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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7일 월요일

불기2564-04-27_합부금광명경_001

『합부금광명경』
K0128
T0664

금광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
● 한글대장경 해당부분 열람II
○ 통합대장경 사이트

○ 해제[있는경우] 
● TTS 음성듣기 안내
※ 이하 부분은 위 대장경 부분에 대해
참조자료를 붙여 자유롭게 연구하는 내용을 적는 공간입니다.
대장경 열람은 위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 [pt op tr] 합부금광명경_K0128_T0664 핵심요약






『합부금광명경』 ♣0128-001♧





금광





♥아래 부분은 현재 작성 및 정리 중인 미완성 상태의 글입니다♥


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원문번역문
합부금광명경






해제보기








■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 제1권
석보귀(釋寶貴) 합편
담무참(曇無讖) 한역


■ 1. 서품(序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셨다.
이때 여래께서는 한량없고 매우 깊은 법의 성품에 노니시니,
이는 모든 부처님이 행하시는 곳으로서
모든 보살이 행하는 바의 청정함보다 더욱 청정하였다.


■ 이 『금광명경』은 모든 경의 왕이니
만약 듣는 이가 있으면
곧 능히 위없이 미묘하고 매우 깊은 뜻을 생각하리라. 


■ 이와 같은 경전은 항상 사방에서 네 부처님 세존께서 보호하시니라.

■ 동쪽의 아촉불(阿閦佛)
남쪽의 보상불(寶相佛)
서쪽의 무량수불(無量壽佛)
북쪽의 미묘성불(徵妙聲佛)이시니라.



내 이제 마땅히 참회하는 등의 법을 설하리니
생기는 공덕은 더할 나위 없으며
능히 모든 고통 허물고 착하지 않은 업을 다하리라.



일체종지(一切種智)가
근본이 되고
한량없는 공덕으로
장엄하여
온갖 고통 없애 주고
한량없는 즐거움 주리라.

모든 감관 갖추지 못했거나
수명이 짧거나
가난하고 힘들거나
모든 하늘 버리고 떠났거나
친척이나 가까운 이와 싸우고 소송하거나
국법[王法]에 저촉되거나
각각 성내고 다투어
재물 없애는 일.

근심 걱정으로 두려워하거나
악한 징조 괴이한 재앙이나
온갖 삿되고 미혹한 일[蠱道]이나
변괴가 이어지고
누우면 악몽 꾸고
낮이면 근심 걱정
마땅히 깨끗하게 씻어 주리라.

이 경전 들음에
지극히 마음 청정히 하고
정결한 옷 입고
오로지하여 들으라.

이 경의 매우 깊이 행할 곳
이 경의 위덕으로
이와 같은 모든 악
능히 다 녹여 없애
고요히 사라지게 하리.

세상 보호하는 사천왕
모든 권속과
한량없는 야차 무리
거느리고 모두 와서
이 경전 가진 이를
보살펴 지켜주리.

대변천신(大辯天神)
니련하신(尼連河神)
귀자모신(鬼子母神)
지신(地神) 견뢰(堅牢)와
대범존천(大梵尊天)
삼십삼천(三十三天)
대신룡왕(大神龍王)
긴나라왕(緊那羅王)
가루라왕(迦樓羅王)
아수라왕(阿修羅王).

그 권속과 함께
다 그에게 와서
이 사람을 옹호하여
밤낮으로 떠나지 않으리라.

내가 지금 설한 것은
모든 부처님 세존의
매우 깊은 비밀이요
미묘하게 행하는 곳이니
억 백천 겁에도
만나기 매우 어려우리.

만약 이 경 듣거나
남 위해 설하거나
마음으로 따라서 기뻐하거나
만약 공양을 올리면
이와 같은 사람은
한량없는 겁에
항상 모든 하늘이 위하고
팔부신장이 공경하리.

이와 같이 수행하면
공덕 생기는 것
불가사의할 것이요
한량없는 복 쌓이리라.

또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존과
깊이 수행한 보살이
보살펴 지켜 주리.

정결한 옷 입고
최상의 미묘한 향으로써
자비로운 마음으로 공양하여
항상 멀리 떠나지 말며
몸과 뜻 깨끗이 하고
더러운 때 없이 하여
기쁘고 즐겁게
길이 이 경전 좋아하라.

만약 듣기만 하여도
마땅히 알라,
훌륭히
사람 몸으로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또한 바른 생활할 것이리라.

만약 듣고서 참회하여
마음속에 굳게 가지면
이것은 최상의 선근이라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리라.






■ 2. 수량품(壽量品)

그때 왕사성(王舍城)에 신상(信相)이라는 보살마하살이 있었다.
그는 이미 일찍이 과거 한량없는 나유타(那由他)백천의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여 모든 선근을 심었다.

이 신상보살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떠한 인연으로 석가여래께서는 수명이 짧아 겨우 팔십 세뿐인가?’

또 다시 생각하며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는 두 가지 인연이 있으면 수명이 길어진다.
어떤 것이 둘인가?
하나는 산 목숨을 죽이지 않는 것이요,
또 하나는 남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겁 동안
죽이지 않는 계[不殺戒]를 닦고
열 가지 착한 일[十善業]을 갖추셨고
음식을 은혜롭게 베풀기도 한량이 없으며 나아가 자기 몸의 뼈와 골수,
살과 피로 굶주린 중생을 배부르게 하여 주었는데 하물며 그 밖의 음식이리오.’

신상보살은 이와 같이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였다.

이런 뜻을 생각할 때 그가 있는 방이 자연히 넓어지고 장엄하게 꾸며졌다.
하늘의 감색 유리와 갖가지 온갖 보배가 사이사이에 섞여서
그 땅을 이루어 마치 여래가 계시는 정토와 같았다.
묘한 향기가 있어 모든 하늘의 향기보다 낮고 연기구름이 드리워 퍼져서 그 방에 가득하였다.


그 방의 사면에는 각각 네 가지 보배로 된 가장 아름답고 높은 자리가 자연히 나타났는데
순전히 하늘 옷으로 좌복을 삼았다.

이 아름다운 자리 위에 각각 여러 부처님이 계시고 받아 드신 꽃은 여러 가지 보배로 이루어졌다.

연꽃 위에는 네 분의 여래가 계셨다.

동쪽에는 이름이 아촉(阿閦)
남쪽에는 이름이 보상(寶相)
서쪽에는 무량수(無量壽)
북쪽에는 미묘성(微妙聲)이다.

이 세 분 여래께서 자연히 사자좌(師子座)에 앉아
큰 광명을 놓으시어
왕사성 및 이 삼천대천세계 나아가 시방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여러 부처님 세계를 비추니
여러 가지 하늘 꽃이 비 오듯 내리고 하늘의 풍악이 울렸다.


그때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은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하늘의 즐거움을 받아
몸이 불구인 자는 곧 완전한 몸이 되었다.

요점을 들어서 말하면 일체 세간에 있는 이익과
일찍이 없었던 일이 다 함께 나타났다.


■ 그때 신상보살이 이 여러 부처님과 희유한 일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공경하여 합장하고
여러 부처님을 향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석가여래의 한량없는 공덕에 오직 수명만은 마음에 의혹이 생긴다. 
어찌하여 여래의 수명이 이와 같이 겨우 팔십 세뿐일까?’


그때 네 부처님께서 바르게 두루 아시는 지혜[正遍知]로 신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부처님의 수명이 짧다고 생각하지 말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우리들은 모든 하늘과 세간의 사람ㆍ마의 무리ㆍ범천의 무리ㆍ사문ㆍ바라문ㆍ
사람과 사람 아닌 이들 가운데 능히 여래의 수명을 숫자로 헤아려 그 한계를 아는 이가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오직 여래만 제외하고…….”

이때 네 분의 여래께서 장차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얻으신 수명을 말씀하시려고 하니
욕계천(欲界天)과 색계천(色界天)의 모든 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및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보살마하살들이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다 신상보살마하살의 방에 와서 모였다.



■ 이때 네 분의 부처님께서는 대중 가운데서 간략히 게송으로 비유하여 석가여래가 얻으신 수명의 앙을 말씀하셨다.

■ 일체 모든 물
몇 방울인지 알 수 있어도
능히 헤아릴 수 없도다.
석존의 수명은.

