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석교록』
K1062
T2154
개원석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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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3-06-30
개원석교록_K1062_T2154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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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석교록_핵심
Guy Marchand - Ferme Pour Cause
Anaïs - Je N'embrasse Pas Les Garç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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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석교록』
개원석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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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062V031P0965c01L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 제1권
지승(智昇) 지음
무릇 목록(目錄)을 만드는 것은,
대개 참과 거짓[眞僞] 을 구별하고 잘잘못[是非] 을 밝히며,
사람과 연대의 고금(古今)을 기록하고,
권(卷)과 부(部)의 많고 적음을 표시하며,
빠진 것은 주워 모아 넣고 쓸데없이 늘어놓은 것은 지워 없애어,
바른 가르침을 이치에 맞게 엮고 부처님의 말씀[金言] 을 순서가 있게 하며,
중요한 곳을 제시하고 요점을 제기하여서 뚜렷이 볼 수 있게 하려는 까닭이다.
다만 법문(法門)이 깊고 오묘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법칙[化網] 이 크고 넓다.
전후에 번역하여 전한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것으로 바뀌고,
몇몇 경전은 흩어지고 없어져서,
책의 길이[卷軸] 1)에 차이가 있게 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때에 따라 망령되게 거짓된 것[僞妄] 을 보태어,
함께 뒤섞어 복잡하게 하여 그 발자취를 찾기 어렵게도 하였다.
이 때문에 선덕(先德 : 돌아가신 덕이 높은 스님)과 유현(儒賢 : 유교에 정통한 현인)들이 이러한 것들과 관련한 사실과 목록들을 지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거의 6ㆍ7종류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직도 그 근원을 다 밝히지 못하고[未極] ,
오히려 잊혀지거나 빠진 데가 많이 있었다.
나[智昇] 는 견문이 용렬하고 천박하지만,
오랫동안 이 일을 위하여 파헤쳐 찾아내고,
같은 것과 다른 것을 참고하여 선별하였으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지적하여 가려놓았다.
이에 이렇게 구분해서 이 책을 만들었으니,
어긋나고 틀리지 않았기를 바라며,
부디 모든 철인(哲人)2)들이 머리 맞대고 함께 자세히 보았으면 한다.
선서(善逝)3)이시고,
모니존(牟尼尊 :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며,
무상사[無上] 4)이며,
조어장부[調御] 5)이신
부처님께 머리 조아려 절하옵니다,
또한 삼승(三乘)6)의 청정하고 오묘한 법(法)과
팔배(八輩)7)와 응진 스님[應眞僧 : 아라한] 께 예배합니다.
저는 경의 목록[經錄] 을 지어 불법의 성[法城] 을 지키고자 하오니
삼보(三寶 : 불ㆍ법ㆍ승)께서는 자비를 드리우사 가호(加護)8)하소서.
원하옵건대 법의 등불[法燈] 이 온 밤 내내 비추어
미혹한 무리들이 이로 인하여 지혜의 광명 얻으며
정법(正法)이 영원토록 세간에 머물러 있게 하여
이를 의지하고 배워서 위없는 자리[無上地] 에 속히 오르게 하옵소서.
한(漢)나라 효명황제(孝明皇帝) 영평(永平) 10년 정묘(丁卯,
67)로부터 대당(大唐) 신무황제(神武皇帝) 개원(開元) 18년 경오(庚午,
730)까지 무릇 664년 동안 그 동안 번역을 한 승려와 속인들은 총 176인이며,
번역하여 낸 대승ㆍ소승의 삼장(三藏),
성교(聖敎)와 성현들의 집(集)ㆍ전(傳)과 아울러 번역한 이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失譯] 까지 합치면,
총 2,278부(部) 도합(都合) 7,046권이다.
그 중에는 지금 있으면서 유행하는 책과 궐본(闕本 : 없는 책)도 다 같이 이 안에 포함되어 있다.
새로 지은 목록[新錄] 은 합하여 20권인데,
총(總)ㆍ별(別)로 되어 있다.
총록(總錄)은 여러 경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고,
별록(別錄)은 그 승장(乘藏 : 삼승에 관한 경전)으로 나눈 것인데,
이 두 목록은 각각 10권씩으로 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별록에는 다시 7문(門)이 있다.
이제 먼저 과목을 잘게 나눈 영역[科條] 를 서술하고,
나머지는 차례대로 편집하여 싣기로 한다.
총괄군경록(總括群經錄) 상(上)
위는 한(漢)나라로부터 당(唐)나라에 이르기까지의 번역들인데,
제왕(帝王)의 연대(年代)와 번역한 사람[譯人] 과 그 일화 등을 함께 기록하였다.
그리고 번역한 경전 등은 번역한 사람의 연대로 선후(先後)의 차례를 삼았고,
삼장(三藏)의 차례에는 의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록 가운데 새로운 번역과 예전의 번역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겸하여 서술하였다.
별분승장록(別分乘藏錄) 하(下)
위의 별록(別錄)은 일곱 가지로 자세히 나누었다.
첫째는 번역도 되었고 책도 있는 것[有譯有本] ,
둘째는 번역은 있었지만 책이 없는 것[有譯無本] ,
셋째는 경전에서 부분적인 내용을 뽑아 만들어 따로 유행한 것[支派別行] ,
넷째는 번잡하게 겹친 것을 깎아내어 간략하게 한 것[刪略繁重] ,
다섯째는 빠진 글은 보충하고 비어 모자란 데는 채운 것[拾遺補闕] ,
여섯째는 의혹이 있는 데를 재차 상고한 것[疑惑再詳] ,
일곱째는 삿된 위경으로 바른 가르침 어지럽힌 것[僞邪亂正]
등이다.
이 일곱 문[七門] 에는 대승ㆍ소승을 구별하고,
경(經)ㆍ율(律)ㆍ논(論)의 다른 과목은 그 원인을 자세히 다 실었고,
그 부록으로 딸린 것[部偶] 도 겸하여 밝혔다.
총록(惣錄)은 10권으로 나누었는데,
제1권으로부터 제10권까지이다.여기서는 대강 그 줄거리만을 나타내며,
그 낱낱의 자세한 설명은 각 권(卷) 안에 있다.
제1권한(漢)ㆍ위(魏) 2대(代) 동안의 승려들과 속인緇素들이 번역한 경(經)ㆍ계(戒)ㆍ갈마(羯磨)9) 등 신구실역(新舊失譯)과 아울러 역인열전(譯人列傳 : 번역자의 전기)을 덧붙였다.
제2권오(吳)ㆍ진(晋) 2대 동안(222~316)의 승려들과 속인들이 번역한 경ㆍ계 등과 신구실역 경전들과 앞의 것과 같이 역인열전(譯人列傳)을 덧붙였다.
제3권동진(東晋)과 부진(符秦) 2대 동안(317~394)의 승려들과 속인들이 번역한 경ㆍ율ㆍ논 등과 신구실역 경전들과 앞의 것과 같이 역인열전(譯人列傳)을 덧붙였다.
제4권요진(姚秦)ㆍ서진(西秦)ㆍ전량(前涼)ㆍ북량(北涼) 4대 동안(385~439)의 승려들과 속인들이 번역한 경ㆍ율ㆍ논과 신구집실역경(新舊集失譯經) 등이다.
제5권송조(宋朝) 1대 동안(420~478)의 승려들과 속인들이 번역한 경ㆍ율ㆍ논 등과 신집실역경(新集失譯經) 등이다.
제6권제(齊)ㆍ양(梁)ㆍ원위(元魏)ㆍ고제(高齊) 4대 동안(479~577)의 승려들과 속인들이 번역한 경ㆍ율ㆍ논 등과 신집실역경률집(新集失譯經律集) 등이다.
제7권주(周)나라ㆍ진(陳)나라ㆍ수(隋)나라 3대 동안(557~617)의 승려들과 속인들이 번역한 경ㆍ율ㆍ논과 전록(傳錄 : 전하는 기록) 등이다.
제8권
제9권8ㆍ9의 두 권은 황조(皇朝) 때(618~907)의 승려들과 속인들이 번역한 경ㆍ율ㆍ논과 전록 등이다.
제10권옛 모든 분들諸家의 목록(目錄)과 부질(部帙 : 책의 권수)이 많고 적은 것과,
같고 다른 것을 상세히 밝혀 서술한다.
별록(別錄)은 10권으로 나누었는데,
제11권으로부터 제20권까지이다.여기서는 대강 그 줄거리만 말하고,
자세한 것은 각 권 속에 있다.
제11권
제12권제11과 제12의 두 권에서는 유역유본(有譯有本)의 보살장(菩薩藏) 경ㆍ율ㆍ논의 목록과 번역한 사람의 시대를 기술한다.
제13권유역유본의 성문장(聲聞藏) 경ㆍ율ㆍ논의 목록과 현성집전(賢聖集傳)의 목록과 또한 번역한 사람의 시대를 기술한다.
제14권유역무본(有譯無本)의 대승(大乘) 경ㆍ율ㆍ논의 궐본 목록이다.
제15권유역무본의 소승(小乘) 경ㆍ율ㆍ논과 현성집전의 궐본 목록이다.
제16권지파(支派)로서 따로 유행한 대ㆍ소승의 경ㆍ율ㆍ논과 현성집전에서 따로 파생한 목록이다.
제17권번잡하게 중복된 것을 깎아내어 생략한 것과 따로 파생한 여러 동본이명(同本異名)의 경(經),
그리고 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술한다.
또한 빠진 것은 보태고 없어진 것을 모아놓은 구역(舊譯)과 대승ㆍ소승의 경ㆍ율ㆍ논으로 대주(大周)10) 입장록(入藏錄)에 빠져서 목록에 올라가지 않은 것을 기술한다.
더불어 새로 번역한 대승ㆍ소승의 경ㆍ율ㆍ논ㆍ집전 등을 입장목록(入藏目錄)에 새로 편입시킨 것을 기술한다.
제18권의혹이 있어 재차 상고한 목록과 거짓되고 망령되게 진리를 어지럽힌 새롭게 편찬된 위경(僞經),
그리고 여러 목록 가운데의 위경과 여러 사람들이 지은 집초(集鈔) 등의 목록이다.
제19권대승 경ㆍ율ㆍ논의 입장목록(入藏目錄)이다.
제20권소승 경ㆍ율ㆍ논과 현성집전(賢聖集傳)의 입장목록이다.
1.
총괄군경록(總括群經錄) ①
1) 후한(後漢) 시대
후한의 유씨(劉氏)는 낙양(洛陽)에 도읍하였다.
명제(明帝) 영평(永平) 10년 정묘(丁卯,
67)로부터 헌제(獻帝) 연강(延康) 원년(元年) 경자(庚子,
220)에 이르기까지,
무릇 11제왕(帝王) 154년 동안에 승려와 속인 12인이 번역해 낸 경ㆍ율과 신구집(新舊集) 실역 등,
모든 경은 총 292부(部) 395권이다.그 중에서 97부 131권은 지금 존재하고,
195부 264권은 궐본(闕本 : 없어진 판본)이다.
『후한경록(後漢經錄)』11)에는 “중직(中直)에서 ‘제왕(帝者)이 인정한 것은 진경(眞經)이고,
그 이름을 배척한 것은 위경(僞經)이다’12)”고 하였다.
연대(年代)와 갑자(甲子)는 당(唐)나라 사예(司隷) 견란(甄鸞)과 성균박사(成均博士) 왕도규(王道珪) 두 학자의 연력(年歷)에 의거하여 참고하고 정하였다.
사문(沙門) 가섭마등(迦葉摩騰)1부(部) 1권(卷).
경(經)
사문 축법란(竺法蘭)4부 15권.
경
사문 지루가참(支婁迦讖)22부 67권.
경집(經集)
사문 안세고(安世高)95부 115권.
경ㆍ율ㆍ집
사문 축불삭(竺佛朔)2부 3권.
경
우바새(優婆塞)13) 안현(安玄)2부 3권.
경집
사문 지요(支曜)10부 11권.
경집
사문 강거(康巨)1부 1권.
경
사문 엄불조(嚴佛調)5부 8권.
경
사문 강맹상(康孟詳)6부 9권.
경ㆍ율
사문 축대력(竺大力)1부 2권.
경
사문 담과(曇果)1부 2권.
경
신구제실역경(新舊諸失譯經)141부 158권14) 과 59부 76권이며,
구집(舊集) 82부 82권은 새로 목록에 첨가한다.
(1) 가섭마등(迦葉摩騰)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1권영평 10년(67) 정묘에 백마사(白馬寺)에서 축법란(竺法蘭)과 함께 번역하여 처음 내놓은 경이다.
『구록(舊錄)15) 』에서는,
“『효명황제사십이장경(孝明皇帝四十二章經)』이다”라고 하였다.
이상 1부 1권은 그 경본이 현재 존재한다.
사문 가섭마등은 축섭마등(竺葉摩騰)이라고도 하고,
또한 섭마등(攝摩騰)이라고도 한다.
여러 기록에 모두 있으나,
어느 것이 옳은지는 자세하지 않다.
앞서 전해 오는 것으로는 가릴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다 밝혀 두었다.
중인도(中印度) 사람이며,
바라문(婆羅門 : 브라만,
즉 승려) 종족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널리 배워서 견문(見聞)이 많았다.
또한 사고력[思力] 이 뛰어났으며,
특히 경ㆍ율에 밝았다.
일찍이 서인도의 작은 나라에 가서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의할 때,
갑자기 이웃 나라가 병사를 일으켜 국경을 침범하였다.
그러나 번번이 병사들이 어떤 일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웃 나라 병사들은 신이한 술법이 있을 것이라 의심하여 몰래 사신을 보내어 엿보게 하였다.
그런데 그 나라의 신하들은 그저 편안하게 그가 강의하는 대승경(大乘經)을 함께 듣고 있었으니,
지신왕(地神王 : 국토를 관장하는 신왕)이 국가를 수호하는 도리를 밝힌 내용이었다.
이에 그 나라와 화평을 청하고 법을 구하였다.
명제(明帝)는 영평 7년 갑자(甲子,
64)에 신장이 1길[丈]
6척이 되고,
목에는 일륜(日輪)16)을 두르고,
광명이 번쩍거리는 금인(金人)17)이 공중에서 날아와 정전(正殿 : 왕이 일을 보는 전각) 앞에 이르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에 여러 신하들을 불러서 널리 물어보았다.
“이 무슨 신이(神異)한 일인가?”
통인(通人) 부의(傅毅)가 나아가 대답하였다.
“신(臣)이 듣기로는 ‘서역(西域)에 득도한 사람이 있는데 부처라고 한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꿈꾸신 바도 필시 그 분이었을 것입니다.”
황제는 그럴 것이라 여기고서,
낭중(郎中) 채음(蔡愔)과 낭장(郎將) 진경(秦景)과 박사제자(博士弟子) 왕준(王遵) 등 18인에게,
천축(天竺)으로 가서 불법(佛法)을 찾도록 하였다.
