 관자재보살이다. 버스 운전기사님도 관자재보살이다.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파는 분도 관자재보살이다. 그냥 거리를 걸어가는 아저씨도 관자재보살이다. 예를 들어 다가가 길을 물어보면 대부분 잘 알려주신다. 그래서 자신이 관자재보살로 관하고 대하면 일체 생명이 다 관자재보살이다.
그런데 현실 사정이 이와 같기에 각 경우에 또 다른 측면으로 관하면 그 반대가 된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관자재보살도 아귀나 야차나 지옥중생의 속성으로 관하게도 된다. 전자제품 수리기사님은 버스를 운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버스 운전기사님은 전자제품을 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그런 측면으로 관하면 하나같이 능력이 없다고 잘못 평가하기도 쉽다.
한편 현실에 이렇게 수많은 중생을 다 관자재보살로 관한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수많은 관자재 보살 가운데 누가 정말 진짜인가가 궁금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 앞에 108 명호를 가진 보살이 한 자리에 다 함께 모였다고 하자. 그래서 이 가운데 누가 진짜인가가 문제된다고 하자. 진짜 가짜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이 경우 자신이 진짜라고 답하는 경우는 100% 가짜다. 그 사정이 경전에 제시된다. 그런 것을 현실에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보살의 최소 요건이다. 결국 수많은 보살 가운데 자신이 진짜라고 제시할 수 있는 이는 본래 없다. 있다면 그것이 가짜임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그런 망집에 바탕해 현실에 그런 상을 갖고 임하면 보살 자격이 곧바로 박탈된다. 이런 내용이 『금강반야바라밀경』에도 제시된다.
보살이 가끔 중생제도를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상을 가진 자는 나를 볼 수 없다. 의상대사를 만나러 간 관세음보살이 남긴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보살이 다른 중생을 대하면서 이런 말을 남길 때 혹시 그 자신은 그런 보살이라는 아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또 다른 이는 그렇지 않은 이다라고 타상을 갖고 임한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그렇다면 가짜다.
그러나 보살은 사실 그렇지 않다. 그것이 구호중생 이중생상 이라는 구절에 표현되어 있다. 이는 십회향의 한 항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살은 아상도 없고 타상도 없이 중생 제도에 임한다. 예를 들어 자신은 다른 중생과 다른 존재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임하는 이는 가짜다. 자신은 다른 중생을 구호하는 이고 다른 이는 구호받는 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임하는 이도 가짜다. 저 사람은 영희다. 나는 관자재보살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임하는 이도 가짜다. 저 사람은 영희다. 나는 철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임하는 이는 보살도 아니다. 보살이라고 하려면 최소한 보리심을 바탕으로 중생에 이로움을 주고 중생제도를 행하고 성불하고자 하는 서원을 갖고 현실에 임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관자재보살의 이명으로 관세음보살 광세음보살도 있다. 본인 혼자 생각에 범부이면서 남성형태면 관자재보살 범부이면서 여성형태면 관세음보살
그런데 의상대사 앞에서 할머니처럼 나타난 쫒겨난 다음 구름을 타고 허공으로 날라가는 상태에서는 광세음보살 이렇게 혼자 명칭을 구분해 관하기도 한다.
그것은 관세음보살이 갖는 서원 때문이다.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그 사정이 제시된다. 또 『수능엄경』 등에서 여환삼매에 대해 설명도 그 사정을 설명해준다. 허공장보살도 사정이 비슷하다. 때로는 투명체로 활동하기도 한다.
가끔은 모기나 파리 형태로 가까이서 대하게도 된다. 그것은 본인이 모기나 파리를 관자재보살과 동등하게 관하고 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수많은 분신까지 고려하면 이것이 더 사실적이다.
현실에서 범부 중생은 때로은 탐욕스럽다. 때로는 오만하기도 하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면 함부로 무시한다. 때로는 욕설도 함부로 한다. 때로는 시기 질투에 가득차 다른 이를 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분노가 일어나면 함부로 다른 이를 해치기도 한다. 자신부터 어리석음과 망집에 묶여 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별 다른 능력도 없다. 지위나 돈도 없다. 그래서 뜻과 같이 되는 일들이 별로 없다. 그러면서 세상을 불만으로 대하고 임한다 그리고 일반 범부 중생의 현실 상태가 대부분 이와 같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런 중생을 대하면 곧 관자재보살이라고 관해야 한다. 그러면 대부분 맞다.
