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보생론』
K0605
T1591
성유식보생론 제1권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성유식보생론_K0605_T1591 핵심요약
♣0605-001♧
『성유식보생론』
성유식보생론 제1권
○ [pt op tr]
[##_1N|cfile24.uf@99B25D4C5CFF948C28FA70.jpg|width="763" height="570" filename="실재진여_마음과자신과남2.jpg" filemime="image/jpeg"|_##]
Lab value 불기2563/05/21/화/14:49
● 일체가 마음이라고 할 때 자신의 마음 하나밖에는 없다고 해야 하는가.
며칠전 『대승기신론』을 대략 살피고
또 글이 밀려 건너 뛰면서 『성유식보생론』을 살피는데 두 내용이 연관이 된다.
현실 일체가 마음이다. 이런 내용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
이 부분이 상당히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또 이런 내용을 이해하게 되면
그 바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인가를
잘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고 본다.
사람이 눈을 떠서 세상과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생활을 한다고 할 때
그렇게 보는 내용을 마음이라고 하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논의인가하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부분을 놓고 잘 살펴야 한다.
우선 현실에서 한 주체가 대하는 내용이
모두 마음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하는 실험 방안이 있다.
『성유식보생론』에서는 경전의 근거를 제시하는데
스스로 실험을 해보면 직접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본다.
종전에 이 내용을 적었으므로 해당 부분에 링크를 걸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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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http://buddhism007.tistory.com/4035#003
sfed--불설마요란경_K0694_T0066.txt
sfd8--불교단상_2562_02.txt ☞○ 기본적 실험방안과 추가적 실험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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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무슨 근거로
있다고 시설해 제시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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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존재 확인 실험
http://buddhism007.tistory.com/4224#005
sfed--대반야바라밀다경_K0001_T0220.txt
sfd8--불교단상_2562_03.txt ☞ ☞●마음의 존재 확인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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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ct-list--editing_text.TXT
출처: http://buddhism007.tistory.com/entry/마음-현상의-이해#gsc.tab=0 [불교진리와실천]
○ 마음현상에 대한 논의 - 전체 내용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Renan Luce - Les Secrets Chuchotes.lrc
○ 일체가 마음이라는 것을 인식함의 현실적효용
현재 자신이 대하는 현실 일체가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살핀다.
그런데 그렇게 현실 일체가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이
자신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신의 마음이면 어떻고 마음이 아니고 외부 물질이라면 어떤가.
그것이 나의 삶에 무슨 관계있는가.
그리고 자신이 대하는 현실 일체가 자신의 마음이라면
이제 그런 바탕에서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가.
이런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 생사고통 문제의 해결과 생사현실의 정체 파악문제
눈을 뜨고 거리를 나서보자.
집이나 가게도 있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분주히 오간다.
그리고 구석 한편에 자신의 팔이나 발도 보인다.
이것이 대부분의 현실 상황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어떤 이가 살면서 집착을 갖는 부분들이 여기에 다 들어 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좋음을 얻기 위해서 평소 노력한다.
그것은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생명이 거의 대부분 이렇다.
그런데 대부분 망집과 집착에 바탕해 업을 행하고 임하면
그 뜻과 달리 그로 인해 3 악도의 생사고통에 묶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의 문제상황이다.
만일 가정하여 이렇게 겪는 생사고통이 없다면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망집이나 업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런 생사고통이 실답지 않음을 관하여
곧바로 벗어나기 힘드므로
그런 생사고통에 묶이게 되는 원인-즉 망집과 그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원인단계에서 제거하고 쌓여진 업의 장애를 함께 제거하는 수행을 통해
그런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본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런 업을 행하게 만드는 바탕인
망상분별과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현실에서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고 모든 집착의 근본이 되는
자신과 자신의 것에 대해 그 일체가 실답지 않고 공함을 제시하게 된다.
그런데 일체가 실답지 않고 공하다고 해도 그런 바탕에서
어떤 심한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묶여서 받아나가는 상태가 없다면
그것이 실답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특별히 문제삼을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만화나 영화가 실답지 않지만,
그로 인해 큰 문제가 없다면 무엇때문에 문제삼겠는가.
그런데 그렇지 않기에 이것을 문제삼고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경전에서는
이처럼 현실에서 스스로 자기자신이라고 여기는 내용과
외부 세상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내용이 공하고 실답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일체가 한 주체의 마음에 들어와 있는 마음내용임을 다시 제시한다.
물론 이것이 현실의 본 정체이기에 이를 제시하지만,
이 역시 생사고통 해결문제와 관련이 되어 제시된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과 외부세상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내용이
마음임을 파악하는 것은
생사고통을 해결하는데 어떤 측면에서 관계되는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에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중생의 상태에 맞추어 어떻게 단계적으로
생사를 벗어날 방편을 제시하는가를 기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일체가 마음이라는 내용도 그 의미를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그런데 일체가 마음이라는 사실과
각 중생이 망집을 일으키고 생사를 받아가는 과정
또 그런 바탕에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방안
그리고 다른 중생을 생사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안 등에 대한 논의는
사실은 조금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다.
그런데 일체가 마음이라고 제시하는 내용이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수행에서 어떤 효용을 갖는가를 이해하려면
부처님 가르침의 기본적 내용이 각 단계에서
그처럼 제시된 취지를 함께 이해하며 단계적으로 살펴야 한다.
간단히 그 핵심만 먼저 추려 제시해보기로 한다.
- 단멸관의 제거와 생사고통의 인과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기간의 문제
생사고통을 받을 때 그 주체가 그 문제를 대단히 좁고 짧고 얕게 관하는 가운데
해결방안을 찾아 나서기에 오히려 생사고통을 증폭시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나 세상의 정체에 대해 잘못된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임하기에
현실에서 자신으로 여기는 부분이 죽음을 맞이하면 그것으로 모두 끝이라는 단멸관을 취하고
또 이에 바탕해 자신의 문제를 고려할 기간을 이번 생만으로 한정해서 방편을 취하게 된다.
그러면 길게 보아 생사고통을 증폭해 받아나가게 하는 잘못된 방편을
짧게 대할 대는 마치 그것이 좋은 효력을 발휘하는 좋은 방안인 것으로 잘못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한 주체가 자신과 관련되어 고려할 기간이 그렇지 않고
망집을 해결하지 못하면 무량겁에 걸쳐서 자신의 업이 사라지지 않고
과보를 받아나가게 된다는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려면 또 평소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긴 것의 본 정체를 올바로 파악해서
어떤 사정으로 자신이 무량겁의 기간까지 고려하며 매 순간을 대해야 하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마음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하고
또 일체가 마음 내용임을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
- 무아, 무자성으로서 자신이 실답지 않음과 수행 주체의 문제
한편 일반적으로 자신이나 세상으로 여기는 내용을 실답지 않기에
이에 대한 망집을 제거하고 그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중단하고
그 바탕에서 수행에 정진해야 생사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고 제시하면
이처럼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고 진짜라고 할 실체가 없다는 경전 내용을
현실에서 수행에 임해야 할 자신 자체가 전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고 잘못 오해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각 영역에서 얻지만,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은 그런 내용은 각 영역에서 얻지 못해서가 아니고
본 바탕이 되는 영역이나, 다른 영역들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그처럼 얻는 것이기에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침대에서 꾼 황금이나 바다꿈이 실답지 않다고 할 때
비록 침대나 꿈은 그처럼 얻지만 그 꿈 내용은 침대가 놓인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내용이기에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런 꿈이나 현실이 실답지 않기에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함을 제시할 때
이들 내용 자체까지 얻지 못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따라서 실답지 않음을 통해 제거해야 하는 것은 그에 대해 일으킨 '망집'이고
그로 인해 그런 망집을 일으키게 하는 재료는 되지만,
정작 그 자체가 망집이 아닌 '재료' 까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현실이 실답지 않다면 단순히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음만 이해하면 생사를 벗어나지 않고
왜 다시 수행을 해야 생사를 벗어나는가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한다면
이처럼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은 가운데 도대체 누구의 어떤 무엇이
그런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에서 수행을 하고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고 하는가하는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쉽다.
따라서 현실이 실답지 않는 가운데 수행을 하지 않아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 주체
그리고 반대로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주체의 정체를 올바로 파악하려면
세상과 자신의 본 정체가 마음 내용임을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 본래 실답지 않는 내용을 실답게 여기면서 망집을 일으키게 된 배경사정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
한편 생사현실에서 평소 자신이나 세상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것을 실답지 않다고 경전에서 제시하지만,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내용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고
세상을 외부 세상이나 대상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고 여기게 되는 사정이 있다.