그때 채음 등은 대월지국(大月支國)에서 가섭마등을 만나서 한나라로 함께 갈 것을 간곡하게 청하여 마침내 함께 낙읍(洛邑)에 이르렀다.
명제는 후한 상을 내려 접대하고,
또 가져 온 불경과 화상(畵像)을 흰 말에다 싣고[白馬]
함께 낙양(洛陽)에 이르러서,
가람(伽藍 : 사찰)을 세우고 이름을 백마사(白馬寺)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여러 고을에서는 다투어 절을 지어 백마의 은혜를 갚았다.
가섭마등은 백마사에서 『사십이장경』을 번역하여,
처음에는 난대(蘭臺)의 석실(石室) 14번째 칸 안에 봉안하여 두었다.
그로부터 불교는 구름처럼 앞다투어 일어났다.
사문과 신사(信士 : 재가 불자)들이 연이어 번역하여 전하였고[傳譯] ,
목록에 의거하여 편집하였으니,
바로 이것이 중국 땅에 경전과 불법[經法] 이 있게 된 시초였다.
『구록(舊錄)』에서는 “이 경은 본래 외국의 경에서 추려 베낀 것으로,
원래 대부(大部)에서 나왔는데,
요점을 추려 세속의 일을 인용한 것이 마치 『효경(孝經)18)』의 18장(章)과 같다”라고 하였다.
『구록』과 주사행(朱士行)의 『한록(漢錄)』과 승우(僧祐)의 『출삼장기(出三藏記)』 등에는 이런 사실이 나와 있으나,
『도안록(道安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가섭마등은 크게 교화를 펴서 처음 사람들에게 전하였으나,
아직 믿는 마음이 깊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현묘한 깨달음[妙解] 을 간직하고,
다시 번역하지[多飜]
않았다.
우선 그 경의 요점을 추려서 그 당시의 풍속에[時俗]
따라 가르쳤다.
가섭마등은 그 뒤에 낙양에서 생을 마쳤다.
그 유래를 모두 자세히 기재한 것은 주사행의 『한록』과 『고승전(高僧傳)』 등과 같거니와 내[智昇] 가 기록의 근원과 시초를 찾는 것은 그 뜻이 역경(譯經)을 기술하는 데에 있으며,
역경의 내력에는 그렇게 된 까닭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여러 가지 설명과 널리 다르게 들은 일들을 모으고 따온 것이다.
비록 글은 번거롭게 되었다 하더라도 승려들이 한 일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2) 축법란(竺法蘭)
십지단결경(十地斷結經) 8권혹은 4권으로 되어 있다.
또한 『십주경(十住經)』이라고도 한다.
처음으로 나왔다.
축불념(竺佛念)의 『십주단결경』과는 동본(同本)이다.
영평 13년(70)에 나왔다.
주사행의 『한록』과 『고승전』ㆍ『장방록(長房錄)』에 보인다.
법해장경(法海藏經) 1권어떤 경본에는 장(藏)자가 없기도 하다.
처음으로 나왔다.
『법해경(法海經)』과 같은 동본이다.
『고승전』과 『장방록』 등에 보인다.
불본행경(佛本行經) 5권영평 11년(68)에 나왔다.
『고승전』과 『장방록』 등에 보인다.
불본생경(佛本生經) 1권『고승전』과 『장방록』 등에 보인다.
이상은 4부 15권인데,
그 경들은 다 궐본이다.
사문 축법란(竺法蘭)은 또한 중인도 사람이다.
스스로 ‘경론 수만 장(章)을 외운다’고 말하였고,
천축 학자들의 스승이 되었다.
당시 채음(蔡愔) 일행이 그 나라에 도착하였다.
축법란은 가습마등과 함께 돌아다니며 교화할 것을 약속하고,
마침내 그들은 서로 쫓아서 한나라로 와서 만났다.
그때 축법란에게 배우던 무리들이 그를 머무르게 하고자 하여 떠나는 것을 방해하였으므로,
그는 샛길로 낙양에 이르렀다.
낙양에 도착한 이후에는 가섭마등과 함께 머물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라 말을 잘하게 되자,
처음으로 가섭마등과 함께 『사십이장경』을 번역하였다.
가섭마등이 입적한 뒤에는 축법란은 몸소 『십지단결경』 등 4부를 번역하였다.
예전에 한무제(漢武帝)가 곤명지(昆明池)19)를 파다가 바닥에서 검은 재[黑灰] 를 얻었다.
이것에 대하여 동방삭(東方朔)20)에게 물었더니,
동방삭이 말하기를,
“신(臣)은 모릅니다.
서역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축법란이 온 뒤에 그에게 가서 물어 보니,
축법란이 말하였다.
“세계가 파괴될 때의 큰 화재로 생긴[劫火]
재입니다.”
이로써 동방삭의 말이 증명되었는데,
이를 믿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
또 진경(秦景)이 돌아올 적에 월지국(月支國)에서 석가불상(釋迦佛像)을 모셔 왔는데,
이것은 우전왕(優塡王)의 전단상사(栴檀像師)가 만든 네 번째의 작품이다.
낙양에 이르자 명제(明帝)는 즉시 베껴 그리게 하여,
청량대(淸涼臺)와 현절릉(顯節陵)21)에 걸어 모시게 하고서 공양을 올렸다.
그로부터 단청(丹靑)22)과 소상(素像)23)이 널리 퍼져 지금까지 이르렀다.
축법란은 그 후에 낙양에서 입적하였는데,
그 때 나이는 60여 세였다.
또 『장방록』 등에서는 “축법란이 『이백육십계(二百六十戒)』를 번역하여 다른 2권과 합쳤다”라고 하였는데,
그렇지 않다.
그 이름과 내용[名目] 을 자세히 상고하여 보았더니 축법란의 번역이 아니었다.
그 같고 다름을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아래 『별록(別錄)』의 궐본(闕本)에 기술한 것과 같았다.
(3) 지루가참(支婁迦讖)
도행반야바라밀경(道行般若波羅蜜經) 10권제목은 『마하반야바라밀도행경(摩訶般若波羅蜜道行經)』,
또는 『반야도행품경(般若道行品經)』이라고도 한다.
혹은 8권으로 되어 있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명도소품(明度小品)』과 『대반야제사회(大般若第四會)』 등과는 동본이다.
광화(光和) 2년(179) 7월 8일에 나왔다.
『지민도록(支敏度錄)』과 『승우록(僧祐錄)』 두 목록에 보인다.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2권또한 바로 『무량청정경(無量淸淨經)』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 번역이다.
『대아미타경(大阿彌經)』ㆍ『보적무량수회(寶積無量壽會)』 등과는 동본이다.
『오록(吳錄)』에 보인다.
아촉불국경(阿閦佛國經) 2권건화(建和) 2년(148)에 번역하였다.
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보적부동여래회(寶積不動如來會)』와 같은 동본이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 등에 보인다.
또한 『아촉불찰제보살학성품경(阿閦佛刹諸菩薩學成品經)』이라고도 한다.
혹은 국(國)자가 없기도 하다.
불유일마니보경(佛遺日摩尼寶經) 1권안공(安公)은 “방등부(方等部)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보적보명보살회(寶積寶明菩薩會)』와 같은 동본이다.
일명 『고품유일설반야경(古品遺日說般若經)』,
또는 『대보적경(大寶積經)』,
또는 『마하연보엄경(摩訶衍寶嚴經)』이라고도 한다.
『승우록』과 『장방록』 두 기록에 보인다.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3권일명(一名) 『시방현재불실재전립정경(十方現在佛悉在前立定經)』이라고도 한다.
『구록』에는 “『대반주삼매경(大般舟三昧經)』은 혹 2권이다”라고 하였다.
광화(光和) 2년(179)에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대집현호경(大集賢護經)』과 같은 동본이다.
『섭도진록(聶道眞錄)』과 『오록(吳錄)』에 보인다.
도사경(兜沙經) 1권『승우록』과 『오록』에서 보인다.
이 경은 『화엄경(華嚴經)』 「여래명호품名號品」의 이역(異譯)이다.
돈진다라소문경(伅眞陀羅所問經) 2권처음에는 『돈진다라소문보여래삼매경(伅眞陀羅所問寶如來三昧經)』이라 하였다.
『구록』에서는 “『돈진다라니왕경(伅眞陁羅尼王經)』이라 하였으며,
혹은 3권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대수긴나라경(大樹緊那羅經)』과는 동본이다.
『도안록(道安錄)』에는 보이지 않으며,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아사세왕경(阿闍世王經) 2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보초삼매경(普超三昧經)』과는 동본이다.
『승우록』에 보인다.
도안(道安)은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나왔다”라고 하였으나 잘못이다.
내장백보경(內藏百寶經) 1권또한 『내장백품(內藏百品)』이라고도 한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안세고(安世高)가 번역한 책과는 조금 다르다.
도안은 “방등부(方等部)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승우록』에 보인다.
문수사리문보살서경(文殊師利問菩薩署經) 1권또한 바로 『문서경(問署經)』이라고도 한다.
『승우록』과 『오록』에 보인다.
도안은 “방등부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잡비유경(雜譬喩經) 1권무릇 열한 가지의 일이 있다.
승우는 “번역한 이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고,
비장방房은 “『별록(別錄)』에서 보인다”라고 하였다.
이 이상은 현재 보이고,
이 이하는 궐본이다.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 27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담무참(曇無讖) 등이 역출한 것과 동본이다.
『이곽록(李廓錄)』에 보인다.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1권이는 뒤의 십품(十品)을 거듭 번역한 것이다.
승우가 “이 1권은 있고,
3권은 없다”고 한 것은 『정태록(靜泰錄)』에 보인다.
혹은 대(大)자를 붙이기도 한다.
세 번째 번역되었다.
『승우록』에서 “광화(光和) 2년(179) 10월 8일에 역출하였다”라고 하였다.
범반니원경(梵般泥洹經) 2권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과 같은 동본이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옛날에는 호반(胡般)이라 하였는데,
새로 고쳐 범(梵)이라 하였다.
상액경(象腋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법상록(法上錄)』에 보인다.
제법용왕경(諸法勇王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법상록』에 보인다.
광명삼매경(光明三昧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승우는 “『별록(別錄)』에는 나와 있으나,
『안록(安錄)』에는 없다”라고 하였으며,
비장방은 또한 ”『오록(吳錄)』에도 보인다”라고 하였다.
패본경(孛本經) 2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승우록』에 보인다.
수능엄경(首寶嚴經) 2권중평(中平) 3년(186) 2월 8일에 번역되어 나왔다.
첫 번째 번역이다.
또 3권이라고도 하였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ㆍ『오록』에 보인다.
대방편보은경(大方便報恩經) 1권『오록』에 보인다.
아사세왕문오역경(阿闍世王問五逆經) 1권또한 『아사세왕경(阿闍世王經)』이라고도 한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별록』에 보인다.
선경(禪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비장방은 “『별록』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아육왕태자괴목인연경(阿育王太子壞目因緣經) 1권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1백 여 년 뒤에 아육왕태자괴목인연경育王이 나왔다.
따라서 부처님이 설한 경이 아니다고 하였다.
혹은 경(經)자가 없기도 하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이상은 23부 67권이다.『잡비유경』에는 11부 26권이 현재 보이고,
『대집경』 속에는 12부 41권이 궐본이다
사문 지루가참(支婁迦讖)은 줄여서 지참(支讖)이라고도 하며,
월지국(月支國) 사람이다.
그 행실은 순수하고 기품이 있었으며,
성품은 막힘없이 확 트였고 총명하였다.
계율[法戒] 24)을 받아서는 힘써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름이 널리 드러났다.
그는 여러 경을 암송하였고,
뜻은 법을 널리 펴는데 두었다.
한나라 환제[桓] ㆍ영제[靈]
때에 낙양에 머물러 있었다.
환제 건화(建和) 원년 정해(丁亥,
147)로부터,
영제 중평(中平) 3년 병인(丙25)寅,
186)까지 낙양에서 『도행경(道行經)』 등 23부를 번역하였다.
본지(本旨)26)을 깊이 터득하여,
더 이상 부처님의 법을 꾸미거나 덧붙이지 않았으니,
법의 요점을 잘 베풀어 도를 널리 전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하남(河南)의 청신사(淸信士 : 남자 불교 신도) 맹복(孟福)과 장련(張蓮)이 받아 쓴 구역(舊譯)에서 ‘호반니원(胡般泥洹)’이라 한 것은 아직 분명하고 자세하지 않다.
윗대로부터 경을 번역한 이래로 현덕(賢德)들의
필수(筆受 : 역자가 한역한 것을 받아쓰는 일)와 매양 도어(度語 : 범문을 한문으로 번역)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랑캐 말을 중국말로 번역하였다고 하였다.
오랑캐[胡] 는 바로 오천축[五天] 의 변방에 사는 무리이다.
여기에는 서융(西戎)의 저강(羗氏) 종족이 있는데,
지금 이를 오랑캐라 한다.
어찌 인도(印度)와 관련이 있겠는가?
아주 동떨어져 상관없는 일[楚越] 이므로 상고할 것조차 없었다.
다만 부처님께서 말씀한 경은 모두 범본(梵本)이라 일컬어야 마땅할 것이다.
범(梵)은 “중국말로 청정하다”는 뜻이다.
옛날 겁(劫)이 시작될 때에 범천 세계[梵世] 의 광음천(光音天)이 아래로 내려와서 그 땅에 있는 지비(地肥)를 먹으니 몸이 무거워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사람이 되었다.
곧 그들이 오천축의 본래 조상[本祖] 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천(天)이란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것이다.
만일 그들을 오랑캐[胡] 라 한다면,
그 이치가 마땅히 어디서 나왔다는 말인가.
단지 그 나라의 말을 범어(梵語)라고 하는 것은 마치 이 땅의 말을 한어(漢語)라고 하는 것과 같다.
대개 그 의거하는 바가 있어서이니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옛날에는 승려들이 모두 세속의 성씨를 썼다.
부진(符秦)27) 때에 사문(沙門) 도안(道安:314~385)이 있었는데,
당시에 홀로 뛰어났다.
그는 거연(居然)히 깨달아 말하기를,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석가(釋迦)의 자손이 되어 아버지가 달라졌다고 할 수 있거늘,
어찌 세속의 성을 이어받겠는가?
이제 출가하였니,
마땅히 성씨를 석(釋)으로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서 4아함[四含] 을 번역하였는데,
그 글에서 과연 이르기를 “4성(姓)이 출가하였지만,
동일한 석씨[釋種] 이다”라고 하였으므로 대중들은 모두가 탄복하였다.4성은 첫째가 찰제리(刹帝利 : 왕족)요,
둘째가 바라문(婆羅門 : 승려)이며,
셋째가 폐사(吠舍 : 평민)요,
넷째가 수달라(戍達羅 : 천민)이다..