모든 수미산
몇 근(斤) 몇 냥(兩)인지 알 수 있어도
능히 헤아릴 수 없도다.
석존의 수명을.

일체의 대지(大地)
먼지 수효를 알 수 있어도
능히 헤아릴 수 없구나.
석존의 수명을.

허공의 나눈 경계
오히려 끝 알 수 있어도
능히 헤아릴 수 없구나.
석존의 수명을.

헤아릴 수 없도다,
겁의 세월.
억 백천만겁을
부처님 수명도 이와 같아
한량없고 끝이 없네.

이런 인연으로
그래서 두 가지 인연 설하시니
만물의 생명 해치지 말고
한량없는 음식 보시하라고.

그러므로 신상보살이여
수명 헤아리지 못하고
한량없고 끝이 없으며
또 한계도 없다네.

그러므로 그대 지금
마땅히 부처님의
한량없는 수명
의심하는 마음 내지 말라.


이 아래(다섯 줄)부분은 단본(丹本)에는 없다.
그때 신상보살마하살이 네 분 부처님께서 여래의 수명이 한량없다고 말씀하심을 듣고
마음속에 깊이 믿고 이해하여 뛸 듯이 기뻐하였다.


이 여래의 「수명품」을 설할 때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다.



이때 네 분 여래께서 홀연히 사라져 나타나지 않으셨다
★★[아래는 굴다(崛多)번역을 보충한다.]


그때 신상보살은 그 모든 부처님 곁에서 석가모니 세존의 수명을 말씀하심을 듣고 나서 그 모든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세존이시여,
왜 저 석가모니 여래께서는 이와 같이 짧은 수명을 나타내 보이셨습니까?”

■ 이와 같이 말씀드리자 그 모든 세존께서 신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저 석가모니 여래께서는 오탁악세[五濁世]에 출현하시어
백 세의 수명 동안에 믿고 이해함이 낮은 중생ㆍ
선근이 적은 중생과
내가 있다는 생각[我見]ㆍ중생이 있다는 생각[衆生見]ㆍ명의 근원이 있다는 생각[命見]ㆍ
윤회의 주체를 기른다는 견해[養育富伽羅見]21)ㆍ삿된 견해[邪見]ㆍ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등 그 가운데서
모든 범부 중생과 외도 니건타(尼乾陀)22)ㆍ바리바사가(波梨婆闍迦) 등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세존 석가모니 여래께서 이와 같이 짧은 수명을 나타내 보여 중생을 성숙하신다.

선남자여,
그래서 저 석가모니 여래께서 이와 같이 짧은 수명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저들 중생이 만약 여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것을 알면
태어남이 고통이라는 생각[生苦想]ㆍ부처님은 희유하다는 생각ㆍ
일찍이 없던 분이라는 생각[未曾有想]ㆍ근심과 걱정이라는 생각을 내어
속히 이와 같은 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워서 마땅히 헐뜯어 비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이와 같이 짧은 수명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 그들 중생이 만약 여래가 열반에 들지 않으심을 보면
희유하다는 생각ㆍ근심과 걱정의 생각ㆍ일찍이 없었던 분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아서
그들은 여래가 설하신 바의 모든 경을 받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마땅히 가지고 읽고 외우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세상은 항상하다고 보기[常見] 때문이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한 장부가 있었는데
그 부모가 돈과 재물이 많아서 그로 인해 얻은 것이 많았다.

그래서 그 장부의 모든 아들이 재물이 쌓여 있는 것을 알고 나서는
희유하다는 생각이나 일찍이 없었다는 생각을 내지 않았다.
왜냐 하면 얻은 바가 많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저들 중생이 만약 여래께서 열반에 드시지 않음을 알면
희유한 생각ㆍ미증유한 생각이나 만나 뵙기 어렵다는 생각을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항상하다는 견해를 말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한 장부가 그 부모가 가난하여 얻은 바가 적으면 그들은 혹 왕이나 또는 대신의 집에 갈 것이다.
그들이 그곳에서 창고에 갖가지 많은 보배가 가득한 것을 보고 그곳에서 희유하다는 생각,
일찍이 없던 바라는 생각을 하고 마땅히 얻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것이요,
또한 그런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부지런히 힘써 정진할 뜻을 낼 것이다.
그것은 모두 그런 재물을 모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얻은 바가 적다고 했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이와 같고 이와 같다.
그들 중생이 만약 여래께서 이미 열반에 드신 것을 보면
반드시 희유하고 미증유하다고 생각하고 마땅히 괴롭다는 생각을 낼 것이다.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서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에 세상에 나오신다.
비유하면 우담바라(優曇婆羅)꽃이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야 이에 세상에 나옴과 같다.
이와 같고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 세존은 한량없는 세월을 지나야 이에 마땅히 세상에 나오시게 된다.
그러면 그들 중생은 보기 드문 행(行)을 얻고 일찍이 없던 바를 얻어 마땅히 기뻐하여 뛸 것이며,
그들이 여래를 뵙고 나면 곧 마땅히 향하여 믿게 될 것이다.
만약 여래의 진실한 말씀을 들을 때에는 마땅히 이와 같은 수다라를 받아서 다투거나 어기지 않을 것이다.

선남자여,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여래가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고 속히 열반에 드신다.

선남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을 성숙하게 하신다.”


그때 그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사라져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때 신상보살이 한량없는 백천만 보살과
또 한량없는 억[俱胝] 나유타 백천(百千)의 중생과 함께
기사굴산의 석가모니 여래 정변지의 처소에 나아갔다.
도착하여 부처님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고 나서
신상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위에 말한 바와 같은 여러 가지 일을 말씀드렸다.
나아가 저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도 기사굴산 석가모니 여래의 처소에 나아갔다.
이르러서는 각각 방향 따라 각각 자리에 앉았다.




그때 그 모든 부처님 세존들께서 각각 시자(侍者) 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선남자들아,
석가모니 여래 처소에 나아가 이미 이르렀으니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께 병도 적으시고 기거가 가벼우시며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시는지 안부를 여쭈어야 할 것이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하십니다,
석가모니 여래여.
지금 『금광명경(金光明經)』의 법의 근본을 설하시려 하시니
저희들도 마땅히 따라 기뻐합니다.”




그때 그들 모든 보살마하살 석가모니 여래의 처소에 나아가 이르러서
석가모니 여래의 발에 머리 숙여 예를 올렸다.
예를 올리고 나서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한쪽에 머물러서 그들 모든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사방에서 오신 네 분 부처님 세존께서 안부 여쭙니다.
세존이시여,
병도 적으시고 기거가 가벼우시며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십니까?”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바라오니 『금광명경』의 법의 근본을 설하여 주소서.
모든 중생을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기 위함이며
나아가 굶주리고 넉넉하지 못함을 없애기 위한 까닭입니다.”



그때 세존 석가모니 여래께서 모든 보살 대중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착한 남자들이여.
그대들이 기꺼이 모든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권하고 청하는구나.”



■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 나는 이 산 떠나지 않고
항상 보배로운 이 경 설하고
중생을 성숙하게 하므로
반열반(般涅槃)을 나타내 보이노라.

■ 범부는 물들고 집착한 견해로
내가 설한 것 믿지 않으니
그들을 성숙하게 하므로
내 반열반을 나타내노라.







이때 대중의 모임 가운데 바라문이 있었으니
성은 교진여(憍陳如)요,
이름은 성기(聖記)였다.

대중 가운데 진리를 살피는 마음[諦心]으로 편안히 앉아 있었는데
한량없는 백천의 바라문들이 앞뒤로 에워싸고 함께 공경하여 여래께 공양하였다.

부처님 세존께서 수명이 팔십에 반열반하시리라는 말을 듣고서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백천의 바라문 대중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이마를 숙여 예를 드리고 아뢰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 부처님 여래께서 일체 중생을 불쌍히 여겨 이익되게 하시려면
대자대비로 모두 다 큰 안락을 얻게 하시고
중생의 진실한 부모요,
가장 으뜸이요, 같은 이 없으시고 또 무등등(無等等)이 되시고,
세간의 귀의처가 되시어 덮어 보호하시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즐겁고 맑고 시원하게 하시어
맑은 보름달의 큰 광명과 같고 태양이 우타연산(優陀延山)23)을 비추듯 하소서.