아예 자체 생계 능력도 없고 생존 자체가 힘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고아나 병든 과부와 같은 경우다. 이런 경우는 한급을 올려서 부처님으로 관하고 대해야 한다.
그러면 그 효과가 같다. 경전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제시한다.
오늘날 부처님을 직접 대하고 공양을 올릴 길이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경우와 동등한 효과를 얻는 공양이 있다. 위와 같은 경우에 공양하는 것이 그와 같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경우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축생에게 보시하면 4000 배 정도 수익을 얻는다. 이후 수행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가운데 부처님께 공양하면 효과가 가장 높다. 그런데 위 경우가 그와 같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부처님이나 보살에 대해 때로는 이런 식으로 관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몸에서 빛이 난다. 그리고 일반인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한다. 예를 들어 하늘을 날라 다닌다. 평소에는 공중 부양 자세를 취한다. 몸 크기가 우주에서 한 행성 정도로 클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관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경전에서 이념적으로 부처님이나 보살을 관할 때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부처님이나 보살을 거의 만나지 못한다. 그런데 가끔 만날 경우도 있다.
자신이 범부 중생을 관자재보살로 관하고 대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런 경우와 달리 늘 공중 부양 자세로 빛을 내며 활동하는 분이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는 앞과 구별해서 특별히 '광'세음보살로 칭해 구별하면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오로지 보살이 갖는 특성만 가득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각 경전마다 첫 부분에 보살만 갖는 놀라운 특성이 한참 나열된다. 그리고 이런 특성만 갖춘 경우를 현실에서 찾는다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광세음보살을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또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주변에 소문이 나서 더 만나기 힘들 것이다. 광화문에 광세음보살이 빛을 뿜으면서 공중에 떠 머물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세계에서 이 광세음보살을 만나 보기 위해 난리가 날 것이다.
『대명도경』에서는 여인과 환락을 즐기는 보살이 등장한다.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는 담무갈 보살은 64000 명과 함께 5 욕락을 즐기면서 생활한다. 여기에서 5 욕락이란 표현에 들어간 내용은 현실에서 추구하는 온갖 환락이 다 포함된다. 그런데 이 분이 보살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단순한 보살이 아니고 수준이 대단히 높은 보살로 나온다.
그런데 『대명도경』에서는 680 만명의 여인을 아내로 갖고 있다.
... 그 중에 법래(法來)라고 하는 개사는 뭇 성인 중에 왕으로서 680만이나 되는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며, 모든 개사들이 항상 그를 공경하고 있었느니라. ... 『대명도경』 ♣0009-006♧
단순한 번역상의 착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명칭마다 보살이 다른 측면이 있음을 함께 생각하면 오히려 자연스럽다. 법래개사는 680만명을 그 당시 갖고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보면 늘고 줆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1 명 추가해서 680만 1 명과 함께 5 욕락을 즐기는 새 형태도 가능하다. 방금 법래개사가 1 명 추가해 혼인신고를 마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살을 범부로 관하면 담무갈 보살마저도 단순한 범부라고 해야 한다. 그저 환락에 젖어서 세월을 낭비하는 모습을 띄고 있다. 사정이 그러니 범부와 속성이 같은 부분이 있다. 문제는 사정이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이 분을 보살이라고 칭하는가에 있다. 무언가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경전에서 찾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보살만이 갖는 일반적 덕성이나 능력이 경전에 나열된다. 그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각 개별 보살마다 갖는 특수한 서원이나 덕성 능력도 경전에 제시된다.
그런데 그 본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도 경전에 답이 나와 있다. 그런 것은 본래는 얻을 수 없다.
다만 생사 현실 안에서는 일반인 입장에서 바람직하다고 보게 되는 외관과 속성을 띄고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그런 존재가 특별하다고 여겨지게 되는 것 뿐이다. 즉, 망집에 바탕해 생사현실에 임하는 입장에서 그런 차별성을 보살이 갖는다고 여기고 대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능력이 다르다.
예를 들어 수영선수와 일반인의 차이와 같다. 생사현실에서 수영선수는 일반인과 달리 수영을 잘 한다. 수영도 못하는 일반인을 놓고 어떻게 수영선수와 상태가 같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런 차이와 같다.