그런 사정으로 그것들이 앞과 같이 실답지 않은 사정을 제시해도
여전히 그런 내용이 곧 자신이나 외부 세상의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며
망집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그런 망집을 더 증폭시켜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은데도 현실에서 실답게 여기며 임하게 된 그 배경사정까지
함께 잘 이해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래서 먼저 자신이 평소 자신이나 세상이라고 여긴 것들의 본 정체가
자신이 이해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고 자신 마음내용임을 명확히 이해해야 하고
이들 현실 내용이 외부 세상이나 외부대상, 또는 마음과 별개의 외부물질이라고 여기던 망집을 제거하는 한편
동시에 평소 자신으로 여기고 대한 부분 역시 자신의 본 정체가 아니라는 사정까지 잘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런 가운데 어떤 배경사정 때문에
자신이 이 생에 처음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는 순간까지
망상분별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죽어가게 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현실에서 망집을 일으키는 문제가
단지 현실에서 자신이 표면적으로 쉽게 확인가능한 감각이나 분별뿐만 아니라,
근본 정신에 해당하는 아뢰야식을 바탕으로
공한 실상을 바탕으로 공중 3 회전에 걸친 망집을 일으켜 [3능변]
생사현실에 임하게 된 배경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 무량겁에 걸쳐 중생제도와 성불을 목표로 수행을 할 때 현실의 정체의 올바른 이해
한편 현실의 생사고통과 그 원인이 되는 망집 번뇌가 문제된다고 할 때
이런 망집을 일으키는 기본 재료가 되는 현실 내용과
또 그런 현실 내용을 얻는 망식을 모두 제거하고 회신멸지의 상태로 열반에 드는 것을 기본 수행목표로 제시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 주체는 생사의 묶임으로부터 벗어나지만,
정작 생사현실에 남는 중생들은 무량겁에 걸쳐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오는 것을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
그래서 대승 보살수행자는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키고
또 한편, 현실 내용을 얻게 하는 망식이나
이를 통해 얻는 현실 내용이
생사고통의 원인이 되는 망집을 일으키는 바탕과 그 재료가 되지만,
그러나 본래 그 자체만 보면
이들 생사현실은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임[생사 즉 열반]을 관하여
생사현실에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따라서 중생제도를 위해 필요한 복덕자량을 쌓고
무량한 방편지혜를 닦아 나가고
무량겁에 걸쳐 중생제도와 불국토 장엄과 성불을 목표로 수행을 해나가게 된다.
그런데 중생제도를 위해 무량겁에 걸쳐 그런 수행을 해나가는 수행자는
도대체 무엇을 바탕으로 그런 수행을 해나가는가를 이해하려면
역시 현실에서 자신이나 세상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것들의
본 정체가 마음 내용이라는 점부터 잘 확인하고
이들 내용이 근본 정신을 바탕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나타나 매 생사현실에 그처럼 임하게 되는 것인지부터
잘 확인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는 앞에서 살핀 것처럼 망집에 바탕한 업을 제거하지 않으면
반대로 무엇이 그런 생사고통을 무량하게 받아 가는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된다.
이둘의 차이는 결국 생사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한 분단생사과
수행자의 변역생사과정을 이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와 같은 여러 측면에서
결국 한 주체가 대하는 현실 내용 일체의 정체는 그 주체의 마음 내용이고
그것은 그가 망집을 바탕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외부 세상이나, 자신이 대하는 외부 대상, 그리고
마음과는 떨어져 있고 마음과는 별개인 외부물질이 아니고,
또한 자신과 영희 철수 등등이 모두 다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 실재가 아니며
또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하는 부분을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것도 잘못된 분별임을 잘 파악해서
그런 망집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요구된다.
그래서 이들을 기본적인 부분부터 차례대로 살펴가기로 한다.
한편, 이런 내용을 살필 때는
현실에서 가장 망집이 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일반인의 입장을 기준으로 삼고
왜 이런 내용들이 이런 차례로 제시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것은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 곧바로 이런 내용을
이해하고 수행에 임해서 생사를 벗어나기가 대단히 힘들다는 사정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그런 중생에 눈높이를 맞추어서
단계적으로 이런 내용들을 제시하게 되었다는 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img2-49]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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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시점 2563_0611_204707
○ 생사고통을 받는 원인 - 무명(어리석음) 망상분별 집착 - 업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심하게 받는 상태에 놓일 때
그 내용만 놓고 보면 우선 당장 받는 그 생사고통이 문제고
그 고통을 벗어나는 것이 문제된다.
그런데 이런 입장에서 넓고 길고 깊게 관하면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된 원인은
그런 상황에 묶이게 만든 업을 그 주체가 행하였기에 그렇게 되었다는 관계성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업은 또 그 주체가 매순간 일정한 집착을 갖고
그렇게 행하게 만든 망상분별과 어리석음(무명)에 바탕한 집착이 또 그 원인임을 보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렇게 집착을 갖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평소 자신이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과
그러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사물들에 관련된 망상분별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문제상황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다.
그래서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두 부분
즉 생사고통의 결과와 이를 받게 하는 원인 부분을 다 잘 해결해야 한다.
즉 생사고통을 당장 받는 상황에서는 그것을 잘 벗어나와야 하고
또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장차 그런 생사고통을 받지 않도록
미리 그 원인을 잘 제거해 예방해야 한다.
경전에서 현실의 본 정체 및 수행내용이 제시되는 사정은 이에 초점이 있다.
○ 모든 집착의 근원 - 자신의 정체에 대한 망상분별과 집착
현실에서 생사고통을 받는 원인이 되는 모든 집착은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에 그 근원이 있다.
그리고 나머지 집착은 모두 여기에서 파생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먼 나라에서 재난이 일어나서 어떤 여인이 죽고
아이는 고아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고아는 다리가 부상을 당한 사고가 있다고 하자.
대부분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래도 대부분 담담하게 이를 대하게 된다.
현실에서 물고기를 먹거나 축생을 도살해 고기를 먹는 경우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보면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음식으로 먹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담담하다.
다른 생명이 극심한 고통을 겪더라도
결국 이는 자신이 지금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이와 유사하게 먼 장래에 자신이 고통을 겪더라도
지금 당장은 담담하게 이를 대할 수 있다.
이 역시 먼 장래 자신이 극심한 고통을 겪더라도
지금 당장 자신이 고통을 감각하거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자신이 지금 어떤 망집을 갖고 어떤 업을 행할 때도
대단히 담담하게 임하게 되기 쉽다.
이로 인해 자신이 장차 어떤 생사고통을 겪고
다른 생명은 또 이런 일로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또 장차 겪어나가게 되는가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대하기 쉽다.
장차 자신이 이로 인해
어떤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는지 그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설령 장차 그런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당장 지금 자신이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하튼 이런 사정으로
현실에서 한 주체가 관심을 갖고 초점을 맞추게 되는 내용은
자신이 당장 좋음을 얻거나 고통을 받는 문제에 집중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온갖 것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다.
그래서 먼저 어떤 주체가 현실에서
당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고 임하는 부분 사이에서
차이를 먼저 잘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생사고통을 겪는 것은 바로 이런 바탕에서
현실에서 자신이 집착을 갖고 무언가 열심히 업을 행한 가운데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된다.
만일 자신이 망상분별을 일으켜
자신이 집착을 갖게 되는 부분에 집착을 갖고 업을 행해도
그로 인해 생사고통을 겪지 않게 된다면 큰 문제되지 않는다고 보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의 문제점이다.
○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기본 가르침[법인설]
그래서 처음 제시하는 것은
현실에서 한 주체가 집착을 갖고 대하는 자신과 자신의 것이
집착을 갖고 대할 내용이 아님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데 집중된다.
그것은 또 그런 집착에 바탕해
매 순간 행하기 마련인 업을 중단하는데 초점이 있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장래 받아나갈 생사고통을 미리 제거하기 위한 수행을
잘 정진해 성취하고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는데 초점이 있다.
그래서 처음 기본적으로 제시되는 내용은
현실에서 가장 집착을 갖고 대하는 자신과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 일체의 내용이 무상한 것이어서 그런 집착을 갖고 대할만한 것이 아니다. [제행무상- 영원하지 않다.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
또 그것은 당장 좋음을 주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길게 보아 고통을 가져다 준다. [일체개고]
그리고 그것은 집착을 가질만한 참된 진짜의 내용이 아니다.
현실에 어떤 내용을 얻더라도 그것은 그렇게 그럴 듯하게 여겨지는 가짜일 뿐이다. [제법무아]
그리고 현실의 본 바탕은 생사고통을 벗어난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다.
장차 장구한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을 떠나 이런 청정한 니르바나의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열반적정]
그리고 일체의 본 바탕은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화합을 통해 내용을 마음으로 얻게 되는 주체는 끝내 그런 실재를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와 같다 다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등등의 분별을 행하거나
언어로 그 상태를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 공하다는 표현으로 이 상태를 나타낸다. [일체개공]
이런 내용을 기본적으로 제시한다.
○ 유식무경과 법인설의 차이점
그런데 지금 살피는 내용은 이 연장선에서 제시되고
현실에서 대하는 내용의 본 정체를 살피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공통하지만,
집착을 제거하는데 초점이 있다기 보다는
현실 내용의 본 정체나 그 성격을 파악하는 가운데 일으키는 잘못된 망상분별을 시정하면서
현실에서 한 주체가 대하는 내용 일체가 마음내용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 제시한 내용들과는 조금은 성격이 다르다.
즉, 현실에서 얻는 일체 내용이 마음 내용이라는 것은
현실 내용이 갖는 성격을 좀 더 깊게 살피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잘못된 망상분별을 시정하는 의미를 우선 갖는다.