만약 부처님 세존께서
중생을 나후라(羅睺羅)와 같은 아들로 보신다면,
원컨대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을 위하여 하나의 은덕을 베풀어 주소서.”
이때 여래께서 잠자코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이 모임 가운데 율차비(栗車毘:licchavi, 찰제리 종족의 성) 국왕의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일체중생희견(一切衆生喜見)이었다.

그는 대중 가운데에서 말의 변계를 구족하여 문답을 잘 하였다.

이때 왕자가 부처님의 신통력을 입어 바라문 교진여에게 말하였다.
“큰 바라문이여,
그대는 세존에게 어떤 은덕을 구하려고 합니까?
내가 능히 그대에게
그대의 뜻과 같은 은혜를 베풀어 드리겠습니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훌륭하도다, 왕자여.
우리들은 세존의 몸을 공경하며 공양하려 합니다.
그래서 여래의 사리(舍利)를 겨자씨만큼이라도 얻고자 합니다.
왜냐 하면 제가 들은 바로는
만약 선남자 또는 선여인이
여래의 사리에 공경하게 공양한다면
욕계의 여섯 하늘[六天]의 제석천왕과 같은 부귀와 안락을 반드시 얻어
다함이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왕자가 곧 대답하였다.
“큰 바라문이여,
그대는 일심으로 들으소서.
만약 한량없는 공덕과 육욕천에 나는 과보를 구하길 원한다면,
이 금광명경은 모든 경의 왕이라 생각하기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복 받음도 끝이 없어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며
이 경은 이와 같은 공덕을 가지고 있어서
끝없는 복의 과보가 불가사의하니
제가 지금 그대를 위하여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훌륭하도다. 왕자여,
이와 같이 『금광명경』의 미묘한 경전의 공덕은
끝이 없고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우며
나아가 이와 같이 불가사의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 국가의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말합니다.
‘만약 선남자와 선여인이 부처님 사리를 겨자씨만큼이라도 얻어
작은 탑 가운데 넣고 잠시라도 예배하고 공경하며 공양한다면
공덕이 끝이 없을 것이며
이 사람은 목숨을 다하면 육욕천의 주인이 되어
최상의 미묘한 즐거움을 받아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대여,
지금 어떻게 사리에 공양하여
이런 과보를 구하기를 즐겁게 원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왕자여,
이런 인연으로 나는 지금 부처님께
한 가지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때 왕자가 곧 게송으로 바라문에게 답하여 말하였다.

설사 빨리 흐르는 강물 가운데
구물(拘物:꽃 이름)꽃이 생겨난다 해도
세존 몸의 사리는
끝끝내 얻지 못하리.

설령 검붉은 색 구기라(拘枳羅)24)가
흰빛으로 변한다 해도
세존의 진실한 몸은
사리를 이룰 수 없으리.

설사 염부(閻浮) 나무에
능히 다라(多羅) 열매가 생기고
거수라(佉受羅) 나무 등에
암라(菴羅) 열매가 바뀌어 달린다 해도
여래 몸 없어짐이 없고
사리도 생길 수 없으리.

설사 거북의 털로
옷을 만들 수 있어도
부처님 몸 허망하지 않아
끝내 사리 있을 수 없으리.

가령 모기 다리로
성이나 누각을 만든다 해도
여래의 고요한 몸
사리가 되는 일 없으리.

가령 물거머리[水蛭]
입에 흰 이빨이 난다 해도
여래의 해탈한 몸
끝내 물질에 얽매임 없으리.

토끼뿔로 사다리를 만들어
땅에서 하늘까지 오를지라도
삿되게 사리의 공덕 생각하나
이런 이치 없으리.

쥐가 토끼뿔 사다리로 올라
달을 갉아먹는 아수라를 없앨지라도
사리 의지하여 미혹 없애고
해탈하는 것 이런 이치는 없네.

파리가 술에 크게 취하면
보금자리 만들 수 없듯
부처님의 바른 행 없으면
삼승(三乘)에 이를 수 없네.

나귀가 배부르면
마침내 제 역할을 못하듯
노래하고 춤추어 남 즐겁게 하는
범부나 이승(二乘)들이
나와 남에게 능히 설하고 능히 행한다면
이런 이치는 없네.

설사 까마귀와 솔개가
같이 한 나무에 살며
화합하여 서로 사랑한다 해도
여래의 진실한 몸과
사리의 허망한 몸 함께 있다 하면
이런 이치는 없네.

바라내(波羅奈)잎이
능히 바람과 비 막지 못하듯
부처님에게 허망한 생각 일으키면
생사는 마침내 없어지지 않으리.

바다의 큰 배가
모든 재물과 보배 갖추듯
새로 태어난 여자 아이가 잡고 가진다면
이런 이치는 없네.

진리의 몸은 끝이 없어
깨끗하지 못한 번뇌의 땅이
여래를 거둘 수 없음
그 뜻 또한 이와 같네.

■ 비유하면 모든 새들
향산(香山:염부제 제일의 산)을 입에 물 수 없듯
번뇌는 법신을 의지하나
법신은 번뇌에 움직이지 않네.

이와 같이 여래의 몸은
매우 깊어 생각할 수 없으니
만약 법답게 보지 않으면
바라는 바 이루지 못하리.



■ 이때 바라문이 이 뜻을 듣고서 곧 게송으로 왕자에게 답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그대가 진실로 불자요
큰 길상(吉祥)의 사람이라
선교 방편은
이치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바른 기약[正記] 이미 받았네.

왕자여,
나의 말 들어 보오.
이제 차례로 설하리라.
세상 제도하는 의지처이신
부처님 덕 생각하기 어렵고
여래의 경계는
능히 알 자 없으리.

일체 모든 부처님
다른 이와 함께 하지 않으며
일체 모든 부처님
본래 고요해.

일체 모든 부처님
닦아 행하는 바 모두 같고
일체 모든 부처님
미래[後際]까지 항상 머무시네.

일체 모든 부처님
모두 같은 한몸
이와 같은 등의 뜻
이것이 여래의 법이네.

여래의 참된 몸
지어 만들어진 것 아니니
왜 그런가.

모든 부처님 생겨남도 없고
금강도 허물지 못하며
안과 밖 걸림 없으나
몸의 모습 나타내 보여
중생 따라 교화하기 때문이네.

여래 큰 신선[大仙]
물질의 모양[色像] 없으니
이와 같은 몸
피와 살갗에 있지 않네.

어떻게 얻겠는가.
그 사리에 있으니
중생 교화 위하여
방편으로 나타내 보이시네.

온갖 바른 깨달음
진실한 법을 몸으로 삼으며
법계의 청정함
이것을 여래라 이름하네.

왕자여,
마땅히 알라.
부처님 몸 이와 같으니
여래 설하심과 같네.

이 같은 뜻
내 이미 들어 알지만
진실한 뜻
널리 열어 분별해 주시길
여래께 청하려고
사리 구하는
방편문 열었네.

이때 모임 가운데 삼만 이천의 천자가 여래의 이와 같이 매우 깊은 수명의 뜻을 듣고서
모두 다 위없는 깨달음에서 견고한 마음을 내어 뛸 듯이 기뻐하며
이구동성으로 게송을 설하여 찬탄하였다.


일체 여래
반열반하지 않으시고
일체 모든 부처님
몸 부서져 무너짐이 없으나
다말★★ 모든 중생
성숙시키려 하므로
방편의 훌륭한 지혜로
열반 나타내 보이시네.

과거의 여래
불가사의하고
미래의 여래
항상하여 부서져 무너짐이 없고
중생의 법계를
갖가지로 장엄함은
모두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함이네.



이때 신상보살이 모든 여래와 두 보살을 따라
석가의 수명의 뜻 설하는 것을 듣고 나서
바라던 바를 만족하게 얻고
마음에 의혹이 없어져
뛸 듯이 기뻐하며 몸과 마음이 즐겁고 안과 밖이 두루 가득하였다.

그때 다시 한량없는 아승기 등의 모든 중생들이
이 뜻을 듣고 위없는 도에서 다 발심하였다.

이때 네 분의 여래께서 홀연히 나타나지 않으시고
이 모임 가운데는 오직 석가만이 계셨다.