그리고 그런 차이가 경전 첫부분에 보살이 갖는 특성으로 나열된다. 그런 점 때문에 이 분은 보살이고 일반 범부가 아니다. 그런데 그 특성도 알고보면 가짜다. 이렇게 보아야 한다. 그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보살의 첫 출발점이기도 하다.
『대명도경』에 나오는 보자개사는 상제보살이라고도 칭한다. 상제(常啼)보살은 다음 특징을 갖는다. 늘 우는 보살이다. 부처님 없는 세상에 출생한다. 그리고 중생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늘 운다. 그런 사정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 특수성이 있다.
그런 가운데 담무갈 보살의 도움을 요청하러 길을 떠난다.
그런데 그 담무갈 보살은 680만명의 아내와 5 욕락을 즐기고 있다.
이런 구조다. 이것이 차별없이 공함을 제시하는 『반야경전』에 굳이 들어 있다.
그래서 그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혜상보살문대선권경』에 그 사정이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족성자(族姓子)거나 족성녀(族姓女)가 마음이 대승에 있어서 모든 신통과 지혜를 떠나지 않고, 5욕락에 빠지지 않으며, 5욕(欲)을 억제하고, 5통(通)을 관하고, 여래의 근본을 얻으면 마땅히 알라. 이 보살은 여인과 함께 할 수 있느니라.
○ [pt op tr] 아름다운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Flag_of_County_Mayo
English: The flag of County Mayo (Maigh Eo in Irish) flies outside a house in Mayo in Ireland on the day of the 2017 All-Ireland Senior Author O'Dea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 [pt op tr] fr
♥Nagorno-Karabakh (Azerbaijan) ,Shusha
○ [pt op tr] 아름다운 풍경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With the image 'Google Earth & Map data: Google, DigitalGlobe'
English: Kanach Zham church in en:Shusha Русский: Церковь Канач Жам в ru:Шуша Date 17 April 2009 Source https://plusninety.livejournal.com/139040.html Author LJ user plusninety Permission & Licensing : Wikipedia
숙왕화님은 현재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평소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사이클로 동해안까지 달리던 숙왕화님이다. 한번 함께 가게 해달라고 요청해도 지금껏 한번도 함께 데려가 주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던 숙왕화님은 최근 큰 병이 생겨 수술을 했다.
그런데 수술이 잘 되지 못한 듯 다시 2 차 수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수술이 또 하나 기다리고 있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병문안도 갈 수 없다. 그런데 수술 한번 하고 나온 모습을 보니 이전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다.
평소 숙왕화님을 보면 뭐든지 지나치게 하는 느낌을 받는다. 고속도로를 차를 몰고 다닐 때도 휵소에 한번도 쉬지 않으려 한다. 평소에는 11 시 가까이 일을 한다. 휴일에도 또 나가서 일을 한다. 쉴 때는 백두대간 산행을 밤새 한다. 사이클을 타고 달리면 행주대교까지 갔다온다. 평소 이런 식이다.
나는 사이클을 타면 자전거도로에서 다리만 하나 나와도 쉰다. 둘레길을 가면 의자만 나오면 쉰다. 그래서 숙왕화님이 평소 어디든 함께 가려고 하지 않는다.
사이클 대회에 함께 참가하고 나서 그 경향이 표면화되었다. 그 때 사진 찍고 쉬면서 달리곤 했다. 그러다가 초반에 차선 통제 문제로 차량에 자전거가 실려져서 편하게 온 적이 있다. 이런 본인과 보조를 맞추다가 숙왕화님도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 당시 본인은 왠 횡재인가 생각했다. 차량에 자전거가 실린 지점부터는 오로지 자동차 밖에 없는 구간이었다. 그래서 당시 풍경 좋은 곳은 사진을 잘 찍고 이후 편하게 버스를 타고 오게 되었다. 그래서 대단히 속으로 좋아했다.
그런데 당시 숙왕화님 표정은 울쌍이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는 산행이건 사이클이건 동행한 적이 없다.
그런데 본인이 힘들다고 느끼면 다른 사람도 일반적으로 힘들다고 느낀다. 그리고 천천히 쉬면서 쉬엄 쉬엄 걸어가면 지구도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그런데 한번에 만 키로를 달리려고 하면 그날 사망하게 된다.