즉 일반적으로
현실 내용이 자신의 마음과는 떨어진 별개의 외부세상의 내용이고
또 자신의 감관이 상대하는 외부 대상이고
그리고 자신의 마음과는 떨어지고 마음과는 별개의 외부 물질이고
더 나아가 자신 뿐 아니라 영희나 철수와 함께 다 함께 대하는
외부의 객관적인 실재라고 일반적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유식무경설은 이와 같은 일반적인 입장이 옳지 않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즉 그런 내용이 아님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내용은 앞과는 조금 성격이 다름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불교 경전에서 위 두 부분을 다 제시하지만,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취지가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현실 내용을 외부 대상이나 개관적 실재라고 이해하면 집착을 많이 갖게 되지만,
그렇지 않고 자신의 마음 내용임을 이해하면
이로 인해 조금 덜 집착을 갖게 될 것 같지만, 사정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어떤 내용이 마음 내용이라고 해서
그 주체가 그에 대해 갖던 집착을 잘 제거하는가.
그리고 어떤 내용이 마음 내용이라고 해서
그에 바탕해 행하던 어떤 반응이나 업을 중단하게 되는가를 살펴보자.
예를 들어 자신이 평소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과 자신의 아끼는 아름다운 자동차가 마음 내용이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누군가 발로 차고 자신의 자동차를 부셔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하게 되는가.
또 예를 들어 이런 일에 대해 화를 일으킨다면 이 역시 자신 마음안 내용이고
또한 그처럼 자신의 자동차를 부순 이를 자신이 보복하고 해치려 한다면
이런 내용 역시 자신 마음 내용이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에서 그가 화를 내지 않고 다른 이를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되는가.
더 나아가 그에 바탕해서 어떤 업을 행하여 어떤 생각을 다시 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들도 역시 알고보면 자신의 마음 안 내용이다.
사정이 그렇다고 자신이 그런 생각과 말과 행위를 그런 형태로 하지 않게 되는가.
그리고 이제 그로 사고들로 인해 이후 자신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누어 고통을 받거나,
감옥에 갇혀서 고통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이 역시 자신의 마음내용이다.
그런 내용이 마음내용이라고 해서 그 상황에서 그가 그로 인해 고통을 받지 않게되거나,
그 고통을 쉽게 벗어나게 되는가.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대부분 경우 그렇지 않다.
더 나아가 그런 상황에서 이런 고통을 각 경우에 벗어나기 위해 제시하는 수행도
역시 마음 내용이다.
사정이 그렇다고 이제 이 경우에 그런 수행을 원만히 잘 성취하는가를 살펴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실 내용 일체가 자신의 마음 내용임을 제시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유식무경과 관련해 일으키는 또 다른 망집
한편 현실 내용 일체가 자신 마음내용이고
그 내용 안에는 외부 대상이 없다는 유식무경의 내용을 제시하면
망집을 바탕으로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엉뚱한 견해를 다시 일으키게 되기도 쉽다.
예를 들어 유식무경이란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이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가 무언가 알아보니
어떤 다른 것이 아니고 그 정체가 마음이라고 제시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것도 본 바탕인 진여 실재는 '자신의 마음 하나'라고 제시한 내용으로 오해할 수 있다.
또 한편, 현실의 본 바탕이 되는 실재는 자신의 마음 뿐이어서
자신의 마음 밖 외부에는 아무 것도 전혀 없고,
따라서 다른 주체나 그 마음 등 그 일체도 전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 세상에는 영희나 철수 50 억명의 다른 사람
또는 개나 소와 같은 생명, 아라한, 연각, 보살, 부처님 등이 있다고 여기지만,
알고보면 모두 자신 마음 내용 하나일 뿐이고 이들 다른 주체는 전혀 없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현실 일체는 마음 내용뿐이며, 여기에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은 없다'는 유식무경설의 주장을 통해
비록 본 바탕인 실재가 곧 마음이라고 잘못 이해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여하튼 현실 일체 내용은
자신의 마음 안에 머무는 내용임을 바탕으로
다시 다음과 같은 잘못된 견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
즉, 우선 현실 일체는 마음내용이고
여기에 그것을 얻게 한 외부대상은 없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마음 밖에는 일체 내용은 '전혀 없다'고 오해할 수 있다.
또 현실내용에 그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없다는 내용을
자신이 어떤 내용을 보고 얻을 때 자신이 상대한 대상이 '일체 전혀 없다'는 의미로 오해하기 쉽다.
이런 경우 자신이 무언가를 현실에서 보거나 얻는다면
이는 자신의 마음밖 어떤 내용을 대상으로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이 현실 일체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또는 무언가를 대상으로 하여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을 상대해 얻어낸 것뿐이다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이런 입장은 자신이 영희나 철수에게 사과를 건네는 상황에 대해 다음처럼 이해하는 것이 된다.
우선 자신이 사과를 영희나 철수에게 건네는 것은
자신의 마음내용을 영희나 철수에게 건넨 것이다.
이 때 영희나 철수도 자신의 마음내용을 받은 것이다.
심지어 이런 영희나 철수도 알고보면 자신의 마음 내용의 한 부분이다.
이처럼 영희나 철수 사과라고 본 내용이나 사과라고 본 내용은
오직 자신의 마음 내용인 것이고 또 이 마음 밖에는 아무 것도 전혀 없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것이란 오직 자신의 마음 뿐이다.
이런 내용을 제시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이는 또 한편 자신 마음 밖에 본 바탕이 되는 공한 실재가 있다고 해도
그 역시 아무 것도 전혀 없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입장과도 관련된다.
>>>
한편 현실 내용 일체가 자신의 마음에 나타난 마음내용이라고 제시할 때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사정이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현실에서 이들 내용을 아무렇게 마음대로 대해도 된다고 오해하기도 쉽다.
또는 자신이 원하면 이들은 자신 마음 내용이므로
언제든지 원하는 형태로 자유롭게 변화시켜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쉽다.
현실 내용의 정체나 성격을 파악할 때
이들 현실 내용이 자신의 외부에 있는 외부세상, 외부대상, 외부물질,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고
잘못 이해하면 곤란하다.
물론 이는 현실 일체가 마음 내용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지만,
그러나 현실 일체가 마음 내용임을 이해하더라도
다시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망집을 일으키면 곤란하다.
한편 현실 내용이 곧 자신이 상대한 대상,
즉,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바탕에서는
이후 이들 내용이 마음 내용임을 제시받게 되면,
그전까지 갖고 있던 잘못된 이해와 이를 결합시켜
다시 다음과 같은 혼동을 일으키기도 쉽다.
즉, 자신이 '대상으로 이해했던' 내용은 마음내용이다.
따라서 자신은 마음내용을 '대상으로 해서' 현실 내용을 얻는 것이라고
혼동을 일으켜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이는 눈으로 사과부분을 보았다면
=> 그 부분은 대상이기도 하고 + 마음내용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현실 내용이 마음내용이라는 것은
그 부분은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아니다'라고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혼동은 다음과 같은 사정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현실에서 눈을 떠서 사과를 보면서 그것을 손으로 만지는 경우
사과 부분에 자신의 손이 닿을 때 촉감을 느끼는 경험을 반복한다.
그래서 자신이 촉감을 얻게 한 대상
그리고 자신의 손이 상대한 대상은 자신이 '눈으로 본 그 사과'라고 엉터리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다시 그렇게 눈으로 본 사과는 알고보면 자신이 눈을 통해 얻어낸 마음 내용이라고 다시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내용을 합쳐서 혼동을 일으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상대한 '대상'은 자신의 '마음 내용'이라고 혼동을 일으켜 잘못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뒷 부분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앞 부분은 문제가 있다.
현실에서 그런 경험을 반복하는데
자신이 눈으로 본 그 모습이 촉감을 얻게 하는 대상이 아님을 이해하려면,
이는 그 상황에서 눈을 감아보면 된다.
그 모습을 보지 못해도 촉감은 얻는다.
즉 그 모습이 있거나 없거나 촉감을 얻는데 지장이 없다. => 그 모습은 촉감을 얻게 한 대상이 아니다. [ 단지 그 상황에서 눈을 통해 함께 동시에 얻어낸 내용일 뿐이다. ]
또 이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무언가 볼 때 자신이 거울을 통해 보는 눈 부분이
이런 내용을 얻는 감각기관이라고 오해하면 또 곤란하다.
그렇게 이해하면 그런 부분이 그 외 부분과 상대해서 무언가를 보는 것이라고
오해를 일으키게 되기 쉽다.
지금 자신이 보는 내용 그 일체는 자신의 마음내용이고
이 내용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런 잘못된 견해도 부정하는 취지다.
즉 감각현실 내용안에는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대상도 없고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자신의 감관도 없다.
이 부분을 주의해야 한다.
결국 이는 현실에서 일반적인 입장에서 이 부분에 대해 행하는 판단을 잘못임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하튼 어떤 현실 내용을 얻고 나서
그 정체나 그 성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양한 망상분별을 파생시키고 증폭시키기 쉽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잘 정리해서 이해해야 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Jean - Louis Aubert - Raphaël - Sur La Route.lrc
현재 현실 일체가 마음뿐이라는 내용이 어떤 효용을 갖는 내용인가를 살피고 있다.
그런데 일단 이 내용을 살피는데 기본적으로 먼저 살펴야 할 논점이 상당히 많다.
이 가운데 어떤 부분은 이미 오래 전에 반복해 살핀 내용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이것을 생략하면 일체가 마음이라는 내용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고 본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하나 상세하게 살피면 너무 글이 길어지고 복잡해진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그 대강을 압축해서 제시하고 나서
그 다음에 각 부분을 다시 자세하게 살펴나가고자 한다.