■ 3. 삼신분별품(三身分別品)
진제(眞諦) 한역


■ 그때 허공장보살마하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공경하게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최상의 미묘한 금과 보배의 꽃과 보배의 당기(幢旗)ㆍ번기(幡旗)와 일산으로써
다 공양하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모든 여래의 법과 같이 바르게 수행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자세히 들어라.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생각하라.
내가 지금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 선남자여, 
모든 여래는 세 가지 몸이 있으니 보살마하살은 모두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그 셋인가? 
첫째는 변화로 나타내는 몸[化身]이요, 
둘째는 응하여 나타나는 몸[應身]이요, 
셋째는 진리의 몸[法身]이다. 
이와 같은 세 몸으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거두어 받아들인다.



■ 어떻게 보살이 화신을 밝게 분별하는가? 

선남자여,
여래가 옛날 수행하던 때에 모든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법을 수행하였다.
이 모든 수행법은 수행이 완전함에 이르러야 수행의 힘으로 자재로움을 얻으며
자재한 힘 때문에 중생의 마음을 따르며 중생의 행을 따르며
중생의 경계를 따르며 많은 종류를 밝게 분별하며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때를 지나지도 않으며
장소가 서로 들어맞고 때가 서로 맞으며
행이 서로 맞고
설법이 서로 알맞게 갖가지 몸을 나타내게 된다.

■ 이것을 변화로 나타내는 몸[化身]이라 이름한다.




선남자여,
이 모든 부처님 여래는 모든 보살이 통달하기를 위하므로
참된 진리[眞諦]를 설한다.

생사와 열반이 한맛임을 통달하게 하기 위함이며,
몸이 있다고 생각하는 중생을 두렵거나 기뻐하게 하기 위함이요,
끝없는 부처님 법에 근본을 짓기 위함이요,
여래는 여여(如如)함에 상응하여 여여한 지혜와 원력(願力) 때문에
이 몸이 서른두 가지 모습과 여든 가지의 좋은 모습과 목과 등의 등근 광명을 갖추게 된다.

■ 이것을 응신(應身)이라 이름한다.




선남자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법신(法身)을 분별하여 알아야 하는가?
온갖 모든 번뇌 등의 장애를 없애기 위하여,

■ 그리고 온갖 모든 선법을 구족하기 위하므로
오직 여여(如如)하고 여여한 지혜만이 있으니, 
이것을 법신이라 이름한다.


■ 앞의 두 가지 몸은 가명(假名)으로 있는 것이요, 
이 세 번째 몸은 진실로 있는 것이니 앞의 두 몸에 대한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존재의 여여함을 떠나거나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떠나서는
일체 모든 부처님에게 또 다른 법은 없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의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이며,
일체번뇌가 마침내 다 사라졌기 때문이며,
청정한 부처님의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로
일체 부처님 법을 거두는 젓이다.




■ 다시 다음에 선남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구경에 이르시니, 
자신을 이롭게 함이란 곧 존제의 여여함이요, 
남을 이롭게 함이란 곧 여여한 지혜이다. 
나와 남을 이익되게 하는 곳에서 자재로이 갖가지 끝없는 작용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량없고 끝이 없는 갖가지 부처님 병을 분별하게 된다.


■ 선남자야, 
비유하면 망상의 사유를 의지하면 갖가지 번뇌를 설하고
갖가지 업을 설하고 갖가지 과보를 설하듯이
이와 같은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를 의지하여
갖가지 부처님 법을 설하고
갖가지 연각법(緣覺法)을 설하고
갖가지 성문법(聲聞浩)을 설한다.



존재의 여여함에 의하고
여여한 지혜에 의하여
일체 부처님 법을 자재로이 이루게 되니
이것은 제일이며
이루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을 그림에 장엄하는 도구를 만드는 것도
또한 생각하거나 말하기 어렵듯이
이와 같은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로
부처님의 법을 거두어 이룸도 또한 생각하거나 말하기 어렵다.

선남자여,
무엇을 존재의 여여함이며 여여한 지혜라고 하는가?
두 가지는 분별할 수 없지만 일에 자재함을 얻는다.



■ 선남자여, 
비유하면 여래는 이미 반열반 하셨으나
서원이 자재하므로
갖가지 일이 끝이 없음과 같다. 
그래서 이와 같은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도 일에 자재함을 얻는 것이다.



■ 다시 다음에 보살마하살은
무심의 선정[無心定]에 들어가지만
앞의 원력에 의하여 선정에서 일을 일으키니, 
이와 같은 두 가지 법은 분별이 없으므로
일에 자재함을 얻게 된다.




선남자여 ,
비유하면 해와 달은 분별할 수 없음과 같고
또 물과 거울이 분별할 수 없고
광명도 또한 분별이 없으나
이 세 가지가 화합하므로
그림자가 있는 것과 같다.


■ 이와 같이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도 또한 분별이 없으나
서원이 자재하므로 중생에게 감응이 있으며
그래서 응신과 화신의 두 몸이 있으니, 
마치 해와 달ㆍ그림자가 화합하여 생겨남과 같다.


또 선남자여,
비유하면 한량없고 끝이 없는 물과 거울은 빛에 의하여
공(空)한 그림자에 갖가지 다른 모양을 나타냄과 같다.
공(空)함이란 곧 모양 없는 것이다.



■ 선남자여, 
이와 같이 교화를 받는 대중 모든 제자들은
바로 법신의 그림자[法身影]이다. 
서원의 힘 때문에 두 가지 몸에 응하여
갖가지 모양을 나타내지만
법신의 자리에는 다른 모양이 없다.


■ 선남자여, 
이 두 몸에 의하여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남음 있는 열반[有餘涅槃]을 설하고, 
법신에 의하여는 남음 없는 열반[無餘涅槃]을 설하신다. 
왜냐 하면 모든 나머지가 마침내 다했기 때문이다.

■ 이 세 가지 몸에 의하여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는 머무르는 곳 없는 열반[無住處涅槃]을 설하신다. 
왜냐 하면 두 가지 몸을 나타내기 위하므로 열반에 머물지 않는다. 

■ 법신을 여의고서 다른 부처님이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두 몸은 열반에 머물지 않는가? 
두 몸은 거짓 이름[假名]일 뿐 진실하지 않으며
생각생각에 사라져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자주자주 나타나되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신은 그렇지 않으니 그러므로 두 몸은 열반에 머물지 않는다. 
법신이란 또한 이 두 몸과 둘이 아니니
이런 까닭에 반열반에도 머물지 않는다. 
이 세 가지 몸에 의하므로 머무름 없는 열반[無住涅槃]을 설한다.



■ 선남자여, 
일체 범부는 세 가지 모습 때문에 얽매이고 막히어
세 가지 몸 멀리 여의어
세 가지 몸에 이르지 못한다.


■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사유하여 분별하는 모습이요, 
둘째는 남에 의하여 일으키는 모습이요, 
셋째는 성취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모든 모습은 능히 알 수 없기 때문이며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며 능히 깨끗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 가지 몸에 이르지 못하니
이와같은 세 가지 모습을 능히 알고
능히 없애고 능히 깨끗이 하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몸을 구족하셨다.





선남자여,
모든 범부들은 능히 세 가지 마음을 뽑아 없애지 못하므로
세 가지 몸을 멀리 여의어
능히 이르지 못한다.


■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일을 일으키는 마음이요, 
둘째는 근본에 의지하는 마음이요, 
셋째는 근본 마음이다. 


■ 모든 번뇌를 조복시키는 도에 의하면 일을 일으키는 마음이 다하고, 
법에 따라 번뇌를 끊는 도에 의하면 근본에 의지하는 마음이 다하고, 
번뇌를 훌륭히 잘 뽑아내는 도에 의하여 근본심이 다한다. 

■ 일을 일으키는 마음이 사라지므로 화신(化身)을 나타내고
근본에 의지하는 마음이 사라지므로 응신을 나타낼 수 있고
근본심이 사라지므로 법신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 여래가 세 가지 몸을 갖춘다.




■ 선남자여, 
일체 모든 부처님은
첫째 몸[化身]으로 모든 부처님과 일을 같이하고, 
둘째 몸[應身]으로 모든 부처님과 뜻을 같이하고, 
셋째 몸[法身]으로 모든 부처님과 바탕[體]을 같이한다.




■ 선남자여, 
이 처음의 부처님 몸이 중생의 뜻을 따름에
많은 종류가 있으므로 갖가지 모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설함이 많다. 

