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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8일 화요일

달마혈맥론_005



5.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屠漢亦得成道)


X63n1218_p0004c19(00)║問曰。旃陀羅殺生作業。如何得成佛。答曰。只言見性。


☺ 어떤 이가 물었다.


“전다라(백정)는 

살생으로 업을 삼거늘 

어떻게 부처를 이루리요?” 


이렇게 답하였다. 


“성품을 보라고만 말했을 뿐 

업 짓는 것은 말하지 않았나니, 


설사 업을 짓더라도 

미혹한 사람과는 달라서 

온갖 업이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끝없는 옛날부터 

오직 성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졌는지라 


그 까닭에 업을 지어 

생사에 윤회하거니와 

근본 성품을 깨달으면 

끝내 업을 짓지 않으리라.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염불을 하더라도 

과보를 면할 수 없다. 


살생이 문제가 아니다. 


성품을 보아 

의혹을 활짝 없애면 

생명을 살해하더라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 



인도의 28명의 조사들도 

오직 마음을 전하셨고 


내가 이제 이땅에 온 것도  


X63n1218_p0005a01(04)║唯傳頓教大乘。即心是佛。不言持戒精進苦行。乃至入水火。


오직 돈교(頓敎:당장 성불하는 법을 보인 교)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법을 보였을 뿐이요, 


계행지키기와 

정진과 

고행과 

나아가서는 

불이나 물에 드는 법과 

칼산에 오르는 것과 

한 끼니 먹고 오래 앉아 눕지 않는 법을 

말하지 않았나니, 


모두가 외도 유위의 법이다. 



만일 분별하고 운동하는 

신령스럽게 깨닫는 성품을 알면 

그대의 마음이 

곧 부처님들의 마음이다. 



모든 부처님이 

오직 마음 전하는 법을 말씀하셨고 

다시 딴 법이 없다. 


만일 이 마음을 알면 

한 글자도 몰라도 

부처를 이룬다. 


그러나 

자기의 신령스럽게 깨닫는 성품을 알지 못하면 

설사 몸이 부서져 

먼지같이 되더라도 

성불은 끝내 어렵다. 


부처란 법신이라고도 하며 

마음 깨달음이라고도 하나니, 


이 마음은 

형상도 없고 

인과도 없으며 

힘줄도 뼈도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아 잡을 수 없나니 

물질의 세계와 같지 않으며 

외도와 같지도 않다. 


이 마음은 

여래 한 사람만이 아시고 

그밖의 중생과 미혹한 사람은 

밝게 알지 못하느니라. 


--

☺“이 마음은 

사대(四大)의 이 몸을 여의지 않았다. 


만일 이 마음을 여의면 

운동할 이도 없다. 


이 몸은 앎(知)이 없어 

초목이나 기왓쪽 같은지라 


몸은 감정이 없거늘 

어떻게 운동하리요? 


마음으로부터 

말하고  

분별하고 

운동하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모두가 마음의 움직임이며 

작용의 움직임이다. 


움직임이란 

마음의 움직임이요. 


움직임 그대로가 작용이니 


움직임과 작용 이외에는 

마음이 없고 


마음 밖에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움직인다면 마음이 아니요, 

마음이라면 움직이지 않나니  


움직임이란 본래 마음이 없고 

마음이란 본래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움직임은 마음을 여의지 않았고 

마음은 움직임을 여의지 않았으나 


마음에는 여윈다는 것도 여의었다는 것도 없으며, 

마음에는 움직인다는 것도 움직였다는 것도 없다. 


이는 마음의 작용과 작용한 것이며 

마음의 움직임과 움직인 것이니, 


마음 그대로의 작용과 작용한 것이며, 

마음 그대로의 움직임과 움직임인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움직임도 아니요, 

작용도 아니니 

작용의 바탕이 본래 공한지라 

공(空)은 본래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움직임과 작용이 다같이 마음이나 

마음의 근본은 움직임이 없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움직이되 

움직이는 바가 없다.’ 하니 


종일토록 가고 오되 

가고 온 적이 없고, 


종일토록 보되 

본적이 없고, 


종일토록 웃되 

웃은 적이 없고, 


종일토록 듣되 

들은적이 없고, 


종일토록 알되 

안 적이 없고, 


종일토록 기뻐하되 

기뻐한 적이 없고, 


종일토록 다니되 

다닌 적이 없고, 


종일토록 멈추었으되 

멈춘 적이 없느니라.