여하튼 노래에서 쉬라고 하는 듯 하니 조금 오래 쉬고 이어나가기로 한다.
쉬는 동안 논의 및 설명을 위한 그림을 하나 그려놓고
간단히 앞으로 살필 주제 키워드를 뽑아 보기로 한다.
- 무상 고 무아 열반적정 공 등의 내용과 - 인과 및 - 유식무경설의 각기 조금 다른 취지
-- 무상 고 무아 열반 공 등의 내용 =>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하고 집착을 제거함
-- 인과 => 실답지 않은 가운데도 생사현실이 일정하게 일정한 관계로 나타나는 과정을 이해하게 함
-- 유식무경설 => 현실 내용에 대해 잘못된 정체 판단의 수정과 함께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고 공한데도 다수 주체가 일정 시간 일정 공간에서 일정한 관계로 일정한 내용을 반복해서 망집을 일으키게 되는 사정의 이해 + 생사현실에서 대승 수행자의 무량한 복덕과 지혜자량을 얻는 바탕에 대한 이해
- 현실내용안에 그것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없다는 내용을 =>
현실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전혀 없다'라고 잘못 오해하는 혼동문제
[ 방안에 책상이 없다는 내용을 => 책상이란 어느 곳에도 없다라고 오해하는 혼동 문제 ]
=> 유식무경은 이 둘 가운데 어떤 내용을 제시하는 것인가
현실 내용안에 외부대상이 없다.
어느 곳에도 외부대상은 전혀 없다.
- '본 바탕인 실재'와 '현실 내용을 얻게 한 외부대상'의 혼동문제
현실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의 파악문제와
본 바탕인 실재의 파악문제를 완전히 같은 내용으로 혼동하는 문제
( a 를 대상으로 어떤 내용을 얻었다는 것은
그 a 가 없으면 그 내용을 얻지 못하고
a 가 있어야 그 내용을 얻는다라는 관계성을 의미한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대상의 파악문제다. )
( 어떤 내용은 어떤 바탕에 놓여 있는가 -는 이와는 다른 문제 )
예:
바다에 배가 떠 있어서
배가 바다를 바탕으로 해 떠 있다고 하는 것과
배는 바다를 대상으로 얻어낸 것이다는 다른 문제다.
예:
꿈을 침대에서 자면서 그런 바탕에서 꾸었다는 것과
꿈 내용( 예를 들어 꿈에서 본 황금)은 침대를 대상으로 해서 꾸었다고 하는 것은
서로 다른 내용이다.
-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서는 대상에 해당하는 내용을 얻지 못하고 그런 관계성을 파악할 수 없다.
=> 이런 대상을 '얻을 수 없다'라는 사정을 => 대상은 '전혀 없다'라고 오해하는 혼동문제
[ 예]
- 실재를 '얻을 수 없음'과 '아예 없음'을 혼동하는 문제
- 대상을 '얻을 수 없음'과 '아예 없음'을 혼동하는 문제
- 귀머거리가 소리를 얻을 수 없다. => 소리란 전혀 없다. 이렇게 두 내용이 같다고 오해하는 혼동문제
- 마음을 곧 실재로 오해 혼동하는 문제
오해의 사정:
[ 마음은 마음을 직접 보거나 만지지 못하고 얻지 못한다.
=> 그러니 마음은 곧 그것을 직접 얻지 못하는 공한 실재와 사정이 같다.
=> 그러니 마음은 곧 실재를 가리킨다.
마음은 결국 일체 현실 내용이 놓여 있는 바탕이다.
실재도 현실 내용의 본 바탕이다.
=> 그러니 이 둘은 같은 내용을 가리킨다.
- 우선 실재는 얻을 수 없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오해해서
만일 어떤 것을 '얻을 수 없으면 그것은 모두 실재를 의미한다고 잘못 오해하면 곤란하다.
[ 이는 예를 들어 '영희는 사람이다'라고 제시할 때 이를 바탕으로 '사람은 영희다'라고 오해하는 오류와 유사하다.
비슷한 오류로 -- 실재는 공하여 불생불멸, 부증불감 이다라고 제시할 때
이를 바탕으로 어떤 것이 생멸을 떠나면 그것은 곧 공한 실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귀머거리 입장에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얻지 못한다. => 이런 바탕에서 정상인이 듣는 소리를 곧 실재라고 오해하는 오류와 사정이 같다.
- 현실이 실답지 않은데도 생사현실이 문제되는 사정
-- 꿈과 같지만 정작 꿈은 아닌 현실의 특성
-- 다수 주체가 일정 시간 일정 공간에서 일정한 관계로 일정한 내용을 반복해 얻는다.
=>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마음내용이라면 왜 현실 내용을 이런 형태로 반복해 얻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즉 마음내용이라면 마음에만 의존해 자유롭지 않고, 일정한 상황에 의존하는가. =>
- 생사현실 일체가 마음이라고 하는 내용이 갖는 효용
- 생사현실에 자신이라고 보는 내용이 무아 공이라고 할 때 평소 나라고 본 내용은 없어지는가.
- 망집의 제거와 재료의 제거를 혼동하는 문제
- 생사현실이 무아 무자성 공이고 마음이라고 할 때 수행은 누가 하고 그 과보는 누가 얻는가의 문제
=> 무량한 생사고통의 이해와 무량겁의 수행을 통해 무량한 복덕 수명 지혜를 얻는 바탕의 이해
>>>
우선 현재 문제삼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그림을 마련해보았다.
[img2-306] 실재진여와 심-자신과 남
08pfl--image/실재진여_마음과자신과남2.jpg
[img2-30] 실재진여와 심-자신과 남
08pfl--image/실재진여_마음과자신과남.jpg
위 그림은 어떤 이가 눈을 떠서 거리의 나무와 다른 사람 영희와 철수의 모습을 보는 가운데
또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 보는 상황이다.
그런 현실 상황을 놓고 그 상황에서 한 주체가 얻는 그 일체 내용이
자신의 마음안에 맺힌 내용임을 나타낸다.
물론 위 그림은 그가 눈을 통해 얻는 내용을 나타낸다.
귀로 듣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 분별하는 내용 등은 일단 위 그림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눈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 자신의 눈 이마 목 허리 등등은 보이지 않기에
위 그림에서 그림 아래 부분에 있는 몸부분 1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부분은 의외로 중요하다.
현실에서 눈으로 보는 내용이 자신이 얻어낸 마음 내용임을
이해하는 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림 아래 1과 같은 부분을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며 대한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눈을 떴다 감았다 반복할 때 위와 같은 내용이 나타나 얻어지고 사라짐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위 내용은 그런 자신과 관련해 자신이 얻어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한편 그 내용은 위와 같은 경계선을 통해서 어떤 부분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음을 확인한다.
이는 결국 위 내용이 자신을 기준으로 자신이 얻어낸 자신 마음 내용이고
외부의 객관적 실재는 아님을 의미한다.
즉 영희나 철수를 대하는 것과 자신을 대하는 것 사이에서 자신을 기준으로 그런 내용을 얻고
또 자신의 모습과 관련해 그런 차이있는 내용을 얻는다는 것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외 이들 내용이 마음 내용임을 확인하는 것은 이미 앞 링크에서 제시한 내용과 같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현실에서 한 주체가 얻는 일체 내용이 마음안 내용이라고 할 때
이런 현실내용의 본 정체와 그 성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앞과 같이 다양한 여러가지 혼동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들을 놓고
그 내용을 하나하나 잘 살펴보기로 한다.
그림은 간단해 보이지만,
핵심은 마음으로 표시한 둥근 점선과
그 마음이 얻어낸 일 부분내용인 부분으로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 사이의
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실질적인 자신의 본 정체에 가깝다고 보아야 하는가를
주의해서 파악해야 한다.
.
[img2-30] 상이 맺히지 않은 심
08pfl--image/실재와심.jpg
● 법인설과 연기와 유식무경설의 각기 다른 취지
- 무상 고 무아 열반 공 등의 내용 =>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하고 집착을 제거함
-- 인과 => 실답지 않은 가운데도 생사현실이 일정하게 일정한 관계로 나타나는 과정을 이해하게 함
-- 유식무경설 => 현실 내용에 대해 잘못된 정체 판단의 오류 수정과 함께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고 공한데도 다수 주체가 일정 시간 일정 공간에서 일정한 관계로 일정한 내용을 반복해서 망집을 일으키게 되는 사정의 이해 + 생사현실에서 대승 수행자의 무량한 복덕과 지혜자량을 얻는 바탕에 대한 이해
논의할 핵심 내용을 먼저 추려보았다.
원래는 긴 문장이었는데 키워드로 넣기는 너무 길어서 간단히 더 줄여보았다.
경전에서 현실내용의 본 정체에 대해서 다양하게 살핀다.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무상하다. 고다. 무아 무자성이다. 알고보면 생사고통을 얻지 못하는 열반 적정이다. 공하다. [법인설]
그리고 그런 현실 내용은 연기를 통해 얻는다. [ 차유고피유... 12 연기 혹업고의 관계 등]
그런 내용을 연기[인과] 관계로 얻는다는 사정이 또 위와 같은 사정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연기즉 공]
그런데 이들 현실 내용은 그 일체가 마음이고 그 안에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 대상은 없다.[유식무경]
그런데 이들 내용이 모두 현실 내용의 본 정체를 살피는 과정에서 제시되는 내용이라는 점은 공통하지만,
이들 내용을 통해 얻고자 하는 내용은 조금은 다르다.