■ 둘째 부처님 몸은
제자가 뜻이 한 가지인 까닭에 한 모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를 설한다. 

■ 셋째 부처님 몸은
모든 종류의 모양을 넘어서 모양에 집착하는 경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설하되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고 이름한다.



■ 선남자여, 
이 첫째 몸[化身]은 응신에 의지하여야 나타날 수 있고, 
둘째 몸[應身]은 법신에 의지해야 나타날 수 있다. 
이 법신이란 진실되게 있는 것이니 의지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 선남자여, 
이와 같이 세 가지 몸은
뜻이 있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설하고
뜻이 있기 때문에 덧없다고 설한다.

■ 화신이란 늘 법륜을 굴려 곳곳마다 여여하게
방편이 서로 잇달아 끊이지 않으므로 항상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근본이 아니요, 
일체의 모든 작용이 구족하게 나타나지 않으므로 덧없다고 설한다.

■ 응신이란
시작 없는 옛날부터 나고 죽음이 서로 이어져 끊이지 않고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법[不共法]을 능히 거두어 가지는 까닭에
그리고 중생이 다하지 않으므로
작용 또한 다하지 않는 까닭에 항상하다고 설한다. 
이것이 근본이 아니므로, 
그리고 온갖 작용을 구족하여 나타내지 못하므로 덧없다고 말한다.

■ 법신이란
지어 가는 법[行法]이 아니며 달라짐이 없고
이것은 스스로가 근본이므로 마치 허공과 같다. 
그러므로 항상하다고 설한다.


■ 선남자여,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떠나서
다시 더 훌륭한 지혜는 없으며
존재의 여여함을 떠나서 훌륭한 경계는 없다. 
이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 이 두 가지는 여여하다. 
여여하니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그러므로 법신은 지혜가 청정하며 사라짐도 청정하다. 
이 둘이 청정하므로 법신은 청정함을 구족한다.







■ 다시 선남자여, 
분별하면 네 가지 음이 있으니, 
화신이되 응신이 아닌 것이 있고, 
응신이되 화신이 아닌 것이 있고, 
화신이요 또한 응신인 것이 있고, 
화신도 아니요 응신도 아닌 것이 있다. 



■ 무엇이 화신이되 응신 아닌 것인가? 
여래는 이미 반열반하셨으나 서원이 자재하므로
이와 같은 몸은 곧 화신이다. 

■ 어떤 것이 응신이되 화신 아닌 것인가? 
이것은 십지(十地) 이전 보살의 몸이다. 

■ 어떤 것이 화신이요, 또한 응신인 것인가? 
유여열반(有餘涅槃)에 머무는 여래의 몸이다. 

■ 어떤 것이 화신도 아니고 응신도 아닌 것인가? 
이것은 여래의 법신이다.



■ 선남자여, 
이 법신이란 두 가지가 나타나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두 가지의 있는 바가 없다고 하는가?
이 법신의 모양과 모양이 있는 끈의 두 가지 모두 없으며,
있음도 아니며 없음도 아니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숫자도 아니요, 숫자 아님도 아니요,
밝음도 아니요, 어두움도 아니다.
이와 같이 여여한 지혜는 모양과 모양이 있는 곳을 보지 못하고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님을 보지 못하고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음을 보지 못하며
숫자도 아니고 숫자 아님도 아님을 보지 못하고
밝음도 아니며 어두움도 아님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경계도 청정하고 지혜도 청정하여
분별할 수도 없고 중간도 없다.

모든 번뇌가 사라진 도[滅道]의 근본인 까닭에
이 법신에서 여래가 나타나신다.



선남자여,
이 몸의 인연 경제 처소는
결국 근본에 의하나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 그러므로 만약 깨달은 뜻으로 말하면
이 몸이 곧 대승이요, 
이것이 여래의 성품이며
이것이 여래장(如來藏)이다.

이 몸에 의지하여 처음 발심함을 얻어 수행하여 마음 가운데 훤히 나타난다.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地]의 마음도 또한 다 나타나며
일생보처(一生補處)의 마음ㆍ금강의 마음ㆍ여래의 마음이 모두 훤히 나타나고
한량없고 끝이 없는 여래의 미묘한 법이 다 나타난다.


이 법신에 의하여 불가사의한 큰 삼매가 나타나며
이 법신에 의하여 온갖 큰 지혜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두 몸은 삼매에 의하고 지혜에 의하여 나타난다.


이와 같은 법신은 스스로의 바탕에 의하여
항상하다고 말하고 진실하다고 말하며,
큰 삼매에 의하므로 즐겁다고 말하고
큰 지혜에 의하므로 청정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머무르며 자재롭고 안락하고 청정한 것이다.

큰 삼매에 의하여
수능엄(首楞嚴) 등 온갖 선정과
대법염처[大法念] 등
일체의 염처(念處)와

대자대비ㆍ일체의 다라니(陀羅尼)ㆍ육신통 등
온갖 신통ㆍ온갖 자재(自在)로움과 평등하게 거두어 주는 온갖 법,
이와 같은 부처님 법이 다 나타난다.

이 큰 지혜에 의하여서는
부처님의 위대한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所畏]ㆍ
걸림 없는 네 가지 변재[四無碍辯]ㆍ
일백팔십 가지의 다른 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 법[不共法]과
온갖 보기 드물고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이 다 나타난다.



비유하면 여의보주(如意寶珠)에 의하여
한량없고 끝이 없는 갖가지 온갖 보배가 다 나타나듯이,

이와 같이 큰 삼매의 보배에 의하고
큰 지혜의 보배에 의하여 갖가지 한량없고 끝이 없는 모든 부처님의 미묘한 법의 보배가 나오게 된다.




선남자여,
이와 같은 법신의 삼매와 지혜는 일체 모양을 넘어서
모양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분별할 수도 없고
항상하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으니
이것을 중도라 한다.



비록 분별함이 있지만
체(體)에는 분별이 없으며
비록 셋이라는 숫자는 있으나
체에는 셋이 없다.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니
마치 꿈과 허깨비 같으며,
또 잡힐 바[所執]도 없고
또한 능히 잡는 것[能執]도 없다.


존재의 바탕은 여여하여 이것이 곧 해탈한 곳이라
나고 죽음의 경계를 지나
나고 죽음의 어두움을 넘으니
일체 중생은 수행할 수도 없으며 이를 수 없는 바요,
일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머무르는 곳이다.






■ 선남자여,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금을 얻고자 하여 곳곳에 찾아다니다가 곧 금광을 보았다. 
이미 보고 나서는 곧 금광을 파서
금이 섞인 돌을 골라 화로에 넣어 놓여 다듬어
깨끗한 금을 얻어서, 
마음대로 가공하여 반지나 비녀 등
여러 가지 장식품을 만들면
비록 다시 여러 가지로 쓰이지만
금의 성품은 바뀌지 않는다.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훌륭한 해탈을 구하여
세상의 선행을 닦음에
여래와 그 제자들을 보고서
가까워져서는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린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착한 것이며 무엇이 착하지 않은 것입니까?

무엇이 바른 수행으로
청정함을 얻고 청정하지 않음을 떠나는 것입니까?’


그러면 모든 부처님 여래와 제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청정함을 구하려고
바른 법을 들으려 하는구나.’
이와 같이 알고 나서는 곧 바른 법을 설하신다.



이 선남자 선여인이 이미 바른 법을 듣고
바른 생각을 기억하여 가지고 발심하여 수행하여
정진력을 얻어 게으름의 장애를 깨뜨렸다.

게으름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일체의 죄의 장애를 없앴으며
죄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보살의 배우는 곳[學處]에서 존중심이 없는 장애를 깨뜨리고
존중심이 없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는
흔들리고 후회하는 마음[掉悔心]을 깨뜨렸다.


흔들려 후회하는 마음을 깨뜨리고 나서는

초지(初地)에 들어가고 초지에 의하여
이익의 장애[利益障]를 뽑아내고
이익의 장애를 뽑고 나서는

제이지에 들어가며 제이지에 의하여 닥치지 않은 괴로움의 장애를 깨뜨리고
이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는 제삼지에 들어가며

이 제삼지에 의하여 마음이 부드럽고 깨끗한 장애를 깨뜨리고,
마음이 부드럽고 깨끗한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제사지에 들어간다.

