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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8일 화요일

서산대사 문집

[ 요약 ]

○ 서산대사의 문집



작성자 Prajna Citta :



어떤 분이 서산대사 문집 청허당집을 찾아서

그것을 열람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링크를 걸어둔다.


淸虛堂集
http://ebti.dongguk.ac.kr/ebti/keyword/index_keyword.asp
한국불교전서 7권 658페이지 3단 1줄

청허당집 淸虛堂集 한불전 07
청허당집서 淸虛堂集序 한불전 07
청허당집서 淸虛堂集序 한불전 07
청허집권지일 淸虛集卷之一 한불전 07
청허집권지이 淸虛集卷之二 한불전 07
청허집권지삼 淸虛集卷之三 한불전 07
청허집권지사 淸虛集卷之四 한불전 07
청허집권오 淸虛集卷五 한불전 07
청허집권육 淸虛集卷六 한불전 07
청허집권지칠 淸虛集卷之七 한불전 07
청허집보유 淸虛集補遺 한불전 07


* 한문 원본의 위치이고

한글 번역본은 옛날에
한글대장경 사이트에서 제공해줬는데

지금 찾아가보니
어디에 있는 지 찾아볼 길이 없다.

서산대사나 사명당은 역사상 유명한 분인데
그 평가는 불교계와 한국 역사계와는 조금 다르다.

부처님은 본인의 조국이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을 때
이를 말리기 위해 나뭇잎이 없는 나무의 아래에 앉아
적국의 왕을 말리는 일종의 침묵의 시위를 두 차례 벌인 적은 있지만,
그러나 처음 그리고 두번째 이를 알아 듣고 물러갔던그 왕이
세번째 침략을 시도하자 더 이상 만류를 포기한다.

부처님의 나라는 사실상 부처님의 출가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의
조국이기도 한 셈이어서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제자 가운데 신통력 제일인 목련존자같은 경우는
신통력으로 침략군들을 처치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부처님께 간청하지만,
그러나 부처님은 이를 하지말라고 금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석가족들이 과거 숙세에 행한 업 때문에 벌어지는 일임을
말씀하신다.

이 전쟁은 왕의 어머니가 석가족의 공주출신이었다고 알고 외가집을 방문했는데
사실은 석가족의 노예출신이었음을 석가족이 비웃은 일 때문에
왕이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일 때문에 이 전쟁이 일어난 것 이전,
더더 오래전 과거 생에

그 적왕이 물고기였을 때
그가 살던 호수가의 물고기들을
석가족들이 마구 잡아 들일 때
물고기 가운데 하나가 훗날 이들을 멸망시키리라고 원을 세워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자신도 그 당시 어린 아이 상태에서
석가족들과 같이 이 물고기 잡는 장면을 보고
웃었기 때문에
지금 머리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사실 불교가 호국불교의 이념을 띄고
전쟁 상황에서 나라를 지켜주는 역할을 해주리라
불교신도들은 기대하지만,

원래 불교의 이념은 국가대 국가의 전쟁 상황에서
어느 쪽의 살륙을 정당화시키고
어느 쪽의 방어를 정당화하고
어느 쪽의 살생을 옹호하고 편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입장에서 볼 때의 불교이지,
원래 불교의 가르침은 그 어느 쪽도
정당화시켜주는 가르침이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오히려 개입한다면
그 모두를 좋은 상태로 이끌어
분노나 굴욕을참고
상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더 나아가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지 않고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여,
다 함께 해탈하여 벗어나 부처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부처님의 이 쌍방에 대한 권유를
한 쪽은 듣고
한 쪽은 듣지 않는 경우에,

전쟁 상황에서
듣지 않는 쪽이 전쟁에서 이기겠지만,
그들은 결국 이긴 후 지옥에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전쟁터에서도 화살촉을 뽑아 화살을 쏘고
방어에만 임하다
비참하게 전쟁에 패해
웅덩이에 파묻혀 코끼리에 깔려죽고

또 여인들은왕의 청을 거절해
발가벗기어 불태워 죽임을 당하지만,

죽은 석가족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 까닭에

적들과 함께 지옥에 이끌려 가지 않고
하늘에 올라가는 것으로 나온다.

어느 상황에서는 수행하다가,
상황이 변하면 수행을 포기하고 수행을 내던지고
세간의 상황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은
불교의 목적이나 가르침이 아니다.

세간에 뛰어드는 것은
세간에 이끌려 들어감이 아니라,
오히려 세간을 더 높은 상태로 이끌어 들이고자 함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조선조때는
지족선사라는 이가 선수행을 닦다가
황진이가 나타나자,
추행을 하려다 망신을 당한 일도 있는데,
이 역시 같은 상황이다.

어느 상황에서는 수행을 잘하다가
상황이 변하면 수행을 내던지고
그 상황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은 옳은 수행이 아닌 것이다.

반대로 그런 세간의 상황에
뛰어들어 그 모두를
자신의 수행에 함께 이끌어 들인다면
그것은 반대로 올바른 것이다.

보살이 세간에서 노닐지만,
이와 다른 것은 무엇이 다른가.

그 목적과 방편의 다름이다.

그래서 외관은 비록 같다해도
그 평가가 각 기준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가치의 기준으로 보아야 하고
무엇으로 평가를 하고
무엇으로 방향을 정하고
어떻게 수단과 방편을 취해 나아갈 것인가에 따라
그 모두가 달라지는 것이다.

칼은 같으나,
의사의 수술칼, 강도의 칼, 요리사의 칼이 제각각
다른 의미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의 입장에서는 칭송받을 일이
적국의 입장에서는 칭송받기 힘든 경우가 많고

장수라면 칭송받을 일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입장에서는 칭송을 받기 어려운 것도
그런 차이라고 할 것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생로병사가 있고
탐욕과 유혹이 있고
분노와 싸움과 다툼이 있고
어리석음이 치성하다.

그런 가운데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가 하는 것은
결국 칭송을 받는 차원에서 평가해본다면,
모든 생명으로부터
오래 오래아주 오랜 기간
칭송받을 상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blog-post_19.html

( 두번째 삭제된 링크  web: http://buddhism007.tistory.com/131

( 이전 삭제된 링크    web: http://blog.paran.com/buddhism007/45960318

08fl--서산대사_문집.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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