그리고 도안은 진(晋)ㆍ진(秦) 때의 목록을 바르게 고치고,
여러 경전을 산정(刪定)28)하여 주(注)를 내기도 하였다.
스스로의 호(號)를 미천(彌天 : 하늘까지 가득 찬 이)라 하였고,
그 말엽의 시기에 번역자의 모범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오랑캐 말을 진나라 말로 번역한다[譯胡爲秦] ”고 말을 하였으니,
다섯 가지 손실과 세 가지 쉽지 못한 것[[五失三不易] 29)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물에 통달한 사람[通人] 이라도 한 가지는 막힌 것이 있었으니,
그 아름다움을 다하지 못했다 하리라.
예로부터 호(胡)라고 말한 곳이 있으면 이제부터는 모두 범(梵)자로 고치니,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약간의 허물도 없게 하고 그 바른 것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장방록(長房錄)』 등 지루가참의 번역 중에는 『대보적경(大寶積經)』 1권이 있으나,
지금의 『불유일마니보경(佛遺日摩尼寶經)』과 동본이니,
재차 역출한 것이라 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
또 그 문구를 찾아보아도 지루가참의 번역이 아니다.
『별록(別錄)』 중에는 모두 역자를 알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이제 『별록』에 의거한 것이 옳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지루가참의 목록에서는 삭제하였다.
(4) 안세고(安世高)
대승방등요혜경(大乘方等要慧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보적미륵문경(寶積彌勒問經)』의 「팔법회(八法會)」와는 동본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태자모백경(太子慕魄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나왔다.
그의 이역(異譯)이다.
『장방록』에서 보인다.
장자자제경(長者子制經) 1권일명 『제경(制經)』이라고도 한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서동자경(逝童子經)』과는 동본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보적삼매문수문법신경(寶積三昧文殊問法身經) 1권일명 『유일보적삼매문수사리보살문법신경(遺日寶積三昧文殊師利菩薩問法身經)』이라고도 한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입법계체성경(入法界體性經)』과 동본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자서삼매경(自誓三昧經) 1권제목 속의 주(注)에는 “「독증품(獨證品)」은 네 번째의 역출이며,
「비구정행(比丘淨行)」은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라고 하였다.
축법호(竺法護)의 번역과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장방록』에 보인다.
온실세욕중승경(溫室洗浴衆僧經) 1권또한 바로 『온실경(溫室經)』이라고도 한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명도오십교계경(明度五十挍計經) 2권혹 바로 『명도교계경(明度挍計經)』,
또는 『오십교계경(五十挍計經)』이라고도 한다.
원가(元嘉) 원년(151)에 나왔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불인삼매경(佛印三昧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팔대인각경(八大人覺經) 1권『보창록(寶唱錄)』에 보인다.
사리불회과경(舍利弗悔過經) 1권또한 바로 『회과경(悔過經)』이라고도 한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인본욕생경(人本欲生經) 1권영가(永嘉) 2년(146)에 나왔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10권의 이역(異譯)이다.
도안(道安)이 주해(注解)를 달았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시가라월육향배경(尸迦羅越六向拜經) 1권혹은 『시가라월육방례경(尸迦羅越六方禮經)』이라고도 한다.
『장아함경(長阿含經)』 제11권에서 나온 이역(異譯)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장아함십보법경(長阿含十報法經) 2권일명 『다증도장경(多增道章經)』이라고도 한다.
혹은 바로 『십보경(十報經)』이라고도 하는데,
『장아함경』 제9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구록』에서도 역시 “『장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승우록』에 보인다.
일체유섭수인경(一切流攝守因經) 1권『중아함경(中阿含經)』 제2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구록』에서는 “『일체유섭경(一切流攝經)』이다”라고 하였고,
『오록(吳錄)』에서는 “『유섭수인경(流攝守因經)』이다”라고 하였다.
또는 “『수인경(受因經)』이라고도 하고,
또는 바로 『유섭경(流攝經)』이라고도 하며,
또는 『일체유섭수경一切流攝守』이라고”도 한다.
주사행의 『한록』30) 과 『승우록』 두 기록에 보인다.
사제경(四諦經) 1권『중아함경』 제7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승우록』에 보인다.
도안이 “『장아함경』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착오였을 것이다.
본상의치경(本相倚致經) 1권『중아함경』 제10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오록(吳錄)』에서는 “『본상의치경(本相倚致經)』은 『연본치경(緣本致經)』과 동본 이다”라고 하였다.
혹 이 의(猗)자를 쓰기도 한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시법비법경(是法非法經) 1권『중아함경』 제21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 두 기록에 보인다.
누분포경(漏分布經) 1권『중아함경』 제27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도안이 “『장아함경』에서 나왔다”고 한 것은 착오였을 것이다.
바라문자명종애념불리경(婆羅門子命終愛念不離經) 1권『중아함경』 제60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십지거사팔성인경(十支居士八城人經) 1권『중아함경』 제60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보법의경(普法義經) 1권또한 『보의경(普義經)』,
또는 『구법행경(具法行經)』이라고도 한다.
보법의(普法義)를 사리(舍利)로 만들어서 『구법행사리불경(具法行舍利弗經)』이라고도 한다.
다른 곳에도 다 같이 『중아함경』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원가(元嘉) 2년(152)에 번역되어 나왔다.
『광의법문경(廣義法門經)』과 동본이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 두 기록에 보인다.
바라문피사경(婆羅門避死經) 1권『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21권에서 나온 이역(異譯)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아나빈저화칠자경(阿那邠邸化七子經) 1권『증일아함경』 제49권에 나온 이역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아난동학경(阿難同學經) 1권표제에서는 “『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으나,
조사해 보니 없었다.
『장방록』에 보인다.
칠처삼관경(七處三觀經) 1권『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나왔다.
그 첫머리와 마지막까지 총 30경으로 되어 있지만,
그 첫머리의 경 이름初標名을 따랐기 때문이다.
혹 2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원가 원년(151)에 나왔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오음비유경(五陰譬喩經) 1권혹은 비(譬)자가 없기도 하다.
일명 『수말소표경(水沫所漂經)』이라고도 한다.
『잡아함경』 제10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전법륜경(轉法輪經) 1권혹은 『법륜전경(法輪轉經)』이라고도 한다.
『잡아함경』 제15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그 본경(本經)과 뒷부분은 같지만,
앞은 다르다.
『승우록』에 보인다.
팔정도경(八正道經) 1권『잡아함경』 제28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
두 기록에 보인다.
마등녀경(摩鄧女經) 1권혹은 『마추녀경(摩鄒女經)』,
또는 『아난위고도녀혹경(阿難爲蠱道女惑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마등가경(摩登伽經)』과 같은 동본이다.
귀문목련경(鬼問目連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아귀보응경(餓鬼報應經)』과 같은 동본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아난문사불길흉경(阿難問事佛吉凶經) 1권혹은 『아난문사경(阿難問事經)』,
또는 『사불길흉경(事佛吉凶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아난분별경(阿難分別經)』과 같은 동본이다.
내녀기역인연경(奈女祇域因緣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혹은 인연(因緣)이란 글자가 없기도 하며,
또한 바로 『내녀경(奈女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죄업응보교화지옥경(罪業應報敎化地獄經)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혹은 『지옥보응경(地獄報應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견의경(堅意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일명 『견심정의경(堅心正意經)』,
또는 『견심경(堅心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대안반수의경(大安般守意經) 2권혹 1권으로 되어 있다.
혹은 수의(守意)라는 글자가 없기도 하며,
혹은 바로 『안반경(安般經)』이라고도 한다.
도안(道安)은 “『소안반(小安般)』이다”라고 하였으며,
겸하여 주해를 달았다.
『승우록』에는 따로 『대안반경』 1권을 실었고,
『장방록』에서는 다시 『안반경』 1권을 실었는데,
다 중첩된 것이다.
주사행의 『한록』ㆍ『승우록』ㆍ『이곽록(李廓錄)』 세 기록에 보인다.
음지입경(陰持入經) 2권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승우록』에는 “『제지입경除持入』이라 한 것은 착오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음지입경陰持入』이다”라고 하였다.
도안이 주해를 달았다.
『장방록』에서는 『음지입경陰持入』 외에 따로 『제지입경除持入』이 있는데 착오이다.
주사행의 『한록』과 『승우록』 두 기록에 보인다.
처처경(處處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매의경(罵意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분별선악소기경(分別善惡所起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출가연경(出家緣經) 1권일명 『출가인연경(出家因緣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아함정행경(阿鋡正行經) 1권일명 『정의경(正意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십팔니리경(十八尼犁經) 1권혹은 『십팔지옥경(十八地獄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법수진경(法受塵經) 1권『승우록』에 보인다.
선행법상경(禪行法想經) 1권『승우록』과 『보창록(寶唱錄)』 두 기록에 보인다.
장자자오뇌삼처경(長者子懊惱三處經) 1권일명 『장자요뇌삼처경(長者夭惱三處經)』이라고도 하며,
또한 바로 『삼처뇌경(三處惱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건타국왕경(揵陀國王經) 1권혹은 국(國)자가 없기도 하다.
『장방록』에 보인다.
부모은난보경(父母恩難報經) 1권또한 『근난보경(勤難報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장방록』에는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 나왔다”라고 하였으나,
조사하여 보아도 없다.
구횡경(九橫經)31) 1권『장방록』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나왔다”라고 하였으나,
조사하여 보아도 없다.
『장방록』에 보인다.
선행삼십칠경(禪行三十七經) 1권혹은 품(品)자를 덧붙이기도 한다.
『보창록(寶唱錄)』에 보인다.
범계보응경중경(犯戒報應輕重經) 1권『목련문비니경(目連問毘尼經)』에서 나왔다.
또한 『범계죄보경중경(犯戒罪報輕重經)』,
또는 『목련문경(目連問經)』이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대비구삼천위의경(大比丘三千威儀經) 2권혹은 4권으로 되어 있다.
또한 『대승위의경(大僧威儀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는 “『별록(別錄)』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승우의 『실역록(失譯錄)』 중에는 2부(部)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부에는 각각 2권씩으로 되어 있다.
『별록』의 것을 합하여 지금은 2권만이 있을 뿐이며,
나머지의 2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지경(道地經) 1권처음 번역하여 나왔다.
혹은 대(大)자를 덧붙이기도 한다.
이 경이 바로 『수행경(修行經)』이다.
원래 외국(外國)의 약본(略本)에서 초록(抄錄)한 것으로 도안이 주해를 달았다.
『승우록』에 보인다.
여러 목록에서는 모두 2권이라 하였다.
도안은 서문(序文)에서 “무릇 7장(章)이 있는데,
이 1권이 역시 온전히 있다”라고 하였다.
가섭결경(迦葉結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아비담오법행경(阿毘曇五法行經) 1권혹은 행(行)자가 없기도 하며,
또한 『아비담고혜경(阿毘曇苦慧經)』이라고도 한다.
『승우록』에 보인다.
이상의 경본은 현재 남아 있으며,
이하는 궐본이다.
무량수경(無量壽經) 2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보적경(寶積經)』의 「무량수회(無量壽會)」와 같은 동본이다.
『장방록』에는 “『별록』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여환삼매경(如幻三昧經) 2권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보적경(寶積經)』의 「선주의회(善住意會)」과 같은 동본이다.
『장방록』에 보인다.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 1권『대월등경(大月燈經)』 제7에서 나온 이역(異譯)이다.
『장방록』에서 보인다.
십이인연경(十二因緣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또한 『문성십이인연경(聞城十二因緣經)』이라고도 한다.
『승우록』에 보인다.
내장경(內藏經) 1권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일명 『내장백품경(內藏百品經)』,
또는 『백보경(百寶經)』이라고도 한다.
원가(元嘉) 2년(152) 12월에 번역되어 나왔다.
주사행의 『한록』에 보인다.
사불가득경(四不可得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혹은 가(可)자가 없기도 하다.
『장방록』에 보인다.
약왕약상보살관경(藥王藥上菩薩觀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공정천감응삼매경(空淨天感應三昧經) 1권『구록』에서는 “『공정삼매경(空淨三昧經)』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졸봉적결의대주경(卒逢賊結衣帶呪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주적경(呪賊經) 1권일명 『벽제적해주(淪除賊害呪)』라고도 한다.
『장방록』에 보인다.
승우의 『실역록(失譯錄)』 중에는 같은 이름의 『주적경』 두 본을 모두 실었는데,
『장방록』에는 1책만 있을 뿐이다.
십사의경(十四意經) 1권『구록』에서는 “『보살십사의경(菩薩十四意經)』이다”라고 하였다.
『승우록』에 보인다.
법률삼매경(法律三昧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법상록(法上錄)』에 보인다.
도의발행경(道意發行經) 2권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도안록(道安錄)과 『승우록(僧祐錄)』에 보인다.
『장방록』에서는 “『장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대십이문경(大十二門經) 2권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장아함경』에서 나왔다.
안공(安公)이 주해를 달았다.
『보창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소십이문경(小十二門經) 1권『장아함경』에서 나왔다.
안공(安公)이 주해를 달았다.
『보창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칠법경(七法經) 1권『구록』에서는 『아비담칠법행경(阿毘曇七法行經)』이라고 하였으며,
혹은 바로 『칠법행경(七法行經)』이라고도 한다.
『승우록』에 보인다.
『장방록』에서는 “『장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다증도장경(多增道章經) 1권『구록』에서 “도(道)자가 없다”고 말한 것은 다른 경을 말한다,
『십보법경(十報法經)』에서 나왔다.
『장방록』에서는 “『장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의결률경(義決律經) 1권혹은 경(經)자가 없기도 하며,
또한 『의결률법행경(義決律法行經)』이라고도 한다.
안공(安公)은 “『장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승우록』에 보인다.
잡사십사편경(雜四十四篇經) 2권혹은 『잡경사십사편(雜經四十四篇)』이라 고도 한다.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어느 경인지 모르겠다.
도안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승우록』에 보인다.
백육십품경(百六十品經) 1권『구록』에서는 “『증일아함백육십장경(增一阿含百六十章經)』이다”라고 하였다.
『승우록』에 보인다.
사두간경(舍頭諫經) 1권『구록』에 보인다.
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또한 『사두간태자명이십팔수경(舍頭諫太子明二十八宿經)』,
또는 『태자명성이십팔 숙경(太子明星二十八宿經)』,
또는 『호이경(虎耳經)』이라고도 한다.
유리왕경(瑠璃王經) 1권혹은 『유리경(流離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에서는 “『증일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조사하여 보았으나 없었다.
『장방록』에 보인다.
오문선요용법경(五門禪要用法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태자몽경(太子夢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선경(禪經) 2권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서는 “『별록』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항수경(恒水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또한 『항수불설계경(恒水不說戒經)』이라고도 한다.