본인은 연구실에서 하루 종일 연구작업만 한다. 그런데 조금만 졸리면 바로 누어서 쉰다. 위와 같은 생각 때문이다. 젊을 때는 밤을 새도 다음날도 상태가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만 무리하면 현기증이 나고 쓰러질 것 같다.
가끔 졸릴 때 연구실 책상에 앉아서 그대로 엎드려 쉴 때도 있다. 그러다가 깨어나면 순간 놀라게 된다. 그래서 피곤하면 일단 누어서 충분히 쉰 다음 작업하게 된다.
여하튼 하루 종일 연구작업만 하다보니 건강 상태가 본인도 대단히 안 좋다.
아마 정밀 건강진단을 받았으면 본인도 아마 몇몇 부위 수술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지금은 눈 상태까지 안 좋다. 인턴연구원이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한다. 그런데 일단 보류중이다.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
이제는 혼자 남아 연구하는 상태다. 그간 함께 하던 연구원들이 대부분 떠났다.
곧 숙왕화님도 떠날 분위기다. 그래도 싫든 좋든 계약에 의해 앞으로 3 생 동안 같은 분야에서 활동을 하기로 했다.
길게 보면 300 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짧게 보면 채 하루도 안 된다. 각 세계의 시간 관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전철에서 버스로 옮겨 타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하튼 매생마다 생사과정이 다 문제된다.
그리고 이렇게 현실에서 생사가 현실적으로 문제된다. 그런데 경전을 대할 때마다 그런 생사를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래서 이 두 문제를 밝히고 설명해야 한다. 이미 이전 페이지 『반야등론석』에서도 그 문제가 나온다. 거기에서 설명하려다 일단 중단했다. 이 주제를 지금까지 너무 많이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다른 주제를 다루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경전에서 이것이 매번 문제된다. 그리고 중요하다. 그리고 이론적 이해보다 그 이론의 현실 적용이 더 중요하다. 생사를 얻을 수 없다는 내용을 생사현실에 어떻게 적용하는가. 이것이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다.
이것을 이후 좀 더 자세히 살피고자 한다. 이런 내용이 현실에서 좀 더 효용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나 자신과 친한 이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하자.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평안할 수 있는가.
사실 숙왕화님처럼 임하면 된다. 그런데 자신이 그 상태가 되면 잘 안 된다고 하자. 이론으로 잘 이해해도 잘 안 될 수 있다. 그러면 문제다.
자신의 몸을 여행지에서 잠시 빌려타는 렌트카 정도로 관하면 된다. 또는 매일 갈아 입는 옷 정도로 관하면 된다. 현실에서 자신이 자신의 몸으로 보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 그 성격이 사실은 그와 같다.
자신이 움직이려고 하면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듯 하다. 그 사정이 옷과 같다. 또는 자신이 올라탄 자동차와 성격이 같다.
내리게 될 상황에서는 잘 내려서 다시 좋은 옷과 좋은 자동차를 골라 올라타면 더 좋다. 그렇게 매 생마다 행하려는 것이 수행이다.
그런데 매 경우 그런 옷과 차에 집착하면 매 생마다 그것이 오히려 뜻처럼 잘 안되게 된다. 그러면 그것이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생사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를 잘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수행이다.
이처럼 생사현실의 구체적 모습은 수행자가 각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매 경우 어떻게 임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어차피 본 바탕이 공한 가운데 나타나는 차별상의 양 극단이다. 또 생사현실에서 5욕락을 놓고 수행자가 임하는 양 극단이기도 하다.
물론 이 어느 경우나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 그것은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바탕에서 다음이 중요하다. 이런 사정을 잘 이해하고 수행자 자신부터 먼저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매 경우 상대하는 상대도 벗어나야 한다. 더 나아가 온 생명이 제한없이 다 벗어나고 또 수행자 자신처럼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온 생명이 다 함께 불국토를 장엄하고 성불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면 바람직하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이왕이면 매 경우 수행방향을 선택해 임한 경우에는 이런 상태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면 그렇게 된다.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무량한 복덕과 지혜 자량을 구족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는 그와 정반대 상태가 된다. 이것이 어차피 차별없이 공한 가운데 나타나는 생사현실 내용이다. 본래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생사현실이 어차피 차별없이 공하다. 그래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악취 공견이다. 그런 가운데 하필 매 경우마다 일반 중생이 망집에 바탕해 행하기 쉬운 내용만 선택해나가게 된다. 그리고 매 경우 제멋대로 수행자가 막행막식한다고 하자. 그러면 생사현실은 하필 그런 형태로 달리 나타난다.