이 사지에 의하여 훌륭한 방편의 장애를 깨뜨리고
훌륭한 방편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오지에 들어가며

이 오지에 의하여 진속(眞俗)을 보는 장애를 깨뜨리고
진속을 보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육지에 들어가며

이 육지에서 행하는 모습을 보는 장애를 깨뜨리고
행하는 모습을 보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칠지에 들어가며

이 칠지에 의하여 사라지는 모양[滅相]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깨뜨리고
사라지는 모양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팔지에 들어간다.

이 팔지에 의하여 생기는 모양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깨뜨리고,
생기는 모양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구지에 들어가며

이 구지에 의하여 육신통의 장애를 깨뜨리고,
육신통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십지에 들어가며

이 십지에 의하여 일체의 아는 바 장애[所知障]를 깨뜨리며
일체의 아는 바의 장애를 깨뜨리고 나서 근본 마음[本心]을 뽑아 없애고
여래의 자리에 들어간다.




■ 여래의 자리란 세 가지가 청정하므로 지극히 청정함을 얻는다. 
어떤 것이 셋인가? 
첫째는 번뇌가 청정함이요, 
둘째는 괴로움이 청정함[苦淨]이요, 
셋째는 모양이 청정함[相淨]이다.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금을 녹여 단련할 때 이미 녹여서 두들기고 나면
다시는 먼지와 때가 없으니
금이 지닌 본래 바탕의 청정함을 나타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이것은 금을 청정하게 하기 위함이지
금을 없애려 함이 아니다.


또 비유하면 물이 맑게 고여 청정하면 다시 더럽고 탁함이 없으니
이것은 물 성품의 청정함을 나타내게 함이지
물을 없애기 위함이 아닌 것과 같다.

■ 이와 같이 법신에는
번뇌가 본래 일어나되 다 청정하니, 
이것은 법신의 청정함이지 체(體)를 없애기 위함이 아니다.



비유하면 공중에 연기와 구름이나 먼지와 안개가 다 이미 맑아지면
허공이 깨끗해진 것이지
허공을 없앤 것이 아님과 같다.

■ 이와 같이 법신은 일체 모든 괴로움이 다 없어졌으므로
청정하다고 말하지
체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자리에 누웠는데
꿈에 큰 물이 흘러 자기 몸으로 밀려옴을 보고
손발을 움직여 역류하여 올라가는데
그 마음의 힘이 게으르거나 물러나지 않는 까닭에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이르렀으나
꿈을 깨고 나면 물과 이 언덕 저 언덕을 볼 수 없음과 같다.


생사의 망상이 이미 다 없어지고 나면
이 깨달음이 청정하되 깨달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 이와 같이 법계의 온갖 망상이 다시는 생기지 않으므로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이지
체가 없어져서 청정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또한 선남자여, 
이 법신이란 번뇌의 장애가 청정하므로 능히 응신을 나타내며
업의 장애가 청정하므로 능히 화신을 나타내며
알음알이의 장애가 청정하므로 능히 법신을 나타낸다.



비유하면 허공에 의하여 번개가 일고
번개에 의하여 빛이 나옴과 같다.

이와 같이 법신에 의하므로 응신이 나타나며
응신에 의하므로 화신이 나타난다.



■ 그러므로
성품이 지극히 청정하여 법신을 거두어들이며
지혜가 청정하여 응신을 거두며
삼매가 청정하여 화신을 거두어들인다.

이 셋의 청정함이 곧 존재의 여여함이다.

이는 다르지 않은 여여함이며
한맛의 여여함이며
해탈의 여여함이며
구경(究竟)의 여여함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체는 한 가지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선남자여,
만약 선남자나 선여인이 있어
여래는 나의 큰 스승이라 말하면
마땅히 이 선남자나 선여인은
여래의 몸은 별다른 몸이 없음을 다 알고 다 보게 됨을 알아야 한다.


선남자여,
그러므로 일체 경계에 대하여 바르지 못한 생각을 다 끊어 없앴기 때문에
이 법에는 두 모양이 없고 분별도 없다.


성인이 닦아 행하는 바는 여여하며
두 가지 모양이 없는 법 가운데서 닦아 행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온갖 종류의 장애가 다 사라져 없어진다.

여여하게 온갖 장애가 사라진 이와 같고
이와 같은 존재의 여여함과 여여한 지혜는
가장 청정함을 얻는다.



여여한 법계는 지혜가 청정하니
이와 같고 이와 같이 온갖 자재함을 갖추어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온갖 자재함★★을 얻는다는 것은
온갖 모든 장애를 다 없앴기 때문이며
모든 종류가 청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여한 지혜의 모습이니,
이와 같이 보는 자는 곧 ‘성인의 견해’라 하고
이것을 곧 ‘진실로 부처님을 본다.’고 한다.

왜냐 하면 여여함만이 여여함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가 일체 여래를 본다.
왜냐 하면 성문과 연각은 이미 삼계(三界)를 벗어나
참된 경계[眞境]를 찾지만
능히 보거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인도 보거나 알지 못하니
일체 범부는 모두 의혹하는 마음을 내며
뒤바뀌고 분별하여 제도될 수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토끼 새끼가 큰 바다를 건너려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능히 존재의 여여함을 통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에 선남자여,
일체 여래께서는 분별하는 마음이 없고
일체법에 큰 자재를 얻으니
걸림이 없는 청정한 지혜로 보는 까닭이며
이것은 스스로의 경계라 남과 함께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기겁에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을 기꺼이 행하며 이 몸을 얻은 것이다.


이 같은 몸은 가장 높아 비할 데 없으니
이곳은 가장 훌륭하고 불가사의하여
말의 한계를 넘으며
이곳은 고요하여 일체의 두려움을 벗어난다.



선남자여,
이와 같이 지견(知見)이 여여하여
생겨나지도 않고 늙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으니
수명이 한이 없으며 눕고 잠자는 것도 없고
먹는 것도 없으며
몸과 마음이 항상 선정에 있어 산란하거나 움직임이 없다.

만약 여래에게 다투거나 따지는 마음을 일으키면
곧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한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는 다 능히 이익되니
듣는 이가 있으면 다 해탈을 입을 것이요,


만약 사나운 사람,
사나운 코끼리,
사나운 짐승들이 있어도 서로 만나지 않을 것이니,
부처님께 업을 일으키면 과보가 끝이 없다.



일체 여래에게는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의 일이 없으며
일체 경계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생사와 열반에 대하여 다르다는 마음이 없으며
여래가 기약하신 바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부처님 여래는 걷고 머물고 앉고 눕는 네 가지 위의 가운데
지해로 거두지 않음이 없으며
일체 모든 법을 위하지 않음이 없고
자비로 거두어지는 바 되지 않음이 없이
일체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자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금광명경』을 듣고 믿어서 알면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의 길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사람과 하늘에 태어나되 천하게 되지 않으며
항상 모든 부처님 여래를 가까이하여
바른 법을 받아 들이며
항상 모든 부처님의 청정한 나라에 태어난다.



왜냐 하면 이것은 매우 깊은 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선남자는 여래께서 이미 보시고 이미 수기하셔서
마땅히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니,
이 선남자는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법의 경을 얻었기 때문이다.

마땅히 이 사람은 여래를 비방하지 않고
정법을 비방하지 않으며
성스러운 승가를 비방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아직 선근을 심지 않은 모든 중생에게는 선근을 심게 하며
이미 심은 선근은 더 늘리고 성숙하게 한 까닭으로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다 능히 육바라밀을 행하게 된다.”