이미 그 사정의 대강을 앞에서 살폈다.
그리고 이들 내용은 경전에서 제시되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어서 그간 많이 반복했다.
그러나 이들 내용과 현실 일체가 마음이라는 유식무경의 내용을 이해하고
이 내용들이 서로 어떤 취지를 갖고 제시되는가를 살피려면 일단 기본적으로 다시 되풀이해 살필 필요가 있다.
무상,고,무아무자성,열반적정,공에 대한 내용[법인설]은 일체에 대해 적용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처음에 제시되는 이들 내용은
우선 일반적 입장에서 근본 무명어리석음을 바탕으로 현실 내용의 본 정체를 잘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망집을 일으킨 가운데 업을 행하여 그런 바탕에서
장구하게 무량겁에 걸쳐 생사고통을 반복해서 받아나간다는 사정에서
그런 상태를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일체에 적용되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 내용을 기본으로 잘 파악하면
현실 어느 상황에서도 한 주체가 일으키는 망상분별과 집착 증상을 기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받게 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하는 수행도 원만하게 행하게 해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근본 바탕이 되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현실에서 각 주체는 현실 내용을 놓고
그것이 대단히 실답다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대하는 상태이다.
자신이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대하는 내용을 실다운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그리고 나머지 가운데 그런 자신과 관련되는 자신의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것이 실다운 내용이라고 여기며 집착을 갖고
그에 바탕해서 분주하게 진지하게 열심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업을 행한다.
그런 업은 매 순간 그 주체가 좋음을 얻고자 하고 나쁨을 피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그렇게 행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대단히 좁고 짧고 얕은 관찰을 바탕으로
그리고 본 정체에 대해서 잘못 파악하고 망상분별을 일으킨 가운데 그와 같이 업을 행하는 것이어서
그 본 취지와 달리 그런 업을 그처럼 행하여 그 주체는 장구하게 생사에 묶이고
축생 아귀 지옥과 같은 3 악도의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후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것이 생사현실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이해할 내용이
바로 현실 내용이 집착을 가질만한 실다운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망상분별과 집착에 바탕한 업을 중단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다.
여기서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들이
위 내용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얻는 내용은 대단히 생생하고 그에 대한 분별도 명료한데
그것이 실답지 않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는 침대에 누어서 꾸는 꿈을 놓고 살피면 쉽다.
꿈을 꾸는 순간 그 꿈은 대단히 생생하다.
그런 꿈을 꾼 것이고 꾸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꿈은 '실답지 않다'고 말한다.
왜 실답지 않다고 하는가.
그 꿈을 꾸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꿈이 생생하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그것이 아니다.
비록 꿈을 생생하게 꾸었다고 하더라도
그 꿈은 잠을 자는 그런 상황 그런 조건에서만 일시적으로 얻은 내용이고
그 꿈에 해당한 내용은 그 꿈 밖 예를 들어 자신이 누어 잔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꿈 내용에 기대하는 다른 속성도 갖지 못한다.
예를 들어 꿈에서 본 황금은 무겁지도 않고 크기도 갖지 않고 다른 것을 바꾸지도 못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비록 그런 꿈을 잠자는 동안 생생하게 꾸었다고 하더라도
그 꿈은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 따라서 이런 실답지 않는 내용을 놓고 집착을 가지면 안 된다.
이런 의미다.
그것은 또 그런 꿈을 꾸지 않았다거나 그 꿈이 생생하지 않다.
또는 그런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가 아니다.
이 내용을 놓고 현실에서 얻는 내용의 사정도 이와 같다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눈을 떠서 어떤 내용을 본다면, 이들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 내용을 생생하게 얻지만,
그것은 그런 조건에서만 얻는 내용이고 눈을 감으면 보지 못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른 영역에서는 얻지 못한다.
귀로 소리를 듣는 마음영역, 냄새를 얻는 영역, 맛을 얻는 영역, 촉감을 얻는 영역,
그리고 이에 대해 분별을 일으키고 분별을 얻는 영역 등에서 모두 마찬가지다.
더욱이 그런 마음과 관계하지 않는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영역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들 내용은 그 사정이 꿈과 마찬가지로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감각현실이 실답지 않다는 것은 그 내용을 현실에서 매 순간 생생하게 얻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생하게 얻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인데 그런 조건에서 그렇게 매 순간 얻는 내용일 뿐이다.
이런 의미다.
현실 내용이 무상하다. => 그것을 얻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고통이다. => 한 순간은 좋음을 주는 듯 하지만, 이를 징검다리 삼아 장구한 고통을 받게 된다. => 그러니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무아 무자성이다. => 꿈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 진짜라고 할 내용이 아니다. => 그러니 집착을 갖고 대하지 않아야 한다.
열반적정이다. => 그런 망집을 제거하고 대하면 그 재료 자체에는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다. => 그러니 그런 망집을 제거하고 임해야 한다.
공하다. => 그 본 바탕은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고 2 분법적인 분별이나 언어표현을 떠난다. =>그러니 그런 망집을 제거하고 임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다.
이는 결국 현실 내용의 사정이 이러므로 집착을 제거하고 그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중지한다.
그래서 그로 인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와야 한다는 내용과 관련된다.
[img2-326] 실답지않음
08pfl--image/나의실답지않음3.jpg
침대에 누운 꿈의 상태와 비유하여
현실에서 얻는 내용을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을 그림을 놓고 다시 살펴보자.
위 그림에서 3번째 원 안에 그려진 몸 부분은 평소 자신이 눈을 떠서
자신의 몸으로 여기며 대하는 그런 부분을 나타낸다.
그리고 점선으로 된 동그라미는 현실에서 그런 내용을 얻어내는 마음을 나타낸다.
이 부분은 결국 눈을 통해 내용을 얻는 마음을 나타낸다.
이 마음은 현실에서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이런 현실 내용을 얻고
이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것이다.
그 사정은 이미 살폈다.
내가 어디론가 움직여야 겠다고 하고 움직이면 위 부분이 변화함을 보게 되는 등의 사정이다.
그래서 평소 이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분주히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간다.
나머지 세상의 다른 내용 예를 들어 나무나 의자 영희 철수 등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은
그 내용이 대단히 그 영역에서는 생생하게 얻는데
정작 다른 정신 영역에서는 얻어지지 않는다
단지 눈과 관계한 그런 상태에서 마음에서 그런 내용을 생생하게 얻었다. => 실답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꿈이 실답지 않다고 하는 사정과 비교해보자.
꿈에서 생생하게 바다나 황금꿈을 꾸었는데
침대에서는 그런 바다가 얻어지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꿈을 꾸는 그 조건에서 그렇게 생생하게 얻었다. => 실답지 않다.
특히 현실에서 혼동을 일으키는 쉬운 부분은
자신이 일정한 내용을 보거나 할 때
그 부분이 사람이라거나 영희 철수 등으로 분별을 할 때
이 분별 내용과 감각현실과의 관계다.
즉, 자신이 행하는 분별 내용은
자신이 눈으로 본 감각현실과 엇비슷하다거나 이와 일치한다고 여기기 쉽다.
즉 분별 내용이 분별 영역에도 얻어지고 감각현실 영역에도 얻어진다.
그래서 실답다 이런 식으로 여기기 쉽다.
더 나아가 그런 내용은 본 바탕인 실재 영역에도 그렇다.
이렇게 여기기 쉽다.
그리고 현실에서 망집을 증폭시키는 주된 요인이 된다.
그래서 감각현실을 얻는 가운데 그 가운데 어떤 부분이 바위나 사과라는 등으로 분별을 할 때
이 분별 내용과 감각현실과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우선 감각현실은 눈을 뜨면 얻고 눈을 감으면 사라지게 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눈을 떴다가 감을 때 사라지는 내용과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을 구분해서
감각현실과 관념분별을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분별 내용을 자신이 눈을 감고 떠올린 가운데
그 내용안에서 직전에 눈으로 보았던 내용을 하나라도 찾아낼 수 있는가를 놓고 잘 검토해야 한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자신이 눈으로 무언가를 볼 때
그런 감각현실 안에 자신이 분별하는 생각내용이 찾아지는가를 놓고도 또 잘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한 영역의 감각현실 내용이 생생하고
또 그에 대한 분별 내용이 명료하다고 해도
그 각 내용은 다른 영역들에서는 그처럼 얻어지거나 있다고 할 내용들이 아님을 먼저 잘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곧 곧 이들 내용이 실답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는 내용이 된다.
참고로 그림에서 마음을 나타내는 동그라미 점선을 8 개 그린 것은
현실에서 표면상 내용을 얻는 마음과 함께
이런 마음을 파생 분화시킨 근본적인 정신을 함께 나타낸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각기 달리 시설하게 되는 것은
현실에서 얻는 각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런 마음을 시설하는 것이고
독단적으로 마음을 먼저 확보해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눈으로 본 마음 내용과 관련해 살핀 위 내용은
다른 마음들에서 얻는 내용들과 관련해서도
그 사정이 같다.