그래서 정반대로 매 경우 임하게 되면 그 수행자 자신부터 하필 생사고통에 처하고 묶인다. 그리고 그 상대도 함께 하필 생사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수행자 자신이 또 생사고통을 하필 되돌려 받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그 자신부터 복덕과 수명과 지혜 자량을 갖추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또 그런 사정으로 다른 중생도 제도하기 힘들게 된다. 오히려 그로 인해 생사현실에 생사고통이 증폭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이 경우는 오히려 부작용이 심하게 된다. 그리고 수행자 가운데에서 공함을 이해하게 되는 수행 중간단계에서부터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다. 그래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 영-중-일-범-팔-불어 관련-퀴즈 [wiki-bud]Kalu Rinpoche [san-chn]
pūrvântika 前際 [san-eng]
vittakoṣaḥ $ 범어 (m) bank [pali-chn]
paṭimokkha-saṃvara 別解脫律儀 [pal-eng] [Eng-Ch-Eng]
TEN PARAMITA Ten Paramita 十波羅蜜 【參照: Paramita】 [Muller-jpn-Eng]
如 ニョ like, such as, as if [Glossary_of_Buddhism-Eng]
BUDDHA NATURE☞ Syn: Original Nature. See also: Mind. The following terms refer to the same thing: Self-Nature, True Nature, Original Nature, Dharma Nature, True Mark, True Mind, True Emptiness, True Thusness, Dharma Body, Original Face, Emptiness, Prajna, Nirvana, Tathagata Womb, Tathagata-Garbha, Dharma Realm, Mind, etc. “According to the Mahayana view, [Buddha-nature] is the true, immutable, and eternal nature of all beings. Since all beings possess Buddhanature, it is possible for them to attain enlightenment and become a Buddha, regardless of what level of existence they occupy…” “According to Mahayana sutras, all sentient beings equally possess the seeds of Buddhahood and therefore have the potential to realize Buddhahood. Illusion prevents these seeds from functioning. But once illusion is destroyed, the seeds will become activated and perfect enlightenment will ultimately be attained.”
“The internal cause or potential for attaining Buddhahood. Also called the seed of Buddhahood or Matrix of the Tathagata (Skt / tathagatagarbha). Mahayana generally holds that all people possess the Buddha nature inherently, though it may be obscured by illusions and evil karma.”
“The basic, quintessential nature of sentient beings, which is identical with the nature of Buddha, without any differentiation whatsoever. Sentient beings wander in Samsara because they do not realize their Buddha-nature. The complete unfolding of Buddha-nature is supreme enlightenment itself. Thus, Buddha-nature is also the seed of Buddhahood.”
“Defined in the Maha Parinirvana Sutra as being 1) permanent, 2) blissful, 3) True self, 4) Pure, the Buddha-nature is also identified with true suchness and universal compassion; it is the ‘true self in Buddhism.”
Note: “The answer to the question whether Buddha-nature is immanent in beings is an essential determining factor for the association of a given school with Therevada or Mahayana, the two great currents within Buddhism. In Theravada this notion is unknown; here the potential to become a Buddha is not ascribed to every being. By contrast, Mahayana sees the attainment of Buddhahood as the highest goal; it can be attained through the inherent Buddha-nature of every being through appropriate spiritual practice.”
78 만약 이 다라니를 의심하여 믿지 않는 자는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영원토록 큰 이익을 잃어버리고, 백천만겁토록 윤회하되 항상 나쁜 곳에 태어나 벗어날 기약이 없으며 부처님도 항상 뵙지 못하고, 영원히 부처님 법(法)도 듣지 못하며 또한 보살이나 아라한이나 내지 스님도 보지 못하게 되리라." 이 큰 법회중에 보살마하살과 금강밀적(金剛密迹)과 범왕과 제석과 사천왕과 신선과 용과 귀신들이 부처님여래께서 이 다라니 찬탄함을 듣고, 다 크게 환희하며 가르침을 받들어 수행하였다. ● 사바하 娑婆訶<七十八> s vā hā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0294-001♧
48 마리 비잉 나라 가사 니아뎨 沒哩<二合>鼻孕<二合引>捺囉<二合>訖叉<二合>抳誐諦<四十八>
『성관자재보살일백팔명경』
♣112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