이때 허공장(虛空藏)보살과 범천과 제석천ㆍ사천왕과
모든 하늘 대중들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고 합장하고 공경하며
부처님 밭에 이마로 절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 “세존이시여, 
만약 곳곳에 있는 국토에 이 『금광명』의 미묘한 경전을 강설(講說)한다면
그 나라에는 네 가지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넷이냐 하면,
첫째는 국왕과 군인이 강성하여 모든 원적이 없고
모든 병을 여의고 수명이 길어지고 길상(吉祥)하고 안락하며 정법이 훌륭할 것입니다.
둘째는 보필하는 재상대신이 화평하고 기쁘며 다툼이 없어 임금이 공경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셋째는 사문 바라문과 나라와 고을 인민이 정법을 수행하며 이로움이 많을 것이며
수명이 길고 부유하고 안락하며 모든 복전을 다 닦아 일으킬 것이요,

넷째는 하루 세 때 가운데 사대(四大)가 알맞고 고르며
이 모든 인민이 더욱더 잘 지켜서 자비와 평등한 마음이 다치지 않아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정성스런 마음으로 우러러 귀의하여
다 보리의 행을 닦도록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이익과 공덕으로 저희들이 다 곳곳에 이롭게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렇고 그렇다.
너희들이 마땅히 이와 같은 경전을 이와 같이 수행하면
곧 법이 세상에 오래 머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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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부금광명경서(合部金光明經序)


『금광명경(金光明經)』은,
그 가르침이 대승교[滿字]1)의 극치를 이루어 꿈속에서 금으로 된 북[金鼓]을 치게 하고,
그 이치가 진공(真空)2)에 달하여 이 땅 위로 보배의 탑[寶塔]이 솟아나게 하며,
또한 삼신(三身)의 과보를 갖추어 전생의 업보를 갚는 데 어그러짐이 없게 하고,
십지(十地)3)의 인연을 원만하게 이루어 옛적의 수행을 부족함 없이 다 드러내게 한다.

이 때문에 경 중의 왕[經王]이란 호칭을 얻을 수 있었으니,
장차 사람들을 크게 도울 것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그 지위는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대흥선사(大興善寺)의 사문(沙門) 보귀(寶貴)는
근래 주(周)나라4) 때의 도안(道安)5)스님의 상수제자[神足]이다.
포교[明匠]6)로 사람을 감복시키니,
실로 훌륭한 인재라고 할 만하며,
여러 경전을 탐닉하여 열람하며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으니,
석가모니 부처님[瞿曇]7)의 화신(化身)이나 공자의 안연(顏淵)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보귀 스님은 옛적 진(晉)나라의 사문(沙門)인 지민도(支敏度)가
2지(支)8)와 2축(竺)9)과 1백(白)10) 등 5가(家)의 『수능엄(首楞嚴)』 다섯 본(本)을 합쳐서 1부(部)로 만들어 8권(卷)으로 지은 것과,


또 1지(支)11)와 2축(竺)12) 등 3가(家)의 『유마(維摩)』 세 본(本)을 합쳐서 1부(部)로 만들어 5권(卷)으로 지은 것과,
근래에 사문(沙門)인 승취(僧就)가 다시 2참(二讖)13)과 구마라즙[羅什]과 야사(耶舍) 등
4가(家)의 『대집(大集)』14) 네 본(本)을 1부(部)로 만들어 60권(卷)으로 지은 것을 정리하였다.
이는 시냇물을 거두어서 바다에 더하며 겨자씨를 모아서
산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에 그치지 않은 큰 공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합쳐진 경전들은 그 글과 뜻이 두루 갖춰져 있었으니,
이는 선대의 현명한 스승들이 남긴 자취로서,
보귀 스님이 드디어 이를 계승하여 모범으로 삼은 것이다.

『금광명(金光明)』은 세 본(本)이 남아 있었는데,
가장 초기의 것은 북량[涼世]15) 때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것으로
4권(卷)으로 되어 있고 18품(品)에서 끝난다.


그 다음의 것은 주(周)나라 때에 사나굴다(闍那崛多)16)가 번역한 것으로 5권(卷)으로 되어 있고 20품(品)으로 이루어져 있다.
뒤에 양(梁)17)나라로 바뀐 뒤에 진제삼장(眞諦三藏, 499~569)이
건강(建康)18)에서 「삼신분별(三身分別)」ㆍ「업장멸(業障滅)」ㆍ「다라니최정지(陀羅尼最淨地)」ㆍ「의공만원(依空滿願)」 네 품(品)을 번역하였으니,
이는 이전에 사라졌던 품으로 앞의 담무참 번역본 18품과 합하여 22품(品)으로 만들었다.

그 서문에서 과연 말하기를 “담무참(曇無讖) 법사가 『금광명경』이라 칭하였는데,
이 번역본에는 편(篇)과 품(品)이 빠져 있다”고 하였다.
문장을 살펴보고 뜻을 음미해볼 때마다 이 설(說)은 징험됨이 있으며,
다른 책과 대조해 보더라도 반박할 수 없었으니 자나 깨나 늘 아쉬운 부분이었다.
보귀(寶貴) 스님이 매번 탄식하며
“이 경은 비밀스럽고 오묘한데 후분(後分)에 어찌 「촉루품囑累品」이 없는가?
과거에 비록 세 번이나 번역되었으나,
본래 완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범문(梵文)을 보고 오래도록 생각하여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수나라[大隋, 581~619] 통치 기간에 새로운 경전이 유입되자,
황제가 담당 관리에게 명령하여 서로 이어서 번역하게 하였다.
개황(開皇) 17년에 이르러 법석(法席)19)을 여는 동안
북천축(北天竺) 건타라국(揵陀羅國)의 삼장법사(三藏法師)20)—이곳 말로 지덕(志德)이라고 한다.—에게 권하여
거듭 후본(後本)을 찾아보게 하니,
과연 「촉루품(囑累品)」이 있었고,
나중에 「은주다라니품(銀主陀羅尼品)」도 얻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불전(法典)이 처음에 흩어져 뿔뿔이 나뉘고 갈라져서
나중에 있는 것을 이어서 붙여 기록하여
글의 이치가 완전히 갖춰지기 어려웠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삼장법사(三藏法師)인 혜성 충명(慧性冲明)은 학업(學業)이 뛰어나고
내외(內外)의 경론(經論)에 널리 통달하였다.
그는 수도에 있는 대흥선사(大興善寺)에 머물면서 번역하였는데,
전에 먼저 나온 경전과 합친 24품을 베껴서 8권(卷)으로 만들었다.
학사(學士)인 성도 비장방(成都費長房)이 붓으로 받아 적고,
인도의 사문[梵沙門]이며 일엄사(日嚴寺)의 스님인 언종(彥琮)이 교감을 맡았다.