『법상록(法上錄)』에 보인다.
『보창록(寶唱錄)』에서는 “『항수계경(恒水誡經)』이다”라고 하였다.
회과법경(悔過法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오법경(五法經) 1권『승우록』에 보인다.
오행경(五行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소반니원경(小般泥洹經) 1권『장방록』에서는 “『별록』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승우록』에서는 “혹은 『니원후제비구경(泥洹後諸比丘經)』,
또는 『니원후변기경(泥洹後變記經)』,
또는 『니원후비구세변경(泥洹後比丘世變經)』,
또는『불반니원후비구세변경(佛般泥洹後比丘世變經)』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다.
정재경(正齋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분명죄복경(分明罪福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난제가라월경(難提迦羅越經) 1권『승우록』에 보인다.
선정방편차제법경(禪定方便次第法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선법경(禪法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당래변멸경(當來變滅經) 1권『장방록』에 보인다.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 7권혹은 6권으로 되어 있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혹은 『순도행경(順道行經)』이라고도 한다.
한(漢)나라 영강(永康) 원년(167)에 번역하였으며,
지민도(支敏度)가 서문을 지었다.
『보창록』과 『별록』에 보인다.
오문선요용법경(五門禪要用法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사유요략경(思惟要略經) 1권혹은 바로 『사유경(思惟經)』이라고도 한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승우록』에 보인다.
법구경(法句經) 4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청빈두로법(請賓頭盧法)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내전록(內典錄)』에 보인다.
아비담구십팔결경(阿毘曇九十八結經) 1권『승우록』에 보인다.
이상은 95부 115권이다.『방등요혜경(方等要慧經)』 이하의 54부 59권은 현재 경본이 있고,
『무량수경(無量壽經)』 이하의 41부 56권은 궐본이다.
사문 안청(安淸)의 자(字)는 세고(世高)이다.
안식국(安息國)의 왕과 정후(正后) 사이에서 태어난 태자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봉양하면서 정성을 다했다.
측은하게 여기는 어진 마음이 미물[蠢類] 에까지 미쳤고,
그 말과 행동은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게다가 뜻하는 일[志業] 에는 총명하고 민첩하게 대응했으며,
학문하기를 지극히 좋아하여,
외국의 전적(典籍)도 환히 꿰뚫지 않음이 없었다.
칠요(七曜)32)ㆍ오행(五行)33)의 도리[象] 와 풍각(風角)34)ㆍ운물(雲物)35)의 점술[占] 과 추보(推步)36)와 영축(盈縮)37)의 변화를 모두 궁구하였다.
더불어 의술(醫術)에도 통달하여 침을 잘 놓고 맥(脈)을 잘 짚었으며,
얼굴빛만 보고도 그의 병을 알아 약을 주면 반드시 치료하였다.
그리고 새와 짐승의 우는 소리를 듣고도 그들의 마음을 알았으니,
한번은 길을 가다가 한 떼의 제비를 보고는 문득 도반에게 말하였다.
“제비가 ‘반드시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라고 지저귀고 있다.”
과연 조금 있다가 먹을 것을 가져온 사람이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이에 빼어나고 남다르다는 명성이 서역(西域)에 퍼져서 멀고 가까운 이웃나라가 모두 훌륭하다고 여기며 공경하였다.
안세고는 비록 집에 머물러 있으나[居家] ,
계율을 받드는 데에는 매우 엄격하였고,
강집(講集 : 강의하는 모임)과 법시(法施 : 법보시)에는 항상 참여하였다.
뒤에 부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이에 인생은 괴롭고 헛된 것이란 것을 깊이 깨닫고,
명성과 재물[名器] 를 싫어해서 떠나고자 하였다.
그래서 부왕의 상복[服] 을 마친 뒤에는 마침내 숙부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출가하여 불도를 닦았다.
그는 경장(經藏)을 훤히 알았는데,
특히 아비담학(阿毘曇學)38)에 정통하였고,
선경(禪經 : 참선을 기술한 경전)을 외우고 지녀 그 지극히 미묘한 경지까지 통달하였다.
그 후 그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널리 교화하였다.
한(漢) 나라 환제(桓帝) 초기(147)에 처음으로 중국[東夏] 에 이르렀다.
그는 재주와 깨달음이 영민하여 한 번 들으면 능히 그것을 통달하였다.
그래서 중국에 이른 지 오래지 않아 중국말에 매우 통달하여 정법(正法)이 미미한 것을 개탄하고,
법을 펴고 번역하는 일에 널리 힘썼다.
안세고는 성품과 사물의 이치를 다 궁구하였으며,
저절로 전생에 맺은 인연[宿緣] 을 알았다.
그리하여 세상에 남긴 신이한 자취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어느 때인가 안세고는 스스로 말하였다.
“이 몸을 받기 이전에도 안식왕의 태자가 되어 그 나라 안의 장자(長者 : 신분이 높은 사람)의 아들과 함께 출가하였는데,
걸식[分衛] 하러 다닐 적에 마땅치 않은 시주를 만나게 되면,
그 장자의 아들은 그때마다 번번이 원망하였다.
나는 자주 그를 꾸짖고 타일렀지만 끝내 잘못을 뉘우치거나 고치지 않았다.
20여년을 이와 같이 한 뒤에 그와 이별을 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광주(廣州)로 가서 숙세(宿世)의 일을 끝마쳐야 한다.
그대는 경전에 밝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 나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으나,
성품이 성을 내고 노하는 일이 많아서 생명이 다한 뒤에는 반드시 더럽고 추악한 형상[惡形] 을 받아 태어나리라.
내가 만일 도를 얻게 되면 반드시 그대를 제도하리라.’
그리고는 마침내 광주에 이르렀더니,
도적떼들이 크게 난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때 길에서 한 소년을 만났는데,
손에 침을 뱉고 칼을 뽑으면서 말하였다.
‘진정 너를 여기서 만났구나.’
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전생에 그대에게 목숨을 빚 진 것이 있다.
그래서 먼 곳에서 찾아와 그것을 갚으려고 한다.
그대의 분노는 본래 전생에 가졌던 생각이다.’
그리고는 목을 내어놓고 칼을 받았는데,
얼굴에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도적은 끝내 나를 죽이고 말았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길을 메웠는데,
그 기이한 광경을 보면서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 후에 나의 영혼[神識] 은 도로 와서 안식국왕의 태자가 된 것이니,
바로 지금의 이 몸 안세고이다.”
안세고는 중국을 돌아다니며 교화하면서 경을 널리 펼치는 일을 하였다.
영제(靈帝) 말엽(180년경)에 관중(關中)과 낙양(洛陽)이 몹시 어지럽게 되었으므로,
그는 법을 전하려고 강남(江南)으로 가면서 말하였다.
“나는 마땅히 여산(廬山)을 지나면서 옛날에 같이 공부하던 벗을 제도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다가 공정호(䢼亭湖)의 사당에 이르게 되었다.
이 사당에는 옛 부터 신령스런 위엄이 있어서,
떠돌아다니는 장사꾼들이 여기에 기도하면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 사람들이 떠나지 못해 발이 묶이는 일이 없었다.
언젠가 신죽(神竹 : 서낭대)을 구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미처 허락을 받기도 전에 신죽을 마음대로 가져가자 배가 즉시 뒤집혀서 가라앉아 버렸고,
신죽(神竹)은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이런 일이 있고부터는 뱃사람들이 공경하고 조심하며 신령스런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안세고와 나그네 30여명이 배를 타고 가다가 이 사당에 희생을 바치고 복을 빌자 이에 신령이 내려 말하였다.
“배 안에 계신 사문을 어서 모셔 오도록 하라.”
나그네들은 모두 놀라 안세고에게 사당으로 들어갈 것을 청하였다.
신령이 안세고에게 말하였다.
“나는 전생에 외국에서 그대와 함께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서 보시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성품이 화를 잘 내고 노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금생(今生)에는 이 공정호의 사당신[廟神] 이 되어 주변 천 리를 제가 다스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보시한 공덕으로 진귀한 보물이 매우 풍부하지만,
예전에 성을 내던 성품 때문에 이처럼 신령이 되는 업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함께 공부하던 벗을 만나게 되니,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이제 머지않아 수명이 다할 테인데,
보기 흉한 형체가 너무도 크니,
만일 여기서 죽게 되면 강호(江湖)를 더럽히게 되므로 산 서쪽에 있는 못으로 가겠습니다.
이 몸이 죽고 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나에게 비단 천 필과 여러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법회를 열고 탑을 세워 좋은 곳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안세고가 말하였다.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제도하려 하는데,
어찌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까?”
신령이 말하였다.
“형체가 아주 보기 흉해서 사람들이 보면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안세고가 말하였다.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시오.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신령이 제단 뒤에서 머리를 내밀었는데,
그 꼬리의 길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큰 이무기[大蟒] 였다.
이무기가 안세고의 무릎에 이르자,
안세고가 그를 향해 여러 번 범어(梵語)로 부처의 공덕을 찬탄하면서 전생에 했던 약속을 들어 말하였다.
이무기는 비 오듯이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안세고는 곧 비단과 보물을 거두고 나서 이별을 고하고 그곳을 떠났다.
여러 배들이 돛을 올리고 떠나는데,
이무기가 다시 몸을 드러내어 산에 올라가서,
배가 떠나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자,
이내 몸을 감추었다.
삽시간에 안세고 일행은 예장(豫章)에 당도하였고,
안세고는 곧장 사당에 있던 재물로 동사(東寺: 절 이름)를 지었다.
안세고가 떠난 후에 신령은 곧 수명을 다하였다.
저녁 무렵에 한 소년이 배 위에 올라 안세고 앞에서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다가 그에게서 축원[呪願] 39)을 받고는 갑자기 사라졌다.
안세고는 뱃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방금 전에 있던 소년이 바로 공정 사당의 신령인데,
흉한 허물을 벗어 버렸소.”
그 이후로 사당의 신령은 사라졌고,
다시는 신령스런 영험이 없었다.
그 후에 사람들이 산의 서쪽[山西] 의 못에서 죽은 이무기 한 마리를 보았는데,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몇 리나 되었다.
지금의 심양군(潯陽郡) 사촌(蛇村)이 바로 그곳이다.
안세고가 그 뒤에 다시 광주(廣州)에 가서 전생에 자기를 해친 소년을 찾았다.
그때의 소년은 아직도 살아 있었는데,
안세고는 그의 집으로 가서 예전에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아울러 전생의 인연[宿緣] 을 들려주고,
다시 만난 것을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나에게는 아직도 갚아야 할 일이 남아 있도다.
이제 회계(會稽) 땅으로 가서 그것을 다 마치려고 한다.”
그 소년은 안세고의 비범함을 깨닫고,
마음속 깊이 그 뜻을 훤히 이해하고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쳤다.
정중하게 대접하고는 안세고를 따라 동쪽으로 가서,
마침내 회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이르러 바로 시장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시장 안에는 싸움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싸우던 사람이 잘못 안세고의 머리를 치는 바람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광주에서 따라온 소년은 연거푸 두 가지 보응(報應)40)을 경험하고는 드디어 불법을 부지런히 닦고는,
그 일에 얽힌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먼 곳에 사는 사람이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소문으로 듣고는,
비통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3세(世)에 걸친 인연의 징표가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안세고는 환제(桓帝) 건화(建和) 2년 무자(戊子,
148)로부터 영제(靈帝) 건령(建寧) 3년 경술(庚戌,
170)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동안에 『대승방등요혜경(大乘方等要慧經)』 등 95부(部)를 번역하였다.
모두 뜻과 이치가 명석하고 문장이 매우 올바르며,
매끄러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질박하면서도 거칠지 않았으니,
무릇 읽는 이들이 부지런히 힘쓰면서 싫증을 내지 않게 하였다.
안세고는 본래 왕족으로,
그 이름이 외국에서도 유명했으며,
서역에서 온 귀빈이라 모두 안후(安侯)라고 불렀는데,
지금까지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천축국은 자칭 그들의 글을 천서(天書 : 하늘의 글)라고 하고 말을 천어(天語 : 하늘의 말)라고 하였다.
소리와 뜻이 잘 맞지 않고 중국과는 매우 달라서 안세고의 전후로 나온 번역들 중에는 잘못된 것이 많았다.
유독 안세고가 번역해 낸 것은 여러 번역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안공(安公)은 ‘경을 대하고 가르침을 받는다면 성인을 뵙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여러 대[列代] 의 명덕(明德)41)들도 모두 그를 찬양하며 그와 같이 생각하였다.
그 『석도안록(釋道安錄)』과 승우(僧祐)의 『출삼장기(出三藏記)』와 혜교(慧皎)의 『고승전(高僧傳)』 등에는 “안세고의 번역은 다만 39부다”라고 하였다.
『비장방록(費長房錄)』에는 곧 176부로 기재되어 있다.
지금 『비장방록』에 기재되어 있는 것은 거의가 대부(大部)로부터 따로 파생되어 나온 것이어서,
그가 번역한 바른 숫자를 아직 모르므로 이제 순차에 따라 삭제하는 것이니,
아래에서 기술하는 바와 같다.
정리유죄경(情離有罪經)비장방은 “세상에서는 위경(僞經)이다”라고 하였다.
지금도 역시 『의위록(疑僞錄)』에 있다.
팔광경(八光經)
사리불문보녀경(舍利弗問寶女經)
사리불탄보녀설부사의경(舍利弗歎寶女說不思議經)또한 바로 『탄보녀경(歎寶女經)』이라고도 한다.
신월장자회과공불경(申越長者悔過供佛經)또한 『신기장자회과경(申起長者悔過經)』이라고도 하는데,
신월(申越)과 신기(申起)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는 자세하지 않다.
『팔광경(八光經)』 등 4경(經)은 모두 『대집경大集』에서부터 나왔다.
사백삼매명경(四百三昧名經)『대운경(大雲經)』에서 나왔다.
마하연정진도중죄보품경(摩訶衍精進度中罪報品經)『지도론(智度論)』에서 나왔다.
대가섭우니건자경(大迦葉遇尼乾子經)『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나왔다.
아난혹경(阿難惑經)『인본욕생경(人本欲生經)』에서 나왔다.
제일사문경(第一四門經)
제이사문경(第二四門經)
제삼사문경(第三四門經)
감로정의경(甘露正意經)또한 『불입감로조의경(佛入甘露調意經)』이라고도 한다.
『제일사문경(第一四門經)』 등 4경은 승우의 『실역록(失譯錄)』에서 나왔다.
또한 『보창록(寶唱錄)』에서도 나왔다.
모두 이 경들은 『대십이문경(大十二門經)』의 일부인데,
뒷사람들이 품(品)을 나누어 베껴낸 것이 마침내 4경이 된 것이다.