비록 이들 마음이 현실 각 순간에 함께 있고
한 순간에 내용을 얻더라도
이들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은 서로 다르다.
측 눈으로 본 색과 귀로 듣는 소리는 서로 다르다.
하나의 사과를 책상 위에 놓고
이를 눈으로 보고
두드려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보고
손으로 만지고
이에 대해 생각을 한다고 할 때
이 활동이 모두 같은 것을 대상으로 삼아 그런 활동을 한다고 여기더라도
이들 각 영역에서 얻는 내용은 서로 다르고
그 각 내용은 다른 내용과 비교해서 대단히 엉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본 바탕의 내용과 각 마음이 얻는 각 내용들 사이의 관계는
(라면)-바위-사과-벽돌-사람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진여실재 - 제8식 -제 7식 -제1,2,3,4,5식 - 제 6 식에서 각기 얻는 내용이
서로간에 엉뚱하고 다른 내용임을 비유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본래 실재는 어떤 내용을 얻지 못하기에 무엇이라고 표시하기 곤란하고
공하다라고 표현하지만,
그렇게만 표현하면 이들 관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고
(만일~ 라면 ) 이런 의미를 중의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라면으로
일단 표현해서 이들 관계를 비유해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살펴서
비록 각 영역에서 어떤 내용을 생생하게 얻고, 명료하게 분별을 행하지만,
이들 각 내용은 내용은 실다운 내용이 아니라고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들 가각ㄱ이 침대에서 꾼 꿈의 성격과 같다는 의미다.
한편 현실에서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나
영희나 철수라고 여기고 대한 내용을 비롯해
현실 일체는 그 실재가 공하다라는 표현은 다음을 나타낸다.
.
=> 그런 내용은 본 바탕인 진여 실재에서는 얻을 수 없다. => 그래서 현실 내용은 실답지 않다. => 집착을 갖고 대할 필요가 없다.
이런 뜻이다.
실재 진여의 내용이 무언가를 찾아 그것이 공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물론 실재 진여 자체를 놓고 그것이 무언가를 살피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 현실 내용이 이런 사정에 비추어 실답지 않기에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고
이를 통해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시하는 내용이다.
○ 실재 진여와 마음의 혼동 문제
8 개의 원으로 각 마음을 표시한 가운데
3 번째는 눈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보는 상황을 표시하였다.
이 그림을 놓고
본 바탕이 되는 실재와 마음과의 구분과 그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실재는 자신의 마음과의 관계를 떠나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의 내용이
무언가를 찾는 문제다. [ # 표시부분 ]
한편 마음은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얻는 경우
그런 내용을 얻는데 관여하고 작용한다고 여기는 내용이다.
그러나 마음은 그 마음을 직접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한다. [ 점선 동그라미 표시 ]
예를 들어 현실에서 눈으로 보는 내용 일체는 위 그림에서 3 번째 동그라미 안에 모두 포함된다.
그래서 그 일체는 그런 마음의 바탕에 얻어져 머문다고 보게 되고
따라서 그 일체는 마음 내용이라고 제시한다.
나머지 감각현실 및 관념분별 내용들도 이와 사정이 같다.
한편 본 바탕이 되는 실재 진여는
자신과 관계하지 않고도 본래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이 무언가를 문제삼는 것이고
한 주체가 그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서로 엇비슷하므로 혼동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런데 마음과 실재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현실에서 눈을 떠 어떤 내용을 얻을 때 이것을 마음이 얻는다고 한다면,
그 내용은 예를 들어 눈을 감거나 뜸에 따라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한다.
그래서 눈을 감으면 자신이 직전에 본 내용은 아주 없어져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무언가는 계속 있다고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눈을 감거나 뜨거나
자신의 마음이 어떤 내용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즉, 자신의 마음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의 내용을 '실재 진여'로 놓고 그 내용을 찾는 것이다.
즉 실재 진여는 자신의 '마음'과 관계되지 않고도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의 내용을 찾는 것이고
그것은 아주 전혀 없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이 마음이 관계해서 내용을 얻는 주체 입장에서는
그 내용을 직접 끝내 얻지 못하고 따라서 2 분법상의 분별을 행할 수 없고
언설 표현을 떠나는 것이므로
의미없는 표현인 '공'이란 표현을 통해 실재 진여는 공하다라고 제시하게 된다.
이에 반해 자신의 마음이란,
현실에서 자신이 어떤 내용을 얻을 때 그런 내용을 얻어낸 데 작용하는 부분을 찾는 것이고,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얻는 내용들을 근거로 시설해 제시하는 것이다.
즉 마음은 마음 자신이 보지 못하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자신이 어떤 현실 내용을 얻었다면
그런 내용을 얻었기에 그것을 근거로 그런 내용을 얻게 한 '마음'이 있다고 시설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진여 실재는 이런 마음과 관계없이 그대로 있다고 할 본 바탕의 내용을
찾는 것이어서 이 둘은 서로 구분이 된다.
>>>
[img2-304] 실재진여와_마음의관계.
08pfl--image/실재진여와_마음의관계.jpg
위 그림에서 마음과 실재 진여를 찾는 것을 표시했다.
현실에서 어떤 주체가 나무나 영희 철수 그리고 자신의 몸과 같은 부분을 보게 된다면
=> A 이를 통해 이런 내용을 얻게 한 '마음'은 무엇인가를 찾고
=> B 다시 이런 현실 내용을 얻게 한 '마음을 떠나'
이런 현실 내용의 본 바탕이 된다고 보는 실재 진여는 또 무엇인가를 찾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각 언어표현이 가리키는 내용 자체는
일단 위 그림처럼 구분해 놓고 이들 상호간의 관계를 다시 잘 살펴야 한다.
즉, 그렇게 시설하게 된 '마음'자체는 그것이 곧 진여 실재인가.
또는 반대로 진여 실재 자체는 그것이 곧 '마음'인가.
또 사정이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런 '마음'은 본 바탕인 진여 실재를 떠나 있는 것이라고 할 것인가.
이렇게 각 내용간의 관계를 살펴야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마음은 진여 실재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러나 진여 실재를 떠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심 즉 진여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을 마음은 진여 실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렇게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는 눈으로 보는 색과 진여실재의 관계를 살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색은 공한 실재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색은 그런 진여 실재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색은 곧 공한 진여 실재라고 할 수 있다. [ 색즉시공 ] 이렇게 제시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한 실재에 곧 색이 있다거나
공한 실재를 곧 색이라고 한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공중 무색...무수상행식]
그래서 마음과 진여 실재의 관계를 살필 때
이 둘이 처음부터 본래 같은 내용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혼동해 이해하거나,
비록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내용을 가리키고 있다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는
실재 진여가 무언가가 문제될 때
실재는 공하다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실재 진여는 공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인 것이라고 제시하는 입장이 된다.
그래서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가를 놓고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
● 꿈처럼 실답지 않은 생사현실이 문제되는 이유
현실이 꿈과 같이 실답지 않은데
왜 그런 생사현실이 문제된다고 할 것인가.
이 부분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현실 일체는
일정한 조건에서만 그런 내용을 일시적으로 얻고
본 바탕인 실재 영역을 비롯해 다른 영역에서는 그런 내용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마치 침대에 누어 침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내용을 꿈꾸는 경우처럼
실답지 않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꿈과 다른 참된 진짜의 내용 역시 아니다. [무아, 무자성]
또한 한 주체가 자신이나 외부 세상이라고 여기며 이를 대하지만,
그런 내용도 역시 아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하지만,
그러나 현실 내용은 꿈 자체는 아니다.
즉, 꿈과 실답지 않은 측면에서 비슷할 뿐 꿈은 아니다.
실답지 않은 이런 현실 내용은
그것이 실답지 않다고 전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즉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만일 실답지 않기에 그 내용이 전혀 없고
처음부터 전혀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복잡한 논의를 살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 한편 그런 실답지 않은 현실 내용이 있더라도
정말 꿈처럼 누구나 쉽게 그것이 실답지 않다는 사정을 쉽게 관하고
그에 대한 집착을 곧바로 제거하고 평안하게 임하게 되고
그런 바탕에서 생사고통을 쉽게 벗어날 수 있다면
또 역시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 내용은 그 정체를 살피면 비록 꿈처럼 실답지 않지만,
그 자체는 꿈이 아니고
꿈과는 달리
다수 주체가 장구하게 유사한 형태로 일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유사한 관계를 통해
반복해 얻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내용은 매 순간 대단히 생생한 형태로
그것도 색성향미촉...등 다양한 종류로 그것을 얻게 되고
또 이에 대해 명료하게 분별을 일으키면서
다시 이들 내용을 재료로 망집을 일으켜
자신이 분별하는 내용이 이들 각 영역에 실답게 여기면서 집착을 갖고 대하게끔 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대단히 생생하고 명료하게 생사고통을 장구히 겪어나간다.
그래서 현실 내용은
꿈처럼 실답지 않지만,
일반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대단히 실답게 여기며 대하게끔 만드는
앞과 같은 특성을 갖고
그로 인해 그런 바탕에서
그 안에서 각 생명이 대단히 견디기 힘든 생사고통을 장구하게 겪게끔 만들기에
그것이 실답지 않다고 하여 곧바로 무시하고 외면할 도리가 없다.