---


☺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말로써 표현할 길이 끊어졌고 

마음으로 따질 자리가 없어졌다’ 하니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본래가 원적(圓寂)한지라 


성나고 기쁘고 가렵고 아픔이 

어찌 본래의 사람과 다르리요? 


더욱 미루어 찾건대 

아픔과 가려움을 찾을 수 없다.


경에 말하기를 

‘나쁜 업은 곧 괴로운 과보를 받고 

착한 업은 곧 좋은 과보를 받는다’ 하시니 


성내면 지옥에 빠지고 

기뻐하면 하늘에 태어날 뿐 아니라 

성냄과 기뻐함의 성품이 

공(空)한 줄 알아서 집착하지만 않으면 

곧 업력(業力)을 벗어난다.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아무리 경론을 강설하더라도 

결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설명하자면 

끝이 없기에 

간략히 옳고 그름을 

이와 같이 표방하였으나 

모두가 미치지 못하노라.





게송으로 말하리라. 


X63n1218_p0005b01(00)║心心心難可尋。寬時徧法界。窄也不容針。


마음, 마음 마음이라지만 

찾을 길 없어라 

퍼지면 법계에 두루하고 

움츠리면 바늘 끝도 용납지 못한다. 


나는 본래 마음을 찾을 뿐 

부처를 구한 적 없나니 

삼계(三界)의 모든 것 

공(空)하여 

아무 것도 없음을 분명히 하노라. 


부처를 구하려거든 

마음만을 구할지니 


이 마음이란 

마음 그대로가 

마음 그대로의 부처로다. 


내 본래 마음을 구하지만 

마음은 스스로 가지고 있나니 

마음을 구하려면 

마음으로 알기를 바라지 말라. 



부처의 성품이란 

마음 밖에서 얻는 것 아니니

마음이 생길 때가 

곧 죄가 생기는 때니라. 


전법게(傳法偈)



내가 이 땅게 온 것은 

법을 전해 중생을 건지려 함이니 

한 송이 꽃에 

다섯 잎 되어 

열매가 저절로 맺어지리라. 





[ 원문 한글토 ] 


5. 백정도 도를 이룰 수 있다(屠漢亦得成道)