보주(寶珠)가 이미 다 갖추어졌으니
뛸 듯이 기쁜 마음 깊어만 갑니다.
부디 이 법의 등불이 영원히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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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자교(滿字敎) :
 완전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대승교를 뜻하는 말이다.
소승교를 반자교(半字敎)라고 한다.
대승교는 의리가 원만하여 글자가 완성된 것과 같으므로 만자교라 한다.
2 진공(眞空) :
 일체의 색상(色相)을 초월한 참으로 공허한 경지를 말한다.
3 십지(十地) :
 보살의 수행 단계를 10단계로 정리한 것이다.
나중에 보살의 수행이 52가지로 정리되자,
그 41번째부터 50번째까지를 가리키게 되었다.
환희지(歓喜地)ㆍ이구지(離垢地)ㆍ발광지(発光地)ㆍ염혜지(焔慧地)ㆍ난승지(難勝地)ㆍ현전지(現前地)ㆍ원행지(遠行地)ㆍ부동지(不動地)ㆍ선혜지(善慧地)ㆍ법운지(法雲地) 등이 있다.
4 주(周)나라 :
 중국 서주(西周,
B.C.
1046~B.C.
771)나 동주(東周,
B.C.
770~B.C.
256)가 아닌,
북주(北周,
557~581)를 말한다.
5 도안(道安) :
 도안(312~385)은 중국 동진 때의 승려로,
반야학 '본무종'(本無宗)의 대표적 인물이다.
6 명장(明匠) :
 출가하여 불법을 닦고 실천하며 포교하는 사람을 뜻한다.
7 구담(瞿曇) :
 인도의 석가(釋迦) 종족의 성(姓)으로,
산스크리트어 ‘가우타마(Gautama)’ 혹은 ‘고타마(Gotama)’의 음역어이다.
8 2지(支) :
 후한(後漢,
25~220) 때의 월지(月支)의 삼장(三藏)인 지루가참(支婁迦讖)과 오(吳,
238~251)나라 때의 월지(月支)의 우바새(優婆塞)인 지겸(支謙)을 말한다.
9 2축(竺) :
 서진(西晉,
265~316) 때에 월지(月支)의 후예[裔]인 돈황삼장(敦煌三藏) 축법호(竺法護)와 서진(西晉) 때에 서역(西域)의 우바새(優婆塞)인 축숙란(竺叔蘭)을 말한다.
10 1백(白) :
 삼국시대 위나라[魏] 때의 서역(西域) 삼장(三藏)인 백연(白延)을 말한다.
11 1지(支) :
 『불설유마힐경(佛說維摩詰經)』 2권을 번역한 지겸(支謙)을 말한다.
12 2축(竺) :
 『비마라힐경(毘摩羅詰經)』 3권을 번역한 축숙란(竺叔蘭)과 『유마힐소설법문경(維摩詰所說法門經)』 1권을 번역한 축법호(竺法護)를 말한다.
13 2참(二讖) :
 『대집(大集)』 즉,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의 전부(前部)는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하였으며 후부(後部)는 나련제야사(那連提耶舍)와 지엄(智儼)ㆍ보운(寶雲) 등이 번역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2참(二讖)이라고 하였으니 2인(人)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나 담무참 외의 1명은 알 수 없다.
담무참은 담마참(曇摩讖)이라고도 하는데 그에 2참이라고 한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14 『대집(大集)』 :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을 말하는데,
전체 17품 6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방등이라 함은 대승경전을 통칭하는 말이요,
대집이라 함은 많이 모았다는 말로서,
곧 대승의 교리를 많이 모았다는 뜻이다.
중국 수나라 때 승취(僧就)가 편찬한 경으로,
제1품에서 제11품까지의 26권과 제13품의 3권은 북량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했다.
제12품 4권은 송나라 때 지엄(智儼)과 보운(寶雲)의 공동번역(427년)으로,
별행본으로 전해오고 있다.
제14품 12권,
제15품 11권,
제16품 2권은 나련제야사의 번역(566년)으로,
각기 독립되어 있다.
제17품 2권도 후한의 안세고(安世高)가 번역한 것으로,
별행본으로 독립되어 있다.
15 북량[涼世] :
 북량(北涼,
397~439)은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감숙성(甘肅省)에서 건국된 나라이다.
16 사나굴다(闍那崛多) :
 중국 진(陳)ㆍ수(隋) 시대의 번역가로,
북인도 건타라국 사람이다.
17 양(梁) :
 중국 남북조 시대 강남에 건국된 남조의 3번째 왕조이다.
18 건강(建康) :
 남경(南京)의 고칭으로,
동진(東晋) 및 남조(南朝)의 수도이다.
19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 등을 행하는 자리를 말한다.
20 삼장 법사(三藏法師) :
 경ㆍ율ㆍ논의 삼장에 통달한 고승을 말한다.
21 부가라(富伽羅)는 범어 pudgala의 음사이며,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도 한다.
외도의 60지견(知見) 가운데 하나로 아(我)의 별명이다.
무아(無我)의 뜻으로 보면 생사의 주체로서의 보특가라를 인정하지 않으나,
부파불교의 독자부 경량부에서는 이를 인정한다.
22 니건타는 범어 Nirgrantha의 음사이며,
삼계의 묶임을 여의었다(離緊,
無結]는 뜻이다.
육사외도의 하나로서 고행외도(苦行外道) 또는 나형외도 (裸形外道)라고 한다.
23 우타연(優陀延)은 지명(地名)으로 ‘해 뜨는 곳[日出處]’이라고 번역한다.
24 구기라(拘枳羅)는 범어 kokila의 음사이며,
새 이름이다.


○ [pt op tr]










ॐ मणि पद्मे हूँ
○ [pt op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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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lles Dreu - Alouette-Alo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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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t op tr] 예술작품 사진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Konstantin-Korovin-milan-1888




○ [pt op tr] 꽃 공양,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Pisa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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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히 XIII 껑쀼쓰 드 보비늬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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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담 ♥경전명 붙여 외우기와 다라니

경전 내용은 길다.
이것을 늘 지니고 다니려면 결국 압축해서 경제목에 넣어야 한다.
그래서 경전 중요 내용을 키워드로 압축하고 경제목과 묶어서 지녀야 한다.
그러면 나중에 경제목으로 경전 핵심내용을 떠올릴 수 있다.
또 경전 핵심 내용을 떠올려서 경제목도 떠올려 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경전구절을 인용할 때
경제목을 통해 인용도 붙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는 경전 구절은 막연히 떠오르는데
경전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는 경전 제목을 떠올라도 경전 내용이 막연한 경우도 있다.
또 둘다 다 대강 내용만 떠올를 경우도 있다.

오늘날 검색방법을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한계가 있다.

정확히 단어나 구절이 일치하지 않으면 검색이 잘 되지 않는다.
또 어떤 경우는 너무 많은 경전들이 검색되 나와서
결국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결국 자신이 경전 제목을 죽 벌려서
하나씩 되짚어 보는 방안도 사용해야 한다.

고려대장경에 1514 권 경전이 있다고 하면
1514 권을 하나씩 나열해 살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그러나 대강 범위를 좁혀서 이런 작업이 필요할 수 있다.

이 때 경전번호명을 통해서 경전을 나열해 살피기도 한다.
그런데 대장경마다 배당한 경전번호가 또 다르다.
한편 경전제목을 가나다 순으로 나열해 살필 수도 있다.
과거에는 천자문 글자를 색인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숫자배열이 어느 정도 여러 경전의 특성을 통해 묶어 배열하지만,
숫자로 경전을 기억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경전제목을 나열해 떠올릴 때는 그래도 가나다순이 편하다.

다만 가나다 순 배열시에는
경제목이 잘 떠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 방안이다.

이 때 원칙적으로 가 다음에 나열될 수 있는 글자가 대단히 범위가 넓다.
이것이 한글이 갖는 특성이고 장점이기도 하다.
초성이 19 자 중성이 21 자 종성이 27 자가 된다.
그런데 종성이 없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찾으려 하면 대단히 어렵다.
111720 여개의 글자가 이론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결국 다음에 나열되는 경전명을 같이 붙여서 3 개씩은
함께 묶어 다니는 것이 편하다.
그렇게 앞 뒤 경전을 함께 묶어 붙여서 평소 지니면
수고가 덜어진다.

예를 들어 『합부금광명경』을 읽었다고 하자.

가나다 순 배열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하리제모진언경≫_≪K1306≫_≪T1261≫
≪합부금광명경≫_≪K0128≫_≪T0664≫
≪해권론≫_≪K0643≫_≪T1620≫
참조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blog-post_84.html


합부금광명경을 인용시 참조하려면
≪합부금광명경≫_≪K0128≫_≪T0664≫
정보 가운데 하나를 붙잡아야 한다.

번호는 각 대장경체계마다 나름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번호외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역시 경전명 자체가 중요하다.
그래서 경전명을 기억하는 것이 낫다.

문제는 경전명이 어렴픗이 생각하는 경우다.

이 때 예를 들어 하리제모진언경이 생각이 난다고 하자.
그런데 그 다음에 가나다순으로 가능한 경전제목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하 다음에 나열된 한글 글자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하리제모진언경
다음에 합부금광명경
그 다음에 해권론
이렇게 묶어 기억한 경우가 의미가 있다. 

그러면 가나다순으로 배열가능한 것을 모두
굳이 헤아리는 수고를 덜게 된다.

물론 그 이전이나 이후 경전도 또 마찬가지다.


하리제모진언과 합부금광명경, 해권론 이들 내용이
본래 크게 관련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이들 제목과 함께
이 제목에 핵심내용을 담아 지니고 다니려면
결국 이런 기억방안을 또 사용해야 한다.

평소 경전을 살필 때
서로간에 연상이 되어 결합될 수 있을 방안을 찾아서
함께 묶어 두는 것이 편하다.

『합부금광명경』을 대할 때 가나다순으로 앞 경전은
『하리제모진언경』이고, 다음은 『해권론』임을 기억해두면서
대하는 것이 낫다.


이는 마치 자신의 서고에 이들 경전이 가나다순으로 차례대로
꼽혀 있는 가운데 하나를 뽑아 살피는 경우와 같다.
그런데 이는 경전제목 기억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 필요하다.










문서정보 ori https://buddhism0077.blogspot.com/2020/04/2564-04-27001.html#2770
sfed--합부금광명경_K0128_T0664.txt ☞금광
sfd8--불교단상_2564_04.txt ☞◆vdxg2770
불기2564-04-27
θθ