비록 그것이 실답지 않더라도
만일 그 안에서 장구하게 생사고통을 겪어나가는 일이 없다면
그것이 실답지 않다고 해도 이를 굳이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사정이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생사현실 문제다.
또 한편 가정하여 현실 내용이
정말 실다운 내용일 뿐 아니라,
또 꿈과 달리 그것을 참된 진짜의 내용이라면
또 일반인이 망집에 바탕해 이해하는 내용이 있고
그래서 외부의 객관적 실재라거나 자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실답고 참된 그런 내용이기에
그에 맞추어 실답고 참된 것으로 대하여야 한다고 할 것이고
경전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그에 대해 마냥 집착을 갖고 대하지 말라고 하기도 곤란하다.
그런데 현실은 또 그런 것이 본래 아니다.
그래서 생사현실이란
극단적으로 아예 고려할 필요가 없이 처음부터 전혀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있더라도 누구나 쉽게 실답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는 꿈이나 환영 영화 만화와 같은 것인 경우와
이와 반대로 꿈과 달리 대단히 실답고 참되다고 해야 하는 경우 사이의
중간 영역에 있는 실답지 않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은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각 주체가 얻는 내용이면서
또 그것이 꿈처럼 실답지는 않지만,
그러나 마치 게임기 상황처럼
다수 주체가 함께 일정한 관계로 그 내용을 반복해 얻기에
그것을 실답다고 여기기 쉽다.
그리고 일반적인 입장에서 그런 바탕에서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면서
집착하고 겪는 생사고통의 정도에 비례해서
이를 해결할 수행이 요구된다.
사정이 본래 그렇지 않다면
수행은 그다지 필요없다고 하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따라서 현실에서
이런 현실 내용이 집착을 가질만큼 실답지 않음을 올바로 관하는 한편,
현실을 자신이나 세상의 본 정체로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도 이해하고,
기타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분별하는 내용이 옳지 않음을 잘 이해하고,
그런 바탕에서 그에 대해 집착을 갖지 않고
그에 바탕해 행하던 업도 중단하고,
그런 망집에 바탕해 생생하고 실답게 생사고통을 받아나가는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 수행을 통해 성취해야 할 기본 목표점이 된다.
한편 이런 현실의 본 바탕이라고 할 진여실재에서는
이런 내용을 본래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본래 얻을 수 없기에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한 적도 본래 없다.
그런데 생사현실은 이와 사정이 다르다.
>>>
>>>
생사현실이 실답지 않다고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런 실답지 바탕에서 각 주체가
생생하고 실답게 여기며 장구하게 고통을 받아나가므로
그 생사현실안에서 수행을 통해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수행의 기본 목표가 된다.
그리고 생사 현실 안에서 그 하나하나 내용은
위와 같이 실답다고 볼 내용이 아닌 가운데
그 생주멸의 관계성을 제시하는 것이 연기[인과]와 관련된 내용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어떤 내용을 얻는데
아무 관계없이 그저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내용들과 관련성을 갖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콩씨를 뿌린 곳에서 콩이 나타나는 것이고
돌을 뿌린 곳에서 콩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 콩씨나 콩이나 그런 관계가 실재로 있다는 의미는 또 아니다.
현실안에서 망집을 바탕으로 있다고 보는 a, b, C 사이에
a + b => C 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파악하는 것은
그 자체가 그런 각 내용이 앞에 이미 제시한
무상, 고, 무아, 무자성, 열반적정, 공하다는 내용을 함께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내용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그처럼 보고 파악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들 현실 내용이 무상하고, 고, 무아,무자성, 열반적정, 공함과
그것이 실답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다.
즉 C가 바로 위와 같은 관계로 나타난다고 제시하였다면
그것은 그 C 가 앞에 나열한 그런 속성을 갖는다는 사정을 함께 제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연기관계는 그런 관계를 떠나면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고
그런 관계를 충족하면 나타남을 제시한다.
=> 그래서 그 내용이 곧 영원하지 않음을 함께 제시한다.
또 그런 사정으로 그런 C는 꿈과 같은 속성을 갖고 실답지 않고
꿈과는 반대되는 진짜라고 할 내용이 아님도 나타낸다. [무아 무자성]
또 그런 관계를 떠나면 그런 내용은 얻을 수 없는 것이고
본래 그런 관계를 떠나 파악하고자 하는 본 바탕인 실재는
이런 내용을 얻을 수 없어 공하다는 사정도 이 식이 함께 제시한다.
그래서 이 내용과 이런 관계를 먼저 기본적으로 잘 파악해야 한다.
이들 내용은 과거에 반복했지만 다시 한번 간략하게 살폈다.
그런데 다시 현실에서 문제삼는 내용이
마음 내용임을 다시 제시하는 것이다. [유식무경]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의미이고 무슨 취지에서 제시하는가.
이것을 이런 기본 내용들에 다시 이어서 살피기로 하자.
조금 쉬기로 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Charles Aznavour - Sur Ma Vie.lrc
우선 현실 내용 일체가 마음내용이라는 것은
그 현실 내용이 그렇기에 그렇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무슨 의미를 갖는가를 살피고 있다.
그것은 현실이 마음이면 어떻고 마음이 아니면 어떤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이 마음이라는 것은
우선 현실에 대해서 어떤 주체가 잘못 일으켜 갖는 망상분별을 시정하는 의미를
가장 기본적으로 갖는다.
그런데 그런 잘못된 판단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차이를 갖는 것은
한 주체가 생사고통을 받는 부분에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주체가 생사고통을 받을 때
우선 그 주체는 자신이 왜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지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 그 주체는 자신이 망집에 바탕해 업을 행해서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것이고
또 그 망집이 해결 안되면 그런 생사고통을 무량겁에 걸쳐 이어받게 된다는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한 주체가 받는 생사고통이 어떤 관계로 받게 되는 것인지부터 이해해야 하고
그리고 그렇게 고려할 기간이 자신이 망집에 바탕해서 1 생이라고 보는 그 기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또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평소 자신이나 자신의 외부라고 여기면서 대한 각 부분들의 정체가
실다운 내용이 아닐 뿐더러
그 정체에 대한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무리 그 내용이 실답지 않고,
그에 대한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제시해도
현실에서는 기존에 일으킨 망집이 오히려 그럴 듯하게 여겨지는 사정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망집을 일으켜 임하게 되었는가 그 배경사정을 이해해서
현실에서 가진 견해가 잘못된 견해임을 확실히 이해하려면
그 주체가 어떤 과정으로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가를
마음 현상과 관련해서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자신이 고려해야 할 기간이 무시무종의 무량겁에 걸친 기간이라는 것도
함께 잘 이해해야 한다.
즉 이번 생만 마치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여기는 단멸관을 수정하기 위해서도
이 마음에 관한 내용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사실 일체 현실 내용이 마음이라는 부분을 이해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한편, 수행자가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함께
수행자가 그처럼 생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
앞과 같은 상태에서 생사고통을 겪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생사현실에서 무량겁에 걸쳐서 복덕과 지혜자량을 갖추는 수행을 한다고 할 때
어떤 바탕에서 그런 수행을 한다고 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다시 마음에 관한 기본 내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중생이 일으킨 전도망상이 복잡한 것만큼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단 어떤 주체가 생사의 묶임에서 자신이 벗어나는 단계에서는
이 내용보다는 앞에서 처음 제시한 법인설이나 인과관계의 내용을 통해서
그리고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현실에서 망집에 바탕해 행하는 업을 중지하고
일단 자신을 생사에 묶이게하는 업의 장애를 제거할 수행을 정진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그렇게 임하면 일단 3 악도의 생사 묶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사현실 일체가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이 보다는 조금 더 깊은 내용이 된다.
그런데 무량겁에 걸쳐 중생을 제도하고
또 어떤 과정으로 중생들이 실답지 않은 현실을 대하여
그것을 실답다고 자꾸 여기게 되는가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들 내용을 잘 살피는 것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이 상당히 길고 과거에 반복한 내용들이라고 보기에
간단하게 이것을 압축해 제시하기로 한다.
이들 모든 내용은 생사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생사고통을 해결하려면
어떤 과정으로 한 주체가 극심한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가부터 살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현실에 그런 생사고통을 얻을 수 없는데
망집을 일으켜서 그런 생사고통과
자신이 분별하는 그런 내용들이 현실에 그처럼 있다고 여기는 증상이 문제다.
두번째 그런 상태에서 그런 생사고통을 받게 되는 업을 행해서
그런 생사고통을 받는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이 두번째 문제다.
그래서 이 둘을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다음 관계식을 제시할 수 있다.
망집 번뇌 => 그에 바탕한 업 => 3악도의 생사고통
이 관계식을 반대로 제시하면 또 다음 내용을 제시할 수 있다.
망집 번뇌 제거 => 그에 바탕한 업의 중단 => 3악도의 생사고통을 예방
그런데 사실 위와 같이 단순하게 제시하기는 곤란하다.
그것은 인과문제와 관련된다.