존자박구라경(尊者薄拘羅經)혹은 바로 『박구라경(薄拘羅經)』이라고도 하며,
또한 『박구라답이학문경(薄拘羅答異學問經)』이라고도 한다.
바라문행경(婆羅門行經)
장자형제예불경(長者兄弟詣佛經)또한 『장자리사달다형제이인왕불소경(長者梨師達多兄弟二人往佛所經)』이라고도 한다.
『존자박구라경薄拘羅』 등 3경은 『중아함경中阿含』에서 나왔다.
오전투인경(五戰鬪人經)
세간강도보시경(世間强盜布施經)
범천예바라문강당경(梵天詣婆羅門講堂經)
욱가거사견불문법성오경(郁伽居士見佛聞法醒悟經)또한 『수가타거사불위설법득성오경(修伽陀居士佛爲說法得性悟經)』이라고도 한다.
수유경(水喩經)『오전투인경五戰鬪』 등 5경은 모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나왔다.
불위바라문설사법경(佛爲婆羅門說四法經)
불위사화바라문설오도경(佛爲事火婆羅門說悟道經)
불위바라문설경전경(佛爲婆羅門說耕田經)혹은 전(田)자가 없기도 하다.
불위교만바라문설게경(佛爲憍慢婆羅門說偈經)
불위빈두바라문설상류경(佛爲頻頭婆羅門說像類經)
불위아지라가섭설자타작고경(佛爲阿支羅迦葉說自他作苦經)
목련견중생신모여전경(目連見衆生身毛如箭經)
아나율사유목련신력경(阿那律思惟目連神力經)
무외리차백아난경(無畏離車白阿難經)
상인탈적난경(商人脫賊難經)
세간언미색경(世間言美色經)
순타사미경(純陀沙彌經)혹은 사문(沙門)이라고도 하며,
혹은 순(淳)자를 쓰기도 한다.
상인자작불사경(商人子作佛事經)
바라문통달경론(婆羅門通達經論)
논외도출가경(論外道出家經)
바라문복백경(婆羅門服白經)
정근사념처경(精勤四念處經)
바라문허위경(婆羅門虛僞經)
불위조마취락주설법경(佛爲調馬聚落主說法經)
일체행불항안주경(一切行不恒安住經)
바라문문세존장래유기불경(婆羅門問世尊將來有機佛經)
바라문문불보시득복경(婆羅門問佛布施得福經)
두차바라문논의출가경(豆遮婆羅門論議出家經)
불화화여바라문출가경(佛化火與婆羅門出家經)혹은 화여(火與)를 대여(大與)라고도 한다.
부수비유경(浮水譬喩經)일명 『항수유주경(恒水流澍經)』이라고도 한다.
혹은 유주(流澍)로 쓰기도 한다.
사타바라문출가득도경(四吒婆羅門出家得道經)
과거탄금인경(過去彈琴人經)
바라문해지중술경(婆羅門解知衆術經)
독부장자경(獨富長者經)또한 『독부장자재물무부경(獨付長者財物無付經)』,
또는 『장자명종무자부촉경(長者命終無子付囑經)』이라고도 한다.
불위연소바라문설지선불선경(佛爲年少婆羅門說知善不善經)
불위나구라장자설근숙경(佛爲那拘羅長者說根熟經)혹은 라(羅)ㆍ근(根)ㆍ숙(熟)의 세 글자가 없기도 하다.
선사만족경(禪思滿足經)『불위바라문설사법경(佛爲婆羅門說四法經)』 등 32경은 모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나왔다.
선비요경(禪秘要經)『치선병비요법(治禪病秘要法)』에서 나왔다.
전세쟁녀경(前世諍女經)
자명과경(子命過經)
가전연무상경(迦旃延無常經)
심라형자경(審裸形子經)일명 『불부라형자경(佛覆裸形子經)』이라고도 한다.
별유경(鱉喩經)『전세쟁녀경(前世諍女經)』 등 5경은 모두 『출생경(出生經)』에서 나왔다.
경면왕경(鏡面王經)『의족경(義足經)』에서 나왔다.
삼독경(三毒經)
수식사경(數息事經)이상의 2경은 『소승잡초(小乘雜抄)』이다.
칠로바라문청위제자경(七老婆羅門請爲弟子經)
고모상일자경(孤母喪一子經)
작독수부생경(斫毒樹復生經)
구리뢰옥경(求離牢獄經)
양시난우경(良時難遇經)
석유이인상애경경(昔有二人相愛敬經)
자인불살경(慈仁不殺經)
마야기여인방불생신입지옥경(摩耶祇女人謗佛生身入地獄經)
최승장자수주원경(最勝長者受呪願經)또한 바로 『수주원경(受呪願經)』이라고도 한다.
불신력구장자자경(佛神力救長者子經)
불도전다라아출가경(佛度旃陁羅兒出家經)
승사승기경(承事勝己經)
조달생신입지옥경(調達生身入地獄經)
다도견중생경(多倒見衆生經)
장자야수득비상관경(長者夜輸得非常觀經)또한 바로 『득비상관경(得非常觀經)』이라고도 한다.
『칠로바라문청위제자경(七老婆羅門請爲弟子經)』 등 15경은 모두 『출요경(出曜經)』에서 나왔다.
인수신입음경(人受身入陰經)
인신사백사병경(人身四百四病經)
오음성패경(五陰成敗經)
지옥죄인중고경(地獄罪人衆苦經)
인병의불능치경(人病醫不能治經)『인수신입음경(人受身入陰經)』 등 5경은 모두 『수행도지경(修行道地經)』에서 나왔다.
아련야습선법경(阿練若習禪法經)『좌선삼매경(坐禪三昧經)』에서 나왔다.
연화녀경(蓮華女經)『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에서 나왔다.
가섭힐아난경(迦葉詰阿難經)또한 『가섭책아난쌍도나한유경(迦葉責阿難雙度羅漢喩經)』이라고도 한다.
금색녀경(金色女經)『가섭힐아난경』 등 2경은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나왔다.
이상 『팔광경(八光經)』 등 85부 85권은 『장방록』 등에서는 “모두 안세고의 번역이다”라고 하였다.
이제 수(隋)나라 개황(開皇)ㆍ인수(仁壽) 2본(本)의 『중경록(衆經錄)』과 새로 총괄하여 낸 『별생초경(別生抄經)』 등을 살펴보면,
이 경들은 모두 여러 경에서 따로 파생되었으며,
혹은 안세고의 역출이 아닌 것도 있으므로,
안세고가 번역한 수(數)에 넣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지금은 사실을 그대로 기록[實錄] 하였기 때문에 모두 삭제하였다.
(5) 축불삭(竺佛朔)
도행경(道行經) 1권광화(光和) 2년(179) 10월 8일에 번역되어 나왔다.
이 경의 후기(後記)와 주사행(朱士行)의 『한록(漢錄)』ㆍ『승우록(僧祐錄)』 등에 보인다.
안공(安公)은 “『도행품(道行品)』은 『반야경(般若經)』에서 가려 뽑아 베낀 것인데,
외국의 고명(高明)한 이가 지었다”라고 하였으며,
도안이 서문을 짓고 주석을 달았다.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2권광화 2년(179) 10월 8일에 번역되어 나왔다.
경의 후기와 『고승전』 등에서 보인다.
이상 2경은 동시에 간행을 했기 때문에 번역되어 나온 날이 같다.
『구록(舊錄)』에서는 “『대반주삼매경(大般舟三昧經)』은 혹 1권이다”라고 하였다.
두 번째로 번역되어 나왔다.
『대집현호경(大集賢護經)』과 같은 동본(同本)이다.
이상 2부 3권은 그 경본이 모두 궐본이다.
사문 축불삭(竺佛朔)에 대해서는 경의 후기(後記)에서 “축불삭은 인도 사람이다.
식견과 성품이 밝고 총민하였으며,
널리 알고 여러 가지 일에 재능이 많았다”라고 하였다.
한(漢)나라 영제(靈帝) 광화(光和) 초기(178)에 『도행경(道行經)』 등을 가지고 낙양(洛陽)으로 가서 범어[梵] 42)를 한어[漢] 로 번역하였다.
당시에 번역하는 사람들은 문자에 얽매이고 막혀 그 본뜻을 잃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축불삭은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그 본뜻을 잘 보존하여 경의 뜻을 매우 잘 드러내었다.
월지국(月支國) 사문 지루가참[支讖] 이 통역하였고,
하남(河南)의 맹복(孟福:字는 元士)과 장련(張蓮:字는 少安)이 받아썼다.
이 사실은 모두 경의 후기에서 보인다.
(6) 안현(安玄)
법경경(法鏡經) 2권안공이 말하길,
“방등부(方等部)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보적욱가장자회(寶積郁伽長者會)』와 같은 동본(同本)이다.
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사문 엄불조(嚴佛調)가 붓으로 받아썼고,
강승회(康僧會)가 주석을 붙였다.
『승우록』에 보인다.
아함구해십이인연경(阿含口解十二因緣經) 1권또한 『단십이인연경(斷十二因緣經)』43) 이라고도 하며,
또는 바로 『아함구해(阿含口解)』라고도 한다.
『구록』에서는 “『안후구해(安侯口解)』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이 네 가지의 이름이 있으나,
같은 한 본(本)이다.
『내전록(內典錄)』에서 “안세고(安世高)와 안현(安玄)이 함께 『구해(口解)』를 번역하였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이상 2부 3권은 그 경본이 모두 있다.
우바새(優婆塞) 안현(安玄)은 안식국(安息國) 사람이다.
의지가 곧고 성품이 맑고 깨끗하였으며,
심히 한가로우면서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았다.
법계(法戒)를 잘 지켜서 터럭만큼도 이지러뜨리지 않았고,
여러 경들을 널리 외워서 두루 통달하였다.
한나라 영제(靈帝) 때에 낙양(雒陽)에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였는데,
공(功)이 있었기에 기도위(騎都尉 : 벼슬이름)라 불렀다.
그의 성품은 고요[虛靜] 44)하면서 온화하고 공손하였으며,
항상 불법을 펼치는 일을 자기의 책임으로 여겼다.
점차 한나라 말을 익히게 되자,
경전을 펴는 일에 뜻을 두었다.
그래서 항상 사문들과 함께 도의(道義)를 강론하였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도위(都尉)라고 불렸다.
안현은 광화 4년 신유(辛酉,
181)에 사문 엄불조(嚴佛調)와 함께 『법경경(法鏡經)』 등을 번역하였다.
안현은 입으로 범문(梵文)을 번역하여 읽고 엄불조는 받아썼는데,
이치가 맞고 음이 정확하여 경의 미묘한 뜻을 끝까지 다 나타낼 수 있었다.
그 뛰어나고 아름다운 문장은 후대에까지도 전해지게 되었다.
승우(僧祐)는 “『법경경』을 엄불조가 역출하였다는 것은 그와 함께 번역하였다는 말이요,
또 『아함구해(阿含口解)』를 안세고(安世高)의 번역이라 한 것은 이 분들의 성씨가 같아서 서로 뒤섞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구록(舊錄)』에서도 “안후(安侯)의 『구해(口解)』이다”라고 한 것을 살펴볼 때,
역시 안세고의 역출이 맞았다.
(7) 지요(支曜)
성구광명정의경(成具光明定意經) 1권혹은 『성구광명삼매경(成具光明三昧經)』이라고도 하며,
또는 바로 『성구광명경(成具光明經)』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로 번역되어 나왔다.
주사행(朱士行)과 지민도(支敏度)와 승우(僧祐) 등의 세 목록과 『고승전』에 보인다.
아나률팔념경(阿那律八念經) 1권혹은 바로 『팔념경(八念經)』이라고도 하며,
또는 『선행렴의경(禪行斂意經)』이라고도 한다.
『구록』에서는 “『선행검의경(禪行檢意經)』은 『중아함경(中阿含經)』 제18권에서 나온 이역(異譯)이다”.고 하였다.
『구록』에서 보인다.
마유삼상경(馬有三相經) 1권또한 『선마유삼상경(善馬有三相經)』이라고도 한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제33권에서 나온 이역(異譯)이다.
비장방(費長房)은 “『오록(吳錄)』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마유팔태비인경(馬有八態譬人經) 1권또한 바로 『마유팔태경(馬有八態經)』이라고도 하며,
또는 『마유팔폐악태경(馬有八弊惡態經)』이라고도 한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제33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비장방(費長房)은 “『오록(吳錄)』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소도지경(小道地經) 1권비장방(費長房)은 “『오록』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이 위에 기록한 경은 현재 있고,
이 이후의 경은 궐본이다.
문성십이인연경(聞城十二因緣經) 1권두 번째로 번역되어 나왔다.
안세고가 번역한 『십이인연경(十二因緣經)』과 같은 동본이다.
비장방(費長房)은 “『오록』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대마야경(大摩耶經) 1권혹은 대(大)자가 없기도 한다.
혹은 2권으로 되어 있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마하마야경(摩訶摩耶經)』과는 동본이다.
비장방은 “『오록』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뇌타화라경(賴吒和羅經) 1권『중아함경』 제31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비장방(費長房)이 “『오록』에서 ‘안공(安公)이 방등부(方等部)에서 나왔다’고 말하였다”는 것은 아마 착오일 것이다.
소본기경(小本起經) 2권혹은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또는 『숙행본기경(宿行本起經)』이라고도 한다.
근래 소(小)자를 붙였을 뿐이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서응본기경(瑞應本起經)』과 같은 동본이다.
『구록』과 『고승전』에 보인다.
타락우바새경(墮落優婆塞經) 1권혹은 『우피새경優披塞』이라고도 한다.
장방은 “『오록』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이상은 10부 11권이다.『소도지경』 이상의 5부 5권은 현재 경본이 있고,
『문성십이인연경』 이하의 5부 6권은 궐본이다.
사문 지요(支曜)는 서역 사람이다.
여러 경전을 널리 통달하였고,
깊은 이치까지 미묘하게 알았다.
영제(靈帝) 중평(中平) 2년 을축(乙丑,
185)에 낙양에서 『성구광명정의경(成具光明定意經)』 등 10부를 번역하였다.
『장방록(長房錄)』 등에는 또 『수지문불십사사경(首至問佛十四事經)』혹은 불(佛)자가 없기도 하다이 있는데,
내가 그 경본을 보았더니,
이 경은 가려 뽑아서 이미 『별생록(別生錄)』에 편입되어 있었다.
이에 여기서는 삭제하고 기재하지 않는다.
(8) 강거(康巨)
문지옥사경(問地獄事經) 1권주사행의 『한록』과 『고승전』에 보인다.
이상 1부 1권은 궐본이다.
사문 강신(康臣)혹은 거(巨)자를 쓰기도 하는데,
어느 자가 옳은지는 자세하지 않다은 서역 사람이다.
돌아다니면서 교화하는데 마음이 있었고,
법을 널리 펴는데 뜻을 두었다.