① 문왈전타라(問曰旃陀羅)는 

살생작업(殺生作業)이어니 

여하득성각(如何得成覺)이닛고 


답왈지언견성(答曰只言見性)이요 

불언작업(不言作業)이니 

종사작업(縱使作業)이라도 

부동미인(不同迷人)하야 

일체업(一切業)이 포타부득(抱他不得)이니라 

종무시광대겁래(從無始曠大劫來)로 

지위불견성(只爲不見性)함으로 타재지옥중(墮在地獄中)이라 


소이작업(所以作業)하야 

윤회생사(輪廻生死)어니와 

오득본성(悟得本性)하면 

종부작업(終不作業)이니라 


약불견성(若不見性)하면 

염각(念覺)이라도 

면보부득(免報不得)이니 

비론살생(非論殺生)이니라 


약견성(若見性)하야 

의심(疑心)을 돈제(頓除)하면 

살해생명(殺害生命)이라도 

역나하타부득(亦奈何他不得)하리라 


자서천이십팔조(自西天二十八祖)로 

지시체전심인(只是遞傳心印)하시고 

오금(吾今)에 내차토(來此土)도 

유전돈교즉심시각(唯傳頓敎卽心是覺)이오 


불언지계정진고행(不言持戒精進苦行)과 

내지입수화등쇠윤(乃至入水火登釗輪)과 

일식장좌불와(一食長坐不臥)이니 

진시외도유위지법(盡是外道有爲之法)이니라 


약식득시위운동영각지성(若識得施爲運動靈覺之性)하면 

여심(汝心)이 즉제각심(卽諸覺心)이니라 


전각후각(前覺後覺)이 

지언전심(只言傳心)하시고 

갱무별법(更無別法)이니라 


약식차심(若識此心)하면 

일자불식(一字不識)이라도 

역시각(亦是覺)이니라 


약불식자기영각지성(若不識自己靈覺之性)이면 

가사신파미진(假使身破微塵)이라도 

성각(成覺)은 종불가득야(終不可得也)니라 


각자(覺者)는 

역명법신(亦名法身)이며 역명각심(亦名覺心)이니 

차심(此心)은 

무형상(無形相)하며 

무인과(無因果)하며 

무근골(無筋骨)이라 


유여허공(猶如虛空)하야 취부득(取不得)이니 

부동질계(不同質界)하며 

부동외도(不同外道)하니라 


차심(此心)은 

제대각일인능회(除大覺一人能會)하고 

기여중생미인(其餘衆生迷人)은 

불명료(不明了)이니라 




② 차심(此心)은 

불리사대색신중(不離四大色身中)이니 

약리시심(若離是心)이면 

즉무능운동(卽無能運動)이니라 


시신무지(是身無知)함이 

여초목와력(如草木瓦礫)이라 


신시무정(身是無情)이어니 

인하운동(因何運動)고 약자심(若自心)으로 


내지어언시위운동견문각지(乃至語言施爲運動見聞覺知)히 

개시동심동용(皆是動心動用)이니라 

동시심동(動是心動)이오 

동즉기용(動卽其用)이니 

동용외(動用外)에는 

무심(無心)하고 

심외(心外)에는 

무동(無動)일새니라 


동불시심(動不是心)이오 심불시동(心不是動)이니 

동본무심(動本無心)이오 심본무동(心本無動)일세니라 


동불리심(動不離心)하고 

심불리동(心不離動)이나 

무심리리(無心離離)하며 

무심동동(無心動動)이니라 


시심용용(是心用用)이오 시심동동(是心動動)이니 

즉심용용(卽心用用)이며 즉심동동(卽心動動)일새니라 


부동불용(不動不用)이니 

용체본공(用體本空)이라 공본무동(空本無動)일새니라 


동용(動用)이 동심(同心)이나 

심본(心本)은 

무동(無動)이로다 고(故)로 경(經)에 

운동이무소동(云動而無所動)이라하시니 


종일거래이미회거래(終日去來而未會去來)요 

종일견이미증견(終日見而未曾見)이오 

종일소이미증소(終日笑而未曾笑)요 

종일문이미증문(終日聞而未曾聞)이요 

종일지이미증지(終日知而未曾知)이요 

종일희이미증희(終日喜而未曾喜)요 

종일행이미증행(終日行而未曾行)이오 

종일주이미증주(終日住而未曾住)이니라



③ 고(故)로 경(經)에 

운언어도단(云言語道斷)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이라하시니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본자원적(本自圓寂)이라 


내지진희통양(乃至瞋喜痛痒)이 

하이본인(何異本人)이리오 


전전추심(轉轉推尋)에 

통상(痛庠)을 불가득(不可得)이로다 


고(故)로 경(經)에 운악업(云惡業)은 

즉득고보(卽得苦報)하고 

선업(善業)은 

즉득선보(卽得善報)이라하시니 

부단진타지옥(不但瞋墮地獄)하고 

희즉생천(喜卽生天)이라 


약지진희성공(若知瞋喜性空)하야 

단불집착(但不執着)이면 

즉탈업력(卽脫業力)하리라 


약불견성(若不見性)이면 

강득경논(講得經論)이라도 

결무의빙(決無衣憑)이니라 


설역무진(說亦無盡)일새 

약표사정여시(畧標邪正如是)나 

일일불급야(一一不及也)하노라 


송왈(頌曰)

심심심(心心心)이여 난가심(難可尋)이로다 


관시(寬時)에 

변법계(遍法界)하고 

착야불용침(窄也不容鍼)이로다 


아본구심불구각(我本求心不求覺)이라 

요지삼계공무물(了知三界空無物)이로다 


약욕구각단구심(若欲求覺但求心)이니 

지저심심심시각(只這心心心是覺)이로다 


아본구심심자지(我本求心心自持)이라 

구심(求心)에 

부득대심지(不得 待心知)어다 



각성(覺性)은 

부종심외득(不從心外得)이니 

심생편시죄생시(心生便是罪生時)이니라



게왈(偈曰) 


오본래차사(吾本來此士)는 

전법구미정(傳法救迷情)이니 

일화개오엽(一花開五葉)에 

결과자연성(結果自然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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