즉 3 악도의 생사고통이란 결과가 지금 이후 행하는 업만으로
받는 것이라면 지금부터 망집을 제거하고 그 업을 중지하면 된다고
단순하게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봄에 씨를 뿌렸다면 여름에 씨를 뿌리지 않는다고 해서
가을에 열매를 맺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원인은 시간관계를 놓고 보면
단순하게 제시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이미 상당히 많이 업의 장애를 쌓은 상태에서는
이후부터 그런 업을 단순히 중지하는 것만으로
위 생사고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칼로 베어 피가 흐르는 상태를 처리하는 문제와도 비슷하다.
만일 계속 칼로 베어대면 피를 멈추기 힘들다.
그런데 이제 칼로 베는 일을 멈춘다고 해서 피가 멈추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전에 칼로 벤 상처에서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를 멈추려면 더 이상 칼로 상처를 내는 일은 중지하는 한편,
이미 난 상처를 꿰메고 봉합하고 치료해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처음 3 악도의 생사고통이 생사현실의 문제이기에
이것을 받게 하는 원인을 살펴서
그것을 제거하고 중단해야 함을 제시했지만,
그것만으로 생사고통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미 쌓아 놓은 업의 장래을 제거하는
수행을 다시 병행해야 한다고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생사의 묶임에서 벗어나는
수행은 이 두 노력을 함께 행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위 식과 반대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제시할 수 있다.
올바로 깨달음 => 수행을 행함 =>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벗어남
그래서 결국 이들 관계를 간단히 보면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망집 번뇌 => 그에 바탕한 업 => 3악도의 생사고통
망집을 제거하고 올바로 깨달음 => 생사고통을 받는 업을 중단하고 수행을 행함 => 3 악도의 생사고통을 벗어남
문제는 망집을 일으킨 상태에서
이 관계를 이해하기 힘든 한편,
생사고통을 벗어나는 수행도 행하기 힘들어하고
또 그런 수행을 행하지 않으면 받게 되는 과보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못하고
또 그런 상태에서 생사고통을 당장 받는 상태가 되면
또 그 고통을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는 점이 전체적으로 문제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유하면 자동차를 부딪히면 다리가 부러지고 장애가 생긴다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차도에 뛰어드는 아이와도 사정이 같다.
그렇게 뛰어들면 그런 고통을 겪는다고 제시해도
그런 고통을 겪기 전까지는
그런 일 자체가 없고
또 지금 자신이 행하는 일과 그 일은 그런 관계가 없다고 부정한다.
그러다가 그런 고통을 겪게 되면 또 자신이 무엇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런 상태로 악순환을 받아 나가게 된다.
마치 비유하면 농부가 봄에 씨를 뿌려도 가을에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입장과 같다.
가을에 열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런 일은 없고
봄에 뿌린 씨와 그 열매는 그런 관계가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열매가 맺게 되면 또 그는 그 열매가 봄에 뿌린 씨 때문에
나타난 것임을 모르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생사현실을 무량겁에 걸쳐서 받아나가는 사정이 사실은 이와 같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 내용을 잘 살펴야 한다.
현실의 정체에 대해 망집을 일으키고
그에 바탕해서 업을 행한다는 부분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은 다음이다.
현실에서 한 주체가 가장 집착을 갖고
자신이라고 여기고 대하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이 잘못된 이해다. - 망상분별이다.
또 현실에서 자신이 대하는 현실 내용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가 이해하는 내용이 거꾸로 잘못된 내용이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좋다고 보는 것을
대단히 좁고 짧고 얕은 관찰을 통해서 추구해나가게 된다.
이것이 그가 생사고통을 받는 과정이다.
또 한편 그런 입장에서는
그 생사고통이 이번 1 생에 그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다.
그리고 더욱이 그가 행한 업으로 그가 받아나갈 3 악도의 생사고통도 파악하지 못한다.
더욱이 축생세계 외에 아귀 지옥세계가 그처럼 있다는 것도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 들어가 묶이는 원인이
지금 자신이 갖는 망집과 탐욕 분노를 바탕으로 행한 업때문이라는 사정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도 잘못 파악한 가운데
단순히 자신이라고 여긴 그 부분이 무너지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단멸관을 취하고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들을 모두 하나하나 잘 이해하고 이런 망집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그 사정을 제시하고
현실 내용이 실답지 않음을 제시하여
일단 그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고
수행을 통해 생사묶임에서 벗어나기를 제시해도
이 상태에서 다시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부분을 자신이라고 여기고
또 외부 세상이라고 여긴 부분을 그렇게 여기면서
망집을 일으키게 되는 배경 사정이 있다.
그래서 이 부분까지 잘 이해하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이 일체가 마음임을 이해하고
좀 더 깊게 이 배경 사정에 대해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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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일반적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부분은 다음이다.
현실에서 무언가 좋은 것을 성취하기를 소원하는데 그것이 성취되지 않고
거꾸로 좋은 것은 무너져 없어진다.
그리고 대신 나쁘고 고통스런 일을 겪게 된다.
이것이 일반적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고통으로 여기는 내용이다.
그런데 모든 일을 놓고 그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집착하는 것들이 이와 같은 상태에 처할 때
그것을 문제로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집착을 가장 많이 갖는 부분이 자신이다.
예를 들어 달이 반달이었다가 그믐달이 되었다.
이것을 별 문제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어느 새 늙고 기능이 떨어지고
곧 병들고 죽어 없어진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것은 대단히 큰 문제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이런 생사고통의 해결이 문제가 된다.
이 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 고통의 정체를 살피게 되면
현실에 그런 생사고통도 얻을 수 없고
그런 생사고통을 겪는 그 주체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그렇게 생노병사 고통을 겪는다고 하소연하는 그 주체가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그 부분이
그런 내용이 아님을 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그 주체가 스스로 자신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그 자신이라고 여기는 망집을 제거하라고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망집을 일으키는 상태에서는
이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내용을 제시하면
몸에 종기가 나서 고통스럽기에 치료를 해달라고 했더니
종기만 제거하지 않고
몸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고통을 해결하는 이상한 방안이다.
이렇게 오해한다.
고통을 해결하고 소원을 성취시켜 달라고 하니
그런 고통을 겪는 자신을 현실에서 없애버리는 것 같다.
이렇게 오해한다.
이것이 망집상태에서 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이해다.
평소 자신이라고 여긴 그 부분이
그 자신이 아니라고 하고
그런 망상분별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니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된 것인가.
이렇게 반대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그런 상태에 준한다.
그래서 천천히 이 사정을 하나하나 잘 살펴야 한다.
○ 음악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mus0fl--Marie-Paule Belle - Chaque Fois.lrc
♥ 잡담 ♥
[ 너무 길어서 조금 쉬면서 내용을 정리해 제시해나가기로 한다. ]
현재 일체가 마음임을 제시하게 되는 효용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 내용이 제시되는 취지와 그 배경부터 살피려고 하니
조금 내용이 길어지고 힘들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우선 기본적으로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들 내용이 과거에 반복한 내용이기도 하고
이들 내용을 살피려면 기존에 살폈던 내용들을 다 한번씩 다시 언급하면서
살펴야 하기에 내용이 너무 길어진다고 보기에
이를 압축해서 대강만 살피고 넘어가려고 하니
마침 올려진 노래에서 장애 상태를 언급한다.
결국 노래에서 전하는 메세지는 이들 기초적 내용이
오히려 현실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므로
이번에 좀 더 잘 살피는 것이 필요함을 제시한다고 시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노래를 또 이어 듣는데
이들 내용이 대단히 혼동을 많이 일으키면서
대단히 골치를 아프게 하는 복잡한 문제들이지만,
조금 잘 사귀어서 한번 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함을 제시한다고
또 시감상하게 된다.
이는 엉터리 시감상이다.
결국 이것도 망상분별의 한 종류이고
불어 노래에 그런 의미가 본래 없다고 보지만,
불교 연구를 하면서 듣다보니 그렇게 들리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을 놓고 보면 이런 혼동이 대단히 많고
이것이 일으키는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문제 해결이 곧 수행문제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지금 조각들도 상당히 밀려진 상태지만,
차근차근 이들 문제를 하나하나 살펴나갈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미 앞에 적은 내용들은 내용을 일단 간단히 압축하면서 살피려고 한 것이기에
조금 다시 보충을 자세히 하는 한편 이들 내용도
체계적으로 다시 순서를 정리할 필요도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일단은 조금 더 쉬면서 이들을 살피기로 한다.
글 쓰는 도중 컴퓨터 수리 등으로 글이 늦어지고 있다.
조금 쉬면서 일체가 마음이라는 내용이 갖는 현실적 효용에 대해 이어나가기로 한다.
다만 이전에 이 내용을 적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을 쉽게 찾아내면 링크를 걸고 그 부분에서 보충해가기로 한다.
[...]
찾아보니 기존 링크 정리 페이지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과거글들이 다 정리되지 않아 어딘가에 있을 지 모르지만
이에 대해 아래에 살피기로 한다.
한편 경전 논서 등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살피는 내용은
대장경 분류코너에서 체계적으로 배열해 살피기로 방침이 변경되어
페이지를 옮겨 붙여 살핀다. -[ 불기2563-05-26 ]
>>>
◈Lab value 불기2563/05/26 |
댓글내용 |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k0605t1591001.html#1369 sfed--성유식보생론_K0605_T1591.txt ☞성유식보생론 제1권 sfd8--불교경율논코너sp_2563_05.txt ☞◆vyak1369 불기2563-05-26 θ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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