영제(靈帝) 중평(中平) 4년 정묘(丁卯,
187)에 낙양에서 『문지옥사경[問地獄經] 』을 번역하였다.
번역한 말은 이치에 맞았으며 덧붙여 꾸미지 않았다.
(9) 엄불조(嚴佛調)
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濡首菩薩無上淸淨分衛經) 2권일명 『결료제법여환화삼매경(決了諸法如幻化三昧經)』이라고도 한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대반야나가실리분(大般若那伽室利分)』과 같은 동본이다.
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장방록』에 보인다.
혜상보살문대선권경(慧上菩薩問大善權經) 2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보적대승방편회(寶積大乘方便會)』와 같은 동본이다.
혹은 보살(菩薩)이라는 글자가 없기도 하다.
혹은 1권으로 되어 있다.
『장방록』에서 보인다.
고유마힐경(古維摩詰經) 2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고록(古錄)』과 주사행의 『한록』에 보인다.
당(唐)나라 때 번역한 『무구칭경(無垢稱經)』과 같은 동본이다.
사의경(思意經) 1권또한 『익의경(益意經)』이라고도 한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장방록』에 보인다.
보살내습육바라밀경(菩薩內習六波羅蜜經) 1권안공(安公)은 “방등부(方等部)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혹은 『내육바라밀경(內六波羅蜜經)』이라고도 한다.
또한 ‘『내외육바라밀경內外』’이라고 한 것은 『장방록』에 보인다.
이상은 5부 8권이다.앞의 4부 7권은 궐본이고,
뒤의 1부 1권만이 현재 있다.
사문 엄불조(嚴佛調)또한 부조(浮調)라고도 한다.
『승우록』과 『고승전』에 의거하면 이 분은 사문이 맞다.
『장방록』 등에서는 “청신사(淸信士 : 남자 불교 신자)이다”라고 하였는데,
옳지 않다는 임회군(臨淮郡) 사람이다.
소년 시절 남들보다 뛰어나게 총명하였고,
영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다.
믿음과 지혜가 저절로 일어나자,
마침내 출가하여 도를 닦았고,
경전을 통역하였으므로 당시에 존경을 받았다.
엄불조는 영제(靈帝) 중평(中平) 5년 무진(戊辰,
188)에 낙양에서 『유수보살무상청정분위경[濡首菩薩] 』 등 5부를 번역하였다.
세상에서는 안후(安候)ㆍ도위(都尉)ㆍ엄불조 세 사람이 번역한 것을 칭찬하였으며,
그들의 뒤를 잇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안공(安公)은 엄불조가 역출한 경을 칭찬하면서 “자세하면서도 번잡하지 않고,
책 전체 내용[全本] 이 교묘하다”라고 하였다.
또 『장방록』 등에서는 다시 “『가섭힐아난경(迦葉詰阿難經)』이 있고,
또한 엄불조가 번역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그 경본을 보았더니 여러 경에서 추려 베낀 것[抄] 이였고,
몇 가지[條] 의 일이 있었다.
수(隋)나라 『중경록(衆經錄)』에서는 “『잡비유경[雜譬喩] 』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안세고(安世高)와 섭승원(聶承遠)의 목록에도 모두 이 경이 있는데,
목록을 지은 사람들의 잘못이다.
이는 이미 별도로 베낀 경전으로 번역한 정수(正數)에 넣기에는 마땅하지 않다.
또한 『사미십혜경(沙彌十慧經)』이 있는데,
엄불조가 지었고,
아울러 주석과 서문을 썼다고 하였으나,
이미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며,
또 궐본이므로 이제 다 삭제하고 싣지 않는다.
(10) 강맹상(康孟詳)
사리불마목건련유사구경(舍利弗摩目揵連遊四衢經) 1권『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41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별록(別錄)』에 보인다.
흥기행경(興起行經) 2권또한 『엄계숙연경(嚴誡宿緣經)』이라고도 한다.
『오록(吳錄)』에 보인다.
표제題에서는 “『잡장(雜藏)』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범망경(梵網經) 2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오록』에 보인다.
혹은 3권으로 되어 있다.
사제경(四諦經) 1권흥평(興平) 원년(194)에 번역되어 나왔다.
두 번째의 번역이다.
『중아함경』 제7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안세고(安世高)가 번역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축도조의 『한록(漢錄)』에 보인다.
태자본기서응경(太子本起瑞應經) 2권또한 『서응본기경(瑞應本起經)』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로 번역되어 나왔다.
『과현인과경(過現因果經)』과 같은 동본이다.
비장방은 “『삼장기(三藏記)』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승우의 『삼장기』 중에는 “맹상(孟詳)이 『중본기경(中本起經)』을 역출한 것이며,
『서응본기경』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보복경(報福經) 1권혹은 『복보경(福報經)』이라고도 한다.
『오록』에 보인다.
이상은 6부 9권이다.『흥기행경』 이상 2부 3권은 현재 있는 경본이며,
『범망경』 이하의 4부 6권은 궐본이다.
사문 강맹상(康孟詳)은 그 선조가 강거국(康居國) 사람이다.
지혜와 학문으로 명성이 높았다.
헌제(獻帝) 흥평(興平) 원년 갑술(194)로부터 건안(建安) 4년 기묘(199)에 이르기까지 낙양에서 『사리불마하목건련유사구경』 등의 6부를 번역하였다.
안공(安公)은 “강맹상이 번역한 경은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면서 지취[玄趣] 를 드날리기에 충분했다”라고 하였다.
(11) 축대력(竺大力)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2권『시흥록(始興錄)』에 보인다.
세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서응본기경(瑞應本起經)』과 같은 동본이다.
일명 『숙행본기경(宿行本起經)』이라고도 한다.
이상은 1부 2권이다.
그 경본이 현재 있다.
사문 축대력(竺大力)은 서역 사람이다.
뜻은 멀리 유행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어려움과 위험을 꺼리지 않았다.
헌제(獻帝) 건안(建安) 2년 정축(197) 3월에 낙양에서 『수행본기경』을 번역하였다.
그 경의 범본(梵本)은 또한 담과(曇果)와 강맹상(康孟詳)이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에서 가져왔는데,
강맹상이 그 말을 통역하였다.
(12) 담과(曇果)
중본기경(中本起經) 2권혹은 『태자중본기경(太子中本起經)』이라고도 한다.
『시흥록(始興錄)』에 보인다.
경의 첫 표제에서는 “『장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이상은 1부 2권이다.
그 경본은 현재 있다.
사문 담과(曇果)는 서역 사람이다.
학문은 내외(內外)에 해박하였고,
견해는 진속(眞俗)45)을 두루 통하였다.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에서 경의 범본(梵本)을 가지고 낙양에 이르렀다.
헌제(獻帝) 건안 12년 정해(丁亥,
207)에 『중본기경(中本起經)』을 번역하였는데,
강맹상(康孟詳)이
그 말을 진술하며 통역하였다.
『내전록(內典錄)』 중에는 “담과와 맹상이 함께 번역하였고,
마침내 맹상은 『태자본기서응경(太子本起瑞應經)』과 합쳐서 1권으로 만들었다”라고 하였는데,
그렇지 않다.
이 두 경은 전혀 다른 것이어서 합칠 수가 없다.
승우(僧祐)는 “강맹상이 『중본기경(中本起經)』을 번역하여 내었다는 것은 그들이 함께 경을 번역한데 근거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13) 신구제실역경(新舊諸失譯經)
대방편불보은경(大方便佛報恩經) 7권
마하연보엄경(摩訶衍寶嚴經) 1권일명 『대가섭품(大迦葉品)』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보적보명보살회(寶積普明菩薩會)』와 같은 동본인데,
그 내용 중에 이르기를 “진(晋)나라 말로 번역되었으면,
『진록(晋錄)』에 편입되어야 할 것이나,
지금은 우선 『구록(舊錄)』에 의거하기로 한다”라고 하였다.
승우는 “『마하승보엄경(摩訶乘寶嚴經)』이다”라고 하였다.
후출아미타불게경(後出阿彌陁佛偈經) 1권혹은 경(經)자가 없기도 한다.
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미증유경(未曾有經)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당(唐)나라 때에 번역한 『심희유경(甚希有經)』과 같은 동본이다.
작불형상경(作佛形像經) 1권일명 『우전왕작불형상경(優塡王作佛形像經)』,
또는 『작상인연경(作像因緣經)』이라고도 한다.
『조립형상복보경(造立形象福報經)』과 같은 동본이다.
안택신주경(安宅神呪經) 1권또한 『안택주법경(安宅呪法經)』이라고도 한다.
승우는 “『안택주(安宅呪)』이다”라고 하였다.
수십선계경(受十善戒經) 1권
고음경(苦陰經) 1권『중아함경』 제25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마요란경(魔嬈亂經) 1권일명 『폐마시목련경(弊魔試目連經)』,
또는 『마왕입목련난복경(魔王入目連蘭腹經)』이라고도 한다.
『중아함경』 제30권에서 나온 이역이다.
사미니계경(沙彌尼戒經) 1권혹은 경(經)자가 없기도 한다.
우바리문불경(優波離問佛經) 1권혹은 『우바리률(優波離律)』이라고도 한다.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 4권혹은 『분별공덕경(分別功德經)』이라고도 한다.
혹은 3권,
또는 5권으로 되어 있다.
선요가욕경(禪要呵欲經) 1권표제에서는 “『선요경(禪要經)』의 「가욕품(呵欲品)」이다”라고 하였다.
내신관장구경(內身觀章句經) 1권혹은 구(句)자가 없기도 한다.
잡비유경(雜譬喩經) 2권일명 『보살도인경(菩薩度人經)』이라고도 한다.
육보살명경(六菩薩名經) 1권『장방록』의 「입장록(入藏錄)」에는 “여섯 분의 보살 명호를 또한 외우고 지녀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상의 경론은 현재 있고,
이 이하는 궐본이다.
반주삼매염불장경(般舟三昧念佛章經) 1권이 경은 행품(行品) 별로 번역했다.
네 번째로 번역되어 나왔다.
아미타불게(阿彌陁佛偈)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범본경(梵本經) 4권『구록(舊錄)』에는 “호본(胡本)이다”고 한 것을 새로 범본(梵本)으로 고쳤다.
장안(長安)에서 역출한 듯하다.
니원후천세변경(泥洹後千歲變經) 4권일명 『천세변경(千歲變經)』이라고도 한다.
승우는 “『니원후천세중변기(泥洹後千歲中變記)』 1권이다”라고 하였다.
제경불명(諸經佛名) 2권이제 이 경은 『부사의공덕경(不思議功德經)』이 아닌가 의심된다.
삼천불명경(三千佛名經) 1권
칭양백칠십불명경(稱揚百七十佛名經) 1권또한 바로 『백칠십불명경(百七十佛名經)』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칭양공덕경(稱揚功德經)』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남방불명경(南方佛名經) 1권『구록(舊錄)』에서는 일명 “『치성사경(治城寺經)』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옳지 않다.
이것은 절 이름을 표제로 기록한 것이지,
이 경의 다른 이름異名이 아니다.
멸죄득복불명경(滅罪得福佛名經) 1권
관세음소설행법경(觀世音所說行法經) 1권이 경은 『주경(呪經)』이다.
살타파륜보살구심반야도상경(薩陁波崙菩薩求深般若圖像經) 1권
수지불명불타악도경(受持佛名不墮惡道經) 1권
오룡주독경(五龍呪毒經) 1권
취혈기신주경(取血氣神呪經) 1권『구록』에서는 “『혈주(血呪)』이다”라고 하였다.
주적주법경(呪賊呪法經) 1권비장방은 “이출본(異出本)이다”라고 하였다.
승우는 바로 “『주적(呪賊)』이다”라고 하였다.
칠불안택신주경(七佛安宅神呪經) 1권
보살수계법경(菩薩受戒法經) 1권『승우록』에는 경(經)자가 없다.
비장방은 “이출본이다”라고 하였다.
수보살계차제십법(受菩薩戒次第十法) 1권
보살참회법(菩薩懺悔法) 1권
초발의보살상주야육시행오사경(初發意菩薩常晝夜六時行五事經) 1권
정생왕인연경(頂生王因緣經) 1권『구록』에서는 “『정생왕경(頂生王經)』이다”라고 하였다.
장자현수경(長者賢首經) 1권
범지상녀경(梵志喪女經) 1권
삭구설왕경(𤢴狗齧王經) 1권『구록』에서는 “『삭구경(𤢴狗經)』이다”라고 하였다.
근고니리경(勤苦泥犁經) 1권
지옥경(地獄經) 1권
십일인연장경(十一因緣章經) 1권『구록』에서는 “『십일인연경(十一因緣經)』이다”라고 하였다.
혹은 십이(十二)로 쓰기도 한다.
사문위십이두타경(沙門爲十二頭陁經) 1권
승명수사행경(僧名數事行經) 1권
비구제금률경(比丘諸禁律經) 1권
마하승기률비구요집(摩訶僧祇律比丘要集) 1권일명 『마하승기부비구수용요집법(摩訶僧祇部比丘隨用要集法)』이라고도 한다.
사미십계경(沙彌十戒經) 1권『구록』에서는 “『사미계(沙彌戒)』이다”라고 하였다.
비구니십계경(比丘尼十戒經) 1권
현자오계경(賢者五戒經) 1권
우바새위의경(優婆塞威儀經) 1권
유가삼마사경(庾伽三磨斯經) 1권번역하면 줄여 수행(修行)이라고도 한다.
일명 『달마다라선법(達磨多羅禪法)』이라고도 한다.
혹은 달마다라 보살이 지은 『선경요집(禪經要集)』이라고도 한다.
범음게본(梵音偈本) 1권『구록』에서는 “『호음(胡音)』이다”라고 하였다.
찬칠불게(讚七佛偈) 1권
달화니백구(怛惒尼百句) 1권
오언영송본기(五言詠頌本起) 1권142수(首)
도행품제경범음해(道行品諸經梵音解) 1권『구록』에서는 “『호음(胡音)』이다”라고 하였다.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 1권『승우록』에는 “무릇 17 가지 비유事가 있다”고 한다.
혹은 유(喩)자가 없기도 하다.
위의 59부는 다 같이 현재 경본이 있다.
승우의 『실역록(失譯錄)』에 있다.
이상은 59부 76권이다.『장방록(長房錄)』에 준하면 본래 합한 권수가 77권이다.
그것은 『분별공덕론』을 5권으로 기록해서이다.
지금 보면 4권으로 되어 있으므로 76권이다.
『육보살명경』의 그 이상 16부 26권은 현재 경본이 있고,
『반주삼매염불장경』 이하의 43부 50권은 궐본이다.
『장방록』 등에는 “한(漢)나라 이후에 번역한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경은 총 125부 148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 중의 66부 71권은 자세히 살펴보면,
누가 번역하고 어디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상세한 유래를 기술하여 아래와 같이 나열하였다.
불유일마니보경(佛遺日摩尼寶經)한(漢)나라 지참(支讖)의 번역이다.
보살생지경(菩薩生地經)
유일잡난경(惟日雜難經)이상의 2경은 오(吳)나라 지겸(支謙)의 번역이다.
금강삼매본성청정불괴불멸경(金剛三昧本性淸淨不壞不滅經)혹은 『금강청정경(金剛淸淨經)』이라고도 한다.
『장방록』 등에서는 “오(吳) 때의 지겸(支謙)의 번역인데도,
한나라 후대의 『실역록(失譯錄)』에 다시 기재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 경을 상고하면,
이 경은 한대(漢代)에 그 근원을 잃은 것失源도 아니며,
또 지겸이 번역해 낸 것도 아니다.
이 경은 요진(姚秦) 이후의 구마라집(鳩摩羅什) 등의 번역인 것 같다.
지금은 우선 근원을 잃은 것으로 하여,
『진록(秦錄)』에 편입하였다.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 2권오나라 때의 강승회(康僧會)의 번역이다.
시방불명경(十方佛名經)
삼십이상인연경(三十二相因緣經)이상의 2경은 서진(西晋) 때의 축법호(竺法護)의 번역이다.
보살수행경(菩薩修行經)일명 『장자위시소문보살수행경(長者威施所問菩薩修行經)』,
또는 『장자수행경(長者修行經)』이라고도 한다.
이미 일찍이 세 번 번역되어 하나는 현재도 존재하고,
둘은 궐본인데,
목록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가섭부불니원경(迦葉赴佛泥洹經)일명 『불반니원시가섭부불경(佛般泥洹時迦葉赴佛經)』이라고도 한다.
철성니리경(鐵城泥犁經)일명 『중아함니리경(中阿含泥犁經)』이라고도 한다.
적지과경(寂志果經)
삼십칠품경(三十七品經)여러 경에서 추려 지은 것이다.
『별생록(別生錄)』에 있다.
칠불소결마유술주(七佛所結麻油述呪)
환사파타신주(幻師陂陁神呪)
주우치주(呪齲齒呪)일명 『주충치(呪蟲齒)』라고도 하며,
또는 바로 『주치(呪齒)』라고도 한다.
주아통주(呪牙痛呪)
주안통주(呪眼痛呪)『가섭부불니원경』 이하 10경은 동진(東晋) 때의 축담무란(竺曇無蘭)의 번역이다.
천불인연경(千佛因緣經)
해팔덕경(海八德經)이상의 2경은 『법상록(法上錄)』에는 “요진(姚秦) 구마라집(鳩摩羅什)의 번역이다”라고 하였다.
보살소생지경(菩薩所生地經)
마하찰두경(摩訶刹頭經)이상 2경은 걸복진(乞伏秦 : 나라 이름 서진) 때 성견(聖堅)의 번역이다.
적조의(寂調意)음(音)을 합하여 만든 글자인데,
의(意)라 하면 잘못된 것이다.
소문경(所問經)일명 『여래소설청정조복경(如來所說淸淨調伏經)』이라고도 한다.
전여신보살경(轉女身菩薩經)일명 『낙영락장엄방편경(樂瓔珞莊嚴方便經)』,
또는 『낙영락장엄녀경(樂瓔珞莊嚴女經)』이라고도 한다.
이상의 2경은 송(宋)나라 때 법해(法海)의 번역이다.
사미위의경(沙彌威儀經)혹은 경(經)자가 없기도 한다.
송나라 때의 구나발마(求那跋摩)의 번역이다.
사천왕경(四天王經)송나라 때의 지엄(智嚴)의 번역이다.
염왕오사자경(鹽王五使者經)일명 『오천사경(五天使經)』이라고도 한다.
비유경(譬喩經)이상의 2경은 송나라 때의 혜간(慧簡)의 번역이다.
팔부불명경(八部佛名經)원위(元魏) 때의 구담유지(瞿曇流支)의 번역이다.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이 경은 전에 두 번 번역되었다.
하나는 남아있고,
하나는 궐본인데,
목록에 모두 나타나 있다.
반야바라밀신주경(般若波羅蜜神呪經)『대품경(大品經)』에서 나왔다.
공덕장엄왕팔만사천세청불경(功德莊嚴王八萬四千歲請佛經)『대집경(大集經)』에서 나왔다.
대방광여래성기미밀장경(大方廣如來性起微密藏經) 2권또한 바로 『여래성기경(如來性起經)』이라고도 한다.
이 경은 구(舊) 『화엄경(華嚴經)』의 「여래성기품(如來性起品)」이다.
합도신족경(合道神足經) 4권일명 『도신족무극변화경(道神足無極變化經)』이라고도 한다.
곧 『도신족경(道神足經)』의 이명(異名)으로 두 경본은 구별이 없다.
지재경(持齋經)『재경(齋經)』의 다른 이름이다.
과거향연화불세계경(過去香蓮花佛世界經)『비화경(悲華經)』에서 나왔다.
선덕바라문구사리경(善德婆羅門求舍利經)
인홍법경(人弘法經)이상 2경은 『대운경(大雲經)』에서 나왔다.
오십삼불명경(五十三佛名經)『약왕약상경(藥王藥上經)』에서 나왔다.
미륵위녀신경(彌勒爲女身經)
일체시왕소행단바라밀경(一切施王所行檀波羅蜜經)또한 『행단바라밀경(行檀波羅蜜經)』,
또는 『살화단왕경(薩和檀王經)』이라고도 한다.
마조왕경(摩調王經)
소아문법즉해경(小兒聞法卽解經)이상의 4경은 『육도집(六度集)』에서 나왔다.
정제업장경(淨除業障經)『정업장경(淨業障經)』에서 뽑아 베낀抄 경이다.
십주비파사경(十住毘婆沙經)『십주론(十住論)』에서 뽑아 베낀抄 경이다.
칠보경(七寶經)『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나왔다.
질다장자청비구경(質多長者請比丘經)
외도유질다장자경(外道誘質多長者經)
불견목우자청비구시도경(佛見牧牛者請比丘示導經)
장자명종무자부촉경(長者命終無子付囑經)『독부장자경(獨富長者經)』의 다른 이름이다.
『질다장자청비구경』 이하 4경은 『잡아함경』에서 나왔다.
적골경(積骨經)『칠처삼관경(七處三觀經)』에서 나왔다.
회자경(誨子經)『생경(生經)』에서 나왔다.
범지관무상득해탈경(梵志觀無常得解脫經)『의족경(義足經)』에서 나왔다.
범지피사경(梵志避死經)
빈자득재발광경(貧子得財發狂經)
무해범지집지경(無害梵志執志經)
선패비구경(善唄比丘經)『범지피사경』 이하 4경은 『출요경(出曜經)』에서 나왔다.
복자경(福子經)
거사물고위부비중충경(居士物故爲婦鼻中蟲經)
수하비경(須河譬經)
교자경(敎子經)일명 『수달교자경(須達敎子經)』,
또는 『수달훈자경(須達訓子經)』이라고도 한다.
『복자경』 등 4경은 『잡비유경(雜譬喩經)』에서 나왔다.
용종존국변화경(龍種尊國變化經)
관세누탄경(觀世樓炭經)3품(品)이 있다.
청정법행경(淸淨法行經)이상의 3경은 앞서부터 『위록(僞錄)』에 있었다.
화엄영락경(華嚴瓔珞經)
반야득경(般若得經)이상의 2경은 『승법니송(僧法尼誦)』에서 나왔다.
또한 『위록』에 있다.
현겁천불명경(賢劫千佛名經) 1권승우는 “오직 부처님의 명호만이 있을 뿐이며,
담무란(曇無蘭)이 역출한 『사제경(四諦經)』의 천불(千佛)의 명호와는 다르다”라고 하였다.
『현겁경(賢劫經)』에서 나온 이역(異譯)이다.
이상 『불유일마니보경』 이하 66부 72권은 혹은 번역에 근거가 있기도 하고,
혹은 따로 파생되어[別生]
위경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였는데,
이제 이미 그 근거를 찾아서 알았다.
그러므로 한대(漢代) 이후의 근원을 잃은[失源]
경은 아니다.
그러나 『구집[舊] 』과 같은 것을 거듭 편입시킴으로써 번거롭고 뒤섞일까 염려되어 이제 다 같이 삭제하였다.
『장방록(長房錄)』에는 “이상의 125부 148권은 다 같이 승우율사(僧祐律師)의 『출삼장기(出三藏記)』에서 지은 것이다.
『고록』과 『구록』 두 목록과 『안록(安錄)』에서 근원을 잃은 것과 아울러 신집(新集)에 실린 역자를 알 수 없는 여러 경의 권부(卷部)는 매우 광대하다.
여러 목록을 교정해 보면 정돈되지 못하고 어수선한[蕪穢]
것이 많으며,
들고 나고 하면서 서로 섞이어 실로 바르게 설명하기 어렵다.
아직 경권(經卷)을 보지도 못했는데,
공연히 명제(名題)만이 열거하였다.
들어옴이 있었으면 근원이 있고,
들어옴이 없었으면 번역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초를 상고하면 이유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이 끝[末] 에다 붙여 둔다.
바라건대 뒷날 박식한 사람이 이 원줄기를 벗어나게 본 것이 있다면,
부디 다시 바르게 거두어서 근거가 있게 하여서,
법의 바다[法海] 를 밝히어 파도를 고요하게 해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이제 비장방의 이 말을 깊이 찾아보아도,
의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므로,
그 같고 다른 것을 자세히 찾아보면,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이하는 새로 이 목록에 첨가한다.
발파보살경(拔陂菩薩經) 1권혹은 발파(拔波)라고도 한다.
『안록(安錄)』에서는 “『발파타보살경(颰披陀菩薩經)』이다”라고 하였다.
안공(安公)은 “방등부(方等部)에서 나왔다.
『반주경(般舟經)』 초(初) 4품의 이역(異譯)이다”라고 하였다.
다섯 번째로 번역되어 나왔다.
전단수경(栴檀樹經) 1권
아구류경(阿鳩留經) 1권
보살도지경(菩薩道地經) 1권안공은 “방등부(方等部)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마왕입목건란복경(魔王入目揵蘭腹經) 1권또한 『폐마시목련경(弊魔試目連經)』이라고도 한다.
『구록』에서는 “『마왕입목련복중경(魔王入目連腹中經)』이다”라고 하였다.
『중아함경』 제30권에서 나왔다.
곧 마지막 10경중의 1경이다.
불유오백비구경(佛有五百比丘經) 1권
범인유삼사우치부족경(凡人有三事愚癡不足經) 1권
불계제비구언아이천안시천하인생사호추존자비자경(佛誡諸比丘言我以天眼視天下人生死好醜尊者卑者經) 1권안공은 “이상의 3경은 『중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자견자지위능진결경(自見自知爲能盡結經) 1권
유사구경(有四求經) 1권
불본행경(佛本行經) 1권
하중대취말경(河中大聚沫經) 1권혹은 『수말소표경(水沫所漂經)』,
또는 『취말비경(聚沫譬經)』이라고도 한다.
『중경록(衆經錄)』에서는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나왔다”라고 하였고,
지금의 『안록(安錄)』의 선집(先集)에는 “『잡아함경』의 후역(後譯)이다”라고 하였으나,
이것은 별역(別譯)이어서 본래 그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편현자갱경(便賢者坑經) 1권갱(坑)자를 혹은 전(旃)자로 쓰기도 한다.
소비여소경(所非汝所經) 1권
양비구득할경(兩比丘得割經) 1권
도덕사리일경(道德舍利日經) 1권
사리일재왕사국경(舍利日在王舍國經) 1권
독거사유자념지경(獨居思惟自念止經) 1권
문소명종경(問所明種經) 1권
욕종본상유경(欲從本相有經) 1권혹은 『욕종본경(欲從本經)』이라고도 한다.
독좌사유의중생념경(獨坐思惟意中生念經) 1권
불설여시유제비구경(佛說如是有諸比丘經) 1권
비구소구색경(比丘所求色經) 1권
도유비구경(道有比丘經) 1권
색위비상념경(色爲非常念經) 1권『자견자지위능진결경』으로부터 그 이하에 본래 22경이 있는데,
안공(安公)은 “이는 아함(阿含)의 1권인데,
그 중에서 5경은 이미 다른 목록에 구비되어 있으므로,
지금은 다만 17권이 있을 뿐이며,
『잡아함경』 분(分) 가운데 기재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색비구염본기경(色比丘念本起經) 1권
선악의경(善惡意經) 1권
비구일법상경(比丘一法相經) 1권
유이력본경(有二力本經) 1권
유삼력경(有三力經) 1권
유사력경(有四力經) 1권
인유오력경(人有五力經) 1권
불문자류상취경(不聞者類相聚經) 1권『구록』에서는 “『유상취경(類相聚經)』이다”라고 하였다.
『상응상가경(相應相可經)』과는 동본(同本)이다.
천상석위고세재인중경(天上釋爲故世在人中經) 1권혹은 상(上)자를 쓰지 않기도 하는데,
잘못이다.
조두토경(爪頭土經) 1권
신위무유반복경(身爲無有反復經) 1권
사자축생왕경(師子畜生王經) 1권
아수륜자바라문경(阿須倫子婆羅門經) 1권
바라문자명불침경(婆羅門子名不侵經) 1권
생문바라문경(生聞婆羅門經) 1권『구록』에서는 “『생문범지경(生聞梵志經)』이다”라고 하였다.
유상갈경(有%(阝,桒)竭經) 1권
서두승바라문경(署杜乘婆羅門經) 1권
불재구살국경(佛在拘薩國經) 1권
불재우타국경(佛在優墮國經) 1권경에서는 우수(優隨)라고 썼다.
시시자범수경(是時自梵守經) 1권
유삼방편경(有三方便經) 1권『구록』에서는 “『삼방편경(三方便經)』이다”라고 하였다.
『법경록(法經錄)』에서는 “『칠처삼관경(七處三觀經)』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바라문불신중경(婆羅門不信重經) 1권
불고사일경(佛告舍日經) 1권
사의지경(四意止經) 1권『구록』에서는 “『사의지본행경(四意止本行經)』이다”라고 하였다.
『법경록』에서는 “『중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설인자설인골부지부경(說人自說人骨不知腐經) 1권『색비구염본기경』 이하의 25권을 안공(安公)은 “모두 『잡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이제 장경중에 단권(單卷)으로 된 『잡아함경』 속에 찾아보았더니,
모두 이 경들이 있었다.
대부분 뒷사람들이 합쳐서 각 권을 만든 것이다.
잡아함삼십장경(雜阿含三十章經) 1권『법경록』에는 “『잡아함경』에서 나온 이본(異本)이다”라고 하였다.
오십오법계경(五十五法誡經) 1권혹은 『오십오법행경(五十五法行經)』이라고도 한다.
일체의요(一切義要) 1권
설선악도경(說善惡道經) 1권
애욕성경(愛欲聲經) 1권어떤 본에서는 “『애욕일성경(愛欲一聲經)』이다”라고 하였다.
마하차갈선경(摩訶遮曷旋經) 1권
천왕하작저경(天王下作猪經) 1권
시조욕불시경(始造浴佛時經) 1권
십이현자경(十二賢者經) 1권
불병부제조달경(佛倂父弟調達經) 1권『오십오법계경』 이하의 경에 대하여 안공(安公)은 “위의 10경은 『아비담(阿毘曇)』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는데,
지금 다만 9경만 있는 것은 1본이 중역경重譯 속에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마왕입목련복경』이 그 경이다.
우타라가섭경(憂墮羅迦葉經) 1권
사부본문경(四部本文經) 1권안공(安公)은 “위의 2경은 『장아함경』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는데,
다른 책一本에서는 “『아비담(阿毘曇)』에서 나왔다”라고 하였다.
양덕경(讓德經) 1권
유현자법경(有賢者法經) 1권
마하궐미난문경(摩訶厥彌難問經) 1권혹은 『대궐미경(大厥彌經)』이라고도 한다.
대본장경(大本藏經) 1권
설아난지계경(說阿難持戒經) 1권
아난문하인연지계견세간빈역현도빈경(阿難問何因緣持誡見世間貧亦現道貧經) 1권
급고독사성가문응수시경(給孤獨四姓家問應受施經) 1권
효소쟁불해경자경(曉所諍不解經者經) 1권지금 위에 있는 경(經)자는 착오가 아닌가 한다.
기이도가난문주처경(奇異道家難問住處經) 1권
기이도가난문법본경(奇異道家難問法本經) 1권
현자수력경(賢者手力經) 1권
팔법행경(八法行經) 1권
우다라경(憂多羅經) 1권혹은 하(夏)자로 쓰기도 한다.
전단조불경(栴檀調佛經) 1권
악인경(惡人經) 1권
난제화난경(難提和難經) 1권혹은 『난제화라경(難提和羅經)』이라고도 한다.
사성장자난경(四姓長者難經) 1권『구록』에서는 “『사성장자경(四姓長者經)』이다”라고 하였다.
절불경(折佛經) 1권
도지경중요어장(道地經中要語章) 1권혹은 『소도지경(小道地經)』이라고도 한다.
지요(支曜)가 역출한 것이 이것이 아닌가 한다.
수련의장(數練意章) 1권『구록』에서는 “『수련경(數練經)』이다”라고 하였다.
안공(安公)은 “이상의 2경은 『생경(生經)』에서 나왔다”라고 하였으며,
승우(僧祐)는 살펴보고 “지금의 『생경』에는 이 『수련의장(數練意章)』의 이름이 없다”라고 하였다.
이상은 82부 82권처음의 『발피보살경』 등의 3경은 현재 존재하나,
나머지는 모두 궐본이다.은 모두 『승우록(僧祐錄)』 속에 안공(安公)의 고전경(古典經)을 모은 것이다.
고전(古典)은 이미 먼 시대(遠代)의 것이라고 밝혔으므로,
지금은 한말(漢末)에 근원을 잃었다[失源] 고 여기어 편집한 것이다.
안공이 본래 기록한 고전에는 총 92경이 있으나,
이제 그 밖의 10경은 여러 목록을 검사하고 찾아서,
혹은 번역한 이[譯主] 를 표시하기도 하였고,
혹은 따로 파생[別生] 하기도 하였으므로,
그 안에서 이미 기재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삭제하고 82권으로 한 것이다.
앞의 구실역경(舊失譯經) 59부 76권을 합치면,
총 141부 158권인데,
이것은 모두 한대의 근원을 잃은 것이다.
2) 위조(魏曹) 시대
위(魏)나라 조씨(曹氏)는 낙양(洛陽)에다 도읍을 정하였다.
문제(文帝) 황초(黃初) 원년 경자(庚子,
220)로부터 원제(元帝) 함희(咸凞) 2년 을유(乙酉,
265)에 이르기까지 무릇 5제(帝) 46년 동안에 사문 5인이 역출한 경(經)ㆍ계(戒)ㆍ갈마(羯磨)46)는 총 12부 합 18권이다.그 가운데 4부 5권은 현재 경본이 남아 있고,
8부 13권은 궐본이다.
사문 담가가라(曇柯迦羅)1부 1권.
계(戒)
사문 강승개(康僧鎧)3부 4권.
경(經)ㆍ갈마(羯磨)
사문 담무제(曇無諦)1부 1권.
갈마
사문 백연(白延)5부 7권.
경
사문 안법현(安法賢)2부 5권.
경
(1) 담가가라(曇柯迦羅)
승기계본(僧祇戒本) 1권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축도조(竺道祖)의 『위세록(魏世錄)』에 보인다.
이상은 1부 1권이다.
궐본이다.
사문 담가가라(曇柯迦羅)는 중국말로,
법시(法時)라고 하는데,
중인도 사람이다.
집안이 대대로 크게 부유하였고,
언제나 청정한 복[梵福] 을 닦았다.
담가가라는 어려서부터 재주와 슬기가 있었으며,
자질과 몸가짐이 남보다 뛰어났다.
글을 한번만 읽어도 글의 뜻을 모두 환히 깨달았으며,
사위타론(四韋陁論)을 잘 배워 풍운(風雲)47)ㆍ성수(星宿)48)ㆍ도참(圖讖)49)ㆍ운변(雲變)50)을 두루 통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스스로 “천하의 문리(文理)가 다 나의 가슴과 배[心腹] 에 들어 있다”라고 하였다.
25세에 이르러 어느 승방(僧坊)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법승(法勝)51)의 『아비담심론[毘曇] 』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가져다 보았는데,
도무지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은근히 거듭 살펴보았으나,
더욱 미혹하고 알 수 없었다[惛漠] .
이에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학문을 쌓은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분전(墳典)52)을 안다고 자부하였고 경적(經籍)53)을 자유자재로 이해하여,
그의 뜻을 두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문장을 거듭 살펴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불서(佛書)를 보니 문득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나왔으니,
반드시 이치가 깊이 담겨서 따로 중요한 요점이 있을 것이다.”
이에 책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 한 비구에게 대략 해석해 줄 것을 청하게 되었다.
드디어 인과를 깊이 깨닫고 삼세(三世)를 매우 잘 이해하게 되었다.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이 넓고도 넓어 세속의 책들로서는 미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세상의 영화를 버리고 출가하여,
정성스럽고 간절한 마음으로 수행하였다.
그는 대승ㆍ소승의 경과 여러 비니(毘尼 : 계율)를 외웠고,
항상 돌아다니며 교화하는 일을 귀하게 여겼으며,
오로지 수행에만 몰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문제(文帝) 황초(黃初) 3년 임인(壬寅,
222)에 낙양으로 왔다.
그때 위나라에는 불법이 있기는 하였으나,
도풍(道風)이 잘못 전해져 쇠퇴하였다.
여러 승려들이 있었으나,
귀의하는 계를 받지 않았고,
다만 머리만 깎고 있는 것이 세속과 다를 뿐이었다.
설령 재계와 참회를 하더라도 섬김에 있어서는 (유교의 의식인) 사사(祠祀 : 사당에서의 제사)를 본받았다.
그러다가 담가가라가 오고 난 뒤부터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크게 행해졌다.
당시 여러 승려들이 담가가라에게 계율을 번역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담가가라는 율장(律藏)의 곡제(曲制)54)와 문언(文言)55)이 번잡하고 범위가 넓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번창하기 전에는 결코 그것을 받들어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재왕(齊王) 방(芳) 가평(嘉平) 2년 경오(庚午,
250)에 낙양의 백마사(白馬寺)에서 『승기계심(僧祇戒心)』을 번역하여 아침 저녁으로 갖추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 범승(梵僧)56)들을 모아 갈마(羯磨 : 계율)를 세우고 계를 받게 하였으니,
중국[東夏] 의 계율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담가가라가 후에 언제 어디서 입적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2) 강승개(康僧鎧)
욱가장자소문경(郁伽長者所問經) 1권혹은 2권으로 되어 있다.
세 번째로 번역되어 나왔다.
일명 『욱가라월문보살행경(郁伽羅越問菩薩行經)』이라고도 한다.
가평(嘉平) 4년(252)에 나왔다.
축도조(竺道祖)의 『위세록(魏錄)』에 보인다.
지금은 『보적경(寶積經)』에 편입되어 있는데,
곧 제19회(會)가 이것이다.
무량수경(無量壽經) 2권네 번째 번역되었다.
축도조의 『진세잡록(晋世雜錄)』과 『보창록(寶唱錄)』에 보인다.
안세고가 번역하여 낸 것과는 조금 다르다.
또 『보적경』의 「무량수회(無量壽會)」와 같은 동본이다.
사분잡갈마(四分雜羯磨) 1권표제題에서는 “『담무덕률부잡갈마(曇無德律部雜羯磨)』이다”라고 하였는데,
「결계장(結界場)」을 첫머리에다 새로 붙였다.
이상은 3부 4권은 그 책이 현재 모두 있다.
사문 강승개는 인도 사람이다.
널리 여러 경전을 배워서,
심오한 뜻을 잘 드러내었다.
가평(嘉平) 4년(252) 임신(壬申)에 낙양의 백마사(白馬寺)에서 『욱가장자소문경』 등 3부를 번역하였다.
『고승전(高僧傳)』에서는 “4부를 번역하였다”라고 하였으나,
그 이름이 드러나 있지 않으며,
축도조의 『위세록』ㆍ『진세잡록』과 『승우록[僧祐] 』ㆍ『보창록[寶唱] 』 양대(梁代)의 목록과 장방(長房)ㆍ도선(道宣)ㆍ정매(靖邁)의 세 목록에는 “모두 2부이다”라고 하였으며,
다른 2부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교열(校閱)하기 전에 이제 다시 1부를 얻었으나,
나머지 1부는 검열하였는데도,
아직 찾지 못하였다.
(3) 담무제(曇無諦)
담무덕갈마(曇無德羯磨) 1권표제에서는 “『갈마』 1권이다”라고 하였다.
『담무덕률(曇無德律)』에서 나왔다.
결대계(結大界)를 첫머리에 두었다.
축도조의 『위세록』에 보인다.
이상은 1부 1권인데,
그 책이 현재 존재한다.
사문 담무제는 또한 담제(曇諦)라고도 하며,
중국말로는 법실(法實)이라 한다.
안식국(安息國) 사람이다.
율장(律藏)57)을 잘 배워서 깊은 이치까지 잘 통달하였다.
고귀향공(高貴鄕公)58)의 정원(正元) 원년 갑술(甲戌,
254)에 낙양에 이르렀으며,
백마사(白馬寺)에서 『담무덕갈마』 1부를 번역하였다.
(4) 백연(白延)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2권다섯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한나라 때 지참(支讖) 등이 번역한 경과 『보적경(寶積經)』의 「무량수회(無量壽會)」와 같은 동본이지만,
문채가 다르다.
축도조의 『진세잡록(晋世雜錄)』과 『승우록(僧祐錄)』에 보인다.
차수뢰경(叉須賴經) 1권어떤 본에는 차(叉)자가 없으며,
『승우록』에서는 우(又)자로 쓰여 있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축도조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보살수행경(菩薩修行經) 1권일명 『장자위시소문보살수행경(長者威施所問菩薩修行經)』이라 하며,
일명 『장자수행경(長者修行經)』이라고도 한다.
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시흥록(始興錄)』ㆍ『보창록(寶唱錄)』에 보인다.
제재환경(除災患經) 1권『승우록』에 보인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제공재환경(除恐災患經)』과는 동본이다.
수능엄경(首寶嚴經) 2권다섯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한나라 때 지참(支讖) 등이 번역한 것과는 동본이지만,
문채가 다르다.
축도조의 『진세잡록』과 『승우록』에 보인다.
이상은 5부 7권인데,
그 책들은 다 궐본이다.
사문 백연은 서역 사람이다.
재주와 총명함이 세상을 덮을 만했으며,
깊은 이해력은 무리에서 뛰어났다.
고귀향공(高貴鄕公)의 감로(甘露) 3년 무인(戊寅,
258)에 낙양에 와서 교화하며 돌아다니다가,
백마사에 머물러 있으면서,
『무량청정평등각경』 등 5부를 번역하였다.
『장방록』 등에는 또 『평등각경(平等覺經)』 1권이 있다.
또한 백연이 번역하여 낸 것이다.
지금은 이 경이 바로 『무량청정평등각경』인데,
다만 이름에 넓히고 줄임[廣略] 이 있을 뿐이므로,
다시 기록하지 않는다.
(5) 안법현(安法賢)
나마가경(羅摩伽經) 3권『축도조록(竺道祖錄)』ㆍ『보창록(寶唱錄)』ㆍ『법상록(法上錄)』ㆍ『영유록(靈裕錄)』 등의 4목록에 보인다.
이 경은 『화엄경(華嚴經)』의 「입법계품(入法界品)」의 일부분이다.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2권두 번째 번역되어 나왔다.
대본(大本) 앞의 여러 품數品을 요약하여,
이 2권을 만든 것이다.
축도조의 『위세록』에 보인다.
이상은 2부 5권인데,
그 경본은 다 궐본이다.
사문 안법현은 서역 사람이다.
재주가 매우 뛰어났으며,
지혜와 이해력은 더욱 특출하였다.
석장[錫] 을 짚고 여러 나라를 유행하다가 먼 곳으로부터 중국에 이르러,
『나마가경』 등 2부를 번역하였다.
여러 목록에서 다 같이 위나라 때[魏世] 라 하였으나,
어느 임금의 해인가를 가릴 수 없으므로,
이제 마지막에다 엮어 둔다.
또 『별록(別錄)』에서도 역시 모든 실역경(失譯經)에 편입시켜,
모두 『오록(吳錄)』 뒤에 나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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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를 내는 수행자의 과보
『개원석교록』에는 태자로 태어나 수행을 한 안세고와 함께
그와 수행을 같이 했으나 수행 중에 조금만 마음에 안 맞는 상황이 되면
화를 자주 낸 수행자가 받은 과보에 대해서도 소개되고 있다.
수행과정은 현실적으로 일반적입장에서 힘들게 여겨지는 상황이 많다.
그럴 때마다 화를 내게끔 되는 것도 일반적이다.
그러면 또 그런 과보를 받게 되는 것도 일반적이다.
그래서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Lab value 불기2563/06/30 |
●전화번호부 인명부 목록을 대하는 자세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k1062t2154001.html#1380 sfed--개원석교록_K1062_T2154.txt ☞개원석교록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3_06.txt ☞◆vltj1380 불기2563-06-30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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